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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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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2)
2017년 09월 26일 16시 25분  조회:150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 무명고지 격전

       엷은 어둠이 벌겋게 타다 남은 저녁노을 밀어내며 산기슭에 몰려왔다. 이남 땅에서 어둠조차 공포의 사자와도 같았다.
상순은 트럭대오를 정돈한 후 즉시 출발하려고 했다. 전사들은 상순이네가 가져온 밥함지에 둘러 앉아 남쪽의 이밥을 떠먹고 기분 좋게 트럭에 올라탔다.
부르릉 부르릉
그들이 금방 떠나려고 할 때다.
뚜루룩 뚜루룩
푱! 푱! 푱!
기관총이 산마루에서 불을 토하고 남에서 트럭들이 불시에 들이닥쳤다.
“빨갱이들을 생포해라!”
“어서 투항해!”
땅! 쿵!
땅! 쿵!
박격포 탄알이 우박처럼 날아와 폭발했다.
상순이 피뜩 보니 괴뢰군들이 철갑모를 번뜩이며 새까맣게 덮쳐왔다. 사태가 아주 위급했다.
벌써 몇 대 트럭에 불길이 삼단같이 일고 여기저기에서 전사들의 비명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성수 패장, 트럭을 몰고 따발령 쪽으로 철퇴하라!"
"옛!"
"2패와 3패는 저 동쪽고지를 점령하라!”
상순의 명령에 따라 전사들은 전투에 유리한 동쪽고지로 돌격해 올라갔다.
“트럭을 몰고 오던 길로 빠져나가라!” 
성수는 운전수들에게 고함치며 트럭 운전실에 올라탔다.
군복을 만재한 트럭들은 일제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고지를 점령한 상순은 눈 위에 엎드린 채 오던 길로 달아나는 트럭을 바라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양키놈들,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잘 왔어. 뒈질 놈들!"
그는 이제야 양키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시각이 닥쳐왔다고 이를 악물고 윽윽 벼르며 속으로 시퍼런 칼을 갈았다.
흥수는 다가와 엎디더니 “저 숱한 군복을 버리겠소?” 하고 물었다.
“아니야? 적들이 트럭을 쫓아가면서 불질하면 어쩌는가?”
상순의 말에 흥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빨리 전호를 파고 저격준비 하라!”
“옛!”
전사들은 공병삽을 휘둘러 재빨리 전호를 파기 시작했다. 허나 댕그랑댕그랑 삽날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만 날뿐 언 땅이 잘 파지지 않았다. 전사들은 돌을 주어다 대충 쌓아놓고 엎드렸다.
그때 괴뢰군 트럭들이 미제 탱크 앞에서 쫓아왔다. 양키놈들은 항상 독전태세로 뒤에 물러서고 괴뢰군들을 탄알받이로 앞장세웠다.
상순은 경기관총을 둔덕에 걸어놓고 성수네 트럭을 쫓아가는 괴뢰군 트럭을 조준해 사격했다.
뚜르륵 뚜르륵
성수네가 몰고 달아나는 트럭대오는 상순이네가 점령한 고지를 안고 서쪽으로 굽이돌아 북상하고 있었다. 그들을 추격하는 남조선 괴뢰군 트럭들이 상순이네 점령한 고지 북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순은 허리춤에서 신호총을 꺼내 밤하늘에 대고 쏘았다.
씽- 탕!
포화에 그은 어두운 밤하늘에 빨간 신호등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라갔다가 제일 뒤에서 달리는 성수 트럭 앞으로 해 떨어졌다.
성수는 불길이 활활 타 번지는 트럭을 세우고 고지를 올려다보았다.
상순은 남조선 괴뢰군이 알아듣지 못하게 한어로 고함쳤다.
“성수! 불 달린 트럭으로 길을 막앗! 고지로 철퇴!”
성수는 트럭 운전실 문을 열고 고지를 올려다보며 버럭 성을 냈다.
“트럭을 버리다니!”
“트럭으로 길을 가로 막앗! 괴뢰군 트럭이 쫓지 못하게!”
“알았소!”
성수는 전사를 시켜 불이 활활 붙는 군복을 마구 뒤에 내리뿌리게 했다. 괴뢰군 트럭은 휘발유통에 불이 당길가봐 이리저리 피하면서 쫓아왔다.
성수는 산 중턱 제일 좁은 굽이돌이에 이르자 불이 활활 타오르는 트럭을 가로 멈춰 세워놓았다. 그는 운전실에서 내려 뒤로 달려가더니 휘발유통 덮개를 열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군복을 내리워 훌 덮어놓았다. 불길 속에서 성수가 산 아래로 굴러내려가는 것이 얼핏 보였다.
쿵!
삽시에 자동차 휘발유통이 폭발하며 불길이 하늘을 찔렀다. 불이 달린 군복이 자동차 파편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여기저기 어지러이 떨어졌다.
뒤따라온 괴뢰군의 트럭들은 불타는 트럭에 막혀 북으로 도망치는 지원군의 트럭들을 바라보면서도 용빼는 수가 없어 꽥꽥 고함만 쳤다.
상순은 기관총으로 괴뢰군 트럭의 휘발유통을 조준해 사격했다.
뚜르륵 뚜르륵
쾅! 쾅!
트럭 휘발유통들이 폭발하면서 화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금방 고지에 달려 올라온 성수는 상순을 손가락질하며 놀란 소리를 쳤다.
“왜 트럭을 쏘오?! 놈들 트럭이라도 빼앗아 몰고 도망쳐야지.”
“트럭을 거저 세워 놔 되니? 완전히 추격을 따돌려야 해!”
그제야 성수는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빈 통이 소리 더 높다더니 개뿔도 모르면서 큰소리만 꽝꽝 쳐!”
상순은 욕설을 퍼부었다.
괴뢰군과 미제 양키놈들은 남북으로 고지를 에워싸고 진공했다.
이때 흥수는 상순을 힐끔 곁눈질하면서 두덜거렸다.
“이상해! 분명 아까 그 집에서 물어먹은 거야!”
번쩍이는 화광을 빌어 흥수의 눈과 입가에 증오가 번뜩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헛소릴 치지 말라!”
상순은 전사들에게 명령했다.
“탄알을 아껴! 적들이 십여 미터까지 오면 사격하라!”
상순이 한어로 명령하는 바람에 괴뢰군은 알아듣지 못했다.
“아까 김영장은 삼촌이고 뭐고 하더구먼. 여기 남조선에 무슨 친척이 있소?”
상순은 귀찮게 구는 흥수를 흘끔 가로 보았다.
“잔말 말고 전투준비해!”
이때 모진 엔진소리를 내면서 4대 탱크까지 덮쳐왔다. 미군 탱크는 불붙는 괴뢰군 트럭과 중국인민지원군 트럭을 길옆에 밀어 버렸다. 길이 열리자 탱크들과 트럭은 북으로 도망친 트럭대오를 추격해갔다. 나머지 미군과 괴뢰군들은 고지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왔다.
상순은 한어로 전투명령을 내렸다.
“사격!”
전사들은 일제히 불을 토했다. 간사한 미군은 뒤에서 뭐라고 독전했다. 괴뢰군은 진두에서 앞 병사가 쓰러지면 뒤 병사가 시체를 넘어 맹사격을 가하면서 돌격해 올라왔다.
 
괴뢰군들은 미군 탱크 지원을 받으며 고지에로 파죽지세로 덮쳐 왔다. 괴뢰군들은 미군의 대포밥이 돼 기를 쓰고 덮쳐들었다.  벌써 몇몇 지원군 전사들이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상순은 경기관총 탄알이 다 떨어져 사격을 멈췄다.
“탄알이 다 떨어졌다!”
“나도 탄알이 없다!”
상순은 여기저기서 절망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중공군이 탄알이 다 떨어졌다. 돌격!"
괴뢰군들은 그 소리를 듣고 허리를 펴고 꿋꿋이 선채 무명고지에로 달려들었다.
상순은 모젤권총과 공병삽을 들고 병수와 태수 등 전사들을 돌아보면서 비장하게 고함쳤다.
“트럭대오를 엄호해야 해. 이 무명고지에서 결사전을 벌리자!”
상순은 공병삽을 틀어쥐더니 벌떡 일어났다.
“총창을 꽂앗!”
전사들은 상순의 명령에 따라 모두 총창을 꽂으며 따라 일어섰다.
“싸(杀)!”
상순은 공병삽을 휘두르며 제일 앞에서 뛰어 내려갔다. 머리 누런 양키놈이 상순의 옆에서 짓쳐 내려가는 흥수한테 총을 겨누었다. 눈치 빠른 상순은 흥수를 옆으로 밀어재끼며 공병삽을 휘둘러 양키 놈 목을 탁 찍었다.
땅!
양키 놈은 쓰러지면서 총을 쏘았다. 상순은 몸을 기우뚱하더니 공병삽을 쥔 손으로 왼팔을 붙잡으며 몸을 비틀며 간신히 가누었다.
“김영장!”
병수가 뛰어나가면서 총을 쏜 양키를 총창으로 찔러 눕혔다.
     상순은 아픔을 참으면서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공병삽을 무섭게 휘두르며 머리 누런 양키놈들을 덮쳐내려갔다. 세계최강군이노라고 우쭐렁거리던 미군 양키놈들은 야수처럼 덮쳐들며 날치는 상순이랑 병수랑 보며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양키놈들은 무기나 믿고 우쭐렁거렸지 육박전엔 얼음판에 들어선 소눈깔을 해가지고 무서워 부들부들 떨며 뒤저참했다. 그 놈들은 큰 덩치를 믿고 줄곧 지원군 전사들을 깔보아왔지만 생사결단으로 덮쳐드는 지원군 전사들 앞에서 손을 들지 않으면 뒤로 도망쳤다.
