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行하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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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래 예측과 바른 점술( 제1강 상편) 댓글:  조회:1715  추천:3  2015-03-06
사회자: 오늘우리동방고문화연구회에서초청한연사님은….(중략) 수계 김문일 회장님을모시겠습니다. 김문일: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김문일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깊고 큰 주제로 강의 요청받았을때 고민 좀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으신분들은 학자들도 많고 또 이 방면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많이 쌓아온 분들도 계신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노반앞에서 도끼질하는격(班門弄斧) 이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우리말로 점(占)이라는것은 미래를 맞춘다는 의미가 들어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미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미신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나름대로의 이유야있겠지만 무턱대고 미신이라고 말하는분들 역시 자신을 미신하고 있음을 모르는것입니다. 그럼 미신이란 무엇일까요. 미신(迷信)이란 글자뜻을 보면 미혹될 미자에 믿을 신자가 합해져서 그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와같이 미혹된것, 모르는것을 믿는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시에 흔히들 듣는 말인데 과학을 믿으라는 말이있습니다. 과학이라 함은 과정과(科)자에 배울학(學)자를 붙혀만들어졌지요. 과정을 배움으로서 그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것이 과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사물이 더 많을가요? 아니면 모르는것이 더 많을까요? 네 당연히 모르는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공기의 부력으로 비행기를 하늘에 올릴수는 있지만 비행기가 언제 무슨 이유로 추락할는지 모릅니다. 바다에 잠수함을 띄우고 큰 배를 만들어내지만 그배들이 언제 어디에서 침몰될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끝이 있다면 그 끝의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합쳐져서 우리가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이렇게 인간으로 성장해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일도  할수있을까요?그러다가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많큼 인간은 무지와 모름속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알고자하는 마음이 과학을 발전시켰고 그러한 과학덕분에 우리는 현재 이러한 현대적인 교실에서 빔프로젝트나 더운 여름 시원한 에어컨의 혜택을 받으면서 강의를 진행할수 있는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민속신앙을 그냥 무조건 미신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모르니 그것은 미신이라는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모른다고해서 모두다 모르는것은 아니라는것입니다. 예를들어 저는 이 전기의 원리를 모릅니다. 어떻게 음전기와 양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를 만들었으며 발전기라는 그런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릅니다. 전선줄을 따라 우리 이 강의장까지 전송되는 이 전기의 원리를 잘 모르고있지요. 그러나 제가 전기를 모른다고해서 전기가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전기로 조명하고있고 에어컨을 돌리고 있습니다. 제가 전기를 모른다고해서 전기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것을 모른다고해서 그것이 다 미신인것은 아닙니다. 모르는것을 배우려는 그 과정이 바로 과학입니다. 모르는것을 아는척하고 그것을 믿어버리는것이 미신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부정론자가 상당히 많은것 같습니다. 그냥 무조건 미신이라고 일축해버리죠. 제옆에서도 그런분들을 가끔씩봅니다만 자기자신을 과잉 신앙하는 경우가있습니다. 라고외치는분들이지요. 저는 그것을 자기광신도라고 부릅니다. (대중웃음) 저기 히말리야산맥의 쵸몰랑마봉을 가보신분들계십니까?(대중:아니요.) 많은 분들이 가보시지 못하셨군요. 그런데 그 쵸몰랑마봉이존재하지않습니까? (답:존재합니다.)네, 내가 가보지 못했고 내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쵸몰랑마봉이 존재한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냥 무조건 의심하고 부정하는것은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고 또 배워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전통과 민속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습관과 전통 그리고 우리의 삶의방식과 언어가 결합되여 한민족을 이루었지요.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은 모두 자신의 전통과 습관 그리고 언어나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월에는 나만 맞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집에 있는 빨간색 꽃만 꽃이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있는 노란꽃이나 파란꽃은 모두 꽃이 아니라는 억지지요. 점을 치는것이 무조건 다 나쁜것도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점술에 대해 깊이 믿고있는 어느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어느덧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문에 들어올 며느리가 마음에 별로 들지않아서 무당을 찾은것입니다. 자신의 가문에 그 며느리감이 들어오면 좋은지 나쁜지 확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당이 말하기를 이제 들어올 며느리는 아들의 뒷바라지 잘하고 자식 잘 키우고 부모한테 효도할뿐만아니라 가문에 큰 도움을 줄수 있다는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오는 시어머니의 눈에는 예전에 별로 곱지않던 며느리가 그렇게 곱게 보이고 맘에 들었답니다. 그래서 며느리한테 잘해주니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한테 잘하고 효도하니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니 남편의 사업 또한 잘되여 행복하게 잘살게 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알수 있듯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궁금하고 알고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즉 모르는것에 대한 구지욕 때문입니다. 그 시어머니는 새로 들어올 며느리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씻어준 사람이 바로 그 무당이였지요.. 모든 사람들은 모르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르는 곳으로 떠날때, 혹은 앞이 보이지않는 깜깜한 밤길에 홀로 걸을때, 느닷없이 병에 걸렸을때, 등등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삽니다.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며 치유해주는것이 실지 점술사의 역할이였습니다. 좀 더 현대적이고 유식한말로 굳이 표현한다면 점술사라는 말보다는 , 등등표현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중웃음) 몇천년전부터 지구라는 이 땅덩이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후대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그때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었습니다. 지금처럼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는 아니였죠. 사람들은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힘에 경탄하던데로부터 두려워하고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곡식을 심고 잘 자랄수 있도록 생명수처럼 흐르던 강물이 어느날 범람하여 마을을 쓸어버리고 생명을 앗아갑니다. 깊은 수림속에는 알수없는 맹수들이 우글거립니다. 벼락과 천둥은 사람들의 혼을 앗아갑니다. 두려움속에서 그들은 자연을 경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처럼 자연을 이기려는것이 아닌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가 되려는것이였죠. 그들은 자연과 대화하고 싶어했고 그런 자연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귀신과 신이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귀신과 신들과 대화를 할수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었고 그런 사람이 제사장이나 무당이였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옛날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민속이나 풍습,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코웃음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조건 미신이라는것이지요. 어떻게보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과학의 발전에따라서 번개와 우뢰가 왜서치는지 알게되였고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자연의 신비를 하나둘 깨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어릴때보았던 동화를 믿지않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이상한것은 그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물질이 풍요로와 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더 신앙과 정신적인것,그리고 민속이나 풍습에 열중합니다. 그것은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배고플때는 당장 먹고사는것이 걱정이기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부르고 살만하면 인간의 욕심은 무한대로 팽창합니다. 더 잘살고 싶어지고 더 많은것을 얻고 싶어집니다. 더 오래 살고싶고 더 좋은걸 가지고 싶어지지요. 그런걸 얻고싶은데 방해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길때 그리고 그걸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을때 사람들은 점을 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찾습니다. 속말로 라고도 하는데 액을 물리치고 운을 좋게 돌리는것을 가리킵니다. 점을치는 사람을 점쟁이라고 부르는분들도 계십니다. 그것은 낮춤말입니다. 우리 인생사가 가르쳐주듯이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존중을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물론 점을 쳐준답시고 재물이나 얼려내고 남을 해치는 나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점을 잘보는 사람들한테는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인생을 컨설팅해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에도 점술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점술을 철학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호칭은 예언가라고도 부릅니다. 한국이나 일부 동남아나라를 가보게되면“철학관“이라고적어놓은 간판을 볼수가 있습니다. 바로 점을 봐주는 곳입니다. 서양에서는 한때 어떤 특정적인 종교적인신앙때문에 무속신앙인들 즉 무녀(巫女)들이나 무술(巫術)을 하는 사람들에게 박해와 살해를 가한시기가 있었습니다. 특정 종교를 광신하는자들이 칼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죽인것이지요. 로마로 가는길이 한갈래밖에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마구 죽였었습니다. 이제는 로마로 가려면 비행기로 갈수도 있고 배를 타던가 육지로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갈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원한다면 걸어서갈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당시 배타적인, 종교의 광신으로 미친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와중에 역사에서도 유명한 십자군원정이 있었습니다. 1096년 교황우루반 2세가 예루살렘을 해방한다고 일으킨 은자피에르의 제1차십자군 원정이였습니다. 거기에 참여를 한 소위의 순례자들은 결의에 가득차있기는 했으나 군생활을 해본 경험이 전혀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의 앞장에는 당시 라고불렸던 고티에라는 사람과 라고 불렸던 피에르가 있었습니다. 십자군병사들은 종교에대한 광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나라를 통과하고있는지도 모른채 그저 동으로 동으로만 향해 갔습니다. 먹을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지나가는 곳마다 약탈을했는데, 그 피해는 동방보다는 서방에서 더 심했습니다. 그 은 하루아침에 누더기를 걸친, 야만적이고 위험한 방랑자 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당시 헝가리아왕은 그 역시 기독교인이었지만 소위 하느님의 계시를 방자한 부랑자들로인해 자기 국가와 농민들에게 생긴 피해에 화가 단단히 나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농민들을 십자군의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공격에 나섰습니다. 십자군의 얼마 남지않은 생존자들이 터키해안에 이르렀을때 , 반인,반수,야만인이라는그들의악명은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져 있었죠.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당시 니케라의 주민들, 지금 놓고보면 소아시아지역 이즈니크지역의 주민들은 털끝만치의 주저도없이 그들을 모두 처치해버렸습니다. 이어서 고드프루아드부용의 제2차 십자군원정도 있었죠.