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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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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2)
2019년 10월 24일 09시 28분  조회:235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2. 아들비위
봄아가씨가 대지에 사뿐사뿐 다가왔다. 만물이 소생하여 뒤지개를 켜더니 겨우내 얼었던 몸을 툭툭 털고 소생하기 시작했다. 시내물은 조잘조잘 봄노래를 부르며 흐르고 개울가의 버드나무가지에 매달린 오동통한 버들개지들이 봄바람에 그네를 뛰고 있었다.
성호는 원래 고향에 부모의 새 벽돌집을 지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모는 하나라도 막내아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였다.
뒤늦게야 아버지 마음을 읽은 성호는 시내에 큰 아빠트를 사고 부모도 모셔올 궁리를 했다.
어느 날, 성호는 기분좋게 말을 꺼내려고 정희와 하나를 해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돈을 쪼개쓰던 아빠가 해물관에 데리고 간다고 하자 한나는 기뻐 아빠 팔을 붙안고 달싹달싹 걸으면서 종알거렸다.
“아빠, 오늘 해가 서산에서 뜨잖습니까?”
“그래? 기실 서산에 지는 해 더 아름답단다.”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도 미소가 남실남실 춤추고 있었다.
그들은 해물관에 들어서자 조용한 단간방에 좌석을 정하고 앉았다.
한참 후 신선로에서 조개랑 소라랑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었다. 정희와 한나는 큼직한 소라를 건져 이쑤시개로 뽁뽁 빼 맛있게 먹었다.
성호는 전희한테 맥주를 철철 넘치게 부어주고 한나한테까지 음료를 부어주었다.
“자, 우리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 셋은 댕그랑 잔을 부딪치고 시원하게 마셨다.
정희와 한나가 한창 들뜬 기분에 폭 빠졌을 때 성호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우리 새 아빠트를 사기요.”
“와-싸- 좋아요!”
한나는 두 손을 들어 아빠의 손과 마주쳤다.
정희는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반색했다.
“아이유, 쥐 구멍에도 볕이 들 때 있구만요.”
그녀는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부모를 모셔야 되겠는데요. 침실 3개에 객실이 있는 걸 사면 어떨가요?”
성호에게는 듣던 말 중에 제일 기쁜 말.
“정희, 한140여평방 되는 걸 사기요.”
정희와 한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 아들을 보면 아들딸이 한칸씩 차지해야지.”
정희는 대뜸 새침해졌다.
“집만 있으면 아들을 키울 수 있는가요? 저금도 한 10여만원이 있어야지.”
성호는 호언장담했다.
“택시를 하기에 한 2년이면 10만원이야 쉽게 벌 수 있겠지.”
“에이유, 큰 소린? 부모가 또 중병에라도 걸리면 그 돈이겠어요? 아들 얘긴 차차 봅시다요. 딸 하나라도 남 부럽잖게 키우면 돼요.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6.1절에 애가 그렇게 놀고 싶어하는 놀이기구조차 두개 밖에 놀지 못하게 했을 때 어때요? 난 마음이 비길데 없었어요.”
한나도 뽀로통해 종알거렸다.
“어렸을 때 풍차 아니면 말 밖에 타지 못했죠.”
성호는 한나를 흘겨보면서 을러멨다.
“정 돼지처럼 놀다간 엄마 남동생 업어오지 않으면 어쩌니?”
“동생 해서 뭘 해요. 다른 애들이 말하는게 부모 유산을 절반으로 나눈다고 하던데요. 아빠는 아들, 아들 하긴?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닌가요? 이담 나도 시집가면 아빠트를 사달라고 하지 않는가 봐라.”
“요 쪼꼬만 계집애, 벌써 시집갈 궁리까지 해?”
성호는 식지로 한나의 보슴털이 보송보송한 이마를 콕 찔러주었다.
“애개개.”
정희가 좋다고 끼여들었다.
“요즘 애들 속심의 말인데요. 지금 경제시대에 10만원으로 어느 코등에 바른다고 그래요? 우에 량가 부모 있지. 애들을 줄줄낳았다가 남들처럼 먹고 살자고 해도 쉽지 않을줄 아세요. 우린 이젠 마흔고개에 오른 중년인데요. 애들을 줄줄 낳아서 뭘 해요? 이담 애들 신세를 볼 거 같애요.”
정희의 말에 성호는 맥이 쑥 빠졌다.
그는 한나를 바라보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한나야, 넌 진짜 엄마 남동생을 업어오면 좋지 않니?”
한나는 별 생각도 하지 않고 단통 “필요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왜?”
성호는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듯한 기분에 물었다.
“남동생 있으면 엄마 아빠 사랑 몽땅 빼앗길텐데요.”
“아니야. 딸은 딸이고 아들은 아들이지. 엄마와 아빤 아들딸 다 사랑할 거야. 이담 아빠트도 똑같이 사줄 거고.”
성호는 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펴보였다.
“봐라. 이 다섯손가락은 몽땅 내 손가락이야. 어느 손가락을 다쳐도 다 아파. 아들딸이 다섯이 있으면 다 다섯손가락처럼 귀중한 거야.”
