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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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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2) 김장혁
2022년 02월 15일 09시 46분  조회:144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아빠, 미리 유서를 써놓으세요."

      며칠 후 문걸의 병세는 놀랍게 급호전돼갔다. 백지장 같던 얼굴에도 벌거스름하게 피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식사할 수 없고 대변을 보지 못했으며 링겔에 의해 버텨냈다. 운남 “백약”을 먹을 때에야 비로소 찬물이라도 몇모금 마실 수 있었다. 위혈관이 확장되면 또 위출혈을 할가봐 따가운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해 찬 샘물을 마셔서 위통증이 심해 참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삶의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다.
간호원이 들어와 손등에 꽂은 링겔주사바늘들을 쏙쏙 빼버리고 산소호흡기를 떼냈다. 뒤이어 김춘희의사와 간호원, 간병원이 안간힘을 다해 문걸을 안아 휄체어에 앉히고 밀고 병실을 나갔다.
(어디로 갈가? 태평방에?)
문걸은 질겁했다. 그는 자기가 죽음 앞에서 뜻밖에도 가물의 실돌피처럼 취약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 휄체어는 문 앞을 지나갔다. 태평방은 병실에서 십여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건만 그때만큼 가까우면서도 멀어보이기는 진짜 이상하였다.
춘희의사는 문걸을 피뜩 보고 위안의 말을 몇마디 하였다. 문걸이 아무리 찬찬히 뜯어봐도 안경을 건 춘희의사의 눈은 쌍까풀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산대 김춘희 아니란 말인가? 말소리는 비슷한데. 아니야, 등산대 춘희의 눈은 분명 쌍까풀눈이야. 머리도 어깨 넘어 굽실굽실 파도 치는 커피색머리였어. 등산대 춘희는 자영업을 해서 아주 자유롭다고 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춘희의사는 당직의사여서 다른 급진환자들의 병실에 총망히 들어갔다. 문걸은 춘희의사의 하얀 뒤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확실히 커피색머리 아니라 까만 단발머리였다. 그는 속절없이 등산대 춘희기를 바라는 가련한 자기를 발견하였다.
등산대 춘희는 등산대를 따라 장백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만난 녀자친구였다.
그날, 그들은 등산을 마치고 원시림 속에 자리잡은 호텔에서 술상을 차려 알찌근하게 마시고 노래방기계를 틀어놓고 마음껏 노래하며 춤판을 벌렸다.
나중에 일어난 춘희는 마이크를 잡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찰랑찰랑”이란 노래를 아주 경쾌하게 불렀다.
문걸은 체면을 잃고 일어나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그날 밤에 문걸은 경쾌한 노래에 맞춰 그녀와 손에 손잡고 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즐겁게 사교무를 추었다. 그때부터 문걸은 춘희를 “찰랑찰랑”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찰랑찰랑, 오늘 등산대그룹에서 훈춘 경신 부근 두만강변으로 간다는데 가지 않겠소?”
“화가선생님께서 부르면 무조건 가야죠. 훈춘은 저의 고향인데요. 호호호.”
영희와 별거한 후 춘희는 적막강산에서 헤매는 문걸에게는 얼마나 크나큰 정신위안으로 되였는지 모른다.
춘희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가 부른 “찰랑찰랑” 노래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상 싶었다… 
간병원과 간호원이 문걸을 밀고 승강기에 앉아 2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줄느런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원이 서찰에서 뭔가 꺼내 문걸한테 보이면서 나직이 말했다.
“오늘 위장경을 해보면 병인이 확진될 거예요.”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급진구급환자였기에 먼저 위장경진료실에 밀려들어갔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문걸을 진료침대에 눕혀놓고 둔부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잠시 후에 문걸은 마취돼 굳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문걸이 깨났을 때는 급진실의 간호원이 자기를 휄체어에 싣고 복도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마취된 미열에 아직도 머리가 흐리터분하였다.
대기실에서 정호와 순정, 간병원이 마중했다.
“위장경검사결과 어떤가요?”
간호원은 그저 담담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대장에 종양이 여러개 있더래요. 종양모양을 봐서 악성 종양은 아닌 거 같아요. 이제 래일 쯤에 병리분석결과 나오면 알게 돼요.”
