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行하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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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我的旅行日记之以色列,巴勒斯坦3-途经土耳其 댓글:  조회:2143  추천:0  2015-03-26
飞机在北京时间凌晨十二点十分钟正点起飞将近飞行了九个半小时终于到达土耳其伊斯坦布尔。 现在是北京时间应该是早晨9点45分钟,土耳其时间却是早晨4点45分钟。与北京时间的时差5个小时。 飞行中因为选择了经济仓位我那娇贵的屁屁无法承受长时间的压迫不得不左右反侧方能消除那痛苦的麻木感。 凌晨4点半飞机上俯瞰的伊斯坦布尔在万家灯火的闪烁下闪闪发光。 伊斯坦布尔是连接欧洲和中东,非洲地区的枢纽,也是世界宗教的碰撞地。 这里有无数的世界闻名的教会和伊斯兰教的拱形屋顶的教堂。 土耳其出名的是当地人手工制作的地毯,看着那些眼花缭乱五花八门的地毯样式只能望毯兴叹了! 那是因为虽然这里的地毯质量超好,价格也不贵,不过膩也沉重。像我这样懒惰的旅行者来说地毯是坚决不能带的物品之一。 当然,如果那些地毯能自行飞起来就另当别论了。想起小时候阅读过的“一千零一夜”的阿拉伯神话世界,那里的地毯是能带着人飞起来的。 那时候多么向往有一个那样的地毯啊! 不过那些向往都是在不能学会孙悟空72变本事的前提下退而求其次的愿望而已。 写到这里突然很想念国内的儿子们! 儿子们觉得东方的神仙比起西方的神仙有本事的多,主要是因为他们觉得东方的神仙不用地毯或者扫把(西方的巫女是骑行扫把的)也能腾云驾雾。 我小时候也很喜欢孙悟空,儿子们也很喜欢,当然儿子们也看过“一千零一夜”的故事,我们很有共同语言。
29    我的旅行日记之以色列,巴勒斯坦2 댓글:  조회:2169  추천:0  2015-03-25
话说男儿志在四方而我们真正的答案却在自己的内心。 寻访世界的角落并非为了得到什么而是更快的找到开启自己内心世界的钥匙而已。 一个人的旅行可能是孤单的,可我知道我们本来就很孤独。 飞机起飞前在机场的中餐厅自斟自饮小喝了两杯啤酒。 我出发前公司办公室的一员工因健康原因提出辞呈去往外地与父母团聚。这么多年风风雨雨都过来了,我以为自己早已经看淡那些来来往往,聚散离合。 可互相在一起一段时间,有了彼此信任和良好的合作后突然分别,有可能这辈子再难相见难免有些伤感。 很多人只看男人的魄力与手腕却很少理解男人的柔情。 对待自己养的花花草草,宠物小狗,伴侣小猫亦是如此何况是人乎。 餐厅的老板娘放着一首经典老曲,罗大佑的“恋曲1990” 乌溜溜的黑眼珠和你的笑脸 怎么也难忘记你容颜的转变 轻飘飘的旧时光就这么溜走 转头回去看看时已匆匆数年 苍茫茫的天涯路是你的飘泊 寻寻觅觅长相守是我的脚步 黑漆漆的孤枕边是你的温柔 醒来时的清晨里是我的哀愁 或许明日太阳西下倦鸟已归时 你将已经踏上旧时的归途 人生难得再次寻觅相知的伴侣 生命终究难舍蓝蓝的白云天 轰隆隆的雷雨声在我的窗前 怎么也难忘记你离去的转变 孤单单的身影后寂寥的心情 永远无怨的是我的双眼 永远无怨的是我的双眼 我轻轻地跟着唱着唱着眼睛竟然有些湿润。想起我那终将逝去的青春,想起那些无可奈何的聚散离合, 纷纷扰扰中也将烟消云散的人间富贵,心中隐隐作痛。
28    我的旅行日记之以色列,巴勒斯坦 댓글:  조회:1935  추천:0  2015-03-25
早晨7点30分乘坐南航延吉至北京航班来到北京。 上午还晴朗的北京天气到了下午下起了大雨。幸亏下雨,北京的空气相对清新了很多。 本次打算出访土耳其伊斯坦布尔、以色列、赞比亚、肯尼亚和南非等国家。 纠结一番后订到土耳其航空公司北京飞往伊斯坦布尔的TK021+TK784航班。打算路径伊斯坦布尔再飞往以色列特拉维夫。 以色列和土耳其都有很多宗教圣地。尤其耶路撒冷是基督教和伊斯兰教共同主张的圣地,意义深远。 为安全期间旅行非洲的旅行者都必须打黄热疫苗。我是出发前在出入境检验检疫局打的疫苗,疫苗反应还挺大,害得我到现在还浑身酸痛。 今晚航班是零点十分钟起飞估计飞行9个小时。离出港还有点时间,需要养精蓄锐以备以后的长途跋涉吧! 在机场附近的酒店里订了房间条件还算不错,这些天实在太累只想美美的睡上一觉。
27    삶의 중도 댓글:  조회:3741  추천:1  2015-03-20
  오늘은 가끔씩 바람이 불었다. 어제까지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더니만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봄바람이라고는 하지만 따뜻하기보다는 쌀쌀한 기운이 더 해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드디여 꽃샘추위가 시작되려나본다.   무척 바쁜 하루 일과를 마무리짓고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래 쓰던 컴퓨터가 너무 속도가 느려져서 새로 하나 바꾸었는데 하드에 저장된 내용들을 옮기면서 순서가 바뀌여서 어디에 저장했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주동안 고생했었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있던터라 마음먹고 정리하기로 했다.   컴퓨터를 정리하면서 보니 온갖 잡동사니 문건들이 가득하다. 오래동안 열어보지도 않은 많은 자료들을 지우면서 디지털 혁명을 통한 삶의 변화를 느낄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이기때문에 뭐든지 너무 빠르다. 비행기도 더 빨라지고 기차도, 배도, 자동차도 다 빨라졌다. 사람들의 걸음걷는 속도도 빨라졌고 심지어 말하는 속도마저 빨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편지로서 소식을 전했기에 기다리는 마음과 그런 기다림속에서 사랑을 싹틔우거나 마음의 공간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지만 요즘같으면 지구촌이 모두 하나가 되여 휴대폰으로 번호만 누르면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나오고 인터넷만 오르면 얼굴보면서 대화를 맘대로 하니 빨라지기는 정말 빨라졌다.   어릴적 보았던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책에서 묘사된 미래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것이다. 디카로 숱한 사진들을 찍었지만 실지 인화하는것은 한두개도 안된다. 며칠 보다가 한쪽 구석에 저장해둔다. 그러다가 필요없거나 자리가 부족하다싶으면 그냥 지워버리는데 순간순간을 소중히 사진으로 저장해두고자 했던 옛날의 그 마음이 이제는 퇴색한지 오래다.   물질이나 풍요로움에 빠져 즐기다보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너무 돈이 많은것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옛 성현들이 말씀하셨던것이다. 뭔가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다.   중용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知者过之,愚者不及也”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중용의 미덕을 이야기한 말이다.   ‘중용’(中庸)이란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일, 즉 균형을 잘 잡는다는 의미로서 유가에서 가장 존중하는 개념중의 하나이다.   21세기인 지금은 모두가 영악하고 똑똑한척 해서 그 중도를 지키는 지혜로운 자를 찾기 어렵다. 본래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서로 길이 다르기에 중도를 지켜야 하는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탐구심이나 호기심이 왕성해서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돌리고 쓸데없는 일을 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이해수준이 낮기 때문에 어쨌든 미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본래 중용이란 이처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너무 잘사는 대가집 자식으로 태여나는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다. 너무 풍요로워서는 자신을 찾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적에 읽었던 “로빈손 크루소”라는 책의 서두에 로빈손의 아버지가 자꾸만 배를 타고 길을 떠나고자 하는 아들에게 중산계급의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부탁을 뒤전으로 하고 길을 떠난 로빈손은 조난을 당하게 되고 수십년간 무인도에서 고생해야만 했다. 자기 분수를 벗어나는 행동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말은 정답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물학적인 유기체이기에 생물학적인 충동을 느끼지 아니할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관능적인 유혹에 빠지거나 그런 유혹을 절대적인 믿음처럼 믿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돈을 벌고 또 벌고 잘살고 또 잘살다가 죽는것, 그것이야 말로 이 생을 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인양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로매진한다. 그러다가 문뜩 죽는 날이 왔을때 허무함과 아까움을 이기지 못해서 더욱 삶을 갈망하면서 고통스러워 하는것이다. 때로는 나도 그냥 훌쩍 어딘가 떠나서 아무것도 구애됨이 없고 근심도 없는 무애무우(无碍无忧) 의 생활을 해보고 싶을때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충동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이 나한테 부여한 무거운 책임을 지지 않기위한 경향일 것이고 내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삶의 책임과 마음의 수련을 함께 해야하는것이 정답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중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억지로 어딘가에 숨어서 수련을 하거나 출가를 해서 공부를 하는것만이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것은 아닐것이다. 깨달음이란 하늘에 있는것도 아니고 땅밑에 있는것도 아닌 바로 우리 삶속에 하나로 융합되여 있기때문이다. 도시로부터 도피하여 산속에서 홀로 사는 은자(隐者)는 아직도 여전히 환경에 끌려다니는 2류급 은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큰 대덕이나 은자는 오히려 시중에 숨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주위 환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유유히 자기를 지키며 생활할수 있는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로 돌아와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여자와 사귀나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대덕(大德)이고 대은자(大隐者)이고 고승(高僧)인것이다. 그래서 ‘大隐隐于市’ 라는 말이 나왔나본다.   에치투오 강의에서 항상 이야기했던 다섯가지 성공양식을 돌아본다. 그 첫번째가 ‘마음의 자유’이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울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마음의 자유가 없다면 무슨 행복을 운운할수 있겠는가?   두번째가 ‘건강의 자유’다. 육체가 건강하고 자유로워야 비로소 삶을 꾸미고 내 자신의 속뜰을 풍요롭게 꾸밀수 있다.   세번째는 ‘사랑의 자유’ 이다.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고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일수 있을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느낄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네번째가 ‘경제적인 자유’이다. 에치투오 리더십과정을 개발해서 처음 교재를 만들면서 썼던 말이 있다. 라고 적었다. 그걸 지금까지 강의 제강으로 쓰고 있다. 물이 너무 많으면 홍수진다. ‘십년가뭄에는 살수 있어도 한번 홍수에는 망한다’ 는 옛말이 있다. 돈이 너무 많으면 그렇게 홍수처럼 우리 마음속에 겨우나 세워두고자 했던 꿈과 희망과, 노력을 통한 풍요롭고 행복한 마음을 싹 쓸어버린다.   다섯번째가 ‘영의 자유’이다. 영이란 바로 우리의 영혼이다. 이것을 마음과 동일시 하면 큰 착오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을 빼면 그냥 고기덩이일 뿐이다. 그때면 우리도 동물과 다름없는 동물적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것은 더 큰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늘과 땅사이에 인간세상이 있다는것은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그 중간에서 바른 길을 찾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생계가 걱정될 정도로 가난하다면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마음이 깃든 육신에 그늘이 지기마련이다. 너무 좋은 집에 살지도 않고 너무 형편없는 집에 살지도 않고, 너무 화려한 옷이나 자동차를 사지 않고 그러나 또 너무 초라하지도 않게 다니며, 너무 좋은 음식을 탐하지도 않고 너무 나쁜 음식을 먹을 지경도 아니고 부모에게 바라지도 않고 자식에게 기대지도 않으며 친구도 너무 많지 않고 전혀 없지도 않으며, 술도 너무 과음하지도 않고 전혀 입에 대지 못할 지경도 아니라,미훈의 경지를 즐길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너무 잘살지도 않고 또 너무 가난하지도 않으며 너무 똑똑해서 전문가노라고 으스대지도 않고 또 너무 바보스러워서 내 자신의 속뜰을 들여다 볼줄을 모르지도 않는 그런 삶이 중도의 삶이다. 이런것을 ‘위대한 평범’이라고 말해도 좋을것이다. 논어에도 오직 한마디 뿐이지만 중용에 대해서 평한 말이 있다. ‘중용의 덕은 최고의 미덕인데 사람들은 오래 그것을 잊고 있다.’ 라는 말이다. 거기에 관련된 논어의 이야기가 있다.   공자의 제자 중 자공(子贡)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머리가 뛰어나며 말재주가 좋아 실업가로서도 대성한 인물이였다. 이 사람은 또 인물평도 좋아한듯 싶다. 어느날 공자의 젊은 제자 자장(子长)과 자하(子夏)를 가지고서 공자의 의견을 구했다. “자장과 자하는 누가 더 뛰어납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자장은 도가 넘치고 있고 자하는 도가 부족하다.” 자장은 요즘 현대인 같으면 앞에서 분수나 도를 분별못하고 먼저 달리는 경향이 있었던것 같다. 자하는 반대로 적극성이 없고 소극적인듯 하다. 이때 자공이 “그러면 자장 쪽이 뛰어나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과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过犹不及)라고 한말로 유명하다.   지나쳐서도 않되고 부족해서도 안된다. 균형잡힌 인간상이 이상형이라고 공자는 보고 있는것이다. 내 육신의 자유와 영의 자유를 위해서 해야하고 배워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컴퓨터안의 쓰레기 파일을 지우듯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가득 차있는 썩은 생각들도 잘 찾아내여 깨끗이 버려야 겠다.
