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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2권 (29) 살인멸구(杀人灭口) 김장혁
2024년 08월 20일 11시 05분  조회:61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제2
           김장혁
 
       29.  
살인멸구(杀人灭口)

 
    구치소 철문이 드르릉 닫히는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린다.
    여경의 구두발 소리가 디똑디똑 멀어져가는 소리 들린다.
    류려평은 감방 돌아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녀는 금방 면회실에서 갈라질 때 딸애의 처량한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 참을 길이 없었다.
     순간 속으로 무엇이 울컥 치밀어올라와 왈칵 토했다.
     “앗, 더러워!”
     다른 여수감자들이 손으로 코를 막고 구석으로 피한다. 어떤 여수감자는 표독스런 눈길로 류려평을 흘겨 보았다.
     류려평은 빗자루와 쓰레바퀴를 들고 와서 개먹어리를 쓸어 담아 구석에 쓰레기통에 훌 쏟아넣었다. 그러나 더러운 악취가 온 감방 안에 풍기었다.
     여기저기서 여수감자들의 불평의 목소리가 귀전을 시끄럽게 굴었다.
     (짖어대겠으면 콱 짖어대라. 개는 짖어도 의연히 필림은 돌아간다.)
    류려평은 여수감자들이 두덜대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침대에 돌아와 훌 들어누웠다.
    순간, 류려평은 삼검풀처럼 착잡한 만감이 교차했다.
    금방 면회실에서 려향한테 마지막 부탁을 해놨기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났다.
    (문학박사니깐. 엄마 암시를 알아들었겠지.)
    류려평은 마지막 부탁까지 해놨기에 시름을 싹 놓았다.
    그러나 류려평은 금방 려향한테 종호를 친아버지 아니라고 말해 버린 것이 마음에 좀 걸렸다.
    (실수했는가? 려향은 지금 쯤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겠는가? 허나 아무 때건 말해줘야 해.)
    류려평은 려향한테 종호가 친아빠 아니란 말을 이제까지 줄곧 하지 못했다. 그것은 딸애 앞에서 창피한 자기 사생활을, 세상에 보기 드문 불륜을 드러내놓기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이 시각, 생명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는 이 시각에 더는 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친애비 아니란 걸 알려줘야 해. 그러잖으면 려향은 효녀여서 내 인생 전부를 파다가 종호 놈새끼하구 함께 향수할게 아닌가? 안돼. 종호가 려향과 함께 그걸 쓰게 해선 절대 안돼. 계집애두 엄마 절반만 돼도 제 노릇 할 건데. 참.)
    그러나 류려평은 한편 스스로 위안되기도 했다.
    (친애비 아니란 걸 알면 려향은 한평생 엄마 인생 전부를 혼자 향수할 거야. )
    류려평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근심이 산산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한국에 도망나와 얼마 안돼 귀신이 곡할 지경으로  여경들한테 납짝 나포된 일을 생각하니 또 억이 막혔다.
    (참, 한심해. 한국에 나온지 일주일도 안돼 구치소에 갇히다니?”
    그녀는 퉁사발눈을 스르르 감는 순간 류덕재의 말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류덕재 말이 맞아. ‘젤 위험한 적은 항상 내 곁에 있어.’ 내 은행 지행장을 하면서 대부금을 내주고 아파트랑 얻어먹은 일은 종호 밖에 모르잖는가. 그 놈새끼를 내놓고 누가 날 또 물어먹겠는가.)
    류려평은 마녀처럼 상통이 흉측하게 이그러졌다.
     마녀는 퉁사발눈을 부릅뜨더니 이빨을 쁙쁙 갈며 윽별렀다.
    “내 저승에 가서라도 네놈을 물어뜯어놓을 테야.”
    류려평은 또 류덕재도 원망하기 시작했다.
    (류행장, 당신은 날 한국에 도망치게 했지.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중국에 있었으면 내가 무슨 이런 고해를 겪겠는가.)
    어느 하루 류덕재 행장은 류려평을 항상 은밀히 만나던 다방에 오라고 불렀다.
