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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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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오체투지> 시모음 댓글:  조회:4535  추천:0  2015-05-10
     + 오체투지  몸을 풀어서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짓고 몸을 풀어서 거미는 하늘 벼랑에 그물을 친다. 몸을 풀어서, 몸을 풀어서, 나는 세상에 무얼 남기나. 오늘도 나를 자빠뜨리고 달아난 해는 서해바다 물결치는 수평선 끝에 넋 놓고 붉은 피로 지고 있는데. (이수익·시인, 1942-) + 오체투지  낡은 절 뒷마당 돌탑 옆에  탑보다 더 오래된 배롱나무 한 그루  오체투지라  올해도 장엄한 화엄으로  꽃 피겠구나   보아라  꽃 피울 줄 아는 것들 모두 엎드려  오체투지 하는  장엄한 봄날   온갖 경이 다 소용없다  저 중놈들 봄볕에 절 밥만 축내는구나  할 일 없거든 거름이나 져 날라라 (김시천·시인, 1956-) + 오체투지  비온 뒤의 보도블록  지렁이들이 온몸을 붓 삼아 수상한 상형문자를 기록한다 쓰다가 발에 깔려 문질러진 놈, 토막토막 여며진 채 기는 놈 흙 속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미라가 되고 말 걸  알까 모를까 오로지 죽음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저 봄날의 장렬한 육박전 같은 몸부림은 저 봄날의 화려한 사육제 같은 몸부림은 누구더러 누구더러 읽으라는 아득한 메시지일까 (박분필·시인, 울산 출생) + 자벌레의 길  생을 방전하듯 널브러진 복날 오후  한결같이 몸으로만 당기는 길을 본다  연초록 잔등에 실린 뜨거운 길을 본다  구부린 등 둥글게 환을 그릴 때마다  후광인 양 잠시 내려 출렁이는 하늘  아슬한 순례를 따라 풀잎들 휘어진다  허공을 여는 순간 흔적을 지우는 길  자로 재듯 오로지 몸만큼만 나아간다  한 생을 오체투지로 수미산에 이르듯  (정수자·시인) * 수미산: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아 있다는 산. + 성자의 집   눈보라 속 혹한에 떠는 반달이가 안쓰러워  스님 목도리 목에 둘러주고 방에 들어와도  문풍지 웅웅 떠는 바람소리에 또 가슴이 아파  거적때기 씌운 작은 집 살며시 들쳐보니  제가 기른 고양이 네 마리 다 들여놓고  저는 겨우 머리만 처박고 떨며 잔다  이 세상 외로운 목숨들은 넝마의 집마저 나누어 잠드는구나  오체투지 한껏 웅크린 꼬리 위로 하얀 눈이 이불처럼 소복하다  (박규리·시인, 1960-) + 아름다운 동행   두 사람의 만남은  네모와 네모끼리의 만남입니다  갯가 돌처럼 자그락 달그락 부비며 살아  수마석이 되기까지  머리만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애틋한 가슴까지 내주는 일입니다  사랑은  들리는, 만져지는 즉물적 대상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것들이 모여 이루는  작은 몸짓입니다  이슬에 치마 젖지 않고 피는 꽃 없듯이  가슴 젖지 않을 사랑은 없는 것을  서로 논둑이 되어주고  서로 언덕이 되어주다  나란히 철길이 되는 일입니다  저녁 무렵  건들건들 앞서가는 두 그림자의 오체투지를  함께 바라보는  그래,  함께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박해옥·시인, 부산 출생) + 오체투지 저 머무는 바람 저 흔들리는 하늘 잠시 멈추는 강물 멀디 먼 길을 가까이 가까운 길을 멀리멀리 내 늙음과  내 젊음과 내 뼈와 살과 근육과 긴 수맥의 울음을 바쳐  차라리 한 마리 갯지렁이 한 마리 지리산 자벌레로  낮추고 내리어 저 깊은 심연의 영원으로  깊은 밤 통곡으로 촛불을 피워 올려 수많은 내 뒤의 젊은 가슴을 위해 내 뜨거운 가슴으로  이 찬 땅을 데우리 얼어붙은 쇳덩어리 절연의 계곡처럼 파인 분단의 심장을 녹이리 내 팔다리 달아져도 내 이마, 심장 피멍들어도 이 산하를 지킬 수 있다면 저 민초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 흙 속으로 스밀 수 있다면 가리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 먼길을 가까이 가까이 (김홍섭·시인)  + 걸레  누가 그녀를 남루하고 추하다 했을까  오딧빛으로 익은 완숙婉淑의 생애,  씨앗에서 꽃이었던 이력을  되짚어 본 적 있던가  초원의 구름덩이로 싱싱하게 물오른 꿈이  예비해 놓았던 사랑을 엮어  고난의 상처를 감싸주던 기억을 화인처럼 지닌,  충분히 낡아 낮게 엎드려 스스로를 성찰하는  테레사 같은 성녀,  언제 한 번 나는 그녀가 되어  지상의 얼룩을 닦아 보았는가  악취와 오물을 제 몸으로 받아 보았는가  이기와 독선으로 똘똘 뭉친  그와 나의 경계를 허물어 본 적 있는가  골다공증 슴벙슴벙한 그녀가 쓰다듬는 손길마다  음지의 별자리 성체처럼 맑고 환하다  나는 날마다 머리 조아려  오체투지의 자세로 그녀에게 경배한다.  (최정신·시인, 경기도 파주 출생)  + 신발에 대한 경배  신발장 위에 늙은 신발들이 누워 있다  탁발승처럼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느라  창이 닳고 코가 터진 신발들은 나의 부처다  세상의 낮고 누추한 바닥을 오체투지로 걸어온  저 신발들의 행장行狀을 생각하며, 나는  촛불도 향도 없는 신발의 제단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신발에게 경배한다  신발이 끌고 다닌 수많은 길과  그 길 위에 새겼을 신발의 자취들은  내가 평생 읽어야 할 경전이다  나를 가르친 저 낡은 신발들이 바로  갈라진 어머니의 발바닥이고  주름진 아버지의 손바닥이다  이 세상에 와서 한평생을  누군가의 바닥으로 살아온 신발들  그 거룩한 생애에 경배하는  나는 신발의 행자行者다  (김경윤·시인, 1957-) + 벌레의 노래 세상에 이름 빛내는  무엇 되기를 꿈꾸지 않으리 온몸으로 온 정성으로 제 갈 길 말없이 기어가는 저 낮고도 낮은   오체투지(五體投地) 세상의  모든 벌레들처럼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내 발길 닿는 지상의 모든 길을 사랑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누구든지 뭐든지 미워하지 않고 이따금 파란 하늘과 저 멀리 지평선도 바라보며 단출한 몸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이나 구름같이   한 생 흐르다 가면 좋으리 (정연복·시인, 1957-)
482    <봄날> 시모음 댓글:  조회:3964  추천:0  2015-05-10
  봄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도르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봄                  정지용   외ㅅ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황혼이 붉게 물든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에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1호 1932년 4월호                                        봄          천양희   그 자리가 비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나 혼자 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충분한 봄으로 그 시간을 채웠다   작가.2003년                               라일락       봄             홉킨스   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름 없는 풀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파릇파릇 아름답게 자라고 티티새의 알은 낮은 하늘 갈아 티티새 자신은 메아리치는 숲을 노래로 울리며 귓전은 때려 그 소리를 들으며 벼락을 맞은 듯하고 윤기 도는 배나무 잎사귀와 꽃잎은 하늘을 닦아 내어 푸르름이 다가오는 풍요로움 뛰노는 어린 양들은 깡충 거리나니 이 생기 넘치는 활력과 기쁨은 무엇이던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된 대지의 감미로운 흐름이니 그것을 차지하여라, 소유하거라, 그것이 죄 때문에 싫어지고 흐려지고 더러워지기 전에,  주 그리스도여 소년 소녀가 지닌 바 티 없는 마음과 5월의 날을 동정녀의 아들이여 당신이 선택하시고 그 무엇보다도 값어치 있는 것을 가지게 하라   Gerard  Hopkins(1844-1889) 영국의 성직자이며 시인          봄                황인숙   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 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고흐 ㅡ  복숭아꽃       + 봄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최윤진·시인, 1955-) +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시인, 1942-)  + 봄은 온다 봄은 온다 서러워 마라 겨울은 봄을 위하여 있는 것 잿빛으로 젖어있던 야윈 나뭇가지 사이로 수줍게 피어나는 따순 햇살을 보아 봄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것 불러주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야 사랑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 것 인내하며 가꾸어야 꽃이 되는 것이야 차디차게 얼어버린 가슴이라면 찾아보아 남몰래 움트며 설레는 봄을 키워보아 그 조그맣고 조그만 싹을   (홍수희·시인)  + 봄맞이꽃  추운 겨울이 있어 꽃은 더 아름답게 피고  줄기가 솔잎처럼 가늘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며  작은 꽃을 나지막하게라도 피우면  세상은 또 별처럼 반짝거릴 것이라며  많다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높다고 귀한 것은 더욱 아닐 것이라며  나로 인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  봄을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고 사는 보람이 아니겠느냐고  귀여운 꽃으로 말하는 봄맞이꽃  고독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며  풍부한 삶을 바라기보다  풍요를 누리는 봄맞이꽃처럼 살고 싶다 (김윤현·시인, 1955-) +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봄이 와 햇빛 속에 꽃 피는 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 피는 것  기특하여라.  (서정주·시인, 1915-2000) + 새봄에는 새봄에는 녹두 빛 하늘을 이고 시린 잎샘일랑 주섬주섬 걷어올리고 부드러운 아지랑이만 몸에 걸친 채 한적한 산골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볼 것이다 그곳에는 지쳐버린 시간의 각질을 뚫고 새파란 기억의 우듬지가 이슬을 머금고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여린 풀밭이 있다 새봄에 부활하는 나의 가슴이 있다 (정성윤·시인)  +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아메리카 인디언의 노래) + 봄병 도지다  봄은 스스로 솟아올라 튀어오르고 꽃들은 단호하게 천지를 밝히는데 한잔 술로 속을 달구고 불을 질러도 어째서 세상은 대책 없이 쓸쓸한가 (홍해리·시인, 1942-) + 봄이다 하나님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앞질러 역사를 열어가고  소리 없이 돌아가도  천지를 뒤바꾸어 놓습니다.  언 강을 녹이고  푸른 하늘에서 새가 노래하고  고목에서도 새싹을 돋게 하고  산야엔 꽃들이 흐드러져 피게 합니다.  부산스런 손발을 멈추어 세우고  깊고 긴 숨 속에서  이 봄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수레  굴러가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인생도 새 봄으로  개벽할 것입니다. (이주연·목사)  + 봄날의 기도 겨우내 쌓였던 잔설(殘雪) 녹아 졸졸 시냇물 흐르듯 지난날의 모든 미움과 설움 사르르 녹게 하소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스운 봄바람에 꽁꽁 닫혔던 마음의 창 스르르 열리게 하소서 꽃눈 틔우는 실가지처럼 이 여린 가슴에도  연초록 사랑의 새순 하나 새록새록 돋게 하소서 창가에 맴도는 보드랍고 고운 햇살같이 내 마음도 그렇게 순하고 곱게 하소서 저 높푸른 하늘 향해 나의 아직은 키 작은 영혼 사뿐히 까치발 하게 하소서 (정연복·시인, 1957-)
481    <<家庭의 月>> 特輯 시모음 댓글:  조회:4869  추천:0  2015-05-07
  가정의 달 특집 시 모음     -네 켤레의 신발-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늘 만져서 반짝이는 찻잔, 잘 닦은 마룻바닥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리 내는 창문 안에서  이제 스무 해를 함께 산 부부가 식탁에 앉아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긴 휘파람으로 불어왔는지, 커튼 안까지 달려온 별빛으로  이마까지 덮은 아들의 머리카락 수를 헬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아늑한가  시금치와 배추 반 단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마음으로 외는 시간이란 얼마나 넉넉한가  흙이 묻어도 정겨운, 함께 놓이면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식구인  네 켤레의 신발 (이기철·시인, 1943-)   -가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시인, 1916-1978)   - 아버지의 마음 -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시인, 1913-1975)  ​ - 어머니는 가정의 정원사 - 늘 자식 걱정에 수심이 깊으시던 어머니 얼굴 생활에 여유가 생겨 삶의 고통이 잦아지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얼굴과 손등엔 주름살이 허리도 구부정하게 되셨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일지라도 아들아! 잘 이겨내라 너만 믿는다. 나의 아들아! 하시는 어머니 때로는 아무 말 하시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이 시인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시고 가꾸어 주시는 가정의 정원사이십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햇빛 좋은 날- 엄마가 널어놓은 베란다 건조대 위의 촘촘한 빨래들. 아빠 와이셔츠 어깨에 내 런닝 팔이 슬며시 기대어 있고 형 티셔츠에 내 한쪽 양말이 마치 형 배 위에 올려놓고 자는 내 무엄한 발처럼 느긋이 얹혀있다. 엄마 반바지에 내가 묻혀놓은 파란 잉크펜 자국. 건조대 위에서 보송보송 마르는 촘촘한 빨래들. 빨래 마르는 것만 봐도 안다. 햇빛 좋은 날의 우리 가족.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식구 -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치 않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잡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어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유병록·시인, 1982-)      - 집 -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  지붕을 받치고 있는 네 벽,  네 벽을 잡아주는 땅  그렇게 모여서 집이 됩니다.  따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감싸 안아  한 집이 됩니다.  아늑한 집이 됩니다.   (강지인·아동문학가)     -둥근 우리 집- 내 생일날 피자 한 판 시켰다. 열어보고 또 열어봐도 일하러 간 우리 아버지 아직 안 오신다. 형의 배가 꼬로록 나는 침이 꼴깍 그래도 보기만 하고 참는다. 다섯 조각 모두 모여야 피자 한 판 아버지 오셔야 다섯 식구 피자같이 둥글게 되지. ​ (안영선·아동문학가)     -가정 1 - 핏줄 하나로도  별이 되고  달이 되며  해가 되는  정 하나로도  울타리 되고  세계 되며  우주 되는  온기와  사랑과  행복이 새어나오는  신비한 궁전. (김지호·시인)     - 가정 - 성년이 되면 마련하는 가정  남, 여 하나되어  일구는 사랑의 쉼터  가정 작은 단위 국가  엄연한 질서와 법이 있어  법 따라 사랑, 존경, 함께하는 쉼터  내일 위한 에너지 충전소  함께 손을 맞잡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나눔의 안식처  배려하는 마음  효하고 우애하는 마음  훌륭한 가정에서 나오고  훌륭한 가정은  끝없는 노력과 위함과  무한한 인내로써 이룩되는 것  훌륭한 가정에  아름다운 새싹이 터고  무한한 사랑 웃음 피어나나니. (박태강·시인, 1941-)   - 가족 - 우리집 가족이라곤  1989년 나와 아내와  장모님과 조카딸 목영진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원고료(原稿料)를 벌고  아내는 찻집 '귀천(歸天)'을 경영하고  조카딸 영진이는 한복제작으로  돈을 벌고  장모님은 나이 팔십인데도  정정하시고...  하느님이시여!  우리 가족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천상병·시인, 1930-1993)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시인, 1946-)      -죽겠다 가족 -  마을 정자를 찾은 팔순 노모 지팡이에 끌려온 엉덩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히며 죽겠다 죽겠다. 오십 후반 아들 애인 기다리듯 문짝에 두 눈 박아 놓고  가게세도 못 건진다며 죽겠다 죽겠다. 삼십 초반 손자 벼룩시장 이 잡듯 뒤적이다  오라는 곳 없어 죽겠다 죽겠다. 열살 먹은 증손자 책상에 영어몰입교육 책 펴놓고  뻣뻣한 혓바닥에 휘말려 죽겠다 죽겠다  데엥 데엥 소불알시계 열 두 시를 알리면 앞 다투어  배고파 죽겠다 죽겠다. 점심 후 짬 내어 아들은 팔순 노모 팔다리 주무르고 손자는 아버지 등 두드려 준다. 증손자 손자 어깨에 올라가 목청 큰 기마병 된다 이구동성 쏟아내는 말 좋아 죽겠다 죽겠다. (전정아·시인, 1973-)    - 행복의 바다로 - 이 드넓은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한 배를 타고 세월의 파도를 함께 넘는 우리 어깨동무 네 사람 창숙, 진교, 민교 그리고 나. 이따금 출렁이는 파도에 우리의 배가 기우뚱하더라도 우리의 작은 힘과 용기와 소망  하나로 모아 저 망망한 행복의 바다로 힘차게 노 저어 가요. (정연복·시인, 1957-)     - 이것 하나만으로도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정용철·시인)     - 가정을 위한 기도 - 주님, 보소서  여기에 우리의 온 가족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거처하는 이 장소를 우리를 일치시키는 사랑을  그리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건강과 음식과  그리고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맑은 하늘과  우리의 참된 벗들을 주신 주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조그만 가정에  평화가 넘치게 하옵소서.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생각을 말끔히 씻어주옵소서. 모든 것에 인내할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우리 자신을 잊고 다른 이의 소홀함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용기와 유쾌함과  조용한 마음을 주옵소서.  하고자 하는  우리의 순수한 노력을 보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어  위험 중에서 용감하게  시련 중에서 항구하게  분노와 모든 변화 안에서 온화하게  그리고 죽음의 문에 이르러서도  서로 사랑하고 성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480    尹東柱論 댓글:  조회:4633  추천:0  2015-05-06
1. 윤동주의 작가론   1. 윤동주(尹東柱)론 (1917-1945) 북간도 출생. 1941년 연희전문 졸업 및 1943년 일본 동지사대 영문과 수학. 중학 재학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발행하던 『카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구 사나」, 「거짓부리」 등을 발표했으나 정식으로 문단활동 한 적은 없음. 초기시에서는 화해로운 유년세계에서 자족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습작기 동시에서 드러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이후 자기자신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자아 응시가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순수 동경의 세계와 현실의 갈등 관계로 분화된다. 내면적 인간의 자아 성찰과 이에 수반된 부끄러움의 미학을 통해 비극적 인식 속에서 자아의 윤리적 완성을 꾀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가 있다.  2. 작가 연보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25년 명동 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 등과 문예지 {새 명동} 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 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 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 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 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년 산문 를 {조선일보}에, 동요 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년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로 전학  1943년 송몽규(宋夢奎)와 함께 독립 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큐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유고 시집, 1948)    3. 윤동주論 - 화해와 융화의 세계 열어 준 윤동주     한국 현대시인 중에서 특히 윤동주(1917-1945)의 생애는 우리에게 한 시인의 심성, 시인과 사회적 배경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에 들어 있는 전편의 시들은 한 시인의 순결한 젊은 영혼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눈부신 순수의 빛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맑고 밝아서 투명한 소리가 날 것 같은 색깔, 어디서 우는지 몸은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들리는 뻐꾸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흐르는 산 속의 샘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씻어 내린다.   그와 어릴 적부터 가까웠던 친구인 문익환 씨의 회고에 따르면 "나는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넋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는 아주 고요하게 내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가 보여 주고 있는 전기적 요소와 시적 사유의 결합은 자의식의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시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하늘과 땅의 근원적 질서 속에서 그의 본질은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 속에서 느끼는 세월과 그 흐름이 가져다주는 변화, 그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존재와 소멸의 내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괴로움은 어둡고 부정적인 인간의 실존이 지니는 보편적 상황과 함께 어두운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로움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분리되어 있는 자아를 직시하는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 그의 부끄러움의 시어가 탄생한다. 그의 부끄러움은 대부분 진실을 추구하는 의식 세계와 현실적 삶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대적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 던져  윤동주는 유별나다고 할만큼 시대적 현실을 포함한 세계를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감지했다. 그의 예민한 촉수는 늘 세계를 향해 곤두서 있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쉽게 쓰여진 시 전문      그의 최후의 시로 알려진 쉽게 쓰여진 시에는 손을 내미는 나와 또 다른 나의 대립이 있다. 이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식민지의 청년 윤동주와 지배국인 일본으로 건너온 유학생인 자신과의 대립이며, 또한 일상적 인간과 시인으로서의 자아, 그리고 밤과 아침의 대립이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이제 대립되는 세계 사이에서 좌초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자신을 악수시킨다. 따뜻한 체온의 나눔이 감지되는 이 악수의 이미지는 먼길을 돌아온 시인의 또다른 자기 응시가 되는 것이다.  '우물'이나 '거울'의 이미지가 동적으로 변화해 자기 성찰과 수련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길'의 공간이다. 서시의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라는 운명적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윤동주 시의 곳곳에서 여기저기로 뻗어 있는 '길'들과, '길 모퉁이', '뒷골목', '어느 낯선 거리'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의 일부      길의 공간성은 언제나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길은 바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길이며,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정신적 세계로서의 길이다. 시인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부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참함을 넘어서 끊임없이 가야 하는데, 이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 여전히 담 저쪽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곳에 남아 있는 자아가 화자가 잃어버린 참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관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 현재 잊고 있는 존재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가는 것이며, 고통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길의 선택을 계속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이며, 이러한 결의나 다짐의 태도는 윤동주 시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결국 윤동주의 시와 그의 생애가 모색되어 있는 초점은 따뜻한 화해의 세계로 모아진다. 어둠과 빛, 자기 부정과 긍정, 환자와 건강인, 그리고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극복하게 하는 사랑과 정다움 등 의미의 대응 관계를 이루는 두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융화의 세계인 것이다. 그 균형과 조화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떠나며, 자아의 탐구와 실천 사이의 끊임없는 상충 속에서 요동하는 괴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예리한 현실적 상황과 이상적 가능성의 부딪침 사이에서 윤동주의 감수성은 공존을 시도한다. 그 감수성은 모순된 명제를 동시에 포용하면서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나와 타인을 결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모든 시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것을 긍정적 깨달음에로 이끌어 주는 의미 체계를 구성한다. 그 두 대립되는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항은 어린 날의 추억이나 친구들, 어머니와 순이, 때로는 이웃 사람들로 표상 되고 있다. '노여움, 억  울함, 아까움 같은 것을 마음속에 조용히 새기고는 늘 변함없는 미소로 사람을 대하던' 그의 성품은 밤비 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열쇠를 사람들 사이의 연대 의식으로 융화하려는 시 정신과 일치된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부정적인 현실의 나를 극복하여 시적 초월로 자기 존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모색의 과정을 보여 준다. 대상을 주관화시키는 이미지의 처리법, 자기가 또 하나의 자기에게 다짐하는 미래 지향적 시제, 흐르듯 이어지는 시어의 연속적 흐름, 산문적 형식 등 그의 시를 특징짓는 모든 경향들은 이러한 그의 내면적 요구와의 연관에서 해명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는 괴로워하는 자기가 희망을 가지라고 부추기는 또 다른 자기에게 내미는 악수였고, 나와 타자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연결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들은 이웃과의 연대 의식을 우리 모두에게 깨우치는 따뜻한 화해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4. 尹東柱의 삶과 문학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全文      윤동주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편으로 대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생존시에 문인으로 자처하지도 않았고 문단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흔한 동인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문단 친구도 없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시집이 발간되면서 '사후(死後)의 훈장'처럼 그에게 시인의 타이틀이 붙여졌고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 징역형을 받고 옥사했다고 해서 '저항 시인'이라는 '덤'까지 붙여 주었다.  1918년에 태어나서 45년 해방을 6개월 앞둔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옥사한 그는 참으로 여한이 많은 일생을 산 인물이다. 우선 그는 장가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 공부한다고 일본을 오락가락 하다가 결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 감옥살이 신세가 되었고 감옥에서 사망하니 물론 혈육이 있을 리 없다. 생존시에 '시인' 소리를 못 들은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직장이란 것도 가져 보지 못했다. 그 시절 남자 나이 20세 전후가 되면 결혼하고 취직해서 남자로서 갖출 것은 대충 갖추는 것이 관습인데 그는 문학 공부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모든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성격이 무섭도록 침착한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전혀 오불관언이었다.  윤동주는 자기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결벽증이 있었다. 다듬고 또 다듬고 해서 완벽하다고 스스로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보여주지 않았다. 또 그는 작품을 무슨 잡지에 발표하기를 몹시 꺼려했다. 남들이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붙이는 것을 그는 불쾌하게 여겼다. 하얀 항아리에 흙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생시에 이처럼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그가 사망한 이듬해 경향신문에 쉽게 씌어진 시가 발표되었고 2년 후인 48년 1월에 그의 시 30여편을 수록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10주기가 되는 55년에 같은 제목의 시집이 나왔는  데 이 책에는 88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윤동주는 '죽어서 시인이 된 시인'이다.  앞에 적은 그의 시 서시의 깨끗함에 비해 그의 죽음은 너무나 처참하다. 맑게 살고 싶은 그의 뜻과는 정반대의 죽음이었다. 그는 2년 선고를 받고 일본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목도 대단히 애매 모호하다. 43년 한국 학생 대표들이 중국 장개석(張介石) 총통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가던 도중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조선 독립을 도와 달라는 탄원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일경(日警)은 한국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멍청한 학생은 빼고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은 무조건 잡아갔다. 공부밖에 모르는 윤동주가 여기에 휘말린 것이다.  윤동주를 비롯해서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된 한국 학생들은 정체 모를 주사를 매일 맞았다고 한다. 면회 간 친척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東柱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몸은 살이 다 빠져 해골 같았고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또 형무소 간수의 말에 의하면 東柱는 운명할 순간에 뜻모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무렵 그의 고향집에 2통의 전보가 배달되었다. 먼저 온 것이 '2월 16일 東柱 사망 시체 가져가라.'였고 후에 온 전보는 '東柱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사망 시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구주 제대에 해부용으로 제공함.'이었다. 그러니 먼저 붙인 전보가 나중에 도착한 것이다. 시체를 가져가라 한 것은 해부용으로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몸이 엉망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東柱의 맑디맑은 정신과 독약 주사를 맞으며 실험용 몰모트가 된 그의 육신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졌다. 그의 영혼은 대시인의 명예를 얻었고 그의 처참한 육신은 고향 북간도 용정땅 東山교회 묘지에 묻혔다. 東柱는 성격적으로 예술의 틀에 갇힌 사람이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문학서라면 보이는 족족 밤을 새워 읽어 젖혔다. 간도(間島) 화룡현에 있는 明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용정 광명중학교를 오락가락하며 다니다가 38년 연희 전문 문과에 들어가는 동안 그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방면의 공부에만 전념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도 고흐에 관한 저작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는데 화집, 전기, 서간집 등이 상당수 있었고 판화 잡지 백과 흑을 여러 권 구입하였다. 그의 성적표를 보면 음악 점수가 아주 좋다. 또 그는 스포츠에도 재주가 있어서 농구 선수,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으며 대나무를 기다랗게 쪼개어서 스키를 만들어서 타기를 즐겼는데 그 당시 스키 재주로 東柱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멋쟁이인 그는 그의 인생을 미완성인 채 남기고 백골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시편을 남기고 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또 다른 故鄕에 가자. ― 또 다른 고향 全文          한중 수교로 연변 자치주 용정에 있는 尹東柱의 묘가 자주 매스컴에 오른다. 독립 운동가 묘역에 모셔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도 나온다. 좋은 이야기다. 그의 모교 연세 대학에 그의 서시(序詩)를 새긴 시비(詩碑)가 서 있고 '윤동주 장학금'도 만들어져 있다. 그의 고결한 정신이 오늘에 새롭다.    1. 동주형의 추억 - 文益煥  2. 人間 尹東柱 - 張德順  3. 先伯의 生涯 - 윤일주(윤동주 동생)  4. 청순하고 개결한 젊음의 시인 - 신경림(시인)  1. 동주형의 추억(文益煥)  ...나는 동주형의 추억을 써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인가 동주형에 대해서 내가 아는 대로 써야 할 것만 같은 심정이다. 그와 나는 콧물 흘리는 어린 시절의 6년 동안을 함께 소학교에 다니며 민족주의와 기독교 신앙으로 뼈가 굵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만주에서 평양으로, 거기서 또 만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가장 민감한 십대에 세 중학교를 우리는 함께 편력하였다. 동주형에 대해서 무엇인가 쓰고 싶은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나의 넋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서로 길이 갈렸다. 그는 문학 공부하러 서울로, 나는 신학을 공부하러 동경으로 떠났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으례 서로 만나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속을 털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문학에 관해서는 언제나 내가 듣는 평이었다. 아무튼 나는 인생의 민감한 형성기에 그와 함께 유랑하면서 인생과 시를 배웠다.    그가 우리의 추억 속에 남겨 놓고 간 그 귀중한 것들은 그렇게 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에게 와서는, 풍파는 잠을 잤고 다들 양같이 유순하고 호수같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넔 속에는 남 모르는 깊은 격동이 있었다. 호수같이 잔잔한 해면 밑 깊은 데는 아무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해류의 흐름이 있듯이!  그는 아주 고요하게 내면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 말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 말없는 동주와 사귀고 싶어했다. 그의 눈은 언제나 순수를 찾아 하늘을 더듬었건만 그의 체온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과장 없이 고백할 수 있다. 그의 깊은 데서 풍겨 나오던 인간적인 따뜻함을 나는 아직 아무에게서도 느껴본 일이 없다고. 그러기에 그가 차지하고 있던 나의 마음 한구석은 다른 아무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국땅 만주에서도 신경의 거리를 헤매다가 해방의 종소리를 듣던 그 정오에 내 마음을 견딜 수 없이 쓰리게 한 것은 동주형의 환상이었다.  동주야, 네가 살았더라면...... 동주형은 참으로 멋진 사내였다. 그의 一動一靜은 모두 자연스러웠고 서로 어울려서 동주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의 지성은 모던이었다. 그러나 그가 베적삼 베고의에 고무신을 끌고 저녁 산책을 하는 것은 수수한 아저씨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촌스러우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동주형은 깨끗한 사람이었다. 양복은 언제나 구김살이 없었고 머리가 헝클어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경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저래도 다 동주다웠다. 그렇다. 동주다운 것 --- 그것이 그리 좋았고 아무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멋이 한국 민족의 자연스러운 풍모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동주형은 소위 멋을 낸다는 청년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멋 --- 그의 성품에서 풍겨 나오는 멋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겠다. 나는 그의 멋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한국적인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극히 멋지게 한국적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넓고도 넓은 한 울과 같았다.  그의 저항 정신은 불멸의 전형이다라는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얼른 수긍하지 못한다. 그에게 와서는 모든 대립은 해소되었었다. 그의 미소에서 풍기는 따뜻함에 녹지 않을 얼음이 없었다. 그에게는 다들 골육의 형제였다. 나는 확언할 수 있다. 그는 福岡형무소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도 일본 사람을 생각하고는 눈물 지웠을 것이라고. 그는 인간성의 깊이를 파헤치고 그 비밀을 알 수 있었기에 아무도 미워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결코 원수를 미워하는 것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동주형은 그렇게 느낄 수 없었으리라.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는 사상이 능금처럼 익기를 기다려서 부끄러워하면서 아무 것도 아닌 양 쉽게 시를 썼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를 쓰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취미로 시를 쓴다고만 생각했었다. 한데 그는 몇 수의 시를 남기려 세상에 왔던 것이다. 그의 가장 동주다운 멋은 역시 그의 시에 나타나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그는 사상이 무르익기 전에 시를 생각하지 않았고, 시가 성숙하기 전에 붓을 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 한 수가 씌어지기까지 가는 남모르는 땀을 흘리기도 했으련만, 그가 시를 쓰는 것은 그렇게도 쉽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나면 최근작을 보여 달라곤 했다. 그러면 그는 아무 말 없이 공책이나 종이 조박지에 쓴 시들을 보여 주곤 했다. 조금도 뽐내거나 자랑하는 기색이 없이 좋았다. 그렇다고 그는 애써 겸손하지도 않았다. 다만 타고난 동주다움을 가지고 살고 생각하고 쓸 뿐이었다. 나는 그의 시를 퍽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알기 쉬워서 좋았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였다. 방학 때마다 사 가지고 돌아와서 벽장 속에 쌓아 둔 그의 장서를 나는 못내 부러워했었다. 그의 장서 중에서는 문학에 관한 책도 있었지만 많은 철학서적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한 번 나는 그와 키에르케고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키에르케고르에 관한 이해가 신학생인 나보다 훨씬 깊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넓게 읽는 그의 시가 어쩌면 그렇게 쉬웠느냐는 것을 그 때 나는 미처 몰랐었다. 그의 시가 그렇게도 쉬웠기 때문에 나는 그의 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이 못되거니라고만 생각했었다. 한데 그것이 그렇게도 값진 것으로 우리 문학사상 찬연히 빛나는 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는 그에 나타난 신앙적인 깊이가 별로 논의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곤 했었다. 그의 시는 곧 그의 인생이었고, 그의 인생은 극히 자연스럽게 종교적이기도 했다. 그에게도 신앙의 회의기가 있었다    나는 동주형이 시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시를 쓴다고 야단스레 설치는  . 延專시대가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존재를 깊이 뒤흔드는 신앙의 회의기에도 그의 마음은 겉으로는 여전히 잔잔한 호수 같았다. 시도 억지로 익히지 않았듯이 신앙도 성급히 따서 익히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에게 있어서 인생이 곧 난대로 익어 가는 시요 신앙이었던 것 같다.    동주형은 갔다. 못난 나는 지금 그의 추억을 쓴다. 그의 추억을 쓰는 것으로 나의 인생은 맑아진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깨끗했던 것이다.    2. 人間 尹東柱 (張德順)  동주는 깊은 애정과 폭 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자기는 회의와 일종의 혐오로 자신을 부정하는 괴벽한 휴머니스트이다. 남에 대한 애정은 곧 자신에 대한 자학으로 변모하는 그의 인생관이 시작에도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우물 속에 비친 을 보고 독백하는 말이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자기가 인류의 한 멤버라는 것을 인식할 때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숭고한 인간애가 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自畵像)  전자의 는 외톨로 된 동주 자신이고 후자의 는 인류의 일원인 동주였었던 것이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험한 산맥이 있다.](사랑의 殿堂)    자기 이외의 모든 동포의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자기를 준험한 산맥임을 자학하는 그의 희생의 휴머니티가 나타나 있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靜튀?囚?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十字架)    여기에서 그의 자아부정의 인류애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수처럼 전 인류의 구세주를 의식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의 포근한 인간미와 우애가 생리처럼 그를 지배하여 결국은 자학에 가까운 獄死를 감수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는 인간이기에 인간애를 알았고, 동주는 또 영원히 외로운 였기에 외롭게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C전문학교에 입학시험 보러 상경하였을 대의 일이다. 그때 그 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동주는 나를 위해 하숙방을 얻어 놓고 역까지 마중 나왔다. 저녁 늦게까지 내 하숙방에서 이야기하다가 동주는 기숙사로 돌아간다고 나갔다. 아마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가는 여독을 풀자고 자리에 누워 깜박 잠이 들었다. 밖에서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쳐 깼다. 동주가 다시 온 것이다.  방에서 냇내가 나니 창을 좀 열고 자라고 이르는 것이다. 내가 들창문을 좀 열어 놓은 것을 보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는 자정이 넘은 어두운 신촌 굴 길을 타박거리고 더듬어 갔다. 뒤에 들으니 동주는 가깝지 않은 기숙사까지 다 갔다가 걱정이 되어서 다시 왔더라는 것이다. 그 방에서 학생 하나가 냇내에 중독이 되어서 쓰러진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주가 너는 아늑한 호수에, 나는 준험한 산맥에 있겠다는 그 시심과도 같은 일화이다. 동주는 항상 시와 생활이 일치된 경지에서 살았다. 外柔內剛이란 말이 있지만 동주는 外美內美의 인간이다. 그의 시가 아름답듯이 그의 인간도 아름답고, 그의 용모가 端正優美하듯이 그의 마음도 지극히 아름답다.   나는 언젠가 동주의 추억기에서 희랍의 대리석조각을 연상할이만큼 훤출 미끈한 미남자라고 쓴 일이 있다. 어렸을 적에 나에게 영상된 동주는 미남 그대로였고, 마음씨는 다정한 누나 그대로였다.  동주와 나는 世交 집안의 사이였다. 동주의 조부와 나의 조부가 이역 북간도에서 함께 살았다. 동주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같은 교회의 일꾼이었다. 나의 형  과 동주는 은진중학의 동기동창이다. 나는 형을 졸졸 따라서 동주와도 농을 했다. 형은 왕왕이 나를 귀찮아했으나, 동주는 어느 때나 다정히 나를 감싸주었다. 우애 있는 휴머니스트였다.  1930 몇 년의 일이었던지 --- 어린이(?) 잡지에 지도라는 동요를 발표하고 나에게 읽어 주었다. 오줌 싼 이야기이다. 나도 웃고 저도 웃었다.  오줌을 싸고도 부끄럽지 않아서 글까지 쓰고 또 자랑까지 한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의 동주의 웃음은 오줌 싼 어린이답지 않게 의젓했고, 티없는 호수의 잔잔한 무늬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그러나 동주에게는 짓궂은 자기 학대가 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비운의 최후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서울에서 나는 얼마 동안을 동주와 함께 하숙생활을 한 일이 있다. 그는 유별나게 간지럼을 많이 탔었다. 그의 친구들은 심심하면 그의 발을 건드린다. 그러면 동주는 대굴대굴 뒹군다. 얼굴이 빨개져서...... 그러는 것이 재미있어서 친구들은 더 극성이다. 하루는 동주가 친우들에게 자청해서 발을 내놓고 간질이라고 명했다. 친구들은 영문도 모르고 발에 손을 댔다. 동주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틀면서 참았다 한참만에 친구들은 장난할 의욕을 잃었다. 동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기에서 자학으로 넘어선 경지이다.  동주는 또 영원한 향수를 그리다가 그대로 죽어간 시인이다. 그가 이역에서 태어났고, 또 뼈가 굵을 때까지 이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조국 땅에 대한 향수는 남달리 대단했다. 그러 아니었을지.  나 조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조국 아닌 일제의 식민지였었다. 그는 이 조국 아닌 조국 땅에서 또 다른 조국을 향수했던 것이다. 은 이때 쓴 것이다. C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에는 그 대로 빼앗긴 땅에 대한 향수를 안은 채 일제 감옥 속에서 큰 소리를 외치고 운명했다고 전해지니, 그것은 향수의 절규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였다. 심심할 때 홀로 하숙방 툇마루에 앉아서 이 노래를 불렀다. 또 그 좋아하는 휘파람으로 이 곡조를 먼 하늘에 날려보내기도 했다. 또 다른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哀訴하던 시인 동주는 정녕 그 원대로 일찍이 그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동포애와 인류애로 자신을 짓밟은 동주, 일제에 항거한 반항시인 동주는 이제 가버렸으나, 인간 동주의 시와 시심과 휴머니티는 영원히 이 땅에 남아 있을 것이다.  3. 先伯의 生涯 -   이런 전보 한 장을 던져 주고 27년간을 시와 고국만을 그리며 고독을 견디었던 舍兄 윤동주를 일제는 빼앗아가고 말았으니, 이는 1945년 일제가 망하기 바로 6개월 전 일이었습니다. 1910년대의 북간도 明東 - 그곳은 새로 이룬 흙냄새가 무럭무럭 나던 것이요, 조국을 잃고 노기에 찬 지사들이 모이던 곳이요, 학교와 교회가 새로 이루어지고, 어른과 아이들에게 한결같이 열과 의욕에 넘친 모든 기상을 용솟음치게 하던 곳이었습니다. 1917년 12월 30일 동주형은 이곳에서 교원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가는 할아버지가 손수 벌목하여 지으신 기와집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함북 회령이요 어려서 간도에 건너가시어 손수 황무지를 개척하시고, 기독교가 도래하자 그 신자가 되시어 맏 손주를 볼 즈음에는 장로로 계시었습니다. 동주형의 勤實하고 寬裕함은 할아버지에게서, 내성적이요 겸허함은 아버지에게서, 온화하고 치밀함은 어머니에게서 각각 물려받은 성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아명은 해환이었고, 그 아래로 누이와 두 동생이 있었습니다. 얌전한 소학생 해환은 아동지 어린이의 애독자였고, 그림을 무척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1931년에 명동소학을 마치고 大拉子라는 곳에서 중국인관립학교에 1년간 수학하였으니, 시 별 헤는 밤의 佩, 鏡, 玉이란 묘한 이국소녀의 이름은 이 때의 추억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32년 그가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자, 조의 집은 용정에 이주하였습니다. 중학교에서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습니다. 축구선수이던 그는 어머니의 손을 빌지 않고 네임도 혼자 만들어 유니폼에 붙이고 기성복도 손수 재봉틀로 알맞게 고쳐 입었습니다. 낮이면 운동장을 뛰어 다니고, 초저녁에는 산책, 밤늦게까지 독서하거나 교내잡지를 만드느라고 등사 글씨를 쓰거나 하던 일이 기억됩니다. 끝까지 즐기던 이 산책은 이때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935 년 봄 3학년을 마칠 즈음, 그는 불현듯 고국에의 유학을 꿈꾸고 겨우 아버지의 승낙을 얻어 평양 숭실중학교에 옮기었습니다. 그의 습작집으로 미루어 평양 시절 1년에 가장 문학에의 의욕이 고조된 듯합니다. 이즈음 백석 시집 사슴이 출간되었으나, 백 부 한정판인 이 책을 구할 길이 없어 도서실에서 진종일을 걸려 正字로 베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소중히 지니고 다닌 모양으로, 지금은 나에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평양 유학도 끝을 막게 되었으니, 숭실학교가 신사참배 문제로 폐교케 되었던 까닭입니다. 1936년 다시 용정에 돌아와 광명중학교 4학년에 들었습니다. 이 때 당시 간도에서 발간되던 카톨릭 소년誌에 童舟라는 닉네임으로 동요 몇 편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그의 비운은 중학교 졸업반에서부터 비롯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그는 진학할 과목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 때 벌써 많은 동요와 詩稿를 가지고 있던 그게 문학 이외의 길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외아들인 아버지는 젊어서 문학에 뜻을 두어 북경과 동경에 유학하고 교원까지 지내셨건만, 자기의 생활상의 실패를 아들에게까지 되풀이시키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의사가 되기를 권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굳이 듣지 않고 아버지의 퇴근 전부터 산이고 강가이고 헤매다가 밤중에야 자기 방에 돌아오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한숨이 늘고 가슴을 뚜드리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반년을 두고 아버지와 대립이 계속되다가 졸업이 닥쳐오자 그는 이기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권고로 아버지가 양보하신 것입니다. 소학과 은진중학 동창이며 고종사촌이며 또 동갑인 송몽규형과 동행하여 서울에 온 것은 1938년 봄이었습니다.  상경하자 두 분 다 延專에 입학하고, 그 후부터 집에 오기는 1942년까지 매년 2회, 여름과   겨울 방학 때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절의 나의 추억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한 그 정답던 모습은 사각창에 교복을 입은 형님이  아니라, 베바지 베적삼에 밀짚모자를 쓰고 황소와 나란히 서 있는 형님입니다. 고향에 돌아오면 그날로 양복은 벗어 놓고 우리 옷으로 바꾸어 입고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을 도우셨습니다. 소꼴도 베고, 물도 긷고, 때로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맷돌도 갈며 과묵하던 그도 유우머를 섞어 가며 서울 이야기를 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남몰래 쉬는 한숨을 나는 옆에서 가끔 들은 듯합니다. 그것은 사소한 일로 상함을 입는 끓어오르는 시흥과 독서시간의 아쉬움에서였을 것입니다. 노여움도 아까움도 미소로서 흘려 보낼 수 있었던 그는 차마 집안 어른들의 일을 돕지 않고는 마음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寬裕함이 그의 의지를 지탱케 못하였을지나 결코 우유부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용정은 인구 십만에 가까운 작지 않은 도시였으나, 대학생인 그는 아무 쑥스러움도 없이 베옷을 입은 채 거리로 소를 이끌고 다녔습니다. 그럴 때에도 그는 릴케나 발레리의 시집, 또는 지이드의 책을 옆에 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으스름 때면 으례이 하는 산책에, 동생인 나는 그의 손목을 잡고 같이 거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로수가에서 北原白秋의 고노미찌를 코노래로 부르기도 하고, 숲속에 앉아 새로 뜨는 별과 먼 강물을 바라보며 손깍지를 낀 채 묵묵히 앉았을 때에는 그의 얼굴에 무슨 동경과 감정이 끓어오름을 연소한 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작로를 걷다가도 부역하는 시골 아낙네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하고,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붙잡고 귀여워서 함께 씨름도 하며, 한 포기의 들꽃도 차마 못 지나치겠다는 듯, 다서 가슴에 꽂거나 책짬에 꽂아 놓곤 하였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하는 연약한 것에 대한 애정의 표백은 그의 天稟의 기록이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짐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십 권의 책으로 한 학기의 독서의 경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小川未明 童話集을 주며 퍽 좋다고 하던 일과 수필과 版畵誌 白과 黑 ? 7,8권을 보이며 판화가 좋아 求得하였으며, 기회가 있으면 자기도 목판화를 배우겠다고 하던 일이 기억됩니다. 이리하여 집에는 근팔백권의 책이 모여졌고 그 중에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앙드레 지이드 전집 旣刊分 전부,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적, 발레리 시전집, 불란서 명시집과 키에르케고오르의 것 몇 권, 그밖에 原書 다수입니다. 키에르케고오르의 것은 연전 졸업할 즈음 무척 애찬하던 것입니다.  1941년 12월 연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졸업장과 함께 정성스러이 쓴 시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들고 왔었습니다. 그것은 초판 77부로 출판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소중히 지니고 다녔습니다. 더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1942년에 {懺悔錄}이란 시를 써 놓고 도일하여 入敎大學에 적을 두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집을 떠난 것은 그해 7월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병환으로 누어 계시는 어머님의 침상에 걸떠 앉어 이야기 동무로 며칠을 보내다가 뜻밖에 속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東北大學에 있던 한 친우의 권유로 該校 입학수속 치르라 오라는 전보 까닭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돌아온 나는 그가 떠났음을 알자 눈물이 글썽 하였습니다. 늘 정거장에서 맞고 바래던 그와 그렇게 헤어짐이 최후의 작별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떠나면서도 어머님 걱정을 뇌이고 또 뇌이드랍니다.   아마 운명시까지 눈앞에 어머님의 모습만 어른거렸을 것입니다. 동북대학에 간줄 안 형에게서 무슨 의도에서였는지 同志社 영문과로 옮겼다는 전보가 오자 아버지는 좀 노여운 기색이었습니다. 東京과 京都에서의 그의 고독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태평양에서는 戰火가 들끓고 존경하던 선배들은 붓을 꺾거나 변절하였고 사랑하던 친구들은 뿔뿔이 헤어졌고 --- 하숙방에서 홀로인 듯한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악수.  ({쉽게 씌어진 詩}에서)    그러나 홀로 을 기다리며, 그의 고독만으로 항거하기에는 현실의 물결은 너무 거센 것이었습니다. 1943년 7월 귀향일자를 알리는 전보를 받고 역에 나갔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마중 끝에 한 열흘 후에 온 것은 우편으로 보내온 차표와, 그 차표로 찾은 약간의 수하물 뿐이었습니다. 차표를 사서 짐까지 부쳐놓고 출발직전에 경찰에 잡혔던 것입니다. 京都대학에 있던 몽규형도 함께 잡혔습니다. 鴨川署에 미결로 있던 동안 당시 동경에 계시던 당숙 영춘선생이 면담했을 때는 란 형사의 담당으로 일기와 원고를 번역하고 있었으며, 매일 산책이 허락된다고 하더랍니다. 곧 나갈 것이니 안심하라고 하던 형사의 말은 결국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주와 몽규 두 형이 각 2년 언도를 받고 福岡형무소에 투옥된 1944년 6월 이래, 한 달에 한 장씩만 허락되는 엽서로는 그의 자세한 옥중생활은 알 길이 없었으나, 英和對照 新約聖書를 보내라 하여 보내드린 일고 {붓끝을 따라온 귀뚜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라고 한 나의 글월에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장을 주신 일이 기억됩니다.    매달 초순이면 꼭 오던 엽서 대신 1945년 2월에는 중순이 다 가서야 上記한 전보로 집안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습니다. 유해나마 찾으러 갔던 아버지와 당숙님은 우선 살아있는 몽규형부터 면담하니 {동주!}하며 눈물을 쏟고, 매일 같이 이름 모를 주사를 맞노라는 그는 피골이 상접하였더랍니다. {동주 선생은 무슨 뜻인지 모르나 큰소리를 외치고 운명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인 간수의 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福岡에 가신 동안에 집에는 한 장의 인쇄물이 배달되었으니 그 내용인즉 {동주 위 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는 가져가거나 不然이면 九州帝大에 해부용으로 제공함. 속답하시압.}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  음이 있었습니다.        가신 나의 형 윤동주는 한줌의 재가 된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향 땅 간도에 돌아왔습니다. 약 20일 후에 몽규형도 같은 절차로 옥사하였으니 그 유해도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동주형의 장례는 3월 초순 눈보라 치는 날이었습니다. 자랑스럽던 풀이 메마른 그의 무덤 위에 지금도 흰 눈이 내리는지.---  십년이 슬러간 이제 그의 유고를 上梓함에 있어 舍弟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으며, 시집 앞뒤에 군 것이 붙는 것을 퍽 싫어하던 그였음을 생각할 때, 拙文을 주저하였으나 생전에 無名하였던 고인의 사생활을 전할 책임을 홀로 느끼어 감히 붓을 들었습니다. 이로 하여 거짓 없는 고인의 편모나마 전해지면 다행이겠습니다. 1955년 2월    4. 舍弟 一柱 謹識 - 청순하고 개결한 젊음의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 「서시」 전문    우리 나라 시를 한두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 유명한 시를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성래운 교수와 함께 기억을 한다. 70년대 중엽 초대면의 술자리에서 그가 처음 암송한 시가 바로 이 시였고, 그 뒤로도 그는 시를 암송할 때면 꼭 이 시를 앞에 놓았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당시 유신 독재를 반대하다가 강단(연세대)에서 쫓겨난 그의 각오와 심경을 더없이 잘 보여주는 시여서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외우다가 한 박자 쉰 다음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하고 소년처럼 감상적이면서도 티없이 맑은 가락으로 끝막을 때 자리는 늘 숙연해졌다. 이때 대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청중은 한점 부끄럼이 없이 살겠다고 다같이 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는 윤동주 시인과는 또 다른 인연이 있으니, 출신 학교인 연세대 교정에 시비를 세우는(1968년) 일에 그가 앞장을 섰었다. 그는 교육학자 또는 교육 행정가(잠시 문교부 장학실장을 지낸 일이 있다)로서의 자신에 대해서는 자괴심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윤동주 시비를 세운 일은 자랑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또 이 시와 더불어 생각나는 것은 70년대의 동아, 조선의 언론 파동이다. 정보기관의 언론 통제에 항거하여 동아와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운동을 벌이자 정부는 광고 탄압으로 맞섰는데, 이때 언론자유수호를 지지하는 독자들의 광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구가 "하늘을 우러러......"였다. 그 어둡던 시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이들의 시대적 고뇌가 이 시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마감한 짧으면서도 치열한 시인의 삶에 의해 더욱 돋우어졌으니, 실제로 그 무렵 이 시를 외거나 들으면 숨막힐 것 같은 어둠이 조금은 걷히  고 앞이 부옇게나마 밝아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또한 이 시에 넘치는 깨끗한 젊음과 개결한 의지도 독자들을 사로잡는 요인이 되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는 귀절을 읽으면 권력과 돈이 판치는 흐린 세상에 한 줄기 맑은 샘물이 솟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윤동주 시를 좋아한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특히 새로운 길 ?을 좋아했는데, 이 시가 나로서는 처음 읽은 윤동주 시였다. 그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가 아니고 김용호라는 이의 {시문학입문}이라는 개론서였다. 육이오 다음해 봄, 마을마다 장티푸스가 돌아 뒷산에 매일처럼 새 무덤이 생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이 시를 읽고 나니 문득 마을과 마을 앞으로 난 길과 길가에 핀 민들레와 길가의 미루나무에서 우짖는 까치가 밝고 환하게만 느껴졌다. 전쟁과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가 죽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밖으로 나다니게 되었고 활기를 되찾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새로운 길」 전문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같은 표현은 지금 보면 미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의 힘찬 리듬은 쉽사리 나를 바로 잡았다. 더욱이 "민들레가 피고...... / 바람이 일고"의 청순한 이미지는 이 힘찬 리듬에 상승으로 작용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신작로와 논둑길을 가면 절로 힘이 났고, 길가의 작은 들풀이며 돌멩이 하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비로소 이웃 마을로 전쟁통에 죽지 않고 살아 남은 동무를 찾아가기도 하고, 강까지 나가 물위에 떠다니는 청둥오리를 구경하기도 했다. 좋은 시는 사람이 사는 데 힘이 된다는 구체적 예를 나는 지금도 「새로운 일」에서 본다. 윤동주 시인이 어떠한 생애를 살았는가를 알기 전이었으니 이 힘은 시인의 생애로부터 온 것이 아닌, 시 자체가 가진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해 읽고 가장 좋아하게 된 시는 「자화상」과 「소년」이었으며, 지금도 나는 윤동주 시 중에서 이 두 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시가 가진 청순함, 개결함, 젊음이 좋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전문    이미지니 상징이니 하는 시의 장치들을 이해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 읽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이 시를 특히 좋아했던 것은 어째서 였을까., 우물 속에 밝은 달과 구름, 하늘과 파아란 바람과 가을과 함께 서 있는 깨끗하고 젊은 시인이 떠올라서였지 않았을까. 또 그것이 장차의 내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였지 않았을까.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는 밤에 여러번 우물을 가서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우물 속에서 시에 형상화된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을 보았을 때의 기쁨, 어쩌면 그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일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소년」의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는 곧 그 무렵의 내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이 생각되어서 나는 좋았다.  연세대 구내(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 시절 지냈던 기숙사 앞이라고 함)에 세워져 있는 시비의 비양에는 「서시」가 작시 일자와 함께 새겨져 있고 비음에는 다음과 같이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년 봄 이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윌 16일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그 나이 29세였다. 그가 이 동산을 거닐며 지은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그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 시 한 수를 새겨 이 시비를 세운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한눈에 보게 해주는 글이지만 조부가 회령에서 살다가 북간도로 망명하여 황무지를 개척했다는 것,    아버지는 명동에서 교원으로 일했다는 것, 일가족이 그 무렵 들어온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의 개인사와 함께, 그  는 간도의 명동소학교(용정에 있는) 시절 급우들과 등사판 문예지를 만들어 동시 등을 발표했고 광명학원 중학부 시절에는 연길에서 나오던 잡지에 동시를 발표했으며, 연희전문 시절에도 문과에서 나오던 {문우}지에 이미 자화상?, 새로운 길을 발표, 졸업하던 해에는 19편으로 된 자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할 계획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등은 알아두는 것이 윤동주 시인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같다. 이 사실은 대개의 항일민족시인이 항일운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인이 된 데 반하여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시인으로 살려니까 항일사상가가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의 시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해 주는 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스스로 지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로써 그는 일제의 강점 하에서는 항일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굳은 투사이기에 앞서 시에 모든 것을 건 철저한 직업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매 시편에 또박또박 제작 일자를 써 놓은 것도 장인 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터로, 가령 그의 시를 읽으면 폴 발레리가 "불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기계에 의해 기술상의 구속을 받음으로써 유용한 것이 되며 비로소 원동력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에 있어서도 적절한 속박이 있어 불이 소멸되지 않게끔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큰 자유는 큰 엄격성 밑에서만 얻어진다"고 시 창작의 방법을 제시한 말이 떠오른다. 그의 시 가운데서 비교적 사람들의 입에 덜 오르내리는 「눈감고 간다」를 읽어보자.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눈감고 간다」 전문    말할 것도 없이 이 시는 식민지시대의 삶의 방법을 암시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사는 '아이들' 치고 누가 태양을 사모하지 않으며 별을 사랑하지 않으랴. 그러나 밤이 되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랴. 차라리 눈을 감고 가되 가진 씨앗일랑 땅에 뿌리고, 혹여 씨앗을 뿌리는 일을 막기라도 하거든 번쩍 눈을 뜨고 대어들어라. 이 시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읽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면서도 가락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불이 소요되지 않게끔 조정하는 적절한 속박이 있는 탓이다. 그 큰 엄격성 밑에서 이 시는 큰 자유를 얻고 있는 터로, 장인 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눈감고 간다」라는 제목으로 스스로 시의 대상이 되면서 자칫 고압적이 될 수 있는 명령형을 순화시키는 방법도 상당한 시적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게는 윤동주 시인의 개인사를 알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먼저 그 아우 윤일주 씨가 있다. 공학도로 시인이기도 한 그와는 문학예술지에 함께 시를 가지고 추천을 받았기 때문에 두세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으로는 그가 형에 관한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아마 나이 차가 많은 형과 함께 산 기간이 고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뒤 윤동주 시인의 숙부가 되는 중국문학가 운영춘 교수(작고)와 한동안 꽤 가깝게 지냈다. 내가 관계하는 출판사에서 그의 번역으로 장자와 공자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술자리에서마다 글재주가 뛰어나고 그림도 잘 그렸다는 등, 심성이 맑고 깨끗하다는 등, 조카 윤동주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대개 책에서 읽었거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 간도의 용정 출신으로 명동중학을 함께 다닌 문익환 목사를 만났다. 그는 윤동주 시인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깨끗하고 치열했던 삶, 특히 그 영원한 젊음을 더없이 부러워했다. 어쩌면 그의 그 뒤의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 만들어 놓은 세상을 현  실 속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 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꾸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 문익환 시 「동주야」 부분    그러나 윤동주 시의 미덕은 그 청순하고 개결한 젊음과 함께, 해와 달과 별과 하늘을 지향하는 밝음에도 있다. 앞에 인용한 「서시], 자화상, 눈감고 간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의 시에는 유난히 해와 달과 별과 하늘이 많이 나온다. 비록 식민지라는 어둠 속에서 살면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쉽게 씌어진 시?, 또는 "지조 높은 개는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 어둠을 짖는 개는 / 나를 쫓는 것일 게다(또다른 고향?라고 분명히 그 어둠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밝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다. 그래서 어둠이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도 그 어둠이 어둡지만은 않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을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별 헤는 밤」 부분        ** 윤동주論 - 화해와 융화의 세계 열어 준 윤동주      별을 노래한 이 시는 분명 어둠이 그 배경이다. 그럼에도 시가 어둡지 않은 것은 밝음을 지향하는 푸른 젊음 탓이다. 윤동주 시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푸른 가을 하늘빛이리라.  한국 현대시인 중에서 특히 윤동주(1917-1945)의 생애는 우리에게 한 시인의 심성, 시인과 사회적 배경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에 들어 있는 전편의 시들은 한 시인의 순결한 젊은 영혼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눈부신 순수의 빛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맑고 밝아서 투명한 소리가 날 것 같은 색깔, 어디서 우는지 몸은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들리는 뻐꾸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흐르는 산 속의 샘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씻어 내린다. 그와 어릴 적부터 가까웠던 친구인 문익환 씨의 회고에 따르면 "나는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넋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는 아주 고요하게 내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가 보여 주고 있는 전기적 요소와 시적 사유의 결합은 자의식의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시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하늘과 땅의 근원적 질서 속에서 그의 본질은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 속에서 느끼는 세월과 그 흐름이 가져다주는 변화, 그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존재와 소멸의 내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괴로움은 어둡고 부정적인 인간의 실존이 지니는 보편적 상황과 함께 어두운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로움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분리되어 있는 자아를 직시하는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 그의 부끄러움의 시어가 탄생한다. 그의 부끄러움은 대부분 진실을 추구하는 의식 세계와 현실적 삶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대적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 던져 윤동주는 유별나다고 할만큼 시대적 현실을 포함한 세계를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감지했다. 그의 예민한 촉수는 늘 세계를 향해 곤두서 있다. 
