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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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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제10편 내가 받은 첫 연애편지 댓글:  조회:1868  추천:1  2014-09-20
   부모없이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나는 사랑이 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자랐다. 천진란만했던 소녀인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청춘기를 맞았다.  어느날 나는 문뜩 이름모를 남자한테서 연애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나는 당황했다. 성부지명부지 전혀 모를 사람인데 왜 연애편지를 했을가?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와 같은 일이었다. 그러던차 얼마후에야 나는 그 영문을 알았다.   알고보니 당시 “영미사진관”이라는 연길시 사진관, 광고란에 내 사진이 크게 걸린 것이었다. 사진은 또 어떻게 된 영문일가? 그것도 알고보니 사진관 주인이 내가 예쁘다고 나 몰래 가만히 사진을 찍어 내 허락도 없이 광고용으로 내건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당시 연변대학 제1기생 학생들 가운데서 사진에 반한 학생들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만 내가 우전국에 있다는것과 처녀라는 것 밖에 모르고 무작정 연애편지를 쓴 것이다.   숱한 총각들이 달라붙었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눈발처럼 날아왔다. 그러던중 어느날 한 편지는 “사랑하는 최인순씨”라고 썼다.  (이건 또 웬일인가? 최인순이라면 우리 할머니인데)  후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내 이름을 알기위해 가만히 우리 초가집을 찾아왔는데 마침 문패에 “최인순”으로 써있어 그 것이 내 이름인줄 알고 편지를 쓴 것이었다.   연애편지에는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말, 멋진 문구는 다 써있었다.  꽃 보다도 이쁘다느니, 초록빛 호수보다도 더 맑은 눈빛이라느니,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매라느니 실로 영내편지는 아름다운 어휘의 집대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지가 오는 족족 조직에 바쳤다. 만나자는 사람이 있어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총각들이 내 뒤를 줄줄이 따라다녔다. 강변에 빨래하러 가면 강뚝에서 나를 지켜보고 영화관에 가면 영화관에서 글쪽지를 내 손에 가만히 쥐어주고, 밤 늦게 퇴근하면 어디에서 기다렸는지 불쑥 나타나 내 뒤를 따르곤 하였다.   어느날 밤 나는 퇴근길에 누군가가 뒤에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빨리 걸으면 그도 빨리 걷고 내가 천천히 걸으면 그도 천천히 걷고, 나는 겁이 왈칵 났다. 거의 달음박질을 하다시피 집에 와 문고리를 당기며 “개새끼”하고 욕을 했다. 그랬더니 이튿날 또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어젯밤 뒤를 따랐던 사람입니다. 욕을 얻어먹고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순진한 처녀만이 이런 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욕심낸 사람 가운데는 조선족도 있고 한족도 있었다. 당시 전업국의 한 한족은 내 친구들에게 내 옷을 하자면 천이 몇 미터나 드느나고 묻는가 하면 자기는 조선말을 모르니까 지금부터 조선말을 배우겠다느니 하면서 호의를 표했다. 나는 당시 당지부서기인 리병직을 아버지처럼 믿고 크고 작은 일 모든 것을 그에게 보고하였다.   어느날 당지부서기가 조용히 나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이 몹시 복잡하다. 너에게 편지 쓰는 사람들 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너는 우리 우전국의 모법이고 보배인데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 때 그의 말은 최고 지시나 다름 없었다. 무조건 따라야 했다.        
83    월인천강 댓글:  조회:3839  추천:2  2014-09-07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2대 명절입니다. 예로부터 설날이 한해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명절이라면 추석은 여름 동안 땀을 흘린 보람을 거두면서 풍요로움을 느끼는 명절로 전해 내려 왔습니다. 하기에 추석을 두고 《모든 곡식은 익고 과일은 풍성한데다가 날씨는 덥지도 차지도 않고 달은 밝아 속시원하니 가히 명절 중의 명절이라》고 읊조린 옛 시가 있습니다.  추석은 풍성한 수확을 도와준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 드리고 가족과 단란히 모여 앉아 함께 즐기는 명절입니다.  생활의 세파에 쫓기던 사람들도 세속의 욕망을 잠시 버리고 부모의 품으로 고향의 품으로 달려가서 조상들에게 제를 지내고 고향의 이웃 어른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며 순수한 인정을 나눈다는 추석입니다. 그 추석을 앞두고 고향 떠나 타향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것이 부모 생각, 고향 생각입니다.  옛 시에 월인천강이란 시구가 있습니다. 달은 하나이지만 그 모습은 천 갈래 강에 모두 비껴 있다는 시구대로 추석의 뜬 보름달은 산이나 바다, 도시나 시골이나 골고루 비춰 줍니다. 달보고 님 생각이란 말이 있다시피 추석의 달을 쳐다보며 부모 형제와 고향을 그리며 그 그리움을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 땅도 똑같이 비춰 주고 있는 유정한 달빛에 실어보는 것 또한 추석날에 달래 보는 조금은 처량하지만 그러나 정이 그윽한 향수가 아니겠습니까.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은 추석에 살림이 어려운 집도 좋은 음식을 장만해 놓고 조상에게 제를 지내고 이웃끼리 서로 정을 나누었고 병자나 거지도 고향에 가서 성묘하도록 성의껏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니 추석은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가 감사해 하고 훈훈한 사랑의 정을 나누는 명절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애가 넘치는 아름다운 명절입니다.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대도시에서 자그마한 삶의 공간인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웃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지내 온 도시인으로서 조상들의 추석날 미풍양속을 헤아려 보노라니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 남을 어쩔 수 없습니다.  분주한 일상에 쫓기고 치열한 경쟁에 지친 몸이라지만 추석날만은 조금은 느긋한 마음이 되어 하늘에 뜬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향수도 달래고 주위 사람들과 훈훈한 인정도 나누면서 추석의 보름달이 둥글고 밝은 만큼 인간들 서로간의 믿음과 앞날의 꿈도 더 부풀고 빛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아야겠다는 것이 추석을 맞는 마음가짐이 아닐 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추석이 여러분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명절이 되길 바랍니다     
82    제9편 날벼락을 맞다 댓글:  조회:1627  추천:2  2014-09-04
   나는 기술능수로, 모범교환수로 이름이 났다. 연변자치구 각 우전국에서 나를 알게 되었고 얼무후에는 길림성우전국에서 조직한 전성 기술표연대회까지 참가했다. 기술표현 항목은 매우 어려웠고 표준도 높았다. 연길시 전화번호를 죄다 외워야 했고 외우는 속도도 빨라야 했다. 전화를 이어주는 300분 사이에 낭비되는 공간시간이 처저로 짧아야 했고 전화를 받아쓰는 속도도 빠르고 오자가 없어야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도 그때 내 머리는 비상했고 솜씨도 놀라울 정도였다. 심사위원들은 노랑운 표정으로 나젊은 조선족 교환수의 솜씨를 지켜보고 나서 나를 전성 1등으로 뽑았다.  대회 지도부는 “방채봉을 따라배우자”라는 호소문을 채택해 전성에 발부했다. 그리고 나의 기술을 소개하는 책 두 권을 출판하였다.   이 소식이 연변자치주에 전해지자 연변 각지에서는 나를 따라배우는 열조가 일어났다. 나는 몸 둘바를 몰랐다. 이 무렵 연변우전국 지도부가 나를 과장으로 승진시킨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은근히 기뻤다. 앞날이 활짝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지도자가 나를 찾았다. “감옥에 갇힌 친척이 있소?” “셋째 할아버지가 역사문제로 감옥에 갇혔다는 말은 들었어도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음, 그렇구만” “저는 고아입니다. 아버지도 친척들도 모두 보지못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지도자의 말 가운데 꼭 무슨 사연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할아버지 쪽으로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막내인 셋째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자위단에 가입한 탓으로 해방후에 감옥게 갇혔다고 한다. 감옥측에서 조사한 결과 별로 뚜렷한 혈채도 없고 해서 석방이 되었는데 석방될 때 사회에 어떤 친척이 있느냐는 물음에 우전국에 방채봉이라는 손녀가 있다해서 그 조사가 나에게로 온 것이었다.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던 셋째 할아버지 문제가 불쑥 튕겨났으니. 그때는 계급투쟁에 신경이 곤두섰던 세월이었으니 친척중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친척들 모두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무렵에 파출소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와 할머니하고 뭔가 조사하기도 했다. 지도부가 나를 보는 시각도 좀 달라졌고 과장 승진은 흐지부지해졌다. 하루는 우전국에서 “중미합작사” 전시관 참관을 조직했다. 나는 “중미합작사”가 뭔지 몰랐다. 그저 합작사라니까 미국과 중국 국민당이 무슨 합작을 해서 만든 기구인줄만 알았지 그것이 국민당과 미국이 공산당을 잡아넣는 감옥인줄 몰랐다.  전시관 입구에서 나는 친구들과 농담도 하고 장난도 했다.  들어가 보니 엄숙한 계급투쟁 전시관이었다. 그제사 “중미합작사”가 뭔지 알았다. 참관하고 돌아오자마자 나한테 불벼락이 떨어졌다. 엄숙한 계급투쟁 전시장에서 웃고 떠들며 장난을 쳤다는 것이었다. 비판대회가 열렸다. “방채봉, 너의 계급본성이 이제야 나타났다.” “무슨 계급본성이란 말이야? 난 빈고농출신인데.” 내가 발칵 대들었다. 곰곰히 생각하니 셋째 할아버지와 나를 연계시킨 것이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을 떨구었다. (보지도 못한 셋째 할아버지가 나와 무슨 상관인데…)  그러나 계급투쟁이 칼부림치던 세월에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나는 당하고만 있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당의 신임을 받을 수가 없었다. 냉냉한 분위기가 내 곁을 감돌고 있었다. 하늘을 원망하랴 땅을 원망하랴 나는 꾹 참고 묵묵히 일만하였다. 
