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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김장혁
2023년 04월 26일 20시 58분  조회:119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5. 마끼의 흐느낌소리               

       

회사 가산 바위돌의 우멍한 눈들이 갓 지은 백신공장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품을 한다.
       군철의 웅대한 설계도에 따라 숱한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사 앞의 호수에 흙을 실어다  쏟아넣느라고 분주히 오가고 있다. 이제 호수를 메우고 직원들의 고층아파트를 짓는단다.
        S시에서 아파트 한평방에 10만원씩 하는데 직원들에게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직원들은 일을 해도 희열에 잠겨 힘든줄 모르고 밤낮이 따로 없이 일하였다. 

야마구찌 마끼는 위생소에서 나와 호수 옆의 가산을 꿰질러 나갔다. 그녀는 요즘 지꾸 왼눈까풀이 파들거려 불길한 징조 아닌가 하여 불안하기만 했다.

마끼는 행정사무실 쪽에서 한 콧수염쟁이가 회사 대문으로 나가는 것을 피뜩 보았다.

“아, 아니, 깜짝이야.”

그녀는 눈에 익은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가산의 들쑥날쑥한 바위 뒤에 몸을 찰싹 붙이며 대문 쪽을 면밀히 주시했다.

콧수염쟁이는 회사 행정사무실에 대고 꾸벅 허리를 굽혔다. 

(행동거지 봐. 딱 정신병자 같애.)

나이와는 달리 파란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매고 중절모를 꾹 눌러쓴 그 콧수염쟁이, 그 콧수염쟁이 퍽 눈에 익었다.

(아니, 저게 다이로교수 아닌가?)

마끼는 가슴을 졸이며 가산 석굴에 몸을 깊숙이 숨겼다. 그녀는 얼굴만 반쯤 내놓고 다이로교수를 살폈다.

(야마구찌 다이로는 산어구지(山口)에서 난 애라는가. 그래서 성씨도 山口 라고 하지 않아?)

마끼는 다이로교수를 모욕하닥 혀를 홀랑 내밀었다.

“나도 야마구찌 성을 탔으니깐. 양딸이니깐. 기실 나도 욕한게 아닌가? 이래서 누워서 침을 뱉으면 제 낯에 떨어진다는게 아닌가?”

마끼가 여겨보니 다이로교수는 씨엉씨엉 회사 대문 앞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마끼는 이제 무슨 태풍이 불어칠지 몰라 당황해났다.

(다이로 왔다고 엄마한테 알려야지.)

마끼는 가산 주위를 흘끔거리며 부랴부랴 위생소에 불 맞은 노루처럼 뛰여들어갔다.

“어마나!”

문을 떼고 들어가다가 복화와 딱 마주쳤다.

“하마트면 이마를 쪼을번 했잖아? 무슨 일에 이렇게 달아다녀?”

 복화의 이상해하는 눈길을 보고 마끼는 당황한 기색을 억지로 감추며 어색하게 해쭉 웃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황선희박사는 어데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끼는 천천히 자기 사무상으로 다가가며 속생각을 번개같이 굴렸다.

(복화(나나)는 라이벌이야, 천적이야. 그저 놔뒀다간 무슨 일을 칠지 몰라. 안돼. 다이로한테 우리 모녀간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는 날엔 끝장이야.)

마끼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나, 한가지 부탁하자.”

“그래. 무슨 일?”

복화는 화기애애한 눈길로 마끼를 마주 바라보며 하회를 기다렸다.

마끼는 억지로 살살 눈웃음지으며 복화의 두 어깨를 끌어안기까지 했다.

“왜 이래? 너 무슨 일 있어?”

마끼는 놀란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복화 볼에 가져다댔다.

“앗, 뜨거워. 네 얼굴 왜 이리 화끈화끈해?”

복화는 얼굴을 떼고 마끼의 당황한 빛이 얼른거리는 외까풀눈을 들여다보았다. 마끼의 눈 안으로 들어가보고 뭔가 느낌이 닿았다.

마끼는 더는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린 죽마고우 아니고 뭐냐?”

“거야 그렇지.”

“네가 일본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시상에 오른 비밀을 내 여직껏 엄수했잖아. 이게 친구지간이지.”

“그래, 친구지간이면 그래야지. 내 루추한 비밀을 지켜줘 고맙다.”

복화는 자기가 숱한 손님들 앞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스상에 누워 있은 추문과 생체관찰 수업시간에 라체모델을 선 일을 마끼가 폭로할가봐 저으기 두려웠다.

