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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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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    김립 시모음 댓글:  조회:6002  추천:0  2016-10-30
  김삿갓 시 모음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 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 거지.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고향 생각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思鄕 사향)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이다.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 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 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贈妓 증기)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 시이다.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 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 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贈某女 증모녀)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 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낮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 않는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고은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 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 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街上初見 가상초견)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매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 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 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눈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구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 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 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風俗薄 풍속박)  斜陽鼓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隔林啼送不如歸 두우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가난이 죄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 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難貧 난빈)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했네.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첨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艱飮野店 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엽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제목을 잃어버린 시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자를 부르나.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失題)  許多韻字何呼覓 彼覓有難況此覓 허다운자하호멱 피멱유난황차멱  一夜宿寢懸於覓 山村訓長但知覓 일야숙침현어멱 산촌훈장단지멱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 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宿農家 숙농가)  終日緣溪不見人 幸尋斗屋半江濱 종일연계불견인 행심두옥반강빈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문도여와원년지 방소천황갑자진  光黑器皿虞陶出 色紅麥飯漢倉陳 광흑기명우도출 색홍맥반한창진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幸 평명사주등전도 약사경소구미행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 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닳겠네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시시비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詩 시시비비시)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금강산에서 중과 김 삿갓의 시회 중 --- 이른 아침 입석 봉에 오르니 구름은 발아래 생기고 朝登立石雲生足  조등입석운생족 삿갓 - 저녁에 황천강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더라 暮飮黃泉月掛唇  모음황천월괘순 중 --- 사람의 그림자는 물 속에 잠기어도 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影浸綠水衣無濕  경침록수의무습 삿갓 - 꿈속에 청산을 오르내렸어도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네 夢踏靑山脚不苦  몽답청산각불고(脚)다리각 중 --- 산 위의 돌은 천년이나 굴러야 땅에 닿을 듯하고 石轉千年方倒地  석전천년방도지(倒)넘어질도 삿갓 -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손이 하늘에 닿을 듯하여라 峰高一尺敢摩天 봉고일척감 천 중 --- 가을 구름이 만 리에 뻗었으니 흰 고기비늘이 겹쌓인 것 같고 秋雲萬里魚鱗白 추운만리어인백 삿갓 - 천년 묵은 고목의 뻗친 가지는 사슴의 뿔이 높이 솟은 듯 하구나 枯木千年鹿角高  고목천년녹각고 중 --- 청산을 돈을 주고 샀더니 구름은 공으로 얻고 靑山買得雲空得 청산매득운공득 삿갓 - 맑은 물가에 다다르니 고기는 저절로 모여 드누나 白水臨來魚自來 백수림래어자래 중 --- 절벽은 비록 위태롭게 솟아 있어도 그 위에서 꽃이 웃는 경치가 좋고 絶壁雖危花笑立 절벽수위화소입 삿갓 - 양춘은 비록 아름다워도 새는 울며 떠나가니 비감이 생긴다 陽春最好鳥啼歸 양춘최호조제귀 중 --- 물은 은 절 굿 공이가 되어 절벽을 연방 내리찧고 水作銀杵용絶壁 수작은저용절벽 삿갓 -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어 청산을 재어간다 雲爲玉尺度靑山 운위옥척도청산 달이 희고 눈이 희니 천지가 다 희고 月白雪白天地白  월백설백천지백 산이 깊고 물이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다 山深水深客愁深  산심수심객수심 중은 김 삿갓의 마지막 구에 감동되어 입을 딱 벌렸다.   김삿갓 계곡 많은시간을 투자하여 재편집 하여 보내드리니 즐감하세요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김삿갓계곡 영월 시내에서 단양방면으로 약 20km쯤 깊은 계곡속으로 달려가면 김삿갓 계곡이 나온다. 너무나 맑고 청정한 계곡이라 묻혀서 살고싶은 충동을 금할 수가 없다. 난고 김삿갓(김병연)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어린시절 집안의 내력을 모르고 자라온 김병연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조부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꾸짖는 글로 장원급제를 하지만 어머니로 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는 하늘을 보기 민망한 죄인이되어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방랑생활을 하며 한잔술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의 외로운 한평생을 살게 되었다. 그 시대를 꼬집는 시와 해학적인 시를 많이 남겼다. 과연 시대가 만들어낸 詩仙 이다. 어쩌면 타고난 역마살로 항상 방랑하고픈 우리네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 하기도 하다. 지날 때마다 나무로 참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고 느꼈던 삿갓할아버지가 입구에 서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삿갓이 여러 고을을 방랑하던 중 한 서당에 도착하게 되어 물이나 한모금 얻어마실까 하였는데 훈장이 김삿갓의 용모를 보고 대꾸도 안하고 서당 훈장에게 박대를 받자 즉석에서 걸쭉한 육담시를 지어 훈장을 조롱한시를 보면 얼마나 한문을 자유로이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서당 욕설시 書堂來早知(서당내조지) 서당에 일찍와서 보니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방안에는 모두 존귀한 분들만 있고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 되는데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훈장은 나와 보지도 않더라     김삿갓 비아그라 칠언시 知未時八 安逝眠 (지미시팔 안서면) 아침 8시 전에 편안히 죽은 듯 잠자고 있으면   自知主人 何利吾 (자지주인 하리오) 스스로 대접 받는 주인 노릇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   女人思郞 一切到 (여인사랑 일체도) 여인이 남정네 사모하면, 모든 것 오나니 絶頂滿喫 慾中慾 (절정만끽 욕중욕)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는데 이르니, 욕망 중에 으뜸이니라 男子道理 無言歌 (남자도리 무언가) 도시 남자의 도리란 말없이 행위로 보여야 하거늘, 於理下與 八字歌 (어이하여 팔자가) 순리에 따른다면 팔자 타령으로 그만이지만 岸西面逝 世又旅 (안서면서 세우려) 해지는 서녘 바다 떠나야 할 때 이 속세 여정 다시 걷고파 飛我巨裸 王中王 (비아거라 왕중왕) 모든 것 벗어버리고 날아가니, 왕중왕이 되었도다.       오른편엔 명국환이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있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넘어 가는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바윗틈을 돌아나와 옥동천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김삿갓 계곡. 여름철이면 피서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미국쑥부쟁이 길가 너른 밭에 한가득 안개꽃처럼 잔잔하게 피어 구름같다.       옛날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 장수가 힘자랑을 하기 위해 집채만한 이 바위를 들어서 작은 바위 위에다 올려놓았다 해서 '든돌'이라 하고 마을을 '든돌마을'이라 부른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그의 일가가 살던 집터와 묘소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1992년이다.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인 김병연이 양주에서 출생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 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김익순은 처형당하고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살게 되었다.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인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그는 김익순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듣게 되었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와 어머니를 가슴아픈 눈물로 뒤로하고 22세에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 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이곳 영월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길 머나 먼데       김삿갓이 여러 고을을 방랑하던 중 한 서당에 도착하게 되어 물이나 한모금 얻어마실까 하였는데 훈장이 김삿갓의 용모를 보고 대꾸도 안하자 그 즉석에서 지은 한시를 보면 얼마나 한문을 자유로이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學童諸未十 학동제미십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訓長來不謁 훈장내불알 서당에 당도했으나 (내가 온것을)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였구나. 배우는 아이들이 모두 열이 채 안되고,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존귀하구나. 훈장이 나와서 (나를) 내다보지도 아니하는구나.       각박한 인심을 풍자하며 파격적인 한시를 쓴 그는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스무(二十) 나무 아래 서러운(←설흔) 나그네, 망할(←마흔)놈의 집에서 쉰(五十)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 일이 있는가.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 밥을 먹으리.       김삿갓 묘소로 들어가는 계곡 길가 구절초 꽃밭에 구절초가 피기 시작하여 자신들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계곡이 크지는 않지만 절벽처럼 높이 솟은 바위산과 맑은 물로 마음을 잡았다.   我向靑山去 (내 청산을 향해 가거늘) 綠水爾何來 (녹수야 너는 어디서 오느냐)         동그란 강돌을 주워다 정성스럽게 쌓은 탑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파격시(破格詩) 天長去無執 (천장거무집 ▶ 천장엔 거미집) 花老蝶不來 (화로첩불래 ▶ 화로에 곁불내) 菊樹寒沙發 (국수한사발 ▶ 국수 한 사발) 枝影半從池 (지영반밤종지 ▶ 지렁이 반 종지) 江亭貧士過 (강정빈사과 ▶ 강정 빈 사과) 大醉伏松下 (대취복숭아 ▶ 대추 복숭아) 月移山影改 (월리산녕개 ▶ 워리 사냥개) 通市求利來 (통시구리래 ▶ 통시엔 구린내)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는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챙겨 오네.   뜻으로 보면 자연을 누비던 자신이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읊은 것이지만,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으면 돈이 없어 세상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가난'의 참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吹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취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粥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며 옳은 것 옳다 그른 것 그르다 저대로 부치세. 손님 접대는 가세(家勢)대로 하고 시정(市井) 매매는 시세대로 하세,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러면 그렇지 그런세상 그렇게 지나가네.       삿갓을 보면 쓰고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만 그런가~~~~ㅋㅋㅋ                 계곡 주변에는 김삿갓 시비가 많이 있다.   난고 김삿갓의 묘소         김삿갓 문학관 전경                 김삿갓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난고의 유품들이다.   그 유명한 삿갓       조금은 외설한 詩이지만 김삿갓다운 풍자를 담고 있다.       김삿갓(김병연)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조부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꾸짖는 글로 장원급제를 했다는 답안 문구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윤선녀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넘어 가는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거리 저마을로 손을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겠다... 제가 뿌린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련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여인네 제 잘못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서니 행색은 그러하나 양반의 후예(後裔)이고 자존심 있는 남자 아닌가? 그래서 '삿갓'이 한마디 욕을 했단다. 하지만.... '삿갓'이 누군가? 쌍스런 욕은 못하고 단지 두 마디 "해. 해." * 해=年 그러니, "해. 해."이면 '년(年)'자(字)가 2개, 2年(=이 년!)일까 아니면 두 번 연속이면 쌍(雙)이니 '雙年'일까? 허 허 허....   위 이야기의 아낙네는 다만 실수로 남에게 작은 피해를 줬지만 자신의 행동이 부정(不正) 불법(不法) 반도덕(反道德) 반인륜(反人倫)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의(義)를 벗어나고 죄(罪)를 범(犯)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삶의 행태(行態)를 본다면 난고(蘭皐)는 무엇이라 욕을 할까? - 저 절 로 해,,해!-   --  (情事 정사 1)    爾年十九齡 乃早知瑟琴  - 너의 나이 열아홉에 일찍이도 거문고를 탈 줄 알고     이년십구령 내조지슬금 (김삿갓의 의도는 이년십구녕 이었을 것임)        速速拍高低 勿難譜知音  - 박자와 고저장단을 빨리도 알아서 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쳤구나.     속속박고저 물난보지음  (情事 정사 2)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    위위불염경위위  불위불위경위위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情事 정사 3)     自知면 晩知고 補知이면 早知 어라      (인용부분)   자지면 만지고 보지이면 조지어라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알아지고  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빨리 알아진다. (정사3은 독음(읽기음)대로라면 음담패설이나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면 공부의 진리가 담겨있는 심오한 글이라서 많은 카페에서 어디서 온 글인지 몰라도 이말만 많이 인용합니다. 김삿갓의 시나 글은 대부분 이렇게 음담패설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암시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만약 내가  (情事 정사 4)를 이어 본다면.. 晩知면  怒知이니  怒知면 早知어라 만지면  노지이니  노지면 조지어라     만지면 성내니      성내면 조지어라(내것만조지고 아무데나 조지면 성폭행)  
1722    대만 현대시 흐름 알아보기 댓글:  조회:4323  추천:0  2016-10-30
대만 현대시의 흐름   티엔 위안田原_한성례 옮김     1. 대만의 현대시 하면 대학시절에 처음 읽었던『대만현대시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간체자판으로 중국에서 출판된 시 선집이었다.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대립과 적대 정책이 오랫동안 이어진 탓에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내세우기 전까지 대만의 현대시인과 작가들의 작품은 중국에서 출판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래서인지 대만 현대시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같은 중국인이고 같은 중국어로 시를 쓰는데 왜 이리도 대만 시와 중국 시는 다를까. 번체자와 간체자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내용은 전혀 달라서 몹시 놀라웠다. 이때가 내가 대학에 들어가 막 시를 쓰기 시작한 1980년대 초였다. 얼마 후에 중국 시인의 현대시와 대만의 현대시가 왜 다른지 알게 되었다. 그건 중국과 대만은 체제도 다르고 시를 창작하는 인문적·정치적 환경이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대만 현대시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만의 현대시는 중국과 달리 건전한 문화 환경과 언론의 자유로 인해 일찍부터 유럽 현대시를 음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처럼 대만 현대시는 유럽 현대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한시와 같은 중국의 전통적 고전문학을 중시하고 계승하는 노력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른바 동서고금을 융합하여 그들 나름의 시혼詩魂을 형성한 것이다. 이 점이 대만 현대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렇긴 하지만 대만의 현대시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대만 현대시의 탄생은 일반적으로 1920년대부터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대만에서 현대시라고 하면 1920년부터 1945년까지의 작품을 가리킨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대만은 반세기 동안 일본의 식민지 시대와 장제스蔣介石 정권의 친미노선 시기를 거쳤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대만의 시인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일본의 식민지 시대 일본어 교육을 받은 시인들’이며, 이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당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장제스와 함께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른바 ‘외성인 시인’이다. 이 외성인 시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대만에 오기 전부터 이미 중국에서 시를 쓴 경험이 있는 시인’과 ‘대만에 건너온 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다. 그리고 ‘본성인 시인’이 존재한다. 본성인이란 중국에서 온 외래자가 아니라 대만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을 말한다.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시를 써온 대만 국적의 본성인 시인으로는 초기에 활동한 라이허頼和, 양서우위楊守愚, 양화楊華 등이 있다. 그 후에 등장한 이가 왕바이옌王白淵, 린시우얼林修二, 천챤우陳千武, 잔빙詹氷 등이다. 그밖에 린우푸林巫福, 바이디白萩, 황허성黄荷生, 린헝타이林亨泰, 양무楊牧도 본성인 시인에 속한다. 이 시인들이 식민지 시대에는 어떤 언어로 시를 썼을까. 첫 번째는 백화문이다. 백화문은 그때까지 사용해온 고문을 뒤엎고 탄생한 새로운 중국어다. 이들은 분명 1920년대를 전후해서 베이징北京에서 시작된 백화문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두 번째는 대만어인데, 대만 원주민의 방언을 사용하여 시를 썼다. 세 번째는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인 일본어이다. 이 무렵 대만의 현대시는 비판적 리얼리즘과 전위 모더니즘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반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통치와 반봉건적 사상, 대만의 풍토와 인정人情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다.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뿐 아니라 일본 현대시의 새로운 관념과 표현법 등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 시대와 관련하여 동인 시문학지〈풍차Le Moulin〉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1933년 10월부터 1934년 9월까지 발간된 이 동인지의 멤버 중 일부는 일본인이었다. 당시의 대만 현대시에서 이들 일본인 시인들은 일본과 대만의 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현대시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 시대가 끝난 1945년부터 장제스 정권이 대만에 들어온 1949년까지 대만의 현대시는 고적한 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는 그동안 사용해온 일본어와 대만어를 국어인 ‘중국어’로 교체하는 언어의 과도기 탓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대만의 현대시는 195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대만의 시단은 중국에서 건너온 시인들이 주도했다. 이 무렵 대만 현대시는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에 따른 반공산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띠는 정치적 서정시가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시인들이 순수시와 비슷한 모더니즘 작품을 중심으로 창작했다. 이 무렵 활약한 대표 시인은 지샨紀弦, 종딩원鐘鼎文, 위광종余光中, 러우푸洛夫, 야샨瘂弦, 저우멍뎨周夢蝶, 정처우위鄭愁予 등이 있다. 특히 지샨이 1953년 2월 1일 창간한 동인 시문학지〈현대시〉는 이후 대만의 모더니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만 시인의 3분의 2에 달하는 103명이 ‘현대파’ 멤버였을 정도로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후 1953년 6월 친찌하오覃子豪, 종딩원, 위광종 등이 동인 시문학지〈남성藍星〉을 창간한다. 1954년에는 국민당의 건국기념일(10월 10일)에 맞춰 러우푸, 야샨을 중심으로 동인 시문학지〈창세기〉를 창간한다. 특히〈창세기〉는 대만 현대시단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초기에 보여준 ‘신민족 시형新民族詩型’에서 전환한 후기의 ‘초현실주의’라는 창작 기법은 당시 시단의 다른 그룹과 존재를 구분 지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지금도 대만의 뛰어난 시인을 거론할 때면 이〈창세기〉에 소속된 시인들이 많다.     2.  일반적으로 전후 대만 현대시의 발자취는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a.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부터 장제스 정권의 초기까지로, 대만 현대시가 잠시 부활했다가 정치적 속박과 제압으로 침묵한 시기 b. 1950년대 초기~1960년대 중반 : 모더니즘 시운동이 활약했던 시기 c. 1960년대 중반~1970년대 : 현대시의 리얼리즘 사조가 활발해지고 모더니즘 시에 대한 제고와 조정이 이뤄진 시기 d. 1980년대 이후 : 낭만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예술 경향이 다원적으로 불어난 시기.     사실 처음 대만의 현대시를 접했을 때 나는 이런 구분법을 알지 못했다. 시인이 어디 출신인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는지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그들의 시가 얼마나 내 마음을 파고들지, 나를 계발시킬 힘은 있는지, 혹은 공부가 될 만한 수준인지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현대시가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대만의 현대시는 내가 일본에 오기 전에 읽었던 그 상황과 그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내가 일본에 유학 온 후, 특히 최근 몇 년간 대만 시인의 작품을 보면 상당히 다원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파악할 수 있다. 유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주로 신문 잡지 등 종이 매체에 실리던 시를 인터넷 세계의 확장에 따라 인터넷과 자신의 블로그 등에 활발하게 발표하여 종이 매체의 시와 인터넷 시가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시’는 그 질감의 옥석 수준을 가리기 힘들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느 면에서는 현대시가 퍼져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대만의 시인들에게 외성인과 본성인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는 사라졌다. 중국에서 건너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시인도 마찬가지다. 일부 외성인 시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지워지지 않는 향수 콤플렉스는 대만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대만 출생의 시인에게는 고향이나 머나먼 방랑, 그리움에 대한 표현보다는 자신의 정신적 고향 또는 진정한 뮤즈를 갈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책무인지도 모른다. 1950년대〈현대시〉라는 시문학지의 창간은 혈기 넘치는 현대시의 한 시기를 이끌었다. 1950년대 말〈창세기〉는 개정판을 내고 ‘세계성과 초현실성, 오리지널과 순수성’을 제창하며 초현실주의시라는 현대시 붐을 일으켰다. 아울러 대만의 현대시사에 두 가지 논쟁도 발자취를 남겼다. 하나는 1957년에 일어난 논쟁으로, ‘횡적 이식移植’을 추진하고 ‘종적 계승’을 반대하는 지샨의 주장에〈남성〉의 멤버가 극렬히 반발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59년부터 1960년까지의 작가 쑤쉐린蘇雪林과 친찌하오가 벌인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3. 1960년에 들어서면 다시 여러 시문학지가 창간된다. 그 중〈포도원葡萄園〉이라는 동인지가 1962년 7월에 시인 원샤오춘文曉村, 천민화陳敏華, 구딩古丁 등에 의해 탄생한다. 그 뒤를 이어 일본의 식민지 시대 리얼리즘 정신의 연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동인지〈립笠〉도 1964년에 시인 천챤우, 두궈칭杜国清, 리퀘이샨李魁賢등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수많은 현대시집이 출판되었다. 이 무렵 맹활약한 시인과 화제가 된 시집은 야샨의『심연深淵』, 러우푸의『석실지사망石室之死亡』, 상친商禽의『꿈 또는 여명』, 저우멍뎨의『환혼초還魂草』, 러우먼羅門의『아흐레의 저류底流』, 위광종의『고타악敲打楽』등 무수히 많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향토 상상鄕土想像과 본토 의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쟝순蒋勲, 샹양向陽, 두예渡也, 리민용李敏勇 등이 대표적 시인이다. 시 평론가 샹양은 1970년대 대만 현대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전통을 바꾸고 민족적 시풍을 재건했다. 2. 사회로 환원하고 현실생활을 배려했다 3. 대지를 수용하고 본토 의식을 수긍했다. 4. 세속을 중시하여 대중의 마음속 목소리를 반영했다. 5. 자유를 존중하여 다원적 사상을 격려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시인은 샹양, 뤄지청羅智成, 천커화陳克華, 양무, 천리陳黎등이 있다. 1980년대부터 나는 대만의 몇몇 시인과 함께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현대시 축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시를 접하고서 작풍의 다원성과 언어의 불확실성이 점점 선명해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가장 인상에 남는 시인은 정신과 의사인 징샹하이鯨向海와 안과 전문의 양커화楊克華다. 그밖에 쟌정전簡政珍, 링위零雨, 천리, 샤위夏宇, 러우칭羅青, 린야요더林耀徳, 양쟈샨楊佳嫺, 양쩌楊澤 등이 있다. 실험성 강한 시를 비롯하여 영상과 시를 융합하여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낸 작품들을 처음 접하고서 굉장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만 한정된 시론이 아니고 현대시의 사명이란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움과 신비감을 지닌 언어를 창조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현대시라는 장르는 시간과 공간, 시공을 꿰뚫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정치 운동으로 얼룩진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시대, 특히 잔혹했던 10년간의 문화대혁명 시대는 중국에 있어 진정한 현대시의 공백기였다. 그 시기에 대만의 현대시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존재했다는 것은 중국어로 쓰인 현대시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2014년 10월 11일 이나게稲毛해안에서         티엔 위안田原 1965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출생. 시인, 번역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허난河南대학교 재학 중에 첫 중국어시집 출간. 대학 졸업 후 1991년에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2003년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대학원에서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론’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 다니카와 슌타로의 작품에서 감명을 받아『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4권을 중국어로 편역하여 중국에서 일본 시가와 다니카와 슌타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로 시 창작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일본 현대시인의 작품을 중국어로 다수 번역하였고, 동시에 일본과 중국 시인들의 본격적이고 폭넓은 문학교류에 앞장서 왔다. 중국어 번역서『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편저『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1~3권, 박사논문집 『다니카와 슌타로 론』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다무라 류이치田村隆一, 쓰지이 다카시辻井喬 등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시인의 작품을 다수 중국에 번역 소개했다. 리쓰메이칸 대학 대학원생이던 2001년 제1회 유학생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어로 시 창작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 첫 일본어시집『그리하여 낭떠러지가 탄생했다』를 출간했고, 2009년에는 중국 스촨四川대지진의 슬픔 등을 쓴 제2시집『돌의 기억』을 출간하여 이 시집으로 2010년도 제60회 ‘H씨 상’을 수상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을 외국인이 수상하여 크게 화제를 모았다. 2011년에는『티엔 위안 시집』이 시초샤思潮社의 ‘겐다이시분코現代詩文庫’시리즈 205권 째로서 출간되었는데 이 또한 외국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 외에도 2005년에 번역한『다니카와 슌타로 시집』으로 중국 북경에서 제2회 ‘21세기 딩준鼎鈞문학상’과 2011년에 여러 권의 중국어시집 번역서로서 제3회 ‘종쿤中坤시가상’을 수상했으며, 중국어, 영어 시집으로 중국, 미국, 대만 등에서 여러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 일본 도쿄의 조사이城西대학 중문과 교수.       한성례 (번역) 1986년 〈시와 의식〉 등단 한국어 시집 『실험실의 미인』 외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 외 현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1721    구름도 가고 순경도 가고 남은건 나와 나의 그림자와... 댓글:  조회:3436  추천:0  2016-10-30
  ‘꼬오리 빵즈(高麗房子)’ - 최화국(1915-96)  필라델피아 공원에서  멍 하니 벤치에 앉아  고향 하늘 방향으로 흘러가는  흰구름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아주 사람이 좋아 보이는 뚱뚱보  백인 순경이 가까이 와서 악수를 청하며  헬로, 유- 차이니즈 한다  노오, 했다  오오 미안해요 그려면  유- 자파니즈 하기에  노옷! 하고 나도 모르게 화를 냈더니  다음은 물어보나마나 별 볼일 없다는 시늉으로  어깨를 한번 추스르고는  빙그레 웃으며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야아, 이자식 봐라 우스갯소리가 아니야  이 백돼지 같은 녀석아, 남에게 말을 걸어놓고  그냥 가버려, 이 못난 자식아  뭐? 차이니즈 자파니즈만이  황인종인 줄 아느냐, 아세아는 말이야  가장 아세아다웁게 말이야  짓밟혀도 짓밟혀도 시들지 낳고  슬퍼도 슬퍼도 울지도 않고  죽여도 죽여도 죽지도 않고  귀신도 탄복을 한다는  꼬오리 빵즈(高麗房子)란  종족이 있는 걸 너는 모르지?  이 백돼지 녀석아  아앗 급할 때만 발생하는 나의 실어증  급성 언어장애증의 병발(倂發)  구름도 가고 순경도 가고  남은 건 나와 나의 그림자와    경주가 고향인 최화국은 일본에서 살고 미국에서 작고했다. 백인 순경과 다만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을 뿐. 문득 생의 유랑을 호소하는 디아스포라의 대표시다. 약자의 심층적 패러독스는 일품. 마지막 행 고려방자의 자존심인 “구름도 가고 순경도 가고/ 남은 건 나와 나의 그림자와”는 명구. 그는 오십에 데뷔해서 만성했다.   * 문학의 만남  
1720    대만 모더니즘 선도자 - 예웨이롄 댓글:  조회:3663  추천:0  2016-10-30
[ 葉維廉詩選 ]   저자 예웨이리엔(葉維廉, 1937- )   대만 분야 시 해설자 고찬경(부산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동아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시인의 창작이 그의 삶의 유ㆍ무형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라면 예웨이롄(葉維廉)의 시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여러 이질적 요소들의 착종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산과 추방, 국가와 민족, 중국과 서양, 과거와 미래, 현대와 전통…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삶의 조건과 의식적인 시적 추구는 이 같은 주제 안에서 자아와 세계에 대한 독특한 감수를 담은 일련의 시를 배태했다. 시인 예웨이롄은 시적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간다. 중국 대륙, 홍콩, 타이완 그리고 미국을 오가는 생활공간의 변화는 그의 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그에 대한 시적 탐구로 이어졌다. 이 같은 예웨이롄의 자의식은 현실에 대한 관망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끊임없이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속해 있는가’ 하는, 존재의 귀속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의 또는 타의로 시골에서 도시로, 일본의 식민지에서 영국의 식민지로, 다시 타이완으로부터 미국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을 전전하며 그는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혼란으로 인해 ‘모든 감각기관과 혈관, 심지어 땀구멍과 손가락 끝까지 파고드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이 같은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기인한 불안과 혼란, 언어의 착종과 시인의 내면세계를 이루는 이질적 문화의 공존은 그의 시작(詩作)을 통해 고스란히 확인된다. 1950년 당시 중국 대륙을 떠나 타이완으로의 이주를 강요받은 시인들은 익숙한 중국 대륙이라는 문화와 창작 환경으로부터 분리됨에 따라 불안정한 ‘현재’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들은 파편화된 문화 공간 속에서 새로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한편, 그 과정 가운데의 복합적인 내면의 심리 상태를 시를 통해 드러낸다. 추방과 이산에 따른 우울과 방황, 향수와 고독뿐 아니라 단절 후 재건이라는 자각적 심미 의식의 회복이 그들의 시, 특히 예웨이롄의 시적 여정에 고스란히 노정되어 있다. 외재적 타격을 내재화해 가는 이 모든 과정은 개인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경험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예웨이롄 시의 특징은 이 같은 개인 정체성의 탐구가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 차원으로 외연을 가짐에 따라 그의 시 또한 문학사적 의의를 함께 획득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아울러 그의 시의 현대성의 추구가 대륙의 1930∼1940년대 모더니즘의 계도로부터 1950∼1960년대 타이완 시단의 모더니즘에 경도된 후, 중국 전통 시에 대한 의식적 추구로 화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대륙과 홍콩, 타이완 등지의 각각의 상이한 특성을 품은 모더니즘의 양상이 그에게서 계승되고 융화되어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타이완의 현대 시인들은 대륙의 역사적 경험을 내재화해 타이완의 사회ㆍ정치적 현실에 조응해야 하는 시적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생활공간과 창작 환경의 변화 속에 그들은 상술한 바와 같은 복합적 정서를 고도로 응축된 시어와 다의적 이미지 속에 이식해 가기 시작한다. 예웨이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이 무렵 그는 1930∼1940년대 대륙의 언어미학으로부터의 경험을 타이완이라는 창작 환경 속에 이입해 간다. 역사의 재건과 민족의 자각이라는 제재는 이산자인 시인에게 일종의 사명과 책임으로 의식화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타의 또는 자의에 따른 추방과 이산의 경험이 오히려 시인의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그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이 아닌 무형의 민족의 품을 귀속처로 삼은 듯하다. 그것은 ‘조국과의 영원한 결별’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린 후, 모호하기만 했던 ‘신분 정체성’을 인식해 가는 과정 가운데 획득한 ‘문화 정체성’으로의 귀결이었다. 즉, 당시 대륙과 홍콩, 타이완은 각각 이질적인 정치ㆍ사회ㆍ문화 환경 속에 놓여 있으면서 심지어 대결 양상을 띠고 반목했지만, 세 영토는 결국 시인에게 동질의 문화를 공유한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된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인에게 ‘민족’은 영토를 뛰어넘고 국경을 초월하는 ‘우리’로 호칭해도 전혀 거리낄 것 없는 친숙하고도 자연스러운 개념이 된다. 이처럼 정체성의 탐구와 현대성에 대한 추구가 그 깊이를 더해 갈수록 시인은 중국적인 어떤 익숙한 공간과 민족의 보편 정서로 회귀하게 된다. 이 같은 정향은 시의 예술적 탐색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웨이롄은 중국 고전시의 성과를 현대성을 갖춘 시적 기교에 의식적으로 융화시켜 감으로써 새로운 현대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예웨이롄의 초기 시는 타이완 모더니즘 시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분류되는데, 그 이유는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유의 방식을 초월해 의식적으로 작품 가운데 설명적인 서술적 요소를 배제하고, 사물의 객관적인 형상과 시인 사유의 결과만을 독자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대략적 묘사마저 배제함으로써 독자는 시인의 사고의 과정을 파악하기도 힘들 뿐더러 작품 속 대강의 뜻도 확정하기 어렵다. 시인은 다만 ‘이러함’만을 드러낼 뿐, 왜 이러한지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독자는 그저 작품에서 사물의 평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시에서의 현대성의 추구는 그가 고백한 대로 중국의 1930∼1940년대 시인들의 창작, 특히 볜즈린(卞之琳)과 신디(辛笛)의 창작에 힘입은 바 크다. 이에 대해 예웨이롄은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1930∼1940년대의 시인과 비평가를 발견하고 그들의 사색을 계승하게 되었으며 전략적 토대가 되는 언어의 간결함을 찾아내게 되었다. <나와 1930∼1940년대의 혈연관계(我和三四十年代的血緣關係)>라는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서의 내재적 호응’, ‘장면의 변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눈앞에 보여 주기’, ‘극적 장면’, ‘사건의 율동과 전개의 긴박감’ 등은 이후의 시 속에서 음악적 경향과 분위기의 융합으로부터 분위기의 풍부함과 효과를 얻어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5ㆍ4운동 이래 중국의 현대 시인들은 세계문학과의 조우를 통해 시의 형식과 내용을 부단히 확장해 갔다. 세계문학의 거대한 조류는 중국 현대시라는 드넓은 미개척지에 일시에 들이쳤고, 시인들 역시 이를 계기로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통해 시의 영역을 부단히 넓혀 갔다. 그러나 중국과 서구의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과 문화적 바탕의 이질성으로 말미암아 서구 문예의 성과는 중국의 전통 정감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식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시와 서구 시의 이 같은 상호 교류로 인해 중국의 현대시는 부단히 확장되고 성숙해 갔다. 예웨이롄은 상이한 이 두 세계의 내면화를 통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사유의 총체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나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고심하며, ‘탐구’하고 ‘모색’해 갔다. 이를 위해 전통과 현대의 상이한 문화적 시공을 넘나들며 문화와 역사의 다층적 반향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울러 고전적 어휘와 이미지, 구법을 이용해 새로움을 빚거나 중국 시가 중시하는 현현[呈現]의 방식을 사용해 시각적 이미지와 사건을 한데 어울렀다. 이 밖에 서양 현대시가 제공하는 함축과 다의가 농축된 언어로써 어지러이 산산조각 난 현대 중국의 경험을 길들여 갔다.” 1950∼1960년대 타이완의 많은 시인들은 고전적 어휘와 이미지를 자신의 시에 되살림으로써 중국문학의 본류를 재현하려 했다. 예웨이롄이 밝힌 ‘산산조각 난 현대 중국의 경험을 길들이기’ 위한 그 모든 ‘탐구’와 ‘모색’은 결국 ‘파편화된 문화 공간’을 ‘파괴’하고 ‘재건’하기 위한 시인의 주체적 자각이자 역사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예웨이롄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그의 초기 시작(詩作)을 서양 현대시의 학습과 적용에 실패한 사례로 꼽는가 하면, 순수시 창작을 시인의 역사적 사명의 방기로 단정 짓는 서술도 보인다. 이 같은 평가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종결된 이후, 문예의 해빙기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 문단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때까지도 사회ㆍ정치적 효용성의 여부와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시인과 개별 문학작품에 대한 부동의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훙쯔청(洪子誠), 류덩한(劉登翰)이 함께 쓴 ≪중국 당대 신시사(中國當代新詩史)≫(1993)에 이르면 더 이상 난해하다는 이유로 예웨이롄의 시를 폄훼하는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수년 사이 시인 예웨이롄을 새롭게 주목하는 한편, 중국 당대 문학의 숨겨진 성과로 그의 시를 재평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된다. 주요 정기간행물에 그에 대한 특집 기사가 게재되는가 하면, 2008년에는 총 열한 권으로 구성된 예웨이롄 문집이 인민문학출판사와 안후이(安徽)교육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아울러 같은 해 3월 말에는 북경대학 중국현대시연구소(北京大學中國新詩硏究所)와 수도사범대학 중국시연구센터(首都師範大學中國詩歌硏究中心) 공동 주최로 ‘예웨이롄 시 창작 심포지엄(葉維廉詩歌創作硏討會)’이 개최되기도 했다. 예웨이롄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의 증폭은 근래 중국문학의 세계적 확장을 위한 ‘해외 화문 문학’의 정립에 그가 좋은 모델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예웨이롄의 시는 탐구와 탐색의 기록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회의로부터 시작되는 자아 정체성의 끊임없는 탐구는 그가 살아온 현대사의 특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민족 정체성의 탐구로 변화했다. 상술했다시피 예웨이롄 시의 특징은 이 같은 개인 정체성의 탐구가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그의 시 또한 문학사적 의의를 함께 획득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는 끊임없는 시적 탐구와 현대성의 추구를 통해 이 같은 정체성의 문제를 해소해 간다. 즉, 1930∼1940년대 중국 모더니즘의 계승자이자 1950∼1960년대 타이완 모더니즘의 선도자인 예웨이롄은 이 같은 현대성의 계승과 확장의 과정을 거친 뒤 중국 전통 시와 서양 현대시의 융합을 통한 현대성의 재창조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청명한 푸른 하늘에 언뜻 스쳐 가는 검은 새 한 마리’와도 같은 순간의 포착과 그 기록으로 구성된다. 그의 시의 문학사적 의의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전통과 현대를 두루 아우르는 이 같은 시적 조화라는 창조적 성과에 있다 할 것이다.    
1719    대만 녀성시인 - 옌아이린(옌艾琳) 댓글:  조회:3758  추천:0  2016-10-30
  타이완 여성 시인 칠월의 필라리아(filaria) 외 2편 -한 여자의 귀월(鬼月)을 기억하며 옌 아이린       칠월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정오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나를 태운다.   몸 안의 수분이, 땀으로  경혈로  눈물로 나를 떠나간다. 그러나 내겐 고통을 축적할 방법이 없다. 잠을 잊은 밤의 매 순간마다 내 눈은 바닥이 깨진 그릇처럼 이런 액체와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칠월에, 누가 나를 떠나가는가? 그 사람은 또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당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래요. 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걸 용서해주세요.」 그의 고백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자신을 빗자루로 만들어 집 안 여기저기를 쓸기 시작한다. 맨 구석부터 오래된 세월의 부스러기들을 쓸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또 내 손을 두 장의 걸레로 만들어 수정 탁자와 유리 장을 닦기 시작한다. 침실의 화장대와 욕실의 거울을 결혼사진과 아이가 태어난 뒤의 삶을 담은 사진을 닦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것들이 전부 더러워져 있다. 하지만 걸레를 비틀어 짜면, 손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찝찔한 눈물이다.   액체로 된 모든 것들이, 마침내 내 몸을 빠져나와 흘러간다.   칠월, 아, 얼마나 뜨거운 칠월인가 내 몸은 말라서 텅 비어버린다. 미라처럼 깨끗하게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때,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사실은 이미 처량한 귀신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                                                             -2008년 『유사문예(幼獅文藝)』9월호에 발표       봄에 가을 치마를 입다                            삼월에, 나는 구불구불 산 속의 작은 길로 들어서,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망초들이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을 본다 망초들은 내 검은 외투의 방향을 막고 있다. 망초들이 말한다:「더는 앞으로 가지 마세요. 그곳은 온통 가을이에요. 당신은 겨울에 차가운 깨끗함을 잘 못 지나왔어요. 게다가 봄은 방금 산 밑에 도착했다고요. 하지만 가을은, 지난해부터 줄곧 우울해하더니, 지금까지 이곳을 배회하면서 가지 않고 있어요.」 나는 말라비틀어진 망초 꽃을 어루만지며, 담묵(淡墨) 같은 미소로 가볍게 화선지를 건너뛴다. 「저는 가을에 태어난 영혼이거든요.」   걸음을 옮기는 신발에 지난해의 낙엽과 썩은 풀이 잔뜩 달라붙고, 검은 외투는 요염한 자줏빛 가시나무에 한 쪽 자락이 걸려버린다. 마음속 일들이 달라붙기라도 한 듯, 그녀는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어째서 아직도 이곳에 겨울이 만연한 걸까요?」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 가운데 한 송이를 딴다. 「그럼 나를 봄을 부르는 편지로 삼지 않을래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눈앞에 얼마나 좋은 대답이 깔려 있는지, 산 계곡에 가득한 자줏빛 가시나무들이 일제히 화답한다.   온몸에 아름다움이 가득해진다.   그런 다음에, 내가 외투를 벗고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누가 보았을까?   주: 2009년 1월, 나는 신주(新竹) 국립예술원예구 안에 있는 산 언덕길을 두 시간 남 짓 한가하게 걸으면서 가을과 겨울, 봄 세 계절의 생태를 한꺼번에 체험했다.                                    ***** ...시평 카페 회원 여러분!  옌 아이린 시인은 우리 시평 회원들과 친숙한 타이완의 여성 시인입니다. 3년 전 속초에서 아시아 시 낭송대회를 열었을 때 먼 길을 와서 아주 매력적으로 시를 낭송했습니다. 그 사람이 눈 오는 오늘 양평 용문산 동쪽에 혼자 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멀리 있는 사람을 생각할 때 시가 오는 것 같습니다. 저 하늘에서 눈 송이 송이가 소리없이 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자주 만나 뵙겠습니다.  - 고형렬 드림  
1718    대만 시인 - 余光中 댓글:  조회:3997  추천:0  2016-10-30
    鄕愁 (향수)                        余 光中*           小時候                         어릴 적 鄕愁是一枚小小的郵票     향수는 한 장의 작은 우표 我在這頭                      나는 이 쪽 母親在那頭                   어머니는 저 쪽   長大後                       어른이 된 뒤 鄕愁是一張窄窄的船票   향수는 한 장의 좁다란 연락선 표 我在這頭                    나는 이쪽 新娘在那頭                 아내는 저쪽   後來啊                       한참 지난 뒤 鄕愁是一方矮矮的墳墓   향수는 동그마니 무덤 하나 我在外頭                   나는 바깥 쪽 母親在裡頭                어머니는 저 안쪽   而現在                      하지만 지금 鄕愁是一灣淺淺的海峽  향수는 건너다보이는 저 해협 我在這頭                   나는 이쪽 大陸在那頭               고향(대륙)은 저쪽 ----------------------------------------         위광중(余光中 1928~): 위광중은(1928-), 타이완이 낳은 유명한 시인으로, 그 유명한 정도가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 얻은 수확 중에 이 시인을 발견한 것도 포함된다. 본적이 복건성 영춘이며, 출생은 강소성 남경에서 태어났다. 1947년에 금릉대학 외국어과에 입학해서(후에 하문대학으로 전환),1949년에 부모님 따라서 홍콩으로 이사 했다. 다음해 대만으로 가서 대만대학 외국어과에 다녔다. 1952년 첫 시집 발표에서《주자의비가》 , 같은 해 본교 연구원 영국 문학연구로 전환하여, 석사학위를 획득하였다. 1953년,담자호와 종정문(금문)등 "쪽별" 이라는 시사를 창립하였다. 후에1958년 미국으로 연수가서, 애하화 대학의 예술 석사학위를 획득하였다. 대만으로 돌아온후 사범대, 정치대. 대만대, 및 홍콩 중국어 대학 교수직을 맡았다. 현재 대만 중산대학 문학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위광중선생은 중국시의 세계에서 그야말로 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많은 시를 썼고 시를 쓴 시간도 길다. 게다가 현재 창작의 가장 픽크 상태 [최상의 컨디션]에  처해있다. 일찍이 이런 열정이 가시지 않은 청춘기에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했던 것이다. 위광중은 시를 쓸 뿐만 아니라. 게다가 시 평, 시 평만 한 것이 아니다, 시 편집과 시 번역도 했다. 시인, 편집가, 시 평론가, 번역가, 그는 모든 것을 겸했다. 그는 진정한 만능인이다. -인터넷 자료      
1717    나를 오리신고는 침선으로 나를 꿰매셨다... 댓글:  조회:3527  추천:0  2016-10-30
일곱 자의 천 /수샤오리엔(타이완)  어머니는 천 일곱 자만 사가지고 돌아오셨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왜 내가 직접 사러가지 않았을까. 내가 말했다. "엄마 일곱  자로는 부족해요, 여덟 자는 있어야 만들 수 있어요." 어머님이 말  씀하셨다. "전에 만들 때는 일곱 자로도 충분했는데, 네가 그렇게  컸단 말이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만 스스로 왜  소해져가셨다.  어머니는 옛 치수대로 천 위에 나를 하나 그리셨다. 그런 다음  가위로 천천히 오려나가셨다. 나는 천천히 울었다. 아! 나를 오려  나가셨다. 나를 오리신 다음, 다시 침선으로 나를 꿰매셨다. 그러  곤 나를 기워...사람이 되게 하셨다.  *김태성 옮김  ㅡ계간(2003. 겨울) 아시아 교과서 명시 중에서  ----------------------------------  타이완에서 산문시에 관해 언급하자면 수샤오리엔이란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산문시는 비교적 늦게 등장한 시가 유형으로 글쓰기의 체제가 산문과 현대시를 넘나들기 때문에 '기술적인 위치 설정'에 있어서 항상 질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와 관련하여 말이 막힐 때마다 산문시 시인들은 수샤오리엔의 산문시를 들어 상대방에게 시가의 체제와 시정신의 본질을 이해시키곤 했다. 이런 평가를 반증하듯 그녀의 시 은 타이완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최초의 산문시로 기록되었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일종의 전통을 대표하는 개념으로서 현실의 윤리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로 하여금 일곱 자의 천의 범위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결국에는 '나'를 오려 사람이 되게 하긴 했지만 사실 이는 현실 속에서 이미 성장해버린 '내'가 아니라 여전히 어머니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아이인 것이다.  150자도 채 안 되는 시문에서 독자들이 가장 먼저 해독해야 할 것은 '나'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에 대한 희망과 어머니의 따스함과 강경한 보호 사이에서의 선택으로서, 이는 부모 곁을 떠나려는 욕망과 계속 남고자 하는 미련 사이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크고 강한 모성애의 제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옛 치수대로 천 위에 나를 하나 그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런 다음 어머니가 고집스럽게 "가위로 천천히 오린" 다음 "침선으로 꿰매는" 것을 참아내야 한다. 마침내 어머니가 옷을 만드신 후에는 여전히 천이 모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러곤 나를 기워...사람이 되게 하신 것"은 쌍방이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어색함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강렬한 정서의 전환을 이처럼 짧은 편폭에 담아내는 것이 수샤오리엔의 필력이 갖는 오묘함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허구적' 정감의 변화를 '실제적' 동작묘사와 결합시켜 산문시가 갖는 산문적 서술특성을 이용하면서 그 안에서 시적 이미지의 도약을 주입함으로써 마치 높은 산봉우리를 빙빙 돌아서 올라가듯이 긴장으로 충만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시의 새로운 경지를 빚어내는 것이다. ㅡ'옌아이린'의 시평 중에서 요약함.  서구의 문예사조에 편승한 우리의 현대시는 그동안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타이완 등 아시아의 현대시에는 무관심했거나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빚어진 서구화의 부정적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시와 다소 장황하고 지루한 시의 평문을 소개하는 것은 그들의 정서와 (시의 밑그림이 되는) 시인의 원체험이 우리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수샤오리엔 : 타이완 여성 시인. 중국시보(中國時報) 문학상 시 부문, 연합보(聯合報) 시 부문 당선. 주요시집으로 , , , , 등이 있다.  *옌아이린 : 타이완 여성 시인. 주요시집으로 , 등이 있다.  ------------------------------------------------------------------------------ 
1716    "동주" - 그는 가깝고 그리운 한 사람이다... 댓글:  조회:4263  추천:0  2016-10-29
시의 운율과 음악성  1. 시의 운율  운율(韻律)은 이름 그대로 운(韻)과 율(律)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합한 한자어로서 전자를 압운(押韻, rhyme, rime), 후자를 율격(律格, meter)이라고 하는데 포괄적으로 말하면 '운'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율'은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주기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다시 여러 하위 범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오늘날 이 말은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즉, 압운과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소리의 일정한 규칙적 질서뿐만 아니라 형태로 포착할 수 없는 내재적 리듬을 말할 때도 운율이라는 말을 쓴다.  (1) 운(韻)  운(韻)이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그 기본 형태로 하는 것을 말한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 서정주, '귀촉도'에서  이 시에서는 자음 'ㅅ'과 'ㅇ'이 반복되어 운(韻)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시에서의 운은 서구시나 한시에서처럼 엄격하거나 다양하지 못하고 단조로우며 발견하기도 어렵다. 대체로 단순한 소리의 반복이거나 동어 반복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시의 운이다. 그것은 우리말이 교착어인 까닭으로 어절이나 단어의 끝 음상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 율격(律格)  율격은 앞에서 말한 대로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을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생겨난다. 그것은 고저율(tonal), 강약율(dynamic), 장단율(durational)로 세분되지만, 우리시를 논할 때는 거기에 다시 음수율(音數律)이 보태어진다. 그러나 고저율, 강약율, 장단율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 한국시의 율격은 음보율(音步律)이 일반화되어 있는 통념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에서  이 시는 7.5조의 음수율을 기조로 한 시의 일부이다. 그러나 우리시의 이러한 음수율은 그 음절 배열의 규칙이 엄격하지 않고 느슨해서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음수율보다 음보율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2. 운율의 구성 요소  시의 운율은 말이 지니고 있는 음성적 요소의 규칙적 배열, 특정한 음보의 반복, 음성 상징어의 구사, 일정한 음절의 규칙적 배열과 반복, 통사 구조 및 행과 연의 규칙적 배열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운율은 또한 의미 구조에도 밀착되어 있어서 시인이 작품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데, 음악성에 대한 욕구를 시의 내면으로부터 충족시키려고 하는 추세는 현대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다.  3. 운율의 갈래  (1) 외형률(外形律)  외형률은 운율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 가시적, 물리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것으로 객관적 운율이라고도 한다.  ① 음성률(音聲律)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음질 등의 여러 속성들이 한 단위가 되어 규칙성을 띠고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음성률은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시에서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말에도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창작할 때 그것을 고려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② 음수율(音數律)  음절의 수를 단위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계측함으로써 나타나는 율격을 말한다. 주로 1행을 기준으로 그 속에 드러나는 각 음보의 음절수를 헤아려 그 규칙성을 따지게 되는데 이른바 3.4조, 4.4조, 7.5조 등은 이 음수율에 의해 계측된 율격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때는 많은 날을 /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 꿈은 있지만  - 김소월, '임에게'에서  빗금(/)을 중심으로 앞은 7음절, 뒤는 5음절로 되어 있어 전형적인 7.5조의 음수율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음수율은 시행에 배치된 음절의 수를 따져 그 규칙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음수율은 우리말의 특성상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지적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의 어절 구조는 대체로 1∼3음절이 대부분이므로 여기에 조사가 붙으면 2∼5음절의 어휘가 되므로 자연스럽게 3·3, 3·4, 7(3.4, 4.3)·5(2.3, 3.2)조의 음수율을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운율적 자질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기하기도 하다.  ③ 음보율(音步律)  불안정한 운율적 자질을 가진 음수율보다는 호흡의 단위로 측정하려는 것이 음보율인데, 음수율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이후 이것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음보율을 따지는 방법은 서구시에서처럼 몇 개의 음보(音步, foot)가 모여 한 행을 이루고 있는가를 따지는 방법과 음절 및 각 음절이 지니는 장단(長短)의 속성이 실현되면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길이가 같은(시간의 등장성, 等長性 equal length) 단위로 따지는 방법으로 사용하므로, 현대시와 같이 한 행을 이루는 음절수가 불규칙한 경우에 적용하기에 알맞다.  얇은 사(紗) /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 나빌레라.  파르라니 /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 감추오고,  두 볼에 /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에서  이 시는 음절수로는 운율의 파악이 어렵지만, 호흡 단위인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으로 파악해 보면 2음보의 중첩형인 4음보격의 음보율을 갖춘 시임을 인식할 수 있다.  ④ 음위율(音位律)  음위율은 동일한 말소리가 일정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반복될 때 형성된다. 음위율에는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등이 있지만, 이것도 우리시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이 아니다.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발달된 것으로, 우리의 경우는 한시의 영향에서 각운의 형태가 더러 사용되는 예를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말은 종결 어미가 거의 한정이 되어 있어 서구시에서와 같이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운의 형태가 형성되기 때문에 운적(韻的) 자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음은 각운의 예가 드러난 시이다.  섬은 날 가두고 ·  회오리바람으로 날 가두고 ·  원산도 앞에는 삽시도  ·  삽시도 앞에는 녹도 ·  파도가 날 가두고  피몽둥이 바람으로 날 가두고  -홍희표, '섬에 누워'에서  (2) 내재율(內在律)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시의 내면에 존재하는 주관적, 정서적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한다. 즉, 시인이 형상화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주관적 운율로서 개개의 시 속에 흐르는 시인의 특유한 맥박과 호흡이라 할 수 있다  ====================================================================================     별 헤는 밤 ― 윤동주(1917∼1945)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 미리 밝히지만 이 글은 영화의 감상평도, 선전 용도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들으니 반가울 뿐이다. ‘동주’라니 이 얼마나 고운 이름일까. 마치 겨울의 구슬 같기도 하고 먼 지명 같기도 하고 참한 여인네의 이름 같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에서 성을 빼고 ‘동주’라고 이름을 다시 불러보자. 이 시인은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겨우 책 속에서 만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맞다. 그는 가깝고 그리운 한 사람이다.  제 스스로 맑고 고운 이름의 사람은 다른 맑고 고운 이름들을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의 고운 한 사람을 알아보고, 고운 것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고 해야 옳겠다. 시인의 곁에 찾아든 맑고 고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별 헤는 밤’이다. 이것은 별의 시이기 이전에 이름의 시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총출동하는, 아름다움의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이 잔혹한 세상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으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 세상과 가깝지 않기 때문에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겨우 훔쳐볼 수만 있다. 눈이 부신 것은 잠시 잠깐이어서 가능하다. ‘동주’를 매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맑아진다. 시도, 고운 이름도,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1715    5 + 7 + 5 = 17 댓글:  조회:4340  추천:0  2016-10-28
"한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모음     '5·7·5' 3행의 17자로만 구성돼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   단지 열일곱 자로 이루어진 하이쿠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짧은 형태의 시다. 4백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세계의 많은 시인이 하이쿠를 쓰고 있고, 서양에는 하이쿠 시인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짧은 시가 가진 함축미와 선명한 이미지는 일찍이 에즈라 파운드에게 영향을 미쳐 20세기 영미시를 주도한 이미지즘 운동을 촉발시켰으며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월레이스 스티븐스, 릴케 등도 이 시 형식에 자극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이쿠는 정통파 시인뿐 아니라 앨런 긴즈버그, 게리스나이더, 잭 케루악 같은 비트 계열의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들은 영어로 된 하이쿠를 썼으며 이는 동양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번개처럼, 우리들 생애 파고드는 침묵의 언어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 바쇼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 타다토모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 바쇼 벼룩, 너에게도 밤은 길겠지, 밤은 분명 외로울 거야 - 이싸 봄에 피는 꽃들은 겨울 눈꽃의 답장! - 오토쿠니   하이쿠는 우리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삶 속에 깊숙이 내려놓는다. 하이쿠는 하나의 신비, 단지 일상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물의 본질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로버트 스파이스(미국의 하이쿠 잡지의 편집자)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남는 것이다 저 하늘까지도 (쉰 살 생일을 맞아 - 이싸)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싸)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 (소세키)     거지가 걸어가고 그 뒤에 나란히 나비가 따라 간다 (세이 세이)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청소를 잘 안 하니까 (이싸)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하지만...... - 어린 두 딸을 잃고 아들마저 죽은 뒤 쓴 시 (이싸)     이 덧없는 세상에서 저 작은 새조차도 집을 짓는구나 (이싸)       몹시 춥겠지만 불가에서 몸을 녹이지는 말게 눈부처여! (소칸)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저 나비, 무슨 꿈을 꾸길래 날개를 파닥거릴까? (치요)     꺽어도 후회가 되고 꺾지 않아도 후회가 되는 제비꽃 (나오조)     내 귓가의 모기는 내가 귀머거리인줄 아는 걸까? (이싸)     달팽이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이싸)     '여름이라서 마른 거야'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그녀는 이내 눈물을 떨군다 (키킨)     장마비 내리자 물가에 서 있는 물새의 다리가 짧아지네 (바쇼)     한낮의 정적 매미 소리가 바위를 뚫는다 (바쇼)     흰 이슬이여 감자밭 이랑마다 뻗은 은하수 (부손)     저 뻐꾸기는 여름동안 한 곡조의 노래만 부르기로 결정했구나 (료타)       이상하다 꽃그늘 아래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이싸)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이싸)     오늘이라는 바로 이날 이 꽃의 따스함이여 (이젠)     세상은 사흘 못 본 사이의 벚꽃 (료타)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 보인다 (바쇼)     밥을 지어라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올해의 쌀로 (에자키 요시히토)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 (산토카)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바쇼)        하루 종일 부처 앞에 기도하며 모기를 죽이다 (이싸)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 (사초)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지는 벚꽃 (료칸)     내가 경전을 읽는 사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이 첫눈 위에 오줌을 눈자는 대체 누구인가? (기가쿠)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있네... (이싸)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부손1716~1827)     한밤중에 잠이 깨니 물항아리 얼면서 금 가는 소리 (바쇼)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은 두고 갔구나 (료칸)     이 눈 내린 들판에서 죽는다면 나 역시 눈부처가 되리 (초수이)     아이들아, 벼룩을 죽이지 말라 그 벼룩에게도 아이들이 있으니 (이싸)         밤은 길고 나는 누워서 천년 후를 생각하네 (시키)        내 집 천장에서 지금 자벌레 한 마리가 대들보 길이를 재고 있다 (이싸)        저세상이 나를 받아들일 줄 미처 몰랐네... - 죽음을 맞이하며 (하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기가쿠)     내 전 생애가 오늘 아침은 저 나팔꽃 같구나... - 생애 마지막으로 쓴 시 (모리다케 )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눈사람에 대해 나눈 말 눈사람과 함께 사라지네 (시키)           쌀을 뿌려 주는 것도 죄가 되는구나 닭들이 서로 다투니 (이싸)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바쇼)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눈 내린 아침!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에는 미움받는 까마귀조차도 (바쇼)     겨울비 속의 저 돌부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싸)     한 번의 날카로운 울음으로 꿩은 넓은 들판을 다 삼켜 버렸다 (이메이)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싸)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친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봄의 첫날 나는 줄곧 가을의 끝을 생각하네... (바쇼)     너무 오래 살아 나 역시 춥구나 겨울 파리여! - 인생의 마지막 시 (타요조)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 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 버렸네... (시메이)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이싸)     은하계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떠돌이 별은... (이싸)     땔감으로 쓰려고 잘라다 놓은 나무에 싹이 돋았다... (본초)     물고기는 무엇을 느끼고 새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바쇼)     대문 앞에 난 단정한 노란 구멍, 누가 눈 위에 오줌을 누었지? (이싸)     모든 종교와 말들을 다 떠나니 거기 자두꽃과 벗꽃이 피었구나... (난후꼬)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 임종때 남긴 시 (이싸)     절에 가니 파리가 사람들을 따라 합장을 하네... (바쇼)     너의 본래 면목은 무엇이니, 눈사람아...... (소세키)     매미 한 마리 우는데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늦은 가을... (이싸)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 정치인의 초대를 받고서 답장으로 쓴 시 (쇼세키)     그녀가 젊었을 때는 벼룩에 물린 자리조차도 예뻤다네... (이싸)     작년에 우리 둘이 바라보던 그 눈은 올해도 내렸는가...... (바쇼)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命二つの中に生きたる 哉  ‘모든 사물의 끝은 허공인데 그 끝이 허공이 아닌 것이 꽃’ 이라고 서정주 시인은 썼다. 여행 중인 자신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향 친구와 19년 만에 재회했을 때 지은 하이쿠이다. 이전의 벚꽃을 함께 본 사람을 다시 그 나무 아래서 만난 감회, 먼 날의 추억과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음의 경이를 읊고 있다. 더불어 두 사람이 같은 미의식을 공유하는 정신적 기쁨까지 담겨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바쇼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원문의 ‘이키타루(生きたる)’는 단순히 ‘살아 있는’ 이 아니라 재회의 기쁨에 잠긴 두 사람의 눈으로 올려다보니 ‘더욱 눈부시고 생생하게 피어 있는’ 꽃의 의미이다. ‘두 개의 생’ 사이에 그 둘을 이어 주는 또 하나의 생을 가진 벚나무의 꽃이 만발해 있다. 우리가 이곳에 부재해도 꽃은 변함없이 필 것이다. ( '바쇼' 중에서/ p.10)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잠들어 있다 釣鐘に止まりて眠る胡蝶かな 언제 누가 종을 칠지 모르는 상황, 나비의 평화로운 잠과 예고된 결말의 대비가 강렬하다. 독일어로는 ‘절의 종에 / 나비가 앉아 있다 / 그 종을 칠 때까지는’으로 번역되었다. 전쟁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마지막 장면을 대포 포신에 앉은 나비로 끝맺었다.  이 하이쿠는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가 영문판 [선과 일본 문화]에 소개해 서구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다이세쓰는 "우리는 나비에게 인간의 판단을 적용하려고 하지만, 우주적 무의식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분별심을 버리고 걱정과 번민과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 믿음과 두려움 없는 생을 누리고 있다."라고 해석한다. 근대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고서점에서 우연히 부손의 시집을 발견해 읽고는 ‘바쇼 이후 최고의 시인’이라고 확신했다. ( '부손' 중에서/ p.15) 여윈 개구리 지지 마라 잇사가  여기에 있다 蛙まけるな一茶是に有り 여름은 개구리의 번식기, 암컷을 두고 수컷들이 사투를 벌이는 계절이다. 잇사는 힘없는 마른 개구리를 응원한다. 힘내라고, 여기 너처럼 말랐지만 널 응원하는 잇사가 있다고. 강자를 선호하는 사회에 허약한 잇사의 개구리가 맞서고 있다. 파리, 벼룩, 개구리처럼 약하고 천대받는 존재를 향한 동정심과 연대감이 잇사 하이쿠의 강점이다. 그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약자에게 친밀감을 갖는다.   이 하이쿠는 일본과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여윈 개구리’는 잇사 자신이면서 병약하게 태어난 자신의 첫아들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 옥타비오 파스 는 말한다. "잇사는 인간과 벌레와 동물과 별들의 운명 사이에 존재하는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발견한다. 그의 시에는 고통을 나누는 우주적 형제애, 인간이든 곤충이든 세계 속에 사는 유한한 생명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담겨 있다." ( '잇사' 중에서/ p.21) 몇 번씩이나 내린 눈의 깊이를  물어보았네 いくたびも雪の深さを尋ねけり 밖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있고 시인은 눈이 얼마나 내렸는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묻는다.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병이 깊기 때문이다. 눈은 내리고 죽음을 눈앞에 둔 한겨울 고독이 깊다. 눈 내리는 풍경을 내다볼 수 있게 제자가 장지문을 유리문으로 바꿔 주었으나 시키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하이카이로 불리던 것을 ‘하이쿠’라는 명칭으로 확립시킨 마사오카 시키는 스물세 살에 폐결핵에 걸려 서른다섯에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잊혀져 가는 하이쿠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혼과 열정을 바쳤다. ( '시키' 중에서/ p.25) 꽃잎이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落花枝に と見れば胡蝶かな 원문을 직역하면 ‘떨어진 꽃잎 가지로 돌아가길래 보니 나비여라’이다 . 허공에 날리며 지는 꽃잎들 중 하나가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간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나비이다! 그 순간 허무가 생명으로 도약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이 하이쿠를 영역 소개하며 말했다. "옛날 중국의 어느 시인은 말해야 할 것을 12행으로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하이쿠는 더 짧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리타케의 이미지 중첩 기법을 이용해  ‘군중 속 얼굴들의 혼령 / 젖은 검은 나뭇가지의 꽃잎들’이라는 2행시를 썼다. 그리고 긴 시보다 선명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미지즘 운동을 일으켰다. ( '모리타케' 중에서/ p.34) 손바닥에서  슬프게도 불 꺼진  반딧불이여 手の上に悲しく消ゆるか  슬픈 일은 어떤 존재가 내 손에 앉아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꺼지는 일이다. 그 한 가지 슬픔이 천 가지 기쁨을 사라지게 만든다. 교라이에게는 지네조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교양 있는 집안에서 자란 지네조는 재주 많은 여성이었으며 하이쿠에도 뛰어 났다. 교라이는 여동생을 무척 아꼈지만, 그녀는 불행히도 결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 하이쿠 속 반딧불이는 그 여동생 지네조이다. 지네조는 세상과 하직하며 다음의 하이쿠를 썼다. 쉽게 빛나고/ 또 쉽게 불 꺼지는/반딧불이여  もえ易く又消え易きか ( '교라이' 중에서/ p.140) 재 속의 숯불 숨어 있는 내 집도  눈에 파묻혀 うづみ火や我かくれ家も雪の中 불은 화로의 재 속에 있고, 화로는 나의 오두막 안에, 오두막은 눈 내리는 밤의 어두운 세상안에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내가 앉아 있다. 눈에 파묻힌 오두막은 재 속 숯불처럼 따뜻하다. 커다란 차가움과 작은 따뜻함, 큰 어둠과 작은 불빛이 공존한다.   비교문학자 히라카와 스케히로는 이렇게 묘사했다. "한 곳에 불씨가 있고, 그것을 덮은 재가 있으며, 그 위를 덮듯이 화로에 붙어 앉은 주인이 있고, 그 작은 방을 에워 싼 작은 집이 있다. 그리고 그 집을 덮은 눈이 있다. 오두막 지붕 위에는 눈 내리는 밤하늘의 어둠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따뜻함을 간직한 재 속의 불씨를 중심으로 한 줄의 시가 동심원을 그리며 우주를 향해 뻗어나간다." ( '부손' 중에서/ p.160) 다음 생에는  제비꽃처럼 작게  태어나기를 菫ほどな小さき人に生まれたし "불유쾌함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는 더 편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상태라고 여길 때조차 있다. " (김정숙역, 나쓰메 소세키[유리문 안에서])  일본 근대 소설의 최고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뒤 도쿄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문학 동료 시키를 만났다. 졸업할 즈음 가족들의 잇단 죽음을 겪으며 폐결핵과 고질적인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심한 염세주의에 빠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 '소세키' 중에서/ p.360) 불을 켜는  손가락 사이  봄밤의 어둠 をとも 指の間の春の闇  누구나 자기만의 불을 켜고 있고, 손가락 사이의 어둠을 가지고 있다. 달 없는 봄밤,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무언가 있는 것도 같은 어렴풋한 어둠을 응시하는 일도 삶의 한 부분이다. 방 밖의 어둠을 말하는 것이 보통인 ‘봄밤의 어둠’을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가져온 감각이 섬세하다.     눈을 감으면 / 젊은 내가 있어라 / 봄날 저녁  眼つむれば若き我あり春の宵 그 청춘의 날들, 반짝이던 봄날의 감성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는 날들만 남아 있을지도. 다른 계절도 아닌 봄밤의 언저리,어슴푸레한 어둠속에 젊은 날의 내가 서 있다. ( '교시' 중에서/ p.387) 비처럼 쏟아지는 매미 소리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오고 時雨子は 送車に追ひつけず ‘세미시구레(?時雨)’는 비처럼 한바탕 쏟아지는 매미 소리를 일컫는 말로 ‘눈물을 쏟는다’의 은유적 의미도 있다. 요란한 매미 울음 속에 윙윙거리며 달리는 구급차를 아이가 쫓아온다.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된 채. 결국 아이는 엄마가 탄 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애타게 멀어진다. 이시바시 히데노는 교시 문하의 대표 여성 시인이었으나 전쟁 중에 폐결핵을 앓아 서른아홉에 세상을 떴다. 환자 수송 침대에 누워 운반되는 자신과 쫓아오다 뒤처진 외동딸, 그리고 슬픔을 열창하는 매미들.   봄날 새벽 / 내가 토해 낸 것의 / 빛 투명하다  春の我が吐く のの光り澄む  ( '히데노' 중에서/ p.502) 힘주고 또 힘주어  힘이라고 쓴다 つぎつぎに力をこめて力と書く 산토카와 문학적 교류를 했으며 훗날 [산토카의 생애]를 쓴 하이쿠 시인 오야마 스미타(大山澄太)가 산토카의 오두막을 찾았을 때였다. 산토카는 스미타에게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먹지 않았다고 하자 산토카는 쇠로 된 밥그릇에 잡곡밥을 담아 고추 하나와 함께 내놓았다. 고추가 너무 매워 스미타가 눈물을 흘리며 먹는 동안 산토카는 앞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왜 당신은 먹지 않는가?" 하고 묻자, 산토카는 "밥그릇이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스미타가 다 먹자 산토카는 그 그릇에 다시 밥을 담아 스미타가 먹다 남긴 고추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쌀 씻은 물에 밥그릇을 씻은 다음 그 물을 텃밭에 부었다. 산토카의 바람은 ‘진정한 나의 시를 창조하는 것’과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살아갈 힘, 시를 쓸 힘을 얻는 방식이었다. ( '산토카' 중에서/ p.541)     
1714    깨여나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댓글:  조회:4241  추천:0  2016-10-28
 詩>길 옆에 죽어 있는 것--     / 게리 스나이더  어떻게 붉은 꽁지를 가진 커다란 매 한 마리가   ―완전히 뻗뻗하게 말라빠진 채―  州間 고속도로 5번의  가장자리에 누워 있을까?  댄스용의 부채 같은 날개  쟈크는 머리가 으깨진 스컹크의 가죽을 벗겨  그 털을 개솔린으로 씻었다 ; 무두질한  그것이 텐트 안에 걸려 있다.  고속도로 49번에서 트럭에 치인 암사슴  할로윈 날 스튜로 만들고  입에 강냉이 가루를 바치고 ;  가죽을 벗겼다.  재목을 실은 트럭들이 석유에 의해 달린다.  노상에서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나는 너구리를 본 적이 없다.  발톱과 발가죽, 코와 수염이 있는 채로  양말 벗기듯이 가죽을 벗겼다 ;  소금물 속에 담근 후에  황산으로 절인다 ;  그것은 마술도구로 쓰일 것이다.  새끼 사슴이 분명히 총에 맞았다.  어깨를 맞아 옆구리로 빠져나가  옆으로 길게 관통하여―  복부는 피로 흥건하다.  다른 어깨는 잘하면 구할 것 같은데,  너무 오래 눕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넋에 기도하라.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라 :  우리 고대적 누이들의 길 위에  가로질러 도로가 생기고 그들을 죽였다 :  밤에 반짝이는 눈들  길 옆에 죽어 있는 것.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0- )의 방랑시   신원철   게리 스나이더는 이미 우리나라에 꽤 알려져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스나이더의 열풍은 일본을 중심으로 꽤 뜨거웠는데 그것은 그가 한때 일본에서 선불교에 심취했었다는 경력과 그의 시가 동양의 시에 유사하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에도 2001년과 2004년에 방문하는 등 꽤 인연이 깊어서 이미 친숙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다.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이 시인을 다시 들고 나오게 된 데에는 지난 호에 소개된 에먼즈와 스나이더가 환경문학연구가들의 단골 연구시인이라는 점에서 동류의 시인이며 독자들에게 연속성을 주지 않을까 해서이다. 자연에 대한 묘사는 낭만주의 문학운동이래 영문학의 단골메뉴였다. 자연 속에 들어가 다친 영혼을 치유받고 힘을 회복한다고 주창한 워즈워드이래 자연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시 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다른 나라의 문학과는 좀 다른 차별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의 초기 단편에 묘사된 미시간 호반의 자연묘사들을 읽어보시라. 서머셋 모옴의 단편들에 묘사된 남태평양의 풍광을 읽어보아도 그 치밀한 자연묘사는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또한 『보물섬』이라는 소설도 해적 이야기이지만 섬의 늪지나 해안의 모래톱에 대한 묘사는 환상적이다. 게리 스나이더는 미 서부의 광대한 자연 속을 몸소 걸어 다니며 시화한 시인이다. 그의 무대는 샌프란시스코 이북에서 시애틀까지 이어지는 풍요로운 곳이며 이 지역은 비가 많아 원래 온대우림의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했었다. 지금의 시애틀이라는 도시도 사실은 광대한 숲이었다. 이 시애틀의 숲에서 스나이더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숲이 벌목되고 파괴되는 시기에 청년기를 보내었으며 지금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도로공사 인부로 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가 명상호흡을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요세미티의 맑은 대기 속에서 좌선을 시작했으며 그것은 그의 평생에 걸친 수행이 된다. 나중에 그는 교토의 대덕사에서 출가하여 10년간 일본 선불교를 체험하기도 한다. 일단 그가 젊은 시절에 쓴 자연체험의 시를 한편 읽어보자. 「산책」(“A Walk”)이라는 시는 그의 취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일요일, 우리가 일하지 않는 유일한 날: 노새는 풀밭에서 방귀를 뀌고 머피는 낚시를 하고 텐트는 따뜻한 아침 태양아래 펄럭인다: 아침도 먹었으니 벤슨 호수까지 산보나 해야지. 점심을 꾸리고, 굿바이하고. 냇물의 바닥에 솟은 둥근 돌 위를 껑충거리며 암반 위를 3마일을 걸어 파유트 크맄에 도착했다-- 가파른 골짝, 방울뱀이 들끓는 빙하가 훑고 간 지역을 펄쩍 뛰어서, 웅덩이 곁에 착지하는데, 송어가 잽싸게 헤엄친다, 투명한 하늘. 사슴의 길 폭포 곁의 재수 없는 곳, 집채처럼 큰 바위들, 점심을 허리끈에 묶고, 바위틈을 버티고 오르다가 거의 떨어질 뻔 하지만 바위 선반에 안전하게 굴러 내려 천천히 기어오른다. 메추리 새끼들이 내 발밑에 돌 빛으로, 얼어붙어 있다가 삐악거리며 달아난다! 멀리서 어미 메추리가 호들갑이다.   Sunday the only day we don't work: Mules farting around the meadow, Murphy fishing, The tent flaps in the warm Early sun: I've eaten breakfast and I'll take a walk To Benson Lake. Packed a lunch, Good bye. Hopping on creeked boulders Up the rock throat three miles Piute creek-- In steep gorge glacier-slick rattle snake country Jump, land by a pool, trout skitter, The clear sky. Deer tracks. Bad place by a falls, boulders big as houses, Lunch tied to belt, I stemmed up a crack and almost fell But rolled out safe on a ledge and ambled on. Quail chicks freeze underfoot, color of stone Then run cheep! away, hen quail fussing. - 「산책」 부분   이 시는 스나이더의 시에서 흔히 소개되는 자연 보호의 메시지가 강한 시들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읽힌다. 여기서 스나이더는 자신의 경험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그 장난끼와 기쁨이다. 일요일이 왔다. 토요일까지 바쁘고 지루한 노동에 묶여 있다가 오랜만의 한가한 아침이다. 그의 기분에 장단을 맞추듯 노새는 방귀를 뀌고 텐트는 펄럭인다. 일찍 아침식사를 마친 그는 오랜만에 근처의 호수까지 산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친구 머피는 낚시를 하고 있지만 시인은 걷기를 좋아한다. 이하 묘사된 여정은 거대한 바위 절벽, 방울뱀 나오는 계곡, 잽싸게 헤엄치는 송어, 놀라서 삐악대는 메추리 새끼들이다. 아마 거의 무인지경의 자연에 살고 있었을 이것들에게 사람은 그들의 평화를 깨트리는 침입자인 것이다. 거의 모험에 가까운 산책의 여정이 그려진 이 시는 어떤 웅변보다 더 자연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다. 원시의 자연에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한 때 스나이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페르시아만까지 운행하는 유조선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가 그 일을 택한 것은 그의 방랑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오리건의 리드대학에서 산악부 활동을 했고 졸업한 다음 산림감시원으로, 요세미티의 도로공사장의 인부로 일했다. 배를 탄 것은 아마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1년간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 때 쓴 시가 바로 다음의 시다.   거의 적도 부근에서 거의 추분 무렵쯤에 정확한 자정의 배에서 보는   보름달   하늘 저 한 가운데   almost at the equator almost at the equinox exactly at midnight from a ship the full   moon   in the center of the sky. ―「딱 한 번」("Once Only") 전문   이 시의 내용은 간단하다. 적도 근처에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추분날 밤, 한 밤중에 하늘 한 가운데 걸린 보름달을 바라본다는 이야기이다. 공간과 시간 모든 것이 자로 잰 듯 한 가운데인 평생 딱 한 번 있을 어느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 보름달은 무척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시의 행 배열도 의도적이어서, 바닷물에 비쳐 일렁이는 달그림자와 그 위에 둥글게 뜬 커다란 보름달의 모습이 연상되게 만들어져 있다. 모든 것이 한 가운데인 시공에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홀로 좋아하고 있는 젊은 스나이더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 시가 씌어진 곳은 싱가포르 근처였다고 한다. 사파크리크라는 이름의 유조선을 타고 말래카 해협을 지나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그 날 마침 보름달이 적도의 하늘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 두 편의 시에서 우리는 건강한 방랑자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의 자유로움에 약간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입시와 취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타고난 유랑자였는데 여기서 하나를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 5,60대의 독자들은  라는 제목의 팝송을 기억하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가거든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들을 만나보라”라는 애조 띤 이곡은 7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것은 바로 월남전에 반대하는 반전주의자들의 노래였고 실제 당시의 샌프란시스코는 그러한 비트운동, 즉 히피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장발족 단속이 있었지만 미국에는 머리에 꽃을 꽂고 데모를 벌이는 히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합리적인 서양의 문화에 한계를 느끼고 티벳이나 힌두의 문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로 그것의 메카였다. 게리 스나이더는 바로 그들의 중요멤버였고 거기에는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등이 함께했다. 그들은 또 마리화나와 자유로운 섹스에 빠져 있었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마약과 동성애에 빠져있던 19세기 세기말의 서구시단을 연상시키는 바도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일어난 미국은 이제 그 지나친 군사력과 경제력을 주체할 수 없어 월남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연히 시인들은 반전운동에 나서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아메리카의 체제 속에서 안정되고 부유한 생활을 추구하기 보다는 히말라야의 계곡이나 네팔, 티벳의 오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유랑은 낭만적인 정서이다. 바이런은 그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했는데 바로 세상사에 허무해하며 우울에 빠져있는 강인한 힘의 유랑자, 악마적 영웅이 그것이다. 그의 출세작이 바로 『해럴드 공자의 순례여행』이었는데 당시 영국에서 보기 힘들던 이국정서 즉 지중해 남부의 유적지와 밝은 해와 바다를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바로 이때 바이런이 남긴 명언이다. 이어서 발표된 『돈 주앙』도 바로 유랑과 이국정서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바이런은 사실 귀족의 신분이었고 그의 시에서 고단한 민중을 느끼기는 힘들다. 게리 스나이더의 구체적인 방랑은 그의 시집 『끝없는 산하』(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시스키유의 노간주나무 아래서 잠을 잤다 슬리핑백 하나, 일 피트 쌓인 눈 굴러다니는 검은 우산 눈이 녹아 미끄러운 아스팔트   유일하게 지나가는 차 한 대를 붙잡아 아침 일곱 시에 얼은 살라미 소시지를 씹으며 술에 쩔은 LA의 매춘부와 함께 차를 탔다 술병으로 가득한 차의 포켓, 운전사나 탑승자 아무도 카우보이는 아니다, 훗날 언젠가 건달 하나, 나처럼 픽업당해서 운전을 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려라. 우리는 포틀랜드까지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잘 대해주었지. 나는 마지막 두 녀석을 그와 함께 타운에서 작별하고 숲속의 캐럴앤 빌리로 갔다.   Slept under juniper in the Siskiyou a sleeping bag, a foot of snow black rolled umbrella ice slick asphalt   Caught a ride the only car come by at seven in the morning chewing froze salami riding with a passed-out L.A. whore glove compartment full of booze, the driver a rider, nobody cowboy, sometime hood, Like me picked up to drive, &drive the blues away. We drank to Portland and we treated that girl good. I split my last two bucks with him in town went out to Carol & Billy's in the woods. ―「야간 하이웨이 99」(“Nighyt Highway 99") 부분   이것이 스나이더의 전형적 여행 모습이었다. 슬리핑백을 뒤집어쓰고 노간주나무 아래서 잠을 자고 다행히 아침 일찍 지나가는 차 한 대를 붙들어(한참을 기다려 겨우 잡은) 동승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역시 히치하이킹을 하게 된 LA의 매춘부이다. 그는 이 아가씨를 잘 대해준 것으로 말하고 있다. 포틀랜드까지 술을 마시며 길을 동행하고 마지막으로 허풍을 떤 다음 헤어진다. 그의 시에는 이런 종류의 하류계급 사람들에 대한 짙은 인간애가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좋아하던 불교적 보살행이다. 온갖 종류의 사람과의 만남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만행(卍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시는 늘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에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우주의 원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가 숨어있다. 다음의 구절도 독특하다.   낯모르는 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기상뉴스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좌선한 다음 독경을 읊고 기타연습을 하고 한 밤중 안개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스무 번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을 하고 끝없이 간다--해지는 곳을 향해 간다 길을 잃거나--아니면 찾거나   Sleeping with strangers Keeping up on the news chanting sutras after sitting Practicing yr frailing on guitar Get dropped off in the fog in the night Fall in love twenty times Get divorced Keep moving--move out to the sunset Get lost--or Get found ―「세 개의 세상, 왕국, 여섯 개의 길」("Three Worlds, Three Realms, Six Roads") 부분   이 구절에서도 그의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거의 무전여행 비슷한 가난한 여행자로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기상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독경을 하고 좌선을 하는 등등의 행위는 거의 홈리스 수준이다. 한밤중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하다. 미국 서부는 황량한 곳이어서 황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짐승의 밥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해지는 곳을 향해 끝없이 간다는 것은 왠지 서러운 여행자의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불교신자인 그에게 하나의 고행일 수도 있다. 스무 번 사랑에 빠지고 헤어진다는 것도 오고 가는 인연에 매이지 않는 불교적 발상이다. 그는 명상 시인이지만 한 자리에 고요히 앉아서 무념무상에 빠져드는 시인이 아니라 발로 걸으며 명상하는 시인이었다. 그가 이상으로 삼았던 인물은 서역의 사막을 걸어서 넘었던 당나라 구법승 현장이었다.   곱사등이 피리장이가 온 사방을 걷네. 그레이트 베이슨 주변의 둥근 돌 위 에 앉아 있는데 그의 혹은 배낭이라네   현장법사는 서기629년에 인도로 갔었고 645년에 중국으로 돌아 왔었네 657권의 경전과, 불화와, 만다라와, 50개 부처의 유품을 가지고-- 일산과 장신구와 조각물과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향긋한 향로를 지닌 채 굽은 틀의 배낭을 지고 걸었네, 파미르 타림 투르판 펀잡 간지스와 야무나 강 사이의 벌판을 지나,   감로수, 퀼레트, 호 아무르, 타나나, 맥켄지, 올드 만, 빅 혼, 플래트, 상환을   그는 짊어지고 다녔네 “공”(空)을 그는 짊어지고 다녔네 "오직 마음"을   The hump-backed flute palyer walks all over. Sits on the boulders around the Great Basin his hump is a pack.   Hsuan Tsang went to India 629 AD returned to china 645 with 657 sutras, images, mandalas, and fifty relics-- a curved frame pack with a parasol, embroidery, carving, incense censer swinging as he walked the Pamir the Tarim Turfan the Punjab the doab of Ganga and Yamuna,   Sweetwater, Quileute, Hoh Amur, Tanana, Mackenzie, Old Man, Big Horn, Platte, the San Juan   he carried "emptiness" he carried "mind only" ―「곱사등이 피리장이」("The Hump-backed Flute Player") 부분   현장은 당 태종의 명으로 천축국으로 가서 불경과 불화들을 가져왔던 승려로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바로 이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죽음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설산을 넘을 때 그의 등에 무겁게 지어져 있던 것이 바로 진리의 경전이었고 그것을 스나이더는 자신의 배낭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곱사등이는 바로 스나이더 자신이다. 곱사등이에게 천형처럼 혹이 달려 있듯이 자신에게도 배낭이 메어져 있다는 것이다. 배낭 하나 메고 피리를 불며 일생을 유랑하는 인물이 바로 곱사등이 피리장이 즉 스나이더 자신인 것이다.그리고 이 구절에 깊이 깔린 것이 불교의 공(空)사상이다. 현장이 짊어지고 다닌 것도 자신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공, 즉 마음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의 작품처럼 스나이더는 거의 평생 세상을 떠돌며 시를 썼다. 그리고 불교에 깊이 심취했다. 그는 현재 시에라네바다의 숲속 깊은 곳에 원시공동체 마을을 만들어서 살고 있다. 필자는 2003년 가을부터 다음해 여름까지 네바다 주 리노에 가 있었는데 그때 그를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그의 부인이 몹시 편찮아서 간병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지금 어쩌면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인상은 몹시 동양적이었다. 그때 네바다주립대학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강연을 마치고 네바다 북쪽의 블랙롴 사막을 간다고 했었다. 아마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환경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부러운 것이다.   신원철 : 시인, 강원대 영어과교수, 한국동서비교문학회 회장 저서 : 『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 『역동하는 시』 시집 : 『나무의 손끝』, 『노천탁자의 기억』, 『닥터 존슨』       2016 봄 발표  
