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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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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8) 머슴 김장혁
2024년 07월 07일 11시 59분  조회:39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015년 09월 09일 11시 44분  조회:162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9. 머슴
 
    먹장구름이 고향의 하늘을 지지누르면서 을씨년스럽게 기운봉을 핥으며 오만하게 흘러갔다. 산과 들은 먹장구름의 야만적인 억눌림을 받아 침침해 견디기 어력게 돼가고 길 옆의 눈더미에 깔린 진달래는 언 허리를 굽힌 채 쇠 발굽에 밟혀 간간히 신음하고 있었다.
    월선은 날이 감에 따라 은희를 더 못 살게 굴었다. 쩍 하면 밥이 설었다, 눅다, 되다, 돌이 씹힌다, 뭐니 뭐니 하면서 허물을 잡고 머리를 잡아 뜯어놓았다.
   암범은 늑대가 가만히 은희와 치근거릴까 봐 물을 길으러 가도 자위대원을 따라 보내 감시하게 했다.
   어느 날 월선은 입을 앙다물고 아침 설거지를 하는 은희를 들볶아댔다.
   “다시 우리 영감과 치근거려 봐라. 가랑이를 찢어놓지 않는가.”
   월선은 선처의 맏아들 철주 녀석과 함께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본가 집 아버지를 모시러 떠나갔다.
   철주는 일본에 유학을 갔었다. 그는 금방 서울로 돌아왔다가 아버지를 보러 고향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딸랑딸랑
   구리방울소리 절주 있게 들렸다. 네 필 말은 네 굽을 안고 우시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만하면 마차 빠른데도 암범은 재촉이 성화 같았다.
   “빨리 몰아.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겠어.”
  어찌나 재촉하는지 머슴 병수는 연신 닫는 말에 채찍을 쨩쨩 안겼다.
   뭇 산들은 하얀 눈옷을 떨쳐입은 채 뒤로 물러갔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산들에서 흰 용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듯이 눈보라가 무섭게 비명을 지르면서 휘몰아쳤다.
   “철주, 저 눈보라 치는 산을 보오. 우린 신선들이 날아다니는 별유천지를 마차 타고 훨훨 날아예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런 거 같네요.”
   철주는 크림 내 확확 풍기는 월선을 피뜩 곁눈질하면서 비위를 맞추면서 씽긋 웃어 보이었다.
   “작은어머니, 짚고 넘어갈 게 한 가지 있는데요. 맏아들과 무슨 ‘이랬어요’, ‘저래요’인가요? ‘야’, ‘자’ 하세요.”
   “호호호.”
   월선은 입을 싸쥐고 캐득캐득 웃었다.
   “맏아들? 그저 맏아들과 같이 꽃마차를 타고 아버지 모시러 가니 기분이 좋아 그래요.”
   “또, 또. 에이 참, 어머님도. 원.”
   월선은 개의치 않고 철주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철주는 덴겁해 손을 훌 빼갔다.
   월선은 취한 듯이 몸을 철주에게 기대면서 나직이 소곤거렸다.
    “왜 안 되나? 어머니가 맏아들이 고와서 그래. 호호호.”
    철주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 상을 찡그렸다.
    (늙으신 아버님 마음고생 많겠구나.)
   순간 월선은 깨 고소해 했다.
    (등신 같은 영감태기, 당신은 은희를 좋아하지? 내 당신 맏아들을 좋아한들 뭐래? 흥, 애 나지? 풍이나 맞고 콱 뒤져!)
    병수는 마차를 몰면서 뒤에서 연놈들이 하는 수작이 메스꺼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 잔등에 채찍을 안기며 박차를 가했다.
    마차는 모자간의 추잡한 희극을 싣고 눈보라 속으로 질풍같이 달렸다.
    한편, 한길수는 월선이가 우시장을 간 틈을 타서 은희를 고분고분 말을 듣게 길을 들이고 싶었다.
    그는 몸채 마루에 나가 앉더니 호통 쳤다.
    “영팔이, 은희를 끌어오게!”
    “예!”
   영팔은 응삼과 함께 사랑방에 가서 은희의 양팔을 잡아끌고 왔다.