26    我的印度游记之-鹿野苑 댓글:  조회:2669  추천:0  2015-03-17
鹿野苑是此次印度尼泊尔八大圣地之旅的最后一站。即将离开这个美丽,纯真,又有些荒诞的国度竟然有些恋恋不舍。 当年,释迦牟尼佛在菩提伽耶悟道成佛后,西行200公里,来到鹿野苑,随后就在这里对父亲净饭王曾经派来照顾他的5个随从讲解佛法,这样初次宣传他的学说为初转法轮。 法轮是比喻,印度有个传说,谁能统治全印度,自然会有‘轮宝’出现,它能无坚不摧,无敌不克。得到‘轮宝’的统治者便被称为转轮圣王。把佛的说法称为转法轮,即含有这种意义,同时也显示佛祖所悟的为最高原理。 佛祖初转法轮,相传是在波罗奈斯的鹿野苑对憍陈如等五个弟子讲的。从现有经律中研究,佛祖不是一开始就讲四谛,而是首先讲了一番中道。这是符合事实的。因为原来随侍他的这五个人,看他抛弃了苦行感到失望才离去的。 佛祖最初对他们宣扬理论,应该是先批评了苦行和其他学派的主张,提出自己不苦不乐的中道学说,来证明苦行不是正道,只有中道才合理。因而讲了‘八正道’(正见、正思惟、正语、正业、正命、正精进、正念、正定),把五人说服了,然后才宣讲四谛,十二因缘的。 佛陀讲述人生轮回、苦海无边、善恶因果、修行超脱之道后5人顿悟,立即披上了袈裟,成为世界上最早的佛教僧侣。 至此,佛教最终具备了佛、法、僧三宝,成为真正意义上的宗教,并开始在印度兴起最终成为这个宗教王国中的一派。释迦牟尼佛从此开始,住世说法四十五年,讲经三百余会,化度弟子数千人。 鹿野苑也被尊为佛祖“初转法轮”之地。 佛陀最初居住在鹿野苑的穆拉甘陀库底精舍(Mūlagandhakuṭī vihāra,意译根本香室精舍),僧团逐渐扩大到60人左右,后来佛陀派遣他们到各地弘法。在当地国王与富商的支持下,佛教在鹿野苑附近传播开来。到公元3世纪时,鹿野苑已经成为重要的艺术中心,在笈多王朝时期(公元4世纪到6世纪),更是达到了顶峰。鹿野苑后来成为佛教正量部的一个中心,但在鹿野苑也发现了黑汝嘎(Heruka)与度母(Tārā)的古迹,这说明佛教的金刚乘在此地也有过传播。 中国晋代高僧法显大师和唐代高僧玄奘大师都曾来过此地参拜,这在法显大师的《佛国记》和玄奘大师的《大唐西域记》中都有记载。 在《大唐西域记》里,玄奘大师描述了鹿野苑当时的盛况:“鹿野伽蓝,区界八分,连垣周堵,层轩重阁。” 考古学家发现,这里有4、5层垒叠的寺庙和僧房遗址,说明这里的佛塔和寺庙在历史上被反复修缮建造过很多次。 此后,由于历代的战乱(特别是12世纪后期,鹿野苑遭土耳其穆斯林的劫掠,建筑等被严重破坏),佛教在印度逐渐衰微,古代的庙宇大多被毁或荒芜,鹿野苑终至湮没沉埋。直到近代,一些印度和西方的考古学家们利用玄奘《大唐西域记》里的准确记载,才找到了遗址,并进行了多次考古发掘,才让这个沉埋几百年的佛教古迹重放光彩。 这一次我真的是匆匆的来又得匆匆的回去,在佛陀初转法轮之地作为最后一站也颇有感触,也觉得意义很大。圣地巡礼不是寻找那外在的风景和隔着时空的某个地点。那应是走向我心里的旅程,我们自己的心看起来就在那里实际上他是那么的遥远。 我觉得这次旅程使我更向我的心近了那么一点点……一点点…… 准备拜别鹿野苑前往机场飞回广州,再从广州飞回延吉。踏上飞机时已经是当地时间午夜时分。飞机在德里国际机场起飞徐徐上升,这时这些天的疲倦一下子席卷全身好生困顿。 默念一遍“心经”时,已经快支撑不下去了。 向窗口下闪烁的德里挥手告别时不禁想起徐志摩的那句《再别康桥》。 轻轻的我走了, 正如我轻轻的来; 我轻轻的招手, 作别西天的云彩 …………… ……………………………… ………… ……………………… ……………………………… 悄悄的我走了, 正如我悄悄的来; 我挥一挥衣袖, 不带走一片云彩。 “再见了!印度”
25    마이너스 인맥과 시너지 인맥 댓글:  조회:1573  추천:2  2015-03-17
  “저 사람은 언제나 도움이 안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본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도움안되는 사람을 마이너스 인간관계로 보는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도움이 안되는 그러한 인간관계를 나는 마이너스 인맥이라고 부른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사촌이라고 하면 피를 나눈 혈연관계인데 땅을 사면 기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배가 아프다니……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듯 하지만 이 속담의 기본 뜻은 잘 알수 있을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사촌의 질투심”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시기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한다.   마이너스 인맥이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마이너스 작용을 노는 사람들을 가르킨다. 시기와 질투로 일삼고 서로의 인생의 도움되는 친구가 되기보다는 단점만 끄집어내고 부족점만 찾아서 헐뜯기를 일삼는다. 사업과 인생전반에 도움이 되지않는 인간관계를 미이너스 인간관계라고 하는것이다.   마이너스 인간관계의 공통점을 세가지 집어봤다.   그 첫째는 《나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이다. 친구가 잘되는 꼴을 못본다는것이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다. 친구가 성공하면 배 아프고 자신보다 잘 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는 어떤 일도 함께 할수 없다. 그런 사람임이 판정됐을때는 가차없이 버리는것이 상책이다. 자칫 곁에 두고있다보면 오히려 적이 될수도 있는것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둘째는 시너지 효과가 없다 이다. 우리말 속담에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 함께 종이장을 맞들려면 오히려 힘들고 무겁다.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시기질투를 일삼기 때문이다.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것은 있으나 없으나 같다는 말이되고 자칫 방심이라도 하면 마이너스 인간관계로 발전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나를 경쟁자로 생각한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시너지나 공통의 목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경쟁 상대로 보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조금만 잘 나가도 자신한테 불리하게 될가봐 적대시하고 미워한다.   그러나 시너지인맥은 바로 그 반대이다. 서로 성공을 바라고 내 성공과 상대의 성공을 함께 생각한다. 친구가 잘된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도와주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절로 생긴다. 내손에 든것이 없을때는 친구의 것을 들어주기도 하고 언제나 서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상대를 경쟁관계가 아닌 공동사업자로 본다. 인생전체를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함께 만들어갈 인간적인 가슴 따뜻한 동지관계를 만든다.   당신은 마이너스 인맥을 원하는가 아니면 시너지 인맥을 원하는가? 모두다 시너지 인맥을 원한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내가 우선 그런 시너지 인맥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인간고유의 감정중의 하나인 시기나 질투를 없애버릴수는 없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만 바꾸어도 쓸데없는 그런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에치투오 인맥프로그램은 바로 그러한 눈높이를 조절하고 목표를 함께하는 과정이다. 한꺼번에 10층으로 뛰여오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단 한계단 변화를 하면서 오르다보면 얼마든지 높은 곳까지 오를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시너지 인맥을 만들기 위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라. 시너지는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24    소통(苏通) 댓글:  조회:1480  추천:0  2015-03-15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님도 생각하는것이 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것이 무엇인지 님은 알고 있나요? 내가 말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님은 생각하셨나요? 웅변이 아닐지라도... 그말이 님이 듣고자 하는 말이였으면 좋겠어요. 오고 가는 말속에서 참뜻을 알고 싶어요 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무엇인지요 님이 듣고 있다고 믿는것이 내가 말한 그말인가요? 님이 듣고 있는것은 내가 말한 참뜻인가요? 님이 이해하고 싶어하는것은 또 무엇인가요? 님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것을 나도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님이 이해하는것이 과연 내가 이해하는것일가요? 님은 저 멀리서 소리치고 나는 귀 기울이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소통은 어려운것 대화도 어려운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그보다 더 어려운것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뜨거운 마음인걸요.
