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릉.
철창문이 아츠러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류려평, 나왓!”
류려평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젠 국내에 인도되는가? 아님, 한국에서 판결받는가?)
여탐관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 굴리었다.
나영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근심어린 눈길로 려평을 건너다 보았다.
“나영이, 내 혹시 돌아오지 못하겠는지 모르겠는데. 한가지 부탁하기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류려평은 나영한테 다가가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누가 물어 봐도 꼭 우리 대부금 사건 내막을 말하지 마오. 일단 모든게 밝혀지면 우린 다 죽어. 알만 해?”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근심마오.”
이때 여경이 호통쳤다.
“류려평, 빨리 나오지 못해?! 뭘 꾸물거려?”
그러나 류려평은 들었는둥 만둥 나영한테 다가가 또 두툼한 입술을 벌렸다.
“한가지 증명 서주오. 내 종호를 안락사시키자고 염화칼리움을 링겔에 주사했다는 걸 증명 서주오.”
“빨리 나왓!”
여경이 호통치며 다가왔다.
나영은 의아한 눈길로 류려평을 치켜보았다.
류려평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부탁하기오.”
류려평은 “그래야 난 살아남게 돼.” 하고 뒷말을 하고 싶었지만 촉기 빠른 여경한테 들키울가 봐 그만 뒀다.
나영은 류려평의 저의가 뭔지 제대로 해득하진 못했지만 이번에도 순순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두 여경이 다가와 류려평의 손목에 쇠고랑이를 철컥 채우고 량팔을 붙잡고 복도로 나갔다.
류려평은 여경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 중국에 인도해가는 건가요?”
여경은 새침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가 보면 알 거요.”
“잔말 말고 걸엇!”
“한국 법원에서 판결하는 거 맞죠?”
여경은 시끄러워 류려평의 팔을 홱 나꿔챘다.
“작작 헛소리 치고 빨리 걸어!”
여경들은 류려평을 지하신문실에 끌고 갔다.
드르릉.
심문실 철문이 아츠러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먹칠한듯한 지하심문실은 어데가 어덴지 눈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여경은 류려평을 쪽걸상에 앉혀놓고 류려평의 뒤 량쪽에 벌려 섰다.
강렬한 탁상등이 눈이 시리게 가까이에서 류려평의 유들유들하게 살진 얼굴을 비췄다.
남경장은 가까이에서 여살인마 류려평의 낯빤대기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퉁퉁한 낯빤대기에 살이범의 살기와 심술이 차넘쳤다.
류려평은 쇠고랑이를 찬 손을 들어 눈을 가리었다.
“탁상등을 좀 멀리 가져가면 안돼요? 얼굴이 다 뜨거워나요.”
그녀는 류창한 서울말씨로 애원하듯 말했다.
“흥, 죄범 주제에 모슨 소리야? 묻는 말이나 대답해.”
조명등은 더 가까이 다가와 낯빤대기 다 뜨거워났다.
“한국 경찰은 최저한도의 인도주의도 없군요.”
남경장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데 무뚝뚝하게 날카로운 질문이 터져나왔다.
“성명?”
“류려평입니다.”
“년령?”
“63세.”
“국적?”
“중국.”
“남편 이종호씨를 안락사시키려고 한 죄를 승인하는가?”
류려평은 진작 준비한대로 대답했다.
“네. 살인미수죄를 승인합니다. 남편 리종호를 천천히 안락사시키려고 했습니다.”
“무슨 수단으로 안락시키려고 했는가?”
“병실에서 종호가 맞는 링겔병에 염화칼리움을 주사해 죽이려고 했습니다.”
“염화칼리움은 어데서 구한 건가?”
“내 일하던 병원에서 지인을 통해 구한 건데요.”
“지인은 뭘 하는 사람인가?”
“한 병원 지하동려입니다.”
남경과 류려평의 대화 소리에 컴퓨터 건판을 치는 소리 급촉하게 뒤따랐다.
남경장의 심문은 날카롭게 진행됐다.
“이전에 중국에 있을 때도 이종호씨의 음식물 같은 데 염화칼리움 외 다른 독약을 투약한 적은 없는가?”
“없습니다, 중국에선 절대 없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종호를 살해하려는 마음까진 없었습니다. 우린 비록 리혼하지 않았지만 갈라서 산지도 오랩니다. 투약할 기회가 있었으면 그 놈을 죽이려고 한국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겠는데…”
“왜 남편을 살해하려고 했습니까? 살인동기는 무엇인가요? 후회되지 않습니까?”
류려평은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들먹이며 너부죽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훔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악처는 마녀처럼 미친듯이 으르렁거렸다.
“종호를 살해하려 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놈을 죽이지 못하고 여기 들어온 걸 후회할뿐입니다.”
뒤에 선 여경들은 너무나도 섬찍해 류려평을 쏘아보았다.
악처의 악에 찬 진술은 계속 됐다.
“종호는 진작 죽어야 돼요. 그는 바보, 멍청이, 악마입니다. 그는 진작 죽어야 했습니다. 그는 내 인생을 망가뜨린 악마입니다. 나는 그 놈한테 시집 와서 인간세상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습니다. 세집살이 쓴맛도 보았고 졸혼의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 놈은 우리 가정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집마저 팔아 책을 낸 그런 미친 놈입니다. 그 놈의 마음 속에는 가정도 없고 처자도 없습니다. 안해라는 건 그저 남자의 정열을 빼는 도구로 여겼습니다. 내가 극구 리혼자는데도 날 딱 붙들고 리혼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한평생 고통과 눈물, 괴로움만 준 놈입니다. 그런 놈은 진작 죽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싹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만!”
