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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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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99)
2018년 05월 01일 18시 04분  조회:129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외롭게 우는 외기러기
먹장구름에 가린 해가 서산으로 서서히 넘어가버린 후 을씨년스러운 하늘에는 또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언제 맑게 갠 하늘의 환한 해를 보고 말 것 같지 못했다. 하늘의 풍운조화는 참말로 짐작하기 어렵려운 변덕꾸러기어서 농사군들을 괴롭히고 시달리게 했다.
사원들은 장탄식하면서 변덕스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상순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높다란 토성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번마다 관건적인 시각이면 상순은 할아버지를 찾아가 의논하군 했다.
병완은 대대 사무실에서 기다리다가 상순이 들어서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제 장마철이 오기 전에 태평강과 부르하통하에 제방뚝을 잘 쌓아야 한다. 그러잖으면 우리 대대 사원들이 몇십년 동안 고생스레 일궈 놓은 밭이 다 밀려가겠다.”
“예. 알았습니다. 나도 궁리해 두었습니다. 제방뚝 양쪽에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심어놓을 예산입니다.”
병완은 가슴까지 내리두리운 하얀 수염을 매만지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음, 백양나무는 안 돼. 곧은 뿌리 밖에 없어서 물에 밀리면 뿌리 채로 뽑혀. 더구나 모래 뚝에 심어놓아선 견디지 못해. 그래도 비술나무와 버드나무가 잔뿌리 많아서 물엔 견딘다.”
상순은 담배를 말아 붙이면서 할아버지께 말했다.
“장개골 안과 돌문 안에 저수지를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해마다 쩍 하면 큰물이 져서 어디 감당하겠습니까? 저수지를 만들어서 소낙비가 오면 물을 가둬 두고 가물 때는 물을 빼서 쓰면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병완은 이가 다 빠져 좁아진 볼이 움푹 파이게 곰방대를 뿍뿍 빨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원대한 계획이구나. 부르하통하를 막아 모래밭에 논을 풀었고 패용천산과 칼산 사이에 과수원을 만들었지. 이제 장개골 안과 돌문 안에 저수까지 만들어 놓으면 우리 마을은 살기 좋은 고장으로 되겠구나. 허허허.”
“할아버지, 제 생각엔 산비탈 밭머리와 령 길에 모두 비술나무를 심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건 왜?”
“가물 때면 땡볕을 피할 나무 한 대도 없어 틀렸습니다. 이전에 대약진 때 가물어 더위를 먹고 사원들과 소가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비술나무를 심어 더위도 피하고 장차 구부정한 비술나무를 베다가 가대기나 호리 같은 농기구도 만들면 좀 좋습니까?”
“오- 그거 정말 일거양득이구나.”
병완은 가슴까지 내려온 흰 수염을 슬슬 매만지더니 뒷말을 이었다.
“밭을 일구지 못할 산비탈에 백양나무를 심어 청산을 조림해라. 이 담 몇 십년 후에 우리 자손들이 그 나무를 베다가 새 집을 짓고 살게. 지금 지은 집은 우리 고향을 떠나서 대충 바람이나 막자고 지은 초가삼간들이 아니냐? 낡았다. 낡았어. 이후에는 벽돌기와 집을 덩실하게 짓고 살아야 하지.”
상순은 할아버지 두 손을 잡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좋은 세월에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이제 자손들이 우리 뒤를 이어 우리 마을을 잘 건설하는 것을 오래오래 지켜봐주십시오.”
“그래. 넌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해 달라. 난 다만 우리 사회주의 새 농촌을 잘 건설해 모든 사원들이 남부럽지 않게 배불리 먹고 사는 걸 보기만 하면 눈을 감아도 원이 없겠다.”
병완은 눈물이 글썽해 손자에게 부탁의 말을 하더니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상순은 날 따라 수척해가는 할아버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 좋은 의사 마을에 있는데요. 규상에게 폐에 좋은 약을 지어달라고 하겠습니다. 형내한테도 약을 지어달라고 하랍니까?”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난 큰 속병이 없다. 다만 ‘문화대혁명’인지 뭔지 하는 바람에 근심스럽구나. 층층이 한다하는 조선족간부들을 다 끌어내다가 투쟁한다는데 그게 무슨 혁명이란 말이냐? 진짜 세상 모르는 애들을 시켜서 공산당 노간부들을 반란하고 투쟁하고 못살게 구는 게 아니고 뭐냐?”
상순은 천정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허영주 부현장도 홍위병들과 학생반란파들에게 끌려 나가 투쟁당했답니다. 진수해공사 박우성 서기도 반란파들에게 끌려 나가 일본특무라고 투쟁당했답니다.”
병완은 곰방대를 뻑뻑 빨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일본 특무라니?”
상순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더니 두덜거렸다.
“우성이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게 죄로 됐답니다. 정규상도 일본 국비생으로 장춘의과대학을 졸업했다고 일본 특무라고 반란파들이 또 투쟁하겠다고 떠듭디다. 내 말렸으니 말이지 끌려 나가 투쟁당하고 얻어맞을 번했습니다.”
“우리 마을에도 ‘문화대혁명’ 바람이 불어오겠구나. 각별히 주의해라. 청년 애들 가운데서 누가 반란파 두목이냐?”
“아직 잘 알리지 않습니다. 삼합에서 이사해온 황종연과 황승연 형제 좀 말이 있습니다. 진수해 시내에서 한다하는 싸움꾼이랍니다.”