1713    ...바로 탐욕이다... 댓글:  조회:3929  추천:0  2016-10-28
    1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 보인다 하이쿠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의 진솔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속의 때가 쩔어서 진솔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하이쿠를 처음 대하다 보면 이런 웃기는 글이 무엇이 유명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이쿠의 뜻을 조금식 이해를 하다보면 한 줄도 않되는 글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낄 때 또다시 놀란다고 합니다. 바쇼는 추운 겨울 생선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좌판에 놓인 도미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려보인다. 우리도 생선 가게 앞을 지나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바쇼같은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잇몸이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그 도미는 자신이고 동료 인간들이다.  이 시를 통하여 바쇼의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이쿠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미국학교에서 까지 하이쿠 시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칠현녀의 법문 공부하였지요. 참으로 어려운 화두입니다. 칠현녀가 꼭 구경을 하려 시다림을 지나다가 송장을 보고 이 시체는 여기 있는데 시체의 주인은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갔을까?  바쇼는 참으로 대단하지요?    * 보잘 것 없는 들 국화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끼고, 도미의 잇몸에서 우주와 나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법문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힘을 내어 정진합시다 (삼산법사님)       2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가지 위에서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물이 불어 쏜살같이 흘르가는 가을강 한복판 잎사귀 몇개를 매단 나뭇가지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다. 무 가지는 머지 않아 급류에 휘말려 물 속에 잠기거나 뒤집힐 것이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 위에서 풀벌레 한 마라가 그런 사정도 모른채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이쿠의 시인들은 이러한 정황을 자주 묘사한다. 생의 유한함 어쩔 수 없는 허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 안수정등에 등나무 덩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받아 먹는 가련한 우리들의 모습과 강물에 떠나려가는 나무가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벌레의 신세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증득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삼산법사님)   3 가을 깊은데 옆방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    읽고 읽지않으면 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심으로 돌아가면 이해한다는 것이 망상입니다.   산업화에 따른 이기적인 삶이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은둔과 적막의 계절에 오히려 이웃에 대한 관심의 문이 열리는 우렁찬 희망의 소리입니다. 하이쿠 시가 쉬우면서 이해를 하기 몹시 어려운것은 그들 모두가 탐진치 삼독을 멸한 경지의 내용들입니다(삼산법사님)     4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 이싸     5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6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한 줄의 시로 그들은 불가사의한 이 지상세생의 삶을 표현 하고자 했다. 때로 그들에게는 한줄도 너무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번개처럼 우리들 생에 파고드는 침묵의 언어들!     7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하이쿠는 혼탁한 우리를 맑고 깨끗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게리 스나이더(미국)   * 하이쿠는 하나의 신비. 단지 일상의 풀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물의 본질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하아쿠는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한다.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깨달음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들은 욕심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하이쿠 시 작자 나름데로 불가사의한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 시에서 인생의 멋을 느끼는 게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얏 신난다 풍덩 소리에서 설명이 끊어진 자리, 마음자리 본질의 자리, 웃기는 소리에서 선시를 바라보고, 연못의 흙탕물을 보고,  마음으로 생활을 하신다면 누가 깨닫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불교의 깨달음은 직관입니다. 직관은 수동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합시다. 지금 그냥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너가 부처다고 하지요 그냥 믿으면 됩니다  수동성을 이해를 하면 언제 어떻게 부처의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삼산법사님)       독일 생태시인 위르겐 베커의 시를 보자.   자연  위르겐 베커   집근처에 온통 베어내고, 파헤쳐진 곳, 자갈더미들은 내게 전혀 새롭지 않은 것--망가진 자연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덤불이 있는 한 나는 그걸 기꺼이 잊어버린다.   문명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겉모습만 보는 것은 직무유기다. 포천도 벗어나지 않는다. 골프장건설을 위해 부수고 있다. 포천경제를 살리기 위해 염색공장을 들여왔다. 군수, 시장님들은 낙후된 포천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포천의 물, 생수는 병들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생태시의 초기 인식들이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들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다.   다음 시를 보자.    무제     마이발트   어느 토요일 오후에 그들이 라인강변에 누워 있었을 때 비씨는 자기 나라의 자연을 새삼 느끼고는 푸른 하늘과 유혹하듯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네 그리고 강가에 서 있는 팻말도 함께: 주의! 생명에 위험!   주의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한탄강, 한강이든 그안에 안보이는 위험이 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데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을 즐기고 보존하려면 겉모습만 보고 노래할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외환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들은 조금 더 달라야 한다. 겉에 보이는 현상만 보면 안된다. 리얼리티를 봐야 한다. 실재라는 뜻이 리얼리티는 우리말처럼 쓰고 있다. 현상만 가지고 노래해서는 안된다. 시인들이나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조금만 색다른, 슬픈, 기쁜, 감격적 모습을 보면 쉽게 흥분하고 감동해서 노래하는 것이 시인이다. 겉모습만 봐서는 안된다.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시인들이 매우 공격적이고 비판적일 때가 있다. 헤헤거리고 녹아내리는 감상주의자가 실재를 보고 분노할 수 있는 대응할 수 있는 용기와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생태주의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 문명이다. 자연과 가장 배척관계에 있는 것이 문명(기술,산업)이다. 우리는 이런 문명, 기술, 산업은 불과 18~20세기(200~30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200~300년간의 과학, 문명사회 토대를 마련하고 진보라는 비젼을 주고 있다. 진보에 대해 낙관적이다. 독일이나 유럽이 회의를 갖게 된 것은 지상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세계 1차, 2차 대전때 대량학살무기를 제작하게 되었다는데서 회의를 느끼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획기적 정책은 핵무기 군축이다. 현재의 핵무기만 가지고도 이 인류를 수백번 죽이고도 남는다. 이 위기를 시인들이 먼저 느끼는 것이다.   라이카 귄터 쿠네르트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쇠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마리가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위를 돈다. 경고로서, 우리가 가진 가장 위성인 지구가   가장 좋은 쇠로 만든 공은 인공위성을 말한다.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개를 쏘아 올렸다. 그 위성은 계속 돌고 있다. 이 우주 태양계에 지구가 돌고 있다. 우리가 알수 없는 때에 핵이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위기가 다가 온다 이건 공갈이 아니다. 진짜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매우 냉철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뉴욕에 있으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교포들과 세미나와 토론을 하는 시간에 알게 된 교포들의 안이한 생각, 까짓것 북한을 때려버리자! 그러면 북한은 가만 있겠는가? 천안함 희생자로 인해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핵이 하나 떨어졌다고 생각하자. 생태시인들이 발상하는 근접거리에 있다고 생각하기 바란디ㅏ. 우리나라 환경파괴의 문제중 4대강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자갈, 모래, 조약돌, 시냇물 등 자연을 즐기고 살아왔다. 새만금건설사업도 백보일보 반대했으나 개발되고 말았다. 제가 이 뻘에서 자랐다. 조개, 백합을 주우면서 자랐다. 이제 사라졌다. 아마존강 숲이 인류에게 산소를 공급하듯이 뻘이 육지에서 만들어낸 오염원을 그 안에서 용해시켜서 새롭게 만든다. 뻘은 정말 중요한 정화장치다. 서해안에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지켜야할 유산인 새만금을 막아버렸다. 그것이 전라북도 경제에 부푼꿈이라고는 하지만 100~200년의 큰 미래를 봐서는 생명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걱정이다. 우리나라는 문명국가, 올림픽 5위, 경제력 10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생태문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다. 국민의 토론을 거쳐 자연과 문명의 균형잡힌 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류학에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황금가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황금가지는 전 세계 모든 부족들의 삶의 가치를 그리고 있다. 문학적 필요한 부분, 단오, 하지 등이 오면 젊은 남녀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꿈과 노래를 부르면서 시도 짓고 사랑도 나누고 나오면서는 숲의 가지를 잘라서 온다. 그 가지를 동네 어귀에 세우고 자기 집앞에 세운다. 왜? 숲의 녹음을 생명력으로 본 것이다. 그 생명을 가져와서 마을 공동체를 보존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집안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한다. 숲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명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은 이 생명력에 대비해서 죽음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다. 우리는 죽지 않으면 안되낟. 필멸하는 존재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적, 영적, 종교적으로 믿고 예술을 창조한다. 그린월드는 희극적 비젼이다. 희망을 주는 비젼이다. 강과 바다는 생명이다. 물이 없으면 안된다. 기독교에서는 강의 의미는 부활이다. 강은 죽어더라도 그 속에서 재생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의미다. 우리의 생명을 주는 존재들을 우리 손으로 망가 뜨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이러니컬하다. 그것이 겉으로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이윤추구, 회사의 영리를 위해서 말이다. 불량식품을 만드는 것은 엄격하게 단속하지 있지만 강에다 오염물질을 버리는 것은 전 인류에게 독을 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다. 다음 시를 보자.   무제 하인츠 쉬네바이스   그녀가 씻지 않은 배 하나를 먹었다 그녀의 배가  부풀어 올랐고 그녀의 팔이 퉁퉁 부었고 그녀의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리고 피부 세포들이 박편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오염된 물과 땅에서 자란 농약을 잔뜩뿌린 과일 하나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이게 현시이다.  다음 시를 보자.   사막의 아들 죠르그 힐셔   내 기쁨을 어찌 제어할 수 있으랴 저기 언덕들 뒤의 가장 아름다운 사막에서 살게 될지니 그곳에는 콘크리트 사막 아스팔트 사막 독극물 사막 기름 사막 핵 사막 그리고 쓰레기 사막이 있으니 이들 사막에서 살게 될 일이 얼마나 기쁘랴   독설, 역설이 가득한 시다. 기뻐서 하는 이야기인가? 통곡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잇점,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긴 생명을 위해서 대대손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본가들은 그 생각을 안하고 돈을 생각한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조작하느냐? 그것이 문제다. 진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요새 벽걸리 텔레비젼, 김치냉장고 등을 구입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나는 진보했다. 그렇게 믿는다. 다른 진보는?   다음시를 보자.   소비테러 루드비히 펠스   내 생각으로는 나중이 아니라 오히려 일찌감치 사람들이 우리에게 슈퍼마켓을 종교로 제정해 줄 것이다. 눈에 띄지 않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무기의 기능을 설명해 줄 것이다 총구를 우리에게 겨누어 물건을 사도록 만들 것이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총구가 이미 불을 뿜었다. 우리가 날마다 새옷으로 갈아입고 적어도 여섯 개의 메뉴를 먹어 치우고 오로지 진열품에만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눈은 진열장을 보며 무조건 빛나야 하고 생생한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다니며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을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말고 보도록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판매원들은 백병전 훈련을 받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내가 이 물질문명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갖추었으니 진보한 것이라고 착갇각을 많이 한다. 어떤 의미일까요? 많이 생산하면 팔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소비자를 위해 팔아야 한다. 소비의 텀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사용하고 있던 것은 버린다. 쓰레기가 지구를 덮고 있다. 오염이다. 지구환경을 파괴한다. 우리의 생명의 안식처가 점점 줄어들어 비극을 맞이할 것이다. 하루종일 물건사고 이것이 병이다. 아주 무서운 병이다. 물건을 막 사서 쌓아 둔다. 정신병이다. 사도록 유혹한다. 누가 조장하느냐? 물질문명이 조작한다. 우리는 물질문명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빨리 오염시켜서 망가지게 한다. 이런 컨셉의 생태시를 써오라? 좋은 작품은 상을 주겠다. 제 시집을 상품으로 드리겠다.   다음시를 보자.   새로운 자족을 위하여 위르겐 테오발디   오랫동안 나는 내 옷들과 살아왔다! 바지는 4년이나 되었는데 주머니며, 허리띠, 엉덩이 판 같은 좋은 바지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여전히 다 지니고 있다. 바지는 부드러운 천으로 내 가냘픈 무릎을 그대의 손에 매력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외투은 몇 년 전에 베네수엘라로 간 디터의 것이다. 가을이면 나는 그것을 옷장에서 꺼내 입으며 더운 나라에 있을 디터를 생각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외투와 헤어져야 하는가?   몇 년 전부터 밤마다 내 침대 앞에 놓아두는 내 신발 그것이 아직 보지 못한  게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이들은 나와 같이 했던가. 내가 그것들을 신고 길을 걷고 매 걸음마다 밟아줄 때마다!   내 옷들이여 영원하라! 이 옷들 없이 내가 지낸다면 추위와의 싸움에서 나는 지고 말리라. 그러나 이 낡은 옷을 입고 나는 이렇듯 따스히 살며 새로운 시들을 쓴다.   너무나 평범한 시같지만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관점인 소비에 의해 망가져 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고마운 시라고 생각한다. 자원의 재활용- 물려받기 하는 것이다. (디터의외투) 우정을 생각한다.(휴머니티다) 물질과 우정이 함께 한다. 매년마다 새로운 브랜드로 바꾸어야 하는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물건에 대한 정을 느낀다. 엣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버릴려고 하면 못버리게 한다. 집안에 온갖 것이 다 쌓인다. 매우 인간적이다. 옷이 나의 수단과 도구가 아니다. 나와 옷, 나와 신발,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잘 아껴서 입자. 소비를 최소화 하자.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우리가 되지말고 우리가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생태시인들의 각성이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국가, 인류, 내 이웃에 대한 관심을 함께 해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한다. 인류는 물질문명의 전성기(200~300년)를 맞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별개의 건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라는것은 우리의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다. 문인이 가져야할 의식은 명쾌해야 한다. 흐리멍텅한 것은 아니다. 좀더 발전된 작품을 쓰기 위해 여러분 나름대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물질문명이 몰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보자! 우리조상들이 해왔던 것 재발견하고 다시 따라가 보자! 자연전체속에 인류는 하낟. 소, 말 ,벌레도 있다. 유기체적 관계다. 이빨에 염증이 생겨도 아무것도 못한다. 귓속에 염증에 생겨도 아무것도 못한다. 암세포가 장에 문제를 만들면 생명을 잃게 된다.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바벨탑, 마천루를 쌓아온 인간들에게 칠레, 아이티의 지진으로 인한 재앙을 본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이번에 천암함의 문제인식도 복잡하다. 복수하자! 어떻게 하지?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다. 해법이 쉽지 않다. 유기체적 인식을 해야 한다. 관념적으로 하지말고 거기에서 문제의식이 생겼을 때 시로 써 보자! 관주도의 문제가 아니고 인식을 깊숙히 해서 문명에 대한 반의(?) 낙관적인 미래를 줄 수 있는 것인가? 반 생명적인 것은 없나 물어볼 필요가 있다. 포천에서 20년가까이 살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 자연경관을 사랑하고 있다. 김창호씨와도 포천의제21의 활동에 대해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회의만 하고 대충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포천의 생태는 안전한가? 생각해 봐야 한다. 새,물고기, 지구, 숲, 모두가 이미 인간의 노획물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단지 자신이 필요로 있는 것만 돌보고 시장 가치로 환산하고 사육하고 도살하고 거르고 증류한다. 그리고 동물원에는 마지막 야생동물을 전시해 놓는다. 우리가 워낭소리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인간과 소의 진한 우정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조상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소가 꼭 내 밭과 논을 갈아주기 때문에 그런것은 아니다. 애완견도 죽으면 눈물을 흘리고 묻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이나 휴머니티를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막이다. 인간은 돈만 되면 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다. 시인은 문인은 그게 아니다. 사랑을 느끼고 나와 유기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먹이사슬, 생태계가 깨진다는 것이다. 그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계적으로 결국은 우리도 위험에 처한다는 확장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다음시간에 기대하겠다.   결국은 생태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큰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탐욕이다. 소비하는 것이 문제다. 구조들이 우리들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탐욕을 절제하자! 어려운 이야기도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환경은 권력자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신중을 기하고 좀더 좋은 대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의식의 발상이다.
1712    새들은 왜 록색별을 떠나야만 하는가... 댓글:  조회:3873  추천:0  2016-10-28
  생태시와 생태주의 시학 /신진. 송용구     “생태시와 생태주의 시학” / 신진 . 송용구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걸쳐 환경파괴의 심각성과 더불어 ‘생태시’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습니다만, 이 장르는 많은 문제점을 내표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의 중요성을 화제로 신진과 송용구 두 시인의 이메일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송용구(1965~ , 고려대 독문학과 연구교수) 시인은 독일 생태시를 번역한 (시문학사, 1998)를 비롯하여 ?독일의 생태시?(1995) 등 많은 논문과 작품을 발표하여 이 방면의 대표적 선구자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한편 신진(1949~ , 동아대 교수) 시인은 시집(시와 시학사, 1994)을 비롯하여 많은 시집을 상재했지만, 특히 시집 에 수록된 일련의 리얼한 생태시는 생명존중과 환경보호 문제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두 시인은 생태주의의 ‘시적 복음(福音)’의 중심점에 서 있는 사도적(使徒的) 에콜로지 시인이라고 할까요. 다음과 같은 화제로 두 시인의 대담을 마련합니다. - 편집자.   (1) ‘생태시’(生態詩)의 지향점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생태시’는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식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적 원인 및 사회적 원인들을 고발함으로써 독자의 비판의식을 일깨우려는 목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생태시’를 ‘정치시’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생태시’의 지향점을 네 가지로 제시해보겠습니다.   첫째,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어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둘째, ‘생태시’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생명파괴의 원인을 찾아내고 규명합니다.   셋째, ‘생태시’는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들에 대한 개혁과 극복을 호소합니다.   넷째, ‘생태시’는 현실극복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相生)이 이루어지는 대안사회를 모색합니다.    제가 제시한 ‘생태시’의 4가지 지향점을 놓고 볼 때, ‘생태시’는 자연의 생명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사실적으로 인식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의 원인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相生)의 출구를 모색하는 사회참여의 문학으로 볼 수 있겠지요. 미국의 생태철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 “생태문제는 곧 사회문제”라고 말하였듯이 ‘생태시’는 ‘자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정치의 현실을 비추어보고, 언어의 청진기로써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진단하고자 합니다. 정치 및 사회의 부조리로부터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찾아내려는 시인들의 현실인식이 ‘생태시’의 사회참여적 지향성을 확고히 노정(路程)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진 : 서구의 기계론적 과학과 자본주의는 지난 몇 백 년 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해왔습니다. 이윤을 얻기 위해 과학지식과 기술의 힘으로 지구를 통제했을 뿐 아니라 미립자 세계와 인간생명, 우주 세계마저 통제하려 들 만큼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만 자연훼손으로 인한 이웃생명의 상실감과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들 실감하시는 바이겠습니다만 축복이 저주의 형상으로 얼굴을 바꾼 것입니다. 공기와 하천, 바다와 하늘의 오염, 자원고갈과 지구의 온난화 그리고 기상이변 등 탐욕 어린 개발과 소비가 불러온 재앙들은 어떤 과학기술로도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현재의 패러다임을 백팔십도 전환하지 않는다면 1천년 내에 자연과 인간은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은 공상과학이 아닌, 실제 상황에 가까운 일이 되었습니다. 자연을 오직 인간의 기술적 조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버리고, 갖은 재앙에 직면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여 진정한 관계를 찾으려는 것. 다시 말해 왜곡된 근대적 삶의 양식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에 자연을, 자연에 인간을 포괄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생태주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고, 생태시는 이를 시적으로 실천한다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은 1990년대 들면서 본격적으로 파급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들어 생태의식을 담은 시, 소설, 비평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에 동감합니다. 시 장르에서 가장 선도하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 장르의 순발력과 시인의 섬세한 촉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정시 자체가 본원적으로 역동적 생명력의 소산이자 그를 지향하는 유기성을 지향점으로 하기 때문일 터입니다. 이렇게 보면 생태시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 자아와 세계의 합일, 세계와 세계의 합일을 지향하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를 총체성, 유기성을 가진 것으로 형상화하는데, 이는 서정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와도 맞닿은 지점이라 하겠습니다.   (2) 생태시가 가지는 문제점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송용구: ‘생태시’의 문학적 수준은 한 차원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술방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학적 장치 혹은 예술적 기교가 매우 부족한 ‘생태시’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생태계 파괴의 실상이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시인들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비유, 상징, 수사(修辭) 등을 풍부하게 가미할 경우에 환경오염의 실태를 독자에게 알리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들의 편견이 아닐까요?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한다면 ‘생태시’의 교육 목적을 실현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파수꾼이 되게 하려면 독자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언술방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생태시’에서 도외시되었던 미학적 언어와 예술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은유, 상징, 수사(修辭), 리듬, 음향 등은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낼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시’를 쓰는 작가들은 자연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메시지의 예술적 표현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인식과 정서적 감동이 결합될 때에 독자의 저항의식도 강화될 수 있을테니까요.   신진: 생태시가 다른 시에 비해 특별한 문제점을 지닌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의 딜레마가 있다면 생태주의 사유체계와 문명사회의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요즈음의 인간은 결실을 얻기 위해 계절적 생산주기를 지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배아복제를 통해 불로장생을 꿈꾸기도 하는 정도로 편의성과 풍요로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습니까. 이 손쉬움과 풍요로움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생태주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인간이 지금부터 과거를 반성하고 자연의 일부로, 겸허한 태도로 존재하겠다 하더라고 어느 정도는 문명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싫든 좋든 인간은 본래적으로 문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문명은 인간의 생태적 속성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어떤 생물? 무생물을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상존합니다.생태의 세계를 염원한다 할지라도 그 지경과 기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에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문제는 시인의 개인차를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파리나 모기, 들쥐 같은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하면서 공생할 것인가, 손바닥이나 몽둥이로 퇴치할 것인가. 보다 화학적인 과학으로 퇴치해야 마땅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개인차가 어쩔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같은 선상에서 시 창작상의 문제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근대시가 제고하여온 미사여구나 기법적 장치들을 생태시는 어느 정도 허용하고 어느 정도를 버려야 할 것인가. 시에 있어 어디까지가 조작적인 장치이며 어디까지가 인간의 생태에 준하는 진솔한 언어인지. 아니 도대체 시라는 장르 자체가 인간의 생태적 정신을 자동화하고 조절하는, 작위적 문화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아닐지. 고민이 이어지는 것입니다.시의 발상과 상호간의 교환은 분명 인간 본래의 생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연발생이 아닌, 기술과 전략으로 오염된 시를 거론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이고 그 기준을 마련하는 일도 지금으로서는 극히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개인적 고민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생태문제에 고민해본 시인들에게는 응당 고민을 주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문명을 등진다거나 생태환경을 복원한다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태시는 끝없는 탐색만이 반복되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유와 인식과 가치관의 혁명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언제나 이상일 수밖에 없는, 추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3) 생태시의 방법이나 기법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생태시’의 사회적 역할은 생태파괴의 원인들에 대하여 독자의 비판의식을 이끌어내고 독자와 시인 간의 연대의식을 유도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시인들은 독자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에서 르포, 다큐멘타리와 더불어 묵시록(?示錄)의 언술방식이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르포와 다큐멘타리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 없는 비문학적(非文學的) 언술방식인 까닭에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하는 문학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하다 보니 예술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시인들은 ‘묵시록’이라는 언술방식을 사용하여 미학적 실험을 꾸준히 시도하였습니다. 생태시의 예술성을 회복하고 현대시의 영역 안에서 미학과 교육을 조화시키는 작업을 강화해나갔습니다. 랄프 슈넬(Ralf Schnell)이 언급했던 “미학의 저항”을 실현하는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종교의 묵시록과 ‘생태시’의 묵시록은 그 의도와 성격에 있어서 상이합니다. 종교의 묵시록이 인류의 종말을 선포하는 ‘예언’ 그 자체에 내용의 중심을 두고 있다면, ‘생태시’의 묵시록은 교육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언어적 수단으로써 ‘예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시인 귄터 쿠네르트(Gunter Kunert: 1929~생존)의 「라이카」는 ‘묵시록’적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생태시’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금속으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 마리/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위성/ 지구가/ 어느 날 저렇게/ 죽은 인류를 싣고/ 해마다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전문.   1957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를 인공위성 ‘슈프트닉 2호’에 태워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 생명체를 띄워 보냈던 사건이 시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지구의 종말을 나타내는 은유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개’를 싣고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은, 멸망한 인류를 싣고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르는’ 지구의 은유인 것입니다. 시인은 ‘죽은 개’를 통해 ‘죽은 인류’의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지구’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위성’이었던 ‘지구’ 안에서 모든 생물들이 시체로 변해버리는 종말의 상황을 ‘묵시록’적 기법으로써 묘사한 것이죠. 이러한 묵시록적 기법은 한국 시인들의 ‘생태시’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뿐/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빈 지구만이 태양을 돌면서 또/ 태양은 지구를 데리고 멀고도 먼/ 움직이는 우주를 따라가는 은하/ 그 은하계를 따라 사라져 간다/ 지구는 모든 조상의 묘를 싣고/ 밤과 낮을 끊임없이 통과하리라” - 고형렬의 「지구墓」 전문.   “인간도 언젠가는 멸종하리라는 것/ 그 숱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킨 죄로// 지구는 도는데 나는 사라지고 없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무덤 속에 누워 있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흙먼지가 되어 날리고 있으리/언젠가는 반드시” - 이승하의 「생명체에 관하여」 일부.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에서 묘사되었던 ‘죽은 인류’의 공동묘지인 ‘지구’를 고형렬과 이승하의 시에서 또다시 만나게 됩니다. ‘지구’는 인류의 ‘해골’과 ‘멸종’된 ‘생명체들’을 싣고 ‘태양’ 주변을 도는 거대한 ‘묘(墓)’로 전락하리라는 예언이 한국 시인들의 목소리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시인들의 비관적인 목소리가 슬픔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비관적인 예언은 현대인들을 향해 ‘경고’의 옐로우 카드를 뽑아들어 ‘종말’을 막아내자고 호소하는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묵시록적 표현기법에서 나타나는 ‘반어’의 기능이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효과를 증폭시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진: 생태시라 해서 특별히 다른 방법이나 기법으로 창작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태시는 순수시(pure poem)라기보다 의미전달의 의도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100년 전의 아방가르드들처럼 내면의 음성, 본래적이고 역동적인 음절 배열의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느 시처럼 묘사적일 수도 있고, 서술적일 수도 있고, 풍자ㆍ비판적일 수도, 긍정ㆍ낙관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단지 시적 사유와 표현상의 진정성과 긴장성이 문제될 뿐입니다.   저 개인적인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자연생태적 언어를 위하여 가능한 한 이미 세속화된 기법이나 표현방법을 버리고, 수식어는 물론 텍스트의 언어를 최소화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노자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배움을 더하면 나날이 더해가지만 도를 행하면 매일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 무위에 이르게 된다.(僞學日益, 爲道日損. 損至又損, 以至於無爲.)”고 합니다. 의도적인 학습으로 익힌 전략보다 무위적인 표현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원래적 생태에의 꿈은 무엇보다 탐욕 버리기에서 비롯되듯 그를 향한 시 쓰기에 있어서도 가장 생래적이고 절제된 언어를 쓰는 것이 옳겠다 싶은 것입니다. 현실생활에서도 가능한 한 문명의 이기와 명리(名利)를 위한 전략을 버리고자 노력해야하듯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특정 문예사조를 고집하거나 그 제작 방법을 빌어와 써먹는 데서 위안을 삼는 일은 작위적인 허세요, 장식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하나 생태시와 관련하여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점은 생태주의 담론이란 계층간 억압과 수탈의 문제와도 긴밀히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문제, 빈부의 문제, 제3세계와 같은 국가간의 문제, 인간의 욕망과 지배/피지배와 관련한 문제 등이 얽혀있습니다. 따라서 생태시는 사회적 비판과 사회적 변혁에 확고한 신념의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라야 생산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역사적? 사회적 상상력과 생태적? 본원적 상상력 사이의 긴장 위에서 우러나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4) 한국의 생태시의 계보나 중요한 생태시인들의 작품 경향을 말씀해 주세요.송용구: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의 시단에서는 전통적 서정시풍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박두진의 시집 『인간밀림』, 김광섭의「성북동 비둘기」등 소수의 작품만이 생태의식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도 이하석, 이건청 등 소수의 시인들만이 환경오염의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수용하였을 뿐, 환경 및 생태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이 안고 있었던 군사정권하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 이후에 비로소 국민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지요. 이 시기에 군사정권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언론 통제와 여론 조작이 다소 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은폐되어 왔던 환경오염의 현상들이 속속 드러나는 분위기를 따라 한국 문단에서도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하는 작품들이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생태시’의 창작과 문학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범문단적 문학운동으로 상승하진 못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작과 평론 양 분야에서 생태문제에 대한 문인들의 공감대가 확산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문학의 풍토를 반영하듯, 1991년에 시인 고진하와 평론가 이경호가 엮은 생태사화집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다산글방)의 출간은 ‘생태시’ 가 한국 문단에서 현대시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화집의 출간이 자극제가 되어 지금까지 환경오염의 문제를 소재로 다룬 시집들이 지속적으로 문단에 반향을 일으켜 왔습니다. 생명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김지하의 『중심의 괴로움』?고진하의 『우주배꼽』, 생존의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이선관의 『지구촌에 주인은 없다』? 고형렬의 『서울은 안녕한가』?최승호의 『세속 도시의 즐거움』?이승하의 『생명에서 물건으로』?신진의 『강』?강남주의 『흐르지 못하는 강』 등의 출간은 생태문제를 문학의 테마로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증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들어 《시문학》, 《현대시학》, 《현대시》,《시와사람》, 《시와생명》등 각종 시전문지들이 ‘생태시’에 관한 창작과 평론 특집을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저는 문예지들의 ‘생태시’ 특집을 읽어가면서 한국의 참여문학의 성격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하는 지배세력에 맞서 싸우던 1990년대 이전의 참여문학이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파괴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저항해야만 하는 새로운 참여문학의 유형으로 바뀐 것입니다. 참여문학의 성격을 변화시킨 가장 큰 이유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共生)을 지켜내야 한다는 작가들의 위기의식이었죠. 고형렬의 다음과 같은 시작품은 생존의 위기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을 반영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은 거대한 하수구이다/ 저 팔당 아래에서부터/ 저 아래 성산다리 행주다리까지는/ 드넓은 쓰레기의 강이다// 한강은 강이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오물을 실어나르는/ 콘베이어 벨트다/ 잠실에서 난지도까지는// 한강은 죽었다/ 그것은 내장이다 죽어서도 우리들의/ 삶을 옮겨다주는 물체다/ 눈 먼 마음이다// 복개하지 않은 거대한 하수구/ 한강은 흐르고/ 한강은 멈추지 않아도/ 서울에 와서 죽는다.”- 고형렬의 「한강 下水」전문.   고형렬의 생태시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앙갚음을 가하는 복수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젖줄로 예찬 받던 ‘강’은 어제의 ‘강’이 아닙니다. 외관상으로는 생명의 자양분을 실어 나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의 ‘오물’과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콘베이어 벨트’로 변한 것입니다. ‘강’을 죽음의 ‘하수구’로 타락시킨 ‘오물’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현대인들의 물질적 욕망이 아닐까요? 시인은 생태계를 타락시키는 원인으로 인간의 물질적 탐욕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한강은 멈추지 않아도 서울에 와서 죽는다’ 라는 발언은 자연의 보복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의 현실을 암시합니다. 최승호의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자연과 인간에게 닥쳐온 위기상황을 더욱 충격적으로 재생해주었습니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최승호의 「공장지대」 일부.   최승호의 생태시는 독일의 시인 위르겐 베커가 말하였듯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증언해주었습니다. ‘산모’의 모유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생명력을 상실해버린 모유입니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강물처럼 철저히 변질된 모유입니다. 시인은 이 객관적 사실을 독자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줌으로써 의식을 각성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모유’를 ‘허연 폐수’로 변용(變容)시켰습니다. 생명을 이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는 탯줄이 생명의 연결고리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탯줄을 ‘비닐끈’으로 변용시킨 것입니다. 최승호의 생태시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생태시’의 교육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고형렬, 최승호 등의 생태시에서 노출된 자연의 실체는 위르겐 베커의 말처럼 철저하게 “망가진 자연”입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들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까지 읽혀졌던 시가 ‘한강’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찬가였다면 오늘부터 읽어야 할 시는 ‘한강’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가(悲歌)가 되겠지요. ‘자연시’에서 ‘생태시’로 변이(變異)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신진: 저로서는 난감한 질문입니다. 저는 아직 한국 생태시의 계보나 중요 시인을 거론할 만한 독서나 연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대다수 시인이 생태주의적인시를 몇 편씩은 쓰고 있는 현실에서, 극히 제한된 수의 독서에 만족해온 제가 한정된 몇 몇 시인을 거론한다는 일이 마땅해 보이지도 않고요.    오래전에 「녹색시와 그 가설적 유형」(『시문학』,1995.5)에서 유형을 분류해본 적은 있으나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서 해석의 4유형에서 빌어온, 함축적인 의미전달시의 언술적 장치에 관한 가설일 뿐 생태시의 계보학적 고찰을 위한 것은 못된다 하겠습니다. 근래에 생각하기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생태시’ 즉 생태주의(ecologism) 시는 다시 좁은 의미의 생태시, 생명시, 환경시, 자연생활시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이는 우리나라 생태시의 계보를 마련하는 데에도 유용한 기본항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습니다. 이중 생태시는 인간중심적, 개발위주의 사유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환경의 유기적 관련성을 찾습니다. 자연 혹은 우주적 현상의 생태 질서와 정신과 미를 추구하는 것이지요.생명시는 일체 사물의 생명성, 생명 현상의 존귀함과 본질과 가치를 추구한다 하겠습니다. 환경시는 문명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에 따르는 소외감과 위기감을 통해 생태회복을 지향하는 시로 생태적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다 할 수 있습니다. 자연생활시란 제가 설정해본 생태시의 한 갈래입니다. 생태시란 추상적인 차원에 머문다기보다 실제 실천에 의해 그 진정성이 고양되지 않겠습니까. 자연 또는 전원(田園)에 완전히 묻혀 살지는 못한다 해도 그 체험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생태시가 실제로 적잖게 발표되고 있고 생태적 감응도 키우고 있습니다. 반세기 너머 전에 있는 김상용의  신석정의 같은 데서도 근대적 원형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음풍농월이나 안빈낙도를 추구한 전통적 서정의 자연시, 회화적 이미지즘 혹은 사물시적인 자연시 같은 데서는 생태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저는 일부 수긍하면서도 이에 견해를 달리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들은 모두 당대적 문명에 대한 회의? 절망을 딛고 자연 생태의 품에 포용되고자하는 염원에서 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서입니다. 자연시의 관점에서 보면 생태시도 자연시의 범주에 넣어 생태적 자연시라 할 수 있는 문제이겠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더이상 언급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듯해서 줄이겠습니다.   아무튼 생태시, 생명시, 환경시, 자연(생활)시 등 세 항과 세계에 대한 서정적 반응의 네 유형-대립, 교통(交通), 동화, 거부 등을 이용한다면[문덕수,『시론』(시문학사), 27-29면, 신진,「시의 4유형 고」,『한국시학연구』제16호 참조] 생태시의 계보 파악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데 참고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생태의식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자아 또는 화자가 현실세계에 대립? 갈등하는가, 적응을 위해 상호 교통하고 있는가, 세계와 자아가 온전 동화, 일체화 되었는가, 아예 현실을 거부? 외면하는가에 따라 시적 계보가 나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5) 국내에 소개된 외국의 생태시집이나 논저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저서나 시집의 경우, 출판사와 연대를 밝혀주십시오.   송용구: ‘생태시’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단행본은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입니다. 독일 뮌헨 대학교의 ‘정치생태학’ 전문가인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타쉬 교수가 단독으로 편찬한 이 생태사화집은 독일어권 지역의 대표적 생태시집입니다. 1981년에 뮌헨의 체 하 베크(C. H. Beck)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생태시’의 문학적 성격, 주제의식, 언술방식, 사회참여의 양상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집입니다. 저는 이 생태사화집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하여 ‘생태시’의 유형과 성격을 문단에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1995년부터 월간《시문학》지에 6월부터 11월까지 詩論「독일의 생태시」를 5회 연재하였죠.이 연재 시론에서 저는 두어스 그륀바인, 위르겐 베커, 에리히 프리트 등 독일어권 지역의 대표적 생태시인들과 작품세계를 소개하면서 생태시의 주제의식과 표현방식을 구체적으로 부각시켜 보았습니다. 또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에 실려 있는 약 50여편의 생태시를 우리말로 옮기고 분석함으로써1998년 1월부터 3월까지 월간《시문학》에 詩論 「독일 생태시의 지평」을 3회 연재하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8년 4월 ‘시문학사’에서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의 번역본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생태시 206편 중 대표시 50여편을 번역하고 주해(註解)와 해설을 통해 ‘생태시’의 다양한 테마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 또한, 개별적인 테마와 언술방식 간의 상관성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어 학술적 가치를 확보하고자 애를 써보았는데 저의 의도대로 독자층에 수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 ‘생태시’에서 드러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들은 어떤 언술방식들에 의해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2. 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실험적 언술방식이 ‘생태시’의 메시지를 파급시키려는 교육적 의도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는가? 저는 이 두 가지 관점에 천착하여 ‘생태시’의 테마와 언술방식 간의 상관성을 분석하면서 ‘생태시’와 사회운동 간의 연계 가능성을 전망해보았습니다. 시문학사에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1950~1980』을 출간한 이후에도 저는 ‘생태시’의 문학적 함의(含意)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생태시’ 평론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습니다. 1999년 6월부터 월간《시문학》지에 5회 연재된 시론「새로운 문학운동으로서의 생태시」, 1999년 7월《시와생명》창간호에 발표된 평론 「서유럽의 생태시」, 2000년 2월 월간《현대시》에 발표된 「생명주의와 자연 -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2001년 《시와사상》지에 3회 연재된 「독일의 생태시와 시론」, 2007년 《시와반시》봄호에 발표된 평론 「독일의 생태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와 아이러니 - 한국 생태시와의 비교」등입니다. ‘생태시’가 갖는 참여문학의 함의(含意)를 개방하고 확대하려는 저의 문학적 비전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이었다고 회고해봅니다.   신진: 역시 미안하고 부끄러운 답이 됩니다만 저의 독서량은 얼마 되지 않아서 생태시와 관련해서 외국의 시집이나 저서를 통째 읽은 일이 없습니다. 1990년경부터 지금까지 짤막한 북리뷰나 평론 몇 편을 통해서 생태시에 관한 나름의 정리를 해왔을 뿐입니다. 단지 1971년과 2년 사이. 대학 시절의 저는 학보 편집의 일과 데모, 그리고 사회적 갈등에 치여 무척이나 바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 편인데 그 와중에 노자와 장자 그리고 불교는 저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존재양식인가 소유양식인가』에도 깊이 젖은 경험이 있습니다. 1974년 저의 『시문학』초회 추천시 은 “이젠 오너라/ 잠시 의자를 밀어놓고// 이름 있는 것들의 낭하를 건너/ 이젠 오너라// 올 때는 아무도 더하지 말고/ 강만 보면서 오너라” 하고 시작되어 문명사회를 건넌 자연 속에서 나뭇잎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하라고 권유하는, 생태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생각됩니다. 첫시집 『목저 있는 풍경』(1978)도 자연 만물의 생명성과 인간이 교류하는 생태적 질서, 그리고 억압받는 인권에 대한 풍자와 연민으로 엮어졌었는데 저는 당시에 ‘절대의 개체적 자유와 절대의 공동체적 평등이 절대의 질서에 의해 통합되는 세계’를 꿈꾼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70년대 젊은이로서의 고통과 비애, 독서 취향을 볼 때 내면에 그럴만한 까닭을 안고 있었다고 자인합니다.   제가 생태주의를 직접 거론하는 글들을 본 것은 1990년대에 와서입니다. 지금껏 평론, 논문 몇 편을 읽은 것이 고작이지만 필요할 때 읽어야겠다 하고 메모를 남긴 외국의 생태주의 관련 저서가 몇 권 있기는 합니다. 『시문학』 독자들을 위해 굳이 소개하자면 미적인 것이란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시키는 패턴,즉 생태적 패턴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것이라 한 예지의 과학자 배이트슨(G.Bateson)의 『정신과 자연』,(박지동 역, 까치, 1990). 환경보호와 함께 사회, 정치적 생활양식에 근본적인 변혁을 전제할 때라야 생태적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관점의 앤드류 돕슨(Andrew Dobson)이 쓴 『녹색정치사상』,(정용화 역, 민음사, 1993). 사회적 실현이란 일대 변혁을 거치지 않으면 생태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전제하는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의 철학』(솔출판사, 1997), 그리고 같은 저자의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민음사,1998). 모든 존재들 내부의 영성(靈性)을 인정하는 데서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의 출발을 보고 생태학적 인식을 영적? 종교적 인식으로, 나아가 우주적 소속감으로 본 카프라(F. Capra)의『생명의 그물』, (김용정 역. 범양사. 1998)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6) 생태시 또는 생태주의와 종교(기독교나 불교)의 교리와의 관계를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살생(殺生)을 금하고 사람의 식생활에서도 육식을 금하는 등 불교는 자연의 생명권(生命權)을 존중하는 종교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런 까닭에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가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한 언급은 훗날로 미루고 오늘은 생태파괴의 책임에 있어서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967년 린 화이트는 자신의 논문에서 오늘날 생태적 위기를 낳은 인간중심주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던 기독교의 성경 창세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린 화이트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의 근본 원인이 기독교에 있다는 견해는 적잖은 동조자들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가 인간중심주의를 낳았다는 지배적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에서 번역상의 미흡함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본질적 의미를 재고함으로써 기독교와 환경문제에 관한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 독일어 성경에서는 기독교의 神이 ‘물고기와 새들과 그 밖의 모든 생물들을 보호할 책임을 너희 인간들에게 맡긴다(Ich vertraue sie eurer Fursorge an)’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및 한글 성경과 비교해볼 때 내용상의 상당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의 神은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 대한 소유권을 정당화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가져올 것을 인간에게 허락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청지기의 권한을 인간에게 위탁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을 인간에게 명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상생(相生)의 울타리 안에서 동등한 생명권(生命權)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죠..    기독교가 ‘생태주의’적 사고방식을 옹호하고 있다는 견해는 『성경』에서 객관적 근거를 얻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동식물)도 죽음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발언은 독일어 성경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과 의미의 연결성을 갖습니다. 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청지기의 권한을 망각하고서, 인간이 자연을 노예로 지배하는 주인의 행세를 했기 때문에 자연의 생명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神은 인간의 손으로부터 ‘피조물들’을 구원하여 이들에게도 영생(永生)의 권한을 인간과 동등하게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연 속의 모든 피조물을 神의 자녀로 인정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태학적 낙원을 건설할 계획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이사야서 11장 6-9절)     이사야서 11장에서 기독교의 神은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는 묘사에서 드러나듯이, 기독교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은 생태학적 낙원인 ‘에코토피아’와 일치합니다. 에덴 동산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에코토피아’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혜택과 보호를 주고받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1963년에 발표된 박두진의 시 「인간밀림」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하여 에코토피아를 회복하려는 전망을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암표범이여!/ 내가 너를 사랑하는/ 암표범이여!// 숫사자와 능구리와/ 두꺼비와 독나비/ 모두가 모두 내 새끼 같은/ 내 새끼 같은 사랑이어!// 암표범을 쓰다듬어/ 자장갈 불러 잠재우고/ 숫사자들을 나란히 거느리고/ 산책을 한다.// 능구리와는 햇볕에 누워/ 창세기를 읽고/ 독나비 나래를/ 이마로 먹고/ 폭포 앞에 가/ 씻는다.” - 박두진의 「인간밀림」중에서.   신진: 종교는 생태주의적 사유에 다가서는 교량이 되기도 하고, 그 정신적 원천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종교성을 가질 때, 그는 자신을 개인적인 존재에서 사회적인 존재로, 사회적인 존재에서 자연적인 존재로, 자연적인 존재에서 우주적인 존재로 확대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우주 속에서 가장 화해롭고 조화롭게 사는 것인가 고민하고 답을 구하고자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환경오염과 생태 파괴의 주요 원인인 근대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신적 근거는 상당부분 기독교에서 제공했다고 보는 견해에도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가 근대의 인간/자연, 주관/객관, 이성/감성, 정의/불의 등 이분법적 합리주의을 이끈 원동력이며,따라서 생태파괴의 주요원천의 하나란 견해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생명창조 과정-“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의 생력이 된지라.”에서도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어보입니다만 그리스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 데 대한 부작용이라 할만한 것도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의 권위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위로 전이시킨 나머지 자연을 마음껏 이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서구적 사고를 조장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인간의 귀중함에 비해 새나 들풀들의 물권(物權)은 훨씬 격하되고 있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생태주의 세계관에서는 조물주도 피조물도 언제나 이웃일 뿐입니다. 서로가 존중되고 서로가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함께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되는 세계입니다. 기독교가 오늘의 화를 자초한 원천의 하나인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적 세계관의 제공처요, 그 실천을 독려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도 종교이기에 가능한 역설이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사상은 바로 부활의 사상이 아닙니까.단순히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이라기보다 부활의 사상은 이 땅의 삶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 섭리, 구원의 역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파멸과 타락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신의 창조의 정신-사랑과 구원의 뜻에 비추어 변질되고 타락한 이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훼손된 신성을 이 땅에서 부활하려는 노력이 기독교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원래 현실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움으로써 버림과 비움의 윤리를 가르쳐 왔거니와 이는 생태주의와 관련, 불교가 보여주는 태생적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나누어지고 떨어져 있는 일체의 것이 삼세윤회 속에서 얼기설기 관계 맺어진 존재들이라는 생각은 나와 남의 구별이나, 자아와 대상, 주체와 객체라는, 명료한 이분법적 사고를 애초에 부정합니다. 생명중시 사상은 불살생(不殺生)의 정신으로도 요약됩니다. 불살인(不殺人)이 아닌 불살생입니다. 동양문화의 바탕이 된 불교적 윤리는 애당초 자연생명과 인간 생명의 가치를 차등화하지 않고, 생명 그 자체의 존엄함을 가르쳐 왔습니다. 선사(禪師)들은 산하대지와 자연 속의 무수한 무정물(無情物)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진리를 설법하는 존재들로 여겼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하는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사   유는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같은 법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생태 중심적 윤리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연기적(緣起的) 관계성에 눈 뜸으로써 자연 속의 모든 존재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됩니다. 산천초목과 유정물, 무정물이 모두 살아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나무나 돌에도 불성(佛性)이 있고, 무정들에게도 지혜가 있고, 무정들도 진리를 설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불교는 도교와 함께 우리가 오늘날 꿈꾸는 생태주의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하는, ‘버림’과 ‘비움’, ‘낮춤’ 같은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삶의 모든 것을 찰나에 지나지 않는 공허(空虛)로 치부하는 데 그치지 않는, 자족과 상생으로 어울린 삶을 지향합니다. 함께 버리고 비우자는 관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상생(相生)하는 이웃으로서 살기 위한 실천적인 덕목이라는 점이 유념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7) 생태시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송용구: 21세기에 ‘생태시’는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문학의 형태로 발돌움할 것입니다. ‘생태시’는 서구세계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저개발국을 비롯한 제3세계 내에서도 “참여문학”으로서의 문학적 함의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의 이러한 전망에 대해 객관적 근거들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저개발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이 서방세계의 군사적 기지로 이용되는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군사훈련과 무기실험 등은 제3세계의 생태계를 크게 위협해왔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에 휩쓸려 수많은 약소국가들이 강대국의 문화시장(文化市場)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도 생태계 파괴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문화’를 상품화하여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 시장을 확대하고 저개발국들을 경제적 식민지와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얼굴입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의 격랑은 개별 국가들의 문화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까지도 파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현시대의 생태문제는 사회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주장한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견해는 오늘의 지구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게 만듭니다. 제3세계의 환경오염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 및 경제적 이해관계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생태문제’의 심각성이 완화된 반면에 제3세계 지역의 환경오염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생태시’는 비서구 사회 혹은 제3세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생태문제’들을 창작의 소재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폐단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문제’가 각국의 생태계 파괴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를 분석하면서 테마의 범주를 이전보다 더 폭넓게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견을 들려주신 신진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진: 현대사회는 수행성과 효율성을 기분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서열화합니다. 그로써 개인적? 집단적 경쟁력이 평가되는 사회입니다. 시민들의 생태 환경의식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는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 복제를 위한 은밀한 경쟁에서 보듯 개발과 건설, 핵과 전쟁, 기아와 인권 침탈의 문제는 더욱 교묘하게, 대규모로 진전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오존층의 파괴, 해일, 지진 같은 자연재앙도 말 그대로 자연의 현상이라기보다 인간의 탐욕에 의한 재앙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평등한 권리와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태시가 오래동안 쓰여질 것이란 전망은 위기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가 할까.생태시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착안하여, 분수에 넘는 일이긴 하지만 중? 단기적인 범위에서 그 진로를 몇 개 항에 나누어 예측해 보겠습니다.    먼저, 물질위주의 삶을 정신적 가치위주의 삶으로 전환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일상시가 쓰일 수 있습니다. 번영과 축복의 문명사회에서 생태적인 정신과 꿈을 탈환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가족 시, 연시, 우정 시 등이 발표되고 주목받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둘째, 금욕의 아름다움, 나눔의 미덕이 많은 시의 주제로 부상하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사회에 생태 회복을 위한 자제력과 욕망을 갖추는 시스템이 가능할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태의 회복을 위한 과정에는 절제와 나눔을 통해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게 되기 마련인 바 이 단계의 생태시라 하겠습니다.    셋째, 사회?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생태시도 쓰일 것입니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장벽, 즉 문화 제국주의의 형태, 불평등한 경제구조, 모순적인 정치구조 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시도 마땅히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그리고 탈근대주의 등도 이분법적인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미 생태주의와 긴밀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넷째, 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생태공동체의식의 회복은 몇 마디 관념적인 교훈이나 추상적인 탐색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태 생활자, 또는 자연생활을 실천하는 시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생활에서 실천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생태의식이란 또 하나의 자동화된 논리에 그칠 수 있습니다. 전원생활 내지 자연 생활에서 육체적인 노동마저 본래적인 것으로 기꺼이 안고 사는 시인들이 늘고, 그들의 언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 주리라 기대됩니다.     다섯째, 생태시에도 심미적 차원의 전위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일군의 시인들이 미래파의 역동주의와 자유언어를 새삼 들고 나와, 언어적 동작성, 의성어, 의태어 등을 이용하여 음운의 실제 감각성을 자유롭게 부려놓습니다만 이는 시의 원천적인 생명성을 지향하는 시 양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반면에 일체 무정물은 물론 모기나 바퀴벌레, 바이러스의 생명마저 보호하고자 하는 극단의 생명시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 자체 생태적 사건이고 시적 충격이며 시인의 개성이 다다를 지점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질문에 답하느라고 항목화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예측은 언제나 예측일 뿐입니다. 저로서는 가능성 있다고 생각되는 시들, 또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생태시의 얼굴들을 늘어 보았습니다. 시문학사의 청으로 대담에 힘들게 응하긴 했습니다만 원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송구할 따름입니다. 우리 생태시의 든든한 한 버팀목이신 송용구 교수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겠습니다.   [출처] 생태시와 생태주의 시학 /신진. 송용구(펌)|작성자 목화
1711    우리가 언젠가는 "사막의 꽃뱀"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  조회:3988  추천:0  2016-10-28
  1. 귄터 쿠네르트 [라이카]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쇠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 마리가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위를 돈다. 경고로서,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위성인 지구가 죽은 인류를 실은 채 언젠가는 그렇게 해마다 태양 주위를 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로서 - 귄터 쿠네르트 [라이카](김용민 역)에서       귄터 쿠네르트는 이 시에서 우주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인간이 벌이는 비생명적인 행위를 비판한다. 시인은 인간의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인 무인위성과 지구의 운명을 냉소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생체실험을 위해 쏘아올린 위성에 실려 죽은 채로 돌고 있는 개의 운명은 생태계의 교란으로 다가올 전지구적 위기에 대한 끔찍한 경고로 들린다. 인간들은 무인 우주선 안에 개 한 마리를 넣어 지구 주위를 돌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우주선에서 죽은 채 돌고 있는 개의 운명을 인류가 환경파괴로 인해 파멸하여 전멸한 채 태양을 돌 수 있다는 암시를 끔찍하게 비유한다. 가장 좋은 쇠로 만든 공은 인공위성을 의미하며 개는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우주에 쏘아 올린 것이다. 그 위성이나 지구는 운명적으로 지구와 태양을 계속 돌도록 유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나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 몰고 올 위기가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시사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순간에 핵이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2. 하인츠 쉬네바이스 [무제]       그녀가 씻지 않은 배 하나를 먹었다 그녀의 배가 부풀어올랐고 그녀의 몸이 퉁퉁 부었고 그녀의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리고 피부 세포들이 박편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인츠 쉬네바이스 [무제](김용민 역)에서     독일의 생태시인 하인츠 쉬네바이스는 이 시에서 농작물의 생산량을 증대하기 위해서 사용한 농약이 인체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한다. 시 속에 나타나는 여인은 환경오염에 의해 희생되어감으로써 인간이 물질적 욕망에 의해서 철저히 인간적 가치에서 타자화되어 있다. 오염된 물과 땅에서 자란 농약을 잔뜩 뿌린 과일 하나로 많은 생명들이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자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희생되는 인간의 수보다 자본으로 환산되는 과일의 수가 더 중요하다. 자연환경을 무시하고 물질적인 업적이나 상업적 이익을 위한 생산량에만 치중할 경우 나타날 결과는 과연 가공할 만한 상태일 것이다. 이것이 외부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자신들의 욕망의 충족을 위해 인류 스스로 저질러 놓았기 때문에 남의 탓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문명이 만들어놓은 황무지 같은 사막은 낙원과는 정반대이다. 콘크리트, 아스팔트, 독극물, 기름, 핵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은 생각만 해도 흉측스러울 뿐이다.           3. 죠르그 힐셔 [사막의 아들]       내 기쁨을 어찌 제어할 수 있으랴 저기 언덕들 뒤의 가장 아름다운 사막에서 살게 될지니 그곳에는 콘크리트 사막 아스팔트 사막 독극물 사막 기름 사막 핵 사막 그리고 쓰레기 사막이 있으니 이들 사막에서 살게 될 일이 얼마나 기쁘랴 -죠르그 힐셔 [사막의 아들](김용민 역)에서     죠르그 힐셔는 인류를 ‘에덴의 아들’ 대신에 ‘사막의 아들’이라고 명명한다. 그의 생태시는 극단의 반어적 어법을 구사한다. 사실 사막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그가 “내 기쁨을 어찌 제어할 수 있으랴”라고 기쁨의 감탄어를 토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비통의 신음소리처럼 들린다. 시인이 모순되게 슬픔을 기쁨처럼 표현한 것은 인류의 어리석음을 마음껏 풍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그들에게 생태가 파괴되고 쓰레기로 가득 찰 세상에 살아야 할 인류에 대해서 충격적인 경고를 하고 싶은 것이다. 즉 시인의 전 지구적 자연파괴에 대한 관점은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시인은 인류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비전을 진보에 두고 있는 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 후손들이 미래에 살아가야 할 지구에 대해서 애도하는 마음을 [사막의 아들]이란 시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연이 지니고 있는 늪, 수렁, 감탕 흙, 천연 못 등과 같은 습지는 생명과는 무관한 곳으로 여기기 쉬우나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 해내고 또 해내서 살아남은 생명력과 생존으로 생명의 가장 심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이러닉하게도 인간은 이런 생명의 연속성이 담보된 지구를 전혀 생명이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것을 힐셔는 역설적인 생태시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가 그의 시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적 공간을 파괴한 결과로 “사막에서 살아야 할 것임을, 즉 우리가 ‘사막의 아들’이 되고 말 것임을”(김용민) 경고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4. 루드비히 펠스 [소비 테러]       우리가 날마다 새옷으로 갈아입고 적어도 여섯 개의 메뉴를 먹어 치우고 오로지 진열품에만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우리의 눈은 진열장을 보며 무조건 빛나야 하고 생생한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다니며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을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말고 보도록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판매원들은 백병전 훈련을 받을 것이다. -루드비히 펠스 [소비 테러](김용민 역)에서     독일 생태시인 루드비히 펠스는 이 시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시민들을 상품의 노예로 만드는 모습을 풍자한다. 자본주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체제이다. 일단 시민들이 자급자족하는 농업이 아닌 상황에서는 대량생산의 공장과 대량판매의 유통시설이 되어야만 경제가 돌아가게 되어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은 땅을 경작하는 대신에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만들어진 상품들은 수많은 유통시설을 통해서 판매되지 않으면 경제는 불황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문제는 인류가 생존의 문제를 이 시스템에 의존하는 이상 자원을 개발하여 대량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만들어야 하고 그 원자재로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소비자를 대량소비로 끌어들이는 판매이다. 생산을 하는 회사는 생산원가 이상의 자본으로 매스 미디어와 신문을 통해 엄청난 광고를 한다. 광고는 종교가 교리를 전파하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현대인의 머리를 세뇌시키고자 한다. 루드비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슈퍼마켓을 종교로 제정해 줄 것이다”라고 희극적으로 비유한다. 결국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함으로써만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김용민). 이 시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도록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은 마치 점령군이 무기를 들고 점령지의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들은 그들의 광고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자들에게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총구가 이미 불을 뿜어” 광고지 앞에 무릎을 꿇어 굴복시키고 만다. 결국 소비자는 상품을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구매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신의 경전대로 살아가는 세뇌된 맹신도처럼 무조건 광고 문구에 순종하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루드비히 펠스가 풍자하고 있는 것은 인류가 문명의 주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조종을 받는 객체로서 로봇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죠르그 힐셔가 [사막의 아들]에서 경고한 것처럼 지구는 대량소비로 인해 쓰레기 더미로 휩싸이고 말 것이다.         5. 위르겐 테오발디 [새로운 자족을 위하여]       오랫동안 나는 내 옷들과 살아왔다! 바지는 4년이나 되었는데 주머니며 허리띠, 엉덩이 판 같은 좋은 바지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여전히 다 지니고 있다. 바지는 부드러운 천으로 내 가냘픈 무릎을 그대의 손에 매력 있게 만들어준다! -위르겐 테오발디 [새로운 자족을 위하여](김용민 역)에서     독일 생태시인들은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서 비판하고 경고하는 역할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파괴되어가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위르겐 테오발디는 “새로운 자족을 위하여”란 시에서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행동 지침을 내놓는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에 대해 예전보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건들이란 인간과 같은 시공간을 함께 공유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용적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용자 자신과 함께 살아온 물건들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고 삶의 역정을 담겨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들은 광고가 조성해낸 분위기 때문에 그것들이 유행에 맞지 않다거나 조금 낡았다는 이유로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다. 테오발디는 이 시의 1연에서 이런 소비경향을 비웃는 듯 4년이나 입은 바지가 아직도 옷으로서 기능을 다할 뿐 아니라 시인의 육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지적한다. 테오발디는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서는 단순한 생명체 중심주의로만으로 자본주의의 반생태적 경향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시인은 생태계는 분명 유기체뿐만 아니라 무기물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둘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대인의 생태의식이 절제나 금기 같은 도덕적 책임감으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오발디는 인간의 정체성을 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색깔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들은 모두 삶의 요소로 소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유기체로서 인간과 무기물로서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화해시키고자 한다. 패트릭 머피(Patrick D. Murphy)의 정의에 의하면 생태학이란 “원자료를 우리 마음대로 부리기 위한 일종의 관리체계가 아니”라는 인식이며 생태문학은 “나와 사물, 그리고 장소의 연계를 아우르는 공동체의 존재가 있을 수 있게”(최동오) 한다. 테오발디는 시의 화자와 친구 디터의 외투라는 사물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를 생태적 조화로 보고자 한다. 사람과 의복이 서로 어울려서 보호적 기능과 미학적 멋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비록 타인의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의 인간적 가치를 반추함으로써 현재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의 재결합을 시도하고자 한다. 시인은 2연에서 옷장 속의 친구 디터의 외투가 최신 유행이 아니고 값비싼 옷도 아니지만 친구가 따뜻한 곳으로 떠나면서 남겨준 옷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 외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첫째, 그 외투는 친구 디터가 입었던 것으로 그것을 볼 때마다 친구와 추억을 생각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기물인 외투에 친구의 우정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적극적으로 둠으로써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를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친구 디터는 자신에게 불필요하게 된 외투를 시인에게 넘겨줌으로써 물건의 재활용을 하여 자원을 절약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대량생산과 대량생산이라는 환경문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그리고 이 외투는 몇 년 전에 베네수엘라로 간 디터의 것이다. 가을이면 나는 그것을 옷장에서 꺼내 입으며 더운 나라에 있을 디터를 생각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외투와 헤어져야 하는가? (김용민 역)     테오발디는 그가 신었던 신발에 대한 그의 인간적인 정에 대해서 제3연에서 노래한다. 그의 신발은 진열장에 놓여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역정을 함께한 그의 일부분이다. 그와 인생의 행-불행을 함께 한 신발은 그의 삶 그 자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발을 어떻게 함부로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화자는 그 신발을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침대 곁에 두고자 한다. 그야말로 인간과 물질의 일심동체를 느낄 수 있는 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밤마다 내 침대 앞에 놓아두는 내 신발 그것이 아직 보지 못한 게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이들은 나와 같이 했던가. 내가 그것들을 신고 길을 걷고 매 걸음마다 밟아줄 때마다! (김용민 역)     시인은 마지막 4연에서 자신을 위해 헌신해온 물건들에게 존경과 무한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는 “내 옷들이여 영원하라”라고 찬양하면서 그것들이 없다면 자신은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낡은 옷을 입었을 때 오히려 안락을 느끼고 시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토로한다. 테라발디의 자세야말로 생태시인으로서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현대인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본다. 테라발디의 생태시는 단순한 환경이나 생태의 파괴에 대한 고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그는 그 위기의 원인을 인간과 그가 사용하는 물건 등의 무생물과의 소원하거나 분열된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치유하고자 한다. 그 사물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수단만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시켜온 것이다. 그 사물 속에 친구와의 우정이나 자신의 삶의 역정들이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이 그것을 인식할 때 사물에 대해서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인한 자원의 무한 개발과 폐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테라발디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관계를 유기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한몸을 이루고 있음을 시를 통해서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테오발디가 문명사회의 일상생활의 개선을 통해서 생태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심층생태론이 주장하는 대로 실생활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생태운동이 “이상적이고 낭만적 성격을 띠는 탈인간중심적 자연관만을 강조하는 것은 공허”(신두호)하며 그 효과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기에 문명사회 속에서 생태적 실천이야말로 해결적 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정근(대진대 교수) [독일 생태 시인과 박영근 생태시 비교]에서 뽑고 편집. (독일 시 출처: 김용민 [생태사회를 위한 문학], 『현대문학』 46권 7호, 2000)  
1710    어느 날 페허 잔해속에서 원자로 화석을 발굴하라... 댓글:  조회:4429  추천:0  2016-10-28