“픽! 거짓말. 엄마한테 늘 대를 이을 아들, 아들 했잖아요?”
성호는 애꿎은 맥주만 쭉쭉 굽냈다.
정희는 고향에 돌아간 시부모를 잘 모시려고 무등 정성을 다했다.
시부모가 사는 집에 세탁기를 사다놓았고 일요일마다 한나를 데리고 남편을 따라 시집에 달려와서 제때에 옷을 빨아 입혔다. 또 올 때마다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사다  푹 끓여 대접했다.
시부모가 제일 반가와하는 명태를 사다가 명태국을 푹 끓여 시부모를 대접했다.
워낙 말수 적은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정성들여 끓인 명태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들었다. 그러나 뭣 때문인지 늘 묵묵히 앉아 우울하게 지냈다.
(무슨 일이 좋지 않아 저러시지?)
정희는 시아버지를 여겨보다가 손톱이 긴 것을 보고 얼른 대야에 더운 물을 퍼다 놓고 손을 씻어주려고 했다.
“며느리, 내 절로 씻을게.”
“아니예요. 손쓰시기 불편한데요. 제가 씻어드릴게요.”
정희는 시아버지 손과 발을 대야에 불구고 말끔히 씻어드리고나서 손톱깎개를 가져다 손톱과 발톱마저 딱딱딱 깎아드렸다.
그것도 그때뿐. 상진은 예전처럼 항상 창문 너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우울해 앉아 있었다.
(시부모가 좋다는대로 하다나니 고향마을에 돌아온 건데. 혹시 사양실에서 살게 돼서 기분이 상하신 것이 아닐가? 어떻게 하면 시아버님을 즐겁게 보내게 할 수 있을가?)
며칠 궁리하던 정희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오- 아버님은 현공안국 국장에 농촌 대대당총지 서기도 하신 분이 아닌가. 오래동안 지도사업을 한 아버님은 연설하기 좋아하지 않을가?)
정희는 그날 저녁에 음식상을 거두자 집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색해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가정회의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아래에 일찍 현공안국 국장과 농촌대대당지부 서기 사업을 해오신 로지도자이신 시아버님께서 가정을 대표해 중요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박수!”
이벤트에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호마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나는 배를 끌어안고 구들에서 뒹굴며 깔깔깔 웃어댔다.
“얘, 웃긴? 일어나 앉아라.”
한나는 벌떡 일어나 똑바로 앉아 할아버지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상진은 며느리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우울하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서서히 피여올랐다.
“아버지, 한마디 얘기합소.”
성호까지 요청하자 상진은 애들을 둘러보면서 난감해했다.
“불시에 무슨 말을 하라느냐?”
정희는 시아버지 옆에 다가가서 앉으면서 직업병처럼 시아버지를 계발해주었다.
“의식주에 대해 말씀해도 좋아요. 혹시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요? 또 음식에 대한 요구도 좋고 자녀교양에 대한 것도 좋아요. 뭐나 생각나시는대로 얘기하세요.”
한참 궁리하던 상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마디 하자. 이 몇달간 아들며느리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고 잘 공대해준 덕에 중풍도 치료하고 다시 살아났다. 너희들 효성에 감사하다. 며느리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소?”
상진은 며느리를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예, 말씀해주세요.”
정희는 한쪽 무릎까지 세우고 바로 앉으면서 시아버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며느리,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이 전주 리씨네 집 안에 대를 이을 손자를  안겨주오. 그게 최대효성이요. 우리 집 대가 끊어질 생각을 하니 요즘 밤잠도 잘 오지 않소.”
영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구. 손자 없으면야 집에 기둥뿌리 없는 것처럼 허망 같지. 날 보오. 애들 열을 낳지 않았소. 또 무남독녀를 만들겠소? 며느리도 동생이 없이 무남독녀 좋습데?  한나한테도 형제가 있어야지.”
상진은 며느리 눈치를 흘끔 보면서 로친의 무릎을 슬쩍 다쳤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녀자들은 밥상을 들고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희는 이 순간에도 속으로 천마디 만마디 대답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제야 아버님의 고민을 알 것 같아요. 옛날부터 남의 집 대를 끊거나 애를 낳지 않는 녀자는 칠거지악 중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던데요. 저도 이 가문에 들어와 어떻게 하나 떡돌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요. 아버님, 들어보세요. 낳기만 해서 뭘 해요? 시부모께서 자식 열을 낳았지만 어느 아들과 딸이 부모를 모시겠다고 척 나섰는가요? 딸들은 출가집 외인이라고 외면하죠.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하나라도 효성스럽게 키우면 그게 낫다고 봐요. 글쎄요. 여건이 되면 저라고 왜 애를 더 낳지 않겠어요? 저의 부모도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를 이 집에 시집보내고 얼마나 외롭고 허무해 하시는지 아세요? 저한테도 본가집 부모를 모실 남동생이라도 있었더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며느리 마음을 모르고 영옥은 바투 들이댔다.
