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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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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7)
2015년 09월 25일 16시 47분  조회:162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오누이를 고문

       이튿날아침. 차디찬 겨울해가 눈 덮인 영월동을 싸늘하게 비추었다. 삼림경찰주재파출소로 쓰는 성칠이네 집과 그 서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저목장에는 눈보라가 사납게 휘몰아쳤다.
       가시철망을 두른 저목장은 눈보라 속에서 무서운 비명을 앵-앵 지르고 있었다. 망루와 대문에는 일본 헌병들이 총창을 비껴들고 보초를 서고 있었고 사냥개 누렁이가 귀를 뻘쭉하고 사처를 두리번거렸다. 저목장 안에는 아름드리통나무들이 눈을 들쓰고 쓰러져 있었고 시체 같은 통나무 무지들 가운데 통나무로 지은 보초막이 들어앉아 있었다.
이쪽 성칠이네 집에서는 화로 안에서 불이 이글이글 타 번지고 윤디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검정가죽장화를 신은 야마모도 소장과 한길수 자위대장이 영팔과 가메다 등 숱한 졸개들을 데리고 상호를 묶어놓고 심문했다.
상호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길수는 말 상판에 말 이발을 사려 물고 악에 받쳐 고함쳤다.
“이 놈아! 네 놈들 몇 해 전에도 우리 집에 불을 싸질렀지? 이번에 독립군이 몇 놈이 왔냐?”
상호는 침을 퉤 뱉을 뿐이다.
“성칠을 따라 포수대에 들어가더니 꼴 보기 좋다. 이런 끝장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길수는 독기어린 우먹눈을 부라리면서 이리처럼 으르렁거렸다.
“얘들아, 채찍으로 호되게 후려갈겨라! 가죽을 벗겨놔야 탄백할 거야!”
영팔이 채찍을 물통에 넣어 휘저어 들고 상호한테 다가가더니 이를 악물고 짱짱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짱! 짱!
상호는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냈다. 상호의 팔이고 얼굴이고 굴 뱀이 쭉쭉 갔고 목의 살가죽이 뜯기어 터졌다.
“말해! 성칠이랑 그 놈들 몽땅 어데 있어?! 독립군 몇 놈이 왔는가? 네 놈들이 이번 출마목적은 무엇이냐?”
그러나 상호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면서도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중에 상호는 까무러치더니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만!”
야마모도가 흰 장갑을 낀 손을 들었다.
“더 치면 죽었소까. 저 놈에게서 꼭 독립군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야 했소.”
영팔은 자위대원 놈을 시켜 바가지에 찬물을 퍼서 상호의 얼굴에 퍼 치게 했다.
그래도 상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상호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더니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드는 것이었다.
한길수는 또 고래고래 고함쳤다.
“말햇! 네 놈들이 그간 어데 있었는가? 독립군은 지금 어데 있는가?”
한길수가 다가와서 줄 질문했다.
“여기 온 목적 뭐냐? 모두 몇이 왔는가?”
허나 상호는 입에 빗장을 지른 채 한길수를 무섭게 쏘아볼 뿐이었다.
야마모도 소장이 음흉한 눈길로 상호를 쏘아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네 놈 말이 안 해 죽어, 죽었소. 네 놈들 몇 해 전에 저목장과 한 대장 집을 불태웠다. 내 소장 철직 당했다. 네 놈들을 천만번 죽여도 시원찮겠쏘다.”
그는 상호의 피 흘리는 턱을 쳐들고 윽박질렀다.
“말해! 독립군 어데 있쏘까?”
상호가 희죽이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놈들을 우리 고향에서 몰아내려고 천병이 내려왔다. 퉤!”
야마모도 소장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낯에 묻은 침을 쓱 닦았다. 악에 치받쳐 이빨을 사려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면서 군도를 쓱 뽑아들었다.
“죽어, 죽었소.”
군도가 반원을 그으면서 날아 내려왔다. 그런데 군도는 상호를 묶어놓은 나무기둥을 탁 찍었다. 상호의 머리 위에 군도가 들이박히면서 부르릉 무서운 비명소리를 냈다.
“이 놈을 지져라!"
야마모도의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영팔은 화로 불에서 뻘겋게 단 쇠갈고리로 상호의 가슴을 뿌지직 지졌다.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상호는 반사적으로 "으윽" 소리치며 고개를 몇 번 위로 재끼다가 아래로 툭 떨어뜨리며 까무러쳤다.
“물을 쳐!”
영팔이가 또 바가지로 물을 퍼 다가 상호의 낯에 쳤다.
상호가 머리를 들었을 때에는 맞은 켠 벽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꽁꽁 묶이어 달아맨 은희가 어슴푸레 보였다.
야마모도는 상호 앞에서 목을 자르는 손시늉을 해보이면서 지분거렸다.
“은희가 맞아대는 걸 보겠소까? 독립군 몇이 왔는가 말이 했쏘까?"