“그 부대 갔다 왔다는 종연이 말이냐?”
“예. 걔가 진수해 싸움꾼들과 무리를 지어 사처로 돌아다니면서 로간부들을 투쟁합니다.”
“그 놈 새끼, 진상을 알면서 그런다니?”
“걔는 흥수 덕분에 제대해 대대 기업에 들어갔는데. 기업의 일은 하잖고 쩍하면 시내에 내려가 싸움질을 한답니다.”
“참 대사는 대사야.”
상순은 한참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이젠 서기를 내놓을까 합니다.”
“건 왜?”
상순은 머리를 천천히 들고 허리를 쭉 펴더니 말했다.
“전번에도 얘기 드렸지만 흥수 삼형제가 어찌나 짜고 들어 서기 자리를 욕심내는지 시끄럽습니다. 흥수가 서기를 해서 우리 대대를 더 잘 건설하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벼슬을 초개처럼 여기는 정신은 귀하다. 넌 부모를 잘 모시고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사회주의 새 농촌으로 건설하려고 공안국 국장도 내놓고 함흥 촌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절대 약하게 나오지 말라. 흥수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해서 우리 마을이 새 농촌으로 건설될 거 같니? 날마다 투쟁대회나 열다나면 언제 건설을 하니?”
병완은 머리를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도정신해 듣는 상순을 보고 말했다.
“계속 서기를 하는 게 옳다.”
그러자 상순은 머리를 들더니 “치보 주임을 흥수에게 맡기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왜?”
병완은 축 처진 눈시울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상순은 “흥수가 어찌나 모든 권력을 우리 조손 삼대가 다 틀어쥔다고 여론을 조성하는지 말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건 생각하지 못한 일이구나.”
병완은 곰방대를 뻑뻑 빨면서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치보주임을 계속 흥수를 시켜라. 그러나 서기는 내놓지 말라. 남을 너무 믿지 않고 모든 걸 다 틀어쥐는 건 틀린 공작 작법이지. 우린 어떻게 하나 군중들과 한 덩어리가 돼야 한다. 군중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군중들의 어려운 일부터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걸 회피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도 잘못이야.”
상순은 “예, 할아버지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집으로 모셔갔다.
상순이 함흥 촌에서 조개덕으로 내려오다가 조씨네 묘지 부근을 지날 때었다. 묘지에는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한길씩이나 자라나 있어 무시무시했다.
묘지 옆을 지나는 순간 이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상순은 이 묘지 옆을 지나다가 웬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가보니 아버지가 글쎄 무릎을 꿇고 쪼그리고 앉아 울지 않겠는가!
하여 상순은 그날 밤으로 수레를 가지고 부모와 여동생 금옥을 모셔 자기 집으로 내려왔댔다.
또 이 한족묘지 속에는 국민당 토비두목 조덕산의 시체도 파묻혀 있었다. 조덕산은 국민당군의 파견을 받고 장춘으로부터 국민당 군 한 개패를 끌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전보흥을 괴수로 하는 삼도만 토비들을 사촉해 함흥 촌 일대 공산당조직을 여지없이 짓부시려 했다가 민주련군에 나포돼 총살당했던 것이다. 그의 동생인 지주 조덕림이 조덕산의 깨진 두개골을 주어 맞춘 후 조상들의 뼈가 묻힌 이 무덤군에 파묻었던 것이다.
매번 마을 사람들은 이 곳을 지날 때마다 등 곬에 싸늘한 식은땀이 오싹 돋을 지경으로 무시무시해 했다.
그러나 상순은 군인출신인지라 이 곳을 지날 때마다 겁이 나기는커녕 속으로 계급투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 오늘 밤 달빛에 피뜩 보니 누군가 을씨년스러운 묘지 옆의 백양나무로 바라 오르는 것이 보이지 않겠는가.
(저게 뭐야? 혹시 덕성 영감이 또 자살하려는 게 아닌가?)
상순은 이상해 주위를 둘러본 후 경각성을 높여 백양나무에 바라 오른 사람의 동태를 살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빌어 여겨보니 검은 그림자는 그리 높지 않은 나무 가지에 바 줄을 감아 매더니 올가미에 목을 걸려고 하지 않겠는가!
“누구야?!”
상순의 고함소리에 그 검은 그림자는 멈칫 목에 걸려던 올가미를 멈추었다.
“뭐 하는 짓이야?! 내려오지 못하겠는가?”
나무 위에서 맥 빠진 소리가 들렸다.
“상순이, 말리지 마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니, 허 서기 아니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상순은 달려가 백양나무에 바라 올라갔다.
“난 이 세상에서 살 멋이 없소.”
상순은 허 백호의 손에서 올가미를 빼앗아 풀어내면서 말렸다.
“이렇게 약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빨리 내려갑시다. 아무리 갈 길이 험난하고 곡절을 겪더라도 중국 공산당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당에서는 아무 때든 허 서기를 공정하게 평가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상순은 허백호를 부축해 나무에서 내려갔다.
허백호는 한 키도 넘는 풀이 깔린 땅바닥에 김이 빠진 공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왜 이런 좁은 생각을 다 했습니까?”
“상순이, 난 살 용기가 없소. 이 놈의 세월이 언제 끝나겠소?”
“먹장구름이 걷히면 해 뜰 날이 있을 게 아닙니까?”