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를 벗어나는듯하여 나중에 시간이 될때 이어가도록 하고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각 민족의 이야기에는 거의 대부분 예언에 대한 부분이 기록되여있습니다. 많은 성인들은 예언을 하였고 그 예언이 적중할때 사람들은 감탄하고 그분의 말을 더 믿고 따르게 되였던것입니다. 서양에서는 그에 따라서 점성술(占星術)즉 하늘의 별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방법이 유행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짚시여인들의 점성술이나 수정(水晶)점술은 현대서양의 점술에서 큰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양에는 더욱 다채롭고 다양한 점술이 유행했고 사람들은 그것의 특성과 분류에 맞추어 체계를 만들고 이론적인 기초를 쌓아 많은 점술의 학파와 유파를 탄생시켰습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전승되여 내려온 동양점술의 학파와 문파에 대한 간단한 윤곽을 함께 보도록 하고 좀 더 상세한 부분은 시간상 관계로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점술에 큰 영향을 미친 학술을 본다면 아마 주역(周易)일것입니다. 이 점은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자리에 주역학회 회장님도 계시지만 혹 이 방면에 대해서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는 노파심에 주역에 대해서 몇말씀 올리겠습니다. 주역(周易)을 요즘은 역학(易學)라고도합니다. 주역은 말그대로 옛날 주나라의 주문왕이 정리하였다고 하여 주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주역뿐이 아니라 (連山易)이나 (歸藏易)도 있었습니다. 이 세가지 역학을 합해서 삼역(三易)라고 불렀던것입니다. 현재 연산역이나 귀장역은 이미잃어졌습니다.(失傳) 그러나 아직도 역학의 상수(象數)에서 그 그림자를 엿볼수는 있습니다. 혹 시간이 되시고 이 방면에 대해서 더 깊은 연구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역위라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간단하게 서술되여 있지만 이미 잃어진 연산역이나 귀장역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줄로 믿습니다. 또 한권을 더 추천해드린다면 관랑역전이있습니다. 역학에 대해서 관심있는분들은 한번쯤은 꼭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기책들이 서술이 간단하고 해독이 어려워서 정작 연구를 하려면 많은 시간과 정력이 필요할줄로 믿습니다. 역학에 대해서 너무 길게 이야기하면 이번 강의가 자칫 학술세미나가 돼버려 피곤해 하실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주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음에 시간을 내서 특별히 주역분야만 따로 여러분들과 경험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가 흔히보는 팔쾌도(八卦圖)나 태극도(太極圖)모두 주역에서 나온 그림들이지요. 그걸 이야기하다보면 하서락도(河書洛圖)에대한 이야기를 꼭해야지만 저한테 주어진 강의시간때문에 다음시간에 주역에대해서 따로 강의할때보충하도록하겠습니다. 아무튼 주역의 영향으로 많은 점술이 탄생했고 동양 점술의 시조가 되다싶이 되였습니다. 물론 주역은 단순한 점을 치는 책이 아닙니다. 점을 치는데 응용되였을뿐이지 점술책은 아니였습니다. 단순한 점술책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깊은 자연과 우주의 지식을 포함시키고 있는 학문입니다. 현대에는 중국에서도 역학 학자들이 대량배출되고 있고 대학에서도 가르치고있는 실정입니다. 한 중국유학생은 미국에서 역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태양계의 열번째 행성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여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역학을 부호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철학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학술적으로 분리된 점술책을 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역학에서 분리되여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특별한 방법으로 분류된 점술책들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객지를 돌아다니면서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점을치면서 마술이나 환술같은걸 보여주기도하고 약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강호술사(江湖術士)라고도 했고 방기지사(方技之士)라고 부르기도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점을치는 기초적인 바탕적 이론을 본다면 크게 사로팔경(四路八經)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사로에는 남로(南路)가 있고 북로(北路), 평로(平路), 한로(漢路)가 있습니다. 팔경에는 마호경(馬虎經)), 할자경(瞎子經), 랍락타경(拉駱駝經), 흑취자경(黑嘴子經), 암순도괘경(鹌鹑叼卦經)이 있으며 점과경(占課經), 평경(平經), 광경(光經)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들만의 특별한 점술방법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소이한 부분 역시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술책들은 모두 이론에 기초를 하여 분야별로 만들어진것으로서 비교적 계통적이고 과학적으로 분류되여 있습니다. 마호경을 보더라도 만년력(萬年歷)에 그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발달해서 전자판으로 된 만년력을 어딜가나 구할수 있지만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이런 만년력은 특별한 사람들만 공부했고 그런 만년력을 기초로 우리가 민간에서 많이 쓰는 열두띠와 천간(天干), 지지(地支), 오행(五行)에 따라 사주팔자를 봐주는 것입니다. 중국은 땅이 넓고 민족이 다양하기에 지역마다의 풍습과 언어가 다릅니다. 현재도 같은 중국인이고 한족이라도 남북의 언어차이가 심할뿐더러 어떤 지역은 마을과 마을지간에도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언어표현의 차이가 심합니다. 언어가 다르면 풍토와 습관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풍토와 습관에 맞춰져서 중국에서의 점을 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고 변화무쌍하다고 말해야 할듯 싶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한 그러한 경전을 기초로 하여 또 많은 점술사들이 역사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경전이나 이론적인 기초를 가지고있는 점술이 흥행하기 시작한것은 중국에서는 전국시기부터였습니다. 전국시기는 중국의 가장 동란의 시기였죠. 공자가 만년에 정리한 중국문화의 보귀한 재산중의 하나인 를 보면 그점을 엿볼수 있습니다. 라는 책에는 당시 중국의 시(詩)와 예(禮)와 음악(樂)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여 있었고 또 공자의 고국인 당시로 나라의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전국시기의 역사가 다분히 담겨있는 역사 철학책입니다.  그 당시 오행에 관련된 연구가 시작되였고 주역(周易)이나 기타 역학의 태극, 양의, 사상, 팔쾌의 이론에 기초하여 음양에 대한 이론과 오행에 대한 이론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고대 태음력(太陰歷)을 기초로 한 역법歷法)과 음양오행에 관한 체계적인 정리로부터 시작하여 비로소 동양의 철학과 예언의 기초를 제시하는 점술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것입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본 강연고는 강연테이프를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정리과정에서 일부 오타나 문법상 약간 다를수가 있습니다.정리를 해주신 회원님들과 타자를 도와주신 김만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9    음양 오행과 생활 제1강(하편) 댓글:  조회:1456  추천:1  2015-03-05
청중1) 김회장님 오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저는 동방고문화연구회 이사 김영진입니다. 오늘 강의를 들었고 또 예전부터 그에 관심이 많아서 오행의 상생상극에 대해서는 조금 알듯 싶습니다. 그러나 오행이나 음양의 원칙을 어디까지 과학으로 봐야하고 어디까지 비과학으로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강의해주시는 김회장님께서는 이러한 음양오행이 어디까지 과학이고 어디까지 비 과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문일: 네 감사합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에는 과학적인가 아닌가하는 리념적인데 관심이 많으시군요. 제가 진행한 많은 강의때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나오는걸보면 더욱 그러한듯 싶습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은 무조건 비과학이라고 일축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아옵니다. 특히 과학계에 그러한 현상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존재하는 현상이 있는데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면 그것은 비과학적이 아니라 초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과학의 수준이 미약해서 이해를 못하는것이지 단순히 미신으로 일축시키는것은 진정한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영역을 탐구함으로서 과학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에서 뒤졌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동양이 서양에 밀리고 있습니다. 동양의 사고는 형이상학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오히려 깊은 철학을 내재한 현실주의인듯 싶습니다. 그러한 사고가 있기에 우리는 현재 과학적으로 해결할수 없는 많은 문제에 해답을 줄수 있습니다. 하지만 측정한 결과나 실험 결과만을 가지고 결론을 짓는 서양의 학문을 진정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한번 서양에 뒤질수 밖에 없습니다. 음양이나 오행을 떠나서 어떤것이던 우리가 모르는 분야를 탐구하고 배우고 개선하는 과정이 우리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를들면 옛날의 풍수학자들은 풍수를 볼때 코로 냄새를 맡고 손으로 흙을 만져서 수분을 확인하고 눈으로 거리를 측정해서 풍수를 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현대적인 기계를 가지고 풍수를 측정할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계나 설비가 많지만 쓰지않고 계속 원시적인 방법을 고수한다면 그것 역시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지 않겠는가 생각듭니다. 오행은 음양에서 시작되였고 음양의 연속입니다. 우리 삶속에서 음양으로 분류 될 수 있는 예는 물질, 정신, 형상, 운동, 시간등 다양한 분야에서 찿아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과녀, 낮과 밤, 보름과 그믐, 양전하(陽電荷)와 음전하(陰電荷), N극과S극, 전기와자기, 입자(粒子)와 파동(波動),물질(物質)과 반물질(反物質), 블랙홀과 화이트 홀, 중력(重力)과 부양력(浮揚力), 폭발(爆發)과 응폭,엔트로피증가 시스템과 엔트로피 감소 시스템(Negentropy system), 혼돈과 질서, 양(陽)온도 변화율과 음(陰)온도 변화율, 작용과 반작용, 산과 알칼리, 산화와 환원, 구심성 나선운동과 원심성 나선운동, 좌뇌와 우뇌, 음양, 허실, 한열, 인영과 촌구, 호(呼)와 흡(吸), 기(氣)와 혈(血), 오장과 육부, 양수(陽樹)와 음수(陰樹), 기수(基數)와 우수(偶數),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 좌선성(左旋性)과 우선성(右旋性), 아드레 날린과 멜라토닌, 호기성과 혐기성, 요철, 유위법과 무위법,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분류는 물리학등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라 할지라도 음양에 관계된 물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과학적인 부분의 비율을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관심가지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할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2) 회장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음양의 변화에 대해서 잘 들었습니다. 금방 말씀에서 낮과 밤도 전형적인 음양의 이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낮에하는 일이 효율이 높습니까? 아니면 밤에하는 일이 효율이 높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요즘 인터넷관련 일을 하다보니 낮에는 많이 조는편이고 밤에 늦도록 일하는 편입니다. 어느쪽이 더 바람직할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김문일: 좋은 질문입니다.낮과 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따른 빛과 온도의 차이 뿐만아니라 인체의 생리 현상에서 그 현격한 변화가 나타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볼때 맥의 강도, 음주에 따른 취기의 정도 그리고 운동의 난이도,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양(量) 그리고 기공사들의 기감(氣感)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낮에는 기혈의 흐름이 왕성하여져서 건강한 사람의 경우 낮의 맥의 강도는 밤에 비하여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낮에는 기혈의 흐름이 커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밤에 비하여 낮에 보다 힘차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과 유사한 예가 낮술에 의해 취기가 오르는 속도입니다. 즉, 낮술을 마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혈의 순환이 왕성하기 때문에 술이 빨리 오를 뿐만 아니라 대취하게 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되지요. 맥의 경우에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건강한 사람의 경우, 낮의 맥이 밤의 경우보다 큰 것을 알 수있습니다. 이 경우 특히 건강한 사람으로 한정하는 이유는 병이 깊은 사람은 천기에 순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낮과 밤에 따른 맥의 변화가 작거나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밤에 운동을 하게 되면 같은 양의 운동일 경우 아침에 비하여 힘이 더 들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실험한데 의하면 인도의 요가수행자들의 명상에 따른 뇌파수를 측정해 보았습니다. 