81    30년만에 다시 해빛을 본 소설 "희로애락" 댓글:  조회:3487  추천:4  2014-08-24
 1984년 아들이 태여나 아버지가 된것을 기념해 쓴 단편소설을 꼭 30년만에 다시 대하게 되였습니다. 저의 작품을 기억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글로 된 원작을 여기에 올립니다.) 제2차 중국소수민족문학작품 우수소설상(85년) 제1차 《작가》 문학상 (84년) 제1차 중국작가협회연변분회 영예상(85년)                                            희로애락   머리말     희로애락은 인간상징이다. 인간의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인생은 희로애락의 부단한 연속이라 함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나의 주인공들   나의 주인공들은 혹을 가진 청년들이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인다더니 그들은 다 종양병원 4호 병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들은 수술을 기다리는 청년들이다. 1호 침대는 위 속에 혹을 가지고 있는 상일이가 차지했고 2호 침대는 목에 새알만한 혹이 생긴 윤수가 차지하였다. 그다음 3호 침대는 팔꿈치에 달걀만한 혹을 달고 있는 철삼이가 차지했고 4호 침대는 아랫배 속에 혹을 안고 있는 승대가 차지했다. 이들의 외형은 검다, 희다, 크다, 작다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내두산 수력발전소 노동자인 상일이는 얼굴이 흑인에 짝지지 않을 정도로 검실검실했고 그와 반대로 예술단 독창가수인 윤수는 분 바른 처녀들의 얼굴처럼 하야말쑥했다. 양식 창고에서 마대를 메어 나른다는 철삼이는 농구선수처럼 키가 무척 컸다. 그와 침대를 맞대고 있는 승대는 가두 옷공장의 구입원이였는데 난쟁이나 다름없었다. 철삼의 절반 키나 좀더 될까 말까 한 그의 키를 제대로 말하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딱 1미터 29.9센티미터밖에 안 되었다. 그들은 외형도 달랐고 성격도 각이했다. 상일이는 반고수머리여서 그런지 아련한 편이였다. 그를 되다만 처녀라고 놀려주는 철삼은 키 큰 탓인지 꽤 싱거웠다. 난쟁이 승대는 타고난 천성인지 아니면 나다니는 구입원이 되어 그런지 잠시도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하는 바람개비 성미였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열등감이 앞서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지만 승대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자기를 소개한 끝에 꼭 “난 팔삭둥이여서 키가 채 자라지 못했습니다.” 하고 우스개를 덧붙이였다. 승대는 병원에 입원한 그 시각부터 잠시도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종일 온 병원 안을 쏘다녔다. 맞은쪽 병실에 가서 암으로 입원한 늙은이와 장기판을 벌려놓고 장훈이야 멍훈이야를 불러대기도 했고 가끔 간병원실에 들어가 우스개를 풀어 간병원들로 하여금 배를 그러안고 뱅뱅 돌며 눈물을 찔끔찔끔 짜도록 웃기기도 했다. 심지어는 어느 여 환자가 유선암으로 젖통을 떼냈다는 말만 들으면 어김없이 찾아가 어느어느 곳의 어느어느 병원에선 인공 젖통을 만들어 붙여준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누가 만약 주책머리 없이 별걸 다 말한다고 할라치면 승대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면서 자기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정신적 위안을 주었노라고 호기를 부렸다. 어쨌든 그는 뭇사람들의 재미를 끄는 인물이었다. 그와는 달리 윤수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진종일 그 해사한 얼굴에 짙은 그늘을 띄우고 시름에 잠긴 눈으로 천정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하여 철삼이는 가끔 가다 그를 버림받은 처녀꼴이라고 놀려주곤 하였다. 윤수와 머리를 맞댄 상일이는 눈만 뜨면 베개 밑에서 네 귀가 다 보풀이 인 중학교 교과서며 물리교과서며 화학교과서를 꺼내 놓고 말없이 그것들을 뒤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묻는 말에 겨우 대답이나 하는 정도인 그는 4호 병실에서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액외 사람이었다. 꺽다리 철삼이 또한 인물이었다. 그는 낮엔 짬만 있으면 주패로 처녀패를 놓는 것이 업이었다. 그러다가도 밤이 되기만 하면 간호원 몰래 침대 밑에 넣어 둔 가방에서 큼직한 권투장갑을 꺼내 가지고 창문으로 뛰어나가 밖에 있는 소나무에 대고 한참씩이나 따닥이를 먹인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지금 한창 권투 삼단을 꺾는 중이라고 한다. 넷의 외형, 성격, 직업이 달라서인지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도 달랐다. 승대한테는 거의 모두가 말이 다사한 가두 옷공장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왔고 철삼이한테는 따닥이패들이 자주 와서 어디 가서 술 먹고 주먹을 휘두르던 이야기로 왁작 고아댔다. 고아인 상일이한테는 간혹 가다 수력발전소에서 한두 사람이 올 뿐이었다. 윤수한테는 예술단 배우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중엔 칠칠한 처녀배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올 때면 승대는 언제나 침대에 궁둥이를 눌러 박고 앉아 병실에서 서설거리며 예술단 처녀 배우들한테 자리를 권한다. 물을 따라준다 하면서 각별히 친절을 베풀었다. 어쨌든 승대와 철삼의 기분은 좋았다. 승대의 말대로 한다면 예술단의 처녀 배우들을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젠장, 날 찾아오는 아주머니 네들한테선 아이들 똥오줌 냄새만 펄펄 난단 말이야. 그리고 저 철삼이를 찾아오는 따닥이 패들한테선 피 비린내가 확확 풍기는 게 소름이 끼치거든. 그래도 예술단 배우들이 와야 분내, 향수 내가 풍기고 방안이 환하다니까.” 그러면 철삼이도 윤수도 상일이도 웃음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의 주인공들에게 있어선 소독내만 풍기는 병실에서 티 없는 옥처럼 말쑥하고 고운 처녀 배우들의 얼굴을 본다는 그 자체가 말 그대로 정신상의 유쾌한 향수였으니까. 허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종양수술을 받아야 할 그들에게 있어선 이러한 향수는 어디까지나 순간적이었다. 그들에게는 순간적인 향수보다도 가끔 엄습하는 암에 대한 무서운 공포에 가슴을 졸일 때가 더 많았다. 몸에 혹을 가진 사람들 거개가 그러하다시피 그들도 자기 몸에 돋은 혹이 악성이면 어쩌랴 싶어 은근히 속을 썩이는 중이었다. 암이라면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하기에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암에 걸렸다면 그를 저승의 문턱을 이미 넘어선 저세상 사람으로 점찍는다. 암에 대한 무서운 공포가 본격적으로 나의 주인공들을 엄습한 것은 승대와 자주 장기를 두던 맞은쪽 병실의 늙은이가 시체실 신세를 지게 된 그날 저녁이었다. 4호 병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고 나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얼굴에 슬픈 기색을 짓고 침대에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죽음이란 인생의 한껏 가는 슬픔이니 그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인간의 상정이리라…… 이날 넷은 잠들지 못했다. 한밤중까지 그들은 이리 궁싯 저리 궁싯 침대 소리만 요란하게 내다가 나중엔 약속이나 한 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승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방안의 무거운 침묵을 찢었다. “젠장, 사내대장부들이라는 게 고양이 낙태상이 돼가지고 이게 뭔가? 이러다간 살 놈도 며칠 못 살고 지레 죽겠어.” “아무 때 죽으나 한번 죽겠지 체!” 철삼이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며 승대의 말을 받았다. “자, 이러지 말고 우리 지금부터 자기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일들을 말해 보자구.” 승대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발딱 일어나 전등을 켰다. “승대, 자네가 먼저 말해 보라구.” 그러면서 철삼이는 베개 밑에서 담배를 꺼내 셋에게 한 대씩 뿌려 주었다. 윤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받아 쥔 담배를 철삼이에게 뿌려 주었다. “쳇! 담배 한 대도 피우지 않으니 되다 만 처녀라지. 지금 계집애들은 담배 먹고 술 먹는 놈을 사내답다고 한다니까. 자넨 그저 간호원 계집애들의 환심밖에 못 산다니까.체!” 철삼이의 말에 윤수는 그저 허구프게 웃고 말았다. 승대가 에헴! 하고 일부러 건 가래를 떼고 말 주머니를 풀었다. “자, 모두 잘 들으라구. 이 어른이 지금부터 스물다섯 살을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몇 마디 금싸락 같은 명언을 남기겠소.” 이렇게 나의 주인공들은 목을 옥죄이는 죽음의 공포를 밀어내기 위해 하나하나 차례로 자기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기뻤던 일   승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언젠가 한번 가두판사처에서 조직한 배구경기에서 주심판을 선 것이 가장 기뻤던 일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병실에서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난쟁이나 다름없는 승대가 높다란 심판대에 올라앉아 호기를 빼며 호각을 홱-홱- 불어 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폭소가 터질 일이었다. “볼만했겠소. 그날 배꼽이 빠진 사람 없었소? 으하하…… ” 철삼이는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웃어댔다. “왜 없겠소. 경기장에 배꼽이 쭉 깔렸더구만, 하하하.” 한참 웃고 난 끝에 승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남들한테 쳐다보일 때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웃음주머니가 흔들흔들 하더란 말이오. 그래서 난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 아주머니들에게 점잖게 말했소. ‘내가 키 작다고 웃습니까? 천만에, 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보십시오. 난 이처럼 점잖게 발밑에 있는 아주머니들을 내려 다 봅니다.’ 하하하……” “으하하……” “하하하……” 병실엔 또 웃음이 터졌다. 이윽고 승대는 가까스로 웃음을 거두며 철삼에게 순서를 넘겼다. 철삼이는 선뜻 나섰다. “긴말 할 것 없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일은 권투를 배운 첫 솜씨로 나한테 달려드는 녀석을 본때 있게 쳐 눕힌 거지……” “야, 벌써 피비린내가 풀풀 난다.” 승대가 살짝 꼬집었다. “체! 피비린내를 겁내구서야 주먹질을 배워 낼 수 있소? 이래봬도 난 주먹질을 배우느라고 벌써 열두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열두 번이나!” “야, 그럼 빈혈이나 오지 않았소?” 승대가 비꼬는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고혈압이 올까 걱정이오, 쳇!” 철삼이는 손으로 이마를 착착 소리 나게 쳤다. “그래 누구를 쳤소?”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상일이가 한마디 물었다. “들으나 마나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는 주정뱅이를 쳤겠지.” 승대가 또 비꼬았다. “내가 뭐 주정뱅이나 치고 다닐 놈으로 보이오? 주먹깨나 꽤 휘두른다는 자식을 쳤단 말이오, 쳇!” 철삼이는 주먹까지 내 둘렀다. “범이나 잡은 것 같소.” “야, 무조건 내 말이라면 쌍불을 켜고 달려든다……” “뭐, 쌍불까지야. 그저 한 눈만 딱 떴소, 요렇게.” 승대가 한 눈을 찔끔해 보이며 익살스런 웃음을 던지자 철삼이는 웃고 말았다. 다음은 윤수의 차례였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일이란 건 작년 봄에 청년가수콩쿠르 대회에서 우수독창가수 칭호를 받은 그것이오. 헌데 지금 와선 다 지나간 일이오. 후-” 윤수는 말끝에 맥 빠진 한숨을 달았다. “당신은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소?” 철삼이가 묻는 말에 윤수는 침대에 드러누우며 풀기 없이 대답했다. “이탈리아 민요 「아, 나의 벗이여」를 불렀소.” “그거 좋은 노래를 불렀구만. 야, 지금 기타나 있으면 내가 멋들어지게 반주해 주겠는데……” 철삼이는 자못 아수한 모양이었다. 윤수는 기타 치는 시늉을 내는 철삼이에게 허구프게 웃어 보였다. “이제 보니 당신은 그 단단한 소나무를 치고 박고하던 손으로 기타까지 칠 줄 아는구만. 기타동이 박살나지 않을까?” 승대가 또 웃으며 살짝 비꼬았다. “야, 조것이 주둥이 하나만은 여물었구나……” “그뿐인 줄 아오? 요 새끼발톱까지 땡땡 소리 나게 여물었소, 하하하” 이번에도 철삼이는 그저 웃고 말았다. 철삼이는 승대의 말주변을 당할 적수가 아니었다. 그다음 차례는 상일이한테로 돌아왔다. 상일이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없다구?” 철삼이가 부르짖다시피 물었다. 상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못해 뉘 처녀의 손목이라도 잡아 보던 이야기라도 하라니까.” 철삼이의 말에 상일이는 웃으며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없소?” 이번엔 승대가 물었다. 상일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거 판이 시시하게 깨진다……” “그럼 가장 분하던 일이 있겠지?“ 승대가 재차 묻자 상일이는 잠깐 궁리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럼 그거라도 말해 보오.” 나의 주인공들은 화제를 바꾸어 자기 생애에서 가장 분하던 일들을 더듬었다……   가장 분하던 일   상일의 말은 아주 간단했다. “난 이전에 공부를 잘 하지 않은 나 자신을 가장 분하게 생각하오.” “그래서?” “그저 그것뿐이오.” “야야, 시시하다.” 철삼이는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며 도리머리를 떨었다. “그저 신문을 읽는 것 같소. 당신한테선 더 들을 말이 없겠소. 난 말이오, 쌈할 때 먼저 내뛰는 자식이 제일 괘씸하더구만. 분김 같아서는 그저 단매에……” “이것도 들을 말이 아니구만. 난 말이오, 날 난쟁이라고 동정해 주는 것이 제일 분하단 말이오.” “배부른 소리는 잘한다. 욕하기보단 너무 좋아서 쳇!” 철삼이가 빈정댔다. “모르면 좀 가만있으라구. 난쟁이를 난쟁이라고 하는 건 욕이 아니란 말이오. 난쟁이를 키 크다고 해야 욕이지. 내 말은 말이오. 키 작은 사람을 깔보는 것도 분하지만 그 보다 자기를 인격자인 듯이 차리고 나서서 서푼어치도 가지 않는 동정을 표시하는 자들이 더 괘씸하다는 거요.” “체!” 