남경은 류려평의 열변을 제지시키고나서 요점만 질문했다.
“갓 구치소에 들어왔을 땐 한사코 살인미수혐의를 부정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살인미수죄행을 승인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는가?”
류려평은 미리 준비해둔대로 술술 막힘없이 대답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지은 죄를 시원히 승인하고 처벌받는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자기 남편을 죽이려 한 나쁜 년입니다. 병실에 있은 나영이나 지영이도 내 링겔병에 염화칼리움을 탄 일을 다 알 건데. 승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 죽어 마땅합니다. 종호도 진작 내 링겔병에 염화칼리움을 주사해넣은 걸 다 보았습니다. 내 딸 리려향도 침대머리에 몰카를 장치해 놔서 다 알 겁니다. 그 철증 앞에서 무슨 용빼는 수가 있겠습니까? 숱한 증인들 앞에서 어떻게 자기 죄를 감출 수 있습니까? 그래서 아예 죄를 승인하고 배려를 받으려고 고쳐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 죄를 성실하게 승인하는 걸 참작해 한국 법원에서 나를 배려해 경감해 판결하기를 바랄뿐입니다.”
“거짓말, 살인미수죄행을 승인한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류려평은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살진 낯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퉁사발눈을 휘번떡 치켜 뜨며 남경쪽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탁상등불빛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의도라니요? 생사람을 작작 잡으십시오.”
꽝!
사무상을 치는 소리.
류려평은 와뜰 놀라 살진 어덩이까지 들었다 놓았다.
“중국에 인도될까 봐 겁났지?”
“웬 소린가요?”
류려평은 심장을 찔려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러나 인차 억울한 상을 지으며 극력 억울하다고 두덜거리었다.
“사람을 억울하게 굴지 마세요. 누가 한국 구치소에 있기 싶어 있는 거 같은가요? 무덥고 갑갑하고. 진짜 생지옥인데요. 좀 에어콘이라도 틀어놔 주세요. 고작 선풍기론 찜통더위를 말리긴 나무나도 어림도 없어요. 중국 감옥에 가면 이다지도 못살게 굴진 않을 걸. 흥!”
“류려평, 중국에 인도되면 널 기다리는 건 엄벌이야. 무기징역 혹은 사형이야.”
“어마나!”
류려평은 질겁해 온몸을 사시나무 떨뜻 바들바들 떨었다.
“절대 절 중국에 인도하지 마세요.”
류려평은 땅바닥에 털썩 꿀어앉아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경장님, 제발 빕니다. 날 중국에 인도하지 마세요.”
“건 인터폴에 물어보라구.”
“려향이나 종호가 내 살인미수죄행을 증명서지 않습디까?”
“숱한 사람들이 다 류려평이란 여살인마의 살인미수죄를 증명섰어.”
류려평은 땀에 젖어 이마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씃어올리며 물었다.
“리종호도 증명 섰는가요?”
“모든 사람이 몽땅 증명섰어.”
남경장은 말실수를 한 걸 직갑하고 두덜거렸다.
“그걸 물어 뭘 해?”
류려평은 오히려 헤벌쩍 웃었다.
(종호, 그 놈도 증명섰는 모양이지. 바보 같은 놈, 아직도 날 조강지처로 생각해? 려향이 에미라고 살리주려고 증명섰겠지. 려향이 제 딸이 아닌 것도 모르고. 진짜 어리무던한 바보여서 드문드문 귀여울 때도 있구나. ㅋㅋㅋ)
류려평은 남경장이 앉은 맞은 켠 껌껌한 암흑천지를 건너다 보며 지껄여댔다.
“모든 사람이 몽땅 증명 섰으면 내 한국에서 남편 종호를 안락사를 시키려한 죄가 성립되잖는가요? 그럼 날 살인미수죄로 한국 검 찰원이나 법원에 신고해야 하지 않는가요?”
“이제 죄 지은대로 죄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걸.”
그러나 류려평은 코웃음쳤다.
“내 무슨 종호를 죽였는가? 그저 종호 부탁을 받고 그를 안락사를 시키려고 시도했을뿐인데. 무슨 죽을 죄를 졌다고 이리 들볶아댑니까?”
악처는 소긍로 제 좋은 궁리를 했다.
(한국 법원에서 판결받으면 극상해 몇해 판결받겠지.)
그때 한쪽에서 뭘 드륵드륵 복사하는 복사기 소리 들렸다.
이윽고 남경이 종이장 몇장을 류려평한테 내밀었다.
“자기 죄를 승인하면 여기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십시오.”
류려평은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종이장을 받아 대낮처럼 환히 비추는 탁상등 불빛을 빌어 이리 저리 내리 읽어보았다.
악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필을 들어 서명하고 식지로 도장집을 톡톡 찍어 자기 이름 옆에 뻘건 지장을 꾹 눌러 찍었다.
“됐어요. 돌아가 처벌을 기다리십시오.”
남경의 말에 류려평은 우쭐 일어났다.
“이젠 검찰원에 죄장을 넘깁니까? 아니면, 법원에 직접 기소합니까?”
“돌아가 기다리라니깐 그래? 얼마 안 가 결론이 내려질 겁니다.”
류려평은 그 말을 듣자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랐다.
악처는 가슴을 쭉 뻗치고 한 가슴 가득히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갑갑한 지하심문실에서 나왔다.
(이젠 살았구나. 한국 법정이여, 날 좀 살려주옵소서.)
그러나 하늘도 구치소도 대답이 없었다. 다만 여경들의 쌀쌀한 눈빛이 악처를 괴롭힐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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