23    인생이란-아들에게 보내는 편지3 댓글:  조회:1481  추천:0  2015-03-15
아들아 아빠는 지금 인생을 생각하고 너는 지금 곤히 자고 있구나. 아들아 이제 니가 커서 아빠가 되면 그리고 너의 아이들이 커서 다시 아빠가 되면 그때 너도 인생이 뭔지 알게 되겠지. 아들아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길도 있고 또 험악한 길도 때로 있단다. 그러나 선택은 언제나 니 몫이란다. 평탄한 길이 안전하다고 선택하는것도 모험적인 도전의 길을 선택하는것도 모두 니 몫이란다. 아들아 큰사고는 고속도로에서 많이 난단다. 마주오는 차량이 없어 안전하다고 생각할때 가장 위험할때라는걸 명심하거라. 아들아 안전할때 안전을 생각하고 행복할때 불행을 대비하거라. 안주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도전에 게을리 하지 말거라 도전이 꼭 위험한것은 아니란다. 너의 힘과 배짱이 필요할뿐이지. 아들아 먼길을 가려면 준비가 중요하단다. 장비도 중요하고 지도책도 필요하겠지 그러나 아들아 더 중요한것은 먼길을 가기위한 수련 수련을 쌓은 사람은 징검다리도 평지걷듯이 거뜬하고 오지에서 길을 잃어도 방황하지 않지 수련이 되지 않으면 장비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넘어지기 쉽고 넘어져서 일어나기 어렵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데 니가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해서 기회를 잡을줄 알았으면 아빠는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아들아 니가 선택한 인생에 도전하거라. 그리고 이제는 니 인생을 준비하거라. 아무도 널 대신해 살아줄수 없으니
22    우리시대 우리교육 댓글:  조회:2179  추천:0  2015-03-15
  오늘은 방송국의 경제상담프로에 출연했다. 사교육에 관한 상담프로였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였다.   정부에서는 과외공부를 못하게 하고 또 숙제를 많이 내는것을 엄금함으로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려고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것임을 모든 백성들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학부모나 아이들에게 혹은 학교의 선생님이나 학교교육에 있는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국가교육체제에서 문제를 찾아봐야하기 때문이다. 점수중심으로 대학에 가는 체제가 계속되는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부에 신경을 쓸수밖에 없고 성적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학교의 등급평가에서 떨어질수 밖에 없으니 학교에서는 어쩔수없이 숙제를 더 많이 내거나 공부를 강요할수밖에 없다. 학부모로서의 입장도 그러할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갈수 없고 좋은 대학에 갈수 없다면 좋은 직장을 찾을수 없기에 어떡하나 공부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것이 현재 이시대 부모들의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이 난무하고 학교에서는 숙제를 산더미처럼 내주게 돼있다. 소학교 4학년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저녁에 열시넘게까지해야 숙제를 마칠수 있으니 휴식이나 놀이를 논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보다도 더 늦게 공부를 해야하는 소학생들은 행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보인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또 자기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남들이 머리나쁘다고 웃을까 두렵고 또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서 더욱 악착스럽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것이 현재의 현실이다.   상담프로를 마치고 나오면서 마음이 저으기 무거웠다. 요즘 공부는 지식을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지식을 억지로 쏟아넣으려는 공부이다. 지식을 익혀서 지혜를 찾으려는 공부가 아니고 지식을 모아서 출세를 하는데 쓰려는 공부일뿐이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어쩌다 이 사회가 이렇게 가고있는지 걱정이 가고 또 그걸 스스로 변화하도록 힘을 쓸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더욱 안타까워지는것이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学而不思则罔,思而不学则殆”라는 말이다. 우리 말로 풀이하면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배움을 기만하는 것이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것이다”는 말이 된다. 아주 유명한 말이기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더 깊이 풀어본다면 “독서에 너무빠져 사색을 게을리 하면 지식을 익힐수 없으며 사색에 빠져 또한 독서를 게을리한다면 독선적이 된다.”는 뜻이 된다. 지식을 익힐수 없다는것은 지식의 단편만이 잡다하게 들어있을뿐 살아있는 지혜로서의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과일나무에 비교한다면 갖가지 과일을 가득 키우고 있지만 종당에 시고 여물지 못한 과일만 달려 있을뿐이고 벌레먹고 크지못한 과일만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는것이다. 과일이 익듯이 지식도 익어야하는것이다.   요즘아이들은 거의다가 소화불량에 걸려있는 상태라고 볼수 있다. 잡다한 지식들을 가득 주입시키고 있으나 그것들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서 모두 앓고 있는것이다. 점수를 잘 받는다고 해서 잘 소화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점수일뿐  점수가 인생을 대신하지는 않기때문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더욱 걱정이 커진다. 여기저기 자연재해도 많아 지고 있지만 인간의 도덕을 상실한 행위로 인한 문제가 현재 중국의 당면한 더 큰 과제로 다가오고 있는것이다. 우리나라 총리가 지난번 상무국회의에서 현재 유독식품을 만들어서 팔고 있는 사람들을 도덕성의 타락으로 분류하여 말씀했다는 보도가 나온걸 본적있는데 공부만을 강조하고 그 생각함을 주지않는 우리 사회교육의 페단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수 있겠다.   소고기의 값을 더 받겠다고 살아있는 소의 입으로부터 수도관을 연결해서 소의 위속에 고압수도물을 주입시키는 사람들의 잔인함이나, 발암물질을 일으키는 공업화학품으로 콩나물을 길러 파는 악덕업주나, 독이 섞여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팔아서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우유업체나 모두가 이런 강압적인 점수위주의 교육에서 나온 도덕성결여로 나온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로자는 “大道废有仁义”라고 했다. 직역을 한다면 대도가 없어진 까닭에 인의가 있다고 풀이할수 있다. 물론 그 뜻을 바르게 풀이한다면 인(仁)이다. 의(义)다 하고 현재의 나처럼 도덕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 할때면 이미 대도(大道)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는 작위나 영리함을 버리고 무위자연(无为自然)의 태도록 돌아가야한다고 강조했다.   행복을 약속받는것은 점수도 아니고 남한테 보여주려는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연과 같아지려하고 자연을 본받아 돌아갈때 행복해지는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문명이라는 탈아래 자행되고 있는 자원수탈은 자연을 침해하는 결과를 나타내고 그 자연을 통해 다시 과보를 받아들이는것은 종당에는 인간 그 자신임을 알려주는것이다.   로자는 이어서 이렇게 덧붙혔다. “커다란 허위가 만연하는것은 인간의 영리함이 제멋대로 날뛸때 이다. 자부출(出慈父)이니, 효자출(出孝子)이니 하고 외치는 것은 육친의 애정이 엷어졌을때 하게 되고 충신이 나타나는것은 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러워졌을때이다.” 라고 했다. 딱 맞는 말씀이다.   지금 인간의 영리함으로 자연은 파괴되고 지식주의를 부르짓는 서양의 교육때문에 동방의 문화가 말살되고, 인륜이나 도덕보다는 실용주의나 물질에 눈이어두워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의 바탕이 어지러워졌다는 의미로 볼수 있다. 학교에서는 도덕이나 품성보다는 성적에 바탕을 두고 선생님들은 학생간부등용할때 학부모의 가정형편을 중심으로 살피는 풍토를 우리가 어찌 없다고만 하겠는가? 그것이 눈감고 아웅하는격이 아니고 무엇일까. 또 사회에서는 부패한 관원들이 남벌하고 당과 국가의 제일 큰 과제가 부패척결로 나설지경에 이르렀다는것은 사회의 병패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짐작할만한것이다.   윗물과 아랫물이 모두 그러하니 그 중간의 백성들의 도덕성을 우리가 어찌 나무람만 할것인가. 인간의 힘으로 도시를 만들고 큰 집을 짓고 아파트를 쌓아올리지만 사람과 사람지간에는 철근 콩크리트에 가로 막혀서 대화가 없어지고 인정은 메말라만 가는것이 어떻게 자연과 어울려 사는것이겠는가.   집은 넓어졌어도 감정은 멀어지고 돈은 많이 벌렸어도 인정은 말라가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휴대폰으로 통신이 쉬워졌어도 오히려 교감이 없어졌다면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있는것이리라. 문명이라는 미명하래 인간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것일지도 모른지 않는가.   칼이란 살인자가 들면 흉기가 되고 주방장이 들면 멋진 요리를 만드는 도구로 되는것인데 우리 교육도 어쩌면 미래의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들어가는 훌륭한 교육이 될수 있을가 하고 오래도록 고민해보았다.   요즘은 흐리터분한 날씨때문에 봄을 맞은 기분보다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겨울한때보다도 오히려 더 스산하다. 이런 날씨에는 아파트 보다는 어릴때 살던 재래식 온돌이 더욱 그립다. 추우면 군불만 지피면 방안에 화기가 돌고 우리 가족들은 작은 방에 가득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었다. 그때가 문뜩 너무 그리워 난다.
21    스승의 역할 댓글:  조회:3070  추천:0  2015-03-13
  토요일 오전에는 아이들을 영어학원에 보낸다. 토요일은 휴일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휴일이 없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들에게도 휴일은 없는듯 하다. 아이들은 여름방학 내내 쉬지못하고 각종 써클을 다녀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시절에는 그렇게 공부가 바쁘지 않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 대학생들보다도 더 바쁘다. 오전에는 영어써클을 하고 오후에는 태권도 써클 다닌다. 공부를 하는것은 좋으나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심신건강에는 휴식과 놀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아이들이 태권도나, 미술 등 써클은 취미로 즐기는듯 해서 조금이나마 안심할수 있었다.   영어학원의 영어강사는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비록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니고 있지만 좋은 선생님한테서 외국어를 잘 배워낼수만 있다면 부모로서는 그만한 즐거움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어쩐 영문인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 학비를 내고 학비를 받는 단순한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인듯, 적나라한 금전적인 관계처럼 냉정한듯하다.   내가 학교다닐때까지만해도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였고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런데 요즘들어 점점 선생님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고 존경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선생님을 사부라고 불렀다. “사”(師)와 부(傅)가 합쳐져서 사부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사부의 부자를 아버지 부(父)자를 쓰기도 했다. 스승은 어버이와 같다는 뜻이 되겠다. 사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존경받는 사람이여야 한다.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면 존경해야한다. 큰 일을 이루는 사람은 사부가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의 성취에 도움을 주는 사부는 캄캄한 밤중에 길 안내를 해주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다.   중국의 역사를 돌아봐도 알수 있듯이 진시황에게는 리사(李斯)가 스승으로, 모사로 있었고 한의 고조 유방에게는 장량(張良)이라는 군사가 참모로 되여 주었다. 또 송의 태조 조광(趙匡)은 조보(趙普)가 보좌해서 마침내 나라를 세웠고 명의 태조 주원장(朱元璋)에게는 유기(劉基)라는 명보자관이 함께 해주었다. 우두머리로 되고자하는 사람은 이런 군사나 보좌역을 잘 찾아야 한다는것을 단편적으로 말해준다.   옛날 순자(荀子)는 國將興,必貴師而重傅라고 했다. 즉 장차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스승을 귀히 여기고 중히써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창업을 하고 사업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도 최대한 발휘해야 하겠지만 주변의 힘이 되여주고 길을 가르켜주는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것이 기본이다. 그래야만 비로서 더 큰 성공을 거둘수 있고 바른 성취를 이룰수 있는것임을 말해주는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에서 우승팀이 단상에 올라 들어 올리는 우승컵이 있다. 그 우승컵의 이름은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다. 빈스 롬바르디는 슈퍼볼이 처음 열렸던 1967년 부터 2년간 우승을 차지한 그린베이 페커스의 감독이었다. 사람들은 생전에 74퍼센트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올렸던 그를 기르기 위해 우승 트로피에 그의 이름을 붙혔다. 빈스 롬바르디 감독은 선수들을 잘 다루는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빈스 롬바르디 감독의 팀 상황이 결코 좋지 않던 때도 있었다. 경기에서 지고 있었고 선수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특히 키가 큰 수비선수의 경우에는 수비를 할때마다 실수를 반복해 시합에서 뺄수 밖에 없었다. 룸바르디는 그를 교체시키고 라커룸으로 불러 호되게 질책했다. “너는 나약한 선수다. 상대편 선수를 막지도 않고, 맞붙는 게 두려워 슬슬 피하기만 했어. 네 모든 걸 바쳐 싸우지 않았단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면 너의 선수 생활은 오늘로 끝난 것이다. 내 말 알아 듣겠나?” 장신 수비수는 호된 질책에 잔뜩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빨리 들어가서 샤워나 해” 빈스 롬바르디 감독은 그에게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탈의실로 향했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이 탈의실로 갔을 때 그는 여전히 운동복을 입고 사물함 앞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이를 본 빈스 롬바르디 감독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 줬다. 그가 깜짝 놀라 쳐다보자 감독이 말했다. “이봐! 너는 나약한 선수다. 쿼터백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고 수비도 잘 안됐지, 공격 전개도 엉망이었어. 또한 혼신을 다해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의 말을 듣는 수비수는 계속 울고 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너는 마음에 공을 지닌 선수라고 말이야.” 감독의 말에 깜짝 놀란 선수는 그를 쳐다봤다. 감독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 안에는 위대한 축구선수가 있어 그 공을 지닌 선수지.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군. 난 그 위대한 선수가 밖으로 튀어 나와 네가 위대한 선수라 불리는 걸 보고 싶어.” 그 수비수는 그의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빈스 롬바르디 감독의 그 말은 그 선수를 변화시켰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프로 미식축구계의 독보적인 인물이 됐다. 그리고 프로 미식축구선수 중에서 최근 50년 동안 가장 뛰여난 수비수라 불리는 영광을 안았다. 그 선수를 일으킨것은 바로 빈스 롬바르디 감독의 조언이었다. 그는 선수들 속에 잠들어 있는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도왔고 그 결과 선수들은 세번이나 그에게 슈퍼볼 우승을 안겨 주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는것 중의 하나가 바로 훌륭한 스승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은 드물다. 스승이란 그들이 자기 이상을 실현하고 목표를 이룰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왔던 사람들이다. 당근도 있었지만 때론 채찍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에게 길안내를 해주고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우리의 미래를 열어준 그런 스승이 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본보기로 우리는 한수 배운다. 상황에 맞는 질책과 칭찬으로 우리의 잘못을 찾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스승이 있다. 나한테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을수 있고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굽은 길을 가지않도록 길안내를 하는 스승이 있다. 꼭 대외적으로 존경받거나 신망이 두터워서만 스승이 되는것은 아니다. 내가 배울수 있고 나한테 가르침을 주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서 내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가 왔다면 우리는 그러한 스승을 존경하고 따라야만 한다.   나한테 가르침을 주셨던 스승들을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내 글쓰기 재능을 발견해주셨던 반주임 선생님이 문뜩 떠오른다. 나는 어릴적에 아주 개구장이 였다고 한다. 나절로는 잘 몰랐으나 하루에 한번씩 어머니가 학교에 불리워 갈 정도로 애먹이는 학생이였다. 학급을 재편성할때가 있었는데 어느 선생님도 나를 맡지 않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무척 속을 썩이셨다고 한다. 그런 나를 기꺼이 받아들인 선생님이 바로 문(文)선생님이시다. 우리 반 반주임으로 오실때에는 외지에서 오셔서 내가 얼마나 애꾼인줄 몰랐나본다. 그때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내가 글쓰기에 재간이 있다면서 나를 학교 글쓰기 경연에 내보낸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소대장 한번 해보지 못하고 애만먹이던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반항적이고 장난이 심한것은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나의 내면의 욕구를 어떤 선생님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때 문선생님은 나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아내고 그것을 발굴해주셨다. 나는 제일 처음 참가한 교내 글씨기 경연에서 일등을 하였고 그후부터는 거의 모든 글씨기 대회를 석권하다 싶이 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었다. 그런데 그런 문선생님이 일년만 반주임을 하시고 도문의 어느 학교로 전근을 가신것이다. 그때 그 섭섭하던 마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중에 초등학교를 졸업할때 학교을 위해 공헌을 가장 많이 한 학생을 뽑게 되였는데 나는 전국 글짓기 경연대회 금메달1개, 주내 일등상 십여개, 현과 학교내 일등상 수십개 합쳐서 가장 많은 상을 탄 학생이 되였다. 그런데 그때 우리 반을 맡은 반주임 선생님은 학교를 위해 상을 가장 많이 타온 나를 제쳐버리고 우리 반급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던 어느 여학생에게 그 상을 주었다. 더욱 심한것은 내가 전국 일등상을 받은 작문이 월요일 국기계양식에서 낭독을 하고 계양식을 올리기로 되였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쓴 작문을 학급의 대대장을 맡고 있는 공부잘하는 다른 학생에게 읽히고 나는 국기만 올리라는것이다. 당연히 나는 내 자신이 쓴 글을 왜서 다른 사람을 읽히느냐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국기계양식마저 취소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 저기서 상을 받아올때마다 국기계양식을 해왔기에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으나 내가 조금도 존경할수 없는 선생님을 위해서 “나의 선생님”이라는 주제로 작문경연에 참가하라고 했을때 나는 그 당시의 반주임을 쓰지 않고 4학년때 반주임을 주제로 글을 써서 또다시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지만 그때 첫 서두는 이렇게 썼었다. “나의 4학년때 반주임 선생님은 참 훌륭한 분이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철없는 행동들이였던것 같지만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증이 될듯싶다.   우리 인생을 바꾸어주고 성공과 행복으로 이끄는데는 스승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것이다. 내 초등학교 4학년때 그 반주임선생님을 한번 찾아뵙고 싶다. 자라나는 내 감성과 그후 전반 인생길에 큰 힘이 되여주신 분이시다. 아이들의 방학이 끝날즈음 도문에 가서 한번 수소문 해보야겠다. 그리고 꼭 문안 인사를 드려야 겠다.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라고.