“며느리, 어째 한마디 말도 없소?”
그제야 정희는 머리를 들었다.
“예? 오늘 가정회의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으려고 연 회의입니다. 이상 오늘 가정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정희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사과배를 싹싹 깎아 쪼개여 접시에 담아 들여왔다.
“아버님, 아버님 말씀대로 노력할게요.”
정희의 그 한마디 말에 상진과 영옥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과배쪼각을 집어들었다.
“듣다가 제일 반가운 소리군!”
영옥은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성호는 엄마의 무릎을 툭 쳐놓았다.
뜻밖에 한나도 박수까지 치면서 반기지 않겠는가.
“우-와- 나도 남동생 있겠다야. 와- 좋다야.”
초중생인 한나는 아직도 철부지처럼 천진하게 놀았다.
정희는 시부모를 반갑게 해드리려고 갖은 방법을 다했다.
“아래에 저명한 처녀가야금수 리한나의 위문연주를 시작하겠어요. 박수!”
비좁은 집 안에서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한나는 가야금을 들어다 구들 복판에 놓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존경하는 할아버님, 할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그럼 가야금병창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연주해드리겠습니다.”
한나는 나비처럼 치마폭을 나풀 날리면서 구들에 앉더니 둥기당당 가야금을 울리면서 금방울 은방울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성호는 옆에 앉은 정희 무릎을 툭 쳤다.
“춤을 좀 추오.”
정희는 일어나더니 성호 손을 잡아 일으켰다.
성호와 정희는 한나의 구성진 노래소리에 맞춰 어깨춤을 너울너울 췄다.
“좋다!”
“좋아!”
상진과 영옥은 밭고랑같이 파인 주름살을 쪽 펴고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 치면서 함박꽃웃음을 지었다.
명월이 만공상한 달밤에 진짜 화목한 시골 가정의 친륜지락을 그린 한폭의  수채화오도 같은 장면이 오래도록 연출되고 있었다.
정희와 성호는 잠시나마 부모님들을 즐겁게 해드린 것으로 하여 기뻤다.
정희는 집에 돌아온 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전주 리씨 집 안의 대를 끊을가봐 근심이 태산과도 같은 시부모의 부탁이 너무나도 무겁고 눈물겨웠다.
(손자가 없다고 시부모가 저렇게 섭섭해하지 않는가. 본가집 아버지도 영월 엄씨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을가. 후횐들 오죽했으랴.)
그녀는 한편으로는 아들을 보겠다고 날마다 광고를 얻어들인다, 택시업을 한다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내는 남편이 가긍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경제토대도 없이 애를 줄줄 낳는다는 것도 말은 아니잖는가?”
어느 날, 그가 학교에서 퇴근해 금방 집에 들어섰을 때다. 옆집의 아줌마가 문을 두드리고 마실을 왔다.
옆집 나그네는 운수공사에서 차를 몰았는데 쩍하면 술주정을 부리면서 안해를 때리고 욕하면서 가정기물을 마구 들부셨다. 어찌나 복잡한지 한 아빠트에서 사는 이웃들이 도리머리질하며 질색이였다.
정희는 옆집 아줌마와 평소에 별로 거래도 없었다. 아줌마는 자그마한 진의 소학교 음악교원 출신이였다. 덩치는 컸지만 우악하게 눈덕에 군살이 붙은데다가 눈길에 독살이 있어 예술을 할 녀자라기보다는 꽤나 사무러운 소시민녀성으로만  보일뿐이였다.
아줌마는 어찌나 역빠른지 뗄뗄 구을어 시내 조선족문화관에까지 들어와 음악보도원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녀네도 딸 하나를 키우고 있어서 정희네 집과 가정형편이나 뭐나 비슷했다.
정희는 아줌마와 이 말 저 말 하면서 알고보니 둘 다 영월 엄씨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벌써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자고 약속까지 한 처지로 되였다.
옆집 아줌마는 이말 저말 하다가“이집이나 우리나 아들 하나는 봐야는데.” 하고 말을 꺼냈다.
“살기 바쁜데 언제?”
정희의 맥빠진 말에 옆집 아줌마는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마음만 먹고 머리를 쓰면 돈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지.”
뒤이어 아줌마는 “심심한데 우리 시문화관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정희는 좀 저어했다.
“언니, 그만 두기오. 어떻게 명가수들이 우글거리는 문화관에 가서 노래까지 부르겠소?”
옆집 아줌마는 정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에이, 사람 일은 모르오. 동생처럼 예쁜 선생이 그저 교원을 하면서 썩다니? 참 아까운 인재요. 내 다리를 놓아주지. 혹시 문화관에 전근할 수 있겠는지 어떻게 아오?”
정희는 교외 중학교로 통근하기도 힘든데다가 교원생활에 권태감을 느끼던 차에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라 무대에 오를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고 부풀어오름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정희는 옆집 엄아줌마를 따라 활동장소로 가보았다.
그날 따라 커다란 중학교 강당에 수백명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동생, 먼저 잠간 앉아 있소.”