상순은 삼검불 같은 누런 머리털을 흩날리며 도망치는 한 양키놈을 뒤쫓아가 공병삽으로 목을 탁 내리쳤다. 그 놈은 목을 옆으로 비틀어 피하면서 애걸했다.
"NO! Den't Shoot!(아니, 쏘지 말라!)"
"너?! 뭐라고 개소리야!"
상순은 타오르는 전장의 화염을 빌어  양키놈의 파란 눈에서 애원의 빛이 가련하게 판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손 들엇!"
상순은 공병삽으로 손을 가리켰다.
“요 핸드 들엇!"
상순은 요 손을 들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양키놈은 손을 쳐들어보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Your hand(요 핸드: 너의 손)?"
"응, 요 손 들엇!"
양키놈은 자기 손을 쳐들어보이며 비명 같은 소리를 쳤다.
" My hand?!(마이 손: 내 손?!OK, OK!)"

상순은 공병삽을 쳐들고 귀동냥해 들은 보리영어로 호령했다.
"응! 요 핸드(요 손) 들엇!" 
"Yes, yes!"
양키놈은 용맹한 상순 앞에 무릎을 털썩 꿇더니 총을 든 채 두 손을 머리 위에 번쩍 쳐들었다. 파란 눈은 공포에 판들거렸다.
"흥! 네놈들도 세계 최강군이냐? 너네 양키놈들은 마이(많이) 핸드 들더라(많이 손 들더라.). 날창만 들이대면 손을 번쩍번쩍 들어?!. 흥! 맨 물알 같은 놈들, 뭐? 세계 최강군! 퉤!"

상순은  코웃음치며 그 놈의 총을 빼앗아냈다.
양키놈은 개목숨을 구했느라고 연신 "OK, OK!" 하고 상순한테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갑자기 두 양키놈이 양옆에서 총칼을 번뜩이며 동료를 구하려고 상순한테 덮쳐들었다. 상순은 로획한 돌격총으로  연신 두 양키 놈을 쏴 넘겼다. 그 틈에 무릎을 꿇었던 누런 머리가 벌떡 일어나 상순의 돌격총을 잡아 꽉 눌렀다.  상순은 무쇠주먹을 휘둘러 양키놈의 대갈통을 서리맞은 박처럼 까부셨다. 그 놈이 주춤 하는 틈에 상순은 머리로 연신 양키 놈의 대가리를 들이받았다. 양키 놈은 건뜩 쳐들린 코마루가 분질러지고 코피 툭 터졌다. 그양키 놈은 비명을 지르며 네각을 쭉 뻗고 뒈진 돼지처럼 쓰러졌다. 상순은 코피범벅이 된 양키놈 누런 머리털을 틀어쥐여 내리누르며 무릎으로 대가리를 연신 걷어찼다. 양키놈은 목마저 분질러져 까딱하지 못했다.
떵! 떵!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상순은 무쇠주먹을 휘둘러 양키 놈의 콧대를 여지없이 까부셨다.
뒤이어 벌떡 일어나 발로 양키놈의 피범벅이 된 부러진 콧대를 짓밟아 뭉개며 너털웃음쳤다.
"허허허! 끝내 양키놈들 콧대를 분질러 놨구나!"
병수가 뒤쫓아와 맞장구를 쳤다.
"하하하! 통쾌해!"
퉤!
상순은 쓰러진 양키 놈의 납작해진 피범벅콧대에 침을 뱉었다. 뒤이어 그는 양키놈의 손에서 돌격총을 빼앗아내 몰사격하며 무리로 쓰러지는 양키 무리 속을 돌진했다.
"돌격!"
"싸!"
죽음을 각오하고 총창을 휘두르며 단말마적으로 덮쳐 내려가는 중국인민지원군 장병들을 보자 괴뢰군은 산 아래로 내리 뛰며 눈 먼 총을 쏘아댔다.
태수는 쫓아내려가면서 연신 괴뢰군 병사를 찔러눕혔다. 그는 "싸!" 소리치며 또 한 놈의 뒤 잔등을 찔러 눕혔다. 괴뢰군들도 장탄해 총을 쏠 새 없어 태권도를 날렸다. 어떤 괴뢰군 병사는 몸을 날려 지원군의 머리를 발길로 차 눕히고 무쇠주먹으로 머리를 까부셨다. 어떤 괴뢰군 병사는 지원군의 멱살을 틀어쥐고 헤딩을 해댔다. 상순은 왼팔을 쓰지 못하자 오른 손으로 공병삽을 휘두르는 척 하다가 발길을 날려 병수에게 덮쳐드는 양키를 차 눕혔다. 그는 공병삽으로 쓰러진 미군 흑인병사를 마구 찍어 죽였다.
이때 흥수는 눈에 달이 올라 적이고 아군이고 눈앞에 뛰어만 들면 총창으로 마구 찍어댔다. 그는 옆에서 자기를 보호하며 짓쳐나가는 상순을 보자 적이라고 총창으로 들이 찍었다.
뜻밖의 총창 질에 상순은 공병삽으로 날아드는 총창을 쟁그랑 막으며 황급히 소리쳤다.
“흥수!”
“누구야?!”
“상순이다!”
“김영장! 어두워서 통 보이지 않네!”
흥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아래로 괴뢰군을 추격해내려갔다.
"죽어봐!"
갑자기 바위 뒤에서 한 괴뢰군이 몸을 날려 흥수를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 했다. 그 놈은 흥수를 깔고 들어앉아 비수로 내리 찌르려고 했다.
"난도 남조선 사람이야!"
"뭐락꼬?"
"내 고향 전주야!"
"뭐래?"
그 놈은 비수를 들고 산마루에서 타번지는 불길을 빌어 흥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 물러앉았다.
"아니, 이꺼 흥수 히야(형) 아닌가베!"
"너거(네가) 막내 창수 아니가?"
"그래."
상순은 덮쳐나가면서 흥수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괴뢰군 놈을 총탁으로 내리치려다가 반공중에서 멈췄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흥수는 육박전에서 만난 창수를 붙안고 옆에 아가리를 쩍 벌린 무덤의 관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해골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동생을 흔들며 다잡아 물었다.
"아빠캉 젬마(엄마)캉 어떠래(어떻냐)?"
"다 미공군 폭격에 즉살했어!"
"아빠! 젬마!"
흥수는 어린애처럼 동생 창수를 붙안고 울었다.
"누가 울어? 소대장 목소리 같은디."
이때 관 안으로 누군가 철갑모를 쑥 들이밀었다. 분명 괴뢰군이었다.
"에끼, 이 놈!"
흥수는 총칼을 쓱 뽑아 철갑모를 푹 찔렀다.
"아걋!"
"관둬!"
창수가 흥수의 총칼을 빼앗아냈다.
"뭔 짓거리야?!"
"내 수하라니께."
창수가 철갑모 쓴자를 끌어당겨 관 안에 들어왔다. 부자집 무덤인지 관이 꽤나 컸다.
"중대장, 누군데?"
"히야(형)야!"
"오- 그래?"
"어서 나가 중공군 오나 살펴!"
"넷!"
철갑모는 다시 무덤에서 나갔다.
흥수는 창수 얼굴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히야 따라가자! 성수 형이랑 다 나왔어."
"히야는 그간 어데 갔댔어?"
"만주에 갔던 거야. 널 얼마나 찾았는디."
"중공군에서 뭐 하는디?"
"반장 해."
"반장? 뭔 급인디?"
"분대장이야. 성수는 패장이야."
"패장이면 더 높은디?"
"그래, 소대장이지."
"관둬, 히야, 내캉 따라 가! 난 중대장이야. 고향에 돌아가!"
"글쎄. 건데 성수는 어쩌나? 우린 중공군인디 남조선 괴뢰군이 살려주겐?"
"내 잘 말하지. 우린 포로를 죽이잖으니께."
"안돼! 날 따라가자!"
"중공군이 괴뢰군 중대장을 살려줄까?!"
"우린 포로를 우대해!"
이때 밖에서 철갑모가 불렀다.
"중대장! 빨리 부대따라 가자니께!"
"오- 그래!"
형제간의 만남도 잠간,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설복시키지 못하고 관에서 나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자기 부대로 돌아가 적수로 돼 총부리를 맞대고 싸워야 했다.
"몸조심해!"
"히야도 그래! 총소리 나면 도망치락꼬!"
"그래!"
창수는 철갑모와 함께 무덤을 빠져나가 어둠이 두텁게 깔린 수림에 사라졌다.
흥수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고 어정어정 걸으며 사위를 살폈다. 상순을 찾아야 했다. 그는 어쩐지 옆에 상순이 었어야 마음이 든든한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상순은 괴뢰군은  놔두고 양키놈들을 추격해 산 아래로 짓쳐 내려갔다. 갑자기 바위 뒤에서 쇠기둥 같은 놈이 상순을 나꿔채  쓰러눕혔다. 상순은 벌떡 일어나며 발길로 시꺼먼 놈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그 놈이 허리를 굽히며 가달 두새를 붙잡으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치는 순간, 상순은 공병삽을 잡은 채 날래게  오른 팔로 그 놈의 목을 끌어안으며 원숭이처럼 잔등에 날래게 날아올라갔다.
상순은 공병 삽을 쳐들고 호통쳤다.
"죽고파?! 손들엇!"

"NO! NO!"
"너? 너?! 뭐야?! 핸드 들엇!"
상순은 쳐들었던 공병삽을 반공중에 쳐들며 호통쳤다.
"I Surrender!(난 투항하겠어.)"
"뭐? 아이?!  손 아이 들겠어?! 이놈 핸드(손) 들엇! "
"OK! OK! Hand! hand! My hand!"
상순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그 놈이 손을 쳐드는 걸  보고 투항하겠다는 걸로 짐작했다.
