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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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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시인 - 朴龍喆 댓글:  조회:5147  추천:0  2015-04-20
  1904년 6월 21일 ~ 1938년 5월 12일[1]) 한국의 시인이다.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아호는 용아(龍兒).       생애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 시인 김영랑과 교류하며 1930년 《시문학》을 함께 창간해 문학에 입문하였다. 1931년 《월간문학》, 1934년 《문학》을 창간하여 순수문학 계열에서 활동했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가련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 등 시작품은 초기에 많이 발표했고, 이후로는 주로 극예술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해외 시와 희곡을 번역하고 평론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1938년 결핵으로 요절하여 자신의 작품집은 생전에 내보지 못했다. 박용철이 사망하고 1년 뒤에 《박용철전집》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되었다. 전집의 전체 내용 중 번역이 차지하는 부분이 절반이 넘어, 박용철의 번역 문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괴테, 하이네, 릴케 등 독일 시인의 시를 많이 번역했다. 번역 희곡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이 있다.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번역한 작품들이다. 박용철은 1930년대 문단에서 임화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으로 대표되는 경향파 리얼리즘 문학, 김기림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문학과 대립하여 순수문학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이끌었다.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 박용철과 함께 순수시를 옹호하는 시문학파 시인들이다. 박용철의 시는 대체로 김영랑이나 정지용의 시에 비하면 시어가 맑지도 밝지도 못한 결함이 있지만, 그의 서정시의 밑바닥에는 사상성이나 민족의식 같은 것이 깔려 있어, 그 점이 김영랑, 정지용의 시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특색이라는 평가가 있다.[2] 광주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광주공원에는 〈떠나가는 배〉가 새겨진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미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고향     고향은 찾어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대   저녁 까마귀 가을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로 옛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 하리.     하늘 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보랴   남겨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눈은 내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러라.       희망과 절망은   어느 해와 달에 끄을림이뇨  내 가슴에 밀려드는 밀물 밀물  둥시한 수면은 기름같이 솟아올라  두어마리 갈매기 어긋저 서로 날고  돛폭은 바람가득 먹음어  만리길 떠날 차비한다  그러나 이순간을 스치는 한쪽 구름  가슴 폭 내려앉고 깃발은 꺾어지며  험한 바위 도로 다 제 얼굴 나타내고  검정 뻘은 죽엄의 손짓조차 없다  남은 웅덩이에 파닥거리는 고기들  기다림도 없이 몸을 내던진 해초들  우연은 머리칼처럼 헝클어지도 않았거니  너는 무슨 낙시를 오히려 드리우노  희망과 절망의 두 등처기 사이를  시계추같이 건네질하는 마음씨야  시의 날랜 날개로도 따를 수 없는  걸음빠른 술레잡기야 이 어리석음이야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1  온전한 어둠 가운데 사라져버리는  한 낱 촛불이여.  이 눈보라 속에 그대 보내고 돌아서 오는  나의 가슴이여.  쓰린 듯 비인 듯한데 뿌리는 눈은  들어 안겨서  발마다 미끄러지기 쉬운 걸음은  자취 남겨서.  머지도 않은 앞이 그저 아득하여라.  2  밖을 내어다보려고, 무척 애쓰는  그대도 설으렷다.  유리창 검은 밖에 제 얼굴만 비쳐 눈물은  그렁그렁하렷다.  내 방에 들면 구석구석이 숨겨진 그 눈은  내게 웃으렷다.  목소리 들리는 듯 성그리는 듯 내 살은  부대끼렷다.  가는 그대 보내는 나 그저 아득하여라.  3  얼어붙은 바다에 쇄빙선같이 어둠을  헤쳐나가는 너.  약한 정 뿌리쳐 떼고 다만 밝음을  찾아가는 그대.  부서진다 놀래랴 두 줄기 궤도를  타고 달리는 너.  죽음이 무서우랴 힘있게 사는 길을  바로 닫는 그대  실어가는 너 실려가는 그대 그저 아득하여라.  4  이제 아득한 겨울이면 머지 못할 봄날을  나는 바라보자.  봄날같이 웃으며 달려들 그의 기차를  나는 기다리자. "잊는다"말인들 어찌 차마! 이대로 웃기를  나는 배워보자.  하다가는 험한 길 헤쳐가는 그의 걸음을  본받아도 보자.  마침내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라도 되어 보리라.          싸늘한 이마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 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한 즐거움이냐.          이대로 가랴마는 설만들 이대로 가기야 하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파란 하늘에 사라져 버리는 구름 쪽같이 조그만 열로 지금 숫더리는 피가 멈추고 가늘은 숨결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ㅡ 아, 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 아래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나리네.              밤 마음아 너는 더 어질어지렴아 너는 다만 헛되이 아 ㅡ 진실로 헛되지 아니하냐 남국의 어리석은 풀잎은  속임수 많은 겨울날 하로 빛에 고개를 들거니 가문 하늘에 한 조각 뜬구름을 바랐고 팔을 벌려 불타오르는 나뭇가지같이 오 ㅡ 밤길의 이상한 나그네야 산기슭 외딴집의 그물어가는 촛불로  네 희망조차 헛되이 날뀌려느냐 아 ㅡ 그 현명의 노끈으로 그 희망의 목을 잘라 걸으라 걸으라 무거운 짐 곤한 다리로 걸으라 걸으라 가도 갈 길 없는 너의 길을 걸으라 걸으라 불 꺼진 숯을 가슴에 안아 새벽 돌아옴 없는 밤을 걸으라 걸으라 걸으라          朴龍喆의 초기시   박용철의 초기시를 검토해 보면 그가 생전에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더욱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다. 애초부터 격조 있는 서정시를 지향한 점에서는 朴龍喆이 다른  詩文學  동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해석에 있어서 그는 다른 동인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런 경우의 우리에게 좋은 보기가 되는 것이 , 등이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무로야 보낼겨냐    나두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 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    주름ㅅ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회살짓는다    앞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두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두야 간다.                                                 ─ 전문        고향은 찾어 무얼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흐너진데    저녁 가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넷자리 바뀌었을라.        어릴 때 꿈을 엄마 무덤 우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따라    멈추는듯 불려온지 여나무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하리.        하날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보랴    남겨둔 무엇일래 못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닢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게 앗긴    옛사랑의 생각같은 쓰린 심사여라.                                                        ─ 전문       이들 작품은 그 말씨부터가 金永郞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金永郞은 감정을 정서의 상태로 바꾸는 데 역점을 두면서 말을 썼다. 그리하여 그 말들은 의미 내용을 갖는 게 아니라 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도록 쓰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朴龍喆의 詩는 그와 달라서 상당히 사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이다. 그 결과 그의 말들은 감각의 상태에 그치기보다 다소간 서술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게 되었다. 또 하나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이 이 작품에 나타나는 상실감정이라든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상실의 감정은 金永郞에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경우 상실의 느낌은 내면화되기 이전의 가벼운 감상에 그쳐 있다. 말하자면 마음 밑바닥에 닿는 내면적 깊이나 무게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朴龍喆의 경우에는 사정이 그와 다르다. 그의 우수나 상실감정 속에는 대개 思辨的 속성이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범박하게 보면 이것은 호흡 영역의 확장 시도인 동시에 정신의 깊이를 수용하려는 노력에 해당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 나름의 논거가 마련된 자취도 검출된다.    넓은 의미에서 창작활동이란 제 목소리를 지니며 제 설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해당된다. 그런데 시문학파가 발족한 뒤 그 영역은 아주 제한되어 있었다.  詩文學  동인 가운데 한 사람인 金永郞은 이미 짧은 형식 속에 해맑은 가락을 담은 詩를 발표했다. 그리고 鄭芝溶은 독특한 말씨로 선명한 심상의 詩를 발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이나 정서만으로는 朴龍喆이 새로 기를 꽂을 여지가 없었던 게 당시의 우리 시단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나머지 이루어진 게 朴龍喆의 사변적 공간 개발 시도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 그 말씨가 길어진 까닭도 바로 이런 데 있다. 이것은 분명히 朴龍喆이 그 나름의 설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시도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시도가 시도로 끝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되풀이되지만 朴龍喆이 노린 것은 질적으로 정상에 속하는 서정시의 제작이었다. 그런데 그를 위해 사변적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였다. 물론 하잘 것 없는 제재나 옅은 내용을 바닥에 깐 작품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유의성을 가진다거나 철학적 깊이를 다룬 詩가 묵직하게 보일 공산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詩를 위한 여러 소인들이지 그 자체가 詩는 아닌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여러 사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입증된다. 가령 개항기에 六堂이나 孤舟는 즐겨 문명․개화를 노래했다. 그런 내용은 당시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우리를 긴장케 하는 제재들이었다. 또한 신경향파와 카프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목적의식을 내세운 그들의 詩는 어떻든 현실에 입각한 작품의 제작을 외친 나머지 씌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개화․계몽을 노래한 詩나 대지에 발을 붙이기를 기한 프로시 가운데 좋은 詩로 손꼽힐 수 있는 것은 아주 드물었다. 朴龍喆은 우리 근대시사가 이런 단계를 거친 다음에 그의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독자에게 즐겨 읊조려지는 詩를 쓰고 싶었던 시인이다. 그런데 실제 그의 詩는 그런 목표에 넉넉히 도달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 의욕과 실제의 거리를 의식한 순간, 그는 또 다른 시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좋은 서정시 제작에 걸어버린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442    시적 마술(변용) - 알베르 베갱 댓글:  조회:4790  추천:0  2015-04-20
                                            시적 마술(변용)          자기 내부로의 하강 - 내부를 향한 모든 시선-은 동시에 진정한 외적 현실을 향한 상승 -승천-의 시선이기도 하다.  자신의 껍질을 벗는 것은 모든 하강의 근본일 뿐 아니라 모든 진정한 상승의 토대이기도 하다.  자기내부로의 하강은 본질적인 최초의행위이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뒤따라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러있던 의식도 영혼의 심원한 근원에 담금질되고  본질적인 리듬에 따라 교육을 받게되면 절대적 권능에 도달하여 지고한 의식이 될 수 있다.     노발리스가 말하는 정복의 이 모든 과정들은 그의 정신에 내재하고 있는 두가지 욕구, 즉 부분들의 빠짐없는 통합을 통해서 모든것을 그 통일성 속에서 바라보고자하는 성향과 그로하여금 가시적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과 발현을 찾도록 이끄는 미학적 경향에 따른 것이다.  인간의 인격은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 속에서만 완전하다. 그것은 조화 그자체, 고등한 변증법적 종합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완전한 자연과 우리 영혼의 종합이다. 그에게는 정신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우주의 전체적인 통일성만이 온전한 의미로 존재한다. 모든 것을 통합시키고 모든 것의 공존을, 모든 분리가 절대적 조화로 귀환함으로서 사라지고 말 미래를 믿으려는 생명욕구가, 통일성에 대한 근본적 갈망이 한 인간 존재속에 이렇게 깊이 뿌리내린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들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내적 경험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보편화된 불완전과 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로하여금 그래도 통일성의 도래를 믿게 만드는 방책은 '마술'이다. 자신의 절대력을 행사하는 지평위에 모든 것을 옮겨 놓으려 애쓰는 정신의 마술, 사물들을 통해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서 보이지않는 세계의 보편적인 흔적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시적 창조의 마술.    그는  황금시대가 인간에게 약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려면,  인간자신이 모든 무의식을 통합시킬 고등한 의식을 통해 진정한 통일성의 소유행위인 시적 마술을 통해 그것을 창조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내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 내부에 획득된 완벽한 의식은 동시에 우주를 변화시킬 것이다. 인류에게 조화를 창조하는 이 절대적 힘을 되돌려줄 사람은 바로 시인이다. 노발리스의 미학은 마법사인 이 시인이라는 개념에 집중된다.  "무한 보다도 정신이 더 쉽게 다가설 수있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 들을 수있는 것은 들을 수 없는 것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감지할 수 없는 것에, 그리고 아마 생각되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것에 묶여 있기에"    사실 정령의 세계는 이미 우리에게 개방되어 있다. - 그것은 항상 드러나 있다. - 우리의 불완전한 현 상태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사물들 속에 각인된 정신의 발현을 포착하고, 우주를 거기에 수록된 모든 말들이 영원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투명한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게 해줄 하나의 고행을 발견해야한다. 시인은 이런 고행을 따르는 사람이다.    시는 내적 근원에서 영감을 길어오고 자신 속으로 내려가는 신비스런 길로 접어든다. 성공한 작품은 언제나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을 ,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내부에 아직 감겨져 있는 눈에" 호소한다.     시는 영혼의 표상이고 전체성 속에 포착된 내적 세계의 표상이다. 그것은 표상 할 수 없는 것을 표상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낀다.    .. 시인은 말 그대로 정신나간 사람이다. - 그대신 모든 것이 그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는 문자그대로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영혼인 동시에 우주이다. 거기서 훌륭한 시의 무한한 특질이 생겨난다.    시인은 고로 내부의 유령들을 불러내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대결을 벌이게 하는 마법사이다.  감각적인 우주의 질료들은 시인에게 제공되어 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된다.  무한히 다양한 감각적인 세계의 면모들을 두고, 시인은 선별을 거쳐,  그가 그 개별성때문에 선택한 하나의 개별적인 현상으로 완전히 선회한다.     -  알베르 베갱의 에서 발췌          알베르 베갱 1901년 스위스 쇼 드 퐁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 대학 교수와 문학 잡지 '에스프리'의 편집장(1950~57)을 지냈다. 마르셀 레몽과 더불어 제네바 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현대인이 직면한 본질적인 실존의 문제를 심도 있게 제기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발자크, 블루아, 네르발, 파스칼 등 여러작가들에 대한 에세이를 다수 출간했다.  시적인 문체로 인간 영혼의 심층에 접근해 들어가는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문학 이론의 지평을 넘어 심오한 종교적, 정치적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441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 댓글:  조회:4503  추천:0  2015-04-20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   1.여는말    시 창작 기법의 하나인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는 창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나름대로 언급해 본다. 창의성은 라고 정의한 로데스의 창의성 정의를 문학에 도입해 보면   이전의 사례 참조는 좋은 시를 읽고 감상하며 필사를 해보는 것이다.  좋은 시를 읽고  필사하는 과정 안에 시의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사하면서 집중하여 생각을 하면 그 시의 심상, 그 이미지를 쓰게 된 시인의 남모를 동기, 행을 바꾼 의도, 시 속의 소리 없이 숨쉬는 운율 등이 은근히 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읽고 지나쳐버리고 만다면 그 중요한 것들의 눈짓을 알지 못한다. 또한 시를 쓰는 방법도 자연 그렇게 터득되는 것이다. 어떠한 이론적 습득보다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기에 이렇게 하다보면 재조합의 기법이 터득 된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창의력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는 시 이외의 교양서적을 섭렵하는 게 좋다. 문학, 철학, 신화, 미술, 음악, 역사 등 교양의 축적이 폭넓은 시적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시 속에 좋은 시를 쓰는 왕도(王道)가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와 시적 변용의 의미 확장       -시창작에 있어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라."    이는 어떤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라.       우리는 가끔 시를 짓기 위하여 그 대상을 찾아 여행도가고 직접 그 대상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간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앞서 언급한 과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 된다.  나 역시 3류 시인에 불과하지만 어디를 다녀와서 보고 온 것을 지었다고 하면서 감상해 보라고 보여주는 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풍경이 전개되어 있는 모습만을 미사어구로 풍경화만 그려놓았을 뿐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아쉬운 점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면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란 무엇인가? 서두에 말한 이 바로 그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인터넷 여행을 하다가 주암호 억새라는 사진을 감상할 기회가 생겨 직접 현지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 사진을 통하여 현지에서 주암호의 억새 감상을 하는 느낌이 들더니 불현듯 을 읽었던 내용이 떠올라 주암호 억새 사진을 통하여 대상의  특성을 나름대로 찾아보고 그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참을 생각 하였지만, 나의 상식으로는 주암호에 대한 정보가 깊지 못하고 단지 광주시민의 상수원지라는 사실밖에 더 이상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고 억새의 사진을 보면서 전혀 다른 대상의 특징을 생각 하던 중 억새의 윗부분 하얀 부분이 바람에 누워있는 듯 휘어져 있는 모양이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으로 떠올랐다.    광주시민은 주암호의 물을 마신다, 그렇다면 주암호를 광주의 이미지로 변환 시켜보자. 광주의 특성은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로 접근해보자 하고는,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등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이 사건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5.18당시의 군중집회, 계엄군의 시민을 쫓으며 총을 쏘는 장면, 쫓기는 군중, 이러한 장면으로 주암호 억새를 의미,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이미지를 담아 보았기에 졸작을 소개하면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주암호 억새 / 이근모     가을이 되면 주암호에서는 허가 받지 못한 억새들이 집회를 하고 이를 바라보는 태양이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억새의 눈물방울 호수를 가득 채우고 이름 모를 영혼들을 달래는 진혼곡 가을 물빛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봄을 피우기 위한 5월의 함성이 가을 햇살 아래서 벌이는 한 마당 집회는 겨울 저수지를 달래는 촛불 행사 같다.     억새풀, 꽹과리 상쇠 머리 돌리 듯 빙글빙글 돌리는 휘모리장단 소리 개 꼬리 쫓고 있다.     어디서 저 많은 개가 모였을까. 탕, 탕, 탕, 탕. 깽, 깽, 깽, 깽.     개털 태우는 향기 산야를 진동하고 주암호 붉게 물들인 눈물 억새 뿌리 적신다.      다음은 냉장고라는 저의 졸시를 앞서 소개한 이론에 의하여 소개한다. 먼저 냉장고의 특징은 보관 물품을 차게 하기위하여 작동을 할 때 윙윙 하고 기계를 작동 하는데 이를 울음소리로 발상 전환을 했고 냉장고에 보관 물품을 넣기 위하여 문을 열면 환하게 불이 켜진다는 것. 그리고 문을 꼭꼭 닫아야 냉동이 된다는 것,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사랑의 이미지로 확장 전환 했다.     냉장고 / 이근모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당신의 열꽃 너무 뜨거워요. 당신이 그렇게 뜨겁게, 뜨겁게 다가올수록 나는 꼭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가슴 붉어지게 왜 자꾸 문을 두드려요? 왜 자꾸 문을 열어요? 당신의 그 뜨거운 열정 나의 이 차가운 눈으로 녹여 버릴래요. 당신의 그 뜨거운 구애(求愛), 바람으로 피어날까봐 내 안에 가두고 한 눈 팔지 못하게 꽁꽁 얼려서 옴싹달싹 못하게 할거 에요. 그리하여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 드릴게요. 당신이 뜨겁게 다가올수록 나는 더 빗장을 걸어요. 당신이 내 가슴을 엿볼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요. 당신을 품어야 하는 수줍음에...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당신의 그 뜨거운 사랑 감당하지 못해 나는 더 차가워지니까요. 파고들수록 마음 꼭꼭 걸어 잠근 채 어둠의 고요 안에서 가끔은 엉엉 울어야 되니까요. 나를 울게 하지 말아요.      다음은 지팡이라는 저의 졸시를 앞서 말한 이론에 의하여 소개해 봅니다. 지팡이 하면 흔히들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보조기구로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러나 보행이 어려운 사람의 보조기구로써의 지팡이와 맹인의 보행을 위한 지팡이는 그 대상의 고유한 특성이 다르기에 여기에 착안하여 지팡이가 전달해 주는 느낌으로 보행을 하는 맹인의 마음의 눈을 그려 의미 확장을 해본 시다.     지팡이 / 이근모       충장로4가 횡단보도에서 맹인의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지팡이 소리로 앞서 가는 숙녀의 각선미를 보고, 뒤 따라 오는 애 엄마의 쳐진 젖가슴도 본다. 소주방 앞을 지날 때는 쇠주 잔에서 출렁이는 인생의 노래를 듣고, 국밥집 문 앞에서는 뚝배기에 담겨진 된장국 삶을 그린다. 지팡이 하나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심안(心眼)으로 피어나는 지팡이 소리, 딱. 딱. 딱.  나의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그릴 수도 없는 소리.     4.맺음말    우리의 현대시 형태를 나름대로 느꼈던 점을 이야기 하라면 압축이 기교의 중심이 되었던 시에서 드러냄이 시적 기교의 중심이 되는 시로 변천했다고 나름대로 정의 한다. 따라서 드러냄의 시적 기교의 성공은 적절한 시적 언어의 선택과 활용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시적 언어의 선택과 활용이란 감추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감추어진 형식의 언어 사용 기법일 것이다.  이러한 기법의 하나가 시적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찾되 전혀 다른 의미 확장을 시키는 것이고 이 의미 확장을 시키는 요령이 바로 창의와 아이디어인 것이다.    창의와 아이디어의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정관념(固定觀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낯선 곳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불안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감에 대한 발견을 의미한다. 하여 우리는 항상 시창작의 새로움에 도전할 각오를 준비하여야 한다.   준비한 자만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나의 스콜라철학 같은 괴변 문학 이론으로 변변치 못한 발표를 읽어 주신 시인 여러분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면서 이태백의 시 창작 기술법을 소개하면서 마친다.     선경후정(先景後情)-  먼저경치(자연, 사물, 대상 등)를 서술하고 난후 화자의 마음(발상전환)을 그려내라 이는 앞서 소개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 전혀 다른 대상으로 확장 발상 전환 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하겠다.   감사합니다.     
440    시적 변용과 형상화 댓글:  조회:4090  추천:0  2015-04-20
시적 변용과 형상화                              -문병란(조선대교수,시인)  요즈음 양산되는 시들을 보면 초보자이든 이력을 쌓은  경우든 시와 산문이 구분되지 않은 시적 해체를 보게 된  다. 의도적 해체나 반시운동은 그 나름대로 변혁 의지쯤  으로 볼 수 있으나 수필의 감상을 행과 연으로 전개했다  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잡  문적 성격의 수시수상 낙서글 같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가지고 실험시, 새로운 시 떠들어도 난처한 일이다.  소설 한권으로 쓸 것을 짧은 시 한 편으로 쓴다면 전적으  로 시의 생명은 '함축적표현'1)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함축, 그것이야말로 시의 생명이며 비법일 것이다.  시적변용과 형상화 즉 시 만드는 기법에 대해서  이근모 시인의 '노을' 이라는 시를 감상하면서 췌언을  더할까 한다.  '변용'이란 일종의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으로 미술  용어 이기도 하다. 대상의 자연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  라 작가의 주관에서 모양이나 형태를 의식적으로 확대하  거나 변개하여 표현하는 그 기법을 문장이나 시문에서  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  한 박용철 시인의 ≪시적변용≫ 이란 평론이 그 한 예가  되겠다.  리어카 바퀴에 감겨있던 노을  불꺼진 방 어둠을 갉아 먹는다    이 싯구를 산문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리석은 헛수고에  그친다. 불이 어둠을 어떻게 갉아 먹는가. 이는 주관적  정서적 해석을 통해 실감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표현이  지나칠 때 난해성이 오지만 적당할 때 수많은 사실적 설  명과 논리적 사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갉아먹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뇌세포만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생글생글 웃음짓는 홍안같이  서산 등선마루에 걸친 노을    마치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마취된 환자의 흐릿한 몽환  상태를 느끼게 하는 함축적 표현으로 ‘노을’을 정서적으  로 형상화 했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그가 만만찮은  T.S.엘리어트를 졸업한 모던한 시학도임을 직감케 한다.  읊으는 시와 만드는 시, 자연발생적 인습의 감상시와 주  지적 창조적 생각하는 시 의미하는 시가 아니라 존재하  는 시 현대적 모더니티란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사를 관류하는 수많은 업적의 결과물로써 시삼백에  사무사의 경지에 이르듯 선인들의 명시 몇 백편을 줄줄  이 외워야 깨치는 시미학의 경지가 있다.  이근모 시인은 야무지게 터를 닦아 적어도 자연발생적  인습적 감상배설의 푸념이나 넋두리의 경지를 벗어나 시  적 알맹이를 만지는 그 경지에 접근했음을 작품으로써  말해주고 있다.  의 끝부분은 다음과 같다.  팔고 남은 생선 한 마리  리어카 좌판에서 뒹굴고  석양에 지친 그림자 드리우며  문지방 들어서는 아들  치매 엄마 눈동자엔  첫돌 맞은 모습만이 생생할 뿐  파란중첩 삶의 애환  노을 저편으로 달린다.    위의 시는 누구의 흔적도 없이 오직 이근모의 이  다. 마치 반고흐의 그림을 보듯 어질어질하다. 필자는 이  것을 시적변용이라 한다. T.S.엘리엇 가라사대 '삼류 시  인은 모방하고, 일류 시인은 표절한다'고 했던가. 서투른  흉내는 이류가 되지만 감쪽같이 훔쳐먹고 완전히 소화  하여 피만들고 똥사버리는 기똥찬 천재는 표절(훔치기)  하는 것일까. 이근모를 천재라 한다고서 큰일날 일은 아  니지 않는가.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이기려면 신무기가  필요하듯이 경쟁이 필요한 세상에 내놓는 시이라면 신무기  하나쯤 있어야 한다. 당신의 신무기는 무엇입니까? 물으면  이것이다 내놓을 시가 있어야 시를 쓰는 당위성이 있을 것  이다. '자인'의 시가 아니라 '졸렌'2) 의 시라고 만드는 시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더니티에 대하여 다시 한번 기대를 건다.  주1)  함축적표현: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흔히 시에서 말하는 내포적 의미나 metaphor기능을 말한다.  주2)  자인(Sein)은 독일어로 존재. sollen은 당위의 뜻.   
439    철학적 사유의 시적 변용 댓글:  조회:4516  추천:0  2015-04-20
              철학적 사유의 시적 변용                                                -- 시집 “꿈꾸는 시간”을 중심으로                                                                                                       김성열   춘광 시인의 시집 “꿈꾸는 시간”을 주의 깊게 읽어 온 나로서는 할 말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망설여진 면이 없지 않다. 인동초의 줄기처럼 눈 속을 뻗어나가는 그의 시적 에너지의 본류(本流)를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시집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다시 더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철학가로서 그의 사유의 세계로 더 가까이 가보고 싶은 충동 때문 이었다. 그의 시에는 세계를 끌어안는 넓은 가슴이 있고, 소용돌이치는 내면세계의 어지러움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재단하는 기교가 있다. 감각세계의 모든 물상은 그의 내면에 전입되어 철학적 사유와 결합하여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가 구축해 내는 시세계는 육화된 철학적 사유와 시의 주제가 결합한 화학 반응의 결과물로서 시적 변용을 이뤄 내는 독특한 정신세계인 것이다. 그의 시에는 꿈과 사랑의 형상물로 가득 차 있다. 관념으로 떠도는 동경의식은 세계의 모든 물상에 투사되고 재단되어 독특한 창조적 시공을 형상화 한다. 자연은 시적 대상과 소재의 중심에 놓여 있고 영원회기라는 사유의 섬에 맞닿아 있다. 이 시인은 시 쓰는 마음의 상태를 운명이라는 말로 대체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겸손하고 소박하게 보이지만 시작과정과 운명과의 엄숙한 거리는 냉혹하게 치열하고 숙연하다. 이러한 심리상태에서 튕겨져 나오는 시적 언어가 세속적인 일상어와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 “소리치는 나를 가지런히 쏟아내어 그날이 올 때까지 사뭇 촐랑거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운명 속에 잠재 되어 있는 소박한 소망이다“라고 피력한 그의 단상은 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단서가 된다. 시를 쓰는 소망이 운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너무도 진솔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어렵지 않게 이해되고 거리낌 없이 공감하게 된다.   어느 사이/나도 모르게/스며든 향기가 있습니다.//눈이 마주칠 때면/향기가 짙어/차마/ 바라보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강물을 따라/길게 펼쳐진 들판에/영롱히 피어난 들꽃 한 송이//마치 코 끝에 찡하게 느껴지는/블랙러시안 칵테일 향기.../그런 것입니다.//이 가을날// 새 바람을 타고 온 색 고은 들꽃은/ 기다림이 안타깝지 않기에/향기로만 남고 있습니다// 들꽃을 바라보는/가을 속의 나그네는/혼자이고 싶은 그에게서//툭/툭/툭/외투를 털고/떠날 것을 준비합니다.                                                - 전문   이 시에서 세계를 끌어안는 시인의 넓은 가슴이 드러난다. 들꽃은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원시적 상징물이고, 들꽃의 향기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호흡하면서 느끼는 후각적 형상물(이미지)이다. 세계의 존재자에 대한 물리적 상태의 단순한 감각상이 아니라 내면세계의 철학적 사유와 결합된 형상물로 표출된 결과이다. 세계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무한히 열려 있지 않으면 보여 질 수 없는 일이다.                                      원시적 순수의 실체인 들꽃의 존재에 인간의 때 묻은 관념으로 덮씌우기를 거부하는 시적 화자는 “혼자이고 싶은 그에게 외투를 털고 떠날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끌어 안는 세계내의 존재는 그 순수의 절대 자유를 인정하고 구속하지 않겠다는 넉넉한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에 제시되는 “강물” “들판” “들꽃” “가을”등의 자연현상은 시인의 열려진 가슴에 안겨지면서 순수한 존재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부터/내 마음엔/호수와 봄비가 있습니다//산모퉁이/작은 찻집엔/계절 따라/향수 짓고//이름 없는/가수의 촉촉한 열창은/봄비를 삼키는 호수의/눈물입니다//헤이즐넛 커피향은/창틀 사이로 스며가고/창밖으론 또다시/계절이 스치옵니다//시간이 흐르고/음악이 멈추면/그 추억/다시/비 적신 호수에 담고/아픈 작별을 합니다//하얀 눈을 삼키는 호수와/다시 만날 수 있기에/내 심정 향수로 남기고/떠날 수 있습니다.                                   -전문   잔잔하게 속삭이며 호수의 수면을 적시는 봄비, 언제나 넉넉한 자세로 기다림의 몸짓을 잃지 않는 호수, 이러한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고 정서적 감흥도 쉽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별과 정한의 형식을 통하여 질서 지어주는 비범한 수법으로 시적 조형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엔 호수와 봄비가 있습니다“로 시작 되는 1연의 호수와 봄비의 이미지는 화자의 내면세계에 자리 잡고 이별의 정한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산모퉁이 작은 찻집의 향수와 추억, 가수의 촉촉한 열창, 호수의 눈물, 창틀 사이로 스며가는 커피향, 흐르는 시간 등의 시적 영상은 모두가 이별의 정한을 환기하는 정서적 등가물이고 그 추억은 다시 비에 젖어 아픈 작별로 이어지면서(6연) 하얀 눈을 삼키는 호수와 다시 만날 수 있기에 내 심정 향수로 남기고 떠날 수 있습니다(끝연) 이 같이 시인의 내면세계에 숙성 된 철학적 사유의 응결체로 현시 된다. 떠남을 재회의 향수로 남겨 둔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한 자기 정서의 시적 표출이라 하겠다. 늘쌍으로 무심하게 스쳐가곤 하는 주변의 자연현상을 회자정리의 철학적 사유물로 잘 재단하여 이별과 만남의 질서를 부여해 준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시 쓰기를 위한 양식적(樣式的) 상상력이 풍부하게 드러나고 잘 훈련 된 시적 기교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관념이나 상상의 세계는 기교적 가공이 가해지지 않으면 공허한 허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춘광 시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능란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교에만 능하고 주제의식이나 시정신이 치열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시의 양식적 기교와 정신적 치열성이 조화롭게 작품에 반영 된다는 것이다.   동해의 파도는/수평선 끝에 닿아/푸른색이 출렁입니다//사랑 하나,/금빛 모래밭에 숨기며/ 미소 짓는 여인의/휘어든 몸짓은 /찬란한 햇살로 아름답습니다//쏴아∼/밀려드는 바다의 연가!//거기 물방울의 벅찬 부서짐으로/태양빛 반짝이며/솜털같이 부드러운 여인의 얼굴에 고운 수를 놓습니다.//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파도의 유혹에/솔바람이/시샘하며 지나칩니다. //금빛 모래 속/ 숨어 있던 사랑 하나/두 팔로 바다를 들어/덩실 춤을 춥니다. - 전문                                꿈과 사랑이 시로 형상화 되었다고 정리,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관념이 형상물로 조형되었다는 의미다. 시로 형상화 되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도 내포된 뜻이다. 在天成象(재천성상),在地成形(재지성형),變化見矣(변화견의)라는〔周易 〕말에서 보듯이 象과 形을 구별하였고, 象은 하늘에서 形은 땅에서 이루어짐을 뜻하여 形과 象이합한 [形象]이란, 관념의 세계와 감각세계의 萬物을 일컫는다. 사랑과 꿈은 우리의 의식 내부에서 꿈틀대는 초감각적 바람의 뜻인데 이를 형체 있도록 조형하는 것이 시적 형상물(形象物)이 된다. 는 시인의 사랑과 꿈이 시 작품으로 구현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파도가 수평선 끝에 닿아 푸른색으로 출렁이는 1연은 이상과 꿈의 감각적 현상이다. 수평선이란 하늘과 바다의 접경 지역, 언제나 멀리서 손짓하고 있는 그리움의 표상이다. 여기에 푸른색으로 출렁이는 파도는 역동성을 부여하는 입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랑 하나 금빛 모래밭에 숨기고는 고이 간직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미지)이고, 휘어든 몸짓은 찬란한 햇살로, 아름답다 함은 사랑의 가시적 현란함이다. “파도의 유혹” “태양빛 반짝임” “바다” “여인의 얼굴” “솔바람” “금빛 모래” 등의 시어로 조형 되는 이미지는 사랑과 꿈의 형상을 위하여 동원 된 언어이고, 이러한 시어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감각적 형상물로 현시된다. 시인의 주제의식과 기교적 표현에 힘입어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켜 작품의 격을 높이고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다.     나 지금//그곳에 가고 싶어라//살갗 젖어드는 오솔길 따라 오르면//서울 시내가 장난감 병정 놀이터로 보이는 곳!//절간 앞 다다르면//향내는 코끝에서 그윽이도 향기로워// 기왓장 쓰러진 마당//내 영혼도 쓰러져 행복한 꿈으로,//당나귀 귀 쫑긋 세운 정재스님 반가운 //흘러내린 촛농 향내음 따라//가을이 내리는 곳//도봉산 석굴암/나 지금//그곳에 가고 싶어라……                                            - 전문   한번 읽고 나면 평범한 개인적 독백처럼 들리지만, 디시 찬찬이 읽어 보면 서정적 자아의 진솔한 의미와 만나게 된다.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영원회기의 궁극적 문제에 접근하는 존재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의 사유가 시적 화자를 통하여 이르고자 하는 이상향의 지향점인 고독한 섬나라가 보일 듯이 아른거리고 있다. 표면적인 소재와 배경은 범속한 세속의 거리이고 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산사의 마당 같은 곳이지만 그러한 시적 상관물이 이끄는 진의는 영원과 맞닿아 있는 철학적 사유의 형상물인 것이다. “나 지금 그곳에 가고 싶어라”로 시작된 발단부터 철학적 사유의 의지를 암시하는 의도된 표현으로 읽혀진다. “살갗 젖어드는 오솔길 따라 오르면 서울 시내가 장난감 병정 놀이터로 보이는 곳”과 같은 표현은 이 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거느린다. 살갗 젖어드는 병정놀이터 쯤으로 보이는 서울 시가지가 어울리면서 나 지금 그곳에 가고 싶어라까지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문맥화 하고 있다. 이 시가 서사적 구조가 아니고 서정적 자아의 독백적 구조이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 구축을 위한 객관적 상관물로 선택 되어 있음을 보는 것이다. 춘광 시인은 이러한 상징적 문맥을 통하여 보다 넓은 시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다른 시 한편을 더 보기로 한다.     내가 존재할 때는/창가에 든 햇살이/눈부실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아침 햇살 반짝이는/ 한강 위에 있을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하얀 분필을 내려놓고/박수를 받을 때입니다//내가 존재할 때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 할 때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진정 내가 존재할 때는/ 이렇게/밤을 깊이 불러들여/그리움을 쏟아/하얀 백지를 물들일 때라고/말할 수 없습니다. - 전문   이 작품 또한 철학적 사유의 산물로 볼 수 있는 상징적 구조라 할 수 있다. “내가 존재 할 때는”의 존재란 시어가 전편 5연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동일한 문장이 거듭해서 제시됨은 읽기에 지루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존재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환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상징적 문맥을 추출하는 근거를 찾게 된다. 무한이 열려 있고 그 실체를 영원히 밝힐 수 없는 나의 존재에 대한 실체를 암시와 환기를 통하여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이 상징시를 쓰는 시인이나 읽는 사람이 공감하면 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이 시의 묘미는 끝 연에서 기발한 반응을 보이는 곳에 있다. 4연까지는 내가 존재할 때의 상황 여건이 긍정적으로 진술 되었으나 끝 연에서는 같은 맥락의 존재 상황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존재할 때는…하얀 백지를 물들일 때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논리의 부정이나 비약이 아니라 기발한 시적 변용이다. 결국 나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개방성을 암시 한다고 하겠다. 긍정-긍정, 긍정-부정과 같은 문맥은 시에서 허용될 수 있는 내면적 타당성(내재율)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시작기법을 거리낌 없이 활용하고 있는 춘광은 좋은 시인이다.   시집 “꿈꾸는 시간”의 시 5편을 예시로 그의 시세계와 작품 경향을 살펴보면서 네 갈래의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첫째 그는 세계를 끌어안는 넓은 시인의 가슴을 가졌다. 둘째 복잡한 내면세계를 시적으로 질서지어 주는 양식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셋째 꿈과 사랑 같은 관념을 형상화 해내는 시적 지향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넷째 상징적 재문맥화를 통하여 철학적 사유의 심연을 탐색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철학의 빈곤이라는 작금의 우리 시단에 춘광 시인과 같은 철학적 사유의 심연을 탐색하는 시작품이 많이 생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끝”              
438    박용철 시론을 중심으로 댓글:  조회:4717  추천:0  2015-04-20
  ● 연기와 화염을 뿜으며               타오를 수 있는 이 무명화(無名花) - 박용철 시론 -●                                             / 김정수 1.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박용철의 시론을 「시적 변용에 대하여」(『삼천리 문학』. 1938)라는 그의 글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순수시 용어의 문제와 시문학파 우리는 일반적으로 '순수문학'과 '순수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중에서 '순수문학'이란 비평적 용어라기 보단 일종의 관습적 어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즉 상업적 '대중문학'의 상대적 용어로 정착한 어휘라서 뚜렷한 학술적, 비평적 보편함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다만 편의적으로 이용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순수시'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순수시'에 비길 만한 '대중시'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이 용어는 우리 문학의 뚜렸한 유파적 변별의식과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 용어의 사용은 각기 다르다. 어떤 논자들에게는 이 용어가 현재 문제되고 있는 '순수문학'이라는 용어와 함께 '예술파' '예술지상주의' '기교주의' 등등의 용어가 동일한 함의를 갖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순수시의 범주를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시이자 예술품으로 완성된 시라고 이해하는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30년대 초반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시인군이 여기에 포함될 터이다. 이로 볼 때 시문학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향에 '순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비평적 기준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문학파의 시론은 순수시론이 아닌 시문학파 시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시문학파의 발생요건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는데, 그 요인들은 크게 문학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문학 외적인 요인으로는 '당대 정치적 현실의 악화' 문제와 한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광범한 확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문학 내적 요인으로는 안서 김억의 시론 작업과 해외 문학파의 성립, 그리고 모더니즘시와 시론의 형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시문학파는 30년대 한국시단의 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30년대 문학의 전방위적인 반 카프 경향이라는 심리적 공조가 보더 심층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3. 박용철, 「시적 변용의 길」 그는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용해한다"고 말한다. 즉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떠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줄, 지나간 격정이 모두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는 보통 생각하는 것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험만으로 시는 되지 않는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의미와 감미(甘味)를 모으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의미와 감미를 모은다는 것은 박용철에게는 기억의 행위이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등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이런 기억의 행위는 곧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 밤의 사랑의 기억, 진통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 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들이 시인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이 많아진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이름없는 것이 된 다음이라야" 한 줄의 시가 만들어진다. 즉, 기억이 기다림을 통하여 나와 일체가 될 때 시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열 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줄의 좋은 시도 쓰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좋은 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용철은 "시인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포기 나무이다"고 말한다. 즉 시인이 "뿌리를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를 호흡하는 나무로 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꽃을 피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박용철은 시인을 두고 "비상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정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고 말한다.  「시적 변용의 길」이라는 글에서 박용철은 시를 쓰는 과정의 구체화와 함께 시인의 자질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박용철에게 시는 시인의 자기완성이다. 시는 곧 시인의 삶 자체이자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일의 시인 릴케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심령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 물어보라 - 그 글을 쓰지 않으면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그런 내심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건설하라"  4. 박용철 시론의 의의 박용철 시론의 의미는 창작 체험의 내밀한 부분을 최초로 언표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시어로서의 언어가 지닌 마술성을 이 땅에서 최초로 논리화했다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이 제대로 된 한국어의 훈련 내지는 기술의 습득을 지니지 않고 조야한 논리나 구호만으로 시를 구성하려 했던 잘못에 대한 엄숙한 경고의 의미도 지닌다. 뿐만 아니라 박용철 논리의 많은 부분은 독특한 시론이 아니라 시를 쓰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환기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즉, 시인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시적 완성에의 경로를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1930년대에 형성된 이 시문학파 시론은 우리 근대문학이 그 시작에서 부터 빠져버렸던 오류를 극복하는데 중추적 역활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란 문학이며 그것은 언어를 매재로 하는 예술의 하나일뿐이라는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널리 인지케 함으로써 우리 근대 문학의 한 단계 비약을 가능케 했다는 말이다. 5. 나가면서 조금씨 게을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아닌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젠 정말 떠날 모양...
