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行하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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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나의 꿈 댓글:  조회:3430  추천:3  2015-12-25
  오늘 아들놈의 학교에서 “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작문짓기를 숙제로 내줬나본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가질만한 숙제제목이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꿈에 친구들과 뽈을 찰때의 이야기를 한가득 써가져와서 검사해달라고 한다. 물론 주제를 벗어난건 아니지만 너무 엉뚱하고 황당해서 아들놈에게 의 바른 의미를 이야기 해주게 됐다. 꿈이란 목표의식이고 꿈이란 희망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다시 고쳐쓰면 더 좋을듯 싶다고 건의 했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내 아들은 아직 어려서 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어른인 우리는 그 꿈의 의미를 알면서도 오히려 엉뚱한테 삶의 정력을 쏟아붓고 있지않나하는 반성이 앞섰기때문이다.   어릴적에는 나도 꿈이 참 많았다. 비행사도 되고 싶었고 군인도 되고 싶었고 경찰관도 해보고 싶었고 의사도 되고 싶었다. 콜롬부스처럼 유명한 탐험가가 되고 싶었고 아인슈타인같은 유명한 과학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이라는것은 마음의 씨앗이다. 생각이 머무는곳에는 씨앗이 심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꿈이 있다는것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봄에 씨앗을 심고 잘 가꾸기만 한다면 가을에 풍작을 거둘 기대를 우리는 하게 된다. 우리 마음속의 씨앗도 그렇게 잘 가꾸다보면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우리에게 안겨주지 않을가 싶다. 에치투오 리더십강의를 진행한지도 벌써 십여년이 후딱지났다. 매번 수료식할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을 이야기 하군 했다.  그런데 십년이 지나도록 아직 그 꿈을 실현못했다. 그러나 꿈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것이 아니다. 참대나무는 씨앗이 내려져서 4년동안 뿌리만 내린다고 한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날 비가 오면서 죽순이 돗아나면  단 하루 사이에 수메터에서 수십메터까지 쑥쑥 커버린다고한다. 그래서 잘 자란다는 말을 ‘우후죽순’처럼 자란다고 했을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꿈의 씨앗을 심고 잘 가꾸기만 하면 된다. 수분이 부족하면 물을 주고 양분이 모자라면 영양분을 보충하고 해볓이 잘 들도록 배려해주고 가꾸어간다면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히는것은 시간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십년전 에치투오 리더십과정을 개발하면서 가진 꿈이 십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이 여전하다. 우공(愚公)이 대를 이어 꿈을 이어가듯이 꿈을 심고 행한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나의 신념은 확고하다. 그 첫번째 꿈이 이 지역에 를 설립하는 것이다. 의료자선복지재단을 만들어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위해서 치료해주는 병원을 건설해야겠다.   내가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코웃음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잘 알아야 할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 혹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써 헐뜯거나 비난하거나 시샘하거나 질투하거나 증오하는 식의 저항을 한다면 ,그것이 말로 되였든 행동으로 되였든 아니면 그냥 생각으로 되였든간에 실지 가장 확실히 그 상대를 돕는 일이되고 자기 자신은 오히려 그 만큼 약화시키는 일이 될뿐이다. 그게 생각의 법칙인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군 한다.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느날 바닷가에서 밀물에 밀려 나온 조가비를 주어 바다깊은 곳에 던져 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하고 있는데 어떤 지나가던 늙은이가 이야기 했다. “어이 젊은이 거기서 뭘하고 있나?” “네, 밀물에 밀려나온 조가비가 해볓에 타죽는것 같아 물속에 도로 집어 넣고 있습니다.” 그 말에 늙은이는 우습다고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젊은이 이 해안선이 얼마나 긴지 아나? 밀물에 밀려 올라오는 조가비가 얼마인데 자네가 다 주어서 살릴수 있나? 공연한 헛수고를 하지 말게.” 그러나 젊은이는 계속 바닷가에 나와있는 조가비를 주어서 바다깊이 멀리 던져 넣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요. 할아버지, 저기 해안선에 밀려나온 많은 조가비들을 저 혼자 힘으로 다 구할수는 없겠죠. 그러나 방금 제가 던져넣은 저 조가비에게는 전부잖아요.” 그렇다. 내가 의료기금회를 설립한다고해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운 사람을 다 구할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꿈이 실현되여 단 한명이라도 기금회를 통하여 생명의 구원을 받는다면 그한테는 전부가 될것이고 그런 전부의 삶들이 하나,둘 늘어간다면...... 그리고 그런 꿈의 실행이 대를 이어 이어진다면 나는 충분히 행복할듯 싶다.   말로.모건이라는 작가가 쓴 ‘문명에 대한 야만의 경고’라는 글을 읽다가 맘에 들어 밑줄을 그어놓은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이제 때가 되였습니다. 그대의 고향과 지구에 대해 알기 위해, 그리고 온갖 생명체에 대해 알기 위해,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것과의 모든 관계를 알기 위해, 그대는 앞장서야 합니다. 어떤 집단의 맨뒤에서 잠시 걷는것도 좋은 일이고, 중간에 섞여 시간을 보내는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앞장을 서야합니다. 지도자의 책임을 맡기전에는 결코 그 역할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도자의 역할을 맡아봐야 합니다. 현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반드시 해야합니다.     내가 십여년가까이 강의를 하면서 어렴풋이나마 수강생들과 함께 느끼고 배워가는것이 있다면 좁은 리기주의에서 탈피하여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사랑을 나누고 꿈을 심어주는 정신을 익혀가는것이 아닐가 싶다.   지금 나자신에게 스스로 바라는것이 있다면 내 자신의 리더십이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약하고 아프거나 무시당하거나 소외된 사람을 보듬어주고 안아줄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또 그런 리더십을 통하여 내 자신을 스스로 밝히면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밝음을 전달하는 촛불같은 사람으로 되고 싶을 뿐이다.   꿈은 심어졌고 가끔씩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내 마음의 터전을 갈고 닦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 꿈의 씨앗에 믿거름을 주고 있다. 이런 일들이 리기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의미없고 멍청한짓처럼 보일지라도 내 마음에는 동요가 없다. 언젠가는 해야하고 누군가가 해야한다면 나라도 해보고 싶기때문이다.
89    봄을 기다리며(시) 댓글:  조회:1554  추천:0  2015-12-18
어두워 지니 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내 흐르는 눈물도 보이지 않겠죠. 쌀쌀한 겨울바람보다는 그래도 님의 웃음소리가 좋았죠.   산기슭의 주인없는 오두막에는 오래된 편지가 도착했네요 매일 매일 날아오는 편지를 읽고는 계신건가요.   멀리가신 님만 아닐지라도 백년을 꾸는 이꿈 깨고만 싶어요. 두마리 노루가 살던 산언덕은 어느새 어둠속에 묻혔네요.   이제 겨울인데 봄은 언제 오나요
88    마음의 시간 댓글:  조회:3086  추천:6  2015-12-18
  새벽 한시반즈음 괴이한 꿈에 놀라 깨여났다. 뒤치락거리다가 아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명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명상삼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 잡생각이 머리속을 가득채웠다. 이럴땐 잠시 쉬는것도 좋을듯 싶어서 홍차 한잔을 달여서 마셨다. 따스한 차가 가슴을 타고 흐르면서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걸 느꼈다. 다시 명상에 들어가서 오전 6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아이들이 깨여나서 떠드는 소리때문이다.   어제는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핸드폰 밧데리가 없는걸 모르고 들어왔었는데 핸드폰마저 꺼져있었다. 오늘 일찍 직원면접이 있다는것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회사에 나왔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오전에는 직원면접으로 시간을 다 보내고 점심을 대충 때운후 오후에는 은행에 다녀오고 손님 몇명을 만났다. 다 비즈니스에 관련된 사람들이였다. 그러고나니 또 하루가 다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한편 무섭고 걱정이 간다. 그제야 문뜩 새벽에 꾼 그 괴이한 꿈이 생각났다. 어떤 곳에 갇혀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다가 깬꿈이였다. 해몽을 해보면 내가 요즘 어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꿈인것이다. 그래서 좁은 공간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꿈이 나타난것이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안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 우리 11주년 결혼 기념일이란다. 그것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안해는 몹시 실망한 눈치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잘해보려는 마음마저 없이 내 몸과 마음은 후줄근해 있었다. 안해한테는 미안했지만 내일 꼭 보충하마하고 약속했다. 그러구보니 나는 요새 뒤 돌아볼새도없이 일에만 매달렸나본다. 어떻게 회사를 잘 해갈까? 어떻게 직원들에게 큰 보상을 해줄가에대한 생각만으로 달려왔던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나본다. 어릴때부터 써오던 일기마저 벌써 몇일째 손을 놓고 있었다.   오늘저녁을 계기로 내 마음의 평형을 다시 잡아봐야겠다. 너무 일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니 오히려 평형된 마음을 찾지 못하는듯 싶다. 그래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정도, 우애도 멀어지는것이다.   중국말속담에 “近墨者黑近朱者赤“(먹과 가까이한사람은 검어지고 주사와 가까와진사람은 붉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사업을 한답시고 장사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현실적인 리익만을 따지는 사람들과 너무 가까히 하다보니 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전혀 없다.   불경에도 心为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恶 即言即行 罪苦直追 车轹于撤 心为发心 心尊心使 中心念善 即言即行 福乐自追 如影随形 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풀어서 계시를 적어놓은걸 보면 이러하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이 주인이 되여 모든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악한 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때문에 괴로움은 그를 따르리  마치 수레를 따른 수레바퀴처럼   마음은 모든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이 주가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착한 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즐거움은 그를 따르리 마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불경이야기가 나오니 따라서 이런 이야기가 한편 떠오른다. 한때 부처님이 “기사굴”산에서 정사(精舍)로 돌아 오시다가 길에 떨어져있는 낡은 종이를 보시고, 비구를 시켜 그것을 줍게 하시고 그것이 어떤 종이냐고 물으셨다. 그 비구가 여쭈었다. “이것은 향을 쌋던 종이입니다. 향기가 아직 남아 잇는것으로 보아 알수있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나아가시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새끼를 보시고 그것을 줏게 하여 그것은 어떤 새끼냐고 물으셨다. 그 제자가 다시 여쭈었다. “그것은 생선을 꿰였던 것입니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는것으로 보아 알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말씀하셨다. “사람은 본래 깨끗한 것이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부르는것이다. 어진이를 가까이 하면 곧 도덕과 의리가 높아가고 어리석은 이를 친구로 하면 곧 재앙과 죄에 이르는것이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 해서 향기가 나고 저 새끼는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나는것과 같은것이다. 사람은 다 조금씩 물들어 그것을 익히지마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줄을 모를 뿐이니라.” 라고 하셨다고 한다.   나도 부처님의 그런 말씀은 들어서 알지만 마음은 참 요상하다. 가끔씩 생계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고 사업을 한답시고 장사를 한답시고 뛰여다니다보니 어느새 사업과도 멀고 가족과도 멀어진 사람이 되여버린듯 싶다.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하고 또 그것을 하다보니 시간은 가버리고 오히려 소중한 많은것을 잃고 있는줄도 모르고 지나온것이다.   오늘 아침의 꿈때문에 참 많은것을 되찾은 하루가 된듯 싶다. 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았고 내 마음의 평형의 추를 찾았다. 하루하루를 엉뚱한곳에 너무 빼앗긴듯 싶다. 사람이 고통스러운것도 진실한것을 찾지못하고 엉뚱한데서 찾으려는데 있다고 했다. 일기를 쓰다말고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창문을 열어졋혔다. 시원한 겨울바람이 밀려들어왔다. 한가득 들이켜본다. 이제 몇일만 지나면 양력으로 새해이다. 시간은 빨리도 간다. 매번 새해가 올때면 다짐도 크지만 정작 한해를 돌이켜 보면 해놓은것이 없어서 답답할때가 많다.   새해를 맞아서 길가의 상가들에서 벌써 울긋불긋 단장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제는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봐야 겠다. 물론 이젠 때가묻은 내 마음의 옷도 갈아입어야겠다.
