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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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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
2015년 04월 28일 11시 25분  조회:205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2 고향 마을의 사람들



                     1.샘물터에서 만난 처녀







      서리발 나는 해볕이 개마고원 원시림의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개마고원에는 마가을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별유천지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를 툭 차 박차를 가하면서 령길을 벗어나 적송이 우거진 산비탈을 내리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저 멀리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자 목이 말라 마른 침을 꼴깍 넘겼다. 말배에 처맨 조롱박을 풀어 쳐드니 물방울이 몇 방울이 마른 입술에 떨어졌다. 성칠은 입술의 물방울을 혀로 감빨다 말고 저 멀리 보이는 샘물터에 눈길을 박았다.
    “샘물을 실컷 마셔야 하지.”
    좁다란 골짜기 막바지 샘물터에서 웬 처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물동이에 퍼담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 무명저고리로 감싼 가녀린 어깨 위로 외태머리를 치렁치렁 드리운 처녀, 깜장치마를 입은 처녀의 동실한 뒷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야 있겠는가.
     (은년가? 은흰가?)
      검둥이가 앞서 달려가려는 것을 성칠이 “휙!” 휘파람을 불어 불렀다.
       그는 말을 달리다가 살짝 뛰어내려 살금살금 샘물터로 다가갔다.
       (뒷모습은 은녀와 똑 같은데.)
       성칠이 샘물터의 처녀 뒤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는데도 처녀는 아직도 자취를 모르고 있었다. 성칠은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처녀의 두 눈을 꽉 막았다. 
      “왁!”
    “어마나!”
    후닥닥 놀란 그 처녀는 두 손으로 성칠의 두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 꼭 잡아 푸느라고 안간힘을 다 썼다.
    "누구야? 놔, 놔라니깐!"
    성칠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누구겠꽁?”
    “이걸 놔봐!”
    “맞추고야 놓을 테야.”
     “성칠 오빠겠꽁.”
      “아니다. 은녀야.”
      “그럼? 아냐. 성칠 오빠 맞다. 응응. 이걸 놔.”
     성칠이 아무리 목소리를 숨기려고 하였지만 은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성칠이 두 손을 활 놓자 은녀는 그의 두 손을 잡은 채 돌아앉으면서 쌍까풀눈을 똥그라니 떴다.
     “오빠 맞구나! 나쁜 놈!”
     은녀는 성칠의 넓은 가슴에 주먹을 안기다가 성칠의 가슴을 활 밀어놓았다. 성칠은 준비 없어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얘야, 목이 말라 째지는 것 같다. 물 한바가지를 주렴.”
     “그래요.”
     은녀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사해 와서 남대치 말을 곧잘 했다.
     그녀는 물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푹 퍼서 손바닥으로 바가지 밑에 흐르는 물을 쓱 닦았다.
     "자요."
     그녀는 두 손으로 물바가지를 쑥 내밀었다.
     성칠이 급히 받아 마시려고 하자 은녀가 물바가지를 도로 가져갔다.
     “야,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무슨 장난이야.”
     “아니. 급히 마시지 말아요.”
    은녀는 물바가지에 풀잎을 하나 뜯어 띄워 놓은 후 다시 내밀었다.
    “자, 드세요.”
    성칠은 물을 마시려다가 풀잎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물바가지 안에 웬 풀잎이냐?”
    은녀는 생글방글 웃으면서 종알거렸다.
    “오빠가 바쁜 걸음을 달려온 후 물을 급히 마시다가 얹힐 가봐 그래요.”
    “오, 그래?”
    은녀는 옥 같은 이를 드러내며 쌔물쌔물 웃으면서 성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칠은 물바가지 물에 뜬 풀잎을 후후 불면서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었다.
      “어, 시원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자, 한바가지 더 주렴.”
     성칠이 물바가지를 내밀자 은녀는 샘물을 또 한바가지 폭 퍼 주면서 종알거렸다.
      “자, 드세요. 땅 밑에 샘물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컷 드세요.”
     “그래, 은녀 샘물이 특별이 시원하구나.”
    성칠은 시원한 샘물을 연속 두 바가지나 마셨다.
    “호호호, 괜히 물배만 채우겠소.”
    은녀는 또 한바가지 퍼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성칠은 그 한 바가지마저 다 마시고서야 뒤에 따라온 검둥이 대가리를 쓰다듬었다. 검둥이도 성칠과 은녀를 번갈아보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성칠은 말배에 건 주머니에서 큼직한 곰의 고기덩이를 꺼내서 은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사냥한 거야. 집에 가져다 앓는 아버지한테 대접해라. 이 장꿩 꼬리털 하나만은 기념으로 잘 건사해.”
   성칠이 정색해 말하자 은녀는 귀밑까지 발갛게 상기됐다.
   “오빠, 은희 언니가 알면 괜히 오해하겠어요.”
   “뭘, 오해한다는 거야. 오빠 너한테 주는 건데.  언제 셈평이 들겠니? 또 널 고와하면 뭐라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호호호.”
    은녀는 물바가지를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외면했다.
    가리마를 낸 귀밑에 칠색무지개가 더 곱게 피였다. 이팔청춘의 은녀는 실로 산속 숲속에 피어난 한 송이 함박꽃 같았다. 함치르르한 머리카락아래 짙은 눈썹아래 긴 속눈썹에 어울리게 새별처럼 반짝이며 새물대는 눈, 옥 같은 이, 구김살 하나 없는 빨간 입술,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에 귀밑머리 몇 오리가 흘러내려 가을 산바람에 하느작거렸다.
     “보기는?”
      “보는데 고운 얼굴이 축나니?”
     성칠은 은녀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 넓은 품에 안겼던 은녀는 덴 겁을 한 듯이 바삐 뒤로 물러섰다.
    “놔요. 저기 누가 온다는데도.”
     짐짓 골짜기아래 저쪽으로 눈치하자 성칠은 그 곳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놓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요게 어디서.”
    “호호호, 아저씨가 이러면 되는가요?”
    “그런가? 내 너무 한 겐가? 에크, 저게 네 엄마가 오는구나. 그럼 내 먼저 내려가겠다.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라."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훌쩍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굽이진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은녀는 촉촉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성칠 오빠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골짜기 저 아래에서 한손으로 치마 자락을 걷어안고 올라오는 어머니를 보자 제정신이 펄쩍 들어 물동이를 이고 장 꿩과 곰 고기를 들고 아래로 치마자락이 휘날리게 내리 걸었다.
       은녀가 인 물동이에서 바가지 물동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동 동 동 절주 있게 들려왔다.
       은녀는 금방 있은 분간하기 어려운 일에 생글 웃다가 무거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햇님도 처녀 총각의 이런 연극을 많이 보았으련만 숫처녀의 웃음에 화답이나 하듯이 씨물 웃었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 샘물은 여전히  뭘 조잘조잘 속삭이면서 흐르고 흘러 성칠이 네 집 앞을 굽이굽이 흘러내려갔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면서 어머니를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응삼의 자그마한 주먹 낯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춤 멈춰 섰다.
     “오, 은녀가 돌아왔구먼. 마침 잘됐다.”
