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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1권(18) 참회의 눈물 김장혁
2024년 07월 14일 11시 32분  조회:49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8. 참회의 눈물
 



    류려평은 감방에 돌아오자 김빠진 공처럼 맥없이 쓰러지었다.
    철창 속에 처량한 달빛이 쓸쓸히 들이비추며 여죄수들의 초조한 얼굴에 이리저리 어지러운 그림을 그린다.
    류려평은 스르르 일어나 싸늘한 철창을 부여잡고 처량한 눈썹달을 쳐다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눈 앞에는 낮에 본 려향의 표독스런 눈길이 얼른거리었다.
   귀전에서는 려향의 비수 같은 질책소리 울리었다.
   “엄만 한고조를 보기도 부끄럽지 않아? 엄마는 류행장과 무슨 짓 했어? 한고조 후대들은 한 종친끼리도 꺼리낌없이 간통을 하는가?!”  
   류려평은 다시금 시퍼런 비수와 같은 그 질책소리에 마음이  면바로 찔리어 피가 꺼꾸로 흐르는 상 싶었다.
  (다 그 놈 책벌레 때문이야. 바보! 책벌레! 그 촌방이 날 경제적으로 만족시켜 줘도 내가 왜 류행장과 그랬겠는가!)
   그녀는 철창 속에 갇히자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다. 자기 기구한 팔자가 원망스럽고 가난뱅이 선비한테 시집간 것이 후회되였다.
   그녀는 추억의 헌 돛배를 노저어 미친 연정의 늪으로 헤어갔다. 쓰라린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이런 저런 추억의 마디마다에 기구한 팔자와 운명이 대성통곡친다.…
   류려평은 국장 집 귀공주로 자라서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배돌이고 놀음에는 악돌이었다. 그리하여 대학은 고사하고 위생학교도 국장애비가 여기저기 다리를 놓아 겨우 입학했던 것이다.
   류국장은 실습기자로 취재하러 온 대학생 종호를 보자마자 사위로 삼기 싶은 욕심이 났다. 그는 류려평한테 종호를 소개하면서 하늘 높이 춰 올렸다.
   “이목구비도 범상치 않지. 잘 부축해주면 장차 큰 일을 할 인재야.”
   그러나 류려평은 눈을 곱게 흘기었다.
   “꼬리빵즈 촌방이 싫어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릴 작작 해라. 촌방이면 시내에 졸업배치하면 되지. 대학생 신랑감 좀 좋아서. ”
   대학 문에도 가보지 못한 종호가 대학생이라기에 좀 마음이 끌리었다.
   “헤이, 참, 그때 대학생 빠지에 눈이 멀었댔지. 그런 바보한테 시집보낸 아빠도 미워!”
   류려평은 아빠마저 원망스러웠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쓰라린 추억의 꼬리에는 또 욕정에 미친 색마의 몰골이 더럽게 묻어나온다
  또 한국에 도망치면 대사필이라던 류다재 행장도 원망스러웠다.
   (혹시 류행장은 자기 꼬리를 밟힐가 봐 날 생각하는 척 하면서 한국에 빼돌린게 아닐가? 류다재? 당신 진짜 날 속였어?)
   류려평은 류행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리에 돌아와 쓸쓸히 감방 안을 비추는 달빛을 보노라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의 눈 앞에는 저도 몰래 희죽이 웃는 류다재 행장의 길죽한 말상과 뻐드렁이빨이 얼른거리었다.
   (류다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시 이 지경에 빠지진 않았을 수도 있지.)
   류려평은 위생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했다. 간호원의 로임으로 살기는 처녀일 때 본가집 부모 돈을 얻어 쓸 때보다도 손끝이 빳빳했다. 비록 본가집 부모가 계속 돈을 대주었지만 출가집 외인이 계속 년세 들어가는 부모 손만 들여다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독이 떵떵 어는 고통스러운 셋집살이는 그녀로 하여금 자기를 경제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종호를 원망하며 바가지를 빡빡 긁어댔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절로 돈을 많이 벌어 세집살이를 하지 않고 남들처럼 잘 살고  싶었다. 그는 아빠를 보고도 세집살이를 못하겠다면서 집을 사게 돈을 대달라고 징징거리었다.