요가 수행자들의 말을 빌면 밤 1-2시경에 백회를 통하여 많은 에너지가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오기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어 부득히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뇌파수도 강하게 움직여서 명상에는 오히려 방해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굥교롭게도 이 시각이 휴식의 호르몬이라는 멜라토닌의 생성이 최대가 된다는 시간과 일치함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듭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라는 평범한 이치가 큰 진리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하는 경비요원, 상인, 또는 공부하는 학생등의 경우 건강이 단기간에 상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발견 할 수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에는 밤잠을 안자고, 기력이 떨어진 밤에 멍한 상태에서 비능률적으로 오랫동안 책상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기혈의 흐름이 왕성한 낮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밤에는 제대로 쉬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이는 시험에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누누이 증언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선생님께서 질문하신대로 현재 인터넷 사업때문에 밤일이 잦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그래도 기력이나 양기가 강한낮에 효율적인 일을 하도록 일 패턴을 바꾸어 보는것이 더 좋지 않을가 하는 제안을 해보게 됩니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청중3여) 김회장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 연구회에서 사무직을 맡고 있는 김현옥이라고 합니다. 음양오행의 이치가 전반 인생에 거쳐서 그리고 건강에 관련돼서도 영향이 있다고 저도 믿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음의 기운이 세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믐날같은때는 영문모르게 정서적으로 짜증이나고 힘이 듭니다. 그 이유가 어떤것이 있을가요? 그리고 제 남편은 저와는 거꾸로 보름날이면 술이 마시고 싶다고 하고 거의 보름이면 친구들과 술마시고 집에 들어오군 합니다. 남자들도 달의 영향을 받는것인가요? 김문일: 김여사님은 음양의 기운에 민감한 체질인듯 싶습니다. 달이 인체 생리에 미치는 영향은 조석 간만의 차이(해수면 높이의 差)가 바다에 영향을 미치는 이상으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의 생리가 달의 공전과 자전 주기인 29.5일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보면 달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보름이 되면 머리로 올라가는 기혈의 양을 나타내는 인영맥이 커져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범죄가 증가하며 뇌혈관 파열이 일어나는 중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달을 지구나 태양과 비교할 때 음(陰)으로 파악되나 보름이 그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陽)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은 이와 같이 항상 상대적인것입니다. 陽을 나타내는 男은 밝고 강하고 단단하고 적극적이며, 陰을 나타내는 女는 어둡고 弱하고 부드럽고 보수적인 性質을 나타냅니다. 이는 남녀의 성기를 포함한 육체의 특징과 정신적인 면에도 공히 적용됩니다. 구체적으로 음양론의 관점에서 남과여를 볼 때 남자인 양이 여자인 음을 유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늘과 땅의 이치를 설파한 주역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성질에서 볼 수있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남자가 남자답지 않고 여자가 여자의 속성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겠지요. 그래서 권위주의 일변도인 가부장제도나 남녀의 속성을 무시한 평등에 대한 주장은 모두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과 비뚤어져 나간듯 하지만 여필종부라는 말 자체의 어감이 별로 좋다고 느끼지지는 않지만, 이말의 진정한 의미는 남자가 남자답게 가정을 제대로 이끌 때 여자가 순응하여 이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여성의 맹목적인 복종이나 여성상위를 뜻하지도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자가 가정에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양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어떠한 정력제라도 남성을 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편을 남자로서 살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게 하고 싶으면 아내들이 첫 번째로 하여야 할 일은 맹종하지 않으면서도 남편의 기를 꺽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는 일입니다. 어떤회사의 속옷 광고에서 “남편의 자존심을 누가 살려주는가” 하는 광고문귀는 이러한 음양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우 간단한 음양의 이치도 제대로 교육받은 바가 없기에 가정의 불화와 사회적인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의 체(體)를 불문하고 정신적인 면에서만 살펴보면 陽의 기질을 많이 가진 사람은 仁(木), 禮(火), 信(土), 義(金), 智(水)의 陽을 나타내는 덕목을 많이 가졌다고 볼 수 있고, 陰의 기질을 많이 가진 사람은 怒(木), 喜(火), 思(土), 悲(金), 恐(水)의 감정을 나타내는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가진 것은 없어 끼니를 굶어도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고 이상적인 사회에 대하여 열을 내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남자의 속성입니다. 저도 남자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수컷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대중 웃음) 이에 반하여 여자들은 자기일이나 가정등에 국한된 완벽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특히 소인이나 여자의 경우 나이가 들어 건강이 나빠져 오장육부가 균형을 상실한 데다가, 인격수양마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육체에서 발현되는 陰의 속성만이 증폭되어 남과 사회를 돌보지 않는 利己的인 사람이 되며, 심하면 사소한 일에도 울고불고 하는 狂的인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와같이 여자는 음의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순응하려하며 변화에 소극적입니다. 이러한 성질이 육체 또는 인체 생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 비하여 한번 살이 찌게 되면 잘 빠지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불경에서 여자가 성불하지 못한다 함은 육신의 여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속성이 음의 기운을 많이 가진 소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여자와 소인을 같이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기분이 나쁘셨다면 공자님을 욕하시기 바랍니다.(대중 웃음) 서양에서는 보름날 밤에 농경지에 좁은 수로를 통해 물을 대면 소출이 늘어나고 水路를 이용하여 특히 무거운 목재를 다량으로 운반할 때 보름날 밤이 가장 좋다는 것이 20세기의 전반기 몇십년동안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비장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동동주와 같은 전통 민속주를 빗을 때 밤에 흐르는 물을 사용하면 술 맛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때는 저의 할머니가 청주를 직접 빗으셨는데 수돗물을 제쳐두고 밤중에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서 만드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될 경우에는 밤에 물을 길어날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름밤에 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물일 경우에는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물이 굽이쳐 흐르는 구심성 나선운동을 하게 되면, 온도가 낮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며 물의 에너지 상태가 높아져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쉽게 동양식으로 표현 하면 보름밤이 되면 목화토금수 오행중 음기의 하나인 水氣가 좋아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체도 혈액과 임파등의 수분을 합치면 70%이상이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달의 영향을 많이 받을것입니다. 여성의 경우 남성과 대조할때 음의 기운이 강하기에 이럴때에는 호르몬분비같은것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는것입니다. 그에따른 간단한 체조나 운동이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음기가 강할때 양기를 조화시키는 옛부터 내려온 체조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믐날에 심기가 불편할대 그런 체조를 하게되면 쉽게 호르몬 조절이 되고 음양이 조화가 돼서 다시 편안함을 유지할수 있지않을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답변이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자: 많은 분들이 질문을 원하고 계시지만 시간상 관계로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질문이 아직 많으신분들은 강의가 끝나후 혹은 다음 시간에 다시 질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바쁜 시간을 내셔서 저희 연구회에오셔서 특강을 해주신 김문일 회장님게 감사의 박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강의고를 정리해주신 회원님들과 김만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일부 원고는 한국직원의 타자로 이루어져서 문법상 약간 다를수도 있습니다.)
8    정월 보름에 눈을 맞으며 댓글:  조회:1695  추천:0  2015-03-05
  아침부터는 눈까비가 내리는듯 하더니 오후가 되니 큰 눈이 되여 흩날렸다. 새해 정월 대보름날 큰 눈이 내리는것이다. 일기예보에서 밤새 큰 폭설이 내린다고 한다. \   봄눈이다. 눈이 내릴때면 즐거워하는 족속들이 있다. 애들이 좋아하고 강아지가 좋아한다. 연인들도 좋아한다. 금년 정월대보름은 일요일에 맞춰져서 휴식하기가 좋다. 회사에서 당직을 서는 직원들을 다 휴식시키고 나만 별일도 없고 해서 대신 교외에 있는 공장에 가서 당직을 섰다. 앞뜰에 매놓고 있던 강아지를 풀어놓으니 좋아서 이리저리 날뛴다. 눈더미위를 뛰여다니며 펄쩍펄쩍 뛰다가는 내품에 덥석 안긴다. 입고간 옷에 얼룩이 갔지만 자못 흐뭇하고 즐겁다. 눈이 오면 나도 즐겁다. 꼭 아이가 된 기분이다. 강아지처럼 저기 눈밭에서 뒹굴고 싶어진다. 어릴적 아버지와 누나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이 난다. 누나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눈덩이를 굴리면 아버지도 함께 일손을 거든다. 큰 눈사람 하나 만들어서는 거기에 눈섭을 그리고 코를 만든다. 어머니는 언제나 처럼 멀리 서서 우리들이 즐거워하는걸 보며 함께 즐거워 하신다. 혼자서 정원에 쌓이는 눈을 보며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려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느낀다. 그 아름답던 시절이 어제같은데 부모님은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오늘은 과거의 결과이며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이다. 우주의 알수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태어나고 죽는 생명의 계보는 무엇일까? 그 시간속의 생명의 어느 고리 하나가 빠져나가도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과거의 모든 생명은 오늘날 이 생명 때문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지금,바로 오늘은 연결되어 있는 별자리처럼 미래에도 영원히 계속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한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러한 생각하에서 말한게 아닌가 싶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놀기를 좋아하는 젊은이였으나,성인을 만나 기독교에 귀의하여 중세를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마침내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등 많은 명구가 있다.   어릴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말들이 나이가 들면서 차츰 이해가 가고 동감이 간다. 혼자서 눈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한참을 낑낑댔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금방 내린 눈이라 잘 붙지를 않아서 눈이 덩이가 지지 않았다. 눈이 내려서 공기의 압력에 의해 약간 굳어졌을때 눈사람을 만들기 딱 좋은때다. 손에 잡히는대로 책한권을 들고 보다가 누운것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깨여보니 벌써 해가 서산을 넘은 시간이다. 오랜만에 자는 낮잠이라 혼곤히 잘 잔듯하다. 그러나 눈빛에 바깥은 그대로 환하다. 밤새 눈이 내리면 새해 보름달을 볼수 없을 같다. 올해는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이라도 빌어보고자 했는데 눈때문에 안될것 같다. 마음이 가르키는 방향을 향해서 눈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하고 빌어보았다.   봄눈이 오면 새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瑞雪兆豊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풍작을 거두는 한해가 되였으면 좋겠다. 이제 또 하루가 지나가면 새로운 하루가 올것이다. 그 날은 내일일까 오늘일까?
