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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2) 오누이 김장혁
2024년 06월 05일 12시 09분  조회:63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7장 흑야

        3. 오누이
 
 
   흐릿한 하늘이 운주동을 지지 누르고 있었다. 비도 내리지 않고 갑갑하게 대지를 덮고 있는 먹장구름이 밉살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느날 명옥은 봉인 오빠랑 공부하는 서당 방 문 뒤에 달려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붓으로 쭉 그어놓은 듯 짙은 버들잎 눈썹아래 엄한 눈길로 나가라고 눈짓했다.
  최구장은 은빛수염을 슬슬 쓸며 못 마땅한 눈길로 명옥을 쏘아보았다.
  할아버지가 겁나 명옥은 아래 방으로 해서 정주간으로 달아났다.
  그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 칭얼거렸다.
  “엄마, 나두 오빠랑 함께 공부할래. 응~응.”
  옥실은 철없는 어린 딸이 불쌍해 명옥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얼굴을 대고 상냥한 어조로 달래였다.
  “얘야, 옛날부터 여자애들은 공부를 하지 못한단다. 여자애들은 베실을 뽑고 밥을 지어야 해.”
  명옥은 머리를 도리도리 하면서 떼를 썼다.
   “난 베실 뽑기 싫습니다. 나도 오빠처럼 공부하겠소. 엉~엉, 흐흑.”
  옥실은 눈물줄기가 쏟아지는 명옥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달래였다.
   “응, 할아버지한테서 배우지 못하면 오빠 먼저 배운 다음에 오빠한테서 배우자. 그만 그쳐라. 할아버지가 듣고 위방에서 나와 또 곰방대로 이마를 치겠다. 딱 그쳐라.”
    명옥은 흑흑 흐느끼면서 울음을 그치더니 옥실의 품에 안겼다.
   한참 칭얼거리던 명옥은 옥실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잠들어버렸다.
  옥실은 쌔근쌔근 잠자는 딸을 꼭 껴안고 다독이면서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명옥은 쌔근쌔근 자면서도 흑흑 흐느끼곤 했다. 옥실은 명옥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베개를 베워주고 누더기이불을 덮어주었다.
  뒤이어 그녀는 헛간에 나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천정 대들보에 기대여 놓고 올라가 메주덩이를 뜯어 북데기를 펴놓은 바닥에 내리 떨어뜨렸다.
   마지막에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메주덩이가 천정에 매달린 채 남아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손가라 끝도 닿지 않아 이마에 콩알 같은 땅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드디어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나며 무수한 별빛이 반짝거리며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녀가 마지막 메주덩이를 달아맨 새끼에 손을 뻗쳐 뜯으려는 순간 졸지에 바깥에서 나까노라 소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뭘 해?!”
  옥실이 바깥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내다보다가 몸이 기우뚱하며 사다리에서 허공 퉁 떨어졌다.
  “앗!”
   그 모진 소리에 미닫이문이 쫘르륵 열리면서 서당에서 어른들이 무슨 일인가고 부엌간 쪽으로 달려 내려왔다.
  옥실은 메주덩이가 널린 북데기 위에 떨어지면서 그만 땅바닥에 머리를 탕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엄마!”
  명옥도 깨나서 방바닥에 떨어져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 달려가 흔들며 울었다.
  경숙과 경민은 부랴부랴 옥실을 안아다가 가마 목에 눕혔다.
  “여보, 이게 웬 일이요? 어이구, 이 일을 어쩌오?”
  뒤늦게 정주간에 내려온 최구장은 정주칸 바닥에 널린 메주덩이를 둘러보고 경숙을 나무랐다.
  “너 메주를 뜯어 줄 게지 이게 뭐냐? 아녀자가 저렇게 높은 대들보의 메주를 뜯다가 잘못되다니. 엉? 이런 일이 또 어데 있냐?”
  경숙은 수건으로 옥실의 얼굴의 먼지를 닦아주면서 중얼거렸다.
  “메주를 뜯겠으면 말할 게지. 이게 뭐요? 저 높은 대들보에 올라가다니? 흑, 흑.”
  옥실은 정신을 잃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꼭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다행이 북데기 위에 떨어져 어데 피가 터진 곳은 없었다.
  한식경이 지나자 옥실의 얼굴이 점점 팅팅 부어올랐다. 눈언저리는 까맣게 번지어 갔다. 거품을 문 입술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 같았다.
  “어이구, 여보, 깨나오. 일어나오. 저 오누이를 두고 누워있으면 어쩌오? 어이구.”
 경숙은 울상이 되여 구들을 치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푸푸 몰아쉬었다.
 봉인과 명옥은 옥실의 양손을 쥐고 흔들면서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 쳤다.
  “엄마, 일어나.”
  “엄마~ 깨나~”
  이때 형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옥실을 들여다보다가 일어나면서 최구장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머리 터진데 없급꾸마.  피 안터졌지만  내상은 더 위험합니다. 오히려 나쁜 피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면 덜 위험한데요. 어혈이 머리 안에 있기에 더 나쁩니다. 부중이 와서 머리가 붓긴 걸 보시오. 목숨이 위험합니다. 빨리 우리 할   아버지한테 보입소.”