철삼이가 입을 일그러뜨렸다. “체, 체 하지 말고 내 말을 마저 들어 보란 말이오. 한번은 내가 방직공장에 천을 구입하러 갔더니 철삼이처럼 키가 멀쑥한 자식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똑똑 두드리면서 우리에게 천을 줄 수 없다고 딱 잡아떼는 게 아니겠소. 눈치를 보니 코밑 진상을 하라는 뜻이더구만. 그래서 난 하는 수 없이 그자를 개장집으로 데리고 가서 개 건너간 물을 서너 사발 퍼 먹였더니 그제야 흡족해서 하는 말이 내 처지에 동정이 간다는 게 아니겠소, 어찌도 분통이 치밀던지……” “동정이 간다는데 뭐가 분해서 쳇!” “동정은 무슨 개떡 같은 동정, 얻어먹고 할말이 없으니 그 따위 소리를 늘어놓은 거지. 내가 만약 키나 컸더라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을 거요.”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키 작은 당신이 구입원질 하는 것이 무척 불쌍해 보인다는 말이었구만.” 윤수가 한마디 께끼었다. “기실은 나에 대한 조롱이란 말이오.” “욕도 말라, 동정도 말라, 그럼 어쩌라는 건가?” 철삼이가 바투 들이댔다. “한마디로 나도 사람인만큼 언제 어디서나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라는 거요. 키가 크든 작든 가리지 말고 말이오.” “이제 보니 승대는 인격주의자구만.” 윤수가 히죽이 웃으며 승대의 말을 받았다. “저 철삼의 주먹주의 보단 낫겠지.” 승대의 이 말에 철삼이는 주먹을 내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인격도 주먹에서 나온단 말이오!” 철삼의 말이 어찌나 어이없었던지 승대와 윤수는 입을 딱 벌렸다. 상일이는 입가에 쓴웃음을 흘리었다. “윤수, 당신이 분하던 일은 무엇이오?” 철삼이 묻는 말에 윤수가 자기에게는 아직 가장 분한 일이 없다고 대답하자 이야기판은 아주 깨지고 말았다. 승대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윤수에게 한마디 던졌다. “자네에겐 인생이 늘 음악회 같으니까 분한 일이 없겠지……” “가수니까.” 철삼이는 비꼬는 어조로 말을 받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음악회 같은 인생도 이젠 끝장이요……” 혼잣말처럼 내뱉는 윤수의 말은 탄식에 가까웠다. 철삼이는 일어나서 전등을 끄려다가 상일이가 베개 밑에서 교과서를 꺼내 드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 “까짓것, 코흘리개들이나 볼 걸가지구 박사나 되겠소? 나 같으면 언녕 파지나 했겠소. 이젠 자기요.” 상일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히죽이 웃으며 교과서를 도로 베개 밑에 넣었다. 전등이 꺼졌다. 방안엔 침묵이 깃을 폈다. 그 침묵은 이튿날 아침까지 흘렀다…… 이튿날 오전, 생각 밖으로 윤수에게는 가장 분한 일이 생겼다. 이날 윤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는 그 편지를 읽은 뒤로 종일 이불을 푹 덮어쓰고 누워 있었다. 승대도 철삼이도 상일이도 윤수의 반상적인 거동에 여러 번 의아쩍은 눈길을 보냈을 뿐 그와 말을 걸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자 승대는 창밖에 있는 화단에 물을 주려고 물통을 들고 나갔다. 그가 화단에 난 풀을 뽑고 한창 꽃에 물을 주는데 병실 창문으로부터 갈기갈기 찢은 종잇조각과 사진조각이 날려 나왔다. 호기심이 바짝 동한 승대는 땅 위에 널린 사진조각을 하나하나 주워서 손바닥 위에 맞추어 보았다. 곱살스레 생긴 한 처녀의 반신상이었다. 승대는 대략 짐작이 갔다. 그는 사진조각을 손바닥 위에 조심히 받쳐 들고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윤수한테로 다가갔다. “윤수, 이 사진은 도덕법정에 보낼 거요?” 승대가 묻는 말에 윤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삼이는 제꺽 승대 곁에 다가와 그의 손바닥에 놓인 사진 조각을 내려다보곤 흘끔 윤수의 기색을 살폈다. “담배를 한 대 주오.” 윤수가 철삼이한테 손을 내밀었다. 철삼이는 제꺽 호주머니에서 답배를 꺼내어 갑 채로 윤수에게 건네었다. 윤수가 담배 한 대를 물자 철삼이는 이내 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윤수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 빨기 바쁘게 기침을 토했다. 승대가 윤수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냈다. “못 피우는 담배를 억지로 피울 턱이 있소? 원……” 그러면서 승대는 담배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윤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벌렁 침대에 누워 버렸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승대가 윤수의 침대 가에 걸터앉으며 그를 위로했다. “이까짓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럴 것까지야 있소? 남자로 생겨 이런 일에선 흔연해야 한다니까. 까짓것, 이 세상에서 계집애가 이년 하나뿐이라고 그러오? 자, 이러지 말고 우리 함께 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이자구” 윤수는 누운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야, 나 같으면 아주 봐란 듯이 나가서 이 계집애보다 훨씬 더 나은 처녀를 골라잡겠소.” 승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수가 발딱 일어나 앉으며 역정을 내었다. “내가 뭐 연애대장인 줄 아오?” “야, 이 친구가 이거……” 승대는 억이 막혔다. 윤수는 벌떡 침대에서 내려 씽하니 밖으로 나갔다. 그의 거동에 한참이나 입을 딱 벌리고 있던 승대는 손에 받쳐 든 사진조각을 창밖에 활 내던지고는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 붙는 불에 키질할 건 뭐요?” 철삼이가 나무라는 말에 승대는 침대에 드러누우며 늘쩡한 어조로 한 마디 비꼬았다. “그래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담뱃불까지 붙여 준 사람보다는 낫다니까……” “체, 난 그래도 당신처럼 연애 한번 못해 본 주제에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연애 고문질은 안 했다구……” “뭐라구?” 승대는 무섭게 소리 지르며 후닥닥 침대에서 일어섰다. 이 돌연적인 거동에 철삼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서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승대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채 한참이나 떡 버티고 서서 분노에 찬 시선으로 철삼이를 노려보다가 불시에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갔다. 철삼이는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이날 밤 승대는 이슥해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그는 방안에 들어오자 바람으로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썼다. 윤수와 철삼이는 미안에 찬 눈길로 침대에 누운 승대를 지켜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둘이 다 가볍게 한숨을 내뿜었다.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이날따라 병실 안은 괴괴하기 그지없었다. 한밤중이 되자 승대는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 가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소리는 낮으나 애처로운 흐느낌이었다. 철삼이도 윤수도 상일이도 그때까지 자지 않았는지 승대의 흐느낌 소리가 들리자 셋이 다 일어나 앉았다. 상일이가 끌신을 신고 조용히 승대의 침대가로 다가갔다. “승대, 왜 이러오?” 승대의 흐느낌 소리는 끊어졌다. 윤수와 철삼이도 승대의 침대가로 다가갔다. “승대, 내 아까 잘못했소. 분김에 애매한 승대에게 화를 냈구만……” 윤수의 말을 이어 철삼이가 진정이 어린 목소리로 사과했다. “승대 내 아까 함부로 입을 놀려 당신을 노엽혔소. 실컷 욕하오.” 승대는 눈물을 훔치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나직이 말했다. “모두 잠에서 깨게 해서 미안하오……” “아니아니, 우린 자지 않았소.” 철삼이가 바삐 말을 받으며 손을 가로저었다. 그러는 철삼이를 지켜보던 승대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난 철삼이의 말을 다 탓하는 건 아니오. 그저 그 마지막 말이 내 가슴속의 아픈 상처를 쿡 찔러놔서…… 기실 난 내 설움에 운 거요. 당신들은 아직 모를 거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이 무엇인지……” 승대는 가장 슬픈 일을 털어 놓았다.   가장 슬픈 일   “난 소설도 많이 읽은 사람이오. 그래서인지 연애편지쯤은 어렵잖게 쓸 수 있었소. 하기에 나보고 첫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청을 드는 친구들이 많았소. 지금까지 내가 친구들을 대신해서 써준 연애편지만 해도 수십 통은 잘 될 거요. 허지만 난 여태껏 유독 나의 연애편지만은 한 장도 써보지 못했소. 받아 줄 사람이 없으니 말이요…… 인물 설움이 막 설움이라는 속담은 나를 두고 지어진 것 같소……” 승대의 말이 끝나자 철삼이는 와락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승대, 내가 잘못했소. 정말 잘못했소. 당신은 언제든지 꼭 자기의 연애편지를 쓸 때가 있을 거요. 꼭 있을 거요……” “고맙소……” 이렇게 화제는 가장 슬픈 일에 대한 토로로 돌아갔다. 승대 뒤를 이어 윤수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슬픈 일을 털어놓았다. “난 이미 전도를 망친 사람이요……” “그건 너무 기막힌 소리구만.” 상일이 말이었다. “사실이 그렇소. 만약 나의 목에 난 혹이 암이 아니라 해도 수술만하면 난 다시는 무대에 나서지 못할 것이오. 배운 게 노래 부르는 재간밖에 없는 놈이 무대에 나서지 못하면 그 무슨 전도를 운운할 여지가 있겠소. 실로 슬픈 일이오. 그 못된 계집애도 나한테 더는 바랄 것이 없으니 마음이 변한 거지……” “나 같으면 그 고약한 계집애를 단매에 쳐 눕히겠소.” 철삼이는 제 일처럼 분개해 하였다. “그 계집애는 양심의 버림을 받고야 말 거요. 윤수, 너무 속 태울 건 없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소.” 승대가 위안했다. “하긴 그렇기도 하오……” 이렇게 말하는 윤수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비꼈다. “상일이, 고아인 당신에겐 슬픈 일이 많았겠지?” 철삼이가 재촉하자 상일이는 아주 간단히 말했다. “난 고아 된 슬픔보다도 제 나이에 바로 배우지 못하여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이 가장 가슴 아프오.” “체, 또 그 소리구만. 정말 당신한텐 들을 말이 없소. 먹물깨나 먹어야 쓸모 있는 인간인 줄 아오? 나 같은 놈도 다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다니까. 하다못해 국가의 수입이 높아지게 남보다 술, 담배를 더 사먹어도 그게 다 공헌이라니까, 으하하……” 철삼이는 제 말에 우스웠던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철삼이, 당신한테 무슨 슬픈 일이 있소?” 상일이가 웃지 않고 물었다. “나 말이오? 없소.” “없다구?” “그렇소. 인생이 얼마라고 낯을 찡그리며 살겠소. 나에겐 금후에도 슬픈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소.” “너무 장담하지 마시오. 계집애들처럼 변덕이 많은 게 인생이라니까.” 윤수가 누운 채로 한마디 던졌다. “글쎄 두고 보라니까. 내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이라도 나올 때가 있으면 성을 갈겠소, 정말이오!” 철삼이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탕탕 치며 으스댔다. “그럼 두고 보기요.” 승대의 말이었다. 그 이튿날 오후, 넷은 어쩌다가 처음으로 간호원 처녀와 함께 산보하러 병실에서 나왔다. 그들은 꽃을 심은 병원 담장 밑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막 담장이 굽이진 곳까지 이르렀을 때 홀연 자그마한 살구씨 하나가 날아와 간호원 처녀의 머리에 떨어졌다. “어머나!” 간호원 처녀는 와뜰 놀랐다. 순간 담장 위에서 징글맞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다섯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보니 담장 위에 청년 넷이 걸터앉아 살구를 먹으면서 웃어대고 있었다. “어이, 처녀동무, 병신들과 다니지 말구 여기 와서 우리 함께 살구나 먹기요, 으하하……” 이 말에 간호원 처녀는 낯빛이 새파래 가지고 침을 탁 내뱉었다. “퉤, 오뉴월 개살구처럼 떫구나.” “그래도 씹으면 제 맛이 날거다, 하하하……” 간호원 처녀는 너무도 분하여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철삼이, 한번 솜씨를 보이라구.” 승대가 철삼이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철삼이는 담장 위에 앉은 허우대 큰 네 청년을 올려다보며 망설이었다. “뭘 주저할 게 있소. 본때를 보이라 구.” 승대가 재차 하는 말에 철삼이는 한걸음 나섰다가 도로 물러섰다. “자신이 없소?” 이번엔 윤수가 물었다. “저…… 못 본 척하고 가기요……” “야, 병신이라고 모욕만 받고 그냥 돌아선단 말이오?” “저, 개똥을 무서워 피하겠소? 더러워 피하지……” “더러운 개똥일수록 피하지 말고 멀찌감치 쳐내야 한단 말이오. 난 키가 좀 컸더라면 맞더라도 나서겠소.” 이때 상일이가 말없이 담장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거동에 간호원 처녀를 비롯한 네 사람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상일이는 담장 가까이 가서 낮으나 위엄 있게 네 망나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그 더러운 아가리를 놀려봐라!” “뭐야?” 사자머리를 한 자가 꽥 소리 지르며 담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 순간 상일이는 사자머리가 땅에 발을 붙이기 바쁘게 번개같이 몸을 날려 두 손으로 사자머리의 어깨를 잡는 동시에 딱 소리 나게 호된 골받이를 먹였다. 사자머리가 얼굴을 싸쥐는 순간, 상일이는 또 한쪽 무릎으로 그의 배 허벅을 모질게 올리 박았다. “윽!” 사자머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배를 그러안은 채 마른 풀대 꺾어지듯 앞으로 폭삭 꼬꾸라졌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일이는 손을 툭툭 털더니 사자머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담장 위에 앉은 세 망나니에게 멸시에 찬 웃음을 보냈다. 눈이 휘둥그래진 세 망나니는 서로 마주볼 뿐 감히 내려오지 못했다. 상일이는 불시에 몸을 훌쩍 솟구치며 담장에 걸터앉은 한 망나니의 발을 한 손으로 홱 잡아챘다. 그자는 어쩔 사이도 없이 땅에 곤두 박혔다. 