한참 후 무대 조명이 꺼졌다. 뒤이어 무대에 둥그런 조명이 환히 비추더니 옆집 엄아줌마가 마이크를 쥐고 나타났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고 기쁩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인가 봐요. 그럼 지금부터 시조선족문화관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조명이 다시 꺼졌다가 무대를 환히 비췄다. 번쩍번쩍 빛발치는 레이저불빛과 자지러진 음악에 맞춰 문공단의 선녀 같은 무용수들이 너울너울 경쾌하게 춤추며 무대에 나타났다.
련이어 몇수의 노래음악에 맞춰 춤마당이 끝나자 또 무대에 엄아줌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른 사회자가 마이크를 쥐고 따라나왔다.
“지금부터 우리 한국JMTO주식회사 중국지사 총경리 엄희선녀사님께서 간단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박수!”
 (아니, 문화관 음악보도원이라더니. 뭐 총경리라고?!)
정희는 깜작 놀라 엄희선을 다시 여겨보게 됐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맨 그녀는 진짜 한국 회사 엄엄한 총경리처럼 틀스럽고 도고해보였다.
엄희선의 연설은 첫마디부터 아주 매혹적이였다.
“여러분,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박수!”
장내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엄희선은 연설에 앞서 반문부터  앞섰다. 수업시간에 교원이 학생들을 계발하려고  던지는 계발식물음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였다.
“돈을 누가 우리 손에 그저 쥐워줍니까?”
“아닙니다.”
“그럼 우린 미국의 최첨단상업기술로 무장한 한국JMTO주식회사를 따라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뒤이어 엄희선 총경리는 구수하게 연설인지 주입식강의인지 장황하게 늘여놓기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쥐고 흔드는 유태인들의 지혜를 알고 있는가요? 골드바흐의 추축이랑 미국의 기신져박사랑 허망 이 세상에 나온 것 같습니까? 중동을 떠난 적잖은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자기 지혜로 여러 분야에서 민족의 기개를 떨치고 부유를 창조했습니다.”
첫마디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제2차세계대전 때 일부 유태인들은 독일 파쑈들의 잔혹한 대학살에 쫓겨 지중해를 빠져나가고 대서양을 건너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해 피신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되는 막대한 경제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갑부들 속에는 유태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름난 정객 속에도 유태인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전 국무경 기신져박사도 유태인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한지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은 무엇에 의해 발달한 미국에서 이같이 놀랍게 정치, 경제,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스타들로 떠올랐겠습니까? 여러분, 아시는지요?”
정희나 기타 관중들은 엄희선 총경리 말에 모두 입을 쫙 벌리며 경악했다. 엄희선이 음악보도원이라는 자기 신분에 맞지 않게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연설을 퍼붓고 있지 않는가. 
그녀의 연설은 관중들한테 거센 파문을 일으키면서 계속됐다.
“경제분야에서만 봐도 미국에 널려있는 유태인들은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쳤습니다. 마치 몸 속을 흐르는 혈관처럼 서로 경제정보를 교환하고 상품을 구매하면서 온당하게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상품을 사도 자기가 잘 아는 유태인의 상품을 샀고 그 상품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제일 친한 사람한테 알려주어 사도록 했습니다. 또 서로 홍보하고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서로 돕고 리윤을 나누면서 잉여가치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런 다단계식 상품판매련계망을 구축해 놀랍게 무궁무진한 리윤을 창조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황금산을 쌓아올렸습니다. 여러분, 유태인들의 선진적인 다단계식 상품판매방법을 장악해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그 고함 속에는 저도 몰래 정희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아래에 한국 본 회사에서 오신 마케팀 팀장 허하늘녀사로부터 다단계식 판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하얀 와이샤쯔와 남색바지를 입은 회사정복차림의 삼십대초반 녀자가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 유서 깊은 중국 땅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너무 기뻐요. 저희는요. 공항에서 내리자 이 천년비밀이 묻힌 신비한 땅에 키스했어요. 천혜의 이 땅에서 여러 분들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 오셨기에 부자로 될 행운의 끈을 거머쥐게 됐어요. 이제 당장 황금금자탑에 오를 돈줄과 황금길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여러분 알고 싶습니까?”
“예-”
허하늘 팀장은 소학생을 다루듯 관중들의 마음을 웅켜쥐고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어째 대답소리 높지 않아요. 알고 싶은가요?”
“예- 알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을 알려드릴게요. 금방 엄희선 총경리가 이스라엘 유태인들 미국에 이주해 창조한 다단계판매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했는데요. 다단계판매야 말로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이예요. 여러분 알고 싶은가요?”
“예-”
“빨리 알려주세요.”
간절하고 조급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그때를 기다려 허하늘 팀장이 계속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다단계판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정통편만한 까맣고 동그란 자석을 엄지와 식지로 집어 들고 장황설을 그럴 듯하게 늘여놓기 시작했다.
