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7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31  

방문자

홈 > 文人 지구촌

전체 [ 2283 ]

363    김지하 시모음 댓글:  조회:4901  추천:0  2015-04-10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이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흐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거울 겨울 2                                                설운 것이 역사다  두려운 것 역사다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 역사  아하 그 역사의 잔설 위에 서서 오늘 밤  별밭을 우러르며  역사로부터 우주를 보고  우주로부터 역사를 보고  잔설 속에서 아리따운 별밭을 또 보고.     길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 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들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 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돌아오리란 댕기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만남                                                           밤이라도 이리 깊으면  밤이라 할 수 없겠지 앞길 뒷길 다 끊긴 곳에 문득 노여움처럼  난데없는 희망 한 오리.   백방 8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삼키리라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밟으리라  삼켜도 밟혀도 떠나가야 하는 바다  떠나가야 하는 바다  바다  네 이름  바다는 그대에게 내 그대에게 백방 뒤꼍 후미진 뻘밭 마지막 떠나던 목선  전 잡고 넘어지던 그대  그대에게 마지막 줄 것  이름뿐 마지막 줄  비단 주머니 속에 든 것은  바다뿐.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아직은 따스한 토담에 기대  모두 토해버리고 울다 일어나 무너진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무것도 없는  댓잎 하나 쓰적일 바람도 없는 이렇게 비어 있고  이렇게 메말라 있고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저 불 켠 방의 초라한 술자리 초라한 벗들 날이 새면  너는 진부령 넘어 강릉으로 오징어잡이, 나는  또 몸을 피해 광산으로 가야 할 마지막 저 술자리 서로 싸우지 않고는 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낯선 마을의 캄캄한 이 시대의 한 밤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아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빈 산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사랑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팔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새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 새워 물어 뜯어도 닫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세라 아 뜨거운 새하얀 사슬 소리여 날이 밝을 수록 어두워 가는  암흑속의 별밭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 넘어 멀리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뜨거운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새벽 두시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애린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 끝에  홀로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중심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틈                                                            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틈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푸른 옷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 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황톳길                                                    (1)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2) 밤바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3) 대?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4)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5)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면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회귀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을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不歸                                                         못 돌아가리  한번 딛어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못 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 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윈 넋 홀로 살아  길 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여 잠들어서 덧없이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오적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 국회의원(국獪의猿)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 장성(長猩), 장차관(暲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형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 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것 보릿대 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 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새 봄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사진출처(내 영혼의 깊은 곳)   [김지하가 말하는 '지하'라는 필명]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김지하 金芝河 (1941. 2. 4 ~      )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    ■ 작가 이야기     민주화의 상징, 그 곰삭은 영혼의 언어 김지하는 5.16 쿠테타 이후 30여년 간 계속되었던 군부독재 상황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시를 쓴 시인이다. 그 시절 그는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고, 그의 삶과 문학이 하나의 신화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는 척박한 황톳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육신의 상처를 붙안고 그 상처보다 더 곰삭은 영혼의 상처를 추스리면서 살아야 했다. 몸은 '오적'들에 의해 억눌리고 귀와 입은 틀어막혀 신산스런 모독의 상처를 붙안은 채 견디거나 버티거나 저항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면서 삶이 아니었던 것, 차라리 죽음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하고보니 그런 나날들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이들은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속절없는 체험을 해야 했다. 1970년 그가 담시 '오적'을 발표하자 공안당국은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한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의 부정부패 분자들을 통열하게 풍자하면서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정면에서 문제삼은 일종의 단형 서사시가 바로 '오적'이다.   김지하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하게 실존과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런 체험을 감당해야 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제목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현실을 견디고 문학으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여러 형태의 죽임과 죽음 체험의 절정에까지 이르렀던 그였다. 그 절정에서, 혹은 타는 목마름의 절정에서, 그는 죽임의 현실을 초극하고 진정한 '생명의 바다'를 지향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큰 시인다운 면모에 값한다.   시력(詩歷) 30년을 넘긴 그가 에서 이른 세계는 삶과 죽음의 세속적 갈림을 탈탈 털고 넘어선 해탈의 지평이요, 뭇 존재들이 서로 일으키고 피차의 경계를 허허로이 넘어서며 융섭하고 상생하는, 그래서 궁극으로 꽉찬 둥근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空)의 세계인 만공(滿空)의 우주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저서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출처] [스크랩] 김지하 시 모음 |작성자 한동안  
362    <벚꽃> 시모음 댓글:  조회:4526  추천:1  2015-04-10
    벚꽃이 감기 들겠네     김영월 비가 그친 저녁  더 어두워지는 하늘가  이 쌀쌀한 바람에  여린 꽃망울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만 감기 들겠네 그 겨울 지나, 겨우 꽃눈이 트이고  가슴 설레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고  꽃샘추위만 달려드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네  좀더 따스하고 다정하길 바랬네 윤중로 벚꽃 잎은 바람에 휘날려  여의도 샛강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자 아주머니의  좁은 어깨 위에 몸을 눕히네     벚꽃 축제      박인혜 겨우내  비밀스레 숨어있던  그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벚꽃 세상을 만들었다 벚꽃을 닮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날리며 환영해준다 벚꽃의 세상이다 벚꽃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벚꽃 같은 사랑을 피고자 하는 연인들이 모여든다  벚꽃 닮은 강아지가 뛰어다닌다  벚꽃나무와 함께 아이들이 웃는다 벚꽃 세상의 사람들이  벚꽃 아래에서  벚꽃처럼 즐거워한다  벚꽃 세상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은  벚꽃처럼 아름답다     밤벚꽃    도혜숙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인데 벚꽃은 피고 있었다 와∼ 벚꽃이 팝콘 같다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갑자기 까르르 웃는  벚꽃 다시 보니 참 흐드러지게 먹음직스럽다     벚꽃    김태인 우리 마을 해님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길 친구들이  배고프면 먹으라고 아무도 모르게  강냉이를 튀겼어요     벚꽃    김영월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다  흰빛이 눈부시게 떨린다  살아서 황홀했고 죽어서 깨끗하다     정오의 벚꽃     박이화 벗을수록 아름다운 나무가 있네  검은 스타킹에  풍만한 상체 다 드러낸  누드의 나무  이제 저 구겨진 햇살 위로  티타임의 정사가 있을 거네  보라!  바람 앞에 훨훨 다 벗어 던지고  봄날의 화폭 속에  나른하게 드러누운  저 고야의 마야부인을     벚꽃     이재기 백설기 떡잎 같은 눈 봄날 4월 나뭇가지에 온 세상의 나무를 네가 덮었구나               선녀 날개옷 자태인 양 우아한 은빛 날개 펼치며 송이송이 아름드리 얹혀 있구나 희지 못해 눈부심이 휑한 마음 눈을 뜨게 하고 꽃잎에 아롱진 너의 심성 아침 이슬처럼 청롱하구나 사랑하련다 백옥 같이 밝고  선녀 같이 고운 듯 희망 가득 찬 4월의 꽃이기에     벚꽃    권복례 그 깊은 곳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그곳에서 너는 참 고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왔구나  화장을 한 듯 안한 듯한 모습으로  너는 무슨 표 화장품으로 화장을 했니  나는 참존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단다  그리고 나는 빨간 립스틱은 바르지 않는단다  왜냐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면 내가 바라보아도  내가 아닌 듯 하거든  그래서 나는 아주 연한 립스틱으로 입술을 마무리하지  바라보아도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너처럼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구나  너 그 깊은 곳에서 무엇으로 치장을 했는지  나만 살그머니 가르쳐주지 않으련     벚꽃나무의 둘레가     곽진구 벚꽃나무의 둘레가 눈부시다  무엇이 저렇게  내 눈을 못 뜰 만치  눈부시게 다가오는가 싶었더니 꽃 속에 숨어 있는,  어느새 성장한 여인이 되어버린  딸애가,  오 귀여운 딸애가  주변의 예쁜 풍경을 거느리고  활짝 웃고 있지 않는가 항상 품안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한 그루의 벚꽃!  주변이  꽃의 살처럼 느껴졌다     벚꽃     안영희 온몸  꽃으로 불 밝힌  4월 들판 눈먼  그리움 누가  내 눈의 불빛을 꺼다오.     벚꽃 속으로    유봉희   첫사랑의 확인  눈감아도 환한 잠깐 사이에  잠깐 사이로  꽃잎 떨어져 떨어져도 환한 꽃잎  살짝 찍는 마침표  하얀 마침표     벚꽃    용혜원 봄날 벚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무엇이 그리도 좋아 자지러지게 웃는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기쁜지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     벚꽃 봄빛의 따스함이  이토록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겨울 냉기를  하얗게 부풀려 튀긴 팝콘 팝콘 같기도 하고  하얀 눈꽃 같기도 한  순결한 평화가 나뭇가지에 깃들인다 그 평화는 아름다운 꽃무리가 되어  가슴 가득 피어오른다  사람들이 거니는 가로수의 빛난 평화를 4월의 군중과 함께 피어나는 벚꽃은  말끔히 씻기어 줄  젊은 날의 고뇌     벚꽃 천지天地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찬란도 단아도  이르기 부족한 말 수십 여일 짧은 생  마른 장작 타듯 일순 화르르  온몸을 아낌없이 태우며  세상천지를 밝히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 아무리 아름다워도  찰나에 시들 운명,  순응이나 하듯  봄비와 산들바람을 벗삼아  홀연히 떠나버린 자리에  오버랩되는  고즈넉한 그리움     벚꽃 잎이 벚꽃 잎이 머얼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 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벚꽃의 꿈 가야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   벚꽃나무 잎새도 없이 꽃피운 것이 죄라고  봄비는 그리도 차게 내렸는데 바람에 흔들리고  허튼 기침소리로 자지러지더니  하얗게 꽃잎 다 떨구고 서서 흥건히 젖은 몸 아프다 할 새 없이  연둣빛 여린 잎새 무성히도 꺼내드네   벚꽃 봄의 고갯길에서  휘날리는 꽃잎 잡으려다가 깨뜨렸던  내 유년의 정강이 흉터 속으로  나는 독감처럼 오래된 허무를 앓는다 예나 제나  변함없이 화사한  슬픔,  낯익어라   벚꽃, 이 앙큼한 사랑아     최원정   햇살 한 줌에  야무진 꽃봉오리  기꺼이 터뜨리고야 말  그런 사랑이었다면  그간 애간장은  왜, 그리 녹였던 게요 채 한 달도  머물지 못할 사랑인 것을  눈치 챌 사이도 없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 얄궂은 봄날  밤낮으로 화사하게 웃고만 있는 게요 한줄기 바람에  미련 없이 떨구어 낼  그 야멸찬 사랑이라면  애당초 시작이나 말지  어이하여  내 촉수를 몽땅 세워놓고  속절없이 가버리는 게요  이 앙큼한 사랑아 <      
361    <지구> 시모음 댓글:  조회:4674  추천:0  2015-04-10
    == 지구는 만원이다==  죽을 수 있다는 것  바위가 오랜 후 모래가 되고  나무도 마침내 쓰러져 썩는다는 것  저 이름 없는 풀꽃이 결국 시들듯  그대와 나  죽을 수 있다는 것  미움도 마침내 스러지고  그리움도 언젠가는 잊혀지듯이  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우리도 한 점 흙이 된다는 것  그렇게 사라져주는 것  그런 소멸의 길이  얼마나 축복된 길인가 (김영천·시인, 1948-) ==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 살다 보면  보증금 십만 원에 칠만 원인 방도  고마울 때 있다. 이별을 해도 편하고  부도가 나도 홀가분할 때 있다.  5만 원어치만 냉장되는 중고냉장고  걸핏하면 덜덜거려도  긴긴밤 위안될 때 있다.  세상과 주파수 어긋나  툭 하면 지직거렸던 날 위해  감당할 만큼만 뻗고 있는 제 팔들 내보이며  창가 은행나무 말 걸어올 때도 있다.  먼 훗날 지구에서 방 뺄 때  빌려 쓴 것 적으니  그래도 난 덜 미안하겠구나  싶을 때 있다. (이성률·시인, 1963-) == 지구는 하나==       지구는 하나, 꽃도 하나,  너는 내가 피워낸 붉은 꽃 한 송이  푸른 지구 위에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  바람 부는 지구 위에 네가 아름답다. (나태주·시인, 1945-) == 지구를 한 바퀴==       아빠는 일터에 나가시고  혼자서 아기 키우는 엄마,  아기를 재워놓고  기저귀 빨려고  들샘에 나가서는  아기 혼자 깨어 우는 소리  귀에 쟁쟁 못이 박혀서  갖추갖추 빨랫감 헹궈 가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듯  바쁘게 돌아옵니다.  마늘밭 지나 보리밭 지나  교회 앞마당을 질러옵니다. (나태주·시인, 1945-) == 발들이 웃으면 지구가 웃는다==  찬바람 부니 잠자리에 든 발이 먼저 시리다  심장과 먼 발이 시리다  온종일 바닥에서 나를 세우던  그 발 시려 온몸 시리고  온몸 시려 마음 시리다  어서 양말을 신겨야지  읽지 않고 정치면을 넘겨 버려도  사회면 반, 눈감고 지나도  지구 공 위에 함께 발붙인 이들의  발 시린 소리  따듯한 심장과 멀어서  지구가 발이 시립단다  차가운 밤은 깊고 길기만 한데  어서 양말을 신겨야지  발이 따뜻해야 온몸이 웃는다  모든 발이 따뜻해야 지구가 웃는다 (유봉희·시인) == 지구본 == 나보다 먼저  지구를 끌어안은 아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구본 돌려대며 내 꺼야  키득거리는 아이  하나님이 아이처럼 웃으셨다 (김신오·시인, 황해도 신천 출생) == 지구본을 돌리며==     지구본을 돌리고 있으면 세계는 적막하다  사막과 고원, 화산과 빙하가  오대양 육대주, 남극과 북극이  수박만한 씨알로 오므라들어  봄 가을 열두 달을 믿을 수가 없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할 하늘은  씨줄과 날줄 속에 들어앉고  내 나라 내 도시는 점으로 찍혀  산다는 것도 별 게 아니구나 알게 된다  차를 타고 내려서 또 차를 타는  동서남북을 믿을 수가 없다  믿어야 할 진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향아·시인, 1938-) == 지구는 아름답다==       아름답구나  호수 루이스*.  에머랄드 색깔이라 하지만  어찌 보면 고려의 하늘색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이육사의 청포도색 같기도 한 너의  눈빛,  살포시 치켜뜬 자작나무 속눈썹 사이로  꿈꾸듯 흰 구름이 어리는구나.  태고의 만년설로 면사포를 해 두른 너 로키는  지구의 정결한 처녀,  내 오랫동안 이를 믿어왔거니  그 청옥한 눈매가  그 무구한 눈짓이  바로 병색임을 내 오늘 알았노라.  모든 독을 지닌 것은 아름다운 것,  모든 침묵하는 것은 신비로운 것,  산성비에 오염된 호수에서는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  결핵을 앓는 소녀가 아름다워지듯  아마존에서, 킬리만자로에서  폐를 앓는 지구는 더 아름답다.  박명한 미인처럼 아름답다. (오세영·시인, 1942-)   * 호수 루이스(Lake Louise): 캐나다 로키 국립공원 밴프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호수, 근처 산봉우리의 하얀 만년설과 호수의 특이한 물색이 어울려 절경을 자아내고 있음. 그 특이한 물 색깔은 산성비의 오염에서 비롯된 것임. == 지구의 독백==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태양  짝사랑하느라 허송세월 할지라도  화끈한 느낌만으로도 족해  가지가지 생명체를 잉태할 수 있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우여곡절 끝에 중심 잡았건만  잘못 키운 영장류 하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떠날 날이 없는 몸  이골이 난 자반뒤집기로  애먼 세월만  무시무종 끌어당겨 허비하다보니  나도 몰래 오르는 체온  되바라진 인간들이  갈수록 묘혈을 파  몸살로 시난고난하다  결국엔 나도 달처럼 결딴나겠지 (권오범·시인) * 자반뒤집기: 고통을 못 이겨 몸을 마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 시난고난: 병이 오래 끌면서 점점 악화되는 모양 == 몸살 앓는 지구촌==       가을비 토닥대며  지붕을 때리는데  처처의 재해소식  참으로 심난하다  지구촌  편안한 날이  하루라도 없구나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지구촌==     구름 안개 몸을 휘감는 여기  높은 재 위에 올라선 지금  하늘과 땅이 한 움큼이요  삶과 죽음이 한순간일네  남북이  한 뼘도 채 안 되는데  이걸 가지고 피를 흘렸나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점 하나 찍은 듯 작은 지구  개미집 같은 지구촌에서  서로 싸우는 미련한 인간들  우습다  신이 보기에는  비극이기보다 가증하리라  그러나 우주가 넓고 커도  지구는 필경 인류의 보금자리  여기 생명을 붙이고  역사를 누리며 살아온 곳  우리 왜  하나뿐인 보배를  우리 손으로 깨뜨리려나  무자비한 칼 거침없이  휘두르는 강대국의 횡포  능멸의 그물, 유린의 발굽  못 벗어나는 약소민족의 아픔  이것이  지구를 더럽혀 온  인류의 비참한 역사다  애타게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평화의 장벽  불러도 응답이 없이  대화조차 끊어진 적막  이 순간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꼬 (이은상·시인, 1903-1982) ==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지구 위에  숨쉬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꽃들과 동물들의 세계를 모른다  바다가 있는 천체는  오직 지구뿐인데  사람들은  물고기들의 씨를 말린다  농부들은  씨라도 뿌리고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데  어부들은  봄, 가을 없이  새벽에서 밤까지  물고기를 낚는다  하나뿐인 지구를  껴안으며 살자  그러면  오직 사랑과 평화가  살아 나올 것을 (이지영·시인) == 지구가 멈췄다== 절간 진입로바닥에 엎드려 수레를 미는 사내 앞에  환경정화 단속원이 떴다 이제 겨우 마수걸인데 해넘이까지는 한참 멀었는데 도망치지 못하고  죽은 듯 꿈쩍도 않고 있다  뒤로는 부처님 품안이요 옆으로는 숨기 좋을 과수원이지만 저 너머 집에선 달빛 아래 삼겹살 파티를 기다리며 어린것들이 목을 뽑지만  진퇴양난 없는 다리 노릇을 하는 뱃가죽 밑에는 지구가 놓여 있는데 한 뼘 한 뼘 굴릴 때마다 달이 가까워오는 (원무현·시인, 1963-)
360    <자화상> 시모음 댓글:  조회:4384  추천:0  2015-04-10
  +==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자화상==  누군가  그대와 비슷한 이름만 불러도  온몸이 굳어  또 다른 누군가가  닮은 목소리로 스쳐 지나가면  그대로  석고가  되어버릴  어느 서툰 조각가의  그럴 듯한  실패작.  (이풀잎·시인) +== 자화상== 내 몸에 흐른 강이 몇 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몇 개 이마에 매달린 납덩이가 몇 개 가슴 속 갈매기 깃발이 몇 개 털 빠진 기회의 꼬리가 몇 개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는 눈썹이 몇 개 아, 무엇이 무엇인가 무엇이 몇 개. (홍해리·시인, 1942-) +== 자화상·1 == 내가  기울면  산도  바다도  하늘도  기웁니다.  당신이  바로 서도  아직도  사뭇  기울어 있는  나.  산도  바다도  하늘도  바로 서 있는데  나 혼자 기울어서  모두 기울었다 합니다. (김영천·시인, 1948-) +== 자화상==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신현림·시인, 1961-) +== 자화상(自畵像)==  하얀 종이에  파스텔로 내 얼굴을  그렸습니다  머리칼도 눈썹도 입술도  하얗게 그렸습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슬픈 나를,  하얀 눈물을 그렸습니다  아무도 내 슬픔은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속엔  나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이 있습니다. (최영희·시인) +== 자화상== 거울을 무서워하는 나는  아침마다 하얀 벽바닥에  얼굴을 대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영영 안 보였다  하얀 벽에는  하얀 벽뿐이었다  하얀 벽뿐이었다  어떤 꿈 많은 시인은  제2의 나가 따라다녔더란다  단 둘이 얼마나 심심하였으랴  나는 그러나 제3의 나………제9의 나………제00의 나까지  언제나 깊은 밤이면  둘러싸고 들볶는다 (권환·시인, 1903-1954) +== 자화상==   푸른 하늘을 우러르는 일이 부끄러워  언제나 고갤 숙인 사람,  화살은 수없이 날렸지만 과녁을  맞춰 본 적 없었네  혹여, 발자욱 소리 들릴까  걸음걸이 항상 조심스러웠네  반세기는 늦게 세상에 태어나  뒤만 바라보며 실컷 자기 몫을 쓸쓸해하다가  시드는 낮달처럼  스러져 없어질 사람,  오늘같이 푸른 날은 흰 고무신 닦아 신고  뜸북새 우는 긴 논둑 길 걸어 보고 싶네 (김용화·시인) +== 자화상 == 제 몸을 부수며 종鐘이  운다 울음은 살아 있음의 명백한 증거, 마침내 깨어지면 울음도 그치리. 지금 존재의 희열을 숨차게 뿜으며 하늘과 땅을 느릿느릿 울려터지는 종소리, 종소리, 그것은 핏빛 자해自害의 울음소리. (이수익·시인, 1942-) +== 자화상(自畵像)== 돌과 돌들이 굴러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모래와 모래가 쓸려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물결과 물결이 굽이쳐 가다가 나를 두들기고, 너무도 기나긴 억겁의 세월, 햇살과 햇살이 나를 두들기고, 달빛이 나를 두들기고, 깜깜한 밤들이 나를 두들기고, 별빛과 별빛이 나를 두들기고, 아, 훌훌한 낙화가 꽃잎이 나를 두들기고, 바람이 나를 두들기고, 가랑비 소낙비 진눈깨비가 나를 두들기고, 싸락눈 함박눈 눈보라가 나를 두들기고, 우박이 나를 두들기고, 그, 분노가 나를 두들기고, 회의와 불안, 고독이 나를 두들기고, 절망이 나를 두들기고, 아니, 사랑이 나를 두들기고, 끝없는 뉘우침 끝없는 기다림 갈망이 나를 두들기고, 양심과 정의, 지성이 나를 두들기고, 진리와 평화 자유가 나를 두들기고, 겨레가 나를 두들기고, 끝없는 아름다움 예술이 나를 두들기고, 나사렛 예수 주 그리스도와 하느님, 말씀이 나를 두들기고. (박두진·시인, 1916-1998) +== 자화상(自畵像) == 나는 오랜 옛 서울의  한 이름 없는 마을에 태어나  부모형제와 이웃 사람의 얼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볼 적부터  죽음을 밥먹듯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피는 꽃의 빛깔과  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소리도  이별이 곁들어져  언제나 그처럼 슬프고 황홀했다  술과 친구와 노래는 입성인 양 몸에 붙고  돈과 명예와 그리고 여자에도  한결같이 젖어들어  모든 것을 알려다  어느 것도 익히지 못한 채  오직 한 가지 참된 마음은  자기가 눈감고 이미 없을 세상에  비치어질 햇빛과  피어나는 꽃송이와  개구리 우는 밤의 어스름달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살아 있을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김동리·소설가, 1913-1995) +==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시인, 1915-2000) +== 베짱이, 나의 자화상== 죽은 벌레들이 땅에 떨어져 다음 해 한여름을  위해 거름기를 모을 때 혹은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과일이 단물 들어갈 때 내 삶은  어느 한 부위도 익지 못했네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만수위로 위험수위로  차오를 때까지 나의 노래만 불렀네  남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아  목쉬도록 노래하다  여름 끝까지 와버렸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음풍농월로  젊은 날을 탕진해 버렸네  남의 것까지 거덜내 버렸네  문전박대 그 긴 겨울  시린 땅을 딛고 갈 마음의 신발  신발마저 벗겨져 세상하류까지 떠내려가 버렸네  그것도 모른 체 나부끼는 벽오동 나뭇잎으로  한여름 밤의 꿈에 부채질이나 했네  세상 언저리 언저리로만 떠돌았네  죽은 것마저 땅에 떨어져  한 줌 한 줌 거름기를 모을 때...... (김왕노·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자화상==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라보는 일뿐이다  새 한 마리  밤새 무화과나무에서 울어대도  바람이 계절 따라 가슴을 흔들며  짙은 물감을 쏟아놓아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의 바구니를 채우고  감성의 샘물을 일굴수록  갈 길이 멀고, 지고 갈 짐이 많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물살을 거꾸로 타고 오르는 힘겨움뿐  영리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조차 숨가쁘다  다가오는 것들을 말없이 품어주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손 흔들어 보내는  생(生)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바라보는 일과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모습 이대로를 지키는 일뿐이다 (홍인숙·시인, 미국 거주 ) +== 유년기의 자화상==       학질을 되게 앓던 날 새벽  할머니는 정한 뽕잎 하나 따서  정낭 귀틀에 깔고 그 옆에 나를 앉혀  혀로 뽕잎을 세 번 핥게 하신 후  다시 나를 업고  해 뜨는 봉우리  까마득한 바위 끝에 앉히고  내 머리 위에  동서남북의 바람을 불러들여  학질을 재판하셨습니다.  알 듯 모를 듯 주문을 외시던 할머니는  품속 칼을 선뜻 꺼내  푸른 바다 뜨는 해를 향해  십자를 긋고  이어 그 무선 칼날로 내 머리를 그으셨습니다.  내 몸 안으로 부서져내리는 칼소리  내 몸 온 구석에 부서져 하얗게 빛나는 칼빛  할머니는 나를 업고 다시  개울로 가셨습니다.  할미꽃 잎사귀를 손바닥에 비벼  내 콧구멍을 막아주시고  징검다리를 건너뛰게 하셨습니다.  할미꽃 잎사귀의 독한 향기는  몸에 스미어 내 눈에 별빛이 번쩍이고  나는 별밭 징검돌 은하수를  반은 죽어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칼빛에 두려운 학질 무리가  할미꽃 향기에 질려  별밭 하늘로 도망가고 말았는가.  돌아오는 마을 어귀에  풀꽃잎 까치울음 함께 떠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30세의 자화상== 삼십이 되어도 장가도 못간 놈. 고자도 아닌데 세상 불구자로 벼랑 끝에 울고 있다 마지막 남은  밧줄 하나 불안하게 부여잡고 끙끙대며 때묻은 영혼으로 나부끼고 있다 어제는 시간의 아픔으로 홍역을 치렀고 오늘은 알몸으로 몸부림치며 나이 들수록 왜소해지는 자신을 보며 팔짱 끼고 앉아 덜거덕대는 가슴을 발가락으로 누르고 있다 (권영하·시인) +== 자화상 문답==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만 할까  거울 앞에서  문득 만나는 묵묵부답  어느덧 흰 머리칼이  덧없이 또 지나간 10년을 얘기하며  이마 앞에서 나부끼고 있다.  (강남주·시인, 1939-) +== 자화상 (自畵像)== 어느덧 사십 년 지나  골동품 다 돼가는 자물통 하나  묵비권을 행사하듯 늘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뜻맞는 상대와 내통하면  언제든 찰칵!  꼭꼭 잠가둔 마음을 푼다  천성이 너무 솔직하고 순진해  안 보여도 좋을 속까지  모조리 내보이는 자물통 하나  가슴속엔 싸늘한 뇌관을 품고  보수(保守)냐? 개혁(改革)이냐?  목하 고민중인 자물통 하나  남의 집 문고리에 매달려  알게 모르게 녹슬고 있다.    (임영조·시인, 1943-) +== 자화상·95==     내 나이 마흔 두 살  십이간지 중에 말띠로 태어나  사십 이년 세월을 갈무리했다.  멋진 갈기를 날리며  늘씬한 네 다리로 드넓은 초원을  달렸어야 마땅한데.  마구간에 갇힌 세상  발톱만 다듬다 사십 년이다.  말로 태어나 말로 살지 못한  가슴은 숯껌뎅이로 남아서  가끔씩 지구 밖에다 편지질하다  시심으로 불을 지펴서  내 영혼을 달래다 시인이 되었다.  일천 구백 구십 오 년은  그래서 뜻깊은 해이다. (목필균·시인) +== 예순 살의 자화상==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전거 바퀴를 주어다가 만든 굴렁쇠를 굴리며  사내는 운동장을 달린다.  달리는 트랙은 반대방향이다.  땡볕 내려쬐는 빈 운동장을 예순의 그가 혼자서 달린다.  굴렁쇠는 가볍다.  운동장 옆 키 큰 미루나무 숲의 매미떼가 여물게 울뿐 아무도 없다.  그는 모처럼 해방감에 젖어  유년의 때까지 달려가려는 듯하지만  힘이 부친 듯 비틀된다.  그가 넘어진다.  굴렁쇠는 혼자서 저만치 굴러간다.  넘어진 굴렁쇠를 바로 세워 달리던 유년의 때완 다르게  굴렁쇠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넘어졌던 그가 일어나 굴렁쇠를 다시 굴린다. (김상현·시인, 1947-) +== 그릴 수 없는 자화상== 나는 내가 아니다 사진을 보든 거울을 보든 나는 나를 그릴 수 없다 내 몸 속에 내가 없고 벗어도 또 내가 아닌 아니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탈 자체가 되어 버린 고기 덩어리 태워 버리자 묻어 버리자 그리고 떠나자 나도 모르는 곳으로 예수나 석가의 얼굴은 아니지만 어머니 자궁 속에서 짓던 미소를 띠며… (구광렬·시인, 1956-) +== 자화상==  놈은  가슴속에 칼날 하나 감추고 있다  누군가 달려들면 내려칠 칼날을  놈은 날마다 칼날을 간다  날이 시퍼렇게 서도록  나를 보호해 줄 건 이것뿐이라며  갈고 또 간다  그러다가도  정작 휘둘러야 될 때가 되면  정말 휘둘러야 하는데  차마 차마 망설이다가  제 가슴이나 후비며  자상이나 입히는  써보지 못하는 칼날 하나  숨기고 산다 (이길원·시인) +== 자화상·2==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 한 톨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히 눈이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오세영·시인, 1942-)
359    <할아버지> 시모음 댓글:  조회:4637  추천:0  2015-04-10
+ 할아버지 연장통  창고를 청소하다  눈에 익은 연장통을 보았다.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와 나란히 놓인  할아버지 손때 묻은 연장통.  -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란다.  할아버지께선 늘 말씀하셨지.  연필깎이로 깎이지 않는 몽당연필도  밑창이 떨어진 낡은 내 운동화도  할아버지 손길만 거치면  뭐든 제 몫을 해내었지.  그래, 세상엔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야.  환한 얼굴로 기뻐할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할아버지 연장으로  세발자전거를 조이고 닦는다.  창고 속 먼지 쌓인 할아버지 연장통이  새삼 더 크게 보인다.   (강지인·아동문학가) + 할아버지와 시골집 겨울 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갔지요 시골집도 할아버지를 닮아 나를 반겼어요 흰 눈 덮인 지붕은 할아버지 머리 같았고요 틈이 난 싸리문은 할아버지 이 같았지요 금이 간 흙벽은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 같았고요 처마 끝의 고드름은 할아버지 수염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면도기로 수염을 쓱쓱 깎았고요 시골집은 햇살로 고드름을 살살 깎았지요 (김용삼·아동문학가) + 우리 할아버지 시간  약수터 갈 시간이  노인정 갈 시간이  진지 드실 시간이  9시 뉴스 나올 시간이  기다리시는 우리 할아버지에겐  한 발 한 발 느리게 다가온다.  뭐든지 미리 준비하시는 할아버지  시간을 미리 끌어다 쌓아두셔서  꺼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다.  오늘은 내가  할아버지랑 장기도 두고  모시고 나들이도 해야겠다  시간을 먼저 써버려야  쌓아두시지 못할 테니까.  (배정순·아동문학가) + 돋보기 신문 속의 글자들 할아버지 눈앞에서 장난친다. 가물가물 작아지고 흐려지고 할아버지는 가늘게, 크게 눈 뜨며 겁주지만 글자들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 영호야, 돋보기 좀 가져오렴. 그제야 꼼짝 못하고 착해진 글자들. (정은미·아동문학가) + 보청기  할아버지 큰 귓속에 작은 귀 하나 닫힌 문을 삐그덕 열어 줄 마음이 넓은 귀 새들 노래, 바람 노래 다 옮겨 놓는 마음이 넉넉한 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우리들 사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또박또박 전해 주는 마음이 착한 귀. (한상순·아동문학가) + 발씻기 숙제  가을걷이 끝난 뒤 허리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한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발을 엄마가 닦아 드립니다 콩 한 가마니 불끈 들어올릴 때 단단한 버팀목이었을 장딴지가 마른 삭정이 같습니다 바람 불면 쇄쇄 소리가 날 것 같은 마른 삭정이에서 뻗어 내린 잔가지 같은 외할아버지의 발 엄마는 조심조심 외할아버지의 발을 닦습니다 가끔 학교에서 내주는 부모님 발 씻겨 드리기 숙제, 엄마는 어렸을 때 미뤄 둔 그 숙제를 이제 하나 봅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할아버지 자전거 뒤꼍에서 녹슬고 있는 할아버지 자전거 가만히 바큇살 돌려봅니다 그르르 그르르......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할아버지 몸을 닦아주시는 엄마처럼 자전거를 닦아 봅니다 손잡이 발판 의자......  할아버지 손때가 꼬질꼬질 남아있습니다 자전거를 할아버지 방문 앞에 올려놓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일어나실 것만 같습니다 (김애란·아동문학가) + 그늘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고 할머니들 재미난 이야기꽃 피우고. 감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할아버지들 하루 종일 장이야 멍이야.  (최동안·강원도 강릉시 옥천 초등학교, 1970년 작품) +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시인) 
358    <술> 시모음 댓글:  조회:4395  추천:1  2015-04-10
  - 술에 관한 시 -   + 선생님과 막걸리 해가 중천에 있고 겨울은 시작되었다 네모난 창에 등을 대고 언덕 내리막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앙상한 미루나무 아래로 걸어 올라오시는 선생님 필경 우리 담임 선생님이셨다 울타리도 죄다 없어진 우리 집을 묻지도 않고 찾아오신 그 날 엄마는 신작로 중앙상회까지 내려가 오징어를 사왔다 콩콩 곤두박질 치는 심장은 곤로 속 심지보다 더 뜨거웠다 양조장집에 가서 막걸리를 두 됫박 넘게 받아오고 선생님은 오징어회를 맵지도 않은지 잘도 드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떠난 후의 각오를 새롭게 했다 또 양은 주전자를 가지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바닥에 쏟고 몇 번은 입을 대고 빨아먹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주전자마저 다 비우고서야 일어나셨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든 도망쳐야 하는데 그날 밤 엄마는 아무말 없었다 그리고 한달 뒤 중학교 입학원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날 느이 담임이 와서 가지도 않고 막걸리만 마셨는데 막걸리 잔을 비울 때마다 너는 꼭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지긋지긋한 술 느 아버지도 모자라 이젠 담임까지 와서 술타령이냐 나의 은인 담임 선생님 아마 그때부터 술을 가까이 하신 것일까 슬픔의 강 너머로 나의 선생님이 손짓한다 (최나혜·시인) + 술과의 화해  나는 요즘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나는 한때  어떤 적의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크기 위해 부지런히  싸울 상대를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때는 애인조차 원수 삼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원수 삼던 세상의 졸렬한 인간들이 우스워지고  더러 측은해지기도 하면서  나는 화해했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크고 싶었으므로  대신 술이라도 원수 삼기로 했었다  요컨대 애들은 싸워야 큰다니까  내가 이를 갈면서  원수의 술을 마시고 씹고 토해내는 동안  세상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었고  책들은 늘어나거나 불태워졌으며  머리는 텅 비고 시는 시시해지고  어느 볼장 다 본,  고요하고 섬세한 새벽  나는 결국 술과도 화해해야 했다  이제는 더 크고 싶지 않은 나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득도한 것일까  화해, 나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변하지만  비겁한 타협이라고 굴복이라고  개량주의라고 몰아붙여도 할 수 없다  확실히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생애는 쓸쓸히 시들어간다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강연호·시인, 1962-) +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나뭇잎 한 바구니나 화장품 같은 게 먹고 싶다  그리고...... 말들은 무엇 하려 했던가  유리창처럼 멈춰 서는 자책의 자객들......  한낮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꽃나무들에게 사과한다  지난 저녁부터의 발소리와 입술을,  그 얕은 신분을  외로움에 성실하지 못했던,  미안해 그게 실은 내 본심인가봐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 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김경미·시인, 1959-)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시인, 1952-)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정연복, 1957-)       + 막걸리 홀로 마시는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 소주 나를 빼닮아 잠잠히  투명한 영혼의 그대여 삶이 즐겁고 기쁠 때   마음이 힘들고 외로움에 겨울 때면 얼마든지 나를 들이켜도 좋으리 언제든지 그대 가까이  그대의 호명(呼名) 기다리고 있나니 그대 천 원 짜리 낡은 지폐로 나를 찾아와서 동그랗게 이 몸 안아 주면 나 그대의 좋은 벗 되어주리 애오라지 하나 간절한 소원 있다면 내가 행여 그대의 몸에  몹쓸 독이 되지 않는 것 그대의 귀한 생명을 응원하는 맑고 순수한 기운이 되는 것 그래서 그대와 나의  생명의 빛깔이 서로 닮아가는 것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 가벼운 슬픔 이틀이나 사흘 걸러 늦은 밤 막걸리를 마십니다 뽕짝 테이프를 들으며 쉬엄쉬엄 마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 술병에 담긴 750밀리리터 서울 막걸리  한 병이 동날 무렵이면 약간 취기가 돌며 스르르 삶의 긴장이 풀립니다 가슴 짓누르던 근심과 불안의 그늘이 옅어집니다  달랑 천 원이면 해결되는 내 생의 슬픔입니다. 이렇듯  나의 슬픔은 참 가볍습니다. + 도봉산에서 어둠이 사르르 커튼처럼 내리는  도봉산 자운봉 오르는 비스듬한 길 중턱 이제는 정이 든  바위들 틈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의 행복한 성찬을 차렸다 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집마다 귀가(歸家)의 불빛은 점점이 포근한데 저기 우람한 산봉우리는  말이 없네     + 땅콩 세상 욕심과 거리가 먼 그 친구도 정 붙일 욕심 하나 필요했을까 호프집에 들어가면 500cc 생맥주 몇 잔에 허름한 안주 하나 시키는 것은 우리의 오랜 관습이건만 어쩌다 술자리 무르익어  호프 한 잔씩이라도 더하는 날엔 뿌듯하게 놓여 있던 안주도 어느새 우리의 인생살이 마냥 가난한 바닥을 드러내는데 때마침, 아롱아롱 주기(酒氣) 너머 벗의 당당하고 또렷한 외침 "여기, 땅콩 좀 더 갖다 주세요." 참 신기하게도 친구의 욕심은 늘 채워진다 불경기에 장사하기 힘들 텐데  싫다는 내색 없이 수북히 땅콩 한 줌   선물처럼 얹어놓고 가는 술집 주인의 넉넉한 손길 그래서 오늘도  벗들과의 행복한 술자리   + 아차산 손두부 방금 쪄낸 아차산 할아버지 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툼한 손두부 한 모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벗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대화의 꽃 피우는 날은 고단한 인생살이 온갖 시름이야 잠시 내려놓아도 좋은 행복한 축제일 허름한 옷차림의 서민들과 하산 길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구수한 대화를 귀동냥하며 술맛은 점점 좋아지는데 자꾸만 더 먹으라며 내 앞의 종지그릇에 두부 한 점 살며시 담아 주는 벗의 다정한 마음에 누추한 할아버지 집은 어느새 지상 천국이 되네 + 오라, 인간의 집으로 여기는 인생 열차의   간이역 같은 곳 아차산 산행길의  가빴던 숨 잠시 고르며 한 구비 쉬었다 가는 고향 마을 사랑방 같은 곳   선한 눈빛의 할아버지가  사십 여 년 정성으로 빚어 오신 군침 도는 손두부 한 모 앞에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어렴풋한 첫사랑 연인의 뽀얀 살결 같은 우윳빛 서울막걸리 한 잔    주거니받거니 하며 기분 좋게 달아오르는 취기(醉氣)에 세상 살맛 새록새록 움트는 곳 한세월 살면서 켜켜이 쌓인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의 짐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순수한 동심으로 되돌아가 낡은 천 원 짜리 지폐 몇 장뿐인 지갑이 얇은 사람도 이곳에 들어서면 어느새 마음만은 넉넉한 부자가 되는 곳 오라,  세상의 벗들이여 사시사철 아무 때나 들러도  소박한 인정(人情)이 넘실대는   따뜻한 인간의 집 아차산 할아버지 손두부집으로
357    <결혼 축시> 모음 댓글:  조회:4515  추천:0  2015-04-10
+ 행복하여라  그분이 맺어 주셨을까 오누이같이 다정한 두 사람 드넓은 우주에서  만난 그 예쁜 인연 단풍의 불덩이로 익어 오늘 백년가약을 맺네. 세상살이 희로애락 함께하는 한 쌍의 원앙(鴛鴦)으로 이 지상에서 저 하늘까지 세월의 이랑마다 사랑의 꽃씨 심으며 행복하여라 영원히 행복하여라 + 사랑은 아름다워라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으로 빛나는 저 두 송이 꽃을 보라 조각상 같은 용모의 듬직한 신랑  천사의 자태를 빼닮은 우아한 신부 원앙(鴛鴦)의 모습 벌써 완연한  한 쌍의 선남선녀.  사랑으로 눈부신 너희 있어 지금 우리들의 가슴은 고동치고 온 우주도 한순간 고요히 숨 멎으니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느낀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둘의 영혼 속에 거룩한 신성(神性)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또한 믿는다 모든 것 뛰어넘는 사랑의 힘을.  꽃 피는 봄날 있으면 쓸쓸히 낙엽 지는 날도 있어 이따금 닥쳐올 아픔과 시련의 때에도 보이지 않는 신뢰를 보석으로 여기고 서로를 토닥이는 따스한 위로와 무엇이든 감사하는 깊고 큰마음으로 소박한 사랑의 둥지를 틀어 행복하고 명랑한 자식들을 기르고  넘치는 양식은 이웃에게도 베풀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하여라 먼 훗날에도 사랑의 전설로 길이 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이 되어라.  + 아름다운 부부  몇 년의 우정이 자라 예쁜 사랑이 움트더니 오늘은 그 사랑 활짝 피어 백년가약을 맺는 복되고 복된 날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선남선녀의 결혼에  하늘 그분께서도 기쁨을 감추실 수 없는가 티없이 맑고 푸른 하늘    초록빛 잎새들을 하객(賀客)으로 보내 주시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예의 바르고 모든 것  넉넉히 품을 줄 아는 큰마음으로 첫눈에도 신뢰감이 가는 신랑 엄마 아빠의 좋은 성품 쏙 닮아 이해심이 바다 같고 현모양처의 기품이 벌써 드러나는  참 우아한 신부   아무래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天生緣分)인가 보다. 꽃은 피고 지고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지만 사랑은 세월 너머 영원한 것 세상살이 희로애락의 동반자로 한평생 변치 않을 사랑을 맹세하는 너희 두 사람에게 하늘의 축복 있으리니, 서로의 장점보다 약점을  따듯이 보듬는 착한 사랑 삶이 순탄할 때보다도  더러 슬픔과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한마음, 한 믿음을 더욱 굳세게 지켜 가는 깊은 사랑 아들 딸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되 세상의 그늘지고 아픈 구석도  살며시 돌아볼 줄 아는 넓은 사랑으로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겸손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부부 되어라. + 사랑의 기쁨 만 삼 년의 풋풋했던 연애 알뜰히 열매 맺어  오월의 따순 햇살 아래 연둣빛 이파리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제 어엿한 부부 되는  눈부신 한 쌍의 선남선녀(善男善女) 눈에 쏙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연인이다가도 때로는 누나 같고 엄마 같기도 한 오늘 따라 더욱 아리따운  자태의 신부  가끔은 무뚝뚝한 표정이어도 아가처럼 맑은 영혼에 속은 계란 노른자처럼 꽉 차서 한평생의 길동무 삼고 싶은 참 믿음직한 모습의 신랑  다정한 오누이인 듯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점도 참 많은  그대 두 사람은 반쪽과 반쪽이 만나 보기 좋은 하나 되라고 하늘이 맺어준 연(緣). 마음과 마음 모아 알뜰살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영혼과 영혼 잇대어 늘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라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드리울 쓸쓸한 그림자 속에서도 광화문에서 첫 인연을 맺던 순간의 가슴 설렘 그 기억으로 천 날의 연애를 키운 그 정성으로 지금은 보름달같이 탐스러운  그대들의 육체 그믐달로 이우는 날 너머까지 천 년 만 년 두 사람의 사랑 영원하여라 + 사랑의 기쁨  초록으로 눈부신 오월의 세상은 아름다워라 사랑으로 눈부신 오월의 신랑 신부는 더욱 아름다워라 순백의 웨딩드레스에 싸여 지상을 거니는 천사의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신랑에게 다가서는  코스모스처럼 단아한 신부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신부를 바라보는   바위같이 당당하고 믿음직한 모습에 순한 눈빛의 신랑  광활한 우주 속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의 반쪽인 두 사람이 만나 연정(戀情) 새록새록 쌓으며   다정히 한 쌍의 연인이더니 오늘은 그 예쁜 연애  보란 듯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 세상 끝까지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기쁘고 복된 날. 오월의 하늘 아래 연초록 잎새들의 응원의 박수 받으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나니, 우리 사는 이 곳은 꽃 피고 낙엽 지는 기쁨과 슬픔 알록달록한 세상 삶의 행복에 겨운 날의  두 사람의 다정한 동행(同行)  이따금 닥쳐올 시련과 아픔의 날에도 늘 그 모습 그대로이기를  초록빛 그 하나로 영원을 사는  저 오월의 나무 잎새들같이 너희 둘의 사랑도 수백, 수천 년 푸르고 또 푸르기를. + 시월의 신랑 신부에게  서글서글한 눈매, 듬직한 모습의 신랑 코스모스처럼 순하고 명랑한 신부 이 두 반쪽이 만나 하나의 사랑으로 꽃 피는 오늘은 참 아름답고 복된 날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리는 천생연분의 짝인지 꼭 다정한 오누이만 같아라 세상 끝날까지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 앞에   오늘 따라 시월의 하늘 더 푸르고 시월의 산들바람 더욱 싱그러워라.    이제 막 한 쌍의 원앙(鴛鴦) 되어   힘차게 날갯짓하는 그대들에게 길이길이 하늘과 땅의 축복 있으리니  건강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   행복한 사랑의 집 한 채 지으며,     겉으로 빛나는 사랑보다는 들국화 닮아 은은히 향기로운 사랑살이 엮어라 살아가다 이따금 궂은 날 오면  서로 믿고 따습게 위로하며 오히려 참사랑의 기쁨을 맛보아라. 아직은 한갓 실개천 같은 그대들의 작고 예쁜 그 사랑 알뜰히 보듬어 키워 수백 수천, 아니 수만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큰 강이 되어라 너른 바다 되어라 +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나의 작은 가슴은 사랑의 행복으로  한순간 터질 것만 같습니다   백설(白雪)의 눈부신 웨딩드레스에 싸여  한 걸음 한 걸음 공작새의 우아한 자태로 춤추듯  나를 향해 다가오는 너무도 아리따운 당신의 모습은 고스란히 순수의 천사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현재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 사랑합니다 어쩌면 아직은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과거의 아픔과 약점까지도 나는 소중히 사랑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당신의 육체가 시들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겨도 나는 당신을 지금처럼 사랑할 것입니다 햇살 찬란한 기쁨의 날이나 달빛 어스름한 고통의 날에도 나는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할 것입니다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너와 나 다정히 하나 되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나의 연인이여, 나의 신부여 + 햇살     긴 세월 쌓인 그리움의 끝에서 만난 참 귀하고 아름다운 당신과  부부의 인연을 맺는 기쁜 오늘  때마침 하늘은 첫눈을 내려 우리의 사랑을 말없이 축복합니다. 간밤의 혹한에 몸서리쳤을 야윈 가지마다 포근히 내려앉은 따순 햇살 있어 나목(裸木)은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가난하여도 사랑은 찬란하고 복된 것 한세상 살아가면서 굳이 자랑할 것 하나 있다면 우리의 목숨 지는 그 날까지 기쁜 날이나 슬픈 날에도 한결같은 사랑뿐이기를 바랍니다. 드넓은 세상의  한 점 작은 우리의 사랑이겠지만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한줄기 따스한 햇살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356    <어버이날> 시모음 댓글:  조회:5065  추천:0  2015-04-10
      어버이날 시모음                                                      새   벽  (乾)                                                             --- 어 버 이 날                                                                                                                                                                                아 버 님                                         아 버 님                                       아 버 님 은,ㅡ                                                 남 들 을  위 한  하 늘,        그 렇 게 도  성 스 럽 게   펼 쳐  주 셨 소 이 다...                                   아 버 님                                          아 버 님                                          아 버 님 은,ㅡ                               자 신 을  위 한  하 늘,               단   한 자 락 도  못 갖 고  가 셨 소 이 다...                                          아   ㅡ  버  ㅡ  님  !  ㅡㅡㅡ                                                                (竹琳 . 김승종 시인. 1963~)               새벽(坤)                                                                                                                                                            어 머 님                                                     어 머 님                                                          어 머 님 은ㅡ                                          남 들 을  위 한  종 을,                       그 렇 게 도  수 천 만 번   쳐 주 셨 소 이 다 ...                                                   어 머 님                                                         어 머 님                                                         어 머 님 은ㅡ                                           자 신 을  위 한   종 은,                       단 한 번 도   못 쳐 보 고   가 셨 소 이 다...                                                                                                   어 ㅡ 머  ㅡ 님 ㅡㅡㅡ                                      (中國 . 延邊 . 竹琳 - 金勝鐘 詩之直, 1963년~) ♣ 엄마 ♣ 엄마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입니다.  엄마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식지 않는 사랑을  마르지 않는 사랑을 줍니다  엄마는 나의 온 세상입니다.  빛입니다  햇살입니다  고향입니다  그러나  난 엄마를 위해  내어준 게 없습니다  때때로  엄마 눈에 깊은 눈물  고이게 하고...  엄마  언제나 불러도  샘솟는 샘물입니다  맑은 옹달샘입니다  엄마는 내 잘못  다 용서해 주시고  안아 주십니다  엄마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온 세상의 불신은  환하게 녹아 내립니다.  엄마, 엄마  아름다운 별이 있는 밤  엄마 품에  포옥 안기어 잠들고 싶어요  엄마, 엄마  부를수록 충만하고  눈물이 솟구치는  가슴저린 이름입니다.  (김세실·시인, 1956-)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노근이 엄마♣ 내 가장 친한 친구 노근이 엄마가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단 한 방울의 오줌도 변기 밖으로 흘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노근이 엄마가 원래 변기는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이 변기를 더럽게 하는 거다 사람의 더러운 오줌을 모조리 다 받아주는 변기가 오히려 착하다 니는 변기처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호승·시인, 1950-)   ♥ 풀꽃 엄마♥  왜 지금까지 평화롭게만 보이던  풀밭이 싸움판으로 보이기  시작했을까?  시들어 가는 풀섶에  모여앉아 조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왜 노래로  들리지 않는 걸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손아귀에 풀씨를 힘껏  움켜쥐고 있는 풀대궁  익은 풀씨들을 새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 숙인 채 안간힘을 다하는  풀대궁  얘들아 잘 가거라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  뒷전으로 뒷전으로  땅을 향해  풀씨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풀, 풀꽃, 풀꽃 엄마.  (나태주·시인, 1945-) ♥ 엄마의 전화♥ 잠도 덜 깬 아직 이른 새벽  엄마한테서 장거리전화가 왔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던데  차를 가지고 출근할 거냐고  설마 그 말씀만을 하시려고  아니다 전화하신 게 아니다  목소리 사이사이 엄마 마음  헤아리려 가슴 기울인다  웬일로 엄마는 전화하셨나  무슨 말씀 하고싶으셨던가  창 밖은 아직 일러 어둑한데  엄마한테서 새벽전화가 왔다  (강인호·시인)   ♥ 엄마 ♥ 검정고무신 손에 움켜쥐고  삼십리 길을 걸어왔네  엄마는 버선발로 뛰쳐나오시더니  가슴이 아리도록 끌어안으시네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새끼"  돌에 채인 발이 아파와  깨끼발로 선 채로  "엄마 배고파, 밥 주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엄마는 말없이  울기만 하시네.  (공석진·시인)   ♠ 엄마의 푸성귀♠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장바닥에 앉아  채소 파는 저 할매  울 엄마 같네  울 엄마는  장날마다  푸성귀 뜯어  시장에 가셨지  엄마의 푸성귀는  내 공책이 되고 책이 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네  저 할매 보니  울 엄마가 보고 싶어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울 엄마  무덤가에  술 한 잔  눈물 몇 방울  뿌리는 게 고작이네.  (이문조·시인) ♠ 엄마가 된다는 것♠ 어느 날 글쎄 내가 아이들이 흘린 밥을 주워 먹고 먹다 남은 반찬이 아까워 밥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야 입고 싶은 옷을 사기 위해 팍팍 돈을 쓰던 내가 아예 옷가게를 피해가고 좋은 것 깨끗한 것만 찾고 더러운 것은 내 일이 아니었는데 그 반대가 되는 거야 아이가 사달라고 하면 줄서는 것도 지키지 않아 예전에 엄마가 그러면 엄마! 핀잔주며 잔소리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는 거야 아이가 까무러치게 울면 이해할 수 없어, 아무데서나 가슴을 꺼내 젖을 물리는 거야 뭔가 사라져가고 새로운 게 나를 차지하는 거야 이런 적도 있어, 초록잎이 아이에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가 아픈 거야, 그래서 공터에 가서 풀을 베다가 침대 밑에 깔아주기도 했어 엄마도 태어나는 거야 (이성이·시인)   ♠ 엄마, 난 끝까지♠  산다는 건 평생  생마늘을 까는 일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서울이라는 매운 도시의 한 구석에서  마늘을 까며 내가 눈물 흘릴 때  작은 어촌 내가 자라던 방안에 앉아  엄마도 나처럼 마늘을 까고 있겠지  엄마는 내 부적이야  마늘처럼 액을 막아 주는  붉은 상형문자  내가  길을 잃고 어둠에 빠졌을 때  엄마가 그랬어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지만  연꽃은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엄마는 눈부신 내 등대야  등대가 아름다운 것은  길 잃은 배가 있기 때문이지  엄마가 빛을 보내 줘도  난 영원히 길을 잃을 테야  엄마, 난 끝까지 없는 길을 가겠어  (김태희·시인) ♧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도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 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 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로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작자 미상)   ♧ 엄마♧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배우는 말 세상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엄마.... (정연복·시인, 1957-)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외   ♧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아비♧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 아버지 보약 ♧ 형과 내가 드리는  아침, 저녁인사 한마디면  쌓인 피로 다 풀린다는 아버지  '58년 개띠'입니다. 나이는 마흔하고 아홉입니다.  이제 오십 밑자리 깔아 놓았다는  아버지 보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잘 다녀오셨어요?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 못 위의 잠 ⊙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시인, 1966-)   ⊙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 희망이네 가정 조사 ⊙ 우★ 아버지의 밥그릇 ★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엄마는 육군 상병★ 고운 얼굴 이마에 세 가닥 주름  엄마는 육군 상병 아빠의 술 담배가 한 가닥  말썽꾸러기 내 동생이 한 가닥 공부 않고 컴퓨터만 한다고  내가 그은 한 가닥 셋이서 붙여드린 상병 계급장 지친 몸 눕히시고 코를 고실 때  열심히 가만가만 문질렀지만 조금도 지워지지 않는  상병 계급장 (심재기·아동문학가, 1938-)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매달려 있는 것♥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 (신새별·아동문학가)   ♡ 엄마♡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좋다. 화나는 일도 짜증나는 일도 '엄마' 하고 부르면 다 풀린다. 엄마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무서운 게 없다. (서정홍·아동문학가)   ♥ 엄마의 등♥ 세벽 네 시 반이면 문을 여는 김밥 가게 가게 주인은 우리 엄마 엄마는 등에 혹이 달린 곱추랍니다 다 일어서도 내 키만한 엄마 김밥 한 줄 꾹꾹 눌러 쌀 때마다 등에 멘 혹이 무거워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혹을 살짝 내려놓고 싶습니다 끝내 메고 있어야 할 엄마의 혹 속엔 더 자라지 못한 엄마의 키가 돌돌 말려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도르르 말린 엄마의 키를 꺼내 쭈욱 늘려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꼭 오늘 하루만이라도 곱추등 쫘악 펴고 한잠 푹 주무시게 하고 싶습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밥 ♥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이무원·시인, 1942-)   ♣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355    <우체국> 시모음 댓글:  조회:5567  추천:0  2015-04-10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강경화    길을 걷는다 사람이 그리운 날엔 수많은 이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도 그 뒤엔 늘 그리움 채우는 바람이 머문다   한참을 서 있는 우체국 앞 계단은 기다렸다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진 모습이다 어쩌다 나 그대에게 길들여진 길처럼   닮은 얼굴 하나 둘 우체통에 밀어 넣고 한 칸씩 볕을 따라 올라서서 본 거리는 줄에서 빗나간 글씨처럼 눈빛들이 살아있다   매양 담담히 스치는 이들이지만 때로는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오늘도 거리를 나선다 참 푸른 바람 인다           북해 항로 강우식   먹고 살기 위하여 유민이 되어 식솔들을 이끌고 이 항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던 아버지처럼 오늘 나는 한 마리 회유어로 북해 항로의 짙고 푸르른 막막한 바다 위 선단에 떠 있다. 북으로 오를수록 파고는 높푸르게 하늘과 맞닿고 나는 어이하여 학업도 작파하고 유빙이 칼끝 같은 바다의 끝자락에 떠 흐르는가. 표류하는 내 청춘의 꿈처럼 바다 물빛은 푸르른데 대학노트의 표지마냥 펄럭이는 물결 위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란 부표에 매달려 흔들리는가. 가끔 어디서 왔는지 갈매기조차 고적해 보이는 선창에 기대 휘파람을 호이- 호이 휘- 불면 괜히 젖 뗀 아이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그리워져서 메마른 가슴에도 어쩔 수 없이 글썽 눈물이 고이고 어머니께 그립다는 편지를 길게, 길게 쓰고 싶어도 북해 항로의 어느 바다 위에도 우체국은 없구나. 이 항로에 서면 잃어버린 사랑도 더욱 그리워지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는 떠나보내지 말았어야지… 지난 여자의 눈 그리메도 선히 떠올려지는구나. 까닭 없이 내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일랑 무조건 여자에게 보상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소맷자락이 허옇게 소금기에 절은 오랜 뱃사람답게 나는 여자가 너무 너무 그리워서 다음 기항지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여자나 만나 회포를 풀어야 하겠다는 기대를 가져보며 바위 같은 가슴을 탁탁 쳐본다. 북해 항로여, 나는 어느 산모롱이를 돌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을 쏟듯이 모든 것을 털어낼 그늘이 없어 서럽구나. 갓 서른도 못 넘긴 나이가 괜히 억울하고 서럽구나. 이 바다 때문에 바다에 갇히어 사는 거 같아 서럽구나.       저물녘의 노래 강은교    저물녘에 우리는 가장 다정해진다. 저물녘에 나뭇잎들은 가장 따뜻해지고 저물녘에 물위의 집들은 가장 따뜻한 불을 켜기 시작한다. 저물녘을 걷고 있는 이들이여 저물녘에는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기다리리라. 저물녘에 그대는 가장 따뜻한 편지 한 장을 들고 저물녘에 그대는 그 편지를 물의 우체국에서 부치리라. 저물녘에는 그림자도 접고 가장 따뜻한 물의 이불을 펴리라. 모든 밤을 끌고 어머니 곁에서.       휘파람 강인한    낡은 풍경을 쓰고 불빛은 꽃씨처럼 가벼이 떨어진다. 풍경 속을 흐르는 키 작은 안개, 소년이 걸어간다. 안개 속에서 그립고 흰 손이 나온다. 바람은 밤에 더욱 상냥하고 소년은 바람이 되어 밤의 우체국 안을 들여다본다. 어디엔가 숨어서 곤한 잠을 자는 내일의 안부, 나지막한 귀로, 풍경이 흔들린다. 하나 둘 먼 등불도 꺼져가고 소년이 띄우는 휘파람 하나 밤바람에 가만히 묻어난다.       안테나 위로 올라간 부처님 강준철   부처님이 법당이 답답하여 안마당을 거닐다가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안테나 위로 날아 올라갔다 수만 가정의 안방으로 부처님이 송신되었다. 그러나 전파 장애로 아무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   갈참나무에 올라가 목이 아프게 노래하던 부처님이 방송국으로 날아가 새로운 버전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이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T.V 수상기 고장으로 보지 못했다 이튿날 조간신문 톱기사에 “보지 못한 시청자들은 www.kbs.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라고 대서특필 되었다   목을 길게 빼고 부처님이 슬금슬금 내 방문 안으로 기어 왔다 그때 전화가 왔다 “우체국입니다. 댁으로 택배된 부처님이 반송되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2번을 누르세요!”   점심 때 국수를 맛있게 먹은 부처님이 민들레 홀씨를 타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가 이메일로 송신되었다 대부분 전송 실패로 되돌아 왔다   한사코 고개를 가로 젓던 부처님이 나무에서 추락하여 석간신문으로 배달되었는데 중생들이 광고인 줄 알고 휴지통에 버렸다       장래희망  고경숙    시골 조그만 우체국 창구에 앉아 매일매일 누군가 들고 오는 마음의 중량을 달아 동전 몇 닢 매기는 우표장사 하고 싶다 갯내 묻은 특산김 물량 넘치게 팔아 국장님께 칭찬도 듣고 초등학교 고사리들 저금 걷으러 가다 새로 부임한 총각선생님의 눈길에 얼굴 붉어도 보고 싶다 우체국 계단 제라늄화분에 물 주는 일도 빠뜨리지 말아 언제나 내 자리에서 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르신들 희뿌연 돋보기가 대신 되어 대처에서 보내온 용돈 찾아드리며 함께 뿌듯하고 싶다 타이트스커트 하늘빛 블라우스에 어느 날 눈먼 그대 내 앞자리에 우표 한 장 붙이고 머뭇거리면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고 풍선처럼 푸른 하늘로 도망치고 싶다 날아가고 싶다   지금부터 한 살씩 거꾸로 먹는다면 아마도 일흔다섯이면 이룰 수 있는 꿈, 장래희망이다.        