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changhe 블로그홈 | 로그인
김장혁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1)
2018년 05월 15일 11시 38분  조회:107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12. 반란

먹장구름이 덮쳐 오더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대지의 연기가 구름에 올라가 붙은 듯이 살풍경이다. 갑작스레 덮쳐오고 밀려가는 비구름은 풍운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대체 비옷을 입어야 할지 반팔적삼을 입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면서 변덕스러운 하늘만 욕하고 있었다.
요즘 함흥소학교에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흥수는 공사에 가서 무슨 충성 무라는 것을 배워가지고 돌아와 사원들에게 배워주었다.
그는 근본 상순과 회보하기는 고사하고 한마디 토론도 없이 충성 무를 보급했다.
원래 미제와 육박전을 할 때 왼팔을 총창에 찔린 흥수는 별스레 쩔뚝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두 팔을 들어 윗사람을 받드는 시늉을 반복하는 춤을 배워주다.
홍자랑 충성 무를 배우다가 도리머리를 했다.
“어째 우리 도라지만은 아주 달라. 영 추기 힘들어.”
그러자 흥수는 길죽한 말상을 기우뚱 했다. 움푹이 팬 외까풀 눈을 희번뜩거리면서 눈알부라리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무슨 잔소리냐? 두말 말고 충성 무를 잘 배워. 충성 무를 배우지 않는 사원은 모 주석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야. 알만하지?”
홍자랑 정자랑 신자랑 입을 홀랑 내밀었다. 그녀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충성 무를 배웠다. 한 사흘 배우니 제법 쩔뚝거리면서 손을 위로 쳐들어 올리면서 빙빙 돌아갔다.
상순은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지만 위로부터 충성무를 정치적으로 내리 먹이니 별 수 없어 따라 쩔뚝거리면서 모주석의 초상에 받들어 올리는 팔을 휘저으면서 충성 무를 췄다.
지어 흥수는 위의 정신이라면서 집집마다 남녀노소가 몽땅 식사 전이면 벽에 높이 모신 모택동 주석의 초상을 향해 밥상을 돌아가면서 충성무를 추라는 것이었다. 상순은 그것이 정말 위의 정신인가고 박우성 서기한테 물어 보려고 진수해 공사에 찾아 올라갔다.
공사 벽돌토성 안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별스레 뻘건 복숭아 판에 “충”자를 새긴 패쪽을 목에 걸고 한창 충성무 표현을 하느라고 야단이었다.
상순은 목에 뻘건 충성패쪽을 걸고 뻘건 완장을 낀 홍위병들이 지키는 대문 안에 들어가려고 서둘렀다.
“이게 어디서 온 촌놈이야?!”
한 홍위병이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몽둥이 끝으로 땅바닥을 쿡쿡 찍으며 막아 나섰다.
“박서기를 찾아 왔소. 좀 들어가기요.”
허나 그 홍위병은 퉁명스레 한 마디 내 뱉을 뿐이었다.
“박우성은 일본특무야. 일본특무를 만나 뭘 하려고 하오?”
“뭐라오?!”
상순은 몽둥이에 정수리를 맞은 듯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박 서기가 일본특무라니? 되지도 않는 말.”
그러자 홍위병들은 상순을 둘러싸며 달려들었다.
“이 놈이, 너도 일본특무지?”
“뭐라고? 일본 특무? 난 항일전쟁 때 일본 놈들과 싸운 항일유격대 출신이다. 뭘 알아서 떠드느냐? 생사람을 잡지 말라!”
상순은 홍위병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피해라. 박 서기는 어디에 있느냐?”
“이 나그네 정말 한 대 맞고 싶어?”
그러자 상순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러지 말라! 내 새끼 같은 애들과 싸우고 싶지 않구나.”
그때 분명 한 마을의 황종연이 있었건만 알은체도 하지 않고 홍위병들에게 뭐라고 시키는 것 같았다.
종연의 부추김을 받자 한 홍위병이 상순의 멱살을 쥐어 공사 대문 밖으로 떠밀었다.
“썩 물러가지 못하겠는가?!”
상순은 재차 떠밀려는 자 팔목을 척 잡아 채 어깨에 둘러멨다가 태를 탁 쳐놓았다.
홍위병이 쉰 고개를 바라보는 나그네라고 준비 없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날랜 솜씨는 한 폭의 유도 명장면을 방불케 했다.
홍위병은  땅 바닥에 머리를 박고 나동그라져 다시 일어나지도 못했다..
황종연이 소리쳤다.
“저 나그네 특종병 출신이다. 몽땅 달려들어라!”
홍위병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덮쳐들었다.
상순은 바람개비처럼 날아드는 몽둥이를 피해 몸을 훌쩍 날려 한 키나 되는 벽돌토성 위로 올라 가 날래게 달아났다. 홍위병들이 토성바깥에서 쫓아오면 토성 안으로 몸을 훌쩍 날려 들어가고 토성 안에 따라 들어오면 몸을 날려 토성바깥으로 날아나가면서 제일 먼저 쫓아오는 홍위병 한 둘씩 쳐 눕혔다.
뒤에서 두목인 종연이 죽어가는 소리로 고함쳤다.
“그저 나그네 아니다. 달아나라!”
홍위병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숱한 구경꾼들이 상순의 날랜 솜씨에 혀를 내두르면서 구경했다.
상순은 토성을 넘어 달아나려는 홍위병 두목의 뒷다리를 잡아끌어 내리었다. 상순은 무쇠주먹을 쳐들고 눈알을 부라리었다.
“박 서기를 어데 가뒀느냐?!”
“모릅니다. 밤에 잡아오자마자 위에서 그날로 잡아갔습니다.”
“어디로 잡아갔느냐?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해라.”
상순은 주먹으로 그 홍위병의 머리를 한 대 딱 내리쳤다.
“앗! 정말 모릅니다. 특무라고 잡아갔습니다. 어르신님.”
상순은 홍위병을 땅바닥에 훌 뿌리치고 공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홍위병들은 저쪽 먼발치 벽 모서리에 반쪽 얼굴을 내밀고 로지심 같은 상순을 바라보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상순이 공사 박 서기 사무실로 찾아가보니 문에 열십자로 널을 대고 대못을 박지 않았겠는가! 그 위에 “일본 특무 박우성을 타도하자!”라고 쓴 대문짝 같은 대자보까지 더덕더덕 붙어 있지 않겠는가.
“무슨 특무야?! 개새끼들, 진상도 모르면서 좋은 간부를 타도해?”
상순은 대자보를 와락와락 뜯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뭉개버렸다.
이때 파출소 허영호 소장이 소문을 듣고 살기등등해 뛰어왔다.
“아이고, 김국장이구먼. 무사합니까?”
허 소장은 상순을 보자 권총을 옆구리에 되차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홍위병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믿던 허 소장이 상순을 “김 국장”이라면서 허리까지 꿉썩거리며 공손히 대하는 걸 보고 쉬쉬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어서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네 같은 놈들이 우리 김 국장을 이길 거 같니? 옛날 내 스승이자 우리 공안국 국장이시다.”
허 소장이 몽둥이를 들고 복도에 들어오는 홍위병들을 뒤돌아보면서 욕했다.
