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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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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9)
2019년 10월 11일 09시 59분  조회:142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69. 17층 아빠트에서 떨어진 눈꽃송이
어느날 아침, 해연이 설걷이를 하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 전화야?”
출근하려고 신을 신던 난쟁이 씽 달려가 해연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해연이 황급히 핸드폰을 빼앗아 꺼버리자 욕설이 쏟아졌다.
“쳇, 더러운 년.”
난쟁이는 핸드폰을 빼앗아 번호를 꾹꾹 눌러보더니 눈을 가슴츠레 뜨고 캐물었다.
“웬 군나그네야?”
“약방 경린데요. 약광고를 하다나니 알게 된 경리요.”
“잡생각을 작작 해. 눈에 띄우기만 해봐라. 정갱이를 분질러놓지 않는가. 흥!”
이때 핸드폰이 또 자지러지게 울렸다.
“누구냐?”
핸드폰을 열어보니 향월에게서 온 전화였다.
“응, 향월아, 어데 있니? 응, 알았다. 곧 갈게.”
“무슨 일이냐?”
“향월이 생일인데요.”
“흥! 잘한다, 잘해. 계집년들이 생일은 무슨 생일?! 쓸데 없는데 돈을 작작 팔아라!”
해연도 물러서지 않고 도도거렸다.
“아가씨들한텐 200원도 탕탕 메치면서. 흥! 안해한텐 일전한푼 대주지도 않는가?! 꼬치꼬치 캐묻긴? 고까짓 몇백원을 들여놓고 려관비, 식당비, 보모비까지 되는가? 내처럼 훌륭한 가정보모 또 어데 있는가요?”
난쟁이는 더 할 말이 없는지 끙끙거리며 신을 꿰더니 문을 쾅 박차고 나가버렸다.
    해연이 향월이네 집으로 갔을 때다.
향월은 한창 생일파티준비에 분주히 서둘었다.
해연은 부조로 100원짜리 한장을 꺼내 주었다.
“야, 깍쟁이나그네한테서 어떻게 얻어온 돈인데 이렇게 많이 부조하니?”
“괜찮아. 난 광고회사 출납원출신이 아니냐?”
향월은 두 말 않고 돈을 핸드빽에 챙겨넣고 분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
“최선생 허우대만은 달리 깍쟁이지? 그날 말하는 거 봐라. 애인을 책임지겠다는 말인가?”
해연은 솔직히 말했다.
“최선생은 그날 말과는 달리 놀더라. 난 최선생과 함께 노니 얼마나 유쾌한지 모르겠어.”
“얜, 진짜 최선생한테 푹 빠졌구나.”
해연은 향월한테 물었다.
“서경리는 통쾌한 거 같더구나. 봐라. 생일파티까지 다 열어주고. ”
“그래. 제 나그네도 모르는 척하는 세월에 애인의 생일파티까지 마련해주니 기쁘지.”
“서경리를 어떻게 알았니?”
향월은 풍만한 가슴을 쑥 내밀고 화장대에 마주 앉아 화장을 하면서 자랑을 늘여놓았다.
“우리 오빠 초중 때 동창생이야. 나그네보다 나아. 나그네야 생일이라도 어디 관심이 있니? 날마다 닭다리를 차고 쥐를 잡으러 고양이처럼 싸다니기나 했지.  드문드문 달콤한 말로 얼리기나 하지. ‘여보, 당신은 볼 수록 곱고 사랑스러운 조강지처요. 항상 먹어도 싫지 않은 이밥처럼 좋소. 그래서 몇십년 살아도 싫지 않은 건 조강지처라지. 조강지처를 버리는 놈은 죽일 놈이지.’ 감언리설은 잔뜩 늘여놓았지만 실제행동은 꼬물만치도 없어. 난 고독한 생과부야. 서경리를 알게 된게 다행이야. 얼머나 유쾌한지 몰라. 그러잖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마흔이 넘도록 남자들의 짜릿한 사랑도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혜경은 해맑은 얼굴로 화장대안의 향월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서경리네 안해는 곱다니?”
향월은 얼굴에 분치장을 하면서 술술 얘기했다.
“꽤나 예쁘더라. 좀 실팍해서 섹시하지 못하더라. 서경리는 닭다리를 차고 다니는 우리 나그넬 무서워 해. 발각되는 날엔 끝장이니까. 한번은 저 서경리가 글쎄 술에 푹 취해 큰 실수를 했어."
“어째?”