별에게 묻다 고두현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절벽에  빗금 치며 꽂히는 별빛 좌선대 등뼈 끝으로 새까만 숯막 타고 또 타서 생애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 그립다 그립다   밤새 쓴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아침 우체국에서 여기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하늘편지  고현수   나는 지금 하늘우체국을 짓습니다 하늘구름을 가져다 우체국을 짓고 우체국 정문 옆에 하얀 우체통을 세울 겁니다 그리고 하얀 등을 만들어 우체국 천장에 달 거에요 또 하나 더 있지요 맑고 맑은 구름만을 모아 우체국아저씨 몇 분을 빚을 거예요 지금 여기 강둑엔 바람집배원과 함께 있지요 알아요? 하늘로 가는 설레임! 잠시 후면 당신햇살마당에 나를 봉한 편지 한 통 놓일 겁니다       효자손  공광규    우체국 앞 가로수 곁에 아낙네가 죽제품 좌판을 벌여 놓았다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와 키와 죽침 따위에 섞여 효자손도 눈에 띄었다 건널목 신호등이 황급하게 깜빡이지 않았더라면 그 조그만 대나무 등긁이를 하나 사 왔을지도 모른다 노인성 소양증만 남고 물기 말라 버려 가려운 등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장난삼아 간질간질 긁어 주던 고사리 같은 손 이 작은 효자손이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갔다 옆에는 나직한 숨결마저 빈자리 어둔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빨리 떠나라고 휴대폰 거는 소리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은 손 벽오동 잎보다 휠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       0.75평  곽재구   지금은 북쪽으로 간 장기수 이인모 노인은 6·25후 40년 세월을 0.75평짜리 독방에서 살았다 얼마나 좋았을까 그 방의 침침한 공기와 시멘트 가루와 어쩌다 길을 잃고 찾아든 바퀴까지 다 동무가 되었을 것이다 한 몸 누이면 달빛 한줌 뿌릴 공간 없으므로 외로울 틈도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편지 올 이도 없으니 우체국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침대가 놓일 자리 없으니 오지 않는 연인 때문에 긴 밤 속 끓일 일도 없을 것이다 수석이니 난이니 고상한 취미에 넋 놓을 필요 없을 것이고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여줄 리 없으니 남쪽 동포가 IMF 구제금융에 점령당하고 북쪽 동포가 굶주림에 점령당한 사실도 하마 모를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사과 박스 두 개 밀어 넣으면 숨찰 어두운 공간에서 로댕처럼 팔 괴고 앉아 콩밥도 먹고 똥도 싸고 심심하면 똑딱똑딱 시계초침도 세고 울다가 웃다가 0.75평에서 세상을 떠날 그날까지 바지에 찍 피오줌을 갈기고.       마늘 소포 - 둑길行 ․ 37 외 1편 구재기   도시에서 사시는 은사님께 올해도 마늘 한 접 부쳐 올리련다 보꾹 안쪽에 매달린 마늘 묶음에서 알이 굵은 놈만 골라내어 종합선물 빈 과자갑을 열고 한 접 넉넉하게 마늘을 넣는다 붉은 비닐끈을 알맞게 잘라 배배 꼬아 정성스럽게 싸고 있는 나를 아내는 슬프게 슬프게스리 굽어본다 ‘그까짓 것, 무얼 그리 해마다 보내려오? 차리리 다른 걸 부쳐 드리지‘ 그러나 부쳐 드릴 다른 걸 찾지 못한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비닐끈을 힘껏 잡아당겨 마늘을 묶는다   자전거에 마늘을 싣고 잘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 달렸다 우체국에 갔다 창구의 직원이 무엇이냐며 저울대에 올려놓았다 3,230g  1,870원의 요금을 내놓으며 마늘이라고 대답했다 창구의 직원이 소포우편물수령증을 떼어 주고는 마늘값보다도 소포요금이 더 많겠다며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는 괜스리 부끄러워 쫓겨나듯 우체국을 나왔다   우체국 앞에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무엇이 아내를 슬프게 하고 무엇이 나를 부끄럽게 하였는가 우체국 앞 구멍가게에 조무래기 몇몇 무리 지어 몰려오더니 마늘 한 접 값도 넘는 천 원짜리 몇으로 아이스크림과 바꾸어 히히거리며 열심히 핥아댔다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은 내일이면 다시 만나려는 사랑에 한 번 더 믿음을 더한다는 것이다    한 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자리 바람이 불고 낙엽이 촁촁촁 구르는 시월의 끝 무렵 으스스으 햇살조차 떨려오는 날    우체국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한 장의 우표를 사고 싶다는 것은 너로 하여 자못 기다림과 만나는 순간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너의 부름을 넉넉히 한다는 것이다 내일처럼 그렇게 버티어 있다는 것이다       자작나무  권경업      애동대동하던 날 눈 덮힌 잦은 골 백단목 여린 껍질에 서린 사연들 우체국 소인도 없고 더러는 주소도 잊어버린 채 수취인은 먼 도시의 世波 눈가의 잔주름으로 밀려들어 쉬 알아볼 수 없을 아낙   오늘은 그 숲 그 눈밭에서 다 전하지 못했던 사연들 회한으로 일어나 하얀 알몸으로 떨고 있을 잦은골 자작나무       압화 권운지   오래된 책갈피 펼치다 너를 만난다 한 때 이슬 맺히고 번개가 지나가던 몸 비로소 주술이 풀린 듯 고요하구나 내 마음 갈피에도 자국이 깊다   어느 이름 모를 지상의 우체국에서 세상으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속 눈물방울   더 이상 갈 곳 없던 육체의 마지막 그 곳 그 벼랑 위의 꽃     알락꼬리마도요 김경란   남쪽의 섬에서 바닷물에 밀려 편지가 날아왔네 알락꼬리마도요의 길고 가느다란 부리가 발신 우체국 소인消印의 검은 물결에 갇혀 어느 섬의 바다 소리, 따스한 해풍海風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억의 한 끝을 물고 있었네 파도처럼 찢어지는 봉투 끝자락, 새 발자국만큼 작은 글씨들이 이내 바닷물결에 지워지고 있었네   생生은 언제나 아무렇지 않은 듯 저렇게 고르고 평온한 숨의 물결로 흘러가는데 모래 위로 밀려온 물고기의 아가미에 흔들리던 바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내 사랑의 폐활량 부끄러운 기억만 모래 위에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네 소인 자국의 검은 물결에 날아온 알락꼬리마도요만 모래빛 깃털을 반짝이고 있었네       잃어버린 지상을 찾아서 김경미   우체국은 어디쯤인가 편지를 들고   빌딩 옥상에 올라가 퇴근하는 저녁바다를 내려다본다 파도 위로 자동차 불빛들 주황색 구명조끼처럼 헤드라이트 불빛을 껴입은 채 파닥이고 길을 잃었음을 잊은 시든 물고기들이 정거장에서 반복과 번복의 물방울을 서로에게 뿜는다 플라스틱꽃처럼 아무도 마음까지는 젖지 않고 드물게 몇은 흙과 먼지로 빚던 인간의 숨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기억이 깊으면 붉은 폭죽 같은 두통의 생에 시달려야 한다 먼 원양어선들 끝없이 식인의 물고기들을 데려오고 인근해부두에선 날마다 태풍이 숙박계를 쓴다 종이꽃들마다 나무젓가락처럼 자주 다리를 벌리고 언제나 목이 탄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날 것인가   어둔 하늘 위 돋아오는 저 빛조각들은 별이 아니라 혹은 일제히 겨눈 총구들인가   혹은 구원의 방주로 불려올라간 우체국인가 내 편지 받을 땅의 몸 맑은 나무들인가 아무도 몰래 어둔 심해 속 손톱처럼 형광빛으로 떠다니는 도망한 땅들인가       별정 우체국 이경희   시장 모퉁이를 돌아들면 별정 우체국이 있다 나는 가끔 아들에게 보낼 우편물을 안고 우체국을 찾곤 하는데 스므 남짓 처녀둘이서 하루 종일 소국같은 웃음을 피워 물고 있는 문방구처럼 차려놓은 소포대 위에 가위 풀 테이프 볼펜 싸인펜 자 일호봉투 빈 소포상자가 어디로 갈지 모를 미지의 골목을 조용히 꿈꾸고 있다 한 중년의 여자가 모양새답지 않게 돋보기를 챙겨 끼고 미지의 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나 보다 꾹꾹 짚어가는 까만 볼펜 끝이 파르르 떨린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봉투 속에서 봉함되는 순간 다시 마음으로 열어가는 따뜻한 길을 본다 길은 점점 더 넓은 곳에서 좁아져 마침내 한점으로 서 있는 어느 막다른 골목끝의 그리운 사람들       어른이니까 나는, 김나영   모 문학상 동시 공모에 응모를 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쯤이야 어린아이의 눈동자쯤이야 쉽게 훔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른이니까 나는,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렌즈처럼 갈아 끼우고 어린아이의 몸에 나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어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최대 관건이니까 혀 짧은 목소리도 천진한 속내처럼 부려놓았다 서둘러 쓴 동시 몇 편을 밀봉해 부치고 우체국을 채 빠져나오기 전 나는 얼른 어른으로 갈아입었다 날렵하게 가슴 환해질 명예와 짭짤한 상금 그 돈이면 몇 달간의 용돈도 되지 싶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따위의 반성은 잠시 서랍 안에 밀쳐두기로 했다 어른이니까 나는, 당선자가 발표되기 며칠 전 나는 어른에서 어린아이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몇 번을 갈아입고 시상식장으로 가는 환상열차를 타고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과분한 상을 주시다니…'  나는 힘차게 달렸지만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세계를 넘보기엔 비만한 정신에 붉고 두꺼워지는 몸 채워도 채워도 잃어가는 게 늘어나는 어린아이로부터 유배된 어른이니까 나는,       자작리 사생활 김남수   마을 한 채 짓고 싶네, 자작리    입구에 간이우체국 팻말을 바람개비로 매달고 담장 없는 앞마당에 자작나무 우편함을 외발로 세우는 거야 시간마다 열어보는 거야    앞산 가을걷이 소식 뜨락 채마밭 저녁상 차린다는 소식 한 묶음씩 들어앉아 있을 거야 뒤꼍 어미고양이 몸 푸는 시각도 달려와 있을 거야 쉬엄쉬엄 읽으며 밑줄을 긋는 거야 아침이 오는 소리로 답장을 쓰는 거야    편지를 부치러 읍내리로 나갈 일 있겠나 지천으로 배달된 이슬 한 장 솎아다 반짝 우표 붙이고 여치 울음 척척 문질러 봉하는 거야    수취인 : 자작나무 우편함 귀하 발송인 : 자작나무 우편함 드림    자작리 사생활 들통 나겠네 나, 바빠지겠네    간이우체국네자작나무우편함네앞산네채마밭네이슬네여치네어미고양이네    더불어 자작자작 살아가는 속사정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김남숙   받은 편지함 열어 읽은 편지 또 읽으며 담대해지려 했어요 받은 편지함 보낸 편지함 비워내며 아파하지 않으려 했어요 자꾸만 아린 가슴 눈물샘 터뜨리지 않으려 했어요 달라진 것 없는 세상 하고픈 말 듣고픈 말 얼마나 간절해서 이리 목이 메이는가 우체국 가서 보낸 편지 한달 지나 도착하고 다시 한달 지나야 받는 답장 그런 기다림도 있었는데 하루 가고 며칠 가고 몇 주밖에 안 되었는 걸 이리도 마음 졸여 쌓인 정을 비워 내는가 이야기 한 시간들 함께 한 마음들 왜 접속 않는 걸까 무슨 일 있는 걸까 무슨 큰일 있는 걸까       진해 김명인    간밤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던 로타리 옆 카페 취한 나를 누군가 억지로 택시에 태워 숙소로 안내했을 텐데 한낮이 다 되어 깨어나니 엊저녁 헤매던 그 로타리 근처다 화창한 일요일이라 이 오전은 인적도 드물고 차도 듬성듬성한데 함께 술 마시던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속은 쓰린데 멍하니 혼자뿐이다 건너편 회색 단층의 러시아 풍 오래된 우체국 유리창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있다! 뉘게 부칠 편지를 쓰고 있다! 빛깔 고운 벚 단풍 잎새에 아련한 파도소리로 소인 찍어 배달된 그런 엽서 예전에 나도 받았거니 절로 흥건한 추억이 가을을 담아서 반짝거린다       오래된 약속 김미성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야 하는 내 운명처럼 불쑥 등 뒤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운명은 장난처럼 찾아오길 좋아하니까 좀 늦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지켜지는 약속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가고 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슬프다 사람들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을 어긴 채 그것을 잊으려고 우체국에 와서 편지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모양이다 오래 익은 버릇처럼 눈 내리는 날엔 나도 모르게 광화문 우체국 앞에 와서 잘 생각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한다고 고집하곤 한다   기억은 상실해가기 때문에 오늘은 어제나 새롭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억은 또다시 어제의 기억이 된다   그냥 지나쳐 가버린 건 아닐까? 약속한 그 사람이 혹시 나를 못 알아본 건 아닐까? 그래서 스쳐 가버린 건 아닐까? 그렇더라도 눈은 여전히 내리므로 내가 먼저 약속장소를 떠날 수는 없다 눈이 내리는 한 그 사람도 한번쯤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약속한 그 사람이 이미 나를 지나쳐갔다 해도 눈 내리는 날 어쩔 수 없이 나는 잊혀져가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       황금 물고기 김선진   개포1동 우체국 옆 담벼락을 기둥 삼고 지아비를 잃은 아낙네 앞치마를 두르고 황금붕어를 낚는다 겨울 바람을 막는 펄럭이는 비닐 가리개 안에서 주전자만 기울이면 붕어는 일렬종대로 나란히 헤엄친다 내장은 다 어디 가고 삶은 단팥만 배 터지게 물고 있나 뜨거운 불판 돌리고 뒤집고 또 엎어서 영혼이 빠져 나간 붕어를 팔고 있다 해거름 그림자 길게 누울 때까지 수 없이 붕어를 찍어내도 부부가 함께 낚던 그때만 하겠는가 짧은 해 어둠이 골목으로 마실 나올 때 식어가는 붕어가 약속한 듯 주둥이를 달싹인다.       월간지 김선호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배달된다 작은 별들을 별책부록으로 달고 거무스름한 우체국 소인을 가슴에 찍었다 나는 매달 보름이면 그녀의 스커트 깃을 넘긴다 달에겐 뒷면이 없음을 알리는 원색 화보들이 사랑에 목숨 걸다 퇴락한 여배우처럼 기억만 붙잡고 웃는다 발효된 글자들이 구름에 부딪치고는 허공에서 그림자가 되어 흘러 내린다 운석이 된 시간들은 외계 밖으로 떨어지고 표지에 그려 넣은 새들의 깃털은 지문에 지워졌다 바람 편에선 깨진 거울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춘기 때 깨진 이후 물체를 온전히 반사하지 못하는 거울 달아난 조각들은 우주 어느 곳에 박혀있는지. 맞춰지진 않지만 달마다 연재된다 내 몸에 차올랐던 붉은 달은 초승달이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간다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김소연   네 발 짐승이 고달픈 발을 혓바닥으로 어루만지는 시간. 누군가의 빨아 널은 운동화가 햇볕 아래 말라가는 시간. 그늘만 주어지면 어김없이 헐벗은 개 한 마리가 곤히 잠들지. 몸 바깥의 사물들이 그네처럼 조용히 흔들리고 있어.   (깊은 밤이라는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언덕 위 사원에는 감옥이 있었고, 감옥에는 돌 틈 사이 작은 균열에 대고 감옥 바깥의 사물들에게 끊임없이 혼잣말을 속삭이던 한 공주가 있었대. 감옥은 그녀를 가둘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속삭임만은 가둘 수가 없었대. 속삭임은 사람의 퇴화한 향수들을 들어 올려 안개처럼 난분분하게 흩어졌고 언젠간 소낙비처럼 우리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올 거래. 우린 비를 맞겠지. 물비린내를 맡겠지. 자귀나무가 수백 개의 팔을 좍좍 뻗어 이 모든 은혜들을 받아내겠지. 사방천지 검은 나무들이 나무이기를 방면하는 시간이 올 테지.   사람이 보트에 모터를 달기 위해 전념해오던 시간, 강물은 물총새의 날갯짓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손바닥을 날개처럼 활짝 폈겠지. 그리곤 모난 바위를 동글동글하게 다듬었겠지. 그 바위들이 언덕 위로 굴러 올라가 사원의 탑이 되는 시간. 아무도 여기에 없었을 거야. 언제나 그런 때에 우린 그곳에 있지 않지. 단지 물가에 집을 짓고 어리석음을 자식에게 가르치고 자식의 이마 정중앙에 멍울을 새겨 넣지. 격렬한 질문들을 가슴에 담고 자식들은 낙담한 채 고향을 떠나지. 강물이 보다 두터워지는 또 다른 아침. 물가에 나가 겨드랑이를 씻고 사타구니를 씻는 부모들은 자신의 선의를 반성하지 않은 채 수많은 아침을 맞지.   이제 나는 사원 너머 시장골목 어귀에 먼지를 뽀얗게 얹은 채 졸고 있는 작은 우체국에 갈 거야. 너의 질문에 대한 나의 질문이 시작되는 아침. 우리가 잘못되기 시작한 건 허무를 이해하기 시작한 그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며 돌계단에 앉아 강물에 비친 검은 얼굴을 보고 있어.   (아침에 보던 것들은 다음날 아침에야 다시 볼 수가 있겠지)   오늘은 무얼 할까. 맨발의 사람들이 두 팔을 힘껏 써서 너럭바위에 이불빨래를 너는 시간. 세찬 비는 어제의 일이고 거센 강물은 오늘의 일이 되는 시간.       하늘우체국  김수우    시립묘지 납골당 입구 하늘우체국은 열두 달, 가을이다 오늘도 헐렁한 쉐터를 입은 가을이 소인을 찍는 중, 우표 없는 편지들이 시시로 단풍든다 몰래 지나는 바람에도 집채만한 그림자들 일어서는 말의 잎새더미들, 한장 한장 젖은 목소리로 뒤척인다   하늘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잎새말은 ‘사랑해요’이다 ‘미안해요’도 가랑잎 져 걸음마다 밟힌다 ‘보고 싶어요’ ‘편히 쉬세요’ ‘또 올께요’도 넘쳐흘러 하늘이 자꾸 넓어진다 산자에게나 망자에게나 전할 안부는 언제나, 같다, 언제나, 물기가 돈다   떠난 후에야 말은 보석이 되는가 살아생전 마음껏 쓰지 못한 말들, 살아 서로에게 닿지 못한 말들, 이제야 물들며 사람들 몸속으로 번진다 가슴 흔들릴 때마다 영롱해진다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떠내려가는 잎새말 하나, 반짝인다, ‘내 맘 알지요’       편지 3 김시천   썼다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겉봉에 주소와 이름까지 다 쓰고 나서 한참을 보고 다시 또 본다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이면서 다시 보고 우체통에 넣기 전에 또 한참을 바라보다가   오늘 알았다 나는 비로소 산다는 건 이렇게 제 마음을 꺼내어 들고 보고 또 다시 보면서 저무는 일이라는 걸   ##  저무는  하루        서시  김영은   가로수 밑을 지나다 툭! 나뭇잎 떨어지고 발이 멈춘다 집어든 손가락 끝에서 가을이 시리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아직도 가슴에 있고 문득,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바람이 미는 대로 정처없이 흔들린다   그림자 작게 접어 제 몸 속에 집어넣고 낙엽은 걸음이 조급한데 작별인사는 될수록 짧게 서둘러 떠나는 발자국 소리, 서걱 서걱 서걱...... 멀어지는 모습 뒤로 흰구름이 눈부시다   지난 여름 사랑은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전쟁 같았지 그 화염 속 아직도 나는 쓰러져 있는데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그대 마음 상처는 꽃잎처럼 붉구나   우체국 가는 길 마음은 편지보다 한 발 앞서고 낙엽 뒤에서 흩어진 시간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서는 시선 끝, 하늘이 푸르다 아직 편지는 부치지 못했고 가. 을. 이. 깊. 다.       귀 먼자(KIMEUNJA) 김은자   공항에서 잃어버린 두 개의 이민가방이 도착한 것은 미국에 도착하고 육개월 후, 동네 간이 우체국 찌그러진 깡통 이민 가방이 내 발 앞에 놓여을 때 이름표에는 이름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KIMEUNJA 귀. 먼. 자. 로 불렀다 운명 같은 해독 이후 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모국어가 목마른 날이면 먹먹해진 귀를 홀로 만지며 대숲을 뒹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지퍼를 열면 붉은 울음이 빗방울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민 올 때 엄마가 사준 꽃무늬 원피스는 아직도 한쪽 팔이 꺾인 채 옷장 한 켠 박제처럼 걸려 있다 귀머거리의 속성은 엷게 떨다 눈을 잠가 버리는 것 겨울에 떠나 여름에 도착한 개화를 모르는 그리움 깊숙이 손을 넣으면 이민 올 때 언니가 사준 벙어리 장갑이 딸려 나온다 귀가 멀면 입도 멀어지는 법 異國은 명치뼈 아래께 느껴지는 통증 같은 것 흰 편지에 봉인된 얼굴들을 넣고 돌아서는 色色의 사람들 발음 틀린 소통이 오래 아프다       마지막 편지 김초혜   완성될 줄 모르는 편지는 너에게 도달되지 않고 공간에 머무르면서 우체국으로 접수될 줄 모른다   부치지 못할 편지는 쓰지도 말자면서 돌아서는 법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연습하지만   정작으로 돌아서야 할 시간에는 변두리만 돌다가 다시 돌아서 버리는 건망증   필생에 한 번 혼자서만 좋아하고 잊어야 되는 삶의 징벌       우체국 계단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김현성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우체국 가는 길   김현태    이른 아침에 우체국에 갑니다 출판사에서 받아 온 시집과 밤새 쓴 편지 한 장을 자전거에 싣고 우체국에 갑니다   아침햇살이 신호등이 걸릴 때마다, 내 생이 브레이크를 질끈 잡을 때마다 행여, 자전거 뒷칸에 매단  누우런 봉투가 아파하지 않을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체국은 항상 사람향기가 납니다 그리움 향기가 가득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말 못할 그리움이 더 많은가 봅니다    내 이름보다도 그대 이름이 크게 적힌 봉투를 저울에 올려 놓습니다 몇 그램이나 나갈까, 우체국 아가씨는 방황하는 저울바늘의 끝을 바라 봅니다 문득, 봉투의 무게가 내 사랑의 무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두볼이 바알갛게 달아오릅니다     며칠 후면, 지구의 한 모퉁이에 닿을 내 그리움의 편린들  악어 입 같은 우체통에 고이고이 묻어 두고 자전거에 몸을 싣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바람이 자전거 앞바퀴에 걸려 치즈처럼 얇게 잘리었는지, 바람 끝이 맵습니다 가슴팍이 왈칵, 시려 옵니다       낭만우체국 나태주   나는 이런 우체국을 알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우체국 문을 열고는 휑하니 마을로 술 마시러 나가는 중늙은이 우체국장이 근무하는 우체국 여자 직원 혼자서 하루 종일 사무실을 지키는 우체국   한나절을 두고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고 전화조차 잘 걸려오지 않아 여자 직원은 뜨개질을 하다가 하품을 하기도 하는 우체국 (요즘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지만)   어쩌다 마을의 노인이 돈이라도 찾으러 오면 여자 직원은 비로소 제 할 일이 생겼다는 듯  방글방글 웃으며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히 가세요, 수선을 떠는 우체국 그 바람에 출렁, 파문이 생기는 우체국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금 적막에 휩싸이고 마는 우체국   나도 가끔은 이 우체국에 우편물을 부치러 가는 날이 있다 볼일을 보고서도 나는 금방 오지를 못하고  한참동안 우체국 안에서 머뭇거린다 왠지 모르게 곧바로 우체국 문을 밀고 돌아오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서다   목소리가 참 이쁘네요, 꽃이 막 피어나는 것 같애요 실없이 지꺼리는 말 한마디에도 우체국 여자 직원은 하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정말 그 웃음이 다시 한 번 꽃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런 우체국을 오늘 낭만우체국이라 부르고 싶다.       느리게  나호열    우체국은 산 속 저물녘에 있다 이 가을에 나는 남루한 한 통의 편지 산길 초입 그리고 저물녘에서 느릿느릿 우체국을 찾아간다 블랙홀처럼 어둠은 황홀하다 문득 아찔한 절벽 위에 몸을 가눌 때 바위에 온몸을 부딪치고 으깨어지면서 물은 맑고 깊어지는 흩날리는 꽃잎이다 바람은 또 이렇게 깊은 산에 들어야 솔내음을 품어 낼 수 있는 것 이 가을에 우체국 소인이 찍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에게 가는 길 - 장생포 도순태   햇살이 뜨겁던 날 장생포에 갔다. 고래가 사라진 장생포에는 붉은 햇살이 흔적만 남은 고래막 외벽에 황량하게 내렸다.   옛 분주함도 허름한 옷같이 세월의 뒤안길에서 깨어진 유치창처럼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이층 다방 사진 속에는 오래 전 고래 한 마리 혼자 물마시며 빈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붕이 낮은 우체국에서 엽서를 샀다. 언젠가 돌아 올 고래를 기다리며 서 있는 장생포 방파제가 슬퍼 보인다고,   기다림은 늘 그늘진 기다림을 만든다고 어젯밤 내 꿈에 찾아온 그에게   비릿한 바다내음 같은 이야기를 실어 보냈다.   돌아서 뽑은 자판기 커피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질 때 눈물이 났다.   똬리를 튼 한 마리 뱀장어 가슴에 넣고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그도 나도 있었다.   혼자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한다는 그처럼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슴에 묻고 산다.   기다림에 지친 바다 앞에서 다 젖은 내 안으로 고래 한 마리 살아 꿈틀거리며 돌아왔다.       그리운 우체국 류  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은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밝혀 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       비파나무 그늘 마경덕    일제히 소인을 찍고 있는 나무들, 봄부터 쓴 장문의 편지들이 쏟아진다 허공에 쓰는 저 간절한 필체들 해마다 발송되는 편지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켜켜이 쌓인 주소불명, 수취거절, 수취인부재 미처 소인도 찍지 못한, 저 미납의 사연들   비파를 타던 그 사내 단물이 흐르는 목소리를 내 일기장으로 옮겨오곤 했다 그 소리를 만지며 사나흘 울었다 울음소리에 비파나무 귀는 파랗게 자라 그때 나를 찢고 다시 썼다    몸은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손끝이 스칠 때 비파나무 그늘도 가늘게 떨렸다 빗물에 젖은 열개의 손가락으로 그의 갈비뼈를 더듬고 싶었다 끈끈한 시간의 뒷면에 혀를 대면  그는 떨어진 우표처럼 기울어 있다    우체국은  마감된 하루를 가지 끝에 내건다 어둑한 그늘 아래 시큼한 연애가 익어가고 비파를 켜듯, 그 사내를 연주하고 싶던 그 가을 건너간 마음이 수취인불명으로 걸어 나온다   한 다발의 묵은 편지를 태우듯 노랗게 발등으로 떨어지는 기억을 털어내는 우체국 앞 나무들  키 큰 비파나무가 마지막 현을 퉁긴다 수없이 반송된 계절이 또 한 페이지 넘어간다       우체국을 지나며 문무학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 만한 곳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 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 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   길 건너 빌딩 앞 플러타너스 이파리는 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묵은 엽서 한 장 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   물 다 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가을 우체국 문정희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인보다 때론 우체부가 좋지 많이 걸을 수 있지 재수 좋으면 바닷가도 걸을 수 있어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   시인은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뚱뚱해지지   가을 우체국에서 파블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시인이 아니라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크고 불룩한 가방을 메고 멀고먼 안달루시아 남쪽 그가 살고 있는 매혹의 마을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각이도* 그 후 2 박 일   법성포로 가자. 썰물이 석양을 배웅하며 당도하는 사이 육지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막배에 오르자. 포구의 사람들이 희미해지는 즈음이 그리움의 거리가 될는지도 몰라. 우럭떼를 불러들이듯이 내 손목을 마다하지 않고 잡아주던 각이도여, 몇 해 전 내가 그곳을 떠나오던 날, 선창가에서 한없는 눈빛으로 응시하던 견우라는 개를 기억한다. 이런 머언 후일에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 떠나는 자보다 보내는 자의 쓸쓸함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익명의 공간이었다. 육지라는 곳은, 나는 늘 한 자루 칼이었고 웃음 짓는 수많은 얼굴 뒤에선 수시로 화살이 시위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찰나에 베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건 그의 칼에 목이 잘릴지 모를 일이었다. 대게 우리는 배신과 피를 먹고 자랐다.   먼데 불빛이 그리워 질 때까지 너의 품에서 지내고 싶다. 추락과 부딪힘의 힘만으로도 파도는 진경眞景에 이름할진데, 다시 너를 떠날 때에는 소매를 걷고 첫배에 오르겠다. 굴비 열댓두름을 사가지고서 내게 쏜 화살의 주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려마. 햇살 한줌과 손끝의 온기도 함께 동봉하여서는 우체국의 유리문을 환하게 당겨보겠다. *전남 영광군에 속해있는 섬       떠도는 자의 노래 박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뭇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별정 우체국의 봄 박기섭   편지 배달 나간 봄빛은 오지 않고 별정 우체국 나직한 창 틈으로 바람난 아래윗각단 복사꽃만 환한 날       추석 무렵 박남준   모처럼 동네가 흥청거렸다 우체국 앞 삼미식당도 찬새미 송어횟집도 동창회다 뭐다 밀려드는 주문에 일손이 달렸다 고작해야 경운기나 일 톤 트럭이 서 있던 길목마다 미끈한 자가용들이 줄을 지어 들어섰고 아이들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들썩거렸다   잔치는 짧다 울긋불긋 단풍 같은 고향을 매달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마을 길은 텅 비어 해는 더 바짝 짧아지고 밤새 환하던 집들은 벌써 깜깜해졌다 늙은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 잔기침 소리 너머 꼬부랑 꼬부랑 고로롱고로롱 풀벌레 소리 홀로 남아 등 굽은 가로등이 노안처럼 침침하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박미라   코피를 쏟았다 검붉은 꽃잎이 수북이 쌓인다 꽃잎으로 위장한 편지 핏빛 선명한 이 흘림체의 편지를 나는 읽어낼 수 없다   행간도 없이 써 내려간 숨 막히는 밀서를 천천히 짚어간다 꽃잎 뭉개지는 비릿한 냄새 온 몸에 스멀댄다 기억의 냄새만으로도 노을이 타오르고 맨드라미 자지러지는 저녁을 맨발의 내가 엎어지며 간다 이 편지의 수취인은 내가 아니다 녹슨 우체통 속에서 늙어가는 뜯지 않은 편지를 먼지 자욱한 세상의 뒤쪽으로 반송한다   젖은 꽃잎을 떼어 빈 봉투에 붙인다 어딘가의 주소를 적는다 여기는 백만 년 후의 무덤이라고 쓴다   집 잃은 아이처럼 헤매는 비린내를 거두어 담는다 붉은 글자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는다 받는 이의 주소를 적는다 몸이 쓴 편지를 읽을 줄 아는 마음에게 라고 쓴다 백만 년 전에도 마음이었던 그대 여기, 지워진 행간을 동봉한다       이팝나무 우체국 박성우    이팝나무 아래 우체국이 있다 빨강 우체통 세우고 우체국을 낸 건 나지만 이팝나무 우체국의 주인은 닭이다 부리를 쪼아 소인을 찍는 일이며 뙤똥뙤똥 편지 배달을 나가는 일이며 파닥파닥 한 소식 걷어 오는 일이며 닭들은 종일 우체국 일로 분주하다 이팝나무 우체국 우체부는 다섯이다 수탉 우체국장과 암탉 집배원 넷은 꼬오옥 꼭꼭 꼬옥 꼭꼭꼭, 열심이다 도라지 밭길로 부추 밭길로 녹차 밭길로 흩어졌다가는 앞다투어 이팝나무 우체국으로 돌아온다 꽃에 취해 거드름 피는 법이 없고 눈비 치는 날조차 결근하는 일 없다 때론 밤샘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빨강 우체통에 앉아 꼬박 밤을 새고 파닥 파다닥 이른 우체국 문을 연다 게으른 내가 일어나거나 말거나 게으른 내가 일을 나가거나 말거나 게으른 내가 늦은 답장을 쓰거나 말거나 이팝나무 우체국 우체부들은 꼬오옥 꼭꼭 꼬옥 꼭꼭꼭, 부지런을 떤다       용산을 추억함 박소란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 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지옥불 일렁이는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가는 불온의 미몽이 사이렌처럼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 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영영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폭설 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태어 쓰고도 아직 못다 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 데 없는 곳까지 가 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 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바보지요? 그래도 오늘 소인까진 어디서나 언제라도 유효하면 안 될까요? 끝없이 지루한 발자욱처럼 눈발, 어지럽게 쏟아지는 한 길가 빨갛게 발 시린 우체통이 아직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군요 한편에선 쿨룩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제설차가 눈길을 쓸고 거두어 위급히 병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아, 그렇군요 내 그리움도 이렇게 마냥 응달에 쌓아 두어선 안 되는 거군요 아직 남은 추위 속에 위험한 빙판이 될 수 있겠군요 슬픔에 몸둘 바 몰라 저 어둔 허공 속 지치도록 떠도는 눈발처럼 나, 당신 기억 속에 쌓이지 말았어야 했군요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랑이 전부이고 다인 나에게는 해마다 어디로든 추운 겨울은 오고 큰 눈 도무지 그치지를 않네요       우체국 옆집 박정수   수취인 불명 도장 찍힌 그곳 매일같이 찾아와 제 집인 양 머무는 바람이 있다 첫사랑은 아카시아 같아서 때만 되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데 우표를 붙인 적이 없는 마음 홀로 살구꽃 되었다가 빈 빨랫줄에 거미줄도 되었다가 수런수런 바람으로 자라서 종아리 하얀 계집아이가 공기놀이를 한다 햇살은 종일 풀숲에서 뒹굴고 오눨의 바람이 툭툭 기억을 흔드는 빨간 우체통을 지나는 그곳       나비 * 2 상희구   봄을 전령하는    노랑우표 한 장   우리 고장에는 우체국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체국에 간다 서경원   오늘도 난 우체국에 간다 마른 잎 수북히 추억처럼 쌓인 길 홀로 걷는 외로움도 축복이라며   하늘 호수에 담근 흰 구름 청량한 햇살에 말린 단풍잎과 그늘 한 점 없는 구절초의 보랏빛 미소 잔가지 눈물처럼 흔드는 방울새 울음소리   하나도 새지 않게 쪽빛 한지에 싸서 네 이름 꽃씨처럼 새긴 봉투에 넣고 떨리듯 기도를 하지 네 품에 안길 이 편지 바로 나였으면... 편지를 물고 가는 흰 제비도 기쁘게 날갯짓하겠다   오늘도 나는 우체국에 간다 너에게 나를 보내기 위해       지상에서 1 성윤석   저녁이었기때문견디며 괴롭게성장한나무와사 람들을엿보았기때문지 방관청과이층산동반점 그멀고도먼처마사이아래에서   누군가는비를긋고나는 비를세운다전파상오래 된세고비아기타소리현 이가늘수록높은음표를 건드리고퉁퉁슬픔치며 가던가수와70년대소리 아직도여기엔당신만이   잘가는집이있고우체국이  있고당신만이잘가지못하 는비탈이있다우리는모른 다그래도사라지진마라그 래도우리는최상의화질 로당신을찾아내야한다그   대는한편의영화도잊지마 라개봉관앞가는비굵어물 살로흘러간다       우체국 앞 평상 손순미   길은 저 혼자 우체국으로 들어가 버렸고, 바람은 측백나무 겨드랑이를 부채질하다 기절해버렸다 우체국 앞에는 한 토막의 평상이 놓여 있고 직원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며 평상 위에 놓인 더위를 구경한다   한 남자가 평상을 향해 걸어온다 남자의 바지를 그대로 갈아입은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남자가 측백나무 쪽으로 평상을 옮기자 그림자는 황급히 배웅을 마치고 돌아간다 못난 남자에게서 태어난 불행한 껍데기는 가라! 노숙에 지친 남자가 겨우 헛소리를 삼키며 평상 위에 눕는다 약지가 없는 남자의 손이 나뭇잎처럼 흔들린다 여름이 이렇게 춥다니!   십자가를 짊어지듯 남자는 평상을 짊어지고 예수처럼 누워있다 영원히 오지 않을 부활을 꿈꾸지 않으며, 각도를 조금만 비틀면 폭염에 순교한 자로 기록될 광경이다   남자를 태운 평상은, 생각하면 눈물이 핑~도는 모양이다       장생포 우체국 손택수    지난 밤 바다엔 폭풍주의보가 내렸었다 그 사나운 밤바다에서 등을 밝히고 누구에게 무슨 긴 편지를 썼다는 말인지 배에서 내린 사내가 우체국으로 들어온다 바다와 우체국의 사이는 고작 몇 미터가 될까 말까 사내를 따라 문을 힘껏 밀고 들어오는 갯내음, 고래회유해면 밖의 파도 소리가 부풀어오른 봉투 속에서 두툼하게 만져진다 드센 파도가 아직 갑판을 때려대고 있다는 듯 봉두난발 흐트러진 저 글씨체, 속절없이 바다의 필체와 문법을 닮아 있다 저 글씨체만 보고도 성난 바다 기운을 점치고 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편지  바다의 획순을 그대로 따라간 편지 수평선을 긋듯 반듯하게 접은 편지를 봉투 속에 집어넣고 뭍에 올랐던 파도 소리 성큼성큼 멀어져간다 뿌- 뱃고동 소리에 깜짝 놀란 갈매기 한 마리 우표 속에서 마악 날개를 펴고 있다       새가 된 시인 송수권   스륵스륵 향 연필 깎는 밤 창 밖에선 눈 오는 소리 인터넷 세상 속에서도 바람 불고 비가 오는 걸까 연필로만 향그런 시를 쓰는 시인 e-mail이 아니라 우체국에 가서 매일 편지와 원고를 발송하고 오는 새대가리 시인   답청踏淸 날 교외의 풀밭을 밟으며 족두리풀 풀각시 쪽을 지어 쪽- 소리나게 입맞춤하며 하늘 보고 새초롬하네요, 말하는 시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따금 운전 핀을 잊고 맹- 하니 서 있는 시인 나 완전히 새 됐어 혼자서 어깨짓을 하며 가만하게 웃는 시인   그 나이에 차 없이도 잘 나다니네요. 제자들이 핀잔하면 얘들 봐라, 물에 빠진 선비가 개헤엄치는 거 봤니, 달구지 누가 타는 건데, 패대기로 걷다가 구두창이 나간 것도 모르는 시인 늘 한쪽 어깨가 기울기만 한 시인   나 완전히 새 됐어 새벽 세 시에 횡단보도를 비틀거리다가 어느 날 구두창이 아니라 창이 나간 시인 강물에 재를 뿌리자 재빨리 날아가 새가 된 시인 그의 영혼이 너무 가벼운 게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너무나 무거운 게 아닐까.    * '나 완전히 새 됐어'는 싸이의「새」에서 따온 구절임.       명자나무 우체국 송재학    올해도 어김없이 편지를 받았다 봉투 속에 고요히 접힌 다섯 장의 붉은 苔紙도 여전하다 花頭 문자로 씌여진 편지를 읽으려면 예의 붉은별무늬병의 가시를 조심해야 하지만 장미과의 꽃나무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느리고 쉼 없이 편지를 전해주는 건 역시 키 작은 명자나무 우체국, 그 우체국장 아가씨의 단내 나는 입냄새와 함께 명자나무 꽃을 석삼년째 기다리노라면, 피돌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아가미로 숨쉬니까 떨림과 수줍음이란 이렇듯 불그스레한 투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자나무 앞 웅덩이에 낮달이 머물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종종걸음은 우표를 찍어낸다 우체통이 반듯한 붉은색이듯 단층 우체국의 적별돌에서 피어나는 건 아지랑이, 연금술을 믿으니까 명자나무 우체국의 장기 저축 상품을 사러 간다 *       삭제하다 송종규    피자를 시켜 놓고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텅 빈 오토바이가 도착했다 화를 내며 돌려보냈는데 오토바이의 두 바퀴가 철가방에 실려 왔네 뭔가 툭 부딪혔는데 어깨가 부러졌네 다급하게 아버지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   누군가 슬쩍 곁을 스쳐 갔는데 파일이 삭제 됐다 초인종이 울리고 택배를 받으러 나갔는데 덩그러니 초인종만 매달려 있다 두통약을 먹었는데 웬, 하수구가 막혔다네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낡은 전화번호가 자꾸만 앞을 가로막는데   하수구에서 펑펑 검은 시간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몰상식하게 늙었고 치명적으로 헐거워졌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발은 허공에서 내려오지 않았네 음악은 쇳소리를 내면서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갔지만,   낡은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나서 세상은 복구되어 갔다 오토바이 바퀴와 아버지와 구름과 부러진 어깨를 싣고 우체국으로 달려갔네 혁명처럼, 은행나무 잎사귀가 흩날리고 있는 생의 한 날       나팔꽃 우체국 송찬호   요즈음 간절기라서 꽃의 집배가 좀 더디다 그래도 누구든 생일날 아침이면 꽃나팔 불어준다 어제는 여름 꽃 시리즈 우표가 새로 들어왔다 요즘 꽃들은 향기가 없어 주소 찾기 힘들다지만 너는 알지? 우리 꿀벌 통신들 언제나 부지런하다는 걸   혹시 너와 나 사이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다 하더라도 이 세계의 서사는 죽지 않으리라 믿는다 미래로 우리를 태우고 갈 꽃마차는 끝없이 갈라져 나가다가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와 같은 나팔꽃 이야기일 테니까   올부터 우리는 그리운 옛 꽃씨를 모으는 중이다 보내는 주소는, 조그만 종이봉투 나팔꽃 사서함 우리 동네 꽃동네 나팔꽃 우체국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된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질을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해발 680m의 굴뚝새 심은섭   면사무소에서 4㎞ 더 지나 우편번호 233-872에 살던 굴뚝새는 사내 굴뚝새를 산 14번지에 묻어 두고 경적소리와 높은 빌딩들이 난무하는 우편번호 100-866 69층 아랫목에서 무-말랭이가 되어 간다 우체국에서 지어준 100-866의 우편번호를 문패에 문신처럼 새겨놓고 살지만 산 14번지 바람소리 전해줄 우편배달부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지가 오래다 몇 날을 견딜 수 있는 수분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해발 680m에 살던 굴뚝새를 굴뚝새의 굴뚝새들이 바라보며 쌀독에 파랑주의보가 내려 호미자루를 놓지 못하던 날들과 냉수에 간장을 섞어 헛배 채우며 새우잠 자던 날도 미납된 등록금 영수증 머리맡에 두고 밤새워 신열을 내던 일들을 떠올린다. 절구공이에 짓이겨진 그녀의 가슴에는 슬픈 보석 몇 개 박혀 있다 두어 개의 천둥소리 하얀 달 몇 개와 서너 개의 태풍 그리고 몇 밤에 내린 무서리에 말라진 몸, 더 말려야 천국의 층계만이라도 가볍게 오르려는 듯 남아 있는 그들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안다 점점 더 멀어진 눈과 눈 사이의 간격 문 밖까지 나온 기침소리가 폐경을 맞는다 우편번호 없는 묘비를 들고 오후 내내 창 밖에서 서성이던 검은 도포를 입은 바람이 조등弔燈을 든 굴뚝새들의 포효를 뿌리치며 반송되지 않을 정량定量의 화석을 목관 속에 편히 눕힌다       우산을 쓰다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선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함피 우체국 심창만   우체국 앞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네 사원을 거니는 소에게 우표를 붙일 수 없네 꽝꽝 고무 스탬프도 찍을 수 없네 그건 함피의 소에게 너무 놀랄 일이네 소가 기웃거리기에도 너무 작은 함피 우체국 되레 소를 따라가 버릴지도 모르네 무수한 돌들의 뒤꿈치와 원색의 염료들 그대에게 부쳐갈 우표를 나는 모르네 하루 한 번 해와 달과 우체부가 쇠똥 사이로 지나가고 늙은 寺院이 오래오래 제 그림를 거둘 때 탑이 된 우체통 앞으로 앞발 뒷발 번갈아 지우며 소들이 지나가네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들..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 할 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체국은 멀수록 좋다 안효희   누런 서류봉투 하나만큼의 하늘을 이고 천천히 걸어서 간다 비를 피해 가슴에 꼭 끌어안은 시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묻은 지문과 고통 새기며 상처의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우산 하나 받쳐 준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얘기, 밤마다 꿈으로 떠오르고 꿈속에서 살아난 깨알 같은 글자들 다시 끄집어낸다   마음도 젖어 있는 날 사랑이 익기를 기다리는 붉은 우체통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고 등기 속달의 바코드 앞에서 쭈뻣거리는 이름, 또 다른 내가 훨훨 날아간다 누군가의 곁, 잠시 섰다가 이내 잊혀질 붉게 물든 이름   수줍은 사랑을 위해 우체국은 멀수록 좋다       남원 가는 길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꽃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 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계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상점에서 쌀 한 봉지하고 비름나물 한 묶음 사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같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당신 더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 허탕을 친 당신 한 번 더 차를 타고 나 사는 곳으로 찾아오게 하고 싶은 마음 지금 나 그런 마음 아닐까 몰라 임실에서 남원 가는 길.       마음 우체국 양재건   마을 속 교회 길 지나 불교 포교원 거쳐 성당 가는 길로 난 숲길 오르면 마음 밭에 아담한 우체국 하나 하늘이 내려앉은 듯 흐린 날 마음 울적해지면 가슴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무거운 마음 조각들 떼어내어선 광주리에 하나 가득 담아 우체국으로 향하네   숲길 지나 산 속 개울가 흐르는 물줄기 만나니 흐린 마음 있으면 조금 떼다가 제 흐르는 몸 속으로 흘러 보내라하네 숲 속 뛰어다니던 청설모들과 나뭇가지 사이 날아다니던 까치들도 길을 막고선 흐린 마음 있으면 도와줄 테니 몇 조각 떼어놓고 가라하네   비에 묻혀온 바람으로 솔 향내가 얼굴을 스치고 숲의 흔들림 소리 실로폰 소리같이 마음을 맑게 해주는 우체국엔 마음씨 곱게 생긴 아가씨가 정답게 맞아주며 수신 처를 물어 대한민국 “내 마음”시 “정답게”군 “받아줄”면 “고운님” 이라고 말하니 방끗 웃음 띄우네   하늘이 내려앉은 듯 흐린 날 우체국 앞에 퍼질러 앉아 무거운 마음 내려놓으니 맑은 날 햇살 가득 푸른 하늘 보다 오히려 가슴 후련하고 마음 밭에 우체국 하나 두고 있어 흐린 날에도 무거운 마음 전혀 두렵지 않으니          시집보내다  오탁번   새 시집을 내고 나면 시집 발송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속 표지에 아무개 님 청람(淸覽), 혜존(惠存), 혜감(惠鑑), 소납(笑納) 반듯하게 쓰고 서명을 한다 주소와 우편번호 일일이 찾아 쓰고 튼튼하게 테이프로 봉해서 길 건너 우체국까지 내 영혼을 안고 간다 시집 한 권 정가 8000원, 우표값 840원, ×200권, 300권...... 외로운 내 영혼을 떠나보낸다   십 년 전 《벙어리장갑》을 냈을 때 - 벙어리장갑 받았어요 시집 잘 받았다는 메시지가 꽤 왔다 어? 내가 언제 벙어리장갑도 사 줬나?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 끼고 옥수수수염빛 입김 호호 불면서 내게로 막 뛰어오는 아가씨와 첫사랑에 빠진 듯 환하게 웃었다   오 년 전《손님》을 냈을 때 - 손님 받았어요 시집 받은 이들이 더러더러 메시지를 보냈다 그럴 때면 내 머릿속에 야릇한 서사적 무대가 흐린 외등 불빛에 아련히 떠올랐다 서울역 앞 무허가 여인숙에서 빨간 나일론 양말에 월남치마 입고 맨 허리 살짝 드러낸 아가씨가 팥국수빛 입술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가씨 몇 데리고 몸장사하는 포주가 된 듯 나는 빙긋 웃었다    지난가을《우리 동네》를 내고 많은 시인들에게 시집을 발송했는데 시집 받았다는 메시지가 가물에 콩 나듯 온다 - 우리 동네 받았어요 어? 내가 언제 우리 동네를 몽땅 사 줬나? 줄잡아 몇 만평도 넘을 텐데 무슨 돈으로 그 넓은 땅을 다 사줬을까 기획부동산 브로커가 된 듯 나는 괜히 우쭐해지다가도 영혼을 팔아 부동산을 산 못난 졸부의 비애에 젖는다   수백 권 넘게 시집을 발송하다 보면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 통 헷갈려서 보낸 이에게 또 보내고 꼭 보내야 할 이에게는 안 보내기도 한다 - 손현숙 시집 보냈나? 난감해진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박수현 시인이 말참견을 한다 - 선생님이 정말 시집보냈어요? 그럼 진짜 숨겨 논 딸 맞네요 뒤죽박죽이 된 나는 또 중얼거린다 - 김지헌 시집 보냈나? - 서석화 시집 보냈나? - 홍정순 시집 보냈나? 마침내 이 세상 모든 여류시인이 시집을 갔는지 안 갔는지 죄다 아리송해지는 깊은 가을 해거름 내 영혼마저 흐리게 이울고 있다       풀꽃 편지 유경환   내 편지는 지금쯤 어딜 가고 있을까   낯선 우체부 고마운 마음 같은 큰 가방 속에 있을까   아니, 아직 시원한 들판을 기차 타고 달리고 있을까   아니, 겨우 우리 마을 우체국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부친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갈피 속의 풀꽃 시들었을까.       춘설  유금옥   이 고장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봄도 치우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 요양 온 나는 그리움을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대관령 산비탈 작은 오두막 여기서 내려다보면, 눈 내린 마을이 하얀 도화지 한 장 같습니다 낡은 함석집들의 테두리와 우체국 마당의 자전거가 스케치 연필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3월, 겨울이 긴 이 고장에서는 폭설이 자주 내리지만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여름도 가을도 치운 적이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도시처럼 눈을 포클레인으로 밀어내지 않습니다 다만, 담뱃가게와 우체국 가는 길을 몇 삽 밀쳐놓았을 뿐입니다 나도 山만한 그대를 몇 삽 밀쳐놓았을 뿐입니다   山 아래 조그만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면사무소 뒷마당,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포클레인 한 대가 보입니다 지지난해 들여놓은 녹슨 추억도 이 고장에서는 치우지 않고 그냥 삽니다       저녁에 스님이 스쳐갔다 유종인   셔터가 내려진 우체국 앞에서 괜히 우물쭈물하였다 이 우물쭈물의 시간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몇 개의 바람떡을 빚으셨을까 이 우물쭈물을 어디 당신만 아는 곳에다 몰래 파묻어두었다 패랭이꽃이라도 피우고픈 저녁인데   못 먹는 떡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저물녘 우물쭈물 고르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나도 참 내가 맘에 안 차서 저녁바람 속에 섰는데 문득 젊은 스님이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의 빗장을 담담히 열고 나가는 잘 빚어진 스님 옆모습만 나도 옆구리로 보고 있는데   어이 도반道伴! 그래도 요기는 좀 하고 가시게 짐짓 까까머리 불러 세워, 어느 절에 묵느냐 묻고 싶은 저녁인데, 그것도 내 속에만 우물쭈물 빚어지다 마는 겨를인데 마침 내 인기척도 모른 체 지나던 개가 붉은 우체통에 놀라 흠칫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곤 못 본 척 마저 길을 가는 저녁인데   저녁 한 끼를 못 넘어서는 맘이여 깨우치러 가지 않아도 깨우치러 오는 배고픔이 속가의 어머니 이름처럼 불 켜지는 식당 간판들이여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도솔천 밑 우체국 유홍준   눈구멍이 석 자나 들어간 사람이라야 보이는 도솔천, 머리카락이 떡덩어리가 된 사람만이 찾아내는 도솔천 밑 우체국 검정 누비바지에 털신 신은 사람이 마른 목구멍에 삼키는 침처럼 빨간 우체통 속으로 유서를 밀어 넣으면 관상 나쁜 미간처럼 좁은 포구 밖으로 또 무엇을 잡겠다고 고깃배는 떠나 아낙들은 말없이 동태 배를 훑는다 제 배를 제가 훑을 때 더 깊어지는 겨울 동구밖 언덕은 암 덩어리처럼 더 불거져 나오고 암, 암, 자꾸 나무를 옮겨 앉는 까마귀 어김없이 죽으려 돌아온 연어의 자취마저 사라지고 죽음이 구경거리였던, 죽음이 즐거움이었던 죽음이 뚝 끓겨 도솔천 푸른 시내 굽이쳐 흐르고 골짝 깊은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으면 커다란 땅거미 한 마리, 도솔천을 덮는다 덮쳐버린다       폭설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때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바람개비 별 4 — 마음의 귀 이가림   바람구두를 신고 굴렁쇠를 굴리는 사나이 늘 마음의 귀 쏠리는 곳 그 우체국 앞 플라타너스 아래로 달려가노라면, 무심코 성냥 한 개비 불붙이고 있노라면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마중 나오듯 그렇게 그대의 신발 끄는 소리……   저 포산包山 남쪽에 사는 관기觀機가 불현듯 도성道成을 보고 싶어 하면 그 간절함 바람으로 불어 가 산등성이 떡갈나무들 북쪽으로 휘이고 도성 또한 관기를 보고 싶어 하면   그 기다림 바람으로 불어 가 산등성이 상수리나무들이 남쪽으로 휘이는 것 옛적에 벌써 우리 서로 보았는가   내가 보내는 세찬 기별에 그대 사는 집의 처마 끝이나 그 여린 창문이 마구 흔들리는 뜨거운 연통관連通管이 분명 뚫려 있어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달려가는 내 눈먼 굴렁쇠여!       가을 우체국 이기철   외롭지 않으려고 길들은 우체국을 세워놓았다 누군가가 배달해 놓은 가을이 우체국 앞에 머물 때 사람들은 저마다 수신인이 되어 가을을 받는다 우체국에 쌓이는 가을 엽서 머묾이 아름다운 발목들 은행나무 노란 그늘이 우체국을 물들이고 더운 마음에 굽혀 노랗거나 붉어진 시간들 춥지 않으려고 우체통이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우체통마다 나비처럼 떨어지는 엽서들 지상의 가장 더운 어휘들이 살을 맞댄다 가을의 말이 은행잎처럼 쌓이는 가을엽서에는 주소가 없다       동피랑에 오면 이동훈    동피랑에 오면 통영이 보인다.    강구안을 내려다볼 것 같으면 서귀포 앞바다와 남덕이 그리운 이중섭의 봉두난발이 보이고.    항구에 철선이 닿을 때면 오르내리는 손님과 화물을 좇는 김춘수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이고.    서문고개와 세병관 사이 아버지 집을 멀찍이 돌아서 지나는 박경리의 가여운 자존심이 보이고.    길 건너 이층집을 보며 중앙우체국에 편지 부치러 가는 유치환의 은은한 연애가 보이고.    명정동의 난이를 잊지 못해 술에 취해 시장 거리를 헤매는 백석의 닿을 데 없는 유랑이 보이고.    통영에 오지 못하고 통영의 멸치와 흙 한 줌에 울었다는 윤이상의 서러움이 보이고.    벽마다 꽃 피는 동피랑에 오면 중섭과 중섭의 사랑이 통영과 통영의 사람이 다 보인다.       풀 2 이명윤    1 풀 한 포기 보도블록 틈새 비집고 설레설레 고개를 든다 봄이 왔다고 한 소식 전하신다 들은 척 만 척 구두가 밟고 지나간다 납작해진 풀의 모습이 꼭 한 마디 욕설 같았다     2 노점상 일제단속 후 거리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리어카는 파란 천막으로 덮여 있었고 누군가 그날의 소란이 새지 않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빨리안치워모못한다이눔들아챙그라앙어어이아줌마 가미쳤나저리안비켜어억어딜물어이런씨팔년이저리 비켜아악우리가튼사람은우에살라꼬야야야빨리뿌셔 어억헉이개새끼드라아차라리나알죽여라아아아아악)     3 비 그치고 우체국 가는 길 우연히도 다시 그를 보았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물기를 털며 허리를 편다 길가 고인 빗물 속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 입가에 피어있는 웃음꽃이 고왔다 이제 막 무언가 배운 초등학생처럼 도로변의 웃음들이 밟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봄은 모든 곳에서 피어날 권리가 있다 모든 숨소리는 그 스스로 존엄하다       아무것도 아닌 편지  이병률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가 배달되었네 면회를 와달라는 어느 감옥에서 보낸 편지 봉투엔 받는 이의 이름만 다를 뿐 버젓이 내 집 주소가 적혀 있었네   오래 책상 위에 올려둔 알지 못하는 이의 편지 화분이 편지봉투 위로 마른 꽃잎들을 한 웅큼 쏟아놓은 어느 날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였네 이 편지를 되받는 이는 누구인가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어서 들판이나 강가에서도 물살처럼 또 어느 먼 곳에서도 터벅터벅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일런가 며칠 뒤 편지는 나에게로 되돌아왔네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며 마음에서 꺼낸 못으로 집 한 채라도 지어올리기를 바라자며 내 감옥의 자물쇠들을 흔들어보네   과도한 세상이 다시 그를 결박하지 않기를 그가 더 이상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우체국이 없는 나라 이복현   우체국이 없는 나라 난 지금 우체국이 없는 나라로 편지를 쓴다. 아직 아프게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무백(無白)의 흰 벌판에 가슴으로 쓰는 글 엊저녁, 눈이 내린 다음으로도 빈 가지를 울리던 높바람은 여전히 흐느끼는 갈대의 울음소리로 가슴에 남아 잿빛 하늘을 흔든다 찢어진 채 펄럭이는 깃발은 수평선을 향하여 고개 들고 일어서고 나는 항구를 찾아가는 표류선과도 같이 그대의 가슴을 찾아간다 이런 날, 닿지 않는 편지를 쓴다는 건 몹시도 서글픈 일이다 기대할 수 없는 답신의 편지는 슬프다 밤 새워 읽히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건, 우체국이 없는 나라로 편지를 띄운다는 건.       푸른 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가도 또, 눌차만에 오시거든 이민아   꽃잎이 우표처럼 흩날리는 날 계절의 선창이 마음을 흔들어놓을 때가 있지요 가덕도 선창에 서면 꼭 그런 마음 들킨 듯 유행가도 한 소절 그립고, 추억은 파랑치지요 가덕도 등대가 목덜미처럼 내려놓은 둘레길 따라 동선새바지 느루 걸어 항월고개에 닿으면 정거마을 골목도 환했지요, 달 보는 봄밤이 먼데서도 그리운 이유를 여기 와서 알았지요     눌차만에 차오르는 겹진 파도는 추억의 밑줄 서로 다른 생의 길목을 향하던 정거장 아래로 밀물처럼 당신과 내가 누차 당도했었다는 걸, 바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억의 찬장을 열다 들킨 척 가만히 글썽이곤 하는 거지요   천가동 우체국에 발길이 머무는 것도, 그늘의 유랑을 오래 지켜보는 가덕도 등대에 회복의 탄성처럼 불이 밝아오는 순간을 보는 것도, 눌차만이 태풍 후 연잎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같아서지요 바로 당신이, 하늘의 둘레를 걸어온 사람들이 만월이 차오르도록 걷고 걸어 돌아와 웃는 까닭이지요 가도 또, 가덕도 눌차만에 오시거든, 그것 때문이지요       아침의 창원우체국 이상옥    출근길 등기우편 찾으러 아침 우체국에 들르다 수위실 젊은 아저씨 참 친절하다 전화로 금방 내 앞에 푸른 웃음 머금은 청년 하나 하늘에서 금방 떨어진 것처럼 불러 세운다 푸른 걸음 따라 오른 이층의 부산한 집배원들 손놀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우편물을 챙겨 담거나 하나같이 등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다 저마다 “즐거운 편지”를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한 걸음 먼저 닿게 하려고 … 아, 日常이 주름 접힐 즈음 아침의 창원우체국으로 가서 당신이 아직 찾지 않은 등기로 배달된 희망 하나 찾으러 가도 좋다.       겨울 우체통 이상현    모두들 그냥 지나갑니다 바람도 사람들을 따라 그냥 지나갑니다 온종일 추워서 빨갛게 떨고 있는 겨울 우체국 오늘도 해 지도록 편지를 부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날마다 텅 비어 있는 우리 동네 우체국 우편 배달 아저씨도 빈 손으로 그냥 돌아갑니다 빈 걸음으로 쓸쓸하게 돌아갑니다.       우체국 아가씨 이생진   우체국 가면서 생각했다 꼭 연인네 가는 것 같다고 가다가 개울을 건너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마시며 생각했다 꼭 연인네 집 앞에 온 것 같다고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난롯가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서서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냐고 묻지도 않고 일부인을 꽝꽝 내리친다 봉투가 으스러져 속살이 멍드는 줄도 모르고 꽉꽉 내리칠 때 내 손가락이 바르르 떨었다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1974 이시영   항구 남쪽에서도 귀신이 나왔다고 한다 해안통 쪽에서 나타나 시내 복판으로 들어가는 더벅머리 셋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향하여 무슨 말을 중얼거리다가 볼일이 있다고 재빨리 사라졌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없다   光州에서도 대낮에 여우가 나왔다고 한다 온몸에 불을 켜고 충장로를 달리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여우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빠져 달아나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소리낸 사람은 없다   永登浦에서도 여자 둘이 나왔다고 한다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새벽 철둑길에서 여자 둘을 본 여자들은 집에 와 문을 걸어닫고 사흘 낮밤을 숨어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은 없다   龍山우체국 옆길에서도 붕대를 감은 대머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어깨들을 끼고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제끼며 돌아갔는데 아무도 그들을 기다린 사람은 없다 삼각지를 따라 부른 용산 술꾼들은 땅을 치며 하룻밤을 새우고 왔는데 이튿날부터 술을 끊었다고 술꾼 중의 1인이 쉬쉬하며 내게 전해왔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클랙슨을 누른다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을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 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쏙독새에게 부치다 이영식   동네 간이우체국에서 시집을 부쳤네 등기도 속달도 아니요 야생화 그려진 우표 두 장 붙여 빨간 우편함에 밀어 넣었다네 내 시집이, 시집가는 곳은 해남 땅끝마을 후박나무가 있는 집 나무늘보 걸음처럼 느릿느릿 내 노래는 해거름 바닷가에 닿겠지 저 아무개 님은 첫날밤 옷고름 풀 듯 내 첫 시집을 펼칠 것인데 기다리던 안부, 알싸한 향기는 무슨 책갈피마다 생의 비린내만 진동할 테지 쏙독쏙독- 어둠 썰어놓는 쏙독새 울음소리와 함께 시의 행간을 더듬어갈 사람 그럴수록 내 노래는 속내를 감추고 후박나무 그늘 속으로 잦아들 것인데 애인아, 땅끝이라는 지상의 주소만큼 막막함 끝에 닿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별정우체국 먼지 낀 창가에 서서 내 가슴에도 꽃잎 우표 몇 장 눌러 붙이고 바닷가 사서함 어디쯤 쏙독새 울음 쪽으로 귀를 기울여보네       마지막 편지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2 이영춘   토요일 오후 그대에게로 가는 마지막 편지를 부치러 간다. 집시의 샹송 같은 우울을 접어서 우울 속에 흐르는 눈물을 접어서 그대에게로 가는 마지막 편지를 부치러 간다 텅 빈 우체국, 우체통 속에 내 마지막 언어를 구겨 넣고 돌아서는 토요일 오후 하늘 지붕은 낮게 내려 앉고 그래도 남은 말, 못다 쓴 어휘 하나씩 골라 생각 밖으로 내 던지며 절망과 슬픔을 앞 세우고 나는 빈집으로 돌아온다.       안개중독자 이외수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은 매몰되어 있을까   길 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 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서른 부근 이은림   초등학교 동창녀석에게 미뤘던 답장을 쓰고 도서관을 나선다 뻑뻑한 회전문 밀치고 몇 개의 계단을 딛고, 우체통에 편지를 찔러 넣는다 횡단보도를 절반쯤 건넜을 때 느닷없이 쏟아지는 진눈깨비 어쨌거나 첫눈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발자국이 느리게 몸에서 빠져나간다 보증금 500만원 월  20만원짜리 반지하 자취방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천주교이문성당 성인용품점 뷰티러브 영원산부인과 삼일여관을 지나고 푸른피아노 제일은행 동문부동산을 스친다 터진 진주목걸이의 알맹이처럼 진눈깨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다 앞서 가던 길이 힘겹게 커브를 튼다 人道 끝에 겨우 몸을 얹은 플라타너스가 몇 장의 이파리를 놓친다 굼뜬 발자국들 옆으로 자매식당 모닝글로리 LG25가 비켜선다 어느새 발끝은 집 근처  명성빌딩 앞에서 멎는다 4층짜리 명성빌딩 1층 상가 경원가전재활용품센터 앞에는 설치미술품처럼 넣여진 낡은 가전용품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거세지는 진눈깨비가 비늘처럼 덮이기 시작한다 딱딱한 빛 내뿜는 비늘더미들 기억 저편에서 오래된 광고필름이 차르르차르르 돌아간다 금성김치 냉장고,  대우세탁기 예예, 삼성 크린 가스렌지… 늘어진 전선들은 자궁 떠난 탯줄처럼 꼼짝 않는다 가로등이 弔燈마냥 우울하게 흔들린다 진눈깨비 점점 더 거세진다 급한 사선을 그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얼어붙은 그림자 위에도 진눈깨비 박힌다   동수원 우체국 63-507호라는 주소를 가진 동창녀석 벌써 3년 가까이 복역 중이다 녀석에게 한번도 罪名 물은 적 없다  드문드문 보내는 답장마다 서른이 가까워졌다는 말만 습관처럼 내뱉을 뿐 서른서른서른… 중얼거릴 때마다 울컥울컥 끓어 넘치는 설움 그래서 요즘 자주 화상을 입는다 화상연고처럼 차가운 진눈깨비, 두 손으로 비벼본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큼직한 숫자를 새긴 버스들 월계 상계 우이동으로 허둥지둥 달려간다 종점인지 시발점인지 알 수 없는,       우체국  이재무   우체국 옆 지날 때면 다 풀지 못한 밀린 숙제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 불쑥 솟아나 발걸음 앞에 덫을 친다 마음의 서랍 속에는 부치지 못한 편지, 잘못 배달된 푸른 사연 몇 장 눈을 뜨고 내 가슴 읽고 간 기러기는 강바람 거슬러 날아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우체국 옆 지날 때면 몸 속의 소년 비 온 뒤 초록으로 일어서고 가슴의 처마 끝으로 늙지 않는 설렘의 물방울 듣는 소리 또렷하다       비 이정환   비가 왔다, 각시붓꽃 자욱한 서정의 안뜰 먼 데 우체국이 젖어 환히 붉은 그 아침 비는 내리어 우표가 잘 뜯겨졌다 어느 날엔가 내 안에 닿은 당신의 편지 소인 찍힌 자리, 잠시 눈빛 머물렀을 그 아침 울음에 싸인 먼 데 산을 보았다       바닷가 편지 이종암    바닷가 벼랑에 강단지게 서 있는 한 그루 해송은 우체국이다 파도와 바람의 공동 우체국   수평선, 지평선 너머의 소식들 푸른 솔가지 위로 왔다가 가네 영원한 定住는 없다는 걸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나는 예감하네   물 알갱이 하나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오고 가는 것 누가 여기 이 자리에 나를, 또 너를 비끄러매려 해도 소용없는 일임을 알겠네   소용없는 길 위에 서서 내가 본 만큼의 내용으로 그 빛으로 편지를 쓰네 봄날 흙 속으로 내려가 앉는 물의 걸음으로, 숨을 놓으며 쓰네       편지의 꿈 이하석   송전탑 아래서 에코나비고*의 유충을 줍는다. 예쁘다.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 옆에 두니 몇 번인가 허물을 벗은 다음 날개까지 난다. 어두운 구석에 알들을 슬어놓는다. 자주 날려보내고 쓸어낸다. 그러나 이미 바퀴벌레보다 더 교묘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그 기계충들이 점령했음을 안다.   편지를 꼭 우체국에 가서 부친다면, 이메일들을 저것들이 먼저 점검하고 소리의 색깔까지 씹어대는 게 기분 나쁘기 때문이리라, 나도 자주 핸드폰 밧데리를 뽑고 컴퓨터를 끈다. 그러나 그걸 끝내 버리지 못하니, 나도 그 기계충들에 사로잡힌 셈이다. 형형색색의 기계충들을 애완으로 기르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그런 내게 자주 연락두절을 투덜댄다. 그 투덜대는 소리의 전파를 야금야금 파먹는 기계충들의 이빨이 가지런하다.    *열 안테나 주위에 살며 송수신 전파를 먹고사는 기계충.       우체국 가는 길 이해인    세상은 편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하나 미루나무로 줄지어 서고 사랑의 말들이 백일홍 꽃밭으로 펼쳐지는 길   설레임 때문에 봉해지지 않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내가 뛰어가는 길   세상의 모든 슬픔 모든 기쁨을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작은 발로는 갈 수가 없어 넓은 날개를 달고 사랑을 나르는 편지 천사가 되고 싶네, 나는 *       우체국에서  이향아     우표를 산다. 11월 해풍에 엽서를 쓴다 아슬한 고향의 열차를 타듯   저 창구에는 숱한 사람들이 뿌리고 간 세세한 통사정 내가 또 두고 갈 쓸쓸한 고백   우주의 귀퉁이 협소한 주소에 당신은 내가 아는 땅 위의 한 사람   벌거벗은 목숨 곤곤한 물살을 순수의 바가지로 길어 올려서 떠나 보내야지, 속죄하듯 풀어서 전해야지   오늘도 흐린 날씨 자욱한 먼지 속에 창천에 파묻힐라 매운 눈물 한 방울       당일 택배 이희숙   별난 음식 차리면 자식 생각 목에 걸려 아침시간 우체국엔 발길이 분주하다 겹겹이 에두른 상자 아이스팩 다 녹을까   성인병 불러들인 빨간불 켜진 식탁 간편한 인스턴트 그 맛에 길들여질까 어미 정 녹아든 반찬 애면글면 보낸다.       폐허주의자의 꿈 장석주   1. 술취한 저녁마다 몰래 春畵(춘화)를 보듯 세상을 본다.   내 감각속에 킬킬거리며 뜬소문처럼 눈뜨는 이 세상, 명륜동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도보로 십분 쯤 되는 거리의 모든 밝음과 어두움.   우체국과 문방구와 약국과 높은 육교와 古家(고가)의 지붕 위로 참외처럼 잘 익은 노란 달이 뜨고 보이다가 때로 안 보이는 이 세상.   뜨거운 머리로 부딪치는 없는 壁(벽), 혹은 있는 고통의 形象(형상). 깨진 머리에서 물이 흐르고 나는 괴롭고, 그것은 진실이다.   2. 날이 어둡다. 구름에 갇힌 해, 겨울비가 뿌리고 웅크려 잠든 누이여.   불빛에 비켜서 있는 어둠의 일부, 희망의 감옥 속을 빠져나오는 연기의 일부, 그 사이에 풍경으로 피어 있던 너는 어둡게 어둡게 미쳐가고   참혹해라,   어두운 날 네가 품었던 희망. 문득 녹슨 면도날로 동맥을 긋고 붉은 꽃피는 손목 들어 보였을 때, 나는 네가 키우는 괴로움은 보지 못하고   그걸 가린 환한 웃음만 보았지. 너는 아름다운 미혼이고 네 입가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미소.   열리지 않는 자물쇠에서 발견하는 생의 침묵의 한 부분, 갑자기 침묵하는 이 세상 비가 뿌리고, 비 젖어 붉은 녹물 땀처럼 흘리고 서 있는 이 세상 가다가 돌아서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3. 무너진 것은 무너지지 않은 것의 꿈인가?   어둠은 산비탈의 아파트 불빛들을 완벽하게 껴안음으로 어둠다와진다.   살아 떠도는 내 몸 어느 구석인가 몇 번의 투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몇 마리 기생충, 그것이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것인가?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구석에 팽개쳐져 녹슬고 있는 기계, 이 세상에 꿈은 있는가? 녹물 흘러 내린 좁은 땅바닥에 신기하게도 돋고 있는 초록의 풀을 폐기처분된 기계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체국 가는 길 전다형   봉투의 주둥이를 입으로 훅 분다 추신으로 눈이 새까만 채송화 꽃씨를 함께 넣는다 만삭의 봉투가 뒤뚱, 봄 벚꽃길 열고 네거리 우체국 간다  나냐너녀 노뇨누뉴 왕벚꽃 말문 트는 돌담을 따라 시옷이응 지지배배 초등학교 담장을 지나 두근두근 사랑의 능선을 돌아 붉은 우체통 기다리는 소박한 우체국으로 들어선다     앉은뱅이저울이 벌떡 일어나 눈이 까만 채송화 꽃씨를 안아 올린다 그립다 사랑한다 씨알 굵은 고백은 아껴두고 사랑의 변죽만 울렸던가 꽃대궁에 올라앉은 잠자리가 부드러운 날개를 사뿐 접는다 날아가듯 저울 눈금이 요동친다 꽃씨가 꽃대의 거리를 재는지 발가락이 허공을 툭툭 찬다 발뼘을 잰다 봉함엽서 봉투의 솔기가 자꾸 터진다          휘파람새 한 마리 푸드덕 붉은 마음을 물고 날아간 그곳, 추신으로 넣은 채송화 꽃씨가 속닥속닥 꽃말을 터뜨린다 하얀 치아를 활짝 드러내고 깔깔 쏟아놓을 비단길, 중년의 아낙이 연초록 설레임을 펼쳐 읽는다 그곳에는 활짝! 