그제야 홍위병들은 상순을 업신여기지 못하고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박서기는 어디에 있는가?”
상순은 다짜고짜 물었다.
허영호는 상순의 두 손을 잡고 공손히 말했다.
“김 국장, 갑시다. 우리 사무실에 가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언제 국장이 지금도 국장이오? 그렇게 부르지 마오. 홍위병들이 웃겠소?”
상순은 허영호 소장을 따라 진수해파출소로 들어갔다.
상순을 윗자리에 모신 후 허영호 소장은 천천히 입을 뗐다.
“김 국장은 나의 영원한 국장입니다. 김국장이 안보 촌에 있는 저를 영월구 공안국에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오늘 소장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상순은 허영호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건 그만 말하고. 박서기 어데 있소?”
허영호는 어조를 낮추어 대답했다.
“이건 비밀입니다. 아무와도 말하지 마십시오.”
“뭔가?”
상순은 의자 등받이에서 잔등을 떼면서 영호의 두툼한 입을 쳐다보았다.
“박서기는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생이 아니고 뭡니까?”
“그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지.”
상순은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붙이면서 심드렁해 했다.
허나 허영호는 의연히 심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 서기는 일어를 잘 하지 않고 뭡니까?”
“그래서 어쨌단 말이오. 한마디로 뚝 찍어 말하오.”
상순은 갑갑해 언성을 높였다.
허나 허영호는 일어나 권총집을 뒤로 하면서 상순한테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 일은 나 밖에 모릅니다. 위 공안국에서 저에게 특수임무를 주었습니다. 박우성에게 일본특무 모자를 씌워 투쟁하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상순은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위에서는 그에게 일본특무 모자를 씌워 투쟁한 후 특수임무를 맡겨 어디에 보냈습니다.”
상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로 파견했다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소. 뭐로 파견하겠으면 할 거지. 일본특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붙잡아가듯 하면 박 서기 처자들은 어쩌오?”
허영호도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렇게 혼란한 정황에서도 우에서는 나에게 박 서기는 일본특무가 아니라 우리 공안부문과 안전부문에서 파견한, 특수임무를 맡은 분이라는 것을 몇 십 년 후에까지 증명서라고 했습니다. 박 서기 아내는 누구도 모르는 통화지구 어느 한 소학교에 전근시켰습니다. 이제 몇 해 후면 아무도 모르게 연길의 어느 소학교에 전근시킬 예산이라고 합디다. 박 서기의 종적을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그제야 상순은 의자에 되앉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러루하면 알만 하오. 고육계를 쓰는 거구만. 어쩌겠소? 나라 안전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도 있지. 억울한 모자를 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상순은 담배쌈지를 꺼내 한 대 피워 물었다.
“충성무를 추라는 건 공사 지시오?”
허영호는 아무런 고려도 없이 대답했다.
“예. 박우성 서기가 떠나가기 전에 내린 지시입니다. 먼저 각 대대 선전위원을 불러다 충성무 학습반을 꾸리고 전 공사에 보급할 예산입니다. 류소기를 타도한 후 지금 전국적으로 모두 모주석께 충성하는 충성무를 보급하고 모주석의 최고지시를 구절마다 암송하듯이 학습해야 한답니다. 집집마다 모주석의 최고지시를 옹호는 구호를 붙이고 흑판에 모주석의 지시를 색분필로 써놓아야 한답디다. 김 서기도 형세에 뒤떨어지지 마십시오. 그 마을의 선전위원 흥수란 사람도 와서 먼저 충성무를 배우더구먼요.”
흥수 말이 나오니 두 사람 모두 콧방귀를 뀌었다. 허영호도 자기 사촌형 허백호를 물어 먹은 흥수를 두고 속에 앙금이 어지간히 앉은 것이 아니었다.
상순은 허영호를 보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지금 위 정황은 어떠오? 허영주 부 현장이랑 무사하오?”
“그러지 않아도 김 서기한테 알리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소?”
허영호는 벌떡 일어나는 상순을 보고 일어났다.
“지금 반란 파들이 허영주 부현장을 투쟁한답니다.”
“뭐라고? 그놈 반란파들이 무슨 이유로 허 현장을 투쟁하오? 그는 항일유격대 출신 노간부요. 조선의용군에서 정성해 서기와 함께 파견한 노간부인데 누가 감히 투쟁한단 말이오?”
허영호도 답답해 담배를 태우면서 두덜거리었다.
“무슨 판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성해를 따라 할빈에서 나온 조선족간부들을 돌아가면서 몽땅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억울한 모자를 씌워 투쟁하는 판입니다. 이계삼 서기도 허 현장 같은 조선간부들을 보호한 보황파라고 몰아서 투쟁한답니다.”
“개새끼들이 개수작 한다. 다 항일 노간부들인데 타도해? 국민당이나 지주들보다 더 한 놈들이구나.”
상순은 격분해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홍위병들은 무슨 놈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쩍 하면 노간부들을 잡아다가 투쟁하면서 말마디마다 혁명한다고 떠듭니다. 아마 이계삼 서기나 허 현장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 못합니다.”
“누가 감히 그들을 다쳐?”
상순은 눈을 부릅뜨고 허영호를 쏘아보았다.
“홍위병들이 반란을 일으킨 목적은 바로 허 현장이나 이서기를 말에서 끌어내리고 자기들이 올라가려는 것입니다. 지금 정성해 서기 가족들이나 친척들마저 농촌에 쫓아 보내 노동개조를 시킨답디다.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부 현장도 철직시켜 우리 공사 어느 시골 농촌에 보내 노동개조를 시킨답디다.”
상순은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렸다가 다물었다.
한참 후 상순은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허 소장, 자네나 내나 알지 않는가? 이계삼 서기나 허영주 부 현장은 착오 없네. 모두 항일전쟁 때부터 항일유격대였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변항 없이 줄곧 당과 인민에게 충성해온 충직한 간부들이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소. 다른 곳으로 가면 꼭 여러 모로 고생할 게 아닌가? 될 수 있으면 이 서기와 허 현장을 우리 대대에 보내게나. 내 잘 보필해야겠네. 그 분들은 모두 나를 혁명의 길에 들어서게 이끌어준 스승이고 입당소개인들이네. 목숨으로라도 그 분들을 보호해야겠네.”
그 어조는 어찌나 간곡한지 허영호는 상순의 참된 인간성을 실감할 정도였다.
“알았습니다. 홍위병들의 눈치는 보이지만 함흥 촌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물었다.
“홍위병이란 건 어데서 깨난 물건짝들인가?”