상순의 말에 허백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언제 이 놈 세월이 끝난다고? 보오. 반 우파투쟁에 뒤이어 또 ‘문화대혁명’이 시작됐소. 우에서 5, 6년에 한 번씩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나는 계급의 적들과 투쟁해야 한다고 했소. 이젠 지주나 국민당보다도 당내 투쟁에 중점을 두고 있소. 류소기를 타도하자고 하더니 층층이 로 간부들을 다 타도하오. 날마다 투쟁을 받으면서 살아서 뭘 하오?”
상순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는 허백호 서기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오."
상순과 흥수는 나이 비슷했다. 그러나 상순은 옛날 민주련군 때 삼도만 토비 숙청전투에서 자기 반장할 때의 련장이였다고 항상 존대말을 썼다. 급할 땐 때론 대등의 말이 불쑥 튀여나갈 때도 있었다.
"허서기, 우리 당은 꼭 인민들을 정확한 길로 이끌 겁니다. 우리 당을 믿고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말고 함께 꿋꿋이 살아갑시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네.”
상순은 무릎을 꿇고 앉아 허백호의 두 손을 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모진 정신타격을 받은 허 서기를 잘 보필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저는 삼도만 토비 숙청 전투 때나 영월구 공안국에 있을 때나 허 서기를 존경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모시지 못해 미안합니다.”
허백호도 엉거주춤 일어나 무릎을 꿇더니 상순의 두 손을 꽉 맞잡았다.
“상순이, 정말 자네한테 미안하네. 내가 살아서 뭘 하는가? 이렇게 좋은 사람도 몰라보고 지도자를 뜬다고 계속 짓밟았으니. 흑흑.”
“무슨 말씀을, 다 오해해서 그렇게 됐지요. 자기 입 안의 혀도 깨물 때가 있지 않습니까?”
허백호는 솔직히 말했다.
“아니야. 자네가 삼도만에서 날 퇀장에게 고발했다고 그게 속에 내려가지 않아 처처에서 흠집을 잡아내 메치려고 했네. 정말 미안하네. 날 용서해 주오. 으흐흑, 흑, 흑흑.”
상순은 흑흑 흐느껴 우는 허백호 서기를 넓은 품에 꼭 껴안아 주었다.
“저는 나쁘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결점을 고치고 굳세게 일해 왔습니다. 허 서기가 자리를 냈지만 계속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야, 상순이, 자넨 정말… 흐흑, 흑흑.”
백호는 흑흑 흐느껴 울며 상순의 잔등을 손으로 다독였다.
“상순이, 자네가 한 노선이 옳았네. 사회주의라는게 백성들을 굶기고서야 무슨 우월성이 있겠소? 우리는 군중들을 이끌어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 새 농촌을 건설해야 하오. 이전에 내가 내밀었던 심갱밀식재배법은 대약진 때 잘 못한 농사법이었네. 자네가 옳았네. 날 용서해줄 수 있겠는가?”
“용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허 서기도 혁명을 하느라고 그랬습니다. 나는 절대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허백호는 상순을 와락 끌어안았다. 둘은 서로 꽉 끌어안고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하늘의 먹장구름도 서서히 걷히더니 휘영청 밝은 달빛이 설레는 수풀 속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에게 은빛 옷을 입혀 주었다.
상순은 삼도만 토비숙청전투 때부터 허백호를 상전으로 모신 후 한 번도 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타격만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죽지 못해 사는 허백호가 불쌍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네와 흥수는 판판 달라. 기실 흥수는 내가 그때 얼떨떨해 화선입당을 시켰소. 양심이 없소. 내게 붙어서 입당하고 지부서기까지 하자다가 내가 우파 모자를 쓰자마자 헌 신짝 차버리듯 했소. 믿지 못할 사람이오. 지금 난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르오.”
상순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허백호는 상순의 두 팔을 붙잡고 속심을 털어놓았다.
“기실 흥수는 요즘 자기 여조카 정옥도 조선에 갔다가 돌아왔기에 이른바 조선특무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으면서 투쟁대회를 다시 하지 않는 거요.”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린 당과 사회주의 조국에 미안한 일을 하지 않은 이상 세상에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들은 수풀이 우거진 묘지 군에서 나와 태평강 가에서 오래도록 이왕지사를 얘기했다. 삼도만 토비숙청으로부터 항미원조 전쟁 때 일로, 영월구 공안국에 있을 때 일로 초생 눈썹달이 서산으로 기울 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어디에서인가 외기러기가 날아가면서 외롭게 우는 소리가 끼룩끼룩 애처롭게 들리었다.

             7. 치보 주임
높다란 토성 안 늙은 비술나무 위에서 참새 한 마리가 요 가지 조 가지 옮겨 앉으면서 짹짹거렸다. 참새는 발로 부리를 싹싹 닦다가 짹짹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다른 나뭇가지에 포롱 날아가 앉아 온 토성 안이 부산하게 짹짹 울었다.
요즘 흥수는 어깨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도 토성 안대대 사무실에 틀을 차리며 앉아 신문을 척 보곤 했다. 치보 주임으로 된 그는 나라 주석이나 대통령이나 된 듯이 조개턱을 쳐들고 안하무인격이었다.
어느 하루, 충국이 흥수를 찾아 대대 사무실로 들어와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이 치보 주임, 저,”
흥수는 서기 사무상 옆에 앉아 신문을 내리 보다가 머리를 들더니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대며 허리를 쭉 펴고 틀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소개신 한장 떼 주오.”
“무슨 소개신?”
“결혼등록소개신.”