독일의 ‘생태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와 아이러니                     - 한국 생태시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송용구    1. 페스트 환자처럼 변해가는 자연               은모래알의 율동이 환히 비쳐나오던 강물 속에서 등굽은 물고기들이 페놀의 거품으로 목욕하며 수초(水草)들과 함께 쇠붙이들의 궁전 속에서 죽음의 유희를 즐기는 엽기적 현상들이 1950년대 이후 독일의 현대시에서 지속적으로 묘사되어 독자에게 ‘낯설음’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독일의 시인 한스 카스퍼(Hans Kasper)는 산업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던 1950년대 중반 대도시 ‘보쿰’에서 생명의 근원인 공기의 푸른 빛이 망자(亡者)의 검은 빛으로 변해버린 환경파괴의 참상을 엽기적으로 묘사하였다.       보쿰. 우리가 쌓아올린 부(富)의 연기가 공기를 오염시킨다. 해마다 사람의 폐 속엔 세 통씩 매연이 쌓인다. 그러나 생산의 수치밖에 모르는 전자형(電子形) 두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증명해 내리라. 죽은 자들은 숨쉬는 법을 몰랐으며, 더욱 잘못된 것은 지나치게 숨을 몰아 쉬었기 때문이라고.1)                     - 한스 카스퍼2)의 「보쿰」3) 전문      ‘생산의 수치밖에 모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은 인간을 부(富)를 쌓기 위한 기계로 전락시키고 황금의 소돔성을 향해 전력질주를 강요한다. ‘전자형 두뇌’만을 요구하는 조직사회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갖는 것은 경쟁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주변 세계와의 조화, 즉 인간 상호간의 신뢰는 물론 자연과 인간의 상생조차도 물질적 목표를 위해 우선순위를 양보해야 한다. 인간도, 자연도 필요에 따라 기꺼히 도구로써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병리 현상이 생명의 파괴를 유발하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집단논리가 비애감을 자아낸다.4) 그런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 한스 카스퍼가 잿빛으로 변해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해마다 사람의 폐 속엔/ 세 통씩/ 매연이 쌓인다.”는 충격적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현실을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 표현이지만 보쿰 시민을 ‘매연’ 처리장에 비유한 것은 다소 엽기적 묘사임에 분명하다.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려는 시인의 교술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생명의 근원이 ‘공기’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로서 숭상되어 왔다.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삼아 전통적 자연시 혹은 낭만주의적 자연시 속에서 ‘공기’는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혜택을 베풀어주는 시혜자의 모습을 나타내왔다. 그러나 한스 카스퍼는 “공기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진리가 이제는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독일의 여류 시인 엘케 외르트겐5)이 자신의 시 「물」에서 묘사한 것처럼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이 “하얀 하복부를 / 하늘로 향한 채/ 하류로 둥둥 떠내려가며”6) 배영(背泳)을 연출하는 엽기적 현상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신(母神) 가이아(Gaia)의 숨결처럼 예찬을 받아왔던 ‘공기’는 자신이 받았던 독배(毒杯)를 고스란히 도시인들에게 되돌려주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탈바꿈하였다.7)    시인 한스 카스퍼, 엘케 외르트겐 등은 자연에 대한 독자들의 안일한 인식과 전통적 관념을 해체시키기 위해엽기적 묘사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묘사방식은 독자의 낭만적 자연관을 현실적 자연관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자연시’를 전통문학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연시’의 테마를 혁신하려는 문학적 의도를 보여준다. 오스카 뢰르케, 빌헬름 레만,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등 전통적 자연시인들이 아름답게 묘사해왔던 자연친화의 세계는 낭만주의 문학의 유물(遺物)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숲 속에서 나무의 초록빛 숨결을 예찬하는 시보다는 나무의 회색빛 죽음을 슬퍼하는 시가 현실의 대변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연시의 낭만주의적 전통을 철저히 부정하는 새로운 자연시, 즉 ‘생태시’가 문학적 파수꾼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8)    1980년 뮌헨 대학의 교수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 타쉬(P. C. Mayer-Tasch)가 저술한 논문 「생태시는 정치적 문화의 기록물」9)에 따르면, ‘생태시’는 환경파괴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하여 자연의 질적 변화를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시이다. 또한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을 병들게 하는 사회적 원인들에 대하여 독자의 비판의식을 유발하는 시이다.10)  ‘생태시’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타락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낳은 급격한 사회변화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주목해 볼 때, ‘생태시’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어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시이다. 둘째, ‘생태시’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생명파괴의 원인을 찾아내고 규명하는 시이다. 셋째, ‘생태시’는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들에 대한 개혁과 극복을 호소하는 시이다. 넷째, ‘생태시’는 현실극복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 이루어지는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시이다.11)      자연에서 시의 소재를 가져온다는 점,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생태시’도 ‘자연시’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태시’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있어서 ‘자연시’와 다르다. 사회적 현실의 범주 안에서 자연의 실상을 인식하여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전통적 ‘자연시’의 낙관론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생태시’는 “리얼리즘적 자연시”이자 “비판적 자연시”라 할 수 있다.12)      뢰르케, 레만, 보브롭스키 등 전통적 자연시인들이 고수했던 낙관적 자연관(自然觀)은 195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부정되기 시작하였다. 한스 카스퍼(Hans Kasper), 다그마르 닉(Dagmar Nick) 등,  ‘생태시’의 서막을 열었던 시인들은 자연을 아름다움의 정수(精髓)로 보지 않았다. 자연은 그들에게 더 이상 정서적 만족과 평안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은 낙관적 예찬의 대상이 아니라 산업발전과 개발사업에 의해 죽음을 선고받은 기형의 불구자였다. 독일의 생태시인들은 자연의 질적 변화와 공동체의 생존에 관련된 테마들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자연시’의 낭만주의적 전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태시’의 테마가 전통적 ‘자연시’의 테마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독자에게 “망가진 자연의 실상”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동시에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언술방식의 혁신이었다.13)   2. 생존의 위기를 각성시키는 엽기적 언술방식      전통적 ‘자연시’에서는 메타포 ․ 상징 ․ 리듬 ․ 운율 등의 미학적 장치를 동원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위주로 수사적 표현을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실제의 모습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공하고 변형시켰다. 이 경우에 전통적 ‘자연시’가 안고 있는 위험성은 자연의 실상을 은폐함으로써 독자에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불감증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태시인들은 자연의 실상을 목격자처럼 정확히 증언해줄 수 있는 시어(詩語)를 사용하였다.14) 독일의 시인들은 환경오염이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며, 독일 내에 국한된 지역적 현상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相生)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을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시인들의 연대의식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의 양상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고발하였다.15) 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생생히 재생하는 작업에서 시인들은 엽기적 묘사방식을 동원하게 되었다. 생존의 위기를 독자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언술방식으로서 엽기적 묘사방식은 독자들에게 정서적 충격과 함께 의식의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녀는  아직 씻지 않은 배  한 개를 먹었다 그녀의  아랫배가  부풀었다 그녀의  두 팔이 퉁퉁 부어 올랐다 그녀의  두 다리가 부풀었다 그리고     세포들이           떨어져 나갔다                       뿔뿔이 흩어지는                                    솜털 조각                                           같았다 16)                           -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그녀는」17) 전문      독일의 시인 하인츠 쉬네바이스(Heinz Schneweiß)는 생태계 파괴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인체의 파멸 과정을 엽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세포들’이 ‘솜털 조각’처럼 부스러져서 ‘뿔뿔이 흩어진다’는 표현은 괴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름끼치는 현실을 재생하고 있다. 농약에 오염된 흙을 통하여 과일 속에 스며드는 화학물질이 고스란히 인체 속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변용(變容)시킨 작품이다.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서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인은 엽기적 상상력과 언술방식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생생한 실상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로써 엽기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창조해내는 묘사방식은 한국의 시단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18)            - 최승호의 「공장지대」 일부        산모의 가슴에서 모유 대신 ‘허연 폐수’가 흘러나오는 것은 사실적 상황이 아니다. ‘공장지대’의 폐수 때문에 오염된 강물을 마시고 산모의 몸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산모’의 ‘젖을 짜면’ 모유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모유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생명력을 상실해버린 모유이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강물처럼 철저히 변질된 모유이다. 시인은 이 객관적 사실을 독자에게 고발하고 있다. 그는 독자에게 정서적 충격을 안겨줌으로써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유’를 ‘허연 폐수’로 변용(變容)시키는 엽기적 상상력을 폭발시킨 것이다. 산모의 몸과 아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는 탯줄이 생명의 연결고리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이 배꼽에 매달린’ 탯줄을 ‘비닐끈’으로 변용시켰음을 알 수 있다. 엽기적 상상력에 의해 생태주의적 메시지를 창출해내는 픽션의 개가(凱歌)라고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이후 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에서는 생명파괴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실증해줄 수 있는 낱말들이 시어(詩語)로 채택되었다. 피해자인 ‘자연’은 생명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폭로해주는 증인이 되었고 시어(詩語)는 이 증인의 고백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메신저가 되었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언어행위는 자연에게 심미적 광채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게 당면한 공멸의 위기를 충격적으로 증언하는 일이었다. 현대의 시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병든 환부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관념의 옷을 벗겨내고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생존’의 위기상황을 각성시키는 일이었다.19) 새로운 시대의 문학적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독일의 시인들은 르포, 다큐멘타리, 묵시록 같은 다양한 언술방식을 사용하였다. 르포와 다큐멘타리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 없는 비문학적(非文學的) 언술방식인 까닭에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하는 문학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시인들은 ‘묵시록’이라는 언술방식을 사용하여 미학적 실험을 꾸준히 감행하였다.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지구의 종말과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려는 뜻에서 지구를 “거대한 공동묘지”, “유령들의 위성”, “거대한 화석” 등에 비유하는 엽기적 상황을 연출해낸 것이다.             3. 묵시록에 나타난 엽기적 언술방식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금속으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 마리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위성 지구가 어느 날 저렇게 죽은 인류를 싣고 해마다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면서.20)                     - 귄터 쿠네르트21)의 「라이카」22) 전문      귄터 쿠네르트의 시 「라이카」는 1957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를 인공위성 ‘슈프트닉 2호’에 태워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 생명체를 띄워 보냈던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이 역사적 사건은 지구의 종말에 대한 은유로 변화한다. ‘죽은 개’를 싣고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은, 멸망한 인류를 싣고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르는’ 지구의 은유이다. 시인은 ‘죽은 개’를 통해 ‘죽은 인류’의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개’와 인류 공동의 터전인 ‘지구’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23) ‘가장 좋은 위성’이었던 ‘지구’ 안에서 모든 생물들이 시체로 변해버리는 엽기적 상황을 묵시록의 표현방식을 통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거대한 공동묘지 혹은 ‘해골’들의 ‘관(棺)’에 비유하는 엽기적 묘사방식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시인들의 ‘생태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뿐/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빈 지구만이 태양을 돌면서 또/ 태양은 지구를 데리고 멀고도 먼/ 움직이는 우주를 따라가는 은하/ 그 은하계를 따라 사라져 간다/ 지구는 모든 조상의 묘를 싣고/ 밤과 낮을 끊임없이 통과하리라                                            - 고형렬의 「지구墓」24) 전문   인간도 언젠가는 멸종하리라는 것/ 그 숱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킨 죄로// 지구는 도는데 나는 사라지고 없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무덤속에 누워 있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흙먼지가 되어 날리고 있으리/ 언젠가는 반드시                                             - 이승하의 「생명체에 관하여」25) 일부        독일어권 지역 시인들의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라는 제목이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처럼 기술문명의 메커니즘은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지향하는 “곡선” 형태의 점진적 발전이 아니라 황금빛 “소돔성”을 향해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급진적 발전만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자연은 기술문명의 ‘직선적’ 발전을 가속화시켜줄 도구로 전락하였다. 자연의 ‘생명체들’은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켜주는 희생물일 뿐이었다. 인류의 물질적 쾌락을 위해 저당 잡힌 마지막 담보물은 인류 자신의 ‘멸종’과 지구의 파멸이었다.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에서 묘사되었던 ‘죽은 인류’의 공동묘지인 ‘지구’를 고형렬과 이승하의 시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지구’는 인류의 ‘해골’과 ‘멸종’된 ‘생명체들’을 싣고 ‘태양’ 주변을 도는 거대한 ‘묘(墓)’로 전락하리라는 예언이 한국 시인들의 목소리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시인들의 비관적인 목소리는 그들의 엽기적 언술방식과 결합하여 인류의 미래에 어두운 비가(悲歌)를 헌정한다. 그 비가는 지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사(弔詞)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비관적인 “예언”의 언술방식을 통해 지구의 종말과 인류의 ‘멸종’을 엽기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대인들을 향해 ‘경고’의 옐로우 카드를 뽑아들어 ‘종말’을 막아내자고 호소하는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26)   어느 날 폐허의 잔해 속에서 원자로를 공룡의 화석처럼 발굴하리라 삶을 지탱할 수 없었던 자들의 유산으로27)       - 베른트 M. 말루나트의 「유산」28)   독일의 시인 베른트 M. 말루나트(Bernd M. Malunat)는 모든 생물들이 차디찬 땅에 묻혀 ‘화석’으로 변해버린 적막한 풍경을 마지막 ‘유산’처럼 쓸쓸히 노래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인류가 ‘원자로’를 관(棺)으로 삼아 ‘공룡의 화석’ 옆에 나란히 누워 있게 되리라는 엽기적 예언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지배해왔던 인류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고 현대인들의 “물질중심적” 패러다임을 “생명중심적”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아이러니”로서 작용하고 있다. ‘폐허의 잔해’를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없다는 반어적(反語的) 메시지가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29)   4. 독일의 현대시에 묘사된 ‘엽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의 해체주의 이론이 철학계를 지배하면서부터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모든 문화적 현상을 상대적 관점에서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다원주의”30)가 시작품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서구의 전통시에서 기존의 시적 주체 혹은 시적 자아가 세계, 인간, 자연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규정해왔다고 한다면, 서구의 현대시는 시적 주체 속에 갇혀있던 세계, 인간, 자연 등을 해방시키고 이들을 독립적인 존재인 타자(他者)로서 인정하며 이들과의 동등한 수평관계 속에서 시적 자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문학적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현대시 속에서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엽기적 현상 또한 기존의 시적 자아에 의해 규정되던 절대적 의미를 부정하고 자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문학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엽기”는 전통적 관념을 통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낯설은 현상으로 독자에게 다가와서 독자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사전에서는 “엽기”를 “기괴한 현상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행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묘사된 엽기적 현상은 단지 기괴하고 이상한 현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체제에 의해 강요된 도덕과 인습 속에 갇혀서 비판능력을 잃어버린 독자들에게 세계의 은폐된 면모들을 인식시키고 고정관념으로부터 독자의 자아를 해방시키는 문학적 반어(反語)로서 작용하는 것이 “엽기”이다. 당연하고, 올바르고, 진실해보이는 사회현실의 이면에 낯설고, 기이하고, 일그러진 부조리의 현상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기능을 의미한다.    독일의 현대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는 언어의 외관상으로 볼 때 끔찍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로테스크한 현상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언어의 겉과 속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형식과 내용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엽기적으로 묘사된 현상의 바깥에 흐르고 있는 외적(外的) 언어는 “엽기”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엽기적 묘사의 내부 속에 살아있는 내적(內的) 언어는 ‘진리’라고 믿어왔던 가치체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감을 조성해주고, ‘낯설게 하기’의 미학적 효과를 창출한다. 절대적 가치체계로부터 자연, 인간, 여성, 민중, 생명, 사물 등을 해방시켜서 ‘타자(他者)’의 독립적 존재와 상대성을 고양시킨다. 이성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연을,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인간을,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여성을, 제국주의적 혹은 권력중심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민중을, 기술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생명을 해방시켜서 모든 개별적 존재들에게 고유한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문학적 “아이러니”의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지역의 작가들이 20세기 중반 이후 자연 및 생태계의 파괴현상을 “엽기적”으로 묘사한 현대시의 다양한 양상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 문학적 의의를 조명해보았다. 파괴되어가는 자연 및 생명에 대한 독일 시인들의 엽기적 묘사가 독자의 내면세계로부터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을 이끌어내는 창조적 “아이러니”의 기능을 발휘하였음이 한국 현대시인들의 창작기법에 미학적 자극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송용구: 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1709    詩人은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저항하라... 댓글:  조회:4183  추천:0  2016-10-28
환경문제와 생태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                                 유창섭 시인. 본지 주간  1. 환경문제에 대한 문학적 관심   최근 들어 환경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소위 “...강 살리기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충돌하고 그 와중에 ‘감추어진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그 중심에 들어가기 시작한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최근 급격히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 문제---지구 온난화, 북극 빙하의 해빙현상, 잦은 태풍과 폭우 현상, 바닷물 온도 상승에 따른 아열대 지역의 확산 등---나 생태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 해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크게 증가한 데에도 영향이 크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인식은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생존의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 그 최소한의 생존의 욕구가 해결된 시대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조건으로서 인간이 지키고 보존해야할 환경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관심이 집중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환경이 변화하고 개발이 지속되는 곳에서는 어떠한 사업이든 이익을 보게 되는 양지쪽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음지쪽 사람들 역시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대사회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좇는 무리가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관심과 찬반의 의견이 끼어들고 그 의견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행위가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그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루어낸 가치와 그 가치에 충돌하면서 생기게 되는 부조화로 인한 손해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지를 연구하고 실증하는 학자들이나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에서 정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생각은 없지만, 그 정책들의 실시에 따른 각계의 반응이나 움직임을 살펴보고 실질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조하여 보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후손들에게 좋은 생태환경을 물려주어야 하는 이 시대를 앞서 사는 주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도 절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의 개발이 경제논리에 침몰하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역할만 하게 될 뿐 먼 훗날에는 이것을 다시 되돌리는 사업에 투자하여야 할 자금이 지금의 몇 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과 정부의 홍보자료가 근거없이 작성되어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정부 발표로는 22조라지만 업계에서 족히 40조는 될 거라고 추정하는 4대강 개발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발생할지는 전혀 조사된 바 없다는 지적이 있다.   얼마나 많은 농지가 수용되고, 농부들이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들이 일평생 공들인 가축과 작물과 흙과 물은 얼마나 망가지는지 개발주의자들은 아무도 그 고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도 않는다.   경제와 개발논리에 매몰되어 상실의 고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윌리엄 워즈워스와 같은 시인들은 농부에게 땅이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님을 알았다. 땅과 거기에 뿌리내린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식만큼이나 절실하고 소중한 것임을 시인은 알았다. 농부에게 가장 큰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시 에는 한 마리로 시작해서 자식처럼 불려나갔던 50마리의 양을 결국 1795년에 닥친 기근과 당시에 그 나라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물가상승 등으로 한 마리씩 팔아야 했던 어느 늙은 농부의 고통이 담겨 있다. 늙은 농부는 엉터리 구호법에도 호소해보지만 몇 마리 양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을 한 마리씩 내다팔다가 마침내 마지막 남은 양을 껴안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농부는 상실의 고통을 눈물로 호소한다.   법을 만들어 땅을 강제로 수용하고 어떤 보상을 한다 해도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땅에 살아온 역사를 잃고 존재의 뿌리가 뽑히는데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4대강 개발 사업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와 상실감에 빠져 고통받는 힘없는 자에 대한 긍휼심을 잃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멈추는 순간 사회적 약자의 삶도 위태롭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많은 환경단체, 종교단체, 학계 등 각계에서 반대론자들이 환경문제나 생태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참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제가 얼마나 자주 바랐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모두 한꺼번에 없어져버리길.  하지만 양들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줄어들었죠.  제겐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나쁜 행동을 할까 싶기도 했고,  사악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제 얼굴에서 고통을 보았을 겁니다.  평화도, 위안도 제겐 없었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편치 않았습니다.  낙담하여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일터로 나다녔습니다.  ( 일부/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이와같이 시적 상상력 속에서의 생태적 상상력, 또는 시적 세계관 속에서의 생태적 세계관이라는 긴밀한 포괄적 관계는, 칼 G. 헌들과 스튜어트 C. 브라운이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 문학에서의 시적 담론 등을 제시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으로 보아 생태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는 데에 시적 담론이 여타의 담론보다 훨씬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2. 생태시, 생명시의 흐름   생태시는 문학적 용어로 확립된 범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계기로 그 속에 시인의 정서를 담아 창작된 시 작품을 생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태시란 넓은 의미에서 생명시와 그 범주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생태학적 문제란 현대의 생태 위기를 초래한 인류의 반생태적 태도를 비판하고 생태보존적 미래를 이루어내려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생태학이란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이미 선진국의 공업화과정에서 나타난 1960년대 이후 환경 오염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 영역을 계속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 후 지금의 사회과학 뿐 아니라 인문과학의 분야까지 포괄하는 학문적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생태문학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태시 운동, 또는 생명시 운동은 2010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시적 흐름의 하나가 아니다. 아주 초기에 발생한 순수 생명시운동의 하나는 1930년대에 발아되었으며, 그들은 시문학파의 순수 서정의 표출과는 달리 생명의 깊은 충동과 고뇌, 삶의 절박한 갈망을 시화하려고 하였다.   “'시인부락' 동인(생명파)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서정주의 관능과 열기와 숨결을 담은 '화사집'의 시로 대변된다. '생리'지의 동인 유치환 역시 그러한 생명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생명파인 것이다.” (한국현대시 400선(태학사)중 발췌) 그러던 것이 여러 사회적 흐름 속에 동화되어 어떤 경우에는 시적 상징 속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하나의 정서 속에 매몰되어 나타나기도 하면서 그 흐름이 하나의 은유적 정서로 육화肉化되어 형상화되면서 그 뼈가 단단하게 시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흐름 중에 다시 민중의 삶과 환경훼손이라는 자연과 대립되는 사회의 하나의 이슈issue로 등장하면서 이 생명시, 또는 생태시는 그 사회적 논의의 중심으로 다시 내용과 모습을 바꾸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생명시에 대한 대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김지하 시인이 지적한 생명시에 대한 시적 의미를 참고로 들여다 본다.  사회 ; 하나의 현상처럼 생태시가 시단의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지하 ; 생태시인이 1,000명이 넘는다고 그래. (80년대) 민중시인들처럼, 요즘엔 전부 생태주의자라고 그래. 그건 좋은데, 민중시와는 다르단 말야. 왜 그러냐면, 생명은 안팎이 있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영성靈性을 다뤄야 해. 유럽 생태학은 드러난 차원의 생태 질서, 생명 질서에 대해서만 탐구하고 있다구. 암석, 토질, 수맥, 식생계, 서식하는 동물들, 군락, 이런 것들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지, 인간 영혼의 고통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그런데 ‘영혼의 고통’이란 생명을 다루려면 반드시 따라 나오게 되어 있는 거라고. 바깥에도 생명이 있으며, 안으로는 반드시 무의식 차원의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는 거잖아?  그런데 요즘 생태시들이 이 영혼의 문제를 놓친단 말이야. 영성과 생명 사이의 교호交互 관계, 그러니까 인터랙션interaction을 놓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자꾸만 소재주의에 빠지거나 스테레오타이프stereotype로 가는 거야.          (김지하/ [컬처뉴스] 인터뷰 고영직, 정리 위지혜기자 2005-06-23 대담 중에서 인용)   생태란 한 번 훼손하면 그것을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기 어렵고, 또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시킨다해도 그 사회적 비용이 훼손 당시의 비용의 몇 배나 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 온다는 관점에서 초기부터 생태에 대한 관심과 분석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그것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학도 그 사회적 관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각계의 반발과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등,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시단에서의 움직임도 생태시를 하나의 중심 화두로 삼으려는 의도를 내 비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생태입니다. 생태 파괴는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일이죠. 시인은 지적 통찰자로서 시대가 당면한 위기를 알리고 대응방안을 제시해야 할 소명과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시인협회는 생태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생태시 운동’을 통해 4대강 사업의 문제나 멸종위기 동식물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2010년 3월 한국시인협회의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이건청 시인(68·한양대 명예교수)은 앞으로 시인협회의 주요 사업으로 ‘생태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생명시나 생태시들은 인간이 배제되었다는 생각들을 많이 가지게 한다. 자연이나 환경이 소중한 것이지만 인간이 배제된 자연이나 환경문제는 핵심이 빠진 생태만능주의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므로 인간에 대한 배려 또한 핵심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 광범위한 생태시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으며 그 속에 생명에 대한 담론은 어떻게 전개되어 현대 사회를 아우르는 시로 변모하고 있는지 살펴 본다.   ‘생태시‘ 또는 ’환경시‘라고 하면 으레 가장 먼저 생각나고 여러 시인들이 논의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최승호의 시, “공장지대”를 떠오른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과 나는 간통한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 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리 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댄다  (시 “공장지대” 전문 / 최승호 시인)   이 시에서 최승호 시인은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로 상징되는 환경오염에 대한 근원적 문제와 ‘무뇌아’라는 피해를 연결지워 현대사회가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키는 동안 인간이 겪게 될 재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어 현대문명을 고발한다.   이렇게 최승호 시인은 그로테스크하고 괴기(怪奇)스럽게 벌레들, 오염된 것들, 고름 질질 흘리는 듯한 병과도 같은 소재를 끌어들여 환경훼손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아가 숭고함으로 뛰어넘어야 새로운 미가 탐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생태학적인 고려가 없이 경제적인 논리로만 치부되고 있는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이 일시적인 이익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그 재앙이 우리의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인식을 사회고발적 형태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순수한 자연에 대한 외경과 우주적인식으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지순한 인식을 순화시킨 강남주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하고 아름다움으로 인도하여 준다.  풀잎의 무성한 자유 속에서  자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시간을 잰 뒤  지구를 측량하고 있다.  나비 한 마리가 둘레 없는 하늘로 날아 올랐다.  자벌레가 기어가고 난 뒤  나비는 또 하늘로 날아 올라  풀잎과 더불어  지구에 빛깔을 입히고 있다  (시 “자벌레가 시간을 재고 간 뒤” 전문 / 강남주 시인)   자벌레 한 마리가 지구를 측량한다는 인식이 새롭기도 하거니와 그 시간의 측량 후에 오는 자연의 변화 또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요, 자연 속의 뭍생명이 하는 일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드러내어 보이는 생명인식이 아름다운 시가 아닐까 한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시 “중심의 괴로움” 전문 / 김지하 시인)   “중심의 괴로움”이란 매우 다양한 의미가 장착된 김지하 시인의 시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생명의 끈질긴 삶에 대한 집착과 노력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시인 자신의 모습과 병치시켜 시골에 가서 ‘비우고, 피우리라’는 다짐을 길어 올린다. 여기에서 ‘나도 흔들린다’는 인식은 존재의 인식이며 살아있음의 역동적 욕구의 분출이라고 읽혀진다.   이와 같이 그의 말대로 단순히 살아있음이 아닌 보다 높은 숭고함을 지향하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살아있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연에 대한 외경이 없이 농사라는 미명아래 마구 뿌려대는 제초제와 같은 약제의 살포를 등장시킨 필자의 졸고 한 편을 읽어본다.  흉몽凶夢에 시달리면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밤 내내 쫓아 다녔다  몇 년간  밭 가에 무성히 자란 덤불이 귀찮아서  밑동까지 잘라내고, 제초제까지 뿌려댄 뿌리,  용케도 살아남은 가지 하나,  그 끝에서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 단 한 송이,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품에 안아  내, 누구를 폼나게 용서해 본 적도 없었거니  개나리꽃 한 송이가 나를 부끄럽게 하여  쳐다보기도 미안해 고개를 돌리는 곳에  뽀오얀 봄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쪼그리고 앉는다        (시 “개나리 꽃” 전문 / 필자 )   밭 가장자리에 나 있는 개나리가 거추장스럽다고 지난 가을에 제초제를 마구 뿌려댄 시인은 봄날,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일어나 개나리 꽃 한 송이가 핀 개나리 나무를 보며 개나리꽃으로부터 화해와 용서라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인식을 길어낸다.   그 광경에 어찌 자신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각각의 자연 생태와 도시 환경을 통해서 새로움 사실을 인지해 내고 소중한 생명과 자연생태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드러내 보이게 된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 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시 “의자” 전문 / 이정록 시인)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투리가 제 격인 어머니의 말씀을 통하여 시인은 의자의 새로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투박한 어머니의 말을 인용하여 드러내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에 합당한 의자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에만 매달리지 말고 의자가 필요한 참외나 호박에도 따스한 손길을 뻗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삶이란 그 크기만한 의자를 내어주며 사는 것,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는 자연의 작은 존재에 대한 생명의 사랑도 자잘한 행복이라는 ‘작지만 큰 깨달음’을 행복의 조건으로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로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 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시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 이재무 시인)   마을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나이 많은 “팽나무” 한 그루가 죽어간 것---사물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허물며 베어진 늙은 팽나무와 그 나무 밑에서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리던 시인의 유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생명의 '해방공간'이 만들어진---을 통해 마을을 아우르고 시인의 과거를 품고 있던 추억의 상징이 잘리워져 나감을 안타깝게 그려내고,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이라는 깨달음과 감동으로 이끌고 있다.  이제까지 생명과 생태에 대한 인식이 담겨진 시를 몇 편 읽어 보았다. 그러나 요즘의 새로운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4대강에 대한 인식은 시인들의 눈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을까?   문학이 반드시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여야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의 시인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심상에만 매달려 사회적 소통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탈(脫)서정’과 ‘환상성’, ‘개인주의’ 등 21세기 들어 새롭게 떠오른 젊은 시인들의 경향에 맞물려 최근 현대시의 경향은 ‘서정에서 현실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전 시대의 시가 서정적이거나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쓰였다면, 이제는 각 시인의 개성이 시 속에 드러나며 동시대 젊은 시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시적 왜소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약자의 목소리,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을 감는 것은 ‘죄악’이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집단수용소에 갇혔던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있다. 요약하면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므로, 유대인이 아니므로,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매번 침묵했다. 그런데 그다음 ‘숙청’이 내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제목이 “침묵하면 다음은 당신 차례다”이다. (“한겨레 프리즘” / 김의겸 기자의 글에서 인용)   최근에는 각 지역의 문인협회가 한경과 생태에 관한 시화전을 개최하고 각 문학지에서도 생태관련 시를 테마로 잡아 활동하는 등, 다소 활발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기는 하나 좀더 깊은 애정과 관심이 두어지는 시적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으로 이 땅의 시인들이 눈을 뜨고 생명에 대한 애정을 말하고, 생태에 대한 애정의 눈길을 가지고, 다양한 시선으로 환경문제나 생태시학적 관점을 가지고 눈길을 주게 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아름답고 살기좋은 땅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시 400선/태학사         컬쳐뉴스/2005. 6.23.         동아일보/2010. 3.31.         한겨레프리즘/김의겸         고해문서/최승호/1991         낯선 풍경 속으로/강남주/2008         중심의 괴로움 /김지하/1994         의자 /이정록/2006         위대한 식사/이재무/2002    독일 생태시 몇편                                                                       한스 카스퍼   프랑크푸르트, 기름을 머금은 마인강에서 수만 마리 물고기가 숨이 막혀 죽고 말았어. 시민들로서는 놀라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야   흐르는 물결이 너그럽거든.   물결은 재빨리 강기슭을 지나   파리떼 들끊는 은빛 시체 더미를  몰고가버린다구.   시체 썩는 냄새가  마비된 우리의 감각에 와 닿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악취를 휩쓸고 가버리니,   모든 것은  기막히게 제 자리를 찾는다구.                                                                 로제 아우스랜더   물과 피를 받고 태어나 대도시의 원시림 속에서  길들여졌다네   정글은  문명의 칼에 동강나서 또다른 정글과 경계를 이루었다네     빛의 꼭대기에서 날아다니다가  독약 섞인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마지막 어머니여  공기여 우리는 공기를 살해한다네                                                            에리히 프리트   아이의 고개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소리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의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때문에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엔   아이의 몸이 쇠약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잘못이 있는   너희의 질서도 마땅히 삶을 이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의 고개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너희의 선언도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아이가 소리치지 못 하기 때문에   너희도 그 아이에게 윽박지를 수 없는 것이다.   아이의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때문에   너희의 질서 전체로 삶을 이어가기엔   구린내가 날 뿐이다.   아이의 구린내도 너희처럼 지독하진 않았다.                                                                      페레나 렌취     그토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그를 죽여버리다니  도대체 나무는 너희의 원수란 말인가?   새들은 낯설게 변해버린   그들의 터전에서   당황한 듯 이리저리 맴돌고 있다.   새들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을  너희는 몰랐단 말인가?   이제 그들이 낯익은  보금자리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도무지 소용 없게 된 것을 너희는 몰랐단 말인가?   너희는 여왕벌의 씨를 말려놓았고,  나무의 땅에서 생명을 앗아갔다.   지금부터 당장이라도 한 그루 나무를 사람처럼 받들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황량한 땅에서 돌처럼 굳어가리라.    
1708    詩는 희곡을 "언어예술의 집"으로 건축하는 벽돌이다... 댓글:  조회:3532  추천:0  2016-10-28
  한국과 독일의 시인들 10인 (9)  잃어버린 ‘숲’의 빛을 찾아서     송용구(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 *한국 시인: 이윤택, 정대구, 오태환, 최창균, 이솔 *독일 시인: 카를 리하, 아른프리트 아스텔, 랄프 테니오르, 한넬리스 타샤우, 하인츠 쉬네바이스                     잃어버린 ‘숲’의 빛을 찾아서 - 이윤택의 「숲으로 간다」   1952년 부산에서 출생한 시인 이윤택. 그는 197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그는 특히 한국 연극계의 대부이자 산파로서 ‘연극’을 통하여 문화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그에게 ‘문화 게릴라’라는 별칭이 안성맞춤인 까닭은 자명하다. 극작(劇作), 희곡론, 연출, 시, 시극(詩劇), 평론 등의 서로 다른 영역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장르 간의 통섭과 상호의존의 길을 열어나가는 능력이 천부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상호부조론을 제시하였지만 그 상호부조의 원리를 이윤택의 예술세계로 옮겨서 말해보자. 그에게 있어서 예술 장르 간의 ‘차이’는 하나의 장르와 다른 장르 간의 ‘상호부조’를 강화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윤택의 시는 희곡을‘언어예술의 집’으로 건축하는 벽돌이었다. 이윤택의 평론은 시(詩)를 ‘사회적 테마의 의복(衣服)’으로 직조하는 옷감이었다. 이윤택의 희곡론은 연극의 ‘예술성’과 ‘사회성’을 유기적으로 융합시키는 문화 미디어였다. 이윤택의 시극(詩劇)은 현실의 혈액이 흘러가는 언어의 뼈대 위에 사상의 살을 입힌 ‘예술의 몸’이었다. 그런데 이윤택의 예술세계에서 발견되는 장르 간의 ‘상호부조’ 현상은 그의‘시’를 움직이는 심장과 같은 원리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생명선(生命線)으로 이어져서 역할의 연대를 이루며 협력하는 ‘유기체적 네트워크’이다. 그러나 이 ‘유기체적 그물망’을 구성하는 생명의 그물코가 끊어지고 ‘상호부조’의 원리가 교란되는 현실을 비평의 메스로 차갑게 해부하는 외과의사가 시인 이윤택이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밥의 사랑』등이 있다.     조씨부부(趙氏夫婦)는 첫 애를 낳은 지 한 해도 채 지나기 전 젊은 아내의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숲으로 간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빛을 받고 살아서 습지(濕地)를 확보하지 못한 젖이 마르고 그래서 더욱 각박한 느낌으로 도드라진 가슴 안쪽부터 쪼그라들면서 암세포는 자랐다   그래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디로 가지를 뻗어야 하는지 모른 채 그냥 던져져서 국적불명으로 자란다 그래서 세상은 길을 잃고 현대는 잃어버린 아비 찾기다   이것이 실존이다! 외치던 철학자는 결국 멀리 존재하는 숲을 보지 못한 채 자동차에 치여 죽었고 도시를 비켜 선 외곽에서 닭을 키우던 시인은 난생(卵生)의 시를 남겼다   2.   숲은 어디에 있나?   숲은 그냥 우리가 숲이라고 불러주는 그곳에 아파트 근처 야산 키 작은 나무 몇 그루로 둘러싸인 구렁에 아니라면, 베란다에 화분 몇 개 놓든지 사진작가 육명심(陸明心)이 찍은 소나무 사진을 걸어두고 실내조명을 조금 어둡게 조절하면 자신의 숲을 확보할 수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스로 숲이 되는 일   어떻게 사람이 숲이 될 수 있는가 ......책 속의 길을 찾아 떠날 일   책 속에서 숲을 찾는 매력은 책을 읽다 문득 이마박이 화끈!   밤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숲의 광채를 목격하는 일이다.   동방박사들이 그 빛을 좇아 따르고 석가가 빈 하늘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고 시인 폴 발레리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노래할 때   숲은 밤하늘에 광채를 쏘아 올린다   그 빛은 사실 스스로 숲이 된 자의 몸에서 솟구쳐 오르는......   - 이윤택의 시 「숲으로 간다」전문     *「숲으로 간다」: 2007년 『동서문학』에 발표된 후 2014년 ‘도요’에서 간행한『도요문학무크』제6호에 수록되었다. ‘시’는 생명의식과 사회비평의 변주곡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첫 애를 낳은 지 한 해도 채 지나기 전 젊은 아내의 왼쪽 가슴을 잘라냈다.” 이 발언은 유방암과 ‘유방절개수술’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진술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사건이 ‘생태위기’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를 포착함으로써 이 시는 진부한 의미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인간의 암(癌)을 유발하는 병인(病因)들이 자연의 병에서 자라난다는 생태적 인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적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는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인의 눈은 시행이 전개될수록 날선 검(劍)처럼 변해간다. “우리가 받고 사는 너무 많은 빛”은 자연의 싱싱한 햇살이 아닌 인공의 빛이다. 그것은 물질만능주의의 메커니즘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계화의 빛이요, 상품화의 빛이다. ‘소유’라는 목적을 위해 인간의 정신을 도구로 이용하고 인간의 몸을 수단으로 남용하는 맘몬의 빛이다. 우리는 그 “빛”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살다보니 “더욱 각박한 느낌으로 도드라진 가슴 안쪽부터 쪼그라들면서 암세포는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64년‘사회생태주의(Social Ecology)’ 이론을 제시한 철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 원인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맘몬’을 위해 인간을 상품이나 도구로 오용(誤用)하는 행위는 자연마저도 상품과 도구로써 남용할 수밖에 없다. 이승하 시인이 탄식한 것처럼 “생명을 물건”으로 타락시키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인간과 자연의 연속적 ‘도구화’ 현상은 “숲”을 병들게 하는 생태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숲”은 녹색의 숨결을 생산하는 허파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병인(病因)들을 제조하는 회색의 공장으로 변해간다. 시인 이상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숲”은 “회탁”의 현장으로 타락해간다. 연초록 가지끝에서 흘러나오던 맑은 숨결들은 어디 갔는가? 그 대신에 사람의 폐부 속으로 스며드는, 녹슨 쇠토막의 피부를 닮은 탄소의 물결들을 보라. “숲”은 머레이 북친이 지적했던 “생태위기”의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고 했던 평론가 도정일의 말처럼 “아비”의 따스하고 넉넉한 가슴을 닮은“숲”은 사라져간다. 이제는 탄소의 담장으로 인공의 울타리를 두른 “숲”이 우리를 부른다. 그러기에 시인 이윤택은 “세상은 길을 잃었다”라고 탄식하지 않는가?우리는 “아비”의 조건 없는 사랑을 닮은 순수한 “숲”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처럼 우리는 고향 같은 “아비”의 흙가슴이 살아 숨쉬는 “숲”으로부터 멀어져서 회탁의 거리에 “내던져진” 존재들인가 보다.우리는 “아비”의 집과 다름 없는 “숲”을 잃어버린 채 “국적불명”의 미아로“던져져서” 문명의 탁류(濁流) 속을 떠돌고 있나 보다. 우리 모두는 지금 “멀리 존재하는” 숲으로부터 “내던져진” 현대인들이다. 우리는 물신(物神)을 섬기는 배금교(拜金敎)의 광신도가 되어 ‘소유’에 집착하는 근심이 “암세포”처럼 자라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오염된 물과 공기의 보복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다양한 병명(病名)을 지닌 환경호르몬의 화살들을 가슴에 맞고 “가슴 안쪽부터 쪼그라들면서” 생명의 세포들을 갉아 먹는 질병의 “암세포”를 키우고 있다. 지금 이곳에“던져진” 우리들이 직면하는 ‘한계’는 바로 이것이다. “멀리 존재하는 숲을 보지 못한 채” 건강한 정자(精子)들을 흙의 자궁 속에 뿌리지 못하는 “숲”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맞부딪치는 ‘한계상황’의 격랑(激浪)이다. 시인은 이 한계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독일 시인 루드비히 펠스(Ludwig Fels)는 그의 시 「설비」에서 “당신은 분무기로 전나무 향기를 뿌려대고/ 나는 이끼 덮인 보료에 바람을 불어넣지요./ 당신은 녹음기로 새소리를 불러내고/ 나는 플라스틱 꽃에 물을 줍니다.”라고 슬픈 유희를 읊었다. “숲”의 실상과는 단절된 채, 숲의 가상(假像)만으로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현대인의 허탈한 탄식이 흘러나온다. “사진작가 육명심(陸明心)이 찍은 소나무 사진을 걸어두고/ 실내조명을 조금 어둡게 조절하면/ 자신의 숲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윤택 시인의 말 속에도 자연과 인간의 괴리로 인한 슬픔을 자위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원초적 생명력을 간직한 “숲”을 만나려면 “책 속의 길을 찾아 떠나라”는 시인의 말이 시사하듯이 숲은 갈수록 인공(人工)의 길을 치닫는다. 가상과 모상(模像)의 기괴한 앙상블로 변해가는 “숲”의 현실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져버린 인간의 ‘한계상황’을 말해준다. 그러나 근원의 생명이 살아 꿈틀대는 “숲”을 잃어버린 현실적 한계의 격랑에 부딪쳐서 정신적 고난의 거친 바람(風)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시인의 ‘실존’ 아닌가? 그의 ‘실존’은 인내의 인동초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이것이 실존이다!”라는 고백은 진정한 “숲”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시적 자아의 인내를 강화시키는 내면적 결단이다. “이것이 실존이다!”라는 외침은 철학자로 변용(變容)된 시인의 길찾기 선언이요, 잃어버린 근원의 숲을 회복하려는 시인의 “아비 찾기”선언이다. 시인은 ‘단절’이라는 한계상황을 직시한다. 야스퍼스(Karl Jaspers)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시인은 ‘한계상황’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절망의 ‘난파’를 딛고 일어선다. ‘한계’의 파고(波高)를 ‘초월’하기 위하여 그는 ‘이성’의 닻을 끌어 올리고 ‘의지’의 돛을 펼쳐 올린다. 그는 고향의 흙가슴이 살아있는 “숲”의 해안으로 귀항(歸航)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책 속에서 동방방사들이” 좇아가던 숲의 “빛”이 아닌, “석가”의 해탈을 도와주었지만 지금은 “책 속에서”만 죽은 문자(文字)로 누워 있는 숲의 “빛”이 아닌, 생명의 “빛”이 충만하게 출렁이는 숲의 해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인에게 발견된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실존’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는 항해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한계’의 격랑을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속으로 시인은 자신의 온 생명을 ‘내던진다(己投)’. 가능성의 산정을 향해 시지프스처럼 생명의 돌을 굴려 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숲을 잃어버린 현실의 황무지 한 복판에 ‘내던져진(彼投)’ 시인 이윤택. 그는 원초적“빛”의 물결이 속살거리는 근원의 바닷가에서 “아비”처럼 넉넉한 가슴을 열고 그를 맞이해줄 “숲“을 향하여 그의 존재 전부를 내던진다(己投). 횔덜린(F. Hoederlin)은 「빵과 포도주」에서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동시대의 시인들에게 질문하며 “밤에도 깨어 있기”를 갈망하였다. 릴케(R. M. Rilke)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드넓은 모태에서 비좁은 세상으로 나온 것”을 슬퍼하며 모태와 같은 근원적 세계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꺽지 않았다. 시인 이윤택도 모든 인간에게 막힘 없는 자유와 충만한 생명력을 베풀어주었던 숲의 “드넓은 모태” 속으로 귀의하려는 언어의 항해를 돌이키지 않는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은 이윤택의 시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의 언어는‘궁핍한 시대’의 장벽을 넘어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과 인간의 본원적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밤에도 깨어 있는’ 실존의 집이다.          3중 생태계의 마이크로코스모스, ‘시’여! - 카를 리하의 「금언」   1935년 ‘보헤미아’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에서 출생한 시인 카를 리하(Karl Riha). 1976년 이후 지겐(Siegen) 대학교’에서 독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시인, 문예비평가, 문예지 편집인으로서 활동해왔다. 가히 '전방위적 문학인'이라고 부를만한 시인이다. 카를 리하는 지금까지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지만 시인으로서 보다는 독문학자로서 더욱 알려져 있다. 한국의 ‘각설이 타령’에 견줄만한 독일 전래의‘장타령’과 독일 ‘저항시’에 대해 연구하여 학문적 성과를 얻었다. 1984년 이후 학술잡지 『매체연구와 서평』의 공동 편집인으로서 활동해온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문학연구’의 영역을 ‘미디어 연구’ 및 ‘문화연구’의 영역으로 확대하였다. 그만큼 학문 연구의 범주가 넓고 다양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카를 리하에 대한 평가는 독일어권 문단에서도 인색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가장 현대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상대주의’적 세계관, ‘해체주의’적 세계관,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의도적으로 문자(文字)를 키우는가 하면, 문자를 뒤집어 거꾸로 배치하기도 하며, 도형,그림, 만화, 벽보, 악보, 사진, 몽타주, 콜라주, 패러디, 패스티쉬 등을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카를 리하의 시는 언제나 새로운 실험방법들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그의 시를 일종의 ‘전위시’로 볼 수도 있다. 1992년 여름 베를린으로 한국 작가들을 초대하여 ‘한국문학의 주간’ 행사를 주도하는 등‘한국과 독일의 문화 교류’에도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1991년 김광규 시인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된 바 있는 『지금 이 순간』(1984)과 첫 시집 『모든 물고기가 다 새(鳥)는 아니다』(1981)가 있다     자음과 모음이 없으면 음절이 없고 어절이 없고 어절이 없으면 문장도 없다 그러나 길게 이야기하면 입이 마른다 - 카를 리하의「금언」전문     *「금언」: 1984년에 출간된 카를 리하의 시집 『지금 이 순간』에 수록되었다. 예술성과 미학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직설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카를 리하의 시가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해체주의’에 정신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끄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 ‘생태주의’, ‘생태언어학’의 관점을 ‘통섭’시켜서 위의 시를 분석하는 것도 시인의 세계관을 위배하지 않는 해석이 될 것이다. 이 시에서 “자음”과 “모음”은 각각 독립적 개체이다. 자음은 모음을 지배하지 않고, 모음은 자음에게 예속되지 않는다. 시를 집이라고 한다면 이 ‘언어의 집’ 안에서 자음과 모음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상대방과 동등한 수평관계를 맺고 있다. 모음과 자음은 ‘상호의존’의 작용을 통하여 “음절”이라는 ‘몸’을 세운다. 모음과 자음은 “어절”이라는 공생의 방(房)을 만들어 동거한다. 자음과 모음은“문장”이라는 거실을 완성하여 마침내 ‘시’라는 ‘집’ 안에서 한 가족이 된다.자음과 모음은 각각 독립적 개체로서 존재하는 가운데 타자(他者)와의 언어적 상호의존을 통하여 ‘시’라는 집을 구성하는 가족이 되고, 전체의 일부분이 된다. 이 때,모음은 동등한 자음의 ‘타자’이고, 자음은 동등한 모음의 타자이다. 양자는 언어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시’라는 집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자기의 역할과 타자의 역할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까닭에 소통의 상호관계를 긴밀히 이어나갈 수 있다. 마침내‘시’라는 언어적 관계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를 리하의 시는 음절들의 생태계, 낱말들의 생태계, 어절들의 생태계, 문장들의 생태계로서 ‘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음절”들의 상호의존을 통하여 낱말들의 생태계가 형성되며, 낱말들의 상호의존을 통하여 “어절”들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어절들의 상호의존을 통해서는 “문장”들의 생태계가 움직이고, 문장들의 상호의존을 통해서는 ‘시’라는 ‘언어의 생태계’가 열매처럼 열린다. 카를 리하의 시 「금언」은 독일의 언어학자 알빈 필(Alwin Fill)이 제시한 ‘생태언어학’의 관점으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음절 간의, 낱말 간의, 어절 간의, 문장 간의 공생(共生)이 ‘시’라는 ‘언어의 생태계’를 움직이는 순환질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을 거시적으로 확대하여 바라본다면 각 ‘지역 언어’들 간의 공생이 각‘지역 문화’들 간의 소통과 상호의존을 원활케 하여 세계의 ‘언어 생태계’와‘문화 생태계’의 평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낳지 않는가? 카를 리하의 시는‘사물 생태계’, ‘언어 생태계’, ‘문화 생태계’를 압축시킨 ‘3중(重) 생태계의 마이크로코스모스’이다.     ‘돌’은 ‘물’의 손길이 빚은 생명 - 정대구의 「물의 조각품」   1936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한 시인 정대구. 그는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의 몸 속에 살아 꿈틀대는 자연성을 예찬한다.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육체성을 만져볼 수 있는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땅 속에 잠들어 있던 만물을 일으켜 세우는 ‘봄바람’은 시인의 몸 안에서 불어가는 ‘바람’이요, 시인의 몸을 낳아준 모태의 숨결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받고 태어나서 자연 속에 안기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바로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자연의 아들이자 근친(近親)인 까닭에 자연의 몸짓과 움직임을 노래로 대변할 자격을 갖는다. 시인은 시에게 자연의 옷을 입혀주고 자연 속에 시의 멜로디를 불어넣는 현대의 오르페우스이다. 시인의 마술피리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을 따라 나무들이 독자의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 온다. 시인의 칠현금이 빚어내는 리듬을 따라 꽃잎들이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이와 같이 정대구 시인은 자연과 ‘나’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시각적 ‘울림 소리’와 청각적 ‘향기로움’과 촉각적(觸覺的) ‘물결 무늬’로 표현하는 ‘공감각적 언어의 변주곡’을 연주해왔다. 그의 대표적 시집은『겨울 기도』, 『무지리 사람들』, 『양산 시편』, 『너가 바로 나로구나』등이 있다.     돌인지 물인지/ 돌은 물의 밥인지/ 물이 돌의 밥인지/ 꿈틀꿈틀 돌의/ 부드러운 물결/ 돌을 말아 올린/ 물의 눈썹/ 무슨 그릇인지/ 우묵우묵 박혀있는/ 물의 눈동자/단단한 돌 표면에/ 새겨진 물소리/ 찰삭찰삭 찰랑찰랑/ 경남 언양읍 등억리 온천 입구/ 작괘천 강바닥에 가서 만져 보면/ 들린다 보인다/ // 마른 돌 속에 물소리/ 단단한 돌이 부드러운 물의 밥/ 돌밥 먹고 물은 돌이 되어/ 물밥 먹고 돌은 물살 되어/기어가는 물소리/ 물의 뜻대로 돌은 깎이어/ 파르르 어깨를 걸고/ 이랑이랑 일어서서/ 굴러가는 단단한 돌의 파랑/ 어디로 날아가나/ 돌의 나비 나풀나풀 물날개/ 파도치며/ 흘러가는 돌의 물결무늬/ 잔잔한 바람물살/ 어지러워/   - 정대구의 시 「물의 조각품․1」중에서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든가/ 너와 내가 살을 맞대고 살아온 지/ 지금이 몇 십 년째인가/ 강산이 서너 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 물에 물탄 듯 표 나지 않는 내 성격 탓이겠지만/ 너보다 약한 나보다 강한 너의 말결에/ 살결에 자주 베이고 터지고 멍들어온 깊은 상처/ 머리로 배로 손으로 발로 온몸으로/ 피를 흘리며 너를 길들인/ 네 속의 나의 흔적/ 못 믿겠거든 작괘천에 가서/ 단단한 강바닥에 하늘 보고 누워 있는/ 물의 뼈/ 돌 속에 손을 넣어 보라/ 간질간질 간질이는/ 돌 속에 물결치는/ 오, 나의 숨소리/ 부드러운 나의 손길/ 순수한 물의 조각품/ 나를 읽을 수 있으리   - 정대구의 시 「물의 조각품․2」중에서     *「물의 조각품」: 2005년 ‘시선’에서 간행한 시집 『양산시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물”은 “돌의 밥”이 되어 “돌” 속에서 흐르고 돌을 썩지 않게 한다. 돌은“물의 밥”이 되어 “물살”을 단단하게 하더니 물의 살결 속에 스며들어 “나비”처럼 “나풀나풀 물결무늬”의 “날개”를 친다. “돌”을 생명체로 바라보는 불교적 우주관을 엿볼 수 있거니와 모든 생물이 생명의 핏줄로 이어져 있다는 생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인 자신이 “물결”이 되어 돌 속으로 스며들어 돌의 심장이 되었다. 그는 나비처럼 물결의 날개를 타고 물의 마음 속에 안기어 물의 형상을 닮은 순수의 결정체, 즉 “돌”이 되고 있다. 시인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물의 조각품”이 된 것이다. 돌은 “물의 뼈”이고 돌 속에서 시인의 “숨소리”가 물결친다. 돌은 물의 손길이 빚어놓은 “조각품”이지만, 바로 그 돌 속에서 생명의 숨결이 물살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돌은 대자연이 빚어낸 살아있는 조각품이다. 돌과 사람은 자연이 낳은 근친이자 형제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쓸모없는 물건으로 취급하는“돌”이 시인의 분신이 되고 있다. 시인의 생태의식과 불교적 연기론이 물소리의 화음을 합주(合奏)한다.     아스피린의 아이러니 - 한스 아른프리트 아스텔의 「환경오염」   1933년 뮌헨에서 출생한 시인 한스 아른프리트 아스텔(Hans Arnfrid Astel). 독일 남서부의 자를란트(Saarland)에서 거주하며 문학활동을 지속해왔다. 필명은 한스 라무스(Hanns Ramus)이다. 1959년 문예지 『서정시 노트』를 창간하여 1971년까지 주관하였다. 아스텔은 이 문예지에 ‘한스 라무스’라는 필명으로 시를 연이어 발표하였다. ‘자연’의 속성을 관찰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작품들이 연속되었다.시대, 사회,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자연시(自然詩)의 리얼리즘으로 독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8년 서독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고 정치적 성향을 띈 첫 시집 『위기』를 출간하였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비판적 성향이 강한 시집이었다. 아스텔의 비판적 정치의식은 ‘자연’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자연’을 사회의 네크워크 안에 포함시키고 정치와 ‘자연’ 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폭넓은 자연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스텔의 시에 대하여 ‘생태시’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대표적 시집으로는 『위기』(1968), 『정화 장치』(1970), 인터넷 시집 『바닷가 모래』(1994년 이후), 『성좌(星座)』(1999) 등이 있다.     레버쿠젠 市의 바이에르 회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약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지요. 그 회사는 아스피린만이 아니라 두통까지도 생산해내니까요.   변기에서 헹구어진 똥은 강물로 흘러들어가지만   똥은 탈진해버린 듯 이미 하얗게 탈색되었습니다. 이런! 오줌에도 피가 고이는군요.   - 시 「환경오염」전문     *「환경오염 Umweltverschmutzung」: 1974년에 발표된 시. 1981년 뮌헨의 ‘체 하 베크(C. H. Beck) 출판사에서 간행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1950-1980』 제3장 ‘아름다운 신세계’ 편에 재수록 되었다. ‘아스피린’의 내부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독성(毒性)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몸까지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1960년 독일의 대표적 작가 귄터 그라스가 다음과 같이 폭로하지 않았는가?   아스피린 기운은 갓 낳은 달걀들 속에 이미 스며들었건만 어찌하여 수탉들은 아직도 두통을 앓고 있는가 그럼에도 보란 듯이 걸어다니긴 하는데 새 해에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들은 어찌 이토록 신경질적인가!   - 귄터 그라스의 「타락」 전문   아스텔의 시 「환경오염」은 그라스의 시와 함께 현대인들이 “아스피린”의 위험 증후군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적(詩的) 각성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에르(Bayer)”는 의약품을 제조하는 독일 최대의 합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병원과 약국에 공급되는 양약(洋藥)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바이에르는 “아스피린 생산”에 성공하여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아스피린은 가장 가벼운 통증까지도 가라앉혀 주는 약효 때문에 전세계인들에게 애용되고 있는 생필품이다. 그러나 “두통”을 잠재워야 할 아스피린이 오히려 “두통을 생산하는” 약으로 둔갑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독일 시인 한스 아른프리트 아스텔은 아스피린의 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사람의 “똥”이 “하얗게 탈색”되고 사람의 “오줌에 피가 고일” 정도로 아스피린의 과용(過用)은 인체에 치명적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사람의 두통을 생산하는 것도 모자라서 “수탉”의 두통과 “병아리들”의 두통까지도 대량으로 생산하는 “환경오염”의 도미노 현상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가? 사람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 환경오염을 완화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사람의 의학 기술이 발전을 거듭한다면 모든 불치병을 치유할 날이 도래하리라는 낙관적 오만이 오히려 사람의 몸을 의약품에 일방적으로 의존케 하여 몸을 오염시키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첨단을 향해 고속 행진을 계속한다면 ‘지구의 온난화’까지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인간중심적 오만이 ‘자연’을 테크놀로지에게 전적으로 의존케 하여 지구의 난개발을 가중시키지 않는가? 독일 시인 리젤로테 촌스는 그의 시 「고발」에서 환경오염의 제1원인으로 사람의 “탐욕”을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탐욕’이라는 암덩어리를 키운 바이러스는 ‘오만’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 내력의 증인 헛개나무 - 오태환의 「헛개나무야」(백담시편 3)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시인 오태환. 한국어의 풀뭇간에서 철학, 사상, 지식을 한(恨)의 가락과 풍류의 리듬으로 벼려내는 ‘언어의 대장장이’라고 그를 부를만하다. 오태환 시인의 시집으로는 『북한산』, 『手話』, 『별빛들을 쓰다』 등이 있다.     헛개나무야 헛개나무야 헛개나무야 가을계곡물에 발목까지 빠져 우는 헛개나무야 애오라지 물소리 되어 우는 헛개나무야 가생이가 놋그릇처럼 쨍하게 반짝이며 우는 곰배팔이 헛개나무야 헛개나무야 조랑조랑 이슬 내린 띳집 처마지붕 같고 달구지 같고 달구지 바퀴가 금세 밟고 지나간 진흙구렁 같은 헛개나무야 잘 누른 머릿고기 삐뚜른 수육 같은 헛개나무야 앞말뒷말 뭇 가을개들이 오줌이나 지리고 가는, 고드름장아찌 마늘쫑 냄새 같은 헛개나무야 하늘이 식겁하게 파래서 화엄경의 가을설악도 막새기와며 두리기둥 서까래서껀 죄다 내려놓았다 설거지 그릇 부시듯 가을하늘빛으로 맨얼굴을 부시며 혼자서 우는 헛개나무야 헛개나무야   - 오태환의 「헛개나무야」전문     *「헛개나무야」: 2012년 『시산맥』겨울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시인이 산에서 만난“헛개나무”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존재이다. “가을계곡물에 발목이 빠져” 엉엉 울고 있는 네 살바기 아이 같은 헛개나무. 그의 울음은 어린 시절 시인의 얼굴처럼 맑다. 맑은 까닭에 울음소리는 “물소리” 같다. “가생이가 놋그릇처럼 쨍하게 반짝이며 우는 곰배팔이”의 모습에서는 어느 가난한 청년의 얼굴이 드리워진다. 모순이 가득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고뇌의 신열을 앓았던, 1980년대 시인의 청춘이 … 유년부터 청년기에 이르도록 시인이 즐겨 먹은 양식은 눈물인가보다. 순수한 수정빛의 눈물은 시인의 시력(視力)을 높여주는 천연 콘텍트 렌즈가 되었다. 성인이 된 시인의 눈에는 산(山)에서 사는 모든 생명들이 헛개나무의 혈육이자 근친으로 다가온다. “이슬내린 띳집 처마지붕”을 닮은 헛개나무의 나이테는 그 “처마지붕” 아래 살고 있는 산골 식구들의 내력을 대변한다.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날마다 “달구지”를 끌고 산 아랫마을로 고된 인생의 짐을 실어 나르던 이웃 아저씨의 이마에 깊게 패인 “진흙구렁”을 닮은 헛개나무. 그의 나이테는 산골 토박이 가장(家長)들의 주름살을 대변한다. 어제는 가장들을 도와서 “달구지”의 짐꾼 역할을 했던 소(牛). 오늘은 멍에를 쓰고 산비탈의 묵정밭을 가는 소. 내일은 “잘 누른 머릿고기 삐뚜른 수육”이 되어 아랫마을 사람들의 식탁에 자신의 몸을 보시(布施)하게 될 소를 닮은 “헛개나무”. 그의 울음은 자연의 보살(菩薩)인 소의 일생을 대변한다. 새들의 배설물이 탑(塔)을 이룰 때까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석가모니처럼 “앞말 뒷말 뭇 가을개들이 오줌이나 지리고 가도” 가부좌를 풀지 않는 자연의 선승(禪僧) 헛개나무. 그의 몸에서 찾을 수 있는 몸짓은 “맨얼굴”의 울음밖에는 없다. “화엄경의 가을설악”과 “막새기와며 두리기둥 서까래”를 파랗게 씻어주는 “가을하늘빛”을 닮은 헛개나무의 눈물. 그의 눈물은 산에서 사는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눈물이 되었다. 오태환의 시 「헛개나무」는 “나무”라는 생명체의 존재양식을 심층적으로 투시하는 인식능력의 날선 검(劍)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러한 미시적 접근방식에 갇혀 있지는 않다. 헛개나무를 녹색의 미디어로 삼아 자연과 사람 간의 생명적 상호작용이 끊이지 않는 중생(衆生)의 생명공동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의 시를 주저 없이 생태시로 읽는 이유이다.     가정은 가장 중요한 환경안전망(環境安全網) - 랄프 테니오르의 「엄마와 아이」   1945년 독일 쉴레지엔 지방의 바트 쿠도바(Bad Kudowa)에서 출생한 소설가이자 시인 랄프 테니오르(Ralf Thenior). 그는 함부르크 시(市)에서 성장하였다. 1970년대부터 이른바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에서 시창작을 시작했던 랄프 테니오르는 지금까지도 ‘일상시’의 영역을 떠난 적이 없다. 그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 일상적 언어들은 삶의 진실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인간의 언어사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언어비평’의 힘을 발휘하였다. 그가 발표했던 초기의 소설은 ‘환상적’이야기와 ‘실험적’ 기법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 그의 ‘일상시’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랄프 테니오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학작품들을 풍성하게 발표함으로써 ‘일상시’의 내용을 산문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생태주의’적 테마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사건을 모티브로 삼는다. ‘작고 사소한’ 일상적 사건 속에 도사리고 있는 병리현상을 이성(理性)의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바라보는 가운데 ‘크고 중요한’ 생태주의적 옐로우 카드를 뽑아드는 시인의 언어행위를 주목해보자. 랄프 테니오르의 대표적 작품집으로는 『서글픈 만세 소리』(1977), 『별들의 웃음』(1992), 『사소한 것들』(1995), 『부서진 꿈』(2003)이 있다.     아이를 태(胎) 중에 가진 저 엄마가 불에 구운 소시지를 매운 양념에 버무려 먹는 풍경을 보세요 저런! 기름 범벅의 종이 봉지에 싸서 마요네즈와 케찹까지 곁들였군요 포만감에 겨운 저 엄마는 담배를 흠뻑 빨아들입니다 연기를 깊숙히 태(胎) 속 깊숙히 들여 마십니다 텔레비젼에서 섬광을 터뜨리며 범람하는 푸른 전자파(電磁波) 군단이 엄마의 눈 속으로 침략해 들어오더니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몸을 점령합니다   - 랄프 테니오르의 「엄마와 아이」전문     *「엄마와 아이 Mutter und Kind」: 1971년에 발표된 시. 1981년 뮌헨의 베크 출판사에서 간행한 생태 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제3장 ‘아름다운 신세계’ 편에 수록되었다. 랄프 테니오르가 추구해왔던 일상시(日常詩)의 경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환경 호르몬’의 생산지는 가장 가까운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작품이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라는 최승호 시인의 「공장지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기형아’를 출산하는 현상은 공장지대와 산업시설의 주변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야 할 우리의 가정이 오히려 가족의 생명을 손상시키는 환경 호르몬을 길러내고 있다. 도시인들의 ‘가정’은 환경 호르몬을 생산하는 기형적 공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의 새 살(肉)에서 새 순(筍)처럼 돋아나는 새 세포를 녹슬게 만드는 방부제와 “기름”으로 “범벅”된 “소시지”여! “엄마”와 “아이”의 가슴을 혼탁하게 만들고 아이와 엄마의 혈관에 불순물의 제방을 쌓는 “담배연기”여! “엄마의 눈 속으로 침략해 들어와서” 면역성 없는 “아이의 몸”을 납덩어리처럼 “점령”하는“텔레비젼”과 컴퓨터의 “전자파 군단”이여!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출생 이후에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는 엄마도 장담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막을 수 있었던 ‘환경 호르몬’ 병사들의 공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태(胎) 속의 아이를 연결하는 탯줄은 최승호 시인이 고발했던 것처럼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으로 변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갖는다. 랄프 테니오르의 시 「엄마와 아이」에서도 생명선(生命線)의 중요성은 선명히 부각된다.테니오르는 엄마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을 이어주는 탯줄의 중요성을 일깨움으로써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현재의 생명선이 건강한 녹색의 탯줄인지를 돌아보게 해준다. ‘환경안전망’은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다.     비좁은 세상을 떠나 드넓은 모태로 - 최창균의 「그 집」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 최창균. 그는 파주시 교하읍에서 소(牛)목장을 경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시인이다. 200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한 그의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의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읽는다. “밭에서 돌을 골라내어도 뒤돌아보면 돌의 알을 낳는 밭을 봅니다. 풀을 뽑아내어도 내 꽁무니 바짝 따라붙는 풀들 봅니다. 삶이 고단하지요. 소의 하루처럼 사는 일이 고단하지요. 하지만 나는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시업(詩業)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먼지 나는 이 땅에 내 마음의 녹색이나 초록을 심는다는 생각으로요.”시인의 말에서 그의 인생이 흙, 밭, 풀, 소, 나무, 돌과 생명의 유기적 연대를 이루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 ‘유기적 연대’가 최창균 시인의 시업을 낳은 것이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가 있다.     숲으로 곧장 가면 그 집에 닿는다 닿을 때마다 집은 한 발짝씩 숲 속으로 옮겨갔다 그 집은 아주 오랜 동안 숲의 나이를 먹고 늙어갔다 참새들이 깃들어 별을 듣는 집, 대문은 서쪽으로 길을 내었다 오래 전 그 길로 한 사람이 빠져나갔다 숲 속으로 집은 구부정하게 더욱 깊어졌다 솔바람이 향긋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집, 먼지로 아늑하게 뭉쳐지는 집, 거기 또 한 사람 대문에 기대서서 숲을 본다 홀로 늙어가는 어머니의 집, 숲 속으로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 최창균, 「그 집」 전문     *「그 집」: 2000년 『현대시』10월호에 발표된 후 2004년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에 수록되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세계는 기술문명의 철각(鐵脚)에 짓밟히지 않은 원초적 자연성이 살아있는 세계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한 몸을 이루었던 순수서정의 세계가 시인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그의 고향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한 몸을 이루었던 서정(抒情)의 세계이다. 산자락에 누워 산들바람을 마시며 나무들과 형제처럼 어울려 살았던 어린 시절. 아이의 핏줄 속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아이의 숨결 속에 포근한 바람이 불었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숲 속을 달려갈 때 아이의 발끝에서 피어오르던 초록의 풀잎향기는 생명의 희열이요, 아름다움의 황홀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코러스.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사랑하는 시인들이 어린 시절에 체험한 낙원의 비밀이며, 다시금 되찾아야 할 생명의 열매인 것이다. 시인은 “숲”을 향해 귀향의 길을 떠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숲”은 보이지 않는 神처럼 시인에게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모태였다. 그러나 이 “숲”은 시인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가 되고 말았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환상이 된 것이다. 시인은 낙원이었던 “숲 속의 집”으로부터 멀리 유배되었음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다. 생명의 집을 떠나 죽음의 도시공간 속에 갇혀버렸다는 폐쇄감이 시인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폐쇄와 격리로 인하여 갖게 된 위기의식은 시인의 그리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설의 힘을 발휘한다. 감옥에서 어둠이 짙어갈수록 창문을 열고 별빛 한 줄기를 더듬게 되듯이, 도시공간 속에서 쇠붙이로 변해가던 시인의 정신은 “솔바람 향긋한” 유년의 자연을 그리워함으로써 해방의 “문”을 열고자 한다. 그리움의 빛이 시인에게 “숲 속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현대 시인들의 작품에서 그리움이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것은 순수무구한 자연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낙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단절시키는 기계문명의 톱니바퀴가 완강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메말라버린 도시의 그늘에서 시인들의 가슴은 콘크리트 바닥처럼 굳어간다. 그러기에 쇠창살 너머 푸른 하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 꿈틀대는 생명의 햇살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은 점점 쇠붙이로 변해가는 영혼의 퇴화 현상을 거부하는 시인들의 본능적 몸부림이 아닐까? 시인 이윤택의 말처럼 “이것이 실존” 아닐까?     ‘공기’는 숨결의 근원 - 한넬리스 타샤우의 「마실 수 있는 공기」   193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출생한 시인 한넬리스 타샤우(Hannelis Taschau). 여류 시인 한넬리스 타샤우의 창작세계는 문학의 모든 장르를 포괄하고 있다. 대부분의 독일 작가들이 하나의 장르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한넬리스 타샤우의 경우에는 시, 소설, 에세이, 희곡, 방송극본 등 다루지 않은 장르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타샤우의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테마 또한 다양하다. 자아성찰, 여성의 정체성과 발전과정, 사회적 상황들에 대한 비판적 대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의 자의식으로부터 사회의식으로 나아가는 테마의 변화과정이 뚜렷하다. 특히 타샤우의 시에서 나타나는 생태의식은 사회의 병리현상들에 대한 시인의 비판의식과 함수관계를 이루고 있다. 한넬리스 타샤우의 대표적 작품집으로는 『지붕 위의 비둘기』(1967) 『시집』(1969), 『마실 수 있는 공기』(1978), 『세 번째 미혹(迷惑)』(1992) 등이 있다.     스웨덴의 델라리 지역엔 셀룰로오스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유한회사와 합자회사가 새들을 몰아내버렸습니다 나무들이 죽어갑니다 호수는 목숨을 잃고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정원의 알록달록한 의자 위엔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모두들 잘 꾸며놓은 개인주택 안에서 창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고용한 장본인은 유한회사와 합자회사였습니다   델라리에 사는 아들 딸들은 자녀보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먹여주고 입혀주며 추위와 비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여 안전히 학교에 보내는 것만이 부모의 의무가 아니라 마시는 공기(空氣)를 염려하고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가 아니냐는 자녀들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유한회사와 합자회사에서 일하는 부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같은 시비에 대해 곧 판결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 한넬리스 타샤우의 「마실 수 있는 공기」전문     *「마실 수 있는 공기 Luft zum Atmen」: 1978년 한넬리스 타샤우의 생태시집 『마실 수 있는 공기』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1981년 뮌헨의 ‘체. 하. 베크 C. H. Beck’ 출판사에서 간행한 생태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1950-1980』 제2장 ‘세 가지 원소 혹은 물, 공기 그리고 흙’ 편에 재수록되었다. 논픽션의 언술방식이 ‘생태위기’의 현실상황을 직설적으로 폭로한다. 이 시의 화자는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취재기자처럼 스웨덴 지역에서 발생한 대기오염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언술방식은 ‘르포’이다. 시를 읽는 독자들은 환경오염의 현장에서 ‘보도’되는 생생한 중계 멘트를 듣는 듯하다. 비유, 상징, 리듬, 운율 등 예술적 기교를 사용하지 않은 ‘논픽션’의 언어가 오히려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증폭시킨다. ‘현실인식’의 효과를 드높인다. 독자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대략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셀룰로오스”의 독성(毒性)이 깨끗한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사실. 둘째, 그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병들어간다는 사실. 셋째, 공기와 함께 모든 생물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소(元素)인 “물”이 오염된다는 사실. 넷째, 그토록 잿빛으로 변해가는 공기와“까맣게 타버린” 물을 마시며 “새들”을 비롯한 동물들이 마을을 떠나간다는 사실. 다섯 째, 맑은 공기를 공급하는 초록빛 “나무들”이 “죽어감”으로써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에게 다섯 가지 사실을 인식시키는 매체는 ‘르포’이다. 르포는 논픽션의 대표적 유형이므로 비문학적(非文學的) 언술방식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태시의 언술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명쾌하다. 르포는 독자의 생태의식과 환경의식을 각성시키는 ‘교육 매체’로써 차용(借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을 사람의 도구로 취급하는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를 생명중심주의로 전환하려는 교육적 의도가 르포 속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적 성격을 갖는 까닭에 생태시는 정치시(政治詩)의 한 갈래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바위’의 캔버스에 그려진 생명들의 동거(同居) - 이솔의 「곰팡이가 암각화를 그린다」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한 여류 시인 이솔. 그는 2001년『시문학』으로 등단했다. 그의 시에서는 전통적 서정성, 포스트모더니즘적 상대성, 만물의 상생(相生)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시 「신갈氏는 느린 동작으로 외투를 벗어낸다」에서 이솔 시인은 자연의 순환질서에 순응하는 유기체의 연약한 이미지와 ‘생명’의 강인함을 생생하게 재생하는 가운데 ‘신갈나무’라는 종(種)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생태적 몸짓을 정밀하게 묘사하였다. 시 「비둘기는 계속 출(出)자를 찍어나간다」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명의 발전과정을 뚜렷이 인식하는 가운데 자연과 문명 간의 공생을 전망하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이솔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신갈氏의 외투』와 『수묵화 속 새는 날아오르네』가 있다.     균근(菌根) 곰팡이는 암벽 위 소나무를 특히 좋아하여 그 뿌리를 붙안고 산다 균근 곰팡이는 안개처럼 뿌리의 앞을 짓궂게 막아서고 실뿌리는 이리저리 길을 찾아 암석을 파고들고 가는(細) 실뿌리의 절규가 오래도록 암석을 흔든다 시나브로 암석에 금이 가고 조금씩 부서지고 떨어져나간 틈새로 빗물이 스며든다 곰팡이는 틈새의 물기를 먹고 실뿌리의 왕성한 힘을 양분으로 큰다 실뿌리는 암석을 부수며 곰팡이와 하나 된다 은밀한 이야기 나누며 가느랗고 끊기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   암석이 갈라지고 드러난 솔뿌리의 자태 꿈같이 뽀얀 실뿌리덩이로 피어난 한줌 흙 없이도 버텨낸 거센 바람에도 암석을 붙안고 서게 한, 나는 내밀한 암각화를 그리는 곰팡이다   - 이솔의 「곰팡이가 암각화를 그린다」전문     *「곰팡이가 암각화를 그린다」: 2003년 ‘시문학사’에서 간행한 이솔 시인의 시집『신갈氏의 외투』에 수록된 작품이다. “바위”의 어두운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곰팡이”와 “소나무” 뿌리 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시적(詩的) 현미경으로 확대하여‘생태주의적 영상미학’을 창조하였다. 생태의식의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균근 곰팡이”는 소나무의 “뿌리”로부터 “왕성한 힘을 양분”으로 흡수하며 자라난다. “가는(細) 실뿌리”들이 “파고들어” 그어놓은 “틈새”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균근 곰팡이는 그 빗물을 마시며 자라난다. 소나무의 가는 실뿌리가 칼날처럼 예리하게 뚫어놓은, 가는 생명의 길이 균근 곰팡이를 키우는 탯줄이 될 줄이야!또한, 그 빗물은 뿌리의 물탱크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가 소나무의 푸른 혈관을 따라 흐르는 푸른 혈액이 되어 가지 끝에 이르기까지 소나무의 온 몸을 팽팽하게 지탱시킨다. 하늘은 비를 내리고, 비는 소나무를 키우며, 혈액 같은 비를 공급 받은 뿌리는 균근 곰팡이를 키우는 모태가 된다. 물론 그 뿌리는 균근 곰팡이에게 빗물을 양수(羊水)처럼 공급할 수 있는 “가는” 탯줄의 길을 열어 놓는다. 소나무와 균근 곰팡이 사이의 상호의존 시스템을 튼실하게 지탱시키는 자연의 미디어는 “암석”이다. 그는 단단한 흙의 몸집이다. 이 흙의 몸이 소나무와 균근 곰팡이를“하나”의 가족으로 동거하게 만드는 ‘생명의 집’이 될 줄이야! 암석은 생명의 집 역할을 맡은 생태계의 축소 모델로서 견고히 서 있다. 어느새 암석은 자연의 캔버스로, 곰팡이는 화가로 변용(變容)된다. “곰팡이”라는 이름의 화가는 “소나무 뿌리”라는 녹색의 붓으로 “내밀한 암각화” 속에 무엇을 그려놓았을까? 크로포트킨이 말했던 ‘상호부조’의 법칙, 생물들 간의 유기적 상호작용, 자연의 유구한 순환질서가 아니겠는가? 시 「곰팡이가 암각화를 그린다」는 내면의 “내밀한 암석” 위에 언어의 붓으로 생태의식을 형상화한 시적(詩的) “암각화”다.     세포 조직의 연쇄적 파괴 -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그녀는」   1930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Bregenz)에서 출생한 시인 하인츠 쉬네바이스(Heinz Schneeweiß). 그는 1964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네덜란드 시민으로서 살고 있다.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독일어권 문학과 네덜란드 문학의 연구를 병행하였고 평생 동안 오스트리아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시를 써왔다. 1974년에 출간된 그의 시집 『오직 그렇게만』은 자연과 생태계가 병들어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생태시집이다. ‘뮌헨 대학교’의 교수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타쉬는 생태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에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시 3편을 수록하였다. 이 3편의 작품은 쉬네바이스의 생태시집 『오직 그렇게만』에 담겨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생태파괴의 현실을 생생히 재생하여 ‘생태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각성시키려고 하였다.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지구 반대편 사람의 비망록』, 『오직 그렇게만』, 『고요의 건축학 속으로』 등이 있다.     그 여자는 아직 씻지 않은 배 한 개를 먹었다 그 여자의 아랫배가 팽팽히 부풀었다 그 여자의 두 팔이 팽팽히 부풀었다 그 여자의 두 다리도 팽팽히 부풀었다 그리고 세포들이 떨어져 나갔다 뿔뿔이 흩어지는 솜털 조각 같았다   -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시 「그 여자는」전문     *「그 여자는 sie」: 제목이 없는 작품이다. 편의상 첫 행의 ‘그 여자는’을 제목으로 설정하였다. 이 시는 1974년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시집 『오직 그렇게만』에 처음 수록된 후, 생태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제3장 ‘아름다운 신세계’ 편에 재수록 되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공상과학 소설’이나 ‘재난 영화’에서처럼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세포들”이 “솜털 조각”처럼 부스러져서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현실을 재생하는 표현이다. 시인 하인츠 쉬네바이스는 농약에 오염된 흙을 통하여 “배”의 몸 속에 스며드는 화학물질이 고스란히 사람의 몸 속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변용(變容)하였다. 오염된 흙은 과일의 세포조직뿐만 아니라 사람의 세포조직까지도 파괴한다는 것을 경고하려는 시인의 교육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시인이 경고하는 치명적 위험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해왔던 자연을 병들게 한다면 사람의 삶조차도 안전할 수 없는 것이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처럼 변해가고 있는 ‘자연’에게서 날아오는 보복의 부메랑은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벽이다.    