“북경으로부터 생겨난 조직인데 위로부터 그 기세가 사납습니다. 연길의 반란파들은 할빈으로부터 온 이씨라는 자의 지휘아래 위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처처에서 노 간부들을 잡아내 투쟁하고 타도하고 노 간부들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있습니다. 홍위병들은 정성해 서기를 타도하고도 모자라서 정성해 서기를 보호한 김문보 부서기까지 타도했답디다. 그 놈들은 정성해 서기를 붙잡아다가 가두고 무슨 정 서기를 ‘민족반역자’요, ‘민족우파’요, 독립왕국을 꾸리자고 날뛴 놈들을 보호한 ‘매국역적’이라는 모자까지 씌워 투쟁한답니다. 이씨(모원신)는 직접 조남기, 김문보 등 조선족간부들을 불러다놓고 심문하면서 정성해 서기한테 별의별 억울한 죄장을 들씌웠답니다. '정성해는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사는 목단강지구와 길림지구를 연변에 떼달라고 했다.',  '연변자치구를 자취주로 고친건 잘못이다. 응당 연변조선족자치구로 회복해야 한다.'  '연변에 조선족독립왕국을 세우려고 했다. 이러루한 억울한 죄명을 들씌워 정성해 서기를 타도하고도 모자라서 정성해 서기가 반역자, 매국역적이라는 걸 승인하라고 조남기, 김문보 부서기 등 조선족간부들을 핍박했답니다. 그런데 조남기, 김문보 부서기 등은 리씨의 터무니없는 날조를 견결히 반격했답니다.  그들은 '정성해 서기는 중국혁명에 중대한 공헌을 한 훌륭한 조선족간부'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한 루명을 씌주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들도 지금 날마다 투쟁 맞고 로동개조를 한답니다. 심지어 정성해 서기를 보호한 자치주급 한족간부 전인영이랑 배극이랑 요흔이랑도 비판투쟁받았답니다. 리씨는 그들을 비밀리에 불러다 놓고 '너희들은 한족간부인데 모주석을 따라 혁명하겠는냐? 아니면 조선족매국역절들을 따라 한평생 투쟁받고 지옥에 처박힐 거냐?'고 위협했답니다. 그러나 전인영과 요흔, 배극은 의연희 진리를 견지해 '정성해 서기는 훌륭한 간부이지 반역이나 매국 행위를 한게 없다.'고 증명 섰답니다. 그래서 그들 한족간부들도 조남기나 김문보처럼 투쟁받고 투옥됐답니다. ”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허, 세상에 별난 일을 다 보겠소.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 놈들이나 국민당 앞에서도 꺼꾸러지지 않고 싸워온 노간부들이 그 놈 홍위병들에게 꺼꾸러진단 말인가?”
상순은 김빠진 공처럼 의자에 털썩 물앉았다.
"홍위병들을 동원해 로간부들을 타도하는 건 위로부터 새로운 투쟁방식이랍니다."
"원참, 교활한 놈들이라구야!"
한참 후 상순은 쇠덩이 같이 무거운 침묵을 깼다.
“정성해 서기를 타도하자는 홍위병들이 나왔으면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는 조직을 결성해야 할 게 아닌가? 그래 훌륭한 조선족간부가 타도되는 것을 눈을 뻔히 뜨고 보고만 있겠소?”
허 영호 소장은 일어나 권총집을 뒤로 돌리더니 사무실 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우리 민경들이야 형사사건이나 처리하면서 중립을 지키라는 상급 부문의 지시가 있습니다. 이번 군중운동에는 참가하지 못합니다. 김문보 부서기랑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자고 반란파들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
“정치민감성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걸 잘 살피오. 무슨 일이 있으면 알리게나.”
상순의 가르침에 허영호 소장은 순순히 대답했다.
“예. 저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요. 세상형편이 돌아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전번에 내 사촌형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도 강한 분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약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꽤나 비좁은 분이어서 전번에 백양나무에 목을 매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쪼록 우리 백호 형님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이전에 백호 형님이 김서기한테 죄를 졌는데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당시 저도 김서기는 좋은 분이니까. 김서기와 그러지 말라고 형님한테 여러 번 귀띔했습니다. 그런데도 형님은 대약진을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김서기를 못 살게 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김서기한테 미안합니다.”
“됐어. 고까짓 일을 잊은지도 오라오. 관건은 지금 어떻게 홍위병들을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요.”
이윽고 상순은 영월구에서 수하에게 명령하듯이 허 영호에게 말했다.
“허 소장은 먼저 공사마당의 홍위병들부터 철수시키게나. 눈 골 사나워서 어디 공사를 다니겠소?”
허나 허 소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힘듭니다. 그들은 권총이 없다 뿐이지만 기세가 사납습니다. 우리 진수해만 해도 몽둥이를 끌고 온 시내를 싸다니는 홍위병들이 수백 명에 달합니다. 그들은 파출소고 뭐고 마구 포위하고 공격합니다.”
“좋은 권총을 뒀다가 뭘 하오?”
“아직 적아모순이 아니기에 파출소와 군부대에서는 중립을 지키고 어느 쪽에도 무력을 쓰지 못한다는 상급 명령이 있습니다. 헌데 YJ에서는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려는 ‘항대’조직과 정성해를 타도하려는 ‘홍색’조직에서 서로 자기 정치주장을 대자보에 써서 붙이던 데로부터 이젠 개판이 됐습니다. 변론하던데로부터 무리 싸움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총질을 했답니다. 8.27이란 조직도 나왔답니다. 조선족 여자들은 코신부대라는 걸 무어가지고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답니다. 그들은 부르하통하에 가서 자갈을 치마에 주어 담아 ‘홍색’ 반란 파들을 맞서 족치는 ‘항대’와 YB대학의 ‘붉은기연대’의 사내대장부들에게 날라다 주었답니다. 싸워서 열세에 처하자 반란파조직의 홍위병들은 중앙에서 파견한 반란 파 두목 이 씨의 지시에 따라 군 분구 무기창고에서 총기를 발급받아 ‘항대’조직에 총으로 사격까지 했답니다. 돌 총 질만 하다가 총을 든 반란 파들의 총격에 수많은 사상자를 낸 ‘항대’조직의 골간들은 적수공으로 반란 파들에게 쫓기어 노동자구락부에 철거해 문을 닫아걸고 걸상과 책상 다리를 끊어 쥐고 최후까지 싸울 각오를 했답니다. 그들을 포위한 홍위병 반란 파들은 두목의 명령에 따라 악독하게도 구락부에 휘발유를 치고 불을 달았답니다. 수많은 ‘항대’의 조선족 사내대장부들은 불길을 피해 구락부 천정에까지 올라가 아래로 벽돌장과 기와를 벗겨 내리 던지면서 필사적으로 최후까지 싸웠답니다. 마지막에 불길 속에서 뛰어나온 ‘항대’의 골간들은 모두 체포돼 감금됐고 모진 고문을 당했답니다.
구락부에서 철거한 나머지 골간들은 모두 의학원 2층 사무청사에 철거해 책상과 널판자로 문을 막고 결사적으로 항거했답니다. 그런데 총을 든 반란 파들을 어찌 당하겠습니까? 그들은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면서도 사흘을 뻗치었답니다. 2층 사무 청사에서 적수공권인 그들은 권투를 연습하면서 최후결사전을 다짐했습니다. 후에 반란 파들은 스피카에 대고 ‘손을 들고 투항해 나오면 살려준다. 허나 끝까지 항거하면 몽땅 총살할 테다.’라고 을러멨답니다. 그래도 투항하지 않자 반란파들은 작약으로 의학원 토성을 폭파하고 기관총으로 엄호사격하면서 2층 청사로 쳐들어갔습니다. 련 며칠 포위공경에 굶어 모두 쓰러질 지경으로 되어 ‘항대’의 골간들과 ‘코신부대’ 골간 200여 명은 핍박에 의해 손을 들고 하나하나 의학원 사무 청사에서 나왔답니다. 할빈에서 왔다는 반란 파 두목 이씨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몽땅 공안국 경찰들에 의해 반혁명 폭동분자들이라는 모자를 쓰고 감옥에 들어갔답니다.”