    응삼의 이지러진 애호박 같은 낯에 간사한 웃음이 흘러지나갔다. 은녀가 왼손에 쥔 장 꿩에 눈길이 닿자 주름살이 죽죽 간 그의 길쭉한 낯에 음흉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은녀가 집안에 천천히 들어가 장 꿩을 부엌에 내리어 놓고 물동이를 내리어 물독에 쏴- 부었다. 그녀가 동이를 안고 다시 샘물터로 가려고 문 밖에 나섰다.
     그때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엄창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은녀야, 가지 말고 들어오라.”
    은녀가 집 안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쑥 꺼져 들어간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쿨룩 거렸다.
    은녀는 바삐 물동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구들에 올라가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창렬은 응삼을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작은 나리,  딱한 사정을 들어주오. 은녀를 데려가지 못하오. 내 병이 나으면 꼭 그 집에 들어가서 일해 빚을 갚아주겠소. 쿨룩쿨룩.”
     은녀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나더니 이글이글 불타는 눈총을 응삼에게 쏘았다.
     응삼은 개의치 않고 엄창렬에게 호통쳤다.
     “애햄, 그래 자네가 언제 병이 나아서 3년 전에 진 빚을 갚는단 말이요? 약을 쓰겠다고 해서 뀌워줬더니. 참 량심없게 놀아? 은녀가 이젠 저렇게 컸으니 딸 신세라도 져야지 않겠소?”
      부엌 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창렬의 처 명순이 두 손을 마주잡고 통사정하였다.
     “조금만 말미를 줍소. 애 아버지가 저렇게 앓는데 은녀까지 들어가고 나면 이 집 농사는 누가 짛겠소? 딱한 사정을 좀 봐줍소.”
     “그것도 말이라고 해?”
    응삼이 발딱 일어나면서 뾰족한 참새 입을  짹짹거렸다.
     “염치 있소? 신세를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딸년들이 저렇게 컸는데 일도 시키지 않는가? 그래 요리 간에 보낼 예산인가? 은녀 안 되면  은희를 가져가야겠소.”
     납덩이 같은 침묵이 집안에 흘렀다.
     한참 후 응삼이 일어나면서 구렁이 같은 말 한마디 내뱉었다.
     “정 딸년들을 못 들여보내겠으면 처라도 들여보내오.”
     응삼이 엉덩이를 툭 털면서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었다. 응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우멍 눈은 은희의 하얗고 말쑥한 얼굴과 풍만한 젖가슴을 흘끔 곁눈질했다.
     그때까지 아버지 잔등을 두드리던 은녀가 쌍까풀눈을 들어 응삼을 바라보았다.
     “나리,  내 들어갈테니 엄마는 놔 두세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돌려 창렬과 은녀, 은희를 번갈아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오, 그래 참 심청 같은 효녀로구나. 내일 인차 우리 집에 들어오라.”
     창렬이 은녀를 밀치면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저, 나리, 은녀는 죽어도 못 들여보내겠소. 내 눈에 곰팡이가 끼기 전에는 안 되오.”
    응삼은 머리 뒤로 담배연기를 흩날리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독살스레 을러멨다.
    “내일 보내게나. 오지 않으면 이 놈의 집을 허물어 갈 줄 알아라. 퉤! 배은망덕한 놈들.”
    응삼이 삽짝문을 열고 나가자 창렬은 은녀와 은희를 붙안고 잔등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은녀야, 안 된다, 안 돼. 내가 죽으면 죽었지 너희들을 남의  부엌데기로 들여보내지 못한다. 안 된다, 안 돼.”
     은녀는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하얀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뒤이어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헌 까래 위에 눕혀놓았다. 앓는 아버지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은녀의 가슴은 한 오리 한 오리 저며 내는 것만 같았다. 눈물과 땀방울이 흘러내려 은희의 양 볼에 눈물범벅이 된 귀밑머리 몇 오리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때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돌개바람이 사납게 불어쳤다. 순식간에 돌개바람에 창렬의 집 이영이 흩날려 하늘높이 날아났다. 앙상한 연목가지가 퍼런 하늘아래 덩그렇게 드러났다.  먹장구름이 덮쳐오더니 가을비 구질구질 쏟아져 내렸다. 을씨년스러운 하늘아래       집 안에서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천정에서 새 떨어지는 물을 받느라고 분주한 소리, 명순과 은녀, 은희의 흐느낌소리가 반죽돼 상가집처럼 처량하게 귀를 아프게 했다.
    은녀의 남동생 상호는 사내노라고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눈을 부릅뜨고 씩씩 거렸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먹장구름이 흘러가고 가을비 멎자 기러기 몇 마리 끼룩끼룩 슬프게 울면서 날아 지나가고 있었다.
                                          
                                 
                                   

                      2.
부엌녀

     


     가을바람이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하현달을 스쳤다. 처량한 달빛이 영월동을 희끄무레 비추었다. 창렬의 집 지붕이 달빛에 앙상하게 드러났다.
      집 문이 열리면서 은녀가 나왔다.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은녀야, 이 달밤에 어디로 가냐? 그 집에는 못 간다.”라고 하는 창렬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뒤이어 창렬의 처 명순이 뒤따라 나오면서 은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로 가는 거냐? 한씨 댁에 못 들어간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손목을 잡아 마구 끌었다.
     은녀는 어머니의 손을 마구 뿌리쳤다.
     “엄마,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집 기둥을 빼주겠습니까?”
     명순도 더는 말릴 힘이 없어 못이 박힌 듯 우두커니 서서 은녀가 개울가로 내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명순은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개울가에까지 따라 나왔다.
     “얘야, 아무튼 몸을 주의해라. 그 색마 같은 한길수를 주의해라.”
     “나도 다 컸으니 근심하지 맙소.”
     은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저고리 동전을 들어 닦으면서 개울물을 따라 허둥지둥 걸어 내려갔다.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은녀는 그 개울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보자 둔덕 저쪽에 있는 칠성 오빠네 집 쪽에 눈길을 보냈다.   
      성칠 오빠 집의 등잔불빛이 눈물이 고인 은녀의 눈에 희미하게 알른거리면서 뜨였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면서 맥없이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은녀의 귀전에는 성칠 오빠가 말고삐를 잡으면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라.”라고 하던 말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어쩐담? 믿을만한 사람은 성칠 오빠 밖에 없다. 알릴까?)
    은녀는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되 물앉았다.
    “안돼. 내가 들어가서 고생할지언정 성칠 오빠까지 부담시킬 수는 없지.”
    왕 왕 왕!
    성칠네 집 쪽에서 검둥이가 짖어댔다.
     은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들어 피뜩 성칠네 집 쪽을 바라보았다. 등불 빛에 키가 후리후리한 검은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그 그림자는 마당에서 장작개비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빠, 난 어쩌면 좋아? 흑흑흑,”
     은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흐느껴 울다 말고 양태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이 몸이 더 고달프면 고달팠지.”
     은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개울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갑자기 버스럭 소리가 개울가에서 들려왔다. 은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몸을 옹송그리고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킹!
     버드나무숲 속에서 버스럭 버스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검둥이야, 네가 웬 일이냐?”
      검둥이는 뛰어와서 은녀의 치마 밑으로 발등과 장딴지를 핥을 상을 했다. 따뜻한 코김이 발등을 간지럽혔다.
     은녀는 쪼그리고 앉아 검둥이의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다독여주었다. 검둥이는 은녀의 품에 안기면서 끼깅거렸다. 검둥이는 성칠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주인과 은녀의 각별히 친한 사이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검둥이도 마치 은녀의 가련한 처지를 불쌍해하는 것 같았다.
