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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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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67) 김장혁
2023년 03월 17일 09시 50분  조회:131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7. 자살

 

몇달 후 나영은 지갑에 현찰 천만원을 넣어가지고 모 대학병원 부산과로 찾아갔다. 

락태를 할가고 간호원한테 돈을 찔러주고 시술에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

교수급의사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영을 여겨보더니 물었다.

"중국 동포인가요?"

"네."

"려권 봅시다."

"아니, 려권 잃어버렸어요."

"려권도 없어? 그럼 어떻게 병을 봐요? 정상의료 아닌군요,"

나영은 옆에 한사람도 없는지라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네, 좀 돈을 팔고 락태하려고 그러는데요."

“락태?”

륙십대의사는 안경을 춰올리며 경악했다.

“어째? 내 밥통 떼우라고 그래요? 누가 마음대로 락태시켜준대요?”

나영은 지갑에서 500만원 지페 한묶음 꺼내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의사는 호주머니에서 돈묶음을 꺼내 보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요. 요따위로 락태? 어림도 없어.”

나영은 한묶음 더 꺼내 내밀었다.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의사는 돈묶음을 만지작거리더니 머리를 들었다. 그는 훌 일어나 문께로 가서 걸개를 절컥 걸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병원에선 락태 불가능하니깐요. 사사로이 락태시켜줄게요.”

“돼요. 락태만 시켜주면 어데서든 돼요.”

나영은 흔쾌히 대답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신분이 탈로날가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파견돼 온 비밀경찰, 인터폴이 두려웠던 것이다. 

의사는 천만원이나 되는 돈묶음, 나영의 몇달 로임묶음을 들가방에 스리슬쩍 챙겨넣고 명함을 건네주며 목소리를 낮춰 귀속말을 했다.

“모텔을 잡으세요. 제가 간호원과 함께 수술장비를 가지고 모텔에 가서 락태시켜 주지요.”

“네. 알았어요. 모텔 잡으면 전화 하겠어요.”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고 사달이 생길줄이야.

원래 음식점 한쪽 구들에서 자던 나영이 짐을 챙겨 모텔로 나가려고 하자 허보스는 퉁사발눈을 뚝 부릅떴다.

“주방장을 내보냈는데 최아가씨 나가면 음식점은 어떻게 해?”

나영은 보름달 같은 얼굴에 보조개를 옴폭 파면서 살갑게 말했다.

“허보스님, 제가 음식점에서 나가려는게 아닌데요.”

“로임 낮다고 그러느는 건 아닌기여? 로임 올려주지. 500만원 줄테니께. 최아가씨, 제발 우리 음식점에 있으라고.” 

나영은 자기를 최아가씨로 아는 허보수를 보고 볼우물을 파며 웃더니 불룩한 배를 내려다보면서 사정했다.

“이보세요. 몸이 말째여서 한달만 쉬려고 그래요?”

그제야 허보스는 나영의 모져가는 배를 보고 놀랐다.

“아니, 이때까지 몸이 그래 가지고 일했어. 미안해. 로임에 뽀나스까지 당장 300만원 줄게요.”

“아니, 로임 때문이 아닌데요.”

나영은 일도 하지 못하겠으면서 허보수의 그 돈 받을 수 없어 되밀어주었다.

그녀는 그 길로 옷견지를 넣은 트렁크를 끌고 음식점에서 나와버렸다.

“한달 후엔 꼭 음식점에 돌아오라구. 아, 이걸 어쩌지?”

허보스는 떠나가는 나영의 뒷모습을 멍해 바라보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똑, 똑,똑.

“누구?”

“저예요. 최순영이.”

허보스는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와들짝 놀랐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니, 최아가씨 아닌기여?”

허보스는 놀랍고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문걸개를 절컥 벗기고 문을 활 열었다.

“아니, 최아가씨 웬 일인기여? 어서 들어오라고.”

허보스는 너무 기뻐 입이 함박만해 나영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쥐여 주르르 끌고 음식점 안방으로 들여갔다.

“주말이 돼서 그런지요. 모텔방마다 꽉꽉 손님이 차서 되돌아왔어요.”

“그래? 내 뭐랬어? 밤에 어델 간다고 그래? 우리 음식점에서 자면서 쉬면 안돼? 숙박료 낼 필요도 없고. 일 안해도 돼.”

허보스는 나영의 불룩한 배를 쓸어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ㅉㅉㅉ, 그 몸을 해가지고 밤중에 어디로 헤매? 우리 음식점에 눌러 있으면서 몸을 춰슬리라고. 일 안해도 돼. 그저 연길랭면하고 탕수육 어떻게 하는가 내한테 가르쳐주면 돼. 로임은 로임대로 줄 거야.”