479    詩를 論하다 / 李奎報 댓글:  조회:4724  추천:0  2015-05-05
論詩 논시 시를 논함                      -李奎報 이규보 (1168∼1241) 作詩尤所難 작시우소난        시 지음에 특히 어려운 것은 語意得雙美 어의득쌍미        말과 뜻이 아울러 아름다움을 얻는 것 含蓄意苟深 함축의구심        머금어 쌓인 뜻이 진실로 깊어야 咀嚼味愈粹 저작미유수        씹을 수록 그 맛이 더욱 순수하나니 意立語不圓 의립어불원        뜻만 서고 말이 원할치 못하면 澁莫行其意 삽막행기의        껄끄러워 그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就中所可後 취중소가후        그 중에서도 나중으로 할 바의 것은 彫刻華艶耳 조각화염이        아로새겨 아름답게 꾸미는 것뿐 華艶豈必排 화염기필배        아름다움을 어찌 반드시 배척하랴만 頗亦費精思 파역비정사        또한 자못 곰곰이 생각해볼 일 攬華遺其實 람화유기실        꽃만 따고 그 열매를 버리게 되면 所以失詩眞 소이실시진        시의 참뜻을 잃게 되느니 爾來作者輩 이래작자배        지금껏 시를 쓰는 무리들은 不思風雅義 불사풍아의        풍아의 참뜻은 생각지 않고 外飾假丹靑 외식가단청        밖으로 빌려서 단청을 꾸며 求中一時耆 구중일시기        한때의 기호에 맞기만을 구하는구나 意本得於天 의본득어천        뜻은 본시 하늘에서 얻는 것이라 難可率爾致 난가솔이치        갑작스레 이루기는 어려운 법 自揣得之難 자췌득지난        스스로 헤아려선 얻기 어려워 因之事綺靡 인지사기미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는구나 以此眩諸人 이차현제인        이로써 여러 사람을 현혹하여서 欲掩意所匱 욕엄의소궤        뜻의 궁핍함을 가리려 한다 此俗寢已成 차속침이성        이런 버릇이 이미 습성이 되어 斯文垂墮地 사문수타지        문학의 정신은 땅에 떨어졌도다 李杜不復生 이두불복생        이백과 두보는 다시 나오지 않으니 誰與辨眞僞 수여변진위        뉘와 더불어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겐가 我欲築頹基 아욕축퇴기        내 무너진 터를 쌓고자 해도 無人助一簣 무인조일궤        한 삼태기 흙도 돕는 이 없네 誦詩三百篇 송시삼백편        시 삼백편을 외운다 한들 何處補諷刺 하처보풍자        어디에다 풍자함을 보탠단 말인가 自行亦云可 자행역운가        홀로 걸어감도 또한 괜찮겠지만 孤唱人必戱 고창인필희        외로운 노래를 사람들은 비웃겠지                ***시 쓰는 우리 모두가 음미해 보아야 할 좋은 한시입니다.*****    
478    詩法을 爲하여... 댓글:  조회:4123  추천:0  2015-05-05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 현인들의 말을 빌어 살펴보면 시의 실체에 조금은 근접할 수 있을까요?  .. 늙은 사람 한 가지 즐거운 것은  붓가는 대로 마음껏 써 버리는 일.  어려운 韻字에 신경 안 쓰고  고치고 다듬느라 늙지도 않네.  흥이 나면 당장에 글로 옮긴다.  나는 본래 조선사람  즐겨 조선의 詩를 지으리.  그대들은 그대들 법 따르면 되지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자 누구인가.  까다롭고 번거로운 그대들의 格과 律을  먼 곳의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 있나.  ―정약용 「老人一快事」  붓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杜甫  시 3백수에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악함이 없다.  ―공자 『논어』 爲政篇  그대들은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는 사람에게 감흥을 돋우게 하고 모든 사물을 보게 하며, 대중과 더불어 어울리고 화락하게 하며, 또 은근한 정치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어버이를 섬기고, 나아가서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시에서 배울 수 있으며, 또한 시로써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공자  시란 뜻(志)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공자  고시(古詩)는 충후(忠厚)를 주로 했다. 시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 그 의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기평(譏評)할 때에는 그 소위(所爲)의 악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벼슬의 존비와 차안의 미려를 들어 백성의 반응을 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식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白居易  시란 말의 뜻을 나타내고 노래란 말을 가락에 맞춘 것이다. 소리는 길게 억양을 붙이는 것이고 가락은 소리가 고르게 된 것이다.―유협 『문심조룡』  시는 의(意)가 주가 되므로 의를 잡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맞추는 것은 그 음이다. 의도 또한 기(氣)를 위주로 한다. 기의 우열에 따라 의의 깊고 옅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란 천성(天性)에 딸린 것이어서 배워서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가 떨어지는 사람은 글 다듬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의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체로 글을 깎고 다듬어 구(句)를 아롱지게 하면 아름다움에는 틀림 없다. 하나 거기에 심후한 의가 함축되어 있지 아니하면 처음에는 볼 만하나 다시 씹어보면 맛이 없어져 버린다. ―이규보  시에는 마땅치 못한 아홉 가지 체가 있다.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하여 체득한 것이다. 시 한 편 속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사용한 것은 수레에 귀신을 가득 실은 것, 옛사람의 뜻을 몰래 취해 쓰는 것은 도둑질을 잘한다고 해도 옳지 않은데 도둑질이 서투르면 이것은 서툰 도둑질이 잘 잡히는 것, 강운으로 압운하여 근거가 없으며 이것은 쇠를 당기나 이기지 못하는 것,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지나치게 압운하면 이것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험벽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하게 하는 것은 구덩이를 파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것, 말이 순편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사람에게 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억지로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 일상용어를 많이 쓰는 것은 촌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공자나 맹자를 범하기 좋아하는 것은 존귀함을 함부로 범하는 것, 글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은 잡초가 밭에 가득한 것이다. 이 마땅하지 못한 체격을 면할 수 있게 되면 함께 시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규보  시문은 기를 위주로 삼는다. 기는 성(性)에서 발하고 의(意)는 기에 의지하며,말은 정(情)에서 나오므로 정이 곧 의이다. 그러나 신기한 뜻은 말을 만들기 어려우므로, 서두르면 더욱 생소하고 조잡해지는 것이다. ―최자  시는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한 것이 믿을 만하다.―이인로 『破閑集』  시는 함축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희미한 글,  숨은 말로서 명백하고 통쾌하지 않은 것은 또한 시의 큰 병통이다.  ―서거정 『東人詩話』  시가 교화를 위한 것이라는 뜻은 본래 온유 돈후한 시정신으로써  성정을 다스려서 풍화(風化)를 이루게 하며, 사람의 마음을 감화하여  세상의 도리를 평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남구만  시는 성정의 허령(虛靈)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유몽인  시는 성정을 나타내는 것이다.―이의현  시는 원리와는 관계 없는 별종의 취향을 갖고 있다. 오직 천기(天機)를 농(弄)하여서 심원한 조화 속을 파악하여 정신이 빼어나고 음향이 밝으며 격이 높고 생각함이 깊으면 가장 좋은 시가 된다. ―허균  시란 사람의 천성과 정서를 조정하고 인간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심덕잠  지금 우리 나라의 시와 문장은 고유의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쓴 것이다. 가령 아주 흡사해진다 해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김만중  무릇 시에 있어서는 자득(自得)이 귀하다.―이수광  시란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 속에 있으면 지(志)라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정(情)이 마음 속에 움직일 때,  시인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한다. ―신위  시는 교화(敎化)하는 것이니 힘써 그 뜻을 전달해야 한다. ―이익  임금을 사랑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고 퇴폐적 습속을 통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단 진실을 찬미하고 거짓을 풍자하거나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정약용 『목민심서』  시는 대개 정신과 기백이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약용  시에는 신비한 정신의 경지가 있는데 이것은 무형 중에 우거(寓居)하면서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에, 우연히 만나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찾아보려고 해도 얻을 수 없다. ―신광수  보기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모아놓고 시라고 하는 것이야 비천한  잡배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는 선언이다. 만천하의 현재 뿐 아니라  진미래제(盡未來際)까지의 중생에게 보내는 편지요, 선언이요,  유언이다. ―李光洙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다. 신의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구약에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 토로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李光洙  시인이 창작한 제2의 자연이 시다.―조지훈  시는 신(神)의 말이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운문(韻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充溢)한다. 미와 생명이 있는 곳에  시가 있다. ―I.S.투르게네프 『루진』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F.Q.호라티우스  『詩法』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쫓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보들레르  시는 진리가 그 목적이 아니다. 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보들레르  시를 쓰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건 낚시질하고 똑 같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 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수확이 되는 법이거든. ―E.크라이더 『지붕밑의 무리들』  시는 넘쳐 흐르는 정감의 힘찬 발로이다.―워즈워드  시는 체험이다.―R.M.릴케  시는 악마의 술이다.―A.아우구스티누스  시란 것은 걸작이든가, 아니면 전연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J.W.괴에테  위대한 시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L.베에토벤  시는 거짓말하는 특권을 가진다.―프리뉴스2世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한다. ―머클리쉬  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여진다.―E.A.포우  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스프랏트  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 ―R.M.릴케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 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手記』  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에머슨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P.B.셸리』  감옥에서는 시는 폭동이 된다. 병원의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다. 시는 단순히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시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이 된다. ―보들레르 『로만파 藝術』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선 안된다.……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에로 통해야 한다. ―F.실러  시란 가장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M.아놀드  시적(詩的)이 아닌 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A.지이드 『私錢쟁이』  시는 모든 예술의 장녀(長女)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친이다.  ―콩그레브  만약 사람이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그대는  아름다운 생(生)을 알게 된다.―J.아이헨돌프  도덕적인 시라든가 부도덕적인 시라든가에 대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시는 잘 씌어져 있는가 아니면 시원찮게 씌어져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O.와일드 『英國의 르네상스』  시는 힘찬 감정의, 위세 좋은 충일(充溢)이다. 그 원천은 조용히  회상된 감동이다. ―O.와일드 『英國의 르네상스』  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70년, 혹은 80년을 두고 별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써질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手記』  시는 근본적인 언어 방법이다. 그것에 의해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 매카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M.무어  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다. ―T.S.엘리어트 『超現實主義 簡略事典』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T.S.엘리어트 『傳統과 個人의 才能』  시의 세계로 들어 온 철학 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T.S.엘리어트 『評論選集』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T.S.엘리어트 『詩의 효용과 批評의 효용』  시란 무엇은 사실이다 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해 주는 것이다. ―T.S.엘리어트  시는 미에 있어서의 참된 집이다. ―킬피란  우리의 일상 생활의 정서 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 ―I.A.리차아드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뀌어진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M.하인거 『횔더린과 詩의 本質』  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J.키이츠  아무리 시시한 시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이해한다면 좋은 시를 얼핏 읽어버림으로써 받은 인상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나. 내가 시를 읽고 싶지 않을 때, 시에 지쳤을 때, 나는 항상 자신에게다 그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이르는 바일세. 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이 내 마음 속에서 진행 중일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하네. 그래서 언젠가 어느 순간에 내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있어 그 훌륭한 감정을 꺼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J.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對話』  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닌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스펜서  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B.존슨  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J.드라이든  한 편의 시는 그 자체의 전제(前提)를 훌륭하게 증명해 놓은 것이다. ―S.H.스펜더 『시를 위한 시』  18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은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나는 가끔 시를 갱도(坑道)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 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성자여야 합니다. ―P.토인비 『J.콕토와의 인터뷰』  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  ―K.샌드버그  시의 본질은 동작이다. 이 동작은 내적 완전을 나타내고 이 내적  완전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또 진실이기 때문에 참으로 시적인  성격은 위대한 격정의 자유로운 움직임 가운데 나타난다. ―네싱  시적 형식은 본질이 무엇이든 시가 문학의 특수한 형식으로서  쾌락을 주는 근원은 변화에 의한 반복성에 있다. ―R.E.앨링턴  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싯귀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 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클로델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다.  ―스카르보로 『중국격언집』  만약 시가, 위대한 그 무엇이 아니면 안된다면,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현대와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간에, 작자의 정신의 내부에 있는 산 그 무엇과, 그것이  전달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로써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신체는 어디 있든간에, 그 혼은, 이곳에, 그리고 현재 있어야  하는 것이다. ―A.C.브래드레  시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다  .(감정이라면 우리들은 간단히 가질 수가 있다) 시는 경험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면, 많은 도시를, 많은 사람들을, 많은 사물들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동물, 새의 날으는 모습, 아침에 피는  꽃의 상태 등을, 알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미지의 토지에 있는 도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애당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이별, 기억도 확실치 않은 먼 어린 시절, 자기도 알지 못하였던 즐거움이며, 마음먹고  아버지 어머니가 주는 것을 반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들에 공상의  힘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 각자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사랑하던 밤의 일, 분만하는 부인의 애끊는 절규. 어린애 침대에서 잠도 자질 못하고 창백하게, 그리고 잠들어버리는 부인들의 추억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땐, 들창을 열어 놓은 채, 계속적인 시끄러움이 들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있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기억이 많이 있을 땐 잊어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기억이 또 한번 떠 오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 우리들의 내부에서 피가 되어 명확히 이름지울 수도 없게끔 되어버리든가, 이미 우리들 자신과 구별할 수도 없게끔  되어버릴 때 ―그야말로 어느 순간 시의 최초의 한마디가, 기억의  한가운데 나타나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수기」에서  시의 기능은 세계의 슬픔과 조화시키는 것이다. ―A.E.하우스만  시적 진실 ―‘개인적, 국부적인 것이 아니고, 보편적이며, 기능적인 것’ ―워즈워드  시는, ……인간의 마음의 제일 먼저의 활동이다. 인간은 일반적인  개념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상상상의 관념을 만든다. 명증한  마음으로 생각하기 전에 혼란한 머리로 파악한다. 명확하게 발음하기  전에 노래부른다. 산문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운문으로 이야기한다.  전문어를 쓰기 전에 은유를 쓴다. 말을 은유풍으로 쓴다는 것은  우리들이 ‘자연발생적’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그에 있어서  자연인 것이다. ―G.B.비코  시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T.E.흄  시의 중요한 목적은 정밀하고 명확한 표현에 있다. ―T.E.흄  사랑받지 못한 해바라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씨를 가진 꽃만이 불꽃으로 반사한다. ―A.L.테니슨  시는 상징주의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감동시킨다는 이론을 만약  사람들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현대시의 양식 속에 어떠한  변화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선조들의 방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을 위하여 자연묘사를, 도덕을  위하여 도덕율을, 그리고 테니슨의 경우 시의 중심이 되는 불꽃을  거의 다 깨버린 일화나, 과학적 의견에의 고려 등을 버리는 것이다.  ―오든  시란 현존시에 붙어다니는 한낱 장식물에 그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감격이나 감동에 그치는 바도 아니다. 더구나  한낱 열중에 빠지는 바도 아니며 오락물로 떨어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시는 역사를 지탱해주는 밑바탕이다. ―하이데거  산문시란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음악적이고 영혼의 서정적 동요,  환상의 파동, 의식의 경련에 응답하기 위해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칠은 시적 산문이다.  ―C.보들레르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  ‘시―인스피레이션’의 공식을 믿는 시적 사고는 허망한 하나의  옛이야기가 되어도 좋다. 지적(知的)으로 확신되는 사상에만  정적(情的) 신앙을 주려는 폐습이 일부 사람들에게 굳게 뿌리  박혀 있다. 과학이 증대하여 힘과 그것은 장차 일반화하여 갈 것이다.  ―L.A.리처즈  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P.B.셀리 『詩歌擁護論』  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  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J.콕토 『暗殺로서의 美術』  시란 그 시를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상의  심볼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 ―W.C.브라이언트』  즉흥시는 진정 재지(才知)의 시금석(試金石)이다. ―J.B.P.몰리에르  서정시는 감정이 흘러 넘치는 청춘의 생명의 표현.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 없는 힘이며 열렬한 신앙의 발로다.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연과 사랑과 신 등으로 작자의 모양이 십분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제1인칭의 시라고 해도 좋다. ―에론네스트보배  서사시의 흥미는 작자가 아니고 그 시 속의 사건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르스는 개인적으로는 실제인물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을 만큼 아무래도 좋은 인물이다. 다만 호메르스의  시 속 영웅들에 흥미를 느낄 따름이다. 이에 비하여 같은 그리스의  위대한 서정시인 만나의 시를 읽을 때는 시 속의 영웅들은 무엇이던가  관계할 바 없고 다만 시인 그 자신에 일체의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서정시의 주관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테  시는 음악과 맞추어 만든 수사적인 작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단테  뮤직과 포에지의 길은 서로 교차한다. ―뽈 발레리  포에지는 말의 전능으로 베일을 벗긴다. 포에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날마다 그의 마음과 눈에 부딪치는 것을 그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가 생각하도록 각도와 속도를 맞추어 그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 ―쟝.꼭또  시는 우주에 담긴 비밀의 광선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잊어버린 천국을  소생케 한다. ―D.E.시트웰  시는 애련 속에서만 존재한다. ―W.H.오든  진실로 시라고 할만한 것은 서정시를 제쳐놓고는 없다.  ―E.A.포우  의식의 사고와 시적 표현의 기초는 구체적 직관 그 자체이다.  ―S.길버트  시의 안에 사상은 과실의 영양가와 같이 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뽈 발레리  시는 운문에 의한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  ―필립 시드니  현대시는 하나의 신앙 위에 서 있다. 곧 숨은 진실이 존재한다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R.M.알베레스  산문;말을 최상의 순서로 놓은 것. 시;최상의 말을 최상의 순서로  놓은 것. ―워즈워드  시는 본질적으로 무슨 악마적인 것이 있다. ―괴테  시는 시 이외의 무슨 목적을 가질 수 없다. 도덕이라든지 과학과  결부시킬 수 없다. 시는 두 가지 기본적인 문학적 특질, 즉 초자연과  아이러니 속에 있다. ―보들레르  시는 말의 의미를 이마쥬들의 분위기로 둘러싸이게 하면서 그 의미의  가지를 치게 한다. ―바슐라르  시는 진정한 의지의 범미주의적(汎美主義的) 활동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의지를 표현한다. ―바슐라르  서정적인 시는 돌진한다. 그러나 유연하고 물결치는 움직임으로이다.  모든 갑작스럽거나 끊어지는 것은 시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는 그런 움직임을 비극이나 관습적인 성격의 소설 쪽으로 돌린다.  ―보들레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감정이라면  젊은 나이에도 벌써 흐를 정도로 시를 갖게 될 게 아닌가. 시는  정말로는 체험인 것이다. ―R.M릴케  시란 꿈과 같은 것이기는 하나 현실은 아니다. 말장난이기는 하나  진지한 행위는 아니다. 시란 해로운 까닭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힘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말보다 해롭지 않은 것이 어디  또 있으랴. ―하이데거  온갖 예술은 감각적 매개물에 의한 관념의 표현이라고 말하나  시의 매개물인 말은 사실 관념이다. ―R.S.브리제스  다정한 시여! 예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여! 우리 안에  창조의 힘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신성(神性)으로 접근시키는  그대여! 어릴때 내가 그대에게 바치던 사랑은 수많은 환멸도 꺾질  못했다! 전쟁까지도 시가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더욱 커지게 하였으니, 이제부터 별 박힌 내 머리와 하늘이 서로 혼동되기에 이른 것은 전쟁과 시의 덕분이다. ―아뽈리네르  우리는 남들과 논쟁할 때는 수사학으로써 논쟁하지만 스스로 논쟁할  때는 시로써 한다. 자기를 지지한 혹은 지지할 거라는 군중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자신만만한 음성을 지닌 웅변가들과는 달리  우리는 불확실성 가운데서 노래한다. 따라서 가장 고상한 아름다움의  존재 가운데서도 우리가 고독하다는 인식때문에 우리의 리듬은 떨린다. ―에이츠  시의 의미란 그 텐션, 즉 시에서 발견되는 모든 외연(外延)extension)  과 내포(內包)intension를 완전히 조직한 총체이다. ―알렌 테이트  시가란 마치 화가가 색채로 하는 것을 언어로 하는 예술로서 상상력에  의하여 환상을 분출하는 방법에 의하여 산출하는 예술이다.  ―토마스 머코올리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을 발견이다. 예기치 않는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준다. ―W.세익스피어  시는 생의 진술이며 표출이다. 그것은 체험을 표시하고 생의 내면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다. 제2의 세계, 꿈은 최고의 시인이다.  ―워즈워드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A.오오든  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 『詩論』  시의 용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W.B.예이츠  시는 언어를 향한 일제사격이다.―앙리 미쇼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M.하이데거  시는 언어의 모자이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행위와 시는 언제나  인간보다 크다. ―T.E.흄  시는 극점에 달한 언어다. ―말라르메  시는 절조 있는 언어로서 절규․눈물․애무․입맞춤․탄식 등을 암암리에 표현하려는 것이다. ―뽈 발레리  시인에게 있어서 낱낱의 단어가 그 원료다. 단어는 극히 여러가지  모양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것들의 뜻은 시의 구성에 따라 처음으로  똑똑해진다. 이와같이 단어가 콤포지션의 가능성에 따라서 변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형성된 예술 형태의 한 부분이 될 때까지는 어세(語勢)도 그 효과도 다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프도프킨  시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생활은 사막의 생활이다. ―메르디트  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언어이다. ―E.A.로빈슨  시에선 해조(諧調)가 미리 공허한 형식을 결정하고 말이 위로 와서  위치를 잡는다. 말과 경험 사이의 응화(應和)와 불응화 그리고 결국에  응화가 해조를 확보하여 주의력을 거기에 모은다. 물러섬이 없는  움직임이 듣는 사람과 시인을 함께 끌고 간다. ―알랭  시는 미의 음악적 창조다.―E.A.포우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에르  정서가 있고 운율이 있는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또 예술적  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다. ―오든  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브리지스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다.―브룩스  시는 우연을 기피한다. 시에 나타나는 클라스․성격․직분 등의 개성은 반드시 어떠한 클라스를 대표한다. ―코울리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이다.―웰렉․워렌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엘리어트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W.H.허드슨  예술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작게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며, 그러면서도  우리들을 확대 시킨다. ―E.M.포스터  아직 탄생하지 않은  어느 특별한 일절 또는 일련의 배후에서, 하나의 힘과 같이 집중되어,  넓게 전개되는 의식의 총체. ―보트킨  열정적인 시란 것은, 우리들의 본성의 도덕적 지적 부분과 동시에  감각적 부분―지식에의 욕망, 행위의 의지, 감각의 힘을 방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완전한 것이 되려면, 우리들의 신체의 다른 여러 부분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 ―하즈리트  시는 조잡한 요소로(물을 타고 섞어서) 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엑기스(精)이며, 그것을 키울 수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순수한 이미지의 시는 수정 조각과 같은 것이어서―우리들의 동물감각엔 너무나도 차고 투명한 것이다. ―허버트 리드  가장 위험한 것은, 순수한 물의 성분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는 거와  같이, 정말로의 순수한 시라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하여서도 강연을  할 수 없는 것이다.―불순하며, 메칠알콜이 들어간 거칠은 시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월터 로리  시적 논리가 시의 결말을 맺는 것은, 일반적으론, 기분의 변화라든가,  위상의 전환을 통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시적 논리이다. 즉 논술이나 명증에 의하여 위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단계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그러한 위상의 변화이며,  이해할 수 있는 추이인 동시에 그 진행은 앞의 단계를 무효로 하는  그러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W.P.카  오로지 이미지는 시의 극치이며 생명이다. ―드라이든  방대한 저작을 남기는 것보다 한평생에 한번이라도 훌륭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진실한 이미지 뿐이다. ―W.블레이크  만약 지각(知覺)의 문을 맑게 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 즉 무한감(無限感)을 가진 것같이 보일 것이다. ―W.블레이크  이미지는 우리들에게 사랑과 희생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그것은 어느 경험을 생각케 하며 그 문체에 의하여 그러한 경험에의 어느 종류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우리들은 어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즉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희열이든가 절망이든가 어떠한 감정이든간에 그것을 아는 것이 강한 만족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챨스 윌리암즈  이미지의 생산은 무의식의 어두침침한 속에서의 정신의 일반적 행위에  속한다. ―E.S.달라스  나에게 있어서 지각은 처음에 명료한 일정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어느 음악적인 무우드(기분)가 우선한 다음에 시적 사상이 나에게 다가온다. ―쉴러  이미지의 발생, 진전, 설정은, 예를 들면 태양의 광선이 자연히  그에게 도달하여 ―그의 위에 빛나고 다음엔 냉정히 더구나 장려하게  기울어 가라앉아가며 그를 호화스러운 황혼 속에 혼자 남기는  현상에 흡사하다. ―J.키츠  우리들은 정신의 영역을 3중의 층으로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러한 경우 지질학의 ‘단층’에 비교할 수 있는 어느  현상이 일어난다. 그 결과……지층은 비연속적이며 서로 불규칙한  단층을 나타나게 된다. 그와 매한가지로 자아의 감각적 의식은 본능적  충동과 직접 교섭을 갖게 되며, 그 ‘끓는 가마솥’에서 어떠한  원형적 형태 즉 예술작업의 기초가 되는 말, 이미지, 음 등의 본능적  짜임을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 ―H.리드  나의 경우 시에 있어서는 많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의 중심이 많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만든다’라는 말은 적당치 않은 말이지만, 나는 나의 이미지에  내 내부에서 정서의 여러 가지 배색을 물들여 놓고 그것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 비평적인 힘을 적용하여 그것이 또 다른 이미지를 낳게 한다.  그리곤 그 제2의 이미지를 제1의 그것과 모순시켜, 그 둘에서 난  제3의 이미지에서 제4의 모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것들 모든 것을  나에게 주어진 형식적인 제한의 범위 내에서 서로 모순시킨다. 각각의  이미지는 그 속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종자를 가지고 있다.  즉 나의 변증적 방법(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은 중심의 종자에서 성장하는 많은 이미지의 끊임없는 건설과 파괴며, 그 중심의 종자도 그 자신으로 파괴적인 동시에 건설적인 것이다.……나의 시의 생명은 중심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 속에서 나와, 그리고  죽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이미지의 건설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어쩔 수 없는 충돌에서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충돌에서)―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자극을 주는 중심 즉, 충돌의 모태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나는 시라는 순간적 평화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딜런 토마스  이미지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자신으론 시인의 특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독자적인 본능의 증거가 되는 것은 훌륭한 정열,  또는 그 정열로 잠깨워진 일련의 사상 혹은 이미지 여하에 따라 시  그 자체가 변할 만큼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때 뿐이다.  ―코울리지  추상적 관념에 대립하는 감각적 이미지를 너무나 주장하는 나머지……  결과는 회화에 의한 시로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그림이  전부가 되어버려, 일반적 경험에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은 존재와 의미와를 분리시키는 잘못의 제일보였던 것이다.  ―로버트 히리아  상상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시적 몽상이라는 몽상의 절대를 인식한다. ―바슐라르  실제로 물질적 상상력은 문화적 이미지와 실체를 합체시키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모든 삶을 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  상상력 그 자신은 기억의 작용이므로 기억이 시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 진실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전에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그것을 어느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스펜서  추상적인 것의 구체화를 추구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내 방법은  아니다. 나는 내 자신 속에 감동 ―감각적으로 생생한, 사랑스러운,  다채로운 여러가지의 감동 ―을 기민한 상상력의 에너지로서  받았던 것이다. ―괴테  이성이라는 것은, 기지(旣知)의 사물을 질서있게 정리하는 작용이며  상상력이라는 것은 사물의 개개, 혹은 전체로서의 가치를 지각하는  작용이다. ―C.V코노리  상상력이야말로 도덕적 선(善)의 훌륭한 방편이다. ―셸리  상상력이라는 것은 죽어 가는 정열을 되살리기 위하여 살(肉)을  잡아 두는 불사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J.키츠  모든 것에 앞서서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를 자기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는 천부의  은총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러면 자연 은유가 될 것이다. ―J.M.머리  은유는 현실을 살피며 경험을 질서짓게 하는 정신의 본질적이며 또한  필요한 행위와 같이 생각된다. ―J.M.머리  어떠한 번역이나, 은유나, 우의라도 극단적인 비유와는 전연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은유를 바다나 파도에서  시작하여 불꽃이나 재로 끝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대단히 나쁜  모순이기 때문에. ―벤 존슨  은유를 깊이 추구하려면 건전한 의식의 세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J.M.머리  상징파의 상징은 언제나 자기만이 아는, 특별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인이 독단적으로 쓰고 있는 ―즉, 그러한 관념의 일종의  투영인 것이다. ―에드문드 윌슨  상징주의의 상징의 실체는 제재에서 분리한 은유였었다.―왜냐하면  시에 있어서 어느 한 점을 넘으면 색채와 음은 그 자신을 위하여  즐거워할 수가 없을 뿐더러 이미지의 내용을 억측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에드몬드 윌슨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오랜 대형 메달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매자락에 닳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상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 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A.맥클리쉬 『詩法』  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앞에 있다. ―R.끄노오 『詩法을 위하여』       
477    詩作 語錄 댓글:  조회:4009  추천:0  2015-05-05
  어록                            최룡관 편집       글쓰기에 정통하려면 반드시 창작방법을 훌륭하게 터득하여야 한다. -615쪽에서 작가가 기교를 장악하여 작품을 다루는것은 바둑명수가 바둑두는 기술을 정통하고 있는것에 비유할수 있다. 기교를 포기하고 주관적인 생각에만 따르는것은 마치도 도박군이 노름에서 요행수만 바라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617쪽에서 문학의 사상에는 정해진 규범이 없을지 모르나 창작의 원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것이라네 -621쪽에서 문학적사색을 잉태함에 있어서 그 요체는 허심함과 조용함에 있으며 마음속의 선입관을 깨끗이 쓸어버리는데 있다. 바로 이렇게 해야만 정신이 순수하고 깨끗해지게 할수있다. 또한 학식을 쌓음으로써 진귀한 보물들을 저장하고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것으로 재능과 학식을 풍부히 하고 경력을 연구하는것으로 철저한 관찰을 진행하고 문학적사색을 따라 아름다운 문학적언어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비로소 신묘한 도와 깊게 통한 심령으로 하여금 성률에 맞춰 문학적언어를 안배하게 할수 있는데 , 이는 마치도식견이 있는 장인바치가 심상(意像)에 의존하여 창작을 진행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문학적사색을 구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작품의 구성에서의 중요한 발단이다. - 377쪽에서 (제26장 신사(神思)에서 심상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제 36장 비흥에서 심상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방법을 이렇게 론술하고 있다. ) 비란 비부(比附)이고 흥이란 기흥(起興)이다. 비부 즉 사물의 리치를 련결한다는것은 비유를 사용하여 사물을 설명한다는 의미이다. 기흥은 즉 사물에 의탁해서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것은 어떤 의미를 아주 은근하게 내포하고 있는 사물에 감정을 맡긴다는 뜻이다... 비란 격분의 감정을 품은 채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고 , 흥이란 완곡한 비유를 사용하여 그것에다 숨겨진 의도를 의탁하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추이에 따라서 감정과 생각은 변하게 마련이니, 시인들이 지향하는 표현수법에는 항상 그 두가지가 포함돼 있었다. -5001쪽에서 흥의 수법에서는 말은 분명하게 하나 그말의 의도된 뜻은 잘 드러나지 않아서 거기에 관한 주를 보아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리해하게 된다. 이어서 비라고 부르는것에 대해 설명하면 사물을 묘사하여 비유하는것으로서 자신의 의도를 명백하고도 정확하게 설명하는것이다. 그러므로 금과 석으로 아름다운 품덕을 비유하였으며, 나나니벌이 명령을 양육하는것을 례로 들어 자식을 깨우치는것을 비유했고, 매미이 울음소리를 례로 들어 시끄러운 웨침에 비유했고, 때묻은 옷을 마음의 근심에 비유했고, 자신의 마음이 말아놓은 돗자리와 같지 않음을 말함으로써 굳건한 자신의 의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503쪽에서 비유의 수법에 있어서 비유의 대상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 어떤것은 소리로 비유하고 어떤것은 형상으로 비유하고 , 어떤것은 심정의 유사함으로 비유하고 , 어떤것은 사물로 비유하기도 한다. -505쪽에서 비유된 두 사물이 비록 북방의 호인과 남방의 월인들 만큼이나 서로 관련이 없더라도 그것들이 일단 합쳐지면 간과 쓸개처럼 가깝게 된다네 기흥은 외부의 형상을 묘사하여 그뜻을 뽑아오므로 말의 사용은 반드시 과감하게 해야 하리라 다양한 종류의 비와 흥의 사물들을 노래속에 모아놓은니 문학적언어는 마치 강물의 흐름처럼 생동하도다 -509쪽에서 형상을 넘어선 추상적인것을 도라하고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것을 기물(器物)이라 한다.신묘한 도리는 묘사하기 어려운것이라서 아무리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그것의 극진한 부분까지는 설명할수 없으나 구체적인 기물은 묘사하기 쉬운것이여서 유력한 언어적표현을 동원하면 능히 그것의 진상을 드러낼수 있다... 높은것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고 하였고, 협소함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고 하였고, 많음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하였고 적음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하였고... -511쪽에서 표현(과장수법)들은 마음속의 깊고도 신비한것들을 펼쳐보이면 울적한 마음을 날려보낼수 있으니 안맹한 소경으로 하여금 눈을 뜰수있게 하는 빛남을 갖고있고 ,귀머거리로 하여금 소스라쳐 놀라게 할 소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517쪽에서 과장의 수법은 쓰임새에 달려 있나니 ...... 바다를 기울려 말려서 진주를 찾아내고 곤륜산을 넘어뜨려 보옥을 채취하라 함의는 넓고 크지만 지나치지 말도록 하고 언어는 과장하되 결점이 없도록 하라. -521쪽에서   작품을 다 써놓고 보면 흔히 처음에 자신이 생각했던것을 절반밖에 표현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왜 이런가? 그것은 문학적구상은 흔히 상상에 의존하기에 아주 쉽게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언어는 비교적 실재적이여서 교묘하게 구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379쪽에서 문학적사색이 ... 빠름과 느림, 어려움과 쉬움은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학식수준과 기교의 숙련정도에 의존하는것이다... 광법위한 학식과 폭넓은 경험은 내용의 빈곤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자양분이며, 일관성과 통일성은 혼란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약처방이다. - 33쪽에서 문학적사색이외의 미묘한 뜻이나 문학적언어를 초월하는 존재로서의 은밀한 정취는 언어로는 표현할수 없는 것들이다. 오직 가장 정미한 (정밀하고 자세함) 경계에 도달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그 오묘한 점을 해석할수 있고 , 가장 미묘한 변화를 파악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그 기교를 리해할수 있는것이다. -35쪽에서 각종 표현양식들을 분명하게 장악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의미라 할지라도 그것이 표현 양식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할것이다. 창작과정에 나타나는 변화를 통달하라. -405쪽에서 재능은 문학창작이라는 무궁한 길을 질주할수 있게 하며, 고갈되지 않는 문학창작의 샘물을 마실수 있게 한다. 작가가 두레박의 줄이 너무 짧아서 갈증을 참아야 하고 다리의 힘이 부족해서 그 길을 포기해야만 하게 되는것은 ,창작방법에 어떤 제한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창작방법의 융통성있는 적용에 대하여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409쪽에서 시인들 사이에서 서로 뒤엉키기는 하지만 반드시 각자 나름대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계승도 있고 혁신도 있어야만 비로소 변통의 방법이라고 할수있을것이다. -415쪽에서 문학창작의 법칙은 멈춤이 없이 운행하나니 자신의 성취를 나날이 새롭게 바꾸네 변화에 능숙해야만 비로소 오래동안 지탱할수 있고 전통에 능숙해야만 비로소 궁핍을 면할수 있네 -419쪽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취미는 천차만별이므로 창작수법 역시 그 변화가 다단하기 마련이다. -421쪽에서 작품에 담긴 뜻이 옅어서 드러나거나 작자의 원래의 뜻과 너무 가까운 작품은 함축성이 모자라며, 언어적 표현이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은 대체로 풍부함이나 다채로움과 거리가 멀다. -423쪽에서 부(賦), 송(頌), 가(歌), 시(詩) 등의 경우에는 청려함을 규범으로 삼아야 하고 -427쪽에서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무늬가 없다면 그것은 개나 고양이 가죽과 다르지 않을것이며 , 코뿔소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려면 거기에 붉은색을 칠해야만 한다. 이는 내용이란 형식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보여준다. -437쪽에서 문채를 구성하는 방법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다섯가지 색조로 구성된 형문(形文)인데 그것은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이다. 둘째는 다섯가지의 음으로 구성되는 성문(聲文)인데, 그것은 궁(宮), 상(商), 각(角),징(徵), 우(羽)이다. 셋째는 정문(情文)인데 그것은 인(仁),의(義) 례 (禮),지(智), 신(信)이다. 다섯가지 음을 배합해 놓으면 소하(韶夏)라는 악곡이 되며, 다섯가지 성정을 묘사하면 문장이 되는것이다. 이는 선천(先天)에 의하여 형성되는 사물의 복잡한 현상이라 하겠다. -439쪽에서 문채의 아름다움은 성정의 진지함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정리(情理)는 문학작품의 날실이며, 언어적표현은 씨실이다. 날실이 올바르게 배렬되여야 비로소 씨실이 제대로 오가면서 천을 짤수 있듯이 , 정리가 확정된 다음에라야 비로소 문장이 류창해질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작품구성의 근본이 되는것이다. -443쪽에서 어떤 사람들은 고관대작과 높은 봉록을 탐하면서도 공허하게 전원의 은거생활을 노래하며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번거롭고 바쁜 정무를 걱정하면서도 세상밖의 탈속한 정취에 대해 공허한 말을 한다...언어로써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는것을 근본으로 삼는 문학작품에 있어서 입으로 말하는것과 지향하는것이 서로 상반된다면 어찌 그것을 신뢰할수 있겠는가? -447쪽에서 언어란 문채에 의하여 비로소 세세대대로 전해질수 있나니 ....... 말에 아름다운 수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결여돼 있다면 자세히 음히해 보고나면 반드시 싫증나게 되리 -451쪽에서 내용으로 하여금 규범에 부합되도록 하는것을 가리켜 용이라 하고 , 불필요한 글자나 단어 그리고 구절들을 삭제하는것을 가리켜 재라한다...문학작품에서의 사상의 반복은 내용의 군더더기에 해당할것이고 , 동일한 단어나 문장의 중복은 수사상의 군더더기에 해당할것이다. -453쪽에서 문학작품을 훌륭하게 완성하자면 우선 고려해야 할 세가지 기준을 설정하여야 한다. 그 첫째는 정리에 근거하여 제재를 결정하는것이고, 두 번째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된 사례들을 선별하는것이고, 세 번째는 중요한 문제들을 충분하게 부각시킬수 있는 강력한 언어의 형식을 창조하는것이다. 그런 다음에라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수 있고,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남기고 , 또한 문채를 조절할수 있게 된다. -455쪽에서 문학작품은 가옥의 창문과도 같아서 오른 쪽과 왼쪽이 알맞게 배합되여야 하네 언어는 강물의 흐름과 같아서 가득 차게 되면 범람하게 되는 법 뺄것과 보탤 내용을 가늠하고 짙게 처리할 부분과 옅게 처리할 부분을 고려하며 쓸모 없는 부분은 잘라버려 군더더기의 누를 피해야 한다. -461쪽에서 문학작품들 가운데서 정화라 꼽힐만한 명작들에는 은과 수가 있기마련이다 은(蘟)이란 글밖에 함축된 말밖의 뜻을 가리키며, 수(秀)란 작품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말을 가리킨다. 은은 문면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통해 그 섬세함을 획득하고, 수는 한 작품안에서 여타 다른 부분들과 비교되는 특출함을 통해 그 아름다음을 획득한다... -551쪽에서 은의 특질은 글밖에 뜻을 갖고있는것이다. 그것은 마치 은밀한 음향이 옆에서 들려오는것 같고, 숨겨진 문채가 어둠속에서 반짝이는것과 같은데 이는 효상의 변화가 호체안에 포함돼있는것에 비유될수 있고 흐르는 강물속에 주옥이 숨겨져 있는것에 비유될수 있다 즉 호체안에서의 효상의 변화가 사상(四象은 사물의 음, 양, 강, 유를 표시)을 이루고 , 주옥이 강물속에 길이 감추어져 있기에 물결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것과 같다. -553쪽에서 단정하게 시작해서 기발하게 끝을 맺는 문장은 마치도 강물속에 숨겨진 진주의 아름다운 빛이 밖으로 드러나서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끝없는 여운을 남기고 그것을 맛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히 싫증나지 않게 하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553쪽에서 작품속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물결을 가리켜 수라고 한다. 그것은 민첩하고 교묘한 손이 아름다운 악곡을 연주하여 표일한 자태가 밖으로 드러나고, 또 먼산에 구름과 노을이 피여 오르고, 미녀들이 예쁜 용모를 드러내는것에 비유될수 있다. -555쪽에서 작품의 주제를 세우는데 능란한 사람은 반드시 기발하고 특이한 주제를 창출하고자 하기에 흔히 지극히 깊고 섬세하고 현묘한 경계(境界)를 상상하게 되는 법이고 , 언어를 다듬는데 능한한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언어를 만들고자 하기에 그 깊은 생각이 항상 언어적표현이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령역에로 생각이 미치게 되는 법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심장과 쓸개를 토해내는것 같다는 이 표현도 그 창작에서의 고심을 설명할수 없다. 오랜 세월동안 달련하고 반복적으로 추고하는 이 로고를 어찌 말로 다 형용할수 있으랴? 그러므로 작품의 언어적표현속에 어떤 광채를 숨기게 되면 안광이 평범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할것이고, 어떤 예리함이 언어적표현곳에 드러나게 된다면 식견이 높은 사람들은 크게 놀라게 될것이다... 만일 작품전체에 함축적인 의미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마치 노유(老儒)에게 학문이 없는 것과 같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번의 질문에 그 밑바닥이 드러나게 되고 , 숱한 구절들에 경구가 없다면 그것은 마치도 고대광실에 진귀한 보물이 없는것과 같아서 몇 번 묻게 될 경우에는 얼굴색이 질리게 된다 -557쪽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정확하게 리해하는 지음(知音)을 만날수있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음은 확실히 리해하기 어렵고 또 그런 지음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것이다. 작품에 대한 진정한 리해력을 갖춘 사람인 지음을 만난다는것은 천년에 한번있을가말가한 일이다 -685쪽에서 어찌 지나치게 심오하다고 탓을 하랴? 문제는 식견과 감별력이 천박한데 있을 따름이다... 마음의 눈으로 작품의 사상과 감정을 관찰하는 일은 육안으로 사물의 형체를 관찰하는것에 비유할수 있다. 아주 밝은 눈으로 보면 분간할수 없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듯이, 예민한 마음의 눈으로 보면 리해되지 않는 상상과 감정이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오직 심원한 인식능력과 감별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작품의 심오함을 포착해 낼수 있고 그로인해 마음깊은 곳에 서 우러나오는 희열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695쪽에서 문학적 함양을 갖춘이들은 치밀하고 함축적인 작품을 보면 기뻐할것이고, 경박하고 화려한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기이하고 화려한 작품을 보면 마음이 움직일것이고 , 신기한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이한 작품을 보면 어깨를 으쓱거릴것이이다 -689쪽에서 자연스러움이 정교함과 합치되여야만 하는데 이는 마치 초목의 꽃이 빛을 발하는것과 같다 -563쪽에서 날개 없이도 여러곳으로 날아갈수 있는것이 말이요 , 뿌리없이도 굳게 맺어지는것이 감정이다 -567쪽에서 자신의 문장에 다른 사람의 문장과 동일한 부분이 있으면 마땅히 삭제하여야 한다. -577쪽에서 항상 사색의 칼날을 방금 숫돌에 갈아놓은것처럼 유지해야 한다 -595쪽에서 지엽적인 것의 세밀함을 포기하더라도 전체의 완미함을 쟁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작품구성에서의 총적안배의 원칙이다. -601쪽에서 문장의 사상과 감정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가지 사항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만 한다. 그 여섯가지란 첫째는 작품의 전체적인 체제의 안배를 볼것, 둘째는 문장이나 말의 배치를 볼것, 셋째는 작품에서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변화의 추구를 볼것, 네째는 표현수법상의 정아(正雅)함과 기이함을 살필것, 다섯째는 사류(事類)의 운용에 대해 살필것, 여섯째는 성률(聲律)을 살필것 등이다. -693쪽에서  
476    詩作 16法 댓글:  조회:4573  추천:0  2015-05-05
시를 잘 쓰는 16가지 방법 / 송수권 ① 사물을 깊이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른다. 지식이나 관찰이 아닌 지혜(지식+경험)의 눈으로 보고 통찰하는 직관력이 필요하다.  ②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대한 ‘의미부여’가 있을 때 소재를 붙잡아야 한다.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사랑 등 퇴행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③ 머릿속에 떠오른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이미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중유화 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이것이 종자 받기(루이스)다(이미지+이미지=이미저리→주제(가치와 정신)확정).  ④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정서의 구조화가 필요하다. 추상적 관념을 이미지로 만들고 정서를 체계화하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1차적 정서를 2차적 정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쓴다. 이것을 ‘정서적 객관화’ ‘감수성의 통일’등으로 부른다.  ⑤ 현대시는 ‘노래의 단절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있다는 피스의 말을 상기하라. ‘-네’ ‘-오리다’ ‘-구나’ 등의 봉건적 리듬을 탈피하라.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하고 산문 형태로 시도해 보는 것도 시 쓰기(매너리즘)에서 탈피하는 방법(형식)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면 형식은 그대로 두고 ①-④의 항목에다 적어도 ‘인지적 충격+정서적 충격’이 새로워져야 함은 물론이다.  ⑥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시는 깊이는 있어도 새로움이 약화되기 쉬우니 프로근성을 버리고 아마추어의 패기와 도전적인 시의 정신을 붙잡아라.이는 ‘시 쓰기’를 익히기 위한 방법이며, 늙은 시가 아니라 젊은 시를 쓰는 방법이다.  ⑦ 단편적인 작품보다는 항상 길게 쓰는 습관을 길러라  ⑧ 지금까지의 전통적 상징이나 기법이 아닌 개인 상징이 나오지 않으면 신인의 자격이 없다. 완숙한 노련미보다는 젊은 패기의 표현기법이 필요하다. 실험정신이 없는 시는 죄악에 가깝다.  ⑨ 좋은 시(언어+정신+리듬=3합의 정신)보다는 서툴고 거친 문제시(현대의 삶)에 먼저 눈을 돌려라  ⑩ 현대시는 낭송을 하거나 읽기 위한 시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만드는 시이니 엉뚱한 제목(진술적 제목), 엉뚱한 발상, 내용 시상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제를 깊이 감추고,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말고 절반은 비워둬라. 나머지상상력은 독자와 평론가의 몫이다.  ⑪ 일상적인 친근어법을 쓰되 가끔은 상투어로 박력 있는 호흡을 유지하라.  ⑫ 리듬을 감추고 시어의 의미가 위로 뜨지 않게 의미망 안에서 느끼도록 하라.  이해 행간을 읽어가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애매모호ambiguity성이 전체 의미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심층심리 복합현상(원형상징)과 교묘한 시어들의 울림에 의한 콘텍스트를 적용하라. ⑬ 시의 주제는 겉 뜻(문맥)이 아니라 읽고 나서 독자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감추어라(주제). 아니마를 읽고 그 반대항인 아니무스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라.  ⑭ 현대가 희극성/비극성의 세계로 해석될 때 비극성의 긴장미(슬픔, 우울, 고독, 권태, 무기력, 복수, 비애 등의 정서)를 표출하라. 이것이 독자를 붙잡는 구원의식이다. 이는 치유능력 즉 주술성에 헌신한다.  ⑮ 유형화된 기성품이나 유통언어를 철저히 배격하라. 개성이 살아남는 일―이것이 시의 세계다.  ⑯ ‘정서의 구조화’가 되어 있지 못한 시는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감수성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에 의한 의미구조의 통일만이라도 꿈꾸어라. * 출처: 「송수권의 체험적 시론」 .............................. *아니무스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카를 융이 명명했다. 반대말은 아니마.
475    독자와 시인 그리고... 댓글:  조회:4424  추천:0  2015-05-05
  독자를 위한 시 읽기 - 김지향 -  1) 시란 무엇인가?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문제가 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시 독자들이 시의 정체를 이미 다 밝혀내어 터득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마도 정확한 대답을 도출해내지 못해서 일 것이다. 시는 정답이 없다 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시인이나 시 연구가들이 시에 대하 각각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정의를 피력해 왔다. 그러나 그 정의가 시의 얼굴에 각양각색으로 색칠을 해 놓고 있어 어느 한 지점에 통일시키기가 어렵다. 그만큼 통일한 한 개의 해답을 산출해 낼수 있을 만큼 시가 단순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주 다양한 무한다면체 또는 철면 조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의 정확한 해답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시의 특성이다.  동서양의 시의 원조로 알려진 두 사람의 시의 정의를 보자. 먼저 동양의 대 석학인 공자(孔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사투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서양의 대 철학자 아리스도텔레스(Atistoteles)는 시를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 즉 사물의 형상을 운율적 언어에 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보면 동양의 공자는 시의 정신면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기법면에서 치우친 인상이 짙다. 따라서 동양의 그것이 관념적이라면 서양의 그것은 실제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만의 해석을 놓고 볼 때도 보는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데 열사람 의 해석은 열 가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해답은 아니다. 다면체 시의 어느 일면의 해명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면체 시 전면을 해명하는 정의가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 밖에 없다. 시는 시대와 개인의 시각에 따라 편차를 보일뿐 아니라 그 다양한 성질과 요소가 모두 인간의 체험을 담아내는 그릇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에 대한 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며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수 많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인들은 인간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게 되면 그러한 과정 속에 시는 삶을 반영하는 도구로 원용된다. 따라서 시는 인간에게 카다르시스를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정화적용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감동과 진실을 공급하며 상상력을 통한 추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시는 궁극적으로 보다 향상된 삶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양식이며 토양이며 자극제가 된다. 그러므로 시가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 표출되는 인간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아가 카다르시스를 통해 성숙된 의식의 소유자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절제된 언어 속에 인간의 진실을 함축 시켜야 하므로 흔히 시인을 언어의 발견자, 또는 창조가로 지칭한다.  2) 시의 형태  무한다면체의 시는 논작에 따라 여러 갈래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운율적인 면 내용적인 면 시대적인 면 등으로 대변될 수 있다. 운율적인 면에서는 정형시, 자유시로 구분할 수 있으며 내용적인 면을 기준으로 대변한다면 서정시, 서사시로 그리고 시대를 원칙4으로 나눌 때는 고대, 근대, 현대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고정불변의(관례에 따른) 원칙은 아니다. 구분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하게 또는 세부적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팔자가 섬세하게 세분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시 읽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혼란스러워 현낙적 세분을 퇴하고 간략하게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편의상 정형시와 자유시의 형태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가) 정형시  운율을 기반으로 하는 고정된 틀을 갖춘 시를 말한다. 운율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 중 하나로서 시의 형태미를 이루는 기본 틀이 된다. 이것은 또한 서정시의 기반이 되는 요체이며 언어질서를 제한하는 언어의 율동이다, 정형시의 기반을 이룬 이 운율(음악성)은 고조선 시대의 여성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에 실은 애절한 가락의 노래말로부터 시작된 공무도하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잇다. 이러한 노랫말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형시로 장착이 되었으며 정형시의 자구나 음수율이 일정하게 고정된 것도 노랴 가사에 알맞은 짜임새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 짧은 형태의 정형시는 3 4 4 4, 3 4 4 4, 3 5 4 3 의 자수율을 기본형태로 삼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기분형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종창의 초구 3자와 다음의 5자는 지키도록 지키도록 되어있는 것이 시조다.  정형시(시조)의 운율이 오늘날 자유시의 바탕이 되어있다. 자유시의 시행이나 언어배열을 운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정형시를 먼저 익힌 후에 자유시로 가는 것이 운율 훈련을 위해선 자연스런 순서가 될 것이다. 여운과 완결의 면에서 정형시를 능가할 시가 없기 때문이다.  (나)자유시  정형시가 전통적인 일정한 형태적 틀에 얽매여 있다면 자유시는 이름 그대로 일정한 형태적 구속에서 벗어난 시를 말한다. 말하자면 외적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체험내용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즉 정형시가 작은 고정된 형, 고정된 운, 고정된 억양율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시인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시다. 그러나 시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행이나 연 구 분은 물론 중요한 요소인 운율(내재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체험의 폭이 증폭되고 다원화됨에 따라 작은 그릇의 한정된 정형시에 만족하지 못한 시인들이 자유시를 개발해 냈으나 자유시에도 다양한 체험을 완전히 담아 낼 수 없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히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 산문시라는 것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행 연의 구분이나 운율의 구속까지 모두 벗어버린 이름 그대로 가까운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시와 산문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다. 전혀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시다.  3) 시의 요소  시가 되려면 구유 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이를 자잘하게 세분한다면 역시 삶속에 체험되는 모든 사물에 명칭을 부여하여 열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례대로 몇 가지 즉 언어, 상상, 비유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가) 언어  시는 말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도 한다. 그만큼 언어가 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죽은 시 살아 있는 시로 가름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시속에서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처음부터 시어와 일상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모두가 일상어이고 시에 쓰이는 언어도 일상어로 적조 된다. 따라서 그 일상어는 하나 하나 명확한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 속에 도입된 일상어, 그 자체로는 시적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문맥사이에 놓여서 특수한 작용을 하기 위해 다른 언어와 연결되어 특수한 수법으로 특수하게 사용 될 때 비로소 시어로 전이되어 특수한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일상어를 시어화 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독자들은 시어화 된 언어를 통해 시인의 체험을 추경화하게 된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시 읽기 에 있어 시어로 전이 되기 이전의 일상적 의미, 즉 낱말의 외연적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서 전이된 시어 속의 효과 즉 상징성, 암시성 또는 함축성(내포적 의미)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어로 전이된 언어(시)를 읽을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 즉 표현이 매우 구체적이며 미적기능을 지향하고 있으며 논리적 관계가 표면화되지 않고 표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쌓인 비  울이 풀렸다.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땅 위의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덮쳤다  졸시 < 봄꿈.1호> 중에서  올 이란 낱말은 일상적으로 실이나 줄의 가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을 일상어로 읽으려면 이 시에선 합리성이 없다. 비는 실이나 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대신에 빗방울 이라고 쓴다면 합리성은 있어도 암시성은 없어진다. 따라서 올이 풀렸다 라든가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라는 표현은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고뇌 라는 일상어 대신 비 라는 상징성을 거느린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심상(Image)  복합 구조물인 시의 몇 가지 요소 중 비교적 비중이 큰 것이 심상이다. 심상을 영상(暎像) 또는 사상(寫像)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감각적 체험을 해석하는데 사용된 용어 로 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전용한 이래, 문학에서는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가령, 백합꽃 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 의식 속에 하얀 꽃송이가 감각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백합꽃 이라는 이 언어가 심삼 곧 이미지인 셈이다. 문학용어 사전에도 이미지를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되도록 자극하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구상어 는 모두 이미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두 갈래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포괄적 개념적 개념과 협의적 개념이 그것이다. 포괄적 개념은 모든 대상의 윤곽을 의식 속에 환기시키는 것을 말하고 협의적 개념은 시각적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협의적 개념의 그것은 눈썹 이라는 언어는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달 같은 눈썹 한다면 이미지가 된다. 눈썹이 반달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체험을 재생시키는 언어는 모두 이미지에 속하지만, 비유적 표현이 시로써는 생동감이 지배하는 이미지에 와 있다. 그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도 듣기 보다 보기 쪽으로 발달한 연유로 보인다. 그러므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현대시의 육체라 할만 하다. 그리고 보여주는 시는 감각적 체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비가 온다 라고 하면 이미지가 없는 사실기록의 직접진술에 불과하다. 비가 어떻게 오는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집 전체를 차지하고도 배가 고픈/  비가/  사방으로 갈기를 뻗어/  떠 내 려오는 비명을 걷어 감키고도 배가 고픈/  비가/  등줄기를 치켜들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라고 한다면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는 직접진술을 피하고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하는 묘사로 일관 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A사물을 끝까지 A사물로 끌고 가는 것보다 B사물로 바꿔버리는 쪽이 매력을 더한다. 여기서는 비가 바람으로 전이된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재구성이나 전이 시키지 않으면 사실의 기록 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구성과 전이 는 시의 중요한 수사적 기능이다. 여기서 다양한 이미지의 기능을 요약정리 하자면  구체적 묘사를 위한 사물성  환상적 기능  감각적 호소력  개념, 관념, 상사의 산물화 등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다) 비유  우리의 언어는 한정적인데 반해 사물의 종류는 무한정적이다. 게다가 사물은 모두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을 제대로 나타내려면 비유법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란 비교를 통해서 사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비유는 한정적인 언어가 비유에 의해 언어의 한계성을 초월하여 무한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으며 시에서는 중요한 기능으로 꼽힌다. 이러한 방법은 간접표현이기 때문에 매우 암시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사물을 표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알고있는 기지의 사물을(객관적 상관물)끌어와서 비교함으로써 미지의 사물을 파악 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비교를 통한 사물해명의 수사법이다. (유의)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비유의 요소는 본의, 유의, 유사성, 이질성 등이며 본의, 유의가 유사성, 이질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비유의 사명은 독특한 인식과 새로운 발전을 기성품인 언어를 가지고 비교를 통해 의미의 변화 또는 언어전이를 모색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또한 비유에는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인유, 의성어, 의태어, 의인법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은유다.  (라)직유  사상(寫像)을 선명히 드러내는 강의적 효과가 있어 명유라고도 하는 이 직유는 유사하지 않은 두 개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의 언술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비교하는 사물과 비교되는 사물이 처럼, 마냥, 같이, 듯이, 만큼, 보다 등이 비교조사에 의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의 네 요소가 모두 표현화 되며 또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유의 종류는 기술적 직유(단일, 확장)와 강의적 직유가 있으며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3단계의 구성법을 지니고 있다. 그 1단계는 무덤같은 초막 처럼 원관념, 보조관념이 한 단어로 결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2단계는 바아뒤 점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와 같이 한 문장으로 결합되는 경우이고 3단계는 기둥과 함께 나둥그러져/ 머리에 대못으로 박히는 비의 부리를 / 두 주먹으로 짓 으깼지만 / 머리칼 하난 남기지 않고 / 벌초나 하듯 싸악. 쓸어 쥐며 / 바다 위 점 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 와 같이 한 연으로 이뤄지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는 비교하는 두 사물이 동직성이기 보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발견하여 연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  (마)은유  메타퍼(metaphor)라고도 말하는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연결이 없이 바로 직결하는 수사법이다. 그러므로 암시성이 강하며 암유(闇喩), 간유(肝油)라고도 한다. 그것은 비유의 요소 중 원관념, 보조관념만 밖으로 드러나고 이질성, 유사성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함축적이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압도적으로 쓰이는 가장 비중이 큰 요소인 만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비유의 세계를 넓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원형을 유지하지 않는 것도 비유와 다른 점이다. 그것은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다른 의미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적이 라고 하며 전이된 언어 속에 함축된 상징적 의미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은유야 말로 독자의 상상력 개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전이로 이뤄지는 새로운 의미의 언어는 언제나 1회적이란 점이다. 그 속은 같은 언어를 반복 사용할 땐 아무리 새로운 언어였더라도 낡은 언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제나 예리한 언어감각으로 비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새롭고 참신한 언어를 계속 창출해 내야 한다. 은유의 종류는 병치, 치환,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4) 시의 경향  시대변천에 따라 인간의 감수성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감수성에 따라 시의 흐름도 변화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감수성은 낡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메마르고 딱딱한 고전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반대되는 몽환적인 감정의 세계인 낭만주의를 발견해 낸 것이다. 이것은 영접을 지향하는 무한의 세계를 노래하며, 이러한 꿈과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을 땐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의식으로 탄식과 통곡을 거느린 우울한 정서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러한 세계에 오래 있지 못한다. 또 다른 세계로 비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서의 강렬성을 작품 속에 담아내던 낭만주의에서 구성의 강렬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시가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이다. 감정이나 관념 등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사물화 시켜서 사물의 유추에 의해 이미지를 전개 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시도하게 된다.  인간의 경험은 복잡하고 다원적이며 이러한 다원적인 경험을 우리는 모두 정신 속에 저축하게 되는데, 이런 한 이질적인 여러 경험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예술적 정서로 승화시켜 형이상 시를 만들어 내게 된다. 형이상 시는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형이상적 세계, 즉 영적세계를 탐색하게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주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꿈 과 자동연상 의 세계인 것이다. 현실은 거짓으로 가려져 있어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우주와 관계를 맺는 4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엔 의식적인 논리나 계산이 개입될 수 없으며 완전히 무의식이 이미지를 과감하게 그대로 기술토록 방치하는 자동기술법에 의존한 시다. 그러므로 특수한 인간 정신의 내부를 투사한 시로 볼 수 있다. 이어서 단명하지만, 실험적인 경향의 시도 순환궤도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젊은 계층에 유행되던 포멸, 투사, 해체 등의 유형이 그것이다. 해체 시는 한 때 젊은 시인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형태의 해체, 언어의 해체, 의식의 해체 등으로 기형적인 시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 속에 단편적인 스토리를 삽입하는 시 소설 이란 시도 시도되고 있다. 어떻든 시는 시여야 하고 시는 결국 인간탐구 라는 인식에 촛점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 
474    詩는 다만 詩다워야 한다... 댓글:  조회:4507  추천:0  2015-05-05
시를 제대로 쓰는 방법 / 김동렬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시는 인간을 긴장시키고 흥분시켜 강한 인상을 주는 테크닉이다.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의 재미 차이는 매우 크다. 똑같은 영화라도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나오곤 한다. 특히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초반에 재미있다가 결말이 흐지부지 하는 영화와 초반에 지루하다가 결말에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영화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잘못된 시는 결말을 알려주고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누가 말해줘야 한다. 지하철 시를 비판했는데 대개 결말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작 스포일러다. 이걸 시라고 할 수 있나?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특히 마지막 연에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해설해주는 산문구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구절이 있음으로 해서 시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거 절대로 빼야 한다.  모든 예술의 기본전제는 서술이 아니라 묘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서술이 들어가더라도 강한 임팩트를 주는 부분은 절대적으로 묘사여야 한다. 묘사가 뇌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는 반전이 없는 소설과 같다. 실패다.  1. 라임과 리듬이 있어야 한다.(패턴의 반복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뇌를 흥분시킨다. 분명히 뇌가 물리적으로 반응한다.)  2. 대칭구조가 있어야 한다. (대칭은 글자 수의 대칭, 발음의 대칭, 의미의 대칭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대칭은 역시 긴장을 유발한다. 뇌를 흥분시킨다.)  3.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이미지는 시간을 공간화 하는 것이다. 길게 이어진 사건을 나열식으로 서술하는 대신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떠올리게 한다. 묘사가 시각화 되어야 한다.)  4.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개인적인 감상은 곤란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출발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하고 공감할 내용이어야 한다.)  5. 집단의 공분이 있어야 한다.(보편적 호소력이 이백의 시라면 집단의 공분은 두보의 시다. 시는 자기 감상을 전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감상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시는 제사장의 신탁이어야 한다. 역사의 무게를 실어야 시다.)  6. 비유, 은유 등은 절제되어야 한다.(억지 수사법 구사는 역겨울 뿐이다. 대개 삼류 시인이 자신이 그래도 무려 시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억지 은유를 남발하는데 때려죽일 행패다. 언어학대다. 언어가 운다. 제발 비유 좀 하지 마라. 요즘은 시크하게 가야 한다. 찌질이는 용서 안 된다. 건조하고 굵고 짧게.)  7.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구절이 없으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 글자 한 자로 한 놈씩 쏴 죽인다는 결기가 보여야 한다. 헌걸찬 기개가 있어야 한다. 너 죽고 나죽기다.)  8. 뜻을 앞세우면 안 된다.(선전구호라면 곤란하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키면 시가 아니다. 메시지는 그냥 산문으로 전하는 게 맞다. 메시지보다는 위트와 패러독스가 앞서야 한다. 말장난이 앞서고 메시지는 숨겨야 한다. 언중유골이다. 말장난인줄 알았는데 뼈가 숨겨져 있네..로 가야 한다. 뼈가 드러나 보이면 안 된다.)  9. 끝부분에 산문해설구가 있으면 곤란하다. (시의 자기부정이 된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불필요한 사족을 달아놓은 경우가 너무 많다. 알 듯 모를 듯 하고 끝내야 오히려 보편성이 있다. 해설하면 타겟이 되는 특정 상황으로 좁혀진다. 시가 죽는다.)  10. 왜 그 부분에서 끝나는지 납득되어야 한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대칭구조, 질문과 답변의 대칭구조, call과 why의 대칭구조, 명사와 동사의 대칭구조, 주어와 술어의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언어가 원래 대칭구조이므로 시 역시 대칭이 있어야 한다. 대칭에 의해 완결된다. 시는 타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므로 왜 말을 걸었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의미의 대칭, 맥락의 대칭, 운율의 대칭, 지평의 대칭, 곧 관점의 확대에 의한 깨달음으로 완결시킬 수 있다. 이는 점에서 선, 선에서 면, 면에서 입체로 관점을 상승시켜서 완결시키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끝내기다.)  11. 서술보다 묘사여야 한다. (시간을 따라가는 서술은 산문에 맞는 형식이다. 공간을 파헤치는 묘사는 운문에 맞는 형식이다. 서술로 가더라도 묘사로 끝내야 한다.)  12. 어순이 바뀌어야 한다. (시는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므로 어순이 바뀌게 된다. 이는 말을 걸 때 ‘있잖아요.’하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술어가 앞에 온다. 문법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보통의 진술과 차례가 달라야 한다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게 맨 나중에 와야 한다. 그래야 임팩트가 있다.)  산문 - 불장난 하면 산불이 난다. 운문 - 산불 났네. 불장난 때문에.  산문 - 북과 장구가 깨졌다. 운문 - 깨진 것은 북장구요.  13. 한 편의 시에 하나의 대표 단어, 대표구절, 대표연이 있어야 한다.(지나치게 화려한 문장은 기억나는 게 없게 한다. 찌질해진다. 건조하게 가야 한다. 임팩트를 줄 한 문장, 한 단어, 하나의 표현에 집중하게 하고 나머지는 되도록 비켜주어야 한다.)  시를 잘 써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교부린 것 보면 짜증난다. 다만 시여야 한다. 시가 아닌 것을 시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자작 스포일러 곤란하다. 일단 제목부터 스포일러다. 산이라는 제목을 걸고 산을 노래하면 그게 어찌 시냐? 미쳤지.  ...............................................  *스포일러(영어: spoiler)는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주요 줄거리나 내용을 관객, 독자, 또는 네티즌에게 미리 알려주는 정보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줄거리 구조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다음 상황을 알 수 없다는 긴장감 속에서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영화나 소설을 감상할 때 느끼는 흥을 깨뜨릴 수 있다.
