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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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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2015년 04월 01일 11시 45분  조회:229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4.충신 김려생
     

      이튿날 이른 아침에 벌써 병완은 베 모자를 쓰고 베적삼과 베 바지를 입고 일가 로소를 데리고 할아버지 김수종의 산소로 떠나갔다.
     함경도 명천군 상우남면 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운주동 뒷산 기슭으로 가니 벌써 큰집 형님 병권과 하나밖에 없는 조카 관준과 큰손자 상철, 둘째손자 상렬까지 모두 베옷을 입고 산소에 와있었다.
     어제 큰집에 갔던 창준도 산소 옆에 있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는 것을 보고 마중 나와 인사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셨습둥?”
     “오, 그래. 에이, 그 놈 함경도 사투리, 참.”
     남편이 눈을 뚝 부릅뜨자 성희는 작은 앵두 입을 닫고 말았다.
     병완과 병관 두 집 식구들은 산소 앞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병완은 억대우처럼 생겼으나 형님 병권은 선비처럼 허약하게 생겼었다. 병권과 병완, 둘 밖에 없는 형제는 할아버지 김수종과 아버지 김승중이 과거를 본 후 궁정에 들어가 어의로 되였다가 봉변을 당한 것을 보고 과거장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 밖에 없는 녀동생 곰순은 남존녀비 세월에 공부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병권은 후토에 술을 부어놓고 큰절을 세 번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간 잘 계셨습니까? 자손들이 제를 지내러 왔습니다. 인사 받으십시오.”
    아낙네들은 산소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남정네들은 벌초를 하기에 바빴다.
    병권과 병완은 벌초를 마치자 자손들을 죽 차례로 세우고 제주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할아버지, 그간 조상들께서 저희들을 잘 보우해주셔서 우리 일가가 대대로 아무런 액운이 없이 앞날이 활짝 열렸습니다. 할아버지들의 바다같이 깊고 하늘같이 큰 은공을 우리는 대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상들께서 계속 우리 후손들을 행복하게 보우해주옵소서. 할아버지, 후손들의 절을 받으십시오.”
     병권이 목이 메 말하자 모두들 넙적 엎드려 큰절을 세 번씩 올렸다. 병완은 산소 앞에 차린 제사상에서 차조이밥사발을 받쳐 들고 숟가락으로 큼직하게 한 숟가락 떠서 산소 옆으로 해 파묻었다.
     “아침 대접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할아버지.”
     그들은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린 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한 산소에 옮겨갔다.
     “아버지, 아침식사가 늦었습니다.”
     병권은 후 토에 술을 붓고 절을 한 뒤 병완과 함께 벌초를 하면서 눈물을 파란 풀잎에 뚝뚝 떨어뜨렸다. 자손들도 옷자락으로 얼굴을 닦았다.
     제주를 붓자 누군가 먼저 흑흑 흐느껴 울자 모두들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병권은 하얀 수염을 흩날리면서 산소 앞에 꿇어앉아 흰 종이에 붓으로 쓴 글을 곡을 붙여 읽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궁중 어의로 계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 어인 일입니까? 이런 산골짜기에 묻힌 지도 어언 3년이나 됩니다. 이 도리깨자식들이 불효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식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대대손손 산소를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구천에서 자손들을 도와주시면서 굽어 살피소서.”
     제사행사가 끝나자 병권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형제와 자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얘들아, 너희들은 들어라. 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이씨 조선 순조왕대에 궁중 어의였느니라. 할아버지는 조상들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은 오줌 비방 약을 잘 썼는데 그만 손조왕 왕실에 썼다가 그만 들키어 쫓겨났다. 내 아버지 명함은 김승중이셨는데 역시 순종조의 궁중 어의였다. 왕은 할아버지를 내쫓았다가 자존심을 꺾으면서 다시 할아버지를 황궁에 모셔 들여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모셔갔다. 그런데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오줌약을 썼다가 쫓겨 날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병권은 목이 꺽 메여 술잔을 들어 꿀꺽 마시고 뒤 말을 이었다. 모두들 병권을 바라보면서 귀를 도사리었다.
     산소 옆의 소나무에서 까치가 우짖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고향은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의 고향인 상우남면 바로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너희들이 생각해보아라. 아버지는 얼마나 자기 고향 서울을 떠나기 싫었겠느냐? 그러나 효자인 아버지는 떠나기 아쉬운 자기 고향을 버리고 할아버지가 항상 외우던 할아버지 고향으로 내려 왔단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형제를 낳았단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서울이 얼마나 그리웠겠느냐? 하긴 고향 서울은 그리웠겠지만 그 멍청이 같은 순조왕이 있는 서울을 떠난 것도 잘 된 일이였지. 아버지는 생전에 그렇게 효자였다.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자기 모든 것을 버리셨다.”
     병권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산소에 술을 부어 올리고 세번씩 큰 절을 올렸다.
    병권과 병완이 곡을 부르자 모두들 울면서 곡을 했다.
    한참 후 제사상에 둘러앉자 병권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는 낙향한 후 병을 잘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지식이 있어 이 상우남면에서 받들린 분이었다. 그래서 명천군읍에서 문서 벼슬을 하라고 면장이 추천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벼슬에 흥취가 없고 그저 할아버지 이 고향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병만 보았단다. 우리 영월 김 씨는 원래 경주 김씨에서 내려온 김씨 돼 그런지 심지가 굵고 어지간한 일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이전에 천년 신라를 통치해온 우리 경주 김 씨의 후손들은 다 그렇게 대틀이었지. 그까지 순조왕이 다 뉘라더냐?”
     병완이 병권의 무릎을 툭 다쳤다.
      “형님, 누가 듣겠소.”
     병권은 병완의 무릎을 치면서 대수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라니? 아버지는 고향이 너무 보고 싶으면 돈을 벌어가지고 서울에 드문드문 가서 어린 실절 친구들도 만나보군 하였단다.”
     이때 기준이가 움쭐 일어나면서 이렇게 물었다.
     “큰아버지, 그럼 왜 우리는 경주 김씨라 하지 않고 영월 김씨라 합둥? 이 영월동과 무슨 관계있습둥?”
     “그래, 아버지 말해 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허, 이러기에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전번에 집안 문장 어른이 후손들의 이름을 적으러 왔던데 저기 상우랑 상훈이랑 다 적어갔다. 이 다음 족보를 찍을 때 다른 애들도 낳는 족족 일일이 찍어 넣어야지.”
     병권은 기준에게 얼굴을 돌렸다.
     “잘 물었다. 우리 영월 김 씨가 어째 경주 김 씨에서 나왔다고 하는가? 그럼 모두 들어두어라."
     모두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병권의 옛말을 들었다.
      “이조 제6대왕 단종 때 있은 일이다. 그러니까 1453년 좌우 되였을 때다. 그때 단종은 겨우 13살 밖에 안 되는 어린 임금이었다. 내 14세 조부 김려생(金丽生)은 그때 단종왕 때 궁정의 통정대부 정1품 벼슬을 했다.”
     병완은  놋그릇에 물을 부어 형님에게 주었다.
      병권은 물을 한 모금 꿀꺽 마시고는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단종왕의 삼촌이 되는 수양대군은 일당을 모아가지고 단종왕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자기가 왕이 되였단 말이다. 그자가 바로 이조 제7대왕 세조왕이었지. 김려생 할아버지는 그때 사육신들인 김종서 등 보다 못지않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지조를 버리지 않았지. 그는 벼슬을 버리고 가만히 단종왕을 따라 강원도 영월군으로 내려갔다.”
      병권은 너무 비통해 한숨을 후 내쉬고 나서 뒤이야기를 이었다.
      “우리가 영월 김 씨로 된 데는 비장한 옛말이 있다. 그때 세조왕은 단종왕을 따라 다니는 충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려고 미쳐 날뛰었다.그래서 려생 할아버지는 감히 단종왕이 영월로 가는 마차를 따라 큰길로 가지 못하고 령길을 타고 묵묵히 따라 갔단다.그때 세조왕은 단종왕에게 시종 한사람과 시녀 두 사람을 딸려 보냈고 지금 영월읍 서북쪽으로 난 골안에 6간 집 한 채를 지어주고 살게 하였다. 그리고 늘 군사를 보내 어디로 도망치지나 않는가 감시했다. 그런 형편에서 려생 할아버지는 늘 먹을 것도 장만하여 가져갔다. 한번은 단종왕을 보고 도망치라고 권유하였지. 그런데 어린 단종왕은 삼촌인 세조왕이 두려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단종왕을 그냥 그자리에 모셔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려생 할아버지는 단종왕을 억지로 모시고 영월 북쪽에 있는 절로 가서 구경하는 척 하면서 도망칠 궁리를 하였다. 그런데 밀고가 들어가서 세조왕의 군사들이 단종왕을 잡으러 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려생 할아버지는 바삐 단조왕을 절의 큰 구리종 속에 숨겨두면서 ‘누가 와서 불러도 까딱 대답하지 말고 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단종왕은 뜨거운 구리종 속에 들어가 앉자마자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을 마시게 가져오라고 했다. 려생 할아버지는 절에 들어가 물을 찾았으나 중들이 물을 다 치워놓고 우물에 자물쇠를 잠가 놓아 물을 퍼올 수 없었다. 그래서 별수 없이 헌 바가지를 들고 물을 뜨러 산골짜기에로 내려가 냇물을 한바가지 퍼들고 올라왔지. 그가 거의 절에 돌아올 때 군사들이 들이닥쳐서 단종왕을 찾느라고 온 절을 발칵 뒤졌지. 려생 할아버지는 조마조마해 애 태웠단다. 그런데 일이 되지 않으려니까 그랬던지. 한 병졸이 단종왕을 찾다 못해 신경질이 나서 창으로 단종왕이 숨은 구리종을 떵 치면서 ‘이 놈 단종왕 나오지 못하겠는가?’하고 고함치자 단종왕은 자기가 거기 숨은 걸 아는가 해 벌벌 떨면서 구리종에서 나왔단다. 그리하여 단종왕은 다시 영월읍 서쪽 집에 갇히고 말았단다. 그 후 세조왕은 단종왕을 따르는 충신들이 영월에 모여서 다시 역모를 꾸밀까봐 고민했지. 세조왕은 단종왕을 죽이라는 간신들의 말을 듣고 독주를 내려 단종왕을 죽이고 말았다.”