1707    詩와 비평은 쌍두마차이다... 댓글:  조회:3906  추천:0  2016-10-28
시와 비평의 길은 다르지 않다                                                   최    동    호 1. 시와 비평의 분리와 통합   우선 개인적인 고백을 먼저하고 싶다. 첫 시집 『황사바람』(1976)을 간행한 다음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1979)한 이후 나는 30여 년 간 시와 비평을 아울러 왔으며, 1989년에는 「서정시의 정신주의적 극복」(《현대시학》, 1989.8)을 통해 시단의 지평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후 비평 활동과 더불어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2003) 등 네 권의 시집을 간행하기까지 창작에도 많은 적공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나의 창작은 비평가의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와 비평이 원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지배적 관행이다. 어쩌면 이렇게 판단하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시에는 비평의 논리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거나 비평과 창작 사이에 코드 전환이 쉽지 않다는 의식이 잠복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판단이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와 비평을 겸행해온 결과 내가 깨닫게 된 것은 훌륭한 시를 탄생시키는 고도의 시적 정열은 일반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지적 명징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시는 논리가 아니다.”라는 명제에는 시가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기에 시는 논리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은 아니다.    나는 뛰어난 비평이 좋은 시를 쓰게 한다고 믿는다. 좋은 시는 동시에 뛰어난 비평을 가능케 한다. 이 양자는 서로가 보완적이며 상승적 작용을 하는 상호 순환 코드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비평의 황무지에서 결코 훌륭한 시가 산출될 수 없다. 좋은 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어떻게 좋은 시가 산출될 수 있겠는가.  시의 형식 속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동을 유발하는 고도의 논리적이며 유기적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 고전적 법칙이며, 그 구조가 취약한 시들은 일시적 유행을 바람처럼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대체로 내구성을 갖지 못하고 포말처럼 떠돌다 사라져 버린다. 그리스의 고전적 비극 작품들이나 중국의 당시 속에 들어 있는 고도의 논리성은 그 형식적 구조와 더불어 예술적 완결성을 제대로 성취했다는 뜻이다. 시와 비평의 자유로운 코드 전환이 지적 구조의 완결성을 토대로 하여 창의적 독자성을 얻을 때 시의 생산적 가치가 증폭된다는 것은 시와 비평을 병행하면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적 외형이 분방할지라도 그 내면에 완결된 논리적 체계를 갖지 못하는 시들은 자의든 타의든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2. 비평적 탐색을 통한 시의 길 개척   한국문학사를 되돌아볼 때 시의 길은 비평적 모색을 통해 개척되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60년대가 개막되는 시점에서 서정주는 시집 『신라초』(1960)를 간행하면서 쓴 서문에서 『삼국유사』를 읽고 그 신라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시세계를 확장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불교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취향을 강하게 내뿜는 그의 시세계는 당시 찬반이 엇갈리는 반응을 받았지만 서정주의 시적 역정을 전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적 상상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미개척의 길을 새롭게 열어 주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연이겠지만 이 시집이 20세기 중반을 가로지르는 시기에 간행되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6·25 전쟁 이후 과도기적 혼란 속에서 시의 길이 막힌 서정주가 찾아낸 것은 『삼국유사』를 통한 신라정신의 발견이었고 이를 자신의 시적 도약의 계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라를 건설한 박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의 독백으로 이어진 시 「꽃밭의 독백獨白」에서 우리는 ‘벼락과 해일海溢’의 길을 찾아낸 서정주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닫힌 문門에 기대 섰을 뿐’인 화자가 ‘문 열어라 꽃아’라고 되풀이해 외치는 것은 일면 영통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오히려 서정주에게는 막힌 출구를 뚫고 나가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춘수 또한 다른 일각에서 『삼국유사』에 수록된 처용설화를 자신의 시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라는 점이다. 김춘수 또한 그의 시적 전진로를 찾지 못할 때 삼국유사를 그의 시에 도입하게 되는데 서정주와 달리 현대적 연작 장시로 씌어진 『처용단장』은 1969년에 시작하여 1991년에 완결되는 대장정을 거치게 된다.    서정주가 샤머니즘적 영통주의로 나아가 김종길로부터 비이성적이라고 비판받고 있을 때 김춘수는 그 나름의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답보 상태에 있던 무의미시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시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것이다. 김춘수의 시적 모색은 서정주에 비해 매우 이성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데 『처용단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정주가 전통적인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면 김춘수는 이와 전혀 다른 서구적 감각의 모더니즘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여기서 우리는 1960년대 한국현대시의 양극이 서정주와 김춘수의 시적 전개와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서정주의 『삼국유사』에 대한 시적 탐구가 김춘수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모더니즘 시인에서 참여시인으로 변신한 김수영의 시적 탐구 또한 동시대적 질서 속에서 다시 한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1960년대의 시적 지형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제대로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반시론」을 쓰고 「시여 침을 뱉어라」(1968)로 나아간 것도 나름대로 시적 전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서정주가 ‘가슴으로 쓰는 시’를 주장한 것에 대한 반대 명제가 ‘온몸으로 쓰는 시’라는 명제라는 것이다.    모더니즘시에서 참여시로의 대전환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김수영이 유고시「풀」에 이르러 이 양자의 종합에 도달했다고 본다면 전통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변증법이 그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1968년 6월 유고시로 발표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자 문학사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다.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보여준 모더니즘에서 참여 시인으로의 변신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의 시적 지형도를 서정주, 김춘수, 김수영 등을 통해 살펴 볼 때 전통시, 모더니즘시, 참여시 등의 세 가지 동선은 20세기 한국현대시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지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향성은 1980년대까지의 참여시 또는 리얼리즘시가 주도적 역동성을 나타내던 시기까지 그대로 지속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신동엽, 신경림 등이 개척해나간 리얼리즘의 동선과 달리 모더니즘과 참여시를 아우른 김수영의 후계자로서 김지하, 황지우, 이성복 등이 그러한 영향권 속에 있었던 것이다. 김지하는 특히 김수영의 소시민성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풍자냐 자살이냐」(1970)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1970년대가 어떻게 1960년대를 극복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평문이라고 할 것이다.   김수영 문학의 풍자에는 시인의 비애는 바닥에 깔려 있으되, 민중적 비애가 없다. 오래도록 엉켰다 풀렸다 다시 엉켜 오면서 딴딴한 돌멩이나 예리한 비수로 굳어지고 날이 선, 민중의 가슴 속에 있는 한의 폭력적 표현을 풍자라고 한다면, 그런 풍자는 김수영 문학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바로 그가 민중으로서 살지 않았다는 점에 그 중요한 원인이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한계다. 젊은 시인들은 김수영 문학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어받을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가 시적 폭력 표현 방법으로서 풍자를 선택한 것은 매우 올바르다. 이것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폭력 표현의 방향을 민중에만 집중하고 민중 위에 군림한 특수 집단의 악덕에 돌리지 않은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것을 비판적으로 넘어서야 할 것이다. 풍자를 민중에게 가한 김수영 문학의 정신적 동기만을 긍정하는 방향에서 젊은 시인들은 이제 풍자의 가장 예리한 화살을 특수 집단의 악덕으로 돌려야 한다.   김지하는 위의 글에서 김수영의 풍자에는 시인 자신의 비애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민중적 비애가 없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젊은 시인들이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은 시적 폭력 표현 방법으로 풍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풍자의 예리한 화살을 특수집단의 악덕에 돌려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김지하는 김수영을 넘어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 나름의 독자적인 시형식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적』(1970)과 『대설』(1982)이 70년대 이후 한국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은 이러한 비평적 탐구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김지하에 대한 신경림의 비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김지하의 경우, 때로 우리는 그의 두드러진 전투성에 역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 민중을 아는 시인이었다. 민중의 생활과 감정을 알고 기쁨과 설움을 함께할 줄 아는 시인이다. 판소리·민요 등 우리 고유의 가락의 부활에 의한 시의 방법도 그에 관한 한 매우 적절하다. 다만 그의 시가 지닌 지나친 전투적 요소는 민중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일부층의 기피 현상조차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데 대해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지하는 본질적으로 민중을 아는 시인이며 민중의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할 줄 아는 시인이다. 고유의 시형식을 현대화시킨 것도 그의 중요한 시적 기여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전투성은 오히려 민중의 언어에 대한 기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위의 글 「문학과 민중」(1973)에서 신경림은 비판하고 있다. 신경림의 『농무』를 비롯한 일련의 시적 성과가 이러한 비평의식의 소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해체시가 유행한 이후 정신주의시와 생태시가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 시단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뚜렷한 시적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21세기를 맞이하였다. 최근 문단의 일각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이들의 논의는 문학사적 연속성을 바탕으로 한 시적 지향성을 논한 것이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젊은 세대의 시적 특성을 논하고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미래파로 거론되는 시인들의 시에 미래에 대한 역사적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다. 자폐적이며,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동시에 소통불능의 언어로 구사되는 이들의 시는 병적 징후의 단면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그들의 시적 작업이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의 시적 전진에 대한 뚜렷한 방향이 모색되지 않은 상황에서 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자신의 전진로를 어떻게 개척했는가를 점검해보는 것은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 우리의 시적 전진로를 파악하려는 비평적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적 방향 모색과 비평적 탐색의 행복한 만남이란 지극히 예외적이다. 시와 비평이 이율배반적인 시대일수록 문학적 충돌은 심화될 것이다. 결국 창작 비평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과 비평의 소통경로를 천착해 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시와 비평의 아름다운 만남   모든 문학의 출발은 시로부터 시작되어 시로 귀결된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시적인 것은 모든 예술을 움직이는 태양의 흑점과도 같다는 것 또한 과장이 아니다. 고도의 지적 논리가 요구되는 비평에 있어서도 시적인 요소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문학의 영역에서 축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문단에서 시와 비평의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조화는 김종길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절제된 시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의 비평은 시와 비평의 코드 전환이 자유로움을 알려주는 예증일 뿐 아니라 그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50년대 후반부터 우리 평단을 주도한 비평가 유종호, 이어령은 물론 김윤식, 윤재근 또한 시작노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유종호는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2004)를 간행한 바 있다.    착한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에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영 다시 볼 수 없게 된 옛날 국민학교 선생님이라든가 복사꽃이라든가 함박눈이라든가 초승달이라든가 이깔나무라든가 저 무던한 사람들과 속깊은 자연 앞에 떳떳하기 위해서도 앞으로 많은 시를 써야겠지요 먹바위 굴려 올리기에 가뻐 그동안 너무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거든요 허둥지둥 세계의 은혜를 몰랐거든요    ―― 「복사꽃이라든가 함박눈이라든가」 후반부   위의 인용은 시를 쓴다는 것은 물론 문학을 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무던한 사람들과 속 깊은 자연 앞에서 떳떳해지기 위해 시를 쓰고, 시를 쓴다는 것은 그것들의 고마움과 은혜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시를 쓰고 시를 논하는 모든 것이 세상의 고마움과 세계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지나친 과장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종호의 이 시에서 우리는 시와 비평의 행복한 만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청년 시절 그가 지닌 문학에 대한 꿈이 시로부터 촉발되었음을 알려주는 좋은 예증이 될 것이다.    청년 시절 신춘문예 시인으로 등단한 김화영이 비평가로 불문학자로 시종한다는 것도 또 다른 예증의 하나이다. 오세영과 이승훈은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국문학계의 대표적인 시론가들이다. 이미 이 두 사람의 비평적 업적은 그것만으로도 족히 전문적인 비평가들도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영과 이승훈은 가히 시인이자 비평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 쪽이 기운다고 할 수 없다. 오세영의 경우 치밀한 분석력과 논리적 설득력은 단순한 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며, 이승훈의 경우 이상, 김춘수의 계보를 잇는 독자적인 비대상의 시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로서 주목할만한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시인 중에는 남진우를 비롯하여 이희중, 정끝별, 권혁웅 등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평론가로 등단하였고, 비평 활동 또한 활발한 문인들이다. 젊은 세대의 문인들 중에서 시와 비평의 코드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인이 남진우이다. 예민한 통찰력과 섬세한 감수성에 의해 씌어지는 그의 시와 비평은 우리 문단에서 시와 비평이 함께 나아가는 가장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최근 미래파 논쟁을 불러일으킨 권혁웅의 문단활동 또한 시작과 비평 양쪽에 두루 적용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방민호, 허혜정, 김용희는 물론 김춘식에 이르기까지 젊은 문인들의 경우 더욱 점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우리 문단의 지적 풍요로움을 위해 결코 터부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이어령이 「저항의 문학」(1957)과 「화전민의 지역」(1959)를 내세우고 문단에 등단한 1950년대를 돌이켜본다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축적되어온 학문적 축적을 통해 성취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오늘의 시대는 전통단절이나 전통부재를 논하던 지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와 분명 다르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하나는 과연 오늘 비평이 시적 창조성에 생산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현학적인 지식의 과시이거나 지적 추수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오늘의 비평의 과잉 현상은 오히려 지적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비평은 오늘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시작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비평적 노력의 활성화야말로 우리 시단의 난관을 타개하는 원동력이다. 대수롭지 않은 비평만을 뒤쫓아 다니는 시인과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 시인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비평적 무관심을 지닌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현재성에 사로잡힌 맹목적인 시인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평가의 시는 호사가의 관심거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시인의 비평과 동질의 창작물이다. 시심을 가다듬는 것은 시인만이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적용된다. 늘 시심을 가다듬지 않는 비평가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없다. 시심이 없는 비평가는 제대로 된 비평가가 아니다.  그들은 억압적인 논리와 지식의 과잉으로 문학의 외각을 맴돌거나 문학 초과현상을 나타낼 것이다. 문단생활 50년을 정리하여 30권의 라이브러리를 간행한 이어령도 앞으로 “펴내고 싶은 것은 시집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문필활동의 가장 깊은 곳에 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시와 비평의 원활한 그리고 창조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 문단의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문학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는 비평적 의식이 없다면 우리 문단은 외래의 처방전만 남발하는 지적 추수주의를 끝내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문학의 풍요로움은 모든 문화예술의 창조적 토대이다. 문화예술의 창조적 동력 없이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 문학의 풍요로움은 시적 생산의 비의가 비평적 감수성에 의해 포착될 때 이루어진다. 훌륭한 비평가가 모두 훌륭한 시인은 아니지만 훌륭한 시인은 훌륭한 비평가이다. 시와 비평이 상승적으로 작용하여 정점에 도달할 때 명편이 산출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가 시와 비평의 단절을 불러왔는가. 시의 길과 비평의 길은 끝내 다른 것이 아니다. 비평적 지성의 결여가 시적 창조성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오늘의 명제이다.     최동호   1948년 수원 출생.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 1976년 시집 『황사바람』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아침세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하는 달마』, 시론집 『현대시의 정신사』 『평정의 시학을 위하여』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등 다수 있음.  
1706    비평가의 詩, 詩人의 비평,- 립장을 바꿔보다... 댓글:  조회:3467  추천:0  2016-10-28
  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     우리 문학사상 처음으로 시인의 역할과 비평가의 역할을 바꾸어보는 기획 특집을 마련했다.  시와 비평은 원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양자는 이질적인 것으로 분리되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 비평은 시에게 논리를 강요하고 시는 비평의 논리를 뛰어넘으려 한다. 이번 기획 특집으로 마련한 은 시와 비평의 자유로운 코드전환으로 시의 생산적 가치가 증폭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등단(평론) 50주년을 맞이한 이어령 평론가의 최초의 자작시 2편과 함께 실린 유종호, 김화영, 방민호, 김춘식, 김용희 평론가의 ‘특별한’ 시와 이가림, 이하석, 장석원, 변의수, 김민정 시인의 ‘독특한’ 비평(산문)은 시와 비평의 즐거운 소통이 된다.  시인과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동호 교수는 총론에서 “비평가의 시는 호사가들의 관심거리가 아니며, 그것은 시인의 비평과 동질의 창작물로서, 시심을 가다듬는 것은 시인만이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적용된다.”며 시와 비평의 행복한 만남을 바란다. 입장을 달리하여 보내준 비평가의 시와 시인의 비평은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창작의 논리와 비평의 감성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하나가 되어 나가야 하는 당위성을 전해준다     ― 편집자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외 1편                           이    어    령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였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였을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도끼 한 자루      보아라. 파란 정맥만 남은 아버지의 두 손에는 도끼가 없다.  지금 분노의 눈을 뜨고 댓문을 지키고 섰지만  너희들을 지킬 도끼가 없다.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끌어안는 팔뚝에 힘이 없다고 겁먹지 말라. 사냥감을 놓치고 몰래 돌아와 훌쩍거리는 아버지를 비웃지 말라.  다시 한 번 도끼를 잡는 날을 볼 것이다.   2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호모사피엔스가 태어날 때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최초의 돌도끼.  멧돼지를 잡던 그 도끼날로 이제 너희들을 가로막는  이념의 칡넝쿨을 찍어 새 길을 열 것이다.  컸다고 아버지의 손을 놓지 말거라  옛날 나들이 길에서처럼 아버지의 손을 꼭 잡거라  그래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 앞에 앉을 수 있다. 등불을 켜놓고 보자  너희 얼굴 너희 어머니 그 옆 빈자리에  아버지가 앉는다.  수염 기르고 돌아온 너희 아버지의  도끼 한 자루  이어령   1934년 충남 온양 출생.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데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 맹호훈장,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 수상.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이화여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상임고문. 저서로 『흙속에 저 바람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소설 『장군의 수염』 『암살자』 『환각의 다리 무익조』 등과 다수의 희곡, 시나리오가 있음.     자목련 아래서    외 1편                                                                                                                  유    종    호 한 열흘 활짝 열려 있기 위하여 한두 이레 선짓빛 되다 말기 위하여 그러다 별수없이 꽃 누더기 되기 위해 삼백예순 날을 기다렸다 말하지 말라 아침 이슬 구차한 이승 없었던 듯 스러지기 위하여 그 어느 그믐이나 기막히는 보름밤 슬그머니 떨어지는 황홀을 위하여 삼동을 견디었다 이르지 말라 흔들리며 보채는 먼발치 아지랑이 헐벗은 갈대며 나뭇잎의 술렁임 한겨울 눈맞이의 떨리는 설레임을 어찌 너희가 안다 하느냐 속 터지는 온몸의 외침이 다가 아닌걸 언제나 비가悲歌     백양나무를 시간의  나무라 부른 옛 부족이 있었다 갈잎나무 잎사귀 거죽이 한밤처럼 검푸르고 뒤쪽은 대낮같이 희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부족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필시 삼세 번 멸망하고 말았으리라 나무 잎새에서 역사를 추려내는 시인 부족을 사방 오랑캐가 가만둘 리 없으므로 세상은 항상 개판이었고 역사는 언제나 비가悲歌이므로 무참한 무참한 서사敍事이므로   유종호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공부. 1957년 이후 비평활동을 해왔음. 연세대 특임교수. 저서 『유종호 전집』 전 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다시 읽는 한국시인』 『나의 해방전후』와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2004)가 있음.    뫼동에 돌아와서    외 1편 ―― 1995년 5월 4일 일기                                                                                                                        김    화    영 추운 계절 객지에 혼자 쓰는 방이 너무 호젓해 고향에 가 머물다가 뫼동에 돌아오다. 겨우내 나 없는 사이 마당의 잔디 위에 쌓였던 눈송이들, 저 혼자 서슬 푸르게 날이 서 있다가 내 돌아오니 약은 놈들은 다 떠나고 이른 봄 어리숙한 녀석들 여리고 하얀 꽃이 되어 잔디밭 가득 내려앉아 있다. 하루 종일 봄빛을 이마로 들이받으며 창 밖에서 노닥거리던 고것들 해 저물녘 문 열고 내다보면 모두 서쪽으로 돌아앉아 딴청부리며 꽃잎을 오무렸다 폈다 한다. 나도 모르는 척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쓰다가 그리워 창밖을 보니 그중 가장 작은 놈 이쪽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 간절한 그리움에 붙잡힌다. 아유 간지럽단다, 간지럽단다, 해도 덜 져서 아직은 밝은데.    고추잠자리에 대하여     황토길 저 혼자 흐르다가  잠시 멈춘 삼거리  사람들 모두 산으로 사라지고 가을볕이 모시적삼같이 비치는 고추잠자리  외로움을 빨갛게 황홀로 태우며 난다  그 번뜩임의 순간 속에 한 생애의 은유가 주변의 모든 햇빛과 별빛을 모아 풍경을 만든다 날지 않고 어찌 저 여린 생을 비추랴  간지럼 타듯  산과 숲과 강이 가벼워지고 고추잠자리 날개에  그림자 없는 날빛이 튄다 낮에 숲을 술렁거리게 하던 사람들 어느새 다 내려가고 빈 황토길 위에 고추잠자리 떼 자 우리 차례다 소리치듯 분주히 난다. 이제 떠날 시간인데 잔치는 끝나지 않네 혼자 낯선 곳에 와 있는 가을볕의  이 거대한 한 페이지 아직은 넘기지 말고 어두워지기 전에  고추잠자리 같은 뜨거운 몇 글자   날개의 투명을 넘어 흐린 눈으로 읽는다. 벌써 저만큼 멀어져가는 사람 문득 뒤돌아보다가 잠시  눈발 그치고 비워진 풍경이 된다. 김화영   1942년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1965년 월간 《세대》지에 시로 등단. 동인(황동규, 정현종, 박이도, 김현, 김주연). 저서 『행복의 충격』 『문학 상상력의 연구』 『소설의 꽃과 뿌리』 등 다수.   무당개구리야, 당나귀야    외 1편                                                                                                                  김    춘    식 이런 이야기 하나, 어깨에는 몹시도 무거운 짐이 있었는데 그 짐은 솜처럼 가볍다가도 잠시 마음을 놓으면  금세 두 어깨를 땅 밑으로 꺼뜨릴 듯 무거워지는 거지 그거 아나, 불안과 초조로  날개를 만드는 짐 말이야 마음이 무거워지면 어깨의 짐은 가벼워지네 그때, 두 눈은 비로소 똑바로 앞을 보지 편안한 자의 눈은 땅밑으로 고꾸라지는데 땅 밑 나락에는  이상하게 평안이 없네 공포와 불안이 어깨 위의 무게를  순식간에 녹여버리는데 그때, 내 앞에는  잠시 소금 덩어리로 굳어버린 아름다운 여자가 모습을 나타내지 말린 고기 한 점 입에 넣어 주며 그녀는 말한다네 무당개구리야! 당나귀야! 그러면, 마음은 몹시 포근해져 잠이 쏟아지려고 하는데,  그때 순식간에 어깨에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올라타고 앉아 아주 느리고 늘어지는 가락의 피리를 부는 거야  그러면 소금 여인은 코끼리를 사납게 채찍으로 때리며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네 무당개구리야! 당나귀야! 그러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아 백년이 지났구나, 또 아 천년이 지났구나 하고 탄식을 뱉어내는 거지 그리고, 내 굽은 어깨의 그림자가 길게 언덕을 타고 오를 때쯤이면, 내 이마 위에 뭔가 깊고 사연 있는 주름이 길게, 셀 수 없이 접혀 있다는 걸 알게 되지   비슬번히 인생을 보내다     유유자적하는 마음을 위해, 그는  그날 하루를 허비하기로 작정한다. 그것은 일종의  상상과 같아서 정신은  저절로 흡족한 분위기에, 한껏, 부풀어 간다. 책이  커다란 벽처럼 서 있는 도서관을 끼고, 담벼락을 지나 할 일 없는 한가한 오후를  나무 위에서  보내기로 한다. 그것은 평평한 가지에 그물침대를 걸고  부드러운 바나나가  입안에서 천천히 녹는 느낌을, 바람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소란은 언제나 있는 법, 아이얍, 하앗낫―두울, 기합이 휴식을 방해하리라. 비슬번히 누워 바나나를 까던 손이   동작을 멈추고 비슬번한 눈은 허공을 응시하리라. 나무에 등을 비비며 맨손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공터를 가득 메울 즈음 그의 손은 쑥스러움에 또 비슬번히 뒤통수를 긁는다.   그물침대 아래 서서, 그는  한동안, 비슬거리며  팔짱을 끼고 몽타쥬된 화면처럼  단속적으로 공터의 이곳 저곳을 오간다. 비슬번히,  당신들은 무슨 산을 악으로 깡으로 다니시오, 소리 좀 치지 마시오, 중얼중얼하고는 또 비슬번히, 그의 자리로 돌아간다. 모두가 닮은꼴인 사람들  규칙적인 동작을 바라보며  그 사람들이 비슬번한 그의 적일 것이라, 추측한다. 비슬번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다 그는 카라멜 하나를 까서 입에 넣는다. 침을 모아서 오물거리며 단물을 씹어 내다가 그때   금빛 거미가 한 마리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비슬번히 거미를 바라보다 입술 사이로 달고 끈끈한 카라멜침을, 고름처럼 길게 늘어뜨리기 시작한다. 침은 순식간에 커다란  주머니들을 만드는데 이제 그 주머니가 주렁주렁 입술에 달라붙어, 그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비슬번히,  앉아 있을 수밖에.  비슬번한 표정 위로 추억의 나이테가 사라지고 머리 속 가득  금빛 거미의 환상이 들어찬다. 이제 비슬번한,  표정 그대로, 굳어버려 그는, 비슬번 주머니가 되어버린다.     김춘식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으로 등단.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로는 평론집 『불온한 정신』,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한국문학의 전통과 반전통』 『근대성과 민족문학의 경계』 등이 있음.   괭이 1    외 1편                                                                                                                      방    민    호 남모르는  내 작은 반지하방에  괭이 한 마리 살고 있었네 나 외롭고  괭이도 외로워 우리 서로 정 깊은 동무였네 외출에서 돌아오면  괭이는 내 품에 안겨들어  야웅, 소리 내고  제 볼을 내 가슴에 부비고  장난 그리운 아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네 나밖에 모르고  하루 종일 나 없는 빈 방 지키며  나만 기다린 내 괭이,  나도 녀석의 목덜미 만져주고, 등허리 쓸어주고, 여린 발톱마저 애무해 주다 보면  시간은 나와 내 괭이 옆에 영원히 멈춰 서 있을 줄 알았는데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나만 알던 내 반지하방은 나만 기다리던 내 괭이는 내 괭이 위해 노란 수선화 안고 돌아와 내 괭이와 같이 그 긴 여름 장마 빗소리 밤새 듣던 나는  어디로 다 사라져 버렸을까    괭이 2      한밤에  괭이가  나를 내려다본다  윙윙  울고 있는  냉장고 위에서  나를 한밤에 내려다본다    파란  눈빛으로  그때 내가  벽 속에 묻어버린    털빛 검은    내 괭이  한밤에  살아나  나를 내려다본다  잊었느냐고  소리 없는  목소리로  한밤에 돌아와  쓰러져 있는 내게   묻는다  잊었느냐고  살아  있느냐고     방민호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4년부터 평론 활동 시작.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문명의 감각』 등이 있다. 2000년 《현대시》로 시 등단.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옛사람    외 1편                                                                                                                      김    용    희 눈꽃이 한번 피고 지는 사이 눈꽃을 한번 바라보다 눈길을 가만히 거두는 사이 옷에 물이 들었다 저녁이 작은 숨소리를 내고 지나가고 눈꽃 흰 가시가 저녁빛을 조금씩 찢어 세상 모든 모서리가 서서히 허물어지려 했다 눈꽃은 반짝이며 잠잠히 상처를 나에게 내밀어  보여 주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데도 저녁이 왔다 슬프지도 않게 조금씩 조금씩  저녁이 내렸다     무사 어머니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있잖아요 저마다 길들이 하나의 오름을 향해 모여들듯 어머니 가슴에 묻혀 있잖아요 가슴에 돌고 있는 햇빛과 가슴에 돌고 있는 수액과 세상으로 걸어내려가는 모든 길들이 이곳에 있잖아요 세상 사나운 말들도 이곳에 와 우물 속에다 하는 말처럼 우물 속에 빠지는 울음처럼 제 몸 한 바퀴 다 돌고 나가면 그만이잖아요 어머니 앞섶 옷고름 한번 풀었다 닫으면 뒷창이 펄럭 하고 열렸다 닫히면 그런데 그 둥근 입술 따뜻한 밥숟가락  놓여 있던 자리 어머니 가슴 수술하던 날 칼금 하나 긋고 말았네요 등짝에 긴 칼 하나 꽂고 어머니 가슴에 칼자국 무사처럼 누워 있네요  가슴 속 새집 뜯어내자 마른 나뭇잎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어머니 그러나  무림에서는 칼자국이 많아야 고수라는데  하늘 깊은 우물 메워 몸에 길 하나  내었으니   허기 지친 칼바람 속에 붉은 가슴 진설하고 어머니 무사 어머니 병실에 누워 계시네      김용희   1964년 출생. 1992년 계간 《문학과사회》로 평론 등단.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필명 : 김운영). 문학평론집 『천국에 가다』 『페넬로페의 옷감짜기- 우리시대 여성시인』 『순결과 숨결』 등.  『님의 침묵』 또다시 읽기                                                                                                                       이    가    림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마치 대가인 양 너스레를 떨기란 아주 쉽다. 시 한 편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1백 가지 시학이 있다.” 이 같은 볼테르의 가시 돋친 지적에는 문학비평가들의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지루한 ‘설명’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깔려 있다. 이것은 또한 시 한 편을 해석함에 있어서 자신의 문학관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담은 하나의 시학이 요구됨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깊고 예리한 역동적 텍스트 ‘읽기’가 진정한 동화(identification)의 비평행위, 즉 의미생성 작용에 참여하는 매우 중요한 창조행위가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씌어진 만해萬海 한용운에 관한 연구서 및 논문, 평론의 수가 7백여 편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다시 읽기’를 시도하게 되는 것은 『님의 침묵』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다의성 (polysémie)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님의 침묵』에 수록되어 있는 88편의 작품들 중 긴장된 미학적 구조의 결정체로 볼 수 있는 시가 10여 편 정도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평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 한용운은 김소월,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등의 이름과 더불어 한국현대시사의 새벽을 연 눈부신 성좌임에 틀림없다. 그는 “혁명가와 선승禪僧과 시인의 일체화”라는 삼위일체의 모습을 하나의 생애 속에 구현한 전인적 인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엄정한 의미에서, 시적 텍스트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시인 자신의 인간적 위대성을 충실히 설명하는 것만으로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님의 침묵』이 일제 식민지 시대의 질곡桎梏과 암흑 속에서 태어난 “망국亡國민족의 울분과 광복의 굳은 종교적 신념이 곁들여진 절규”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러한 해석은 자칫 시작품의 참다운 내재적 의미를 은폐하거나 신성화, 추상화할 우려가 있다고 하겠다.    만해 시의 평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님’의 해석에 따른 여러 가지 주장들이 “당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암호처럼 해독하는 경향”을 띠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의 임은 불타佛陀도 이성도 아닌, 바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이었다. 조국을 도로 모시고 싶은 지정일념至情一念은 그의 마음 안에 기도의 제祭를 모셔놓고 갈구의 심현心絃을 섬세한 가락의 주문呪文으로 읊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정태용은 님의 정체를 “불타도 이성도 아닌, 바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으로 한정하여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님’이라는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를 교조주의적으로 단순화시킨, 관용화慣用化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해론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님에 대한 논의가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님’을 ‘빼앗긴 조국’과 ‘민족’, ‘불타佛陀’ 또는 ‘중생’의 표상으로 보거나, 아니면 형이상학적 다양한 신비성을 포함하고 있는 ‘불교적 진리’로 보는 도식적인 유추적 결정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조지훈이 그의 「한용운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민족과 불佛을 일체화한 님의 가없는 사모思慕”가 만해의 세계에 일관하는 기본 요소인 것은 사실이나, “민족 운동가로서, 불교 사상가로서, 근대 시성詩聖으로서 삼각三角의 정상에 우뚝 솟은 첨탑이요, 불멸의 인간상”이라는 생애의 고결함을 그대로 시작품의 내부체계를 이루는 원리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한용운의 ‘님’ 해석 문제를 둘러싼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① “그러나 이 시집(『님의 침묵』)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님의 정체는 결코 단순한 애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님’은 어떤 때는 불타도 되고, 자연도 되고, 일제에 빼앗긴 조국이 되기도 하였다. ‘님’이 갖는 의미는 그만치 형이상학적 다양성의 신비를 띠고 있었다.”(조연현) ② “만해에게 있어서, ‘님’이란 다름 아닌 생명의 근원이었고, 영혼에의 극지였으며, 또한 삶을 위한 신념의 결정結晶이었다.” (인권환) ③ “‘님’은 한자리에 놓여 있는 존재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움직이는 부정의 변증법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의 가능성이다.” (김우창) ④ “‘님’이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성이자 시인이 잃어버린 조국과 자유요 또 불교적 진리이자 중생이기도 하는 것―그 모든 것이면서 그것이 그때그때 중첩되어 보이기도 하는 것―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사고방식이며, 존재의 참모습에 대한 가장 온당한 일컬음인 것이다.”(백낙청) ⑤ “『님의 침묵』은 이별을 통해 만남을 이루는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며, 또한 세속적 사랑의 종교적 승화에 대한 이념적 동경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김재홍) ⑥ “선생의 증득證得은 민족운동과 서정시로서 표현되었으며, 선생의 문학을 일관한 정신은 또한 민족과 불佛을 일체화한 임의 가없는 사모였다.” (조지훈) ⑦ “문학 이전의 생명적 요소, 자타自他가 합일하는 공空의 경지에서 홀연히 오득悟得한 전체이며 일부인 것, 그가 일생을 통해 ‘길러 왔던’ 모든 것, 문학이며, 혁명이며, 중생이며, 조국의 근대화이며, 또는 자연이기도 한 인생의 일체一切가 그의 ‘님’이었다.”(신동문) ⑧ “님은 우리가 사랑하고 찬송해야 할 모든 대상과 깨달음을 뜻한다.” (송욱) ⑨ “님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이다.” (고은) ⑩ “열반의 경지에 들게 하는 참다운 무아無我”(오세영) 위에 인용한 다섯 명의 주요 비평가들(①에서 ⑤까지)과 다섯 명의 시인들(⑥에서 ⑩까지)의 견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만해의 ‘님’이 조국, 민족, 중생, 불타, 애인 등의 의미체로서 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 속에 208번이나 등장하는 ‘님’이란 말을, ‘님’=빼앗긴 조국, ‘님’=불타, ‘님’=중생, ‘님’=애인이라는 등식만으로 편리하게 설명하려는 만해 이해의 경직성을 경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적 텍스트에 대한 일정한 접근은 상상체계(한 시인의 삶과 작품 사이에는 서로 독립하면서 동시에 대응하는 기술체계를 이룬다)로서의 작품 구조 자체를 지탱하고 있는 요소의 해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님’이 ‘길 잃은 양’(독자)임을 추출해 낸 이어령의 『님의 침묵』 분석(「기호의 해체와 생성」,『시 다시 읽기』, 문학사상사, 1995)은 철저하게 기호론적인 접근, 순수한 시적 층위에서 면밀하게 해부한 놀랍고 획기적인 비평적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종래의 ‘님’의 의미 분석을 일거에 뒤집는 독창적 접근으로서 만해시 이해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도약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님’을 주제로 한 ‘만남과 이별의 현상학’을 가장 계시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 「님의 침묵」은 만해 자신이 「군말」에서 말한 것처럼,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보편적 사랑의 형이상학을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님의 침묵」이란 시는 ‘믿음 속의 의문’(e.d. 록스타인rockstein 교수가 한용운과 잉그마르 베르히만 ingmar bergman의 세계를 비교분석한 글에서 한 말), 만남과 헤어짐의 변증법, 긍정과 부정의 역설구조를 계시적으로 형상화환 한용운적 사랑의 원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작품이다.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인 이 시는 본질적 근원으로서의 표상체 즉 ‘님’을 그리워하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연가이다.    다시 말하면 ‘님’ 즉 조국, ‘님’ 즉 불타, ‘님’ 즉 애인이라는 직접적 결정론에 의해 한정되는 ‘님’의 성격을 벗어나는 보다 본질적인 근원으로서의 사랑을 ‘관능적’ 차원에서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해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근원으로서의 ‘님’이 의미하는 바는 “그 때를 벗기면 그 밝은 것이 도로 나타나서 전과 같이 호래호현胡來胡現, 한래한현漢來漢現 하게 되는” 물의 성性 즉 우주의 모든 현상이 지니고 있는 참다운 생명의 법성法性을 가리킨다.    결국 만해의 상상체계의 핵심적 축軸을 이루고 있는 ‘님’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항구적인 근원(본연의 법성)의 상징을 대상화한 것이며, 「님의 침묵」은 그러한 본질적 근원으로서의 ‘님’이 부재하는 시대에 있어서의 ‘존재론적 갈증’을 외쳐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움을 노래한 사랑의 절규로 볼 수 있다. 1999년 여름에 한국에 초청되어 백담사의 만해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엘리자베트 앙드레스(elisabeth andres) 교수(프랑스 툴루즈대)의 「만해에 있어서의 종교적 형이상학의 양상」은 우선 서구인, 다시 말해서 프랑스인의 선입견 없는 객관적 관점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스쳐 지나갔던 측면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노장사상을 비롯해서, 기독교, 불교, 힌두교, 수피즘 등에 관한 20여 권의 저서를 내놓은 바 있는 학자답게, 단지 불교철학에만 기대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비교종교학적 차원에서, 만해 시가 함축하고 있는 비의적秘義的인 의미를 파헤쳐 보여주었다. 이것은 만해의 문학이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서 서구인들에게도 시적 울림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좋은 예이기도 했다.  특히 시인의 세 개의 이름, 한용운, 만해, 봉완이라는 이름에 착안하여, 세 가지 각도에서 그 특징적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전인적全人的 풍모로서의 시인의 전체상을 묘사한 것은 퍽 재미있는 독창적 시도라 할 수 있었다. 시인의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 그리고 창조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빈틈없이 좁혀, 어떻게 어두운 시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운 행동을 통일적으로 밀고 나갔는가를 밝힌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앙드레스 교수는 ‘님’의 의미를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극복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초월적 자아로 파악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 붙여지는 찰나에 이미 ‘절대적인 님’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도道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비추어, 일종의 모순어법으로 표현된 만해의 ‘님’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의미,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풀어냈다. “말해질 수 있는 도는 ‘절대적인 도’가 아니다. 이름지어질 수 있는 이름은 ‘절대적인’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名可名 非常命”라는 『도덕경』 첫줄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이용하여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군말」) 또는 “사랑을 ‘사랑’이라 하면 벌써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사랑의 존재」)라는 만해의 시가 갖는 특이한 모순된 역설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했다. 나의 불역시집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le front contre la fenetre, paris, l'harmattan 출판사, 1997)의 해설을 쓴 바 있는 앙드레스 교수의 이같은 분석에 동의하여, 나 또한 ‘님’의 의미를 ‘존재’이면서 비존재(non-être)인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자 한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절대적인 도에 이름을 붙일 수 없듯이, 하나이면서 여럿인 ‘님’, 개체이면서 전체인 통일체로서의 절대에 우리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님’에 이름이 주어졌을 때, 그것은 이미 진실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적이며 동시에 보편적 자아(moi)인 ‘님’은 그 참된 이름을 모르기에 이름 붙일 수 없는 비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존재’는 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절대적인 ‘비존재’라는 만물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다. 결국 만해의 ‘님’은 이름 붙일 수 있는 ‘존재’와 이름 붙일 수 없는 ‘부재’ 또는 ‘비존재’의 야누스적 통합체라 할 수 있다.     이가림   1943년 만주 출생.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빙하기』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순간의 거울』 『내 마음의 협궤열차』 등.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현재 인하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새로움에 대한 경계와 애정의 교차                                                                                                                 이    하    석 요즘 들어 문학평론가들의 일들이 산더미 같을 것이라 여긴다. 점검해야 할 텍스트들이 엄청나다. 올 봄에 우수문학도서 선정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그 대상이 되는 지난해 4분기의 시집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문학나눔위에서 집계한 것이 2백 권이 넘는다. 이 집계에서 누락된 것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을 것이다. 줄잡아 연간 1천 권 이상의 시집들이 출간되는 셈이니, 10년이면 1만 권이 훨씬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정도라면 문헌들을 정리하는 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 아예 이 가운데 반 이상, 또는 10분의 9가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것이란 생각도 든다. 황동규 선생의 시(「태평가」)의 한 구절인 ‘도처철조망到處鐵條網/개유검문소皆有檢問所’를 빌려서 말한다면 ‘도처시인/개유시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텍스트들의 거대물량 앞에 선 문학평론가들의 자세는 사뭇 커보이기도 하고, 사뭇 난감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문학평론가라 해서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 시집들을 일일이 다 챙긴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다. 사회의 모든 게 그렇지만 문단에도 묘한 걸름막이 있어서 이 많은 시집들이 그 때 그 때 걸려져버리기도 한다. 그 걸름막에서 걸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시집들은 기실 얼마 되지 않으니 그것들만 신경을 쓰고 챙기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혹여 문학평론가가 그 걸름장치의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면 그건 아주 큰 권력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어쨌든, 거대 물량 공세의 문학판 속에서의 괜찮은 ‘문학작품 가려내기’가 여러 가지로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문학평론가들에 대한 불만이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물량의 양이 크다 보니, 그것들을 일일이 점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대충 문단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작품들만 건성으로 집적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하는 혐의가 있다.    또한 이른바 ‘식구의식’, 곧 자신이 관여하는 문예지나 문학단체에 국한하여 작품을 읽고 마는 편협성에 함몰해 있는 게 아니냐는 혐의도 있다. 우리 식구를 감싸는 문학은 칭찬 일변도가 되기 쉬우며, ‘주례비평’이나 ‘골목비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아냥소리도 듣는다.    우리 문단의 일각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면도 불식돼야 할 중요한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문학평론가들이 애정결핍이거나 애정과잉 현상 때문에 문학의 현실을 종종 곡해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점이 두드러진 예가 최근 시집들을 내기 시작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 대한 평단의 반응일 것이다. 이른바 문학에 대한 논쟁이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몇 몇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 종래에 비해 새롭고, 낯설다는 것 때문에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황병승, 장석원, 김민정 등은 물론 올들어 김언, 김행숙, 이장욱 등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의 활동폭이 계속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들의 작품들이 환상과 전복, 엽기스러운 말의 구사와 묘사 등을 보이는 등 새로운 언어구사에다 그런 경향이 최근 1, 2년 사이에 젊은 세대들 사이에 꽤 많이 나타나면서 집중적으로 관심을 끌고 주목을 받게 되자, 평론가들이 아연 긴장하고 달려든 것이다.    지난해 《문예중앙》 봄호에서 평론가 권혁웅에 의해 라는 말이 처음 쓰인 이후 이 말이 지칭하는 일군의 시인들이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후 이런 경향의 시인들이 늘어나자 ‘드디어’ 평론가들의 반발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들을 옹호하는 이들도 당연히 있으나 수적으로 열세인 듯하다.  라는 말이 나온 지 거의 1년만인 올 여름 각 계간지 여름호 특집들, 예컨대 《시작》과 《문예중앙》의 관련 특집, 《창작과 비평》의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 《작가세계》의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 세계 비판」, 《실천문학》의 「2000년대, 새로운 감각의 문학」 특집들이 그러한 반발과 우려들을 담고 있다.  평론가들이 이처럼 중요 문학지들을 통해 일정 세대의 문학경향에 대한 논쟁을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이들 젊은 시인들의 시들이 해독의 어려움을 느낄만큼 종래 볼 수 없었던 언어코드를 드러낸 게 아닌가, 그래서 그런 것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문단의 기우가 크기 때문일까? 어떤 면에서는 이런 관심이 젊은 일군의 시인들의 활동이 그만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특집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그것은 ‘시대적 징후’이며, ‘새로운 감각의 문학’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여기는 듯하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들의 문학에서 환상과 전복의 세계와 언어구사를 보이며, 엽기적인 묘사와 무의식을 드러나며, 독해하기가 어려울 만큼 난해하다고 꼽는다. 그래서 이들과 코드가 다른 세대들은 이들의 문학이 자칫 말장난이나 환상적 말놀이로 여겨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 세대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의 어법은 종래의 시들과 ‘다를 뿐’, 말장난이나 환상으로 치부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지한 문학이라 주장한다. 심지어는 ‘시적 주체와 세계가 엇갈리는 비정상적인 불행한 서정시’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문학에 대한 평론가들의 진단은 차갑고 냉정하다. “기껏 이 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며 개인적 고민에 몰두하는 편협성이라 꼬집는다. 또는 ‘시인들 스스로 소통 불능의 자폐적 성채로 들어가는, 일종의 내국망명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은 어느 때나 있어온 것처럼―80년대 해체적인 시의 실험이 대두됐을 때에도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는데, 그 지적이 희한하게도 대개 위의 지적들과 비슷했다―새로움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앞세대와 뒷세대 간에는 종종 소통불능, 또는 불유쾌한 소통의 양식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이해와 화합을 위한 징검다리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문학은 기존의 문학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기존의 평론가들의 지적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충분히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최근 대두되는 새로운 시적 경향들이 단순히 몇몇 젊은 시인들의 개인적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데 있다. 그 경향들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그것이 하나의 특징으로 굳어지고, 새로운 시경향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학은 우리 문학이 갖는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며, 젊은 감각으로 맞닥뜨리고 호흡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의 한 중요한 양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박수연의 말처럼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은 문학사적 사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들 시인들의 작품들을 과거 문학의 잣대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이들 시인들의 독특한 현실 드러내기의 징후들을 인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의 한 단면이며, 그리하여 그것이 한국문학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과거의 잣대로 현재 진행형의 문학을 재단하는 것은 애정결핍이기 전에 우리 문학의 중요한 흐름을 곡해하고 오해할 우려가 크다.    문학평론가의 할 일이 “이 불행한 시대의 한가운데서 문학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무력한 증상들을 세심히 따라 읽고 그것의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며, 그것의 공과功過를 따져 헤아리는 것”(김영찬, 『비평극장의 유령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새로움에 대한 경계 못지 않게 애정도 필요한 것이다. 그 태도가 우리 문학의 매듭을 확실히 하면서 새롭게 확장시키는 태도이기도 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하석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녹』 『것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비평과 해석학적 중독 ―― 해석이 상징이라면, 비평은 또 다른 상징의 생성이다                                                                                                                             변    의    수 비평은 약호의 사전서가 아니다. 하지만, 비평은 종종 사전이 되고자 애를 쓰며 시 텍스트로 하여금 사전적 약호 체계의 산물일 것을 주문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젊은 시인들의 자의적 상징의 시편들에 대한 비평을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다시 인다. 시인은 질료적 기호체로서의 텍스트를 만들 뿐이지 의미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20세기 초엽 카시러는 표현적 또는 재현적 상징보다 순수 의미작용의 상징을 가장 수월한 단계로 보았다. 카시러의 순수 의미작용이란 소쉬르가 언어 기호학의 제1의 원리로 삼았던 ‘자의적(arbitrary)’ 결합의 방식 그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카시러의 ‘순수 의미작용으로서의 상징’이 뒤샹이 행하였듯 눈 치우는 삽에다 「부러진 팔에 앞서서」와 같은 전혀 무관한 자의적 제목을 붙이는 식의, 시적 기호체의 작품 제작방식에까지 사유를 진전시켰던 건 아니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시나 예술 역시 자의적 구성의 상징 기법은 보편화되고 있으며, 시·예술에서의 그러한 자의적 상징의 기법은 자의성의 기호에 대한 헤겔의 헌사처럼 ‘낯선 의미를 혼으로서 부여’하는 새로운 문명의 이식과도 같은 충격을 전해 준다. 실은, 현대 예술은 20세기 초엽의 뒤샹, 그리고 그 이전 19세기 중엽 이후의 인상파 화가들, 시에서는 말라르메에 이르러 이미 자의적 구성의 상징 세계로 들어섰다. 그때 이미, 예술은 텍스트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접촉자의 자의적 구성의 상징 그것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작품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는 엄격히 말해 ‘상징 생성’의 매개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에 대한 비평적 해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 다시 말해 시작의 양식과 그 문법들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진다.  자의적 상징의 텍스트에 있어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비평에 있어서 의미의 생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온전히 비평가 사적 개인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평의 경우, 재구성1)되지 않는 텍스트의 자의성을 질책한다.    그러나, 의미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의미는 지식이나 추론적 이성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상학자는 먹구름의 데이터를 읽고서 비가 올 시기와 그 양을 추정한다. 그러나 어부는 하늘의 먹구름을 읽고서 폭풍우의 시기와 그 강도를 짐작한다. 시를 읽고 접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감각적이고 실존적 차원의 일이다.  의미의 생성에 있어선, 자의적 상징의 텍스트를 접할 경우 비평자 역시 한 사람의 독자에 다름 아니다. 이때 비평가의 주요한 임무는 텍스트(기표적 표상체)에 대한 기호학적 관심 즉, 기표적 표상체에 관한 문제이고, 의미의 생성은 독자의 몫으로 돌려져야 한다.    특히, 자의적 상징에 있어서 텍스트를 의미체적 사전이나 하나의 진리와 같은 것으로 다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수사적 태도의 해석학적 중독 현상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시 텍스트를 구성하는 시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문제이다. 시인은 ‘의미’마저 형식으로 표상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기 전경화’(텍스트를 객관화시키기보다 작가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현상)에 빠질 수 있다.  해석은 또 다른 창조적 상징 생성의 행위이다. 상징은 동일성(사전적 약호와 텍스트의 의미에 관한) 비교에 의한 확인과 그런 유의 믿음 같은 것이 아니다. 상징은 사전 밖의 세계에 대한 직관적 통찰의 획득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추론적 해석의 비평에 대해 그러한 상징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비평적 해석에서도 그와 같은 비약적 직관을 요구하는 까닭에서이다. 적어도 비평가로서의 해석은 단순한 동일성 확인에 관한 비교적 차원의 확인을 넘어서는,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이지 않는 기슭을 향하여 던져지는 다리’와 같은 직관적 상징의 해석을 소망하는 것이다.                                                                                     표상                                                                                   상징                                     표상체                       재표상         ※ 동일화의 표상 즉, 상징은 표상, 표상체, 재표상의 관계망을 이룬다. 표상은 시인 내부에서 생성되어 의식에 기호화되어 있는 관념, 표상체는 소위 이르는 텍스트이고, 재표상은 독자나 비평가의 표상(상징) 행위이다. 위 세 영역은 공·시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연결물로서 상징의 각 다른 면들이다.  추론2)과 단정 행위는 원관념이 제공되지 않은 미지에의 상징 행위이다. 그 연결물이 해석이라는 비평의 작업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비평은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또 하나의 상징 생성의 행위인 것이다.    알고리듬적 진행의 작업이나 주어진 약호들에 대한 기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의적 상징의 텍스트는 의미에 대한 지시체가 아니라, 의미를 생성하게 한다. 상징은 표상되는 순간에 의미가 생성된다고 한 헤겔이나 에코 등의 언급은, 우리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시의 텍스트가 사전이 아닌 그 이상의 어떤 것임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시의 텍스트가 개성을 상실하고 있다지만, 비평 역시 이미 그러한 지 오래다. 시인은 정독을 소망한다. 그러나, 비평 역시 1회용 포장지로 전락된 지 오래다. 매너리즘에 빠진 시의 경우 하나의 원형이 예견된다. 비평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락은 하나의 개념을 상징한다. 그러나, 진부한 용어들 위에서는 시선이 머물 곳이 없다.    비평이 비평가라는 사전적 주석가의 기술에 그치고 말 수 없듯, 시문詩文 또한 주석가의 해설을 요구하는 고생대의 화석 같은 죽은 낱말의 나열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비평가에게 있어서 시인은 의미의 생성자가 아닌, 시문 즉, 예술의 문법을 창조하는 자이다.  우리는 칸트를 비롯하여, 시 형식의 문법이 천재의 개념과 관련지어져 결코 학습되어질 수 없는 것으로 언급됨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적 의미로 한정되어야 한다. 시·예술은 학습되어질 수 있고, 학습되어져 왔으며, 교실에서의 얘기와는 달리 과학사와 마찬가지로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속도와 논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예술의 창조적 기술과 기능은 줄곧 축적되고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이 비효율적 현상은 비의식의 예술을 학문이라는 의식 세계의 순금으로 변성시켜야 할 장인, 비평가인 연금술사들의 무관심에 많은 부분 그 책임이 있다.  예술은 비의식3)의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4)이라는 것도 실은 비의식의 결과물일 뿐이지만, 비의식이 얕은 곳에서 의식과 의도적 기호물이 생성되지는 않는다. 고래는 연못의 물고기가 아니다. 새로운 시문법은 깊은 비의식 속에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시인들은 고대의 철학자가 조롱한 바 있듯, 그들은 말을 하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때가 많다. 어떤 보석 같은 광휘를 발하는 어문들을 쏟아내어 놓고도 정작 자신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선 분별하지 않는다.  예술이 충분히 학습되거나 축적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사실은 그곳에 있다. 그러한 시인, 예술가들의 무관심과 맹문을 대신하여 시·예술을 밝은 의식계로 인도해내어야 하는 책무가 비평가에게는 있는 것이다. 사후추론적 논의들인 수사학과 논리학이 시·예술을 창작케 하고 훌륭한 논리를 구사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류와 미망 속에서의 착오의 과정은 줄이게 한다. 사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사후추론적 해석의 작업으로서의 비평이 한갓 사전적 정의의 기록과 재단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상징                                                                                                              기호                           대상          * ‘동일화 표상’의 기능으로서의 상징은 기호에 의미의 형식으로 투사되어 내재한다. 뿐만 아니라 상징 없이 기호는 생성되지 않으며 상징은 기호 없이 생성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상징과 기호는 다른 그 둘이 하나라 할 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기호와 상징을 표상하는 ‘대상’은 아주 다른 세계의 것이다. 대상은 다름 아닌 존재 그것으로서 현상과 실체의 양면을 띠고 있다.  기호와 대상, 그리고 상징과 대상의 관계를 점선으로 나타낸 이유는, ‘대상’은 상징이나 기호의 의미적 쌍으로서 대응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혹 기호의 삼원소를 제시하면서 기호는 의미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상을 지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호나 상징이 지시하는 ‘대상’ 그것은 단순한 대상 그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 또는 ‘존재자’ 그것이다. 의미의 미끄러짐은 단순한 개념적 윤전에서가 아니라 현상과 본질 즉, 실체를 향하여 기투되어야 한다.  상징과 기호5)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이해의 방식이다. 우리는 통상 현상으로부터 비롯하여 상징을 생성하고 기호를 표상하지만 상징과 기호의 텍스트는 실체를 지향한다. 상징물로서의 시·예술의 텍스트는 과학이나 마찬가지로 존재와 세계에 대한 재귀적 물음의 기호작용이다. 비평의 세미오시스 역시 기호의 대상은 실체적 본질에 바탕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은유와 시는 촛점적 과학이 제시하지 못하는 존재론적 인식과 성찰을 유도한다. 과학이 초점적 추상화의 철학을 추구한다면, 시·예술로서의 은유와 상징은 실체적 존재론의 인식을 추구한다. 은유는 형식논리의 입장에서는 기만이나 거짓이다. 그러나 모순적 현상의 내부에 은유는 통일적 참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시적 은유의 힘과 본질은 거기에 있다.  자연의 세계로 나침반을 돌려놓을 수 없는 현금에서 은유는 신화의 훌륭한 대유물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사보다도 찰나적 통찰이 더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좌뇌적 사유에 의존하는 과학 못지않게 은유는 더 깊은 비의식의 자연에 닿아 있는 때문이다. 비평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다면 비평이야말로 한낱 공소한 수사적 유희에 그치고 말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시가 하나의 감추어진 사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평 역시 약호들의 체계물로서의 사전 그것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때 과연 사전의 겉표지와 시 텍스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비평은 참고서가 아닌, 원전으로서의 법문法文으로 또 하나의 상징 행위를 요구하는 상징 작용이어야 한다.    상징은 사전적 조회照會나 그 어떤 수사학적 또는 알고리듬적 전개의 산물이지 않다. 상징은 비의식의 직관과 통찰의 산물이다. 비의식의 시·예술의 도식을 의식의 빛으로 투사해내어야 하는 이유를 오늘의 비평계는 인식해야 한다.        1) 텍스트를 통한 새로운 상징의 생성 행위. 2) 추론은 도식적 양태의 상징으로, 도식적 상징에는 형식․변증의 논리규칙, 문법, 함수관계, 알고리듬 등 여러 약호적 체계의 표상 유형을 들 수 있다. 도식을 ‘표상’이라고 하였지만 도식의 표상은, 질료적 기호로 재현되는 자연적 상징 등과는 달리 우리의 내부에 직관의 양식으로 자리한다. 현상 이면의 본질의 한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비의식은 창조적 정신작용 즉, 상징을 생성하는 정신계 또는 그 작용이다. 무의식은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고, 그것도 창조적 정신 기능이 아닌 개인적 콤플렉스의 이상 징후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점은 프로이트는 말 할 것도 없고 칼 융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칼 융은 집단무의식의 경우 신화소적 상징의 생성처로 보고 있으나, 그 점을 제외한다면 칼 융이 집단무의식을 창조적 정신작용으로 지시하였다고 볼 근거가 없다.    한편, 쉬르레알리슴의 자동기술과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한결 같이 ‘무의식’과 결부지우나 그것은 처음부터 무의식의 성격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윌리엄 제임스 등 철학에서의 ‘무의식’ 개념 역시 상징 또는 창조적 사고 기능의 원천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분트는 심리학을 의식의 문제로 한정하기까지 하였으며 칸트, 피어스, 카시러 등은 상징의 생성과 관련하여 무의식에 관하여선 외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4) 비의식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비의식에서 진행된 상징생성을 위한 신경․생리적 신호작용의 결과물을 기호적 표상으로 나타내는 정신작용이라고 간략히 말할 수 있다. 5) 기호 생성 작용(semiosis)의 이면엔 상징의 기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도식(가추법 등)을 기호로 환원시키고자 한 피어스의 노력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라이프니츠의 보편문법의 논의를 이어받은 카시러는 ‘사실의 논리’는 ‘기호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거나 그와 하나를 이룬다고 생각하였으나(1923) 카시러는 기호와 상징을 분리(1944)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라이프니츠와 피어스보다도 진전된 사고를 가졌다고 할 것이다. 피어스가 ‘사고-기호’라고 하였듯 피어스는 상징(사고)과 기호를 하나로 보았으나 사고와 기호의 상보적 생성에서만이 아니라 사고로서의 상징은 텍스트로서의 기호에 투사된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기호와 상징은 분리적인 것이면서 또한 하나이기도 하다.   변의수   1955년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먼 나라 추억의 도시』 『달이 뜨면 나무는 오르가슴이다』.    단추, 그 아름다운 불구들을 위하여 ―― 잡설에 기대어                                                                                                                                  김    민    정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 중 이구동성이라는 코너가 있다. 주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귀가 찢어질 듯 때려 부수는 음악으로 쩌렁쩌렁한 귀마개를 쓰고서 벌이는 게임. 사회자 허참 아저씨가 주장에게 단어 하나를 보여준다. 온고지신. 주장은 한껏 입을 벌려 또박또박 발음해준다. 옹고집전? 다음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한껏 입을 벌려 또박또박 발음해준다. 온두라스? 다음 주자가 마지막 주자에게 한껏 입을 벌려 또박또박 발음해준다. 아하, 오므라이스! 땡 소리와 함께 귀마개를 벗더니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뭘, 난 분명 그렇게 들었다니까. 오독이라는 이름의 고독을 느낄 때마다 나는 내 시 속으로 더 깊이 침잠하는 데서 쾌락을 찾는 듯싶다. 상처가 있었던가. 물론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또한 상처를 준 적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시든 기대란 걸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시든 빨리 포기하는 법을 익힌 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시든 제3의 손을 어디 앞치마의 포켓이나 후드점퍼 끝에 달린 모자 속 같은 데다 슬쩍 넣어둘 줄 안다. 심장이 아닌 심장 너머에 저 살 궁리로 꼬물거리는 신경다발의 건강함, 나는 사람이든 시든 그것이 사랑임을 믿는다.  사랑이 밥은 안 먹여줘도 영정사진 들 놈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손쉬운 치질이라더니 수술실로 들어가자마자 아빠는 마취 쇼크로 침대 밖으로 퉁겨져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부정맥이라는 병명을 안고 퇴원한지 며칠이 지났을까. 아빠는 스물셋 청년기의 증명사진을 커다랗게 확대해 거기에 대고 아침저녁으로 절을 해대기 시작한다.    무언의 종용, 슬쩍슬쩍 엉덩이를 들썩이며 언제나 이 자리를 박찰까 타이밍을 재고 있는 나는 지금 맞선 자리에 앉아 있다. 어쩌다 시를 알아 시를 썼고 그러다 시인이 되어 이제 겨우 시집 한 권 근근 펴낸 나, 올해로 데뷔 7년째이지만 여전히 시인이라는 호칭에는 에그, 하는 동종의 닭살이 돋는 나…… 작가시라고 들었습니다. 네? 작가는 무슨요, 시 써요 살짝. 제 주변에서 시인은 처음 봅니다. 네? 처음은 무슨요, 천지에 널렸는데. 책은 다음에 사인해서 선물로 주실 거죠? 네? 선물은 무슨요, 보면 토하실 거예요. 그 순간 난데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야, 난데 뭐 하나만 묻자. 친하게 지내는 소설가 선배의 급한 호출을 받고 보니 수화기 너머로 왁자지껄 뒤엉킨 목소리들이 면면으로 떠오른다. 있잖아, 시 쓰는 ○○○는 미래파냐, 아니냐? 뭐야, 짜증나게. 맞선 남자가 힐끗 날 쳐다본다.  샐쭉 웃으며 나는 전화기를 들고 잠시 자리를 피한다. 갑자기 그 얘기가 나왔는데 사람들이 궁금하다고 하잖니. 근데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넌 잘 알 거 같아서. 버럭 할 만한 일은 아님에도 가시에 살 찔린 것처럼 돋아난 성깔을 참지 못하는 나, 내키는 대로 말을 내뱉고 만다. 그게 무슨 계야? 내가 자진해서 들기를 했어, 아님 계주기를 해, 앞자리 타먹고 튄 년도 아닌데 왜들 싸잡아 난리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알아, 성질내서 미안한데 무슨 파든 아니든 그거 따질 시간 있으면 시나 제대로 읽으시라고 해. 그 순간 뚜뚜 걸려 들어오는 또 한 통의 전화, ‘비평가의 시 비평이나 논지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비평 글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게 청탁의 요지란다. 나는 할 말이 없어요. 아니 그래도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시를 그렇게들 읽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어요. 왜 그래도 미래파 얘기 많이들 하잖아요. 시인들이 언제 입 모아 인정한 적 있어요? 만국의 시인이여 단결하라, 도 아니고 참. 오, 그거 좋네요. 쓸 깜냥도 못 되면서 무기라곤 펑크 낼 거예요, 하는 협박과 으름장과 나몰라 도망뿐이면서 김민정, 너는 왜 거절을 모르는 거니.    잘 속고 잘 속죄하나 잘 속이지 못하고 잘 솎아내지 못하는 나, 어떤 식으로든 변명으로밖에 들릴 리 없는 이 빤한 글을 쓰고 있는 건 그럼에도 나는 미래로 가는 차, 어쨌든 나아감을 믿는 바퀴쪹로 구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여기서 또 만나는구나, 미래여. 징글징글하구나, 미래여. 하지만 나는 과거로가 아니라 아무도 누워 본 적 없는 내 무덤가, 내 관 속을 향해 덜 마른 콘크리트 위를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미래 아닌가.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 민정 씨, 무슨 일 있으세요? 답을 주는 물음에 겨워 나는 급작스럽게 써야 할 원고가 있다는 핑계로 맞선 남자와 헤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내 시에 대한 얘기인데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이 문맥은 대체 뭐라니. 선생님, 선배님, 오빠 언니들아, 무식해서 그러는데요 제 시가 정말 그런가요. 돌아오는 것은 말없는 웃음, 그리고 쉬잇 손가락으로 입을 가로막는 침묵.    그래도 간간 발견하는 맑은 눈과 넉넉한 품성의 따뜻한 글 속에서 내게 공부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의 말, 알아듣고 고맙게 메모한다. 사유의 깊이나 체계가 없어 내 시는 시가 될 수 없다는 도로 아미타불의 말, 부끄럽지 않아 계속 딴청이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 이거다 하는 시, 그건 대체 어떤 시란 말인가. 그걸 좇아 교복을 입고 흰 양말을 신고 단발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학교에라도 가봐야 하나. 난 오늘은 콩밥, 내일은 팥밥, 모레는 보리밥, 글피는 찹쌀밥, 그글피는 약밥, 아 잡곡밥도 먹어야 하는데 매일매일 식성을 달리하는 내 도시락은 누가 싸주려나. 그 순간 낯선 번호의 계속되는 울림, 한 남성잡지의 편집자 왈, 요즘 시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단다. 낸들 아나요. 하지만 벌써 나는 그가 보낸 이메일을 열어 질문지를 읽고 있다. 새로운 시라니, 음, 새로운 시라.    나는 지껄인다. “이를테면 ‘새로운’이라는 말에 토를 다는 것부터 젊은 시인들의 시는 시작되지 않을까 해요. 난 유난스럽지 않은 솔직함을 무기로 할 뿐인데 그게 차이라면 차이랄까요. 견자처럼 풍경의 쌍안경을 걸친 척, 똑똑한 척, 착한 척, 만능인 척, 이렇게 도포자락에 붓 쳐대는 일종의 ‘척’을 하지 않고 모자라고 바보 같고 일종의 병신이다 싶은 치부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거, 그러니까 착지할 모래더미를 걱정하지 않고 일단 ‘이다’라는 말씀으로부터 미끄러지기를 즐겨하는 대책 있는 대책 없음이라고나 할까요.    바라건대 저는요, 우리라는 색색의 단추를 한 코트에 달아버리는 멍청한 바느질들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감각 있는 솜씨라면 모를까, 그래서 봐줄만하다면 모를까, 그거 하나도 고마운 일 아니거든요. 단추, 우린 그저 아름다운 불구들일 뿐이잖아요. 그 순간 지웠으나 기억인 낯익은 번호의 울림,   우린 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걸까. 내가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애정이 없어서였을까, 넌 내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 내가 진실한 탓이었겠죠.    그러고 보면 넌 참 독해. 내가 약한 건 몰랐을 테죠. 도통 줄지 않을 것 같던 첫사랑의 부채 따위가 점차 종잇장처럼 가벼워지는 걸 보니 내 시 또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번잡스럽고 그래서 신이 나며 그래서 두렵다. 그러니 여타의 평론가들이 우려한 대로 파벌 개념을 좇아 그걸 즐겨할 시간적 여유가 내게 단 1분 1초라도 있겠는가.    맨 처음 시가 내게로 와 시를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 그렇게 쓰고 읽고 결국에는 파지처럼 버려질 운명으로 나는 시를 살아갈 것이다. 그거면 족하지 뭘 더 바라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입 닥치고 쓰기나 하련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면 될 것을 역시나 이번에도 너무 길어졌다. 아아, 정말이지 시라는 진정한 시의 신은 대체 언제쯤 내게 들르실지. * 허수경의 시 구절에서 변형 김민정   1976년 인천 출생.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it's a blue world                                                                                                                       장    석    원   미래 시가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시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시를 둘러싸고 과거, 현재, 미래가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인다. 시를 포위하고 협박하는 서정과 다른 서정을 거절하는 진부하고 편협한 언어 때문에 시와 시인은 강탈당하여1) 자기 모멸에 빠지고 있다. 기묘한 풍경이다. 근대 이후에 수입된, 출몰한 ‘서정’이라는 개념…… 나는 서정을 인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서정시가 아니라 시이고 권력이다.   현재 이근화의 시 「공놀이」(『칸트의 동물원』, 민음사, 2006)를 읽는다. 시의 전문이다. 아이들 공놀이를 하고 거짓말같이 공이 떠오르고 엄마는 멀리 그늘에서 고구마의 어린순을 다듬고 손끝에 핏물 곱게 들고 나팔꽃 지지배배 몰래 울고 지나갈 비가 지나고 거짓말같이 옷이 마르고 공원에는 시작되는 연인들 끝나는 연인들 쌍을 지어 날아오르고 못 본 척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출 수 있는 아이들 멈추지 않고 자라고 또 자라서, 내 오랜 엄마는 어둡고 팬지는 차갑게 웃고 지고 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공원에 공놀이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엄마와 연인들이 있다. 공원에서 엄마는 고구마의 어린순을 다듬는 중이고, 나팔꽃은 지지배배 우는 중이고, 팬지는 차갑게 웃고 지는 중이다. 공놀이하는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다. 그들이 던진 공이 ‘거짓말같이’ 떠오른다. 연인들의 사랑은 시작과 끝이 반복된다.    아이들은 놀다가 그대로 멈출 수 있는 듯하다. 무미건조한 풍경을 시인은 무연히 바라본다. 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라고 시인은 묻는다. 우리는 시인의 물음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시인의 공원에서 사라질 듯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풍경을 바라본다. 시인 앞에 연인들, 아이들, 나팔꽃, 팬지, 엄마가 있다.    시인은 지금 이 모든 것들을 눈앞에 둔다. 시인은 풍경을 이루는 낱낱을 일일이 호명하고 배치한다. 시를 창조하는 시인은 시의 전권을 쥐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서정시’이다. 시의 발화자는 ‘나’이고, ‘나’는 타자의 언어를 소유할 수 없다. 유리 너머의 풍경이다. 우리는 균질화된, 평면의 대상을 바라본다. 주체 ‘나’의 언어와 타자의 언어 사이에 아무런 권위와 위계가 없는 다성의 세계2)가 아니다. ‘나’의 엄마는 ‘멀리’ 있다. 나팔꽃은 ‘몰래’ 운다. 시인은 목전의 모든 대상들과 거리를 유지한다. 먼 곳에서 거짓말 같은 세계를 바라본다. 시인은 나팔꽃이 몰래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시작되는 연인과 끝나는 연인을 구분한다. 아이들이 연인들을 못 본 척한다는 것도 안다.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자라고 또 자라”날 것까지 안다.  팬지꽃이 ‘차갑게’ 웃다가 진다는 것도 시인은 잘 안다. 모든 사물들을 시인은 자신의 언어로 규정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시인은 “내 오랜 엄마”를 시의 전면에 내세운다.    화자 ‘나’가 드러나지 않는 시에 갑자기 ‘내’를 사용하면서 시인은 슬쩍 시에 개입한다. 시인과 시인의 엄마는 얼마동안 이곳에 있었을까. 시인은 엄마를 사랑했던 것일까. 시인은 ‘멀리’ 있는 엄마를 떠날 수 있을까. 시인은 엄마와 연결되어 있고, 시인은 다가올 미래를 관할하고, 시인은 이 무연한 사물들 때문에 ‘몰래’ 울고, 시인은 못 본 척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있고, 시인은 떠날 수 있지만 떠날 수 없다.    달라지지 않는다. 이 현재 속의 현실 속에서 시인은 ‘지나갈 비’가 지난다고, 옷이 ‘거짓말같이’ 마른다고 말한다. ‘내 오랜 엄마’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자라고 또 자라서” 공원의 연인이 될 것임을, ‘지나갈 비’처럼 곧 떠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에 ‘멀리’ 그늘 속에서 고구마의 어린순을 다듬는다.    이 균제된 풍경을 다스리는 시인은 ‘서정시’를 의식하지 않는다. 이 시는 ‘서정’시일까? 시일까? 이 시는 주체가 세계를 기획하는 시의 본원적 특성을 잘 드러낸다. 주체가 세계를 관장하면서 주체의 단일한 언어로 시를 구성하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나’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공놀이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과거 공놀이하던 아이들, 막 연애를 시작하거나 끝낸 연인들이 떠났다. 지나갈 비가 지나갔고, 거짓말같이 옷이 말랐다. 시인은 공원에 남아 있는데,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거짓말같이 떠올랐던 공과 거짓말같이 말라버린 옷. 엄마 역시 거짓말같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아니 “내 오랜 엄마”는 과거의 그곳에서 여전히 고구마순을 다듬고 있지는 않을까. ‘내 엄마’의 손끝에 핏물이 곱게 들어 있음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 의해 과거의 공원과 현재의 공원이 ‘거짓말같이’ 연결된다.    “그저 화자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관찰하고 있을 뿐”인데, “게다가 그 풍경들은 서로 응집력 있는 연관성을 보여주지도 않음으로써 이질적이고 모호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가. 이근화의 시는 “소수의 시인들만이 전유하는 외계어들로 가득 차 있어서 최소한의 소통과정조차 가로막”3)는 시가 아니다.    과거에 의해 소환당한 현재가 영원으로 치닫는 광경을 독자는 목격하게 된다. 시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독자들은 소통을 거부하는 시인들의 시라고 해서 왜 소통을 거부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모른다고 시를 거부할 수 있는가. 눈앞의 모든 사물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흐름을 거짓말 같다고 인식하는 시인은 그 거짓말 같은 시간의 흐름을 관할하는 창조자이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응축시킨다. 아이와 연인과 ‘나’와 ‘내 오랜 엄마’가 소멸되다가 튀어오르는 공처럼 다시 생의 순간으로 복원된다. 영원히 반복되며 소멸하지 않을 이 순간의 이미지를 나는 이 시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근화는 “모든 것을 제 느낌과 깨달음과 전언에 귀속시키는 서정의 권위”4)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장욱이 넓히려는 ‘서정’의 새로운 권역과 하상일이 지키려는 ‘서정’의 보수적 권역 사이에서 이근화의 시는 ‘다른 서정’을 발산하는 “매력적인 서정”(이장욱)이 되기도 하고, “모든 것이 그저 공놀이와 같은 가벼움으로 치환될 뿐 심각한 고민이나 걱정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판단되기도 한다.    나는 비평의 관점에 따라 동일한 작품이 아주 다르게 평가되는 야릇한 광경을 지켜본다. 이근화의 「공놀이」는 이장욱에게 읽혔는데, 「공놀이」에 대한 이장욱의 평가 때문에 이 
1705    詩란 "내가 나의 감옥"에서 뛰쳐나가기이다... 댓글:  조회:4539  추천:0  2016-10-28
'문둥병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산39번지의 자택에서 간경화로 사망했다. 당시 56세였다. 그가 인천에 정착한 지 25년만이다. 짧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인천과 부평에서 살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센병으로 불운의 삶을 살았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나이 40세인 1959년 음성으로 판명돼 성혜원을 떠나 사회에 복귀했지만, 한센병 환우들을 잊지 않고 부평에 거주하며 죽는 날까지 한센인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계속 했다. 인천시는 올해 '인천 가치 재창조' 선도 사업의 하나로 부평구가 제출한 '한하운 재조명 사업'을 선정했다. 사업으로 한하운 시비와 사이버문학관 건립, 한하운 백일장 개최 등, 여러 가지를 구상하고 있다. 은 한하운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고 그의 삶과 문학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기획취재를 준비했다. 한하운 시인이 남긴 흔적을 찾아 그의 고뇌와 인생이 문학예술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5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1회는 '25년간 살았던 인천에서 그의 흔적을 찾다'이다. 다음호에는 '짧게 살았던 수원과 묻혀 있는 김포에서 그의 흔적을 찾다'를 실을 계획이다. - 기자 말 17세에 나병 진단을 받고...     ▲  한하운(왼쪽) 이리농림학교 재학 시절. ⓒ 김영숙   한하운의 본명은 '태영'이다. 1920년 3월 10일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 쌍봉리에서 한종규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영의 집은 유복했다. 어머니는 함경남도 부호의 외동딸로 17세에 다섯 살이나 어린 아버지와 결혼했다. 아버지 집안은 3대가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으로 지방 지주였다고 한다. 태영은 7세에 함흥으로 이사해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우등생으로 음악과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세에 이리농림학교(현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 수의축산과에 입학했다. 당시 이리농림학교는 국가기관이 세운 식민지 유일의 5년제 학교였으니 부호와 지주의 자식임이 증명된다. 그러나 17세(1936년) 때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현 서울대병원)에서 나병(한센병) 확정 진단을 받았다. '나의 슬픈 반생기(인간사, 1957)'에서 한하운은 '진찰이 끝난 뒤에 조용한 방에 나를 불러놓고 마치 재판장이 죄수에게 말하듯이 문둥병이라 하면서 소록도로 가서 치료를 하면 낫는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하였다. 나는 뇌성벽력 같은 이 선고에 앞이 캄캄하였다'고 기록했다. 태영은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의 성혜(成蹊)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1950년에 정착한 나환자촌의 이름이 '성계원'이다.   성계의 정확한 한자음은 '성혜'이고,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가 많다. 성혜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나병의 악화로 귀국해 요양하다가 중국 북경으로 가 22세(1941년) 때 중국 북경대 농학원 축목학계에 입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최원식(인하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는 2014년 발표한 논문 '에서 '북경대 농학원'의 존재에 대해 1898년에 설립된 중국 최고의 국립대학인 '북경대'가 아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왕징웨이 친일정부가 세운 '북경대학' 농학원이라 추측했다. 진짜 북경대는 일제가 북경을 점령하자 피란길에 올라 1938년 국립서남연합대학이란 이름으로 쿤밍에 자리 잡았다가 해방 후 북경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3대를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의 지방 지주'라는 가계와 유학 경력들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4세(1943년) 때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함경남도 도청과 장진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급성으로 한센병이 발병해 공직을 그만두고 낙향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방안에 틀어박혀 병과 싸워가며 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본명 대신 필명 '하운'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시를 팔아 구걸하던 시인, 첫 시집 '한하운시초' 출간 ▲  한하운의 부평구 십정동 자택 모습 사진. ⓒ 김영숙   해방 후 지주 집안으로 몰려 재산을 몰수당하고 동생과 서점을 운영하다 1946년 3월, 함흥학생데모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29세(1948년) 때 월남했다. 남쪽으로 내려와 곳곳을 떠돌며 밤에는 쓰레기통 옆에서 자고 낮에는 깡통을 든 채 빌어먹는 걸인으로 연명하다 구걸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서울 명동으로 왔다. 명동의 문인들이 자주 다니던 다방에서 자신이 쓴 시 '파랑새' '비오는 길' '개구리' 등을 팔았다. 그 인연으로 당대 유명한 시인들을 만났다. 몇몇 시인의 도움으로 1949년 4월 문학잡지 '신천지(新天地)'에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를 포함해 시 13편이 실렸다. 시인 이병주의 도움으로 한 달 뒤 '한하운시초(정음사. 1949)'를 출간했다. 잡지에 실린 시에 11편의 시를 보탰다. 그가 시인으로 전국에 알려지자, 같은 병을 앓던 환자들이 '구걸하지 말고 같이 모여 살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1949년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수원천 근처 나환자 정착촌에서 8개월간 지냈다. 나병 환자들에 대한 차디찬 시선이 가득하던 시절, 정부는 경기도와 강원대 일대에 사는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 수용하기 위해 인천 부평에 새로운 나환자 수용소를 만들고자 하는 계획으로 한하운과 교섭했다. 한하운은 수원천변에 함께 거주하던 나환자 가족 70여명과 함께 1950년 새 정착지인 '부평'으로 옮겼다. 아름다운 곳에는 저절로 길이 생기는 '성혜원'     ▲  현재 산 24번지 인광교회 주변 새마을금고 건물이 예전 감금원이 있던 터이다.지금 부평농장 사무소 건물 옆에 있는 자리가 예전 공회당 터다. 지금은 남아있는 건물이 아무 것도 없어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경로당 자리가 예전 국립부평나병원이 있던 자리다. 병원은 1968년 문을 닫았고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하운은 나환자 정착촌인 '성혜원'으로 이주해 1950년 3월 자치회장이 됐다. '성혜'는 하운이 다녔던 일본 동경의 고등학교 이름과 같다.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도리지하 자성계(桃李之下 自成蹊)'의 문구에서 인용했는데 '복숭아나 오얏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아래 길을 이룬다'는 뜻으로 복숭아나 오얏처럼 맛있는 열매가 열리면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샛길이 나듯이 덕이 있는 사람의 보람이나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곳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지름길이 생긴다'는 뜻으로도 해석해 이곳 성혜원을 이상향으로 생각한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측한다. 성혜원의 위치는 현재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산 24번지다. 당시 성혜원에선 나환자 70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했다. 현재는 70여 가구 90여명이 여전히 정착촌에서 자치회를 구성해 운영하며 살고 있다. 지난 19일 신분 밝히기를 거부한 자치회 관련자 A씨를 만났다. A씨는 "당시 성계원(현재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성혜원이 아닌 성계원이라 부른다)에는 감금실과 공회당, 국립부평나병원이 있었다. 감금실은 유랑 환자나 공동체 규율을 위반하는 사람을 가둬두던 곳이고, 공회당은 환자들을 관리하고 주민들이 회의하던 곳이었다. 전화가 있어서 전화를 교환해주던 교환실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하운 기리는 사업 원치 않아, 조용히 살고 싶어" ▲  한하운 사망 소식을 다룬 새빛 잡지.     부평삼거리에서 인천가족공원 입구를 지나 간석사거리로 넘어가는 길 왼쪽편이 예전에 성혜원 자리다. 지금은 부평농장이라 부른다. 현재 산 24번지 인광교회 주변 새마을금고 건물이 예전 감금원이 있던 터이고, 경로당 자리가 병원이 있던 부지다. 지금 부평농장사무소 건물 옆에 있는 자리가 예전 공회당 터다. 지금은 남아있는 건물이 아무 것도 없어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정부 시책으로 1968년 12월에 병원 문을 닫았다. 완치되거나 경증인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게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없앴다고 한다. 음성 환자들은 자활할 수 있게 하고, 중증 환자는 소록도로 보냈다. 지금은 소록도에 다리가 생겼지만 그때는 고덕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국립부평나병원이 없어지고 나서 이곳에 230여명이 남아 생활했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양계장 운영 등을 하면서 자립하려고 했다. 그러다 이 지역이 1986년 주거지에서 준공업지역으로 변경됐다. 자치회 성원들이 직접 공장에서 일을 하긴 어려워, 그때부터 공장을 운영하게 공간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료가 다른 곳보다 평당 50% 이상이나 저렴했지만 처음에는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현재 5평에서부터 100평 정도의 공장 600여개가 입주해있다. 부평농장 사무소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임대차계약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지금도 자치회가 잘 운영되고 있다. 대표가 있고 이사들이 있고, 회의 구조로 이사회와 총회 등이 있다. 공장에 입주해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꺼려하냐는 질문에, A씨는 "지금은 괜찮다. 초창기 공장 사장들은 괜찮아했지만 사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불편해 해서 안 오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자치회에서 주민을 소집해 총회를 해 낮에 가급적으로 외출을 삼가자고 결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한하운 시인을 기리는 사업들을 하는 것에 대해 A씨는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우리가 죽은 후에는 뭘 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원치 않는다. 2세대인 우리 자식들이 힘들었다. 친구도 없었고 어디 사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했다. 그렇게 평생 살아온 상처가 있다"고 한 뒤 "한하운이 살았던 곳이라고 알려져 사람들이 보러오는 게 싫다"고 했다. 현재 인천에는 한센인 200여명이 살고 있다. 부평농장이 90여명으로 가장 많이 살고 있고, 청천농장이나 재가환자까지 포함한 수가 그 정도라고 한다. 한국한센복지협회에서 두 달에 한 번씩 방문해 한센인을 케어하고 있다.