     이때 징검다리 쪽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은녀가 검둥이 잔등을 쓸어주다가 머리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달빛아래 후리후리한 사나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담배불빛이 희끄무레 밝아지더니 성칠의 덩실한 코 마루와 입이 보였다.
     “오빠, 으흐흑.”
     은녀가 뛰어가서 성칠의 품 안에 안기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쓸쓸한 하현달빛을 빌어 은녀의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볼수 있었다.
    “은녀, 웬 일이냐?”
    성칠은 은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검둥이가 개울 쪽에 대고 왕 왕 왕 짖어대자 사냥꾼의 민감한 감각으로 개울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상해 검둥이를 따라 집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은녀야, 어서 말해라. 너 무슨 일이 있구나.”
     은녀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성칠의 품에서 스르르 나왔다. 처량한 하현달빛에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쓸쓸하게 반짝였다.
     이윽고 은녀는 목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한영감이 나를 부엌여로 들여갈 예산이오.”
     성칠은 은녀의 두 팔에서 손을 떼면서 한길수가네 집 쪽에 침을 퉤 뱉었다.
     “그 놈 새끼! 언감 네한테 손을 댄단 말이냐? 들어가지 말라. 그 놈이 감히 어쩌는가 두고 보자.”
     성칠은 열이 올라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 되오. 내가 가지 않으면 길수 놈이 빚 대신 우리 집 기둥을 뽑아가겠다고 했소.”
    “쳇, 그러기만 해보지. 가만 놔두지 않겠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성칠은 은녀의 손목을 잡고 마구 집 쪽으로 끌다시피 했다.
     은녀는 끌려가면서 통사정했다.
     “이러지 마오. 내 이 밤에 가지 않으면 그 번들 이마가 내일 개다리들을 끌고 와서 집을 허물어갈게요.”
    그러건 말건 성칠은 은녀를 다짜고짜 끌고 은녀네 집 쪽으로 향했다.
    “일없다. 내 방법을 댈게. 너를 그 쌍놈 영감태기네 집에 들여보낼 순 없다.”
    “빚을 졌으니 무슨 용빼는 수 있소?”
    그 말에 성칠이도 은희를 마구 끌고 가다가 손을 스르르 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부시를 쳐서 불을 붙여 물면서 개울가 모래바닥에 물앉았다.
     개울물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면서 파란 가을 하늘과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은녀도 성칠의 옆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은녀는 조약돌을 쥐여 애꿎은 모래바닥에 줄을 쪽쪽 그었다.
    이윽고 성칠의 입에서 콘크리트바닥에 쇠공을 굴리는 듯 목소리가 울렸다.
    “은녀야, 한영감의 빚을 물어주면 그만이야. 너는 저 개울가의 버들을 베서 버치를 틀고 나는 사냥을 해서 그 놈의 빚을 말끔히 물어  주고 네 아버지 폐병도 치료해주자.”
   “오빠, 오빠의 마음은 고맙소만 형님과 오빠네 일가에 미안하오.”
    “그런 소리를 하면 못써.”
    하현달이 치마봉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남쪽산등성이는 희끄무레 하고 산 음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그들의 뺨을 시원히 적셔주었다. 어디에서인가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구슬프게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성칠은 동생 창준과 기준을 데리고 창렬의 집으로 갔다.
    성칠은 집안에 들어서자 벽에 기대여 겨우 앉아있는 창렬이를 보고 말하였다.
    “은녀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창렬은 그저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성칠이 바닥에 서서 구들에 올라가지도 않고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사냥을 해서라도 한 씨 댁의 빚을 물어줄 테니 아예 근심하지 마시오.”
    “고맙네. 쿨룩쿨룩. 자네 신세를 쿨룩, 너무 져서. 쿨쿨, 쿨룩쿨룩. 아,”
    창렬은 일어서려고 하였다.
    “천만의 말씀, 이웃사촌이라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얍지.”
    성칠은 성큼 구들에 올라가서 일어서려는 창렬을 만류하며 도로 앉혔다. 조왕간 쪽으로 하여 앉은 은녀 어머니와 은녀 그리고 은희까지 맑은 웃음을 지었다.
    창준과 기준은 형을 따라 밖에 나와 지붕에 올라갔다. 흩날리고 남은 이영을 고루고루 펴놓고 그 우에 새 단을 올려 이영을 잇기 시작하였다. 이때 은녀와 창준의 맏아들 상훈과 둘째아들 상길마저 달려와 새 단을 걸이 대에 걸어 지붕에 올렸다. 상호는 마당에 널린 새를 비로 쓸어 모았다. 기준의 맏아들 상우도 와서 마당에서 새로 새끼를 꼬았다. 여럿이 반나절을 역사 질 한 끝에 새 이영으로 탈바꿈했다.
      명순과 은희, 은녀는 집안 부엌에서 점심차비에 바삐 돌아쳤다. 은녀는 성칠 오빠가 준 장 꿩 깃털을 한대 뽑아 사랑방 천정에 꽂아놓았다. 명순은 그 장 꿩을 뜨거운 물에 튀를 해 곰의 고기와 함께 칼 모태에 놓고 돔박돔박 칼로 썰어 큰 가마에 얹었다.
      은녀가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마에서 쌕김이 쌕 소리와 함께 뿜겨 나왔다.
     창렬은 지팡이를 짚고 마당에 서서 기침을 쿨룩쿨룩 하면서 지붕우의 성칠 네를 쳐다보았다.
     “수고들 했네. 사닥다리를 주의해 내려들 오게나.”
    성칠 네가 금방 사닥다리에서 마당에 내려서기 바쁘게 한길수가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마당에 쓸어들었다.
    “에헴, 하긴 잘하는구먼. 은녀는 들여보내지 않고.”
    번들이마에 중절모자를 삐뚤게 쓰고 거들먹거리는 길수를 보고 기준의 얼굴에서는 언짢은 기색이 유표하게 흘렀다.
    은녀는 벌써 겁을 집어먹고 명순의 뒤에 숨어 두 손을 가슴 위에 맞잡고 서 있었다.
    성칠은 아주 너그럽게 한 씨 댁의 앞에 다가갔다.
    “한영감, 여기는 뭘 하러 행차했소?”
   한길수는 말이발을 앙다물고 투덜거렸다.
   “자네 삐칠 일이 아니네. 병 치료에 남의 돈을 잘 썼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양심이 있는가? 이젠 석삼년이 되도록 본전도 한 잎 갚지 않았단 말이오.”
    그때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우쭐해서 은녀 쪽으로 다가갔다.
     “은녀야, 어서 우릴 따라 가자. 괜히 집 기둥이 뽑히겠다.”
    그때 옆에 서있던 기준이가 어깨로 응삼을 콱 밀쳤다.
    “누가 감히 이 집 기둥을 뽑아간다던가?”
    “내다!”
    한길수는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발길로 짚 기둥을 탁 찼다. 그 바람에 천정에서 흙 부스러기가 우수수 흩날려 떨어졌다. 주먹으로 벽을 꽝 치자 주먹만큼 벽이 우멍하게 패여 들어갔다.
    “어느 놈이 빚을 갚지 않고 내 앞에서 큰소릴 친단 말인가! 엉?!”
   기준이 한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성칠이 막으면서 웃는 얼굴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한 씨 주먹이라면 이 명천 바닥에서 누가 모르겠소? 손가락을 빼  빚을 갚겠소?”