437    詩야 나와 놀아보자... 댓글:  조회:4657  추천:0  2015-04-19
  @@ 시는 언어의 꿈이요, 삶의 증거이다. 시를 읽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시를 읽지 않고 잘 살 수는 없다. 시는 우리의 잃어버린 세계를 보여주고 어느 순간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자아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시를 읽어야 한다. 좋은 시를, 당신을 위로하는 시가 아닌 삶을 직시하는 고통을 주는 시를. 이를테면 거리에 좌판을 펼친 노인의 감은 눈과 벌어진 입이 만들어 준 주름진 노래와 짐 가득 실은 수레를 끄는 아버지와 딸의 뜨거운 노래, 창녀의 찢어진 입술에서 나오는 새의 노래등 시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다. 그러면 당신은 잘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적어도 좋은 시는 삶의 단단한 벽에서 터져 나온 바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없다면 생도 없다.   1. 시의 정의  시의 어원 같은 것은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리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엘리어트의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 말은 시대에 따라서, 시인에 따라서, 시의 종류에 따라서 시를 보는 안목이 모두 다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지극히 상식적인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다.     " 시는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운율적인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언어 예술이다"(운문 문학)     "시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유기적 구조를 지닌 운율적 언어로 형상화한 운문문학의 한 갈래이다." 1) 동양의 시관   동양 일원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詩'라는 한자의 구조를 보면 '言'과 '寺'의 합자(合字)임을 알 수 있다. '言'은 모호한 소리인 '음(音)'이나 말을 나타내는 '담(談)'이 아닌 '분명하고 음조가 고른 말'을 뜻한다. '寺'는 '持'와 '志'의 뜻을 가지고 있다. '持'란 손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말하며 '志'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서 곧게 나감'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시라는 말 속에는 '손을 움직여 일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동양의 시에도 서구와 같은 창작이나 행동의 뜻이 담긴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詩三百 一言而蔽之曰思無邪(시 3백 수는 한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孔子 (2) 詩言志(시는 뜻을 말로 나타낸 것)→書經   * 동양적 시관의 본질 : 흔히 '사무사(思無邪)'를 교훈적인 입장의 표명으로 보고, 동양 시관의 본질을 여기에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자가 편찬한 시경이 서정시로만 이루어져 있는 점이라든지, 주희가 시를 '좋은 소리와 마디가 있는 말에 의한 성정의 자연스런 발로'라고 본 점을 고려할 때, 서정적인 면이 결코 부차적인 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서양의 시관 (1) 시는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이다.→Aristoteles (2) 시는 힘찬 감정이 자유롭게 분출된 것이다.→ W. Wordsworth (3) 시는 체험이다.→ R.M.Rilke (4)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이다.→ E.A.Poe (5)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도피이고,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Eliot (6) 좋은 시는 내포와 외연의 가장 먼 양극에서 의미를 통일한 것이다.→ Allen Tate (7) 시는 영원한 진실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이다.→ P.B.Shelly (8) 시는 기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 Matthew Arnold   * 서양 시관의 변화 과정 : 아리스토넬레스의 시에 대한 정의는 희곡과 서사시를 염두에 둔 이야기 문학이었다. 이러한 모방론의 전통은 18세기까지 이어져,서정시를 시문학 전체에 있어서 하급의 장르로 생각했었다. 19세기 이후 표현론이 대두하면서 비로소 시가 시인이 도달한 놀라운 정신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황홀하게 하고, 깊이 감동시키며, 심오한 즐거움을 준다는 주장을 하게되었다.     3) 현대의 시관 :   *일반적으로, 고양된 시인의 정서에 의해 독자에게 감흥을 줌으로써 사람의 윤리 의식의 밑바탕을 튼튼히 해 준다는 표현론적 효용론에 선다.  *시를 시인의 내부에 있는 본질과 연결시켜, 구체적인 작품보다 어떤 정신이나 성질로 보는 태도가 있다.    시의 정의 :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 한국어로 보통 시라고 할 때에는 그 형식적 측면을 주로 가리켜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시작품(詩作品:poem)을 말할 경우와, 그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내실(內實)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정(詩情) 내지 시적 요소(詩的要素:poetry)를 말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리듬·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視覺)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또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의 일종으로, 거기에서는 언어의 정동적(情動的)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배열과 구성(構成)이 요구된다. 후자에 관해서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소설·희곡 등의 문학작품으로부터 미술·음악·영화·건축 등의 예술작품, 더 넓혀서 자연이나 인사(人事)·사회현상 속까지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시는 크게 서정시(敍情詩)·서사시(敍事詩)·극시(劇詩)의 세 가지로 구별한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근대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영어의 lyric poem이나 프랑스어의 po럐e lyrique는 본시 lyre(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epic poem)는 민족·국가의 역사나 영웅의 사적(事蹟)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극시(dramatic poem)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韻文) 내지 운문에 의한 극을 말하는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괴테 등의 희곡이 이에 해당한다. 시에는 그 밖에 흔히 행(行)을 나눠서 쓰는 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산문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 시적 감명(詩的感銘)을 담은 산문시(prose poem)가 있는데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마르도롤의 노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등이 유명하다. 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어를 배열·구성하는 정형시(定型詩)가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은 형식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자유시가 있으며 또한 그 내용에 따라 생활시(生活詩)·사상시(思想詩)·연애시(戀愛詩)·종교시(宗敎詩)·풍자시(諷刺詩)·전쟁시(戰爭詩) 등의 호칭도 쓰여지고 있다. 시 관련 어록 [1]시는 악마의 술이다. 《A.아우구스티누스/반회의파 反懷疑派》     [2]시를 쓰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그건 낚시질하고 똑같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좋은 수확이 되는 법이거든. 《E.크라이더/지붕 밑의 무리들》     [3]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호라티우스/시론 詩論》     [4]시는 신(神)의 말이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운문(韻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充溢)한다. 미와 생명이 있는 곳에는 시가 있다. 《I.S.투르게네프/루딘》     [5]나의 시는 어지럽지만 나의 생활은 바르다. 《M.V.마르티알리스/풍자시집 諷刺詩集》     [6]시란 것은 걸작이든가, 아니면 전연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J.W.괴테》     [7]위대한 시는 가장 귀중한 국가의 보석이다. 《L.베토벤》     [8]시는 거짓말하는 특권을 가진다. 《플리니우스》     [9]시란 미(美)의 음악적인 창조이다. 《E.A.포》     [10]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인다. 《E.A.포》     [11]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R.W.에머슨》     [12]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P.B.셸리》     [13]시란 그 시를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게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상의 심벌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예술이다. 《W.C.브라이언트》     [14]즉흥시는 진정 재지(才知)의 시금석(試金石)이다. 《J.B.P.몰리에르》     [15]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 《C.P.보들레르》     [16]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C.P.보들레르》     [17]감옥에서는 시는 폭동이 된다. 병원의 창가에서는 쾌유에의 불타는 희망이다. 시는 단순히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시는 부정(不正)의 부정(否定)이 된다. 《C.P.보들레르/낭만파(浪漫派) 예술론(藝術論)》     [18]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 《볼테르》     [19]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시구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P.클로델/입장(立場)과 제언(提言)》     [20]나는 부재(不在)를 위해서 제기된 언어다. 부재는 모든 나의 재행사(再行使)를 격파한다. 그렇다. 그것은 다만 언어뿐이라는 것의 재빠른 소멸이다. 그리고 그것은 숙명적인 오점이며 헛된 완성이다. 《Y.본푸아》     [21]시의 세계는 식물계, 이것은 또한 지상의 사랑과 미의 왕국이다. 《R.기카드》     [22]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선 안 된다.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J.C.F.실러》     [23]과학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진리를 획득하고 전달하는 것이며, 시의 적절하고 직접적인 목적은 즉흥적인 즐거움을 전달하는 것이다. 《S.T.콜리지》     [24]내용이 끝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황금어의 피안에, 도시 성곽의 외부에, 토론의 형자(形姿)를 뒤로 하고, 사고 체계를 벗어나서 신비로운 장미는 개화한다. 서릿발의 열기(熱氣) 속에, 도배지의 희미한 무늬 속에, 제단의 뒷벽 위에, 피어나지 않는 불꽃 속에 시는 존재한다. 《M.아널드》    [25]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 《M.아널드》     [26]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M.아널드》     [27]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28]말은 어느 편이냐 하면, 시의 수면기를 재촉하는 부분이며, 상상(想像)이 시의 생명이다. 《O.펠섬/각오 覺悟》     [29]시는 최상의 행복, 최선의 정신, 최량이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P.B.셸리/시가옹호론 詩歌擁護論》     [30]고대인의 시는 소유의 시며, 우리들의 시는 동경의 시다. 전자는 현재의 지반 위에 굳게 서지만, 후자는 추억과 예감의 사이를 흔들려 움직이고 있다. 《A.W.슐레겔》     [31]시란 어휘를 사용하여 상상력 위에서 하나의 환상을 산출해 내는 예술을 의미한다. 《T.B.매콜리》     [32]시란 이성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은 것을 산출함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S.존슨》     [33]시인은 그의 예민한 흥분된 눈망울을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굴리며, 상상은 모르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의 펜은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줍니다. 《W.셰익스피어》     [34]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5]시인의 시는 국어처럼 직접적이고 자연스런 것이어야 한다. 《W.B.예이츠》     [36]나에게 있어서 시는 목적이 아니고 정열이다. 《E.A.포》     [37]시적(詩的)이 아닌 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A.지드/사전(私錢)꾼》 [38]시는 모든 예술의 장녀(長女)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친이다. 《W.콩그리브》     [39]만약 사람이 마력적인 시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때부터 그대는 아름다운 생(生)을 알게 된다. 《J.F.아이헨도르프》     [40]도덕적인 시라든가 부도덕한 시라든가에 대해서 말할 것은 아니다. 시는 잘 쓰여져 있는가 아니면 시원찮게 쓰여져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O.F.O.W.와일드/영국의 르네상스》     [41]시는 예술 속의 여왕이다. 《스프라트》     [42]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 《R.M.릴케》     [43]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4]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R.M.릴케/말테의 수기(手記)》     [45]시란 진리며 단순성이다. 그것은 대상에 덮여 있던 상징과 암유(暗喩)의 때를 벗겨서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비정하고 순수하게 될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J.콕토/암살(暗殺)로서의 미술(美術)》     [46]열여덟 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은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나는 가끔 시를, 갱도(坑道) 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 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성자여야 합니다. (*장 콕토와의 인터뷰) 《P.토인비》     [47]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러고 나서 매장시키는 지상의 역설이다. 《C.샌드버그》     [48]시는 근본적인 언어방법이다. 그것에 의해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다. 《M.C.무어》     [49]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다. 《T.S.엘리엇/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간략사전(簡略辭典)》     [50]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T.S.엘리엇/전통(傳統)과 개인(個人)의 재능(才能)》     [51]시의 세계로 들어온 철학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 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에서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T.S.엘리엇/평론선집 評論選集》     [52]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T.S.엘리엇/시(詩)의 효용(效用)과 비평(批評)의 효용(效用)》     [53]시란 「무엇은 사실이다」 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T.S.엘리엇》     [54]리듬과 운율은 시에 있어 인위적이며 외면적인 첨가물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때 이들은 점점 더 무미하게 되어 드디어는 경시적이고 방해적 요소가 되고 만다. 《F.S.플린트》     [55]나는 정서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감각 속에 작자가 느낀 것에 상응하는 하나의 진동을 일으키는 것――시의 특유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A.E.하우스먼》     [56]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 《I.A.리처즈》     [57]한 편의 시는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고 의식적 성격을 갖춘다. 시가 가지는 언어의 용법은 회화의 용어와는 달리 의식적이며 화려한 꾸밈새가 있다. 시가 회화의 용어나 리듬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것과 대조를 이루게 마련인 규범을 미리 전제로 하고 의식적으로 형식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W.H.오든》     [58]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 《M.하이데거/시론 詩論》     [59]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 버리고 있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 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뀐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M.하이데거/횔덜린과 시(詩)의 본질(本質)》 [60]시는 법칙이나 교훈에 의해 완성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감각과 신중함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J.키츠》     [61]아무리 시시한 시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이해한다면 좋은 시를 읽어 버림으로써 받은 인상보다야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나. 내가 시를 읽고 싶지 않을 때, 시에 지쳤을 때, 나는 항상 자신에게다 그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이르는 바일세. 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히 아름다운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진행중일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하네. 그래서 언젠가 어느 순간에 내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 그 훌륭한 감정을 꺼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네. 《B.A.W.러셀/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對話)》     [62]시는 보통의 이성의 한계를 지난 신성한 본능이며 비범한 영감이다. 《E.스펜서》     [63]시는 어떤 리듬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체계화시켜 반복한다. 이것이 운율이다. 《R.S.브리지스》     [64]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 《B.존슨》     [65]시는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법칙과 패턴을 제공해 준다. 《B.존슨》     [66]시의 으뜸가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J.드라이든》     [67]시란 우리에게 다소 정서적 반응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는 언어이다. 《E.A.로빈슨》     [68]한 편의 시는 그 자체의 전제(前提)를 훌륭하게 증명해 놓은 것이다. 《S.H.스펜더/시(詩)를 위한 시(詩)》     [69]시는 결국 야회복을 입은 산문은 아니다. 《J.콕토》     [70]실러는 어떤 편지에서(괴테에게 쓴 것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시적(詩的)인 기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실러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시적인 기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연을 받아들일 때의 기분이고, 사상이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동하고 있다고 느낄 때의 기분일 것이다. 《L.비트겐슈타인/반철학적(反哲學的) 단장(斷章)》     [71]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무 데에서도 찾지 못한다. 《J.주베르/팡세》     [72]미합중국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詩)이다. 《W.휘트먼/풀잎》     [73]위대한 시는 아주 오래오래 공동의 것이고, 모든 계급과 얼굴색을, 모든 부문과 종파를, 남자만큼이나 여자를, 여자만큼이나 남자를 위한 것이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W.휘트먼/풀잎》     [74]언어는 이미 강제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으로 시는 보편화를 체현(體現)하고 사상에 활기를 주고, 다시 말하자면 우수한 실재(實在), 실제의 세계보다 고귀하고 더 선택된 세계를 낳게 된다. 시는 신자(信者)의 눈으로 볼 때 종교적 신앙이 부활에서 기대하는 효능을 사물에 대해서 부여한다. 시는 사물을 더욱 아름답고 순수하고 위대한 것으로 표현하며, 불멸성의 후광(後光)으로 이것을 둘러싼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른 생활양식의 예언자, 변용을 이루는 자연과 인간의 직관자이지만 산문은 이 세계의 언어이다. 시인은 올림포스의 주민이 한때 하계(下界)에서 생활을 한 자이며, 테살리아의 페레스 왕 아드메도스 곁에서 양을 지키는 아폴론이다. 거기서 시를 신들의 언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문자 그대로 진실인 것이다. 《H.아미엘/일기 日記》     [75]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시도 경탄을 강요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6]몇 개의 발성으로 마치 주문(呪文)과도 같이 세속언어와는 별개의 새롭고 온전한 어휘를 재창조하는 시구는 말의 완전한 독립을 이룩한다. 《S.말라르메/예술(藝術)의 이단(異端)》     [77]비전의 확장. 《K.지브란/나는 네 행복(幸福)을 기린다》     [78]빅토르 위고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표현은 일종의 기이함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한 작품에 그런 직접적 표현이 범람하고 있으면 그 작품 전체의 시적 아름다움을 말살하고 말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79]시는 이해하기보다도 짓기가 더 쉽다. 《M.E.몽테뉴/수상록 隨想錄》     [80]시라는 것은 시적 천재 그 자체로부터 생기는 특성이며, 이와 같은 시적 천재가 곧 시인 자신의 시혼에 비치고 있는 심상(心像)이나 사상 또는 정서를 사로잡아서 이것을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S.T.콜리지/시(詩)의 철학적(哲學的) 정의(定義)》     [81]시는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수(精髓)이다. 《W.워즈워스/서정민요집 抒情民謠集》     [82]위대한 시에는 이러저러한 것――깊은 생각, 훌륭한 소리, 또는 생생한 이미저리(imagery)――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은 한낱 무지몽매한 독단에 불과하다. 시는 생각이 없을 경우는 물론이고 의미가 없을 경우에도 거의 성립할 수 있고, 혹는 감각적(또는 형식적) 구조 없이도 「거의」 성립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도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극점(極點)까지 도달한다. 《I.A.리처즈/시(詩)의 분석(分析)》     [83]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맥뤼시/시론 詩論》     [84]시(詩)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詩篇)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 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험들은 끝없는 서론(緖論)으로 준비되는 것인 데 비하여 시는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거부한다. 시는 의혹을 거부한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떤 침묵의 서두(序頭) 정도이다. 우선 시는 속이 텅 빈 말을 두드리면서, 독자의 영혼 속에 사고(思考)나 중얼거림의 어떤 계속성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산문(散文)과 서투른 멜로디를 침묵시킨다. 그러고 나서 진공(眞空)의 울림을 거쳐서 시는 저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G.바슐라르/시적(詩的) 순간(瞬間)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순간(瞬間)》 [85]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詩經)에 있는 삼백 편의 시(詩)는 한 마디로 말해 사악함이 없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論語 爲政篇》     [86]고시(古詩)는 충후(忠厚)를 주로 했다. 시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 그 의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기평(譏評)할 때에는 그 소위(所爲)의 악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벼슬의 존비와 차안의 미려를 들어 백성의 반응을 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식 蘇軾/동파전집 東坡全集》     [87]시란 뜻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모시 서 毛詩 序》     [88]시란 천지의 마음이요, 군덕(君德)의 사원이며 만물의 문호다. 《연감류함 淵鑑類函》     [89]시부(詩賦)란 선하거나 추한 덕을 칭송하는 길이며, 슬프거나 즐거운 정을 배설하는 길이다. 《왕부 王符/잠부론 潛夫論》     [90]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백거이 白居易》     [91]시란 정신의 떠오른 영화(英華)요, 조화의 신비한 생각이다. 《서정경 徐禎卿》     [92]시에 아홉 가지 마땅치 않은 체격이 있으니,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한 편 안에 고인의 이름을 많이 썼으니, 이것은 한 수레 가득히 귀신을 실은 체격이다. 고인의 뜻을 모조리 앗아다 쓴 것이 있으니, 용한 도적질도 오히려 옳지 못한데 도적질조차 용하지 못하니, 이것은 서툰 도적이 잡히기 쉬운 체격이다. 어려운 운을 달기는 했는데 근거(根據)한 곳이 없다면 이것은 쇠뇌를 당겼으나 힘이 모자란 격식이다.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운을 번드레하게 달았다면 이것은 술을 제 양에 넘도록 먹은 격이다. 어려운 글자를 쓰기 좋아해서 남을 쉽게 현혹하려 했다면 이것은 함정을 파 놓고 장님을 인도하는 체격이다. 사연은 순탄하지 못하면서 끌어다 쓰기를 일삼는다면 이것은 강제로 남을 내게 따르게 하려는 체격이다. 속된 말을 많이 쓴다면 이것은 시골 첨지가 모여 이야기하는 체격이다. 기피해야 할 말을 함부로 쓰기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존귀를 침범하는 체격이다. 사설이 어수선한 대로 두고 다듬지 않았다면 이것은 잡초가 밭에 우거진 체격이니, 이런 마땅치 못한 체격을 다 벗어난 뒤에야 정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3]무릇 시(詩)는 뜻을 주장으로 하는데, 뜻을 갖추기가 제일 어렵고 사연을 엮는 것이 그 다음이다. 뜻은 또한 기(氣)를 주장삼으니 기의 우열(優劣)에 따라 깊고 얕음이 있다. 그러나 기는 하늘에 근본하여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가 모자라는 자는 글을 만들기에만 힘쓰고 뜻을 먼저 두려 하지 않는다. 대개 그 글을 새기고 치장함에 있어서, 구절을 단청(丹靑)하면 실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깊고 무거운 뜻이 없어서 처음 읽을 때는 잘된 듯하나 두 번째 씹으면 벌써 맛이 없다. 《이규보 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94]세상에서 말하기를, 시는 문(文)의 쇠약한 것이요 율(律)은 시의 변한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아로새기고 엮어 가는 공교함만을 가리킨 것뿐이다. 대체로 성정(性情)을 다스리고 풍속의 교화에 통달하는 일이 시 아니고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노수신 盧守愼/소재집 蘇齋集》     [95]무릇 남겨 두는 시는, 말은 간단하고 뜻은 극진한 것을 아름답다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과장하거나 풍부하고 화려할 것은 아니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6]시라는 것은 기(氣)를 주(主)로 한다. 기(氣)는 성(性)에서 나오고 뜻은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온다. 정이란 것은 즉 뜻이다. 그리고 신기(新奇)한 뜻은 말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다. 자칫하면 생경하고 난삽하게 된다. 그러나 문순공(文順公) 같은 이는 경사백가(經史百家)를 골고루 열람하고 그 꽃다운 향기에 삶아지고 고운 채색에 물들여졌다. 그런 까닭에 그 말은 자연히 풍부하고 고와서 비록 새로운 뜻의 지극히 미묘하고 어려워서 형상하기 어려운 곳이라도 그 말이 곡진(曲盡)하고 다 정숙(精熟)하다. 대체로 표현하는 재주가 시정(詩情)을 이기면 비록 아름다운 뜻이 없더라도 말은 오히려 원숙하지만, 시정이 표현하는 재주를 이기면 말이 비근(鄙近)하고 산만하여서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정과 재주가 겸비된 뒤라야 그 시는 볼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7]에 이르기를, 「기(氣)는 싱싱한 것을 숭상하고 말은 원숙(圓熟)코자 하는데, 초학(初學)의 시는 기가 싱싱한 다음이라야 장년(壯年)이 되어서 기가 표일(飄逸)하고, 장년의 기가 표일한 다음이라야 노년(老年)이 되어서 기가 호탕(豪宕)하여진다.」 하였다. 《최자 崔滋/보한집 補閑集》     [98]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따라 내려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천인 성명의 법칙을 연구하고 인심 도심의 분별을 살펴 그 때묻은 잔재를 씻어 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정약용 丁若鏞/증언 贈言》     [99]대체로 두보(杜甫)의 시가 모든 시인들의 시보다도 으뜸인 점은 삼백 편의 사상을 잘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삼백 편은 모두가 충신·효자·열부·친우들의 측달충후한 사상의 표현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을 전하고 악을 징계하는 사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의지가 확립되지 못하고 학식이 순정하지 못하며 큰 도를 알지 못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가 시를 지을 수 없다. 《정약용 丁若鏞》     [100]보기 좋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모아 놓고 시라고 하는 것이야 비천한 잡배의 장난에 불과하다. 시는 선언이다. 만천하의 현재뿐 아니라 진미래제(盡未來際)까지의 중생에게 보내는 편지요, 선언이요, 유언이다. 《이광수 李光洙》     [101]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다. 신의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다. 구약에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 토로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광수 李光洙/문학평론 文學評論》     [102]작품에는 그 시상(詩想)의 범위, 리듬의 변화, 또는 그 정조(情調)의 명암에 따라, 비록 같은 한 사람의 시작(詩作)이라고는 할지라도, 물론 이동(異同)은 생기며 또는 읽는 사람에게는 시작 각개의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시작 자신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엄연한 각개로 존립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치 산색(山色)과 수면(水面)과 월광성휘(月光星輝)가 모두 다 어떤 한때의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달리 보이도록 함과 같습니다. 물론 그 한때 한때의 광경만은 역시 혼동할 수 없는 각개의 광경으로 존립하는 것도, 시작의 그것과 바로 같습니다. 《김소월 金素月/시혼 詩魂》     [103]시란 작렬이다. 시의 생성은 아메바적 분열작용에서만 유래한다. 시와 시인은 같은 조각이다. 《김상용 金尙鎔》     [104]시를 직업으로는 못 한다. 정절(貞節)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김상용 金尙鎔》     [105]시란 곧 참이다. 《함석헌 咸錫憲/아름다움에 관하여》     [106]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7]뒤집어서 말하자면 시는 새벽에 엄습하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그것을 이기는 기도, 삶 자체의 가장 순수한 보람의 사랑보다도 어느 의미에서는 더 충족적이며 순수한 자각과 생명 욕구의 가장 포괄적인 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시가 더 내적이며 더 구체적이며 더 현실적인 삶의 징표(徵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삶의 내용, 가장 선택된 마지막 낙원, 가장 가능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되는 셈이다. 《박두진 朴斗鎭/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108]시는 천계(天啓)다. 그러나 그 천계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09]시란 지·정·의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지훈 趙芝薰/영원(永遠)과 고독(孤獨)을 위한 단상(斷想)》     [110]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 《신석정 辛夕汀/나는 시(詩)를 이렇게 생각한다》     [111]시에 있어서의 기술이란 필경 언어 사용술을 말하는 것인데, 시상은 언어를 통하여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상에는 이미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저절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안에서 언어로 형성되는 시상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면 시가 된다. 《오지호 吳之湖》     [112]시란 사랑이다. 《김영일 金英一/동심 童心》     [113]시 또한 짙은 안개가 아닌가. 답이 없는 세계, 답이 있을 수 없는 세계, 그 안개 같은 실재를 지금 더듬고 있는 거다. 《조병화 趙炳華/인생(人生)은 큰 안개이다》     [114]피아노가 음악의 모체라면 시는 문학의 모체이다. 어떠한 산문작품이라 할지라도 시정신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문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흑구 韓黑鷗/싸라기 말》     [115]시작품(포엠)이란 포에지와 의미와의 차갑고도 뜨거운 긴장에서만 우러나오는 산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포에지와 의미 사이에 벌어지는 알력 갈등의 에너지는 실인즉 전달되어야 할 가장 뜻깊은 시의 에너지인지도 모릅니다. 《신동집 申瞳集/모래성 소감(所感)》     [116]시는 여하튼 어떤 양상에 있어서는 산문(散文)의 특징을 피하려는 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자식(棋子式)의 언어가 아니고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언어이다. 그것은 감각을 그 모양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직각(直覺)의 언어에 대한 하나의 타협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주의를 끌며, 우리들로 하여금 구상적(具象的)인 사물을 계속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우리들이 추상적 과정 안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것은 청신한 형용사나 청신한 비유를 골라낸다. 딴은, 그것이 새롭고 우리들은 낡은 것에 싫증 났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낡은 것이 구상(具象)의 것을 전달하기를 멈추고 추상적인 기자(棋子)가 되기 때문에서다. 시인은 「배가 범주(帆走)하였다」는 기자식의 말을 쓰는 대신, 「뱃길을 더듬었다」고 하여 구상적인 심상(心象)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시각적인 의미는 오직 비유의 새 그릇에 의해서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산문은 그러한 것이 새어 버리는 낡은 항아리이다. 시에 있어서의 심상은 한낱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직각적 언어의 본질 그 자체인 것이다. 시는 우리들을 데리고 지상(地上)을 걸어가는 보행자이며, 산문은 우리를 목적지로 운반하는 열차인 것이다. 《미상 未詳》     [117]시는 현실 이상의 현실, 운명 이상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창조력은 언제나 현세적 속박의 반작용의 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어령 李御寧/통금시대(通禁時代)의 문학(文學)》     [118]「패러독스」 「아이러니」 「위트」 「메타포」 여러 가지 현대시의 무기는 새로운 신화를 우리 앞에 펼쳐 주고 있다. 《이어령 李御寧/전후문학(戰後文學)의 새 물결》     【시·묘사】     [119]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낡은 훈장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맷자락에 붙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약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둠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시는 비등해야 하며     진실을 나타내지 않는다     슬픔의 모든 역사를 표현함에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엔     기운 풀과 바다 위의 등대불들     시는 의미해선 안 되며     존재해야 한다 《A.매클리시/시학 詩學》     [120]사람들은 시를     조그마한 사슬에 달아     내복 밑     벌거벗은 피부 위에 달고 있다. 《A.A.숄/시집 詩集》     [121]무상하기에 무상하지 않고     일시적이기에 결정적이며     시간적이기에 무시간적이고     단편적이기에 완전하며     무방비이기에 강력하며     모방할 수 있기에 반복할 수 없고     비논리적이기에 현실적이고     포착할 수 없기에 포착할 수 있다. 《A.A.숄/시집 詩集》     [122]나의 시의 장부(帳簿)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의……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시도 없이 나는 무(無) 앞에 있다. 《R.크노/시법(詩法)을 위하여》     [123]나의 시(詩)는 싸움이다. 《W.바이라우흐/나의 시(詩)》     [124]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운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촌융일 田村隆一/사천(四千)의 날과 밤》     [125]붓 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두보 杜甫》     [126]눈 내려 이 해도 늦어 가는데,     풍진은 하 번져서 수습 못하네.     벗님네 아스라이 서울을 떠나,     타향의 나그네로 오랜 세월을.     상대하니 문득 기쁜 얼굴이지만,     슬픈 노래 흰 머리털 어찌하리오.     소매 속에 감춰 놓은 몇 수의 시는,     방황하는 인생을 위로해 주네.     雨雪歲將晩     風塵浩未收     故人京國遠     久客異鄕遊     相對忽靑眼     悲歌堪白頭     袖中詩幾首     聊得慰淹留 《정도전 鄭道傳/삼봉집 三峯集》     [127]한 줄기 시의 연간(聯間)을 걸어가면서     어디엔가 반짝이고 있을     나의 오늘을 나는 짚어야 한다. 《신동집 申瞳集/어떤 시(詩)》     [128]이 고운 화병에 무엇을 꽂을 것인가. 옳지 그렇다. 시를 꽂자. 앵도알같이 열린 시를, 백합꽃같이 핀 시를, 난초잎같이 솟은 시를 멋지게 꽂는 것이 좋겠다. 《신동문 辛東門/수정화병(水晶花甁)에 꽂힌 현대시(現代詩)》     [129]겨울 하늘은 어떤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있는 듯 없는 듯 무한(無限)은     무성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나무를 나체(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을 듯 하는 것이     시(詩)일까,     언어(言語)는 말을 잃고     잠자는 순간,     무한(無限)은 미소하며 오는데     무성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의 사건으로 떨어져 가고,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명멸하는 그것이     시일까, 《김춘수 金春洙/나목(裸木)과 시(詩) 서장(序章)》     [130]문득 한 줄의 시가 일어섰다.     작업모를 쓰고     장갑을 끼고     시는 어둠의 진한 성감대(性感帶)를     후볐다.     잠시 후 꽃의 기침 소리가 나고     텅빈 마당이 다시 조립되는 소리가 나고     삽질하는 시의 섬광이 번쩍이고 《이규호 李閨豪/시(詩)가 아침을》     [131]더듬거리며 되찾는 한두 마디 말     말에 시가 깃드는 아픔이여     시(詩) 시시 시줄의 눈발 따라     내 어린것보다는     쉽사리 익혀 갖는 나의 말법. 《박경용 朴敬用/폭설 暴雪》     [132]그러는 시의 주소는 여기에 있다. 지리하고 긴 회임(懷姙),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희귀한 개성적 심상(心像),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 나는 긴 방황. 《김남조 金南祚/시(詩)의 주소(住所)는 어디인가》     【격언·속담】     [133]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있다. 《중국 中國》     [134]시(詩)는 낳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니다. *The poem is born, not made. (*시는 체험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 《영국 英國》     【고사·일화】     [135]뮤즈 여신들은 자주 천상 올림포스에 올라가 그 아름다운 노래로 신들의 잔치 자리에 흥을 돋우었으나, 여느 때는 보이오티아 지방의 헬리콘 산에서 살았다. 헬리콘 산의 언덕진 산비탈은 향긋한 나무로 뒤덮여 독사의 독까지 삭아 없어진다는 성역(聖域)으로, 맑은 샘터가 많아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이 아가니페 샘터가 있고, 또 천마(天馬) 페가수스가 지나간 발굽 자리에서 솟아나왔다는 히포크레네 샘터가 있다. 이 샘물을 마시면 영묘(靈妙)한 시상(詩想)이 저절로 떠오른다. 여신들은 또한 파르나소스 산을 즐겨 찾아가 아폴론 신과 자리를 같이하곤 했다. 이 산기슭에 키스탈리아라는 샘터가 있었는데, 역시 여신들의 성지(聖地)로, 그 샘물을 마시면 시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 샘터는 케페소스 강으로 흘러 들어 황천(黃泉)의 스틱스 강에 통한다는 것이다. 현대시가 메마른 것은 여신들의 이 아가니페 샘, 히포크레네 샘, 그리고 키스탈리아 샘이 말랐다는 뜻인가?     [136]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단테의 시를 읊으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 버릇이 되어 시의 구절 구절의 끝마디마다 「이랴이랴」 하면서 당나귀 궁둥이를 두들겼다. 이것을 보고 있던 시인 단테는 벌컥 화를 내며, 「이놈아, 시 어느 구절에도 '이랴이랴'라고 써 놓지는 않았어[137]후에 존슨 박사의 전기를 쓴 보즈웰이 존슨 박사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 솜씨 좋은 요리사가 탁월한 시인보다 세상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존슨 박사가 점잖은 표정으로, 「거리에 있는 개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라고 대답하였다.     [138]앙드레 비이가 무어를 회견했을 때 무어는 이상한 말을 하였다. 「영국의 작가 토마스 하디는 자꾸 문법에 틀리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 싫증이 나서 산문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시를 쓰게 된 것이오.」 「그렇다면 산문보다도 시를 쓰는 것이 수월하시오?」 이렇게 묻는 비이에게 무어는 대답하기를, 「그렇지요. 왜냐 하면 시에는 여러 가지 제재와 규칙이 있어서 실상 그것들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하였다.     [139]독일에서 나폴레옹과 괴테와의 회견 때의 일이다. 「오늘의 회견 기념으로 시(詩) 한 수를 지어서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나폴레옹이 청하자, 괴테는 대답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시를 바치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나폴레옹은 되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후회하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고 괴테는 그의 독재성을 은근히 비판하는 대답을 했다.     [140]어느 여름 괴테는 실러와 같이 드레스덴의 케르나 포도원에 갔다. 케르나는 독일 관리로서 실러의 친구였다. 쓸쓸한 시골에서 두 사람은 당시의 속된 사람들을 욕하는 풍자시를 많이 썼다. 케르나의 집 여인들은 머리맡 다락방에서 시를 짓는 친구들의 소리를 들었다. 다락방에서는 간혹 가다 킥킥거리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발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말했다. 「오늘도 그 속된 인간들에게 몹시 화를 내게 했군.」     P.발레리/문학론 文學論》    [144]구양수(歐陽脩)가 매성유(梅聖兪)에게 말하기를, 「세상에서 흔히 시인들은 거의가 궁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궁한 뒤라야 시가 좋아지는 탓이다.」 또 소동파(蘇東坡)는, 「구양수의 말이 절대 망언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시는 사람을 달(達)하게 만들지 시로 인하여 궁한 사람은 못 보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어떤 다른 격정으로 인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추천해요5 oh4344       추천해요0 gksalfm3311     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아마추어가 쓴 작문이 아니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시인의 시란 [운율 중심의 문맥으로 완성 된 문장]이라고 정의 할 수 있지요. 왜냐면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때문이지요.   시와 운율의 관계는 서로 떨어져서는 존립조차 불가능가한 특별한 관계지요.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쓴다는 행위는 곧 운율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흔히 시상 포착을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상 시상을 포착한다는 뜻은 형상화할 운율을 포착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 되는 셈이고요.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현대시의 운율과 음률(리듬)을 동일한 것으로 가르치는데 대단히 잘못된 지식의 오류이지요. 운율과 음률(리듬)은 아무런 연관성조차도 없으니 까요. 국어사전에 등재된 의미만 제대로 숙고해 보아도 해답이 나온 답니다.   운율의 한자는 운치 운(韻) 법 율(律)를 쓰지요. 국어사전에 등재된 운치의 뜻은 이고요. 시는 함축적 내포적으로 형상화 된 문장이어야 한다고하는 건 아시지요. 그 이유는 바로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지요. 시라는 문장 속에 내재 되는 운율의 정체가 존제하도록 형상화하는 방법이 함축적 내포적 문장 뿐이거든요.   함축적 내포적 문장이란 어떤 형태의 문장일까요? 현대시 백년 역사를 대표할만큼 훌륭한 대표작을 거론해 본다면 이상님의 "오감도1" 을 비롯해 김영랑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수영님의 "눈" "풀" 이육사님의 "말" 윤동주님의 "자화상" 공초 오상순님의 "방랑의 마음" 등등이 떠오르네요.   사전을 찾아 함축적 내포적이란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시면 아시겠지만 미당 선생의 "자화상"이나 "동천" 같은 문장은 함축적 내포적 문장이 아니지요.  즉 시인의 시라고 하기에도 창피스러운 작문 수준의 문장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불행한 것은 이렇게 형편없는 작문 수준의 문장이 교육용 교재에 시로 등재 되어 시인의 작품으로 교육 되는 것도 모자라 현대시 백년 역사를 대표할 시인 열명에 뽑힌 동시에 대표작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미개한 현실입니까.   운율과 하등 관련도 없는 음률(리듬)을 현대시의 운율과 동일시하는 잘못 된 지식의 결과 습작 단계도 탈피 못한 아마추어 작문 글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와의 변별성도 구분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현대시의 운율이란 시인이 인위적으로 형상화하는 의미가 그 골격이지요. 그러므로 음률(리듬)과는 연관성도 없는 것이고요. 그러므로 시(작문)는 누구나 쓸수 있지만 누구나 다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한미디로 말하면 시인의 시는-시인의 시로 부끄럽지 않은 시는-운율적으로 형상화한 문장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지요. 다시말하면 초반 부에 말한 것처럼 [운율 중심의 문맥으로 완성 된 문장만을 시인의 시]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 이유는 시와 운율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고요. 즉 시인이 시를 쓴다는 자체가 운율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므로 산문 문장처럼 문장 중심의 글이 아니라 문장 속에 내재 되어 있는 운율 중심으로 완성 된 문장을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이상님의 "오감도1"처럼 표면적 내용과 상관없이 함축적 내포적 문장 속에 형상화 되어 내재된 운율 중심의 문장으로 완성 된 문장을 지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라-영국 시인들은 구어체 시라고-한다는 거지요. 헌데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구어체시를 추상적 상징적 시로 왜곡을 하고 있지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속담처럼 입으로는 시는 구어체로 써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상님의 "오감도1" 같은 훌륭한 구어체시를 눈 앞에 놓고도 문학박사니, 비평가니, 선생이니, 시인이니 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추상적이니 상징적이니 하지요.    영국 시인들이 말하는 구어체시란 concrete poetry적 의미로 [운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문장]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입구자 口語로 둔갑시켜 왜곡하고 있지요.   현재 대한민국 서점에 진열 된 시집들 중 진정 시인의 시로 부끄럽지 않은 시는 있을 까요? 있다면 어느 누구의 시집에 어떤 작품이며 과연 몇편이나 될까요? 아니 운율의 정체도 왜곡하며 잘못 된 오류의 지식이 오류 인줄도 모르는 채 교육하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은 있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학 전문가들 중에 시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걸 까요? 만약 있다면 미당 선생의 "자화상" 같은 아마추어 작문 수준의 글이 교육용 교재에 시로 등재 될 수 없었겠지요.   시는 자기 맘대로 막 쓰는 것이 아니지요. 왜냐면 시는 운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장르적 특성이니 까요. 그러므로 시를 쓰러면 반드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지요. 즉 시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필히 장르적 특성 같은 기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용어에 대해서도 정확하 숙지 해야 하지요. 그래야 많이 아마추어 작문과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 또는 구어체시의 변별성 같은 것을 제시할 수 있으니 까요.   시에 관심이 있으니시면 먼저 시와 운율의 관계상 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운율의 정체에 대해 알아야 하지요. 운율이란 시인이 인위적으로 형상화하는 의미가 그 골격으로 그 정체는 운치 운 자에 법 율자를 쓰는 형태라서 정리하면 [운치(고아한 품위가 있는 기상을) 법 율(함축적 내포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지요. 그 성격은 [섭리적 논리에 따른 생리적 발산에 의한 정신적 소산을  불러 내는 것들]이라 할 수 있고요.   이렇게 시를 쓰는 방식은 따로 있어 아마추어 수준의 작문과 진정 시인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의 시는 극명히 구분되는 동시에 변별성도 뚜렷하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낸 시집이라 해도 그 수준은 다 들어 나지요. 예로 든 미당 선생의 "자화상"처럼이요.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서 가르치는 시에 대한 지식은 오류가 너무 많은 데도 전혀 모르는 듯 하지요.   왜곡된 지식이 왜곡 인 줄도 모르고 잘못된 오류도 오류 인 줄 모르다 보니 오류가 진실처럼 풍토화 되어 오히려 진실을 배격하는 풍토가 되어 버린 듯 하거든요.  
436    이규보 시론 댓글:  조회:5289  추천:0  2015-04-19
이규보(1168∼1241)의 [論詩] '시로 쓴 시론'       作詩尤所難 시 짓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 語意得雙美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하네. 含蓄意苟深 함축된 뜻이 진실로 깊어야 咀嚼味愈粹 음미할수록 맛이 더욱 알차네. 意立語不圓 뜻이 서도 말이 원만하지 못하면 澁莫行其意 난삽하여 뜻을 전하기 어렵다네. 就中所可後 그 중 뒤로 미뤄도 될 것은 雕刻華艶耳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네. 華艶豈必排 화려한 문장을 굳이 배제하겠는가마는 頗亦費精思 모름지기 정신을 쏟아야 마땅하네. 攬華遺其實 꽃만 붙잡고 그 열매를 버린다면 所以失詩旨 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네. 邇來作者輩 요즈음의 글 짓는 무리들은 不思風雅義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外飾假丹靑 겉꾸미기로 미사여구 늘어놓아 求中一時嗜 한때의 기호에만 맞추려 드네. 意本得於天 뜻이란 본래 하늘에서 얻느니 難可率爾致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네. 自 得之難 스스로 어려운 줄 알고 있기에 因之事綺靡 그리하여 더욱 화려하게만 하여 以此眩諸人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欲掩意所  깊은 뜻 없는 것을 엄폐하려 하네. 此俗 已成 이런 풍속이 점차 일반화되어 斯文垂墮之 문화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네. 李杜不復生 이백 두보가 다시 나지 않으니 誰與辨眞僞 누구와 더불어 참과 거짓 구별하랴. 我欲築頹基 나는 무너진 터전을 다시 쌓으려 하나 無人助一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이 없네 誦詩三百篇 시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何處補諷刺 어느 곳을 풍자하여 보충하겠는가. 自行亦云可 스스로 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孤唱人必戱 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을
435    시로 쓴 시론 및 시어의 특성 댓글:  조회:4658  추천:1  2015-04-19
시로 쓴 시론을 통해 살펴본 시어의 특성            시법(詩法)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져지고 묵묵해야 한다.   엄지에 닿은 낡은 메달처럼 소리 없고   이끼 자라난 소매에 닳은 창시렁의 돌처럼 조용해야 한다.   시는 새들의 비약처럼 말이 없어야 한다.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달이 밤에 얽힌  나무로부터 가지를 한하나 풀어 놓듯이   겨울 잎새 뒤에 있는 달이 마음에서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 놓듯이   시는 달이 떠오르듯이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시는 사실이 아니라 동등해야 한다.   슬픔의 모든 내력으로는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를   사랑의 경우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에 뜬 두 불빛을―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하다.                아치볼드 매클리시           시로써 시론을 쓴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창작이론에 대한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자신의 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로 쓰는 시론은 '시론'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딱딱한 내용을 정서적 체험을 통해 쉽게 이해시키면서도 초심자에게 시의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쉽게 시창작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매클리시의 은 갖가지 비유를 통해 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시는 독자가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주장이나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인 아름다움(美)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듯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은 매클리시의 말은 다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문학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에 비하여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를 쓰고 있는 것이 서정주의 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시인이 지닌 감성과 우주적 상념은 늘 아쉬움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 아쉬움이 촉발하는 감정과 정서 세계는 끝없은 사물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시론                                               서정주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준단다. 詩의 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기독교적 심상을 바탕에 두고 범신론적인 사상의 세계를 두루 섭렵하는 시인 구상은 시론(詩論)을 '詩心-詩想-詩情-詩興'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 이는 시창작의 과정이면서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적 가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먼저 시심(詩心)을 무아적 감동, 자연의 조화, 진실의 체험, 우주적 감각과 연민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순진무구(純眞無垢)의 상태에서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상(詩想)은 시가 자아도취의 생산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관조의 자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시정(詩情)은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진실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환희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끝으로 구상 시인의 시관(詩觀)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시흥(詩興)을 들고 있다. 시를 통해 삶의 흥그러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진선미(眞善美)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상 시인의 시로 쓴 시론은 아치볼드의 시론을 연상시키면서 차원 높은 시에 대한 경외감이 배어 있다. 여기에는 시의 도구화도 없고, 흥겨움만이 있다. 시가 사상의 도구로 전락함을 경계함과 아울러 신령스러운 힘의 조화 속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을 때, 독자에 대한 공감도 얻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詩論                                         구상     詩心에 든다. 일상적 욕구나 그 利害에서 벗어나 無我的인 감동과 감흥이 샘솟는다. 오묘한 자연의 造化와 그 풍경 앞에서, 극진한 인정과 진실을 실제로 접하고, 또한 생성과 소멸의 덧없음을 맛보며, 우주적 감각과 그 연민에 나아간다.   詩想에 잠긴다. 물 속에 비치는 제 모습에 취한 나르시스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水草를 헤어남과 낚싯밥에 다가오는 고기의 모습이나 동작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낚시꾼의 그 찌를 바라보는 一心不亂 상태다.   詩情에 젖는다. 그것은 쓰디쓴 고독을 되씹는 감방 囚人의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내 안의 저 奧地까지 찾아 들어가 내 안에서 나뭇잎의 속삭임을 듣고 내 안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날음을 보고 내 안에서 어린 시절의 꿈이 되살아나고 헤어지고 사라진 벗들을 다시 만난다.   詩興에 취한다. 모든 생각과 느낌들이 모습을 갖추고 서로 어울리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내 마음이 그리고 기리는 그 동산에는 모든 생명이나 사물들이 신령한 조화 속에 영원하고 완전한 제 모습의 성취를 이루고 나는 現存에서부터 眞善美의 실체를 맛본다.        2. 시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경구 속의 시어            0. 시인이 겁내야 할 것은 무엇을 다 못하고 끌고 가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아니라, 참으로 냉큼 다 먹어치워 버리거나 끝내 버리고 마는 일이다.(서정주: 에서)       0. 고도한 정서의 형성은 언제나 감정과 욕망에 대한 지성의  좋은 절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정주: 에서)       0. 자유시가 보여준 것처럼 시적인 요소는 모든 형식을 벗어나고 초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시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파괴하고 존재와 일치하련느 언어표현이기 때문이다. (박이문: 에서)   0. 큰 시인은 아무리 낡은 이미지라도 새롭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김현: 에서)   0. 풍경을 묘사하든지, 감정을 묘사하든지, 혹은 세태의 어떤 단면을 묘사하든지 시를 묘사로서 출발하는 경우, 그는 이미 시의 인식적인 방법 위에 올라 서 있다.(김주연: 중에서)   0.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중에서)   0. 예술을 위하 예술이라는 생각은, 그게 다행히 아주 저속한 게 아니라면, 아주 냉담한 것일 거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제는 그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넌센스를 믿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극적인 순간에 예술가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어야 합니다. 그는 그의 백합다발을 거들떠보지 말고 백합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어가야 합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82-1940, 스페인의 가장 신랄하고 뛰어난 만화가.   0. 시는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하며 인간의 심장을 만나야 하고, 여자의 눈, 거리의 나그네들, 황혼녘에나 별이 빛나는 한밤에 적어도 한 줄의 시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파블로 네루다, 중에서)   0. 시는 역사와 사회의 참다운 실체―언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시)은 일상 대화와 논리적 추론을 지배하는 법칙과 다른 법칙들에 따라 언어를 재창조하려고 한다. 이러한 시적 변화는 언어의 가장 깊은 구석에서 일어난다. 시구(詩句)―유리된 낱말이 아니다―는 세포이며, 언어의 최소 단위 요소이다. 한 낱말은 다른 낱말들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한 어구는 다른 어구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중략)     시가 말에 닿자마자 말들은 운율적 단위나 이미지로 변모한다;말들은 그들 스스로 서며 스스로 충족한다. 말은 갑자기 그 가몁성을 잃는다. 산문에서는 한 사물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길이 있으나 시에서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시적 언어는 대용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돌이킬 수 없게 말해진 어떤 것이다. 달리 말해 본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향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나 저것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공포에 대해서나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보여준다. 돌이킬 수 없고 대피할 수 없는 채, 시의 언어는 그것 자체에 의거하지 않고는 설명항 수 없게 된다. 그것들(시적 언어)의 의미는 더 이상 저쪽에 있는 게 아니고 그것들 속에 있다. 그 이미지는 의미 '속에' 있다.(옥타비오 빠스, 중에서)   0. 내 작품에는 커튼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걸어 놓을 우아함이나 효과나 독창성을 갖지 않으리라.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리 값진 커튼이라도 걸어 놓지 않으리라. 내가 말하는 것은 정확히 그 본질을 위해서이다. 고양시키거나 놀라게 하거나 매혹시키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라. (월트 휘트먼, 서장에서)   0. 이미지스트가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 언어   1) 어느 무엇을 드러내지 않는 ,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쓰지 말 것. '어렴풋한 평화의 땅'과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라. 그런 것은 이미지를 둔화시킨다. 추상과 구체를 뒤섞은 꼴이다. 그것은 자연적 대상물이 언제나 적절한 상징이라는 것을 작가가 깨닫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2) 추상화를 두려워하라. 훌륭한 산문에서 이미 행해진 것을 어줍잖은 운문으로 다시 얘기하려 하지 말라.   3) 시 예술이 음악예술보다 조금이라도 단순하다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평범한 피아노 선생이 음악 예술에 쏟는 정도의 노력을 운문 예술에 쏟음없이 전문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434    詩로 쓴 詩論 댓글:  조회:4863  추천:0  2015-04-19
  詩로 쓴 나의 詩論                                                                                                          洪海里 시인       1. 시인은 누구인가     * 詩人     시도 때도 없어, 세월이 다 제 것인 사람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     한도 끝도 없이, 하늘과 땅 사이 헤매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꾸는 사람.         * 시인은 누구인가     바람이 자고 가는 대숲은 적막하다     적막, 한 시에 적막한 시가 나온다     그 시는 우주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시인은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者.           2. 시는 어디 있는가     * 詩를 찾아서     해 다 저문 섣달 초닷새 썩은 속 다 타 재 되고 빈자리 가득 안고 있는 詩人이여 네가 내 속을 아느냐고 슬픔을 다 버린다고 비워지더냐고 하늘이 묻는다 눈물 있어 하늘 더욱 눈부시고 추위로 나무들의 영혼이 맑아지나니 시인이여 그대의 시가 닿을 곳이 어디란 말인가 가라, 그곳으로 물 같은, 말의 알이 얼어붙은, 빛나는 침묵의 숲에서 고요한 그곳으로, 가라 시인이여 아직 뜨겁고 서늘하다 깊고 깊은 시의 늪은.         * 詩는 어디 있는가?     내일이 大雪 구름 사이 햇빛, 우레가 울어 詩가 눈앞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는 눈 뒤에 있었다 눈 뒤에는 하늘이 끝이 없다 포경선을 타고 작살을 던진다 고래를 잡으려고, 고래는 없다 詩는 손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손바닥에는 텅 빈 하늘만 춥다 발바닥에 길이 있고 강물이 흐른다 산맥이 뻗어 있고 불의 집이 있다 詩는 집에 없고 불만 타오르고 있다.         * 내게 가는 길 없다고 해도     나에게 가는 길이 없다고 해도 안개 속으로 길을 떠나네 어차피 사는 일이 길을 가는 것 오리무중 헤매는 일 아니던가 이슬 속으로 젖어 가는 길 어쩔 수 없네 천근만근 끌어내리는 바짓부리 땅을 끌며 구절초 쑥부쟁이 하염없이 피어 있는 가을 속으로 나는 가네 나는 가네 하늘이 모든 노래를 지상으로 내려놓을 때 나는 떠나네 노래 속으로 나를 찾아서 흙냄새 풀냄새 바람냄새 물냄새 맑아 자음과 모음을 제대로 짚어내는 풀벌레들 노래가 노래를 벗어 비로소 노래가 되는 길이 멀리 달아나 나의 길이 없는 곳으로 바람 잠깐 불어 빗방울 몇 개 후득이고 금방 하늘이 파랗게 가슴 저린 쓸쓸함 속으로 몸 달아 애가 타고 가슴이 아파 한 마디 한 소절에 오체투지 나는 가네 너를 찾아 간다 나의 시여 나의 노래여!         * 한 편의 詩를 찾아서     내가, 나를 떠나고 나를 떠나보냅니다 우주가 내 속으로 굴러 들어옵니다 내가 우주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나를 찾아 봅니다 나를 그려 봅니다 요즘도 새벽이면 가벼운 날개도 없이 나는 비어 있는 우주의 허공을 납니다.         3. 시작詩作     * 초고(草稿)를 끌어안고     밀다 만 밀가루 반죽이거나 마구 잘려진 나무토막, 금나고 깨진 대리석 덩이이든가 아무렇게나 흩어진 동판이나 쇳조각     하늘에 놀고 있는 뭉게구름이나 바다 끝에 서 있는 수평선,     낯선 세상 고고의 울음을 세우려 집도의 앞에 누워 있는 산모 소신공양을 하고 태어날 아침에,     물맛이나 공기 빛깔로 낙화유수 이 강산을 물들이거나, 일 보 일 배로 한 生을 재는 자벌레나 백년을 가도 제자리인 달팽이처럼     나의 일생을 할喝!할 푸른 혓바닥을 위하여 소금을 뿌린다, 왕소금을 듬뿍듬뿍 뿌린다 황토 흙도 문 앞에 깔아 놓는다.         * 미완성 시에게     저 혼자 몸이 달아 네가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내가 꿇느냐 속이 타고 애가 달아 오체투지를 할 것이냐 항복을 할 것이냐 난리 치고 안달하며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 끈질기게 매달리며 잡느냐 잡히느냐 씹느냐 씹히느냐 검게 탄 가슴 황토 냄새로 함께 노래하기 위하여 너에게 뛰어들고, 너른 세상으로 사라지기 위하여 광활한 우주로 날기 위하여 무작정 엎어지고 손목을 부여잡고 찬바람 골목길, 달빛 이우는 격정적인 입맞춤을 위한 나의 맹목과 눈을 감는 너의 외로움 속옷 한 번 벗기지 못하고 물어뜯어도 너는 피 한 방울 나지 않느니 푸른 입술 둥근 허리를 안고 영원을 꿈꾸다 정점에 이르지 못한 채 떠나고 또 떠나면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외로움, 세상은 지독한 감옥이지만 너와 나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너는 너 나는 나의 세상에서 섞이고 섞이는 너와 나를 위하여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기억하라 나의 미완성 금빛 시여!         * 순순한 시     눈을 감아도 꿈이요 눈을 떠도 꿈이니 달빛에서 향이 나고 해에서도 꽃이 피네 설레는 햇살에 눈이 부셔 알게 모르게 사윈 것들마다 달뜨는 초록 알갱이들처럼 바람으로 돌아오는가 나물밥 먹으면 나물 향기 나고 물을 마시면 골짜기 바람 이우는 달이 차면 그리움도 지독한 형벌이라 너를 네게 보내는 죄를 짓는 일 나는 눈도 가리고 귀도 막노니 숨 가쁜 일 없어라 生이란 상처투성이 추억은 까맣게 타서 아픔이 되고 한 세월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이 시 쓰는 일이 아닐 건가 한 편의 순순한 시 너에게 무작정 무너져 내린다.         * 시작詩作)     오순도순 살자고 흙벽돌 찍어 집을 짓듯이,     어린것들 굶기지 않으려고 농사를 짓듯이,     아픈 아이 위해 먼 길 달려가 약을 짓듯이,     시집가는 딸아이를 위하여 옷을 짓듯이,     길 떠나는 이 허기질까 새벽밥을 짓듯이,     기쁨에게도 슬픔에게도 넉넉히 미소를 짓듯이,     늦둥이 아들 녀석 귀히 되라고 이름을 짓듯이,         * 詩의 경제학 - 한 편의 詩, 천년의 詩     대는 침묵으로 소리를 담고 속 빈 파가 화관을 머리에 이듯,     속에선 조용히 물이 오르고 겉으론 불길 담담한,     온몸이 탱탱하고 아랫도리 뿌듯해 안고만 싶은,     오래 묵을수록 반짝반짝 빛나는 역린(逆鱗)과 같은,           4. 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     * 나의 詩 또는 나의 詩論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꼴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         * 나의 詩는 나의 무덤     詩 쓰는 것이 무덤 파는 일임을 이제야 알겠다 詩는 무덤이다 제 무덤을 판다고 욕들 하지만 내 무덤은 내가 파는 것--- 시간의 삽질로 땅을 파고 나를 눕히고 봉분을 쌓는다 詩는 내 무덤이다.     빙빙 날고 있는 무덤 위의 새 하늘이 그의 무덤이다 그는 날개로, 바람으로 詩를 쓴다 그가 쓰는 詩를 풀과 나무가 받아 꽃으로 피운다.                                                                            (우리시 제227호)   시로 풀어 쓴 시론     한석산     시라는 것은 창작이다 이 땅 우리겨례를 지킨 조선의 정신 말글 그 뉘도 흉내내지 못할 시심을 풀어내라 초안할 때는 먼저 문장을 써 놓은 다음 이것저것 다른 말로 바꿔 굴려봐라 어휘를 잘개 썰어 써라 작은 그릇에도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시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문학적 향기가 우러나오는 싱싱한 소제와 주재 취사선택 구성을 잘 해서 기승전결 격을 갖춘  차원 높은 시를 써라 직유보다는 은유나 비유 묘사와 진술 생략과 입축 상징과 암시 연상 작용을 할수 있게끔 하라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작품을 써라 우리 모두 핏속에는 시의 혼이 흐른다 다독多讀 많이 읽고  다사多思 많이 생각하고 첨삭添削 퇴고堆敲 되풀이하라 불멸의 명작은 퇴고에서 나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2년에 걸쳐쓴 "개미"를 120번 고쳐썼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고쳐 썼다고 했다 갈고 닦는 글 다듬기 공들일 일이다... [출처] 시로 풀어 쓴 시론|작성자 감악   * 시로 쓴 이규보의 시론 연구     -(이승하, 시선 2003 봄 창간호) 중에서 일부  2. 시로 쓴 시론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인 시론은 고려조의 세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인로의 '파한집'과 이규보의 '백운소설' 및 '동국이상국집' 최자의  '보한집'에 나오는 시론은 절대로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다. 이 가운데  이규보는 신의론에 근거한 '설의'를 주장했는데 '論詩'는 시로 쓴 그의  시론이다. 전문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본다.  시 짓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하네.  함축된 뜻이 진실로 깊어야  음미할수록 맛이 더욱 알차네.  뜻이 서도 말이 원만하지 못하면  난삽하여 뜻을 전하기 어렵다네.  그 중 뒤로 미뤄도 될 것은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네.  화려한 문장을 굳이 배제하겠는가마는  모름지기 정신을 쏟아야 마땅하네.  꽃만 붙잡고 그 열매를 버린다면  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네.  요즈음의 글 짓는 무리들은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겉꾸미기로 미사여구 늘어놓아  한때의 기호에만 맞추려 드네.  뜻이란 본래 하늘에서 얻느니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네.  스스로 어려운 줄 알고 있기에  그리하여 더욱 화려하게만 하여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깊은 뜻 없는 것을 엄폐하려 하네.  이런 풍속이 점차 일반화되어  문화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네.  이백 두보가 다시 나지 않으니  누구와 더불어 참과 거짓 구별하랴.  나는 무너진 터전을 다시 쌓으려 하나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이 없네  시 삼백 편을 외운다 해도  어느 곳을 풍자하여 보충하겠는가.  스스로 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을.  '동국이상국후집' 권제일 에 나오는 이 시에는 오늘날 이 땅의 시인이  새겨들을 만한 말이 나온다. 내 나름대로 시의 뜻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해본다.  1~4행...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함축된 뜻이다. 즉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한다.  5~8행...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도 말고 미사여구는 더더구나 동원  하지 말아야 한다.  9~12행...기교의 시 대신 정신의 시를 써야 한다.  13~16행...시류에 영합하려 들지 말고 그런 무리를 본받지도 말아야 한다.  17~22행...시의 뜻은 자연에서 얻는 것이어서 쉽게 이루기 어려운데 사람  들은 이를 속이려 한다.  23~26행...이런 풍속이 널리 퍼졌으니 이백과 두보 같은 이가 언제 다시 와  시의 진실과 허위를 밝혀내랴.  27~32행...나는 시의 기강이 무너진 이 시대에 꿋꿋이 나의 길을 가려 한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비웃을지라도.  이동철은 이 시의 요지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1) 시는 표현과 의미가 모두 아름다워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의미이다.  2) 작금의 시인들은 표현에만 치우쳐서 깊은 뜻을 저버리는 폐단이 많다.  3) 이러한 그릇된 문단의 풍토를 시정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는다.  한편 정요일은......  ......  두 사람의 말을 토대로 '論詩'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시는 내용(의미)과 형식(표현)이 모두 아름다워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역시 내용이다. 고상하고 멋있는 시는 환골탈태하거나 미사여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은 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설하는'(設意)시이다. 특히  기교의 시를 쓰지 말고 정신의 시를 써야 한다는 말은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감각의 시가 아닌 혼신의 시를, 수사(修辭)의 시가 아닌 천품(天稟)  의 시를 써야 한다는 뜻도 새겨둘 만하다. 시류에 따르거나 남의 시를 흉내내지  않는 한편, 풍아의 전통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시작법을 내놓은 이규보의 시론에  나는 동의한다.  ......   