허보스는 나영이 락태하려고 모텔에 나가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영은 허보스가 모르고 하는 말이라도 고마워 코마루가 시큼해날 지경이였다. 

“그러죠. 밤 늦었는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그런데 그날 따라 허보스는 집에 돌아갈 궁리를 하지 않았다.

“최아가씨, 미안합네다만. 고달픈대로 먼저 연길랭면 육수물 뭘로 만드는지 가르쳐 안줄래?”

허보스의 퉁사발눈에 간절함이 번뜩였다. 

(령감태기, 고양이도 나무에 바라오르는 재간만은 사촌형 호랑이한테도 배워주지 않았어. 연길랭면 배우고나서 날 잘라버리면 어쩌지?)

나영은 희죽이 웃어보였다.

“밤중인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래일도 있잖아요?”

허보스는 한걸음 다가섰다.

(이년이 육수물 비법을 알려주지 않고 랠 훌 가버리면 어쩌지?"

허보스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안돼. 오늘 밤에 꼭 배워달라고.”

나영은 뒤걸음질치며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 허보스 퉁사발눈을 쳐다보며 애원했다.

“오늘 몸이 말째여서 좀 쉬여야겠어요. 래일 봅시다.”

“안돼. 꼭 오늘 배워줘야 해.”

허보스는 와닥닥 달려들어 나영을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육수물 안 배워줄텐가?”

허보스는 완전히 힘으로 협박해왔다.

나영은 힘으로는 허보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허보스는 육수물전수를 떠나 나영의 탄력있는 몸까지 탐내는 것이 불 보듯이 빤했다. 

(령감태기 이게 뭐야?)

나영은 자기를 끌어안은 령감태기 아래에서 자기 아랫배를 꾹꾹 찌르는 단단한 걸 발견했다. 아래를 피뜩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칠순도 넘은 령감태기 바지 가랭이 두새에서 자그마한 우산 같은 것이 불끈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이걸 놔요. 육수물 비법 가르쳐주죠.”

허보스는 마지못해 나영의 두팔을 맥없이 스르르 풀어주었다.

나영은 주름이 쭉쭉 간 허보스 낯빤대기를 쏘아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늙은게 꽤나 정력이 왕성하구나. 색마구나.)

순간 그녀의 머리를 탁 치는 생각. 

나영은 허보수를 보고 물었다.

“허보수, 왜 이래요? 계속 연길랭면으로 돈 벌겠어요? 아님, 어쩌려는 건 가요? 허보스를 아빠처럼 믿었는데요. 진짜 이럴줄 몰랐어요.”

그제야 허보스는  머리를 숙이며 헤죽이 웃어보였다.

(내 너무 했군 그려. 미안해.)

그러나 늦었다. 나영은 이 음식점에서 더는 못해 먹겠다는 걸 느끼고 결연히 트렁크를 잡고 문께로 나갔다.

“순영이, 왜 이래?”

“래일 보자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델 간다고 그래? 여기서 잘 거지. 에이 참, ㅉㅉㅉ.”

그러나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기어이 눈보라 치는 바깥에 나갔다.

“가더라도 어데 모텔에 드는지 알려주고 가라고.”

“동대문 부근 모텔에 들어요. 한달 후에 꼭 돌아올테니깐요. 근심 말아요.”

나영은 돌아보며 한마디 던져주고는 눈덮인 골목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맸다. 그녀는 그래도 원래 들었던 모텔에 돌아가 김보스한테 사정해 카운터에서라도 자려고 했다.

2호선을 타려고 지하철역으로 맥없이 트렁크를 끌고 층계를 한발자욱한발자욱 내려갔다. 부지중 그녀의 눈에 지하철에 놓인 장의자가 띄였다. 아직 지하철이 들어올 때가 멀었다. 그녀는 맥없이 장의자에 걸터앉아 2호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가는 행인들은 이상한 눈길, 조소하는 눈길을 보냈다.

장의자에 걸터앉은 그녀의 눈앞에 피뜩 교보문고로 통한 종각역의 널다란 공간과 자의자가 떠올랐다.

(옳다. 거기 가서 눈이나 좀 붙이고 래일 새벽에 모텔로 가자.)

그녀는 락태하자고 교수의사한테 몇달 뼈빠지게 빡빡 끌어모아 천만원이나 주고나니 호주머니사정이 위태로웠다.

(2만원이 어디야. 한푼이라도 남아야지.)

그녀는 1호선을 갈아타고 종각역으로 달려가서 내렸다.