"세계 최강군이란 미군은 맨 이런 놈들이야?!  마이(많이) 마이 핸드 들더라. 흥!  누런 대가리나 쌔까만 놈이나 다 겁쟁이들이구나! 날창도 아니고 공병삽을 들이대도 손을 번쩍번쩍 드니까. 물알 같은 놈들, 진짜 싸울 멋도 없어!"
그는 허무맹랑해 흑인놈을 조롱하면서 공병삽으로 반공중을 가리키더니 호통쳤다.
" 핸드 들엇!"
흑인놈은 목마를 탄 상순을 되돌려보며 자기 손을 쳐들어보이면서 물었다.
"My hand?(내 손?)"
상순은 호통쳤다.
"네 놈은 까짜로 투항하는 건 아니겠지?  핸드 들엇!"
"Yes, I hands up. Den't kill me!(예, 내 손들게. 날 죽이지 마시오.)"
씨꺼먼 흑인놈은 사위를 둘러보며 두 손을 쳐들었다.
"또 아이냐? 엉?! 아이 투항하겠다고?!"
상순은 공병삽을 버리고 그 놈의  잔등에서 미끌어져내려왔다. 곰 같은 흑인놈은 주위를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순간 주위에 지원군이 없는데다가 자기보다 엄청 덩치 작은 상순을 보고 왼눈에도 차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흑인 놈은 상순의 목을 틀어쥐고 곰처럼 깔고 들어앉았다. 왼팔을 부상당한 상순은 곰 같은 놈에게 깔려 숨이 꺽 막혔다. 그는 오른 손으로 흑인놈의 사타구니 두새 커다란 X알을 꽉 틀어쥐었다.
"A! No! No!"
흑인놈은 너무 아파 상순을 훌 놓으며 아우성쳤다.
땅!
총소리와 함께 곰 같은 흑인놈은 옆으로 스르르 너부러졌다.
"흥! 양키놈들도 그저 그렇군!"
상순이 모젤권총으로 쐈던 것이다. 그는 코웃음쳤다. 세계에서 최고강군이란 자들이 이 모양이라는 것에 너무 허무맹랑해 냉소했다.
전사들은 김영장이 앞장서 용감히 싸우는 것을 보고 용기백배 돼 양키놈들을 추격해 내려갔다.
한 개 대대나 되는 괴뢰군은 한개 소대 밖에 안 되는 중국인민지원군을 남북으로 협공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제 탱크와 육군마저 덮쳐 와 지원군 전사들은 용감히 싸우다가 하나하나 영용히 희생됐다.
상순은 쓰러진 전사의 옆구리에서 수류탄을 뽑아들고 태수와 병수를 돌아보며 한어로 고함쳤다.
“탱크를 빼앗자! 엄호해라!”
“옛!”
명사수 태수가 반자동보총으로 탱크 뒤의 양키들을 본때 나게 쓸어 눕혔다. 병수는 뛰여내려가며 연이어 양키놈들을 찔러눕혔다. 양키놈들은 무기 자랑이나 했지 육박전에는 기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그 틈에 상순은 탱크 앞으로 뛰어갔다. 탱크가 그의 옆으로 우르릉 거리며 지나갈 때다. 그는 탱크 위에 훌쩍 뛰어 올라가 탱크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뿌려 넣고 훌쩍 뛰어내렸다.
꽝!
요란한 폭파소리와 함께 탱크가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나머지 탱크는 계속 돌진해왔다.
상순은 수류탄마저 없어 주위를 애타게 둘러보았다. 그는 길에서 활활 타번지는 자동차에 눈길이 멎었다.
"죽어봐라!"
상순은 불길이 이는 자동차에 뛰여갔다. 그는 바곤에 뛰여올라가 불이 반쯤 달린 군복을 안고 덮쳐드는 탱크 위에 뛰여내렸다. 그는 불타는 군복으로 부르릉거리며 연기를 내뿜는 탱크 꽁무니를 꽉 막아버렸다. 순간 탱크 안에 자욱한 연기가 들어가 양키놈들이 탱크 안에서 견디기 힘들었다. 탱크  멈춰서더니 웃덮개 훌 열렸다. 양키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기여나와 뛰여내렸다.
뚜르륵 뚜르륵
그때 태수가 돌격총을 휘둘러 쓰러눕혔다.
"잘 했어!"
상순은 손을 홱 젓더니 탱크 웃뚜껑을 열고 탱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병수와 태수도 뛰어들어갔다. 상순이 탱크를 부릉부릉 몰고 아군의 자동차대오가 도망친 쪽으로 달려나갔다.
"어디로 가는가?"
병수가 의아해 물었다.
"굽인돌이에 가서 뒤따르는 탱크를 없애버리자! 장탄하라!"
"알았소."
그들은 삼도만에서도 손을 맞춰 탱크를 몰고 토비들을 족친 전투경험이 있었다.
병수가 장탄하고 태수가 기관포 방아쇠를 잡았다. 상순은 탱크 헤드라이트까지 켜고 달리면서 멀리 산기슭 큰 길 쪽을 쳐다보았다. 아군의 트럭대오의 헤드라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뒤의 탱크를 제거하지 않으면 몇참 못가 추격당하고 말 것이었다.
그는 굽인돌이를 돌자 탱크를 돌려세우더니 굽인돌이에서 몇마장 떨어진 두번째 굽인돌이에 달려가 은페해 멈춰섰다.
뒤따르던 탱크 두대는 상순이 몬 탱크를 동료 탱크인가고 무작정 뒤따라왔다.
그 놈 탱크 두대가 굽인돌이를 돌아설 때다. 
"사격!"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앞장섰던 미제 탱크는 명중탄을 맞고 웃뚜껑과 포신이 허망 날아났다. 앞의 탱크에서 화염이 충천하자 뒤따르던 탱크는 급정거하더니 도망치려고 대가리를 돌리고 있었다.
"사격!" 
쾅!
두번째 포탄이 날아갔다.
오른쪽 무한궤를 얻어맞은 탱크는  페철이 돼 풀썩 물앉고 말았다. 양키놈들은 탱크 웃덮개를 열고 비명을 지르며 뛰여내리었다. 태수는 탱크 기관총으로 양키놈들을 소사했다.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따르던 양키놈들과 괴뢰군은 굽인돌이에서 무 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도망쳤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탱크 웃덮개를 열고 산기슭에서 싸우는 전사들에게 한어로 명령했다.
“우리 트럭대오가 안전하게 전이했다. 동쪽 마을로 철퇴!”
"옛!"
 성수와 흥수 등 십여 명 전사들이 어둠 속으로 철퇴했다. 
상순과 병수 태수는 탱크를 몰고 도망치는 괴뢰군 트럭을  추격해가면서 기관포와 기관총을 갈기며 소분대의 철퇴를 엄호했다. 괴뢰군 트럭은 보기 좋게 불이 활활 일었다. 괴뢰군들의 비명소리, 아우성 소리로 일대 아수라장을 이뤘다.
이때 남쪽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날아왔다.
쿵! 쾅! 꽈르릉!
전투기들은 길에 늘어선 트럭을 지원군의 트럭으로 알고 폭격하고 소사해댔다. 그러나 상순이네 모는 탱크만은 자기들 탱크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발견하지 못했는지 폭격하지 않았다. 숱한 괴뢰군 트럭들이 폭파돼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제길, 우리에게 폭탄을 던져!”
괴뢰군 병사들은 하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어떤 병사들은 쌕쌔기를 사격까지 해댔다. 그 틈에 상순이네는 탱크를 몰고 좌충우돌하면서 불에 타는 적들의 자동차와 트럭을 마구 절벽 아래에 떠밀어버리고 짓뭉개버렸다. 
"포탄과 기관총탄이 다 떨어졌네."
태수의 말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저놈 자동창까지 없애버리고 철퇴!"
상순은 탱크를 몰고 도망치는 괴뢰군 트럭을 쫓아가 꽝 냅따떴다. 자동차는 아우성치는 괴뢰군들을 실은 채 허망 절벽 아래로 꺼꾸로 처박혔다.
그는 병수와 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탱크를 양키놈들한테 넘겨줄순 없어!"
"옳소! 없애버리기오!"
상순은 탱크를 돌려 오던 길로 한참 달리다가 불붙는 괴뢰군 자동차에 딱 붙여세우고 탱크(땅크)에서 내렸다. 순식간에  자동차의 불이 탱크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저쪽 뒤에서 괴뢰군과 양키놈들이 이쪽으로 덮쳐오고 있었다. 탱크가 탈 시간이 될 거 같지 않았다. 태수는 철갑모를 주어들고 자동차 휘발유통응로 다가갔다. 그는  비수를 뽑아  휘발유통을 쿡쿡 찔렀다. 휘발유가 쌕 쏘리 내며 내 뿜겼다. 태수는 철갑모에 휘발유를 꼴똑 받아 탱크 뒤꽁무니에 툭 쳤다. 조급해난 상순은 돌격총을 들어 자동차 휘발유통을 뚜르륵 갈겼다. 휘발유통이 탕 폭발하며 탱크에 불길이 더 거세게 옮겨 붙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상순이랑은 자동차 옆에 쓰러진 괴뢰군과 양키놈들의 시체에서 돌격총을 서너개씩 주어 어깨에 메고 흥수랑 전이한 무명고지 동쪽 마을에 도망쳐 갔다. 뒤에서 탱크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쿵 폭발하는 굉음이 들렸다.
      한편 상순과 전사들은 마을 사처에 흩어져 숨었다. 성수와 병수는 돼지우리에 들어가 북데기를 들쓰고 숨었다. 태수는 소 우리에 뛰어 들어가 소구유에 들어가 소먹이를 들쓰고 숨었다.
상순은 무작정하고 건치를 두른 명호 삼촌네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구야?!”
“상순이오. 삼촌, 날 살려주오.”
“상순이라고? 내 불을 켜마.”
정지와 위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지 마시오. 우린 지금 괴뢰군에게 추격 받고 있소.”
“여기 들어와도 안 되겠고. 옳지. 가자.”
