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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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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3)
2018년 05월 27일 11시 11분  조회:97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청춘의 욕정
무더기로 쌓인 억울한 백골더미 위에서 요정이 사악한 입김을 내뿜자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허깨비처럼 백골로 변해갔다.
“깔깔깔, 까르륵, 깔깔.”
요정은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를 끌어안고 간사하게 웃어댔다.
도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변했을까?
“문화대혁명”의 음산한 바람이 불어온 후 도시와 농촌 그 어디나 모두 살풍경이었다.
노간부들을 보호하던 한영수 등 수많은 조선족간부들은 감방에서 풀려 나오지 못했다. 현위 이계삼 등 적지 않은 한족 노간부들도 조선족 노간부들과 함께 이른바 “5.7간부학교”에 가서 노동개조를 해야 했다.
산골에 있는 “5.7간부학교”는 모주석의 “5.7지시”에 따라 차린 간부학교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착오”를 진 간부들을 가둬 놓고 마레-주의, 모택동 사상으로 두뇌를 씻어내고 노동개조개조를 하는 전문학교라고 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는 지식분자들을 더러운 아홉째들로 몰아부치면서 지식분자들은 손과 발에 똥이 묻은 빈농들보다 사상이 못하다고 여론조성을 했다. 또 지식분자들은 광활한 농촌에 내려가 빈농들에게서 생산노동을 배우면서 재교육을 받아야 사상이 붉은 간부로 될 수 있다고 했다.
하늘에서는 최고지시가 눈송이 날아 내리듯이 끝이 없이 쏟아져 내렸다.
“광활한 천지에는 지식분자들이 할 일이 많다.”
“빈농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 빈농을 반대하는 것은 혁명을 반대하는 것이다.”
“빈농이 일체를 영도한다.”
“노동계급이 일체를 영도한다.”
최고지시가 쏟아져내려오는 족족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참답게 학습하고 암기해야 했다. 모주석의 말씀은 마디마다 진리이고 황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하는 진리였고 철리였다. 그 금지옥엽 같은 말씀, 진리, 최고지시를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전 당, 전국 인민들이 최신, 최고 지시를 목책에 적어두고 사람들이 눈에 제일 잘 띠우는 곳에 세운 흑판보거나 선전란에 큼직큼직한 뻘건 글씨로 써서 모셔놓았다. 지어 조각을 잘 하는 예술가들은 최고 지시를 목판조각하거나 지어 세멘트 흑판에 새겨 놓았다. 집집마다 밥을 먹기 전에 최고 지시를 실은 손바닥만 한 붉은 모주석 어록책을 가슴에 댔다가 모주석의 초상화에 올리휘두르면서 “경애하는 모주석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라고 충성의 인사를 올리었다.
학교에서도 시간을 보기 전이면 사생들이 몽땅 기립해 모주석의 초상화에 대고 “경애하는 모주석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를 삼창하는 것이 관례로 됐다.
조금 문제가 있다는 로간부들은 모두 “5.7”지시에 따라 “5.7”간부학교에 가서 뼈가 빠지도록 각종 농사일을 하면서 사상을 개조했다. 기실 감옥이 아닌 감옥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다.
한영수는 아내 이연분까지 “5.7간부학교”에 끌리어 갔다. 이연분은 신문사 기자였는데 코신부대를 지지하는 문장을 썼다고 해 “보황파”로 몰리어  “5.7”학교에 끌리어왔다. 허나 학교에서는 그들 부부를 한 침실에 들어 함께 자지도 못하게 했다.
한영수는 산을 넘어 분교  양돈장에 가서 돼지죽을 끓여 먹이게 됐고 아내는 이 학교에 와서 노동개조를 하는 수십 명 간부들의 밥을 지어야 했다.
학교 혁명위원회 관리일군들은 그들이 서로 잡담을 하지 못하게 감독했으며 채찍질을 하지 않았을뿐 감옥의 죄수들을 다루듯 했다. 표현이 좀 좋지 않으면 저녁에 여는 사상개조회의에서 한바탕 비판받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사상개조회의에서 한 간부는 앞장서 한영수를 적발하고 비판했다.
남을 투쟁하는데 앞장서야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5.7간부학교를 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영수는 돼지를 잘 먹일 대신 배고프다면서 돼지죽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 웅성거렸다.
(어떻게 배고팠으면 돼지죽을 다 훔쳐 먹었겠는가.)
"쯧쯧쯧."
"또 있습니다. 한영수는 여기 본교 식당에 와서 아내를 도와 나무를 팼습니다. 아직도 자산계급의 썩어빠진 생활과 사상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분교 양돈장의 돼지죽이나 잘 끓일게지 여기 와서 뭘 하려는 겁니까? 남들이 일하러 간 틈을 타서 아내를 돕는 척하다가 밥이라도 훔쳐 먹을 작정 아닙니까? 사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수는 머리를 숙이고 반성해야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한 반란파는 영수의 아내 이연분의 머리카락을 잡아 마구 내리누르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속담에 암캐 꼬리를 치지 않으면 수캐 달려들지 않는다고 네년이 꼬리쳤지?”
