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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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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9)
2017년 06월 06일 15시 50분  조회:1660  추천:2  작성자: 김장혁




                    2. 첫사랑
전운이 개여 유난히 맑은 하늘에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있다. 어디에서인가 뻐꾹새가 짝을 찾아 뻐꾹뻐꾹 애절하게 울고 있다.
진달래는 단잠에 빠진 경주를 꼭 끌어안고 창 밖에 걸린 달을 바라보며 한숨을 호 내쉬었다.
(경주 아빠는 정말 희생됐단 말인가?)
경호는 밤만 오면 등잔불 밑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호호 내쉬는 진달래가 가엾어 늘 위안했다.
“얘야, 용천 대장은 아마 희생됐는가 봐. 전번 아버지 산소 찾아 갔을 때 혹여나 해 용천 대장이 포위를 돌파한 동굴 어귀를 몇 자 깊이로 파 보았잖아. 그래도 없잖아? 살았으면 찾아오지 않았겠나?”
진달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쿵쿵 발자국 소리 울리기만 해도 경주 아빠가 올 것만 같아 내다보군 해요. 허나 한 달 기다리고 두 달 기다려도 안 왔죠. 또 한 해 기다리고 두 해 기다렸는데도 종무소식이예요. 경주가 이렇게 커서 막 달아 다니는데도요. 속이 곪아 터지지 않겠어요.”
경호는 진달래 손을 잡고 위안했다.
“분명 잘못 된 거 같아. 어쩌겠나? 간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어?”
진달래는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째 슬프지 않으랴.
그녀가 성칠 오빠와의 애틋한 첫사랑을 생이별하는 애 터지는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다가간 용천 대장이 아니었던가.
번개식 결혼에 귀여운 아들을 본 마당에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첫사랑 성칠 오빠에게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누명을 들씌우지 않게 하려고 만난 신랑, 그 신랑은 폭파소리와 함께 종무소식이니 속이 재 가루로 되지 않겠는가!
진달래는 경주를 오빠에게 안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래?”
경호는 놀란 나머지 경주를 되 안겨주면서 말리었다.
진달래는 “오빠, 금심하지 마. 나가 바람을 좀 쏘이다가 올래요.”라고 했다.
그래도 등잔불 밑에 비낀 경호의 얼굴에는 근심에 찬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었다.
“짧은 생각 하지 마. 아무튼 죽은 사람과는 정이 멀어지기 마련이야. 이젠 경주를 봐서라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빠, 피뜩 성칠 오빠를 만나보고 올게요.”
그제야 경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가을 밤 하늘은 유난히 밝은 달빛으로 환했다. 진달래는 은빛 달빛을 사뿐사뿐 밟으며 성칠 대장이 든 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달래가 성칠의 숙사 마당에 들어서 문 꼬리를 잡았을 때다. 집 안에서 주고 받는 성칠의 걸걸한 목소리와 한 여인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진달래는 제꺽 문에서 손을 떼고 주춤 멈춰 섰다.
“은녀야, 너와 나는 한 고향에서 살아온 오누이나 다름없다. 난 너를 내 친 여동생 곱순이나 다름없이 생각한다. 네가 남편을 잃고 경수를 업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 말에 진달래는 문 옆에 김빠진 공처럼 물앉았다.
성칠의 격앙된 말소리는 계속 들렸다.
“난 희생된 병수 열사가 불쌍하고 하옥이가 가엾다. 게다가 용천 대장마저 돌아오지 못하지 않느냐? 나는 희생된 열사들을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더 하지 못한다. 아직 가정을 차릴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너나 내나 진달래나 다 아직 새 살림을 꾸릴 때는 아니야. 금방 3년제가 지나자마자 이게 뭐냐? 병수나 하옥 그리고 용천 대장에게 너무 미안하다.”
“오빠, 내 잘 못이요. 흑흑흑, 허나 오빠, 내 마음만은 알아주오. 난 오빠를 어려서부터 사랑해왔소. 오빠는 한 소녀의 첫사랑을 소중히 생각하기를 바라오. 흑흑흑.”