“뭘? 누가 너 같은 지주 놈 새끼한테 시집간다더니? 흥!”
충국은 흥수를 쏘아보면서 정색해 말했다.
“지주 아들은 사람이 아니오?”
“누구한테 장가가?”
“조개덕 오옥선과 결혼해야겠소.”
“뭐라고? 옥선과?”
“예?”
흥수는 외까풀 눈이 뒤번져지게 치켜뜨며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인차 랭정성을 회복하더니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우파 여자와 지주 아들이 결혼해? 흥! 내 계급투쟁 안광을 어떻게 보고 그래? 꿈도 꾸지 말라니께.”
허나 충국은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린 오래잖으면 애까지 낳게 됐소.”
“뭐라고? 이 놈 새끼, 바로 무법천지로구나. 결혼을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애까지 설어? 당장 긁어 버려! 너희들 오누이는 결혼 전에 애를 만드는 전문가로구나. 흥! 더러운 연놈들. 애를 먼저 만들면 결혼시켜 줄 거 같아?”
흥수는 충국을 쏘아보더니 휭 하니 대대 사무실 옆에 있는 위생소로 나갔다.
“정선생, 빨리 조개덕으로 가야겠네.”
정규상은 주사기를 소독하다가 말고 물었다.
“누가 앓소?”
흥수는 조개턱을 쳐들고 떠들어댔다.
“말이나 돼. 저 충국 새끼캉(하고) 우파 오옥선이 애까지 설었다니께(니까).”
정규상도 놀라면서 뒤에 들어서는 충국을 흘끔 곁눈질했다.
충국은  울먹울먹해 통사정을 들이댔다.
“정 선생, 제발 애를 긁지 마십시오. 제발 빕니다.” 
허나 흥수는 외까풀눈을 부릅뜨고 충국을 쏘아보았다.
“이 놈 새끼! 아직도 떠들겠느냐? 썩 꺼져!”
뒤이어 그는 정규상을 돌아보면서 명령하듯 고함쳤다.
“어서 가. 정선생.”
정규상은 소독한 수술칼이랑 갖춰 위생가방에 넣어가지고 둘러메고 흥수를 따라 조개덕으로 떠나갔다.
바빠 맞은 충국은 황급히 그들 앞서 조덕림의 묘지 부근에 달려갔다.
흥수도 필경은 삼도만 토비숙청전투와 조선전쟁에 참가해 백전노장답게 기민한 치보주임이었다. 이전에 미련의 절육수술을 하려다가 충국에게 당한 적이 있어 그는 충국을 방비해야 했다.
그는 정규상을 데리고 토성 밖을 나가 마을 어귀를 벗어나려다가 주춤 멈춰 섰다.
“정 선생, 가지 말자니께.”
“왜?”
규상은 이상해 걸음을 멈추면서 가슴츠레 뜬 흥수의 외까풀 눈을 마주 보았다.
“아무래도 우리 힘으로 저 충국을 이길 거 같지 못해. 전번에도 혼나지 않았나?”
지난 달에 흥수는 미련의 배속에 있는 애를 수술해 버리려고 정규상과 함께 소시거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장충국은 성난 사자처럼 세길네길 뛰었다. 그는 불시에 정규상의 손에서 수술칼을 빼앗아들고 흥수를 깔고 들어앉아 그걸 움켜쥐고 베버리겠다고 야단쳤다. 정규상이 뜯어말려서야 흥수는 그걸 간신히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머리끼 곤두서고 등곬이 싸늘해졌다.
“그때 저 놈한테 그걸 잡힌 후부텀 이게 통말을 듣지 않는다니께. 항상 여섯시를 가리키는 벽시계처럼 꼼짝할 수 없어.”
규상은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손으로 입을 감싸 쥐고 기침을 하는 척 했다.
“못된 놈의 암캐 부뚜막에 뛰어 오른다더니. 허, 참, 세상에 별 일을 다 보겠네.”
정규상은 흥수를 따라 토성안 대대 위생 소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그래 오옥선을 어쩔 예산이오?”
흥수는 대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두덜댔다.
“쌍 빌어먹을 년, 확실히 지주 놈의 새끼를 뱄는가 알아보고 손 써도 늦지 않는기요. 충국을 다른 데 일하러 보낸 후에 옥선한테 손을 써도 늦지 않소. 그 우직한 놈을 잘 못 건드렸다가 경을 치겠네. 안 그래?”
(겁을 먹긴 단단히 먹었군. 흐흐흐.)
정규상은 속으로 웃으면서 위생 소로 들어가 주사기를 계속 소독했다.
한편 충국은 함흥촌과 조개덕 사이에 수풀이 무성한 조덕림의 무덤 부근에서 기다리다가 흥수가 나타나지 않자 덜컥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는 함흥촌에 돌아와 대대 사무실을 들여다보고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놈들이 무슨 꿍꿍이지?)
충국은 도리머리를 흔들다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팔소매를 휙 젓고 나서 소서구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흥수는 대대 사무실에 앉아 한가하게 신문을 뒤적였다.
상순은 서기이지만 평소에 항상 밭에 나가 사원들과 함께 일했기에 흥수만 대대 간부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일하러 나가지 않고 서늘한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한참 신문을 뒤적이다가 웬 일인지 눈앞에 불시에 정규상과 함께 소서구에 갔다가 본 미련의 하얀 허벅다리가 눈앞에 삼삼해났다.