상호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은희는 이미 맞아 입술이 터져 피 흘렀고 얼굴에도 손자리 나있었다.
“어떤가? 말하겠는가? 이번에 독립군 몇이 왔어? 말하지 않으면 은희를 윤간하고 죽여 버릴 테야.”
은희는 증오의 빛이 번쩍이는 눈길로 짐승 같은 영팔을 쏘아보았다.
상호는 영팔을 부릅뜬 눈길로 쏘아보면서 욕했다.
 "넌  한 고향 사람인데. 왜 저 일본 사람들을 돕는가? 언젠가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고 말게다.”
“흥!”
영팔은 대수롭잖게 콧방귀를 뀌였다.
“네깐 놈들에게 쉽게 죽을 자위대 중대장이 아니야. 네놈들은 대일본제국에서 사냥하지 말라는데 사냥해 죄를 자청해 저질렀다. 성칠을 따라 독립군에 들어갔지. 탄백하지 않으면 살려 둘 것 같아? 말해! 몇이 왔니?”
그러나 상호는 더욱 기세 사납게 말했다.
“이제 우리 대부대가 와서 네 놈들을 몽땅 천당으로 보내주지 않는가 봐라! 네 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야마모도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었다.
“그저 물어서야 어디 말하겠는가?”
뒤이어 은희한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더니 은희의 머리를 틀어쥐고 왼손가락으로 은희의 입술을 집어 비틀었다.
“이년을 윤디로 지져!”
“하이!”
일본 헌병 가메다 놈이 털 한 모숨을 쓱 문지르더니 화로 불에서 시뻘건 쇠갈고리를 뽑아들고 다가섰다.
“나니오(어데를)?”
“무네(가슴)!”
“하이!”
가메다는 은희의 저고리를 와락와락 벌리고 하얀 젖가슴을 뻘건 쇠갈고리로 지졌다.
찌-직
은희의 가슴에서 하얀 연기가 타래 쳐 올랐다. 은희는 죽어가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닥쳐! 이 짐승 같은 놈들아. 날 지져라!”
야마모도는 숨을 헐떡거리며 고통스레 얼굴을 찡그리는 상호를 보고 깨 고소해 했다.
“그만!”
그는 교활한 웃음을 지으면서 은희 곁에서 상호한테로 다가왔다.
“그래도 말하지 않겠냐? 네 놈이 말하지 않으면 은희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때 은희가 머리를 쳐들더니 흐트러진 머릿 속 다 터진 입술을 감빨더니 겨우 말했다.
“오빠야, 말해도 죽인다.”
“가시나 새끼, 죽어 봐라!”
야마모도는 꽥 고함치더니 뒤에 가메다에게 손짓했다.
“저년을 강간해!”
가메다는 은희에게 덮쳐들어 치마를 훌렁 벗겼다. 속옷도 마구 벗겨 버리고 괴춤을 깠다.
야마모도는 음충한 눈길로 은희와 상호를 번갈아보면서 누런 이발이 드러나게 징글스레 웃었다.
가메다는 짐슴처럼 은희의 뒤로 달려들어 하신에 쇠꼬챙이 같은 그것을 박아 넣고 하신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은희는 비명을 지르더니 발길질하면서 단말마적으로 발악했다.
그때 상호는 머리를 숙이고 뭔가 생각하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닥쳐!”
그 소리에 야마모도가 가메다에게 손을 쳐들어 제지했다. 가메다는 몇 번 더 요동치다가 아쉬운 대로 그만 뒀다.
“그래, 말하겠냐?”
상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은희를 풀어놔라. 그래야 말하겠다.”
야마모도는 털 한 모숨이 가메다의 귀에 대고 뭐라고 일본 말로 쑤군거렸다.
털 한 모숨은  아쉬운 대로  은희를 놔두고 괴춤을 춰 입었다. 은희의 허벅다리에서는 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털 한 모숨은 은희를 묶은 바 줄을 슬슬 풀어 문 밖으로 떠밀었다. 은희는 절룩거리면서 겨우 심문 실에서 나가며 상호를 뒤돌아보았다.
“죽어도 절대 말해선 안 돼.”
“이년, 주둥이를 다물지 못 할까?"
가메다는 은희의 뒤 잔등을 바깥으로 떠밀었다.
은희가 문밖에 나가자 영팔은 상호에게 물었다.
“그래, 어서 말해봐! 독립군 몇이 왔는가? 그 놈들은 어데 있는가? 응?”
“여기 오오.”
영팔은 상호에게 다가가 귀를 들이댔다.
“말해 봐!”
상호는 가슴을 뻗치고 우렁우렁하게 말했다.
“독립군이 한 오백여명 왔다. 먼저 네 놈 같은 일본 앞잡이들부터 작두로 목을 썩 베 버릴 예산이야!”
“뭐 어쩌고 어째?”
영팔은 목을 움츠리더니 채찍으로 상호를 짱 내리쳤다.
“그만!”
야마모도가 류강철의 통역을 듣고 손을 쳐들어 제지하더니 다가왔다.