     “헤이, 삼촌이란 왕이 자기 조카를 죽이다니? 쯧쯧.”
     관준이 혀를 끌끌 찼다.
    "세조왕은 지독하였지. 세조왕이 두려워서 누구도 감히 단종왕의 시체를 거둬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단다. 그때 려생 할아버지는 영월리 호장 엄흥도를 가만히 불러 상의한 후 엄흥도의 아들들과 함께 밤중에 단종왕의 시체를 관작에 넣어 영월읍 서쪽으로 하여 산중턱에 아늑한 양지바른 작은 둔덕 위에 모셨단다. 그리고 엄흥도와 함께 낮이면 나무 위에 올라가 단종왕의 산소를 누가 다치지 않나 지키고 밤이면 산소 옆을 돌면서 지켰단다. 하루도 아니고 3년 동안 그렇게 지키노라니 얼마나 고생이 막심하였겠니? 려생 할아버지는 단종왕의 3년 제사까지 지냈지. 세조왕의 추포영이 내리자 려생 할아버지는 영월에서 도망쳐 가솔들을 거느리고 여기 함경도 명천군에 와서 변성명을 하고 감자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자시면서 살았단다.”
     모두들 “오~” 하고 한탄하였다.
     기준은 조용히 듣다가 궁금해났다.
    “큰아버지, 그래 엄흥도 양반은 후에 어떻게 되였습둥?” 
    “엄흥도 양반은 도망치기는커녕 자손들에게 ‘내가 선왕의 시신을 거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게 신하된 도리가 아닌가? 그게 죄라고 구족을 멸한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하면서 계속 그 자리에서 살았단다. 우리 려생 할아버지는 내내 단종왕을 잊지 못해 낙루하면서 한식이거나 단오 때거나 추석이면 늘 단종왕이 묻힌 강원도 영월군 쪽에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곤 하였단다. 후에 려생 할아버지는 임종시에 부인 순천 박씨와 아들들인 복중과 복덕, 손자들인 산룡과 대룡, 언룡을 불러놓고 이렇게 신신당부하였단다.‘나는 생전에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 준 단종왕이 묻힌 곳을, 강원도 영월군을 잊을 수 없구나. 너희들부터 경주 김씨로부터 영월 김씨로 고쳐라. 그러면 우리 자손들도 대대로 목숨을 보전하는데 안전할 것이다. 너희들은 자손들을 꼭 공부를 시켜라. 그러나 과거 보러 가지는 말라. 벼슬을 하면 구족을 조사할 터이니 너희들이 내 자손인 것을 알면 잡아 죽일 것이다.”
     “오- 그래 우리가 영월 김씨로 되였구먼요.”
     “그런데 어째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궁정의사를 해도 붙잡히지 않았는가요?”
     “그건 160여년이 지난 후 이씨 조선 왕은 려생 할아버지를 이씨 왕조에 충성한 충신이라고 반포하고 단종 왕을 왕으로 추대하였지. 그리고 영월군 영월읍 서쪽으로 한 3킬로메터 떨어진 장릉에 단종왕의 기념비와 왕릉를 그럴듯하게 건설했지. 그 후에야 우리 일가도 마음대로 과거를 보고 벼슬도 하게 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과거에 합격된 후 뛰어난 의술로 하여 궁정의 의사로 될 수 있었구 붙잡지 않았단다.”
     “예-”
    기준이랑 모두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창준이 또 한마디 물었다.
      “우리가 어째 영월 엄씨네와 통혼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오, 그래. 충신 김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호장은 목숨을 내걸고 단종 왕을 보호하고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였고 또 그 산소를 3년이나 지키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지. 그때부터 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할아버지는 피를 나눈 친형제처럼 지냈단다. 그래서 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호장은 후에 ‘우리는 친형제와 같기 때문에 자손들은 서로 통혼을 하지 말자.’고 약속하였단다. 그때부터 영월 엄 씨와 영월 김 씨는 통혼하지 않았단다.”
     “예-”
     여기저기에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긴 감탄이 흘러나왔다.
      성칠은 큰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더 물어보았다.
     "그럼 우리 집 안에선 우리 마을 엄창렬네하구 통혼하지 말아야 합둥?"
그 말에 하옥은 남편을 흘끔 곁눈질하면서 언짢아하는 눈치를 보였다.
    병관은 그저 지나가는 물음으로 여기고 제꺽 대답했다.
     "그래. 엄씨는 다 영월 엄씨야. 형제 집안과 어떻게 통혼하니?"
    병완은 맏아들을 이상해  돌아보았다.
    (혹시 저 자식이 개울 건너편 집 창렬이네 은녀를 좋아하는가? 하옥이를 두고? 아니야. 절대 그러지야 않겠지? 본댁을 두고 무슨 짓을?)
    기준은 병권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큰아버지, 그래 려생 할아버지 산소랑 어데 있습니까?”
     그러자 병권은 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잘 물었다. 려생 할아버지의 산소는 아직도 명천군 상우면 동남쪽 67리 되는 포하동 풍무덕에 있단다. 이전에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 려생 할아버지의 산소에 가 보았는데 그 산소자리가 명당자리더라. 남쪽에는 출렁이는 동해 바다물이 출렁거리고 사면에는 낮은 산 둔덕이 둘러있고 북쪽에는 양지바른 둔덕이 양팔을 들어 벌리고 있는 자애로운 품 같은 것이 서있어 아주 아늑하더라. 오늘도 우리가 려생 할아버지 산소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구나. 보통 자손들이란 자기 부모부터 가까운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는 것이 상례로구나. 원래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할아버지와 조상들의 산소를 다 찾아보아야 하였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구나. 참 안타까운 일이야.”
     가을바람에 병권의 새하얀 염소수염도 흩날리었다.
     “이젠 이야기를 그만하고 다시 제주를 붓고 절을 올린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집으로 내려가자.”
     “예, 알았습구마.”
     성희와 며느리들은 아침 제사상을 차렸다. 조부모와 부모의 산소에 절을 올리고 곡을 하는 병권과 병완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가자 산소는 다시 처량하게 적막강산으로 되였다. 소나무들도 조용한 산소를 내려다보면서 서늘한 가을바람에 서글프게 휴- 휴- 설레었다. 까마귀가 나무가지에 앉아 꽁지를 들썩이며 까욱- 까욱 처량하게 울었다. 화답이나 하듯 건너편 수림 속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울었다.
 
                         
                                          5.
양반집 건달



  
 
 
      추석 이튿날, 하늘은 가없이 높고 맑고 파랗다. 꽃구름송이들이 듬성듬성 떠 춤추며 흘러가고 있어 더욱 낭만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다람쥐들도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볼이 뽈록하게 도토리를 입에 물어 굴에 들여가느라고 분주하다. 토끼도 겨울나이 준비에 승냥이 방어할 굴을 여러개 파느라고 뺑뺑 맴돈다.
     병완과 성칠 부자는 곰의 가죽과 고기를 수레에 싣고 명천 우시장 쪽으로 떠났다. 겨울에 먹을 쌀을 얼마간이라도 장만해야 했다.
     그들이 마을에서 벗어나 산골짜기 어구에 거의 들어설 때였다. 뒤에서 급촉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병완이 흘끔 뒤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자주 빛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길수는 말을 타고 수레와 나란히 가며 지껄여댔다.
     “병완이, 당신 배은망덕해도 한두 가지 아니구먼.”
   그의 길쭉한 낯은 바위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우멍눈은 보기에도 무섭게 음험한 독살이 차넘쳤다.
    “건 무슨 말이요? 어제 애들을 보내 데리러 가니 당신이 오지 않아가지구두. 그래 곰의 고기를 기준한테 보내지 않았소?”
    “쳇,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그 걸로 어느 코에 발라?”
    한길수는 말을 탄 채 말상을 흔들면서 침까지 퉤 내뱉었다.