20    풍요롭게 사는 법-아들에게 보내는 편지2 댓글:  조회:1862  추천:0  2015-03-12
아들아 이 세상에는 가지고 싶지만 니것이 아닌것이 있단다. 어찌하겠느냐 가지고 싶다고 어린애처럼 울거냐 ? 아니면 이발을 사려물고 싸울거냐 ? 억지로라도 빼앗아서 니걸로 만들거냐? 아들아 사람들은 얻을수 없는것을 항상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단다. 남의 정원의 꽃이 항상 더 예뻐보이고 도망간 고기가 더 커보이고 이웃집 색시가 더 예뻐보이기도 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끊이질 않는 법이란다. 아들아 사람들은 내것이 아닌것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단다. 그것은 니가 그 사물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해서란다. 언젠가 니가 그것을 얻어서 함께 지내다보면 그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수 있지. 그러나 그렇게 알고나면 아들아 너는 곧 알게 될것이다. 그것이 니가 본래 생각했던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들아 지금 니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에 감사하거라 지금 니가 처하고 있는 상황에 만족하거라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오는법 아들아 이제 니것이 아니라면 욕심을 내지말고 니것이라 할지라도 나눌줄 알거라. 나누는 사람이 가장 풍요롭게 살게될것이니
19    내 인생의 중심은 무엇일가? 댓글:  조회:2026  추천:0  2015-03-12
  음력설이 지나간지도 벌써 한달째 가까워온다. 21세기에 들어설때는 설레임도 참 많았다. 그러던것이 벌써 어느덧 20015년의 봄을 맞는다.   에치투오리더십 강의를 하면서 항상 시간의 무상함에 놀라군한다. 짧은 인생길이라는 생각에 언제나 가슴이 조여오지만 한편 짧은 인생길에 이것저것 두려워서 머뭇거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봄을 가까이 해서인지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러한 날 이러한때 사람들은 새해를 꿈꾼다. 당연히 아름다운 내일의 비상을 꿈꾸어야 할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으로서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 꿈을 위하여 한번 도전해봐야 할것이다. 그러나 꿈을 꾸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리숭할때가 많다. 비젼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것이고 필요한것인지를 알기 또한 쉽지 않다. 그것은 남을 알기는 쉬워도 진정 자기 자신을 알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자기를 알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예지할수 있도록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양철학에는 이미 수천년전에 벌써 인생과 자기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고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생각한 철학자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가 이러한 글을 쓸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수십번도 더 든다. 그것은 이미 수천년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의 인생 성공에 대한 저서를 수도 없이 냈기 때문이다. 그 책들을 현대판으로 새롭게 분류하여 이런저런 인생성공학에 관한 책을 만든다면 아마 수천권도 만들어 낼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늘날 새삼스레 철학자가 될 이유는 없다. 철학자라는 것은 어느 사람이 말한것처럼 이 시대에서는 성인이 아니면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현실적인 사람을 더 많이 만들고자 함이다. 그러자면 유심론적인 철학보다는 성패득실 (成敗得失) 만이 진정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말하는 현대판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한테 질문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중국 고대 철학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어찌하면 좋은가.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지 않는 사람은 나 역시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공자의 말 가운데서는 정말로 찾기 어려운 해학적인 표현이라고도 하겠다. 모든 동서양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런 만큼 또한 일치되는 점도 많다. 즉 인간은 현명해야만 하며 유쾌한 생활을 보내기를 망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생각은 비교적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것 처럼 보이고 노자의 생각은 고요한 평화주의로 보이지만 두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두사람의 사상은 서로 결합되여 이른바 중용의 철학속에 하나로 융합되고 만것이다. 자사(子思)의 중용철학을 한마디로 개괄해보면 바로 자기 중심을 가지는것이다.   중용은 비뚤어짐이 아닌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요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바로 중심이다. 하늘과 땅사이에서 자기 중심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사의 중용철학에서는 그 방법을 가르쳤다.   요즘에는 바쁜 일상 중에서도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정말 다행이다. 명상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재 충전 시간이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질문이 이번 장절의 중심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본다.   중국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건륭 황제(乾隆皇帝)가 중국의 강남으로 여행을 하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가 많은 돛단배가 부지런히 지나해(支那海)를 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황제는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저 몇 백척의 배 속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때 한 신하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저에게는 두척의 배가 보일 따름이옵니다. 배의 이름은 명성(名聲)과 부귀(富貴)라고 하옵니다.”라고 하였다고한다. 이 세상에서 부귀와 명성을 뿌리칠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시 성인 아니면 바보다. 부의 유혹은 그런대로 뿌리칠수 있으나 명성에 대한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옛날 어떤 스님이 세속적인 번뇌의 두개의 원천에 대하여 그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명성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 보다는 금전을 얻고싶은 욕망을 버리기가 보다 쉬운것이다. 조용히 물러나 있는 학자나 스님조차도 여전히 자기네 동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는 것이다. 많은 청중이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 설교를 하고 싶어하며, 너와 나와 단둘이 있는… 스승도 하나 제자도 하나인 이런 작은 절에서 숨어 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자 제자가 대답했다. “스님, 정말 그 말씀이 맞습니다. 스님이야말로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을 이겨내신 오직 유일한 분이십니다.”그러자 그 스님은 빙그레 웃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귀와 명성에 대한 추구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뿌리내렸다.현실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이 부귀와 명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생기고 또 사회의 발전이 따르는 것이다. 그 옛날 봉건군주사회에서 부귀와 명성이 인간의 주요한 추구 목표였다면 현대 민주화사회에서는 권력에 대한 추구 또한 강력하다. 지금 내가 어느 나라 대통령을 모시고 중국의 상해항구나 한국의 부산항, 인천항에 갔을 때 대통령이 나한테 묻는다고 치자 “저기 분주히 오고 가는 수천 척의 배속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요?”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 할 것 이다. “저의 눈에는 세척의 배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권력과 부귀와 명성이라는 배입니다.” 해학적으로 들리겟지만 우선 우리 내면에 있는 욕망을 먼저 찾아 보는것이 좋을것이다. 욕망이 없으면 사람은 진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주 현실적으로 내면의 자기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부귀와 명성이나 현대인이 쫒아 다니는 부귀와 명성과 권력을 우리는 한마디로 개괄할 수가 있다. 바로 성공이라는 단어이다. 총적으로 우리는 성공을 위하여 분주히 돌아다니고 우리가 참가했던 많은 세미나와 특강 모두 우리를 성공 시키기 위한 전주곡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내면에 있는 권력욕과 부귀와 명성에 대한 추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부귀인지 권력인지 아니면 명성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가지 다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도 좋다. 우리가 원하고 얻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얻을 수가 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성공을 초개같이 버리는 능력을 심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무엇인가를 강력히 원하기만 한다면 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겸손하고 열린 마음이 있어야만 하고 사색할수 있는 이성이 있어야 하고 바램 그리고 삶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능력이기 대문이다.   내가 나를 과연 가장 잘 아는가? 내 안에서 요구하는 욕구가 부귀이냐 권리이냐 명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성공 할 것이다.   새해 벽두에 모두들 꿈을 꾼다. 꿈을 꾸는데 돈이 드는것도 아니다. 꿈을 꾸고 다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한낮 개꿈일 뿐이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화 시키기위해 노력하는 신념어린 행동이 따를때 비로서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사무실 난방이 너무 무더워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멀리 어디에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리듬에 맞추어 오늘도 멋진 춤을 추어야 겠다.