복화의 그 약점을 틀어쥐고 마끼는 복화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다이로교수가 여기까지 찾아왔어.”

복화도 저으기 놀라했다.

“그래?”

마끼는 머리를 들어 복화의 쌍까풀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여기 있다는 걸 다이로교수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 다이로교수 아는 날엔 난 끝장이야. ”

복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심말라..”

복화의 그 한마디에 마끼는 주르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이전에 일본에서 널 괴롭힌 걸 용서해달라. 그때 난 다이로교수의 사랑과 유산을 독차지하고 싶었어. 다 욕심이 부른 죄과야.”

복화는 진작 일본에 있을 때 마끼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마끼가 괘씸했지만 궁지에 빠진 마끼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부터 우린 서로 량심적으로 친자매처럼 서로 돕고 보호해주면서 살아야 해.”

“고마워, 나나.”

마끼는 복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복화는 마끼를 밀어내며 부탁했다.

“이젠 날 나나라고 부르지 말라. 이젠 난 복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당당한 공민으로 살고 싶다. 알만해?”

마끼는 복화의 강인한 빛뿌리는 눈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복화에게 진 량심의 빚으로 해 죄송하고 미안했다. 또 복화의 언니다운 동정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위생소 전화가 급촉히 울렸다.

복화가 전화를 받고나서 송수화기를 절컥 놓았다.

“최전무가 널 부른다.”

“알았어. 곧 갈게.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날 지켜달라. 알았지? 인생은 모든게 엎음갚음이야.”

마끼는 짤막히 말하고나서 부랴부랴 위생복을 벗어버렸다. 그녀는 옷장에 다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까지 끼고 핸드빽이랑 척 들도 문을 나섰다.

“어쩐다? 훌 도망쳐버린다? 그럼 모든게 끝인데. 다이로교수한테 우리 모자간이 붙잡히면 형사죄를 질지 어떻게 알아? 위생소에서 몇년 일해야 5천만엔 벌어? 직업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칠가?”

그녀는 가산을 꿰질러 행정사무대청으로 나가면서 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긍정코 다이로교수가 나를 물어먹었을 거야. 이젠 끝장이야. 아니야. 난 10여년이나 강간당한 어머니를 대신해 피땀값을 받아냈을 뿐이야.”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내 어디 공돈을 가지고 도망쳤는가?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는 대가를 가지고 온 것 뿐이지.”

녀자는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체 어쩌는가 보고 결단하자.”

마음을 정하자 마끼는 새로 지은 백신공장건물 옆으로 해 곧추 행정사무대청으로 향했다.

그녀는 2층 전무실에 가서 가볍게 노크했다.

비서실에서 경희의 걀죽한 얼굴이 문을 빠금 열고 나타났다. 뒤에 인사과장 리화의 경멸하는 눈길이 내비쳤다. 

“최전무 기다리오. 어서 들어가오.”

경희는 문을 뚝 떼고 마끼 등을 들이밀다싶이 했다.

으리으리한 전무사무실 사무상에 번대머리가 전등불빛에 번쩍번쩍 번쩍였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어서 앉소. 이후엔 내 앞에서 절대 마끼라는 이름을 쓰지 마오. 가은이 이름이 얼마나 이쁘오? 우리 조선어로 된 이름을 두고 왜 자꾸 섬나라 오랑캐 이름을 쓰겠소? 안그래?”

최전무는 무슨 사무가 바쁜지 서랍을 뒤적이다가 마끼한테 자리를 권했다.

마끼는 천천히 쏘파에 앉았지만 어쩐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안절부절 못했다.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침묵, 사람의 피를 말리는 침묵,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독사처럼 똬리를 치고 도사리고 앉아있다가 천천히 흘러 지나갔다.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몇대 안되는 머리를 대머리 뒤로 쓸어넘기더니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한참이나 속궁리를 굴렸다. 

(가은은 진짜 다이로교수 말대로 사기쳤을가? 사실 진상이 규명되기 전엔 다이로한테 가은이를 내줄 순 없어.)

군철은 우멍눈을 살며시 뜨고 가은의 몸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조, 우유빛얼굴을 봐. 얼마나 귀여운가? 얼마나 귀여운 녀동생인가? 에크, 이게 뭔가? 절대 아빠처럼 녀색에 미쳐선 안돼. 난 당원이 아닌가?)

군철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며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계속 속생각을 굴렸다.

(어찌 내 녀동생 같은 가은을 섬나라 오랑캐한테 팔아먹는단 말인가? 물론 량심과 법에 어긋났다면 별 수 없지만.) 