“울음을 그쳐라. 경수 깨나겠다. 이럼 나도 마음이 괴롭다. ”
“경수 아빠가 희생된 후 나는 의지가지없이 됐소. 부모가 돌아가셨고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상호도 참살됐소. 내 누굴 믿고 살아야 하오? 흐, 흐, 흑, 흑흑.”
진달래는 더 들어 내려 갈 수 없었다. 그녀는 겨우 바람벽을 잡고 일어나 휘청거리며 마당을 나섰다.
이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삐꺼덕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신을 짝짝 끄는 소리가 급촉하게 들렸다.
“은녀, 내 데려다 줄게. 너에게 빚을 너무 많이 졌구나. 병수나 너의 부모 그리고 상호까지 다 내 죽였구나.”
진달래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황급히 담장 굽이를 돌아 동쪽에 있는 자기 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마른 기침소리가 높이 들리더니 뒤이어 은녀와 성칠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서쪽에 있는 은녀의 숙사로 걸어가는 것이 달빛아래 희미하게 보였다…
이튿날, 뜻밖에도 성칠이 진달래를 찾아왔다.
경호는 인사하고 무슨 일을 보려고 나가는 척 하면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성칠은 진달래의 부은 눈을 바라보면서 구들에 올라와 앉았다.
진달래는 경주를 안고 눈길을 내리깔며 성칠의 눈길을 피했다.
“너 할 말이 있지?”
“예, 어제 속이 답답해 찾아 갔댔어요. 허나 집 안에 은녀가 있더군요. 그래서…”
성칠은 진작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피뜩 성칠을 쳐다보더니 수집은 듯이 머리를 숙이었다.
허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용케 인차 삼켜 버리었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용천 대장 소식이 없어 정말 답답하구나. 경주가 불쌍하구나.”
성칠은 진달래 품 속에서 경주를 받아 안고 놀았다. 경주는 성칠의 검은 구레나룻을 살살 매만지면서 잘 놀았다.
“이 놈이, 애비를 닮아 얼마나 용감하게 생겼느냐?”
진달래는 성칠과 경주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아빠가 없는 경주가 불쌍해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해요.”
그때 성칠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난 세월이 흐를수록 용천 대장에게 미안한 감이 드는구나.”
진달래가 깜짝 놀란 듯이 다급히 물어 보았다.
“뭘?”
진달래의 깜장 눈에 이상한 빛이 반짝였다.
성칠은 경주를 진달래에게 안겨주면서 천천히 무거운 입을 떼었다.
“그때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할 때 내가 먼저 갱도에서 돌격해 나갔더라면 용천 대장이 살아남았겠는데. 그가 먼저 수류탄을 갱도 어귀 놈들한테 뿌린 바람에 일본 놈들은 용천 대장 쪽으로 모여 갔다. 참, 난 살아남고 용천 대장은 희생되지 않았느냐? 난 용천 대장에게 목숨 빚을 졌단 말이다.”
허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라요. 절대 아니라요. 그때 두 개 소조로 나뉘어 포위를 돌파하지 않았으면 갱도 안에서 몽땅 잘 못 됐을 거예요.”
진달래는 경주를 구들에서 놀게 놔두고 말했다.
“저도 형님한테 미안해요. 형님을 제가 잘 보호하지 못했어요. 오빠는 이젠 용천 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버리세요.”
둘 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용천 대장이 시체라도 있으면 3년제라도 지내 줄 텐데 시체마저 없으니 이 일을 어쩌겠느냐? 누가 희생됐다고 믿을 수 있느냐? 난 지금도 용천 대장이 어디엔가 살아서 너와 경주를 찾고 있는 거 같아.”
그러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오빠, 용천 대장은 이미 희생됐어요. 살아 있으면 2년 사이에 왜 명천 우시장과 불과 50리도 안 되는 이 업동에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진달래는 말을 꺼낸 바 하고는 한 술 더 떴다.
“이젠 더는 망설이지 마세요. 제 마음은 이미 알지 않아요. 혹시 은녀한테 마음을 둔 걸 제가 너무 다그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성칠은 진달래 말을 막았다.
