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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4권(79) 류씨네 애비와 아들 김장혁
2024년 11월 28일 10시 59분  조회:1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황혼 제
4
 
                 김장혁


      79. 류씨네 애비와 아들





   모든 일을 마무리짓자 류덕재는 짝통핸드폰으로 아들 류문도를 별장에 불렀다. 관건적인 시각에는 그래도 아들이야 말로 젤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이윽고 키가 훨칠한 30대 말의 류문도가 별장 객실에 들어섰다.
   류덕재는 마주 나가 아들을 꽉 끌어안았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 아들의 길죽한 얼굴을 쳐다보면서 울먹였다.
   “나무 잎은 떨어져도 뿌리에 떨어지는 법이야. 내 죽으면 이 숱한 별장과 황금을 관에 넣어가지고 가겠니? 몽땅 너와 손자들한테 넘겨줄테다.  헌데 난 이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몇번 볼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다.”
   류문도는 퉁사발눈이 데꾼해져 애비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 황급히 물었다.
   “아빠, 도대체 무슨 일 생겼습니까? 아들이 있는 한 어느 놈이 아빠를 어쩐다고? 말하십시오. 누가 아빠를 건드립니까? 그 놈을 당장 없애 치우겠습니다.”
   류덕재는 아들의 손을 잡고 쏘파에 가 앉았다. 그는 미더운 눈길로 아들을 마주 보았다.
   “너무 충동하지 말라. 이 일은 랭정하고 침착하게 손 써야 한다.”
   류문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 놈입니까?”
   류덕재는 핸드컴퓨터를 열고 류기자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켰다.
   류덕재는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고나서 나직이 말했다.
   “넌 직접 나서지 말라. 네까지 련루되는 날엔 우리 류씨 집안이 망한다. 젤 좋긴 돈을 팔아 깡패들을 시키는게 좋을 거 같아.”
   류문도는 머리를 끄덛였다.
   “내가 알아서 처결할테니깐. 근심하지 마십시오.”
   류덕재는 길죽한 말상을 류문도 귀에 갖다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근덕거렸다.
   “신문사 전임 부사장 리종호라고 있어. 그 놈이 날 돈을 얻어먹었다고 감찰국 전임국장 최혜영이란 저승사자한테 고발했어. 너네 류려평 고모도 그놈한테 물려서 한국에서 붙잡혀 지금 구류소에 갇혀 있다.”
   “개새끼, 가만 놔두지 않겠어.”
   류덕재는 음흉하게 말했다.
   “꼬리를 남기지 말고 해치워야 해. 살인하지 말고 다리갱이나 분질러놓으면서 날 더 물지 못하게 경고해야 해.”
   “안됩니다.”
   류문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아빠를 물지 말라고 경고하면 우리 시켜 때려눕힌 걸 알텐데. 아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치우면 말끔하게 끝날 건데.”
   류덕재는 뒷근심이 앞섰다. 그는 말상을 가로 저었다.
   “안돼, 절대 살인은 하지 말라. 내 죽어선 괜찮다. 허나 네가 살인죄에 련루되는 날엔 우리 류씨 집안이 망한다, 망해. 너와 손자들은 아버지  유일한 희망이야.”
   류덕재는 류문도 귀에 대고 나직이 쑤근거렸다.
   “리종호, 그 놈이 다신 고발하지 못하게 뇌진탕에 걸리게 해놓으면 다야. 쇠파이프 같은 둔기로 대가리를 쳐서 병신을 만드는게 어떠냐? 절대 숱한 형제를 부르지 말라. 사후에 말이 새나가면 어쩌니? 젤 믿는 형제  하나만 골라 거사를 딱 맡겨라.”
   류문도는 애비의 로련함에 탄복했다.
   “네- 그게 좋겠습니다. 알아서 그 놈을 처결할테니 근심하지 맙소.”
   류덕재는 별장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거사를 맡긴 형제한테 이 별장을 줘라.”
   류문도는 쏘파에 잔등을 대면서 아까와 했다.
   “필요없습니다. 황금 한덩이 주지요.”
   “아니야. 아까워하지 말라. 목숨을 건 동생인데. 우린 재물을 아끼지 말고 이번 위기를 넘겨야 해. 알만 해?”
   그제야 류문도는 이번 일이 그저 사고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머리를 끄덕였다.
   류덕재도 아들이 그 일을 말끔히 처결하리라 믿었다. 이제껏 그는 막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절대 아들의 손을 빌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 일가의 생사와 관계되기에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되였다.
   그의 아들 류문도는 시내에서도 소문난 깡패두목이니깐. 류문도는 애비 덕에 아무 직업도 없이 돈을 흔자만자 쓰면서 세상 못된 짓을 다 하고 주색이나 밝히는 건달이었다.
   류문도는 애비한테 물었다.