드디어 그는 건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묻기오. 가은이, 다이로교수를 잘 아오?”

“네- 잘 알다뿐이겠습니까? 그분은 저의 도사인데요.”

“그저 그뿐이오?”

“다이로교수는 저의 어머니 박사생 지도교수인데요. 저의 양아버지인데요.”

“그래?”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지개를 짓더니 마끼한테 우멍눈길을 돌렸다.

“가은이, 다이로교수 찾아왔던데. 그의 금은보화와 숱한 돈을 사기쳤다던데...”

“억울합니다.”

마끼는 벌떡 일어났다. 

“복화 물어먹었습니까? 아님, 황박사?”

“그게 중요한게 아니오. 묻는 말에나 솔직하게 대답하오.”

그녀는 단통 왕왕 대성통곡치며 하소연했다.

“한쪽 말만 듣고 저의 모녀를 억울하게 굴지 마세요.”

경희는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다가 마끼의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에 주춤 멈춰섰다.

군철은 경희한테 커피잔을 두고 나가라고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그래? 뭐가 억울하단 말이오?”

마끼는 더는 감출게 없었다.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이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10여년 동안이나 저의 어머니를 변태처럼 강간하고 릉욕했습니다. 밤이면 침실에서 어머니가 다이로, 그 변태한테 당하면서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걸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어이는 거 같았어요. 가슴이 갈길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마끼는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저는 어머니 10여년 동안 릉욕당한 값을 대신해 받아냈을뿐입니다.”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소리오? 그래 다이로교수 숱한 돈과 황금을 사취해가지고 중국에 도망쳤다던데. 지금...”

마끼는 격분해 쌍까풀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저는 다이로교수가 어머니를 보고 애를 낳으라고 협박하는 걸 보고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어요. 전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비용을 받아냈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당시 다이로교수와 맺은 계약서도 다 있습니다. 제가 어디 사기를 쳤는가요?”

“그래? 계약서까지 있다고?”

“네. 후에 가져오면 보세요.”

군철은 턱을 고이고 사무실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계약서까지 썼으면 다른 문제지. 그런데 다이로교수를 너무 섭섭하게 굴면 백신 합작생산에 차질이 생길게 아닌가?) 

그는 한참 거닐며 궁리하다가 우뚝 멈춰섰다.

“한가지 묻기오? 그 금은장신구는 누구 건지 아오?”

“당연히 내 거지요.”

군철은 사무상에 가서 앉더니 마끼를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꽝!

갑자기 군철은 사무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 금은장신구는 내 아버지 거야. 모르는가 해?”

“네?”

마끼는 너무나도 뜻밖이여서 일어나며 군철의 번대머리와 우멍눈을 쳐다보았다.
      (그거구나. 탐욕스런 부패분자. 금은장신구 욕심내? 황금흑사심이라고. )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윤기나는 번대머리를 훔쳐보았다.
    (더러운 놈, 네놈 욕심을 채워주는 거야 간단하지. 아깝지만 그까짓거 가져다주고 화를 면하자.)
     그녀는 우멍눈을 똑바로 보며 그 놈의 마음 속으로 벼룩처럼 뛰여들어가 보았다.
     "제가 당장 그 금은장신구 가져다 드리죠. 그럼 모든게 끝이지요?"
    "뭐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래?"
      "그럼?"
     마끼는 심리부담이 꼬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처녀 몸을 원하는가? 더러운 색마!)
"그럼 뭘 원하는가요?"
마끼는 우멍눈을 핼끔 쳐다보았다.
       바깥에서는 또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릉 꽝, 꽝!

우뢰가 사무실마저 집어삼킬듯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창살 같은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 앞을 헤아리기 어렵게 물안개가 자오록이 피여오르기까지 했다. 

“다이로교수가 며칠 찾아와 다 말했소. 내 친아버지 일본 건너갈 때 공항에 차압됐던 거라고. 그걸 다이로교수가 찾아다가 가은한테 주잖았는가?”

마끼는 자기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군철의 우멍눈을 피하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끄덕였다.

“알만해요. 복화가 말하던가요? 황박사 말하던가요?”

“누가 말했는가는 관계없소. 제가 아는가? 모르는가? 그것만 대답하오.”

마끼는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전 최전무님 아빠 건지는 몰랐어요.”