“됐다, 그만 해라. 은녀는 한 마을에서 자란 누이동생이야. 얼마나 불쌍한 앤데.”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오빠의 마음을 알만 해요. 허나 미안해 할 거 없어요. 이제 경주를 잘 키워 주면 구천에 간 용천 대장도 감사하게 생각할 거예요. 헌데 뭣 때문에 질질 끄는 건가요?”
성칠은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용천 대장을 좀 기다려 보자. 또 지금 우리 부대가 조선인민군으로 편성된 후 부대건설과 지방건설에 머리를 써야 한다.”
진달래는 한시름을 놓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잡고 진정을 토로했다.
“나도 사람이다. 허나 생각해 봐라. 지금 함흥 촌에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비롯한 숱한 항일 유격대 가속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 동만으로 국민당 반동파들이 수시로 쳐나올 위험이 있다. 그 놈들은 이미 길림까지 점령하고 교하를 넘보고 있다. 전운이 감도는 함흥 촌에 부모형제들을 두고 왔는데 고향으로 돌아 올 차비도 해주지 못하고 우리 둘의 일을 급급히 서두를 겨를이 있니?”
진달래는 피씩 웃었다.
“오빠, 우리 둘의 일을 다그친들 함흥 촌의 일을 그르친다는 법은 없잖아요? 자꾸 미루지 말아요.”
“또, 또.”
성칠은 눈을 흘기며 진달래의 손을 놓아버렸다.
진달래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알았어요.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보면서 희죽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은녀의 장래가 근심된다. 애를 가지고 부대에서 계속 일한다는 것도 말은 아니다. 요즘 궁리하다가 명천 우시장에 내려가 고향 운주동을 비롯한 가마골, 신흥동, 영월동 지방의 부녀위원회 사업을 하면 어떻겠는가고도 생각해보았다.”
허나 진달래는 도리머리질 했다.
“은녀를 그렇게 먼 곳으로 보내지 말아요. 여기 업동 부근에 남겨 저와 함께 부녀위원회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도 이젠 애를 가지고 군부대의 일을 하기 바쁜데요.”
성칠은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너와 내가 옆에서 은녀를 잘 보살펴야지.”
그제야 진달래의 철색 얼굴에 진짜 진달래꽃 같은 웃음꽃이 활짝 꽃폈다.
성칠은 우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진달래는 성칠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 잠자리를 여기로 옮기세요. 제가 오늘 저녁부터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겠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경주가 달려와 진달래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면서 “엄마, 나도 따뜻한 밥을 먹겠소.”라고 응석을 부렸다.
성칠은 진달래를 놓고 경주를 번쩍 들어 안고 “허허허.” 웃더니 뽀뽀를 해주었다.
“에이유, 귀염둥이야.”
진달래는 오랜만에 “호호호.” 하고 웃으며 성칠과 경주를 한데 껴안았다.
성칠은 경주를 목매 태워가지고 바깥에 나왔다. 진달래가 뒤에서 따라 나오면서 행복에 겨워 깔깔깔 웃었다.
그들의 서쪽 집 마당에서 은녀가 경수의 손을 잡고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깨를 들먹이면서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옥설과 만금을 따라 김해로 훌 가버렸겠는 걸.)
가을 하늘에 기러기들이 줄을 지어 코 기러기를 따라 북으로 날아예며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3. 서울 군영에서 만난 친일주구
서울의 길거리에는 미군 자동차가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씽씽 달려 지나갔다. 올망졸망한 기와집들이 게딱지처럼 들어앉은 골목은 오불꼬불하여 꼴불견이었다.
허나 일제의 통지 하에 신음하던 서울은 나라를 찾은 기쁨으로 하여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꽃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용천은 자그마한 음식점에 들어가 육개장이나 한 그릇 달라고 하여 대충 점심을 먹네 하고 골목에 나섰다.
(내 잘 못 본기여? 틀림없어. 그 음흉한 우멍눈이 틀림없어. 분명 한철주야.)
용천은 간도로부터 이태 전에 한국에까지 차고 나온 권총을 매만지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친일주구 한철주 놈을 살려 둘 수 없어.”