“좋아, 그래 언제 여길 치는가?”
그러자 상호가 야마모도에게 말할 것처럼 입을 내밀어 오물오물했다.
야마모도는 상호의 앞으로 다가가 귀를 들이댔다.
“퉤! 이 썩어질 놈아!”
상호는 야마모도의 귀구멍에 피비린 침을 퉤 뱉으면서 발길을 날려 야마모도의 다리 사타구니를 탁 걷어찼다.
“억! 산다마야(불알이야)!”
야마모도는 사타구니를 싸쥐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놈은 너무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대굴대굴 굴렀다.
상호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놈들을 둘러보면서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이 놈들아, 네 놈들은 우리 고향에 둥지를 틀고 앉아서 밭에 곡식도 심지 못하게 하고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는가? 우릴 못살게 굴던 놈들아, 독립군들은 네 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야마모도는 성난 사자처럼 펄펄 날뛰는 상호를 보고 질겁해 뒤로 엉덩이 걸음을 치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 놈은 군도를 쓱 빼들더니 상호에게 덮쳐들어 팔을 탁 내리찍었다.
“앗!”
상호의 왼팔이 썩 뚝 잘리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잘려 나간 손가락이 땅바닥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상호는 까무러치고 남은 왼팔에서 피가 쌕 소리를 내면서 뿜겼다.
“저 놈들을 끌어내다 총살해버려!”
“하이!”
영팔은 까무러친 상호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상호가 조금 움직거렸다.
이때 정지에서 은희가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는 소리에 뒤이어 비명소리가 들렸다.
야마모도가 군도를 잡고 뛰어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야욕이 발작한 가메다가 한창 은희를 깔고 들어앉아 강간하고 있었다.
“콕칙쇼(닥쳣)!”
야마모도는 우에 깔고 누운 가메다를 마구 떠밀어냈다.
대신 자기가 괴춤을 까고 눈물범벅, 피범벅이 된 은희를 깔고 들어앉았다. 정지에서는 은희의 애처로운 통곡소리와 욕설이 울려 퍼졌다.
영팔은 대개 정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짐작하고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상호를 형틀에 달아맨 피 묻은 바 줄을 풀어내면서 지껄여댔다.
“성칠 놈을 따라 독립군에 가더니 잘 됐다. 은희는 일본 황군에게 윤간당하고 있어.”
“개놈들, 제 명에 죽는가 봐라!”
상호는 격노해 입술을 깨물었다. 두 줄기 피가 입술에서 흘러내렸다. 입안에서는 이를 뿌드득뿌드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무섭게 휘몰아쳤다. 상호는 눈 덮인 서산 수림 속에 끌려가면서 뒤돌아보니 은희도 정지에서 끌려 나가고 있었다.
은희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듬성듬성 북데기가 묻어 있었다. 헤어진 허연 치마에는 뻘건 피가 얼룩덜룩하고 허벅다리와 종아리에는 아직도 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은희는 머리를 돌려 상호를 보며 절룩거리면서 사형장에 끌려 나갔다. 그녀는 수림 속에서 피뜩 나무 뒤에 숨는 검둥이를 발견했다. 가만히 눈길을 주어 수림 속을 여기저기 살피었다.
(혹시 성칠 오빠가 오지 않았을까? 오빠는 절대 우리 오누이를 버리고 달아나지 않았을 거야.)
은희는 샘물터를 지나면서 며칠 전에 성칠 오빠와 상호 오빠를 만나던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두 볼을 뜨겁게 적시였다.
(이팔청춘 꽃나이에 성칠 오빠의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에 가야 하는 건가?)
은희는 흐릿한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야속하다, 야속해. 저주로운 이 세상에 생벼락이 내려라!)
5. 사형장을 습격

 
     은희와 상호는 어느덧 하늘을 찌르는 적송들이 꽉 들어선 산골짜기 막바지까지 끌리어갔다. 드문드문 나무그루터기가 보이었다.
      야마모도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군도자루를 잡더니 상호 앞으로 쓱 나섰다.
      “이제라도 늦지 않아. 말해, 독립군 지금 어데 있쏘까?”
      “카악, 퉤!”
      상호는 피 묻은 가래를 아먀모도 놈의 낯에 뱉었다.
      “빠까모노! 죽어, 죽었쏘다!”
      야마모도는 군도를 빼들어 상호의 목을 탁 쳤다. 그런데 상호가 키를 낮추자 옆에서 상호를 붙잡고 섰던 자위대원의 팔이 썩뚝 잘려나갔다.
“아이고!”
자위대원이 눈 바닥에 쓰러져 대굴대굴 굴렀다.
야마모도가 재차 군도를 쳐드는데 영팔이 말리면서 오도도한 바 줄을 쳐들었다.
“소장님, 이 놈을 쉽게 죽게 할 게 있습니까? 목 매달아 죽입시다.헤헤헤.”
류강철이 통역하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내리고 목을 매달라고 손으로 아름드리소나무의 가로 질러 뻗은 적송 나무 가지를 가리켰다.