   당시 관광국 국장인 류려평의 아버지는 시위 서기인, 류다재의  아버지와 종친이기에 형제처럼 보내는 사이었다. 류려평의 아버지는 류서기를 통해 류려평을 류다재네 은행에 전근시켰다.
   행장 류다재는 애비 덕에 40대 초반에 벌써 시당위 조직부 부부장을 거쳐 일개 행장으로 헬기를 타고 직상승했다.
   “이름도 웃긴다. ㅎㅎ.”
   류려평은 처음 류다재 이름을 들었을 때 체면도 잃고 코를 싸쥐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류다재 앞에서 키득거리었다.
   류다재 아버지는 원래 아들놈이 장차 “재간이 많으라.”는 뜻으로 맏아들의 이름을 “다재(多才)”로 지었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류다재는 장차 “재물이 많아지라”고 자기 이름을 “다재(多财)”로 고쳐버리었다.
   “얼마나 웃기는 탐관인가. ㅋㅋ.”
  류려평은 감방에서 류다재 말상을 피뜩 떠올리면서 피씩 웃었다.
  류려평에게 처음에는 낯이 길죽한 류다재가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항상 새파란 여자들의 몸을 힐끔거리는 뱁새눈이  곱지 않았다.
  그런데 류다재는 쩍하면 류려평을 자기 사무실에 불러다가 항상 “여동생, 여동생” 하며 치근거리었다.
   려평은 으리으리한 행장실을 처음 들어와 보고 다리가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 돼 몸둘바를 몰라했다.
    “려평이, 앉소.”
   류다재는 류려평을 쏘파에 앉혀놓고 뱁새눈을 가슴츠레 뜨고 눈뿌리 빠지게 뜯어보며 씨벌이었다.
    “우리 두 집은 세교지간이오. 다 한고조 류방 대황제 후손이오. 려평이, 난 려평을 여동생으로 여기오. 무슨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하고 말하오.”
   려평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맞잡고 앉아 감지덕지해 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행장과 같은 오빠 있어 행복합니다.”
  류다재는 자리에서 우쭐 일어나 류려평의 손을 내밀었다.
   “여동생, 우리 오누이처럼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기오.”
  류려평은 저도 몰래 류다재 가래짝 같은 손을 꼭 잡았다.
   “예. 그럽시다.”
   류다재는 류려평의 손을 으스러지게 쥐었다가 놔주었다.
   그는 차탁 앞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더니 손수 커피를 타서 려평한테 내밀었다.
   “우리 은행에 들어왔다고 그저 돈이 마구 생기는 건 아니오.”
   류다재는 처음에는 은행장처럼 점잔을 빼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은행은 저금이란 사업실적을 첫째로 보오. 머리를 써야 돈도 벌고 승진도 할 수 있소.”
   류려평은 쌍까풀눈으로 류다재를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빠, 노력해보지오.”
   류려평은 승벽심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저금소에서 누구보다 앞서 류다재 은행장한테 본때를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본가집 아버지가 아파트를 사라고 준 돈까지 종호 몰래 몽땅 자기가 일하는 저금소에 가져다가 정기저금을 했다. 또 본가집    부모와 친척들을 동원해 자기 저금소에 저금하게 했다.
   하여 류려평의 저금액이 단통 저금소 내 최고로 껑충 뛰어 올라갔다.
   때가 됐다고 여긴 류다재는 행장의 직권을 빌어 류려평을 그 저금소 주임으로 임명했다.
   류려평은 여기까지 생각하자한때 자기 노력으로 빛났던 과거인생에 잠시나마 긍지감으로 가슴이 설레이었다. 뒤이어 철창 속 감방을 둘러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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