18    모든것은 지나가는 것_아들에게 보내는 편지1 댓글:  조회:1722  추천:0  2015-03-11
아들아 이 세상에 삶이 있다면 반드시 고뇌가 있단다. 쌍둥이 형제처럼 삶과 번뇌는 언제나 한가족이란다. 아들아 번뇌가 있다면 시간한테 맡기거라 시간은 흘러갈거고 그 번뇌도 시간따라 없어질터이니 아들아 시간은 어머니와 같단다. 언제나 함께 있으면서 너의 아픔도 너의 고통도 너의 번뇌도 너의 모든 좌절을 다 씻어 준단다. 아들아 성공을 거두어 교만할때에는 이 말을 명심하거라 아들아 실패를 하여 힘들때에도 이 말을 명심하거라 아들아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들때에도 이 말을 명심하거라 아들아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들때에도 이 말을 명심하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행복도 성공도 교만도 좌절도 고통도 번뇌도 언젠가는 지나간단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17    매화향이 가득한 술잔 댓글:  조회:2144  추천:0  2015-03-10
  을미년 정월 대보름이 왔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계획은 크고 꿈도 가득합니다. 그러나 일년을 바삐 돌아다니다 뒤돌아 보면 정말 해놓은 일이 없어 안타깝고 답답하군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가족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려고 젊은 꿈을 키웠습니다. 꿈은 크고 갈길은 먼데 마음이 참 급했나 봅니다.   에치투오 리더십 강의를 진행하면서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뒤돌아 보니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스물아홉에 시작한 강의가 이제는 10년철에 들어서는군요. 연인수로 만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다고 시작한 일이 본업처럼 자리잡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꾸진히 발전되여 왔습니다. 모임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조직도 점점 커졌습니다. 청년실업인 연합회 회장을 맡은지도 꽤 되였지만 에치투오 모임은 어쩐지 그쪽보다도 오히려 더 활동이 활발이 진행되고 발전되여 왔습니다. 공동된 목표와 정신적인 힘이 작용이 되였었나봅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일이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조직이 커지니 사람수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구설수 또한 많았습니다. 그동안 보수도 따지지 않고 욕심없이 진행되여온 코스였는데 뒤에서 헐뜯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조직원들중에서 조직체계를 이용해서 사업을 해보겠다는 건의가 나왔고 오래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의 바램을 물리칠수도 없었습니다.   참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여서 웃고 넘어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욕설과 비방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큰 비젼과 조직마저도 서슴없이 쓰러뜨리는 몇몇 사람들때문에 그때는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다행스러운것은 변함없이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지탱해오고 이겨낼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일일이 거론안하겠지만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분들께 고맙고 감사합니다. 본업에 매진해서 반년넘게 일하고 보니 사업은 다시 궤도에 들어서고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못을 빼도 못자리가 남듯이 상처난 자국이 아직도 메어지지 않았나봅니다. 그래서 오래동안 강의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에치투오를 수료하신 김형욱 사장님께서 보름을 맞아 대게 한박스 보내오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해주시는 말씀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회장님, 힘을 내셔야 합니다. 에치투오같은 비영리 코스를 운영하시면서 고생많으신걸 다 압니다. 옆에서 헐뜯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겠습니까. 지금 힘을 놓으시면 않됩니다. 강의 꼭 다시 시작해주십시오. 그때면 제 직원들부터 전부 보내겠습니다. ” 그렇게 안부전화가 오고 새해 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때문에 다시 용기를 찾게 되였습니다.   밤 하늘을 쳐다보니 보름을 맞아 휘영청 밝은 달이 겨울의 추위를 걷우는군요. 저 보름달은 둥글었다 이지러졌다를 반복하지만 언제나 저 위에서 빛을 뿌립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해온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바램도 보답도 바라지 않고 흐르는 저 강물처럼 그냥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살아야겠습니다. 좋은 안주에 혼자서 술을 마실수 없어 시골에 있는 별장에 친구를 불러 술 한잔 기울였습니다. 지난해 정월 대보름에는 큰 눈이 내리더니 금년에는 달이 밝아서 좋았습니다. 달을 벗삼아 술잔을 기울이는데 창가에 심은 매화 나무가 추위를 잊은듯 꽃봉우리를 맺는군요. 술잔에 어느덧 매화향이 가득합니다. 이 역시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요.^-^
16    내 안의 음악 댓글:  조회:2100  추천:0  2015-03-10
  소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속담으로는 소귀에 금(현악기 일종)을 탄다고 한다. 즉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을 비유해서 하는 소리다. 그러나 요즘 과학자들은 젖소에게 음악을 들려준 결과 젖소의 산유량이 대폭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지어는 농민들이 채소를 키우면서 음악을 들려준 결과 채소의 숙성과 크기가 훨씬 월등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식물이 음악을 듣고 있고 젖소도 음악을 이해한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나도 완전한 음치는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음악 애호가 정도는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요일날 창고를 정리할 일이 있어서 일을 하다가 옛날 레코드기와 레코드판을 찾아냈다. 내가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상해에 출장다녀오시면서 사오신걸로 기억나는데 그후 록음기와 CD등이 유행하면서 창고에 틀어박혔던 것들이였다. 레코드 기계를 잘 닦아서 전기를 이으니 그대로 잘 돌아갔다. 일하면서 음악을 듣는것도 괜찮을듯 싶어서 레코드판을 찾아보니 베토벤의 교향곡이 있었다. 그런데 웃음이 나는것은 지금은 CD 한장이면 다 될 음악을 14장이나 되는 레코드판에 나누어 담은것이다. 레코드판의 용량이 적은 탓이리라.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하려니 오히려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또한 레코드판이 다 돌아가서 음악이 끊기면 다시 달려가서 바꾸어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에 또한 귀찮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교향곡이 긴 탓에 레코드판 14개를 다 듣기 전에 일손이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향곡을 들으면서 일을 한다는것은 아닌듯 싶었다. 이렇듯 우아한 음악을 그냥 일하면서 듣는다는것은 청각을 낭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일할때는 요즘 유행하는 댄스곡이나 정신못차리게 하는 재즈같은 음악들이 더 어울리지 않을가 싶다. 음악의 율동에 리듬을 맞추어 일손을 놀린다면 훨씬 빨리 끝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어떤 폭발적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은 그러한 폭발적인 영감이 없으면 아름다운 음악,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수 없으리라. 어릴때 글쓰기를 배우면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고 말씀하셨다. 자연이나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을 민감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고 그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씌여진 글이라야 읽는 사람의 마음도 동요시킬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잘된 음악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에 공명과 감동을 오래동안 주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유행가는 처음에는 재미있게 듣다가도 얼마안있으면 바로 시들해져버린다. 유행을 따른 공감이라서 그만큼 공감의 힘이 작나본다. 그 이유는 유행곡을 만드는 작곡가들은 음악을 만든다기보다는 음악을 생계와 금전으로 연결짓고 있기에 냉정하고 타산적이다. 그런 작곡가들한테서 남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기대한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러나 세계명곡들을 듣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더라도 마음은 그 음악의 세계에 빠져든다.   예술가에 국한되는것은 아닐것이다. 어떤 직업일지라도 자신이 만든 제품, 파는 상품에 대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수 있는 훌륭한 것이라는 감동이 먼저 있지 않으면 안된다. 최종 수혜자의 행복과 만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진정 다른 사람에게 오래동안 여운을 남기고 감동을 줄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수 있을 것이다. 고 밀레는 말했다. 참으로 깊이있는 말이다.    옛날것이였지만 레코드기와 LP판을 잃지 않고 다시 찾아내고보니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저도 몰래 콧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의외로 입속에서 흥얼대는 곡조가 세계명곡이 아니고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그 시절 유행곡이였다. 맘속으로 의아했지만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운전을 했다. 문뜩 고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세월을 거슬러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어깨 동무하면서 함께 부르던 노래가 저도 몰래 흘러 나온다. 옆자리 앉았던 철이, 공부잘하던 쌍가매, 싸움대장 돌이의 모습이 그냥 스쳐지나간다.   음악이 있음으로 우리의 삶이 윤택이 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유행곡은 또 그러한 역할을 하나본다.
15    갈증 댓글:  조회:1859  추천:0  2015-03-07
   방송국의 정기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채방을 하겠다는것이다. 청소년 관련문제에 대한 녹음이 있으니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다. 정기자와의 인연은 몇년전 내가 진행하는 리더십강의인 에치투오 강의부터였다. 에치투오 리더십강의를 듣고나서 더 열정적으로 살게 되였다면서 가끔씩 찾아와서 차 한잔 하면서 한담도 나누곤 했었는데 그렇게 된 인연으로 나의 방송국 출입이 오히려 잦아졌다. 거의 2년넘게 정기자에게 붙들려 매주 한번씩 창업관련 생방송에 나가야 했던것이 작년까지 일이다. 그러다가 사업이 너무 바쁘고 출장이 잦은 관계로 금년에 들어와서는 그냥 한달에 한두번꼴로 방송에 나간다. 간단한 녹음을 마치고나서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우리 지역의 청소년문제에 대한 취재였는데 그 이야기로부터 나온 주제였다.   내가 연변의 현재 청소년들은 가장 불행한 시기에 태여난 한세대라고 말했더니 정편집(PD)도 그 점에 동의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국과의 수교로 인한, 물질을 위한 조선족의 대 이동으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버리고 외화벌이에 나섰다. 그런 그 한세대의 어린이들이 벌써 이제는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일부는 청년줄에 들어섰다. 부모의 사랑한번, 따뜻한 품에 한번 안겨보지 못하고 자란 고아가 아닌 고아들인것이다. 미국의 경제붕괴로 말미암은 전세계적인 경제공황이 중국의 각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때 방황하는 이 세대, 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무료봉사 방송을 해달라는 요청이였다. 그럴때 보면 정편집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방송의 필요로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항상 지역사회를 걱정하고 조선족 사회의 청소년들을 걱정하는 그 마음을 읽을수 있어서 자못 흐뭇했다. 이제는 서로 친해져서 무람없는 사이라 그렇게 부탁을 하겠지만 나한테는 큰 부담이 되는 선택이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돌려보냈지만 하루종일 그 부탁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않았다.   내 성격상 어떤일을 맡게 되면 잘 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크다. 요즘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 우리 회사도 편하지만은 않다. 여러가지로 신경 쓸 일들이 한두가지 아니여서 방송에나가 생방송으로 계속 상담을 해줄만한 여유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것이다. 나는 겨울도 무척 좋아한다. 풍요로운 가을을 거쳐 겨울에는 나눔과 여유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벌써 겨울을 거쳐 새해 봄이지만 봄같지가 않다. 외국에서 일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환율이 떨어져서 힘들어한다.   자식들을 버리고 먼먼 외국땅에 가서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그나마 좋겠는데 그것마저 안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옛날 책 “대학”(大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이다. 그 뒤를 계속 보면 이런말이 잇는다. 로 돼있다. 문뜩 머리속에 대학의 이 구절이 떠오른데는 이유가 있을듯 싶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많은 재산이 있으면 그 집의 모양을 훌륭하게 꾸밀수 있다. 덕을 갖추고 있으면 안으로 살펴 꺼림직한 곳이 없게 되어 마음은 언제나 넓어지고 몸도 편안하여 안정된 태도가 된다. 따라서 군자는 언제나 성의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의있는 사람이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은 남을 속일수 있을지라도 자신을 속일수는 없다. 자신의 본심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뜻을 진실로 하는 길이며 자기를 닦는 첫걸음인것이다.    내가 비록 조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아직 할수 있다면 적극 남을 돕은 일에 나서야 한다는 나자신에게 주는 대답이나 다름없다. 내 맘속에는 두가지가 싸우고 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내 집과 내 가정을 윤택나게 하는것과, 좀은 어렵더라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부을것인가와의 충돌이다.   하늘을 우러러 보니 보름달이 어느새 환히 빛난다. 주위에 작은 별들도 차겁게 빛을 뿌리고 있다. 별없는 밤보다 별있는 밤이 항상 사람들에게 더 안전감을 준다. 그것은 별 있는 밤에는 희망의 빛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말라고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이제 누가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그 별빛이 되여주고 달빛이 되여 줄것인가? 그이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심어줄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선족사회는 아직도 이성을 찾지 못했다. 많은 지식인과 학자들이 대성질호 하고 있지만 강력한 물질의 충격하에 이성을 찾기에는 시간이 필요할듯 싶다. 그러나 이미 부모들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은 PC방과 게임방, 그리고 도박과 마약등에 절어들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청소년 범죄가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자녀를 두고 멀리 떠난 부모들은 언제인가는 후회를 하게 될것이다.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한 초등학생 처녀애는 어머니가 금방 외국으로 돈벌러 갔다고 한다. 그 애는 어머니 말만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런데 이제는 중학교 3학년이 된 한 남학생은 부모님 둘다 외국에 나간지 7년이 된단다. 이제는 부모에 대해서 물어봐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부모님들이 용돈을 잘 보내고 이제는 제법 크고보니 부모님의 관섭이 없이 자유롭고 편하니 그만한것이 없는듯 싶은것이다. 지난번 언젠가 그애의 부모가 전화가 와서 받는것을 옆에서 우연히 듣게 되였던적 있다.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다나니 오래동안 자식을 보지못해서 많이 보고 싶었나본다. 그래서 전화를 했나 싶었다. 한국에서 이번에 고용허가제도가 나와서 중국에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그 애가 하는말이 걸작이다. “지금 중국도 물가 올라서 먹구살기 바쁩니다. 오느라 하지 말고 거기서 몇년 더 버세요.” 라는것이다. 아직 어린애라 깊이 생각없이 한 순진한 말이지만 우리에게 경종을 주는 말이다. 부모에 대한 보고싶은 마음이나 정은 없고 이제는 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인것이다.   옛날 ‘고려장’이야기를 모두 다 잘 알고 있을것이다. 늙은 부모를 버리는 나쁜 풍속을 가지고 있었던 고려시절에 늙은 부모를 버리러 지게에 메고 갔던 아버지가 낡은 지게를 버리고 돌아오는데 뒤따라갔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메고 돌아오니 그 지게를 버리지 그러느냐 했더니 아이가 하는말 “이제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로 버려야지 않겠어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늙은 부모를 지게로 집으로 모셔와서 잘 모셨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 조선족 사회에는 그와 다른듯하지만 비슷한 사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돈을 위하여 자식을 버리고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지만 더 이상 자식과의 깊은 정과 사랑의 관계는 없다. 돈을 가득 벌어온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몇십년전까지만 해도 조선족은 중국사회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민족이였다. 그만큼 전반적인 어려운 경제환경속에서도 자식농사에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속담에 소팔아서 자식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옛날 어르신들은 소팔고 집팔아서라도 자식 공부를 시켰다. 그만큼 자식들의 교육에 힘을 쏟은것이다. 그래서 다른 민족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였었다.   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작은 사회조직이지만 그 작은 사회조직이 전반적으로 붕괴되면 전반 사회가 죽어가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식농사를 망치면 인생농사를 망치는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한 유교적인 사상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식덕에 살겠냐고 하지만 잘못된 후대때문에 나머지 인생내내 후회하고 걱정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산다면 어찌 성공된 인생을 운운할수 있을것인가. 진정 우리 아이들이 필요한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줄수 있는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미국의 학자는 이런 말을 한적있다. 라고 했다. 양육한다는 사육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먹을 음식이나 던져주고 키우는 동물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조차 우리는 애정을 가지고 돌보아주는 정신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하물며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부모의 사랑과 애정어린 가슴이 필요할까?! 조선족부모님들이 찾아야 하는 이성이 여기에 있는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지 그 이상 필요한것이 없다. 사랑과 관심이 자부심을 만들어 주는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직도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 배고프지? 아빠 엄마가 외국에 가서 돈 많이 벌어 나중에 맛있는 빵 가득 사줄께.” 사랑에 목마른 사람에게 물질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목마른 사람에게 빵을 주는것 만큼 잔인한 행동이 어디 있을까?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볼 필요가 있는것이다. 글을 쓰다가 보니 내 마음은 그래도 이 지역과 이 민족과 이 사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가정을 사랑할줄 모른다고 한다. 사랑을 가지지 못한 자가 사랑을 줄수도 없다는 말이다. 가정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민족을 사랑할수 있겠는가? 민족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국가를 생각할수 있겠는가? 자신앞에 주어진 책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서 할때 비로서 복과 덕이 겹치는것이다.   내일은 아침일찍 정기자에게 전화를 넣어야 겠다. 누군가가 해야하고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라면 미루지 말아야지. 내 작은 사랑이 목말라 헤매는 저 길거리와, PC방과, 오락실을 전전(轉戰)하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갈증을 풀어줄수 있다면 내가 빵을 좀 적게 먹는다 한들 뭐가 대수겠는가!