명호는 위방에서 내려와 상순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더니 김치 움 덮개를 열고 손짓했다.
“여기 들어가 함지를 쓰고 있어!”
“양.”
상순은 권총을 들고 김치 움에 뛰어들었다. 김치 움 덮개가 꼭 덮였다.
이때 발자욱소리 쿵쿵쿵 들렸다.
"난도 지원군이여, 상순 영장 수하제."
"그래? 얼른 김치 움에 들락꼬."
김치움 덮개가 훌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쿵 뛰어내렸다.
"김련장! 흥수락꼬."
상순은 손 더듬으로 흥수를 끌어안아 앉혔다.
"함지를 머리에 이라고."
"알았다니께."
“양키 놈이 날 쏘는 걸 김 련장이 옆으로 밀쳤으니께 말이제이. 난 남조선 고향 땅에 뼈를 묻을 번했제라.”
“쉿-”
상순과 흥수는 말소리를 딱 죽이고 쿵쿵 높뛰는 가슴을 눅잦히면서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바깥에서 꽥꽥 거리는 소리에 뒤이어 김치 움 위로 발자국 소리가 쿵쿵쿵 울렸다.
한 괴뢰군 군관이 꽥꽥 고함쳤다.
“그 놈들이 분명 이 마을로 숨어들었어!”
병사들이 명호네 집 안에 뛰어들었다.
“중공군을 못 봤어?”
명호가 위방에서 나오면서 시치미를 땄다.
“몰라요. 중공군이라니?”
“이 놈들, 중공군을 숨겨두는 날엔 대갈통이 날아날 줄 알아라!”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소리여?”
명호는 능청을 떨면서 입귀로 말을 흘렸다.
괴뢰군들은 온 마을을 발칵 뒤집었다. 한 놈은 김치 움 덮개를 열고 전지불을 비췄다.
상순과 흥수는 숨을 딱 죽이고 김칫독 사이에 숨어 함지를 이고 있었다.
“김칫독 밖에 뭐가 있다고 이러는 기여?” “냄새 더러운 경상도치들 김치독이야.”
병사가 김치 움 덮개를 훌 던지자 김치 움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명호가 덮개를 꼭 덮어놓으면서 “괜히 남의 김치 독이 얼겠어. 흥!”라고 두덜거렸다.
한 병사가 돼지우리를 지나가다가 굴암돼지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전지 불을 비췄다. 굴암돼지가 자기 자리를 성수와 병수에게 빼앗기고 주둥이로 북데기를 마구 뚜지면서 꿀꿀 울어댔다. 그 바람에 그만 성수와 병수의 다리가 북데기 바깥으로 삐죽이 드러나고 말았다.
“제끼제끼(빨리빨리) 와! 돼지우리에 빨갱이들이 있어!”
제주도치는 돼지우리에 대고 총을 쏘았다. 돼지우리에서도 맞불질하며 뛰어나왔다. 성수와 병수는 제주도 치를 쏴 눕히고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뒤미처 달려온 한국 병사들은 총을 쏘며 성수와 병수를 추격했다. 마을에서 들통 난 지원군 전사들은 마구 총질하며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상순은 김치 움 안에서 명호 삼촌과 영수 때문에 살아남은 일을 생각하자 고모오촌 삼촌에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병수 형이 함흥 촌에서 나포된 일이었다. 명호 삼촌이 맏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애타게 죽을 때까지 기다릴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공책과 꽁다리연필을 꺼내 어둠속에서 손 더듬질 하면서 “삼촌, 병수는 간도 함흥 촌에서 체포됐소. 미안하오.”라고 썼다.
“뭘 하오?”
흥수의 물음에 상순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한 후 버스럭거리며 종이쪽지를 접어 함지 안에 넣고 돌로 짓눌러 놓았다.
바깥동정을 살펴보니 쥐 죽은 듯이 잠잠해졌다. 멀리에서 간혹 총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우린 여기서 날이 밝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오.”
“가기요.”
상순과 흥수는 김치 움 덮개를 열고 바깥으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 나왔다. 이때 집안에서 명호와 영수가 나왔다.
상순은 그들을 와락 그러안고 통곡을 쳤다.
“삼촌, 동생,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다시 만날까?”
“살아 있으면 만나겠지.”
명호의 말에 영수도 동을 달았다.
“나라가 통일되면 또 만나겠지. 난시에 몸조심하라니까.”
“양, 잘 있소.”
“에이, 죽일 놈의 함경도 말투를 봐라. 정 떨어진다.”
명호는 그 판에도 농담을 하며 상순의 잔등을 툭툭 쳤다.
영수는 보꾸러미를 들고 나와 상순에게 내밀었다.
“형, 쌀이 막대라고 밥 가지고 가.”
“고맙다. 동생, 언제 다시 만날까?”
“혹시 병수 형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
상순은 할 말이 없어 머리만 숙이었다.
"섯거라! 이 놈들!"
갑자기 괴뢰군 서너놈이 울안에 뛰여들었다.
"너거 창수 아니가. 나야, 나, 히야!"
흥수가 말하면서 앞에 나섰다.
저쪽에서 따발총을 내리며 한발 나섰다.
"히야, 아직도 몬 달아났시우?"
"그래, 이쯤 해서 헤어지자."
땅! 땅!
명호와 영수가 집 안에서 나오며 괴뢰군을 사격했다.
창수와 한 병사가 쓰러졌다.
"창수야!"
흥수가 창수한테 달려갈 때다. 괴뢰군이 총질했다. 란전이 벌어졌다.
상순은 몸을 날려 괴뢰군병사를 차넘기며 오른 손으로 총을 빼앗아 갈겼다.
푱! 푱!
나머지 두 괴뢰군은 도망치다가 어둠 속에 구새목에서 쓰러졌다.
"흥수, 어서 피하자!"
그러나 흥수는 창수를 끌어안고 가려고 하지 않았다.
"안돼, 난 고향 전주에 얘를 묻어주고 갈래. 엉~ 엉~"
상순은 오른 손에 총을 잡고 총상을 입은 왼팔로 흥수를 끌고 갈 수 없었다.
"영수, 이 자식을 좀 끌고 가자!"
"예, 히야(형)."
영수는 흥수를 마구 뜯어 끌고 상순을 따라갔다.
"놔! 이놈, 네놈이 내 막내동생 쏴죽였어."
갑자기 흥수는 날창으로 영수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영수는 잽싸게 피했다. 그러나 날창에 빗찔렸다.
"어더럭해? 닌도 죽고 싶어?"
영수는 따발총을 흥수한테 겨눴다.
"닥쳣!"
상순은 영수의 따발총을 하늘에 쳐들었다.
"우린 혁명동지야! 자기 동지를 죽여선 안 돼!"
영수는 이를 악물었다가 말았다. 
땅!
그 틈에 흥수가 보총으로 영수를 쏘았다. 영수는 총을 맞고 쓰러졌다. 상순은 흥수의 손에서 보총을 빼앗아냈다.
"이놈, 양키놈과는 어쩌지 못하고 제편을 쏘는덴 꽤나 솜씨 있군! 흥!"
영수를 살펴보니 허벅다리에 총알을 빗맞았던 것이다. 그래도 영수는 흥수를 욕할 뿐 더 반격하지는 않았다.   명호가 집안에서 뛰어나오며 흥수를 노려보았다.
"아버지, 오해라니께."
"오해? 네놈이 내 동생 죽였는디. 개놈새끼!"
그래도 명호가 어른스러웠다. 그는 오히려 동생을 잃은 흥수를 위로했다.
"됐네. 전쟁판엔 적아나 혈육이나 따로 있나? 동생 잃어 섭섭하겠지만. 널리 양해하게나. 어서 가게나."
명호가 말렸다.
"저 무명고지를 넘으면 인삼 련대장이 영솔한 조선인민군을 만날 수 있어."
"네? 잘 됐소."
상순은 명호를 보고 "흥수 동생을 잘 묻어주오."하고 부탁했다.
명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흥수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내 언제든 동생 원수를 갚고야 말겠어!"
      상순은 명호에게 영수를 맡기고 흥수를 간신히 뜯어말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명호는 흥수를 쏘아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영수를 업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새벽닭이 “꼬끼오-” 울더니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오기 시작했다.

                          7. 한 많은 압록강

     우뚝우뚝 치솟은 산마루와 하늘이 화가가 그린 듯이 선명하게 갈라지더니 동녘하늘에 전쟁의 포화에 그은 뻘건 해가 불끈 솟아올라 차디찬 햇빛을 몇 가닥 비추었다. 밤새 억수로 쏟아진 소낙비를 맞아 함초롬한 버드나무 잎사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잎사귀 사이에 햇빛이 비껴들어 유난히 윤택이 났다.
      상순은 조춘성 사단장의 통역으로 돼 찌프에 앉아 최전선에서 달아 다녔다.
     몇 달전에 무명고지 최전선에서 상순은 인삼 삼촌을 만났다. 그 무명고지는 큰아버지 성칠이 장렬한 최후를 마친 피에 물든 고지였다. 큰아버지 유체는 인삼 삼촌이 잘 거둬 마천령고개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고 하였다.
상순은 무명고지를 무심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미군의 폭격에서도 억세게 살아남은 무명고지 절벽의 진달래꽃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숙였다. 그는 영수 등 남조선 유격대와 인삼 련대장이 영솔한 조선인민군의 엄호를 받으며 마천령 부근에서 이동작전하는 조춘성 사단장의 부대를 만나 동복을 넘겨주었던 것이다.
     인삼 련대장은 상순을 와락 끌어안고 대견스레 마주 바라보았다.
    "야, 어제 짜개바지 입고 달아다닌 거 같은데 벌써 영장까지 됐구나."
    "삼촌!"
     상순은 전선에서 만난 삼촌을 보자 큰아버지 생각이 나서 목이 꺽 멨다. 