용천은 사위를 둘러보면서 작은 골목을 벗어나 미군과 국군이 군사연습을 하는 한 군영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사실, 용천은 3년 전에 간도 함흥 촌을 떠나 진달래와 경주를 찾아 먼저 진수해에 계시는 최구장의 집에 들렸다. 그러나 최구장도 그때 진달래가 따라간 성칠이네 부대가 조선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용천은 기차를 타고 곧추 조선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칠 대장과 진달래가 있음직한 명천과 우시장으로 다 돌아가며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유격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때 성칠 대장이 이끈 유격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함흥 쪽으로 나갔던 것이다.
허나 용천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밥을 빌어먹으면서 상우남면에서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 영월동 그리고 지어 삼림에까지 다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하였지만 헛수고를 하고 말았다. 끝내 진달래와 아들 경주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맥을 놓지 않고 업동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그 곳에 주둔한 부대는 간도에서 나온 부대가 아니었다.
“어디 있을까? 혹시 진달래가 오빠와 함께 제대해 고향 개성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진달래는 북만과 함흥 촌에서 나를 더 기다리지 않고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왔어. 걸 보면 내가 죽은 거로 아는 거 같아. 왜 걸케 생각하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용천은 한없이 쓸쓸했다.
용천은 행여나 하고 아주 내심하게 반년 명천과 우시장 일대를 돌다가 3.8선에 묶이어 다시 고향으로 나가지 못할까봐 혹시나 해 눈보라를 무릅쓰고 개성으로 나갔다.
그때 성칠과 진달래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민군에 편입된 후 다시 업동으로 되들어왔던 것이다. 진짜 용천을 골리기라도 하듯이 진달래네는 용천과 숨박곡질 놀았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용천은 개성에서 진달래 네를 찾기 시작했다. 그 넓은 개성 땅에서 어느 골짜기가 진달래 고향인지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
(가시아버지가 사냥을 하다가 장백산으로 도망쳐 들어갔다는 거 보면 들판에서 산건 아니야. 하마 어느 골 안에서 살았지?)
용천은 또 반달 너머 개성에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헤매면서 진달래와 경호 네를 찾았지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럼 진달래와 경호는 대체 어디에로 갔단 말인가?)
그는 개성 시내에 혹시 있을 가 하여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다. 개성에는 개성 최씨가 한 두 집이 아니었다. 개성 최씨 최구철네 딸을 찾는다고 하니 개성 최씨 집들에서는 족보를 꺼내 들고 찾아보고 그런 사람은 자기 몇 촌이 된다고 할뿐 어디에서 사는지 몰랐다. 더욱이 최구장의 딸이 간도에 갔다가 어디에 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산 사람이 살아서야 만나겠지.)
용천은 개성 뒷산에 올라가 시내를 굽어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고려 옛도읍이었던 개성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크게 상하지 않고 옛집이랑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몽주가 태조 이방원 패거리들한테 쇠퇴를 맞고 쓰러진 다리도 그대로 쓸쓸히 누워 있었다. 고려 왕궁 옛터는 기초돌만 처량하게 덩그러니 드러나 있어 꼴불견이였다. 
      용천의 입에서 풍겨 나온 입김이 겨울바람에 사처로 흩어져 날아갔다.
용천은 허망 헤맬 수도 없어 후에 북으로 다시 건너가 찾아보기로 하고 먼저 고향 경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는 맥없이 서울에 올라가 경부선 기차를 타고 급급히 고향 경주로 내려갔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일본 놈들에게 살해된 고향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용천을 붙잡고 울고 웃고 떠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놈들에게 빼앗겨 파출소로 됐던 고향 집은 높다란 토성으로 둘러져 있었고 집 안은 사무실로 마구 꾸며 놓아서 옛날 목조 팔간기와집 모습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개 같은 강도 놈들, 남의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용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마을에 있는 종친들의 도움으로 고향 옛집을 대충 손질해 놓고 들어 있으니 쓸쓸하고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다. 옛집에서 홀로 살면서 마당에 나서면 일본 놈들의 낯빤대기에 대고 손가락질 하며 ‘날강도 놈들아!’ 하고 욕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마당 앞의 감나무를 바라보니 동생들과 한가위에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 먹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용천은 부모형제들이 그리워 가슴을 쿵쿵 치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리 이장이 찾아왔다. 