해연과 혜경은 눈을 치뜨며 향월을 쳐다보았다.
“글쎄 술을 마시고 갈라진 다음에 면바로 내 사촌시동생이 모는 택시에 앉지 않았겠니? 그런데 택시에서 정신없이 ‘야, 세상에 향월보다 더 좋은 녀자 있는가? 향월이 만세!’ 하고 미친 소릴 쳤단다.”
“저런!”
“우리 시동생이 집이 어딘가고 물어서 부축해 집 안에까지 데려다주었대. 시동생은 날 찾아와 낯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서 ‘어제 음식점에서 함께 술을 마신  나그넨 누군가?’고 따지지 않겠느냐? 내 하도 시동생과 관계좋으니까 그저 얼버무려 보냈지. 하마트면 큰 경을 칠 번했어.”
해연의 가슴도 찔리는데가 있어 섬찍해났다.
최룡학은 집에서 노는 안해가 가마목의 암고양이처럼 어찌나 자기를 살피는지 자그마한 상점을 차려줬다. 최룡학은 해연과 련계하기도 편리해졌고 어디 가서 놀아도 안해 눈치를 덜 살피게 됐다.
담이 커진 최룡학은 안해가 상점에 나간 후 해연을 데리고 자기 집에 가서 술판을 벌리기까지 했다. 온 오전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시다나니 둘 다 곤드레만드레 취해버렸다. 해연은 위생실에 갔다가 그만 깜빡 잠들어버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룡학도 취해 구들에 늘어져 쿨쿨 잤다. 그런데 룡학의 딸이 점심에 집으로 돌아와 위생실에 들어갔다가 쓰러진 해연을 보고 기절초풍할 지경으로 놀라 고함쳤다. 그제야 깨난 룡학은 위생실에 가서 해연을 깨워 보내고 딸애한테 돈을 줘서 얼렸단다. “집에 녀자도적이 들었댔어. 엄마가 알면 놀라 심장병이 도진다.”고 얼리면서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에이, 최선생네 녀편네나 돌아왔더라면 어쨌겠니?”
모두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향월은 전화를 들더니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받았다.
“예? 예. 오늘 일이 있어서 나갑니다. 영일을 학교에서 데려오시요. 예, 끊어요.”
전화를 놓자마자 향월은 뾰로통해서 두덜거렸다.
“생일날에 국수 한사발도 사줄 궁리는 하지 않고 제쪽에서 화를 내? 애를  데려오라구? 흥!”
이때 전화벨이 또 울렸다.
“아, 아니, 예- 서경리구만요. 집의 나그네라고? 해해해, 우리 곧 가지요.”
향월의 흐렸던 얼굴은 대번에 개인 날씨 함박꽃 같았고 말씨 또한 아양조로 변해 여간 살뜰하지 않았다.
향월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몰라. 저 서경리와 친한지 한 반년 됐는데 언제 열이 식을지 누가 알아?  어데서 또 새 애인을 구해놨는지도 몰라. 애인은 보기는 좋으나 순간적인 칠색무지개야. 비 온 뒤 해가 쨍 뜨면 황홀한 칠색무지개 애인이지.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해만 지면 칠색무지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이야. 영원한 애인이 있을 수 있니?”
혜경과 해연은 향월의 경험과 철리가 있는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한복차림까지 한 향월과 함께 혜경과 해연은 집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혹시 나그네들이 살피고 있지 않는가 해서 도적고양이처럼 여기저기 살피면서 골목을 빠져나가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뻐스정류소로 달려갔다. 
향월은 모 공사 보위과에 출근하는 남편한테 걸리면 큰 일이다. 이전에 남편은 백화상점 보위과 조홍수 과장과도 잘 아는 친구였다. 남편은 한 사람을 잡자고 들면 살려두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해연은 향월의 남편이 조과장의 친구라고 하자 속이 떼끔해났다. 문제는 그녀가 선희와 함께 조과장이랑 승호랑 뒤를 따라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라사가 풀린적이 한두번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그 일이 탄로나면 향월이 뭐라하겠는가.)
녀인 셋이 모이면 장마당이라고 애인을 두고 그녀들의 뒷말은 끊을줄 몰랐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저기 뻐스정류소에 서경리와 최룡학과 리철웅이 들어섰다.
그들 세쌍은 진짜 부부처럼 쌍쌍이 뻐스를 타고 자유로운 대자연의 품 속에 안기려고 달려가는 기분이 아주 흘가분하고 유쾌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차창으로 불어들어와 그들의 열기 띤 얼굴을 선선하게 간질러주어  아주 상쾌했다.