영팔과 가메다는 오른팔 밖에 남지 않은 상호를 밀고 닥치며 소나무 밑으로 갔다.
상호는 목에 올가미가 걸리자 흐릿한 눈길로 눈보라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오빠-” “오빠-” 하고 우는 은희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가슴을 쑥 내밀고 고함쳤다.
“조선독립 만세!”
“섬나라 오랑캐 놈들을 몰아내자!”
야마모도가 손을 홱 휘두르자 올가미가 상호의 목을 달고 쑥 올라갔다.
버둥거리는 상호를 보면서 헌병들과 자위대원 놈들이 악착스럽게 웃어댔다.
영팔이 야마모도에게 은희의 목도 올가미에 걸자고 했다.
야마모도가 손을 저으며 도리머리 질 했다.
“아니야, 우리 황군이 저 년을 데리고 놀면 좀 좋아. 또 미끼로 가둬두면 독립군을 낚을 수도 있어!”
영팔이 머리를 끄덕이고 가메다는 야욕에 찬 눈길로 은희의 몸을 노렸다.
이때다.
쒹-
어디선가 비수가 날아왔다. 상호를 달아맨 올가미가 뚝 끊어졌다. 상호가 나무 가지에서 툭 떨어졌다.
야마모도는 권총을 빼들고 여기저기 살폈다.
쒹-
이번에는 돌멩이가 날아와 야마모도의 권총을 쥔 손을 딱 쳤다. 진달래가 달려오면서 돌팔매질을 했다.
자위대원들은 이마빼기나 낯을 맞고 머리를 싸쥐고 황급히 도망쳤다.
독립군 병사들이 용천 중대장과 진달래의 지휘 하에 사냥총으로 사격하면서 돌격해왔다.
소나무가 눈보라에 몸부림치고 사처에서 푱 푱!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용천 중대장이 손을 홱 휘두르며 골짜기가 떠나갈듯이 고함쳤다.
“일 소대 좌측으로! 이 소대 우측으로 포위하라!”
성칠도 노한 사자 같이 권총을 휘두르며 한패의 병사들을 이끌고 골짜기 아래로 짓쳐 내려왔다. 병사들 속에 영월동의 동욱과 칠백, 덕팔도 사냥총을 쏘면서 덮쳐드는 것이 피뜩피뜩 보이었다.
그런데 포수대 출신의 병사들은 금방 독립군에 들어가 총을 쓰는데 습관되지 않아 총을 쓸 궁리는 하지 않고 급한 나머지 총대를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야마모도가 어정쩡해 서 있는데 검둥이가 성난 표범처럼 야마모도에게 덮쳐들었다. 야마모도는 그제야 군도를 휘둘러 검둥이를 비껴 쳤다. 검둥이가 옆으로 슬쩍 피하더니 다시 덮쳐들어 야마모도의 종아리를 꽉 깨물었다.
“아이쿠!”
야마모도는 비명을 지르며 군도를 달라당 떨어뜨렸다. 그 놈은 발길을 날려 검둥이를 걷어찼다.
“도쯔께끼(돌격)!”
야마모도는 개에게 물려 피가 질벅한 손으로 권총을 뽑아 검둥이를 탕! 쏘았다.
검둥이는 “깨갱!” 비명소리를 치며 번개같이 아름드리소나무 뒤에 뛰어 들어갔다. 총알이 아름드리소나무에 박혀 소나무껍질이 튕겨 눈 바닥에 흩날려 떨어졌다.
스무나문 명 밖에 안 되는 헌병놈들과 자위대원들은 질겁해 뿔뿔이 흩어져 골짜기 아래로 도망쳤다. 야마모도는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아름드리소나무에 기대여 사격하면서 허둥지둥 철퇴했다. 영팔과 가메다는 은희를 끌고 골짜기 아래로 냅다 뛰었다. 그들의 앞뒤에 총알이 날아와 눈 꼬치를 튕겼다.
성칠은 소나무숲 속에서 눈 바닥에 쓰러진 상호를 안아 일으켰다.
“상호야! 상호!”
그러나 상호는 부릅뜬 눈으로 한곳을 응시한 채 아무런 대답도 영영 없었다. 왼팔이 절반이나 잘리어나간 상호를 보고 성칠은 흠칠 놀랐다. 코마루가 시큼해난 성칠은 상호의 코에 손을 대보았다. 그러나 상호는 숨이 없었다. 가슴에 얼굴을 대보니 이미 심장도 박동을 멈추었던 것이다.
“상호야! 내가 너를 죽였구나. 어허, 헉, 헉, 헉!”
성칠이 상호를 붙안고 흔들면서 대성통곡 칠 때였다. 용천이 권총을 빼들고 뛰어오면서 소리쳤다.
“이럴 새 없어. 놈들을 추격해라!”
성칠은 상호를 눈 바닥에 내려놓고 악이 치받쳐 이를 뿌드득 갈며 일어섰다.