   한길수는 목을 옆으로 삐뚤면서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가?”
    성칠은 한영감에게 다가서 나직이 말했다.
     “한 달만 말미를 줍소. 내 사냥해서 대신 갚아주지.”
     “또 기다려? 안 돼! 오늘 은녀를 데려가야겠네!”
    한길수가 으르렁거리는데 응삼이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가로저으면서 풍을 쳐댔다.
   “그렇지요. 오늘 안으로 저 은녀를 데려가야 하겠네. 데려가구 말구. 흥!”
   응삼은 창렬 쪽으로 박대가리를 돌리더니 뱁새눈을 부라리었다.
    “나으리 벼락 같은 성미를 모르는가? 날래 은녀를 보내라구.”
   그때 기준이 썩 나서면서 들이 댔다.
   “한영감, 대체 빚을 얼마나 졌다고 은녀가 들어가야 합둥?”
   한령감은 개화장으로 땅바닥을 콕 찌르면서 고함쳤다.
   “빚을 진지 석삼년이 되니 이자에 이자까지 120원이네. 30원이면 소 한마리야. 아니, 자네들은 뭔가? 더운밥을 먹고 괜히 식은 걱정하다가 다치지 말게.”
   길수는 머리를 돌리더니 고함쳤다.
   “얘들아, 뭣들 해? 어서 저 은녀를 데리구 가자.”
    하인들이 우르르 쓸어가서 은녀의 양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기준이 힘줄이 꿈틀거리는 팔을 휘둘러 하인의 귀쌈을 짝 갈기면서 땅방울같이 고함쳤다.
    “썩 피키지 못할까? 백주에 감히 남의 양가집 고운 딸을 빼앗아간단 말인가! 엉?”
    한영감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기나 뺨을 맞은 모욕감이 들었다.
    “아니, 저 놈이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네가 감이 내 하인을 쳐? 이 놈아!”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영감이 을러메기만 해도 질겁해 진작 달아났으련만 기준은 떡 뻗치고 서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길수가 덮쳐 와서 개화장으로 탁 내리쳤다. 기준은 개화장을 떡 받아 쥐고 비틀었다. 한영감은 준비 없이 개화장을 휘둘렀다가 뜻밖의 반격을 받아 개화장을 빼앗겼다. 한길수는 중절모자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면서 박 같은 번대 머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에끼, 이 놈, 언감 대들어?!”
    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말았다. 그는 체면을 세우려고 이번에 왼손으로 치는 척하다가 오른 주먹으로 기준의 얼굴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기준이가 날아드는 주먹을 몸을 낮추면서 왼손으로 탁 쳐올려 막으면서 피했다. 뒤이어 날아드는 왼손을 턱 받아 쥐고 비틀었다.
    “애개개, 이 놈이, 울뚝이놈. 애비 같은 사람과 정 버르장머리 없이 노는구나.”
    이때 응삼이 뒤에서  영팔, 수길 등 하인들에게 고함쳤다.
    “자네들은 뭘 하는가? 주인어른이 당하는데.”
     영팔과 수길은 동네방네에 소문난 한다하는 싸움군이였다. 그들은 대판 팔을 걷고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기준아, 그만해라!”
    성칠이 말렸다.
    이때 은녀가 고함치면서 앞에 썩 나섰다.
    “이러지들 맙소. 내 부엌데기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 아니겠소.”
    기준도 한길수도 모두 손을 놓았다. 한길수는 오른손목이 아파 왼손으로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었다.
     “그래, 진작 그래야지. 에이, 팔목껍질이 다 벗겨졌군.”
      한영감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 기준이랑은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고 창렬의 목덜미를 잡아 활 밀쳤다.
     “이게 다 네 놈 탓이야! 죽여치울 놈, 빚을 갚지 않고 저 놈들을 믿고 우쭐대?”
    창렬은 엉덩방아를 찧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그새 응삼이가 땅바닥에 떨어진  중절모를 주어 한길수의 번대머리에 삐뚤게 씌워주었다.
     뒤이어 하인들은 은녀를 붙잡다 싶이 하여 앞세우고 개울 아래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뗐다. 창렬과 명순은 저쪽으로 가면서 이쪽을 되돌아보는 은녀를 보고 땅을 치면서 울었다.
    성칠은 보다가 안 되여 한길수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은녀를 제발 데려가지 맙소. 내 사냥을 해서 꼭 빚을 물겠습구마.”
    “은녀를 먼저 데려갈 테니까. 자네가 사냥을 해서 빚을 물면 그때 다시 내오게나.”
   성칠은 별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기준만은 울뚝 밸을 못 이겨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아무리 빚을 졌다고 남의 딸을 빼앗아가다니. 이 집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산단 말이요?”
    한길수는 개화장을 휘둘러 기준이를 가리키면서 빈정거렸다.
    “아하, 아직도 은희와 상호가 있지 않는가? 저 울뚝밸이 정말 귀찮게 논다니까? 이 담에도 오늘처럼 그렇게 버릇없이 놀다가는 내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줄테다.”
   한길수는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개울 쪽으로 내려갔다.
    저 불쌍한 은녀를 보라. 하인들에게 납치되다 시피 해 개울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창렬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슴을 치면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다 내 잘못이지. 내 빨리 죽었더라면 빚을 지지 않고 살았겠는데. 은녀를 언제 찾아내오겠느냐? 어이구. 내 딸아. 쿨룩, 쿨룩.”
    명순은 남편을 부축하면서 부엌여로 들어갔다. 둘째딸 은희는 저고리 동전으로 눈물이 글썽한 눈 굽을 찍었다.
    상호가 엄마를 달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엄마, 울지 마! 응? 울지 마. 흑, 흑, 흑.”
    그 광경을 보고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칠과 기준은 격분해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
호랑이와의 박투



      이튿날 창렬은 성칠이 준 곰의 열을 내놓으면서 명순에게 분부했다.
      “여보, 이제 늙은 게 더 살아 뭘 하겠소. 이걸 팔아서 빚을 갚고 은녀를 데려 내오오.”
      때마침 성칠이가 문안하려고 집안에 들어서다가 창렬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은 얻기 힘든 귀중한 약잽구마. 곰의 열을 잡숫고 페병을 치료합소. 내 오늘부터 사냥해서 그 빚을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그 곰의 열은 꼭 잡수시오.”
     창렬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꼬장꼬장 마른 곰의 열을 들고 쳐다보였다.
     “이걸 먹기보다 이걸로 은녀를 데려 내오면 얼마나 좋겠소. 쿨룩, 자네가 황소 네 마리 값에 맞먹는 쿨룩, 쿨룩 빚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러오?”
      그러나 성칠은 억대우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고집썼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을 달여 잡숫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성칠은 밖에 나가 적토마에 훌쩍 뛰어올랐다.
    은희는 바깥에 나와 바랬다.
   “오빠, 잘 다녀오세요.” 
     “응, 잘 있어라.”
    성칠은 은희와 상호를 돌아보며 명순에게 다시 인사하고 말을 달려 산으로 올라갔다.