만개한 주름들도 다 핀다 화들짝 눈부시게 펼쳐낸다       가을 우체국에서 정문규    지금까지 받은 사랑의 선물 다시 돌려드립니다   너무나 많이 받아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단풍잎 제 마음도 함께 부칩니다   그 동안 다정했던 봄과 여름도 고마웠습니다    답장은 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하얀 겨울로 가는 망각의 열차를 탔거든요   안-녕-히-계-세-요       우체국이 헐리다 정선호   오래된 우체국을 인부들 허물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동네 입구에 서서 제비들 세상과 교신을 맡아 수없이 날아다니던 곳, 이젠 수명 다하여 재건축 위해 그동안 받고 보냈던 편지만큼의 먼지 날리며 허물어지고 있다   제비들이 떨어지는 먼지들 물고 지구를 떠나 달을 향해 간다 달에서 먼지 긁어모아 화성과 목성, 그보다 멀리 있는 별들과 지구와의 교신을 위해 계수나무 옆 공터에 우체국을 짓고 있다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누구나 편지를 적을 펜 만들기고 하고 편지를 보낼 초고속 우주선 만들고 있다 또 과거 우주인들 지구인들에게 편지 보낼 수 있게 타임머신 만들고 있다   그대 몇 달 후에 뜬 달을 자세히 보라 계수나무 옆 우체국 한 채 보일 것이며 수많은 편지들 그대 머리 위로 밤마다 우수수 쏟아질 거다       청산우체국 가는 길  정유화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둔사 입구에 있는 불두화 꽃나무는 어느 새 제멋대로 꽃을 달고 불경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지 성깔대로 사다리도 없이 벽을 오르며 이웃집 창문 안을 염탐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담벽은 등이 굽어질까 봐 꿈틀거리고 있고요. 앉아 있던 풀잎들이 오금이 저리다고 제멋대로 일어서서 리듬체조를 하니까,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투정하는 버드나무는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겠다고 기어코 허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떤 바위는 마냥 누워 있었더니 엉덩이가 짓물렀다고 하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달라고까지 합니다. 황금새는 계곡 구석구석에 황금소리를 깔면서 제멋대로 마음에 드는 나무들의 품속만을 골라 다니고 있지요. 이제 그들의 반란을 통제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들을 불러모아 살게 하던 내 문장 속의 살림살이가 거의 바닥이 났거든요. 사실 그들을 기르기 위해 내 품속에 아껴두었던 지난 봄의 햇살과 바람 가을 저녁놀 계곡의 함박눈까지 거의 다 뿌려주고 말았거든요. 또한 그 동안 내가 이름을 붙여주고 물을 주고 잠을 재워주었던 언어의 손길이 그들에게는 감옥처럼 생각되었나 봅니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 듯 심지어 벼를 가꾸어 온 그 여자조차 떠나려는 눈치입니다. 시를 아껴먹던 그 여자.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청산우체국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곳에 칩거하면서, 그들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는 새로운 문장을 짓기 위해.       우체국 앞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정윤천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을 가진 사람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구라도 한 사람을 기다려본 기억이 없는 사람의 인생의 무늬에는 어딘가 차이가 있을 것도 같았다.     모든 생의 바닥으로는 다른 빛깔의 그늘이 와서 깔리고, 모든 생의 그 그늘들은 다른 방식으로 스러지기도 할 것 같았다.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등에 대고서라도, 이제라도 `그’를 한번 기다리며 서 있어보라고,   가만히 말을 건네주고 싶었던 가을날이 있었다.       여름편지  정일근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바다로 가는 푸른 신호를 기다리며 중앙동 플라타너스 잎새 위로 여름편지를 쓴다 지난 여름은 찬란하였다 추억은 소금에 절여 싱싱하게 되살아나고 먼 바다 더 먼 섬들이 푸른 잎맥을 타고 떠오른다 그리운 바다는 오늘도 만조이리라 그리운 바다는 만조바다에 섬을 띄우고 밤이 오면 별빛 더욱 푸르리라 여름은 부산우체국 신호등을 건너 바다로 가고 있다 나도 바다로 돌아가 사유하리라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섬들을 풀어 주며 그리운 그대에게 파도 소리를 담아 편지를 쓰리라 이름 부르면 더욱 빛나는 7월의 바다가 그대 손금 위에 떠오를 때까지       律呂集 75 - 이름에 대하여 정진규   언제나 내 이름이 변함이 없는 것이 이무래도 오래전부터 수상하였으며 제일 괴로운 내 대목이었다 固有名詞라는 말로 나를 요약 정의할 수는 없다고 오래전부터 나는 확신해 왔다 내가 들여다 본 오늘 아침의 나만 하드래도 그렇다 어제 저녁의 내 우체통과 쇠뜨기 풀, 그 우체국과 그 쇠뜨기 풀에 대한 감성의 두께마저 달라진 내 이름을 자고나면 달라지는 내 이름을 똑같은 억양으로 부르고 쓴다는 것은 인간들의 무모한 약속이며 질서이며 구속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나는 알았다 다른 사물들, 자연들은 이미 탯줄 끊었을 그때부터 제 이름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이름들로 태어날 줄 알았던 것이다 응답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만 귀머거리였다 청맹과니였다 우체통은 내가 사랑의 화물선! 하고 부르면 네! 손 번쩍 들어 그렇다고 대답하였으며 쇠뜨기 풀도 내가 소도 잘 뜯지 않아 이름만이라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내 앞에 다가앉은 풀! 그렇게 부르면 네!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런 응답들로 모두 열려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넓다 내가 시를 쓰게 하였다 사람은 모두 빗장이 걸려 있다 사람! 불러 보시게 끝소리가 닫혀진 입시울 소리이며 풀! 불러 보시게 끝소리가 끝없이 울리는 울림소리 아니신가 열려 흐르는 물소리 아니신가       장승포 우체국 정호승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장승포항을 오가는 고깃배들끼리 서로 연애편지를 써서 부친다고 하기도 하고 장승포여객선터미널에 내리는 사람들마다 승선권 대신 연애편지 한 장 내민다고 하기도 하고 나도 장승포를 떠나기 전에 그대에게 몇 통의 연애편지를 부치고 돌아왔는데 그대 장승포우체통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보낸 내 연애의 편지는 잘 받아보셨는지 왜 평생 답장을 주시지 않는지 *       혜화동 우체국 아가씨 조병화   혜화동 우체국 아가씨들은 젊다 예쁘다, 명랑하다 여학생들 같다, 유니폼이 산뜻하다   농담으로 애인이 있습니까, 말을 걸면 결혼을 했습니다, 웃으며 아이도 있다고 수줍어 한다   웃는 얼굴이 유리창 햇살에 비쳐 혜화동이 환해진다   나의 우편물들은 어린 이 엄마 손에 가려져서 국내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온 세계로 가고, 온 세계에서 온다   우편물에 묻어, 오고, 가는 따뜻한 손의 향기,   오늘도 가고 오늘도 온다   부지런히, 정확히,       黑板 조정권   내가 걸어가고 있을 때, 비에 젖은 가로수가 발바닥을 말리며 햇빛 속으로 따라오고 있었어, 나는 갇혀 있는 5月의 우체국길을, 주머니에 가득한 햇살을 만지면서 걸었어, 그전에 내가 머문 時節에 못을 박았어. 햇살은 식어 있었어. 안소니 파킨스 얼굴이 지워져 있는 이 黑板, 그 벽까지 내가 먼지를 흘리고 돌아왔을 때, 내가 흘린 먼지들이 내 길을 따라 기어나오고, 누나 누나, 어디에서나 햇살은 식어 있었어, 이놈의 黑板, 젊음이 깨어진 얼굴을 그리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방에 들어가 울었어. 울면서 나는 들었어. 가로수의 소리침, 소리의 門 뒤에서 하얗게 지워지는 햇살들, 지워지면서 다시 흘러내리는 내 얼굴의 面角을 건져내면서, 나는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어.       눈의 여왕 진은영   그녀에게서 훔쳐온 것은 모두에게 어울린다 사물들은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다 부푼 보리씨가 자라고 청소용 트럭, 빨간 우체통 그리고 떠다니는 집들   자동차는 멈춰 있고 폐타이어들이 굴러다닌다, 내 애인의 유두처럼 까맣다   그런 아침 사람들은 칼날처럼 일찍 일어나 피 묻은 자줏빛 살덩이의 살해자를 찾으러 다닌다   바람에 묶인 흰 털들이 공중으로 도망친다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풍경   채필녀    우체국이 새로 생겼어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신호등은 없지만 무단횡단이 가능하죠 주.정차도 할 수 있어요 빨간 우체국을 한 백개쯤 붙여놓은 건물이에요 나는 엽서를 사러 들어갔어요 커다란 우체통 속으로 미끌어지듯이요 문을 여는 순간 꽝! 가슴에 스탬프가 찍혔어요 젊디 젊은 우체국장이 앉아있지 않겠어요? 어서 오세요! 샘 솟는 목소리, 그는 뱃속에 샘물이 있어요 책상이며 화분, 액자, 모든게 새거였고 휴지통엔 휴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온도 습도가 알맞아 동양난이 촉촉하게 피어있어요 나는 주소불명의 편지처럼 어리둥절했어요 젊은 우체국장이라니, 뜻 밖의 소포 같은, 축하의 전보 같은,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우체국에 오시지 않겠어요? 그대, 한장의 엽서가 되고 그리운 편지, 소중한 선물이 되어 어디든 속달로 날아갈 거에요 수취인 불명, 거부, 상실, 부치기 힘들 때, 어서 오세요! 젊은 우체국장과 물결과 바람이 새파란 빛살로 차오르겠지요? 너무 멀다구요? 밤에는 봄이 안 오나요?   (근처에 다른 구경거리 없냐구요? 있죠, 우체국에서 2분만 가면 대덕면사무소가 있는데 뜨락의 국화, 우표 전시장처럼 다양하고 벌떼들 잉잉거림, 관람객의 탄성이지요)       콘체르토  최하연   섬이 있다네, 교회가 있다네, 섬에는 우체국이 있고 좁은 길이 있고, 어둠 속에 숨은 달이 길의 끝을 자꾸만 늘이고 있다네, 바다는 끝내 수평선에 목을 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   뒤돌아보면 하나 이상의 하나가 자꾸만 따라온다네, 앞서 가지도 않으면서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섬의 하루는 달빛을 따라 바다로 간다네, 오늘은 만선이었고, 만선 직전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얼마나 더 가야, 그 섬에 닿을지, 얼마나 더 가야, 나는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볼 수 있는지, 누군가 모든 길들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있는데,   교회의 종탑은 순간 반짝인다네,        우체국  탁영환   손바닥 둘만한 행복 하나로 접어 규격봉투에 넣어 네게 부치마. 하늘로 넘나드는 마음 묶어 되도록 작게 여미어 싸 무게를 달면 그토록 엄청나던 무게 가장 작게 오그려 수취인 분명한 소포로 네게 부치마. 계절의 사태진 숲에서 아직도 집이 없어 눈물 어린 감정, 그러고 있거든 허공세계 돌아온 바람등에 실어 너만이 알아볼 듯 물들인 낙엽으로 그렇게 네게 띄우마.       독도 우체국 편부경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굽은 등이 걸어온 느린 걸음의 날들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강아지풀 억새와 뿌리로 만나 그 속삭임만으로 해가 뜨고  지다가 눈바람에 목 메이다가 돌아본들 망망해협을 서성이다가   고향이 없다던 뜨거운 별들 밤마다 신발을 벗던 등대 웅크린 꿈길 더듬어  심해의 기다림이 쌓은 독도 별정우체국   머지않았습니다 독도리 사람들 낯익은 목소리로 우체국마당을 쓸고 뭍으로 간 이웃 돌아와 주머니 속 깊은 술병 꺼내들 날이 쪽배 뒤척임 위에 갈매기 목청 선연할 때 이 번지 저 번지 모여앉아 목 메인 이야기로 물소리 지워질 오래된 수채화 같은 시골마을 풍경이   거기 우체통에 발걸음 잦을 날이       미치겠네 함성호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박살났네 며칠은 청구서가 배달되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도 우리집 경계석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네 미치겠네 경계석이 무너진다고 악을 써대도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 아내는 큰일났다 큰일났다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경계석 근처에서 안타까워 떠날 수 없네 미치겠네 바퀴는 너무 무거워 우리집 경계석이 버틸 수 없네 아무도 우체국에 맡긴 사연은 없는지 사람들은 불꽃에 귀를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굽고 있네 미치겠네 우리집 경계석은 모양도 좋고 높이도 적당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경계석도 박살났다네 미치겠네       비, 우체국 하순희   난 한 촉 벌고 있는 소액환 창구에서 얼어 터져 피가 나는 투박한 손을 본다. “이것 좀 대신 써 주소. 글을 씰 수 없어예” 꼬깃꼬깃 접혀진 세종대왕 얼굴 위로 검게 젖은 빗물이 고랑이 되어 흐른다 “애비는 그냥 저냥 잘 있다. 에미 말 잘 들어라.” 갯벌 매립 공사장, 왼종일 등짐을 져다 나르다 식은 빵 한 조각 콩나물 국밥 한 술 속으로 밤새운 만장의 그리움, 강물로 뒤척인다. 새우잠 자는 부러진 스치로품 사이에 철 이른 냉이꽃이 하얗게 피고 있다 울커덩 붉어지는 눈시울, 끝나지 않은 삶의 고리       첫눈 오는 날                          한연순   눈답지 않은 눈이 내린다 먼 먼 그리움처럼   우체국에서  마음을 부치고 돌아 나와   낙엽 위에 내려앉기도 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형체조차 희미한 기억을 따라간다   지친 어깨 위로 무거운 가방 위로 사뿐 사뿐히 눈답지 않은 눈이 내리는 것은   오호  하염없이 돌아가고 싶은 은빛 모래 바닷가   눈답지 않은 눈 첫사랑        우체국 이야기 홍윤숙   이제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부치는 노고도 필요 없어졌지만 전화나 팩스 같은 문명의 이기로 대개는 볼일을 보고 말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옛날처럼 편지나 시를 쓰면 그것들을 들고 골목을 지나 큰길을 건너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우체국 아가씨도 옛날처럼 상냥한 소녀는 아니어서 낯선 얼굴의 무표정한 눈총이 서먹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숨결이 그리워서 필요도 없는 말을 몇 마디 주고받으며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다 냇물 속에 떨어지는 잔돌 같은 작은 음향 그 소리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에 가슴 젖는다 날마다 무언가 변하여 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는 그 작은 감동이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차들이 질주하는 큰길을 건너서 옛날의 내 어머니 새 옷 갈아입고 나들이 가듯이 우체국에 간다 아, 거기 기다리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의 따스한 숨결       우체국을 가며 황규관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짓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시골 우체국 황동규    지도에서 막 사라지려는 權相老 현판의 절 하나 찾기 위해 소백산맥 남쪽 기슭을 오르내리다 잠시 전화 걸려고 들른 시골 우체국, 직원 하나가 하도 친절킬래 일부러 마음 내려놓고 편지를 쓴다. 오늘 날씨도 흐리려다 말았다. 모든 활엽수들이 입을 벌리고 서 있다. 시골 포장도로 끼고 흐르는 개울엔 물이 기어다닌 흔적도 없다. 그 직원이 입에 손 살짝 대었다 떼듯 부드럽고 단단한 미소 지은 우체국은 접시꽃으로 잘못 볼 뻔한 마음 芙蓉꽃과 잔 꽃들을 모아   넉넉한 꽃이삭을 만들고 있는 부처꽃으로 將嚴되어 있었고, 바람이 꽃 이파리만 가볍게 흔들었고, 매미가 삼중창으로 울었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단층 우체국이 그 자리에서 위로 떠오를 것 같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 직원과 우체국이 우주 영화 전광 속처럼 번쩍이며 사라지고 사방에 소백산맥에는 보이지 않던 雪山들이 소리없이 솟아올랐다       가려워진 등짝 황병승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 작년 이맘때는 失戀을 했는데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주었지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도 뛰어내려갔지 나는 골치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짜부야 짜부야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을 텐데!’ 소리치기도 귀찮아서 하늘이 절로 무너져 내렸으면 하고 바랐지 작년 이맘때에는 짜부도 나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시골집에 불쑥 찾아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했지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붉은 우체통 황지우   버즘나무 아래 붉은 우체통이 멍하니, 입 벌리고 서 있다 소식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思想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비록 그대가 폐인이 될지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겠노라 고 쓴 편지 한 통 없지만,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길가에서 안개꽃 한 묶음을 사는데 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뱃가죽에 타이어 조각을 대고 이쪽으로 기어서 온다    
354    <나그네> 시모음 댓글:  조회:4234  추천:1  2015-04-10
  + 나그네 교범  네 몸이 밀고 지나온 풍경이 조금  찌그러졌다 하여 마음 아파하지 말 것  지나친 그 자리에 금새 다시 채워질  허무에 대해 마음 쓸 일 없음에야  쥐어박히거나 사탕 받아 배워온 대로  지나쳐온 자취마저 고이 깎아  반듯이 해 놓을 것까지야....  이제 또 휘더듬어 가야할 시간들이  구겨질 데 대하여 미리 걱정하지 말 것  켜켜이 늘어선 거미줄 장막  맨 얼굴로 걷어가야 하는 네 팔자임에야  그래도 가끔은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랑 한자락 펴놓고 퍼질러 앉아  너 혼자만의 휴식을...  쉴 때 너만의 자리 없다면  그저 그냥 자그마한 몸놀림으로  옆에 괜한 사람 건드리지만 않게  눈물 훔칠 때도  세게 코 풀어버리지 말 것  허나 옆에 누구 없을 땐  둑 터진 홍수처럼이나  통곡하거나 박장대소해도 되느니  혼자 벙어리 울음 울어  네 몸 깎아먹지 말 것.  (손우석·시인) + 나그네  저도 모른다. 나그네는 걷다가 왜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지 모르고 길에서 쉰다. 모르고 올려다보는 저 정처(定處).  (문인수·시인, 1945-) + 나그네 지금처럼, 마냥  걷고 또 걷다가  진홍색 노을 지는  밋밋한 능선 아래  갈대꽃이 흐드러진  저곳에 묻히련다  아무도 모르게,  타는 가슴만 안고  (신석종·시인, 1958-) + 나그네 워낙 허술한 바닥이라  애당초 뿌리내리긴 힘들어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야  부귀영화에 눈멀어  오점(汚點) 찍고 가면서  알속 없는 봉분(封墳)만  그리 치장하는가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나그네   그렇고말고.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  이 지상에서의 일개 순례자말이다.  자네들이라고 해서  그 이상의 존재라 할 수 있을까? (괴테·독일 작가, 1749-1832) + 길을 찾는 나그네여  나그네여  그대가 가야 할  곳도 때도 모르며  안개 속 길섶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서성이는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것을  예부터 인간은  물으며 찾으며 그렇게 살아 왔느니  (이문호·조선족 시인) +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지금 있는 곳은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일 뿐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은  잠깐 지니고 있는 것일 뿐  때가 오면 다 두고 가기 때문이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나그네  산길 가다  산너머서 오는  나그네를 만나  어디서 오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않고  웃고만 있더라.  (이문조·시인)    + 나그네  길 너머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  가야 한다  나그네는 가는 것  길에서 죽는 것  길 너머  저편에  고향 없다  내 고향은  길  끝없는 하얀 길  길가에 한 송이  씀바귀  피었다.  (김지하·시인, 1941-) + 나그네·1  언제나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  반가이  맞아주면 그뿐  무엇을 더 원하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  개울 건너 산 넘고  휘파람을 불며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인적이 드문 곳에  발자취를 남기는  나그네.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 가을 나그네     어이 보여드려야 합니까  이 깊은 속내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 영롱한 속울음을  돌아서라, 돌아서라  하얗게 손 흔들어대  스산한 가슴 한 자락  여울목에 내려놓고  처연한 바람 됩니다  가을 나그네.  (강대실·시인) + 겨울 나그네  가슴이 텅 비었어요  마른 잎새 하나 달려 있는  겨울 나무처럼  칼날 바람에  하얀 눈발 날리는데  벌거벗은 나무에  걸린 초승 달  뼈다귀 앙상한  대추나무에 기대서서  눈물 글썽하게 한숨짓는  갈 길  아직도 먼  겨울 나그네 (김종익·시인) + 사랑 나그네  떠나야 할 눈물이 보일 때에는  머물지 말자.  슬픔과 기쁨이 마주할 때에도  망설이지 말자.  잊지 못하는 것은 잠시  미련은 그리운 사람의 몫이다.  보내지 못하는 사람의 아픔도  돌아보지 말고  연인의 서글픈 미소가 보일 때에도  홀연히 떠나자.  동트기 전 길을 떠나는 것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늘 마음을 비워두고  인연을 털고 떠나는 사랑의 눈길을  기다리지 말자.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나그네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인생의 질곡을 짊어지고  힘겹게 걷는 노인  굽은 등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 모습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  휘청거리는 몸  지팡이 하나에 의존한 채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종착역이 가까운 인생 나그네  본향에서 풀어놓을  이력의 보따리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김귀녀·시인, 1947- + 나그네 길     아직은  아니라고  준비도 안 했던 청춘인데             희로애락의 시간이  모두 멈추어 버리고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 걸치고  떠나버린 나그네             남은 건   가족들의 울음소리만  메아리로 돌아오고  결국. 화환 하나만  덩그러니 두고서 홀연히  떠나버린 나그네             한 세상 소풍  마치는 날엔  모두가 그리움으로만 남아             고운 추억  한 아름 안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길일세  (온기은·시인) +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내 그대의 나그네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내 다시 창을 열고 별을 헤어보리라 함박눈이 까맣게 하늘을 뒤엎어도 그대 하늘의 가슴속으로 나는 아직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알지 못하나 내 그대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정호승·시인, 1950-) + 나그네       나그네의 멋은 소재所在가 없다는 거  물결 따라 구름 따라  혹은 바람 따라 가면서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다는 거  내 고향은 요 너머 하면서도  한번도 고향에 들르지 않는 외로움  사람을 마주 보면 외로움이 부끄럽긴 하지만  나그네는 그 멋에 지나고 나서야 후회한다는 거  가는 길 오른쪽에 바다가 나왔다가  왼쪽으로 구부러져서 박달나무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저물면 동굴에 누워  시커먼 어둠에 싸여 갈 길이 막히더라도  나그네는 군소리 내지 않는다는 거  (이생진·시인, 1929-) + 나그네 조상 대대로 토지 없는 농사꾼이었다가 꼴머슴에서 상머슴까지 열 살 스무 살까지 남의 집 머슴살이였다가 한때는 또 뜬세상 구름이었다가 에헤라 바다에서 또 십 년 배 없는 뱃놈이었다가 도시의 굴뚝 청소부였다가 공장의 시다였다가 현장의 인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고향에 황토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나는 안다 그대 젊은 시절의 꿈을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니 보습 대일 서너 마지기 논배미였다 어기여차 노 저어 바다의 고기 낚으러 가자 통통배 한 척이었고 풍만한 가슴에 푸짐한 엉덩판 싸리울 너머 이웃집 처녀의 넉넉한 웃음이었다 그것으로 그대는 족했다 그것으로 그대는 행복했다 십 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선뜻 강 건너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고 바위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김남주·시인, 1946-1994)
353    명시인 - 디킨슨 댓글:  조회:4827  추천:0  2015-04-09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미국 시인   미국의 여성 시인.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에머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쓰는 일에 전념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처자가 있는 목사와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자 그녀의 시적 재능은 둑을 터뜨린 봇물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녀가 쓴 시 1775편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7편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자연과 사랑 외에도 퓨리터니즘을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운율에서나 문법에서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과 형이상학파적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상처난 사슴은 높이 뛴다〉 등이 있다.   주요저서 : 《전시집(全詩集)》(1855) 《전서간집 (全書簡集)》(1858)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셀랑 아랑곳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인생은-장전된 총     내 인생은 - 장전된 총으로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날   마침내 주인이 지나가다- 날 알아보고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왕의 숲을 헤매면서 사슴사냥을 하고 있다.   내가 주인 위해 말할 때마다- 산들이 당장 대답한다.     내가 미소지으면 힘찬 빛이 계곡에서 번쩍한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즐거움을 토해내는 듯하다.     밤이 되어 멋진 하루가 끝나면 나는 주인님 머리맡을 지킨다.   밤을 함께 보내다니 푹신한 오리 솜털 베개보다 더 좋다.     그분의 적에게- 나는 무서운 적이다. 내가 노란 총구를 겨누거나   엄지에 힘을 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그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죽는 힘은 없으므로-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야를 본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히드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느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오        
352    명시인 - 에머슨 댓글:  조회:4420  추천:0  2015-04-09
무엇이 성공인가                (미국)- 에머슨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This Is To Have Succeeded                -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that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콩코오드 송가                      - 에머슨 강 위에 걸친 조잡한 다리 옆에 그들의 기는 4월의 미풍 맞아 펼쳐졌도다. 여긴 예전에 무장한 농부들 진을 치고 온 세상 뒤흔든 총을 쏘았던 곳. 적군은 오래 전에 말없이 잠들고 승리자 또한 고이 잠들었노라. '시간'은 무너진 다리를 휩쓸고 내려가 캄캄한 강물 따라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조용한 강물 옆 푸른 방죽 위에 오늘 정성어린 비석을 세우노니 우리의 조상처럼 우리 자손이 저승으로 떠난  날에도 그들의 공적 기릴 수 있도록 그들 영웅들을 과감히 죽게 하고 그들의 자손을 자유롭게 한 정령이여, '시간'과 '자연'에 명하사 영웅들과 그대 위해 세우는 이 탑 고이 간직케 하옵소서! Sung At The Completion Of The Concord Monument                           - Ralph Waldo Emerson    By the rude bridge that arched the flood, Their flag to April's breeze unfurled, Here once the embattled farmers stood, And fired 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 The foe long since in silence slept; Alike the conqueror sleeps;  And Time the ruined bridge has swept Down the dark stream that seaward creeps. On this green bank, by this soft stream, We set today a votive stone; That memory may their deed redeem, When, like our sires, our sons are gone. Spirit that made these heroes dare To die, or leave their children free, Bid Time and Nature gently spare  The shaft we raise to them and thee.   우화                  - 에머슨 산과 다람쥐가  시비를 벌였다.  "이 눈꼽만한 건방진 놈아"  하고 산이 부르자, 다람쥐 녀석이 대답한다. "너는 크기야 무척 크다. 그러나 삼라 만상과 춘하 추동이 한데 합쳐져야 1년이되고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부끄럽게 생각 않는다. 내가 너만큼 크지 못하지만, 네가 나만큼 작지도 못하고, 내 반도 날쌔지 못하지 않냐. 물론 네가 나에게  매우 아름다운 길이 되어 주긴 하지만. 재능은 각자 다르다.만물은 잘, 현명히  놓여있다. 내가 숲을 짊어질 순 없지만, 너는 밤을 깨지는 못한다." Fable                  - Ralph Waldo Emerson The mountain and the squirrel Had a quarrel, And the former called the latter, "little prig":  Bun replied, You are doubtless very big, But all sorts of things and weather Must be taken in together To make up a year, And a sphere. And I think it no disgrace To occupy my place. If I'm not so large as you, You are not so small as I, And not half so spry: I'll not deny you make A very pretty squirrel track; Talents differ; all is well and wisely put; If I cannot carry forests on my back, Neither can you crack a nut.   로도라꽃                  - 에머슨   오월,해풍이 이 벽지에 불어 들 때  나는 갓 핀 로도라꽃을 숲속에서 보았다. 그 잎 없는 꽃이 습지의 한 구석에 피어 황야와 완만한 강물에 기쁨을 주고, 웅덩이에 떨어진 자줏빛 꽃잎은  그 고운 빛깔로 시커먼 물을 환하게 했었다. 여기에 홍작이 깃을 식히러 와서 새의 차림을 무색케하는 그 꽃에 추파를 던질지도. 로도라여, 만일 사람들이 너에게 물어  왜 이런 아름다움을 이 땅과 이 하늘에 헛되이  버리느냐 하거든, 그들에게 일러라, 만일 눈이 보라고 만들어 진 것이라면, 아름다움에는 그 자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왜 너는 여기에 나타났느냐? 장미의 적수여 나는 물을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의 단순한 무지로 추측컨대, 나를 생기게 한 바로 그 '힘'이 너를 생기게 했으리라. The Rhodora                    - Ralph Waldo Emerson On Being Asked, Whence Is The Flower? In May, when sea-winds pierced our solitudes, I found the fresh Rhodora in the woods, Spreading its leafless blooms in a damp nook, To please the desert and the sluggish brook. The purple petals fallen in the pool Made the black water with their beauty gay; Here might the red-bird come his plumes to cool, And court the flower that cheapens his array. Rhodora! if the sages ask thee why This charm is wasted on the earth and sky, Tell them, dear, that, if eyes were made for seeing, Then beauty is its own excuse for Being; Why thou wert there, O rival of the rose! I never thought to ask; I never knew; But in my simple ignorance suppose The self-same power that brought me there, brought you.  브라마(梵天)                  - 에머슨  붉은 피에 젖은 살인자가 자신이 살인자임을 생각하거나, 피살자가 자신이 피살자임을 생각한다면, 나 브라만이 만들고, 지나다니고, 다시 되돌리는 불가사의 한 길을 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라. 멀거나 잊혀진 것도 내게는 가까이 있으니 빛과 그림자가 그런 것 같음이라. 사라진 신들도 내게는 보이고 명예와 수치도 내게는 하나이니라. 내게서 떠나는 자는 잘못 아는 것이니 멀리 날아가 도망친다 할지라도 그 날개 자체가 나이기 때문이니라. 나는 의혹이며 묻는 자이니 브라만이 부르는 노래이니라. 강한 신들도 나의 처소를 그리워하고 성스러운 일곱 존자들도 헛되이 동경하느니라. 그러나 선한 것을 사랑하는 겸손한 자여, 나를 찾고 경외하라. BRAHMA                    - Ralph Waldo Emerson If the red slayer think he slays,    Or if the slain think he is slain, They know not well the subtle ways    I keep, and pass, and turn again. Far or forgot to me is near;    Shadow and sunlight are the same; The vanished gods to me appear;    And one to me are shame and fame. They reckon ill who leave me out;    When me they fly, I am the wings; I am the doubter and the doubt,    And I the hymn the Brahmin sings. The strong gods pine for my abode,    And pine in vain the sacred Seven; But thou, meek lover of the good!    Find me, and turn thy back on heaven. Each And All                   - Ralph Waldo Emerson                                                       LITTLE thinks, in the field, yon red-cloaked clown Of thee from the hill-top looking down; The heifer that lows in the upland farm, Far-heard, lows not thine ear to charm; The sexton, tolling his bell at noon, Deems not that great Napoleon Stops his horse, and lists with delight, Whilst his files sweep round yon Alpine height;  Nor knowest thou what argument  Thy life to thy neighbor's creed has lent. All are needed by each one; Nothing is fair or good alone. I thought the sparrow's note from heaven, Singing at dawn on the alder bough; I brought him home, in his nest, at even; He sings the song, but it cheers not now, For I did not bring home the river and sky;-- He sang to my ear,--they sang to my eye.  The delicate shells lay on the shore; The bubbles of the latest wave Fresh. pearls to their enamel gave, And the bellowing of the savage sea Greeted their safe escape to me. I wiped away the weeds and foam, I fetched my sea-born treasures home; But the poor, unsightly, noisome things Had left their beauty on the shore With the sun and the sand and the wild uproar. The lover watched his graceful maid, As'mid the virgin train she strayed, Nor knew her beauty's best attire Was woven still by the snow-whitsaid, 'Ie choir. At last she came to his hermitage, Like the bird from the woodlands to the cage;-- The gay enchantment was undone, A gentle wife, but fairy none. Then I said,'I covet truth; Beauty is unripe childhood's cheat; I leave it behind with the games of youth:'-- As I spoke, beneath my feet The ground-pine curled its pretty wreath, Running over the club-moss burrs.  I inhaled the violet's breath; Around me stood the oaks and firs; Pine-cones and acorns lay on the ground;  Over me soared the eternal sky, Full of light and of deity; Again I saw, again I heard, The rolling river, the morning bird;-- Beauty through my senses stole; I yielded myself to the perfect whole      각자와 모두     저 들판의 붉은 코트 어릿광대는  그대가 산꼭대기에서 보고 있는 걸 생각지도 못하며;    저 멀리 고원목장 어린 암소의 아득한 울음소리 그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아니고;    교회종지기가 울리는 정오의 종소리 또한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온과 그의 군대     말을 멈춰 그 소리에 귀기울여  즐겁게 들을 거라 생각지도 않으며;    그대 인생이 그대 이웃 읊조리는 사도신경에  어떤 도움을 줄 건지 알지 못할지라도    모든 것은 각각에게 필요한 것이며  제 홀로 유익하거나 정당한 것 아무것도 없나니     나는 새벽 오리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참새 소리를 천국의 것으로 여겼도다.    저녁때 참새 둥지 채 옮겨 집에 두었는데; 녀석은 노래 부르지만 즐겁지가 않네,    강과 하늘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가봐 새는 내 귀에, 모두는 내 눈에 노래했던 거라네.    깨질 듯 아름다운 조개들 바닷가에 있어, 파도의 거품들이 금방 밀려와     그 속 진주들 화려한 광택 빛나게 하고 사나운 바다는 포효하는 굉음을 내면서    나로부터 벗어나며 인사를 하네  나는 해초와 거품을 걷어내어    바다의 보물들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초라하고 보기 싫은 하찮은 것들이 되었네    태양과 모래와 파도소리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에 두고 와서 그런가봐..    연인은 그 우아한 소녀를 눈여겨 보며  처녀들의 행렬에서 뒤 처지기를 기다렸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백설' 성가대에 계속 묶여있을 것같았네      마침내 그녀를 그의 외딴집에 데려왔는데  숲속 새를 새장 속에 넣은 것 처럼    얌전한 아내 되었지만 우아한 멋 없어지고  쾌활하고 황홀한 매력 또한 사라졌네     그래서 난 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했는데  아름다움은 미숙한 어린애의 속임수며     청춘의 유희로 끝나버린다고; 또 난 말했네, 내 발 밑 땅바닥의 소나무는    화환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이끼 낀 돌 막대 위로 뻗어 있고      나는 제비꽃 향기를 마시네; 내 주위에 참나무와 전나무들이 둘러 서있고     솔방울과 도토리들은 땅바닥에 구르고; 빛과 신성이 가득차고 충만한 영원한 하늘은    내 머리 위 높이 솟아 있네; 나는 다시 보았고, 다시 듣게 되었다네.    출렁이는 강물과, 새벽녘 새의 노래를.    아름다움이 몰래 내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 나는 그 완벽한 조화에 굴복하고 말았다네.     
351    고대 로마 시인 - 호라티우스 댓글:  조회:5015  추천:0  2015-04-09
호라티우스 Quintus Horatius Flaccus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BC 65. 12, 이탈리아 베누시아 사망 BC 8. 11. 27, 로마 국적 로마 로마에서 활동한 서정 시인, 풍자작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한 뛰어난 서정 시인이자 풍자작가이다. 브루투스 진영에서 군대 호민관으로 활동하다가 패한 뒤 이탈리아로 도주한 호라티우스는 이후 금고 서기직을 맡아 일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즈음 문인 마이케나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를 통해 옥타비우누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무렵 호라티우스는 제1권과 17편의 를 쓰고 있었다.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뒤에는 와 제2권을 발표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지위를 굳히자 로 방향을 바꿔 88편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3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아우구스투스가 ‘100년제’라고 부르는 고대 축제를 되살리자, 를 지었다. BC 8년 아우구스투스를 상속자로 지명한 뒤 세상을 떠났다.   원본사이즈보기 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 청동 메달(4세기) 그의 〈송가 Odes〉와 운문 〈서간집 Epistles〉에 가장 자주 나오는 주제는 사랑과 우정, 철학 및 시론이다(→ 색인 : 아우구스투스 시대). 호라티우스는 아마 이탈리아 중부 산악지방에 사는 사벨리인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노예였지만, 호라티우스가 태어나기 전에 자유를 얻어 경매인의 조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토지를 조금 갖고 있었고, 아들을 로마로 데려가 같은 사벨리인인 유명한 오르빌리우스(호라티우스의 말에 따르면 체벌의 신봉자)의 학교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할 만한 여유도 있었다. BC 46년경 호라티우스는 아테네로 가서, 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지는 강연을 들었다. BC 44년 3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아테네를 포함한 제국의 동부지역은 일시적으로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카이사르의 동지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및 젊은 옥타비아누스(뒤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언장에서 외종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개인 상속자로 지명했다. 호라티우스는 브루투스의 군대에 들어가 '군대 호민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의 아들에게는 이례적인 명예였다. BC 42년 11월 필리피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토벌하기 위한 전투가 2차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호라티우스와 그의 동료 호민관들은 계급이 그들보다 높은 장교가 없었기 때문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연합 군단 가운데 하나를 맡아 지휘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참패를 당하고 전사한 뒤, 호라티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지배하는 이탈리아로 달아났지만, 베누시아에 있는 아버지의 농장은 제대 군인들에게 정착지를 제공하기 위해 몰수된 상태였다. 그러나 호라티우스는 로마로 가서, BC 39년에 일반 사면령이 내리기 전후에 금고 서기 자리를 얻었다. 36명의 금고 서기는 비록 하급직이지만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BC 38년초 그는 가이우스 마이케나스를 소개받았는데, 마이케나스는 이탈리아 중부의 에트루리아 출신으로 문인이자 옥타비아누스의 정치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호라티우스를 그와 친한 작가들의 명단에 올려놓았다. 오래지 않아 호라티우스는 마이케나스를 통해 옥타비아누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풍자시 Satires〉 제1권을 쓰고 있었다. 6보격의 운문으로 씌어진 이 10편의 시는 BC 35년에 발표되었다. 그리스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풍자시〉에서, 호라티우스는 공직생활을 단호히 거부하고 평온함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했다. 그는 여기서 윤리 문제(재산과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 극단적 행위의 어리석음, 서로 관용을 베푸는 것의 바람직함, 야망의 해악)를 논하고 있다. 또한 그는 17편의 〈서정시 Epodes〉도 쓰고 있었다. 이 작품은 격한 어조의 조롱을 보여주며, 예로부터 인신 공격과 조롱에 사용된 운율을 채택했지만, 호라티우스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악습을 공격하고 있다. 이 시의 어투는 필리피 전투 이후 그가 느끼고 있던 불안한 기분을 반영한다. BC 30년대 중엽에 그는 마이케나스에게서 사비니 구릉지대에 있는 안락한 집과 농장(로마에서 북동쪽으로 35㎞ 떨어진 리첸차에 있는 언덕일 가능성이 많음)을 받았다. 이것이 선물인지 빌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집과 농장은 평생 동안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옥타비아누스가 그리스 북서쪽의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뒤(BC 31), BC 30~29년에 호라티우스는 〈서정시〉와 8편의 시로 이루어진 〈풍자시〉 제2권을 발표했다. BC 27년에 승리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확고한 지위를 굳히자, 호라티우스는 〈송가〉로 방향을 바꾸어 BC 23년에 88편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3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가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활발하게 시를 쓴 시기는 이때였다. 호라티우스는 〈송가〉에서 그리스 초기 서정 시인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지만, 낱말을 섬세하고 절제 있게 구사하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랑과 포도주, 자연(거의 낭만적으로), 친구와 중용(그가 좋아하는 주제였음)을 노래했다. 〈송가〉의 일부는 마이케나스나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던 고대 로마의 미덕을 찬양했지만, 그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그 자신이었고, 송가를 하나의 주제나 분위기에만 한정하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호라티우스에게 개인비서 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는 건강이 나쁘다는 핑계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거절을 괘씸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들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처음 3권의 〈송가〉 가운데 마지막 송가는 호라티우스가 그런 시를 더이상 쓰지 않을 작정이었음을 암시한다(그는 BC 23년에 시를 발표한 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실망했을 것임). 그의 서간체 시집(BC 20~19년에 발표한 제2권으로 〈풍자시〉를 좀더 성숙하고 심오하게 변형한 문학적 '편지들')에 실린 마지막 시는 '천박한' 서정시를 버리고 좀더 교훈적인 종류의 운문을 택하겠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 직후에 그는 3편의 서간체 시(첫번째 책에 실린 어떤 서간체 시보다 훨씬 긴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창작 활동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호라티우스는 모든 풍자적 요소를 버리고 부드럽게 비꼬면서도 분별 있는 태도를 취했지만, 중용을 찬양하는 진부한 말도 그의 손이 닿으면 결코 따분하지 않다. 그중 2편은 2번째 책으로 묶여 나왔고, 3번째 서간시인 〈피소 삼부자에게 보내는 편지 Epistles to the Pisos〉에는 후세 사람들이 〈시론 Ars poetica〉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마지막 3편의 서간시는 느슨하고 대화적인 형식 속에 문학비평을 싣고 있는데, 특히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서간체 시집 제2권 제2편)는 호라티우스가 왜 서정시를 버리고 철학을 선택했는가를 설명해준다. 훌륭한 시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호라티우스는 생각했다. 좋은 글의 비밀은 지혜('미덕'이라는 뜻을 함축)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장 좋은 점을 아낌 없이 주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BC 19년에, 〈시론〉(이 책은 젊은 시인들에게 지침이 될 30여 개의 격언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BC 19~18년경에, 제1권의 마지막 서간체 시는 BC 17~15년에 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명한 이 마지막 시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호라티우스에게 보낸 편지도 오늘날 남아 있는데, 여기서 황제는 그때까지 그런 헌정을 받지 못했음을 탄식하고 있다. 이 마지막 서간체 시에서 호라티우스는 로마 초기의 문학적 배경에 비추어 당시의 시가 가진 장점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호라티우스 자신의 방법론을 옹호한 것이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사실상 계관시인의 지위에 올라 있었고, BC 17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정권과 지난해에 주창한 도덕 개혁을 종교적으로 엄숙하게 승인할 목적으로 '100년제'(Secular Games)라고 부르는 고대 축제를 되살리자, 호라티우스는 이 축제를 위해 〈세기의 찬가 Carmen saeculare〉를 지었다. 이무렵 호라티우스는 서정시 형식으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찬가는 서정시 운율로 씌어졌다. 이어서 그는 15편의 송가로 이루어진 4번째 〈송가집〉을 완성했는데, 이 시들은 대부분 이전의 송가들보다 진지한(그리고 정치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이 시들 가운데 마지막 송가는 BC 13년에 씌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우구스투스의 참모 자리에서 물러나 있던 마이케나스가 BC 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황제에게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저를 기억하시듯 호라티우스를 기억해주십시오"였다. 그러나 그후 1~2개월 뒤 호라티우스도 아우구스투스를 상속자로 지명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에스퀼리누스 언덕에 있는 마이케나스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 인생의 후반기에 호라티우스는 늘 로마에서 봄을 보냈고 다른 때도 잠깐씩 로마에 와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는 로마에 집을 한 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따금 남쪽 바닷가에서 겨울을 보냈고, 여름과 가을에는 대부분 사비니의 농장에서 보냈지만, 때로는 로마 동쪽에 있는 티부르(티볼리)나 프라이네스테(팔레스트리나)에서 지내기도 했다. 짧은 〈호라티우스 전기〉(이 전기의 내용으로 보면 분명 2세기에 활동한 전기작가 수에토니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감)는 아우구스투스가 그에게 보낸 익살스러운 편지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편지를 보면 시인은 키가 작고 뚱뚱했던 것 같다. 호라티우스 자신도 키가 작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44세 때 자신을 묘사한 것에 따르면, 그는 일찍 백발이 되었고, 햇빛을 좋아했으며 성미가 급해서 걸핏하면 화를 내지만 금방 화를 푸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350    시론과 그 일화 댓글:  조회:4768  추천:0  2015-04-09
시론/시의 정의  1. 시 론  강의 목차에는 거창하게 '시론'이라고 넣어 놓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어렵군요. 대학에서 '시론' 하나만으로도 한 학기는 필요할 텐데 더구나 詩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어찌 이 한 강에서 시론을 논하겠습니까?  '論'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니 여기서는 '시론' 대신에 일화(逸話) 두어 개를 가볍게 소개하면서 '시론'에 대신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심심풀이 땅콩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니 가볍게 읽되, 생각은 좀 깊이 해 보십시오.  1) 일화 1  이 일화는 P.발레리의 '문학단상(文學斷想)'에 나오는 드가와 말라르메에 관한 일화입니다.  "드가는 시작(詩作)이 순조롭지 않거나, 시의 여신이 그를 저버렸거나, 그가 시의 여신을 잊고 있어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여러 예술가들에게 달려가 불평도 털어놓고, 조언도 구하곤 했다. 그는 때로는 에레디아에게, 때로는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달려갔다. 그는 자기의 고통을, 갈망을, 마침내는 자기의 무능력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온종일 이 빌어먹을 소네트를 쓰느라고 애를 썼소. 난 이 시를 써 보려고 그림도 제쳐놓고 완전히 하루를 바쳤단 말이오. 그런데도 내가 바라던 것을 쓸 수가 없었소. 이젠 머리가 다 지끈거리오.' 한번은 그런 얘기를 말라르메에게 하고 난 후에 마침내 이런 호소까지 털어놓았다. '난 왜 내가 짧은 시 한 편을 완성할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넘칠 듯이 있는데도 말이오.' 이 말에 말라르메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드가, 시를 짓는 것은 생각들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오. 시는 말들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오.' 바로 이 말 속에 위대한 교훈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 글 속에서 여러분들 나름대로 '위대한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어려운 시론이 왜 따로 필요할까요?  2) 일화 2  이 일화는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오는 고려 시대의 시적(詩敵)이었던 정지상과 김부식에 관한 일화입니다.  "고려의 정지상과 김부식은 서로 시적(詩敵)이었다.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의 사령관이었던 김부식은 정지상도 이 난에 관련되었다 하여, 평소 시에 있어서의 숙적이었던 그를 처형해 버렸다. 그 뒤 어느 봄날 김부식은 시 한 수를 지었다. '양류천록록(楊柳千綠綠) 도화만점홍(桃花滿點紅)[버들은 일천 가지로 푸르고 복사꽃은 일만 송이로 붉구나.]' 그러자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갈기면서 호령했다. '이놈아! 버드나무가 일천 가지인지 복사꽃이 일만 송이인지를 네가 세어 보았느냐? 왜 양류록록록(楊柳綠綠綠) 도화점점홍(桃花點點紅)[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송이송이 붉구나.]이라고 못 하느냐?' 했다. 나중에 김부식은 어느 절간 변소에서 정지상의 귀신에게 불알을 잡아당기어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별로 모양새가 좋은 일화는 아니지만 이 일화 속에서도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아주 훌륭한 시론을 나름대로 터득하셨을 것입니다.  딱딱한 시론보다야 재미있는 일화 속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내는 '시론'이 훨씬 더 값지고 오래 기억되지 않을 까요?  물론 이 강의에서도 '시'의 어원부터 끄집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학자님들이나 할 일이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시론'을 이해하도록 합시다. 그럼 여기서 호라티우스의 '시론'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음미해 보면서 '시론'은 마무리짓도록 합시다.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2. 詩의 정의(定義)  '詩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人生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입니다.  누가 이 질문에 대하여 만점 답안을 제출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고 간 선인들이 먼저 시를 쓰신 분들이 내린 그 수없이 많은 정의 중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기사 그 정의도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詩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詩는 운율에 의한 모방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의도 너무 광범위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범위를 좀더 좁혀서 내린 시의 정의를 찾아볼까요?  이 때도 시의 정의를 기능과 효용 측면, 내용과 형식의 구분 측면, 그리고 구조나 구성 과정 측면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니 다 그만두고, 동서양의 시인들이 내린 정의 중에서 살펴보는 것이 그래도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장백과대사전'을 펼쳐보면 詩에 대한 어록만도 백여 개가 훨씬 넘어서 그것을 다 살펴볼 수는 없는 일이라, 여기서는 나의 주관적 기준에서 선택하여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 시는 악마의 술이다.  * 시란 美의 음악적인 창조이다.  * 나에게 있어서 시는 목적이 아니고 정열이다.  *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한 편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  *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 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 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 나이 어려서 시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 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 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 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난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 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 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무 데에서도 찾지 못한다.  *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시도 경탄을 강요한다.  * 빅토르 위고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표현은 일종의 기이함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 작품에 그런 직접적인 표현이 범람하고 있으면 그 작품 전체의 시적 아름다움을 말살하고 말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 시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이다.  *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  -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 에 이르기를, '기(氣)는 싱싱한 것을 숭상하고 말은 원숙코자 하는데, 초학(初學)의 시는 기가 싱싱한 다음이라야 장년이 되어서 기가 표일(飄逸)하고, 장년의 기가 표일한 다음이라야 노년이 되어서 기가 호탕(豪宕)하여진다.' 하였다.  -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 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狹隘)하다면 제 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 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 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시란 곧 참이다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시란 지. 정. 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  - 시에 있어서의 기술이란 필경 언어 사용술을 말하는 것인데, 시상은 언어를 통하여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상에는 이미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저절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서 언어로 형성되는 시상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시가 된다.  - 시 또한 짙은 안개가 아닌가. 답이 없는 세계, 답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그 안개 같은 실재를 지금 더듬고 있는 거다.  이상에서 여러분들의 시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았는데, 너무 많이 제시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하나 하나가 자신의 시 창작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라 최대한 많이 올렸으니, 그 속에서 여러분들도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정의 즉, '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349    시인 - 김기림 댓글:  조회:4961  추천:0  2015-04-09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성진(城津) 출생.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3년 구인회(九人會)의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46년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하였다. 그 뒤에 좌익계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으나, 정부 수립 전후에 전향하였다. 중앙대학·연희대학 등에 강사로 있다가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고, 그가 설립한 신문화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6·25동란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일보》 학예부기자로 재직하면서 시 《꿈꾸는 진주(眞珠)여 바다로 가자》 《전율(戰慄)하는 세기(世紀)》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등단하고, 주지주의에 관한 단상(斷想)인 《피에로의 독백》을 발표하여 평론계에 등단하였다. 첫 시집이며 장시인 《기상도(氣象圖)》는 T.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荒蕪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상과 감각의 통합을 시도한 주지주의 시로서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것이다. 제 2 시집 《태양의 풍속》은 지적 유희성이 두드러진 것이다. 평론 및 저서로서 《시론(詩論)》 《시의 이해》 등이 있는데, 앞의 것은 30년대에 영미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도입하여 한국의 시사(詩史)를 전환시킨 중요시론집이며, 뒤의 것은 I.A. 리처즈의 심리학적 이론에 의거한 저서이다. 이 밖에 《문학개론》 《문장론 신강》 등이 있다. 그가 한국시사에 기여한 점은 주지적 시와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 시학의 정립, 이미지와 지성의 강조, 전체시의 주장 등을 들 수 있다. 추천해요0 참새와방앗간 김기림 소개  김기림(金起林, 1908- ?)  함경북도 성진 생. 시인. 평론가. 보성고 졸. 일본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거쳐 도호쿠제대 영문과 졸업. 1931-32년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사이에 , 등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시를 발표, 문단의 각광(脚光)을 받음. 1933년 이효석과 '구인회' 결성. 이양하,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 이론 도입, 이후 한국적 모더니즘 문학 운동의 선구자가 됨. 시집에 [기상도(氣象圖)](1939), [새 노래](1947), 시론집에 [시론](1947), [문장론신강](1949). 6 25때 월북, 1988년 해금 조치. 작품 활동을 보면, 시 등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모더니즘 이론을 충실히 이행 하려 하였으며, 현대시가 지녀야 할 주지성과 회화성, 그리고 문명 비평적 태도 등을 시도하려 애썼다. 1940년대에는 시론을 발표하면서 '겨울의 노래', '소곡' 등 서정과 지성이 결합된 선명한 시각적 영상이 두드러진 시를 발표했는데, 그의 문학사적 공적은 주지주의 시론 의 확립, 과학적 방법의 도입, 모더니즘적 시의 시도 등이다.    ① 모더니즘에서의 김기림의 위상  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이미지즘->모더니즘=주지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규정하고 나면 김기림은 30년대 한국 모더니즘에서 한 구심점이 되었다. 그 이전 우리 주변에서는 모더니즘이란 명명(命名)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더니즘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굳혀지자 곧 정지용, 신석정 등을 같은 유파의 이름으로 묶었다. 그리고 이어 그 주변에 김광균 등을 이끌어 들였던 것이다. 본래 그의 명명이 있기 이전, 정지용이나 신석정은 그저 단순한 서정시인이며 시문학파의 일원인 데 그쳤다. 그것이 그의 명명을 통해서 하나의 특별한 사조 경향을 지닌 시인으로 새롭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② 김기림의 모더니즘 성격  김기림은 엘리어트 이후의 영.미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엘리어트에게서 배운 기교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시의 형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또한 그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시켜서 새로운 표현 효과를 자아내고 있는데 이것 또한 엘리어트가 상징파 시인들에게서 영향받아 곧잘 사용했던 표현 수법의 하나이다. 그는 시적 형상의 감각적 표현에 주력하는 한편 사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방萱?사용하기도 했다. 시에서는 시상 그 자체의 진위보다도 시상을 감각적 등치물로 변형시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엘리어트의 현대적인 시 인식이 우리 나라에서도 그로서 그 빛을 발하게 된 첫 케이스가 된 것이다.  ③ 김기림의 시론(詩論)  김기림은 시인으로서 시론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詩論] (1947),[시의 이해](1950) 등이 있으며 특히 [시론]에는 30년대의 우리 시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이 체계적으로 서술된 글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시의 모더니티](1933),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8), [기교주의 비판](1935) 등이 있으며 앞의 두 시론을 중심으로 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시의 모더니티](1933)  첫째, 감상적인 낭만주의와 격정적 표현주의의 재래시를 비판하였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시가 비판되는 것은 이들이 강조하는 감정이 구체적 현실과의 관련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새로운 시적 감성을 강조하였는데, 재래의 시가 보여주는 지나친 주관성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과거의 시와 새로운 시를 비교하였다.  나.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  첫째, 우리 신시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학사의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과학적 문학사를 강조하였다.  둘째, 모더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앞 시대의 낭만주의와 경향파를 비판하였다.  셋째, 모더니즘은 이상의 두 가지 문학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나타나며 그것은 시가 무엇보다도 언어의 예술임을 자각하고 동시에 문명에 대한 일정의 감수(感受)를 기초로 한다.  넷째, 모더니즘의 위기를 주장하였다. 30년대 중반이 되면서 우리 시가 모더니즘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말의 중시로 인한 언어의 말초화와 문명의 부정적 양상 때문이라고 보았다.  다. 김기림의 모더니즘 시론 정리  ㄱ.현대시의 회화성  시의 회화성 강조는 곧 그의 모더니즘 시론의 중심 지주를 이룬다. 이런 회화성 중시는 전시대의 시들이 지나친 리듬 의존에 의한 것으로 단정하고 이를 극복하고 회화체의 내재적 리듬에 의한 새로운 시작법을 건설하려는 데 기인한 것이다.  ㄴ.과학적 태도  그가 시도한 과학적 시론의 요점은 과학적인 문학 이론과 비평 용어를 통하여 통일된 문법 체계를 세운다면 구체적인 작품에 관한 실제적 비평이 한층 더 높고 완성된 단계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현대시란 의식적인 시의 제작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 객관성. 시의 과학화. 문학의 과학화를 주장했다.  ㄷ.전체적 사상  서구 모더니즘시의 이념을 도입하고 시의 본질적인 요소인 形, 音, 意 味를 고립적으로 강조한 입체파, 로멘티시즘, 상징주의의 시적 태도를 비판하고, 유기적으로 혼합된 전체로서의 시를 강조하였다.  