87    사회주의 핵심가치관과 화협사회(和谐社 会) 댓글:  조회:3727  추천:2  2015-12-11
  겨울인데도 봄날처럼 따스한 날이다. 일때문에 하남부근으로 이동중인데 방송에서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에 대한 공익광고를 방송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에서 창도하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강, 민주 ,문명, 화협,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경업, 성신, 우선(,富强、民主、文明、和谐,自由、平等、公正、法治,爱国、敬业、诚信、友善 ) 이다. 그냥 어떤 정치적인 구호로 떠올릴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두  우리 백성들의 생업과 긴밀히 연결된 부분들이다.  문뜩 지난해의 일들이 떠오른다. 지난해 연길다리 확장공사를 할때였다. 다리 하나가 통하지 않는것때문에 무척이나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시간이 급한 사람들이 빙 에돌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택시요금이나 교통체증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으리라. 그래서 옛날부터 길을 닦고 다리 놓는것을 큰 공덕으로 쳤나본다. 편민 공정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백성을 편하게 하는것이 잘된 정치라고 해왔다.  그때 그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점심시간이여서 그런지 차들이 많이 밀렸었다. 시간은 아마 지금쯤 초겨울이였으리라. 마침 겨울바람에 이따금 흩날리는 눈발에 아직 마무리 짓지못해서 어수선한 다리 주변공사들까지 해서 비록 개통은 되였다고 하지만 저으시 스산했다. 그런데도 형상공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리 안전확정이 돼서 개통을 시작한것은 역시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이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적음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않음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정치가에 대한 그리고 정치에 대한 어떤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이어서 그는 “나라를 지키고 집을 지키는 자는,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균등하지 않음을 걱정하라, 가난함을 걱정하지 말고 안정되지 않음을 걱정하라” 라고 말한다. 나라를 지키고 집을 지키는 자란 정치인을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명심해야 될 일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일보다 먼저 부의 불평등을 없게 하는 일, 인구를 늘리기 보다는 먼저 백성 하나하나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이여야 한다고 규정짓는다. 공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라고 한것이다. 요즘 국가에서 제창하고 우리가 따라 외우는 말중에 화협사회(和谐社会)라는 말이 있다. 바로 공자가 말한 이말과 잘 맞는 말이다. 요즘 세월같으면 정치가 안정되고 국가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옛날 처럼 굶어죽는 일같은것은 없다. 그러나 가난때문에 자살해죽는 뉴스를 가끔씩 접하면서 부의 불균형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굶주려서 자살하는것이 아니라 부의 불균형 때문에, 상대적인 빈곤때문에 자살하는것이다. 그것이 공자가 로 말한 말일것이다. 형사법정 법관으로 있는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형사 사건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고 해마다 전국적으로 새로 짓는 감옥의 수만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그래도 미처 죄수들을 넣을 감옥이 없어서 고민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나라 전 주석이 화협사회(和谐社会)를 건설해야 한다는 구호를 만들었고 또 새로 연변에 다녀간 습주석도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에대해 강조하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민생문제를 보았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도 위의 그 말을 이어서 라고 단언했다. 그것이 현대사회라고해서 어찌 통하지 않을것인가. 우리 모두가 직면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정작 일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가서 정말 소름이 끼치군한다. 오늘하루도 이렇게 다 가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인생이 참 무섭게 느껴진다. 오늘 일과를 돌이켜보면 이렇다.   오전일찍 출근하여 안X호 선생님을 만나서 투자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고 점심 식사는 모 광고신문사 최사장님과 함께 했다. 오후에는 연변주사회교육원에 올라가서 개강에 대한 준비로 사회교육원 원장님과 미팅을 했고 또 내려오면서 우리 회사건물설계일로 황화 선생의 건축설계실을 잠간 둘러보았다.   그러고 연변대학부근을 내려오는데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양교수님의 소개로 중국에 실버사업이나 골프연습장 사업을 투자하고자 한다는 한국에서 온 리원장이란 분을 시내커피숍에서 잠간 만나서이야기를 나누고 이어서 장사장을 만나 광고에 관한 협의를 나누었다.   퇴근무렵이 되니 녹초가 된 몸은 이미 시라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한 닝겔을 또 맞을 생각을 하니 머리카락이 곤두서는데 급성인후염은 목에서 겨불내가 팍팍날정도로 심해서 어쩔수 없이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닝겔을 꽂고 어제와 달리 그냥 늘어지게 잠만 잤다. 많이 피곤했는지 드렁드렁 코까지 골더란다. 밖에 나가 보니 겨울밤이여서 그런지 아직 초저녁인데도 동네 길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이따금 개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사람들 동네에 어울려 사는 개들도 따뜻한 겨울을 났으면 좋겠다.
86    향상하는 삶 댓글:  조회:2719  추천:3  2015-12-09
  오전에는 무척이나 무거운 몸을 끌고 나왔다. 몸이 쑤시고 아파서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오늘따라 잡아놓은 비즈니스 약속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 몸을 위해서 사업을 하는것인데 몸이 아파도 사업을 해야하는것이라면 이 자체가 뒤죽박죽된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개발구 모회사에 가서 장사장을 만나서 우리 회사에서 쓰던 중고 버스를 판매하는데 대한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연길에서 모 광고잡지를 운영하는 전사장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우리 회사의 제품홍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가지로 공감이 많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전사장과 함께 사업을 하는 모학회 윤회장을 만났다. 많은 기업에서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주역학의 가구배치와 음양오행설을 응용하는데 한 기업에서만 일년 고문비용으로 8만원씩 지불한다고 한다. 연변에서 이런일도 있구나 싶어서 무척 놀라웠다. 전사장의 추천으로 오후에는 모광고회사의 장사장을 만났다. 장사장과는 예전부터 안목이 있었는데 연변아침신문 경제판 편집으로 있을때부터 알고 있었다. 한족친구치고는 머리도 좋았고 사업도 잘 하고 있었다. 이야기중에 우리 회사 광고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계약도 잘 진행되였다. 내가 예상했던것보다도 훨씬 싸게 계약이 돼서 오늘 피곤한몸을 끌고 나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도 여기저기 약속한 손님들과 만나고 다녔는데 퇴근시간이 다 되여서야 회사에 들어갈수 있었다. 목이 따끔따끔 아파나고 온몸이 후줄근히 힘이 빠졌다. 퇴근시간이 되여 돌아오면서 병원에 들러 보였더니 급성 인후염이라고 했다. 본래 만성인후염이 있었는데 요즘 스트레스가 많고 많이 피곤한 몸을 혹사해서 인후염이 도졌나본다. 의사선생님은 편도선까지 벌겋게 부었다면서 주사를 맞기를 권장했다. 생각해보다가 그냥 의사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주사를 맞기로 했다. 두시간가까이 병원에서 닝겔을 꽂고 누워있었다. 그런데 닝겔을 달고 있으면서도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은 더 말똥말똥해지는통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사업에 대한 생각때문이다. 사업이 잘 되는듯 하나 허실이 많고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듯하나 리해관계로 둘러있어서 겉모습보다는 현재가 무척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다. 오히려 예전에 사업을 하다가 망쳐서 힘들었을때보다도 더 마음이 무겁게 느껴질때이다. 가끔씩 이런것을 내 업으로 인한 부처님의 사랑의 채찍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닝겔을 걸고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있을라니 더욱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고전주의 시인인 쉴러의 말이 떠올라서 적어본다. 라는 말이다. 왜 불운이 오히려 우리를 향상하게 할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기때문일 것이다. 후회하는 사람은 고친다는 말이 있듯이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고집이 세고 발전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쉴러는 우리가 잘아는 괴테와도 아주 절친했으며 나란히 두사람은 고전주의 시인으로서 유명했었다. 괴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적있는데 고 했다. 비슷한 말이기는 하나 체호프 연주로 유명한 우라지밀 프리체도 역시 라고 말한다. 또 오스트리아의 작가 엣센바하의 명언에도 라는 철학적인 말이 있다. 행복하고 잘나갈때 인간은 교만하기 쉽다. 밝은 빛이 눈부셔서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 즐거움속에 있기에 현상에 만족해버린다. 불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사찰이나 불당에 가게 되면 부처님께 비는 말중에서 가 있다. 그런분들의 기도의 뜻에는 길가다가 차사고 나지말고 계단에서 구르지 않게 해주고 가족성원들이 아프지말게 해주십사에 대한 줄임 의미들이다. 그러나 불교의 그 팔난중에는 북구로주에 태여나는것이 있다.  그 북구로주라는 곳은 모든것이 구전해서 즐거움만 가득하다고 한다. 그런 즐거움과 편한함이 가득한곳에 태여나는것을 우리는 바라고 또 그렇게 됐으면 좋기를 비는것인데 불교에서는 그것을 팔난중의 하나로 치부한다. 왜서일까? 즐거움과 편안함속에서는 노력하자는 의지가 없고 발전하려는 마음이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고 불법을 공경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곧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어려움을 느낄때 마음을 다스리라는 경고로 듣고 노력하고 마음이 힘들때 진정한 내가 찾는 인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운이 따라주지 않을때 내가 지은 덕보다는 내가 지은 업을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간호사가 닝겔을 뽑고나서도 한참은 그 침자리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잠간 누르고 있다가 손을 떼니 피가 흘러 나왔다. 그런줄도 모르고 있다가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놀란소리를 질러서 보니 피가 역류해서 손가락새가 흥건했다. 피가 흐르는데도 아픈감을 모르고 있었던것이다. 두시간 가까이 주사침을 꽂고 있던 피부가 마비되여 아픔을 전달하지 못했나본다. 사람들도 그렇게 몸속에 침이 꽂혀 피부가 마비되면, 그 마비된 몸을 정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침이 뽑히면 오히려 고통스러워하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것이 전도망상이리라.   몸은 고단하고 힘들지만 주사를 맞으면서 오히려 두시간가까이 내 현재 삶을 뒤돌아 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늘도 내 마음의 정원에 감사함의 꽃씨를 가득 뿌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도 힘든 하루는 아니다. 오히려 향상하는 아름다운 하루였다. 
85    샛별(시) 댓글:  조회:2087  추천:0  2015-11-29
 젊음의 들뜸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마음이 기우는 만남은 울림조차 없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꿈은 뒤돌아 볼때마다 사라지고 십자길에서서 방향을 찾는 인생은 영혼의 얼굴을 비춰줘요.   사랑이 올때 두근거리는 마음은 떠나갈때 더욱 아프고 와인잔속의 붉은 빛갈은 신의 눈물같아요 해마다 새해가 올때면 매달 새달이 바뀔때면 언제나 새날이 밝아올때면 지키지 못한 약속 하나 떠오르네요.   저 멀리 어둠을 타고 떠오른는 샛별처럼.
84    창조하는 사람 댓글:  조회:3179  추천:3  2015-11-29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약속이 편안해져야 하는데 약속이 부담스럽다면 삶자체가 고단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부담스런 약속이라 할지라도 해야만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남들이 못하는 약속도, 하기 어려운 일도, 심지어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해야만 하는것이 사업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종당에는 후회가 들거라는 생각이 오늘 아침커피를 마시면서 문뜩 들었다.   오늘은 무척 바쁘게 보냈다. 많은 약속때문이다. 손님들과의 약속이 마냥 신나는 일이라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때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사는 연길은 도시가 작고 교통이 아직까지는 용이해서 하루에 손님을 많이 만날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 가게되면 길이 막힌다하면 한시간정도는 보통이고 도시가 또한 국제화 대형 도시이다보니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엄청나다. 그래서 출장을 가게되면 보름씩 가 있어도 실지 만나는 사람은 20명 남짓밖에 되지 못한다. 하루에 두명이상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길에서 나는 최고로 하루에 손님을 20명까지 만나고 다는적이 있다.  그만큼 도시가 작다는 말도 되겠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일의 효률을 높일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많은 일들을 추진할수 있는것이 중소도시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의 장점일수도 있다.   오후에 중요한 비즈니스 약속을 하고 만난 사람이 한분 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광고전문지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신데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 실은 우리말로 사장님이라고 그냥 부르기에는 그분에 대한 존경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본래는 34세의 나이에 검찰원의 부원장부터 공상국 국장을 역임했고 안도현의 부현장까지 하시다가 과감히 공직을 버리고 사업에 뛰여드신분이셨다.  그분앞에 서니 문뜩 내가 작아졌다. 나는 사단법인 단체장을 맡고 있으니 사람들이 회장님이라고 불러주지만 실지 사업에서 회장님 소리 들어야할 분이 그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는 잠간 그분을 만나뵙고 비즈니스관련된 일만 하고 돌아오려고 계획했었는데 정작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가는줄 몰랐다. 말씀도 구수히 잘하시지만 살아오신 년륜과 걸맞는 인생의 경험담은 나에게 큰 교과서로 다가왔다. 나도 무척이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런 분이 한도시에 살고 계시다는걸 일찍 몰랐다는것이 아쉬웠다. 실은 최사장님과는 연변방송국 촬영장에서 만났었다. 약 일주일전에 이라는 제목의 방송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함께 초대되였었다. 그때 처음으로 광고전문지로서 교차로신문이 전국 150개 이상 도시에 프렌차이즈와 지사형태로 발전돼 있다는걸 알았다. 우리 주의 본토 기업치고는 최고의 숫자였고 자랑할만한 실적이기도 했다.   나는 기자도 아니고 누군가에 당장 아부해야할 아쉬움도 없는 사람이지만 일기책에 이분에 대한 인상정도는 오늘 꼭 적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사장님과는 오늘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면서 기쁜 대화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담이였고 둘도 없는 훌륭한 시간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최사장님의 인상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뭐라고 표현할까고 생각해보았다.  가볍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이라는 단어였다. 그분의 반백년이 넘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조하는 삶을 사셨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한 기업인을 돈으로 평가하는것은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회사 규모나 직원수나, 생산량같은걸로 기업인을 평가하는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기업인은 그 사람의 인품과 창조성에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 로망롤랑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창조하는 사람 이외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나머지 사람은 모두 생명과 무관심하게 지상에 떠있는 그림자다. 생의 모든 기쁨은, 연애든지 재능이든지 행동이든지 모두 창조의 기쁨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에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나도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정작 세속의 티끌속에서 묻혀살다보니 저도 몰래 때가묻고 먼지가 올라 그 빛을 잃을때가 많다. 요즘따라 새 사업을 벌려놓고 끙끙 머리를 앓을때 그분의 조언과 말씀은 나에게는 큰 안위가되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요?’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일, 지혜를 다하는 일, 그리고 창조하는 일’ 이 있으므로 삶이 윤택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들이 없다면 ‘살아있는 의미를 잃는다’라고 대답한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창조란 단순히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조하는 일이란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것을 연구하고 이미 있었던것이라도 새롭게 발전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연구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오늘도 내 자신이 누군가를 존경할수 있는 마음을 가질수 있다는것에 감사했다. 누군가를 존경할수 있다는것은 내가 아직 너무 오만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것이고 오만한 인간이란 자기 중심적이고 리기적인 인간이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아직 내가 뭔가를 배우고자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오늘따라 아파트 단지사이에 빼곰히 얼굴을 내민 반달이 제법 아름답다. 겨울의 추위도 잊은듯 환히 웃는다. 오늘은 창조적인 사람을 만나서 창조적인 하루를 산듯 싶다.