7    미워서 보고 싶은 그대 댓글:  조회:1386  추천:1  2015-03-05
그리움이 진해지면 미워지는가요? 미움이 진해지면 그리워지는건가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질때면 난 멀리 하늘가를 쳐다봅니다.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그 사람을 저 하늘우에 그립니다. 보고 싶은데 볼수 없어서 밉습니다. 미워도 보고싶은데 보고싶어서 미운 그 사람이 한없이 그리워서 입니다. 가슴은 아프고 눈가엔 눈물이 어른거리지만 그것도 모르고 잘 살 그렇게 잘살것만 같은 그 사람때문에 난 더 미워집니다. 보고 싶어도 볼수 없어서 그래서 더 밉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립습니다. 미워서 보고 싶지 말아야 할텐데 미워서 미워져야 할텐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것 같은 그대는 미워져도 미워할수 없습니다. 그리움에 가슴이 아파올때는 그리운 그 사람이 미워서입니다.
6    음양 오행과 건강장수 (상편) 댓글:  조회:1521  추천:0  2015-03-05
사회자: 우리 연구회에 찾아주신 회원 여러분과 내빈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 연구회가 설립되여서 지금까지 벌써 일년가까이 돼갑니다. ……(중략) 오늘부터 매주 한번씩 회장님을 모시고 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듣도록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강의를 해주시기 위해서 찾아주신 김문일 회장님을 큰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김문일: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는 거의 많은 분들은 구면이라서 저도 강의가 참 편해졌습니다. 요즘 날씨가 불시에 추워지니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셨더군요. 또한 요즘은 신종풀루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때이니 모두들 건강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주제가 음양으로 보는 인생과 인생사입니다. 음양하면 여러분들은 뭐가 떠오릅니까? 태양과 달, 낮과 밤, 음택과 양택이 떠오르십니까? (청중1: 태극도가 떠오릅니다.) 네 그러시군요. 그런면에서 보면 저와도 비슷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음양하면 제일 먼저 태극도가 떠오르더군요. 오행설의 핵심은 태초의 공허함인 무극에서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는 태극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양(陽)과 음(陰)이라는 두가지 기운이 생성된다는것을 기초로 하고 있습다. 동양의학에서는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물질을 종합 분석하고 자연계에는 오행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기본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행이라고 하는 것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이것의 하나를 행(行)이라고 부릅니다. 오행을 일명 오운(五運)이라고도 하는데 '행'이나 '운'은 다같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있고 변화가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오행이라는 다섯 가지 물질은 각각 다른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바 그의 내용을 칠판에 적어보겠습니다. 물론 오행은 상생하고 회전하는것이기에 그 선후나 순서가 없습니다. 1, 금(金)이라고 하는것은 일단 아름답고 차고 굳으며 두드리면 소리가 잘 나고 불을 두려워하며 불에 의하여 용해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말합니다. 2, 목(木)은 부드럽고 잘 소통되어 있고 곧추 벋어나가는 성질을 가지며 동요(動搖)하는 성질이 있는 물질입니다. 3, 수(水)는 차고 습윤하며 높은 데로부터 낮은 데로 흐르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가르킵니다. 4, 화(火)는 뜨겁고 작열하고 연소하며 그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는 물질입니다. 5, 토(土)는 자양하고 성질이 온후하며 변동이 적은 성질을 가지는 물질입니다. 이 다섯가지를 가르켜서 오행이라고 합니다. 이상에서 오행의 다섯 가지 물질은 서로 각각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물질 상호간의 각각 다른 특성으로부터 그들 상호간에는 서로 조장(助長), 자생(資生)시키는 상호관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측면으로는 그들 상호간에 서로 제약하며 타승하는 상호관계를 발생시킵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이치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학문으로 계승하여 왔습니다. 요즘은 오행 심리학, 오행체질학, 오행성격학 등으로 승격하기도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오행의 원리가 작용한다고 생각하시면 될듯 싶습니다. 음양과 오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게 된 이유는 그런것을 이용하여 돈벌이나 점술을 하다나니 단순히 그러한 학문으로 오인되게 된것이지요. 실은 음양오행은 그것말고도 더 깊은 학문이 들어있습니다.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더 알기 어렵고 난해한것이 바로 음양과 오행의 학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음양오행은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변화해가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음양오행의 기초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이 음과 양이 다시 한번 분화한 4기운(목:木, 화:火, 금:金, 수:水)이 있습니다. 이 4기운을 각각 동서남북의 네개 방위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4기운을 중재하는 토(土)기운을 합하여 오행(五行)이라고 합니다. 방위로 볼때는 중앙이 됩니다. 양(陽)은 "밖으로 뻗는 성질"을 말하며, 음(陰)은 "안으로 모이는 성질"을 말합니다. 이것의 쉬운 예로 우리의 호흡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호흡할 때 숨을 내뱉으면 (밖으로 뻗으니까 → 양), 그리고 숨을 들어마시면 (안으로 모이니까→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행으로 보게되면 첫째 위로 강하게 솟구치는 기운을 목(木)이라고 하는데 이를 생(生)한다고 합니다. 두번째 분열하면서 퍼지는 기운을 화(火)라고 하며 이는 장(長)한다고는 합니다. 이것의 예로 봄에 싹터서 위로 쭉 뻗어가는 줄기: 목(木)와 여름에 확 퍼져나가는 가지와 잎파리: 화(火)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세 번째로 안으로 모여드는 기운을 금(金)이라고 하고 이를 렴(斂)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여서 잠시 쉬는 기운을 수(水)라고 하며, 장(藏)한다고 합니다. 이것의 예로 가을에 나뭇잎에 몰려있던 기운들이 뿌리로 모여들며: 금(金), 겨울에는 뿌리로 기운이 모여 다음 봄을 기다리는: 수(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토(土)는 어떤 기운 일까요? 바로 저 4가지 기운이 잘 움직이도록 잘 조절하는 것이랍니다. 이와 같이 4가지 기운(木. 火. 金. 水)이 토(土)의 중재역할에 힘입어 반복하여 순환하는 운동이 되풀이 되는 것이 결국 우주가 변화하는 기본적인 원리인것입니다. 이 단순한 운동을 마음으로 느껴보십시오. 우주가 숨을 내쉬면-목(木),화(火) 들이 마시면-금(金),수(水).... 이것을 옛사람들은 율려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행 생극 순역(五行生克順逆)에서는 강한 것은 약한 것을 공격할 수 있는데 토(흙과 같은 것)는 목(나무와 같은 것)에 의하여 뚫어지고(達), 실(實)한 것은 허(虛)한 것을 타승할 수 있는데 금(철과 같은 것)은 화에 의하여 용해되고(缺), 굳은 것은 유연한 것을 제약할 수 있는데 목은 금에 의하여 베어진다(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물이 상호간에 서로 제약하고 서로 타승하는 관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오행의 각각 다른 특성들을 설명하여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과 현상이 모두 이와 같은 상호관계에 있으므로 그러한 실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오행은 이와 같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서로 제약하며 타승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측면으로는 서로 발생시키고 조장시키는 상호관계를 가지게 되는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수(水)는 화(火)를 제약하며 동시에 목(木)을 자양하는 성질을 가집니다. 이것을 비유해서 말한다면 불은 물에 의해서 꺼지는 것이고 나무는 수분이 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도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수와 화, 수와 목 들 사이에 있는 상호연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점차 발전하여 나중에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내재하는 상호 발생을 조장시키고 상호 제약하는 복잡한 연계관계를 설명하는 데 오행의 이론을 이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체에서도 각 장기 계통 및 기능들이 생리 병리적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이러한 인체에서의 상호 제약과 상호 발생을 조장시키는 연계 관계를 오행의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질병과 발생, 발전, 경과 및 치료에서 그들 사이의 상호 연계를 설명하는 데 오행의 이론을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중의학이고 한국으로 놓고말하는 한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인 기초인것이지요. 물론 복잡한 유기체의 생리 병리적 과정을 모두 음양오행의 이론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공식화할 수는 없는 것으로 인정됩니다만 이 이론을 모르고는 동양의학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동양연구학자들은 동양의 역사나 철학을 연구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오행이론을 무시하는 경우를 가끔씩 봅니다. 중국이나 한국의 기본족인 철학과 사고속에는 다분히 오행의 이론과 사상이 내재되여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한편 집을 짓는데도 기초가 필요하듯이 오행의 이론에서 우리가 주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오행의 상생 상극 제화와 상승 상모의 상호 관계를 잘 아는 문제입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많은 분들은 동양학에 관심많고 또 그 분야의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 다들 잘 아시겠지만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면 상생이라 하는 것은 사물과 현상에서 상호 조장(助長), 자생(資生)시키며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상생에는 금생수(金生水), 수생목(수생목),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의 다섯 가지가 있지요. 상생의 이 다섯 가지의 관계에 각기 아생자(我生子)와 생아자(生我者)의 모자 관계(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가 있는 바 아생자라는 것은 내가 낳은 자라는 뜻이며, 생아자는 나를 낳은 자라는 뜻이 되겠지요. 금을 예로 들면 금의 아생자는 금생수에서 수를 말하는 것이며, 생아자는 토생금에서 토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생의 사물을 발생 조장시킨다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화생토라고 할 때 이것은 화가 있어야 토를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초목에 불이 붙으면 후에 재가 남고, 이 재가 흙으로 된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됩니다. 그리고 화는 토를 발생 조장시키기 때문에 화를 모(母)로, 토를 자(子)로 하여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 즉 모자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인체에서 생리 병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주요하게 이용됩니다. 다음 상극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 상호간에 제약하며 타승하든가, 극복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중국의 의 에서는 육절장상론(六節臟象論)에서 에서 이렇게 기록한 대목이 있습니다. 