    병완은 원래 인품이 후했다. 그는 수레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시퍼런 칼을 빼내 곰의 고기를 열 근은 실히 되게 썩썩 베 한길수에게 넘겨주었다.
     그제야 한길수는 고기덩이를 받아쥐고 이리저리보더니 낯의 근육이 느슨히 풀렸다. 그는 말 잔등에 채찍을 날리면서 달려 가 버렸다.
      하늘과 금을 그어놓은 듯 한 산등성이 령길에서 병완부자가 탄 수레와 한길수가 타고 되돌아가는 말은 점점 멀어져갔다.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친다. 벌거숭이 누른 땅 위에 맥없이 서있는 옥수수 마른 이파리들이 너풀거린다. 붉게 타는 듯 한 단풍잎이 어느새 철이 지난 듯이 지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에서 기러기 떼들이 줄지어 끼룩끼룩 남으로 날아갔다. 독수리가 검은 날개를 쭉 펴고 나래 치면서 먹이를 찾는 상 싶었다. 기러기 떼들이 산산이 피해 날아 나 버린다.
    병완 네가 몇 해 전 봄에 짐짝을 메고 처음 영월동에 왔을 때 이 산골에는 한 씨 네 밖에 없었다. 그때 한씨 네는 억대우 같은 병완을 보고 밭이나 소작을 주어보려고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적이 있었다.
    목수재간이 있는 병완은 손바닥 같은 몇 뙈기 묵밭보다도 산골짜기에 들어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제일간 마음에 쑥 들어왔다.
    (저 아름드리나무들을 찍어서 함지를 파 팔면 쌀 근심은 할 게 없겠다.)
    동상이몽이라고 한길수는 소작농으로 병완을 쓰려고 궁리하였고 병완은 목수 질하여 살 궁리를 하였다.
    이튿날부터 병완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 집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는 기어이 자기 집부터 먼저 지으라고 야단쳤다. 그리하여 병완은 넓은 골짜기 어구 새 집터에 한길수네 집을 지어주고 산골짜기 막치기 쪽의 더 좁은 집터에 자기네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 후 선후하여 이 산골짜기에 덕성과 덕팔, 엄창렬, 성팔 네가 알몸신세로 처자를 데리고 이사해왔다.
    한길수는 제손으로 농사를 하기 싫은데다가 병완이네 부자는 목수재간과 사냥재간으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손을 믿고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소작농을 얻자고 그들을 오는 족족 받아주었다. 병완은 이 적적한 산골짜기에 친구가 생겼다고 그들을 먼저 자기 집에 들게 하였다.  봄이 오자 그들에게 새집을 지어주었고 함께 묵밭을 떠서 옥수수라도 심어 먹으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은 한길수 네가 달이 솟아 오르는 산골이라는 뜻으로  승월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댔다. 그런데 병완과 엄창렬 네가 다 본이 영월이여서 아예 영월동이라고 불렀다. 그 바람에 덕성과 덕팔, 성팔이 네도 영월동이라고 따라 불러 영월동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길수는 자기 딴에는 영월동에서 땅 몇 십 헥타르를 가진 부자노라고 어깨 으쓱하였다. 형님 한길주와 짜고 들어서 명천군 아전 질을 하던 자기 조부와 면장노릇을 하였던 아버지 산소가 이 산골에 묻혔다는 구실로 명천군 군수에게 금과 은냥을 먹이고 이 산골을 독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 병완이 온 후 덕성과 덕팔, 성팔, 엄창렬이 네 마을의 인심을 다 가져가서 점차 자기가 뭐라고 해도 말이 통 서지를 않았다. 그는 내내 어떻게 무슨 구실로 병완이 네 일가를 이 산골마을에서 쫓아내고 다시 이 마을을 쥐락펴락 하고 싶었다.
     한길수는 고래 등 같은 기와를 얹은 팔간태청의 넓은 마루에 앉아 곰방대로 번대머리를 썩썩 긁으면서 높다란 토성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음흉한 속궁리를 하고 있었다.
     (병완아,어디 두고 보자. )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곰방대를 쥐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마름을 불렀다.
     “여보게, 응삼이!”
     “예-”
    곁방 문이 열리면서 실돌피처럼 생긴 응삼이가 괴춤을 쥔 채 맨발 바람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머리가 삼검불 같았지만 주인에게 해시시 웃어 보이면서 허리를 연신 꼽싹거리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주인어르신님, 무슨 분부가 계십둥?”
    “에이, 저 함경도 말투만 들어도 정이 뚝 떨어져. 쯧쯧.”
    길수는 버릇처럼 곰방대로 번들 이마를 쓱쓱 긁더니 뒷말을 이었다.
    “거 병완이 10년전에 우리 집에 와서 살았잖아. 그 장부를 가져오게나.”
     “예, 그런데 그걸 불시에 찾아 뭘 하겠습니다”
     응삼은 입버릇처럼 또 함경말투를 쓰고 혀를 홀랑 내밀며 말투를 바꿨다.
    “장부를 가져다 뭘 하려구?”
    “앗따, 가져오라면 가져올 게지. 무슨 잔말이 그리도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뒤짐을 짚고 몸채에 홱 들어가는 번들 이마를 보고 투덜거렸다.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고. 괜히 식전 아침부터 설치면서 남의 재미를 깨버릴 건 뭔가? 흥.”
     누구의 명이라고 어기겠는가. 응삼은 바지 괴춤을 춰 입으면서 신을 작작 끌고 곁채로 들어갔다.
    곁채 구들에는 아직도 이불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그 이불 한 쪽이 들렸는데 음삼의 여편네의 허연 허벅다리와 흘러내린 박속 같은 젖무덤이 드러나 있었다. 문소리가 덜컥 하자 응삼의 여편네 춘실은 이불귀를 들어 젖가슴을 가리었다.
    “무슨 일이기이기에 식전부터 지랄인가요?”
    “에이, 주인어른이 아마 또 병완과 맞붙을 예산인 모양이요.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는걸 보니. 그 둥글 소 같은 녀석을 어쩌자고 지껄이는지 모르겠소. 어디 또 한번 혼나고 싶은 모양이지.”
    응삼은 궤짝에서 장부를 꺼내더니 들고 나가려다가 앵돌아져 눕는 여편네에게 눈길이 돌아갔다. 그는 이불을 들어 덮어주더니 춘실의 볼을 살짝 매만지면서 구슬렸다.
     “요, 귀염둥이야. 얼른 갔다 올게. 이젠 해도 한발 떴으니 일어나 밥이나 해라.”
“알았어요.”
    춘실은 이불을 잡아당겨 턱에까지 더 꼭 쓰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아마 춘실은 작달막하고 실 돌피 같은 나그네라도 살뜰한 멋에 붙어사는 것 같았다.
    응삼은 장부책을 쑥 뽑아 들고 몸채에 들어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쓸쓸 어루만지면서 밥상에 마주 앉아있었다.
    “자, 여기 앉게. 거 장부책에 있겠지? 병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우리 집에 와 있었다는 게 말이야.”
    “예. 여기 있습구마.”
    주인의 눈치를 살피던 응삼이는 주인의 가까이에 설설 기듯이 다가가 앉더니 근시안경을 걸고 장부책을 내리 훑었다. 담배 대여섯 모금을 빠는 새 응삼은 안경알 안의 빈대떡 같은 눈알을 데굴거리더니 장부책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1903년입니다. 그해 노일전쟁이 있은 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1903년 음력 2월 9일부터 그해 가을 9월 16일까지 있었습니다. 한 반년 푼하구먼요.”
   “고작인가? 거 2월을 12월로 고치게나.”
   응삼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번대머리를 건너다보며 난감해했다.
   “아니, 그럼 년도가 틀립니다.”
    한길수는 곰방대로 밥상을 탕 쳤다.
    “에끼, 이 멍청아, 년도를 1902년으로 하면 될게 아닌가?”
    “그런데 더 써넣을 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글씨를 고치겠습둥?”
    “가져 오게.”
    한길수는 장부책을 당겨가더니 퉁방울눈을 뚝 부릅뜨고 들여다보았다.
    “이걸 보게나. 여기 건너금 두개 밑에 한 개를 더 그으면 한자로 3자가 되고잖는가? 여기 2자 앞에 열십자를 하나 더 써넣으면 될게 아닌가.”
     응삼은 안경테를 붙잡고 빈대떡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주 절묘합구마. 되겠습니다. 주인 어른신은 원래 이런걸 아주 묘하게 고치는데 이골이 텄습니다.”
     “에끼. 이 자식. 한대 딱 맞고 싶은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고쳐놓게.”
    한길수가가 곰방대를 쳐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고!”
    응삼은 머리를 싸쥐고 비명을 지르면서 장부책을 안고 무릎걸음으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다가 사랑채로 나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바삐 끌신을 끌고 물러가는 응삼의 가는 뒤 잔등을 바라보며 뒤 근심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저 병완이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어쩌다가 내 할아버지가 여기 함경도에 정배를 와서 이런 구렁텅이에 빠졌나? 저런 물귀신 같은 병완과 자웅을 또 결해야 하다니. 참 억이 막힌 일이다.”