473    詩人 - 언어를 버려 詩를 얻는 者 댓글:  조회:4955  추천:0  2015-05-05
  시인―언어를 버려 시를 얻는 자 ―이승훈 시집 『비누』를 읽고   이 승 하     이승훈 선생님께     백담사에서 선생님을 뵌 것이 한창 추울 때였는데 4월 하순인 이즈음 한낮의 날씨가 어언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요즘도 하이트 맥주 두 병과 담배 에세와 박카스 두 병과 더불어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까? 제 주변에도 담배를 끊은 분이 제법 되는데 같은 한양대 국문학과의 정민 선생이 시집 『비누』의 권말에 올리신 발문을 보니 선생님은 오전에는 담배 에세를, 오후에는 금연초를 태우신다고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의 건강을 생각하시어 담배를 일시에 끊는 시도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는 박카스도 매일 드시는 것은 안 좋을 텐데……. 선생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너무 고깝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번 시집을 읽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이 있어 딱딱한 문체의 정식 서평이 아니라 사신 형식의 독후감을 써볼까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신 그 어느 시집에서도 ‘시’ 혹은 ‘시 쓰기’에 대한 명상을 지금처럼 집중적으로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80편 수록 시 가운데 시를 쓰는 행위와 시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전개한 시가 무려 서른 편에 달합니다. 저는 우선 그 시편을 읽은 소감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세계 문학사를 수놓은 뒤 명멸해간 수많은 문학인 가운데 제가 인간적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이는 볼프강 보르헤르트ㆍ도스토예프스키ㆍ이하ㆍ두보ㆍ딜런 토마스ㆍ애드가 앨런 포ㆍ다자이 오사무…… 많고 많지만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하(790~816)만큼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시인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한문 실력은 없지만 이하 시 전집을 제가 번역하여 내보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소원일 정도입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정민 선생의 『한시미학산책』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 책 178~179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고 제목을 ‘李賀’라고 붙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창의적으로 쓰신 부분은 “그의 시는”으로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한 문장인 듯합니다.     당나라 시인 이하는 체구가 가냘프고 연약했고 시를 빨리 지었고 (…) 그의 시는 일반 규범에서 벗어나 흉내낼 수 없고 그는 길에서 쓴 많은 시들을 바로 버리고 스물일곱 살에 죽었다     ―「李賀」 부분     이하의 생애는 처절했으나 그는 26년 몇 개월을 살면서 줄기차게 ‘자기 시’를 썼습니다. 시단을 주름잡던 대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산수전원시와 변새시(邊塞詩)가 주류를 이룬 문단의 유행과 굴원 이래 중국 시가를 지탱해온 문학적 규범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그의 시를 낭만주의로 규정합니다만 서구의 문예사조를 구태여 들먹인다면 초현실주의에 가까울 것입니다. 아니면 퇴폐주의나 신비주의, 혹은 유미주의? 아니, 귀신의 세계를 넘나들었으니 판타지문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줄기차게 자기 자신의 시 세계를 유지하였기에 1천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후대인은 시귀(詩鬼)라는 별칭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으며, 당시사걸(唐詩四傑:이백ㆍ두보ㆍ왕유ㆍ이하)의 한 사람으로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하」를 쓰신 이유를 조금 알 듯도 합니다. 시인 이하의 인상이 선생님과 참 많이 닮았고, 또 선생님은 “일반 규범에서 벗어나 흉내낼 수 없”는 시를 지난 40년 동안 써오신 것이 아닙니까. 앞으로도 그런 시를 쓰고자 애쓰실 것이고요. 물론 비대상에서 대상으로, 관념에서 일상으로, 추상성에서 구체성으로 전환해간 시적 역정은 이 글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근년에 선생님이 내신 시집들이 쉽게 이해가 되어 좋았습니다만 사물을(혹은 시적 대상을) 메모하듯이 가볍게 터치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더러 있어 아쉽기도 했었습니다. 제목에 ‘시’가 들어간 3편의 시와 ‘시’를 제목으로 삼은 3편의 시, 그리고 ‘시집’이 제목인 시를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쓰는 건 모두 시다 원고지 뒷장에 갈기는 낙서 거리에 떨어지는 햇살 아스팔트에 뒹구는 낙엽 달리는 자동차 달리는 오토바이 해안에 부서지는 포말 새기고 사라지고 쓰고 다시 쓴다 낙서도 편지도 일기도 만화도 신문도 마침내 신문도 시다 (…) 간판도 거리에 시를 쓰고 마네킹도 유리창에 시를 쓰고 이 저녁도 시를 쓰네 시를 쓰며 한 세상 산다 시는 없으므로     ―「모두가 시다」 부분     시도 없다 시도 없다 다만 시라는 이름이 있을 뿐 이 이름 붙잡고 40년 허망한 언어 붙잡고 40년 이 허망한 바람 모아 오늘 책 한 권 내 무엇 하나? 마당에 내리는 햇살 보고 절이나 하자 저 마당이 시를 써야 하리라     ―「시도 없다」 전문     외로워서 쓰고 답답해서 쓰고 그리워서 쓰네 그러나 사람들 그리움 모르고 가까운 사람 가까워 모르고 먼 사람 멀어서 모르네 여름 저녁에 쓰는 시 가엾고 절반은 나도 모르는 소리 마음만 여위네 그러나 시름도 근심도 하늘의 일     ―「여름 저녁 시」 부분    「모두가 시다」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이승훈 선생님은 요즈음 모든 자연현상과 사물들한테서도 시심을 느끼고 계시는구나. 한편으로는 시라는 것이 참 별 볼일 없게 된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끼고 계신 것 같다. 시라는 것의 허망함과 시 쓰기의 허무함에 대해서도 비감함을 느끼고 계시나보나.’ 안타까움이나 비감함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늘날에 이르러 시가 점점 더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색도, 인정에 의한 따뜻한 포용도, 혁명을 하겠다는 비장한 결심도, 진정한 문명비판도, 우주의 신비에 대한 성찰도, 뭇 독자를 위한 위안의 노래도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햇살 내리는 저 마당이 시를 쓸 일이지 내가 왜 허구한 날 시 쓰기에 얽매이고 있나, 한탄이 절로 나오시나 봅니다. 그렇지만 시인이 된 것이 천형인 바, 선생님은 지난 40년 동안 시를 써오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도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름 저녁 시」에서 시 쓰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외롭고 답답하고 그립기 때문이라고요. “절반은 나도 모르는 소리”인 시 자체가 가엾기만 합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동안 선생님은 마음이 여위기만 한 것입니다. 애당초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시로 말미암은 시름도 근심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시를 씀으로써 잊어버린 시름이며 근심 또한 적지 않았겠지요. 선생님이 최근에 내신 시론집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의 제목은 바로 이런 마음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지난 40년 동안 시인이었으며 아무리 연세를 드셔도 계속 시인으로 살아가실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시인이 된 것이 천형이니까요. 그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시라는 것의 허망함과 시 쓰기의 허무함에 대해서도 자주 한숨을 내쉬듯 토로하고 계십니다. 특히 제목을 「시」로 정한 3편의 시를 통해서.     시를 써서 무엇하나 횡설수설 시를 쓰고 잡지에 발표하고 발표해서 무엇하나 (…) 글 없는 글, 말 없는 말, 시 없는 시가 있다면 한줌에 들고 그대 찾아가리라     ―「시」(44쪽) 부분     시 쓰기가 권력과 영광과 무관한 것임은 40년의 시력을 갖고 있는 선생님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차라리 그것은 외로운 작업이며 괴로운 노동이지요. 문예지가 매달 수십 종, 매 계절 수백 종이 쏟아지니 어느 누가 한 시인의 시를 꼼꼼히 읽어줍니까. 시집을 내본들 독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어 재판 찍기도 쉽지 않게 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글 없는 글, 말 없는 말, 시 없는 시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불가에서 말하는 불립문자와는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신 것일 겝니다. 그만큼 시라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가슴에 사무쳐 이 시를 쓰신 것이 아닐까요.   이 시는 여우도 못 읽고 지나가는 바람도 못 읽고 우리 석준이 호준이는 마루에서 논다네 어떻게 가벼운 마음이 되랴 말 한마디 시 한 줄이 두려울 뿐이다   ―「시」(90쪽) 부분     손자의 이름이 석준이와 호준인가 봅니다. 두 손자는 물론 동화책 속 여우도 바람도 같이 읽으라고 시를 써보지만 쓸수록 추위만 더하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시를 읽어주지는 않습니다. 시인의 시작 행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지요. 이제는 다만 “말 한 마디 시 한 줄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다른 사람이/ 쓰면 좋겠다/ 나말고 저 나무가 쓰면/ 좋겠다/ 아니 현관에 있는 구두/ 벽에 걸린 모자/ 나 대신 시를 써라”(94쪽의「시」)고 부르짖게 된 것이겠지요. 시 쓰기의 자의식이 뼈에 사무치지 않고서 어찌 시 쓰기에 대해 이렇게 괴로워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어느덧 시집을 내는 행위가 자랑도 정열도, 권력과 영광도 아닌 참회록 발간과 진배없는 것임을 설하고 계십니다.     생각하고 따지고 3부로 나누고 다시 읽고 고치고 도대체 이게 무언가? 그 동안 나는 없다고 공부한 게 덧없고 부끄럽고 망측하고 갑자기 화가 나서 시집 원고를 던지네 머리를 숙여야 하리 그 동안 무슨 공부를 하고 어디서 놀다 왔는가? 시집 한 권은 무엇이고 두 권은 무엇인가?     ―「시집을 내며」 부분     시집 내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자신을 책하는 말이 한 편의 시가 되었군요. “머리를 숙여야 하리”라는 문장 앞에서 제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는 이제껏 몇 권의 시집과 시론집을 내면서 스스로 주선해 출판기념회를 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문들과 더불어 동인활동을 했던 시절에도 민폐를 끼칠 출판기념회만은 한사코 거절했었습니다. 최근에 시론집을 한 권 냈더니 예술대학원 졸업생 10명 정도가 조촐한 저녁자리를 마련해놓았다고 하여 끌려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참 어색하고 쑥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날 받은 꽃다발은 세상에 나서 받은 제일 부끄러운 꽃다발이었습니다. 「시집을 내며」의 끝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아직도 머언 바위 하나 앉아 있네”. 그렇지요, 이백과 두보가, 왕유와 이하가 시로써 명리를 얻고 치부를 하려 들었다면 어찌 ‘당시사걸’이라는 불멸의 명예를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이 쓰신 시에 나오는 “머언 바위”라는 낱말을 통해 또 한번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꿈꾸어야 할 것은 머언 바위입니다.     세인 중에는 선생님이 그저 일기 쓰듯이, 메모 적듯이 시를 쓰고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동안 쓴 시는 모두 바람이 쓴 시”(「낯선 도시에서」), “시 쓰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능력이고 생략, 여백, 결핍의 웃음이고 사막의 웃음이다”(「여백」), “생각나는 대로 나는/ 시를 쓴다”(「매미」), “바람 속에 앉아 시를/ 쓰네/ 그러나 바람 속에 아무도/ 없고”(「떠돌이」) 같은 시구를 통해 시 쓰기 행위를 퍽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그런 자조가 궁극적으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몸부림임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시의 가장 작은 단위인 낱말 혹은 언어에 대해 누구보다 투철하게 싸워 오신 분임을 저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출간하신 10권이 넘는 시론집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 시집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나도 버리자 나도 버리고 나도 버리고 남은 건 언어 이 황량한 언어 언어가 나이므로 언어도 버리자 언어도 버리고 시를 써야 한다 언어를 버리는 심정으로! 이런 심정도 없는 심정으로!     ―「언어도 버리자」 마지막 부분     돈 때문에 시를 쓰지 않았고 나이 든 어린애처럼 낱말들과 놀고 살았으니!     ―「예술은 작은 놀이」 마지막 부분     앞의 시에서 선생님은 나를 버리고 남은 것이 언어인데, 언어가 곧 나(I)라는 등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도 버리고 언어도 버리고 시를 쓰자는 말씀은, “나도 버리고 남은” 언어에 투철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닙니까. 뭇 시인들의 도저한 역사의식과 첨예한 사회의식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온 선생님은 나이 든 어린애처럼 낱말들과 놀고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술, 곧 시 쓰기는 작은 놀이에 지나지 않은데 시대적 소명감 때문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뜻도 들어 있는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시가 뭐 그리 거창한 것이냐는 뜻도 들어 있는 듯합니다. 제목에 짐승이 나오는 시 2편이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그는 벽에 호랑이를 그리고 벽 속으로 들어갔지 나도 이 시를 쓰고 시 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한 적게 먹고 적게 공부하자 그는 웃고 나는 시를 쓰네   ―「호랑이」 전문     물론 저 닭은 내가 시인인 걸 모르고 내가 교수인 걸 모르고 내가 감기로 고생인 걸 모른다 그러나 저 닭이 안다면? 그때도 나는 닭처럼 살아야 하리 닭처럼 처마 아래 앉아 있어야 하고 닭처럼 시를 써야 하고 닭처럼 알을 낳아야 하고 닭처럼 고백해야 한다 닭처럼 닭처럼 하늘을 보고 있어야 한다 저기는 저렇게 푸르고 여기는 이렇게 푸르다     ―「닭처럼」 전문     앞 시의 ‘그’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호랑이를 그리고 벽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과 벽 속의 그가 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라는 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짐승도 다름 아닌 호랑이를 그렸으니 거대담론을 논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는 문학인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누가 뭐라고 하든 어느 자리에서나 시상을 떠올리거나 시를 쓰고 있어야만 하는 자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 선생님 시의 진정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춘천교대 교수 시절 초여름 밤 석사동 논에서 울던 개구리 소리도 언어다 나는 이 언어들을 버리려고 이제까지 시를 썼다 아아 힘이 든다     ―「언어를 버리려고」 마지막 부분     힘이 든다고요. 이제 저도 알겠습니다. 시인은 언어를 버려 시를 얻는 자임을. 언어의 사슬에서 풀려나 언어를 갖고 노는 자, 그 언어마저도 버리려 하는 자, 그가 바로 시인임을. 아무리 시가 말놀음이라 하지만 말재주는 잔재주와 통하는 것이겠지요. 선생님은 이제껏 줄기차게 시를 쓰고 시론을 전개해오셨지만 시의 질료인 언어와 이렇게까지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화해해왔는지 저는 솔직히 몰랐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기인 한산자를 노래한 시 「寒山」을 읽고 저는 ‘옳거니! 이건 이승훈 시인의 자화상이로고’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오해를 한 것입니까?     그는 나무 잎사귀에 시를 쓰고 마을 벽에 시를 쓰고 가난한 햇살 먹고 살았다 떨어진 옷 입고 바람 부는 저녁이면 절 부엌에서 밥을 짓고 그릇을 씻었다 밥을 지으며 중얼거리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그는 허공을 향해 호통을 치고 사람들이 때리면 손뼉을 치고 깔깔 웃으며 달아났다 지금도 달아난다 지금도 달아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寒山」 전문     생몰년이 불확실한 한산자는 명확한 전기적 사실도 전하지 않습니다. 후세 여구윤이란 사람이 쓴 시집 서문(「寒山子詩集序」)을 읽어보면 그 인물이 더욱 신비로워질 따름입니다. 김달진 선생이 역주하신 『唐詩全書』(민음사, 1987)를 보니 한산자에 대해 설명이 비교적 잘 되어 있습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적습니다.     성명은 알 수 없고, 항상 天臺 始豊縣에 있는 寒岩의 깊은 굴 속에 있었으므로 ‘寒山’이라 한다. 몸은 바짝 마르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늘 國淸寺에 와서 拾得과 함께,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 대통에 넣어 가지고 둘이 서로 어울려 寒山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詩를 잘하였다. 어느 날 臺州刺史 閭丘胤(여구윤)이 寒岩으로 찾아가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그는 큰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 물러가라’ 하면서 굴 속으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한산자는 후세 사람이 붙인 이름이겠지요. 그는 세상을 등진 채 굴 속에 은거해 살면서 밥을 해결하기 위해 국청사에 내려오곤 했습니다. 절의 불목하니 습득을 도와 땔감도 갖다주고 물도 길어다주며 밥을 얻어먹지 않았을까요. 한산자는 나무와 바위에 시를 써두었고, 국청사의 중이 편집하여 300여 수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김달진 선생의 역주로 『寒山詩』(민음사, 1991, 제2판)가 나와 있습니다. 제 손때가 묻어 있는 책으로, 한산자의 시에 대해선 월간 『현대시학』의 ‘고전을 다시 읽는다’ 시리즈에 글을 한 편 기고한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한산에 살았던 한산자를 ‘한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그의 기행을 한 편의 시에 담았습니다. 어떻게? “달아났다 지금도 달아난다 지금도 달아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고. 동네사람들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으며 깊은 산 굴 속으로 달아나는 한산자의 모습이 선생님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려 이 시를 썼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21세기인 지금 시인이 처해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최첨단 과학문명, 혹은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시인이 발붙일 영토가 너무 좁아 외롭고 괴롭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써야만 하는 천형을 선생님은 마다하지 않으시겠지요?     제목을 ‘비누’로 삼은 시가 또한 3편인데 시집의 제목이니 만큼 이제부터 이 시편에 대한 느낌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비누라는 것이 몸이나 의복의 깨끗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물건, 거품을 내는 물건, 향기를 풍기는 물건 등으로 인식됩니다. 12쪽과 54쪽의 시는 선시(禪詩)로 다가와 어렵기만 합니다. “비누는 씨앗도 아니고 열매도 아니다 아마 추운 밤 깊은 산 속에 앉아 있으리라”(12쪽 「비누」), “비누는 배추가 아니다 그러나 가을 아침 햇살에 젖는 비누는 푸른 배추 배추밭에 바람 불고 배추가 피를 흘린다”(54쪽 「비누」)는 등의 시구는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비누를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하신 76쪽의 「비누」는 십분 공감이 갑니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 쓰기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이 시에도 나타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겨울 저녁 난 시를 쓰네 비누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네 문득 비누가 다가와 나를 만지네 나는 비누 속에 사라지네 나도 물거품 비누도 물거품 벗어날 길은 없네 비누의 길이 삶의 길 비누와 함께 비누를 따라 비누 속에 살자! 비누는 매일 사라진다     ―「비누」 부분     선생님은 비누를, 매일 물거품을 일으키며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시인 또한 그런 것이지요. 시가 물거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시인은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늙어가는 존재이기에 “비누의 길이 삶의 길 비누와 함께 비누를 따라 비누 속에 살자”고 다짐해보는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도 선생님의 연세에 이르도록 열심히 쓰는 시인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적게 먹고/ 적게 공부하자”(「호랑이」)는 말씀에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안 그래도 말라깽이인데 살이 더 빠지면 곤란하니까요. 적게 공부하자는 것은 농담이시겠죠? 우리 시단에 선생님만큼 성실한 학자는 많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것으로 시집 『비누』에 대한 독후감 쓰기를 마칠까 합니다. 늘 건강하시어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현역시인, 시론을 전개하는 문학평론가로 계셔주시길 기원합니다.                                                                                     젊은 날의 이승훈     1942년 11월 8일 강원도 춘천 출생. 춘천고ㆍ한양대 섬유공학과를 거쳐 다시 한양대 국문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춘천교육대학 국어과에 재직했으며,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등을 수상하였다 1962년 『현대문학』에 작품 「낮」 「바다」 등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 『사물 A』(1969), 『환상의 다리』(1976), 『당신의 초상』(1981), 『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6), 『너라는 환상』(1989),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1993), 『밝은 방』(1995), 『첫사랑』(덕수출판사) 등을 간행하였다.     또한 『시론』(1979), 『문학과 시간』(1983), 『비대상』(1983), 『이상시 연구』(1987), 『한국현대시론사』(1993), 『모더니즘 시론』(1995), 『해체시론』(1998) 등의 평론집을 간행하였다.     이승훈의 시 세계는 그가 춘천 생활을 하던 초기 시에서 주로 ‘나’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로 나타났으며, 그 이후로는 ‘너’ 와 ‘그’ 그리고 ‘나와 너와 그’에 대한 대화적 탐구를 하는 데로 나아갔다. 특히 이승훈의 시는 자유연상기법, 자동기술법 등을 통하여 자신의 시에는 시니피앙의 유희만이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가 말할 정도로 새로운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472    재미나는 시 몇수 댓글:  조회:4464  추천:0  2015-05-03
  자위                      함민복      남기는 족보 쓰는 신성한 필기구다 낙서하지 말자, 다시는...                   기 차 는 간 다                                  허  수  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 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 1992년 시집 "혼자가는 먼집"                   어느 쉰 살들의 모임                                           유정임     쉰 것들이 모여 앉았다 한 살부터 아홉 살까지 모두 쉰 것을 앞에 차고 앉았다 "나, 이혼 할까봐" 한 쉰 것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다른 쉰 것들이 놀란 척 "왜?" 하고 쉰 것을 바라본다 "우리 영감이 바람이 났어" "응? 그 나이에?" 쉰 것들은 놀란 척 하지만 속으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안 해" "몇 살이나 먹었는데?" 속으로 그 여자가 영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우리 또래야?" 쉰 것들은 쉰것에는 흥미가 없다 "경제권은 네게 있잖어?" "그럼" 쉰 것이 자신있게 대답한다 "야,그럼 내비둬" 쉰 것들은 쉬지 않은 음식을 아귀아귀 먹으며 앞에 찬 쉰 것들을 연신 흔들어 댄다. 방안이 쉬척지근하다.                   엘레지                            오탁번     말복날 개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말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엘레지 몰라요? 개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굴 비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                                    오탁번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껄껄걸 웃으면서 악수하고  이데올로기다 모더니즘이다 하며  적당히 분바르고 개칠도 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똥끝타게 쏘다니면 된다  똥냄새도 안 나는  걸레냄새 나는 방귀나 뀌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면 된다  된장에 풋고추 찍어 보리밥 먹고  뻥뻥 뀌어대는 우리네 방귀야말로  얼마나 똥냄새가 기분좋게 났던가  이따위 추억에 젖어서도 안 된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옛마을이나  개불알꽃에 대한 명상도  아예 엄두 내지 말아야 한다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걸레처럼 살면서  깃발 같은 시를 쓰는 척하면 된다  걸레도 양잿물에 된통 빨아서  풀먹여 다림질하면 깃발이 된다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된다  -벙그는 난초꽃의 고요 앞에서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을  쓰고 있을 때  내 마빡에서 별안간  '네 이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만 연필이 딱 부러졌다  손에 쥐가 났다                  오이를 씹다가                            박성우     퇴근길에 오이를 샀네 댕강댕강 끊어 씹으며 골목을 오르네     선자, 고년이 우리 집에 첨으로 놀러 온 건 초등학교 오학년 가을이었네 밭 가상에 열린 오이나 따 줄까 해서 까치재 고추밭으로 갔었네 애들이 놀려도 고년은 잘도 따라왔었네 밭을 내려와 도랑에서 가재를 잡는디 고년이 오이를 씹으며 말했었네 나는 니가 좋 은 디 실한 고추만치로 붉어진 채 서둘러 재를 내려왔었네 하루에 버스 두 대 들어오는 골짜기에서 고년은 풍금을 잘 쳤었네 시오릿길 교회에서 받은 공책도 내게 줬었네 한번은 까치재 밤나무 아래서 밤을 까는디 수열이가 오줌싸러 간 사이에 고년이 내 볼테기에다 거시기를 해 버렸네 질겅질겅 추억도 씹으며 집으로 가네   아무리 염병을 떨어도 경찰한테 시집간 고년을 넘볼 순 없는 것인디 고년은 뱉어도 뱉어도 뱉어지지 않네 먼놈의 오이 꼭다리가 요러코럼 쓰다냐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고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 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 愛 (애) 必 (필) ) 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2008년 제3회 윤동주상 수상 작품집)
471    식칼론 / 竹兄 댓글:  조회:4400  추천:0  2015-05-03
식칼論 1       창 틈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햇빛으로 달구었어!   가장 타당한 말씀으로 벼리고요.     신라의 허황한 힘보다야 날카롭게   정읍사의 몇구절보다는 덜 애절한   너그럽기는 무등산 허리에 버금가고   위력은   세계지리부도쯤은 한 칼이지요.      흐르는 피 앞에서는 묵묵하고   숨겨진 영양 앞에서는 날쌔지요.   비장하는 데 신경을 안 세워도 돼.   늘 본관의 심장 가까이 있고   늘 제군의 심장 가까이 있되   밝게만 밝게만 번뜩이면 돼요   그의 적은   육법전서에 대부분 누워 있고……   아니요 아니요   유형무형의 전부요       식칼論 2-허약한 詩人의 턱밑에다가       뼉 다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식칼論 3       내 가슴 속의 뜬 눈의 그 날카로움의 칼빛은   어진 피로 날을 갈고 갈더니만   드디어 내 가슴살을 뚫고 나와서     한반도의 내 땅을 두루 두루 날아서는   대창 앞에서 먼저 가신 아버님의 무덤속 빛도 만나 뵙고   반장집 바로 옆 집에서 홀로 계신 남도의 어머님 빛과도 만나 뵙고   흩어진 엄청난 빛을 다 만나 뵙고 모시고 와서   심지어 내 男根 속의 미지의 아들 딸의 빛도 만나 뵙고   더욱 뚜렷해진 無敵의 빛인데도, 지혜의 빛인데도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누룩돼지는 눈이 멀어서   흉물스럽게 엉뎅이에 뿔돋친 황소는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짐승은 다 눈이 멀어서 이 칼빛을 못 보냐.     생각 같아서는 먼 눈 썩은 가슴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당장에 우리나라 국어대사전 속의 「改憲」이란   글자까지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눈 뜨고 가슴 열리게   먼 눈 썩은 가슴들 앞에서   번뜩임으로 있겠다! 그 고요함으로 있겠다!   이 칼빛은 워낙 총명해서 관용스러워서       식칼論 4     내 가슴 속의 어린 어둠 앞에서도    한 번 꼿꼿이 서더니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그 어린 어둠을 한 칼에 비집고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어디고 누구나 보이게 운다.    자유가 끝나는 저쪽에도 능히 보이게,    목소리가 못 닿는 저쪽에도 능히 들리게    한 번 번뜩이고 한 번 울고    번개다! 빨리 여러 번 번뜩이고    천둥이다! 크게 한 번 울고    낮과 밤을 동시에 동등하게 울고    과거와 현재와 까마득한 미래까지를    단 한 번에 울고 칼끝이 뛴다.    만나지 않는 내 가슴과 너희들의    벼랑을 건너 뛰는 이 無敵의 칼빛은    나와 너희들의 가슴과 정신을    단 한 번에 꿰뚫어 한 줄로 꿰서 쓰려뜨렸다가    다시 일으키고, 쓰러뜨리고, 다시 일으키고    메마른 땅 위에 누운 나와 너희들의 國家 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다 놓고    더욱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천둥보다 번개보다 더 신나게 운다    독재보다도 더 매웁게 운다.       식칼論 5        왜 나는 너희를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너희가 꺼리며 침까지도 빨리 뱉는   내 몸뚱아리까지도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도둑의 그림자가 도둑의 그림자가 사알짝 덮치듯,   그렇게나마 못 만나고,   너희들이 피하는 내 땅과   내가 피하는 너희들의 땅은   한번도 당당히 못 만나는가   땅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서   뼉다귀가 뼉다귀를 부르는   저 목마른 음성처럼,   땅 속 깊이 아우성으로 흐르는   저 눈물같은 물줄기가   물줄기를 만나는 끈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내 홀로 여기 서서   뜨드득 뜨드득 이빨 갈듯이   내 정신만을 가는가   내 외로운 살결은 살결끼리 붙어서   시간을 가는가, 아아 칼을 가는가.  
470    민중시인 竹兄 - 조태일 댓글:  조회:5893  추천:1  2015-05-02
삶의 순결성을 파괴하는 제도적 폭력에 맞섰던 죽형 조태일 시인     태안사 올라가는 숲속 길에 조태일시인의 시문학 기념관이 있다. 시인은 식칼론과 국토, 겨울공화국 등으로 1970년대 대표적 민족, 민중시인으로 불리며 월간지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박남준 등 이 고장 출신의 많은 시인들을 등단시켰지만 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입구에 있는 시문학 기념관 표지석 시인 고은의 기념시와 목장승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전경   조태일의 시는 역사 속에서 사는 민중의 삶이다. 이 시에서도 나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노래한 것으로 그것은 곧 민중의 역사를 노래한 것으로 받아 들이면 된다.  시의 3연까지 ~ 수 밖에 없는 일이 반복 되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 수 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이므로 올바른 인식의 통로를 차단하고 바른 삶을 왜곡하는 시대의 질곡이지 않는가...     시의 어조는 격앙되어 있고 강인한 의지까지 엿보인다. 나아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실천적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스스로가 주체자임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자기가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하라는 강렬한 메세지인 것이다. 기념관 내부   지식인의 무사안일한 침묵이나 혼자만 아는 지적인 유희를 경멸했던 시인은 순수문학의 기교적 태도를 거부했고 민족의 구체적 삶과 민중적 열망을 구현하려 노력하였지만 결국 원론적 순수함을 피우지도 못하고 아깝게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갔다. 기념관 옆 잔디밭엔 시인 닮은 괴목이 서있다                              조태일 기념관 주차장에서 비포장 도로 따라 가면 2km에 태안사                                                                  태안사 일주문                                    태안사  경내 진신 사리탑과 연못                            충혼탑                                                                                 국토서시  발바닥이 다 닳아 세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세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러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목소리  ― 國土•23  잃어버린 목소리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잃어버린 목소리를  어디가면 되찾을 수 있을까,  바람들도 만나면 뭉풍지를 울리고  갈대들도 만나면 몸을 비벼 서걱거리고  돌멩이들도 부딪치면 소리를 지르는데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들은 늘 만나도 소리를 못내니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山川은 변함이 없고  숨결 또한 끊어지지 안했는데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입들은 벌리긴 벌리는데  그 폼만 보이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는 아예 목청에 가둬 뒀느냐,  山川에 잦아들었느냐,  내 귀가 멀어서  고막이 울지 못하느냐,  내 五官을 뒤집고 보아도  품만 보이고 껍데기만 보이고,  목소리를 만날 수가 없구나.  대낮에 그린 그림  ―國土•28  답답한 목소리는 풀어야 한다.  기필코 풀어야 한다.  조건없이 풀어야 한다.  얽매인 목소리를  모든 만물의 눈에까지 훤히 보이도록  국토 위에 野生馬처럼 풀어 주어야 한다.  그리움이 넘쳐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더욱 그리워서  산천은 누운 채 가슴 답답하다더라.  내가 풀어 주는 목소리는  굳은 수풀을 파아랗게 흔들고  흔들리는 시커먼 그림자를 흔들다가  돌멩이에 닿아 소리치고  바닷가의 무수한 모래알에 닿아  일어서게 하고 반짝이게 하고  만물에 닿아 흔들리는 빛으로 터지고  또한 그리움으로 피어오르리.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 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 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모레•별•바람  ―國土•39  저 파도 우는 소리 듣고파서  저 넓은 가슴팍에 안기고파서  수많은 모래들은 밤낮으로  바닷가에 귀 세우고 모여않아  끼리끼리 몸비비며 반짝일 뿐!  헤어져 돌아올 줄 모른다.  저 대낮의 잠이 그리워서  저 가없는 푸름에 안기고파서  수많은 별들은 긴긴 밤을  달 주위에 모여 끈눈으로 반짝일 뿐!  돌아앉아 눈감을 줄 모른다.  저 일렁이는 숲의 숨결을 듣고파서  저 깊고 푸른 고요를 일깨우고파서  수많은 바람드은  잎새에 붙어 조잘거릴 뿐!  돌아와 폭풍이 될 줄 모른다.  아직은 모래고 별이고 바람일 뿐!  헤어져 돌아올 줄 모른다  돌아앉아 눈감을 줄 모른다  돌아와 폭풍이 될 줄 모른다.  내가 뿌리는 씨앗은  ―國土•42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다.  이 고요하고 고요한 시간에  가릴 것은 가리고, 버릴 것은 버려야지.  사람아, 사람아, 떠나가라.  나로부터 떠나가라.  내가 딛는 땅도 내가 받는 밥상도  떠나가라 떠나가라.  그리하여 혼만 남고 내 육체도  내가 걸치는 옷도 땀도 때도  손톱도 발톱도 털도 떠나가라.  산과 하늘이 마주 닿는  저 파아란 地平의 저 넘치는 뜨락에는  마음놓고 뿌릴 수 있는 品種이란  내 혼의 씨앗이어라  산간벽지 호젓한 개울물로 씻은  내 혼의 씨앗이어라.  사람아 사람아  모든 맹렬한 싸움은 끝났지만  최후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남아 있다.  아아! 그것은 죽는 일인데  죽어서 다시 깨어나는 일인데  아아! 그것은 씨앗을 뿌리는 일인데  우리들은 아직 혼을 찾지 못했는데  산과 하늘이 마주 닿는  저 파아란 地平과 뜨락만 넘쳐나네라.  마음  마를 대로 마른 사랑을 머리에 두르고서  꺼져가는 잿더미 속 불씨들은  제 몸이 뜨거워서 향기로와서  서로 엉켜 타오르고,  녹슨 말들을 움켜쥐고  내 가슴속 마음들은  정처없이 떠돌다가  거친 살갗으로 나타나 아파하고,  그렇게 불씨들은 불을 기르고  그렇게 마음들은 울멍울멍하고  곧음은 처음이자 영원이라 일깨워주고  그것이 표현이자 삶이라 타이르고,  산너머 산너머 보다 더 멀리  하늘 너머 하늘 너머 보다 더 높이  넘치더라, 넘치더라.  풀씨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이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뀌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  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밭이면 어떠리.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  그곳이면 어떠리.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황홀  들꽃들과 바람들이 낮거리하는 들녘으로  순아,  돌아,  이슬처녀 저 혼자 햇님 껴안고  불그레 얼굴 붉히는 길섶을 지나  흰 구름 검은 구름 몸 섞으며 떠도는  하늘을 보며  순아,  돌아,  들꽃들과 바람들이 낮거리하는 들판을 지나  붉은 해 산과 신방 차리려  노을이불 펴며 내려오는  해거름 속으로  순아,  돌아,  우리 함께 가자.  들꽃의 몸으로  바람의 몸으로  낮거리하러.   홍시들  한 오십여년 남짓 웃은 웃음이리  아니야, 한 오십여년 흘린 피눈물이리.  빠알갛구려, 알알이 밝혔구려,  청사초롱, 홍사초롱.  아아, 눈감으리  까치밥으로 두어 개 남을 때까지  발가벗고 신방 차리는 소리.  청살문을 닫아라  홍살문도 닫아라.   봄이 오는 소리  어렸을 적,  발바닥을 포개며 뛰놀던  원달리 동리산 태안사에  봅이 딛는 발자국 소리  여기까지 들여오네.  살얼음 밑에서 은빛 비늘 희살대며  봅기운에 흐물거리던 피래미떼들도  광주의 내 눈에 가득 넘치네.  지금 종달새 노래 그쳤어도  새싹이 다투어 돋아나는 곳,  그곳을 향해  모든 일 젖혀놓고 눈을 감네.  동리산에서  날이 샐 무렵  어둠 더불어 빨치산들이 산으로 오른 뒤,  골짜기 대밭에서  죽순 서로 키재기하는 걸 보고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린 짐승새끼  어미 읽고 집 잃어 밤새 울어쌀 때  동리산 품 같은 어머니 가슴 파고들며  속으로 꺼이꺼이 울며  나도 밤을 샜다.  홍시감 익어갈 때,  홍사초롱 수천 새씩 가지 휘어져라  매달릴 때,  아랫집 남순이랑 얼굴 붉히며  왼종일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그 빨치산들 다 어디 갔나  그 어린 짐승 자라서 다 어디 갔나  그 죽순 자라서 어디 갔나  그 홍시 다 어디 갔나  그 남순이 어디 갔나.  달빛  달빛 속에서 흐느껴본 이들은 안다.  어째서 달빛은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밤에만 그렇게 쏟아지는지를.  달빛이 마냥 서러워  새들도 눈을 감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을 때  멀리 떠난 친구들은 더 멀리 떠나고  아직 돌아오지 않는 기별들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듯 멀어만 가고,  홀로 오솔길을 걸으며  지나온 날들을 반성해본 사람들은 안다.  달빛이 서러워 오늘도  텅 빈 보리밭에서 통곡하는  종달새들은 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세상을  힘껏 껴안으며 터벅터벅  걷는 귀가길이  왜 그리 찬란한가를 아는 이는 안다.    노을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싸리나무도  노을 한 푹씩 머리에 이고  흔들거린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냐.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내 가슴 서편 쪽에도 불이 붙었다.  골목을 누비며  어렸을 적 동무들 다 어디 갔나.  그 활달했던 팔다리들 다 어디로 숨었나.  그 부끄럼 많던 계집애들 다 어디로 갔다.  도무지 알 길 없어  신새벽부터 동무들 발자국 따라  골목 골목을 누빈다.  들려오려나  쏟아지려나  울타리 넘어  골목까지 얼굴 내민  붉은 장미꽃 한 송이.  이슬처럼  이슬처럼,  이슬처럼,  밤새껏 울고 울어서  보석을 만들 수만 있다면  내 평생토록 흘렸던 눈물을  무덤에 들 때까지 흘려야 할 눈물을  한데 모아  이 세상을 파도치리라.  온 세상을 안쓰러이 매달고 있는  이 이슬 앞에서  파도치리라 파도치리라.  겨울산  사람 동네 그리워 살냄새 그리워  흰 눈 뒤집어쓴 산들.  닫힌 문 앞까지 찾아와 큰절하는 침묵들,  내 마음 한 홉 주면  두어 섬지기로 쏟아붓는 너그러운 정.  새소리 풀잎 떠는 소리 데리고  우리를 맞아 산마루 높이 세워두고  팔다리 벌려 계곡을 거쳐  터벅터벅 예까지 뻗었다!  방구석 서랍 속에 말아둔 하얀 한지 풀어  얼굴 감싸고  아이 나는 부끄러워, 아이 나는 부끄러워.  떠난 사람  꽃피면 돌아오리라  마을 텅텅 비어 귀신만 들락날락하면  돌아오리라 하고 떠난 사람.  꽃이 벌써 스무 차례나 치고  꽃이 벌써 스무 차례나 열매 맺어  스무 차례나 땅에 묻혔다 피어나도  영영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  나의 곁에 땅심 다한  흙 몇줌 남겨두고  숨결만 가득 퍼뜨려놓고  길고 먼 길을 따라  그림자만 길게 터벅터벅  석양 따라 떠난 사람.  봄이 온다  봄이 온다.  봄빛이 어른거린다 눈을 뜨자  봄눈이 내린다 봄눈 녹듯 녹아버리자  봄볕이 쏟아진다 낯바닥을 그을리자  봄바람이 분다 가슴을 보풀리자  봄비가 내린다 속타는 마음 젖어버리자  봄꽃이 피다 노릇파릇 물들자  봄사돈 꿈에 보인다 잠에서 깨자  봄추위가 온다지만  봄은 봄이다 품은 자식 풀어놓자.  꽃  너는!  오로지 피어 있으면 그뿐  나는 너의 이름을 짓지 않으련다.  너는!  오로지 지면 그뿐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련다.  이름없이 잡풀들 곁에  오늘도 피고 지는 너를  온 힘으로 껴안을 뿐.  참빗, 얼레빗으로  너의 향기를 빗어줄 뿐.  피어라,  찬바람이 부는 모든 가슴속에  피어라,  찬바람이 부는 모든 가슴속에  피어라,  쓸쓸히 죽어가는 모든 숨결 속에.  지거라,  너의 이름을 함부로 짓는 시인 위에.  지거라,  너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는 시인 위에.  봄비  젖어버리자 젖어버리자고  우산도 버리고  저벅저벅 걸어서 예까지 왔다.  흙은 간지러워서 발ㅂ에 누워 있고  나무들은 모두  어깨를 걸면서 산으로 오르고 있을 때,  봄비에 취해  나 예까지 와서  홀로 거닐면서 무엇을 부끄러하랴.  알몸으로 천번이고 만번이고  세상을 껴안는다.  물과 함께  물은 발걸음도 안 보이게  느릿느릿 혹은 쏜살같이 걷다가  세상살이 싫증나면  땅속 깊에 스며 숨는다.  물은 온몸이 온통 맑은 눈이어서  햇빛 별빛 달빛이 그리우면  슬그머니 솟아나 밤낮없이 이 땅을 누비다가  산산이 조각내어 하늘을 날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 땅이 걱정이 되면  지상에서 죽어야지, 지상에서 죽어야지,  때맞춰 내려와  발걸음도 안 보이게 또  느릿느릿 혹은 쏜살같이 걷는다.  그러다가, 이 땅에 몸을 던져 죽고 싶으면  아무데나 있는 웅덩이를 찾아가  지친 몸, 아니 아직 견딜 만한 몸을 푼다.  세상의 온갖 티끌과 낙엽을 끌어모아  함께 고여 썩는다.  나도 물과 함께 고여 썩는다.  다시 살아날 시간들을  저 개울가에, 강가에, 바다에 보내놓고.  새벽, 골목을 거닐며  찬바람이 귓불에 뜨겁다.  밤새 헛것들을 보고 짖어대던 개들은  늦잠을 자고  발끝에 노니는 새끼은행잎들  노오랗게 노오랗게 살이 올랐고  머리에 떨어지는 새끼대추알  오동포동 살이 올랐다.  담쟁이덩굴 아직도 샛별을 휘감지 못했나,  가냘픈 몸으로 기를 쓰며 오른다.  겨울 보리  뒤덮인 하이얀 눈 속에서  더 붉은 사랑.  푸득푸득 꿩이 날아오르는  후미진 산등성이 옆에  더욱 푸르러 뜨거운 몸뚱이.  매운 찬바람 속에서도  이제 삶을 죽음이라  죽음을 삶이라 말하며  밟힐수록 힘이 솟는 우리들,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끼리끼리 그림자 만들어  마침내 더불어 큰 산 이루었네.  태안사 가는 길 1  나라가 위태로웠던 칠십년대 말쯤  아내와 어리디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떠난 지 삼십년 만에  내가 태어났던 태안사를 찾았다.  여름 빗속에서 칭얼대는  아이들을 걸리며 혹은 업으며  태안사를 찾았을 때  눈물이 피잉 돌았다.  그리고 두번째로  임신년 겨울,  팔십을 바라보는 어머님을 모시고  아내와 아젠 웬만큼 자란 아이들을 데리고  터벅터벅 태안사를 찾았을 땐  백골이 진토 된  증조부와 조부와 아버님이  청화 큰스님이랑 함께  껄껄껄 웃으시며  우리들을 맞았다.  산에 올라, 바다에 나가  산에 올라 가만히 살펴보면  태산도 티끌들의 세상이더라.  바다에 나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다도 물방울들의 세상이더라.  티끌이 앓으면 태산이 앓고  물방울이 앓으면 바다가 앓고  중생이 앓으면 부처가 앓고  모기의 눈이 멀면  하늘도 눈이 멀더라.  누우런 호박이 울타리에 붙어 울면  지붕 위의 박들도 소복을 하더라.    된장  님아,  너의 썩은 얼굴에 침  아니고 콩을 붙인다  흰자질이랑 탄수화물을 붙이고  물도 굳기름도 붙이고  비타민을 붙인다 소금을 붙인다  한 많은 찌거기를  정 도타운 부부를 붙인다  아아, 현명한 된장을 붙인다  님아,  너의 썩은 얼굴에 미움  아니고 새로운 머리카락을 붙인다  눈썹이랑 눈을 붙이고  코도 입도 붙이고  턱을 붙인다 귀를 붙인다  희고 억센 이빨을  거친 살결을 붙인다  아아, 뜨거운 목소리를 붙인다.  시여,  나의 얼굴을  너에게 붙인다.  석탄  참나무 숨결이 파도치는 두 어깨며  지나치게 이글대는 두 눈망울,  온몸을 철조망 같은 심줄로 무장하고  도계탄광서 온 그 사내와 만나던 날  눈에 핀 다래끼여 터져버려라  터져 버려라 다래끼여, 폭음을 했다.  이 趙哥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겠는데  詩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趙哥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는 갑다고  회색 바바리코트 사줄 테니 詩人 폼 내라고  왜 그리 못생겨 울퉁불퉁하냐고  악쓰고 힘쓰고 힘뱉고 악뱉고 있을 때  韓民族의 巨軀요 표준을 넘는 美男은  검다검다 지쳐 흰빛도 튀기는  새카만 석탄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쌔카만 석탄이 되고 있었다.  맨 밑바닥에서 서러우나 즐거우나  언제 어디를 안가리고 솟구치고  꿈틀거리는 석탄이 되어서  韓民族의 거구요 미남인 나는  꺼멓게 꺼멓게 울고 있었다.  元達里의 아버지  모든 소리들 죽은 듯 잠든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 1리*  九山의 하나인 桐裡山속  泰安寺의 중으로  서른다섯 나이에 열일곱 나이 처녀를 얻어  깊은 산골의 바람이나 구름  멧돼지나 노루 사슴 곰 따위  혹은 호랑이 이리 날짐승 들이랑 함께  오순도순 놀며 살아라고  칠남매를 낳으시고  난세를 느꼈는지  산 넘고 물 건너 마을 돌며  젊은이들 모아 야학하시느라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여순사건 때는  죽을 고비 수십 번 넘기시더니  땅뙈기 세간 고스란히 놓아둔 채  처자식 주렁주렁 달고  새벽에 고향을 버리시던 아버지.  삼십 년을 떠돌다  고향 찾아드니 아버니 모습이며 음성  동리산에 가득 듯하나  눈 에 들어오는 것  폐허뿐이네 적막뿐이네.  * 원달 1리 : 이곳에 桐裡山이 있고 泰安寺가 있는데 필자가 태어난 곳임.  대낮에 그린 그림  뉘 것일까?  떼 벗겨진 무덤가에 구름 그림자 붙들고  바람따라 흐느끼는 머리칼 한 올.  뉘 것일까.  성난 포도를 베고 아우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따라 흐느끼는 고무신 한 짝.  뉘 것일까.  병난 봄房의 한 나절 벽 사이  누워 있는 고요를 굴리는 사나이.  젊은 아지랑이  반란이다, 저건 반란이다, 반란이다.  어허, 저건 숨결이다, 숨결이다.  시냇가의 조약돌도 미치게 하고  내 눈 속의 하늘도 미치게 하고  우리들의 몸도 불질러 버리는  젊은 아지랑이.  젊은 아지랑이의  푸른 수염을 보거라.  수염을 헤치고  푸른 오월의 숨결을 헤치고  저 건너에서 저 건너에서  똑똑히 살아 움직이는  무덤들을 보거라.  무덤 건너  잘잘히 흐르는  의로왔던 조상들의  핏방울이며 땀방울의  영롱하게 뜬 눈을 보거라.  우리들의 눈은 멀었다 할지라도,  귀까지 먹었다 할지라도,  저 젊은 아지랑이 사이로  푸른 오월의 수염을 헤치고,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의 비탈마다에  아슬아슬하게 아로새겨진  영광의 말씀을 듣거라.  젊은 아지랑이 너머의  푸른 수염 너머의.  뙤약볕이 참여하는  밥상 앞에서  폭우도 멀리 떠나 버렸고  습기까지 죽어 말라 붙은 여름 근처  끼니마다 알몸으로 내외는 마주 앉네.  무릎 끓고 온몸으로 앉는 밥상 위  지난 몇 해 굶주린 남도평야  그릇마다 뜨겁게 넘쳐나고.  황소 섞인 찌개며  칼질 잘된 생명을 넘어서서  어린날의 눈물이 후두득 후두득 치면  동강이 난 바람은 동강이 난 부분마다에  눈물을 부릅뜨고 부들 부들 떨고.  장끼 까투리 홰치는 소리 멧돼지의 발자국 소리  모두 여기 올라서 부들 부들 떠네.  엊그제 만나서 덜 친근하지만  심줄을 보여다오.  平野 앞에 엎드려 땀도 눈물도  보여다오.  땅의 딸이여, 아내여, 어머니여,  바람 속에 붙어 있는 초가삼간 불질러 버리고  그대 메마른 입술을 불질러 버리고  일터에서 익힌 억센 심줄을 나부끼며  끝없는 반란의 아들로 뛰란 말이여?  가슴 펴고 내가 달리는 남도평야,  발바닥에 붙는 노동, 풍성한 울음소리,  고을마다 넘쳐나네.  바위  이슬이여,  이젠 그만 풀잎 끝에서 떠나다오.  밤새도록 이 어둠을 지켜 서서  몸을 보채며 뒹굴던  그 지긋지긋한 몸뚱어리를  거두어서 아침 햇살 속을 따라 떠나다오.  떠나다오.  눈물이 죄다 마른 사람들 곁에서  우리들의 착하디착한 어린것들 곁에서  이제, 그만 이 작은 땅을 울리지 말고  이젠 파도 위에 부서져 파도가 되고  광풍에 휘몰려 쫓기는 폭우가 되어  온 강토에 스며드는 소리가 되어다오.  새벽부터 그 다음 새벽까지  통곡으로 누워 있는 이 땅의  가녀린 풀잎 끝에서 떨고 있는  눈물이여.       식칼론 2  ―허약한 詩人의 턱 밑에다가  뼉다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 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 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조태일 문학 다시 읽기  -이동순(시인.영남대 교수)  흔히들 이라고 하면 먼저 「國土」와 「식칼論」 연작시 따위를 떠올리며, 그가 남성적이며 역동적 기질의 소유자, 또 그러한 분위기의 시를 썼던 시인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조태일 시인의 문학에 대한 하나의 편협한 고정관념이다.  물론 조태일의 문학에서 이러한 분위기의 시작품이 적은 것은 아니나, 전체 작품을 다시금 자세하고 신중하게 통독해 보면 시인이 얼마나 작고,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에 대한 애착과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미 연전에 「눈물, 그 황홀한 범람의 시학」이란 본격적 비평을 통하여 조태일의 시작품이 지닌 이러한 관점을 나름대로 정리 분석한 바 있거니와, 당시 그 글에서 조태일 문학의 중심 소재를 눈물이라는 관점에서 찾고 연역하며, 의미를 귀납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흘러 조태일 작품세계의 전모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자에게 부여되어 굵고 줄기찬 작품 활동의 전모를 헤집고 다니는 동안, 과거 본인의 관점이 정당한 경로였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위에 가려 뽑은 35편의 시작품 초(抄)는 이러한 경로를 보여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증거라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위 작품 중 「풀씨」 이후 19편의 작품이 모두 마지막 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에서 선정된 것이다. 전체 선정작 가운데 거의 절반이 넘는 시작품이 모두 한 권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조태일의 마지막 시집이 지닌 의의를 강화시켜 주는 의미와도 관련된다. 말하자면 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야말로 조태일 문학을 대표하는 시집이라 할 만하다.  초기 시작품이 보여주는 관념적 모호성, 김수영的인 스타일에 대한 필요 이상의 관심은 조태일의 시작품의 존재성과 당위성을 지탱해 주는 힘을 한결 약화시키는 기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마지막 시집에 이르러 마치 먹구름이 일시에 걷힌 만월(滿月)처럼 맑고 투명하고 눈물겨운 정서를 담뿍 개화시켜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운파월래(雲破月來)의 시정신이라 불러도 좋을 것인가.  시인은 마지막 시집에서 드디어 시정신의 빛나는 완성을 감격적으로 이루었던 것이다.     조태일은 한 마디로 눈물의 시인이었다.  1965년 발표작 「눈물의 幻想」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의식은 1965년 「밤에 흐느끼는 육체를」을 거쳐 「식칼論」2와 4, 「대창」 「뙤약볕이 참여하는 밥상 앞에서」 「베란다 위에서」 「발바닥 밑에」 「산에서」 「석탄」 「바위」 「통곡」 「황혼」 「빗속에서」로 이어지며 전개된다.  그러한 시정신은 마지막 시집인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에 이르러 한껏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 증거들은 「홍시들」 「봄이 오는 소리」 「桐里山에서」 「달빛」 「이슬처럼」 「아침 산보」 「단 한 방울의 눈물」 「청보리밭에서」 「골목을 누비며」 「달빛」 「물과 함께」 「노래가 되었다」 「풀씨」 등의 순정한 세계로 정착된다.  작고 여린 것, 가냘프고 소외된 것들에 대하여 연민의 자세를 가지며 더불어 눈물을 흘리는 태도는 조태일 문학이 일관되게 보여온 시적 변용이라 하겠다. 이것은 지난날 관서지방 출신의 시인 백석(白石)의 경우처럼 어린 시절의 경험공간을 추억의 실루엣으로 개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변용의 결과는 두 시인이 매우 상이한 스타일로 정착된다.   마땅히 눈물이 있어야 할 곳에 눈물이 마르고 없는 이 비통하고 삭막한 시대에서 시인 조태일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눈물의 시인으로 우리들에게 차츰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는 한 시인의 시정신이 변화해온 경과를 참으로 정교하고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규명해야만 한다. 조태일 문학에 대한 평가와 관점은 아무래도 문학사를 엮는 비평가들의 선입견에 의해 지나치게 견인(牽引)된 혐의가 있다. 아무리 시대가 문학을 낳고, 또 그 문학이 시대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시인이 근원적으로 지향했던 작품세계의 진정성은 별도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60년대 중반에서 출발하여 90년대 중반까지 약 30여 년 동안 전개된 조태일 문학의 성격과 본질의 규명은 그러한 점에서 새롭게 접근되어야 마땅하다.  여기 선정한 대표시선은 라는 재조명의 측면에서도 상당한 비평적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출처] [스크랩] 조태일 시 모음|작성자 한동안    
469    현대 과학 시 - 실험 시 댓글:  조회:4213  추천:0  2015-05-02
  “실험 시”   한 곡면의 극한치를 구하면 평면이 되고 임의의 시간이 그 평면과 교차한다 교차점에 서 수직 상승 아이겐 벡터는 우주 공간의 비틀려진 곡면이다 원자로의 액체가 확산되 는 시간 t 동안 기체는 침전되어 원심 분리기에 의해 블랙홀의 질량 m 원소로 추출된 다 시간이 가속도를 가지고 입자와 빛의 평균속도로 직선과 충돌한다 반발계수는 미 적분의 상수로 남는다 사이클로트론의 소장과 십이지장은 파형이 사이노 소이달인 입 자군 이 가설을 필요조건으로 설정하면 확률에 의해 충분조건이 성립한다 질량이 에 너지로 변환되는 함수 동안 엔트로티는 등온 가역 반응을 보인다 이런 원리에 의해 우주는 서서히 빅뱅 이전의 시스템으로 귀납하게 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연역적 폐 쇄 반응이다 상대성 이론은 뉴턴 사과의 시초다 종말이 시작되는 무한궤도의 순환사 이클은 기존 운동량을 유지한다 모든 이론이 나선형 성운을 거쳐 블랙홀에 수렴된다 모든 시작은 끝을 대치한다 고로 가설은 철저한 증명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세계는 필연적으로 모래 속에 존재하게 된다.      