“이 놈들아! 어디 죽어봐라!”
성칠이 모젤권총을 빼드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며 살기가 느껴졌다.
용천과 성칠이 뒤로 몸을 홱 돌리는 순간 헌병 두 놈이 총창을 비껴들고 덮쳐들었다.
성칠이 권총을 쏠 새도 없이 총창이 날아 들어왔다. 성칠은 몸을 옆으로 틀면서 옆구리에 찔러 들어 온 총창을 왼손으로 거머쥐고 권총으로 대가리를 내리깠다. 그새 다른 놈이 용천을 총창으로 푹 찔렀다. 룡천이 권총을 든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총창이 팔을 빗 찔러 나갔다. 그 놈이 재차 찌르려고 할 때였다. 검둥이가 씽 날아오면서 헌병 놈의 대가리를 앞발로 차며 코를 물어뜯었다.
“앗! 이다이(아파라)!”
헌병 놈은 한손으로 낯을 싸안고 뺑뺑 맴돌았다. 헌병 놈은 한손으로 총창을 들어 재차 달려드는 검둥이를 찔렀다. 검둥이는 허벅다리를 푹 찔리었다.
“깨갱!”
검둥이는 다리를 찔리어 어정어정 도망쳤다. 일본 놈이 도망치자 검둥이는 재차 덮쳐들었다.
용천은 수림 속으로 도망치는 헌병 놈에게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그 일본 놈은 보기 좋게 푹 꼬꾸라졌다.
독립군 병사들이 헌병들과 자위대원 놈들을 추격해 저목장부근까지 이르렀다. 동욱은 철천지원수 야마모도 놈만 노리고 추격했다. 그러나 다른 헌병 놈들이 닫다가도 돌아서면서 맹렬히 사격하는 바람에 붙잡지 못했다.
야마모도는 저목장에 채 들어가지 못한 놈들을 돌볼 새 없이 대문을 닫아 걸어 버렸다.
용천은 대문 쪽으로 달려가는 헌병 놈을 쫓아갔다. 그런데 권총 탄창에 탄알이 비어 있었다. 용천은 뒤에서 몸을 날려 덮치면서 권총으로 대갈통을 내리깠다. 순간 그 놈은 잽싸게 허리를 굽히며 피했다. 그 놈은 돌아서면서 용천의 멱살을 틀어쥐고 태를 쳤다. 불의의 역습에 용천은 저만치 뿌리어나가 엎어졌다. 용천은 그 놈이 유도를 하는 놈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그 놈이 총창을 비껴들고 용천에게 재차 덮쳐들 때였다. 갑자기 딱! 소리와 함께 그 놈이 대갈통을 싸쥐고 휘청거렸다. 진달래가 재차 돌을 날렸다. 그 놈은 대갈통을 얻어맞고 푹 꼬꾸라졌다. 진달래가 잽싸게 달려와 그 놈의 장총을 빼앗아 한방 안겼다.
땅!
덕팔은 사냥총을 쏘지 않고 마구 돌진해나가다가 한 자위대원을 붙잡았다. 실팍한 덕팔은 그 놈을 깔고 들어앉아 사냥총으로 마구 패댔다.
밑에 깔린 놈은 날아드는 사냥총을 손으로 막으면서 우는 소리를 쳤다.
“제발 살려주오. 내 죽으면 집에 있는 늙은 엄마가 죽소.”
그러자 덕팔은 주먹을 내리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너도 조선 사람인데 어째 일본 놈들의 개다리질 하느냐?”
그때 자위대원 놈이 손을 아래로 뻗쳐 종아리 각반에서 비수를 쓱 뽑아 덕팔의 잔등을 푹 찔렀다.
그때 뒤따르던 칠백이 발견하고 그 놈의 손목을 발길로 걷어찼다. 비수는 덕팔의 잔등을 빗 찍고 저만치 멀리 뿌리어나갔다.
덕팔은 잔등 상처의 아픔은 둘째고 그 놈에게 속히운 것이 분했다.
“에끼, 이놈 썩어져라!”
덕팔은 사냥총으로 그 놈의 대갈통을 마구 패댔다. 그 놈은 쳐들었던 팔을 천천히 툭 떨어뜨리더니 잠잠해졌다.
“도쯔께끼 마에(돌격 앞으로)!”
갑자기 숱한 일본 헌병들이 저목장으로 포위해 덮쳐왔다. 용천이가 눈구덩이에서 일어나면서 보니 끼무라가 적토마까지 타고 뒤에서 군도를 휘두르면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 보였다. 그 적토마는 성칠이가 진달래 아버지에게서 가진 것이었다. 그런데 전번 습격에 한길수가 빼앗아 간 걸 끼무라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 옆에는 백마를 탄 한길수가 권총을 휘두르면서 자위대원 놈들을 앞으로 내몰았다. 피뜩 보아도 100여명이 총창을 비껴들고 포위권을 좁혀왔다.