문걸은 그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는게 얼마나 피곤한가. 훌 죽어버리면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모든게 끝나겠는데…)
래일이면 사형선고를 받을지도 모를 판이였다. 병실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간호원이 산소호흡기를 달아놓고 나갔다.
그날 깊은 밤에야 정호와 순정이 돌아갔다.
문걸이 살펴보니 간병원이 침대 옆에서 걸상에 앉아 끄떡끄떡 자불고 있었다.
문걸은 간병원의 눈치를 흘끔흘끔 훔쳐보면서 주사바늘을 쏙 뽑아버리고 산소호흡기마저 훌훌 떼버렸다.
때마침 간병원이 눈을 떴다.
“왜 이래요?”
그녀는 황망히 병실에서 달려나갔다.
이윽고 복도에서 급촉한 발걸음소리들이 가까와졌다.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황급히 달려 들어왔다.
춘희의사는 문걸이 이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녀들은 부랴부랴 산소호흡기를 달고 주사바늘을 손등에 꽃으려고 애썼다. 문걸은 손을 마구 휘두르며 협조하지 않았다.
춘희의사가 엄숙하게 말했다.
“왜 이래요? 이렇게 합작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중병을 치료해요? 겨우 구급해놓으니 왜 이래요?”
문걸은 춘희의사가 사무럽게 나올줄은 몰랐다.
춘희의사와 간병원 만금이 문걸의 두 손을 꽉 누르고서야 간호원은 억지로 손등에 주사바늘을 꽂을 수 있었다.
급보를 받고 정호와 순정이 달려왔다.
정호는 춘희의사한테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뭔가요?”
“얘네 화장실입니다.”
춘희의사가 핸드폰의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경악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피범벅이 된 변기와 위생실 땅바닥이 나타났다. 한심한 것은 화장실로부터 출입문까지 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춘희의사는 정호와 순정을 복도에 데리고 나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본인은 세번 설사한 거 같다고 하지만요. 혈변을 본게 확실해요. 구급실에 5분만 늦어 갔어도 생명이 위험했어요. 혈변이 너무 심해 자칫 구급해도 뇌혈공급이 부족해 뇌세포가 죽어요. 그럼 살아나도 식물인이 되죠. 진짜 기적이예요.”
정호는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긴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어놓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춘희의사는 다시 병실에 들어가 문걸한테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위장경을 했는데요. 초보적으로 진단할 수 있어요. 밤중에 공복에 아스피린을 잡쉈기에 혈변을 본 거 같아요. 대장 종양이 터지면서 혈변을 볼 수도 있는데요. 지금 종양 모양을 봐서 악성 종양 같잖고 대장종양이 혈변원인일 가능성은 적어요. 병세는 날마다 기적적으로 호전되고 있어요. 안심하고 병치료에 잘 협조해 주세요.”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나간 후 정호가 말렸다.
“문걸아, 못난 짓 하지 말라. 완강한 정신과 신심으로 병마를 이겨내야 해. 죽을 용기가 있으면 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왜 살려는 의지는 없는 거야.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잖니? 벌벌 기여서라도 살아나야 해.”
문걸은 그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겐 이젠 아무 것도 없어. 세상에 믿을만한 처자도 없다. 누굴 믿고 이 세상에서 고통스레 살아야 하는가.)
문걸은 한편으로 아직도 자기가 처자들한테 기대고 싶어하는 간사한 마음에 놀랐다.
(아니야, 절대 처자들과 걸버무리지 말아야 해. 난 살아도 혼자 살아야 해.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아야 해. 이제 와서 돌아설 수 없어. 절대 물러설 수 없어.)
점심이 거의 돼 딸 지예한테서 핸드폰 화상통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아마 정호와 순정이 알린 것 같았다.
문걸은 핸드폰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자 단신이 오지 않았겠는가.
 
아빠, 몹시 편찮은가요? 진작 알리지 않고 뭔가요? 제가 이제 단위에 청가 맡고 곧바로 아빠한테 날아갈테요. 엄마한테도 알렸는데요. 병원에 갔다고 하던데요. 아빠, 딸의 말 듣고 절대 엄마하고 갈라지지 말아요. 이럴 땐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하잖아요. 아빠, 딸이 갈 때까지 꼭 도정신해 건강하게 계셔요.
         
                                  아빠가 사랑하는 딸 지예
.