   
     한길수는 쩍 하면 할아버지를 원망하군 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원래 황해도에서 아전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무너져가는 조정과 매관매직의 그릇된 행위를 보고 바른 말을 하였다가 그만 도절도사에게 잡혀 곤장을 맞고 웅진에 정배를 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대바른데다가 지식이 있어서 몇 해 되지 않아 함경도 명천군청에 들어가 아전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길수의 부자간은 할아버지와 판판 달랐다. 길수의 아버지는 서당공부는 뒷전이고 전문 도박놀이터에 가지 않으면 기생놀음을 하였던 것이다. 가산을 탕진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남기고 독주를 마시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길수의 어머니도 그날로 남편이 마시다가 만 독주를 마저 들이켜고 세상을 떴던 것이다.
      하루 사이에 부모를 잃은 한길수는 아주 절망에 빠졌다. 원래 한길수는 아버지만은 달리 할아버지의 가르침 밑에 서당공부도 잘하고 참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자 굴레 벗은 말처럼 마구 구을러 다니며 못된짓이란 짓은 다 했다.
      그는 점차 서당에는 다니지 않고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장사군들의 나무단에 불을 지르지 않으면 나무꼬챙이로 어린애들의 언 귀를 짱짱 쳤다. 뒷간 옹이구멍으로 여인들의 허연 엉덩이를 훔쳐보지 않으면 똥구덩이에 돌멩이를 들이뜨려 똥 벼락을 맞게 하기도 하였다. 막내로 자란 그는 점차 돼지 심술을 꽉 묶어놓고 만든 고약한 심술쟁이로 변해갔다. 똥 누는 애를 물 앉혀 놓기도 하고 방아 호박에 똥오줌을 싸 넣기도 하였으며 되는 호박에 말뚝을 박지 않으면 칼로 호박껍질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호박 속을 파낸 후 똥을 싸 넣고 호박껍질 덮개를 살짝 덮어놓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한길수는 술집을 드나들면서 술이나 처마시고 쩍 하면 걸고 들어 싸우기가 일쑤였다. 우시장거리에서 한길수 무리가 왔다하면 모두 썩 피해갔다. 심지어 애들마저 한길수 말만 하면 울음을 딱 끄칠 지경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어려서부터 녀자들 변소간을 옹지구멍으로 엿보더니 커가면서 개버릇이 커갔다. 길거리를 다니다가도 반반한 여자만 보면 오금을 못쓰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지껄여댔다. 이쁜 녀자를 그날 안으로 재껴치우지 않고선 시름놓지 못했다.  반반한 딸을 가진 집에선 한길수 온다면 숨이 한줌만 해서 딸을 숨겨 놓느라고 야단쳤다.
     한길수는 또 명천 우시장 거리 기생집에 오입하러 문턱이 다슬게 다니었다. 요즘엔 일본 기생년들 궁둥이 맛을 들여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생출신이라도 월선은 영감이 기생행골에 이를 쁙쁙 갈았다.
      한길수는 굴레를 벗은 말이요, 우리에서 뛰쳐나간 호랑이새끼 같았다. 그는 말이 양반집 아들이지 실지는 비단에 감싼 심술쟁이요, 싸움꾼이요, 오입쟁이었다.
      한번은 길수가 씨름판에 구경을 갔다. 웬 키가 훤칠한 사내가 숱한 상대를 하나하나 이기고 황소를 타고 씨름판을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났다.
     그는 팔소매를 썩썩 걷으면서 구경꾼들 속을 비집고 나가면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황소를 탄 사내대장부를 보고 걸고들었다.
     “어이, 당신은 일등이라지만 이 한길수와 씨름을 해보지도 않고 어찌 일등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 황소 잔등에서 내려오게나. 한판 겨뤄보겠나.”
     그 거동은 거만하기로 짝이 없었다. 일등을 한 사내대장부는 흥이 다 깨지고 기분이 잡쳐서 소잔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소고삐를 자기 친구에게 넘겨주고 나섰다.
      “장사는 누구신지 통성명이나 하기요.”
      한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빈정거렸다.
      “아니, 그래 당신은 이 명천에서 이름이 짜한 싸움꾼 한길수도 모르고 황소를 탔소?”
    그 사내대장부는 넉가래 같은 손을 척 내밀었다.
    “오, 그렇구먼. 나 상우남면 운주동의 김병완이오.”
    “그래? 당신 키는 구척이요. 힘 깨나 쓰는 모양인데. 나와 한판 붙어 보겠는가?”
     한길수가 걸고 들었지만 병완은 점잖게 받아 넘겼다.
     “이보시오. 씨름판은 끝났으니 명년에 다시 씨름판에 나와 겨뤄 보는 게 어떻소?”
      그러자 한길수는 우쭐해났다.
     “아니, 일등을한 양반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어째 황소를 이 어른께 빼앗길 까봐 그래? 잔말 말고 한판 붙어보자.”
     병완은 황소 잔등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는 팔소매를 걷더니 씨름판 복판으로 들어갔다.
     한길수는 병완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모래바닥에서 돌멩이를 슬쩍 오른 손에 감춰 쥐었다.
    심판이 그들 둘의 잔등을 치면서 “시작!” 하고 소리치기 바쁘게 길수는 오른손에 쥐였던 돌멩이로 병완의 무릎을 딱 치면서 뒤로 꺼꾸러뜨렸다.
    구척장신이요, 힘장사인 병완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힘도 못써보고 상을 찡그리면서 맥없이 뒤로 넘어졌다.
     한길수는 손에 쥐였던 돌을 모래바닥에 떨군 후 발로 모래를 차서 푹 덮어 버리었다. 뒤이어 그는 어깨가 으쓱해서 씨름판을 한 바퀴 돌면서 빈정거렸다.
    “보라고, 황소를 탄 일등이 내아래 무릎을 꿇었어. 흥! 일등도 그저 그래! 퉤퉤!”
    이때 병완이 아픈 무릎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더니 일어났다.
    심판이 다가와 한길수에게 말했다.
   “삼판양승이니 아직 두 판을 더 해야 결판나오.”
    한길수는 손에 쥔 돌이 없어 당황해났지만 성난 사자처럼 황소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으르릉 거렸다.
    “이 자식, 어디 죽고 싶으면 덤벼 봐라!”
    그러나 병완은 쓰거운 듯이 피씩 웃으면서 길수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한길수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어찔 수 없어 마주 붙었다.
    “시작!”
     심판이  두 손으로 씨름군들의 잔등을 탁 치며 고함쳤다.
    한길수는 왝왝 고함치면서 억대우 같은 병완을 이리저리 떠밀기도 하고 옆으로 밀어 붙이었다.
    한길수도 한다하는 싸움꾼이였기에 병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한길수가 떠밀고 밀어 붙혀도 당하는 척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가가 숨을 돌리느라고 동작을 멈춘 순간 다리를 끌어당기다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어깨 위에 둘러메고 오른손으로 왼다리를 당기다가 사타구니 밑에 오른팔을 쑥 넣고 건뜻 쳐들었다. 한길수는 숱한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두 다리를 뻐둑거리면서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물러가라!”
     병완은 길수를 머리 위로 강아지 휘두르듯 빙글빙글 휘두르다가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테 밖에 내동댕이쳤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면상이 모래에 박혀 잘못됐을 것이다. 그러나  날랜 길수는 허공 날아 떨어지는 순간,  원숭이처럼 살짝 모래불에 곤두박질하면서 다시 벌떡 일어났다.
      "개자식, 어디 죽어봐라! 퉤!"
      길수는 종아리 각반에서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음흉한 우멍눈으로 병완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병완은 겁기가 하나도 없었다.
      구경꾼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와야 하고 흩어졌다. 길수가 비수를 휘두르면서 달려들어 배를 겨누고 푹 찌르자 병완은 옆으로 몸을 탈면서 오른발을 날려 비수를 차 떨어뜨렸다. 길수가 비수를 쥐는 순간 병완은 왼발을 날려 아래 배를 콱 걷어찼다.
      “억!”
      길수는  아래 배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구경꾼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길수는 다시 덮쳐들고 싶었으나 숨이 꺽 막혀 맥을 쓸 수 없었다. 한길수는 아래배를 붙안고 창피한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 후 앙갚음을 하려고 길수는 싸움꾼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병완이네 집까지 쫓아가 걸고 들었다.
    "야, 이놈아, 오늘 씨름 결판내자." 
     병완은 길수가 덤벼드는 족족 멨다가 처박어주었다.
     그는 길수를 꽉 안아 바자 밖으로 훌 내던졌다. 길수는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병완은 배잡이로 멋지게 길수를 짱 넘어뜨리었다.  
     "3판 양승이니 내 이겼소. 결판 났으니 어서 돌아가오."
     길수는 손으로 턱에 묻은 진흙을 쓱 문대며 랭소했다.
     "흥! 모레 또 해보자!"
      따라왔던 싸움군 친구들도 길수가 병완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
      "형님, 그만하오.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개소릴 작작 쳐! 내 그놈 허리를 뚝 분질러놓지 않는가 봐라! 퉤!"
      길수는 날마다 지면서도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와 계속 병완과 걸고 들었다.