“요건 자석인데요. 일반자석과는 달라요. 요걸 아픈 부위 경락에 찰싹 붙이면요.  그날로 신기하게 통증이 딱 멎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 의료용 자석을 팔려면요. 광고비가 다닥다닥 들어붙어요. 다단계판매는 관계망을 통해 상품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팔기에 광고비가 필요없어요. 또 도매상과 소매상 등 숱한 류통업체를 거치면서 드는 판매와 도매 상업비용을 더 팔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한테 팔지요. 때문에 소비자는 눅은 값에 살 수 있고요. 상품을 소개한 분들은 수고비로 리윤을 층층히 나눠먹을 수 있죠. 다시말하면 광고업체나 류통업체, 상업계통에 주던 쓸데 없는 비용을 남아서 소비자에겐 상품을 할인해주고 소개자한테는 수고비를 드리죠. 소비자나 소개자나 모두 수익이 있어 얼마나 합리한 분배인가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 아닌가요?”
정희는 점점 귀가 솔깃해졌다.
허하늘 팀장은 엄희선보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했다.
그녀의 달콤한 말에 의하면, 중국에 없는 한국의 화장품과 치료의기 등을 사도록 숱한 사람을 데려오면 그만큼 얻는 수익이 높아진다고 했다. 자기 수하에 한쎄트에2천원씩 하는 상품을 산 회원을 27명만 발전시키면 골든마케팀장(금팀장)으로 임명되는데 한달 로임이 근 3천원이나 된다고 했다.
“인민페 3천원, 이 3천원은 여러 분들 1년 로임에 맞먹는 어머어마한 돈이지요? 어때요? 해볼 만하지요?”
“예-”
“한국에 가지 않고서도 중국에서 천문수자 돈을 벌어보겠어요?”
“예-”
“박수!”
뒤이어 허하늘 팀장은 더욱 놀라운 소식을 공포했다.
“우리 엄희선 총경리는 석달 사이에 우리 이 홍보관에 100여명을 모셔왔어요. 엄총경리는 한달 로임이 만원도 넘어요. 여러분, 박수!”
관중들은 자리에서 막 일어나 박수쳤다.
엄희선 총경리는 무대에 재차 등장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면서 인사했다.
“여러 분, 저와 함께 가정을 위해, 내 인생을 위해 부를 창조해봅시다! 어떻습니까? 신심이 있습니까?”
“예~”
“박수!”
정희도 가슴이 설레였다. 부모께 효성하고 아들을 보려고 밤낮 돈을 벌자고 아득바득하는 성호를 도와 뭔가 하고 싶었다.
순간 그녀는 땅에 묻힌 돈줄이나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아래에 유명한 가수 엄정희 선생님으로부터 독창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박수!”
정희는 뜻밖의 요청에 깜짝 놀랐다.
“아니,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어찌?”
그녀는 할 수 없이 엄희선한테 끌리다싶이 해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악대와 몇마디 주고받은 뒤 부자로 될 푸르른 꿈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라 격정에 넘쳐 노래 한곡 불렀다. 관중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저음노래실력에 혀를 끌끌 찼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엄희선은 정희를 보고 충고했다.
“돈을 벌 좋은 기회요. 별게 없소. 친구, 친척, 동료들을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만 오오. 홍보는 전문 홍보관에서 한국 마케팀장이랑 할테니까.”
정희가 고무풍선처럼 둥둥 뜬 것을 눈치챈 엄희선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다.
“몇달만 하면 나처럼 골든팀장이 돼 한달에 만원은 탈 수 있소. 처음부터 상품을 보이면서 홍보관에 가자고 하면 오지 않소. 내 동생과 하던 것처럼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는가고 하든지, 아니면 놀러가지 않겠는가 하든지 대상에 따라 알맞는 방법으로 홍보관에 모셔오오. 홍보관에만 오면 모두 부자로 되려고 90프로는 상품을 사오. 친척친구들도 부자로 되게 하는 좋은 일이요. 왜 부자로 되는 일을 하잖겠소.”
정희도 다단계판매에 푹 빠져 당장 부자로 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니, 손잡고 해보기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소.”
희선은 정희의 손을 굳게 잡고 헤여져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정희는 성호와 다단계판매를 하러 다닌다는 말도 없이 이튿날부터 다단계판매홍보관에 사람을 끌어들였다.
제일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를 홍보관에 모셔가기로 했다.
정희는 본가집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예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다.
적적하게 집 구석이나 지키던 어머니는 인차 “구경하러 가지.”하고 반겼다.
그러나 엄삼기 교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에이, 늘그막에 무슨 구경이요? 텔레비죤이나 보면 됐지.”
어머니도 덩달아 저어했다.
“너네 돈이 바쁘겠는데 돈을 팔면서 구경할게 뭐야?”
정희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를 잡아끌다싶이 했다.
“돈 일전한푼 팔지 않고 하는 구경인데요. 오히려 돈을 벌 수도 있어요.”
“아니, 구경하는데 무슨 돈을 번다고 그래?”
“글쎄 가보면 알아요.”
그제야 부모들은 정희를 따라나섰다.
부모들은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가보고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들도 정희처럼 돈을 벌 욕심으로 늙은 가슴이 부풀어올라 딸을 따라 다단계판매에 뛰여들었다.