상일이는 한 손으로 덥석 그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면서 다른 한 손으로 불이 번쩍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곤 뺨을 친 손으로 그자의 턱을 올리받치며 입가에 쓴 웃음을 지었다. “형, 형님 잘못했소. 제, 제발 비오……” 그자는 두 손으로 골을 싸쥐며 애걸했다. 상일이는 담장 위에 남은 두 망나니를 향해 내려올 놈은 내려오라는 뜻으로 손짓했다. 겁먹은 두 망나니는 그저 혀를 홰홰 내두를 뿐이었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왔다. 상일이는 머리를 부둥켜 쥐고 있는 그자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고는 몸을 홱 돌려 아주 흔연한 기색으로 병실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 두 눈이 휘둥그래서 보고 섰던, 승대, 윤수, 철삼이와 간호원 처녀는 그제야 바삐 상일의 뒤를 따라갔다. 먼저 상일을 따라잡은 승대가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환성을 올렸다. “야, 솜씨가 대단하오! 난 막 영화를 보는 것 같더라니까.” 상일이는 그저 히죽이 웃었다. 철삼이가 따라서며 그의 어깨를 치면서 물었다. “보니 돈을 먹인 솜씨더구만. 어디서 배웠소?” 상일이는 역시 히죽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러지 말고 말해 주오. 누구한테서 배웠소?” 철삼이가 짓궂게 달라붙자 승대가 곁에서 오금을 박았다. “누구한테서 배웠으면 찾아가겠소? 흥, 당신은 아무리 배워도 쓸데없소. 그저 소나무만 치고 박고 하오.” 그 말에 윤수와 간호원 처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철삼이는 얼굴이 지지벌개났다. 승대는 철삼이를 더 따끔하게 찔러 주었다. “당신의 그 우뚤우뚤한 성미는 방금 어디 갔소? 주먹에서 인격이 나온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당신은 너절한 자식들에게 병신이라고 모욕을 받고서도……” “그만 하지 못하겠소?” 철삼이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든 말든 승대는 승대대로 도고히 말을 계속하였다. “횐소리도 여러 번 하면 곧이듣지 않는 법이오, 흥!” 철삼이는 낯빛이 퍼르뎅뎅해 가지고 한참이나 승대를 노려보다가 불시에 몸을 홱 돌려 쫓기듯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약간 휘청거렸다. 이날 저녁, 철삼이는 늦어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그는 어디 가서 술을 마셨는지 두 눈이 게슴츠레해 가지고 휘청이는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승대, 윤수, 상일이는 적이 놀았다. 그들의 시선은 동시에 철삼이한테 모아졌다. 철삼이는 잠깐 문가에 기대서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방안을 한번 쓸어보고는 승대한테로 다가갔다. 승대는 자못 긴장해졌다. 그는 애써 얼굴에 태연한 기색을 지으며 다가오는 철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술기운이 오른 철삼의 얼굴엔 종잡기 어려운 표정이 어리어 있었다. 그는 승대 앞에 와서 멈추었다. 역한 술 냄새가 승대한테 확 풍겨왔다. 철삼이는 승대를 내려다보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두어 번 움씰거리다가 종내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한 손으로 승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자기 침대로 가서 벌렁 드러누웠다. 한참 후에 철삼이는 벌떡 일어나 침대 밑에서 권투장갑을 꺼내 가지고 창문으로 뛰어나갔다. 승대, 윤수, 상일이는 서로 마주볼 뿐 말이 없었다. 이윽고 승대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승대가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정원에 나와 보니 철삼이가 한창 권투장갑을 낀 손으로 소나무에 미친 듯이 따닥이를 먹이고 있었다. 승대는 천천히 다가가 철삼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철삼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순간, 그는 승대를 보자 고개를 떨구며 권투장갑을 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승대는 잠자코 서 있었다. 이윽고 철삼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승대를 향해 부르짖듯이 말했다. “날 실컷 욕하라구. 그러면 내 속이 더 편할 거요. 난 오늘 인격을 개한테 떼웠소……” 철삼이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내 뱉었다. “내 이렇게 슬퍼보긴 처음이야……” 철삼이의 두 눈에선 눈물이 몇 방울 굴러 내렸다. 그는 다시 몸을 홱 돌려 주먹으로 소나무를 쳤다. 이날 밤 철삼이는 슬픈 생각에 말려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 앞에서 큰소리치기 좋아하는 유아독존식의 인물일수록, 자존심이 상한 사람일수록 일단 자기의 단점이 드러나 남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때면 남에 대한 원망보다는 비난받는 자기 처지가 더없이 슬프게 생각되는 법이니까……   가장 즐거운 일   넷은 선후로 종양수술을 했다. 수술 결과 승대, 윤수, 철삼이의 혹은 양성이었다. 그들 셋은 구사일생에서 요행 살아나온 듯싶었다. 기뻤다. 즐거웠다. 암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실로 그들에게 있어선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유독 상일이만은 무자비한 판결을 받았다. 수술 진단에 의하면 그는 위암 후기였다. 그러다보니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병원 측에서는 환자 본인에게는 그저 몸조리 잘하고 음식에 주의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해 주었을 뿐이다. 승대, 윤수, 철삼이는 간호원 처녀를 통해 상일이의 수술 정황을 상세히 알았다. 그들 셋은 죽음의 문턱에 한 발을 들여놓은 상일이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무한한 동정이 갔다. 슬펐다. 그렇다고 상일이 앞에서 그렇다는 내색을 조금이라도 내서는 안 될 그들이었다. 아주 흔연한 척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나친 동정도 상일이의 의심을 자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일이는 자신의 불행을 몰라서인지 수술한 후 일주일이 되자 예전과 다름없이 베개 밑에서 중학교 교과서들을 꺼내 보기 시작하였다. 그를 말없이 지켜보는 승대, 철삼, 윤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상일이는 수술한 지 스무날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암병 환자에게 있어선 퇴원이란 말은 기실 돌아가서 일찌감치 묏자리나 봐두라는 말과 같았다. 하기에 승대, 철삼, 윤수의 눈에는 물건들을 수습하는 상일이가 저승의 사자 등에 업힌 사잣밥으로 보였다. 상일이가 퇴원하는 날, 철삼이는 자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곤 어디론가 나갔다. 그사이 승대와 윤수는 병원 문 앞에 있는 소매점에 가서 과일즙이며 통조림이며 우유가루 같은 걸 한 아름 샀다. 승대는 술 한 병을 더 샀다. 그들 둘은 병실에 돌아 오자바람으로 술 한 병과 통조림 한 통을 내놓곤 나머지 것은 우격다짐으로 상일에게 안겨 주었다. 연후에 그들 둘은 통조림 한 통과 술 한 병을 앞에 놓고 상일이와 마주앉았다. “자, 우리 송별주나 나누기요. 모두 수술한 몸이니 그저 마시는 흉내나 내기요. 상일이부터 술을 입에 댔다 떼오.” 승대가 술이 담긴 법랑 고뿌를 상일이한테 건네었다. 상일이는 법랑 고뿌를 받아 쥐자 이내 꿀꺽 소리가 나게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야, 흉내만 내라는데……” 승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상일이는 밭은기침을 깇으며 방금 넘긴 술을 몽땅 방바닥에 내 뱉었다. 이때 철삼이가 한 손에 과일꾸러미를 들고 다른 한 손에 기타를 들고 들어오다가 다짜고짜로 승대를 꾸짖었다. “승대, 정신이 있나. 암 환자에게 술을 주다니!” 철삼이의 입에서 암이라는 말이 튕겨 나오자 승대와 윤수는 꽝 하고 머리가 작렬하는 것 같았다. 굳어진 그들 둘은 긴장한 눈길로 상일이의 기색을 살폈다. 그제야 자신의 불찰을 깨달은 철삼이는 손에 든 과일꾸러미와 기타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방안엔 무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흘렀다. 이윽고 그린 듯이 앉아 있던 상일이가 아주 태연한 기색으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지들 마오. 난 이미 며칠 전에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소.” “양?” 승대, 철삼이, 윤수는 놀랐다. “며칠 전 난 의사 사무실이 빈틈을 타서 몰래 들어가 수술기록부와 화험 진단서를 들춰보았소.” “!” “자, 모두 가까이 오오. 우리 함께 술이나 들 자구.” 이 말에 승대, 철삼이, 윤수는 말없이 상일이한테로 다가왔다. 그들이 자리를 찾아 앉자 상일이는 술이 담긴 법랑 고뿌를 들며 말했다. “이제 갈라지면 친구들과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거요. 비록 슬픈 일이지만 이 시각 낯을 찡그리고 잔을 들어서야 되겠소? 자, 우리 서로 즐거운 일들을 말하면서 술을 들기요. 내 먼저 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이 술을 들겠소.” “그저 댔다 떼오.” 철삼이가 제꺽 주의를 주었다. 상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고뿌에 입을 가져다 댔다가 뗐다. “자, 그담은 승대 차례요.” 승대도 역시 법랑 고뿌에 입을 댔다가 뗐다. 윤수도 그랬다. 하지만 철삼이만은 법랑 고뿌를 받아 쥐기 바쁘게 가져다 대고 단숨에 술을 몇 모금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리곤 법랑 고뿌를 상일이한테 넘기면서 약간 갈린 소리로 말했다. “내 오늘 취하도록 마시겠소……” 상일이가 히죽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취하기 전에 먼저 내 이야기를 듣소. 난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오. 허나 아직까지 삶에 대한 미련은 크오. 비록 그것이 현실적이 못되지만 절망보다야 낫지.” 상일이는 술을 입에 댔다 떼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한때는 주먹질을 배운다고 부산을 떨었소. 그래서 남을 치기도 했고 얻어맞기도 했소. 그땐 모래주머니를 치느라고 터진 손등도 별로 자랑같이 생각되었소.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다 뜨거워나오. 후에 차차 나이 듦에 따라 좀 헴이 들었는지 별반 주먹질은 하지 않았소. 남들은 내가 사람이 되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고민과 절망에 빠졌더랬소. 이전엔 그래도 주먹이 세다는 점에서 삶의 흥분을 느끼고 정신상에서 위안을 받았지만 지식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높아진 오늘에 와서는 문맹과 다름없는 나에게 있어서 남은 것이라면 그저 생리적 기능만 갖고 있는 육체뿐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삶에 대한 미련까지 포기하고 싶었소. 당신들은 내가 수력발전소에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아오? 말하긴 부끄럽지만 난 매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잡일이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해 왔소. 골에 먹물이 든 게 없으니 여태껏 한번도 발전기 앞에 서보지 못했소. 그러니 나한텐 어찌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었겠소. 들으라니 시인들은 우리 발전소 노동자들을 빛을 주는 인간세상의 태양이라고까지 노래한다오. 발전기 앞에 서도 못 본 나까지 망라해서 말이오. 나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소. 오늘 이렇게 친구들 앞에서 나 자신을 돌이켜볼 용기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오. 난 남들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생활에서의 강자라고 보오. 친구들의 생각은 어떤지?” 승대와 윤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철삼이는 두 눈을 내리깔고 연신 담배만 뻑뻑 빨았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눈길을 들어 상일이를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발전기 앞에 서겠다고 중학교 교과서들을 들췄소?” 상일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곤 가볍게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이젠 늦었소. 저승의 사자가 너무 이르게 날 데리러 왔단 말이오. 허지만 난 이제 돌아가서 딱 한 가지 소원만은 풀어야겠소. 다문 하룻밤이라도 기술원과 함께 발전기 앞에서 당직을 서보겠다는 거요. 그러면 나에게 있어선 정신상의 큰 위안이 될 거요. 아마 나의 생애에서 이것이 가장 즐거운 일로 될 것 같소……” 상일이의 말이 끝난 뒤 병실 안엔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말없이 술이 서너 순배 돌았다. 철삼이만 술을 꿀꺽꿀꺽 들이켰고 그 외 셋은 그저 마시는 시늉이나 했다. 이럴 즈음 간호원 처녀가 들어왔다. 그는 방안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씽 달려와 술이 담긴 법랑 고뿌를 앗아 쥐었다. “어쩌자고 술을 마시나요?” 넷은 그저 잠자코 앉아 있었다. 간호원 처녀도 더는 말이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담배 한 대를 피워도 한바탕 따끔히 훈계를 할 그였지만 그도 넷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말없이 서 있었다. 이윽고 철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간호원 처녀한테로 다가갔다. “간호원 동무, 오늘만 용서하오. 우린 술을 입에 댔다 뗄 테니 그 고뿌를 주오. 내가 저 상일이한테 마지막 잔을 권하겠소……” 간호원 처녀는 잠깐 주저했다. “오늘만 용서하오……” 승대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간곡하게 말했다. 간호원 처녀는 넷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말없이 법랑 고뿌를 철삼에게 넘겨주었다. 철삼은 법랑 고뿌를 받아 쥐고 상일이한테로 다가왔다. “자, 상일이 이 술을 받소. 