     조춘성 사단장이 다가오더니 상순을 보고 엄지를 내둘렀다.
"김영장은 싸움만 잘하는가 했더니 한어도 변설이군. 우리 사단 비서과 과장을 하면서 내 통역을 서오."
    처음에 상순은 잘 납득되지 않았다.
그는 미군 양키 놈들을 통쾌하게 족치기 위해 조선 전선에 나왔던 것이다. 허나 미군 양키 놈을 통쾌하게 족쳐 보지도 못했다.
"통역이라니? 난 아직 양키놈들 콧대를 제대로 꺾어놓지 못했습니다."
조춘성 사장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였다.
"허허허, 김영장은 탱크를 빼앗아몰고 양키놈들 탱크와 군용트럭을 통쾌하게 족치지 않았소? 그만하면 됐지."
상순은 특별히 조선 하늘을 횡행하며 아군과 민간인들을 마구 폭격하며 미쳐날뛰던 미군 공중날강도가 제일 눈에 거슬렸다.
"조사장, 아직도 세계 최강공군이느라고 우쭐거리는 양키비행기를 통쾌하게 쏴떨구지 못한게 한입니다. 날 고사포부대에 보내주십시오. 통쾌하게 미제 공중날강도들을 족치고 싶습니다."
"하하하. 미제 비행기는 우리 영용한 공군 비행사들에게 맡기면 되오. 그들은 이미 숱한 날강도들을 격추했소. 이젠 미제 날강도들은 감히 청천강 이북 하늘엔 다신 얼씬하지도 못하지 않소?"
상순은 그랠도 전선에서 싸우고 싶지 조사장 옆에서 입방아나 찧기 싫었다.
사실, 조선전선에 나온 지원군들은 통역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었다. 조 사단장은 왼팔에 총상을 입은 상순이 한어를 잘 하기에 전선에서 싸우기보다 자기 통역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상순은 조사단장과 함께 찌프에 앉아 달리면서도 몇달 전에 있은 일들이 영화처럼 눈앞에서 돌아갔다.
그는 성수, 병수와 태수 등 30여명 전사들을 데리고 영수가 이끄는 유격대의 엄호를 받아 괴뢰군의 포위토벌을 피하면서 북으로 퇴각해 천신만고 끝에 접응부대와 트럭대오를 찾았다. 상순이 거느린 두개 소대는 인삼 련대장의 부대를 만나 몇 명의 대가를 내고 트럭 28대에 실은 동복을 최전선부대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수가 주의하지 않은 틈에 대오에서 어디론가 사라진지 사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상순은 잃어진 흥수를 두고 별의별 궁리를 다 했다.
북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그들은 미군 트럭을 습격해 양키 두 놈을 본때 나게 처단한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밤중에 그들은 길에서 남으로 도망치는 미군 트럭을 발견했다. 상순은 반자동보총으로 운전실을 조준해 사격했다.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운전수가 죽었는지 트럭이 덜컥 멈춰 섰다. 한 흑인 놈이 운전실에서 뛰어내려 어둠속으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서라!”
상순은 권총을 뽑아들고 추격하면서 공중에 총을 쏘았다.
땅!
흑인 놈은 두 손을 들고 주춤 멈춰서며 되돌아보았다. 흑인군관이었다. 상순은 다가가 절구통 같은 흑인군관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냈다. 순간 흑인군관은 주먹을 날려 상순의 턱을 탁 쳤다.
“아이야!”
불의의 습격에 상순은 기우뚱하더니 푹 꼬끄라졌다. 손에 쥐였던 권총이 몇 미터 밖으로 날려갔다.
흑인군관은 권투자세를 취하더니 쓰러진 상순에게 덤벼들었다. 상순은 곤두박질쳐 벌떡 뛰어 일어나 오른 팔 굽으로 덮쳐드는 흑인 군관의 배를 들이박았다.
“억!”
흑인군관은 비명소리와 함께 배를 끌어안으며 허리를 굽혔다. 상순은 발길을 날려 그 놈의 사타구니 두새를 걷어찼다.
"앗!"
그 놈은 요해처를 채워 뺑뺑 돌며 비명을 질렀다.
상순은 무쇠주먹으로 흑인군관의 관자노리를 걷어쳐 올렸다. 흑인군관은 김이 빠진 공처럼 풀썩 물앉았다. 뒤따라 덮쳐온 태수는 총창으로 흑인군관의 잔등을 푹푹 찔렀다. 그새 상순은 권총을 주어 들어 흑인군관을 쏘았다…
상순은 조선전쟁터에 나와서 양키 놈들을 더 죽이지 못하고 조선전쟁이 끝나게 된 것이 아쉬웠다.
그는 찌프에 앉아 조춘성 사단장을 따라 최전선으로 나갔다가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갔다.
평양 시내는 조선 전쟁기간에  미군 폭격기의 수십번의 폭격에 잿더미로 됐다. 그러고도 모자라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전 2시간 전까지도 마지막으로 수십대 폭격기와 전투기로 평양시내를 폭격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소사해 살해하였다. 온 평양시내는 산더미 같은 불길이 치솟았고 순식간에 잿더미로 새까맣게 타버렸다. 박살 난 벽돌장들이 무더기로 널려 있을 뿐 성한 집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시꺼먼 재가루가 흩날렸다. 적지 않은 평양 시민들은 전쟁의 포화에 그은 벽돌장들을 쌓아놓고 나무와 양철기와 쪼각을 얹어 막을 지어놓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뭘 끓여 먹는지 그런 오두막들의 양철연통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목숨이 긴 게 사람이야. 고향이 뭐 길래 저런 잿더미도 떠나지 않고 살까?)
상순은 전쟁의 포화에 그은 평양 시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미군과 괴뢰군이 함경도 남쪽 지역에 쳐들어갔을 뿐 상순의 고향 명천까지는 쳐들어가지 못 했다.
상순은 고향 명천으로 가 보고 싶었지만 부대에서는 한시각도 마음대로 몸을 뺄 수 없었다.
찌프는 평안도까지 들어가 어느 산마루에 올라가 멈춰 섰다.
상순은 찌프에서 내려 조춘성 사단장과 함께 폭탄구덩이가 벌집처럼 펑펑 뚫린 산마루와 산비탈들을 둘러보며 정중히 말했다.
“조 사장, 이젠 미제와도 전쟁이 끝났는데 난 함흥 촌에 돌아가겠습니다. 두번째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저를 수요합니다. 전 참군하기 전에 지방당조직에 약속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꼭 귀향하겠다고 말입니다. 전 마을 사람들을 배 불리 먹고 잘 살게 사회주의 새 농촌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조춘성 사단장은 머리를 돌리더니 세귀눈을 번쩍이는 상순을 보고 엄숙하게 말했다.
"아직 미제는 남조선에서 물러가지 않았소. 그 놈들이 남조선에 있는 한 정전한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소. 우린 아직 대만을 해방하지 못했소. 부대에는 김과장 같은 군사인재가 대량 수요되오."
"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2고향건설에도 제가 할 일이 많고도 많습니다. 만약 전쟁이 재발하면 그땐 꼭 부대로 돌아오겠습니다."
조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별 수 없군.”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는 것이었다.
“난 원래 상순 동무를 참모장이라도 시키고 싶었소. 이 몇달 동안 김 과장은 통역뿐만 아니라 전략전술 참모역할도 아주 잘 했소. 동무에게는 남달리 일정한 군사지략이 있다는 걸 보아냈소. 부대에 계속 남아 있으면 장차 훌륭한 지휘관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데. 참.”
그는 상순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았다.
“그래도 촌으로 돌아가겠소?”
“예. 이젠 미제를 38선 이남에 몰아냈으니깐 전쟁도 다 끝나게 됩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연대에 부대에 남아서 뭘 할 게 있습니까? 저는 평화년대에는 부대보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사단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상순의 두 손을 꼭 잡고 흔들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눈가에는 뜨거운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상순은 조사장의 품속에서 나오자 물었다.
"조사장님, 옛날 복자공장 소식은 있습니까?"
조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옛날 복장공장은 대만특무놈들한테 발각됐다는 정보를 받았댔소. 그래서 미제를 38선 이남까지 밀어낸 후 상부의 지시에 따라 복장공장을 강변에서 남쪽으로 한 백킬로메터 떨어진 협곡에 전이했소."
"3련장이랑 허영희 부공장장이랑 모두 무사합니까?"
조사상은 머리를 숙였다.
"복장공장은 이전하기 전에 미제 공중날강도 폭격을 맞았댔소.'

"예?!"
상순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기습폭격 할 당시 허영희는 김치움으로 피신하려고 뛰여갔다오. 3련장은 자기 몸으로 허영희 부공장장의 몸을 뒤덮으면서 구하려다가 장렬희 희생됐소. 그 덕에 허영희  부공장장은 목숨은 구했지만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오."
"뭐라구요?!"
상순은 당장 허영희를 찾아가보고 싶었다.
"허영희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후방병원에 호송됐다던데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소."
"하, 이거 참."
상순은 애타 발로 땅바닥을 구르더니 두 손을 마주 치면서 서성거렸다. 

       며칠 후, 상순은 조춘성 사단장과 전우들과 고별하고 귀국하는 지원군부대와 함께 귀국렬차에 올랐다.
       귀국렬차가 압록강과 점저 가까워졌다. 순간 상순은 옛날 복장공장에 찾아가보지 못하고 한 많은 압록강을 건너는 것이 한이였다.   
      그는 쌀을 얻으러 강을 건너가다가 미제 공중날강도 폭격을 맞아 허영희와 함께 도관 속에 갇혔던 정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희 떠올랐다.

      그들이 깎아지른 절벽 밑의 산굽이를 에돌아 금방 강바닥에 들어섰을 때다. 갑자기 하늘에서 얭- 요란한 소리와 함께 미 전투기가 네 대나 날아왔다.