433    현대시의 공감의 문제 댓글:  조회:4749  추천:0  2015-04-19
현대시의 공감의 문제         이숭원(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1. 시의 원초적 형태     현재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작품을 보면 한 번 읽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고급 독자들이 선호하는 문학계간지의 경우는 난해성의 수준과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시의 난해성이 거론될 때마다 소통과 공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면 독자와 소통하고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것이 시인의 의무이거나 시가 지켜야 할 기본사항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간단히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의 원초적 형태와 통시적 전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설은 서사 양식에 속하고 시는 서정 양식에 속한다. 서사는 사건을 서술하는 양식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에 비해 서정은 감정을 드러내는 양식이기 때문에 감정표출의 내용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자신의 감정을 발설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의 원초적 형태는 한 순간의 감정의 표출, 일종의 가벼운 탄식이나 감탄의 어사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독자(청자)가 필요 없는 독백의 형식에서 시가 싹텄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남아 전하는 우리 쪽의 고대 시가는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 「公無渡河歌」 의 경우, 우리의 작품이냐 중국의 것이냐 하는 논란을 떠나서, 그 노래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리는 거기서 시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 나루터의 뱃사공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배를 손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술병을 들고 강으로 달려들었다. 그 뒤에 그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쫓아와 말렸으나 결국 남편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아내는 구슬픈 노래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후 남편을 따라 물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 노래의 내용은 ‘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기어이 그대는 물을 건넜네. 물에 빠져 죽어버렸으니, 그대를 어찌할거나.’로 되어 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여옥은 감격하여 공후를 끌어안고 그 노래를 불렀고 이웃의 친구에게도 노래를 전했다고 한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비탄의 심정을 스스로 노래했다. 어쩌면 그 노래는 처절한 절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순간에는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남편을 잃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넋두리처럼 노래로 펼쳐낸 것이다. 곽리자고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 노래를 들었으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슬픈 사연을 전해들은 여옥은 마치 자신이 백수광부의 아내가 된 듯 공후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이웃의 친구에게 가르첬다.   여기서 백수광부의 아내는 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원초적 서정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독백하듯 노래했고 곽리자고는 그것을 엿들었다. 곽리자고가 그의 아내에게 그 사연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서사적 행위를 한 것이다. 서사는 반드시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필요한데, 여옥이 청자가 되어 곽리자고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그 사연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지어 부른 여옥은 백수광부 아내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 연희자(배우)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서사나 극은 반드시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행동을 보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대상 없이 말하는 사람 혼자만으로 존재한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저 혼자의 감성을 스스로 노래한 것이다. 이처럼 시의 원초적 형태는 어느 한 순간의 감정을 혼자서 토로하는 것이었다. 시가 문자로 정착되어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정파될 때까지 그러한 시의 속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노래로 전하는 「청산별곡」의 다음 구절을 보면 한 순간의 감정을 혼자 토로하는 독백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낮은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 하리오.   어디에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 돌에) 맞아서 울며 지내노라.     - 「청산별곡」 4연과 5연       4연에는 현실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온 사람이 겪게 되는 외로움이, 5연에는 사람과 격리되어 혼자 사는데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삶의 괴로움이 표현되어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되어 노래로 불려진 것이다. 이 노래를 누가 들어주건 말건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당신의 사연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서사 양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서정 양식에 속하는 시의 경우에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다시 말해서 청자(독자)에 대한 소통이나 공감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감정이 언어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2. 시와 독자의 문제     모든 서정 양식이 다 청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주술적인 고대 가요나 민요의 경우에는 청자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다. 같은 서정 양식에 속하는 다음과 같은 시조의 경우에도 분명 청자(독자)가 설정되어 있고 소통과 공감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나서 옳지곧 못하면 미소를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 할꼬 어와 저 아자바 옷 없이 어찌 할꼬 머흔 일 다 일러사라 돌보고자 하노라.     - 정철 「훈민가」, 8수와 11수       이러한 유형의 시조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앞선 것이어서 소통과 공감을 창작의 전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는 의도에서 창작되는 시 양식이 비단 시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화기의 우국저항적인 시가나 일제강점기의 카프 계열의 시, 목적성을 앞세운 현대시에도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가 그러하고 1980년대의 민중시 계열에도 그러한 경향의 시가 많다. 그러나 목적의식을 앞세운 문학의 경우, 정철이나 개화기 우국인사들처럼 시대가 추구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을 때에는 문학작품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대 조류가 다양해질수록 문학의 목적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시대에도 문학이 현실을 개혁하는 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던 문학운동가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문학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러한 목적성이 창작의 전제가 될 때에는 정작 그런 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해진 선행의식 없이 창작의 절정을 향해 작가가 전력투구할 때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이 획득된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시는 목적성과 거의 결별하다시피하면서 개별 작품의 독자적 미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대담론의 엄숙함보다 소수담론의 발랄함이 의미 있는 덕목으로 제시되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독자적 미학의 추구는 환상적 일탈과 엽기적 몽상으로 강화되어 나타났다. 소위 미래파로 호칭되던 시편들은 이미지의 현란한 변주를 넘어서서 돌발적이고 비약적인 자유 연상과 엽기적 위악성이 결합되면서 기존 시에 익숙한 사람들에 의해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때 문단에 소통의 단절이라는 주제가 하나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 황병승이나 김민정의 시가 상당히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들의 시집의 판매부수가 다른 시들보다 높은데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소통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선호하는 독자층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이들의 시가 독자와의 공감에도 성공했다는 설명을 가능케 한다. 이것은 물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문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시어의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언어 사용의 일차적인 목적은 의사 전달이다. 우리는 자기의 뜻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때 자기가 아는 지식을 남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경우가 있고 자기가 느낀 감정을 남도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전달하려는 경우가 있다.   시의 경우 언어 사용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때 감정 자체가 모호하고 다층적인 것이므로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방향으로 언어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 체험이나 감정의 양태가 일상적인 것과는 아주 다른 경우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시의 언어는 한정된 의미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정된 의미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미의 층을 거느리려 할 때 시의 애매성이 발생하고 애매성이 극대화될수록 대중과의 소통은 어려워진다. 삶의 영역이 복잡해지고 우리의 체험이 다양해질수록 정서적 반응이나 표현 양상도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더군다나 그 체험이 가시적 현실의 일면성을 넘어 환상의 다층적 세계로 확대될 때 시의 언어와 표현은 기존의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 시의 언어나 표현이 소통이나 공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3. 공감의 층위     우리 주위에는 복잡한 체험을 다층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이해되면서 깊고 넓은 공감을 주는 시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들도 처음부터 공감을 예상하고 창작된 것은 아니다. 시인은 고립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펼쳐내는 데 주력한 것인데, 독자들이 그 시의 의미에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또 어떤 시들이 소수의 전문 독자층에게 공간을 일으키는가? 구체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공감의 영역이 넓은 작품에서 출발해서 공감이 제한된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공감의 층위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기역 자 모퉁이에서 앳된 여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울고 있다 울음이 멈추지 않자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앖을 것 같다며 그녀는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는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는 앳되고 앳되어 먼 훗날, 맘마의 저 울음을 기억할 수 없고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 저기 앳되고 앳된 한 여인이 울고 있다     - 이홍섭, 「터미널 2」 전문 (『터미널』 , 문학동네, 2011)       이 시는 버스 터미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평담한 시어로 표현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앳된 여인’이 ‘앳되고 앳된’‘ 곤히 잠든 아이’를 안고 운다는 설정이 가슴을 짠하게 하고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는 설정도 상황의 사실성을 높여주면서 감정의 강도를 상승시킨다. ‘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감상적인 예감도 이 시의 공감대를 넓히는 요소가 된다. 그런 대중적 감상성이 있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전파된다.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하여 세상의 무정함을 내비치는 것도 감상적 공감의 폭을 넓히는 구실을 하며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저기 앳되고 앳된 여인이 울고 있다’고 한 것은 개인의 슬픔을 인간의 보편적 비애로 확대하는 구실을 하여 공감의 깊이를 확보하게 한다. 대중적 감상성과 인간사의 보편성이 결합될 때 시적 공감이 영역이 가장 넓어질 수 있음을 확인케 하는 사례다.         어머니가 들려보낸 수박을 해마다 외할머니는 툇마루 청술레 그늘에서 갈랐다      수박을 앞에 둔 외할머니의 부엌칼은 슥, 평지봉투 뜯는 도구처럼 지나갔다      수박은 외할머니의 갑골 胛骨이었다 칼이 지나가는 소리와 빛깔의 청탁      갈라진 수박을 앞에 놓고 딱 한번 물으셨다 - 에미가 한번 안 온다더냐? - 할망구가 노망이 났등갑다 어머니의 말끝이 벼랑처럼 깊었다      그 해 가을 외삼촌이 편지를 보내왔다 아버지가 안채에 들이지 않고 문간의 고비 가녘에 다시 꽂았다      집 안팍 먼지 두루 닦아내시고 마을 공동 우물가에서 걸레를 헹궈 꼬옥 비틀어 짜던 그 동작에서   숨을 거두셨다 했다 그 동작 그대로 기울어지셨다 했다      외할머니의 임종은 아영면 월산리 구지내기쪽 노을이 했다     - 장철문, 「편지」 전문 (『서정시학』, 2012, 봄호)       이 시에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청술레, 갑골, 고비, 가녘, 아영면 월산리 구지내기 등에 대한 사전적, 지리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사전을 찾아보고 알 수 있는 사실적 차원의 이해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시에 명확히 제시되지 않고 암시만 되어 있는 사항에 대한 상상적 이해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왜 직접 들르지 않고 아들을 시켜 수박만 보냈는가? 외할머니는 자식이 있는데도 왜 아영면 워란리에서 혼자 사시다가 임종도 없이 돌아가셨는가? 외삼촌의 편지를 아버지는 왜 안채에 들이지 않고 문간의 고비 가녘에 꽂아두었는가? 이러한 전후 사정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문맥의 이면을 추측해 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 정보와 상상적 추정을 통해 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데 그러한 이해의 과정이 시 읽는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의 과정이 없다고 해서 공감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문맥을 통해 우리는 할머니의 정갈하고 의연한 삶과 침묵 속에 오고가는 인정의 갈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에 제시된 독특한 시어와 상황들이 공감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요소인가 하는 점이다.   ‘툇마루 청술레’라는 말은 외할머니의 삶을 효괴적으로 떠올려주는 소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할머니의 방 앞에는 덧붙여진 작은 툇마루가 있고 그 바깥쪽에는 청술레 나무가 있어 툇마루 쪽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바람이 솔솔 부는 툇마루 청실배나무 그늘에서 수박을 갈랐을 것이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청실배나무를 통해 남원의 토속적 정취를 함게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수박을 할머니의 어깨뼈로 비유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칼이 지나는 소리와/ 빛깔의 청탁’에서 연상되는 빠른 손동작의 속도감과 경쾌한 음감, 순식간에 드러나는 수박의 붉은 속살과 푸른 외형을 함게 나타내기 위해서였으리라.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외할머니는 ‘딱 한 번’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셨고, 그것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벼랑처럼 깊었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한 사연을 잘 아는 아버지인지라 외삼촌의 편지를 잠시 문간 고비 가녘에 꽂아 두었을 것이다.   그 편지에 담긴 내용이 마지막 세 연에 서술된 그 내요이리라. 언제나 꼬장꼬장하시던 할머니는 평소처럼 의연하고 정갈한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으신 것이다. 이 장면에서 다시 할머니의 갑골과 송연한 손짓과 소리와 빛깔의 청탁이 떠오른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정연한 짜임새 속에 한 편의 시가 구성되었고 그러한 시적 결구를 우리는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랫목에 여자 둘이다 웃는데, 서로의 등짝을 때려가면서다 30분 거리 슈퍼에 가 투게더 한 통을 사서는 아이스크림에 숟가락 3개를 꽂아올 때까지 웃는데, 서로의 허벅다리를 꼬집어가면서다 순간 나 터졌어 하며 일어서는 여자 아래 콧물인 줄 알고 문질렀을 때의 코피 같은 피다 너 아직도 하냐? 징글징글도 하다 야 한 여자가 흰 양말을 벗어 쓱쓱 방바닥을 닦으며 웃는데, 피 묻은 두 짝의 그것을 돌돌 말아가면서다 친구다     - 김민정,「민정엄마 학이엄마」 전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2009)       ‘ ~다’로 끝나는 이 시의 방관적인 어미는 인상적이다. 너저분한 것은 제쳐놓고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겠다는 어투다. 이것은 배제의 어조이자 자유의 어법이다. ‘아랫목에 여자 둘이다’로 시작해서 ‘친구다’로 끝나는 단호한 화법의 울타리 안에는 허용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친군데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같은 중년의 여자끼린데 무슨 말을 감추겠는가? 친근하게 다 말해 놓는 천진한 어법이 이 시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공감의 물결을 일으킨다. 50대의 갱년기 여자들이 등짝을 때려가며 웃고,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웃는데, 그 즐거운 장난은 동네 슈퍼에 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30분 동안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터진 코피 같은 피, 시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정확히 묘사했다. ‘콧물인 줄 알고 문질렀을 때의 코피같은 피다.’ 오랜 동안 친구로 지냈으니 거리낄 것이 없다. 그 자리에서 ‘흰 양말을 벗어 쓱쓱’ 닦는다. 그러고는 그것도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 피 묻은 양말 두 짝을 돌돌 말아가며 웃는다. 이래야 진짜 친구라 할 수 있으리라. 대명 천지에 웃음꽃을 피우는 이 부러운 친화의 장면 앞에 덧붙일 사설은 필요 없다. 이 이상 가는 공감은 다른 시에서 본 적이 없다. 이런 시로 한 묶음의 시집을 엮어내니 많은 독자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   2층 사는 남자가 창문을 부서져라 닫는다, 그것이 잘 만들었는지 보려고      여자가 다시 창문을 소리 나게 열어젖힌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로를 밀쳐내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도 왜 악착같이 붙어사는 걸까, 더 큰 집으로 이사가려고      바퀴벌레 시궁쥐 사마귀 뱀 지렁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움받고 있는가 알기나 할까,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없어서      아줌마 아저씨들은 ‘ 야 야 됐어’ 그런다, 조금 더 살았다고      그러면 다리에 난간은 뭐 하러 있나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노인네에게 밥상을 왜 차려주나     그런게 위안이 되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빵 주세요 빵 먹고 싶습니다 배고픈 개들이 주춤 주춤 늙어가는 저녁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 황병승,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전문 (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 지성사, 2007 )        김민정의 시보다는 대상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약하고 좀 더 드라이한, 그만큼 빈정대는 어조가 전면에 나서 있는, 이 시는 우리 삶의 실상을 리얼하게 잘 드러낸다. 젊은 부부의 싸움소리가 크다. 싸움의 횟수도 많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것 같다. 그렇게 싸움을 하면서도 붙어사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싸우면서도 한 가족으로 지내는 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집을 늘리려 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을 시인은 정확히 파악했다. 그렇게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들이 싫어하는 상대는 한 번도 집안에 들인 적이 없다.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판별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생을 조금 더 산 중년 부부들은 싸우면서 정이 드는 거라고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듯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위로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위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저마다 자기의 울타리에 갇혀 자기 재산과 식량에 집착하여 하루하루를 살고, 그렇게 늙어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저마다 춤추는 사람들이다. 어찌 언니뿐이겠는가? 모두들 시류에 맞추어 그렇게 춤추며 늙어갈 수밖에.   이렇게 해석하면 이 시는 삶의 실상을 제법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시구 사이에 감추어진 내용만 재구해 내면 어려울 것이 없는 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다. 이 공감의 요소와 감추어진 것을 찾아 읽는 재미 때문에 다수의 독자들을 끌어들여 현제 10쇄를 돌파했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자면 자신이 받아들인 서적과 영화와 음악의 단편들을 조악하게 엮어놓은 황병승의 시보다 진실한 체험을 솔직하게 표현한 김민정의 시가 더 윗길에 놓이지만, 『여장남자 시코쿠』 로 알려진 황병승이란 이름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물론 김민정과 황병승의 시집에는 이보다 어려운 시도 많다. 그러나 그 시들이 소통 불가해한 작품은 아니다.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동원하여 읽으면, 닫혀 보이던 문을 열어주는 작품들이다. 시인들이 공감의 문턱을 높이고 그 문을 좁은 문으로 만들어 놓은 거은 자신의 체험과 감정이 예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특별한, 기묘하고 애매한 체험과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는 그만큼 일상의 어법에서 멀어지게 된다.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은 긴밀하게 결합되는 법이기에 복잡 미묘한 체험과 감정이 단순하게 표현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소통과 공감을 내세워 쉽게 쓰라고 주문하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동인과 근거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의 시를 이해하고 싶다면 독자쪽에서 지성과 감성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 젖과 좆이 공평하게 공존하는 세계’, ‘두 짝의 젖통과 두 쪽의 불알이 나란히 누워 있는 세계’(김민정, 젖이라는 이름의 좆」)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sick fuck sick fuck 하고 돌아가는 회전목마’(황병승,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에 동승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그럴 마음이 없다면, 굳이 소통이나 공감을 거론하지 말고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시에 다가가 마음을 터놓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다.    
432    창조적 시론을 위하여 댓글:  조회:4610  추천:0  2015-04-19
        ​ 시인 이승하 (신인상·미래작가상 심사위원)      1960년 4월 18일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되어 등단. 1989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작품소개    1987년 시집《사랑의 탐구》 1989년 시집《우리들의 유토피아》 1991년 시집《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1993년 시집《폭력과 광기의 나날》 1994년 시집《박수를 찾아서》 1995년 시집《생명에서 물건으로》 1997년 시론집《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 1997년 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 1998년 산문집《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1998년 선집《젊은 별에게》 1999년 시론집《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 2000년 시론집《한국 현대시 비판》 2001년 시집《뼈아픈 별을 찾아서》 2001년 시론집《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2002년 시론집《백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 2002년 에세이《헌 책방에 얽힌 추억》 2003년 산문집《빠져들다》 2004년 시론집《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2004년 시론집《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 2005년 시집《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2006년 문학평론집《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2007년 문장작법《청소년을 위한 시쓰기 교실》 2007년 시집《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2007년 산문집《피어있는 꽃》 2008년 문학평론집《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2009년 시선집《공포와 전율의 나날》 2010년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2010년 시론집《한국문학의 역사의식》 2013년 재외동포문학연구서《집 떠난 이들의 노래》 2014년 시론집《함동선의 시세계》 2014년 시집《불의 설법》 2014년 문학평론집《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2》      수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2002년 제2회 지훈문학상 2008년 제13회 시와시학상 작품상 우리 시대의 창조적 시론을 위하여     김준오 선생의 시론을 등불삼아서     이승하         하늘에 계신 김준오 선생님께       선생님이 돌아가신 해가 1999년, 어언 16년이 다 되어갑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온 선생님께서는 나이 마흔인 1977년부터 부산대 국문학과에 재직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인연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1년에 삼지원에서 낸『시론』개정판을 봤더니 제 등단작을 ‘눌언(말더듬)의 시’라고 명명한 뒤, “언어의 위기의식의 산물로 우리는 또한 눌언의 시와 수다의 시를 보게 된다.”, “눌언과 수다는 둘 다 정상적 언어행위가 아니다. 이런 비정상적 언어행위를 통하여 시인들은 비정상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세계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의식을 표명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선생님께서 제 시에 대해 언급을 해주신 것이 고마워 저서『한국 현대 장르 비평론』『도시시와 해체시』『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 편저『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유고문집『문학사와 장르』『현대시의 방법론과 모더니티』 등을 보며 큰 가르침을 얻었고, 제 딴에는 스승의 한 분으로 생각하며 사숙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좀 더 오래 사셨다면 저는 시집 해설을 써주십사 하고 간청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년도 채우지 못한 연세에 돌아가셨고, 저는 김현을 잇는 탁월한 시 연구자가 돌아가셨다고 애통해했습니다. 선생님의 드높은 연구정신을 기려 후학들이 ‘김준오시학상’을 제정해 운영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학교에 있다 보니 간간이 논문도 쓰고 비평적 글쓰기도 하게 되지만 누가 뭐래도 저는 제 자신을 시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등단 30년이 되는 해에 11번째 시집을 냈으므로 시집을 너무 많이 낸 셈이라, 작품이 모인다고 시집부터 낼 일은 아니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단 30년이 지난 지금, 회의가 일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는 산문화와 장형화와 소통 불능이 지나친 느낌이 있고, 문예지의 폭발적인 증가로 시인이 양산되고 있고, 시단에 뚜렷한 논의나 담론은 없고, 독자는 유수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외면하고 하상욱의『서울 시』 같은 시집에 열광하고 있고……. 이런 말을 저도 자주 하지만 자주 듣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동일성 시학에 대한, 도시시와 해체시에 대한, 장르론의 시대적 양상에 대한, 자기 풍자와 외적 풍자에 대한, 구조주의 비평과 현상학적 비평에 대한, 문학사와 패러디 시학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꺼내보면서 안타까움으로 땅을 치는 심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오늘날 시단의 문제점들에 대해 좋은 방안을 내놓으면서 생산적인 담론을 유도했을 테지요.     저는 요즈음 시단의 제 현상에 대한 비난을 유보하고, 제가 쓰고 있는 시를 몇 편 떠올려보면서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80년대의 해체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체시는 우리 현대시의 전망이고 가능성이다. 사실 형태와 장르와 세계관을 해체한 해체시는 그 다원주의적 열린 태도와 조립에 의한 의미 창조, 우리 삶을 바라보는 인식 유형, 그리고 그 신선한 감수성으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소외문화와 정치적 억압구조에 대한 몸부림으로서 해체시는 필연성을 지닌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경박한 태도, 거칠고 야비한 어조, 그리고 그 지나친 허무주의와 극단적 상대주의는 극복되어야 할 과제다.       평단에서는 저를 해체시를 쓴 시인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저는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나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같은 시집에다 ‘형태와 장르와 세계관을 해체한’ 시를 싣기도 했었습니다. 박남철 시인이 최근에 작고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해체시의 명맥이 끊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지더군요. 저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자주는 아니지만) ‘도시시와 해체시’를 쓰고 있는 구시대의 시인입니다. 졸시를 한 편 보여드립니다.                                                   해 뜨는 들판에다 다시 기(基)를 세운다 절망의 성기를 기는 열을 내고 빛을 내고     고마워해야 하리 우리는 모두 하늘 향해 발기한 기 덕분에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다     보온밥통의 밥을 먹고 냉장고의 물을 마신다 그럼 영혼은 피 줄줄 흘리다가도 멎고 육체를 녹이는 산성비도 피할 수 있다     욕망하는 현대인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하늘을 향해 튼튼하게 발기하는 기여 너의 치부 깊숙이 나의 치부를 박아 넣으리라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아 얼마나 많은 사산아를 수습해야 저 기가 가동을 멈출까     후폭풍이 너와 나의 살 껍질을 벗기는 이 들판에 누가 또다시 기를 세운다 아주 많은 죽음 이후   -「다시, 기를 세우며」 전문       시의 제 1연인 사진은 폴란드 화가 백친스키의 그림 「폼페이 화산 유적에서 발견된 두 남녀」입니다. 폼페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화산재가 인근 마을을 덮쳤는데, 때마침 한 몸을 이룬 남녀가 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어 후대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화가가 그 화석을 직접 보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 소문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가 이 그림을 봤을 때는 마침 일본 동북부 지방 해저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뒤흔든 2011년 3월이었습니다. 원전 사고가 나면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基’는 그러니까 발전시설을 다룰 때 쓰는 단위입니다. 원전 1호기, 2호기 하지 않습니까.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그랬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마을을 덮친 화산재 이상으로 큰 재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생산의 대부분을 원자력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는데,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더라도 원자력발전소가 안전시설을 완벽히 갖췄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전국 21개 원전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640회 이상 일어났다는 통계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원전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난다면? 이런 상상으로 쓰게 된 「다시, 기를 세우며」가 해체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저는 이 시를 쓰고선 ‘도시시와 해체시’에 값하는 시를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도시시를 산업사회에서의 삶의 양식과 의식을 반영하고, 그 문제적 양상을 제기한 시라고 하셨지요? 해체시에 대해서는 종래의 시에서 소재에 지나지 않는 현실을 전혀 예술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생경한 원료 그 자체로 보여주는 반미학의 새로운 시학에 근거하고 있으며, 현실을 판단하지 않고 전시하며, 변용하지 않고 편집한다고 하셨지요? 극단적인 실험이라는 형식적인 측면보다 저는 반미학과 ‘의심하기’라는 내용적인 측면을 중시했기에 해체이론, 해체미학의 자장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사사진과 그림이 텍스트의 구성 요소가 된 저의 일련의 시들을 이데올로기적 탈중심주의 관점에서 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심의 해체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다원적 글쓰기 방식이라고 진단하셨지요. 장르혼합식 글쓰기가 시를 사회적․역사적․이데올로기적․미적인 다원적 문맥에 놓이게 한다는 선생님의 평가는, 중심의 해체를 시도하는 제 시의 경향을 적시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가미카제 특공대원에 대한 글을 읽고 몹시 힘들어 했었습니다. ‘神風特別攻擊隊’의 한 사람을 소재로 한 미당의 시「松井伍長頌歌」를 미당문학관에서 읽었을 때도 몹시 괴로웠는데 조선인 자살특공대의 수가 17명이나 된다는 기사를 읽고 잠을 못 이루며 애통해하다가 써본 시가 있습니다.     눈앞에 들어온 미국 항공모함 시계를 본다 그대 목숨 이제 1분 남았다 59초, 58초, 57초, 56초, 55초, 54초, 53초, 52초, 51초, 50초, 49초, 나 이제 죽는다 나는 사라진다 48초, 47초, 46초, 45초, 44초, 43초, 어무이―! 아부지요―! 누부야―! 형니임―! 마지막으로 한 번씩 불러본다 42초, 41초, 40초, 39초, 38초, 37초, 36초, 35초, 34초, 33초, 32초 조종대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31초, 30초, 29초, 28초, 27초, 26초, 25초, 24초, 23초, 22초, 21초 목표 지점! 항공모함의 함수를 향해 방향타를 꺾는다 급강하 시작 20초, 19초, 18초, 17초, 16초, 15초, 14초, 엄청난 풍압, 어금니를 깨문다 13초, 12초, 11초, 10초, 저 먼저 갑니더 하늘나라로 갑니더 나중에 뵙겠심더 9초, 8초, 눈을 감는다 심장이 따갑게 뛰고 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7초, 6초, 5초, 4초, 순간 눈을 뜨자 눈앞에 와락 달려드는 쇳덩어리 3초, 2초, 1초, 목련꽃 진다   -「어떤 목련에 대한 생각」 마지막 연       사진이 남아 있는 탁경현이나 노용우 같은 젊은이는 20대에 전사했지만 이 시에 등장시킨 박동훈은 17세 소년이었습니다. 「松井伍長頌歌」에서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 이는 인재웅이라는 젊은이였지요. 지금부터 70년 전,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는 미국 항공모함을 향해 경비행기를 몰고 돌진한 박동훈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탁경현(1920〜1945)                                                                                  노용우(1922〜1945)       폭약을 잔뜩 적재한 비행기의 연료통에는 기지로 돌아올 연료가 넣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무슨 죄가 있어 ‘가서 죽어라’는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것일까요? 아, 죄가 있기는 했습니다. 식민지에서 태어났다는 죄였지요. 저는 동훈 소년의 마지막 1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항공모함을 향해 방향타를 꺾어 돌진하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동훈 소년이 겪었을지도 모를 그 1분의 공포감과 절망감을 시로 써보았지만 이것이 뭐 애도가 되겠습니까, 명복을 비는 일이 되겠습니까. 그저 가슴이 아프고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죽은 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이 이 시를 쓰게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보고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쓴 시가 있습니다. 코가 베어져 사라진 사진의 주인공은 비비 아이샤라는 이름의 아프가니스탄 여인입니다. 조혼제도와 남존여비사상의 희생자로, 남편의 학대를 못 이겨 달아났다가 붙잡혀 코와 귀를 절단하는 보복을 당했는데 다행히 서방에 이 사실이 알려져 미국 캘리포니아 주 그로스먼 재단 병원에서 인조 코 성형수술을 받아 다시 코 있는 얼굴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일본 교토에 있는 ‘이총(耳塚)’이 생각났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군이 조선인 12만 6000여 명의 코를 전리품으로 베어와 만든 무덤이 교토에 있습니다. 이총은 사실 비총(鼻塚)입니다. 에도시대 말기의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이 코무덤이 잔인하다면서 귀무덤으로 바꿔 부르자고 해서 명칭이 바뀌었을 따름이지요. 왜군은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 조선인의 목을 베어 본국에 보냈지만 그 수가 늘어나자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쓴 뒤에 교토의 이총을 찾아가 묵념을 드리고 왔습니다.     엎어지면 코 베어가는 세상 코 없는 얼굴이 날 빤히 쳐다본다 아침 신문에서 만난 코 달아난 얼굴 그대 후유- 안도의 한숨 내쉴 수 없으리 킁킁 냄새를 맡을 수 없으리 코가 간지럽지 않으니 재치기할 수 없으리 감기 결려도 콧물 흘릴 일 없는 코 아픈 아프가니스탄의 여인이여                                                                         교토에 가면 귀무덤이 있다 12만 6000명의 코가 그 무덤에 있다는데 그 많은 사람의 사지 육신은 조선반도에서 다 썩었는데 소금에 절여져 현해탄을 넘은 코는 400년이 지났는데 썩지 않았을까 개수에 따라 매겨진 전공 그 무덤을 파보면 코 뼈다귀가 소복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까     내 오늘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계단을 오르내렸다 코끝도 안 보이는 그를 코가 빠지도록 기다렸다 코가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내 코가 석 자 코가 비뚤어지도록 홧술을 마시고 드르릉드르릉 코를 골며 잠잔다 코기토 에르고 숨(Cōgitō ergo sum)! 코 없이 살아가라는 세상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코가 없다」 전문       사진 한 장이 저로 하여금 이 시를 쓰게 했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타게 했습니다. 아아, 12만 6,000명의 코가 베어져 이룬 무덤이 있다니! 저는 시가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가 무기라는 김남주의 시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내면세계 추구나 자아에 대한 탐색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역사의식, 사회의식, 그리고 현실참여의식 같은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일종의 정치의식이라고 할까요. 개인의 삶은 사회의 부조리한 조건들로 말미암아 굴절되기 쉽고, 그런 이유로 개인은 사회와 맞서는 의지를 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회가 ‘건전한 사회’(에리히 프롬)가 아닐 때는 말입니다. 저는「화가 뭉크와 함께」라는 시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일종의 ‘정치시’를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80년대와 정치시」라는 글에서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지요.       우리의 삶이 정치화되고 시가 정치화되는 것은 하나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허세욱이 최근 중국 정치시를 번역ㆍ해설한 「反體制의 政治抒情詩」와 김광규가 번역한 「에리히 프리트의 참여시」는 현대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정치시에 있음을 반영하고 고무한다 하겠다. (중략) 정치시에서 시인의 시각은 매우 배타적이고 고정적이다. 이것은 적어도 진실의 면에서 정치현실이라는 전체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런 시각 밖의 진실은 또 한 번 왜곡되고 은폐되기 때문이다. 정치시는 애국시고 우국시지만 80년대 정치시는 너무 거칠다. 물론 거칢 자체는 우리의 정치시가 아직 저항과 투쟁에 근거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80년대 정치시는 그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너무도 명백히 지니고 있다.       저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 않는 정치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잘 알면서도 줄기차게 실패작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이 세상에는 불의와 부조리가, 몰상식과 몰염치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이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제12시집을 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시집은 서정시집이 아닐 듯합니다. 저는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면회를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을 정신병원 안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들의 싸늘한 눈빛 혹은 멍한 표정이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고는 했습니다. 또 몇 년 전부터 전국 여러 곳 교도소를 다니며 교화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갖고 시를 썼습니다. 그들 모두는 오랜 시간 벽에 갇힌 채 감시를 받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구속할 수 없는 삶의 희망과 꿈이 있는데, 그것을 시의 소재로 삼고는 했습니다. 다정다감한 서정시가 아니라, 조금도 곡필이 없는 거친 시, 윤기 없는 시를 저는 쓰고 있습니다. 이런 시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이 모순된 세상을 향한 저의 ‘절규’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저작들을 수시로 펼쳐보면서 제 시어의 동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 시가 선생님의 시론에 빚진 게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깊이 감춰진 모순들은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심신의 고통은 멈추지 않지요. 제 시는 바로 그런 고통에 대한 부르짖음이며 ‘생사의 고백’(코스타 가브라스)입니다. 선생님의 시론이 제게 빛인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시론을 머리맡에 두고 보며 힘을 내봅니다. 제 시에 피를 돌게 하는 귀중한 시론에 늘 감사를 드리며 명복을 빕니다.       ㅡ『시와사상』 봄호에서    
431    김춘수 / 이승하 댓글:  조회:5292  추천:0  2015-04-19
        시간 : 1999년 1월 13일   장소 : 김춘수 시인 명일동 자택    이승하 : 안녕하십니까? 한동안 겨울 날씨가 너무 포근해 기상 이변에 따른 이상 난동인가 했는데 최근 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하지만 바깥 출입하시기에 불편한 날씨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김춘수 : 몸은 그저 그만한데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수가 다 있습니다. 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미당 선생이 자고 일어나면 산 이름을 수백 개씩 외운다는데, 그 심정을 알겠어요.       이승하 : 그래도 선생님 연세가 올해 일흔여덟이 되신 것을 감안하면 아주 건강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춘수 : 내가 생일이 좀 늦어요. 11월 25일이니까 만으로 치면 일흔여섯 겨우 넘긴 셈인데 우리 나이로 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할까요. (웃음)       이승하 : 작년 12월, 시와시학상 수상식장에서도 장시간 축사를 하셨고, 문학아카데미 주관 시의 축제 행사 때에도 '시의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장시간 특강을 하시고 질문도 받으셨다면서요? 저는 시의 축제 행사 때 가보질 못해 특강 내용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춘수 :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서경』에 '詩言志家永言'(시는 뜻한 바를 말로 표현한 것이며 노래는 말을 가락에 맞춘 것)이란 말이 나오죠. 여기서 '뜻'이란 서양의 50년대 신비평 그룹이 말한 'poetry of the will'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will'은 의지가 아니라 관념이나 사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platonic poetry', 즉 관념시도 거의 같은 말입니다. 이 유형은 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을 만큼 긴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근대에 들어서 'physical poetry'(물질시)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상이나 관념을 배제하는 또 하나의 유형이지요. 관념과 의지는 얕잡아서 말하면 메시지인데, 시에다 어떤 메시지를 담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입니다. 관념이나 메시지는 사물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물질시는 판단을 유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지요. 어떤 사물과 사실을 묘사하는 데 그칠 뿐 주의 주장을 배제합니다. 시에는 크게 이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이 그날의 강연 요지였습니다.        이승하 : 선생님께서 한때 말씀하셨던 무의미시는 물질시의 갈래로 봐야겠군요. 그런데 1991년에 발간하신 시론집 『시의 위상』을 보니까 한국 현대시의 계보를 세 가지로 나누어놓았더군요. 사적인 개인의 감정을 드러낸 서정적인 가닥과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이 두드러진 현실 참여적인 가닥, 그리고 문화의식이나 예술적 차원에서의 시대감각이 민감한,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는 가닥이 그것이라는 삼분법을 본 기억이 납니다. 지난번의 구분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갈래가 하나로 합쳐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김춘수 : 아,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이승하 : 우리 시를 보면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국내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현실 참여적인 가닥은 현저히 줄어든 셈인데, 한때 무의미시론을 주창했던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춘수 : 사회 문제는 늘 있는 것인데 동구권 몰락으로 현실 참여시의 창작이 줄어든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요즘도 세상이 얼마나 어렵고 어지럽습니까.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의 갑작스런 위축은 그때 그런 시를 활발히 썼던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어떤 기대가 있었다거나 시세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다른 나라 시를 보더라도 사회 참여의 경향은 있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구권은 동구권이고 우리 사회는 우리 사회인데 왜 공산주의의 몰락이 우리 시인들한테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가 잘 안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이승하 : 메시지의 시를 배격해오신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뜻밖입니다. 아무튼 참여시론을 외친 김수영의 영향력은 후배 시인들과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여전히 절대적입니다. 김수영 시인과 그의 영향력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김춘수 : 김수영은 나랑 나이도 비슷했고 문단에 나온 것도 비슷했습니다. 나보다 한 살 위였죠. 그런데 선후배와 동년배 시인을 망라해 그처럼 내가 강한 압력을 느낀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수영은 모더니스트로 출발했는데, 그래서 부산 피난 시절 후반기 동인들과 가깝게 지냈지요. 후반기 동인과 그 주변 시인들 가운데 김수영은 내 눈에 그때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후반기 동인은 저한테도 가입 의사를 타진해왔는데 저와는 기질이 맞지 않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방법론과 기교에 있어 모더니스트임에 틀림없었던 김수영은 20년대를 풍미한 T.S. 엘리엇보다 30년대 영국 뉴 컨트리파를 이루었던 W.H. 오든과 스티븐 스펜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엘리엇이 내면성이 강한 시인이었던 반면 오든과 스펜더는 사회성 내지는 혁명성이 강했지 않습니까. 혁명성이 강한 시의 탄생은 유럽 지식인 사회의 좌경화와 스페인 내전, 미국 경제공황 등의 영향 때문인데, 4.19를 전후해 김수영도 뉴 컨트리파 시인들을 의식해 시적 전환을 꾀했던 것입니다. 김수영에 대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경쟁의식을 갖고 있던 저는 그가 참여시론을 전개하자 그 반대의 경향인 내면세계를 더욱 열심히 파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려고 용을 쓰게 된 데는 김수영이란 존재가 의식되었기 때문이지요.       이승하 : 김수영 시인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아까 미당 서정주 선생님 말씀을 잠깐 하셨는데 문단에서 오랜 교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당 선생님의 시세계는 선생님과 유사한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미당의 시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춘수 : 그 무엇보다 그분한테는 니체 사상의 영향이 강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미당 자신도 보들레르보다 니체의 사상에 경도된 적이 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문둥이」 같은 시를 보면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긍정과 예찬이지요. 도덕이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인데, 도덕을 초월하는 생명사상이 그의 초기 시에는 아주 강했습니다. 모국어의 유려한 구사와 아울러 미당 시의 이런 측면은 무척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승하 : 선생님께서는 90년대에도 정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시론집 『시의 위상』을 비롯하여 시집『처용단장』『비에 젖은 달』『서서 잠자는 숲』『들림, 도스토예프스키』4권을 90년대에 출간하셨습니다. 작품집 출간 계획이 지금 잡혀 있는 것이 있습니까?       김춘수 : 이 달 말경에 문학세계사에서 시집이 한 권 나올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승하 : 칠순에 접어들어 펴낸 다섯 권의 시집, 정말 왕성한 작품 활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춘수 : 작품의 질이 문제지요.       이승하 : 지난 겨울호『세계의 문학』에는 평론가 이태동 선생이 선생님의 문학을 총정리한 글을 실었습니다. 이태동 선생은 선생님의 시를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론적 추구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시적 궤적은 사계의 변천 과정에서 명멸하는 생명체의 그것과 유사함을 지니고 있다고, 즉 생명체의 성장 과정이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굴절되는 모습을 보이듯이 외부적인 상황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타령조 기타』의 세계를 지나면서 관념을 멀리하고 실존적인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던데, 여기에 대해 동의하시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춘수 : 저도 이태동 씨의 그 글을 유심히 읽었는데 제 창작 의도와는 전혀 다른 진단을 하고 있더군요. 사계의 변천 과정이니 외부적인 상황과의 깊은 관계니 실존적인 현실묘사니 하는 것 등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이지만 여기에 대한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평론가가 제 시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분의 자유 아닙니까. 상당히 긴 분량으로, 공들여서 쓴 글을 놓고 반박하기가 뭐합니다.      이승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태동 선생의 평가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패러디를 통해 부조리한 역사와 비극적인 삶의 현실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새로우면서도 허무적인 일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조리한 역사와 비극적인 삶의 현실에 저항한 소설 속의 인물들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인정할 수 있지만 선생님 시의 허무적인 일면에 대한 언급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춘수 : 허무라는 말이 거두절미하고 갑작스레 나오니 당황하게 되더군요. 허무라는 말이 나왔으니 도스토예프스키 소설과 관련시켜 '허무'에 대해 이런 말은 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을 보면 혁명가들이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상당수가 허무주의자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희랍정교주의자 내지는 슬라브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구에서 들어온 사회주의니 혁명사상이니 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요. 러시아가 공산주의 치하였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금서였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회주의자를 허무주의자와 같은 맥락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혁명가들을 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즉 니힐리스트라고 본 것을 공산당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승하 : 저는 죽음을 향한 인간의 도정이 결코 허무로만 귀결되지 않음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내재되어 있음을『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에 의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오셨는지요? 예수의 다른 이름이 구세주인데, 선생님이 쓰신 시 가운데 예수가 나오는 것도 여러 편 있지 않습니까?       김춘수 : 나는 미션 계통의 유치원에 다닌 탓인지 어릴 때부터 기독교가 정서적으로, 감각적으로 몸에 배었습니다. 청·장년이 된 이후로는 기독교, 특히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관심이랄까, 집요한 관심이랄까. 성경은 지금까지도 내 애독서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책이 나왔는데 상당수를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성서에 기록된 기적(奇蹟)의 대목에만 이르면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에 대해서 지적인 관심으로만 접근하게 되더군요. 기적의 문제는 기독교인이라면 과학자 등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무조건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습니까. 나는 그게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관심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에 있어서는 구원의 문제, 인간에 있어서는 존재론적인 문제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승하 : 지난번 시집을 보면 원죄, 혹은 선악의 문제로 고민하는 소설 속의 인간들이 다수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 자신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선생님 나름의 종교관을 펼쳐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춘수 : 그럴 수 있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느님을 믿는 희랍 정교주의자였지만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선인과 악인을, 혁명가와 반혁명가(지주·자본가·종교인 등)를 등장시켜 갈등케 했지요.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딱 갈라서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극악무도한 인간과 천진무구한 인간이 나와 다같이 고민하고 갈등하지요. 신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은 확실합니다. 한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의 양상만 보여줄 뿐입니다. 해결을 줄기차게 모색하되 해결된 세계는 보여주지 않아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아주 공감했던 것입니다. 자기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갈등만 있고 해결이 없는 것, 그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는 예수에 대한 관심은 갖되 기독교인이 되지 못한 나의 종교관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하 : 선생님은『현대문학』1월호에「계단을 위한 바리에테」를 발표하셨고, 이번 호『시와시학』지에 연작시「의자를 위한 바리에떼」7편과「계단을 위한 바리에떼」3편을 발표하셨습니다. '바리에떼'란 다양성·변화·변용, 뭐 이런 뜻이니 변주곡으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의자와 계단 같은 사물을 제목에 끌어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춘수 : 의자와 계단 연작시가 스무 편 정도 돼 이번에 나올 시집의 제목을 '의자와 계단'으로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자는 휴식과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의자에 앉으면 휴식의 상태가, 비어 있으면 기다림의 상태가 되지요. 