이윽고 뻐스에서 내리자 조용한 강가의 넘실거리며 춤추는 버드나무숲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록음이 짙은 청산이 꺼꾸로 비껴 있어 별유천지였다. 줄기차게 흐르는 강물  속에 동글납작한 조약돌들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강물은 맑디맑았고 하얀 모래톱은 마구 뒹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강가에 가서 모래톱에 비닐돛자리를 펴놓은후 술과 안주를 벌려놓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남편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경리가 진짜 정색해 장황설을 퍼부었다.
“자, 아가씨들, 신사들, 오늘 친애하는 애인 향월의 탄생 33돐이 되는 생일날이요. 경사로운 오늘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생일파티를 열어 향월씨의 생일을 축하하오. 향월씨가 계속 예뻐지고 또 우리 둘의 순정이 영원할 것을 축원하오.”
뒤이어 서경리는 웃옷 호주머니에서 빨간 비단으로 포장한 비닐곽을 꺼내 두 손으로 정중하게 향월한테 주었다.
“자, 향월씨, 생일기념품이오.”
향월은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리면서 목이 멘 소리를 하였다.
“고마워요. 너무너무 좋아요. 서경리, 사랑해요.”
향월은 서경리 품에 와락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한복을 곱게 입은 오동통한 어깨가 흐느낌소리와 함께 들먹였다.
“향월아, 그만 해라. 서경리, 기념품이 뭔지 보자요.”
혜경의 말에 서경리는 품 속에서 향월을 살짝 떠밀면서 물었다.
“향월이, 금목걸이요. 여기서 걸어달라오?”
향월은 눈물을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서경리는 빨간 비단포장을 풀고 비닐곽 안의 금빛이 반짝이는 24K짜리 금목걸이를 향월의 하얗고 긴 목에 정중하게 두 손으로 걸어주었다. 순간 보슴털이 보송보송한 향월의 목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뒤이어 서경리는 들가방에서 빨간 장미꽃 한송이를 꺼내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향월한테 드렸다.
“향월이, 사랑하오. 이 몸이 죽어 죽어 열백번 죽더라도 님을 향한 일편단심 영원히 변할손가.”
감격적인 그 장면은 례배당에서 올리는 혼례식에서 한평생 백년해로할 것을 다지는 신혼부부의 첫날 포로포즈를 연상시켰다.
모두들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갈채를 드렸다.
최룡학은 말상을 찡그리며 박수를 치며 덫이를 다 드러내고 웃었다.
“헤이, 서경리 그저 경리 아니구만. 속에 술만 찼는가 했더니 먹물도 꽤나 찼구만.”
뒤이어 최룡학과 리의사는 “이건 우리 친구들의 선물이오.”라고 하면서200원씩 꺼내 향월한테 주었다. 참말로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이라고 항상 욕하던 사람  같지 않았다.
최선생은 잔을 들고 서경리와 향월을 보고 생일축사를 올렸다.
“자, 그럼 서경리와 향월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이 금목걸이처럼 변치 말고 둥글어가고 저 빨간 장미꽃처럼 푸르싱싱하고 아름답기를 축원하오. 그런 의미에서,  자, 한잔 교배주를 듭시다!”
서경리와 향월은 잔을 잘라당 마주치고 팔을 끼더니 교배주를 쭉 들이켰다. 향월의 눈에는 감격의 뜨거운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렀다.
그들 세쌍은 취토록 술을 마시고나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나중에 버드나무숲 속에 거치장스러운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맑은 시내물에 뛰여들어 웃고 떠들면서 목욕을 했다. 진짜 굴레를 벗은 들말들처럼 아무런 구속도 없는 대자연의 품   속에서 야성인들처럼 마음껏 야성을 드러내며 즐겼다.
향월은 팬티와 브래지어 바람에 서경리의 팔을 베고 모래톱에 반듯이 누워  자기를 안은 서경리의 얼굴을 매만지며 푸르른 하늘에 떠가는 솜뭉치 같은 꽃구름을 바라보면서 정답게 속삭였다.
“친애하는 서경리, 오늘 너무너무 행복해요. 이대로 끌어안고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안해도 생활도 모르는 그런 나그네를 해서 뭘 하겠어요. 서경리만 내 곁에 있으면 돼요. 어떤 땐 그 쓸쓸하고 고독한 집을 나오려고 해도 영일을 어미 없는 만들가봐 물앉군 했어요. 전 그 불행한 가정을 생각할 때면 정말 자살이라도 하고 싶어요.”