14    때가되면(시) 댓글:  조회:1492  추천:0  2015-03-07
때가되면 알리라합니다. 모질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가되면 오리라 합니다. 기다림에 지친 마음은 울고 있습니다. 때가되면 되리라 합니다. 사랑도 인연도 다 잘될것이라고 때가되면 님도 온답니다. 내 맘속에 가득찼던 님이 다시 온답니다. 님은 멀리가도 봄은 오고 사랑에 지친 내 마음은 꿈을 꿉니다..
13    조선족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댓글:  조회:2493  추천:7  2015-03-07
  요즘은 출장이 잦아진다. 나는 출장다닐때면 특별히 바쁘지 않은 경우를 빼고는 기차를 애용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서 꼭 언급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기차에서 편히 쉴수 있다는 점이다. 평시에는 마음놓고 푹 쉴수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여기저기 일들이 많이 생겨서 꼼짝할수 없기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기차에 오르고보면 아무리 급해도 어쩔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편하게 마음을 가져보는것이다. 평상시 같으면야 일정한 시간에 취침하고 일어나야하니 언제 마음편하게 늦잠자면서 이불속에서 뒹굴수 있을것인가.   지난주에 사업차 북경에 다녀왔다. 24시간되는 거리를 달려야하기에 침대칸을 이용하는것이 편하고 좋다. 금방 쉴려고 누었는데 아래침대에 함게 오른듯한 40대중년 남성과 그의 동생벌 돼보이는 두사람이 창문가에서 맥주를 꺼내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조선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중 나이 많은 사나이가 큰소리로 말한다. “우리 조선족은 안된다. 모두 너무 약아빠져서 안된다니까. 뭉칠줄 알아야지. 서로 잡아먹지못해 난리인데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라는것이다. 이때 같이온 그 젊은이마저 맞장구를 치는것이였다. “맞습니다. 우리 민족은 서로 뭉칠줄 모르는같아요. 모두다 머리가 좋고 총명한듯 한테 함께 뭔가를 추진하는 힘이 없는 같습니다.” 그말의 앞의 주제가 뭐였던지는 잠간 곁눈을 판다고 못들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보니 잠을 청하려던 마음이 싹 가셔졌다. 그들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것이다. 우리는 이런 비슷한 언론을 많이 듣게 된다. 기차칸에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또는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가족들끼리 모인자리에서 우리 민족의 부정적인면에 대해 언급하는걸 많이 듣군한다. 그러나 사람은 부정적이다 보면 모든것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자신이 소속된 민족성자체마저 부정적으로 본다는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부정적인 문제일따름이다. 근대사회에서 중국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겼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민족사관때문에 세계열강들과 일제의 총칼앞에 대항 한번 못해보고 손을 들었던것이다. 8국연합군이라고하지만 천여명밖에 안되는 병사들앞에 천만만 중국인들이 손을 들고 투항하고 ‘태평천국’ 농민봉기를 탄압할때는 기세등등하던 청나라군인들은 모두 어딘가 도망가버려 열강들은 ‘원명원’을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서슴치않고 저지른것이다. 더불어 960만 평방키로미터 커다란 땅덩어리우의 중국인들이 스스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기에 조그마한 일본군의 철제앞에 무릎을 꿇었던것이다.   민족이란것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이고 찬란한 문화 유산이다. 중국의 백양(柏杨_수필가 작가)이 “초라한 중국인”(丑陋的中国人)이라는 책을 써내고 엄청난 비판과 타격을 받은것을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그분이 그런 글을 써냄은 스스로 민족에 대해서 비관해서가 아니였다. 민족의 아픔과 민족의 부족함을 드러내서 지성인들부터 그것을 깨치고 고치고 개선하려는데 있었을것이다.   기차에서 우리 민족에대해 ‘안된다’는 표현을 했던 그 두사람도 스스로 잘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내면에는 이런 마음이 있을것이다. “우리 민족은 총명하고 슬기로우니까 잘 뭉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의 아름다운 민족으로 성장할것인데 안타깝다. 우리 민족이 잘 뭉칠수있는 민족이였으면 좋겠다. ”는 바램과 희망이 였을것이다. 누가 스스로 자기를 저주하고 미워할것인가? 자기가 소속된 민족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부심이란 “스스로 자기의 가치나 능력을 굳게 믿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르킨다. 우리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자부심을 가져야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있어야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수 있다. 자신감이란 단어의 의미를 보면 “어떤 일을 해낼수 있다고 굳게 믿거나 어떤 일이 틀림없이 이루어 지리라고 굳게 믿는것, 또는 그러한 마음”을 가르킨다고 돼있다. 많은 리더십 코스에서 목표의식과 성공의식에 대해서 강의를 하겠지만 자부심과 자신감이 없이는 어떤 목표의식도 성공의식도 있을수 없다. 자식을 양육하는것도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 조선족부모들이 외국으로 외화벌이 가면서 자녀를 부모나 친척, 이웃에게 맡기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양육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강의때 말했던적 있다. 부모가 해야할 두가지 큰 의무중의 하나가 양육의 의무와 자부심을 심어줄 의무이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스스로 키우면서 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가정에서 그럴진대 좀 더 큰 사회나 민족 나아가서 국가와 세계문명의 발전에서도 없어서는 안되는것이 바로 자부심이다. 이미 작고하신 올림픽위원회 주석 싸마란치는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우리 스스로 자부하고 인정하고 계승해가야 한다.   조선족의 우수성은 그 핏줄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수 있다. 이씨조선이 일제에 의해서 멸망하고 한반도가 식민지화되였을때 그 울분을 이길수 없어서 또다른 살길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이 바로 조선족의 선조들이다. 항일을 위해온 독립군도 있었고 일제의 폭행이 싫어서 정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더 살기좋은 땅을 찾아 이민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 세월에 가족들을 데리고 경비가 삼엄한 만주땅으로 건너올수 있었다는것 자체가 경의로운것이다. 어릴때 (저자 리근전, 1982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선조들, 이땅을 개간한 조선족 어르신들의 창업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찼다. 그 당시 만주로 건너오려면 일본군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국경분계선에서 총칼을 들고 지키고 있었고 청나라 군사들까지 총포를 놓으면서 이민자들을 막았다. 그런 와중에도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년로한 부모님들을 둘쳐업고 만주로 이민오는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것은 앞을 볼수 없을때라고 한다. 미래가 캄캄하고 보이지 않을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여기에 에피소드를 끼어넣는다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영국해협을 수영해서 건너는 도전을 한 어떤 수영선수가 있었다. 그녀는 세계챔피언이 되기위해 도전을 했고 하루낮 하루밤을 헤염쳐서 해협을 건넜다. 거의 도착할 무렵 바다에는 아침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자오룩한 아침안개가 걷힐줄을 몰랐다. 코치가 힘내라고 배전에서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더우기는 목적지가 아직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수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녀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안개가 걷힌후에 보니 바로 백미터 앞이 육지였다. 성공을 한발 앞두고 실패했던것이다. 썩후에 그녀가 다시 같은 종목에 도전하여 세계기록을 깨뜨렸을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일 처음 도전할때 안개만 없었더라도, 내 눈앞에 목표만 보였어도 나는 결코 포기 하지 않았을것이다. ” 우리는 목표가 보이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당시 우리의 선조들은 보이는 목표를 쫒지 않았다. 그들은 지혜로웠고 용감했다. 목표가 보이지 않더라도 목표를 만들어서 행동에 옮겼고 실행함으로서 도전에 응했다. 그분들이 이 만주땅에 와서 제일 처음 시작한것이 학교를 세우는 일이였다. 소를 팔아서라도, 초가삼간 팔아서라도 자식공부는 시킨다는 우리 선조들의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중국의 56개 민족중에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자부심이 말라가는 것은 우리의 핏줄이 지혜롭지 못해서가 아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지대한 모독이 될것이다. 그분들은 또한 한전위주로 농사짓던 국면을 타파하고 수전을 일구어 입쌀을 먹었다. 그 당시 연변지역의 한족과 만족지주들은 수렵위주의 삶을 살았고 농사를 한대도 강냉이 농사나 수수농사밖에 몰랐다. 그 어려운 이민의 과정에서도 씨앗을 가지고 이땅까지 온 우리의 선조들은 이 불모의 땅을 개간한것이다. 그런 그분들이 그래 용기있고 지혜롭고 부지런하지 않단말인가. (“연변조선족자치주개황” 참조바람.-연변조선족자치주개황 집필소조가 집필하고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민족문제에 관한 5가지 총서의 하나, 중국소수민족자치지방개황총서 로 뽑힌 책이다. 연변인민출판사에서 1984년 출판했음.   우리는 그런 핏줄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교육과 후대양성에 정성을 쏟는 지혜를 가진, 생업에 게을리 하지않고 터전을 일궈가는 부지러함을 가진 그런 분들의 후예가 우리 조선족이다. 그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핏줄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핏줄이 있어서 우리 조선족이 해외로 자꾸 외화벌이를 떠나려는것이 아니냐고 언젠가 세미나에 참가한 사람들과 우스개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과 자부심도 양면성이 있다. 준비없는 자신감과 자부심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와 같다. 준비를 가지고 자기 능력을 알고 거기에 맞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신감과 자부심은 반드시 성공을 끌어당길것이다. 지금 조선족이 당면한 과제는 미래을 준비하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섯부른 행동보다는 미래를 계획하고 목표를 만들어가는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편협적인 민족주의를 부르짓고 싶지 않다. 그런것은 국가나 민족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의적인 범위에서의 민족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것과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것과 다를배가 없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가족을 사랑할줄 알것이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민족을 사랑할것이며 민족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마저 없는 사람에게서 어찌 애국심을 운운할수 있겠는가?   며칠째 머리속에는 기차에서 만났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삼삼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현대의 시대는 한마디로 변화의 시대이다. 새로운 도전이 우리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 도전을 맞설 준비를 하였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시도를 멈추는 사람은 종당에는 패배하게 된다. 천천히 가더라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1등한 거북이는 도전에서 성공했고 2등한 토끼는 멈추어서 실패했다.   세상만물은 움직이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 우리 민족도 그렇고 다른 민족도 그렇고 다른 나라도 그렇고 우리 나라도 그렇다. 그런 격변의 시대에서 우리가 준비하고 노력해야할것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길밖에 없다.