그 억이 막힌 말에 한영수나 이연분은 두 말할 것이 없었다. 노간부들은 모두 어이없어 고개를 툭 떨어뜨린 채 도리머리를 흔들거나 한숨을 푸푸 내쉬었다.
너무 혹독하게 바투 들이대자 연분은 머리를 들고 반란파를 직시하면서 반문했다.
“나와 영수동무는 합법적인 부부 아니오?”
“그거야 옳지.”
어망 간에 이렇게 대답하고 반란파는 말을 바꿨다.
“허나 너희들은 노동개조하는 반동간부야. 마음대로 사통해선 안 돼!”
“뭐가 사통이란 말이오? 부부간에 살아도 사통이오? 정말 사람을 웃겨도 분수가 있지.”
비인간적인 모욕에 연분은 굴하지 않았다.
“너희들 정말 그걸 했는 모양이구나.”
영수는 옆에 선 연분의 손을 툭툭 쳐 말리며 한발 나섰다.
“근본 그럴 새 없었소. 난 나무를 팼고 이 동문 밥을 짓고 돼지죽을 주었을 뿐입니다.”
“음, 하기만 해보지. 네놈들 바지를 벗겨놓고 거기에 개똥을 발라놓겠다.”
그 소리에 간부들은 속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누가 감히 나서 말 대구 한마디 하지 못했다.
반란파들은 저녁이면 노간부들을 투쟁하면서 변태적인 재미를 보고 있었다.
이런 어지럽고 변태적인 세상이기에 영수와 연분 부부는 한 방에 들어 잘 수도 없었다. 더구나 노간부 십여 명이 시루속의 콩나물처럼 한 구들에 누워 돌아누울 자리도 없이 잤기에 서로 감독하다나니 용빼는 수가 없었다.
바깥에 있는 변소로 나가도 보초를 서는 당직이 변소까지 따라 다니기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한번은 분교의 취사원이 애가 앓아 청가를 맡는 바람에 밥을 지어 분교에 가져가게 됐다.
이른 새벽에 연분은 밥을 지어 함지에 퍼 이고 남편이 있는 분교에 가면서 별스레 가슴이 높뛰었다. 뒤에는 물론 당직이 뒤따랐다.
그녀가 밥함지를 이고 헐금씨금 영을 넘어 어느덧 분교 숙사에 이르렀다.
그녀가 숙사에 들어가 구들을 둘러보니 아직 숱한 노간부들이 이불을 들쓰고 구들에 빼곡하게 누워 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녀는 육감적으로 제일 문 옆에 누운 사람이 자기 남편임을 알아보았다. 하여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뒤돌아보았다.
당직은 바깥에서 서성거리다가 변소로 어정어정 가고 있었다.
연분은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남편을 보자 가슴이 울렁이었다. 그러나 숱한 노 간부들이 자는 커다란 구들에서 어찌는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다른 노간부들이 깰까봐 가만가만 남편의 발치에 다가가 맨발을 매만졌다. 그 바람에 깨어난 영수는 자기 발을 매만지며 바라보는 연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분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영수가 와닥닥 일어나려고 하는데 연분이 옆을 눈치하면서 눌러 눕혔다. 그녀는 남편의 발만 가만히 매만지다가 들키기 전에 인차 나가와버렸다.
 “에헴, 에헴”
그때 당직이 마른기침을 하면서 변소에서 나와 괴춤을 춰 입었다.
그는 밥함지를 두고 나오면 될 연분이 늦어서야 나오는 것을 보고 대개 눈치 챘다.
돌아오는 길에 당직 노간부는 연분에게 말했다.
“이 놈 세월 무슨 세월이오? 부부라도 만나 말 한마디 해도 안 되니. 참.”
그 말에 연분은 코마루가 시큼해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서 어깨를 들먹였다.
“후에 내 당직을 설 때 기회를 마련해 줄게.”
그 노간부는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허나 그 험악한 세월에 누가 누구를 믿겠는가.
어느 날 아침, 영수가 돼지먹이를 푸려고 본 교 식당으로 오게 됐다.
그때는 금방 노간부들이 일밭으로 나가고 반란파가 당번을 서고 있었다.
영수는 식당에 들어가 바가지로 뜨물독에서 시크무레한 냄새 나는 뜨물이랑 묵은 음식찌꺼기를 한 바가지 한 바가지 퍼서 물 초롱에 꼴딱 담았다.
그가 멜대로 물 초롱을 메고 떠나려 할 때다.
연분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식당 침실에서 나오다가 딱 마주쳤다.
“여보, 좀…”
오랜만에 만난 영수는 식당 안에 누가 없는 것을 보고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내는 자기 볼에 키스벼락을 안기는 남편의 볼을 매만졌다.
       젊은 부부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어찌 할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면서 찰떡처럼 딱 들어붙어 포옹한 채 말을 잃었다.
“여보, 누가 보겠소. 또 투쟁 받겠소.”
 “보겠으면 보라지. 우리 어디 남남이오?”
영수는계속 여기저기 매만졌다.
연분은 피뜩 “여보, 돼지 굴에 가면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영수는 머리를 저었다.
“안 되오. 돼지 꿀꿀거리면 인차 들키오.”
뒤이어 영수는  기발한 생각을 내놓았다.