468    <폭포> 시모음 댓글:  조회:4718  추천:0  2015-04-27
    + 폭포  한 가마니씩 쏟는 저 하얀 웃음 누가 저렇듯 웃을 수 있을까 산이 쪼개지듯 말입니다 한바탕 지르는 저 우렁찬 소리 누가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산이 흔들리듯 말입니다.  (이진호·시인) + 폭포 떨어져 내려도 희망이다 절망의 힘도 이렇게 크면 희망이 된다 비명도 없이 곤두박질 치다보면 딛고 섰던 땅까지 움푹 파지지만 그보다 더 세찬 무엇이 생명을 받들고 위로 솟구치고야 만다 수직의 절망이 수평의 희망으로 튕겨 흐르는 숨막힘 (고옥주·시인) + 폭포 앞에서 찬란히 부서졌다가  다시 이룬다  용솟음치는  열망  장엄한  헌신  모든 것이 다  자상한 가르침이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불일폭포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내가 물방울이 되어 부서집니다 폭포에 나를 던집니다 갑자기 물소리가 그치고 무지개가 어립니다 무지개 위에 소년부처님 홀로 앉아 웃으십니다  (정호승·시인, 1950-) + 폭포  흐르는 물도 때로는 스스로 깨지기를 바란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처연하게 자신을 던지는 그 절망, 사람들은 거기서 무지개를 보지만 내가 만드는 것은 정작 바닥 모를 수심(水深)이다. 굽이치는 소(沼)처럼 깨지지 않고서는 마음 또한 깊어질 수 없다. 봄날 진달래, 산벚꽃의 소매를 뿌리치고 끝 모를 나락으로 의연하게 뛰어내리는 저 폭포의 투신. (오세영·시인, 1942-) + 직소폭포  얼마나 오래도록 탁한 생각을 흘려버려야  직소폭포, 저 차고 깨끗한 물빛이 되는가.  얼마나 많은 주저와 두려움을 베어버려야  직소폭포, 저 꼿꼿한 풍경으로 설 수 있는가.  얼마나 숱한 울음을 안으로 눌러 죽여야  직소폭포, 저 시원한 소리의 그늘을 드리우는가.  그래, 저러히 높고, 크고, 깊게 걸리는 폭포로서만이  내변산 첩첩산중을 두루 흔들어 깨울 수 있는 것이리. (김선태·시인, 1960-) + 폭포의 미래     내가 폭포를 좋아하는 것은  물이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에서 직접  미래로 뛰어내리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보고 뛰어내리는  아주 겁 없는 여인이기에  반갑다가도  뛰어내린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아  나는 항상 디딤돌로 남아 있어  서럽다 (이생진·시인, 1929-)  + 폭포  밑으로 밑으로  몸을 굽히다 보면  천둥치는 바닥이 보인다.  슬픔의 끝을 밟고 선  눈물의 강도 보인다.  추락한 폭포는  고통을 이겨낸 하얀 입술로  안개 속 가는 빛을 뿜어내어  오르고 또 오르고  바닥을 딛고 선 물방울은  절벽 끝에 무지개 꽃을 피운다.  잔잔한 수면 위에  정점의 추억을 딛고 선  바닥은 이제 희망이다.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폭포 오직 한 길만 아는 이  그저 하편향할 뿐이다  추락이 아니라 더 낮아지기 위하여  몸부림칠 뿐이다  더 낮고 더 외진 곳을 향하여  때론 깊은 계곡에서 무지개를 피우기 위하여  더 깊고 더 음습한 그늘을 향한다  부서지는 것은 통증만 유발하는 건 아니다  산산이 부서짐으로써  더 새로워지고 더 맑아지고  더 생생해지는 것이다  얼얼한 피부로 얼얼한 정신으로  눈에 힘이 서고 팔뚝에 근육이  팽팽히 차오르는 것이다 (권순자·교사 시인, 1958-)  + 백두산 폭포  아, 아, 터져 나오는 감탄의 소리들 누가 飛流直下三千尺이라 했다던가. 날아 떨어지는 폭포, 삼천 척은 못될 듯하나 동해안 백사장에 밀려드는 잔잔한 파도 같은  물무늬 지으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대한 강물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멀리서 보면 앞산에 널어 바래던  어머니의 한 필 무명베 같고  어찌 보면 전설 속에 등천하는 용 같더니, 다가갈수록 일대에 안개비처럼 물보라 날리며 가뭇한 하늘에서 포효하며 뛰어내리는  저 거대한 것들은 아프리카 들소 떼, 또는 그 검은 몸뚱이와 다른 흰 혼백들의 낙하. 아, 하는 감탄사 속에 묻히는 숱한 문장들 아득한 신비 속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데, 저 많은 물이 하늘 못 어느 샘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쏟아지는 걸까. 나이아가라나 이구아수 폭포를 못 봐서  이 물줄기가 감탄의 폭포로 쏟아지는 걸까. 압록 두만 송화 3강의 근원이 된다는  네 위대함 앞에서 내 왜소함을 깨달으며 얼음 같은 물에 얼굴을 씻고 폐부를 헹군다.  고래의 배보다 희고 상어보다 억센 너를 보며 나를 삼키려다 토해낸 동해 바닷물처럼 물은 살아 있는 존재임을 다시 깨달으며 몇 장의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폭포수  그 감격을 아, 아, 소리로만 담아 가노라. (최진연·목사 시인, 경북 예천 출생)    
467    가사의 대가 - 송강 정철 댓글:  조회:4837  추천:0  2015-04-26
정철 (1536년 - 1594년)     정철 (1536년) 정철 영정 출생 1536년 12월 6일 (음력)  조선 한성부 종로방 장의동 사망 1593년 12월 18일 (음력)  조선 경기도 강화군 송정촌 사인 병사 거주지  한성부 → 전라남도 창평 → 한성부 → 강화도 국적  조선 별칭 자는 계함, 호는 송강·칩암거사, 시호는 문청, 별명은 총마어사, 작위 인성부원군 학력 사가독서 (1562년 별시문과 장원) 직업 문신, 시인, 정치인, 문인 종교 유교(성리학) 자녀 정기명, 정종명, 정진명, 정홍명 부모 정유침 / 죽산 안씨 친척 누이 귀인 정씨 정철 (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 ~ 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 정치인, 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迎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별명은 총마어사이다. 돈령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沉)의 아들[1]이며, 인종의 후궁 귀인 정씨의 남동생이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사건 추국을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 수사 지휘의 공로로 추충분의협책평난공신(推忠奮義恊策平難功臣) 2등관에 책록되었다. 훗날 심문 과정에서 기축옥사로 동인과 그 일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하여 동인들의 비난을 받았고, 정여립의 난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세자 건저문제를 계기로 귀양에 위리안치되었고, 임진왜란 직후 복귀하였다. 전란 초기에 양호체찰사 직을 수행하였으나, 복귀 후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온 일로 모함을 받아 사직하고 강화도에 우거하던 중 사망하였다. 당색으로는 서인(西人)의 지도자였고, 이이, 성혼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기대승(奇大升) · 임석천 · 송순(宋純)·김인후(金隣厚) · 양응정(梁應鼎)의 문인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등 가사와 한시를 지었으며, 당대 시조문학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동시대에 살던 군인 정철(丁哲)과의 구분을 위해 보통 '송강 정철'로 부른다.[출처 필요]   목차    1 생애 1.1 생애 초기 1.1.1 출생과 가계 1.1.2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 1.1.3 수학과 청년기 1.2 관료 생활 1.2.1 관료생활 초반 1.2.2 경양군 처형과 좌천 1.2.3 당쟁과 파란 1.2.4 동인과의 갈등 1.2.5 강원도 관찰사 재직과 관동별곡 1.2.6 정치 활동 1.2.7 은거 생활 1.3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1.3.1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위관 1.3.2 기축옥사 직후 1.3.3 논란 1.4 생애 후반 1.4.1 세자 건저 파동 1.4.2 파직과 유배 1.4.3 동인의 공세와 유배 1.4.4 유배와 이배 1.4.5 임진왜란과 최후 2 사후 2.1 추탈 2.2 복권 3 가계 4 관련 작품 4.1 드라마 5 저서와 작품 5.1 저서 5.2 작품 6 문학적 기여 7 정치적 평가 7.1 성격 7.2 기축옥사와 관련된 논란 8 기타 8.1 꾹저구 발견 8.2 기생의 이름시 9 같이 보기           생애 생애 초기 출생과 가계 송강 정철은 1536년(중종 31년) 음력 12월 6일 한성부 종로방 장의동(藏義洞,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돈녕부판관을 지낸 정유침과 죽산 안씨의 아들로 출생하였다.[2] 그의 고조부는 병조판서, 증조부는 김제 군수를 역임했으나 할아버지 대에는 관직에 나가지 못하다가 아버지 정유침은 딸이 왕의 후궁이고 왕족의 부인이 된 관계로 관직에 나가 돈령부판관을 역임하게 됐다. 어머니는 죽산 안씨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안팽수의 딸이었다. 그는 7남매 중 막내 아들로 그가 태어날 때 위로 형 세 명이 있었고, 누나 세 명이 있었다. 그의 맏누이가 인종(仁宗)의 후궁인 귀인(貴人)이었고, 둘째 누이가 왕족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 되었기에 어려서부터 궁중에 출입하였고, 어린 경원대군(慶原大君 : 후일 명종)과 친숙해졌다. 어느 정도 장성한 뒤에도 누이를 보러 동궁(東宮)에 자주 출입하면서 경원대군을 자주 만났고 명종이 즉위하자 그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 사건 그러나 인종이 죽고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에 매형인 계림군이 윤임에 의해 추대받았다는 이유로 역모죄로 붙잡혀 처형을 당하고, 그의 맏형은 곤장을 맞고 전라남도 광양군으로 유배되었으며, 아버지 정유침은함경북도 정평으로 유배되었다. 그 역시 계림군의 처가 일족(一族)으로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유배될 때 정평으로 따라간 이후, 아버지의 배소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곧 아버지 정유침은 유배가 풀려서 되돌아왔다. 그러나 1547년(명종 2년) 전라도 양재역에서 벽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관련자로 지목되어 아버지 정유침은 경상북도 영일로 유배되었으며, 맏형은 다시 붙잡혀와 형문을 당하던 중 곤장을 맞고 함경북도 경원으로 귀양가는 길에 형독으로 32살의 나이에 장살했다. 이후 그의 둘째 형 정소는 과거를 준비하다가 벼슬길에 환멸을 느껴 처가가 있는 전라남도 순천으로 은거하였다. 그는 다시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수학과 청년기 1551년(명종 6년)에 원자(元子) 탄생 기념으로 아버지가 특별히 사면되자 온 가족이 고향이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군 창평(昌平)으로 이주,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그는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의 문하생이 되었다. 용소를 목욕하던 정철은 김윤제를 만났다.[3] 그가 영특하고 총명한 인물임을 알아본 김윤제는 그를 자신의 문하에 받아들인다. 이후 지곡(芝谷) 성산(星山) 기슭의 송강(松江) 가에서 10년 동안 수학하면서 김윤제 외에도 임석천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배웠으며,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송순, 기대승 등 당대의 석학들을 사사(師事)하였으며, 김윤제의 조카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고경명 등과 동문수학(同門修學)하였다. 이때 이이·성혼·송익필(宋翼弼) 등과도 교우했다. 이때 그가 거주하던 곳의 지명을 따서 스스로 아호를 송강이라 하였다. 그는 한성부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그의 집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한 곳은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이었으므로, 일각에서는 창평을 그의 고향으로도 간주하게 된다. 그 뒤 스승인 김윤제의 사위인 류강항(柳强項)의 딸과 혼인하여 김윤제의 외손녀사위가 되었다. 을사사화 이후 가문이 연루되어 몰락하였으므로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였으나, 처외조부이자 스승인 김윤제와 처외숙부이자 동문인 김성원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근근히 연명하기도 했다. 관료 생활 관료생활 초반   정철의 편지 서신, 연대미상3월 10일자 1561년(조선 명종 16년)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고, 이듬해 27세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때 임금인 명종이 과거 합격자 명단을 보고 정철이라는 이름이 동문인가 여부를 수소문한 뒤 어린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여 기뻐하면서 "정철이 급제하였구나." 하며 기뻐하여 따로 주찬(酒饌)을 내리어 축하연을 베풀어주었다. 이후 사헌부지평(持平)을 거쳐 성균관 전적(典籍) 등을 역임하였다. 성균관전적 겸 지제교를 거쳐 사헌부지평에 임명됐다. 이어 좌랑·현감·도사를 지내다가 1566년(명종 21)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이 됐다. 그 뒤 함경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32세 때인 1567년(명종 32년) 이이와 함께 호당(湖堂)에 선발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이때 이이와 사물에 대한 담론을 한 뒤 그의 박식함에 감탄하여 그와 깊이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친밀하게 지내게 된다. 일찍부터 청백하고 곧은 성품으로 유명하였으며, 왕의 각별한 지우로 총마어사( 馬御史, 한나라 때 어사 환전이 매우 엄정하였고 항상 총마를 타고 다니므로 사람들이 총마어사라 불렀다)〉라는 별명을 얻어 회자화되었다. 경양군 처형과 좌천 이후 어릴 적 친구였던 명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왕의 사사로운 청을 거절하여 명종의 미움을 받아 왕이 그를 멀리하게 된다.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올랐을 때, 명종의 사촌형인 경양군(景陽君)이 자신의 처가의 재산을 약탈하고자 그의 처조카를 죽인 죄로 수감되었다. 이에 명종은 송강에게 관대하게 처리할 것을 부탁하였으나 성격이 결백하고 강직한 정철은 왕족이라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경양군 부자를 계속 규탄, 탄핵하여 경양군 부자(父子)를 사형시켰다. 화가 난 명종은 이후 그를 피하였다. 그 뒤 형조, 예조, 공조, 병조의 좌랑을 거쳐 공조, 예조의 정랑을 두루 지내고 1565년 경기도도사(京畿道都事)로 나갔다. 이후 홍문관수찬·좌랑·종사관·홍문관교리·전라도암행어사를 지내다가 1566년초 형조정랑이 되었다. 그해 1월에 형조정랑으로 재직 중 을사사화 관련자들의 석방과 사면해줄 것을 건의하였으며, 그해 3월에 인종의 귀인이었던 맏누이의 상을 당해 곡을 하였다. 이후 성균관 직강,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고 동년 9월에 북관어사로 나아가 함경도를 순시하였다. 북관어사로 순행하는 도중에 우연히 시조 한 수를 짓게 되는데, 그 내용이 명종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다 하여 오래도록 화제가 되었다. 10월에 홍문관 부수찬에 제수되었다. 당쟁과 파란 1567년(선조 즉위년) 정랑(正郞), 성균관직강(直講) 등을 역임했다. 1568년(선조 1년) 3월 이조좌랑이 되었다가 6월에 원접사 박순의 종사관이 되었다. 그해 홍문관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다시 사헌부지평이 되었고1569년 5월에 홍문관 수찬, 교리, 지평 등을 지냈다. 이때 조정의 대신들이 언관 17인을 논죄하고 조정에서 내쫓으려 하자, 선조 앞에 나아가 그들을 통렬히 논박하기도 했다. 1570년(선조 3년) 4월 35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3년상을 마쳤다. 모든 의례와 절차를 스승과 벗들에게 물어 예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주위의 큰 칭송을 받기도 했다. 1572년 7월 부친의 3년상을 마치고 복직하여 성균관직강, 이조정랑, 의정부 검상 및 사인, 사간원 사간 등을 역임했으나 1573년(선조 6년) 홍문관 전한, 사헌부 집의, 군기시정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1573년 4월 38세 때 다시 모친상을 당하여 경기도 고양군 신원(新院)으로 낙향하여 다시 3년상을 치렀다. 1575년(선조 8년) 5월 시묘살이를 끝내고 복직하여, 직제학, 성균관사성,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그해 심의겸과 김효원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비화되어 동인과 서인의 분쟁에서 서인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분쟁에 휘말려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라남도 창평으로 돌아갔다. 창평에 있을 때에 선조로부터 몇 차례 벼슬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동인과의 갈등 그 뒤 을해당론으로 사림파가 동서로 분당되자 그는 서인에 가담하였다. 1577년 11월에 계림군에게 출가했던 막내 누이가 죽자 경기도 고양군 신원에 와서 일시적으로 지내기도 했다. 같은 달에 인종의 정비였던 인성왕후 박씨가 세상을 뜨자, 대궐에 들어가 상에 임하였다. 이어 송익필을 만나 거취를 상의하기도 하였다. 1578년(선조 11년)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기용되고, 사간·직제학 등을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승정원 승지에 올랐다. 그해 5월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으로 승진했으며, 그 해 11월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으나 윤두수 등의 진도 군수(珍島郡守) 이수(李銖)의 뇌물수수 사건 처리 문제로 동인계 언관들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12월에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지에 제수되었지만 모두 사양하였다. 이수의 옥사 사건 이후 한동안 그는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1579년(선조 12년) 5월 형조참의, 6월 승정원 우부승지를 거쳐 8월에 다시 동부승지에 제수되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당쟁의 소용돌이가 빚어낸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다가 정치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그 동안 머물러 있던 서울 및 고양군 음죽을 떠나 다시 창평으로 낙향하였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으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였으며, 타인의 뒷담을 즐기는 것을 불쾌히 여겼다. 그러나 그의 직설적인 성격과 화법은 원수를 많이 만들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율곡 이이는 그에게 '제발 술을 끊도록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없애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강원도 관찰사 재직과 관동별곡  관동별곡 1580년(선조 13년) 1월에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되었다. 이 무렵 〈관동별곡〉, 할아버지 : 정위(鄭潙) 아버지: 정유침(鄭惟沈) 어머니: 죽산 안씨 부인: 문화 류씨 장남: 정기명(鄭振溟, ? - 1589년) 손자: 정운(鄭沄) 차남: 정종명(鄭宗溟) 손자: 정직(鄭溭) 손자: 정수(鄭洙) 손자: 정연(鄭沇) 손자: 정양(鄭瀁) 손자: 정전(鄭淟) 삼남: 정진명(鄭振溟) 손자: 정한(鄭漢) 사남: 정홍명(鄭弘溟) 손자: 정이(鄭涖) 첩: 진옥(眞玉, ? - ?, 기녀 출신[26]) 첩: 강아(江娥[27]) 형님: 정소(鄭沼) 누나: 귀인 정씨, 인종의 후궁 누나: 군부인 정씨, 계림군의 비 관련 작품 드라마 《서궁》(KBS2, 1995년~1995년, 배우:박웅) 《왕의 여자》(SBS, 2003년~2004년, 배우:윤주상) 《불멸의 이순신》 (KBS, 2004년~2005년, 배우:안대용) 《왕의 얼굴》 (KBS, 2014년~2015년, 배우:주진모) 《징비록》 (KBS, 2015년, 배우:선동혁) 저서와 작품   정철의 《송강문집》 저서[편집] 저서로, 후대에 그가 남긴 시조와 가사를 엮은 《송강가사》와 《송강집》이 있다. 《송강집》 《송강가사》 《송강별집추록유사》 《문청공유사》 작품 사미인곡 속미인곡 애련당 현판 문학적 기여  관동별곡, 성산별곡   개인적으로는 술을 좋아하였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이름이 높다. 《성산별곡(星山別曲)》,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훈민가(訓民歌)》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가사와 한시, 단가를 남겼다. 저서로는 문집인 《송강집》 《송강가사》 《송강별추록유사(松江別追錄遺詞)》, 작품으로 시조 70여 수가 현재 전하고 있다. 가사 그의 가사는 종래의 한문투를 벗어나 3·4조의 운율에 의해 자유자재로 한국어를 구사했으며, 그의 호탕하고도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시풍은 호탕하고 비장하며, 한문투를 벗어나 자유자재로 (중세)한국어를 구사하여,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그의 저서 《서포만필》에서 “예로부터 좌해(左海 ; 한국의 별칭)의 참된 문장(眞文章)은 오직 이 세 편(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뿐”이라 평가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의 대가로 인정하였다. 시조 그는 시조작가로서도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니, 그가 백성의 교화(敎化)를 위해 지은 《훈민가(訓民歌)》 16수는 비록 도덕군자의 냄새가 나는 듯하나 현실적 효용으로 그 의의를 지니며, 그의 시조 77수가 《송강가사》에 실려 전하는데 그의 호방한 일면과 동양적인 유적한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한시 그의 한시가 장·단가에 비해 격이 낮다고도 하고, 전수에 미치지 못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장·단가의 모태가 한시요, 그 시격은 ‘준영·고매’하며, ‘당나라 태종 연간의 여러 작가들과 나란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어마다 날아 움직이는 듯하고, 뜻밖의 시취가 있다’고 기린 점 등은 주목을 요하는 바 있다. 더구나 그의 한시가 굴원과 두보의 ‘사미인’과, ‘시어 한 자도 임금을 잊지 아니한다’는 우시연군의 정한을 이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비롯한 전원시풍을 받아들였는가 하면, 이백의 호방함과 취선의 풍모를 이어받았고, 수월을 더불어 노래한 소식의 풍류로 작시상의 환골은 물론, 시풍의 영향을 천착하여야 한다고도 한다. 정치적 평가 성격 성격은 직설적이고 감정적이었다, 후일 같은 서인이 된 조헌은 그를 싫어하여 그가 부임하면 다른 곳으로 가곤 했다. 한번은 정철이 조헌과 한 관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조헌이 다른 곳으로 가려 하였다. 한번은 정철이 조헌을 불러 왜 나를 피하느냐고 묻자, 입소문이 안좋아서 피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철은 이이를 찾아가 조헌과 한 관청에서 근무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함께 지방으로 파견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을 본 조헌은 '공의 됨됨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사람 하나 잃을 뻔 하였다'며 정철을 멀리한 것을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한다.[28] 강직하고 청렴하나 융통성이 적고 호방한 성품 탓에 동인들의 스승인 퇴계 이황으로부터 간신(諫臣, 바른 말로 임금에 간하는 신하)의 기질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29][30] 기축옥사와 관련된 논란  기축옥사 기축옥사와 관련된 논란 중 대표적인 것은, 정여립의 옥사를 조작하였는가, 위관으로서 옥사의 처리가 공정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다.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정여립이 실제로 역모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조작설이 조선시대부터 존재했고, 1950년대 이후에 당쟁을 배경으로 송익필 형제가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들이 등장하였으나 의견이 분분하다.[31] 조작설은 정철과 서인 세력이 동인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정언신, 정개청(鄭介淸), 백유양(白惟讓), 이발(李潑), 이길 등 많은 동인이 죽거나 귀양을 갔고, 이산해를 얽어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다.[6] 조작설은 김장생이 엮은 〈송강행록〉(松江行錄)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정여립 등이 모반한다는 고변이 있자 정철은 그의 도망을 예상하였고, 자진하여 옥사처리를 담당하려 했다고 하여, 정여립의 도망을 미리 안 것과 추국관이 되기를 자청한 것으로부터 정철이 이를 지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32][33] 위관으로서의 공정성에 대하여는 임진왜란으로 수사 자료가 모두 유실되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34] 기축옥사 당시 80명의 동인 인사들을 체포하여 형문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1천여 명의 동인계열 인사와 가족들이 체포되어 형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서인의 영수로서 형문의 초기 책임자였던 그는 옥사를 확대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서 이발의 가족들이 죽은 책임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이에 대하여 1591년 초에 위관이 바뀌었기에 그와 무관하다는 견해가 있다.[15][35] 기타 꾹저구 발견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 중 1580년(선조 13년) 강릉부의 한 연못에서 발견한 담수어에 꾹저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릉 연곡을 방문했던 그는 어느 백성이 선물로 대접한 탕을 먹게 됐다. 이때 백성이 선물로 대접한 탕이 바로 꾹저구로 끓인 탕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 지역 현감은 관찰사를 접대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맛있는 물고기로 만든 별식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으나 그 무렵 장마철이라 고깃배가 전혀 출어하지 못해 마땅한 해산물이 없었다. 백성들은 할 수 없이 인근 연곡천에 흔하던 작은 물고기를 잡아 탕을 끓여 올렸다. 이를 매우 흡족히 먹은 그는 "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며 무슨 물고기로 끓였느냐고 물으니 그때까지 이름없이 대하던 작은 물고기라 백성들이 주저하였다. 이후 연곡천에서 저구새(雎鳩물수리)가 물속에 부리를 훑으며 잡아먹던 것을 본 정철은 "저구새가 꾹 집어 먹는 물고기"라 하여 "그러면 앞으로 이 고기를 꾹저구라 부르면 되겠다."고 하여 이름을 꾹저구라 지었다. 기생의 이름시 술과 풍류를 즐기던 그는 기녀의 이름을 따서 시를 지었는데, 기녀가 그의 시를 되받아, 운을 따서 화답시를 짓자 기녀의 재주에 놀라게 된다.     근악槿樂 옥이 옥이라 하거늘 번옥(燔玉)으로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이 분명하다 내게 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 철(鐵)이 철(鐵)이라 하거늘 잡철(雜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이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한번 녹여볼까 하노라 같이 보기 작품 시조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박인로 윤선도 허난설헌 송강가사 유적 환영정 죽서루 송강정 정송강사 관동팔경
466    <발바닥> 시모음 댓글:  조회:4025  추천:0  2015-04-26
    + 발바닥이 전해주는 말  산불로 폐허가 된 곳  돋아나는 고사리 꺾으며  축축하게 흐르는 땀  개울물에 발을 담그니  뼛속까지 깨달음이 새롭다  태초에 하나님 인간을 만드실 때  두 발로 걸으라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그 뜻 거역하고  자동차만 타고 다니니  이곳저곳 아픈 곳만 늘어난다  이제라도 그분의 뜻 따라  산새들과 들짐승처럼 뛰어다닐 때  지천명의 언덕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발바닥이 귓속말로 전해 주고 있다 (김귀녀·시인, 1947-) + 아내의 맨발 - 갑골문甲骨文  뜨거운 모래밭 구멍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송수권·시인, 1940-) + 시인의 발바닥   목욕탕엘 갔다 굴참나무처럼 갈라진 내 발바닥을 보고 시인의 발바닥이 그 모양이냐고 누군가 말을 했다 유심히 보니 산도적의 발바닥 도망 나온 발바닥 어디를 쏴 다녔기에? 한쪽에 등 돌리고 앉아 발바닥을 문지른다 (김상현·시인, 1947-)  + 내 나이 마흔 넷의 발바닥  내 발바닥 꺼칠꺼칠한 게  어쩌면 낙타가 사막을 쉬임없이 걸어온 것처럼  물 한 방울 스밀 데 없어라  그처럼 하늘은 매냥  모래바람만 불어온 듯도 하거니와  갈 길 먼 낙타처럼 가다가  쉬어갈 때도 있거니 하면서  이제는 옆이나 뒤로 눈 돌릴 게 아니라  무작정 앞을 보며 걸어가는 것도  상책이려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서지월·시인, 1956-) + 발바닥아       발바닥아,  티눈 박여 못 쓰게 된 발바닥아,  오늘같이 할 일 없는 날은  때묻은 신발 하이타이 비누로 바래어 신고  아침 이슬 채이며  우북히 자라난 우리들 꿈의 옛 자취  보리밭머리 보리 팬 거나 보러 가지.  보리밭머리  깜부기로 입에 먹칠을 하고  그린 듯이 서 있으러나 가지.  발바닥아, 발바닥아,  매맞고 쫓겨나 갈 데 없는 발바닥아,  자운영 꽃핀 논두렁길로  구름 마중 우리 둘이 신나게  달려나 가지. (나태주·시인, 1945-) + 발바닥에게  발바닥으로 사는 그대 보고 싶다  자신을 억누르며 인내하는 바닥으로 사는  낮은 그대가 오늘은 보고 싶다  낮은 그대 낮은 생각 속으로  아침 창문이 열리면 슬픔처럼  가늘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낮은 풀잎 뿌리를 적시고  그대 젖은 발자국 남기면서 걸어간다  땅과 가까이 온몸으로 물이 흐를 때  먼저 젖고 마는 그대 하얀 발가락  그대를 데리고 멀리 가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처참하게 비 내리고  수목들 뿌리가 젖는 것처럼  더욱 낮은 곳에서 떨고 있는 그대  오늘은 보고 싶다 (강영환·시인, 1951-) + 발바닥으로 읽다  찌든 이불을 빤다  무거운 이불 한 채, 물에 불린다  모란 잎, 때 절은 이파리  고무통에 담그니 발바닥에 풋물이 든다  모란꽃이 쿨럭쿨럭 거품을 토해낸다  고무통 수북히 거품이 솟는다  맥을 짚듯 두 발로 더듬는다  삶에 찌든 내가 밟힌다  먼 기억 속 부드러운 섬모의 숲을 거슬러 오르자  작은 파문 일렁인다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행간  지난 날 부끄런 얼굴, 밟히며 밟히며  자백을 한다  좀체 읽히지 않던 젖은 문장들  발로 꾹꾹 짚어가며  또박또박 나를 읽는다  눈부신 햇살 아래 모란꽃 젖은 물기를 털어 낸다  어디선가 날아든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꽃을 읽고 날아간다  (조경희·시인, 충북 음성 출생) + 발바닥     누워있는 아내 발바닥이  절여놓은 총각무 같다  온종일 버무려지던 열기 속에서  뒤죽박죽 얼마나 숨가빴을까  걷는 게 별것이 아니라는 듯  붉었다가,  희어지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듯  내보이는 희끄무레한 바닥  내 족보 속에 온갖 피톨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길을 가자는데  신경통처럼 기울어지는 세간붙이를  희락 붉으락한 발바닥으로  다잡고 가라는데  더듬어보는 뒤꿈치에  뭉툭한 독기  이 모진 기운이 아내를  똑바로 서게 하였구나  때때로 귀찮아지는 체중을  받치게 하였구나. (정건우·시인, 강원도 양구 출생) + 발가락  양말과  신발 속에서  보낸 긴 하루  집에 와  양말을 벗으니  아, 예쁜 발가락 가족  어루만지고 싶을 만큼  저절로 정이 든다.  담담한 신발 속에서도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들 껴안고 지냈나 보다.  하얀 발가락들의  어깨가 좁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발가락 꼼질거리는 발가락이 오늘도 맨 아래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다.  단 한번도 호사를 모르는 발가락은  내가 가라면 가고  내가 오라면 오는  순종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처음부터 태어났던 모양이다.  오늘도 이유를 모르는 뜀박질을 하는 발가락은  온통 땀이 흥건하다.  온통 악취가 흥건하다.  길바닥은 혼탁한 매연에 숨쉬기가 버겁고  무심히 버려진 양심들이 겹겹이 쌓여  두 눈으로는 참아 건너지 못할 곳을  묵묵히 걷고 있다.  처음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더니  이제는 앞을 향해 가라한다  이제는 앞을 향해 뛰라한다  그렇게  무언의 든든한 후원자는 오늘도  최후의 밑바닥에서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하고 있다.  (김노인·시인)
465    시와 술, 술과 시... 댓글:  조회:4374  추천:0  2015-04-26
‘시의 벗들에게 보내는 고은 편지’를 받고  주벽(酒癖)의 시인들을 비판한다 / 정세훈  “어찌 시인을 수행의 계율과 윤리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시평』 창간호 『관심』 통권9호 고은 「시의 벗들에게」에서)  시인 고은 씨가 시단의 시객들에게 편지로 전한 이 반문은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첫째로 경직되어 있는 시단의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고은 씨의 외로운 질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곧 안주하고 있다는 말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두번째로 고은 씨는 그 무엇인가 큰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이미 실행해 옮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하여 그 결단에 따른 고은 씨의 시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사뭇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고은 씨의 편지에서 위의 반문에 대한 해답을 곁들이고 있다.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막말로 최근에 시가 가슴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일견, 한마디로 가슴을 찡하게 하는 편지다.  술은 때로 개인과 개인 사이를 한결 부드럽게 하고 여유롭게도 하며  너그럽게도 한다. 따라서 흥겹게 한다.  그 무엇보다도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며  그에 따라 상상의 공간을 넓혀주는 매개체로서 술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런 면에서 고은 씨의 외로운 질책을 달갑게 받고 싶다.  그러나 술에게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어서  우린 이 가운데 부정적인 면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술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시단에서 종종 보여왔다.  36살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 김관식을 예로 든다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듯싶다.  이 지면은 김관식의 시편을 평가하는 지면이 아니고,  또 시평에 있어 일천한 내가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앞서 전제한다.  다만 시객이 술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그 삶은 물론 시에 있어서도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알아보고자 할 따름이다.  그의 「病床錄」이란 시를 보자.  그는 이 시에서 “오장(五臟)이 어디 한군데 성한 데 없이”  병상에 10년째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이 시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왜 병상에 누웠는가.  그가 이 시에서 밝혔듯이 폐 또는, 간장 한두 군데가 아니고,  심장 비장 신장 등 오장이 다 상하게 된 지경에 이른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일까.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몸이 혹사당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술꾼 행세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이 시에서 “방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이  얼크러져 잠든 모습을 보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만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그러면서 급기야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고  지극히 무책임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당부를 자식들에게 남긴다.  치열한 삶을 살지 못하고 술에 의탁한 나약한 삶의 말로다.  그야말로 독자를 분통터지게 하는 시다.  시객은 시만 잘 쓰면 된다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작태의 결과다.  시객에게 시를 잘 써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면  아울러서 주위사람 특히 가족을 성실하게 책임지는 의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객이기 전에 인간의 기본 인륜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 때문에 가족을 책임지지 않겠다면 애초에 가족을 이루지 말아야 한다.  가족을 이뤄놓고,  그 가족 앞에 그 무슨 해괴망측한 술꾼의 이름을 가진 기인 행세를 한단 말인가.  시객은 가족을 내팽개쳐 버려도 괜찮은 부류들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시인을 만나보자.  고은 시집 『만인보』에서 ‘아름다운 시인’이라고 읊은 시  「백석」의 주인공인 백석의 경우도 김관식에 못지 않다.  시 「백석」 2연에서 “아내도 집도 다 없어지고/압록강 끄트머리/  신의주 목수네 집 문간방에 들어”라고 서술했듯이  백석의 가족은 백석의 곁에서 없어졌다. 왜일까?  단순히 이 시만 접한 독자는 마치 백석의 가족이  아무 이유 없이 무정하게 백석을 버린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 원인은 백석의 지나친 음주행각과 여성편력으로 인한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사생활 또는 여인관, 연애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대체 시객이 아무렇게 행동하면 기인이 된다는 왜곡된 통념은  누가 만들었나.  그것은 은연중 자신도 답습하고 싶은 주변의 시객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중이 술꾼으로 행세하며 가족을 내팽개치고 제멋대로의 삶에 취해 있다면  기인이라고 이름 붙여줄 것인가.  아마 시객들은 이들에게 ‘미친놈’이라고 힐난할 것이다.  기생 ‘자야’를 사랑한 백석은 자야가 선물한 넥타이를 소중히 생각하며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라는 연정의 시를 남겼다.  그런 그가 제자 김진세의 누이에 반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남겼다.  그는 이 시에서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라며 비몽사몽에 가까운 딱한 시어를 남긴다.  김윤식은 이 백석을 「백석론」에서 ‘천재시인’  ‘영원한 매력을 지닌 시인’ 또는, ‘백석 시학은 우리 민족의 북극성’이라는  새로운 성좌론(이 성좌론은 『학풍』 창간호,  1948년 10월, 편집후기에 처음 언급되었다.)으로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술집을 자주 찾았던 그의 삶은 이러한 극찬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가족에게 씻어내지 못할 한을 남겼다.  이화여전 출신으로 알려진 그의 아내가 1949년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하면서,  백석이 만약 월남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증오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은 씨가 『시평』지를 통해 시객들에게 준 편지는 이와 같은 기인을 빙자한,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술꾼들이 되길 열망하는 뜻에서가 아닐 것이다.  다만,  현재 시단이 너무 삭막하도록 소통이 안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술 한잔 마신 김에 아마도 이런 이야기나 한가롭게 주고받는 시단이  얼마나 풍류스럽겠는가를 미루어보자는 것인가 봅니다.”  또는,  “또 하나는 시인에게는 그래도 세상의 악다구니로부터 좀 물러서서  유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행로의 비애에 잠길 때  술이 근친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목에서 그렇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는 농경사회를 한참 벗어나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 사회에 흠뻑 빠져 있는 우리 시객들의 영원한 숙제인 것을.  더구나 이로 인한 핵가족화 속에서 자란 젊은 시객들은 오죽할 것인가.  고은 씨가 안타까워하듯이  “시가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 터져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가슴에서 터져나오게 하려면  지나치게 술에 의존해서는 이룰 수가 없다.  지나친 음주는 가슴을 피폐하게 만든다.  피폐해진 가슴에서 어찌 제대로 된 시가 터져나올 수 있겠는가.  따라서 시객들은 시를 짓겠다는 미명하에 지나치게 술꾼들이 되어선 안된다.  술꾼 대신 삶꾼이 되어야 한다.  삶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삶꾼이 되어야 한다.  술에 흐물흐물 취해 가는 방랑자가 되지 말고,  삶에 촉촉하게 배어 가는 유랑자가 되어야 한다.  1809년 유배 당시, 기근으로 허덕이는 민초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자  「田間紀事」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이  “음풍농월을 일삼는 시인의 시는 이미 시가 아니다”며,  민초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과 여자와 가무로 일관한  당시의 시객들에게 단호히 선언했음을 우린 아직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가슴에서 시가 터져나오게 하는 진정한 길은 술이 아니라  맑은 가슴과 맑은 정신으로 오직 만상(萬象)의 삶을 흠모하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악다구니판이라 해도  절대로 술을 그것의 도피처로 삼아선 안된다.  수행의 계율과 윤리를 초월한, 진정한 시객의 모습도 그렇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단코, 시객의 삶은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464    <신발> 시모음 댓글:  조회:4695  추천:0  2015-04-26
  + 구두에 관하여 내 신발은 어느 늙은 소의 가죽을 잘라 만든 것, 내가 걸어다닌 길들의 역사, 내 육체의 발이 오래 길들인 애인, 일몰의 시각에 저 혼자 외로운 추락의 왕자, 신발이 어느 날 갑자기 무겁다. 문 앞에 기운 없이 웅크리고 있는 헐벗은 개 한 마리, 세상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발은 불안한 바람을 딛고, 기우뚱 발은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을 딛고, 기우뚱 발은 공중변소도 다녀왔고, 길에 함부로 버려진 오물도 밟는다. 내 신발은 무겁다, 그것의 뒤축은 닳고 그것은 내 걸음걸이의 오랜 습관을 말해준다. 한밤중의 빈 구두는 말이 없다. 침묵 속에 숨은 한숨과 비명 소리를 듣는다. 이미 저를 많이 버린 구두는 비천하다, 삶도 저와 다를 바 없다. 시간은 모두 질기고 뻣뻣한 것들을 부드럽게 만든다. 굴종의 편안함이여, 헛된 욕망의 끝없음이여 그러나, 언제까지 굴종 속에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오래 신어 이미 발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여, 네 몸의 일부는 오래 닳고, 내 걸음걸이는 가끔 기우뚱거린다.  (장석주·시인, 1954-) + 구두 한 켤레의 시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쑬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곽재구·시인, 1954-) + 네 켤레의 신발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늘 만져서 반짝이는 찻잔, 잘 닦은 마룻바닥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리 내는 창문 안에서  이제 스무 해를 함께 산 부부가 식탁에 앉아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긴 휘파람으로 불어왔는지, 커튼 안까지 달려온 별빛으로  이마까지 덮은 아들의 머리카락 수를 헬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아늑한가  시금치와 배추 반 단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마음으로 외는 시간이란 얼마나 넉넉한가  흙이 묻어도 정겨운, 함께 놓이면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식구인  네 켤레의 신발  (이기철·시인, 1943-) + 구두 한 짝  비 맞고 있다 개나리 덤불 후미진 데 버려진 구두 한 짝, 발이 아닌 흙덩이를 신었다 어디서 어떻게 기막히게 알았는지 어린 채송화가 와 뿌리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의 추억과 냄새가 눈시울을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끈 떨어지고 뒤축 닳은 뒤에도 세상 넓어 누울 곳 남았는지 채송화 거처로서 별 불평 없다 사실, 사람이 신지 않으면  구두는 아무도 밟지 않는다 사람만이 구두를 신고 무언가 짓밟는다 그럴 때마다 구두는 허리끈 풀며 가까스로 발벗는 꿈에 젖었었다 다시 사람 꿈을 이제 꾸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구두 한 짝, 그 채송화네 집 처마 끝으로 빗방울 소리 수런수런 내리고 있다. (이진수·시인)                 + 신발의 꿈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 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차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해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밟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강연호·시인) + 신발論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마경덕·시인) + 신발 벗고 들어가는 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든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황지우·시인, 1952-) + 상가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유홍준·시인, 1962-) + 향해일지 영안실 뒤뜰에 노아의 방주 떠 있다. 들어선다. 뒷굽 안쪽까지 젖은 구두는 벗어두고 벌써부터 구김살이 움켜쥔 넥타이는 풀어둔다. 없는 게 없다. 뻘건 국물엔 오늘 아침 잡았다는 소의 옆구리가 뜨고 붉은 화투패에선 화사한 꽃들이 피었다 진다. 환호성도 터진다. 투망한 화투패로 한 두릅 싱싱한 지폐를 낚아 올리고 푸른 새벽이 와도 충혈된 눈은 감길 줄 모른다. 기우뚱! 기울어진다. 배가 세찬 풍랑을 만날 때마다 승객들은 기우는 쪽으로 쓰러져 불편한 새우잠이 든다 이제 나서야 한다. 뒤엉킨 신발 속에서 용케 딱 맞는 구멍을 찾아내고 아직 하품이 덜 끝난 구두 속에 발을 쑤셔 넣는다. 어디로 가는가? 몸무게라도 재듯 잠시 구두 속에 서 있으면 어느새 내 몸은 긴 돛대가 되어 255미리 배 두 척 끌고 또 어디로 힘겨운 출항을 하려는가? 허공을 떠가는 고인의 배 한 척, 상주는 발인을 걱정하는데 빗줄기는 굵어진다. 다시 삶으로 회항할 수 있다면 (김종보·시인, 경기도 화성 출생)
463    현대 그리스문학 대표 시인 - 니코스 카잔차키스 댓글:  조회:4965  추천:0  2015-04-26
편도나무에게 -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스물 하고도 다섯 살 때 출판사 편집부 말단으로 들어갔더니, 첫 일감이 낯선 그리스 작가의 자서전 교정이었다. 이 낯선 작가의 삶은 피의 려로(旅路)이고, 령혼은 사상과 리념의 격전지였다. 단박 이 낯선 작가에게 홀려 전집을 내자고 출판사 사장을 꼬드겼다. 그가 태어난 저 멀고 먼 크레타 섬에 꼭 가보리라고 했지만 정작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꿈은 기어코 이루어지는 것인가. 마침내 재작년 여름, 크레타 섬에 갔다! 카잔차키스의 소박한 돌무덤 앞에 서 있는 묘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살아 있을 때 작가가 직접 쓴 묘비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출생 1883년 2월 18일  그리스 크리티 이라클리오 사망 1957년 10월 26일  독일 프라이부르크 직업 소설가, 시인, 정치가 국적  그리스 주요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미할리스 대장》, 《전쟁과 신부》 외 배우자 갈라테아 알렉시우(1926년 이혼), 엘레니 사미우(1945년 결혼)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어: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1]   목차   [숨기기]  1 생애와 문학세계 1.1 태어나서 제1차 세계 대전 까지 1.2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을 때까지 1.2.1 공산주의 경도 1.2.2 제2차 세계대전과 내전 1.2.3 사회주의 운동과 결혼 1.2.4 교회의 박해 1.2.5 별세 1.3 문학세계 2 남긴 말 3 저작 3.1 소설 3.2 여행기 3.3 서사시, 희곡, 자서전     생애와 문학세계 태어나서 제1차 세계 대전 까지   이라클리오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1883년 오스만 제국 치하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는 곡물과 포도주 중개상으로 중산층에 속했다. 그는 크리티 섬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902년 아테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도중 수필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합》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희곡도 쓰기도 했다. 1907년에는 파리로 유학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다. 1911년 그리스로 돌아와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결혼했으며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베니젤로스 총리 비서실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17년 고향 크리티 섬에 돌아와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요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었으며, 이것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하였다.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에 의해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차대전 평화 협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베니젤로스의 자유당이 선거에 패배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파리로 갔으며 그 후 유럽을 여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 경도 빈에 체재하는 도중 1922년 그리스 터키 간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전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동경으로 러시아 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1925년, 1928년에는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루사코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비에트 체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내전 1926년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이혼했으며 이후 프랑스어와 그리스어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1940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일시적으로 민족주의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으며 1944년 독일군이 그리스에서 철수하자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때 12월 사태로 알려진 내전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사회주의 운동과 결혼 이후 정치로 다시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소풀리스 연립정부의 정무 장관으로 임명된다. 1946년 정무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해, 그리스 작가 협회는 카잔차키스와 앙겔로스 시겔리아노스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동반자였던 엘레니 사미우와 결혼했다. 교회의 박해 1953년 소설 《미할리스 대장》이 발간되자 그리스 정교회는 맹렬히 카잔차키스를 비난했으며 이듬해 로마 가톨릭 교회도 《최후의 유혹》을 금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그리스에서 일시적으로 출간되지 않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의 말을 인용해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1955년에는 그리스 왕실의 도움으로 《최후의 유혹》이 그리스에서 발간되었다. 별세 1956년에는 국제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7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여행했으며 일본을 경유해 돌아오는 도중 백혈병 증세를 보여 급히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때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만나기도 했다. 고비를 넘겼으나 독감에 걸려 10월 26일 독일에서 사망했다. 문학세계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탐구, 한계에 저항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줄거리 전개보다는 사상의 흐름을 강조했으며, 1951년과1956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후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최후의 유혹》과 《그리스인 조르바》,《오디세이아》(시)가 있다. 이중 소설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으로부터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문당할 만큼 당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니코스 카찬차키스는 교회로부터 반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았어도, 평생 자유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극작으로 1946년에 , 1959년에는 , 1962년에는 가 각기 상연되었다. 남긴 말   카잔차키스의 묘비 비문. 생전에 미리 써놓은 묘비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저작 소설 《향연》 《토다 라바》 《돌의 정원》 (1936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1940년) 《크노소스 궁전》 (1940년) 《그리스인 조르바》(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1943년) 《수난》 《미할리스 대장》(Ο καπετάν Μιχάλης) (1953년) 《최후의 유혹》(Ο τελευταίος πειρασμός) (1951년) 《성자 프란체스코》 《전쟁과 신부》 여행기 《스페인 기행》 《지중해 기행》 《러시아 기행》 (1940년) 《모레아 기행》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 서사시, 희곡, 자서전 《오디세이아》(Οδύσσεια) (1938년) 《붓다》 《소돔과 고모라》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의 편지》
462    <<삼류 트로트 통속 야매 련애시인>> 댓글:  조회:5204  추천:0  2015-04-26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작가   류근 출판   곰 발매 2013.07.30      겨우 100만부 팔리는 무협지 한권 만 쓰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고 있는 자칭 인 류근의 산문집을 만났다. 시인으로 등단 한지  22년이지만 그가 그동안 출간 한 책은 이 책을 포함해서 단 두권 뿐이다. 첫 시집이 줄간 되기까지 무려 18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골때린다. 술 안마실 때만 골라 쓰느라 18년이나 걸렸다는 거다.  술을 얼마나 마시길래 그런걸까?라는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 금세 풀린다. 매일 매일을 술과 함께 하기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그의 일상. 정말 술을 마셔도 너무 마신다. 어금니 하려고 3년간 모아 두었던 돈도 술값으로 탕진하는 저자. 월세가 밀려 쫓겨나게 생겼어도 술만큼은 밀리지 않는, 일주일의 반 이상 필름 끊긴 폐인의 일상을 사는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류근을 알게 된건 그의 책이 아니라 책에서도 등장하는 소설가 겸 시인 김도언의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를 통해서다.  김광석의 노래'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작사한 류근이 산문집을 집필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한 산문집이 나올거 같다는 기대를 하면서 출간이 되면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있다가,책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저자는 중학교때 장래희망이 시인이 되고 부터는 절대로 욕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책엔 욕이 넘쳐난다. 무수히 많은 욕이 있지만 그가 시종일관 내 뱉는 욕은 '조낸 시바'다. 그의 글은 대부분이 이 욕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욕은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읽는 즐거움을 주는 조미료 역활을 톡톡히 한다. 비가 오는 날은 비의 사람과,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의 사람과  꽃이 피는 날은 꽃의 사람과 햇살이 눈물나게 좋은 날엔 햇살의 삶과 술을 마신다는 저자. 구속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사는 그의 삶. 구군가는 부러워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왜 저러고 사냐고 혀를 찰 수 도 있는 그의 코미디 같은 일상을 만나면서 시인은 어떻게 사는지 엿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 ,'술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는 제목이 더욱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이 책은 그의 책들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될듯하다.  18년만에 나온 시집이 7쇄 인쇄가 되어 수입이 생긴다고 무척이나 좋아 하던 저자. 그런데 이 책은 출간된지 불과 2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7쇄를 넘어 섰으니 어디선가 기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있을 듯 하다. ---------------------------------------------------------------------   가족의 힘    류근 ​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 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 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 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 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 ----------------------------------------------   시인들       류근   이상하지 시깨나 쓴다는 시인들 얼굴을 보면 눈매들이 조금씩 찌그러져 있다 잔칫날 울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심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이 악물고 버티는 여자처럼 얼굴의 능선이 조금씩 비틀려 있다   아직도 일렬횡대가 아니고선 절대로 사진 찍히는 법 없는 시인들과 어울려 어쩌다 술을 마시면 독립군과 빨치산과 선생과 정치꾼이 실업자가 슬픔이 과거가 영수증이 탁자 하나를 마주한 채 끄덕이고 있는 것 같아 천장에 매달린 전구알조차 비현실적으로 흔들리고 빨리 어떻게든 사막으로 돌아가 뼈를 말려야 할 것 같다 이게 뭐냐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울어야 할 것 같다   -----------------------------------------------------     반가사유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겠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 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향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     너무 아픈 사랑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 없는 것 다만 사랑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 벌레처럼 울다        류근    벌레들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 우는 것으로 생애를 다 살아버리는 벌레들은 몸 안의 모든 강들을 데려다 운다 그 강물 다 마르고 나면 비로소 썩어도 썩을 것 없는 바람과 몸을 바꾼다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남김없이 썩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다   풍금을 만나면 노래처럼 울고 꽃나무를 만나면 봄날처럼 울고 사랑을 만나면 젊은 오르페우스처럼 죽음까지 흘러가 우는 것이다 울어서 생애의 모든 강물을 비우는 것이다   벌레처럼 울자 벌레처럼 울어서 마침내 화석이 되는 슬픔으로 물에 잠긴 한세상을 다 건너자   더듬이 하나로 등불을 달고 어두워지는 강가에 선 내 등뼈에 흰 날개 돋는다   ------------------------------------------------   법칙                      류근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허공에 흩어진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구름에 매달린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빗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허공에 흩어진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잎사귀에 매달린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물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인다 사는것도 죽는것도 한 몸 우주 안에서   도망갈 데가 없다 -------------------------------------------------   영화로운 나날   류근     가끔은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갈 곳 없는 아침이었다 혼자서 객석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더러는 중년의 남녀가 코를 골기도 하였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갈 곳은 생각나지 않아서 혼자 순댓국집 같은 데 앉아 낮술 마시는 일은 스스로를 시무룩하게 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날은 길었다 다행히 밤이 와 주기도 하였으나 어둠 속에서는 조금 덜 괴로울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든 내가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공연했다 심야 상영관 영화를 기다리는 일로 저녁 시간이 느리게 가는 때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식민지 출신이었다 아프리카엔 우리가 모르는 암표도 많을 것이다 입을 헹굴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다 나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어떤 밤엔 화해를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도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지나갔다는 것 때문에 퍽 안심이 되었다 심야 상영관에서 나오면 문을 닫은 꽃집 앞에서 그날 팔리지 않은 꽃들을 확인했다 나 또한 팔리지 않으나 너무 많이 상영돼 버린 영화였다     ------------------------------------------------------- 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 그리운 우체국                류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은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   -----------------------------------------------------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류근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친구여 나는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당대의 승차권을 기다리다 세월 버리고 더러는 술집과 실패한 사랑 사이에서 몸도 미래도 조금은 버렸다 비 내리는 밤 당나귀처럼 돌아와 엎드린 슬픔 뒤에는 버림받은 한 시대의 종교가 보이고 안 보이는 어둠 밖의 세월은 여전히 안 보인다 왼쪽 눈이 본 것을 오른쪽 눈으로 범해 버리는 붕어들처럼 안 보이는 세월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무서운 은둔에 좀먹고 고통을 고통이라 발음하게 될까 봐 고통스럽다 그러나 친구여 경건한 고통은 어느 노여운 채찍 아래서든 굳은 희망을 낳는 법 우리 너무 빠르게 그런 복음들을 잊고 살았다 이미 흘러가 버린 간이역에서 휴지와 생리대를 버리는 여인들처럼 거짓 사랑과 성급한 갈망으로 한 시절 병들었다 그러나 보라, 우리가 버림받는 곳은 우리들의 욕망에서일 뿐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고통으로 능히 한 생애의 기쁨을 삼는다는 것을 이발소 주인은 저녁마다 이 빠진 빗을 버리는 일로 새날을 준비하고 우리 캄캄한 벌판에서 하인의 언어로 거짓 증거와 발 빠른 변절을 꿈꾸고 있을 때 친구여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     ------------------------------------------------------   폭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출처] 류근 시인의 시 모음|작성자 느낌표   [출처]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작성자 난가능성  
461    詩여, 침을 뱉어라! 댓글:  조회:4589  추천:0  2015-04-25
     시여, 침을 뱉어라                             / 김수영                       -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 나의 시에 대한 사유(思惟)는 아직도 그것을 공개할 만한 명확한 것이 못 된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이러한 나의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나의 정신구조의 상부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 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교회당의 뾰족탑을 생각해 볼 때, 시의 탐침(探針)은 그 끝에 달린 십자가의 십자의 상반부의 창끝이고, 십자가의 하반부에서부터 까마아득한 주춧돌 밑까지의 건축의 실체의 부분이 우리들의 의식에서 아무리 정연하게 정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작상(詩作上)으로는 그러한 명석(明晳)의 개진은 아무런 보탬이 못 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는 그는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우리들이 오늘의 세미나의 논제인, 시에 있어서의 형식의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 ----즉, 노래----이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로 하는 것이 아니고 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으로 하는 것이다. 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 ----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의 대답은 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 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시를 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나는 이미 는 것이 시의 형식을 대표한다고 시사한 것만큼, 는 것이 시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전제를 한 폭이 된다. 내가 시를 논하게 된 것은 ----속칭 이나 을 쓰게 된 것은 ----ㅡ극히 최근에 속하는 일이고, 이런 의미의 는 것이 시의 내용으로서 는 본질적인 의미에 속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그것을 제1의적인 본질적인 의미 속에 포함시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논지의 진행상의 편의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말은 세계의 개진(開陳), 하이데거가 말한 의 반대되는 말이다. 엘리엇의 문맥 속에서는 그것은 의미 대 음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엘리엇도 그의 온건하고 주밀한 논문 「시이 음악」의 끝머리에서 라는 말로 의 토를 달고 있다. 나의 시론이나 시평이 전부가 모험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들을 통해서 상당한 부분에서 모험의 의미를 연습을 해보았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나는 시단의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참여시의 옹호자라는 달갑지 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이다. 이 말은 사랑의 유보(留保)로서의 의 매력만큼 매력적인 말이다. 시에 있어서의 산문의 확대작업은 의 유보성에 대해서는 침공적(侵攻的)이고 의식적이다. 우리들은 시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공간적으로 상상해서, 내용이 반, 형식이 반이라는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의 유보성, 즉 예술성이 무의식적이고 은성적(隱性的)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반이 아니다. 예술성의 편에서는 하나의 시작품은 자기의 전부이고, 시의 본질은 이러한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의 예술성이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가 시의 기교에 정통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기교라는 것이 그것을 의식할 때는 진정한 기교가 못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자기의 시인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사람이 자기의 전신을 바라볼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는 것은 남들이고, 소재이고, 현실이고, 신문이다. 그것이 그의 의식이다. 현대시에 있어서는 이 의식이 더욱더 정예화(精銳化) ----때에 따라서는 신경질적으로까지----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이 없거나 혹은 지극히 우발적이거나 수면(睡眠) 중에 있는 시인이 우리들의 주변에는 허다하게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나는 현대적인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대에 있어서는 시뿐만이 아니라 소설까지도 모험의 발견으로서 자기 형성의 차원에서 그의 을 제시하는 것이 문학자의 의무로 되어 있다. 지극히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산문을 도입하고 있고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가 없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도,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되지만, 는 말은 사실은 이 하는 말이 아니라 이 하는 혼잣말이다. 이 말은 밖에 대고 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는 을 정복할 수 있고, 그때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간신히 성립된다. 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한다. 이 것을 계속해서 지껄이는 것이 이를테면 38선을 뚫는 길인 것이다. 낙숫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듯이, 이런 시인의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닐 때가 온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하고 외우다 보니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고 시의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그러한 시의 축적이 진정한 민족의 역사의 기점(起點)이 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참여시의 효용성을 신용하는 사람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까 서두에서 시에 대한 나의 사유가 아직도 명확한 것이 못되고, 그러한 모호성은 무한 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의 탐색이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의 주장에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을 못 주고 있다. 이 시론은 아직도 시로서의 충격을 못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태까지의 자유의 서술이 자유의 서술로 그치고 자유의 이행을 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자유이 이행에는 전후좌우의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 원군(援軍)이다. 원군은 비겁하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성립이 사회조건의 중요성을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다음과 같은 평범한 말로 강조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 나오는 기인이나 집시나 바보 멍텅구리는 과 을 논한 나의 문맥 속에서는 물론 후자 즉, 에 속한다. 그리고 나의 판단으로는,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우리의 주변에서는 기인이나 바보 얼간이들이 자유당 때하고만 비교해 보더라도 완전히 소탕되어 있다. 부산은 어떤지 모르지만 서울이 내가 다니는 주점은 문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이름난 집인데도 벌써 주정꾼다운 주정꾼 구경을 못한 지가 까마득하게 오래된다.  주정은 커녕 막걸리를 먹으로 나오는 글쓰는 친구들의 얼굴이 메콩 강변의 진주를 발견하기보다도 더 힘이 든다. 이러한 의 해독은 문학주점에만 한한 일이 아니다.   그레이브스는 오늘날의 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없는 것을 개탄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는 것이다. 나는 자유당때의 무기력과 무능을 누구보다도 저주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도 자유는 없었지만 은 지금처럼 이렇게 철저하게 압제를 받지 않은 것이 신통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없는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의 건설은, 시멘트 회사나 발전소가 없는 혼란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의 향수가 문화의 세계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징조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발효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인 것이다.   시는 온몸으로 ,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시인은 이라는 아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에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460    공자 시 어록 댓글:  조회:5440  추천:0  2015-04-23
『시경』을 게재하며                  --/『논어』에 언급된 공자의 시 관련 어록 (...공부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침잠완색(沈潛玩索)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詩는 글자 그대로 믿을(寺) 수 있는 말(言)로, 뜻을 말하는 것(言志)이며, 노래가 말을 길게 빼는 것(歌, 永言)이다. 시가는 곧 노랫말을 읊는 것이다. 『시경』은 고대 중국에서 불렀던 노랫말로 가장 오래된 노랫말을 담고 있다. 노랫말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교화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므로 공자는 이를 중시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삼경(시경 ․ 서경 ․ 역경) 혹은 오경(삼경+예기+춘추), 육경(오경+악기)중의 하나인 『시경』은 공자가 당시 유행하던 노래 3천여 편을 수집하여 산시서(刪詩書), 곧 깎아낼 것은 깎아내고 교육이 될 만한 것은 모아서 그중 311편만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으로 크게 風(국풍 정풍) 雅(소아 대아) 頌으로 나뉜다.  “詩三百에 一言以蔽之면 曰思無邪라”  공자는 『시경』 삼 백편을 다 편집하고 난 뒤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思無邪’라고 하였다(『논어』위정편 제2장). 『시경』의 글들이 “興也ㅣ라 賦也ㅣ라”하고 끝나 마음이 흥기되어 즐겁기는 하지만 關雎(관저)장에서 보듯이 음탕한 데로 흐르지 않고[樂而不淫], 슬프게 했어도 상하는 일이 없고[哀而不傷], 군자가 숙녀를 그리는 마음이 삿될 것 같은 데도 삿된 곳으로 흐르지 않음을 이른 말이다(『논어』팔일편 제20장).  공자가 시를 매우 중요히 여겼음은 『논어』 곳곳에 인용된 글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는데, 위에 인용된 글 말고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子ㅣ 曰誦詩三百호대 授之以政에 不達하며 使於四方에 不能專對하면 須多ㅣ나 亦奚以爲리오 (공자 가라사대 시 삼 백편을 외우되 정사로써 줌에 통하지 못하며, 사방으로 부림에 능히 오로지 대하지 못하면 비록 많으나 또한 무엇에 쓰리오. - 자로편 제5장) [해설]  시경 삼백 편은 정치하는 법을 비유한 노래이다. 삼백 편을 달달 외우면서도 정치를 맡겨놓으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방 여러 나라의 사신이 되어 나갔을 적에 외교를 능수능란하게 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겠는가? “子ㅣ 曰小子는 何莫學夫詩오 詩는 可以興이며 可以觀이며 可以群이며 可以怨이며 邇之事父ㅣ며 遠之事君이오 多識於鳥獸草木之名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너희들은 어찌 시를 배우지 아니하는고? 시는 가히 흥기함이며, 가히 써 관찰함이며, 가히 써 무리하며, 가히 써 원망함이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며, 멀리는 인군을 섬기고, 조수와 초목의 이름에 대하여 많이 아니라. - 양화편 제9장) [해설] 공자는 시의 중요성을 알고 제자들에게 시를 공부하도록 하였다. 시를 읽으면 흥기되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와 더불어 화합하지만 함께 어울려 방탕한 짓은 하지 않고, 억울한 일에 대해 원망할 줄은 알지만 그로 인해 성내며 상하게 하는 일은 없을뿐더러, 부모를 섬기고 인군을 섬기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로되며, 정서가 풍부해져 아는 것이 많아진다. “子ㅣ 謂伯魚曰女ㅣ 爲周南召南矣乎아 人而不爲周南召南이면 其猶正牆面而立也與인저(공자가 백어에게 일러 가로대 네가 주남 소남을 했는가? 사람이면서 주남 소남을 하지 아니하면 그 바로 담을 향하여 서 있는 것과 같을진저. - 양화편 제10장) [해설] 시 삼백편 가운데 처음에 나오는 국풍편의 주남장과 소남장을 읽으면 시를 다 공부했다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대목이다. 위 글은 공자가 아들인 백어에게 한 말로, 바로 담을 향하여 선다는 것은 그 지극히 가까운 땅에 이르러서도 하나의 물건도 보지 못하고,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음을 이른 말이다. 끝으로 『시경』의 시 해석에 탁월했던 맹자는 ““說詩者는 不以文害辭하며 不以辭害志오 以意逆志라야 是得之矣라 / 시를 해설하는 자는 문으로써 말을 해하지 말며, 말로써 (지은이의) 뜻을 해하지 말고, (나의, 읽는 자의) 뜻으로써 (지은이의) 뜻을 志를 맞이하여야 이 얻음이 되니라(『맹자』만장상편 제4장)”라고 말하였듯이 지은이의 뜻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459    詩란 惡魔의 酒... 댓글:  조회:4924  추천:0  2015-04-23