“용천이, 나라에서 국군을 모집한다니께. 있제이, 너거 유격대 대장이니께 군사 지휘 잘 하자노. 한자리 하라니께.”
허나 용천은 국군 입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혹시 진달래가 고향 경주에까지 어느 날 자기를 찾아 올 거 같아 고향에 한동안 물러 앉아 있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향 마을에서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태동안이나 농사를 지으며 물앉아 있었다. 언젠가는 철색얼굴에 환한 함박꽃 웃음을 지으며 진달래가 경주의 손을 잡고 자기를 찾아 고향 마을에 나타나는 날을 기다렸다.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는 처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3.8선을 점점 넘기 힘들게 되자 용천은 버쩍 안달이 났다.
“안되겠어. 3.8선이 영영 막히면 진달래와 경주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 영영 막히기 전에 북으로 들어가 처자를 데려 와야지.”
용천은 로비를 마련해 가지고 고향 마을을 떠나 기차를 타고 급급히 서울로 올라 왔던 것이다. 그가 광화문 앞의 큰 길을 따라 나가다가 청계천 부근에 이르렀을 때다.
한 패의 국군들이 미군을 따라 줄을 지어 어디에로 가고 있었다. 한 군관이 행렬 옆에서 미군 장교와 뭐라고 영어로 지껄이며 지나다나니 용천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용천은 피뜩 쳐다보다가 어디에선가 보던 우멍눈이다고 도리머리 질 하며 지나가려고 할 때다.
그 군관이 허리를 굽신하며 “미안하오. 말하다나니 그만 실례했소.”라고 하는 것이었다.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의 말투!)
용천은 우멍눈에게 “괜찮아요.”라고 하고는 떠나가려고 했다.
그때 상대방도 가다가 용천을 돌아보다가 가버렸다.
용천은 우멍눈을 어디에서 보았던가고 생각하다가 피뜩 떠오르는 낯이 있어 주춤 멈춰 섰다.
“혹시 저 놈이 한철주 놈인가?”
순간 용천의 눈앞에는 명천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간도로 진출하자고 마을과 공지로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퍼지르던 한철주 중대장, 간도에서 애비 원수를 갚자고 일본 놈들을 끌고 눈보라 치는 장백산 밀림 유격대 밀영을 쳐들어오던 한철주 부연대장 놈의 몰골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래, 한철주 놈은 쓰러진 일본 기관총사수의 손에서 기관총을 빼앗아 성칠 대장과 하옥 아주머니에게 사격하며 고래고래 고함쳤지.)
용천은 그 국군행렬을 따라 한 군영 훈련장에까지 갔다. 그런데 군사훈련을 하면서 백성들이 군영 훈련장 가까이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점심때라 군사훈련도 그만두고 국군들이 모두 식사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용천은 훈련장을 떠나 자그마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가 다시 군영 훈련장으로 갔을 때는 병사들이 훈련장에서 웃고 떠들며 휴식하고 있었다.
용천이 훈련장 철조망 밖에서 군영과 훈련장을 기웃기웃 할 때다. 한 병사가 훈련장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용천은 그 병사를 마주 가면서 말을 건네었다.
“여보게, 하나 물어도 되겠소?”
그 병사는 “뭔 일인데요?” 하고 무뚝뚝하게 반문했다.
용천은 그 병사한테 한 발자국 더 다가가며 나직이 물었다.
“여기 혹시 한철주 군관 있소?”
그 병사는 용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건 왜 물어요?”라고 이상해 하는 눈치였다.
“한 고향 사람인데 할 말이 있어 그러네."
용천은 고의적으로 함경도 말투를 썼다. 허나 그 병사는 자기 상전을 무턱 대고 낯선 사람한테 말할 수 없었다.
“왜 대답하지 않겠나.철주군관이 알면 한 고향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자네를 욕할 거네.”