“변소로 가면 어떠오?”
연분은 머리를 들고 영수를 마주 바라보며 궁리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 먼저 들어가오.”
영수는 사위를 흘금거리면서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토성 구석에 있는 변소로 들어갔다.
문고리를 쥐고 식당과 바깥을 살피던 연분도 돼지죽을 퍼들고 돼지 굴로 가는 척 하면서 땔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전날에 보초를 서던 노 간부가 당직을 서느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반란 파는 저쪽 숙사 쪽으로 어깨가 으쓱해 가고 있었다.
연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바가지를 든 채 변소로 다가가 문 꼬리를 쥐어 당기었다.
영수는 물앉아 벌써 바지를 내리었다. 연분은 변소 문고리를 단단히 쥐고 바지를 재빨리 내리었다.
그들 부부는 그 비좁고 구린 내 나는 변소에서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청춘의 욕정을 불태웠다. 누가 들을까봐 거친 숨소리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기름을 친 마른 장작더미에 붙은 불처럼 열렬하고 강렬하게 활활 타번지었다.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하는 세월에 가혹한 정치몽둥이에 얻어맞으면서도, 날마다 고된 노동개조를 하면서도 인간의 기본 욕정만은 머리를 숙일 줄을 몰랐다. 부드러운 비단이불속이 아니어도 푹신푹신한 침대 위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들 부부는 구린내 나는 변소에서도 그다지도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에헴. 에헴.”
마른기침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애햄, 애햄, 칵 퉤!”
연분은 문고리를 두 손으로 딱 틀어쥐면서 황급히 인기척을 냈다.
영수는 두 번 다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는 수가 없어 아쉬운 대로 아내 허리를 놓아주면서 허리를 굽힌 채 조용히 바지를 춰 입었다.
연분은 옹이구멍으로 바깥을 내다 살피었다. 당번 노간부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 치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이 일을 어쩐담?)
연분은 근심하면서도 머리를 손으로 싹싹 빗어 넘기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후 변소 문을 살랑 열고 나가 변소 문을 꽉 닫아놓았다.
그녀는 변소 옆에 놓았던 바가지를 쥐고 사위를 두루 살피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당직 노간부는 짐짓 보지 못한 척 하면서 아예 식당 울안에서 나가 저쪽 숙사 쪽으로 스적스적 가버리는 것이었다.
영수와 연분은 그 노간부가 눈치 챘다는 것을 직감했다. 만약 그가 눈치 채지 못했더라면 연분이 나왔으면 뒤가 바빠서라도 변소로 인차 들어갈 것이 아니겠는가!
영수는 속이 한줌만 해 도적고양이처럼 변소에서 나와 식당에 들어가 돼지먹이를 퍼 담은 물 초롱을 멜대로 둘러메고 식당 문을 나섰다.
그가 울안을 벗어나는데 반란파와 딱 마주쳤다. 반란파가 이상한 눈길로 영수의 아래위를 훑어 볼 때다.
저쪽에서 당직 노간부가 돌아오더니 “어, 한 동무 왔소?” 하고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양.”
영수는 황급히 돼지 뜨물을 메고 총총 걸음을 재우쳤다.
노간부는 슬쩍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길가의 돌을 발로 툭 차버리었다. 반란파는 휘파람을 불면서 숙사로 들어가 버리었다.
되돌아보니 식당의 굴뚝에서 점심밥을 짓는 삼단 같은 연기가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제야 영수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면서 고개를 넘어섰다.
(이 놈의 암흑한 세월이 언제면 끝날까?)
          
         4. 민주투표


박영발과 박윤희는 이른바 “보황파”로 몰리어 갖은 고문과 능욕을 받을 대로 다 받았다.
어느 날, 그들은 가족까지 데리고 시골 함흥대대에 쫓기어 내려가 노동개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진수해공사에 떨어진 박윤희와 박영발은 허영호 소장의 덕분에 상순이 있는 함흥대대로 내려가게 됐다. 말로는 하향간부라고 듣기 좋게 불렀지만 기실 농촌으로 추방해 노동개조를 시킨 셈이다.
박영발은 함흥대대에 내려오자마자 상순의 집을 찾아갔다.
상순은 맨발 바람으로 뛰어나오다 시피 했다.
영발은 상순의 두 손을 잡고 통사정을 들이댔다.
“김 서기, 이전에 이집 애들을 치료해준 걸 봐서라도 나를 도와주오. 당신을 믿고 함흥대대로 왔는데 조개덕 생산대에 오는 게 좋을 거 같소.”
상순은 박영발 서기의 두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근심 마오. 내 치보 주임과 말해서 우리 대에 내려오게 하지. 농촌에 내려와서 어떻게 고생하겠소?”
“양, 괜찮소. 그래도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고 투쟁 맡기보다야 낫겠지.”
상순은 누추한 초가집에 영발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영발에게서 그간 시내 “문화대혁명” 정황을 죽 들었다.
“우리와 함께 고생하던 시 당위 판공실의 김진욱은 지금 사평감옥에 가서 감옥살이를 하오.”
…진욱은 완고한 악질반동분자로 몰리어 사평감옥에 가서 진종일 30도도 넘는 고온용광로 앞에서 쇠 물을 녹이는 강제노동개조를 해야 했다.