정희는 뒤이어 이모사촌동생들인 준식과 광인을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홍보관에 데리고 가서 2천원어치 상품을 사게 했다.
그녀는 일주일도 안돼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이 되였다.
그녀는 또 자기 중학교에 가서 동료교원들과 학부모까지 20여명을 동원해 다단계판매조직에 가입시켰다. 그리하여 첫달에 한희선 총경리한테서 골든 팀장 금빠찌를 달고 로임 3천원을 탔다.
(이게 정말 해볼만한 장사야. 점포도 필요없고 사람만 끌어다 내 밑에 넣으면 돈이 줄줄 생기는 판이구나.)
저녁에 정희는 피로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온 성호한테 두툼한 봉투를 꺼내보였다.
“이건?”
성호는 봉투 안의 돈을 세여보고 깜짝 놀랐다. 3천원은 자기가 그렇게 애나게 택시업을 해 번 한달 수입의 절반이 아닌가.
“이건 우리 같은 사업일군들의 6개월 로임이나 되잖소?”
“글쎄요. 절 따라 좋은 곳에 놀러 가면 한달에 3천원 버는 새 돈줄을 볼 수 있어요.”
성호는 의아한 눈길로 안해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위법하면서 돈을 벌어선 안되오.”
“호호호.”
정희는 입을 싸쥐고 깔깔깔 웃었다.
“여보, 리성호 동무, 정치와 법률상식을 가르치는 교원이 아무려면 위법하면서까지 돈을 벌겠어요? 근심하지 마세요. 맞들고 돈을 벌어 아들을 보지 않겠어요?”
성호도 귀가 솔깃해졌다.
“무슨 수로 돈을 보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오늘 저녁 당장 저와 함께 가보자요.”
성호도 호기심에 차 그날 저녁으로 정희를 따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갔다.
한국의 예쁜 홍보팀장 허하늘 아가씨의 다단계판매리론을 귀맛좋게 듣고난 성호는 당장 갑부로 될 유혹에 견디기 어려웠다.
“어때요? 다단계판매를 해보겠어요?”
정희가 햇쭉 웃으며 묻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해보기요.”
정희는 성호의 손까지 잡고 홍보관을 나서면서 말했다.
“자기절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아래 사람들이 줄줄이 데려오면 몇달이 안돼 골든부장이 될거예요. 저 옆집 언니는 총경리로 돼서 한달에 2만원도 넘게 번대요. 한국에 갈게 뭐예요? 앉은 자리에서도 몇만원씩 탄다는데요.”
“뭘? 얼마 탄다고?”
“이제 우리 둘 아래70명만 더 늘어나면 우리도 부총경리거나 총경리로 돼 2만원은 탈 거예요. 당해에 집과 자가용 사고 아들 볼게 아닌가요?”
“진짜 장난 아니구먼. 어디 한번 통이 크게 해보기요.”
성호는 이튿날 아침에 당장 저금소에 달려가서 택시업으로 번 돈 2천원을 찾아내 홍보관에 가서 한희선 총경리한테 주고 한국 화장품과 약, 의료용자석 등을 탔다. 그는 속으로 누굴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오겠는가고 친구와 친척, 동료들을 쭉 참빗질했다.
(옳지. 송숙과 주옥을 데려와야지.)
그는 이튿날 외사촌녀동생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오려고 찾아떠났다가 주춤 멈춰섰다. 매부 보고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승복은 로운전수여서 차는 확실히 잘 몰았다. 이전에 림산작업소에 가서 산속 눈길에서도 자동차로 목재실이도 했기에 시내 포장도로에서 택시를 모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어쩐지 승복한테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전번에 차를 몰고 돈화로 달아나서 흑룡강성 쪽으로 가려고 한 믿지 못할 일을 친 후에도 엄마와 송숙의 얼굴을 봐서 마지못해 택시를 몰게 했었다. 그런데 낮 당번에 200원씩 딱딱 바치지 않고 항상 20원씩, 지어 30원씩도 갖은 구실을 대서 떼내고 바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 승복더러 재차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다.  
“무슨 면목으로 찾아가지?”
성호는 발길을 돌렸다.
(뭐나 믿음에 토대를 해서 한걸음 한걸음 온당하게 나가야 해.)
그는 대학가에 가서 하학해 숙소로 돌아오는 외조카 주옥을 면바로 만났다.
“외삼촌, 어떻게 돼 여기 왔습니까?”
“다른 일로 왔댔는데 널 만날줄은 몰랐다. 만난바 하곤 점심이나 함께 먹을가?”
주옥은 어려서부터 그를 무척 따랐다.
“감사합니다.”
성호는 외조카를 데리고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푹 삶은 개고기채를 푸짐히 주문해 먹이면서도 능청스레 다단계판매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사를 한다는 말만 들으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리 믿는 처지라고 해도 이상하게 역반심리가 작용했다. 당신이 자꾸 “사십시오.”, “사십시오.” 할수록 남들은 사지 않는다. 때문에 외조카라고 해도 처음부터 다단계판매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쩌고 하면 오히려 외삼촌을 장사를 시켜주는 것 같아 의심하고 지어 뒤로 번져지면서 따라오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배운 성호는 바로 그런 역반심리를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외조카한테 접근했다. 마치 낚시군이 미끼를 넣고 고기가 물리기를 내심하게 기다리듯이 말이다.