“큰일은 큰일이구먼. 우리 여기에서 한족과 조선족 형제들은 원래 항일전쟁시기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시기까지 얼마나 단결했소? 그런데 반란파들은 민족 분열을 조성하고 있구먼.”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 이 씨란 놈은 중뿔나게 할빈에서 우리 연변에 와서 반란한다오?”
상순은 기실 정규상한테서 대충 들어서 문화대혁며 혀세는 좀 알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저기서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침묵할뿐  소홀히 말하지 않고 있었다.
허영호는 로상전 앞인지라 시름놓고 들은 말을 줄줄 내리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 이 씨라는 자는 성이 모씨라고 합니다."
"오- 모씨?"
"예, 그자는 자기 진정한 신분을 속이려고 일부러 이 씨 성을 달고 막후조종을 한답니다. 그자는 중앙의 모모한 지도자의 조카라고 합니다."
상순은 그저 머리만 끄덕였다.
"모씨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사납다고 합니다. 정성해 서기를 타도하고서도 성차지 않아 정성해 동지를 따라 혁명해온 숱한 노지도일군들을 타도하자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주 당교 청사에 전문 심문실을 설칠해놓고 반란파들은 날마다 밤낮 노간부들한테 몽둥이찜질을 한답니다. 당교 청사는 진짜 노간부들의 아우성소리와 신음소리 처참하답니다. 반란파 놈들은 로간부들한테 고춧가루를 눈에 치고 쇠못을 발등에 박아넣고 송곳으로 손톱눈과 항문을 찌르면서 고문한답니다…”
“큰일 났구먼. 정성해 서기도 살아나지 못했으니까 다른 조선족지도간부들도 살아남기 어렵겠구먼.”
“조선족 간부뿐만 아니라 정성해 서기를 따라 혁명한 한족간부들인 전인영 동지랑 모두 타도대상으로 몰아 부친답니다. 그러니 정성해 서기랑 이계삼 서기랑 허영주 부 현장이랑 농촌에 쫓겨 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일부 조선족들도 반란 파들과 합세해 이 기회에 노 간부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려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함흥대대에서는 흥수랑 종연이랑 주의해야 합니다.”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속이 탄 마음이 연기로 돼 담배연기와 함께 꾸역꾸역 풍겨 나와 파출소 사무실을 숨 막히게 꽉 채웠다.
그날 상순은 허영호 소장이 식당에 가서 사주는 점심까지 잘 대접받았다. 식당 주위에서 몽둥이를 끌고 맴돌던 홍위병들은 상순이가 허영호 소장이 모는 찌프에 앉아 함흥 촌에 돌아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그저 농촌 나그네 아니구나 하는 낯짝들을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상순이 찌프에 앉아 마을에 들어서면서 보니 건조실 부근에서 숱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뭘 만들고 있었다.
허 영호 소장을 먼저 보내고 상순이 다가가 여겨보니 종연이랑 경만이랑 풍로 불에 양철 위에 연을 녹여 충성할 “충(忠)”자를 부어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마음 “심(心”자 모양 복판에 제법 “충”자를 새겨 은빛처럼 번쩍번쩍 하는데다가 고리를 걸 구멍까지 뒷면에 내서 긴을 꽂아 목에 걸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그걸 만들어 뭘 하느냐?‘
상순이 묻자 종연이 풍로의 풀무를 돌리면서 “모 주석께 충성하는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만듭니다. 김서기는 어째 형세에 그리 떨어집니까? 진수해에 갔다가 어째 충성패쪽을 목에 걸고 다니는 걸 못 보았습니까?”라고 했다.
그제야 상순은 진수해 공사 울안에서 충성 무를 추는 사람들과 대문을 지키던 홍위병들이 모두 충성패쪽을 건 것이 눈에 떠올랐다.
“헤이 참, 목에 그런 충성패쪽을 걸어야 충성심을 보여준다더니?”
“그래도 이걸 걸지 않으면 반동분자로 몰릴 판인데?”
상순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때 덕돌이 다가와 졸라댔다.
“아버지, 나도 충성패쪽을 만들어 줍소.”
“애들이 그걸 해 어쩌니?”
“성묵이랑 동림이랑 다 만들어 목에 걸었는데도?”
상순은 덕돌의 손을 쥐고 집으로 가더니 물었다.
“덕돌아, 연이 없어 불시에 어떻게 만드느냐? 후에 만들자.”
“성묵의 아버지는 칫솔 깎지를 녹여 만들었답니다.”
“그래? 어디 보자.”
상순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조왕간 덕대 위를 두루 살펴보다가 치분을 쳐들었다.
“이걸 봐라. 아직도 치분이 절반이나 있는데 어떻게 벌써 녹이겠니?”
그러자 덕돌은 구들에 발랑 들어 누워 발버둥질을 치면서 떼를 썼다.
“안 된다, 안 돼. 오늘 꼭 충성패쪽을 만들어 줘야 하오.”
“어디 보자.”
덕돌이 울며 두 손으로 눈물을 비비고 닦다가 손가락 새로 여겨보니 아버지가 집안을 두루 살피다가 고기 그물을 쳐들고 보는 것이었다.
“됐다. 이거면 충성패쪽을 몇 개라도 만들겠다.”
덕돌은 제꺽 일어나 앉았다.
아버지가 그물에서 모래무치처럼 생긴 것을 떼 내는 것이었다.
“그게 뭡니까?”
“고기그물의 연돌이야. 몽땅 연이다.”
“와, 좋아라.”
상순은 연돌 세 개를 가지고 덕돌의 손을 잡고 건조실로 나갔다.
종연은 연돌 세 개나 보고 욕심나서 손바닥에 놓고 매만지면서 물었다.
“연돌 세 개나 필요 없습니다. 한 개면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오. 덕돌이 걸 하나에 내꺼 하고 홍자 꺼도 하나 만드오.”
종연은 아쉬운 듯이 “헛 참, 연을 남겨서 내 하나 가질 까 했더니. 안되겠어.”라고 했다.
“그럼 충성 패를 만든 수고비를 주는 셈 치고 하나 만들어 가지게나.”
“그럼 그렇겠지. 김서기 제일이야.”
한참 후에 종연과 수봉은 덕돌에게 은빛이 번쩍번쩍 나는 연충성패쪽을 주었다. 덕돌은 아직도 따뜻한 충성 패쪽을 가지고 모택동 주석의 충성스러운 전사로 된 듯한 긍지감으로 한 가슴이 뿌듯해났다.
생글방글 하는 늘그막에 본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순은 흐뭇해 세월의 풍파에 벌거스름하고 거멓게 그은 얼굴에 벙긋이 웃음을 지었다.
정오가 지난 하늘에는 따가운 태양이 불비를 퍼붓고 있었다. 곡식 잎사귀들이 타들어갈 듯이 녹아내려 맥없이 축 늘어졌다.