   “리종호라던가? 그 놈 용모팍과 주거지를 알려 주겠습니까?”
   류덕재는 탁자 위 핸드컴퓨터에 류기가 저장한 동영상을 돌리면서 리종호를 가리켰다.
   “이 놈이야.”
   류문도는 깜짝 놀랐다.
   “이건 고모부 아닙니까?”
   류덕재는 이빨을 사려물었다.
   “아니야! 이 놈은 배신자야! 류려평 고모와도 이미 리혼했어.”
   류문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이럴 수가?! 그렇게 죽자 살자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고모부가 원쑤로 되다니? 참.”
   “짐작하기 어려운게 세상 인심이야. 이 세상에 영원한 친구는 없어. 그러게 가까운 형제라도 속을 다 드러내선 안돼.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 때 있으니깐. 이 동영상은 리종호란 놈이 전람관 박나영이란 관장을 취재할 때 장면이야.”
   류문도는 짝통핸드폰을 꺼내 리종호 용모를 촬영했다. 동영상 그대로 촬영도 하고 단독 사진으로도 몇장 촬영했다.
   “알았습니다. 개놈새끼 대갈통을 까부셔 놓지 않는가 봐라.”
   류덕재는 황망히 손사래쳤다.
   “살인은 절대 안돼. 손 쓸 형제한테 사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말라. 뭐나 여지를 둬야 해. 한번에 안되면 재차 암해하더라도. 절대 죽이진 말라.”
    “근심하지 마십시오.”
   류문도는 애비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 놈 주거지는 어딥니까? 이전엔 신문사 부근 그 조꼬만 집에 있습니까?”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문사 부근 그 조꼬만 아파트를 팔아버렸다니깐. 그 놈은 습관대로 자기 익숙한 신문사 부근 려인숙에 들지 않았겠는지 모르겠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바다에서 바늘을 건져내서라도 들춰내야죠. 그 놈을 꼭 찾아내 정신나간 병신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나중에 류덕재는 류문도 두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문도야. 넌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야. 내 목숨과 같애. 너와 손자들은 내 유일한 미래이자 희망이야.”
   류문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 알만합니다. 아버지도 내 기댈 유일한 산입니다.”
   류덕재는 상냥한 빛이 어린 외까풀눈으로 아들을 정겹게 마주 바라보면서 정색했다. 한뉘 평생 교활한 류덕재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해왔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만은 속을 터놓고 진정에 담긴 말을 했다.
   “속담에 나무 잎은 떨어져도 뿌리에 떨어진다고 했다. 이젠 예순고개를 넘은 이 못난 애비는 죽어도 괜찮다. 허나 넌 아직 새파란 나이에 손자들을 데리고 우리 류씨네 집안 향불을 이어가야 해. 알만하니?”
   류문도는 애비 손을 활 놓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하십시오. 왜 그리 심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린 아버지를 무는 사악한 개들의 이빨을 몽땅 뽑아버리고 활개치면서 살아나갑시다.”
   류덕재는 머리를 끄덕였다.
   “기세등등한 네 말을 들으니 신심이 생긴다. 시당위 서기를 하신 할아버지께서 계시기만 해도 주먹을 휘두르는 하책을 대지 않아도 되겠는데. 나도 퇴직했지. 좀 례사롭지 못하구나.”
   류문도는 정치는 개뿔도 몰랐지만 선물을 한꾸레미씩 들고 할아버지와 애비를 찾아오던 숱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승급한 사람들이 숱해 있잖습니까? 이럴 때 그 사람들 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면 안됩니까?”
   류덕재는 길쭉한 말상을 절레절레 저었다.
   “딱 그 사람들만 믿어선 안돼. 사람이란 살아가노라면 뭐나 여지를 두고 빈틈없이 여러가지로 궁리해야 해.”
   그는 삐죽한 개 턱을 고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계시고 내 조직부장 자리에 있을 땐 아첨하던 사람들 중에 몇이 은혜를 잊지 않고 의리심을 지켜서 이번에 나서겠는가는 건 아직 미지수야. 정치라는 건 그래. 내 권력을 쥐고 있을 땐 허리를 꼽싹거리면서 아부하지만 일단 자리를 내기만 하면 개 닭을 쳐다보듯 하는 자들이 많아. 그런 자들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어. 우린 모든 걸 그래도 자기 재물을 아낌없이 퍼주고서라도 이번 고비를 넘겨야 해. 그래야 우리 류씨 집안을 지켜낼 수 있어. 내 말을 명심해라. 사람이 살아 있으면 재물이야 또 생기는 법이지.”
   류문도는 애비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일단 머리를 끄덕이었다.
   “아버지 교시를 명심하겠습니다.”
   아들놈이 자기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을 보자 류덕재는 가슴 속에 오래동안 숨겨뒀던 말을 꺼냈다.