나는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즉 정신의 안정을 꾀하고 싶은데, 종교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얻고 싶은데, 내 의자는 늘 비어 있습니다. 내 의자는 늘 비어 있는 상태이고, 나도 거기 앉고 싶은데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정신적 안정을 줄곧 갈망하는데 한시도 안정이 안 되는 거지요. 계단이란 것은 무한정 올라갈 수가 없죠. 올라가게끔 만들어져 있지만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계단입니다. 인간 본연의 이율배반성이나 자기모순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계단이 아닌가 합니다. 신학과 연결시키면 안티노미(antinomy)의 상태로 있는 것이 계단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이승하 : 그러니까 의자는 구원의 불가능함을, 계단은 인간 존재의 이율배반성을 의미하는 것이겠군요. 의자에 가서 앉고 싶어도, 즉 기독교인이 되어 내 몸과 영혼을 신께 온전히 의탁하고 싶어도 내 의자는 늘 비어 있으니 휴식과 안정,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또 보통의 인간이 매일 도처에서 만나는 계단은 지혜이건 재산이건 명리이건 쌓아 올라가면 반드시 버리고 내려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를 일깨워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사물을 갖고 사상을 들려준 상징화의 기법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김춘수 :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이승하 :『계단을 위한 바리에테』는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어린 시절이 나오는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시적 화자와 니버가 친구로 등장합니다. 니버란 녀석이 내 호주머니에 밤 몇 톨을 쑤셔넣는데, 집에 가서 꺼내보니 껍질에 설탕가루가 묻어 있고 알은 다 썩어 있더라는 얘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의적인 표현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고…….       김춘수 : 라인홀드 니버란 이름은 독일식이지만 미국 국적이었지요.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그의 저작 『인간의 운명』은 내가 대학에 다니면서 탐독했던 작품이지요. 사실에 있어 그 시의 니버는 어린 날의 나고, 니버의 친구는 이웃집에 살던 일본인 아이였습니다. 그 얘기는 자전소설 『꽃과 여우』에도 나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였을 겁니다. 이웃집에 사는 일본인 아이가 꼭 그런 식으로 짓궂은 장난을 하기에 나도 그렇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겁이 나 내 앞에 영 안 나타나는 겁니다. 그 일을 생각해보니까 니버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어릴 때는 그렇게 짓궂은 개구쟁이였는데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수양을 통해 유명한 신학자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그런 시를 지어본 것입니다.       이승하 : 그럼 계단을 올라가는 수행을 통해 인간적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가져본 것이 이 시의 숨은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김춘수 :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이승하 :「의자를 위한 바리에떼」는 그 넷부터 시작하여 그 열까지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에 의자가 있어 '자리'나 '지위'를 생각했습니다만 읽어보니 그런 뜻은 들어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의자에 얽힌 추억담으로 읽혀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고,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 넷'에는 헤르몬산, 갈릴리의 호수, 요단강이 나와 선생님의 종교적인 명상 같은 것을 엿보게 됩니다. 독자를 위해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 가능할는지요?       김춘수 : 예수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갈망으로 굳어진 내용입니다.       이승하 : 아, 그렇습니까. '그 다섯'에는 죽어서 나비가 된 어릴 적 소꿉질 친구 '옥수나'가 나옵니다. 왜 옥수나가 대낮인데 공지초롱을 들리고 연못가 수련꽃 그늘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구요, "슬픔은 키가 작아/바람 부는 날 더욱 작게 몸을 웅그린다"는 것도 저로서는 제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파악되지 않습니다.       김춘수 : 옥수나란 이름은 지어낸 것입니다. 이름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유치원생쯤 되는 대여섯 살 때도 이성을 느낄 수 있거든요. 내가 좋아했던 계집아이가 죽고 없는 세상은 쓸쓸합니다. 슬플 때는 사람이 움츠러드는데 바람까지 부는 날엔 더욱 추워 웅크리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가 나비가 되어 환생하기를 꿈꾸는 것이지요. 이 시에는 평생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오는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근원적인 갈망을 평생 지고 가는 존재가 아닙니까. 존재 그 자체가 슬픈 것이지요.       이승하 : 유년시절에 느낀 이성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을 그려 인간의 유한성, 그것의 슬픔을 노래해본 시로군요. 의자는 기다림과 갈망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제목과 잘 들어맞습니다. 루오는 현대 화가 중에서도 기독교적 색채가 특히 강한 사람입니다. 루오가 「교외의 예수」를 그린 일에 상당한 상징을 부여한 듯합니다. 이 작품에 대한 선생님의 창작 의도는 무엇입니까?       김춘수 : 루오는 나이가 많이 들어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세계적인 화가가 된 사람이지요. 그의 작품「교외의 예수」에는 예수의 얼굴이 없고 윤곽만 있지 않습니까. 그 옆의 두 사람도 마찬가지고. 루오도 예수의 이목구비를 그려낼 수 없어 좌절감을 겪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수는 참 걷잡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웃음)       이승하 :「그 일곱」과 「그 여덟」은 쉽고도 어려운데 어둠과의 대결 및 시간에 대한 은유적 처리로 느껴졌고, 「그 아홉」은 고향에서의 기억을 더듬은 시로 읽혀지던데요.       김춘수 :「그 일곱」은 기다리는 자를 그린 일종의 스케치입니다. 쓸쓸한 풍경화지요.「그 여덟」은 인간의 고독감을 그린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갈망하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객관세상이어서 아무 감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객체는 다 냉랭하다는 것이죠. 그 다음 시는 끝부분 "허리가 물렁물렁해진다"는 표현에 주목해주기 바랍니다. 앞서 말한 의자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일이 허전하기도 하고 뭔가 충족되지 않는 델리킷한 감정을 담은 것입니다.    이승하 :「그 열」에는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의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일종의 풍자시로 읽혀집니다. 풍자시로 읽어도 괜찮은 작품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춘수 : 아닙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왔을 때 저도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그분의 인상이 써놓은 그대로였습니다. 그가 풍겨주는 분위기와 그가 읽는 글(메시지)에 흡수·동화되어 흡족함을 느낀 상태를 그대로 그린 것입니다.        이승하 :「계단을 위한 바리에떼」는 계단에 얽힌 어린 날의 추억입니까? 「그 하나」와 「그 둘」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그 셋」은 제 안목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잼이 자메이카의 약어라는 것과 계단과의 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시를 보는 눈이 이렇게 미욱하여 영 부끄럽습니다.        김춘수 : 앞의 두 편은 성장의 한 과정을 그린 것이지요. 잼이 자메이카의 약어라는 것을 어디서 우연히 봤어요. 잼은 빵에 발라서 먹는 것인데 자메이카의 약어이기도 하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나라 이름조차 확 줄여서 사용하듯이 우리가 무엇에 도달하려면 제대로 순서를 밟아야 하는데 성급하게 하려 듭니다. 그런 것에 대한 경구적인 의미를 담아봤습니다.        이승하 :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지 않고 성급하게 이루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의 조급함에 대한 교훈적인 의미를 담은 시로군요. 이제까지 여러 시편에 대한 세심한 설명을 듣고 보니 선생님의 최근작들이 대체로 신 없는 세계에서의 인간 구원과 인간 존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작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내시는 시집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선생님의 시집은 해외 소개도 활발합니다. 시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영역되고 『꽃을 위한 서시』가 불역된 바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번역된 시집이 있습니까?       김춘수 : 강상구 씨 번역으로 일역 중인 것이 한 권 있고요, 서울대 서반아어과 교수가 번역하고 있는 것이 한 권 있습니다.       이승하 : 선생님은 시인이시지만 『한국현대시형태론』『시론』『의미와 무의미』『시의 위상』 등의 시론집을 내신 이론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평단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시면 한두 가지만 지적해주십시오.       김춘수 : 월평 등 실제비평을 보면 영 엇나가는 평을 하는 수가 많습니다.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론적으로 모르지만 맛을 잘 구별하는 감식가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시의 맛을 아는 사람이 실천비평을 하는 것이 좋을 텐데 외국 이론을 도식적으로 갖다 붙이려는 사람이 쓴 글을 보면 영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본시 조금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 시를 현학적으로 해석, 더 어렵고 난삽하게 만드는 데 평론가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지요. 시에 대한 억지스런 해석, 그리고 도식적 해석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를 보는 시야가 우리 세대보다 훨씬 넓어진 것은 다행스런 현상입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 시를 날카롭게 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가 있구나 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승하 : 우리 시의 현주소와 관련하여 선생님의 불만 사항이나 평소에 조언하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춘수 : 우리 시가 타성화되어 있는 면은 정말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1910년대와 20년대의 시풍과 경향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왜 이렇게 많은 서정시가 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 감각이 그렇게 둔하다는 것이지요. 이 시대는 서정시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낡은 서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고, 중견이든 신예든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1세기 전의 시풍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이른바 순수서정시풍이 한 세기를 이어가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례일 겁니다. 지금은 다들 손을 놓고 있는 해체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IMF 시대라 재벌도 구조 해체를 하지 않습니까. 타성화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작금의 서정시풍은 타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하 :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1993년에 사진과 그림을 응용한 시를 여러 편 실은 시집을 내놓았는데 시인이 활자에 도전하고 있다고 도처에서 욕을 듣고는 작업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용기가 생겨납니다.       김춘수 : 또 하나 우려할 만한 것은 몇몇 시인들의 선(禪)에 대한 경도입니다. 선에 관심을 기울이면 양생(養生)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불가의 선사처럼 뭘 깨달은 것도 같고, 화두 같은 시를 써놓으니 기분전환도 되고 마음이 평안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사회성과는 아주 멀어지고, 내면세계 혹은 존재론과도 멀어지게 되죠. 깨달은 척한다는 것은 사실 희극적인 현상 아닙니까. 선을 받아들인다면 하이꾸를 쓴 바쇼의 경지에 이른다면 또 모를까. 바쇼는 선사상에 입각해 시를 썼지만 관념성을 배제하고 즉물적인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이승하 : 어떤 시인들을 겨냥한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문단 활동이 어언 50년을 넘어섰습니다. 유치환·윤이상·김상옥 선생님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신 것을 기점으로 삼으면 55년이 된 셈입니다. 문학인의 길이란 어느 한때의 수확에 우쭐할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해 나가야 할 언어의 밭갈이여야 함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제껏 전집이며 시선집을 제외하고 개인시집만 14권을 내셨습니다. 이제 곧 15권째의 시집이 나올 예정이고요. 작년의 인촌상 수상이나 재작년의 대산문학상 수상은 선생님의 뛰어난 작품에 대한 평가일 뿐 아니라 노년에 들어서서도 줄기차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을 기리기 위해서일 거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춘수 : 늘그막에 무슨 상복인지 모르겠습니다. 2년 연속 큰 상을 받아 내가 시상식장에서도 후배들한테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었지요.       이승하 : 55년이란 긴 세월 동안 긴장감을 잃지 않고 계신 선생님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긴 시간 대담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 작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430    녀성해방출사표 시인 - 高靜熙 댓글:  조회:4887  추천:0  2015-04-19
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긴 노래                     / 시인 고정희 재평가 고정희의 장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1. 무가, 민중의 바람을 담은 노래   주검은 어디에나 있다. 신문지상의 부고란과 명절날 제사상의 지방에서 우리는 주검을 연상하며, 장례일과 현충일에도 수많은 주검을 떠올린다. 삶이 없었더라면 죽음 또한 없었을 터. 그러기에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맞이해야 할 마지막 현실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은 넓고도 깊다. 시간의 강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생자와 망자를 완벽한 타자로 만든다. 강의 양안에 선 생자와 망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승과 저승은 건너갈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극한 정성으로 신들의 힘을 빌어 한 척의 배를 만든다. 그 배의 이름은 굿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망자를 불러 그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살아 있는 식구들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배인 굿판.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강 위에서 무당은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배를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당에 관한 옛 기록을 찾아보면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유리왕 편에 나와 있어 그 연원은 기원전과 후의 경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위에 뜬 그 배에서 우리는 지난 2천 년 동안 무당의 권능에 의지해 신을 불렀고(청신), 신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고(강신), 신을 맞이했고(영신), 신과 놀았으며(오신), 신을 다시 저승으로 보냈던(송신) 것이다. 신과 인간의 만남 및 생자와 망자의 만남은 내림굿이나 다리굿, 혹은 씻김굿 같은 소규모의 굿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정성을 모아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번영을 비는 두레굿이나 대동굿에도 있었다.    굿판에서 신과 인간이 더불어 흥겹게 놀기 위해서는 무당이 노래를 해야 한다. 신을 불러오고 인간이 신과 함께 놀게 하는데 무가가 빠질 수 없다. 무가의 기본적인 요건은 음악적 가락과 문학적 사설이다. 음악적 가락은 청중의 신명을 돋우어 마음을 엑스터시의 경지로 몰아넣고, 문학적 사설은 청중을 머나먼 저승의 기슭으로 안내해 망자와 만나게 해줌으로써 잠시나마 생사를 초월케 한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내일-저곳에서의 삶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오늘-이곳에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굿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해소되지 못한 원초적 욕구의 맺힘과 사회적 갈등에서 오는 온갖 억눌림을 풀어왔다. 또한 굿을 통해 비명에 가 떠도는 혼을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보낸 뒤 삶을 더욱 충실히 가꾸어왔다. 굿은 어찌 보면 망자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행위이며, 이승에서의 삶에 더욱 집착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무가 속에는 청승도 애소도 곡성도 들어 있지만 그 밑바닥에 고여 있는 것은 현실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다부진 힘, 신분 제약을 뚫고 나아가는 민중의 끈질긴 집념이다. 무당은 부정한 일을 담당하는 신들을 달래고(부정거리), 잘먹고 잘살고 싶어하고(성주풀이), 재생과 여성해방을 염원하고(바리공주),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고자 길 닦음을 하며(씻김굿), 잡귀마저 초청해 풀어 먹이는(거리굿) 긴 절차를 노래로 풀어가는데, 여기에는 민중의 바람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밤을 새며 부르는 무가에서 놀이의 기능을 배제하면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광녀의 고함에 지나지 않는다. 무가가 신명의 드러냄이나 정서적 유희가 아니라면 공허한 하소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가에서 의사 표현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면 오락으로 떨어져 예술적 향기를 풍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거리 과정에서 듣게 되는 드라마틱한 노래에 담긴 현실 극복의 정신을 시로써 재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1991년, 43세를 일기로 작고한 고정희는 생전에 {초혼제}(창작과비평사, 1983)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창작과비평사, 1989)란 두 권의 장시집을 낸 바 있다. 이에 앞서 낸 {실락원 기행}(인문당, 1981)에는 문제적 장시 가 실려 있다. 와 두 장시집은 굿과 시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한 소중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논의도 가치 평가도 거의 되어오지 않았다. 시인의 작업은 70년대 탈춤부흥운동에 이어 80년대에 마당극이 마당굿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중 문화의 원형질을 탐구하고 서사적 구조에 의거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겠다는 의도로 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2천 년 동안 갖은 외래종교의 위세와 일제의 탄압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굿판에 닿아 있다.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무당을 사탄에 버금갈 정도로 혐오스런 존재로, 무속을 광기에 찬 악의 세계로 취급하기도 한다.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교계에서도 무속을 종종 미신으로 취급하는데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굿을 자신의 시세계로 왜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은 마땅히 제기되었어야 함에도 제기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기독교와 무속은 죽음관이 판이하므로 기독교인이 자신의 시 속에 무속의 죽음관을 어떻게 수용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충분히 해명되었어야 했다. 아울러 기독교인 고정희가 굿과 시의 결합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올바르게 평가해야 할 필요도 있기에 이 한 편의 글은 씌어진다.    2.  흥겨운 놀이판의 재현   생전에 10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고정희의 제3시집 {초혼제}와 제7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장시집이라는 형식상의 특색과 굿의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는 내용상의 특징 이외에,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다른 시집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완연한데 유독 두 시집에서는 무속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무속세계에 대한 관심은 에 이미 예비 되어 있던 것이기도 했다. 시인이 생애 내내 기독교인이었음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이력과 그녀의 다른 시집들, 또 많은 산문(한 가지만 예를 든다. 고정희는 라는 평문에서 "모든 참된 문학작품은 그 속에 무엇인가 기독교적인 것을 담고 있고 또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시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대로 역사상 인류가 가진 모든 고전 속에는 성서가 증언하는 진리가 부분적으로 육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성서와 문학은 둘 다 그 중심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구원'에 관심한다는 데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우규 편저, {기독교와 문학}, 종로서적, 1992, 446쪽)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왜 제3시집에 이르러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에다 자신의 시세계를 접목시켜야 했던 것일까. 처녀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배제서관)의 시편부터 살펴보면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잠든 메시아의 봉창이 닫히고   대지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작은 길 하나까지 묻어버릴 때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ㅡ 부분   표제시 외에도 "바벨탑에 가위눌린 푸른 신경 하나"(), "하나님 부를 때/누가 말했는가"(), "에덴은 여전히 불꽃에 싸이고"(), "순례자의 크고 환한 웃음소리"(), "종말 때문에 울부짖는 내 머리칼 뒤"(), "조금만 더 가면 천국으로 들어가요"() 등 시집은 기독교인이 쓴 것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시를 한두 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의 죽음관과 일치하고 있다.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나 곁에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    형벌의 수액은 이미   우리 뿌리 곁에 있다                                      ㅡ 부분   신약성경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이해되므로 죽음은 죄의 값이다. 인간은 죽어 은혜로운 생명의 주 하나님 앞에 인도되기 때문에 생명이 무화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보존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죽음관이다(김경재, ,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국종교학회 편, 도서출판 창, 1990, 220쪽). 고정희는 죽음을 늘 예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살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자"로 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아우슈비츠의 유태인을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자"라며 부활시키고 있다. 고정희에게 있어 죽음과 삶 사이에 흐르는 강의 의미는 같은 시의 "하나님 버린 목숨"과 "하나님 밖에 산다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에 잘 나타나 있다. 살아 있더라도 하나님을 버린 목숨은 이미 죽은목숨이며, 하나님 밖에 사는 목숨은 이미 버림받은 목숨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의 죽음관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던 시인의 죽음관은 제2시집 {실락원 기행}에 이르러 변모한다. 고정희는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인 무속의 죽음관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목만 일별하더라도 이 시집에는    과 함께 '잔양조' '중중몰이' '자진휘몰이' '휘몰이' '단몰이'를 부제로 한  연작과   가 공존한다. 판소리와 민요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마침내 '저승의 잡귀'와 '司祭의 축복'을 한 시 속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전통 율격의 시적 수용에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상태이다.    화계사 북소리   저승 문 두드리는 밤 일곱 시   (저승의 잡귀들도 사슬을 푼다는 밤 일곱 시)   잠시 마음에 채인 족쇄를 풀며   그대여 아무도 모르게 내가 운다   아무도 모르게 그대 우는 소리 듣는다   …(중략)…   한때 우리들의 피를 부풀린    司祭의 축복과 종소리 다 어디로 가고   …(중략)…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구나                                  ㅡ 부분   기독교 세계에서 잡귀니 원귀 따위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고정희는 낙원을 읽어버렸다는 전제하에 잡귀며 원귀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무속은 불행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는 데 집중하는 민간신앙인데, 바로 이 점을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속에서는 죽음을 현실로 일단 받아들이지만 죽음 자체는 불행한 것으로 여기고, 산 자의 노력에 의해 죽은 자는 신격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인은 이 땅의 모든 억울한 주검들이 예수처럼 부활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떠도는 원귀들도 잠재우고 싶"어 한마당 굿판을 벌일 마음을 먹는다. 이 시집의 제10부는 장시 이고, 이 장시는 제3시집의 제4부로 다시 가감 없이 게재된다. 시인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한 작업이고, 제3시집은 장시들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전재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는 불림소리, 조왕굿, 푸닥거리, 三神祭, 還人祭의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을 예상하고 쓴 시인지라 각 마당의 서두에 무당이며 귀신, 탈꾼의 행위 내용, 그렇지 않으면 무대 상황을 설명해놓고 있다. 이중 첫 마당 불림소리는 무당이 굿을 시작할 때 흔히 하는 부정거리를 염두에 두고 쓴 시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러나 두 마당 조왕굿부터는 주목을 요한다. 조왕은 부엌을 관장하는 가신으로 가내의 모든 일을 정탐한다고 믿어져온 신이다. 시인은 귀하게 태어난 남성들이 이 사회를 억압과 지배가 상존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기를, 무당, 즉 여성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소망한다.    우리들이야 어차피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오니   으짜든지 우리 귀남자 자손   청맹과니 되지 않게 비나이다   귀머거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벙어리 되지 않게 비나이다   놀고먹지 아니하게 비나이다   등쳐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간 내먹고 살지 않게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들은 깨달음 더디고 뭇매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여성'이다. 그런데 귀남자 자손, 즉 뭇 남성은 청맹과니,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기 십상인데도 그들 중 다수는 여성을 "등쳐먹고", "간 내먹고" 산다. 무당은 유교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성차별을 당해온 이 땅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의 사설은 성의 평등에 집중되어 있다. 무당은 제정이 분리된 이후 끊임없이 신분의 하락을 감내해온 계급상의 최하층민이었기에 무당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해방되어야 할 존재이다. 시인이 굿 절차나 무가의 사설보다 무당에 관심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마당 푸닥거리에서는 온갖 귀신과 도깨비며 탈들을 다 불러내는데, 이들을 통해 시인은 "원 없이 먹어보자"는 민중의 꿈을 드러낸다. 또한 더불어 잘살자는 치국평천 혹은 태평천국에의 꿈은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많이 다르다. 죽음의 강을 건너 생자와 망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정희는 굿이라는 배에 이렇게 처음으로 동승한다. "탈탈 탈탈탈 탈탈 탈탈탈/ 봐탈 보탈 강탈 약탈/ 봉산탈 양주탈 무당탈 도깨비탈/ 입맞추고 넋맞추어 수신제가하여 보자" 같은 대목의 어수선함은 네 마당 三神祭에 가서도 무가라는 형식에 의존하고 있을 뿐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신 내린다 신 내린다   三神님 내리신다   땅 위에 멍석 깔고 하늘에 넋을 풀어   우리 神 오신 길에 還人祭를 올려라   백옥 같은 얼굴에 八字 눈썹 세우시고   백두산 코 해 같은 눈   천신님 내리신다 어흠 과 같이 음악적 가락에 대한 배려는 확실하다. 이런 대목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실려 있다. 특히 2음보, 3음보가 중첩되는 우리 가락이 살아나 있어 읽는 동안 흥이 난다. "창 받아라! 훠이 훠이/ 창 받아라 창 받아라 창 받아라/ 꽥 꽥"이나 "썩 썩 물러가라 둥둥", "허허 공중 잿더미로 날게 하리라/ 둥둥둥……" 같은 무당의 부르짖음에도 일정한 가락이 있어 흥겨운 놀이판을 재현한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히 이용한 가락으로 무당과 청중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며,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도 좁혀진다. '다섯 마당 還人祭'에서는 흰 옷 입은 당골네가 등장해 온갖 차별과 설음을 견뎌온 한 여성의 이력을 들려준다. 장시 의 대미는 다음과 같은 모성에 대한 예찬으로 장식된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   몇 굽이 돌아오는 추위에 기대어   빈 자리 적막에 기대어    사시나무 떨 듯 기다리는 어미   갸륵해라 갸륵해라 갸륵해라   다만 사람 하나 간절한 방   떠난 그대 수의 殮衣를    마름질하는 손   어미가 기다리는 것은 떠난 그대이다. 어미는 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사별한 여인이기에 "떠난 그대 殮衣를/마름질"하고 있다. 긴 시의 마지막 연에 가서야 제목이 왜 '還人祭'로 붙여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 셈이다. 여인이 무당을 앞세워 굿을 벌인 이유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생전 여인의 등을 쳐 먹고 간을 내 먹은 존재이지만 지금은 저승에 가고 없다. 저승이란 데가 제아무리 극락세계일지라도 이승만은 못한데, 임이 지금은 이승을 떠나고 없기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것이다. "저승 극락세계라도 이승만 못해"라는 구절은 고정희의 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열쇠이다. 죽음이 영생에의 문을 여는 순간이며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엄숙한 순간임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죽음관을 믿고 있었을 시인은, 한 갸륵한 어미를 그려내기 위해 무속의 죽음관을 적어도 자신의 시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용한다. 이 땅의 민중이 두려워한 것은 억울하게 죽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을 떠도는 존재였기에 무당을 앞세워 죽은 자를 보다 완전히 죽이는 데 주력해왔고, 그 과정이 곧 굿이었다. 사후세계가 설사 극락일지라도 우리가 중시해야 할 곳은 저승이 아니라 이승이라는 생각, 그것은 바로 민중의 생각이었다. 어미가 떠나간 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염의를 마름질하고 굿을 하는 것일 뿐, 그녀는 다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맺힌 한도 풀고, 이왕이면 건강하고 잘살아야 한다. 고정희가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꾀한 는 이처럼 기독교인의 세계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특히 죽음관에 있어서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기독교도 무속도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무속의 죽음관은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과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21)이라는 인식이 없다. 부활과 영생사상이 없는 대신 한사코 거부하고픈 사후세계로 나날이 다가가는 우리네 삶을 긍정하는 데서 무속적 죽음의 인식은 출발한다. 그 인식은 삶이 배태한 환멸과 정말에의 터득으로 성숙하고, 마침내는 삶과 죽음을 굿이라는 한마당 놀이로써 한아름에 끌어안는다. 즉, 무속의 죽음관은 삶을 투시하여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것이며, 죽음을 삶 가운데의 엄연한 현실로 범주화하려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영존하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는 구원의 순간이라는 기독교의 죽음관과는 완전히 달랐음에도 고정희는 무속의 죽음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부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확신을 갖고서 굿의 세계를 확대해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장시집 {초혼제}가 탄생한다.    3. {초혼제} 난장판의 신명과 풀이   {초혼제}는 총 5부로 이루어진 장시집이다. 이중 1∼3부는 전체적으로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제1부 은 기독교계의 영결례 과정, 제2부 는 신학생이 고난주간에 올리는 기도, 제3부 는 추도식과 추도사의 외양을 빌어와 하나의 온전한 문학작품으로서는 그 형식에서부터 미흡한 바가 있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이땅에 당신의 자비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자유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해방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용서가 임하옵시며   (오, 주님 아니올시다)   이땅에 당신의 징벌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심판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분노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저주가 임하옵시며   (오, 그러나 그러나 주님 어찌 하리까)                                     ㅡ 부분   우리는 서로 무너졌나이다   비겁하게 비겁하게 무너졌나이다   신낭만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신구호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졌나이다   …(중략)…   신상상주의 신서정주의 신비평주의 신구조주의를 앞세우며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졌나이다                                     ㅡ 부분   이처럼 계속 되풀이되는 기도문 형식은 읽기에도 지루할 뿐 아니라 주제의 약화와 시적 감동의 약화를 동시에 가져온다. 80년대 초반기까지 노출된 우리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점들에 대한 폭넓은 진단과 엄정한 비판이 행해지고 있지만, 반복과 나열에서 오는 긴장감 부재는 시인의 확고한 비판의식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내용 양면 모두에서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이 판이하게 다른 기독교와 민간신앙을 혼용한 것도 실패의 이유가 된다. 의 제3장 추도시에 "다음은 고인의 혼을 기리는 유족 대표께서/애통하고 절통한 마음 함께 나누고자/추도시를 봉헌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밤 부활이라 꿈꾸자" 등의 구절이 보여 기독교 색채를 띠고 있는 데 반해 제4장 추도사에는 "구천 황천 북망산에 고이 계신 우리임", "지하 명부전 어머님께서도/제주 봉헌 흡흡히 흠향하시고/얼기설기 내리소서" 등의 구절이 있어 무속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와 아울러 지나치게 폭넓은 사회 진단에서 오는 공허함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시한 의 제5장 초혼제만 보더라도 의미도 분명하지 않은 신낭만주의에서 시작된 '신∼주의'는 신구조주의까지 12회나 나오며, '∼통일 기원축수'는 5회 '∼제 폐지 기원축수'는 6회 '∼통일'은 4회, '∼폐지'는 10여 회나 나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다루어지는 내용도 출애급의 광야에서부터 지하 명부전 우리 임네에 이르기까지, 각설이로 떠도는 전봉준에서부터 외제 선호사상 폐지에 이르기까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고 있어 다채롭기는 하나 통일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제4부 와 제5부 은 무속과의 만남을 꾀함으로써 일단 형식과 내용의 통일을 이룩한다. 민중의 아픔을 위무하고자 쓴 시가 민중의 생활상을 전혀 담지하지 못한데서 온 실패를 극복하고자 고정희는 민중이 수세기를 향유해온 굿에 마당극을 결합시킨 마당굿의 형식에다 자신의 시를 의지(依支)하고자 한 것이다.      '마당굿을 위한 長詩'라고 제목 위에 쓴 은 총 49쪽에 달하는, 70∼80년대 소극장과 대학가에서 행해진 마당굿과 동렬에 놓이는 작품이다.     등 연희본은 마당굿을 위한 대본인데 은 시가 강조되고, 특히 마당극의 재담과 판소리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 연희본과 다른 요소이다. 총 세 마당으로 이루어진 시는 각 마당마다 4, 4, 3과장의 춤을 춘 후에 시작하라고 명시하고 있어 공연을 염두에 두고 썼음이 틀림없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도깨비들이 나와 잔치를 벌이며 재담을 하는 장면, 무당과 박수가 나와 굿판을 벌이는 장면, 상여꾼들이 상여소리를 부르는 장면, 남정네가 나와 판소리를 하는 장면 등을 통칭하여 난장판을 벌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여느 마당극은 일정한 줄거리가 있으나 이 작품은 난장판처럼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등장인물들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고정희는 왜 이 작품에서 극의 형식을 마다하고 굿을 도입한 것일까.      임진택은 (1982)에서 극에서 굿으로 옮아간 당위성을 설명한 바 있다. 목소리만 높고 다양성과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70년대의 마당극을 극복하면서, "일상적인 생활과 놀이를 공유화하여 사람을 집합화하는 총체적인 예술운동이며 문화운동이며 사회운동으로서의 마당굿을 하게 되었다"(채희완/임직택, ({한국문학의 현단계Ⅰ}, 김윤수 외 편, 창작과비평사, 1982, 204쪽)는 그의 설명은 고정희의 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안내문이 된다. 각 거리마다 색다르게 놀고 색다르게 소리지를 수 있으며, 의례와 유희의 경계가 모호한 굿의 특징은 이 작품에 어지러운 난장의 성격을 부여한다. 판은 흥청망청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의사 표현이 없지는 않다. 시인은 둘째 마당 중간 부분에 이르러 무당의 입을 빌어 농민과 도시근로자의 가혹한 생활상을 증언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인충'을 고발한다.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농촌귀신 물러가라       일년 사시절 피땀으로 절은 농사       반절은 인충이 먹고 반절은 수마가 먹고       비료세 소득세 저기세 라디오 티뷔세 물고 나면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니 사―람―이 죽었구나       …(중략)…   무 당: 물러가라 물러가라 도시귀신 물러가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식은 밥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십리 공장 길 걸어 지하 3층으로 내려가        한여름 같은 기계실에 혼 빼주고 넋 빼주고       마음도 다 빼주니       한 달 수입이 3만 5천 원이라   무당은 망자의 혼을 불러와 생자의 한을 풀어주고 미래의 복을 빌어 주는 제사장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촌귀신 도시귀신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사회악을 쫓는 혁명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외침 속에는 청중, 즉 독자의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해학의 정신이 들어 있다. 농민의 가을 수확은 검불뿐이고 도시근로자 한 달 수입은 결국 빈주먹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면 이 굿청이 성스러운 의례를 행하는 곳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많이 위축되고 변질되어 있는 굿의 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굿이 생활과 동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생활 가운데에 믿었던 민간신앙이었다고 고정희는 무당의 입을 빌어 설명했던 것이다. 무당은 이런 사설도 한다.    무 당: 내 뜻이 네 뜻이고 네 뜻 또한 내 뜻이니       살풀이 고풀이 원풀이 한풀이도 끝났으니       내일이면 이 고을에 사람이 올 것이오       사람 오는 굿판에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밖에 지등 달아 사람잔치 벌입시다   박 수: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네       동서남북 다리 위에       달도 밝은 밤       무당할멈 시 박수할아범 시       섞어서 환영하네       그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가 알 바 아니구나   굿을 끝낸 뒤에 하는 뒷풀이는 사람 잔치이다. 이놈 욕하고 저놈 칭찬한 도깨비 잔치도, 이놈 불러내고 저놈 보내버린 굿도 이제 다 끝났으니 시나 한 수 지어 읊고 동구 밖에 지등 달아 사람 불러모아 잔치나 벌이자고 한다. 굿이 궁극에는 귀신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은 이래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굿청에 진설한 온갖 음식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요,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사람들이 온갖 시름 다 잊고 삶의 질곡에서 해방되자고 하는 짓이 아니냐고 무당이 말하자 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읊는다. 하늘에는 천황씨가 있고 땅에는 지황씨가 있다고. 그 나머지(시를 제외한 나머지) 부귀공명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이 대목에 나오는 천황씨나 지황씨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이 아니라 천지신명 정도의 뜻으로 쓰였다. 신이라면 복을 주기나 하지 산 사람을 해코지하지 말라는 뜻에서 쓴 구절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기 위한 항진으로서의 굿의 의미는 이제 새로운 내일을 열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굿으로 확산된다. 무당과 박수는 함께 노래부른다. "인간 세상의 더러움/ 다 함께 깨끗해지고/ 온 세상 울퉁불퉁한 것/ 모두 변하여 고르게 되었네"라고. 즉 이것은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은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모두들 변하여 고르게 되자고, 평등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시인의 의도를 담은 노래이다. 여기에는 이판 저판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여러 족속들의 삶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자리라면 억울한 농민도 불쌍한 도시근로자도 없을 것이라는 항변도 담겨 있다. 셋째마당에서는 판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어수선해진다. 육자배기와 판소리와 굿의 사설이 동원되고, 다음과 같은 소리꾼의 민요 가락도 나온다.    소리꾼: (남정네 춤에 맞춰)        빙빙 돌아보세 방방 뛰어보세        우리 임 돌아오니 아니 노지 못하리라        동동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설기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인삼주 여기 있소 어야디야        사랑떡 여기 있소 어야디야   소리판뿐만 아니라 굿판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과 노는 것이다. 망자의 극락천도를 위해서는 빙빙 돌고 방방 뛰어서라도 신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굿판에 내려온 신은 준엄한 판관의 탈을 벗어 던지고 인간 사이에서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신도 감정은 인간과 같아, 놀아주어야 흥겹게 생자의 삶을 축복해준다. 그래서 신의 구실을 하는 무당은 혼신의 힘을 다해 땀 흘리며 춤추고, 울며 노래하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때로는 황홀경에 사로잡혀, 때로는 망아의 경지에서. 소리꾼의 말을 받아 남정네는 "저승극락 버리고 돌아왔으니/ 에따 행화가 천냥이로다"라고 노래한다. 그렇다. 저승이 어찌 극락이란 말인가. 시인이 표현하고픈 극락은 이 시의 말미인 남정네의 노래에 담겨있다. "붉은 꽃은 만 송이/ 푸른 잎은 즈믄 줄기/ 첫 번째 봄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노래와 춤 삼현 소리 일제히 그치니/ 동녘에 붉은 해/ 새로 뜨는 시간이로구나"라는 남정네의 아름다운 노래는 날마다 맞이하지만 늘 새로운 이승의 아침이 바로 극락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려는 시인에게 어느덧 예언자의 풍모를 실어준다. 고정희는 몇 권의 시집을 낸 뒤 다시 한번 굿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4.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ㅡ여성해방을 위한 힘찬 노래   시인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후기에서 "잘못된 역사의 회개와 화해에 이르는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고 하였다. 발문을 쓴 박혜경은 이 시집이 굿판의 사설조 가락을 기본 리듬으로 삼고 있다고 했으며, 시집 뒷표지에서 김혜순은 터닦기 노래굿이라고 시집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지었다. 자타가 이 시집의 시적 외양은 굿이라고 규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시집이 씻김굿 사설의 형식과 시를 적절히 결합시킨 한 권의 굿 시집일까.   거두소서 거두소서   칼날을 거두소서   금남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충장로에 흩어진 넋   칼날을 거두소서                                    ㅡ 부분   에헤야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경상도 이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전라도 싸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이 논 저 밭 솟은 노적 이 집으로 들여오소   담울담울 쌓인 노적   우뚝우뚝 치뜬 노적   에헤루 노적이야   어기영차 노적이야                                    ㅡ 부분   전자는 기도의 형식이며, 후자는 민요조이다. 시집 전체를 보아도 굿판의 사설조 가락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일곱 거리의 무가와 뒷풀이로 이루어진 한 판 씻김굿으로 읽자면 결국 시에 담긴 정신이 굿과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를 살펴볼 도리밖에 없다. 씻김굿의 목적은 망자의 극락 천도에 있다. 망자를 극락에 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영혼을 깨끗이 씻기는 의례인 씻김굿은 망자를 죽음의 세계로 보냄으로써 생자가 더욱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발복을 기원하는 굿이다. 그런데 시세계를 죽음관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무속의 세계보다는 불교의 세계에 보다 가까웠음이 드러난다. 형식에 있어서도 굿과는 거의 무관했으며, 내용도 무속세계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 중 무속세계의 것은 없는 대신 불교언어는 자주 등장한다.    팔만사천 사바세계 생로병사(15쪽)   천상천하 남자독존 사생결단 살아낼 제(18쪽)   살아생전 백팔번뇌 즈려밟고 들어오신다(27쪽)   시왕길을 밝혀 가옵소사(36쪽)   일년 삼백육십오일 넘나드는 백팔번뇌 골짜기(42쪽)   사람이 여원무궁이고/ 극락이고(45쪽)   서방정토 극락까지 맑게 떴다(57쪽)   원왕생 원왕생 인도하사이다(65쪽)   제밥 먹고 약밥 먹고 염불 받아(88쪽)   극락세계 서방정토 훠이훠이 가옵소사(90쪽)   백팔 천지신명 마음속에 들어앉아(94쪽)   이처럼 시집 전체에 걸쳐 불가의 언어가 발견되고 있다. 가락도 무가와는 거리가 있으며, 죽음관마저 무속의 죽음관과 불교의 죽음관이 뒤섞여 있다. 이는 2천 년을 이어온 무속의 역사 속에 불교의 의례가 상당히 삼투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생사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내 생명을 연기(緣起)로 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과 순환이 윤회인즉, 불가에서 죽음의 세계는 가면 그만인 저승이 아니다. 문 밖이 북망이라는 말 그대로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죽음이지만, 나는 거듭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우주적 생명과 동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도 부처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무속 이상으로 인간 중심적인 종교이다. 인용한 몇 행만 보아도 유추가 가능한 이 시집의 대주제는 거칠게 정리해 다음과 같다.      인간인 이상 팔만사천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인데 천상천하 남자독존이로구나, 그리하여 일년 삼백육십오 일 여성들이 넘나들게 된 백팔번뇌의 골짜기를 어찌하랴, 부처는 부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원왕생 원왕생 우리를 인도하여주소서, 그곳이야말로 극락세계 서방정토가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에 입각, 천상천하 남자만 독존하지 않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시인은 이렇게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시인이 씻김굿의 형식을 빌어 시를 쓰면서 정작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불교는 스스로의 공력으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고, 특히 고래로 여인네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많이 믿어온 종교이다. 시인은 종교로서의 불교보다는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극락세계 서방정토에의 꿈을 담고 있는 평등의 세계관에 매료되었다고 본다. 무속에 한동안 관심을 두었던 것도 무속이 여성해방의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남녀의 차별이 엄존하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굿은 주로 여성이 주관하여 행해온 것이다. 고정희는 굿이 여성의 억눌린 감정을 달래주는 기능을 했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집에서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씻김굿의 형식을 차용하지 못했고, 씻김굿의 정신도 온전히 수용하지는 못했다. 단지 단군 이래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무수히 많은 이들의 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저승의 기슭으로 나아가는 배의 갑판에서 서툰 대로 굿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불교의 사상과 의례를 대폭 받아들인 우리 전통 무속의 무덤 위에 핀 푸른 잔디는 바로 어머니들이다. 저 무덤 위에 다시 피어나야 할 민중은 누대로 자기 희생으로만 일관해온 이 땅의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는 "이역만리 공출당한 고려 어머니"이며, "약지 잘라 혈서 쓰던 독립군 어머니"이며, "일제치하 정신대 우리 어머니"이며, "부역 나가 처형당한 우리 어머니"이며 "일사후퇴 때 죽은 어머니"이며,    자유당 부정에 죽은 우리 어머니   민주당 부패에 죽은 우리 어머니   삼일오 약탈선거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사일구혁명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오일륙 쿠데타 때 죽은 우리 어머니   한일협정 반대 데모 때 죽은 우리 어머니   부마사태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옥바라지 화병에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신고 하니   광주민주항쟁 때 죽은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   애기 낳다 칼맞은 우리 어머니 이다. 이 땅의 어머니는 고려 때도 이역만리로 끌려갔었는데 국권이 일제에 빼앗기자 정신대로 또 끌려갔었고, 독재자가 부정을 일삼고 군인이 국가를 통치하는 과정에서도 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는 죽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식과 사별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억울한 주검이 없는 세상, 어머니의 통곡이 들려오지 않는 세상, 어머니가 아버지와 동격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곧 '해방 강토'이며 서방정토 극락이다. 시인은 넷째 거리에서 망월동에 잠든 넋들을 위무하는 노래를 부르고, 일곱째 거리에 이르러 휴전선 철조망 너머 반도의 북쪽을 쳐다보며 통일의 노래를 힘차게 부른다. 여성해방에 이어 군사정권 타도와 분단의식의 극복에까지 그 진폭을 넓혀가는 시집은 '통일 산천'과 '해동 조선'의 아름다운 정경을 상상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모든 질곡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시집 전편에 넘쳐나는 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시에 담긴 정신은 굿과 분명 일정한 거리가 있다. 앞서 지적한 형식의 불일치와 죽음관의 불통일 외에도 놀이의 정신이 빠져 있기 때문에 "큰 씻김굿이 이 시집의 주제"라는 시인의 말과 다른 이들의 언급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무당은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하여 청중에게 공수를 주고, 청중은 공수를 받고 망자와 화해한다. 화해의 자리는 결코 엄숙하지 않다. 무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춤으로써만이 빙의(憑依) 상태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노래와 춤으로써 신에 접근하고 신이 되는 과정인 굿은 제의의 자리인 동시에 놀이의 마당이다. 제 명에 못 죽어 억울한 망자와 해준 것 없어 한스런 생자가 만나 대화하고, 영계의 신과 육계의 인간이 만나 화응한다. 씻김굿과 마당극의 놀이정신이 빠진 자리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   하늘도 파랗고   들도 산도 파란 오월에   일천간장 각뜨는 수백 수천 무덤 앞에   아들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딸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중략)…     아제, 한잔합시다…… 음복하는 어머니   날 잡아잡숴, 주저앉아 웁네다   이 시집에는 이렇듯 눈물은 넘쳐나되 흥겨움은 없다. 황홀경과 망아는 모든 청중의 몸에 실려 희노애락이 담긴, 한바탕 어우러진 춤이 되고 한마당 휘어지는 노래가 되는데 는 이전의 와 에 비해 노래의 요소가 박약하다. 박혜경도 지적한 것인데, '∼습니다'나 '∼와' 등이 어미로 끝나는 문어체적 구문들이 많아 씻김굿의 분위기는 맛보기 어렵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가 나오는 시는 셋째거리―해원마당 의 두 번째 시이다. 5쪽이 채 안 되는 분량 속에 '우리 어머니 아니신가'는 12회, '우리 어머니'는 21회, '∼하는 어머니'는 13회가 나온다. 이런 식의 반복법은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반복은 지루한 정도를 넘어 시적 감동마저 약화시킨다. 여성이 해방되어야 인간이 해방되고, 어머니의 한이 풀려야 해방 세상이 온다는 시인의 의도가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어 있어 감동이 약화되기도 한다.      굿이 신탁과 제의로서의 기능만 했더라면 2천 년을 내려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굿판에는 노래와 춤이, 장구와 징이, 음식과 술이, 먼 데 살던 친척과 친척보다 가까운 벗이 있었다. 그래서 굿판은 망자를 초청하는 죽음의 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추임새를 연발하게 하고 어깨춤을 부추기는 멋진 살판이었다. 신명을 자신의 몸에 싣거나, 신바람이 난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어 풀어야 할 것들 다 풀어버리고 내일을 연 흥겨운 놀이판, 그것이 굿판의 모습이었다. 신과 한 자리에서 즐김으로써 인간은 신과의 종속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 이행할 수가 있었다. 고정희는 굿의 의미를 청신-강신-영신-송신의 의미로 파악했지 영신과 송신 사이에 오신(娛神)이 들어 있으며, 이것이 굿 정신의 핵심임을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의 야심만만한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많은 장점과 아울러 수다한 허점을 갖는 시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가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굿 정신에 대한 천착이 있었더라면 이 시집은 한 시인의 대표 시집을 넘어 한 시대의 대표 시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5. 노래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다   이때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판소리와 민요 등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씌어진 에서 고정희는 무속의 시적 수용을 과감히 수행한다. 이 작품에서 무가의 문학적 사설에 대한 연구는 부족해 보인다. 다만 무당이란 존재가 성차별을 감내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지켜온 신분상의 최하층민이란 점에 주목하였다. 성의 평등과 계급차별의 타파를 주장하고자 한 시인으로서는 자신이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당을 시적 화자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성해방의 측면에서 무당이라는 존재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에는 굿판의 흥겨움이 그대로 살아 있고, 특히 사후세계보다는 이승에서의 삶을 중시한 점이 드러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던 시인이 무속의 세계관을 긍정하기로 한 뜻깊은 작품이다.      {초혼제}의 1∼3부는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보여주지만 5부 은 마당굿의 형식을 도입해 굿 정신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다. 이 시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과 현실적 욕구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서 기능하며, 신과 인간은 굿판에서 함께 신명이 난다. 그래서 굿판은 신성한 의례의 장이 아니라 억눌린 욕구를 터뜨리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풀이의 장소이다.      {초혼제}는 다섯 편의 장시로 이루어진 장시집이지만 이후 6년 만에 펴낸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보다 치밀한 기획 아래 씌워진 한 권의 장시집이다. 여성해방이 확대되어 군사정권의 정치적 억압도 사라지고 남북한 통일도 이루어져 서방정토가 저승이 아닌 이승이 되는 꿈을 노래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는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 힘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노래의 요소의 약하고 시인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어 시적 감동은 이전의 작품에 비해 현저히 약화되고 만다. 