    [1] 시는 악마의 술이다. 《A.아우구스티누스/반회의파 反懷疑派》  [2] 시를 쓰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건 낚시질하고 똑같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수확이 되는 법이거든. 《E.크라이더/지붕 밑의 무리들》  [3]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호라티우스/시론 詩論》  [4] 시는 신(神)의 말이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운문(韻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充溢)한다. 미와 생명이 있는 곳에는 시가 있다. 《I.S.투르게네프/루딘》  [5] 나의 시는 어지럽지만 나의 생활은 바르다. 《M.V.마르티알리스/풍자시집 諷刺詩集》  [6] 시란 것은 걸작이든가, 아니면 전연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J.W.괴테》  [7] 위대한 시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 《L.베토벤》  [8] 시는 거짓말하는 특권을 가진다. 《플리니우스》  [9] 시란 미(美)의 음악적인 창조이다. 《E.A.포》  [10] 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인다. 《E.A.포》  [11] 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R.W.에머슨》  [12]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P.B.셸리》  [13] 시란 그 시를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상의 심벌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W.C.브라이언트》  [14] 즉흥시는 진정 재지(才知)의 시금석(試金石)이다. 《J.B.P.몰리에르》  [15]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 《C.P.보들레르》  [16]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C.P.보들레르》  [17] 감옥에서는 시는 폭동이 된다. 병원의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다.       시는 단순히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시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이 된다. 《C.P.보들레르/낭만파(浪漫派) 예술론(藝術論)》  [18]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르》  [19] 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시구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P.클로델/입장(立場)과 제언(提言)》  [20] 나는 부재(不在)를 위해서 제기된 언어다. 부재는 모든 나의 재행사(再行使)를 격파한다.        그렇다. 그것은 다만 언어뿐이라는 것의 재빠른 소멸이다.        그리고 그것은 숙명적인 오점이며 헛된 완성이다. 《Y.본푸아》  [21] 시의 세계는 식물계, 이것은 또한 지상의 사랑과 미의 왕국이다. 《R.기카드》  [22]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선 안 된다. ……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J.C.F.실러》  [23] 과학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진리를 획득하고 전달하는 것이며,        시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즉흥적인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이다. 《S.T.콜리지》  [24] 내용이 끝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황금어의 피안에, 도시 성곽의 외부에, 토론의 형자(形姿)를 뒤로        하고, 사고 체계를 벗어나서 신비로운 장미는 개화한다. 서릿발의 열기(熱氣) 속에,        도배지의 희미한 무늬 속에, 제단의 뒷벽 위에, 피어나지 않는 불꽃 속에 시는 존재한다. 《M.아널드》  [25] 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 《M.아널드》  [26] 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M.아널드》  [27]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28] 말은 어느 편이냐 하면, 시의 수면기를 재촉하는 부분이며, 상상(想像)이 시의 생명이다.       《O.펠섬/각오 覺悟》  [29] 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P.B.셸리/시가옹호론 詩歌擁護論》  [30] 고대인의 시는 소유의 시며, 우리들의 시는 동경의 시다. 전자는 현재의 지반 위에 굳게 서지만,        후자는 추억과 예감의 사이를 흔들려 움직이고 있다. 《A.W.슐레겔》  [31] 시란 어휘를 사용하여 상상력 위에서 하나의 환상을 산출해 내는 예술을 의미한다. 《T.B.매콜리》  [32]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은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33]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줍니다. 《W.셰익스피어》  [34]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5] 시인의 시는 국어처럼 직접적이고 자연스런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6] 나에게 있어서 시는 목적이 아니고 정열이다. 《E.A.포》  [37] 시적(詩的)이 아닌 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A.지드/사전(私錢)꾼》  [38] 시는 모든 예술의 장녀(長女)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친이다. 《W.콩그리브》  [39] 만약 사람이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때부터 그대는 아름다운 생(生)을 알게 된다.     《J.F.아이헨도르프》  [40] 도덕적인 시라든가 부도덕한 시라든가에 대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시는 잘 쓰여져 있는가 아니면        시원찮게 쓰여져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O.F.O.W.와일드/영국의 르네상스》  [41] 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스프라트》  [42] 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 《R.M.릴케》  [43]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4] 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5] 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J.콕토/암살(暗殺)로서의 미술(美術)》  [46] 열여덟 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은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나는 가끔 시를, 갱도(坑道) 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 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성자여야 합니다. (*장 콕토와의 인터뷰) 《P.토인비》  [47] 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 《C.샌드버그》  [48] 시는 근본적인 언어방법이다. 그것에 의해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M.C.무어》  [49] 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다. 《T.S.엘리엇/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간략사전(簡略辭典)》  [50]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T.S.엘리엇/전통(傳統)과 개인(個人)의 재능(才能)》  [51] 시의 세계로 들어온 철학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 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에서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T.S.엘리엇/평론선집 評論選集》  [52]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T.S.엘리엇/시(詩)의 효용(效用)과 비평(批評)의 효용(效用)》  [53] 시란 「무엇은 사실이다」 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T.S.엘리엇》  [54] 리듬과 운율은 시에 있어 인위적이며 외면적인 첨가물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때 이들은 점점 더 무미하게 되어 드디어는 경시적이고 방해적 요소가 되고 만다. 《F.S.플린트》  [55] 나는 정서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감각 속에 작자가 느낀 것에 상응하는 하나의 진동을 일으키는 것――시의 특유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A.E.하우스먼》  [56]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 《I.A.리처즈》  [57]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로 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H.오든》  [58] 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시론 詩論》  [59]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 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뀐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M.하이데거/횔덜린과 시(詩)의 본질(本質)》  [60] 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J.키츠》  [61] 아무리 시시한 시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이해한다면 좋은 시를 읽어 버림으로써 받은 인상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나. 내가 시를 읽고 싶지 않을 때, 시에 지쳤을 때, 나는 항상 자신에게다 그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이르는 바일세. 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진행중일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하네. 그래서 언젠가 어느 순간에 내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 그 훌륭한 감정을 꺼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B.A.W.러셀/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對話)》  [62] 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난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E.스펜서》  [63] 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S.브리지스》  [64] 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 《B.존슨》  [65] 시는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법칙과 패턴을 제공해 준다. 《B.존슨》  [66] 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J.드라이든》  [67] 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는 언어이다. 《E.A.로빈슨》  [68] 한 편의 시는 그 자체의 전제(前提)를 훌륭하게 증명해 놓은 것이다. 《S.H.스펜더/시(詩)를 위한 시(詩)》  [69] 시는 결국 야회복을 입은 산문은 아니다. 《J.콕토》  [70] 실러는 어떤 편지에서(괴테에게 쓴 것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시적(詩的)인 기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실러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시적인 기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연을 받아들일 때의 기분이고, 사상이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동하고 있다고 느낄 때의 기분일 것이다. 《L.비트겐슈타인/반철학적(反哲學的) 단장(斷章)》  [71] 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무 데에서도 찾지 못한다. 《J.주베르/팡세》  [72] 미합중국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詩)이다. 《W.휘트먼/풀잎》  [73] 위대한 시는 아주 오래오래 공동의 것이고, 모든 계급과 얼굴색을, 모든 부문과 종파를, 남자만큼이나 여자를, 여자만큼이나 남자를 위한 것이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W.휘트먼/풀잎》  [74] 언어는 이미 강제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으로 시는 보편화를 체현(體現)하고 사상에 활기를 주고, 다시 말하자면 우수한 실재(實在), 실제의 세계보다 고귀하고 더 선택된 세계를 낳게 된다. 시는 신자(信者)의 눈으로 볼 때 종교적 신앙이 부활에서 기대하는 효능을 사물에 대해서 부여한다. 시는 사물을 더욱 아름답고 순수하고 위대한 것으로 표현하며, 불멸성의 후광(後光)으로 이것을 둘러싼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른 생활양식의 예언자, 변용을 이루는 자연과 인간의 직관자이지만 산문은 이 세계의 언어이다. 시인은 올림포스의 주민이 한때 하계(下界)에서 생활을 한 자이며, 테살리아의 페레스 왕 아드메도스 곁에서 양을 지키는 아폴론이다. 거기서 시를 신들의 언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문자 그대로 진실인 것이다. 《H.아미엘/일기 日記》  [75]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시도 경탄을 강요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6] 몇 개의 발성으로 마치 주문(呪文)과도 같이 세속언어와는 별개의 새롭고 온전한 어휘를 재창조하는 시구는 말의 완전한 독립을 이룩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7] 비전의 확장. 《K.지브란/나는 네 행복(幸福)을 기린다》  [78] 빅토르 위고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표현은 일종의 기이함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 작품에 그런 직접적 표현이 범람하고 있으면 그 작품 전체의 시적 아름다움을 말살하고 말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79] 시는 이해하기보다도 짓기가 더 쉽다. 《M.E.몽테뉴/수상록 隨想錄》  [80] 시라는 것은 시적 천재 그 자체로부터 생기는 특성이며, 이와 같은 시적 천재가 곧 시인 자신의 시혼에 비치고 있는 심상(心像)이나 사상 또는 정서를 사로잡아서 이것을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S.T.콜리지/시(詩)의 철학적(哲學的) 정의(定義)》  [81] 시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이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82] 위대한 시에는 이러저러한 것――깊은 생각, 훌륭한 소리, 또는 생생한 이미저리(imagery)――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은 한낱 무지몽매한 독단에 불과하다. 시는 생각이 없을 경우는 물론이고 의미가 없을 경우에도 거의 성립할 수 있고, 혹는 감각적(또는 형식적) 구조 없이도 「거의」 성립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도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극점(極點)까지 도달한다. 《I.A.리처즈/시(詩)의 분석(分析)》  [83]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맥뤼시/시론 詩論》  [84] 시(詩)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詩篇)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 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험들은 끝없는 서론(緖論)으로 준비되는 것인 데 비하여 시는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거부한다. 시는 의혹을 거부한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떤 침묵의 서두(序頭) 정도이다. 우선 시는 속이 텅 빈 말을 두드리면서, 독자의 영혼 속에 사고(思考)나 중얼거림의 어떤 계속성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산문(散文)과 서투른 멜로디를 침묵시킨다. 그러고 나서 진공(眞空)의 울림을 거쳐서 시는 저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G.바슐라르/시적(詩的) 순간(瞬間)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순간(瞬間)》  [8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詩)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論語 爲政篇》  [86] 고시(古詩)는 충후(忠厚)를 주로 했다. 시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 그 의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기평(譏評)할 때에는 그 소위(所爲)의 악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벼슬의 존비와 차안의 미려를 들어 백성의 반응을 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식 蘇軾/동파전집 東坡全集》  [87] 시란 뜻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모시 서 毛詩 序》  [88] 시란 천지의 마음이요, 군덕(君德)의 사원이며 만물의 문호다. 《연감류함 淵鑑類函》  [89] 시부(詩賦)란 선하거나 추한 덕을 칭송하는 길이며, 슬프거나 즐거운 정을 배설하는 길이다. 《왕부 王符/잠부론 潛夫論》  [90]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백거이 白居易》  [91] 시란 정신의 떠오른 영화(英華)요, 조화의 신비한 생각이다. 《서정경 徐禎卿》  [92] 시에 아홉 가지 마땅치 않은 체격이 있으니,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한 편 안에 고인의 이름을 많이 썼으니, 이것은 한 수레 가득히 귀신을 실은 체격이다. 고인의 뜻을 모조리 앗아다 쓴 것이 있으니, 용한 도적질도 오히려 옳지 못한데 도적질조차 용하지 못하니, 이것은 서툰 도적이 잡히기 쉬운 체격이다. 어려운 운을 달기는 했는데 근거(根據)한 곳이 없다면 이것은 쇠뇌를 당겼으나 힘이 모자란 격식이다.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운을 번드레하게 달았다면 이것은 술을 제 양에 넘도록 먹은 격이다. 어려운 글자를 쓰기 좋아해서 남을 쉽게 현혹하려 했다면 이것은 함정을 파 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체격이다. 사연은 순탄하지 못하면서 끌어다 쓰기를 일삼는다면 이것은 강제로 남을 내게 따르게 하려는 체격이다. 속된 말을 많이 쓴다면 이것은 시골 첨지가 모여 이야기하는 체격이다. 기피해야 할 말을 함부로 쓰기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존귀를 침범하는 체격이다. 사설이 어수선한 대로 두고 다듬지 않았다면 이것은 잡초가 밭에 우거진 체격이니, 이런 마땅치 못한 체격을 다 벗어난 뒤에야 정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3] 무릇 시(詩)는 뜻을 주장으로 하는데, 뜻을 갖추기가 제일 어렵고 사연을 엮는 것이 그 다음이다. 뜻은 또한 기(氣)를 주장삼으니 기의 우열(優劣)에 따라 깊고 얕음이 있다. 그러나 기는 하늘에 근본하여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가 모자라는 자는 글을 만들기에만 힘쓰고 뜻을 먼저 두려 하지 않는다. 대개 그 글을 새기고 치장함에 있어서, 구절을 단청(丹靑)하면 실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깊고 무거운 뜻이 없어서 처음 읽을 때는 잘된 듯하나 두 번째 씹으면 벌써 맛이 없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4] 세상에서 말하기를, 시는 문(文)의 쇠약한 것이요 율(律)은 시의 변한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아로새기고 엮어 가는 공교함만을 가리킨 것뿐이다. 대체로 성정(性情)을 다스리고 풍속의 교화에 통달하는 일이 시 아니고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노수신 盧守愼/소재집 蘇齋集》  [95] 무릇 남겨 두는 시는, 말은 간단하고 뜻은 극진한 것을 아름답다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과장하거나 풍부하고 화려할 것은 아니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6] 시라는 것은 기(氣)를 주(主)로 한다. 기(氣)는 성(性)에서 나오고 뜻은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온다. 정이란 것은 즉 뜻이다. 그리고 신기(新奇)한 뜻은 말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다. 자칫하면 생경하고 난삽하게 된다. 그러나 문순공(文順公) 같은 이는 경사백가(經史百家)를 골고루 열람하고 그 꽃다운 향기에 삶아지고 고운 채색에 물들여졌다. 그런 까닭에 그 말은 자연히 풍부하고 고와서 비록 새로운 뜻의 지극히 미묘하고 어려워서 형상하기 어려운 곳이라도 그 말이 곡진(曲盡)하고 다 정숙(精熟)하다. 대체로 표현하는 재주가 시정(詩情)을 이기면 비록 아름다운 뜻이 없더라도 말은 오히려 원숙하지만, 시정이 표현하는 재주를 이기면 말이 비근(鄙近)하고 산만하여서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정과 재주가 겸비된 뒤라야 그 시는 볼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7] 에 이르기를, 「기(氣)는 싱싱한 것을 숭상하고 말은 원숙(圓熟)코자 하는데, 초학(初學)의 시는 기가 싱싱한 다음이라야 장년(壯年)이 되어서 기가 표일(飄逸)하고, 장년의 기가 표일한 다음이라야 노년(老年)이 되어서 기가 호탕(豪宕)하여진다.」 하였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8]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정약용 丁若鏞/증언 贈言》  [99] 대체로 두보(杜甫)의 시가 모든 시인들의 시보다도 으뜸인 점은 삼백 편의 사상을 잘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삼백 편은 모두가 충신·효자·열부·친우들의 측달충후한 사상의 표현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의지가 확립되지 못하고 학식이 순정하지 못하며 큰 도를 알지 못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가 시를 지을 수 없다. 《정약용 丁若鏞》  [100] 보기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모아 놓고 시라고 하는 것이야 비천한 잡배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는 선언이다. 만천하의 현재뿐 아니라 진미래제(盡未來際)까지의 중생에게 보내는 편지요, 선언이요, 유언이다. 《이광수 李光洙》  [101]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다. 신의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구약에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 토로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광수 李光洙/문학평론 文學評論》  [102] 작품에는 그 시상(詩想)의 범위, 리듬의 변화, 또는 그 정조(情調)의 명암에 따라, 비록 같은 한 사람의 시작(詩作)이라고는 할지라도, 물론 이동(異同)은 생기며 또는 읽는 사람에게는 시작 각개의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시작 자신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엄연한 각개로 존립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치 산색(山色)과 수면(水面)과 월광성휘(月光星輝)가 모두 다 어떤 한때의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달리 보이도록 함과 같습니다. 물론 그 한때 한때의 광경만은 역시 혼동할 수 없는 각개의 광경으로 존립하는 것도, 시작의 그것과 바로 같습니다. 《김소월 金素月/시혼 詩魂》  [103] 시란 작렬이다. 시의 생성은 아메바적 분열작용에서만 유래한다. 시와 시인은 같은 조각이다. 《김상용 金尙鎔》  [104] 시를 직업으로는 못 한다. 정절(貞節)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김상용 金尙鎔》  [105] 시란 곧 참이다. 《함석헌 咸錫憲/아름다움에 관하여》  [106]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7] 뒤집어서 말하자면 시는 새벽에 엄습하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그것을 이기는 기도, 삶 자체의 가장 순수한 보람의 사랑보다도 어느 의미에서는 더 충족적이며 순수한 자각과 생명 욕구의 가장 포괄적인 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시가 더 내적이며 더 구체적이며 더 현실적인 삶의 징표(徵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삶의 내용, 가장 선택된 마지막 낙원, 가장 가능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되는 셈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8] 시는 천계(天啓)다. 그러나 그 천계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09] 시란 지·정·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10]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 《신석정 辛夕汀/나는 시(詩)를 이렇게 생각한다》  [111] 시에 있어서의 기술이란 필경 언어 사용술을 말하는 것인데, 시상은 언어를 통하여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상에는 이미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저절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서 언어로 형성되는 시상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시가 된다. 《오지호 吳之湖》  [112] 시란 사랑이다. 《김영일 金英一/동심 童心》  [113] 시 또한 짙은 안개가 아닌가. 답이 없는 세계, 답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그 안개 같은 실재를 지금 더듬고 있는 거다. 《조병화 趙炳華/인생(人生)은 큰 안개이다》  [114] 피아노가 음악의 모체라면 시는 문학의 모체이다. 어떠한 산문작품이라 할지라도 시정신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문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흑구 韓黑鷗/싸라기 말》  [115] 시작품(포엠)이란 포에지와 의미와의 차갑고도 뜨거운 긴장에서만 우러나오는 산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포에지와 의미 사이에 벌어지는 알력 갈등의 에너지는 실인즉 전달되어야 할 가장 뜻깊은 시의 에너지인지도 모릅니다. 《신동집 申瞳集/모래성 소감(所感)》  [116] 시는 여하튼 어떤 양상에 있어서는 산문(散文)의 특징을 피하려는 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자식(棋子式)의 언어가 아니고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언어이다. 그것은 감각을 그 모양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직각(直覺)의 언어에 대한 하나의 타협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주의를 끌며, 우리들로 하여금 구상적(具象的)인 사물을 계속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우리들이 추상적 과정 안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것은 청신한 형용사나 청신한 비유를 골라낸다. 딴은, 그것이 새롭고 우리들은 낡은 것에 싫증 났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낡은 것이 구상(具象)의 것을 전달하기를 멈추고 추상적인 기자(棋子)가 되기 때문에서다. 시인은 「배가 범주(帆走)하였다」는 기자식의 말을 쓰는 대신, 「뱃길을 더듬었다」고 하여 구상적인 심상(心象)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시각적인 의미는 오직 비유의 새 그릇에 의해서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산문은 그러한 것이 새어 버리는 낡은 항아리이다. 시에 있어서의 심상은 한낱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직각적 언어의 본질 그 자체인 것이다. 시는 우리들을 데리고 지상(地上)을 걸어가는 보행자이며, 산문은 우리를 목적지로 운반하는 열차인 것이다. 《미상 未詳》  [117] 시는 현실 이상의 현실, 운명 이상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창조력은 언제나 현세적 속박의 반작용의 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어령 李御寧/통금시대(通禁時代)의 문학(文學)》  [118]「패러독스」 「아이러니」 「위트」 「메타포」 여러 가지 현대시의 무기는 새로운 신화를 우리 앞에 펼쳐 주고 있다. 《이어령 李御寧/전후문학(戰後文學)의 새 물결》  【시·묘사】  [119]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낡은 훈장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맷자락에 붙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약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시는 비등해야 하며  진실을 나타내지 않는다  슬픔의 모든 역사를 표현함에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엔  기운 풀과 바다 위의 등대불들  시는 의미해선 안 되며  존재해야 한다  《A.매클리시/시학 詩學》  [120]  사람들은 시를  조그마한 사슬에 달아  내복 밑  벌거벗은 피부 위에 달고 있다.  《A.A.숄/시집 詩集》  [121]  무상하기에 무상하지 않고  일시적이기에 결정적이며  시간적이기에 무시간적이고  단편적이기에 완전하며  무방비이기에 강력하며  모방할 수 있기에 반복할 수 없고  비논리적이기에 현실적이고  포착할 수 없기에 포착할 수 있다.  《A.A.숄/시집 詩集》  [122]  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 앞에 있다.  《R.크노/시법(詩法)을 위하여》  [123 ] 나의 시(詩)는 싸움이다. 《W.바이라우흐/나의 시(詩)》  [124]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운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촌융일 田村隆一/사천(四千)의 날과 밤》  [125]  붓 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두보 杜甫》  [126]  눈 내려 이 해도 늦어 가는데,  풍진은 하 번져서 수습 못하네.  벗님네 아스라이 서울을 떠나,  타향의 나그네로 오랜 세월을.  상대하니 문득 기쁜 얼굴이지만,  슬픈 노래 흰 머리털 어찌하리오.  소매 속에 감춰 놓은 몇 수의 시는,  방황하는 인생을 위로해 주네.  雨雪歲將晩  風塵浩未收  故人京國遠  久客異鄕遊  相對忽靑眼  悲歌堪白頭  袖中詩幾首  聊得慰淹留  《정도전 鄭道傳/삼봉집 三峯集》  [127]  한 줄기 시의 연간(聯間)을 걸어가면서  어디엔가 반짝이고 있을  나의 오늘을 나는 짚어야 한다.  《신동집 申瞳集/어떤 시(詩)》  [128] 이 고운 화병에 무엇을 꽂을 것인가. 옳지 그렇다. 시를 꽂자. 앵도알같이 열린 시를, 백합꽃같이 핀 시를, 난초잎같이 솟은 시를 멋지게 꽂는 것이 좋겠다. 《신동문 辛東門/수정화병(水晶花甁)에 꽂힌 현대시(現代詩)》  [129]  겨울 하늘은 어떤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있는 듯 없는 듯 무한(無限)은  무성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나무를 나체(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을 듯 하는 것이  시(詩)일까,  언어(言語)는 말을 잃고  잠자는 순간,  무한(無限)은 미소하며 오는데  무성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의 사건으로 떨어져 가고,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명멸하는 그것이  시일까,  《김춘수 金春洙/나목(裸木)과 시(詩) 서장(序章)》  [130]  문득 한 줄의 시가 일어섰다.  작업모를 쓰고  장갑을 끼고  시는 어둠의 진한 성감대(性感帶)를  후볐다.  잠시 후 꽃의 기침 소리가 나고  텅빈 마당이 다시 조립되는 소리가 나고  삽질하는 시의 섬광이 번쩍이고 《이규호 李閨豪/시(詩)가 아침을》  [131]더듬거리며 되찾는 한두 마디 말  말에 시가 깃드는 아픔이여  시(詩) 시시 시줄의 눈발 따라  내 어린것보다는  쉽사리 익혀 갖는 나의 말법.  《박경용 朴敬用/폭설 暴雪》  [132] 그러는 시의 주소는 여기에 있다. 지리하고 긴 회임(懷姙),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희귀한 개성적 심상(心像),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 나는 긴 방황. 《김남조 金南祚/시(詩)의 주소(住所)는 어디인가》  【격언·속담】  [133]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다. 《중국 中國》  [134] 시(詩)는 낳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니다. *The poem is born, not made. (*시는 체험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 《영국 英國》  【고사·일화】  [135] 뮤즈 여신들은 자주 천상 올림포스에 올라가 그 아름다운 노래로 신들의 잔치 자리에 흥을 돋우었으나, 여느 때는 보이오티아 지방의 헬리콘 산에서 살았다. 헬리콘 산의 언덕진 산비탈은 향긋한 나무로 뒤덮여 독사의 독까지 삭아 없어진다는 성역(聖域)으로, 맑은 샘터가 많아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이 아가니페 샘터가 있고, 또 천마(天馬) 페가수스가 지나간 발굽 자리에서 솟아나왔다는 히포크레네 샘터가 있다. 이 샘물을 마시면 영묘(靈妙)한 시상(詩想)이 저절로 떠오른다. 여신들은 또한 파르나소스 산을 즐겨 찾아가 아폴론 신과 자리를 같이하곤 했다. 이 산기슭에 키스탈리아라는 샘터가 있었는데, 역시 여신들의 성지(聖地)로, 그 샘물을 마시면 시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 샘터는 케페소스 강으로 흘러 들어 황천(黃泉)의 스틱스 강에 통한다는 것이다. 현대시가 메마른 것은 여신들의 이 아가니페 샘, 히포크레네 샘, 그리고 키스탈리아 샘이 말랐다는 뜻인가?  [136]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단테의 시를 읊으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 버릇이 되어 시의 구절 구절의 끝마디마다 「이랴이랴」 하면서 당나귀 궁둥이를 두들겼다. 이것을 보고 있던 시인 단테는 벌컥 화를 내며, 「이놈아, 시 어느 구절에도 '이랴이랴'라고 써 놓지는 않았어!」  [137] 후에 존슨 박사의 전기를 쓴 보즈웰이 존슨 박사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 솜씨 좋은 요리사가 탁월한 시인보다 세상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존슨 박사가 점잖은 표정으로, 「거리에 있는 개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라고 대답하였다.  [138] 앙드레 비이가 무어를 회견했을 때 무어는 이상한 말을 하였다. 「영국의 작가 토마스 하디는 자꾸 문법에 틀리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 싫증이 나서 산문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시를 쓰게 된 것이오.」 「그렇다면 산문보다도 시를 쓰는 것이 수월하시오?」 이렇게 묻는 비이에게 무어는 대답하기를, 「그렇지요. 왜냐 하면 시에는 여러 가지 제재와 규칙이 있어서 실상 그것들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하였다.  [139] 독일에서 나폴레옹과 괴테와의 회견 때의 일이다. 「오늘의 회견 기념으로 시(詩) 한 수를 지어서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나폴레옹이 청하자, 괴테는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시를 바치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나폴레옹은 되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후회하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고 괴테는 그의 독재성을 은근히 비판하는 대답을 했다.  [140] 어느 여름 괴테는 실러와 같이 드레스덴의 케르나 포도원에 갔다. 케르나는 독일 관리로서 실러의 친구였다. 쓸쓸한 시골에서 두 사람은 당시의 속된 사람들을 욕하는 풍자시를 많이 썼다. 케르나의 집 여인들은 머리맡 다락방에서 시를 짓는 친구들의 소리를 들었다. 다락방에서는 간혹 가다 킥킥거리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발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말했다. 「오늘도 그 속된 인간들에게 몹시 화를 내게 했군.」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144]구양수(歐陽脩)가 매성유(梅聖兪)에게 말하기를, 「세상에서 흔히 시인들은 거의가 궁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궁한 뒤라야 시가 좋아지는 탓이다.」 또 소동파(蘇東坡)는, 「구양수의 말이 절대 망언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시는 사람을 달(達)하게 만들지 시로 인하여 궁한 사람은 못 보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어떤 다른 격정으로 인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사문유취 事文類聚》     
458    詩란 삶의 파편쪼가리... 댓글:  조회:4286  추천:0  2015-04-23
.. 늙은 사람 한 가지 즐거운 것은  붓가는 대로 마음껏 써 버리는 일.  어려운 韻字에 신경 안 쓰고  고치고 다듬느라 늙지도 않네.  흥이 나면 당장에 글로 옮긴다.  나는 본래 조선사람  즐겨 조선의 詩를 지으리.  그대들은 그대들 법 따르면 되지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자 누구인가.  까다롭고 번거로운 그대들의 格과 律을  먼 곳의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 있나.  ―정약용 「老人一快事」  붓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杜甫  시 3백수에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악함이 없다.  ―공자 『논어』 爲政篇  그대들은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는 사람에게 감흥을 돋우게 하고 모든 사물을 보게 하며, 대중과 더불어 어울리고 화락하게 하며, 또 은근한 정치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어버이를 섬기고, 나아가서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시에서 배울 수 있으며, 또한 시로써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공자  시란 뜻(志)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공자  고시(古詩)는 충후(忠厚)를 주로 했다. 시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 그 의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기평(譏評)할 때에는 그 소위(所爲)의 악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벼슬의 존비와 차안의 미려를 들어 백성의 반응을 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식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白居易  시란 말의 뜻을 나타내고 노래란 말을 가락에 맞춘 것이다. 소리는 길게 억양을 붙이는 것이고 가락은 소리가 고르게 된 것이다.―유협 『문심조룡』  시는 의(意)가 주가 되므로 의를 잡는 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맞추는 것은 그 음이다. 의도 또한 기(氣)를 위주로 한다. 기의 우열에 따라 의의 깊고 옅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란 천성(天性)에 딸린 것이어서 배워서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가 떨어지는 사람은 글 다듬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의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체로 글을 깎고 다듬어 구(句)를 아롱지게 하면 아름다움에는 틀림 없다. 하나 거기에 심후한 의가 함축되어 있지 아니하면 처음에는 볼 만하나 다시 씹어보면 맛이 없어져 버린다. ―이규보  시에는 마땅치 못한 아홉 가지 체가 있다.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하여 체득한 것이다. 시 한 편 속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사용한 것은 수레에 귀신을 가득 실은 것, 옛사람의 뜻을 몰래 취해 쓰는 것은 도둑질을 잘한다고 해도 옳지 않은데 도둑질이 서투르면 이것은 서툰 도둑질이 잘 잡히는 것, 강운으로 압운하여 근거가 없으며 이것은 쇠를 당기나 이기지 못하는 것,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지나치게 압운하면 이것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험벽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하게 하는 것은 구덩이를 파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것, 말이 순편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사람에게 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억지로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 일상용어를 많이 쓰는 것은 촌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공자나 맹자를 범하기 좋아하는 것은 존귀함을 함부로 범하는 것, 글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은 잡초가 밭에 가득한 것이다. 이 마땅하지 못한 체격을 면할 수 있게 되면 함께 시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규보  시문은 기를 위주로 삼는다. 기는 성(性)에서 발하고 의(意)는 기에 의지하며,말은 정(情)에서 나오므로 정이 곧 의이다. 그러나 신기한 뜻은 말을 만들기 어려우므로, 서두르면 더욱 생소하고 조잡해지는 것이다. ―최자  시는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한 것이 믿을 만하다.―이인로 『破閑集』  시는 함축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희미한 글,  숨은 말로서 명백하고 통쾌하지 않은 것은 또한 시의 큰 병통이다.  ―서거정 『東人詩話』  시가 교화를 위한 것이라는 뜻은 본래 온유 돈후한 시정신으로써  성정을 다스려서 풍화(風化)를 이루게 하며, 사람의 마음을 감화하여  세상의 도리를 평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남구만  시는 성정의 허령(虛靈)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유몽인  시는 성정을 나타내는 것이다.―이의현  시는 원리와는 관계 없는 별종의 취향을 갖고 있다. 오직 천기(天機)를 농(弄)하여서 심원한 조화 속을 파악하여 정신이 빼어나고 음향이 밝으며 격이 높고 생각함이 깊으면 가장 좋은 시가 된다. ―허균 시란 사람의 천성과 정서를 조정하고 인간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심덕잠  지금 우리 나라의 시와 문장은 고유의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쓴 것이다. 가령 아주 흡사해진다 해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김만중  무릇 시에 있어서는 자득(自得)이 귀하다.―이수광  시란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 속에 있으면 지(志)라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정(情)이 마음 속에 움직일 때,  시인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한다. ―신위  시는 교화(敎化)하는 것이니 힘써 그 뜻을 전달해야 한다. ―이익  임금을 사랑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고 퇴폐적 습속을 통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단 진실을 찬미하고 거짓을 풍자하거나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정약용 『목민심서』  시는 대개 정신과 기백이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약용  시에는 신비한 정신의 경지가 있는데 이것은 무형 중에 우거(寓居)하면서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에, 우연히 만나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찾아보려고 해도 얻을 수 없다. ―신광수  보기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모아놓고 시라고 하는 것이야 비천한  잡배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는 선언이다. 만천하의 현재 뿐 아니라  진미래제(盡未來際)까지의 중생에게 보내는 편지요, 선언이요,  유언이다. ―李光洙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다. 신의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구약에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 토로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李光洙  시인이 창작한 제2의 자연이 시다.―조지훈  시는 신(神)의 말이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운문(韻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充溢)한다. 미와 생명이 있는 곳에  시가 있다. ―I.S.투르게네프 『루진』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F.Q.호라티우스  『詩法』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쫓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보들레르  시는 진리가 그 목적이 아니다. 시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보들레르  시를 쓰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건 낚시질하고 똑 같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 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수확이 되는 법이거든. ―E.크라이더 『지붕밑의 무리들』  시는 넘쳐 흐르는 정감의 힘찬 발로이다.―워즈워드  시는 체험이다.―R.M.릴케  시는 악마의 술이다.―A.아우구스티누스  시란 것은 걸작이든가, 아니면 전연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J.W.괴에테  위대한 시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L.베에토벤  시는 거짓말하는 특권을 가진다.―프리뉴스2世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한다. ―머클리쉬  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여진다.―E.A.포우  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스프랏트  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 ―R.M.릴케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 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手記』  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에머슨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P.B.셸리』  감옥에서는 시는 폭동이 된다. 병원의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다. 시는 단순히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시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이 된다. ―보들레르 『로만파 藝術』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선 안된다.……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에로 통해야 한다. ―F.실러  시란 가장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M.아놀드  시적(詩的)이 아닌 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A.지이드 『私錢쟁이』  시는 모든 예술의 장녀(長女)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친이다.  ―콩그레브  만약 사람이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 그대는  아름다운 생(生)을 알게 된다.―J.아이헨돌프  도덕적인 시라든가 부도덕적인 시라든가에 대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시는 잘 씌어져 있는가 아니면 시원찮게 씌어져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O.와일드 『英國의 르네상스』  시는 힘찬 감정의, 위세 좋은 충일(充溢)이다. 그 원천은 조용히  회상된 감동이다. ―O.와일드 『英國의 르네상스』  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70년, 혹은 80년을 두고 별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써질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手記』  시는 근본적인 언어 방법이다. 그것에 의해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 매카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M.무어  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다. ―T.S.엘리어트 『超現實主義 簡略事典』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T.S.엘리어트 『傳統과 個人의 才能』  시의 세계로 들어 온 철학 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T.S.엘리어트 『評論選集』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T.S.엘리어트 『詩의 효용과 批評의 효용』  시란 무엇은 사실이다 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해 주는 것이다. ―T.S.엘리어트  시는 미에 있어서의 참된 집이다. ―킬피란  우리의 일상 생활의 정서 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 ―I.A.리차아드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뀌어진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M.하인거 『횔더린과 詩의 本質』  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J.키이츠  아무리 시시한 시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이해한다면 좋은 시를 얼핏 읽어버림으로써 받은 인상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나. 내가 시를 읽고 싶지 않을 때, 시에 지쳤을 때, 나는 항상 자신에게다 그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이르는 바일세. 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이 내 마음 속에서 진행 중일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하네. 그래서 언젠가 어느 순간에 내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있어 그 훌륭한 감정을 꺼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J.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對話』  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닌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스펜서  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B.존슨  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J.드라이든  한 편의 시는 그 자체의 전제(前提)를 훌륭하게 증명해 놓은 것이다. ―S.H.스펜더 『시를 위한 시』  18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은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나는 가끔 시를 갱도(坑道)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 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성자여야 합니다. ―P.토인비 『J.콕토와의 인터뷰』  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  ―K.샌드버그  시의 본질은 동작이다. 이 동작은 내적 완전을 나타내고 이 내적  완전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또 진실이기 때문에 참으로 시적인  성격은 위대한 격정의 자유로운 움직임 가운데 나타난다. ―네싱  시적 형식은 본질이 무엇이든 시가 문학의 특수한 형식으로서  쾌락을 주는 근원은 변화에 의한 반복성에 있다. ―R.E.앨링턴  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싯귀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 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클로델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다.  ―스카르보로 『중국격언집』  만약 시가, 위대한 그 무엇이 아니면 안된다면,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현대와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간에, 작자의 정신의 내부에 있는 산 그 무엇과, 그것이  전달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로써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신체는 어디 있든간에, 그 혼은, 이곳에, 그리고 현재 있어야  하는 것이다. ―A.C.브래드레  시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다  .(감정이라면 우리들은 간단히 가질 수가 있다) 시는 경험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면, 많은 도시를, 많은 사람들을, 많은 사물들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동물, 새의 날으는 모습, 아침에 피는  꽃의 상태 등을, 알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미지의 토지에 있는 도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애당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이별, 기억도 확실치 않은 먼 어린 시절, 자기도 알지 못하였던 즐거움이며, 마음먹고  아버지 어머니가 주는 것을 반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들에 공상의  힘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 각자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사랑하던 밤의 일, 분만하는 부인의 애끊는 절규. 어린애 침대에서 잠도 자질 못하고 창백하게, 그리고 잠들어버리는 부인들의 추억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땐, 들창을 열어 놓은 채, 계속적인 시끄러움이 들리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있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기억이 많이 있을 땐 잊어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기억이 또 한번 떠 오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 우리들의 내부에서 피가 되어 명확히 이름지울 수도 없게끔 되어버리든가, 이미 우리들 자신과 구별할 수도 없게끔  되어버릴 때 ―그야말로 어느 순간 시의 최초의 한마디가, 기억의  한가운데 나타나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R.M.릴케 「말테의 수기」에서  시의 기능은 세계의 슬픔과 조화시키는 것이다. ―A.E.하우스만  시적 진실 ―‘개인적, 국부적인 것이 아니고, 보편적이며, 기능적인 것’ ―워즈워드  시는, ……인간의 마음의 제일 먼저의 활동이다. 인간은 일반적인  개념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상상상의 관념을 만든다. 명증한  마음으로 생각하기 전에 혼란한 머리로 파악한다. 명확하게 발음하기  전에 노래부른다. 산문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운문으로 이야기한다.  전문어를 쓰기 전에 은유를 쓴다. 말을 은유풍으로 쓴다는 것은  우리들이 ‘자연발생적’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그에 있어서  자연인 것이다. ―G.B.비코  시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T.E.흄  시의 중요한 목적은 정밀하고 명확한 표현에 있다. ―T.E.흄  사랑받지 못한 해바라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씨를 가진 꽃만이 불꽃으로 반사한다. ―A.L.테니슨  시는 상징주의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감동시킨다는 이론을 만약  사람들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현대시의 양식 속에 어떠한  변화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선조들의 방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연을 위하여 자연묘사를, 도덕을  위하여 도덕율을, 그리고 테니슨의 경우 시의 중심이 되는 불꽃을  거의 다 깨버린 일화나, 과학적 의견에의 고려 등을 버리는 것이다.  ―오든  시란 현존시에 붙어다니는 한낱 장식물에 그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감격이나 감동에 그치는 바도 아니다. 더구나  한낱 열중에 빠지는 바도 아니며 오락물로 떨어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시는 역사를 지탱해주는 밑바탕이다. ―하이데거  산문시란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음악적이고 영혼의 서정적 동요,  환상의 파동, 의식의 경련에 응답하기 위해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칠은 시적 산문이다.  ―C.보들레르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  ‘시―인스피레이션’의 공식을 믿는 시적 사고는 허망한 하나의  옛이야기가 되어도 좋다. 지적(知的)으로 확신되는 사상에만  정적(情的) 신앙을 주려는 폐습이 일부 사람들에게 굳게 뿌리  박혀 있다. 과학이 증대하여 힘과 그것은 장차 일반화하여 갈 것이다.  ―L.A.리처즈  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P.B.셀리 『詩歌擁護論』  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  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J.콕토 『暗殺로서의 美術』  시란 그 시를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상의  심볼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 ―W.C.브라이언트』  즉흥시는 진정 재지(才知)의 시금석(試金石)이다. ―J.B.P.몰리에르  서정시는 감정이 흘러 넘치는 청춘의 생명의 표현.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 없는 힘이며 열렬한 신앙의 발로다.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연과 사랑과 신 등으로 작자의 모양이 십분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제1인칭의 시라고 해도 좋다. ―에론네스트보배  서사시의 흥미는 작자가 아니고 그 시 속의 사건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르스는 개인적으로는 실제인물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을 만큼 아무래도 좋은 인물이다. 다만 호메르스의  시 속 영웅들에 흥미를 느낄 따름이다. 이에 비하여 같은 그리스의  위대한 서정시인 만나의 시를 읽을 때는 시 속의 영웅들은 무엇이던가  관계할 바 없고 다만 시인 그 자신에 일체의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서정시의 주관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테  시는 음악과 맞추어 만든 수사적인 작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단테  뮤직과 포에지의 길은 서로 교차한다. ―뽈 발레리  포에지는 말의 전능으로 베일을 벗긴다. 포에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날마다 그의 마음과 눈에 부딪치는 것을 그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가 생각하도록 각도와 속도를 맞추어 그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 ―쟝.꼭또  시는 우주에 담긴 비밀의 광선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잊어버린 천국을  소생케 한다. ―D.E.시트웰  시는 애련 속에서만 존재한다. ―W.H.오든  진실로 시라고 할만한 것은 서정시를 제쳐놓고는 없다.  ―E.A.포우  의식의 사고와 시적 표현의 기초는 구체적 직관 그 자체이다.  ―S.길버트  시의 안에 사상은 과실의 영양가와 같이 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뽈 발레리  시는 운문에 의한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  ―필립 시드니  현대시는 하나의 신앙 위에 서 있다. 곧 숨은 진실이 존재한다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R.M.알베레스  산문;말을 최상의 순서로 놓은 것. 시;최상의 말을 최상의 순서로  놓은 것. ―워즈워드  시는 본질적으로 무슨 악마적인 것이 있다. ―괴테  시는 시 이외의 무슨 목적을 가질 수 없다. 도덕이라든지 과학과  결부시킬 수 없다. 시는 두 가지 기본적인 문학적 특질, 즉 초자연과  아이러니 속에 있다. ―보들레르  시는 말의 의미를 이마쥬들의 분위기로 둘러싸이게 하면서 그 의미의  가지를 치게 한다. ―바슐라르  시는 진정한 의지의 범미주의적(汎美主義的) 활동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의지를 표현한다. ―바슐라르  서정적인 시는 돌진한다. 그러나 유연하고 물결치는 움직임으로이다.  모든 갑작스럽거나 끊어지는 것은 시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는 그런 움직임을 비극이나 관습적인 성격의 소설 쪽으로 돌린다.  ―보들레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감정이라면  젊은 나이에도 벌써 흐를 정도로 시를 갖게 될 게 아닌가. 시는  정말로는 체험인 것이다. ―R.M릴케  시란 꿈과 같은 것이기는 하나 현실은 아니다. 말장난이기는 하나  진지한 행위는 아니다. 시란 해로운 까닭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힘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말보다 해롭지 않은 것이 어디  또 있으랴. ―하이데거  온갖 예술은 감각적 매개물에 의한 관념의 표현이라고 말하나  시의 매개물인 말은 사실 관념이다. ―R.S.브리제스  다정한 시여! 예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여! 우리 안에  창조의 힘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신성(神性)으로 접근시키는  그대여! 어릴때 내가 그대에게 바치던 사랑은 수많은 환멸도 꺾질  못했다! 전쟁까지도 시가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더욱 커지게 하였으니, 이제부터 별 박힌 내 머리와 하늘이 서로 혼동되기에 이른 것은 전쟁과 시의 덕분이다. ―아뽈리네르  우리는 남들과 논쟁할 때는 수사학으로써 논쟁하지만 스스로 논쟁할  때는 시로써 한다. 자기를 지지한 혹은 지지할 거라는 군중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자신만만한 음성을 지닌 웅변가들과는 달리  우리는 불확실성 가운데서 노래한다. 따라서 가장 고상한 아름다움의  존재 가운데서도 우리가 고독하다는 인식때문에 우리의 리듬은 떨린다. ―에이츠  시의 의미란 그 텐션, 즉 시에서 발견되는 모든 외연(外延)extension)  과 내포(內包)intension를 완전히 조직한 총체이다. ―알렌 테이트  시가란 마치 화가가 색채로 하는 것을 언어로 하는 예술로서 상상력에  의하여 환상을 분출하는 방법에 의하여 산출하는 예술이다.  ―토마스 머코올리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을 발견이다. 예기치 않는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준다. ―W.세익스피어  시는 생의 진술이며 표출이다. 그것은 체험을 표시하고 생의 내면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다. 제2의 세계, 꿈은 최고의 시인이다.  ―워즈워드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A.오오든  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 『詩論』  시의 용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W.B.예이츠  시는 언어를 향한 일제사격이다.―앙리 미쇼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M.하이데거  시는 언어의 모자이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행위와 시는 언제나  인간보다 크다. ―T.E.흄  시는 극점에 달한 언어다. ―말라르메  시는 절조 있는 언어로서 절규․눈물․애무․입맞춤․탄식 등을 암암리에 표현하려는 것이다. ―뽈 발레리 시인에게 있어서 낱낱의 단어가 그 원료다. 단어는 극히 여러가지  모양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것들의 뜻은 시의 구성에 따라 처음으로  똑똑해진다. 이와같이 단어가 콤포지션의 가능성에 따라서 변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형성된 예술 형태의 한 부분이 될 때까지는 어세(語勢)도 그 효과도 다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프도프킨  시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생활은 사막의 생활이다. ―메르디트  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언어이다. ―E.A.로빈슨  시에선 해조(諧調)가 미리 공허한 형식을 결정하고 말이 위로 와서  위치를 잡는다. 말과 경험 사이의 응화(應和)와 불응화 그리고 결국에  응화가 해조를 확보하여 주의력을 거기에 모은다. 물러섬이 없는  움직임이 듣는 사람과 시인을 함께 끌고 간다. ―알랭  시는 미의 음악적 창조다.―E.A.포우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에르  정서가 있고 운율이 있는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또 예술적  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다. ―오든  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브리지스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다.―브룩스  시는 우연을 기피한다. 시에 나타나는 클라스․성격․직분 등의 개성은 반드시 어떠한 클라스를 대표한다. ―코울리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이다.―웰렉․워렌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엘리어트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W.H.허드슨  예술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작게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며, 그러면서도  우리들을 확대 시킨다. ―E.M.포스터  아직 탄생하지 않은  어느 특별한 일절 또는 일련의 배후에서, 하나의 힘과 같이 집중되어,  넓게 전개되는 의식의 총체. ―보트킨  열정적인 시란 것은, 우리들의 본성의 도덕적 지적 부분과 동시에  감각적 부분―지식에의 욕망, 행위의 의지, 감각의 힘을 방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완전한 것이 되려면, 우리들의 신체의 다른 여러 부분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 ―하즈리트  시는 조잡한 요소로(물을 타고 섞어서) 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엑기스(精)이며, 그것을 키울 수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순수한 이미지의 시는 수정 조각과 같은 것이어서―우리들의 동물감각엔 너무나도 차고 투명한 것이다. ―허버트 리드  가장 위험한 것은, 순수한 물의 성분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는 거와  같이, 정말로의 순수한 시라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하여서도 강연을  할 수 없는 것이다.―불순하며, 메칠알콜이 들어간 거칠은 시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월터 로리  시적 논리가 시의 결말을 맺는 것은, 일반적으론, 기분의 변화라든가,  위상의 전환을 통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시적 논리이다. 즉 논술이나 명증에 의하여 위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단계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그러한 위상의 변화이며,  이해할 수 있는 추이인 동시에 그 진행은 앞의 단계를 무효로 하는  그러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W.P.카  오로지 이미지는 시의 극치이며 생명이다. ―드라이든  방대한 저작을 남기는 것보다 한평생에 한번이라도 훌륭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진실한 이미지 뿐이다. ―W.블레이크  만약 지각(知覺)의 문을 맑게 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 즉 무한감(無限感)을 가진 것같이 보일 것이다. ―W.블레이크  이미지는 우리들에게 사랑과 희생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그것은 어느 경험을 생각케 하며 그 문체에 의하여 그러한 경험에의 어느 종류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우리들은 어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즉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희열이든가 절망이든가 어떠한 감정이든간에 그것을 아는 것이 강한 만족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챨스 윌리암즈  이미지의 생산은 무의식의 어두침침한 속에서의 정신의 일반적 행위에  속한다. ―E.S.달라스  나에게 있어서 지각은 처음에 명료한 일정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어느 음악적인 무우드(기분)가 우선한 다음에 시적 사상이 나에게 다가온다. ―쉴러  이미지의 발생, 진전, 설정은, 예를 들면 태양의 광선이 자연히  그에게 도달하여 ―그의 위에 빛나고 다음엔 냉정히 더구나 장려하게  기울어 가라앉아가며 그를 호화스러운 황혼 속에 혼자 남기는  현상에 흡사하다. ―J.키츠  우리들은 정신의 영역을 3중의 층으로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러한 경우 지질학의 ‘단층’에 비교할 수 있는 어느  현상이 일어난다. 그 결과……지층은 비연속적이며 서로 불규칙한  단층을 나타나게 된다. 그와 매한가지로 자아의 감각적 의식은 본능적  충동과 직접 교섭을 갖게 되며, 그 ‘끓는 가마솥’에서 어떠한  원형적 형태 즉 예술작업의 기초가 되는 말, 이미지, 음 등의 본능적  짜임을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 ―H.리드  나의 경우 시에 있어서는 많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의 중심이 많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만든다’라는 말은 적당치 않은 말이지만, 나는 나의 이미지에  내 내부에서 정서의 여러 가지 배색을 물들여 놓고 그것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 비평적인 힘을 적용하여 그것이 또 다른 이미지를 낳게 한다.  그리곤 그 제2의 이미지를 제1의 그것과 모순시켜, 그 둘에서 난  제3의 이미지에서 제4의 모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것들 모든 것을  나에게 주어진 형식적인 제한의 범위 내에서 서로 모순시킨다. 각각의  이미지는 그 속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종자를 가지고 있다.  즉 나의 변증적 방법(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은 중심의 종자에서 성장하는 많은 이미지의 끊임없는 건설과 파괴며, 그 중심의 종자도 그 자신으로 파괴적인 동시에 건설적인 것이다.……나의 시의 생명은 중심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 속에서 나와, 그리고  죽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이미지의 건설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어쩔 수 없는 충돌에서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충돌에서)―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자극을 주는 중심 즉, 충돌의 모태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나는 시라는 순간적 평화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딜런 토마스  이미지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자신으론 시인의 특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독자적인 본능의 증거가 되는 것은 훌륭한 정열,  또는 그 정열로 잠깨워진 일련의 사상 혹은 이미지 여하에 따라 시  그 자체가 변할 만큼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때 뿐이다.  ―코울리지  추상적 관념에 대립하는 감각적 이미지를 너무나 주장하는 나머지……  결과는 회화에 의한 시로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그림이  전부가 되어버려, 일반적 경험에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은 존재와 의미와를 분리시키는 잘못의 제일보였던 것이다.  ―로버트 히리아  상상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시적 몽상이라는 몽상의 절대를 인식한다. ―바슐라르  실제로 물질적 상상력은 문화적 이미지와 실체를 합체시키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모든 삶을 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  상상력 그 자신은 기억의 작용이므로 기억이 시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 진실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전에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그것을 어느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스펜서  추상적인 것의 구체화를 추구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내 방법은  아니다. 나는 내 자신 속에 감동 ―감각적으로 생생한, 사랑스러운,  다채로운 여러가지의 감동 ―을 기민한 상상력의 에너지로서  받았던 것이다. ―괴테  이성이라는 것은, 기지(旣知)의 사물을 질서있게 정리하는 작용이며  상상력이라는 것은 사물의 개개, 혹은 전체로서의 가치를 지각하는  작용이다. ―C.V코노리  상상력이야말로 도덕적 선(善)의 훌륭한 방편이다. ―셸리  상상력이라는 것은 죽어 가는 정열을 되살리기 위하여 살(肉)을  잡아 두는 불사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J.키츠  모든 것에 앞서서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를 자기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는 천부의  은총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러면 자연 은유가 될 것이다. ―J.M.머리  은유는 현실을 살피며 경험을 질서짓게 하는 정신의 본질적이며 또한  필요한 행위와 같이 생각된다. ―J.M.머리  어떠한 번역이나, 은유나, 우의라도 극단적인 비유와는 전연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은유를 바다나 파도에서  시작하여 불꽃이나 재로 끝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대단히 나쁜  모순이기 때문에. ―벤 존슨  은유를 깊이 추구하려면 건전한 의식의 세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J.M.머리  상징파의 상징은 언제나 자기만이 아는, 특별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인이 독단적으로 쓰고 있는 ―즉, 그러한 관념의 일종의  투영인 것이다. ―에드문드 윌슨  상징주의의 상징의 실체는 제재에서 분리한 은유였었다.―왜냐하면  시에 있어서 어느 한 점을 넘으면 색채와 음은 그 자신을 위하여  즐거워할 수가 없을 뿐더러 이미지의 내용을 억측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에드몬드 윌슨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오랜 대형 메달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매자락에 닳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상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 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A.맥클리쉬 『詩法』  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앞에 있다. ―R.끄노오 『詩法을 위하여』   
457    <소리> 시모음 댓글:  조회:4623  추천:0  2015-04-23
  이양우의 '맑은 소리' 외 + 맑은 소리  다시 또 이슬처럼 곱기를 햇살처럼 맑기를 고요처럼 무겁기를 숨소리에 잠이 깨일 까봐서 작은 미동에도 내가 널 그르칠까봐  이렇게 나직한 자세로 고개를 떨구누나 사랑함이 얼마나 깊은 것이기에 사랑함이 얼마나 고요해야 하는 것이기에 맑게 흐르는 실개천  아침 햇살에도 여린 찰나여!  쌀을 씻는 아낙의 손길이 그 얼마나 정결하고 진지함일지 아아, 나는 당신의 행주치마 같은 햇살이고파라. (이양우·시인, 1941-)  + 소리의 탑 첼로 연주 소리가 들린다.  지그재그로 공기를 찢으며 다가온  音波가 나를 흔든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대기에 상처를 낸다는 것.  첼리스트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에 파고드는  그 상처에 넋 나간 듯 사로잡혀 있으니  감동이라는 말은  형형색색으로 파헤쳐진 영혼의 상처를  美化시킨 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마음 깊은 곳에 소리를 새겨넣는 일.  지그재그로 상처를 새겨넣는 일.  몸 안 奧地에 박힌 그 상처가  살아가는 밑천이 되기도 하니  그대와 나는  적요 속의 소리에 실려가는 존재.  연주가 끝나고 박수 소리 들린다.  이 소리 저 소리가 숱한 사금파리로 쌓이는 몸은  소리로 된 탑일지도 모를 일.  때가 되어 무너지는 날은  또 다른 소리를 부를지도 모를 일.  (설태수·시인, 1954-) + 삶의 소리  삶의 소리가 나를 깨운다  의식을 깨우고 머리를 맑게하고 숨을 쉬게한다  베란다를 통해 들려오는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  바람이 커튼을 펄럭이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수돗물 소리  등교하면서 햇살에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소리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소리  누군가가 버튼을 눌렀을 전화벨소리  모든 소리는 살아 숨쉬는 생의 소리이다  움직임 이는 이동의 소리이다  아무도 제 자리에서는 숨을 쉬지 않는다  계절에 빛 바랜 길가의 들풀도  어제보다 더 깊은 침묵으로 조용히 숨을 쉬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기적인 마음에 한때 시끄럽다고  짜증내던 그 시간들은 가장 활발하게  내 주위에 생명이 모여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생은 좀더 기쁨으로 충만했을 텐데... (한상숙·시인) + 소리  나무 책상 하나를 구했다  대패 자국이 선명하다  대패가 지나갈 때마다  풀려 나왔을 소리들이 들린다  숲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아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렇게 흘러가는 소리들이 아니다  나무는 흘러가는 것들을 그냥 버려두고  제 몸 속 소리만 품어 키운 것이다  소리도 오래 되면 곰삭아서  말갛게 걸러진 소리를 갖는다  새파란 대팻날 앞에서 조근조근 말할 수 있고  제 소리 담아 둘 옹이를 만들 줄도 안다  살점 저미는 소리를 고요하게 만들 줄도 알고  저며진 살점 속에 향기로 바꾼 소리를 쟁여 둘 줄도 안다  저렇게 자세 반듯한 책상이 될 줄도 아는  오래된 소리  이제는 곰삭아 아무렇지도 않게 제 몸 내보이는  나무의 해탈을 본다  숱한 직립의 소리들 쪽으로 몸을 돌리는  목쉰 소리 하나 (박미라·시인) + 북소리    목덜미 수줍게  훅  훅  바람을 불어  귓불마저 빨개지면  가슴 한마당  둥  둥  진군進軍의  북소리가 울린다 (공석진·시인)  + 빛의 소리  빛이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창문을 드르륵 하고 여니 빛이 들어오고  방문을 스르르 하고 여니 빛이 들어오고  삐걱거리는 옷장을 여니  잠자던 옷가지에 빛이 들어온다  소리는 빛을 타고 와  빛이 비치는 곳마다 소리가 들린다  뒤뜰의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리고  들판의 땅 밑에 함성이 들리고  흙 속의 벌레 알 발가락 펴는 소리가 들린다  빛은 소리를 데리고 봄으로도 와  빛이 머무는 곳마다 소리를 낸다  목련꽃에는 하얀 소리를 내고  개나리꽃에는 노란 소리를 내고  참꽃에서는 연분홍 소리가 난다  철길 두드리는 봄 소리가 난다  (우영규·시인, 대구 출생) + 봄이면 어디선가 쮸쮸바 소리가 들린다  봄이면  닫혔던 물관이  툭! 터지면서  물살 소리를 낸다  아마도  겨우내 심한 몸살을  앓았다는 징표인가 보다  연약한 실뿌리도  몸통을 키우기 위해  심연으로부터 자양분을  쪼옥 쪽 빨아들이는 소리 들린다  그 소리 예전에 먹던  쮸쮸바 소리와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나도 모르게  옳거니 옳거니  박수를 치고 말았다  아, 그렇구나  봄이면 어디선가  쮸쮸바 소리가 들리는가 보다  봄에 도취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깊은 영혼과 같은 소리  오, 쮸쮸바 (반기룡·시인) + 심야의 소리  초저녁, 바람소리가 심하다  개 밥그릇 날아가는 소리가 화단 쪽에서  자지러진다. 분명 사지가 너덜거리겠지  텔레비전에서 애국가가 끝나고부터  집 밖 처마귀퉁이 어디쯤에서 토닥토닥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발자욱 소리, 밤새도록 어디로 가나  아마도 봄 동산에 꽃불 켜려고 가겠지  둘째딸 방에서 기침소리가 여전하다 (신석정·시인, 1907-1974) + 자연의 소리     졸졸졸 물 흐르는 시냇가에서  숨죽이고 귀기울여  조용히 그 물소리를 듣는다  잔잔한 음악 같기도 하고  준엄한 교훈 같기도 하고  다정한 속삭임 같기도 하다  살구만한  사과만한  참외만한 둥근 돌 틈 사이로  낮은 데를 향해 흘러가며  끊임없이 들려주는 저 소리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흘러가는 저 물소리  오늘 내 귀에 들려오는  변함없는 저 자연의 소리  낮아져라  겸손해라  사랑해라  (오정방·시인, 1941-) + 작은 소리로  탁자 위에 한 묶음 국화가  가까이 코를 대면  그제서야  제 이름을 말한다  미미한 향기  그래도 제 향기  그들은 벌 나비 날갯짓을 알고 있을까  벌 날개 같은 꽃잎들이 동그랗게  나비춤을 추려 한다  그들은 달 뜨고 별 지는 하늘을 보았을까  속 꽃잎들은 달 모양으로 떠서 별빛을 담아 놓고 있다  그들은 가을 바람에 허리 휘어본 적이 있을까  가느다란 줄기가 곧 휘어질 것만 같다  조그맣게 부르는 소리  작은 손짓으로 멈추게 하는  미미한 향기  그래도 제 향기  작은 소리로 제 이름을 말하고 있다.  (유봉희·시인) + 풀벌레 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그 옛날  시냇가에서  물장구 칠 때 듣던 소리  대청에 앉아  별똥별 떨어지는 밤하늘 바라보면  배경음악처럼 잔잔히 들리던 소리  메뚜기, 개구리 잡으려 소리 죽이면  더 크게 울어대던 소리  언제부턴가  자동차 소음과  기계음 소리가  익숙하게 들려오는데  오늘은  어디선가 또 다시  정겨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박인혜·시인, 1961-) + 시냇물소리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종일토록 이어지는  맑은 영혼의 기도소리  음색은 가늘어도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고운 영혼의 찬양소리  겨울의 꼭지점에서  얼어붙은 냇물을  온몸으로 녹이고 있다.  꽃망울이 터지며  종달새는 높이 날고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 (박인걸·시인) + 살구나무 속 흐르는 물소리  토담에 박혀있는 늙은 살구나무  터실터실 갈라 터진  껍질 속으로 가만가만  어디론가  봄물 올리는 소리  그 옛적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맨발로 살금살금  설익은 살구를 따기 위해  나무에 바짝 붙어 기어오를 때  들려오던 가뿐 숨소리  꼬르륵 꼬르륵  모든 것 다 잘 아는  하나님도 미처 모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요정의 손들  물방울 밀어 올린다  하늘 밑 가지 끝  작은 꽃봉오리 마른입에  한 모금 축여 꽃피움 바라보며  삼동에 마른 이끼 내 마음도  새롭게 푸르러진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소리 아내가 돌리는 전자동 세탁기 소리는  몇 시간 낮잠을 푹 자도 된다는  아내가 좋아하는 뽕짝 같은  자장가.  그 옛날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는  엄마가 네 옆에 있으니  온밤  안심하고 꿈을 꿔도 좋다는  엄마가 내게 보내는  수신호.  세상의 어떤 소리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가끔은 마음속  덧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정성수·시인, 1945-) + 웃음소리   촉촉한  봄비가  소리치며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가 그치고  따스한 햇볕 아래  눈 비비고 씨앗은  목을 쑥 올리고  세상을 향해 나옵니다.  언제나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고  항상 웃음 가득하게  피어납니다.  그 밝은  웃음소리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조동천·시인) + 소리에 젖다  오지게도 내린다  삼월 한밤 내내  두터운 침묵을 두드리는  푸른 빗소리  안으로 동여맨 섶 풀어내어  차박차박 적시고 있다  부풀리고 있다  꿈속까지 찾아와  하염없이 수런대는 댓잎 같은  그대처럼  지금 지상은  제 소리에 겨워 우는  타악기이다 (김기연·시인) + 잔소리반찬     아내는 부재 중  삼일 홀아비 수저 챙겨 보네  반찬 종지 두어 개  씁쓸하게 밀어 넣은 찬밥  돌아서자 빈자리처럼 허기지네  하루가 시들해지고  별처럼 잠도 오질 않네  숟가락에 넘어가던 잔소리도  내겐 빠질 수 없는 반찬이었던 것 같네  찹쌀처럼 달라붙던 차진 소리에  밥 한번 비벼 먹었으면  둥 둥 둥  배 두드릴 것 같네 (김종구·농부 시인, 1957-) + 산이 소리를 낼 때에는  가을이 와서  산이 소리를 낼 때에는  쉿, 조용해라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오직 목소리 하나만은 내 혼백과 맞바꾸겠다는 일념으로  깊은 산중에 들어온 소리꾼 하나가  언제 트일지 모르는 소리를 위해  목구멍이 찢어지고 갈라지고 피를 토해가면서,  그 피로 나뭇잎을 붉게 물들여가면서  으엑! 으엑! 처절하게는 목이 죽은 소리를 저리 내고 있지 않느냐  범부의 소리를 죽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심심해서라든지 지겨워서라든지,  아무튼 생각 없이 산 구경이나 즐기러 온 팔자 좋은 이들이라면  별일 아닌 듯 말없이 그냥, 그냥 가거라  그저 못 본체하고 지나가거라  가을이 와서  조용했던 산이 소리를 낼 때에는  한 소리꾼의 소리의 붉은 피가  몇 되박은 족히 이 숲 저 숲 잎잎마다에 뿌려져  속내까지 뻘건 적단풍이 되고 말았느니 (곽진구·시인, 1956-)
456    천지꽃과 백두산 댓글:  조회:4823  추천:0  2015-04-23
  천지꽃과 백두산 /석화   이른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사래 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 옛말이 기와 조각에 묻어 나오고 룡드레 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할아버지는 마을 뒤 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 계시고 해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 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천지꽃 : ‘진달래꽃’의 방언 ※룡드레 우물 : 북간도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룡정(龍井)시를 세웠는데, ‘룡정’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용두레 우물을 가리킨다.     시 혼자 살피기 ○제목 : 천지꽃과 백두산 → 작품의 주요 소재 →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음. ○화자 : 나 ○청자 : 없음 ○대상 : 연변에서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 ○상황 : 화자가 연변의 모습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서 : 자부심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주제) :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삶에 대한 민족적 자긍심 ○어조 : 예찬적 ○표현 : 상징,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시함    
455    영국 시인 - 드라이든 댓글:  조회:5603  추천:0  2015-04-20
  정의의 여신의 귀환 이제 일련의 보다 흰 시대가 시작되어, 유연한 세기로 부드럽게 흘러, 그대의 아침을 덮고 있는 저 구름들이 하늘의 가장 먼 구석으로 쫓겨 날아가게 되리라. 우리 민족은 제 세력의 통합으로 축복받아 이제 균형 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리라. 그대의 제국은 해외에서 어떤 한계도 알지 못할 것이고, 끝없이 순환하는 바다처럼 흐르리라. 그대가 총애하는 함대는 넓은 제해권으로 육지의 작은 군주들을 포위하리라. 그리고 오래된 시간이 그의 자손을 집어삼켰듯이, 우리 대양도 깊이에서 모든 바다를 익사시키리라. 그들의 풍요로운 무역은 해적의 약탈로부터 자유로워 우리 상인들은 더 이상 모험가가 되지 않으리. 비천한 네덜란드가 여기서 숨기는 그런 위험을 근동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스페인은 그대의 선물에 인도 제국을 빚지고 있다, 강자는 취한 것을 주지는 않기에. 그리고 망명자의 존재를 두려워한 프랑스는 그대가 여전히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정당하게 염려하네. 국내에서는 당파라는 증오스러운 이름들이 그치고 당파적인 사람들이 지쳐 평화를 찾네. 지금 불평분자들은 이전에 그대의 정당한 대의를 배신하는 죄를 저질렀던 자들뿐이다. 그들의 몇몇에 대해 그대의 칙령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선도했고, 하지만 그대의 삶과 축복받은 모범이 대부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 행복한 군주시여, 하늘이 맹세를 지킴으로써 더 많은 맹세를 지키게 할 길을 가르쳐 주었으니! 오, 행복한 시대여! 위대한 아우구스투스 왕좌를 위해 운명에 의해 홀로 점지된 시대들과 같은 시대들이여! 그러한 때 무력과 문력의 조화로운 성장이 세상에게 한 군주를 미리 보여 주었는데, 그 군주가 바로 그대다. (원전 292∼323행) ≪드라이든 시선≫, 존 드라이든 지음, 김옥수 옮김, 28∼30쪽 “일련의 보다 흰 시대”가 무엇인가? 황금시대를 가리킨다. 황금시대가 뭔가? 사회의 진보가 최고조에 이르러 행복과 평화가 가득 찬 시대다. “행복한 군주”는 누구인가? 찰스 2세다. 정의의 여신도 찰스 2세다. 이 시는 드라이든이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1660년, 찰스 2세의 프랑스로부터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쓴 찬양시다. 이 시는 무엇을 겨냥하는가? 선전과 권고다. 로마의 정치 안정과 문화 융성, 경제 번영을 영국에서 이루려는 바람이다. 찰스 2세 시대의 영국이 새로운 로마 제국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동시에 그가 진정한 군주, 아우구스투스 같은 군주가 되기를 권한다. 오거스턴 시다 오거스턴 시란? Augustan poetry란 아우구스투스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시다. 오거스턴은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 문인들을 모방하려는 18세기 시인들을 일컫는다. 드라이든은 베르길리우스나 호라티우스를 모방했다. 시가 왜 정치에 복무하는가? 드라이든은 공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대중을 설득하는 공공의 웅변가(public speaker)를 이상적인 시인의 모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세계관을 제시해 왕과 국민들에게 규범으로 삼도록 했다. 그의 이상적 세계관이란? 토리 세계관이다. 그는 야당인 휘그당과 대립하는 토리당을 지지했다. 휘그파의 과도한 정치, 경제 개인주의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가 사회 혼란을 조장한다고 이해했다. 토리 세계관은 무엇 위에 서있나? 정치적으로는 왕정과 귀족 중심의 위계질서, 경제적으로는 도덕 경제를 토대로 삼는다. 그의 정치관은 문학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공격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풍자시를 주로 쓰게 되었다. 풍자시로 토리적 세계관을 규범으로 제시하는 한편 휘그파를 공격했다. 문학사에서 드라이든의 의미는? 영국의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었다. 오거스턴 신화를 실현해 18세기 시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영국 비평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비평적 혜안을 보여 주는 평론도 많이 남겼다. 어떻게 살다 갔나? 1631년 영국 노샘프턴셔에서 태어났다. 학생 때인 1649년에 첫 번째 시 <헤이스팅스 경의 죽음>을 발표했다. 1668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1700년 사망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드라이든John Dryden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1631. 8. 19,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올드윙클 사망 1700. 5. 1, 런던 국적 영국 1631. 8. 19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올드윙클~ 1700. 5. 1 런던.  영국의 시인·극작가·문학비평가. 목차 펼치기 개요 원본사이즈보기 드라이든 드라이든, Godfrey Kneller 경이 그린 유화 당대를 '드라이든 시대'라고 부를 만큼 당시의 문학계를 주도한 문인이다. 초기생애와 교육 시골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11세 때 청교도혁명이 일어났는데 친가와 외가 모두 왕에 맞서 의회 편에 섰으나, 당시 드라이든의 생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1644년경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학, 유명한 리처드 버즈비로부터 주로 고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 덕분으로 그리스 로마 문학에 일생동안 수월하게 친숙할 수 있었으며 뒤에 그리스 로마 문학을 영어다운 영어로 번역할 수 있었다. 1650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1654년 문학사학위를 받았다. 1654년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때까지의 행적은 확실하지 않다.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을 위한 기념문집에 글을 실어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영웅시(heroic stanzas)는 원숙하고 깊이있고 격조가 높으며, 후기시의 특징이 될 고전적·과학적 인유(引喩)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이런 종류의 공적인 행사시(行事詩)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1660년 5월 찰스 2세가 왕위에 복귀하자 그는 왕을 환영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6월에 2행연구의 300행이 넘는 시 〈아스트리아 리덕스 Astraea Redux〉를 발표했다. 또 1661년의 대관식을 경축해 〈신성한 폐하께 To His Sacred Majesty〉를 썼다. 이 2편은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드높이며, 젊은 군주에게 영원한 신성함이 깃든 위엄을 부여하기 위해 계획된 시였다. 그뒤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의 필치는 거의 변함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1663년 12월 1일에 버크셔의 백작 1세인 토머스 하워드의 막내딸 엘리자베스 하워드와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특정시기를 반영하는 가장 긴 시 〈경이로운 해 Annus Mirabilis〉(1667)는 영국 함대의 네덜란드 제패와 1666년 런던 대화재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축하하는 글이다. 이 시에서도 왕의 이미지를 미화하고 훌륭한 왕 아래 단합한 충성스러운 국민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1668년 계관시인 윌리엄 대버넌트 경이 죽자 그 자리에 임명되었고 2년 뒤에 궁정사료편찬가로 임명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극작 활동 찰스 2세는 1660년 왕위에 복귀한 뒤, 1642년부터 닫혀 있던 극장에 2가지 특허를 내주었다. 드라이든은 다시 활성화된 극장에 공연할 희곡을 쓰는 소수의 극작가 그룹에 참여했다. 첫 희곡 〈The Wild Gallant〉는 유머와 음탕한 대화가 담긴 소극(笑劇)으로 1663년에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실패에 가까웠으나, 1664년 1월에 로버트 하워드 경과 같이 쓴 2행연구 영웅비극 〈인도 여왕 The Indian Queen〉은 성공작이었다. 이 작품들은 사랑과 명예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여주인공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마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대중적 장르의 연극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1665년 봄에 〈인도 여왕〉의 속편 〈인도 황제 The Indian Emperour〉를 발표하여 처음으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667년에 발표한 희비극 〈은밀한 사랑, 처녀여왕 Secret Love, or the Maiden Queen〉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왕이 이 작품을 좋아했다. 명랑하고 재담이 풍부한 궁녀 플로리멜 역은 왕의 애첩 넬리 그윈이 맡아 완벽하게 연기했다. 플로리멜이 셀러던과 수다를 떠는 대목에서는 재치있는 응답을 즐기는 왕정복고기의 성향이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 주었다. 1667년에는 몰리에르의 희극 〈얼간이 L'Etourdi〉(뉴캐슬의 공작인 윌리엄 캐븐디시가 번역)를 개작하여 〈마틴 매럴 경 Sir Martin Marall〉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다. 1668년에 발표한 〈극시론 Of Dramatick Poesie, an Essay〉은 드라이든(작품에서 'Neander'로 지칭됨)을 포함한 4명의 작가가 모여 여유있게 토론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고대 고전극과 신고전주의 프랑스극에 맞서 영국극을 옹호하는 한편 극비평의 일반원리를 찾아보려는 의도에서 씌어졌다. 고대와 현대, 프랑스와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와 왕정복고기 등의 이미 굳어진 대립관계를 깨기 위해 작중의 논쟁자들을 알맞게 설정해 토론을 깊이있고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극시론〉은 현대 극비평을 다룬 최초의 비중있는 저서로서, 분별있고 신중하며 탐구적일 뿐 아니라 차분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로 일반적인 원칙과 분석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는 이 글뿐 아니라 모든 비평에서 매우 사색적이고, 공정한 과학적 탐구자세를 취했다. 1668년 드라이든은 토머스 킬리그 루극단에 전속되어 1년에 3편씩 극을 써주기로 약속하고 극단 수입의 1/10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되었다. 실제로는 1년에 1편 정도밖에 못 썼지만 계약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었다. 1669년 6월에는 거드름을 피고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주인공 맥시민이 등장하는 〈폭군 같은 사랑 Tyrannick Love〉을 썼다. 또 이듬해 12월에 〈스페인의 그라나다 정복 The Conquest of Granada by Spaniards〉의 1부를 썼고 1개월 뒤에 2부를 썼다. 이 세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스페인의 그라나다 정복〉의 대담무쌍한 주인공 알만조를 통해 표현했던 사랑과 명예라는 주제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1671년 버킹검의 공작 2세인 조지 빌리어스가 드라이든(작품에서 베이스 씨)을 풍자해 쓴 영웅극 〈예행연습 The Rehearsal〉의 재치있는 풍자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희곡은 이무렵 거의 활력을 잃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행연습〉이 드라이든의 영웅극을 완전히 매장시키지는 못했다. 1675년 11월 그가 쓴 영웅극의 마지막 작품이며 가장 잘된 작품 〈Aureng-Zebe〉가 무대에 올랐다. 여기에서는 압운을 갖춘 2행연구를 사용하지 않고 무운시를 썼다. 영웅극에서 드라이든은 드럼과 트럼펫, 장광설과 허풍, 무대 위의 전쟁, 화려한 의상, 이국적인 장면 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1672년에 발표한 희극 〈유행하는 결혼 Marriage A-la-Mode〉에는 대중의 구미에 맞는 장광설과 호언장담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왕정복고기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싸움을 묘사하는데, 뒷날 조지 에서리지 경과 윌리엄 콩그리브의 훌륭한 작품에서나 나옴직한 기교를 부린 세련된 표현을 쓰고 있다. 비극 〈모두 사랑을 위해 All for Love〉(1677)는 다른 류이긴 하지만 역시 훌륭한 극으로,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모체로 하여 유창하면서도 절제된 무운시로 썼다. 드라이든은 이무렵에 신고전주의기에 들어섰으며, 그뒤의 비극들은 초기 작품의 과장된 성격으로부터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구성이 탁월하며 상황이나 인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건을 다루었다. 1678년경에는 부실한 경영으로 심각한 곤경에 빠져있던 킬리그루 극단의 동료 주주와 다투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내서니엘 리와 함께 쓴 비극 〈오이디푸스 Oedipus〉를 경쟁상대가 되는 극단에 주고 주주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다. 풍자시 〈경이로운 해〉를 출판한 뒤 드라이든은 12년 동안 거의 극작에만 전념했다. 만약에 그가 1680년에 죽었더라면 극작가로서만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집필 활동을 통해 그의 이름은 영국 최대의 풍자시인으로 통하게 되었다. 1681년에 찰스 2세의 동생으로 요크의 공작이며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가 왕으로 옹립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의혹이 생겨서 왕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샤프츠버리 백작의 주도 아래 휘그당의 지도자들은 가톨릭 음모사건을 이용하여 제임스를 왕위계승에서 배제하고 찰스의 서자이며 신교도인 몬머스 공작을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왕은 재빨리 손을 써서 여론이 휘그당의 편을 들지 못하게 했고, 샤프츠버리는 대반역죄로 투옥되었다. 드라이든은 계관시인으로서 몇 달 간의 위기를 방관만 할 수 없었으므로 1681년 11월 〈압살롬과 아히도벨 Absalom and Achitophel〉을 써 휘그파의 분노를 자기 쪽으로 돌림으로써 왕을 도왔다. 〈구약성서〉의 다윗왕(찰스 2세), 총애하는 아들 압살롬(몬머스), 아버지에게 반역하라고 압살롬을 부추긴 나쁜 아히도벨(샤프츠버리)을 시의 골격으로 삼아, 지난 몇 년 간의 사건들을 왕과 토리 당원의 관점에서 풍자하면서 왕과 심각한 정치상황에 알맞는 영웅시체로 썼다. 반(反)휘그 선전문으로써 휘그당의 지도자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적으로 묘사해 비웃는 이 시는 공공연한 비난이 호소력있게 표현된 걸작이며, 한편 토리파 선전문으로서도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토리당측을 옹호했다. 런던 대배심이 샤프츠버리를 반역죄로 기소하기를 거부하자 동료 휘그 당원들이 그에게 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으로 드라이든은 1682년초에 〈훈장 The Medall〉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휘그당에 대한 신랄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으며 힘차고 솔직한 산문 〈휘그에게 보내는 서한 Epistle to the Whigs〉이 서문으로 실려 있다. 같은 해에 드라이든의 허락없이 익명으로 그가 약 4년 전에 쓴 유명한 긴 풍자시 〈맥 플렉노 Mac Flecknoe〉가 출판되었다. 휘그파 극작가인 토머스 섀드월을 신랄하게 공격한 이 글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 없으나, 분명한 점은 〈맥 플렉노〉에서 문학가와 비평가로서 섀드월의 재능이 너무나 유쾌하고 악의 없는 경멸을 받은 나머지 실제적 평판마저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섀드월을 바보 글쟁이로 만든 이 풍자는 벤 존슨의 위트에 대한 섀드월과 드라이든의 견해 차이에 기초를 두고 있다. 드라이든은 존슨이 위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반면 섀드월은 엘리자베스 시대 극작가라면 무조건 흠모했던 것이다. 이 재미있는 희극적 풍자문은 영어로 된 최초의 의사(疑似) 영웅시이며 알렉산더 포프가 쓴 〈던시아드 The Dunciad〉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후기작품 새로 등극한 제임스 2세가 가톨릭교도에 관용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드라이든은 1685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가 쓴 가장 긴 시이며 동물 우화인 〈암사슴과 표범 The Hind and the Panther〉(1687)에서는 영국국교회와 다른 종파들에 맞서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옹호했다. 1688년 제임스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나면서부터 드라이든의 정치적 전도(前途)는 막히게 되었고 계관시인 칭호도 섀드월에게 빼앗겼다. 그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다. 비극 〈돈 세바스찬 Don Sebastian〉(1689)은 실패했으나, 헨리 퍼셀의 음악 덕분에 〈암피트리온 Amphitryon〉(1690)은 성공했다. 퍼셀과 합작한 〈아서 왕 King Arthur〉(1691)도 성공을 거두었다. 비극 〈클레오메네스 Cleomenes〉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소재를 썼다고 하여 공연허가를 얻지 못했고, 1694년에 쓴 희비극 〈승리한 사랑 Love Triumphant〉이 실패하자 그는 극작을 그만두었다. 1680년대와 1690년대에는 출판업자 제이콥 톤슨을 도와 시문집을 주간했고 주베날리스와 페르시우스의 작품을 번역했다. 1692년 애빙던 백작부인의 남편으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고 긴 기념시 〈엘리오노라 Eleonora〉를 써서 출판했다. 그러나 후기의 대표작은 1694년에 톤슨과 계약을 맺고 집필하여 1697년에 출간한 베르길리우스의 번역서이다. 이무렵 드라이든은 영국문단의 원로로서 윌스 커피하우스에서 젊은 작가들과 한담을 나누곤 했다. 톤슨이 출판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오비디우스·초서·보카치오 등의 작품을 개작한 〈고대와 현대의 우화 Fables Ancient and Modern〉(1700)로서, 비평적 서문으로 시작한다. 1700년에 죽었으며,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시인들 코너(Poet's Corner)에 제프리 초서와 에이브러햄 카울리를 양옆에 두고 묻혔다.