옥수수떡 한 쪼각이거나 천정이 다 들여다보이는 멀건 강냉이죽물을 대충 먹고 낮에 쇠 물을 녹이는 고된 일을 해야 했다. 어떤 때에는 멀건 배추장물을 먹다가 쥐새끼마저 장물 그릇에 있어 먹다 말 때도 있었다. 허나 배고파 그런 장물도 쥐새끼를 퍼 버리고 먹지 않으면 안 됐다. 배고파 고된 일을 삐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강철생산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날이면 또 노라리를 쳤다고 투쟁 받거나 고문당하거나 지어 작은 단방에 갇혀 반성해야 했다. 생산임무를 완수했어도 날마다 밤이면 감방에서 끌리어 나가 감옥 회의실에 가서 숱한 “죄수” 앞에서 손을 들고 투쟁받으면서 모택동 주석의 저작을 암기하고 사상을 검토해야 했다.
밤중이면 너무 배고파 주린 배를 그러안고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어떤 때에는 진짜 기어지나가는 쥐며느리마저 다 잡아 입에 넣고 씹어 먹기까지 했다. 허나 그래도 하루 노동개조와 사상개조가 끝나 감방 잠자리에 들면 제일 좋았다
쇠살창 너머 흘러드는 쓸쓸한 달빛을 볼 때면 고향에 있는 처자들의 생각이 나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상순과 영발은 이말 저말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함흥촌에 올라가 치보 주임 이흥수를 찾았다.
흥수는 상순의 말을 듣자 영발과 윤희를 번갈아 보다가 영발을 보고 “조개덕으로 가서 잘 개조하오.”라고 했다.
영발은 그날로 처자를 데리고 이불 짐을 수레에 실어가지고 상순을 따라 조개덕에 내려와 상순이네 집에 임시로 들게 됐다.
박윤희는 함흥촌에 독신으로 내려와 대대 위생소 옆 칸에 임시 들어 있게 됐다.
사실, 윤희는 영발과 마찬가지로 치보 주임 흥수에게 상순이 있는 조개덕에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흥수는 백지장 같이 살결이 하얀 윤희의 예쁜 모습을 아래위 뚫어지게 훑어보더니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안돼. 조개덕에 개조범들이 많으면 뭉쳐서 나쁜 짓 할 수 있우니께. 못가. 함흥촌에 남으라면 남을 게지. 무슨 잔말인가? 상순의 엉덩이에 엿이나 달렸어?”
     윤희는 혀를 홀랑 내밀며 눈을 곱게 흘기었다.
치보 주임이 어찌나 으르렁거리는지 그녀는 다시는 조개덕으로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리 부러진 노루가 한데 모인다고 함흥대대에 개조하러 내려 보낸 하향간부들이 날에 날마다 늘어갔다.
(어쩜 이계삼 부서기와 허영주 부현장을 오류분자와 함께 몬단 말인가? 그래 노간부들이 지주, 부농, 우파분자, 역사반혁명분자, 현행반혁명분자들과 똑같이 노동개조하고 투쟁받아야 한단 말인가?)
상순은 사원들을 데리고 천지꽃산 상우지에 가서 기음을 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산중턱에 있는 쓸쓸한 할아버지 산소를 보자 그 앞으로 다가갔다.
풀숲 속에 쓸쓸하게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사원들이 산비탈 아래로 다 내려가기를 기다려 그는 조부모의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 꾸벅꾸벅 절을 올리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왜 저를 홀로 이 사악한 세상에 남겨두고 그렇게 총망히 가시였습니까? 항일 노 간부들인 이계삼 부서기와 허영주 부현장마저 우리 마을에 돌아와 노동개조를 하게 됐습니다. 할아버지, 이젠 이 험악한 세상에서 누구와 우리 마을 건설을 의논하랍니까? 어허허, 흑흑흑.”
상순은 산소를 끌어안고 목 메여 할아버지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
천지꽃산 산비탈에는 쓸쓸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수풀과 옥수수, 조밭을 휩쓸며 울렸다.
그때 선들선들 불어오는 가을 바람소리에 섞여 할아버지 걸걸한 말소리가 들려오는 상 싶었다.
“얘야, 울지 말라. 이계삼 서기와 허 현장이 있지 않느냐? 위대한 중국 공산당을 믿어라.”
“할아버지! 할아버지!”
상순은 머리를 들고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두리번거렸지만 하얀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할아버지의 자애로운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참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환각인가?)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할아버지 혼이 하늘에 현령하여 비틀거리는 나를 가르친 거야.)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또 할아버지 산소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한참 통곡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쓸쓸한 파도가 사납게 치는 산비탈 하늘로 외기러기 한 마리가 외롭게 “끼룩끼룩” 울며 가로 날아 지나갔다.
상순은 또 한참이나 산소를 붙안고 흐느껴 울다가 산소에 절을 올리고 나서 이를 악물고 일어나 산비탈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 내려갔다.
“그래, 위대한 중국 공산당을 믿고 살아야 하지. 아무 때건 우리 당은 억울한 사건을 시정하고 올바른 길로 인민들을 이끌어나갈 거야.”