“요즘 공부 바쁘냐?”
“괜찮습니다. 이젠 오래잖으면 졸업하니까요.”
“집에는 언제 갔니? 엄마랑 아빠랑 모두 잘 있니?”
“예.”
“넌 소비자가 아니냐? 많이 먹어라.”
 성호는 주옥의 접시 앞에 개고기랑 자꾸 집어놓으면서 권했다.
주옥은 외삼촌의 푸짐한 대접에 맛있게 먹었다.
갈라질 때 성호는 주옥을 보고
“우리 집에 놀라오렴.” 하고 손까지 잡아주었다.
“예, 그러잖아도 언제 가봐야겠는데요.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자주 가보지 못해 미안해요.”
주옥은 생글방글 웃다가 뭔가 생각났던지 무릎을 탁 쳤다.
“아, 정말 사회조사에 관한 졸업론문을 쓰겠는데요. 외삼촌이 다니는 광고회사를 조사해 쓰면 어떨가요?”
“그래? 그럼 아예 다른 일이 없으면 지금 우리 집에 갈가?”
“예. 그렇게 합시다.”
서로 잘 된 셈.
그날 오후 성호는 주옥을 데리고 단위에 들려 현지답사를 시킨 후 퇴근무렵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정희와 성호는 정성을 다해 주옥의 졸업론문제강까지 작성해주고 저녁대접까지 잘하였다.
“얘, 주옥아, 우리 재미있는 공연을 보러 갈가?”
성호는 옆집 한희선 아줌마가 정희를 꾀여 홍보관에 데리고 간 경험을 지금 주옥한테 썼다.
“예? 오늘 대박이야. 대접도 잘 받고 졸업론문제강도 작성했는데요. 공연까지 구경하다니요. ”
그날 주옥도 홍보관에 가게 됐고 나중에 다단계판매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주옥이 또 자기 동창 몇을 소개해 홍보관에 데려왔다. 주옥은 성호의 선량한 거짓말에 끌리워 홍보관에 갔다가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으로 되였고 첫달로임으로 3백원을 탔다. 그 돈이면 반학기 용돈으로 쓸수 있었다. 성호도 용기를 내서 송숙과 백호 형님에 조카 정국과 일복까지 몽땅 끌어들였다.
성호는 원래 송숙이네 집에는 몇번이고 가려고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승복과는 관계가 벌어졌지만 송숙은 그래도 한살 지하인 외사촌녀동생이 아닌가. 게다가 다단계판매를 해서 갑작스레 생각 밖의 돈을 벌 수 있는데 이 좋은 돈줄을 녀동생한테도 알려 줘 함께 잘 살면 좀 좋겠는가고 생각하고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  갔다.
이밖에 성호는 또 한 단위 해연과 승호까지 각종 수단을 다해 홍보관에 데려갔다. 그리하여 한달새에 성호도 자기 수하에 10여명을 발전시켜 한다하는 다단계판매 3개 소조를 관리하는 주관과장으로 승진해 첫달 로임 1,025원을 타게 됐다.
두번째달에는 승호가 자기 처 선금과 백화상점의 범송까지 끌어들이고 나중에 백화상점의 직원 30여명을 홍보관에 끌어들였다. 그도 첫달에 단통 골든팀장이 되였고 첫달로임 3천여원을 타게 됐다. 승호가 숱한 사람을 끌어들인 덕분에 성호는 일약 부장으로 돼 두번째달에 로임 9천원을 타게 됐고 정희는 수하에 80여명을 두어 부총경리로 승진해 두번째달에 로임 1만 5천원을 탔다. 부부가 한달에 2만 4천원이나 탔다. 성호와 정희는 입이 함박만해졌다.
성호는 낮에는 단위 광고를 해서 돈을 벌고 집에서 택시를 하는 외에 다단계판매까지 해서 2중 3중으로 돈을 벌어 한달 가정수입이 3만원도 넘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당장이라도 갑부로 될 것만 같았다. 한달에 3백원 타는 광고회사 일이 싫어졌다.
그들 부부는 날마다 다단계판매를 해서 고급아빠트에 금빛이  번쩍번쩍이는 황금몽을 꾸었다.
성호는 정희와 상론하고 진짜 엘레베이터아빠트단지 19층의 150평방메터나 되는 살림집 한채를 사서 사람들을 불러 한달여만에 장식까지 멋드러지게 척 해놓았다.
새 집에 들자 성호는 또 정희한테 지청구를 들이댔다.
“여보, 이젠 아들을 봐도 되잖소?”
그러나 정희는 왕청 같은 말을 했다.
“요까지 집 한채를 보고 아들을 낳을 수 있어요?”
성호는 정색했다.