83    소중함은 어디에 (시조 외2수) 댓글:  조회:1651  추천:0  2015-11-21
 소중함은 어디에 권세가 높다한들 한생을 갈것이며 부귀가 길다한들 백년을 넘을소냐 평생의 소중함을 잃을때야 깨달을까   이것도 지나가니 세상흔드는 그힘도 지나간담 지나가고 죽을듯 힘들던 그 일도 어느새 지나갔네 세상에 아니가는일 없으니 뭐가 대단하리오.   심어야 거두리 오늘은 이걸 쫒고 내일은 저걸 쫒고 복(福)을 쫒고 부(富)를 쫒아 남는것 하나없네 복과 부는 쫒는게 아니오라 거두어야 하리니 지가 심지아니하고 어디서 거두리오.
82    락천지명(乐天知命) 댓글:  조회:3250  추천:4  2015-11-21
  아침에 출근길에 나서보니 어제 내린 눈발이 차창가에 얼어붙어 당장 운전할수 없을 지경이 돼 있었다. 눈솔로 쳐내도 차창문에 얼어붙은 눈은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차안의 히타를 켜놓고 반시간 가까이 녹여서야 차창에 얼어붙었던 눈들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가끔씩 불어치는 찬바람이 여간 매서운게 아니다. 겨울이 들긴 들었나 부다.   추운 겨울날에 춥게 사는사람들이 더러 있다.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미안한 일이 아닐수 없다. 사업을 한답시고 무심하게 지난일들이 가끔씩 후회될때가 있다. 주말에는 추운 이웃이 없나 돌아보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옛날에는 이웃이 사촌이라고들 했는데 요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빠트 단지내에서 같이 산지 십년이 넘어도 서로 얼굴도 모르고 뭐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모두들 꼭 닫고 살기에 현대인들의 마음은 점점 더 말라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우울증도 더 많아지고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더 많아지는것일듯 싶다. 조금 어려울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구원이 돼주고 마음이 기댈구석을 만들어 줄수도 있다.   오늘따라 운명이란 어떤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슬비에 바지자락 젖는줄 모른다고들 했는데 생계에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정작 마음수련에는 게을러질수밖에 없다. 그렇게 바지자락 젖는줄도 모르게 내 인생의 반이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는것이다. 오늘 멀리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자기의 아내가 임신했다고 전화가 온것이다. 곧 아이를 가지게 된다고 좋아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늦게 결혼했고 결혼하고나서 곧 한국으로 외화벌이 나갔었다. 얼마전에 안해마저 따라서 한국에 갔는데 이렇게 전화가 온것이다. 그 친구하고는 학창시절에는 참 친하게 지냈었다. 한국에 간후도 가끔씩 출장길에 서로 얼굴은 만났지만 옛날처럼 그렇지는 못했다. 우리 모두 컷나본다. 컷다는것은 성숙됐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어쩐지 성숙보다는 미흡했던 그때 그 시절이 더 기억에 남고 그리워질까. 친구의 전화를 받고 축하한다고 몇마디 사무적으로 마무리지었는데 오후내내 사무실에서 잡일을 처리하다가 늦어서야 문뜩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며 얼굴에 웃음이 피였다. 잡무와 일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나에게는 따뜻한 감로수같은 전화였다.    얼마나 좋았으면 멀리 외국에 있는 친구한테마저 전화를 해서 임신소식을 알리고 싶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중학교 나온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때 코흘리개이던 친구에게 이제 그를 이을 자식이 생겼나본다.  운명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운명에 대해서 가장 깊이 믿은 선인이 있다면 공자일것이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에 대해 귀결한적 있다. “吾十有五而志于学,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顺,七十而从心所欲,不逾矩。” 라는 논어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다.   운명은 생사나, 부귀, 빈궁,혹은 일생중에 우리가 맞딱드리고 해결해나가는 모든것이 될지 모르나 공자는 십오세에 학문에 뜻을두고 서른살에 스스로 자립하고 마흔살에는 외계의 학설에 현혹되지 않고 오십에 천명을 알았고 육십에는 모든것을 받아들여 경청할 마음의 준비가 되였고 칠십에는 자신의 의지와 주관규칙규범이 하나가 되여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는 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공자가 하늘의 움직이는 도리를 이해했다고들 풀이하는데 나는 가끔씩 다르게 생각들 때가 많다. 천명이라는것을 운명으로 풀이한다면 더 적적할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때문이다. 물론 내 얄팍한 지식으로 풀어낸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나 지천명(知天命) 이라는 말을 공자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새삼스레 깨달았다로 이해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공자의 인생을 보면 젊어서는 자신의 큰 포부를 펴기 위해서 많은 제후국의 국왕들을 만나는데 그의 이상과 포부에 동감하는 국왕 한명도 만나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걸식하면서 자신의 고국인 로나라로 돌아온다. 그런 그가 오십이 되여서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이 교육을 하는 학자로서 서는것이지 세상을 뒤흔드는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는 뜻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공자의 학문에 가장 많이 영향준 책이 있다면 주역(周易)일텐데 공자가 그 주역을 천번을 읽어서 죽간(竹简)의 끈이 끊어져 세번이나 다시 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주역을 편찬한 사람이 주문왕 희창인데 주문왕은 반평생을 제후로 있다가 다시 억울한 사연으로 옥에 같힌다. 옥에 같혀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오히려 힘을 잃고 정신을 놓아버릴지 모르겠지만 주문왕은 오히려 옥의 벽틈에 자라는 시초를 가지고 점쾌를 보다가 세상사의 흐름을 깨친것이다. 그래서 만들어 진것이 주역인데. 주문왕의 50년의 삶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주역도 있을수 없다는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즉 주문왕의 나이 50에 세상의 모든 세상만물은 주기성있는 부단한 변화를 하고 있음을 깨달아서 만들어진것이 변화를 나타내는 역경(易经)이고 공자는 50에 천하에 가르침을 펴는것이 자신의 숙명임을 깨닿고 “논어”를 편찬했다고 하는것이다. 실은 역경(易经)에 훨씬 먼저 공자가 말한 천명에 대한 말이 나온다.  "乐天知命,故不忧"라는 말이 그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기뻐함은 그 명을 아는 고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된다. 하늘과 명을 합치면 천명이 된다. 이럴때보면 “天“도 “命”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사람의 도리는 하늘의 길에 기인하니 사람의 길흉화복과 요절 장수는 모두 하늘이 지배한다는 말이라고 사해(辞海)에는 적혀있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인간사회의 여러가지 현상은 하늘의 의지인 보이지 않는 실로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천명’이고 ‘명’인 것이다. 따라서 그 ‘명’을 자각하면 달관이나 체념이 생길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깨닫는 경지에 가까워져 갈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라고 했을것이다. 그러한 달관의 경지,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어떤 변고에도 허둥대지 않게 될것임은 틀림이 없다. 역경(逆境)에 처했을때 더 나쁜것은 허둥대는 일일것이다. 보기 흉할뿐 아니라 한층 일이 악화될뿐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낙천지명해야할 것임이 자명한것이다. 친구의 그 전화가 나더러 내 운명에 걸맞게 낙천지명해야 함을 가르쳐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밤 서재에 앉아 글을 쓰려다보니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소슬한 겨울의 기운에 몸을 줄이게 된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자정이 다되여서인지 길가에 다니는 사람조차 없다. 오늘은 달도 보이지 않고 우중충한 하늘가에 서너개의 별빛만이 추위에 떨고 있다. 내일에는 멀리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라고 한통씩 해야겠다.
81    이치에 집착하는 병 댓글:  조회:3411  추천:1  2015-11-08
   입동을 알리느라 그러는지 하늘에서 부실부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후퇴근 시간즈음되니 거위털같은 눈발이 흩날렸다. 아직 땅의 온도가 있어서 그런지 눈이 땅에 내리면 인츰 녹아서 길이 여간 질척거리지 않는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큰 눈이 내릴때면 보통 바람이 불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내일쯤 눈이 그치게되면 바람이 모질게 불어칠것이다. 그러면 체감온도가 뚝 떨어져서 진짜 겨울을 경험하게 될듯 싶다. 요즘은 회사에서 백화점에 LED전시장을 만드느라 일손이 바쁘다. 거래처 손님들과 전화통화 몇번하고 몇명 회사지원자들의 면접을 보고나니 하루 오전이 또 후딱 지나갔다.   오후에는 우리일을 주관하는 시정부의 모 공무원과 사업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공무원의 생각이 꽉 막혀있어서 그 생각을 풀어서 일한다는것이 여간 어려운것이 아니였다. 일단 무턱대고 안된다고 우기는 스타일인데 그의 입에서 된다는 소리를 듣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일단 안된다고 하고 다시 면목으로 해주는척하면서 인사치레를 하려는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인지는 잘 몰라도 안된다는 리유를 가득 늘여놓는데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었다.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어려우니까 해결하려고 하는것이고 부족하니까 메꾸려고 하는것이지. 다 만들어져있고 다 될 일들이면야 그걸 어찌 사업이라 하고 청들려고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손발을 잘 맞추어 나가는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더우기는 부탁해야 하는 입장인 나로서는 부탁을 들어줘야할 사람이 꽉 막혀 있으면 어쩔도리가 없는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잘하는 면이 있고 못하는 면이 있다. 완벽무결한 인간은 없는법이다. 부족하기때문에 배워야하고 부족하기때문에 수행이 필요할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꽉 막히고서야 어떻게 사상을 해방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킬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纵欲之疾可医,而执理之疾难医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이하여 보면 “어지러운 욕심의 병은 고칠수 있으나 이치에 집착하는 병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사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치료할수 있어도 도리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고칠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사욕에 눈이 어두운 병도 어떻게 보면 꽤 중병이다. 그러나 그런것은 본인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든가 주위의 상황이 변하든가 또는 우연한 계기로 변할수 있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예를 가끔씩 주변에서 보기도 한다. 문제는 “이치에 집착하는 병”이다.  쓸데없이 이론만 캐고 완고하게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문제인것이다.   물론 자기 의견을 가지는것도 좋은 일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완고하게 고집하고 양보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의 진보도 없고 주위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할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 속담에 지나침은 부족함만 같지 못하여 모처럼의 장점마저 결점이 되여버릴수가 있다. 이 “병”을 고치기 어려운것은 성격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그 결점을 자각하는 일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들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옛말에 옹고집,옹고집하는데 고집이센 사람중에서도 옹기장수만큼 고집쟁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옹고집이라고 했다고 한다. 좋은것을 고집해도 요즘처럼 다문화, 국제적인, 도시화사회에서 자리잡기 어려운데 하물며 자기 주관적인 생각만을 고집하고 자기 삶의 방식만을 고집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까지 종용하는 고집이라면 “병”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것이다.   오늘 그 공무원과의 미팅은 별 소득이없이 끝냈다. 그러나 사업으로는 소득이 없을지 몰라도 인간관계의 학문에서는 실로 한수 배웠다. 때로 우리는 정면 인물이나 긍정적인 사물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가끔씩 반면인물이나 실패의 교훈에서 더 많은것을 배울때가 있다. 어제 금방 마음의 평형을 찾으려고 다짐을 했으면서 오늘 또다시 까맣게 잊어먹어버린다면 뉘우침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후에 늦어서야 회사에 돌아왔다. 차 한잔을 타서 마시면서 밖에서 하늘가득 하얗게 떨어지는 눈발을 보고 있는것도 인생의 묘미가 아닐수 없다. 저 큰 대지에 가득 덮어 날리는 눈발이나 우주의 조화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중심적이다. “오늘의 고집은 내일의 후회를 낳는다”는 불경의 한구절이 떠오른다. 참 맞는 말씀이다.