     하루도 아니고 연 보름동안 길수는 병완과 씨름을 걸었지만 날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중에 그는 시퍼런 작두를 들고 와서 죽기내기로 싸움을 걸었다.
     미운 놈을 떡을 더 준다고 병완은 길수와 같은 자는 꺾어 놓는 것이 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번에 한길수가 찾아왔을 때었다.
      병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집안의 술상에 길수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럼 그렇겠지. 이 길수가가 누구라고 언감 이긴단 말인가! 허허, 으흠.”
      길수는 병완이 주는“항복술”을 받아 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 으쓱해서 싸움군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 후에는 우시장에서 싸움을 걸고들 때마다 먼저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군 하였다.
     “너 운주동 일등씨름군 병완을 아느냐?”
      상대방이 눈이 휘 동그래졌다.
    “병완 힘장사 어떻게 아오?”
      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렁거리며 흰소리를 쳐댔다.
      “병완도 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놈이 술상 차려놓구 무플을 꿇고 두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니 가만놔뒀지.”
      병완의 결의형제라는 말만 들어도 대부분 싸움꾼들은 무릎을 푹푹 꿇었다.
     "형님,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소. 용서하오.”
    "그럼 술 한잔 내야지. 으흐흐."
     한길수는 이렇게 낯선 싸움군들한테서 항복술 한잔 얻어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를 살구고 우쭐렁거리며 길거리를 싸다녔다. ㅎㅎㅎ
     


     

                            6.묵은


     
     처음에 한길수는 병완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자기 집에 들어 살게 했을뿐만 아니라 쌀도 십여 말이나 주었다. 그런데 병완이 이 산골 막바지에 집을 짓고 든 후부터 마을 인심이 병완에게 쏠리고 자기 말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러자 길수는 날이 갈수록 병완이가 아주 불편하게 생각 됐다. 지어 그를 이 산골에서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길수는 뒷짐을 지고 마루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곰방대를 홱 휘두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그 놈에게 빚더미를 들씌워서 쫓아내야지.”
      그는 중문 밖에 대고 소리쳤다.
     “거 응삼이, 영팔이!”
     “예꾸마!”
     대답소리와 함께 응삼과 영팔이 마루아래에 뛰어왔다. 마루 위에 서서 불호령하는 번대머리의 우멍눈에서는 무서운 번개불빛이 번쩍였다.
      “거 머슴꾼들까지 다 데리고 병완의 집에 가서 빚재촉을 하게나.”
      “예? 우리가?”
     응삼과 영팔은 겁기 어린 눈길로 서로 마주 쳐다보다가 머리를 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뭣들 하는가! 얼른 떠나지 않고.”
    땅방울 같은 호령소리에 누가 언감 거역하겠는가.
    그들은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해 놓고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그들의 뒤 잔등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항우 같은 병완이라도 견디기 어려울걸.”
    길수는 곰방대를 휘두르면서 염소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길이 어디로 가면 어디에서 이글이글하는 불길이 타 번질 것만 같았다.
     그는 마루 위에서 호랑이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주춤 멈춰 섰다.
      “아니야! 그 물소 같은 병완을 응삼이 후릴 수 있겠는가! 내 직접 가봐야지.”
     길수는 집에 들어가 벽에 걸어놓은 중절모자를 번대머리 우에 올려놓고 특제개화장을 들고 문 밖을 나섰다.
    이때 정주간에서 한창 분칠하던 월선이 문을 벌컥 열고 쫓아 나왔다.
     “여보, 괜히 자는 호랑이 콧구멍을 들쑤셨다가 무슨 경 치려고 그래요? 병완이 누군데?”
     그래도 길수는 개화장을 홱 휘두르면서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깐 놈이 언감 어쩔라고.”
     그러나 월선은 두툼한 입술을 계속 너펄거렸다.
     “코나 떼우지 말구 오세요.”
     “그 주둥아리를 다물지 못할까!”
     그 호령소리에 월선은 입울 삐쭉거리면서 정주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길수는 개화장을 휙휙 휘두르면서 득의양양해서 중문을 지나 대문 밖을 나갔다.
      실개울을 건너 골짜기 막바지로 올라가는데 저 멀리 덩그런 팔간 초가집 앞에서 나무를 패는 병완의 소잔등 같은 잔등이 보였다.       벌써 응삼이 장부책을 옆구리에 끼고 영팔 등 10여명 머슴을 데리고 올라가더니 장부책을 펼치고 뭐라고 꽥꽥 소리치면서 손으로 병완의 낯에 대고 삿대 질 하는 것이 보였다.
     “10년 묵은 빚을 올해 안으로 다 갚도록 하게나.”
      그 말에 집안에서 창준과 기준이 등이 다 뛰쳐나와 입을 짝 벌렸다.
      그런데 괘씸한 병완은 근본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나무만 팡팡 패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헐금씨금 숨이 바쁘게 달아올라가 꽥 소리쳤다.
    “병완이. 빚 문서를 들었겠지?”
    “흥!”
    병완은 아니꼬운 눈길로 피뜩 길수를 보고는 계속 시퍼런 도끼로 나무를 팼다.
    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서서 실돌피 같은 응삼 쪽으로 낯을 돌렸다.
     “응삼이, 저 자식한테 장부를 불러줬는가?”
     “예. 불러 주고 말구요.”
     “아마 이 양반이 잘 듣지 못한 거 같네. 이 집 식구들이 다 듣게 그 10년 묵은 빚 장부를 다시 잘 불러주게. 아마 대대로 물어도 다 물것 같지 못할 거니까.”
     “예. 알았습꾸마.”
     응삼은 병완의 잔등에 대고 곡이나 하듯 빚 장부를 내리 읽었다.
     “1903년, 아니. 1902년 노일전쟁 당시 12월 6일에 김병완은 일가식솔 열을 데리고 우리 주인님 한길수 씨의 집에 들어와 얹히어 살았다. 이듬해 1903년 9월 16일에 집을 짓고 나갔다. 열 식구 숙비를 계산하면 하루에 3원 50전으로 눅게 치더라도 280일이면 980원이라. 물 값은 하루에 10전으로 계산해도 28원이라. 변소사용세에 문턱세. 공 먹은 공기 세에 밟은 땅값까지 합치면 도합 67원 80전이라. 합계를 하면 총 빚은 1,075원 80전이라. 거기에 해마다 3푼 이자로 계산하면 10년이면 도합…”
      “닥치지 못할까!”
     그때까지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던 병완이 시퍼런 도끼를 들고 돌아서면서 우레 같은 소리로 고함쳤다.
      그 바람에 응삼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풀썩 물앉았다.
      이때 한길수가 개화장으로 땅바닥을 쿡 찍으면서 한 발자국 나섰다.
     “아하, 병완이, 사람이 빚을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웬 고함질인가?”
     “어쩌자고 이러오? 누가 이 골 안에 오겠다는 걸 오라 해놓구 지금에 와선 이게 무슨 짓이요?”
     “아따. 아무리 결의형제라도 공 게면 공 게고 빚이면 빚이지. 그래 생떼를 쓰면 단가? 아름차하지 말고 천천히 갚도록 하오. 빚을 갚지 못하겠으면 이 집을 내놓고 내 개척해 놓은 이 마을에서 썩 물러가란 말이오. 그럼 그 산더미 같은 빚을 갚지 않아도 돼. 어험, 에헴. 헙. 쯧쯧쯧.”
      “쳇! 그리 쉽지 않을걸!”
       “어디, 두고 보자. 이 마을에서 배기는가?”
     “나도 한마디 해두지만. 당신이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나도 사정을 두지 않을게요.”
     “그저 이 자식을!”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한길수는 개화장을 휘둘러  내리치려고 하였다.
    옆에 섰던 영팔이가 긴 마른 장작을 쥐여 병완의 어깨를 탁 내리쳤다. 장작깨비 툭 끊어나 푸르르 날아 저 멀리 땅바닥에 가서 떨어졌다.     
     병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떡 버티고 서서 영팔을 쏘아보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장작개비에 맞았으면 진작 어깨뼈가 부러졌거나 푹 꺼꾸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병완은 시퍼런 도끼를 떨어뜨렸을 뿐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뚝 부릅뜬 퉁방울눈으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게다가 창준과 기준마저 괭이와 도끼를 들고 다가왔다.
     창준은 키가 자그마하고 성질도 순한 편이었지만 기준은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고 억대우 같이 생긴데다가 성깔이 아주 사나왔다.한길수는 숱한 사람들 앞인지라 순순히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개화장을 들어 병완을 힘껏 내리쳤다. 병완은 어느 결에 개화장을 받아 쥐어 비틀면서 길수의 허리를 감아 안아 둘러메쳤다. 길수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겨우 벌벌 기어 일어나 질겁한 나머지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스르르 내리웠다.
     그는 뜻밖에 성난 사자처럼 덤벼드는 병완을 보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말투마저 고쳤다.
      “허허, 어험, 병완이, 이러지 말게나. 우린 의형제기 아닌가! 영팔이, 자네도 그만하게. 병완이, 내 무정한 게 아니요. 자네가 열 식구를 데리고 근 열 달이나 살았으면 빚을 갚는 게 옳지!”