348    현대시조의 장과 련 댓글:  조회:5063  추천:0  2015-04-09
현대시조의 장(章)과 연(聯) -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   이솔희   “요즘 쓰는 시조는 자유시인지 시조인지 알 수가 없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한 마디를 듣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시가(詩歌)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유시와 변별성이 없구나.’라는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 옮겨 가는 생각이 자유시와 변별성이 없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다.  문학작품의 성공여부는 독자가 느끼는 감동의 여부에 달려있다. 즉 형식과 내용을 떠나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의 감동을 끌어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독창성과 신선함도 결국은 독자의 감동에 기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감동이라는 영역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한 제대로 된 형식과 내용이다. 서정(抒情) 장르인 경우 서사(敍事)나 극(劇)장르와는 달리 율격미가 있어야 하고 또한 압축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곧 압축미와 율격미가 서정 장르의 날개 구실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정 장르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사나 극 장르의 형식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서정 장르만이 가지는 개성을 살려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시조인 경우 시조의 형식 안에 독자에게 줄 감동을 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식이 자유시와 구별되는 시조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시조의 경우 3장의 형식에도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신선함과 독창성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선택한 것이겠지만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하여 매우 불안하다.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그것과 근원적 연결고리 관계에 있는 고시조의 정체성 파악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그것과 대립적 경쟁관계에 있는 자유시와의 관계 설정에도 명백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임에도 정작 문단에서는 소홀히 여겨왔던 데에서 혼란의 요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김학성,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 따라서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형식부터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철종시 유만공(柳晩恭)의『세시풍요(歲時風謠)』 에는 시절단가음조탕(時節短歌音調蕩) 풍냉월백창삼장(風冷月白唱三章) (시절단가는 음조가 질탕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3장으로 부른다.) - 유만공(柳晩恭), 『세시풍요(歲時風謠)』- 이라고 한 삼장은 시조 한 수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노래한다는 뜻이다. 즉, 장이란 일정한 음보율(4음보)과 대개 2개의 구로서 한 의미덩이(시상의 단위)를 이루는 것이다.(고경식ㆍ김제현, 『시조ㆍ가사론』) 시조의 삼장은 한시(漢詩) 절구체(絶句體)의 전형적인 구성법인 기승전결[起承轉結]과 같은 형식이다. 초장은 기구(起句)에, 중장은 승구(承句)에, 종장은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 해당한다. 기구(起句)에서 시상(詩想)을 일으키고, 승구(承句)에서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며, 전구(轉句)에서는 장면과 사상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결구(結句)는 전체를 묶어서 여운(餘韻)과 여정(餘情)이 깃들도록 끝맺는 것이다. 육당 최남선이나 노산 이은상 등이 6구설이나 12구설을 주장한데 맞서 가람 이병기가 8구설을 주장한 것은 시조 삼장은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종장에 전환과 결말을 갖는 의미 중심의 이론으로 본 까닭이다. 경우에 따라 위의 수순(隨順)을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단시조 한 편이라 하면 최소한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지는 시조 삼장 안에서 하나의 주제가 완결(完結)되어야 할 것이다. 형식 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완결성을 드러내 주어야 할 것이다. 근대시조를 거치면서 성행(盛行)하기 시작한 연시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연시조(聯詩調)는 단시조가 2편(編) 이상 모인 것으로 각각의 단시조는 작품 한 편으로서 완결되어야 하며 이 한편이 주제의 통일을 이루면서 또 다른 한 편과 연계성(連繫性)을 이루는 가운데 소주제가 확장되고 발전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단시조에서 하나의 소주제문을 완결하여야 하며 각 연의 소주제문이 모여서 전체 한 편의 연시조가 추구하는 주제를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시조의 형식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현대시조를 창작함에 있어, 형식에 비해 내용의 중요성이 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형식은 어디까지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다만, 그 형식을 제대로 쓸 때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까닭에 강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먼저 진솔(眞率)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풀어나갈 수 있는 해결방법을 작품 내에 용해시키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 되겠으나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작가 자신이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솔직성이 작품 전체에 깔려있을 때 독자는 스스로 동일성을 갖게 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경우 통찰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통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카타르시스(감정 정화)가 전제되지 않은 까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은 시인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시집을 읽고 있으면 시인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눈에 훤히 보인다. 그 발자취 곳곳에는 절망의 눈물이 묻어 있다. 그러나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하여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 인생이란 이러한 것이구나.’라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1.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 2014년 발간   장식환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79년 『매일신문』신춘문예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문학동인 ‘낙강’, ‘문학경부선’, ‘대구시조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등에서 시작(詩作) 활동을 했으며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부지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교사로 교육계에 입문하였으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에도 계속 가르치면서 한편으로 공부하여 중고등교사, 대학교수, 대구광역시 교육위원, 교육위원회 의장, 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연등을 들고 서는 바다』가 있다.   장식환 시인의 『그리움의 역설』은 ‘가을 벌에 선 나’,  ‘천지개벽의 꿈’,  ‘아름다운 세상에’,  ‘세월을 지고’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시인의 힘이 수채화 같은 시상(詩想) 속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리움의 역설’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 작품집에 실린 94편의 시조 가운데 ‘그리움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한 편의 제목을 따서 시집의 제목으로 올리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나 장식환 시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체 작품의 저변에 ‘그리움의 역설’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역설’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이다. 수사법으로는 역설법을 떠올릴 수 있는데 역설법이란 ‘표면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지만 실은 그 속에 절실한 뜻이 담기도록 하는 표현 방법’이다. 바닷가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조개껍질 ① 달 지면 해가 뜨고 해 뜨면 안개 걷듯 ① 이ㆍ취임 허전한 마음 텅텅 빈 시골 같다 ② ③ 파장의 시골 장터 바람은 설렁한데 ① 꽃 피면 찾아오던 나비도 가고 없고 ① 꽃다발 주는 정에도 노을빛이 지고 있다.                 - 전문 - 언뜻 보면 흔히 우리가 느끼는 각박한 세태를 노래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달 지면 해가 뜨고/해 뜨면 안개 걷듯’, ‘꽃 피면 찾아오던/나비도 가고 없고’ 등이 그러하다. 앞에서 노래한 것들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한데도 시적 화자의 마음이 ‘텅텅 빈 시골 같’고 ‘노을빛이 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부분에서 역설적 해석이 필요하다.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자연을 정확히 관찰하거나 우주 만물의 진리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 관계를 상호성에 바탕을 두고 파악해야만 인간과 생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안드레아스 바그너 저 / 김상우 역,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 시적 화자의 이성(理性)은 이임식의 한산함과 취임식의 북적함을 모두 이해한다. 하던 일을 마쳤으니 한산한 것이 당연하고 새로운 일을 맡았으니 북적거리고 바쁜 것이 당연한 이치(理致)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감성(感性)은 그렇지 못하다. ‘한산함’은 ‘허전함’으로 이어지고 ‘북적거림’은 ‘충만함’으로 해석된다.(‘북적거림’이 ‘충만함’으로 여겨지는 것은 떠나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경우이다.) 어쩌면 이렇게 느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의 사고일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깡에 따르면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완전한 상태라고 한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을 반쪽이라고 느끼는 결핍 상태가 지속된다. 아기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완전체가 되길 욕망한다.” 따라서 에서 느끼는 시적 화자의 허전함은 원초적으로 인간들이 가지는 허전함 내지(乃至)는 상실감 또는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원초적 그리움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더 갈증이 나는 것이다. 장식환 시인은 자연적인 현상과 시적 화자의 심상을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이 가지는 역설적 본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다음에는 형식면에서 특이점이 발견된다. 우선 은 두 편의 단시조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초장, 중장, 종장을 각각 분리해 놓았으며 각 장은 구별 배행, 또는 음보별 배행을 하여 각 장은 2행 또는 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사이에 연 구분을 하여 ①과 같이 한 행씩 띄워 놓았다. 그리고 각 연 사이에는 ②, ③과 같이 두 행씩 띄워 놓았다. 정리하면, 결과적으로 각 장은 몇 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 사이에는 한 행씩 띄워 놓았으며 연시조에 있어 각 연 사이에는 두 행씩 띄워 놓았다. 대동강 잠긴 강물 ① 말끔히 옷 다 벗고 ① 새 봄을 품에 안을 ① 그 날을 그리면서 ① 봄비가 ② 빗장을 풀고 ② 새봄을 재촉한다. ①               - 전문 -  는 겨울 지나 봄이 오는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장식환 시인은 ‘가을’을 소재로 쓴 시조 작품도 많지만 ‘봄’을 소재로 한 작품도 적지 않은 듯하다. ‘봄비’라는 작품이 대구 북부도서관 입구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팔공산 깊은 골짝/꿈꾸던 서설의 숨결’로 시작되는 작품으로 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역시 대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팔공산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어 장식환 시인의 향토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형식적인 특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시집 『그리움의 역설』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앞에서 살펴본 과 같은 형식인  각 장 사이에는 한 행씩 띄워 놓았으며 각 연 사이에는 두 행씩 띄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는 단시조인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각 구별로 ①과 같이 연 구분을 하고 있으며 ②와 같이 음보별 구분을 하여 연을 나누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형식을 그대로 취했다면 3연 7행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7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 문무학의 『ㄱ』: 2013년 발간 문무학 시인은 경북 고령 낫질 출생으로 1981년 『시조문학』지 「도회의 밤」으로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현대시조문학상, 대구문학상, 유동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이호우 시조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을 거쳐 현재 대구문화재단 대표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는 『풀을 읽다』, 『달과 늪』, 『벙어리 뻐꾸기』,『낱말』, 『ㄱ』  등이 있다. 시조집 『ㄱ』은 시와 반시가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문학적 자서전 간행을 통한 문화의 향수를 기대하며 펴낸 손바닥 크기 기획 시집이다. 한 손에 딱 잡히는 크기로 포켓용으로 앙증맞게 나왔다.(권성훈 기자, 《매일신문》) 문화재단 문무학 회장이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요즘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의 문화강좌에서는 자서전 쓰기에 한창이다. 한평생 살아온 행적을 책으로 묶어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바람이 이러한 열풍을 몰고 온 듯하다. 대부분 수필 형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조집 『ㄱ』을 보고 나니 자서전이라고 하여 굳이 산문의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일생이 잘 드러나는 자선시와 작품의 배경이 될 만한 추억의 사진, 그리고 소상한 자술 연보를 덧붙이고 보니 구구절절 써 내려간 산문 형식의 자선전보다 훨씬 참신하면서 명료한 느낌이 들어 좋다. ‘ㄱ’이라는 시집 제목이 특이하여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낫 놓고 ㄱ자로 모른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은상 시인이 홍원옥중에서 지었던 ‘ㄹ자’라는 시 제목도 생각난다. 한글 사랑과 민족 사랑이 잘 형상화된 시조로 2연 종장 ‘ㄹ(리을)자 같이 꼬부리고 앉았소’라는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장식환 시인과 마찬가지로 문무학 시인의 시조집 『ㄱ』에도 ‘ㄱ’이라는 시조 작품은 없다. 다만, ‘시인의 말’에서 “시집 제목으로 한 번 튀어보고 싶어서”, “내 시의 방향을 달리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커다란 걸 남기겠다 그런 욕심 없습니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내가 걸은 형상으로 찍힐 것 찍힌 그대로 그냥 그냥 좋습니다. 되돌아간다 해도 잠시 또 머물고 싶고 그 무렵 하던 생각 지금 다시 추스르며 후회가 묻어 있어도 섧다 할 수 없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흠 없는 발자국 눈밭에 놓이거나 모래밭에 놓이거나 내 걷는  길 위에 곱게 이름 쓰듯 찍겠습니다. - 전문 시조 작품 은 옆에 있는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이 명상에 들어 본연의 순수자아를 회복한 후 풀어놓는 심상(心象)이다. 때로는 타인(他人)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또 때로는 ‘장엄한 인생을 이루고 싶은’ 욕망도 일어나지만 모든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왔을 때 생각이 달라진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진실, 정직을 생활신조로 삼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시인의 각오가 엿보인다. 그리고 현실의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엿보인다.  시집을 통해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문무학 시인의 생애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출생과 더불어 아버지를 여윈 까닭에 ‘아버지’라는 낱말은 시인의 목청에 맞지 않는 그런 낱말()이었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먹어본 자장면이 너무 맛있어 한 그릇 더 먹어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만큼 가난한 생활을 겪었다. 또한 부산 화신타올공장에서 라면만 먹어 온 몸의 부기가 빠지지 않던 고충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문무학 시인은 늘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로웠다. 졸업여행을 가지 못하고 자장면을 마음껏 먹어보지 못할 만큼 가난했지만 그 가난이 단지 불편했을 뿐 수치심으로 자리 잡지는 않았다. 그래서 문무학 시인은 언제나 당당했으며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다. ‘솔직성’과 ‘정직’이 가져다 준 에너지라고 분석된다. 그 에너지가 또한 오늘날의 문무학 시인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명언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시조 은 3연으로 이루어진 연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각 연의 마지막 종결어미는 ‘-습니다’라는 경어체를 쓰고 있어 고백 형식을 띠고 있다. 1연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행은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형식으로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1연에서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겠다는 정직성이 드러나 있으며 2연에서는 지나간 일이 후회가 될 지라고 그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초연(超然)함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연에서는 남은 미래도 소박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意志)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각 연마다 소주제의 완결성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주제가 모여서 거짓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인생철학을 하나의 큰 주제로 드러내고 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우리네 삶 속에서 기쁨은 가볍고 슬 픔은 무겁더라 가벼워 쉬 사라지고 무거워 오래 남더라. 가벼워 낄낄 거리고 무거워 허우적대며 삶이란 그렇게 살도록 짜여져 있는 연극 끝내는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 으로 지더라. - 전문 뒤돌아보면 기쁨은 없고 슬픔만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듯 느껴진다. 그러나 찬찬히 더듬어 보면 슬펐던 일만큼 기뻤던 일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기뻤던 일은 기억되지 않고 슬펐던 일 위주로 기억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네 기준이 기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은 특별한 일 곧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일은 기억되기 마련이고 작은 일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한 인간의 심상을 문무학 시인은 2연의 연시조로 풀어내고 있다. 1연에서는 기쁨은 가볍고 슬픔은 무겁다고 단정(斷定)짓고 있다. 이어서 2연에서는 1연의 심상을 확대ㆍ발전시키고 있다. 즉, 기쁨이나 슬픔이나 모두 연극에 불과하여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초탈(超脫)의 경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형식에 있다. 두 편으로 확연하게 나누어지는 심상을 문무학 시인은 왜 장과 연을 무시하고 산문시처럼 쭉 이어서 서술을 해 놓았는지 궁금하다. 어떤 효과를 노리고자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두 권의 시집,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을 통해, 시인의 생애와 더불어 그가 가진 가치관, 생활신조, 추억 등을 살펴보았다. 두 시인 모두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작품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가난이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빛나는 삶의 훈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독자 스스로가 발견하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특히 문무학 시인은 문화 콘텐츠 측면에서 독자들이 다가오는 시조가 아닌 시인이 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 방법 - 현재 대중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서전 쓰기 - 을 시조형식과 접목(椄木)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시조가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현대시조에서도 대중성이 살아날 때 시조문학의 위상은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성 확보와 더불어 놓칠 수 없는 것이 시조의 정체성 확립이다. 김학성이 이미 강조했듯이 “현대시조의 정체성은 그 명칭에 명백히 드러나듯이 현대성과 시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데서 확립될 수 있다. 현대성을 충족해야 이미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사라진 고시조와 변별되는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고, 시조성을 획득해야 자유시와 경쟁관계에서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현대성을 무시하고 시조성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현대시조가 나아간다면, 엄청나게 달라진 현대인의 미의식에 걸맞는 공감대를 획득하기 어려우므로 시대착오적 복고주의 혹은 국수주의로 매도되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이와 반대로 시조성을 무시하고 현대성으로 과도하게 기울어 추구한다면 자유시와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그러려면 차라리 자유시 쪽으로 나오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김학성,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현대시조의 장(章)과 연(聯)|작성자 시조21  
347    시란- / 시제 / 리듬 댓글:  조회:4248  추천:1  2015-04-09
시론에 해박하다 하여 그의 시가 좋은 것이 아니다. 학력이 높다 해서 시 쓰는 능력도 높아 지지는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가 있고, 별도의 재주가 있다. 관건은 사물과 만나는 접점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그 오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정신의 투명함과 섬세함에 있을 뿐이다.   기왓장을 숫돌에 간다고 거울이 되는 법은 없지 않은가?   점수(漸修)의 노력만으로는 마침내 돈오(頓悟)의 한 소식을 깨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의 세계이다. -  돈오점수 頓悟漸修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유형 개념용어 분야 종교·철학/불교 불교에서 선(禪)을 수행(修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   [내용] 부처가 되기 위해서 진심(眞心)의 이치를 먼저 깨친 뒤에 오랜 습기(習氣)를 제거하여 가는 수행방법이다. 즉, 수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가, 마음의 이치를 먼저 밝혀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로 이 논의는 당나라 종밀(宗密) 이후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종밀은 다섯 가지의 돈점설을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단계를 밟아서 차례대로 닦아 일시에 깨닫는 점수돈오(漸修頓悟), ② 닦기는 일시에 닦지만 공행(功行)이 익은 뒤에 차차 깨닫는 돈수점오(頓修漸悟), ③ 차츰 닦아가면서 차츰 깨닫는 점수점오(漸修漸悟), ④ 단번에 진리를 깨친 뒤 번뇌와 습기를 차차 소멸시켜가는 돈오점수(頓悟漸修), ⑤ 일시에 깨치고 더 닦을 것이 없이 공행을 다 이루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이다. 이 가운데에서 돈오돈수는 과거부터 닦아온 결과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일반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 설 가운데에서 고려 중기의 지눌(知訥)은 돈오점수설을 채택하여 우리 나라 선종에 정착시켰다. 그는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번뇌가 없고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므로 돈오라 한다.”고 하였고, 또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서 의정(疑情)을 대번에 쉬고 스스로 자긍(自肯)하는 데 이르면 곧 수심인(修心人)의 해오처(解悟處)가 되나니, 다시 계급과 차제가 없으므로 돈오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쳤다 하더라도 무시(無始) 이래로 쌓아온 습기를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습기를 없애는 수행을 하여야 하며, 점차로 훈화(薰化)하여야 하기 때문에 ‘점수’라고 하였다. 마치 얼음이 물인 줄 알았다 하더라도 열기를 얻어서 녹아야 비로소 물이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얼음이 물인 줄 아는 것을 돈오라 하고, 얼음을 녹이는 것을 점수로 본 것이며, 먼저 본성을 알고 행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깨치기 이전에도 수행을 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수행은 바른 길이 아니며 항상 의심이 따른다고 하였다. --------------------------------------------------------------         시는 언어의 정화다. 정수다.   시는 점점 닦아 가다가 한 순간 가없는 비약을 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경지다.   시란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렵다.   시란 노력 해도 안되는 것이 시다. --------------------------------------------------------------------- 시제(Tense) 에서 "문학이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는 체험적 시간, 즉 의식내용을 의미관련으로 조직하여 예술화한 것"이라 하였음. 1. 서정시와 현재시제 서정시는 1인칭 현재의 장르이며, 순간의 문학이며, 그 세계관은 현재에 있다. 서정 장르는 순간에 본질이 있다. 현재시제는 서정시의 본질적 시제다. 즉 체험의 시간과 진술의 시간이 동일하다. 이 때문에 거리조정이 부족해지기 쉽다. 2. 순간형식와 완결형식 3. 현재시제의 두 양상 (1) 역사적 현재 (A) 서정적 시간 (B) 부정시제 (C) 시간의 모호성(ambiguity) (2) 무시간성 (A) 시간의 공간화 (B) 묘사와 시간의 영점화 (C) 영원한 현재 리듬(Rhythm) 1. 리듬의 개념 : 시의 음악적 효과를 위한 소리의 모형화  김해응 발표 자료(리듬의 이해,ppt) 2. 리듬의 종류 (1) 운 : 한시나 영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리의 반복  (2) 율격 : 고저, 장단, 강약의 규칙적 반복이다.   - 율격에는 음수율(순수음절 율격)과 고저울, 강약율, 장단율 등의 복합음절 율격이 있다.    - 율격은 어떤 것이든 악센트라는 변별적 자질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 한국시의 율격은 음보율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3) 음보율 : 음보는 휴지에 의해서 구분된 문법적 단위 또는 율격적 단위로 박자 개념에 의한 시간적 등장성    - 우리 시행의 기본 율격은 3음보와 4음보이다.    - 3음보는 서민계층의 세계관을 4음보는 귀족계층의 세계 관과 감성을 표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 3.4음보는 현대시에 와서 김소월등을 통해 창조적으로 변용되었다. 3. 리듬의 형태 (1) '낯설게하기'와 분행 : 리듬은 전통율격을 파괴하여 소리와 의미에 충격을 주는 낯설게 하기의 산물   - 시에 있어서 분행과 분연 자체는 표준언어, 일상언어를 파괴하는 낯설게 하기의 기교   - 자유시가 자동화된 현대에는 전통율격이 오히려 낯설게 하기의 기교가 됨.    - 리듬의 단위는 음운, 어휘, 구문 등 다양하다.  2) 자유시와 산문시   - 시의 형태(율격과 행연의 배열형태) 기준 분류 :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 * 서구 시의 양식(W. Kayser) (3) 리듬의 현대적 의의   - 한 편의 시란 리듬과 이미지의 의미의 3요소의 유기적결합으로 구성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346    미래의 詩 그룹들 댓글:  조회:4678  추천:0  2015-04-08
현대시는 시대의 급속한 발달에 대응하며 테크닉이 변하고 있다. 과거 서정시는 이 시대 정신에 걸맞지 않는 다. 요즘   메카니즘 시대에 걸맞은 시론으로서 하이퍼 시가 등장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현실세계의 경계를 넘어 불연속성으로 초월의 상상공간을 넘나들며 날고 뛰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초월적 현장의 장소를 일상적 현실로 생각하는 일연의 엉뚱한 상상의 놀이라고 할수있다 현재 한국시는 현대시혁신의 뜨거운 대열을 이루고 있다. * 의식의 흐름이 하이퍼적이라는 것. @@ 꽃사과 나무 기둥에 비파를 숨겨 놓았다    하얗게 소리 지르는 나무     저녁 새들은 해를 쪼아다 나뭇가지에 콕 콕 박아 놓았다 “미래의 詩 다섯그룹으로 분화” 젊은 시인 49명의 시편 모아 분류      우리 시대 ‘젊은 시’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파격적인 언어파괴 등의 어법을 구사하는 200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을 한데 묶어 ‘미래파’ 논쟁이 벌어졌지만 이미 ‘또 다른 미래파’가 등장할 정도로 젊은 시의 경향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또한 1930년대 이래의 서정시 전통을 승화시킨 젊은 시인들도 많다.  이처럼 우리 젊은 시는 여러 갈래로 분화했지만 지금까지 이같은 지형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몇몇 문예지에서 특집으로 미래파 등의 젊은 시들을 분석하긴 했지만 대표적인 시편들을 모은 앤솔러지(anthology·選集)가 없어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등단한 지 10년이 채 안된 젊은 시인 49명의 자선(自選) 시편들을 모아 출간된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실천문학사 펴냄)는 환영할 만하다. 시인 이재무씨와 이안·손택수씨, 문학평론가 유성호·엄경희씨 등 5명이 대상 작가들을 선정했다. 대상은 일단 1998년 이후 등단해 한권 이상의 시집을 발간한 시인으로 한정했다. 이재무 시인은 “유형과 상관없이 좋은 시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판단해서 5명의 선정위원이 장시간 토론 끝에 모두 동의한 49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형과 경향성에 대한 선입견 없이 뽑았지만 우연하게도 다섯 그룹으로 나눌 수 있게 됐다. 우선 정통적인 서정적 발화를 택하고 있는 그룹이 있다. 윤성택, 고영민, 고영, 박성우, 윤성학, 우대식, 김병호, 신용목, 김화순 등이다. 이들은 주옥 같은 시어들을 모아 시적 감동을 꾀한다. 길상호, 김충규, 조영석, 이기성, 장인수, 이창수, 박상수, 이기인 등은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물고기가 보낸 꽃의 신호”(길상호)나 “뻑뻑한 하늘의 밀도”(김충규) 등 미세한 감각을 해석해 사물들의 존재 원리에 다가간다. 시적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는 이른바 미래파 그룹에는 김경주, 김근, 이근화, 황병승, 김언, 최치언, 김행숙, 유형진 등이 있다. 합리적 해독이 가능한 어법보다는 시적 스타일을 중시한다. 새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룹도 있다. 박후기, 이세기, 송경동, 배한봉, 여태천, 이종수, 유홍준, 김해자 등은 시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한다. 끝으로 다양한 상황의 시적 재현에 공들이는, 철저하게 개별화된 시적 담론을 추구 하는 그룹이다. 박진성, 류인서, 문성해, 이영광, 박판식, 조말선, 김이듬, 안현미, 이덕규, 박해람, 서영처, 조정, 문혜진, 이진수, 조동범, 진은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물론 이같은 분류에 대한 이론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젊은 시의 다양한 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앤솔러지는 나름의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젊은 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정위원들은 “아직 설익기는 했지만 확실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패기와 실험정신은 분명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실천문학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   등단 10년 미만의 ‘젊은 시인’ 49인의 자선 대표작 모음집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여기서 ‘젊은’이라 함은, 시인들의 실제 연배가 아니라 시단에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발화한 연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같은 분법(分法)이 최상의 방법인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자선(自選) 시편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젊은 시’가 그리는 지형을 일별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 다음 세대의 ‘젊은 시’와 ‘지금-여기’ 우리 시대의 ‘젊은 시’가 어떠한 상이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도 충분하다고 본다.   미래의 한국 시단을 이끌어갈 젊은 시인들   이 선집에 실린 49인의 시인들을 경향별로 분류하자면 다음 다섯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형식 실험에 대한 의지보다는 가장 정통적인 서정적 발화를 택하고 있는 그룹이다.이들은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윤성택, 「산동네의 밤」)라는 새삼스런 자각 과정을 통해 아직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가슴 뭉클하고 선명한 주말연속극”(고영민, 「주말연속극」) 같은 시적 감동을 선사한다. 그들은 또 “오래된 가구일수록 비밀도 많고 사연도 많다”(고영, 「가구의 비밀」)라든가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있는 힘껏 빨리, 있는 힘껏 멀리, 있는 힘껏 힘차게/동그라미를 그려 제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웅덩이가 된다”(박성우, 「동그라미」)라는 일종의 존재 확인을 통해 ‘시간’의 안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가는 원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편,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윤성학, 「내외」)에서 “한 순간/모든 빛과 어둠을 뚫고 그대와 연락되기를”(우대식, 「택리지-겨울 남행」) 소망하면서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타자와의 소통을 열망한다.   둘째는 미세한 감각에 대한 신선한 발견과 표현을 통해 사물의 의미와 생의 형식을 읽어내는 그룹이다.이들은 “수천 년 동안 물고기가 보낸/꽃의 신호를 들은 사람 몇 없다”(길상호, 「물고기는 모두 꽃을 피운다」)라든가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뻑뻑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김충규, 「꽃멀미」)에서 보듯이, 미세한 감각(청각이든 후각이든)의 재구(再構)를 통해 사물들의 존재 원리에 대한 놀라운 투시력을 보여준다. 이들의 집요하고도 역동적인 감각은 한편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하기도 한다. “인어가 앞세운 녹슨 카세트에서/기쁨과 축복의 노래가 가난하게 흘러”(조영석, 「인어」)나오는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나 “잔업이 끝나고 처음 만난 기계와 잠을 잤다/기계의 몸은 수천 개의 부품들로 이뤄진 성감대를 갖고 있었다”(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흰 벽」)라는 충격적 증언은 우리 사회의 어둔 그림자를 선명하게 보여주기에 족하다.    셋째는 새로운 언어와 발상으로 시적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는 그룹이다.이들은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해하면서 “말이 아니라 비로소 그가/내 몸에 새겨진 무늬를 읽어”(김근, 「뱀소년의 외출」)나가며 인간의 존재 형식과 ‘말(언어)’에 대한 관련 방식을 탐색한다. 이러한 자의식은 “때로는 웃으면서/때로는 진지하게/화폭을 얘기하고 물감을 트집잡으며/이 태양이 사실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초승달처럼/방긋 웃고 있는 이유를”(김언, 「식탁 저편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 생각하는 자아에 의해, 혹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발등에 떨어진 촛농처럼/성가시고/허기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메우는 것”(최치언, 「서로 다른 아주 오래된 송어 수프」)이라는 구성 방식에 의해 더더욱 정치하고 다양하게 증폭된다. 이들의 시편에서는 합리적 해독이 가능한 내러티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언어를 구성하고 발화하는 시적 스타일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핍진한 경험을 통한 감각의 환유적 나열 방식, 의도적으로 소통 자체를 불편하게 하면서 의식 안에 존재하는 분열의 리얼리티를 ‘쿨하게’ 보여주는 방식 등은 이들의 언어가 감당해낸 전위로서의 몫일 것이다.   넷째는 사람살이의 구체성에 주목하는 그룹이다. 혹자는 이러한 시적 지향이 낡은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시적 실재임을 시인들은 광범위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멀어져가는 별들의 뒷모습처럼/보일 듯 말 듯 위태롭게 빛날지라도”(박후기, 「움직이는 별」) 심미적 대상일 뿐인 ‘별’에도 ‘살아가는 일’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이들은, “까마귀로/아버지/보름은 굶주린 모습으로/나뭇가지에 앉아/울고 울고”(이세기, 「배 이야기」) 계신 풍경이나 “서러운 날이면/혼자라도 한 솥 가득 밥을 짓는다고 쓰고”(송경동, 「외상일기」) 있는 풍경을 보임으로써 시의 사회적 관계론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뻘밭을 모르고 깊은 바다를 말할 수 없지”(이종수, 「벌교」) 같은 잠언(箴言)을 내장하고 있는 경우나 “보리밭 위로 날아가는/어린 딸을/밀짚모자 쓴 벙어리가 고개 한껏 쳐들어 바라보고 있다”(유홍준, 「오월」) 같은 감각적 충일에서 우리는 이들이 숨겨둔 만만찮은 서사들을 만나게 된다.   다섯째는 다양한 상황의 시적 재현과 발화에 공들이고 있는 그룹이다.이들은 철저하게 개별화된 시적 담론을 선보인다. “분노를 빈혈을 피워야 하는 파란 잎은 세차게 멍들었네”(조말선, 「화분들」)라든가 “도대체 길 잘 못 든 나는, 손톱을 세워 나무를 휘감는다 한 움큼의 털을 강박적으로 비벼댄다”(김이듬, 「지금은 自慰 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 같은 언어에서는 여성적 ‘몸’과 ‘언어’에 대한 치열한 욕망을 읽게 되고,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이라는 당찬 표현이나 “테두리에/잘근잘근 씹어 외운/이빨경전이 시리게 촘촘히/박혀있는, 그 경전”(이덕규, 「밥그릇 경전」) 같은 시구에서는 ‘시’에 대한 간단찮은 메타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시인들을 통해 “붉게 저민 회 두 마리 받아 들고/바람이 물샐틈없이 수색 중인 시장을 빠져나올 때”(조정, 「모슬포 시장」) 같은 일상성에 대한 치밀한 관찰로부터 “머리 아픈 책을/지루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지껄이지도 않지”(문혜진, 「질 나쁜 연애」) 같은 실존의 감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경험을 하게 된다.  아직 설익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패기와 실험 정신은 분명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선집에 실린 시편들이 갖는 대표성은 유보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책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문학도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기대한다.      
345    성냥 한개비 댓글:  조회:4674  추천:0  2015-04-08
▲ 성냥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무리를 잃고 부리도 발톱도 둥근 머리 속에 파묻은 붉은 새 한 마리 어두워지는 저녁을 응시한다  일어나는 불꽃 타오르는 불길 검게 타들어가는 나무 위로 새가 날아간다 바닥에 떨어지는 재 인큐베이터 갓난아이가 가파른 숨을 쉬고 있다  - 송승환(1971~)     △ 사물 속에서 새로움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사물에 관한 여러 약속들을 의심해보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합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이라 부정을 통해 인지해야만 하고 부정을 부정이라고 언술하는 것조차 부정하면서 사물을 읽어내야 한다.   이 시에서 타오르는 성냥의 형상은 나무 위에 올라앉은 새의 모습 혹은 솟대의 모습 등으로 상징됐다가 종국에는 이미지가 튀어올라 인큐베이터 안에 가파른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환기된다. 물론 성냥과 갓난아이 숨소리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이미지들이 큰 무리 없이 미세하게 충돌하면서 와해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재가 되어버리는 성냥의 인화성과 태어나자마자 꺼질 듯한 생명을 붙들기 위해 다시 인공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운명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불꽃 속에서 날개를 발견하는 시인의 직관과 숨소리와 불길을 병치시키는 유연성이 독특해 보인다.  수많은 시인들이 극에 닿으려고 노력을 하고 극에 닿는 순간 그 극의 거리는 다시 넓혀진다. 그렇게 닿을 수 없는 자리들의 혼미하고 환각적인 유혹 때문에 시인은 살아 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이 세계가 영영 봉합되지 않기를 믿고 싶다.
344    명시인 - 나짐 히크메트 댓글:  조회:4776  추천:0  2015-04-07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1902-1963)' 그리스 출생의 열혈  혁명가.  ,등의 시와 소설 등의 작품이 있고,   이 시는 그가 옥중에서 쓴 시.
343    료타르 / 포스트모더니즘 댓글:  조회:4777  추천:0  2015-04-06
  장 푸랑수아 료타르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     1998년 4월 23일 조간 신문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던 만큼 그 말과 거의 동일시되던 장 프랑수아 료타르의 죽음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유행의 물결을 따라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흘러가 버린 지금어서일까? 료타르의 죽음은 마치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처럼 들린다. 1924년 베르사이유에서 태어난 그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는데, 그의 많은 동년배들이 그렇듯이 후설의 현상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실존주의가 풍미하던 1950년대의 프랑스는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ar)라는 이른바 3H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가 쓴 첫 번째 저작은 현상학에 대한 것이었다. 1959년까지 10년 간 고등학교 철학 교사를 했는데, 그 중 일부는 알제리에서 보냈으며, 알제리 해방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알제리 문제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전투적 활동가였다. 1956년부터 1966년까지 그는 카스토리아스나 르포르 등과 함께 극좌적인 사회주의 잡지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와 사회주의 신문 (노동자 권력)의 편집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이 그룹은 흔히 트로츠키주의적이라고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프랑스 공산당이 이끌던 주류 좌익에 대한 좌익적 비판 조직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런 만큼, 1968년 혁명의 진원지였던 낭테르 대학(현재 파리 10 대학)의 강사였다는 사실을 접어 둔다고 해도, 그가 ‘쁘띠 부르주아들의 관념적 급진성’의 소산이라고 공산당과 노동조합이 비난하던 68년 혁명에 적극 개입했던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68년 혁명은 그 성과의 하나로 뱅센(Vincenne) 실험대학을 탄생시켰는데, 나중에 생 드니(Saint Denis)의 파리 8대학과 통합된 이 대학에서 료타르는 1989년 은퇴할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342    리상화 고택을 찾아서 댓글:  조회:4478  추천:0  2015-04-06
이 詩를 기억하시죠??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 시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떠오릅니다...  암울했던 시절 해외 유학생들이 많이 드나들던 서울의 한 이름난 요정에서는 기생들이 상화 선생의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모두 암송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가짜 유학생들이 유학생 행세를 하며 공짜 술을 먹고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 당시 유학생들이라면 거의가 암송했다는 이 시를 손님들에게 외우게 하여 가짜 유학생들을 가려냈다고 하는 일화지요...   상화고택ㅡ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 쉽게 계산성당과 옛 고려예식장 사이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진은 고택의 남편에서 바라본 상화고택의 전경입니다...               상화고택 동편 바로 옆에 복원해 놓은 서상돈 고택..   상화고택은 최근까지 사람이 직접 거주를 하면서 이 집이 이상화 선생의 말년 시기인 1939부터 1943년 위암으로 운명하는 순간까지 살았던 집으로 사실확인이 된 건물이지만 곁에 새롭게 복원이 된 서상돈 고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상돈 고택은 현재 구 고려예식장 부지에 새롭게 들어선 주상복합 ‘신성미소시티’부지 안으로 들어가 아쉽게도 대구의 巨富 서상돈 선생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죠.. 현재 복원된 서상돈 고택은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태라는데..                흔히들 상화고택을 소개할 때 제일 먼저 내 세우는 키워드가 바로 ‘석류, 감나무, 장독대가 이쁜 집, 상화고택’이더군요..  사진은 고택 안채의 모습이며 고택 좌측에 상화선생이 거하셨던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ㄱ’형 한옥 이해가 되시죠..   사진 맨 좌측 대문 쪽에 서 있는 나무가 감나무이며,, 정원의 중앙부에 서 있는 나무가 바로 석류나무입니다..   본래 감나무는 사진 속 감나무 외에 화장실 옆과 창고 담장 쪽에 2그루가 더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 한 그루만 살아 있죠.. 석류나무의 경우는 상화선생 생존 당시의 나무로서 몇 장의 사진 자료를 통해 검증이 된 사실입니다..    장독대 앞쪽에 조성된 조그만 정원에는 현재 맥문동이 심어져 있는데 이것을 두고 또 말들이 많다고들 합니다... 상화 선생 생존시 찍은 사진자료를 보면 상화선생 뒤쪽으로 안채가 보이고 앞쪽으로는 정원의 꽃나무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의 그 석류나무와 장미넝쿨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 상화고택 최종 거주자로 알려진 이금주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정원에는 멋진 장미울타리가 조성되어 있었고 백장미, 붉은장미, 분홍장미 3종류의 장미가 심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수도꼭지가 복원되어 있는 바로 저 위치에는 상화 생존 당시 이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복원과정에서 정원과 우물을 정확하게 복원하지 못했다하여 말썽이 좀 있었다고 하네요.. 이에 중구청에서 정원과 우물을 정확한 고증을 통해 다시 복원키로 결정을 했다고... (뒤쪽에 사진자료를 하나 올려놓았습니다..참고하시구요..)                 안채의 모습입니다...  전통 일자형 안채의 전형입니다.. 좌로부터 부엌,방,대청,방. 참고로 우리네 전통 일자형 안채의 경우 부엌을 항상 안방의 우측에 배치하죠.. 그 이유를 풍수에서는 부엌방위의 팔괘오행이 안방방위의 팔괘오행을 생하는 조건을 맞추려다보니 그러한 조합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을 합니다..  바로 ‘相生’이죠..   자료를 뒤지다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집의 상량문에는 을축년(1925)이라 적혀 있고 지은 사람은 1970년대에 경북대학교 황교수란 분이 오셔서 자신의 아버님이 지으셨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6.25요리집으로 식당으로 사용되었다. 한 미망인이 운영했으며 육군사령부의 백두진 장군의 부하가 전쟁통에 사망하자 그녀의 아내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백두진 장군의 보호 아래 별자리가 아니면 술을 먹을 수 없었다 하고 집 앞에 백차(당시 지프형순찰차)가 즐비했다고 한다....(대구신택리지(260쪽),북랜드)”     왠지...              “용,봉,인,학...”   무슨 뜻일까???   “ 용봉인학은 상화선생의 4형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목우 백기만 시인께서 자신의 저서(상화와 고월)에 밝히기를 상화 4형제를 용봉인학에 비유한 것에서 취한 것이죠..”   ‘궁하면 통 한다’더니..     드디어...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辯之, 篤行只”(중용 20장)   ‘ 그래..모르는 건 묻고 묻고 또 물어야... 생각할 건덕지가 생기는 것 아닌가? 그래야 명쾌한 판단이 서고,,, 독행을 할 수 있는 것이지...’                             43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상화선생입니다... 부부의 사진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여담입니다만  ‘상화의 여성편력’에 대해 자료집에서 몇 자 인용해 봅니다...   “상화는 18세 충청도 서순애 여사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순애 여사와 장남 용희, 차남 충희, 막내 태희를 가졌다. 혼례를 치르자마자 부인을 냉대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독립운동가 였던 손필연, 도쿄의 신전구 유학생회관에서 유보화, 송옥경, 예기 김백희와도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상화의 여성편력에 대해서는 대부분 쉬쉬하는 경향이지만 이제는 있는 것 그대로의 상화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상화의 큰아버지 이일우는 상화에게 ‘고놈, 매삽고 차운 놈’이라 했다고 한다. (매일신문,최미화)                 일천 선생님께서는 ‘가훈’이라는 표현을 사용치 말라 하셨는데... 마땅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가훈이라 표현합니다...   상화선생 친필 ‘가훈’이라고 합니다...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이 묻어있는 게  참 좋네요...               우~~  상화선생 ‘혼례사성’이 지금껏 보존되고 있었네요...                       “日月之明, 江河之淸, 和平中正, 大韓之美”   (日月이 밝고, 江河가 맑구나, 비로소 화평중정을 이루니 대한의 아름다움이라)   해석이 제대로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서량장군이 상화의 백씨인 이상정장군에게 보낸 친필 휘호입니다..   상화형제의 맏형인 이상정 장군에 대해 몇 자 요약 인용해봅니다...   “이상정(李相定,1897.6.10-1947.10.27)은 이상화 시인의 맏형으로 1921-1923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해 오다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였다......(중략)......   서북국민부대에서 활약하다가 상하이 ,난징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이 시기에 윤봉길에게 폭약을 구해주기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장개석 국민정부의 초청으로 중경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1938년 김구, 김규식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임시정부, 1939년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에 선임되고 태평양전쟁의 종결과 동시에 육군중장으로 승진되어 일본군 북지나 방면 최고사령관 및 그 장병들의 무장해제를 담당하였고, 연합군 동경진주주의 중국군사령부의 막료로 임명...... (이하생략) (대구 신택리지 262쪽)”                     상화선생이 즐겨 탐독했다는 전등신화, 두시 그리고 서상기....   -       기타 당시의 책들....             그날... 유별나게 더 추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동쪽에 서 있는 고층 주상복합.....       남쪽을 가리고 있는 고층건물....   이 둘로 인해 상화고택은 하루 중 정오 무렵 딱 한 시간 정도만 햇볕을 받을 수 있답니다...   또한 고층건물 아래쪽은 다들 잘 아시죠??  건물에 부딪힌 바람이 아래로 곧장 쏠려 내려오기 때문에 엄청난 살풍(煞風)이 불어대는 지역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양택풍수라는 측면에서는 현 상화고택은 거의 흉지에 가까운 형국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드디어 고택에 볕이 들어오다........             위 사진이 바로 상화선생께서 정원을 앞에 두고 고택 안채를 배경으로 찍혀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앞에서 말씀드린 그 장미꽃과 석류나무가 보입니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보수되고 있는 상화고택의 모습....           이상화, 서순애 여사, 장남 용희, 차남 충희, 막내 태희     사진 맨 오른쪽 여성은 처제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예전의 우물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우리 곁.... 대구 계산동에서 살다간 민족운동가들...   맨 위 좌측에서부터 이상화 시인, 죽농 서균동(서양화가), 야청 최해청(청구대학설립자),이쾌대(화가), 이여성(월북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아래줄 좌측에서부터 서상돈(국채보상운동 주창자), 회산 박기돈(대구상업회의소 초대회장), 이상정 장군(이상화시인의 맏형), 최정희 소설가/김유영 영화감독, 백기만 시인   우측 하단 사진은 김수환 추기경(계산성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진 정 중앙 중첩된 부분의 아래쪽이 바로 계산성당 일대가 됩니다...  위에 언급한 인물들이 거의가 다 이 지역에서 사셨던 분들이죠...           역천 / 이상화     이 때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 더구나 그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좋은 밤이다. 초가을 열나흘 밤 열푸른 유리로 천장을 한 밤. 거기서 달은 마중 왔다 얼굴을 쳐들고, 별은 기다린다 눈짓을 한다. 그리고 실낱같은 바람은 길을 꺼려 바라노라 이따금 성화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오늘 밤에 좋아라 가고프지가 않다. 아니다, 나는 오늘 밤에 보고프지도 않다.   이런 때 이런 밤이 나라까지 복지게 보이는 저편 하늘을 햇살이 못 쪼이는 그 땅에 나서 가슴 밑바닥으로 못 웃어 본 나는 선뜻만 보아도 철모르는 나의 마음 홀아비 자식 아비를 따르듯 불 본 나비 되어 꾀우는 얼굴과 같은 달에게로 웃는 이빨 같은 별에게로 앞도 모르고 뒤도 모르고 곤두박치듯 줄달음질을 쳐서 가더니. 그리하여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하는지 그것 조차 잊고서도 낮이나 밤이나 노닐것이 두려웁다. 걸림없이 사는 듯하면서도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 ...... 아름다운 때가 오면 아름다운 그때와 어울려 한 뭉텅이 되어지는 이 살이 ...... 꿈과도 같이 그림같고 어린이 마음과 같은 나라가 있어 아무리 불러도 멋대로 못 가고 생각조차 못하게 지쳤을 때는 이 설움 벙어리 같은 이 아픈 설움이 칡넝쿨같이 몇 날 몇해나 얽히어 틀어진다.   보아라, 오늘 밤에 하늘이 사람 배반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오늘 밤에 사람이 하늘 배반하는 줄도 알았다.                 방명록흔적ㅡ...   “상화선생님... 당신은 逆天者의 삶을 사셨오??  아니면,  順天者의 삶을 사신 것이오??”    