   한길수가 독기어린 우멍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더러운 년, 자기를 생각하는 거 모르고 언감 그런 연극을 놀다니? 저 년을 기둥에 달아매라!”
    영팔과 응삼은 바 줄로 은희를 기둥에 끌어맸다.
    “주인어른, 왜 이랩둥? 난 아무 죄도 없어요. 제발 풀어 줍소.”
    “흥, 어디 주인의 비위를 거슬러 봐. 흥, 대가를 톡톡히 치를줄 알어.”
   한길수는 기둥에 매놓은 은희의 귀 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은희의 여윈 얼굴에 뻘건 손자리가 났다. 한길수는 손찌검질도 분을 풀기는 모자랐는지 손에 침을 퉤 뱉더니 가죽채찍을 찾아 들고 번들 이마를 번쩍이면서 은희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이를 사려 문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늑대 독기와 변태의 음충한 눈빛이 서려 있었다.
  쨩! 쨩!
  한길수는 채찍으로 그 여린 은희의 종아리고 허벅다리고 가슴이고 사정없이 후려쳤다.
  “앗, 아가!”
  신음소리가 애처롭게 울렸다.
  한길수는 채찍질하면서 을러멨다.
  “주는 떡을 먹지 않더니 어떠냐? 응? 내 말을 고분고분 듣겠니? 안 듣겠니? 응?!”
  은희는 채찍소리 쨩! 쨩! 날 때마다 죽어가는 비명소리를 쳤다. 은희가 머리를 가로 툭 떨어뜨린 채 대답이 없었다. 한길수가 채찍자루로 턱을 쳐들어보니 은희는 눈을 겨우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경 칠 년, 다시 내 말을 듣지 않아 봐!”
  은희는 대답 대신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눈을 내리깔며 까무러쳤다. 그녀의 목과 팔, 종아리에 마디진 퍼런 굴뱀이 쭉쭉 갔다.
  한길수는 은희가 죽겠으면 죽어라고 모든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채찍을 놓자 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재워 넣었다. 눈치 빠른 아첨쟁이 응삼이가 부시를 척 꺼내 올리었다.
  한길수는 응삼의 손을 밀어버리고 호주머니에서 성냥 곽을 꺼내더니 성냥가치를 득 그어 담배 불을 붙여 물었다.
  “주인님, 건 뭣입둥?”
  응삼과 영팔은 신기해하자 한길수는 어깨 으쓱해 입을 널어댔다.
  “이 시골 놈들아, 끼무라 국장님이 나에게 준 성냥이야. 이거면 부시를 백번 치지 않아도 돼.”
  한길수는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며 안방에 들어갔다. 이윽고  나온 그느 성냥을  졸개 응삼과 영팔, 수길에게 한 통씩 나눠주었다.
   “와~ 신기하다.”
  응삼은 성냥 곽을 쥐고 이리저리 보면서 야단쳤다.
  한길수는 영월동에서 병완을 몰아낸 후 병완의 집에 림산파출소를 세우고 들어앉아있는 야마모도 소장을 등에 업고 마구 칼을 휘둘렀다.
  “저년에게 물을 치게.”
  영팔은 까무러친 은희를 풀어놓고 부엌에 들어가 바가지로 물을 퍼다 얼굴에 탁 쳤다. 그래도 은희는 깨여나지 못했다. 짐승 같은 놈 들은 초겨울 널마루바닥에 은희를 눕혀놓고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한길수는 은희 생사는 관계하지 않고 차디 찬 마루에 내버려둔 채 영팔, 응삼과 자위대 대원들을 끌고 덕팔이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개자식, 성칠을 따라 사냥하러 갔지. 몽땅 독립군으로 처단할 테다. 네놈들의 처자들을 몽땅 내 종년을 만들테야. 으흐흐.”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덕팔이네 집으로 다가갔다.
  눈에 용마루가 짓눌려 푹 꺼진 집 안에서 필순의 쿨룩쿨룩 기침소리 들렸다.
  길수가 졸개들을 끌고 기척도 없이 뛰어들자 필순의 아들 철규와 딸 점순이가 화닥닥 일어나면서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일입둥?”
  한길수는 필순의 창백해진 여윈 얼굴을 쏘아보며 고래고래 을러멨다.