(뭐야? 사람이 편안하니 여자 생각이 많이 나?)
글쎄 흥수는 아래 하신이 근질거려나더니 그것이 놀랍게도 칼산처럼 서서히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그는 신문으로 아래를 가리고 손으로 슬슬 주물다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충국이 소서구로 돌아갔을까?)
그는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바깥에 나가 마루에 서서 여기저기 살피다가 마루에서 내려섰다.
그는 늙은 비술나무 밑으로 해 대문께로 쪼르르 달려갔다. 토성 밖을 한 고패 돌면서 살펴보아도 충국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토성 남쪽에 자리 잡은 미련이네 집을 바라보면서 군침을 꼴깍 삼켰다. 허나 어쩐지 어디에선가 자기 행적을 감시하는 눈길이 따갑게 느껴져 토성 안으로 되돌아들어갔다.
남의 집 구새 목에 숨어 먼발치에서 토성 대문을 감시하던 충국은 반나절이나 돼도 흥수가 토성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너무 이상해 한참 더 살피다가 고개를 기웃거리면서도 투쟁을 받을까봐 소서구 상우지로 일하러 갔던 것이다.
흥수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모두들 일 밭으로 나간 후에야 대대 사무실로 갔다. 헌데 이상하게 축 쳐져 있던 그것이 미련의 하얀 젖무덤을 떠올리기만 하면 대가리를 쳐들까 했다.
(별 일이야. 이 놈도 젊고 예쁜 가시나 알아보는 모양이지. 어디 참겠어. 이거.)
그는 마흔을 넘긴 춘실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봐서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허나 윤택이 나고 하얀 미련의 허벅지를 눈앞에 떠올리기만 해도 그것이 뻣뻣이 머리를 쳐들지 않겠는가?
(충국한테 잘못 됐는가 했더니. 아니야. 이 놈도 젊은 연들을 만나면 용을 쓰겠지.)
흥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슬금슬금 토성 밖으로 나갔다. 그때 때마침 저쪽 우물가에서 삐꺼덕 삐꺼덕 드레 박을 잣아 올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때마침 애를 업은 채 드레박을 잣는 미련이 보였다.
“어험, 어험.”
흥수는 마른기침을 하면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련아, 그래, 애는 잘 자라느냐?”
미련은 드레박을 잣다가 깜짝 놀라 멈칫 하다가 억지로 해시시 웃었다.
“예. 치보주임, 덕분에 잘 자랍니다.”
흥수는 조선말도 꽤나 잘하는 미련을 흘금흘금 곁눈질 했다. 드레박을 잣아 올려 초롱에 물을 붓는 미련이가 오늘따라 하야말쑥한게 더 고와 보였다.
(아이고, 저 허연 젖가슴을 봐. 말랑말랑한게 쥐면 톡 터질 거 같아.)
흥수는 혼 나간 야수처럼 미련의 가슴을 노려보았다. “세상에 별일이야. 지주네 딸이 이렇게 고와보이다니?”
“예?”
미련이 듣고 누런 이빨을 다 드러내며 헤헤헤 웃었다.
“응? 어, 그래 어째 네가 영 곱구나.”
“어마나, 치보주임도.”
미련은 눈을 곱게 흘기면서 물 초롱을 들고 집으로 떠나갔다.
“힘들겠구나. 내 들어다 줄게.”
흥수는 능글맞게 물 초롱을 들고 앞서 미련의 집으로 들어갔다.
미련은 여기저기 사처를 둘러보면서 입을 싸쥐고 뒤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치보 주임, 남들이 지주네 딸을 도와주었다고 욕하지 않겠습니까? 헤헤헤.”
“괜찮아. 난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구나.”
“어마나!”
미련은 허리를 비꼬며 손으로 낯을 가리면서 부엌으로 들어와 물을 물독에 부으려고 했다.
“가만, 내가 부어 줄께니.”
흥수는 물독에 물을 부어주기까지 하면서 중얼거렸다.
“미련아, 내 소개 신을 떼주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애를 낳고 살 수 있었겠어?”
“감사합니다. 치보 주임.”
흥수는 물을 다 붓고 음충한 눈길로 미련을 돌아보면서 능글맞게 구슬렸다.
“너 이런 말 알아?”
미련은 이상해 물었다.
“뭘 말인가요?”
“우물의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말라.”
“예? 저 토성 밖의 우물은 병완 할아버지네 부자들이 조선에서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팠다던데요.”
“그래, 허나 너 네 살 게 만든 건 누구냐?”
“그거야 치보 주임이죠.”
“그래.”
흥수는 미련을 활 채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애 다치겠네. 별라냥 한다. 우추 같은게.”
미련은 흥수를 활 밀쳐버리고 나서 애 띠를 풀고 애를 잔등에서 내려 구들에 눕혔다.
흥수는 구들에 올라가 단통 미련의 젖가슴에 손을 쑥 넣어 꽉 움켜쥐면서 호통쳤다.
“사람이 은공을 갚을 줄도 알아야지. 함흥대대에서 이 치보주임을 모르고 살 수 있어?”
“이러지 맙소!”
미련은 흥수의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허나 흥수는 미련을 꽉 껴안아 부엌 장판 밑에 밀어넣었다. 뒤이어 깔고들어앉아 야수처럼 그걸 하려고 달려들었다.
아녀자 미련은 흥수의 억센 팔을 이길 수 없었다.
물초롱이 넘어져 물이 와르르 부엌바닥에 흘러내렸다.