 
딸애의 단신을 보고 문걸은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뒤이어 떨리는 손으로 단신을 보냈다.
 
       지예야, 고맙다. 회사 일 바쁘겠는데 절대 오지 말라.
 

문걸은 죽으면서 애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에 메시지를 썼다가 지워버렸다.
(지예야, 넌 에미를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구나.)
래일이면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를 앞두고 그는 끝없는 상념에 잠겼다. 언제 저승사자가 들이닥칠지 모를 상황이 아닌가.
창문 밖에서는 염라전에 흩날리는 지전 같은 함박눈이 펑펑 흩날려내린다. 그는 절망 밖에 쏟아지지 않는 것 같은 그 창문을 내다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였다.
(에잇, 저 창문으로 훌쩍 뛰여내리면 모든 것이 끝나겠는데. 에잇, 침대에서 일어날 맥이 있어야지. 사는게 정말 귀찮아. 진짜 생사피로야.)
그는 래일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 한평생을 피뜩피뜩 돌이켜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제껏 얼마나 살자고 애를 썼던가. 뉘 창고자리에 구들을 놓은 세집에 첫날 이불을 펼 때 속으로 피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던가. 코구멍만한 세집에서도 구들농사만은 잘해서 아들 낳고 또 딸까지 낳았지. 아침에 일어나면 물독이 떵떵 어는 세집에서 살면서도 사랑만은 뜨거웠지. 그 사랑의 힘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꿈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려고 바둑거렸고 인생의 허무함을 억지로 달래지 않았던가. 새도 둥지 있는데 어찌 사람이 집도 없이 살겠는가. 아들딸 데리고 세집을 벗어나 자기 벽돌집에서 살려고 얼마나 기를 썼던가. 단위의 번중한 건축설계임무를 완수하고 과외로 광고설계도 하고 건축공사에 돌아다니면서 아빠트재건축설계를 맡아다가 밤늦게까지 설계해 돈을 벌었댔지. 가만가만 미녀모델들을 모집해 루드인체화도 그려 팔아 목돈을 벌어들였지. 우린 끝내 시내 복판에 우리 둥지를 마련했지. 집들이에 앞서 택일을 해서 옥수수 이삭 몇개를 가지고 우리 새 아빠트에 가서 먹으면서 한평생 그 새 집에서 깨알이 쏟아지게 살자고 맹세까지 하지 않았던가. 우리 둘만이 새 집에서 사랑의 장작더미를 활활 불태우면서 랑만적인 하루 밤을 지새우지 않았던가. 아,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 힘들게 살았지만 제일 행복했지.)
여기까지 돌이키는 순간 저도 몰래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우리도 젊어서 한때는 재미나고 행복하게 산 적도 있었지. 그때 영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고마웠는가.)
   가무단에서 한다하는 무용수였지만 뉘 창고자리 세집에서 살면서도, 예술인의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언제 한번 툴툴거린 적이 없었다. 농촌의 앓는 부모를 모시고 산다고 허물한 적이 없었고 뇌출혈한 시아버지 뒤바라지를 하면서도 언제 한번 상을 찡그린 적이 없었다. 숱한 이쁜 녀모델들을 묻혀가지고 다니며 루드 인체화를 그려도 언제 한번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영희는 나를 싫어했다. 아, 그래. 퇴직을 앞두고 눈에 뜨이게 신경질이 많아졌지. 맨날 시부모와 시형, 시누이들이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는지, 주는 건 없고 끌어가기만 한다는지. 녀성의 활력소나 다름없는 그것이 간 후부터 웬 영문인지 남편이 싫다는지 하면서 잠자리도 갈랐지. 한 이불에 들자고 하면 활활 밀어놓으면서 이불을 안고 다른 침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두덜거렸지. ‘이젠 예순이 다 된 령감이 아직도 그 지랄하려고 승냥이처럼 달려들긴! 흥!’. 젊어서 그렇게 부드럽던 목소리도 악청으로 변해 앙칼졌다. 갱년기종합증인지 녀모델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수림 속에 가서 루드유화를 그리는 것도 못하게 했지. 그래서 몇번이고 국제인체화전시회에도 참가할 기회마저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문걸은 밑도 끝도 없는 씨꺼먼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상 싶어 가슴이 숨막힐 듯이 갑갑하고 고통스러웠다.