    30년 전-1959년 겨울 ―서정춘(1941∼ )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면, 누구든 이 시를 만날 수 있다. 서정춘 시인의 이 작품은 그곳 스크린도어에 적혀 있다. 그런데 누가 서울역에 이 시를 배정했는지 몰라도 그 감각은 정말이지 놀랍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읽게 되는 시 ‘30년 전’이라니. 기차에서 막 빠져나온, 지친 심신이 읽는 ‘30년 전’이라니.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서울역과 이 시의 조합은 잔잔하던 마음마저 요동치게 만든다.  시인은 1941년에 태어났는데, 이 시의 부제는 ‘1959년 겨울’이라고 되어 있다. 계산해 보면 1959년의 시인은 열아홉 살이다. 그리고 마치 열아홉이란 고향을 떠나기 위한 나이인 것처럼, 고향을 떠나왔겠다. 그는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었고, 아버지는 많은 돈을 쥐여줄 수가 없었다. 돈 대신 걱정을, 돈 대신 마음을, 돈 대신 기원을 줄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배부른 곳이 고향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가난한 고향을 돌아보지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너 배불리 잘살라는 말씀이다. 자식이 어디 가서 배곯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이 참 절절하다.  이후 아버지의 말을 입에 물고 시인은 살아 왔다. 얼마나? 이후 30년이나. 시의 제목 ‘30년 전’이 1959년을 의미하니까 이 시가 창작된 시점을 추측하자면 1989년, 시인의 나이 쉰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당부는 열아홉 살 청년을 중년이 되도록 지탱해 주었다. 그뿐일까. 아마도 칠순을 넘긴 지금에도 시인은 당부하던 아버지의 얼굴, 목소리, 분위기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서울역은 어느 때보다 붐빌 것이다. 그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시가 묻는다. ‘나는 고향이 있는가.’ 귀향기차를 탈 모든 사람에게는 물론 고향이 있다. 그런데 시가 묻는 것은 출신 지역이 아니다. ‘나는 나를 살게 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이 짧은 시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목소리를 보러 가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 
1703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시인 -니자르 카바니 댓글:  조회:4102  추천:0  2016-10-28
I Conquer The World With Words   I conquer the world with words, conquer the mother tongue, verbs, nouns, syntax. I sweep away the beginning of things and with a new language that has the music of water the message of fire I light the coming age and stop time in your eyes and wipe away the line that separates time from this single moment.     언어로 세상을 정복하는 시인   니자르 카바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은 아니다. 아랍세계에서는 한때 식자층 사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또 유명한 '이집트의 여가수' 움 칼툼이 그의 시를 노래로도 불렀다고 한다. 움 칼툼의 입을 통해 가락을 얻었던 카바니의 시는 2차대전 뒤 '절망의 시대'를 살아갔던 아랍인들에게는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며 동시에 마음을 달래주는 벗이었을 것이다. 타리크 알리의 '근본주의의 충돌'에는 카바니의 역작 '패배의 서'가 나온다. 그 시를 읽고난 뒤 카바니에 대한 자료를 좀 찾아보았다. 아랍어로 된 그의 시를 원작 그대로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그의 시에서 줄기를 이루는 관능성이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그 관능성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카바니의 싯귀 몇마디에 가슴이 저렸고, 민족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 속에 담긴 통한을 얼핏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바니는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드문 시인이라고 했다. 형식에 얽매여 있던 아랍의 시를 해방시킨 해방자이자, 선구적으로 여성의 해방 그리고 '몸의 해방'을 외치며 이슬람 근본주의에 도전한 사람이기도 했다. 카바니라는 인물과, 시 몇편을 소개한다.   Hawamish 'ala Dartar al-Naksah (패배의 書) 1.  낡은 단어는 죽었다.  낡은 책들도 죽었다. 닳아빠진 신발처럼 구멍난 우리의 언어는 죽었다.  우리를 패배로 이끈 정신도 죽었다. 2.  우리의 시에서는 신내가 난다. 여자들의 머리, 밤, 커튼, 소파들에서도 신내가 나고 있다. 모든 것에서 신내가 났다. 3.  슬픔에 잠긴 내 조국, 섬광 속에서 사랑의 시를 써왔던 나를 변화시켰구나. 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4.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구나. 우리는 우리의 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5.  동양적 호언장담에 휩싸여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과장된 오만함으로, 깡깡이와 북을 든 채 우리는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패배했다. 6. 우리의 외침은 우리의 행동보다 더 크구나. 우리의 칼은 우리의 키보다 더 크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7. 요컨대 우리는 문명의 망토를 입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8. 피리나 플루트로는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9.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5만 개의 새로운 난민텐트가 지어졌다. 10. 하늘을 저주하지 말지어다 만약 하늘이 너를 저버렸을지라도 환경을 탓하지 마라. 신은 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승리를 준다. 신은 칼을 두드리는 대장장이가 아니다. 11. 아침에 뉴스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듣는 것도 고통스럽다. 12. 우리의 적은 우리의 국경선을 넘지 않았다. 적들은 개미처럼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13. 오천년 동안 우리는 동굴 속에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우리의 문화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의 눈은 파리들의 안식처일 뿐이다. 친구여, 문을 부숴라, 머리를 감아라, 옷을 빨아라, 친구여, 책을 읽어라, 책을 써라, 언어와 석류나무와 포도를 길러라, 안개와 눈의 나라로 항해하라. 너희가 동굴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희를 혼혈아의 피로 간주한다. 14. 우리는 영혼이 텅 빈 채로  두껍게 살이 올라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마법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체스를 두거나 잠을 잔다. 우리가 과연 '신이 인류를 위해 내린 축복 받은 민족'이란 말인가. 15. 우리의 사막에 있는 기름은 화염과 불의 劍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숭고한 조상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기름을 창녀의 발가락 사이로 흘려 버리고 있다. 16.  우리는 거리로 미친 듯이 뛰었다. 밧줄로 사람들을 끌며 창문과 자물쇠를 때려부수며 우리는 개구리처럼 칭찬하고 개구리처럼 맹세하며 소년을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면 그 영웅은 곧 불량배가 되고 만다. 우리는 멈춰 서서 생각하지 않는다. 사원에서 멍하니 몸을 웅크리고서 시를 쓰고 잠언을 외우면서 신에게 구걸한다. 적을 이기게 해달라고. 17. 만일 내 안전을 약속받고서 술탄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술탄이여, 당신의 미친 개가 내 옷을 짖어버렸소. 당신의 염탐꾼이 나를, 그 눈이 나를, 그 코가 나를, 그 발자국이 나를 못살게 했소이다. 운명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내 아내를 욕보이고 친구들의 이름을 욕되게 했소이다. 술탄이여 내가 당신의 벽에 가까이 다가서서 내 고통에 대해 말했을 때 당신의 군인들은 내게 발길질을 했고  신발을 핥도록 강요했소이다. 술탄이여 당신은 두 번이나 전쟁에 패했소이다 술탄이여 우리 국민의 절반은 혀를 가지고 있지 않소 혀가 없는 사람들을 어디에 쓸수 있겠소? 우리 국민의 절반은 개미나 쥐새끼처럼 갇혀 있구려. 벽과 벽 사이에."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술탄에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은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배했소. 당신의 자식들을 보살피지 못했단 말이오." 18. 만약 우리가 단결을 땅 속에 묻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만일 우리가 총검으로 단결의 어린 싹을 짖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단결이 우리의 눈망울 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개들이 우리의 살결을 물어뜯지는 못했을텐데. 19. 우리는 성난 세대를 원한다 하늘을 개척하고 역사를 날려버리며 우리의 생각을 날려버리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세대를 원한다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 우리는 거인의 세대를 원한다. 20. 아랍의 어린이들아. 오, 미래의 씨앗들, 우리의 사슬을 깨뜨려다오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아편을 죽이고 망상을 없애 다오. 아랍의 어린이들아, 질식할듯한 우리 세대를 따르지 마라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수박껍질만큼 가치가 없다. 우리를 따르지 마라. 우리를 닮지 마라. 우리를 받아들이지 마라. 우리의 생각도 받아들이지 마라. 우리는 사기꾼과 도둑의 민족이다. 아랍의 어린이들아,  오, 봄비여, 미래의 씨앗들이여, 너희는 패배를 극복할 바로 그 세대다. (타리크 알리, 에서 재인용. ) 분노한 사람들   오, 가자의 학생들이  우리를 가르친다 모든것을 잊어버려  가진 것 없는  우리를 가르친다 우리는 인간이니 인간이 되라고 가르친다 어린 그들이 우리를 가르친다 바위가 어떻게 아이들의 손 안에 들어가 귀중한 다이아몬드가 되었는지 어린아이의 자전거가 지뢰가 되었는지를. 비단 매듭이 매복이 되고 고무젖꼭지조차도 가둬놓지 않으면 칼이 된다는 것을 오, 가자의 학생들은 방송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우리 말은 듣지 않는다 공격 공격 전력을 다해 모든 걸 손에 꼭 붙들어쥐고. 우리에게는 묻지 않는다 우리, 계산 밖에 모르는 사람들 덧셈 뺄셈만 아는 사람들 너희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우리들은 포기해다오 우리는 군대에서 도망쳐온 도망자들이다 밧줄을 늘어뜨려 우리를 매달아다오 우리는 죽어야할 사람들이다 묏자리조차 없는 주인 없는 고아들이다. 방구석을 지키고 앉아 우리는 너희에게 말했다 용과 맞서 싸우라고 한 세기 동안 너희들 앞에 움츠린 채로. 그리고 너는  한달만에 자라났다 오 가자의 학생들이여 우리가 쓴 책들 따위로 고개를 돌리지 마라 우리의 얘기는 읽지도 마라 우리는 너희 아비들이 아니란다 우리를 닮지 마라 우리는 우상이란다 우리를 숭배하지 마라 우리는 정치적 사기와 억압에 연루돼 있다 우리는 무덤과  감옥을 만들고 있다 이 공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다오 그리고 우리 머리에서 아편을 몰아내다오 우리에게 가르쳐다오 땅을 지키는 방법과 슬픔에 잠긴 메시아를 두고 떠나지 않을 방법을 오 사랑하는 아이들아, 안녕. 신께서 너희의 시간들을 자스민 향기로 채워주시길 너희들은 갈라진 대지에서 솟구쳐 올라 우리가 가진 상처에  머스크 장미를 심었다 이것은 공책과 잉크의 혁명이다 너희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우리를 덮어다오 우리의 영웅주의와 자만심 그리고 추악함을 씻어내다오 그것들을 씻어내다오 모세를 두려워하지도, 모세를 쫓아내지도 않도록. 그리고 올리브를 수확할 준비를 해라 이 유대인의 시대는 정녕 환영에 불과할지니 우리가 보기엔 확실한 것 같지만 곧 무너져내릴지니. 오 가자의 미치광이여 미치광이처럼 환호하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면 정녕 이성의 정치의 시대는 지나간 얘기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광기를 가르쳐다오   예루살렘     눈물이 마르도록 울었다   촛불이 사그러들때까지 기도했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릴때까지 무릎을 꿇었다   무하마드와 그리스도에게 물었다   예루살렘, 예언자의 빛나는 도시, 천국과 땅을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길!   예루살렘, 미리아드의 첨탑이 있던 너는, 불타는 손가락들을 가진 작고 예쁜 소녀가 되었구나 동정녀의 도시, 너의 눈은 슬픔에 빠졌다 예언자가 들렀던 그늘진 오아시스, 너의 거리는 슬픔에 잠기고 모스크의 탑은 무너졌다 도시는 일요일 아침 성물 안치소에서 종을 울리는  검은 옷의 사람들로 가득찼다 성탄 전야에는  누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줄까 눈물이 쏟아져 눈꺼풀이 흔들리는 슬픔의 도시 누가 성서를 구해줄까 누가 꾸란을 구해줄까 누가 그리스도를, 인간을 구해줄까   예루살렘, 나의 사랑하는 도시, 내일은 레몬 나무에 꽃이 피겠지 푸른 줄기와 가지에는 기쁨의 꽃이 피어오르고 너의 눈에 웃음이 감돌고 비둘기가 성스러운 지붕위로 돌아오리라 아이들은 다시 뛰놀고 부모와 자식들은 밝은 거리에서 만나리라 나의 도시, 올리브와 평화의 도시.     /번역 딸기    
1702    아랍의 詩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댓글:  조회:4861  추천:0  2016-10-28
                                           니자르 카바니  詩           다마스쿠스,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나   
 우마이야 모스크 마당에 들어서면 
 모두가 서로 인사를 한다 
 모퉁이는 모퉁이에게, 타일은 타일에게, 비둘기는 비둘기에게 
 쿠피 경전이 새겨진 정원을 걷는다 
 신의 말로 이뤄진 아름다운 꽃들을 잡아당겨보고 
 모자이크의 소리, 기도하는 이들의 마노 구슬을 눈으로 듣는다 
 미나레트의 계단을 오르면 내게 와 닿는 소리 
 자스민 꽃으로 오세요, 자스민 꽃으로 오세요.                       그림에서 얻는 교훈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는 숲 속의 나무들도 시민군이 되고 장미도 방탄복을 입는단다 
 무장한 밀의 시대엔 새들도 무장을 하고 문화도 무장을 하고 종교도 무장을 한단다 
 숨겨진 총을 찾아내지 못하고서는 빵 한 덩어리 살 수 없단다 
 얼굴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서는 들판의 장미를 꺾을 수 없단다 
 손마디가 폭탄에 날아가지 않고서는 책 한 권 살 수 없단다 
 아들아 네가 자라서 아랍의 시를 읽게 되면 말과 눈물은 쌍둥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랍의 시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눈물이라는 걸 알게 될 거란다.                     ...시들이 너무 아름다워 두꺼운 내 마음도 찔려 수액을 두어 방울 떨어트렸다.  다른 언어로 옮겨 놓아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랍어로 읊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 저항의 로맨티시즘  아랍의 '망명시인'으로 유명한 니자르 카바니는 1923년 3월 21일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났다. 스물한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다마스커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1945년 외교관의 길에 들어섰지만, 시에 대한 열정 때문에 후일 그만뒀다.  카바니는 관능적이고 로맨틱한 산문들을 써서 아랍의 다양한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카바니가 아랍어 신문인 Al Hayat에 실었던 기사와 시들은 12권짜리 묶음으로 나와있다). 반면 그의 시들은 일상언어로 구성돼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집트의 소설가 겸 주간 '문학뉴스' 편집장인 가말 엘 기탄티는 "엘리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시를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고 카바니의 업적을 평가한다. 또다른 이집트 소설가 모나 헬미는 "카바니의 위대함은 남녀 사이의 로맨스 뿐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압제자와 피압제자의 관계를 묘사할 때에도 아름다운 시어들을 구사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평했다.  첫 번째 시집 The Brunette had Told Me (1944)에는 고향인 다마스커스가 강력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The Jasmine Scent of Damascus"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카바니의 시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쪽으로 향하게 된다.  아랍세계 전역에서 애송됐던 2행시 "O Sultan, my master, if my clothes are ripped and torn it is because your dogs with claws are allowed to tear me"에는 독재 혹은 공포정치에 대한 저항정신, 그리고 아랍인들이 공유했던 좌절감 따위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2행시 연작 형식으로 돼 있는 이 싯구는 '패배의 書' Hawamish 'ala Dartar al-Naksah 의 일부분이다).  아마도 카바니가 '술탄'이라 부르며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시리아의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였을 것이다(아사드는 2000년에 죽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 바샤르가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어쨌든 이 시를 발표한 뒤 카바니는 시리아 뿐 아니라 아랍 전역에서 숭배의 대상이 됐다. 시리아든 이집트든 상황은 비슷했을테니까.  당신의 미친 개가 내 옷을 짖어버렸소  카바니의 시에서 아랍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이스라엘과의 '6일 전쟁'에서 아랍권이 대패한 뒤부터다. '패배의 서'에 딸린 노트에는 카바니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카바니는 연애담 대신 아랍-이스라엘 분쟁과 같은 정치적인 주제 쪽으로 시각을 돌리게 됐다. 그는 이 치욕적인 패배의 탓을 아랍의 무능한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아랍인들은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도,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민사회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들고나온 카바니의 시는 아랍 문학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비평가들은 "여자들에게 바치는 헌시, 사랑 얘기 따위나 써온 작자가 국가적인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아냥거렸고, 어떤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점잖은 기풍'에 맞지 않게 관능적이고 감각적이었던 그의 시가 청소년의 도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리타분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카바니가 패배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아랍인들에게 손가락질이나 해대는 사디스트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즉 그는 '아랍 군대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이적분자'라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작가들은 카바니를 비난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카바니는 가말 압둘 나세르 이집트대통령에게 위협에서 보호해주도록 청원하는 편지를 써야했을 정도였다.  적은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카바니가 아랍인들의 사랑을 받은 동시에 지탄을 받았던 것은, 그가 패전의 원인으로 아랍 내부의 문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패배의 서'에서 카바니는 말한다.  The Jews did not come across our borders,  but they crept in like ants through our defects.  우리의 적은 우리의 국경선을 넘지 않았다  적들은 개미처럼 우리의 나약함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상실(이스라엘 건국)과 1967년 전쟁의 패배라는 두 가지 치명적인 패배에 대해 카바니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충격과 상실감이었지만, 그는 곧 미래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찾는 의지력을 회복한다.  O (our) children  rain of the spring, buds of hopes!  you are fertile seeds in our barren life;  you are the generation that will vanquish the defeat.  어린이들은 봄비, 희망의 싹들  너희들은 불모의 삶에 풍요로운 씨앗을 내려  패배의 그늘을 가시게 해줄 세대  (Palestine and Modern Arab Poetry 수록)  카바니가 눈에 띄는 또하나의 지점은 여성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Salma Khadra Jayyusi의 말을 들어보자.  "보수적인 교육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던 카바니는 여성문제를 한때의 유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구적인 여성관(女性觀)을 갖고 있던 그는 아랍권에 페미니즘이 유행하기도 전에 자신만의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쓴 에로틱한 산문들에는 그가 생각했던 '자유' 개념이 드러나 있다.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총체'로서의 자유를 추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여성의 몸과 영혼을 해방시켜라  정치적 자유를 논했던 시인은 카바니 이전에도 아랍세계에 많이 있었다. 정치적 자유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투사들만이 시인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랍에는 출신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시인과 작가들이 넘쳐났다. 망명시인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카바니가 거둔 성과는 두드러진다. 이는 그가 정치적 억압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랍 문화의 금기들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관능'이었다.  그는 수세기동안 이어져 내려온 억압적인 규율로부터 육체와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와 신체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사회의 금기로부터 여성들을 빼내어 여성들로 하여금 잔인한 성적 차별을 자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외쳤다.  한번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기만은 있을 수 없다. 광신도들의 역습이 종교, 명예라는 이름 아래 시작됐지만 보수파들의 반격이 카바니의 언어를 왜곡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미 자각되기 시작한 것을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었다. 카바니가 외쳤던 것들은 미약한 형태로나마 지금까지도 아랍인들의 정신 속에 살아 있다. 그의 시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혼의 나팔소리다.   Nizar's Life March 23 1923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출생 Dec 28 1941 시리아 독립 1944 첫 시집 "The Brunette Told Me" 발표 1945 다마스커스대학 법학과 졸업, 외교부 근무 시작 1947 첫번째 엔솔로지 Childhood of a Breast 발표 1947-49 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서안, 예루살렘 점령 May 15, 1948이스라엘 건국 1954 Bread, Hashish and Moonlight 발표 1956 수에즈 전쟁 1957 Poems For Nizar Qabbani 출간 1961 My Beloved Published 발표 1963 Poetry is a Green Lamp 발표 1965 스페인어로 된 Five Letters to My Mother 발표 1966 외교관직 사직, 런던 이주. Drawing in Words 출간 1967 6일전쟁. 이스라엘, 골란고원 점령. '패배의 서' 초안 작성 1968 The Diary of a Blase Woman, Palestine Liberation Movement, Poets of the Occupied Land 발표 1970 The Book of Love, Commando Graffiti on the Walls of Israel 발표 1972 A Hundred Letters, Outlawed Poems 발표 1973 Balquis al Rawi 와 결혼, 맏아들 사망. 4차 중동 전쟁 발발 1976 시리아군, 레바논 북부 점령 1979 미-이스라엘 평화조약 체결, 이란에서 호메이니 집권 1981 부인 Balquis, 친이란계 게릴라 공습으로 사망 1982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1987 Modern Arabic Poetry An Anthology 발표 1990 Abu Jahl buys Fleet Street 퇴고 1998 On Entering the Sea: The Erotic and Other Poetry of Nizar Qabbani 발표 1998.5.1 런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빵, 해시시, 그리고 달   Nizar Qabbani   동쪽에서 달이 태어날 때 흰 지붕들 위로 잠든채 표류해갈 때 높이 떠오른 빛덩이 아래로 사람들이 가게 문을 닫고 떼지어 행진해간다 달을 만나러 빵과 라디오를 들고 산꼭대기로 환각제를 들고서 거기서 사람들은 마약을 사고판다 그리고 이미지들, 달이 생명을 얻을 때 사람들은 죽어간다 저 빛나는 원반이 내 고향의 무엇이런가 예언자의 땅, 검소한 사람들의 땅 담배를 씹고 마약을 팔아대는 사람들의 땅 달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무어가 있나 용기를 탕진하면서 천국을 구걸하는 우리들에게 게으르고 나약한 이들에게 천국이 무슨 필요가 있나 달이 생명을 얻을 적에 사람들은 시체로 변해간다 그리고 성인들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밥과 아이들을 내놓으라 한다 세련되고 우아한 깔개를 펼치고서 '운명' 혹은 '숙명' 이라는 이름의 마약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 조국, 달빛이 내리꽂힐 때  나약함과 부패가 사람들을 붙들어매는 땅 깔개들, 수천개의 바구니들, 찻잔들, 그리고 언덕 위에서 맹세한 어린아이들 어리석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빛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내 조국 모두가 장님으로 살아가고 기도하고  간음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곳 그들에겐 언제나 초승달 뿐이다 "오 초승달이여! 기적의 신이 기다리고 계시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당신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동녘에 계시네 감각을 잃은 군중을 위한  다이아몬드 한 무더기" 달이 저물어가는 동쪽의 밤 동녘은 명예와 활력을 모두 빼앗겨 버리다 네 명의 아내를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심판의 날을 믿는  맨발의 군중들 꿈속에서만 빵을 먹을 수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 집안에서 기침으로 밤을 새던 사람들 약이라고는 구경 한번 못 해보고 불빛 아래 시체처럼 쓰러지는 사람들 어리석은 울음소리 죽어가는 흐느낌만이 있는 내 조국 초승달이 뜰 때마다 눈물이 늘어나고 형편없는 류트 혹은 '밤'의 노래곡조에 감동하는 곳 내 조국,  검소한 사람들의 땅, 끝없는 노래를 길게 늘여 불러 동녘을 소비하고 파괴하는 곳 동녘은 역사를 씹어대고  무기력한 꿈과 공허한 전설을 씹어대면서 아부 자이드 알 힐랄리의 피카레스크에서 영웅주의의 총합을 본다 1954 ==============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I am with terrorism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장미와 여인들, 위대한 문학과 푸른 하늘을 보호하려 들면. 점령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물도 없고 공기도 없다 천막도 없고 낙타도 없다 짙은 아라비아 커피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우리 내장과  발키의 머리카락,  메이순의 입술을 지키려 들면. 힌드와 다드, 루브나와 라바브,  거짓을 폭로하듯 그들의 채찍에서 흘러나오는 코흘의 강물을 보호하려 들면. 나는 더이상 비밀스런 시,  비밀스런 구호, 혹은 문 뒤에 숨겨둔 책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베일을 쓰고 거리를 걷는  시와 함께 하지도 않을 것이다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파괴되고 찢겨지고 사그러진 고향,  아무 주소도 없고 이름도 빼앗겨버린 나라에 대해 쓰면   나는 고향의 흔적들을 찾는다 위대한 시들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은, 칸사의 탄식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고향을.   빨강, 파랑, 혹은 노랑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점령지의 지평선을 찾는다   고향에서 우리는 신문을 사 볼 수도, 뉴스를 들을 수도 없다 새들의 지저귐마저  금지된 점령지 테러에 물든 고향땅에서 작가들은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 길들여져갔다   고향의 시는 고향의 땅을 닮았다 공허한 말들 리듬도 없고 기형적인 얼굴과 혀를 가진 수입된 아잠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사람들의 걱정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머니 대지와  인간의 위기   명예도 없고 편자도 없이 평화협상으로 가는 점령지.   남자들은 그릇에 오줌을 누고 여자들은 명예를 짓밟혀버린 고향   우리 눈에 소금 우리 입술에 소금 우리 말에 소금 자아가 이토록 메마를수도 있구나 불모의 카흐탄에서 물려받은 유산이런가 우리 나라에는 무와이야도, 아무수피얀도 없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체념에 빠진 얼굴 그들은 우리의 집과 빵과 올리브기름을 빼앗아 빛나는 역사를 흔한 잡동사니로 만들었다   우리 삶에는 어떤 시도 남지 않았다 술탄의 침대에서 순결을 잃은 뒤로   그들은 비천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모든 것이 타락해버렸을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역사서를 찾는다 일족을 이끌고 솀족을 정복했던 우사마 빈 알문키트와 우크바 이븐 나피 오마르, 함자 그리고 할리드를. 잔인한 강간과 불길에서  여성들을 구했던 무스타심 빌라흐를 찾는다   나는 후대의 사람들을 찾는다 겁에 질린 고양이들 사이에서 새앙쥐같은 술탄의 치세 때부터 스스로의 영혼을 겁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본다   온 나라가 장님이 되었나 색깔조차 구별할 수 없는 것일까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우리 땅을 찢고 우리 역사를 찢고 우리의 복음을 파괴하고 쿠란을 찢고 예언자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이스라엘의 불도저 밑에서 죽기를 거부하면. 그것이 우리의 죄라면 그렇다면, 보라, 테러리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무굴과 유대와 바바리안의 손에서  말살되기를 거부하면, 제왕 중의 제왕이 주재하는 안보리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면.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늑대와 협상하기를 거부하면 매춘부와 손 맞잡기를 거부하면   아메리카 여러 민족의 문화를 말살시켜 아무런 문화도 없고 여러 문명을 말살시켜 아무 문명도 갖고 있지 못한 아메리카 벽이 없는 강력한 건축물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미국이 헤브루의 옷을 입고 더욱 바보스럽고 부유해지고 강력해져가는 이 시대를 거부하면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예루살렘에 알 할릴에 가자에 나스라에 장미를 집어던지면 포위된 트로이에 빵과 물을 가져다주면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종교에 빠진 지도자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면 통합주의자들은 모두 브로커로 변해버렸다   우리 문화에 맞서 가증스런 범죄를 행하면 위대한 칼리프의 질서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그들의 자리를 노리면 정치의 법률을 공부하고 신을 부르면 알 파타의 글, 정복의 장(章)을 읽으면 금요일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모두 테러리즘에 익숙해진 자가 된다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먼지 쌓인 명예와 우리 땅을 지키려 들면 우리를 강간하는 사람들 우리 중에 강간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려 하면 사막의 야자나무와 하늘에 반짝이는 마지막 별 하나 어머니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마지막 젖 한방울을 지키려 하면. 이것이 우리의 죄라면 테러리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테러가 러시아와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에서 온 자들로부터 나를 구해줄 수만 있다면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들어와 우리 어깨를 짓밟고 알 쿠드의 첨탑과 아크사 사원의 문을 빼앗고 아라베스크와 돔을 도적질했다   메시아, 나자렛의 예수, 동정녀 마리암 베툴라 그리고 성스러운 도시를  죽음과 파괴의 사절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면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지난해 민족주의자들의 거리는 끓어올랐다 야생마처럼 강물은 젊은 영혼으로 넘쳤다   그러나 오슬로 이후 우리에겐 더이상 이빨이 없다 우리는 길잃은 눈먼 사람들이다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전력을 다해 시의 유산과 화려한 문명과 산들 사이로 흐르는 피리소리와 거울처럼 비치는 검은 눈을 지키려 들면   테러리즘으로 고발당한다 엘 아주레의 바다를 묘사한 잉크 냄새를 지키려 들면 말할 자유와 신성한 책들을 지키려 들면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테러가 사람들을 독재자의 폭정에서  구해줄 수만 있다면 인간의 잔인함에서 인간을 구해주고 레몬과 올리브나무, 레바논 남쪽의 새들과 골란고원의 웃음을 돌려줄 수 있다면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테러가 우리를 예후다의 카이사르와 로마의 카이사르로부터  구해줄 수 있다면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아메리카와 이스라엘이 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나눠쥐고 있는 한   도살자들이 이 새로운 세계를 손에 쥐고 있는 한 내 모든 시와 내 모든 말과 내 모든 이를 걸고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미국 상원이 자기네 법과 포고령을 가지고 상벌을 좌지우지한다 해도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나는 이르하브(테러리즘) 편이다 이 신세계질서가 아랍의 냄새마저도 증오하는 한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이 신세계질서가 내 자식들을 학살하고 내 자식들을 개들에게 보내려 하는 한   이 모든 것을 위해   나는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London, 15 April 1997.    /번역 딸기 The face of Qana 카나의 얼굴 1 카나의 얼굴 예수의 얼굴처럼 4월의 바닷바람처럼, 창백한. 빗물처럼 흐르는 피, 그리고 눈물. 2 숯덩이가 된 우리 몸을 짓밟고 그들이 카나로 들어왔다 이 남쪽땅에 나치의 깃발을 올리며 폭풍의 한 장을 열어젖힌다 히틀러는 가스실에서 그들을 불태웠고 이제 그들은 히틀러의 뒤를 이어 우리를 불태운다 히틀러는 그들을 동유럽에서 내쫓았고 이제 그들은 우리를 우리 땅에서 내쫓는다 3 그들이 카나에 들어왔다 굶주린 늑대처럼 메시아의 집을 불태우고 후세인의 옷과 남쪽 땅을 짓밟는다 4  폭격을 맞은 밀밭과 올리브나무, 담배밭, 그리고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 폭격을 맞은 카드모스 폭격을 맞은 바다와 갈매기들 폭격을 맞은 병원들,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들, 학생들 폭격을 맞은 남쪽지방의 아름다운 여인들 달콤한 눈 속엔 짓밟힌 정원들 5  우리는 알리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걸 보았고 피묻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 속에 기도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6  누가 카나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이 곳은 두 번째 카르발라였다고 양피지에 새겨줄 수 있을까 7  카나는 숨겨져 있던 것의 베일을 벗겼다 우리는 아메리카를 보았다 유대 랍비의 오래된 옷을 입고 학살을 이끌며 이유 없이 우리 아이들을 폭격하고 이유 없이 우리 아내들을 폭격하고 이유 없이 우리 나무를 폭격하고 이유 없이 우리의 생각을 폭격하는 아메리카, 세계의 여왕 그들은 헤브루에서 아랍을 깔아뭉개라는 포고령을 내린 것일까 8  아메리카의 지배자는 매번 우리를 죽이기 위해 대권을 얻는 것인가 우리, 아랍을 죽이기 위해 9  우리는 하나의 아랍이 나타나 우리 목을 찌르는 가시덩쿨을 빼내주기를 기다렸다 한 명의 영적인 지도자, 한 명의 왕, 한 명의 돈키호테,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 수염을 깎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할리드, 타리크 혹은 안타라를 기다리면서 허튼 수다만 늘어놓고 있었다 학살이 끝나고 나서 그들은 팩스 한 장을 보냈다 기도를 마친 우리는 그것을 읽었다 10  우리의 절규에 이스라엘이 무슨 두려움을 느끼랴? 우리가 팩스를 보내면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랴 팩스의 지하드는 성전 중에서도 가장 나약한 성전이다 우리가 쓴 단 하나의 텍스트는 우리를 떠나간 순교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올 모든 순교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11  알 무카파, 자리르, 그리고 파라즈다크. 이스라엘이 그들의 무엇을 두려워하랴 무덤 입구에서 시를 집어던지는 칸사. 타이어를 불태우고 코뮤니케에 서명하고 상점을 부수면 그녀가 두려워할까 우리에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왕이 없다는 걸, 우리에게 있는 것은 수다장이들 뿐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는데 12  북을 친다고 해서, 옷을 찢고 뺨을 긁어댄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두려워하랴 아드와 타무드의 이야기를 듣는다 해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두려워하랴 13  우리 민족 모두가 코마상태에 빠져 있다 정복의 시대 이래로 우리는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14  우리는 덜 익은 밀가루반죽 같은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이 학살과 테러를 계속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게을러지고 냉담해져간다 15  질식할 것 같은 점령 점점 추해져가는 사투리 격리돼 가는 녹색 땅들 메말라가는 여름의 나무들 그리고, 변덕스럽게 이전의 경계선들을 잡아먹어가는 경계선들. 16  이스라엘이 우리를 모두 학살할거야. 못할 까닭이 없지. 이스라엘은 히샴, 지야드, 알라시드를 죽일거야. 못 그럴 이유가 없지. 왜 아니겠어? 바누 타흘라브를 죽이고 그들의 아내를 빼앗을거야. 왜 아니겠어? 바누 마젠을 죽이고 그들의 자식들을 빼앗아가고. 왜 아니겠어? 바누 아드난의 바지를 무릎으로 끌어내리고 입술과 목을 갈망할지도! 17  이스라엘이 무엇때문에 아랍세계를 두려워하겠어 그들이 예후다가 되었는데 1996  번역 딸기 ++ 카나 대학살: 199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카나(Qana)에 있는 UN 캠프를 폭격, 107명을 학살한 사건
1701    詩적 상상력을 중첩, 확대하는것은 실체(체험)를 바탕하기... 댓글:  조회:4082  추천:0  2016-10-27
4. 투사, 삶의 본질에로의 날카로운 진입 시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가 있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하여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그 주관은 일체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획득된 것이며 순간적으로 지각된 느낌을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논증적인 결론에 뒤지지 않는 심정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이 당연한 주관성을 엿봄으로써 공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함에 대한 반감을 토로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이 내밀하고 주관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건네는 공감이야말로 시의 아름다움이 갖는 본질적인 표딱지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주관을 가능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이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 투사라함은 시적대상에 시인의 삶이 용해되어 그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를 쓸 때 사물의 겉면만을 보고 쓴다면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연륜이나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함께 동화되어 신선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투사일 것이다 墨畵 김 종 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自尊 화창한 가을날 벌판 끝에 밝고 환한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 시 묵화는 회화적이다 이는 첫 행과 두 번째 행을 통해 누구의 눈에라도 확연히 그 풍경을 지각할 수 있다 저물무렵 아마도 깡마른 손임에 분명한 할머니 손이 물억고 있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외딴집 울타리 속의 풍경. 제목이 묵화이듯이 어떤 묵화를 바라보고 썼거나, 거꾸로 풍경과 人事의 여러 자잘한 가지를 생략해버리고 고단위의 긴장과 절제의 방법으로 여백과 농담의 미가 충만한 묵화의 세계를 지향앴거나 상관없다 이 시는 묘사적 풍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3행으로 넘어가면서 직바로 본질로 진입해 가는 시인의 날카로운 주관적 투사, 즉 진술 곧 " 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말해버림으로 무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지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풍경이 소와 할머니 사이에 지극한 교감으로 바뀌고, 또 단순하고 객관적인 풍경이 생의 비애, 존재가 맞닥뜨린 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의 울림을 고스란히 확인케 함으로써 우리를 천박하고 저열한 우리의 그저 놓여있는 일상을 새롭게 충전하는 것이다. 시 자존도 이 점에선 시 묵화에 한 점도 뒤지지 않은 시이다 오히려 묵화가 3행부터의 투사적 진술이 우리를 깨우치긴 하지만 존재와 풍경이 감추고 있는 아득한 비의를 약간은 깨버린듯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 자존은 그렇지 않다 이 시에서도 너무나 확연한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화창한 가을날이면 하늘은 높고 햇살은 순금빛으로 쏟아지고 대기는 맑다 못해 푸르른 날일 것이다 그런 날 벌판 끝에 그 햇살을 받고 나무는 역시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좋겠고 투명한 갈색으로 빛나는 느티나무도 좋겠다 얼마나 밝고 환할 것인가 그것이 우쑥 솟아있다 황금나무다 세계수다 은행나무라면 땅에서 하늘로 팔 벌린 상태일 것이고 느티나무라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는 모습일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나 모두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영매이다 어쨋든 그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고 정정하고 성성하고 밝고 환할 것인가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의 언어적 그림이다 이에 덧붙여 연을 나눈 마지막 한 줄이 투사적 진술을 감행한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라고 객관적 사실은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날 수도 있고 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밝고 환한 나무에서 새가 날지 않고 어디서 날겠는가 새는 자유 순수 평화 등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새는 인간의 비상의 꿈을 하늘로 치솟음을으로 상징해 준다 그러나 들판의 새는 대개 옆으로 난다 여기 밝고 환한 나무에서 나는 새도 그 나무에서 솟는 새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 나무를 가로질러 나는 새이기도 해야한다 그래야 나무의 수직과 새의 수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는 이런 모든 췌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풍경에 대한 언어의 선연한 그림과 이에 날카로운 투사적 상상력을 보탬으로 존재의 비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말을 침묵에 가깝게 줄임으로 되레 수 많은 말을 가능케 하는 시의 진경이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5. 유추, 빗대어 말하기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 재편할 뿐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러운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 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사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오징어 3 최 승 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 다르다 '부둥켜 안고 목을 조르는 버룻'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 부부는 그 오징어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 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하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근래에는 이렇게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기, 즉 시를 쓰는 유형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예전에 억압적인 시대에 많이 쓰던 기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닐지라도 무언가를 통렬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유추의 상상력은 커다란 깃발이 될 것이다 6. 전복, 뒤집어보기 꿰뚫어보기 전복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하여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북어 최 승 호 밤의 식료품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은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러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이 시는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부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름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를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나.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 상상력을 형성한다 7. 종합, 상상력의 유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독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습합되고 용해된 채, 하나의 시적 세계를 튼실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상 이런 분리는 상상력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이점들을 갖는다 더욱이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독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서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을 위한 밑변과 옆변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들을 보면 이러한 결합의 양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시에서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사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의 모티브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겸험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시를 쓴 80년 대는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줄곡 애국가를틀어주었다 어쩌면 김남주의 말대로 세금고지서와 징병통지서 밖에 가져다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기라도 하는 듯 틀어주던 애국가였다 그런데 이 일상적 경험은 사실 발견적 상상력에 속한다 영화 속의 한 화면을 그대로 시적 경험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중심적 시상에는 이 발견에 대한, 시적 인식으로서의 투사가 중핵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아오르는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는 객관적 사실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으로 슬그머니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주관적인 의식의 투영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투사가 가능하며 이는 과연 공감을 자아내는가? 이 시가 1981년에 발표되었음을 생각해 보라 광주항쟁을 겪었고, 군사독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던 그 때, 시인을 비롯한 깨어있는모두가 시의 이면에 그 아픔의 흔적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통 안에서 심지어는 그 고통의 현실과 무관한 새들조차 이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로 투사된 채, 이런한 웃음 역시 남겨두고 떠나는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없는 모멸을 남긴 채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앞 화면에서 비추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사는 시의 후반부에서 짝을 이루는 유추로 정교하게 반복된다 우리 역시 낄낄대면서, 깔쭉되면서, 다시 말해 빈정거리면서, 야유를 퍼부으면서 썩어빠진 세상을 떠나 깨어있는 우리들끼리라도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 이 세상 밖"의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날아 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날아가지 못한다 그 부푼 꿈이 애국가가 끝나자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냥 앉는 것이 아니라 어쩌지 못해 채 주저앉는다 영화관의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현대사의 고통의 심부에, 썩은 세상에 주저 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에서의 꿈이 애국가가 끝나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만 전복이 되는 것이다 전복적 상상력인 것이다 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코 낄낄거리거나 깔쭉대지 못한 채 고통과 누물로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한편의 시에는 발견과 투사, 유추와 전복이 다채롭게 융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미천하여 상상력을 중첩시키거나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하나, 둘의 상상력만으로 시작업을 해보시기 바란다 시가 체험과 상상력의 결합이라할 때, 사실 상상력은 무한 공간이다 무한대로 그 상상력을 지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가 되는 실체(체험)를 바탕으로 하기에 그 상상력의 한계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점점 확대해나가는 것이 시인의 길일 것이다 ====================================================================================     나무가 나에게 ― 이해인(1945∼ )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들은 나더러 더 멋지다고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네요 하늘을 잘 보려고 땅 깊이 뿌리 내리는 내 침묵의 언어는 너무 순해서 흙이 된 감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해서 사람이 늘 그리운 나의 기도는 너무 순결해서 소금이 된 고독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해인 수녀를 좋아할까. 왜 그의 시를 좋아할까. 간단하다. 맑고 깨끗해서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의 시는 위안을 선사해 준다.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준다. 힘들고 지칠 때,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힐링’의 키워드가 시대의 이슈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시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자도 사람이다. 그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도 아프다. ‘나무가 나에게’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한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참았다고 말한다. 나무가 울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리는 것처럼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의 뿌리란 인내와 사랑과 감사다. 나아가 그 뿌리는 언어이고 기도이며 시다. 무엇도 쉽게 태어나지는 않는 법. 이제는 이해인 수녀가,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시가 왜 좋을 수 있는지를 참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700    현대시의 난해한 벽을 허물어보기 댓글:  조회:4329  추천:0  2016-10-26
[ 2016년 10월 26일 09시 31분 ]   ㅡ나는요 전쟁은 싫어요... “유리의 존재” 이것은 영원히 벽이 되고 마는가? -현대시! 나에게 벽으로만 존재해야 되는가?    온미영(시인)       유리의 존재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1. 현대시의 렌즈를 통해 본 진실의 사유  최근 현대시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정통 서정성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선을 왜곡하고 대상을 해체하여 보편적 언어의 순서를 종횡하며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시적 감수성을 횡단해 버린다. 때로는 몸이 지닌 감각과 대상이 교접하며 언어가 낯선 감각 덩어리로 환원해 버린다. 그래서 현대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잖이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며, 때로는 이해 불가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는 가시성을 해체시키는 초현실주의 시를 만나게 된다. 이번 미당문학상을 받은 김행숙의 는 ‘유리’ 라는 대상물을 통해 타자와 접속되려는 화자의 인식을 감각적 형상화 기법을 통해 시적 발화를 하고 있어 생소하기도 하고 수차례 깊은 정독을 요구하는 시이다. 그동안 미당 문학상을 받은 서정시와는 사뭇 다르다.    이 시의 전체 분위기는 현실 세계의 벽 앞에서 화자 자신의 억압되고 배제된 고독과 슬픔 외에 타자의 외로움과 슬픔까지 품으려는 합일의 노력으로서 유리에 비친 자신과 타자를 동시에 교차시키면서 하나의 호흡을 시도해 보려는 연민의 정서가 보인다.   한 인간이 표현되고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그의 잠재된 세계와 가능성의 세계까지 포함하는 실재의 지점까지 다다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김행숙의 그런 지점까지 닿지 않고서는 이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비가시적이나 분명히 존재하는 시인의 마음을 느껴보려 한다.     내게 “유리의 존재” 라는 시의 제목부터 맑은 투명함 속에 숨겨진 불통의 정서가 작금의 개인주의와 이기성이 빚어낸 보이지 않는 벽들의 파열음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통과하기 어려운 유리천장 또는 윈도우스트라이크의 이미지가 연상 된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모두에게 투명한 유리는 공공의 선처럼 공익적이나 동시에 권력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은유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시를 읽고 이해하려할 때 나는 상징질서에 포획되어 살면서 내 의식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있던 먼지 같은 모음과 자음들이 엉켜 붙는 느낌으로 다층적인 이해를 시작했다.    갈수록 공동체의 행복 보다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이 중심을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유리처럼 반짝이면서 투명하나 조금만 근접하고자 하였을 때, 결국 느끼게 되는 공감부재, 소통의 불구화와 더불어 오는 공허와 허무 아니겠는가. 시인은 ‘유리’를 시의 재료로서 진실을 향해 다가갈 수 없는 소통의 제한성과 폭력성을 감각적 언술을 통해 슬픔과 연민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2. 본문 이해하기    이 시의 흐름은 유리의 존재를 처음 경험하는 화자가 그 유리의 실체에 부딪히고 부상당하며 종국에는 씁쓸하게 유리의 존재 앞에 서서 그 벽의 한계를 드러내는 화자의 내면을 산출한 형상물로 되어 있다. 더불어 시적 공간 내에서 유리는 사물로서가 아니라 불통과 폭력성의 내면을 은유하며 우리와 만나고 있다.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햇살은 통과되어 내 얼굴을 밝게 비추이는데 나의 몸은 그 유리의 벽면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고, 환하게 보이는 세상이 오히려 꿈에서나 가능한 세상이어서 차가운 유리벽에 손을 대고서야 비로소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절망과 처음부터 어떤 계략이 숨어있는 속임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를 보면 투명하고 빛이 통하는 유리를 믿고 뛰어 들었다가 파면에 찔려 피를 흘리는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가 찌그러지고 부수어지는 제삼의 속임수가 분명 존재하는데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위험한 그 무엇이 삶을 소진시키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 문장은 참으로 무섭고 두렵기 까지 하다.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 다는 말은 “싸이코 패스 [Psycho-Pass]’로 치닫는 공감과 배려의 부재와 더불어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침잠된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의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연약하고 뼈대가 없으며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미완의 형태를 이루는 자아와 외부를 향하는 내부의 소리가 효력 없음으로 화자로 하여금 자포자기로 이끌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나 자신과 타자 또는 사회, 국가를 향하여 미약하나 깊은 날숨으로 진실을 토해낸 것들이 어김없이 사라져 진실이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현상들이 이 문장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규명이 절대 필요한 사건들도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처럼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진실규명을 원하는 목소리를 입김으로 은유된다고 보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가 말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라고 절규에 가까운 화자의 말은 스스로 자학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이다, 공리주의의 위선과 쾌락주의로 움직이는 현 사회에서 차라리 스스로 돌을 맞는 것이 편하다는 시인의 시선은 죽음처럼 어둡고 부동적인 현실 앞에 무기력함의 고백이자 화자 자신이라도 사죄하고자 하는 정의롭고 나다운 세계로의 나아감을 강하게 표현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이 문장은 급기야 폭발할 지도 모르는 화자의 정의감이자 분노로서 존재의 제한성을 가두는 법과 규범과 규칙을 향하여 경고장을 날리는 선택을 하면서 혼돈속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의 문장에서는 인간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고립되면 결국 죽음과도 같은 생명 없는 시간 속에 존재 할 뿐이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 새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 많다. 특히 투명유리 방음벽이 설치된 곳에는 새들의 시체들이 처참히 쓰러져 있다. 이 현상을 “윈도우 스트라이크”라고 한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날개를 힘차게 움직이다가 그만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도 권력과 돈의 장벽 앞에서 여러 형태로 사회적 약자와 배제자 들을 만드는 윈도우 스트라이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연에서는  우리의 현실은 다시 날이 밝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유리를 통해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화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유리창 밖에는 누군가 서있고, 안에는 화자가 있으나 여전히 투명하고 자연의 빛은 통과하는데, 우리는 벽을 사이에 두고 불통과 거짓이 반복되는 것을 슬퍼하며 이 시는 끝을 맺고 있다.    3. 시의 기표가 주는 자유    인간은 창조적 주체로서 지속적으로 자유자로서 미래로 나아가며 그 세계의 주체로서 사고하고자 하는 욕망의 주체이다. 문학은 규정성을 저항하며 인식의 무한한 확장에서 출발한다. 특히 시라는 장르는 보이는 세계보다는 그 세계 안에 숨겨진 찌그러짐과 공백(空白)으로 존재하는 것을 현실질서 위에 배치시켜 우리의 존재의 차원을 심도 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 의미의 연속선에서 보면 김행숙의 는 언표 하나하나에 틈을 내어 시각과 촉각을 삽입하여 의미들을 생성하고 있으며 내가 써오던 서정성의 언술이 아니어서 낯설음의 다른 정서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 시는 우리가 지닌 기표 속에 표상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뚜렷한 형상으로 환원시키며 공리나 쾌락, 이기성을 너머서는 세계, 타자와의 트인 관계의 열망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관계의 단절에 대한 슬픔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를 애써 이해하려는 나에게 있어서 현대시가 유리의 존재로만 여겨지는 불통의 존재는 아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짧은 시간으로는 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직 그 길은 묘령의 골목이다. 그러나 시의 유리천장 또는 유리벽도 껴안고 피 흘릴 각오로 시의 무한한 공간에 서있음 자체가 내게는 벅찬 감동일 수밖에 없다.  현대시의 진정한 의미는 시도 사람도 늙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시를 더 젊고 탄력 있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흐름을 놓지 않고 계속 시를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 자체가 대중과 사이에서 유리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며, 삶의 진실이 배치되는 시를 위해 모든 시인들은 치열함을 놓아서는 안 된다.
1699    불온한 상상력들이 광란의 춤사위에 나으다 댓글:  조회:4163  추천:0  2016-10-26
불온한 상상력들   흔히 뒤샹의 〈샘〉을 언급하면서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는/못하는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게 모냐구요? 어케 1917년 뒤샹이 대량생산된 상품(소변기)을 ‘작품’으로 전이시키는 유쾌?상쾌?통쾌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일까?  흔히 그 발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뒤샹의 진술, 즉 “나는 소변기나 병걸이 등을 고상한 예술 애호가들에게 하나의 야유이자 도전으로 던진 것인데, 네오-다다이스트들은 그 오브제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다”라는 진술에 대부분의 뽕론가들은 기댄다.  Fountain, 1917. Marcel Duchamp(photographed in 1917 by Alfred Stieglitz)   물론 뒤샹의 〈샘〉 논의가 단지 뒤샹의 진술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소변기의 형태에서 성적 요소를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소변기의 비어있는 내부 형상이 마치 자궁형태를 닮았다 혹은 소변기의 형태가 여성신체의 곡선을 뜻한다고 말이다. 어느 뽕론가는 뒤샹의 진술을 뒤집어 네오-다다(neo-dada) 작가들의 행위를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확장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허나 뒤샹의 진술뿐만 아니라 소변기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미적 요소 그리고 일종의 ‘네오-다다 일병 구하기’ 역시 뒤샹의 레디-메이드 발상을 가능케 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니다. 그와 같은 기존 뽕론가들의 논의는 오히려 뒤샹의 〈샘〉을 마치 현대미술의 ‘사생아’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뒤샹은 신화적 인물로 포장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뽀 역시 이것이 뒤샹의 레디-메이드 발상 비하인드 스토리이다라고 당당하게 썰을 풀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따라서 대뽀는 이곳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발생하게 된 동기(사례)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물론 그 사례들 또한 대뽀의 주관적 판단에서 선택된 것이란 점에서 일종의 ‘불온한 상상력’이 될 것이다. (대뽀는 이미 1999년 뒤샹의 〈샘〉에 관해 단행본 분량의 텍스트를 탈고했고, 현재 단행본 출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 지면에서는 그 텍스트에서 빠진 부분만 보충하고자 한다.) 흔히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언급할 때 등장하는 것이 다다(dada)다. 핼 포스터(Hal Foster)는 〈실재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al)〉(1996)에서 뷔르거(Peter Buerger)의 역사적 아방가르드/네오-아방가르드라는 대립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다다의 틀에 가두어두었는데, 그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와이?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일명 ‘안티-아뜨’로 불리는 1916년 2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출발한 다다(dada)보다 2년전,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뽀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등장하기 전(前) 특히 유럽미술계 상황을 뒤적거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1909년 2월 20일 시인 마리네티(Marinetti, Filippo Tommaso Emilio)는 프랑스 파리의 일간지 르 휘가로에 〈미래주의 선언(Manifeste de Futurisme)〉을 게재했다. 그 선언문 중 자주 인용되는 한 문장만 인용해 보자. “기관총의 탄환처럼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race)보다도 아름답다.” 마리네티 진술은 질주하는 자동차, 즉 미래파가 속도(기계)에 열광했음을 알려준다. 1913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열린 아모리 쇼(Armory Show)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Nude Descending a Staircase)〉(1912)는 흔히 미래파의 영향으로 간주되곤 한다.  흥미롭게도 뒤샹이 속도/기계에 열광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뒤샹은 1912년 레제(Fernand Leger) 와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e)와 함께 항공전시회를 보러갔단다. 당시 뒤샹은 항공기 프로펠러를 보고 부랑쿠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뒤샹 왈, “이제 아트는 끝났어. 누가 저 프로펠러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나? 자네 할 수 있겠나?” 아마 뒤샹은 미끈하게 잘빠진 프로펠러에게 반했나 보다. 와이? 그 어느 조각 작품보다 잘 제작된 것으로 뒤샹의 눈에 보였으니까. 그래서 미끈한 조각 작업에 열중하는 브랑쿠지에게 너, 저 프로펠러보다 잘 만들 자신 있어?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당시 부랑쿠지는 열라 열 받았을지 모른다. 그런 까닭인지 부랑쿠지는 그 이후 프로펠러보다 더 미끈한 조각 작품들을 제작한다. (특히 부랑쿠지의 〈공간 속의 새〉를 보라) 버뜨(but), 뒤샹은 브랑쿠지와는 달리 프로펠러보다 더 잘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뒤샹은 그 이후 아예 기성품(ready-made) 자체를 ‘작품’으로 자리바꿈시킨다. 그 첫 작품이 〈병걸이〉(1914)이다.  그럼 뒤샹의 〈병걸이〉는 단지 자신이 2년전에 브랑쿠지에게 씨부린 진술을 그냥 현실화시킨 것이란 말인가? 만약 그랬다면 왜 뒤샹은 1912년에 레디-메이드를 고안하지 못한 것일까?  레디-메이드는 장구한 서구미술사가 추구했던 ‘재현주의’에 똥침을 놓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뒤샹 이전에 재현주의에 똥침을 놓은 작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린버그가 열광하고 주장했던 추상회화들을 보시라.) 20세기초 유럽에서 적잖은 작가들이 재현주의를 넘어서는 작업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누구보다도 뒤샹의 눈을 사로잡은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그 작가는 추상을 통해서 재현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실재 오브제(사물)를 작품에 직접 차용한 이었다.  그 작가가 누구냐고요? 피카소(Pablo Picasso). 뒤샹이 항공전시회를 방문했던 1912년 피카소는 평면에 오브제를 꼴라쥬한 작품(〈Still Life with Chair-Caning〉)을 제작했다. 아마도 피카소의 작품은 적잖은 화가뿐만 아니라 뒤샹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보였을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은 회화에 실재 오브제를 접목시킨 첫 사례다. 근데 뒤샹은 한술 더 뜬다. 1913년 뒤샹은 오브제와 평면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와 오브제, 즉 자전거 바퀴와 의자를 접목시킨 작품(〈Bicycle Wheel/Roue de bicyslette〉)을 제작한다. (흥미롭게도 그 뒤샹의 작품은 마치 항공기의 프로펠러처럼 자전거 바퀴를 돌릴 수 있다.) 그 다음 해인 1914년 뒤샹은 드뎌 단일 품목, 즉 하나의 오브제를 작품으로 전이시키기에 이른다.  자, 이제 대뽀의 ‘불온한 상상력들들’에 대한 결론을 때려보자. 대뽀가 볼온한 상상력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뒤샹의 〈샘〉이 결코 ‘갑자기’ 등장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디-메이드가 등장한 1914년 전(前)을 고려한다면 당시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사회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대뽀는 그 단적인 사례로 (유럽미술계로 국한해서) 입체파와 미래파를 들었다.  흥미롭게도 입체파와 미래파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 말하자면 입체파 역시 기계에 열광했던 미래파처럼 흔히 ‘만화경’으로 불리는 기계(입체사진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다. (이 점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가 연속촬영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교차한다.) 그럼 20세기초 적잖은 작가들은 당시 사회적 변화 특히 새로운 미디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 아닌가? 뒤샹은 항공기 프로펠러를 보고는 이제 아뜨는 끝났어라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레디-메이드의 등장은 다름 아닌 '예술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미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미술사를 지탱하였던 ‘시각미술의 종말’을 뜻한다.     