341    zai永明 시 댓글:  조회:4792  추천:0  2015-04-05
  자이융밍(翟永明)   여성. 쓰촨 성 청두 출생. 청두전자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물리연구소에서 일했다. 1986년 첫 시집『여인』(리쟝출판사) 출간. 1989년 시집『모든 장미 위에서』(선양출판사) 출간. 1994년『자이융밍시집』(청두출판사) 출간. 1997년 시집『그것을 모든 것이라 부르다』(춘펑문예출판사) 출간. 2000년 시집『끝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다』(쟝쑤문예출판사) 출간. 1997년 수필집『종이 위의 건물』(둥팡출판센터) 1999년 수필집『강인한 찢어진 꽃』(둥팡출판사) 2003년 수필집『뉴욕, 뉴욕의 서쪽』(쓰촨문예출판사) 2005년 평론집『당신이 본 그대로다』(광시사범대학출판사) 영어, 불어, 네덜란드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으로 작품이 번역되어 해당 언어권에 소개, 출간되었다. 2004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집『커피숍의 노래』출간. 2004년 프랑스에서 불어판 시집『검은 밤의 의식』출간. 수상 및 활동 1992년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시대회 참가. 1992년 영국 런던대학 중국현대시토론회 참가. 1997년 제4회 프랑스 국제시대회 참가. 2000년 독일 DAAD(독일국제학술교류협회) 상금 수상. 2002년 스페인 제7회 세계여성시인토론회 참가. 2004년 프랑스 ‘시인의 봄’ 프로그램에 참가, 강연. 2004년 독일 본대학 중국문화제 참가. 2004년 덴마크 시대회 참가. 2005년 이탈리아 치비텔라 라니에리 센터 예술센터 상금 수상.       시간 미인의 노래   자이융밍   어느 날 친구와 우연히 찻집에 앉아 이야기했다, 개원(開元), 천보(天寶)1) 그 태평성대와 어지러운 변란의 시대를   내 젊은 시절 나는 사방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전쟁을 쓴 적도, 여인의 고독을 쓴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고난들이 말뚝처럼 내 기억을 찔러 꿰뚫었다 나는 쓰고 또 썼다, 중년이 될 때까지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 보름밤에 쟁반 위에서 춤추던 한 소녀 바람에 흔들리는 두 그림자 미(美)를 사랑하는 주위 사물들---- 그녀를 향해 기울어진 처마 그녀에게 만물의 기를 내뿜는 국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부풀리는 서풍, 그런 다음 비로소       그녀의 춤추는 다리를 주시하는, 거의 숨겨진 사람       달이 둥글 때, 나는 그 모든 것을 엿보았다       진실하면서도 확실하게       머리에 꽃을 꽂고 춤추는 한 여자아이를.       그녀는 춤췄다, 달빛이 그녀를 투과하는 듯했고       그녀는 춤췄다, 발바닥 뼈부터 위를 향하여 그녀는 춤췄다, 바닥의 낙엽들을 온통 날리며       (그녀는 궁정의 다툼에 무관심했고 바람 따라 춤추기만을, 바람 따라 춤추기만을 바랐다)         주위의 탐욕스러운 눈길, 미를 사랑하는 만물이 그렇게 그녀의 육체가 전부 드러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내 젊은 시절 몇 명만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 그 시들의 소재를 내가 질병과 유년기와 어둠 속의 모든 번뇌를 쓴 것을 나의 슬픔이 속세의 모든 것을 멸시한 것을 나는 쓰고 또 썼다, 중년이 될 때까지         나는 확실히 전쟁의 장면들을 본 적이 있다       봉화가 해를 가리고, 검기(劍氣)가 하늘을 찌르고       장수 깃발이 사방의 슬픈 노래를 휩쓸었다 왜 그 군막에서 처량한 노래가 흘러나온 걸까?                    술 한 잔이 빛나는 호박 술잔에 부어지고       한 여인이 페르시아 갑옷을 걸쳤다       무엇이 장군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했나? 무엇이 절세미녀를 공포에 질리게 했나?         (그녀는 오추마가 우는 의미에 무관심했고 그것을 따라가기만을, 그를 따라가기만을 바랐다)         오늘 밤 오래된 달과       내 머리털을 곤두서게 하는 찬바람 말고       또 누가 있는가? 피와 시체가 뒤엉킨 그 광경을 주시하는 이가   내 젊은 시절 나는 시로 쓸 소재들을 버린 적이 있다 나는 애정과 짝사랑과 남자의 응시하는 눈빛을 썼다, 오직 노쇠만큼은 쓴 적이 없다 나는 쓰고 또 썼다, 중년이 될 때까지       서쪽으로 몇 리를 가서, 온천산 속에     은은한 향의 열탕이 출렁이고 있었고 긴 비단옷이 접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서쪽으로 몇 리를 가서,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고     전쟁에 싫증난 장사가 버럭 고함을 지르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녀들의 죄상을 낭독했다       서쪽으로 몇 리를 가서, 도망치는 도중에     눈물의 달빛과 함께, 옥비녀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땅을 뒤흔드는 슬픈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끊임없는 속삭임, 끊임없는 맹세를 들었다)         천군만마가 그 온천을 밟고 지나갔는데도       그 물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향기롭다       후대의 애정, 막 생겨난 애정이 여전히 계속 솟아나온다, 그 샘구멍에서   어느 날 친구와 우연히 찻집에 앉아 연이어 오가는 태평성대의 세월을 이야기했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고, 더 이상 고집스레 사물의 반을 다른 반과 대립시키지도 않는다 나는 눈을 뜨고 연이어 오가는 사람과 일들을 보고 있다 세월은 그들 때문에 주저하거나 멈춘 적이 없다 나는 예전처럼 쓰고 또 쓴다 나는 이런 시행을 써내려갔다.              “둥근 달이 뜬 밤       대자리 위에서의 방자한 환락으로       그들의 뼈는 안에서 밖까지 노곤해졌다       남자는 여자를 우물(尤物)이라 부르기 시작했지만       또 다른 때       큰 화가 닥쳤을 때       도시가 타오르기 시작할 때       남자는 즐거이 그녀들의 죄상을 선고했다”       1) 개원, 천보는 모두 당나라 현종 때의 연호이지만 개원은 태평성대의 상징이며 천보 시대에는 안사의 난이 일어났음,   (김택규 역)   [출처] 중국현대시 - 자이융밍, [시간 미인의 노래]|작성자 하이에나    
340    朦朧詩 댓글:  조회:4613  추천:0  2015-04-05
  우 성(吳 晟)작  __ 중산대학출판사    몽롱시는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가     1) 인성(人性)의 세계 구축   몽롱시파는 “ 시인은 응당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것은 진실하고 독특한 세계이며 정직한 세계이자 정의와 인성의 세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성의 세계란 문화혁명 10년 동란 중에 파시즘의 독재에 대항해온 인도주의를 말한다. 시대에 역행한 때문에 보통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은 짓밟혔고, 인격과 인성은 왜곡되고 추상화되었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일종의 비역사화, 비정상적 환경 이화(異化)에 의해 오랫동안 적대시하며 그 괴리 속으로 빠져 들었다.      “ 까만 밤은 나에게 검은 안경을 쓰게 했다/난 오히려 그를 쓰고서야 햇빛을 찾았다”                                         (꾸청顧城 중에서)   황당한 시대는 광열(狂熱)에서 미망(迷惘)으로, 그리고 다시 깊이 사고하며 떨쳐 일어나는(深思奮起) 청년의 세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도주의를 기치로 내건 몽롱시라는 새로운 시의 풍조를 잉태하였다.  몽롱시가 사상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지향하는 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회복시켜, 새롭게 확립하는 것, 즉 인도주의를 부르짖은 것이다.      “ 영웅이 없는 시대에/ 난 그저 하나의 사람이 되고플 뿐이다 ”   이것은 베이다오(北島)가 라는 시에서 내뱉고 있는 장엄한 부르짖음이다. “하나의 사람이 되고 싶을 뿐”, 다시 말해 ” 진실“되고 ”정직“하며 ” 정의“롭고 또 ”인성“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 이것은 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 착오의 시대에 그러한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나는 사람이다/ 난 사랑이 필요하다/ 난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안에 있기를 갈망한다/ 조용한 황혼을 지날 때면/ 요람의 흔들림 속에서/ 아들의 첫 번째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풀밭과 낙엽 위로 / 모든 진지한 눈빛 속에서/ 난 생활의 시를 쓴다/ 이 지극히 평범한 바램이/ 이제 와서 사람 구실하는 대가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이 베이다오의 시 은 에게 참혹하게 살해된 위루어커(遇羅克)열사에게 바치는 시이다. 그 의의는 이미 시 자체를 벗어나 보다 넓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저 인간과 요괴가 뒤바뀐 시대에 얼마나 많은 우루오커와 장즈신(張志新) 같은 “진지함”과  ”정직“, ” 정의“의 진리수호자들이 기본적 생존의 권리를 위해 젊은 생명을 바쳤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선량한 공민들이 이화(異化) 속에 왜곡당하고, 심령을 심각하게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 나는 일찍이 형체가 없는 인간과/ 악수하였다, 한번 울부짖으니/ 나의 손은 화상을 입고 / 낙인이 찍혔다“에서 더 나아가 “ 나의 내면 깊은 곳에 / 낙인이 남겨졌다/” (베이다오의 ), 여기에서 “ 형체가 없는 인간” 은 10년간의 문화혁명 시기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킨다. 베이다오의 이란 시는 바로 인도주의의 찬가이다.      “ 부드러운 어린 풀들의 팔이 태양을 받쳐 든다 /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널 향해 간다 / 빛이 모여들고, 넌 벽시계처럼 종소리를 내고 / 산 정상에 쌓인 눈을 털어버린다 / 주름살 깊이 전율의 공포와 슬픔 / 마음은 다시는 무대 뒤로 숨지 않는다 / 책이 창을 열고, 새들은 무리지어 자유롭게 비상한다 / 늙은 나무는 다시는 코를 골지 않고, 다시는 마른 등나무를 가지고/ 어린 아이의 저 민첩한 종아리를 붙잡아 두지 않는다 / 보석 같은 열매가 소녀의 손 안에서 반짝이고 /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기 이름을 갖고/ 자기의 소리, 사랑과 소망을 갖는다 ...,”   이것은 1981년 제 5기에 발표한 시로, 시간적으로 보면, 분명 우리민족과 인민들이 10년 대란을 거쳐 새로운 삶을 획득한 것을 노래한 시이다. 아침의 태양은 벽시계처럼  저 황당한 시대에 대해 조종(弔鐘)을 울리고, 기나긴 밤과 적설의 냉혹한 겨울을 마감했던 것이다.  선량한 인민의 “전율의 공포와 슬픔”도 없애 버리고,  서로 경계하던 방어선도 없애고 나서,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게 되었다. 한 때 황폐했던 학업이 다시 시작되어, 이상의 돛을 달았다. 사상이 해방되어, 새떼처럼 하늘 아래 자유롭게 비상한다.  노인들은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아량 있고도 너그러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시는 청년들의 손과 발을 구속하지 않는다. 소녀는 빛나는 사과를 받쳐 들고 있는, 여전히 아름다운 작은 천사이다: 한 때 자아가 왜곡되고 상실되었던 사람들은 사람됨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그 인격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_______      “ 바로 그렇게, 늦은 밤에서 늦은 밤까지/ 넌 매번 죽어갔고, 매번 다시 태어났다/ 생명은 연연히 이어지고, 지평선도 계속 연장되고/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니/ 그럼 다시 시작해보자꾸나”     “늦은 밤에서 늦은 밤으로”이어진 10년 동란 중에 우리 민족은 전대미문의 재앙을 맞아 준엄하고도 파멸적인 시련을 견디어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거인 같아서 일단 일어서면, 아무도 다시 밀어 넘어뜨릴 수 없었다. 보라, 그녀는 동란 중에 새 삶을 획득했다, “ 생명은 연연히 이어지고, 지평선도 계속 연장되고” 그녀는 새로운 자태로 동방의 지평선 위에 우뚝 서있다. 만물이 다시 소생하고 모든 폐허가 다시 부흥하여, 우리 민족은 마치 막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이 새 날을 맞아 새로운 역사발전의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수팅(舒婷)은 말하기를 “나는 내 자신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은 존중과 신임과 온난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시를 통해 사람에 대한 모든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은 충분히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마음의 길을 따라가면 결국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녀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세계를 깊이 들어가 인성을 깊이 탐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과 신임, 이해를 갈망하며, 더 나아가 집착하게 된다. 그녀는 이라는 시에서 ”모든 고난과 실패를 견디어내고/ 따뜻한 광명의 미래를 향해 영원히 날아오르는/ 아, 피 흘리는 날갯죽지/ 한 줄이라도 만족할 만한 시를 쓰고/ 모든 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모든 연대로 진입하고 싶다/ “   에서는:         오직 승인 받지 못할 때에만 / 비로소 특별히 용감하고 진실해 질 수 있는 것 / 비록 눈물처럼 부서져 내릴지라도 / 민감한 대지 / 아직도 곳곳에는 / 오래고 깊숙한 메아리 소리가 있다/   그녀의 에서 중심이미지는 “진주조개”이다. 인생의 가치를 상징한다. 시인은 그것을 시를 통해 “바다 눈물”의 결정체로 의미심장하게 보았다. 개체의 생명가치의 실현은 마치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아서 무수한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내어 무수한 실패의 엄중한 시련을 이겨낸 뒤, 마침내 생명의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에서도 지적하듯, 인생가치의 실현은 외부 현실 환경에 대한 투쟁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고질적 결함의 도전을 받아야 한다. 에서는, “하늘에서는/한 떨기 별이 되고 싶다”, “땅 위에서는/ 한 개의 등불이 되길 바란다”라 하면서 조금이라도 열기가 남아 있으면, 그만큼의 빛을 발하고 싶다고 한다. 개인 가치의 실현은 반드시 개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공헌, 그리고 사회의 개인에 대한 승인과 존중이 결합되어야 하며,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은 모두 단편적인 것이다. 에선 생명을 “못"  “기계” “나뭇잎” “물보라” 등과 등가로 보는 가치관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누가 영웅이 이미 추인되었다고 말했나 / 사망은 잊혀질 수 있다/ 누가 말했던가, 인류 현대화의 미래가 / 반드시 생명으로 이처럼 선혈 낭자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맹렬한 공격으로 “발해 2호” 시추선 72명 대원들이 조난을 당하게 한 관료주의 작태는 사람들의 생명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꾸청(顧城)은 말한다, “ 후에 아주 긴 사상반복의 과정을 겪었다 . 당시 서방문화가 중국대륙에 들어오도록 해금된 후, 하나의 유행이 생겨나, 영향력이 아주 컸는데, 이를 ”자아 찾기“라 불렀다. 나 역시 당시의 그 사상 논리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갔다.” *(주: 105) “자아 찾기”란 이것은 잃어버린 생존가치와 생명의 의미를 되찾자는 것이다. 꾸청의 시에 비교적 빈도 높게 나타나는 이미지는 “ 작은 풀” 이다.  그것은 “고통의 대지 위에서 성장해온, 그렇게 여리고 작게, 그렇게 밀집되어 하늘아래 서 있다. 더군다나 먹구름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어떤 것도 피하지 못하고 모두를 다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알지 못하고, 색깔 고운 나비도 벌꿀도 날아오지 않으며, 아름다운 찬미의 말도 경이로운 탄식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태어나 성장하여, 작고 작은 꽃을 피워내며 자랑스럽게 머리를 쳐들고 있다“ *(주: 106) 이 평범하고도 보잘것없는 ”작은 풀“은 시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생명 의지의 창의적 표현이며, 역시 저 시대 청년들의 생존상태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비록 열악한 환경 조건 아래서, 심각한 기형으로 자라고,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완강하고도 자랑스럽게 병든 것처럼 보이는 꽃잎으로 ” 머리를 쳐들고“ 자신의 가치실현을 위해 항쟁하고,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일시 유행했던 개인숭배나 영웅 신화에 대한 배반이나 전복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긍정이며, 예찬이다.   다른 몽롱시인과 다르게 꾸청은 보통사람의 생존 가치와 인생을 탐구하고, 사람의 자성(自性)의 본질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그 당시 나는 자연에 대하여 일종의 신앙을 갖고 있었고, 나의 자성에 대하여도 일종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 나는 자연 속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수많은 망상을 갖지 않게 되고, 내 생명의 자연미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주 107) 그의 작품으로 보면, 이러한 자성은 인간의 자연성과 본질이다. 꾸청이 보기에, 그들이야말로 사람들이 특수시대에 이화되어 잃어버린 가장 진귀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순박과 진실로 되돌아 가고, 사람의 자연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물고기고, 나는 새다/순은의 비늘과 깃털이 가득 나서“ ”가야금 줄을 강 뚝에 보내고/ 꿀을 꽃의 애인에게 보내는“ 인생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夢痕〉) 〈感覺〉에서 ”새빨감“과 ”연녹색“은 ”아이들“을 주제로 한 동화세계를 상징하며, 인간의 자연성을 은유한다.  ”한 무더기 죽음의 재 가운데/두 아이가 지나간다/ 하나는 새빨갛고/ 하나는 연록색이다“에서 인간의 자성과 본질 즉 자연성과 순진에 대한 회귀를 암시하고 있다.   양리앤(楊煉)의 〈푸른 광상곡〉은 “깎아지른 절벽 몸서리치면/ 흑색 메아리가 들리고”, “차디찬 도깨비 불 음산하게 흔들리면/ 시끄러운 대낮이 이미 죽어버렸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또 하나의 “향기로운 세계”를 환상하게 된다. 또 “”하늘과 대해의 흉금에는/ 천천만만 송이 자주 붓꽃을 가득 꽂고“, ”소녀들은 금 빛 조개껍질을 뛰쳐나가/ 시원한 달 빛 아래 노래하고/ 하늘은 아름답고, 바닷물은 조용한 데“, 깊은 사색을 거쳐 시인은  마침내 철저히 깨닫게 된다.      나의 자작나무가 침묵하고 있네 /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돗대처럼 /  세계의 색체는 그의 발 아래 변화하고 / 바로 여기, 무수히 날아가 버린 순식간 / 그것은 햇볕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매미의 우수를 따라 노래하지도 않는다 / 오직 낳고 자라는 것만이 자신의 운명을 증명해 준다   자작나무는 시인의  “자아”를 나타내 준다. 시인은 개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거나, 현실을 도피하거나, 환상에 희망을 걸거나 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 여긴다.             2) 이미지의 충격과 신속한 전환   새로운 시의 조류로서 몽롱시는 예술적으로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시가는 형식의 위기를 맞고 있다. 많은 낡은 표현 수단은 이미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은유. 상징, 통감(通感), 시각 변화, 관계 투시, 시공 질서 타파 등 수법을 자신의 시 속에 끌어 들여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영화의 몽따지 수법을 내 시 속에서 시도함으로써 이미지의 충격과 신속한 변환을 이루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대대적 도약이 남긴 공백을 메꾸고자 한다. 또한 나는 시의 용량, 잠재의식, 순간 감수(感受)의 포착을 중요시한다. *(주 108)   신 중국 탄생 이후의 중국 시단은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와 낭만주의의 두 가지 창작방법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현실주의는 객관적 진실 반영을 특징으로 하여, 객관을 충실히 모사하는데 비해, 남만주의는 주관, 이상의 표현을 특징으로 하여, 주관, 이상에 대하여 아름다운 동경을 하고 있다. 70, 80년대에 들어서 사람들의 생활과 정감이 날로 풍부하고 복잡해 지며, 특히 젊은 이들이 10년 동란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와 환멸, 방황과 미망, 그리고 각성을 남겼다 섬세하면서도 민감한 여 시인인 수팅은 솔선해서 새로운 시의 조류의 미학선언인 〈나의 동시대인에게 바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의 처녀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 금지구역에 들어갔다, 아마도- / 바로 그곳에서 희생되어 / 비뚤어진 발자국을 남긴 것은 / 후세 사람들을 위해 / 통행증에 시인을 해준 것인가 보다 /   “마음의 처녀지를 개척”한다는 것은 예술적으로 낭만주의처럼 그렇게 감정을 직접 나타내거나, 이미지를 빌려서 상징, 은유 또는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몽롱시가 취하고 있는 “상(象)”은 대부분이 현실의 象이지만, 그 뜻은 현실 사물 자체가 아니고, 시인의 주관적 정서의 일종의 대응물이다. 의화(意化)되었기 때문에 취득한 물상이 그것 자신이었건 그것 자체가 아니건 심미적으로 불확정성과 다원성, 모호성을 조성하고 이에 따라 주제의 다의성과 복사성(輻射性)을 만들어 낸다. 몽롱시란 명칭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몽롱시의 예술적 가치 지향 중의 하나는 바로 이미지화- 이미지의 고도 밀집을 통해 충격의 태세를 형성하게 된다. 수팅의 〈思念〉을 보자.       한 폭의 색채현란하나 선감이 부족한 괘도, / 청순하나 해답 없는 대수 한 문제, / 한 줄 거문고 하나, 처마 낙수의 염주를 튀긴다, /  피안에 다다를 수 없는 한 쌍의 노. / 꽃봉오리처럼 묵묵히 기다린다, / 석양처럼 멀리서 주목하고, / 아마 먼 바다를 감추고 있나 보다, / 그래도 흘러나오면, 두 방울 눈물일 뿐.   그것은 누구를 사념한다거나, 어떻게 사념한다거나 하고 쓰지 않고, 일련의 이미지로써 사념의 특징을 포착하여, 사념을 깊이를 투시하며, 추상족 사념을 느낄 수 있는 구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괘도”는  “색체현란하나 선감이 부족”하고,  대수는 청순하나 해답이 없어서 사념을 포착하는 것이 분명한 데서 모호한 데로 운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빗소리와 한줄 거문고가 화음을 이루고, 서로 받쳐 주면서 한 방울씩 빈 계단에 떨어지는 처마 빗물과 선사의 손안에 있는 염주가 상응 대조하여, 사념의 고적함과 지속성을 체험한다. 피안에 다다를 수 없는 노 한 쌍으로 사념의 영원과 집착을 느낄 수 있고, 꽃 봉오리도 사념이 기다림의 희망이 있어 아름다운 고통임을 비유한다. 석양은 사념이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연민과 사물에 충만한 생동의 이치를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 먼 바다를 감추고 있으나, 흘러나오면 두 방울 눈물일 뿐이라 한 것은 사념의 풍부성과 심각성, 그리고 함축의 품격- 동방 민족의 심오함축적 정서적 특징을 나타내 주고 있다. 짧은 몇 줄의 시에서 사념의 품격을 남김없이 통쾌하고, 충분히 풍부하게 투시하고 있다. 이는 현실주의나 낭만주의가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수팅과 꾸청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다르게 베이다오의 시의 이미지는 보다 냉엄하고 장려하며, 심지어 얼마간 황당기괴함까지 있다. 예를 들어 〈雨中紀事〉에서는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직각을 썼다.        책이 탁자 위에 펼치면/ 푸석푸석 소리가 나네, 마치/ 불 속에서 나는 소리 같이/ 부채를 접은 듯한 날개/ 아름답게 펼치면, 심연의 상공에/ 화염과 새가 같이 있네   탁자 위에 펼친 책은 시인의 심미적 직각 속에서 갑자기 불속에서 푸석푸석하는 소리와 펼쳐진 날개로 바뀌고, 이는 각각 열정과 이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잘못된 시대에 가슴 가득 열정이 충만하지만, 이상은 항시 물거품으로 변한다. 열정이 높아질수록, 이상이 더욱 고통스러워져, 마치 “화염과 새가 같이 있는” 것과 같고, 열정은 이상에 고통을 주고, 양자는 깊은 모순에 빠지게 되어, 비정상적 시대에 대한 시인의 분노를 표현해 주고 있다.   쟝허(江河), 양리앤(楊煉)의 후기 몽롱시 필묵을 원시 신화시대로 뻗어, 민족 문화의 심층구조를 다루면서, 민족 문화 정신을 발굴하고, 현대 동방의 역사시를 창조하고자 한다. 양리앤의 연작시 〈敦煌〉, 쟝허의 연작시 〈태양과 그의 반사〉는 모두 원시 신화로부터 제재를 따오고 있지만, 단순히 신화를 다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신화 원형에 대한 개조를 통하여 선명한 현대 의식을 부여하고 있다. 〈태양과 그의 반사. 해쫒기〉에서는 “길 떠나던 그 날, 그는 이미 늙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태양을 쫒지 않았을 것이다/ 청춘 자체가 바로 태양인 것을”, “전설에 의하면, 그는 목이 말라 위수와 황하를 다 마셔 버렸다지만/ 사실은 자기자신을 가득 따라 태양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울퉁불퉁한 땅 위에 깔고/ 길이 있고, 주름 살이 있고, 말라버린 호수가 있어“, ”태양을 그의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을 때/ 그는 태양이 매우 연약하서 아플 정도로 연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시는 신화 〈과부추일(誇父追日)〉의 완강한 투지와 희생정신을 보존하면서도, 과부라 하는 인류 주체성의 추상적 공동(空洞)을 버리고 그의 자신의 가치와 생명의 의의에 대한 추구를 추가시켰다. 그가 해를 쫒는 것은  인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자기 자신의 청춘불로를 위해서 이기도 하다, 과부와 태양, 즉 인류와 자연의 대항이 인류와 자연의 화합으로 개조되고, 자연이 인류를 위협하던 데서 인류에 의해 정복된 역사 과정과 사회 진화로 융화되어, 민족성과 현대 의식이 성공적으로 융합되는 것이다.                                      발표      [출처] 중국의 몽롱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1)|작성자 푸른섬  
339    gou城의 시론 연구 댓글:  조회:4811  추천:0  2015-04-05
顧城의 詩論 硏究 金泰成* Ⅰ. 들어가는 글 Ⅱ. 顧城 詩와 詩論의 背景 Ⅲ. 顧城 詩 內容上의 範疇 1. 自然 2. 幻想 3. 生命 Ⅳ. 맺는 글 Ⅰ. 들어가는 글 中國의 當代詩歌는 ‘10년간의 동란’으로 규정되는 문화대혁명(이하 ‘文革’으로 약칭함)이 막을 내리고 이른바 社會主義 新時期가 시작되는 시점인 1976년을 기점으로 하여 청년시인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번영에 대한 謳歌, 개인과 사회의 모순 및 文革의 상처와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폭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정신적 충격 등 다양한 내용의 詩歌가 대거 창작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진정한 문학정신이 소생하고, 정치에 종속되어 위축되고 왜곡되었던 문학의 부정적 현상들이 일소되어 중국 시단에 새로운 백화제방의 활기가 넘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중국 當代 新時期 詩歌를 특징지워주는 대표적인 思潮로서 이른바 ‘朦朧詩 論爭’을 불러일으켰던 朦朧詩派를 들 수 있는데 北島, 顧城, 舒婷, 江河, 芒克 등을 대표적 시인으로 하는 이 新詩의 흐름은 단순히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몇몇 청년시인들의 현대적 기법을 사용한 창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文革시기에 北京에서 비밀리에 이뤄졌던 살롱문학과 70년대초 ‘上山下鄕’ 시기에 知識靑年들의 주요 문학활동 거점 가운데 하나였던 ‘白洋淀詩群’, 그리고 1976년의 천안문 詩歌運動으로 이어지는 문학의 역량이 결집되면서 지하간행물인「今天」을 중심으로 풍부한 문학적 토양을 형성함으로써 이뤄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들의 詩를 개혁 개방에 따라 유입된 서구 문학사조의 반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中國 當代 詩歌의 경향을 세분화하지 않고 개괄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들의 詩에 담긴 진지한 문학정신과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등을 근거로 하여 이들의 詩를 역사의 특정한 단계와 이를 견뎌낸 문학역량의 결정으로 보는 보다 구체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혁명의 실패와 왜곡된 역사에 대한 실망, 그리고 자아에 대한 처참한 억압을 체험한 이들 청년시인들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유형으로 초현실주의 상징수법을 통해 정치성과 자아의식을 동시에 표출한 北島의 시와 낭만적이고 여성적인 색체의 詩語로 이성적 사고와 감성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왜곡된 현실의 고통을 폭로하고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적 애정을 토로한 舒婷의 敍情詩, 동양신화의 원형을 매개로 한 陰柔의 美와 군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영웅 서사시로 대표되는 江河의 시세계, 主知的인 思辨과 화려한 낭만성을 겸비한 楊煉 詩의 主知性, 아이들의 천진한 눈동자로 純粹의 美를 추구하며 몽상을 통한 영혼의 시각으로 모순이나 갈등이 없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지하여 현실에 실현하려고 시도했던 顧城의 시세계를 들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같은 朦朧詩를 現代主義 또는 現代派 詩로 단정하면서 서구의 현대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각을 지양하고 이들의 詩가 주로 현대적 기법으로 쓰여지긴 했으나 그 창작의 바탕은 특수한 역사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이를 위한 수단으로 朦朧詩派의 대표적 詩人이면서도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顧城의 詩와 詩論에 대해 초보적인 분석을 가하고자 한다. 이 같은 작업은 국내에서는 전체적인 분석과 이해가 미흡한 채 中國當代文學史의 한 章으로 정리되고 있는 中國 當代 朦朧詩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를 위한 기초적인 시도로서, 우선 그 一環으로 1993년에 이미 사망함으로써 창작활동을 마감했고 대부분의 詩歌 작품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향성의 굴곡을 보이지 않았던 顧城의 散文과 對談, 講演錄 등에 나타난 詩에 관한 편린들을 분석, 정리함으로써 그의 시세계를 개괄하고, 이를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작품의 이해를 위한 視覺의 형성을 꾀하고자 한다. 제목에 ‘詩論’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여기서는 문학적 기교나 詩作의 당위성, 작품의 사상성 등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일반적 개념의 詩論이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문학행위의 전체적인 방향을 의미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Ⅱ. 顧城 詩와 詩論의 背景 먼저 顧城의 창작배경을 一覽함으로써 그의 詩와 詩論을 보다 쉽게 조명할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하기로 한다. 그의 창작배경은 크게 文革이 초래한 기형적 역사현실과 이에 대한 반응, 자연에의 경도, 어린시절부터 계속된 남다른 독서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체득한 道家的 세계관을 들 수 있다. 顧城은 1956년 北京에서 태어났다. 文革이 시작되었을 당시 겨우 10세의 소년이었던 그는 1969년에 詩人인 아버지 顧工과 함께 ‘下放’되어 山東省 古黃河道의 황량한 해변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 항상 접하는 대자연에 대한 감응을 소재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 때에 쓴 시들은 주로 자연을 통해 감지된 인간적 친밀감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후에 「이름없는 작은 꽃들(無名的小花)」이란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1974년 다시 北京으로 돌아온 그는 설탕제조공, 운반공, 도장공 등 다양한 임시직을 전전하다가 이른바 朦朧詩 詩人들과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시가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文革 초기부터 그는 당시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왜곡된 삶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絶句 형태의 짧은 시구로 표현해내곤 했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매우 특수한 역사의 한 단계에 처한 한 ‘조숙한 아이’의 기형적 심리와 주변 세계에 대한 상념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처럼 특수한 역사상황이 顧城 개인에게는 ‘꿈의 파멸’이란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꿈이 파멸되고 있다. 꿈은 항상 파멸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나 파멸은 오히려 꿈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幻想在破滅着; 幻想總把破滅寬恕, 破滅却從不把幻想放過.   그는 자신이 체험한 일단의 역사전개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극복될 수 없는 대립의 모습을 보았고 이에 대해 모종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분노를 근거로 오히려 理想에 대한 강한 긍정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둔 밤은 내게 검은 눈동자를 주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것으로 빛을 찾는다 黑夜給了我黑色的眼睛 / 我却用它尋找光明   그리하여 顧城에게는 詩가 한 마디로 말해 ‘이상의 나무에 매달려 반짝이는 물방울’로 정의되었다. 그는 시 창작의 모티브를 ‘마음속의 純銀으로 열쇠를 주조하여 천국의 문을 여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예술의 목표를 ‘순수한 아름다움’의 실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낭만적 색채의 詩歌觀念은 현실세계의 갖가지 갈등과 분열, 부조화 등으로 인한 고통이 모두 詩속에 용해되어 하나의 해결점을 찾으면서 꿈 또는 환상의 세계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영혼의 절대적 자유를 찾게 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시의 세계는 예술창조의 범주일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 전체의 범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특수한 역사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은 顧城뿐 아니라 대부분의 몽롱시 시인들에게 커다란 창작동기로 작용하여 몽롱시의 전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는 人本主義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수한 역사현실에 외에 그의 詩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잠시도 그치지 않았던 왕성한 독서력을 들 수 있다. 특히 문혁과정에서 대부분의 책들이 走資派의 노선에 물들어있다는 이유로 압수되었을 때 우연히 남아서 그를 사로잡았던 책이 바로「파브르 곤충기」였고 이것이 자연에 대한 경도를 더욱 가중시키면서 그의 의식 속에 몽환의 세계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자연과 생명과 꿈의 和諧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화적 작품세계를 형성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 책이 그날 밤 나를 열광적인 동물애호가로 만들어주었다. 수백만 가지의 곤충들이 무한히 신기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략) 점벌레와 호랑나비의 몸에는 이상한 도안이 그려져 있어 매일 밤 내 꿈속을 날아다녔다.   就是這本幸存的「昆蟲記」, 使我一夜之間, 變成了狂熱的昆蟲愛好者. 上百萬種昆蟲, 構成了一個無限神奇的世界, (中略) 飄蟲和蛺蝶身上愧誕的圖案, 每夜都在我的夢中浮動…   山東을 떠나 北京으로 오자마자 그는 ‘책을 쌓아 만든 산’을 만나게 된다. 이 때 그가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은 屈原, 陶淵明, 李白, 杜甫, 曹雪芹 등 중국 고전문학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빅톨 위고, 발작, 안델센, 하아디, 도스또옙스키, 잭 런던, 시모노프, 로망 롤랑, 휘트먼, 헤밍웨이, 다빈치, 미켈란젤로, 롬바르트, 레빈, 로뎅 등 서양의 문인, 예술가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독서력이 그의 詩作에 있어서 서양 현대시의 영향을 거론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집중적이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시인의 의식 속에 비범한 정신세계가 형성될 수 있었고 이것이 그의 詩作의 배경으로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태양의 조명 속에서 검은 밤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잠을 거의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읽고 보면서 미친 듯이 위인들의 땅을 향해 달려갔다. (중략) 이것은 곤충학에 이어 두 번째로 내게 찾아온 ‘열애’였다.   在數不淸的太陽照耀下, 黑夜消逝了. 我幾乎忘記了睡覺, 一刻不停地看着, 讀着, 向着偉人的陸地狂奔. (中略) 這是繼昆蟲學之後, 我的第二次‘熱戀’.   물론 詩를 단순한 讀書의 産物로 볼 수는 없지만 顧城에게 있어서 讀書는 그와 그의 同時代人들이 처했던 특수한 역사현실 속에서 정신세계의 파괴와 왜곡을 막아주고 문학적 자양을 제공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의의와 기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顧城 詩와 詩論의 배경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상술한 자연에의 경도와 몽환의식을 바탕으로 그의 왕성한 독서력이 가져다준 道家的 세계관과 문예관이다. 儒家와 더불어 중국인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는 道家的 세계관의 흔적은 顧城 詩의 詩論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92년 11월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그가 자주 언급해온 ‘동양적 의미’와 ‘靈性’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연상태의 직관과 無爲로써 서양예술과 구별되는 동양예술의 정신을 천명한 바 있다.   동양예술의 주체는 있음(有) 또는 존재가 아니라 없음(空無), 즉 어떤 心境하에서의 자연적 觀注입니다. 이를 서양문화와 비교하면 달빛이나 공기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기운이 새떼를 날게 할 때 새들은 자연상태 그대로 입니다. 비행의 일정한 방향이 없고 자유롭습니다. 어디든지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靈性의 靈動이 동양예술로 하여금 無에서 有가 생성되게 하고 일정한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저절로 천연의 상태를 이루게 합니다. 동양정신은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靈性 역시 文字의 형식이 아니라 일종의 관계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늘의 관계이지요. 이것은 對象이 아니라 일종의 바램, 즉 선택방식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바램이 있기 때문에 저는 어디 있든지간에 저의 歸宿과 來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作爲東方的藝術精神, 與西方不同, 它的主體不是有, 存在, 而是空無, 一種心境下的自然觀注, 與西方文化相比, 它更像月光和空氣. 一種氣息使鳥群飛翔, 它是自然的, 沒有旣定的方向, 又是自由的, 它可能飛向任何地方. 靈性的靈動使東方藝術無中生有, 不拘一格, 自成天然. 東方精神並不是一個地理的槪念, 靈性也不是一種文字的形式, 它是一種關係; 人與人, 人與天; 它不是一個對象, 而是一種愿望-選擇方式的自如. 這愿望與我同在, 不論我走到哪裡, 都可能感悟到我的歸宿和來源.   또한 그는 이러한 자연상태의 直觀과 無爲의 결과는 예술품이 아니라 예술유희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志向 또는 心境이라고 규정하면서 莊子가 말한 庖丁解牛의 비유를 들어 동양의 예술을 ‘뜻을 얻고 형태를 잃어버리는’(得意而忘形) 전형적인 관념예술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그 전형적인 예로 도가적 경향이 강했던 위진 남북조 시기의 竹林七賢의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顧城이 道家에서 추구했던 무위자연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의 시 전체가 추구하는 환상과 자연, 그리고 이를 통한 생명의 체현은 다분히 道家的 傳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4세기경에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던 예술은 詩詞文章이나 繪畵彫塑가 아니라 일종의 風度, 이른바 魏晉風度였습니다. 이러한 풍도는 갖가지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그 예로 시인 阮籍을 들 수 있습니다. 在中國公元三, 四世紀時, 最受推崇的藝術不是詩詞文章, 繪畵彫塑, 而是一種風度, 所謂魏晉風度. 這種風度可以表現爲各種形式, 比如詩人阮籍.   또한 그는 언어의 규칙이 마음 속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하기 때문에 순수정신의 상태에서의 自然流露를 제시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주장하고 있다.   언어사용의 규칙은 실용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데 제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지요.(여러 차례의 분명한 전달을 통해 思路는 곧 관념이 됩니다.) 그러나 언어로 마음속의 느낌을 표현하거나 詩를 쓰고자 할 때는 그 규칙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인간은 순수한 정신의 상태에서 호흡과 맥박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소리에 영향을 미쳐 文字와 節奏를 선택하는 데도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전달입니다. 語言使用規則, 便於傳導實用的信息. 比如我們將在甚麽地方, 甚麽時間內做甚麽. (經過多次淸哲的傳導, 思路也就變成了觀念) 但是想要用語言表達你心裏的感覺, 寫詩的時候, 規則不能總是幇助你, 它還會使你誤入歧道. 人在一種純粹的精神狀態中, 呼吸和心跳都會發生變化, 這會影響到人的聲音, 使人在選擇文字和節奏時發生相應的變化, 這是自然的表達.   이는 “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道가 아니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라고 하여 언어의 완벽한 표현능력을 부정했던 道家의 언어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 외에 1950년대 초반부터 문예창작을 시작하여 희곡, 평론, 소설 등 여러 장르에 걸쳐 20여권에 달하는 작품집 낸 바 있는 중견시인인 아버지 顧工과 顧城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고 술회한 바 있는 모친, 그리고 어려서부터 가장 가까운 詩友로서 현재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누나 顧鄕 등 가정 내의 문학적 분위기와 가족들의 영향도 그의 審美觀 형성과 詩歌創作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배경요소라 할 수 있다. Ⅲ. 顧城 詩 內容上의 範疇 상술한 詩作의 배경으로 인해 顧城 詩의 내용상의 범주는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여 하나의 개념으로는 개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의 문학과 삶 전체에 절대적인 동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自我意識이고 이것은 다시 ‘꿈’, ‘幻想’, ‘夢幻’ 등의 어휘로 표현되는 상상적 요소와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자연에의 경도, 그리고 자연을 매개로 하는 생명의식의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曹文軒은 중국 80년대의 문학현상을 논하는 글에서 당시의 문학현상을 ‘낭만주의의 부활’로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요소를 그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顧城이 浪漫主義 詩人으로 설명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幻想 顧城의 다양한 詩的 범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 특히 80년대의 작품들은 현대적 自我가 발붙일 곳 없는 현실에 대한 도피의 형식으로서의 환상과 자연에의 경도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다. 비교적 현실성이 강했던 초기 몽롱시 단계에도 顧城의 현실도피적 경향은 두드러진 편이었다. 소년의 감수성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현실로부터 탈피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찾아낸 것이다. 顧城의 시와 시론에 ‘幻影’, ‘幻想’, ‘꿈’, ‘夢幻’ 등의 어휘로 셀 수 없이 자주 등장하는 상상적 세계는 그의 자아의식의 핵심을 이루며 詩와 詩論의 骨幹이 되고 있다.   내 환영과 꿈을 좁고 길다란 조가비 안에 넣어둔다 버들가지로 엮어 만든 돛은 아직도 여름매미의 긴 울음을 맴돌고 있다. 바람이 새벽 안개를 일으키면 나는 돛대의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항해를 시작한다. (중략) 잠들어버리자! 두 눈을 꼭 감으면 세상은 나와 무관해진다.   把我的幻影和夢 / 放在陜長的貝穀裏 / 柳枝編成的船蓬 / 還旋繞着夏蟬的長鳴拉緊椬繩 / 風吹起晨霧的帆 / 我開航了 / …… / 睡吧! 合上雙眼 / 世界就與我無關.   그러나 顧城은 꿈과 환상의 세계 속에서 自足하면서 이것이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또 다른 자아의 실현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만물과 생명,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꿈을 갖고 있다. 모든 꿈이 바로 하나의 세계이다. (중략) 나 역시 나만의 꿈이 있다. 그것은 요원하면서도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일 뿐만 아니라 세계 위에 존재하는 천국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 가장 순정한 아름다움이다. (중략) 그것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내 뒤의 어둔 그림자는 사라진다. 길만 있을 뿐이다. 자유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萬物, 生命, 人, 都有自己的夢. 每個夢, 都是一個世界. (中略) 我也有我的夢. 遙遠而淸晰. 它不僅僅是一個世界, 它是高於世界的天國. 它就是美, 最純淨的美. (中略) 我向它走去, 我漸漸透明, 抛掉了身後的暗影, 只有路, 自由的路.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에서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아의 완전한 자유를 謳歌하려는 試圖가 그의 詩를 다른 朦朧詩人들의 작품과 차별화시키는 주요 특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향은 지나치게 抽象的인 觀念의 遊戱로 빠지기 쉬운 일면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몽롱시 전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비평가 洪子誠도 이점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인 지적을 놓치지 않는다.   현실세계에 대한 그의 일방적 관찰과 현실세계에 대한 지나친 부정은 그의 동화세계를 허황되게 만든다. 독자는 물론 시인 자신에게 있어서도 꿈에 의해 만들어진 천국 속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마침내 저 세상을 떠나 현실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순수하지 못하고 모순에 가득차 있긴 하지만 진실한 생명과 활력의 땅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對現實世界過多否定, 也越發使他的“童話世界”陷於更多的虛幻. 不論對於讀者來說, 還是對於詩人自己, 都將不可能長久生活在這個夢幻來編造的“天國”裡, 他們終究要離開“彼岸”, 回到現實, 回到這塊雖不純淨, 而且充滿矛盾, 但却有眞實生命和活力的土地上來.   하지만 顧城에게는 꿈에 의해 만들어진 천국이 결코 추상적 관념의 유희로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물질에 대비되는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의 출발점과 귀착지는 이익, 즉 경제적 이익인 데 반해 예술의 출발점과 귀착지는 아름다움, 즉 이상주의적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政治的出發點和歸宿是利益 ― 經濟利益. 而藝術的出發點和歸宿則是美 ― 理想主義的美.   또한 顧城은 詩가 이뤄지기 위해선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뿐 아니라 정련된 언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정련된 언어가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감각이 아름다울수록 언어도 더욱 정련된다. 양자의 결합이 조화로울수록 시는 더욱 詩 다워질 수 있다. 詩人은 美的 感覺과 精鍊된 言語를 위해 혼례를 치러주는 사람이다.   只有美好的感覺和精練的語言相結合時, 詩才可能出現. 感覺越美, 語言越精, 二者結合得越和諧,(矛盾, 不平衡也能構成一種和諧)詩則越成爲詩. 詩人, 就是爲美感和精練的語言擧行婚禮的人.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 정련된 언어의 결합을 위해 顧城은 시의 독립을 요구한다. 시를 위해선 어떠한 습관이나 ‘합법적 사유방식’, ‘공인된 표현방식’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 필수적이며 이는 참된 詩精神의 소생을 의미한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신시기 이전에 정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典型 환경 속의 전형 인물’을 묘사한다는 현실주의의 고전적 원칙이 무너져버리고 극도로 획일화되었던 문학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습관은 정신의 감옥이요 담벼락이라 세계를 관통하는 믿음의 바람과 사랑, 이해, 그리고 신뢰를 단절시키고 마음의 바다에 조수를 단절시킨다. 습관은 정체요, 늪이요, 노쇠함이다. 나는 습관이 또 다른 습관에 의해 포위 당해 생기를 잃고 심지어 생명마저 잃어버리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시인이 참신한 시편과 심미의식으로 습관을 부숴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시인과 독자는 함께 소생의 환희를 누릴 수 있고 다시 한 번 자신과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習慣是精神的獄墻, 隔絶了橫貫世界的信風, 隔絶了愛, 理解, 信任, 隔絶了心海的潮汐. 習慣就是停滯, 就是沼澤, 就是衰老. 習慣的終點是死亡. 我感到, 習慣於習慣的包圍, 詩會失去了血色甚至生命. 當詩人用他嶄新的詩篇, 嶄新的審美意識, 粉碎了習慣之後, 他和讀者都將獲得一次再生 ― 重新地感知自己和世界.   想像이라는 詩의 본질은 시로 하여금 영원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정신세계를 건설해나가도록 결정지워 놓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면서 모든 변화에 적응하는 철학만이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詩的幻想天性決定了它永遠要開拓新的領域, 建築新的精神世界. 以不變應萬變的哲學, 終究會成爲歷史.   물론 다양한 시의 내포에 근거하여 顧城은 시의 본질을 想像으로 규정하면서 시의 사회적 기능도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는 사회문제를 직접 반영하는 정치시도 긍정하고 영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서정시는 특히 더 좋아한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시에는 적극적인 사회의식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장미와 劍은 결코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고 투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세계를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정치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듯이 물질도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我贊成有直接反映社會問題的政治詩, 更喜歡創造性地表現靈魂和自然美的抒情詩. 我以爲一切眞正美的詩, 都具有積極的社會意識. 玫瑰和劍並不對立, 鬪爭並不是目的, 鬪爭是爲了使世界變得更美好的手段.(中略) 政治不能代替一切, 物質也不能代替一切.   이 같은 詩論을 바탕으로 顧城은 한 시대의 인간들이 함께 조우하고 당면해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함께 추구하는 이상을 통해 용해하고 승화시켜야 하며 詩는 이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조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국이 우리에게 준 것과 우리가 조국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국의 역사와 위대함, 그리고 조국의 불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직각적 인상과 생각의 편단들을 정리하여「백주의 달」이라는 시적 필기로 엮었다.   我在想祖國. 在想她給予我們的, 和需要我們給予的. 在想她的歷史, 她的偉大和不幸. 我把我的一切直覺印象和思想偏斷, 整理成了一本詩體筆記 ―「白晝的月亮」.   하지만 그가 말한 적극적인 사회의식 역시 환상적 요소를 통한 현실의 개조를 의미한다. 결국 顧城 詩의 내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현실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의 환상과 이를 통한 현실비판까지 망라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의지를 강한 자아의식의 표출과 묘사로 일궈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단순하지 않은 그의 시세계를 顧城 자신은 ‘주체적 진실’과 ‘현대적 자아’의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다.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朦朧이란) 시의 상징성과 암시성, 깊고 어두운 관념, 중첩되는 인상, 그리고 잠재의식에 대한 의식 등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런 해석도 어느 정도의 의미는 있겠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아직 이 新詩(朦朧詩)의 중요한 특징들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신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객체의 진실에서 주체의 진실로, 피동적 반영에서 주동적 창조로의 전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근본을 놓고 따지자면 이 신시는 ‘몽롱’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심미의식의 소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按新理論是指詩的象徵性, 暗示性, 幽深的理念, 疊加的印象, 對潛意識的意識等等. 這有一定道理, 但如果但但指這些, 我覺得還是沒有抓主這類新詩的主要特徵. 這類新詩的主要特徵, 還詩眞實 ― 由客體的眞實, 趨向主體的眞實, 由被動的反映, 傾向主動的創造. 從根本上說, 它不是朦朧, 而是一種審美意識的蘇醒.   과거 우리의 문예와 시는 줄곧 내가 아닌 또 다른 유형의 ‘나’, 즉 자아취소, 자아회멸의 ‘나’를 선전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예컨데 나는 상황에 따라 모래알이 되기도 하고 길에 깔리는 돌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톱니바퀴가 되거나 나사못이 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칠정육욕을 갖고 있고 思考와 懷疑를 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중략) 새로운 자아는 바로 이 같은 파멸의 깨어진 기와와 벽돌조각 위에서 탄생한다. 그는 자신을 강제로 소외시켰던 거푸집을 깨뜨리고 꽃향기라고는 조금도 섞여있지 않은 바람 속에 자신의 몸을 내뻗는다. (중략)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가 된 자기 즉 인간이 된 자기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과 민족, 생명과 대자연을 사랑한다. (억압과 파멸을 기도하는 기계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는 표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특징을 갖춘 ‘자아’이고, 그것이 또한 현대 新詩의 내용이다.   我們過去的文藝, 詩, 一直在宣傳另一種非我的‘我’, 卽自我消失, 自我毁滅的‘我’. 如:‘我’在甚麽甚麽面前, 是一粒沙子, 一顆鋪路石子, 一個齒輪, 一個螺絲釘. 總之, 不是一個人, 不是一個會思考, 懷疑, 有七情六欲的人. (中略) 新的‘自我’, 正是在這一片瓦礫上誕生的. 他打碎了迫使他異化的模殼, 在並沒有多少花香的風中伸展着自己的軀體. (中略) 他愛自己, 愛成爲‘自我’, 成爲人的自己, 因而也就愛上了所有的人, 民族, 生命, 大自然.(除了那些企圖壓抑, 毁滅這一切機械) 他需要表現. 這就是具有現代特點的‘自我’, 這就是現代新詩的內容.   이처럼 顧城은 인간존재인 ‘나’로부터 출발하여 시대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사고를 표현하면서 영원히 민족의 일원으로서 노래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顧城의 시를 포함한 몽롱시에서 표현되는 자아는 결국 시대적 자아와 상통하는 것이다. 환상적 요소가 그의 시와 詩論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이긴 하지만 이를 만족시키는 필수적이고도 상호보완적인 요소로서 自然과 生命이 수반된다. 2. 自然 顧城은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생의 수많은 시간들을 자연과 교우하면서 살아야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조숙한 아이’였을 때부터 그에겐 자연이 교사였고 친구였으며 삶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詩에는 바람, 들풀, 강, 바다, 각종 곤충과 동물, 눈, 태양, 나무 등이 주요 詩語로 자주 등장하고 있고 산문 작품도 크게 詩論的 편단과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우화, 또는 동화적 이야기로 대별되고 있다. 그는 천성에 의해, 또는 갈망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속세를 떠나려는 바람을 갖고 있었으며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가장자리로 빠져나가 절대적 자연의 세계로 몰입하려 했다.   나는 자연에 감사한다. 자연이 내게 자아를 느끼게 해주었고 무수한 생명과 그 생명의 역사를 깨닫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나는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이 계속해서 내게 가져다주는 모든 것 ― 시와 노래에 대해 감사한다. 이것이 현실의 긴박한 전쟁 속에서, 기계의 굉음속에서 내가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자연에게) “나는 네꺼야”라고 속삭일 수 있는 이유이다.   我感謝自然, 使我感到了自己, 感到了無數生命和那生命的歷史, 我感謝自然, 感謝它繼續給我的一切 ― 詩和歌. 這就是爲甚麽現實緊迫的征戰中, 在機械的轟鳴中, 我仍然用最美的聲音, 低低的說我是你的.   顧城에게는 自然이 그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조감도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를 건축하는 주요 자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시에 대한 감각과 감지능력, 영혼과 정신공간에 대한 천착 등이 모두 시골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조형된 것이다.   철새가 내 머리 위에서 울고 커다란 기러기가 강가에서 잠든다. 이 때 나는 길을 상상하기도 하고 직접 태양과 바람, 그리고 海灣의 한결같이 깨끗한 색갈을 마주하기도 한다.   候鳥在我的頭頂鳴叫, 大雁在河岸上睡去, 我可以想像道路, 可以直接面對着太陽, 風, 面對着海灣一洋干淨的顔色.   이 같은 자연의 음성과 빛깔 속에서 그는 자연계만이 자신의 신선하고 미묘한 감각을 환기시키고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계시를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한다. 이리하여 자연과의 밀착은 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루면서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빗방울마다 안에서 유영하는 무지개를 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빗방울들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파란색 공간을 지니고 있었고 그 안에 나와 나의 세계가 들어 있었다.   我看見每粒水滴中, 都有彩虹遊泳. 都有一個精美的藍空, 都有我和世界.   이 같은 자연과 인간존재와의 일체감은 앞에서 설명한 환상, 즉 이상세계의 실현을 위한 결정적인 수단이자 통로가 되고 있다. 3. 生命 환상과 자연에 대한 천착과 더불어 顧城 시의 주요 내용이 되고 있는 것이 생명이다. 시와 생명의 二爲一體가 바로 그의 문예관이자 인생본체론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新時期 文學에 있어서 생명의식에 대한 각성은 비교적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顧城이 추구하는 생명은 일반적 의미의 외재적 생존상태나 내재적 생명력의 개념과는 달리 생명 본원에 대한 깨달음에 집중되어 있다. 顧城의 생명의식은 다른 同時代 사람들에게서보다 훨씬 먼저 나타나는데 이는 ‘生의 畏敬’을 선전하는 서양 철학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천부적 悟性에 의해 영혼을 의식하고 인간과 세계의 동일성을 체험하면서 생명의 내원과 귀착에 대해 숙고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詩語는 그가 12살 때 부친을 따라 山東省의 해안 마을로 ‘下放’되어 황량한 해변에서 돼지를 키우며 고독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당시에 지었던「生命幻想曲」에 처음 나타나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詩語로 자리잡는다.「生命幻想曲」은 사회로부터 유기된 한 소년의 의지할 데 없는 처량함과 함께 세계에 대한 연약한 생명의 선험적인 감각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내 발자욱을 도장인 듯 대지 위에 두루 찍어대면 세계도 내 생명 속으로 녹아들어 온다   我把我的足迹 / 象圖章印遍大地 / 世界也就溶進了 / 我的生命   이 같은 표현은 理性에 역행하는 어두운 사회에 대한 완곡한 항의이자 현실을 초월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顧城은 이 때 이미 생명을 위한 또 다른 존재방식을 설정해두었다.   나는 부르리라 인간의 노래를 천백 년 후에 우주 한가운데 울려퍼지도록   我要唱 / 一支人類的歌曲 / 千百年後 / 在宇宙中共鳴   顧城에게 있어서 詩作은 생활에 대한 발언이라기보다는 生命의 內在的 完成이며 일종의 자아실현의 방법인 것이다.   나는 내 일을 완성하고 싶다. 생명이 다할 때쯤 과실을 남기고 싶다. 나는 내 생명에 정해진 일을 완수하고 싶다. 즉, 생명으로써 세계를 건설하고 그 세계로써 내 생명을 완성하고 싶다.   我要做完我的工作, 在生命飄逝時, 留下果實. 我要完成我命裡注定的工作 ― 用生命建造那個世界, 用那世界來完成生命.   그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는 자신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세계보다 높은 天國’, ‘詩를 위한 童話의 樂園’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세계는 다분히 외향적이고 이타적이며 인류의 이상을 반영하는 성질을 갖는 동시에 내향적이고 自愛的이며 인생의 자아실현의 경로가 된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생명의식에 대한 천착은 영혼에 대한 문제와 아울러 피안의 세계, 즉 죽음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점에 대해 顧城은 생명의 필연적 歸宿을 인식하고 있다.   아무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모든 생명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곧 다가올 어둔 밤을 멀리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죽음은 세심한 농부처럼 한 알의 보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被太陽曬熱的所有生命 / 都不能遠去 / 遠離卽將來臨的黑夜 / 死亡是位細心的收穫者 / 不會丢下一穗大麥.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顧城에게는 이것이 생명의 종말이 아닌 ‘歸宿’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생명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형태의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顧城 詩의 주요 내용이자 소재가 되고 있는 自然과 幻想과 生命은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순환 내지 의존관계를 갖는 三位一體的 요소이다. 자연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생명의 구현체요, 환상은 생명으로 향하는 통로이자 수단이며 생명은 환상과 자연의 속성이 되는 것이다. 사실 幻想과 自然, 生命은 한 가지 실체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자연, 환상, 생명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顧城의 詩世界를 이루는 골간이며 이것이 서론에서 열거한 다른 朦朧詩人들과 작품에 있어서 확연한 차별성을 갖게 해주면서 그를 新詩潮에 있어서 ‘浪漫主義의 復活’을 상징하는 대표적 시인으로 부각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Ⅲ. 맺는 글 顧城은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20여년의 창작생활을 마감하긴 했지만 北島, 舒婷, 江河, 楊煉, 芒克 등과 더불어 중국의 80년대 詩壇을 대표하는 주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가 생명과 환상에의 천착이라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중국 當代詩歌史에 이른바 ‘新詩潮의 前衛詩人’ 의 하나로 기록되면서 문혁 이전의 관료주의 문학을 타파하고 진정한 의미의 문학정신을 회복하는 데 한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뉴질랜드에서의 의문의 죽음으로 인해 그간 쌓아놓은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마저 잠식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평가와 해석이 부단히 시도되고 있고 중국 당대문학사에서의 위상도 상당한 비중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顧城은 초기 작품에서 소년적 감수성으로 왜곡된 역사현실이 가져다준 고통과 좌절을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어느 정도의 현실참여 경향을 보이다가 시적 내포의 확대와 더불어 80년대로 들어서면서 환상에의 천착으로 인해 다소 현실도피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의 유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에게 있어서의 환상 또는 꿈은 진실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결국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아름답게 실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산문에 나타난 詩論的 편린들에서 잘 나타나있듯이 역사현실에 의해 소외되지 않은 주체적 진실의 표현과 자유를 본질로 하는 현대적 자아의 추구,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생명과 환상에의 천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에서 문혁이 끝나고 개혁, 개방 정책이 실시된 지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경제의 안정과 더불어 문예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안정적인 발전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文革이라는 특수한 역사현실이 가져다주었던 청년시인들의 분노와 감정, 그리고 시적 상상력이 위축되면서 변화된 현실에 대한 文學的 解釋이 80년대처럼 그렇게 활발하진 못한 실정이다. 한편 이미 시단 일각에서는 ‘後朦朧’이라는 시파가 나타나 초기 몽롱시의 진지한 문학정신을 희석시키면서 치열한 문학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몽롱시’가 이제 정리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내에서도 그 동안 이루어져왔던 중국 當代詩歌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과 이해를 종합하고 다소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한 연구를 서둘러 중국 新詩史에 굵은 획을 그었던 몽롱시파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자리 매김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作家別 심층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아울러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하나의 ‘文統’으로 整理해냄으로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中國 當代詩歌에 나타난 文學現象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單行本類 江熙, 萬象. 「靈魂之路-顧城的一生」. 北京: 中國人事出版社, 1995. 孟繁華. 「激情歲月」. 濟南: 山東敎育出版社, 1998. 顧城. 「顧城散文選集」. 天津: 百花文藝出版社, 1993. 顧城. 「顧城詩全集」. 上海: 上海三聯書店, 1995. 顧鄕. 「我面對的顧城最後十四天」. 北京: 國際文化出版公司. 1994. 孟繁華. 「1978: 激情歲月」. 濟南: 山東敎育出版社. 1998. 復旦大學中文系資料室. 「新時期文藝學論爭資料」. 上海: 復旦大學出版社. 1986. 王光明. 「艱難的指向―新詩潮與二十世紀中國現代詩」. 長春: 時代文藝出版社. 1993. 張鍾, 洪子誠. 「當代中國文學槪觀」.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86. 曹文軒. 「中國八十年代文學現象硏究」.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88. 趙俊賢. 「中國當代文學發展綜史」. 北京: 文化藝術出版社. 1994. 陳仲義. 「中國朦朧詩人論」. 南京: 江蘇文藝出版社. 1996. 陳超. 「中國探索詩鑑賞辭典」. 西安: 陝西師範大學出版社, 1990. 洪子誠. 「當代中國文學的藝術問題」.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86. 洪子誠. 「中國當代新詩史」.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3. 許世旭. 「中國現代詩硏究」. 서울: 明文堂. 1992.   2. 論文類 朴鍾淑. . 「忠淸中國學會 中國學論叢」제2집. 1993. 謝冕. . 「光明日報」1980년 5월 7일. 徐敬亞. . 「新葉」. 1982, 北京. 張學夢 等. . 「詩探索」제1기, 1980, 北京. 정성은. . 「中國語文學」제12집. 1990, 서울.  
338    남영전 / 률원소적 댓글:  조회:4256  추천:0  2015-04-05
남영전은 신화가 아니다  률원소적  (중국 백족)  착실하게 시를 읽는 사람이거나 진지하게 시를 담론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명도가 아주 높은 당대 시인의 이름과 그의 시작품에 서먹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시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가 바로 백의겨레의 후예이고 조선족의 우수한 시인의 하나인 남영전 선생이 아니겠는가.  시인 남영전은 년초(1999년초­역자 주)에 자기의 시집 몇 부 특히는 그의 ꡐ토템시ꡑ 시리즈를 수천리 떨어져 있는 동북의 장춘에서 서남의 성도에 있는 나에게 부쳐왔을 때 그의 이 묵직한 창조결실은 나의 열독 시선을 한껏 끄당겨서 저도 모르게 말해야 하겠다는 시심, 격정이 불시에 나를 사로잡았다.  무어라 할 것인가? 내 생각에는 가지가지 허황한 색채로 충만된 중국의 당대시단에서 남영전은 마술을 부려 ꡐ인위적인 부각ꡑ을 해낸 그런 시가 신화인물이 아니다. 이를테면 북도(北島), 서정(舒停)이라든가, 왕국진(汪國眞), 석모용(席慕容)이라든가, 떠, 이를테면 우견(于堅), 이사(伊沙) 등등이 아니라 남영전은 질박하고 구체적이며 감득하고 감지할 수 있는 시인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관시인이다.(비록 계관시인이란 칭호가 중국에는 없고 구미시단에만 있지만서도) 남영전의 계관이 직조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순수한 시인적인 정회를 포함한 시가예술에 대한 참된 탐구에 의한 것이지 사회에서 선사하였거나 그 어떤 외재적 신분 예컨대 박사, 교수, 잡지주필, 행정직무 등등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ꡐ직함ꡑ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남영전은 시가란 이름을 빌어 세상을 떠도는 예술떠돌이가 아니며 더구나 시인이란 간판을 내걸고 국록을 타먹는 벼슬길의 브로커는 더욱 아니다. 시인 남영전의 시가창작성취와 갈수록 높아가는 시단에서의 명망에 대해 나는 양자침 선생이 「역사의 부각 시혼의 굴기」란 글에서 시인 남영전에 대한 적중한 평어를 내린 그 말에 아주 찬동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ꡒ영전은 엄숙하고도 참된 시인으로서 민족과 인류와 시대에 대해 높은 책임감이 있는 시인이다. 그는 시단에 그 어떠한 미로와 경망이 나타나든 끝끝내 자기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그의 시는 시행마다 어렵게 산출되었기에 비로소 이런 진실한 성공이 있게 된 것이다.ꡓ(「길림일보」 1998년 3월 24일부) 의심할 바 없이 이는 시인 남영전이 시단에 나타나고 우뚝 서게된 데 대한 설득력이 크고 필요 불가결한 주석으로 여겨진다.  이제 나 자신이 시인 남영전을 계속 담론하려 한다.  만일 우리가 시인 남영전의 시문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면 어쩔수 없이 가슴을 들먹이게 하는 스냅(掠影)이 우리의 눈시울을 축축히 젖게할 것이다. 20세를 갓넘긴 남영전은 70년대초로부터 조선민족 고유의 문명과 견정불이한 성결한 영혼과 조선민족의 전통적 문화 그러면서도 새로운 창조를 향한 시가의 등짐을 지고 착실하게 시가왕국에서 시의 예술을 탐구하는 먼길에 들어섰다. 그동안의 고초와 간난신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시인 남영전에게서는 그것이 의지를 구현하는 필연의 길이였다. 시인이 「호태왕비」에서 은유한 것처럼  일월의 성스런 빛발  하백의 영험한 서기  은장도 날카론 서리  활궁의 강인한 탄력  피타는 부르짖음과  지성의 향불들이 모여 모여  웅위로운 비석으로 우뚝 솟았다  이 돌비석은 분명 일종의 상징이다. 그것으로 무얼 표현하려는가? 두 말할 것 없이 풍상고초를 겪었으나 쇠망하지 않는 위대하고도 고귀한 민족의 정신적인 거대한 기둥을 부각하려 함이다. 또한 새로운 역사적 비석을 우뚝 세우려는 것이다.  우뚝 솟아 세상을 굽어보고  우뚝 솟아 세상을 깨우치며  우뚝 솟아 불굴의 넋을 기른다.  장하고 벌묘하다! 한 민족의 정신품격과 이미지가 풋풋이 살아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시인 남영전은 천박하게 일반적으로 옛일을 회고하여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혈, 절실한 체험의 시로 백의겨레의 사라질 수 없는 장려한 재생의 시를 생동하게 표출하였다. 얼마나 기백 있는가!  이러한 시적 경지는 흉금이 좁고 사유가 경직된 시인은 절대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나는 단언한다.  시인 남영전은 민족정신의 신념과 개체생명의 신앙, 게다가 넓고 큰 인류의식을 밑바침으로 하였기에 시종여일하게, 쇠소리나게 시가왕국에로 끊임없이 매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인 남영전이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조선족 마을에서 걸어나오고 줄기뻗은 장백산맥의 원시림에서 걸어나와 중국 시단의 앞자리를 걷고 세계 시단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다 똑똑히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그리고 주로는 새로운 역사 시기 시인 남영전은 더더욱 혈기왕성해 범에게 날개 돋친듯 격정 드높이 공전의 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예민하고도 능란하게 「두 자루의 검」(조선민족 모어와 제2언어 한어)을 사용해 시가의 왕국에서 「남정북전」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사유관념을 쇄신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한묶음 또 한묶음 시가의 ꡐ미끼ꡑ를 던졌다. 이를테면, 『산혼』, 『백학』, 『해와 달』, 『신단수』, 『뻐꾹새』,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 『백의혼』, 『남영전시선집』 등등이다. 국내외에서 선후로 출판된 이러한 시집들은 하늘땅 뒤번지는 기세로 세찬 물결 파도치듯이 시의 애독자들을 정복하고 있다. 거듭 지적해야 할 것은 시인 남영전이 86년부터 창조해낸 특산품­ꡐ토템시ꡑ 시리즈인데 예컨대 신령토템의 「곰」, 생명토템의 「물」, 각성의식을 상징한 「사자」,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솔개」, 민족운명을 제시한 「백학」, 생존상태를 보여준 「백조」, 망령을 기리는 「뻐꾹새」 그리고 이상 세계에 잠긴 「거북」 등등은 더구나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시인 남영전은 어찌 공적이 탁월하고 성취가 뛰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경모하고 보편적으로 칭찬함도 뜻밖의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떳떳히 말할 수 있는 즉 그것은 시인 남영전이 수십차 시가의 수상대에 올라 자기에게 마땅한 창조의 보답을 받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 더욱 흥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시인 남영전이 자신의 성취와 영예 앞에서 내내 침착하고 냉정하여 스스로 만족하지도 않고 속세의 욕망도 강구하지 않는 점이다. 이는 바로 내가 여태껏 인정해 온 것처럼 진정한 시인과 진정한 시품은 거개가 다 군림하는 기개와 우주같이 넓은 도량이 있어서 그 시와 그 사람이 혼연일체를 이루는데 일종의 초종교와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인은 독자들이 포기하거나 파기할 수 없게 한다. 동시에 시인 남영전이 「신단수」에서 암시한 모종의 힘을 구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크나큰 기백으로 얼음산 이겨  아늑한 인간낙원 펼쳤습니다  신비론 신단수  천년 간들 만년 간들  칼바람에 찍히우랴  불갈기에 먹히우랴  물사태에 쓰러지랴  눈보라에 얼어 죽으랴  언제나 그 언제나  창천을 떠받치고  대지를 거머쥐고  떳떳이 떳떳이 솟았습니다  혹시 권내의 어떤 사람이 즉각 일어나 질문할 수도 있다. 시인 남영전과 그 시가는 그래 완전완미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이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시가의 거장으로 되었단 말인가?  내가 듣건대 질문에 일리가 있으나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설사 세상이 공인하는 이른바 시가의 거장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 하물며 시가의 스찔에 구별이 있음에랴. 시인 남영전으로 말할 때 시가의 거장으로서의 상황이 이미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목전에는 단정하기 어렵다. 시간과 역사가 검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객관적 입장에서 말하면 남영전의 시가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부 흠집들이 있고, 또 적어도 나 개인이 인정하는 ꡐ흠집ꡑ이 있다. 이를테면 한문시에서의 ꡐ之ꡑ. 이 허사는 적당히 사용할 때 어감의 역도를 증강하고 어태의 변화가 선명하고 이미지의 효과적인 면접에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더구나 음운에서 절주감을 풍부화하게 된다. 하지만 ꡐ之ꡑ가 시인 남영전의 시에서 눈길 끄는 ꡐ섬광ꡑ으로 매수 매행 매구에 다 있어 거의 초부하상태이다. 그러다나니 밀집화된 ꡐ之ꡑ는 도리어 뜻의 캐리어(裁體)의 발휘를 약화시켜 의경의 공간에 막히는 감이 있게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장력이 뻗치지 못하는 듯하고 많이 읽으니 외려 격막이 생긴다. 본래는 아주 현대적인 시구인데 도리어 현대문에 고문이 섞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시가는 언어구사에 대한 요구가 아무튼 높고 또 높아서 일자천균(一字千鈞) 즉 글자마다 매우 중요하니 옳게 쓰느냐 그르게 쓰느냐는 시인에게서 각별히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또 내가 지나치게 남의 흠집을 캐내는 까닭이 아니겠는가고도 생각해 본다. 다른 독자나 평자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시인 남영전이 탐구의 수요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는가고도 생각한다. 세 가지 가능성이 각기 성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귀띔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시인 남영전과 그의 시작품에 관하여 우리는 신문잡지에서 자주 평론이나 보도를 보게 되지만 내가 인정하건대는 그 관심하는 측면이 아직은 너무도 부족하고 그 평가의 폭도가 아직은 너무도 미달이다.(나 자신을 포괄하여 평만하고 론하지는 않는다는 잠정적인 전제를 설정하였으므로 깊이있는 발굴과 유력한 선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더 많은 문학평론가 주로는 시평, 시론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반 한어문시가 건설의 대업에서 그에 대하여 종횡관조, 전면결부, 겉에서 속으로, 속에서 겉으로 그 연구가 벌어지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시인 남영전과 그의 시가 앞에서 우리는 이제 할말이 더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는 과제가 남아있다.       