황제가 “무엇이 무엇을 이기는지 그 관계를 설명해주시오.” 라고 질문하니까 기백이 대답하기를 “봄은 장하(長夏)에 이기고, 장하는 겨울에 이기고, 겨울은 여름에 이기고, 여름은 가을에 이깁니다. 또 가을은 봄에 이깁니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장하는 토용 (土用: * 토용(土用): 각 계절마다 있다. 입하 전이 봄의 토용, 입추전이 여름의 토용, 입동 전이 가을의 토용, 입춘 전이 겨울의 토용이다. 그 기간은 각각 18일 간이며, 이 시기에는 비장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서 오장을 보양한다. 토용은 1년에 네번 있는데, 요즈음에는 여름의 토용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극(剋: 이길극)이란뜻은 이긴다는 뜻입니다. 간장은 비장에 이기고, 비장은 신장에 이기고, 신장은 심장에 이기고, 심장은 폐장에 이기고, 폐장은 간장에 이긴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상생이 있으니 상극이 있겠지요. 그것이 음양인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상극에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하겠습니다. 상극(相剋) 즉 서로 이긴다는 관계에는 다음과 같은 것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금극목(金克木)을 봅시다. “폐장(가을)은 간장(봄)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폐장은 기를 순환시켜서 온몸의 활동을 돕습니다. 한편 신체는 근육에 의해 활동하는데, 그 근육을 지배하는 것이 간장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폐장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에 체질적으로 간장이 약한 사람은 지나친 활동에 의해 근육이 약해져서 간장에 부담을 주게 되는것입니다. 두번째는 목극토(木克土)입니다. “간장(봄)은 비장(장하)를 이긴다”가 되겠지요. 간장은 비장에게 무엇인가를 빼앗아 그것으로 활동합니다. 비장은 피를 만드는데, 간장이 근육을 움직이려면 피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간장이 활동을 하면 할수록 비장에게서 많은 피를 빼앗아야 합니다. 이것을 간장은 비장에 이긴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간장은 봄에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체질적으로 비장이 약한 사람은 간장에게 피를 빼앗기기 때문에, 봄에는 비장이 허하고 간장이 실한 비허간실(脾虛肝實)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비장이 약하면 영양분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간장은 피를 지나치게 저장하므로 염증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B형간염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동시에 몸에 염증이 많은 사람들도 비장이 약해서 그렇다고 중의나 한의학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토극수(土克水)입니다. “비장(장하)은 신장(겨울)을 이긴다” 입니다.. 비장과 신장의 관계는 약간 다릅니다. 비장에서 만들어진 정(精)은 신장에 저장되고, 비장은 그 정을 이용하여 활동합니다. 즉 일반적인 상극 관계가 아닌 비장과 신장은 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장이 약하면 신장도 약해지고, 신장이 약하면 비장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점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러면 일상의 자그마한 병집이나 아픔을 통하여 자기 진단이 가능해지는것입니다. 비장은 토용의 시기에 움직임이 가장 활발합니다. 따라서 체질적으로 신장이 약한 사람은 배설과 생식에 관여하는 하초(下焦)에 양기가 부족한 상태가 되는것입니다. 신장이 약하면 비장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둔해집니다. 그 결과 하반신이 차가워져서 설사를 많이 합니다. 비장만 약할 때에 생기는 설사 그리고 위장, 대장, 소장에 이상이 있을 때에 생기는 설사는 모두 횟수도 많고 복통이 나고 때로는 열도 납니다. 그러나 신장 때문에 비장이 약해져서 나는 설사는 복통이 거의 없고, 횟수도 2~3회에 그치고 대변을 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번째는 수극화(水克火)입니다. “신장(겨울)은 심장(여름)을 이긴다” 입니다. 심장에는 양기가 많고 신장에는 음기가 많습니다. 이 음기와 양기는 서로 교류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춥기 때문에 신장이 활발하게 움직임으로써 심장의 양기를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가 춥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체질적으로 양기가 적은 사람은 신장이 열심히 활동을 해도 양기가 하체로 내려오지 않고 신장의 음기만 왕성해집니다. 따라서 허리와 다리가 차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체가 차가우면 양기는 더욱 부족해지므로 심장에 부담을 줍니다. 이런 관계를 옛사람들은 신장은 심장을 이긴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섯번째는 화극금(火克金)입니다. “심장(여름)은 폐장(가을)을 이긴다”가 되겠지요. 심장은 폐장을 이기는 관계에 있습니다. 폐장은 심장의 양기를 온몸으로 순환시킵니다. 여름에 심장이 활발하게 움직여 양기가 많아지면, 당연히 폐장에 부담을 줍니다. 이 때는 운동을 통한 호흡을 이용해서 넘치는 양기를 땀과 함께 발산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폐장이 활동하지 않으면 상체에 양기가 고여 머리가 멍해지거나 두통, 불면, 가슴설렘 등의 증상이 나타납다. 이상이 상극 관계에 관한 설명입니다. 극(剋)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진 무엇인가를 빼앗거나 부담을 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간장은 비장에게서 피를 빼앗습니다. 신장은 심장, 심장은 폐장, 폐장은 간장에 각각 부담을 줍니다. 그런데 비장과 신장의 관계만은 특별합니다. 이런 생리를 잘 이해한 상태에서 증상을 구별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질병은 음기와 양기가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치료겠지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이야기하는 다이어트라는 말도 균형이라는 어원입니다. 다이어트하면 살빼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실은 균형잡힌 몸매를 만드는것이 다이어트인것과 같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보다 약하게 너무 가녀린 사람은 보다 실하게 하는것이 다이어트인것처럼 균형을 유지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어느 부위의 양기와 음기에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병이 얕을 때는 양경과 음경, 또는 장부의 음기와 양기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반면 병이 깊으면 장부의 관계에 의해 그 증상이 나타납니다. 장(臟:오장장)과 부(腑:장부부)도 음양의 관계에 있습니다. 장부의 음양 관계를 모두 정리하면 상극 관계가 됩니다. 이런 상극 관계를 하나씩 나누어 음양의 관계로 생각하고, 그 증상을 정리하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의사나 한의사분들이 이자리에 계신다면 더 잘 아시겠지만 오행의 상극 관계는 음양론이 변하여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치료하기 편할수도 있습니다. 오행론은 관념론이 아닙니다. 잘 이해하면 오늘날에도 충분히 임상에 응용할 수 있는 실천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아극자(我克者) 및 극아자(克我者) 또는 소승(所勝) 및 소불승(所不勝)의 상호관계가 있습니다. 이 아극자(我克者)라 하는 것은 우선 내가 제약하는 자라는 뜻이고, 두번째 극아자(克我者)는 나를 제약하는 자라는 뜻이며, 세번째 소승(所勝)은 타승한다는 뜻이고, 네번째 소불승(所不勝)은 타승하지 못한다는 뜻이됩니다. 목을 예를 들면 목의 아극자는 목극토에서 토를 말하고 극아자는 금극목에서 금을 말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목의 소승은 토이고 소불승은 금으로 됩니다. 모두들 이해가 잘 되시나요. (청중:네) 아주 다행입니다. 여러분들의 높은 경지를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이쪽의 전문가들이시기에 노반앞에서 도끼질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주저심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서로 공감이 가는부분이 많은듯 싶어서 참 다행스럽습니다. 상극에서 사물이 상호 제약하고 타승하는 연계관계를 비유하여 설명하면 수극화에서 화의 속성을 가진 사물과 현상은 수의 속성을 가진 사물과 현상에 의하여 제약되고 극복된다는 것과 같은 것인데 숩게 말하자면 불이 붙을 때에 물을 끼얹으면 불이 꺼지는 것과 같은 도리입니다. 이상에서 상생과 상극은 그 어느 것도 단독으로 고립하여 존재할 수는 없으며 다같이 존재함으로써 음양의 상대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대하여 중국의 의학자 은 “사물이 발생 변화하는 데는 서로 상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제약하는 것이 없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상생이 없으면 발생 발육할 근원이 없고 제약하는 것이 없다면 지나치게 왕성하고 항진되어 도리어 해로울 것이 되므로 반드시 상생 중에 제약이 있고 제약 중에 상생이 있어야 비로소 사물이 부단히 운동 변화할 수 있으며 서로 상반되면서 다른 측면으로는 서로 발생 조장시킬 수 있다는 이치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생과 상극은 제일 주요한 의의를 가진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오행 상생과 상극이 동양의학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1) 土生金이라고 할 때 토는 위(胃)나 비장(여기에서 비장은 소화 및 영양물질 등을 운반하는 기능을 주로 말한다)을 대표하고 금은 폐와 대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토가 금을 발생 조장시킨다고 하는 것은 인체에서 비나 위가 튼튼해서 영양물질을 전신에 잘 공급해야 폐가 건전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됩니다. 이와 같은 이론으로부터 동양의학에서는 폐병 때에 비나 위의 기능을 강화하여 영양상태를 좋게 함으로써 폐병의 치료를 촉진시키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음은 오행에서 목은 간이나 담을 대표하며 상극에서 는 목극토라고 합니다. 2), 목극토라고 할 때 목에 병변이 있으면 이것은 앞으로 토를 장애하여 토의 기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동의학에서 간 담에 병변이 있을 때는 이것이 앞으로 비나 위의 기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간과 담에 병이 들었을 때는 비와 위에 병변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리부터 비와 위의 기능을 보호하며 강화하는 약물을 동시에 써서 간과 담의 병변이 비와 위에 파급되지 않도록 하면서 간과 담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런 원칙은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의사나 중의사들이 계신다면 충분히 공감이 가리라 믿습니다. 아래에는 제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제화(制化) 제화는 사물의 상호관계에서 상생과 상극 관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인 바 제화의 제는 제약한다는 뜻이며, 화는 생화 즉 발생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 제화는 처음에 상극 예하면 목금토가 있고 다음에 목의 아극자인 토가 상생하는 금 즉 토생금이 있으며 그 다음에는 토의 아생자인 금이 제약하는 목 즉 금극목이 있게 된다. 때문에 정상 상태에서는 상생과 상극이 동시에 발생하는 측면과 제약하는 측면이 서로 조화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이해할 때는 다섯 가지 제화 관계를 기억하게데 편리하다는 것을 부언한다. 다시 말해서 제화는 오행의 제약하는 가운데는 발생 변화하는 것이 있고, 발생 변화하는 가운데는 제약하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위에서 말한 상생과 상극이 보다 단순한 사물과 현상의 상호관계를 설명한다고 하면 제화는 보다 복잡한 연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되겠지요. 제화에는 아까 앞에서 말씀드렸던 기본 오행의 상생상극의 이치로 또 다음의 다섯 가지로 구분할수 있습니다. 흑판에 다시 써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목금토(木剋土)→토생금(土生金)→금극목(金剋木) 목금토: “나무는 불을 이긴다. 즉 간은 비장을 이긴다.”가 있고 토생금: “흙은 쇠를 낳는다. 즉 폐는 비장을 돕는다.”가 있습니다. 금극목: “쇠는 나무를 이긴다. 즉 폐는 간을 이긴다.”가 있습니다. 2), 화극금(火剋金)→금생수(金生水)→수극화(水剋火) 화극금: “불은 쇠를 이긴다. 