12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리유 댓글:  조회:2166  추천:0  2015-03-06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미워지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정말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미워질때는 아직도 내 마음의 수련이 부족함을 깊이 느낄때다. 우리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미워지는데 부처님은 어떻게 중생을 다 사랑하실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는 내돈을 꾸고서도 갚지 않아서 밉고, 누구는 나를 뒤에서 욕을 해서 밉고, 누구는 너무 잘난체 해서 밉고, 누구는 그냥 주는것없이 밉기만 하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이 요상하다.   오늘은 바쁜하루였는데 그 와중에서도 내 강의를 듣고 상담을 해온 에치투오리더십 코스 수강생한분을 만났다. 수강생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나보다 한참이나 이상인데 참다참다 그래도 나한테 털어놓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왔다고 했다. 그분의 말로는 안해가 한국에 돈벌러 간다고 갔는데 8년이 넘게 한번도 오지 않고 연락하면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몸이 멀어졌으니 마음도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래도 그분은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있었다. 아직 어린 딸애의 면목을 봐서라도 한번쯤은 찾아오리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그녀의 친정쪽으로는 가끔씩 연락온다고는 하지만 집에는 연락한번 없단다. 심지어는 친딸에게마저 전화한통 없다고 하니 참으로 모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분의 하소연을 한시간 넘게 듣고 있는데 그분의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학교공부가 끝났다고 알리는 것이다. 열살이 갓넘긴 딸애걱정에 부랴부랴 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그분의 뒤모습을 보면서 그분 마음속에 가득찬 원망과 사랑으로 인한 미움을 읽을수 있었다.   순간 ‘사랑은 본래 미움의 시작’이다는 말이 떠올랐다. 무슨 유행가 가사 같지만, 사실은 지금부터 2천여년전에 정리된 “管子”라는 책에서 나오는 말이다. ‘관자’는 “爱者憎之始也,德者怨之本也” 라는 말을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사랑은 미움의 시작이고 덕은 원망의 근본이다.”는 말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오랜세월의 바램속에서도 변하지않는 인간관계의 진수라고 할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의 깊은 뜻은 그 내면을 파헤쳐 봐야알수 있다. 왜서 사랑은 미움의 시작이되고 덕은 원망의 근본이 되는것일까? ‘관자’에는 그 대답이 나와있다. 바로 사람들의 보답을 기대하는 마음때문이라고 한다. 즉 욕심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애정에서 출발해도, 점점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커지고 거기에 반항하는 아이들과의 세대차이를 느끼면서 부모와 자식은 갈등을 빚어낸다. 모처럼의 애정도 미움으로 변할때가 있다. 덕에 있어서도 그렇다. 원래는 자신을 위한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착각하면 그 또한 원망의 근본이 될수 있기때문이다. ‘관자’는 이 말을 한후 ‘다만 현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즉 현자라면 뭔가를 바라는 사랑을 하거나 보답을 바라는 덕행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된다. ‘관자’가 말하는 현자는 현명한 사람을 가르킨다. 현명해진다는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을 비울수 있고 스스로 밝힐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이기심이 없는 사랑이다.’는데는 이견(异见)이 없을것이다.   언젠가 ‘유대인들의 교육법’이라는 책을 보다가 기억남은 말이 있었는데 이런 말이 있다. ‘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은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다. 어머니의 사심없는 사랑을 표현한 훌륭한 말인듯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에는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따른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욕심을 일으키는것이다. 그 욕심이 깊어진 경계를 사랑이란 말로 우리는 표현한다.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무상(无偿)의 것일수록 나누는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어 생명의 힘이 된다. 나는 오히려 불쌍한 사람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떠난 그 여자라고 생각했다. 부모로서 어찌 자식이 보고 싶지 않을것인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혼자만 행복해지려고 애써서는 행복해지지 않는것이 삶임을 언젠가는 깨칠날이 있을것이다. 그때는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는 짓이 되고 말것이기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부부가 갈라져서 십수년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외화벌이 나가서 돈을 많이 가져와서 집사고 차사고 떵떵거리며 살려고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운 세월은 그렇게 돈에 쫒겨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봐야 백년이라고 하는데 부부가 결혼해서 아름다운 십년,이십년을 갈라져서 살고, 아이들은 태어나서 얼굴보고 나서는 십년에 한번씩 안아보는 정도라면 정도 없고 교감도 없다. 돈만 벌어서 준다는것은 자녀를 양육하는것이 아니라 사육하는것이다.   여기저기 초청받아 우리 조선족의 현재 삶에 대해서 강의를 해오면서 가끔씩 해온 말이있어서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옛날 우리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정분이 났다고 표현했다. 우리 민족은 다분히 정을 가진 민족이다. 중국글로 씌여진 정(情)자를 보면 왼편에 심자변을 세워놓았다. 그 오른쪽을 보면 푸를 청자가 있다. 즉 바른 마음이 서있어야 항상 푸를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다시 청자를 아래위로 뜯어보면 주(主)와 월(月)자로 나누어 볼수 있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정을 유지하여 서로의 정분을 푸르게 가꾸려면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은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된다. 스스로 해학적인 풀이를 해본것이지만 옛 사람들의 지혜에 다시 감탄할 따름이다. 사람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서로 미워도하고 아껴도 주면서 부딛치고 엇갈리는 사이에 정이들고 친해지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리혼율이 요즘 높아지는것도 그때문이리라.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것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는것이 낮다는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배워가는것이다. 내가 개발하고 15년넘게 진행해온 에치투오리더십코스의 슬로건이 “원망보다는 감사하고 미움보다는 사랑하라.”인데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강사가 오히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으니 반성해야할 일이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요즘은 부쩍 민감해졌다.  불혹이라는 말뜻대로라면 (공자같으면) 의문이 없어질 나이인데 나는 오히려 의문이 더욱 많아지기만 한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기 전에 나자신이라도 충분히 사랑할줄 알아야 할듯싶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마음에, 자신을 혹사해서 일에만 매진할때가 있다. 비즈니스를 할 때에는 몸을 버려가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래서 뭔가를 해줬는데 받은 사람들이 몰라주면 서운함과 함께 아쉬움이 깃든다. 그래서는 행복해 질수 없다. 정말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 행복을 찾는 방법이 어설프다. 미워해서 행복해질수 없고, 미워한다고 그 미워하는 사람이 죽어주지도 않는다. 용서는 이기적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미워할때 아픈것은 내 마음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으면 우선 용서하는것이다. 용서는 내 자신을 위한것이지 미워지는 그 사람을 위해서는 아니다.     옛날에 읽었던 프랑스의 사상가 ‘알랭’의 유명한 명구 한구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할수 있는 최선의 일은 역시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11    미래 예측과 바른 점술 (제1강 하편) 댓글:  조회:1472  추천:1  2015-03-06
(1부이어서...)방법론적으로 점술을 본다면 더욱 다양합니다. 점술의 목적은 같겠지만 방법은 다양합니다. 특히 밤하늘의별을보고천시(天時)나인간(人間)의운명(運命)을보는 구천태경(九天太經)이란 책이 있습니다. 한번쯤 그냥 보실수 있겠지만 그냥 한번 보아서는 뭘 썼는지 알수조차 없을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받아온 교육하고는 다른 사고로 보아야 하니까요. 특히 이런 점술책은 자신의 패러다임(Paradigm)을 깨지 않고는 볼수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 점술에 관련된 책을 볼때는 그냥 취미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좀 황당하다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더군요. 그러나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옛 사람들의 지혜에 놀랄뿐이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삼국연의를 다 보셨지요. 물론 제갈공명에 대해서도 잘들아시지요. 그 삼국지(혹은 삼국연의)에서 제갈공명이나 나중에 제갈공명과 승패를 겨루던 사마의나 모두 비상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였습니다. 삼국지에는 그런 지혜로운 사람들이 천문을 보면서 미래를 예언하는 장면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유명한 “적벽에서의 싸움”에서 제갈공명이 동풍을 빌리는것 역시 자연의 현상을 보고 곧 동풍이 불것임을 예측한 사례이지요. 7일후에 동풍이 불것임을 예측할수 있었기에 제갈공명이 적벽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것입니다. 천문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들이 단순한 미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로 볼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풍수에 관한 책들도 서점에서 많이 팔리고 있더군요. 서점에서 몇십권을 구입해서 읽었던적 있습니다. 그런 글을 쓴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일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더욱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집이나그외건물(建物) 안에있는물건(物件)이나그배치(配置)를모고길흉(吉凶)을점치는 기물정감(奇物正鑑)이라는 책도 있었습니다. 그런것들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볼수 없는것은 집안에 물건이나 가구의 배치가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내기 시작해서 부터였습니다. 특히 침실에 화분을 두면 식물의 광합성작용으로 말미암아 밤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함으로서 주인의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저의 집에서 저의 아이를 보아주던 보모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분이 저의 아이들을 아주 정성들여 잘 보살펴준 덕분에 아이들이 아주 건실하게 잘 컸습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니 그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서 얼마 안있어서 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온 집식구가 전부 몸이 아프고 많이 앓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쓴 책을 읽어보았고 또 제가 강의같은걸 많이 하는줄 알아서 특별히 문의 온것이였습니다. 아픈것은 병원에 가야하겠지만 병의 근원이 육체 밖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불량한 식습관이라든가 행동들이 우리의 건강을 해칠수도 있는것이지요. 그 아주머니가 저희집에서 아이들을 볼때는 아픈곳이 없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아프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계시던 바깥양반은 이제는 허리가 아파서 바로 걸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는 장성한 따님이 둘 있었는데 집에 있을때는 잔병이 많았지만 대학에 붙어서 외지에 나간후부터는 아프지 않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혹 귀신이라도 붙었나 싶어서 저한테 찾아온것이였습니다.(대중 웃음) 아이들을 돌보아준 정분도 있고 해서 보았더니 시골에 사시는 그 아주머니의 집 굴뚝옆으로 가끔씩 물이 흘러나온다는 것이였습니다. 전형적인 음택이였죠. 그런 마른 날씨에 부엌에 물이 새는 집이나 집 주변에 물이 솟구치는 집밑에는 반드니 지하수가 흐르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물은 그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력(水力)라고도 해서 그 힘을 이용해서 전기를 내고 있지만 그런 수력이 아닙니다. 좀더 가깝게 풀이하자면 수기(水氣)라고 말하는것이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때 학교 숙사에 있은적 있었습니다. 남방은 매우계절(梅雨季節)이라고 해서 봄을 앞두고 특히 추울때가 있습니다. 이럴때는 공기중에 습기가 많고 바람만 불어도 춥습니다. 바람과 물의 힘(水氣)이 작용한 탓이지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불이 마치 물을 뿌린듯 젖어 있기도 했죠. 습기가 많은곳에 오래 있으면 풍습이나 관절병이 온다는 상식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겁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물의 힘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건강과 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리더십코스가 있습니다. H2O(에치투오-물의 분자식)리더십코스라는 강의가 있습니다. 그 코스를 제가 개발하고 강의한지도 어언 6년철이 듭니다. 그 코스를 개발하게된 계기도 실은 오행을 연구하다가 물의 속성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코스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일치성을 통하여 각자의 고유함을 찾는 코스지요. 에치투오 리더십강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되시면 다시 말씀드리고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물이란것은 흐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지요. 