(나의 예술생명을 위해 부끄러움도 잊고 미녀모델들 대신 직접 모델을 서주던 영희 같잖았어. 이젠 사랑도 전도도 다 망쳐먹는 장애물로 돼버리지 않았는가. 명색이 안해지만 갈라 산지도 천날 하고도 꼬리 붙지 않는가. 나이 들어 육체는 늙어가고 사랑은 메말라가고 서로 염오하면서 더 살 멋이 있겠는가. 물론 부모가 갈라지거나 내가 자살하면 아들딸한테는 큰 타격이 될 거야. 그러나 자식의 위신을 보거나 사회 체면을 봐서 억지로 산다는 건 없잖은가?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한 지붕을 쓰고 사는 건 무리야. 비도덕적이야. 아니, 범죄야.)
밤중에 핸드폰에서 위쳇 신호가 들렸다. 열가 말가 하다가 혹시 춘희 단신이 아닐가는 미련에 핸드폰을 들었다. 뜻밖에도 지예의 단신이 또 떴다.
 
       아빠,
       딸이 가지 못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래일 단위 년말총화문예야회에서 사회를 맡게 됐어요.
      아빠,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말고 완강한 의력으로 살아야 해요.
       아빠는 아들딸을 시집장가 다 보내고 집도 다 장만해 주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재미나게 살 한창 년세인데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한가지 부탁드립시다. 절대 리혼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 다 재혼하면 이담 유산 누구 좋은 노릇하겠어요? 아빠가 화실마저 뉘네 개쌍년 밑구멍에 처넣으면 어떻게 해요? 귀여운 딸한테 맨물도 남기지 못할 거 아닌가요?
       좋기는 미리 딸한테 화실을 넘겨준다고 유서라도 작성해 놓으세요. 이담 오빠하고 티격태격 송사놀음을 하지 말게 말이죠. ㅎㅎㅎ.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딸 지재삼 부탁드려요…
 
     문걸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어 억이 꽉 막혔다.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키운 딸앤가. 참, 지금 애들은 곱게 자라서 자사자리해. 모든 건 자기 중심이야. 에잇, 훌 죽어버리면 다야. 애들한테 부담도 주잖고…)
     한밤중까지 문걸은 끝없이 고민하였다.
      (에이, 지금 애비는 생사선에서 헤매는데 새끼들이 유산분쟁을 시작하지 않는가. 훌 죽어버리면 다야. 보지 않으면 약이야. 아예 래일 사형선고를 받았으면 좋겠어. 훌 죽어버리면 모든 생사피로에서 홀가분하게 해탈될게 아닌가.)
      간병원마저 곤해 옆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 틈을 타서 문걸은 산소호흡기를 슬쩍 떼내고 링겔줄을 입으로 물어 끊어버렸다. 안간힘을 다해 모로 누워 침대 아래 쪽으로 손을 드리웠다.  뻘건 피가 링겔줄을 따라 주르르 땅바닥에 흐르기 시작하였다…
                                       
                                  4. 미녀로봇


“아니, 이게 웬 일인가요! 사람 살려요!”
간병원이 황급히 고함치며 복도로 달려나갔다. 급촉한 발걸음소리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간호원이 문걸의 손등에서 링겔주사바늘을 뽑아버렸다. 병실 하얀 타일을 붙인 땅바닥에 뻘건 피가 랑자하였다.
춘희의사가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아놓았다. 뒤이어 그녀는 문걸의 눈시울을 번지고 손전지를 비춰 보았다.
간병원은 너무 놀라 두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혈압을 재이오.”
춘희의사 지령에 따라 간호원은 혈압기를 가져다 재이고 간병원은 옆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섬섬거리다가 장대걸레를 가져다가 땅바닥의 피를 닦았다.
“혈압 60대 69!”
“빨리 수혈해야겠소.”
“B형 혈장이 얼마 없는 것 같아요.”
춘희의사는 주저없이 자기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내 피를 수혈하기오. 내 혈형이 B형이요.”
간호원은 주저하다가 황급히 간호원실로 달려가 수혈주사를 들고 달려왔다. 춘희의사는 간병원과 함께 옆의 침대를 끌어다가 문걸이 누운 침대 옆에 거의 붙이다 싶이 했다. 그녀는 그 침대에 누워 팔을 내밀었다. 간호원은 춘희의 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빨간 피가 수혈호스를 따라 문걸의 몸으로 천천히 흘러들어갔다.