즉 심장은 폐를 이긴다.”입니다. 금생수: “쇠는 물을 낳는다. 즉 폐는 신을 돕는다.”입니다. 수극화: “물은 불을 이긴다. 즉 신장은 심장을 이긴다.”입니다. 3), 토극수(土剋水)→수생목(水生木)→목극토(木剋土)를 볼때 토극수: “흙은 물을 이긴다. 즉 비장은 신장을 이긴다.”가 되겠고 수생목: “물은 나무를 낳는다. 즉 신장은 간을 돕는다.”가 되겠습니다. 목극토: “나무는 불을 이긴다. 즉 간은 비장을 이긴다.”가 되는것입니다. 4), 금극목(金剋木)→목생화(木生火)→화극금(火剋金) 금극목: “쇠는 나무를 이긴다. 즉 폐는 간을 이긴다.”입니다. 목생화: “나무는 불을 낳는다. 즉 간장은 심장을 돕는다.”입니다. 화극금: “불은 쇠를 이긴다. 즉 심장은 폐를 이긴다.”구요. 5), 수극화(水剋火)→화생토(火生土)→토극수(土剋水)를 볼대 수극화: “물은 불을 이긴다. 즉 신장은 심장을 이긴다.”가 되겠습니다. 화생토: “불은 흙을 낳는다. 즉 심장은 비장을 돕는다.”가 되겠고 토극수: “흙은 물을 이긴다. 즉 비장은 신장을 이긴다.”가 됩니다. 이런 제화를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화금극→금생수→수극화를 실례로 들면 화는 화극금으로서 금을 제약합니다. 금은 지나친 제약을 받지 않기위하여 금생수로서 수를 많이 발생시키고 수는 다시 수극화로서 화를 제약함으로써 정상적인 조건하에서는 화가 과도하게 항진될 수 없으며 이들 사이에는 균형이 유지되게 된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정상적인 상호관계가 파괴될 때에는 인체에서 병적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인 바 그때에는 이상과 같은 오행의 상호관계로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향에로 정상화하는 원칙에서 치료해야 하는것이 오행 치료법입니다. 예를 들면 침구학 오행 침 치료에서 만약에 폐금(肺金... 폐가 금에 속하기 때문에 동양의학에서는 이렇게 표시하는 때가 많다)이 실증(實證)일 때 이것은 화가 힘이 약하여 금을 제약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며 또한 수가 화를 지나치게 제약하므로 화는 더욱 약해져서 금을 제약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료는 화경(火經)과 자경(自經)의 화혈(火穴)을 보(補)하고 수경(水經)과 자경의 수혈(水穴)을 사(瀉)해 줌으로써 그들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원칙에서 치료하는것이 맞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 강화되어 금이 실한 것을 타승하여 이들 관계가 정상상태에 회복될 때 폐금의 실증은 치료된다고 볼수있습니다. 침구학에서는 오행 침 치료는 오늘에 와서도 임상에 적용되고 있는 바 이러한 치료로서 치료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은 그대로 임상에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첫시간이기 때문에 간단한 음양의 이치와 상생상극에 대한 내용을 함께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기회가 된다면 좀더 깊은 내용으로 여러분과 진지한 토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오늘도 좋은 강의를 해주신 김문일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질문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적극 해주시기 바랍니다.
5    개같은 사람 댓글:  조회:3248  추천:2  2015-03-04
  재작년에 공장부근에 민가를 하나 사들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끔씩 휴식을 취하려고 해도 겨울에는 공장안이 추운데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식사시간에도 너무 법석대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장에 붙어있는 마을에서 한집을 판다고 해서 사들여서 담장을 다시 쌓고 수선을 해서 직원들의 휴식터와 식당으로 썼다. 그런데 공장안에는 야근이 있어서 괜찮으나 새로 사논 집에까지 사람을 둘수가 없어서 강아지 한마리를 사놓았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지난밤에 쥐약을 먹고 죽어버렸다. 누군가가 쥐약이 든 닭고기를 담장안으로 던져넣어 강아지를 죽인것이다. 도적질하려고 강아지를 죽인 도적은 비록 담을 넘어왔지만 본래 그냥 직원식당으로 쓰는 집에서 가져갈것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였나본다. 식당아줌마가 두고간 핸드폰 한개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가져갔을 뿐이다. 삼년동안 가족처럼 키워온 강아지의 죽음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서운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욕하는 말로 적었다고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실은 욕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제목이 칭찬하는 말로 들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배신을 당했거나 미운사람들을 욕할때 이런말을 많이 쓴다. 권력의 앞잡이로 우쭐거리던 사람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들을 우리는 그렇게 욕했다. 그러나 왜서 그런 사람들을 개에 비교하는지 나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그것은 개가 가지고 있는 충성스런 성품때문이다.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 자기를 먹여키운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과 개는 친구가 됐나본다. 나쁜사람을 개에 비교하는것을 가끔씩 보는데 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주변에 개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그렇다. 지난번 독우유를 팔아서 숱한 아이들을 죽인 악덕업주들은 그 사건이 불거져서 매스컴에 떴을때까지도 사과하고 개선하기보다는 숨기고 덮어감추려고 발악을 했다. 공업용수를 논밭에 마구뿌려서 하류의 수많은 농가들이 집단 암에 걸린 사연들을 볼때는 치가 떨렸다. 자신들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짠지공장의 주인은 짠지위에 파리가 날아다닌다고 분무기로 농약을 뿌려댄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판다는것이다. 중앙tv(CCTV)의 기자가 가만히 찍은 영상에서 그 주인은 자기는 절대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소고기의 근을 불리겠다고 살아있는 소의 배안에 수도관을 꼳아놓고 물을 쏘아넣어서 소가 고통스레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저희들끼리 희희닥거린다. 돼지고기의 비게를 줄이겠다고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 되는 (瘦肉精)화학약품을 쓰지 않겠는가, 자동차에 치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칼을 휘둘러 죽여버리지 않나, 이 사회는 지금 도덕성의 결여로 몸부림치고 있다.     도덕이라는것은 삶의 질서이고 법칙이다. 도덕을 높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주는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 질서속에 은하계가 있고 그 은하계의 질서에 태양계가 있고 그 태양계의 질서에 지구가 있고 그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도는 질서속에 춘하추동의 질서가 생기고 그 질서속에 만물의 삶이 있고 만물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면서 공존해왔다. 그런 질서를 깨고 있는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데 나는 가슴이 아프고 분노를 느끼군한다. 인간 삶의 질서가 바로 도덕이다. 도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기준이고 그러한 질서를 통해서 인간은 보다 인간답게 성장할수 있는것이다. 물질과 돈에 집착해서 그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가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도덕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도덕이란것은 본래부터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는것이다. 그것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발견하고 삶에 적용했을뿐이다. 다만 도덕이라는 미명아래, 그것을 핑계로 자행돼온 나쁜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삶의 질서에 대해서 잘못 이해해온 인간들의 문제이지 도덕자체에 문제가 있었던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길거리의 신호등을 봐도 그렇다. 인간이 만든 질서같지만 거기에는 자연의 섭리가 있다. 서로를 양보하다보면 더욱 편하고 빨라짐을 알려주는것이 신호등이다. 그런 질서를 깨뜨려서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만물의 질서를 살펴보면 동물을 잡아죽이고 그 시체를 먹는 육식동물의 창자는 3미터도 채 안된다고 한다. 그것은 고기를 먹고 소화를 빨리 해내기 위해서이다. 고기는 우리 체내온도인 36_38도 사이에서 가장 쉽게 부패한다. 옛날 사람들은 고기에 사독(尸毒-시체에 있는 독)이 있다고 해서 먹지말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있는 그 고기덩이가 창자속에 오래 있는다면 육식동물은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창자가 짧게 변화한것이다. 초식동물은 그와 달리 창자가7메터가 넘는다고 한다.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먹는 곡식은 씨앗이다. 그 씨앗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심었을때 또 다른 씨앗을 가득 담은 열매인것이다. 그것을 먹는다면 우리의 건강은 훨씬 더 좋아질것이 뻔하다. 그런것이 질서이고 우리가 지켜야할 도덕이다. 그런데 그런것을 깨뜨려서 혼자만을 배불릴려하고 혼자만 잘 살려고한다면 종당에는 스스로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깨는 격이 되고 마는짓임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개를 귀여워 해주기 때문에 개 또한 주인이 하는 일에는 충성을 다해서 따른다. 그리고 개가 주인을 진심으로 따르기 때문에 주인들은 더욱 개를 사랑하려고 드는것이다. 개는 본능적으로 참다운 경애(敬爱)의 길을 알고 있어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것이다.       어릴때 영화에서 배신자들이나 나쁜놈들의 앞잡이를 중국어로 주구(走狗)라고 표현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쁜 사람을 개보다도 못한 사람이라고 욕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냥 그런가부다 생각했는데 어제 일을 겪고 보니 그런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가 무슨죄가 있다고 그런 나쁜놈들을 개에 비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지 짐승이라는 이유때문에 그런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개에 비유한다면 개한테는 너무나 큰 모욕이다. 개의 충성심을 그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소인들의 소위과 비교한다면 개들한테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한 일일것이다. 개는 짐승이지만 엄연히 생명체다. 개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우정을 나눈다면 인간세계가 이렇게 도덕에 타락하지는 않을것이다. 개처럼 남의 일보다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반성할 일도 적어질것이다. 그런 훌륭한 개를 독식품을 만들고, 환경오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생명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인간들과 비교한다는것은 너무 개한테는 불공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개보다도 못한 인간이면 안된다. 그런 사람들이 개같은 사람이 된다면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4    공명(功明) 댓글:  조회:1908  추천:1  2015-03-04