“적기다! 빨리 트럭에서 내려 피신하라!”
상순은 고함치며 옆에 앉은 허영희의 손을 쥐고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한참 달리다가 언제의 커다란 콘크리트도관 안에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폭탄이 강바닥에 떨어져 작렬하며 폭음이 귀청을 째지게 때렸다. 파편이 쌩쌩 날아와 도관 벽을 쳤다. 상순은 허영희를 품속에 꽉 끌어안고 위에 엎드렸다.
꽈르릉! 꽝!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언 흙덩이들이 도관 앞뒤 구멍을 꽉 막아 버렸다.
순간 도관 속은 칠흑처럼 온통 새까맣게 돼버렸다. 상순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손 더듬을 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만 영희의 뭉글뭉글한 젖가슴이 손에 닿았다. 상순이 덴겁한 듯 황급히 손을 빼려는 순간 영희가 상순의 손을 꼭 잡았다. 상순은 전기에라도 붙은 듯이 황급히 손을 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희가 상순을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허 주임, 허 주임!”
“예.”
“상한데 없소?”
“예. 김 공장장이 몸으로 뒤덮어준 덕분에. 김 공장장은 저의 구명은인이죠.”
“우린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하오. 오래 있으면 공기가 희박해 위험하오.”
“예.”
상순은 어둠 속에서 몸을 돌려 영희를 뒤로 물리고 들어오던 쪽을 손으로 흙덩이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참 단말마적으로 파고 또 파니 시원한 냉기가 도관 속으로 불어 들어왔다.
“이젠 살았소. 이제 한참 파노라면 바깥이 나지겠지.”
그런데 영희는 뒤에서 상순을 꼭 껴안으면서 “좀 쉬십시오.”라고 했다.
“뭐 하는 거요?”
“누가 보는가요?”
“보지 못해도 그렇지. 난 처자가 있는 나그네란 말이오.”
“누군 처녀구먼요.”
상순은 영희의 팔을 뿌리쳤다.
“그럼 더욱 근신해야지. 우린 당원이 아니오?”
“당원은 사랑도 모르는가요? 전 첫눈에 사내다운 당신한테 반했는데요.”
상순은 흙을 파헤치면서 두덜거렸다.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요?”
“우린 여기서 죽을 수도 있어요? 난세에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후회 없이 살지요. 전 당신과 함께라면 여기서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허 주임, 정말 천만뜻밖이오. 남편 보기 미안하지 않소?”
“저의 남편은 전선에서 희생됐어요. 자기 수하의 생활을 좀 관심해주면 안 돼요?”
“…”
“영웅도 미인관을 넘지 못한대요. 음충한 눈길로 노리다가도 정인군자인 척 하긴. 호호호.”
"입 다물지 못해?”
"픽!"
"이 흙덩이나 받아 뒤에 쌓으라고."

상순은 어처구니 없어 피씩 웃었다.
어디 그뿐인가.
허영희는 김치움에서도 상순을 꼭 끌어안고 사랑을 호소했다.

" 군중들 생활 좀 관심해주면 안돼요?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상순이 그녀를 뿌리치고 김치움에서 훌 나가버리자  허영희는 울면서 야단쳤다.
"당신은 꼭 후회할 거예요. 차례진 김치도 먹지 않고. 흑흑흑."

      허영희는 상순이 동복을 싣고 최전선에 떠나갈 때도 김치꾸러미를 주면서 그윽한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김치를 가지고 가서 생각나면  잡수세요. 김치 생각나면 찾아오세요.”
 
허영희의 간절한 목소리는  아직도 귀전을 간질이는듯 했다. 순간 상순의 눈앞에는 보름달 같이 복성스러운 영희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상순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허영희 짝사랑한테 미안했고  다리를 잃은 그녀에게 문안 한마디 못하고 떠나오는 것이 죄송해 속으로 외웠다. 
(영희, 미안하오. 영희한테 해준 건 하나도 없이 김치와 돼지고기점만 넙적넙적 받아먹지 않았소? 참 미안하오. 그대의 짝사랑을 받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오. 날 용소하오. 조직의 몸이어서 그렇게 할 순 없었소.)
         그렇다. 당원도 사람이였다. 당원도 칠정육욕이 있었다. 그러나 특수강철로 만들어진 공산당원은 절대 그런 불륜에 빠져선 안되였다.
        (영희, 용서하오. 강철기률을 가진 당원은 영원히 그렇게 할 수 없소. 래세가 있다면 ...)
그러나 그는 인차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영희, 래세라는게 있소?"
       상순은 속으로 천번만번 되뇌이며 한 많은 압록강을 서서히 건너고 있었다. 그는 덜커덕거리며 달리는 렬차 등받이에  잔등을 비스듬히 대고 눈을 스르르 감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순간 남편을 전선에서 잃은데다가 한쪽 다리마저 잃은 허영희가 한없이 불쌍했다. 만약 허영희가 살았다고 해도 한쪽다리를 잃고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한없이  막막하게만 생각되였다.
       상순은 달리는 렬차 차창으로 휙휙 뒤로 밀려가는 새 압록강철교 옆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끊어진 옛 압록강철교 단교를 바라보며 치를 떨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공소하며 압록강물에 서 있는 단교 교각과  너덜거리는 단교 란간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일제 철발굽 아래에서 수많은 평안도 황해도 조선 백성들이 살길을 찾아 건넌 한 많은 압록강이였다. 그 압록강을 건너면서 상순은 3련장의 묘지에도 찾아가보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이 마음아팠다.  군복을 운송할 때 무명고지에서 희생된 10여명 전우들을 묻어주지도 못하고 남조선 땅에 두고 오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상순은  압록강 중간에 끊어진 옛철교(단교)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중조 변경에까지 날아와 민가를 폭격해 재가루로 만들었고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였다. 미제는 그것도 모자라 쥐와 파리까지 동원해 생물화학무기를 조선반도에 뿌렸다.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제가 중국 동북 할빈 교외 731부대 생물화학무기자료와 기술자들을 몽땅 걷어다가 전세계에 200여개 생물화학세균무기연구소를 세우고 계속 생물화학무기를 연구해왔다. 미제 침략자들은 심지어 중조 변경과 평양에 원자탄까지 쓸 것까지 모의한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세계 여론이 두려워 원자탄을 쓰는 것을 보류했고 나중에 남조선에 원자탄을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제의 핵공갈과 야만적인 생물화학세균무기도 중조인민들 불굴의 정의의 투쟁정신을 굴복시키지 못했으며 백기를 들고 나와 정전협정에 싸인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중조친선의 뉴대, 항미원조 동맥인 압록강 철교를 폭격해 끊어버렸다. 그러나 압록강 그 단교(끊어진 철교) 옆에 중조인민들은 단시일내에 새 철교를 놓고 숱한 고사포진을 포치해 방공화력을 강화해 지키고 있었다. 그후부터  미제는 다시는 철교 상공에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미제 침략자들은 16개 나라 유엔군과 이승만 괴뢰군까지 추종해가지고 "인천에서 아침 먹고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압록강가에서 저녁밥을 먹겠다."고 떠벌여댔지마 3년 전쟁 결과 어떻게 됐는가? 미제는 영용한 중조인민군의 반격 앞에서 흙보살이 황하를 건넌 격이 되지 않았고 뭔가?
    상순은 조선 백성들을 수없이 폭격, 살해한 미제 공중날강도를 하나도 쏴 떨구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미제 침략자 승냥이 놈들을 남조선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쪼개진 조선반도를 보고 마음이 아팠고 통일된 조선을 후대들에게 넘겨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았다. 미제가 남조선 땅에 남아 있는 한 언제든지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 그 력사적 한이 약소민족의 가슴에 맺힌 피엉어리로 돼 가슴을 아프게 했다.
      "미제 놈들이 뭐가 돼서 태평양 천만리 건너와 조선반도에 들어와 주인행세, 국제경찰행세를 하는가? 네놈들이 뭐가 돼서 남조선을 식민통치하면서 우리 조선민족을 쥐락피락 하는 거냐? 약소민족이 약하면 제국주의 렬강들에게 얻어맞게 된다. 약소민족일수록 더 강해야 된다. 꼭 사회주의 새 중국을 잘 건설하고 국방을 강화해 제국주의 침략을 막고 나라를 튼튼히 보호해야 한다." 
    상순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달리는 차창으로 압록강 철교를 되돌아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8.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상순이 집에 돌아와 보니 초가삼간 지붕이 용마루가 푹 꺼지고 밭고랑처럼 홈이 패여 있었고 여기저기 비가 새 간장 물 같은 것이 벽에서 흐르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윗방에 아버지가 옆구리 아파 누워 있었고 정지에는 열살난 맏딸 순자가 동생들을 데리고 공부하고 있었다.
“아버지!”
순자가 제일 먼저 아버지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리며 뛰어왔다.
상순은 순자를 그러안고 금숙과 봉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서 위방에 올라가 아버지께 큰절을 올리며 문안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그간 무사히 계셨습니까?”
“응, 그래.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너 아내는 이런 젖먹이들을 데리고 네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밭으로 나간 게 좀 있으면 올 거야.”
한참 후 상순은 할아버지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을 찾아뵈려고 집에서 나갔다.
그런데 토성 밑에서 한손으로 물동이를 붙잡아 이고 물 길으러 나오는 춘실과 딱 마주칠 줄이야.
춘실은 입귀를 비쭉거렸다.
“전쟁터에 가겠으면 혼자 갈 게지. 남의 나그네를 데리고 갈게 뭐요? 왜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 왔소? 남의 나그넬 죽일 잡도린가?”
“무슨 소리요?”
" 보오, 성수, 창걸, 태수, 병수, 희수, 창욱, 다 돌아오지 않았소? 왜 딱 흥수만은 데리고 오지 않았소? 흥수 죽으면 씨원하지. 나까지 데리고 살게스리."