춘희의사의 피를 800그람도 넘게 수혈해서야 문걸의 혈압이 60에 80으로 온정되였다.
그새 간호원은 혈장고에 련계해 B형혈장을 가져왔다. 그제야 춘희의사의 몸에서 피를 더 뽑지 않고 혈장고에서 가져온 피를 수혈하기 시작하였다. 거의 2000그람이나 수혈해서야 문걸은 간신히 사선에서 구급되였다.
정호와 순정이 급보를 받고 밤중에 황급히 뛰여왔다.
이윽고 영희와 아들 군철도 들어섰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추 병원으로 달려왔다.
정호가 인사불성이 된 문걸을 내려다보며 기막혀 중얼거렸다.
“아니, 못난 놈이라구야.”
옆에서 순정이 정호의 팔을 툭 쳤다.
군철은 그저 아버지 하얀 손을 잡고 바보처럼 멍해 볼뿐이였다.
뜻밖에도 영희는 문걸의 팔을 잡고 흔들며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여보, 내 뭐랬는가요? 갈라 살면 절대 안된다고. 기어이 갈라살더니 이게 뭔가요? 열흘 동안이나 생사선을 오갔는데 옆에 녀편네도 없이, 남보기에도 이게 뭔가요? 괜히 날 인정도 없는 녀편네로 만들 건 뭔가요? 흑, 흑, 흑.”
   나이 들어 사랑이 식어가고 티격태격 싸웠지만 필경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부부가 아닌가. 그녀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남편이 저도 몰래 저으기 불쌍해났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께로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가늘게 들먹였다.
한참 후 그녀는 춘희의사를 돌아보고 물었다.
“병세가 어떤가요?”
춘희의사는 문걸의 팔을 걷고 다시 혈압을 재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생명위험은 없어요. 그러나 대뇌혈공급이 부족했기에 뇌세포가 위험해요. 뇌세포가 얼마간 죽으면 식물인은 몰라도 사유와 행동에 불편할 수도 있어요.”
“아이구, 그럼 어쩌오?”
갑자기 영희는 풍덩 물앉더니 무릎을 치며 대성통곡쳤다.
“아이고, 내 팔자야.”
딱마치 이제까지 죽어가는 남편이 불쌍해서 울었다기보다도 앞으로 자기한테 부담이 될가봐, 자기 앞날이 근심돼 우는 것 같았다.
춘희의사는 분내, 향기내 물물 풍기는 영희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훤칠한 체격이라든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라던가 젊어서 인물체격자랑은 할만한 50대 중반의 멎쟁이 녀성이였다. 그런데 건뜩 쳐든 조개턱만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춘희의사는 조용히 병실에서 물러나갔다.
(저런 것도 녀편넨가?)
정호가 따라나오면서 춘희의사한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김의사, 숱한 피까지 수혈해주다니요.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죽어가는 환자를 구하는 건 우리 의사들의 천직이예요.” 
      춘희의사는 담담히 말하고는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의사실로 돌아갔다.
영희는 집에 돌아와서도 뜬눈으로 지새우나 다름없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영희는 병원에서 밤을 지새운 아들한테 밥을 가져가려고 신을 신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순정이 오지 않았겠는가.
“얘, 어제 그게 뭐냐?”
순정은 신을 벗기 바쁘게 핀잔부터 했다.
영희는 조개턱을 쳐들고 쌍까풀눈을 무섭게 흘겼다.
순정은 성깔이 사나운 년년생인 사촌녀동생한테 항상 져 주었지만 이번만은 아니였다.
“그게 뭐냐? 숱한 사람 앞에서 그게 뭐냐? 죽는다 산다 하는 나그넬 앞에 두고 팔자타령하니?”
영희는 코방귀를 뀌더니 도시락을 내려놓고 쏘파에 와서 순정과 마주 앉았다.
“리혼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줄 알아라.”
순정은 영희를 욕했다.
“그게 뭐냐? 그래도 그 나그네 그림 그린 덕분에 오누이한테 그 비싼 상해 집도 사주지 않았느냐? 이젠 다 우려먹은 김치독이라고 버릴 예산이냐?”