사원들은 축 늘어진 옥수수 이파리와 수수 이파리들을 보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죽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에이유, 저 놈의 해, 어째 불처럼 뜨거운 열기만 내리 뿜소. 가물어서 올해 농사는 또 끝장이로구먼.”
“글쎄 말이오. 하늘도 무심하오. 소낙비를 억수로 쏟아 붓지 않으면 불비를 쏟아 부으니 어쩌오? 또 졸라매야겠구먼.”
그때 어디에서인가 스피카에서 “동방홍”이란 노래 소리가 벌판을 휩쓸면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동방홍
중국에 모택동이 태어났네
그이는 인민에게 행복을 주네
후얼 헤이요 그이는 인민의 대구성이라네

            13.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까

     어제는 태양이 불비를 퍼부어 가문가 싶었는데 오늘은 소낙비가 연속 사흘이나 퍼부어 태평강 강물이 불어 홍수가 제방 둑을 뚝 끊어 놓고 논밭을 마구 뜯어갔다.
상순은 사원들을 데리고 버드나무를 끊어다 큰물이 제방 둑을 더 뜯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패용천산과 칼산의 돌을 실어다 제방 둑을 구축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상순은 바위 돌을 굴려 제방 둑을 쌓다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나 하늘은 구름이 흩어지기는커녕 먹장구름이 점점 더 두텁게 몰려와 어둠침침하게 대지를 뒤덮었다. 대살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더니 나중에는 밤알 같은 우박을 마구 쏟아 부었다. 여기저기에서 탁구공 같은 우박들이 떨어져 흙물방울이 사처로 튕겨 올랐다. 소들은 우박에 맞아 아픈 대가리를 흔들어대면서 하늘을 원망하듯이 눈알을 부라렸다. 코 깜장이는 벌써 돌을 꽉 박아 실은 수레를 끌기 싫어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 발자국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상길은 별 수 없이 소를 멈춰 세우고 수레 밑에 들어가 소낙비와 우박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됐다.
흥수의 그림자는 근본 뚝 막기 공지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이 시각 그는 어떻게 하면 “문화대혁명”의 동풍을 빌어 병완과 상순을 쓸어버리고 대대 당 지부 서기자리를 차지하겠는가고 길쭉한 남북골을 쥐여 짜고 있었다.
“그래 ‘문화대혁명’ 동풍을 빌어 청년 반란 파들의 힘을 빌려 병완과 상순, 으흠, 김 씨 네 족벌체계를 부셔 버려야지. 이번에는 확실하게 김씨 네를 몰아내고 대대 일인자 자리를 차지해야지.”
그는 외까풀 눈을 내리 깔더니 좁은 이마를 딱딱 치면서 함흥 촌에서 합당한 반란 파들을 물색했다.
한참 후에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일어났다.
“옳다, 바로 그 놈이야. 종연과 승연이, 송희야, 그 놈들이야.”
흥수는 사기 올라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더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대대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 바로 그 놈들이야. 종연 형제나 송희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반란을 일으킬 놈들이야. 성환은 폐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다나니 대학시험장에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농촌에 돌아온 놈이야. 그래, 그 놈 자식은 농촌에서 썩기 아까운 놈이지. 그 놈이 어찌 이 좋은 기회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흥수는 인차 종연과 송희를 불러 반란할 구체 계획을 말해 주었다.
종연은 흥수를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예, 아주 좋은 일입니다. 반란해야지오. 우리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먼저 상순 서기네 집을 치게 할게. 치보 주임은 구경만 하십시오.”
허나 흥수는 손사래를 저었다.
“아니오. 나도 가겠소. 이 관건적인 혁명투쟁마당에 내가 뒤에 물러서서야 되오? 난 정면으로 나서 상순을 붙잡아다가 투쟁하겠소.”
흥수는 그들을 보낸 후 피씩 웃었다.
“자고로 권력과 돈, 여색에는 그저 넘어가는 영웅이 없다고 했다더니. 허 참, 권력투쟁을 위해서는 숙질간에도 마구 잡아먹는 세상이지.”
흥수는 철봉이랑 자기 삼촌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아 반란을 망칠 까봐 근심됐다. 하여 만일을 대비해 따로 한족청년들을 비밀리에 동원했다.
그러나 흥수는 오산했다. 그날 저녁에 성환은 흥수랑 반란파들이 반란을 일켜 외노할아버지와 외큰아버지를 붙잡아 투쟁하련다는 중요한 정보를 병완과 상순에게 알리면서 미리 피신하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허나 병완과 상순은 피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놈들이 어찌 하는가 어디 두고 볼 테다.”
상순은 반란 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흥수는 반란 파들을 토성 안 대대 사무실 마당에 불렀다. 그런데 종연과 승연, 인국과 인철이 보일뿐 철봉과 종학, 지어 성환마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된 판인가?”
흥수는 조카 인철에게 물었다.
그러자 인철은 손사래쳤다.
“삼촌, 생각해 봅소. 누가 자기 노 할아버지나 오촌 숙을 붙잡으러 나서겠습둥?”
“내 오산했구나.”
흥수가 한창 실망한 나머지 김이 빠진 공처럼 마루에 들어앉을 때었다.
숱한 한족 청년들이 삼삼오오 토성 안에 모여들었다. 그들 속에는 지주 자제들인 장충국, 장미련 오누이에 지학사네 아들 지괴호, 지주 장풍객의 아들 장신하도 끼여 있었다. 장풍객은 장학산의 동생인데 금방 죽은 자기 형의 원수를 갚으려고 아들 장신하를 반란파들을 따라 나서서 상순과 병완을 투쟁하라고 추겼던 것이다. 장신하는 장풍객의 일본 첩에게서 얻은 아들로서 사촌형 충국의 말을 듣고 담대하게 나섰던 것이다.
흥수는 반란 파 수십 명을 무어가지고 손을 홱 저었다.
“출발!”
반란파들은 구질구질 내리는 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세등등해 곧추 조개덕으로 내려갔다. 먼저 병완의 집을 들이쳤다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랠 까봐 그만 두었다. 황차 늙은 병완은 이미 대대에서 물러나 앉았는데 반란해 보았자 먹을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대 당지부 서기 상순부터 타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가 내려 반란파들이 동요할까 봐 계속 선동했다.
“오늘 우리는 김서기를 확실하게 반란해 우리 대대 사무실에서 몰아내야 하오. 그러잖으면 우리 함흥촌은 대대로 그 김 씨들 세상이 되고 마오.”
반란 파들은 “옳소.”하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대답소리에는 한족 말과 조선말이 섞여 들렸다.
한편 명옥은 성환에게서 반란파들이 들이칠 것이라는 기별을 듣고 상순을 보고 피신하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애들을 피하게 해놓고 자기는 피할 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 뒤에 방치를 한 자루 갖춰 놓고 비 내리는 밤 어둠이 두텁게 포위한 바깥을 내다보면서 반란 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저쪽에서 몇 가닥의 전지불이 소낙비가 대살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을 어지럽게 헤가르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옳지, 정말 오는구나.”
상순은 한 손에 방치를 잡고 다른 손에 전지를 잡았다.
이때 숱한 전지불이 일시에 상순이네 집 안을 비추더니 구호소리가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어두운 동네에 울려 퍼졌다.