상순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마을에 들어갔다.
점심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그는 이계삼 서기가 든 우사에 있는 회의실로 찾아갔다. 상순은 집도 없어 이 서기 일가를 회의실에 모시고 허영주 부 현장을 창고 옆에 구들을 놓은 초가 단칸방에 모신 일이 미안했다.
허나 우사에 든 날에 이계삼과 허영주는 이구동성으로 괜찮다고 했다.
"항일투사들은 추운 겨울에도 언제 이런 집에서 쉬어 보았겠소?"
"나뭇잎을 깔고 덮고 잘 때에 비하면 꽃이오.”
우사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이계삼은 회의실에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두루 살펴보니 이계삼과 허영주는 글쎄 앞집 변소에 가서 누런 인분을 초롱에 퍼담는 것이었다.
“이서기, 이른 아침부터 인분을 퍼서 뭘 합니까?”
상순의 물음에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신새벽에 흥수가 와서 우리를 보고 오늘부터 인분을 퍼서 천지꽃산 비탈밭에 내라고 했소. 별수 있는가?”
상순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 서기 손에서 쇠바가지 긴 자루를 빼앗아 두 초롱에 구린내 나는 누런 인분을 꼴딱 담았다.
뒤이어 이 서기 대신 멜대까지 메려고 서둘렀다.
“놔두게나. 흥수 보면 또 자네까지 말을 듣겠소.”
상순은 마지 못해 멜대를 놓고 괭이를 들고 따라나섰다.
이계삼과 허영주가 멜대로 인분 초롱을 메고 마을을 벗어나자 받아 메고 천지꽃산 비탈 밭으로 씨엉씨엉 올라갔다.
밭머리에 이르러 상순은 멜대를 내려놓고 인분 초롱을 들어 밭골땅에 줄줄 쏟았다. 이계삼과 허영주가 뒤를 따라가면서 괭이로 인분을 파묻었다.
상순이 불평을 털어놓았다.
“에이, 이전에 흥수를 어째 입당시켰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이계삼은 주의를 주었다.
“이제부터 당원을 발전시킬 때 장시기 엄격한 고험을 거친 후 입당시켜야 하오. 정치열성을 지나치게 부리는 자들은 흔히 정치야심이 있을 수 있소.”
“예. 종연이랑 승연이랑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계삼은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조용한 산비탈밭에서 사원들이 오기 전에 요긴한 말부터 꺼냈다.
“이서기, 난 당지부 서기를 내놓겠습니다. 반란파들과 흥수가 어찌나 탐내는지 어디 배기겠습니까?”
“뭐라고?!”
이 서기는 놀라면서 인분을 끄다가 괭이질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나약한 소린가? 언제부터 천하 면도칼날 같이 자존심이 강하던 자네가 그렇게 무른 밀가루반죽이 됐는가?”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허영주도 상순을 비평했다.
“어찌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오? 종연이랑 반란파들이 지금 우리 공산당 노간부들을 몰아내고 대대 권력을 찬탈하려고 하네. 정치란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법이네. 당지부 서기를 내놓을 궁리는 하지도 마오.”
“조개덕 생산대 정치대장이나 할 예산입니다. 원 저 함흥촌 흥수나 종연이 보기 싫어 어디 일하겠습니까? 정치대장을 해도 조개덕의 인민을 위해 일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허나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자네가 서기를 내놓고 정치대장을 하면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을 것 같은가? 자네 이젠 쉰이 다 된 노간부야.”
이계삼은 상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정중하게 타일렀다.
“상순이, 자네 일생을 돌이켜 보면 청렴하고 원칙을 지킨 일생이오. 지위도 명예도 따지지 않고 오직 당과 인민을 위해 혁명을 해왔소. 영월구 공안국 국장자리도 수하에게 내주었소. 지원군 영장을 하다가 퇴대한 후 시내에서 살 권리도 내놓고 이 골안에 되돌아와 이제껏 마을을 건설하느라고 김병완 서기와 함께 대를 이어 고생했소. 그런데 지금 난세 판에 뒤로 물러서려고 하오? 흥수나 종연이 좋아할 일을 하려오?  지금 반란파들은 우리 로공산당원들을 몰아내고 대 혁명위원회를 장악하려고 하오. 혁명위원회라는 데는 당원이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어 반란파들이 탈권하기 좋은 근거지로 됐소. 때문에 당지부 서기를 내놓아서는 절대 안 되오. 비당원 반란파들인 종연이랑 당권마저 우롱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오. 이런 관건적인 시각에 김 서기는 자기절로 자기를 타도하자고 개패를 메고 나설게 뭐요? 공산당원으로서 스스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반란파들에게 권력을 찬탈할 기회를 내주어서야 되오?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지도 마오. 현실도피를 하려고 하지 말고 역경을 맞받아 싸워나가야 하오. 이럴 땔수록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오.”
상순은 노서기의 비평에 머리를 숙이었다.
“그럼 저의 정치견해를 보류하기로 하겠습니다. 허나 당지부 서기를 민주로 선거합시다. 대체 우리 대대 당원들의 민의를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허영주가 한마디 보탰다.