물론 세상의 모든 사물이 움직이고 있지만 상대적 우리의 느낌으로 많이 움직이는 물체가 바람과 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물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몸의  70%가 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이 없으면 우리가 소위말하는 단백질로 조합된 생물이 생겨날수 없는것이지요.  지하수는 육지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기초적인 생명의 근원입니다.  요즘은 환경오염때문에 많이 고갈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부농촌이나 특정지역에는 지하수 자원이 풍부합니다.  그런 지하수가 바로 집 밑을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은 찬 성질을 가지고있습니다.  음양에서는 음에 속하죠.  사람은 뜨거운동물입니다. 동물학적으로말하면 포유류에 속하고 우리의피는 뜨겁습니다. 샘물을 여러분들이 마셔보셨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아주시원합니다. 그렇죠. 냉장고에서나온 물처럼 시원하게 우리의목을 적셔주는 샘물이 우리집밑에 있다면 어떨가요?  겨울이나 추운 시절에는 우리 민족습관에 맞추어서 옛날 같으면 온돌에 불을지폈습니다.  옛날 재래식 온돌은 지금처럼 파이프를 넣어서 물을 덮혀 돌리지 않았습니다.  연기나가는 길목위에 넓은 돌을 얻어 고르게펴고 황토를 발랐지요 . 그런 황토와 돌그리고 불길과 연기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물의힘(水氣)를 대부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까지 불을 땔수는 없죠. 물은 찬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음의 성질입니다. 물리를 배우신분들은 다 아시겠지만열은 뜨거운곳에서 찬곳에 열을 빼앗기게 돼있습니다.  지하수는 흐르면서 끊임없이 차갑고 음에 속하는 그런 흐르는 물의기운을 내보냅니다.  지하에서 흐르는 물은 바로 그 위에 있는 뜨거운 열기를 빼갑니다. 사람이나 가축의 열기도 말이죠. 그런 지하수가 크지않고 규모가 작을 경우 그리고 깊이 있어서 물의 기운이 미처 올라오지 못할 경우에는 사람이나 가축에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하수의흐르는 폭이나 규모가 크다든가  아니면 지하수가 집의 기초와 너무 가까운곳에서 흐를 경우에는 바로 사람과 가축의 건강을 해칩니다.  그런걸 풍수학적으로는 수맥(水脈)이라고도 부르는데 수맥이 있는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영문모르게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던가 남자들은 양기가 쇠해져 서힘을 잃으며 여인들은 노화가 빨리되고 갱년기가 앞당깁니다. 서양의학은 표면의학이고 시체해부학으로부터 시작된 의학이기때문에 병리의 원인 을캐기보다는 병 자체를 찾을수밖에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병으로 병원에가게되면  초기에는 어떤 검진을 받아도(CT나초음파등)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조금만아는분들은 쉽게 수맥을 찾아서 집터를 피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걸 미신이라고 하면서 도리질합니다.   저의 집에서 아이보모로계셨던 그 아주머니한테는 제가 빨리 이사갈것을 권고했습니다 .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얼마 안있어서 건강이회복되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그 아픈 근원을 요즘 병원에서는 찾지못합니다.  어디가아픈지를 각종 기계를 이용해서 찾죠. 그리고 그잘못된 장기를 고치는것이 요즘의 서의들입니다.  중의나 한의사들도 요즘은 옛날과 다르더군요.  아 까말씀드린 그러한 사례가 수없이 많지만 시간상 관계로 한가지 만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그렇게 영문모르는병때문에앓는분들이많습니다. 풍수나점이나같은것이단순이미신이아니라고제가생각하는이유가바로그러한데있습니다. 우리가모르고 지나치고 있는곳에 병의 근원이 있을수 있습니다. 시멘트 공장부근의 사람들은 페병에 많이 걸립니다. 호흡기 질병에도 많이걸리죠. 환경의 영향입니다. 단순히 페병이나 호흡기 질병으로 병원에가서 치료받기보다는 공장의 오염을 멀리한곳으로 이사를 하는것이 가족이나 자신의 건강을 찾는 지름길이겠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작은 습관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질병의 원인과 근원이 있을수있습니다. 그런것을 옛날 사람들은 풍수나 점술의 이름으로 신비화 하였을 뿐이지 정작 그러한 이론을 연구하고 실천하여보면 그 안에도 상당히과학적인 부분들이 많음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것이 미신이다  미신이 아니다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판단하면 안된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한  맹목성이  바로  미신이고  입니다.   과학적인 추리와 분석,실증을 거치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그리고 맹목적인 의심보다는 그러한 과학적인 태도로 의심하는것 역시 중요합니다.  오늘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자:  네 오늘 모두에게 유익하고 훌륭한 시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질문을 몇개받고 오늘 강연회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청중1: 아까  선생님께서 강의중에 점을 보는것이 미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점을 믿는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학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요? 김문일 답: 제가  아까 드린 말씀중에 점술이 다 미신인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점술이 또한 다 과학이라고 말씀드리지도 않았습니다 .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려면 미신과 과학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깊이있게 풀이해야할듯 싶습니다.  미신이라고하면 맹목적으로 신앙하고 숭배하는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의 핵심은 맹목성에 있습니다.  아까 강의중에 말씀드렸던대로 미혹 할 미 자는 갈팡질팡하 는맹목적인 관념의 표출이지요.  중국에서의 변증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것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미신이라고 생각했던것들이 과학으로 증명되는것들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라고 믿었던것들이 미신임을 역 시보아왔습니다 . 예를 든다면 로마교황청에서는 거퍼 백년전까지만해도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네모난 땅덩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구를 둥글다고 주장했던 과학자 부루노를 화형에 처해죽였습니다.  유명한 일화도있죠. .과학자 갈릴레이도 로마 교황청에 불려가서 심판을 받게되였습니다.  화형으로 죽이겠다는 위협 아래 갈릴레이는 지구는 네모나다고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어쩔수없는 선택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종교 심판장문을 나서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한마디하였는데 아주 유명한 말이 되였죠.   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맞다고 신앙했던것들이 틀리는 경우가 있고우리가 틀렸다고 생각했던것들이 맞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점을 미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도않습니다.  그러나 학술적인 각도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을 무조건 부정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진정한 학자라면 부정하기위한 부정보다는 그 정확성과 이론의 기초에 대한 연구와 과정을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중2) 저는 동양고문화연구회 이사 정유승입니다.  아까 김회장님께서 앞의 질문에 대 해답변을 해주실때 점은 미신일수도 있고 미신이 아닐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 대답이 너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선생님의 생각에는 어떤 경우는 미신이고 어떤 경우는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답: 미신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그럼 과학에 대해서 먼저 보도록 하죠. 과학이란 영어로science라고합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의 scientia에서 비롯되였다고 합니다.  라틴어에서scientia 의뜻은  이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과학이라는 두글자는 모두 외래어에 속합니다. 제일 처 음과학이라는 의미를 번역할때에는 중국에서는 격치(格致)라고번역했었습니다.  간단히 자전에서 보는 과학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연과 사회 및 사유의 객관적 합법성들에대한 지식체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점을 치는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객관적인 합법성의 일치를 찾는 과정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점이라면 그것 역시 지식적인 체계를 이룬것이라 고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미신도 과학이라고 할수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크게 앓고나니 신을 업었다든가,  불시에 조상이 영험을 주었다든가 하는것은 아직 학술적으로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뜬구름같은  (虚无缥缈)것이라 더 깊은 고증과 연구가 필요할수 도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무엇이나 맹목적으로 완전히 믿고 있는것은 과학처럼 보일지라도 미신이고, 미신이라고 생각 될지라도 의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는것이라면 그것 역시 과학이라는것입니다. 관중3) 저는 유물론자 입니다. 신이나 점이나 같은걸 믿지 않습니다.  아까 선생님의 말씀중에 들으니 객관적합법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변증법과 표현의 차이일뿐 두가지 관념은 같은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신이 과학이 될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없는 귀신이 어떻게 있을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과학이 어떻게 미신으로될수 있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답: 좋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뭔가를 믿지않는다는것은 뭔가를 믿는다는 말이됩니다.  그것이 객관적합법성이고 또 변증법적인 논증입니다.  귀신과 신이있다는것을 믿지않는다는것은 귀신과 신이없다는것을 믿는 나를 믿는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이비록 저기 아프리카에있는 킬리만자로산에 가보지못했지만 그 킬리만자로 산이있을가요?  없을까요?(있습니다.)  장강에 가보지 못했지만 장강이 존재합니까?  존재하지않습니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믿지않는다고해서 그것이 없다고 증명할수는 없다 는것입니다.  우리 매개인의 지식과지혜 는제한되여있습니다.  패러다임을 가지고있는것입니다.  그런 불완전하면서도 다 알지 못하는내가 믿고 있는것을 완벽히 믿는다는것 역시 미신이 아닐까요? 관중3)  제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김선생님의  말씀에  동감이가는 부분도 있지만 자고로 귀신이나 신에 대한것이 오히려 허망하고 또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증법적인 관념이나 객관적합리성을 볼때 귀신같은건 있을수도 없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귀신이나 신이 있음을 증명할수 있습니까?  없다면 어찌 귀신이나 신을 믿고 점을 치는것을 과학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답: 네 예리한질문이시군요.  거꾸로 답해 드린다면 귀신이나 신이 있음을 증명할수 없다면 과학적인 분석으로 귀신이 없다고 증명할수 또한 있을가요?  신앙이라는것은 저멀리 산너머에있는 소나무나 강과 같습니다.  어떤 보이지는 않는것에 대한 믿음이지요.  지금 쵸몰랑마봉을 볼수 없지만 그러한 산봉우리가 있다고 믿고있는 믿음과 같은것이 아닐까요?!  변증법이나객관적합리성을 따진다면 더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있습니다.  변증법에서는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그 점에 대해서는 동감을 하고 공감을 하는 부분인줄로 압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렇다면 상대적인것조차도 상대적이라는 말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이지 않은 어떤것이 존재한다는것이 되지요. 그 어떤것이 상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절대적이겠죠.  따라서 절대적인 뭔가가 존재할수도 있다는것입니다.  질문에 대한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제가 볼때 귀신이나 신이존재하지않는다고 하는것은 절대적인 결정일수도 있습니다.  변증법이나 상대성의 원칙으로 볼때 절대 귀신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물은 언제나 상대적이라고 변증법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귀신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것이 상대성의 법칙에 어긋났다면 그것은 귀신이나 신이 있다는 반론이 될지도 모르지않겠습니까?  오늘 주제가 귀신이 있냐 없냐하는 토론회는아닙니다. 그리고 그런걸 논의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하 는생각이 듭니다. 점술이나 인생학에 대해서 무조건 미신이라고 말하는 분들에 대한 맹목성을 말씀드리고 싶을뿐입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후치질을 잘하고 비가 적절히 와준다면 가을에 풍작을 거둘것임을 우리가 예측할수 있겠습니까? (네)  네 아직 풍작의 그날이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풍작을 예측할수 있습니다.  또 개미가 이사를 하고 제비가 낮게 나는것…등등을 보고 우리는 곧 비가 올 것임을 압니다.  그것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할수는 없겠죠. 또 할아버지의 고질인 풍습병때문에 흐린날에 뼈가 쑤시면 날씨가 흐릴것임을 알아맞춥니다 . 그 이유를 몰랐을때는 우리 는신비하게 생각하고 미신으로 분류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 든자연현상에는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는 법이지요.  사람이 살아가 는방법이나 방식또는육신의질병이나사업의성공여부같은것도 이러한 과학적인 추리로 가히 추측할수 있고 예언이가능하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늘좋은시간을주셔서감사합니다. 사회자: 네 질문하시는 분들이 참 많으시지만 시간상 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강의를 해주신 김문일 선생님께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중략) (2부에서 이어집니다. 본 강연고는 강연테이프를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정리과정에서 일부 오타나 문법상 약간 다를수가 있습니다.정리를 해주신 회원님들과 타자를 도와주신 김만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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