“김상순을 타도하자!”
“김서기를 타도하자!”
“상순 놈 새끼는 대대 당 지부 서기를 내놓고 물러가라!”
그러자 상순은 창문을 열어 재끼고 전지불로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 반란 파들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하나하나 비춰보았다.
그는 전지불로 흥수의 낯을 찾아내자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다.
“흥수!  잘 하는구나. 지주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공산당 서기를 반란할 텐가! 넌 공산당원이냐? 지주, 부농, 반동파들의 이익을 대표한 국민당원이냐?”
“반란이다! 반란! "
"어서 서기 자리를 내놓고 함흥대대를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네 놈의 대갈통을 까부시고 집에 불을 질러버려!”
그 소리에 반란 파들은 당장 집으로 들이덮쳐 올 잡도리를 했다.
허나 상순은 아주 침착하게 전지불로 이번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주봉을 비추더니 고함쳤다.
“주봉아, 넌 자기를 젖을 먹여 살린 양 엄마를 붙잡아갈 테냐? 잡아 가겠으면 어서 집에 들어와서 잡아 봐라!”
어둠 속에서 주봉의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 했다.
“내 어디 양 엄마를 붙잡잡니까?”
“그럼 흥수를 따라 와 뭘 하니?”
“구경하러 왔습니다. 어느 새끼 우리 양아버지와 양엄마를 건드려 봐라.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 소리에 반란 파들 어두운 그림자들 속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흥수는 반란 파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고함쳤다.
“반란파 동지들, 겁내지 말라. 나를 따라 쳐들어가 허영주 현장과 이계삼 서기 보황파 두목을 붙잡자!”
상순은 전지 불에 방치를 쳐들어 보이면서 맞받아 고함쳤다.
“어느 놈이 감이 우리 집에 한 발자국만 들여놓았다간 이 방치가 가만 있지 않을 거다! 난 적수공권으로 일본 놈들과 장개석 토비 놈들도 때려 눕혔다. 미국 놈들도 내 무쇠주먹에 즉살했어. 네깐 놈들이 어쩔 테냐? 어디 덤벼봐라!”
총알이 빗발치는 숱한 전쟁마당에서 숱한 놈들을 족치면서 살아남은 특전사 출신 상순의 무예솜씨를 알만큼 아는 황종연 형제와 반란 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그때라고 상순은 무서운 무기를 썼다.
“너희들은 들어라! 이 상순이 무슨 죄 있느냐? 난 손바닥만 한 땅도 없이 조선 고향을 떠난 너희 부모들을 이 마을에 받아 주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당의 영도아래 저 장학산과 지학사 같은 지주를 청산해 너네 부모들한테 밭을 나눠주고 배불리 먹고 살게 했다. 우리 할아버지와 나는 너희들의 부모들을 이끌고 토비를 숙청해 마을을 보위했고 너희들이 공산당의 따뜻한 품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했다. 우리 조손 3대는 제일 일찍 이 마을에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한 밭을 몽땅 내놓고 너희 부모들을 이끌어 멍지뫼산 앞 모래밭을 개간해 논을 풀었고 칼산과 패용천산 사이 골짜기에 과수원을 차렸다. 그래서 너희들은 배불리 먹고 살게 됐다. 이것도 죄냐? 너희들이 대대권력찬탈에 눈이 벌개 미쳐 날뛰는 흥수의 꼬드김에 들어 이렇게 반란하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너희들이 그래 저 장충국이나 지괴호 같은 지주 새끼들이 좋아하는 노릇을 하겠느냐?”
반란파들 속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반란 파 무리 속에서 몽둥이를 버리고 어둠속에서 하나, 둘 떠나가는 것이 보였다.
황급해난 흥수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쳤다.
“개 소릴 작작 치고 오라나 받아라!”
흥수는 미리 준비한 바를 상순에게 훌 뿌렸다. 허나 날랜 상순은 날려 오는 바줄을 피하면서 방치에 걸아 감아쥐어 홱 당겼다. 흥수가 어찌 힘으로 상순을 당할 수 있었겠는가!
흥수는 앞으로 무릎을 딱 쪼면서 푹 꼬꾸라졌다.
“뭣들 하느냐? 보황파 두목을 붙잡아라!”
그제야 충국과 장신하, 지괴호가 문께로 다가들었다.
딱! 딱!
“아야!”
“마야!”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은 상순이가 아니라 충국이다.
상순은 창문 밖으로 뛰어 나가면서 방치로 날아드는 몽둥이를 막으면서 연신 발길과 방치를 날렸다.
충국과 흥수가 연이어 꺼꾸러졌다. 지괴호는 맹호와도 같이 펄펄 날뛰는 상순을 보자 질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다가 도망쳤다.
상순은 그래도 덮쳐들려는 반란 파들을 보고 흥수의 목을 짓밟고 서서 땅방울 같이 고함쳤다.
“물러서지 못할까! 어째 흥수 꼴이 되고 싶은가!”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앗!”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상순이 전지 불을 비춰 보니 어둠 속에서 매부 최학철과 사위 경만, 조카들인 철봉, 종학, 철국, 성환, 그리고 양아들 주봉까지 반란 파들을 뒤에서 족치고 있었다.
“뛰어라!”
반란파 무리 속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반란 파들은 소낙비 속에서 질척질척한 진창을 밟으면서 어지럽게 도망쳤다.
상순은 한발에 한 놈씩 흥수와 충국을 걷어차 놓았다.
“흥수야, 서기 자리가 그렇게도 욕심나더냐?”
상순은 흥수의 좁은 낯에 침을 택 뱉었다.
뒤이어 그는 충국의 배를 걷어 차놓으면서 을러멨다.
“너 같은 지주 놈 새끼 감히 대대 서기를 반란해도 되는 세월인가 하느냐? 망상이다. 망상!”
상순은 방치를 내동댕이치면서 호통 쳤다.
“충국아, 이 놈, 아직도 반동사상을 개조하지 않았구나. 어째 하늘땅이 뒤바뀐 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흥수는 목을 밟혀 숨이 막혀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며 이를 뻑뻑 갈았다.
반란은커녕 찍소리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개꼴망신 당한 흥수는 이튿날부터 대대 사무실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그는 집에서 팅팅 부은 낯가죽을 매만지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는 진종일 집구석에 박혀 있으면서 어떻게 상순을 몰아낼 것인가 궁리하며 속을 끙끙 앓았다.
그는 상순의 과거를 훑으면서 어디를 비수로 푹 찌르면 단통 피를 왈칵 쏟으며 쓰러지겠는가고 흠집을 찾기 시작했다.
온 종일 낑낑거리던 그는 끝내 뭔가 찾아낸듯이 일어나 앉더니 머리를 싸맨 수건을 잡아 홱 벗겨 내던졌다.
“옳지. 이번엔 네 놈이 어찌 하겠느냐? 어디 살아남는가 보자!”
허나 그는 신으려고 잡았던 신짝을 놓으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도 한국에 나갔을 때 상순이네 친척집에 숨어 목숨을 건지지 않았는가? 괜히 잘 못 건드렸다가 나도 한국특무라고 몰리지 않을까?)