마끼는 자리에 물앉더니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더러운 놈, 네놈도 다 당위 서기냐? 그래도 나보고 당학습을 하라고? 퉤, 이때까지 부패분자 애비 금은장신구를 찾으려고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엄마 위생소에 안 받구 날 들볶아댔구나. 악어 주둥이엔 뭔가 물려줘야 물지 않는다잖아? 흥.)

그녀는 이윽고 파랗게 질린 앵두입을 열었다.

“당장 최전무님께 그 금은장신구를 가져다 드리죠.”

군철은 대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으며 사무상에 앉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오. 그런게 아니오. 난 절대 그 금은장신구를 탐내 그러는게 아니오. 내 아빠 공항에 차압당한게지만 래원이 불명확한 거요. 그걸 내 가진다면 뭐요? 나도 부패분자로 될게 아니겠소? 아버지한테 가져갈 것도 아니오. 그는 이젠 황금 백냥이 있어도 쓸모없게 됐소. 죄만 가중해질뿐이오.”

천만뜻밖의 대답이였다.

바깥에서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추녀 끝에서 실폭포가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다.

“그럼 도대체 어쩌랍니까?”

군철은 소홀히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좀 묻긴 그런데. 가은씨는 계약대로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예산이오?”

마끼는 그 물음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였다.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대낮 같은 사무실 등불빛에 환히 드러났다.

가은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죠.”

“왜? 그럼 사기친 거로 될게 아니오?”

“아무리 돈이 귀중해도 어찌 처녀 몸으로 그럴 수까지 있겠는가요?”

“그럼 사기 아니고 뭐요?”

“아니예요.”

마끼는 털어놓고 말했다.

“한 일본 녀성 보고 저 대신 다이로교수한테 애를 낳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젠 오래잖아 다이로교수 애를 낳을 때도 됐습니다. 다이로 애를 낳아주면 저는 계약대로 다 한 것이 아니고 뭡니까?”

군철은 물끄러미 마끼 백지장 같은 걀죽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일본 녀성 보고 대신 애를 낳아달라 했다고?”

“네. 저는 그 일본 녀성한테 보수를 다 주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을 딱 감고 궁리했다. 

한참 후에 그는 우멍눈을 천천히 뜨더니 깍지손을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군철은 마끼한테 다가와 부드러운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며 말했다.

“그 말썽도 많은 금은장신구를 다이로교수한테 주고 발편잠을 자오. 나는 섬나라 오랑캐놈들한테 저네 모녀를 버리고 싶지 않소. 한겨레의 량심으론 차마 그렇게 못하겠소. 다이로교수가 법에 거는 날엔 편안한 날이 없을 거요. 난 형사법정에 피고로 나선  마끼 모녀간을 차마 눈을 펀히 뜨고 볼 순 없소.”

마끼는 군철이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녀는 군철의 그 페부를 치는 말에 마끼는 눈물로 하얀 볼을 적시였다.

마끼는 헤아리기 어려운 군철의 깊은 마음을 깊이 깊이 느끼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드디여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최전무님, 구명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는가요? 오빠, 저의 모든 걸 다 바쳐 그 은공을 갚으렵니다.”
       군철은 마끼의 두 어깨를 가볍게 잡고 외까풀눈을 정겹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필요없소. 한 겨레 선배, 회사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뿐이오. 나는 정의와 량심을 주장하오. 한겨레 녀동생을 인간적으로 구하려고 할뿐이오.”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오쫄 일어났다.

그녀는 사무실에 최전무와 단둘인 것을 보고  번대머리 드넓은 품에 와락 안기며 왕왕 대성통곡치며 흐느꼈다.다.
그녀는 당돌하게 고백했다.

“최전무님, 저를 꺼리지 않는다면요, 흐흐흑, 흑흑흑,  제가 한몸 다 바쳐 최전무님을 한평생 남편으로, 아니, 신랑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흐흐흑.”

말을 마치자 마끼는 몸을 홱 탈아 외면하며 문께로 걸어나갔다.

등뒤에서 이런 웅글진 말소리가 들렸다.

“어처구니 없는 소릴!”

마끼가 문 밖에 나가다가 리나와 딱 마주쳤다.
리나는 마끼를 흘겨보았다. 

"싸가지없는 간나새끼, 퉤!"

마끼는 리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달음박질쳐 층계로 내려갔다.

등뒤에서 리나 과장과 최전무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 들렸다.

“잘들 놀고 있네. 얼리고 닥칠만 하잖아? 20대 처녀 첩으로 들어서자는데. 얼마나 좋겠는가? ”

“그 입 다물지 못해?”

경희는 황급히 비서실 문을 닫아버렸다.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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