“한달에 50개월 로임을 벌어도 만족되지 않소? 사람이 욕심이 어디 끝이 있소? 맞춤할 때 아들이나 보기요.”
그는 시큰둥해하는 정희의 손을 잡고 아들 비위를 바짝 냈다.
“여보, 내 소원을 꺼주면 안되오?”
그러나 정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마표 자가용 갖추고 저금도 한 50만원 있어야지.”
“아니, 저금 10만원이면 아들 낳겠다더니 또 올랐소.”
성호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쫙 벌렸다.
“그럼요. 생각해보세요. 송숙이네처럼 애를 셋이나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남들처럼 먹이지도 못하고 남의 집 애들의 옷을 주어다 입히면서 기를 거면  아예 낳지 않는 게 낫죠.”
정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하는 말에 성호도 하나하나 따져주었다.
“우린 송숙이네 정도는 아니잖소? 애들도 다 장차 제 살 길이 있겠지. 애 둘이면 우린 더 분발해 돈을 벌 게 아니요?”
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지금 돈을 벌 때 콱 벌고 차차 봅시다. 딱 아들을 낳는다고 할 수 없잖아요? 또 지금 임신해 배 뚱뚱해 어떻게 다단계판매를 하러 달아다니겠어요? 우린 지금 시내 친척과 친구, 동료들에 국한됐어요. 이제 이 시내를 벗어나 다단계판매망을 농촌과 다른 도시에까지 넓혀나나가야 해요. 한국의 백영 사장은 이제부터 간고하다고 말하던데요. 아마 장춘이나 심양 그 쪽으로도 발전시켜야 할 것 같아요.”
“홍보관에 마켓 팀장이라던 녀자 말이요?”
“예, 허하늘 팀장은 기실 중국지회사 사장인데요. 원명은 허하늘이 아니라 백영이래요.”
“가명을 쓰면서 돌아다녔구만.”
“쉿-“
정희는 입에 식지를 댔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엄희선 총경리와 저한테만 알려준 건데요.”
정희는 정색했다.
“이제 길림과 장춘, 심양에까지 가서 다단계판매망을 발전시키자고 하던데요.”
“아니, 욕심도. 백만부자를 꿈꾸는 거 아니요?”
“앞으로 아들딸한테 집과 차를 사주고 손자손녀를 길러주자면 백만부자가 뭘 그리 대단해요? 난 교편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이 일을 할가 해요.”
성호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보, 왜 그렇게 짧은 생각을 하오. 자그마한 철밥통이라도 버리진 말아야지. 난 백만부자보다도 아들딸만 낳아 기르기만 하면 더 좋소.”
“날마다 애들과 씨름하다나면 언제 부자 돼요? 백만부자 됐다고 해서 아들딸을 낳지 못한다는 건 없잖아요? 이 기회에 억만부자가 되면 어때요? 호호호.”
성호는 머리가 뜨겁다 못해 뻥 뚫린 것 같은 정희를 말리지 못해 근심이 태산 같았다.
세상 일이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기겠는가.
송숙이랑 농촌에서 시내에 들어온 아낙네들은 2천원을 주고 한국 화장품이랑  자석이랑 쓰지도 못할 걸 한아름 타 집에 가져갔다. 그러나 아래에 사람을 끌어다넣지 못해 한번인가 몇십원 로임을 타고는 더 타보지도 못해 두덜거렸다.
“에이구야, 오빠 좋은 일이나 했지. 우린 본전도 찾지 못하겠소.”
성호는 돈을 벌지 못한 송숙이랑 함께 뒤에서 쑤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들한테 보상을 주려고 자기 로임으로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밥도 사먹였다. 홍보관에 올  때거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자기 집 택시로 실어다주게 하였다. 그런 고생을 하는 건 그래도 꽃이였다.
성호는 항상 돈벌기 좋은 이런 날이 며칠이나 갈가고 근심했다. 어떤 때에는 어째 돈을 벌기 너무 쉬워서 자꾸 현실이 꿈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며칠 후, 근심하던 일이 끝내 터졌다.
극장에 신설한 홍보관에서 정희가 무대에 올라 한창 마이크를 틀어쥐고 천여명 다단계판매업자들한테 신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할 때였다.
두리모자를 쓰고 정복차림을 한 몇몇 사내들이 홍보관에 뛰여들었다.
“꼼짝 말엇!”
그들은 주석대에 앉은 한국 백영 사장과 한희선 총경리, 엄정희 부총경리를 나포해 경찰차에 압송해갔다.
다단계판매업자들은 “와야-” 하고 바깥으로 도망쳤다.
공안국 간부는 마이크를 빼앗아들었다.
“우린 공안국과 공상국 련합수사대입니다. 여러 분, 한국 다단계판매는 불법판매활동이며 국제사기행위입니다. 여러 분들은 국제사기군들의 감언리설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성호는 밀물처럼 밀치고 닥치는 군중들 속에 숨어 요행 극장을 빠져나왔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들비위를 쓰면서 황금몽을 꾸던 황금탑이 순식간에 와그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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