상순은 세귀눈을 부릅뜨고 춘실을 쏘아보았다.
"무슨 생벼락 맞을 소리오? 흥수 대오를 떨어져서 어데 갔는지 모르오. 꼭 돌아오겠지."
춘실은 상순의 세귀눈이 무서워 물동이를 팔에 끼고 달아나며 핼끔 뒤돌아보더니 계속 빈정거렸다.
“중놈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고 국제 혁명을 하고 돌아온 나그네 저 지붕 보오. 비물이 왈왈 새는 걸. 저런 나그네를 만난 여편네도 고생문이 열리겠다. 흥!”
"춘실이, 좀 보기요."
춘실은 우물에 가서 드레박을 잣아올리며 도도거렸다.
"뭘? 남편 없다고 업신여기지 마오."
상순은 개의치 않고 다가가 드레박을 잣아 올려 물동이에 물을 부어주면서 말했다.
"미안하오. 흥수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래, 죽었소?"
"아니오. 막내동생이 피살된 후 정신이 나간 상하던게 밤중에 부대에서 떨어져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오. 혹시 막내동생 시체를 걷어주자고 그러잖았는지 모르오. 아버지와 엄마 사망했다니까. 고향엔 아무도 없잖소? 여기 처자하구 동생 성수가 있으니까 돌아올 수도 있소. 내심하게 기다리오."
"말이 쉽지. 내 누굴 믿고 살라오?"
춘실은 눈을 흘기더니 물동이를 이고 자리를 떴다. 비틀거리며 겨우 걷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물이 철렁철렁 쏱아져 질질 흘렀다.
상순은 흥수가 일어져 마음이 아팠다. 란시판에 그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고 춘실한테는 한뉘 사람 빚을 지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상순은 이 마을에 불쌍한 녀인이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남편을 조선전선에서 잃고 홀로난 큰어머니가  더없이 불쌍했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큰아버지와 형님네 집을 찾아가 죽 인사를 드리고 나서 웃새집 사랑방에 있는 큰어머니를 찾아갔다.
울안에서는 경주와 경수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진 렬사야! 너네 아버진 나쁜 놈이야!"
경수가 턱을 쳐들고 덤벼들자 머리 하나는 더 큰 경주는 경수를 활 밀어놓았다.
"흥! 우리 아빤 유격대 대장이야!"
경주가 으시대자 경수는 발딱 일어나 손가락으로 경주의 콧대를 삿대질하며 욕했다.
"너네 아버진 남조선 특무야!"
"뭐라니?! 이 새끼!"
경주는 경수를 깔고 들어앉아 마구 때렸다.
"경주! 그만 두지 못해!"
집 안에서 진달래가 달려나왔다. 그녀는 경주를 뜯어말렸다.
"엄만 항상 경수 편을 들면서. 씨, 흑흑, 난 엄마 아들이 아니야? 씨,"
진달래는 상순을 보자 애들을 한팔에 하나씩 품에 안고 먼 남쪽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큰어머니, 그간 애들 데리고 고생 많았습구마."
진달래는 저고리 동전으로 눈물을 닦았다.
"괜찮소. 시아버지랑 시동생들이 돌봐줘서요."
상순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귀국하기 전에 인삼 삼촌을 만났는데. 큰아버지 유체를 팔달령 양지바른 곳에 잘 안치했더구만요. 엄마를 모신 소서구에 모셔와야 되는건데."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오. 경수 아빠는 조국보위전에서 장렬히 희생됐는데요. 조국 강산에 묻힌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거요."
그 말에 상순도 머리를 끄덕였다.
"큰어머니, 무슨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알려줍소."
"그래요. 남정네 없으니깐. 살기 힘들어요. 종종 부를게요."
진달래는 삽작문을 나서는 상순의 떡돌 같은 뒤잔등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마음이 든든해 한숨을 호 내쉬었다.
뒤이어 상순은 토성 안의 촌공소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나서 그간 전쟁터에서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그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면에서 명호 삼촌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나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김치 움에서 병수가 함흥 촌에서 죽었다는 쪽지를 써서 함지 안에 남겨 놓고 왔습니다. 그걸 보면 명호삼촌이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겠습니까?”
허나 병완은 마른 기침을 깇을 뿐이었다.
“ 우리가 괴뢰군에 포위됐을 때 명호 삼촌은 우리가 지원군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김치 움에 숨겨 주었습니다. 삼촌과 영수는 괴뢰군을 쏘아눕히고 우릴 엄호해 빼돌려 주기까지 했습니다. 영수는 유격대를 이끌고 우리한테 인삼 삼촌부대를 찾아주었습니다. 병수 형이 잘못 된 걸 알면 삼촌이 얼마나 가슴아파하겠습니까?”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우린 계급립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산당을 반대하는 자들과는 친척이라고 해도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뒤이어 그는 상순의 세귀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공안국으로 돌아갈 예산이냐?”
“아닙니다. 내 조선에 나갔을 때 진작 조직에선 천용구를 나 대신 국장으로 임명했을 겁니다. 마을에 돌아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효성을 하고 처자를 돌보면서 혁명사업을 할 예산입니다. 딱 공안사업을 해야만 혁명하는 겁니까?”
“그래. 난 이젠 늙었어. 네가 함흥 촌의 당 지부 서기에 촌장을 했으면 좋겠다.”
상순은 손사래까지 치며 확실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계속 촌장사업을 하시오. 난 할아버지를 도와 일하면 됩니다.”
병완은 정색해서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지원군 영장과 복장공장 공장장에 사단 비서과 과장까지 한 네가 지방에 돌아와서 촌장이나 서기마저 하지 않아서야 되니?”
그러자 상순은 허리를 펴면서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당원이 언제 벼슬을 바라고 혁명합니까? 밭고랑을 가로 타고 사회주의화 공산주의를 위해 일하면 됩니다.”
“그래도 잘 생각해 봐라.”
상순은 오래 동안 마음을 굳혀온 듯했다.
“나라와 마을 백성들의 쌀독을 책임지고 농사를 잘 지어 쌀독들을 꼴딱꼴딱 채우는 일만큼 더 중요한 사업이 어디에 있습니까?”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으면서 벼슬을 초개와도 같이 여기는 막내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하긴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지!”
성수는 집에 들어서며 손벽까지 치면서 “옳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옳습니다!”라고 했다.
병완은 상순에게 그간 고충을 말했다.
“지금 호조조를 하다가 합작사를 차리자니 저애가 많다. 제일 머리 아픈 게 저 아래골 집 동길이다. 정미소를 합작사에 바치자고 하니 내놓지 않겠다고 생 떼를 다 쓴다. 네가 좀 가서 설복해보렴.”
“에이, 그 동생은 호조조를 할 때도 제 집끼리 농사를 지으면 좋다고 말썽이더니. 이번에도 그럽니까?”
병완은 성수랑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동길은 쩍 하면 이런다. 같은 면적의 밭에 집체로 심으면 어떻고 개인으로 심으면 어떤가? 집체로 농사를 지으면 자기 집 일처럼 하지 않는다면서 집체생산을 반대하지 않겠니?”
상순은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 가서 설복하겠습니다.”
그가 토성안집에서 나와 정미소 쪽으로 가는데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났다. 가까이 가보니 동길이 한창 손으로 삿대질해대고 있었다.
“이 정미소는 웃새집 할아버지와 성남집 큰아버지, 우리 아버지 함께 지은 거요. 우리 집안 개인 정미소나 한가진데 왜 합작사에 들여놓으라는 게요? 우리 무슨 지주요? 부농이요? 지주와 부농을 청산하듯이 정미소를 빼앗아 가면 되오?!”
그때 숱한 사람들 속에서 지춘실이 상순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고의로 팔을 걷고 떠들어댔다.
“그 집은 원래 부농성분을 줘야 하오. 헌데 상순과 병완영감이 친척이라고 상중농으로 매겨놓아 그렇소. 이 정미소를 보오. 옛날 지주도 이렇게 큰 정미소가 없었소.”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옳소. 정미소를 합작사에 들여놔야 되오.”라고 떠들어댔다.
동길은 외사촌형 상순이 온 것을 보고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양이었다.
“형님, 말해 보오. 우리 정미소인데 왜 합작사에 들여놔야 하오? 이 사람들이 도리 있소?”
그러나 동길의 기대에 찬 눈길과는 상순의 말은 달리 엇나갔다.
“이 정미소는 우리 아버지네 삼형제가 꾸린 건 사실이오. 허나 사회주의는 다 함께 잘 살아야 하오. 우리 몇 집이 이 큰 정미소를 차지해서는 안 되오. 그렇게 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새 지주와 부농이 나오면서 빈농들과 빈부차이가 엄청나게 생기게 되오. 때문에 우리는 정미소를 헐값으로 쳐서 합작사에 들여놓고 집체로 이 정미소를 운영해야 하오. 자본주의 싹은 아예 자라지 못하게 뿌리 채로 싹싹 뽑아 버려야 하오.”
마을 사람들은 상순의 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에이 씹에! 형님도 한가지구먼.”
동길은 성이 날대로 나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살구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무리 한 피 줄을 타고 나지 않은 형제라고 이렇게까지 못 살게 굴게 뭐요? 이젠 외할아버지고 외사촌형님이고 모르겠소.”
사실 김동길은 김범호의 후처의 맏아들이었다. 김범호의 첫째 처 곰순은(상순의 고모) 딸 하나만 달랑 낳고 애를 더 낳지 못하자 범호는 후처를 맞아들여 동길과 명길 등 아들 다섯이나 줄줄 낳았던 것이다. 범호의 후처가 낳은 숱한 아들은 기실 상순이네와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지만 형제취급을 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별의별 소리를 다 쳤다.
“당신이 운들 어찌 하겠소? 사회주의는 혼자 잘 살라는 법이 없소.”
“정미소는 사회주의 합작사 거요.”