  그러나 최구장은 피씩 입귀로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뭘 알아 그래? 분명 가난이 덮씌운 이 집안에 병 귀신이 덮친 게다. 이건 의학이나 약으로 치료해 살릴 수 있는 병이 아니야.”
  최구장은 의학보다 신을 믿었던 것이다. 그도 옥실의 상처는 약으로 치료해 될 게 아니다. 하느님과 신께 맡겨야 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맏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노력을 하고 싶었다.
   옥실을 둘러본 마을사람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더니 집으로 돌아가 쌀독에서 좁쌀 한바가지, 감자 한 대야라도 들고 와    옥실을 구하는데 보태 쓰라고 했다. 뒤늦게 병완은 불붙이에서 사는 맏손녀 어금에게서 최구장 맏며느리의 불행한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 금덩이 몇 덩이를 내놓았다.
  “맏며느리 이렇게 상해 안 됐소. 이걸로 사돈며느리 치료를 해줍소.”
  “이건 어데서 난 금덩어리들이오?”
  “이건 이전에 성칠이 웅진의 날강도 백승만의 걸 빼앗은 거요. 근심하지 말고 쓰오.”
  최구장은 병완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는 사돈어른의 금덩이를 받아 경숙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창준과 기준 두 집 식구들도 소문을 듣고 각기 동전을 가지고 와서 보태 쓰라면서 문안을 여쭈었다.
  최구장은 문안하러 온 동네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며느리가 불쌍하여 중얼거렸다.
  “요즘 쌀독을 빡빡 긁더니 분명 죽물도 모자란다고 애 어미 제대로 잡숫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굶은 며느리가 저 높은 대들보에서    메주를 뜯다가 어지름 증에 떨어진 거다.”
  최구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마루에 나가 까마귀가 우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장탄식을 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린 대대로 양심 어긴 적 없소이다. 하늘과 땅에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남을 해친 일은 더욱 없소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이 웬 날벼락인고. 아이고~”
   최구장이 마루에 물앉아 대성통곡치자 자녀들이 달려가 아버지를 부축해 위방에 모셨다.
  봉인과 명옥이 할머니 품에 안기면서 서럽게 울었다.
  최구장 댁 성단은 동전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봉인과 명옥을 며느리에게 먹이려고 부엌 칸에 내려가 좁쌀을 씻어 솥에 얹었다. 그러자 둘째며느리 어금이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때였다.
  이때 관준이 침통이랑 가지고 들어섰다.
  “사돈어른, 큰며느리 상해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봅시다. 어디를 상했는가?”
  최구장은 멀찍이 서서 관준 영감이 옥실의 맥을 보고 팅팅 부어오르는 얼굴의 상처를 보는 것을 별로 희망을 두지 않고 볼 뿐이었다.
  “어떻소?”
  경숙의 물음에 관준 영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비끼었다.
  “약을 많이 써야 될 것 같소.”
  뒤이어 관준은 경숙의 귀에 대고 뭐라고 여쭈었다.
  경숙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내 손을 만지면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처량한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옥실이 입술을 옴직거리더니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귀밑으로 줄줄 떨어졌다.
  “여보, 정신을 차리오. 양? 새파란 나이에 애들을 두고 이게 무슨 일이요? 여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
  경숙의 울부짖음 소리에 온 집 식구들은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나까노라는 서당을 감시하러 왔다가 옥실을 문안하기는커녕 개 닭 보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꼬리를 빼는 것이었다.
   경숙은 아내를 살려달라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신에게 빌었다.
   “오, 청청 하늘이여, 부디 어질고 불쌍한 옥실을 굽어 살펴 살려주옵소서. 부지런하고 곱살하게 생긴 옥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다지도 일찍이 서른 살도 안 된 꽃나이에 데려가려고 하는가? 아직 철도 들지 못한 다섯 살짜리 아들애 봉인과 네 살 밖에 안 되는 딸애 명옥을 두고 어떻게 갈수 있단 말인가? 그 귀한 오누이를 당신이 기르지 않고 떠나가면 어떻게 하는가?”
   그는 하늘과 땅에 빌다 못해 이번에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에게 빌고 또 빌었다.
   “염라대왕이여, 불쌍한 오누이를 생각해서라도 옥실을 살려주옵소서. 당신도 눈이 있고 귀가 있잖은가? 염라대왕님이여, 이 딱하고 어려운 옥실의 사정을 봐서라도 살려 주옵소서. 제발 살려 주옵소서.”
   허나 어린 오누이는 뜻밖의 사고로 끝내 어머니를 여의는 불운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옥실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의식을 잃은 채 각일각 경각을 다투고 있었다. 그녀는 불쌍한 어린 오누이를 두고 이미 세상을 뜨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게 될 오누이 불쌍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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