1698    눈뿌리가 아플 정도의 포스터모더니즘의 한계 댓글:  조회:4081  추천:0  2016-10-26
 2016년 10월 24일 08시 51분 ]     =코미디 야생 사진상=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현상에 대하여- Ⅰ.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현대에 이르러 한때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명확한 개념이나 한계가 분명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세련됨의 대화의 대명사처럼 마구 사용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대체로 모더니즘 뒤에 나타난 예술 문화의 운동이라고 이해되었지만 이는 사상 영역의 후기 구조주의와도 대응하고 있다. 철학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이 하나의 경향은 문학 및 전 예술 영역으로 확산되었고, 현대 사회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모더니티의 이성상에 대한 비판을 극단적으로 급진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인간이 견인하는 역사의 진보성, 사회의 합리화, 주체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실제라는 모더니티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을 지적한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기존의 관념들을 해체하고 요란하게 분해, 조립하여 정작 그 실상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혼란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저에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해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해체 현상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오늘날 대중문화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어떤 의의를 가지며 문제점을 무엇인가?  본론에서는 이러한 '주체의 죽음', '인간의 종말' 현상의 근저에 있는 해체 현상에 대해 철학적 시각에서 근본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조건 거부가 아니라 진리, 규범, 양식 속에 깃들어있는 절대성과 중심성의 허구를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해체를 시도하는 것이며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 구조주의의 탈중심이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게 된다. 데리다, 푸코, 료타르, 라캉, 하버마스 등의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진리관을 거부하고 해체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을 통해서 여러 가지 탈주체 이론 - 특히 현대 프랑스 철학계를 중심으로 - 을 그 형성 배경과 함께 제시하며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탈중심화 해체 현상이 문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러 분야에서 그 특성이 나타나지만 특히 문화에서는 문학, 미술, 연극과 대중문화 전반에 두드러지는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는 특히 '작가의 죽음', '메타픽션'등으로 대표되는, 문학 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해체 현상은 열병처럼 퍼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으로써 기존의 이론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다. 이에 입각해서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기존 사상을 비판하고 주체를 해체시키는 관점의 이론들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탐구가 활발해짐으로써 포스트 구조주의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자체적으로 가진 모순점역시 많이 비판되고 있다. 따라서 결론에서는 이러한 해체 현상에 대한 전반적이고 개괄적인 관찰과 의의 및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논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Ⅱ. 본론  1. 해체 현상에 대한 철학적 이해 -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문학, 예술 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몰고 왔다. 이렇듯 복잡 다단한 변화들 중에서 중심된 특징과 경향을 살펴보고자 할 때 사회와 개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하는 포스트 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이 되므로 먼저 이에 대해 알아보아야 겠다.  1) 해체 이론의 기원과 생성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자아의 발견이라고 할 때, 인식의 주체, 사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아 중심의 철학은 자의식의 풍부한 활동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창조적 능력과 상상력을 강조하여 창조적 주체, 자유로운 개인을 핵심으로 삼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한 토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표방하는 것은 주체에 의해 파악된 객관적 실재가 진리의 기준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회가 이성의 힘에 의해 총체적으로 합리화될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이념의 거부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성 중심의 세계상이 해체되고 거시적 일반 이론도 거부되며 인식론 상의 기초 이들은 서구에서 상식처럼 통용되어 온 견해, 즉 이성적 '주체'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마련하여 '진리'로 비이성적인 현실의 장막을 제거하고 '이성적인' 사회,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모든 관계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근간을 이루었던 이성 중심주의 , 과학지상주의 , 체계화와 총채성의 이념은 해체와 다원화 탈중심과 불연속으로 대체된다. 이성과 비이성 주체와 객체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의미의 능동적 창출자로서의 주체는 갈가리 흩어져 종말을 맞이한다.  특히 이 모든 해체 현상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선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체의 해체'현상이다. 사실 '주체'라는 개념 자체는 모호한 것으로 인식의 주체 일수도 있고 정치권력의 주체 일수도 있으며 인간의 자의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개인의 인식의 우선성과 보편적 타당성을 제공하는 절대절명의 원리인 이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를 포착하고 규정할 수 있는 특권화된 인식의 주체이며 자신의 삶과 역사의 원동력을 우리는 주체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주체의 죽음'은 의미의 능동적 구성자이며 창조적 인물인 이성적 주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성적 주체라는 것은 인간관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인간관에 의해 구성된 존재와 인식자연과 타자 등의 모든 세계관적 문제를 주제 삼고 있는 것이다.  '신의 죽음'을 주창한 니체에게서 인간의 규정은 사고의 핵심을 이루며 우리는 그의 철학을 '자아의 해체 작업'이라 명명할 때 그러한 점에서 니체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정신사에서 볼 때 인간은 고대로부터 이성을 가진 동물로 구분되어 왔으며 데카르트이후 근세 철학은 이성을 '자의식'형태로 전수하여 철학의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데카르트에게서 확실한 학문의 기반으로서의 사유, 칸트에게서 모든 통일성의 기반으로서의 초월적 자아의 통일성, 헤겔에게서 모든 현실성의 기반으로서의 객관정신등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니체는 인간의 본질을 의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도치된 인간 이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인식을 "인간의 핵심, 영원한 것, 근원적인 것, 확고히 주어진 것"등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과대평가와 오해"라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우선적이고 근원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상이하고 모순된 욕망과 의지의 충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충돌로부터 일종의 화해, 계약이 성립되며 그것이 곳 우리가 일컫는 지성이라는 것, 이성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의식이나 지성이란 결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원리에 입각한 독립적 능력, 모든 다른 비이성적 충동들을 상호간의 투쟁이 서로 화해하며 끝날 때까지의 최후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힘, 의지로서의 생의 힘은 의식이 아니라 충동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니체에게서 의식은 생의 비본질적 부분적 영역으로 축소되어 이해될 뿐 아니라 나아가 생의 가장 약한 부분, 가장 표피적이며 가장 나쁜 부분으로 이해되고 있다.    니체에게서 의식이란, 인간에 의한 특수한 내적소여방식을 뜻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여 충동이나 기쁨이나 고통처럼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간접적인 소여, 즉 언어를 매개로 하여 주어진 것을 뜻한다. 니체에게서 의식은 한마디로 '언어적 파악', '언어적 사고'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게서 의식의 기원과 기능을 밝혀 주는 단서는 바로 의사 전달 기호로서의 언어이다. 또한 이러한 언어적 사고를 따르는 의식은 개별자로서의 인간 각자의 본래적 자아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일반적이며 군중적인 속성에 속하게 하여 자의식이란 것도 역시 인간의 개별적 자아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의 길은 못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개인의 본질을 개인의 고유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에서 찾았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이상과 위대함은 오로지 신의 속성으로 피안에서 설정된 가치이며, 차안의 인간은 단지 작고 힘없는 왜소한 존재로 규정된다. 이는 더욱 심화되어 끝에는 인간이 너무도 왜소하여 신의 위대한 자체가 인간에게 자기 모순적으로 나타나 결국 인간이 신을 제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의 대비자로써 생각되고 세워진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에 의해 파멸되고 만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인간이 곧 신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신의 살상자라고 강조하는 의미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곧 모든 인간에 의해 설정된 가치, 피안적 진리, 불변하는 진리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본래적 자아가 되고자 하는 인간은 사고되고 의식된 표상 세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기 자신에 의해 자유로운 긍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니체는 생각하였다.    인간은 그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 나가야 할뿐이며 자기 자신을 자신 이외의 다른 이상이나 목적 아래 둔다거나 혹은 자신을 표피적 의식이나 일반화된 군중의 척도에 따라 평가하고 그에 예속시키려 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니체의 철학 정신을 한마디로 일반성과 군중을 앞서는 인간 각자의 고유성과 개별성의 강조, 즉 실존의 강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니체의 반형이상학적 정신들은 하이데거에 이어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게 계승되고 그들에 의해 니체의 정신은 방법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심화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포스트 구조주의와 동일한 맥락으로 연계되어 있다. 즉 포스트 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해체 이론의 발달 -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 관점에서도 그 이전의 입장과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새로운 철학적 입장은 주로 프랑스에서 1960년대 말엽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는 포스트 구조주의가 가장 잘 대변한다. 해체 주의를 포함한 포스트 구조주의는 후기의 롤랑바트르를 비롯하여 데리다, 푸코, 라캉, 료타르 그리고 들뢰즈 등의 이론가들이 주로 주창하였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삶의 실재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해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리 실재를 편린적,이질적, 다원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에 회의적이면서 '존재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있다. 몇몇 철학자들이 흔히 '주체의 죽음'으로 일컫는 현상이다. 이 '주체의 죽음'은 장소의 고정성 그리고 개인이나 국가 역사에서의 권위나 가치의 확실성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의미한다. 또한 거대 이론의 붕괴를 몰고 와 신학과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등 각 분야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① 자크 데리다 지난 60년대 후반에 등장해 오늘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해체 이론은 서구인들의 바로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표출해 주고 있는 중요한 사고 체계이다. 이의 창시자인 자크데리다는 (1967)라는 저술을 통해 자신의 해체 이론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레비스트로스등 이에 앞선 구조주의자들역시 전통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고자 할 때는 과학적 방법 등을 사용하여 접근하였다. 그들이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종래의 형이상학적인 방법이나 가설, 가정 등에 의존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체계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데리다는 우선, 서구의 형이상학적이 이차적이고 간접적인 언어인 글보다도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언어인 말에 더 우선권을 주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그는 말이 글보다 더 본원적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전통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말 역시 글처럼 불완전한 이차 언어에 불과하며 서구인들이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믿는 본원적 의미란 다만 착각일 뿐 사실은 부재 속에 있다고 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자신의 이론을 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문자학 또는 해체 이론은 신이 사라진 시대, 곧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시대의 이론이 된다. 해체 이론은 아직도 신의 음성 곧 절대적 진리가 현존하고 있으며 자기들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시대착오적 지배 체제의 독선과 횡포에 도전하여 그것들의 눈먼 확신을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체제전복적 이론이다. 이러한 그의 해체 이론은 서구 사고 체계 전체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는 서구의 형이상학 전체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서구의 문화와 사상은 사물을 둘로 나누어 그중 첫 번째 것에만 특권을 부여하고 두 번째 것은 이차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소외시키고 제외시키는 양분법적 태도 위에 세워져 있다. 데리다는 바로 이와 같은 이분법적 태도가 그 동안 사회의 모든 구조에서 타자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배제시키는 것을 합리화시켜 주고 합법화시켜 주는 논리적 근거의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깨달음은 곧 모든 사회적, 정치적 체제 속에 스며들어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된 지배올로기의 억압 구조를 드러내 보이고 그 횡포를 깨닫게 해준다는 면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데리다는 그와 같은 양분법적 흑백 논리가 실은 상호보족적인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 둘 사이의 경계에 해체를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해체 이론의 궁극적 목적은 인식론적 변혁을 통한 지배 체제의 해체가 된다. 그러므로 '해체'라는 말은 외부로부터의 파괴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탈구축'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은 예전부터 항상 그에게 고유한 종말로서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의 종말이다"라고 말한다. 데리다는 지배 체제의 독선과 횡포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절대적 진리에의 확신이었다고 하며 그 현존을 부정한다. 그의 해체 이론에 따르면 진리란 당대의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 놓은 언술행위이고 또다른 진리를 침묵시킨 결과로 얻어지는 것일 뿐 결코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해체 이론은 진리와 허위의 오랜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데리다는 해체 이론을 통해 이성, 질서, 총체성 등의 존재와 회복을 신뢰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비이성, 무질서, 파편성 등을 특성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체 이론은 가시적인 투쟁 대상뿐만 아니라 불가시적인 투쟁 대상까지도 찾아내어 붕괴시킬 수 있는, 현대의 고도로 복합적인 시대의 한 효과적인 저항 이론이 된다.  ②질 들뢰즈 데리다가 철두철미한 반개념적인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데 반해 들뢰즈는 철저히 개념 철학에 의존하여 차이가 이 세계의 철학적 원인임을 규명해 나간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인정함은 존재가 곧 차이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복은 차이의 대긍정이며 그러므로 긍정을 역설하고 찬양함은 존재하는 것에 기대는 수동적 측면이 아니고 부정적인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분석하면서, 정신분열증 환자야말로 자연인에 가깝다고 보고 그야말로 기호의 세계에서 살면서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제도화된 의미의 경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체가 사회적으로 분절된, 훈련받은, 기호화된, 주체화된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된 것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정신분열증에서 찾았다. 들뢰즈에 의하면 차이를 긍정하고 창조하고 평가하는 자는 원한과 질투에 의해 비교하는 비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차이에 지나지 않으며 반복하는 영원 회귀는 동일성이 없이 연루된 세계 속에서 서로 서로 손잡고 있는 차이의 세계와 같다. 존재는 사실상 하나의 다양성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철학은 어떤 전체성도 거부하고 중심이 없는 것이다. ③ 료타르 료타르는 전체화, 중심화, 절대화는 그것을 통한 획일화를 조장하게 되므로 그것을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현상을 합리화하려는 행위와 차이점보다 동일성을 창조하는 행위를 비판, 해체시키고자 하였다. 료타르는 보다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그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투쟁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생기고 그런 사회적 갈등과 압력의 해결을 위한 보편적 법칙일 인간이 발견하기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인간관계는 '언어 놀이'와 '문장 놀이'에서 표출되고 이는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각각의 문장 놀이는 쉽게 다른 사람의 것과 일치되지 않는 각자의 특유 어법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기존의 철학이 큰 체계를 중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조그만 이야기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④푸코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총체성의 관점은 그 자체로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기존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진리'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투명한' 사회를 목표로 삼는 혁명적 이상이 전면적 감시 프로그램과 연결된다고 본다 (이것은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푸꼬는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연속적이고, 특수하고, 지역적인 비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푸꼬는 해석의 다원론을 강조하며 열려진 해석학적 체계를 선호한다. 그에게서 절대적으로 우선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곤 없다. 모든 것은 이미 해석이며, 모든 기호는 그 자체가 해석에 제공된 사물이 아니라, 다른 기호에 대한 해석이다. 따라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세계에 관한 공유된 합의일 수 없고 그 상황에서의 힘의 균형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푸꼬는 사회· 역사에 관한 총체적 지식이 권력에 대한 주장을 지닌다고 본다. 그가 에서 밝히듯이 그것은 배제의 체계--참과 거짓의 구분, 특정한 담론에 대한 금지 등--에 의한 것이다. 참과 거짓의 구별은 궁극적으로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명제의 의미는 과학적 담론이 짜여진 실천의 체계와 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의 제도적 배열은 항상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나타낸다.  푸꼬는 어떤 체계도 실재의 복합성을 밝힐 수 없다고 보고, 그 자신의 탐구의 무질서하고 파편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체계적 통일을 거부한다. 이처럼 그는  참된 지식의 이름으로 걸러 내고, 위계화하고, 질서지우는 단일한 이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항하며, 견고하고 동질적인 이론적 地形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국지적이고, 불연속적이고, 비특권적이고, 정당화되지 않은 지식에 머물고자 한다. 푸꼬는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라 '특수한'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지식인은 자신의 작업장, 수용소, 병원, 연구실, 대학 등에서 특정한 투쟁에 충실해야 한다. 이론은 단지 특수한 투쟁에 봉사하는 도구 상자일 뿐이며, 그것의 유용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곧바로 버려야 한다.  한편 푸꼬는 권력 이론을 크게 3가지로 구별한다. 즉 1)'경제적' 이론, 2)권력을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비경제적' 이론과 3)권력 관계를 일종의 '전쟁'으로 보는 자신의 관점으로 대비시킨다. 권력을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로 보지 않고 관계, 또는 그물망으로 본다. "권력, 그것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소유된다기 보다는 행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계급의 '특권'이 아니며, 전략적 상황의 효과이다. 따라서 국가를 지배계급의 정치적 도구로 보고, 권력의 핵심을 국가 기구로 이해해서 모든 권력 현상을 국가 기구에 의해 설명하는 방식은 일면적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권력이 무엇인가?' 라고 묻지 않고 '권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라고 묻는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권력은 자연, 본능을 억압하고, 개인이나 계급을 억압한다고 본다 (헤겔, 프로이트, 라이히 등의 견해). 권력을 권력이 오로지 제한하고 구속하며, 금지하는 법률과 금지의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달리 푸꼬는 권력을 단순히 금지하는 힘으로 보지 않고 창조적, 생산적, 긍정적인 힘으로 보며 일종의 전쟁, 적대적 세력 관계들간의 상호 투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을 통해 이러한 권력의 작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푸꼬는 18세기 후반에 감옥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일반화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율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는 감옥 제도를 규율적 권력이 행사되는 전형적인 예로 보면서 이런 권력이 사회 전체에 침투해서 현대 사회를 규율적 권력이 편재하는 '유폐적' 사회로 만들어 나간다고 본다. 푸꼬는 이러한 권력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인간의 신체에 주목하면서 그 신체를 권력이 작용할 수 있는 유용한 대상으로 만드는 과정에 주목한다. 푸꼬는 이러한 신체에 대한 권력의 작용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작업장,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규율이 생산, 수행되는 일정한 방식들에 주목한다. 푸꼬는 이러한 규율적 권력이 '위계질서적 관찰'과 '정상화하는 판단'을 결합시킨 형태를 통해 작용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준이 '정상화하는 판단'이다. 이것은 일탈을 없애 그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이를 위해 일정한 정상적 질서를 정해 놓고 사소한 위반에 관해서도 처벌한다. 그래서 일상 행위의 가장 미세한 측면을 특정화함으로써, 거의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처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이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정상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규율의 감시, 처벌, 교정 대상이 된다. 푸꼬는 이와 관련해서 인간 과학이 탄생하고, 그것은 개체들을 인식론적 무대 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정리, 분류된 기록은 권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체를 길들이고, 유용하게 만드는데 최대한 이바지하게 한다.    푸꼬는 어떤 사회에서도 사회적 신체를 구성하고 특질화하는 다양한 권력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권력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화의 생산과 축적, 유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푸꼬는 권력이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 사실은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규율 체계는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를 심화시키면서 모든 개인을 정상적으로 기능 하는 위계질서의 한 지점에 배치시킨다. 이처럼 '비정상성', 위반이 배제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안으로 흡수, 통합된다. 그리고 규범적인 것의 '보편적' 지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권력이 완성된다.  푸꼬는 지식을 지식 외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입장--역사유물론,사회학주의 등--을 거부하고, 지식이 의식과 관념의 (제도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입장--인간학주의--도 거부한다. 푸꼬는 인간 과학의 관리적 역할, 권력과의 공모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지식과 권력은 쌍둥이며, 지식 자체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을 통해 작용한다. 모든 지식 형태는 그 자체가 권력의 형태이며, 동시에 그 존재와 기능에서 다른 형태의 권력과 연결된 의사 소통, 기록, 집적, 대체의 체계가 없이는 행사될 수 없다. 푸꼬는 권력과 지식이 서로를 함축하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를 강화시킨다고 본다. 그는 지식-권력이 지식의 형식과 가능 영역을 결정한다고 본다. ⑤ 롤랑 바르트 롤랑바르트는 언어의 상대성과 불명료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진리관을 비판하게 된다. 언어 자체가 확실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 일련의 노력들은 사실상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나 자각 이외의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언어는 그 자체로써는 무기력한 것에 불과하나 그러한 언어를 통해 사물의 본질이나 진정한 리얼리티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대적 진리 그 자체를 언어 속에 붙들어 둘 수도 없으며 언어가 진리 그 자체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의도, 사유, 전략 따위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과 유리되어진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에 의해 통제되고 발견되고 창조되는 진리란 이미 절대성을 손짓하기보다는 상대성을 드러내게 된다. 절대라는 말은 그러한 상태가 결핍된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과 미몽의 혼합물일 뿐이다. 그러나 언어가 환기시켜 주는 느낌은 일종의 현기증이나 현혹 작용을 일으켜 구원, 초월, 절대, 중심 따위의 말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주관과 그 주관의 상대성과 허구성을 은폐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롤랑바르트, 데리다, 푸코등은 언어에 기반을 두는 진리관을 철저하게 해부하며 그것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그 허구성을 사유의 공간 속에서 소멸시키려 한다. 나아가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주체의 죽음이라는 테마를 인식론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훨씬 다채롭게 발전시킨다. 이러한 포스트 구조주의의 탈 중심적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며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중심화 현상을 이론적으로 조명해 주고 있다.  2. 문화에서의 해체와 탈중심화 경향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과 예술 전통으로서의 모더니즘이 안고 있는 모순과 한계, 예술적 허상을 비판하는 문예적 개념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 부분에서 시작하여 문학과 미술, 연극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 갔는데 이는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로 인한 문화의 패턴이 변하여 대중매체에 뿌리내린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면서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가리켜, 제국적 자본주의가 다국적 자본주의 형태로 세계 시장에 파고드는 것을 도와주는 후기 자본주의 논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특징을 '미학적 대중 주의, 문화 생산물의 깊이 없음, 역사성의 빈곤, 의미의 해체, 비판적 거리의 말소, 재현 이데올로기의 약화 등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공통적인 현상인 해체 현상은 문학에 경우 특히 지대한 영향을 미쳐 1970년대 이후 현대문학 이론의 전개와 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데리다가 해체 이론서인 에서 보여주는 탈중심지향은 활발한 유희와 해석 작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중심의 횡포나 억압과 현존을 거부하게 했다. 그는 체제 내부에서의 해체 작업을 위해 패러디와 다원성 긍정의 두 가지 책읽기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이후에 상호 텍스트성, 파편화현상, 메타픽션 등의 경향을 보이며 현재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 상호 텍스트성 '상호텍스트성' 현상은 다른 문학 텍스트들과 맺고 있는 상호 연관성을 중시한다. 하나의 작품을 텍스트라고 한다면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의도적으로 상호텍스트성을 활용하여 장르 개념을 해체시킨다. 상호 텍스트 성은 무조건적인 모방이 아니라 비판이 개재되어진 텍스트의 적극적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독창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세상에서 진정한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은 마치 모자이크와도 같아서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작품들을 다시 결합하고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작가나 저자의 죽음'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작가는 더 이상 초월적인 신으로 간주되지 않고 한낱 언어라는 재료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이 보여주는 의미란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판으로 형성되었고 독자성, 또는 독창성의 허구를 드러냄으로써 창작을 둘러싸고 있는 규제를 비판해 자율과 자유를 철저히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탈 장르, 탈 양식의 일환인 상호텍스트성은 형식보다는 내용이 함유되게 되는 생명력이 중시되게 되었다. 각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비평이 독자적 기능의 하나였던 해석은 중시되었다. 소설은 영화를 텍스트로 하기도 하고 회화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상품광고의 한 장면을 텍스트로 하기도 하고 고전주의 문학작품을 텍스트로 하기도 한다. 여기에 패러디와 혼성 모방까지 뒤엉켜 사실상 장르나 양식 개념은 해체되고 있다.    여기서 작품의 형식적 요소는 더 이상 판단이나 비판의 기준이 되지 못하며 중요한 것은 작품이 지닌 설득력이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은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아닌, 텍스트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한 재창조로 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는 장르 개념이나 양식 개념을 비판하여 양식상에서도 고정관념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대항 문화'의 기능을 함유하려 드는 것이다. 2) 파편화 현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적인 비젼의 제시나 모든 현상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버리고 분산화, 파편화의 방법을 지향하게 된다. 전체화를 지향할 할 경우 중심을 만들고 보편적 개념을 만들어 내며 구체적 현실과는 유리된 이념의 허구적 중심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전체적 현상보다는 미시적이고 파편화된 현상에 접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문학 분야에서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차용하여 개인 서술의 단편적 나열을 통한 심리묘사 방법을 쓰는 현대 소설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아무런 상관도 없고 의미없을듯한 장면의 나열로 총체적 이미지를 주는 광고들에게서도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들은 구체적이며 파편화된 현상에 대해 접근하며 그 미세함 속에 나타난 세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도외시되었던 공포와 혐오를 자아내는 묘사를 거리낌없이 함으로써 도덕의 구현이나 종교적 구원, 이념의 생활화 따위의 식상한 구호들과는 먼 거리의 현대인들의 좌절감을 그려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총체적인 개념 제시보다 후기 현대사회의 인간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현상은 전체적인 전망이나 총체적인 시도가 가지는 거대 체계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써 제시되고 있으며, 동일성보다는 차이점을 부각해 본성의 차이를 비롯하여 사유와 구체적인 현실간의 차이를 드러내어 사유가 표방하는 진리, 합리화된 제도가 내세우는 목적 등과 상치되는 미세한 현상들을 부각시켜 그러한 사유와 제도가 갖는 허구성을 노출시키고자 한다. 또한 그것은 보다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현상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로 정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의 등장한 특이한 소설 장르로써 메타 픽션을 살펴보겠다.  지난 60년대부터 서구의 소설들은 종래의 관습적인 소설 양식으로부터 탈피해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대신 소설은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성찰과 반성 속에서 스스로의 특성을 찾아갔다. 소설의 이러한 변화는 바로 소설이 더 이상 리얼리티를 제현할수 없으며 더 이상 진실을 제시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페트리샤 워는 '메타픽션'에 대해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스스로가 하나의 인공품임을 의식적`체계적으로 드러내는 소설 쓰기"라고 지칭하며 이를 통해 "해석과 해체의 개념 속으로 혼합시킨다"고 하였다. 이는 위에서 서술한 예술 작품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그를 밝혀 보이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창작 행위 그 자체에 대해 극도의 자의식을 보여주게 되는데 작품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픽션이며 환영이고 작가의 인식이나 감정의 소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그 자체가 현실이나 실제도 아니며 그러한 대상을 가리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성의 투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만든 환영에 현혹되어 그것을 실제로 착각하면 그를 만든 작가의 의도는 은폐되고 일종의 우상 숭배 현상이 일어나므로 메타픽션은 그러한 허구적 노력들을 거부하고 작품을 작가의 의도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이 속에서 작가의 자의식은 극도로 개입되게 되어 있다. 또한 현대에 와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의 권력 구조가 극도로 복합되있는 상태에서 진실과 허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현대 소설의 저항 역시 복합적이고 불 가시적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메타픽션이 현실 도피적인 것은 결코 아니라고 워교수는 부연한다. 메타픽션의 자아반영적 요소 역시 작가들의 부단한 자기 성찰과 반성일 뿐 결코 현실 상황으로부터의 단순 도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또한번 패러디의 효용이 언급되고 있다. 패러디는 곧 하나의 창작이자 동시에 비평이 되고 새로운 것이 고갈된 어떤 것의 말기 현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교훈적 의도도 없이 다만 관습에 대한 과감한 조롱과 통렬한 자기 반성을 통해 출구를 찾는 행위라 할때 메타픽션과 필연적 관계를 맺는다.  Ⅲ. 결론  이상으로 해체 이론의 이론적 토대와 그 현상 등을 살펴보았다.  해체 이론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 동안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모든 형태의 지배 문화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합법성과 억압에 대해 새삼 회의와 의문을 던지게 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인들에게 자신들도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심오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해체 이론은 또한 단순한 서구의 사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에 절실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지적 움직임처럼 보인다..그것은 결코 진리나 전통을 단순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진리와 전통으로써 그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어 온 것들을 심문하고 외부로부터의 단순한 파괴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해체를 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 이론은 모든 것을 텍스트로 축소시킴으로써 사회 정치적 역사적 담색을 소홀히 하는 단점이 있다. 또한 해체 이론은 텍스트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반응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해체 이론은 창작과 비평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비평이 창작을 압도하는 소위 비평 만능 시대를 열었다.  더욱이 해체 이론은 사변적 이론으로 인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그 스스로 유리화를 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전통과 진리를 해체한 후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가 또하나의 전통과 진리가 되어 갈 가능성도 보이는 것이다. 대안적 형이상학의 구축을 꾀하지 않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운동은 그것이 대항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가 이후 역설들에 의해 일단 무력화되면,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어 미세한 차이들의 세계로 만들것다. 한편, 이 차별화 전략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의 무한한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 새로운 유행의 창조와 광고를 통해 새로운 상품에 대한 구매 의욕의 자극이나 다품종 소량 생산과 같은 것이 그 구체적인 전략일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권위와 교조적 주체를 해체시켜 줌과 동시에 더 물을 수 없는 단절을 가져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다양해진 세계상은 또한 그만큼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체를 통해 이성적 우상들은 해체되었을지라도 해체라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따라서 이성적인 로고스는 해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이성 중심의 로고스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 모순을 범하게 된다. 또한 다양성의 기치를 들고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상품화를 통해 제도 권의 지배 문화에 종속되어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는 점이나 저자의 죽음을 역설하며 해석자를 크게 부각시킨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을 통해 이를 이해하는 일부의 엘리트 해석자들에게만 호소력을 지닌 채 스스로 대중에게서 차단되어 엘리트 문화로부터 더 먼 거리를 보이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결국 자신의 논리에 묶여 새로운 논리로 세계를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략은 사회 내의 개인의 경우여도 마찬가지여서 차별성의 원리야말로 자아 동일성을 담보해 주는 원리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은 일관되고 공동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비난받는 것이 아닌, 오히려 끝까지 고무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내의 문화 전략으로 극단화되면 사회의 자기 분열의 상황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며 극도의 산만성, 집중성등으로 사회는 무책임한 자유방임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해체가 극단화되면 주체가 해체되고 인식과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객관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철학도 자기 정체성을 잊고 세계의 유령으로 방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 이론은 탈 중심과 탈구축의 인식과 전략을 제시해 줌으로써 오늘날 기존의 지배 문화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문화와 현실에서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모더니즘의 정형들, 이성 중심주의, 근원 주의 과학 지상 주의 역사주의 세계의 총체화 대신에 파편화 불연속성, 다원화, 분산화등 탈 정형화 등의 폐쇄와 분리를 통해 인류 문화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과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혼란성과 더불어 문화 주체로서의 인류가 유념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영한, 임지현(편), , 지식산업사, 1994 뤽 페리, 알랭르노, , 인간사랑, 1995 김혜숙, , 이화 여자 대학교 출판부, 1995 이진우, , 서광사, 1993 윤평중, , 서광사, 1992 윤평중, , 교보문고, 1990 김성곤, , 열음사, 1990 김성곤 편, , 민음사, 1988 이광래, , 민음사, 1989 김동욱 , 현암사 김욱동 편, , 현암사, 1991,  이승훈 외, , 고려원, 1994 F.제임슨, , 정정호, 강내희 편, , 도서출판 터, 1989,  함세진, , 홍익 대학교 교육대학원, 1991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 -        박만엽-텍스트수사학언어놀이.     박만엽 (서울시립대)   데리다는 문학적인 사람이다. 그는 비트겐슈타인보다는 니체와 프로이드에 훨씬 더 가깝다. - 아이리스 머독   1. 들어가는 말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접한다. 과거 모 더니즘적 사고에 의하면 텍스트는 말 그대로 동서양의 학술적 고전 들을 가리켰다. 그렇지만 담론을 중요시하는 포스트모던한 사고에 따르면 텍스트의 의미는 (외연은 물론 내포적 측면에서) 그 적용의 범위가 다양해졌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수많은 담론들은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텍스트를 주 목하는 이유는 비단 교육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모 습을 보기 위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이 삶의 일부를 반영한다 면, 텍스트 역시 삶의 일부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삶은 텍스트로 출발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말과 글, 혹은 사고와 표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말과 글 사이의 역동적 긴장 관계를 얼마만큼 해소하느냐에 달렸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필자는 텍스트와 수사학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삶의 흐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언어놀이’를 개입시키고 자 한다. 그 이유는 텍스트라는 용어가 어떤 종류이던 간에 언어에 의해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텍스트가 78 • 수사학 제 8집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문제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텍스트에 초점을 둠으로써 자동적으로 텍스트 에 내재해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텍스트와 문제의 상호 순환성. 그렇지만 이 둘의 관계는 평면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의미를 새롭게 생산한다는 입체적 차원에서 순환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텍스트를 언급해야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텍스트를 토론하기 위해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면, 우 리는 문제에 초점을 두는 것과 텍스트에 초점을 두는 것을 서둘러 구별할 필요가 없다. 즉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그러한 문제를 통해서 텍스트를 새롭게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문 제와 텍스트의 상호보완 관계는 우리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봄의 방식과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문법, 논리학, 수사학을 중요한 기초로 생각했던 중세의 교수 법 이전에도 이 세 가지는 학문과 교육에서 중요한 기제의 역할을 했다. 서양철학의 역사에서는 논리학과 수사학 중 어느 것이 우선적 인가 하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논리학이 순수형식의 문제를 탐구 한다면, 수사학은 언어적 표현과 그 쓰임이 의미를 갖는 구체적 상 황의 관계를 통해 언어와 세계(삶)의 관계에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형식)논리학이 A=A라는 동어반복의 문제를 통해 진리의 문제에 관 심을 갖는다면, 수사학은 A=B라는 의미의 확장과 관련 있는 다양한 언어의 쓰임에 관련된 문제에 천착한다. 은유의 문제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역시 은유의 문 제를 비켜갈 수 없다. 그렇지만 은유의 문제와 관련해서 양자는 상 당한 차이가 있다.1)   1) 은유의 역할에 대한 양자의 차이는 이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못 하다. 은유와 씨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내공을 요하는 문제이기 때문 이다. 마골리스의 견해로 은유에 대한 이들의 차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79   필자는 텍스트와 수사학의 문제를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을 통해 조망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지적한 논리학과 수사학의 갈등적 상황이 양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과학 혹은 지식으로서의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논리학보다는 수사학에 비중을 두고, 진리대신 의미를 수용하고, 지식을 거부하는 대신 확실성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의 요인이 있다. 그렇지만 텍스트와 수사학의 문제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방식은 궁 극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우선 근대의 철학적 담론에 도전하는 포스트모던한 상황들을 살핀 다음 데리다의 텍스 트주의를 다룬다. 여기서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갈등, 파르마콘 의 이중적 작용과 대리보충, 차연의 논리/놀이에 대해 논한다. 이후 의 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를 본질주의 비판과 언어놀이와 문법의 차원에서 다룬다.   2. 근대라는 바벨탑에 도전하는 포스트모던한 상황들   주체와 진리, 계몽된 이성과 합리성의 추구, 자연과학의 발달 로 인한 물질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표방한 근대의 거대한 기획에 맞서 니체는 도덕의 과잉과 기존 담론의 해체에 관심을 두었다. 근 대의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을 성공적인 권력을 향한 의지의 변종, 혹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권력으로 파악한 니체의 정신을 계승한 포 “데리다는 니체적 의미에서 언어가 지니는 은유적 성격을 극단적으로 주장하 는 데 반해, 비트겐슈타인은 사회적으로 실행 가능한 형식으로서의 자연 언 어를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니체적인 개념의 파괴 가능성을 배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데리다는 골수 회의론자이며, 비트겐슈타인은 골수 회의론 자의 숙적이다.” Margolis, “Vs. (Derrida, Wittgenstein),” Aesthetics, 1984, 131쪽. 80 • 수사학 제 8집   스트모더니즘의 전사(?)들은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경향성이 새로운 삶의 양식의 지표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우리의 생활세계 속에서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의 이동을 암중모색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지배적인 가치 에서 ‘탈주’하고, ‘해체’하려는 철학적 시도를 다양하게 모색한다는 점에서 개체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산 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라는 바벨탑을 비웃으며 현란하 게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계획적으로 정의할 수도 없으며, 상황 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의 부재가 규칙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이런 이유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면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지만, 불행하 게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알리는 조각들을 맞추는 작업은 우 리에게 완성된 그림을 제공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지배적 담론에 맞서는 대항적인 주 도권을 만들어 내는 전략을 취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절대적 진리, 의식적 자아, 역사주의를 축으로 한 근대성의 기획이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함께, 이성중심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하 며, 철학(형이상학)의 종말, 주체의 죽음,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대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무엇일 까? 이러한 물음과 관련해서 양자의 입장에는 유사성과 차이가 공 존한다는 점이 이후의 논의에서 밝혀진다.   3. 데리다의 텍스트주의   진리(의미)를 추구하는 이성중심주의의 철학을 현전의 형이상 학, 음성 중심주의, 남근 중심주의로 파악하는 데리다(J. Derrida) 는『그라마톨로지』에서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OG, 158 쪽)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담론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81   능성을 부정하는 ‘텍스트주의’를 내세운다.2) 이러한 데리다의 생각은 서구 사유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존재 신학적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했던 니체와 근대 속에서 함몰해버린 존재의 회복을 통해 근대를 벗어나고자 했던 하이데거, 그리고 언어는 차이들의 체계들 이라는 소쉬르의 반실재론적 언어관을 연장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 를 의미화 작용의 과정을 특징짓는 적합한 개념으로 보지 않는 데 리다는 무한히 증식하는 기표들의 유희 속에서 의미 생산이 구성된 다는 점에서, ‘차연’(差延)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즉 차연의 논리 에 의하면, 특정한 기표의 의미는 한 순간에 완결되지 않으며 그 의 미는 차이를 생성하는 움직임 속에서 끝없이 연기된다. 데리다는 음 성언어의 직접성이 문자언어보다 오염되지 않은 기원적 사유에 가 깝고, 한 집안의 가장은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논리적 동일성으로   2) 푸코에 의하면,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데리다의 주장은 “담론적 실천을 텍스트의 흔적으로 축소시키고,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책읽기를 위한 지식들만을 얻기 위해 생략하고, 주체가 담론 속으로 연루되는 양태를 분석하지 않기 위해 텍스트 뒤에 있는 목소리들을 만들어 내며, 그것이 행해 진 변형의 영역 속에 담론적 실천을 다시 위치시키지 않기 위해 원초적인 것을, 텍스트 속에서 말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말해진 것으로 설정하는 체 계”로 파악한다. 김현,『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 지성사, 119쪽, 1990, 재 인용. 데리다의 텍스트주의를 비판하는 푸코의 전략에는 담론을 단지 담론 으로서 다루지 않고 담론적 형성체를 다루는 데는 역사라는 요인이 결정적 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푸코와 데리다의 근본적인 차이는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과 달리 푸코의 담론 개념은 다른 텍스트나 담론들에 의해 결정되는, 개 방적이고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고유의 주체와 대상, 개념과 전략을 갖는 불연속적인 것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푸코의 담론 개념은 모든 것을 담론으로 환원하는 고정적 입장을 비판하며 오히려 담론은 변화 하고 그러한 변화는 담론 개념을 넘어선다는 입장을 취한다. 푸코의 관심이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이행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진경, “미셸 푸코와 담론 이론: 표상으로부터의 탈주”,『철학의 탈주』, 새길, 1995, 201쪽, 참조. 82 • 수사학 제 8집   진리라고 하는 하나의 중심 공간에 의미를 기록하는 근대적 사유 방식을 해체한다. 데리다에게 있어 텍스트는 더 이상 일관된 의미 또는 단일한 진리를 담고 있는 엄숙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모순과 공백의 집 합체로 이해된다. 때문에 시공의 복합체에서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 는 텍스트의 저자와 독자의 상호 관계에서 다양한 독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의미와 무의미가 ‘흩어져 버리는’(산포) 은유의 공간이 된다. 따라서 근대의 모든 인식론적 가치관은 해체의 문자학으로 대체되 어 모든 텍스트가 ‘차연’의 논리/놀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억압적으로 부과되는 신성한 의 미를 수용해야만 하는 당위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서 자 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 된다.   3.1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갈등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말과 글은 중요한 기제이다. 말은 소리 로 글은 기호로 나타난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말과 글의 관계는 언 제나 비대칭적이었다. 전통적으로 말이 의사소통의 영혼이라면, 글 은 그러한 영혼을 담는 육체의 역할을 했다.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말과 글, 즉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쉽지는 않 았다. 상식적인 생각에 의하면, 우리는 말보다 글에 더 비중을 둔 다.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에 접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철학의 역사는 그렇지가 못했다. ‘해체’의 철학 자 데리다가 논의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텍스트 를 통한 다양한 읽기를 추구하고자 하는 데리다는 글보다 말에 더 비중을 둔 기존의 철학 텍스트를 해체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83   데리다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해체의 전략이 말과 글에 대한 기존의 관계를 역전시켜 말(음성언어)보다 글(문자언어)에 더 비중을 두었 다고 생각하는 것은 데리다의 잘못된 독해이다. 오히려 데리다는 말 과 글에 담긴 이분법적 대립을 텍스트 안에서 교란시키면서 우리들 로 하여금 텍스트에 대한 열린 해석과 새로운 읽기를 통해 텍스트 의 차이와 다양성을 모색하고자 한다.3) 데리다에 의하면,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 완전한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그 텍스트를 하나의 닫혀있는 체계로 보는 것이다. 과거에 읽은 책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지속될 수도 있지만 독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책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과거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책은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 가받았다. 이를테면 책은 영혼으로 써진 저자와의 대화로서 각각의 책은 저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유한 작품이었다. 책의 권위를 무 시하는 것은 말/글, 현존/부재, 기원/반복, 복제, 기록되는 파생의 엄격한 상하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기표가 아닌 기의에 우선한 책에 대해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 데리다의 해체적 관점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필 요가 있다. “그래서 헤겔은 책의 마지막 철학자이자 문자의 최초 사상가인 것이다.” Derrida, Of Grammatology, trans. Gayatri Spivak, Baltimore: Johns Hokpins University Press, 1976, 26쪽. 데리다의 해체 전략에는 단 순히 텍스트 혹은 텍스트의 저자를 비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내재해있는 의미와 저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도들을 재생하는 데 있 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의 텍스트 읽기 방식은 나름대로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연관해서 데리다가 헤겔을 언 급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헤겔이 이러한 지평에서 생각한 모든 것, 다시 말해 종말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문자에 대한 고찰로 다시 읽힐 수 있다. 헤겔 역시 환원불가능한 차이의 사상가이다. 그는 사유를 기 호를 생산하는 기억으로 복원시켰다. 그리고 그는 … 문자로 쓰인 흔적이 없이도 버틸 수 있다고 항상 믿었던 철학자 -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적 - 담론 속에 이 흔적의 본질적 필연성를 재도입했다.” 같은 책, 같은 쪽. 84 • 수사학 제 8집   좋은 쓰기는 언제나 포괄되었다. 하나의 총체성 안쪽에 포괄되며, 한 묶음의 책 또는 한 권의 책 속에 수납된다. 책은 유한한 또는 무 한한 총체성, 또는 하나의 기표이다. 기표의 이러한 총체성이 총체 성을 획득하는 것은, 오직 기의에 의해서 구성된 총체성이 기표의 총체성보다 앞서 존재하고, 기표의 표기와 여러 기호들을 감시하며, 기표와 완전히 동떨어진 자신의 관념성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가능 하다. (OG, 18쪽) 데리다는 책에 대한 이러한 생각에는 책의 구조 바깥에 있는 로고스 중심의 형이상학, 진리를 중심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자리 잡 고 있음을 비판한다. 데리다가 책의 자리에 텍스트를 배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텍스트는 자기 완결적인 고정적 위치를 갖지 않는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텍스트는 씨줄과 날줄이 교차해 만 들어진 직물과 같은 그물망과 같다. 씨줄과 날줄이 얽히면서 새로운 직물이 생성되는 것처럼,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안에서 그 의미가 ‘산포’된다. 텍스트 속에 숨어있는 모종의 이해관계를 해체하고자 하 는 그의 전략은 다음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텍스트를 외부로부터 지배하려고 했던 것을 텍스트 속에 결렬하게 기입하면서 삭제로 말미암아 말소된 것을 읽히게 하는 삭제의 몇몇 결정적인 장소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이중의 놀이를 통하여 나는 이 러한 철학소들과 인식소들을 그것들이 관여성을 상실해 버림으로써 소진되어 버리는 그 경계선에까지 슬그머니 밀어 넣음으로써 그것들 의 규칙적인 내적 작용을 가능한 한 엄격하게 의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철학을 해체하는 것은 그 개념들의 구조화된 계보학을 가 장 충실하면서도 내면적으로 사유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가 어딘가 에 이해관계가 걸린 어떤 억압에 의해 스스로를 역사로 자처하면서 무엇을 은폐하고 금지시켰는가를 철학에 의해 형용되고 명명될 수 없는 어떤 외부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Po, 6쪽)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85   한 마디로 말해서 데리다가 염두에 둔 해체적 읽기는 의도적 으로 텍스트를 분열시키면서 다양한 의미를 산포하고자 한다. 이는 텍스트가 맥락이나 저자의 의도와는 독립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산 출하고 따라서 다양하고 대립적인 독해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텍스트에 써진 검정 활자보다 그 여백에서 자유롭게 유희 (놀이)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데리다에 의하면, 텍스트의 여백은 무 한하게 산포된 변형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는 항상 새로운 것으로 될 수 있다.” (Dis, 345쪽)   3.2 파르마콘의 이중적 작용과 대리보충   데리다의 저작은 근본적인 철학 비판으로서, 그것은 진리와 지식이라는 통상적인 개념을 문제 삼는다.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가 로지르며 해체하고자 하는 그에게 철학은 무엇보다도 글쓰기이다. 따라서 철학은 문학이 관심을 갖는 언어의 스타일과 형식, 즉 수사, 은유 혹은 텍스트의 편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데리다의 저작들을 관통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두 개의 키워드는 ‘결정불가능 성’(undecidability)과 ‘탈선한 의사소통’(derailed communication) 이라는 개념이다.4)   4) 데리다는 이 둘의 행렬을 바이러스의 형체에서 발견한다.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첫째, 생물학적 영역에서도 의사소통에 무질서를 끌어 들인다. 이때의 무질서는 부호와 부호의 해독을 상식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게 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바이러스는 생물도 무생물도 아니다. 그것은 활 동적이지도 비활동적이지도 않으며, 살아있지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 은 결정불가능한 대상이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즉 살 아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좀비(zombie)는 결정불가능한 대상이다. 이러한 결정불가능성은 기존에 통용된 이항 대립의 구조, 즉 삶/죽음, 정신/몸, 안/ 밖, 긍정/부정, 현재/과거, 참/거짓, 남/여 등의 양자택일적 지배의 논리를 86 • 수사학 제 8집   데리다는 해체적 읽기를 위한 시도의 하나로서 플라톤의『파 이드로스』를 새로운 각도에서 읽는다.『플라톤의 약국』에서 데리다 는 음성언어가 문자보다 우월함을 파이드로스에게 설득하는 소크라 테스보다 희랍의 청년 파이드로스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서양철학 의 모델이랄 수 있는 플라톤의 텍스트를 가지고 결정불가능성의 놀 이를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플라톤의 텍스트를 읽는 데리다의 전략 은 기존의 주석가들이 행하는 작업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갖는다. 주지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적 추론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진실의 길이라고 믿는 플라톤은 거짓된 지혜의 전달자, 즉 그럴 듯 한 언어유희로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소피스트나 수사 학자들처럼 단지 자연을 모방하거나 지식 없이 반복하는 시인이나 신화학자, 이야기꾼을 폄하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성과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서 진정한 철학은 이성의 능동적인 활용이다. 플라톤의『파이드로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소크라테 스를 통해 합리적인 논증이 아니라 신화를 통해 음성언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플라톤의 결정론적 생각, 즉 음성언어는 선하고 문자는 악 하며, 진정한 기억은 내면적이고 문자로 써진 것을 상기하는 일은 외 면적이며, 음성 언어는 지식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문자는 그 외 관만을 지니고 있으며, 언어의 신호는 살아 있는 것이고 문자는 죽은 것이다라는 생각을 데리다는 결정불가능한 놀이로 대체하고자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파르마콘’(pharmakon)이 등장한다. 기존의 플라 톤 독해에 대한 데리다의 의도적인 탈선된 의사소통이 시작된다. 약과 독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파르마콘을 가지고 데 리다는 플라톤의 이항 대립적 구조를 해체하고 텍스트 속에 잠재되 붕괴시킨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양성구유자가 있고, 인간과 기계 사이에 는 안드로이드가 있으며, 친구와 적 사이에는 이방인이 있는 것처럼, 결정불 가능성은 이러한 이항 대립의 원리 자체를 근원적으로 의문에 빠뜨린다. 제 프 콜린스,『데리다』, 이수명 옮김, 김영사, 2003, 20-28쪽, 참조.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87   어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재구성함으로써 기존의 텍스트 해석에 대 한 반전을 도모한다. 즉 약으로 읽히기를 강요받고 있는 지점에서 파르마콘을 독으로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읽음으로써 파르마콘에 대한 이중적 움직임(운동)을 주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데리다 는 이항 대립의 쌍들을 붕괴시키고 그에 대한 반전을 통해서 결정 가능성 속에 숨어있는 문자의 결정불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따 라서 파르마콘은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되거나 하나의 의미로 사용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념의 차이 로 대체되면서 확산되게끔 하는, 이른바 텍스트의 열린 해석을 가능 하게 하는 구성적 힘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파르마콘은 고유하거 나 결정적 성격을 갖지 않으며, 그것은 가능성의 놀이이고 안과 밖 을 넘나드는 운동이다. 파르마콘의 결정불가능성에 대하여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정불가능성은 철학적 이항 대립 속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립 속에 살면서 거기에 저항하고, 그 대립을 조직하면서 파괴시킨 다. 그러나 결정불가능성이 제3의 용어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고 사 변적 변증법의 해결을 부르는 것도 아니다. 파르마콘은 치료약도 아 니고 독약도 아니며,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말도 아니고 문자 도 아니다. 대리보충은 보탬도 아니고, 모자람도 아니며, 바깥도 아 니고 안의 보완도 아니며, 우연도 아니고 본질도 아니다. … 문자는 기표도 아니고 기의도 아니며, 기호도 아니고 사물도 아니며, 현존도 아니고 부재도 아니며, 정립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다. (Po, 43쪽) 플라톤의『파이드로스』는 음성언어/문자, 원형/파생, 아버지 와 아들의 대립을 고정시키려는 자기동일성의 시도이다. 데리다는 파르마콘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텍스트 속에서 대립을 이루고 있는 개념들 간의 위계질서로부터 차이를 이루고 있는 균형의 관계로 회 복시키기 위한 전복의 단계로 대리보충(supplément)5)을 도입한다. 88 • 수사학 제 8집   『파이드로스』에서 자기지식을 추구하려는 철학의 소명을 보충하기 위해 신화를 도입하는 것도 역시 대리보충의 한 사례이다. 신화로부 터 독립한 철학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시금 신화가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소크라테스는 신화 가 아니라 자기지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델피의 신탁, 더 자 세하게 말하면 델피의 비명에 새겨진 문자를 언급하지 않던가? 이 처럼 신화와 철학의 경계는 대리보충의 과정을 통해 그 경계가 모 호해지면서 텍스트의 의미가 새롭게 재구성될 가능성이 열린다. 따라서 대리보충의 논리는 기존의 존재론에서는 사유될 수 없 다. 대리보충은 유령처럼 출몰한다. 그 자체로는 현전도 부재도 아 니며 흔적으로 남는 효과를 묘사한다는 것, 그것이 그 지형을 변형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해체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대리보충은 바이 러스와 같다. 그것은 모든 것을 감염시킨다.6) 데리다에 따르면, “이 개념은 사로잡을 수도, 길들일 수도, 교화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 독성이 강하다.” (OG, 157쪽)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데리다의 플라 5) 프랑스어 ‘supplément’은 추가와 대체 모두를 의미한다. 대리보충이란 보완 을 위해 어떤 것이 보완된 것, 그리고 단지 외부적인 것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충만성에 다른 충만성이 보완된 것, 즉 잉여라는 뜻, 그리고 채워지려면 비워져야 하는 것처럼 결여를 만들어낸다 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포함한다. … 데리다는 대리보충 안에서 이 두 의미 작용의 이상하지만 필요한 공존을 탐색한다. 대리보충에는 기묘한 논리가 뒤따르게 된다. 그것은 내부자도 아니고 외부자도 아니면서, 그리고/또는 그 것은 동시에 내부자익면서 외부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부분이 되지 않으 면서도 일부분을 형성하며, 속하지도 않으며 속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 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리보충은 미치게 만든다. 그것은 현전도 부재 도 아니기 때문이다.” (OG, 154쪽) 니콜러스 로일,『데리다의 유령들』, 오 문석 옮김, 앨피북, 2007, 122-123쪽, 6) 니콜러스 도일, 같은 책, 124쪽. 말과 글의 문제를 대리보충의 관계에서 보 자면, 말은 자연이고 글은 자연의 대리보충이다. 성교가 자연이라면 자위행 위는 자연의 대리보충이다. 대리보충의 ‘유령적 결론’에 대해서는 같은 책, 134-140쪽을 참조할 것.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89   톤 읽기는 종결된 상태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파르마콘이 치료약 인지 독약인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파르마콘의 원흔적이라 할 수 있는 차연이 끝없이 차이를 내며 연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 다. 플라톤이라는 서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3.3 차연의 논리/놀이   차연은 이제까지 논의한 데리다의 텍스트주의, 파르마콘, 대 리보충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차연 이란 무엇인가? 차연을 정의하는 것은 가능한가? 불행하게도 이러 한 물음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응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데리다에 게 있어서 차연은 텍스트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어떤 식으로 작 용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차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하지 않고는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적 사유체계를 논하기가 어렵다는 점 이다. 특히 차연은 어떤 하나의 낱말, 개념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차연의 일차적 관문은 차이에 있다. 그렇다면 차연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김상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데리다 의 차연에 이르기 위해 불가피하게 지나가야 하는 두 종류의 차이 가 있다. 그것은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학적 차이와 하이데거가 말하 는 존재론적 차이이다.”7) 거칠게 말해서 소쉬르는 랑그와 파롤, 기표와 기의, 연쇄체와 계열체의 구분을 통해 구조주의 언어학을 완성했다. 하이데거는 서 구 형이상학의 실패가 존재론적 차이를 망각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이 둘의 차이에서 데리다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는다. 즉 소쉬르나 하이데거가 지적한 차이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데리다 가 해체의 표적으로 삼았던 음성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   7) 김상환,『해체론 시대의 철학』,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6, 178쪽. 90 • 수사학 제 8집   한다.8) 해체의 길을 선택한 데리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생겼다. 이를 위해 데리다는 두 가지, 즉 옛 이름(palaeonymics) 과 신조어(neologism)의 사용을 택한다.9) 이런 전략의 목표는 물론 형이상학의 토대를 교란시키는 데 있다. 옛 이름은 음성언어와 문자라는 이분법에서 후자를 뜻한다. 그렇지만 데리다는 문자의 의 미를 과거의 사용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라마톨로지’라는 용어가 데리다의 독특한 사고를 표현하는 것처럼, 데리다는 과거에 통용해 온 문자를 자기 식대로 변형시키면서 말과 글 사이의 긴장 관계를 극대화시킨다. 그렇지만 데리다가 자기 식대로 말하고자 하는 ‘문자’ 에는 형이상학에서 각인된 의미를 완전하게 해소할 수 없다는 한계 가 있었다. 데리다에게는 특권화된 음성언어의 우월성으로 폄하된 문자의 지위를 복권시키는 동시에 양자의 관계를 원초적 기반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존의 이분법이라는 대립적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데리다의 신조어에 해당되 는 ‘차연’은 새롭게 태어났다. 차연에 해당되는 불어는 la différance이다. 원래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이 조어는 차이를 뜻하는 불어 la différence와 발음(소 리)이 같고, 다만 글자(문자)상에서 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데리다가 이런 조어를 만든 속사정은 무엇일까? 철자법상 차연은   8)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Derrida, Of Grammatology, 제2장, 을 참조할 것. 여기서는 주로 “언어와 문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기호 체계이다. 문자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언어를 대리표상하는 것이다”는 소쉬르의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적 생각이 다루어지 고 있다. 또한 하이데거의 ‘현전의 형이상학’을 토대로 후설의 현상학까지 해체하려는 데리다의 생각은 데리다,『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 사랑, 2006, 123쪽과 옮긴이 해제(논문: “철학적 구도(求道)의 가능성”)를 참조할 것. 구조주의와 현상학에 대한 데리다의 저작들은 1967년에 출간된 『목소리와 현상』,『글쓰기와 차연』,『그라마톨로지』를 들 수 있다. 9) 제프 콜린스,『데리다』, 이수명 옮김, 김영사, 2003, 78쪽, 참조.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91   분명히 정상의 경우가 아니라 변칙사례에 해당된다. 이러한 변칙의 원인은 논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즉 차연은 결정불가능한 차이 의 놀이를 통해 차연이 그 자체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차연은 낱말도 개념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이 름도 아니다. 데리다는 차연을 ‘묶음’ 혹은 ‘다발’ (MP, 3-4쪽)이라 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실이나 의미의 줄을 다시 출발시키고 다른 것들과의 매듭을 맺게 하는 짜깁기나 교차나 얽힘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뉘앙스가 묶음 혹은 다발과 비슷하기 때문이 다.10) 차연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들리지 않는 의 차이를 드러 내고자 하는 데리다의 의도는 그것이 문자(텍스트)를 통해야만 한다 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있다. 문자로서의 차이는 있지만 음성으로서 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소쉬르가 말하는 모든 기호를 가 능하게 하고 기능하게 하는 ‘차이’도 데리다가 고안한 차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차이에서는 이항 대립적 구조의 위계를 생각 해야 하지만, 근원적 흔적(실체 없는 근원으로서의 흔적)으로서의 차연은 그러한 구조의 양극단을 가로지르며 텍스트의 의미를 생산 해내는 일종의 힘과 같은 역할을 한다. 때문에 차연에서는 고전논리 에서 말하는 동일율, 모순율, 배중율과 같은 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말하는 정-반-합의 논리에 도 적용되지 않는다. “차연은 목소리에도 속하지 않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글에도 속하지 않는다.” (MP, 5쪽) 차연은 결정불가능 성의 운동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전략은 차연의 논리 를 정당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연의 해체적 놀이를 고통스럽게(?) 즐긴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연의 성격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데리다는 차연 은 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니고 하나의 ‘중간태’(middle voice) (MP,   10) 김형효,『데리다의 해체철학』, 서울: 민음사, 1993, 207쪽, 참조. 92 • 수사학 제 8집   9쪽)라고 규정한다. 차연의 시간적 실인 기억, 대기, 연기, 유보, 저 장, 유예 등의 개념과 차연의 공간적 실인 차이, 거리, 행간, 사이, 자간 등의 개념은 서로 다르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공간으로 또 공간 이 시간으로 변용될 수 있다. 그래서 차연은 ‘시간의 공간되기’(becoming space of time) 혹은 ‘공간의 시간되기’(becoming time of space)가 서로 교차하는 직물로서 표상된다. 그런 점에서 차연은 수 사학에서 말하는 ‘교차적 배어법’(chiasmus)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11) 따라서 “의미작용이라는 운동을 가능하게 하 는 만드는 것으로서” (MP, 13쪽) 차연은 언어와 의미의 가장 근원 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동일성과 차이, 차이와 연기, 반복과 타 자성을 한꺼번에 가져다주는 이상한 논리인 차연은 우리가 결코 따 라잡을 수 없는 탁구공이다.12) 탁구공을 때리는 선수들의 차이와 다양성에 따라 탁구공의 움직임 역시 차이와 다양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탁구공을 우리는 한 번도 고정된 시각에서 볼 수 없 다. 이런 이유로 해서 차연은 (텍스트의 다양한 맥락에 따라) ‘흔적’, ‘파르마콘’, ‘문자’, ‘대리보충’, ‘고막’, ‘쇼핑목록’13), … 등으로 변할 수 있다. 때문에 차연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물음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차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회귀의 운동이 아니던 가?   11) 김형효, 같은 책, 214쪽. 교차적 배어법은 2개의 같은 관계에 있는 구 또는 절이 반복될 때의 어순의 전치(轉置)를 말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죽기위해 살지만, 우리는 살기위해 죽는다”와 같은 문장을 들 수 있다. 또한 ‘X’, ‘+’ 와 같은 문자들도 교차적 배어법을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12) 니콜러스 도일, 같은 책, 174쪽. 13) 데리다의 차연을 엘리자베스 바우엔(Elizabeth Bowen)의 소설『마음의 죽 음』(The Death of Heart, 1938)에 나오는 쇼핑목록과 비교하는 글을 위해 서는 니콜러스 로일,『데리다의 유령들』, 168-181쪽을 참조할 것.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93   4.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진 언어적 환 경에 둘러싸여 양육되고, 학습의 과정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고, 세 계 속의 대상들을 언어의 의미화 과정을 통해 이해하고, 성장하는 언어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인간 정신 활동의 산물이다. 여 기서 말하는 언어는 단순히 일상 언어에서 사용되는 말과 글뿐만 아니라 낱말을 통해 대상을 알 수 있는 지시적 언어들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드시 지시적 언어를 통해서만 낱말의 의미를 획 득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이나 과학 혹은 음악, 미술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 추상적, 혹은 상징적인 영역에서 언어가 작동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인간은 언어 의 사용을 통해 삶과 세계 속에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행 위들을 이해하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와 인식에 있어 서 언어의 고정점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말과 글을 가지 고 지식과 지혜를 전수받고, 문제의 해결 방식을 강구하며 미래를 계획한다는 점에서 언어는 모든 인간 활동의 토대가 된다. 이런 맥 락에서 언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작업은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한 언어놀이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놀이를 통해 다음의 물음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데 있었다. (1)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2) 한 화자가 자신들의 공통 언어에서 표현을 하는 것처럼, 다른 화자가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94 • 수사학 제 8집   4.1 본질주의 비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될 만큼 사유 방식 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언어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 다. 그가 제시한 철학의 문제는 한 마디로 ‘언어를 언어로서 가능하 게끔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물음 속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의미와 이해의 문제가 함축되 어 있다. 칸트가 이성 능력의 비판을 통해 인식의 한계를 명확히 구 분한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기능적 역할과 그 한계를 명확 하게 구분함으로써 기존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는『논고』에 의하면, 진리는 지식을 파악하는 인간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인 기준 에 의해 결정되는 실재론과 관련이 있다. 실재론에 의하면, 현실 세 계뿐만 아니라 가능 세계에 있어서 진리를 가늠할 수 있는 선천적 형식들이 있다. 실재론에 입각한 의미론적 본질주의를 그대로 계승 한『논고』의 주된 관심은 이상 언어의 ‘논리적 형식’(logical form) 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데 있다. 언어의 본질은 논리적 공간의 세계 를 ‘그리는’ 것이다.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다. 명제는 우리가 그렇 게 생각하는 실재의 모형이다.” (TLP, 4.01) 그러나 언어의 사용과 의미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후기에 서는 철학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곧 당혹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며, 이는 진정한 철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선행 조건에 해당된다.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하는 철학적 문제 는 “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제로 느껴진 혼란” (BB, 6쪽)이며, “철학적 문제는 ‘내가 어느 길을 가야할지를 알지 못한다’는 형식을 갖는다.” (PI, §123) 철학자들이 부딪히는 난점의 진정한 원천은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95   내부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깊은 데 있어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것의 존재를 알기조차 어렵다. 철학자는 건전한 인간 지성의 개념에 도달할 수 있기 전에 자신의 지성의 수많은 질병을 스스로 치유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만일 우리 가 삶 속에서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그와 같이 우리는 오성(이 해력)의 건강 속에서 광기에 둘러싸여 있다. (RFM, IV §53) 세계와 사물들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사고방식이나 기존의 철 학자들에게 은폐되어 있는 사유의 불합리성을 드러내려는 비트겐슈 타인은 철학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목적은 가장된 헛 소리에서 명백한 헛소리에로 옮겨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PI, §464) 철학적 당혹의 주된 원천은 언어에 대한 오해와 인식 초월 적인 형상 내지는 본질을 추구하려는 “일반성에 대한 열망” (BB, 17~18쪽)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그는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이 본질 에 집착하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일상 언어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차이와 다양성을 간과해서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그림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철학적 질병에 걸린다고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이『탐구』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바로 존재와 세계에 관련된 기존의 사유 방식과 개념들의 의미에 대해 비판하는 언어적 문제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언어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며 똑같은 문법적 범주에 있는 낱말들은 모두 똑같은 식으로 기능한다는 전기의 생각으로부터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로 전환한다. 낱말의 의미는 낱말에 의해 지시되는 대상도 아니며, 낱말을 둘러싼 어떤 정신적 분위기도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낱말의 사용에 있다.『논 고』에 의하면, 명제가 하는 일은 단 하나의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다. 그러나『탐구』에서는 낱말과 명제들은 광범위하게 다양한 상황 96 • 수사학 제 8집   들에서 적용되며, 적용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 준이 있다는 점과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과 명제를 어떻게 ‘이 해’하는가 하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실재의 그림이 아닌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며, 서로 다 른 언어는 연장통에 있는 서로 다른 연장들처럼 아주 다양한 용도 를 갖는다. 어떤 연장에도 고유한 용도에만 쓰이는 단 하나의 용도 가 없는 것처럼 (이를테면, 망치는 못을 박기도 하지만 못을 빼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낱말이 나 문장도 마찬가지로 단 하나만의 본질적인 용법이란 없으며, 여기 저기에 ‘유사성’14)들이 존재한다. “우리를 혼란시키는 것은 낱말들 이 우리에게 말해지거나 원고 또는 인쇄된 글에서 우리와 마주치게 될 때 그 낱말들이 지니는 겉모습의 획일성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사용은 우리 앞에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철학을 할 때에는!” (PI, §11) 일상 언어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 주목할 것을 강조하는 비 트겐슈타인의 생각은『탐구』§156~178에서 논의되는 ‘읽기’ 개념에 대한 분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떤 신문 속에 있는 기사를 읽는 것과 그 기사를 읽는 체 하는 것 간에는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처 럼, 그는 단순히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차이들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읽기’를 일종의 규칙따르기로 생각한다. 즉 ‘읽기’는 14)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유사성은 비유사성을 수반하는 개념이다. “우리의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놀이들은 미래의 어떤 언어 규제를 위한 예비 연구들 - 말하자면 마찰과 공기 저항을 고려하지 않은 최초의 근사치들 -이 아니 다. 오히려 그 언어놀이들은 유사성과 비유사성에 의해 우리의 언어 상태 에 대해 어떤 빛을 던져야 할 비교 대상들로서 있다.” (PI, §130) 그런 점 에서 유사성은 언어의 본질을 가정하는 언어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의 역할 을 수행한다. 동시에 그것은 흄에게서와 같은 자연성을 논할 수 있는 계기 이기도 하다. 양은석,『논리철학』(미출간본), 2007, 160쪽.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97   읽고자 하는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쓰인 것이나 인쇄 된 것을 규칙에 따라 소리로 바꾸어 놓은 활동이다. (더 나아가 구 술하는 것에 따라 적는 것, 인쇄된 것을 베껴 쓰는 것,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 등등도 읽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읽기’는 “어떤 하나의 특별한 의식적 정신 활동” (PI, §156)이 아니다. 오히려 읽기는 “이러이러하게 써진 글자에 반응하는 것을 뜻 하며, … 학생이 읽기 시작했을 때의 변화는 그의 행동의 변화였 다.” (PI, §157) 읽기 위해 규칙을 따르는 것은 행동적인 기술 (technic)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술을 갖는 것은 일정한 종 류의 경험을 겪는 문제나 의식의 조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비 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물리적인 대상으로서 언어적인 기호를 단순히 지각하는 사적인 차원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실천의 영역에서 생각할 문제이 다.15) 중국인의 말을 건성으로 들을 때, 우리는 그의 말을 분절되지 않은 ‘쏼라쏼라’와 같은 소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소리 속에서 언어를 인식할 것이다. (CV, 15쪽) 전통적 철학에 의하면, 언어와 사유의 기초들은 선천적인 원 리, 수학의 공리, 자명한 진리 혹은 직접적인 경험이나 감각 자료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의 하면, 규칙을 따르는 인간의 행위에는 삶의 다양한 양식들이 주어졌 다는 자연적 조건을 외면할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은 본래적으로 규 칙을 따르는 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논 리는 인간의 본성을 포함해 수많은 자연의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즉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15) McGinn, Wittgenstein on Meaning, Oxford, Blackwell, 1987, 46-47쪽. 98 • 수사학 제 8집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실이다.16) 이는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언어 사용의 자연성을 본능을 빌어 설명하는 것과 통한다. 그에 따 르면, “언어 사용은 이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연적 본능에 의한 것이다.” (OC, §475) 그러면서도 중요한 점은 몇 가지 기술들이 우리들에게 예를 통해 설명된 후에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여러 가지 예를 통해서 이러이러한 하나의 기 술을 가르친다면, 그랬을 때 그는 이런 식으로 진행하며 어떤 특정 한 새로운 경우에는 저런 식으로 하지 않거나, 혹은 그가 저런 식이 아닌 이런 식으로 계속하는 것은 그에게는 ‘자연적인’ 지속인 것이 다. 이 점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자연의 사실이다. (Z, §355) 언어의 도구적 측면과 언어의 사회적 성격을 동시에 파악함으 로써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의미 이 론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었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단순히 하나 의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들 의 집합체인 동시에 언어는 어떠한 규칙들, 즉 언어에 있어서 다양 한 용법을 ‘규제하는 규칙’17)들에 의해서 정의되는 일련의 활동들이   16) 스트로슨이나 핸플링은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반회의적 특성을 통해 그의 철학을 흄의 자연주의로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종속논제’와 ‘선험논 증’을 빌어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흄의 자연주의로 간주한다. 핸플링에 의하 면, 정당화될 수 없는 근본 신념은 의심할 수 없는 삶에서 당연히 받아들 여야 할 것이고, 그러한 점을 이성이 본능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종속 논제 를 통해 보여 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자연적, 본능적 반응을 빌어 이성이나 경험을 통해 정당화될 수 없는 근본 신념들의 그러한 성격 을 강조한다. 이하 자세한 논의는 양은석, 같은 책, 제6장 ‘비트겐슈타인과 자연주의’, 144-167쪽, 참조할 것. 17) 규칙의 차이를 규칙의 지위와 관련시키면 규칙에는 구성적 규칙과 규제적 규칙이 있다. 구성적(constitutive) 규칙은 게임이나 모종의 행위를 가능하 게 하는 규칙으로 테니스의 규칙, 또는 카드 게임의 창시자가 카드 게임에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99   라고 볼 수 있다. “언어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것의 개념들은 도구 들이다.” (PI, §569)   4.2 언어놀이와 문법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은 (전기의 그림이론과 달리) ‘언어놀 이’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라는 말 이 주는 가벼움 탓에 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 가볍고 경박하 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과연 언어와 놀이라는 개념이 잘 통할 수 있는 조합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언어를 놀이와 연관시키는 비트겐슈타인의 의도는 언어를 말하는 것과 비 언어적 활동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실제로 언어를 말하는 것은 공동 사회 활동의 일부, 즉 복잡하게 뒤얽힌 (우리에게 자연적 으로 주어진) ‘삶의 형식’에 포함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데 있다. 비 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의 용법에는 다양한 쓰임 이 있음을 주목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언어놀이에 대한 개념은 이미 중기의『청색책』에서 등장하고 있다. 부여한 규칙과 같은 것을 말한다. 구성적 규칙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 합적으로만 의미를 가지며, 명령문보다는 보통 서술문으로 표현되어 어떤 동작이나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가령 테니스를 정의하는 구성적 규칙이 없이는 한 점을 따거나 한 세트를 이기는 것은 물론 서브를 하거나 서브를 받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다른 한 편, 규제적(regulative) 규칙은 개별적으 로 완전한 의미를 지니며, 서술문보다 보통 명령문으로 표현되며, 그 규칙 에 의해서 조정하려는 동작이나 행위를 이미 가능한 것으로 전제한다. 체 스의 규칙이 구성적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하여 체스의 전략은 규제 적 규칙이다. 뉴턴 가버 ․ 이승종,『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 이승종 ․ 조성 우 옮김, 민음사, 1998, 173쪽. 18)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있어서 ‘언어놀이’, ‘규칙’, ‘실천’, ‘삶의 형식’ 등은 핵심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100 • 수사학 제 8집   나는 미래에 되풀이해서 내가 언어놀이들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들 에 여러분들의 주의를 돌릴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우리의 매우 복잡한 일상 언어의 기호들을 사용하는 방식들보다 단순한 기호들을 사용하는 방식들이다. 언어놀이들은 어린애가 낱말들을 사용하기 시 작하는 언어의 형식들이다. 언어놀이에 대한 연구는 원시적인 언어 의 형식들이나 원시적인 언어의 연구이다. 우리가 참과 거짓, 명제 의 실재와 불일치, 주장, 가정, 그리고 물음 등의 본성에 대한 문제 들을 연구하려 한다면, 우리가 매우 복잡한 사유의 과정과 같은 혼 란한 배경이 없이 이러한 사유의 형식들이 나타나는 원시적인 언어 의 유형들을 보는 것은 상당히 유리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언어 의 단순한 형식들을 볼 때,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의 쓰임을 가린 것 처럼 보이는 안개는 사라진다. (BB, 7쪽) 중기의 비트겐슈타인이 이러한 언어놀이 개념을 착상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의도들이 있었다. 수학의 ‘계산’을 ‘놀이’(게임)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함으로써 수학기초론에서 논의되는 플라톤적 실 재론이나 유명론적 형식주의와 다른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었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놀이가 그 자체로 어떠한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계산 체계 역시 그 자체로 완전하며, 놀이가 발견된 것이 아니라 구성 혹은 발명된 것처럼, 수학 역시 마찬가지 이며, 놀이가 자율적인 것처럼, 계산 체계 역시 자율적이라는 점이 깔려 있다. 이러한 놀이의 개념은 언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놀 이(게임)에서 규칙의 역할은 언어에서 규칙의 역할과 유사하다. 놀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놀이 역시 인간의 자율적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 혹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고정된 규칙에 의거한 계산 개념은 일상 언어의 유연함과 다양성을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 다. 이상언어에 입각한 논리적 사고로부터 일상 언어에로 전환을 모 색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다음의 글에서 충분하게 엿볼 수 있다.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101   우리가 실제의 언어를 더욱 정확하게 고찰할수록, 그것과 우리의 요 구 사이의 충돌은 더욱 강해진다. (논리학의 수정체 같은 순수성은 실로 나에게 탐구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요구였다.) 그 충돌은 견딜 수 없게 된다; 그 요구는 이제 공허한 어떤 것으로 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마찰이 없는, 그러니까 어떤 뜻에서는 그 조건이 이상적인,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또한 걸어갈 수도 없는 빙판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걸어가고 싶다; 그렇다면 우 리에게는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대지로 되돌아가자! (PI, §107) 우리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삶의 세계는 수많은 우연성들이 작동한다. 이러한 세계를 논리적 참과 거짓이라는 이상언어로 그려 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이 마찰이 있는 일 상 언어로 관심을 돌린 것은 일상 언어의 다양한 쓰임과 맥락을 무 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 언어의 실천적 활동을 주목하며 언어놀이가 삶의 형식의 일부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의 글은 언어 놀이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으며 언어놀이 의 다양한 목록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기호들’, ‘낱말들’, ‘문장들’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상이한 종류 의 사용이 있다. 그리고 이 다양성은 고정된 것, 딱 잘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의 새로운 유형들, 새로운 언어놀이들이라 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고, 다른 것들은 낡은 것이 되어 잊혀 진다. (수학의 변화들이 우리에게 이에 관한 하나의 대략적 그림을 줄 수 있다.) ‘언어놀이’란 낱말은 여기서,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활동의 일 부, 또는 삶의 형태의 일부임을 부각시키고자 의도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에서, 그리고 다른 예들에서 언어놀이의 다양성을 똑똑히 보라: 명령하기, 그리고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 어떤 하나의 대상을 그 외관에 따라서, 또는 측정한 바에 따라서 기 102 • 수사학 제 8집   술하기- 어떤 하나의 기술(소묘)에 따라 어떤 대상을 제작하기- 어떤 하나의 사건을 보고하기- 사건에 관해 추측들을 하기- 어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검사하기- 실험결과들을 일람표와 도표로 묘사하기-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짓기; 그리고 읽기- 연극을 하기- 윤무곡을 부르기- 수수께끼 알아맞히기- 농담하기; 허튼소리하기- 어떤 하나의 응용 계산 문제를 풀기- 어떤 한 언어로부터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부탁하기, 감사하기, 저주하기, 인사하기, 기도하기. (PI, §23) 그렇다면 언어를 놀이와 관련시키는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언어와 의미는 인간의 실천적 행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러 한 실천적 행위의 문맥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 의 사용에 있어서 의미와 행위 간에는 놀이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낱말이 의미를 얻는 다양한 언어놀이를 (사 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자연사와 관련시킨다. “명령하기, 질문 하기, 말하기, 잡담하기는 걷기, 먹기, 마시기, 놀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연사의 일부이다.” (PI, §25)19) 자연사의 일부인 언어놀 이는 어떤 하나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차이 그 리고 유사성으로 중첩된 인간의 실천적 활동과 관련된 복잡한 네트 워크를 형성한다. 이런 이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놀이를 ‘가족유사 19) 자연사와 관련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의 다음의 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 리가 제공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인간 존재의 자연사에 관한 고찰이다. 그러 나 우리가 불러일으키려는 것은 호기심이 아니라, 항상 우리 눈앞에 있기 때 문에 아무도 의심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확인이다.” (PI, §415)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103   성’(family resemblance)으로 설명한다. 밧줄은 그것을 형성하는 많 은 섬유들이 중첩됨으로서 강한 힘을 갖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관 통하는 언어놀이 역시 다양성과 차이 그리고 유사성으로 중첩되었 을 경우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또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언어놀이는 언어적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사학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20) 말과 글 의 긴장 관계를 수사학적 힘으로 해소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수사학에 대한 관심은 “철 학은 한 편의 시처럼 쓰듯이 해야만 한다” (CV, 28쪽)는 구절에서 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연하고 자유로운 글 쓰기를 옹호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일 상에서 익숙한 나머지 지나치기 쉬운 언어적 문제들에 대해 근원적 으로 묻고 생각하는 엄정한 과정을 통해 자기 식의 명확한 글쓰기 를 한다. “올바른 문체로 쓴다는 것은 차량을 철로 위에 한 치의 어 긋남도 없이 올려놓는다는 것을 뜻한다.” (CV, 44쪽) 그의 글을 자 세히 살피면 거기에는 은유와 유추를 통한 수사학적 표현의 힘이 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이라는 거대담론이 일으킨 혼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도의 변화, 혹은 봄의 방식의 변화가 요구된 다. 이러한 봄의 방식의 변화는 지적인 영리함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함으로써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 잠재된 이해와 느낌의 지평을 재발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항상 영 민함의 척박한 산정에서 내려와 어리석음의 푸른 계곡으로 들어가 라.” (CV, 86쪽)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철학은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의 기술 에 의해서 철학적 문제와 오해들이 해소되고 제거되어야 하는 문법 적 탐구이다. 개념적 관계에 대한 고찰은 ‘문법적 주석’ (PI, §232) 20) 박만엽, “후기 비트겐슈타인 텍스트의 수사학적 읽기”,『수사학』, 제7집, 한국수사학회, 2007, 75-98쪽, 참조. 104 • 수사학 제 8집   내지는 ‘문법적 고찰’ (PI, §574)이다. 논리적 물음들은 실질적으로 문법적이어야만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오해는 무엇 때 문에 생기는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주된 원천은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사용 을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문법에는 명확성이 결 여되어 있다- 명확한 묘사가 이해를 성립시키며, 이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연관들을 보는’ 데에 존립한다. 매개적인 중간고리들의 발견 과 발명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I, §122)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들은 분명히 단 하나의 용법만을 갖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언어놀이의 다양성은 단순히 언어의 유사성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차이에 의해서도 밝혀질 필요가 있다. 어떤 한 낱말의 사용을 지배하거나 그 낱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명확한 규칙을 제시한다는 생각은 철학적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철학적으로 혼란된 사람은 말이 쓰이는 방식에서 하나의 법칙을 본 다. 그리고 이 법칙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그것이 역설적 결과로 이끄는 경우에 부딪치게 된다.” (BB, 27쪽) 더군다나 우리가 일상적 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표현들은 물론 철학적으로 흥미 있는 표현 들조차도 그것들은 엄격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 엄격한 의미를 갖 지도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설명으로서의 철학을 배격하고 철학의 기술적 측면을 강조한다. “어떠한 철학도 언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해를 주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철학은 언어의 사용을 단지 기술할 뿐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언어의 사용에 대한 기초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 아둔다.” (PI, §124) 철학의 설명적 측면을 배격하는 그의 생각은 과연 정당한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의미’가 어떤 정신적 실재나 활동을 가리킨다면, 우리가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105   행하는 언어놀이의 모든 측면은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 러나 언어놀이는 “아무 것도 감추어져 있고, … 아무 것도 숨어있지 않은” (PI, §435) 공적인 영역에 속한다. 아픔과 같은 사적인 감각 이 아픔에 대한 언어놀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철학이 궁극적으로 문법적 규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문법적 규칙의 명료화를 통해서 철학적으로 혼동을 일으킨 문제들 과 역설들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물속에 있는 설탕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그러한 문제들이 사라지는 문법적 사실들을 정리하는 것에 실패하는 데서 기인한다. 과학의 문제는 그 특성상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있는 반면 에, 철학의 문제들은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과학과 달리 철학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21) 비트겐슈 타인에 의하면, 뜻의 한계와 한 표현의 사용에 대한 규칙을 결정하 는 문법은 언어의 옳은 사용을 결정할 수 있는 지표로서 ‘언어의 회 계장부’ (PG, 87쪽)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문법은 논리적 필연성 혹은 필연적 진 리에 대한 지식의 근원, 언어와 실재 간의 본질적 연관성 혹은 사고 법칙의 영원성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회의적 생각을 불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철학적으로 혼란을 야기하는 문제들과 거짓 으로 점철된 신비적 분위기는 ‘한 방울의 문법에로 응축된 철학 전 체의 구름’ (PI, 222e)에 의해 깨끗하게 사라질 수 있다. 언어에 대한 문법적 고찰을 탐구한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우리는 언어가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처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생각을 언어와 문법의 임의적이며 자율적인 특성과 관련짓는다.22) 그렇게 함으로써『논고』에서 다루 21) Hacker, Wittgenstein's Place in Twentieth-century Analytic Philosophy, Blackwell, Oxford, 1996, 109-110쪽, 참조. 106 • 수사학 제 8집   었던 실재적인 언어의 논리적 형식에 대한 이론을 포기하는 대신에, 후기에서는 일상적인 언어의 문법적 측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체계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그물망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다. 우리의 일상적 생활을 구성하는 규칙들의 체계로서 문법은 그의 후기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언어놀이를 통해서 낡은 언어들이 도태되고 새로운 언어의 유형들이 생기는 것처럼, 철학에 서도 다양한 개념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5. 나오는 말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통은 알지 못할 미래의 즐거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데리다와 비트 겐슈타인 역시 철학이라는 기존의 권위에 서슴없이 저항하면서 고 통을 감내했던 자들이다.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을 비교하는 작업이 가능할까? 이러한 회의적 물음에도 불구하고 데리다와 비트겐슈타 인은 공통점과 차이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로고스(진리) 중 심의 거대한 철학적 담론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일치 22) 1929년 초기에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현상론을 “물리학이 이론을 구축하는 그러한 사실들을 기술하는 문법” (WA, I 5)으로 기술했다. (이 구절은『철 학적 고찰』§1에서 다시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꾼 결과로 비트겐 슈타인의 문법의 개념은 변해야만 했다. 1933년에 대타자본(Big Typescript) (여기서『철학적 문법』이 발췌되었다)을 쓸 무렵, 비트겐슈타인은 문법의 규칙은 그것들이 의미를 결정하고 그러므로 앞서 있는 의미나 실재에 대해 서 책임이 있을 수 없다는 뜻에서 임의적이며 자율적이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법적 규칙들은 자율적이다. Marion, Wittgenstein, Finitism, and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Clarendon Press, 1998, 142쪽.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107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진리 중심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철학 보다는 수사학에 그리고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을 중시했으며, 언어 (놀이)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철 학 운동에 개입한 것으로 평가한 로티(R, Rorty)의 평가도 그런대 로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특히 필자는 이들이 (그동안 폄하되어 왔 던) 수사학의 지평을 여는 데 강력한 촉매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필자는 이들을 통해 진리와 논리로 무장한 거대한 빙하(거대담론)의 밑바닥을 관통하려는 수사학의 솟구침을 들을 수 있었다. 텍스트, 수사학 그리고 언어놀이 개념을 중심으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주장하는 데리다의 논 의는 결국 텍스트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닐 수밖 에 없다. 왜냐하면 텍스트 안에서 행해지는 차연의 놀이는 언어와 의미의 지속적인 차이와 연기를 끝없이 진행하는 일종의 힘과 같은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복잡하 게 뒤얽힌 삶의 형식을 완전하게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텍스트 안 에서 그려진 세계는 마찰이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에 반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놀이가 삶의 형식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생각에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 행위의 일부라는 생 각과 맞닿는다. 비트겐슈타인은 관성에 길들여진 우리의 사고를 질 타하면서 사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봄의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 다. 왜냐하면 사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은 철학적 믿음들에 의 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자라온 삶의 방 식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과 세계를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은 텍스트로 시작되지 않는다. 둘째, 데리다 자신이 포스트모던한 사상가 그룹에 속하는 것 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건대 데리다는 포스 108 • 수사학 제 8집   트모던한 경향이 강하게 있다. 문자의 억압을 주도했던 음성중심주 의를 해체하는 데리다의 교란 전략은 질서에 잠복해있는 무질서를 회생시키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는 아방가르드한 텍스트 퍼 포먼스를 스스로 연출하고 연기를 한 사람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 다. 문제는 이항 대립적 질서를 해체하는 데리다의 목소리가 (스스 로 차연의 논리/놀이에 함몰되면서) 잘 들리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현란한 춤동작과 함께 랩을 역동적으로 부르는 래퍼의 목소리 가 중간 중간 파열되면서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자신의 사고와 글쓰기에 언제나 엄정했던 비트겐슈타인 은 진리 중심의 형이상학을 거부한 점에서는 포스트모던한 사상가 에 포함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가능성은 그렇게 많지가 않게 보 아진다. 왜냐하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어느 주의에도 어느 학파 에도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과 자신에 대해 치열할 정도로 진솔 성을 가졌던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모던의 정점에 있는 (고급의) 문화와 예술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낱말은 오직 삶의 흐 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는 언어적 패러다 임의 전환으로서 수사학적 힘이 담겨있다. 결론적으로 텍스트와 수 사학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개념을 통해서 더욱 그 지평을 넓 힐 수 있을 것이다.23) 23) 이 글은 한국수사학회/한국텍스트언어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2007년 (11 월 17일, 성신여자대학교) 가을철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특히 본 논문의 논평을 맡아주셨던 김종갑, 박우수 선생님의 비판적 지적에 감 사를 드린다. 그리고 본 논문을 최종적으로 심사하시면서 좋은 지적을 해 주신 익명의 심사위원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텍스트, 수사학, 언어놀이 •    참고문헌 김상환,『해체론 시대의 철학』,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6. 김현,『시칠리아의 암소』, 문학과 지성사, 1990, 김형효,『데리다의 해체철학』, 서울: 민음사, 1993. 뉴턴 가버 ․ 이승종,『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 이승종 ․ 조성우 옮김, 민음사, 1998. 니콜러스 로일,『데리다의 유령들』, 오문석 옮김, 앨피북, 2007. 데리다,『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박만엽, “후기 비트겐슈타인 텍스트의 수사학적 읽기”,『수사학』, 제7집 /2007. 양은석,『논리철학』(미출간본), 2007. 이진경, “미셸 푸코와 담론 이론: 표상으로부터의 탈주”,『철학의 탈 주』, 새길, 1995. 제프 콜린스,『데리다』, 이수명 옮김, 김영사, 2003. 크리스 젠크스,『문화란 무엇인가』, 김윤용 옮김, 현대미학사. 1996. ... ...