454    詩論하면 論字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댓글:  조회:3932  추천:0  2015-04-20
1. 시 론  강의 목차에는 거창하게 '시론'이라고 넣어 놓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어렵군요. 대학에서 '시론' 하나만으로도 한 학기는 필요할 텐데 더구나 詩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어찌 이 한 강에서 시론을 논하겠습니까?  '論'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니 여기서는 '시론' 대신에 일화(逸話) 두어 개를 가볍게 소개하면서 '시론'에 대신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심심풀이 땅콩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니 가볍게 읽되, 생각은 좀 깊이 해 보십시오.  1) 일화 1  이 일화는 P.발레리의 '문학단상(文學斷想)'에 나오는 드가와 말라르메에 관한 일화입니다.  "드가는 시작(詩作)이 순조롭지 않거나, 시의 여신이 그를 저버렸거나, 그가 시의 여신을 잊고 있어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여러 예술가들에게 달려가 불평도 털어놓고, 조언도 구하곤 했다. 그는 때로는 에레디아에게, 때로는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달려갔다. 그는 자기의 고통을, 갈망을, 마침내는 자기의 무능력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온종일 이 빌어먹을 소네트를 쓰느라고 애를 썼소. 난 이 시를 써 보려고 그림도 제쳐놓고 완전히 하루를 바쳤단 말이오. 그런데도 내가 바라던 것을 쓸 수가 없었소. 이젠 머리가 다 지끈거리오.' 한번은 그런 얘기를 말라르메에게 하고 난 후에 마침내 이런 호소까지 털어놓았다. '난 왜 내가 짧은 시 한 편을 완성할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넘칠 듯이 있는데도 말이오.' 이 말에 말라르메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드가, 시를 짓는 것은 생각들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오. 시는 말들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오.' 바로 이 말 속에 위대한 교훈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 글 속에서 여러분들 나름대로 '위대한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어려운 시론이 왜 따로 필요할까요?  2) 일화 2  이 일화는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오는 고려 시대의 시적(詩敵)이었던 정지상과 김부식에 관한 일화입니다.  "고려의 정지상과 김부식은 서로 시적(詩敵)이었다.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의 사령관이었던 김부식은 정지상도 이 난에 관련되었다 하여, 평소 시에 있어서의 숙적이었던 그를 처형해 버렸다. 그 뒤 어느 봄날 김부식은 시 한 수를 지었다. '양류천록록(楊柳千綠綠) 도화만점홍(桃花滿點紅)[버들은 일천 가지로 푸르고 복사꽃은 일만 송이로 붉구나.]' 그러자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갈기면서 호령했다. '이놈아! 버드나무가 일천 가지인지 복사꽃이 일만 송이인지를 네가 세어 보았느냐? 왜 양류록록록(楊柳綠綠綠) 도화점점홍(桃花點點紅)[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송이송이 붉구나.]이라고 못 하느냐?' 했다. 나중에 김부식은 어느 절간 변소에서 정지상의 귀신에게 불알을 잡아당기어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별로 모양새가 좋은 일화는 아니지만 이 일화 속에서도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아주 훌륭한 시론을 나름대로 터득하셨을 것입니다.  딱딱한 시론보다야 재미있는 일화 속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내는 '시론'이 훨씬 더 값지고 오래 기억되지 않을 까요?  물론 이 강의에서도 '시'의 어원부터 끄집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학자님들이나 할 일이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시론'을 이해하도록 합시다. 그럼 여기서 호라티우스의 '시론'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음미해 보면서 '시론'은 마무리짓도록 합시다.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2. 詩의 정의(定義)  '詩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人生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입니다.  누가 이 질문에 대하여 만점 답안을 제출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고 간 선인들이 먼저 시를 쓰신 분들이 내린 그 수없이 많은 정의 중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기사 그 정의도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詩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詩는 운율에 의한 모방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의도 너무 광범위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범위를 좀더 좁혀서 내린 시의 정의를 찾아볼까요?  이 때도 시의 정의를 기능과 효용 측면, 내용과 형식의 구분 측면, 그리고 구조나 구성 과정 측면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니 다 그만두고, 동서양의 시인들이 내린 정의 중에서 살펴보는 것이 그래도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장백과대사전'을 펼쳐보면 詩에 대한 어록만도 백여 개가 훨씬 넘어서 그것을 다 살펴볼 수는 없는 일이라, 여기서는 나의 주관적 기준에서 선택하여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 시는 악마의 술이다.  * 시란 美의 음악적인 창조이다.  * 나에게 있어서 시는 목적이 아니고 정열이다.  *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한 편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  *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 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 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 나이 어려서 시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 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 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 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난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 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 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무 데에서도 찾지 못한다.  *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시도 경탄을 강요한다.  * 빅토르 위고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표현은 일종의 기이함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 작품에 그런 직접적인 표현이 범람하고 있으면 그 작품 전체의 시적 아름다움을 말살하고 말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 시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이다.  *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  -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 에 이르기를, '기(氣)는 싱싱한 것을 숭상하고 말은 원숙코자 하는데, 초학(初學)의 시는 기가 싱싱한 다음이라야 장년이 되어서 기가 표일(飄逸)하고, 장년의 기가 표일한 다음이라야 노년이 되어서 기가 호탕(豪宕)하여진다.' 하였다.  -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 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狹隘)하다면 제 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 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 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시란 곧 참이다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시란 지. 정. 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  - 시에 있어서의 기술이란 필경 언어 사용술을 말하는 것인데, 시상은 언어를 통하여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상에는 이미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저절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서 언어로 형성되는 시상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시가 된다.  - 시 또한 짙은 안개가 아닌가. 답이 없는 세계, 답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그 안개 같은 실재를 지금 더듬고 있는 거다.  이상에서 서른 분의 시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았는데, 너무 많이 제시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하나 하나가 자신의 시 창작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라 최대한 많이 올렸으니, 그 속에서 여러분들도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정의 즉, '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453    영국 시인 - 알렉산더 포프 댓글:  조회:5344  추천:1  2015-04-20
   평온한 삶   물려받은 몇 마지기 땅 외엔 더 바랄 것도 더 원할 것이 없고 제 땅에 서서 고향 공기를 들이마시며 흡족한 자는 행복한 사람   소 길러 우유 짜고 밭 갈아 빵을 얻고 양떼 길러 옷 만들고 나무에서 여름철엔 그늘을 겨울철엔 땔감을 얻네   날마다 조용히 근심걱정 모르고 매순간, 매일, 매년을 스쳐보내는 건강한 육신, 평온한 마음을 가진 자는 복 받은 사람   밤에는 편히 자고, 배우다 때로 쉬니 더불어, 상쾌한 여유로움 그 순박함은 고요한 명상과 더불어 더욱 흐뭇해지네   나 또한 이처럼 흔적 없이 이름 없이 살다 미련 남기지 않고 죽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구나 내 누운 곳 말해줄 비석조차 하나 없이 (알렉산더 포프)         알렉산더 포프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년~1744년)는 영국의 시인이다.   목차    생애     생애 런던에서 출생, 12살에 척추결핵에 걸려 불구의 몸이 되었다. 아버지가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정규학교에서 배우지 못하여 독학으로 고금의 시인을 탐독하고 특히 드라이든의 시풍을 경모하였으며 더 나아가 대성하여 영국 고전주의의 대표적 시인이 되었다. 고전 취미의 《전원시》(Pastorals, 1709)와 운문으로 쓴 《비평론》(An Essay on Criticism, 1711)으로 시단에서 인정을 받았다. 후자는 20세경의 작품이지만 원숙기에 발표한 (Essay on Man, 1732-1734)과 더불어 명언과 좋은 말이 풍부하여 셰익스피어, 밀턴에 이어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격언적 시구를 포함하고 있다. 당시 대륙에서 유행하고 있던 모의(模擬) 영웅시라 하는 희시 《머리채 겁탈》(The Rape of the Lock, 1712) 및 《우졸우인전》(The Dunciad, 1728년)이 그의 걸작이다. 특히 전자는 경묘한 기지와 세련된 공상으로 사람을 매혹케 한다. 명번역으로 이름이 높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d)와 《오디세이아》(Odyssey)는 원작이 지닌 야성적이고, 소박함을 줄이고, 궁정시인의 작품인 것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만년에는 호라티우스적인 풍자시와 서간시(書簡詩)를 주로 써서 예리하게 인생을 비평하고 시작(詩作)기교의 오묘함이 최고에 이르렀다.
452    프랑스 초현실주의 대표시인 - 앙드레 브르통 댓글:  조회:8956  추천:0  2015-04-20
      20세기 초현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이론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 인간정신의 자유를 구현하는 시의 혁신운동을 주창했다 문학 . 초.현.실주의혁명등 기관지를 발간했고 나자 연통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데파르트망 탱슈브레에서 태어났으며 14세때부터 시를 썼다. 파리대학 의학부에 재학중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육군병원 정신과에 복무하면서 프로이트의 작품과 접했다.       1917년 아폴리네르 아라공 t 수포 p차라 등과 함께 교류하며 다다이즘에도 참여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많은 동조자들이 공산주의자가 되면서 분열을 겪었지만 브르통은 끝까지 그것에 전념을 했다고한다.   자유로운 결합 / --앙드레 브르통  나의 아내에게는 장작불같은 머리카락이  여름 하늘의 마른 번개같은 생각들이  모래시계의 허리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범에 물린 수달의 허리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고광도 행성의 화환과 꽃리본같은 입술이  백토 위에 남겨진 흰쥐의 족적같은 이빨이  불투명 유리와 황갈색 호박의 혀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비수에 찔린 제물의 혀가  눈을 깜빡이는 인형의 혀가  전무후무한 보석의 혀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어린아이의 글씨획같은 속눈썹이  제비둥지 가장귀같은 눈썹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유리창에 서린 김과  온실 지붕의 기와같은 관자놀이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얼음 아래 돌고래의 정기를 지닌 샘과  석회질 평원같은 어깨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성냥개비같은 손목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행운의 하트 에이스같은 손가락을  베어낸 건초같은 손가락들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세례 요한 축일의 밤과  쥐똥나무와 엔젤 피쉬 둥지와  담비와 너도 밤나무 열매같은 겨드랑이가 있다  밀과 방아의 혼합같은  수문과 해수 거품같은 팔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폭죽같은 다리와  시계와 절망의 몸짓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딱총나무의 목수같은 장딴지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성명 이니셜 같은 발이  물 마시는 작은 참새의 발 열쇠 꾸러미같은 발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미정백의 보릿단같은 목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급류 하상에서의 만남같은  황금 계곡의 목구멍이  밤의 유방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해변의 둔덕같은 유방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루비 항아리같은  이슬 머금은 장미의 분광같은 유방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세월의 부채살같은 아랫배  거대한 발톱같은 아랫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수직으로 도망가는 새의 등이  수은의 등이  눈부신 등이 있고  잘 세공된 보석과 젖은 백묵같은  우리가 비워버린 술잔의 추락같은 목덜미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작은 곤돌라같은 엉덩이  샹들리에와 화살깃의  섬세한 균형의  하얀 공작의 우간같은 엉덩이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사암과 석면의 볼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백조의 등짝같은 볼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봄의 볼기가  글라디올러스같은 성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사금 광상과 오리너구리의 성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오래된 봉봉사탕과 해초같은 성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거울의 성기가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이  보라색 갑옷과 자침같은 눈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대초원의 눈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감옥속 마실것같은 눈이 있다  나의 아내에게는 도끼에 패인 장작같은 눈이  물과같은 공기 대지불과같은 차원의 눈이 있다  (자유로운 결합),1931, 갈리마르 출판사  여기 내가 좋아하는 브르통의 언술을 덧 붙인다  시인은 문장 속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수 있는 의미 심장한 우연의 일치들  기묘한 유사점들을 주의 깊게 포착하는 일종의 감시병이 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표현 가능한것과  표현 불가능한것, 숭고함과 저속함이 상호 대립으로  인지 되기를 멈추는 한지점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주관과 객관,  꿈과 현실의 이원성을 제거할수 있다  서정성의 발현을 좌우 하는것도 다양한 효과를 지닌  어떤 풍부한 긴장이다  때때로 작가의 개성이 거세된 엄숙한 표현은  탁월한 문장의 정련과 언어가 지닌 잠재적인 힘에의  전적인 의존 사이의 교차를 통하여 자신의 노래를  변주하여 시의 골격을 진동시키는 어떠한 감정에  갑자기 순종하는 양상을 보이기도한다  그를 고찰 하면서 빠질수 없는 단어가 있다  지루할지 모르지만 간략하게 나마 몇자 발췌해 적어본다  자동기술  초현실주의 운동 속에서 자동기술의 역사는 끊임없는  불운의 역사였다 사실상 자동기술의 이론적 실천적  난점들은 너무나 많다( 어떻게 동질성을 확보 할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상이한 성격을 지닌 언술의 토막들이  아주 빈번하게 발견 될수 있는 자동기술된 언술 속에서  이 언술을 구성하는 제 부분의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  할것인가? 중복과 누락은 어떻게 할것인가? 연상되는 것을  무한정 기술할수 없다면 어디쯤에서 중단해야 할것인가?  청각적 인것에서 시각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대단히  난삽 할수있는 구절들을 어떻게 기술 할것인가? 등등)  그러나 이러한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자동기술은  그 근거가 되는 목적 때문에 여전히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전리품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초현실주의의 특징은 잠재의식의 전언 앞에서  모든 정상적인 인간들이 전적으로 동등 하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것이며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무의식의 전언이 반드시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로  간주 되기를 그치고 자기 몫의 요구는 오로지 각자가  책임져야할 인류의 공동 유산이 되리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모두에게나 각자에게 비밀스런 무의식의 세계를 밝혀주는  수단 그 자체가 될수있으며 초 자연적인 것은 조금도  갖고있지 않는 이 언어를 스스로 마음껏 이용할수 있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절대적 가능성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말해 주고 싶다  죽은 놈 불알 만지듯이 너무 오래된 관념 가지고  너무 떠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브르통 이후 전세계 시단은 초현실주의로  확 덮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도 마찮가지 였고요  며칠 있다가는 엘런 식수 라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페미니즘의 이론가가 쓴 페미니즘의 이론에서  빼놓을수 없는 메두사의 웃음이라는 글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여성적인 것이 어떻게 억압 되는가 하는 문제와 동시에  남성 중심적인 언어와 사상의 구조들 즉 온갖 이원론과  위계적 질서화 등에 도발적인 방식으로 의문을 던지는  글 입니다  사실 엘런식수는 너무너무 예뻣습니다  캬트린느 드뇌브 인줄 알았다니까요  캬트린느 드뇌브는 테마 창고에서 할께요     오픈지식 직유와 은유 직유와 은유                                          구상(具常)    지난번 장에서도 거듭 말했지만 〈시는 사물과 사물의 비교〉, 즉 비유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광의적으로 보면 모든 시적 표현들이 모두 다 비유로서 상징이나 심상(이미지)은 물론 우화적(寓話的ㅡ알레고리)·반어적(反語的ㅡ빗댐, 아이러니)·환상적(일류전) 수법이나 또는 의인법·의성법·돈호법(頓呼法)등이 그 모두가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저러한 비유적 표현  들의 설명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보통으로 비유라고 말할 때 우리는 직유(直喩ㅡsimile)와 은유(隱喩ㅡmetaphor) 두 가지로 나눈다.    먼저 직유는 무엇을 말할 때 어떤 것을 다른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말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과 비유되는 것이 〈처럼〉〈같이〉〈인 양〉〈인 듯〉〈모양〉〈마냥〉등이란 낱말로 연결되어 두 가지 다른 사물의 유사성(類似性ㅡ아날로지)을 나타낸다.    여기서 그리 저명한 시인도 아니고 또 명작이라고 할 작품도 아니지만 단정한 직유로 이뤄진 미국의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881∼1944)의 「할머니」라는 시를 보면,        성전 안의        흰 촛불인 듯        늙은 얼굴이        아름답구나.        겨울날의        쇠잔한 햇빛처럼        자기 구실을 다한        여인.        자식들은 품에서 떠났지만        황폐한 방앗간 아래        괴어 있는 물모양        그녀는 여전히 자식들 생각에 잠겨 있다.    할머니의 늙은 얼굴을 성전 안의 흰 촛불에다 비유해서 〈인 듯〉으로 연결하고, 자기 구실을 다한 그녀의 오늘을 겨울날의 쇠잔한 햇빛에다 비유해서〈처럼〉으로 연결하고, 그녀가 자기 품에서 자라 떠나간 자식들 생각을 하는 것을 황폐한 물방앗간 아래 괴어 있는 물에다 비유해서〈모양〉으로 연결하고 있다. 물론 이 시의 원문에는 〈인 듯〉〈처럼〉〈모양〉으로 구별되어 있지 않고 그저 〈as〉만인 것을 필자가 편의상 구별해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직유는 만들기도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것이지만 그 비유가 유효적절하게 쓰여지느냐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쉽지가 않다. 가령 내가 명색 기성시인의 작품에서 발견한 시 귀절로, 〈아가의 눈망울이 눈처럼 맑고 따습다〉라는 직유가 있는데, 아가의 눈이 맑은 것을 흰눈에다 비교한 것은 오히려 그 실제의 감동을 감소시켰다고나 하겠다. 왜냐하면 아가의 눈망울이 주는 그 맑은 빛은 흰눈의 맑음과 색부터 다르고 그 따스함도 눈[雪]이라는 실재의 사물에서는 차가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부적당하게 씌어졌거나 조잡한 비유를 혼유(混喩)라고 하는데, 이런 비유는 오히려 시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반대로 T.S.엘리어트의 처녀시집인『J.알프레드 프르프로크외기타(基他)』속에 있는 「프로프로크 연가(戀歌)」의 일절,        마취에 든 수술대의 환자처럼        저녁 어스름이 하늘에 번져갈 때    이렇듯 적절한 비유는 아무리 비유하고 비유되는 사물이 동떨어진 것이라도 서로가 결합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의 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제시한다.    그래서 직유는 그것이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두 개의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포착·추출하여 독자에게 작자의 상념이나 감동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 비유의 대상을 더 잘 설명할 뿐 아니라 그 대상을 생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 은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앞의 직유가 사용하는 비교의 말 〈처럼〉이나 〈같이〉등을 사용하지 않고 두 사물이 지니는 유사성을 한 말로 압축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란 오직 직유에서 비교용어를 생략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그 비유의 발상과정에서부터 다르다고 하겠다. 가령 〈돌과 같은 침묵〉이라고 하면, 돌이라는 형상과 침묵이라는 형  상이 없는 개념이 일단 인간의 이지적 비교를 통한 그 결과에서 연결되지만, 〈돌의 침묵〉이나〈침묵하는 돌〉이라면 저러한 논리를 넘어서 직관적으로 결합되는 표현인 것이다. 또한 은유는 그 비유의 세계를 (비유되는 말)한정시켜서 설명하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특성을 지닌다. 그 설명은 실제의 작품에서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우리 시인 유치환(柳致環, 1908∼67)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 「기(旗)ㅅ발」을 음미해보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말고 곧은 이념의 표 ㅅ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시에서 〈물결같이〉와 〈백로처럼〉의 직유를 제외하면 주제가 된 사물인 깃발의 본질적인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서 전혀 관련 없는 사물이나 뜻밖의 관념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그것을 비유하고 있다.    언뜻 외양으로는 〈깃발과 아우성〉〈깃발과 손수건〉〈깃발과 애수(哀愁〉는 동떨어진 사물이나 관념이지만, 그 깃발이 내포하고 있는 이념 그 자체는 그야말로 절규처럼 강렬한 주장으로서, 가령 태극기를 다는 그 자체가〈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깃발과 아우성〉이라는 두 가지 사물의 유사성이 논리적 귀결에서 이뤄졌다기보다는 직관적으로 결합되고 또한 그 유사성의 발견을 독자의 상상력에 제한 없이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의 특징은 〈깃발과 손수건〉〈깃발과 애수〉에 이르르면 더욱 잘 나타나고 있어 비유상징의 그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비유라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은 외면적인 유사성인데 이것은 우리의 사물에 대한 통념화된 의식의 접촉으로서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쓰여지는 말과 말의 평면적 접촉인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앞장에서 말했듯 그 본질에 있어 무한하다고 할 만큼 여러 면을 가지고 있어서 일상생활에서는 아주 좁고 적은 면밖에 사용되지 않고 다른 면은 우리 의식 안에 파묻혀 있다. 그래서 이렇듯 빈약한 언어와 언어의 협소한 면의 접촉만으로써는 남을 놀라게 할 뜻밖의 유사성을 결코 끄집어낼 수가 없다. 그 두 가지 말이 지니는 무한한 면 (뜻)속에서 가장 유일의 것을 골라내어 하나의 유사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시가 설득의 문학이 아니고 암시의 문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 비유, 특히 은유의 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능은 도식적 형태에서부터 복잡한 변형과 다양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래서 비유기능의 질적 변화가 시의 진화의 역사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초심자들에게는 이해하기 곤란하고 아주 지겹도록 길기도 하지만 현대시의 초현실주의적 수법(은유)의 족보같이 여겨지는 시라 우선 읽어두기라도 하여야겠기에, 불란서의 정신과의사 출신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의 「자유로운 결합」을 여기에 옮겨 소개하는 바다.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산불의 머리칼을      백열(白熱)하는 번개의 생각을      모래시계의 몸통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호랑이 이빨 사이의 수달의 몸통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장미꽃 무늬 리본 매듭과 최후의 웅대한 별의 화환의    입술을      흰 땅 위의 흰 생쥐의 흔적 같은 이를      문지른 호박과 유리의 혀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칼에 찔린 제병(祭餠)같은 혀를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인형의 혀 같은 혀를      믿기 어려운 보석의 혀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어린이의 첫 습자글씨 같은 눈썹을      제비둥지의 가장자리 같은 눈썹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온실 지붕의 슬레이트 같은 관자놀이를      유리창에 낀 습기의 관자놀이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샴페인과      얼음 밑의 돌고래들 머리의 분수(噴水)와 같은 어깨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성냥개비 같은 팔목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우연과 하아트의 에이스의 손가락을      잘린 마른 풀의 손가락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담비와 너도밤나무 열매의      그리고 세례자 요한 축일 밤의      쥐똥나무와 고사리 둥지의 겨드랑이를      바다 거품과 수문(水門) 거품의 팔을      밀과 물레방아의 범벅 같은 팔을      폭죽과 같은 다리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시계장치의 절망의 운동을 하는      로케트의 다리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말오줌나무의 속 같은 종아리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머릿글자의 발을      열쇠꾸러미 같은 발을, 술 마시는 배틈막이 일꾼의 발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패이지 않은 보리쌀의 목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황금 골짜기의 목구멍을      격류의 강바닥에서의 밀회의 목구멍을      한밤중의 유방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루비 도가니의 유방을      이슬 내린 장미의 유령의 유방을      바다두더쥐 집 같은 유방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일상용(日常用)의 부채를 펼치는 것 같은 배를      거대한 발톱 같은 배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수직으로 나는 새의 등을      수은(水銀)의 등을      빛의 등을      굴린 돌과 젖은 분필의 목덜미를      마셔버린 술잔의 떨어짐과 같은 목덜미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작은 보트 같은 엉덩이를      샹들리에 화살깃의 엉덩이를      감지할 수 없는 균형의      백공작의 날갯죽지의 엉덩이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모랫돌과 돌솜의 엉덩이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백조의 등 같은 엉덩이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봄의 엉덩이를      글라디올러스의 섹스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금광상(金鑛床)과 오리너구리의 섹스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바닷말[海藻]과 옛 봉봉의 섹스를      내 아내는 갖고 있다. 거울의 섹스를      내 아내는 갖고 잇다. 눈물이 가득한 눈을      보랏빛 갑옷투구와 자석침(磁石針)의 눈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대초원(大草原)의 눈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옥중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의 눈을      내 아내는 갖고 있다. 언제나 도끼에 찍힐 나무의 눈을      수준기(水準器)의 눈, 공기와 흙과 불의 수준기의 눈을.    이 시는 작자 브르통이 그의 전공인 정신분석학을 응용, 초현실파 특유의 일상적 연상을 단절하고 일반적 논리나 감각을 뛰어남은 인간의식의 심층에서 그 유사성을 추출하고 있다. 즉, 나의 아내라는 여체의 모든 부분을 일상의식에서 포착하고 이를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매몰되고 잠재하는 의식의 영역 속에서 찾아내고 이를 표상한  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아내라는 통속적 개념을 파괴하고 존재의 특수한 본질에 접근하려고 든다.    저렇듯 브르통의 비유가 난해하지만 그래도 문맥상으로는 비유하는 것과 비유되는 것이 명료하고 단순하여서 거듭 읽으며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 가면 제 나름대로의 음미가 가능하다. 그러나 점차 현대시인의 시적 사고가 복잡해지고 그 암시적인 의식이 미묘해질수록 은유의 세계는 더욱 난해해져서 일반독자에게 광범한 상상의 자유가 허용된달까! 이것이 이것이라고 적확한 해석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 정직한 토로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저 〈자유로운 결합〉의 비유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핍진한 내적 진실을 독자에게 말하려드는 것만은 최소한 알 수가 있다. 그래서 그것이 한 사물에 대하여 아주 새로운 지각의 경험세계를 보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의 역할을 다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미묘하고 초현실적인 비유라 하여도 어디까지나 그 의식 내면에 실재하는 유사성과 그 진실성에 인간상호간의 공통성이 있어야지 그저 황당무계한 기상(奇想)과 언어의 유희로써는 탁월한 비유는커녕 표상의 실재가 없는 도깨비(거짓의)시가 되고 만다.    여하간 희랍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322)가 그 『시학』속에서 〈은유를 구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은 말의 본질과 존재의 본질의 인식이 깊어질수록 그것이 바로 메타포의 창출로 직결되기 때문이라 하겠다.  ================================================ 요약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초현실주의는 특히 회화에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다다이즘뿐만 아니라 프란시스코 고야와 마르크 샤갈 같은 화가들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다.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호안 미로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초현실주의는 내용적 측면과 자유로운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있던 당시 입체파 미술의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강조하는 회화적 전통을 현대 미술에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과거 유럽 문화와 정치를 주도해왔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 속에서도 절정을 이루었던 이성주의가 결국은 파괴를 야기시켰다고 보고 그에 대한 반대를 표방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이 운동의 대변자로서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공표했다. 브르통 (André Breton) 프랑스의 시인, 수필가, 평론가 그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며, '절대적 실재, 즉 초현실' 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이성의 세계와 결합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상상력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또한 시인이나 화가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천재성은 일반적으로 미개발된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접근가능성으로 규정했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피에르 르베르디 등의 시는 전과정에 걸쳐 논리적이 아닌 심리적인, 즉 무의식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 생경한 단어들의 병치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초현실주의는 특히 회화에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다다이즘뿐만 아니라 히에로니무스 보스, 프란시스코 고야 등 전 시대의 화가들과 오딜롱 르동, 조르조 데 키리코, 마르크 샤갈 등 동시대 화가들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예술작품이 인간심리의 탐구와 그 표현을 촉구하는 수단임을 강조하면서, 방법론적 연구와 실험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925년 파리에서 전람회를 열었으나 초현실주의의 역사는 제명과 탈퇴, 인신공격 등으로 얼룩졌다.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폴 델보, 호안 미로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호안 미로 (Joan Miró)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그들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여 초현실주의적 양식으로 범주화해서 요약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각자 나름대로 자기탐구의 수단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의식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하려는 1가지 목표만을 추구했다. 한편 미로를 비롯한 화가들은 지고미(至高美)를 형식적 수단으로 해서 개인의 환상, 무의식과 의식을 탐구했다. 이 두 극단은 그 발전가능성의 영역면에서 구별된다. 장 아르프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한쪽 극단은 추측할 수는 있지만 불확정적인 생물형태적인 이미지를 창조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무의식적인 연상작용을 일으켜 그 끝없는 탐구과정을 통해 창조적 상상력이 스스로 발언하게 하는 것이다. 에른스트·마송·미로 등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유기적·상징적·절대적 초현실주의라고도 했다. 이와 반대되는 극단에서는 명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나 비합리적인 세계를 접하게 된다.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인식 가능한 이미지는 일상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모호하고 역설적이며 충격적인 구조로 재구성된다. 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논리에 의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비이성적인 선천적 감각을 받아들이게 하고, 이에 대한 공감을 유발시킨다. 르네 마그리트는 햄 한 조각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는 보통 테이블 하나만 그리는 등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표현을 하여 그러한 접근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살바도르 달리, 피에르 루아, 폴 델보 등도 이와 유사하지만 좀더 복잡한 형상으로, 현실세계에 꿈처럼 기이한 장면을 결합시켜 표현했다. 그들은 심리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몇 가지 특수한 기법을 고안했다. 나무 등 요철이 있는 재료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는 프로타주, 캔버스를 긁어 자국을 만드는 그라타주 등은 에른스트가 개발한 것으로 그 불완전한 이미지가 보는 이의 마음속 에서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의 무의식으로부터 분출하는 혼돈의 이미지를 다듬지 않고 즉흥적으로 기록하는 자동기술적 소묘(→ 자동기술법), 일상 생활에서 취한 오브제 등도 주요기법에 속한다. 프로타주(frottage) 동전 프로타주 초현실주의는 내용적 측면과 자유로운 형식을 강조함으로써 형식주의로 치우치고 있던 당시 입체파 미술의 대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을 강조하는 회화적 전통을 현대 미술에 이어준 공로가 크다. 특히 유기적 초현실주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비재현적인 형태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451    프랑스 시인 - 자크 프레베르 댓글:  조회:5179  추천:0  2015-04-20
        1961년의 자크 프레베르   서명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자크 프레베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 뭔가 단순한 것 뭔가 쓸 만한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그림을 걸어 놓을 것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맘먹고 오는 것이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하는 법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한 법   새가 날아올 때는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그리고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새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서늘한 바람과 햇빛의 가루와 여름 열기 속 풀숲을 기어다니는 작은 곤충 소리들을 또한 그릴 것   이어서 새가 노래하기를 맘먹도록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사인해도 좋다는 징조   그런 후에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아 그림 한 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세요         -----------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1900년 2월 4일 ~ 1977년 4월 11일) 프랑스의 시인, 영화 각본가. 그의 시는 프랑스어 세계, 특히 학교에서 매우 유명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쓴 영화 가운데 사상 최고의 영화 하나로 여겨지는 '천국의 아이들'과 더불어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이브 몽탕이 부른 유명한 샹송 '고엽'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메세지                            - 자크 프레베르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는 의자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나는 보통 시를 읽을때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이에 얼마나 내가 감정이입 할 수 있으며 그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를 중요시 한다. 물론 운율이나 기타 다른 요소 또한 작용하겠지만, '나'는 머릿속에 그리며 따라가는 그 과정이 좋다. 그렇기에 우연히 본 자크 프레베르의 '아침의 식사'에서 시작하여 계속해서 다른 시들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아침의 식사         찻잔에 커피를 부었다.  찻잔의 커피에 밀크를 부었다.  밀크 커피에 사탕을 넣었다  작은 스푼으로 저었다  밀크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찾잔을 놓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보지 않고 일어섰다  모자를 머리에 썼다  비가 내렸으므로 레인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빗속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쪽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사실상 비슷한 구성. 물론 그의 시가 모두 이런 구성인건 아니지만 그의 느낌은 시 곳곳에서 살아있어 계속 찾게 만든다.   난 이런사람   나는 이런사람 이렇게 태어났지   웃고싶으면 큰소리로 웃고 날 사랑하는 이를사랑하지   내가 사랑하는사람이 매번 다르다해도 그게어디 내탓인가   나는 이런사람 이렇게 태어났지 하지만 넌 더이상무엇을 바라나 이런 내게서   나는 하고싶은걸 하도록 태어났지 바뀔건 단 하나도없지   내 발꿈치가 아주 높이솟았다 해도 내 몸이 몹시 휘었다 해도 내 가슴이 너무도 거칠다 해도 내 두눈이 이다지 퀭하다 해도 네가 그걸 어쩌겠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이런사람 난 내마음에드는 사람이 좋은 걸 네가 그걸 어쩌겠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인데 그래 난누군가를 사랑했지 누군가가 날 사랑했었지 어린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듯이 오직 사랑밖에는 할 줄 모르듯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듯이.... 왜 내게 묻는거지 난 너를 즐겁게 하려고 이렇게 있고 바뀐건 아무 것도 없는데    이 얼마나 솔직한가. 위 두 시에서는 감정의 표현 없이 사건의 나열로 솔직하게 표현하였다면 여기선 그냥 꾸밈 없이 자기 하고싶은 말만 나불댄다. 그는 숨김 없는 표현으로 내면의 순수성을 자극한다. 시 '쓰기공책'에서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항을 보여주며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며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고 있다.    밤의 파리    성냥개비 세 개를 하나씩 켠다 어둠 속에서 첫 번째는 네 얼굴 또렷이 보기 위하여 두 번째는 네 두 눈을 보기 위하여 마지막 것은 네 입술 보기 위하여 그 다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 두 팔 안에 너를 꼭 껴안는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일상적인 풍경과 소재로 시를 쓴다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시 뿐만 아니라 내가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던 것, 느꼈던 것들을 제 3자가 보는 것처럼 관찰하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모래밭에서 각 모래에도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는게 더 어렵다는걸 알게 한다. 사소함에서 시를 쓰기에 그의 시 하나하나에서 나의 모습 또한 읽히는 것은 아닐까. 
450    詩歌란?... 댓글:  조회:4233  추천:0  2015-04-20
시가란?     시가란 마치 화가가 색채로 하는 것을 언어로 하는 예술로서 상상력에 의하여 환상을 분출하는 방법에 의하여 산출하는 예술이다. ―토마스 머코올리. 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을 발견이다. 예기치 않는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준다. ―W.세익스피어. 시는 생의 진술이며 표출이다. 그것은 체험을 표시하고 생의 내면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다. 제2의 세계, 꿈은 최고의 시인이다. ―워즈워드.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A.오오든. 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 『詩論』. 시의 용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W.B.예이츠. 시는 언어를 향한 일제사격이다.―앙리 미쇼.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다.―M.하이데거. 시는 언어의 모자이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행위와 시는 언제나 인간보다 크다. ―T.E.흄. 시는 극점에 달한 언어다. ―말라르메. 시는 절조 있는 언어로서 절규·눈물·애무·입맞춤·탄식 등을 암암리에 표현하려는 것이다. ―뽈 발레리. 시인에게 있어서 낱낱의 단어가 그 원료다. 단어는 극히 여러가지 모양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것들의 뜻은 시의 구성에 따라 처음으로 똑똑해진다. 이와같이 단어가 콤포지션의 가능성에 따라서 변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형성된 예술 형태의 한 부분이 될 때까지는 어세(語勢)도 그 효과도 다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프도프킨. 시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생활은 사막의 생활이다. ―메르디트. 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언어이다.―E.A.로빈슨. 시에선 해조(諧調)가 미리 공허한 형식을 결정하고 말이 위로 와서 위치를 잡는다. 말과 경험 사이의 응화(應和)와 불응화 그리고 결국에 응화가 해조를 확보하여 주의력을 거기에 모은다. 물러섬이 없는 움직임이 듣는 사람과 시인을 함께 끌고 간다. ―알랭 . 시는 미의 음악적 창조다.―E.A.포우.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에르. 정서가 있고 운율이 있는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또 예술적 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다. ―오든.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브리지스. 시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구성체다.―브룩스. 시는 우연을 기피한다. 시에 나타나는 클라스·성격·직분 등의 개성은 반드시 어떠한 클라스를 대표한다. ―코울리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이다.―웰렉·워렌.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엘리어트.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W.H.허드슨. 예술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작게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며, 그러면서도 우리들을 확대 시킨다. ―E.M.포스터. 아직 탄생하지 않은 어느 특별한 일절 또는 일련의 배후에서, 하나의 힘과 같이 집중되어, 넓게 전개되는 의식의 총체. ―보트킨. 열정적인 시란 것은, 우리들의 본성의 도덕적 지적 부분과 동시에 감각적 부분―지식에의 욕망, 행위의 의지, 감각의 힘을 방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완전한 것이 되려면, 우리들의 신체의 다른 여러 부분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 ―하즈리트. 시는 조잡한 요소로(물을 타고 섞어서) 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엑기스(精)이며, 그것을 키울 수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순수한 이미지의 시는 수정 조각과 같은 것이어서―우리들의 동물감각엔 너무나도 차고 투명한 것이다. ―허버트 리드. 가장 위험한 것은, 순수한 물의 성분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는 거와 같이, 정말로의 순수한 시라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하여서도 강연을 할 수 없는 것이다.불순하며, 메칠알콜이 들어간 거칠은 시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월터 로리. 시적 논리가 시의 결말을 맺는 것은, 일반적으론, 기분의 변화라든가, 위상의 전환을 통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시적 논리이다. 즉 논술이나 명증에 의하여 위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단계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그러한 위상의 변화이며, 이해할 수 있는 추이인 동시에 그 진행은 앞의 단계를 무효로 하는 그러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W.P.카. 오로지 이미지는 시의 극치이며 생명이다. ―드라이든. 방대한 저작을 남기는 것보다 한평생에 한번이라도 훌륭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진실한 이미지 뿐이다. ―W.블레이크. 만약 지각(知覺)의 문을 맑게 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 즉 무한감(無限感)을 가진 것같이 보일 것이다. ―W.블레이크. 이미지는 우리들에게 사랑과 희생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그것은 어느 경험을 생각케 하며 그 문체에 의하여 그러한 경험에의 어느 종류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우리들은 어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즉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것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희열이든가 절망이든가 어떠한 감정이든간에 그것을 아는 것이 강한 만족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챨스 윌리암즈. 이미지의 생산은 무의식의 어두침침한 속에서의 정신의 일반적 행위에 속한다. ―E.S.달라스. 나에게 있어서 지각은 처음에 명료한 일정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어느 음악적인 무우드(기분)가 우선한 다음에 시적 사상이 나에게 다가온다. ―쉴러. 이미지의 발생, 진전, 설정은, 예를 들면 태양의 광선이 자연히 그에게 도달하여 ―그의 위에 빛나고 다음엔 냉정히 더구나 장려하게 기울어 가라앉아가며 그를 호화스러운 황혼 속에 혼자 남기는 현상에 흡사하다. ―J.키츠. 우리들은 정신의 영역을 3중의 층으로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러한 경우 지질학의 ‘단층’에 비교할 수 있는 어느 현상이 일어난다. 그 결과……지층은 비연속적이며 서로 불규칙한 단층을 나타나게 된다. 그와 매한가지로 자아의 감각적 의식은 본능적 충동과 직접 교섭을 갖게 되며, 그 ‘끓는 가마솥’에서 어떠한 원형적 형태 즉 예술작업의 기초가 되는 말, 이미지, 음 등의 본능적 짜임을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 ―H.리드. 나의 경우 시에 있어서는 많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의 중심이 많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만든다’라는 말은 적당치 않은 말이지만, 나는 나의 이미지에 내 내부에서 정서의 여러 가지 배색을 물들여 놓고 그것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 비평적인 힘을 적용하여 그것이 또 다른 이미지를 낳게 한다. 그리곤 그 제2의 이미지를 제1의 그것과 모순시켜, 그 둘에서 난 제3의 이미지에서 제4의 모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것들 모든 것을 나에게 주어진 형식적인 제한의 범위 내에서 서로 모순시킨다. 각각의 이미지는 그 속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종자를 가지고 있다. 즉 나의 변증적 방법(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은 중심의 종자에서 성장하는 많은 이미지의 끊임없는 건설과 파괴며, 그 중심의 종자도 그 자신으로 파괴적인 동시에 건설적인 것이다.……나의 시의 생명은 중심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 속에서 나와, 그리고 죽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이미지의 건설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어쩔 수 없는 충돌에서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충돌에서)―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자극을 주는 중심 즉, 충돌의 모태가 창조와, 재창조와, 파괴와, 모순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나는 시라는 순간적 평화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딜런 토마스. 이미지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자신으론 시인의 특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독자적인 본능의 증거가 되는 것은 훌륭한 정열, 또는 그 정열로 잠깨워진 일련의 사상 혹은 이미지 여하에 따라 시 그 자체가 변할 만큼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때 뿐이다. ―코울리지 추상적 관념에 대립하는 감각적 이미지를 너무나 주장하는 나머지…… 결과는 회화에 의한 시로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때로는 그림이 전부가 되어버려, 일반적 경험에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은 존재와 의미와를 분리시키는 잘못의 제일보였던 것이다. ―로버트 히리아. 상상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시적 몽상이라는 몽상의 절대를 인식한다. ―바슐라르. 실제로 물질적 상상력은 문화적 이미지와 실체를 합체시키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모든 삶을 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 상상력 그 자신은 기억의 작용이므로 기억이 시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 진실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전에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그것을 어느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스펜서. 추상적인 것의 구체화를 추구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내 방법은 아니다. 나는 내 자신 속에 감동 ―감각적으로 생생한, 사랑스러운, 다채로운 여러가지의 감동 ―을 기민한 상상력의 에너지로서 받았던 것이다. ―괴테 이성이라는 것은, 기지(旣知)의 사물을 질서있게 정리하는 작용이며 상상력이라는 것은 사물의 개개, 혹은 전체로서의 가치를 지각하는 작용이다. ―C.V코노리 상상력이야말로 도덕적 선(善)의 훌륭한 방편이다. ―셸리. 상상력이라는 것은 죽어 가는 정열을 되살리기 위하여 살(肉)을 잡아 두는 불사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J.키츠 모든 것에 앞서서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를 자기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없는 천부의 은총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러면 자연 은유가 될 것이다. ―J.M.머리. 은유는 현실을 살피며 경험을 질서짓게 하는 정신의 본질적이며 또한 필요한 행위와 같이 생각된다. ―J.M.머리. 어떠한 번역이나, 은유나, 우의라도 극단적인 비유와는 전연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은유를 바다나 파도에서 시작하여 불꽃이나 재로 끝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대단히 나쁜 모순이기 때문에. ―벤 존슨 은유를 깊이 추구하려면 건전한 의식의 세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J.M.머리. 상징파의 상징은 언제나 자기만이 아는, 특별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인이 독단적으로 쓰고 있는 ―즉, 그러한 관념의 일종의 투영인 것이다. ―에드문드 윌슨 상징주의의 상징의 실체는 제재에서 분리한 은유였었다.―왜냐하면 시에 있어서 어느 한 점을 넘으면 색채와 음은 그 자신을 위하여 즐거워할 수가 없을 뿐더러 이미지의 내용을 억측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에드몬드 윌슨.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오랜 대형 메달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매자락에 닳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상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 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A.맥클리쉬 『詩法』. 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앞에 있다. ―R.끄노오 『詩法을 위하여』 시(詩)는 낳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니다. The poem is born, not made. ―시는 체험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 ..           자기 시에서 진단해야 할 것들                   1. 첫번째 질문   당신은 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문인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보다 창 작방법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 을 쓰려면 먼저 자기 문학관부터 검토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 은 어떤 문학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 구조와 조직의 초점 이 달라지고, 독자들의 반응 역시 어느 정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일관된 문학관을 지니고 있는 문인들이 드물다는 점입니다. 아니, 문인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문학을 연 구하는 학자나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페이지에서 문학 을 '작가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뒤 페이지에서 는 '허구'나 '모방'으로, 그 다음 페이지에서는 '언어의 구조물'이 나 '교훈을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 정의하기가 일수입니다. 이와 같은 용어들이 같은 관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은 문예이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조금만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작가 '내부'에서 발생한 정서와 의 식의 움직임을 화제로 삼는 '표현적 관점expressive view'으로서, 이러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진실하고 강렬한 표현을 목표로 삼습 니다. 그리고 '모방'은 작가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을 화제로 삼는 '모방적 관점(mimetic view)'으로서, 객관적이며 사실적 표현 을 목표로 삼습니다. 또, '언어의 구조물'이나 '독자들에게 교훈을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 정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객관적 관점(objective view)'으로서, 텍스트의 구조와 조직을 비롯한 '형식'을 중시하고, 후자는 '효용적(pragmatic view) 관점'으로서 '내용'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문학관의 문제에서 우리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용어뿐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혼란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기에 이를 첫 번째로 삼았습니다. 자아, 질문 일발 장진하고…, 쏩니다. 받아 보세요! □ 당신은 장르에 따라 각기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혹시 모든 관점이란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장르를 같은 관점으로 읽고 쓰는 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문학의 입문에들어서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화내지 마 시기 바랍니다. 만일 시를 쓰는 분이라면 소설이나 수필로 써야 할 제재를 시로 써서 '서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테고, 소설을 쓰는 분이라면 시로 쓸 제재를 소설로 써서 '스토리성이 박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알고 있는 이론을 끌어대며 변명하는 분일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각 장르는 그 나름대로 탄생된 목적이 달리 있습니다. 먼저 모든 담화를 크게 구분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느꼈다)'와 '그것은 이렇다'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자는 '주관적 정보를 제공 하기 위한 담화'로서 우리가 이제까지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켜온 것들이고, 후자는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담화'로서 문학의 범주에서 제외해 왔던 것들입니다. 그리고, 각 장르의 목적을 알아보기 위해 전자를 다시 속성에 따라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가운데 글을 쓰는 사람이 ―다음부터는 자주 화자話者라고 부르 겠습니다 ― 어떤 사건을 겪은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달 하려는 수필은, ― 이 역시 '교술敎述로 바꿔 부르겠습니다. '수필'은 느슨한 구성을 염두에 두고 붙인 명칭인 반면에, '교술'은 화제의 속성을 염두에 둔 명칭으로서, 기본 장르는 구성이나 조직의 특징으로 분류하는 것보다 화제의 속성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탄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효용적 관점'에서 탄생된 장입니다. 물론, 교술 가운데에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거나 논평을 붙이기 위해 쓰여지는 유형도 있습니다. 기행문이나 논픽션 같은 '서사적 교술'과, 칼럼과 비평 같은 '분석적 교술'이 이에 속합니다. 그러 나, 이들도 겉으로만 교훈을 잠재시켰을 뿐, 독자에게 유용하리라 고 믿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탄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술이 이와 같이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탄생된 장르라는 것은 우선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화제를 택하고, 화자가 텍스트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걸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주장 +예화'를 교차시키는 '느슨한 구성'을 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훈은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독자 ―앞으로는 자주 청자聽者라고 바꿔 부르겠습니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자면 청자가 화자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편 타당성을 지닌 이야기이어야 합니다. 신뢰가 가지 않은 사람이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할 경우에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술이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화제를 택하고, 화자가 자기 인격을 걸고 텍스트 의 전면에 나서서 독자에게 직접 말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를 설득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화자가 말하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고, 그런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실례實例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는 느낌이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작가의 주장 +예화'를 교차시키고, 주장을 펴는 부분에서는 '작가적 어법authorial speech'으로, 예화를 드는 부분에서는 '모방적 어법figural speech'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리고, '느슨한 구성'이 되어도 고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교차 구조로 나타나는 결과이긴 하지만, 조작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독자에게 무엇인가 교훈을 주기 위한 제재는 교술의 형식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서사敍事는 '사건의 과정'을 그리기 위해 탄생된 장르입니다. 그리고, 부차적인 목적이 있다면, 그 사건에 대해 부분적으로 '자기의 주장과 해석'을 덧붙여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르입니다. 서사가 이런 목적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사건을 그리는 부분은 '모방적 어법'으로, 자기 주장과 해석을 덧붙이는 부분은 '작가적 어법'으로 쓰여지는 것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 니다. 따라서 서사는 교술과 아주 비슷한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스토리성이 허약한 서사가 교술과 유사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상이나 교훈이 부차적인 목적으로 물러나기 때문에 교술과 달리 사적私的이거나 비윤리적인 화제도 무방합니다. 서사는 독자에게 작중 인물을 모방하라고 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과 비교하고 재미로 읽어보라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사에서 발견되는 교훈이나 사상은 작가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임의로 해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구조와 조직적 국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교술은 자기주관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중심이 되지만, 서사에서는 예화가 중심이 됩니다. 그로 인해 '모방적 어법'으로 쓰여지는 부분이 주류를 이룹니다. 그리고 작가적 어법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작가의 주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사건에 대한 해설과 논평을 붙이는 수준에 그칩니다. 그러므로, 서사 는 무엇보다 리얼리티와 오락성이 중시되는 장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겪은 후 '현재의 정서'를 이야기하려는 서정적 장르에 서는 '모방적 어법'이 배제되고 '작가적 어법'으로 쓰여집니다. 그로 인해 앞의 두 장르가 추구하던 객관성과 사실감을 부각시키기 가 어려워지는 반면에 정서의 개별성, 강렬성, 자유로운 상상력을 부각시키기가 용이합니다. 그리고, 어법상으로 보았을 때는 얼마든지 가능하게 보이는 사상의 표현도 어려워집니다. 사상이나 윤리는 수백 번 언급하는 것보다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화제가 '현재 이 순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이들을 거론하는 것만 가능할 뿐, 실천하는 과정을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위대한 사상을 지녔다는 작품도 텍스트 자체만을 분석할 때에는 별다른 사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 여타의 장르와 달리 로 치환置換하는 어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모티프와 모티프를 '인과적因果的'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연접連接된 것으로 연결합니다. 그로 인해 객관성과 사실성 또 는 논리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 인의 의도는 보조관념vehicle을 유추하는 방법을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의 자의적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동적 인식'을 방해하기 위해 유사성similarity이 큰 보조관념보다 적은 것을 선택하는 현대시는 더욱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정시는 교훈이나 재미보다는 정서적 공감이나 억눌린 상상력을 풀어주기 위해 탄생된, 다시 말해 '표현적 관점'에서 탄생된 장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희곡은 '과정을 재현再顯'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거지가 등장하면 거지의 말투로, 제왕이 등장하면 제왕의 말투로 말하는 '모방적 어법'을 택합니다. 그러므로 '모방적 관점'에서 탄 생된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연公演'을 전제로 한다는 조건을 붙일 경우에는 문학의 한 장르로 분류하는 데는 무리가 따릅니다.공연을 하자면, 연출·연기·미술·음악·효과·조명 등의 무수한 담당자가 참가해야 하고, '언어로 쓰여진다'라는 조건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문학의 한 장르로 분류하기보다는 '언어 예술'과 '행위 예술'의 중간 장르로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연'이라는 조건을 포기하면 어느 장르보다 사실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용이한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사와 마찬가지로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사상 내지 윤리성도 표현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교술보다는 훨씬 그를 표현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서사보다도 약화됩니다. 그것은 해설자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닌 데다가, 그를 제거할 경우 작가의 발언은 작중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비평은 작가가 텍스트 표면에 등장하여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거는 양식으로서, 화제가 '타자(텍스트)'인가, '자아'인가의 차이만 지닐 뿐입니다. 비평을 교술의 하위 장르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관점'에서 태어난 장르로서, 목적이 달라 교술과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타자를 논의하고 평가 할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술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타자를 비난하거나 칭찬하면 독자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리의 전개를 비롯하여 용어와 문체도 신중을 기해 선택해야 합니다. 질문있다구요? 뭡니까? 왜 과거는 물론 현대의 문예이론가들은 이와 같이 각 장르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문학을 어느 한 관점 에서 정의해 하고 있느냐구요? 제 말을 의심하시는군요. 하긴 그래 요. 제가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님보다 더 똑똑한 건 아니니까요. 아니, 더 똑똑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은 컴퓨터도 모르고, 인터넷도 모르고,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삼각함수도 미적분도 풀지 못하는 분들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 2000여 년 동안 축적된 학문을 배운 사람들이니까요. 농담입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것은 그분들과 우리의 장르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을 '모방'이라고 정의한 것은 극적 장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동양 사회에서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한 것은 '사상'은 '문文으로, '정서'는 '시詩'로 표현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분들이 모든 장르를 염두에 두고 내린 결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의문과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 시대의 장르관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헤겔Hegel 이전까지는 장르의 순위를 '극 →서사 →서정'으로 꼽아왔습니다. 다시 말해, 서정은 선량한 시민들을 혼란시 키는 가장 열등한 장르로, 교술은 아예 문학으로 취급하지도 않았 습니다. 그것은 18세기까지 서구문학사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들의 문예이론은 서정시의 추방과 쫓겨나지 않으려는 변명과 방어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이런 사정은 한자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세기 초 서구 문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시나 수필만 사대부의 장르로 꼽고, 소설은 '소인지배小人之輩의 문학'으로, 희곡은'광대의 문학'으로 꼽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런 장르관이 완전히 불식된 게 아닙니다. 제가 시와 비평과 학문을 택한 것도 어렸을 때 할머니가 양반의 자식은 학문과 시문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무의식 속에서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장르를 같은 관점에서 읽고 쓰려는 사람은 '과거로 가라! 뿅뿅뿅…'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졌나요? 그럼, 다시 질문을 일발 장진하고 쏩니다. 받아 보세요, 빵! □ 당신은 문학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참여하는'화자(작가)-화제(작품)-청자(독자)' 가운데 어느 단위를 더 중시하는가? 잠깐!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데 무슨 놈의 '작품'과 '독자'가 참여 하느냐구요? 맞아요. 작품은 작가가 창조해낸 것이고, '독자'는 작가가 쓰는 대로 읽기 마련인데. 그쵸, 이? 치이-, 당신은 '작가중심'의 관점을 지니고 있는 분이군요. 그렇다면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당신은 작품을 쓰기 전에 혹시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까? 읽었다면 그때 무얼 생각 하셨습니까? 이 작품은 차암 좋다, 나도 이렇게 써봐야지 라든가, 이걸 작품이라고 썼어, 나는 이렇게 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셨겠지요? 그러다가 글을 쓸 때 뭘 생각하셨습니까? 내 글을 읽고 다 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생각해 보셨지요? 그래서 이야기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표현을 가다듬기도 하셨지요? 이게 작품과 독자가 창작에 참여하는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지만, 이 질문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닙니다. 화자는 화제의 속성과 청자의 반응을 어떻게 예측하느냐에 따라 담화의 구조와 조직을 전략을 세우기 때문에 질문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담화는, 그러니까 애인과 하는 말이라든가, 그를 만나러 나갈 때 입는 옷과 화장이라든가, 그와 만나기 위해 선택한 장소, 그리고 화안히 웃는다던가 새초롬한 얼굴 표정 같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를 표 현하려는 담화는 '화자↔화제↔청자'의 상호 관계로 탄생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중심'의 관점을 가졌다고 해서 낡은 문인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관점은 문학의 시원始原에서부터 지속되어온 것인 데다가, 과거에는 문인들이 독자들보다는 훨씬 더 배운 사람들 이었고, 사회적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독자에게 무엇인가 유익한 교훈을 주기 위해 쓴다는 사람들입니다. '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사특邪慝한 생각을 없애 준다'는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시인의 의무는 독자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로마 시대의 호라티우스F. Q. Horatius, 입에 쓴 약을 먹기 편하게 꿀을 바르듯 재미로 유익한 사상을 재미로 감싼 것이 문학이라는 시드니P. Sydney, 독자들을 계도하려는 계몽주의啓蒙主義, 현실을 고발하여 개조하려는 대응론적對應論的 사실주의寫實主義, 특정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쓴다는 목적주의目的主義 문학가 들이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목적에서 쓴다는 사람들입니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을 반대하고 모방의 즐거움을 내세운 아리스토텔레스, 예술은 일종의 '놀이'로서 그 자체의 목적에만 적합하면 그만이라며 '무목적無目的의 합목적성purposeless of purposiveness'을 내세운 칸트I. Kant, 문학을 개성의 표현으로 보는 낭만주의자들, 창작이나 독서 행위를 모두 정신적 결핍의 해소를 위한 것으로 보는 현대 심리주의자들이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뒤에 세력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생존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표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치스러운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현론적 관점이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고급 문화가 보편화된 뒤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 입니다. 그런데, '작가 중심'의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하나같이 독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보고 교화敎化나 하소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을 지닐 경우, 자기가 말하려는 교훈이나 하소연을 강조하기 위해 관념의 과잉 상태에 빠지기가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중심의 관점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객관론자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시란 개성의 추구가 아니라 도피라며 '몰개 성 시론沒個性詩論'을 주장한 엘리어트T. S. Eliot와 영미 주지주의자主知主義者들 언어학적 자각에서 출발한 러시아 형식주의形式 主義들과 기호학파記號學派, 이들보다 뒤늦게 출발한 프랑스 구조 주의자構造主義者들입니다. 그들은 아예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려는 것을 '의도론적 오류 intentional fallacy'라며 작가의 위치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작품은 그 자체의 구조structure와 조직texture의 원리를 지니고 있 으며, 그 원리는 작품의 미적 가치와 전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폅니다. 따라서, 이들은 '작품중심'의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이와 같이 '작품중심'의 관점이 대두된 것은 '작가중심'이 지닌 약점과 문예이론이 발달했다는 이유 이외에 도, 경제가 발달하고 고등 교육이 보편화됨에 따라 문학을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고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생산의 과잉으로 인해 작품을 선별하여 전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문학사회는 두 그룹으로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는 비평가들이 특이하다고 인정하는 작품을 쓰고 그를 읽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으로 문학이라고 생각해온 것들만 고집하 는 그룹입니다. 이와 같은 분열은 다시 독자들로 이어져 그들의 시선은 차츰 문학 이외 다른 예술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문학관은 다시 '독자중심'의 관점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를 여는 데 앞장을 선 사람들은 독 일의 콘츠탄츠 대학의 교수들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 정에서 축적된 부조리를 개혁하기 위해 1966년 이 대학이 실험대학 으로 설립되고, 그 이듬해 야누스H. R. Jauss가 불문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문예학의 도전으로서 문학사Literaturgeschichte als Provokation der Literaturwissenchaft]라는 강의를 통해 '문학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독자들의 기대지평선期待地平線,Erwartungshorozont을 얼마나 만족시켜 주었는가에 따라 판단되어 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 해 볼프강 이저가 영문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텍스트의 호소 구조―문학적 산문의 영향 조건으로서 미정성Die Appellstruktur der Texte -Unbestimmtheit als Wirkungbedingung literarischer Prosa)]을 발표하고, 뒤를 이어 바인리히H. Weinrich는 '독자의 기대는 작품 속에 반영되고, 작품은 독자와 대화하며, 문학사는 그 대화의 역사'라는 주장을 펴서 수용미학受容美學이 탄생되고, 미국에서도 이들의 자극을 받아 '독자반응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중심'의 문학관을 연 사람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보다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해체주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수용미학자들이나 독자반응 비평가들은 독자가 문학사회의 주체라는 것을 주장하고 독서 심리를 연구하는 데 급급했지만, 이들은 독자의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기 위하여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인정하고, 의미signified는 기표signifiant에서 벗어나 떠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작가의 죽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지시하는 대로 읽을 것을 요구하는 '인과적 구성' 대신 독자들이 자기 취향대로 '빈 틈'을 메워가며 완성하는 '비인과적 병렬구성'을 택하고, 몽타쥬, 패스티쉬, 패러디 기법 등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작가나 비평가들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작품들을 '기괴하다'든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문학 작품에는 무엇인가 고정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온 독자들은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 불안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자-화제-청자'로 이어지는 축 가운데 어떤 단위를 더 중시해야 할까요? '작가중심'요? 에이. 지금 사회는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를 거쳐 '문화적 민주주의'로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체제 역시 '생산자 중심'에서 '유통자중심'으로, 다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내가 주는 대로 받아 먹으라고 해서 받아 먹겠습니까? 읽을 테면 읽고, 말 테면 말라면, 쓸 테면 쓰고, 말 테면 말라고 응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은 아닙니다. 할 말을 포기하고 독자들의 비위를 맞춰 쓰라면 아마도 글을 쓰는 사람은 몇이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은 작품으로서 갖춰야 할 구조와 조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을 설교나 하소연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작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독자도 함께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히 논급할 대상이 아니니 이 연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논의하기로 하고, 다른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다시 질문 일발 발사합니다. 받으세요. 빵, 빵, 빵! □ 당신은 각 장르의 양식을 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유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질문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만일 장르마다 고정된 양식fixed form이 있고, 그에 맞추어 쓰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일정한 형식을 취하고, 내용에만 치중한 나머지 마침내 설교로 떨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내용을 찾기 위해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에서 새로운 내용이란 거의 없습니다. 연애소설을 예로 들어봅시다.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의 연애 이야기라고 하면, '서 로 좋아했다', '좋아하다가 헤어졌다', '좋아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세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연애소설은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 어떻게 '되었는가'만 바꾸고, 모티프를 배열하는 플롯과 표현하는 문체만 다를 뿐 이 세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 문학사에 기록되는 사람들은 적어도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예컨대, 최남선崔南善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주요한 朱耀翰의 [불놀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중학생들도 '우르릉 꽝!, 때려라, 부셔라' 정도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문학사에 기록된 것은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하고 정형율에 맞추 노래부르던 시절에 이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레빈H. Levin이 말했듯이, 장르란 문학적 관습 literary convention과 제도institution의 총화總和로서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관습적 양식에 지배를 받지만, 또한 그를 초월하여 새로운 양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 장르의 양식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이보다는 훨씬 속도가 늦 지만 장르 정신 역시 바뀝니다. 우리가 가장 산문적이라고 하는 신문 기사의 표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롯데팀 몇 대 몇으로 승리'라고 뽑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현대로 접어들면서 '롯데팀'을 '자이언트(giant)'라는 은유적 명칭을 붙이고, 다시 '거인'으로 바꾸어 '거인 **팀을 잔혹하게 유린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문 기사에 시정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각 장르의 정신과 관습은 어떤 방향으로 바뀔까요? 그에 대한 일차적 해답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문학사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작품에는 강조되는 차이가 있지만 문학 이 지녀야 할 요소들이 전부 들어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각 작품의 차이는 전경화fore-grounding되는 요소들과 배경화back- grounding되는 요소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전경화된 요소들 은 시간이 흐르면 자동화自動化되어 배경으로 물러나고, 배경의 요소 중 어느 하나가 강조되어 바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낯설게 만들기defamiliarization'의 원리에 입각하여 바뀐다는 것입니다. '전경화'니 '배경화'니 '자동화'가 무슨 뜻이냐구요? 예, 전경화는 작품 안에서 초점을 받아 강조되는 것을, 배경화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동화는 친숙해져 주목을 끌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홍차를 마실까, 커피를 마실까, 커피라면 블랙일까, '웨딩wedding'일까, 웨딩이 뭐냐구요? 결혼식 피로연에서 설탕과 프림을 한 스푼 반씩 타서 주는 커피 있잖습니까, 아무튼 그런 것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지만, 결혼 후는, 그러니까 친숙해진 뒤에는 어지간한 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견해만으로는 각 장르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무조건 싫증이 나면 어느 한 요소가 전경으로 나선다고 것으로서, 진행의 방향 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는 앞에서 말한 '화자(작가)-화제(작품)-청자(독자)' 가운데에 어느 단위를 더 중시될 것인가와, 각 장르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어떤 요소가 부족한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말한 것 같군요. 미래는 '독자중심'시대이고, 서정적 장르는 사상이나 사실감을 표현하기가 어렵고, 서사는 함축성과 서정성이 부족하다는 걸 말씀 드렸으니. 그렇습니다. 각 장르는 독자를 중시하면서 그 장르에 부족한 요소들을 다른 장르에 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 니 10년 이내로 문학 전체는 기호만으로 이뤄진 추상성을 극복하 기 위하여 시각이나 청각적 요소들을 받아들여 멀티 아트multi-art 로 바뀔 것입니다.     2. 당신의 시 속에는 이 등장합니까, 이 등장합니까? 피이,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구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체면을 봐서 그냥 대답해 보세요. 