   “철규, 넌 오늘부터  우리 집에 가서 말을 먹여야 돼!” 
   “안 됩구마.”
  필순은 손으로 철규를 잔등 뒤에 빼돌렸다.
  “나그네가 사냥하러 가구 없는데 이제 열 살 푼한 애마저 머슴으로 끌어가면 어떻게 합둥?”
  한길수는 음흉한 우멍 눈으로 겨릅대 같은 필순을 쏘아보면서 을러멨다.
  “덕팔은 독립군에 들어갔기에 죽은 목숨이야. 처자들도 다 목을 매 죽여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 어른이 야마모도 소장과 말해서 살려 줬으니 고마운 줄 알아라. 흥!”
  영팔과 응삼은 와락 달려들어 필순을 활 밀어버리고 승냥이 어린 양을 채가듯이 철규를 훌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철규야, 철규!”
  필순은 따라 나가면서 손을 들어 철규를 불렀다. 마흔이 거의 돼서 어떻게 낳은 외동아들을 빼앗기고만 것이다.
  “오빠~ 응, 응~”
  점순도 따라 나가면서 통곡 쳤다.
  한길수는 음충한 눈길로 점순의 애티 나는 몸을 훑었다.
  (너무 애호박이야.)
  한길수는 우멍 눈을 점순에게서 떼더니 코를 싸쥐고 퀴퀴한 냄새 나는 집안에서 바람결처럼 나가버렸다.
 집 안에서는 필순이 모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토끼꼬리 같은 겨울 해가 눈 덮인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야 병수가 모는 마차가 토성 안에 들어섰다.
  마차 풍을 젖히고 살진 월선의 낯이 쑥 나왔다.
  “여보, 아버님이 오셨어요.”
  위방 문이 삐꺼덕 열리더니 한길수가 끌신을 짝짝 끌고 바삐 나갔다.
  마차 우에서 백발이 성성한 염소수염이 풍막을 젖히고 나타났다.
  “가시아버지, 그간 무사했습둥?”
  “오, 그래.”
  염소수염을 기른 월선의 아버지는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면서 병수가 가져다놓은 나무 궤를 딛고 마차에서 내렸다.
  헌병 가메다가 마차를 뒤따라 들어왔다. 그자는 한길수를 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곤방와(안녕하십니까)?"
  그자는 월선의 아버지에게도 허리 굽혀 인사했다.
   “하이, 오까께 사마데(예, 덕분에).”
  한길수는  이젠 제법 섬나라 오랑캐처럼 일본 말로 인사말을 받았다.
  이때 저쪽 토성 밑 우사에서 철규는 굽실거리는 한길수를 쓴 오이 보듯 하면서 피씩 쓴 웃음을 지었다.
  “철규야, 말을 마구간에 들여다 먹이를 줘라!”
  “알았습구마.”
  철규는 병수와 함께 말을 풀어 마구간에 들여다 매고 구유에 먹이풀을 주었다.
  “에구, 요 어린것까지 붙잡아왔구나. 쯧쯧.”
  열세 살 밖에 안 되는 철규는 고된 일에 지쳐 비틀거렸다. 그는 일을 마치고 마구간에서 나오면서 높이 쳐들린 몸채 추녀를 올려다 쏘아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자기에게 차려진 밥그릇을 들고 사랑방에 들어가 누워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은희 앞에 내밀었다.
  은희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네나 먹어라.” 하고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말했다.
  이때 병수도 밥그릇을 들고 사랑방에 들어섰다.
  “은희, 이건 네 몫을 가져 온 거야. 어서 억지로라도 먹어라. 이러다간 앓아눕겠다.”
  병수는 은희가 이를 옥 물고 간신히 일어나 앉아 밥술을 드는 은희를 보고서야 자기 곁방으로 나갔다.
  철규는 채찍 자국이 난 은희 팔을 보고 눈물이 글썽해지더니 이를 옥 물었다. 너무 힘들어 은희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내뱄다.
  은희는 숟가락을 드네 마네 하다가 한숨소리에 신음소리를 섞어내더니 철규의 부축을 받으면서야 간신히 자리에 들어 누웠다.
  철규는 은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창고 같은 사랑방에는 남녀 머슴들이 모이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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