80    밤길(시) 댓글:  조회:1648  추천:0  2015-11-05
 님은 밤길을 걸어보셨나요 가로등도 없고 별빛도 없는 밤길을 걸어보셨나요?   님은 두려웁지 않으셨나요 울퉁불퉁 걸리고 채이는 캄캄한 밤길을 걸어보셨나요?   아픈 상처는 웅덩이가 되여 길을 막고 가슴에 쌓인 불안은 눈앞을 캄캄이 막는군요 밤길을 걸을려니 두려웁군요   님은 밤길 걸으면서 누구 생각하시나요 님은 밤길 걸으시면서 무슨 생각하시나요 무서운 이 밤길을 어떻게 걸으셨나요?   단 한번만이라도  함께 했던 추억을 생각했음 좋겠어요 단 한번만이라도 님 생각했음 좋겠어요   난 이렇게 님을 생각하니 밤길이 두렵지 아니한데 님도 그렇게 한번 해봐요 캄캄한 한밤중에 님의 얼굴이 환히 빛나네요
79    입동의 준비 댓글:  조회:2438  추천:2  2015-11-05
   입동을 몇일 앞두고 있는데도 오전날씨는 그나마 따스했다. 고기압의 영향때문인지 아니면 연길의 지형이 분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 집중난방이 들어가지 않은 민가나 여기저기 상가의 보일러에서 뿜어나오는 연기가 도시전체를 뿌옇게 만들어놓고 있다.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불교연구회에서는 일요일마다 정기 회원모임이 열린다.  일요일에 시간맞추어 나가보니  오늘따라 꽤 많은 회원들이 모여있었다. 몇달전부터 계획했던 일이긴 하나 오늘부터 정식으로에 “지장보살본원경”대한 강의를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모른다.    지난주까지“유마경”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대승경전이여서 그런지 많은 신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신심을 내지 못하는듯했다. 그래서 이번에 소승경전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한시간 정도 강의를 하고 10분 휴식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이 계속이어져서 점심11시가 되여서 마무리 지었다. 새로온 몇몇 회원들도 있었는데 오늘 강의에 참가하고 나서 환희심을 얻어 삼보에 귀의한다고 한다. 나로서는 기쁜일이 아닐수 없다. 신앙이 있다는것은 기쁜일이다. 아무 신앙도 없이 세월이 가는대로 육신을 맡기고 육신이 가는대로 정신이 끌려다닌다면 그건 바른 삶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앙이란 우리의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라 확실하게 존재하는 일이나 물체를 바라면서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의 히브리서에도 이런말이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한다. 그 뒤에는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것을 안다”로 계속된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에 나오는 말이다.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신앙의 정의로 널리 알려져온 명구이기도 하다. 이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바라는 대상이 결코 가정된 사실이 아니라 바라거나 바라지 않거나간에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에대한 믿음이다.  그 엄연한 존재에로의 바램과 확신을 신앙이라고 하는것이다. 즉 “아직 보이지 않는 사실을 확신한다”라는 말이 될수 있다. 그러면 엄연히 있는 그것은 또 무엇일까? 같은 장에서 예수가 말한다. “하느님께서 설계자가 되시고 건축가가 되셔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주실 도시이며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는 지상의 이 세계는 가공이며 허망하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현재 내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의 육신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세상에 변화를 거치지 않는 사물은 없다. 모든것은 움직이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경제도 모두 빠른속도로 변화하고 있는것이다. 물론 우리의 마음의 변화가 더욱 무섭고 빠르다. 그걸 많은 사람들은 감지못하고 있는것이다. 마치 따스한 물속에서 끓이는 개구리처럼 우리는 변화에 둔감하다가 그 변화속에서 죽고마는것이다.   불교연구회에서 “지장보살본원경”에대해서 강의를 해놓고는 여기서는 또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남들보기에는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이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내 자신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많은 강의을 해왔다. 리더십 과정을 개발해서 지금까지 10년넘게 강의해왔고 주역이나 음양오행에 대해서도 대학에서나 지역 클럽에서 강의해왔다. 엉뚱하게도 불교에 대한 강의 또한 몇년을 해왔는데 아직 내 신앙의 받침이 부족한듯한데 대한 반성이다. 법구경에는 이런말이 있다. 虽诵习多义 放逸不从正 如牧他牛 难获沙门果 时言少求 行道如法 除淫怒痴 觉正意解 见对不起 是佛弟子    현대 백화문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행하지 않는 방일한 사람은 남의 소를 모는 목자와 같아 사문된 결과를 얻기 어렵다.   경전을 아무리 적게 알아도 법을 따라 도를 행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어 지식은 정당하고 마음은 해탈해서 이승에도 저승에도 집착이 없으면 그야말로 부처님의 제자이니라.     내가 여기저기서 경전을 얻어듣고 몇구절 외우고 있어서 건방지게 법문을 한답시고 강의를 한답시고 하고있지만 진정 수행하는 사람들에 견줄봐가 되지못함에 대한 반성이다. 이 시대의 많은 인텔리들이 그렇다. 아는척 배운척 자랑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종의 창백한 비애일 뿐이기도 하다. 지식이 많아도 행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지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유창하게 변명할수는 있어도 참다운 삶을 살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경전을 모를수록 해탈한것이라고 떠드는 강변자들도 더러있다. 그것은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토로하는 사이비 제자들이다.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라라면 집착하지 않음을 행하는 자이다. 경전도 이승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해탈을 얻는 자가 되는것이 진정한 수행인이고 신앙인이다.    가을도 다가고 입동에 들어선다고 하니 마음이 왠지 서글프다. 입동은 24절기 중의 19번째 절기이다. 겨울이 시작하는 날인것이다. 양기가 가장 약해지고 음기가 막 성하는 때여서 양생을 하는 옛사람들은 이날 보약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같으면 대체로 입동을 전후하여 김장을 담그기도 하고 햇쌀로 시루떡을 빚어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러한 풍습도 도시화 시대에서 어디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겨울을 맞는 해는 빨리도 어둠속에 자취를 감춘다.                    농사군은 겨울에 들어설때 내년 봄을 준비한다. 씨앗을 가리고 쟁기를 거둔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까?   준비를 하기위한 준비는 또 무엇일까?!
78    스스로 돕는자 댓글:  조회:2601  추천:3  2015-10-21
   가을비가 한줄금 내렸다. 공기가 자못 상쾌하다. 요즘은 건강을 위한 걷기 운동을 한다. 퇴근후 혹은 이른 아침에 집에서 나와서 한시간반 정도 걷다가 돌아오는데 어느새 그 운동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오늘도 퇴근후 한시간반 정도 걸었다. 금방 비가 내리고 난후라서 그런지 자동차 매연도 적고 먼지도 적어서 걷기에는 딱 적격이다. 걸으면서 사업과 미래와 비젼을 생각하는데 옆으로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자동차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멋진 향수라고 할수 있을것 같았다. 비가 내린뒤라서 그런지 걷기 시작할때는 추운듯 했는데 한참을   씨엉씨엉 걸었더니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서리가 내린지도 이제는 이슥히 지났지만 몇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여서 참 좋았다. 역경에는 履霜坚冰至 (서리를 밟고 단단한 얼음에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서리가 내리고 나면 이어서 단단한 얼음이 어는 겨울에 이른다는 말이다. 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윽고 단단한 얼음이 펼쳐지는 추운 겨울이 온다. 그러나 겨울은 가을을 뛰어넘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서리가 내리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면 겨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자연의 한부분인 인간세계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떤 큰 사건이라도 반드시 그것을 예고하는듯한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따라서 하찮은 전조라도 그것을 그냥 넘겨버릴것이 아니라 즉시 그 조짐을 알아채고 재빨리 대처해야 한다. 역경에서 ‘서리를 밟고 단단한 얼음에 이른다’는 이 말은 그러한것을 경고한 말이다. 미약한 전조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신경을 세워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리가 내려도 아직 겨울이 오는것을 알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재작년 봄까지 주식시장과 펀드는 천정부지 치솟았다. 따라서 부동산도 끊임없이 뛰여 올랐다. 전 세계 시장이 그렇게 들끓었다. 대학의 교수님들도 부동산의 미래시장을 에언하면서 부동산 투자를 부추겼고 일반 시민들도 펀드와 주식에 혈안이 되여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은 오르면 오르지 절때 떨어질수 없다고 호언장담을 해댔다. 그런데 미국발 금융위기가 21세기의 대문을 들이치자 세계의 경제는 주춤하고 펀드와 주식에 투자했던 자금들은 거부기의 목처럼 움추려들어가고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하루밤새 길거리에 나앉았다.   재작년부터 죽 에치투오코스에서 강의한 비디오 자료를 보면 부동산과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경제하락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있다. 연길은 소비형 도시이고 중국의 가장 변두리에있는 산골도시이다. 연변경제를 떠멜 그럴듯한 기업 한개 찾기 힘든 지역이다. 그런 도시의 주택가격이 평방미터당 4천원에서 8천원가까이 하니 놀라지 않을수 없다. 작년에 할빈에 겨울빙등 관광갔다가 가이드의 안내로 하얼빈시 신도시 개발지역을 가 보았는데 아파트 가격이 평방미터당 5천800원좌우라고 했다. 심양의 기타 개발 아파트 단지들도 보통 8000원좌우(평방미터당)가 기본이다.  물론 일부 고급아파트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러한 수준이였다. 동북삼성에서 할빈은 공업도시이고 러시아와 인접한 대도시이다. 흑룡강성의 수부이기도 하다. 그 도시의 집값과 연길시의 집값이 같으니 거품이여도 형편없는 거품인것이다. 심양시는 동북삼성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료녕성의 수부이기도 하다. 그런 심양시의 아파트 가격과 연길시의 아파트 가격이 같다는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제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는듯 싶다.    지난2008년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경제에 대한 전망을 모두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때였다. 주식과 펀드가 한창 올라갈때 나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일찍 손을 뗐다. 동네아줌마들까지 주식을 사려고 덤벼들때는 손을 떼야한다는것이 상식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경의 생생불식(生生不息)라는것이 나를 욕심에서 발을 떼게 했던것이다. 역경의 생생(生生)은 사사(死死)가 아니다. 언제나 생생불식하는것이 역경이지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생생사사가 아니다. 천지 자연의 모습을 보면 양은 음을 낳고 음은 양을 낳는다. 그처럼 끊임없이 교대로 낳고 만들어지면서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 음양의 변화를 역이라고 하는것이다. 가장 잘된다고 할때는 이미 내리막을 걸을 조짐인것이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는 도리와 같다. TV뉴스에서 증시가 올라가고 있다고 할때 투자하면 이미 늦은 투자다. 뉴스는 아무리 실시간 뉴스라하더라도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에치투오는 그런면에서 보면 현실적인 경험과 지식이 쌓인 코스라고 자부할만하다. 그러한것들이 축적되여 운영된 코스이기에 18년간 진행되였고 만명넘게 진행되여 온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서로서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다. 자신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신의 욕심을 주체할수 없기때문이리라.   장사를 시작하여 삼일도 안되여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의 하는것이 다 잘못된듯 해서 자신이 직접한다고 덤볐다가 전부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또한 있다. 독일 관념론의 시조 칸트는 고 말하였으며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다빈치는 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상공론이나 고정관념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웃을수 있겠지만 진정 우리 자신은 또한 그러한것에서 자유로울수 있을까 반문해본다.   어제 저녁에는 수요세미나를 가졌다. 요즘 당면한 전 세계적인 경제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인민페 환률저하로 인한 연변경제과 각 개인의 사업투자등에 대해 회원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투자나 사업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우리 수요세미나를 통해서 한달만에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읽고 많은 돈을 절약한 분들을 말할라치면 참으로 많다. 작은 세미나 비용으로 큰 소득을 얻은셈이다. 그렇듯이 모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내 삶의 개척자는 나 자신이고 내 삶을 무너뜨리는것도 나 자신인것이다. 분명한 인생의 사명을 찾고 그 사명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면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게 되여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지역에 마테오라는 청년이 살았다. 이제 서른이 다 된 그는 자신이 언제쯤 성공해 예쁜 여자와 결혼할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노인이 베니스의 작은 산에 산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는 누가 어떤 문제를 내든 다 맞힐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했다. 