    병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침을 퉤 뱉었다.
    “그럼 내 당신네 헌 집에 있으면서 저 고래 등 같은 새 집을 지어준 목수공전은 얼마나 되는가? 내 당신네 집 농사를 10년이나 일전한푼 받지 않고 지어주건 어쩌겠는가? 그걸 3푼 이자로 계산하면 10년이면 얼마나 되는가? 우리 열 식구가 들어 산 것과 어느 게 더 많은가?”
     그 말에 길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이 쩍 벌어졌다가 딱 막혔다.
     그는 남이 자기 신세를 진 것만 따졌지 자기가 남의 신세를 진것은 꼬물만치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참만에야 길수는머리 돌았는지  제 쪽에서 오히려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자네가 우리 집에서 살면서 진 인정 빚에 못 이겨 한 일이 아닌가? 그래 의형제라는 게 그런 수고비까지 받겠는가? 배은망덕한 놈.”
    병완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어째 당신은 짝 시비만 하오?”
    도리를 따지나 힘으로 싸워 보나 이기지 못하게 되자 길수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개화장으로 응삼의 엉덩이를 툭 치면서 고함쳤다.
    “바보 같은 놈, 돌아가자. 이런 시비곡직 없이 무지막지한 놈과 더 말해봤자 본 전도 못 찾겠다.”
    “허허허.”
     “하하하.”
병완 일가 식솔들은 길수가 기 꺾여 돌아가는 낭패상을 보고 모두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마당을 감돌아 흐르는 물도 시원한지 쿨쿨 소리치면서 웃음 싣고 구름 싣고 흘러내려갔다. 그러나 웃는 애들 속에 서 있는 병완과 성희의 얼굴에는 수심에 찬 검은 구름이 스쳐지나갔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허리, 다리, 팔이 다 아프구나. 좀 꽉꽉 문지르오.”
    길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구들에 마구 쓰러져 죽는 상을 했다.
     월선은 길수의 허리를 문지르면서 비꼬아댔다.
     “그래 숱한 사람들을 끌고 가서 빚을 받았는가요?”
    “말도 말아. 병완 놈이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촉도 못 걸겠더군. 빚이야 갚지 않고 어디 견디는가 보라지.”
    길수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에이, 그 놈 새끼를 내 놔두는가 보지. 이 산골에서 살기나 하겠소. 아이고, 병완이 생각만 하면 골통이 뻐개지는 것 같다니까.”
    그러나 월선은 영감의 허리를 문질러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내 이전에 뭐라 했어요? 소같이 우둔한 병완을 끌어들이지 말라는데도. 혹을 떼버리지도 못하고. 이젠 길러준 개한테 발을 물리게 됐구먼.”
    길수는 번들이마를 뒤로 쳐들어 돌리면서 잔소리를 했다.
     “에이유, 쓸데없는 잔말 말구 좀 꽉꽉 문질러.”
    “그만하면 됐지. 어쨌다고 잔소린기여?”
    그러자 번들이마는 아예 반듯이 돌아누웠다.
    “안 되겠소. 거 부엌 여를 와서 문지르라 하오. 젊은 게 손에 힘이 더 있겠지.”
    월선은 영감한테 쌍까풀눈을 흘기면서도 시끄러워 머리를 곁채로 돌렸다.
   “얘, 부엌 여야. 여기 오너라!”
   “예.”
    곁채에서 부엌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신을 작작 끄는 소리가 다가왔다.
    월선은 집안에 들어서는 부엌 여를 쏘아보면서 욕부터 퍼부었다.
    “에이, 저 망할 년. 주인이 아파 야단인데 인사말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주리를 틀어놓을 년, 어서 나를 도와 주인님의 아픈 허리와 다리를 주물러 드려라.”
     “예. 어데 모질 아픈가요?”
     부엌 여는 구들에 꿇어앉아 길수의 허리를 꽉꽉 문질러주었다.
    그제야 길수는 번들 이마를 베개에 붙이면서 두 눈을 사르르 감았다.
     "그래, 그래도 젊은 게 손이 달라. 손에 힘이 있단 말이요.”
    한참 후 번들이마가 눈을 번쩍 떴다.
   “여보, 이젠 내 아픈데 없소. 조용히 자게 해주오. 은녀야, 거 냉수 한 그릇  떠오렴.”
    “예.”
    그제야 월선은 한숨을 호 내쉬더니 버릇처럼 또 두덜거리기 시작하였다.
    “영팔이랑 큰소리나 쳤지. 병완 앞에서는 호랑이를 본 개 새끼처럼 주먹을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꼬리 빳빳해서 달아나다니? 참, 기막힌 일이 아닌가요? 무용지물들을 한 무리나 기르는 거면 개를 기르겠어. 쯧쯧쯧.”
    “시끄럽소. 정주간에 나가오.”
    한길수는 월선을 활 밀어버렸다.
    월선은 뒤로 밀려나면서 빈정거렸다.
    “에이유,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더니 이건 어데 가 꺾이고 누구하구 신경질을 써요? 흥!”
     “썩 나가지 못할까!”
    월선이 두덜거리면서 나가는데 부엌여가 냉수 한 그릇을 퍼들고 들어섰다. 길수는 비단요 우에 일어나 앉아 냉수를 받아 꿀꺽꿀꺽 마시고 사발을 주면서 부엌 여를 힐끔 쳐다 보았다.
     어깨 넘어 치렁치렁한 쌍태 머리, 쪽 갈라 금을 낸 가리마아래 훤한 이마, 짙은 눈썹아래 물기 일고 정기 도는 한 쌍의 머루알눈, 주름 없는 말쑥한 얼굴, 꼭 닫힌 입술…
    “후~”
    길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부엌 여는 길수의 눈길을 피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물 사발을 들고 정주간으로 나갔다.
    “후~”
     그녀의 등 뒤에서 길수가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뜨겁게 들리었다.
     이때 마당 쪽에서 신을 끗는 소리가 작작 나더니 응삼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르신, 어르신!”
    번들이마는 미닫이를 활 열면서 “왜 그래?”하고 물었다.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어느새 집안에 들어와 길수의 귀에 대고 쑥덕거렸다.
   “주인님, 지금 고을에는 일본 사람들이 득실거립구마. 일본 사람들에게 병완을 밀고해버리면 어떨까요?”
   “쉿!”
    길수는 입가에 손가락을 대더니 부엌 여를 힐끗 눈길질 했다.
    “부엌 여야, 그만 문지르고 부엌에 나가 봐.”
    부엌 여가 일어나 나가자 길수는 상을 찡그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일본 오랑캐 말인가? 흥!”
   길수는 말 이빨 새로 흘러내리는 게 침을 쓱 문대고 이었다.
   “건 신중해야 하네. 일본사람들이 그러지 않아도 전번에 저 뒤 산 수림을 보더니 목재가 욕심나 하더라. 자칫하면 호랑이를 쫓아내고 승냥이를 끌어들이는 격이 될 수도 있어.”
    그제야 응삼은 길죽한 머리를 조아렸다.
   “예, 그러고 보니 난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몰랐습구마. 그래도 주인님의 도량이 바다처럼 넓습니다. 해해해.”
   이때 서울에서 공부하는 길수의 맏아들 철주가 트렁크를 들고 들어왔다. 학생모에 학생제복을 입은 철주가 늠름해 보였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길수는 아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입이 단통 쩍 벌어졌다.
    “응, 그래. 서울에 가 공부를 하더니 시골 때를 말끔히 벗었구나. 말투도 서울말씨고.”
    길수는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 물앉았다. 허나 철주 뒤에 따라 들어서는 박단춘과 손자 녀석 명호를 보더니 꾹 참고 상을 찡그리면서도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철주와 박단춘은 명호를 데리고 절까지 올렸다.
    “오, 그래. 일어나라.”
   철주와 단춘은 일어나 정주간에서 들어오는 월선에게도 절을 올렸다.
   “에이고, 요 내 새끼야.”
   월선은 손자 녀석을 그러안고 핥을 상을 하였다.
   단춘이 정주간에 나간 후 철주는 길수를 보면서 물었다.
   “허리를 상했는가요?”
    “응, 길러준 개한테 물렸다.”
   “예?”
   철주가 일어나 상처를 보려 하자 길수는 그만두라고 하고 나서 병완과 있은 일을 죽 이야기하면서 수를 대달라고 하였다.
   길수와 응삼이, 아들 철주가 한자리에 앉아 쑤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앞마당 살구나무 위에서 참새 몇 마리가 짹짹거렸다. 마당개도 왕- 왕- 짖어댔다. 집 안에서는 세 사람이 뭐라고 떠들썩거리다가 웃고 떠들었다.

                       

                                 7.
민족의 성산 백두산
 



     치마봉 아래 산기슭은 벌써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고 마른 풀잎들이 선들바람에 흐느적거렸다. 영월동 앞의 적송과 백송, 미인송이 빼곡히 들어선 원시림과는 달리 치마봉 기슭에는 잡목이 빼곡히 들어섰다.