“제가 대준 걸 아무한테도 말해선 안 돼요.”
“그래, 말하지 않을게.”
“저기요. 한중대장 맞아요.”
“고향이 함경도 명천 맞지?”
“어딘지는 몰라도 함경도 말투 쓴다고 모두들 함경도치라고 하죠.”
그 병사는 말을 시작하니 꽤나 헤펐다.
“나 갈라요.”
“응, 그래.”
용천은 가라고 손시늉 했다. 그는 들었던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훈련장 옆에 있는 아파트 토성 구석에 가서 호주머니에 넣었던 권총을 꺼내 장탄하고 안전띠를 풀었다.
“개 같은 친일주구 놈, 네놈이 다 우리 국군 장교가 다 됐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네 놈의 깝질을 쫄딱 벗기어 놓아도 속이지 못해.”
용천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훈련장 가까이 다가가 한철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는 서울 복판에서 친일주구 한철주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깥에 나갔던 병사도 군영 안으로 돌아갔다. 그 병사는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용천의 표정에 놀란 듯이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황급히 군영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후 군영에서 숱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오후에는 군사연습을 하지 않는지 병사들은 대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철주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이자야!”
“붙잡아!”
바깥으로 나왔던 병사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용천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뒤이어 호주머니에 넣은 권총마저 빼앗겼다.
“이상하다 했더니 진짜 권총마저 있군 그려.”
병사들은 용천을 바로 꽁꽁 결박 지어 군영으로 끌고 들어갔다. 잠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놔라! 이 놈들아, 죄 없는 사람을 왜 이러는 거야!”
“보아하니, 이 놈이 우리 한중대장에게 적의를 품은 거 같아!”
“심문하면 참대 통에서 콩알 쏟아지듯 할 거 아냐?”
“그래, 그래. 저기 한 중대장이 온다.”
용천이 결박당한 채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우멍눈 한철주가 다가오며 쏘아보는 것이었다.
“넌 누구냐? 나에겐 너 같은 한 고향 친구가 없어.”
용천은 어이없어 “하하하. 참말로 그럴듯한 국군 중대장이구나.”라고 비웃었다.
“누굴 조롱하니. 넌 누구야?”
용천은 한철주의 우먹눈에 침을 뱉었다.
“이 놈, 친일주구 한철주 놈아, 네 놈이 다 남으로 도망쳐 국군 장교까지 됐어? 세상에, 네 놈을 장백산에서 죽이지 못한 거 천추의 한이야.”
한철주는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다. 병사들은 한철주와 용천을 번갈아 보며 용천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용천은 권총을 뽑는 한씨 놈을 보고 국군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저 놈은 일본 관동군 부연대장인기여. 난 장백산 유격대 대장 김용천이야. 빨리 저 놈을 붙잡아라!”
병사들은 더욱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씨는 “허허허.” 너털웃음을 치며 너덜거렸다.
“네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미친 듯하구나. 난 동만 항일유격대 당당한 중대장 한선주다. 네 놈이 사람을 잘 못 본 게 아니야? 생사람을 작작 물어먹어!”
허나 용천은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네 놈의 껍질을 쫄딱 벗겨 놔도 내 눈을 속이진 못해. 네놈은 분명 일본에 유학 갔다가 돌아와 함경도 명천에서 일본 관동군에 입대해 중대장, 부연대장을 한 한철주 놈이다. 네놈은 우리 숱한 항일유격대에 피 빚을 졌어!”
뒤이어 용천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나를 풀어 놔! 친일주구를 당장 결박하라!”
한씨가 권총으로 용천을 쏘려고 할 때었다.
“잠간! 웬 일이여?”
군영 안에서 한 장교가 채찍을 들고 나오더니 한씨와 용천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용천은 장교를 보고 억울해 말했다.
“난 북만 항일유격대 대장 김용천이예요. 저 한철주 놈은 친일주구인데요. 일본 관동군 부연대장도 했어요. 저 놈의 두 손에는 우리 항일유격대에 피 빚이 질벅해요.”
“그래?”
한씨도 녹녹치 않았다.