지하통로로 교보문고로 쪽으로 트렁크를 끌고 가니 장의자에는 벌써 숱한 로숙자들이 이리저리 삼대처럼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나영이 다가가자 텁석부리로숙자가 장의자에서 일어나 헤쭉거리면서 지껄여댔다.

"아이구메. 새파란 색시 뭐야? 길바닥에 나앉았어?"

그 소리에 잠들었던 로숙자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때 덕지덕지한 로숙자들이 눈알이 희번득거렸다. 어떤 로숙자사내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텁석부리는 손으로 장의자를 가리키면서 나영한테 손짓했다.

"여기 오라구.난 여기 왕초야. 내 곁에서 자라구.누구도 감히 아가씰 건드리지 못해."

텁석부리는 자기 지위를 증명하려는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로숙자들을 한고패 빙 둘러보았다. 그러자 진짜 로숙자들은 질겁해 제자리에 들어누웠다. 그자들은 누워서 자는 척 하면서도 얼굴에 손을 얹고 손가락 사이로 말똥말똥 내다보면서 나영한테서 눈을 떼지 앉았다.

나영은 텁석부리 옆에 가지 않고 나무층계에 트렁크를 놓고 물앉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안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내 처지가 왜 이렇게 됐지? 당당한 부관장이 한국에 와서 로숙자로 타락하다니? 진짜 죽기보다 못해.)

"왜 내 곁에 안 와? 저기 왕초 장의자에 누워 자라고."

텁석부리가 어슬렁어슬렁 나영의 옆에 와 앉으면서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영은 그자의 손을 탁 쳐버리면서 버럭 고함쳤다.    

"피하지 못해?!"

"우메- 성질 왜 써? 생각해 줘도 은정도 몰라?"

"시끄러워! 저리 가!"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자리를 피했다.

뒤에서 텁석부리 왕초 욕설이 뒤잔등을 때렸다.

"여기서 왕초 모르고 하루 밤이라도 잘 거 같아? 흥! 세상 물정도 모르는 년! 길바닥에 나가 얼어 뒤져라!"

나영은 가냘픈 어깨를 들먹이며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으로 되돌아갔다.그러나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지하철도 다 놓치고 말았다. 

(이젠 모텔에도 가지 못하지. 어쩌지?)

그녀는 마지막지하철이 떠나간 어둠침침한 지하철텐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칠한듯한 지하철텐넬은 저승사자처럼 아구리를 쩍 벌리고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죽음의 블랙홀이 꼬리치며 그녀를 유린하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영은 장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갸냘픈 어깨를 들먹였다.

로숙자나 강도가 덮쳐들가봐 그녀는 온 밤 눈도 붙히지 못하고 장의자에 앉아 끄덕끄덕 자불면서 온 밤 팼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새벽 네시 됐다.

(이제 두시간 푼히 기다리면 첫차가 올 거야.모텔에 가서 김보스한테 사정해보자.)

그 두시간이 두날, 아니, 두달이 되는 것 같았다. 지루한 시간이 천천히도 흘렀다…

나영은 첫차를 타고 김보스네 모텔로 달려갔다.

김보스는 호박골을 도리머리질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했다.

"너거 중국인들 통 주책머리 없어. 모텔은 주말에 아침부터 방 치우라면 어째?한 열시 후에 오라구."

한국 모텔에선 주말에는 주숙객을 넣기보다 바람둥이들을 받아들여야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손님을 하나 넣어서야 극상해 2만 내지 3만원 벌었다. 하지만 바람둥이들은 극상해야 모텔방에서 한시간 벅닥거리다가 훌 나가버린다. 하루에 10여쌍 바람둥이를 받아넣으면 한방에서 십여만원을 벌 수 있지 않는가.

나영은 비난사정을 했다.

"그럼 트렁크만이라도 먼저 두자요."

"그래. 단골이니깐. 봐주는 거야."

김보수는 우멍한 눈으로 나영의 몸을 내리훑어보며 인심을 내는 척했다.그는 나영의 트렁크를 받아 위층 다락방에 올려다 놓았다.

나영이 한숨을 폴 내쉬면서 모텔에서 나가려고 돌아섰을 때였다.

"잠간! 카운터를 잠간 서줄래? 나 집에 좀 일 있어 그래. 청소도 좀 하구.숙박비를 할인해줄게."

"그러지요."  

나영은 쾌히 대답했다.

보스는 새파란 나영이 카운터에 서 있으면 손님을 더 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나영은 어쨌든 김보수가 고마웠다.