    푸르른 하늘에서 매가 돌개바람에 휘감겨 날리는 연처럼 빙빙 선회하다가 줄 끊어진 연처럼 내리 꽂힌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칠은 누렇게 번진 풀 속으로 검둥이를 추겼다. 검둥이가 코를 풀 속에 파묻고 냄새를 맡으면서 내달리다가 매가 돌던 하늘아래에 가서 멈춰서더니 꼬리를 휘청휘청 저어댔다.
    “킁킁!”
    개 코 방귀 소리를 들으면서 성칠은 그리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웬걸!
     알락달락 무늬 간 장 꿩 한 마리가 긴 꼬리털을 흐느적거리면서 까투리와 함께 뭔가 주둥이로 쪼고 있었다.
     “휙~”
     성칠이 휘파람을 불자 검둥이가 슬슬 그 자리를 피한다.
     땅! 땅!
     까투리는 폴싹 쓰러졌다.
     푸드득!
     총알을 빗맞은 장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땅! 땅!
    장꿩은 맥없이 내리 꽂히더니 풀숲에 퉁 떨어졌다.
    검둥이가 씽- 풀숲 속에 달려나가  꿩과 까투리를 한입에 물고 되돌아와 꼬리를 저어댔다.
    성칠은 장 꿩과 까투리를 받아 쥔 후 요도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검둥이에게 주고 그물가방에 그 두 마리 꿩도 걷어 넣었다.
    이젠 해도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그물가방을 툭툭 치던 성칠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멧돼지나 곰이나 호랑이라도 잡으려고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원시림을 걷고 걸어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 때였다.
     웬 일가?
      불시에 수림속이 어두워지더니 때 아닌 안개가 뒤덮였다. 희끄무레하고 담담한 해 빛이 짙은 구름층을 겨우 뚫고 나왔는데 몽롱한 안개바다 속에 빨려 들어가 대지는 어둠속에 잠겨있다. 숨 막힐 듯이 구름 밑에 안개 밑에 지지눌린 산봉우리가 삼라만상을 두꺼운 안개 속에 감춰버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천길 절벽의 천년 이끼 낀 청석 낭떠러지를 보일락 말락 하게 씻어 올리고 있었다. 참말로 미묘한 절승경개에 성칠은 가슴 뿌듯해 혀를 끌끌 찼다. 그 바위 틈 사이로 노란 잔등에 토색 줄이 쪽 간 다람쥐가 깡충깡충 뛰놀다가 쪼르르 나무우로 기어오른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기암괴석에 빨려들어갔는지 수림 속에 스며들었는지 차츰 하늘이 개이었다. 그런데 9월말 날씨에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웬 일일까? 혹시 꿈을 꾸는 게 아닌가? )
    성칠은 검둥개를 앞세우고 한참 눈 덮인 수림을 빠져나가니 수림이 끝나고 애나무가 자란 앞에 눈 덮인 깎아지른 절벽이 앞을 막았다. 그는 절벽을 톺아 올라 넘으면 사냥할 산짐승들이 있을 것 같았다. 절벽너머 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과 충동에 의해 그는 돌 뿌리를 잡고 바위틈에 손톱과 손가락을 박으면서 눈 뿌리 아찔한 천길 절벽을 톺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절벽에 부석부석한 돌 뿌리는 훌렁 빠져 나왔다. 결국 그는 한길 너머 올라갔다가도 눈 덮인 땅바닥에 퉁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포기할 성칠이 아니었다. 그는 완강한 의력으로 손가락이 긁히어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의악스레 절벽을 톺아 올랐다. 검둥개는 절벽에 올라가지 못하고 절벽 우에 올라간 주인을 쳐다보면서 “왕왕!” 짖어댔다.
    해님이 방실 웃음 지을 때 칠성은 피 나는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절벽 앞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눈앞에는 백설을 뒤집어 쓴 산봉우리들 복판에 웬 바다같이 넓고 푸르른 천지물이 나타났다.
    (하늘에 닿은 높은 산봉우리 복판에 바다와 같이 넓은 푸르른 천지가 있다니? 참 괴이한 일이 아닌가!)
    성칠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말로 인간세상에서 보기 드문 절승경개었다. 눈 뿌리 아찔하게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꽃노을을 쓰고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고 발밑에 있는 맑고 푸른 거울 같은 천지물이 파란 빛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게 아버지 늘 말씀하시던 천하절승 백두산이 아닌가?”
    성칠은 두 손을 입가에 벌려대고 목청껏 고함쳤다.
     "야- 백두산아! 내가 왔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백두산에 성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검둥개도 벼랑아래에서 “왕 왕 왕!” 하고 요란하게 짖어댔다.
    성칠은 백두산 꼭대기의 청신한 공기를 가슴 뿌듯이 한껏 들이마시고 자기가 선 봉우리를 둘러보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백두산인가! 백설이 뒤덮여있는 산봉우리아래 얼음굴이 숭숭 뚫린 곳에서 선인이 금단을 구웠다는 관면봉, 안개와 구름이 감도는 저 가마 덮개와 같은 화개봉,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은 예리한 두 암석이 치솟은 천곡봉, 천층만층 절벽으로 이루어진 신비석 같은 용문봉, 용이 드나드는 문이었다고 하는 용문봉 남쪽으로 하여 빨간 노을이 비낀 자하봉, 눈 밑에 절벽이 드문드문 검푸르게 치솟은 철벽봉, 옥기둥처럼 서있는 석벽 우에서 은실 같은 하얀 실 폭포가 쏟아져 천지에 흘러드는 옥주봉, 잔등에 사닥다리폭포를 업고 있는 제운봉, 눈을 뒤집어쓴 호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것 같은 와호봉, 하늘에 장검을 찌른 것 같은 백운봉…
     성칠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백두산의 절경을 둘러보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어떤 봉우리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바위에 날아내려 앉은듯하고 어떤 봉우리는 용녀가 거울을 마주하여 머리를 빗는 듯했다. 어떤 것은 흉측한 사자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원숭이가 장기 쪽을 들고 앉아 있는 것 같았으며 어떤 것은 큰 눈을 부릅뜬 백발 로인과도 같았다.
     천변만화하는 백두산의 하늘에는 안개가 또다시 뭉게뭉게 피어올라 뭇산 봉우리들에 베일을 씌어 주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갑자기 까만 구름이 서북쪽으로부터 둥둥 떠오더니 천지 못 속으로 스며들었다. 뒤이어 동남쪽으로부터 흰 구름송이가 떠올라 천지를 한 바퀴 빙 돌더니 천지 못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흰 구름과 검은 구름이 천지 못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더니 한데 뒤섞여 타래 쳐 오르더니 우르릉 꽝꽝 하고 우레 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것은 똑 마치 서북쪽의 흑룡과 동해바다의 백룡이 천지의 용과 천지에서 만나 잔치를 벌리었다가 영토분쟁이 생겨 싸움판이 벌어 것 같이 보였다. 뒤이어 하늘에서 눈 덮인 백두산과 퍼런 천지에 밤송이 같은 박재를 마구 쏟아부어댔다.
       “아니! 이거 눈 덮인 천지간에 우박이 쏟아지다니!”
     칠성은 놀란 소리를 지르면서 그물망태기를 들어 우박을 막았다.
     아, 천하절승 백두산!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는 하늘아래 어깨 겯고 우뚝우뚝 솟아 금수강산을 지켜선 대장부들 마냥 어깨 겯고 천지의 물을 굽어보고 있었다.
     성칠은 청신한 산 공기를 마음껏 가슴 뿌듯이 들이켜고 나서 백두산의 천하절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에 한 도인이 하루는 눈이 뒤덮인 절벽을 내려 천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헌데 못 속에서는 몇 마리의 잉어가 새빨간 꼬리를 하느작거리면서 헤염쳐 다니고 있었다. 도인이 잔파도에 들어서 잡으려 하니 그 고기는 하느작거릴 뿐 달아나지 않아 단번에 붙잡혔다. 이어 또 다른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꿈꾸던 도인은 발이 미끄러져 물에 쑥 빠져 들어가 다시 나올 수 없었다. 그가 바위를 붙잡고 백 길을 더 내려가니 돌층계가 사다리처럼 놓여있었다. 사처로 두리번거리며 여겨보니 전각과 용을 새긴 옥기둥이 금빛이 반짝거리는데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가 한가운데 화려한 궁전으로 들어가니 백발이 성성한 한 로인이 수정 침대 우에 누워 우레 소리같이 요란하게 코를 고르고 있었다. 도인은 더 앞으로 못 다가가고 옥전에서 뒷걸음을 치다가 돌아서서 못 속에서 헤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백발자국 와서 머리 돌려 궁전을 바라보니 오색영롱한 것이 눈을 부시면서 은파 속에서 번쩍이는 것이었다. 도인은 사지 나른해지면서 맥이 없었다. 그는 돌층계에 기대서서 숨을 돌렸다. 그러나 온 몸이 한 토막의 나무와 같은 감이 들더니 파도에 따라 둥둥 뜨면서 불씨에 잠이 오는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그의 곁에 사냥꾼 둘이 서 있었다. 눈을 번쩍 크게 뜨고 바라보니 자기는 이미 승자하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두 사냥꾼은 못에서 한 사람이 둥둥 떠오자 원래는 서쪽비탈에서 동쪽비탈에로 헤엄쳐 가는 사람인가 했는데 건지고 보니 못에 빠진 도인이었다고 하였다. 사냥꾼에 의해 구원된 도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천지에 용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성칠과 검둥이는 넓은 보천석 위에 올라가 앉아 한참 쉬다가 승자하를 따라 내려갔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천지 용궁에는 용왕의 다섯 마리 태자교룡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온 몸에서 린광이 번쩍이었는데 바람을 불러오고 비를 몰아 올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봄, 배꽃이 키 다툼하며 피어날 때 이 다섯 형제는 가만가만 못 우에 떠올랐다. 아, 보지 못했으면 몰라도 이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구름과 안개를 잡아타고 백운봉에 올라 천지의 물에 굴절돼버렸던 열여섯 봉 절승경개를 보고 완전히 도취돼버렸다.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다섯 갈래 깊고 깊은 골짜기를 남겼다. 그러나 봄빛은 좋으나 오래있지 못하게 됐다. 맏이는 사형제를 데리고 용궁에 되돌아가려 하였다. 그중에서 삼태자만은 인간춘색에 미련을 두고 도주에 슬그머니 사형제를 떨어져 달아났다.