“좋은 의견이오. 명심하오. 우리는 허백호와 박영발, 박윤희까지 모두 단결해 종연을 우두머리로 한 반란파들의 기염을 꺾어 놔야 하오. 우린 노동개조를 하러 나왔지만 아직도 중국 공산당 당당한 당원이오. 우리가 뒤에서 떠밀어 줄 테니까. 근심하지 말고 대담이 공작하오. 종연이랑 절대 우리 당내에 기어들지 못하게 막아야 하오.”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저쪽에서 종연이랑 흥수랑 붉은기를 메고 사원들을 몰아 밭으로 나오고 있었다.
흥수는 눈초리 꼿꼿해 을러멨다.
“똥을 퍼 나르라고 했더니, 참. 한 초롱 밖에 나르지 못했어? 오늘 언제 열 초롱 나르겠어?‘
     상순이 막아 나섰다.
“아니, 좋은 수레를 두고 왜 노간부들에게 똥 짐을 나르게 하오? 무슨 심보요?”
그러자 흥수는 삐죽한 조개턱을 개 턱처럼 쳐들고 대들었다.
“어째? 노동개조범에게 똥 짐을 메나르게 했는데 가슴 아파?”
흥수는 사원들 속에서 가물에 실돌피 같은 한 나그네 뒤 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헝겊막대기처럼 훤칠한 키에 다닥다닥 기운 누더기를 입은 예순도 넘어 보이는 나그네였다.
“알만하오? 이 놈은 일제 때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에서 일본 놈들의 통역을 하던 이달송이란 개다리란 말이오. 이제부터 이계삼과 허영주는 이놈과 함께 똥이나 퍼 나르게나.”
“뭐라고?!”
상순이 눈을 뚝 부릅뜨자 흥수는 주름이 쪽쪽 간 길죽한 호박대가리에 비웃음기가 서리어 쪽 퍼졌다.
“어째 달통되지 않는가?”
“어쩜 노간부들을 일본 통역과 똑 같이 취급한단 말이오?”
상순의 질책에 흥수는 코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퉤! 당내에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집권 파는 지주나 부농, 일본주구보다도 더 나쁜 놈들이란 말이오. 당과 인민을 위해 일하는 척 하며 양면파 수법을 써가면서 나쁜 짓을 한단 말이오.”
상순이 한걸음 나서면서 흥수와 따지고 들려고 하자 이계삼이 인분초롱을 메고 허리를 펴면서 말렸다.
“그만하게. 치보 주임이 하라는 대로 하지. 뭐.”
흥수가 우쭐거리는데 종연이가 흥수를 밀치면서 나섰다.
“이젠 당지부 서기나 치보 주임이 이래라 저래라 할 때는 지나갔네. 모든 건 우리 혁명위원회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돼.”
상순은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 새끼.” 하고 욕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삼켰다.
이계삼이 인분초롱을 메고 산비탈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다.
“서오!”
종연이 고함쳤다.
이계삼이 돌아서 옆구리에 두 손을 지른 종연을 쳐다보았다.
“이 놈아! 밭머리에서 모주석께 충성무를 춰드리고 가야지. 잊었는가?!”
그제야 이계삼과 허영주, 상순도 별 수 없어 머리를 숙이고 다가섰다.
흥수는 남조선 특무로 몰리자 인차 카멜레온처럼 살짝 입장을 바꿔 종연을 괴수로 하는 반란파들에게 달라 붙었다. 그것도 정치매매를 앞세우고.
“종연이, 너도 정치를 하려고 나선바하고는 입당해야 하지 않겠느냐?”
“건데?”
“입당하려면 내 방조가 필요할 거야.”
종연과 흥수는 모주석의 초상을 휘날리는 붉은 기대에 걸어놓으려고 했다. 허나 걸개가 없어 아무리 역사질을 해도 걸 수 없었다.
종연은 상순을 보고 모 주석 초상을 안고 서 있으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나서지 않았다.
그때 흥수가 제꺽 나섰다.
“내 들게.”
그때 상순이 나무랐다.
“에끼, 이 사람아, 모주석 초상을 자네가 들고 있으면 모두들 자네에게 충성무를 춰 올리겠는가?”
그러자 흥수는 주춤 멈춰서더니 쭈물거렸다.
종연은 모 주석 초상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모 주석을 높이 모셔야겠는데 오늘은 별 수 없구나. 후에는 모 주석 초상을 모실 걸개를 멋지게 만들어 가지고 와야겠다.”
종연은 꽂아놓은 기발 두 대 사이에 모 주석 초상을 기대 세워놓았다.
뒤이어 종연은 사원들을 보고 모 주석 초상을 향해 빨간 모 주석 어록 책을 들고 자기를 따라 외치게 했다.
“위대한 수령 모주석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만수무강!”
“만수무강!”
“만수무강!”
뒤이어 사원들은 모 주석 초성을 향해 쩔룩거리면서 충성 무를 추어댔다.
밭머리 충성무가 끝나서야 모두들 김을 매기 시작했다.
쉼에는 또 모 주석의 최신지시와 어록을 학습하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업을 영도하는 핵심적 역량은 중국 공산당이다. 우리 사업을 지도하는 지도사상은 맑스- 레닌주의이다.”