이 작품 이후 시인의 굿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며, 시집 출간 2년 뒤에는 시인의 육신마저 지상에서 사라진다.      기독교인이었던 고정희가 죽음관이 판이하게 다른 무속을 자신의 시에 끌어들여 아름다운 합일을 이루려 했으니, 이는 실패가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는, 무모하고도 고된 작업이었다. 와 에서 보여주었던 일정한 성취가 자신의 야심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 이르러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은 애당초 합일이 불가능한, 당연한 결과였다고 본다. 무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거니와 굿 정신과 유희 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기독교 시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정희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실 한국의 무속은 불교의 의례만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와도 일정 부분 친화를 시도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리고 쇠약해진 몸으로나마 지금도 죽음과 삶 사이를 흐르는 강에 무수히 많은 배를 띄우고 있다.      죽음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을 준비하고 있는 무속, 불교, 기독교가 삶을 바라보는 차원에서는 일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음을 증명한 이가 바로 고정희이다. 무속을 자신의 시세계로 끌어들인 많지 않은 시인 가운데 고정희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는데, 시인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그녀의 장시는 다시금 평가되어야 한다. 기독교 시인의 무속 수용이란 우리 시문학사상 초유의 일로, 결코 손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정희의 일련의 장시가 재평가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 중심적인 기독교의 죽음관을 신앙하는 상태에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무속의 죽음관을 견지하는 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장시를 통해 삶과 죽음을 한마당 굿판에서 껴안고, 기독교와 무속의 죽음관(때로는 불교의 죽음관까지)을 함께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하여 긴 노래를 그렇게 목놓아 부르며 죽음의 강을 건너가야 했던 것일까.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는다네 모든 여자는 생명을 낳네 모든 생명은 자유를 낳네 모든 자유는 해방을 낳네 모든 해방은 평화를 낳네 모든 평화는 살림을 낳네 모든 살림은 평등을 낳네 모든 평등은 행복을 낳는다네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 "여자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하여―이야기 여성사·6" ---------------- 어렸을 적 불렀던...긴 것은 기차..기차는 빨라...빠른 것은 비행기.....라는 구전동요처럼 생명-자유-해방-평화-살림-평등-행복으로 물고 이어지는, 여자가 뭉쳐서 만드는 세상과 지배-전쟁-억압으로 물고 이어지는, 남자가 만드는 세상을 대비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네요. 남자인 저로서도 충분히 공감가게 하는 진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임당, 허난설헌 같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킨 아래 시도 참 재미나네요. 왜 고정희 시인을 여성주의 시인이라 하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시들입니다. -------------------- 사임당이 허난설헌에게  이야기 여성사 3  고정희  사임당상이라니 기상천외이외다  경번당 허 자매  그대 나보다 뒷세상에 태어났지만  기실 명문가에 적을 둔 정실규방 신세 한가지로 살아왔으니  그 허와 실 뼛속에 사무치리라 싶어  꾸밈 없는 속이야기 서둘러 봉하외다  오늘에사 나는  조선의 정실부인들이 모여 해마다  신사임당상이라는 것을 주고받으며  원삼 족두리 잔치를 벌이고  신사임당 사당까지 지어  여자 예절교육 본으로 삼고 있다 하는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외다  아니 이는 분명 흉보 중에 흉보요  재앙 중에 재앙이라 아니할 수 없사외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의 조선은  십년 강산이 몇백 번씩 바뀌고  시대 또한 놀랍게 변하였다 들었사외다  여자들의 무예가 하늘을 찌르고  첨단과학 문명이 옷섶에 나부끼며  민주 진보 급진사상이라는 것이  머리 깨친 사람들의 대세라 들었사외다  그런 조성땅에 아직  손가락 하나 끄떡 않는 세 가지  바뀔 줄 모르고 변할 줄 모르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니까  여자에게 현모양처 되라 하는 것이요  남자에게 현모양처 되겠다 빌붙는 것이요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가는 것이외다  시집가서 아들 낳기 원하는 것이외다  그 현모양처 표본이 바로 나 신사임당이라 하여  내 시대 율법으로  내 시대 관습에 특출한 여자 골라  여자들 이름으로 상 주고 박수 친다니  이 무슨 해괴한 시대 변고이니까  요즘 알아듣는 말로 치자면  절반 하늘  절반 땅  절반 경제  절반 나라살림 좌우하는 여자해방하면서  여자 팔자소관 하나 바로잡지 못한다면  기상천외 요절복통 하세월이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대라지만  우리 해동 조선에 버티고 있으니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남녀분단 장벽 허물 일이 급선무이외다  삼종지도 장벽 무너지지 않는 집에  어찌 민주며 통일이 있으리까  또 내가 현모양처 모범이니  영원한 구원의 여인상이니 하여  칭송 아닌 칭송을 늘어놓는 것도  똑바른 사람이 할 짓이 아니외다  솔직히 말하건대 내  당대의 율곡을 길러 냈다고는 하나  당대의 여자 율곡을 길러 내는 일보다  자랑이 못 되며  사대부 집안에서 뼈가 굵은 탓으로 반상에 적응하는 자중을 조금 알고  시국관 거스르지 않는 지혜 조금 깨우쳤을 뿐  (이는 반가 정실부인들의  생존전략이외다)  규방에서 난초 치고 글 짓는 일이란  여자 한이 방울방울 아롱진 탓이로되  내 평생 절반을 친정집에서 살고  반평생 친정부모 모시는 데 바쳤으니  현모양처 계율로는 어림없는 일이외다  하물며 과학만능 우주시대 여자들이  어찌하여 현모양처 망령에 이끌린단 말이니까  오고 있는 시대를 좇아야 하외다  정실부인론을 곡함  그러나 허 자매  다시 거듭거듭 걱정하거니와  오늘날 해동의 어여쁜 여자들이  현모양처 허상에서 깨어나기란  일부일처 관습이 대세를 이루는 한  분단장벽보다 어려울 것이외다  요즘 시국관으로  사회변혁운동이란 말이 유행이라 들었사외다 이  사회변혁운동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부르주아 중산층 계급이라 들었사외다  버릴 수도 취할 수도 없는 계급  관습유지의 보호막인 계급  생각은 많으나 믿을 수 없는 계급  이미 체제에 순응하고 있는 계급  이것이 바로 중산층이라면  그것의 받침목은 중산층 부인들이 아닐 수 없사외다  말하자면 현대판 정실부인들이외다  이 말을 새겨듣기 바라외다  일례로 며칠 전 우주위성중계를 통해  여의도 텔레비전 방송에서 벌어지는  집중 여자토론회를 시청했사외다  그곳에 초청된 모든 정실부인들은  조선조 여자관을 빼다 박았더이다  시국의 변화에는 아랑곳없되  여자 일 남자 일 따로 있어서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기르는 일에  한치도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외다  이 어찌 가슴 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일찍이 이익이 잘못했던 말,  여자는 학문을 해서는 안되고  재능을 날려서는 나라의 재앙이다, 엄포를 놨던 말이  우아한 유령으로 사라 있단 뜻이외다  대저 일부일처제란 무엇이니까  여자를 소유로 보자는 내막이외다  정실부인이란 무엇이니까  소실과 첩을 엄중히 처단하잔 여자율법이외다  소실과 첩이란 무엇이니까  기둥서방 문화의 희생물이외다  기둥서방 문화란 무엇이니까  무릇 남자의 성기 밑에  여자의 자궁을 예속시키자는  영원무궁한 음모이외다  그러므로 정실부인의 반열에 든 여자들은  여자가 여자 자신의 적이다, 이 말을  거의 선진적으로 깨우쳐  스스로 만든 장벽 넘어가지 않는다면  탄하노니  여자 절개의 무게 태산과 같고  여자 목숨의 무게 깃털과 같다 한들  오천년 피눈물이 부족하단 뜻이니까  저승 여자들이 줄지어 곡하외다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 세 가지  그렇다고 곡만 할 수 없사외다  생존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였으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듯이 허허실실 병법이 허사는 아니외다  상고해 보건대  어찌하여 신사임당이  조선조 남자들의 철옹성 속에서  조선조 남자들의 붓으로 기록하는  현모양처상이 되었나이까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조 남자들이 하나같이 지닌  세 가지 허를 깨쳤기 때문이외다  반상을 막론하고  조선의 남자들이 싫어하는 세 가지 허가 있으니  첫째는 남자 체면 깎이는 것 용납 않는 허요  둘째는 남자보다 높은 식견 인정 않는 허요  셋째는 남자 앞에서 큰소리 거북스런 허외다  그래서 남자가 싫어하는 세 가지 여자란  남자보다 잘난 체하는 여자요  남자 자존심 건드리는 여자요  남자보다 큰소리로 웃는 여자이외다  내 전략이 구식일진 모르지만  여자의 특질과 부드러움 이용하여  이 허를 찌르기란 어렵지 않사외다  다만 이는 전략이로되  이녁 살아 있는 뜻 당당하게 세우는  비수 한 자루 간직할 터인즉  여자는 최후의 피압박계급?  내 잠시 잠깐도 잊어 본 적이 없는  규방 여자들의 한이 있사외다  동지섣달 길쌈하는 소리는  날 잡숴, 날 잡숴,  여자 사지 찢어 나르는 소리요  달빛 설핏한 밤 다듬이질 소리는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여자 팔자 두룸박 팔자……  조선 여자 뒤통수 내리치는 비명이거늘  오직 천추의 한으로 간직할 뿐  이 결박 스스로 풀지 못했으니  어즈버  문명국이 된 오늘날까지  방직공장과 기성복 공장  그리고 또 무슨무슨 공장에서  우리의 이쁘고 이쁘고 이쁜 딸들이  저임금과 철야, 잔업에 시달리며  생산증대 길쌈과 바느질로  돈받이 달러받이 일삼는 것 아니리까  구중궁궐 기계실과 밀실에서  성폭력과 강간폭력 노동통제 남근에 깔려  어머니 당했어요, 현모양처 되기는 다 틀렸어요, 돈이나 벌겠어요!  기생관광 인당수에 몸 던지는 것 아니리까  딸아, 현모양처상을 화형에 처해라  네 비수로 정절대를 ㅤㅉㅣㅅ어라  단숨에 찢어발겨라, 이 불쌍한 것  여자의 이 아픔  여자의 이 억압  여자의 이 억울함  하늘을 찌르고 땅에 솟구친들  속시원히 노래한 시인이 조선에 있는지요  최근에 박노해라는 노동시인이  이불을 꿰매며, 라는 여자해방시를 썼다고 하나  찬찬히 뜯어보건대  나도 내 아내를 압제자처럼 지배하고 있었다……이런 고백에 지나지 않아요  원통하구려!  오천년 당한 수모 약이 될 수 없으리까  정작 길닦이가 없었나이까  아니외다  사백 년 전 경번당 당신은 이미  여자의 처지를 계급으로 절감했사외다  사백 년 전 난설헌 당신은 이미  여자의 팔자를 피압박 인민으로 꿰뚫었사외다  사백 년 전 초희 당신은 이미  남자의 머리를 봉건제 압제자로 명중했사외다  아니 아니 난설헌 당신은 최초로  조선 봉건제에 반기를 든 여자시인이며  여자를 피압박계급으로 직시한  최초의 시인이 아니리까  밤 깊도록 베 짜는 외론 이 심사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팔베개 수우잠도 맛볼 길 없이  텅텅텅 북 울리며 베 짜는 몸엔  겨울의 긴긴 밤이 그저 추울 뿐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면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시집살이 길옷이 밤낮이건만  이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가난한 여자를 위한 이 오언절구 절창에  어느 여자 무릎을 치지 않으리요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난설헌  조선에 태어난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시인이 있더이까  난설헌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터잡은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천재가 있더이까  경번당 바로 당신이외다  조선에 뿌리내린 백성 중에서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 있더이까  초희 바로 당신이외다  세상이 우러르던 재상 허엽과 강릉 김씨 딸로  당신 태어났건만  그 문벌 그 족벌이 무슨 소용 있으리  독서와 강의는 선비의 일이니  부인이 이에 힘쓰면 폐해무궁하리라, 하여  훈학에 힘입은 바 없고  문벌 족벌에 기댄 바 없으나  네 살박이 여자아이의 매서운 눈초리  네 살박이 딸의 처절한 분노는  하늘의 밑둥을 흔든 성싶사외다  오라버니 어깨너머로 깨친 글솜씨  백가서책을 스스로 통달하여  다섯 살에 시 지으니, 여신동이요  여덟 살에 백옥루 상량문 올리니, 조선의 문웅이요  스스로 난설헌이라 호를 짓고  수수편편 백옥 같은 시의 장강 이루니, 여자 두보요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하여  천추의 삼한을 품고 살되,  하늘이여 어찌하여 조선을 내고 나를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남자를 내고 다시 나를 여자로 내었나이까  하늘이여 어찌하여 김성립을 남편으로 점지하였나이까  하늘을 대지른 그 울연한 기상 다스려  가이 득음의 경지에 넘나들 제  글자마다 주옥이요  글귀마다 산호 열려  천의무봉 시세계 천고명작 이루니,  이 세상 일 같지 않다 이르더이다  어즈버 하늘이 낸 시인  어즈버 하늘이 낸 천재  어즈버 하늘이 낸 절세가인이여  중국 대륙에 삼대 부인문장가가 있다고 하나  조대가와 반희와 설도가 당신에 견줄 수 있으리까  아까운 스물일곱 해  그 짧은 생애 마칠 때  평생의 시고가 시의 노적가리 이루었다 하건만  이녁 유언대로 한 점 재로 돌아가 무덤에 덮이니  아깝고 아깝도다  다만 친정에 남아 있던 유고 이백여 수가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 의하여  천육백육 년 중국에서 간행될 제  낙양의 종이값을 오르게 하였다니  주지번의 발문대로  이제 허난설재의 문집을 보니 아득히 티끌 속세를 초탈하여  아름다워 때묻지 않고 유현하면서도 구상이 있어 선경에  유영하는 제작품이 다시 선가仙家에 관통했으니……  백옥루각이 한번 이룩됨에 ……떨어진 글자욱은 모두 주옥을  이루어 인간 세계에 영원히 그윽한 감상을 하게 했구나 어찌  어리석고 하잘 나위 없는 우리들이 한숨짓고 억지로 읊어서  그 불평한 심사를 묘사하여 한갓 아녀자의 웃음과 빈축을  사는 것 따위리요……  한번 이룩된 백옥루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대 다시 없으리  - 고정희 시집 "여성해방출사표", 1990.      [고정희 시인 시모음]               겨울 사랑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 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잔 끓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 둘 트는 것이 보이고         우리동네 구자명 씨                                    ―여성사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달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한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은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꿈꾸는 가을 노래                                  꿈꾸는 가을 노래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열어놓으니 만리에 용솟는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날개                                                  생일선물을 사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안개비 자욱한 그 거리에서 삼천도의 뜨거운 불기운에 구워내고 삼천도의 냉정한 이성에 다듬어낸 분청들국 화병을 골랐습니다 일월 성신 술잔같은 이 화병에 내 목숨의 꽃을 꽂을까, 아니면 개마고원 바람소릴 매달아 놓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백산 천지연 물소리 풀어 만주대륙 하늘까지 어리게 할까 가까이서 만져보고 떨어져서 바라보고 위아래로 눈 인두질하는 내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지요 손님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있군요 이 장사 삼십년에 마음의 선물을 포장하기란 그냥 줘도 아깝지 않답니다 도대체 그 분은 얼마나 행복하죠? 뭘요... 마음으로 치장한들 흡족하지 않답니다 이 분청 화병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가 이 선물을 타고 날아야 하는데 이 선물이 그의 가슴에 돌이 되어 박히면 난 어쩌죠?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에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향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더 먼저 더 오래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품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 닫지 못하는 사랑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 로움의 막막궁상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 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 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뿌리고 열매 맺눈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 - 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는 사랑의 일곱 가지 무 지개  이 세상 끝 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봄비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강물 풀리는 소리는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 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산 숨결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강물                                                       - 편지1 푸른 악기처럼 내 마음 울어도 너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암울한 침묵이 반짝이는 강변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루종일 정결법 논쟁으로 술잔을 비우고 너에게로 가는 막배를 놓쳐버린 나는 푸른 풀밭, 마지막 낙조에 눈부시게 빛나는 너의 이름과 비구상의 시간 위에 쓰라린 마음 각을 떠 널다가 두 눈 가득 고이는 눈물 떠나가는 강물에 섞어 보냈다.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시대의 아벨                                           며칠째 석양이 현해탄 물구비에 불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거룻배 위에는 저승의 뱃사공 칼롱의 은발이 석양빛에 두어 번 나-부-끼-더-니, 동서남북 금촉으로 부서지며 혼비백산 숲에 불을 질렀읍니다. 으-아, 솔바람 불바람 홀연히 솟아올라 둘러친 세상은 넋나간 아름다움 넋나간 욕망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읍니다. 아세아를 건너지른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에 당도한 건 바로 이때입니다. 오그덴 10호*는 몇 명의 수부들을 바다 속에 처넣고 벼락을 때리며 외쳤습니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우물가에서 혹은 태평 성대 동구 밖에서 지친 등 추스르며 한숨짓던 아벨 어둠의 골짜기로 골짜기로 거슬러 오르던 너희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믿음의 아들 너 베드로야 땅의 아버지 너 요한아 밤새껏 은총으로 배부른 가버나움아 사시장철 음모뿐인 예루살렘아 음탕한 왕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야 너희 식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침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꿨느냐 독야청청 담벼락과 아벨을 바꿨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물린 아벨 일흔 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 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쳐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오 불쌍한 아벨 외마디 소리마저 빼앗긴 아벨을 위하여 나는 너희 식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아방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별장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교회당과 종탑을 엎으리라 소돔아 너를 엎으리라 고모라야 너를 엎으리라 가버나움아 너를 엎으리라 예루살렘아 너를 엎으리라 천사야 너도 엎으리라 깃발을 분지르고 상복을 입히리라 생나무 마른 나무 함께 불에 던지고 바다더러 산 위로 오르라 하리라 산더러 너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울지 않는 종은 입에 칼을 물리고 뛰지 않는 말은 등에 창을 받으리 날지 않는 새는 뒷축에 밟히리 뒷날에 참회는 적당치 못하다 너희가 쫓아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어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고 부인한 아벨 너희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시치미뗀 아벨의 울음 소릴 들었느냐? 금동이의 술잔에 아벨의 피가 고이고 은소반의 안주에 아벨의 기름 흐르도다 촛농이 녹아 흐를 때 아벨이 울고 노랫가락 높을 때 아벨이 탄식하도다 오 불쌍한 아벨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세상 어디든 달려가 너희 잔치상과 보신탕을 엎으리라 너희 축복과 토룡탕을 엎으리라 너희 개소주와 단잠을 엎으리라 돌들이 일어나 옥답을 일구고 지진이 솟구쳐 평지 풍파 일으키리라 바람더러 주인이라 주인이라 부르리라 너희의 어둠인 아벨 너희의 절망인 아벨 너희의 자유인 아벨 너희의 멍에인 아벨 너희의 표징인 아벨 낙원의 열쇠인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그때 한 사내가 불 탄 수염을 쥐어뜯으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음날 신문은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의 대기권을 완전히 떠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 창세기 4장 2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첫아들 카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농부가 되                     었는데, 형 카인은 아벨에 대한 질투 때문에 아우를 들로 꾀어내어 쳐 죽였다.                      이때 야훼께서 이렇게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 1981년 8월 초 한반도에도 상륙한 태풍 이름.       고백 (너 여섯)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고정희 高靜熙 (1948 - 1991)                           전남 해남 출생. 5남 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허형륫ㅁ窪唜징ㅐ瀁예?ㅌ蒡仄퐈ㅁ믄예?등과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84년부터는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찬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는 등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하였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녀성해방출사표》(1990), 《광주의 눈물비》(1990),《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와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시집 가운데 《초혼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장시집(長詩集)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429    민중시인, 옥중시인 - 김남주 댓글:  조회:5053  추천:0  2015-04-19
            김남주 시인(1946~1994) 194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시인은 64년 광주일고에 입학했으나 입 시 위주 교육에 반발하며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69년 전남대 영어 영문학과 입학했다. 이후 72년 12월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인 「함 성」을 제작·배포하고, 이듬해 2월 전국적인 반 유신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지하신문 「고발」을 제작·배포해 구속되면서 대학에서 제적처리 됐다. 고인은 74년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잿더미’ 등 8편 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적 후에는 전남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카프카’를 운영하면서 광주사회문화운동의 구심 역할을 맡았다. 79년 에는 서울에서 전위혁명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의 조직원 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뒤 88년 12월 출소했으나 끝내 췌장암으로 일기 를 마쳤다다. 시인은 생전에 발표한 470여 편의 시 가운데 300여 편을 옥중에서 써 ‘옥중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휴지조각·우유팩·은박지 등에 깨알 같은 글씨로 꾸준히 쓴 시편들은 면회 온 부인과 지인들에 의해 세상 밖 으로 흘러나와 투옥 중에만 『진혼가』(84년), 『나의 칼 나의 피』(87 년), 『조국은 하나다』(88년) 등 3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김남주 시 모음 ▲  똥파리와 인간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릉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을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 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 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나워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지는 잎새 쌓이거든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저 창살에 햇살이(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  물따라 나도 가면서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장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 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 너희는 아느냐, 돌멩이 하나에 실린 력사의 무게를….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이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이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그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산국화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노래(죽창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남주의 시를 노래하다 꽃다지, 노찾사, 메아리, 노동자 노래단, 문민협, 박치 음 등등 사랑은(사랑) - 대학노래패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노동자 노래단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라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 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 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벗에게 - 조국과 청춘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 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물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하고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준 말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 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그대에게(지는 잎새 쌓이거든) - 개똥이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고목 - 조국과 청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산국화 - 박치음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김남주 육성 낭송 시선 전사 2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 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  학살 2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리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진혼가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  이 세상에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  어머니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 니 가가 먼 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남의 집 개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닌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이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지안에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 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철장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  권력의 담 나는 나가야 한다 살아서 살아서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나는 보여줘야 한다 나가서 나가서 더욱 의연한 모습을 나는 또한 보여줘야 한다 놈들에게 감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전사의 휴식처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보라 창살에 타오르는 이 증오의 눈을 보라 주먹으로 모아지는 이 온몸의 피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자들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서 나가서 피투성이로 빼앗긴 내 조국의 깃발과 자유와 위대함을 되찾을 때 까지 토지가 농민의 것이 되고 공장이 노동자의 것이 되고 권력이 민주의 것이 될 때까지. ▲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428    <길> 시모음 댓글:  조회:4800  추천:0  2015-04-19
    윤동주의 '새로운 길' 외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시인, 1917-1945) + 길 위에서 산을 만나면 산을 사랑하고 강을 만나면 강을 사랑하지 꽃이 많이 핀 아침을 만나면 꽃향기 속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지 언덕 위에선 노란 씀바퀴꽃 하모니카를 불고 실눈썹을 한 낮달 하나 강물 속 오래된 길을 걷지 별을 만나면 별을 깊게 사랑하고 슬픔을 만나면 슬픔을 깊게 사랑하지 그러다가 하늘의 큰 나루터에 이르면 작은 나룻배의 주인이 된 내 어린 날의 바람을 만나기도 하지. (곽재구·시인, 1954-) +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 (안도현·시인, 1961-) + 길  갈 때는  그 길이 좋더니  올 때는  이 길이 좋네요  아무래도  가는 마음과  오는 마음이  많이 다른가 봐요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길     잠을 잘 시간에만 길이 보인다 꿈속에서만 세상을 걸어다녔는데 새벽녘에는 길이 다 지워져 있다 특히 잎 지는 가을밤은 더욱 그러하다 지상의 시간이 만든 벼랑과 벼랑 사이  떨어지는 잎새를 따라가 보면 아, 그 시각에만 환하게 외등이 켜져 있다 (김종해·시인, 1941-)  + 가는 길 길을 걸어본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 산 하나를 오르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네 그러나 가장 높은 산에 오르기만 하면 눈앞에 만리가 펼쳐지는구나 (호치민·베트남 민족운동 지도자, 1890-1969) + 첫 길 마음이 먼저 첫 길을 밟는다  발자국 하나 더 얹어  세상 속으로 간다  사람의 일들은 가파르고 험하나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그것이 희망이니  희망을 받아 세상을 열고 싶다  이제는 사람같이 살아 봐야겠다고 그래야겠다고  생각의 실마리가  새 길 하나 만든다  벽도 열면 창임을  위기도 기회임을 이제야 알겠다 삶이여  그 무엇으로 한 생이  제 그늘만큼 깊다 한들  오늘은 새해처럼 불끈 솟고 싶다  저 넓은 세상을 달고 (천양희·시인, 1942-) + 동그란 길로 가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교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시인, 1958-) + 새로운 길  나는 신문을 한 1년쯤 묵혔다 읽는다 어떤 때는 2, 3년, 더한 때는 10년이 지난 신문을 읽을 때도 있다 그렇게 읽어도 새로운 소식을  담은 신문이 내게는 정말로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 길을 걸어서 멀리 사라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 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나태주·시인, 1945-)  + 길 없는 길 강물 위에 앉았다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비상해 오르는 수천 마리 철새 떼들의 일사분란 그들은 길 없는 허공 길을 평화롭게 날아 그들의 고향에 이른다 바다 속을 헤엄쳐 가는 수만 마리의 물고기 떼들 어떠한 암초와 수초에도 걸리지 않고 수만 리 길 없는 물길을 거슬러 그들의 모천에 닿는다 그러나 이 지상에 수천만의 길을 만들어 놓고도 제 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 좌충우돌 피를 흘리며 주저앉는 사람들 그들은 고향도 모천도 못 찾고 허둥댄다 길이 없으면  세상이 다 길인데 길을 만들어 천만의 길을 다 죽인다 (임보·시인, 1940-) + 길 우리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 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 그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빛나는 광택도  내세울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 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 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 네게 이르렀다 살면서 한 번도 크고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귀뚜라미 소리 솔바람소리 돌들과 부대끼며 왁자하게 떠드는 여울물소리 그런 소리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형제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음성도 세상을 호령할 명령문 한 줄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가식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네게 이르렀다 낮은 곳에는 낮은 곳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네 옆에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있다 (도종환·시인, 1954-)  + 걷는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은 두 발로 풍경과 마을을  한 땀 한 땀 박음질한다는 것이다 걷다 잠시 뒤돌아보면 풍경과 마음이 날실과 씨실로 어우러져 짜여진 옷감 한 자락 하늘 가득 강물처럼 흐른다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세상으로부터 찌들은 낡은 옷자락 바람결에 사라지고 내 영혼에 들어와 박힌 맑은 옷 한 벌 길 위에서 얻어 입은 날이다 (전향·시인)  + 길 위에 서다  세상의 모든 길은  어디론가 통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미움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생명은 죽음으로  그 죽음은 다시 한 줌의 흙이 되어  새 생명의 분신(分身)으로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가만히 머무르지 말라고  길 위에 멈추어 서는 생은  이미 생이 아니라고  작은 몸뚱이로  혼신의 날갯짓을 하여  허공을 가르며 나는  저 가벼운 새들  (정연복·시인, 1957-)
427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 아이스킬로스 댓글:  조회:5310  추천:0  2015-04-19
아이스킬로스 Aeschylos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출생 BC 525/524 사망 BC 456/455, 시칠리아 섬 젤라 국적 그리스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최초의 인물. 아이스킬로스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대사?및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국내의 이기적 정치가들과 국외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확립되어가던 혼란기에 성장했다. 그는 BC 6세기에 아테네를 지배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억압정치를 폈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시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2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연극을 꾸려나가는 관례를 바꾸었다고 한다. 20세기에 그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작가들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클로델과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이었다.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 담겨 있는 위대함을 근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잘 포착하고 있다. 목차 펼치기 개요 원본사이즈보기 아이스킬로스 아이스킬로스, 그리스의 비극 시인,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 대사 및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아이스킬로스의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 중앙에 정치적 존재인 한 남자가 서 있어서, 극작가의 관심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참주정치(그리스에서 권력을 절대 남용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통치자가 절대권력을 행사한 정치) 시대에 태어나, 아테네 민주주의가 국내의 이기적 정치가들과 국외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확립되어가던 혼란기에 성장했다. 아테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첫번째 전쟁에 참여했으며, 나중에는 아테네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갈등을 관찰했다.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에 비극적 행위의 초점을 제공해준 것은 지도자의 국민에 대한 배려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가 서로 충돌하여 빚어낸 긴장관계이다. 출생과 배경 대체로 믿을 만한 파로스 연대기(그리스 역사의 주요한 연대가 적혀 있는 BC 3세기의 비문)에 따르면, 아이스킬로스는 마라톤 전투(아테네가 페르시아인들의 침략을 물리친 전투)가 벌어진 BC 490년에 35세였다. 그렇다면 그는 BC 525년에 태어난 셈이다. 그는 BC 6세기에 아테네를 지배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억압정치를 폈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시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엘레우시스(아테네의 북서쪽)에 살았다는 전설은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들 Batrachoi〉에 나오는 구절을 오해한 데서 생긴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사실일 수도 있다. 역사가헤로도토스는 다른 문헌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형제라고 불린 사람을 팔레네 주민으로 기록했으며, 이는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정말로 거기에 살았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명성과 영향력 아이스킬로스의 생애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공식 목록에 의거한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고 한다. 즉 제목이 알려져 있는 80편 이상의 작품 가운데 52편이 1등상을 받은 것이다. 아테네 정부는 누구나 그의 작품을 축제 경연대회에서 재상연할 수 있다고 포고하는 유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소피스트 철학자 플라비오스 필로스트라토스(170경~245경)의 글에 '비극의 아버지'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가 이 칭호를 받은 것도 바로 이때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재상연된 구체적인 날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헌에는 그가 죽은 뒤에 상연된 그의 희곡이 우승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익살스러운 회상, 특히 〈새들〉·〈개구리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때도 그의 작품이 재상연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테네의 정치가 리쿠르고스의 제안에 따라 BC 330년대에는 아테네의 3대 비극작가의 동상이 디오니소스 극장(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세워졌다. 이때 제작된 동상은 '공식' 동상들이 흔히 그렇듯 실물보다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며, 로마 시대에 제작된 몇몇 복제품은 이 동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박물관에 있는 흉상은 중년이 훨씬 넘은 대머리 남자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짜 초상, 즉 젤라 시민들이 주문해 만든 원작을 모형으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킬로스의 두 아들도 비극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중 에우포리온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버지의 희곡들을 새롭게 상연해 4번 우승했다지만, BC 431년에는 자신의 힘으로 당당히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Medeia〉를 물리치고 1등상을 받았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2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연극을 꾸려나가는 관례를 바꾸었다고 한다. 이 혁신으로 그리스 연극은 줄거리 구성과 대사에서 훨씬 많은 다양성과 역동적인 긴장을 얻을 수 있었다. 무대 장치가인 아가타르코스가 그의 동료로 언급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규모의 채색 무대 장치(예를 들면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인 카프카스 산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대 장치)가 그렇게 일찍부터 쓰일 수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그의 작품은 웅장하고 극적인 무대 효과(예를 들면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인물들을 운반하는 기묘한 방식, 〈에우메니데스〉에서 코를 골며 잠자는 복수의 여신들의 활인화)와 이국적이고 무시무시한 가면 및 의상으로 유명했다. 〈에우메니데스〉에서 합창단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합창단의 기능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합창단의 규모를 줄이고 그 수를 12명으로 표준화한 것 같다. 초기 비극에서 합창단이 우세를 차지했다는 것은 단순한 가설이지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아이스킬로스가 '합창단의 역할을 줄이고 줄거리를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사실인 듯하다. 동시에 그는 안무가의 도움을 마다하고 합창단을 직접 훈련시켰으며, 합창단이 연기할 새로운 무용 스텝을 직접 고안하기까지 했다. 그는 당시의 극작가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관례에 따라, 대부분의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을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 겸 웅변가인 키케로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 수많은 단락을 인용하고 번역까지 했지만, 1세기에 이르자 로마인들은 아이스킬로스의 어려운 표현을 차츰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는 아이스킬로스의 표현이 "조잡하고 지리멸렬하다"고 생각했다. 2세기에 이르자 아이스킬로스는 인기 있는 극작가 자리에서 뒤로 밀려났다. 1475년에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도서실에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필사본이 고작 3권밖에 없었다. 그러나 18세기말 아이스킬로스는 '재발견'되었다. 〈아가멤논 Agamemnon〉은 나폴레옹이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시인의 천재성을 충분히 인식했다. 아이스킬로스의 영향은 퍼시 비시 셸리가 쓴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와 함께 영국 시의 주류를 이루었다. 20세기에 그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작가들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클로델과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이었다.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Mourning Becomes Electra〉(1931)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 담겨 있는 위대함을 근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잘 포착하고 있다.  
426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댓글:  조회:5409  추천:0  2015-04-19
    그리스비극       신주(新酒)의 술통을 따는 봄의 대축제에는 비극을 상연하였고, 이것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찬가(디티람보스)가 토대이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테스피스가 BC 6세기 후반에 원형적(原形的)인 비극을 상연했다고 하나 비극의 창시자는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였다. 그는 90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며 경연(競演)에서 13회(1회에 4편 상연)나 우승하였다고 하였는데 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7편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작가가 상연하는 4부작은 사티로스극(劇) 1편을 포함하여 모두 3편이다. 그 3부작이 완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것으로 《오레스티아》가 있고 각 부작의 이름은 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기의 애국 시인이며, BC 6세기의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가득 찼던 그의 작풍은 성장기에서 뒤떨어졌던 극작술(劇作術)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는 3대 비극시인 중 가장 낮게 평가되었으나 19세기 이후 그의 작가적 역량이 재발견되었다.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시인이며 비극의 완성자로 같은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나, 르네상스 이후에 있어서나 그 성가(聲價)가 높다. 그는 123편의 작품을 써서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으며, 3위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7편 중 세계 연극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왕(王)》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는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숙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리다가 마침내 영웅적인 죽음으로써 정화(淨化:카타르시스)되는 과정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가장 잘 실현하였다. 말년의 소포클레스에게 영향을 준 점도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92편 중 완전한 형태인 단 하나의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외눈박이 도깨비)》와 17편의 비극, 위작(僞作) 1편이 전해진다.그의 작품에는 극작술상(劇作術上)의 여러 연구가 엿보인다. 그는 다채로운 작풍을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 비극에서 바로크적(的) 경향의 대표자이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전통 비판이 심판관의 비위에 거슬렸는지 우승 횟수는 그가 죽은 후 주어진 것을 합해서 5회에 불과하나 《메데이아》와 《트로야의 여인》이 후세에 남긴 비장미(悲壯美)는 유럽 근대 연극의 한 계보(系譜)이다. BC 386년 대(大)디오니시아제(祭)가 전기 3대 시인의 재연만을 상례로 하여 창작활동은 쇠퇴하고, BC 4세기의 관객층은 다른 스펙터클로 눈을 돌리게 되어 비극의 장르는 독서의 대상으로 고정되었다. 나중에 라틴문학으로 오비디우스나 세네카의 낭독을 위한 작품이 나온 것도 그 예이다.         그리스 3대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은 개인의식에 대해 출발하였으며 인간의 운명, 자연(신), 초월적인 것, 개인적인 심층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비극의 어원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세계관은 자기완성을 향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로 인식하는대에 있다. 고전의 비극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신의 결정론적인 운명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이루어 졌다.     비극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BC 6세기에 디오니소스신(神)의 제사와 함께 행하여진 합창 ·무용과 관련하여 합창대에서 1명이 이탈해 나와 합창대와 대화하는 풍습이 생겨 거기서 비극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비극은 이 신의 제의(祭儀) 중의 한 행사였으며, 항상 이 신에 대한 봉납(奉納)과 경연(競演)의 형식을 유지하였다. 비극의 창조자는 테스피스인데 BC 543년 경연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비극은 겨울에서 이른봄에 결쳐 행하여진 3가지 디오니시아제(祭), 특히 3월의 대제(大祭)에서 상연되었다. 초기의 비극을 참된 연극으로 발전시킨 것은 아이스킬로스인데, 그는 한 사람이 하던 배우(俳優)를 2명으로 증원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개혁을 이룩한 것 같다. 그는 또 서정시 부분이 주였던 비극을 점차 회화 부분이 많은 긴밀한 구성의 연극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동시대의 서정시인 핀다로스와 같이 장대(壯大)하기는 하나, 구성보다는 정서를 북돋우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점에서 뛰어났다. 비극은 합창대 노래에서 주로 이암보스의 회화를 삽입한 형식을 최후까지 보존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킬로스의 극은 특히 이 노래 부분이 좋다.       뒤에 나온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고전기의 대표자로서, 엄정한 형식미와 긴밀한 구성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업적을 남겼는데, 그는 배우를 3명으로 증가하여 구성상의 진행도 더욱 복잡화시켰다. 소포클레스보다 10세 정도 아래인 에우리피데스는 이미 소피스트의 새로운 견해의 영향을 깊이 받아, 벌써 아르카이크(archaique)한 시대의 최후의 정점에 선 고전적인 차가운 미(美)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인간을 연극에서 추구하였다. 따라서 비극의 소재인 신화와 영웅전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낡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또한 새로 나타난 웅변술을 무대에 내놓으려 하였으며, 심리를 분석, 마음의 추이를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노래만으로 구성되어진 극을 창시하고 완성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플롯을 만들어 갈등을 한층더 고조시키고 짜임새 있는 극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의 비극 구조는 5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prolrgos - 독백, 극중 인물이나 해설자에 의해 진행된다. 2) parodos 3) epeisodion - 삽화 (코러스 노래 사이에 삽입된 대화) 4) stasimon - 막간 놀이로 나중에 변질, 감정성찰 5) exodos - 코러스나 오케스트라가 퇴장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아이스 퀼로스가 노래와 시로만 있던 초보적이던 극을 한층 발전시켜 대사와 행동을 무대위해서 보여주었고, 보통이 이인극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소포클레스는 더 많은 배우들과 코러스등을 등장시켰고 에우리피데스로 넘어오면서 오늘날의 연극의 기초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리스의 3대 작가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동시대에 살았고, 초보적인 극을 한층 발전 시켜나갔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스승이였고,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의 아끼는 후배였다. 디오니소스제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등이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아주 유명한 일화로 에우리피데스가 죽자 소포클레스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상복을 입고 슬퍼하였고 코로스와 배우들에게 관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 아이스킬로스   BC 525/ 524~BC 456/455 쯤 태어났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조국인 아테네는 당시 페르시아와 전쟁중이였으며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3대 비극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아이스킬로스가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지고, 소포클레스가 전쟁에 승리를 위해 소년 합창단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당시 에우리피데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비극을 쓰게된 계기는 정치인들의 생각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살았던 당시 아테네는 외부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고 난후, 정치인들 사이에 양분화되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자들간의 팽팽한 갈등 관계에서 자신과의 생각이 충돌되어지자 그는 비극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이스킬로스는 당시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을 노래와 대사,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으로 발전시킨다. 아이스킬로스의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 중앙에 정치적 존재인 한 남자가 서 있어서, 극작가의 관심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했다. 아이스킬로스는 그의 모든 극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지극히도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비극으로 신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됨으로써 믿기 어려운 행운에 신들에게 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전쟁에 몸소 참가한 그로써는 더욱 그러했을 꺼라 보여진다. 그는 신들의 최후의 정의를 믿고 언젠간 정의가 신의 정의와 일치한다는 것을 항상 그의 비극에서 노래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웅 전설로 유명한 에디프스의 두 아들의 싸움을 다룬 , , , < 오레스테이아>등인데 특히 는 최대의 걸작으로 완전히 남아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3부작으로 , , ,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정확히 누구의 아들이며 그의 일가는 확실하게 전해오는 것은 없지만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다른 문헌들에서 아이스킬로스와 형제라고 불린 사람을 팔레네 주민으로 기록했으며, 이는 아이스킬로스 일가가 정말로 거기에 살았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 소포클레스   기원전 7~6년 아테네에서 부유한 무기 제조업자 소필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당시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로 민주주의가 한창 꽃피던 시기였으며 당시 그리스 문화의 최전성기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타고났고, 집안이 기사(騎士)신분에 속하였으므로 작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명예로운 일생을 보냈다. 음악을 란푸로스에게, 비극을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 사사하였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축제 때는 그는 디오니소스제에서 스승인 아이스 퀼로스를 여러번이나 이기고 무려 24번이나 승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테네를 너무도 사랑하여 평생을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의 작법은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이스퀼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화려하고 장중했다면, 두 번째는 엄밀하면서 기교적이였고, 세 번째는 원숙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비극적인 작시의 스승은 아이스킬로스였기에 그의 영향을 초기에는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비극의 주인공을 신으로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신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공경하면서도 인간에게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면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고통에 많은 치중을 두었다. 신이 주는 숙명적인 운명에서 인간 자신의 내부적인 갈등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조적인 고통을 극에서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연극에서 소도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이스킬로스의 극에서 두명이던 배우를 여러명으로 늘리며 코러스도 12명에서 15명으로 늘렸으며 배우들을 통하여 그들의 갈등관계와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고 한다. 소포클레스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가 그리스 연극의 창시자였다면,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라고도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높은 관직에 자주 취임했고 나중에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10인의 장군에 선출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후에 10인의 국가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종교에도 깊숙이 관여해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자신의 집에다 모시고 찬가를 바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90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123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썼다고 하나 제목만 전해질 뿐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7편이다. ,,,,,,등이다.         ★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4?∼기원전 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의 한사람. 살라미스(Salamis)에서 태어나 아테나이(Athenai)에서 활동하가가 마케도니아(Makedonia)의 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비극 작가의 한 사람이다. 아테네 태생이며 그의 부모는 야채 장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도 역시 디오니소스제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포클라스가 정치정인 문제로 디오니소스제를 참여하지 않자, 그해 로 우승을 거머쥔다.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청년 시대를 궤변 사상의 새로운 경향과 동요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당시의 다른 비극 시인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과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전통과 종교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항상 비판적인 입장에서 고쳐 표현하였다 한다. 그는 3대 비극 작가중에서는 가장 근대적인 작가였다. 그의 희곡들은 윤리적·사회적인 논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후세의 작가와 연설가들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논평들을 원래의 극적 문맥에서 쉽게 떼어내 도덕론이나 문집, 심지어는 그리스도교 설교문에까지 원용했다.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에 비하면 그의 삶은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비극 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아이스킬로스가 신에 대해 절대적이였고, 소포클레스는 신을 공경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다루며 신에 대한 절대적인 것을 소심하게 드러내지 않고 피해갔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작품수는 98편에 이른다고는 하나 소포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제목만 전해지고, 존재하는 것은 19편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등이다.    