보수가 간 후 나영은 카운터에 서서 손님들을 받고 나서 모텔 복도로부터 호텔방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말끔히 해놓았다. 바람둥이들이 어지럽혀놓고 간 침대보랑 벗겨 내다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김보스는 부지런한 나영을 보고 저도 몰래 딱 짜개지는 전복처럼 입이 떡 벌어졌다.

"최아가씨, 아예 우리 모텔에서 일하게나. 로임 후하게 줄게. 하루에 6만원씩 줄게."

나영은 코웃음이 나왔다.

(허보수는 한달에 300만원이나 줬어.)

그러나 나영은 그절하지 않았다. 모텔에서 밥벌이라도 하면서 의사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나영은 손님이 뜸하자 바깥에 나가 구석진 골목길에 가서 교수의사한테 핸드폰을 쳤다.

그런데 락태해주겠다던 교수의사가 해뜩 나누울줄이야.

"비법적인 락태 못해유, 누굴 감옥살이 시키자고 그래?"

"아니, 천만원이 드렸는데요. 이제 와서 그럼 어떡해요? 제가 모텔방을 잡았으니깐요. 모텔에 와서 락태시술해주세요. 아무도 모르는데 뭔 감옥 가요?"

"안돼.절대 안돼."

"그럼 천만원 돌려주세요."

"어? 내 언제 천만원 받았어? 생사람 잡지 말라구."

"뭐라구요?"

뚜뚜뚜

전화 끊겼다.

이무리 쳐도 받지 않았다. 

나영은 그 길로 병원에 찾아갔다.

교수의사 허울을 쓴 그자는 말이빨을 드러내며 사기군의 원형을 드러냈다. 

"비법으로 락태시술하면 잡아 가게 할테야. 넌 려권도 없어. 불법체류자야. 안 그럼 중국에서 굴러온 범죄자야. 처음부터 의심했어. 안 그럼 왜 려권을 들이대고 정상적으로 병을 보이지 않어?"

나영은 그 위협에 화들짝 놀랐다. 당장 인터폴들한테 잡혀갈 것만 같았다.그러나 마지막으로 량심에 호소했다.

"시술 못해주겠으면 천만원 돌려줘요."

"뭐?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는가?"

그제야 나영은 자기가 사기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번쩍 차렸다.

"네놈은 제 명에 죽지 못해!'

나영은 물컵을 그놈한테 쥐여뿌리고 훌 일어나 도망치다 싶이 나와 달아나버렸다.

"이년!이게"

"보안! 보안!저년을 잡아요!"

나영이 병원에서 총총걸음쳐 나오는데 뒤에서 사기군의사놈의 고함소리 들렸다.

뒤이어 호르래기 소리 요란하고 발자욱소리 어지러이 다가왔다.

나영은 병원 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똑,똑,똑.

"누구세요?"

“모텔 보슨데요. 숙박비 땜인데유.”

나영은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문께로 다가갔다.

그녀는 문꼬리를 잡고 나직이 물었다.

“아니, 어제 오늘 숙박료까지 내잖았는가요?”

“참, 주말엔 5천원씩 더 내야는데요. 깜빡 잊었나.”

“네- 좀 기다려요.”

나영은 호주머니에 단돈 5만원도 없었다.

전날에 청소공 아줌마가 급한 일이 있어 출근하지 못한다고 급보가 왔다. 그때 나영이 샘물 가지러 카운터 쪽으로 나왔다.

보수는 나영을 보고 청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나영은 모텔 방을 두루 청소해 주고 카운터도 서주고 6만원을 손에 쥐였다. 그 단돈 6만원을 받은 자리에서 보수한테 사흘 숙박로 되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돈이 없어 저녁도 굶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 앞에서 빈 호주머니 사정을 번져보이기 싫었다.

나영은 지갑을 들춰 500원 짜리, 100원 짜리 동전을 주어 겨우 5천원을 모아쥐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머리를 수깃한 채 옆전을 보스한테 내밀었다.

보스는 한심해 입을 딱 벌리면서 나영의 초췌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안해요,”

나영은 한마디 입귀로 쓸쓸히 흘러내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잠간!”

보스는 순간 동정심에서인가, 아니면 웬지 스르르 맥없이 닫겨지는 문을 손으로 턱 막았다,

“이걸 써요.”

보스는 크게나 인심 쓰는 척하면서 옆전을 되내밀었다.

쿵!

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어둠의 주둥이에서 공포가 튕겨나와 모텔방 구석구석에 돌멩이질을 한다. 굶주림의 여백에 검푸른 절망의 파도가 스물스물 기습해온다.

하영은 침대에 쿵 맥없이 쓰러졌다. 눈 앞에서 불찌가 탁탁 튕겼다. 눈앞이 먹칠한듯이 캄캄했다.