영희는 쌍까풀눈을 치뜨며 순정을 쏘아보았다.
“내막을 잘 모르면서 작작 삐쳐라. 그 나그네 내 없이 루드그림을 한장이라도 그렸을 거 같애?”
“무슨 소리냐? 그럼 네가 그림 그렸니?”
“흥!”
영희는 도고하게 턱을 쳐들더니 코방귀를 뀌였다.
그들 부부는 성호 부부의 소개로 화가와 녀모델로 만나 첫눈에 정이 든 부부였다. 화가와 무용수였지만 신성한 예술에 초점을 맞추자 공동점이 생겼다. 영희가 아무리 가무단 무대에 올라 춤을 춰도 몇푼 생기는게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문걸마저 과외시간에 산수화를 그려도 그림 한장 팔리지 않았다. 고육지계로 문걸은 대담히 인체화 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루드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밤이면 애들을 재워놓고 영희를 보고 라체모델을 서게 하고 인체화를 그렸다. 얼굴만 살짝 다른 녀인의 얼굴을 그려넣어 팔았다. 루드인체화는 국내외인체화전시회에서도 여러차례 상을 받았고 국외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잘 팔랐다. 문걸은 루드유화를 그리던데로부터 나중에는 영희의 라체를 촬영해 컴퓨터로 다른 녀인의 얼굴을 살짝 바꿔 합성해 가만가만 암시장에서 팔았다. 어떤 때에는 라체화를 팔다가 경찰들한테 꼬리를 밟혀 치안구류된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여 벌금을 엄청 내고서야 풀려나오군 했다.
“얘, 그때 네가 널직한 아빠트에 고급승용차까지 갖춰야 딸을 낳아주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그네 그런 길을 걸었겠느냐?”
순정의 핀잔에 영희는 버들잎 같은 눈섭 꼬리를 치켜올리면서 쌍까풀눈을 흘겼다.
“언니는 몰라. 희신염구(喜新厌旧)라구, 내 나이들자 내 라체를 보아도 창작 령감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뭉치돈을 찔러주고 젊고 섹시한 미녀들을 숱해 화실에 끌어들였어. 그때 기분이 어떤지 알아? 숱한 미녀라체모델을 묻혀가지고 다니다가 무슨 일인들 칠지 누가 알겠어?”
“쯧쯧.”
순정은 억이 막혀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나그네 핸드폰에 위치공유앱을 설치해놓았구나. 너  3년 동안 아들딸집에 가 있으면서도 감시했구나. 진짜 갱년기합병증이야. 나그네 널 늙었다고 싫어하니? 아니면 네가 나그네 싫어졌니? 도대체 어째 리혼하겠다는 거냐?”
영희는 순정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며 도도거렸다.
“이젠 저 나그네 싫어. 우리 년령대 녀자들은 그게 간 후엔 남자들이 필요없어. 어쩐지 이상하게 아프기만 하고 아무 쾌감도 없어.”
영희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순정한테 물었다.
“언닌 아직도 나그네 좋니? ”
순정은 할 말을 잃었다. 자기도 확실히 그게 간 후부터 남편이 달려드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남편이 외도라도 할가 봐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수긍할 때가 많았다. 그것도 외박이 많은 정호가 성병이라도 묻혀올가봐 콘돔을 끼우고 마지못해 응대하는 때가 많았다.
(녀자들은 50대 중반만 넘기면 거의 다 남편이 싫은 모양이지?)
그러나 순정은 속심대로 말할 수 없었다. 괜히 행복한 녀동생의 가정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난 아직도 나그네 좋아. 어떤 땐 내가 주동적으로 한 이불에 든다. 넌 진짜 성욕감퇴병에 걸렸구나. 나이 들어도 부부금술이 좋아야 녀성 호르몬과 엔돌핀 분비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아.”
영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다 손주 셋이나 본 할망구 됐는데 아직도 무슨 사랑이 있느냐? 그저 밥먹듯이 자꾸 그 지랄해 봐야 그저 그렇지. 무슨 새로운 자극이 있느냐? 격정이 있느냐?”
순정은 진심으로 타일렀다.