한참 후 흥수는 다시 신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오?”
토성 밑으로 나가다가 흥수는 토성 안에서 나오는 처형 지새금의 길쭉한 얼굴을 만났다.
“상순을 놔두는가 보오. 그 놈은 남조선 특무요.”
흥수의 살기등등한 말을 듣자 지새금은 팔소매를 붙잡고 말리었다.
“생원이, 우리 시동생이 뭘 잘 못했다고 이러오? 양? 자넬 입당시켰고 선전위원까지 시켰으면 됐지. 뭐가 모자라서 항상 그러오? 제발 그만하오.”
“픽! 아주머니, 삐치지 말락꼬.”
흥수는 외까풀 눈을 부라렸다.
지새금은 팔소매를 활 뿌리치는 흥수를 따라가면서 말렸다.
“제발 그만두오. 우리 시동생 없이 내 누굴 믿고 살겠소?”
“근심도 하지 마오. 그 새끼 없으면 이 사촌생원이 있잖아.”
지새금은 말려서 듣지 않자 위협조로 한 마디 내뱉었다.
“이제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지 않는가 봐라!”
허나 흥수는 어깨가 으쓱해 토성 안으로 쥐새끼처럼 쪼르르 달려 들어갔다.
그는 종연이랑 반란 파 무리를 데리고 두 번째로 반란을 꾀하였다.
그는 상순을 힘으로 체포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심심히 느꼈다.
하여 그는 우선 상순이가 확실히 나쁜 놈이라는 여론을 조성한 후 서서히 일을 도모하기로 작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너무 투쟁을 맞아 사상고민을 하다못해 거의 죽어가는 덕성 영감을 대대 사무실로 끌어다가 얼리고 닥쳤다.
흥수는 사무 상에 틀스레 앉아 허수아비처럼 서있는 덕성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단도직입으로 위협했다.
“김 영감, 죽고 싶소? 살고 싶소?”
덕성은 어정쩡해 흥수를 바라볼뿐 입에 빗장을 지르고 있었다.
“영감은 한국 특무의 삼촌이란 말이야. 한국 특무로 몰리어 감옥에 가서 노동개조를 하다가 죽겠어? 아니면 내 말을 고분고분 듣고 한국 특무모자도 벗어버리고 함흥 대대에서 편안히 살겠어?”
덕성은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면서 흥수를 쳐다보았다.
“어쩌자는 기여? 이 치보?”
흥수는 외까풀 눈을 가슴츠레 뜨고 흥수를 깔보면서 음흉한 속심을 서서히 드러냈다.
“영감, 살겠으면 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듣는 풍문에 이전에 고향 명천에 있을 때 병완 영감은 일본 경찰국을 짓는 공지의 총 도감이라면서? 일본 특무 아니고 뭐요? 병완 영감이 일본 특무면 상순은 일본 특무의 손자라 당 지부 서기는커녕 감옥에 가야 할 게 아닌가?”
덕성 영감은 구부정한 허리를 겨우 펴면서 흥수를 흘낏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이 목석처럼 덤덤히 서있었다.
흥수는 자기 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고 계속 늘여놓았다.
“영감이 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내 영감의 특무 모자를 벗겨 주겠네. 지금 ‘문화대혁명’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어. 상순은 더는 서기를 할 수 없어. 대대 치보인 나는 영감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단 말이야. 알만 해? 명지하게 선택하란 말이야.”
덕성은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얼굴을 들더니 흥수를 흘겨보면서 중얼거리었다.
“어찌 병완 영감을 물어 먹으락꼬 그래? 그 영감은 총 도감이었지만 경찰국을 무너지게 지었어. 건데 일본 특무라니 무슨 말인고?”
“영감!”
흥수는 생강처럼 바짝 마른 손으로 사무 상을 꽝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는 외까풀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호통 쳤다.
“어째 죽고 싶은가?!”
덕성은 파뿌리처럼 흰 머리를 숙이었다.
“영감, 똑똑히 노오. 병완 영감과 상순을 보호해 먹을알이 있어?”
흥수가 구슬렸지만 덕성은 우물거렸다.
“그래도 어찌 한 고향에서 온 짜개바지 친구를 물어 먹겠어?”
“김 영감, 병완과 상순이 한 고향 친구라고 영감에게 사정을 두던가?”
흥수는 덕성의 가까이에 다가와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존대를 쓰면서도 선뜩선뜩한 말을 횡설수설했다.
“병완과 상순이 영감의 조카 용천 대장을 한국 특무라고 체포해 총살한 일을 벌써 잊었어요? 그 놈들이 영감과 한 고향 친구라고 사정을 두던가? 어째 이 기회에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덕성은 머리를 점점 숙이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대대 사무실 안에서 흥수는 한참이나 덕성 영감을 얼리고 닥쳤다.
그날 저녁에 흥수는 돌멩이를 쥐어 토성 안 늙은 비술나무에 매단 쇠 종을 댕, 댕, 댕 두드렸다.
“사원대회를 합니다. 여섯시 전에 대대 토성 안에 모이시오!”
해 지기 전에 사원들은 토성 울안에 모이었다.
상순은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토성 안에 들어섰다. 그들은 흥수가 또 무슨 회의를 소집하는가를 알아보려고 왔던 것이다.
덕성은 병완과 상순을 보더니 머리를 숙이면서 한쪽으로 피해 앉아 있었다.
흥수는 마루 위에 올라서서 가물에 실 돌피 같은 목을 빼들고 득의양양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병완과 상순은 들으라. 병완 영감이 일본 특무라고 고발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일본 특무라니?”
“말도 안 되오.”
병완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병완 영감은 우시장 경찰국을 지을 때 일본 끼무라 국장한테서 총 도감을 임명받은 일이 없었는가?”
병완은 숨김없이 말했다.
“있소. 허나 나는 일본 놈들의 경찰국과 다리를 무너지게 만들었소. 그런데 일본 특무라니?”
“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이때 덕성이가 숱한 사람들 속을 비집고 앞에 나서더니 병완을 손가락질 하면서 대성질호했다.
“저 병완 영감은 일본 경찰국장 끼무라 놈이 우리 민공들 속에 파견한 특무였네.”
그 생 똥 같은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병완 영감은 일본 놈들에게서 로임을 받아먹으면서 총 도감을 해서 경찰국을 지어 바친 극악무도한 일본 간첩이네! 이건 내가 증명 설 수 있어.”
덕성의 터무니없는 무함에 병완은 머리를 숙이는 덕성을 바라보았다.
“덕성이, 우린 남쪽 경주에서 온 자네를 우리 고향에 받아주고 함께 산 친구가 아닌가? 일본 놈들의 피해를 받아 우린 함께 정든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쪽박을 차고 왔지. 이젠 우리 모두 저세상으로 갈 사람들인데 이제 몇 년을 더 살려고 사람을 무함하는가? 에이, 참. 사람이 원, 흥수가 그렇게 무서운가? 사람이 아무리 겁을 집어먹어도 얼빠진 사람처럼 횡설수설해서야 쓰는가?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을 잃고서야 후에 어찌 이 세상 사람들을 보고 살겠소?”
덕성은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면서 머리를 숙였다.