당, 당신은 죽, 죽지 않을 거요……” “고맙소. 기적이라도 생겨 내가 살수 있다면 꼭 당신을 찾아가겠소. 권투연습도 할 겸……” “아니아니, 난 이젠 그 권투와 인연을 끊었소.” “뭘, 그럴 것까지야 있소. 연습을 잘 해서 당당하게 권투시합에 나서란 말이오. 권투도 좋은 운동이라니까.” 철삼이는 한참이나 상일이를 지켜보다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뒤로 승대가 일어서며 상일에게 술을 권했다. “상일이, 난 오늘 당신의 말에서 암은 비록 사람의 육체는 정복할 수 있지만 삶의 신조만은 꺾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알았소. 감사하오. 자, 영원한 삶을 위해 내 술을 받소.” “고맙소, 승대의 결혼잔치 술로 치고 받겠소……” 승대는 상일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내 잔치할 때면 잊지 않고 당신한테 술 석 잔을 올리겠소, 꼭……” 목 메인 승대의 말에 철삼이도 윤수도 간호원 처녀도 모두 고개를 돌리며 눈굽을 찍었다. 윤수가 일어섰다. “상일이, 우리 예술단의 공연을 보러 한번 꼭 오오……” “무대에서 당신을 찾으면 되겠구만.” “아니, 무대 천정에 올라가 집중광을 비추는 나를 찾소. 내 비록 이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지만 무대에 나선 사람에게 빛은 줄 만 하오.” 상일이와 윤수는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철삼이가 침대에 기대어 놓은 기타를 쥐며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 한 곡 넘기오. 내 반주를 할께.” 윤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었다. “상일이, 수술해서 목소리가 영 말이 아니지만 그저 우리 친구들의 작별 인사 삼아 들어주오.” 상일이와 윤수는 또 다시 악수를 나누었다. 철삼이는 기타로 이탈이아 민요 「아, 벗이여」 란 노래의 전주곡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가 노래의 전주곡을 다 쳤지만 윤수는 목이 메었는지 소리를 내지 못했다. 윤수의 눈에선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철삼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치곤 다시 전주곡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번엔 윤수가 갈린 목소리로 ‘아, 나의 벗이여, 안녕히, 안녕히…….’란 노래 구절만 불렀을 뿐이다.   아, 나의 벗이여 안녕히, 안녕히 내가 만약 쓰러진다면 산정에 묻어다오 아, 나의 벗이여 안녕히, 안녕히   노래를 부르는 상일이의 두 눈엔 눈물이 글썽했다. 승대, 철삼이, 윤수, 간호원 처녀의 두 볼에도 눈물이 골을 지어 흘러내렸다.   맺는 말   상일이는 떠나갔다…… 선후로 승대, 철삼이, 윤수도 병원에서 떠나갔다. 새로운 회로애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시발점이었다. 아무렴, 인생은 언제나 시작이니까……  
80    제8편 즐거웠던 야학시절 댓글:  조회:1758  추천:3  2014-08-16
학교에 갈 형편이 못된 나는 야학으로 찾아갔다. 야학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거기서도 애숭이 꼴지 젖먹이었다. 장가가고 시집 간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야학실, 나는 거기서 세상 처음 듣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선은 우리 한글부터 배워야했다. “가, 갸, 거, 겨…” 배울수록 재미가 났다. 나이가 제일 어려서였던지 배우는 속도도 제일 빨랐다. 자주 선생님의 칭찬도 받았다. 그래서 신나는 배운터,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공부에 열중했다. 그 다음은 정치과도 배웠다. 무슨 유물론이요, 진화론이요 하는데 처음엔 난 알아들을수 없었다. 공부는 갈수록 심산이었다. 그래도 나는 신이나서 야학에 다녔다. 몰라도 아는 척, 두툼한 책 꾸러미를 옆에 끼고 다니는 것이 별로 멋져보였다. 한동안 야학에 다녔더니 못 보던 신문도 뜯어보게 되고 세상물정도 적지핞게 알게 되어 나는 장원급제나 한 것처럼 기뻤다.  할머니가 혼자서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그냥 야학에 다녔다. 어느날 나는 신문에서 민주학원에서 학생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나는 시험을 치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야학공부를 좀 한 밑천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건 대봐애 한다고 마음을 크게 먹고 시험공부에 달려들었다.  내 짐작과 같이 수학은 문제가 없고 정치는 신문을 뜯어본 탓에 그럭저럭 넘길수 있었는데 어문이 문제였다. 어떤 단어는 몰라 일본어로 섞어 썼다. 시험지를 바친 나는 십상팔구는 불합격인줄 알고 아예 단념하고 말았다.  합격자 발표의 날,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나가 보았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761호” 내 시험번호가 나붙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그 밑에 이름이 틀렸다. 마땅히 “방채봉”이라야 할 것을 “방재춘”으로 되어있어 잠시의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학 따지고 보니 “방채봉”의 오자로 되어있었다. 그 후에는 구두시험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려가며 불운한 나의 동년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때 시험관들은 나늬 이야기에 감동이 되었다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어렵지 않게 합격이 되었다.   민주학원에서 나는 사회발전사를 배웠다. 얼마 후 나는 우전국에 배치를 받았다. 들어가 보니 거의 가 다 일제시절 교환수들이어서 질서는 문란하였다. 처음 들어가니 월급이라고 해서 겉수수 서른다섯근을 주었다. 반년 후에는 60근을 주었다. 그때만해도 60근 곁수수 월급도 상당하여 남들이 부러워했다.  나는 열심히 일하였다. 1년후 중국공산당 공개지부 건설이 있었는데 나는 첫 번째로 입당 발전대상이 되었다. 누가 “입당지원서”라는걸 가져다 주면서 등기표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청서를 들고 고민하였다. 그때 들은 말에 의하면 공산당원이 되면 시집가는 것도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시집을 가면 당지부 서기나 당간부한테 가야 하는데 보니까 당지부서기라는게 거의가 다 이미 장가를 간 늙은이들이어서 내가 저런데로 어떻게 시집을 가냐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게다가 조선에 나간 언니 남편이 조선에 나와 중학교 공부를 하라는 편지가 와서 나는 입당을 거절했다.  그래도 하도 일을 잘 했기에 얼마후에는 또 공산주의청년단에 내 이름을 올렸다. 이것도 내가 자진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추천이었다. “난 신청도 안했는데.”  회의에서 내가 볼멘 소리를 하자 곁에 있던 친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가만있어, 바보야” 그렇게 나는 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하였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다. 조직에서는 나를 신임해 장도교환수가 되게 했고 성에서는 비밀교환수와 반장으로 임명했다.  그 후 조선전쟁이 터지자 나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 미군 비행기가 어느 방향으로 떴고 어디까지 왔으며 어느 곳을 폭격하고 있다는 모든 비밀연락을 내가 맡아야 했다. 당시 비밀교환수는 적고 상황은 긴박하고해서 때로는 연 며칠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피곤한 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일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코피가 쏟아지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동료들은 나를 집에 가서 며칠 쉬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나는 의자에서 잠간 쪽잠을 자고 또 계속 일했다.  쪽잠을 자다가도 사이렌소리만 나는 비밀교환대가 있는 공원의 지하실로 달려가야 했다. 처녀의 몸으로 혼자 숲속에 있는 공원 지하실로 들어가야 했지만 당시 나는 무서운 줄도 몰랐다. 다만 할머니가 폭격을 맞는 것 같아 근심이 태산 같았다.이렇게 밤낮을 모르고 열심히 일한 탓으로 나는 “10년 변강보위모범”이라는 영예를 받아 안게 되었다.  
79    《몸이 곧으면 그림자가 굽을 수 없다》 댓글:  조회:3009  추천:4  2014-08-05
      예로부터 선인들은 사람의 욕심 중에서 과욕으로 신상에 해를 주고 나아가 일생까지 망치게 하는 욕심을 여러가지를 꼽았는데 그중 권세욕과 물욕을 앞자리에 놓았다.  지금에 와서도 립신양명의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너무 지나치게 권세에 집착하는 권세욕과 돈과 재물을 취하는 물욕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  권세욕과 물욕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권력이라는것은 권력을 갖는것 자체를 위해 추구되고 향유된다》 고 했다. 이 말은 권세에 집착하는 사람은 권세의 추구와 그 권세에 의해 향수를 탐하는 속성이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권세의 힘이 막강하다고해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비유했다.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는 력사적으로 존재해 내려온 문제였다. 부정이란 사전의 올림말로 풀이하면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뜻이다. 부패란 단어는 글자그대로 썩었다는 뜻 외에도 바르지 못한 것, 또는 타락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부정부패는 어디까지나 그 단어의 고유한 뜻대로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이기에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우리말 속담에 돈의 마력을 이르는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는 속담이 있지만 돈에 대한 물욕을 경계하는 《술은 사람의 얼굴을 붉게 하지만 누런 황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 만든다》 는 속담도 있다. 권세에 대한 그 추구와 향수를 지나치게 탐하면 권세와 그에 따른 향수는 자기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격이라는 말도 다시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가훈서인 《안씨가훈》엔 인간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이런 글이 있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것이 의복이면 비와 이슬을 피할수 있으면 되고 먹는것이면 굶주림을 면하면 된다. 이 한몸 사치스러움은 쓸데가 없다.》  예전엔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를 《목민관》이라고 불렀다.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백성을 기르는 벼슬아치, 말하자만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는 뜻이다.  중국 도교 창시자 로자는 벼슬 가진 사람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로자의 말을 지금 말로 풀이한다면 가장 뛰여난 지도자는 아래사람이 그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지도자이고 그 다음 순서로는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지도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지도자이고 가장 최하위는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지도자이다.  지금으로부터 칠백년 전, 이미 지금의 말로 바꾸어 말하면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권세를 코 등에 걸고 사욕을 채운다.  2.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3. 늘 주지육림에 빠진다.  4. 친인척을 편애하고 자기 주위에 끌어들인다.  5. 늘 연회를 열고 놀러 다닌다.  6. 벼슬자리에서 얻는 리익에 쌍불을 켠다.  7. 본연의 직무에 몸 바쳐 일하지 않는다.  8. 집 식구들이 권세를 턱 대고 아무 짓이나 하는데 대해 눈을 감아준다.  이상 렬거한 조목은 권세에 의한 부정부패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격이 없는 《목민관》, 다시 말하면 권세를 턱 대고 부정부패만 일삼는 벼슬아치에 대해 칠백년 전에 내린 평가가 지금에 와서도 부정부패만 일삼는 자들에게도 그대로 들어맞고 있다는것이 놀랍기만 하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그 표현형태가 다르지만 부정부패현상이 력사의 흐름속에서 소실될 대신 그냥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 현상 중에서 가장 큰 부정부패는 사람을 등용하는 면에서의 부정부패라고 한다. 예로부터 탐관오리가 등용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탐관오리들뿐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중국의 어느 한 현에서 부정부패를 일삼은 현위서기가 법적 제재를 받자 그 후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뇌물수수죄로 나떨어졌고 그 뒤를 이은 사람도 한해를 넘기지 못하고 독직죄, 회뢰죄로 법적 제재를 받았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부정부패의 련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람을 등용한 것으로 하여 이어지는 부정부패의 련쇄적인 현상이다. 이런 련쇄적인 현상이 가져오는 그 종말, 좀 거칠게 표현한다면 그 끝장이 똑같다는데서 우리는 다소 위안을 받을수 있다.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격언에 《몸이 곧으면 그림자가 굽을 수 없다》는 충고가 있다. 세상 바르게 살라는 충고가 담긴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법치사회답게 법치에 의한 부패척결을 기대하면서 《송사 악비전》에서 나오는 《문관이 돈을 좋아하지 않고 무관이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 곧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말을 부언하고 싶다.  