마테오는 결국 친구와 함께 노인을 찾아갔다. 마테오의 표정은 간절했다. 노인은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이 자리를 뜨고, 그의 친구가 제 풀에 꺾여 돌아갔지만 마테오는 끝까지 남았다. 다시 돌아온 노인은 그가 아직도 제자리에 있음을 알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노인은 꽉 쥐고 있는 자신의 손 하나를 마테오에게 내밀었다. 마테오는 답을 알수 없었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마테오의 답변을 듣고는 웃으며 답했다.   마테오는 깜짝 놀라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에 씨앗을 품고 있다. 이 씨앗을 어떻게 심고 가꾸는가에 따라 성공이란 열매를 맺을수도, 실패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 새의 생사를 쥐고 있던 노인의 손처럼 당신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러니 운명을 탓하는건 어리석은 일이다. 운명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애초부터 우리 자신이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고, 결과가 좋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당신의 손이 언제든 새를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라.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야 하는것이다.   중국의 오경중의 하나인 역경(易經)에는 는 말이있다. 하늘의 운행은 철저해서 1초도 쉬는 일이 없다. 군자도 이와같이 힘씀을 그만두는 일없이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다.  우리 운명이 자신에게 달렸다면 쉽사리 남의 의견에 동요되여 따라가면 안될것이다. 그래서 지식보다 중요한것이 견식이라고 한다. 옳바른 판단력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에치투오 강의에서 나는 수강생들이 자신의 사명과 인생의 목표를 찾을수 있도록 도와준다. 누구나 실패할수는 있다. 사람이라면 가끔 흐린 판단을 할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일의 결과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서는 안된다. 후회한다고 해서 변화되는것은 없기때문이다. 실패를 운명으로 여기지 않고 실패에서 배우는데 힘을 쏟아야만한다. 내가 잘못한 선택으로 인간관계가 나빠졌다거나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면 사과를 하고 개선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된다.    운동을 한답시고 급히 걸었더니 등에 땀이 흥건히 돋았다. 돌아오면서 방송국 앞길을 건널때였다. 차 한대가 붉은 등이 켜질려고 노란등이 반짝이는 사이 급히 길을 건너려고 속력을 다하다가 마침 횡단보도의 녹색등이 켜져서 인행도에 내려선 사람을 들이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행인은 저만치 뿌리워 나가서 쓰러졌다. 그 광경을 마침 목격한 어떤 할아버지가 놀라서  차에서 내리는 그 사고친 기사를 손가락질 하면서 욕을 한다. 바로 그 옆이 병원이여서 사람들이 상한 사람을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그런 강한 충격에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운전기사의 잘못된 작은 선택이 다른 한사람의 시퍼런 생명을 앗아가고 그런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그리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가슴이 섬찍해났다.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시체드린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77    내것이 아닌것-아들에게 보내는 편지8 댓글:  조회:1235  추천:1  2015-10-06
 아들아 이 세상에는 가지고 싶지만 내것이 아닌것이 있단다. 어찌하겠느냐 가지고 싶다고 어린애처럼 울거냐 ? 아니면 이발을 사려물고 싸울거냐 ? 억지로라도 빼앗아서 니걸로 만들거냐?   아들아 사람들은 얻을수 없는것을 항상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단다. 남의 정원의 꽃이 항상 더 예뻐보이고 도망간 고기가 더 커보이고 이웃집 색시가 더 예뻐보이기도 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끊이질 않는 법이란다.   아들아 사람들은 내것이 아닌것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단다. 그것은 니가 그 사물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해서란다. 언젠가 니가 그것을 얻어서 함께 지내다보면 그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수 있지. 그러나 그렇게 알고나면 아들아 너는 곧 알게 될것이다. 그것이 니가 본래 생각했던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들아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것에 감사하거라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 만족하거라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오는법이니라.   아들아 이제 내것이 아니라면 욕심을 내지말고 내것이라 할지라도 나눌줄 알거라. 나누는 사람이 가장 풍요롭게 살게될것이니
76    운명 댓글:  조회:2704  추천:5  2015-10-06
   가을이 오면 하늘이 유난히 높아보인다. 여기저기서 시원함을 느낄수 있다. 이맘때면 언제나 가을의 하늘처럼 내 마음도 넓고 높아진다. 요즘 집에서 기르는 관상용 버드나무가 꽃이 활짝 피였다. 몇주전부터 버드나무가지의 여기저기에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어느새 나무가지마다 흐드러지게 연분홍 꽃잎을 펼쳤다. 가을에 피는 꽃은 봄에 피는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귀하기 때문이리라. 다른 꽃들은 다 꽃잎을 지울때 꽃망울을 피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듯싶다.  버드나무꽃은 향기가 진하지 않다. 그러나 그 꽃은 망울을 터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작은 나무가지마다 가득 연분홍 꽃잎을 피운다. 그냥 보기만해도 즐겁다. 옆에 다가가서 코를 대고 향기를 맡을라 치면 알릴락말락한 싱싱한 꽃향기가 가슴 가득 들어온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그 옆에 있는 란초는 꽃은 자줄 피지 않지만 그냥 그 꿋꿋하고 푸른 기상으로 집안에 푸름과 활력을 더한다. 옛사람들은 란(蘭)을 사군자중의 하나로서 표현했다. 매화, 란초, 참대, 국화를 사군자라 칭했던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과연 난초는 군자답고 그 옆에 키는 훨씬 크지만 가느다란 버드나무는 오히려 미녀의 형상을 닮았다.   늦은 밤 귀가하여 꽃에 취해있다가 창문가로 하늘을 쳐다보니 서남쪽 하늘가에 태백성이 반짝인다. 가을밤의 밤하늘이 가장 아름답다. 하늘이 높고 푸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건 유난히 밝은 태백성 하나뿐이다. 태백성을 볼때면 어릴때 보던 ‘서유기’의 이야기가 떠오르군 한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태백금성에게 천거되여 하늘에 올라가서 ‘필마온’이라는 벼슬을 받았으나 그 관직이 낮음을 나무라서 천궁을 분탕치고 지상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태백금성이 나서서 천거하여 ‘제천대성’까지 된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하늘의 반도대회를 망치고 어주를 훔쳐먹고 삼십삼천까지 올라가서 태을진인의 금단까지 한 호로박 전부 먹어버린다. 그러다 끝내는 부처님의 높은 법술에 오행산에 갇혔다가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여 서천으로 경 가지러 다녀오는 이야기를 적은 ‘서유기’는 그야말로 모험과 낭만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 손오공은 내가 성장하는 과정 내내 멋지고 동경하는 모습이였다.  그런 손오공을 두번이나 천거를 한 태백금성이 바로 창문가에 반짝이며 꽃향기와 어울려 가을의 풍치를 더하는듯 싶다.   옛날 사람들은 밤중에 길을 잃으면 하늘의 북두성을 쳐다보면서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북두성을 찾을수가 없다.  날씨가 나빠서인지 아니면 이 도시의 공기질량이 나빠서인지 밤이면 별을 볼수가 없다. 요즘은 GPS나 핸드폰 위치추적기라든가 위성안내기 같은 것들이 너무 보편화되여서 별을 보면서 길을 찾는 일은 없겠지만 옛날 같으면 하늘의 별이 길안내 작용을 많이 했을것이다.   오늘 어머님이 전화가 와서 바쁘지 않으면 다녀왔다 가라시기에 (실은 좀 일들이 있었지만 미루고^^) 가보았더니 어머님의 친구분이 와 계셨다. 그분은 나도 좀 안면이 있는데 가끔씩 어머님한테 놀러오시는 분이셨다. 나를 부른 사유인즉 이러했다. 어머님의 친구분은 성이 구씨인데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분이 자녀들의 장래가 걱정돼서 이번 연휴에 점치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부근의 어느 사찰의 관음영험점(觀音靈驗占)이라는것이 용하다고 보러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한족말로 설명하고 이상한 글이 가득적힌 쪽지를 주던데 뭐라는지 몰라서 그런다며 쪽지를 내밀었다.  특히 믿고 부르신듯한데 바쁘다고 그냥 갈수도 없고 어머님하고 친한 분이시라 대충 넘길수 도 없었다. 그래서 그 글쪽지를 받아 보니 중국 사찰에서 숫자가 적힌 저가락같은것이 가득 꽂힌 통을 흔들어서 그중 하나가 나오면 그에 맞는 점쾌를 보는 그런것이였다. 중국 민간에서 많이 신앙하는 형태로서 백사문관음(百事問觀音)이라고 모두 백가지 점쾌로 나뉜다. 주역에서 64쾌를 분석하는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졌으나 말로는 아주 영험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는 과정이 바로 이러한 점을 치러다니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과정이 생겨난게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일괄적으로 이 모든것을 부정하고 미신이라고 일축 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미신(迷信)을 중국글로 풀이하면 미혹할 迷자에 믿을 신자가 붙혀져 있다. 즉 미혹된것, 모르는것을 믿는것을 가르켜서 미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자신에 대해서 또 얼마나 알고있는가? 스스로를 미신하는것이 또한 가장 큰 미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글쪽지는 ‘제 32 중첨(中簽)’이였다.(번역상 중첨이라는 표현을 썼다. 첨이란 하나를 뽑아서 나타난 숫자를 가르킨다. 보통 주역에서는 쾌(卦)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첨이라고 표현한다.) 일단 중첨은 상첨(上簽)보다는 못하지만 하첨보다는 좋은 것이다. 32첨의 제목은 유비구현(劉備求賢)이였다. 삼국연의나 삼국지를 보게 되면 유비가 천하를 얻을 꿈을 가지고 현인을 모시려고 고민하던중 관우 장비와 함께 삼고초려를 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이 있듯이 그 쪽지에는 풀이도 돼 있었는데 ‘돌중에 옥이 있듯이 이인은 쉽게 알아볼수가 없다. 분명해지기를 기다려서 움직이면 모든것이 잘 되리라’로 돼있었다. 물론 내용에 대한 시(詩)도 있고 더 상세한 분석내용도 있었다. 거기의 내용대로 상세히 분석해주고 역사이야기도 해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더니 어머님의 친구분은 자못 흡족해하셨다. 비록 상첨은 아니지만 그나마 중첨이라도 나왔고 설명을 들으니 귀인을 만날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좋은듯 싶어서 아주 만족해 하셨다. 나는 점을 치는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점은 우리에게 힘이 되여줄수 있고 발전적이 될수도 있다. 깜깜한 한밤중에 길을 잃은 사람을 생각해 보라.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그런 심정일 것이다. 그럴때 누군가가 길을 알려주고 방향을 가르쳐주고 구명대를 던져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것인가.   옛날 프랑스에 어떤 젊은이가 있었는데 하는일마다 안되고 실패를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마지막으로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이라도 치고 죽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젊은이가 점을 치는 집시여인을 찾아가서 점을 치는데 그 집시여인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젊은이 당신은 옛날 세계를 뒤흔들던 나폴레옹 황제의 환생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믿은 젊은이는 피가 끓어 오르고 용기가 북받쳐 올라서 다시 사회에 돌아가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프랑스에서 제일가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다시 그 집시여인을 찾아가서 물어볼때 집시여인이 말하기를 실은 당신이 그 당시 너무 실망하고 힘들어해서 내가 당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말했을뿐 실은 나폴레옹의 환생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점쟁이한테 다시 후한 보수를 주고 나왔다고 한다. 비록 자신이 믿고 있었던 환생의 이야기가 가짜이긴 했지만 그가 소극적이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마당에 그한테 힘과 용기를 준 선의의 거짓말이 였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비록 자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 아니라는걸 알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열정을 찾았고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점을 보는 사람들은 ‘인생컨설팅설계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물론 엉뚱한 소리로 사람을 위협하고 얼토당토않는 말로 돈이나 얼려내는 사기군들을 말하지 않는다. 아쉬운것은 현대 우리 사회에 정말 긍정적이고 제대로된 인생설계사나 인생컨설팅전문가가 많지 못하다는데 있다. 우리가 직접 찾지 못하는 인생의 방향이나 진로를 가르켜주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면 그것은 어두운 밤중에 길잃은 나그네가 북두성을 찾고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대를 잡은것과 같을것이다.  ‘타임머신’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생각난다. 3부작으로 된 영화인데 주인공과 과학자는 시간을 뛰여넘는 기계를 발명하여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잘 되게 하려는 일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뱅뱅꼬이면서 오히려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나중에 원상태로 돌아와서 타임머신이 기관차에 부딪쳐 박산이 난다.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미래에서 가져온 나쁜 의미의 글들이 사라지고 백지로 변한다. 그때 과학자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라는 말이 기억에 오래동안 남는다.  