한길수는 외눈깔을 부라리며 성칠과 용천이 그리고 포수대의 마을 사람들을 보고 고함쳤다.
“네 놈들이 올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그는 사냥총을 쥐고 자기를 쏘아보는 병수를 보고 빈정거리었다.
“오, 달아났던 병수도 왔구나.” 
뒤이어 수림속의 독립군을 향해 목청을 가다듬어 고래고래 고함쳤다.
“빨리 투항해라! 사냥총을 내려놓으면 황군은 살려준다!”
용천은 “함정이야!” 하고 고함쳤다.
그는 벌떡 일어나 권총을 뒤로 휘두르며 명령했다.
“철퇴!”
헌병과 역습을 받은 30여명 밖에 안 되는 독립군 병사들은 아름드리나무에 기대 사격을 가하면서 수림 속으로 철퇴하기 시작했다. 검둥이도 쩔룩거리면서 성칠을 따라 끄긍거리며 수림 속으로 달아났다.
이때 몇 마리 사냥개 누렁이들이 덮쳐와 검둥이를 둘러싸고 혈투를 벌렸다.
성칠은 피 흐르는 팔을 휘둘러 비수를 날렸다. 제일 앞에서 덮쳐오던 누렁이가 비수에 목을 찔리어 깨갱거리며 푹 꼬꾸라져 버둥거렸다. 그러자 다른 누렁이들은 헌병 놈들 쪽으로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독립군 병사들은 간신히 헌병 놈들과 자위대원 놈들을 따돌리고 기운봉 수림 속으로 철퇴했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의 장막이 내리드리웠다.
영팔은 백마를 탄 한길수 앞으로 달려가 허리를 굽혔다.
“대장님, 더 쫓지 맙시다. 상호가 하는 말이 독립군이 500여명이나 왔답니다.”
“음, 그래. 독립군이 대체 얼마나 왔는지 통 알 수 없군.”
한길수는 뒤에서 끼무라가 말을 타고 다가오자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혹시 독립군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매복습격을 당할 까봐 근심됩니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끼무라는 살기 찬 어둠속의 수림 속을 기웃기웃 살피더니 손을 뒤로 홱 젓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가에레(돌아가자)!”
헌병들과 자위대원들은 독립군을 더 쫓지 않고 저목장으로 허겁지겁 들어가 대문을 꼭 닫아걸고 대갈통도 하나 내밀지 않았다. 다만 보초병과 누렁이들이 저목장 부근을 왔다 갔다 달아 다니면서 삼엄하게 경계할 뿐이었다.
6. 정돈
독립군 병사들은 용천의 지휘 하에 바우돌과 몇몇 병사들이 말을 지키고 있는 기운봉 기슭 수림 속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독립군 병사들은 말을 잡아타고 박달령을 넘어 명천을 거쳐 경성군 수림 쪽으로 전이했다.
용천 중대장은 사형장을 기습할 때 고의적으로 말을 타지 않고 보행했던 것이다. 말을 타면 목표가 쉽게 드러나는데다가 일단 독립군 기병이 드러나면 다른 지역에서 내놓고 말을 타고 행동하기에 불편했던 것이다.
명천지역에 나온 용천이 영솔한 독립군은 20여명 밖에 안됐다. 그러나 성칠이가 성공적으로 영월동 부근의 사냥군들로 포수대를 조직해 대원들을 16명이나 확충해 40여명으로 장대해졌다. 그러자 용천 중대장과 진달래 소대장은 림산파출소와 저목장을 습격할 작전방안을 세우고 기운봉 기슭 수림 속에 독립군대오를 매복시켜놓고 성칠과 상호를 파견해 우시장과 명천 일대 헌병과 자위대 정황 그리고 영월동에 갓선 림산파출소와 저목장 정황을 정찰해오게 했다.
정찰하러 간지 열흘기한이 지났는데도 성칠과 상호가 종무소식이였다. 룡천과 진달래는 조마조마해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성칠이가 홀로 포위를 뚫고 기운봉 기슭에 도망쳐왔던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용천 중대장은 임기응변하여 저목장을 기습하여 상호와 은희를 구출하기로 결정하고 출마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호와 은희를 교살하러 나온 야마모도 놈이 이끄는 헌병과 자위대 20여명 놈들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용천 중대장은 과단성 있게 사형장을 기습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는 샘물터 사형장을 기습할 때 40여명 병사들을 지휘하면서도 대부대가 온 것처럼 “일 소대 좌측으로! 이 소대는 우측으로 포위하라!” 하고 고함쳐 적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습전에서 헌병 서너 놈에 자위대 대여섯 놈을 살상하고 장총 여섯 자루를 노획하였다. 하지만 상호가 장렬히 희생되고 포수대 출신 독립군 병사 덕팔이가 부상당한데다 은희를 구출하지 못했다. 은희는 범의 굴에 갇혀 야수와 같은 놈들에게 능욕을 당할 대로 다 당하고 있을 것은 빤한 일이었다.