“정미소를 합작사에 들여놔야지.”
“생떼를 쓰지 말라!”
상순도 동을 달았다.
“동생, 별 수 없소. 우리 집과 큰집에서는 정미소를 들여놓기로 했소. 마을 사람들의 여론이 무섭지 않소?”
그러자 성이 꼭두까지 치민 동길은 주먹코를 벌름거리면서 퉁방울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럼 형님네도 우리 마을에서 제일 좋은 황소 곤두뿔을 합작사에 들여놓소.”
그 말에 상순은 두 말 없이 대답했다.
“당장 들여놓겠다.”
그때 어느 새 왔던지 병완이 나서면서 한마디 보탰다.
“우리 공산당원들은 대공무사하다. 나도 우리 집 황소 비녀뿔을 들여놓겠다.”
그러자 동길은 더 떼쓸 수 없었다.
씩씩거리던 그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괴춤을 까더니 그걸 빼들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오줌을 쏴 갈겼다.
“이거나 먹고 다 썩어져라!”
지춘실을 비롯한 아낙네들은 아우성을 지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섰다.
동길은 그 길로 마을을 떠나 의란구로 가버렸다.
그 후 동길의 부모와 처자 그리고 형제들은 웃새집과 성남집 형제들이 아무리 말리여도 동길을 따라 의란구로 떠나갔다. 병완의 딸 곰순은 별 수 없이 의란구로 따라갔다. 그들 온 집안 식구들은 다시는 함흥 촌에 발길을 돌리지 않았고 웃새집과 성남집과 발길을 끊고 살았다. 다만 곰순만은 자기 낳은 딸 계월을 데리고 드문드문 놀러 오군 했다. 실로 피란 물보다 진한 것이어서 참말로 무서운 것이었다.
말썽이 많던 그 날, 상순은 외양간에서 곤두뿔의 고삐를 풀어 쥐고 마당에 나섰다. 기준은 낮에 있은 일을 풍문에 들었기에 상순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채고 마당에 나왔다.
“얘, 기어이 합작사에 끌어가겠니?”
상순은 애지중지하던 곤두뿔의 턱을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아깝지만 합작사에 들여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당원인 내가 어찌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합작사로 나가고 인민공사를 꾸리고 사회주의 길을 따라 나가겠습니까?”
기준은 도리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며 곤두뿔의 넓적한 잔등을 어루 쓸었다.
“참 아깝구나. 개체농사를 지을 때부터 이제껏 우리 부자간과 함께 소서구로 장개골안으로 숱한 밭을 갈던 곤두뿔이 아니냐? 우리 목숨과 같은 소야.”
상순은 아버지가 곤두뿔을 목숨처럼 아끼고 아까워하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없었다.
“저 뒤에 진달래 큰아주머니랑 소도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겠습니까? 합작사에 소를 바치면 소가 없는 집들에서도 농사지을 근심이 없을 거 아닙니까?”
기준은 애 둘이나 데리고 과부로 사는 진달래네와 같이 어려운 사람부터 생각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상순은 빗자루로 소잔등과 배, 엉덩이를 썩썩 씨원하게 쓸어주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저 모아선 너머 전국노동모범 김시룡동지는 전국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는 호조조를 꾸리고 고급합작사를 꾸렸습니다. 그는 사원들을 이끌어 집체농사의 모범을 보이면서 부유의 길로 힘차게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공산당을 믿고 우리 집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마을 백성들을 이끌어 모두 다 쌀독을 꼴딱꼴딱 채워놓고 배불리 먹고 사는 사회주의 새 마을을 건설해야 합니다.”
아들의 설득력 있는 말을 들은 후에야 기준은 몸을 돌리더니 가져가라고 손을 뒤로 휘저었다.
명옥은 문 앞으로 끌려 지나가는 곤두뿔을 보고 치맛자락을 들어 눈 굽을 찍었다.
이때 웃새집 병완도 비녀뿔을 끌고 합작사 외양간으로 오고 있었다. 숱한 마을 사람들이 병완과 상순의 대공무사한 거동에 혀를 끌끌 찼다.
“당원들이 다르긴 다르오.”
며칠 후 진수해향에서 당위 서기 허백호와 향장 허영주가 함흥 촌 촌공소에 찾아왔다.
때마침 촌공소에서 병완과 상순이가 한창 뭔가 의논하다가 놀라운 눈길로 맞아주었다.
“찾아가 인사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상순은 뒤덜미를 극적거렸다.
그러자 허백호 서기는 빈정거렸다.
“제 언제 상급을 존중한 적이 있소? 세상은 넓고도 좁소. 이거 보오. 제 또 내 아래서 일하게 되지 않았소?” 
상순은 속으로 대들었다.
(내 언제 당신 밑에서 벼슬하려고 기를 썼소? 흥!)
그런 속내를 모르고 허백호 서기가 자리에 앉자마자 희죽이 웃으면서 병완과 상순을 보고 말했다.
“이렇든 저렇든 상순 동무는 내 오랜 수하요. 게다가 항미원조 전쟁에서 복장공장 공장장과 영장, 사단 비서과장까지 한 동지요. 상순 동지는 실전경험도 풍부하고 무예가 뛰어나오. 나는 허영주 향장과 토론하고 김상순 동무를 진수해 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하였소. 당장 이불짐을 싸가지고 진수해로 가기요.”
병완은 반가와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감사하오. 허 서기.”
허나 상순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잘 봐줘서 고맙습니다. 허나 파출소 소장을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파출소 소장을 할 게면 영월구 공안국 국장을 내놓았겠습니까?”
병완은 상순을 욕했다.
“이 놈아, 너를 관심하는 서기 앞에서 무슨 망발이냐? 한뉘에 이런 좋은 기회 몇 번 있을 거 같냐?”
허영주 향장도 상순의 손을 붙잡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상순이, 파출소 소장을 하오. 자넨 이후에 우리 현 공안국 국장으로 제발될 수도 있네.”
허나 상순은 바로 앉더니 똑똑히 말해 두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벼슬을 초개와 같이 여깁니다. 시골 마을에서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하면서 이 마을 백성들을 이끌어 사회주의 새 농촌을 건설하겠습니다. 농민들이 쌀독에 쌀을 꼴딱꼴딱 채워 놓고 배불리 먹으면서 살게 하겠습니다.”
허백호 서기는 도리머리질 했다.
“제 하지 않아도 소장을 할 사람이 쌔고 버렸소. 몸값을 작작 올리오. 영월구 공안국에 있는 허영호나 성우 동무도 있소.”
상순은 좋아라고 찬성했다.
“그러십시오. 그 동무들에게 소장을 시키십시오. 전 함흥 촌에서 혁명을 하겠습니다.”
허영주 향장은 너무나도 안타까와 야단쳤다.
“이보게, 상순이, 당 조직에서 다년간 자넬 배양한 게 아깝네. 나라 기둥감을 이런 시골에서 호미를 휘두르게 할 순 없네. 그럼 시내에 가서 향 공급판매합작사 주임을 하오.”
“합작사 주임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상순은 세귀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허영주 향장은 상순을 믿음에 찬 눈길로 마주보았다.
“함흥 촌 촌장과 당 지부 서기에는 자네 할아버지가 있잖소? 상순 동무는 진수해로 내려가 우리 유력한 조수로 돼주오. 현에서도 상순동무를 상응한 직위에 사업배치를 할 거요.”
허백호 서기는 눈귀에 안타까운 빛을 흘리며 말했다.
“상순이, 촌 합작사와는 달라. 향 합작사를 진수해 시내에 차리게 됐네. 향 합작사에서 주임 겸 당 지부 서기를 하오.”
그러자 병완은 제꺽 상순을 권고했다.
“상순아, 합작사 주임을 해라. 시내에 가서 공호가 되면 얼마나 좋니?”
상순은 세귀눈을 내리깔고 한참 생각하다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두 분이 저를 양성해주고 봐 주는 성의는 백골난망입니다. 초야에서 나라와 백성의 쌀독을 책임지는 일만큼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시내에 가서 합작사 물건을 팔면서 안일하게 살 궁리는 꼬물만치도 없습니다.”
“상품과 돈을 다루는 일엔 자네와 같이 청렴하고 철저한 관리일군이 필요하네.”
허영주 향장의 목소리에는 간절한 애정이 배여 있었다.
허나 상순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더니 나지막하나 아주 똑똑히 말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합작사에 들어앉아 과자나 팔아 뭘 하겠습니까? 저를 놔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허백호 서기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도리머리 질 하며 일어났다.
"그럼 내 대신 향당위 서기를 시키면 하겠다는 말이오?"
"아니, 이건 무슨 말씀이오? 절대 그런 뜻이 아니오."
기실 허백호와 상순은 나이도 별로 차이 없었고 경력도 비슷했다. 허백호가 민주련군 련장할 때 상순은 련 지도원을 했고 나중에 영장에 임명됐지만 하지 않았다. 허백호가 영월구위 서기를 할 땐 상순은 영월구공안국 국장에 뒤이어 현 공안국 국장을 하지 않았는가. 상순은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해 영장에 사단 비서과장까지 했기에 기실 허백호보다 더 높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순은 허백호를 항상 존대하였다.
    그러나 허영주 향장은 자기 련장할 때 상순이 기관총반장을 한 적이 있다고 항상 상순의 상급으로 자처하면서 우쭐거렸다.
   그는 장탄식했다.
“사람이, 파출소 소장이라도 시킬 때 하지 않고. 참, 꼭 후회할 거오.”
향 령도들이 떠나간 후 병완은 연 며칠 상순에게 파출소 소장을 하라고 재삼 권했다. 하지만 상순의 마음은 패용천산처럼 끄떡 움직일줄 몰랐다.
     패용천산 절벽은 퍼런 이끼를 들쓴 채 세월의 세찬 풍파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패용천산 꼭대기에서 산새들이 훨훨 자유로이 날아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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