시인 자신을 등장 시킨다구요? 히히히…. 땡입니다. 만일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써왔다면 고급 독자들로부터 낡았다고 외면을 당했어도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서정 장르는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탄생된 장르이고, 그래서 을 채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시인을 등장시키는 장르라고 믿어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서정 장르에 의 개 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로 접어들어서부터입니다. 그리 고, 그 이전의 작품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결코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정확히 알아보려면 먼저 일상적 담화의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을 출발시킨 사람 중 한 사람인 야콥슨(R. Jakobson)에 의하면, 일상적 담화는 의 역동적 관계에서 탄생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문학에 대입시키면 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적 담화, 특히 이나 는 에 해당하는  속에 작가가 꾸며낸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다시 말해,  속에 다시 가 들어있고,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행동하는 것을 독자가 엿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그리면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정 장르도 등장 인물이 제한되고, 청자는 그냥 듣기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낡았다고 치부하는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김소월은 남자 시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싫어떠나는 님에게 꽃을 뿌릴 테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애원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아니, '내 님이 그리워 밤 늦게 울며 쏘다닙니다'라는 고려 시대의 [정과정곡(鄭瓜亭曲)]도, 임금님을 님으로 비유한 조선 시대 정철(鄭徹)의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문학의 3대 장르인 시·소설·희곡 등은 를 채택하고, 작품 속에 다시 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의 화자를 완전한 허구(虛構)의 산물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술적 장르도 정도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 하여 꾸며 쓴다 해도 결국 작가의 경험을 재구(再構)한 것에 불과하고, 사실대로 쓰려 해도 그 작품의 목적과 구조에 맞추어 수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실대로 쓴다고 믿는 일기(日記)를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쓸 때에는 그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지않은 것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꾸미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약화시킵니다. 따라서 문학 작품 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의 반영도 아니고, 허구적 존재도 아닌 의 절충적 존재(折衷的存在)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일 뿐, 을 내세운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냐구요? 네에, 그건 제가 질문하려 했던 건데, 독자들이 먼저 하셨으니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우선 시인 자신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고 믿으면 화제를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면 작품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을 등장시키면 자신을 돋보이도 록 만들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고상하고, 우아하고, 진지하고, 영웅적인 화제만 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통일시키기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 처럼 하면 훨씬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 꾸미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물론, 거리와 어조, 어법, 어휘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허구적 화자를 택할 경우 자전적 화자를 택할 때보다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국면에 이르기까지 훨씬 유기적인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머뭇거리다가는 여러분들이 다시 질문하실 테니,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자아, 받아보세요. 뿅! □당신은 를 설정할 때 무얼 먼저 염두에 두십니까? '그냥 대충…'이라구요? 그러시겠지요. 작품 속에 자신이 등장해야 한다고만 믿어 왔으니까. 제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자기가 쓰려는 작품의 주제에 적합한 인물의 ··입니다. 어떤 계층의 인물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화제는 물론 시적 공간·어조·시어· 시 의 형태 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시골 여자 어린이로 정했다고 합시다. 이런 화자를 선택하 면, 성이라든지 폭력 같은 화제는 다룰 수 없습니다. 소설의 경우이긴 하지만, 주요섭(朱耀燮)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그 렇습니다. '옥희'라는 어린 여자 아이를 등장시켰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유의해야 할 것은 화자의 성(性)입니다. 성에 따라 지켜야 할 화자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의 의미적 국면   ⅰ) 화자의 태도와 정서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이성적(理性的) 능동적(能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감성적(感性的) 수동적(受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화제의 성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국가 사회 윤리 같은 공적(公的) 추상적(抽象的) 화제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이별 사랑 아름다움 같은 사적(私的) 구체적(具體的) 화제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시의 형식적 국면   ⅰ) 시형과 율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상대적이지만 자유율(自由律)의 경우 자유분방한 시형을,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정제된 시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형율(定型律)의 경우우 남성화자는 4음보처럼 균형적(均衡的)이며 대응적(對應的)인 음보를, 여성화자는 3음보처럼 가변적(可變的)이며 대응된 짝이 없는 음보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음성 조직 : 남성화자를 택하면 기능적이고 소박한 음성을, 여성화자를 택하면 섬세하고 장식적인 음성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 독자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중심주의적 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고 해서 반대해온 프로이드(S. Freud)와 융 (C. G Jung)의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만 참조한 게 아닙니다. 남성화자의 '대상으로 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라는 조건이나, 여성화자의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행동한다는 조건은 길리건(C. Gilligan)을 비롯한 여성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생각해보면 여성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같은 특징을 달 리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경우에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일 수밖에 없으며,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되는 것들을 아낄 경우에는 자연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우자의 바람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생각해봅시다. 남자든 여자든 그런 기미를 눈치채면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와이셔츠 깃에 묻은 루즈 자욱을 보고도 용서하는 것은 내가 이혼하면 어린 자식들은 누가 돌보나, 친정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실까, 친구들이 뭐라고 수군댈까를 생각해서 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로 행동하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 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아내의 늦은 귀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아내의 일이 옳은가 그른가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차(性差) 무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되 나름의 가치를 지녔다고 받아들이는 의식구조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작품 속의 화자는 이와 같은 성적 특질을 그대로 반영해야 자연스러워집니다. 그것은 다음 김소월의 작품들을 비교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진달래꽃] 1, 2연 ⓑ마소의 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寂寂)히 빈 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山) 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러미 드려다 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 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 [저녁 때] 1.2연ⓐ는 상대가 '님'인 점으로 미루어 여성화자로, ⓑ는 '-어라'와 같은 남성적 어미를 택한 점으로 미루어 남성화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시인 자신이 골라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한 작품인데도 전혀 다른 특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화제를 살펴보면, ⓐ는 개인적인 사랑을 다루는 반면에, ⓑ 는 일제(日帝)의 토지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문제인 공적·사회적 화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는 님이 떠 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함없는 사랑을 다짐하는 반면에, ⓑ는 한숨을 지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땅을 빼앗긴 것이 과연 정당한가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특징 그대로 들어맞고 있지요? 그리고, 형식과 율격 면에도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가 4연시지만, ⓐ는 하나의 율행(律行)을 2개의 층량(層量) 3보격으로 나누고, 2개의 율행(律行)을 한 연으로 구성하여 정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반면에, ⓑ는 각행이 2음보(音步)에서 6음보 사이를 불규칙하게 넘나들면서 자유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가 대응(對應)되는 짝이 없는 3보격을 규칙적으로 택한 것은 여성의 가변적(可變的)이면서도 정제된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며, ⓑ가 자유시 형식을 택한 것은 남성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격렬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차이는 시어와 통사 구조(統辭構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화자의 행위와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장성분은 서술어(敍述語)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는 전(轉) 의 '가시옵소서'를 제외하고 '보내드리우리다'·'뿌리우리다'·'흘리우리다'와 같은 극존칭(極尊稱) 종결어미와 음성모음 및 활음조 현상(euphony)이 우세한 시어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술어를 수식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는 '-져라'·'-어라'·'-느냐'와 같은 오연(傲然)한 어미와 투박하고도 실용적인 어휘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 비탈길 어둔데/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와 같이 행 가운데 쉼표를 찍고, '긴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같은 구절에서는 도치법(倒置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 극존칭 어미를 선택한 것은 청자(님)가 화자(나)보다 상위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음성모음이 우세한 어휘를 선택한 것은 화자의 서럽고도 어두운 심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이며, 활음조 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어휘를 선택하고 통사 구조를 정제시킨 것은 이별의 순간에도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적 태도를 반영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 거친 문장과 실용적인 어미를 택한 것은 남성화자의 자유 분방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품은 화자에 따라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정됩니다. 그러므로, 각 유형의 화자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그리고 화자에 맞춰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아, 이번 문제는 좀 까다운 질문을 해볼까요? 준비하시고, 받아 보세요. 쾅! □당신이 채택한 화자는 언제나 명백하고 단정하게 말합니까, 아니 면 때때로 흐트러지는 수도 있습니까? 그야 명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써야 되는 게 아니냐구요? 땡, 땡, 땡. 또 틀렸습니다. 그럼 달리 여쭤보겠습니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깨뜨렸다고 합시다. 그래서 '누가 깨뜨렸어?'하고 고함치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제가 깨뜨렸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기막히겠지요? 또 정말로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고 합시다.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청산유수격으 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요? 말은 아무 때나 명백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군더더기가 있고, 더듬는 게 더 진실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시 속의 화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앰프슨(W. Empson)의 '다의성(ambiguity)의 이론'에 의해 비로소 논리화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 우수한 작품이고, 서정 장르는 장르 자체가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시의 기본 어법인 비유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꽃'이나 다른 것으로 치환(置換)하여 얼른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왜 사람을 식물의 기관인 꽃으로 비유했는가를 생각하고, 여자의 아름다움, 연약함, 열매를 맺을수 있는 생식성(生殖性) 등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여자가 아름답다고 아무리 직접 이야기한들 독자 는 예사로 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동화(automatic)'되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비유를 통해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선 명백히 말하지 않아야 할 경우는 두 가지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화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감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자가 화자보다 상위라서 직설적으로 말하면 역효과가 나타나리라는 판단에서 속셈을 감추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럴 이 경우 화자가 겉으로 말하는 와 로 분열됩니다. 그리고, 역설(pardox)나 반어(irony)의 어법을 채택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진달래꽃]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보내고 싶어 보낸다는 게 아닙니다. 떠나려는 님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3연에서는 꽃을 뿌릴 테니 '밟고' 가라 고 한 것으로 미뤄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버린 여자가 뿌리는 꽃을 밟고 갑니까? 그러니까, 표층적 화자는 가 라고 했지만, 심층적 화자는 가지 말라는 게 이 작품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보내겠다고 말했지만 자신도 보낼 수 없고, 가겠다고 하지만 님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말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말했다면, 이 작품은 아이러니 어법을 채택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표층과 심층의 화자는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작품은 이렇게만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수하게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번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이 해석한 것과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열거해 볼까요? ⑴내가 이토록 사랑하는데도 떠날 수 있느냐는 고도 수법의 만류.   ⑵'진달래꽃'이 화자 자신의 상징물이라고 할 때, 나를 밟고 가라는 뜻으로 절대 못 보내겠다는 반어적 표현. ⑶내가 싫어 떠난다면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죽어도 안 붙잡겠다는 프로이트 식의 오기(傲氣) 또는 실언(失言). ⑷화자가 님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싫다고 떠날 때 꽃까지 뿌려 줄 정도로 착한 사람인데 왜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자기 선전. ⑸떠날 때는 막지 않을 테니 함께 있는 동안만은 마음놓고 사랑해 달라는 현실주의적 책략. ⑹떠날 때 깨끗이 보냄으로써 잊지 못하여 되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가시리]식 계산. ⑺남녀간 사랑은 한번 깨지면 울며 매달려도 회복되지 않으니 차라리 깨끗이 보내자는 체념. ⑻어쩌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별할 때의 가정해본 자기 태도. ⑼이별은 꿈도 꾸지 않으면서 만발한 진달래꽃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순순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의 표현. ⑽여성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피학적 욕구. 시를 읽는 재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구절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명백한 시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모호한 시는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완성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명백한 시가 좋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명백하게 전달하여 설득하려는 시인의 욕심일 뿐, 독자나 문학적인 입장에서는 결코 상찬할 만 한 게 못됩니다. 군더더기가 끼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일 경우는 화자가 격정에 빠졌을 때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 정연 하게 말하던 사람도 다급하거나 격정에 빠지면 횡설수설하고 어법 에 맞지 않게 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시적 담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행과 연을 비슷한 길이로 나누고 표준적인 어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자가 격정에 빠졌을 때에는 형식이 흐트러지고 어법에 어긋나게 표현해야 더 실감이 납니다. 라이트(G. T. Wright)는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정상적 정서 상태의 화자는 , 격정에 빠졌을 때의 화자는 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실수로 나타나는 문장의 혼란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첫머리부터 원시화자를 등장시키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먼저 문명화자를 등장시키고, 정서가 격앙하는 과정을 그려 준 다음, 원시화자를 등장시키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담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에서 원시화자를 구사하여 성공한 예로는 서정주(徐廷柱)의 초기시 가운데 [화사(花蛇)]를 비롯한 몇 편을 들 수 있습니다.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니 번호를 붙여가며 인용해 볼까요? ⓐ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 아름다운 베암… ⓒ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 꽃다님 같다. ⓔ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 소리 잃은 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 푸른 하눌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 석유(石油) 먹은 듯…석유(石油)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 우리 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에서 ⓓ까지는 문명화자의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터는 갑자기 기독교 신화인 에덴 동산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도 일상적 감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다 시 말해 원시화자의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곱다'의 보조관념으로 동원한 '피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이나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만 해도 그렇습니다. 피먹은 입술은 징그럽고, 고양이 같은 입술은 야옹하고 할퀼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름답다는 의미를 보조하기 위해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뱀을 무슨 헝겊처럼 바늘에 꼬여 두르고 싶어하며 (ⓜ), 액체처럼 입술로 스며들라고 명령하는 것(ⓝ,ⓞ) 역시 비논리적입니다. 이와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폭력적(暴力的)으로 결합한 것은 화자의 정서 상태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 여부를 따질 만큼 이성적인 상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통사 구조 역시 뒤틀린 상태입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라는 구절 뒤에는 그 상태가 든지, 라는 서술부(敍述部)가 와야 합 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소리를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이라는 구절 뒤에는 무엇 때문이라는 이유가 와야 하는 데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연이나 행의 배치에서도 혼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서 ⓓ까지는 각 행을 완결된 의미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터는 한 연을 하나의 문장으로 짜는가 하면, 한 행의 길이를 2음보 에서부터 7음보까지 불규칙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화자의 정서가 적당한 단위로 의미를 분절할 만큼 이성적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에서 ⓓ까지는 이성적인 문명화 자가 지배하고, ⓔ에서 ⓜ까지는 원시화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 이후는 완전히 원시화자가 지배하는 곳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시적 담화는 적절한 비유와 완전하고 매끄러운 문장만이 시의 주무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어(雅語)와 율문(律文) 중심의 고전적 시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상황에 따라 군더더기를 남겨두고 흐트러트릴 수 있어야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방식을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는 저 자신조차도 매끈하게 다듬는 습관이 있어 항상 작픔을 자신도 모르게 다듬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질문 하나만 더 하고 이번 호는 마칠까요? 장진했습니다. 받으세요. 빵! □당신은 현대시에 주로 채택되는 화자가 어떤 유형이며, 이들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논의한 화자의 유형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제가 정리해 드릴 테니 답변을 준비해 두세요. 시인과 관계에 따른 유형 :  신분에 따른 유형 : , , ,  담화의 담당 층위에 따른 유형 :  정서 상태에 따른 유형 :  글쎄요, 잘 모르시겠다구요? 화자의 변천사(變遷史)를 살펴보면, 시인과 화자 관계의 경우 인 에서 출발하여 인  쪽으로 이동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뀐 것은 문학 작품을 자아의 표현으로 보던 고전적 관점이 오락성이나 미적 탐구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신분을 살펴보면 으로, 성은 으로 이동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쪽으로 하강해 왔다는 프라이(N. Frye)의 지적이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남성 시인이 여성화자를 택하여 노래하는 작품이 드문 반면에 현대시로 내려올수록 여성화자를 빌어 노래하는 작품이 늘어가는 점을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하강 현상은 모든 장르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감(reality)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에 따른 이동 방향은 리얼리즘의 강화라는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남성이 이성적이고 여성이 감성적이라고 할 때, 리얼리즘은 이성주의를 배경으로 탄생되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현대시의 여성화 경향을 한국 문학에는 여성화의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현대에 재현되고 있다든가, 일제(日帝)의 강압적인 파시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소극적 여성주의(女性主義)를 택한 것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 문학에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시들이 대체적으로 여성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보편적인 현상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경 제의 발달에 원인을 찾는 게 보다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기초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재화(財貨)를 소비하던 것이 자기의 사회적 신분을 표시한 로 바뀌고, 그로 인해 실용성(實用性) 이나 기능성(機能性)보다 장식성(裝飾性)과 세공성(細工性)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남성적 특질인 사상과 교훈보다 정서와 섬세함을 강조하는 여성 화자 중심의 작품이 증가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한편 화자의 분열 방향은 아이러니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부터 로, 초현실주의 시가 등장한 뒤부터 와  쪽으로 이동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적 인물의 이동 방향은 전인성(全人性)을 상실하고 비인간화(非人間化) 내지 해체화(解體化) 쪽으로 진행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동의 원인은 더 이상 진로가 막힌 리얼리즘 문학이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의식의 밑바닥에 숨겨진 인간상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여 문학사 속에서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작가들에 의해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해체 작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문학작품이 사회보다 앞서 인간성을 해체하는 것은 문학의 본래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독자와 작가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아와 사회의 해체를 촉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변해버린 독자의 감수성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갈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시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자아(全自我)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성, 도덕과 욕망 등을 모두 대변할 수 있는 화자를 발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3. 풀을 뜯던 송아지조차 하늘을 바라보며 시심을 기르는 가을이 깊어 가고 있으니 이번에는 시의 화제(話題)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화제의 유형을 내용에 따라 나눕니다. 문학의 경우, 농촌소설이니, 심리소설이니, 역사소설이니, 연시(戀詩)니 해양시(海洋詩)니 풍자시니 하는 분류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매우 자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양시'를 인정하면 '도시시(都市詩)'나 '농촌시(農村詩)'를 인정하고, 다시 '중산간(中山間) 시'니, '종로(鍾路) 시'니 하는 것들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콥슨(R. Jakobson)은 화제의 유형을 지향성(志向性)에 따라  으로 분류합니다.이를 시적 담화와 연결할 경우, 시란 결국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장르이므로, ··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하면 지향성의 유형은 이 세 가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와 가 등장하고 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화자가 주로 이야기하되 청자가 간혹 틈입(闖入)하는 유형으로서, 가 전부 등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유형을 이라 고 부르기로 한다면, 지향성에 따른 유형은 모두 4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제의 특질은 지향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입니다. 같은 지향형을 택해도 초점(focus)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담화가 되기때문입니다. 시적 담화의 경우 초점의 유형은 크게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관념형은 화자가 감성(感性)을 통해 획득한 의미나 정서를 표현하는 대 초점을 맞춘 유형을 말합니다. 문예사조상으로는 낭만주의 시, 신비평의 지도자인 랜섬(J. C. Ransom)의 분류에 따르면 '관념시(platonic poetry)'가 이 유형에 해당합 니다. 그리고, 즉물형은 관념형과 반대으로 이성적 인식을 통해 발견한 물질적 외관(外觀)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 유형을 말합니다. 문예사조 상으로는 이미지즘, 신비평의 분류에 따르면 즉물시 (physical poetry)가 이 유형에 해당합니다. 또 무의식형은 이성적 통제를 풀 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무의식적 심상들을 받아쓰기 하듯이 자동 기술(automatism)하는 유형을 말합니다. 문예사조상으로는 초현실주의 시가 이에 해당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1930년대 이상(李箱), 1940년대의  동인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호적 상징(signal symbol)은 대상의 의미나 모습을 배제하고, 추상적인 논리에 의하 여 재편성한 것에 초점을 맞춘 유형을 말합니다. 입체주의(Cubism)·미래주의(Futurism)·다다이즘(Dadaism) 시인들이 실험적으로 쓴 '구체시(concrete poem)', '음향시(poem sonora)', '꼴라주(collage)와 몽타쥬(montage)의 시', '추상시(abstract poem)', '침묵시(dumb poem)'에서 발견되는 초점입니다. 우리 나라 에서는 이상(李箱)의 일부 작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럼 질 문합니다. 준비하세요. 뿅뿅뿅 ▣당신은 어느 지향성의 화제를 즐겨 택하십니까?   그야 두말할 것 없이 이라고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나라 시인 가운데 90%가 이 유형을 택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지향형을 채택하면, 표현의 기능이 강화되고, 독자로부터 공감을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 시의 화제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화자 지향형을 택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이야기가 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우아하고 고상하고 진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여 그런 제재들만 고르기 때문입니다. 이 유형을 택하되, 김동리의 [등신불]이나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허구적 화자를 등장시키면 어떠냐구요? 네에, 그러면 좀 낫겠지요. 하지만,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독자들은 여전히 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겁니다. 또 하나 약점은 감정이 고조되어 구조적으로 허약해지고, 감상(感傷)에 떨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 줄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앞부분 이 작품의 화제는 예전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줄 몰랐다는 후회와 그로 인해 복바쳐 오르는 슬픔입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기 위한 화자 지향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느낌은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거나 과거에 대한 회상 또는 미래에 대해 전망할 때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현재의 자극을 대상으로 삼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  를 되돌아보거나 를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조를 취하게 됩니다. 이때 현재의 나는 , 과거나 미래의 나는  가 됩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과거나 미래가 더 이상적으로 그려지 면서, 회고적(回顧的) 영탄적(詠嘆的)·감상적(感傷的) 어조를 띠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작품에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반복적인 구절이 그런 곳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반복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무의식에서는 그쪽으로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황이 변했음을 인정하면서 고착적(固着的) 정서를 보이는 걸 감상주의(sentimentalism)라고 한다면, 이 유형은 근본적으로 감상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은 어떠냐고요? 청자 지향형은 에 대한 이야기로서, 라든지, 는 식의 의문 명령 애원 요청 호소의 성격을 띠는 화제를 말합니다. 구 조상으로는 와 로 나눠집니다. 이런 화제는 화자 지향형보다도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화제로 제한된다는 단점을 지닙니다. 남에 대한 판단이나 요구는 객관적이고 윤리이며 관습적인 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결 강렬하고도 단순한 어조를 택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강렬한 어조로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로 접어들면 서, 연시(戀詩), 조시(弔詩)나 축시(祝詩), 정치시(政治詩)를 제외 하고는 이런 지향형을 택하는 작품이 드문 것도 바로 이런 단점 때문입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이 작품의 의미는 와 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그 '껍데기'는 거짓된 인간들 이거나 그들이 만들어 낸 제도(制度)와 같은 불특정한 것들로서,화자가 청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청자 지향형은 청자와의 관계에 따라 화자의 어 조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화자가 상위(上位)에 설 때에는 직설적인 어법과 강압적 자세를 취합니다. 앞의 작품이 강압적이면서도 명령적인 어법을 택한 것은 화자가 청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서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위(下位)에 설 때에는 아이러니를 비롯하여 역설 같은 완곡(婉曲) 어법을 택하고, 직설적인 어법을 택할 때도 간절하게 청원하는 형식과 화려하고 수식적인 문체를 택합니다. 그리고 아예 신처럼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일 때에는 기도·찬송·애원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것은 가급적 청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화자의 의도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채택하기 시작한 유형은 입니다. 이 유형은 청자(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판단은 청자가 내리도록 하는 형식으로서, 라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문맥의 표면에서 화자와 청자가 잠재되고, 정서적 표현과 의미 부여를 억제한 채 카메라로 사물을 포착하듯 이미지화합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햇살은 모두 둑 밑에 내려와 있다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강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골 청년 자전거 바퀴 살에 햇살이 실려서 돌아간다 그 바퀴 살 사이로 투명한 강 얼마쯤 걸었을까 미루나무도 가고 있는지…… 미루나무는 조금씩 작아져 갔다 - 한성기(韓性祺), [둑길.1] 전문 이 작품에서 화자는 걷고 있는 둑길에 대해 어떤 의미나 정서도 부여하지 않은 채 걷고 있다는 사실과 둑길을 풍경만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풍경들이 화자의 시선을 거쳐 들어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잠재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보가 주관적이라 는 인상을 띨 경우 신뢰를 잃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제 지향형이라고 해도 화자의 정서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이 어떤 화제를 선택하든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사실들은 은유적 형태로 제시됩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자는 '청년'과 '강'과 '미루나무'를 뒤에 두고 한없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노년의 쓸쓸한 감정을 은유하기 위한 객관적상관물(相關物)에 해당합니다. 은 1인칭 지향형의 정서와 의미 부여 기능, 2인칭 지향형의 상대에 대한 요구와 명령 기능, 3인칭 지향형의 객관적 자세와 이미지화 기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 작중 상황이 연극처럼 환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칫하면 너무 길어지고, 산문으로 떨어지기 쉽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아내를 만난다. 나는 일부러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아내는 등 뒤에서 [여보, 여보!]하고 쫓아온다. 그래도 나는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어째서 저 여자가 내 아내란 말인가?) 저녁 상을 가운데 놓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갑자기 서베이어 1호처럼 난데없이 사뿐히 착륙하는 얼굴. [바로 저 얼굴입니다!] [뭐가 저 얼굴이예요?] [아니, 서베이어 1호의 달 연착(軟着) 말이야] 이제는 신비의 베일도 벗겨지고 대재벌(大財閥)의 몰락처럼 쓸쓸한 얼굴 달. - 김윤성(金潤成), [아내의 얼굴] 전문 이 작품에서 화자는 아내를 만났는데, 모르는 척하고 그냥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여보, 여보!' 부르며 뒤따라오자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어째서 저 여자가 내 아내란 말인가?' 독백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심코 아내의 얼굴이 '서베이어 1호'의 착륙으로 인하여 신비를 잃은 달 같다했다가 아내가 묻자 인공 위성 이야기라고 둘러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의 삼자 관계를 고루 지향하는 극적 지향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앞에서 인용한 어떤 작품보다 한결 깁니다. 그리고,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어째서 저 여자가 내 아내란 말인가'라는 관계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 라는 은유의 축이 없으면 산문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종래의 시에서 극적 지향형을 택한 작품이 드문 것도 이런 약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만 극복할 수 있다면 가장바람직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아, 또 하나 질문을 해볼까요? 당신의 시가 현대적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니 잘 판단하고 대답하십시오. 준비하시고, 쏩니다. 쾅! ▣당신은 선택한 화제의 어디에 초점을 맞춰 써오셨습니까 시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르'이니, 당연히 의미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써왔다고요? 그렇다면 그 정서와 사상은 당신만이 발견한 것이었나요? 그렇지는 않다구요? 그렇겠지요. 과학에는 새로운 발견이 있지만, 사상이나 감정은 새로운 게 없는 법이니까요. 가령, 사랑에 대한 감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구애나 결혼의 풍습은 시대와 민족에 따 라 차이가 나지만, 아득한 옛날의 원시인도 아프리카 오지의 깜둥이 처녀도 우리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귓볼이 빨개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가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박애(博愛), 공자님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사상은 그분들이 처음 주장한 게 아닙니다.그분들은 인간의 보편적 심성 밑에 깔려 있는 사상을 체계화하고 실천한 분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상이나 정서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대부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늘어놓는 결과가 되기 쉽고, 그 전달하는 데 신경을 쏟다보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물질적 속성을 상실하고 앙상한 관념의 덩어리가 되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일수입니다. 우리 시단에서 상당한 시인으로 평가해온 김종삼(金宗三)의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김종삼(金宗三),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이 작품의 지향성은 화제 지향형입니다. 그러므로 대상의 물질적 외관(外觀)을 강조하기에 적합한 화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는 관념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무교동'도 '서울역'도 '빈대떡'을 먹고 있는 목로 주점의 풍경도 사라지고 완전한 산문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초점이 관념 쪽에 맞추어지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정서가 강화되고, 명상의 흔적이 뚜렷이 부각됩니다. 반면에 시적 사물들은 특정감(特定感)을 상실한 채 물명(物名) 상태로 떨어지고, 정서 과잉에 빠지게 됩니다. 낭만주의 시가 흄(T. E. Hulme)이나 파운드(E. Pound)를 비롯한 이미지스트들의 공격을 받 고 물러난 것도 이런 약점 때문입니다. 그럼, 관념형의 반대인 즉물형(卽物形)은 어떠냐구요? 이 유형은 관념형보다 한결 구체적이고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예사조상으로도 관념형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초점일 뿐만 아니라, 현대 독자들은 시인으로부터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그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게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으로 떨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렸다. - 정지용(鄭芝溶), [바다·2]에서 이 작품은 봄날 얕은 여울목에서 자잘하게 부서지는 바다 물살의 모습만 제시되었을 뿐, 시인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사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도대체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하고, 그러다가 별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때는 참 깔끔하게 그렸다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흄과 함께 이미지즘 운동에 앞장섰던 파운드(E. Pound)가 그 대열에서 이탈해 '은유하는 그림(picture of metaphor)'을 추구고, 그의 제자격인 엘리어트(T. S. Eliot)가 사상과 감정이 융합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이론을 내세우며 '형이상시 (metaphysical poetry)' 운동에 앞장선 것도 이 초점이 지닌 한계때문입니다. 무의식에 초점을 맞추면 이제까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없는 풍경을 끌어들여 개별성(個別性)을 확보기에 용이해집니다. 그리고 고정 관념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을 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그림으로 이어져 사실감(reality)을 획득하기 어렵고,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들어내어 문학이란 이름으로 부도덕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다음  중 한 사람인 조향(趙鄕)의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처럼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이얗게 화석(化石)이 되어 갔다. - 조향, [EPISODE] 전문 이 작품은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너무 낯설어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프로이트(S. Freud)나 융(C. G. Jung)과 같은 무의식을 연구한 사람들의 이론을 빌어 해석 합니다. 그들의 이론을 따를 경우, '총'은 남성 성기, '구멍'은 여성 성기, '바다'는 '모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열오른 소년'이 성기로 소녀를 겨누고, 섹스가 끝난 다음 소녀는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바라보면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주장했듯이 자동 기술법으로 쓰여l진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을 자동 표출시켜 문자 언어 로 기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에서 언뜻언뜻 떠오르는 무의식적 심상들을 몽타쥬한 것이거나, 세속적 논리와 가치관을 배제하고 자유 연상(自由聯想)한 결과를 표 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호적 상징형은 뒤짚힌 숫자들을 나열한 이상의 [오감도(烏敢圖) : 시 제4호]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초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처럼 언어로 쓴 것도 기호적 상징에 초점을 맞춘 작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소녀는 지평선을 가볍게 허리에 두르고 외출을 한다. 2. 탐정이 찾아와 가족들의 충치에 대하여 상세히 노트 한다. 3. 수음(手淫) 상습범인 하녀가 앵무새에게 말을 도둑맞고 실어증이 된다. 그것은 책을 읽는 고양이 때문이다. 그릇 찬장 속에서 역사가 눈을 뜬다 4. 말더듬이 집사가 에스키얼그 요리에 대하여 부친과 논의를 하고 있다는 추론 5. 그 방정식은 엄지손가락 + 우유x =서양사 개론 - 테레야마 슈누시(寺山修可), [물 속의 소녀]에서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무의식적 심상을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더 살펴보면 기호적 상징으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향의 작품에서 소녀가 총구를 막았는데도 쓰고, 손이 구멍 뚫렸는데도 그 구멍을 통해 바다를 내다본다는 것은 현실의 논리에 비춰 볼 때 이상스러운 일이지만, 실제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모티프와 모티프의 연결이 비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모티프의 연결만 비일상적인 게 아닙니다. 각 연에 번호를 붙였지만 필연적 계기성을 발견할 수 없고, 암호적인 부분이 너무 자주 눈에 뜨입니다. 우선 '소녀는 지평선을 가볍게 허리에 두르고 외출을 한다'라는 첫머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다 더듬어도 '지평선'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외출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우유x=서양 사 개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엄지 손가락'에 얼마간(x)의 '우유'를 더하면 '서양사 개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녀', '지평선', '탐정', '가족들의 충치' 등은 시인이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추론을 하여 치환한 기호적 상징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사실, 누구의 시에서나 사용하는 은유(metaphor)도 기호적 상징으로 바뀌는 중간 단계의 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으로 바꾸었다고 합시다. 이 은유는 과 의 과  가운데, 차이성은 제거하고 유사성만 택한 것으로서, 이를 배제했다는 것은 여인의 본질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제거하고 추상화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르테가 (Y. G. Ortega)가 은유를 다른 사물로 바꿔 보려는 지적(知的) 행위로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면서 비인간화하려는 본능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따라서, 은유와 기호적 상징의 차이는 보조관념에 원관념을 추론할 수 있는 고리를 남겼느냐 차이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호적 상징에 초점을 맞추면 전통적인 시에서 얻을 수없는 새로움과 시적 긴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논리적 전환의 고리가 생략되어 그 작품이 채택한 상징 체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전달이 차단됩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시인들이 이런 초 점을 기피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유형도 문제가 있고 저 유형도 문제가 있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이상적이냐구요? 안 돼요. 제가 질문하려는 걸 대신 하시네요. 자아, 받으세요. 쾅, 쾅, 쾅! 왜, 이번에는 한번만 '쾅'하지 않고 세 번씩이나 '쾅쾅쾅'이냐구요? 제 역할을 침범하려고 했으니까요. ▣이제까지 당신은 자신의 작품 속에 몇 개의 초점을 담아왔습니까? 한 개의 초점을 담지 몇 개의 초점을 담느냐구요? 그렇다면, 당신의 시는 결코 새로운 게 아닙니다. 특히, 관념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낡은 시'라고 비판을 받아도 불평하지 마십시오. 이번만은 동의할 수 없다구요? 그럼, 당신이 고를 때, 어떤 사람이 최고로 꼽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없지만,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교양도 있고, 능력도 있고, 나도 잘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을 꿈꾸지 않았나요?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도 풍부하고, 작중 풍경도 눈에 선하게 보이고, 의식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적 욕망도 충족시켜줄 수 있고, 객관적인 논리도 지닌 작품이 최고입니다. 그 래서, 앞에서 소개한 신비평가들도 인간 정신을 과 으로 나누고, 이들을 모두 포괄한 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신비평가들의 분류에는 무의식과 기호적 상징이 빠져 있습니다. 무의식은 부도덕하고, 기호적 상징은 문학 작품에서 쓸 수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문학사 속에서 실제로 채택된 초점이므로, 관념형을 C, 물질형을 P, 무의식형을 U, 기호적 상징형을 S로 표현하고 이들을 포함하여 분류할 경우, 신비평에서 설정한 초점의 유형은 관념(C)와 즉물(P) 그리고 복합형인 형이상시(CP) 3개에 불과하지만, 다음과 같이 15개로 늘어납니다. ○기본형 : 관념시(C), 즉물시(P), 무의식의 시(U) 기호적 상징의 시(S) ○1차 결합형 : CP(형이상시), CU, CS, PU, PS, US ○2차 결합형 : CPU, CPS, CUS, PUS ○3차 결합형 : CPUS 이들을 다시 화제의 지향성과 결합시키면 기본형만도 16가지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초점은 라고 해도 모두 균등하게 배분될 수 없으므로 주된 것을 대문자로 부차적인 것을 소문자로 표시하면 서 , , , , , , , , 처럼 연속 상태를 이뤄 하나의 구(球)처럼 무수한 유형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인이 같은 내용의 화제를 택해도 매번 다른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아, 그럼 복합 초점이 독자의 전인적 인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음 작품을 살펴보면서 확인해볼까요? 이번 호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을 많이 골랐으니, 비교하기 좋게 역시 바 다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을 소개해보겠습니다. ①늦가을 햇살이 스적스적 떨어지는 바닷가 언덕 지난 여름 붉게 타던 칸나가 대궁 채 무너져 내린다. 나는 완벽한 그 추락의 자세에서 불같이 날카로웠던 네 입술을 떠올리려 애쓴다만, 나른한 미열과 슬픔에 떨며 너를 산이나 이별이라고 부르려 애쓴다만, 오, 칸나여. 늦가을 바다로 대궁 채 썩어 떨어지는 칸나여!이제 바다는 바다, 산을 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구나.   ②캉캉 춤을 추던 파도는 …… 그날 그 찻집 그 의자 …… 조랑말 떼처럼 갈기를 휘날리며 …… 다시 그 음악 소리가 …… 물이랑을 박차고 내달리며 …… 부우 부우 부우 …… 푸른 갈기에 실려 올라 가던 수평선은 ……섹스폰 낮은 가락이 불안하게 꺾일 때마다 …… 떨어지는데 …… 구두 앞부리로 마루바닥을 탁탁 구르 고…….   ③이제 바다를 바다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차가운 바다로 천천히 추락하는 기억의 칸나여! 난 네 희고 긴 손가락 끝을 잡고 어두운 층계를 다시 내려가려 한다만, 그 층계 아래 타오르던 불빛이 붉었던가 노랬던가 희미한 기억의 언저리를 맴돌 뿐, 언듯언듯 기어들던 빗소리가 네 겨드랑이 밑에서 새소리처럼 부서 지던 것밖엔 기억할 수 없어 자꾸 발을 헛디딘다.   ④칸나여, 시들은 햇살 속 반짝이며 떨어지는 기억의 칸나여. 완벽한 네 추락의 자세가 너무 슬퍼 나는 수평선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필자, [다시 칸나가 핀 언덕에 와서] 전문 좀 긴가요? 여러 초점을 포괄하다보면 길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이 작품의 첫머리는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모습'의 칸나꽃과 그에 대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바닷가 언덕'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냥 바닷가 언덕이 아니라 '늦가을 언덕'이고, 그것도 햇살이 생기를 잃고 '스적스적' 떨어지는 언덕입니다. 그리고, 꽃잎도 그냥 지는 게 아니라 '대궁 채 썩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상의 모습을 그리고, 의미와 정서를 부여해나가면서 점점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②로 접어들면 사랑하던 여인과 만났던 추억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③으로 접어들면 무의식적 환 상에 빠져들고, ④에서는 차츰 정신을 가듬으면서 의식의 상태로 되돌아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기호적 상징만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복합 초점을 취하면 정지용의 [바다·2]에서 제거되었던 의미와 정서, 조향의 [EPISODE]에서 제거되었던 사실감을 부여하기가 용이해집니다. 제 작품이라서 계속 설명을 하자니 쑥스럽네요. 그만 설명하고, 마지막 질문을 한 다음 이번 호는 마칠까 합니다. 쏩니다, 받으세요. ▣시의 화제는 어느 방향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대답하자면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시문학사(詩文學史)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학자가 아닌 우리에게 너무 복잡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냐구요? 그래도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사의 방향을 가늠해보지 않으면 언제나 뒷북만 치게 되니까요. 제 생각으로는 지향성은 의 순으로 변천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시의 기원을 신이나 전쟁에 출전하는 용사들을 위 해 쓰여졌다는 히른(Y. Hirn)과 그로세(E. Grosse) 같은 사람들의 사회학적 기원설(起源說)을 미뤄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존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바치기 위해 썼다는 이야기가 훨씬 타당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에서 출발한 시가 을 거쳐 으로 바뀐 것은 어느 정도 경제와 문화가 발달한 뒤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생김에 따라 자기 정서를 표출하기 위한 화자 지향형이 탄생되었고, 객관적 정보가 팽창됨에 따라 화제 지향형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점의 이동 방향은 로 바뀌어 온 게 아닌가 합니니다. 그러니까 에서 출발하여 물질적 초점이 첨가되고, 그 다음 단계에서 관념을 배제한 가 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과 이 출현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시의 효용성(效用性)과, '시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초점에 즉물성이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자기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며, 그 다음 단계에 순수한 즉물형이 등장한 것은 관념적 인식에 대한 반동으로써 시인의 판단을 보류하고 독자로 하여금 제시된 풍경을 통하여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무의식형이나 기호적 상징형의 출현도 의식 세계만을 다루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식형이 먼저 탄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자아의 표현이며,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시에는 어떤 화제가 주류를 이룰까요? 그것은 아마 도 이제까지 문학이 점점 미시주의(微視主義) 쪽으로 흘러왔음을 염두에 둘 때, 다음 시대의 통합주의(統合主義)로 방향을 돌리고, 화제 역시 의 결합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현대시에 점점 산문성이 증가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유형 역시 앞에서 말한 약점을 지니고 있으니, 그를 조심해야 할 겁니다.           4. 작품의 의미적 국면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마지막 요소인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실까요? 종래의 시에서는 이 문제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화자(話者)의 행동과 발언만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배경의 문제는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배경은 단지 작중 인물의 등장 무대 구실만 하는 게 아니라 존재(存在)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고, 같은 존재도 언제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며, 시의 화제(話題)가 화자나 청자지향형에서 배경을 대상으로 삼는 화제지향형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은 크게 과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리적 배경은 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상황적 배경은 물리적 배경에 인간의 문제인 역사, 문화, 사회 등이 추가됩니다.   이들은 흔히 줄여 전자는 그냥 , 후자는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자는 인적 요소들이 빠져 있기 때문에 정적(靜的)인 속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후자 는 인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어 가변적인 속성이 강합니다. 또 서정론(抒情論)에서는 배경을, 서사론(敍事論)에서는 상황을 더 중시 합니다. 현재 시는 이 순간의 정서를 화제로 삼고, 서사는 사건의 진행 과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은 다시 작품에 그려진 과 그 작품의 대상이 존재했던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텍스트 속의 배경은 작중 인물의 등장 무대 노릇만 하는 과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어떤 행동을 조장하거나 억제하는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품을 쓰려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서정적 장르에서 중시하는 물리적 배경을 중심으로 슬슬 질문을 시작해 볼까요? 그럼, 질문 일발 장진합니다. 받으세요. 뿅! ▣당신은 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하니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하세요. 이들의 차이를 모르면 언제나 중성적 배경만 채택할 테니까요. 뭐라구요? 텍스트 속의 배경은 시적 대상이나 존재했던 실제배경을 모방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냐구요? 에이, 땡입니다. 실제배경과 작품 속의 배경의 차이는 입체적인 현실을 문자로 기호화한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실제배경은 이고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까요? 지금 제 책상 위에는 램프 옆에 책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이 글 초고의 프린 트한 것들이 올려져 있고, 그 앞에는 스탬플러와 철침을 뽑는 도구, 다시 그 옆에는 라이터, 핸드폰, 재떨이, 지갑, 연필꽂이, 전화기, 화상 통신을 위한 PC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연분홍 커텐과 바다가 보이는 유리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놓여져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실제배경을 이루는 사물들은 우연히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이들 가운데 그 작품의 테마와 관계 있는 것들만 골라서 표현해야 합니다. 가령, '글쓰기의 어려움'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쓴다고 합시다. 이 경우, 핸드폰, 지갑, 화상 통신 기구들은 빠져야 합니다. 이들은 글 쓰기의 어려움에 별다른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텍스트 속의 배경은 그 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필요 없는 것들도 글을 쓰는 사람이 동기를 부여 (motivation)하면서 인과관계를 맺어주면 달라집니다. 제 책상 위의 PC 카메라와 마이크는 지난 해부터 인터넷에 구축하고 있는  서울 프로그램팀과 업무를 연락하기 위해서이고, 탁상용 전화기가 있는데도 핸드폰을 함께 올려 놓은 것은 사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서이고,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지갑이 나와 있는 것은 방금 신문값을 받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문값을 주고 지갑을 책상 위에 펄썩 던지면서 원고 마감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그때 컴퓨터 화면에서 뿅하며 화상 통신을 요청하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 핸드폰과 탁상용 전화가 한꺼번에 울렸다. 아, 아. 이 원고를 언제 마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라고 인과관계를 맺어주면 불필요하게 보이던 것들도 모두 필요한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텍스트 속의 시간과 공간은 작중 인물의 것으로서, 실제배경을 작품 속으로 옮겨올 때는 인물의 심리 상태에 따라  ···되어 나타납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 습니다. 술시(戌時)의 항구, 노인 한 분이 낚싯대를 접고 선술집 벽에 기대어 졸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 속, 바람을 안은 프랑스 범선(帆船)이 한껏 부풀어오르고 등 푸른 참치 떼가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데 그때마다 하이얀 비말(飛沫)이 갑판을 쌔리는데 술시의 항구,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바다를 깔고 앉아 노인이 졸고 있다. - 강중훈, [술시의 선술집 간판] 전문 술시(戌時)는 밤 7시에서 9시 사이입니다. 이 시각 선술집 안에는 '프랑스 범선'을 그린 액자만 걸려있을 리가 없습니다. 노인이 앉아 있는 탁자와 의자도 있을 테고, 겨울철이라면 난로가 켜져 있을 테고, 그 위에는 물주전도 있을 테고, 주방에서는 부글부글 술안주가 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자 속 풍경만을 확대하여 묘사한 것은 액자 속의 바다는 고기가 풍부한 살아 있는 바다임에 비하여 노인의 바다는 어족 자원이 고갈된 바다고, 그로인해 인간의 삶마저 활기를 잃었음을 그리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액자 속의 바다는 이 작품의 테마를 드러내기 위해 확대(擴大) 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기능적인 배경이 되려면, 작중 인물의 성격(character)을 드러내고, 그의 욕망을 실현하기에 적합하도록 조직되어야 합니다. 밤비가 내리네 어둠을 흔들며 조용히 내리네 그리움이 늘어선 언덕에 마른 수수잎 소리가 들리네 아련한 파도 소리 고향집 울타리에 철석이는데 낮닭 우는 소리도 가슴에 차오르네. -차한수(車漢洙), [손·47 : 고향] 전문 이 시는 꼭 비가 내리는 밤에 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환한 대낮이나 폭풍우 치는 밤에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밤에 썼었어도 다른 것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대낮으로 설정했다면 이만큼 절실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것입니다. 조용히 내리는 비와 어둠은 누구나 생각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그런데, 대낮으로 설정하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폭풍우 치는 밤으로 설정하면 어색한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그런 밤에는 누구나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기능적인 배경이 되려면 그 배경이 화자의 심리 상태를 은유해야 합니다. 다음 작품은 193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서 그리 상큼한 맛은 없지만 풍경 전체가 작중 인물의 심리상태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일층(一層)위에있는이층(二層)위에있는삼층(三層)위에있는옥상정원 에올라서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옥 상정원(屋上庭園)밑에있는삼층밑에있는이층밑에있는일층으로내려간 즉동(東)쪽에서솟아오른태양(太陽)이서(西)쪽으로떨어지고동쪽에서 솟아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 시계(時計)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시간(時間)은맞는것이지만시계는 나보담도젊지않으냐하는것보담은나는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 무리해도믿어지는것은필시그럴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시계를내동댕 이처버리고말았다. - 이상(李箱), [운동(運動)] 전문 다른 사람이 이 작품을 썼다면 아마 '옥상 정원 올라서…'부터 쓰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1층에서부터 2층과 3층을 거쳐 옥상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모두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는 과정도 각층을 모두 거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을 심리학적인 방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반복을 상동증(常同症)이 니 음송증(音誦症)이니 하고, 무엇인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울때 나타나는 병리 현상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시인의 가치관 내지 작품의 테마를 은유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경의 기능에 대해서는 이쯤 이야기하고, 다시 다른 질문을 해볼 까요? 자기 받을 준비 됐어? 사아알작 쏠께. 빵! ▣ 당신은 테마나 화자에 따라 어떤 배경을 선택하십니까? 그냥 별다른 생각이 없이 쓴다구요? 그러면 안 되지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배경의 유형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텍스트 속의 배경은 크게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신화적 배경은 모든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배경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와 다람쥐가 이야기하고, 꽃이 방긋방긋 웃는 것으로 그려진 세상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묘사는 시인이 수식(修飾)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면 심리적인 배경에 포함시켜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사실적 배경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세상을 말합니다. 또, 가정적 배경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조건이 실현되는 세상을 말하고, 심리적 배경은 어떤 특정한 순간에 마음 속에 드려진 세상을 말하고, 창조적 배경은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세상을 말합니다.   이들의 전체 구조는 어느 유형이든 모두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삼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유형에 따라 배경소(背景素)의 모습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리고, 화자의 정서나 화제를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거나 변형시킵니다. 아래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사실적 배경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의 추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아득한 옛날에 물 속에 잠긴 '소나무'와 그에 걸렸던 '방패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방패연 하나 늙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습니다 '아버지'하고 부르면 메아리 대신 솟아오르는 달 고향 하늘 물이 넘쳐 팔월 보름달이 잠긴다. - 이무원(李茂原), [수몰지구(水沒地區)]에서 이와 같은 사실적 배경을 채택하면 작중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어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는데 용이합니다. 하지만, 배경소들을 섬세하게 그리지 않으면, 중성적(中性的)이거나 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배경소들 을 '특정한 순간의 특정한 모습'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적 배경은 화자의 성이나 연령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선 계절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과 은 여성적이 되, 전자는 순진·화려·화사한 정서를, 후자는 성숙·고뇌·우울 의 정서를 나타내는데 적합합니다. 그리고 과 은 남성적이되, 전자는 성장·성취·기쁨·정열을, 후자는 정지·좌절·절망·엄숙의 정서를 나타내는데 적합합니다. 또 연령과 관계지으면, 봄은 유년기에, 여름은 청·장년기에, 가을은 노년기에, 겨울은 죽음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주기를 ··으로 나누어 살필 경우, 빛의 시간에는 남성적 성격(animus), 어둠의 시간에는 여성적 성격(anima)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공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간의 유형을 , , 으로 나눌 경우, 열린 공간에서는 남성적 성격이 강화됩니다. 그리고 닫힌 공간에서는 여성적 성격이 강화되고, 경계의 공간에서는 여성화된 남성이나 남성화된 여성의 성격이 강화됩니다. 다음 이육사(李陸史)의 시만 해도 그렇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중략)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에서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 [황혼]에서 ⓐ에서 시인이 전달하려는 것은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에게 자기 노래를 '목놓아 부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남성적인 테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 을 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에서 전달하려는 것은 수인(囚人)의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갇힌 투사의 외로움입니다. 따라서 남성이긴 하되 여성성을 띄기 시작하는 여성화된 남성화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서서히 여성화되기 시작하는 황혼의 시간과 닫힌 공간을 선택한 것도 이들이 지닌 속성을 이용하여 화자의 외로움을 돋보이도록 하려는 계산에서입니다.   프라이(N. Frye)의 설명에 의하면, 이와 같이 공간과 시간의 유형에 따라 어느 한 쪽의 성이 강화되고, 정서가 달라지는 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은유적 해석이 조상 대대로부터 축적되어 온 결과라 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밤이 되면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생각에 젖어들고, 넓은 곳으로 나가면 활동적이고, 좁은 곳에서는 행동을 작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으로 보이게 만든 결과라고 봅니다.   은 화자의 성이나 연령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대신 진리, 도, 윤리 같은 · 화제를 취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로 인해 화자의 발언이나 행동은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격정적인 순간에도 균형과 절제를 잃지 않습니다. 그것은 담화 속의 사건이 현실의 사건이 아니라 가상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인용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님이 떠날 때 꽃까지 뿌려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복권에 당첨된다면, 너에게 반을 줄께'하는 식 의 발언으로서, 거의 믿을 게 못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현실의 이별이 아니라 가상의 이별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가정적 배경을 채택하면 배경소들이 추상적으로 그려진 다는 게 약점입니다. 그것은 화자의 발언에만 초점을 맞추고, 배경을 그리는 데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념시가 되지 않도록 배경의 모습을 구체화하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은 어느 순간 자기 마음의 창에 비친 배경을 그대로 그린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의 창에 비친 풍경을 그리기 때문에 앞의 두 유형과 달리 현실의 세계와 아주 다른 모습을 띄게 됩니다. 초사흘 달빛이 가늘게 내리는 저녁…   희디흰 그리움 한 올 한 올 풀어 비뚤어진 내 눈썹 위에 살짝 붙이고,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대 불러 옆에 눕히고,   왼 쪽 갈비뼈 하나 뽑아 내 갈비뼈를 만들려 하나니.   돌아 누우라,   그대여. 나를 향해 돌아 누우라. 푸르른 달빛이 비껴 내리는 그대 갈비뼈 사이 느릅나무 잎새 하나가 가뭇가뭇 진다. -현희, [달빛 소곡(小曲)] 전문 이 작품의 테마는 외로움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므로, 여성화자를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닫힌 공간인 '방'과 어둠의 시간인 '밤'을 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밤에 혼자 잠자리에 들면 외롭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부분은 사실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줄 한 줄 띄어 쓰고, 몸을 공간화하면서 '갈비뼈 사이/느릅나무 잎새 하나가 가뭇가뭇 진다'라는 뒷부분은 심리적 배경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풍경은 무심코 떠오르는 무의식적 환상을 수정하지 않고 옮겨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배경은 화제가 시인을 자극하여 만들어낸 풍경을 바탕으로 삼기 때문에 이미 테마와 배경이 상호 결합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이런 배경은 기능적 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진부한 화제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현실적 자극이 마음의 창에 비춰지는 과정에서 일상의 탈을 벗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배경들은 의식의 안팎에 존재하는 풍경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창조적 배경은 언어에 남아 있는 사물성(事物性)을 이용하여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려는 배경을 말합니다. 예컨대, 김춘수(金春洙)의 후기시인 '무의미시(無意味詩)'나 이승훈(李昇薰)의 '비대상시(非對象詩)'가 이런 예에 속합니다. 벽(壁)이 걸어오고 있었다. 늙은 홰나무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밤에 눈을 뜨고 보면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 회랑(回廊)의 벽에 걸린 청동 시계(靑銅時計)가 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내 곁에는 바다가 잠을 자고 있었다. - [처용단장] 제1부 3 이 작품의 사물들은 앞의 작품과 달리 어떤 관념이나 심리 상태를 은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앞 작품의 공간소들은 모두 '그리움'에 연결된 치환은유적(epiphoric) 구조를 취하는 반 면에, 이 작품의 '벽'·'홰나무'·'청동시계'·'바다' 등은 [T(?)=V[(t1)=v1/(t2)=v2/…/(tn)=vn] 식으로 나열된 병치은유적 (diaphoric) 구조로서, 전체의 의미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질적인 보조관념군(補助觀念群)을 인과관계를 배제한 채 병치한 것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로 치환되어 의미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인이 지시 하는 어떤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그 무엇을 창조하기 위해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창조적 배경을 채택하면 모든 배경소들이 서로 결합하고 분열을 일으키면서 제2 제3의 풍경으로 바뀌어 참신감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독자들은 자기 경험과 크게 어긋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무의미한 언어 유희로 받아들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아, 그럼 또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당신은 선택한 배경이 부자연스러울 때 어떻게 조절하십니까?   무슨 소리냐구요?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라구요? 그럼 다시 하지요. 어떤 남자가 대낮 큰길에서 울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배경을 그대로 채택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느냐구요? 굳이 그러고 싶다면 그대로 쓰는 방법밖에 더 있느냐구요? 그럼 다 큰 어른이 질질짜는 게 부자연스럽게 보일텐데요. 이 문제는 다음 작품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 사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우리 둘이는 왼몸이 달어… - 서정주, [대낮]에서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대낮입니다. 그런데도 밤이나 일어날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방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좀 찐하긴 해도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지요? 이와 같이 화자의 행위와 배경의 성격이 어긋날 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뭐냐는 겁니다. 잘 모르시겠다구요? 그럼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몇 가지 장치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런 욕망이 어느 정도 타당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밤처럼'이란 보조관념을 동원하 여 어둠의 이미지를 첨가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낮이면서도 밤으로 만든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고요한' 상태로 묘사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설정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쉬운 전면(前面)이 아니라 꽃으로 가려진 '사이 길'로 점을 잡은 들 수 있습니다. 밤이라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라면 풍기문란죄(風紀紊亂罪)로 끌려갈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자의 의식 상태가 정상적이 아닌 것으로 그린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핫슈를 먹어 취해 나자빠진'이나 '능구렝이 같은 등어릿길'이 그런 증상을 드러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구절은 마약을 먹은 것처럼 비정상적임을 의미하고, 뒤의 구절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닌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아, 미당(未堂)의 비결을 요약해 봅시다. 화자의 의식 상태가 정상적인 아님을 보여주고 시간적 배경에는 일 경우 , 일 경우에는  첨가하고 공간적 배경은 일 경우 , 일 경우에는 의 색채를 가미하면 됩니다. 이렇게 엇갈리게 짜면 한결 더 짜릿하고도 조마조마한 작품이 됩니다. 아무리 어둠을 색칠하고, 꽃밭으로 주변의 시선을 막아도 여전히 바깥이고 대낮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치를 설치해 둬도 독자들이 주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주목하도록 시선을 끌 장치를 함께 붙여줘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 '핫슈',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 같은 등어릿길',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 등의 어휘간의 결합이나 음운조직 이 그런 장치 노릇을 합니다.   왜냐구요? '핫슈'는 아편입니다. 아편이라면 금방 그 의미를 알아들어 주목하지를 않지만, 핫슈는 우리말이 아니라서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알았기 때문에 오랜 동안 기억하 게 됩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동안 아편을 먹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화자의 행동을 용인하게 됩니다. 또 '취해 나자빠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자빠진' 비속어가 독자 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능구렁이같은 등어릿길'은 미끈거리는 유음(流音, r)과 음성모음의 연속, 남성 성기의 상징인 뱀이 결합하여 성적 장면을 연상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는 엉뚱하게 향기와 결합시켰기 때문에,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은 , 처럼 상반되거나 엉뚱한 것으로 연결시켰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막아 줍니다.하지만, 이와 같이 어휘론적 차원이나 음성학 차원의 변조는 의미론적 차원의 변조보다 훨씬 약합니다. 독자들은 무엇보다 의미로 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완전히 변조하고 있습니 다. 시계는 열 두 점, 열 세 점, 열 네 점을 치더라.   시린 벽에 못을 박고 엎드려 나는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가혹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집이여.   손가락들이 고통을 견디는 집에서,   한밤의 경련 속에서,   금이 가는 애정 속에서 이름 부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밤,   더욱 시린 밤은 참을 수는 없는 강가에서   배를 부르며 나는 일어나야 한다.   누우런 아침 해 몰려오는 집에서 나는 포복한다.       진득진득한 목소리로 이름 부른다. 펄럭이는 잿빛,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 경련하는 존재여,   너의 이름을 이제 내 가 펄럭이게 한다. - 이승훈(李昇薰), [이름 부른다] 전문 이 작품에는 독자의 시선을 끄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벽시계는 열두 번 이상 울리지 않게 만듭니다. 그런데, '열세 점, 열네 점'까지 울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 못을 박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시린 벽에 못을 박고' 자 기 '이름'을 부르며 울고, '집'과 '이름'이 종잇장처럼 휘날리며, '밤'이 경련하면서 균열을 일으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배경소들을 왜곡시킨 것은 독자에게 화자가 처한 상황과 정서 상태가 정상적이 아님을 유의하며 읽어 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그냥 '시계가 끝없이 울린다'면 독자들 은 무심코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밤이 깊어감에 따라 불안이 가중된다는 사실을 은유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를 유의하여 읽어 달라고 '열 두 점, 열 세 점, 열 네 점' 울린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자아, 하나만 더 질문하고 이번 호도 마감하기로 할까요? 준비하세요. 쏩니다. 뿅, 뿅, 뿅! ▣작품 속의 배경은 어떻게 변천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할 게 있다구요? 뭡니까? 왜 매호 끝날 때마다 ,  하는 식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느냐구요? 눈치채셨군요. 제가 이와 같이 변천의 문제를 되풀이하여 질문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시인이 되려면, 문학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걸 몰 라도 작품만 잘 쓰면 되지 않느냐구요? 얼른 납득이 안 되신다면 대중 음악을 예로 들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청년 시절에는 이미 자(李美子)씨의 노래가 아주 인기 좋았습니다. 목소리도 좋고, 가락도 애절하고…. 그래서 이미자씨가 죽으면 그분의 성대(聲帶)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 집 공주님들은 차 속에서 그런테이프를 틀면 '아빠! 귀 버려.'하고 요즘 유행하는 테이프를 갈아 끼웁니다. 그건 이미자씨가 노래를 잘못 불러서가 아닙니다. 세 월이 흐름에 따라 청중(독자)들의 감수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진행 방향을 모르면 옛날의 감각을 고집하게 됩니다. 자아, 이젠 시 속의 배경이 어떻게 변천해왔는가를 말씀해 보시지요? 그쯤은 잘 안다구요? 그래 뭡니까?  순이라구요? 어쩐 일이세요? 맞았습니다. 땡땡땡, 땡땡땡, 대한민국 만세, 땡땡땡…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역사란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니까.