용천은 경성부근 수림 속에서 대오를 멈춰 세웠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 성칠을 모든 병사들 앞에서 닦아세웠다.
“이번에 성칠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네. 정찰임무는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개인 복수심에 들떠 뭔가? 사사로이 복수하다가 자기도 붙잡힐 번 한건 둘째고 상호는 놈들에게 처참히 교살됐어. 여기에는 분대장인 성칠의 책임이 크단 말일세. 지휘원은 군사 기율을 지켜야지 뭐야?!”
용천은 성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자네 분대장 직무를 철수하겠네. 잘 반성하라고.”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나를 죽여주오. 상호는 내 때문에 죽었소.”
룡천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자넬 죽이자는 게 아냐.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 군사 기율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독립군에는 두 번째, 세 번째 상호가 처참히 희생될 거네. 곰곰이 반성해.”
성칠은 “알았소. 다신 군사 기율을 어기지 않겠소.” 하고 무겁게 말하더니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진달래는 용천을 한쪽 구석에 끌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상호가 희생돼 비감에 빠졌는데 영월동 부근의 포수대 출신들은 성칠이가 이끌지 않으면 사기 떨어질 거예요. 분대장철직은 다시 고려해보는 게 어떤가요?”
그러나 용천은 단호히 거절했다.
“안 돼. 기율이 없는 군대는 항상 패배만 하게 돼.”
그러자 진달래도 더 말하지 못했다.
용천은 대원들 앞에 와서 말했다.
“이번 상호구출작전에서 하마터면 끼무라의 함정에 빠져 전군이 전멸될 번했데이. 이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데이. 적정을 제대로 정찰하지도 못하고 소홀히 기습한 잘못을 저질렀소. 때문에 나는 중대장을 할 자격이 없데이. 지금 이 시각부터 중대장은 진달래 소대장이 맡으라니께.”
진달래는 용천이 모젤권총을 벗어 주는 것을 밀막았다.
“이러지 마세요. 우리 중대는 김 중대장이 이끌지 않으면 안돼요. 전 산골의 아녀자예요. 집안에서 암탉이 울어대면 재수 없다고 아녀자가 머슴아들을 영솔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용천은 고집을 부렸다.
“아니요. 부대의 군사기율을 엄히 하기 위해 이렇게 하기요. 중대장부터 군사기율을 잘 지켜야 한데이. 이제 만주에 전이해 들어가면 홍범도 장군께 회보하겠어.”
이렇게 되여 진달래가 잠시 지휘를 맡았다.
“부대는 만주로 전이하겠어요. 자, 모두 말에 오르세요.”
진달래의 명령에 모두 말에 올라타고 출발하려 할 때였다.
덕팔이 말에 오르지 않고 두덜거렸다.
“고향에 앓는 아내를 두고 그렇게 먼 만주로 난 가지 않겠소.”
그 말에 동욱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래, 아내 원수도 갚지 못하고 이렇게 떠날 순 없어. 림산파출소에는 아직도 은희가 짐승 같은 놈들에게 능욕을 당할 대로 다 당하고 있어. 은희랑 내 버려두고 절대 갈수 없어!”
그때 용천이 말에서 내려 말했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해요. 그러나 지금 우린 놈들에게 발각돼 언제든지 검둥이가 흘린 피 자국을 따라 우리를 역습할 수 있어요. 우리는 놈들을 두려워서가 아니죠. 신출귀몰전술로 잠시 철퇴하는 거요. 우리가 철퇴했다고 저놈들이 경계가 허술할 때 재차 일망타진할 거예요. 자, 모두들 떠나 가자요.”
그때 진달래가 말에서 내려 덕팔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했다.
“오빠, 아주머니를 두고 간다는 것도 말이 아니요. 철규는 여기 왔기에 다행이예요. 오빠네 아주머니를 데리고 가자요.”
그래도 덕팔은 성칠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형님은 부모와 아내, 동생들과 조카들이 몽땅 고향에 있지 않소? 다 데리고 가야 되오. 놈들은 꼭 우리 가족들에게 보복할 거요.”
모두들 성칠을 쳐다보았지만 성칠은 말을 탄 채 묵묵히 수림 속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용천은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다 내 잘못이요. 포수대 출신 대원들의 가족을 생각하지 못했던 거요. 진달래 중대장과 성칠 분대장 여기 보세.”
용천은 말에서 내렸다. 그는 진달래를 중대장으로 부르고 성칠이를 의연희 분대장으로 불렀다. 성칠과 진달래도 말에서 내려 용천을 따라갔다.
용천은 진달래와 성칠과 상의했다.
“포수대 가족을 버리고 돌아갈 순 없어. 어떡하면 좋겠어?”
진달래와 성칠은 서로 쳐다보면서 한참이나 말하지 않았다.
진달래가 성칠을 마주 쳐다보더니 침묵을 깼다.
“포수대 출신 대원들을 남겨 가족을 보호해 만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용천도 동감이었다.
“맞아, 거 아량 있는 처리야.”