    명순은 은희와 함께 낫과 새끼를 들고 버치 골 쪽으로 내려갔다. 동네 집 성칠이가 사냥해서 자기 집 빚을 무는 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버들을 베다가 버치라도 틀어 팔아서 보태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가을이었건만 참나무가지는 봄기운을 잃지 않은 듯이 물빛이 어려 있었다. 줄기에만 버드나무 잎이 몇 개씩 매달려있는 앙상한      버드나무가지들이 한길수에게 은녀까지 빼앗기면서 당하고 있는 명순 일가의 처지와 같아 가엽게만 생각됐다.
   그들은 물기가 파란 버드나무가지들을 한 줌 한 줌 베여 땅바닥에 모아놓았다.
   한참 낫질을 하다가 명순은 허리를 펴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다했다.
    “호- 성칠에게도 아들이나 하나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옥은 어쩜 애도 하나 못 낳아?”
     그녀는 너무 싱거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허리를 굽히고 낫질을 하여댔다.
    한편 사냥을 나선 성칠은 노루와 꽃사슴을 보고도 범이나 곰을 놀랠 까봐 총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곧추 령을 몇 개 넘어 한 달전에 암 콤을 잡은 그 낭떠러지 위로 말을 타고 올라갔다.
    한참 달리다가 그는 나무에 말고삐를 슬쩍 매놓은 후 바위 위에 앉아 한식경이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곰이 얼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검둥이가 귀를 곤두세우더니 벌떡 일어나 사위를 쳐다보면서 끼깅거렸다. 뒤이어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성칠은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노린내를 맡자 호랑이가 부근에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인차 총에 장탄한 후 바위 옆의 큰 나무 우에 올라가 주위를 신경을 도사려 살폈다.
    “따 웅!”
    얼룩호랑이 낭떠러지 아래로 성큼 뛰어 내렸다. 분명 주린 호랑이가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검둥이가 낭떠러지 아래에서 왕왕 짖으면서 호랑이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유인해갔다.
    호랑이도 그리 쉽게 얼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검둥이를 덮쳐드는 척 쫓아버리고는 곧추 성칠이 바라 올라간 나무 밑에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더니 사발 눈으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호랑이는 나무 우에 걸터앉아 총을 겨냥하고 자기를 노려보는 성칠을 발견하자 “따 웅— ” 하고 울부짖었다.
    땅!
    성칠은 선제공격했다. 철알에 빗맞은 호랑이는 성난 사자마냥 픽 돌아섰다. 사발 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호랑이는 저쪽으로 달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덮쳐왔다. 그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무에 올라탄 성칠의 발밑에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칠의 발밑을 스치면서 바위 저쪽에 풍덩 뛰어넘어갔다. 이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군 했다. 세 번 덮쳐 아가리로 물지 못하자 날아지나가면서 쇠꼬리 같은 꼬리를 휘둘러 성칠을 땅 쳤다. 다행이 꼬리가 먼저 나무줄기에 맞은 후 성칠의 얼굴을 때렸다. 성칠은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대번에 눈앞에서 번개치는 듯 하더니 코앞에서 따뜻한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는 저쪽 낭떠러지아래까지 달아나서 사발 눈을 슴벅이면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칠은 사냥총을 겨냥했다.
      땅!
    호랑이는 또 빗맞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호랑이가 날린 꼬리에 맞아 성칠은 눈에 별찌가 일어나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칠은 팔소매로 뻘건 코피를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참 재수 없군. 끝내 놓쳐버렸군.”
    그는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지어 내리었다.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거리면서 문안이라도 하는 듯이 피 묻은 코앞을 핥았다.
    “검둥아, 일없다. 어서 이곳을 떠나가자.”
    성칠은 말고삐를 풀고 말 잔등에 올라 검둥이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속을 살피면서 수림 속을 빠져나왔다. 가을하늘도 높아진 듯이 명랑해졌다. 저 건너 쪽에 나무가 없는 곳에 감자밭이 보였다.
    “옳지, 놀란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바에는 해 지기 전에 멧돼지라도 잡아가야지. 전번에 덫을 놓은 게 걸렸는가도 가보자.”
    그는 말에서 내려 검둥이 뒤통수를 다독이고 나서 감자밭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볼라니 덫에 거먼 무엇이 걸린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튼 빈손으로야 돌아갈 수 없지.”
    성칠이가 다가가 보니 검둥이만한 중멧돼지 한마리가 덫에 걸려있었다. 성칠이가 그 놈을 덫에서 풀어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성칠은 저쪽에서 삐죽한 주둥이로 땅을 뒤지면서 감자를 파먹는 송아지만큼 한 암 멧돼지를 보고 황급히 감자밭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적송나무밭 쪽으로 뛰어갔다.
    멧돼지도 이쪽 인기척을 느끼자 감자를 파먹다 말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상하게도 멧돼지의 잔등에 애솔나무가 자라나있었다. 분명 멧돼지는 사냥꾼들의 총알이 싫어서 소나무밭에 가서 송진에 대고 몸뚱이를 비비다가 모래밭에 가서 딜딜 굴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멧돼지의 온몸은 송진과 모래알이 들어붙어 철갑을 두른듯하게 됐다. 그 놈 멧돼지는 솔 씨가 송진과 함께 잔등에 들어가 박혀 애솔나무가 자랐던 것이다.
    성칠은 멧돼지가 자기를 완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감자를 파먹는 틈을 타서 뒤로 살금살금 달려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멧돼지 배때기에서 파란 불티가 일었다. 그러나 모래 철갑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총소리에 놀란 멧돼지는 몸뚱이를 홱 돌렸다. 화약 냄새를 맡은 그 놈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성칠에게 덮쳐왔다. 성칠은 미처 장탄을 할 새 없어 총을 버리고 장딴지에 찬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멧돼지가 곧게 덮쳐들자 성칠은 옆으로 살짝 피했다가 비수로 멧돼지 배때기를 푹 찍었다. 철갑 같은 모래철갑을 꿰뚫고 멧돼지 배때기에 비수가 박혔다. 그러나 비수를 되빼기 전에 멧돼지는 홱 돌아서 재차 공격하여왔다. 이때 검둥이가 멧돼지 뒤 다리를 물어뜯고 적토마가 뒤 발질로 멧돼지를 차댔다. 그 틈을 타 성칠은 재차 습격해오는 멧돼지를 피했다. 그는 인차 사냥총을 집어 들고 나무 밭으로 달아났다. 그는 적송나무를 안고 빙빙 돌면서 장탄했다. 멧돼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덮쳐드는 찰나였다.
    땅!
    성칠은 멧돼지의 아가리 안에 사냥총을 넣을 지경으로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멧돼지가 송곳니로 깨무는 바람에 총대는 부러지고 멧돼지는 맥없이 성칠의 앞에 털썩 쓰러졌다. 성칠도 멧돼지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검둥이는 멧돼지가 숨을 쉬는 것을 보고 목을 깨물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았다.
     한참 후 성칠은 멧돼지 배에 꼽힌 비수를 뽑아 배를 가르고 염통과 간, 폐를 꺼내 검둥이에게 줘 먹이고 몸뚱이를 반쪽씩 갈라 말 잔등 양쪽에 척 걸었다.
     그가 말고삐를 잡고 감자밭을 떠나려고 할 때다.
     “그 놈 멧돼지들이 감자밭을 도륙냈구나.”
    백발이 성성한 한 영감이 호미를 쥐고 거의 절단 난 감자밭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백발영감 뒤에 젊은이 대여섯이 호미와 괭이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감자밭을 밟아 못쓰게 만들어 미안합구마.”