449    프랑스 시인 - 앙리 미쇼 댓글:  조회:5178  추천:0  2015-04-20
오픈지식 ALPHABET     내가 죽음에 이르는 추위 속에 있었던 동안, 나는 마지막인 듯이 존재들을 깊게 바라보았었다. 냉담한 그 시선의 죽음을 대할 때,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매질했었던 동안에, 죽음마저도 늦출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붙잡고자 그것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들은 축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파벳과 같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세상에서도, 어떠한 세상에서도 사용될 수 있었던 알파벳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누군가가 나를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 완전히 떼어놓지는 않을까하는 불안을 씻었다. 이런 생각으로 굳어진 나는, 패배한 적 없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 소동맥들과 정맥들 안으로, 만족감과 함께 피가 되돌아 올 때, 나는 천천히, 삶의 열린 비탈을 다시 올랐다. [출처] 앙리 미쇼의 시 : 알파벳 |작성자 SaTaNas   앙리 미쇼 [ Henri Michaux ] 프랑스의 시인·화가인 앙리 미쇼 Henri Michaux (1899.5.24~1984.10.18)는 때로는 자기의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가 존재의 실태와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하고 악의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을 독특한 풍자와 유며로 나타냄으로써 현대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벨기에 출생. 브뤼셀에서 성장하였다. 1955년에야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어려서부터 극히 고독한 성격으로 부모 형제나 어떠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는 남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브뤼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신비 작가의 작품이나 성인들의 전기를 즐겨 읽었고 잠시 의과 대학에 다닌 적도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21세 때 새로운 다른 세계를 동경하여 수부가 되어 약 2년 동안 바다를 떠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4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특히 시인 C.D.로트레아몽과 J.쉬페르비엘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7년 자아의 분열을 다룬 시집 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자신에 대한 거의 과학적, 의학적 관찰 보고서인 ,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박해받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 그리고 꿈과 환각, 충동을 조사, 보고한 등의 시집을 내어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1927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동안 그는 또 다시 다른 세계를 찾아 에쿠아도르를 비롯한 남미, 터키, 인도,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하고 두 권의 여행기 와 을 펴냈는데 저자는 이 가운데 각국의 도시, 인물, 풍습, 동식물에 대한 학자적인 정밀한 관찰과 시인으로서의 깊은 성찰을 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명을 주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남 프랑스의 코트다쥐르로 피난했는데 여기서 앙드레 지드를 만났고 지드는 미쇼의 내면적 시가 가지는 현대적 뜻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앙리 미쇼를 발견하자!"라는 강연을 하여 그의 이름을 높였다. 같은 시기에 그가 전시 중에 쓴 특이한 항전시가 발표되어 일약 그는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년대부터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은 자기류의 그림을 그려 발표해왔는데 이 특이한 그림이 화단에서도 높이 인정되어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는 시인으로 계속하여 , 등의 환상적인 시집과 라는 가공적이며 상상적인 3부작 기행 문집들을 펴냈다.  1955년 경부터 인간의 심층 내부를 철저히 탐색하기 위해 그는 마약인 메스칼린을 복용하여 그 환각과 취기를 이용하여 의식 내부를 탐험하려고 했다. 즉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입하여 약의 힘을 빌어 인간의 모든 감각, 꿈, 인상, 이미지, 무의식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려고 했다. 그는 그가 직접 느끼고 본 것을 그의 시로 또는 그림으로 옮겼다. 어느 작가도 그만큼 인간의 희미하고 붙잡기 힘든 내부 세계를 이렇게 철저하게 탐험, 실험하려고 애쓴 작가는 없었다. 약 15년에 걸친 실험에서 얻은 작품으로 ''비참한 기적'', ''소란스러운 무한'', ''구렁에서 얻은 지식'', ''정신의 큰 시련'' 등이 있다.  미쇼는 만년에도 인간의 내부 세계와 환상 세계에 대한 많은 작품을(''잠든 모양, 깬 모양'', ''사라지는 것과 대면하여'' 등) 내놓았으나 점점 글자로 표현하기보다는 형상적인 그림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의 그림이란 회화라기보다는 현미경 아래 보는 박테리아의 표본이나 X선 사진과 같이 기이하고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는 거의 매년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전람회를 열고 있고 그 때마다 주목과 논란을 일으켰다.  1945년부터는 신비주의와 광기(狂氣)와의 교차점에 서는 독자적인 시경(詩境)을 개척, 현대 프랑스 시의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된다. 주요 저서에 (1944) (1945) 《주름 속의 삶:La Vie dans les plis>(1950) (1955) (1957) 등이 있다.  1965년에는 파리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총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어 그의 예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국가 문학 대상의 수상자로 추대되었으나 그는 이를 사절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엄밀한 뜻에서 문학권 외에 있으면서도 194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448    시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며 댓글:  조회:4362  추천:0  2015-04-20
한국 시문학의 미래는 어둡다     다시 말한다. 한국 시문학의 미래는 어둡다 문예지의 수, 등단자의 수, 전체 시인의 수를 보면 양적으로는 분명히 풍요로워졌다. 시집을 시리즈로 펴내던 유명 출판사에서 연간 시집 발행 권수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은 여전히 엄청나게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인터넷상의 시 동호인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인터넷 온라인을 통한 작품 공모가 붐을 이루고 있다.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대학이 50개 정도로 늘어났으며 정규 학제가 아닌 대학 사회교육원을 비롯한 각종 문학 사숙도 번창 일로에 있다. 이러한 양적 풍요가 질적 심화를 가져오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70~80년대에 비해 90년대의 시집 판매량은 뚝 떨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점가에서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는 품목이다. 설사 팔린다 하더라도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집’과 류시화나 김용택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인이 선정하여 해설을 붙인 시선집에 국한되어 있다. 오늘날 시단에는 별다른 화제가 없고, 문학평론가들의 담론은 맥을 잃고 있으며, 독자와 평론가들한테서 특별히 주목받는 정통문학권의 시집도 없는 듯하다. 작품은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좋은 작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활발한 비평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독자의 호응이 사라졌다는 것은 삼박자를 이루어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 야기되고 있다. 여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활자 문화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영상 문화가 잠식함으로써 오늘날의 대중은 시집 같은 데서 마음의 양식을 구하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텔레비전․비디오․만화를 보고 있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데 여념이 없다. 책을 읽더라도 실생활과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 아니면 황당무계한 판타지 소설을 주로 본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때가 오면 간혹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수상의 여부와 관계없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시인․소설가를 배출한 나라에 비해 우리 문학이 무엇이 부족한가 하고. 20세기 100년만 놓고 보더라도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남미 여러 나라 등과 견주어 우리에게 부족한 요소가 도대체 무엇일까. 국력의 문제? 번역의 문제? 문학적 토양의 문제? 세계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언어인 한국어의 특수성 때문? 시대적 환경의 문제? 어느 한두 가지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내릴 자신이 내게는 없다.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며, 이 자리에서 제법 그럴듯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켜 하루아침에 왕성한 피돌기를 할 리가 없다. 나는 다만 내가 써온 시를 반성하며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자성록을 써볼까 한다. 그럼 이제까지보다 조금 나은 시를 쓸 수 있는 해법도 도출되지 않겠는가. 희망 사항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1. 우리 시단은 참으로 완고하다     우리 문단은 장르를 넘나드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시와 소설을 겸하는 이가 있다고 했을 때, 그는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지 않으면서 욕심만 많다고 욕을 많이 들을 것이다.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나는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나서 5년 뒤에 운 좋게 다시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그때 어떤 문학평론가가 “이형, 다음엔 문학평론이나 희곡을 써 또 상금 타 먹을 거죠?”라고 놀려 퍽 당황한 적이 있다. 소설 쓰지 말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들었다. 어느 장르로 등단한 뒤에 다른 장르의 글을 쓰면 대뜸 외도를 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우리 문단의 완고함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문학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연과 지역 연고, 등단 지면, 그리고 활동 범위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우리 시단은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1980년대 초반의 우리 시단에는 실험 정신이 충일한 세 명의 시인이 있었다. 이성복ㆍ박남철ㆍ황지우의 시에는 해체시니 실험시니 형태파괴시니 하는 명칭이 따라다녔다. 그들의 시를 어떻게 통칭하든 간에 그 이전의 시들과는 변별되는 요소가 확실히 있었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으로는 체제 수호적인 작품밖에 더 쓰겠냐는 이들의 반항 정신(혹은 부정 정신)은 우리 시를 무척 풍요롭게 하였다. 이들의 시정신은 80년대 후반에 장정일ㆍ김영승 등이, 90년대에 유하ㆍ함민복ㆍ장경린ㆍ박서원ㆍ박상순 등이 잇는다. 시에서의 실험 정신을 용인하지 않는 90년대 시단의 풍토는 이들의 팔에서 힘을 앗아간다. 실험 정신이 충만한 작품과 더불어 이른바 민중시의 위세도 꺾여 순수서정시가 득세한 시대가 바로 90년대였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는 비평적 조명이 따뜻하게, 아니 뜨겁게 내리쬐었으나 실험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류로 취급되면서 매도당했다. 한편 민중시는 소련 연방의 해체와 동구 공산권의 자본주의 체제 도입 이후 갑자기 맥을 놓아 서정시로 자리바꿈을 하였다. 그러자 앞서 거론한 시인 중 혹자는 불교의 세계의 귀의하여 현실로부터 떠나버렸고, 혹자는 시를 버리고 산문의 세계로 갔으며, 혹자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근본으로 하는 서정적 자아 탐색의 길로 떠나버렸다. 90년대 시단에는 그래서 새로운 형식의 시(형식은 정신을 낳는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과거 신동엽이나 김수영 같은 치열한 정신과의 만남도 어렵게 되었다. 시대의 이단자가 새로운 사조를 창조하는 법이다. 우리네 문단 풍토에서는 보들레르도 랭보도 나올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귀수 시인의 시집과 평론집이 나오지 않는 데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등단 십수 년 만인 2004년에 첫 시집이 나왔다. 이 시집은 너무 늦게 출간되는 바람에(내 생각에는 그렇다) 비평적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어쩔 수 없이 반영한 결과이겠지만 박노해ㆍ백무산ㆍ김신용ㆍ유용주 등 몇 분 시인의 작품이 근년에 들어 현실에서 벗어나 관념화되어가고 철학적 사변이 늘어난 데 대해 다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2. 우리 시에는 ‘서사’가 많지 않다     과거 정족(鼎足)의 관계를 이루던 실험시ㆍ민중시ㆍ서정시는 90년대에 들어 어느덧 서정시만 살아남아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내 내면 세계에 대한 정밀한 탐구가 주류를 이룬 것은 우리 시문학 전체의 진폭을 생각할 때 그리 환영할 일이 못 된다.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늘날 이 땅의 시는 별 재미도 없고 큰 감동도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구의 시, 특히 프랑스 상징주의, 독일 표현주의,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영미 주지주의의 시를 읽다 보면 ‘서정’이 ‘서사’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정감’이 ‘지성’의 세계를 빼앗은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고 자꾸만 생각된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 이래 서사시가 많이 씌어지지 않은 우리네 특유의 문단 풍토도 그렇거니와, 풍자시가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 우리를 일상적 삶을 옥죄고 있는 정치와 경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를 따져볼 때, 서사시와 풍자시가 많이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향한 목소리는 완전히 잦아든 느낌이 든다. 신동엽의 「錦江」이나 김지하의 「五賊」 같은 시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일까. 한때 이야기시론을 주창하며 시 속에다 이야기를 담고자 애썼던 최두석의 작업이 나는 무척 그립다. 백석의 시가 점점 더 좋아지는 이유도 ‘서사’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3. 현대시는 운문을 버리고 산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시의 상당수가 산문시가 아니고 그냥 산문이다.   산문이 산문시가 되지 않으면 잡문이 된다. 시라는 것이 행과 연 구분은 대충 되어 있지만 문장들이 길고 난삽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시는 한 개의 문장이 5~6행까지 이어지고 심지어는 7~8행까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문장도 우리 구문법에 어긋나는 것이 많고 영어와 일어 번역체 분장까지 있다.    산문시이지만 정진규의 산문시는 오히려 내재율을 갖추고 있다. 문장이 짧아 속도감이 있고 은유와 상징이 적절히 깔려 있어 읽는 맛이 난다.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문예지상의 수많은 시가 외양은 시 같지만 분명한 산문이라 잘 읽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시다운 맛이 없다.   반면에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은 운율을 적절히 지니고 있어서 잘 읽힌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단순 소박하되 내용은 사실상 별 볼 것이 없다.    잃어버린 운율을 되찾아야만 시가 산문과 다름을 보여주어 우리 시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인은 우리말의 파수꾼이 아닌가     시인은 모국어를 사수하고 잘 가꾸어 후손에 물려주는 역할을 하는 언어의 파수꾼인데 여기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시어 구사에 있다. 비어ㆍ속어ㆍ욕설ㆍ육담ㆍ유행어ㆍ외래어 등은 우리 현대시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순 우리말은 발견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시집 그 자체가 우리말의 보고인 영랑과 백석의 작업이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다고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는 실험시건,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고 민중에게 어필한다는 민중시건,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인 서정시건 상관이 없다. 시인들이 나서서 우리말 파괴 공작에 열중하고 있다. 시대 상황이나 주제 의식을 배제하고 시어만을 보자.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고요.          ―김남주, 「다 쓴 시」 전문   총칼 한번 휘둘러 수천 시민을 살해한 놈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로 가고   주먹 한번 휘둘러 뺨 한 대 때린 놈은 폭력배가 되어 가막소로 가고.          ―김남주, 「깡패들」 전문   쳐라 쳐라 폭력테러로 좌경용공 구속조치 탄압의 쇠망치로 네놈들이 미쳐 날뛰어 치면 칠수록 나는 시퍼런 칼날로 일어설 것이다 이제 무너져야 할 것은 네놈들의 자본의 황금탑이다   네놈들이 짓밟고 치면 칠수록 시퍼런 칼날 되어 내가 일어서고 내 아내가 일어서고 우리 동지가 일어서고 이 공장 저 공단 전국의 노동자가 우뚝우뚝 일떠서 손을 치켜드는 날 공고한 자본가 세상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피 비린 총칼은 수수깡처럼 흩어져 끝내 한줌 먼지로 화하고 말 것이다          ―박노해, 「무너진 탑」 부분        ―WXY 그려진 W.C 入口      非常口 같은 膣口      都市는, 아 고녀석 자지도 굵다      까만 데만 25㎝네, 이젠, 凱旋門도      疥癬, 改善, 개, 個個, 砲門도 이젠      이젠 揷入 以前에 끝난단다, 少女야      찢어지지 않아서 좋겠다, 좆 컸다   美童들아 脚뜬 유방과 히프 한 사라 ※ 사라 : dish․皿․접시 200₩어치는 안 판다고요?         ―김영승, 「반성 784」 부분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이유가 있긴 했었지만 시를 꼭 이렇게 써야 했던가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언어의 조탁이나 퇴고의 힘든 과정은 고사하고 폭언이나 욕설처럼 난폭하기 짝이 없는 이런 시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 점에서 홍명희ㆍ박경리ㆍ김주영ㆍ최명희ㆍ김소진 등 소설 쪽에서의 작업이 많이 부럽다. 시인이 우리말을 사랑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인가.     5. 전통과의 단절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전통 계승론과 단절론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골계미’의 측면에서 보자면 단절이 분명하다. 전통과의 단절은 우선 근대문학 성립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남선이 쓴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이광수가 쓴 「무정」으로부터 우리 근대 문학이 시작된다고 하자. 두 사람은 그 당시 홍안의 청년이었고, 일본 유학도였으며, 한동안 천상천하를 이 두 사람이 휘어잡았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동인지 문단 시대를 전개한 사람들도 당대 사회에 있어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후일 최남선이 시조부흥운동을 전개하긴 했지만 신문학 초기에 전통의 계승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통의 계승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계승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 우리 신문학의 문을 열고 길을 닦아나갔던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것이 문학일진대 조선조 후기의 그 좋은 문학적 전통이 근․현대 문학으로 뻗어나가질 못했다.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개화기부터 서민 문학이 죽고 귀족 문학이 살아남게 되었다.     조선조 전기와 후기는 어떻게 다른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정치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고 국민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자연히 귀족 계급의 무능은 폭로되었고 평민 계급의 자의식은 싹텄다. 또한 훈민정음 반포 후 100년이 지나는 동안 평민과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우리말로 인간 생활을 표현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귀족 계급의 문학은 쇠퇴해졌고 평민 계급의 문학이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문학은 사설시조ㆍ평민가사ㆍ수필ㆍ소설ㆍ판소리 등이다. 우리의 시조는 조선조 후기, 윤선도의 등장과 사설시조의 성행으로 수많은 수작들이 나왔다. 사가문학은 박인로가 벽두를 장식한 이후 내방가사․평민가사․잡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설화를 창곡화(唱曲化)한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신재효가 여섯 마당을 가려내 독특하게 개작하여 우리 서민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조선조 후기에는 이밖에도 지방마다 들놀음․오광대놀이․산대놀이․탈춤 등 민속극이 행해져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그러나 서구 문예사조의 난입, 특히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수입 이래 그런 것은 문학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자유시는 곧 모더니즘과 상징주의를 표방한 것이어서 우리는 형식에 있어서는 운율을, 미학적 측면에 있어서는 골계미를 잃어버렸다. 김동환과 김소월로 대표되는 민요조 서정시가 있었고, 그 전통이 신경림과 김용택의 시에까지 흘렀지만 후배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모더니즘 표방 시의 위력에 당할 수는 없었다.     6. 우리 시는 전반적으로 유약하다     우리 시문학은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탐스런 열매를 많이 맺었고 아름다운 꽃도 숱하게 피웠다. 그런데 민족의 수난기에 우리 시문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순수서정시가 시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때문에 블레이크․워즈워드․콜리지․셸리․키츠․바이런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낭만주의와는 달리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주의가 우리 시문학에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영향은 일제시대 전체를 관류하였고,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비가였다.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하는 웅혼한 기백의 정서, 진취적인 기상의 정서는 한국 현대시의 문맥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나는 서정주의 「바다」를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개탄한 바 있다.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저항의 의지가 뚜렷한 시를 남긴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도 감상과 회한은 조금씩이나마 배어 있었고, 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 소월의 「招魂」, 영랑의 「毒을 차고」 같은 절창도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볼 때는 예외적인 작품에 속했다. 유치환의 「생명의 書」와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줄줄 외울 수 있었던 나는 그런 힘찬 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자연히 「국화 옆에서」「春香遺文」「귀촉도」 등 서정주의 여러 시를 애송하면서도 이들 작품이 지나치게 고색창연하거나 유약하게 느껴져 그다지 만족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인들의 나라 잃은 슬픔이 오죽했으랴만 때때로 고구려 사람들의 웅혼한 기백의 정서, 백제 사람들의 진취적 기상의 정서를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향가의 박진감, 사설시조와 판소리의 비판정신, 민요의 민중정서, 무가의 상상력, 한시의 선비정신, 선시의 불교정신 중 우리 현대시는 한 가지도 배울 수 없었던 말인가. 도대체 시에 강인함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니, 서구 낭만주의를 우리는 완전히 왜곡해서 받아들였던 셈이었다.                                                                                                       ―「진취적인 기백의 정서」, 『詩의 아포리아를 넘어서』, 이숭원 외, 이룸, 2001.     지금 읽어보니 지나치게 흥분해서 쓴 감이 있다. 우리 시의 유약함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엉뚱한 자리에서 터뜨려진 것이었다. 남성 시인의 시에 여성 화자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것과 센티멘털리즘은 우리 시의 고질이면서 나의 고질이다.     7. 현실 반영만큼 중요한 것이 형이상학이다     존재론적인 시가 드문 것도 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1926년에 한용운이 자비로 출간한 『님의 침묵』이 참으로 대단한 것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 일탈하지 않았다는 점과,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지향하면서도 연애시풍으로 써 관념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 역시도 리얼리즘 소설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시인의 상상력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을 때, 그것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다. 하지만 시가 지향하는 세계가 그 어떤 궁극적인 실체를 만나기 위한 힘든 도정일 수 있고,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일 수도 있으며, 우주와 인간의 신비에 대한 치열한 연구일 수도 있다. 한용운 이래 우리는 이 광활한 세계를 너무 무시하고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 몇 해 전에 구상 시인과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시인의 말씀 중 시를 쓸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생래적으로, 또 문학적 전통으로 봐도 로고스적인 면보다 파토스적인 면이 강하지요. 감성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 서정이나 정한 같은 것이 흔히 소재가 되지요. 그래서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인식의 세계가 한국 시인들에게는 결핍된 거라 봅니다. 기독교인들도 불교인들도 시를 쓰고 있지만 독자적인 고뇌, 즉 등가량의 진실과 오뇌(懊惱)가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부족해 보여요. 자기가 혼자서 초탈한 체하는 시에는, 또 선사가 법어를 하는 식의 시 속에는 진실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어(綺語)의 죄에 해당하는 거죠. (……)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겉으로 번드르르하게 외면치레를 할 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시인들조차 말의 치장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진리의 증득을 위한 몸부림의 문학을」, 『라쁠륨』, 1999. 여름.     노시인의 질타는 우리 시의 취약점에 대한 일갈이면서 사실상 나를 향한 꾸지람이었다. 너는 왜 허구한 날 그런 가벼운 시만 쓰고 있느냐, 이제는 좀 시다운 시를 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이어서 속이 뜨끔뜨끔하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 시의 취약점은 이상 일곱 가지 정도이다. 다 시를 쓰고 있는 내가 극복해야 될 문제이므로 그 누구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영상 매체의 쇄도에 주눅들지 말고 우리 시문학사를 주옥으로 수놓을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체계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을 많이 늘어놓았다. 구상 시인의 말대로 나야말로 기어의 죄를 짓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447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기 댓글:  조회:4946  추천:0  2015-04-20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자 -- 엄숙주의를 벗어나기 위하여       여러분은 혹시 우리 시에 ‘웃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시하는 것이 엄숙하기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는 지난 100년 동안 엄숙주의로 일관해왔던 것이 아닐까요. 이번 호에서는 시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웃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시들   보들레르 시 두 편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누라가 죽어서, 난 자유로워졌다! 그러니 취해 떨어지게 술을 마셔도 돼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고함소리 내 가슴 찢었지                                                     -김인환 역,     오, 구더기여! 귀도 눈도 없는 검은 동료들이여! 보라, 자유롭고 즐거운 죽은 자 너희들에게 왔도다 호색적인 철학자, 부패의 아들들이여 이제 후회 없이 내 육신 파고 들어가라 그리하여 나에게 말하라, 아직도 무슨 고통 남아 있는지 주검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영혼 없는 이 늙은 죽은 몸에!                                                     -김인환 역, 마지막 연     제가 《악의 꽃》에 실려 있는 이 두 편의 시를 읽은 것은 대입 수험생일 때였습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엄숙한 시들을 수십 번씩 읽으며 예비고사 대비 공부를 할 때 이런 시를 읽어보니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요. 은 잔소리가 심한 마누라를 죽인 사리인자가 다시금 술에 취해 허우적대는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다시 술을 마시는 섬뜩한 광경이 펼쳐지지만 “내 마누라가 죽어서, 난 자유로워졌다!”라고 외치는 술꾼에게 왠지 동정심이 갑니다. 에서는 시적 화자가 구더기들에게 자기의 영혼은 이제 육신과 나누어졌으니 육신을 파고 들어가 배를 채우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세계를 자유롭고 즐거운 세계로 묘사한 이 시를 보고 “야, 참 시가 이렇게 엉뚱하고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시인들 가운데 앙리 미쇼, 앙드레 브르통, 자크 프레베르 같은 시인의 시는 별로 심각하지 않고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소개를 못 해드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우리 시에 ‘웃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시라는 것이 엄숙하기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는 지난 100년 동안 엄숙주의로 일관해왔던 것이 아닐까요. 언제가 ’풍자‘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지금부터 시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웃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시를 쓸 때 어깨에 너무 힘을 주지 말고, 재미있게 쓰는 훈련을 해보십시오. 김영승의 다음과 같은 시는 어떻습니까.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고 만원 버스를 타봐라. 만원 전철을 타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 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 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댓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오.” “그러지요.”                           - 전문     김영승은 아마도 병원에 갔다가 직접 겪은 일을 갖고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제복을 입었다면 봉사 정신에 투철해야 할 텐데 그들 중 다수는 사람을 깔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맞대응을 했던 것이고, 의사는 그때서야 말을 높여서 환자를 대합니다. 사회풍자라고 해야 할지, 시인이 한 방 멋지게 펀치를 날렸군요. 김영승은 시집 《반성》에 이어 《권태》를 낸 바 있는데 두 시집 모두 연작시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시집입니다. 《반성》에는 이런 구절이 있는 시가 나옵니다. “신문에 난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수필집 광고에 나온/ 李外秀 사진을 보며 어머니는 또 그러신다 그러더니 또 별안간/ ‘야 저 새끼 장가갔냐?’ 하신다”. 소설가 이외수의 얼굴을 떠올려도 그렇거니와 어머니의 말투가 거칠기 이를 데 없어 독자는 씩 웃게 됩니다.   웃음에 대한 개념들과 전통속의 웃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보통 이하의 열등한 인물을 모방하는 데서 희극이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웃음은 타인에게 고통이나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종의 과오나 추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됩니다. 17세기에 와서 홉스는 웃음이란 타인의 약점을 통해 느끼는 우월감 내지는 갑작스러운 승리감이라 했습니다. 18세기의 칸트는 웃음이란 긴장했던 기대가 갑자기 무로 전화해서 발생하는 정서라고 했습니다. 홉스와 칸트 두 사람은 ‘불일치’의 관점에서 웃음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베르그송은 《웃음-희극의 의미에 대한 시론》에서 웃음을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사회의 변화에 주의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유연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경직성과 방심 상태에 놓일 때, 웃음을 자아내게 됩니다. 웃음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웃음의 원인인 ‘불일치’는 바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사회성’입니다. ‘비사회성’에서 오는 기계적인 경직성이나 방심상태를 단죄하는 사회적 징벌이 베르그송이 말하는 웃음의 사회적 기능입니다. 웃음은 미적 개념으로는 골계미에 해당됩니다. 미의 기본 범주로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그리고 골계미의 4분법 체계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골계의 유형 중 가장 비중이 큰 풍자는, 현실 개선의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덕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외부 상황의 자극과 그 고통의 감정을 웃음으로 넘겨 자아를 손상하지 않고 지키는 데 해학의 본질이 있다고 했습니다. 풍자가 공격성의 골계라면, 해학은 방어의 골계입니다. 또한 풍자가 사나운 골계라고 한다면 해학은 부드러운 골계에 해당합니다. 우리 문학에는 예로부터 골계미가 풍부했습니다. 골계미는 서양 말로 하면 ‘유머 센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양에서는 골계의 하위 범주로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 네 가지를 설정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풍자(satire)는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능란한 궤변으로 까발리거나 과장하여 공격하는 비우호적인 태도입니다. 해학(humor)은 현실을 포용과 융화로 여유 있게 보면서 현실로 인한 슬픔이나 분노를 익살스럽게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아이러니(irony)는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의 괴리로 생겨나 반어적 표현입니다. 위트(wit)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격언 같은 압축되고 정리된 말로 능숙하게 표현하는 지적 능력입니다. 아래의 시는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죠.     가만히 지구를 두들겨 본다 뗑 뗑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 발밑을 내려다본다 밑을 자식 뭘 보냐 씩 웃는다                ― 김용길, 전문       여기서의 지구는 물방울 하나입니다. 지구가 아무리 크다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물방울 하나, 지구본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독자가 지구를 물방울 하나로 인식하게끔 유도합니다. 지구를 두들겨보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시인의 발밑을 내려다  봅니다. 물론 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상상의 공간이지요. 시인은 마지막에 두 행에서 웃음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지구 저쪽의 누가 자기의 발밑을 보니까 화자는 “자식 뭘 보냐”하고 한마디 했고, 그러자 상대방이 씩 웃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구는 하나의 촌(村)이며, 그보다 더욱 작은 물방울 병인 것입니다. 국권상실의 시대에 근대적인 의미의 시가 출발한 탓인지 눈물과 한숨, 좌절과 절망은 1910~1920년대의 종합지 시단과 동인지를 수놓은 주된 정조였습니다. 기나긴 일제 36년 동안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 광복을 생각하며 우국지사의 정신 내지는 선비 정신을 가져야 했습니다. 광복의 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친일의 대열에 합류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고무, 찬양하고 일군에 자진해서 입대할 것을 종용하는 친일작품을 썼던 시인도 많았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6․25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남쪽의 시인들은 1980년대가 저물도록 독재자가 아니면 군인 출신이 나라를 통치한 탓에 민주투사의 길을 가거나 정치에 환명을 느끼고 서정시인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담 질하는 시인을 우리는 그리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이제껏 인간의 슬픔과 설움, 아픔과 절망의 세계를 탐구해온 시인입니다. 제 시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별로 없지요. 다만 두 번째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몇 편의 시가 다소 재미있는 시의 유형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웃음은 인간의 전유물입니다. 동물이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나 동물의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 동물이 웃는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존재이고, 남을 웃길 줄 아는 존재입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신랑 될 사람이 갖추어야 되는 조건 중 하나로 유머 감각을 제시할 정도라고 합니다. 숫기 없는 사람은 장가도 못 가게 생겼습니다. 우리 시사에서 웃음이 전통은 〈처용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의 향가 〈처용가>는  내용이 아주 익살스럽습니다. 처용이 밤늦게 집에 와서 보니 이불 밖으로 다리가 네 개 나와 있습니다. 외간 남자(역신)가 아내와 동침 중이었던 것입니다. 처용은 그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화를 내기는커녕 얼씨구나 하고 한바탕 춤을 추었으니 그 배포가 보통이 아닙니다. 판소리 가운데 〈흥부전〉과 〈춘향전〉에는 청중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대목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탈춤과 들놀이〔野遊〕의 양반춤 과장에서는 꼭 관중의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 나오며, 유랑광대의 인형극ㄱ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문학에서 웃음의 전통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징검다리 삼아서 김유정과 채만식으로 이어지집니다. 저는 윤흥길과 심상대,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며 키득키득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웃음의 전통은 우리 현대시에서 김영승  외에 어떤 시인들이 계승하고 있을까요?   우리 현대시 속에서의 웃음   김지하는 풍자의 올바른 방향이 민중이나 소시민의 자기 풍자가 아니라 민중의 반대편에 서 있는 특권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을사오적신에 빗대어 비판한 〈오적〉은 단형 판소리 요소를 차용한 작품입니다. 그는 일련의 담시를 통해 군사독재정치 시대의 비리에 가득 찬 특권 지배계층과 반민주적인 지배이데올로기, 그리고 반민족적인 친일 세력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풍자했습니다. 황지우의 웃음은 우리 사회의 죄악상이나 불미스런 점들을 비꼬아 찌르는 촌철살인의 웃음입니다.  조롱과 야유가 담긴 싸늘한 웃음이지요. 황지우의 냉소는 현실부정의 소산이어서 삶의 끔찍스러움을 긍정하는 고소(苦笑)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박남철은 산문체와 요설체, 금기어, 욕설, 야유 등의 해체적 문법에 의해 전통적인 시적 규범을 깨뜨림으로써 사회의 규범과 문학적 엄숙주의를 타파하고자 애쓴 시인입니다. 〈주기도문〉이나 〈주기도문, 빌어먹을〉같은 시에서 보이는 신성에 대한 반발도 그의 초기 시세계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냉소를 선사했던 그들의 뒤를 이어 유하와 함민복은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었습니다.   경천동지항 무공으로 중원을 휩쓸고 우뚝 무림왕국을 세웠던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이 주지육림에 빠져 온갖 영화를 누리다 무림의 안위를 위해 창설했던 정보기관 동창 서열 제 2위 낙성천마 금규(金圭)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무림계는 난세천하를 휘어잡으려는 군웅들이 어지러이 할거하기 시작했다 (…) 무력 19년 가을, 광도일귀는 승산의 영웅대회에서 잔혹귀존 폭풍마독 등 형식적인 비무를 거친 뒤 무림맹주의 권좌에 등극하였다 그날 무협신문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며 혈의방 무사들이 통천가공할 무공을 익히며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이때 강력한 무공의 소유가자 중원을 다스려야 한다고 수심에 가득한 기사를 썼지만 대부분 인면수심들이었다.                 ―〈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 ― 무림일기1〉부분   유하는 저급한 대중문화의 대명사인 ‘키치’를 이용하여 지난 시대의 정치적 억압상황과 대중문화, 그리고 현대문명을 비판한 시인입니다. 이 시에서 유하는 정치인들을 무림계의 고수들로 형상화하여 그 행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무림패황 천마대제 만박”은 박정희를, “낙성천마 금규”는 김재규를 가리킵니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피살된 후 군사정권 존립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이 김재규와 정승화를 몰아내고 대통령이 되는 일련의 정치적 일정이 무협지의 세계로 풍자되고 있습니다. 유하가 당시의 정치현실을 무협지에 빗댄 의도는 ‘허구 같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고자 한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은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한결같이 “환영의 뜻을 표하며” 강력한 무력의 소유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며 ‘인면수심’을 보인 당대 신문들을 풍자하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시의 제목은 군사정권 18년에서 20년 사이를 의미합니다. 1980년대의 군사정권도 바로 박정희 정권의 연장이라는 유하의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잘 벗겨지지 않아요 ―제비(?)표 페인트 알아서 빨아줘요 ―대우 봉(?) 세탁기 구석구석 빨아줘요 ―삼성(?) 세탁기 빨아주고 비벼주고 말려주고 ―금성(?) 세탁기 우리는 그이가 다 빨아줘요 잘 빨아주니 새댁은 좋겠네 ―럭키슈퍼타이   무엇이, 무엇을 의도적으로 빠는 이 광고에 우리는 무엇을 꼭 집어넣으라고 욕해야 할지                   ―〈내 귀가 섹스 쪽으로 타락하고 있다〉전문     함민복은 상업광고의 언어를 패러디하여 우리 사회의 타락상을 비판한 시인입니다. 패러디란 원래 어떤 작품이 지닌 특징을 포착해서 만든, 모방적 측면을 지닌 작품이지요. 함민복은 육체적 이미지와 관련된 먹고 사는 것, 성적인 것, 배설로 말미암은 것이 유쾌한 것으로 찬양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 기존의 신성과 권위, 이데올로기 및 가치는 얼마든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으로 격하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시의 세탁기 광고 언어를 모른다고 해도 함민복의 시가 지닌 웃음의 의미는 약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는 패러디가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현실을 첨예하게 반영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단적인 예입니다. 다음 시에도 웃음의 미학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나 어느덧 입덧 심한 임산부 되어 배만 찾는다 값비싸고 큰 배만 맛있게 먹는다 아, 배! 아그 배! 아그, 아그으, 아그 배! 아크 배! 아크, 아크, 아, 크, 큰 배〔腹〕! 아흐으으으 배!         ―이선영, 〈아그배〉전문   아그배는 아그배나무의 열매로 아주 작고 맛이 시며 떫습니다. 이 시는 먹는 배를 탐하던 임산부가 점점 커져만 가는 자신의 배를 보고 경악해 마지않는 장면을 담아 임신한 여성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성어와 감탄사가 웃음의 효과를 배가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듣기 체험의 산물인 〈굴비〉나 재미있는 상상력의 산물인 〈교통사고의 기쁨〉을 보면 앞으로 우리 시의 활로는 눈물의 시가 아니라 웃음의 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체질에 안 맞아 웃음이 시를 쓸 수 없지만 여러분은 시를 쓰실 때 농담이나 육담 한마디를 곁들려 보십시오. 골계미와 풍자․해학․아이러니․위트를 적절히 구사한 시를 써보십시오. 그러면서도 사회를 풍자하고 세태를 비판하면 일거양득이 아닙니까.   나는 편해, 도로에 볼썽 사나운 모습 으로 누워 있지만, 고통도 더 이상 없고 아주 편해, 그래, 페허를 헤매는 늑대 같은 직장 동료 안 만나도, 이젠 되고, 이젠 자녀의 앞날도, 사랑하는 사랑한다는, 남편이나 아내의 기분도 하루 세 끼, 그 지겨운 식사도,                 ―이만식,〈교통사고의 기쁨〉부분   교통사고를 강해 죽은 한 가장의 영혼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역설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왜 기쁨이냐 하면, 죽음으로써 온갖 의무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저승세계로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통도 더 이상 없고 아주 편하다는 죽은 자의 말에서 우리는 샐러리맨의 비애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오탁번의 시 〈굴비〉는 웃음 없이 읽을 수 없습니다. 시의 대화 부분만을 따서 제시합니다.   ―굴비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이상 제 1연의 대화) ―웬 굴비여?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마!(이상 제 2연의 대화) ―또 웬 굴비여? ―앞으로는 안 했어요(이상 제 3연의 대화)   이 시의 재미는 굴비 장수와 ‘김매던 계집’의 화간이나 “앞으로는”이란 말의 뜻에 있는 것 같지만 제가 보건대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라는 마지막 4행에 있습니다. 사내는 아내의 굴비 봉사(?)에 오히려 그날 밤을 뜨겁게 밝힙니다. 개똥벌레들과 베짱이들도 사라의 하모니를 연주하지요. 우리 시에는 이러한 웃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영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시인이라고 우스꽝스러운 시를 쓰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골계미를 분출하는 시, 웃음 속에 눈물이 얼비치는 시를 저는 읽고 싶습니다.       [출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자 /이승하 |작성자 노연화  
446    해체시에 관하여 댓글:  조회:5294  추천:0  2015-04-20
  희망인가, 절망인가                 해체는 지금 막 시작되고 있는 해체이어야만 한다.                               -남진우, {바벨탑의 언어}, p.99          모든 아방가드는 일어나는 당시에는 아무리 새롭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전통의 일부로 수렴되고 마는 운명이어서...                          -권택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p.11       1. 해체의 논리와 비논리   -왜 해체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해체 시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듯 보인다. 그 이전 시대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80년대 시의 굵은 줄기 중의 하나로 해체시를 위치시키는데 독자들은 인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 시가 언어를 조탁하여 아름답게 대상을 묘사하고자 했던 묵시적 전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이었기에 더욱 독자들의 관심을 주목시킬 수 있었다. 여러 시인 비평가들이 앞 다투어 작품으로, 혹은 이론으로 해체시의 당위성을 이야기해왔다. 리얼리즘 계열의 평론가들은 나름대로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애써 해체시를 평가 절하시키려고 애썼다. 자의든 타의든 해체 시 자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존재를 검증받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해체시를 둘러싼 말들이 무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0년대는 지나갔다. 실제의 작품을 보더라도 80년대 초반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등에 의해 촉발된 해체 분위기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한 절정을 이루다 지금은 각개약진 식으로 다양해지기는 했으나 상당히 정숙해진 느낌이다. 모더니즘 혹은 요즘 많이 언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는 {현대시사상}에서 꾸준히 해체를 하나의 묶음으로 정착시키려고 애써왔고, {문학사상}에서도 근래 해체 시 특집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를 둘러싼 해체의 분위기는 분명히 80년대의 그것이 아니다. 단언한다면, '80년대식 해체'는 이제 끝났다. 아니 한걸음 양보한다면, 지금 끝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또 철지난 사랑타령처럼 해체시를 들먹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숲에 있을 땐 나무 하나하나의 모양을 세밀히 보지만 정작 숲 전체를 조감할 수 없다는 흔한 상식을 상기하자. 우리는 80년대와 함께 해체시의 숲을 통과해, 지금 숲이 끝난 곳에서 뒤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또 과거가 역사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현재와 만나야한다는 교훈도 상기하자. 해체는 지금 완전히 분해 되지 않고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닌다. 한 때 해체의 선봉에 섰던 황지우와 이성복이 이후 방향을 선회하긴 했지만, 그들의 선배 세대인 이승훈, 박의상, 박상배 등이 여전히 해체시를 만들고 있고, 그들의 후배세대인 장정일, 박상우, 황인숙, 최계선 등이 나름대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승자, 김영승, 김정란 등이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해체를 방법으로 차용하여 꾸준히 작품을 써오고 있다. 80년대가 끝난 지금 우리는 이들에게서 전 시대와는 다른 해체를 읽게되고, 그것이 90년대식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해체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해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언어를 뒤집고, 그림이나 도표를 인용하고, 과감한 패러디를 쓰고, 대상을 감추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혹은 글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채우는, 한마디로 요약해 전통 시형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해체이론은 이러한 정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따지고 들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해체시의 타당성, 다시 말해 해체시가 시로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가 아닌가에 집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모더니즘의 입장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시의 영토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리얼리즘 쪽의 논객들은, 시를 언어의 유희 즉 말장난 정도로 여겼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의 첨예한 대결은 해체에만 국한된 대결이 아니라 문학 전반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 더 나아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의 차이라는 점에서 전혀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해체시의 바른 평가와 방향설정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전의 해체를 둘러싼 어떤 해석이나 이론에도 기대지 않기로 한다. 해체를 언어형식의 파괴로 파악할 때 우리는 엄청난 오해에 휩싸인다. 일상의 우리 대화 속에는 문장으로 기술할 때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많은 언어의 단절이 숨어 있다. 말을 할 당시의 주변 환경, 상대방의 태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인식의 틀 등으로 인해 우리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거기에 마찬가지로 반응한다. 이것을 글자로 옮겼을 때 거기에는 엄청난 언어파괴 현상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대화를 두고 '해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편 오늘의 시들이 갖고 있는 문자적 속성은 시에 숙명적인 제약을 가져다주었다. 인쇄되지 않은 시는 시로 인정되지 않는 모순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시집이나 문학잡지를 통해 시를 읽는데 익숙해진 탓이리라. 그러나 엄격히 말해 시행을 이루는 글자들은 언어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 아주 제한적인 약속일뿐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잊어버리는 사실, 따라서 주의력을 환기하고 생각해 보야 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는 글자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미지의 엄청난 수렁을 갖고 있다. 해체 시에서 다루는 도형이나 그림, 낯선 기호나 표식은 모두 그러한 언어의 일종이며 시인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해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였던 것이다. 해체를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로 이해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해체시 자체가 그런 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자의 해체는 언어가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형식의 해체로 국한된다는 뜻이며, 이점은 해체의 특징이자 곧 한계이기도 하다. 내용이란 시인의 세계관 또는 가치관일 것인데, 그들의 시에 이 내용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독자를 향해 여전히 충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완전한 해체, 즉 내용까지를 해체하여 텅 빈 세계를 보여주기엔 해체시인들의 욕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하여는 실제의 작품을 검토한 후 그 구체적 증거들을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아 일단 유보하기로 하고, 먼저 해체시가 나타나게 된 경위와 이유를 살피기로 하자. 해체가 80년대 시의 한 특징이긴 하지만 그 시대만의 것은 물론 아니다.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 특히 이상이라든지, 50년대의 후기 모더니스트, 즉 김구용 조향 박인환 등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해체의 시를 썼다. 모더니즘에서 벗어난 김수영에게서조차 그런 해체의 흔적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70년대에도 이승훈이나 김광규 등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본인들이 인정하든 아니든, 해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왜 해체 시는 80년대에 유독 두드러져 나온 것일까. 해체시인들의 개인적인 상상력을 논외로 친다면, 여기에는 몇 가지 대답으로서의 가설을 세울 만 하다. 첫째는 전통적 시형식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로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렇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60년대 4.19가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되고 군사정권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시는 리얼리즘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순수/참여의 소모적 논쟁을 겪기도 했고, 일부 현실비판 작가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움츠러든 문학은 현실을 도피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이란 미명 아래서 시들시들 메말라 갔다. 유신 이래 이런 경향은 더욱 깊어져 당연히 새로움에 대한 갈증도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일부 반영이론 측의 시인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염원이 지나쳐 문학을 이념의 충실한 매개물로 생각하고 현실을 그리는 데만 전념했을 뿐, 문학이 지녀야 할 정서 환기력에는 무관심하였다. 역시 새롭고 강렬한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80년대에도 군사독재는 계속되었지만 광주의 봄을 겪고 난 우리의 의식은 훨씬 자유롭게 꿈꿀 여유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목마름과 잘 연결되어 새로운 시 형태를 낳게 하였다. 초기 황지우의 시에 살짝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도 해체시를 두고 리얼리즘/모더니즘의 계파논쟁을 벌였던 지난날의 입씨름은 무익한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산업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우리들 인식구조의 변화가 해체를 가능케 하였다는 점이다.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소개와 연구서가 쏟아져 나오고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관심과는 달리 이들이 느끼는 당혹함은 이들을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으로부터 회피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고, 별로 대단한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해체시의 대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매우 유익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지금의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읽기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떤 한 가지 가치관으로 삶을 해석하려 해도 그 엄청난 다양성 때문에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고도산업화 정책은 70년대를 지나면서 1차 산업 위주의 사회를 2차 산업 위주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고, 80년대 들어와 그 변화는 더욱 두드러져 다시 3차 산업 중심의 사회로 바뀌어 갔다. 2차 혹은 3차 산업 사회에서는, 인간의 개성은 몰락하고 개인이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 부속품 화 되어 간다. 인구의 도시집중화로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가까워도 진정 가까울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각 개인이 고립된 채 살아가야 한다. 80년대는 이러한 후기 산업 사회적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였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해체의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파편화된 삶이 시에 반영될 때, 시는 파괴적 혹은 해체적 양상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앞의 두개의 가설은 해체의 등장을 무슨 필연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해체를 포함한 모든 새로움, 모든 아방가드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해체는 그 자체가 해체되어야 할 운명으로 시작되었다는 일부 평자들의 주장은 해체를 올바로 꿰뚫어본 견해이다. 왜냐하면 해체는 처음 그것이 나타났을 때는 새로운 환기력을 독자에게 안겨줄 수 있지만, 그것이 시일이 지나고 유사한 작품들을 여럿 본 연후에는 더 이상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쯤 되면 해체는 관습이나 전통의 일부로 편입되어 더 이상 해체가 아니게 된다. 스스로를 '해체'해야 할 운명에 당도하는 것이다. 문학이나 사회현상, 나아가 과학의 발전까지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발현과 세속화라는 반복된 경로를 밟으며 발전해 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80년대의 해체는 더 이상 해체가 아닌 셈이고, 나아가 80년대의 해체가 80년대만으로 규정될 특이점이 아니라 도전과 응전이라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있었던 하나의 문화기류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그 본질을 파악하는데 올바른 지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해체적 글쓰기, 또는 해체적 글 읽기의 과정에는 공통으로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우리의 해체'라는 관형표현을 붙인 이유는 여러 지면에서 해체주의라고 어설프게 소개되곤 하는 서구의 해체와 우리의 것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해체는 해체의 대상이 시의 전면에 강하게 부각되어 나타나는 반면, 서구의 것은 대상 그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해체의 흔적까지를 지워버리곤 한다. 예를 들어 장정일의 [백화점 왕국]은 비틀린 언어로 시인의 생활주변을 묘사하면서 그가 시에서 의도한 방향과는 조금 다른, 시 속의 현실로 독자들을 유도하지만, 그것이 거대한 조직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비극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쟈크 데리다로 대표되는 서구의 해체이론은 근본적인 면에서 다르다. {그래마톨로지}에서 그는 진리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화폐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금속으로서의 가치만 남은' 그런 화폐와 같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고 있다고 개탄한다. 즉 작품에서 구현할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철저한, 불교적 냄새까지 띠고 있는 이러한 해체 개념은 해체의 마지막 단계를 이르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해체'는 독일의 구체시나 형태시의 또 다른 한 변형이 아니며, 또 그렇게까지 해체를 극단으로 밀고가지도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우리의 해체가 대상을 염두에 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해체라는 점에서 불완전한 해체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2. 해체시인, 해체시, 해체적 글쓰기   지난 10년간의 세월이 해체의 시대로 평가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해체라는 표현 대신에 다양성이라는 좀더 부드러운 말을 쓴다면 분명히 80년대는 그 다양함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시기로 잡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문화현상에서 운동성이나 이데올로기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실천이 이론보다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현상은 다양한 현실의 일부분으로, 가속적으로 다양성을 더욱 부추기는데 큰 몫을 했다. 실천이건 반영이건 80년대를 전체 속의 개인, 혹은 획일성 속의 다양성으로 우리의 의식이 변화해간 시대로 자리매김하더라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80년대는 전통서정을 노래한 시인, 현실변혁을 주창한 시인, 언어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시인 등, 모두 제 목소리를 갖고자 애썼던 시대였다. 해체 시는 바로 이러한 다양성의 대표적 표징으로 80년대를 상징하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우선 시어의 형태를 과감하게 바꾸려는 외형적 해체에서 시작하여 전통정서에의 반기를 든 온건한 양식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해체의 방법이나 정도가 시인에 따라 차이가 남은 당연한 일이다. 해체시인, 혹은 해체시라고 했을 때 그것들을 같은 색깔로 한 보따리에 묶어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 거칠었던 시대를 뚫고 나온 지금, 해체시인들을 갈래 구분하는 일이 이제는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해체 시 이론이나 시인 론이 화려한 질투 속에 집중적으로 있었기에 해체시인을 갈래 구분하는 일이 좀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체시인이라고 우리가 흔히 일컫는 시인 중 소수의 몇몇 시인들만이 조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해체의 폭을 남몰래 넓히고도 영광의 그늘에 소리 없이 감추어진 시인들도 상당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많은 해체시론과 시인론이 해체의 전반적 모습을 살피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스스로 인정한 오해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많이 언급된 시인들을 다시 다룬다. 이 글을 통해 해체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자의 한가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체시를 쓴 모든 시인을 여기에 초대하는 것도 그렇게 생산적일 것 같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가 주로 염두에 둔 시인과 시집을 연대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이하석, {金氏의 옆 얼굴} (1984) 최승자, {즐거운 日記} (1984) 김영승, {반성} (1987)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1987) 박남철, {반시대적 고찰} (1988) 박상우, {사람구경} (1988) 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1988) 박의상, {흔들리는 中心} (1989) 김정란, {다시 시작하는 나비} (1989) 이승훈, {너라는 환상} (1989) 최계선, {검은 지층} (1990)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들이 80년대의 해체를 이끌어갔고 지금도 활발히 작품을 쓰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들이긴 하지만, 이들만이 해체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이들의 작품 전부가 해체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해체시인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일부 해체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비록 지명도에 있어 뒤지긴 하지만 김종석이나 가나인처럼 극단적 해체시인의 부류로 넣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들을 모두 뺀다. 해체시인을 세부적으로 갈래구분하기 위하여는 그 기준을 먼저 정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해체하는가'에 따라 거칠게 나눈다면 다음의 세가지 부류가 가능할 것이다. 시의 대상을  현실, 언어, 자아의 3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주변의 현실적 삶과 질곡을 일종의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해체하는 것이 첫 번째 부류일 텐데, 여기에는 황지우, 이하석, 장정일, 최계선 등이 속할 것이다. 존재나 언어 자체, 혹은 비대상을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두 번 째 부류로, 박남철,박상우,박의상,김정란,이승훈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자아의 확인이란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바꾸어 나타내고자 하는 이성복, 최승자, 김영승, 황인숙 등을 한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기준을 달리하여, 해체의 정도,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나는 파격의 정도만을 가지고 갈래구분한다면 두 구룹으로의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황지우,박남철, 박의상 등이 과격파라면 나머지는 온건파에 속하고, 특히 황인숙 같은 경우는 표현형태만을 가지고는 해체로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겉모양새로의 구분은, 분류 자체보다, 강도의 약화현상이 80년대 전반기에서 후반기로의 변이과정이라는데 더 큰 문학사적 주목을 필요로 한다. 초반의 과격함은 출구 없이 막힌 시의 흐름에 신선한 충격이 되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깃들여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체는 같은 방법이 반복될 때 더 이상 해체가 아닌 불우한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과격한 형태파괴가 후기에 들어 세밀해지고 조심스러워지면서 언어나 생활의 해체로 바뀌어갔다. 90년대로 접어든 지금 초기의 형태파괴시인들이 전통적 수법으로 복귀하거나 상당히 느슨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해체의 대상이 무엇이었던가를 밝히면서 해체시인들이 설정한 목표와 한계를 간략히 짚어본다. 먼저 80년대 해체시의 선두이며 기폭제 역할을 했던 황지우의 예를 본다. 그를 생각하면, {시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처음 발간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새삼 되살아난다. 독자들마다 받아들이는 방향과 폭이 물론 달랐을 테지만, 이상의 [烏瞰圖]이래 가장 강한 이질감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지금은 해체에 익숙해져 그의 시를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파격이 과연 시로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앞섰었다. 그러나 형태파괴가 가져다준 효과가 말을 곱게 다듬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직설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와의 기호소통체계를 묵시적 약속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런 의미에서 성공했다. 이 시집은 현재 우리의 보편적 생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 가령, 꽤 긴 작품인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하루]라는 작품에서 작중 주인공인 송일환씨의 하루생활을 카메라로 비추듯 객관적으로 보여줄 때, [徐伐,셔 ,셔 ,서울,SEOUL]에서 '보성물산주식회사 종로 지점'에 근무하는 장만섭씨의 하루생활을 보여주었을 때, 혹은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에서 신문의 TV프로그램 한 조각을 옮겨놓았을 때, 우리는 이것이 우리들 삶의 현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 안다. 우리가 그들 자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여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 붙이며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결국 이 시집을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핵심은 우리의  현실 생활을 정확하게 재현해 내고자하는 노력이며, 이 시집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상황이나 인물들은 시인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들의 전형인 셈이다. 우리의 현 생활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시집은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것이 되어야할 시집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것일수록 시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전의 시적 태도와 달랐기에 우리에겐 오히려 낯설게 보인 시집이었고, 이 점도 시인의 의도에는 음흉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시가 대상의 이차적 반영이라고 믿었던 통념을 깨고 대상을 일차적으로 반영함으로써 훨씬 리얼리즘에 가깝게 접근해 들어갔던 것이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낯설게 하기' 수법으로 이해될 수는 있지만, 더욱 흔히 생각하는 바의  '해체'는 전혀 아니다. 황지우 시인의 진정한 목적과 방법은 현실의 진솔한 반영이며, 언어를 사실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그를 해체시인으로 몰아버린 것은 평론가들이며 여기에 대하여 평론가들은 책임을 지고 그를 다시 새로운 리얼리즘 시인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황지우보다는 온건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역시 80년대 초반에 해체의 선두주자로 매김 당하는 이성복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황지우의 대상이 주로 대사회적인 것이라면 이성복은 다분히 개인사적인 면을 속에 담고 있다. [루우트 기호 속에서]에서 보이는 어머니와 자의식의 성장관계라든지,[그날]에 나오는 가족들의 흩어진 모습 등은 그 증거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그의 내부는 스스로 닫힌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하여 통제된 내부이며, 이렇게 닫혀 있으면서도 인식의 성장과정을 참담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내부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때로는 환상적 세계로 빠져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蒙昧日記]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개인이 집단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생각은 자아의 틀에만 빠져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는 자아의 내부와 외부를 부단히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지, 절대로 대상을 포기하거나 해체하려 하지 않는다. 박남철의 시는 마음이 너그러운 독자에게도 거칠게 읽힌다. 시인의 신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그의 주변을 장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한 자아의 모든 것들을 그는 시의 대상으로 포착한다. 이 잡동사니 대상들은 황지우의 것처럼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갖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성복의 경우처럼 자아의 인식성장을 위한 보조수단이 되지도 않는다. 그에게 있어 시의 대상은 그냥 자기자리에 '있는' 것들로 우연히 체포되었을 뿐, 어떤 혐의도 둘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따라서 좋게 말할 때, 그가 해체하고자 애쓰는 대상은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나쁘게 말하면, 그의 대상은 의미 없는 것들로, 그는 의미 없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가 의미를 잃을 때, 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광인일기]는 욕설과 야유와 죽음에 대한 비난의 원색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진 꽤 긴 시인데 (그의 다른 시에 비하면 그래도 짧은 셈이지만), 마지막 행의 (글자가 고딕으로 뒤집혀 똑같이 반복되며 끝남) 라는 것을 뺀다면 이 시가 의미하고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마지막 행을 위하여 그 이전의 많은 언어와 대상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장 경제적 표현으로 가장 큰 효과를 노리는 것이 시라고 하는, 그 낡아빠진 시의 개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박남철의 시에서는 앞 구절이 뒷 구절을 위해 기획되어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앞의 욕설이 망자에 대한 분노나 슬픔을 환기시켜주지 못하고 욕설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이 작품 뿐만이 아니라 [박해미르] 시리즈 작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그냥 언어의 흩어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렀다면 지금 해체를 논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박남철을 진정한 해체시인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대상 자체를 해체하고 언어를 기호화 혹은 알레고리화 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가장 철저하게 해체를 실천하는 시인인지도 모른다. {地上의 人間}에서 최근 {용의 모습으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러한 해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해체는 해체가 지닐 수 있는 결정적인 약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80년대 해체시의 한 표본이 된다. 시가 가치없고 일회용 종이컵 정도의 용도로 밖에는 쓰이지 않는 것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이천 오백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여 책을 사고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읽어야할 문학작품이라면 우리는 시를 두고 가치와 판단의 면모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의미화 되지 못함으로써 가볍게 공중에 떠 있는데, 가벼움과 유희가 목적이일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새로운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시도는 한번으로 족하다. 같은 것이 두번 반복될 때 그것은 더이상 새로움도 아니고 해체도 아니다. 박남철 시인에게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바와 같이 80년대의 해체는 해체가 스스로 해체되어야할 숙명을 안에 담고 있었다. 박상우가 보여주는 야유와 재치, 김정란의 자아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독백도 색깔이나 지향점은 서로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박남철이 갖고 있는 해체의 속성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다. 70년대부터 해체를 실천해온 이승훈과, 역시 비슷한 연배이지만 80년대 들어와서야 해체에 뛰어든 박의상에게도 엮시 같은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이승훈의 '비대상'은 다르게 표현하면 '대상의 해체'일 것인데, 그가 언젠가 스스로 고백했듯, 비대상의 허무함이 시를 텅 빈 그릇으로 만들 때, 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박의상의 경우는 시행을 불규칙하게 배열하고 의미없는 언어를 반복하는 수법의 해체작품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시행의 배열은 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定處]연작은 내용상의 '자리찾음'이 아니라 불규칙한 시행이 보여주는 바의 불확실한 현재 위치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승훈이나 박의상에게 있어 의미 없는 대상의 존재는 시의 중심개념이 되고 있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제하기 위하여는 존재의 해체가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박남철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가벼움이 가라앉지 않는 한 그들의 뿌리는 쉽게 고갈될 것이고, 스스로 자신의 시에 어떤 해석을 부가하더라도 독자들은 그들에게서 의미 찾기를 포기할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 황지우나 박남철과는 다른 유형의 해체시들이 여러 시인에 의하여 다양한 목소리로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얼굴로 필자에게 떠오르는 시인은 장정일과 황인숙이다. 80년대 후반은 초반의 과격한 문자파괴를 거치고 난 이후였기 때문에 문자가 더 이상 해체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글자의 파괴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해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젊은 시인들은 인식했기 때문이다. 해체의 일차적 대상이 문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자는 글자 이전에 한 의미체계를 지닌 구조물이기에 글자의 해체를 통해서는 대상을 완전히 해체했다고 볼 수가 없다. 그 반대로 대상의 의미만을 비워두고 언어형식을 해체하지 않아도 완전한 해체에는 다다를 수 없다. 그렇다고, 양자의 장점만을 택한 방법, 즉 대상의 의미와 글자를 동시에 해체한다고 해서 해체시가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시집이다. 그의 시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대부분 시가 길고 서술적이며 알레고리화 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대개 그의 개인사적인 매개물로 시작되지만 단순히 한 개인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범한 보통사람의 머리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러나 중요한 만큼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고 싶지 않을 그런 문제들을 향해 장정일의 상상력은 종횡으로 날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시의 표면에 드러내고 독자를 향해 말한다. 이야기의 재미에 이끌려 시를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시가 끝나고 나서야 그것이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섬뜩해진다. 그의 해체는 해체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쉽사리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평자들은 그의 시를 두고 현대 도시의 물질화된 생활, 특히 미국식으로 변해가는 문명생활에 대한 야유와 경고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주로 도시적 삶에서 얻은 것들이기에 그런 평가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장정일이 다루고자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삶의 진실에 대한 회의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표제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요리과정에 대한 설명 뿐이고, [붉은 신호에 걸린 여자]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던 여자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하이힐이 걸려 넘어지면서 길을 건너지고 되돌아가지도 못한다는 상황묘사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요리책도 아니고 소설의 일부를 따놓은 것도 아니다. 재미는 있지만 시인이 이 작품을 쓴 의도를 찾기가 어렵다. 그가 [쉬인]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랄떠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들이 지금껏 생각해왔던 '진리'의 숭고함, 형이상학적인 속성, 세속으로부터의 거리감 등을 완전히 무시한데서 온 결과이다. 진실이 교과서에만 써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이나 주변에 얼마든지 흩어진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따라서 그는 진실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진실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이야기를 통해 나타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최승자는 자의식이 강한 면에서 장정일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지만 그의 선배격인 이하석은 장정일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시인이다. 다만 보편적 진실보다는 이데올로기화된 진실, 즉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함으로써 삶을 개조시키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여기에 비하여 황인숙의 애매모호함이 장정일과 더욱 접근된 모습을 보여준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에서 황인숙의 시가 매력적인 것은 쉽고 활달한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한마디로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다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많은 경우에 의미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그 분위기가 주는 막연한 느낌이 독자를 오히려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의 작품을 두고 '둥근 시'라고 평하는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역시 중요한 문제는 진실에 대한 문제, 즉 기존의 진실의 질서를 신뢰할 수 있는냐 하는 문제이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여 대상이 예전의 대상이 아닌 그만의 것인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대상이 그의 것이되었을 때, 그는 세상의 신기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고정된 진실이 아닌 열린 개념으로서의 새로운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황인숙은 진실을 해체하는 작업과 동시에 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창조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최계선이 낸 시집 {검은 지층}은 글자가 아닌 그림의 삽입이라는 점에서 박남철을 생각나게 하지만, 박남철과는 분명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활을 다룬 시들과 지질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존재를 다룬 시들이 혼재해 있는데, 눈에 얼른 띄는 것은 물론 후자의 것이고, 형태적 해체를 취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단층이나 모래의 형상을 실제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감이지만 전혀 신기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인류학적, 혹은 지질학적 인간존재를 다루고 있어 시의 영역을 넓히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에 자연과학을 도입한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3. 무엇을 해체할 것인가   80년대에 해체는 리얼리즘에 대립되는 모더니즘의 방편으로 오해되는 가운데, 각 진영으로부터 해체 자체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 심정적인 찬반의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80년대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모순이 바로 그러한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사실 해체는 리얼리즘/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기준과는 관계없이 어떠한 예술작용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아방가드인 것이다. 단순히 '새롭다'는 면에서는 모더니즘과 통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해체의 대상은 리얼리즘에서 다루는 사회성일 수도 있고 모더니즘에서 다루는 현대문명일 수도 있다. 그리도 동시에 이들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해체를 규정할 때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은 어떤 당파, 혹은 사조에 휩쓸려 있는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이 무엇이며 해체로 인하여 어떤 환기력을 갖을 수 있느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앞에서  80년대의 중요한 해체시인들을 검토하며, 필자는 황지우 식의 비해체적 해체, 박남철 식의 무의미적 해체가 진정한 해체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그리고 장정일이나 황인숙의 시들이 보여주는 진리의 해체작업이 앞으로 우리시에서 해체시가 가야할 길을 어느 정도 밝혀주고 있음도 말했다. 이들의 차이점은 글자와 의미의 해체인가, 아니면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의 해체인가로 요약된다. 진리는 존재하지만 그 진리는 교과서에 적혀있는 죽은 언어들이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늘 얼굴맞대며 사는 일상에 있다. 고정된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미 그것은 우리의 진리가 아니다. 즉 주어진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해체함으로써 새롭게 탄생된 진리를 알고 즐기는 행위가 바로 해체작업의 본질이다. 80년대의 해체시 중 대부분이 현실의 절망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면서도 해체가 본질적으로 절망을 위한 만가가 아니라 희망을 향해 열린 축복인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해체가 하나의 아방가드로 그 효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아방가드가 해체의 해체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이라면, 지금의 해체가 무엇을 과연 해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의 지표를 정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물론 미래를 점치고 이론화한다는 것은 교조주의적 심판으로 흐르기 쉽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럴 위험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가지, 90년대의 해체는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삶의 표면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진실을 추출하고 그 진리를 해체시킴으로써 보다 철저한 해체로 나아가야 하리라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진리도 바뀌고, 진리가 바뀌면 해체의 대상도 바뀐다. 따라서 해체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해체이어야 하는 것이다.    [출처] 정한용  |작성자 툭툭
445    브레히트 시의 리해 댓글:  조회:4346  추천:0  2015-04-20
마리 A의 기억               / 베트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 시의 이해               /박찬일(연세대출판부)     1. 사용가치의 시       브레히트는 예술의 사용 가치를 중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당시 독일시단에서 쌍벽을 이룬 고트프리 벤과 대조를 이룬다. 벤은 문학을 통한 현실 참여에 반대했다. “가난한 자들은 올라가려고 하고 부자들은 내려가지 않으려고 한다. 끔찍한 세계, 그러나 3천년이 경과한 후에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다만 현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벤은 문학적 형식만이 세상을 혼돈에서, 무의미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식만이 신앙이고 행위이다./손에 의해 어루만져졌으나,/그 후 손을 떠난 조각품은/씨앗을 품고 있는 조각품이다”, “삶은 망상”이라는 것. 삶에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형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형식이 “씨앗”이라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상황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은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 사회적 인과관계의 복합체를 알아내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변화의 주체는 다수의 민중이고 변화의 객체는 소수의 지배계급이었다.     브레히트의 사용가치의 예술관은 계몽주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 계몽주의 작가들은 문학의 과제는 ‘유익함과 즐거움’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레싱은 특히 문학의 유익함과 교술적 의미를 강조하여 무대를 “도덕 세계의 학교”라고 하였다. 브레히트의 예술관은 칸트 이래의 ‘예술의 자율성’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난”것이 “미적 취미”, 혹은 “아름다움”이었다. 예술은 사회적 이해관계,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뷔르거는 칸트가 예술을 최대 이윤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한 것으로 풀이했다.   2. 논리의 시     브레히트는 이성을 중시했다. 이때 이성은 시인의 이성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이성이기도 하다. 브레히트는 독자에게 이성을 요구했다. 장미는 시 한편이며, 독자는 꽃잎 떼어내듯 시행 하나하나(혹은 단어 하나하나)를 냉정한 논리로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훌륭한 시행과 잘못된 시행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진정으로 시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능력은 논리적 능력이며, 진정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즐긴다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창작미학상의 목표는 논리적으로 즐기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낯설게 하기 효과”(소외효과)이다. 낯설게 하기 효과는 시학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외시킨다는 것, 즉 낯설게 한다는 점에서 시학적 개념이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개념이다.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 논리적이다. 독자는 이 낯설게 만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의 논리를 통과하면서 하나의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는 시가 원래 “비사교적 요소들”이기 때문에 “주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주석이 시와 청자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청자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외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벤야민에 의하면 감정이입 대신에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또한 벤야민에 의하면 “중단”과 관계 있다. 시에서 의 예를 보자.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아, 어떤 식으로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해야 할까? 갑자기 짙은 빨강의 장미, 신선한 장미가 보이지 않는가? 아,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장미가 거기 있었네. 장미가 거기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장미가 거기 있었을 때 누구나 놀랐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이 시에는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가 있다. 시를 중단시키는 자아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노리는 자아이다. 중단은 낯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하지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중단시키는 자아의 말이다. 특히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그렇다.  중단시키는 자아는 서사적 자아이다. 끼어드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서사적 자아는 첫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출발하지도 않은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 것이 그것. 둘째,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한 것이 그것.     독자에게 시를 논리적으로 즐기라고 하고 시인에게는 낯설게 하기라는 논리적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헤겔로 연원하는 서정시 개념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정시는 논리의 서정시가 아닌 ‘주관성’의 서정시이기 때문이다. 헤겔에 의하면 서사시는 “외적 실재의 형식”으로서 “사건 속에서 사실은 자유롭고 자립적으로 진행되며 서사적 자아는 뒤로 후퇴한다.” “객관적인 것”(내용)을 ‘주관성(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관적인 것은 내면적 세계이며 “주관성”은 “직관, 느낌” 등이다.   3. 醜의 시     브레히트에게 보들레르의 쇼크는 부도덕적 쇼크로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대도시의 정경, 대도시의 삶에 대한 기술은 부도덕적 쇼크의 판매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죽음, 주검, 파멸, 도박, 싸움, 신성모독 등에 대한 기술들이다. 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여 도덕적 단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쇼크에 관해서라면 브레히트도 보들레르 못지않다. 브레히트도 부도덕적 쇼크를 불러 일으켰으니 첫 시집 의 많은 시편들이 ‘부도덕’의 기록, 혹은 신성모독의 기록이었다.     악의 서술은 악(자본주의의 악)의 내용에 대해 ‘선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 아니라, 악의 내용에 대한 ‘악의 방식’으로서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서술은 악의 내용에 대한 선의 방식으로서의 서술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진선미의 법칙, 즉 진리의 법칙, 도덕의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브레히트가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부도덕적 쇼크라고 한 것은 그의 도덕적 엄숙주의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도덕적 엄숙주의자였다. 브레히트는 의 시편을 쓸 때는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아니었다.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비판할 때 도덕적 엄숙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추의 미학은 ‘몰락’과 ‘폐물’에 ‘아름다움’을 부여한 것이다. 그의 초기 시집인 의 시편들은 19세기 말의 자연주의를 넘어 19세기 중반의 보들레르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자연주의에 와서 추의 미학이 보편적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산업화 시대의 문학이었다. 노동자, 빈민, 창녀, 알코올 중독자, 정신병자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문학이었다. 가난, 고통, 질병, 매춘, 살인이 미학으로서 자리 잡았다. 추의 미학이 자리 잡았다. 근대문학은 자연주의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추하기 때문에 문학에도 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추의 미학’은 리얼리즘의 확장에 기여하였다.   * 전통적인 진선미의 코드는 쉴레겔에 와서 완전히 그 위력을 상실한다. 문학예술은 진선미에서 완전히 독립한다. 진리 법칙, 도덕 법칙, 아름다움의 법칙에서 독립한다. 악과 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문학적 형상화는 심미적인 것으로 정당화된다. ‘흥미로움/지루함’이었다. ‘흥미로움/지루함’의 코드가 이후의 문학의 잣대였다. 악과 추는 흥미로운 악과 추일 수 있고 지루한 악과 추일 수 있다. 지루한 문학보다 흥미로운 문학이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악과 추일 수 있고 의미 없는 악과 추일 수 있다. 보들레르와 자연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악과 추가 의미 있는 악과 추라면 ‘산업화 시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 김수용 외, 악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19호, 2002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시 두 편을 감상해보자.     마리에 대한 추억     1 푸르른 9월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나는 그녀를, 그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을 조용히 품에 안았네. 마치 부드러운 꿈인 듯 했네. 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떠있었네. 그 구름을 나는 오래 쳐다보았네. 아주 하얗고 엄청 높은 곳에 있던 구름. 내가 다시 올려 보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네.     2 그날 이후 수많은 달, 수많은 세월이 조용히 흘러 흘러 사라져갔네.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졌을 것. 사랑이 어떻게 됐느냐고 그대가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리. 그대가 말한 뜻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정말이네, 그녀 얼굴이 생각나지 않네. 다만 그녀 얼굴에 언젠가 키스를 했다는 사실뿐.     3 그 키스도 구름이 여기 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었을 것이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구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구름은 아주 희었네. 위에서부터 온 것이라네. 자두나무들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을지. 그녀는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그러나 구름은 몇 분 동안만 피어올랐고 내가 올려다보았을 대 벌써 바람에 사라지고 없었네.           악한 자의 가면       내 방 한쪽 벽면에 일본 목각 작품 한 개가 걸려 있다. 금색 칠을 한 악마 형상의 가면이다. 이마에 툭 불거진 힘줄을 감전된 듯 나는 본다. 그것은 악한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444    詩的 變容에 對하여 댓글:  조회:4343  추천:0  2015-04-20
  詩的 變容에 대하여   핏속에서 자라난 파란 꽃, 빨간 꽃, 흰 꽃, 혹시는 험하게 생긴 독이(毒栮), 이것들은 그가 자라난 흙과 하늘과 기후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 그럴 필요가 있으랴! 그러나 이 정숙한 따님들을 그저 벙어리로 알아서는 안 된다. 사랑에 취해 흘려듣는 사람의 귀에, 그들은 저의 온갖 비밀을 쏟기도 한다. 저들은 다만 지껄이지 않고 까불거리지 않을 뿐, 피보다 더 붉게, 눈보다 더욱 희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용해한다.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피어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 줄, 지나간 격정이 모두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으로 남긴다.지극히 예민한 감성이 있다면, 옛날의 전설같이 우리의 맥을 짚어봄으로, 우리의 호흡을 들을 뿐으로 얼마나 길고도 가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랴! 흙 속에 어찌 풀이 나고 자라며, 버섯이 생기뇨? 무슨 솜씨가 핏 속에 시를, 시의 꽃을 피어나게 하느뇨? 변종을 만들어내는 원예가, 하느님의 다음 가는 창조자, 그는 실로 교묘하게 배합하느니라. 그러나 몇 곱절이나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랴! 교묘한 배합‧고안‧기술, 그러나 그 위에 다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되는 변종 발생의 찬스. 문학에 뜻을 두는 사람에게,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을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고. 이런 무시무시한 권고를 한 독일의 시인 마리아 릴케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전 생애를 두고, 될 수 있으면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의미와 감미를 모으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아마 최후에 겨우 열 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는 보통 생각하는 것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한 가지 시를 쓰는 데도 사람은 여러 도시와 사람들과 도시들을 봐야하고, 짐승들과, 새의 날아감과, 아침을 향해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던 이별, 이러한 것들과, 지금도 분명하지 않은 어린 시절로 마음 가운데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여러 밤의 사람의 기억-하나가 하나와 서로 다른-진통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을 가져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봐야 하고, 때때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창을 열어 놓고, 죽은 시체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기억이 이미 많아질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 없는 것이 된 다음에라야-그때에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말이 그 가운데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열 줄의 좋은 시를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 줄의 좋은 시도 못 쓰리라. 다만, 하나의 큰 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무런 꽃도 못 가지리라.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는 그보다 작을지라도, 덜 고울지라도 수다히 꽃을 피우며 일생을 지내야 한다. 마치 그것이 최대의 것인 것같이 최대의 정열을 다하여-주먹을 펴면 꽃이 한 송이 나오고, 한참 심혈을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 한 번 펴면 또 한 송이 꽃이 나오고, 이러한 기술사와 같이.’   나는 서도를 까맣게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서도를 예로 이야기할 욕망을 느낀다. 서도의 대가가 그 생애의 절정에 섰을 때에, 한번 붓을 들어서 한 글자를 이룬다 하자. 괴석같이 뭉치고, 범같이 쭈그린 이 한 자. 최고의 지성과 웅지를 품었던 한 생애의 전 체험이, 한 인격이, 온통 거기 불멸화하였다. 그것이 주는 눈짓과 부르는 손짓과 소곤거리는 말을 나는 모른다. 나는 그것이 그러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이 무슨 불행일 것이냐! 어떻게 하면 한 생애가, 한 정신이 붓대를 타고, 가는 털을 타고, 먹으로써 종이 위에 나타나, 웃고 손짓하고 소곤거릴 수 있느냐? 어쩌면 한참 만에 손을 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나오는 기술에 다다를 수 있으랴. 우리가 처음에는 선인들의 그 부러운 기술을 보고, 서투른 자기 암시를 하고, 염언(念言)을 외고, 땀을 흘리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다. 그저 빈주먹을……. 그러는 중에 어쩌다가 자기 암시가 성공하는 때가 있다. 비로소 주먹 속에 드는 조그만 꽃 하나! 염화시중의 미소요, 이심전심의 비법이다. 이래서, 손을 펼 때마다 꽃이 나오는 확실한 경지에 다다르려면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한번 밤에 흙을 씻고, 꾸며 놓은 무대 위에 흥행하는 기술사로 올라설 때에 그의 손에서는 다만 가화(假花) 조각이 펄펄 날릴 뿐이다. 그가 뿌리는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를 호흡하는 나무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 시인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란 한 그루 나무다.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온도 아래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장림(長霖)과 담천(曇天) 아래서 험상궂은 버섯으로 자라날 수 있는 기이한 식물이다. 그는 지질학자도 아니요, 기상대원일 수도 없으나, 그는 가장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를 갖고 빨아올리고 받아들이고 한다. 기쁜 태양을 향해 손을 뻗치고 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그는 다만 기록하는 이상으로 그 기후를 생활한다. 꽃과 같이 자연스러운 시, 꾀꼬리같이 흘러나오는 노래, 이것은 도달할 길 없는 피안을 이상화한 말일 뿐이다. 비상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정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     박용철(1904~1938) 호 龍兒. 전남 광산 출신. 시인. 도쿄 아오야마 학원과 연희전문에서 수업. 1930년 《시문학》에 시 ,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31년 《문예월간》을 출자 간행. 정지용, 김영랑, 이하윤, 신석정 등과 경향파에 대립하여 순수시 운동을 전개. 작품집에 《박용철 전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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