1696    즐거움의 순간과 죽음의 망령은 삶의 련속이다... 댓글:  조회:4377  추천:0  2016-10-25
쟈끄 데리다   마지막 인터뷰   이 특별호 SV는 2004년 10월 8일 74세의 나이로 죽은 프랑스 철학자 자끄 데리다에게 헌정된다. 이번 호는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르몽드지와 가진 데리다의 마지막 인터뷰를 번역한 것이다. (처음에 르몽드지 2004년 8월 19일에 나온 내용이다) 데리다의 삶을 듣고 데리다가 한 말들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그 철학자의 심미적, 문학적/시적, 그리고 수행적 자질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데리다는 칸트, 막스, 하이데거의 후계자인 만큼이나 프로이드, 발레리,라깡 그리고 기타 초현실주의자들의 지적 후계자였다. 그의 지적 그리고 언어적 유산 속의 이 시적-정신분석적-성적-무정부주의적 초현실주의자 혈통은 그의 유명한 개념 해체를 표방하는데 이는 내가 이해하기로 텍스트는 무의식적이며 그것은 근심, 신경증, 병리학, 부인, 환영(상)의 방식으로 그 자체로 드러난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충분히 주의 깊게 분석하고 읽어본다면 말이다.   데리다에게는 언어는 모든 방식의 억압된 것들의 흔적들이 방출될 수 있는 열린 영역일 수 있거나- 이어야 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적-초현실주의자의 자질들은 물론 데리다의 개념들과 글 스타일에 두드러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그가 말했을 때, 그가 말장난,각운맞추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기, 논제 벗어나기, 반복, 발음생략, 소거, 자유연상, 말로하는 속임수 그리고 공중제비넘기를 자유로이 구사할 때- 그가 농담조, 진부한 시적표현, 체제전복성, 자발성, 그리고 연극조의 자질들을 보였을 때 가장 생생하게 느껴졌으리라. (조프리 하트만은 해체를 “데리다다이즘”이라고 불렀다) 다음의 인터뷰는 이러한 측면들이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데리다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에 강력하게 연관되어있는 화자를 감지하게 된다.   데리다는 사람들이 언어와 의식을 지각하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시각예술에서부터 문학, 문학연구, 철학, 신학, 윤리학(정치적, 개인적, 세계적), 정치학, 그리고 정치이론, 저널리즘, 비평, 영화, TV, 건축, 디자인, 불가피하게는 대중문화, 그리고 관용구까지.데리다의 개념들은-지적인 적들 그리고 여러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적 분위기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뒤에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을 하게한다. 이것은 또한 어떻게 그 철학자가 가장 철학적인 문제, 죽음에 직면했는가를 궁금하게 만든다(그는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 그리고 궁극적인 “집행연기의 기간”이 “더 빨리 사그러지고” 있게 됨에 따라 그의 생각들이 어떠했을지를 궁금하게 한다.   우리는 데리다의 생각을 그가 르몽드 특파원 쟝 비른바움에게 죽기 두 달도 채 안 된 때에 한 인터뷰의 말미에가서 분명하게 알게된다. 이 광범위한 대화에서 데리다는 삶과 죽음의 문제, 미국의 지정학적 지배, 유럽의 정의와 역할, 지적인 엄격함과 정치적 저항, 세계화, 부당함, 결혼, 그리고 여남은 가지의 기타 미해결된 문제들에 몰입해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무엇보다 데리다는 육체적 생존과 유산의 의미에서 “생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이 번역은 (불어원본과 함께) 그를 추모하며 그리고 관심 있는 비불어 독자들에게 서비스로서 제공된다. 이것은 르몽드와의 동의하에 출판된다. Robert Knafo   쟈끄 데리다 : “나는 나 자신과 전쟁을 하고 있다.” 74세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쟈끄 데리다는 심각한 질병에 직면하면서 조차도 뛰어난 강렬함을 가지고 그의 지적인 여정을 추구한다. 파리 교외의 Ris-Orangis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는 르몽드와 그의 일, 그의 계획, 그리고 그의 유산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자: 2003년 여름이후로 지금까지 선생님은 곳곳에 누벼왔습니다. 선생님은 많은 새로운 책을 출간했을 뿐 아니라 선생님의 업적을 탐구하는데 전념을 하는 수많은 국제 학회에 참석하느라 런던에서 코임브라, 다시 파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리우드자네이로로 전 세계를 돌았습니다. 선생님은 두 개의 영화 가장 최근에는 데리다라는 Amy Kofman 과 Kirby Dick이 만든 영화에 그리고 Safaa Fathy의 매우 사랑스러운 D'ailleurs Derrida 2000년작에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많은 특별판의, 눈에띄게는 Magazine literraire에 그리고 review Europe에 특히 출간되지 않은 자료로 풍부한 그리고 올 가을에(2004) 나오게 될 예정인 Cahiers de l'Herne의 한 호에 초점이 되셨는데요, 한 해 동안 상당히 많은 양인데요 특히 선생님이 비밀로 하고 계시지 않으시기는 하지만..선생님이...   데리다: 계속 말해보게, 아주 심각하게 병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이지. 그건 사실이네. 그 자체로 아주 어려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그러나 자네가 괜찮다면 그 문제는 제쳐두지, 우리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건강문제를 다루기 위해 여기 있는 건 아니니.   기자: 좋습니다. 그러면 대신에 “막스의 망령들 (Galilée, 1993)로 돌아가겠습니다. 주요작품이자 주목할 만한 작품이며, 전적으로 다가올 정의에 바쳐졌으며 그리고 이 신비로운 고언 ”누군가, 당신 혹은 내가 앞으로 나서서 말한다: ‘나는 마침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 싶다고’“라는 말로 서두를 여는 그것 말이지요. 그로부터 십년도 더 지난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자하는 선생님의 소망과 함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데리다: 그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인터네셔널歌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그 책의 부제이며 주제이다. ”세계주의“를 넘어, 새로운 세계국가로서 ”세계 시민“을 넘어. 이 책은 모든 내가 믿는 그리고 지금 더욱 분명하게 시각화 되고 있는 모든 반세계화 의식들을 예상한다. 내가 1993년도에 말하고 다녔던 그 당시 ”새로운 인터네셔널歌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 우리에게 인권분야에 그리고 이 세상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조직들(IMF, WTO, G8, 등 그리고 특히 UN,-거기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권한,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위치-가능한한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데로)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주어왔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마침내 아는 것이라는 문구로 돌아가자면, 일단 그 책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나에게 왔네. 먼저, 그것은 비록 진지하기는 하지만 그 문구의 흔한 의미와 함께인데;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또한 교육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드리죠”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위협의 저의로 - “내가 당신을 제대로 만들어드리죠, 내가 당신을 똑바로 만들어 주겠어” 라고 의미한다. 또한 이 행위의 얼버무리기는 나에게 훨씬 더 한 것을 의미한다; 이 탄식은 또한 질의의 또 다른 맥락으로의 개방이다; 사는 것: 그것이 학습이 되는가? 가르쳐지는가? 우리가 배울 수 있는가, 방법이나 훈련으로, 경험이나 실험으로, 삶을 받아들이고-더 낫게는 단언하는 것을? 유산과 죽음에 대한 이 걱정은 책 전체에 걸쳐 공명된다. 이것은 또한 부모들과 그들의 자식들의 고뇌거리이다: 너는 언제 책임을 지게 되겠니? 너는 언제 너 자신의 삶과 이름에 책임을 지겠니?   더 지체없이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아니, 나는 사는 것을 배운적이 없어. 절대로 없지! 사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긍정적인 결과 혹은 부활, 혹은 구원없이 죽는 것-필연적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것은 플라톤이후 오래된 철학적 경고이어왔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죽는법을 배우는 것이지. 나는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이 진실을 믿는다. 사실 점점 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형 집행에 대한 생존자이다(그리고 형집행에 관해서는, 막스의 망령에서 지정학적 견해로부터, 그 강조는 특히 –지금까지 보던 것보다 더 불평등한 세상에서- 수십억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인간과 그 밖의 것들- 기본적인 인권이 거부될 뿐아니라(이것은 2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고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인데) 정상적인 삶을 살 권리조차 거부되는 존재들에 대해 가해지는 불평등한 세상에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위 죽는 법을 아는 것을 배우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아직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집행유예기간은 더 빨리 사그러지고 있다. 더욱이 내가 연을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 생존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것들의 계승자이므로: 한 세대의 마지막 대표자, 한마디로 60년대 세대 말이죠.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이것에 대해 엄격하고자 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오히려 반항에 대한 어떤 멜랑콜리한 노스탈쟈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압박을 가해오자, 생존 혹은 집행유예의 문제는- 이것은 항상 나를 괴롭혀왔는데, 문자그대로, 내 인생의 매 순간 명백히, 가차없이 또 다른 색깔을 띤다. 나는 항상 생존의 주제, 즉 삶이나 죽음에 보충적인 것이 아닌 의미로서의 이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근원적이다: 삶은 생존이다. 그 용어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존은 계속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한 죽음 후에도 산다는 것이다. 번역으로 말하자면, 월터 벤자민은 한편으로는 마치 책은 저자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것처럼, 혹은 아이는 부모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것처럼, 살아남는 것(überleben), 죽음 후에도 사는 것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잔존하는 것(fortleben), 계속 사는 것 사이에서 구별하느라 애먹었다. 나의 작업에서 나를 도왔던 모든 개념들은, 특히 흔적이나 망령과 관련한 그러한 것들은 기본적인 차원으로서 “생존(survival)”의 개념과 관련있었다. 이것은 사는 것 혹은 죽는것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내가 “근원적 애도(originary mourning)라고 부르는 것 이상은 아니다. 그것은 소위 ”실제적“죽음을 기다리지 않는 어떤 것이다.   기자: 선생님은 “세대”라는 용어를 썼는데요. 자주 선생님의 글에 나오는 문제적 개념이잖아요. 선생님의 이름으로 어떤 세대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나는 이 단어를 약간 느슨하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과거 세대의 혹은 다가올 세대의 “시대착오적” 동시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세대라고 간주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충실한 것, 다양하지만 공동의 유산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에 직면하여 어떤 공유된 원칙을 고수하는 것, 라깡에서 알튀세르, 그리고 레비나스, 포코, 바르트, 들뢰즈, 블랑쇼, 리오타르, 사라 코프만, 등을 포함하여까지; 그리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있는 그리고 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많은 사상가들, 시인들, 철학자들, 혹은 정신분석학자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거리는 멀어도 심정적으로는 더 가까이 느끼는 훨씬 더 많은 해외의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나는 환유로 고집스러운 글쓰기와 사고의 윤리학을 지정하고, 나는 심지어 변질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할 테고(엘렌 식수스가 우리를 “변질될 수 없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철학에 관하여 조차 타협하지 않는다라는 건데, 이는 대중여론, 매체, 혹은 겁을 주는 독자들의 환상들이 우리가 단순화하고 뒤로 물러서기를 효과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묘함, 파라독스, 아포리아에 대한 소박한 기호. 이 예측은 또한 근본적이다. 그것은 내가 환기시킨 - 약간 독단적으로 그래서 불공평하게-그러한 사람들 뿐 아니라 그들을 지탱하게 한 더 큰 환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지나간 시대와 (적어도 그 순간동안은)관계가 있었고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되거나 재탄생되어야 한다.그리고 오늘날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억견(doxa)에 대한, 그리고 여기서부터 “매체 지식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그리고 스스로 정치 경제학적 로비, 그리고 또한 종종 사설과 학술의 로비들의 통제하에 있는 매체들에 의해 미리 포맷된 일반적인 담론에 대해 엄격한 전쟁을 요청한다. 물론 덜 유럽적이고 세계적이지 않으면서. 저항은 당신이 매체를 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당신은 그들이 발전하고 다양화하도록 도울, 그들을 바로 그 똑같은 책임으로 다시 불러오는 책임이 있다.   동시에 이 “행복한‘ 지나간 시대동안 온전한 평화와 차분함만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와 불일치가 이 환경에서 맹위를 떨쳤는데, 이것은 결코 동질성이 없었다; 그리고 마치 당신이 예를 들어 그들을 언론과 학계에 일상이 되어왔던”Spirit of ’68’(68의 정신)“과 같은 궁색한 표현으로 가둘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슬로건으로 혹은 얕보는 용어로 삼아라. 그리고 비록 이 충실함이 때때로 아직도 불성실함과 다루기 힘듦의 형태를 띨지라도 우리는 차이에 충실해야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계속 대화한다-예를들어 부르디외, 라캉, 들뢰즈, 포코와 함께. 이들은 요즈음 매체가 초점을 맞추는 그러한 사람들 이상으로(물론 예외는 있다) 계속 나의 관심을 끈다. 나는 이 대화를 생생하게 유지한다 왜냐면 이것은 표면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명예훼손으로 비하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세대에 대해 말한 것은 또한 물론 과거에도 적용된다, 성경에서 플라톤, 칸트, 막스, 프로이드, 하이데거, 등까지. 나는 어떤 것과도 연을 끊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알다시피,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항상 자기도취적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 수 있을 만큼 오래 살고 싶어 하고 당신을 구원하고 보존하고 싶고 무한히 더 크고 당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의 일부인 이러한 것들, 이 나로부터 양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그러한 것들을 계발하고 싶어 한다. 나에게 나를 만들었던 것을, 내가 그렇게 많이 사랑했던 것을 선언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나에게 죽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성실함속에 일종의 자기보존에 대한 본능이 있다. 나에게는 어려운 공식화, 집단, 파라독스, 그러나 또 다른 반박(모순)을 거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외설일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책의 제목조차 얻을 수 없는 그리고 독자나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그리고 그러므로 경영진이 그것이나 그의 경력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저널리스트는 결과적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당신은 나에게 굽신 거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리석음으로 죽도록 요구하던지. (뭔 말인지!!!-번역자 유감)   기자: 선생님은 이 성실한 조급함을 따르는 하나의 양식, 생존의 글을 만드셨습니다. 승계 받은 약속, 보호받은 발자취, 맡겨진 책임의 글 말이죠.   내가 어떤 글을 발명했다면 그것은 끝없는 혁명으로서 였을겁니다. 각 상황은 적절한 해설방식의 창조, 단일 사건에 대한 법칙의 발명을 요구하고, 그 상상으로 만들어지거나 바라는 수령자를 고려한다; 동시에 그것은 이 글이 이 글을 읽기를(혹은 살기를) 배우게 될 독자를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요구하는데 그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찾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그가 개혁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결정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철학에 시의 이러한 접목(당혹감이 덜함 ), 혹은 어떤 방식의 동음이의어, 논증불능성, 언어 책략들의 사용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보게 되는 한편 그것에 대한 적절히 논리적인 필요를 무시한다.   각 책은 독자를 교육하기 위해 의도된 티칭 방법이다. 현재 뉴스 미디어와 출판에서 지배하는 그런 종류의 대중 글쓰기는 독자를 교육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허상적 방식으로 이미 프로그램된 독자를 가정한다, 그래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미리 가상적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수령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도록 한다. 그래서 성실함의 행위에 의해, 흔적을 남기는 순간에, 누구든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심지어 어느 한 사람에게 특이하게 그것을 제기할 수 없다. 매번,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실하게 우리는 우리가 제기하는 다른 사람의 특이성을 배반하고 있다. 좀 더 강력한 이유로, 우리가 매우 일반적인 책을 쓸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상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 말로든 글로든, 이 모든 제스츄어는 우리를 떠나고 그들은 우리와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기계처럼, 혹은 더 낫게는 꼭둑각시 인형처럼- 이것을 Paper Machine (Galilee, 2001)에서 더 잘 이해하도록 설명되어있다. “나의”책이 출판되는 순간에(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사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하는, 가르칠 수 없는 유령처럼 나타났다-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나에게 남겨지는 흔적은 즉시 오게 될 혹은 이미 온 나의 죽음을 그리고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희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불멸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이다. 나는 여기 약간의 종이를 남기고 나는 떠난다, 나는 죽는다; 이 구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글속에서 죽음을 살고 있다. 한 극단적인 과정; 우리가 뒤에 남기는 것이 정확하게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분투한다. 누가 물려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전에 보다 더 오늘날 으스대는 것이 문제다. 그것이 항상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기술-문화 시대는 이와 관련하여 깊이 바뀌어 왔다. 나의 “세대”의 사람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인 리듬에 익숙하여 왔다; 우리는 그런 그런 작품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퀄리티 때문에, 1, 2-혹은 플라톤의 경우에는 25세기동안은. 그러나 오늘날, 저장 양상의 가속화와 또한 마모, 닳음이 그 구조와 우리의 유산의 임시적 한도를 변화시킨다.특히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너무도 많은 무명인들에게 대상이 되어왔다.   나의 나이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모순적인 개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장담하건데,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리고 나는 이것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그리고 좀 뻔뻔하게는 우리는 아직 나를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많은 훌륭한 독자들이 있다 해도(이 세상에 수십명, 아마도) 실지로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단지 나중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죽은 지 보름 후에 아무것도 안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상상한다. 법적인 의무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장담한다. 나는 이러한 두 가지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자: 이러한 희망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어가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 선생님이 그 언어에 대해 가지는 깊은 열정을 느낍니다. [Monolinguism of the Other 타자의 단일언어사용 [Le Monolinguisme de l'autre] (Galilée, 1996)에서 선생님은 불어의 마지막 수호자이자 삽화자로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신을 바치기 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사용해야하는 유일한 것이기는 하지만(그것을 잘 쓰는 한에서는) 언어의 경험은 물론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유한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새로운 것은 없다. 여러 상황들이 내가 독립전쟁 전에 태어난 알제리계의 유대인이도록 했고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는 많은 뚜렷한 특성이 있는데 심지어는 알제리계 유대인들 사이에도 말이다. 나는 알제리계 유대인들의 비범한 변신에 참여했다; 나의 증조부모들은 언어, 관습 등으로 여전히 아랍문화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말의 법령(Cremieux Decree 1870) 이후에 그 다음 세대는 부르조아가 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드레퓌스 사건의 시기였는데) 알제리 시 청사 뒷마당에서 거의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의 딸들을 훌륭한 중산층 파리지앵들처럼 키우고 있었다.(훌륭한 16세기 도시의 예의범절, 피아노 레슨등으로)   그런 다음 우리 부모의 세대였는데; 지식인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상인들, 검소한 정도였는데 그중 일부는 이미 어떤 세계적 브랜드의 독점적 대표자가 되는데 있어 식민적 상황을 활용하고 있었다. 10 평방미터 사무실에서 “마르세유 비누”에 대한 모든 북아프리카의 판매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상황들을 약간 단순화 하고 있는데....   그 다음이 나의 세대였다(그들 대다수는 지식인; 자영업, 교직, 의료, 법, 등). 그리고 1962년 쯤에는 프랑스의 이러한 사람들 거의 모두였다. 나로 말하자면, 더 빨랐다(1949). 사실- 나는 단지 약간 과장하는데- 다른 인종간 결혼이 표면상 비극적이며 혁신적이며 드물고 위험한 방식으로 시작한 것은 나와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거니와, 나를 만든 것은 사랑이고 그것의 구성요소는 언어이다. 나를 계발하도록 배운 유일한 언어인 이 불어는 내 스스로 다소 책임을 져야한다고 여기는 유일한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글에는 - 나는 삐딱하게 말하지 않겠지만 그 언어로 다소 폭력적인 방식의 작업이 있다. 사랑이 없지. 일반적인 사랑은 언어의 사랑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것은 민족주의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지만 증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노동을. 당신은 언어로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전에 있었으며 우리가 가고난 후에도 여기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주의 깊게 이루어져야 하며 심지어 무례함 가운데서 그 비밀의 법들을 존중하여야 한다. 이것은 불성실한 성실성이다: 내가 불어의 폭력성을 일으킬 때 내가 그 언어의 생명, 그것의 진화로의 가처분 명령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주의 깊은 존중을 가지고 그 일을 한다. 나는 미소없이, 때로는 경멸로, 사랑없이 블어의 고전적인 철자법이나 문법을 마치 조숙하게 사정하는 처녀처럼 위반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없다, 위대한 불어가 지금껏 휘둘리지 않고 그들이 자기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그 다음의 일을 기다리는 동안 말이다.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나리오를 The Postcard [La Carte postale] (Flammarion, 1980)에서 좀 잔인하게 묘사한다.   불어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 이것이 나에게 관심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해도 불어가 수세기동안 구현해온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열정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언어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프랑스 혈통의 그렇고 그런 프랑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진 한 이방인처럼 그리고 그에게 유일한 한 가지 가능한 것으로서 이 언어를 전용했던 이방인처럼 그 언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열정과 과잉   알제리아에 있는 모든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나와함께 공유한다. 그들이 유대인이든 아니든. 도시 중심부로부터 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다: 억압자들, 규칙입안자들, 표준화하는 자들, 도학자들. 이것은 당신이 따라야 했던 모델, 규범, 습성이었다. 어떤 교수가 그의 불어 억양을 가지고 도시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그 과잉은 이것에서부터 나온다: 나는 단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언어는 나의 것이 아니다. 단일의 악화된 역사, 이 보편적 법칙; 한 언어는 이제 소유된다. 어떠한 본질에 의해 자연스럽지 않게. 이것은 재산의, 식민주의자의 전용 및 시행의 환상의 원천이다.   기자: 선생님은 “우리”라고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으시는데 -보통은, 예를 들어, 우리 철학자들, 혹은 우리 유대인들이라고 하시는데요. 그러나 새로운 그리고 커져가는 세계의 혼란의 관점에서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하는데 덜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첫 번째 걸프전의 시기에 쓰여졌던 책인 The Other Cape [L'Autre Cap] (Galilée, 1991)에서 선생님은 자신을 일종의 “유럽의 잡종개”로서 “늙은 유럽인”으로서 자신을 출현해 보였습니다.   두 가지인데: 나는 정말로 “우리”라고 말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재앙적인 그리고 심지어는 자멸적 정책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시오니즘을 가지고 시작하는 일은 - 왜냐면 나에게는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 이상의 유대교를 대표하지도 않을뿐더러 세계적 근원적 시오니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오니즘은 다양하였으며 종종 그 자체로 갈등 속에 있었다: 또한 미국에는 사실 스스로를 시오니스트라고 부르는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이 있다,그들 로비의 힘- 그리고 사우디의 영향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은 미국-이스라엘 정치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있어 미국 유대인 공동체 이상을 차지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의 유대인임과 함께 가지는 많은 다른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그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유대인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우리”는 나를 괴롭히는 것, 희미한 미소로“유대인의 최후”라고 불렀던 것의 개념의 중심에 놓여있다. 이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오하게 기도에 대해 말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기도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므로, 나는 “우리 유대인들” 혹은 “우리 프랑스인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그리고 이것이 해체 그자체일 것이고 나는 예를 들어. 발레리, 후설, 하이데거의 작업에서 유럽중심주의와 관련하여 현대주의자 형태로 공식화와 관련하여 매우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왔다. 일반적인 해체는 모든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의 행위로서 많은 이가 취해왔던 프로젝트이다. 내가 요즘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접속어법이며 매우 다르다. 해체될 수 있는 유럽 전통에 관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것 때문에 -계몽주의 때문에, 이 작은 대륙의 축소 때문에, 그것이 가지는 책임의 막대한 유산 때문에(전체주의, 나찌즘, 종족학살, 홀로코스트, 식민지화, 탈 식민지화, 등),오늘날 우리 스스로 이해하는 현재의 지정학적 조건에서 유럽은 전적으로 다른 유럽이지만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의 세계지배 정치에 대항하여 한데 뭉치기를 바라며 동시에 또한 계몽되지 않고 정치적 미래도 없는 아랍-무슬림 신정주의에 대항하여 뭉치기를 희망한다.(그러나 또한 이러한 두 블록에서 조차 다양성을 주목하고 그들 안의 반대세력과 동맹을 하자)   유럽은 스스로가 새로운 책임을 수행할 의무 하에 있다. 나는 현재 존재하거나 현재 신자유주의적 다수가 상상하는 것처럼의, 그리고 문자 그대로 많은 내부적 갈등으로 위협을 받는 유럽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가올 유럽에 대해서 여전히 스스로를 찾는 과정에 있는 유럽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대수적으로 유럽이라 불리는 것은 인류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국제법이라는 이름으로-이것은 나의 신념이고 나의 종교이다-어떤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시장을 보호하고 다른 지정학적인 블록에 대해 무게중심으로 활동하는 군사강국으로서 유럽의 창조를 희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후기 세계화 정치의 씨앗을 뿌리는 유럽으로서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이슈이다.   이 운동은 다가오고 있다. 비록 그 아우트라인이 여전히 형성중이지만 나는 어떤 것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럽을 말할 때, 이것은 바로 포스트 글로벌라이제이션 유럽이다, 자주권과 국제법의 개념과 관습을 형성하는. 진정한 군사력을 이용한, 나토나 UN에서 독립된 군사력, 공격적도 방어적도 아닌 이것은 확고하게 재편성된 UN의 결의안들을 집행할 것이다.(예를 들어, 그리고 극도의 긴박함으로 이스라엘에서 또한 다른데서) 그것은 또한 세속의 측면 혹은 사회적 정의의 측면에서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지역이다.   나는 “세속성”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여담으로 흘러가서 미안하지만, 학교에서 베일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베일과 관계가 있다. 나는 노엘 마메르의 용감함과 그의 추진력을 환영하는 지지 서명을 했다, 비록 동성애자 결혼이 미국인들이 말하는 “ 시민불복종”, 즉 법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더 나은 법을 찬성하여 입법적인 입장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이전 세기에서 시작된 고귀한 전통의 한 사례로 표방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현재의 입법적 맥락에 서명을 했는데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자 권리를 존중하여 말하건데 헌법의 정신과 조문 둘 다의 측면에서 부당한 위선과 모호함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입법자라면 나는 단지 시민과 세속의 규정에서 “결혼”이라는 단어와 개념 둘 다를 폐지할 것을 제안하겠다. “결혼”을 종교적이며, 신성하며 이성애적 가치를 가지고 출산의 의도를 가지며 영원한 수절을 위한 것, 운운 하는 것은 미국이 기독교 교회에 수그리고 들어가는 건데, 특히 유대교(이것은 지난 세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것인데 북아프리카 유대인들 사이에는 몇 세대 전만해도 의무가 없었다)도 무슬림도 아닌 일부일처제 차원에서 그러하다. “결혼”이라는 개념과 단어를 폐지하는데 있어 세속적 헌법에는 자리가 없는 이 종교적 모호함과 위선이 계약상의 “합법적 동성결혼”, 즉 성이나 수에 제한 없이 파트너들 간의 일종의 일반화되고 개선된 유연한 조약으로 대체될 것이다. 전통적 의미로 결혼으로 결합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선택하는 종교적 권위 앞에서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을 축성하는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들 중 하나로, 일부는 양쪽의 방식으로 관계를 시작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시민법이나 종교적 전통에 관계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사족이 길었네요.   내가 “해체”라고 부르는 것은 유럽적인 어떤 것에 위배될 때조차 유럽적이고 유럽의 산물이며, 급진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그 자체에 대한 유럽의 반추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유럽은 영구적 상태의 자기비판 속에 있어왔고 이러한 완전함의 전통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마치 범죄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처럼 유럽을 완전히 비난하는 말 앞에 나는 매우 분개하게 된다.   기자: 유럽에 관해서는 자신과 전쟁을 벌이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선생님은 9/11사건이 당신이 올바른 유럽인으로서 정의하는 어떤 정치적 개념의 위기상태를 나타내며 통치 권력에 대한 오래된 지정학적 단어를 없앴다고 지적하셨는데요. 다른 한편 선생님은 이 유럽의 정신에,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법의 “세계정책적” 이상에 애착을 가지시는데 사실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계셨던 내용의 조락이잖아요. 아니면 그것의 생존~   우리는 세계정책적인 것을 “부상”(지양)시켜야 한다 (Cosmopolitans from all countries, yet another task! -Galilee, 1997 참고).우리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는데, 국가를 전제로 해 왔는 유럽적 개념이고 폴리스의 개념은 국가의 영토와 토착성의 개념과 연결되어있다.   역사의 흐름에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힘이 그것을 몰아내길 시도했을 때조차 이것은 정치의 지배적 개념으로 남아있다: 국가주권의 개념은 더 이상 땅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통신기술도 군사적 독트린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이 탈 지역성은 정치에 대한 오래된 유럽적 개념을 위기에 빠뜨린다. 전쟁의 개념, 민간과 군 사이의 구별, 국가 및 국제 영토뿐 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의 개념에 반대 입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주권의 개념을 위한 것인데, 이는 어떤 상황에서 타당성을 유지하는데, 예를 들어, 세계시장의 어떤 힘을 막는 일에서 그러하다. 여기 다시 그것은 보호되고 개혁되고 있는 유럽의 유산의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Hooligans [Voyous] (Galilee, 2003)에서 유럽적 개념으로서 민주주의에 관해서 –이것은 사실 한 번도 완벽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고 아직 오지 않았다-내가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당신은 내가 항상 그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그것이 나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궁극적 타당성이 없다. 그것이 현재 내가 있는 곳이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나 자신과 전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를 것이다 당신이 추측하는 이상이다. 나는 서로 모순되는 것, 서로 진정한 긴장상태에 있는 것, 나를 구성하는 것, 나를 살게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죽게 만들 것들을 말한다. 이 전쟁은, 나는 때때로 그것을 무섭고 고통스러운 전쟁으로 보지만 동시에 그것이 삶이란 걸 안다. 영원한 휴식 안에서를 제외하고는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모순을 맡는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또한 그것이 나를 살도록 허락하는, 그리고 당신이 제기했던 “사는 법을 어떻게 배웁니까?”라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기자: 두 권의 최근 책 [The End of the World, Always Unique, and Rams [Chaque fois unique, la fin du monde et Béliers] (Galilee, 2003)에서 선생님은 이 구원이라는, 불가능한 애도, 사실상 생존이라는 주요한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철학이 “죽음에 대한 근심스러운 예상”으로서 정의 될 수 있다면(Giving Death, Galilee, 1999참조) 우리는 “해체”를 끝없이 계속되는 생존의 정신으로서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내가 이미 말했듯이, 처음부터 그리고 사실 나 자신의 생존의 경험이 있기 오래전부터, 생존은 원초적 개념이라는 것을 주목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소위 존재, Da-sein(현존재)라는 것의 구조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말해서 생존자들이며, 흔적의, 증거의 이 구조로 표시된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어떤 생존이 삶과 미래에 의해서 보다 죽음과 과거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가에 따른 견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해체는 항상 긍정적, 삶의 긍정성의 측면에 있다.   적어도 (Steps (in Vicinities) [Parages], Galilee, 1986)이후 반대인 삶-죽음의 복잡한 문제로서 생존에 관해 내가 한 모든 말은 삶의 무조건적인 긍정성으로부터 나와함께 진행된다. 생존은 삶 너머 삶, 삶 이상의 삶이며 내가 취하는 담론은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 반대이며, 그것은 죽음보다 사는 것 그러므로 생존을 더 선호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긍정성이다; 생존은 단순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능한 가장 강렬한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과 즐거움의 순간에서 보다 죽음의 필요성에 의해 더 골몰해본적은 없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죽음의 망령을 슬퍼하는 것은 나에게는 같은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나는 내 인생의 불행한 순간들조차 사랑하고 또 그들을 소중히 할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모두, 거의 예외 없이. 내가 행복한 순간을 생각 할 때 나는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 물론 그 순간들이 나를 죽음의 생각들 쪽으로, 죽음으로 안내를 하는 그때에도, 끝이 났기 때문에.  
1695    詩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댓글:  조회:4153  추천:0  2016-10-25
[문정영]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는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 많은 삶의 편린(대상)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대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前理解을 갖기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 ,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대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인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가지고 있는 전이해(상식)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설령 시인에겐 아무리 절실한 체험일지라도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체험과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험은 진실한 체험이 될 수 없다 시인의 체험은 늘 독자의 기대보다 조금은 앞서서 독자의 전이해에 변화를 줌과 동시에 독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여야 한다 이상 고재종선생님의 강의록을 요략해 본다 오늘 아침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매일보는 문구이며 평범하여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데, 발견이라는 시적상상력을 발휘해 본 결과, 문구 '비상시에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의자아래 핸들을 돌리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무원은 늘 부재중입니다 전철 승무원은 앞만 보고 갑니다 저의 간단한 상상력입니다 늘 승무원의 지시를 받으라하지만 막상 급할 때 승무원(선도자, 윗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달려가기만 할 뿐이다 즉 발견은 우리의 일상에서 알고있지만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하여 시에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발견의 눈을 갖기위해서는 늘 시인의 눈을 갖어야합니다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인용하는 힘을 키울줄 알아야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또한 관찰의 힘입니다 2. 떨어지는 병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램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램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만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방법 1의 발견이나 관찰은 묘사에 의해 주로 표현된다 묘사란 객관화된 표현 방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주관적 토로인 진술보다는 묘사를 많이 사용하여야만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관찰이란 발견보다는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즉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함께 시를 쓰던 문우가 개에 대해 시를 쓰려고, 황소만한 개의 뒤를 하루종일 쫓아다녔다고 한다 개의 습관, 생리 등 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은 개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어떤 소재를 통하여 시를 쓰려할 때,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에 시를 쓰면 훨씬 깊이가 묻어나오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졌던 관심 만큼 우리는 시의 소재를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할 것이다 나비 (오규원)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는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아마 시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비를 오래 관찰하였을 것이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시이다 3. 연상, 사랑에 관한 단상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다투어 마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몰아,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점이다 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내부로 끓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연상기법을 사랑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어떤 것에 자꾸 연상하여 생각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성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라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감성이 풍요로워지면서 시인은 연상의 반복을 하게끔 되고 그것은 시상을 연결하게 해 주는 힘이 된다. ========================================================================================     속구룡사시편 ―오세영(1942∼ ) 한 철을 치악에서 보냈더니라. 눈 덮인 멧부리를 치어다보며 그리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빈 가지에 홀로 앉아 하늘 문 엿보는 산 까치같이, 한 철을 구룡에서 보냈더니라. 대웅전 추녀 끝을 치어다보며 미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흰 구름 서 너 짐 머리에 이고 바람 길 엿보는 풍경같이, 그렇게 한 철을 보냈더니라. 이마에 찬 산 그늘 품고, 가슴에 찬 산 자락 품고 산 두릅 속눈 트는 겨울 한 철을 깨어진 기와처럼 살았더니라.  ‘술과 마약 등을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독의 정의이다. 그러나 술과 마약 말고도 우리가 중독돼 있는 것은 매우, 의외로 많다.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고, 인터넷에 중독돼 있고, 게임에 중독돼 있고, 일에 중독돼 있다. 중독된 나머지 충혈된 눈과 과열된 뇌를 발견하면 더럭 겁이 난다. 그럴 때 읽는 시가 있다. 오세영의 ‘속구룡사시편’. 이 작품은 맑고 차가워서 뜨거운 눈과 뇌를 식혀 준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자발적이며 타율적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시인은 겨울 내내 구룡사에 머물렀다. 눈 덮인 산사에서 시인은 마음의 질긴 생각들을 하나씩 끊어내는, 마음 비우기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연습하고, 다음에는 미운 이를 미워하지 않기를 연습했다. 마치 자신이 까치가 된 듯했다는 1연과 풍경이 된 듯했다는 2연은 절묘한 반복과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독자들은 읽을 때의 리듬감까지 얻게 된다. 1연과 2연이 겨우내 시인이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면, 3연은 그 결과물에 집중하고 있다. 이마에는 그리운 이 대신, 가슴에는 미운 이 대신 차가운 산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구룡사에 들어갈 때의 시인과 나올 때의 시인은 분명 같고도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저렇게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비워내기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시에 의하면 추운 겨울의 산사는 그에 가장 적당한 때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산사에 갈 수 없지만 추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연습의 시도는 해볼 일이다. 겨울이 지나면 과열된 이마를 식혀 주던 찬바람이 아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겨울의 끝에 가장 잘 어울린다.    
1694    詩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시를 쓰라... 댓글:  조회:4040  추천:1  2016-10-25
시는 이미지가 말을 한다 /이창배         아 달이여, 참 슬픈 걸음으로 너는 하늘을 오르고 있구나  저렇게 말없이, 저렇게 파리한 얼굴로,  아니 하늘나라에서도 저 분주한 활쟁이 큐핏(Cupid)이  그 매서운 활을 쏘는 일이 있는가.  그렇다. 오랫동안 사랑에 익숙한 눈으로  사랑을 판단컨대 너는 사랑의 병을 앓고 있다.  나는 너의 표정에서, 너의 슬픈 용모에서 그것을 읽는다.  똑같은 병을 앓고 있어 나는 너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 달이여, 동병상련의 정에서라도 내게 말해다오.  하늘나라에선 일편단심의 사랑이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여겨지는지,  하늘나라의 미인들도 지상에서처럼 교만한지,  그곳에선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면서  연인들이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을 경멸하는지,  곧은 절개를 보람없는 일이라고 하는지.  With sad steps, O Moon, thou climgb'st the skies,  How silently, and with how wan a face!  What, may it be that even in heavenly place  That busy archer his sharp arrows tries?  Sure, if that long-with-love acquainted eyes  Can judge of Love, thou feel'st a Lover's case;  I read it in thy looks; thy languished grace,  To me that feel the like, thy states decries.  Then even of fellowship, O Moon, tell me  Is constant love deemed there but want of wit?  Are beauties there as proud as here they be?  Do they above love to be loved, and yet  Those lovers scorn whom that love doth possess?  Do they call virtue there ungratefulness?  이 시를 읽기 위해서 사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 시가 쓰여진 16세기 무렵의 연애시에서는 일률적으로 남자는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로 사랑을 하소연하지만, 여자는 한결같이 교만하여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남자를 점점 애태우게 만든다. 그런 페트라르카(Petrarca)풍의 연애시의 패턴을 따른 이 시에서 시인은 교만한 애인을 두고 짝사랑의 하소연을 한다. 다음으로는 이 시의 주요 이미지로 쓰인 큐핏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이다. 미소년 큐핏은 금빛 날개를 달고 활과 화살을 지니고 다닌다. 사랑의 과녁을 향하여 쏘는 화살은 빗나가는 일이 없는 바, 금빛 활촉의 화살은 戀心을 고취시키고, 은빛 활촉의 화살은 구애를 물리치도록 되어 있다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을 달에게 하소연하면서, 한편 그 애절하고 처참한 심정을 달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보이고 있다. 달이 말없이 슬픈 걸음으로 하늘을 걸어오르고 있다고 형용함으로써, 시인은 독자에게 그 이미지를 통하여 사랑에 버림받은 이가 창백한 얼굴로 하염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 심정을 읽게 한다. 시인은 달에 대한 비유를 확장하여 달의 창백한 용모를 보면 달도 사랑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상황을 추정하고, 그렇다면 큐핏이 사랑의 과녁을 빗쏘는 일이 없는 그 하늘, 일편단심의 변함없는 사랑만이 있을 법한 하늘나라에도 지상과 똑같이 사랑의 변절이 있고, 여인들은 교만하여 남자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반문함으로써 자기는 한결같고 변함없는 사랑을 바치고 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짝사랑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며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감정의 논리를 편다. 시의 중심 이미지인 달에 대한 적절한 비유와 논리적인 전개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설득력있게 전해진다.   ======================================================================     길 ―김기림(1908∼?)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 )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시인 김기림은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무곡원’이라는 이름의 과수원집에는 여섯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 유일한 아들이자 막둥이가 김기림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1910년대 함경북도 학성군, 지금 지명으로는 김책시의 한 집안에서 김기림이 얼마나 사랑받고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가 이 시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시에 잘 나와 있다.     어린 시절, 김기림은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다. 어머니의 상여는 언덕길을 돌아 사라졌는데 처음에 어린 아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몰랐기 때문에 기다렸다. 하지만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고 대신 다른 것들만 돌아왔다. 노을에 젖은 빈 마음이 돌아왔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만 열심히 돌아왔다. 어린 아들은 언젠가 어머니가 갔던 길로 내려와 제 뺨을 쓰다듬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아들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결국 이 아들은 자라서 어떻게 했을까. 그가 언덕에서 만난 모든 의미들은 결코 답안지를 채워주지 못했는데 말이다. 길을 따라 떠날 수 있을 나이가 되자마자 떠났을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스스로 어떤 답을 찾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떠나는 그의 가슴에는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라는 보퉁이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이 보퉁이가, 기억이, 어머니가 어린 과수원집 아들을 시인 김기림으로 만들었다.  이 시가 반짝거리는 이유는 한 시인의 탄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탄생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아픔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밀어도 두드려도 시원찮은 사립문 /윤정구 흔히들 말한다. 시란 쓰기도 어렵지만, 고치기는 더욱 어렵다고. 처음 써내려갈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쑤욱 빠진 놈보다도, 고치고 다듬어 천신 만고 끝에 낳아 놓은 놈이, 정이 더 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흠이 많은 경우가 많다고.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란 원래 성질이 까달스러워서,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더욱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힘들수록 여유를 가지고 잘 몰아가야 하는 현무(玄武)같은 놈인지도 모른다. 원래 현무란 놈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듯 두 개의 머리와 꼬리가 대칭을 이루어서 꿈틀거리기 때문에 도통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방향을 알 수 없는데다가, 일단 네 다리를 출렁이기 시작하면 어디에든 불시에 도착할 수도 있고,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놈이다. 어쩌면 시란 특별한 정형이 없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늘 조화를 이루고, 살아 있는 것처럼 출렁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현실 그대로를 그려낸 것이 아닌 최고의 상상력의 산물이면서 사실 이상의 신비한 진실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나는 감히 시를 우리 조상들이 북쪽 방위의 태음신(太陰神)으로 그려놓은 걸작 현무에 비교해 본 것이다. 어쨌건 이 다루기 힘든 야성(野性)의,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버리는 시를 일단 식물이 아닌 움직이는 동물로까지 생각해 놓고 넘어가 보자.  얼마 전만해도 시가 식물이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는 시가 될 듯한 꼭지 하나를 발견해서, 제대로 생각이 싹을 틔우고, 넝쿨을 벋어, 꽃을 피울 때를 천천히 기다려서, 소담한 꽃바구니에 담아내면 되었다. 그때에는 시간도 아주 천천히 흐르던 때이어서, 서두르지도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익을 때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때의 시쓰기는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작업’이었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더이상 아름다운 시를 음미하며 살 수 없는 ‘물질과 속도의 세계’에 살고 있다. 따라서, 혜택받고 있는 풍요와는 다른 관점에서 현대의 시인들은 시대적으로 어려운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시인이 대상을 깊이 인식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유가 부족하기 쉬운, ‘관조(觀照)가 어려운 시대’에 이미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 그렇듯, 시인에게 있어서도 하루 하루의 일상이란 얼마나 복잡 다단하며 예측 불가능한 ‘무거운 짐’인가? 나는 그 점에서 이 황망한 시대에 물질로 환산되지도 않고, 자동화로 공정을 개선할 수도 없는 시를 팽개치지 않고, 매일 매일 물을 주어, 매달 매주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시인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나의 경우를 얘기한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에 쫓겨 허덕거리며 메모해 놓은 몇 마디를 가지고, 어거지로 잎도 붙이고 줄기도 늘리다보니,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커녕 아직 그럴듯한 꽃 한송이 못 피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 저러한 사정에서 본다면, 나의 경우에는 퇴고(推敲)가 상당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의도만 가지고 시를 쓸 수는 없으므로, 그 의도가 의도에 알맞는 모양새를 갖추고, 때로는 적당히 의도를 감추기도 하면서 그 맛이 제대로 우러나도록 몇 번이고 고쳐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화일링하고 있는 시첩(詩帖) 속에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려는 졸시 「소나기를 맞은 염소」는 비교적 주제가 뚜렷하고 재미있는 발상으로 시작되어 흥미로왔던 경우인데, 의도에 비해 주제가 힘에 부쳤던지 제대로 선명하게 그려내지 못했던 예이다. 우선 전문을 옮겨놓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소나기를 맞은 염소 ―사석원, 이인화에게 벌겋게 기가 살아 있다 한줄기 소나기가 멈추자 양철지붕 아래에서 튀어나온 저 수탉 잽싸게 헐다만 보리짚가리에 올라 후다닥 헛날개를 쳤다 穀氣요!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소나기를 몽땅 맞은 염소는 죄도 없이 목을 움추렸다 수염을 밀고 안경을 씌우면 영낙없는 우리 회사 진 부장이다 그는 말대꾸 한번 변변히 한 일이 없다 집염소는 한번도 바람을 마주하여 절벽 위에서 수염을 흩날린 일이 없다 녜에에에녜에 평생 아니오!를 말해보지 못한 오종종한 얼굴이 달려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무장해제 당한 포로같이 뿔을 뒤로 감고 나온 염소는 눈 한번 옳게 뜨지 못한다 갓을 잃어 뿔을 보임이 사뭇 송구스러울 따름인 즉 그럴수록 수탉은 붉은 갈기를 세웠다 소나기 바람에 네 속을 알것다 네놈이 갓속에 늘 비수를 감추고 다녔것다? 수염까지 젖은 염소가 다리를 후들후들 떤다 웬걸입쇼 소인이 꿈에라도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오십에 다 와가는 진 부장은  큰놈이 이제 겨우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렇게 대충 쓰고 나니 우선 기분이 상쾌하였다. 모처럼 새로운 것이 나온 것 같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매양 시들시들하는 꽃나무만 길러내다가, 오랜만에 비록 염소와 수탉일망정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등장시킨 것이었다. 게다가 힘을 가지고 지배하는 자의 억지와, 가진 것이 없어 힘들게 한 세상을 살고 있는 소시민의 의식이,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수탉과 염소를 통하여 마치 ‘극적(劇的)인 형상화(形象化)’가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사극조(史劇調)의 고전물(古典物)에 현대판 진부장(이긴 部長이 아니라 진 부장)과 그 아들까지 끼워 넣었으니, 제법 성공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흡족했던 마음은 곧 실망으로 변하였다. 등장인물이 많고, 기대치가 높다보니, 소우주(小宇宙)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리가 힘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경우, 써 놓은 직후에는 잘못을 바로 찾기가 어렵다가도, 며칠 지난 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허(虛)가 보이게 되고 알맞은 수술방법이 찾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좀 달랐다. 욕심을 부려서인지, 어떻게 고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의 과욕을 인정하고, 주인공들을 두개의 집을 지어 정리할 수 있었다. 첫번째 집은 당연히 염소의 몫이다. 소나기를 맞은 염소 ―이인화에게 소나기를 몽땅 맞은 염소가 죄도 없이 목을 움츠렸다 수염을 밀고 안경을 씌우면 영낙없는 우리 회사 진 부장이다 그는 말대꾸 한번 변변히 한 일이 없다 집염소는 한번도 바람을 마주하여  절벽 위에서 수염을 흩날린 일이 없다 녜에에에녜에 평생 아니오!를 말해 보지 못한 오종종한 얼굴이 달려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무장 해제 당한 포로같이 뿔을 뒤로 감고 나온 늙은 염소는 눈 한번 옳게 쳐다보지 못한다 갓을 잊어 뿔을 보임이  사뭇 송구스러울 따름인즉 소나기 바람에 네 속을 알것다 네놈이 갓속에 늘 비수를 감추고 다녔것다? 수염까지 젖은 염소가 다리를 후들후들 떤다 웬걸입쇼 소인이 꿈에라도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오십에 다 와가는 진 부장은 큰놈이 이제 겨우 중학교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시적 통일을 위해서 수탉을 완전히 제거해버린 꼴이니, 16밀리 시네마스코프를 만들려다가, 8밀리 소형 영화를 찍어버린 격이라고나 할까? 어찌보면 두 가지 색깔을 써서 극명하게 보여주려 했던 ‘수탉 : 염소’의 대비 구조에서 애석하게도 한쪽 주인공을 포기한 셈이 되었다. 커트된 나머지 조각을 모아 ‘황금(黃金) 수탉’이란 제목으로 두번째 집까지 지었으니, 필름 한통을 생재기로 잘라 두 편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언젠가 역량이 생기면, 두 채의 집을 허물어 애초에 꿈꾸었던 대로 『벤허』나 『닥터 지바고』같은 크고 웅장한 스펙타클 한 편으로 다시 찍을 것이다. 염소나 수탉도 찰톤 헤스톤이나 오마 샤리프같이 근사한 모습으로 찍어줘야지. 그때에는 이인화같은 귀걸이는 달지 않아도 될 거라. 궁금하다면, 소나기를 맞은 염소는 내가 좋아하는 한국화가 사석원의 그림을 봄으로써 시작한 것임을 밝혀 둔다. 여러 말 말고 너는 언제나 사립문을 고쳐 달 거냐고? 사립문 가지고 열심히 두드리고 밀어봐도 소용 없다고? 그런 분들을 위해 나는 특별히! 성호를 놓는다. 아멘. (윤정구) ===========================================================================     선물 받은 날― 유안진(1941∼ ) 춘삼월 초아흐레 볕 밝은 대낮에 홀연히 내게  한 천사를 보내셨다 청 드린 적 없음에도  하늘은 곱고 앙징스런 아기천사 하나를  탐낸 적 없음에도  거저 선물로 주시며 이제 너는  어머니라  세상에서 제일로  복된 이름도  함께 얹어주셨다.      몹시도 사랑스러운 이 시를 읽기 위해서는 3월 하고도 9일, 그것도 봄볕이 좋은 한낮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굳이 3월이지 않아도 되고, 9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이 시는 탄생의 시이고, 세상의 모든 아가와 엄마를 위한 시이기 때문이다.  ‘선물 받은 날’이란, 한 어머니가 출산하던 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3월 9일은 그녀가 어머니가 된 날이자, 그 어머니의 아이가 태어난 생일날이기도 하다. 출산이란 어려운 일이니까 아팠다고 쓸 수도 있고 힘들었다고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에는 땀과 고난의 얼룩이 단 한마디도 없다. 그 대신 복되게도, 참 다행스럽게도, 이 어머니 시인은 탄생의 의미를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면,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두 가지를 받게 된다. 하나는 아가이고, 또 하나는 덤으로 받게 되는 선물 즉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다른 생명도 재탄생하게 되다니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시는 분명 아가와 엄마를 위한 시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을 위한 시이기도 하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아가이지 않았던 이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3월에, 이 시는 모든 사람에게 일러주는 듯하다. 진실로 어떤 아가든 복된 선물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선물 같은 아가였다는 것을, 기적 같은 일이 사람을 낳았다는 것을. 
1692    詩어는 꽃잎에 닿자 나비, 꿀벌이 되다... 댓글:  조회:3989  추천:0  2016-10-21
시의 주제  함동선  주제는 작가가 그려 내고자 하는 제재, 곧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상 내용을 말한다. 이것을 독일어로 테마thema라 하는데 시의 중심 사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제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무엇인가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엇인가 하는 주제와 이 주제의 재료가 되는 제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다면 제재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제재란 예술 작품, 학술 연구와 같은 것의 주제가 되는 재료로, 제재=소재+주제라는 등식으로, 제재는 주제의 개념을 포함한다. 따라서 소재가 없으면 주제도 현실화할 수 없다는 변증법적인 상호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주제와 동기의 관계는 어떤가? 동기에 대해선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지만, 동기는 주제와 소재의 양쪽에 각각 보완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가 소재를 통해 파악될 수도 있고, 소재가 주제를 유인하는 경우도 있다. 양쪽은 각기 한 쪽의 원인이고, 작품의 동기가 된다. 주제가 무엇을 쓸 것인가 할 때의 그 무엇이라면, 동기는 왜 쓰는가 할 때의 왜에 해당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제재는 소재와 주제로 성립된 주제의 개념이고, 동기는 주제와 소재에 각각 의존해서 시를 쓰게 하는 사상적 충격 또는 사상적 감동을 뜻한다. 한 편의 시는 소재(제재) → 동기 → 주제로 구성된다.  한 편의 시 작품은 그 시 작품을 쓰게 하는 사상적 동기 즉 소재 → 제재에서 감동에 직결되는 정신적 반응으로 시작된다. 이 때 시인은 그 제재에서 받은 자극과 반응의 충격으로 왜 쓰는가 하는 왜에서 점차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표현 욕구에 부딪치게 된다. 이 무엇이 바로 한 편의 시의 중심이 되는 작자의 사상이다. 시의 주제는 동기의 구체화를 말한다. 동기의 구체화란 무엇인가? 어떤 제재(소재)에서 받은 감동 있는 경험 즉 가슴에 후끈 느껴지는 마음의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 마음의 내용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생관 세계관과 맥을 같이 한다. 김동리金東里는 그의 ꡔ소설작법ꡕ에서 주제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생의 의미’라고 하였다.  주제는 시를 쓰는 태도와 연관된다. 그것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의 주제는 첫째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주제 둘째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에서 정확․정밀․확실한 이미지의 주제, 또는 사물 자체를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거나 표현미에 치중하는 주제, 셋째 무의식을 추구하는 시에서 이성 이전의 무질서한 의식의 단편들을 자동 기술적으로 표출한 주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유치완 「생명의 서」의 전문  시 「생명의 서」(동아일보 1938.10.19)는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이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권속을 거느리고 북만주로 가서 농장을 관리하는 등 방랑하던 때 쓴 작품이다. 시 「바위」, 「깃발」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 시의 제목으로 된 시집 ꡔ생명의 서ꡕ에 수록된 시 작품들은 거의 망국의 한을 달래며 흥안령 가까운 북만주의 벌판에서 쓴 작품들이다. 그의 자작시 해설 ꡔ구름에 그린다ꡕ에서 「여기에는 눈도 닿지 않는 광막한 광야뿐입니다. 그리고 무작정 험악한 세월이 있을 뿐입니다. 그 가운데서 해가 아침이면 땅 끝에서 나타나 하늘 한복판에 진종일 걸려 지나가는 마지막 피보다 붉게 물들어 저 쪽 땅 끝으로 떨어져 까무라칠 뿐, 다시 버러지같은 애걸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자기自棄의 태세뿐인 것입니다」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시 의식에는 언제나 허무가 응시하고 있었다고 그는 자작시 해설에서 술회하고 있다.  이 허무 의식은 이 시의 제재가 되고, 이 제재에서 생명에 대한 회의 그것이 동기가 된다. ‘나의 지식’은 생명의 본질을 모르고, ‘삶의 애증’은 생의 여러 가지 체험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고 몸부림친다. 지식과 체험으로도 생명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생명의 밑바닥에는 허무가 깔리고,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생명 추구의 몸부림’이 이 시의 주제가 된다.  한편 이 시에서의 ‘나’는, 작자인 청마뿐만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독자도 이 시 속에 있는 ‘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 속에 있는 ‘나’는 많은 사람 속에 있는 ‘나’인 것이다. 여기에 이 시가 지니고 있는 보편성이 있다. 때문에 나 자신 속에, 이 시 속에 있는 ‘나’가 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를 읽기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나’이었지만, 이 시를 읽고 비로소 이 시 속의 ‘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의 내부에서 ‘지식의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유형의 주제는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둘째,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시는, 영국의 비평가 및 철학자인 흄T. E. Hulme과 미국의 시인 파운드E. Pound가 이끈 신시 운동이다. 세계 제1차대전에서 전사한 흄은 낭만주의 문학의 주관주의와 모호성을 비판하고 시에 있어서 건조한 견고성dry hardness을 강조하였다. 파운드는 간결하고 견실한 언어, 리듬과 의미의 일치, 틀에 박힌 문구나 관용적 표현의 거부, 형용사는 장식이 아니고 바로 내용 등이라는 이미지 시론을 주장하면서 객관성과 정확성을 강조하였다.  군중들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의 꽃잎들  「지하철 정거장에서」  파리의 정거장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 군중들 속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얼굴들의 인상을 어둡고 축축한 지하철 정거장에서 피어난 “꽃잎”에 비유한 이미지를 그렸다. 이 때 “꽃잎”은 시인이 직접 느낀 정서의 등가물로써 엘리어트의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과 비슷한 것이다. 이 시를 두고 파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년 전에 나는 파리의 라꽁꼬르드에서 지하철에서 내려 갑자기 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한 아름다운 어린 아이의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서, 그 날 종일 그 인상 받은 것을 나타낼 말을 찾고자 애썼지만, 그 돌연한 감정만큼 가치있고 아름다운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30행의 시 한 편을 썼지만 그것을 찢어 버린 것은 그것이 소위 “강열도强烈度 제2위第二位”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후에 그 반 정도의 시를 썼고, 7년 후에 위와 같은 시구를 지었다.  이와 같이 파운드는 한 순간의 인상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내면서, 시란 이미지로써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좋은 산문처럼 간결하고 정확해진다고 하였다. 그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무엇보다 강조한 시인이다.  이러한 경향은 정지용鄭芝溶, 김기림金起林, 김광균金光均 등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광균의 시 「뎃상」을 살펴본다.  1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우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우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울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의 전문  김광균의 시 「뎃상」의 주제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시골 풍경의 묘사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노을, 전신주, 고가선, 구름, 깃발, 나무, 들길 등은 아무런 선입관 없이 객관적으로 사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때 시적 화자의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시적 자아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향료, 보랏빛, 색지, 한 다발의 장미 등은 시각적 이미지의 명암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끌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외로운 들길’의 경우 화자의 감정이 드러나 있고, 은유를 통해 서술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점은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이 영미英美의 이미지즘 영향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전봉건全鳳健의 시 「피아노」를 살펴보자.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전봉건, 「피아노」의 전문  이 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미지의 표출이 독특하다. 피아노를 두드리는 손과 그 리듬에서 ‘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를 연상하고, 그 생선에서 파도를 연상하고, 그 파도에서 다시 생선을 잡는 ‘칼날’을 연상하는 이미지는 새롭고도 이질적이다. 결국 이 시에서는 이질적이고 진부한 면을 벗고 새로운 대상을 보는 주제를 발견한다. 그 주제는 표현미다. 이러한 시의 내면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일 이러한 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현대시의 흐름에는 의미를 찾는 시도 있지만, 위의 시와 같이 의미가 없는 표현미에 정성을 쏟는 시도 있다. 새로운 각도에서 대상을 발견하는 주제는 감각을 나타내는 시, 다시 말하면 의미를 포함하지 않은 사물에 대한 감각미를 나타낸다. 형태미 또는 형식미는 표현미의 다른 말임을 일러 둔다.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 문덕수, 「꽃과 언어」의 전문  문덕수의 이 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새로운 수법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이미지와 이미지로 결합된 이 시는,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초현실주의 시의 한 흐름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세계관 이성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경험의 단편적인 축적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의 세계란 경험의 단편적인 축적이 이성에 의한 정리 과정을 거쳐, 어떤 개념이나 관념으로 형성되는 심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란 이와는 딴 심리의 세계이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우리의 경험이 우리 안에 축적 방치되어 있어, 오히려 이성의 세계보다 더 인간의 영감이나 욕망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심층부의 심리이다. 이러한 단편적인 경험들이지만 일단은 심리의 내부를 통과하였음으로 이미지라 부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떠오르는 대로 연상 작용에 의해 쓴 시는, 가장 순수하고 새로운 것이어서 우리들에게 쾌적한 감각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성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언어’가 ‘꽃잎’에 닿자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또 ‘꿀벌’이 된다는 이미지의 전개는 쾌적한 감각의 공감을 일으키므로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생명력의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적 진실은 언어로 창조한 것으로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새로운 것이고 가장 순수한 감각임을 알 수 있다.  시의 동기가 때로 주제와 같은 경우가 있다. 개화기 시가, 사랑의 시, 그리고 정치적 주제, 사회적 주제로 쓴 시가 이 범주에 든다.  시의 주제는 어떤 소재에서 느낀 ‘인생의 의미’를 어떤 동기 즉 왜 쓰는가 하는 태도에 따라 소재의 배치와 구성이 결정된다.   