    작달막한 영감은 말에 처맨 멧돼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오. 멧돼지들을 잡아서 감사하오."
    성칠은 중멧돼지를 말 잔등에서 내리워 놓았다.
    “이 멧돼지들은 이 감자밭을 파먹고 자란 멧돼지입니다. 가져갑소.”
    그러나 영감은 받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잡은 멧돼지를 가지고 가오.”
    성칠은 “원래 다 드려야 하겠지만요. 남에게 진 빚이 있어 이 작은 멧돼지만 드립니다. 꼭 받아주시오.”라고 했다.
    “보아하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성칠은 한길수네 빚 대신 부엌 여로 들어간 은녀를 빼내오려고 사냥하게 된 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백발영감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멧돼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칠이 억지로 밀어주었다.
     백발영감은 마지못해 멧돼지고기 반쪽을 받으면서 물었다.
    “젊은이, 고향이 어딘가?”
    “이 산 너머 영월동입니다.”
    “오, 그렇구먼.”
   백발영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인사했다.
   “난 운주동 최구장이오. 얘들은 다 내 아들들이요.”
   성칠은 말고삐를 놓고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아니, 젊은이, 이게 웬 일이가?”
    최구장이 바삐 성칠을 붙잡아 일으켰다.
   성칠은 일어나며 “혹시 최구철이라고 압니까?”
   최구장과 아들들이 놀라운 기색을 띠었다.
    “그래. 내 동생이지. 어데서 본적이 있소?”
    성칠은 최구장의 두 손을 잡았다.
   “이전에 구철 삼촌의 신세를 많이 졌습구마.”
   그는 백두산에 갔을 때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넓고도 좁은 게 세상인가 보오. 일본 놈들에게 쫓긴 동생이 백두산까지 들어가 숨은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내게 연루될 까봐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요.”
    최구장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에 맑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칠은 최구장과 갈라지면서 인사했다.
    “삼촌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최구장은 성칠의 두 손을 잡고 반가와 했다.
    "후에 다시 구철을 보면 놀러 오라고 전해주오."
    "예."
    성칠은 최구장 일행과 갈라져 말고삐를 잡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메 부리 코를 쓱 문지르면서 “그 형님이 인심도 후하오. 멧돼지고기 반쪽이나 주다니.”라고 했다.
    둘째아들 경인이 맞장구를 쳤다.
    “함경북도 사람들이 원래 인심은 후한 거야.”
    한편 성칠은 검둥이와 적토마를 이끌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지 않는 수림 속을 걷고 걸어 어느덧 샘물터에까지 왔다.
    그제 날에는 이 샘물터에서 은녀가 떠주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풀었는데 오늘 샘물에는 낙엽이 둥둥 떠 있을뿐이었다.      은녀가 없는 텅 빈 우물을 내려다보노라니 성칠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검둥이는 은녀의 체취를 맡아 보려는 듯이 킹킹거리면서 은녀가 앉아 샘물을 퍼주던 샘물터의 납작한 바위돌이며 흐르는 샘물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말고삐를 쥐고 샘물가에 와서 적토마에게 먼저 시원한 샘물을 실컷 들이켜게 한 후 자기도 두 손으로 샘물을 퍼서 둬 모금 들이켰다.
    그는 손으로 입술을 쓱 닦으면서 저 아래쪽의 한길수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내려다보노라니 이가 갈렸다.
    그는 적토마와 검둥이를 끌고 곧추 엄창렬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마루에서 명순이 치마폭으로 무릎을 덮고 창렬과 마주 앉아 버치를 틀고 있었다.
    서산 버치골 쪽을 바라보니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여보, 성칠이 우리 은녀를 좋아하는 거 같소.”
    “그럼 어떻소?”
    “우리 은녀를 내오면 성칠의 작은댁으로 들여보내면 어떻소?”
    창렬의 말에 명순은 덴겁해서 도리머리질 했다.
    “우리 아무리 못 살아도 본댁이 새파래 살아있는데 첩으로야 못 주지요. 법이 없이도 살 병완 영감도 차마 우리 은녀를 아들의 첩으로 삼자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창렬은 고집했다.
   “쳇, 모르는 소리. 지금 맏며느리 하옥이가 십여년이 넘도록 애를 낳지 못해 속이 타 죽는데 작은며느리를 두지 않고 되겠소. 은녀를 지킬 사람은 성칠 밖에 없소.”
   명순은 영감을 외까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입귀를 비쭉했다.
   “당신네 영월 엄씨와 영월 김 씨는 옛날부터 통혼하지 않는 한 집안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그 말에 창렬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버치 골짜기 쪽으로 해 치마 봉을 올려다보니 벌써 치마봉 위의 구름송이에 불이 달린 듯이 저녁노을이 곱게 피고 있었다.
    “성칠은 언제 오겠냐? 후- 쿨루쿨룩.”
    그때였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성칠이 적토마 고삐를 잡고 마당에 들어섰다.
    창렬의 내외간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명순이 먼저 버들가지를 놓고 치마폭을 한손으로 걷어쥐고 마루에서 황급히 내려왔다. 창렬은 그제야 버들가지를 쥔 채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마당에 내려섰다.
    “잘 있었습둥?”
    창렬은 가냘픈 가슴에 성칠을 안고 떡판 같은 잔등을 어루만지였다.
    “그래,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먼. 이 가슴에 묻은 피는 웬 일인가?”
    “호랑이를 잡지도 못하고 꼬리에 빗맞아 코피를 흘린 것이니 일없습니다.”
    “에이, 안전에 주의하게나.”
    “예.”
    성칠이 말 잔등에서 멧돼지고기를 부리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힘을 보태주지 못하는 창렬은 안타깝기만 했다.
    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이였다.
     “가만, 성칠이. 여기다 멧돼지고기를 부리지 말고 아예 실은 채로 한 영감네 집으로 가져가고 은녀를 데려 내오게나.”
    성칠은 도리가 있는 듯 해 부리던 멧돼지고기에서 손을 뗐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는 중 멧돼지고기 반쪽을 부리어 부엌에 들여갔다.
    “이건 잡수시오. 한영감이 멧돼지 한마리만 받고 은녀를 내놓겠습니까?”
    그러나 창렬은 숨이 차 헐헐거리면서 고집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어. 쿨룩쿨룩, 저 전번에 나를 준 곰의 열까지 다 가지고 가서 통사정해보게나. 난 곰의 열을 먹기보다 은녀를 데려 내왔으면 심병이 뚝 떨어질 것 같네.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을 빼앗기니 가슴이 답답해 죽겠네.”
     성칠은 생각을 고쳤다.
    “곰의 열만은 그만 둡소. 한영감이 내놓지 않으면 내 이제 사냥을 더 해서 한 달 안에는 은녀를 꼭 데려 내오겠습니다.
   명순도 부엌에 들어가 함지에 물을 퍼들고 나왔다.
   “성칠이, 은녀 아버지 말을 듣소. 은녀만 데려 내오면 저영감의 병이 나을게요. 곰의 열을 가지고 가게나.”
   성칠은 함지 물에 손의 피를 썩썩 씻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이 한 영감의 집으로 떠난 후 명순은 멧돼지고기를 베여 함지에 담아 이고 개울 건너 병완이네 집으로 떠나갔다.