“이전에 엄마 그러던데. 남자들은 팔순이 넘어도 그런 욕구가 있다더라. 우리 아빠는 팔십셋에 세상뜨기 전 한달 전까지도 밤이면 엄마 옆에 오느라고 애쓰더란다. 나그네 옆에 오는 걸 싫어해선 안돼. 그럼 나그넨 바깥 녀자들한테 가는 거야.”
영희는 놀라와하는 눈길로 꽤나 경험이 있어보이는 언니를 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딴 년한테 갔으면 좋겠다. 숱한 미녀모델들을 달고 다니던게 녀자 없어 근심할 나그넨 아니야.”
순정은 아무리 궁리해도 영희가 의문스럽고 리해되지 않았다.
“혹시 네 나그네 모델들과 바람을 피우진 않았어?”
영희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언니하고만 말하지만, 저 나그넬 감시하느라고 위치공유도 했지. 집과 화실에도 미형몰카를 장치해놓았다. 그런데 바깥 계집들을 끌어들인 건 보지 못했어.”
“진짜 특무정치구나.”
영희가 침실 거울 귀에 달린 조그마한 유리단추못을 뽁 뽑자 가는 련결선이 따라나왔다. 정교하게 만든 유리단추못형 미형몰카였다.
 “나그네 바람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갈라질 리유는 없잖아. 딱 잠자리 싫은 건 리유로 되지 못해.”
영희는 오만상을 다 찡그렸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과 상큼한 코 사이에 주름살이 퍼졌다.
영희는 허물없는 년년생언닌지라 툭 털어놓고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언닌 몰라. 저 나그네 예순이 돼도 잠자리에선 갈범처럼 달려들었소. 한달에 한두번이면 모르겠다. 이건 아직도 한주일에도 몇번씩이나 죽여줘. 아들딸 집에 갔을 땐 애들 눈치도 봐야는데. 난 애들을 보고 밤이면 곤해 죽겠는데 자꾸 달려든단 말이야. 숨을 딱 죽이고 목석처럼 누워 응부하는 것도 귀찮은데 아파서 진절머리 나는데 말이야."
"나이 들면 그게 점점 말라들어서 아픈 거야. 의약상점에 가서 윤활유를 사서 바르고 살면 아프지 않아. ."
"그래도 그렇지. 저 나그네 좋아서 헤벌쭉거리면서 갈범처럼 소리까지 지르는 걸 보면 딱 짐승 같아. 씨원히 갈라졌으면 시름 싹 놓겠어. 늘그막에 나그넬 해서 뭘 해? 우리 또래친구들이 다 그래. 밥이나 해주고 빨래나 해주자고 나그네와 살겠는가고 말이야? 흥! 딱 싫단 말이야. 내 상해로 가면서 울며 불며 갈라지자고 야단쳤잖아. 저 나그네 그때 대답만 해도 진작 갈라진 건데. 진짜 이젠 나그네 보기만 해도 염오스럽단 말이야. 아무리 갈라지자고 발버둥질 쳐도 저 나그네 리혼하러 가지 않는단 말이요. 참 코막고 답답하오.”
순정은 아직도 욕구가 강한 정호를 련상하면서 영희가 조금 리해됐다. 그러나 자기 부부가 혼사말을 해준 이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고  녀동생을 젊은 생과부로 만들 수 없었다.
“얘, 뭐냐? 다 죽어가는 나그네를 두고 리혼은 무슨 리혼이야?”
순정은 영희를 툭 쏴주었다. 그녀는 내심으로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문걸이 저으기 불쌍해났다.
“네 나그네 말 들어보니깐, 날마다 밤이면 네가 침대머리에 꿇어앉아 ‘저 바람둥이 나그넬 데려가라.’고 기도를 드렸다면서?”
영희는 어안이 벙벙해했다.
“나그네새끼, 리혼하자고 해도 리혼하지 않고서도 뒤에선 별 생똥 같은 소릴 다 했구나. 어째 녀편네한테 리혼당하면 자존심이 깎이우는 모양이지. 흥! 인체화가? 흥, 색갈화가 아니구? 내 팔릴가 봐 더러워서 말하지 않아 그렇지. 내 입이 터지면 저 나그넨…”
영희는 말끝을 흐리우더니 화제를 돌렸다.
“에이, 됐다, 됐어. 우리 일에 작작 삐쳐라. 형부나 잘 건사해라. 형부네 나이 되면 나그네들이 다 최후발악하는 같아. 주의해야 해.”