서경리는 털이 부스스한 벌거숭이 가슴에 향월을 보듬다가 꼭 안아주었다.
“이 좋은 세월에 죽긴 왜 죽겠소. 이대로 한 백년 알찌근하게 살기요.”
향월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서경리 품에 몸을 맡겼다…
해연은 그날 생일파티에서 향월을 마지막으로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며칠 후 갑자기 밤중에 향월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해연이, 빨리 오오. 향월이 자살했소.”
“예? 그게 무슨 소린가요?”
“우리 17층 아빠트에서 뛰여내렸소.”
해연은 혜경한테 알린 후 인차 택시를 잡아타고 향월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숱한 경찰들이 강운룡 국장의 지휘아래 사건현지에서 번쩍번쩍 촬영한다, 자로 시체와 아빠트 사이 거리를 재인다 하면서 수사하고 있었다. 숱한 구경군들이 모여  쑤근거렸다.
해연이 피뜩 보니 향월은 집 앞마당에 적삼과 짧은 치마를 입은 채로 피못 속에 쓰러져있지 않겠는가. 향월의 머리는 콩크리트바닥에 부딪혀 뇌장이 마구 흘러나온 것 같았다.
“향월아! 이게 웬 일이냐?!”
향월의 오빠와 어머니가 콩크리트바닥을 치면서 통곡쳤다. 해연과 혜경도 향월의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향월의 오빠는 경찰들이 향월의 시체를 차에 실으려는 것을 두팔을 뻗쳐 막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향월인 죽지 않았어. 절대 가져가지 못해!”
그러나 경찰들은 향월의 오빠를 말리며 향월의 시체를 차에 실어갔다. 자살인지 피살인지 부검을 해야 했다.
향월의 남편 증언에 의하면, 그가 밤중까지 당직을 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의 콩크리트바닥에 웬 짧은 치마를 입은 녀자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가.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수사대원들의 수사에 의하면, 부근 주민들은 며칠전에 누군가 밤중에 그 집에 와서 향월과 옥신각신 다툰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였다.
또 향월의 단위 어떤 사람들은 자살한 전날 점심에 향월이가 서경리네 집에서 풍류사건을 저지르다가 한국에서 불시에 돌아온 서경리네 안해한테 들켰다고 하였다. 그들은 가능하게 향월은 창피해 자살했을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향월의 오빠를 비롯하여 부모형제들은 평소에 너그롭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향월이 결코 고만한 일에 자살할 애가 아니라고 고집하였다.
향월의 오빠가 공안기관에서 사건진상을 철저히 해명하기 전에는 향월의 시체를 절대 화장하지 못한다고 하는 바람에 사체실에 랭동한 채로 장장 몇달이나 보관해두었다.
공안기관에서는 반복적으로 사건현지와 사체를 분석한 후 향월은 자살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그녀가 뛰여내린 쪽의 창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는데 창문을 마슨 아무런 흔적이 없었으며 향월의 몸에도 아무런 외상도 흉터도 멍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위장 안에도 아무런 독성물질이 들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알콜냄새도 나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콩크리트바닥에 부딪혀 두개골이 엄중하게 터지면서 피와 뇌장이 흘러나왔을뿐이며 타박상이나 얻어맞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삼이나 짧은 치마가 벗겨졌거나 째잔 자리도 없었으며 피해자의 질 안에도 정액도 없었다. 때문에 강간살인도 아니였다. 집 안의 돈이나 기타 귀중물품을 도적질해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목에 금목걸이도 걸려 있었으며 손가락에 금가락지가 그대로 끼여 있었다. 때문에 강탈살인도 아니고 자살로 밖에 볼 수 었다고 결론지었다.
향월의 친정집에서는 별수 없이 향월의 시체를 화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생일파티에서 행복의 눈물까지 흘리던 향월이가, 너무너무 행복해 이젠 죽어도 원이 없겠다던 향월이 서경리 준 금목걸이를 걸고 17층 아빠트에서 뛰여내려 눈꽃처럼 사라지다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쌍겹눈을 빛내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애인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향월이 하루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다니. 그래 애인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너울너울 춤추던 향월이 이렇게 처첨하게 숨져야 한단 말인가! 애인 바람에 휘말려든 대가가 너무나도 처참한 것이 아닌가!