운명은 중국글로 번역하면 명운(命運)이라고 한다. 나는 명운이라기 보다는 운명이라고 부르는 순서배열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명운은 숙명론적으로 들릴수 있지만 운명은 우리의 명을 리드한다는 의미가 더 잘 나타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명은 우리가 운전하는것이다.   밭에 곡식을 심지않고 수확을 거두기를 바란다면 바보라고 할것이다.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그마한 씨앗부터 심는다면 좀 더 큰 수확을 거둘수 있고 그걸 기초로 차근차근 발전시킨다면 언젠가는 충분히 큰 수확을 이루게 될것이다. 자신의 재주를 믿고 오만과 욕심 방자함으로 가득찼던 손오공도 나중에는 자신의 진정 가야할 길을 찾고 나름대로의 정도를 찾아서 당승을 보호해 온갖 험난을 헤치고 서천에 이르지 않았는가?! 미래를 불안해하고 떨기보다는 용감히 맞서나가는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일것이다. 전에 이런저런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아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았었는데 버드나무의 피여나는 아름다운 꽃과 꽃봉오리를 보면서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꽃은 하루밤사이에 피고 버드나무는 하루밤 사이에 푸르러진다는 말이 있다. 하루밤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가?!   인생의 이치는 사람이나 버들이나 모두 같다. 운명은 기다릴줄도 알아야 하지만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버드나무 꽃을 보고 있으려니 어릴적 강가에서 뛰놀면서 버드나무가지로 모자를 틀어 만들어 쓰고 수양버들, 능수버들 하느적 거리는 강가에서 물장구치며 뛰여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이 어제같은데 벌써 몇십년이 흘렀다. 살짝 열린 창문가로 가을 바람이 밀고 들어오며 버드나무의 가지를 날린다. 문뜩 시흥이 일며 시조 한수가 떠올라 지어본다.   능수야 버들아 시골강가 뭐좋다고 추풍낙엽 이 시절에 꽃봉오리 맺고지고 길떠난 님 오실날 어이알고 꽃피느냐.     옛사람들은 자연의 풍치를 즐기며 시조를 지었다지만 집안 베란다에서 시조를 지어보는것 역시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75    원망보다는 감사를 댓글:  조회:2655  추천:4  2015-09-11
  백로가 들어서부터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따뜻한 날씨에 익숙해 있다가 불시에 찬기운이 닥치니 그 체감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지는가 본다. 오전에 출근하여서 내내 사무실에서만 일을 보았다.  이제 시작할 사업건의 대리점 계약서를 손질하고 이런저런 잡일을 보고 있을사이에 또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점심시간에 대충 사무실에서 배달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옆방의 안마침대에 잠간 누워 생각한다는것이 잠이 들었나본다. 직원들의 말대로라면 내가 코까지 골더란다. 요즘 많이 피곤했나본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여서 그런지 자꾸 피곤하고 잠이 오는데 정작 누우면 잠이들지 못한다. 아까도 실은 잠이 들지 않고 뭔가 생각하고 있었던듯 했는데 코를 골았다니까 잠간 잠이 들긴 들었나 본다. 그러고 보니 그새 깜빡 비몽사몽간에 꿈같은걸 꾼것같기도 하다. 내가 큰 돼지 한마리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꾸었다. 낮에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 경마하는 장면을 피끗 보았는데 그때문에 꾼 꿈인지 모르겠다. 오후 퇴근시간에는 불교연구회의 법당에 잠간 들러 향을 올리면서 짤막한 명상시간을 가졌다. 요즘은 일때문에 십여년간 진행해오던 리더십 강의를 미루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퇴근시간이 잘 맞춰져서 나도 퍽 편하다. 불교연구회에서는 어제 지장보살상을 모셔왔는데 그 모습이 온화하고 장엄해서 무척 맘에 들었다. 지난주 일요일부터 진행해온 에 맞추어서 후원이 들어온것이다. 그것도 법당부근의 사무실에 출근하는 한족아주머니인데 매일 오전이면 법당에 들러 향을 사르다가 발심하여 후원한것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그래도 한족신자들이 많기에 중국어로된 강의도 해야된다고들 하는데 내가 아직 준비되지 못한듯해서 계속 미루고 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아이들 학교앞에가서 아이들을 마중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해서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다고하니 또한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칭찬받기를 좋아하는가 본다. 나도 아이들이 학교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다고 하니 좋은데 직접 칭찬을 듣는 사람들은 더 어떻겠는가. 우리 아이들은 조금만 진보했거나 상을 받거나 하면 언제나 아빠한테와서 칭찬받기를 원한다. 나도 기꺼이 기쁘게 칭찬을 해주고 애들을 안아주고 엉덩이를 척척 두들겨준다. 아들은 아빠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 아버지는 또 사회에서 인정해주기를 원하는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서로의 인정을 갈구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찌보면 우리 아이들처럼 사회의 인정이나 얻고 싶어서 강의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던게 아니였던가 싶다. 그러나 열심히 일에 몰두하여 노력하였는데 그만한 보상이 오지 않을때 우리는 불평을 하게 되고 투덜거리게 된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보상이 돌아온다면 모를까. 오히려 역 효과로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는것이라면 그런것을 빨리 버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학창시절에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고 답하군 했다. 주은래라면 모두들 잘 아니까 길게 말하지 않겠지만 기를 전후해서 보통사람들이라면 언녕 불평불만을 폭발시키게 될 경우에도 불평없이 잘 해냈다. 그런것들이 그분이 점차 주위의 신뢰를 얻는 이유가 되였던것이다. 내가 존경했던 그분의 생활방식을 배워야겠다. 논어에도 이런 말이 있다. 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다. 남들이 나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것이다. 나 자신이야말로 남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않나 생각해볼 일이다. 이말은 인간관계학에서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이다. 이것과 같은 말이 에 세군데나 나온다. 공자는 때에 따라서 제자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었던것 같다. 초기 불교경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라고 한다. 문뜩 시흥이 나서 시한수 적어보았다. 이름은 라고 달았다.   불평은 언제나 모자라는 저울추 저울이 기우는것이 당연한것인줄 우리는 왜 모를까   저울추는 올라갈수도 또 내려올수도 있는것 오르고 내려감이 스스로의 무게때문인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불만은 밑빠진 항아리를 채우려는 미친생각 욕심의 항아리가 밑빠진줄 우리는 왜 모를까 애써 채우고 채워도 차지 않을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음양의 변화를 알고 남북의 차이가 있듯이 동서의 역할을 알고 사물의 영원함이 없듯이 마음의 변화를 안다면   원망보다는 감사하고 미움보다는 사랑하게 될것을.     우리주변에는 환경과 타인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듯 싶다. 나도 그중의 한사람이 되지 말기를 기도해 보았다.    새벽에 일찍일어나서 어제 일기를 적다보니 머리가 더욱 맑아지는듯 하다. 따뜻한 이불속에 있을때도 좋겠지만 새벽녘에 일찍 일어나서 동네 길가를 산책하고 돌아오는것도 하루 일과에 무척 도움이 되리라. 하루를 짧다고 원망하기 보다는 하루를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아이들이 깨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는 아내의 즐거운 아침 요리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루가 또 시작한다. 오늘도 행복하고 활기찬 하루가 될것같다.
74    님 닮은 뒷모습(시) 댓글:  조회:1583  추천:1  2015-08-26
별무리는 저멀리에 있고 잠자는 님의 숨결은 내 맘속에 있죠. 어느 구름이 많던날 어느 비가 많이 내리던날 님은 하얗게 웃었죠. 인생은 그렇게 평범한것 같아요 잘 살려고 해도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꿈은 저기 바람에 날린 석양처럼 빙그레 웃기만 하네요 이제 겨울이 오면 강언덕에 함께 심었던 저 버들도 내 맘과 함게 말라가겠죠. 슬픔과 괴로움은 뜬구름 같다지만 우수는 그리움과 함께 깊어가고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은 님을 닮은 저 뒷모습은 뒤돌아 보지 않네요.
73    아버지의 <비밀> 댓글:  조회:2741  추천:12  2015-08-26
   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어렵게 살았다. 내가 아주 어릴때였는데 그때는 집에서 밥을 지으면 수수밥과 약간의 이밥을 섞어서 만들군했다. 중국어로는 꼬량미(소리발음 高粱米)라는 것인데 그때는 그것이라도 배불리 먹을수 있다면 다 괜찮은 집안이였다. 어쩌다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네 집에 가면 조밥을 먹을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때는 배급제로 쌀을 나누어 주었고 돈이 있어도 쌀을 살수 없었다. 양표(양식표-粮票)라는것이 돈을 대신하여 있었는데 그 당시 중국에만 있은 특별한 유통화페였다. 양표도 전국통용되는것이 있었고 성급에서 통용되는것이 있었고 지방에서만 통용되는것이 있었다. 양표가 많으면 그나마 배불리 먹을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집 어느 서랍속에는 그때 아껴서 모아두었던 양표가 한묶음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걸 아끼지 말고 다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에 와서 생각해보았지만 부모님들의 그런 근검절약하는 정신이없었으면 어떻게 우리 삼형제에 할머니까지 여섯식구가 그 세월을 날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군한다.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여서 남존여비사상이 깊숙히 배여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밥을 해도 한쪽 구석에 약간의 이밥과 수수가 섞인 밥은 우리 아버지와 장손인 내 몪이고 그냥 수수밥 혹은 옥수수밥은 당신과 나의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들의 몪이였다. 그래도 그때 세월에는 서로 군소리 없이 한가마밥을 가득 퍼서 잘들 먹었다. 채소는 마당에 심어서 조금 먹을수 있었으나 콩기름같은것은 사기가 힘들었다. 어쩌다가 궈즈(한족들의 기름튀김 음식)에 콩물을 팔때면 새벽부터 누나들과 내가 나가서 길다랗게 줄을 서야했다. 그렇게 먹던 그 음식들은 모두 별미였고 천하 일품이였다. 그래서 천하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산해진미도 아니고 배고플때 먹는 것이라고 했나본다.    아버지는 그때 문화혁명의 억울함이 풀려서 시골양봉장에서 다시 현 토산공사에 오게 되였다. 그때 토산공사는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물을 통일로 거두어들여서 큰 도시에 가져다 파는일을 했는데 장사를 못하게 하는 세월이라 대부분 국영 아니면 집체 기업이였다. 아버지는 중국글이든 우리 글로된 문장이든 뭐든지 잘쓰시고 또 붓글씨도 명필이시라(적어도 내가 볼때는 명필임이 틀림없다.) 얼마안돼서 고장(지금의 과장에 해당함)이 되셨다.  그때는 종축장이라는데서 통일로 소를 잡았는데 고기와 뼈는 팔아도 소가죽은 국가에 바치게 돼있었다. 그걸 거두는 일을 토산공사에서 했던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월같으면 한국바람에 연변에서도 소꼬리값이 천정부지 올리솟아서 비싼 요리가 되였지만 그 당시 우리 풍습에는 소꼬리를 먹지 않았다.   소가죽을 팔러오는 농민들은 대부분 소꼬리가 그냥 디룽디룽 달린 소가죽을 가져오군 했다. 지금도 대부분 한족지역의 한족들은 소꼬리를 먹지않는다. 그때 토산공사에서는 소꼬리는 가죽공장에서 받지 않으니까 그냥 끊어서 버리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그런 소꼬리를 끊어서 자전거 뒷짐싣는곳에 끼워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가 웬 소꼬리를 가져왔느냐고 물을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않으셨다. 한참지나 우리가 숙제를 마치고 있을라니 어디선가 고기굽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때는 고기한점을 먹을려면 설날이 돼야 겨우 한두점 맛볼 정도였다. 우리가 마당에 뛰여나가보니 아버지가 화로불에 소꼬리를 굽고 계셨다. 털을 다 그슬리고 있었는데 고기가 같이 타면서 나는 냄새에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아버지,이걸 먹을수 있는거예요? ” 하고 물어보는 내 물음에 아버지가 하고 입을 막는 시늉을 하셨다. 우리가 사는 집은 회사에서 통일로 지은 집이였는데 단층 구조로 줄줄이 서있는 구조였다. 비록 널판자로 서로 담장은 만들었지만 한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 지간이라 소리나 냄새가 나기 마련이였다. 나는 혀를 홀랑내밀고는 입맛을 다시며 아버지 주위를 뱅뱅 돌았고 저녁이 되여 우리는 뜨끈한 소꼬리 곰탕에 밥을 말아먹을수 있었다.   그렇게 몇년동안 우리는 고기걱정없이 잘 먹으면서 컸다. 어떤때는 토산공사로 팔려 가져오는 가죽이 하루에 열장씩 들어올때가 있는데 꼬리가 열개씩 들어오면 냉장고도 없는 세월이라 그냥 큰가마에 넣어서 푹 고와먹었다. 그때 그맛을 정말 말로 표현할수 없다. 그렇다고 누구와 나누어 먹을수도 없는 입장이였다. 그 어려운 세월에 그런 이 폭로되면 언제 우리한테 꼬리에 붙은 털오리라도 차례지겠는가?   아버지가 회사의 신문종이에 소꼬리를 싸서 자전거에 달고 올때면 어떤사람들이 의아해서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면 아버지는 재치있게 “어디 누가 약재에 쓴다고 구해달라고 해서 그러오.”라고 했단다.    요즘같으면 자기자식이나 손주들을 “귀여운 내새끼, 우리 강아지”하면서 안아주고 보듬어주었지만 그때는 어림도 없었다. 아버지는 비록 우리에게 그런 사랑표현을 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형제자매는 그냥 눈빛만으로도 부모님의 사랑을 읽을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님이 정성들여 끓여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그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보신탕이되였고 부모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순간이였다.  지금 내가 아버지가 되고보니 내 자식이 어쩌다 학교에서 장난을 치다 점심이라도 거르면 그만큼 가슴 아픈일이 없다. 지가 장난치다가 점심시간을 잊어먹고 지났다해도 가슴이 아픈데 그 없던 세월에 자식들한테 맛있는 음식은 혹 아닐지라도 그냥 배불리 먹일수만 있다면 세상의 아버지들이 누군들 마다하셨을까.    그렇게 나는 언제나 맛있는 소꼬리 곰탕에 지금은 웰빙음식이라고 찾아먹는 수수밥을 말아먹으면서 행복한 동년을 보낼수 있었다.   그때 생각을 할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지혜가 너무 돋보이군한다.