용천과 진달래는 성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성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번에도 개인 복수심으로 경솔히 날뛰다가 결국 상호가 목숨 잃고 은희마저 짐승 같은 놈들에게 짓밟히게 만들었소. 다신 그렇게 경솔히 행동하지 말아야 하오. 비록 가족이 중요하지만 우린 독립군을 보존하는 게 더 급선무요. 우리 독립군이 보존돼야 우리 가족이 영원히 놈들의 능욕을 받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소. 절대 또다시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철거하는 게 옳다고 보오. 이제껏 일본 놈들 앞에서 굴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살아온 아버님이요. 아버님께서는 꼭 놈들을 재치 있게 물리치고 가족을 보호하리라고 믿소. 다만 덕팔의 아내와 은희가 마음에 걸리오. 상호를 잃고 묻어주지도 못했는데 은희마저 잃을 순 없소.”
용천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성칠의 웅숭깊은 생각에 감탄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달래는 이렇게 말했다.
“성칠 오빠의 말도 옳아요. 검둥이 다리에서 흘린 피 자국을 따라 적들이 추격해올 수도 있어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 대원들은 용천 중대장이 직접 영솔해 장백산 근거지로 철거하고 저하고 성칠 오빠가 덕팔과 동욱, 칠백, 가마골의 형만이 그리고 유격대원 바우돌 등을 데리고 가족을 구출하지요.”
용천은 동의했다.
“진달래 중대장 말이 옳아. 나도 남겠소. 나도 진달래 중대장과 성칠 분대장을 사지에 남겨두고 갈수는 없네. 부대는 하루도 지휘관이 없어선 안 돼. 진달래 중대장이 부대를 이끌고 만주로 들어가고 내 성칠 분대장과 함께 여기 남아 가족을 구출하겠네.”
그러자 성칠이 막아 나섰다.
“안되오. 내 가족 때문에 용천 중대장까지 고생시키지 않겠네. 누구나 다 제 가족을 구하다나면 우리 독립군이 언제 작전계획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덕팔이 가족과 은희만 구출하면 되오. 동욱은 안 되오. 아내가 자살한 상처 때문에 냉정하지 못할 수도 있소. 대신 이 지방과 한길수의 집 부근 정황에 익숙한 병수를 남기기요. 우리 가족은 아버님과 기준 동생이 있으니까 근심하지 말게나.”
용천이 과단성 있게 말했다.
“오래 토론할 새 없네. 이렇게 하기요. 진달래 중대장이 부대를 이끌고 장백산 지역으로 철퇴하고 나와 성칠 분대장이 남아서 가족을 구출하기요.”
이렇게 돼 진달래는 말을 타고 부대를 이끌고 장백산 지역에로 전이하게 됐다. 성칠과 용천은 덕팔과 칠백, 동욱, 그리고 바우돌 등을 영솔해 명천 지역에 계속 잠복해있으며 소분대 활동을 하면서 영월동과 운주동 주위의 독립군 가족을 보호하고 구출하기로 했다.
진달래는 말에 오르기 전에 성칠과 용천에게 “안전에 주의하세요." 하고 신신당부 했다.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 근심은 하지 말라. 부대만 안전하게 전이시켜라.”
용천은 진달래의 손을 굳게 잡고 나서 기대에 찬 눈길로 말에 오르는 진달래를 바라보았다.
부대가 진달래 영솔 하에 눈보라가 무섭게 윙윙 휘몰아치는 수림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성칠은 조상이 물려준 비방 오줌 약으로 검둥이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로 했다. 그가 검둥이의 허벅다리에 대고 오줌을 싸주었다. 귀신이 곡할 듯이 즉석에서 검둥이의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다.
“됐네. 이젠 검둥이가 눈 우에 피 자국을 내지 않을 것이니까 우리 뒤를 미행하는 수도 없을 거네.”
용천이 여겨보아도 검둥이가 오줌을 상처에 누어 치료한 후 기적적으로 허벅지에 피가 멎었다. 그리하여 눈 우에 검둥이의 피 발자국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기운봉 기슭 수림 속에 잠복할 수 있었다.
산바람이 터져 장백산의 밀림은 눈보라 속에 뒤덮여 무섭게 아우성치며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영월동 부근에 갔을 때 가마골의 형만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형만은 사냥하려고 포수대에 들었는데 처음으로 마지못해 전투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호가 죽은 것을 본데다가 포수대에서 사냥은 하지 않고 만주지역의 백두산 일대로 철거한다고 하자 고향을 떠나기 싫어 말을 타고 집으로 달아나 숨었던 것이다.
용천은 도리머리 질 하더니 “형만의 집에 찾아가 데려다가 처벌하자.” 하고 말했다.
그러나 성칠은 손을 들어 말리였다.
“놔두게나. 억지로 데려다가 일본 놈들과 싸우게 할 순 없네. 언젠가 그도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우리 독립군에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수림 속에서는 눈보라가 무섭게 아우성치며 하늘을 가릴 듯이 불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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