“저 놈에게서 빼앗은 권총입니다.”
병사들이 권총을 장교에게 넘겨주었다.
장교는 권총을 손바닥에 대고 탁탁 치며 용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유격대 대장? 진짜 수상한 놈이구나. 빨갱이 물이 푹 스미었겠군. 좌우간 대장이라니 이렇게 예절 없이 대해서야 쓰나? 어서 결박을 풀어줘!”
“예, 허 연대장님!”
병사들은 포승을 풀어 주었다.
용천과 한씨는 서로 황소눈을 부릅뜨고 마주 쏘아보았다.
허 연대장은 당장 서로 뜰 것 같은 뜨개소들마냥 으르렁거리는 그들 둘을 보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보아하니 무슨 원수를 진 것 같은데 천천히 말해 보게.”
그리하여 그들 둘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장교를 따라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
군영 안은 꽤나 널찍했다. 벽에는 태극기가 정중히 걸려 있었다.
허 연대장은 태극기 아래 사무 상 앞에 가 앉더니 그들 둘을 좌우에 갈라 앉히고 병사들을 뒤에서 둘씩 붙어 지키게 했다.
“먼저 유격대 대장에게 묻겠네. 이름이 뭔가?”
“김용천입네다.”
“김용천 대장이라? 고향은 어딘가?”
“경주.”
“경주? 헌데 광복 전에 그 먼 간도까지 가 유격대 대장을 했다?"
“그래요. 저 한철주 놈은 일제 관동군 부연대장을 했어요. 즉시 처단하세요.”
허나 허 연대장은 피씩 코웃음 치는 것이었다.
“사람 잘 못 본거 같네. 저 한중대장은 한철주가 아니라 한선주네. 한중대장은 일찍 일본 군사학교에 유학 갔다가 돌아 왔어. 친일주구면 뭐라게? 한중대장은 우리 서울에서 일본 파출소에서 줄곧 일했네. 언제 간도로 간적도 없어. 오해네, 오해.”
그 말에 용천은 어이없다는 듯이 자기를 쏘아보는 한선주를 다시 여겨 보았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한철주와 신통히도 같은 자였다.
용천이 또 입을 열려고 하는데 허 연대장은 손사래를 쳤다.
“이젠 그만하게나. 괜히 한 중대장을 억울하게 굴지 말게. 한 가지 묻겠네.”
허 연대장은 용천에게 다가왔다.
“자넨 유격대 대장이라며? 왜 한국에 왔어? 이북은 빨갱이들 천하인데 한자리 하지 못하고.”
용천은 허 연대장을 쳐다보며 “고향을 찾아온 사람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지 마세요.”하고 말했다.
“보아하니 빨갱이들에게 밀린 거 같군. 고향이 뭐간데 고향 하나 바라보고 대장 직을 버리고 이남으로 왔어?”
용천은 버선목이라고 번져 보이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 말도 나가지 않았다.
한참 후 용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난 처자를 데리러 북에 갔다 와야 하겠어요. 말씨름 할 새 없어요.”
“그래? 흥!”
허 연대장은 사무 상 앞에 돌아가 척 앉더니 용천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걸. 당신 권총을 품고 다니면서 우리 한 중대장을 죽이려 한 혐의가 있어.”
그 말에 용천은 주저앉으면서 애원했다.
“허 연대장, 사람을 잘못 보고 오해한 것뿐인데요. 왜 이래요? 3.8선이 꽉 막히기 전에 이북에 가서 처자를 데려오게 해 주세요. 전 일본 놈들에게 부모형제들을 다 잃고 간도에서 얻어 본 색시와 아들애 경주 밖에 없어요. 제발 저를 이북에 보내주세요.”
“답답한 친구라구.”
허 연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대장, 3.8선은 이젠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됐네. 당신 가고프면 가는 곳인가 하는가?”
“예?”
“황차 자넨 살인협의가 있네. 우린 경주에까지 가서 자네 내력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네.”
“그럼 다그쳐 주세요.”
“그래? 그러지.”