                 4. 빚문서


      어둠침침한 어둠이 해를 몰아내고 도고한 토성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공포가 깨난 수림 속에서 승냥이가 주린 배를 신음하면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멧돼지를 싣고 한길수의 토성 안 집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한길수는 마루바닥에서 응삼과 마주 앉아 한창 뭐라고 쑤군거리면서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아니, 어디서 난 적토마야?”
      응삼의 말에 한길수는 기둥에 기대앉은 채 건 가래를 뗐다.
      “에헴, 해 다 졌는데 웬 일인가?”
     성칠은 곧추 마루 밑에까지 말을 몰고 다가섰다.
     “빚을 갚자고 왔소.”
     응삼은 씽 드르르 달려 내려와 말 잔등에 건 멧돼지고기를 말대가리를 기우뚱거리면서 여겨보았다.
    그때 부엌에서 은녀가 문선을 잡고 성칠을 내다보고 반겨 맞았다.
     “오빠!”
     성칠의 곁으로 다가온 은녀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가슴의 피는? 어데 상하지는 않았소?”
     성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길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쇠덩이 굴리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멧돼지를 가지고 은녀를 내놓읍소."
     "쳇!"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마루에 탁 쳐 털어버리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무슨 소릴? 요까짓 멧돼지 고기 120원이나 가?”
     성칠은 반문했다.
    “한 250근은 되는데 안 된다니?”
    응삼은 길쭉한 박대가리를 홰홰 내저었다.
    “안 될 소릴 작작 하라구. 돼지고기 한 근에 50전씩이나 치겠다고? 흥!”
    한길수는 발로 마루를 구르면서 꽥꽥 고함쳤다.
    “걸 장마당에 가져다 팔아 은전을 가져 오게나! 120원에서 한 푼이라도 골아봐라! 은녀를 문밖으로 한 발자국이나 데려 내가겠구나! 흥!”
    응삼은 옆에서 붓는 불에 키질을 했다.
    “주인어른님, 소 한 마리에 30원 밖에 하지 않는데 멧돼지 한마리에 20원에서 더 하겠습둥? 우릴 바보 취급한다니까!”
    “그래, 그래.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우릴 뭘로 보는 거냐?”
    한길수는 돌아서서 잔등을 보이더니 또 대통에 담배를 담아 꿍꿍 다졌다.
    성칠은 품속에서 뭔가 꺼내보였다.
    “자, 이건 백두산에서 자란 곰의 열이오. 이 열을 잡수면 허리 병이고 내장 병이고 다 떨어지구마.”
   한길수는 귀가 솔깃해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점점 성칠이 쥔 웅담쪽으로 낯을 가까이 하면서 눈이 사발만해졌다.
   “이걸 잡수면 또 그 아래게 힘을 쓰오.”
   “그래?”
   한길수는 제꺽 성칠의 손에서 웅담을 뺏다시피 채갔다.
    “그럼 이걸 두고 은녀를 데려가게.”
   성칠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문서를 내다 줍소." 
   그때 응삼이 나서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가만! 그까지 웅담이 백 원이나 된단 말인가? 고까짓 걸로 누굴 속이려고? 저 함박꽃 같은 은녀를 데려가? 안 될 소릴! 흥.”
    월선도 위방 문선을 잡고 내다보다가 혼자말로 욕지거리를 했다.
     "잘 하긴 잘 해. 저 쌍놈 영감태기 웅담을 먹고 동네 간나새끼들 엉덩이를 들쑤시려고? 은녀를 내보내면 누굴 부려먹어? 흥!"
    나그네 귀 석자라고 한길수는 응삼과 월선의 푸념질에 웅담을 쳐들고 은녀와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우멍한 눈에 이상한 눈빛이 번쩍였다.
    “저깟 계집년이야 없으면 말라지. 건강장수야 말로 돈을 주고도 못 바꾸는 게야. 이걸 먹고 오래 살면 다야.”
    응삼은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야단쳤다.
   “주인어른, 어쩌면 만 가지 일을 다 냉정하게 처리하다가도 이 일은 저 놈의 말을 딱 곧이듣고 이럽니까? 진짜 웅담인지 속아 넘어가지 맙소.”
    그러자 한길수는 웅담을 쭉 감빨아보았다. 당장 상을 찡그렸다.
     “아, 쓰다. 진짜 웅담이야.”
    응삼은 어이없다는 듯이 뱁새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길쭉한 상판을 가로저었다.
    “이이고, 주인영감도. 정신 나갔나.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네.”
    찰싹!
   어느 결에 한길수가 그의 귀 쌈을 얼얼하게 갈겼다.
   “어디서 개 주둥아리 질이냐?”
     응삼이 한대 맞고 뱁새눈을 떴을 때에는 노기등등한 한길수가 눈깔을 부라리면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길수는 웅담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뒤로 홱 저으면서 고함쳤다.
     “개자식, 누가 정신 나갔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얼빠진 놈이라고. 어서 빚 문서를 내다주고 멧돼지고기나 부엌에 들여가!”
    월선은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저면서 살진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영감을 따라 집안에 들어갔다. 응삼은 얼얼해나는 볼을 매만지면서 옆채에 들어갔다.
    성칠은 멧돼지고기를 부엌에 메 들여 다주고 은녀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은녀는 성칠의 옆구리에 바싹 다가가 붙었다. 평소에 그렇게 으르렁거리면서 우쭐하던 응삼은 한풀 꺾인 채 빚 문서를 꺼내다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성칠은 빚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활 팽개치고 은녀를 데리고 적토마를 끌고 대문 밖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응삼의  개 짖는듯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짜 웅담을 먹고 우리 주인 영감 그게 맥을 쓰지 못하는 날엔 가만 놔두는가 봐라. 흥! 제길 할, 재수 없을러니 별 일을 다 본다. 쳇!”
    그 욕지거리에 대꾸하는 듯이 검둥이가 돌아서서 “왕, 왕, 왕!” 무섭게 짖어댔다.




                              5. 치마 전설




     높은 가을하늘에서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고 나와 조약돌을 치고 박으며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에 은파를 뿌렸다. 저기 치마봉 양지쪽에도 은빛이 희끄무레 깔려있었다. 호랑이의 울부짖음 소리가 먼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성칠은 은녀를 데리고 개울 물가를 걸었다.
     “은녀, 우리 여기서 좀 쉬어 갈까?”
     은녀는 별빛이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오빠, 사냥을 갔다가 와서 곤하지는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버들잎을 주르르 훑어 버렸다. 그는 적토마를 버드나무가지에 매놓고 은녀에게 물었다.
    “일없다. 치마봉 전설을 들어 보겠니?”
    은녀는 어린애처럼 환성을 올렸다.
     “난 오빠 얘기를 듣기 좋아하오. 어서 얘기해주오.”
     그리하여 그들은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을 마주하여 버드나무아래 제방 둑에 나란히 앉았다.
    성칠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제법 옛말을 할 잡도리였다. 은녀는 두 무릎 우에 턱을 고이고 손가락으로 모래에 줄을 족족 그으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저 치마봉을 봐라. 얼마나 치마폭 같이 생겼냐?”
      그들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멀리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래는 퍼지고 우는 짤룩하고 치마 주름처럼 내리 발로 바위돌이 들쑥날쑥 박혔다.
      “그렇다고 보니 정말 치마폭 같소.”
     은녀가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성칠은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은녀가 담배쌈지를 빼앗다 시피 했다.