강냉이밭에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자라나도 사상혁명만 하다나니 기음을 제대로 맬 겨를이 있겠는가!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풀들은 밤낮으로 소리를 치면서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반란파 종연은 군복을 입고 우쭐거리면서 “농사는 잘 못 돼도 사상만 새빨가면 된다.”고 했다.
사원들은 모두 멀건 죽물을 마시면서 배고픈 판에 일하는 척 하면서 축을 내지 않았다.
만약 누가 농사를 틀어쥐면 류소기의 “생산유일역론”에 물 젖은 반동분자로 몰리우기 십상이었기에 누구도 감히 “시대의 조류”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녁에 당원들은 토성 안 대대 사무실에 모였다. 회의에는 비당원들인 종연과 송희 등 반란 파들도 참석했다.
상순은 이계삼과 허영주, 허백호에게 눈길을 보낸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당지부 확대회의를 열고 새로 당 지부 서기를 선출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회의에는 ‘문화대혁명’ 가운데서 나온 정치열성분자들인 종연과 송희도 열석으로 참석했습니다. 당 지부 회의기 때문에 비당원들은 방청할 수는 있지만 선거권과 표결권은 없습니다. 이에 특별히 회의 전에 안면고시를 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종연은 책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고래고래 고함쳤다.
“우리를 벙어리로 만들 거면 참석시켜 뭘 한단 말이오? 대대 혁명위원회 주임을 뭘로 보오?”
상순은 양보하지 않았다.
“엄숙한 당원대회에 참가했으면 조용히 듣기나 하오. 이제 더 떠들면 회의장에서 쫓아 내겠소.”
종연이 뭐라고 또 말하려고 하는데 흥수가 뒤에서 바지 뒤꽁무니를 잡아 물 앉혀 놓았다.
종연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지만 씩씩거리면서 자리에 앉아 팔꿈치로 책상을 꽝 쳤다.
상순은 눈꼴이 사나웠지만 회의를 계속 사회했다.
“지금부터 우리 대대 당지부 서기를 선출합시다. 자유로 발언하시오.”
이때 또 종연이 나섰다.
“내가 하면 안 됩니까?”
“종연은 당원도 아닌데 어떻게 지부 서기를 한다고 그러오?”
그러자 흥수는 조개턱을 쳐들고 일어나 떠들어댔다.
“난 이번 회의에서 아예 우리 대대 반란파 우두머리, 아니, 반란파 수령 종연 동무를 입당시킬 것을 건의합니다.”
허백호가 단마디로 막아 나섰다.
“입당조건도 구비되지 않은 햇내기를 어떻게 입당시킨단 말이오?”
“왜 안돼? 종연은 군인출신이자 ‘문화대혁명’ 가운데서 우리 공사 반란파 우두머리인데도 화선입당을 할 수 없어?”
흥수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허백호 서기가 눈을 흘겼다.
“자네를 잘 고험하지 않고 화선입당 시켰기에 혁명에 얼마나 큰 지장을 줬는가? 종연의 화선입당을 반대하오.”
그러자 종연은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더러운 영감들이 짜고 들어서 내 입당을 가로막다니? 내일부터 죽게 투쟁 받을줄 알아라!”
이계삼 서기도 한마디 했다.
“자, 자, 그만두오. 입당조건도 안된 종연을 어떻게 입당시키오. 오늘 회의는 새 당지부 서기를 선거하는 회의요.”
그리하여 다시 당 지부 서기를 선거하기 시작했다.
순간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이계삼이 제일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내 보건대 김상순 동무가 계속 서기를 하는 게 옳소.”
허영주도 맞장구를 쳤다.
“옳소. 상순 동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소?”
“내가 할 수 있어!”
흥수가 눈알을 부라리면서 소리쳤다.
그 바람에 모두들 코웃음쳤다.
그때 영발 서기가 일어서더니 입을 열었다.
“내 보건대 상순 동무는 계속 지부 서기를 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그 말에 모두들 놀라운 눈길을 영발에게 돌렸다.
영발은 개의치 않고 계속 발언했다.
“상순 동무는 생산, 생산, 하면서 농사 밖에 틀어쥘 줄 모릅니다. 지금 모주석의 지시대로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틀어쥐는 시대’에 류소기의 ‘생산유일역론’의 썩어빠진 수정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을 서기로 선거해서야 됩니까? 상순 동무가 계속 서기를 하면 우리 대대에서 자본주의 싹이 저 장마철의 풀처럼 범이 새끼 칠 지경으로 자라날 겁니다. 난 흥수 동무가 서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놀랐다.
상순도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고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노동개조를 하러 시골로 왔다고 불쌍해 자기 집 위방에 들이고 생각해주었건만 관건적인 시각에 흥수 편을 들다니? 하긴 반란파들인 종연이나 흥수에게 달라붙어야 투쟁도 덜 받을게 아닌가? 사람을 잘 못 보았구나. 오뉴월 소불알처럼 이볼 쳤다 저볼 쳤다 하는 놈.)
허영주는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강경하게 말했다.
“박 동무는 이 마을의 역사와 상순 동무의 공적을 알기나 하도 말하오? 난 박 동무 의견을 반대하오. 우리 마을 서기는 상순 동무 해야 하오.”