순간, 까막나라로 된 언덕에 희죽거리는 우멍눈이 떠올랐다. 반달 같은 번대머리에 머리카락이 꿋꿋이 살궈 곤두세우며 우멍눈을 부라린다.

“더러운 년, 날 배신하고 도망가다니. 퉤, 거지 같은 꼬락서니 보기 좋구나.”

“저리 가! 음흉한 놈, 네놈은 제명에 죽지 못해.”

“뭐라고? 배은망덕한 년, 내하구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제야 알만 하지? 히히히. 먹을 근심, 주숙근심 할 필요없었지. 허나 넌 지금 저녁도 굶었잖아?”

나영은 몸 위에 달려드는 번대머리를 발길로 차버리면서 반항했다.

“음험한 놈, 날 심계국에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내 초상집 개 처지 됐겠어? 네놈이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지 않았더라면 배때기에 더러운 씨가 꿈틀거리겠어?”

“뭐? 뭐? 임신했어? 내 애를 뱃어? 애를 잘 키워라. 건 우리 참사랑의 열매야.”

“퉤!”

나영은 건가래를 번대머리에 뱉었다.

“구역질나는 소릴 작작 쳐라! 바람둥이를 이 세상에 하나 더 만들라고? 날 사랑했다고? 노리개로  질탕하게 데리고 놀았지? 한많은 죄악의 씨를 가차없이 썩뚝 잘라 버릴테다!”

“그러지 마! 어떻게 만든 애냐?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강도한테서 널 구한 구명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마! 애는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키울테니!”

그때 웬 애 울음소리 귀전에 들렸다. 나영은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환각인가?)

더 살고픈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진다.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끊날게 아닌가? 날마다 나포될 가봐 살피면서 살 필요없다. 교수의사한테 돈을 찔러주면서 락태할 필요도 없어. 배고픈 배를 채우려고 음식점에 가서 색마보스 눈치를 본면서 릉욕당할 일도 없잖은가! 한국은 우리 조선족이 살 곳이 아니야. 이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어. )

그때 전화벨소리 울렸다.

남편 철석한테서 온 전화였다. 순간 성림이 보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성림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남편과 성림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성림의 엄마로 살 면목이 없어. 성림아, 나는 나쁜 엄마야. 널 버리고 색마한테 미쳐서 가정도 자식도 다 버렸어. 색마한테 사기당해 미국, 일본, 한국까지 따라 다녔어. 여보, 난 나쁜 년이야. 성욕에 눈이 어두워 당신을 배신하고 색마의 씨까지 배에 심었어. 천벌맞아 싼 년이야. 색마는 날 해친 원쑤야. 원쑤놈의 새끼까지 가진 이 년을 절대 용서하지 말라구.”

나영은 침대머리에 놓인 물컵을 들어 쭉 마시고 땅바닥에 메쳤다.

탕!

유리파편이 사처로 튕겼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박지영한테서 온 전화였다.

“지영아, 성림아, 모든게 끝났어. 미안해. 래생에 다시 모자간으로, 친구로 보내자.”

나영은 천천히 일어나 핸드폰을 꺼버리고 날카로운 유리쪼각을 주어들었다. 맥없이 희미한 포도눈으로 유리쪼각의 선뜩선뜩한 날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주저없이 유리쪼각 날로 손목의 혈관을 썩썩 벴다.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려내렸다. 그녀는 침대에 스르르 쓸어졌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포도눈동자는 맥없이 희미해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 앞에는 보기도 싫은 음식점 허보스의 퀭한 퉁사발눈, 사기군의사의 안경낀 외까풀눈이 떠올랐다. 그녀는 보기도 싫어 희미해지는 포도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순간 편안하고 아늑한 염라전으로 훨훨 나래쳐가는 감을 느꼈다.

그때 배에서 발길질을 하는 감이 느껴졌다.

(다 네놈 때문이야. 네놈새끼는 죄악의 쓴 열매야. 죽어야 돼.)

나영은 눈을 번쩍 뜨고 유리쪼각을 찾아들었다. 속옷을 스르르 내리우고 유리쪼각으로 불룩한 아랫배를 마구 찌르고 쭉쭉 내리그었다.

"앗!"

모텔방에선 비명소리 아츠럽게 울렸다. 신음소리 간간히 들렸다.

나영의 손목과 아랫배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 침대보를 적시며 비린내를 물씬 풍겼다. 

김보스는 이상한 눈길을 나영의 방 쪽으로 보냈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람 일은 몰라.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서 엉덩이로 호박씨를 깐다고 하잖아? 혹시 모텔 방에 군서방을 치워두고 즐기고 있는지 누가 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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