425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 에우리피데스 댓글:  조회:5465  추천:0  2015-04-19
에우리피데스(그리스어: Ευριπίδης, 영어: Euripides, 기원전 약 480년 이전 ~ 기원전 406년)는 아테네 출신으로,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으로서 오늘날 그가 쓴 18편의 비극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합리적인 예지·자유주의적·인도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극은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목차    1 생애 2 작품세계 3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생애 아테네에서 출생하였으며 마케도니아에서 죽었다.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배우고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와 사귀었고 영향을 주었다. 작품세계 92편의 극작품을 쓰고 5회의 우승을 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작품 18편외 다수의 단편(斷片)이 있다. 인간의 고뇌에 깊은 이해와 동정을 품고 또한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업에 격노하며 운명이나 신의 뜻에 따르기보다 인간의 주지적(主知的) 합리성으로 이 세상의 복잡미묘함을 폭로하려는 에우리피데스는 근본적으로 '비극'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었다고 평해진다. 그러나 그런대로 아테네 연극계에서 총아로 등장해 멀리 그리스 세계의 곳곳에까지 그 작품이 번져나간 것은 오로지 그의 교묘한 작극술(作劇術)과 그것으로 묘사되는 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비애가 강력한 설득력으로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연출기법에서는 소포클레스와 달리 별다른 신기축(新機軸)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또한 소포클레스의 정묘한 작품구조의 균형과 박진감에 비하면 에우리피데스의 여러 작품에서는 야릇한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의 무시와 강렬한 리얼리즘이 등을 맞대고 있어 독자나 관객을 불안한 긴장으로 감싸버린다. 허구다운 프롤로그에 역시 허구다운 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애·질투·복수·간계·광기·비애와 같이 순수하고 인간적인 표정으로 감싸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있을 수 없는 장면에서 있을 수 없는 논쟁이나 비판이 사건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보는 자와 보이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 의식의 벽을 만드는 듯하나, 다시 격정으로 넘쳐흐르는 사건이 그 벽을 잊게 해버린다. 이건, 이건, 또는 나 등의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격정적인 사건과 의식의 벽이 서로 부딪치는 충돌로 들볶여, 마지막엔 고즙(苦汁)처럼 남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비애와 제신에 대한 분노이다. 이러한 작품의 상연은 작가 스스로 만든 것 이외에는 몹시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대사(臺辭)의 간명함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후세에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고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가장 비극적인 시인( 1953 a 30)'이라고까지 평하게 한 까닭이 되었을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안드로마케 (비극)》 《알케스티스 (비극)》 《헬레네 (비극)》 《박코스 여신도들》(또는 박코이)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의 자녀들》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이온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또는 타우로이족 사이에서의 이피게네이아) 《헤카베 (비극)》 《오레스테스 (비극)》 《트로이아 여인들》 《탄원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 《포이니케 여인들》(또는 페니키아의 여인들) 《힙폴뤼토스 (비극)》 《레소스 (비극)》- 진위 불확실 《키클롭스 (사티로스극)》- 사튀르 극
424    <바보> 시모음 댓글:  조회:4713  추천:0  2015-04-19
나호열의 ´큰 바보´ 외 + 큰 바보  슬픈 일에도 해죽거리며 웃고  기쁜 일에는 턱없이 무심한 사람  그 곁을 애써 피해 가지만  걸어가야 할  먼 길  바보가 되어 가는 길 (나호열·시인, 1953-) + 바보들  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쓰인  커다란 낙서  ˝바보˝  어릴 적  바보가  아주 큰 욕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바보가 욕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바보˝는 ˝순수˝의  이음동의어  모든 것이 돈으로  저울질되는 오늘날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바보˝  그 바보들 틈에서  노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이문조·시인) + 나는 바보  욕하면  그 욕을 먹을지언정  따라서 욕하지 못한다  때리면  그 매를 맞을지언정  맞서서 때리지 못한다  버리면  버림을 받을지언정  스스로 버리지 못한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바보  소유에 욕심이 없고  손에 쥔 것으로 만족하며  홀로 있어도 외로움을 모르고  이웃의 미움도 받아들이고  위험에도 두려움을 모르며  가난할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고민일랑 웃어넘기고  자존심은 땅에 묻어놓고  높은 사람 앞에서도  굽실거리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고  남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한평생 원수를 맺지 않고  하루를 살아도 감사하는 사람  바보라고 놀려도 웃기만 하고  싫어해도 등 돌리지 않으며  내일에 대하여 근심이 없는  이런 바보가 되고 싶다.  (박인걸·목사 시인) + 바보의 노래  작은 몸 하나로  겨울을 버티고 있어야 하는 자야  눈물을 가슴으로 훔치며  살아 있어 산다하는  마음은 구천같이 떠도는  가슴 아픈 자야  등에는 한 보따리 슬픔이던가  가슴에는 하나 가득 아픔이던가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허리엔 쓰디쓴 미련을 차고  밤마다 종이 펴고 그림 그리는  네가 있어 행복했던 꿈을 그리는  네가 있어 아름다운 추억 그리는  바보 같은 자야  이제 길을 떠나자  비오면 오는 대로  바람불면 부는 대로  그래도 슬프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가자  외로운 산길이면  울면서 가자  산너머  그리운 마을  찾아서 가자 (김진학·시인, 경북 영천 출생) + 바보처럼 살라 하네 밤새 숨었다가  아침에 얼굴 내민 해가  웃으라 한다 시린 등 쓰다듬으며  괴롭거나 슬프더라도  웃으라 한다 그날이  그날인데 하루를 지나며 만물을 살피고  구석구석 밝혀 주며 웃으라 한다  세상이 야속타 용광로가 끓어도  서러워 말라 다독이며 날 보고 날 보고 웃으라 한다 (하영순·시인)  + 바보가 바보에게 우린 돈을 잘 모르고 세상 지위에도 관심이 없고 좋은 음식 좋은 옷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지요 특히 교만이나 아집 시기나 분노 이러한 것도  자존이나 탐욕이 별로 없으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요 그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을 열고 새소리를 듣지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가지요 길가는 이웃에게 ˝어머 오늘은 얼굴이 밝아 보여요! 무슨 좋으신 일이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님이 보내준 커피 한 잔 아침햇살을 받으며 가볍게 몸을 데우지요 우린 늘 누구에게나 손해를 보며 살지요 그래도 히죽 웃는 마음은  아파하기보다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뭘!˝ 이런답니다. 그래도 한세상 살아가는 데는  이 마음 버리고 싶지 않아요 내게 주어진 것 모두 없어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나를 닮은 바보가 있잖아요 그 바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나는 평생 이 바보의 길을 갈 거예요 설령 그 바보가 계산물이 들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길을 갈 거예요 세상사람 전부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다녀도 나는 내 마음의 정원에 꽃을 심고 바다향기를 내 발등에 뿌리며 그냥 황톳빛 이 길을 갈 거예요 별로 날고 쉽지가 않거든요 바보는 머리가 나빠서 피곤한 일은 싫어하거든요 계산이 복잡하면 아주 싫어요 그냥 바보로 살다 죽고 싶어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것 어디다 쓰죠? 내게도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런 순수에의 고집은 있답니다. 호호호호! 그대도 내 손을 꽉 잡고 바보걸음을 걸어봐요 세상물결 위를 느릿느릿 웃으며 걸어봐요 마음이 무거우면 세상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답니다 그러니 가볍게 걸어봐요 내 손을 더욱 꽉 잡고!  (유국진·시인, 경북 영덕 출생) + 바보야! 그게 사랑이야  바보야!  넌 정말 바보구나  그게 바로 사랑이야  네가 어미 젖꼭지를 깨물어도  네가 어미 얼굴을 꼬집어도  네가 어미에게 칭얼거리며 떼써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미소 짓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바보야!  차라리 바보가 되렴  그게 바로 사랑받는 비결이야  모자라는 널 감싸주고 싶고  부족한 널 도와주고 싶고  텅 빈 가슴을 채워주고 싶고  널 보면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바보야!  차라리 순수한 바보가 되렴  그게 바로 주고받는 사랑의 비결이야  어눌하지만 진실한 말을 하고  돌아가지만 온유한 생각을 하고  더딘 것 같지만 순리에 순종하는  너에겐 내 사랑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야 (함영숙·시인, 하와이 거주) + 바보 같은 인생  내 몸이 썩어간다 신장이 썩고 위장이 썩고 항문이 썩는다 머리가 썩고 입이 썩는다 말초 신경들은 20년이 넘은 당뇨로  버티다 버티다 급기야 전의를 상실했고 위벽은 술과 담배로 거울처럼 금이 가고 항문은  먹는 것마다 활화산 용암으로 용해된 고름으로 촉촉이 썩어가는 두엄자리다 두피에서는 부스럼 딱지들로 벽이 헐고 입안은 뿌리 없이 부서진 이들로 늘 사막처럼 서걱거린다 아내는 게으른 탓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담배와 술을 끊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내 몸의 어디부터 방어벽을 세워야할지 모른다 제 몸 하나 간수도 못하고 그 날 그 날이 좋아 산다 아내는 오래도록 함께 하지 못할까봐 내심 걱정이고 어머니는 살아생전 자식을 앞세울까봐 그게 두려워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하신다 그래도 난 바보처럼  술이 좋고 담배가 좋고 빨라야될 이유가 없는 적당한 게으름이 좋다  (조찬용·시인, 1953-) + 바보 촛불은 어둠을 밝히려  제 몸을 태우고 광대는 남을 웃기려 바보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기에 우스개 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덜 힘들게 하기 위해 내 몸을 아끼지 않는 나는 바보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쁨을 주고 웃음을 주는 나에게 바보라고 하는 소리는 나를 슬프게 합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밉고 나를 절망 속에 빠뜨립니다 날 사랑하는 이는 어디 있나요 바보이기에 사랑하기 더 어렵던가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용기조차 없기에 뜨거운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나는 바보라고만 하던가요 오늘도 밤이 깊어 갑니다 내 사랑하는 이는 외로운 나에게 전화 하나 없이 깊은 밤을 망각 속에서 보내는가 봅니다 아 슬픈 바보의 노래는 촛불처럼 깜빡이는 전등불 밑에서 눈물에 젖어 휘돌아만 갑니다 (최범영·시인, 1958-) + 사람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마음으로 다 할 수 없는  말을 풀어서 글을 만듭니다  가까워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세월이 꽃피는 계절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음만 간절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정영자·시인이며 문학평론가, 1941-) + 시인은 바보인가 봐  시인은 타인들의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까지도  위로를 해 주고  마음을 달래주며  눈물까지 닦아주면서도  오직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달랠 줄 모르고  가슴속에 두고두고  혼자서  울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바보인가 봐  (손채주·시인)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프로야구 텔레비전 중계나 보면서 고스톱 화투짝이나 만지면서 모두모두 잊어버려 이 바보야 거꾸로 치솟아오르는 피, 까짓거 모두모두 비워내는 게야 날마다 무너지고 깨어지는 세상 까짓거 눈감고 비켜가는 게야 당당함이라든가 위험한 적의敵意 따위는 모두 지워 버리는 게야 짖지 않고 또 짖지 않은 채 꼬리를 감추고 살아가는 게야 포장술집의 소주잔을 잔째로 기울이며 무너진 황성 옛터를 찾아가는 게야 아아, 바보야 바보야 오늘밤 누가 와서 나의 비애를 돌로 쳐 다오 (김종해·시인, 1941-) + 바보사막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 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 처음 낙타를 타 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신현정·시인, 1948-2009)
423    <한글> 시모음 댓글:  조회:4845  추천:0  2015-04-19
+ 우리글 한글 1학년 교실에 가 보면 국어 책을 편 아이들 모두가 무궁화꽃이시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써야 한다고 세종 대왕님이 심으신 스물여덟 그루의 한 글 나 무 ...... 그 밑에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잎사귀를 줍는다. ㄱ도 줍고 ㄹ . ㅁ 도 줍는다. 주운 것은 그들 몫. 처음으로 그들에게 빛깔이 생기고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향내가 난다. 골목대장 상수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아들이 된다. 울보 은옥이도 오늘부터는 겨레의 딸이 된다. 그들에게 꽃. 달. 별 ...... 이런 말을 쉽게 알고 쉽게 쓰게 하기 위하여 한글은 있고 한글을 위하여 이 땅에는 1학년 . 2학년 ...... 수많은 어린 세종 대왕님이 살고 계신다.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한글이 좋아요  ㄱ, ㄴ, ㄷ, ㄹ …  ㅏ, ㅑ, ㅓ, ㅕ …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이루니 이것이 한글이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이니라.  쓰기 편하고 읽기도 쉬우니  누구나 쉽게 배우리라.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니  누구든 한글에 감동하리라.  한글이 쓰여 있는 옷을 입고  한글이 쓰여 있는 모자를 쓰고  하루를 생활하는 사람들  작은 실천이 곧  한글 사랑 나라 사랑이다.  끝말잇기, 빙고게임, 수수께끼 놀이  한글 게임을 하면 서로 친해지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힘은 커진다.  2009년엔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의  공식문자가 되니  우리 한글의 자긍심도 뿌듯  "한글이 좋아요."  우리 모두 널리 알리고  마음껏 즐기자고요.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중 하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의 바우바우시가 이 지역 토착어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도입. + 한글 예찬 반 천 년 넘는 이전 한반도 조선에  인류사에 우수성이 남을 소리글자  세종임금 삼십 년 고뇌로 빛을 발해  위대한 한글이 창제되었어라  두 획만 그어도 글자 되고  스물네 자 어울리면 못 쓸 말이 없는  민족의 말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이 보배로운 표음문자  세상의 글자 중 말소리를 가장 많이 적으며  감성을 가장 사실 가깝게 나타내니  그 독창성 과학적 우수성은 세계가 아네  유네스코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했네  이제, 소중한 민족 자산 긍지와 자부심으로  아끼고 살려 길이 보존해야 하리  글자 없는 소수민족 글눈이 되게 해야 하리  우리 한글이 세계 공통어 되는 날 오리니  세계로 나가자  한민족이여, 한겨레여  우리 미래는 밝다, 희망이 있다.  (조남명·시인, 충남 부여 출생) + 우리말  네게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네게는 황금의 음률이 있다. 네게는 영원한 생각의 감초인 보금자리가 있다. 네게는 이제 혜성같이 나타날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있다.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대양(大洋)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너는 우리의 신부(新婦)다. 너는 우리의 운명이다. 너는 우리의 호흡이다. 너는 우리의 전부이다.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이 일을 어쩌리. 네 발등에 향유를 부어 주진 못할망정, 네 목에 황금의 목걸이를 걸어 주진 못할망정, 도리어 네 머리 위에 가시관을 얹다니, 가시관을 얹다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세상에 이럴 법이... 우리는 못났구나, 기막힌 바보로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버릴 너는 아니겠지, 설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내 귀에 네 입술을 대어 다오. 그리고, 다짐해 다오, 다짐해 다오.   (김동명·시인, 1900-1968) + 훈민정음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세종대왕의 말씀 세계 60여국에서 400여개 대학에서 배우는 과학적이고 뛰어난  대한민국 글자 얘들아! 자음 모음 합해서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아름다운 글로 아름다운 동시를 쓰자. 우리말, 우리 글이 있는 나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얘들아! 땅, 하늘, 바다, 산 꽃, 토끼, 개, 물고기 자유로운 한글로 표현해보자.  (박선자·시인, 전남 고흥 출생) + 한글  한글은  우리말의 집이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우리말의 집을 지으신 분에게  나는 영원히 감사를 드린다.  영혼의 말을  적는 글은 한글이다.  내가 살아온  평생  나는 한글에서  우리들의 얼을 찾았고  겨레의 음성을  또 거기에서 들었노라.  지금 그는 어찌되었을까  43년 동경 신지꾸  작은 우리의 책방에서  최현배님의 '우리말본'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성도, 이름도, 고향도 모르면서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알고 싶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시던  한글  그 글자 속엔  어머님의 음성과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숨쉬고 있다.  한글의 모국어의 집이다.  (황금찬·시인, 1918-) + 한글 이름  쓰기 좋고  읽기 좋은  과학적인 글  우리 한글  한글을 사랑해서  아들 이름도 한글로  큰 소나무처럼 자라  늘 푸르라고 "한솔"  우주처럼 큰마음의 사람 되라고 "한울"  이름 예쁘다고  누가 지었냐고  할 적마다  어깨가 으쓱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한글 이름  한글날 맞아  더욱 자랑스럽네. (이문조·시인) + 모국어  징용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일본 땅 탄광 합숙소 벽에다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든가 '배가 고파요'라고 모국어로 쓴 말들이  언뜻언뜻 와 닿으면서 동포들의 탄 묻은 얼굴에 맺힌 눈물방울이  구주 하늘 아래 얼어붙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마음이 몇 안 되는 글자를 벗어나  마구 가슴 벅차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내 가슴이 식지 않은 화로처럼 다독일수록  살아나는 불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까  내가 수없이 뱉어내는 말들이  그들의 절실한 말에 비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서투른 붓끝으로 밝히는 내 가슴은  아직 모국어의 깊은 맛에 닿지 못하고  껍질만 벗기고 있는 것인지 (강영환·시인, 1951-) + 말의 빛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모국어 엄마(母)가  생명의 근원이듯이 모국어(母國語)는 겨레의 뿌리. 남의 나라 말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갖가지 감정을 표현하고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크나큰 기쁨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아가들의 첫말  '엄마'라는 두 글자는 또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정연복·시인, 1957-)
422    <소> 시모음 댓글:  조회:4755  추천:1  2015-04-19
    권정생의 '소' 외  + 소 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구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꾼다 아버지 꿈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리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권정생·동화작가, 1937-2007) + 묵화(墨畵)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시인, 1921-1984) + 白牛 멀리서 보기엔 큰 양(羊)인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두툼한 뿔과 큰 눈 분명 소다 그런데 소가 저렇게 희다니? 하기사, 사람도 흑인, 백인이 있지 않던가? (임보·시인, 1940-) + 꽃등심  정육점 진열장 한 켠에  꽃처럼 예쁜 이름표가 붙어있어    소의 시체의 한 부분일 뿐인  한 덩어리 고기가  꽃으로 불리워질 수 있다니  채식으로 오직  채식으로 맑아진 피와 영혼이  제 갈비뼈 사이에 피운 꽃  기껏해야 짐승의 시체나 먹고 사는  육식의 이 야만의  족속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등심초 꽃 이름으로  숯불 위에 몸을 누이는  살꽃의 소신공양 (복효근·시인, 1962-) + 정육 오늘은 소 잡는 날 현수막 붉은 너털웃음에 파묻히는 깜깜한 속살 달빛 좋은 데로 두 근만 주시오 에이 여보, 달빛 치고 좋지 않은 데가 어디 있수 초승달에 오금 저리며 제 몸에서 기름덩이와 뼈 찬찬히 발라내는 밤 (권덕하·시인) + 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김기택·시인, 1957-) + 아버지의 소 땡볕 속에서 쟁기를 끄는 소의 불알이 물풍선처럼 늘어져 있다 아버지는 쟁기질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신지 자꾸만 쟁기를 당겨 그 무게를 어깨로  떠받치곤 하셨다 금세 주저앉을 듯 흐느적거리면서도 아버지의  말씀 없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소 감나무 잎이 새파란 밭둑에 앉아서 나는  소가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는 동네  앞을 흐르는 거랑 물에 소를 세우고 먼저 소의 몸을 찬찬히 씻겨주신 뒤 당신의 몸도 씻으셨다 나는 내가 아버지가 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으나 파킨슨씨병으로  근육이란 근육이  다 자동차 타이어처럼 단단해져서 거동도  못하시는 아버지의 몸을 씻겨 드리면서야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세월을 걸어오시는 동안 아버지의 소처럼 나의 소가 되신  아버지 아버지가 끄는 쟁기는 늘 무거웠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위해서 백합처럼 흰  내 어깨를 내어 드린 적이 없다 입술까지 굳어버린 아버지가 겨우 눈시울을 열고  나를 바라보신다 별이 빛나는 그 사막의 밤처럼 깊고 아득한 길로 아직도 무죄한 소 한 마리 걸어가고 있다 (이상윤·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착한 소 시행의 마지막 구절을 막 끝내자  잉크가 다한 볼펜  기진맥진 원고지의 여백에  펄썩 쓰러져 버린다.  편히 쉬어라.  피어리어드는 내 눈물로 찍겠다.  돌아보면 너무도 혹사당한 일생.  경지는 다만 소만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참 많은 밭을 갈았구나.  땀과 눈물과  심장에 고인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아낌없이 쏟아내고 너는 지금  후회 없이 이승을 떠나는구나  내 시가 너를 따를 수만 있다면… 잘 갈아 씨 뿌린 밭두렁에  거품을 문 채 쓰러진  착한 소 한 마리.  (오세영·시인, 1942-) + 흔들리는 차 짐차에 누렁소 한 마리 실려 갑니다.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달리는 차는 누렁소를 흔듭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저렇게 흔들리며 어디로 가나. 누렁소가 눈을 끔벅끔벅 뒤따라오는 차에 실린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흔들리며 어디로 갑니다. (남호섭·아동문학가, 1962-) + 팔려 가는 소 소가 차에 올라가지 않아서 소장수 아저씨가 "이랴" 하며 꼬리를 감아 미신다. 엄마소는 새끼 놔두고는 안 올라간다며 눈을 꼭 감고 뒤로 버틴다. 소장수는 새끼를 풀어 와서 차에 실었다. 새끼가 올라가니 엄마소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만 새끼소도 내려오지 않는다. 발을 묶어 내리려고 해도 목을 맨 줄을 당겨도 자꾸자꾸 파고 들어간다. 결국 엄마소는 새끼만 보며 울고 간다. (조동연·경북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 + 어미소의 눈물  엄-매  엄---매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큰 눈으로 주인을 향해  흘리는 애틋한 눈물     젖이 불어 몸부림치며  일주일 넘게 새끼 생각에  우는소리. 눈물  애간장을 태우는데  목석 아닌 주인도 같이 운다     오일장날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시장에 갔다가  새끼는 팔려가고  어미만 돌아와  돌아오지 않는 새끼 생각에     몇 일 밤낮을 울면서  새우는 엄마소  말 못하는 소의 새끼사랑  저러한데  사람의 자식사랑 오죽 할까 !  (박태강·시인, 1941-) + 소 커다란 눈망울 가득 하늘 담은 순한 소 뚜벅뚜벅 한 걸음 한 걸음 제 갈 길로 가는 우직한 소 코뚜레에 메이고서도 안달 떨지 않는 소 그 억센 뿔 좀처럼 들이대지 않는 소 이따금 음매 음매 구슬피 우는 소 머리부터 발끝, 꼬리까지 남에게 몽땅 주고 가는 바보 같은 소 너는 꼭  예수나 부처의 모습이다 (정연복·시인, 1957-)
421    꾸바 시인, 혁명가 - 체 게바라 댓글:  조회:4150  추천:0  2015-04-19
    '행복한 혁명가' 외  +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 여행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 핀셋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 개인 이기주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개인 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아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 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마음을 개조시키는 오직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 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 말의 힘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 편지 -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 편지 -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떤 경우에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 결정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천식이 아주 심할 때다  그 때가  내가 가장 신중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 희망   게릴라로 싸우던 동안에는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 갈증  날씨가 흐리고 슬픈 날이다  목이 말라서 카라코레빵으로 갈증을 달랬다  갈증으로 고통받는 목을 잠깐씩 속이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된다  그래서 파블리토가 권총을 차고  사냥꾼 하나와 물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끝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진장 노력하며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어쩔 수 없이 암말 한 마리를 잡았다  갈증으로 온몸이 바싹 말라가다 보면  배고픈 것은 차라리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도 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 모래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 질투 -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괴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 괴테 전기   내 중대에 간호병으로  새로 들어온 여성대원  하이디 산타마리아에게  괴테 전기를 빌려 읽었다  기억해 둘 만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 고통   오늘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심장을 정확히 맞추려 애썼다  적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죽이지 않는 게 좋다.  +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 세계의 모든 민중이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둘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 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이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아메리카....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우다가  볼리비아에서 죽은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 철학자)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라고 시인 엘뤼아르는 말했다.  별이 있는 꿈은 깨어 있는 꿈이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체 게바라는 한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장 코르미에·『체 게바라 평전』 저자)  "체 게바라의 죽음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대통령)  +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볼리비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체 게바라의 유골 사진이 신문에 나왔다. 휑한 두개골과  앙상한 갈비뼈와 쓸쓸한 두 다리 세상의 모든 뼈들처럼 외롭고 무섭고 서글퍼 보인다. 어디에도 남아메리카를 열광시키고 긴장시키던 혁명가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영혼은 살에 있다가 바람이 되는가 구름이 되는가. 사람들은 살을 버리고서야 인종과 계급과 신분을 떠나서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가. 세상의 모든 뼈들과 별다를 것 없는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산을 본다. (차옥혜·시인, 1945-) * 체 게바라(Che Guevara, 혁명가, 1928,6.14-1967,10.9)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사르트르)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는 위대한 혁명가이자 가슴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정을 품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집시 생활과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소포클래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했고 잭 런던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귀를 암송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보다 더 넒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촌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현실을 목격한 다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 후 쿠바로 건너간 그는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투쟁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게릴라 전투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않았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 기록과 그 기록 곳곳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간결한 시(詩)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그의 역사와 민중에 대한 애정은 뜨거웠다.  그리고 쿠바 혁명 성공 이후, 또다시 게릴라복으로 갈아입은 체 게바라는 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받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볼리비아 밀림으로 들어가 혁명운동을 이끈다, 아내와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쿠바의 권력도 모두 반납한 그는 자신의 순수한 초심을 지키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불과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산하 )  
420    <아내> 시모음 댓글:  조회:4894  추천:1  2015-04-19
  + 아름다운 아내  아내여, 아름다운 아내여.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았어도  변치 않고 살아주는 아름다운 아내여.  세상의 파도가 높을지라도 좀처럼 절망하지 않는  나의 아름다운 아내여. 방파제여.  당신은 한 그루 나무다.  희망이라는 낱말을 지닌 참을성 많은 나무다.  땅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는 억척스런 나무다.  아내여, 억척스런 나무여.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언제고 믿는 아름다운 나무여.  나의 등이 되어주는 고마운 나무여.  아내는 방파제다.  세월 속의 듬직한 나무다.  (윤수천·시인, 1942-) + 아내의 꽃 꽃들은 얼굴을 마주볼 때 아름답다  술패랭이꽃이 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내의 얼굴에 핀 기미꽃을 본다  햇볕의 직사포를 피하기 위해  푹 눌러쓴 모자에도 아랑곳없이  자꾸 얼굴에 번져가는 아내의 꽃,  사시사철 햇볕이 없을 수 없듯 피할 수 없이  아내의 얼굴엔 피어난 꽃이 늘어간다  아내는 몸 꼭대기에 꽃밭을 이고 다니는 것이다  기미꽃, 죽은깨꽃, 주름꽃  다양한 아내의 꽃밭에서 그래도 볼 위에  살짝 얹어진 웃음꽃이 가끔씩 위안으로 피어난다  술패랭이꽃들이 몸을 부비는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아내의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항상 내 곁에 있다고  (김경진·시인, 1967-) + 아내 시편 베개를 같이 베고 한몸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연극보다 더 연출하며 사는지 몰라 시린 날 웅크리고 자는 내 모습 보면 알듯이. 이내 속 그대에게 어찌 다 밝힐 수 있나 더불어 그대 속에 어찌 더 편할 수 있을까 가슴 섶 열어젖혀도 뒷모습 숨게 마련인데 가끔은 모진 바람에 앞자락 다 헤집어져도 알아서 속상할 일은 나 홀로 삭히는 게야 살포시 햇살 한 줌을 아내에게 덮는 이 아침에. (이승현·시인, 충남 공주 출생) + 내 아내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樓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미당 서정주·시인, 1915-2000) + 아내의 구두 아내의 구두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릿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 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박정원·시인, 충남 금산 출생) + 아내의 봄비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김해화·노동자 시인, 1957-) +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시인, 1952-) + 아내의 빨래공식   아내의 빨래공식은 늘 일정하다 물높이 중간에 놓고 세탁 십 분 헹굼 세번 탈수 삼 분 후에 다시 헹굼 한번 그러나 간혹 공식이 파기될 때가 있다 남편 잘 둔 친구를 만났다던가 나의 시선이 그녀를 빗나갔다 싶은 날이면 아내의 빨래 법칙엔 밟아빨기가 하나 추가된다 그런 날이면 나는 거실에 앉아 아내가 세탁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잔소리가 어디서부터 터질 것인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다가 거실을 정리하다가 하지도 않던 걸레질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하고 온 날에도 아내가 빨래하는 시간만 되면 늘 긴장한다 예정된 공식대로 세탁기가 돌아가면 그제서 오늘의 스포츠 뉴스를 본다  (이기헌·시인, 1958-) + 아내를 생각함  집이 그리운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세상의 딸들은 어미가 되고 어머니의 길을 간다 우리가 언제 변덕스러운 적이 있었나 사랑은 언제나 안에 있었다 자본주의에 실패한 사랑,  아내를 고생시킨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사치스러운 아내들은  속고 사는지 모른다 용기만 가지고 살아온 가시나무 여전히 그대는 나의 표준이다  (최병무·시인, 1950-) + 고단孤單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내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만남과 손을 놓겠지만 힘이 풀리는 손을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이 오면, 아내의 손을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나처럼 아내도 잠시 내 손을 받치고 있다가 내 체온體溫이 변하기 전에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따라 잠든 내 코고는 소리를 서로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윤병무·시인, 1966-) + 파랑새 행복의 파랑새는 저 멀리 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나의 곁을 빙빙 맴돌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 사람 이 세상에서 나에게 밥상을 가장 많이 차려준 사람 이 세상에서 나의 안팎을 누구보다 세밀히 알고 있는 사람 내 삶의 환한 기쁨과 보람 몰래 감추고픈 슬픔과 고독의  모양과 숨결까지도 감지하는 사람 그리고 나 때문에 종종 가슴 멍드는 사람 하루의 고단한 날개를 접고 지금 내 품안에 단잠 둥지를 틀었네 작은 파랑새여 아내여 (정연복·시인, 1957-)
419    <자본주의> 시모음 댓글:  조회:4834  추천:0  2015-04-19
    + 자본주의 그래 돈 내면 되잖냐. 침 뱉고 싶을 때 침 뱉고, 오줌 깔기고 싶을 때 오줌 깔기고서. (정세훈·시인, 1955-) + 자본주의의 사연  성동구 금호 4가 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정기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함민복·시인, 1962-) + 자본주의·1     돈은 아름답다  진리와 도덕보다 부드럽다  그러나 눈과 귀도 없는 그것이  인간의 심장을 파먹고  뼈까지 발라먹는 세상이여  등이 굽은 자도  배불뚝이도 잡아먹고  인간은 온데 간데 없고  종말이 올 때까지  돈은 아름답다. (전홍준·시인, 1954-)  + 자본주의의 밤       이 밤 속에  그는 굴복한다  그는 굴종한다  그는 굴러간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 속에  그를 옮기며  그를 표현하며  그를 기록하며  이 밤이 마치  애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몰두한다  그는 몰입한다  그는 몰락한다  오 빌어먹을  이 밤 속에  그가 배우는 건  허리를 졸라매는 법  요염한 웃음으로 덮인  이 밤 속에  가슴 타는 습기로 덮인  이 밤 속에  그는 먹는다  그는 폭음한다  그는 포식한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은  그를 포위하고  그를 포섭하고  그를 포옹하는  이 밤은  포악한 밤  폭력의 밤  폭로의 밤  폭언의 밤  그는 폭행 당한다  그는 포복한다  그는 포병인지 모른다  (이승훈·시인, 1942-) + 부르도자 부르조아                                                           반이 깎여 나간 산의 반쪽엔 키 작은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부르도자가 남은 산의 반쪽을 뭉개려고 무쇠 턱을 들고 다가가고 돌과 흙더미를 옮기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때 푸른 잔디 아름다운 숲 속에선 평화롭게 골프 치는 사람들 그들은 골프공을 움직이는 힘으로도 거뜬하게 산을 옮기고 해안선을 움직여 지도를 바꿔 놓는다. 산골짜기 마을을 한꺼번에 인공 호수로 덮어 버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로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그들을. (최승호·시인, 1954-)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아름다운 편견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를 모는 사람보다 더 크다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지구와 함께 깨끗이 자전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선 주인이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석유를 동력원으로 지구를 착취하고 더럽히는 자본주의에 엎드린 노예라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네 발 남의 힘으로 가는 사람 두 발 자기 힘으로 가는 사람 어느 누가 더 진화하고 위대한가? 이 위인은 안다 자전거가 넘어질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어야 바로 선다는 것을 넘어지는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꺾으면 금방 넘어진다는 것을 작고 느린 길로 핸들을 돌려야 크고 빠른 도로에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고 건강하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농부가 자동차를 모는 회장보다 더 크다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때론 편견도 아름답다 (김정원·교사 시인, 1962-) + 밥과 자본주의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북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고정희·시인, 1948-1991) + 밥과 자본주의 - 가진 자의 일곱 가지 복 그때에 예수께서 자본시장을 들러보시고  부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부자들의 저승에 있게 될 것이다  땅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땅 없는 하늘나라에 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독차지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권력 없는 극락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고픈 식탁에서 멀리 있을 것이다  철없이 웃고 즐기고 떠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저 세상에서 받을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아첨꾼 때문에 명예를 얻고 칭찬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들의 선조들도 매국노를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 - 희 - 는 불 - 행 - 하 - 다  (고정희·시인, 1948-1991) + 자본주의 혈압이 뚝 떨어졌소  즉시 나는 병동 중병실로 옮겨졌소  고혈압에는 약이 있지만 저혈압에는 약도 없다고 하는  간병의 말에 나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소  제기랄 까딱하다가는 옥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오  내가 죽으면 여보(엄살이 아니오)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전해 주오  자본주의를 저주하다 남주는 죽었다고  그놈과 싸우다 져서 당신 남편은 최후를 마쳤다고  여보 자본주의는 자유의 집단수용소라오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인간을 상품처럼 매매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을 가축처럼 기계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자유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모가지를 삐틀어 그 인간을  공장 밖으로 추위와 굶주림 속으로 내몰 수 있는 자유까지 허용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굴욕의 세계를 짊어지고 굶어 죽을 자유 밖에 없다오  시장에서 매매되는 말하는 가축이기를 거부하고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한 사람의 인간성으로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은 그들이 길러 놓은 경찰견을 풀어 노동자를 물어뜯게 하고  상비군을 무장시켜 노동자들을 대량 학살케 한다오  여보 자본주의 그것은 인간성의 공동묘지  역사가 뛰어넘어야 할 지옥이라오 아비규환이라오  노동자를 깔아뭉개고 마천루(魔天樓)로 솟아올라  천만근 만만근 무게로 찍어누르는 마(魔)의 산(山)이라오  무너져야 할 한시 바삐 무너뜨려야 할. (김남주·시인, 1946-1994) + 삶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기도  다이어트를 위해 한 끼의 식사를  애써 참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종일 폐휴지를 줍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이불 대신 바람을 덮고  내일을 걱정하는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한계 앞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힘겨운 삶이 있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사람이여!  나는 눈물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도  자본주의는 이익을 배당하지 않았고  오늘 저녁 잠자리에도  민주주의는 평온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법과 도덕은 무엇이며 종교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유의 신은 말이 없고  평등의 신은 눈을 감은 지 오래라면  사랑의 진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희망의 나무는 어느 땅에 심어야 합니까  어차피 끝을 알 수 없어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  내게 과분한 물질이 있다면, 사랑이여!  지친 자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게 하시고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샘물이 되게 하소서 (이채·시인)  
418    <꽃씨> 시모음 댓글:  조회:4156  추천:0  2015-04-19
  +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피천득·수필가, 1910-2007) + 씨앗 속에는 씨앗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 작은 점 하나가 큰 나무가 되나. 씨앗 속에는 엄마가 그려 준 설계도가 들어 있지. 햇살 일꾼 바람 일꾼 물 일꾼 흙 일꾼이 와서 뚝딱뚝딱 만들 때 정성을 다해 만들라는 부탁 편지도 들어 있지. (백무산·시인, 1955-) + 꽃씨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안오일·아동문학가) + 꽃씨 까만 꽃씨에서 파란 싹이 나오고. 파란 싹이 자라 빨간 꽃 되고. 빨간 꽃 속에서 까만 씨가 나오고.  (이태선·목사이며 아동문학가) + 꽃씨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있다 (최계락·아동문학가) +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정호승·시인, 1950-) + 분꽃 씨처럼  만두 껍질 같은 씨앗들의 옷을 살짝 만지면  더 야물어진 까만 꽃씨가  톡  톡  떨어집니다.  꽃씨 속의 하얀 가루를 손바닥에 모아서  친구들의 손등에 발라 주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까만 꽃씨 속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분가루가 있어  나는  꽃씨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예쁜 꽃을 피워 꽃밭을 만드는 꽃씨처럼  나는  친구들의 마음에 고운 화장을 해주고 싶습니다.  (박명자·아동문학가, 1940-) + 마음씨  모나지 않은  꽃씨 같아야 한데요.  너와 나 사이  따스함 묻어나면  연한 새싹 돋아나는  마음씨.  흙이  봉숭아 꽃씨 속에서  봄을 찾아내듯  마음씨 속에서  찾아내는 동그라미.  가슴 깊이 묻어 두면  더 좋데요.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방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뿌리들이 일하는  방에 가 보면  꽃나무가 가진  쬐그만  펌프  작아서  너무 작아서  얄미운 펌프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꽃씨들이 잠들고 있는  방에 가 보면  꽃씨들의  쬐그만 밥그릇  작아서  작아서  간지러운 밥그릇  (오규원·시인, 1941-) + 동글동글 세상의 모든 씨앗들은 동글동글하다 그 작은 동그라미가 움터 파란 잎새들이 돋고 세상의 어느 모퉁이를 밝히는  방실방실 꽃들이 피어난다. 세월의 강물에 깎이고 깎인  조약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가 손 같은 동그란 조약돌 하나  가만히 만지작거리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고 평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이 마음도 날로 동그랗기를.... (정연복, 1957-)