  오늘 시간을 내여 마음도 쉬울겸 교외게 한번 나가 봤다. 산중턱 길에 내려서 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맞은편 산에서 양떼가 구름같이 몰려간다. 양치는 아저씨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길손을 안내하는 시골동네 개짖는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게 들려왔다.   길을 가다보면 쉬고 싶을 때가 있다. 힘들면 쉬여가는것이 더 빨리 가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쉬다보면 게으름이란 큰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게으름을 피우다보면 우리는 아무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새해를 맞은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3월에 들어섰다. 아무것도 해놓은것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내가 게으름을 피운탓이리라. 요새 많이 게으름을 피운것 같다. 내 마음 때문이다. 마음이 우리의 육신을 움직이는 주인임에는 틀림이 없는 같다.마음이 힘들면 육신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마음의 경영을 그렇게 많이 강조했던것이다. 좀 여유를 부리고 휴식을 할라치면 꼭 떠오르는 경구가 한마디 있다. 맹자의 이다. 기(骥)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천재라 해도 좋을것이다. 여기에 비해 노마(驽马)란 둔재이다. 천재에 비한다면 10분의1밖에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그런 노마라 해도 열흘동안 계속 달린다면 기의 하루 행정을 추격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부단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아무리 멋진 목표를 세워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이리라. 또 실행에 옮겼다고 해도 중도에서 그만둔다면 이것 역시 아무것도 되지 않는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꾸준히 계속 한다면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할수 있다. 옛날에 어떤사람이 천리마 한필을 얻었다. 그는 그 말을 애지중지해서 좋은 사료를 먹이고 아까워서 얼마 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나서 그 말을 몰고 나갔는데 천리마가 달리지를 못해서 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리마라고 해도 매일 먹고 놀기만 했으니 살이찌고 체력과 끈기를 잃어버렸던것이다. 천리마라도 끊임없는 단련이 필요하다. 말을 잘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일정한 거리를 계속 달려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체력도 보존되고 속도도 따라간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특히 이처럼 계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것이 자기 계발이다. 리더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를 본받아서 하루라도 자신을 채찍질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목표를 세웠으면 모름직이 그 목표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뜻이나 글은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행동과 실천에 옮기기를 어려워한다. 자기를 계발하고 마음을 닦는데도 게으름은 금물이다. 너무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보면 때론 더 많은걸 잃을수도 있다. 빠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변함없는 노력이 우리 인생에는 더욱 필요할듯 싶다. 일년지계는 봄에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일년의 시작에서 봄은 중요하다. 우리 인생에도 4계절이 있다. 유년기가 봄이고 청년기가 여름이 될것이고 중년기가 가을이 될것이고 노년기가 겨울이 될것이다. 유년기에 공부에 노력하지 않고 청년기의 높은 성취를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기에 노력하지 않고 중년기의 전성시대를 누릴수가 없으리라. 가을에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수 또한 없을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마디마디 고리고리가 이어져 있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 아침이 봄이라면 점심은 여름에 비할수 있고 오후가 가을이라면 저녁은 겨울에 비할수 있을것이다. 하루가 길어지고 인생이 충만되기를 바란다면 뭔가를 해야한다. 우리 말 시조 한편이 떠오른다.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긋지 말고 촌음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 곳 하면 아니 감만 못 하리라. (긋지: 그치지 촌음:잠시 동안의 시간 곳: 만)   오늘도 흘러가는 하루가 아깝다. 사과나무가 바람에 흐나린다. 이제 이 사과나무도 봄 이삭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것이다. 사과나무의 일년이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과 너무 닮았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사람은 열매도 결실도 없이 죽는 사람이 많다. 봄이 온것 같다. 이제 뭔가를 해야할 때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사랑이라도 해야할가보다.
3    뭘 버리고 뭘 구할까? 댓글:  조회:1813  추천:2  2015-03-04
   바쁜 일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차한잔 마실때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을때다. 오늘의 홍차는 유난히 그 맛이 그윽하다. 나는 녹차보다도 홍차를 좋아한다. 홍차는 녹차보다 맛이 짙고 향이 강하다. 녹차는 비 발효차인 방면 홍차는 발효를 거친 차여서 장에도 좋다고 한다. 친구가 외국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홍차를 오래동안 아껴 마신다. 원산지는 스리랑카로 되여 있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차의 그윽한 향기는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그래서 차는 마신다 하지않고 품(品)한다 했을것이다. 상형 문자인 중국글로 보게 되면 입이 세개인 모양이 품자다. 차를 세개의 입으로 그 맛을 느끼면서 마셔야 세곱절의 향을 느낄수 있다는 뜻이리라. 차를 마시다보면 일손을 놓아야한다. 일을 하면서 차를 마실수는 없다. 이건 완전히 내 생각이지만 차를 마실때는 일을 하면 안된다. 차는 향수다. 인생을 향수하는 순간이다. 짤막한 순간이지만 인생을 즐겁게 한다. 뭔가를 손에 쥐고서 다른걸 쥘수는 없다. 사람의 욕심은 참 끝이 없다. 이것저것 다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다. 가질때는 좋으나 그걸 버리기는 아까워한다. 내가 강의하는 에치투오 리더십코스의 마지막 시간에는 이라는 시간이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섭리를 나누는 시간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가져오는것이 참으로 많다. 먹을것 입을것을 비롯해서 모든것을 자연은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은 가래, 침, 똥 , 오줌과 같은 오물들이다. 그래도 자연은 반갑게 받아준다. 그것을 거름으로 삼아 수풀이 무성하게 해준다. 인간은 너무 오만하다. 자연에 감사할줄 모른다. 자연은 은밀하게 우리에게 비밀을 속삭인다. 그 비밀을 읽을수 있는 사람은 극 소수다. 그 비밀은 바로 자연의 법칙, 우주의 법칙이다.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도 그 법칙을 떠날수는 없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못한다면 어찌 될것인가? 병원신세를 면치못할것이다. 우리가 들숨만 들이키고 날숨을 내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몇분안에 목숨이 끊길것이다. 그게 바로 자연의 은밀한 속삭임이다. 가지기만하고 베풀줄 모르면 먹기만 하고 배설할수 없는 사람과 다를배가 없다. 들숨만 들이쉬고 날숨을 안쉬겠다는 사람과 다를배가 없다. 우리는 얻은걸 베풀줄 알아야 한다. 베풀기 위해서는 버릴줄 알아야한다. 버리는것도 배워야한다. 인도의 어느 경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성인을 숭배하는 젊은 신도가 열심히 천잎의 금화를 모았다. 천잎의 금화라면 그때 당시면 대단한 돈이였다. 한 도시를 살수있을 만큼의 돈이라고 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은 신도는 그것을 전부 자신이 숭배하는 성인에게 바쳤다. 그때 그 성인은 아무런 사양도 하지 않고 그 금화를 받아서는 다시 그 청년에게 말했다. 그 청년은 깜짝 놀랐으나 이제 금화는 자신의 것이 아니였다. 그래서 성인의 말대로 떠나갔다. 그런데 강변까지 다녀온다해도 반식경이면 될 거리인데 청년은 한나절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성인은 제자를 시켜 알아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돌아와서 올리는 말이. 그 청년은 그 금화를 한잎 한잎 세여보면서 하나씩 강속에 던진다고 한다. 그때면 구름같이 그 주위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이 강속에 자맥질해 들어가서 금화를 건져내온다고 했다. 그 청년은 그걸 즐기는것 같더라는 것이였다. 이때 성인은 한마디 했다. 라고 했다. 정말 의미있는 말이다. 뭔가를 버릴수 있다는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버리지 않고 어찌 얻을수가 있겠는가? 버리지 않고 모든걸 가지고 가려면 그건 우리 인생의 짐이 된다. 어느때건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누구에게나 그럴때가 있겠지만 그전에 준비를 하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놓고 무엇을 버릴지를 또 고민한다. 가지고 싶은것도 많다. 가지고자 생각하면 많이 얻을수도 있겠지만 다 가지고 가다보면 인생은 무거움에 허덕인다. 인생이 무거울때면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그러나 힘든것을 즐거움인줄로 착각하고 사는것도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버리라하면 코웃음을 친다. 무엇을 버리라기보다 무엇을 얻으라 하면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강의를 해오면서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것은 무엇을 얻으라이다. 얻고나면 여유로워지고 여유로와지면 베풀줄도 알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어떻게 얻고 어떻게 베풀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강의중에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나는 내가 진행하는 리더십코스를 통하여 사람들이 변화된 삶, 더 충만되고 발전적인 삶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리더십의 원조는 누군가 물어보면 이리라든가 아니면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 원조를 캐기에는 너무 애매모호한것들이 많다. 우리 선조들의 옛날 책에는 이미 현대 리더십의 모든 내용들이 있기때문이다. 심지어 성경에까지 그 기본적인 내용은 다 포함되여 있다. 성서의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라는 말이 있다. 그 앞의 23절에는 또 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그 말이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으로 가르침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바로 리더십코스에서 강조하는 이 나타나 있기때문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소원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무관심하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여러군데에 예수의 훌륭한 비유가 전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는 은 자신의 힘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죄라든가 고난이나 장애를 가르킨다. 란 죄의 용서나 고난의 타개를 의미할것이다. 그 고난은 언젠가 타개 될것이라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타개된 고맙다고 말하는 감사의 기대를 가지라고 예수는 가르치고 있다. 다른 종교에도 비슷한 가르침들이 많다. 불교의 경전에도 그러한 말들이 참 많다. 우리가 잘 아는 관세음보살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질고의 소리를 보고 듣고 구원해준다고 한다. 관세음보살께 기도하고 구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것이다. 물론 이슬람경전에도 그와 비슷한 내용들이 많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인간의 소원과 버릴것에대해서 다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중생들이 불쌍할 따름이리라.   많은걸 얻었지만 오늘도 버리기에는 용기가 없다. 마치 금화를 버리는 청년처럼 하나,둘 세이면서 버리는 내가 바보인줄을 알게 됐다. 그러나 알면서 깨우치지 못하는것은 더 큰 고통이다. 수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차를 마시면서 명상을 하면 깊이 내 안으로 빠져든다. 이제 난 뭘 구하고 뭘 버릴것인가? 차의 향기는 그윽하다. 그러나 그 향기도 언젠가는 흩어질때가 있다. 향기가 오래가고 흩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냄새일뿐이다. 가지고 있다보면 버리고 싶을때도 있다. 버려야만 더 소중한것을 많이 담을수 있다. 내 마음속 그릇속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을것인가?