흥수는 병완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일본 특무 영감, 누구 입을 막으려고? 어림도 없어. 분명 영감은 일본 경찰국 공지 총 도감이야. 일본 놈들의 경찰국도 지어준 거 사실이야. 계속 떼를 쓸 작정인가?”
“여러분, 이젠 일본 개다리 병완 영감은 다시는 공산당원이 아니오. 상순은 일본 개다리 손자이기에 서기 자격이 없습니다.”
흥수는 득의양양해 뒷말을 이었다.
“상순은 남조선 특무입니다!”
“남조선 특무?!”
“예.”
흥수는 두 팔을 걷고 역설했다.
“나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항미원조 전쟁 때 우린 대대장인 상순을 따라 군복을 싣고 남으로 나가다가 령 길을 잘못 들어서서 한국 충청남도 서현군 한산면의 한 마을에 피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순은 그 마을에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치 움에서 버스럭거리며 무슨 쪽지 같은 거 써서 함지에 두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 한국 놈들과 내통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그 마을에 숨었을 때 어떻게 인차 한국 괴뢰군 놈들이 마을까지 뒤쫓아 와 수색할 수 있었겠습니까? 병수랑 돼지 굴에 숨었다가 들키어 하마터면 죽을 번했습니다.”
흥수는 병수를 찾아내 도움을 받으려고 들었다.
“병수, 옳지?”
그러자 병수는 앞으로 나오면서 “그런 일이 있긴 있소.”라고 말하더니 뒤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짝 시비를 해선 안 되오. 그때 상순의 고모부네 일가가 밥을 지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몽땅 남조선 땅에서 굶어 죽었을 겁니다.”
태수랑 나서서 흥수를 손가락질하면서 욕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 하지. 그때는 상순의 친척 덕분에 살아남아 가지고 지금 와선 남조선 특무로 물어먹으면 되오? 당신은 괴뢰군 동생과 전장에서 만나 뭐라고 쑤근거렸소?”
병수는 아주 격분해 했다.
“상순이 남조선 특무면 남조선 괴뢰군 동생까지 있는 당신은 남조선 특무가 아니란 말이오?”
그때 종연이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옳소. 몽땅 특무들이오.”
그러자 반란 파들이 소리쳤다.
“남조선 특무들을 타도하고 새로운 당 지부를 건립하자!”
“남조선 특무 상순과 흥수를 몽땅 타도하자!”
흥수는 병완과 상순을 한국 특무로 몰아 타도하자고 벌린 연극인데 이런 반전 결과를 가져 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참말로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깐 격이 되고 말았다.
흥수는 입을 짝 벌리고 종연이랑 반란 파들을 멍해 바라보았다. 병완과 상순은 흥수를 흘겨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반란 파들은 그날 저녁부터 대대 사무실을 점령하고 병완과 상순 그리고 치보주임인 흥수마저 대대 사무실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춘실이 물동이를 이고 토성 바깥에 있는 우물로 물을 길으러 갔다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드레박 줄에 덕성 영감이 목을 맸던 것이다.
“어마나! 목을 맸다!”
상순과 덕팔이 달려가 보니 덕성은 혀를 한발이나 빼물고 드레 박 줄에 목을 맨 채 데룽데룽 매달려 있었다.
“이 우물의 물을 어떻게 먹겠니?”
다가오는 상순과 흥수를 보고 춘실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상순과 덕팔이 드레박 줄을 끌어올린 후 덕성 영감의 목에 맨 드레박 줄을 풀면서 보니 그의 손에는 무슨 종이 쪼박이 쥐어져 있었다.
꽛꽛하게 굳은 손가락을 겨우 풀고 꼬깃꼬깃한 종이 조박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연필로 이런 글이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병완이, 난 양심이 없네. 목숨을 걸고 일본 경찰국을 무너뜨린 자넬 물어먹었으니까. 항일투사께 죽을죄를 졌네. 자네와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네. 양심 없는 고향 친구를 용서하게.
 
이때 경주가 달려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는 눈을 뻔히 뜬 채 혀를 빼문 덕성을 보는 순간 그 참상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할아버지를 껴안고 “할아버지!” 하고 목 놓아 태성통곡을 쳤다.
“할아버지, 이 험악한 세상에 나 홀로 남겨놓고 떠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난 누굴 믿고 살아가래요? 네?”
그 와중에도 흥수는 상순의 손에서 덕성의 쪽지를 빼앗아 가려고 홱 채갔다.
덕팔은 쪽지를 빼앗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건 좋은 증거네. 아무렴 덕성이가 그렇게 양심 없는 짓을 할라고? 흥!”
상순은 허리를 쭉 펴고 일어나면서 흥수를 쏘아보았다.
흥수는 겁을 집어먹고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사람이, 서기 자리가 욕심나는가? 정 하고 싶으면 해보게나. 우리 마을 사원들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할 수만 있다면 난 대대 서기를 내놓겠네.”
흥수는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좁은 얼굴에 시무룩이 웃음을 지었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는 장마 비가 구질구질 내리었다.
소문을 듣고 병완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덕성의 뒤처리를 거들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저 멀리 칼산에서 불구렁이가 산허리를 자를 듯이 번쩍 휘감더니 우르릉 꽝 요란한 천둥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했다. 소낙비가 억수로 퍼붓는 천지꽃산 비탈에 또 정치투쟁마당에서 희생된 한 원혼이 묻힌 묘지가 하나 더 생겨났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85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25 장편소설 황혼 제2권(20) 구명은인 김장혁 2024-07-15 0 590
424 장편소설 황혼 제1권(19) 류씨네 오누이 김장혁 2024-07-15 0 546
423 장편소설 황혼 제1권(18) 참회의 눈물 김장혁 2024-07-14 0 490
422 장편소설 황혼 제1권(17) 면회 김장혁 2024-07-14 0 582
421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6) 일거량득 김장혁 2024-07-14 0 421
420 장편소설 황혼 제1권(15) 쩍하면 수술 김장혁 2024-07-13 0 726
419 장편소설 황혼 제1권(14) 색마의 우멍눈 김장혁 2024-07-13 0 686
418 장편소설 황혼제1권(13) 의심병 김장혁 2024-07-13 0 525
417 장편소설 황혼 제1권(12) 조강지처 김장혁 2024-07-13 0 589
416 장편소설 황혼(11) 나포 김장혁 2024-07-12 0 443
415 장편소설 황혼(10) 욕망 김장혁 2024-07-12 0 467
414 장편소설 황혼 제1권 (9) 안락사 김장혁 2024-07-12 0 479
413 장편소설 황혼(8) 무함 김장혁 2024-07-11 0 539
412 장편소설 황혼(7) 악처 김장혁 2024-07-11 0 674
411 장편소설 황혼(6) 미련 김장혁 2024-07-11 0 451
410 장편소설 황혼(5) 꿈인가 생신가? 김장혁 2024-07-10 0 425
409 장편소설 황혼(4) 나영이 김장혁 2024-07-10 0 395
408 장편소설 황혼(3) 한족본처 김장혁 2024-07-09 0 492
407 장편소설 황혼(2) 유언 김장혁 2024-07-09 0 581
406 장편소설 황혼 제1권(1) 나의 장례식 김장혁 2024-07-09 0 803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