이렇게 옥신각신 다투듯이 자기 견해를 주장하다나니 밤중이 됐다.
나중에 표결을 하게 됐다.
흥수가 성이 나서 바깥으로 횡 하니 나가버렸다.
그러자 박영발은 소피보러 가는 척 하면서 뒤꽁무니를 따라 나갔다.
그런데 저게 뭔가?
박영발은 뒤간으로 가는 흥수를 따라가더니 “아버지!” 하고 불렀다.
흥수는 자기 귀를 의심하며 돌아서 영발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근심하지 마오.”
“아버지라니?”
흥수는 영발이 미치지 않았나 외가풀눈을 치켜뜨며 쏘아보았다.
영발은 밤이어서 똑똑히 볼 순 없었다. 하지만 분명 아첨이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낯으로 흥수를 쳐다보며 손까지 잡고 말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마시오. 내 투표 할테니까 당지부 서기는 꼭 아버지가 당선될 겁니다.”
흥수는 너무 어처구니없어 코방귀를 뀌었다. 허나 인차 관건적인 시각인지라 영발을 보고 지시하듯 말했다.
“꼭 투표하오. 그럼 자넬 제일 먼저 시내 병원에 보내 줄게.”
이때 뒤에서 윤희가 쫓아나와 “빨리 들어오오. 투표를 해야겠어요.”라고 소리쳤다.
흥수와 영발을 오줌을 누는 척 하고 인차 회의실로 돌아갔다.
모두 무기명으로 담배종이에 대대 당 지부 서기 후보들인 상순과 흥수 가운데서 한사람만 써넣기로 됐다.
모두들 엄숙하게 담배종이에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의 이름을 써넣었다. 흥수는 제꺽 자기 이름을 써넣고 영발이 자기 이름을 쓰리라고 여기고 건너다보면서 희죽이 웃기까지 했다.
윤희가 투표결과를 공포했다.
“리흥수 2표, 김상순 6표. 차기 대대 당 지부 서기는 김상순 동지로 통과됐습니다!”
박윤희가 공포하자 모두들 박수 쳤다. 허나 반란파들은 우르르 일어나 문을 꽝 박차고 나가버렸다.
허나 흥수는 벌떡 일어나더니 박윤희의 손에서 투표쪽지를 와락 빼앗아 보았다.
“아니, 이렇게 될 수 없소. 절대 없소.”
그는 두덜거리면서 쪽지를 보고 또 살펴보았다.
“내 한 표에 박영발 서기 한 표, 학수 형님의 한 표 해도 셋이 될게 아닌가?”
그때 학수가 흥수를 질책했다.
“그만둬라! 난 너에게 투표하지도 않았다.”
“형님, 어찌 이럴 수가 있소?”
흥수가 입을 짝 벌리고 싯누런 덧이를 드러냈다. 당장 학수를 물것만 같았다.
“네가 저 종연이랑 저 반란파들을 끌어들여 이 마을을 무엇으로 만들 작정이냐?! 퉤! 서기를 해? 어림도 없다.”
흥수는 형에게 욕보고 영발을 돌아보면서 손을 잡았다.
“그래도 믿을 건 형도 아니고 박서기 밖에 없구먼.”
그러나 사실 박영발은 앞에서는 흥수를 선거했지만 양면파 수법을 써서 무기명 투표를 할 때에는 상순의 이름을 써넣었던 것이다. 흥수가 서기를 하면 계속 투쟁만 받을까봐.
흥수는 상순이가 자기를 선거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영발이 자기를 선거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투표종이를 다 펴보고서야 박영발이 자기를 투표하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흥수는 평소에 영발의 검토 서를 늘 보다나니 필적을 알고 있었다.
“개 자식, 변소 간에 가서 나를 아버지라고까지 불러놓고?!”
박영발은 시원한 웃음을 얼굴에 지으면서도 흥수에게 그 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눈을 질끔 해보였다.
“알락 고양이 같은 놈! 어디 두고 보자!”
흥수가 노발대발 할 때다.
허백호가 흥수의 손에서 투표쪽지를 빼앗아갔다.
“이게 무슨 작법이오? 투표쪽지를 펴봐서야 되는가?!”
“펴보면 어째?”
“어째 보복이라도 하려는 거요?!”
허백호는 외까풀눈으로 무섭게 흥수를 쏘아보았다.
“내 눈이 멀었지, 멀었어. 자넬 입당시킨 내가 당과 인민 앞에 부끄럽소. 부끄러워!”
“뭐라고?”
흥수는 결이 날대로 났다.
“어디 두고 보자. 언제까지 이 시골에서 똥이나 치면서 사는가?”
“마음대로 해봐라. 개똥을 무서워 피하는가 하니? 더러워서 피하지. 퉤!”
그날 회의는 이렇게  당원들의 승리로, 상순이가 재차 대대 당지부 서기로 재선된 것으로 끝났다.
     흥수는 회의실에서 나와 토성 밖에 나가자마자 씩씩거리면서 종연이랑 반란파들이 모인 황연건조실 쪽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그의 납짝코에서 시거먼 연기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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