흥수는 거센 숨을 몰아쉬면서 소리치는 미련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쉿- 한번만 참아. 널 투쟁 맞지도 않고 편안히 살게 할 거니께.”
허나 미련은 발버둥치면서 발악했다.
흥수가 치마를 걷어 올린 후 괴춤을 까는 새에 미련은 소리쳤다.
“애 깨나겠다. 동네서 알면 난 어떻게 살아? 우리 오빠 치보주임을 놔 둘 거 같은가?!”
“지주 아들놈이 감히 이 어른을 어쩐다고?”
흥수는 발버둥질치는 미련을 어찌할 수 없어 통사정했다.
“얘,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 그럼 네 오빠하고 옥선도 결혼시켜주마.”
“예?”
미련은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발버둥질을 멈췄다.
그새 흥수는 미친듯이 덮쳐들었다.
“아!”
미련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갔다.
“아, 아, 그럼 우리 오빠, 오 선생과 결혼, 결혼 시켜주지?”
“응, 그래.”
미련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하 벌리고 말았다.
“하긴 잘한다!”
이때 갑자기 느닷없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흥수가 머리를 들어보니 춘실이 집에 뛰어 들어왔다.
흥수는 괴춤을 춰 입고 황급히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춘실은 물이 줄줄 흐르는 부엌바닥에 쓰러진 미련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마구 흔들어댔다.
“이 년아, 죽자고 이러니?”
“내 어쩌래? 죽기내기로 달려드는 걸.”
춘실은 물참봉이 된 미련의 허벅지를 쏘아보았다.
“저 나그네 나와는 어쩌지 못하면서.”
“아, 아니,”
“무슨 소리냐?”
“어째 그게 어쩌지두 못하더구먼.”
“그래? 그래도 바람을 쓰면 그 병이 낫는다더니. 젊은 계집을 봐도 안 돼?”
춘실은 중얼거리더니 미련을 표독스럽게 마주 보면서 다짐을 땄다.
“너 누구한테도 이 일을 말하면 안 돼. 그때면 너 죽는다. 알겠지?”
“예.”
미련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춘실은 미련의 귀쌈을 찰싹 갈기고 우쭐 일어나 흥수를 흘겨보면서 문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서는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찌르고 선 백양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진절머리 나게 까욱까욱 울고 있었다.
                
           8. 밝은 달밤이 오면


   봄기별을 알리는 종달새들이 지종지종 지저귀고 봄바람에 넘실거리는 버드나무가지에 알락까치들이 앉아 “까, 까, 까.” 노래하고 있다.
“이라! 이라!” 
버드나무숲이 우거진 해란강변 습개지에서 종호와 장묵은 써레질을 하느라고 분주했다.
종호는 새하얀 옷을 입고 써레질을 했지만 흙물 한 점도 옷에 띠지 않게 깐지고도 깨끗하게 일해 모내기를 하는 아낙네들이 혀를 끌끌 찰 지경이었다.
이때 장묵의 걸기를 끌던 황소가 습개구덩이에 풀렁 빠졌다. 원래 습개자리에 흙을 파다 펴고 푼 논이기에 장묵이 아무리 궁둥이를 채찍으로 때려도 황소는 습개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황소가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날 지경으로 뻐둑거릴수록 더 빠져 들어가 이젠 엉덩이마저 흙탕물에 들어가고 말았다.
급해난 장묵은 아우성쳤다.
“종호! 빨리 오라!”
종호는 “와.” 하고 황소를 세워놓고 채찍을 걸기에 걸어놓았다.
“소가 습개에 오래 빠져 있으면 배가 불어 죽소.”
종호는 다가와 장묵의 손에서 채찍을 받아 쥐어 소등을 짱짱 내리쳤다. 허나 황소는 움쭉 거리다가 주춤 물앉았다. 황소는 이젠 각일각 배가 붓기 시작했다.
도리머리를 흔들던 종호는 소 궁둥이 쪽으로 가서 여겨보았다.
“형님, 내 소 궁둥이를 들면 채찍으로 소를 치오.”
“에이고, 어떻게 소 궁둥이를 든다고 그러니?”
“그러지 않으면 소 죽는걸 보고만 있겠소?”
종호는 사원들을 보고 가마니를 가져오라고 해 소 궁둥이 뒤쪽에 폈다. 그는 습개 위에 편 가마니를 밟고 서더니 두 팔을 쓱쓱 걷고 용처럼 꿈틀거리는 두 팔로 소 궁둥이를 두 손을 잡았다.
두 팔의 근육이 울뚝불뚝 살아났다.
“어-차!”
종호가 몸을 뒤로 젖히면서 두 팔에 힘주어 소 궁둥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때 장묵이 “이라!” 소리치며 채찍을 날리자 잔등을 얻어맞은 황소가 앞으로 벌컥 내짚더니 습개에서 빠져나왔다.
“와! 꼬리 없는 소구먼!”
사원들은 입을 딱 벌렸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게 어디 사람이오?”
“글쎄 말이오. 어쩜 습개에서 소 궁둥이를 건뜻 든단 말이오?”
“이전에도 수레 멍에에 애들을 둘이나 앉히고 수레 채를 쥐고 수레를 들어 몇 바퀴씩 돌린 적이 있소.”
“힘이 무적이오. 무적.”
장묵은 힘장수 동생이 대견스러워 사원들을 돌아보면서 자랑을 늘여놓았다.