72    도전과 변화 댓글:  조회:2426  추천:4  2015-08-15
   크리스토퍼리더십코스가 오는 9월22일에 중국에서 개강하게 되였다. 연변에서만 벌써63기째다. 내가 크리스토퍼리더십코스를 받은지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그새 한국의 크리스토퍼도 많은 발전을 해왔을것이지만 중국연변의 크리스토퍼리더십도 그 씨앗이 뿌려져 어느덧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한국크리스토퍼리더십코스는 캐나다로부터 한국에로 한국에서 다시 중국연변에로 진출하게 되였다. 그간 정말 많은 분들이 연변에서의 강의를 위하여 봉사차 다녀갔는데 우리 중국의 조선족사회 발전에 이름할수 없는 큰 힘을 심어놓았다. 정신적 씨앗의 힘은 물질적인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물론 받는 사람들은 바로 물질을 받듯이 순간적인 느낌이 덜하더라도 우리 지역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전반 조선족사회의 미래에는 그만한것이 없다고 생각든다. 크리스토퍼리더십센터의 김동수 원장님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분이시다. 실은 그분과 이렇게 오래동안 함께 어떤 일을 진행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크리스토퍼리더십센터 연변센터를 내오면서부터 김동수 원장님의 리더십과 실행력 그리고 삶의 바탕으로 깔린  그분의 인격에 감복해온지가 오래되였다. 한 사회를 바꾸는데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몇명의 리더로부터 시작한다. 뜻이 있는곳에는 길이 있다고 했듯이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일도 해낼수 있다.   크리스토퍼리더십코스는 11주간 진행되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코스인데 연변에서는 줄곧 집중코스로 10일 연속 진행되는 코스로 해왔다. 그러다나니 코스 참가자들한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연변의 많은 분들은 아주 어려운 코스였지만 너무나도 잘 완성하였다. 처음 대인연설을 위하여 파워포지션에 나갈때면 떨리고 두려웁지만 용기를 가지고 따라하면서 우리는 용기를 배웠고 도전을 통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어떤것이든 시작이 있어야 그 결과가 있다. 도전을 하는 자에게 비로서 성취가 있는것이다. 이런 우화한편이 기억난다. 봄이 되니 막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비옥한 땅에 누워있던 두알의 씨앗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첫번째 씨앗이 말했다. “너는 얼마만큼 자라고 싶니?” 두번째 씨앗이 대답했다. “나는 솔직히 밖에 나가기가 좀 겁나, 바람도 많이 불고 때론 비도 올 거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어떻게 견뎌 내야 할지 너무 걱정돼.” “왜 그런 걱정을 하니? 그런 바람이나 비, 태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친구야. 그들이 있어야 우리는 밖에 나가서 더 강하고 튼튼한 열매가 될수 있어” 그래도 두번째 씨앗의 표정에서는 어두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씩씩한 첫번째 씨앗은 계속 말했다. “나는 열심히 자랄거야! 뿌리를 길게 내리고 줄기는 곧게 뻗어서 바람을 따라 몸을 흔들며 봄을 노래할거야. 봄의 따스함을 맘껏 느끼고 잎사귀에 떨어지는 아침 이슬의 희열을 맛볼테야. 가을이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싶어.” 첫번째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하루하루 열심히 토양의 영양분을 빨아들여 자랐다. 얼마 뒤 그 씨악은 새싹을 틔웠고 조금씩 위로 뻗어 나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두번째 씨앗이 말했다. “나는 여기 좀 더 있다가 나갈래.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면 단단한 돌에 부딪힐거고. 힘껏 땅위로 뚫고 나간다 해도 연약한 줄기가 다치고 말거야. 여린 새싹이 돋아나면 소가 먹어 버릴지도 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아이들이 뿌리까지 뽑아 버리겠지. 아무래도 상황을 좀 더 지켜보다가 안전해지길 기다려야겠어.” 그래서 두번째 씨앗은 땅속에 계속 숨어 있었다. 며칠후 암닭 한마리가 모이를 찾아 먹으며 마당을 이리저리 쪼아 대고 다녔다. 땅속에 숨어 있던 두번째 씨앗은 그렇게 암닭의 배속으로 들어 갔다.   그새 한국의 많은 조직과 자선단체에서 중국의 조선족 사회를 위하여 돈과 정력을 쏟고 있지만 크리스토퍼처럼 꾸준하게 말도 없이 십년가까이 연변과 중국에서의 리더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회사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연변에 올때 연변과학기술대학의 학생들을 상대로 코스가 시작되였다. 한국크리스토퍼의 김원채 사무총장님이 이 코스를 이끌고 중국을 십여차례 다녀갔다. 무보수로 봉사차원에서 강의를 위해서 많은 강사님들이 함께 해주셨다. 그 당시 크리스토퍼의 중국진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부정적인 시각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동수원장님의 강한 리더십과 김원채 사무총장님의 강한 집념으로 연변에서 매년 끊이지않고 크리스토퍼는 진행되여 왔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안전한지의 여부를 확인한후에야 비로서 일에 착수하려고 한다. 이는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자리잡은 두려움은 실패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결국엔 어떤 일도 시작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크리스토퍼리더십센터 김원채 초대사무총장님은 크리스토퍼리더십코스 강의중 쓰러지셔서 영영 일어나시지 못하셨다. 그러한 그분의 정신이 씨앗이되여 연변에서는 점차 크피스토퍼의 꽃이 피여나고 있다. 후임을 맡으신 한용현 사무총장님도 매년 수차례 한국의 강사님들을 이끌고 연변에 오신다. 일년에 한두번도 아니고 4차 5차씩 연변에 오셔서는 매번 보름가까이 강의를 진행한다. 오전에는 과학기술대학의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하고 저녁에는 지역사회의 리더들을 상대로 진행한다. 이제는 크리스토퍼도 연변에서 집중코스뿐이 아닌 정규과정으로 진행하려고 준비하는 단계이다. 에치투오 리더십코스를 진행하고 강의해오면서 항상 느끼는 여러가지 메시지가 있다. 에치투오가 발전하고 지역에서 자리잡기까지 크리스토퍼가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잘 진행될수 있을가하는 생각이다. 한용현 사무총장님은 에치투오 강의에 방청하시면서 많은 조언과 방법을 제시해주신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현재의 크리스토를 발전시켰으리라는 생각이들고 내가 스스로 개발하고 진행해온 에치투오리더십의 발전에도 크리스토퍼의 공헌이 다분히 담겨있다. 몇년전 크리스토퍼리더십센터 연변센터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나는 십분 망설였던적 있다. 그러나 고민은 잠간이고 기꺼이 그 직책을 맡아 오늘까지 진행시켜왔다. 잘 되였는지 잘 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기꺼이 어떤 일을 맡아서 하려는 자세가 우리를 발전시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방 안에만 있으면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오히려 퇴보할 뿐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이 기회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크리스토퍼를 진행하면서 깊이 느꼈다. 스페인의 사상가 오르테가 이 가제트는 “노력이야말로 진짜 스포츠이다”라고 말했다. 오르테가는 사상가였지만 사냥도 좋아했다. 말과 일체가 되어 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다. 말은 숨을 헐떡이고 사람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매달린다. 때로는 호수가에 군생하는 갈대숲에 앉아 있기도 하고 몇 시간이나 할일없이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무엇을 위해 이런 고생을 하는가 하고 자문자답해 본다. 일과 달리 그런 노력이 돈과 명예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냥이나 낚시질의 고생을 불평하지 않는 것은 왜서 일까? 영혼의 자유가 있기 때문일것이다. 돈이나 명성과는 달리 순수한 기쁨이 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강제로 시키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장애와 고통을 극복해 갈때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사냥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스포츠에 공통되는 즐거움이다. 이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변하고 있고 우리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옛날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평생동안 하셨음직한 결정들을 우리는 일년안에, 한달안에 다 하기도 한다. 가만히 있기에는 변화는 무서운것이다. 육체의 변화도 그렇지만 우리 마음의 변화가 더욱 그렇다. 모든 일에 도전할때 일이 아닌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으로 한다면 능률은 엄청나게 향상 될것이다.  크리스토퍼를 하는 모든 강사님들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듯 하다. 에치투오를 진행하는 모든 강사님들과 봉사자들, 모두 스포츠를 하는 마음으로 봉사의 의미를 가진다면 영혼의 즐거움은 훨씬 커질것이며 봉사가 순수할수록 인생은 더 아름답고 느끼는 행복의 크기도 더 커질 것이며 영혼이 자유로울수록 성취감은 더 깊어질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한국 크리스토퍼리더십센터 한용현 사무총장님 일행이 새로운 개강을 위해 오시는 날이다.  은근히 잠이 오질 않는다. 월요일의 도전적인 한주가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리라. 한주가 모여 한달이 되고 한달이 모여 일년이 되고 그 일년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이 만들어진다. 내일의 도전 오늘의 도전들이 모여 성공과 성취를 만드는것이 아니겠는가. 소중한 내 인생, 도전을 받기보다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매일 매일 도전과 성취로 가득 채우고 싶다.  