    류려평은 벤츠를 몰고 불안한 심정으로 교외 산기슭에 자리잡은 별장 같은 다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벤츠도 류덕재가 류려평한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류덕재는 아빠트에 벤츠까지 류려평한테 주었고 지행장이란  권력도 주었던 것이다. 때문에 류려평은 죽으라는 말 외 류덕재 말은 다 고분고분 들었다.
     교외 산기슭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은 별장 다방은 류덕재가 암암리에 마련한 것인데 아가씨들과 은밀히 만나는 장소였다.
     류덕재는 근년에는 보통 큰 일이 없이는 류려평을 그리 부르지도  않았다. 류려평도 이젠 60대 초반이 다 돼 녀자로 써먹기는 글렀다고 여겼던 것이다.
    “늙어 쭉쭉 한게 이젠 짜릿한 자극도 없어. 진짜 늙어빠진 페허암소야. 메스껍다. 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초두부처럼 야들야들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아야지.”
    류덕재는 이젠 류려평을 애인으로 보는게 아니라 부담거리로 여겼다. 그런 줄도 모르고 류려평은     류덕재를 보고 쩍하면 금목걸이를 달라, 금팔찌 달라 한다.
    (그년은 내 밑바닥을 잘 아는 시한폭탄이야.)
    류덕재는 이 시한폭탄 꼬리를 천방백계로, 시급히 잘라버려야 했다.
    류려평이 어둑시그레 음침한 다방에 들어서자 류덕재는 쏘파에 틀스레 앉아 머리짓으로 맞은 켠 쏘파를 가리켰다.
     “앉아.”
    류려평은 쏘파에 앉아 류덕재 두툼한 입술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가 조마조마해 마음을 조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류덕재는 거만하게 말상을 기웃거리며 커피를 훌훌 불어 마시면서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답답한 침묵이 류려평의 가슴을 괴롭히며 일분, 일초 재깍재깍 흘러 지나갔다.
    류덕재는 커피잔을 들고 류려평을 힐끔 곁눈질했다. 이윽고 뻐드렁이빨을 드러내며 살기 찬 혓바닥을 날름거리었다.
    “려평아, 당장 한국에 도망가라. 수사부문 한 친구 말하던데, 수사부문에서 널 암암리에  수사한다더라. 아마, 종호, 그 놈새끼 고발했는지도 몰라.”
    류덕재는 곁에 있는 이 시한폭탄을 멀리 날려보내려고 작심했다.
    류려평은 깜짝 놀랐다.
    “네?! 종호? 그 놈새끼. 명색이 부부인데 차마 그럴 수 있을까요?”
   류덕재는 코웃음쳤다.
   “픽,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란 걸 몰라? 적은 항상 자기 곁에 있어.”
   “오빠, 이걸 어쩌오?”
   류려평은 류덕재 곁에 옮겨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류덕재 한 팔을 붙잡고 매달리면서 애원했다.
    “오빠, 날 살려 주오. 오빤 정법계통에 친구가 많잖소?”
   류덕재는 우멍눈에 간사한 미소를 게바르면서 장담했다.
    “그래,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구할 거야. 네가 잘 못되면 내 인생도 살멋이 없게 돼.”
   류덕재는 류려평이 나포되면 수사부문에서 류려평이란 이 넝쿨을 따라  자기 밑을 들추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던다.
   (이년 시한폭탄을 멀리 한국에 내보내 제거해야 해.)
  류덕재는 류려평이란 후환을 제거할 묘수를 꾀했다.
   “나포되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한국에 도망쳐라.”
   “네?”
   류려평은 눈 앞이 캄캄해났다.
    “한국에 나간다고 나포되지 않는다는 담보는 없잖소? 인터폴 적색지명수배가 따라 붙으면 한국에 나가도 나포돼 중국에 인도되겠는데.”
   류덕재는 개의치도 않았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널 한국에 어선으로 밀항해 내보낼게. 그럼 누가 한국에 간 걸 안다더니?”