78    세계 정치 1번지 워싱턴(5)-링컨 기념관 댓글:  조회:2333  추천:1  2014-07-23
링컨 기념관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하얀색의 건물. 기념관안에는 링컨의 대리석 좌상이 있다. 그 뒤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성은 그에 의해 구원된 미국인들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이 신전에 영원히 간직 될 것이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좌상의 왼쪽 벽에는 링컨의 명언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1층 왼쪽에 설치된 전시관에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관련해 링컨 대통령이 연설한 연설문이 대리석에 새겨있다.   링컨대통령의 연설 중 불멸의 연설이라고 하는 연설이 많은데 그 중 «갈려서 싸우는 집은 설 수가 없다.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 없다고 믿는다.»는 노예 해방 관련 연설로 유명하고 게티즈버그 묘지 설립 기념식에서 한 «민주주의가 없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야말로 국가를 위해 죽어간 군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연설은 자유의 대명사로 지금도 세계가 기억하고 있는 명언으로 되고 있다.      링컨 기념관을 오르는 계단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도 꿈이 있다》는 명언이 새겨져 있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링컨 기념관 계단에서 25만명 시위자들을 향해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이날 집회는 미국 역사의 한 폐지를 수록한 《워싱턴 대행진》으로 이어졌다. ​    기념관 계단에 서면 워싱턴 기념탑이 정면으로 안겨온다. 전부 화강암으로 된 기념탑 높이는 169미터인데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기 위해 1848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자금난과 전쟁 등 원인으로 완공되기까지 3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         ​       ​       ​  
77    세계 정치 1번지 워싱턴(4) 한국전 참전 기념비 댓글:  조회:1713  추천:1  2014-07-09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을 가는 길목에는 꼭 들러 가야 할 곳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전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기념비는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있는데 거기엔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 2500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 앞 파란 잔디밭에는 우비를 입고 성조기를 향해 V자 대열로 나가는 한개 소대 병사들을 형상한 조각상이 있다. 숫자를 헤어보니 19명. 19개 조각상이 검은 대리석 기념비에 비치면 38명으로 되는데 군사분계선인 38선을 상징. 성조기 아래 비석에는 «조국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고 기념비 아래에는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는 글발이 새겨져 있다.      
76    제7편 내 성분은 지주랍니다 댓글:  조회:1933  추천:0  2014-06-21
해방후에 계급성분 획득이라는게 있었다. 옛날에 못 산 사람은 빈농, 고농이요, 잘 산 사람은 지주, 부농으로 획분하였다. 처음에는 모두 자기가 스스로 성분을 보고하였다. 나는 제대로 하자면 성시 빈민에 속하는데 너무도 찢어지게 못 산 것이 한이 되어 잘 살 았다는 사람들이 부러운 나머지 나는 내 성분은 지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주, 부농 소조에 들어가 학습에 참가했다. 나는 지주나 부농이 뭔지 알리 없었다.  투쟁대회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지주, 부농이라는 사람들이 끌려나왔다. 그들의 머리에는 한발씩이나 되는 고깔이 푹 씌워있었다. 그들은 단상에 끌려나와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빈농, 고농이라는 사람들이 무대 아래에서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쳐댔다. “지주, 부농을 타도하자!” “우리 피를 빨아먹은 저놈들에게 혈채를 받아내자!”  사람들의 외침은 분노에 젖어있었다. “지주, 부농이 뭔데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곁사람에게 물었다. “엤날에 호의호식하고 잘 산 사람들이지.” “혈채라는 건 또 뭐고요?” “저 놈들이 빨아먹은 피 값이란 말이다.” 나는 그제사 성분을 지주로 신청한것이 잘못된줄 알았다. 나는 투쟁대회 사회를 보고 있는 공작대 대원에게 가서 말했다. “아저씨 제가 신청을 잘못했어요. 난 지주가 아니예요. 난 저 사람들처럼 잘 산게 아니고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럼 넌 저쪽으로 가!” 그래서 나는 빈농, 고농들이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불러대는 사람들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후에 책임자는 나더러 빈농, 고농단의 깃발을 들고 다니라고 하였다. 나는 큰 벼슬이나 한 것만치 기뻤다. 깃발을 들고 다니며 투쟁대회도 참가하고 문예공연에도 참가했다. 그때 나는 노래를 꽤나 잘 부르는 축이었다. 그래서 선전대를 따라다니며 독창을 했다.  “아득한 천리길 고향은 먼데” 이렇게 노래를 뽑으면 관중들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얼마후에 문공단에서 왔다는 사람이 나를 찾았다. “노래를 참 잘하는데 문공단에 오지 않겠소?” “월급은 줍니까?” “아직은 없소.” 이 말에 내 마음은 갑자기 식어버렸다. “그럼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하고요?” “글쎄 앞으로는 월급이 있겠지만…” 그 사람은 말끝을 흐리마리 해버렸다. 월급이 없다는 말에 그렇게도 가고 싶던 문공단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합창대에 뽑혀 목단강이나 할빈 방송국에 다니던 소학시절의 잊 못할 추억을 떠올리며 힘겹게 살아갔다. 
75    세계 정치 1번지 미국 워싱턴(3) - 제퍼슨 기념관 댓글:  조회:1895  추천:1  2014-06-15
포토맥 강가에 자리 잡은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 지붕이 원형으로 된 로마 신전을 본 따서 만든 기념관안에 청동으로 만든 제퍼슨 대통령의 동상. 대리석으로 된 벽에는 그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연설 일부와 독립선언서의 일부 대목이 새겨져 있다.  제퍼슨 대통령은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대통령 외에도 원예가, 법률가, 건축가, 과학자, 고고학자, 고생물학자, 작가, 발명가, 농장주, 외교관, 음악가, 버지니아 대학교 창립자였다. 폭넓은 지식과 교양, 재능으로 그는 줄곧 벤저민 프랭클린과 더불어 18세기 미국 최대의 르네상스식 인간으로 평가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의 전제정치에 대항해 영원히 투쟁할 것을 맹세하노라!»   이는 국회의사당내에 있는 제퍼슨 기념비에 새겨져있는 제퍼슨의 명언이다.  
74    제6편 죽어도 시집은 안 갈래요 댓글:  조회:1665  추천:2  2014-06-05
 열네살 때 일이었다. 너무도 살기가 힘이 드니 할머니는 나더러 시집을 가라고 했다. “시집 가라구?” “그래 잘사는 집에 가면 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잖겠니.” “시집이 뭔데?” 진짜 철없는 나로서는 그 뜻을 리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웬 사람들이 한구들 모여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모, 고모부, 오빠뻘 되는 사람도 끼어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니 모두들 국수사발을 놓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서 들어 오너라, 저 웃방에 가 인사를 해라, 너 신랑되는 사람이 있다.” 고모가 반색을 하며 나를 웃방으로 안내하였다. “신랑 되는 사람?” “너를 민며느리로 삼자고 사둔댁에서 사람들이 왔단다.” “민며느리?” 나는 듣다 첫소리다. 나는 그자리에서 맏고모가 건네주는 국수사발을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국수사발이 찰랑하고 깨지는 바람에 화기애애했던 집안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우리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나를 설득시키려는 심산이었다. “우리 집안은 양반집안이어서 어른들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 기집애 왜 례모없이 구는 거야.”  고모가 나를 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옛날에도 처음엔 울고불고 하다가 동여매 가면 아들딸 낳고 잘 살더라.” 둘째 고모부의 말이다. 동여매 간다는 말에 나는 겁이 덜컥 났다. “동여매 가는 날이면 난 죽고 말테야!” 나의 태도에는 타협할 여지가 없었다. 이 무렵 심순애와 리수일 소설을 본 나는 내가 마치도 다이아몬드에 팔려가는 심순애 같아서 더더구나 펄펄 뛰었다. “그래도 신랑을 시켜서 자주 만나게 하면 정이 들거야.” 고모부 말은 능청맞았다. 그래 그랬던지 며칠 후 밤에 문밖에서 문고리 당기는 소리가 났다. 달빛에 모자를 꾹 눌러쓴 한 사나이의 모습이 창호지에 어려 있었다.  그때만해도 초가집인 우리 집 문고리에는 삼끈을 감아놓은 문이어서 밖에서 당길 때마다 삼끈이 조금씩 풀렸다. 나는 그 사람이 신랑감이라는 사내인줄 알아차리고 뒷문으로 도망을 쳤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몇 번을 왔다가 그 때마다 헛물을 켜고 돌아갔다.  내가 만약 고모부 말과 같이 동여매가는 날이면 양잿물을 먹고 죽기로 작심하고 이웃집 아주머니한테서 돈 10전을 꾸어 양잿물을 산다는 것이 만두 잿물을 잘못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너무도 고민 끝에 나는 신경쇠약까지 걸렸다. 그래서 자다가도 나는 죽겠다고 헛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며칠 후 제삿날에 친척들이 또 모였다. “안되겠다. 저러다가 잘못되면 큰일이니 혼사를 물릴 수 밖에.” 둘째 고모부 말이 떨어지자 “국수 값이나 신랑의 명예손상비는 어떻게 하고, 명예손상비는 부르는게 값인데” 맏고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끈을 이었다. “국수 값은 내가 낼께.” 언니 남편-아저씨가 자진해 나섰다. 아저씨는 운전수여서 국수 값을 낼만 했다. “사돈 설득은 내가 할께.” 영화관 해설사로 일하는 외사촌 오빠가 자신있는 소리를 했다. 영화해설을 하는 오빠는 말이 청산류수라 그렇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이 갔다.  이튿날 외사촌 오빠는 사돈을 불러왔다. 양가의 “담판”이 시작된 것이다. 외사촌 오빠의 말은 변설이었다. “억혼(억압으로 하는 혼사)을 반대하는 오늘의 신사회에서 우리가 억압적으로 결혼을 시킨다는 것도 법에 위반이요 본인 저렇게 반대를 하니 할 수가 없군요 사돈어른 그렇지 않습니까?”  사돈댁이라는 여자도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듣는 말에 따르면 그 여자도 어느 촌의 부녀회 주임이어서 법을 모르는바 아니었다. 이윽고 그도 말문을 열었다. “글쎄요. 억압으로 약혼을 시키는 것도 오늘 법에는 맞지 않을상 싶은데요.” 말이 이렇게 실마리가 풀리자 대화에는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남자 측에서는 결혼을 급급히 서두르자고 결혼날짜 택일 해왔는데 섣달그믐으로 잡아왔다. 봉건미신이 많은 우리 맏고모가 즉석에서 반발했다. “왜 하필 썩은 달을 잡은거요?” 옛습관에는 섣달은 썩은 달로 치는 모양이었다.  파혼 담판이 순조롭게 풀리니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로부터 나에게는 시집가라는 소리가 죽으라는 말보다도 더 싫었다. 누구의 입에서 시집가라는 말만 나오면 나는 펄펄 뛰었다. 할머니도 이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73    세계 정치 1번지 미국 워싱턴(2) - 국립 자연사 박물관 댓글:  조회:1759  추천:1  2014-06-03
 국립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1억2400만점의 소장품을 볼수 있습니다. 자연계와 인류 역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 하이라이트는 트리케라 톱스와 스테고사우르스 등 공룡의 골격 표본과 45.5캐럿의 세계 최대의 블루 다이아몬드인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 실물크기의 흰 긴 수염 고래의 모형, 곤충코너, 가공기술을 자랑하는 보석들과 광물 전시품들, 그 밖에 40억 년 전의 화석 플랑크톤에서부터 공룡의 알과 동물의 화석, 수많은 동물 박제 등이 있습니다. 인류와 동물, 자연의 발달을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 전시품과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고 있어 먼 옛날의 동물사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72    세계 정치 1번지 미국 워싱턴(1))-국회의사당 댓글:  조회:1768  추천:1  2014-06-02
미국의 수도 관광이 국회의사당으로부터 시작된다. 국회의사당은 워싱턴DC의 상징. 1793년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대통령 때 착공되어 1800년부터 의회 회의장소로 되었는데 1814년 영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가 그 후 여러번 증축, 개축을 거쳐 16대 대통령인 링컨 대통령 때에 현재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국회의사당 높이는 94미터이고 너비는 250미터. 돔을 기준으로 우측은 하원의 회의실이 있고 좌측은 상원 회의실이 있는데 국회의사당 안에는 방이 모두 540개가 된다.                  