순정은 누구 말을 믿었으면 좋겠는지 몰랐다.
(문걸과 영희 사랑은 이미 식을대로 식었구나. 죽자 살자 하던 부부가 나이 들어 이게 뭔가? 참 답답해. 어떻게 갈라지지 말게 말릴가? 영희가  말을 듣잖는데. 대사는 대사야.)
순정은 량미간을 쪼프리고 한참 궁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얘, 영희야, 우리 엄마 말하는게 우리 아빠 늘그막에 그게 잘 안돼 몇해 안되니 세상떴단다.”
영희도 동을 달았다.
“우리 엄마도 그런 말은 하더라.”
그때라고 순정은 충고했다.
“성도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어떻게 죽어가는 남편의 기를 살리고 사랑의 힘으로 살려내라.”
영희는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쉴 뿐이였다.
“언니, 우린 이젠 늙었어. 저 나그네 날 모델로도 쓰지 않은지 오래 돼. 화가들도 창작 흥이 나자면 젊고 섹시한 미녀모델들을 얻어놔야 해. 우린 이젠 틀렸어. 할머니 다 돼가지고 무슨 사랑이고 뭐고 있느냐? 나그네들은 30, 40대 젊고 예쁜 녀자들을 보기만 해도 개처럼 느침을 줄줄 흘리면서 따라다녀. 녀자는 30댄 승냥이 같고 40댄 호랑기 같다고 하잖느냐? 우리 50대는 다 쉐빠졌어.”
영희는 침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침대 머리궤 우에 놓인 녀성성기의기랑 보고 깜짝 놀랐다. 옷궤 안에는 웬 미녀가 서 있지 않겠는가.
“어마나!”
영희나 순정이나 모두 깜짝 놀랐다.
“이건 뭐야?”
그러자 미녀가 걸어나오더니 종알거리지 않겠는가.
“미녀로봇 아사꼬야."
"뭘? 사고라구? 사고 칠 년!"
"당신은 누군가요? 왜 초면에 욕부터 해?”
영희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렸다.
“봐. 얼마나 변태인가?”
미녀로봇의 말대답질은 더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누가 변탠가요? 주인 몰래 주인의 미녀를 건드린 당신이 변태죠. 변태, 바람둥이! ”
그러나 순정은 될수록 문걸을 감싸려고 들었다.
“아마 적적하니깐. 저걸로 욕구를 달랬겠지.”
그녀는 영희의 찡그린 오만상을 곁눈질해보며 달랬다.
“그래도 동네 집 계집들하구 바람피우기만은 낫잖아. 저런 걸로 욕구를 해결했으니깐. 호호호.”
영희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미술을 해서 그런지. 어쨌든간에 괴짜야, 변태야. 어디 망신스러워 살겠어? 이젠  하루도 함께 못 살아. 우리 녀자들이라고 어디 나그네들의 정욕배설도구냐?”
순정은 너무 억이 막혀 할 말을 못 찾고 한참이나 묵묵히 앉아 영희를 멍해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때 미녀로봇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짹짹거리지 않겠는가.
“우리 주인이 없는 틈을 타 동성련애라도 하자고 그래요? 안 돼! 이 변태야. 꺼지지 못해?! 이제 주인 돌아오면 다 고발하지 않는가 봐요.”
영희는 억이 막혀 코웃음쳤다.
“흥! 훈련 잘 시켰구나. 세상에 별 일 다 보는구나. 어떻게 살아?”
미녀로봇은 손을 들어 삿대질했다.
“못 살겠으면 말아요. 누가 억지로 살아라 해요? 리선생님은 홀로 외롭게 살면서 고독할 때면 저를 꼭 껴안고 못하는 말 없이 다 하면서 고독을 말렸지요. 선생님은 밤이면 고독이 젤 무섭다고 했어요. 저하곤 아주 궁합이 척척 맞는데요. 안해라면 나그네 언제 수요하면 고분고분 순종해야지. 웬 군소리 그리도 많은가요?”
영희는 신을 주어 신으며 아우성쳤어요.
“못산다. 못 살아!”
뒤에서는 미녀로봇이 계속 종알거렸어요.
“잘 가세요. 다신 오지 마세요. 성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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