417    皮千得 시모음 댓글:  조회:4887  추천:0  2015-04-19
피천득 시 모음 12편 ☆★☆★☆★☆★☆★☆★☆★☆★☆★☆★☆★☆★ 너  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 단풍 피천득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핏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오  ☆★☆★☆★☆★☆★☆★☆★☆★☆★☆★☆★☆★ 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피천득 이 성스러운 부활절에 저희들의 믿음이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 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그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 새해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 시월  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 연가  피천득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지 아니 하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리도 아니하리라 어느 날 문득 만나면 잘 사노라 하리라 훗날 잊혀지면 잊은 대로 살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살리라 어느 날 문득 만나면  웃으면 지나치리라 ☆★☆★☆★☆★☆★☆★☆★☆★☆★☆★☆★☆★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우정 피천득 등덩굴 트레이스 밑에 있는 세사발 손을 세사 속에 넣으면 물기가 있어 차가웠다. 왼손이 들어있는 세사위를 바른 손바닥으로 두들기다가 왼손을 가만히 빼내면 두꺼비집이 모래 속에 작은 토굴같이 파진다. 손에 묻은 모래가 내 눈으로 들어갔다. 영이는 제 입을 내 눈에 갖다대고  불어주느라고 애를 썼다. 한참 그러다가 제 손가락에 묻었던 모래가  내 눈으로 더 들어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영이도 울었다. 둘이서 울었다. 어느 날 나는 영이 보고 배가 고프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그랬다. "그래 그래" 하고 영이는 반가워하였다. 그때같이 영이가 좋은 때는 없었다.  ☆★☆★☆★☆★☆★☆★☆★☆★☆★☆★☆★☆★ 이 순간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 저녁때 피천득  긴 치맛자락을 끌고  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바람은 쉬고  호수는 잠들고  나무들 나란히 서서  가는 해를 전송할 때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 축복 피천득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 잊으시구려 피천득 잊으시구려 꽃이 잊혀지는 것 같이 한때 금빛으로 노래하던 불길이 잊혀지듯이 영원히 영원히 잊으시구려 시간은 친절한 친구 그는 우리를 늙게 합니다. 누가 묻거든 잊었다고 예전에 예전에 잊었다고. 꽃과 같이 불과 같이 오래 전에 잊혀진  눈 위의 고요한 발자국 같이 ☆★☆★☆★☆★☆★☆★☆★☆★☆★☆★☆★☆★
416    <이름> 시모음 댓글:  조회:4745  추천:0  2015-04-19
길림시 육문중학교         + 이름에 대하여  제비꽃도 가끔은 제 이름 싫은지 모른다. 수선화, 봉선화, 채송화 언제 들어도 화사한 이름들 부러운지 모른다. 꽃잎으로는 날 수도 없는데 많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제비라니, 제비꽃도 가끔은 이름 바꾸고 싶은지 모른다. (김채영·아동문학가) + 풀꽃 오다가다 마주치면 늘 반가운 얼굴인데 어쩌니?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너의 이름도 몰라 그래도 자꾸만 뒤돌아보이고 어느새 가슴에 들어와 앉은 꽃. (김재수·아동문학가) + 친구 이름  은행잎 위에  비 개인 관악산 봉우리 위에  단풍잎길 위에  네 이름을 쓴다.  유리창 위에  나무 둥치에  가을 하늘에  바람의 흔들림에  춤추는 물줄기 위에  네 이름을 쓴다.  작은 이슬 하나에  소국 한 묶음에  풀벌레 울음에  가을비 가닥에  마른 잔디풀 위에  네 이름을 쓴다,  친구야.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비 오는 날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양성우·시인, 1943-)  + 풀잎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시인, 1932-2002) + 좋은 이름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하늘이다.  우리는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새들이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보금자리다. 우리는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새들이다. (엄기원·아동문학가, 1937-) + 해같이 달같이만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하고  불러 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하고  불러 보면  "오오-" 하고 들려 오는 듯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들.  바위도 오래 되면  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 오랠 엄마 아빠의 이름. (이주홍·소설가이며 아동문학가, 1906-1987) + 하나 바다에 다다르면  한강도 바다로 낙동강도 바다로 섬진강도 바다로 압록강도 바다로 두만강도 바다로 이름을 바다로 바꾼다. 몸짓도 목소리도 바꾼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엄마 이름 친해 보이는데도 엄마들은 왜 서로 이름을 안 부를까? 앞집 아줌마는 언니라 하고 내 친구 엄마는 미나 엄마, 슈퍼마켓 아줌마는 엄마를 천사호라 부른다. 내 이름 속에 우리 집 1004호 뒤에 숨은 엄마 이름 낯선 사람이 부른다, 시원시원하게 "유은경 씨, 택배요!" (유은경·아동문학가) + 새 이름 나는 김치 항아리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얻은 이름이지요 김치냉장고에게 할 일을 빼앗기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앵두꽃잎이 놀러오고 햇살과 비도 들렀다 가고 할머니 발소리 언저리만 맴돌아도 무엇을 채울까 잊은 적 없지요 이가 빠지고 금이 가 감나무 밑으로 버려질 때 놀라 튀어오른 귀뚜라미를 이때다, 꿀꺽 삼켰지요 입을 크게 벌려 귀뚤귀뚤귀뚜르 나는 -노래 항아리 새 이름을 얻었지요. (조영수·아동문학가) + 참된 친구 나의 노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이건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내가 지은 이름만은 아니다. 너를 처음 볼 때 이 이름의 주인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나의 것'이라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 말하며 산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으라 너의 활짝 핀 웃음을 보게 세상엔 아름다운 일만 있으라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울고 싶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처럼 말을 못하는 바보 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친구 있으니 내 옆은 이제 허전하지 않으리 너의 깨끗한 손을 다오 너의 손에도 참된 친구라고 쓰고 싶다. 그리고 나도 참된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신달자·시인, 1943-) + 농촌 아이의 달력  1월은 유리창에 낀 성에 긁는 달  2월은 저수지 얼음장 위에 돌 던지는 달  3월은 학교 담장 밑에서 햇볕 쬐는 달  4월은 앞산 진달래꽃 따먹는 달  5월은 올챙이 뒷다리 나오는 것 지켜보는 달  6월은 아버지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는 달  7월은 매미 잡으러 감나무에 오르는 달  8월은 고추밭에 가기 싫은 달  9월은 풀숲 방아깨비 허리 통통해지는 달  10월은 감나무 밑에서 홍시 조심해야 하는 달  11월은 엄마가 장롱에서 털장갑 꺼내는 달  12월은 눈사람 만들어 놓고 발로 한 번 차 보는 달  (안도현·시인, 1961-) + 내가 지은 열두 달 이름  1월, 세뱃돈 받아 좋은 달  2월, 겨울이 떠나기 싫어하는 달  3월, 입학하여 설레는 달  4월, 나비하고 친구 하는 달  5월, 선물 많이 받아 좋은 달  6월, 에어컨 처음 트는 달  7월, 아이스크림 많이 먹는 달  8월, 머리가 뜨거운 달  9월, 나무가 예뻐지는 달  10월, 하늘이 파래서 운동하기 좋은 달  11월, 나뭇잎이 떨어지는 달  12월, 하얀 눈을 기다리는 달  (김진영·경남 창원 남양 초등학교 1학년, 2002년)  + 작은 이름 하나라도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 만큼 아파 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내 한때 너무 멀어서 못 만난 허무 너무 낯설어 가까이 못 간 이념도 이제는 푸성귀 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불빛에 씻어 손바닥 위에 얹는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다듬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노래했던가 내 걸어갈 동안은 세상은 나의 벗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모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들 그들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술 밥, 한 쌍 수저 식탁 위에 올린다 잊혀지면 안식이 되고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되는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를 위해 내 쌀 씻어 놀 같은 저녁밥 지으며  (이기철·시인, 1943-)
415    청록파시인 -박목월 댓글:  조회:4984  추천:0  2015-04-17
                                 그의 본명은 영종(泳鍾)이고 유년시절은 부친이 수리조합장으로 근무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환경에서 성장 하였고 모친은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고로“어머니”(1967)란 시에 기독교적으로 모친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모량에 있는 생가는 2014.7.17에 개관 하였고 그의 생애는 (1916~1978) 6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아들도 박동규(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교수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모량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고 대구 개성 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시를 즐겨 썼으며 시작에는 “윤사월” “4월의 노래” “청 노루” “나그네” “산그늘” “구름의 서정시(수필집)” 등이 있고 그의 작품 성격으로 초반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시정(詩情)이 특징이다.                                                            주요 경력 및 포상으로 문예지 문장 데뷔 (1972), 대한민국 문예상(1968)과 국민훈장모란장(1972) 상을 받았고, 한양대학교 문리대학장(1976)을 역임하였으며, 박두진 조지훈과 같이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 중에 시집 청록집(靑綠集,1946)을 간행하였고, 그 외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도 간행하였다.       그 당시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北에는 素月, 南에는 木月이 있다고들 했다.                                                          한편 목월은 다정다감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이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중략)....., 분황사 탑에 얽힌 서러운 추억을 나는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 무렵이라 기억한다.   부친이 대구에 출장 가셨다가 오시는 길에 고무신을 사 오신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무신은 구경도 못하던 시절이라 무척 귀했다. .....,(중략)...,,. 나는 껑충거리며 자랑하였다. 그러나 평생에 처음 신어보는 자랑스러운 신발을 하루도 못 신었다.       [목월은 이 신을 신고 친구들과 마라톤을 했는데, 중간에 신이 벗겨졌으나 이기려는 욕심에 그대로 결승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 보니 신은 온데 간 데 없었다]                                                                    나그네                         朴木月     강나루 건너 밀 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밀 밭길, 나그네, 남도 삼 백리, 저녁 놀로 자연의 조화를 작자의 정서로 엮어 낸 시풍이다]                                                                         윤사월                               朴木月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듯고 있다                       4月의 노래                                         朴木月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바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 온 4월은 생명의 들불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 모음 13편 ☆★☆★☆★☆★☆★☆★☆★☆★☆★☆★☆★☆★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지를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갑사댕기  박목월 안개는 피어서  江으로 흐르고  잠꼬대 구구대는  밤 비둘기  이런 밤엔 저절로  머언 처녀들  갑사댕기 남끝동  삼삼하고나  갑사댕기 남끝동  삼삼하고나  ☆★☆★☆★☆★☆★☆★☆★☆★☆★☆★☆★☆★ 개안(開眼)  박목월 나이 60에 겨우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神이 지으신 오묘한  그것을 그것으로  볼 수 있는  흐리지 않은 눈  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채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꽃  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하다.  神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至福한 눈  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  神의 옆자리로 살며시  다가가  아름답습니다.  감탄할 뿐  神이 빚은 술잔에  축배의 술을 따를 뿐.  ☆★☆★☆★☆★☆★☆★☆★☆★☆★☆★☆★☆★ 구름 밭에서 박목월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다래 머루 넌출은  바위마다 휘감기고  풀섶 둥지에  산새는 알을 까네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 기계(杞溪 ) 장날  박목월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쿵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안 그런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혀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 길처럼  박목월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山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같다  ☆★☆★☆★☆★☆★☆★☆★☆★☆★☆★☆★☆★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내리막길의 기도  박목월  오르막 길이 숨 차듯 내리막 길도 힘에 겹다. 오르막길의 기도를 들어주시듯 내리막길의 기도도 들어 주옵소서. 열매를 따낸 비탈진 사과밭을 내려오며 되돌아 보는  하늘의 푸르름을  뉘우치지 말게 하옵소서. 마음의 심지에 물린 불빛이 아무리 침침하여도 그것으로 초밤길을 밝히게 하옵시고 오늘은 오늘로써 충만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어질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 뜨게 하옵소서. 성신이 제 마음 속에 역사하게 하옵소서. 하순의 겨울도 기우는 날씨가 아무리 설레이어도 항상 평온하게 하옵소서. 내리막 길이 힘에 겨울수록 한 자욱마다 전력을 다하는  그것이 되게 하옵소서. 빌수록 차게 하옵소서. ☆★☆★☆★☆★☆★☆★☆★☆★☆★☆★☆★☆★ 메리 크리스마스  박목월  크리스마스 카드에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참말로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누굴 기다릴까.  네 개의 까만 눈동자.  네 개의 까만 눈동자.  그런 날에  외딴집 굴뚝에는  감실감실 금빛 연기,  감실감실 보랏빛 연기,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 박꽃  박목월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답  썩은 초가지붕에  하얗게 일어서  가난한 살림살이  자근자근 속삭이며  박꽃 아가씨야  박꽃 아가씨야  짧은 저녁답을  말없이 울자  ☆★☆★☆★☆★☆★☆★☆★☆★☆★☆★☆★☆★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평온한 날의 기도 박목월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인간도 한 포기의  화초로 화하는  이 구김살 없이 행복한 시간. 주여, 이런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함께 계시고 그 자애로우심과 미소지으심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주시는 그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강물같이 충만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순탄하게 시간을 노젓는  오늘의 평온 속에서 주여, 고르게 흐르는 물길을 따라 당신의 나라로 향하게 하십시오. 3월의 그 화창한 날씨 같은 마음속에도 맑고 푸른 신앙의 수심(水深)이 내리게 하시고 온 천지의 가지란 가지마다 온 들의 푸성귀마다 움이 트고 싹이 돋아나듯  믿음의 새 움이 돋아나게 하여 주십시오. ☆★☆★☆★☆★☆★☆★☆★☆★☆★☆★☆★☆★    
414    청록파 시인들 시세계 댓글:  조회:4599  추천:0  2015-04-17
 청록파 시인들의 시세계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과                                    그 각각의 차이점에 관하여...                                                                       /이화숙    Ⅰ. 머리말  Ⅱ. 靑鹿派 三家詩人의 作品世界 分析  1. 朴木月의 詩  1) 限의 志向性  2) 꿈꾸는 者의 孤獨  2. 趙芝薰의 詩  1) 自然 親和와 불교적 禪味  2) 現實과 선비정신  3. 朴斗鎭의 詩  1) 自然과 信仰  2) 再生의 舞臺, 墓地  Ⅲ. 세 詩人의 作品에 나타난 詩的 特質 比較  1. 靑鹿派의 詩語  2. 自然 수용의 樣相  3. 詩的 自我의 分析  Ⅳ. 맺음말  ※ 參考文獻  I. 머리말  靑 派 세 詩人은 1940年을 전후로 《文章》지로 등단하여, 『靑 集』이 해방된 이듬해 1946年 6月에 나오게 되었다. 이 시집은 三家詩人들이 일제 말기의 암흑기에도 붓을 놓지 않고 써 두었던 作品으로서 民族陣營의 각광을 받아, 詩史에 새로운 활력을 준 해방 후의 첫 詩集이다.  朴木月, 趙芝薰, 朴斗鎭 三家詩人들의 不自由時代에 시인으로서 전통서정시의 문학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현대시는 크게 세 가지 조류가 중심이 되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詩와 리얼리즘 詩, 그리고 전통서정시가 바로 그것이다. 1920년대 카프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리얼리즘적 문학을 현실과의 관련에서 이해하고, 해방후 좌우 대립상황에서 모색되었던 리얼리즘을 60년대 참여시 운동과 70년대 민족문학운동으로 연결되며 80년대까지 문단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에서부터 민요시 운동이나 시조부흥운동 등을 통해 모더니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서정성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던 정지용에 의해 주도되어 는 《문장》誌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체적인 작품들 때문에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어 三家詩人들은 전통서정시의 흐름이 일제강점기에서 암울의 시대에 울분과 분노의 정신적 반항을 主로 한 詩가 쓰여지고, 純粹文學이 擡頭한 데에는 政治·文化的, 關係原因과 文壇 自體의 直接的 원인을 들 수 있지만 청록파 세 시인의 작품은 이 두 가지 원인을 모두 직접적 원인으로 묶어 評價할 수 있을 것이다. 朴木月은 不合理하고 歪曲된 사회를 향하여 정면으로 抵抗하기에는 나는 詩로써 接近하기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通感하지 않을 수 없었고, 趙芝薰은 隱遁과 閉鎖와 消極的인 反抗, 懷疑와 彷徨과 渴求, 靜觀과 立命의 詩心이 文錯하던 나의 詩라고 했으며. 朴斗鎭은 몇몇 同人誌에 처음 관계를 맺어 보면서 일정말기의 忿怒와 屈辱感과 이에 대한 정신적 抵抗을 동기로 한 文學的 發憤의 時代라 할 수 있다. 上述한 바와 日政 때에는 三家詩人 모두 山水間의 自然을 벗삼았지만 壯年으로 갈수록 說自然的인 人生達觀의 立場으로 나아갔다고 보아진다.  趙芝薰의 초기시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속에서 다양한 시적 변모를 보이면서도 관조의 미학이 흐르고 있다. 朴木月은 개인의식의 상승에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서정세계, 이상향을 구축하고 보편적인 감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朴斗鎭은 자연과의 친화속에서 불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신앙을 바탕으로 화해의 세계, 이상향의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독특한 서정세계는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 자연시로의 가능성, 친일문학이 주는 상처의 극복을 시사, 한국적 情調를 지키므로써 순수시의 방향 제시와 전통의 맥을 계승, 현실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극보하는 의식의 결여를 보이나 민족의식의 고양과 민족 동일성 회복의 정서 제시 등에 있어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靑鹿派의 시세계를 통해 보여지는 문장파의 繼承, 自然的 모티브로 시작함은 같은 그것을 통해 바라보는 世界觀의 차이점과 이러한 차이점을 바탕으로 靑鹿派 세 시인이 추구했던 각각의 詩世界를 알아보고, 세 시인의 作品에 나타난 詩的 特質를 比較하여 三家詩人의 作品世界를 分析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靑鹿派 三家詩人의 作品世界 分析  현재까지 『靑鹿集』에 대한 先行硏究는 세 시인에 대한 作品論과 한 學派로 묶은 詩史的 評價, 그리고 自然觀 및 詩意識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本 章에서는 먼저 『靑鹿集』에 수록된 三家詩人의 作品傾內을 代表할 만한 작품을 二篇씩 作家別로 分析해 보고 그 외의 詩는 다음 장에서 槪括的으로 分析 對比하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朴木月의 詩  1) 限의 志向性  木月은 자기의 詩 작업을 '해갈을 구하려는 생리적 욕구'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木月에게 상당한 무게를 갖고 있는 말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목마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의 詩論에서도 '시는 일종의 해갈'이란 말을 강조하고 있다. 木月에게 '해갈'은 유폐된 현실에서의 해방, 탈출, 몸부림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木月의 진술대로 그의 시작업이 '해갈을 구하려는 생리적 욕구'라 한다면, 이 생리적 욕구에 대해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限의 지향성 속에 生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며, '우리 겨fp의 낡고 오랜 핏줄'을 의식한 데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는 「청록집」과 「산도화」,「무순」등에서 볼 수 있다. 木月을 추천한 사람은 절제의 시인 지용인바, 지용의 추천사는 木月의 초기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애련측측한 리리시즘'을 타고 났다. 시인은 강해야 한다. 지용의 말대로 木月은 '애련측측한 리리시즘'의 시인이다. 사실, 이러한 '애련측측한 리리시즘'은 소월의 限의 정서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에 비치리오  - 전문  木月의 초기 작품이다. 자신의 말대로 '한국적인 정서의 바탕 위에 나의 청춘의 애달픔'을 노래하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시인의 '목마름'이 무엇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은 '어둠'이다. 여기에 보이는 '어둠'은 斗鎭의 초기 작품 '도봉'에 보이는 '긴밤'과 무관하지는 않다. 따라서 '임'은 단순한 그리움이라기보다 일제 식민지 아래 많은 시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의 갈등을 도피하려는 超越主義의 심정이 짙게 깔려 있다. 시인은 자신을 '애달픈 꿈꾸는 사람'임을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木月의 애달픈 꿈을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즉 하나는 '바위'의 생을 닮는 의지의 방향과, 다른 하나는 '절로 임과 하늘에 비치리오'는 꿈과 환상의 방향이다. 그런데 木月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려 했다. 전자의 경우, 즉 '바위'의 길은 '無順(무순)'에서 그의 의지의 극단을 보여주었으며, '절로 임과 하늘에 비치리오'는 환상의 길은 「청록집」, 「산도화」시절에 보여준 공간이다.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름나무  속ㅅ잎 피어가는 열두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중  이 작품에는 시인의 발언이 제한되어 있다. 고쳐 말해서, 언어의 절제와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애련측측'함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 같다. 아마 師匠 지용 시를 안중에 두고 이러한 작품을 썼으리라. 이 작품에 등장되는 소도구는 현장과는 무관한 상상의 지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나오는 '청노루'는 木月 자신의 젊은 날의 꿈의 표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청마는 가고  지훈도 가고  그리고 수영의 영결식  그날 아침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 중  이 작품에 나오는 '이상한 바람'은 죽음을 변용한 말이다. '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청록집』이나『산도화』시절에서는 '산'은 자연 이상으로 뻗어가지 못한다. 다만 자연의 서경으로서의 감각적 묘사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난·기타」에 오면서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한자락은 햇빛에 빛났다. 다른 자락은 그늘에 묻힌 체...... 이 길씀한 산자락에 은은한 웃음과 그윽한 눈물을 눈동자에 모으고 아아 당신은 영원한 모성.  - 중  여기서는 '보라빛 석산' 대신에 '영원한 모성'으로서의 산이다. '소·소묘'에서는 은연중에 만물을 생성시키는 모성, 즉 창조의 신으로서의 산으로 변모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木月 자신이 범신론적 시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木月은 이 무렵에 '밤이 길어지고 머리에 서리'가 치는 인생을 산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산과  마주 앉으면  산은  늘 어둑한 안색  귀를 기울이면  늙은 산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 중  2) 꿈꾸는 者의 孤獨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중  한 편의 시는 세 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분석될 수 있다. 분석의 세 단계란 윔샛의 용어에 따르면 (1) 설명, (2) 기술, (3) 해명을 의미한다. 한 편의 시를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많은 시론들이 시 분석에 충분히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 분석 자체가 내포하는 목적을 자주 망각했기 때문이다. 시 분석 자체가 내포하는 목적이란 시라는 문학 장르의 일반적인 문법이 아니라, 한 편의 시가 환기하는 더욱 깊은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어떤 해명이 가능하기 위하여 설명의 과정과, 기술의 과정이 요구된다.  첫째로 설명이란 시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의미를 명료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가장 단순한 설명의 방법은 사전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하다. 한 편의 시에서 어떤 낱말이나 어귀가 손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 일단 우리는 그 사건적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특히 고대어, 전문어, 외국어 따위가 나타날 때 이 방법이 유용하다. 朴木月의 「나그네」는 이러한 낱말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구태여 이러한 낱말을 찾는다면 제1연 제1행의, 제3연 제2행의 정도이다. 강나루란 을 의미한다. 남도란 를 의미한다. 설명의 단계는 이렇게 언뜻 이해가 잘 안되는 낱말이나 표면 전체가 의심스러울 때도 유용하다. 암시적인 의미는 설명이 아니라 기술의 과정을 통하여 드러난다. 따라서 분석의 둘째 단계인 기술의 과정이 요구된다. 기술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기술이란 시의 구조와 부분들의 관계, 형태와 빛깔의 관계, 시와 역사의 관계 따위를 밝히는 작업이다. 국시의 율격은 낱말의 음절수가 아니라, 행의 음보수에 의하여 그 특성이 나타난다고 본다. 「나그네」는 5연으로 된 2행시이며, 각 연은 표면적으로는 제1행이 2음보, 제2행이 2음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를 다시 찬찬히 읽으며 각 연의 제 2행은 제1연을 빼고는 모두가 5음절로 된 1음보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의 2연, 4연, 5연이 한결같이 고정된 음절수를 나타내며, 그것들이 하나의 의미적 단위로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연의 음절수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연 : 3·3·4  2연 : 3·4·5  3연 : 2·3·5  4연 : 3·4·5  5연 : 3·4·5  2연·4연·5연에서 3·4·5라는 고정된 음절수를 읽는 다는 것은 이 시의 각 연의 제 2행을 2음적과 3음절을 기본으로 하는 2음보격으로서 보다는 5음절을 기본으로 하는 1음보격으로 수용케 한다. 그래서 박 목월의 초기시가 전통적인 민요의 가락을 계승한다는 폭넓게 수용되는 주장이고, 민요의 기본적인 율격이 3음보격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1연과 3연은 다른 연들과 대비되는 의미를 암시하며, 1연과 3연은 나그네가 걸어가는 을 노래하며, 다른 연들은 와 을 노래한다. 좀더 자세히 이 시의 구조와 의미의 관계를 기술하면, 1연(길)→ 2연(나그네)→ 3연(길)→ 4연(시간)→ 5연(나그네)로 나타난다. 시는 과 의 대립이지만 사실과 황홀, 고독으로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고독이며 세계로 번져가는 고독이다. 암시적 의미는 구조와 그 주조적 단위들의 관계가 암시하는 것이지만, 외부적으로 사회문화적 특성과의 관계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시의 내부적, 외부적으로 지향했지만 본고에서는 내부적인 기술만을 기술하고 있다. 이상의 설명이나 기술, 셋째 단계로 소위 해명이라는 과정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앞서의 기술에서 우리가 제시한「나그네」의 특성은 시의 구조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그때에도 말했듯이 구조는 어디까지나 의미와의 상관성 속에서 기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단계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과 의 대립, 에 의한 과 의 지향이 마침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가능성이란 , 이었다. 기술된 것을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시가 제공하는 많은 다른 요소들에 유념해야 한다. 「나그네」의 경우, 2연과 5연의 반복, 라는 직유법, 시의 절정이 어느 부분인가 하는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원형적 구조 안에서 황홀의 내용은 단순한 자아망각(술)이 아니라, 삶의 역동성, 강렬한 생명감이다. 그때 과 의 대립은 바로 삶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2. 趙芝薰의 詩  1) 自然 親和와 불교적 禪味  는 芝薰의 志士的 品格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古典的 소재를 古風스러운 表現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詩는 일제의 강점과 수탈로 신음하는 망국민의 恨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行을 가르지 않은 散文詩의 抒情性은 은유·풍유의 수법과 일치하고 있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친 옥좌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소리도 없었다 品石 옆에서 正一品 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줄을 모르량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 중  이 시는 散文詩 形態의 시로서 첫째, 행의 구분이 없고 둘째, 散文처럼 잇달아 씌어졌다. 그러나 단락을 나누어 보면 5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고, 단락별로 그 내용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퇴락한 古宮의 모습을 외세에 침탈 당했음을 암시하고  둘째, 玉座 위의 봉황은 역사의 허망과 비판의식을 그렸으며  셋째, 울지 못하는 봉황은 민족과 지은이의 설움을 나타내고  넷째, 지난 날의 영화와 현실의 暗澹함을 그렸으며  다섯째, 痛哭하고 싶은 심정을 逆說的으로 표현한 것으로 되어 있다.  亡國의 설움을 울지 못하는 봉황새를 통하여 比喩와 象徵으로 含蓄하고 있다. 또한 芝薰 시에서 고전성의 특징을 갖춘 불교 미학이 있다. 그의 불교 미학은 소멸(존재의 멸망)하는 것에 대한 무상성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집념으로 요약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초ㅅ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중  존재의 소멸에 대한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낙화'는 그의 放浪詩篇의 이부로서 한시적인 요소를 많이 품고 있다. 특히, 두보류의 영탄과 불교적인 무상, 禪的요소가 곁들여 있어 보인다. 이 시의 조직을 살펴보면, 첫째 연과 둘째 연은 자연의 변화무상에 대한 체념이며, 셋째 연부터 여섯째 연까지는 자연의 세계에서 얻어진 직관이며, 마지막 부분은 허탈과 영탄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위의 작품은 월정사 강원생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의 불교적 체험과는 무관하지는 않다. 이 무렵 월정사에서 씌어진 '大道無門'이란 글은 불교의 교리에 많이 접하고 있다.  2) 現實과 선비정신  芝薰의 시집「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관심을 보인 시편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시편은 미학의 타협 없이 결의나 의지의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芝薰은 6·25와 4·19를 계기로 '전진초'를 비릇해서, 弔歌, 頌歌에까지 그의 신념을 표명하고 있다. 芝薰이 시 언어와 산문 언어를 구별 못할 리가 없지만, 미학보다 역사적 사명감에 더욱 관심을 보인 시인이다. 시인의 사명감과 선비 정신은 결국 한뿌리임을 글에서 역설하고 있다.  지성인은 고인이 이른바 植字人 또는 독서인이오 우리말로는 선비다. 그러므로 지성인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곧 선비의 본분이 무엇이냐 하는 말이 된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많은 지사가 순국할 때 번민하다가 마침내 합방의 소식을 듣고 飮藥自決한 황매천 선생은 그의 辭世詩에 '秋燈庵卷懷千古 難作人間植字人'이란 글귀를 남겼거니와 진실로 인간이 선비노릇하기 어렵다는 뼈아픈 진실을 토로하였던 것이다.  지훈의 선비 정신은 황매천, 신명균, 한용운에게서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명문장 '지조론'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산문에서도 '天涯(천애)의 고독과 빈한을 함께할 절조' (서창집)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훈은 언어의 혈육화를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시에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고쳐 말하면, 선비 정신과 시 정신을 혼돈한 곳에 시의 파탄이 온 것이리라.  3. 朴斗鎭의 詩  1) 自然과 信仰  朴斗鎭의 「墓地頌」은 1939年 6月호 『文章』詩에 「香峴」과 함께 발표된 첫 번째 추천 作品이다. 정지용은 그의 시적 체취를 이라 말하며, 시단에 하나의 을 소개하는 法悅 이상의 느낌을 갖는다고 하였다. 山의 시인으로 불러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朴斗鎭은 문단에 선보인 첫 작품에서부터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세계를 펼쳐 주목을 받았다.  산 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뿐.  산 그늘 길게 느리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사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중  비교적 사적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는 산은 한갓 제재의 구실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의 쓸쓸한 정경을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유추하고 있는 점으로 봐서 '香峴', '雪岳賦'와 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이 작품도 기다림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연작시 '사도행전'의 직설적 방법과는 달리 이 작품은 매우 은유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斗鎭의 난초와 가람의 난초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微塵(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받아 사느니라.  - 이병기 중  가람의 난초는 가람의 말대로 오도의 경지에 속하는 사물 존재이며, 원초적 생태와 같은 '생명감각'으로 인식되는 것인데 반해, 斗鎭은 현실의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 보이는 난은 '비수', '벼랑', '폭퐁'과 맞서는 굳은 의지로 알레고리하고 있다. 특히, 斗鎭의 후기 시집 '고산식물', '수석열전', '야생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은 난이거나, 절벽이거나, 수석이거나, 모두 자신의 의지 또는 초월자의 의지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다. 예술보다 이념을 택한 시인이다. 김동리가 시집「해」의 발문에서 '우리 문학의 고전'이라고 말한 것도 斗鎭의 이런 면을 안중에 넣고 한 말일 것이다.  2) 再生의 舞臺, 墓地  斗鎭의 초기 作品에서 가장 미의식이 뛰어난 것으로는 묘지송을 들 수 있다. 「묘지송」은 그러한 주목에 값할 만큼의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우선 이 시의 제재로 사용된 라는 소재는 상식적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는 죽음이라든지 허무, 인생무상, 혹은 폐허나 소멸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런데 朴斗鎭은 이러한 소재에 대한 상식적 관념을 깨뜨리고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생명이나 탄생의 무대로 변질시킨다. 말하자면 상식적 상상력의 질서를 뒤집어, 그 속에서 혼히 놓치기 쉬운 새로운 인식의 차원을 발견해 내어 그것을 잔잔하고 차분한 어조로 읊어 내고 있다. 우선 이 시에는 크게 두 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그것은 ·····등으로 나타나는 소재의 세계, 표면의 세계와 이를 극복하는 주제의 세계, 내면의 세계로 크게 나누어진다.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ㅅ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중  '墓地頌'은 하나의 예술 作品이다. 여기서는 이념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햇빛과 죽음(촉루)의 빛깔, 주검들의 향기, 쓸쓸함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멧새 울음에서 느껴지는 청각의 역설적 효과, 대체로 이런 것들이 감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우 시적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시형식도 간결하다. 관념이 거세된 순수 감각의 세계이다. 셋째연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태양'이 그립다는 묵시의 세계에 대한 기다림이라 볼 수 있다. 이 詩는 4연으로서 4행으로 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4행시는 흔히 기·승·전·결의 형식을 취하지만 이 詩는 그렇게만 불 수 없다. 기·승·전·결의 4분 형식은 크게 전반부의 2행과 후반부의 2행이 맞서는 형태, 즉 대칭적 구조를 취함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시의 짜임새는 제1연과 4연이 어울려 있고 제2연과 3연이 어울려 있는, 즉 처음과 끝이 가운데를 감싸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 시가 표현하는 단일 정서의 심화, 시인의 세계관(자연관)의 영원성을 은연중에 강화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이 시의 형태적 질서와 거기 실려 있는 情緖的· 意味的 질서는, 이 처럼 복합적이며 상승적인 여운을 이끌고 독자의 心琴을 울릴 수 있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좋은 시란 거기 사용된 陰性的· 言語的 要所들과 거기 담겨진 情緖的· 意味的 內容들이 일체화됨으로써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形式을 갖춘 그러한 시를 말한다.  Ⅲ. 세 詩人의 作品에 나타난 詩的 特質 比較  1. 靑鹿派의 詩語  行爲에 대하여 "Wordsworth"는 자연을 일부러 찾아갔지만 三家詩人은 自然으로 쫓겨갔다 함은 屬性은 다르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면에서는 일면 바른 견해가 아닐까?  그러나 당시 우리의 고유한 抒情에 굶주리고 늘 불안과 공포의 틀 속에서 몸부림치던 겨레에게 이들 언어는 곧 하나의 鄕愁요 큰 慰藉가 아닐 수 없었다. 三家詩人의 시어를 분석, 고찰하여 그들이 갖는 시어의 특징 및 시어의 屬性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詩語表記는 原典대로이다.  ② 詩語는 작품 속에서, 명사나 명사화된 언어를 대상으로 하였다.  ③ 自然語은 草木種類의 언어이며, 山水, 묵는 自然語 中 抒情語이다.  靑鹿派의 공통적 특질은 "自然의 發見"이라는 말과 같이 그들의 모든 시의 背景은 한마디로 "自然"이었다.  즉 그들의 서정이 항용 있어온 산이나 물, 풀이나 나무 기타 짐승류혹은 하늘 구름 등에 의탁되면서 그들 나름대로 차분히 노하지도 않고 격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을 재발견, 재편성하였다는 것이다.  木月은 ―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의 일부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담  - 의 일부  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의 일부  自然의 언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향토성이니 (土俗的인 鄕土的) "향토적인 자연의 소재를 끌어올려 하나의 心魂의 自然"을 좀 단조롭기는 하나 "사슴"처럼 超然히 음미하고 있다.  斗鎭은 ―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넘엇 산 안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 의 일부  소나무와 갈나무와  사시나무와 함께 나는 산다  억새와 칡덤불과  가시 사이에 서서  - 의 일부  소재 중에서 제일 많이 찾은 것이 山이다. 자연의 배경이 산이며 그의 중심사상도 산이다. 그러나 좀 이색적인 것은 관념어의 출현이다. "주검", "무덤"이니 "光明", "永遠", "復活" 등의 언어는 산 같은 묵중한 세계에서 엊저면 "宗敎" 같은 관념의 대상을 생각해낸 것이 아닐까? 이에 對해서 金東里 氏는 "한마디 警告해 두고 싶은 것은 斗鎭의 詩가 觀念의 世界의 하나의 시로 詩方向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芝薰은 ―  木魚를 두드리다  조름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 의 일부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  구름에 싸인 집이  물소리도 스미노라.  - 의 일부  시어의 대부분이 자연인 것은 위의 두 사람들과 같으나 이에게서는 鄕土語 중 民俗語의 出現이 빈번하며 언어에 고전적인 냄새가 풍김이 特異하다.  또한 전체적으로 기록할 만한 사실은 이들 세 사람이 모두 자연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以前의 감상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感歎"이나 "눈물", "서러움" 등의 世界에서 탈피하였다는 사실이다.  2. 自然 수용의 樣相  청록파의 三家詩人은 소박한 자연 현상으로의 자연이 아니라, 영원에 이르는 그것의 주재자요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빛과 참과 선과 미의식 그 근원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러한 면에서 세 시인의 자연 수용의 양상을 간략히 살펴 보았는데,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하여 비교할 수 있다.  -----------------  자연수용의 양상  -----------------  (1) 趙 芝 薰  관조적  정적  선적분위기  귀의적  객관적 거리유지  현실적 자연  동양적 자연  (2) 朴 木 月  향토적  정적  새로운 공간의 창도(同化)  제시적  맑고 청순한 자연  이상향으로의 자연  동양적 자연  (3) 朴 斗 鎭  친화적  동적  관념(신앙이나 이상)과 결합(서구적 발상)  근원적 예찬  건강한 자연(생명력 있는 자연)  비유적 자연  ---------------------------------------  3. 詩的 自我의 分析  문학은 發話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발화된 것이 아니라, 기록되어진 발화이다. 詩는 대체로 압축된 언어로 드러나므로써 일상적인 대화보다 복잡하며, 설명적이 아닌 숨겨진 채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말이 대화중심의 언어체계이며, 場面에 크게 의존하는 언어임을 생각할 때, 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편, 시속에는 청자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관계를 간략하게 도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  시인 -------> 화자 - (메시지) - 청자
413    청록파시인 - 박두진 댓글:  조회:4822  추천:0  2015-04-17
안성 시립 도서관 입구 잔디 언덕에 세워진 박두진 시비. 박두진 시인의 자화상 아래 어록비   詩란 시는 모든 것 위에서 최고의 비판이자 최고의 도덕적 이상 미학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성을 실천 해야 한다.   *** 시립 도서관 3층에 박두진 시인 연구소 입구. 이 곳에 찾으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어느 개인에 비하여 많은 연구 소재와 살아 생전 끈끈한 정과 손떼가 묻은 애장품과 친필 시 그리고 시예. 그림등 그리고 옛사진이며 박두진 석사나 박사 논문 연구하려면 이 곳에서 많은 것을 찾아 볼 만큼 도서학과 전문 분야 출신답게 온갖 심혈을 기우리시는 유병장 관장의 뜻으로 이뤄진 곳이다. 동으로 자화상 뜬 것이다. 박두진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훈장이시었던 아버지께 한학이며 서예를 신학문보다 더한 환경에서 자란분이다. 어린시절부터 천재적인 신동이라고 마을에서 듣고 자랐다는 얘기를 나는 누누이 듣고 했었다. 위 사진은 서예 친필이다. 선생님은 비가 많이 내리거나 집에 침거 하실 때 틈틈히 본인의 성격을 대변 하는 뜻한 죽을 잘 치시었다. 이 그림은 오래전에 시집속에 그리셨던 금강산 만물상. 말년에 안성 금광면 호수가 집필실레서 창밖에 호수를 내려다 보며 시상에 젖어 계시는 모습. 박두진 시인은 혼자 계실 때는 단소로 태평가를 잘 부르시고 하셨다. 우측 사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은 서운산 골짝이에서 죽은 느티나무 뿌리를 나와 구하여 안성 금광 호수가 집필실에서 얼마나 집념이 강하신지 몇날 몇일이고 손질하여 비구상 조각품을 만들고 마시는 대단 하신 분이다. 우리 젊은이들도 인생에 귀감을 삼어야 되리라 하는 집념의 정신. 70년대 말인가  롯데 백화점 화랑에서 초대 전시회 도예에 글씨 도자기는 우리나라 백자 항아리로 일류가 만든 곳에 직접 쓰신 도자기전 작품. 어느 시집 출판기념식에서 박종화 소설가 좌측 서 계신분은 조지훈 시인. 남한강 상류 돌밭에서 탐석 하시는 모습. 박두진 선생님 오래전에 저서들. 박두진 시인 연구소는 연구하기에 잘 편리하게 갖춰진 컴퓨터와 많은 자료들. 사진에 보이는 논문집은  박두진 연구 석사 박사 논문집들이다.  