71    어린이명절 선물 - 정토 댓글:  조회:2989  추천:3  2014-06-02
 어린이명절이 오면 부모들은 어린 자식에게 줄 명절선물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쓰게 됩니다.  지금은 생활형편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져서 어린이명절에 어린이에게 주는 선물도 다양해졌습니다.  북경 석간에 실린 한 학부모의 글이 너무 인상적 이여서 언급해봅니다. 그 학부모는 어린이명절을 맞아 자기 자식에게 어린이들을 상대로 출간하는 간행물을 정기 구독하도록 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다는 그 간행물에 어린이들이 보지 말아야 할 내용들이 실렸고 그 뿐만 아니라 폭력과 비행을 묘사한 글까지 실려 그 학부모의 분개를 자아냈습니다.  그 학부모는 이런 간행물은 어린이들에게는 하나의 정신오염이라고 쓰면서 어린이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정토를 마련해주자고 호소했습니다.  정토란 말은 불교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정토란 티 없이 깨끗한 곳, 말하자면 극락정토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환경을 어린이들에게 마련해주자는 것이 그 학부모의 뜻이겠지요.  언젠가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기가 직접 목격한 사실을 가지고 작문을 지어오라고 했는데 한 학생이 지어온 작문은 교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 학생은 작문에 마약을 흡독한 후의 환각상태를 묘사했는데 그 묘사가 너무도 구체적이고 생동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그보다도 더 기막힌 것은 그 학생이 자기의 소망은 앞으로 마약을 흡독한 후에 오는 그 황홀감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써서 사람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도 쫓아가면 손에 잡을 것 같은 천진한 동심을 가지고 장차 커서 우주비행선을 타고 달나라 별나라로 가는 황홀한 꿈을 꾸어야 할 나이에 마약이 주는 유혹을 자기의 가장 큰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가슴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또한 그 어린 학생에게 그런 감수와 그런 소망을 안겨준 주변의 생활환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린 학생이 생활하고 있는 주변의 생활환경이 어떠했으면 어린 나이에 그런 감수와 소망을 가지게 되었겠습니까.  어른들이 삶을 영위하는 생활공간, 그 삶의 공간이 오염된 공간이 아니라면 그 어린 학생은 그런 감수와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어른들의 생활공간만 오염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활공간까지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오염시키는 금전만능, 도덕상실, 향락주의, 폭력, 마약 등 사회악은 어린이들에게도 그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사회악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일거일동마저도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얼마전 지하철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한 어린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고 일어서자 그 곁에 섰던 한 청년이 제꺽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어른이 애들보다 못하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시체 멋을 낸 그 청년은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쏠려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곁에서 보니 그 청년이 읽는 책은 컴퓨터와 관련된 전문 서적 이였습니다. 그런 책을 읽을 정도면 적어도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겠는데 남한테 양보하는 미덕은 고사하고 남이 양보한, 그것도 어린이가 양보한 자리를 차지하고도 털끝만치라도 미안한 마음도 없이 전문서적을 들여다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장차 그 청년이 성공해서 컴퓨터박사나 컴퓨터회사의 사장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 내면 세계는 먹이를 보면 제 배부터 채우겠다고 혈안이 되어 날치는 동물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리라.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리를 양보한 어린이가 그 청년의 행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가 궁금했고 혹시 그 어린이가 그 청년의 행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장차 커서 그 청년의 행실을 다시 되풀이 할가바 우려 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어린이들 생활공간에 티 없이 깨끗한 정토를 마련해주자면 우선 어른들의 생활공간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가꿔야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오염된 세계엔 정토가 따로 없습니다. 황차 지구 전체가 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금 우리는 우리들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세계에 다문 한 뙈기라도 정토를 마련해 주어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어린이명절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듭니다.    
70    제5편 내 이름은 “뽀이” 댓글:  조회:1856  추천:3  2014-04-12
 열세살 어린 나이에 나는 우편국 심부름꾼으로 들어갔다. 열두살에 소학교를 겨우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야 할텐데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그런건 엄두도 못내고 날마다 석탄을 주으러 다녔다. 어린것이 머리 벗어지게 석탄통을 이고 다니는 것이 측은해 보였던지 이웃집 우편국 다니는 아저씨가 나를 우편국에 소개하여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때는 심부름꾼을 일본말로 “뽀이”라고 불렀는데 누구나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냥 “뽀이”라고만 불렀다. 그래서 내 이름은 “뽀이”가 되어버렸다. 그 때 내가 한 일은 화장실 청소, 국장실과 서무실 청소, 국장실에 물 끓여 공급하기, 우편 공용지 등사 등이었다.  화장실 청소같은 더러운 일 보다도 제일 힘든 것은 등사였다. 그 때만해도 우편국에서는 그 많은 우편용지를 죄다 등사해서 사용했다. 어려서 힘이 없는지라 하루종일 등사를 하고나면 팔다리가 쑤셔나고 온 사지가 물러나는 것 같았다.  손은 기름투성이가 되었는데도 비누가 없어 씻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퇴근을 해야 하는데 거리에서 남들이 볼까봐 신문지로 손을 싸매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골라 남의 눈을 피해 집에가면 새까맣게 된 내 손을 만지며 할머니는 또 눈물을 떨구시였다.  비오는 날, 비에 젓은 숯을 담아다 물을 끓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때는 풍로라는 것도 없어 부채질을 하며 불을 피우자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국장은 빨리 물을 끓여오라고 벨을 울리고 물은 끓지 않고 해서 나는 다급한 김에 이웃 중국식당에 가서 큰가마의 더운 물을 빌려오면 물위에 둥둥 뜬 기름을 보고 국장나으리는 이게 무슨 물이냐고 호통을 친다. 광복 전야 그 때는 반항공 사이렌이 자주 울렸다. 소련 비행기가 공습을 온다는 것이였다. 그러면 우리 우편국 직원들은 지정된 방공굴로 일제히 대피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밖에 나앉아 있는 할머니가 폭탄에 맞아 죽는 것만 같아 근심이 태산 같았다. 방공굴에 대피해 있는 나의 마음은 마치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을 거듭하는 동안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라고 생각한 나는 우편국 “뽀이”를 그만두기로 작심하였다.  이 때 조선으로 재가하신 우리 어머니가 연길로 이사를 왔다. 나와 할머니가 너무도 보고싶어 못 살겠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장거리에서 두부장사를 하였다. 혹시 내가 장에 나가면 어머니는 줄 돈이 없어 길바닥에서 하나 둘씩 주워 모은 고무줄을 주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고 싶어도 차마 오지는 못하고 혹시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만나면 다짜고짜 할머니를 무릎에 눕혀놓고 해가는 줄도 모르고 머리의 이를 잡아주곤 하시였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꼭꼭 찾아와서 집에는 못 들어오고 문밖에서 빙빙 돌다가곤 하였다. 가난한 세월에도 끊기지 않은 인정 서로의 마음을 의지하며 이를 악물고 우리는 힘들게 살아갔다.
69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소서!” 댓글:  조회:3247  추천:3  2014-04-05
   올해는 음력으로 청마의 해라고 한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말띠 해는 12년을 사이두고 5가지 색깔로 돌아오는데 청마의 해는 60년에 한번씩 온다니 참으로 귀한 해이다. 음향오행에 대해선 민속학자들이 풀이할 몫이고 필자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것은 덕담이다. 음력을 사용하는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 새해 덕담은 양력설 전야로부터 음력설까지 이어진다. 올해가 음력으로 60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청마의 해이니 말과 관련된 덕담이 많을수 밖에 없다. 전한데 의하면 갑오년 청마의 해는 성공, 선구자, 장수, 강인함을 의미한다. 아마 말의 추진력, 행동력에 따른 신격화가 아닐가 싶다. 청마의 해 덕담을 두루 살펴보면 청마의 해가 가지는 푸르름이 뜻하는 행운의 기운을 담은 덕담이 위주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중국국제방송에서는 해마다 양력설과 음력설에 특집프로를 방송하고 있다. 주로 조선과 한국, 중국의 조선족 청취자들의 새해 소망을 다루는 프로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청마의 해 소망을 두루 모아보니 사자성어를 이용한 덕담이 많았다. “손쉽게 성공한다는 뜻의 마도성공(马到成功 )” “곧 바로 성공한다는 뜻의 마상성공(马上成功” “줄기차게 달린다는 뜻의 쾌마가편(快马加鞭)” “항상 선두에서 달린다는 뜻의 일마당선(一马当先)” “곧 돈이 생겨 부자 된다는 뜻의 마상유전(马上有钱)” “천리마가 백낙을 만나 천하에 알려진다는 뜻의 백낙일고(伯樂一顧)” 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사자성어였다.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가 워낙 많기에 대체 얼마나 있는가 알고 싶어 검색해 보니 무려 380여개 사자성어가 뜨는것이였다. 한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전 격변하는 시대에 그 흐름에 합류하라는 내용을 담은 글 한 편을 보았는데 글이 인용한 사자성어가 “곧 바로 성공한다는 뜻의 마상성공(马上成功)”이였다. 누군가 시대 추세를 한 마리 말에 비유했다. 그의 말을 빈다면 “시대 추세가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말 뒤를 따라 뛰면 영원히 말을 따라잡을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그냥 말을 탄다. 이것이 바로 마상성공(马上成功)이다.” 시대 추세를 따르지 못해 몰락한 실례에서 코닥필름, 노키아, 쏘니 등 한 때 쟁쟁했던 글로벌 기업이 자주 등장한다. 코닥필름은 1991년까지는 기술면에서 세계 동업종보다 10년을 앞섰지만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외면했기에 2012년 1월 파산을 선고했다.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곳이 원래는 코닥필름이 4천만 달러를 들여 20년 명명권을 따낸 할리우드의 코닥극장이였는데 파산선고로 극장 이름이 돌비극장으로 바뀌였다. 카메라 본산인 쏘니는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을 장착한 노키아에 기가 꺽혔고 한참 잘 나가던 노키아는 컴퓨터 기업체인 애플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대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청마의 해 번영을 기원하는 사자성어중 필자의 이목을 끄는 사자성어가 있다. 그것이 바로 “거수마용(车水马龙)”이다. “왕래하는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오가는 말은 꿈틀거리는 룡과 같다.”는 뜻인데 주로 번창함을 비유한다. 그런데 이 사자성구가 번창함을 뜻하는것이 아니라 아부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유래되였다는데서 필자는 이 글에 그 유래를 옮겨본다. “명덕 마왕 후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인데 동한 명장 마원의 딸이 태후로 되자 간신들이 아부하느라고 태후 형제들을 제후로 봉하라고 간언하자 태후는 “내 형제들 집 앞엔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로 ‘거수마용’ 입디다.” 하면서 간신들의 청을 물리쳤다고 한다.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찾아오는 아부꾼들의 행렬을 빗댄 말인데 청마의 기운이 센 해에 권력의 기운에 편승해 보려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을것 같아 미리 이 사자성어로 경종을 울려본다. 청마의 해 덕담에서 필자가 가장 선호하는 덕담은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소서!”이다. “말하는대로”라면 아직도 진행형이다. 올해를 보내면서 그냥 매사에 뭔가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에서 나온 덕담이다.    “말하는대로”는 약속이나 언약이나 계획을 뜻한다. “말하는대로”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약속, 언약, 계획에 대한 리행이 따라야 한다. 개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집단, 나아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소망은 꿈으로도 통한다. 사람마다 꿈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주 작은 꿈이라도 그런 꿈들이 모아지면 국민의 꿈이 된다. 권력, 금전, 명예를 가진 자나 없는 자를 막론하고 개개인이 자그마한 꿈이라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청마의 해이니 어느 해보다 말처럼 역동적이고 말한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소서!   
