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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6) 미련 김장혁
2024년 07월 11일 10시 34분  조회:44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6. 미련

 


  지칠대로 지친 혼은 종호의 머리에 되돌아와 대뇌에 스리슬쩍 들어가 앉았다.퐁퐁 솟는 샘물로 홧홧 달아오른 목을 마음껏 축이고 싶었다.
  갑자기 독사가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모래불에서 기어나와 마라토너의 종아리를 딱 깨문다.
  전갈도 점프하면서 집게발로 발목을 집어 문다.
  “악!”
  마라토너는 모래불 위에 털썩 쓰러진다.
  그는 손으로 발목의 전갈을 쳐댄다. 입으로 얼룩독사를 물어뜯는다. 그러나 독사와 전갈은 마라토너 발목을 놓칠 않고 악착스레 물어뜯는다 …

  “사람 살려라!”
  종호가 비명을 질러댔다.
  “아빠, 깨나세요.”
  려향은 종호의 머리를 받쳐안고 쓰다듬어주었다.
  옆에서 류려평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정신 차리면 알려라.”
  그녀는 춘희 박사한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살아날 가망이 있는가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신 차릴 거 같아요. 손목의 정맥을 끊었을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빈혈이 심해요. 또 수혈해야겠어요.”
  려향이 팔을 걷으며 나섰다.
  “제 피를 수혈해요.”
  “이미 숱한 피를 수혈했는데 괜찮겠소? 혈고에서 혈장을 가져다 수혈해도 되오.”
  려향은 옆의 침대에 누우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저의 피를 수혈하세요. 다른 사람의 피보다 딸의 피를 수혈하는게 젤 좋을 거 같아요. 후유증도 없고…”
  춘희 박사는 려향의 효성에 자못 감동됐다.
  “심청보다 못잖은 효녀군요.”
  그러나 류려평은 종호를 돌아다보며 눈을 흘기었다.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헌 독이 성한 독을 쳐 마스고 말 작정이구나. 그 잘난 애비를 구하다가 하나 밖에 없는 딸마저 잡아 먹겠다.)
  그녀는 딸의 팔 혈관에서 흘러나온 빨간 피가 비닐호스로 해 종호의 손목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퉁사발눈을 슴벅이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딸의 옆에 다가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저 양반, 도대체 어떻게 자살하자고 한 거냐?”
  려향은 회상하기도 싫은 참사를 어머니한테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학원에서 셋집에 돌아오니 안으로 문이 걸리어 있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아빠를 불러도 문을 열지 않잖겠어요. 그래서 주인집 어른한테 알렸지요. 주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야 셋집에 들어가보았지요…”
 
  그때 려향은 셋집 구들에 쓰러진 아버지, 아버지 손 목에서 구들바닥에 줄줄 흐르는 시뻘건 피를 보고 기절할 번 했다.
  려향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쳤다.
  “아빠! 왜 이래요? 바보처럼 왜 이레요? 네?!”
  집 주인은 꿇어 앉아 손을 종호의 코 앞에 대보고 고함쳤다.
  “아직 살아 있어. 이럴 새 없어!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해.”
  집 주인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려향은 긴 치마자락을 쭉 찢어 아빠 손목을 꽉 동이었다. 좀 지혈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달려왔다. 구급대원들이 침대를 들고 콧구멍만한 셋집에 달려 들어왔다…
 
  춘희 박사가 나가고 병실에는 간호원이 남았다.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머금고 애원했다.
  “어머니,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치뜨며 딸을 내려다 보았다.
  “뭔데?”
  려향은 간호원이 자리를 잠시 비우자 마음 속에 오래동안 품었던 말을 꺼냈다.
  “아빠하고 함께 삽시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대번에 희번뜩거리었다.
  “되지도 않을 소릴!”
  “왜?”
  류려평은 외씨처럼 수척해진 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네 아빠는 가정 살림살이를 할 사람이 아니야. 누가 저 나그네와 살면 누가 곤경을 당해.”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딸의 전도를 봐서라도 함께 살면 안 돼요? 아빠는 사회에선 둘도 없는 사업가이죠. 당당한 신문사 부사장이 아닌가요? 우리 민족을 위해 많은 일 해 존경받는 분이죠.”
  “지금 그런 책 내는 거 누가 환영하기나 하겠구나. 건데 네 애빈 책 내느라고 하나 밖에 없는 아파트마저 다 팔아먹은 바보야. 지금 누가 책을 봐? 온라인시대에 참. 더 말하기도 싫어.”
  “아빠는 효자지요, 살림을 잘 못하면 차차 내 아빠를 고치게 말씀드릴게요. 우리 세 식구 함께 살자요.”
  류려평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관둬. 다신 말도 말아. 우린 쌍방이 자원해서 졸혼한 거야. 각기 자기 삶을 살아왔어. 효녀라면 부모들의 생활질서를 파괴하지 말아야 해. 알만해? 우리 일에 작작 끼어들어라. 좀.”
  말을 마치자 류려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었다.
  “어머니! 어머니!”
  문께서는 봄날에 차디찬 바람이 휙 불어들어올뿐 려평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아빠가 불쌍해 엉엉 울었다.
  그때 종호는 꿈인지 생신지 금방 모녀 지간에 주고 받는 말을 다 들었다.
   뒤이어 그는 넉두리인지. 잠꼬대인지 중얼거리었다.
   “귀여운 딸아, 내 유언 들어 봐. 아빠도 저런 불효녀와 함께 살려는 생각 하나도 없어. 어쩐지? 려평을 보면 허연 백골로 보인다. 허연 해골, 쑥 꺼져 들어간 눈확, 악문 이빨... 무섭다. 여악마의 그 몰골.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려평과 복혼은 절대 없다. 나는 려평과 졸혼하고 얼마나 날듯이 기뻤는지 몰라. 너도 알지만 난 졸혼하고서야 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잖아. 그런데 딸이 마음이 아파할가 봐 복혼하라고? 힘들구나. 제발 날 놔 달라. 절대 동정하지 말라. 이젠 나를 가고 싶은데로 가게 놔둬라.”
아빠의 절절한 유언 같았다.
  그러나 려향은 대노해 부르짖었다.
  “아빠, 난 절대 부모가 갈라서 사는 걸 놔둘 수 없어요. 조강지처를 버리다니오. 으흐흑, 흑흑흑.”
  아, 가엽구나, 엄마, 아빠를 억지로라도 함께 살게 하려는 딸의 눈물 겨운 효심.
  허황하구나, 바람 따라 허깨비처럼 날려가는 아빠 혼의 끝자락을 잡고 놓치려고 하지 않는 미련의 한숨소리.
  아빠 얼굴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가슴을 어이는 슬픔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니, 효녀의 효심이 방울방울 피눈물로 맺혀 떨어지며 대성통곡친다.
   그 대성통곡 소리는 아빠 엄마를 한 구들에 모시고 살려는 려향의 미련의 한탄소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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