     꽈르릉!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산봉우리가 갈라지면서 한 가닥 빛이 서북쪽으로 날아가고 깊고 깊은 협곡이 하나 생겼다. 하여 천지의 물은 그 협곡을 따라 흐르게 되였으며 은파가 번쩍거리게 되였다. 이것이 바로 성칠이가 본 오늘의 승자하인 것이다.
    그 후 셋째태자 용남은 용궁에 오래간만에 돌아왔다. 용왕이 그를 용궁의 규례를 어겼다고 쫓아버리자 배 한척을 무어가지고 그 우에 앉아 승자하를 따라 동해 바다 속의 용왕을 찾아가려고 하였다.
     원래 천지 용왕과 형제간인 동해 용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맏아들을 보내왔다. 천지동쪽으로 커다란 흰 구름송이가 날아오더니 셋째태자 용남이가 탄 배가 머무른 승자하 상공에 둥둥 떠 내려왔다. 구름 속에서 숱한 채색구름이 내려왔다. 그것들이 차츰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입은 선녀로 변해 내려와 용남의 둘레에 달려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그를 옹위하였다. 뒤이어 흰 구름이 둥둥 떠내려와 용남과 선녀들을 감싸더니 하늘로 솟아올라 동해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용남이가 탔던 그 배는 주인이 없어 방향을 잃고 물길에 떠밀려 승자하 동쪽 기슭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성칠은 썩은 배를 총탁으로 두드리면서 개탄하였다.
      “어허, 네 처지 가련하구나. 주인 잃고 물에 밀려 바위 우에 걸쳤으니까. 제 어이 동해바다에 떠가서 만리 창해를 헤가르며 달리랴. 오늘은 썩은 나무로 돼 어이 하여 후세사람들의 의논거리로 돼 답답한 한탄만 자아내는가!"
     성칠은 바위를 부시면서 소리치며 급물살을 타는 승자하를 따라 한 3 리를 내려갔다. 갑자기 발밑에 우당탕퉁탕 천둥소리와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바위 돌을 잡으면서 절벽 굽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백길 절벽에서 거센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늘 외우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폭포구나!”
     백설 같은 폭포수는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 듯이 청석옥석을 부시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절경은 마치 흰 용 두 마리가 백설을 쏟아 붓는 것 같기도 하고 흰 한복을 입은 백화암의 궁녀들이 절개 굳게 뛰어내리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맑은 물은 부서져도 흰 물 바래로 쏟아지고 물갈퀴와 안개를 사처로 펼치면서 아치교처럼 칠색무지개를 꽃피웠다. 아마 견우와 직녀도 여기 아름다운 아치교 같은 칠색무지개를 보면 은하수에서 만나 부둥켜 안고 울기 전에 먼저 여기 백두 폭포에 와서 아름다운 절승경개에 취해 웃고 떠들면서 놀리라!
      폭포 옆 절벽 길을 내린 후 성칠은 한숨을 후- 쉬면서 폭포를 돌아다보았다.
     “아, 참말로 백두폭포는 천하절승이구나.”
      성칠은 폭포와 그 주위의 절벽을 둘러보면서 눈 덮인 바위 우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런데 사냥꾼 성칠은 별스럽게 노린내가 어디선가 풍겨와 코를 간질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왕 왕 왕!”
    성칠은 대뜸 주위에 뭐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냥총을 들고 날카로운 눈길로 검둥개가 짖는 쪽을 바라보았다.
     “에크!”
    그리 멀지 않은 너럭바위 우에 얼룩호랑이가 우뚝 서서 불지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칠이 사격거리를 줄이면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앞으로 나갈 때었다.
     “따 웅!”
     백두산이 떠나갈듯이 호랑이가 울었다. 호랑이는 성칠이 다가가자 팔뚝 같은 꼬리를 휘젓다가 꼬리 빳빳해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성칠이 보니 호랑이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어느새 산비탈에 오르더니 흐릿한 하늘과 눈 덮인 산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성칠은 맥이 진해 호랑이를 뒤쫓지 않고 검둥이와 함께 산 아래로 부랴부랴 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두폭포에서 쏟아진 맑은 물은 집채 같은 청석바위를 부시면서 흰 물갈퀴를 일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쏜살같이 흐른다. 마치 성난 백마가 수없이 청석바위우로 달리는 듯 쏴-쏴 소리치며 산기슭으로 굽이굽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오- 이 강이 바로 천지 동북쪽에서 흐르는 백하겠구나. 저 내륙에 가서는 송화강이고.”
    성칠은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그 백하에 다가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퍼 시원히 마셨다. 그러니 가슴에 백두 열여섯 봉이 솟는 듯 새 힘이 솟구쳤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백하는 천고의 원시림을 적시면서 흘러지나 동북평원을 적시면서 송화강으로 탈바꿈하여 나중에 흑룡강과 우쑤리강과 합쳐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백두산 동남쪽기슭에서 발원한 700리 두만강은 동해바다로 흐르고 백두산 서쪽기슭에서 발원한 푸르른 압록강은 서쪽으로 흘러 발해와 황해 어구에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그렇다, 송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원동의 이 땅을 적시면서 흐른다. 더 많은 수난사를, 더 높은 소리로 두런두런 아야기를 나누려고, 민족의 빛나는 력사를 더 높이 노래 부르려고 골짜기 어구에서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더 크고 세찬 강을 이루면서 바다로  몇천년, 아니, 몇만년 줄곧 흘러갔다.지만 끝내는 넓은 바다에 가서 만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바다에 오는 길에 수많은 수난을 겪은 이야기하면서 대성통곡치지 않는가.
     백두산은 줄기줄기 뻗어 개마고원의 수많은 산과 태백산과도 이어졌고 북으로 줄기줄기 뻗어져 대흥안령과 소흥안령과 이어졌으며 서북쪽으로 료동 반도와 발해에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동으로는 장고봉을 넘고 우쑤리강을 넘어 저 동해에까지 천고의 비밀을 안고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이때 검둥이가 또 앞으로 뛰여나가면서 “왕!왕!” 짓기 시작했다.
    성칠은 어께에서 총을 내리어 개가 짖는 쪽으로 겨냥하면서 살펴보았다. 금방 달아났던 호랑인가고 경계하였는데 웬 사슴이 절룩거리면서 김이 물물 나는 강물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검둥아! 축!”
    성칠이 지령을 받고 검둥이가 사슴을 쏜살같이 쫓아갔다. 사슴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절룩거리며 눈밭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상한 다리를 가지고 뛰면 어디로 뛴단 말인가! 검둥이가 사슴을 거의 따라 잡을까 말까 할 때 사슴은 김이 물물 나는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 건너갔다.
    웬 일일까?
    그 김이 물물 나는 강물을 건너더니 사슴은 다리를 절룩거리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검둥이가 아무리 쫓아가도 거리는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멀어졌다.
     “제길! 그럴 줄 알았더면 총을 갈겼겠는걸.”
     성칠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 하였다.
     “검둥이야! 돌아오너라. 호랑이라도 만나겠다.”
     검둥이는 꼬리를 흔들거리면서 뛰어왔다. 사슴을 놓쳐 미안하다는 듯이 검둥이는 대가리를 눈밭에 파묻을 상하면서 엎드린 채 끼깅거렸다.
    “괜찮아! 어서 내려가자! 날이 어두워지는구나!”
    백두산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고 풍설이 일면서 무서운 귀신의 곡소리와 같은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칠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일어나고 허기지면 그물 속에서 꿩 다리를 빼서 검둥이와 함께 끊어 먹고 갈증이 나면 눈을 한 움큼 움켜쥐어 먹으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산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마가을 해는 빨리도 지고 있었다. 벌써 해는 빛을 거둬가지고 물러서고 어둠이 원시림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휘파람을 불려 여기저기 수림에서 으르릉거리는 이리떼들의 소리와 무시무시한 죽음의 노래를 연주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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