68    제4편 어려웠던 동년시절 댓글:  조회:2140  추천:0  2014-03-24
   산산이 깨져버린 우리 가정, 설상가상으로 내 위의 오빠였던 세살난 애기도 여름에 어른들이 보리타작을 하는데 벌벌 기어 나가 보리끄스럼을 먹고 죽었다. 하여 우리 집은 할머니와 나 단둘이만 남았다.  할머니는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더구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생전에 그렇게도 부러워하며 사달라고 하던 야쟁금과 자전거를 못 사주고 끝내 가슴에 묻었다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지사라고 일본헌병대에 끌려가 죽게 얻어맞고 이마에 주먹만한 혹을 달고 왔던 일, 아버지가 일본놈들이 깍으라는 머리를 않까고 “하이칼라(긴 머리)”를 했다고 얻어맞던 일… 등등 가슴 아픈 일들을 되새기면서 할머니는 밤마다 소리 없이 울고 또 울었다.  어지러운 세상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고도 많고 또 그 사연들의 깊은 뜻을 다 알 수는 없어도 애처로운 할머니 모습은 내 동년의 슬픈 기억으로 또렷이 남았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 한 푼 나올 곳이 없는 할머니와 내 앞에 어려운 시련이 닥쳐왔다. 우선 두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데 누가 돈 한푼 준단 말인가. 그 시절에는 너 나 없이 어렵기란 매일반, 동정은 해도 구원을 손길을 내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별의별 궁리를 하다못해 할머니는 막걸리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왜정시대에 개인집에서 막걸리를 해파는 것음 금물이었다. 말하자면 경찰의 눈을 피해 도둑막걸리장사를 해야 했다. 낮에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파출소의 순사가 곧장 달려왔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남들이 모두 자는 밤중에 막걸리를 해야 했다. 할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맷돌질을 했다. 나도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불쌍해사 자다 말고 눈을 부비비며 일어나서 할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열 살도 되나마나한 어린 아이가  밤중에 일어나 맷돌질을 하자니 오죽했으랴. 채 잠이 깨지 않아 눈을 감고 맷돌을 돌리다가 깜박 졸아 맷돌 손잡이에 이마를 찍곤했다.  한번은 순사가 들이닥쳤다. 할머니는 경찰서에 잡혀갔다. 호되게 꾸지람을 받은 할머니는 살아갈 길이 너무도 막막하여 다시는 안하겠다는 다짐도 못하고 그냥 눈물란 흘렸다. 보기가 너무도 안되었던지 순사는 때리지는 못하고 배급통장만 몰수했다.  배급통장을 빼앗긴 할머니는 앞이 더 캄캄했다. 배급에 목숨을 걸고 사는 그 시절에 배급통장까지 빼앗겼으니 어떻게 살아가랴. 세상은 왜 이다지도 갈수록 심산일까.  그러던 어느 날 배급통장을 가지고 가면 “갸라메루(사탕의 일종)”를 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것이 못시 먹고 싶었으나 통장을 빼앗긴 우리로서는 할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나는 마음을 크게 먹고 경찰서로 찾아갔다.  “왜 왔냐?”  순사가 물었다.  “통장을 주세요.”  나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뭘 하자고?”  “가라메루가 먹고 싶어요.”  “안돼!”  순사가 소리를 높혔다.  이때 어린 마음에도 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가며 두 손을 싹싹 부비며 말했다.  “순사아저씨, 딱 한 번 갸라메루만 타먹고 가져올게요. “  너무도 쬐고만 계집애가 손을 싹싹 부비며 사정을 하니 순사가 내 귀를 잡아올리며  “꼭 가져와. 거짓말 하면 안돼! 알았어?”  그래서 배급통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순사는 그 일을 잊었는지 통장을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우리도 가져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또 막걸리에 손을 댔다. 할머니는 구들장을 번지고 술을 안곳는 것처럼 해놓고 고은 술은 병에 넣어 이웃집 외양간 소여물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몰래 팔았다.  막걸리를 고으면서 불을 때자니 나무도 없고 석탄은 더욱 없었다. 할머니는 우시장에 나가 소똥을 주어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땔거리였다. 할머니는 소똥을 주어다가 마당에 널어 말리웠다. 그래서 우리 집은 소똥집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그러던 중 들은 소문에 일본 관사에 가면 석탄을 주어올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 어른들을 따라 나섰다. 우리는 그 석탄을 아궁이에 넣을 엄두도 못하고 그걸 주워다가 장마당에 나가 팔면 혹시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나는 열심히 땅에 묻힌 석탄을 쇠고랑이로 파서는 빈 석유통에 담았다. 그 때 석유통 하나에 가득 담아 장마당에 내다 팔면 그 때 돈으로 12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통을 머리에 이고 오기엔 어린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안감힘을 다 써서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다 넘어지면 석탄이 몽땅 강물에 쏟아지고 빈 통만 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하루 종일 헛수고를 한 나는 강변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소문이 들려왔다. 량식창고에 곡식 주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나도 따라나섰다. 가보니 과연 듣던 소문과 같이 겉수수쌀을 실어간 뒤 널린 낟알들이 흙에 범벅이 되어 널려있었다.  나는 땅에 박힌 낟알을 열심이 파서 통에 담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창고에 들어가 좋은 곡식을 퍼 담았다.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때 창고 지키는 사람이 달려와 소리 질렀다.  “뭣 하는 짓이야?”  그 소리에 놀라 모두들 도망쳤다. 나는 다소 겁이 났지만 도둑질 한 것이 없으니 그냥 앉아있었다. 창고지기는 내 통을 들어다보더니  “너 도둑질은 안했구나. 정직한 애구나.”  그러곤 “날 따라와.” 하는 것이었다.  창고지기는 창고에 들어가 좋은 곡식을 한통 퍼담아주며 어서가 먹으라고 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하니 할머니는 무등 기뻐하시며  “잘 했다. 우린 가난해도 언제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살림은 갈수록 막막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연길바닥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팔도에 있는 둘째 고모네 집으로 갔다. 가보니 아이가 일곱이나 되는 둘째 고모네도 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그 집 아홉 식구에 우리 둘까지 끼우니 열한 식구가 일불 한 채로 발만 가리고 새우잠을 자야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그 집 식구들과 함꼐 금전으로 올라갔다. 남이 캐고난 뒤에 버려진 흙을 담아다가 강물에 헹구면 금싸라기가 조금씩 나타나는데 그걸 재차 수은에 굴리면 아주 작은 금덩어리가 생긴다. 우리는 그걸 또 장에 나가 팔아서는 쌀을 바꿔어다가 입에 풀칠을 했다. 칠흑과도 같은 캄캄한 세상, 어디가나 우리가 살아갈 길은 없었다.     
67    제3편 기구한 엄마 운명 댓글:  조회:1829  추천:2  2014-03-14
   할아버지가 돌아가니 우리 가정은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재가를 해야 했다. 그때 생각만은 잘 사는 집에 시집을 가서 우리 집을 돕는다는 것인데 갔다는 시집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어서 돕기는커녕 제 입살이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따라나설까바 사탕 사러 간다고 나를 얼려놓고 눈물을 떨구며 떠났다. 나는 어머니가 사탕을 사들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사탕 사러 갔다는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발저둥을 치며 울었다.  후에 알고보니 어머니는 조선 남양의 한 가난한 집으로 재가했다고 한다. 어린 딸자식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나는 어머니의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얼마후에 어머니는 색동저고리를 해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할머니와 고모들은 또 내가 따라갈까 봐 너의 어머니는 너를 버리고 간 나쁜 년이라고 리간을 높으면서 그 색동저고리를 받아 입지 못하게 하였다. 너무나도 어리고 천진한 나는 그 말을 곧이듣고 어머니가 지어온 색동저고리를 받지않고 어머니도 못 본체 외면했다. 그러니 또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바람에 어머니는 나를 한번 품에 안아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면서 무거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다. 장질부사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떠는 그 무서운 병이. 왜정시대에는 어느집에 한사람이라도 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아예 그 집주위에 새끼줄을 돌리고 통행을 금지했다. 그런데 큰 외삼촌, 그러니까 어머니의 오빠가 이 병에 걸렸다. 어머니는 생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병 문안을 왔다. 병 문안을 왔다가 어머니도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약도 없는 때라 사정없는 병마는 어머니 온 집 식구를 죄다 쓸어 눕혔다. 이 바람에 나는 어머니마저 잃게 되었다.  어머니 상두가 나가는 날 우리집 문앞에서 상두가 나가지 않아 상두꾼들이 무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딸을 두고 가기가 차마 아쉬워 상두를 멈추게 했다 한다.  철없는 나는 사탕 사러 간 어머니가 언제 오나, 비행기 타고 먼 곳을 갔다는 아버지가 언제 오나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66    제2편 독립지사 할아버지 댓글:  조회:2323  추천:3  2014-02-23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일가는 할아버지를 따라 연길로 이사를 했다. 지금의 공원 문 앞, 우시장 북쪽이었다. 할아버지는 진짜 멋쟁이시다. 후리후리한 키꼴에 멋진 팔자수염을 하신, 누가 보나 지나치다가 한번씩은 뒤돌아보는 미남이었다.  서울에서 성균관 공부를 마치고 아홉 사람이 중국으로 건너왔는데 그 때는 모두 머리태를 드리우고 왔다 한다. 학자형인 할아버니는 그 후 독립군에 참가하여 김좌진장군 소속 부대에서 활약했는데 청산리전투 때에는 김좌진 장군 부대에서 군량도감까지 지내셨다.  한국에 가니까 우리 방씨 족보에 이 사실이 똑똑히 적혀 있었다. 봉림동사건 때 할아버니는 연길에 일 보러 가시고 안계셔서 봉변을 면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려서 보니까 할아버지는 중국말을 잘 하셔서 관청이나 잘 사는 집에 가서 량식을 얻어다가는 못 사는 집에 나누어 주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 돈도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방회장이라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목에 후발증이 나서 몸져 눕게 되었다. 후발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65    보름달과 귀밝이술 댓글:  조회:3545  추천:0  2014-02-14
정월 대보름날을 원소절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상원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보름날 저녁에 등불구경을 하는 풍속이 있어 등불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정월대보름날 행사에는 달맞이행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보름달은 어둠을 몰아내는 밝음, 보다 밝은 세상을 약속하는 기원의 대상물로 숭상되어 왔습니다.  전해 내려온 풍속에는 대보름날 사람들은 초저녁 홰를 가지고 동산에 올라가서 보름달 솟기를 기다립니다.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먼저 보아야 길하다고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마을 동산으로 올라갑니다. 달이 뜨면 홰에 불을 붙이고 절을 하며 소망을 빕니다. 이 날의 달빛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데 달빛이 희면 비가 많이 내리고 , 붉으면 가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진하고 뚜렷하면 풍년이 든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설 기분은 짙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 《정월 보름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 것 같습니다.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이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가져왔습니다. 예로부터 조선반도에서 정원대보름날에 행해지는 행사로는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 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다리 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농경민족의 그런 행사모습을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정월대보름날 행사 중 아침에 행해지는 행사에는 귀밝이술 마시는 행사가 있는데 이날에 마시는 술을 이명주(耳明酒), 명이주(明耳酒), 치롱주(治聋酒), 총이주(聪耳酒)라고도 했습니다. 모두어 말하면 귀가 밝아지는 술이라는 뜻입니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풍속으로, 정월 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술 한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그해 1년 동안 즐거운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마셨다고 합니다.  가족끼리 단란히 모여 앉아 남녀노소 불문하고 서로가 덕담을 나누며 술 한잔 들면서 정월대보름날의 아침을 맞습니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날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이 바로 오늘 아침 귀밝이술을 마셨는가 입니다. 1년 내내 귀로 좋은 소식만 듣기를 서로가 기원하는 이 풍속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귀밝이술의 그 함의가 조금씩 달라져가는 것도 지금의 실정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월대보름날 한 회사의 직원이 자기 상사 사무실에 들어가 상사한테 술 한잔 따라놓았습니다.  《회사에서 아침부터 웬 술인가?》  상사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니 직원이 하는 말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으신가 본데요.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그럼 이 술은 귀밝이술이겠군. 고맙지만 아침에 집에서 귀밝이술 한잔하고 나오는 길이네.》  그 말에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드신 귀밝이술은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들으시라고 드셨겠지만 이 술은 그 뜻이 좀은 다릅니다. 이 술은 전체 직원들이 부장님께서 한해동안 수하직원들의 충언을 귀담아 들으시라는 뜻에서 올리는 술입니다.》  직원의 말에 그 상사가 한참 술잔을 내려다보다가 하는 말이 이러하더랍니다.  《이 잔은 그리 가벼운 잔이 아니군 그래》  수하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 달라고 올리는 술잔은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듣기를 바라면서 드는 술잔보다 무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현대판 귀밝이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목소리를 그것도 귀 따가운 충고든, 귀맛 좋은 축원이든 지어 거친 욕이든 다 들어줄 흉금을 가지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더 밝아지지 않을 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정월대보름날이 무거운 잔이든 가벼운 잔이든 귀밝이술을 들면서 서로가 덕담을 나누고 또 보름달을 보면서 한해의 소망을 비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날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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