“종호는 이전에도 땔나무하러 갔다가 빠진 수레를 땔나무를 실은 채로 건뜻 들어 빼낸 적이 있소. 우리 내력은 나를 내놓고 모두 힘이 세오. 우리 아버지는 성지 촌에 있을 때 소가 조단을 싣고 산비탈 길을 받지 못하자 소를 벗겨놓고 자기가 수레 채를 안고 내리막을 내려 온 적이 다 있소.”
“야, 원래 천하장사는 유전이 있는 모양이오.”
“대를 물린 힘장사들이구먼.”
장묵은 황소를 논밭머리 둔덕 위에 끌고 갔다. 황소는 배가 좀 불렀지만 종호가 인차 구해냈기에 살아났다. 장묵이 황소의 배에 묻은 흙물을 닦고 씻고 해주었더니 오줌과 똥을 질질 내 쏘더니 꼬리를 휘휘 휘둘렀다.
동쪽 하늘에서 금빛태양이 구름을 뚫고 전원을 비추었다.
이때 마을 쪽에서 옥선이랑 아낙네들이 아침밥을 이고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침이나 먹고 일하기오.”
종호가 외치자 모두들 논도랑 물에 손을 대충 씻고 논머리 둔덕위로 올라갔다.
옥선이랑 아낙네들은 이고 온 함지를 내려놓고 함지 안에서 이밥과 부추달걀볶음이랑 두부모랑 막걸리랑 내놓았다.
종호와 장묵은 사원들과 함께 밥함지에 둘러앉았다.
종호는 막걸리 잔을 들었다.
“자, 막걸리나 시원히 마시고 식사하지.”
장묵도 잔을 들었다.
나그네들은 막걸리를 뻘꺽뻘꺽 마시더니 기분이 좋아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일을 할 만할까?”
장묵의 말에 종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옛날 무송은 술을 서른 사발이나 마시고서도 범을 때려잡았다오. 막걸리를 마시면 힘이 나서 걸기질을 더 잘 할 수 있소.”
그 말에 옥선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옥선이 눈을 흘기면서 방실방실 웃을 때면 넓은 눈시울이 좁아지며 쌍까풀이 되면서 더 고왔다.
종호는 막걸리 잔을 내려놓으면서 “둘째형님도 이 마을에서 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장묵은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말이다. 숱한 잔 밥을 먹여 살리자고 목재판에 갔다가 잘못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는데.”
그들 형제는 둘째형 장은의 불행에 마음이 아파 막걸리를 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장은은 목재판에 갔다가 불행하게도 넘어가는 아름드리나무에 깔려 사망했다. 장은의 맏아들 명수가 황급히 목재판에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얼굴이 알아 볼 수 없게 퍼렇게 팅팅 부었다. 사망한 지 며칠 돼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 진물이 괴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명수는 눈앞이 깜깜했던 것이다. 어머니도 계시지 않는데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명수는 어시로 돼 어린 동생들인 경자, 영찬, 경애, 영일을 거느려야 했다. 너무나도 힘든 명수는 할 수 없이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영일을 투도에서 교원사업을 하는 민씨 네 집에 양아들로 줘 보냈던 것이다.
“이젠 춘삼 큰아버지하고 인삼 둘째큰아버지도 사망했지. 형님들도 뿔뿔이 흩어져 보기도 힘들어졌다.”
형의 말에 종호는 한숨을 후 내쉬면서 “고향에 있을 때보다 재미없소.”라고 동을 달았다.
종호와 장묵은 그리운 친척들로 해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참 후 마을 어귀에서 종호의 셋째 딸 경숙과 둘째 아들 춘수가 나무수레를 끌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러자 종호는 “얘들아, 물도랑에 빠지겠다. 마을에 가서 놀아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춘수는 몸을 배배 탈면서 떼를 쓰고 경숙은 춘수를 데리고 가려고 수레와 춘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옥선은 나그네들이 아침을 다 먹자 황급히 함지에 빈 그릇을 담아 이고 치맛자락을 휘날리면서 애들 쪽으로 반달음 쳐 갔다.
그녀는 바삐 경숙과 춘수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춘수는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엄마, 오늘 저녁에 영화를 한다오. 구경하기오. 양?” 하고 종알거렸다.
옥선은 “응, 그래. 너네나 구경해라. 엄마는 곤해서 보지 않겠다.”라고 했다.
“엄마~ 같이 보자. 응?”
허나 옥선은 떼를 쓰는 춘수를 끌고 가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옆에서 경숙도 졸라댔다.
“영 재미있는 전투영화를 한답니다. 아버지랑 엄마랑 같이 가서 보기요. 내하고 춘수 먼저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아 놓을게.”
그래도 옥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주한 하루 일이 끝나고 종호랑 장묵이랑 사원들은 소를 벗겨 몰고 마을로 돌아왔다. 옥선이랑 벼 모 내기를 하고 비닐박막을 허리에 띤 채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앞쪽으로 해 있는 탈곡장에는 벌써 남쪽을 향해 허연 영사막을 쳐놓았다. 애들은 해도 지기 전에 좋은 자리를 서로 앞 다퉈 차지하느라고 누룽지랑 먹으면서 영사막 앞에 조롱조롱 앉아 있었다.
경숙과 춘수는 벌써 검둥이를 데리고 영사막 제일 앞에 널따랗게 자리를 차지해놓고 감자누룽지를 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 옆에 경숙의 큰언니네 여 조카 송선까지 데려다 앉혀 놓았다.