337    개 // 시모음 댓글:  조회:4711  추천:0  2015-04-05
장하빈의 '개 짖는 소리' 외  + 개 짖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들으면 누가 고갯마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동네사람인지 외지사람인지 굵은 빗줄기 재 넘어 오고 있는지 개 짖는 소리의 파장으로 금방 가늠할 수 있다 꼬리 흔드는 개를 보면 마을 손님 어디쯤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청도원인지 먹감나무집인지 동구나무 그늘 빠져나가고 있는지 먼 발소리 듣고 개는 꼬리로 신호를 보낸다 개 짖는 소리에 귀 쫑그리는 고개티사람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산다 (장하빈·시인, 1957-) + 개에게서 배우다 개가 사람을 키운다 목숨 같은 밥 때 맞춰 주질 않고 갈 곳 많은데 진종일 묶어 두고 몸 한 번 깨끗이 닦아주지 않으면서 실수해 밥그릇이라도 엎으면 이때라는 듯 눌러 온 속마음 죄다 드러내 욕질 발길질 질질대는 주인더러 사는 게 그리 고달프냐 나라고 이해 못하겠냐며 세상 다 품을 눈빛 실어 보낸다 뼈 부수는 송곳니 잘 감추고 함부로 발톱 내밀지 않고  사랑 받을 생각 없이 제자리 지키며 뭉텡이 외로움 푸르르 털어내 차가운 골방도 포근하게 만드는 걔, 워리가 죽는 날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려면 배고픔도 쓸쓸함도 삭이며 사는 거라고 사람을 가르친다 나, 개를 키우며 배운다 (박하현·시인) + 응시 사슬에 매인 루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불쌍한 밥그릇 옆에 하염없이 목줄이 매여 묶여 있는 루키 ----루키야, 너는 왜 개로 태어났니? 하늘이 비치는 순한 눈동자를 들어 루키는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흰 옷 입고 걸어가던 어머니처럼 인자하게 한번 더 나를 바라보는 루키. ----그런데, 너는 왜 사람으로 태어났니? 루키와 나. 그렇게. (김승희·시인, 1952-) + 개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일 미터 이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오직 세 가지 색깔  대지에 코를 박고 잠들 때 감싸주는 푸른 공기와 낯선 자를 공격할 때 덮쳐오는 까만 어둠 일용할 양식을 들고 오는 아줌마의 흰 앞치마   그 밖의 색깔은 내겐 필요없다   콧등을 어루만지는 다섯 살 배기의 서툰 애정이나 술 취해 귀가할 때만 반기는 주인아저씨의 세상 냄새 함께 집을 지키는 주인아줌마의 외로운 잔소리 코만 들이대면 모든 변덕이 냄새로 감지된다  나는 변방에 머무는 아웃사이더 사람들 세계로부터 소외된 방관자   하느님조차 나와 눈빛을 맞추지 않지만  아무도 키를 낮춰 나와 소통하지 않지만 게릴라처럼 달겨드는 천둥, 번개의 말씀이나 낮은 대지로부터 구름 밖 하늘의 말씀까지  나의 예언은 정확하다  열린 맨홀을 돌아나가라고 경고하는 것도  낯선 이의 통행을 먼저 차단하는 것도 골목의 하루를 점검하며 이웃 파수꾼과 교신하는 것도 모두 나의 하루치 몫   냄새나는 사람들의 하루를 지켜내는 나의 몫 나는 오늘도 경비를 선다 외로워 싸움을 거는 사람들 향해  불을 켜도 어둠을 쫓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김금용·시인, 서울 출생) + 개  망둥이를 낚으려고  노을 첨벙거리다가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서도 개는 내 수상함을 간파하고  나를 겁주며 짖는다  내가 여기 더 오래 살았어  네가 더 수상해  나는 최선을 다해 개를 무시하다  시끄러워  걸음 멈추고 개와 눈싸움을 한다  사십여 년 산 눈빛으로  초저녁 어둠도 못 뚫고  똥개 하나 제압 못하니  짖어라  나도 내가 수상타  서녘 하늘에  낚싯바늘 같은 달 떠 있고  풀 꿰미에 꿴 망둥이 댓 마리  푸덕거린다  (함민복·시인, 1962-) + 네 발로 걷는 스승  네 발로 걷는 스승이라는 冊이 있었다 거기, 악보를 볼 줄 알고 산수를 하고 천리안을 가진 개들이 있었다 인간이 개의 입장에서 본 이야기였는데 둘 사이에 對話도 가능하다는 것, 물론 나도 개를 사랑하지만, (내 누이는  장애견이나 유기견을 거두고 있지만,  그 중 '자비' 녀석은 忌日까지 기념하지만,  한겨울 뒷산에서 학대와 기아로 凍死 직전에  구출된 '기쁨'이는 다시 얻은 이름 그대로  재활에 성공한 케이스지만,)  오늘 나는 보았다   출가한 것이 분명한 어느 집 개인지 도심의  횡단보도를 단정히 건너는 준법的인 모습을 진화한 개들은 과연 그럴 수 있다                 개들이 얼마나 세상을 알려고 하는지 차에 태워보면 안다 슬픈 가축의 歷史,  초롱하기도 하고 그윽한 그 눈이 선량하다 (최병무·시인, 1950-) + 개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쫓으라면 쫓고 물라면 물었다 나이가 들어 기운이 빠지자 주인은 개를 개장수한테 팔았다 그리고 그는 살과 뼈가 따로 추려져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다 주인도 끔찍이도 사랑하던  제 개의 고기를 먹으며 자못 흡족했다 그 개는 죽어서 헐값의 가죽밖에 남긴 것이 없다 가죽보다 더 값진 교훈을 남겼다는 거짓과 함께. (신경림·시인, 1936-) + 유기견(遺棄犬)                                                               하늘이 보시기에                                                    개를 버리는 일이                                                    사람을 버리는 일인 줄 모르고                                                    사람들은                                                    함부로 개를 버린다                                                     땅이 보시기에                                                    개를 버리는 일이                                                    어머니를 버리는 일인 줄 모르고                                                    사람들은                                                    대모산 정상까지                                                    개를 데리고 올라가                                                    혼자                                                    내려온다                                                     산이 보시기에도                                                    개를 버리는 일이                                                    전생을 버리는 일인 줄 모르고                                                     나무가 보시기에도                                                    개를 버리는 일이                                                    내생을 버리는 일인 줄 모르고                                                    사람들은                                                    거리에                                                    개만 혼자 내려놓고                                                    이사를 가버린다  개를 버리고 나서부터                                                    사람들은                                                    사람을 보고                                                    자꾸 개처럼 컹컹 짖는다                                                     개는                                                    주인을 만나려고                                                    떠돌아다니는                                                    나무가 되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다가                                                    바람에 떠도는                                                    비닐봉지가 되어                                                    이리저리                                                    거리를 떠돌다가  마음이 가난해진다                                                     마음이 가난한 개는                                                    울지 않는다                                                    천국이 그의 것이다  (정호승·시인, 1950-) + 어떤 죽음 털이 짧고 갈색인 애완견이  며칠 전부터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가능하면 혼자 있으려고 한다 천성인 듯 사람을 잘 따르고  언제나 경쾌하던 개가 좋아하던 고기나 치즈를 줘도  제 발 위에 올려놓은 턱을 꿈쩍도 않았다 다만 주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젖은 눈망울을 한번 껌벅이고 스르르 눈꺼풀을 닫는다 15년 함께 한 주인이 가까이 오는 것도 거부하고 혼자 현관 앞으로 가 대문을 향해 엎드린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개와 나 사이가 참 적막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자세로 죽어 있었다 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이성이·시인) + 엘레지 말복날 개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나에게 말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엘레지 몰라요? 개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오탁번·시인, 1943-) + 돈 워리 비 해피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한번은 장염에 걸려  누렇고 물큰한 똥을 지 몸만큼 쏟아냈지요  아버지는 약값과 고기 값을 한번에 벌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성여고 수위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수육을 산처럼 쌓아놓고 금강야차처럼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씹을 듯했습니다  2.  누나는 복실이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해피야, 너는 워리처럼 되지 마  세 달만에 동생을 쥐약에 넘겨주었으니  우리 해피 두 배로 행복해야 옳았지요  하지만 어느 날  동네 아저씨들, 장작 몇 개 집어들고는  해피를 뒷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왈왈 짖으며 용감한 우리 해피, 뒷산을 타넘어  내게로 도망왔지요  찾아온 아저씨들, 나일론 끈을 내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해피가 네 말을 잘 들으니  이 끈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니?  착한 나, 내게 꼬리치는 착한 해피 목에  줄을 걸어줬지요  지금도 내 손모가지는 팔뚝에 얌전히 붙어있습니다  내가 여덟 살, 해피가 두 살 때 얘기입니다  (권혁웅·문학평론가 시인, 1967-)
336    北島 / 舒 女亭 댓글:  조회:4608  추천:0  2015-04-05
중국 상징시의 절망과 희망 베이다오와 수팅 시 비교     김금용                   중국 상징시의 절망과 희망             --- 베이다오와 수팅의 시 비교---        모든 것( 一切)                               베이다오(北島)     모든 것이 운명이요     모든 것이 뜬구름이다.     모든 것이 결말 없는 시작이요     모든 것이 순간적인 추구이다.           모든 즐거움엔 미소가 없고     모든 고난엔 눈물 자욱이 없다.      모든 언어는 거듭되는 반복이요     모든 교제는 첫 만남이다.     모든 사랑은 마음 속에 있고       모든 지난 일은 한 바탕 꿈이다.     모든 희망은 보충해석을 달고 있고      모든 신앙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폭발에는 찰나의 고요가 있고       모든 죽음에는 쓸데없이 긴 메아리가 있다 (一切都是命運/ 一切都是煙雲/ 一切都是沒有結局的開始/ 一切都是稍縱卽逝的追尋         一切歡樂都沒有微笑/一切苦難都沒有淚痕/一切言語都是重複/一切交往都是初逢               一切愛情都在心理/一切往事都是夢中/一切希望都帶着註釋/一切信仰都帶着呻吟/                一切爆發都有片刻的寧靜/ 一切死亡都有冗長的回聲 )                        또 하나의 모든 것(這也是一切)      __ 한 청년 시인의 시에 답하여(答一位靑年朋友的)__                                                     수팅(舒女亭)          모든 거목들이 다            폭풍에 쓰러진 것은 아니다         모든 씨앗들이 다              뿌리내릴 땅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다        모든 참사랑이 다           인심의 사막에서 유실된 것은 아니다        모든 꿈들이 다            자청하여 날개를 꺾은 것은 아니다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가 말한 대로는 아니다        모든 화염이 다             스스로를 태워 버리기만 하고             남을 비춰주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별이 다               단지 어둠만을 가리키며             새벽을 알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래가 다             귓가에 스쳐 지나가              마음에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가 말한 대로는 아니다       모든 호소가 다 반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손실에 다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심연이 다 멸망만은 아니다       모든 멸망이 다 약한 자의 머리에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심령이 다             발에 짓밟혀 진탕 밭에 짓이겨 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결과가 다            눈물과 피에 얼룩져 밝은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모든 현재는 미래를 잉태하며          미래의 모든 것은 어제로부터 자라 난 것이다.      희망을 갖고, 그것을 위해 투쟁할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그대의 어깨에 짊어질 일이다.                                                      不是一切大樹/都被暴風折斷:/不是一切種子,都 不到生根的土壤:/不是一切眞情              都流失在人心的沙漠里:/不是一切夢想/都甘願被折掉翅膀./不,不是一切/都像 說的那樣!/不是一切火焰,/都只燃燒自己/而不把別人照亮 /不是一切星星,/都僅指示黑夜/而不報告曙光/不是一切歌聲,/都掠過耳旁/而不留在心上/不,不是一切/都像 說的那樣!/不是一切呼 都沒有回響:/不是一切損失都無法補償:/不是一切深淵都是滅亡/不是一切滅亡都覆蓋在弱者頭上/不是一切心靈都可以 在脚下,爛在泥里:/不是一切後果/都是眼淚血印, 而不展現歡容/一切的現在都孕育着未來,/未來的一切都生長于 的昨天/希望, 而且爲 斗爭/請把這一切放在 的肩上/                                                             중국의 현역시인 베이다오(1949- )와 수팅(1953- )은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문화혁명을 거친 파의 대표 시인들이다. 베이다오는 경제개혁이 한창이던 1986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시 강연을 위해 베를린, 오슬로, 스톡홀름 등에 머물며 반정부적인 시를 발표, 지금까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시인이다. 베이다오(北島)는 1949년 북경 출생. 본명은 짜오진카이趙振開. 베이다오(北島)라는 필명은 "중국 북쪽의 고립된 섬"이란 뜻으로 그의 조국과의 정치적 정신적 현실적 고립, 단절, 격리를 의미한다. 그는 삼남매 중 맏이로 상해 민주촉진회 조직원이었던 아버지와 카톨릭 집안의 간호원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 劉少奇(1898_ 1969)등 제일 가는 정치가의 자녀와 같은 북경 제일의 명문인 북경 제4중학에 다녔다. 그러나 文革(1966-1976)으로 학업을 중단, 잠시 홍위병이 되기도 했으며 1969년엔 河北 농촌으로 강제의무노동을 갔다가 그 해 북경으로 돌아와 건축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기도 했다. 이 때부터 조국현실의 위선과 모순을 실험적이고도 창의적인 시로 피력해왔다. 그러므로 1976년 천안문사건 이후엔 친구시인이었던 왕커(芒克)와 함께 최초의 대자보형태로 을 발행, 북경 문화성 벽, 시단(西單:현 북경서쪽으로 중심가)등에 포스터 형식으로 붙여 대자보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 은 1978년 12월부터 1980년 9월까지 총 9회 발행했고 매 호 1천부 정도 찍었으며, 50전에서 80전까지 팔렸다. 그 후 81년에 라는 에스페란토어(만국어) 잡지의 문학부를 담당, 초빙되어 외국을 나가기 시작, 자주 드나들며 민주와 인권을 위해 시를 발표하며 투옥을 반대하는 연명부작성에 참여하기도 해서, 결국 북경의 가족들과 영구히 만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반면, 1953년 福健省에서 출생한 수팅(舒亭)은 10 년 간 계속된 文革기간 중에 전구고장의 여공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시작에 몰두, 문혁 중 금기시되던 남녀간의 연애시
335    西川 / 古馬 댓글:  조회:4465  추천:0  2015-04-05
  시촨(西川)과 구마(古馬)의 두 지류                                                      김 금용(시인)     1976년 문화혁명이 끝나고 등소평의 경제개방이 이뤄지면서 중국시단도 영락없이 한바탕 새 물결에 휩쓸렸다. 종전의 정치찬양 일색에서 문혁文革 중 노동개조소로 내몰렸던 아이칭艾靑같은 귀거래파歸去來波시인들이 대거 도시로 돌아오면서 진정한 개인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시풍이 꽃을 피우기 시작, 80년대엔 몽롱시파朦朧詩波가 시단의 중심이 되었다. 즉, 시가운동에 의해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이뤄졌던 것이다. 더욱이 1978년 12월 23일 민간 간행물로는 처음으로 《오늘(今天)》이 등장하면서 문인들의 통로가 열려 이로부터 막 부상한 몽롱시파의 대표시인인 北島베이다오, 多多둬둬, 顧城꾸청, 舒婷수팅의 시들이 빛을 보기 시작, 많은 독자층을 얻어냈다. 그러나 얼마 뒤 《오늘今天》도 폐간되고 베이다오는 망명 중이라 중국내 활동이 금지상태이고 꾸청은 아내를 사살한 후 자살을 하면서 몽롱시파는 이제 몇몇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이들의 터전 위에서 ‘신생대 시인’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시인’들이 등장, 각가지 외국사조를 받아들여 몽롱시파 시인들에게 패스를 외치며 나름의 개성 있는 시풍을 이뤄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중국시단도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시의 춘추전국시대에 휘말린 느낌이다. 특히나 2008년 올림픽을 치루면서 더더욱 그 현상은 고조되어 최근엔 조시組詩라는 새 형태가 도입, 시전문지마다 발표가 쏟아지고 있다. 조시組詩는 그러나 내용이나 시 경향상의 차이가 아니라 형태상의 차이일 뿐이다. 즉, 짧은 단시를 여럿 합친 연시 같은 시 형태로 長詩와는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시 형태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한 주제 안에서 몇 개의 소재를 선택, 그리 길지 않으나, 중국의 조시는 5페이지 이상 되는 시가 많다. 또한 일상생활에 중점을 두고 쓰는 현실주의 시가 많이 나오면서 산문시도 쉽게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서구화 영향을 받은 시풍에 반론을 내세우며 중국전통시를 가미한 새로운 신시가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젊은 유망주 시인들이 바로 시촨(西川)이나 구마(古馬)같은 시인들이다.   이 두 시인은 모두 60년 대 출생한 30대 젊은이들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의 젊은이들이 시만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건 참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한다. 물밀듯이 들이닥친 시장경제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상당한 유혹과 압박을 주는 게 현실인 만큼 상당수 시인들은 이미 등을 돌려 사회로 나갔다. 그만큼 이들 두 시인의 각오와 의지, 그들에게 거는 독자들의 기대가 남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시촨(西川)의 시는 관용과 개방, 산문화 경향을 갖고 있다. 내용적으론 일상생활을 낯설게 하거나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세세하게 시대를 재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우화 형식의 이야기와 잠언식 어귀는 순수고전에 대한 회귀와 심미적 자주의 정신과 창작의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구마(古馬)의 시에선 칭하이성과 간쑤성甘肅省이라는 서역 밖 특수한 환경 아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거주하면서 얻어낸 그 만의 독특한 빛깔과 냄새가 있다. 마치 사막 아래 모래밭을 뒹굴며 사는 회색표범의 공격성과 낙타의 인내와 양떼의 회귀본능의 향수까지 느껴진다. 그의 시엔 중국 으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동양시가의 정수가 뿌리 깊게 박혀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답습이나 예찬이 아닌, 새로운 신시 형식의 도입을 통한 탈바꿈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중국내에서도 제일 문명 발전이 더디고 가난한 서역의 신장新藏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축이며 자연과 합일시키며 순환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이 시인의 시가 그리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에 이 젊은 중국의 유망주 두 시인의 대표적인 시 두 편과 시평을 각기 옮겨 소개한다.   일상의 포기에서 나오는 시촨의 신시     시촨은 1963년 출생으로 본명은 류쥔刘军이다. 1981년 베이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시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베이징대 54문학사에 있을 때 시촨은 시인 하이즈海子와 뤄이허骆一禾와 함께 셋이서 베이징대의“삼검객”이라 불리웠다. 85년 졸업 후, 시촨은  신화사 소속 《환구环球》잡지에 근무하였으며, 1988년 친구들과 함께 “지식분자 시쓰기”라는 개념적 시잡지 《경향倾向》을 창간하였다. 1991년에는 민간잡지 《현대한시现代汉诗》의 편집을 맡아보며 출판에도 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1993년 시촨은 신화사에서 중앙미술학원의 교수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1992년 여러 간행물에 연속하여 장시「존경을 표하며 致敬」을 발표한 것이 작품 활동의 중대한 전환이 되었다. 1995년, 시촨은 자살시인인 하이즈海子를 기념하여  『하이즈시海子的诗』를 편집, 정리하여 2009년 3월에 재출판했다. 2006년에는「존경을 표하며 致敬」이래 시작의 성과를 반영한 시문록詩文錄 『심천 深淺』을 출판하였다. 그의 시집으로는『은밀한회합 隐秘的汇合』(1997)、『허구의족보 虚构的家谱』(1997), 『대체로 그러하다 大意如此》(1997),『시촨의시 西川的诗』(1999)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복면인에게 말하게 하라 讓蒙面人說話』『물자국 水漬』(1997), 평론집에 『외국문학 명작독본 시집편 外國文學名作导讀本.詩歌卷』(2001), 번역 작품으로 『보르게스 회고(Jorges Louis Borges, 1899-1986, 알젠틴 시인, 소설가, 번역가)』, 『밀로스사전(Czeslow Milosz, 198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의 시인)』 등이 있다。1994년에 ‘현대한시漢詩상’, 2001년에 ‘루신魯迅문학상’과 1997년 ‘UNESCO장학금’, 2002년 ‘미국 브리만 기금회’의 상금 등을 받았다.   일부 시촨의 작품세계에 대해 보르게스 Borges 등 세계 대시인들의 시풍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국제화의 배경 아래 중국의 시인은 어떠한 시를 써야 하는가? 이 문제에 골몰하는 시인이다. 그만큼 중국적인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이다. 어쩜 이런 고민은 현 중국에 머무는 작가, 화가, 영화감독들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더 시촨은 순수지향이며 더 현실화된 소박한 심리를 갖고 있다.  시촨은 인텔리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나날이 물질화, 세속화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순수한 시정”을 갖고 생명, 영혼, 정신에 주력, 그것들을 정화하기 위해 생명의 의의와 참뜻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촨의 시에서 우리는 단번에 펼쳐지는 무궁한 상상력, 감수성, 창조력으로 축적시킨 심령의 고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쓰기는 때론 일상이 만들어내는 현상으로부터의 “포기”같다. 자연과 사랑, 도덕 등의 전통주제가 아닌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있다. 순간의 포착을 통한 우화성과 시인의 풍부한 관용과 자비와 연민의 종교적 심정이 나타나는가하면 우주본체에 대한 시인의 심오한 탐색도 보인다. 그의 대표적인 최근의 시 두 편을 보자.    열두 마리의 백조   찬란하게 호수위로 날아드는 열두 마리 백조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열두 마리의 백조는 가까이 가기가 어렵습니다   열두 마리의 백조가 열두 개의 악기가 되어 노래를 할 때   그들이 백동전 같은 날개를 펴고 춤을 출 때  공기는 그들의 큰 몸을 떠받쳐 줍니다   한 시대는 한쪽으로 물러나고 그의 비웃음도 함께 사라집니다   생각해 보면, 나와 열두 마리의 백조는  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 호수 위 찬란하게 빛나는 열두 마리의 백조는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물오리들 가운데에서 그들은 순결한 야성을 지켜나갑니다   물은 그들의 밭입니다 물거품은 그들의 보석입니다   우리가 꿈에 열두 마리의 백조를 보면 그들의 오만한 긴 목은  물속으로 굽히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가라앉지 않는 걸까요 물갈퀴 때문인가요? 깃털의 관상만 갖고 그들은 계속 잃어버린 호신부를 찾고있는 걸까요   호수는 덧없이 넓고, 하늘은 높고 멀으니: 시는 덤이라 할 밖에요   난 아흔아홉 마리 백조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달빛아래 탄생하는 !   반드시 백조가 되어야만 그들 몸 뒤를 따라서 별자리를 보고 운행할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연꽃과 물박나무 잎새로부터 깜깜한 밤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十二只天鹅                 那闪耀于湖面的十二只天鹅 /没有阴影 /那相互依恋的十二只天鹅/难于接近//  十二只天鹅——十二件乐器—— /当它们鸣叫 //当它们挥舞银子般的翅膀 /空气将它们庞大的身躯 托举 //一个时代退避一旁,连同它的/讥诮//想一想,我与十二只天鹅/生活在同一座城市!//   那闪耀于湖面的十二只天鹅/使人肉跳心惊//在水鸭子中间,它们保持着/纯洁的兽性 //水是它们的田亩/ 泡沫是它们的宝石//一旦我们梦见那十二只天鹅/它们傲慢的颈项便向水中弯曲//是什么使它们免于下沉?/是脚蹼吗?//羽毛的占相 /它们一次次找回丢失的护身符//湖水茫茫,天空高远:诗歌  是多余的//我多想看到九十九只天鹅/在月光里诞生!//必须化作一只天鹅,才能尾随在/        它们身后—— /靠星座导航//或者从荷花与水葫芦的叶子上/将黑夜吸吮//                          윗 시는 일단 형식면에서도 종전의 중국시와는 다르다. “열두 마리의 백조”는 왠지 이상의 시 「오감도」를 떠올리게 한다. 두 행이 하나의 연으로 단락을 나눈 것이며 백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왜냐면, 중국 도시 한복판에서 기실 백조를 본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12마리씩이나,.., 이 시어에 감춰진 은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비췄지만, 이 시인은 경계를 스스로 깨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초점을 맞춰 비극적인 현실을 희극적으로 때론 우화적으로 과장하여 때론 황당하게 한다. 이런 그의 시도는 이 시에서도 어김없이 저질러진다. 공해로 찌들린 도시 한복판 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들이 날아든다. 반짝이는 호수 위에서 12 마리의 백조가 한 점 그림자도 없이 서로 사랑한다. 차마 가까이 갈 수도 없게 말이다. 특히 12 마리의 백조가  12 개의 악기가 되어 물오리 가운데서도 순수한 야성을 지켜나갈 땐 더 그렇다. 그들은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 도도한 빛이 있다. 물에 떠서 가라앉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분명 그들에겐 우리에겐 없는 호신부라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오만한 긴 목이며 찬란한 은빛날개며,..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존재는 현실에서 있기나 한 것일까? 결국 백조는 그의 환상의 대상일 뿐이다. 아니면 맑고 순수한 백조라는 존재로 태어나지 않고는, 그들 꼬리를 붙잡지 않고는 도저히 저 밤하늘 너머 별자리를 찾아갈 수도 없는 거다. 여기에 시인의 아픔이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갖은 자의 슬픔이 있다. 그에게도 12 명의 형제가 있고 가족이 있지만, 한데 모여 백조처럼 군중 무리 안에서도 자신들만의 가족애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던가. 어둔 밤을 밝게 빛나는 힘이나 세상 밖으로 날개짓 한 번 제대로 발휘해 본 적이 있던가. 도대체 이 세상으로부터 견뎌낼 물갈퀴는 갖고 있던가. 그의 세상을 향한 아픔이 나름대로 수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무리 백조에게로 쏠린다.   하느님의 마을   난 하느님이 필요해요, 한밤에  내 방에 자면서 꿈결에 별빛과 바다를 보며 베들레헴의 마리아를 만나요 어둑한 등잔불 아래 옷을 벗는   난 하느님이 필요해요, 입법자 모세보다 더 자유로워 등잔 속 기름을 탐하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 12 형제를 사랑하는 무너지지 않는 봉선화가 가득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목 쉰 이방인을 맞이하는 봉선화가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는 한 송이를 꺾어 품속에 넣는   그리고 난 멀리 떠나지 않는 하느님이 필요해요 그의 고집으로 분명히 폐쇄가 되기도 하는 그의 빛이 구멍난 벽을 뚫고 내 마루바닥에까지 비추는 마치 내가 주울 수 없는 금화 한 잎처럼   천둥번개가 번갈아 치는 늦은 밤, 난 필요해요 저 노하는 노인, 아버지가 내 앞에 가면서 옥수수를 주고 상처를 감싸주고 동틀 무렵 파수꾼을 보내주는     그는 결코 정복하려 하지 않고 피를 빠는 태양으로 로마와 신전을 불태워요 :그리고 사실상  그가 세계를 전복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에요  그는 우리들의 안식을 위해 관을 만들거든요.   上帝的村庄               我需要一个上帝,半夜睡在 /我的隔壁,梦见星光和大海 /梦见伯利恒的玛利亚/              在昏暗的油灯下宽衣 //我需要一个上帝,比立法者摩西/ 更能自主,贪恋灯碗里的油 听得见我的祈祷/ 爱我们一家人:十二个好兄弟 /坚不可摧的凤仙花开满村庄 狗吠声迎来一个喑哑的陌生人/所有的凤仙花在他脚旁跪下/他采摘了一朵,放进怀里 //        而我需要一个上帝从不远行/用他的固执昭示应有的封闭 /他的光透过墙洞射到我的地板上   像是一枚金币我无法拾起 //  在雷电交加的夜晚,我需要/ 这冒烟的老人,父亲/ 走在我的前面,去给玉米/ 包扎伤口,去给黎明派一个卫士// 他从不试图征服,用嗜血的太阳/ 焚烧罗马和拜占庭;而事实上/ 他推翻世界不费吹灰之力/他打造棺木为了让我们安息 //   이 시 역시 현 중국 현실로서는 쓰기 힘든 소재이다. 종교를 사실상 인정한 지가 얼마 안된 정치현실 속에서 드러내기가 조심스럽고도 망설이게 되는, 그러나 갈구하는 맘이 부정적인 시각 속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우선 하느님 마을은 현실적이지가 않다. 너무 멀리 있다. 필요할 때 다가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불만이고 빈정거리는 모양새도 눈에 띄인다. 그러나“우리들의 안식을 위해 관을 만드는” 하느님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하느님은 절실하게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본능적인 바램을 묵과할 수 없다. 천둥번개가 치거나 아픔이 있거나 현실은 늘 하느님이 가까이 있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어찌 하랴. 감춰도 보이는 그 눈물과 삶의 고통이 12 형제가 사는 마을 속에, 나라 속에, 세계 속에, 웅크리고 있음이 보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촨과 프레드.와(Fred Wah)의 인터뷰   1985년『 Saskatchewan을 기다리다 (Waiting for Saskatchewan)』로 캐나다 대통령 문학상을 받은 프레드.와(Fred Wah)캐나다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시촨은 현 중국시단의 문제점과 함께 자신의 시에 대한 방향 및  시풍의 발전 변모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한 내용을 옮겨본다. 이는 축사 위주의 평론보다는 이 인터뷰 글을 옮김으로써 좀더 현 중국시단의 실황을 알리며 또한 그의 시적 욕구와 중국 시단을 이끌어나갈, 동양 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신시의 새 경지를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이 인터뷰 글은 《중국예술비평中国艺术批评》1996년 8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재편집했다.    나도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다. 중국 현대시는 이미 몽롱시, 후기몽롱시에서 벗어나 현실주의로 회귀하는 중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현실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또한 현실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두렵다. 80년대 초 중국엔 많은 시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시인들이 이미 시를 쓰지 않고 장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도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다. 어쩌면 현실주의자 보다 더 관심이 있을 거다. 우리는 선악관에 대한 상식에 부족함이 없고, 시인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일정한 사유방식을 갖고 있다.  몇 몽롱시인이나 몽롱시에 동조하던 시인들이 나중에 방향을 바꿨다. 이는 물론 일종의 심미적 선택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창조력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나를 만족스럽게 안 본다. 몇 년 전, 사천성에서 시인회의를 개최했을 때, 한 시인은 나를 가리켜  “ 시촨을 보면 이도저도 아냐“ 라고 했다.   근래 중국 청년시인들의 작품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몽롱시인들은 문화대혁명 중 나온 슬로건에 반대하고 비교적 구체적인 시를 썼다. 그것은 정치수요, 언어수요였고 그들의 영향은 지금까지 존재한다. 또한, 최근 많은 시인들이 이상을 노래하는 시를 쓰고, 거기에 서사적인 요소가 더 증가, 강조되고 있어서 시는 더 구체적이 되고 있다. 특히 몽롱시 이후 위지엔于坚과 한동韩东 같은 시인들은 일상생활을 쓰기 시작, 새로운 시의 재료로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아울러, 서양의 시 특히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은 중국의 당대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한자와 중국 당대시가의 관계를 탐구했다. 흥미로운 건 그 비평가는 바로  시인이 아니라 싱가폴의 스후石虎라는 화가라는 것이다. 그림은 공간감이고 문학은 시간의 예술이라 좀 복잡한데, 한자는 중국인의 사유방식으로서 중국시를 지배한다. 상형문자는 회화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시는 문화의 일부분이고 문화는 역사, 사상, 학술, 종교, 예술, 생활방식을 포함한다. 중국현대시인 중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를 구체적으로 쓰는 데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으나, 자살한 시인 하이즈海子가 그 좋은 예다. 대다수 시인과 다른 점은 하이즈가 받아들인 영향이 서방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 옛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언어의 어감과 감정, 리듬을 강조했다.     난 100% 시인이 아니다. 50%만 시인이다. 난 본래 내가 쓴 시가 시든 아니든 관심이 없다. 단지 내가 관심 있는 건 “문학”이라는 큰 개념이다. 동시에 난 사회와 역사, 철학, 종교, 문화에도 관심이 있다. 현재의 중국은 역사적 이유로 해서 철학도 종교도 없다. 그러므로 현대 시인들은 아주 곤란하다. 시인이 동시에 철학가이고 사상가이고 신학자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는 “시는 언어로 마무리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면, 침묵은 사유의 또 다른 반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침묵을 만들 수 있다지만, 불교를 통해 보면, 언어는 믿을 수 없다.   언어시인들은 어휘의 의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난 일찍이 각종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다. 언어의 경계, 시가형식의 경계, 사유방식의 경계, 이는 1989년 전에 내가 쓴 “순수시‘에 들어있다. 많은 시인들의 작법을 바꾸게 한 것으로 나의 시작과 시대생활상을 비교했다. 1992년에 이르러 난 순수시에서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가 내 시를 하나의 잡탕으로 만들었다. 시가 아닌 것으로, 이론이 안되는 것으로, 산문이 아닌 것으로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지만, 난 그런 경계가 싫었다. 매 시인이 모두 새롭게 창조하는 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스스로 경계를 부숴야 한다. 언어시인들은 시어와 어구, 어휘의 의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언어와 의미는 서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데, 마치 나무는 목수의 재료로 철은 철쟁이의 재료인 것과 같다. 언어는 일단 시의 재료이고 시인들은 언어를 갖고 놀 수 있다.   대다수 시인들은 정치적으로 모두 좌파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자이다. 그들은 사회가 변하고 시어 역시 변했다는 걸 인식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 장르를 벗어나려 애쓴다. 단 나는 내 방식이 있다. 형식적으로 나의 시는 갈수록 시가로부터 벗어난다. 방금 다 쓴 「액운」이란 글은 역사서의 방식으로 시사있게 쓴 글이다. 많은 이들이 일생에 맞선다. 고통을 맛보며 죄를 지으며, 혹자는 화려하게, 그러나 혹자는 암담하게, 그러나 결국은 그들 생명 모두 역사서의 한 작은 문자로 마감되고 만다.  나 역시 늘 나의 간단한 이력을 제공하도록 요구될 뿐이다. 이 작품은 대중의 이력을 쓴 게 아니다. 시가 아닌 것으로 형식을 빌려 썼다. 역사의 상당부분은 고대 희랍신화이다. 서방의 신은 신화 속의 신이다. 그러나 중국의 신은 역사적 인물이 그 원본이다. 역사는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대화”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대중시도 유행시도 아니다. 만약, 아마추어가  합당치 않으면, ‘비전문가’라고 하자. 나 역시 독자가 나의 시를 좋아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내 시를 이해하는 가는 다른 문제이다. 독자들은 문학에서 기대하는 게 있다. 작가도 독자에 대해 기대하는 게 있다. 유감스럽게도 양쪽 다 서로 마주치기를 기대한다. 어떤 비평가는 이런 상황을  대중문화와 엘리트 문화의 모순이며 충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모순과 충돌은 없다. 왜냐면 양쪽이 기대하는 건 마주치지 않고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홀로”의 시대가 가고 박틴(Bakhtin, 1895-1975, 소련의 문학이론가, 언어 배후의 사회 이데올로기와 역사 관계를 천착하는 역사 시학을 주창)이 말한 “대화”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왜냐면, 공동의 문화적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배경의 건립은 반드시 현재 시를 쓰는 작가들에 의해, 시인들의 노력에 의존해야 한다. 많은 중국청년시인들은 언어시에 대해 흥미가 없다. 내 생각엔 난징의 장즈칭张子清 교수와 황윈터黄运特 선생이 번역한 『미국언어시선』때문인 것 같다. 내겐 별반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서방언어는 영문을 포괄해서 중문과는 실로 차이가 크다. 유럽어 사이에는  상호전달이 가능하나 중국어로는 완전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나는 철학자를 흉내 내어 단어들을 새롭게 다시 해설하고 새로운 함의를 부여하고 있다. 시인과 철학가는 같은 류라고 본다. 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쓴다. 시가 지향하는 것은 미지이기 때문에, 이것은 산문과 다르다. 산문으로 쓰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다. 대개 철학이나 산문에서 쓰는 것은 서로 비슷하다. 철학은 많은 것을 배척한다,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논리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인 것들을 배척한다. 그러나 내 맘 깊은 곳에 거대한 암흑의 해양이 있어서 철학으로는 비춰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도 대부분의 장님들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난 그들을 쓴다. 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다. 내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지 위를 걸어다니는 큰 동물이 있지만, 대지의 상공을 날아갈 수 있는 건 조류뿐이다. 난 날아가는 새를 보는 것만큼 별을 보지 못했다. 나는 하느님을 새만큼 확실하게 보지 못했다. 날아가는 새는 나와 별과 우주, 하느님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 이외에 2007年 11月 13日 동방아침신문东方早报에서 발췌한 내용을 역시 일부 재편집해서 옮긴다.                                                       큰 시에 거는 큰 기대     시의 조예와 국내외의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시인 시촨은 당대 중국시가의 가장 두드러진 대명사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20여 년의 시창작 생활에 있어 시촨은 놀랄만한 창조력과 고귀하고도 독특한 시이론을 견지하며, 매우 높은 시의 창작 수준을 유지하였다. 또한 스스로 반복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파른 작품 전환을 표방함으로써 1990년대 이래의 시촨은 시단에 경악과 자극, 그리고 새로운 사고를 가져다 주었다. 시촨은 또한 시 창작 이외에 오랫동안 시문의 번역과 시이론 수립에도 종사하여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최근에 그는 더욱 시의 한계를 벗어나려 애쓴다. 많은 문체, 심지어 여러 가지 다른 예술형식을 창조하려 한다. 고수하면서도 변화하는 시촨은 시종 땅에 내던질 때 나는 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소리는 땅으로 내던지지만 다시 튀어 올라 자신을 물어버리는 소리이다. 『시촨의 시』와 『심천』은 기본적으로 1990년대를 전후로 나뉘는 시촨의 창작적 전변을 대표한다. 『시촨의 시』는 주로 단시를 위주로 어조적으로는 침울하지만, 시적으로는 왕왕 간단하고 명쾌하다. 예를 들어 「체험」,「바람불기」「하얼가이(哈尔盖,칭하이성의 역 이름)에서 별하늘을 보다」등의 대표작품을 보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친구(하이즈 시인)와의 사별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시대적 변화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용기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표경」「액운」「매의 말」등 부피 큰 작품을 대표로 하여 시촨의 시적 표현은 잡다하고 이질적이며 이탈적 주제에 대한 편애와 비시적非詩的 요소에 대한 강조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의 근본이념은 시종일관 같다. 바로 이렇게 변치 않는 것들이 시촨의 시 매력일지 모른다. ‘성경’식 자아에 대한 위엄, 초경험과 철학적 사고의 작품 활동 구상, 광활한 기질, 지성의 강조와 전제를 두지 않는 가치부담 등... 최근 몇 년간 시촨은 범시가적 문화활동에 보다 많이 참가하고 있다. 그 외에 장커(贾樟柯, 1970- ,영화감독)의 영화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출연하였으며, 음악가 궈원징(郭文景)과 함께 장시 “먼여행遠游”를 교향곡으로 작곡하였으며, 실험 연극 감독 멍징후이(孟京輝)와 연극 “경화수월(鏡花水月)”을 제작하였다. 이런 행위는 시촨의 신시를 초월하는 이해 모델에 대한 “대시가大詩歌”적 시도라고 해도 지니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대중의 시에 대한 흥미가 감소하는 징표의 하나는 바로 시를 단순히 문학의 큰 범주에 넣어버리는 경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상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는 여전히 문학 창작의 최첨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비록 여타 예술 장르에서 장점과  계발을 흡수한다 하지만, 시가 다른 예술에 주는 영향은 깊은 의미에선 항상 있어왔다고 볼 수 있다.  
334    海子 / 西川 / 그리고, 李箱 댓글:  조회:4914  추천:0  2015-04-05
  자살한 하이즈海子와 『하이즈시선海子詩選』을 내준 시촨 시인   1. 하이즈와 시촨의 만남     최근 한국의 모 잡지에서 중국 젊은 현대시인과 그의 대표작을 함께 번역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13억 인구 속에 섞여있는, 이름 하여 잘 나가는 ‘유망주 젊은 시인’을 찾아보았다. 마침 선양沈陽에 거주한 지 두 달여 되가는 동안, 급조로 사귄 중국시인이며 중국 잡지사 주간들에게 만나는 데로 부탁도 해보았다. 그러나 중국 역시 이 태평세월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각양각색의 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때여서 내가 찾는 그 ‘유망한 시인’이란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지, 그들은 난색을 표할 뿐,... 결국 무조건 중국시인의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게 됐는데, 마침 시촨西川의 블로그가 나왔다. 수상도 많았고 특히 블로그에 올린 작품들이 눈에 띄어 훑어보니 현실로부터 얻어지는 소재를 갖고 언어시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唐, 宋 전성기의 시에 대한 회고와 편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서구시의 발전과 새로운 시도를 나름 찾고 연구하며 중국시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꾀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베이징 대학 영문과를 다닐 때 동대학의 법과대학을 다니던 하이즈海子와 동인이었으며 80년대에 등단하고 같은 64년생이고 하이즈가 자살하고 문단으로부터 많은 질책과 혹평을 받을 때 하이즈의 자살동기와 그에 대한 추모의 글들을 발표, 쓸데없는 무모한 추측과 힐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진정한 친구였으며 동료 시인이었음을, 올 2009년 3월에 출판한 『하이즈시선海子詩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책엔 미발표작을 포함, 200여수의 서정시와 7부의 장편 연시가 실려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면, 하이즈는 내가 이미 몇 년 전에 그의 시편들이 좋아서 소개한 바 있는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그가 시촨西川의 친구였다니,...!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음을 다시 실감하며 우선 하이즈의 삶과 그의 대표시 세 편을 소개한다.   2. 보리밭 시인 하이즈의 자살 동기는   우선 그의 본명은 자하이성查海生이고 1964년 3월25일 안휘성安徽省 안칭시安庆市의 한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1979年 15세 때 북경대학 법학과에 합격, 북경에 올라와 재학 중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3年 베이징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정법대학 철학연구실에서 근무하며 학교강의도 나갔다. 그는 시 외에도 소설과 희곡, 논문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시로는 장시《그러나 물, 물但是水,水》、《토지土地》가 있으며、시극으로는 《태양太阳》(미완성작), 합창극《메시아弥赛亚》、시극《시해弑》등과 약 200수의 서정시가 있다. 또한 시촨과 합동으로 만든 《보리밭의항아리麦地之瓮》가 있다. 1986년 베이징대학 제 1회 예술제에서 《5.4문학대상 특별상》을 받았으며 1988년엔 제 3회 《시월十月》문학영예상을 받았다. 그리고 하이즈가 자살한 뒤, 대학 당시 동인으로 함께 활동했던 시인 시촨西川과 시인 스즈食指로 알려진 꿔루성郭路生과 함께 작품을 모아 출판한 시집으로 2001년 4월 28일 제 3회 시 부문 《인민문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주목받던 하이즈가 25세 젊은 나이에 왜 갑자기 자살을 했을까. 안정적인 직장을 내던지고 황산이 있는, 안휘성 벽지로 다시 소도시 핑창으로 베이징으로 오르내리며 정착하지 못하던 그가 끝내는 당시 문명의 첨단이 되었던 기차레일에 누워 한 생을 마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9년 3월 26일, 허베이성河北省 산하이관山海關과 롱자잉龙家营 부근의 기차 레일에 누워 25년간의 생을 마감했을 때, 문단은 물론 세간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반향은 한동안 세간에 자살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즉, 북경대 시인 거마이戈麥와 아내를 권총사살하고 이어 자살한 꾸청顧城 시인이 생겨나 문단은 오히려 혹독한 비평과 힐책으로 그의 자살동기를 추리, 한동안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그 예로 어떤 이들은 하이즈를 *“장랑차이진江郎才尽” [남조(南朝)의 강엄(江淹)은 젊은 시절 문재가 뛰어나 모두들 ‘강랑(江郞)’이라 불렀으나, 노년에는 좋은 글귀가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그의 재주가 다 고갈되었다고 말하였음] 즉, 창작력이 고갈되어 죽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도시와 농촌의 모순이 그 원인이라고 하고, 반면 기공을 너무 지나치게 연마하다 주화입마(走火入魔)하였다고도 했다. 사천성 시인 종밍(鐘鳴)은 라는 문장에서 하이즈는 한동안 머물었던 창핑(昌平)과 베이징을 분주히 왔다갔다 했지만 두 곳 어디서도 자신의 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일종의 중간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그의 생일과 기일이 한 날이어서 그의 자살이 하나의 충동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들이었다.        한편 하이즈가 죽은 뒤 하이즈의 시의 수준문제에 대해서도 크고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어떤 이는 그의 시는 위대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의 시적 사유가 너무 혼란스럽고 언어는 창백해서 읽을 가치가 없다고 했다. 한 수청잡지书城杂志에 《대박난 병적 언어病句走大运》라는 문장을 발표한 사람은 본인이 하이즈의 대학동창이라며 그의 시 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의 시와 언어 수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주따커(朱大可)선생의 “선지자의 문 先知之門”에서는 하이즈의 죽음이 시 예술에서 행동예술로의 급속한 비약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세심한 천재적 계획에 따라 자살로순수한 생명의 언어와 최후의 위대한 시편을 완성하였다고 보았다. 다소 형이상학적인 것 같지만 논리가 엄밀해서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을 주었다. 그러나 하이즈와 대학시절부터 동인으로 함께 활동을 했던 시인 시촨이 하이즈를 추모하는 시편들을 발표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시촨은 하이즈의 시 작품을 전면적으로 편집, 출판을 하면서 한편 도 썼는데, 이는 자살을 모방하지 말도록 일깨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3. 황토를 사랑한 시인   그는 농사꾼의 아들로 황토를 사랑한 시인이다. 경제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라져가는 대표적 대상인 황토에 그는 애착을 가졌으며 그런 만큼 그 상실감도 자연 컸다. 1989년 초, 그의 고향 안휘성으로 돌아갔을 때, 고향은 그에게 커다란 황량한 삭막함을 주었다. “내게 익숙한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는 1964년 4월 2일, 백양 별자리였다. 1984년, 같은 백양자리였던, 반 고흐에 대한 시《그대의 태양 阿尔的太阳》 를 보면     瘦哥哥梵高,梵高啊/从地下强劲喷出      的/火山一样不计后果的/是丝杉和麦田/   还有你自己/喷出多余的活命时间        말랑깽이 형 반 고흐, 반 고흐여    땅 밑으로부터 힘차게 분출하는    화산처럼 갑자기 생겨난 삼나무와 보리밭    그리고 네 자신까지    남아도는 생명의 시간을 분출하고 있구나     하이즈가 자신과 비유한 것임을 금새 알 수 있다. “계획에 없던 결과” 가 하이즈 신상에도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의 생활방식은 상당히 폐쇄적이었다. 1988년 말, 그는 오히려 그의 친구, 시촨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 때 그는 막 결혼하자고 말하는 소도시 평창의 한 여자와 헤어진 뒤였는데, 베이징으로 돌아오지 않고 평창을 배회하며 보냈다. 그 때 일화로 창평의 한 식당 주인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이곳 손님들 앞에서 내 시를 낭송할테니, 당신은 내게 술을 주지 않겠느냐? 그러나 그 식당 주인은 그런 니체주의적 낭만이 없었으므로 ”줄 수야 있지요. 단 당신은 여기서 낭송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 그의 집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식구들조차 그의 사상이나 시작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아버지는 심지어 그와 말을 할 생각조차 안했다.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선생인 아들이 베이징에서 그래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시골에 들어와 흑백 티브이를 놓고 들어앉았기 때문이었다.   하이즈는 당시 양방면의 저항을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권력과 결합한 수구문학과 선봉문학의 대립에서 오는 사회에서의 시인에 대한 불신임이었다. 다른 하나는 선봉문학계 내부의 상호불신임으로 서로 배척하고 이해하지 않는 데서 오는 정신적 압박감이었다. 그것은 그가 죽은 뒤에까지 심각했다. 이 일로 1989년 이전 대부분의 청년시인들은 하이즈의 시에 대해 유보의 자세를 취했다. 어떤 시인은 하이즈에게 ”물기만 너무 많다“라고 편지를 써보냈고 1988년 즈음 베이징 한 시인단체는 ‘다행히 살아있는 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 말은 한 시모임에서 하이즈의 장시가 시대적 착오이며 더불어 그의 시는 결핍투성이 무일푼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1987년, 하이즈가 남쪽으로 여행을 다녀와 민간시 잡지에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평론가가 말하길 “북방으로부터 왔다 고통스런 한 시인이/ 가방에서 꺼내지는 유용하기를 바라는 시편들을 갖고” “인류는 오직 한 사람의 단테로 족하다” “그는 현재 내 친구다, 그러나 장차 나의 적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하이즈는 너무 상심해서 바로 어린아이처럼 친구 이화一禾에게 달려가 울었다고 한다.      하이즈의 생전의 발표된 작품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그는 발표와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타자로 쳐서 보내는 걸 즐기곤 했는데, 당시 유명했던 시인의 시 몇 항들을 표절했다 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러나 자살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아무래도 한 여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살 며칠 전의 금요일, 하이즈는 그의 첫사랑의 연인을 만났다. 그녀도 1987년 중국법과대학을 졸업, 학생시절 그의 시를 좋아했다. 그녀는 보통 키의 둥근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내몽고의 시인 슈에징저薛景泽(옌베이雁北)의 친척이었다. 하이즈의 최초 발표한 대부분의 시가 내몽고의 간행물에 실리게 된 데는 바로 그녀의 영향이 크다. 그녀는 하이즈가 일생 가장 깊이 사랑한 여인으로 하이즈가 쓴 대부분의 애정시는 그녀를 생각하며 쓴 것이었다. 그들은 왜 도대체 헤어져야 했을까. 이해할 수가 없지만, 단 하이즈가 최후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하이즈에 대해 냉담했다. 그 날 저녁, 하이즈는 그 일로 술을 꽤 많이 마셨고 계속 그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며 괴로워했다. 그리곤 25일 아침, 그는 바로 법과대학이 있는 베이징 학원로를 출발, 산해관으로 갔다. 그 날 아침 시촨의 모친이 마침 출근하면서 베이징 학원로로부터 시즈먼西直门쪽 기차역으로 머리를 떨구고 달려가는 하이즈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죽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4. 하이즈의 시와 시 세계   중국 신문학사에서 문학과 생명의 한계에 도전, 충돌해 온 시인으로 하이즈海子를 뽑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농촌의 단조로운 생활환경과 극도의 빈곤 속에서도 해박한 지식 아래 그만의 날카로운 직관과 비범한 창조력으로 시를 써온 시인이었다. 하이즈는 시를 통해 모든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사모의 정과 생명의 세속적이고도 숭고하기까지 한 그 격동과 관심을 읽어냈다. 때론 그것이 개방된 이래 마구 쏟아지는 숱한 사상과 문예사조 및 서구 문단의 새 변화에 따른 중국내의 변화를 다 수용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시인의 궁핍한 농촌의 현실에 대한 애정과 아픔은 그를 ‘보리밭 시인’으로 불리게 했으며 한편, 도시 유랑자의 모습, 취약하고 민감한 심령, 실현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불안과 고뇌의 모습은 그대로 시로 우러나와 좌절하는 현대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의 시에는 특히 죽음, 흑색, 검은 밤, 슬픔, 은빛 노을, 끝없이 긴 황혼 등과 같은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아이상의 극도의 확장과  평범한 생존 현실에 대한 심각한 포기와 경시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흙에 바탕을 둔 보리밭과 황막한 들판에 펼쳐진 이름 모를 풀밭에 서서 그들의 뜨거운 생명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선 자신, 즉, 인간의 존재에 한 가닥 희망을 놓칠 수 없음을 또한 깨닫곤 했던 것이다.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면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 말을 먹이고, 장작을 패고, 세계를 주유해야지 내일부터는,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져야지 내 집 한 채는 바다를 향해 있어 봄엔 꽃이 핀다네   내일부터는 모든 친지와 통신을 해야지 그들에게 나의 행복을 말해 줘야지 그러면 행복이 번개 치듯 나에게 말할 거야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지 모든 강과 모든 산에게 하나씩 따뜻한 이름을 지어 줘야지 이방인이여, 나도 그대를 축복하네 그대에게 찬란한 앞날이 있기를 바라네 그대의 애인과 마침내 가족이 되기를 바라네 그대가 풍진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네 나는 그저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 있기를 바라네                                   - 1989년 1월 13일                  『하이즈시전집』 중에서, 상하이 산리엔 서점에서 1997년 출판 面朝大海, 春暖花開 / 海子                   總明天起, 做一个幸福的人/喂馬, 劈柴, 周遊世界/總明天起, 關心糧食和蔬菜 我有一所房子, 面朝大海, 春暖花開 // 總明天起, 和每一个親人通信/告訴他們我的幸福 /那幸福的閃電告訴我的 我將告訴每一个人 /給每一條河每一座山取一个溫暖的名字/陌生人, 我也爲你祝福 愿你有一个燦爛的前程 /愿你有情人終成眷屬/愿你在塵世獲得幸福/我只愿面朝大海, 春暖花開                               1989年 1月 13日                         (選自 , 上海三聯書店 1997 年版)      이 시는 바로 자살하기 두 달 전에 쓴 시이다. 사후 근 10년 만에 간신히 상하이의 한 작은 출판사로부터 『하이즈시선집海子詩全篇』으로 묶여 빛을 보았다. 이 시는 쉽고도 소박해 보이지만, 사실 그의 간절한 희망의 시이다. 이 때까지도 그는 “나는 그저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 있기를 바라네” 적어도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길” 소망하고 있었다. 여기에 중의법으로 쓰인 “내일”이란 단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대지에 밀착된 그의 소박한 ‘말을 먹이고, 장작을 패’는 삶이 현실적으로는 “풍진세상”의 행복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을 배반하는 일이어서 그의 꿈은 단지 상상과 영원을 갈구하는 그의 道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으로 넘나들기 위해 바다로 머리를 돌리고 집도 그 바닷가에 짓고 싶은 그의 행복관은 그래서 실패이고, “꽃피는 봄”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 평론가 방창안 方長安은 윗 시에서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져야지” 라든가 “세계를 주유해야지” “바다를 향해 ”등은 중국전통 민본民本사상과 서구식 탐구정신이 결합된 것이라는 민족적인 시선으로 그의 시를 평가하기도 했다.     까만 밤의 헌시      ─ 까만 밤의 여인에게 바칩니다     까만 밤이 대지에서 올라와 밝은 하늘을 막고 있다 추수 후 황량해진 대지 위로 까만 밤이 그대의 내부에서부터 올라온다 그대는 먼 곳에서 오고, 난 먼 곳으로 떠나련다  멀고 먼 노정은 이곳을 지나고 있고 텅 빈 하늘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일까 추수 후 황량해진 대지, 사람들이 일 년의 수확을 다 가져갔다 양식을 가져가고, 말도 타고 가 버렸다 땅에 남은 사람들은 땅 속 깊이 묻혀버렸다   쇠스랑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볏짚 단이 불 위에 쌓인다  곡식들이 깜깜한 곡창에 쌓여 있다   곡창은 너무 어둡고, 너무 적막하고, 너무 풍성하다 또 너무 황량해서, 풍작 속에도 염라대왕의 눈동자가 보인다   검은 빗방울 같은 새떼들이 노을로부터 까만 밤으로 날아든다 그 까만 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일까             길을 걸으면서 소리쳐 노래한다 거센 바람이 산마루를 휩쓸며 지나가지만 그 위는 끝도 없이 빈 하늘일 뿐이다     1987년 11월 14일, 하이즈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암흑이란 건 영원하다. 내 소란한 맘을 가득 채우고 다시 범람하게 한다. 어둠은 한낮보다 아름다운 한낮의 시詩이다. 태양을 창조한 사람은 부득불 자신을 위해 암흑의 형제가 될 수밖에 없다.” “8년 전 한겨울에 야간열차를 탄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한 여인에게서 아름답고도 부드러운 온기를 느꼈다. 그때의 어둠은 오히려 한낮 같이 밝았다. 한편 현재의 밝은 한낮은 정말로 어둔 노동의 장소나 자궁 속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광란이나 폭풍의 중심에 있을 땐, 어떤 위안도 필요하지 않다. 난 암흑을 중시한다. 그래서 나는 「까만 밤」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하이즈 시 전편」 883~884 쪽) 하이즈는 독일시인 헬더린을 좋아했다. 니체의 “암흑시기”보다 몇 배 더 긴 정신착란증세로 36년간이나 암흑 같은 병고에 시달렸던 시인 헬더린도 그의 시에서 “정신의 까만 밤 속에서 나는 대지로 달려나갔다”를 토로했는데, 하이즈는 “헬더린의 시를 읽다보면, 내 맘 속은 아무 것도 없는 망망한 대 사막 가운데서도 문득 푸른 샘물이 솟아나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헬더린의 영향을 받아 그는“멀다는 것은 요원한 걸 빼면 아무 것도 없다”라는, 나름대로의 시론 아래 시를 썼다. (「하이즈 시 전편」 914~917 쪽에서 인용) 그만큼 이 시에서 「흑암黑暗」 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암흑”은 생명을 지닌 단어이다. 왜냐하면, 까만 밤은 암흑의 여인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암흑”과 “광명”의 관계는 실제로 대지와 하늘의 관계이다. “黑夜從大地上昇起 / 遮住了光明的天空” (까만 밤이 대지에서 올라와/ 밝은 하늘을 막고 있다) 이 시구는 이 시에서 전반적인 기조가 된다. 봄엔 씨를 뿌리고 가을엔 거둬들이는 사람들의 행위 속에서 그는  오히려 생장의 멈춤과 생명의 사망을 봤기 때문이다. 추수 뒤에 오는 황량함을 지켜보며 그는 추수의 의미가 풍요로움을 지나 어둠을 상승시킨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시인은 “大風刮過山岡(거센 바람이 산마루를 휩쓸며 지나)가지만” “走在路上 / 放聲歌唱(길을 걸으면서/소리쳐 노래한다)” 라고 쓴 것이다. “上面是無邊的天空(그 위는 끝도 없이 빈 하늘일 뿐이다)” 이런 극명해진 상황 속에서 오히려 적극적인 생존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진정으로 “어둠의 여인”에게 인생의 잠언을 바치는 것이다. 1987년 하이즈는 「시학 : 하나의 제안」에서 “토지를 상실한 현재의 의지할 곳 없이 표류하는 영혼들이 대신 찾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대지 본연의 생명력은 단지 욕망을 대체품으로 사용하거나 대신 지칭할 때만 이용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했다.(「하이즈 시 전편」 889쪽, 인용)”고 했는데, 정말 “그 까만 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어찌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는지, 어둠이 한낮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아시아의 구릿빛 땅이여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여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여기에, 나 역시 여기에서 죽으리라 그대만이 유일하게 사람이 묻힐 땅이로다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회의와 비상을 좋아하는 새,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바닷물  그러나 그대의 주인은 푸른 풀이구나, 스스로 허리를 오그린 채 들꽃의 손바닥과 그 비밀을 지켜주는구나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보이는가? 저 두 마리의 비둘기가, 그것은 굴원이 모래사장에 남겨 두고 간 흰색 신발이도다 우리는―― 우리는 강물과 함께 그걸 신어 보자꾸나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아시아의 구리빛 땅이여 북소리 끝난 뒤, 어둠 속에서 벅차게 뛰는 심장을 우리는 달빛이라 부르련다 그 달빛은 주로 그대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亞洲銅   亞洲銅, 亞洲銅/祖父死在這里, 父親死在這里, 我也將死在這里 /你是惟一的一塊埋人的地方 亞洲銅, 亞洲銅/愛懷疑和愛飛翔的是鳥, 淹沒一切的是海水 /你的主人却是靑草, 住在自己縮小的腰上, 守住野花的手掌和秘密// 亞洲銅, 亞洲銅 /看見了嗎? 那兩只白鴿子, 它是屈原遺落在沙灘上的白鞋子/讓我們_______我們和河流一起, 穿上它吧 //亞洲銅, 亞洲銅/擊鼓之后, 我們把在黑暗中跳舞的心臟叫做月亮 / 這月亮主要由你構成      위 시는 전체적으로 몽롱하면서도 우의성이 깊은 작품이다. 제목부터 그렇다. 아니 네 번이나 를 반복 영탄하며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아시아 구리亞洲銅’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시아 구리亞洲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애정과 정서는 또 어떻게 이해, 해석해야 하는가.   단어 그대로를 풀어본다면, 이지만, 이 시편에서 시인이 의도적으로 숨겨둔 우의寓意는 무엇일까? 구리, 동銅은 황동과 청동이 있다. 그러나 여기선 시를 통해 흙빛, 즉 황동을 가리킴을 추측할 수 있다. 왜냐면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그리고 장차 내가 죽어 묻힐 대지를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굴원이 신발을 벗어놓고 빠져 죽은 장강의 한 지류인 멱라강으로부터 중국문명이자 동양문명의 발상지인 황허 유역을 통해 문명은 시작되었고 그 중에서도 구리를 발견, 사용함으로써 그 때로부터 문명은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즉 흙, 대지는 문명의 근거가 된 황토빛 구리와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현실에 만족치 않고 탐색을 하는 새는 그들의 민족성을 나타내며 모든 걸 침몰하게 하는 바다는 그들을 단련시키는 온갖 재앙과 역사적 시건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이 두 상징을 구리빛 땅에 대비시킨 까닭은 한 포기 풀꽃을 피워내는 황토빛 구리 땅이야말로 동방문명의 번영과 다원성을 상징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시의 주제는 끝 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달빛은 아시아 구릿빛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동방문명은 어둠 중에 세상을 밝히는 달빛이라고. 왜냐하면 “어둠 속에서 벅차게 뛰는 심장을 우리는 달빛이라 부르”며 “그 달빛은 주로 그대, 아시아 구릿빛 땅을 가지고 만들었기”때문이다. 달은 빛이고 그 빛은 양성문명이며 대지의 모든 것을 포용하며 어둠 속의 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5.  이상李霜을 닮은 천부적 시인      시촨에 의하면, 하이즈는 키가 작고 얼굴은 둥글고 큰 안경을 낀 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이미 등단을 했는데, 그는 우리나라의 천재시인 이상李霜과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시인이었다. 15살 때 그는 안휘성 시골 구석에서 베이징 대학 법학과로 들어와 중국법학대학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초기엔 교지편집에, 후기엔 철학과 교수연구실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계통론과 미학에 대해서도 강론을 했는데, 하이즈의 미학강의는 학생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한 예를 들면,  “상상력”의 수의성에 대해 강의 할 때, “너희들은 갈매기에 대해 상상해 봤니?  하느님의 수영 팬티 같지 않니! ” 라고 말해서 학생들은 그가 시인임을 단번에 알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방과 후 10분간 그가 낭송하는 시를 듣곤 했다고 한다.  하이즈는 25 년의 생애 중 15년간을 시골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안에선 늘 바람의 방향과 보리의 자라는 모습  등이 그려지고 있으며 그 붉은 흙의 빛과 어둠, 생명의 온화하고도 잔혹한 본질, 침묵의 대지가 그에게 들려주고 또 말하게 하는 유창하고도 간결하고도 또 연마된 뿌리 깊은 시어들이 그를 대지 안으로 품게 하고 성장하게 했음을 간파하게 된다. 광대한 중국의 빈곤한 고향이 그에게 선물한, 풍부한 시정신의 복을 누렸다고 할 수 있겠다.        ▲ 참고서적:  《하이즈의 시海子的诗》//               『하이즈. 사유海子·思绪』인민문학출판사 편집/ 1990.2.17 //              《하이즈. 난화 海子·暖花》인민문학출판사 편집/ 1994年5月31 //     ​1987년 11월 14일 하이즈의 일기       "암흑이란건 영원하다. 내 소란한 맘을 가득채우고 다시 범람하게 한다. 어둠은 한낮보다 아름다운 한낮의 詩이다. 태양을 창조한 사람은 부득불 자신을 위해 암흑의 형제가 될 수밖에 없다"   "8년 전 한겨울에 야간열차를 탄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한 여인에게서 아름답고도 부드러운 온기를 느꼈다. 그때의 어둠은 오히려 한낮같이 밝았다. 한편 현재의 밝은 한낮은 정말로 어둔 노동의 장소나 자궁 속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광란이나 폭풍의 중심에 있을 땐, 어떤 위안도 필요하지 않다. 난 암흑을 중시한다. 그래서 나는 [까만 밤]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던 것 이다.([하이즈시 전 편]883~884쪽)   하이즈는 독일 시인 헬더린을 좋아했다. 니체의 '암흑시기'보다 몇 배 더 긴 정신착란증세로 36년간이나 암흑같은 병고에 시달렸던 시인 헬더린도 그의 시에서"정신의 까만 밤 속에서 나는 대지로 달려나갔다"라고 토로 했는데, 하이즈는 "헬더린의 시를 읽다보면, 내 맘 속은 아무것도 없는 망망한 대 사막 가운데서도 문득 푸른 샘물이 솟아나는 것같은 희열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헬더린의 영향을 받아 그는 "멀다는 것은 요원한 걸 빼면 아무것도 없다" 라는, 나름대로의 시론 아래 시를 썼다([하이즈 시 전편] 914~917쪽에서 인용) 그만큼 이 시에서 흑암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암흑'은 생명을 지닌 단어 이다. 왜냐하면, 까만 밤은 암흑의 여인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암흑'과 '광명'의 관계는 실제로 대지와 하늘의 관계이다.   '까만 밤이 대지에서 올라와/ 밝은 하늘을 막고 있다' 이 시구는 이 시에서 전반적인 기조가 된다.   봄엔 씨를 뿌리고 가을엔 거둬들이는 사람들의 행위 속에서 그는 오히려 생장의 멈춤과 생명의 사망을 봤기 때문이다. 추수 뒤에 오는 황량함을 지켜보며 그는 추수의 의미가 풍요로움을 지나 어둠을 상승시킨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시인은 '거센 바람이 산마루를 휩쓸며 지나'가지만 '길을 걸으면서/소리쳐 노래한다'라고 쓴 것이다.   '그 위는 끝도 없이 빈 하늘뿐이다' 이런 극명해진 상황 속에서 오히려 적극적인 생존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진정으로 '어둠의 여인'에게 인생의 잠언을 바치는 것 이다. 1987년 하이즈는 [시학:하나의 제안]에서 '토지를 상실한 현재의 의지할 곳 없이 표류하는 영혼들이 대신 찾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대지 본연의 생명력은 단지 욕망을 대체품으로 사용하거나 대신 지칭할 때만 이 용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했다.([하이즈시 전편]889쪽 인용)고 했는데, 정말 ' 그 까만 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는지, 어둠이 한낮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웠 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終 [출처] 1987년 11월 14일 하이즈의 일기 |작성자 다리오75  
333    명시인 -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댓글:  조회:5696  추천:0  2015-04-05
  백만송이 장미 심수봉 (1) 먼옛날 어느별에서 내가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음성 하나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2)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흘렸네 헤어져간 사람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1933- )  (열린책들, 1989) 중에서  보즈네센스키는 옙투센코와 함께 1960년대 가장 인기있었던 대중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옛 애인에게 돌아가지 마세요.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그들이 수년 동안 살아온 잘 정돈된 작은 집처럼, 사본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짖어대는 하얀개를 만나고 언덕위에 늘어 선 양쪽의 숲은 - 왼쪽, 오른쪽에- 어둠속에서 서로를 향해 짖어댄다. 숲속의 두 메아리는 따로 살아간다. 마치 두개의 스테레오 스피커처럼, 당신이 해온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그들은 큰소리로 세상에 퍼뜨린다. 집안에서 메아리가 찻잔을 떨어뜨리고, 거짓 메아리가 차를 권하고, 울어야만 할 밤을 위해, 거짓 메아리는 당신을 남겨둔다: 내일 저녁,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가며, 당신은 개울가에 열쇠를 던질거요. 오른쪽 숲과 왼쪽의 숲. 당신의 목소리로 외칠거요: 그러나 당신은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오.     Не возвращайтесь к былым возлюбленным,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Есть дубликаты —                 как домик убранный, где они жили немного лет. Вас лаем встретит собачка белая, и расположенные на холме две рощи — правая, а позже левая — повторят лай про себя, во мгле. Два эха в рощах живут раздельные, как будто в стереоколонках двух, все, что ты сделала и что я сделаю, они разносят по свету вслух. А в доме эхо уронит чашку, ложное эхо предложит чай, ложное эхо оставит на ночь, когда ей надо бы закричать: «Не возвращайся ко мне, возлюбленный,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две изумительные изюминки, хоть и расправятся тебе в ответ...» А завтра вечером, на поезд следуя, вы в речку выбросите ключи, и роща правая, и роща левая вам вашим голосом прокричит: «Не покидайте своих возлюбленных.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Но вы не выслушаете совет.         'Million Alyh Roz(백만 송이 장미)'    러시아의 여가수 알라 푸가체바(Alla Pugacheva)가 1982년에 발표한 노래로 심수봉(沈守峰, 본명: 심민경 沈玟卿)이 1997년에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오리지널 곡이다.   ‘Million Alyh Roz’도 사실은 번안곡이다. 1981년 라트비아(Latvia)의 방송국 Mikrofons가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서 아이야 쿠클레(Aija Kukule)와 리가 크레이치베르가(Liga Kreicberga)란 여가수가 '마라가 준 인생(Dāvāja Māriņa)'을 불러 우승하였는데 이 곡에다 러시아의 대표적 시인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Andrey Voznesensky, 1933~2010)가 노랫말을 쓰고 알라 푸가체바가 달콤하면서도 우수에 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Million Alyh Roz'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마라가 준 인생’과 ‘Million Alyh Roz’의 가사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마라가 준 인생’은 라트비아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마라(Māriņa)가 딸을 낳았으나 행복을 주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강대국에 나라의 운명이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고난을 암시한 것이지만 ‘Million Alyh Roz’의 노랫말은 원곡과는 완전히 달라서 그루지아(Gruziya)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Nikolay Pirosmanashvili, 1862~1918)와 프랑스 여배우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쏘비에트 인민가수(Peoples Honor Singer of the Soviet Union)’라는 칭호를 받은 알라 푸가체바는 1981년 영국에서 행해진 인기투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에 뽑히기도 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는 사랑을 주면 백만 송이 장미꽃이 피게 되고 그립고 아름다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의 내용 역시 ‘마라가 준 인생’과 ‘Million Alyh Roz’와는 완전히 다르다.   좋은 노래는 어떤 내용, 어떤 언어로 불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여배우를 흠모(欽慕)한 니코 피로스마니의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노래말     Million Of Red Roses   There once lived a painter He had a house and his paintings He was in love with an actress And that actress loved flowers Then he sold his house Sold his paintings too And with that money he bought A whole sea of flowers   Million, million, million of red roses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you can see Who's in love, who's in love Who's crazy in love with you My whole life for you I will turn into flowers   In the morning you'll wake up at your window Maybe, you've lost your mind As if still in a dream Your whole yard is filled with flowers Suddenly your heart is turning cold Who's the rich baron doing this? Instead under the window, barely breathing The poor painter is standing   Million, million, million of red roses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you can see Who's in love, who's in love Who's crazy in love with you My whole life for you I will turn into flowers   The meeting was short By night she left on a train But in her life she always remembered Song of the beautiful of roses The painter lived out his life alone Many pains he lived through But in his life he always had A whole sea of beautiful roses   Million, million, million of red roses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From your window you can see Who's in love, who's in love Who's crazy in love with you My whole life for you I will turn into flowers       Alla Pugacheva (1949 - )          [출처] 백만 송이 장미(Million Alyh Roz) - Ala Pugacheva|작성자    백만송이 장미 심수봉 (1) 먼옛날 어느별에서 내가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음성 하나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2)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흘렸네 헤어져간 사람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백만송이 장미 심수봉 (1) 먼옛날 어느별에서 내가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음성 하나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2)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흘렸네 헤어져간 사람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백만송이 장미 심수봉 (1) 먼옛날 어느별에서 내가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음성 하나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2)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흘렸네 헤어져간 사람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P.S. 보즈네센스키와 레이건 대통령과의 면담 사진, 그의 활발한 대외 할동을 짐작하게 해준다.         ‘백만송이 장미’의 시인, 러 보즈네센스키 타계       l    러시아의 저명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사진)가 2010년 6월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고 AP·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77세. 보즈네센스키는 스탈린 사후 해빙기의 지적 자유를 누린 지식인 세대를 가리키는 ‘60년대 아이들’의 대표적 인물이다. 한국 가수 심수봉씨가 부른 가요 ’ 러시아   ‘백만 송이 장미' 러시아 원곡의 노랫말을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보즈네센스키는 혁신적인 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나 소련 당국은 그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추방 위협 등 권력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크렘린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등의 시집을 남겼다.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러시아어: Андре́й Вознесе́нский, Andrey Voznesensky, 1933년 5월 12일 ~ 2010년 6월 1일)는 러시아의 시인이다. 생애 1933년 5월 12일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주로 소비에트 연방의 도시 블라디미르에서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어머니와 함께 우랄 산맥에 있는 쿠르간 지방에서 살기도 했다. 그의 양친은 모두 문학과 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읽어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레닌그라드에서 공학 교수로 일했다. 보즈네센스키는 전쟁 중 전선으로 돌아가던 아버지가 쿠르간에 들렀던 날을 회상한다. 그의 아버지는 면도를 하지 않아 초췌한 모습으로 약간의 식량이 들어 있는 배낭과 고야의 작품집을 가져왔다. 고야의 그림은 화가가 되고자 했던 꿈 많은 어린 소년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보즈네센스키는 고야의 그로테스크하고 무시무시한 전쟁 그림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을 이해했다. 바로 그의 유명한 시 <나는 고야>(1957)가 전쟁에 대한 시인의 이해를 반영한 작품이다. 전쟁 후 보즈네센스키의 가족은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청년이 된 그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건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대하여 그는 말한다.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기는 했으나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시는 얼음장 밑의 강물처럼 내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1957년 모스크바 건축대학을 졸업하기 바로 전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는 그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 화재로 인해 보즈네센스키가 수년간 공들여 작성한 졸업 작품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 사건은 보즈네센스키에게 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상징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건축학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인이 되었다. 이 화재 사건은 그의 시 <건축대학의 불>(1957)의 테마가 되었다. 그가 화재 때문에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림과 건축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과 건축은 그의 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많은 시 속에서 특히 테마와 이미지 선택에 있어서 건축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의 시 <대가>에서 그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위에 있는 성(聖)바실리 성당의 건축가 바르마가 이반 4세에 의해 눈이 멀어 다시는 어떤 건물도 지을 수 없었다는 전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 속에서 건축 이미지를 통해서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시각 이미지는 그의 성공적인 실험시 속에서 중요한 예술적 기법으로 나타난다. 보즈네센스키의 형식적 교육은 건축대학으로 끝났으나, 그의 시 수업은 정신적 스승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만남은 보즈네센스키의 생애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첫 시 작품들을 파스테르나크에게 보냈으며, 그로부터 격려의 편지와 초대장을 받았다. “나는 페레델키노(Peredelkino)까지 이사 가서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다”고 보즈네센스키는 말하고 있다. 보즈네센스키의 초기 작품들은 파스테르나크와 비슷한 시풍을 보여준다. 물론 보즈네센스키는 이내 자신의 독창적인 시어를 발견하지만 시 속에서 풍기는 연민의 정과 비애감은 파스테르나크 시의 특성과 어느 정도 일체감을 주고 있다. 보즈네센스키의 유기체적 삶의 통일감은 파스테르나크의 시적 분위기와 유사하다. 보즈네센스키는 시뿐만 아니라 도덕적 일상에서도 파스테르나크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파스테르나크는 도덕적 지성의 상징이었다. 그는 스탈린 시대에 일어난 언어의 타락과 황폐화에 반대하여 행동했다. 스탈린에 의해 황폐해진 러시아 순수문학을 재창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그는 도덕적 지성으로 무장했다. 그는 인간 개인의 가치를 믿고 있었다. 작품세계 보즈네센스키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주된 관심사로 두면서도 전통적인 시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고자 과감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열정은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사용한 다중 운율시, 산문시, 시와 산문의 혼합시, 그래픽시, 시각시 등을 개발하게 했다. 시인으로서 보즈네센스키의 인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에서 시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한다. 보즈네센스키는 과거 소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이었다. 독재자 스탈린의 사망 후 저항 시인 옙투셴코와 더불어 ‘젊은 시인들’의 선두 주자인 보즈네센스키는 195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화제의 중심이 되어온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시 낭송회, 텔레비전과 신문 등 각종 매스컴을 통해 대중과 친숙한 이 시인은 러시아 시 전통 속에서 독자적인 시어를 개발하고 자작시 낭송을 통하여 언어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수많은 청중의 갈채와 환호 속에서 행해지는 그의 시 낭송은 새로운 예술 장르, 즉 낭송 예술의 창조라 할 수 있다. 시어 선택과 배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 시인은 일상의 단어들을 조합하여 신어(新語)를 만들어낸다. 그의 시 속에서 일상적인 단어와 신어는 새로운 표현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난다. 그리하여 그의 시어는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창출한다. 그가 종종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분명히 그의 언어는 러시아 문학어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인간과 역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문명과 기술의 위태로운 공존, 역사와 현대 생활의 상호작용, 비난받기 쉬운 시인의 사회적 위치 등 다양한 테마들이 그의 시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의 시 세계 속에서 주된 핵심은 무엇보다도 인간이다.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특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포착된 많은 표상들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역사와 인간의 행동에 비교되는 자연의 절대적 위치와 최고의 가치에 대한 테마들이 그의 시 <정적>과 <죽은 듯이 고요하다> 등에 나타난다. 이런 시들은 60년대 자신의 고민스런 상황과 그에 대한 어려움을 노래한 것들이다. 이런 시들에서 지배적인 선율은 사랑과 자연에로의 도피와 후퇴다.