해연은 화장터에 가서 향월의 불행한 최후를 두고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이 복잡해 도리머리질하였다. 그녀는 떠나가는 향월한테 신선한 생화 두묶음을 올렸다.
혜경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 실로 서른살 꽃나이에 이게 웬 일이냐? 향월아, 넌 끝내 애인 바람에 휘말려 날려가고 마는구나.)
현실은 뜨거운 애인파티를 열던 무더운 여름이 아니라 모닥불도 추워 품 속에 기여들듯한 맵짠 엄동설한이였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화장터 광장 저쪽에서 서경리와 최룡학, 그리고 리의사가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생화묶음을 들고 하늘 높이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하얀 연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향월의 남편이 엉엉 우는 영일의 고사리손을 쥐고 그들 쪽을 차디찬 눈길로 쓸어보고 있었다.
향월의 남편은 허나 사나 안해의 장례식이여서 해연이랑 서경리랑한테 걸고 들진 않았다.
해연과 위생실 입구에서 단둘이 만나자 욕설을 한마디 퍼부었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외간 사내들과 바람을 피우더니 어디 제 명에 죽는가 보자. 흥!”
그런 눈치도 모르고 서경리를 비롯한 최룡학과 리의사 등은 바깥에서 기도나 드리는듯이 두 손을 합장하고 향월의 명복을 빌고 또 빌고 있었다.
해연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자기 남편이 선희와 바람이 나서 헤매던 일이 떠올라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향월의 남편이 향월을 좀 관심하고 살뜰이 대해줬더라면 향월이 애인을 찾았겠는가. 딱 다른 남자를 만나서 도적고양이처럼 눈치를 보면서도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보충받아야 인생이 즐거운가? 부부간에 서로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요구를 제기해 만족을 받지 못할가? 사랑이란 서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가꾸면 결혼해서도 가정은 사랑의 무덤으로 되지 않고 사랑의 오아시스로 되지 못할가? 안해는 남편의 련인이자 애인으로, 현처량모로, “첩”으로 되지 못할가?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 한 몸에서 녀성의 모든 것을 향수하게 해 그 용암처럼 꿈틀거리는 정욕을 붙들어매놓지 못할가? 딱 가정을 깨면서 남과 살아봐야 사랑의 진맛을 보는 걸가? 꼭 남편(안해)을 속이면서 숱한 애인을 해야 행복한가? 하긴 처음 시집장가를 잘 가야 해. 첫결혼에서 실패하면 진짜 서로 믿음을 형성하기도 힘들고 살긴 점점 힘들지. 백번 결혼하고 백명 애인을 한들 어찌 마음에 딱 드는 나그넬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해연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자기 재혼한 후남편 철수나  애인 최룡학이나 다 맞갖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저기 높은 꿀뚝에서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쳐다보았다.
향월의 시체가 그을고 타번져 타오르는 그 한가닥의 시꺼먼 연기는 애인바람에 들뜬 그녀들에게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남기면서 흩날려갔다.
열렬한 애인의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하던 향월이, 홀가분한 사랑의 행복에 도취돼 열광하던 향월이, 그 향월의 혼이 시꺼먼 연기로 피여오르다가 흩날려 날아내린다. 차마 서경리를 두고 떠나가기 싫은 듯이, 아쉬운 듯이 하얀 눈꽃으로 서경리 품에 흩날려내렸다. 서경리는 그 눈꽃을 쓸쓸히 맞아주더니 바래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귀찮은 듯이 그 하얀 눈꽃을 툭툭 털어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기실 서경리는 숱한 녀성들의 순정을 짓밟지 않았는가? 학잡비를 내지 못해 애타하는 연화를 짓밟았고 장철과 연화의 순진한 첫사랑마저 짓밟아버리지 않았던가! 
연화를 돈으로 유혹해 한동안 데리고 놀다가 놓치자 향월을 나꿔채 실컷 데리고 놀지 않았는가? 
향월의 앞에서 서경리는 극력 허위적으로 돈깨나 있는 신사처럼 놀면서 향월의 순정을 릉욕하였다.
(재수없어. 반년도 데리고 놀지 못하고 죽어버렸어.)
그러나 인차 시원섭섭한 기분도 홀가분하게 없어졌다.
(낡은게 가지 않으면 어찌 새게 생기겠는가? 흥!)
모든 색마가 다 그러하듯 서경리는 녀자들을 사냥하는 제일 좋은 미끼와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돈묶음을 가지고 또 새 사냥물을 찾아 떠날 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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