     “내 말아줄게.”
     은녀가 담배 대를 자기 입에 대고 침을 쪽 발라 종이를 말아 꼭 싼 후 성칠의 입에 쏙 밀어 넣어주었다. 성칠은 은녀의 침이 붙은 따뜻한 담배를 붙여 길게 빨아들였다. 특별히 담배 맛 있었다.
     "고맙다."
    “고맙긴? 난 오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소.”
    “에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오빠라는 게 여동생이 승냥이 입에 들어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어서야 되니?”
     은녀는 성칠의 팔을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 그때 버들방축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들렸다.
    “음. 저기 짐승이 온 모양이구나. 사냥총을 한방 놓을까?"
    은녀는 황급히 말렸다.
    “아니, 그러다가 누가 상하면 어쩔 라고 그러오?"
    더욱 요란하게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검둥이가 뛰어가자 그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이상한건 그쪽으로 뛰어간 검둥이가 한 번도 짓지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이쪽으로 뛰어온 것이다.
     성칠은 십중팔구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고 바로 앉았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가 후 내 뿜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녀는 세운 한쪽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성칠의 옛말을 귀담아 들었다.
      뒷산 수림 속에서는 뻐꾸기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우는 소리 귀청을 처량하게 간질렀다.
      “멀고먼 옛날에 이 버치꼴에는 소를 모는 목동이 살았단다.”
     목동은 어찌나 피리를 잘 부는지 그 구성진 피리소리를 듣고 새들마저 날아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런데 목동은 나이가 들도록 이 심심산골에 시집오려는 처녀가 없어서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으로 되었다.
    어느 하루 목동은 소를 몰다가 너무 더워 이 개울물에 와서 목욕이나 하려고 버드나무를 헤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글쎄 그때 하늘에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선녀가 둘이나 너울너울 춤추면서 내려왔다. 너무 황홀해 그 선녀들을 쳐다보는데 선녀들은 너무 더워서 주위를 대충 살펴보고서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훌훌 벗어버리더니 개울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기 시작했다.
      처음 눈같이 하얀 선녀들의 몸을 훔쳐본 목동은 목구멍에서 쿵쿵 소리가 날 지경으로 심장이 높뛰었다. 선녀들은 옥같이 흰 살을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물을 서로 끼얹으면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때 목동이 모는 소 무리에서 늙은 암소 한마리가 나서더니 이렇게 귀띔했다.
     “주인님, 저 선녀들 속에서 더 고운 선녀의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숨겨두면 주인님의 천생배필은 문제될게 없소이다.”
     그 말에 어진 목동이었지만 장가들 생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훔쳐 산 둔덕의 숲속에 숨겨두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 선녀들을 궁전에 돌아오라는 령을 내렸다.
    다른 선녀들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자 하늘로 날아올랐건만 한 선녀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가 없어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다. 목동은 선녀를 보고 자기와 천년배필을 무을 것을 약속하면 치마를 내주겠다고 했다. 선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목동의 까만 얼굴을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로부터 선녀는 저 버치 꼴에 삼을 심어 삼베로 베천을 짜고 버들을 베 광주리와 버치를 틀면서 목동과 함께 잘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한창 깨알이 쏟아지게 살 때 선녀가 인간 세상에 숨어서 사는 것을 알고 옥황상제는 심부름꾼들에게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심부름꾼은 하늘에서 내려오자마자 선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동이 아무리 소리치고 선녀가 아무리 발버둥 질 쳐도 소용없었다.
     이때 늙은 암소가 목동을 보고 자기 등을 타고 풀썩 솟아오르라고 했다. 목동이 정말 그렇게 하였더니 몸이 하늘로 씽씽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거의 따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심부름꾼은 다시는 선녀를 날지 못하게 선녀의 연분홍치마를 벗겨 내리 던졌다. 그런데 뒤따라 날던 목동의 몸이 그 연분홍치마에 감기여 더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땅에 떨어진 선녀의 연분홍치마가 굳어져 저 치마 봉으로 됐단다.”
      성칠의 말에 은녀는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럼 그 목동은 저 치마봉에 깔리어있단 말이오?” 
    “그래, 그러나 목동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 죽어서도 사랑하는 선녀의 치마폭에 싸여 묻혔으니 말이다.”
    “호- 어쩜 저 치마봉에는 그런 눈물어린 전설도 있어요.”
    개울물이 돌돌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가에는 나그네와 처녀의 한숨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한참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성칠은 은녀의 따뜻한 손을 더듬어 잡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은녀, 난 너를 고와한다.”
     “어마나!”
     은녀는 외마디소리를 가늘게 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돌아앉았다.
     “어째? 넌 나를 좋아하지 않지?”
      성칠의 물음에 은녀는 손을 성칠에게 맡긴 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홧홧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숨기면서 나직이 말했다.
      "누가 좋아하지 않는다 했소? ”
     성칠은 은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안고 은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달빛을 빌어 은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버드나무 그림자에 희미하게 가려진 은녀의 얼굴이 그렇게도 예쁠 줄은 몰랐다.
     “넌 처녀이구 난 아내가 있는 나그네야. 그런데 나는 아들도 딸도 없을 놈이야. 우린 저 치마봉 전설의 목동과 선녀처럼 함께 살수 없는 게지?”
     성칠의 애탄 목소리에 은녀에게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그네면 어떻고. 처녀면 어떻대? 아들딸만 많이 낳고 잘 살면 좀 좋아서.”
     성칠은 화들짝 놀랐다.
      “은녀야!”
     성칠은 은녀를 꼭 껴안았다. 은녀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나 성칠은 맥없이 팔을 풀었다.
     은녀는 성칠의 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성칠의 구레나룻수염이 짙은 성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또 뭣이 두렵소?”
     성칠은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안 된다, 안돼. 우리는 함께 살 수 없어. 내 큰아버지는 우리 영월 김 씨 집안과 너네 영월 엄 씨네는 통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은녀는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었다.
    "왜? 우리 두 집안이 전생에 무슨 원쑤라도 맺았다오?"
   애탄 건 성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한탄했다. 
    "아니야.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하구 같단다. 그러나 통혼은 안된단다."
    "왜?"
    은녀는 종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쾅쾅 치며 물었다.
    "500년 전에 우리 집안 김려생할아버지하구 너네 조상 엄흥도 할아버지가 목숨걸고 리조 단종왕을 보호했지. 그 두분 충신할아버지들이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 같다면서 그때부터 서로 통혼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때면 그때지. 500년 후에도 그 언약 따를 건 뭔가요?"
    "우린 대대로 조상들의 언약을 무조건 지켰단다. 지금도 절대 못 고쳐."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말없이 은빛달빛이 깔린 한 많은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오-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이야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고 밸이 끊어지는 것만 같을 것이였으리라.
    달도 차마 눈 뜨고 보기 구슬펐던지 구름 속으로 외면했고 개울물이 구슬프게 돌돌돌 흐느끼면서 흐르고 있었다. 적토마는 배가 고팠던지 성칠과 은녀의 잔등에 대고 투루루 뜨거운 입김을 뿜었다. 검둥이도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길을 재촉했다.
    성칠은 흐느끼는 은녀를 데리고 버치꼴 막바지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 발자욱마다 애잡짤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 피눈물로 그들의 어울리지 않은 사랑의 애탄 가슴을 잠시나마 식여줄 수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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