    “네-”
    그제야 류려평은 절반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럼 오빠만 믿겠소.”
    그녀는 류덕재 팔을 붙잡고 당황한 얼굴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류덕재는 류려평의 얼굴을 매만져 주면서 안정시켰다.
    “그래. 내 있는 한 근심하지 말라. 네가 한국에 도망가면 중국은행을 통해 네 딸한테 생활용돈을 보내줄게.”
    뒤이어 류덕재는 더욱 악독한 궤계를 내놓았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려향네 집에 가지 말라. 종호도 있으니까. 그 놈은 시한폭탄이야. 그 놈 후환을 없애야 하겠는데.”
   류려평은 섬찍해났다. 그녀는 류덕재 어깨에서 머리를 쳐들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부 정은 없어도 어찌 종호를 살해까지 하오? 안되오. 살인죄를 지면 총살당할 거 아니오?”
   “흥!”
   류덕재는 코방귀를 뀌었다.
   “그 놈이 살아 있는 한 넌 편안한 날이 없어. 한국에 나가 그 놈을 꼭  없애치워라.”
   “무슨 소리? 괜히 살인죄까지 져 총살맞겠소. 난 종호를 살해까진  못하겠소.”
   류덕재는 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음흉한 꿍꿍이를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종호를 없앨 묘책이 있어.”
   “어떻게?”
   류덕재는 말상을 류려평의 귀에 대고 음흉하게 귀속말을 지껄이었다.
    “안락사를 시킨단 말이야. 그럼 넌 살인죄도 안 쓰고 후환을 없애치우게 되잖아. 일거량득 아니야?”
   류려평은 그때 고개를 숙이며 커피잔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잡았다.
   “안락사?”
   이윽고 그녀는 큰 마음을 먹고 쓰디쓴 아메리칸커피를 한잔 쭉 냈다.
   “어떻게 안락사시킨단 말이오? 좀 구체적으로 말하오.”
   “염화칼리움으로 안락사시키지. 넌 집이 빈 기회를 타서 날마다 종호 먹는 장국에 염화칼리움을 몇방울씩 떨궈 넣어라. 그럼 그 놈은 천천히 죽게 되지. 그럼 어째 죽었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죽게 돼.”
   “염화칼리움? 그게 묘책이군요.”
   “그래, 내 미리 준비해뒀어.”
   류덕재는 벽 궤에 가더니 까만 병을 꺼내 류려평한테 주었다. 살인마 류덕재  우멍한 눈에서 살기가 무섭게 번쩍였다.
    류덕재는 류려평의 손을 빌어 종호란 시한폭탄을 제거하고 또 나중에 한국 수사당국의 손을 빌어 살인죄를 쓴 류려평이란 시한폭탄을 제거하려고 들었다. 그는 류려평이란 꼬리를 잘라버려야 자기 죄행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궁리했던 것이다.
   얼마나 음험한 놈인가! …
   그러나 류려평은 류덕재의 음흉한 음모궤계는 하나도 모르고 류덕재 면밀한 배치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녀는 한달 전에 천신만고 끝에 어선을 타고 한국에 나왔다. 그런데 려향한테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니 알려주지도 않아 손 쓸 기회가 없었다. 종호가 생사선에서 헤맬 때에야 려향은 엄마한테 아빠 병실을 알려주었다. 그제야 천재일우의 손 쓸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살인마녀 류려평은 종호가 쓰러져 링겔을 맞을 때 염화칼리움을 링겔병에 직접 주사해 안락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종호가 정신 잃은 척 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바람에 안락사 암살은 실패했고 류려평은  나포돼 구치소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류려평은 구치소에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야? 종호를 안락사시켜 살인멸구(杀人灭口)하지도 못하고, 참, 재수없어. 종호, 그 놈 후환을 없애기 전엔 무사할 날이 없는데.)
    마녀는 구치소에 갇힌 몸인지라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악처는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여 입을 틀어막겠는가고 베아링처럼 궁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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