   “문도야, 사람 일은 모른다.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네한테 이 말을 미리 해두는게 옳은 거 같다.”
   류문도는 애비 길쭉한 말상을 쳐다보았다. 어째 정색한 외까풀눈이랑 이상했다.
   류덕재는 류문도한테 다가가 나란히 앉더니  두 손을 꼭 잡고 나직이 말했다.
   “얘야, 할아버지 산소를 정성들여 모시면서 잘 지켜라. 할아버지 산소 유체 옆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평생 모은 황금을 금고에 넣어 파묻어두었다.”
   류덕재는 열쇠뭉치를 탁자 위에 척 내놓았다.
   “자, 이걸 받아라. 금고 열쇠야.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네가 그 황금으로 우리 류씨 집안을 굳세게 이어나가기를 바랄뿐이야. 할아버지와 난 널 믿는다. 너를 믿기에 황천에 가서라도 눈을 감겠다.”
   류문도는 금고 열쇠를 받아들고 속으로는 감지덕지했지만 그래도 례의를 지켰다.
   “아버지, 왜 벌써 이런 말씀을 합니까? 별로 유언을 남기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류덕재는 류덕재 어깨를 다독이면서 눈물까지 글썽해 말했다.
   “문도야, 아버지는 조직부장도 해보고 은행 행장도 해보았다. 또 적젆은 돈도 벌었다.”
   류덕재는 이런 자랑도 늘여놓으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숱한 아가씨들도 데리고 실컷 놀았다. 미국 아가씨, 로씨야 아가씨, 일본 아가씨, 태국 아가씨, 한국 아가씨, 영국 아가씨, 네덜란드 아가씨, 국내 각 민족 아가씨들을 몽땅 데리고 실컷 놀아봤다.”
   그는 색마였지만 자식한테도 여지를 두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그만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 향락을 다 누려봤다. 이젠 볼 장을 다 보았구나. 사람이 실돌피처럼 약하게 비실거리면서 오래 살아 무슨 멋이 있겠느냐? 짧게 살아도 가질 거 다 가지고 먹을 거 다 먹고 누릴 향락 다 누리면 그게 제일이야. 이젠 아버진 당장 죽어도 한이 없다.”
   류덕재는 독기어린 외까풀눈을 희번뜩이면서 이를 쁘득쁘득 갈았다. 진짜 서슬이 시퍼런 칼날 같아 공포를 휘몰아왔다.
   “네 아버지도 만만친 않을 거야. 난 우리 류씨 집안과 후대들을 위해 거치장한 놈들을 몽땅 제거할 거야. 정 안되면 최후발악도 할 거야. 그러나 넌 손자들을 봐서 절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하진 말라. 넌 이제부턴 쩍하면 주먹을 휘두르지 말고 머리를 많이 써서 꼭  지혜롭게 우리 류씨 집안을  지켜야 한다. ‘不要武斗,要文斗’。알만하니?”
   류문도는 아버지 두 손을 꼭 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네, 아버지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류덕재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자기 어릴 때처럼 까불면서 싸움만 하지 말고 공부 잘해 출세하라고 이름도 류문도(刘文道)라고 지었다. 그러나 류문도는 닮은 데 없겠는가. 딱 애비 어릴 때 처럼 공부에는 빼돌이고 싸움질에 이골이 튼 건달로 자라났다. 나중에 집에 걸 다 내다 퍼주면서 숱한 싸움군 친구들을 친해 무리싸움까지 하는 우두머리로 돼버렸다. 장가를 가면 낳겠는가 했는데 애 애비 돼도 그새 장새였다. 그러나 이번에 류덕재는 창피한대로 싸움군 아들을 써먹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이 별장이랑 부동산은 다 남의 걸 받아먹은게 돼서 꼬리 밟히기 쉽다. 의리를 지키는 형제들한테 훌훌 나눠주고 이번 일을 부탁해라. 그리고 저기 커다란 금고에 있는 황금덩이도 이번 고비를 넘기는데 쓰고 나머진 할아버지 산소에 금고채로 기름종이와 비닐박막에 싸서 파묻어라. 산소에 묻어두는게 어디다 두기보다 젤 안전하다. 누구도 거기에 묻어두리라고 생각도 못할 거야.”
   류문도는 애비를 믿음과 존경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음험한 류씨네 애비와 아들은 오래도록 음흉하고 섬찍한 꿍꿍이를 하나, 하나 빈틈없이 꾸며 나갔다.
바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소리 하늘 땅을 들었다 놓았다.
   우르릉 꽝꽝!
   저게 뭔가?
   생벼락이 별장 울안의 늙은 비술나무를 탁 쳤다.
   생벼락을 맞은 고목에 퍼런 불이 달려 활활 타올랐다.
   팔뚝만큼한 나무가지들이 뚝, 뚝 끊어져 비물이 질벅한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늘도 땅도 그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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