이윽고 온 하루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서서히 서산인 모아산 쪽으로 져가고 고기비늘구름에 누르스름한 황혼이 불타기 시작하고 대지에는 황혼의 낙조가 비끼었다.
“오래지 않아 영화를 돌리겠는데 어째 아버지 하고 엄마가 오지 않을까?”
춘수의 말에 경숙은 “집에 가서 데려올게. 넌 여기서 송선과 함께 자리를 지켜라.”라고 했다.
“응, 그러자.”
이때 경숙은 탈곡장에 오던 경숙의 큰 언니 금자와 아저씨 김승준이 그리고 둘째언니 순자와 마주쳤다.
“넌 어디로 가니?”
순자의 물음에 경숙은 “아버지하고 엄마를 데리러 가오.”라고 했다.
그러자 금자와 순자는 서로 마주 보다가 경숙의 손을 잡고 내려다보면서 말렸다.
“아버지와 엄마는 전투영화를 보지 않는다.”
“어째? 전투영화 얼마나 재미있소?”
“너네는 애들이 돼서 모른다. 데리러 가지도 말아라. 가자, 언니들하고 아저씨랑 함께 보자.”
큰언니 말에 어리둥절해진 경숙은 몸을 탈면서 떼를 썼다.
“싫소. 난 기어이 엄마를 데려오겠소.”
어려서부터 고집이 센 경숙을 말리지 못하는 언니들이었다.
경숙은 언니네를 뿌리치고 조그만 주먹을 쥐고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집안은 전등마저 죽여 놓아서 깜깜하게 어두웠다.
“엄마! 엄마! 전투영화를 하오. 빨리 가기요. 오래지 않으면 영화를 시작하오.”
“너네나 봐라. 난 곤해서 가지 않겠다.”
옥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경숙은 구들에 올라와 누워있는 아버지와 엄마를 돌아가면서 흔들었다.
“엄마, 아버지, 가기요. 예? 오랜만에 온 영화를 보러 가기요.”
허나 옥선은 돌아누우면서 “빨리 가 봐라. 영화를 시작하겠다.”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탈곡장 쪽에서 무슨 노래 소리가 높이 울렸다.
바빠 맞은 경숙은 어머니를 마구 흔들면서 떼를 썼다.
“영화 보러 가자, 응~ 응~”
이때 아버지가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경숙아, 우린 전투영화를 보지 않는다. 전투영화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면 속이 아파서 보지 못한다. 너네나 가 봐라. 어서! 아빠, 엄마 말을 잘 듣지? 응?” 
그제야 경숙은 구들에서 옴찔 일어나 나가면서 종알거렸다.
“별나다. 재미나는 전투영화를 보는데 속이 아프다니?”
경숙이 집에서 나가 탈곡장으로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옥선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려 베갯잇을 적셨다.
옥선은 전투영화에서 빗발치는 탄우 속에서 총칼을 들고 뛰쳐 나가는 전사들을 보기만 하면 그 속에 스무 두 살 난 전 남편 조철호가 있는 것 같았다. 기실 조철호는 김성칠 련대장 휘하에서 무명고지전투에서 지휘부를 사수하다가 절벽 아래에서 장렬히 희생되였었다. 그런데 옥선은 남편 조철호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마음이 비길 데 없이 아파 전투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 줄을 애들이 어찌 알겠는가!
    옥선은 전 남편 조철호를 13년이나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자 종호한테 재가해 와서 첫아이를 폐 염으로 잃고 경숙과 춘수 오누이를 낳아 재미나게 살았다. 그녀는 경숙을 1962년에 낳고 춘수를 3년 후에 춘수를 낳아 오누이를 정말 재미나게 키웠다. 허나 스무 한 살에 결혼해 백날도 되나마나해 유복자를 남겨놓고 조선전쟁터에 나간 신랑이 돌아오지 않아 옥선은 속을 태울 대로 다 태웠다.
오늘처럼 휘영청 달빛이 밝은 달밤에 깜깜한 집안에 누워있으면 어쩐지 신랑이 어디에 이름 모를 산기슭 어느 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것 같아 뜨거운 눈물로 눈시울을 적시었다. 구새 목에서 쿵쿵쿵 울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혹시 신랑이 돌아오지 않는가 하여 문고리를 쥐고 내다보다가도 문 앞을 지나가면 스르르 무너지듯 물앉아 쓰라린 눈물을 흘리었다. 그녀가 달을 바라보며 흑흑 흐느껴 운 달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오늘도 전투영화를 돌린다고 하자 옥선은 또 기분이 상해 어려서 잃은 신랑 생각으로 속절없이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었다. 그러나 경숙이랑 애들이 어찌 그렇게 아픈 엄마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
탈곡장 마당에서는 대포소리가 요란하고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사람이 죽으면서 지르는 비명소리도 높아갔다. 처량한 달빛이 쓸쓸히 집안 구들을 휩쓸었다.
종호는 후처 옥선의 마음을 헤아려 전투영화만 돌린다고 하면 가지 않고 옥선을 동무하며 위안해주었다.
종호는 모로 돌아누워 들먹이는 옥선의 어깨를 붙잡아 돌려 눕히고 꽉 끌어안아주었다. 옥선은 종호의 드넓은 품에 안겨 흑흑 흐느껴 울었다.
집 안에는 한숨과 흐느낌 소리가 반죽해 어둠이 깔린 구석구석까지 쓸쓸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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