2    별밤의 생각 댓글:  조회:1571  추천:2  2015-03-04
  생각이 많으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이 있다. 잠이 안올때면 생각이 많아서다. 생각은 멈추지를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다 보면 어느덧 밤은 무르익는다. 창문을 내다보니 반달이 환하다. 아는 것이 많아서 생각이 많은것일까? 아니면 너무 무식해서 생각이 많은 것일까?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마냥 세속적인 돈과 권리와 명예를 쫒아서 산다면 걱정이 없을것인가? 그럴리가 만무하겠지만 어쩐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것이 싫어지기도 한다. 밖에 나오니 새해 보름을 며칠 앞둔 밤이라 그런지 달이 무척 밝다. 소슬한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별을 구경하기에는 여름밤이 제격이다. 여름에 저 깊은 시골에 가서 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별밤을 구경하는것도 인생의 즐거움중의 하나이리라. 여름에 별을 구경할때에는 누워서 하는것이 좋다. 팔베개를 하고 하늘에 걸린 별무리들을 보면서 북두칠성을 찾고 삼태성을 찾는다. 문뜩 여름밤이 그립다. 그러나 겨울에 별구경하는것도 괜찮은 재미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다. 겨울의 별은 차거운 느낌이 강하다. 자정이 지나서인지 북두칠성이 길게 꼬리를 드리웠다. 북두성이 유난히 반짝인다. 상고시대에 사람들은 자연을 신비하게 여겼고 전 우주에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주재자(主宰者), 곧 제(帝) 혹은 상제(上帝)가 있다고 보았다. 상고의 문헌속에는 천과 제는 항상 동의어이었다. 고대인들은 그들을 인격화하고 아울러 일정한 이름을 붙였다. ‘구요성관’이요. ‘이십팔수’요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관념의 반영이다. 이러한 신화적인 색채를 띤 이름들은 고대의 작가들에게 그대로 사용되어 고전시가와 사부(辭賦) 가운데에서도 많이 응용되여 왔다. 별은 옛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꿈이였고 희망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라는 명언이 한구절 떠오른다. 사람은 희망에 사는가 본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있다. 란 말은 미국영화 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인생을 믿고 스탭을 밟는다면 세계는 내것이라고 노래하는 주제가는 어디까지나 락천적인 미국인의 꿈 바로 그것이다. 꿈, 그리고 희망을 내일에 건다면 사람은 살수 있다. 실지 어디에서인가 발생했던 일이다. 탄광의 갱밑에서 일하던 탄부들이 사고로 굴속에 갇히게 되였다. 굴은 완전히 외부와 단절되였고 갱속에는 9명의 광부가 7시간 마실 공기가 남아있었다. 광부들 중에는 시계를 찬 사람이 한명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시계를 가진 사람에게 한시간에 한번씩 시간을 통보해줄것을 부탁했다. 시계를 가진 사람은 한시간 반이 지나면 한시간이 되였다고 통보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전에 질식사한다는것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다. 아홉시간이 지나서 갱에 같혔던 사람들은 한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구조되였다. 죽은 그 사람은 바로 시계를 가지고 있은 사람이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한시간 반에 한번씩 한시간이 왔다고 알린 사람이였다. 나머지 8명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독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는 질식해서 죽었다.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사건이기도하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철학에만 머물지 않고 생물학의 실증적 연구와 자연, 과학, 륜리, 론리학을 모두 섭렵했었다. 라고 말한 헬런 컬러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그러한 삼중고(三重苦)속에서 라 불리운데는 바로 이 말의 힘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별밤을 보노라면 어릴때 성좌를 배우던 생각이 난다. 오리온 성좌, 북극곰 자리, 전갈성좌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던 기억이 어제같다. 중국고대에도 성좌가 있었다. 중국의 성좌는 주역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 같다. 일단 동서남북 네개 방위에따라 청룡(靑龍),백호(白虎), 주작(朱雀).현무(玄武) 로 나뉜다. 거기에 맞추어 별의 자리들이 사계절에 따라 움직인다.  어찌됐든 별밤에는 누군가가 그립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그립다는것은 마음의 울림이리고 한다. 이럴때면 떠오르는 어느 시인의 시 한구절이 있다. 참으로 내 마음을 울리게 한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세월이 흘러 흘러도 문뜩 문뜩 생각에 설렘이 일어나는 막연한 그리움,그러한 그리움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심어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리움이 깊어지지만 만날수 없을 때면 우리의 인생은 그늘이 진다. 그러나 사람은 다시 만날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산다. 희망이 있다는것은 인생을 충만되게 한다. 오늘따라 하늘가에 금성이 유난히 밝은것 같다. 시경(詩經)의 시 한수가 떠오른다. 그대 일어나셔서 밤하늘을 보세요 샛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네요. 황혼에 만나기로 기약하였는데, 샛별이 휘황하게 반짝이네요. 옛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반짝이는 저 별을 품에 안고 싶다.
1    하루의 시작 댓글:  조회:1517  추천:2  2015-03-04
  꿈은 참 이상 타. 문뜩문뜩 뭔가를 깨우쳐 주려는듯 다가 왔다가는 그걸 잡으려 할때면 어디론가 사라지군 한다. 인생도 그런게 아니겠는가 뭔가를 잡으려고 하면 그건 저 멀리 있다. 잡았다고 생각할때 꿈은 깬다.   아침 일찍 꿈에서 깨여보니 날이 아직 밝지 않았다. 어제는 내가 진행하는 에치투오 리더십코스 20기 수료식이였다. 멋지고 아름다운 밤이였다. 수료를 마치고 늦게 까지 모임을 가졌다. 아침에 시계를 보니 새벽4시가 좀 지났다. 잠을 좀 더 잘가 누우려다가 그냥 옷을 걸치고 밖에 나왔다. 밖은 별들이 총총하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같다. 이걸 아마 려명전의 어둠이라 하는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아산기슭에서 등산을 준비할때가 되여서야 날이 희붐이 밝아 온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인적이 없다. 2월의 새벽 산길은 으스스 춥기도 하다. 나는 혼자서 등산할때가 참 좋다. 하루 일상에 쫒겨 살다보면 내 삶을 돌이켜볼 시간 조차 없었는데 등산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더 좋다. 한참을 올라가니 몸에서 서서히 땀이 났다. 산정상까지 오르고 나니 여간 개운하지 않다. 저 멀리서 태양이 불끈 솟아 오른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새벽의 기운을 들이켰다. 붉은 태양이 눈덮은 넓은 룡정벌을 비춘다. 감회가 새롭다. 눈덮인 소나무밭이 멀리 까지 뻗어있다. 또 하루가 시작 되였다. 저 붉은 태양처럼 내 인생도 붉게 타오르고 열정과 정열로 타올라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태양의 그 뜨거운 열정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듯 심호흡이 한결 힘있다. 어릴때 읽었던 사서오경중의 대학이란 책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이란 글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는 뜻이다. 이는 자기 개발의 연속이다. 리더십도 이만한 리더십이면 더 이상이 없다. 이라는 책은 전체 문장이 한자로 175자밖에 안되는 짧은 책이다. 그래도 그걸 외우느라 혼났던 기억이 새롭다. 뜻도 모를 내용을 외운다는것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문뜩 문뜩 그 뜻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느끼게 될때면 그 즐거움이 말로 형용할수가 없다. 옛사람들은 그 짧은 글속에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큰 뜻을 담았다. 그 것을 이해한다는것은 의외로 어렵다. 수신이라든지 수양이라고 말하면 처음부터 괜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리더십코스를 강의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현대인들은 돈이나 명예는 열심히 쫒으나 실지 중요한 마음을 닦는데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말의 뜻은 자기 스스로 노력하라는 뜻을 품고 있다. 밖에서 강요하는것이 아닌 자신이 훈련하도록 하는 자각적인 노력을 가르킨다. 인간은 육신과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육신이 없으면 정신의 의탁이 없을것이요. 정신이 없으면 육신은 한낱 고기덩이에 불과할것이다. 물질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쫒는것이 물질일지라도 우리가 그 물질을 더 값지게 하고 빛을 내게 하는데는 정신의 힘이 필요하다. 자기 스스로 갈고 닦는 사람은 더 빛을 내기 마련이다. 옛날,은(殷)의 탕왕(湯王)이라는 명군은 이 말을 세면기에 새겨 넣고 의 결의를 새롭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결의가 없다면 인간에게는 결코 진보의 희망이란 없을것이다. 등산길을 내려오면서 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눈에 덥힌 등산길이 미끄러워 몇번이나 넘어질번했다. 오르다보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죽는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해야할 일들이 있다. 그걸 모르고 죽는다면 삶을 허송한것이 아닐까? 그걸 알고도 못한다면 그 아쉬움은 또 얼마나 클까? 하산하면서 보니 벌써 봄기운이 느껴진다. 떠오른 아침 햇살에 눈이 녹아 땅을 적신다. 삐쬬롱 삐쬬롱 새소리가 정답다. 저 새들도 하루를 일찍 시작한것 같다. 눈이 온 이 벌판에 먹이는 있을는지? 새들한테도 보리고개는 있으리라. 오늘 나오면서 빈손에 나온것이 자못 후회됐다. 내일 등산길 나설때는 쌀이라도 한톨 넣어가지고 나와야겠다. 내 귀를 즐겁게 해준 저 새들도 즐겁게 해주고 싶다. 그래 그래야지. 오늘 하루도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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