332    명시인 - 칼 샌드버그 댓글:  조회:7403  추천:0  2015-04-05
샌드버그 Carl Sandburg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1878. 1. 6, 미국 일리노이 게일즈버그 사망 1967. 7. 22., 노스캐롤라이나 플랫록 국적 미국 1878. 1. 6 미국 일리노이 게일즈버그~ 1967. 7. 22. 노스캐롤라이나 플랫록. 미국의 시인·역사학자·소설가·민속학자.   원본사이즈보기 칼 샌드버그 미국의 시인인 칼 샌드버그의 사진(연대 미상) 11세부터 이발소 급사, 우유배달차 운전수, 벽돌공, 캔자스 밀농장 일꾼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1898년에 미국 -스페인 전쟁이 터지자 일리노이 제6보병대에 입대했다. 이러한 어린시절은 그의 자서전 〈언제나 어린 이방인 Always the Young Strangers〉(1953)에 기록되어 있다. 1910~12년에 사회민주당 조직원이자 밀워키 시장의 비서로 일했다. 1913년 시카고로 이사하여, 경제지 〈시스템 System〉의 편집인이 되었고 그뒤에는 〈시카고 데일리 뉴스 Chicago Daily News〉의 임원이 되었다. 1914년 〈포이트리 Poetry〉지에 일군의 〈시카고 시 Chicago Poems〉(1916)가 실렸다. 가장 유명한 시 〈시카고 Chicago〉에서 잘 웃고 건장하며 부주의한 '백정, 연장 제작자, 밀을 쌓는 사람, 철도주식 투기꾼, 짐꾼'을 통해 시카고의 도시 풍경을 잘 그렸다. 샌드버그의 시는 발표되자마자 좋은 반응을 얻었다. 휘트먼식의 자유시 형식인 시집 〈연기와 강철 Smoke and Steel〉(1920)에서 "피츠버그·영스타운·개리, 이들은 사람들과 함께 강철을 만든다"라고 노동자들을 찬미했다. 〈안녕 아메리카 Good Morning, America〉(1928)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일부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심각한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민중의 힘을 시적으로 처리하여 〈그렇다, 민중이여 The People, Yes〉(1936)를 썼다. 환호하는 청중 앞에서 그가 부른 민요를 모아 〈미국의 노래주머니 The American Songbag〉(1927)와 〈미국의 새 노래주머니 New American Songbag〉(1950)를 펴냈다. 유명한 전기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The Prairie Years〉(2권, 1926)과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The War Years〉(4권, 1939, 1940년 역사부문 퓰리처상 수상)을 썼다. 샌드버그의 매부인 유명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전기 〈사진가 스타이켄 Steichen the Photographer〉이 1929년에 나왔다. 필그림 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밟은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미국의 경험을 요약한 장편소설 〈추억의 바위 Remembrance Rock〉를 출판했다. 〈시전집 Complete Poems〉은 1950년에 나왔다. 아동도서 〈루터배가 이야기 Rootabaga Stories〉(1922)·〈루터배가 비둘기 Rootabaga Pigeons〉(1923)·〈루터배가 컨트리 Rootabaga Country〉(1929)·〈감자 모양 얼굴 Potato Face〉(1930) 등을 썼다.     안개                  칼 샌드버그[미국]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 시카고가 낳은 현대 아메리카 이미지즘 시인. 평민적인 소박한 언어로 도시나 전원 등을 노래했으며, 시카고를 주제로 한 서정시를 많이 발표했다.    안개는 걸어온다. 작은 고양이 발로,   조용히 쪼그려 앉아 항구와 도시를 바라보다가 다시 또 간다.   Fog    Carl Sandburg   the fog comes on little can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331    력사는 력사... 北島 / 대답 댓글:  조회:5749  추천:0  2015-04-05
아물지 않은 상흔을 노래하는 시인 베이다오 모더니즘 시라는 건 서방의 시각일 뿐                     지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한국디지털문학가협의회와 한국언어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중국의 망명시인 베이다오(北島.)의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세종문회회관에서 열린 제 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베이다오는 중국 몽롱시의 대표 작가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현대 중국문학에 위대한 변화를 가져다준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직후, 오늘이란 잡지에 실린 그의 시는 집단 실어증 상태로 억눌려 있던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고무시켰고 89년 6.4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톈안먼 광장에 그의 시 이 대자보 형식으로 곳곳에 나붙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1989년 유럽으로 망명한 이후 7개국을 돌아다니다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조국의 전체주의적 현실, 팔레스타인의 학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서명에 참여하면서 독자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초청강연회에서 그는 국내 문인들의 관심 속에 출간된 ‘한밤의 가수’(1972년부터 1998년까지 창작한 시를 수록한 시집) 사인회를 가졌다. 시집에 수록된 여러 편의 시와 미 발표작 5편을 직접 낭송하기도 하였다. 이날 그는 필명인 北島(북쪽지방 바다에 있는 침묵의 섬)처럼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는 “1990년 여름 고은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에도 군사독재시절 옥중시인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보니 한국은 크게 변화한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서대문 형무소, 5.18 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민주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세기의 대가를 치러 이루어졌다. 오늘은 중국에서 6.4가 일어난 지 16주년이 되는 날이다. 언젠가 중국에도 그 간의 세월에 쌓인 먼지를 씻어줄 수 있는 공동묘역이 생기길 희망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20세기는 인류의 황금기이다. 공업혁명과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어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면서 동시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밝음과 어둠의 양면성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중국의 솔제니친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는 혁명 시로 간주되기도 하고, 모더니즘적 요소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 대해 그는 “나의 시는 모더니즘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다만 서방언론의 시각일 뿐이다. 위대한 시는 거대한 메아리를 낳는다. 시는 세월의 안개를 뚫고 다가와야 한다. 언어는 시의 현실이며, 시는 바뀐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우리 언어는 무거운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통된 운명의 짐을 지고 있다.”면서 저항적인 이미지에 국한된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의 시에 날짜와 시간이 없는 것도 시를 시대적인 배경에서 해석하기보다는 시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망명 이후 시와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려대 허세욱 교수는 “베이다오의 시는 회의와 불신, 부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시대에 대한 개인의 저항과 분노가 시를 만들어냈고, 사물을 직접 투시 하는듯한 그의 작풍은 많은 젊은이들을 격동시켰다. 중국에는 베이다오 말고도 많은 저항 작가들이 있었고, 수많은 지하 간행물도 있었지만, 베이다오가 주목받는 이유는 저항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고도의 승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그의 시가 보여주는 예술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작가는 책벌레처럼 어둠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베이다오는 말한다. 많은 이들은 그를 저항시인으로, 노벨상 후보로  기억하지만 그는 다만 시인의 길을 갈 뿐이다. 뭐라 이름 할 수 없는 세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과 고독, 미처 아물지 않은 상흔들을 그는 기억하고 회상한다. 그리고 끝없는 메아리로 어둠과 안개를 뚫고 빛을 밝힌다. 마치 '한밤의 가수'처럼. 조윤덕 기자    베이다오 시인 약력 △ 1949년 중국 베이징 출생(본명은 자오전카이[趙振開])  △ 1960년대 후반 베이징의 명문 제4중학 재학 중 문화대혁명을 만나 잠시 홍위병 활동. 1968년 졸업  △ 1969년 허베이의 한 농촌에서 의무 노동.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와 건설노동자로 11년간 복무  △ 1970년부터 시 창작 활동. 중국 현대시의 흐름을 바꾼 몽롱(朦朧)시의 주요 창시자.  △ 1976년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을 계기로 촉발된 4.5 청명절 시위 주도.  △ 1978년 중국 최초의 민간 문학잡지인 『오늘(今天)』창간. 문혁이후 새로운 문학운동 주도. 단편소설 『파동』발표  △ 1986년 중국에서 『베이다오 시선』, 『6인 시선』출판  △ 1989년 중국의 유명한 민주인사 웨이징성(魏京生) 구명운동 전개. 천안문 사건 직전에 유럽으로 망명. 이후 유럽 6개국과 미국 각지를 방랑하며 강연.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 89년 6.4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그의 시 『대답(回答)』이 대자보 형식으로 광장 곳곳에 부착됨.  △ 1992년 노벨 문학상 후보  △ 1995년, 1996년, 1999년에 각각 시집 『한밤의 가수』, 『영도 이상의 풍경』, 『자물쇠 열기』를 대만에서 출판.  △ 2002년 모로코 국제시가상, 2005년 독일 지네트 쇼큰 문학상 수상 .  △ 2004년 산문집『실패한 책』중국에서 출판.   대 답  비겁은 비겁한 자들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들의 묘비이다 보라 저 금도금한 하늘에 죽은 자의 일그러져 거꾸로 선 그림자들이 가득 나부끼는 것을. 빙하기는 진즉 지났건만 왜 도처에 얼음뿐인가 희망봉도 발견되었건만 왜 죽음의 바다에는 온갖 배들이 앞을 다투는가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다만 종이와 새끼줄 나의 그림자 그리고 심판에 앞서 판결문을 읽기 위한 목소리를 가져왔을 뿐이다.   너에게 고하노니, 세계여! 나는 믿-지-않는다 네 발 아래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나를 천한 번째로 생각하라   하늘이 파랗다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천둥의 메아리를 나는 믿지 않는다 꿈이 거짓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죽으면 보답이 없다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바다가 제방을 무너뜨리고 끝내 터지고 말 것이라면 그 모든 쓴 물들을 내 가슴으로 받아내리라 육지가 솟아오르고 말 것이라면 인류가 생존을 위한 봉우리를 다시금 선택하게 하여라   새로운 조짐과 반짝이는 별들이 훤히 트인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것은 오천 년의 상형문자이고 그것은 미래인들의 응시하는 눈동자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 게시, 베이다오의 대표작 [출처] 아물지 않은 상흔을 노래하는 시인 베이다오 모더니즘 시라는 건 |작성자 난공산당이싫어요
330    중국 당대 시인 10인 댓글:  조회:4869  추천:0  2015-04-05
北島, 중국 당대 시인 10명 중 첫번째로 꼽혀 중국의 저명한 시인 베이다오(北島 61)가 중국의 현시대를 대표하는 10명의 시인 가운데 첫 번째로 꼽혔다고 대만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 문학잡지 '중산(鐘山)'은 1979~2009년 사이에 활동해온 10대 시인을 선정하면서 베이다오를 최고의 시인으로 뽑았다. 잡지는 베이다오가 중국의 영향력 있는 대학교수와 시평론가 12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에게서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추천을 받았다고 전했다. 본명이 자오전카이(趙振開)인 베이다오는 시의 형식을 대담하게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어두우면서도 힘 있고 호방한 시를 많이 지었다.  '몽롱시파(朦朧詩派)를 대표하는 베이다오의 주요 작품으로는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배경으로 당시의 사회적 현상을 폭로하고 비판한 '해답'을 비롯해 '가자', '선언', '비 내리는 밤' 등이 있다.  베이다오는 1978년 시인 망커(芒克)와 민간 시전문지 '오늘(今天)'을 창간했다. 그는 1990년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 분교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했다. 2008년 베이다오는 홍콩 중문대학의 초빙으로 동아연구센터 인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베이다오와 함께 시촨(西川) 위젠(于堅) 자이융밍(翟永明) 창야오(昌耀) 하이쯔(海子) 어우양장허(歐陽江河) 양롄(楊煉) 왕샤오니(王小妮), 둬둬(多多)가 10대 시인으로 뽑혔다. 鐘山잡지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빠른 1979년 창간됐으며 장쑤성 작가협회가 주관하고 있다. 
329    北島 시모음 댓글:  조회:4449  추천:0  2015-04-05
뻬이따오: 혁명에서 유랑으로  뻬이따오(北島, 1949∼)를 만나는 건 문화대혁명(1966∼1976) 10년간 철저히 억압되었던 중국 현대시의 시적 자아의 부활과 그 미완의 초상의 확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는 것은 역사와 문학의 쉼없는 조우 속에서 빚어지는 시적 철학적 경구(警句)와 냉정한 서정을 음미하는 과정이다.  본명이 자오전카이(趙振開)인 뻬이따오는 공교롭게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연도인 1949년에 뻬이징의 상류가정에서 나서 중국 제일의 명문인 뻬이징 제4중학교에 다니던 중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지식의 획득보다 노동자, 농민의 계급의식 획득이, 합리적 의사소통보다 운동적 성격의 정치의식화가 우선시되었던 그 시대에, 뻬이따오는 잠시 홍위병(紅衛兵)에 참가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노동자가 된다. 그래서 허뻬이성(河北省)의 어느 농촌에서 건축일에 종사하였고 나중에 뻬이징에 돌아와 일반기업에 입사한다. 혹독한 정치운동에 휘말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당시의 모든 지식청년들처럼 그 역시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한 셈이다.  뻬이따오가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1970년 말이었지만 연대 확인이 가능한 작품은 1972년의 것이 최초이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인 시 창작을 드러내고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계기는 역시 지하간행물 {오늘(今天)}의 창간(1978)이었다. 하지만 고작 9호를 발행하고 폐간당한 {오늘}의 동인들 중 뻬이따오를 비롯한 꾸청(顧城), 망커(芒克), 수팅(舒 ) 등의 시인들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의 작품을 필사본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유통시켰으며 1976년의 제1차 천안문사건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자기동일성을 확인하였다. 그 사건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에 모인 수백만 군중들이 벌인 민주화 투쟁이었으며 그들은 기존 권력층을 비판하고 새로운 역사를 고취하는 격문과 시를 광장 곳곳에 게시하였다. 그 글들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필사되어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때 공개된 시들은 자그만치 만여 수에 달했으며 그 중에서 1500편을 엄선하여 엮은 {천안문시초(天安門詩抄)}가 1978년에 발행되기도 했다. 비록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뻬이따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래의 시도 천안문사건에 참여하면서 씌어졌다.  [회답]  비열함은 비열한 자의 통행증이며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지명이다.  보라, 저 도금된 하늘에  사자(死者)의 일그러진 그림자가 가득 비쳐 날린다.  빙하기는 벌써 갔건만  왜 곳곳이 다 얼음투성이인가?  희망봉이 발견됐건만  왜 죽음의 바다에서 온갖 배가 앞을 다투는가?  이 세계에 내가 온 것은  오직 종이와 밧줄, 그림자를 가져와  심판에 앞서  그 판결의 목소리를 선언하기 위한 것.  네게 말해주마, 세계여  나는 --- 믿지 --- 않는다!  네 발 밑에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날 천 한 번째 도전자로 세어다오.  난 하늘이 푸르다고 믿지 않으며  난 천둥의 메아리를 믿지 않는다.  난 꿈이 거짓이라 믿지 않으며  난 죽음에 대가가 없음을 믿지 않는다.  바다는 제방을 무너뜨릴 것이니  온갖 쓴 물이 내 가슴에 스며들게 하고  육지는 솟아오를 것이니  인류가 다시 생존의 봉우리를 선택케 하리라  새로운 계기와 반짝이는 별들이  거침없는 하늘을 메우고 있다.  그것은 오천 년의 상형문자이며  그것은 미래 세대의 응시하는 눈동자이다.  [回答]  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高尙是高尙者的墓志銘,  看 ,, 在那鍍金的天空中,  飄滿了死者彎曲的倒影.   川紀已過去了,  爲什 到處都是 凌?  好望角發見了,  爲什 死海里千帆相競?  我來到這個世界上,  只帶着紙, 繩索和身影,  爲了在審判前,  宣讀那些被判決的聲音.  告訴  , 世界  我 - 不 - 相 - 信!  縱使 脚下有一千名挑戰者,  那就把我算作第一千零一名.  我不相信天是藍的,  我不相信雷的回聲,  我不相信夢是假的,  我不相信死无報應.  如果海洋注定要決堤,  就讓所有的苦水都注入我心中,  如果陸地注定要上升,  就讓人類重新選擇生存的峰頂.  新的轉机和閃閃星斗,  正在綴滿沒有遮 的天空.  那是五千年的象形文字,  那是未來人們凝視的眼睛.  치졸한 권력투쟁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된 역사적 유토피아를 강요해 온 '세계'에게 시인은 "나는 --- 믿지 --- 않는다!"고 결연한 '회답'을 보낸다. 아무리 당연시되어 온 담론이라도, 혹시 그것이 "하늘이 푸르다"는 절대진리의 외표를 뒤집어 쓰고 있다 해도, '빙하기'가 지난 대지에 '얼음'을 깃들게 하고 "온갖 배가 앞을 다투는" '죽음의 바다'를 만든 담론이므로 '나'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천한 번째 도전자'가 되어 싸우리라 맹세하고 결국 새로운 '생존의 봉우리'로 인류를 이끌 '미래 세대의 응시하는 눈동자', 그 냉철한 인류정신의 잠재력을 믿는다.  역사의 전환을 바라는 뻬이따오의 외침은 실제로 실현되는 듯했다. 문화대혁명의 실세였던 이른바 사인방(四人幇)이 축출되고 떵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의 중심부에 복귀하여 개혁개방의 노선을 고취했으며, 1978년 12월에 공산당이 발표한 '사상해방'의 원칙에 힘입어 문예계에도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급진적 민주화를 외치던 웨이징성 등의 지식인들이 체포, 투옥되는 등 "바다가 제방을 무너뜨리는" 국면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뻬이따오가 1975년에 초고를 완성한 이 시를 뒤늦게 이 시기에 발표한 것은 아직도 '시대와의 불화'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고 - 위루어커 열사에게]  최후의 시각이 와도  유언은 남기지 않겠다  오직 어머님께 말씀 전하련다  저는 결코 영웅이 아니에요.  영웅 없는 시대에  그저 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고요한 지평선  산 자와 죽은 자의 줄을 가른다  난 하늘을 택할 수 있을 뿐  결코 땅에 꿇어앉아  자유의 바람을 막으려는  사형집행인을 커 보이게 하지 않겠다  별 모양의 총알구멍에서  핏빛의 여명이 흘러나오리  [宣告 - 獻給遇羅克]  也許最后的時刻到了  我沒有留下遺囑  只留下筆, 給我的母親  我 不是英雄  在沒有英雄的年代里,  我只想做一個人.  寧靜的地平線  分開了生者和死者的行列  我只能選擇天空  決不 在地上  以顯出 子手們的高大  好阻 自由的風  從星星的彈空里  將流出血紅的黎明  한 열사의 죽음에 대한 비장한 회고이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그의 미래지향적 신념을 형상화시킨 수작이다. 위루어커는 1970년 '반혁명분자'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그의 친우이자 민주청년이었다. "별 모양의 총알구멍에서 / 핏빛의 여명이 흘러나오리"라는 시적 화자의 선언도 의미심장하지만, "영웅 없는 시대에 / 그저 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라는 시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알려진 대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의 중국은 노동자와 전사인 '영웅'이 횡행하는 시대였다. 공산당은 철저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을 전형화하고 이에 맞는 인물들을 모범적 영웅으로 찬미함으로써 대중의 의식개조에 활용하였다. 하지만 시인에게 그 시대는 '영웅 없는 시대', 게다가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로 인식된다. 즉 모든 개인들이 고유의 이성과 감성을 포기하고 '계급'의 그것으로 자리를 채워야 했으며 철저히 집단의 한 원자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제 '영웅'을 거절하고 '한 인간'이 되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 되는 길임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선언인 동시에 현대시사의 차원에서는 간접적으로 '시적 자아'의 복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중국 시단의 지배적 조류는 '송가(頌歌)'와 '전가(戰歌)' 두 양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치사회적 장에서의 지배담론이 고스란히 문학예술의 장에 이식되어 자아의 표현과 개성적 세계인식으로서의 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다. 개혁개방 직후 순수지향적 현대시의 최초의 물결이었던 '몽롱시(朦朧詩)'의 대표주자이기도 했던 뻬이따오는 이 시를 통해 '한 인간'의 고귀한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은유적으로 중국 현대시에서의 시적 자아의 회귀를 암시하였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뻬이따오의 시는 주지시의 성향을 띠기 시작한다. 철학적 성찰과 시적 상상력이 대등하게 교차되면서 독특한 알레고리의 시세계가 구축된다. 먼저 [태양도시의 메모]라는 시를 살펴보자.  [태양도시의 메모]  생명  태양도 떠오른다  사랑  고요하고, 기러기떼 날아간다  거칠은 처녀지를  자유  흩날린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조각이  자손  바다 전부를 담은 그림이  접혀 한 마리 백학이 되었다  아가씨  아른대는 무지개는  나는 새들의 화려한 깃털을 모았다  청춘  붉은 파도가  외로운 노에 스민다  예술  억만 개의 빛나는 태양이  흩어진 거울조각 위에 빛난다  인민  달은 찢겨 빛나는 밀알이 되어  성실한 하늘과 대지에 뿌려졌다  노동  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운명  아이는 멋대로 난간을 두드리고  난간은 멋대로 밤을 두드린다  믿음  푸른 분지에 양떼 넘쳐 흐르고  목동은 단조(單調)로 피리를 분다  평화  제왕이 죽어간 곳에  저 낡은 창이 가지 쳐지고, 싹을 틔워  불구자의 지팡이가 되었다  조국  그녀는 청동의 방패 위에 주조되어  박물관의 검은 벽에 기대어 있다  생활  그물  太陽城札記  生命  太陽也上升  愛情  恬靜, 雁群飛過  荒蕪的處女地  自由  飄   碎的紙屑  孫子  容納整個海洋的圖畵  疊成了一隻白鶴  姑娘  顫動的虹  採集飛鳥的花翎  靑春  紅波浪  浸透孤獨的   藝術  億萬個輝煌的太陽  顯現在打碎的鏡子上  人民  月亮被 成閃光的麥粒  播在誠實的天空和土地  勞動  手, 圍擾地球  命運  孩子隨意敲打着欄杆  欄杆隨意敲打着夜晩  信仰  羊群溢出綠色的 地  牧童吹起單調的朴笛  和平  在帝王死去的地方  那支老槍抽枝, 發芽  成了殘廢者的拐杖  祖國   被鑄在靑銅的盾牌上   着博物館黑色的板墻  生活  網  이 시의 각 연의 소제목을 이루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현대사의 각 단계마다 다양한 의미작용을 가졌으며 그만큼 현대인의 고뇌와 성찰을 요구했던 시대적 표제어들이다. 뻬이따오는 시라는 문학양식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그 표제어들을 나열하고 그것들마다 형상화된 해석을 부여한다. 이 해석은 물론 시인의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시니피앙들은 알레고리로서 독자의 눈에 다가온다. 하지만 그 시니피앙들은 본래 대상으로서의 물질성을 송두리째 박탈당하지 않았다. 각각의 시어들은 추상적 관념의 시적 발현인 동시에 뻬이따오 자신의 서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푸른 분지에 양떼 넘쳐 흐르고 / 목동은 단조(單調)로 피리를 부는" 세계는 평화로움을 꿈꾸는 그의 '믿음'이면서 '믿음'의 시화(詩化)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평론가들은 그의 시의 특징을 '차가운 서정'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 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예술'과 '생활'이다. 예술을 "억만 개의 빛나는 태양이 / 흩어진 거울조각 위에 빛난다"고 해석한 그의 시선이 생활로 옮겨져 그것이 '그물'이라고 끝을 맺는 방식은 향후의 그의 시적 노선을 가늠케 한다. 부연하자면, 숱한 거울파편마다 태양이 되어 빛나는 예술은 단순히 다원화된 현대적 예술의 본질에 대한 찬미나 기대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적 주체의 달라진 실존적 조건, 즉 정치영역과 일상영역이 거의 일치되었던 과거의 조건과는 사뭇 달라진, 각종 사회적 역할과 지향이 중첩되고 파편화된 현대적 주체의 조건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생활은 '그물'이다. 각 주체들은 독립된 공간을 전유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공간들은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이 네트워크는 원활한 상호소통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권력담론의 미시적 전파와 지배기능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적 주체는 곧 생활의 주체인만큼, 그리고 시 텍스트는 생활이란 텍스트 위에 건축되는 만큼, 달라진 중국 현대의 조건은 민감한 뻬이따오로 하여금 새로운 철학적 성찰을 시도하게 하였다.  우화  그는 자기 우화 속에 산다  그는 더는 우언의 주인이 아니다  이 우언은 벌써 되팔리어  또 다른 살찐 손에 넘어갔다  그는 살찐 손에서 산다  카나리아는 그의 영혼  그의 목구멍은 장신구점에 있고  주위는 유리로 된 새장  그는 유리새장에 산다  모자와 구두 사이에서  저 사계절의 호주머니에  열두 개의 얼굴이 꽉 찼다  그는 열두 개의 얼굴 속에 산다  그가 배반한 저 강물이  바짝 그의 뒤를 쫓는다  개의 눈을 연상시키며  그는 개의 눈 속에 산다  온 세계의 굶주림과  한 사람의 풍요로움을 봤다  그는 자기 우화의 주인이다  寓言  他活在他的寓言里  他不再是寓言的主人  這寓言已被轉賣到   一隻肥 的手中  他活在肥 的手中  金絲雀是他的靈魂  他的喉 在首飾店里  周圍是 璃的牢籠  他活在 璃的牢籠中  在帽子與皮鞋之間  那四個季節的口袋  裝滿了十二張面孔  他活在十二張面孔中  他背叛的那條河流  却緊緊地追隨着他  使人想起狗的眼睛  他活在狗的眼睛中  看到全世界的饑餓  和一個人的富足  他是他的寓言的主人  [백일몽·6]  나는 광장이 필요하다  넓고 텅 빈 광장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  연 하나 외로운 그림자 놓을  광장을 차지한 자가 말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새장 속의 새는 산보가 필요하다  몽유병자는 빈혈의 햇빛이 필요하다  길들이 서로 부닥치려면  평등한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충동은 압축되어  우라늄으로, 안전한 곳에 숨겨졌다  조그만 가게에서  지폐 한 장, 면도날 한 개  독한 살충제 한 봉  탄생했다  [白日夢·6]  我需要廣場  一片空廣的廣場  放置一個碗,一把小匙  一隻風箏孤單的影子  占据廣場的人說  這不可能  籠中的鳥需要散步  夢游者需要貧血的陽光  道路撞擊在一起  需要平等的對話  人的衝動壓縮成   , 存放在可 的地方  在一家小店鋪  一張紙幣, 一片剃刀  一包劇毒的殺蟲劑  誕生了  위의 두 시는 모두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씌어졌다. 신랄하면서도 해독하기 힘든 이미지들의 조합, 행과 행 사이에 조성된 넓은 의미론적 간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의 비장하고 의지적인 색채를 찾아보기 힘든, 건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시적 전환은 뻬이따오의 본래의 형식관에 비추어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1981년에 {상하이문학(上海文學)}이란 잡지에서, "나는 영화의 몽타쥬 수법을 나의 시에 응용해서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을 꾀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이라는 극도의 도약이 낳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벌써 시적 낯설게하기의 독자수용적 측면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그의 시들은 여전히 '시대성'이라는 코드를 떠나서는 분명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위 시들은 분명 달라진 시대를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은 개인에 대한 시대의 억압과 이에 대한 항변을 책임지는 그의 시적 사명과는 무관한 '다름'이다. 오히려 달라진 시대는 더욱 그의 시선을 냉철하게 하고 세밀한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 이후의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현대화된 중국에서 인간은 비로소 독립된 공간을 획득했지만, 그 공간은 '우화'였기 때문이다. 우화는 그것 바깥에서 관조하는 인간에게만 우화일 뿐, 그것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활'이자 '삶' 그 자체이다. 강제된 관념으로 획분되고 경계지어진 우화의 공간 안에서 사는 인간은 그 우화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주인'이 아니다. 관조하는 인간(시인)은 본다. 그가 '유리새장' 혹은 '살찐 손' 안에서 살고 있음을. 그래서 시인은 [백일몽·6](장편인 이 시의 23편의 단시들 중 하나)에서 우화를 벗어나 '광장'을 요구하는, 아직 무엇으로도 점유되거나 질서화되지 않은 '광장'에 자신만의 원초적인 삶(숟가락, 그릇)과 도약(연)을 이루려는 '나'를 상정한다. 하지만 광장을 차지한 자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그 광장에서 '평등한 대화'를 나눠야할 개인들의 충동은 '우라늄'처럼 알지 못할 곳에 보관된다.  뻬이따오의 한층 깊어진 성찰의 시들은 1989년 6월 제2차 천안문사건 전후에 더욱 강화된 권력의 폭력성을 견뎌내지 못했다. 급진적 민주화세력의 주도자로 지목된 그는 결국 1989년 4월에 해외로 망명을 떠난다. 망명자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를 전전하다 1993년에 비로소 미국에 정착하였다. 다음 작품은 그 망명과정에서 창작되었다.  밤샘  달빛이 희미하게 잠을 비추고  강물이 우리 방을 뚫고 흐른다  가구는 어느 기슭에 닿으려는가  연대기만은 아닌  비겁함까지 깃든 기후 속에서  공인된 한편이  비오는 숲으로 우릴 몰았다  흐느끼는 방어선으로  유리 문진(文鎭)이 읽는다  문자들의 이야기 속의 상처를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1949년을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꽃은 주먹을 쥐고 부르짖는다  守 夜  月光小于睡眠  河水穿過我們的房間  家具在 兒 岸  不僅是編年史  也包括非法的氣候中  公認的一面  使我們接近雨林   哭泣的防線   璃鎭紙讀出  文字述述中的傷口  多少黑山 住了  1949年  在无名小調的盡頭  花握握拳頭叫喊  뻬이따오는 1987년 한 스웨덴잡지의 방문기에서 다음과 같이 조국과 자신의 관계를 토로하였다: "나는 중국으로부터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하려 해도 중국은 멘탈리티, 언어, 역사,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는데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타국 땅을 헤매며 시를 쓰면서도 조국에 두고 온 자신의 뿌리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세계가 어떻게 추락해서 사라지더라도 시의 사명은 영원히 숭고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더더욱 조국의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 1949년을"!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주먹을 불끈 쥔다. '꽃'이 되어, 뿌리없는 꽃이 되어 가련하게 부르짖고 있다.  중국 현대시의 시적 자아를 복권하고 이른바 차가운 서정으로 시대적 메시지를 전했던 시인 뻬이따오는 현재 중국 현지에서는 과거의 인물이다. 망명 이후 4권의 시집을 타이완과 서구 각국에서 출간하였지만 중국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처음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문예지 {오늘}은 폐간되었고, 현재의 중국 시문학사는 그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그는 단지 {오늘}과 몽롱시파의 한 구성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는 여전히 '오늘'의 인물이다. 스웨덴, 미국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도 거명되고 있다. 지금은 뉴욕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1990년에는 망명한 친구들과 함께 미국 현지에서 {오늘}을 복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그의 창작과 사회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뿌리 뽑힌' 시인일 수밖에 없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에게서 버림받은 그의 삶이, 그의 시가 언제 "어느 기슭에 닿아" 쉴 수 있을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328    명시인 - 긴즈버그 댓글:  조회:5376  추천:0  2015-04-05
긴즈버그   Irwin Allen Ginsberg 1926. 6. 3 미국 뉴저지 뉴어크~1997. 4. 5 뉴욕 뉴욕시티. 미국의 시인.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인 비트 운동을 주도했다. 긴즈버그를 비롯한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비트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데, 이들의 삶은 제도권 사회로부터의 일탈과 저항, 그리고 마약 사용으로 집약되었다. 그가 미술·음악·정치에 미친 영향은 이후 4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애비 호프먼, 바츨라프 하벨, 보브 딜런, 오노 요코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다고 한다. 법률가가 되려고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한 긴즈버그는 중간에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었고 잭 케루악, 윌리엄 S. 버로스, 닐 캐서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후 이들은 함께 비트 제너레이션을 이끌었다. 긴즈버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시 〈울부짖음 Howl〉은 기성 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분노와 함께 그의 급진적인 정치이념과 동성애를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로렌스 펄링 게티의 시티라이츠 서점 출판부에서 그 시를 〈울부짖음 Howl and Other Poems〉(1956)이라는 시집에 수록해 출간했는데, 그 때문에 게티는 외설죄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곧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사건을 계기로 검열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긴즈버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마도 시집 〈카디시 Kaddish and Other Poems〉(1961)에 실린 〈나오미 긴즈버그(1894~1956)를 위한 카디시 Kaddish for Naomi Ginsberg(1894~1956)〉일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어머니에게 바친 시로서 시인과 어머니와의 관계, 정신병원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을 다루었다. 1960년대에 비트 운동이 한풀 꺾이고 히피 시대가 막을 올린 다음에도 긴즈버그는 반(反)문화의 중심에 확고히 서 있었다. 그는 불교에 심취했으며, '비인'(be-in : 공원 등지에서 가지는 히피 모임)을 처음으로 조직했다. 또한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 히피족)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마약 합법화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1968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Democratic Party) 전당대회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했고, 미국에서의 정치적 저항도 계속했다. 1984년에는 긴즈버그의 시들을 1권의 책으로 묶은 〈시선집, 1947~80 Collected Poems, 1947~80〉이 출간되었다. 그는 〈미국의 가을, 1965~1971 The Fall of America : Poems of These States, 1965~1971〉(1972)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미국도서상도 수상했으며(1990), 〈코스모폴리탄의 인사, 1986~1992 Cosmopolitan Greetings : Poems 1986~1992〉로 1995년 퓰리처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327    명시인 - 구상 댓글:  조회:5078  추천:0  2015-04-05
                가을 병실(病室)                                             구상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내 앓은 가슴 위에다 긴 그림자를 지으며 북으로 날아간다. 한 마리 한 마리 꼬리를 물 듯이 一直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팔락 내 가슴 空洞에 내려 앉는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붙잡았다.               팔딱               팔딱               팔딱 내 가슴이 뛴다.               끼럭               끼럭               끼럭 내 가슴이 운다. 끼럭 끼럭 끼럭 하늘이 운다.                끼럭 끼럭 나는 놓아 보낸다. 혼자 떨어져 날으는 뒷모습이 나 같다. 가을 하늘에 기러기 떼 날아간다. 나의 가슴에 平行線을 그으며 날아간다.         초토(焦土)의 시·8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기도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거듭남                                                    저 성현들이 쳐드신 바  어린이 마음을  지각(知覺) 이전의 상태로 너희는 오해하지들 마라! 그런 미숙(未熟)의 유치란  본능적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독선과 편협을 일삼게 되느니, 우리가 도달해야 할  어린이 마음이란 진리를 깨우침으로써  자기가 자신에게 이김으로써 이른바 '거듭남'에서 오는  순진이요, 단순이요,  소박한 것이다.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오뇌와 고통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허망의 잔을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이 욕망과 고통과 허망 속에 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 감추어져 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  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나는 또한 믿고 있다.       날개                                                        내가 걸음마를 떼면서 최초에 느낀 것은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제 칠순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느끼는 것도 내 팔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손길을 향하여  기우뚱대며 발걸음을 옮기던 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매달려 어찌 어찌 살아가는 이제나 내가 바라고 그리는 것은  '제트'기도 아니요,  우주선도 아니요,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바로 내가 날개를 달고 온 누리의 성좌(星座)를 꽃동산 삼아  첫사랑 어울려 훨훨 날으는  그 황홀이다.         네 마음에다                                              요즘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나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으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다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서 들으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시                                                            우리가 평소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아무리 말을 치장해도 그 말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느니 하물며 시의 표상(表象)이 아무리 현란한들  그 실재(實在)가 없고서야 어찌 감동을 주랴? 흔히 말과 생각을 다른 것으로 아나 실상 생각과 느낌은 말로써 하느니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렷다. 그리고 이웃집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도 누구나 그 주인보다 더 맛볼 수 있듯이  또한 길섶에 자란 잡초의 짓밟힘에도  가여워 눈물짓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시는 우주적 감각*과 그 연민(憐憫)에서 태어나고 빚어지고 써지는 것이니  시를 소유나 이해(利害)의 굴레 안에서  찾거나 얻거나 쓰려고 들지 말라! 오오, 말씀의 신령함이여!                            * 하이데거의 "언어와 사고"에서의 말.                             * 폴 발레리의 시에 대한 정의.       시심                                                       내가 달마다 이 연작에다가  허전스런 이야기를 고르다시피 하여  시라고 써내니까 젊은 시인 하나가 하도 이상했던지 "그러면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하나도 없겠네요"하였다. 그렇다! 세상에는 시 아닌 것이  정녕, 하나도 없다.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의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다가 시다. 아니, 사람 누구에게나  또한 모든 것과 모든 일 속에는 진·선·미가 깃들어 있다. 죄 많은 곳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듯이 말이다.*  그것을 찾아내서 마치 어린애처럼  맞보고 누리는 것이  시인이다.                        * 성서의 로마서 5장 20절         어른 세상                                                네 꼬라지에 어줍잖게  그리 생각에 잠겨 있느냐고  비웃지 말라. 내가 기가 차고 어안이벙벙해서 말문마저 막히는 것은 글쎄, 저 글쎄 말이다. 이른바 어른들이 벌리고 있는 이 세상살이라는 게, 그 모조리 거짓에 차있다는 사실이다. 저들은 정의를 외치며 불의를 행하고 저들은 사랑을 입담으며 서로 미워하고 저들은 평화를 내걸고 싸우며 죽인다. 내가 주제넘어 몹시 저어되지만  어느 분의 말씀을 빌려 한마디 하자면 저들이 어린이 마음을 되찾지 않고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듯이  저들이 어린이 마음을 되찾지 않고선 이 거짓세상의 그 덫과 수렁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홀로와 더불어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白 蓮                                                      내 가슴 무너진 터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솟아난 백련 한 떨기 사막인 듯 메마른 나의 마음에다  어쩌자고 꽃망울 맺어 놓고야 이제 더 피울래야 피울 길 없는 백련 한 송이 왼 밤 내 꼬박 새어 지켜도 너를 가리울 담장은 없고 선머슴들이 너를 꺾어 간다손  나는 냉가슴 앓는 벙어리 될 뿐 오가는 길손들이 너를 탐내 송두리째 떠간다 한 들 막을래야 막을 길 없는 내 마음의 망울진 백련 한 송이 차라리 솟지야 않았던 들  세상없는 꽃에도 무심한 것을 너를 가깝게 멀리 바랠 때 마다  퉁퉁 부어오르는 영혼의 눈시울         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 논다                                                  이웃집 소녀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들어 갔을 무렵  하루는 나를 보고  ㅡ 할아버지는 유명하다면서?  그러길래  ㅡ 유명이 무엇인데?  하였더니  ㅡ 몰라!  란다. 그래 나는  ㅡ 그거 안좋은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올해 그 애는 여중 2학년이 되어서  교과서에 실린 내 시를 배우게 됐는데  자기가 그 작자를 잘 안다고 그랬단다.  ㅡ 그래서 뭐라고 그랬니?  하고 물었더니  ㅡ 그저 보통 할아버진데, 어찌보면  그 모습이 혼자 노는 소년 같아!  라고 했단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흐뭇해서  ㅡ 잘 했어! 고마워!  라고 칭찬을 해 주고는  그날 종일이 유쾌했다.                구상 具常 (1919 - 2004)                                     본명 : 구상준(具常浚) 세례명 : 요한 출생 :  1919년 9월 16일  학력 :  일본 니혼대학교  약력 :  1942년 북선매일신문 기자 1952년 효성여자대학교 부교수 1960년 경향신문 논설위원 1985년 문예진흥원 이사 1997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2004년 5월 11일 폐질환으로 별세    시집 『구상시집』(청구출판사, 1951), 『초토의 시』(청구출판사, 1956), 『까마귀』(흥성사, 1981),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큰손, 1982), 『드레퓌스의 벤취에서』(고려원, 1984),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현대문학사, 1984), 『구상연작시집』(시문학사, 1985), 『구상시전집』(서문당, 1986), 수필집 『침언부어』(민중서관, 1961) 등.      [시인 구상 이야기]   시인 구상(구상)씨는 남북 양체제에서 필화를 경험한 유일한 문인이다. 46년 구씨는 고향인 원산에서 사화집 "응향"에 시를 발표했다가 부르조아적, 퇴폐주의적, 반역사적, 반인민적인 반동시인으로 몰린다. 예컨대, 시작품「길」의 「안개를 생식하는 짐승이 된다」는 구절에 대해서 좌익 평론가들은 「사람이 밥 없이 안개를 마시고 산다는 게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관념적이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냐」며 유물사관을 잣대로 비난을 했던 것이다. 그 체제를 못 견뎌 월남한 구씨는 65년 8월 희곡 "수치"를 드라마센터의 무대에 올리려다 당국으로부터 공연보류조치를 당했다. 등장인물 중 빨치산 군관의 대사 "우리의 영웅이신 김일성 장군께서" 등이 문제가 되어서다. 북한에서 상투어로 쓰이고 있는 말을 작품에 사실성을 불어넣고 또 그러한 공산당을 비판하기 위해 동원된 것인데도 탄압을 받은 것이다.   시인 구상(구상)의 진짜 고향은 함경도 원산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 이화동이다. 시인의 고향을 원산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원산의 소농(小農)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東京 유학시절에 만난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깊다.   구상 시인의 집은 젊은 시절 그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달리 대대로 班家(반가)였다. 할아버지가 울산부사였고, 큰아버지들은 창령 현감, 현풍 군수를 지냈고 아버지도 궁내부 주사로 있다가 한일합방 후에는 경찰학교 교관으로 한문을 가르친 집안이었다. 아산 李씨 집안인 구상 시인의 외가는 전통적인 천주교 집안으로 구상 시인의 아버지도 결혼과 함께 천주교회에 다니게 된다.   원산과 구상 시인네 집과의 인연은 시인이 네 살 되던 해에 맺어진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하면서 교육사업을 구시인의 아버지에게 맡긴 것이다.   원산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마친 「서울집 도련님」 구상은 형처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수도원)에 입학한다. 구상 시인은 중도에 신학교 과정을 포기하고 만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중풍은 하나의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신학교를 그만둔 후 그는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하지만 금방 퇴학을 당한다. 문학을 한다며 소위 不逞鮮人(불령선인: 불평불만을 일삼는 조선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主義者로 불렀지. 당시 主義者는 저항적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 버렸다」는 말이었지. 사실 내가 어려서부터 레지스탕스 기질이 있었어』   결국 시인은 고향을 떠나 노동판을 전전하고 야학당에서 공부도 가르치다가 일본 밀항을 감행한다. 일본으로 밀항한 시인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연필공장 노무자 등 일급 노무자로 전전하다가 선배의 권유로 일본 대학 종교과에 시험을 친다. 東京 유학생활 중 저항적 기질의 구상 시인은 사회주의에 경도되게 된다. 평등을 지고지순의 가치 중 하나로 삼게 되면서 자신의 출신 성분도 小農 출신이라고 숨기게 되는 것이다.   東京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형님의 흥남교회 부임으로 집에 어머니가 혼자 남게 되면서 시인은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귀국 후 시인은 글만 읽으며 詩 작업에 매달렸다. 그런 그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서울집 도련님이 主義를 하다가 정신 이상에 걸렸다』며 폐인 대접을 했다. 게다가 마침 시인은 폐병까지 결렸다. 전쟁 말기의 일제는 다급해지자 폐병에 걸린 시인마저 징집을 하려고 했다. 징집을 피해서 선택한 길이 시인이 지나온 궤적에서 접어 버리고 싶어하는 親日(친일) 한국인이 함경도 원산지역에서 발행하던 「북선매일」 기자였다.    그가 자전적 詩에서 쓴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목숨을 부지하려는 일념과 펜을 잡는다는 매혹에 식민지 어용(御用)신문의 기자가 되어 용왕 앞의 토끼처럼 쓸개는 떼어놓고 날마다 성전송(聖戰頌)과 공출독려문(供出督勵文)을 써 댔다』는 북선매일의 기자를 한 것이다. 저항적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피끓는 청년 구상이 그 일을 오래 할 리 만무했다. 그는 이내 기자직을 그만두고 교회 학원을 맡았다가 곧 광복을 맞는다. 광복된 조국은 「主義者 구상」을 한순간에 선각자이자 독립투사로 바꾸어 놓는다. 마을에서 인민투표를 했는데 그는 최고 득표자가 되었다. 여러 가지 대접도 받았다. 교원직업동맹 부위원장도 과거의 「주의자」 라는 꼬리표가 준 선물이었다. 이듬해 필화 사건에 연루된 구상 시인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유를 찾아 월남을 결행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구상은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고, 종군 문인단인 '창공구락부'에 참여한다.   『종군 문인단(창공구락부)을 창설하자는 제의를 받았죠. 그래서 아동 문학의 대가인 마해송 선생(당시 승리일보 고문)을 주축으로 사학자였던 이선근 선생(당시 대령)과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계환 대위, 국방부 출판국장을 하던 지훈 조동탁 선생 등이 모여 공군의 모든 홍보 활동을 선도하고, 특별 정훈 교육은 물론 후방에서의 대민 사기 진작을 위하여 모였죠.』   당시 활동하시던 중 재미있는 일화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구상은 답했다. 『쑥스러운 이야기라서 잘 하지는 않는 것인데…. 사관학교로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 민기식 장군과 서정철 부사단장이 정훈 교육을 나온 나를 굳이 대접하겠다고 인제에 있는 '명월관'이라는 술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말이 명월관이지 판자집이나 다름없는 선술집이었죠. 여하튼 무척이나 폭음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어요. 차가 논으로 달려들어 갔거든요. 어쨌든 사고를 수습하고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으니까, 자초지종을 모르는 지인들이 나를 위로하며 한다는 말들이 모두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정훈 교육을 하고 있으세요?'였어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해요.』   시인은 『나는 역사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의 말대로 일제시대 한때 「主義者」가 됐던 것도 , 작가로서 전쟁의 한가운데에 섰던 것도 그의 역사의식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전쟁 후 그는 反독재 투쟁에 앞장선다.   『나는 자유를 찾아서 남쪽으로 왔고 그 다음에는 자유를 위해서 민간인으로서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사람이야. 그런데 전쟁 후에 이승만 정권이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정치를 하니까 그래서 투쟁에 앞장섰던 거지』 1952년, 전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1953년에는 「민주고발」이라는 사회평론집을 낸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난한 이 평론집은 곧바로 판매금지령이 떨어졌다.   이러한 활동을 벌인 시인을 기다린 것은 감옥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利敵兵器(이적병기)를 북한에 밀송하려 했다는 혐의로 구상 시인을 잡아넣는다. 이 사건은 구상 시인의 친구가 남대문 시장에서 美製(미제) 진공관 2개를 東京대학에서 연체생물 연구를 하고 있는 사위에게 사보낸 것을 구실삼아 반공법 위반죄로 시인의 친구와 시인을 잡아넣은 사건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속된 구상 시인에게 검찰은 15년 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구상 시인은 최후 진술에서 『조국에 모반한 죄목을 쓰고 有期刑囚(유기형수)가 되느니보다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달라』 고 말했다. 다행히 재판관이 무죄를 선언함으로써 시인의 감옥생활은 8개월여의 기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자유당 정권 말기 민권투쟁을 할 때 나는 민권투쟁위원회의 부장이었고, 김대중, 김영삼 씨는 간사고 그랬어요. 나는 엄상섭이니 전진한이니 하는 분들과 시공관에서 강연도 하고 그러다가 잡혀 감옥에 갔지요. 감옥에 가서 8개월 지내다가 4·19 직전에 나왔어요. 감옥에서 줄곧 현실에 나서느냐, 문학의 길에만 정진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는데, 마침내는 문학의 길만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내가 소위 박정희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이야기만이 널리 알려져 있지요.(략) 좀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감옥에서 이미 결심한 바가 있어 민주당 때에도 현실 참여를 하지 않았고 박정희에게도 나를 남산골 샌님으로 그대로 놔두라고 했지요. 그런데도 자꾸 권하길래 그때 내가 서강대에 나가면서 카톨릭에서 경영하고 있던 경향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있었는데 그 신문사에 이야기하여 그해 가을에 동경의 지국장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피신이었지요. 이 곳에 있으면서 참여는 안하면서 친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했느니 못 했느니 시비를 할 수도 없고 해서 차라리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 것이지요. 그러자 박정희 장군은 김팔봉 선생을 비롯한 주변 분들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나의 동경행을 만류하기도 했지요. 나는 현실에서 완전히 이탈해서 일본에 가서 60년대를 보내면서 폐를 두 번이나 수술했지요. 70년대에는 하와이 대학에 교수로 취직을 해서 5년 넘게 있었지요. 상주 작가로 동서문화센터에 가서도 있었고, 60-70년대를 그렇게 외국에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 사람이 대통령을 했지만 나와는 아무런 이해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있었지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세상이 다 죽일 놈으로 모는 악당일지라도 친구는 친구니까 5년 동안 내가 제례미사를 드렸어요.』   시인 구상은 1959년의 감옥 생활 이후 그의 결심대로 일체의 사회적 직책을 맡지 않는다. 일체의 사회활동을 접은 시인이 그 후 걸은 길은 후학 양성을 위한 교수의 길이었다. 그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직자의 길을 걸었다.   朴대통령과 구상 시인의 인연 한가운데는 李龍文(이용문) 장군이 있다. 구상 시인은 李장군의 소개로 朴대통령을 만났다. 구상 시인이 李장군을 알게 된 것은 1949년에 육군정보국에 들어가면서다. 당시 정보국장이 李장군이었고 두 사람은 이내 친해져 밤낮 술자리를 하는 사이가 됐던 것이다.   『의기투합했지. 말이 통했어. 李장군이 소개해 준 朴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구상 시인의 말대로 세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말이 통하는 사이로 서로에 대한 정 또한 깊었던 것 같다. 세 사람 중 李장군이 제일 일찍 세상을 떠나는데 그날이 1953년 6월24일이다. 비행기 사고로 李장군이 먼저 그들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날은 대구에서 저녁에 셋이 함께 만나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날이 기도 했다. 5·16 후 朴대통령이 정치외적으로 처음 한 일은 수유리에 있는 李장군의 동상 건립이었다고 한다. 구상 시인이 그 일에 간여했음은 물론이다. 朴대통령 逝去 (서거) 후에 세 사람 중 홀로 남은 구상 시인은 朴 前 대통령을 위해 5년 간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朴대통령과 시인의 사이가 어느 정도로 각별한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호칭이다. - 朴대통령을 부를 때 「박첨지」라고 불렀다면서요. 『官에 나가 있으니까 그렇게 불렀지(웃음)』  ―대통령 되기 전부터 그렇게 불렀습니까. 『아냐, 대통령 되기 전에는 서로 존대를 했지. 대통령 되고 나서 그렇게 불렀어』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였는데도요. 『나에겐 만만한 사람이었으니까』 ―대통령 각하라고 부른 적은 없습니까. 『없어, 그렇게 부른 적 없어. 朴대통령도 그걸 원하지 않았지』 ―그렇게 격식이 없을 정도로 가까이서 지켜본 인간 朴正熙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의협심이 많은 사람이었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어 . 군인 때 만났지만 아주 해박했어. 플라톤의 국가론도 읽고, 월남 패망사도 읽고 한 마디로 박학다식에 견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어』 ―朴대통령 이후로는 정계 입문을 권유받은 적이 없습니까. 『있지. 5共 출범할 때 소위 말하는 3許씨 가 찾아왔었어. 민정당 10인 발기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었어. 거절했지. 그 후에도 총재 고문이라든가, 전국구 의원 등의 제의가 있었지』   시인 구상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기인들과의 교류다. 절친한 친구인 천재 화가 李仲燮(이중섭), 시인인 空超(공초) 오상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선구자이자 「어린이 헌장」의 기초자인 馬海松(마해송) 선생을 비롯 세상을 떠난 사람에서부터 현존하는 걸레 스님 重光(중광)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마치 기인(奇人)들과의 교류가 취미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우리 시대의 아웃사이더들과 함께 하기를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규격품만 있으니까 재미가 없잖아. 非규격품인 奇人들은 재미없는 사회에 재미도 주지만 거리에 청량감을 주는 살수차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이중섭과의 우정은 남달랐다. 구상의 서재에는 특이한 그림이 걸려 있다. 옛날 이중섭 화백이 담뱃갑의 은박지에 연필로 그린, 그 유명한 천도 복숭아 그림이다.  "왜 어떤 병이든지 먹으면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있지 않아. 그걸 먹고 우리 상(常)이 어서 나으라는 말씀이지."  구상 선생님이 폐 절단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문병을 가긴 갔지만 돈이 없어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 화백이, 즉석에서 담뱃갑 속지인 은박지에다 구상이 평소 좋아하던 천도 복숭아를 그려준 것이다.   구상이 중섭과 공초 선생에 대해서  밝힌 글을 보자. 『어려운 시대를 함께 살았던 화가 이중섭은 절친하게 지내던 고향친우로, 일찍 세상을 떠나보내고 나니 그를 기억할 때마다 늘 가슴이 아프지요. 생전에 그림밖에 몰랐고 생존의 무기란 오직 그림뿐이었던 천재적인 화가였지요. 그러나 중섭은 뭇천재들이 그랬듯이 너무 비참하게 살다가 가엾게도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우리 신시 개척에 선구자이신 공초 선생에게 대해서는 내게 이런 일화가 있지요. 내가 영남일보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하루는 그분이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이 사회를 건질 묘방으로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묵상의 시간을 국가가 정해서 그 캠페인을 벌이자”는 겁니다. 선생 생전에 기행 일화는 많지만 그때는 그저 공초다운 말씀이라 생각하고 비현실적인 제안이다 싶어 신문에 사설화하지 못했는데 물질만능의 세태에 이르러 보니 선생의 그 치세훈이 절실해집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구 시인은 당부한다. 『말과 생각이나 느낌이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문학이라는 것을 말의 치레로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서로 대화를 할 때에도 말을 번드레하게 잘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등가량의 진실이 없으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지요. 소위 말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그 사람의 인식추구의 치열성과 진실성에 따르는 거지요.』라고.      