412    청록파시인 - 조지훈 댓글:  조회:4973  추천:0  2015-04-17
      경북 영양의 주실마을은 실학자들과의 교류로 일찍 개화한 마을이면서도 일제 강점기에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지조 있는 선비의 마을로 알려져 있다.               주실마을은 조지훈의 고향이며 호은종택은 조지훈 생가이다.             조지훈은 1920년에 호은종택에서 출생하였으나 부친을 따라 1936년에 상경할 때까지 성장기를 본가에서 보냈다. 이곳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조지훈 생가, 방우산장이다.   방우산장(放牛山莊)은 조지훈이 생전에 '방우산장기'라는 수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다.               주실마을의 지훈문학관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을 기리기 위해 2007년에 건립한 문학관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1920 ~ 1968), 본명은 동탁.                       조지훈문학관에는 그의 삶과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쪽 벽면에는 조지훈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빼곡하다. 보통 저 당시 가난했던 문학가들은 남겨진 사진이나 자료들이 많지 않은데 조지훈은 부자였기 때문에 사진도 많고 자료들도 거의 그대로 전해진다고 한다.         헤드폰을 끼고 조지훈의 육성 시낭송을 들을 수 있는 곳.           조지훈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붓글씨로 쓴 조지훈의 '완화삼' 시 지훈문학관 뒤편에 조성된 '지훈시공원'에는 조지훈 동상과 20여개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조지훈의 대표시인 '승무'   승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 . .            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411    참여시인 - 김수영 댓글:  조회:4662  추천:0  2015-04-17
                    김수영  시 모음                                                  (본관 김해김씨)     김수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해 현대시 영역에서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 이고 날카롭게 탐구한 시인입니다. 그의 초기시는 난해한 성향을 띤 모더니즘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4·19 를 겪으면서 자유와 그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그리고 소시민의  비애를 성찰하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발표한 대표적인 참여시인입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의 대표시입니다. 2008년 조선일보에서 현존하는 문인 100명에게 애송시 100편을 뽑는 투표를 하게 하였는데, 그때 1등으로 뽑힌 시가 이 시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풀을 노래한 시로 읽어도 좋고, 민중시나 저항시로 읽어도 좋습니다. 읽는 우리들 마음이겠지만 저는 그냥 풀로 읽는게 더 좋네요.                                                      눈 /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에다가 기침을 하고 가래라도 뱉자'고 외치는 아주 단순한 시이지만,,,  눈을 닮기 위해 자신을 정화하려는 시인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다'라고 외치는 시인의 순수하고 정정한 모습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혁명은 고독하다' - 자유를 향한 자의 고독한 의지가 우리의 가슴을 찡하고 울리네요.  김수영시인은 '시인은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혁명가와 같은 존재로서  그런 인식으로 시인은 시를 써야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지독히 비시적(非詩的)인 산문 문장을 그대로 시로 살려놓고 있는 이 시는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치 떨리게 서럽다. '몸이 까맣게 타버려서' 멀리 있는 사람의 가을까지 보인다.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고, 나의 바람이 '으스러진 설움'이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악착같이 시를 쓰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가 '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거미'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설움은 가뭇하게 타버리고 가을 찬바람처럼 맑아져 다시 오리라.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 생각하면서, 첫사랑처럼 마지막 사랑에 몸서리치리라. 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김선우, 시인)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矜持의 날 /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사랑의 변주곡(戀奏曲)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뱥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冥想이 아닐 거다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라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거대한 뿌리 / 김수영                                               나는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궁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는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입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지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시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병풍 / 김수영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면상이 아닐 거다               꽃 잎  /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기 도   /  김수영                                                     -사일구순국학도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革命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  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  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革命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罪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罪라는 罪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410    저항시인 - 심훈 댓글:  조회:5009  추천:0  2015-04-17
심훈의 문학과 인생  우리문학의 정통성을 노래한 저항시인  - 심훈의 문학과 인생  [월간 문학세계 발행인 칼럼] 金 天 雨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의 생애와 문학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진 시내에서 아산만 쪽으로 줄곧 달리다 보면, 아산만을 한 등성이너머에 둔 송악면 부곡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농로 어귀에 '필경사'라고 쓰인 안내판 하나가 쓸쓸히 서 있다.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작은 전설이 묻어 있는 곳이다. 부곡리는 논둑길을 사이에 두고 전형적인 농가 형태를 갖춘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언덕에 부곡교회당-심훈이 쓴 [조선의 영웅]이라는 글이 있는데, 위치상으로 보아, '야학당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리다'라는 구절의 그것으로 보인다. 심훈이 이곳에 내려온 것은 그의 말년인 1932년(32세)이다. 당시 소설가이자, 감독자이자, 미남 배우로도 인기가 높았던 심훈의 낙향은 그 자신의 개인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행보였다.  그러니까 심훈의 부곡리 행은 그동안 이채로웠던 이력에 한 획을 긋고 창작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확고한 각오에서 실행된 것이다. 그의 장편[영원의 미소][직녀성], 단편 [황공의 최후]가 이곳에서 쓰여졌으며 [직녀성]의 고료를 받아서 설계하여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였다. 이 필경사에서 저 유명한 [상록수]가 탄생한 것이다.  심훈은 감성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자유주의적 경향을 지닌 낭만적인 인물이었다. 당대의 유명한 혁명가들과 조우했는가 하면 한때 카프의 창립멤버로 활동을 하다가, 최승희 등 여러 신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영화에 열중하기도 했다가, 갑자기 모든 도시적인 이방의 것들과 작별을 하고 농촌으로 낙향하는 그의 행로가 이러한 끼 있는 자질이 아닌가 한다. 심훈의 일생에 맨 처음으로 크나큰 전기가 된 사건이 있으니, 바로 3.1운동이다. 경성고보시절에 만세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심훈이 감옥에서 쓴 [어머님께 드리는 글월]이다. "어머니!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처음 자동차에다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그 글 중 일부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일제의어두운 그늘 속에 자신을 묶어 두기에는 열혈청년이자 자유주의자인 그의 피는 너무나 뜨거웠다. 출옥 후 곧바로 중국망명길을 떠났던 것은 자유주의자의 운명적인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심훈은 [상록수]를 집필한 후에 그것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던 것같다. 강흥식, 심영, 윤봉춘 등의 배우로 출연진까지 짰지만 일제의 방해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소설에 비하여 효과가 훨씬 직접적이다. 읽고 상상하고 감상하는 소설과는 달리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바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심훈 문학을 대표하는 [상록수]는 흔히 계몽주의 소설로만 알려져 있다. 물론 계몽이 작품의 주된 흐름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가 계몽을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흙]이 무지한 농민들을 계몽하여 한글은 깨우치게하고 청결하지 못한 생활을 청산할 것을 요구하는 등 정치,경제적 요소를 배제한 것이었다면 [상록수]에서 그런 점들은 부차적으로 처리된다. 채영신에 의해 한글운동과 생활개선운동이 강조되긴 했지만 주인공 박동혁은 그와는 달리 경제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농우회 회장으로 고리대금업자 강기천을 앉히고 고리대 탕감을 요구하는 장면이나, 진흥회 회장을 뽑는 자리에서 작인들이 소작권 유지와 소작료의 동결을 주장하는 대목등은 이 작품이 이광수 류의 계몽소설과는 본질을 달리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심훈이 시인이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유치환, 윤동주, 등과 함께 일제치하에서 손꼽히는 저항시인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이르면 더더욱 그렇다. 이육사가 30여 편의 시를 남겼다면 심훈은 수적으로 훨씬 많은 항일시를 남겼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쓰기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여 수가 되기에 한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심훈의 유일한 시집[그날이 오면]은 원래 1933년에 발간하려 했었다.  그런데 수록된 시의 반 이상이 검열에 걸려 붉은 줄이 그어지자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사후 13년이 지난 시점에서 둘째형 심설송에 의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시집 한 권은 전체가 열렬하고 직정(直情)적 호소력에 충만한 시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집의 마지막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심훈이 급작스레 병을 얻어 세상을 뜨기 전 쓰여졌는데, 이 시는 그의 영결식장에서 낭독되어 좌중을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심훈은 분명 우리 문학의 정통성을 확인케하는 시인임에도 틀림이 없다. 진정한 저항문학은 민족문학의 정도와 아울러 문학의 정도를 밝히는 지표가 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문학의 미래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도는 칼로 이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라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날이 오면] 전문 
409    심훈 시모음 댓글:  조회:6026  추천:2  2015-04-17
심훈(沈熏, 1901년 9월 12일 ~ 1936년 9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소설가, 작가, 언론인, 영화인으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경기도 과천군 출생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호는 해풍(海風)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심삼준(沈三俊), 심삼보(沈三保)이다. 주요 저서로는 《상록수》등이 있다. 또한 1926년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을 연재했다.[1]   목차    1 생애 2 사후 3 가족 및 친척 관계 4 인간 관계 5 학력 6 주요 작품   생애 1901년 경기도 과천군(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태어남 1919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서울 경기고등학교) 4학년 재학시 3·1운동에 참여로 투옥 및 퇴학 1920년 중국 상하이 위안장 대학교 철학과 입학 1921년 중국 상하이 위안장 대학교 철학과 중퇴, 중국 항저우 저장 대학교 극문학과 재입학 1922년 중국 항저우 저장 대학교 극문학과 중퇴, 극문회 조직 1926년 동아일보에서 《탈회》를 연재, ‘철필 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에서 해직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공모에서 당선되어 상금을 받았으며,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 1936년 장티푸스로 36세로 사망 사후 1949년에 시집 《그 날이 오면》, 1952년에 《심훈집》 7권과 1996년에 《심훈 전집》 3권을 출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는 일본 제국의 검열로 중단돼 미완성 작품으로 남음 2005년 7월 서울 경기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기로 결정 심훈가의 장손인 심천보 씨가 심훈 선생 관련 유품 등 가문유물 414점을 당진시에 2013년 7월 16일 기증. 당진시에서는 2014년 3월, 심훈기념관을 준공하였다. [2] 가족 및 친척 관계 증조부 : 심의붕(沈宜朋) 증조모 : 연안 이씨 증조모 : 전주 이씨 증조모 : 탐진 최씨 조부 : 심정택(沈鼎澤) 조모 : 광주 안씨 아버지 : 심상정(沈相涏) 어머니 : 해평 윤씨 첫째형 : 심우섭(沈友燮) 둘째형 : 심명섭(沈明燮) 여동생 : 심원섭(沈元燮), 기계인 유원식에게 출가 본부인 : 전주 이씨, 이해영 장남 : 심재건(沈載健) 차남 : 심재광(沈載光) 삼남 : 심재호(沈載昊) - 미국 거주 후부인 : 죽산 안씨, 안정옥 인간 관계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 소설가 현진건(玄鎭健) 등과 함께 문우(文友) 관계를 맺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 이범석(李範奭),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 박헌영(朴憲永)과는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이기도 했다.[1] 학력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 (사후에 명예졸업장 추서) 중국 상하이 위안장 대학교 철학과 중퇴 중국 저장 성 항저우 저장 대학교 극문학과 중퇴 주요 작품 《영원의 미소》 《상록수》 《직녀성》 《그 날이 오면》 《먼동이 틀 때》 《동방의 애인》 《불사조》 《기남의 모험》 《새벗》 《오월의 비상》 《황공의 최후》 《뻐꾹새가 운다》   심훈의 좋은 시모음     가배절(嘉排節)   팔이 곱지 않았으니 더덩실 춤을 못 추며 다리 못 펴 병신 아니니 가로 세로 뛰진들 못 하랴 벼 이삭은 고개 숙여 벌판에 금물결이 일고 달빛은 초갓집 용마루를 어루만지는 이 밤에- 뒷동산 솔잎 따서 송편을 찌고 아랫목에 신청주 익어선 밥풀이 동동 내 고향의 추석도 그 옛날엔 풍성했다네 비렁뱅이도 한가위엔 배를 두드렸다네   기쁨에 넘쳐 동네방네 모여드는 그날이 오면 기저귀로 고깔 쓰고 무등 서지 않으리 쓰레받기로 꽹가리 치며 미쳐나지 않으리 오오, 명절이 그립구나! 단 하루의 경절(慶節)이 가지고 싶구나!     거리의 봄   지난 겨울 눈밤에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늙은 거지가 쓰레기통 곁에 살아 앉았네 허리를 펴며 먼 산을 바라보는 저 눈초리 우묵하게 들어간 그 눈동자 속에도 봄이 비치는구나 봄빛이 떠도는구나 원망스러워도 정든 고토에 찾아드는 봄을 한번이라도 전 눈으로 더 보고 싶어서 무쇠도 얼어붙은, 그 치운 겨울에 이빨을 앙물고 살아왔구나 죽지만 않으면 팔다리 뻗어 볼 시절이 올 것을 점쳐 아는 늙은 거지여 그대는 이 땅의 선지자로다   사랑하는 젊은 벗이여 그대의 눈에 미지근한 눈물을 거두라 그대의 가슴을 헤치고 헛된 탄식의 뿌리를 뽑아버리라 저 늙은 거지도 기를 쓰고 살아 왔거늘 그 봄도 우리의 봄도, 눈앞에 오고야 말 것을 아아, 어찌하여 그대들은 믿지 않는가?     고독   진종일 앓아누워 다녀간 것들 손꼽아 보자니 창살을 걸어간 햇발과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 두 손길 펴서 가슴에 얹은 채 임종 때를 생각해보다   그림자하고 단 둘이서만 지내는 살림이어늘 천장이 울리도록 그의 이름은 불렀는고 쥐라도 들을세라 혼자서 얼굴 붉히네   밤 깊어 첩첩이 닫힌 덧문 밖에 그 무엇이 뒤설레는고 미닫이 열어젖히자 굴러드느니 낙엽 한 잎새 머리맡에 어루만져 재우나 바시락거리며 잠은 안 자네   값없는 눈물 흘리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맹세했던고 울음을 씹어서 웃음으로 삼키기도 한 버릇 되었으련만 밤중이면 이불 속에서 그 울음을 깨물어 죽이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오면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나의 강산이여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오똑 솟았다가 굽이쳐 달리는 그 산 줄기 네 품에 뒹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소나무 감송감송 목멱의 등어리는 젖 물고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허리와 같고 삼각산은 적의 앞에 뽑아든 칼끝처럼 한번만 찌르면 먹장구름이 쏟아질 듯이 아직도 네 기상이 늠름하구나   에워싼 것이 바다로되 물결이 성내지 않고 샘과 시내로 가늘게 수놓았건만 그 물이 맑고 그 바다 푸르러서 한 모금 마시면 한 백년이나 수를 할 듯 퐁퐁퐁 솟아서는 넘쳐 넘쳐 흐르는구나   할아버지 주무시는 저 산기슭에 할미꽃이 졸고 뻐꾹새는 울어예네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도 돌아만 가면 저 언덕 우에 편안히 묻어 드리고 그 발치에 나도 누워 깊은 설움 잊으오리다   바가지 쪽 걸머지고 집 떠난 형제 거칠은 벌판에 강냉이 이삭을 줍는 자매여 부디부디 백골이나마 이 흙 속에 돌아와 묻히소서 오오 바라다볼수록 아름다운 나의 강산이여     눈 밤   소리 없이 내리는 눈, 한 치, 두 치 마당 가득 쌓이는 밤엔 생각이 길어서 한 자외다. 한 길이외다.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편지나 써서 온 세상에 뿌렸으면 합니다.     독백   사랑하는 벗이여 슬픈 빛 감추기란 매맞기보다도 어렵소이다 온갖 설움을 꿀꺽꿀꺽 참아 넘기고 낮에는 히히 허허 실없는 체 하건만 쥐죽은 듯한 깊은 밤은 사나이의 통곡장이외다   사랑하는 벗이여 분한 일 참기란 생목숨 끊기보다도 힘드오이다 적덩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가슴의 불길을 분화구와 같이 하늘로 뿜어내지도 못하고 청춘의 염통을 알콜에나 짓담그려는 이 놈의 등어리에 채찍이라도 얹어 주소서   사랑하는 그대여 조상에게 그저 받은 뼈와 살이어늘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알몸 뿐이어늘 그것이 아까워 놈들 앞에 절하고 무릎을 꿇는 나는 샤일록보다도 더 인색한 놈이외다 쌀 삶은 것 먹을 줄이나 아니 그 이름이 사람이외다     동우(冬雨)   저 비가 줄기줄기 눈물일진데 세어 보면 천만 줄기나 되엄즉허이 단 한 줄기 내 눈물엔 배게만 젖지만 그 많은 눈물비엔 사태가 나지 않으랴 남산인들 삼각산인들 허물어지지 않으랴 야반에 기적 소리! 고기에 주린 맹수의 으르렁대는 소리냐 저력 있는 그 소리에 주춧돌이 움직이니 구들장 밑에서 지진이나 터지지 않으려는가?   하늘과 땅이 맞붙어서 맷돌질이나 하기를 빌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건만 단 한 길 솟지도 못하는 가엾은 이 몸이여 달리다 뛰면 바다인들 못 건너리만 걸음발 타는 동안에 그 비가 너무나 차구나     마음의 낙인   마음 한복판에 속 깊이 찍혀진 낙인을 몇 줄기 더운 눈물로 지어 보려 하는가 칼끝으로 도려낸들 하나도 아닌 상처가 가시어질 것인가 죽음은 홍소(哄笑)한다. 머리맡에 쭈구리고 앉아서 자살한 사람의 시집을 어루만지다 밤은 깊어서 추녀 끝의 풍경소리 내 상여 머리에 요령이 흔들리는 듯 혼백은 시꺼먼 바다 속에 잠겨 자맥질하고 허무히 그림자 악어의 입을 벌리고 등어리에 소름을 끼얹는다   쓰라린 기억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앞길은 행복이란 도깨비가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꿈속에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어릿광대들 개미 때처럼 뒤를 따라 쳇바퀴를 돌고 도는 걸   캄풀 주사 한 대로 절맥되는 목숨을 이어 보듯이 젊은이여 연애의 한 찰나에 목을 매달려하는가? 혈관을 토막토막 끊으면 불이라도 붙을 성 싶어도 불 꺼져 재만 남은 화로를 헤집는 마음이여!   모든 것이 모래밭 위의 소꿉장난이나 아닌 줄 알았더면 앞장을 서서 놈들과 걷고 틀어나 볼 것을 길거리로 달려 나가 실컷 분풀이나 할 것을 아아 지금엔 희멀건 허공만이 내 눈앞에 틔어 있을 뿐     만가(輓歌)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수의(壽衣)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뻑이는데 동지들은 헐벗던 알몸이 추울 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 준다   (이하 6행은 일본 총독부의 검열로 잘려져 나감)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봄비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이루시네     조선은 술을 먹인다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입을 벌리고 독한 술잔으로 들이붓는다   그네들의 마음은 화장터의 새벽과 같이 쓸쓸하고 그네들의 생활은 해수욕장의 가을처럼 공허하여 그 마음 그 생활에서 순간이라도 떠나고저 술을 마신다 아편 대신으로 죽음 대신으로 알코올을 삼킨다   가는 곳마다 양조장이요 골목마다 색주가다 카페의 의자를 부시고 술잔을 깨뜨리는 사나이가 피를 아끼지 않는 조선의 테러리스트요 파출소 문 앞에 오줌을 갈기는 주정꾼이 이 땅의 가장 용감한 반역자란 말이냐? 그렇다면 전봇대를 붙잡고 통곡하는 친구는 이 바닥의 비분을 독차지한 지사로구나   아아 조선은, 마음 약한 젊은 사람에게 술을 먹인다 뜻이 굳지 못한 청춘들의 골을 녹이려 한다 생나무에 알코올을 끼얹어 태워버리려 한다.     토막생각   날마다 불러가는 아내의 배 낳은 날부터 돈 들 것 꼽아 보다가 손가락 못 편 채로 잠이 들었데 뱃속에 꼬물거리는 조그만 생명 ‘네 대에나 기를 펴고 잘 살아라!’ 한 마디 축복밖에 선사할 게 없구나   ‘아버지’ 소리를 내 어찌 들으리 나이 30에 해 놓은 것 없고 물려줄 것이라곤 ‘선인(鮮人) 밖에 없구나   급사의 봉투 속이 부럽던 월급날도 다시는 안 올 성싶다 그나마 실직하고 스무 닷새 날   전등 끊어가던 날 밤 촛불 밑에서 나어린 아내 눈물지며 하는 말 ‘시골 가 삽시다. 두더지처럼 흙이나 파먹게요.’   오관으로 스며드는 봄 가을바람인 듯 몸서리쳐진다 조선 팔도 어느 구석에 봄이 왔느냐   불 꺼진 화로 헤집어 담배 꼬토리를 찾아내듯이 식어버린 정열을 더듬어 보는 봄 저녁   옥중에 처자 잃고 길거리로 미쳐간 머리 긴 친구 밤마다 백화점 기웃거리며 휘파람 부네   선술 한 잔 내라는 걸 주머니 뒤집어 털어 보이고 돌아서니 카페의 붉고 푸른 물   그만하면 신경도 죽었으련만 알뜰한 신문만 펴들면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네   몇 백 년이나 묵어 구멍 뚫린 고목에도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엄이 돋네 뿌리마다 썩지 않은 줄이야 파보지 않은들 모르리     통곡(痛哭)   큰 길에 넘치는 백의의 물결 속에서 울음소리 일어난다 총검이 번뜩이고 군병의 말발굽소리 소란한 곳에 분격한 무리는 몰리며 짓밟히며 땅에 엎디어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 땅을 두드리며 또 하늘을 우러러 외치는 소리 느껴 우는 소리 구소(九所)에 사모친다   검은 ‘댕기’ 드린 소녀여 눈송이 같이 소복 입은 소년이여 그 무엇이 너희의 작은 가슴을 안타깝게 설움에 떨게 하더냐 그 뉘라서 저다지도 뜨거운 눈물을 어여쁜 너희의 두 눈으로 짜내라 하더냐?   가지마다 신록(新綠)의 아지랑이가 되어 오르고 종달새 시내를 따르는 즐거운 봄날에 어찌하여 너희는 벌써 기쁨의 노래를 잊어버렸는가? 천진한 너희의 행복마저 차마 어떤 사람이 빼앗아 가던가?   할아버지여! 할머니여! 오직 무덤 속의 안식 밖에 희망이 끊긴 노인네요! 조팝에 주름잡힌 얼굴은 누르렀고 세고(世苦)에 등은 굽었거늘 창자를 쥐어짜며 애통하시는 양은 차마 뵙기 어렵소이다   그치시지요 그만 눈물을 거두시지요 당신네의 쇠잔한 자골이나마 편안히 묻히고저 하던 이 땅은 남의 호미가 샅샅이 파헤친 지 이미 오래거늘 지금에 피나게 우신들 한번 간 옛날이 다시 돌아올 줄 아십니까?   해마다 봄마다 새 주인은 인정전(仁政殿) 벚꽃 그늘에 잔치를 베풀고 이화(梨花)- 이 휘장은 낡은 수레에 붙어 티끌만 날리는 폐허를 굴러다녀도 일후(日後)란 뉘 있어 길이 설워나 하련마는   오오 쫓겨 가는 무리여 쓰러져 버린 한날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라! 덧없는 인생 죽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어니 한 사람의 돌아오지 못함을 굳이 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오오 그러나 철천(徹天)의 한을 품은 청상(靑孀)의 설움이로되 이웃집 제단조차 무너져 하소연할 곳 없으니 목메쳐 울고저 하나 눈물마저 말라붙은 억색(抑塞)한 가슴을 이 한날에 두드리며 울자! 이마로 흙을 비비며 눈으로 피를 뿜으며     풀밭에 누워서   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 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리까   바라면 바라볼수록 천리만리 생각이 아득하여 구름장을 타고 같이 떠도는 내 마음은 애달픈 심란스럽기 비길 데 없소이다 오늘도 만주벌에서 몇 천 명이나 우리 동포가 놈들에게 쫓겨나 모진 악형가지 당하고 몇 십 명씩 묶여서 총을 맞고 거꾸러졌다는 소식! 거짓말이외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말 같사외다 고국의 하늘은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무심하거늘 같은 하늘 밑에서 그런 비극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언땅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상팔자지요 철창 속에서라도 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이 명랑한 햇발을 쬐어 볼 수나 있지 않습니까?   논두렁 버티고 선 허자비처럼 찢어진 옷 걸치고 남의 농사에 손톱발톱 달리다가 풍년 든 벌판에서 총을 맞고 그 흙에 피를 흘리다니   미쳐날 듯이 심란한 마음 걷잡을 길 없어서 다시금 우러르니 높고 맑고 새파란 가을하늘이외다 분한 생각 내뿜으면 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 듯 하외다     한강의 달밤   은하수가 흘러 나리는 듯 쏟아지는 달빛이 잉어의 비늘처럼 물결 위에 뛰노는 여름밤에 나와 보트를 같이 탄 세 사람의 여성이 있었다   으늑한 포플라 그늘에 뱃머리를 대고 손길을 마주 잡고서 꿈속같이 사랑을 속삭이려면 달도 부끄럼을 타는 듯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렸었다   물결도 잠자는 백사장에 찍혀진 발자국은 어느 곳에 끝이 나려는 두 줄기 레일이던가 몇 번이나 두 몸이 한 덩이로 뭉쳤었던가   아아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모든 것이 꿈이외다 초저녁 꾸다가 버린 꿈보다도 허무하고 기억조차 저 물결 같이 흐르고 말려 한다   그 중에 가장 어여쁘던 패성의 계집아이는 돈 있는 놈에게 속아서 못된 병까지 옮아 피를 토하다가 청춘을 북망산에 파묻었다   ‘당신 아니면 죽겠어요’ 하던 또 한 사람은 배 맞았던 사나이와 벌어진 틈에 나를 끼워서 얕은 꾀로 이용하고는 발꿈치를 돌렸다   마지막 동혈(同穴)의 굳은 맹세로 지내오던 목소리 고운 여자는 ‘집 한 간도 없는 당신과는 살 수 없어요’라고 일전(一錢) 오리(五里) 엽서 한 장을 던지더니 남의 첩이 되었다   그들은 달콤한 것만 핥아가는 꿀벌과 같이 내 마음의 순진과 정열을 다투어 빨아가고 물안개처럼 내 품에서 감돌다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밤도 그 강변에 그 물결이 노닐고 그 달이 밝다 하염없이 좀 썰려 꺼풀만 남은 청춘의 그림자를 길로 솟은 포플라 그늘이 가로 세로 비질을 할 뿐  
408    <등산> 시모음 댓글:  조회:6546  추천:0  2015-04-17
  신석정의 '산으로 가는 마음' 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 이성선의 ´하늘 악기´ 외 + 하늘 악기 높은 하늘 중턱을 길게 이어져 떠가는 태백산맥 줄기 흐르는 강 하늘에 매놓은 악기줄 신이 저녁마다 돌아와 연주한다 일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저 높은 길에 내 발이 올라선다 내가 하늘 악기 위를 걸으며 그분 시간을 연주하는 날이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함구(緘口)  오래 산에 다니다 보니 높이 올라 먼데를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래 높은 데 오르다 보니 나는 자꾸 낮은 데만 들여다보고 내가 더 낮게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산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매사를 깊고 넓게 생각하며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처럼 맑게 살아라 하고 산이 가르쳤습니다 비바람 눈보라를 산에서 만나면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내 버릇이었는데 어느 사이 그것들을 피해 내려오거나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낮은 데가 더 잘 보이고 내가 더 고요해진다는 것을 갈수록 알겠습니다나 나도 한 마리 미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입을 다물어 나의 고요함도 산에 보탭니다  (이성부·시인, 1942-2012)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웁니다  사무치는 바람소리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가는 소리 들어봅니다  세월의 찌꺼기 이내 바람에 부서집니다  바람소리에 폭우처럼 떨어지고  내 마음에도 부서져 폭우처럼 비웁니다  산을 둘러앉은  한줄기 내일의 그리움을 밟고  한줄기 그리움으로 산을 오릅니다  구름처럼 떠서 가는 세월 속에  나도 어느새 구름이 됩니다  소리 없이 불러 보는 내 마음의 내일  적적한 산의 품에 담겨  내 생각은 어느새 산이 됩니다  산을 오르며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꿈을 꿉니다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산의 그리움을 배웁니다  (강진규·시인, 서울 출생) + 산을 오르는 당신  가슴 아픈  사랑의 열병  침묵으로 앓은 후  그대는 산을 올랐노라 했습니다  능선도 흐느끼는 길 따라  추억은 계곡에 버리고  미련은 소나무 가지에 걸어  이름 모를 산새 먹이로 주었노라 했습니다  모기의 흡혈 두려워  산을 멀리하던 그대의 변화  사랑의 아픔이  깊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대가 다녀간 높고 낮은 산  꺾어진 가지마다 걸어놓은 미련  아직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은  산새들도 안타까워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손희락·문학평론가 시인, 대구 출생) + 산울림 산에 올라  나무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을 훔친다. 먼 산을 바라보며 나를 보낸다. 야호~~~ 그 소리에 마음을 담아  멀리멀리 보낸다. 나를 떠난 소리는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 듯 산을 울려 다시 돌아온다. 산에 오를 때마다 정다운 대화를 나눈다. 풀, 나무, 돌, 바람, 새, 벌레, 햇빛, 구름,... 언제나 변치 않고 푸르름을 내뿜는 네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구나.  (허정虛靜·시인)  + 산에 가면 산에 가면 비바람만 불어도 서로서로 어깨를 다독여 주는 나무를 본다 산에 가면 뇌성벽력 요란해도 같이 비를 맞아 주는 바위의 묵묵함을 본다 철 따라 단장하는 산의 순한 세상은 천 년을 살고도 만 년을  늙지 않는 모습을 본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 가뻐 치부 속 깊은 숨 몰아쉴 때 우린 마음을 털어 산 속에서 만나는 이름 모르는 이들 덥석 손잡아 주진 못해도 반가운 인사로 복 지으며 천연스런 산이 되자 산에 가면 산에 가면 (혜유 이병석·시인) + 산 위에서 산 위에서 보면 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산 위에서 보면 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산 위에 서 있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 그러나 너는 알 거야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  내 마음의 설렘을. (김원기·아동문학가, 1937-1988). + 등산·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내려다보는 산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눈빛, 그 서늘한 눈빛 때문이다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모든 것의 등뒤를 비추는  그 서늘한 눈빛 때문이다  나의 이 장난 같은 일상 가운데  엄습해오는 그 눈빛  모든 것의 등뒤에 와  퍼부어대는 소나기 같은 눈빛 때문이다  내가 산에 저 험한 산에 오르는 까닭은  내려다보는 산은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무산·노동운동가 시인, 1955-)   + 도봉산  굽이굽이  길다란 능선들의  저 육중한 몸뚱이  하늘 아래 퍼질러 누워  그저 햇살이나 쪼이고  바람과 노니는 듯  빈둥빈둥  게으름이나 피우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틈에  너의 온몸  연둣빛 생명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가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  너의 찬란한 목숨  (정연복·시인, 1957-) +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맥에는 무수한 산이 있고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그런 산 가운데는 넘어가려면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그렇게 모인 정상들과 그 사이를 잇는 능선들이  바로 인생길인 것이다.  삶을 갈무리 할 나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여태껏 넘어온 크고 작은 산들을  돌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한비야·오지 여행가, 1958-)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잡힌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네.  산에는 그 고요한 품안에 고산식물들이 자라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에서·4 등산하는 목적을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하는 재미를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얻은 걸 묻기에  등산이라 했네  등산에서 남은 걸 묻기에  또 등산이라 했다네.  (김원식·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등산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박태강·시인, 1941-) + 등산과 삶  산을 오를 때면  먼 정상을 바라보지 말라.  발끝만 쳐다보며  한발 한 발 내딛으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포기하고 싶어도  온 길을 생각하며  되돌아가지 마라.  오르다 지칠 때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추라.  팔 다리에 힘이 솟고  의지는 되살아나리라.  산을 즐기며  산과 대화를 나누라  바람소리 새의 노래에  산과 하나가 되라.  삶이란 산을 오르는 일  언제나 가파르지만  저기 정상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박인걸·시인) + 동반자 산을 오르다 바위를 만났다  자일도 없이 올라야 하는 바위  가능과 불가능을 잠시 생각한다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가능에다 동그라미를 친다  바위를 눈으로 더듬는다  그의 빈틈과 상처가 보인다  빈틈의 크기와 상처의 깊이를  마음에 새긴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중엔 확실하게  그의 틈에 손을 넣는다  바위의 지문과 내 지문이 섞인다  온몸을 그의 상처에 댄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의 틈과 상처를 내 것으로 품는다  두 몸이 하나가 된 마음  가파른 길을 통과해 간다 (유봉희·시인) + 산길 한 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란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성복·시인, 1952-) + 등산 길  짙푸른 물결 속 뚫고  햇살 굴러 이는  고운 숨결 일렁이는 산골  땀흘려 헐떡이다  산새들 몰려가는 길섶에 앉으니  나무와 나무 사이 누벼온 보람인가  짜릿이 감도는 수액의 몸살 파고들어  찌든 도시의 찌꺼기 사라지고  영혼의 눈시울에  가득히 출렁이는 순수의 날개  훨훨 깃을 친다. (곽병술·시인, 1929-)   + 산행법 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시늉을 해야 됨. (박철·목사 시인) + 산행·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시인, 1939-) + 도반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행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시인) + 산을 오르며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천양희·시인, 1942-)   + 북한산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삶이 괴롭고 슬픈 날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정상에 이르러서야 사랑과 용서의 길 일러주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다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숨차고 벅찬 일인지 안다 돌아보면 내 걸어온 생의 등고선 손에 잡힐 듯 부챗살로 펼쳐져 있는데  멀수록 넓고 편해서 보기 좋구나  새삼 생각하노니 삶이란 기다림에 속고 울면서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 한때의 애증의 옷 벗어 가지에 걸쳐놓으니 상수리나무 구름 낀 하늘 가리키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길 보챈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 산행 하얀 세계 어느 누가 당신을  먼저 정복할 수 있을까? 따스한 손 기다리는  소리 없는 침묵 겨울 그리고 산 그 가운데 멈춰진 자리  바람만 인다 야호∼ 소리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는 분화구처럼 내 몸에서 번지는 하얀 열기 우주 어느 공간 머물 때 나는 정상에 서 있었다. (노태웅·시인)   + 산행기  때로는 시원한 때로는 절실한  울음을 쏟아내던 매미가  아이들에게 채집되고 있었다  울음으로 서까래 삼고  눈물로 등을 달았던  지난날 내 詩 또한,  표본 될 저 울음주머니처럼 간직할 가치가 있는가  묻고 물으며 산을 오를 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절벽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 잔의 술도 한 숟갈의 밥도 아니었던 행간들,  나는 산 중턱에서 오름을 접고  철 늦은 울음을 울어야만 했다  (원무현·시인, 1963-) +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며 느끼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시인, 1954-)     + 등산계명  5월이다  멀리서 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얼마나 흐뭇한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한때의  유행성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무슨 놀이의 일종이나  아베크족 따위를 위해서 선택된  어떤 사치한 방법이 아니기를 원한다  봄이 충만한 산에 올라  봄의 정취를 맛보며  멀리서 찾아오는 여름을 기다리며  산의 엄숙, 정결, 자비,  대자연과 인생에 대한  계시와 교훈을 배우기로 하자  (김길남·시인, 1942-) + 등산  바람이다.  소금기 하나 없는 산바람, 신바람이다.  정상은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드는  팽팽한 그녀의 앞가슴  눈을 감을수록  사방은 황홀하게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들의 수화.  문득 칡넝쿨이 몰고 오는 벼랑 아래로  폭포다.  뿌리 깊이 묻혀 있던  원시의 야성을 깡그리 일깨우는......  나는 더 이상  두 발로 걷는 인간일 수 없다.  돌이거나 나무이거나 산짐승이거나  숨이 벅찰 무렵부터  나는 이미 산의 일부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리라. (임두고·시인, 1960-) + 등산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오세영·시인, 1942-) + 등산  오르는 것이 아니네  내려오는 것이네  굽이굽이, 두고 온 사연만큼  해거름 길어지는 산 그리메  막소주 몇 잔, 목젖 쩌르르 삼키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네  거기 묵김치 같은 인생 몇 쪽  우적우적 씹는 것이네  지나 보면 세상사 다 그립듯  돌아 보이는 능선길  그게 즐거움이거든 (권경업·시인, 1954-)   + 등산  오른다.  탑보다 높이  빌딩보다도 높이  오를수록  가벼워지는  육신  정상  천국행 정류장에서  셔틀바람 타고  희열 만끽한다. (강신갑·시인, 1958-)   + 등산  산을 오름은  세속을 멀리하고자 함이다  더 높이 오르고자 함은  보다 멀리 바라보고자 함이다  어려운 고개도,  험난한 구빗길도  묵묵히 걸으며  자신과 말없이 씨름한다  새 소리, 바람 소리에도  새 힘이 솟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의 먼지를 모두 씻어낸다  그래서 내 몸도 내 마음도  어느 사이 초록 빛깔이 된다  반드시 정상이 아니라도 좋다  종주거나 횡단인들 누가 탓하랴  산 속에서 산의 정기를 받고  산의 호연지기를 배워  인생을 성실하게, 겸손하게  그래서 모든 세상사를 순탄하게  이끈다면  여기에 무엇을 더 바라랴  산을 오름은  교만을 버리려 함이다  인내를 배우고자 함이다  보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자 함이다  마침내는  산을 닮아  산과 내가 하나 되고자 함이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登山(등산)  내가 산을 오른다. 이밥일래 보리밥일래  풀 여름을 까고 노는  아이들의 냇둑 들판도 지나서  산을 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오솔길 샘솟는 물을 마시면서  꽁지를 까딱이면서 나는 새들 찌르레기 소리조차 산을 흔드는  오존 그득한 오솔길. 길이 아닌 데로 오르다가  가시덩굴에 긁힌 사람 때로는 넘어지고 절뚝거리면서  숲 속으로 뻗쳐 내리는  햇살의 건강으로 회복되면서  또 오르고 오르는 산 집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세상은 약 떨어진 아편쟁이처럼  발아래 다소곳이 엎드려 있고  머리 위에 빛나는 태양 하늘이 거기 있다.  우두자국처럼 떠 있는 흰 구름 하늘이 나를 부르고 있다.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등산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  자국마다 살아온 생각 밟고  올라온 능선을 뒤따라온  바람이 솔잎 흔들어 지우는데  가슴 열어 침묵하고 앉은 산아  옹이져 맺힌 삶  너의 품에 안겨서야  헐떡이며 가빠오는 숨 내쉬고  평정을 되찾는다  이제까지 지고 온 무거운 고달픔  산아래 내려놓고 정상에 올라  숲 속 풀내음에 고단함을 씻어내려  마음 속 비워놓고 앉아 있는데  하얗게 산허리에서 피어오르던 안개  산은 하늘이 되어  나는 구름 타고 앉은 신선이 되었구나  (박옥하·시인)   + 등산  고요가 좋아  푸름이 좋아  (그래 바위도 좋아)  그저 그냥  자꾸만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어디서부턴가  어디론가  길이 있었다...  한 걸음도 좋고  반걸음도 좋았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서  한 개씩  반 개씩  씁쓸한 삶의 기억들을 버려가면서  시간이 어디선가 주저앉아 쉬고 있어도  그저 올라가면서  나를 잊어가면서...  구우구 어디선가 산비둘기 울고  까아까 어디선가 산까치도 날고  어디선가 향긋이 꽃내음이 불었다. 아주 진하게  아아 산이었다. 산이 있었다  푸르고 고요한 산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시간은 어디로 갔지?  나는 어디로 갔지?  그저 웃는다...  어느 날인지  하늘은 티없이 맑은데  오직  산이 있었다  고요한  푸른  높이 솟은  과묵한 산이 하나 있었다  산이...  (이수정·시인) + 등산의 즐거움  산에 오르는 즐거움은 인생살이처럼  정상에만 있지 않다 어떻게 느끼며 오르내리느냐에 있다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하고 조용한 자세로 말馬을 올라타야 한다 앙상하게 드러난 뿌리를 밟을 때 나무의 신음소리를 들어보고 나무 하나 바위 하나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살결에서 생명체를 인식한다 나무들이 내뿜은 신선한 공기를 통째로 들이마시며 다람쥐와 산새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좋아하는 그들의 느낌을 나눠본다 계곡물을 보며 핏줄에 흐르는 피를 느껴보고 산오름 바람을 맞아 콧구멍을 크게 벌린다 맨발로 흙을 딛고 서서 나도 나무가 되어 본다 고요한 산의 침묵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산꽃들과 눈을 맞대어 보고 산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산이 된다 이것이 산에서 만든 나의 행복이다. (차영섭·시인) + 산을 오르며 우람한 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아직도 많이 설익은 나의 인생살이를 산은 말없이 가르쳐 주지. 높음과 깊음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깊숙이 내려앉기 위해 가파르게 오르는 아름다운 삶의 길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말없이 산은 내게 이야기하지.  (정연복·시인, 1957-)                     산을 오르며                             - 도종환 -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407    <동그라미> 시모음 댓글:  조회:4559  추천:0  2015-04-17
  박두순의 '둥근 것' 외  == 둥근 것 ==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기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박두순·시인, 1950-) == 공은 둥글다 == 배고파 우는 아이야 무서워 우는 아이야 그만 눈물을 닦고 우리 축구를 하자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즐겁다 해는 저물고 돌아가는 집안에 빵은 없어도 공은 둥글다 지구는 둥글다 우리 눈물은 둥글다 우리 내일은 둥글다 (박노해·시인, 1958-)   == 둥굴레 ==  살아가는 일에 자꾸만 모가 나는 날은  둥근 얼굴로 다소곳하게 고개 숙인  너에게로 살금살금 다가서고 싶다  더 둥글게 열려있지 못해 우리 사이에  꽃을 피우지 못했던 날을 생각하면  마음은 계곡처럼 깊게 파인다.  잎을 꽃처럼 달고 사랑을 기다려보지만  내게는 바람 부는 날이 더 많았다  아직 내 사랑에는 모가 나있는 날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꽃을 잎처럼 가득 차려 두기 위해서는  내 사랑이 더 둥글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 서로 꽃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김윤현·시인, 1955-) == 둥근 길 ==  경주 남산 돌부처는 눈이 없다 귀도 코도 입도 없다 천년 바람에 껍데기 다 내주고  천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맡으려 하거나  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년의 알맹이 안으로 쟁여 가기 위해 다시 천년의 새 길을 보듬어 오기 위해 느릿느릿 돌로 되돌아가고 있다 돌 속의 둥근 길을 가고 있다 새 천 년을 새롭게 열기 위해 둥글게 돌 속의 길을 가고 있다 (이태수·시인, 1947-) == 마음이 새고 있다 ==  꽉 조여지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차랑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서 동그랗게 풍경을 담아낸다  아침부터 마음이 새고 있다  마음이 새고 있는 거기  맺혀서는 똑 떨어져  아슬아슬 건너오는 먼 풍경  쟁그랑 챙  아침 밥상 위에  식구들 숟가락 놓는 소리, 동그랗다 (강인한·시인, 1944-) == 둥근 자세 ==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소리 없이 울고 싶은 자세라는 걸 바다에 와서 알았다 둥근 수평선, 모래에 발을 묻고  둥근 흐느낌으로 울다가 스미는 파도, 나는 왜 당신의 반대편으로만 자꾸 스며 갔을까 내 반대편에서 당신은 왜 그토록 지루하게  둥근 원을 그리며 나에게로만 스민 빗물 보내왔을까 파도가 대신 울어주는 바닷가에서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혼자 우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대신하여 울던 당신이 어두운 곳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는  오래오래 혼자 울던 당신이 이른 저녁 눈썹달로 떴다 울고 싶은 자세로 둥글게 떴다 세상은 울고 싶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다가 둥글어졌을 것이다 수평선이 저렇게 둥근 것처럼 나를 비춰왔던 울음도, 나에게 스미어 왔던 당신도  수평선처럼 둥근 자세였다 멀리 떨어져야 잘 볼 수 있었다 헤어짐이 끝없기 때문에 사랑도 끝없다고 당신은 말한다 둥근 눈물로 혼자 말한다 (강미정·시인, 경남 김해 출생) == 둥글다 == 햇살이 비스듬한 저녁, 전철역 좌판할머니 등이 둥글다 검정비닐봉지를 건네는 손등 관절 꺾인 무르팍도 둥글다 나물 봉지를 받아든 손 덩달아 둥글다 골목길, 이끼 낀 담장, 털 곤두세운 고양이의 발톱, 낡은 목제의자에 몸을 내맡긴 노인, 맨드라미, 분꽃, 제라늄, 세발자전거… 오래 전부터 둥글다 한 줄기 쏟아지는 소나기 그 빗줄기 속을 뛰어가는 배달꾼의 뒷모습 일제히 쳐다보는 눈길들 모두 둥글다 (박해림·시인) == 동그라미 ==  너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동그라미 같아  오늘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저 보름달처럼 어느 한 구석 모나지 않은 사람 얼굴도 호박처럼 둥글  마음도 쟁반 같이 둥글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늘 순한 느낌을 주는 너 너의 모습을 살며시 훔쳐보며 나도 이 밤 문득  동그라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연복·시인, 1957-)
406    <자연> 시모음 댓글:  조회:4672  추천:0  2015-04-17
    정연복의 '자연에 살다' 외  + 자연에 살다 흙에서 왔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큰 자연의 일부인 것.    하늘 아래 땅 위를 걸으며 맑은 공기도 거저   얻어 숨쉬고 햇빛 달빛 별빛 쬐고 눈비 맞고 이슬에도 젖으며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파도소리 듣고 산이나 들판의 너른 품속에 들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쉬며  그뿐이랴 철 따라 꽃구경  단풍구경도 하면서 폭풍우 뒤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고단한 삶의 위안도 얻고  지는 꽃 떨어지는 낙엽에  슬며시 눈물 한 방울도 훔치며 한 그루 나무처럼 자라나고 또 늙어가면서 한세월 구름 흐르듯 살다가  한 점 노을로 지는 거지 고분고분  자연의 품에 안기는 거지. + 자연의 말 생을 따분해하지 말아요 인생은 참 짧아요. -하루살이 살아 있음이 희망이지요 눌 푸른 희망을 품고 살아요. -초록 이파리 남들이 몰라줘도 서운해 말아요 당신은 당신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요. -들꽃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요 맑은 눈물은 생명을 싱싱하게 해요. -이슬방울 나는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도 좋은 일을 많이 해요. -하늘 생각은 깊게 마음은 넓게 해요 그러면 거센 파도도 담을 수 있어요. -바다 뜨겁게 살고 뜨겁게 사랑해요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나요. -노을. + 자연의 말 산은 말이 없다 천년 만년 한마디 말없다 강물은 흐른다 말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하늘에 흰 구름 떠간다 그냥 고요히 떠간다 꽃은 피고 진다 철 따라 조용히 피고 진다. 이렇게 자연은 아무런 말이 없는데 사람같이  수다 떠는 법이 없는데 가만히 귀기울이면 자연이 속삭이는 말이 들려온다. + 자연과 사람 꽃이 철 따라 피고 지듯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자연의 일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면 삶도 죽음도 겁낼 게 없다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니까 욕심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거다.  자연과 친해지면 삶이 평안하고 자유롭다 자연과 멀어지면 삶이 불안하고 옹졸해진다. 사람은 자연의 품안에서 참 사람다워진다 자연을 등지고 외면하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 자연과 사람 나무는 사람이 없이도  꽃 피고 열매 맺을 테지만 사람은 나무가 없으면  숨막혀 죽을 거다. 강물은 사람 없이도  영원토록 유유히 흘러가련만 사람은 강물이 없으면  얼마 못 가서 전멸할 거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와 숲은 사람 없이도 건재하겠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거다. 이렇게 자연은 말없이 사람보다 강하고 영속한다 이래저래 사람은 자연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거다 자연은 사람의 고마우신 어머니 인간 생명의 젖줄이다. + 자연의 마음 하늘같이 넓고 맑은 마음 땅같이 온유하고 거짓 없는 마음 산같이 의연하고 넉넉한 마음 바다같이 깊고 큰 마음 호수같이 잔잔하고 투명한 마음 나무같이 고요하고 여유 있는 마음 꽃같이 순하고 고분고분한 마음 바람같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는 마음 + 그냥 살아간다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 사시사철 늘 그 자리 가만히 있는 산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철 따라 한결같은 모습으로 피고 지는 꽃 안달 떨지 않고 소란 피우지 않고 꼭 무슨 일을 이루겠다는 야망도 욕심도 없이 특별한 일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데도 조금도 밉지 않다 게으름뱅이 같지 않다
405    <하루살이> 시모음 댓글:  조회:4434  추천:0  2015-04-17
     하루살이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 죽습니다.  하루가 하루살이의 일생입니다.  하루의 하루살이가 되기 위해  물 속에서 천 일을 견딥니다.  그 동안 스무 번도 더 넘게 허물벗기를 합니다.  천 일 동안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다  하루살이가 되면 하루를 살다 죽어버립니다.  하루를 살기 위해 천 일을 견디는 하루살이.  그것이 하루살이의 운명입니다.  (천양희·시인, 1942-) + 화끈하게 살다가 - 하루살이     화끈하게 살다 화끈하게 죽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무아지경에서 살고 싶다  사랑 교미 출생 그리고 성장  추광성趨光性에 끌려  가로등을 들이받으며 춤을 추다가  이른 새벽 죽어 버린 하루살이  불에 뛰어들어 태워 버린 육신  부검剖檢하지 말라  시신에 손을 대지 말라  (이생진·시인, 1929-) + 인생과 같다 - 하루살이  인생은 초로  초로 같은 인생 하듯이  하루살이도 그렇게 말했다  'Ephemera'라는 학명은 희랍어로 짧은 생명이라는 말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조물주가 하루살이에게 무엇이 되겠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하루살이가 되겠다고 하지 않을 거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도 '너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았다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탄생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일까  하루살이 역시 하루보다는 이틀을 살고 싶어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열 번 스무 번 아니 서른 번 껍질을 벗어가며  무엇이 되려고 이러나했는데  겨우 반나절  짝짓기 한번하고 가라 하는구나  하긴 길게 살아도 별 의민 없다  인생은 짧은데서 더 짜릿함이 있을 수도  더러는 인생이 길다고 푸념하는 이도 있더라  (이생진·시인, 1929-) + 하루살이  살펴가세요.  하루치의 사랑이 끝났습니다.  연속되는 게 어렵고 끝내 없다는 게 사는 거고 보면  우리들 사랑은 해를 따라 운행시키는 게  적절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럼 사랑이 하루살이냐, 사는 게 하루살이냐  그렇게 붕붕거리며 화만 내지 마시고  하루살이처럼 간절하게 살 수만 있다면  하고, 마음 가슴 날개로 퍼덕거려 보십시오.  사랑이 얼마나 간절히 해 밝아오르고  얼마나 눈물겹게 달 지고 죽는 것인지  매일로 새롭게 깨닫게 된다면  우리 만남은 만년의 사랑입니다.  우리 사랑은 억년의 삶입니다.  (김하인·시인, 1962-) + 하루살이  근심 걱정을 떨치고  임종의 일각까지  허허한 공간에 바람을 보탠다.  자정은 촌음寸陰으로 저무는데  전기불빛 환희를 누리기 위해  이 밤사 목숨토록 날개를 저어왔다.  가소로운 인간의 눈초리를  무의식에 넘기고  주어진 생을 아깝지 않게 살다 간다.  하루의 생을 80년보다 후회 없이  비록 오늘 태어나  오늘 죽을 지라도  광명을 행해 날아오는 희망이 있었다.  날개 부러진 시체 속에  썩지 않는 희망의 영혼을  남기고 간다.  (김순진·시인, 1961-) + 하루살이 덕분에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려는데  물그릇엔 하루살이 한 마리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물그릇에 빠졌느냐  벌컥벌컥 마시고 싶지만  하루살이 때문에  하루살이 후후 불며  하루살이 덕분에  체하지 않고 천천히  목은 축축해지며  하루살이 후후 불어가매  물그릇엔 파도가 출렁이고  하루살이 이리저리 떠밀리며  물을 마시매  체하지 않고 천천히  목은 축축해지며  물을 다 마신 하루살이  죽었다  죽은 하루살이 후후 불며  물 한 모금 더 마시려는데  물그릇엔 하루살이 또 한 마리  (차창룡·시인, 1966-) + 요약  모든 일은 시작하는 순간 반으로 요약된다  배부름은 첫 술에 요약되어 있다  어떤 술도 그 맛은 첫잔과 마주한 사람이 나누어 좌우한다  귀뚜라미는 소리로서 그 존재를 간단히 요약한다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잎사귀 하나 아래로 처지고 있다  방향은 가늘게 요약되어 동쪽은 오로지 동쪽임을 묵묵히 담당한다  요란한 것들을 집합시켜 보면 사소한 것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물질은 한 분자에 성질을 전부 요약하여 담는다  한 방울 바닷물이 바다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서해는 서해를 찾아드는 모든 강의 이름을 요약한다  목숨은 요약되어 한 호흡과 호흡 사이에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는 굵고 검은 활자로 요약되어 부음란에 하루 머무른다  하루살이는 일생을 요약하여 하루에 다 산다  너는 모든 남을 요약하여 내게로 왔다  (이갑수·시인, 1959-) + 하루살이 어제는  아득히 사라지고 없다 내일은  까마득히 알 수 없다 오늘 이 순간만이 나의 것 아직은 가냘픈  날숨과 들숨이 오가는  지금 이 찰나만이 내 목숨의 시간 한치 앞도 기약할 수 없는 나는   하루살이도 채 못 된다 (정연복·시인, 1957-)    * * *   선의 열매를 맺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이따금 화를 입는다. 그러나 선한 열매가 익었을 때에는  선한 사람은 복을 입는다...      
404    <흙> 시모음 댓글:  조회:4488  추천:0  2015-04-17
문정희의 '흙' 외  + 흙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정희·시인, 1947-) + 깊은 흙 흙길이었을 때 언덕길은 깊고 깊었다 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 깊음이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 얄팍한 아스팔트 짐승스런 편리  사람다운 불편 깊은 자연 얇은 운명 (정현종·시인, 1939-) + 갈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 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 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 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 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이재무·시인, 1958-) + 사랑의 초상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사랑엔  늘 흙이 묻어 있다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단단히 뭉쳐진 흙덩어리들  머뭇거리며 서로, 손을 찾아 더듬는  어여쁜 몸짓에도 흙냄새가 난다  흙 묻은 사랑으로 사람들은  서로의 흙에 흙을 섞으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고  만남은 만날수록 모자란다고  그리움은 그리울수록 그립다고  가슴 깊이, 흙 묻은 사랑을 걸어  눈물 젖은 손으로 서로를 쓰다듬지만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뿌리  도리 없는 슬픔  지상은 왜 이리 깊은 것이냐  그대,  몸을 더듬을 때마다 더욱 깊어지는  흙의 향기. (윤은경·시인, 1962-) + 한 삽의 흙  땅을 한 삽 퍼서 화분에 담으니 화분이 넘친다  한 삽의 흙이 화분의 전부인 것이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물을 먹고 있는 화분을 지켜보았다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꽃에게는 화분이 전부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삽의 흙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한 삽의 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동요를  따라 부르던 시간,  열이 난 이마에 올려놓은  어머니의 손 그녀가 내게 전송해준, 두 개의  귤 그림  떨어져 있어도 함께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짧은 문자 메시지들  그것들은 신이 미리 알고 우리 속에 마련해 놓은  화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 속에서 꽃 피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하상만·시인, 1974-) + 흙 묻은 손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버려진 땅을 일구어 사람들은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뜨개질을 하듯  심은 옥수수와 콩과 고추들.  꿀벌이 날아와 하늘로 꽁지를 치켜들고  대지의 꿀을 빨아들이고,  배고픈 새들은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먹고 간다.  아파트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제 가슴의 빈터를 메우듯  호미를 들고 와 흙을 북돋워주고 풀을 뽑는다.  옥수수 잎에 후드득 지는 빗방울은  사람들의 핏방울로 흐르고,  저녁에는 푸른 별 같은  콩이 열린다.  흙 묻은 손으로  옥수수와 콩과 고추와 나누는  말없는 따뜻한 수화.  사람들의 손길 따라  흙은 순한 사람의 눈빛을 띤다.  사람들은 흙 묻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흙에서 태어난 벌레들은  식구들의 옷을 기우고 박음질하는  재봉틀 소리로 운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겨울에는 시리고 외로운 무릎을 덮는  무릎덮개처럼  눈이 쌓인다.  사람들이 일군 마음의 밭에 (이준관·시인, 1949-) +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가야지 어서 가야지  나의 누추함이  그대의 누추함이 되기 전에  담벼락 아래 까맣게 영그는 분꽃씨앗  떨어져 구르기 전에  꽃받침이 시들기 전에  무엇을 더 보탤 것도 없이  어두워져가는 그림자 끌고  어디 흙 속에나 숨어야지  참 길게 울었던 매미처럼  빈 마음으로 가야지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나도 다시 예뻐지겠지  몇 겁의 세월이 흘러  그대 지나갈 과수원길에  털복숭아 한 개  그대 내 솜털에 눈부셔하겠지  손등이 자꾸만 따갑고 가려워져서  (나희덕·시인, 1966-) + 근황 이후 요즈음 흙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목젖을 씰룩거리며 꿀떡꿀떡 단비를  빨아대는 흙의 모습은 볼때기라도 한줌 꼬집어주고 싶도록 귀엽다 포실포실 분가루 날리는 엉덩이도 예쁘고 쌔근거리는 숨소리도 예쁘고 단내가 베어있는 불그레한 귓부리도 예쁘다 저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고 예뻐해 주면  좋아라 방실거리며  더 실한 것 더 좋은 것으로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의젓하고 대견한 녀석 은혜도 사랑도 입 싹 닦고 고개 돌리면  그만인 세상에 은혜를 은혜로 아는 정직한 녀석 가꾸고 꾸미지 않은 나를 땀으로 얼룩진 나를 더 좋아하는 (이섬·여류 시인, 대전 거주) + 흙의 이민 고사리는 산에서 밭으로 옮겨 심으면 삼 년 지나야 새순을 낸다 마흔여덟에 일흔을 바라보는 어머니 똥구멍을 물고 산밭에 따라갔다가 들은 말이다 어머니 손 안 간 흙이 없고 풀 없어서 손님처럼 서 있다가 '적응하느라 그렇겠지요' 한마디 뱉은 것이 실수였다 아이다 옛날 흙을 몬 잊어서 그런 기다 잊는다? 삼 년 전 그 흙이 고사리를 놓지 못하고 자기 살점 묻혀 떠나보낸 것 산 흙이 밭 흙과 만나 교통할 때까지 밭 흙에게 어색했던 일 반쯤이나 잊는 데 삼 년 걸린단다 집안의 형님 일가족이 미국 이민을 갈 때 고향 흙 한 줌 담아 갔다고 한다 유리병에 담긴 그 흙은 형의 후손에게 내력으로 남겠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형벌에 갇힌 것이나 아닐까 어떨 때는 사람보다 흙이 더 아플 때가 있다 (박형권·시인, 1961-) + 흙·81 - 어울려 산다 소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매화나무, 개나리, 생강나무‥‥‥ 억새, 쐐기풀,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양지꽃, 엉겅퀴, 띠‥‥‥ 하늘이 정해 준 자리에서 아무하고나 어울려서 참 마음 편하게 산다. 햇살도 나누고 목마를 때 내리는 빗방울도 나누어 먹는다. 더 많이 받으려고 다투지 않는다. 키가 크다고 뽐내지도 않고 키가 작다고 주눅들지도 않는다. 모양이 못났다고, 색깔이 예쁘지 않다고, 냄새가 아름답지 않다고 남의 것 흉내내지 않는다. 저만 못하다고 남을 얕잡아 보지 않는다. 저마다 생긴 대로 정해진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산다.   (전영관·시인, 충남 청양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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