71    재밋게 보는 내인생 쉽게 배우는 주역1-2 댓글:  조회:1479  추천:2  2015-08-15
1-1의 계속으로...... 그런 주역의 '계사전'에는 점을 치는 원리와 해석 방법에 대한 원리적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을 이용하려면 먼저 계사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사전은 주역의 사상과 이용 원리를 해설한 보충 설명입니다. 그러나 계사전에도 충분한 설명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계사전에 대한 해석에따라 역을 운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점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계사전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통적으로 주장하지만 지금 학자들은 전국 시대에 그 대부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고대의 문헌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중에 끼어든 대목이나 순서가 뒤바뀐 부분들이 있다는문헌학적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계사전의 중심 사상이 공자의 사상이라는 주장을 뒤집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계사전의 내용도 해석에서 일치를 볼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역이라는 거대한 숲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그 의의를 정리하고 학문적으로 다시 정리하는데 무게를 두어야할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제가 여기 오면서 친구를 만났는데 대학에 가서 주역강의를 한다고 하니 아주 이상한 눈길로 보는것이였습니다. 아직 이 지역에서는 주역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가 너무 결핍한것 또한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역을 점술로가 아닌 의리로 풀고 싶은 마음이 더 생겨나는것 같습니다. 일단많은 사람들은 주역은 어떤 책인지부터 문의해오는데 그때 그걸 단마디로 정리하려니 문뜩문뜩 난감할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역(易)이라 함은 사서오경(四書五經: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가운데 하나인 역경(易經)을 말합니다. 즉 주역(周易)을 가르키는 것이지요.  주(周)는 중국왕조의 명칭이고 주나라의 역 이라는 뜻입니다. 역(易)은 책이름이니 주역(周易)이라함은 그대로 주나라 때의 역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은 주나라 이전의 하나라와 은나라에도 역이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에 들어선 나라인데, 에 기록된 중국의 역사는그보다 수천 년을 더 올라갑니다. 주나라 바로 앞 왕조가 은나라이고, 은나라 앞이 하나라입니다. 하나라의 역을 '연산'이라 하고 은나라의 역을 '귀장'이라 한다고 아까도 말씀드렸었습니다. 어쨌든 이두 역의 내용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시다면 이란책을 참고하실수 있지만 역시 상세히 기술되지는 않았습니다.  주역(周易)의 자의적(字意的) 해석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도 합니다만 그것은 후세의 사람들의 해학적인 의미가 더 깊다고 하겠습니다.  즉 주(周)는 두루주, 나라주이므로 천지사방을 포함한다는 공간적인 의미와 주나라 때라는 시간적의미로 볼수 있다는것입니다. 한마디로 시공을 포함하고 있는것이지요. 易은 바꿀역, 쉬울이의 뜻이 있으므로, 때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시간적 의미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는 보편적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역은 시공(時空)을 포괄하는 우주진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역이 철학서임과 동시에 미래예지를 주는 매개체로서의 점술서이니 양면성을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음양조화라는 주역의 기본과 상통합니다. 음양의 대립상승(代立相勝)과 보완상함(補完相含)의 뜻이 있는것이지요. 음양에 관한 더 깊은 내용은 제의 다른 강의로 만들어진 음양오행과 건강이라는 책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것입니다. 주역은 세상을 관계론적으로 인지하는 범주(範疇)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주역의 수(數)에는 의리(義理)가 있고, 상(象)에는 성리(性理)가 있기에 인간의 '부귀와행복 추구권'과 아울러 '자연의 진리와 인간의 도리(道理) 탐구'라는 두 축의 음양조화를 이루어야옳다고 볼수있습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주역이 본래 의도한 [의문의 결단]을 넘어서 일신의 영달로 치닫는탐욕(貪慾)이 주역을 이상하게 변질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또한 주역의 본질인 순환의 원리를모르는 소치에 있는 것이니 주역을 배우시는 입장에서는 경계에 경계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역을 접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천하의 대법(大法)을 확립하여 자신이 스스로가 떳떳하게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을 아는것입다. 그러기 위해 주역은 기울지 않게 음양의 두 눈으로 봐야 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즉 음지의 입장에서와 양지의 입장에서의 양쪽을 겸해야 함입니다. 자사의 중용지도(中庸之道)도 주역의 이러한 의미를 이해한데서 나왔을것입니다. 한마디로정상적인 사람은 왼팔. 오른팔 다 사용함이 온전함을 다들 아실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역을 배우면서 의리와 상수의 공부를 같이 해야한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어서 그런 주역을 굳이 체계를 분류한다면 크게 경문(經文)과 역전(易傳)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있습니다. 경문은 본문에 해당하며 역전은 경문에 대한 해설인 셈이지요.  일반적으로 팔괘(八卦)는 전설의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그었고, 괘사(卦辭)는 문왕(文王)이 유리에유폐되었을 때 지었고, 효사(爻辭)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다들알고 계시지만 처음 주역강의에 참가하는 분들이 상당수라는 점을 생각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것입니다. 역전은 10개의 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십익(十翼)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경문의 내용을 보조하는 '열개의 날개'라는 뜻으로 볼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십익은 공자가 지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것이 공자가 지었다고 믿고싶군요. 특히 십익 가운데 가장 철학적 내용이 담긴 계사전(繫辭傳)은 공자의 저작으로 인정되고 있기도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주역을 배우시려면 공자의 이 계사전은 꼭 읽어야 할것입니다. 서양은 시대에 따라 주위 환경을 이해하는 관점이 달라져왔습니다. 합리주의적 정신에 의해서 물질적 진실을 추구하던 서양에서는 물리학적 진리가 시대적 관점을 주도해왔고 다른 학문은 이를 응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뉴톤 시대의 고전역학에서는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몇 가지 물리 법칙으로 모든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였고 그 법칙으로 유추한 실제 상황이 진실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이론들이 일사불란하게 우리 생활에 적용되었고 사람들은 과학의 정확성과 위대함에 감탄을 했습니다. 같은 시대의 동양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서양의 물리학적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관점의 신빙성을 점점 잃어 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당시동양에서는 너무 주역의 상수에 고집하고 또 관념론적인 학문에 매달리고 형이상학적인것을 추구했던 결과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양을 침범하면서 물질문명에 기가 죽은 동양인들은 자기의 관점을 버리고 물질문명의 기본이 되는 고전역학이 주도하는 과학적 관점을 수용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동양에서 주위 환경을 이해하던 관점인 역학(易學-음양오행론)은 교육에서 제외되고 서양과학만 교육을 받게되었던 것이지요. 제가 어릴때에도 주역에 대해서는 듣도보지도 못했습니다. 대학에서야 비로서 주역에 관련된 책을 접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한국이나 일본등지에서는 동양학을 다루는 전문대학에서는 잠깐 뜻풀이 정도 교육을 받지만 대학 갈 때까지 과외수업을 받으면서 무수한 연습문제를 풀어보는 수학이나 물리 교육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 청강오신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과학이 더욱 발전하여 우리의 관심이 양자와 같은 미시의 세계와 은하계 밖의 거시의 세계에도 미치기 시작하면서 뉴톤의 고전역학이 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고전 역학이옳지 않다는 것도 증명되었지요. 새로운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양자역학적 관점이 동양의 역학적관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교수는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개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보다 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우리가 말하는 음양, 태극, 색즉시공 등등도 같은 의미로 풀이할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패러다임이 양자역학으로 바뀌면서 세계의 학문을 주도하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 정립되어 있는 자기의 학문을 양자역학적 관점으로 정립하기 시작하였고 동양철학의 진수인 역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초과학인 물리, 화학, 생물 등은 빠르게 새로운 관점에서 학문 정립이 시도되고 있고 응용과학인공학, 의학에서도 이제 양자역학적인 관점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미국에서는 동양학 붐을 일으켰고 미국 국립보건원은 중(한)의학을 비롯한 대체의학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이 연구에2001년에는 1200만 불의 연구비를 책정하여 매년 큰 폭의 연구비 증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언젠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볼때 물리학자들과 동양 수도사들의 관심이 어떻게 보면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공통적인 패턴을 찾는 것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찾기 위하여 식음을 전폐할 때도있고 동양의 수도사들은 이것을 화두로 삼고 수도에 정진합니다. 다른 것은 그들이 발견한 패턴을 수식으로 표현하는가 음양오행이라는 부호로 표현하는가 하는 차이일뿐입니다. 역경은 득도한 수도사들이 도의 패턴을 디지털 코드로서 도시한 책인데 같은 화두를 들고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던 서양의물리 학자나 수학자들 눈에 띠지 않을 리 없다는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바지를 뚫고 나오듯이 훌륭한 학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지게 된다는것입니다. 이진법을 발표하여 지금의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 라이프니츠는 18세기에 역경을 보고 5000년 전에동양에서 이진법적 디지털이론으로 쓰여진 역경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역경을 보고 양성자(+), 전자(-), 그리고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모델을 발표했습니다. 역경을 숭상한 나머지 귀족의 작위를 받는 식장에 태극휘장을 붙인 예복을 입고 나타나기도했답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법칙만을 찾던 고전역학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역경의 음양적, 상대적 관점으로 물질을 이해한 이론인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물질(음)은 언제든지 에너지(양)로 변하고 에너지는 언제든지 집약되어 물질화 할 수 있다는 음양법칙을 E=MC²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이 이론으로  원자폭탄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역경은 아이디어의 광산과 같은 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민하면 고민한 만큼 많은 아이디어를역경에서 캘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학자들이 역경을 연구하고있다고 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본데 의하면 일단 서양도 이제는  영어 역경 연구서가120여권이상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과학자들이 역경 속에서 프랙탈 구조, 유전자 코드 등 첨단과학을 발견하고 감탄해서 많은 책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역경이 동양의 학문이라고 하지만 역경에서 표현하고자하는 뜻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동양사람은매우 적다고 볼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역경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역경의 큰 뜻을찾아내려는 시도를 주나라 때 한문 해석에만 매달려 있는 교조주의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역경은 역경(易經)이라 하여 경전으로서 권위가 있는 책입니다. 역경의 가치가 다른 경전과 다른 것은 글이 아니라 부호로 써 있다는 점입니다. 역경은 지구상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의변화 패턴만을 도시(圖示)한 책이 아니라고 저의 많은 강의에서 누차 말씀드렸었습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소립자의 세계나 은하계 밖의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 사는 미물에게도 적용되는 공통 패턴을 도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통 패턴을 가리켜 도(道)라 하는데 역경은 음양이라는 디지털 부호로 그 도를 도시한 책이기도 합니다. 글이란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이나 현상을  연상 할 수 있는 부호이기는 하지만 우주 만물의 공통 패턴을 표현하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 글은 보는 사람의 시대와, 지역과, 본인의사고 경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연상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름이라 부르는것은 이미 진정한의미의 이름이 아니고 도라 부르면 이미 진정한 의미의 도가 아니라 했던것입니다. 도를 정확히 전하기 위해서는 부적합한 글로는 쓰지 않고 서로 상대적인 음양이라는 코드로 도시한 것이 역경이라고볼수 있습니다. 후에 주나라 문왕이나 공자가 이 괘들에 글로서 설명을 붙여 유교적 경전(經典)화 하였습니다. 그 옛날에는 역경의 난해한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지를 못했습니다. 유교적 글귀 해석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니 역경의 도를 찾아내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것입니다. 고대 글귀에 매달리지 않고 진리를 찾기 위한 끝없는 노력과 많은 고민을 한 서양의 과학자들이 보다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경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상들이 역경에서 발견한 창조 패턴으로 만들어놓은 건축물, 음악과 미술, 풍습과 놀이와 많은 접촉을 가지면서 역경의 패턴이 그냥 몸에 배어 있기도 합니다. 역경의 가치를 인식하고 기본적인 패턴을 익히고 주위의 전통적인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면 역경의 패턴을 서양인들 보다 쉽게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과학을 주도해나갔듯이 동양인들이 역경의 관점으로 이루어진 현대과학을 주도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역경을 연구하던 동양 삼국 중에 한국은 유난히 역경의 패턴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듯 싶습니다. 특히 태극이 유난히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서오경 중에 가장 높은 단계인 역경을 교육하기 위하여 향교의 정문마다 태극이 그려져 있었고 선왕을 신으로 모시는 종묘의 홍살문에는 신과 우주의상징인 태극이 있고, 역경의 패턴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동양 파동학인 율려 (律呂)에서 인체에 가장 가까운 파동 생성의 악기인 북에 태극을 그려 넣었습니다. 역경은 우리가 가장 존중하던 학문으로 역경의 상징인 괘와 태극이 한민족의 상징으로 결국 국기에 그려지게까지 됐던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역경의 괘는 전설시대의 황제인 복희가 하늘에서 전해진 하도와 낙서라는 두 장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복희를 중국인들은 그를 비하하여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복희씨라고 하대하는 표현을 씁니다. 역경에 복희는 진방(震方) 출신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진은 팔괘 중의 하나로서 중국의 황하유역 동쪽을말합니다. 회남자라는 중국의 유명한 책에 복희는 동방의 신으로 갈석산과 그 동쪽을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희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역경의 과학성으로 미루어 볼 때외계인일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역경의 괘는 복희가 만들었지만 그 괘들을 달리 배열하고설명을 붙여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藏易) 등의 다른 역경이 있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사조(思潮)와 환경에 따라 역경의 해석을 달리하여 실생활에 응용하기 쉽게 하는 것이 역경의 변화입니다. 지금의 역경이 주나라 때의 역경이니 너무 오래돼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응용하기도 어렵죠.그래서 역경을 현대의 과학용어로 해석하고 응용할 수 있는 과학역(科學易)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지 오래되였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인 역경을  연구하여 현대과학을 주도할 수 있고 우리 조상들의 뜻을 기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중박수)  박수감사합니다. 이제 여기에 뜻을 둔 학자들과 함께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하여 현대판 주역을만들어 보려고 생각하니 모든 분들이 적극 참여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주역을 공부하는 분들은 주역의 부호학적인 의미를 이해할수 있어야 합니다. 문자는 어떤 뜻을 전달하는데 창백합니다. 주역의 건쾌그림 하나 놓고도 우리는 수십권분량의 문장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작은 부호가 큰 뜻,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이지요. 즉 주역은 과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주역(周易)은 과학(科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서 풀수없는 많은 문제를 그리고 베일에 가려진 세상의 이치를 주역을 통하여 깨달을수 있습니다. 그러한 베일을 벗길 수 있는 신묘함을 갖고 있기에 그 차원이 과학보다 우위를 차지한다고많은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주역을 학문적으로 볼때 형식적인 구분으로는 인문학(철학)에 속할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주역에는 철학. 도학. 수학. 천문학. 지질학. 종교학.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등의 모든 학문요소가 담겨있어 학문의 원형(原型)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역이 과학의 원형임을 입증하는 예로는 헤겔의 정(正). 반(反). 합(合)의 삼 단계 변증법 원리는 주역의 음양소장(陰陽消長)에서 도출되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주역의 태극도(太極圖)의 상대론에서 그 발상서로 상통하는 것입니다. 또 주역괘상과 컴퓨터의 기본원리인 이진법의 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즉 주역은 음양론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삼라만상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와 변화이치가담겨있는 보편적과학(普遍的科學)입니다.  또 주역은 통시성(通時性)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즉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나 두루 적용되는것도 과학성과 상통하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주역에 대한  공부를 하려면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할것입니다. 아무쪼록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께서인내심과 초심을 버리지 마시고 마지막까지 끝까지 견지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럼 오늘은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네 김문일 회장님 감사합니다. 좋은 강의 들려주심에 오늘 이자리에 오신 모든 수강생분들을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시간상 관계로 질문을 받지 않고 다음 시간부터 질문을 받을수 있도록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겠습니다……(중략) 오늘도 좋은 강의를 해주신 김문일 회장님께 다시한번 박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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