326    시인들, 봄을 노래하다... 댓글:  조회:6250  추천:1  2015-04-05
                       꽃몸살                             장철문                            몸살 한 번 되게 앓은 뒤에                          산길 간다                          이 화창한 날을 보려고                          되게 한 번 튼 것인가                          볕살만큼이나 가벼운 몸이다                          배꽃보다                          거름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오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시소 타는 그날인가                          당신만 늙어가는 것 같다고                          취로 사업도 잃은 아버지는                          백주에 약주                          아직도 아버지와 적대하는 내게                          형님은 나무라는 전화 넣고                          당신이 그랬듯이                          이쪽에서 당신을 품어야 할 나이인가                          배꽃보다                          분뇨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갓 피어나는 것들은                          갓 피어나는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것인가                          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시집< 산벚나무의 저녁> 창비. 2003년                         꽃피는 봄날         남진우   햇살 아래 고드름처럼 녹아내리는 눈동자   텅 빈 눈구멍 속에 지렁이 떼가 꼬물거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았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 봄날 저녁                              엄원태(1955 - )                            그날 저녁엔 바람이 심하게 쏠려 불고                            나무들도 서 있기가 불편했습니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향나무들은                          제 멋대로 가울고, 뿌리덩이를 쳐든 채                          황량히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서성대는 키 큰 나무들 위로                          음산히 구름들이 짓누르듯, 낮게 낮게 흐르고                          컴컴한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하늘은                          남빛이 점차 짙어 어두워 같습니다                            밤이 오면, 누구는 저 거친 들판으로                          누구는 또 세상의 허술한 집들을 향하여                          습기찬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갑니다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워 쓸쓸하기만 한                          들풀들의 영토에도 밤은 내리고                          사람들은 그 어두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                          시린 어깨를 웅크려 잠들고                          꿈꾸어 아픈 밤을 지나서는 정말 우연히                          불확실한 새벽에 이르곤 하는 것입니다                                                           1990년 로 등단                                              그저 막연한                               신석종                                  봄은 아리다                                가끔은 그렇다                                  구덩이에서 꺼낸                                봄 감자를 날 것으로                                처음 먹을 때처럼                                  목이 아리다가                                눈이 아려져오고                                마음이 싸해진다                                  아리다는 건                                막연한 설움이다                                설명할 수 없는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기다리는 봄    이병주   버들강아지 기지개 켜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들려오는 봄에 온다 하고 겨울에 떠난 임 아직 풀지 못한 그리움 그대로입니다   겨울 잔바람 피하려 먼 곳에 있는 노란 흰나비 빨리 오라 하는 것은 진달래 빨리 피워 임 오는 날 앞당기려 합니다                 긴 봄날    허영자     어여쁨이랴 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새 잎뿐이랴   창궐하는 발병 죄에서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 난다 긴 봄날엔 ㅡ   숨어사는  섧은 情婦    난쟁이 오랑캐꽃 외눈 뜨고 내다본다 긴 봄날엔 ㅡ                                                                                     나비야 나비야         주병률(1960 ㅡ  ) 경주.1992년 현대시 등단.   봄, 하루해 짧아서 강물에 떠 가는 꽃잎 하나 보지 못하네   붉거나 희거나 그 꽃잎 떠나고 빈자리 사무쳐 밤바람 흥성한 봄날 저녁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애타는 마음 죄가 여기 있었네 그 꽃잎 내 안에 있었네               내사랑은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랫뜸 강마을 매화?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 쪽 배밭의 배꽃들도 다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서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때문 저 양지 쪽 감나무밭 감잎 움에 햇살 들치는 것 이 봄에는 정작 믿는 것이 있기 때문 연초록 움들처럼 차오르면서 햇빛에도 부끄러우면서 지금 내 사랑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크는 것 아니랴 감잎 움에 햇살 들치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그와 같이 ? 부비는 것 소근거리는 것 내 사랑 저만큼의 기쁨은 되지 않으랴                                      내 손에 남은 봄          강인한   부드러운 능선의 칼금을 문 하늘 위로 제비가 왔다 생일이면 내 전생에 상제의 딸을 엿본 죄로 여기 서서   담 너머 눈부신 향기가 날아오고 영롱한 구슬소리가 종일토록 늙은 벚나무 꽃잎을 털어 목욕을 마친 그대 속살의 본홍 그대 속살의 향긋한 흰빛을 다 비춰줄 때까지 기다린다   후생의 내가 살아 바라보는 스스로의 옷이 문득 낯설고 오랜 기다림에 목이 말라 자꾸만 거울을 보는데 뒤꼭지 까만 밤이 발을 적실 듯 길게 흘러나온다   사랑이여 펼치고 펼쳐서 내 손에 남은 봄이 이제 많지 않다               내 척박한 가슴에 온 봄    김영승   우리 동네 향긋한 들길을 걸으면 두엄냄새 상큼히 코끝 찌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동들 등에 맨 예쁜 가방 위에 쌓인 변두리 황토 흙먼지 과수원 나무 사이사이 쥐불은 검게 타고 목장 젖소들 음매음매 되새김질 하는데 작은 교회 지붕에 숟가락처럼 걸린 십자가도 눈물겹고 이제 다시 돌아온 탕자의 무거운 발길 또 무섭다 무슨 변고가 또 있을까 나 같은 죄에 물든 미물도 다 살아가는데 새싹이 돋을 거라고 꽃이 또 필 거라고 그 무슨 못다 기다린 슬픈사람이 남아 있다고 봄비가 내리듯 술로 적셔야겠다 썩은 고목에 버섯이라도 돋게 해야겠다                         늦은 봄날                          강인한                           간장 항아리 위에                         둥근 하늘이 내려오고                         매지구름 한 장                         떴다가                         지나가듯이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가끔은 내 생각도 하는지                            늦은 봄날 저녁                          머언 그대의 집 유리창에                          슬며시 얹히는 놀빛                          모닥불로 피었다가                          스러지듯이                                                                                                       놓치다 봄날                        이은규                            저만치, 나비가 난다                          생의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저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란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없는 기생은 살아서 죽은 기생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른빛으로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뒤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게 일렁인다                          앵초꽃이 앵초앵초 배후로 환하다                          바람이 수놓은 습기에                          흰 피가 흐르는 나비날개가 젖는다                          젖은 날개의 수면으로 햇살처럼 비치는 네 얼굴                          살아서 죽은 날들이 잠시 잊힌다                             이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생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이 없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기우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몸부림 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며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암이 깊었다                                                                                        시집 문지. 1986년                                                               대책없는 봄                            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낙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없이 멋대로 발랑까진 십대들 ....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없는 봄날입니다                                                                           더딘 슬픔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나는 봄                                                                    따뜻한 봄날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웅큼 한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로카르노의 봄      헤세   우듬지들이 어두운 불 속에서 나부낀다 신뢰에 찬 푸르름 속에 더 어린아이처럼 더 새롭게 모든 것이 보라는 듯 열려 있다   자주 디뎌 낡은 계단들이 환심을 사려는 듯 영리하게 산 쪽으로 기울어 있다 불타 버린 담벼락으로부터 맨 먼저 핀 꽃들이 가녀리게 나를 부른다   산 개울이 초록 고추냉이 속을 헤집는다 바위들은 물방울 떨어뜨리고 해는 핥는다 기꺼이 잊을 용의가 있는 나를 본다 낯선 곳은 쓴맛이 난다는 것을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섭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몸살, 찔레꽃 붉게 피는                            오정국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난데없이 내 입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까 찔레꽃,                           붉게 피는                            해질녘이면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내가 저물고 있듯이                            여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도 풍경이 있고                          책이 있고                          출렁거리는 물결이 있기에                             내가 강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몸을 일으켜주었다 그런                           이야기다, 이 끝나지 않는 문장은                             때때로 시가 되고                           강가의 모닥불이 되고                           불 곁의 목쉰 노래, 노랫가락이 되어                           이 마음 이리 서성거리고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불러                           난데없이 내 몸이 이런 몸살을 앓을까 찔레꽃,                           붉게 피는                                                                                  시집 세계사 2005                                                                                                                                                                                                                                                                                                                                                                                                                 몹쓸 꿈     김소월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우짖는 까막까치, 놀라는 소리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철의 좋은 새벽, 풀 이슬 맺혔어라 볼지어다, 세월은 도무지 편안한데 두새 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우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 다 사나운 조짐인 듯, 가슴은 뒤노아라              바람과 봄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내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봄길                           김명인                            꽃이 피면 마음 간격들 한층 촘촘해져                          김제 봄들 건너는데 몸 건너기가 너무 힘겹다                          피기도 전에 봉오리째 져내리는                          그 꽃잎 부리러                          이 배는 신포 어디쯤에 닿아 헤맨다                          저 亡海 다 쓸고 온 꽃샘바람 거기 부는 듯                          몸 속에 곤두서는 봄 밖의 봄바람!                          눈앞 해발이 양쪽 날개 펼친 구름                          사이로 스미려다                          골짜기 비집고 빠져나오는 염소떼와 문득 마주친다                          염소도 제 한 몸 한 척 배로 따로 띄우는지                          만경萬傾 저쪽이 포구라는 듯                          새끼 염소 한 마리                          지평도 뿌우연 황삿길 타박거리며 간다                          마음은 곁가지로 펄럭거리며 덜 핀 꽃나무                          둘레에서 멈칫걸자 하지만                          남몰래 출렁거리는 상심은 아지랑이 너머                          끝내 닿을 수 없는 항구 몇 개는 더 지워야 한다고                          닻이 끊긴 배 한 척                                                                          시집< 길의 침묵> 문학과 지성사. 1999년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가지를 꺾다        박성우                                                        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 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봄 나들이        정양(1942 - ) 전북 김제. 우석대 교수.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짓고 예쁘게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들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 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 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봄날에선가  꿈속에선가 릴케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나 언제였던가 너를 만난 것이 지금 이 가을날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을 쥐고 흐느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 때문에 우는가? 핏빛처럼 붉은 나뭇잎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리 언제였던가 한 번은 네가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                봄날에 글을 읽다가     정약용(1762-1836)   아침 해 맑은 눈을 녹이고 맑은 창엔 똑똑똑 물방울 소리 독서란 본래 즐거운 것 경세에 어찌 이름을 추구하리 요임금 순임금 때는 풍속이 질박했고 이윤과 부열은 몹시 근면했지 나도 늦게 태어난 것은 아니니 먼 훗날의 희망을 품어 보노라                 봄날 아침       로렌스(1885-1930) 영국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이제는 정말 봄! ㅡ 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니?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지니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 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 ㅡ 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서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얼마나 호화로운가                  봄날 오후       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 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ㅡ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 바, 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콕콕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 시 탑골 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차엥 어름어름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 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봄눈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봄바람   김억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 바람은 그대 잃은 이 내 몸의 넋들이외다                봄바람    김종해 개같이 헐떡이며 달려오는 봄 새들은 깜짝놀라 날아오르고 꽃들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속치마 바람으로 반쯤 문을 열고 내다본다 그 가운데 숨은 여자 정숙한 여자 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목련꽃 한 송이 탓할 수 없는 것은 봄뿐이 아니다 봄밤의 뜨거운 피가 천지에 가득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뜨뜻해지는 개 같은 봄날!               봄바람 맞는 노인     王伯(1277-1350) 고려 문신   어젯밤 산촌에 가랑비가 부슬부슬 대숲 밖 복사꽃이 환하게 피었네 봄빛에 취했나 백발의 저노인 꽃가지 꺾어 머리에 꽂고 봄바람 맞네              봄보다 따뜻한       문복주(1952-)     삼일 내내 눈 내리고 정형이 무너진 지리산 산골   눈길 따라 토끼 눈만 내놓고 여린 짐승으로 기어가며 낄낄거리는 아내                  봄볕     문 태준     오늘은 탈이 없다 하늘에서 한 움큼 춤쳐내 꽃병에 넣어두고 그 곁서 잠든 바보에게도 밥 생각없이 종일 배부르다 나를 처음으로 쓰다듬는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봄볕에 굽다     고 영 봄볕 좋은 날 네 식구가 마당에 멍석을 깔아 앉아 숯불 화덕에 석쇠를 걸쳐놓고 꽃삼겹살을 굽습니다 봄볕에 익은 아이의 볼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숯불 속에도, 꽃 삼겹살 위에도 개나리 노란 꽃잎이 기분좋게 피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에 몸이 달아오른 동네 개들은 울대가 꺾이도록 짖어대고 우리 안 돼지들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 갑니다 집짐승들의 사소한 소란 속에 봄볕은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내 집 마당에 평등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꽃 삼겹살 위에 봄볕이 자글거리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봄날은 얼마나 무료했을가요 살가운 봄볕에 구워진 자리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꽃잎만 따먹어도 나는 배가 불렀습니다                     봄빛              이경진(1968 - ) 나는 그곳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갔었다 무채색에서 연두색을 도발하고 있던 햇살이 어린 것들을 바닥에 품고 겨울을 흘러온 진주 남강의 허리를 낚아채고 있었다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을 쓰다듬다가 나도 그처럼 담담하게 낡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D단조가 햇빛에 변주되어 강물의 몸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날, 그대는 어느 골목에서 마른 울음을 삼키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죽은 자를 위한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내 몸이 쪽빛 강물이고 싶던 오후   낯선 정거장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화사한 봄옷을 입고 촉석루 공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부부와 그 위를 날아다니던 작은 새들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몇 번 버스가 그냥 지나가고 눈이 시려 왔다               봄빛소견    김석규 새로 돋은 풀잎을 물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봄이 오는 길목에 무량으로 내리는 햇살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키고 가는 걸음으로 온다 아까부터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타는 냄새 자운영 꽃밭 속으로 송아지는 달아나고 퍼담을 수 없는 바람만 종일 불고 있다                           봄 섬진강  박라연 백사장에는 촛불 켜놓고 물새들에게 쌀을 바친 마음들이 새하얗다 물새가 흘린 답례의 눈물 울음웅덩이 이루는 데 함께 살면서 각자 살아온 발자국들이 덩달아 울어버린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 함께 아파한 적 많을 것 같은 봄 섬진강 저 반짝이는 물결들 속엔 어젯밤 내 심장을 떠난 거친 눈물들 맑게 씻겨져 끼여 있다는 것 굳은살처럼 박혀 있는 잘못된 인연 씻고 또 씻다 보면 안다 그 인연 수의 입히어 모래무덤 속에 묻어줘야 한다는 것 봄 섬진강의 제망매가 들으면 안다 심장이 터지도록 켜켜이 숨이 피는 꽃을 문신하며 사는 꽃 혈통이라는 것 자목련 백목련 청매화 홍매화 다투어 가의 무릎 베고 눕는 자태 보면 안다 봄 섬진강은 상처를 반짝이게 하는 文靑이라는 것 깊은 물의 연두 바람의 풋풋한 방황 나눠 마시는 것을 보면 안다 사람의 이슬을 알아봐주는 커다란 눈동자라는것                        봄소식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춥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여 그건 대지의 작난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가 될 게 아닌가                       봄소풍     박성우 봄비가 그쳤구요 햇발이 발목 젖지 않게 살금살금 벚꽃길을 거니는 아침입니다 더러는 꽃잎 베어문 햇살이 나무늘보마냥 가지에 발가락을 감고 있구요 아슬아슬하게 허벅지 드러낸 버드나무가 푸릇푸릇한 생머리를 바람에 말리고 있습니다 손거울로 힐끗힐끗 버드나무 엉덩이를 훔쳐보는 저수지 나도 합세해 집적거리는데 얄미웠을까요 얄미웠겠지요 힘껏 돌팔매질하는 그녀   손끝을 따라 봄이 튑니다   힘껏 돌팔매질 하는 그녀 신나서 폴짝거릴 때마다 입가에서 배추흰나비떼 날아오릅니다 나는 나를 잠시 버리기로 합니다                        봄, 싫다        이규리 백골 단청, 하얀 절 한 채 지금 막 무너지고 있다 그걸 받아 안는 한낮 무너져도 소리가 없다 저걸 누가 고요라 했겠다 언제 왔다 갔는지 만개한 벚나무 아래 신발 한 켤레   봄마다 땅 속으로 마약을 주사하는지 이맘때, 거품 물고 사지를 틀다 몸서리 잦아드는 마흔 노총각이 있지 깜빡 까무러진 대낮이 있지 백약이 무효한 청춘 덤불처럼 걷어내고 이내 어깨를 허문 잠 누가 고요라 했겠다   더 이상 속지 말자 해놓고 속는데 꽃 탓이라 하겠나 약 탓이라 하겠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는 것도 있지 취하게 하는 건 향이 아니라 취하고 싶은 제 뜻일 텐데   그래, 나무가 언제 꽃 피웠나!                     봄아, 오너라    이오덕(1925-2003) 청송 먼 남쪽하늘 눈 덮힌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앞에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밑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 물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가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 오너라                 봄아침           양애경 새벽 잠자리에서 반쯤 깨어 양쪽 어깨에 번갈아 얼굴을 묻으며 누군가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호 호 호 호이오 휘파람새가 노란색 장미 꽃잎을 수없이 감았다가 펼쳐 보여 주었다                    봄아침      이해인 창틈으로 쏟아진 천상 햇살의 눈부신 색실 타래   하얀 손 위에 무지개로 흔들릴 때 눈물로 빚어 내는 영혼의 맑은 가락   바람에 헝클어진 빛의 울을 정성껏 빗질하는 당신의 손이 노을을 쓸어 내는 아침입니다   초라해도 봄이 오는 나의 안뜰에 당신을 모시면 기쁨 터뜨리는 매화 꽃망울   문신 같은 그리움을 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은 이상한 나라의 주인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엔 축복입니다                    봄에게1   김남조 아무도 안 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 오지 않는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 손으로만 다녀온 봄아 오십 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붓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 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봄 연못       프로스트 이 연못들, 숲속에서도 언제나 흠 잡을데 없는 하늘을 비추고 곁에 있는 꽃처럼 추위에 떨기도 하고 곁에 있는 꽃처럼 이내 사라지기도 할게다 하지만 개울이나 강이 되어 사라지는 대신에 뿌리 타고 올라가 어두운 잎을 이루리   나무는 그 새싹 속에 숨기고 있으니 여름 숲이 되어 자연을 어둡게 하는 힘 나무여, 다시 생각해 다오, 어제 눈이 녹은 물 그 꽃 같은 물을 그 물 같은 꽃을 빨아들여 마시고 쓸어버리는 데에만 그 힘을 모두 써버릴건가                                   봄은          이대흠                               조용한 오후다                               무슨 큰일이 닥칠 것 같다                               나무의 가지들 세상 곳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숨 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그곳에서 탕, 탕, 탕, 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                               피할 새도 없이 하늘과 땅에 꽃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 등단 당시 오세영 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거셌음.                                                                                                                                                                    봄은 또 어이해서 찾아오는가         임보                                    지난 온 겨울을                                    진눈깨비로 절인 산과 들판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작은 해빙의 가는 물소리로                                    찾아오는 것인가?                                      지난 온 겨울을                                    북풍에 찢긴                                    빈 나뭇가지 마른 풀잎 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여린 꽃눈으로                                    솟아오르는가?                                      지난 온 겨울을                                    호열자보다도 무서운                                    매서운 零下로 가득했던 골목                                    그리하여 주민들은                                    눈과 귀를 그들의 두터운                                    커튼 뒤에 숨기고                                    病棟처럼 죽어 있었던 빈 마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푸른 유혹의 입김, 아지랑이로                                    그렇게 피어오르는가?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00-1929)대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금성 3호. 1924년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늦바람 무섭다더니                  겨우내 적멸로 돌아가리라                  일제히 한 잎마저 벗고 동안거에 들었던 나뭇가지들                  입춘 지나 우수 지나 웅성 꿈틀거린다                  저, 저, 어누새 툭 불거진 눈방울 두릿두릿한 산수유 좀 보게                  살 오른 목련 봉오리 봉긋한 털가리개 좀 보게                  진달래 영산홍 아뜩한 입술부터 샐쭉, 적멸보궁이 눈앞이라도 못 참겠네 못참아                  여든 살 삭정이도 무릎을 일으켜 세우다 우지끈!                  큰일났네 산너머 전쟁이 온다네                  울긋불긋 아롱다롱 아무도 안죽고 무덤마저 살아나는 전쟁이 온다네                                                                                      봄은 해마다 ㅡ 괴테                                         꽃밭은 어느 새                                         언덕이 되어 흔들리고                                         그 곳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새하얗게 나폴거린다                                         사프란이 활짝 피어                                         작열해 있고                                         스마라그드 꽃순도                                         핏빛으로 돋아난다                                         앵초꽃은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있고                                         약삭빠른 제비꽃은                                         애써 숨는다                                         언덕에 존재하는 만물이                                         꿈틀거리고 피어나니                                         완연히, 봄은                                         소생하며 활동하도다                                         정원에는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운 마음이로다                                        그 곳에는 끊임없이 나를 향한                                        불타는 눈길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즐거운 말이 샘솟는다                                        언제나 열려 있는                                        꽃들의 마음은                                        진지한 가운데 정답고                                       익살스런 가운데 순수하다                                       장미와 백합이 피는                                       여름이 와도                                       봄의 꽃들은                                       지지 않으리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봄을 그대에게            릴케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 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봄을 맞는 폐허에서       김해강 어제까지 나리든 봄비는 지리하던 밤과 같이 새벽바람에 고요히 깃을 걷는다   산기슭엔 아즈랑이 떠돌고 축축하게 젖은 땅우엔 샘이 돋건만 발자취 어지러운 옛 뒤안은 어이도 이리 쓸쓸하여 ...   볕 엷은 양지 쪽에 쪼그리고 앉어 깨어진 새검파리로 성을 쌓고 노는 두셋의 어린아이   무너진 성터로 새어 가는 한 떨기 바람에 한숨지고 섯는 늙은이의 흰 수염은 날린다   이 폐허에도 봄은 또다시 찾아왔건만 불어 가는 바람에 뜻을 실어 보낼 것인가 오 ㅡ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이여! 솟는 눈물이여!   그러나 나는 새벽바람에 달음질치는 동무를 보았나니 철벽을 깨트리고 새 빛을 실어 오기까지 오 ㅡ 그 걸음이 튼튼하기만 비노라 이 가슴을 바쳐 ㅡ                             봄의 금기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 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여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 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문학사상 2003년 5월호                         봄의 연못들     프로스트 숲 속에 있지만 거의 온 하늘을 깨끗이 담아주는 이 연못들은 연못가의 꽃들처럼 추워서 떨다가 그꽃들마냥 사라지리라 하지만 강이나 개울로 흐르지 않고 뿌리를 타고 올라 왕성한 잎을 피워내리라   자연을 짙게 물들이고 찬연한 여름 숲을 이를 힘을 그들의 숨겨진 봉우리에 감추고 있는 나무들 겨우 엊그제, 쌓인 눈에서 녹아내린 꽃같은 물과, 물과 같은 꽃들을 지우고 마시고 쓸어가 버릴 그 힘을 다 사용하기 전에 침착히 그 의미를 생각하여라                  봄의 줄탁            도종환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움찔움찔 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 만한 몸을 내미는 꽃ㄷㄹ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일은 부활절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서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애지.2006년 봄호.                         봄의 진동          고재종 조팝나무에 피죽새 운다 하여 그 소리 듣고자 뒷산에 갔더니만 아무리 귀 쫑긋대고 눈 씻어보아도 하늘은 정정하고 연둣빛만 차오를 뿐인데 대마침 저기 숲수평에서 꿩 꿔엉...적막을 깨는 장끼 소리에 순간 조팝꽃 새하얀 그 긴 꽃자루들이 바르르 떨리며 은잎 꽃잎 빗살 속에 마구 뿌리던 것이라니                            봄의 幻          남진우 봄이 오고 있다 몸속의 얼음이 녹아 조금씩 밖으로 스며 나오고 있다 나는 먼 나라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고 혼잡한 거리를 걷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몸 속의 추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저울이 기울어진다 땅엔 구름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어 빗방울을 내리게 하는 걸까 새 한 마리 날아가는 모습에도 나는 텅 빈다 대기 속을 떠도는 햇살의 씨앗에 얼굴을 부비며 나를 끌어당기는 천상의 자석을 떠올린다 길가의 상점 유리창마다 하나씩 나를 남겨두고 나는 걷는다 잔잔한 바람에도 몸 전체로 번겨가는 잎파랑 눈을 감고 한 세기가 저물기를 기다리지만 내 몸은 어느덧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르고 자전거를 탄 아이가 길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봄이 와서 머무는 자리 몸속의 저울이 간신히 평형을 회복한다                         봄이 그냥 지나요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있어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데 꽃 피어날 거에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외롭고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을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고 있어요                                  봄이되면     김용택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영희 그냥 가도 좋으련만 회색빛 겨울 하늘은 기어이 어머니 머리에 내려앉아 흰머리 한올 심어놓고 가고   지리한 겨울 대지보다 먼저 당신의 품으로 씨앗들 품은 채 밭은 기침 몇번으로 지난 가을을 용서해버린 아버지는 파란 하늘에 파종을 하고   삼월이라 햇살도 고와 낮에 뿌린 씨앗들 밤이면 별로 돋아나 대지는 아침을 열고 하늘은 탄식을 걷어내고                                                         봄처녀    이은상(1903 -1982) 경남 마산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리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꺼나                          봄 한낮       박규리 치자향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 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리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가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 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봄 햇살 속으로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본 푸른 하늘이 집 한채로 열려있다                                    봄, 희망            김영승                            일곱달 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제 오지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도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불취 불귀       허수경(1964 - ) 진주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이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조선문단 18호.                      산도화        박목월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방山房의 밤       왕발(650-676) 당나라 거문고 안고 방문을 열어놓고 술잔을 잡고 情人을 대한다 숲 속의 못가, 달밤의 꽃 아래 또 다른 하나의 봄나라                 술받으러 가는 봄       이화은 물병아리 한 마리가 딱 반 되짜리 주전자 뚜껑만한 고것이 겁 없이 봄강을 끌고 가네 꼬리 물살이 풍경화 속 원근법 같기도 하고 후라쉬 비추고 가는 외로운 밤길 같기도 한데 고 뚜껑이 잠시 물 속으로 잠수라도 해버리면 강은 덩치 큰 아이처럼 철없이 길을 쏟아버리고 마는데 반 되가 턱없이 말술이 되기도 한다는 걸 오래된 풍경화 속 원, 근, 어디쯤에 후라쉬 불빛 가까이 들이대고 보면 거기 쭈그러진 아버지 반 되짜리 주전자 꽥꽥 혼자서 울고 있다네 술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물병아리 달그락달그락 추억 쪽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봄은 겉 늙어버린 덩치만 큰 아이 같으니                              아득한 봄날       정진규                       모내기 전 무논 가득                       슬어놓은 개구리 알 도룡뇽 알들                       동그랗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알간 유리창                       그 안에 새까아만 외눈동자 하나씩                       눈 뜨고 있다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한창이던 찔레꽃 하얗게 눈발 날리고                       아득하다                       달래 간장에 밥 비벼먹고 나온                       심심한 동네 아이들                       개구리 알 도롱뇽 알 쪼그려 들여다보다가                       외눈박이다 도깨비 새끼다아                       논두렁길 줄지어 내달리는 한낮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하이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망울들이 피어날 때에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이 움텄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지저귈 때에                                    그리운 그대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했지                                       아무도 없는 봄  이승훈 밖에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고 방에 있다 다시 나가 하늘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네 아무도 없는 봄 대문앞에서 지나가는 닭을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지 책 읽다 말고 가슴이 막히면 또 뛰어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머리 아프면 번개처럼 뛰어나가 골목 보고 음메 하고 지나가는 개를 보고 음메 하면 개가 웃지 웃어라 나를 먹어라 이 뼈다귀를 먹고 진창을 먹고 귀신을 먹어라 다시 돌아와 방에 앉지만 사는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밥 먹다 말고 다시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 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 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연분홍          김억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와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나부낍니다                            연분홍 송이 송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울며 돌아섭니다                                                           애모             김소월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에는 달빛, 매화꽃이 그림자는 산란히 휘젓는데 아이, 눈 꽉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 소리 물나라의 영롱한 구중궁궐, 궁궐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 소리   어두운 가슴 속의 구석구석 .... 환연한 거울 속에, 봄구름 잠긴 곳에 소슬비 나리며, 달무리 둘녀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오는 봄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 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의 뻗은 가지에 전에 없이 흰 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덩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 하늘 아래서 평화롭건만   새들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서 오는지 종경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삶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이 깊은 근심이 오도 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의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읜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러운 머리결들은 걸음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올봄        김용택                           올 봄엔 때없이 바람이 불곤 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잠들었던 바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잠긴 문을 아무데나                           흔들어대곤 했습니다                           아무도 문 열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불 속에서                           생각을 생각하며                           생각이 자리잡히지 않아                           돌아눕곤 했습니다                           잠들어 누운 대로 눈 뜨면                           새벽별 하나가                           금 간 벽 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습니다                                                                                                                        울 엄마 봄          정완영                               바빠진 우리 엄마 맨발 벗고 나선 엄마                               지독한 두엄 냄새 떡 주물듯 주물면서                               구덩이 호박씨 심고, 새 소리도 심는대요                                 어째서 울 엄마는 귀도 그리 밝은 걸까?                               흙 냄새 간질간질, 빗소리도 간질간질                               상추씨 촉 트는 소리도 간질간질 들린대요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나희덕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말을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는 말들이 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이래도 안오시겠어요        박남준                    아른아른 아지랭이가 먼 산들에 피어오르는 이 봄날                    겨우내 묵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들녘에 가보아요                    양지쪽마다 새순 곱게 피어올리는 냉이며 달래 씀바귀                                                                            이른 봄      톨스토이                            이른 봄                            풀은 겨우 고개를 내밀고                            시냇물과 햇빛은 약하게 흐르고                            숲의 초록색은 투명하다                               아직 목동의 피리 소리는 아침마다                             울려 퍼지지 않고                             숲의 작은 고사리도                             아직은 잎을 돌돌 말고 있다                               이른 봄                             자작나무 아래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내리깔고                             내 앞에 너는 서 있었다                               내 사랑에게 보내는 응답으로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던 너                             생명이여!  숲이여!  햇빛이여!                             오오, 청춘이여!  꿈이여!                                                              이른 봄    헤세 바람이 밤마다 포효한다 그 축축한 날개가 무겁게 퍼덕인다 도요새들이 공중에서 비틀거린다 이제 아무 것도 더 잠자지 못한다 이제 온 땅이 깨었다 봄이 부르고 있다   가만, 가만히 있어라 내 마음아! 피 속에서도 비좁고 무겁게 격정이 솟구쳐 너를 옛길로 해서 인도하더라도 ㅡ 젊음 쪽으로는 이제 네 길이 가지 않는다                                이른 봄      호프만 시탈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 간다                          흐느껴 우는 소리 나는 곳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고                        사랑에 가슴 아파 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은 흔들었다                          아카시아 나무를 흔들어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내몰아 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느다랗게 했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여기저기 찾아다닌 것이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 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와도 같이                        새벽놀 붉게 물든 곳을                        훨훨 날아 지나온 것이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있는 방을 빠져 나와                        봄바람은 말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히면서 끄고 온 것이다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간다                         벌거숭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미끌어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 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오솔바람은                       향긋한 냄새를 지니고                       이 마을에 찾아왔다                                          이른 봄  아침          정지용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게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저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회파람이라                             새새씨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ㅡ 저쪽으로 몰린 푸로우ㅇ피일 ㅡ                             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22호.1927년 2월                              이번 봄         정진규 요즈음엔 자주 절대예감 같은 게 찾아온다 이번 봄 해인사 가서 또 그걸 보았다 장경각 가파른 계단 올라 들여다보다가 나무 창살 사이로 드나드는 꽃바람결 한참을 만지다가 장경각 바닥에 떨어져 조금씩 배밀이 하는 봄 햇살 살 오른 햇살도 한참을 만나다가 아무래도 해독되지 않는 경판들 쌓인 높이만 아득하게 더듬다가 저녁 예불 시간까지 기다리면 기필코 황홀 하나 만지게 되리라는 그게 왔다 보았다!  법고였다 마음 心자로 한참을 휘몰아가던 북채가 마지막 마음 心자로 북 바닥을 드윽 긁고 지나갔다 몇 번을 그랬다 열렸다 터졌다 법을 끝낸 손, 어혈의 손에서 피가 듣고 있었다 나도 직방 돌아서 내 법고가 되어 있는 팽팽한 여자를 마음 心자 하나로 드윽 긁었다 열렸다 터졌다 경판 한 장을 새기었다 이번 봄                                   이 봄의 노래          정희성                               무엇이 이 산에 꽃을 피우나                               봄이 오면 해마다 진달래 피어                               이 마음 울연히 붉어오겠네                               가야지 어찌 아니 돌아가리                               그리운 보리밭 푸른 하늘아                               정답던 친구 어디 가고                               이 봄만 남아 푸르러지나                               만나면 부둥켜 울고 싶어서                               4월은 꽃보다 더욱 붉어라                                                      이제는 봄이구나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일용직 정씨의 봄         이명윤 벚꽃 가득한 풍경을 파일에 담는다 휴대폰을 여는 순간 (봄이다) 부르튼 입술이 봄을 한입 베어 물면 당신 잠시나마 봄이 되지 않을까 한가하게 봄 타령이라니요 어쩌면 쓴웃음 짓겠지만 언제 또 다른 일 찾아야 할지 모를 불안이 습관적으로 피고 지는 저녁 밥이 되지 못하는 봄이란 사치스런 감성으로 피고 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길 가 벚나무의 수많은 입이 터뜨리는 환한 웃음에 저게 다 출그도장이면 저게 다 밥이면 좋겠네 당신 잠깐의 미소로 행복할 수 있다면 봄이 그저 당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가벼운 은유로 머물지라도 늦은 밤 찬밥을 얹은 숟가락에 꽃잎 한 장 올려주고 싶네 (계약기간을 연장합니다) 기다리던 통보가 오지 않는 당신의 저녁 계약하지 않아도 매년 찾아오는 봄 당신이 잃어버린 봄날의 한 컷을 돌려드리고 싶네                                     일획             장석주                       초봄에 매화 꽃눈 돋다, 어제와 다른 하늘 밑                       내닫는 호랑이다, 호랑이 눈동자다, 저 꽃들!                       아버지 가고 맞은 늦봄 천지에 모란꽃 붉다                       벚 꽃잎 분분하게 무너진다, 저 끊긴 인연들                       자다 깨다 설친 밤 개구리 떼 서책 읽는 소리                       물 빠진 개펄에 혼자 서 있는 민댕기물떼새                      오동은 곧고 소나무 굽었다, 무릇 금생이다                      풍란이 허공에 붓을 친다, 획이 굽은 듯 곧다                      하마 당신 올까, 무서리에도 꿋꿋한 까치밥                      아, 살아 움직인다, 명월 아래 기러기 떼 서체                      매화 국화 다 진 뒤 초겨울 앵두나무에 박새                      가는 길에 꽃 없어 섭섭할까 가지마다 설화!                                                                장터의 봄      김수우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끝에 붙은                            살구꽃잎 한 장                            소와 ?잎이 들여다보는                            길끝, 광주리 하나 걸어온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                            붓꽃 몇 송이                            나를 본다, 모든 꽃은                            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이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적선        길상호(1973 - ) 충남 논산 마음이 가난한 나는 빗방울에도 텅텅텅 속을 들키고 마는 나는   뭐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계절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앉아 기워 만든 넝마를 뒤집어쓰고 앉아   부끄러운 손 벌리고 있던 것인데   깜빡 잠이 든 사이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와 너는 깡통 가득 동그란 꽃잎을 던져 넣고 갔더라   보지도 못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탕탕탕 망치질하는 봄 깡통처럼 찌그러든 얼굴을 펼 수 없는 봄                                첫치마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 난 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초록 기쁨-봄 숲에서          정현종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바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흙은 그리고 깊은 데서                          큰 향기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넌즈시 주고 받으며                          싱글거린다                            오 이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때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무들의 향기!                                                                               초봄    송길자                              겨우내 헝클어진 산수유 울타리에                              신행 온 햇살들이 입김들을 나누는 날                              북성산 냉이 돌나물 봄을 살짝 엿본다                                개나리 진달래꽃 신접 난 담장 아래                              보라빛 목련 가지에 맑은 바람 걸어주고                              작약순 흙을 비집고 빨간 촉수 내민다                                                                           초봄          정완영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                                                               초봄이 오다      하종오                          산수유 한 그루 캐어 집에 옮기려고                          산에 가만가만 숨어들었다                          나무는 뿌리를 밑으로 밑으로 내려놓았겠지                          자그마한 산수유 찾아 삽날을 깊숙이 꽂았다                          이제 한 삽 뜨면 산에게서 내게로 올 게다                          겨울 내내 집 안은 텅 비고 날 찾아오는 이 없었어                          이제 마당귀에 산수유 심어놓고                          그 옆에서 꽃 피길 기다리면                          이 산이라도 날 찾아오겠지                          삽자루에 힘을 주어도 떠지지 않아서                          뿌리 언저리 손으로 파헤쳐보았다                          산수유는 뿌리를 옆으로 옆으로 벌려놓고 있었다                          나는 삽날 눕혀 뿌리 밑을 돌아가며                          둥그렇게 뜬 뒤 밑동 잡고 들어올렸다                          한 그루 작은 산수유 실뿌리 뚜두두둑 뚜두두둑 끊기자                          산에 있던 모든 산수유들 아픈지 파다닥파다닥                          노란 꽃망울들 터뜨렸다                                                                              춘니春泥          김종길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은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                              어디선가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춘래불사춘      양채영(1935 - ) 문경                                배반한 놈들의 이름과 낯짝                                그 말소리와 웃음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창 밖에선 봄눈이 친다                                오락가락 재수없는 잎눈은 얼겠지                                배반은 쉽다                                배반은 차갑다                                꽃샘바람에 실려                                내리는 눈발은                                얼까 녹을까 망설이며                                어지러이 어지러이                                이 창 밖에 분분하다                                                                                     1966등단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호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귀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귀던 고기입이 오믈 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春信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춘일      오탁번                                          풀귀얄로                                          풀물 바른 듯                                          안개 낀 봄산                                          오요요 부르면                                          깡종깡종 뛰는                                          쌀강아지                                          산마루 안개를                                          홑이불 시치듯 호는                                          왕겨빛 햇귀                                                                                            시안. 2005년 봄호                                 하얀 봄   오남구(계간 시향 주간) 이른 아침 티 없이 하얀 봄 속으로 내가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집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글을 쓰다가 책상 위에 놓고 나간 봄의 A4하얀 종이 위엔 내 작은 키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어제 밤에 늦게까지 시를 말하며 마신 커피 그 붉은 눈을 뜨고 있는 카페인이 잠을 설쳐 놓아서 몽롱한 배경이 깔려 있다 엎지른 물도 얼룩을 남기고 있다 내가 승차장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하얀 봄 교향악이 울려 퍼지자 반짝하고 파랗게 보리밭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피파의 찬가         로버트 브라우닝(1812 -1889) 계절은 이른 봄 시간은 아침 아침 중에도 일곱 시 저 뒷동산 구름에 이슬구슬 맺혔다 노고지리 퍼덕이고 달팽이 가시 위에 앉아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이 세상이 평화롭도다               하늘 펄펄 꽃사태     박두진 어떻게 당신은 내게 믿음을 주셨을까 당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을까 그때 내 영혼 홀로 방황하고 칠흑 벌판 끝도 없는 무인 광야 사막 소낙비 천둥 번개 우릉대고 깨지고 우박 폭풍 폭설 펑펑 퍼붓다가도 갑자기 햇덩어리 폭양 펄펄 용광으로 끓어 동남서북 어딜 가나 절망뿐인 천지 진실로 나는 광야에서 나고 자란 어린 들짐승 스스로를 저주하고 스스로를 연민 해온 외롭고도 완강한 탕자였나니 말을 하는 짐승 날 수 없는 영혼 피로 이은 향수와 날고 싶은 꿈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모르고 목숨도 혼도 영도 그냥 그래도 넘어지며 일어서며 상처뿐인 영혼에 놀라워라 무지갤지 섬광일지 하늘 사다릴지 할렐루야 그 십자가 길 피로 사서 이기신 부활이신 당신 앞에 황홀하나니 진실로 바라는 것의 그 실상이며 영생이신 당신 믿음의 그 증거이신 사랑이신 당신 하늘 펄펄 꽃사태의 영광 우러러 탕자 하나 무릎 꿇고 울음 울어라  
325    명시인 - 김억 댓글:  조회:4487  추천:0  2015-04-05
봄은 간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 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억(金億)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에 가까움. 각운(-다,-데, -ㅁ), 3·4조 혹은 4·4조 의 음수율  성격 : 감상적, 상징적, 낭만적, 독백적  표현 : 감정이입법, 영탄법, 대구법(각 연이 2행 대구로 됨)  어조 : 봄밤에 대한 애상적 어조  심상 : 공감각적 이미지  구성 : 1-3연 가는 봄의 아쉬움과 상실감 4-5연 시대 상황이 주는 절망감 6연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 7연 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  제재 : 봄밤  주제 : 봄밤의 애상적 정서, 상실한 자의 애상적 정서  특징 : 감정이입, 대구법(2행 1연의 대구), 3·4조 1음보와 2음보의 교체, 대구법의 잦은 사용으로 딱딱한 느낌→완전한 자유시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출전 : (1918)   내용 연구 밤(어둠,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도다 봄(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희망의 시간)이다.[대조를 통해 애상감 부각, 시간적 배경을 제시한 시구다. 밤은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고 봄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양자의 대조를 통하여 봄밤에 느끼는 섬세한 애상이 표현된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애달픈 심정을 드러냄)[희망이 없는 암담한 현실에서 봄은 생각에만 그친다. 시적 화자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시구다. '-데'의 각운이 나타난다.]  날은 빠르다.(덧없음, 아쉬움) 봄은 간다.(덧없이 가는 세월의 무상감을 표현하는 시구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아득하기만 한데, 시인이 창조한 시적 허용어)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무상감으로 생각은 더욱 많고 아득하기만 한데 슬픈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에 시인의 시적 감정이 이입이 되었다. '아득이는데'는 시적 조어(造語)로 '아득하다'라는 형용사에 동사의 연결어미 '-는데'를 붙여서 만들어 낸 말이다.]  검은 내(검은 밤 안개) 떠돈다. 종 소리 빗긴다.(비껴 간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소리)[검은 밤 안개와 들리지 않고 비껴가는 종 소리. 시적 자아가 인식하는 암담한 주변 상황을 표현한 시구다. '종 소리 빗긴다'는 표현은 청각이 시각으로 전이(轉移)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침묵해야 하는 현실) 소리 없는 봄의 가슴[말로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픈 밤의 서러움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봄에 대한 애상을 표현한 시구다. '-ㅁ'의 각운을 보여 준다.]  꽃은 떨어진다.('봄은 간다'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상실감이 드러남) 님은 탄식한다.[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을 표현한 시구다. 이 글에서 '님'은 지금까지 표현된 주체로 보아서 시적 화자로 해석할 수 있다.]    밤 : 어둠, 암담한 현실의 상징  봄 :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희망의 시간  아득이는데 : 아득하기만 한데, 시인이 창조한 시적 허용어  빗긴다 : 비껴 간다  밤이도다 / 봄이다. : 시간적 배경을 제시한 시구다. 밤은 암담한 현실의 상징이고 봄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양자의 대조를 통하여 봄밤에 느끼는 섬세한 애상이 표현된다.  밤만도 애달픈데 / 봄만도 생각인데 : 희망이 없는 암담한 현실에서 봄은 생각에만 그친다. 시적 화자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시구다. '-데'의 각운이 나타난다.  날은 빠르다. / 봄은 간다. : 덧없이 가는 세월의 무상감을 표현하는 시구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 무상감으로 생각은 더욱 많고 아득하기만 한데 슬픈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에 시인의 시적 감정이 이입이 되었다. '아득이는데'는 시적 조어(造語)로 '아득하다'라는 형용사에 동사의 연결어미 '-는데'를 붙여서 만들어 낸 말이다.  검은 내 떠돈다. / 종 소리 빗긴다. : 검은 밤 안개와 들리지 않고 비껴가는 종 소리. 시적 자아가 인식하는 암담한 주변 상황을 표현한 시구다. '종 소리 빗긴다'는 표현은 청각이 시각으로 전이(轉移)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 소리 없는 봄의 가슴 : 말로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는 애달픈 밤의 서러움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봄에 대한 애상을 표현한 시구다. '-ㅁ'의 각운을 보여 준다.  꽃은 떨어진다. / 님은 탄식한다. : 가 버린 봄에 대한 탄식을 표현한 시구다. 이 글에서 '님'은 지금까지 표현된 주체로 보아서 시적 화자로 해석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암담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작품으로, 독백체의 표현과 간결한 구조를 통하여 주관적 정서를 절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밤, 애달픈데, 간다, 깊은 생각,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밤의 설움,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등 일련의 이미지와 사물의 연쇄를 통해 상징주의 취미의 '암시·몽롱·밝음도 어둠도 아닌 음울·절망·염생(厭生)의 비조(悲調)'를 나타냄으로써 시적 상황을 모호하게 하였다. 이러한 모호한 형상화로써 이 시는 봄밤에 시적 자아가 까닭 없는 상실감으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최초의 자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요한의 '불놀이'(1919)보다 앞서 발표된 것으로 문예 주간지 에 실린 선구적 작품이다. 이 시엔 교훈이나 계몽 의식의 보이지 않으며 한문투의 문장에서 벗어나 순 우리말을 구사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다. 완전한 내재율의 시는 되지 못하였지만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심리적 고뇌를 3.4조, 4.4조의 애조 띤 민요 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 7연으로 각 연이 2행씩 형태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1,3,5,7연에는 '-다' 형태의 종지부가 나타나고, 2연에 '-데', 6연에 '-ㅁ'의 각운에 의한 율격 효과를 노리고 있다. 시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울한데 어두운 현실을 '밤, 바람, 검은 내' 등의 상징적 시어로 표현하여 상징주의 경향을 느낄 수 있다. 신시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당시에 형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순 우리말을 구사한 한글시를 정착시키려 노력한 점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심화 자료  김억(金億) 1896∼? 시인·평론가. 본관은 경주(慶州). 처음 이름은 희권(熙權), 뒤에 억(億)으로 개명하였으며, 필명으로 안서 및 안서생(岸曙生), A.S., 또는 본명 억(億)을 사용하였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 아버지는 기범(基範)이며, 어머니는 김준 (金俊)이다. 5남매 중 장남이다. 출생 연도는 호적상으로 1896년으로 되어 있으나, 김억 유족의 말에 의하면 1895년이라고 한다. 오산학교(五山學校)를 거쳐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 진학하였다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 뒤 오산학교(1916)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원을 역임하였고, 동아일보사(1924)와 매일신보사 기자를 지냈으며, 한동안 ≪가면 假面≫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1934년 중앙방송국에 입사하여 부국장까지 지냈고, 8·15광복 후 육군사관학교와 항공사관학교 및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출강한 적도 있었다. 6·25남침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그의 계동 집에서 납북되었다. 그 뒤의 행적은 확실하지 않다. 1904년 고향에서 박씨가(朴氏家)의 규수와 혼인하였으나, 1930년 중반에 사별하고, 1944년 봄 신인순(辛仁順)과 재혼하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1914, 1915년 ≪학지광 學之光≫에 시 〈이별 離別〉·〈야반 夜半〉·〈나의 적은 새야〉·〈밤과 나〉 등을 발표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1918년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번역과 소개 및 창작시를 발표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그 뒤 창조 및 폐허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창조 創造≫·≪폐허 廢墟≫·≪영대 靈臺≫·≪개벽 開闢≫·≪조선문단 朝鮮文壇≫·≪동아일보≫·≪조선일보≫ 등에 시·역시(譯詩)·평론·수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1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프랑스 상징파의 시와 타고르·투르게네프 등 해외 문학의 번역·소개에 있어서의 구실과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광익서관(廣益書館)에서 간행된 우리 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 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행한 전신자적(轉信者的) 역할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에 간행된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시집으로서,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그의 전신자적 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연구에서도 선편(先鞭)을 잡고 그 보급을 위하여 강습소를 열기도 하였으며, ≪개벽≫에 〈에스페란토자습실〉을 연재하여, 뒤에 간행된 ≪에스페란토 단기강좌 Esperanto Kurso Ramida≫라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가 되었다. 또한, 김소월(金素月)의 스승으로서 김소월을 민요시인으로 길러냈고, 자신도 뒤에 민요조의 시를 주로 많이 썼다. 그리고 해외 시를 번역하는 데 주력한 다음, 이어서 민요시운동에도 적극성을 보였던 그는 1920년대 한국 근대시 형성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였다. 첫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 전편에 흐르고 있는 감상주의적 색채는 역시집 ≪오뇌의 무도≫와도 그 맥락이 닿는다. 시적 서정의 단순성을 바탕으로 그 안에 시대의 아픔을 수렴시키고 새로운 율조를 창안하려는 실험의식에서 이 시집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기타 저서로는, 시집 ≪해파리의 노래≫ 이외에도 ≪불의 노래≫(1925)·≪안서시집≫(1929)·≪안서시초≫(1941)·≪먼동이 틀제≫(1947)·≪안서민요시집≫(1948), 역시집으로 ≪오뇌의 무도≫ 이외에 타고르의 시집 ≪기탄자리≫(1923)·≪신월 新月≫(1924)·≪원정 園丁≫(1924)·≪잃어진 진주≫(1924)가 있다. 한시 번역시집으로≪망우초 忘憂草≫(1934)·≪동심초 同心草≫(1943)·≪꽃다발≫(1944)·≪지나명시선 支那名詩選≫(1944) 2권·≪야광주 夜光珠≫(1944)·≪선역애국백인일수 鮮譯愛國百人一首≫(1944)·≪금잔듸≫(1947)·≪옥잠화 玉簪花≫(1949), 편저로 ≪소월시초≫(1939)·≪소월민요집≫(1948)이 있다. 산문집으로 학창여화 (學窓餘話)인 ≪사상산필 沙上散筆≫(1931)과 서간집 ≪모범서한문 模範書翰文≫ (1933) 등이 있다. 그밖에 중일전쟁 발발직후인 1937년 9월 종군간호부의 노래를 작사하였고, 일본의 고전인 ≪만엽집 萬葉集≫을 우리말로 변역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친일파군상(민족정경문화연구소 편, 1948), 韓國現代詩人硏究·其他(鄭泰榕, 語文閣, 1976), 韓國作家傳記硏究 下(李御寧, 同和出版公社, 1980), 韓國代表詩評說(鄭漢模·金載弘編, 文學世界社, 1983), 눈물의 詩人 金億論(朴貴松, 조선일보, 1936.2.23.∼29.), 岸曙의 先驅的位置와 文學(洪起三, 文學思想, 1973.5.), 近代民謠와 두 詩人(鄭漢模, 文學思想, 1973.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24    류시화 시모음 댓글:  조회:5723  추천:0  2015-04-05
류시화 시 모음 시 제목에 클릭하세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금 알고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사랑이란 여행자를 위한 서시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 만났었다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누구든 떠나갈 때는 겨울의 구름들 안개 속에 숨다 잊었는가 우리가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무 들 풀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두 사람만의 아침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만의 것 세월 그건 바람이 아니야 뮤직박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잇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 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자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명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장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께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 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을 저버렸기에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 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집을 떠나 방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에 서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책들은 죽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입은 옷은 색깔도 없는 옷이라서 비를 맞아도 더 이상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참 기쁘고 무엇이 참 슬픈가 나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었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고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겨울의 구름들  1 겨울이 왔다 내 집 앞의 거리는 눈에 덮이고 헌 옷을 입은 자들이 지나간다 그들 중의 두세 명을 나는 알고 더 많은 다른 얼굴들은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소리쳐 그들을 부른다 내 목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는다 겨울은 저 아래 길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2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다 밤에는 다만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온갖 부질없이 깊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 늘어뜨려진 가지, 때 아닌 붉은 열매들이  머리 위에서 창을 두드리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희고 창백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면 겨울의 구름들이 붉은 잎들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있었다 등불의 심지만을 들여다보며 변함 없는 어떤 흐름이 갑자기 멈춘 일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3 아니다,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장에 얼굴을 묻고 참이 들곤 했다, 겨울이 왔다 나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고 나는 오갈 데가 없었다 내 집 지붕 위로 겨울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곳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오래 불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더 큰 물결을 내 집 뒤로 데리고 온다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잊었는가 우리가 잊었는가 우리가 손잡고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 그 저녁의 일을 우리 등 뒤에서 한숨지며 스러지던  그 황혼의 일을 나무에서 나무에게로 우리 사랑의 말 전하던 그 저녁새들의 일을 잊었는가 우리가 숨죽이고 앉아서 은자처럼 바라보던 그 강의 일을  그 강에 저물던 세상의 불빛들을 잊지 않았겠지 밤에 우리를 내려다보던 큰곰별자리의 일을, 그 약속들을 별에서 별에게로 은밀한 말 전하던 그 별똥별의 일을 곧 추운 날들이 시작되리라 사랑은 끝나고 사랑의 말이 유행하리라 곧 추운 날들이 와서 별들이 떨어지리라 별들이 떨어져 심장에 박히리라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나 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집뒤에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때 그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들 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두 사람만의 아침 나무들 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여기 이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때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 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 우리가 물가에서 귀 기울여 주고받던 말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새와 안개가 떠나간 숲에서 나는 걷는다 걸어가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옛날의 불꽃을 본다 그 둘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본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솔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 봐 이 모든 것을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 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그만의 것 외딴 집에 홀로 사는 남자, 침묵은 그의 것 오후의 나른함과 권태는 그의 어깨죽지에서 피어오르고, 한두 시간쯤 시간을 내어 그가 산책하는 길에는 잎사귀가 넓은 붉은 꽃들이 피어있다, 붉은 꽃들 그의 그림자는 그의 것, 반항하지 않으며 그가 좋아하는 엉겅퀴풀들, 엉켜 있는 뿌리들, 시간의 얼룩들 위를 지나 우리는 가끔 마주치기도 하는 남자, 태양은 등 뒤에서 그의 뇌를 미지근하게 부풀린다 둥글고 딱딱한 것, 열에 들뜬 열매들 좁고 가파른 돌길을 걸어내려와 우리가 한쪽으로 비켜섰을 때 우리 발앞을 지나쳐간 남자, 그의 시간은 그만의 것, 그가 꿈꾸는 것과 위험한 생각들도 그만의 것 그가 비탈을 걸어 내려갈 때 그의 발이 굴러 떨어뜨리는 흙은 비탈에게 한 세계를 준다 그는 왜 모자를 썼을까, 왜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을까, 그는 살아가는 일보다 꿈꾸는 일이 더 두렵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홀로 사는 남자, 이따금 한번도 내려가보지 않은 강 아래쪽의 풍경과 한 낮의 수증기, 구름들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오후에 한 두시간 쯤 시간을 내어 그는 어느 곳에 이른다 그의 삶은 그의 것, 그가 이르는 곳에는 그만이 서 있다, 꽃들의 그림자 그림자가 감추고 있는 그림자 산책하는 이들의 발길을 비웃는 비탈길에서 그는 미끄러진다, 미끄러져 내린다 우리가 놀고 있는 강 아래쪽으로 떠 내려온 남자, 죽음은 그의 것 햋빛을 피해 얼굴을 물 속에 처박고 뒤통수에 앉아 있는 검은 물잠자리도 그의 것, 이미 알수 없는 곳에 가 있고 알수 없는 그만의 것에 이끌려 있다   세 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물이 소리내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 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 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불 붙은 옥수수밭처럼 내 마음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입 속에 혀처럼 가두고 끝내 하지 않은 말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바람이 아니야    뮤직 박스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그대로 나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처음  이전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