허 연대장은 다가와 용천의 손을 잡아 일으킨 후 한선주 중대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
“악수나 나누고 화해하게나.”
한선주 중대장은 시큰둥해 하는데 용천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한 중대장, 죄송해. 당신 정말 친일주구 한철주와 신통히도 닮았단 말이야.”
“쳇, 꽤나 싱거운 사람이군 그래. 난 한뉘 서울에서 경찰로 살았네.”
“허나 일본 파출소 경찰이면 친일주구는 맞지?”
“이 사람, 계속 지분거려?”
“됐네, 됐어. 먼저 김 대장의 권총 솜씨를 봐야겠네. 진짜 대장 맞나 봐야겠어.”
허 연대장은 둘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사격장으로 갔다.
과녁과 한 오십 미터 떨어진 앞에서 허 연대장은 권총을 꺼내 절컥 장탄한 후 용천의 앞에 내밀었다.
“자, 쏴 보게나.”
용천은 권총을 받아 쥐고 과녁을 피뜩 보더니 허 연대장을 돌아보았다.
“제가 다섯 발을 다 명중하면 이북으로 보내겠어요?”
“잔말 말고 먼저 쏘라고!”
용천은 머리를 돌리더니 권총을 들어 쏘았다.
땅!
권총으로 그렇게 먼 과녁을 쏘아 맞혔다.
땅! 땅! 땅! 땅!
연이어 네발을 연발로 쏘았다.
병사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며 박수갈채까지 보냈다.
한 병사가 달려가 나무판과녁을 뽑아가지고 달려왔다.
과녁을 보고 허 연대장이나 한선주는 눈이 동그래졌다. 총구멍이 세 개 밖에 나지 않았던 것이다.
“세 발 밖에 명중하지 못했네.”
한선주가 말하자 허 연대장이 도리머리 질 했다.
“아니야. 이걸 보게 이 구멍이 더 크지 않은가?”
허 연대장의 말에 한선주와 용천이 여겨보니 확실히 두 총구멍 보다 한 구멍은 총알이 세 개 나간 흔적이 알리게 컸다.
“명사수구먼. 안 되겠어. 자넨 북으로 다 갔네.”
“약속하지 않았나요? 다 명중하면 보내 주겠다고.”
“허허허, 내 언제 약속했나. 먼저 쏘아보라고 했지.”
허 연대장은 소탈하게 웃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우린 지금 일제 때 경찰이고 유격대 대장이고 가릴 새 없네. 나도 독립군 출신이야. 김좌진 장군을 따라 간도에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도 참가했네.”
그러자 용천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난도 처음에는 독립군이었어요. 후에 독립군이 소련으로 사라지자 유격대에 들어갔어요.”
“그래? 그럼 우린 통하는 데가 있군. 자넨 북으로 가지 말고 우리 연대에서 사격술 교관을 해야 하겠네.”
용천은 어이없어 너부죽한 얼굴에 그늘이 비꼈다.
“허 연대장, 그럼 이렇게 하자요. 북에 가서 처자를 데리고 온 후 다시  허 연대장을 찾아오지요.”
“안 돼, 건 우리가 결정할 나름이야. 자네 가려면 가고 있자면 있는 거 아냐. 자넬 아직 믿지 못해. 자네를 철저히 조사해야 돼.”
용천은 머리를 푹 숙이었다.
“그래 언제까지 날 붙잡아 둘 예산인가요?”
허나 허 연대장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그러자 용천은 옆에서 걷는 한선주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자네 좀 허 연대장과 말해주게나. 나 좀 이북에 가서 처자를 데려오게.”
“이럴 땐 친일주구가 필요한 가 베? 흥!”
“퉤! 더러운 자식, 내 네놈이 괘씸해 여기 있을란다. 어디 두고 보자.”
그 말에 한선주는 대수로워 하지도 않으면서 병사들에게 용천을 가리키며 “밀영에 압송하라!” 하고 호통을 쳤다.
용천은 먹장구름이 둥둥 떠 흘러가는 북녘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보, 진달래, 내 언제 당신 모자를 만나지?)
용천은 밀영에 압송돼가면서 눈앞이 까마아득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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