1691    詩리론은 하나의 울타리로서 늘 시인을 괴곱게 한다... 댓글:  조회:4926  추천:0  2016-10-21
시론(詩論) ​/남현     시에 대한 많은 이론이 나를 괴롭혔다.   하나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나를 벗어날 수 있을 때, 그때 몇 편의 시가 나를 이야기해줄 수 있을는지.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는지.   [출처] 시론|작성자 남현   이규리 시인의 '나의 시 이렇게 쓴다' - 속의 말 받아쓰기  1.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받아 적는 것 시도 사랑처럼 우연히 찾아올 때 가장 행복하다. 우연히 오는 시는 힘들지 않고 의도적이지 않으므로 내 속의 말을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우연히 오는 시라고 해서 마냥 우연만이겠는가? 여 기서 우연이란 인공적이지 않다는 표현에 더 가깝다. 어떤 촉발된 생각 에 우연히 맞닥뜨려 오는 이미지나 문장들을 받아 적을 때 행복하다. 자동기술이란 말이 있듯이 내 속의 말을 내가 쓰지않고 그냥 받아 적는 것,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2. 죽도록 외로워라 그러나 말이 쉽지 이렇게 쉽게 쓰이는 행복한 경우는 드물다 우선 외로워야 한다. 외로움의 경지는 성서와 백석이 먼저 말한 바, " 외롭고 높고 쓸쓸함"의 자리이다. 결핍이 외로움을 낳는지, 외로움이 결핍이 되는지 그 둘의 길항 역시 시를 쓰는 동인이 된다. 그래서 자 꾸 주변을 기웃거려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떤 소통에는 도움이 되나 작업은 철저히 자기 혼자의 일,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3. 현장성의 중요성 내 속에 있는 것들로 어떤 한계에 봉착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경우, 신 선한 자극을 위해 밖을 떠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잘 놀아도 좋고 취 해도 좋지만 심각하지 말며 의도하지도 말며 다만 시적 반경을 벗어나지 는 말아야 한다. 4. 시에 대한 깨달음이 삶에 대한 깨달음으로 하나의 작품을 써 놓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전보다 추가된 항목이 있다면 이 시에 발견이 있는가 깨달음이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 시를 쓰는 삶이 그렇지 못한 삶보다 나은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 출처 : 『詩하늘』2005년 봄호 ----------------------------------------------------------------- 비어 있는 곳의 가득함/신달자   빈 공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혹은 그것이 가능한지 잘 모른다. 그러나 텅 비어있는 단순한 공간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시의 어떤 새로운 방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의 아주 작은 무늬까지 표현할 수 있거나, 보이지 않는 틈 사이의 사유까지 불러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 너무나 나 자신의 삶에 밀착된 소재에 엉겨붙어 나 자신의 내면에 집착한 시들에 비해 좀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랬었다. 자신의 등뼈같이 자리잡은 상처들을 향해 머리를 휘저어내어 더는 피곤한 싸움은 이젠 작별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시들을 보면 그 시에 애정이 가면 갈수록 글의 소재들이 큰 몸짓으로 클로즈업되어 있는 것을 본다.  좀 멀리서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아주 작게 내가 바라보는 앵글 속에 모든 소재를 축소시켜 오히려 멀어 그리움을 갖는 시를 쓰고 싶다.  낮은 목소리와 조용한 몸짓으로 그러나 사물이나 사람은 더 옹골차게 바라볼 수 있다면 시적 상상력의 힘은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헉헉대는 숨소리도 삭이고 피해의식의 원망 같은 인간적 감정을 가능한 달래서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다.  비어 있지만 가득찬 멀리 있지만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성의 기법이 지금 생각하는 새로운 시의 모습이지만 자칫 너무 싱겁거나 이 사람 저 사람 손대는 어떤 도(道)의 느낌이 나면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방향은 아니다.  역시 사람냄새가 나 삶의 현장이 감지되는 시가 나는 좋다. 읽으면 물컹거리는 것이 온몸에 느껴지는 시를 좋아했지만 그렇게 즉흥적으로 다가오는 시가 아니라도 서서히 바닥에서부터 느낌이 달아오르는 그런 맑고 깊은 시가 지금은 그립다.  그러기 위해서 문을 열고 다시 문을 열고 나아가는 길의 모색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의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자연 속으로 비어있으나 수시로 변하는 장소들을 멀리 바라보는 일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쓰고 싶은 시            - 문정희 세상의 시간이 2000년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 나는 고려와 조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생이라는 특수 신분과 성의 영역에 갇혀 그녀들이 남긴 빼어난 시작품마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의 여성시인들을 우리의 고전문학 속의 소중한 시인으로 인양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결국은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왜곡된 시간의 바위를 뚫고 나와 푸른 창공으로 인양되고 있음을 보았다. 최근 초고속 정보화 시대가 열리면서 툭하면 제기되었던 활자매체로서의 문학의 존립 여부나 시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구심도 깡그리 사라졌다. 결국 마음껏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시를 쓸 때 그 내용과 형식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했었다. 어떤 명분으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서둘러 발표하는 것을 경계했었다. 물론 자유시를 제일 많이 썼지만 [아우내의 새]를 통하여 자유혼을 그리고 싶을 때는 가차없이 장시를 택했고, [도미]나 [나비의탄생] 등 설화를 통한 주제의 형상화에는 시극도 시도했었다. 대전엑스포 개막식 공연을 위한 주제의 형상화에는 시극도 시도했었다. 대전엑스포 개막식 공연을 위한 [구운몽]을 쓰며 창극에 대한 공부도 했었다. 내용면에서는 인간의 슬픔과 억제당한 자유와 침묵 그리고 페미니즘과 에코페미니즘, 최근에는 문명비평적인 작품도 몇 편 썼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어떤 작품이 태어날 것인지 나도 궁금해 죽겠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말할 수 없듯이 지금 심정이 그렇다. 다만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다른 주제와 형태를 쓰고 싶을 뿐이다. 바꾸고 변하고 왕창 멋지고 싶다.  고백하자면 최근에 나는 한밤중에 혼자 펄펄 뛰고 좋아하는 일이 가끔 있다. 곤히 잠든 사람들을 모두 깨워 '나 득음했다'고 큰소리로 소리치고 싶은 것 말이다. 성급하게 우려해보았던 문학의 위기는 아마도 문학의 호기일지 모른다. 거품과 가짜와 미숙이 판치는 세상이니 진짜란 더욱 돋보이고 귀중하지 않겠는가. -----------------------------------------------------------------     [문정희] 용기 있는 질(質)의 관리를 꿈꾸며  예술 작품에 있어서 답습과 반복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닌 것, 이미 길들여져 낯익은 것은 말장 무효인 것이다.  ‘나의 이렇게 쓴다’라고 말할 만한 특별한 비법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가령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비법을 결코 나의 시작법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연코 다시 깨뜨리고 깨뜨려야 마땅한 것이다.      기실 나는 나만의 시작법 대신 오히려 늘 의문과 회의를 갖고 있다. 그저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이 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이 시어와 형식은 과연 적당하며 얼마나 독특하고 새로운가 하는 의문을 끝없이 제기해 보는 것이다.  연전에 만난 친구인 조각가 캐롤 파커스 양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의 모습은 여러 의미로 예술가로서의 한 상징이며 그녀가 남긴 수북한 파편은 화두처럼 난해하고 신선하게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벌써 이 년 전의 일이다. 캐롤은 폭설이 하얗게 내린 한국의 산야를 깁스를 한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다녔다.  조각가인 그녀는 한국의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울브라이트의 기금을 받아 내한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조각에 새로운 영역을 첨가하기 위하여 한국의 백자 기법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일본을 제쳐두고 한국을 택한 것까지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한국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유명한 경기도 일대의 도요지를 모두 헤맸지만 대강 겉모습만 보여줄 뿐 그 이상은 아무도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선뜻 가르쳐 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몇 백년 동안을 독특한 예술로서 전승되어 온 예술이기에 그녀가 기대하기로는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재료나 기법상의 체계는커녕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이론적 규명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것은 모두가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신비 속에 묻어 둘 뿐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는 데는 서양인인 그녀로서는 어떻게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달이 지나도록 스승은커녕 제대로 된 가마 한번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날마다 눈쌓인 한국의 산야를 헤매다가 그만 미끄러져 다리에 깁스까지 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해를 꼬박 절뚝이며 고생 아닌 고행을 한 끝에 결국 백자의 감촉에다 서양식의 조형적 표현을 가한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는 도자기에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있는가 하면 어떤 것에서는 흰옷 입은 성자가 멀리서 가물가물 걸어오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케롤 파커스양의 감동은 미국 문화원에서 열린 그녀의 전시장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기 하루 전날, 자신의 작품을 한 점도 팔지 않고 버티던 그녀는 결국 단 한 점만을 남기고는 전부를 아주 깨끗이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너무나 놀라서 만류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용기 있는 질의 관리(Quality control)가 필요해!' 그녀가 떠난 후, 우리는 수북한 파편으로 남은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녀가 이곳에서 얼마나 백자에 몰입했고,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가를 생각하고 조용히 전율했다.  나는 다시 나의 시작법을 생각해 본다.  나만의 비법이라고 하면서 오랫동안 답습과 반복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고 관객에게 감탄을 강요하고 섣불리 값을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나는 얼마나 용기있게 '쿠알리티 콘트롤'을 하고 있는가.  시는 때로 영감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는 해도 결국은 언어 예술이다.  그리고 언어란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러므로 시작법도 세울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시작법에 따라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는 나의 망루이다. 시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시를 통하여 세상을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시를 통하여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쓰고 또 쓴다. 그리고 버리고 또 버린다.  그것은 나의 시작법이면서 아울러 내 존재의 이유이다. -----------------------------------------------------------     / 최영철                                                                    - 제1장 -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시를 쓰는 데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는 시를 잘 쓸 수 있다'정도로는 안되고 '나는 시를 잘 쓴다'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습작시절에는 자기 시의 어줍잖음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의 완벽함에 곧잘 절망한다.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자. 안되면 매일 아침 '나는 정말 미치도록 시를 잘 쓰는 놈이야'하는 자기 최면을 반복해도 좋다. 그러나 자만심은 금물이다. 자신감은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만 필요한 강정제 같은 것이다. 일단 다 쓴 작품에는 일이 끝난 뒤 거시기가 스르르 풀이 죽듯이 기가 죽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긍휼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다.  출판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대학노트 몇 권 분량의 시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천재시인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을 갈겨 쓰며 집에는 이만한 분량의 작품이 또 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떠벌린다. 이런 시인일수록 자기 시가 한국시사를 바꾸어 놓거나 출간만 하면 공전의 대히트를 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만이다. 자기 시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흥에 겨워서 계속 써 갈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천재시인들에게는 약도 없다. 계속 천재로 착각하며 살도록 내버려두는 방법뿐이다. 그 천재시인 출판사 문을 나서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아, 천재는 외로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자신감은 없고 자만심만 있는 엉터리 시인인지 모른다. 아니 나는 아직 그런 알량한 자만심조차 없다. 쓰기 전이나 쓰고 나서나 내 재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주눅이 든다. 그러나 이런 의심조차도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기나 했을까.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계속 턱걸이하며 낙방의 쓴잔을 마시고 있을 때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이 '나는 도대체 시를 쓸 재주나 있는 놈인가?'하는 의문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자문자답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했다. 10년을 하면 사법고시라도 붙을 판인데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시인 자격증 하나 못 따는 걸 보면 글렀구나 싶다가도, 사법고시에 되는 것보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니 이런 초지일관이면 뭐가 되도 되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재능이란 말의 뜻을, 하고자 하는 일에 집착하는 능력이라고 새롭게 정의 해 버렸다. 즉, 재능은 그 분야의 특별한 재주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부여받는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것 때문이라면 추위와 굶주림도 참을 수 있고 멸시와 외로움의 고통도 참을 수 있는 것, 그것 이외에는 세상 모든 것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 이런 경지가 바로 천부적인 재능이 부여된 경지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그때는 그랬는데, 재능도 세월 따라 닳아 없어지는 모양이다. 지금은 그 믿음이 조금밖에 없다. 그 시절은 시 때문에 겪는 고통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그 고통이 조금씩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요즘 나는 반성하고 있다.   1.자신의 재능을 추호도 의심해 본 일 없는 천재시인들은 이제   부터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의심하라. 2.자신의 재능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나 같은 어중개비 시인들   은 매일 아침마다 '나는 시를 너무 미치도록 잘 쓴다'는 최면   을 걸어라. 그 최면이 통하지 않으면 계속 절망하라. 시 때문   에 절망하는 한 당신은 누구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시인   이다.                         - 제2장 - 시 창작 강좌 같은 데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씨뿌릴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애을 느낀다. 우선 내가 지독히도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 체형이 숏다리이기 때문이고, 남에게 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할 만큼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더럽게 '시를 못 쓰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는 말을 한참 떠들다가 말문이 막힐 대는 수강생 중에 누가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린다.  '야, 그만해라. 너는 뭐 짜다라 잘 쓰니.'  그러나 나도 할말은 있다. '시는 배우는 게 아닙니다. 배워서 쓰는 시는 엉터립니다. 배워서 쓰는 시는 자기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대충 주워섬기고 나는 단에서 내려온다. 이것이 우둔한 강의를 은폐하는 비법이다.  나는 순전히 혼자서 시를 썼다. 그 흔한 문예반도 백일장도 한번 해보지 않았다. 시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읽은 적도 없다. 유치한 대로 써 나가다 보니 그런대로 최영철적인 언어와 최영철적인 어법이 자리를 잡았다. 남의 시의 장점을 흉내내고 고운 말을 달달 외우기라도 했다면 내 시가 지금처럼 험악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시 잘 써서 100점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니까. 시는 몸 전체에서 우러나는 것을 받아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는 소설처럼  작업이 될 수 없다.   시를 잘 쓰려는 노력보다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해 노력하는 게 좋다. 자기 몸 전체가, 생의 편편들이, 웅웅거리는 가슴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게 좋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주로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무수히 쏟아놓은 애찬과 탄식의 언어를 동어 반복할 것이 아니라 많고 많은 시인 중에 '내가 또 있어야  하는'이유를 빨리 찾는 게 좋다. 그것이 자기 것이며 자신이 가장 잘 서낼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의 주제에 어울리는 것이다. 고상하지도 않으면서 고상한 시를 쓰는 시인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 1.시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   라. 그래도 시가 안되면 자기 몸에 이상이 있는 것. 2.시를 알기 전에 자신의 주제부터 알아라. 자기 주체가 성스러   우면 성스러운 시를, 자기 주체가 상스러우면 상스러운 시를.   ---------------------------   [강은교]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 위하여   (1)단어 하나가 떨어져 온다. 가령 한밤중 같은 때라든가 새벽 무렵 같은 때 나는 손을 벌려 그 단어를 받는다. 책상 한 귀퉁이에 늘 놓여져 있는 붉은 색 바구니에 나는 그것을 집어넣는다. 하긴 요즘은 그런 순간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말하자면 아주 재수가 좋을 때이다.  그러니까 한때는 상당히 재수가 좋았다. 늘 단어가 공중에서 떨어졌고 나는 그것을 받느라 바빴었다. 내 바구니도 쉴새없이 자기의 등을 열고 그것들을 제 몸속에 집어넣느라고 애를 먹곤 했다.  때로는 단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단어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하나의 작은 마당이 내려오는 것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물론 아주 재수가 좋을 때이다.  떨어져 내리는 것이 하나의 흐릿한 이미지만일 때도 있다. 어떤 동사라든가, 또는 어떤 명사도 아니며 어귀도 아닌 희미한 어떤 그림 같은 것, 그것은 아주 낯선 어떤 것일 때도 있고, 낮에 보아 두었던 어떤 상황의 변형된 그림이거나 또는 지난 어떤 꿈속의 흐린 그림이거나 또는 오래 전에 읽은 어떤 신문 같은 것의 얘기들 속에서 나의 공중으로 옮겨온 그런 것들이다.    어느 날, 나는 나의 그 붉은 색 바구니의 뚜껑을 연다.    단어 하나가 잡혀 온다.  어귀 하나가, 또는 이미지 하나가 잡혀 온다.  그것은 나의 원고지 위로 올라온다.  이리저리 그것을 끌고 다닌다.  항상 내 오른손의 능력이 보잘것없음에 툴툴대면서 또는 절망하면서,     그것들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또는 말하지 않으며 말할 때까지, 또 몇 개를 더 꺼내 온다. 그것들이 저희끼리 무슨 대화인가를 하도록 지켜본다.  아, 말이 없는 말을 하여라, 너희 스스로 정하여라. 그림을 그려라, 너희 스스로, 너희 스스로. (2)이런 방법도 있다. 사진 찍기다.  나는 사진사이다. 사진사는 피사체가 되는 어떤 대상으로부터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객관적 거리의 감각을 주는 이 방법과 아주 내 마음에 든다. 사진만 잘 찍어 놓으면 사진 속의 인물들 대상들은 스스로 말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또 내가 할 수 있는 세상에의 참여의, 어쩌면 가장 비이기적인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매일 사진을 찍는다. 학교엘 가면서, 시장에 가면서, 강의하면서, 신문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서, 짧은 여행지에서, TV뉴스를 보면서 나는 가능한 한 그날 만난 모든 상황들, 인물들을 선명히 사진찍기를 바란다.  여자들의 사진을 찍고, 대자보들과 흐린 날씨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고, 또는 리어카에 누워 있는 배추들과 상인을 찍고, 덤프트럭을 찍고, 도시의 거리에 엎드려 있는 운동화, 아기고무신,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찍는다.  사소한 모든 것들, 작은 것들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필름째로 내 단어 바구니의 한 켠에 넣어둔다.  그것들의 원고지 위의 인화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지곤 한다.  제일 먼저 인화하려고 점찍었던 것이 제일 나중에 인화되는 수도 있고, 개중에는 아직 손대지 않은 것 ― 아니 손대지 못한 것도 있다. 인화할 계기가 오지 않은 것이다. 더 좀 묵혀야 한다. 하긴 그러다 그것들의 빛이 아주 바래버릴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내 바구니에 단어와 함께 쌓인 현실의 필름들이 많으면 나는  괜히 희망에 쌓인다. 마약 같은 희망에 말이다.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필름들을 밤새도록 들여다보고만 있을 때도 많다. 그런 날은 단어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밤만 보내 버린다.  버릇이다. 아, 참 쓸데없는 버릇이다. (3) 그러고 보니 들여다 보기도 많이 했구나.  아파트의 옥상에서 하루 종일 아파트의 뒷켠에 펼쳐져 있는 어느 대학교의 숲을 들여다보던 때가 생각난다. 그후에도 며칠 더 나는 숲을 들여다보러 옥상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때 시를 한편 쓰기는 했다. 동요같은 시를.  그러나 들여다보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눈을 깜빡거린 다든가 하는 식의 우리는 그렇게 사물을 철저히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곳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때는 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나쁜 상태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깊은 강물 같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다. 눈을 깜빡이지 않도록 애쓰면서, 나는 그 강물의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내 생각의 가지에 맞는 어귀라든가 단어 하나가 걸리기를 기다리면서.  낚싯줄에 무엇인가 걸려 올라온다. 그러나 그것은 개펄의 흙덩이거나 라면 봉지거나 무슨 병조각 같은 것일 때가 많다. 좋은 게 걸려 올라오면 내 바구니에 담을 텐데 하는 생각이 앞서서, 그 생각을 자꾸 말하고 싶어 안달한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나의 그림을 위하여 ― 그럴 때 나는 비상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림을 의식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내가 써보고 싶은 생각을 하나하나 백지 위에 풀어 놓는다. 길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그림을 달아나지 않도록 책상 앞에 붙인다. 온힘을 다하여 그림에 매달린다. 용을 쓰며 턱걸이를 하는 학생처럼.    이런 때 나는 정말 비참하다. 눈물이 흐른다. 그러면서 사전을 찾는다. 별로 성공한 기억은 없지만 비상탈출구 같은 것이 될 때는 있다. 단어를 만나는 것이다. 나는 단어와 껴안는다. 그리고 얼른 내 바구니에 집어넣는다.  그러다 그것이 내가 그전에 많이 쓴 낯익은 단어임을 알아버리고 다시 슬픔에 빠지긴 하지만, 그래서 기껏 그린 그림이 내가 이미 많이 그렸던, 그래서 익숙해진, 상투화된 그림임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밤은 행복하다.  (4)그것이 어떤 단어들의 집합이거나 구절들의 집합이거나 서툰 필름이거나 그것들이 그래도 괜찮게 이어지도록 나는 끝없이 소리내어 읽는다. 단어들이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 가도록 나는 끝없이 중얼거린다.    말하지 않으면 말할 때까지, 그것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종이 위에 설 때까지 내 바구니는 그럴 땐 열어 두어야 하리라. 소외감을 느끼는 단어는 스스로 바구니 속으로 다시 들어가리라.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질없는 밤을 보내고 있다. ---------------------------------------------------------------     [이수익] 강하고 깊고 단순하게    제가 쓴 시 중에 「寫眞師」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아마 70년대 초에 썼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시는 제가 시를 인식하는 방법 모두를 보여 주고 있는 듯해서 여기 서두에서  한번 인용해 보고자 합니다.     처음엔 버릴 것부터     잘라가면서     나중에야 나무의 美學을 손질하는     園丁의      剪枝作業처럼.     시야에 비친 풍경 속에서 寫眞師는     먼저     버릴 것부터 생각한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그 一瞬 交感을 영상에 담으면     나머지 공허한 虛像의 풍경들이     울음 우는      카메라의 저 바깥 外界.  바로 이런 시입니다. 사진사가 한 절묘한 영상의 순간에 한편 작품의 탄생을 위하여 그의 총체적 영감과 지혜를 바치듯이, 그리고 그 나머지 피사체 영상들을 모두 버리듯이, 제가 처음으로 한 작품과 만나는 순간은 역시 그렇게 절묘하게 다가오는 한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당신은 언제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되느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그것은 제가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어느 현실적 체험의 한 순간이거나 또는 책이나 TV, 신문 등을 보다가 문득 만나게 되는 사물과의 간접적 만남의 경우이거나 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을 그런 순간에 어찌하여 당신은 감동하면서 그것이 시의 소재가 된다고 판단하느냐고 묻고 싶으시겠지요?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뭐라고 객관적일 수 있는 답을 드리기가 어려운 것이, 그런 순간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도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관성의 배후랄까 또는 밑바탕에는 저의 개인적인 체험과 미적 감각, 사물에 대한 인식 체계, 심지어는 저의 성격까지도 작용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런 개별성을 두고 뭐라고 더 이상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제 저는 한 작품의 탄생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모티프Motif와 만나게 된 셈인데요. 이때 저는 대상(사물)이 뿜어내는 이미지 중에서 제가 작품으로서 다루고자 하는 어떤 주제를 생각해 내게 됩니다. 마치 어느 떠들썩하고 화려한 축제의 현장에 뛰어든 사진사가 축제의 전장면 중에서도 자신의 언어가 될 만한 장면에다 렌즈를 들이대고는 그 작품의 중심 주제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요?  대체로 이런 극적인, 행복한 만남이 있을 경우 지체없이 작품을 써내려갔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저의 첫 시집 『우울한 샹송』이 만들어진 1969년 이전까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경우, 첫 번째 대상과의 만남이 주었던 현란한 이미지와 몇 개의 관련된 표현들을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숙성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말하자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보다 신중해졌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더욱 기능적으로 변모되었다고나 할까요, 어떻든 그때부터 제 마음 속에 떨어진 한 톨의 시의 씨앗은 한 편의 작품으로 태어나기까지 하루든 이틀이든 열흘이든, 아니면 아주 몇 달이든, 제가 원하는 모습의 시로 만들어지기까지 형태와 빛깔과 향기의 배합을 조종받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는 되도록 선명하게 작품의 형태를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모호한 것이 싫습니다. 저는 정확하지않은 상태가 두렵습니다. 저는 제가 감동받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 작품이 때로는 정교하게 찍은 사진 같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표현했다는 표현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사진처럼 있는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물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면 시가 제일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명하게 작품의 형태를 드러내고 싶다는 표현은 시라는 농축된 형식 속에 최선의, 최대의 표현을 담고 싶다는 말입니다. 매우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의 운명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될 때 갖는 한계의 자유를 매우 유효적절하게 통제해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저는 ‘선명한 이미지 표출’로 나타내고 싶습니다.  저는 간결함이 주는 미학의 힘을 더러 목판화에서 찾곤 합니다. 나무를 재료로 하는 목판화는 다른 판화 기법에 비해 단순하면서도, 칼맛이 주는 선묘의 질감이 심장에 와 닿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故 오윤이나 요즘의 이철수, 이상국 등이 보여주는 단순명료한 묘사 기법은 그것이 생략해 버린 다른 대상들까지도 떠올리게 만드는, 건강한 힘을 느끼게 해 줍니다. 굳이 화면에 가득차게 설명이 들어 있을 필요도 없고 복잡다단한 관념이 무겁게 들어서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표현이 단순하면서도 엄격할수록 더 크나큰 공명이 오는 것을 저는 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선명한 시의 구조 속에 담기는 내용들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있겠지요. 묵은 향내가 번져야 할 그 내용이 설익고 떫고 비릿한 내음을 풍긴다면 곤란하겠지요. 표현되는 말과 내용이 충분히 자신의 것이 되도록 기다리면서 갈고 닦는 기간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물론 내용에 따라서는 단 한 시간만에 써질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요.  한 편의 시를 이루고 난 후에도 이따금씩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일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짜임새는 되어 있는지, 표현이 미숙한 부분은 없는지, 관념이 너무 노출되어 있어 튀지나 않는지, 묘사가 지나치게 평이하거나 상투적이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미흡하지나 않는지. 이미지 묘사에 지나쳐버려 드라이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지, 더욱 생략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등등입니다.  어쩌면 이런 과정 자체는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유사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시인마다 서로 다른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은 각 시인의 지적, 정서적, 체험적, 그리고 생득적 편차에서 오는 결과라고나 할까요.  --------------------------------------------------------------- 늘 선명한 이미지의 시를                   - 노향림  어느덧 한 세기의 벼랑을 건너  뛰었다. 너무 먼 길을 돌아나오다 갑자기 건너뛴 듯한 느낌이다.그 길로 누군가 나를 떼민 듯 험하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철저한 차단된 그 길에서 나는 용케도 빠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 세기가 왔다고 놀라고 기뻐하기도 전에 언제나 누군가 나를 등 떠민 듯한 외길. 시인이 가야 할 그 소로(小路)에선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오로지 외길로 가는 그 길에서 자아와 부딪친다. 아무리 외로워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가련다.  이미지를 통해서 바라본 나의 세계를 일 년에 단 몇 편의 시를 쓴다 해도 시의 본질에 다가가 확실하고 서늘한 시를 쓰리라. 푸르스름한 흰빛의 하늘에 투명한 햇빛같이 널어놓은 언어의 빨래들이 말라갈 때 나의 시는 빛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쨍쨍한 햇빛같은  시를 쓰기 위해선, 벼랑에서 느끼는 위기의식, 도저히 들어갈 수 없게만 느껴지는 막막한 공간, 그 미로가 내 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생생하게 나의 사물이 살아 움직이며 제 역할을 다해줄 때내 긴 불면의 밤 끝엔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묘사시로서의 밑둥이 튼튼히 받혀질 것이다. 앞으로도 묘사시로 나아갈 것이다. 한 번도 그 성과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과 비교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일테지만 최소한 나의 시적 성과 운운해보지는 않겠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오로지 캄캄한 미로 해치듯 나의 사물을 찾아 한땀 수를 놓듯 가고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확실한 제시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근원적으로 느끼는 위기의식, 불행감, 쓸쓸함 등이 오히려 내겐 풍성한 시적 대지인 것이다. 때로 모성을 발휘해 해학과 유머 혹은 자연친화적인 시를 쓴다면 그 세계는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나는 근본적으로 나의 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    =======================   시를 쓴다고 의식하는 것만큼 시의 탄생을 방해하는 것이 또 있을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내게 굳이 시작법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시적인 정황을 발견하여 심상이 발동하고, 이어서 타당한 논리가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내가 품는 생각은 '시를 쓰겠다'는 결의가 아니라 '시가 되겠군'하는 판단이다. 판단이 섰으면 일단 아무 형식이나 계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태도로 다양한 에스키스를 충실하게 언어로 그려서 남겨 둔다. 그리고 나서 시간을 두고 차츰차츰 그 언어들을 매만지다가 어느 시점에 도달하여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애초에 품었던 심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일시 중단한다. 여기까지가 1차 퇴고이다. 이 과정에서 시를 쓴다는 의식은 시의 탄생에 방해만 될 뿐이다. 1차 퇴고를 마친 시는 일단 세상에서 말하는 시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문예지에 발표하거나 시집을 묶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1차 퇴고를 마친 그 시편 속의 언어들이 계속하여 내 영혼을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내가 애초에 겪었던 심상보다 한 차원 높은 심상을 겪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 손을 거쳐 태어난 시편은 모두 퇴고의 숙명에 놓이게 된다.   1991년 나는 이라는 제목으로 내 시 쓰는 과정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둔 적이 있다.   말라붙은 족제비의 썩은 꼬리같은 붓도  숯검댕이와 잎사귀를 어설피 갈아 만든 물감도  과학의 잔재주로 수십 번 태어난 도화지조차 없으나  연필 하나 종이 뭉치 약간이면 나는 언제나  거침없이 다채로운 언어를 쏟아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의미를 긁어 모아  때로는 고풍스러운 풍경화를 그려  때로는 타인의 이해에 연연하지 않는  구토나 배설 후에 오는 쾌감을 주는  현미경에 비추이는 세균의 분열과도 비슷한  숨막히도록 역겨운 일상에 저항하기 위한  오직 나만의 세계인 추상화를 그려  고고하여 늘상 외로운 음악에게 선사한다.  음표 없이 그려지는 악보 위에 수를 놓는다.  그림같은 노래들이 태어나거나 말거나  현학적인 감상자들이 만족하거나 말거나      나는 스물다섯살에 정립해 놓은 나의 시작법을 평생 고수하련다. 맙소사! 어설프게 무엇 좀 알았다고 '시를 쓴다'는 생각을 갖다니! 나는 결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시가 나를 통해 태어나게 할 것이다. (2005년 3월 16일 새벽 유용선 적음) 시를 위한 덕담                           유용선 어느 젊은 시인이  문예지에 시를 하나 싣는데  그쪽 사정 봐준답시고  고료를 받지 않았다나 봐. 그랬더니 이번엔  또 다른 어느 젊은 시인이  너는 자존심도 없느냐  타박을 놓았던 게지. 편당 3만원 때문에  의좋았던 두 사람 쌈질을 하였는데  고료 받아야 시 파는 놈이나  고료 안 받고 시 내놓는 놈이나  시 팔 놈  시 팔 놈  판 놈은 더 많이 팔고  못 판 놈은 앞으로는 꼭 팔라고  시 팔 놈  시 팔 놈  마주보며 덕담을 하더란다.  [출처] [2009] 시를 위한 덕담|작성자 유용선       [출처] [創] 나의 詩作法|작성자 유용선  
1690    詩여, 독침이 되라... 댓글:  조회:3984  추천:0  2016-10-21
[ 2016년 10월 21일 12시 09분 ]     중국 개봉(開封) 국화꽃 문화축제에서ㅡ 시는 진실해야 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습작기를 거치고 초기까지 변함없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다. 아름다움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추악한 것도 많았고 착한 사람보다는 몇 몇 안되는 악당들이 설치고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진실이 통하지 않으면서 진실만이 최상이라 과대 포장하는 세상을 보면서 괴로움과 분노를 삼켜야 했다. 절망이 엄습했다. 그러나 참고 견뎌야 했다.   한때는 시의 이미지에 깊이 빠져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는 이미지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시가 너무 딱딱해지고 틀에 갇히면서 내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절망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방황의 몇 년이 흘렀고 나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엎드려 참으면서 고뇌하면서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적의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시 쓴다는 걸 결코 후회는 않았다. 후회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절망으로부터의 도피처 내지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구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오로지 혼자서 씨름하고 매달렸다. 썼다 지우면서 고뇌하면서 나름대로의 하나의 방정식 같은 것이 있으리라 믿고 찾으려고 노력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어떤 길을 택하든지 자기의 몫이었다. 적토마에 올라 앉은 관운장의 심정처럼 비장하게 각오를 했고 스스로 재무장을 서둘렀다.    [시심천심(詩心天心)] 세상이 어지럽고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영악해져 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느꼈다. 천심 같은 마음을 지니고 시를 써야 한다고. 옛적부터 정치인이나 관리, 출세하는 이들이 시부(詩賦)를 모르고서야 발붙이지 못했다. 그래야만 옳은 정치를 하고 이상향을 세우기 위하여 모든 지식을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정치꾼이란 예나 이제나 간사하고 시기심 많은 이들이 명리를 탐하고 물욕과 권세에 눈이 어두어 바름이치를 이탈하곤 했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쓴다는 이들이 거꾸로 정치꾼들의 못된 것만 골라 배워 써먹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양심도 쓸개도 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래도 시인이라고 뽑낼 것인지?    [시여 독침이 되라] 그렇다면 시여 독침이 되라. 시는 다만 시로써 존재할 것이 아니라 시의 효력을 최대한 발휘하라. 곪아버린 세상의 환부를 단순한 약물이 아닌 독침으로 고쳐야 한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요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시술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이게 다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마음 하나로 다스려야 한다고 깨달았을 땐 이미 예순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 볼일이다.   [개척정신과 실험정신] 실험시라는 명분을 단 시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새로운 형식과 기법을 찾아내어 시세계에 접목시키려는 실험과 시험이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하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일련의 방법이나 시도로 새로운 것에 대한 시세계가 정립되거나 확립되기에는 이르다. 그러기에 실험시라 불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실험시를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우리의 짧은 시사에 서구시가 도입되면서 실험용 시는 쓰여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공했거나 실패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실험시에는 실험정신보다는 개척정신이 더 요구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실험은 실험 그 자체에 매달리기 쉽상이다.  긴 안목으로 앞을 내다보고 달려야 할 것이다. 개척정신은 사명감 의무감 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면서 이루고 말리라는 집념에 불탄다. 따라서 그 정신은 순수하고 또강건한 의지와 투지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문학에도 이런 개척정신이 담겨야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상개          
1689    詩의 첫행은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다... 댓글:  조회:4255  추천:0  2016-10-21
작시법, 시의 제목과 시의 첫행 / 박제천 [한국시학]        때는 마침 가을, 계간 [한국시학] 가을호의 [100인 신작모음]을 읽기 위해 나는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분량이 분량인지라 이제껏은 지하철의 출퇴근 시간에 내내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사람들 이야기소리, 휴대폰소리, 차내 방송 소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밀려오는 잠을 뿌리치면서 읽는 시라선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귀중한 시편들을 그냥 읽어치우고 만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어, 이번엔 읽는 장소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산을 오르다보면 도시의 사람마을을 벗어난 상쾌함이 있다. 우선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산에 사는 이들은 사람마을의 말을 쓰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저들의 말을 주고받지만 바람도 골짜기의 물도 그 말을 다 알아듣는다. 하고싶은 말 중에서도 가장 속내가 깊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시의 언어도 산에 사는 이들의 말이기에 나는 [한국시학]의 그 무수한 시편들을 산에 사는 나무며 풀, 바위며 물, 그곳에 뛰어노는 풀벌레, 그곳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   잎이 다 떨어진 채 마지막 한 잎만 붙들고 있는 겨울 미루나무를 보여주자, 그 산의 나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루나무의 [움켜쥠]이 저들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바람들도,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단풍잎들도 미루나무와 말을 나누고 싶어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정보가 부족했다. 속내를 털어놓기엔 아쉬울 만큼 내용을 갈무리해 압축시킨 것이어서 좀더 보여달라고 계곡의 물소리들도 발을 굴렀다. 발치에서 노오란 들꽃 부부가 콕콕콕 웃으며 내 바지를 잡아당겼어요. 들꽃 부부만이 아니었다. 나무 위에서 제 노래만 하기에 열심이던 새들도 이 작품을 듣고는 계곡으로 날아가 찬물을 맛보고, 마음껏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녔다. 그러면서도 둥치가 큰 바위나 우듬지의 나뭇잎들은 [아침운동]보다는 [자유의 맛] [축복]의 자잘한 내용을 듣고들 싶어했다. 이렇게 걸음걸음마다 시 한편씩을 읽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산이 곧 시요, 시가 곧 산이었다. 시인들이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에 돌려주고, 자연과 형제가 되는 길을 나는 그 산행에서 조금씩 깨우치면서 나의 새로운 시도가 맞아떨어졌다는 생각, 내게도 이런 신통한 생각이 들었다는 게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뺨을 간질이는 바람에 흔들거리면서, 물소리에 걸음의 장단을 맞추면서 강춘장, 윤종석, 임성숙, 이운룡, 신찬식, 황송문, 장석향, 최진연, 정연덕, 이건선 시인 등, 시력이 오래된 시인들의 심경시들을 읽다본즉 구비를 넘어서 어느새 산길이 가팔라진다. 땀도 나고 다리도 아파온다. 머리는 맑아지는데, 몸은 바윗덩어리처럼 굳어만 갔다. 그때부터였다. 낯선 이름들, 아마도 시력이 짧은 시인에 틀림이 없는 작품들이 나타나면서 나의 산행은 망쳐지기 시작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품하고, 양치질한다는 초등학교 일기장처럼 그저 그렇고 그런 심상한 이야기들이 줄을 지었다. 내가 읽어야 할 시들은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았는데, 첫줄만 읽어도 머리가 아파왔다. 그 산에 사는 것들도 머리를 도리질했다. 나중에는 소리내 읽지도 못할만큼 입이 아팠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의 첫행은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다. 이때의 첫느낌이 상대를 대하는 마음의 고삐가 된다.그런데 [한국시학]의 상당수 시편들은 대체로 평범한 시행을 사용한다. 눈길을 끌지 못한다. 이들은 신기한 것은 경박하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독자에게 호기심을 주지 않는 한, 독자는 더 이상 읽으려 들지 않는다. 시인의 평범한 신변 잡담을 독자가 왜 읽어야 하는가. 첫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목이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목차를 다시 들여다본즉, 놀랍게도 많은 시인들이 아주 평범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었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지만 특히 시 장르의 경우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제목이 30% 이상의 역할을 한다.   멋진 제목, 호기심이 가는 제목, 놀라운 제목이 달린 작품은 그 내용 역시 기대감을 채워준다. 그러나 [한국시학]의 시제목들은 대체로 누구나 아는 평범한 오브제나 지명, 관념어, 보통명사 등을 쓰고 있다. 예컨대[무상] [업보] [기도]나 [우물가] [눈사람] [단풍] [밤] [기다림] [보리밥] [휴대폰]과 같은 단수의 단어들이 가득 채운 목차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제목들이 효과를 보는 경우는 세련된 제목들 사이에 하나 둘 정도 섞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모두들 [평범한 제목이지만 읽기만 하면 특별한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단순한 제목이 나열될 경우에는 독자가 목차를 보는 것조차 괴롭게 만들기 쉽다.   중진들의 경우는 시집의 균형을 잡기 위해 이런 제목을 의도적으로 몇 개쯤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치가 짧은 신인들의 경우에는 이런 제목으로는 독자와 만나는 첫순간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이 자리를 빌어 신진시인들에게 고언을 드리자면, 귀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무심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강우식 시인과 함께 저술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시의 첫행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좋은 시인들이 그 첫머리를 특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개발한 테크닉 중 세 가지 방법을 인용해둔다.2) 시간과 공간이 첫 행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는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표현법은 그만큼 압축되고 간결한 어휘의 구사가 요구되지만 표현상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유치환 길손이 말없이 떠나려 하고 있다―장만영
1688    한국 현대시사 최초의 선시리론자 - 김종한 댓글:  조회:4257  추천:0  2016-10-21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김종한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 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閏四月)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 소리도 흘러 오는데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 흐르는구료.   - (1937)     ❒ 작품 해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한 곳에 정착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살아온 한 집안의 깊은 연륜(年輪)과 그윽한 분위기이다. 이 시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능수버들, 낡은 우물가, 푸른 하늘, 윤사월, 뻐꾸기' 등이 봄이라기보다 초여름에 가까운 계절적 배경과 어울려 평화로운 감상을 자아낸다.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심상 :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심상 ✴어조 : 전원의 평화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서정적 어조 ✴특징 : ① 오래된 우물이 있는 고가(古家)의 그윽한 정취와 아늑한 분위기가 우리의 고유한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② 각 연이 2행으로 구성되어 단아하고 절제된 느낌을 자아낸다. ③ 제3연의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물 긷는 동작이 느릿하면서도 규칙적인 리듬감을 자아낸다. ✴시상 전개 :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제시된 뒤 푸른 하늘(전설)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시는 아주머니의 정결한 행동이 묘사된다. ✴제재 : 낡은 우물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 ✴주제 : 평화와 그윽함이 넘치는 시골 고가(古家)의 풍경 ✴구성 ① 윤사월의 낡은 우물가 풍경 (1연) ② 박꽃처럼 웃으시는 아주머님 (2연) ③ 푸른 하늘과 푸른 전설을 두레박이 넘쳐 흐르도록 길어 올리시는 아주머님 (3연) ④ 물동이에 넘쳐 흐르는 아주머님의 푸른 하늘 (4연)       ❒ 시인 김종한(金鍾漢,1916~1945) 호는 을파소(乙巴素). 함북 경성 출생. 일본 대학 예술과 졸업. 재학중(1936)동아일보에시 ’망향곡‘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1939년 「문장」지에 추천되어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의 시는 정지용(鄭芝溶)이 추천사에서 지적한 그대로 ‘솔직하고 명쾌하고 단순’했으며, ‘비애를 기지(機知)로 포장’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1939년 《문장》지에 발표한 〈나의 작시설계도(作詩設計圖)〉에서 ‘최고의 순간’을 표현하는 단시(短詩)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한국 현대시사에 등장한 최초의 선시이론(禪詩理論)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한 주장은 1940년에 발표한 《살구꽃처럼》에서 그대로 시화(詩化)되었다.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에서 시작하여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로 끝나는 이 시는 전쟁을 낙화(落花)로 미화한 ‘최고의 순간’의 미학적 표현이다. 1942년 《국민문학》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친일문학자로 전향하였다. 〈시문학(詩文學)의 정도(正道)〉 등 순수시론(純粹詩論)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일본 도쿄[東京]에서 《이인(二人)》이라는 시동인지를 발간하여 민요풍의 서정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 이해와 감상 1 김종한은 정치나 사상에 예속된 작품과 문명 비판을 기도하는 주지시를 비판하면서 표현주의 입장을 표방하는 시인이나, 그의 작품은 한 가지 경향에 머무르지 않고 매우 다양하다. 이미지즘에 집착한 흔적이 뚜렷하면서도 민요와 전통적 서정을 추구한 작품을 많이 쓰기도 했다. 이 작품도 우리 나라의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소재인 우물가를 통해서 고유한 서정을 매우 새롭게 조명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화창한 윤사월 봄날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능수버들의 부드럽게 늘어진 모습과 낡은 우물에서 느끼는 토속적인 정서는 매우 안정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우물 안에 떨어져 비치는 푸른 하늘 한 조각이 회고적인 향수를 자아낸다. 이러한 그림 같은 배경 속에서 작중 화자가 물을 긷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지금 우는 뻐꾸기가 작년에 울던 그 새일까요라고. 그러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아주머니는 ‘박꽃처럼’ 웃기만 한다. 작품 세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뻐꾸기 소리, 소박하고 담담한 태도 속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넉넉한 박꽃같은 웃음, 그리고 황당하기까지 한 동심의 질문. 이 모든 것들이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면서 작품을 더욱 선명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말없이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아주머니는 물을 길어 올린다. 그런데 길어 올리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기도 하고 ‘푸른 전설’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넘쳐 흐르는’이라는 구절을 통하여 하늘의 평화로움과 전설의 풍성함을 듬뿍 느끼게 한다. 또한 동일하게 반복되는 통사 구조에 의해 물 긷는 동작의 느릿하고도 규칙적인 움직임을 연상하게 해 주기도 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감각적 이미지들의 절묘한 조화에 의해 ‘평화로운 풍경의 극치’를 만끽하게 된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황소의 울음 소리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느끼게 하고, 시각적 심상을 유동 심상으로 전이시켜 표현한 하늘의 ‘평화로움’과 물의 ‘풍요로움’은 박꽃같은 아주머니의 ‘소박’한 심상과 어울리면서 읽는 이의 가슴에 충만한 서정을 넘쳐나게 한다. 전통적 정서와 고유한 풍경을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작품으로, 주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물가의 경치’이다. [상징사전]       ❒ 이해와 감상 2 같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사람들이 읽어 내는 의미나 분위기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가령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에서 어떤 사람은 억센 노동 뒤의 휴식을 찾아 내고, 어떤 사람은 한없는 단조로움과 권태를 읽을지 모른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무한한 평화와 그윽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 그에 알맞게 작품은 '능수버들 아래 낡은 우물이 있는 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집은 그 내력이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윤사월의 청명한 하늘 조각이 깊은 우물 속에 비치는 가운데 뻐꾸기 소리조차 한가롭게 들리는 전형적인 전원 농가의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져 있다. 아마도 종가의 맏며느리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니는 호젓한 우물가에 서서 하염없이 물을 길어올린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화자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이 아니겠느냐며 말을 걸어 보지만, 아주머니는 박꽃처럼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없이 두레박질만 한다. 여기에서 뻐꾸기는 작품 세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떤 상황의 고요함은 아무 소리가 없을 때보다 그 속에 어떤 평화로운 소리가 간간히 끼어들어 올 때 잘 나타나는 법이다. 초여름의 한적한 오후에 들리는 뻐꾸기, 황소 울음 소리는 농촌의 한가함을 한결 돋우어 준다.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해 버린 듯한 고요와 정적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뻐꾸기와 황소의 울음소리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자연의 소리, 그 속에서 두레박으로 푸른 하늘과 푸른 전설을 넘치도록 길어 올려 물동이에 이고 일어선 아주머니, 출렁이는 물동이에 담긴 윤사월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 이러한 소재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전원 풍경을 완성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길어 올리는 물은 그냥 물만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기도 하고 푸른 전설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푸른 하늘을 길어 올린다는 구절은 드레박의 물에 푸른 하늘이 비쳐 있다는 사실이 시적 표현이겠지만, 푸른 전설을 깁어 올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을 푸는 열쇠는 '낡은 우물'이라는 데에 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이 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대에 걸쳐서 그 집안이 이 마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우물은 그들이 대대로 물을 길어 올렸던, 그리하여 이 평화로운 세계의 삶을 영위했던 생활의 근원이다. 그 물은 그래서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옛스러우며 아름답다. 이러한 시상의 흐름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요소가 마지막 연에 나오는 '황소의 울음'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황소의 울음 소리, 그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일어서는 아주머니, 물동이를 출렁거리는 맑은 물과 거기에 비친 하늘 .... 이러한 모습으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의 모습이 완성된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으며 상상의 그림을 그려 보면 이 점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해와 감상 3 이 시는 윤사월의 어느 날, 낡은 우물가에 비친 모춘(暮春)의 정경과 그 곳에서 시적 자아가 한 아낙에게 물을 얻어 먹으며 느끼는 순수한 인정미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능수버들에 둘러싸인 낡은 우물가를 지나다 우물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을 본다. 마침 그 곳에서 물을 긷던 한 아낙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하자 아낙은 아무 말 없이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드리운다. 그 때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울음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 온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녀가 인적 드문 우물가에서 그냥 우두커니 물을 떠 주고, 받아 마시는 행위가 쑥스럽게 느껴지자, 시적 자아는 아낙에게 공연히 뻐꾸기를 화제로 말을 건낸다. 한가롭고 조용한 봄날 오후에 들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는 적막한 봄날의 정경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어색한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열어주는 기능을 갖는다.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아낙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웃으며 두레박이 넘치게 시원한 물을 길어 그에게 건낸다. 그녀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것은 푸른 하늘이 비친 맑은 우물물이자,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그녀의 정성스런 마음이며 푸른 전설이다. 낡은 우물이 있는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 아낙이 길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옛스런 물이요, 그것은 바로 마을의 평화와 안식의 삶을 열어 주던 풍요로운 근원인 셈이다. 이러한 정겨운 분위기에 어울리게 황소의 울음 소리가 멀리서 나직하게 들려 올 때, 아낙이 머리에 이고 가는 물동이의 찰랑이는 물에서도 시적 자아는 푸른 하늘이 비쳐져 있음을 본다. 낡은 우물과 푸른 하늘, 푸른 전설과 황소의 울음 소리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당시 우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시인 특유의 재치와 섬세한 고유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잔잔한 감흥을 전해 주고 있다. [양승준, 양승국 한국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4 이 시는 윤사월의 어느 날, 낡은 우물가에 비친 모춘(暮春)의 정경과 그 곳에서 시적 자아가 한 아낙에게 물을 얻어 먹으며 느끼는 순수한 인정미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능수버들에 둘러싸인 낡은 우물가를 지나다 우물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을 본다. 마침 그 곳에서 물을 긷던 한 아낙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하자 아낙은 아무 말 없이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드리운다. 그 때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울음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 온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녀가 인적 드문 우물가에서 그냥 우두커니 물을 떠 주고, 받아 마시는 행위가 쑥스럽게 느껴지자, 시적 자아는 아낙에게 공연히 뻐꾸기를 화제로 말을 건낸다. 한가롭고 조용한 봄날 오후에 들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는 적막한 봄날의 정경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어색한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열어주는 기능을 갖는다.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아낙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웃으며 두레박이 넘치게 시원한 물을 길어 그에게 건낸다. 그녀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것은 푸른 하늘이 비친 맑은 우물물이자,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그녀의 정성스런 마음이며 푸른 전설이다. 낡은 우물이 있는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 아낙이 길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옛스런 물이요, 그것은 바로 마을의 평화와 안식의 삶을 열어 주던 풍요로운 근원인 셈이다. 이러한 정겨운 분위기에 어울리게 황소의 울음 소리가 멀리서 나직하게 들려 올 때, 아낙이 머리에 이고 가는 물동이의 찰랑이는 물에서도 시적 자아는 푸른 하늘이 비쳐져 있음을 본다. 낡은 우물과 푸른 하늘, 푸른 전설과 황소의 울음 소리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당시 우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시인 특유의 재치와 섬세한 고유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잔잔한 감흥을 전해 주고 있다.       ❒ 이해와 감상 5 이 작품에서 시인은 한가로운 농촌 풍경을 통해 무한한 평화와 그윽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 그에 알맞게 작품은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능수버들과 낡은 우물이라는 사물들은 매우 온화하고도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때는 봄도 거의 지나가는 윤사월,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이 한 조각 비쳐 있다. 여기서 물을 긷는 아주머니에게 작중 화자는 묻는다. 지금 우는 뻐꾸기가 작년에 울던 그 새일까라고. 여기서 뻐꾸기는 작품 세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떤 상황의 고요함은 아무 소리가 없을 때보다 그 속에 어떤 평화로운 소리가 간간히 끼어들어 올 때 더 잘 나타나는 법이다. 아주머니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박꽃처럼' 웃기만 한다. 그 웃음 속에는 이 한가로운 세계에서 있는 대로의 삶을 누릴 뿐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소박하고도 담담한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 그 말없는 웃음이 이 시가 그리는 세계의 평화로움을 더욱 부드러운 것이 되게 한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물을 길어 올린다. 이 부분은 문장의 구조가 똑같은데, 그것은 물 긷는 동작의 느릿하고도 규칙적인 움직임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두 행에 같이 들어 있는 `넘쳐 흐르는'이란 구절에서는 어떤 풍성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아주머니가 길어 올리는 물은 그저 물만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기도 하고 푸른 전설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상의 흐름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요소가 마지막 연에 나오는 `황소의 울음 소리'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황소의 울음 소리, 그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일어서는 아주머니, 물동이에 출렁거리는 맑은 물과 거기에 비친 하늘…… 이러한 모습으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의 모습이 완성된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으며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면 이 점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설: 김흥규]       ❒ 이해와 감상 6 4연으로 된 자유시. 김종한은 전통적인 소재를 택하여 쓰면서도 그 배경, 표현 방법이 독특하고 새로우며, 시각적인 공간성을 최고로 추구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민요적・회화적・음악적 요소가 우세하게 나타난다. 이 시는 이 땅의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물 가를 통해서 고유한 서정을 매우 새롭게 조명해 주는 점이 있다. 그 시적 의미의 파악도 동심적이면서 독특한 것이다. 제 1 연 : 능수버들(수양버들)이 파수병처럼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그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이 내려와 그림자져 있는 윤사월. --시의 서두로서, 시의 배경과 때는 화창한 윤사월 봄날임을 밝히고 있다. 회고적이며, 향수를 자아내는 풍경이다. 특히 ‘낡은 누물 가’하고 ‘낡은’이라는 형용사를 구태여 쓴 것은 ‘흔하고 오래된’의 토속적 의도의 배려로 보인다. ‘윤사월’도 음력에서 쓰이는 것이니 만큼 토속적, 회고적인 의미가 가미된 표현. 제2∼3연 : ‘어주머님, 지금 들려오고 있는 저 뻐구기 울음소리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하고 (내가 물었으나), 조용하신 아주머님은 박꽃처럼 정결하고 순박하게 웃으시면서, (대답은 않고) 두레박에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대화가 직접 쓰인 표현이며, 우문으로서 소년적인 점이 보인다. 그리고 2연의 3행은 문맥으로 보아 3연에 붙이어야 할 것이나, 2연에 포함시킨 것은 3연의 뜻을 시각적으로도 높여 주려는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는 뻐구기를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하고 ‘작년의 뻐뀌’에 비교한 것은 현실적으로는 우문이나 시적인 우문임을 유의해야 한다. 아주머님의 웃음을 ‘박꽃’에 직유한 것도 전통적인 미의식의 발로이며 적절한 표현이다. 3연의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이나, ‘푸른 전설’도 매우 시적인 발상에 근거한다. 우물물이 계속 고이듯, 박꽃처럼 웃는 아주머님은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푸른 전설’을 길어 올린다는 것은 얼마나 참신한 시적인 회화인가. 제 4 연 : 언덕을 넘어오는 황소의 울음 소리도 가까이 이곳으로 오는지 들려 오는데,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님의 물동이에서도 찰랑찰랑 푸른 하늘이 담긴 물이 넘쳐나는 구료. 이 시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근한 고유의 아름다운 자연이며 풍경이다. 또 순수한 시정이 비단결처럼 곱다. 당시 ‘문장’의 선자였던 정지용은 그의 시를 평하여 ‘당신의 시는 솔직하고 명쾌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절로 쉬운 말로 직절한 센텐스와 표일한 스타일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문장」 8호, 1939)라고 하였는데, 이 시에서도 그 진솔한 바탕이 시미를 깊게 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 7 이 시는 김종한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념적, 사회적 경향의 시를 배격하면서 섬세한 언어 감각과 지적인 재치가 번득이는 작품을 즐겨 썼다. 이 시에서도 우리 고유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전원의 한가한 풍경을 재현시켜 놓았다. 능수버들 아래 낡은 우물이 있는 집은 그 내력이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윤사월의 청명한 하늘 조각이 깊은 우물 속에 비치는 가운데 뻐꾸기 소리조차 한가롭게 들리는 전형적인 전원 농가의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져 있다. 아마도 종가(宗家)의 맏며느리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님은 호젓한 우물가에 서서 하염없이 물을 길어 올린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화자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이 아니겠느냐며 말을 걸어 보지만, 아주머니는 박꽃처럼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 없이 두레박질만 한다. 초여름의 한적한 오후에 들리는 뻐꾸기, 황소 울음 소리는 농촌의 한가함을 한결 돋우어 준다. 삼라 만상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해 버린 듯한 고요와 정적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뻐꾸기와 황소의 울음 소리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자연의 소리, 그 속에서 두레박으로 푸른 하늘과 푸른 전설을 넘치도록 길어 올려 물동이에 이고 일어선 아주머니, 출렁이는 물동이에 담긴 윤사월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 이러한 소재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전원 풍경을 완성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김동환의 '웃은 죄'와 비교해 볼 만한 작품인데, 이 작품은 그보다 한 해 먼저 발표된 것이다.       ❒ 형성 평가 ✸ 이 시의 중심 소재를 쓰고, 그 소재가 전달하는 분위기를 30∼40자(띄어쓰기 포함) 정도로 쓰라. ✍ 낡은 우물 ✍ 대대로 이어오는 시골 집안의 평화롭고 그윽하며 예스러운 분위기   ✸이 시의 청자인 아주머님의 화사하고 원숙한 모습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박꽃   ✸이 시의 지배적인 두 심상은 어떤 것인가? 또, 그런 심상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 시각적 심상 : 푸른 하늘, 푸른 전설 청각적 심상 : 뻐꾸기 소리, 황소 울음 소리 ✍ 전원의 그윽하고 평화로운 삶   ✸이 시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푸른 전설'이 암시하는 바를 간략히 밝히라. ✍ 조국의 독립과 희망찬 미래에 대한 신념   ========================================     살구꽃처럼 김종한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전광(電光) 뉴스대(臺)에 하늘거리는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血液)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흩날리는 낙하산부대, 낙화ㄴ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청제비처럼 날아오는 총알에 맞받이로 정중선(正中線)을 얻어맞고 살구꽃처럼, 불을 토하며 살구꽃처럼 떨어져가는 융커기(機).   음악은 혈액처럼 흐르는데,   달무리같은 달무리같은 나의 청춘과 마지노선과의 관련, 말씀이죠? 제발 그것만은 묻지 말아주세요.   음악은 혈액처럼 흘러 흘러,     고향집에서 편지가 왔소. 전주 백지(白紙) 속에 하늘거리는 살구꽃은 살구꽃은 전쟁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차라리 웃으려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      
1687    냄새가 나는 "조감도"(鳥瞰圖)냐, "오감도(烏瞰圖)냐... 댓글:  조회:4520  추천:0  2016-10-21
시인 이상(李箱)의 작시(作詩)와 그 난해(難解)함   첫-작품, “이상(異常)한 가역반응” 연작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부터 읽기가 어렵다. 그것은 그가 각별(恪別)하게 연작시(連作詩)를 고집(固執)하였으며 거기서 하나의 주제(主題)를 “정벌(征伐=칠,정+칠,벌)”하고 “굴착(堀鑿=팔,굴+팔,착)”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작(詩作)은 한 편(篇) 한 편 읊조리려 들면 온:전(穩全)히 읽히지 아니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시(作詩)를 모두 다 읊조리고, 그가 어떤 사상(思想)과 철학(哲學)을 갖추고 어떤 이야기(story)를 시어화(詩語化)하여 본(本)줄기로 삼았는지를 파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상(異常)한 가역반응” 연작시가 인도(印度=India)의 ‘공(空) 사상(思想)’, 즉 힌두 철학(Hinduism)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라는 점(點)을 찍어 짚고 읽어야 한다.     ‘이상(異常)한 가역반응’ 첫머리 시구(詩句), “임의(任意)의 반경(半徑)의 원(圓)”, 곧 “O’이 인도에서 발견한 숫자로서, ‘공(空=우리말로 영/零=O)’ 사상의 원천(源泉)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의 시작(詩作)이 어렵게 읽히는 까닭이 그의 자유 자재(自由自在)하면서 기발(奇拔)한 시어화에 있다. 말:하자면 “이상(異常=다를,이+늘,상=늘 다르다)”이, “항상성(恒常性)은 없:다”라는 ‘공(空)사상(思想)’을 “이상(異常)”이란 시어(詩로語)로써 시어화(詩語化)한 것이라든지, “정벌(征伐)”이 ‘치고 또 치다’는 뜻으로 시어화한 것이라든지, “굴착(堀鑿)”이 ‘파고 또 판다’는 뜻으로 시어화한 것이라든지, ‘이상한 가역반응’의 첫-시구, “(과거분사의 상장(相場)”에서 “상장(相場=서로,상+곳 또는 장소,장)”을 ‘서로의 장소’ 또는 ‘서로의 곳’으로 읽어야 한다든지, ‘차(且) 8씨의 출발‘에서 “정밀(靜謐=고요할,정+고요할,밀)”을 ’고요하고 또 고요함‘으로 읽어야 한다든지, 등:등.       이렇듯이 그가 그의 작품, “이상한 가역반응” “조감도(鳥瞰圖)” “3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일본어로 작시하였지만, 한자(漢字)로 된 시어(詩語)는 우리말, 우리식(式) 강:조어법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는 바, 그런즉 일본인들은 이것을 알아먹지 못 하였을 것이다.     그가 이렇듯 일본어로 작시한 것은, 1929년 3월 ‘경성고공’(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 기사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면서 그 인연(因緣)을 맺었고, 그 무렵 그의 시적 공간(詩的空間)이 비:좁았기에,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수(數)밖에 등단(登壇=데뷔=d’ebut)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터.     일제 군국주의 식민 정치 시절, 즉 형극(荊棘)의 시대(時代)에서, 가:혹(茄酷)한 검:열(檢閱)을 거쳐야만 했으며, 몸도 폐:결핵 질환으로 망가지고, 마음도 그의 “시적 정서(詩的情緖)“에서 잘 그:려져 있듯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가운데, 초-현:실주의(surrealism) 모더니즘(modernism)의 시작(詩作)을 선구자(先驅者)로서 어렵사리 꽃 피웠다는 점(點)이, 그의 작시(作詩)를 읽는 데 어려움을 더한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 ‘二十二(이십이)’와 ‘출판법’에 그 당시 검:열 제도의 가:혹성이잘 그:려져 있다. 예:를 들자면, “전후좌우를 제(除)하는 유일한 흔적(痕迹)에 있어서 익단불서(翼段不逝) 목대불도(目大不覩) 반왜소형(胖矮小形)의 신(神)의 안전(眼前)에서 내가 낙상(落傷)한 고사(故事)가 있다”와, ‘출판법’ 1에서 “나는 설백(雪白)으로 폭로된 골편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근육은 이따가라도 부착할 것이니라’ 박락(剝落)된 고혈(膏血)에 대하여 나는 단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등:등.       그의 작시(作詩)에 있어서 또 다른 난해(難解)함이, 기하학(幾何學)의 점(點)과 선(線)과 그리고 원(圓) 등,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시어(詩語)를 써먹는다는 점(點)이다. 첫 시(詩),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원(圓)’이 ‘공(空) 사상(思想)’과 ‘상장(相場=서로의 장소, 또는 곳)’을, 겹치기 기법(overlapping technique)으로써 ‘직선(直線)’으로 “결부(結付)”되는 점(點), 이를테면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 등의 언어가 그 형이상학적 시어화의 예:(例)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수학(代數學) 숫자로써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시어(詩語)를 구사(驅使)한다. 이를터이면‘역삼각의 유희’에서 “1 2 3 3의 공배수의 정벌(征伐)로 향하였다.” ‘선(線)에 관한 각서. 1~3’과 ‘선에 관한 각서. 6’에서 “숫자 방위학 4”와 “숫자를 대수적인 것으로 하는 것에서 숫자를 숫자적인 것으로 하는 것에서 숫자를 숫자적인 것으로 하는 것에(1234567890)의 질환 구명(究明)과 시적인 정서의 기각처(棄却處)” 등:등.     이상(李箱) 시인의 시작(詩作)을 읽는데 또 다른 어려움은, 예:언(例言)을 함으로써 다음 작품에 대:하여 예:언(豫言)을 한다는 것이다.   예:(例)를 들면,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원내(圓內)의 일점(一點)과 원외의 일점을 결부(結付)한 직선(直線)”이, 형이상학적 시어(詩語)인 ‘원(圓=O)’을 “삼심원(三心圓)”으로 한다는 점(點). 그리고 ‘이상한 가역반응’의 끝마무리 “점(點)”들이 “삼차각설계도” 연작시 ‘선(線)에 관한 각서.1’에서 맨 위 가로-축(軸), “1234567890”과 세:로-축, “1234567890”으로 각각 10개의 줄로, 100개의 점(點)들이 일정(一定)한 간격(間隔)을 두고 공평(公平)하게 자리매김하는 정:사각형 도형(圖形)의 탄:생(誕生)을 예:언(例言)한다는 점(點) 등:등.     이 ‘선(線)에 관한 각서. 1’의 정:사각형 도형이, “입체(立體)에의 절망(絶望)에 의한 탄생” 그리고 “운동(運動)에의 절망에 의한 탄생(誕生)”인데, 이것을 기본 도형으로 하여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시 ‘진단 0:1’과 “오감도” 연작시 ‘시 제4호’의 “진단 0.1”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 ‘점(點)’들은, ‘1’의 공배:수(公倍數), 곧 “나” “나”의 “시작(詩作)” “나”의 “시적 정서(詩的情緖)”일 수도 있고, ‘2’의 공배:수, 즉 “나”의 “중간층”의 그것일 수도 있으며, ‘3’의 공배:수, 곧 “나”의 맨 바깥쪽 ‘원(圓)’ 내:외(內外)의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삼심원 구도(構圖)’가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서처럼 한 편(篇)의 시에서 그:려질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의 시(詩)를 통하여 그:려지기도 한다.     ‘삼심원(三心圓) 구도’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이상(異常)한 가역반응”의 ‘수염(鬚髥)’과 ‘공복(空腹)’이다. ‘수염(鬚髥)’에서 “삼심원”이라는 시어(詩語)가 나오며, ‘공복(空腹)’에서 “나의 내면(內面)과 외면(外面)과 이 건(件)의 계통(系統)인 모든 중간(中間)들은 지독히 춥다.”고 한 점(點).   형이상학적 시어들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시어(詩語)들과 함께 더불어 쓰인다. 이를테면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변비증(便秘症)”이라는 시어는 형이하학적 증세(症勢)인 것이다. 기하학적 시어를 빼:낸다면 거의 다 형이하학적 시어들인 셈이다.   형이하학적 시어(詩語)들을 망라(網羅)하여 작시(作詩)한 것이 “조감도(鳥瞰圖” 연시 ‘LE URINE’이다.     이러한 시어화에 곁들여 “시적 정서(詩的情緖)”를 현:현(顯現)한다는 점(點)을 간과(看過)하면 그의 시작(詩作) 읽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발달하지도 아니하고 발전하지도 아니하고 이것은 분노(憤怒=anger)이다.”라는 ‘정서(情緖=emotion)’로 그의 “시적 정서”가 출발한다는 점(點).   그의 작시(作詩)의 난해성(難解性)을 돌파(突破)하려면, 그 시어(詩語), 또는 시어화(詩語化)가 ‘변:신(變身)’한다는 점(點)을 알아채:야 한다.   점(點)에서 삼각형 또는 역삼각형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   점에서 또는 삼각형에서 사각형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평면 기하학’에서 ‘입체 기하학’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상한 가역반응’으로부터 ‘BOITEUX, BOITEUSE’의 “물리적으로 아팠었다.”까지가 ‘평면 기하학’이다.     “대수(代數)로부터의 숫자”도 ‘변:신’한다. 이를테면, ‘역삼각의 유희’에 나오는 “1 2 3 3의 공배수의 정벌(征伐)로 향하였다.”에서 “3의 공배수”가 ‘3각 구도(三脚構圖)’를 이름인데, ‘선에 관한 각서. 2’에서 “1+3 3+1”으로 ‘변:신’하는 바, 이것은 ‘4각 구도(四角構圖)’로 바뀐다는 것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 ‘출판법’에서 이러한 ‘4각 구도’를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1234567890의 질환 구명(究明)”도 ‘선에 관한 각서. 1’의 기본 도형에서 ‘진단 0:1’로, 그리고 ‘시 제4호’의 “진단 0.1”로 ‘변:신’한다.     ‘출판법’ ‘I연(聯)’에서 “허위 고발이라는 죄목으로 나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라고 한 것과 ‘IV연(聯)’에서, 정:사각형이 위로부터 아래로 눌려서 옆으로 길쭉하게 된, 직사각형 안에 “암살(暗殺)”이라고 쓴 시어(詩語)는 ‘압살(壓殺)’로 읽을 수 있다.   첫 시(詩), ‘이상(異常)한 가역반응’에 현:현(顯現)된 ‘공(空) 사상’의 힌두 철학(Hinduism)도, “오감도” 연작시에 이르러 삶과 죽음, 곧 탄:생과 사:멸, 그리고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兩面性)을 강:조하는 힌두교 사상(Hinduism)으로 바뀐다.       ‘시 제11호’는, 팔이 4개 가진 힌두교 켈리 모신(母神)의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연상(聯想)할 수 있어야만 읽히는 시(詩)인데, 그 모신(母神)이 ‘왼쪽 손에 그릇 또는 컵’과 ‘해골’을 들고 있는 그:림과, “나”의 ‘먹고살:아가는 것’ 곧 ‘삶’과 ‘죽음’ 곧 사:멸(死滅)을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겹쳐 작시(作詩)한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해골(骸骨)” 곧 ‘죽음’을 깨부수고 “사기 컵” 곧 ‘삶’을 “사수(死守)한다”는 것이다.     ‘시 제15호’에서, “나”와 “거울 속의 나”를 대:립(對立)시켜, “나”는 “거울 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 발사하였다”는데, 이것은 “나”의 ‘파:괴성(破壞性)’과 작시(作詩)하는 “나”의 ‘창:조성(創造性), 양:면(兩面)을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겹쳐 그:린 것이다.   “육친(肉親)의 장(章)”에서도, “나는 24세. 어머니는 바로 이 나잇살에 나를 낳은 것이다.”라고 탄:생(誕生), 즉 ‘삶’의 ‘창:조(創造)’를 그:리고, “동생 다음으로 잉태하자 6개월로서 유산한 전말”로써 ‘사:멸(死滅)’ 즉 ‘파:괴(破壞)’라는 힌두 철학(Hinduism)을 언급한다. “지비(紙碑)”와 “지비-어디갔는지모르는아내-” 이야기(story)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다’라는 양:면성을 그:린 것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이상(李箱) 시인의 ‘선(線)에 관한 각서. 6’에 나오는, “1234567890의 질환 구명(究明)과 시적인 정서(詩的情緖)”의 ‘변:신’에 주목(注目)하여야 한다. 이것은 그의 작시(作詩) 전편(全篇)에 걸쳐 변:동(變動)하기 때문이다.   그의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에, “땀에 젖은 잔등”이라는 표현으로 시:작(始作)되는 그 질환의 땀((汗) 증:상(症狀)은, 그 질환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 하여 “발달하지도 아니하고 발전하지도 아니하고 이것은 분노이다”라면서 “분:노(忿怒)”의 “시적 정서”와 더불어 출발한다. ‘파편의 경치’에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울었다” “나는 괴롭다”라는 “시적 정서”를 보인다.   그의 “시적 정서”는 “나”의 개:인(個人) 분위기(mood) 뿐만 아니라, 날씨 또는 자연과 호흡하는 분위기(mood)도 더불어 표현한다. 이를테면 “이상한 가역반응”에서 “설경(雪景)이었다”라든지, “지금 떨어지고 있는 것이 눈(雪)이라고 한다면” 등:등.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는 “바깥은 우중(雨中)”, 곧 비(雨)가 내리는 분위기로 바뀌고, ‘시 제14호’에 이르면 “싸늘한 손” “싸늘한 손자국” 등 싸늘한 분위기(雰圍氣)로 바뀐다. “역단(易斷)” 연작시 ‘화로’에서는 극한(極寒)의 분위기(雰圍氣=mood)로 바뀐다.   그의 질환 구명(究明)은,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連作詩) ‘진단 0:1’에서 점(點)으로 그:려진 사선(斜線)을 사:선(死線)으로 하여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境界線)을 넘:나들고 있는 지경(地境)에 이르러, ‘진단 0:1’을 내리는 “책임 의사”가 되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말:하자면 ‘의사(醫師)는 없고 환자만 있다’는 시니컬한 마음가짐(cynical attitude)을 현:현(顯現)한 것이다. 이러한 시니시즘(cynicism=견유주위)은, “오감도” 연작시 ‘시 제4호’에서 “진단 0.1”을 내리는 “책임 의사”라고 하면서, 여전하게 시니컬하지만 십분(十分) 나아졌다고 한다.   ‘시 제7호’에 이르면, “거대한 곤비(困憊) 가운데의 1년 4월의 공동(空洞)”이라며 “구원적거(久遠謫居)의 지(地)” 즉 ‘오래고 먼 유배의 땅의 생활’과, ‘공동(空洞=cavity)의 소:견(所見)을 보이는 예:후(豫後)의 폐:결핵’을 겹쳐 그:리게 된다.   “역단(易斷)” 연작시 ‘화로’에 이르러 ‘기침이 심해지고 등에 ’빨래 방망이가 뚜들기는 듯한 통증을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리며, ‘아츰(아침)’에서도 “폐벽에 그을음”과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행로’에서는 “기침을 한다” ‘기침은 사념(思念) 위에 그냥 주저앉아서 떠든다“고 하고, ”가구(街衢)의 추위-1933년2월17일의실내의건(件)“에 이르러, 드디어 ”폐병쟁이“라는 시어를 쓰게 된다.   이렇듯, 젊은 이상(李箱)의 슬픔과 고뇌(苦惱)와 고통(苦痛)은 폐:결핵 질환으로 인(因)한 건:강(健康)의 상실(喪失=loss)에서 기인(起因)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배고픈 얼굴을” 하고, 각운:동(角運動)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천체(天體)를 잡아 찢는다면 소리쯤은 나겠지” 하면서, ‘무법 천지(無法天地)’의 ‘일제 군국주의 식민 체제’를 고발(告發)한다.   ‘BOITEUX.BOITEUSE’에서 “중상을 입었다 할지라도 ...”의 시구(詩句)와, ‘출판법’에서 “나는 불안을 절망하였다”의 시구가 두려움 또는 불안의 정서(情緖=emotion)를 표현한 것이지만 두 시(詩)에서 그는 “나는 홍수와 같이 소란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그 당시 ‘무법 천지’를 고발한 것으로 보아,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공격적인 마음가짐(aggressive attitude)’의 정서(情緖=Emotion)도 아울러 보인다.     또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싸움” 곧 전:쟁놀이를 구경하는 구경-꾼, 곧 방:관자(傍觀者)로 머물지 아니하고, “오감도” 연작시 ‘시 제1호’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일제 군국주의 식민 정치의 막바지 막다른 ‘공포(恐怖) 정치’를 고발하였던 것이다. ‘시 제3호’에서, “싸움”을 ‘전:쟁(戰爭)’으로 읽어야 하고,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든지”에서 “구경”-꾼은 ‘방:관자’로 읽어야 그 의:미(意味)를 곱씹을 수 있다.   ‘시 제1호’에서, “13인의 아해(兒孩)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라는 시구(詩句)에 나오는 “무서운”과 “무서워하는”을 ‘공:포(恐怖=무서울,공+무서워할,포)’라고 한자(漢字)로 바꾸어 읽어야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것이다.     “13인의 아해”는 “1931년-작품 제1번”의 10연(聯)에 나오는 “나의 방의 시계 별안간 13을 치다.” “12+1=13 이튿날(즉 그때)부터 나의 시계의 침은 3개였다”에서 따온 것으로 ‘13시(時) 시대(時代)’로 읽고, ‘13도(道)의 아해’로 읽어야 제격이지 싶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이 시구(詩句)는, 일제 군국주의 식민 체제의 막바지 막다른 ‘공:포 정치’에 내몰려, 원초적 본능(原初的本能=primitive id)으로써 ‘공:포(恐怖)라는 시적 정서(poetic emotion)’를 느낀다는 점(點)을 이름인 것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그의 시작(詩作)이 난해(難解)하게 읽히는 까닭은, 그가 초-현:실주의 회:화(繪畵) 기법(技法)을 그의 작시(作詩)에 도:입(導入)하여 초-현:실주의 작시(作詩)를 도모(圖謀)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주의(現實主義), 곧 사:실주의(寫實主義) 기법(技法)으로 작시하기도 하였지만, ‘있어서는 아니 되는 현:실’ ‘말:도 아니 되는 현:실’ 또는 ‘극복해야 되는 현:실’ 등의 그 당시 시대상(時代相)에 관하여 초-현:실주의적으로 작시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二十二(22)’와 ‘시 제5호’에 나오는, 선(線)으로 이루어진 형이상학적 도형이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려진 도형이 그것이다. 이것은 “전후좌우(前後左右)를 제(除)하는 유일한 흔적”인데, 그 당시 테두리를 짓고 시어나 시구(詩句)를 ‘삭제(削除)’하였던 돼:지 꼬리 모양의 부호(符號)인 바, 그것을 직선으로 펴서, “반왜소형(半矮小形)”의 검:열관의 눈(眼)이라고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자(者)가 마치 신(神)인 양(樣), 원고(原稿)의 앞뒤 양:옆을 마구 삭제하여 “내가 낙상하니”, ‘오:장 육부(五臟六腑)가 침수된(양돈) 축사처럼, 더럽게 멘: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 제5호’에서, 얼마 후(某後) 좌:우(左右)로만 삭제될 정도로 시작(詩作)의 끝머리를 튼튼하게 했으나 여전히 “내가 보는 앞에서” 삭제(削除)를 당하여 “낙상(落傷)한 사고(事故)“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시 제8호 해부’에서 자연과학 곧 건축학을 전공한 작가로서, “해부(解剖)”라는 기초 의학 용어와 “마취(痲醉)”라는 임상의학 용어를 써서 “시험(試驗)”한다는 작시를 하는데, “제1부시험”은, 그가 느끼는 “2배의 평균기압” 즉 ‘중압(重壓)’과, “온도 개무(溫度 皆無)” 곧 ‘쌀쌀함’ 또는 ‘냉:엄(冷嚴)한 현:실’ 혹은 ‘냉:혹(冷酷)한 현:실’, 2 가지를 (따로) 쪼개어 나누고(剖=쪼갤/나눌,부) 가르고 풀어(解=가를/풀,해), 해방(解放)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 것이고, ”제2부시험“은 ”마취된 2개의 상지(上肢)를“ X-선 촬영하여 현:상약으로 현:상하고 정:착제로 정:착(定着)시키는 시험인데, 이 시험은, 그가 작업하고 있는 작품 활동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지’ 혹은 ”손을 뗄 수 있는지‘ 또는 ’손을 끊을 수 있는지‘ 실험해 본다는 점(點)을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작시(作詩)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 제2호‘에 쓰인 가부장제(家父長制)와 장:자제도(長子制度) 아래, 종자(宗子)로서, 또한긋 “집의 집중(集中)”으로서, “가정(家庭)”을 피:이게 하여야 하는 막중(莫重)한 위치(位置)에 있었기에, 냉:혹(冷酷)한 사:회 현:실을 생각하여 작시(作詩) 활동을 그만둘 수 있는가를 자기 스스로 시험하여 보았다는 이야기(story). ==============================================================   ​                                    LEURINE                                                   김해경(金海卿)   ​ ​    시제​(詩題), 'LE-URINE'은  '류리(琉璃)인' 또는 '유리(琉璃)인'으로 소리낼 수 있는 바, 형이하학(形而下學)의 미세적 "현:상(現象)"인 것이다.  ----> 참고; 끝-마무리 연(聯)의 "무수한 비가 무수한 추녀 끝을 두드린다 두드리는 것이다." ← 이 거:시적(巨視的) "현:상"과    '대:비(對比)'시켜  시제로 삼았다.           그러한데, 'Le Urine(오줌)'이 "유리(琉璃)"나, "얼음과 같은 수정체(水晶體)"나,  물("水泳/수영", "가수/加水", "무수한 비")이나,  그리고 "투명한 공기"와 같이 "투명(透明)"한 형이하학적 "현:상(現象)"은 아닌 것이다. ←←←← "투명한" 것이 아닌 형이하학적 "현:상"인 것이다.       뿐더러 '오줌(Le Urine)'은 '색(色)'-깔을 보이는 바, 평상적(平常的)으로는 볏짚 색[色]깔이지만  좀 병적으로 되면, 호박색(amber color)부터 혈뇨(血尿) 곧 붉은 색[色], 검-붉은 색[色], 등  좀 달라진다.   또한긋 냄새가 나기도 한다. 
1686    다시 떠올리는 정지용 시모음 댓글:  조회:3849  추천:0  2016-10-21
장백산,가을눈이 내리다 [ 2016년 10월 22일 11시 57분 ]     길림성 장백산풍경구ㅡ, 가을눈 내린 장백산ㅡ...   할아버지 / 정지용       할아버지가 담배ㅅ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믄 날도  비가 오시네.     ..................... 해바라기 씨/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실이 나려와 가치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해ㅅ빛이 입마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시약시 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 湖水(호수) / 정지용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湖水)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자류 / 정지용         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숫불, 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자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 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것이어니.     자근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염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자류알을 알알히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슬픈 인상화(印像畵) / 정지용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녀름의 저녁 때......     먼 해안 쪽 길옆나무에 느러 슨 전등.전등. 헤염처 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항(築港)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덕이는 세관의 기(旗)ㅅ 발. 기(旗)ㅅ 발.     세멘트 깐 인도측(人道側)으로 사폿사폿 옴기는 하이얀 양장(洋裝)의 점경!(點景)     그는 흘러가는 실심(失心)한 풍경이여니...... 부즐없이 오랑쥬 껍질 씹는 시름......     아아, 애시리. 황!(愛施利 黃)  그대는 상해로가는구료......           ...........................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산(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돗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         향 수(鄕愁)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산너머 저쪽 / 정지용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뻐꾹기 영우 에서 한나잘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 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맞어 쩌 르 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   조약돌 / 정지용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알은 피에로의 설음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날리는 이국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   바다 4 / 정지용       후주근한 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 그누구 씨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 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메기떼 끼루룩 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 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메기도 아니고 어덴지 홀로 떠러진 이름 모를 스러움이 하나.   ...................................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鄭芝溶)시인】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1685    훌륭한 詩란 뼈를 저미는 고통의 작업에서 빚어진다... 댓글:  조회:4382  추천:0  2016-10-21
시심(詩心)이란 어떤 것인가    /   구상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흔히 초심자들로부터 다짜고짜 〈시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마 시의 개론나 작법들이 그 서두에다 〈시의 정의〉니 또는 〈시의 본질〉이니 하고서들 그 해답을 내놓거나 시도하고들 있는 모양이지만, 실상 시가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몇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어렵다기보다 불가능한 일이요, 또한 그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10인 10색이어서 가령 여기에다 동서고금 굴지의 시인 100명의 시에 대한 정의를 나열해놓는다해도 그것이 시라는 것의 전모를 밝혀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에 대한 실제적 이해나 창작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에 대한 정의의 어려움과 불가능함을 20세기 영국의 대시인 엘리어트 (T.S.Eliot, 18881965)는〈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본 강좌에서는 저러한 성급한 시의 정의나 공소한 본질론을 피하고 먼저 시를 불러일으키는 마음, 즉 〈시심(詩心)이란 어떤 것인가?〉하는 문제부터 밝혀보기로 하겠는데, 여기서 〈시심〉이란 시를 불러일으키는 생각[詩想]·느낌[詩情]·흥취[詩興]등을 포괄해서 쓴 숙어요, 또한〈시를 불러일으키는〉도 좀더 적극적으로 〈시를 쓰는〉으로 바꿔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야 어쨌거나 저러한 시심, 즉 시적(詩的) 심리상태가 일상적 생활의 심리상태와 다른 것은 우리 누구나 체험으로 다 아는 바이지만,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가 모호하고 막연한 상태인데, 실은 이것이 시를 쓰려는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맹점(盲點)이라 하겠기에 이야기가 좀 잘아지는 느낌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다. 가령 우리가 일상 속에서 〈배가 고파 무엇이 먹고 싶다〉든가,  〈일을 많이 했더니 피곤하다〉든가,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든가,  〈가족과 헤어져 있게 되어 쓸쓸하다〉든가, 또는 〈무엇이 기쁘다〉든가, 〈슬프다〉든가, 〈화가 난다〉든가, 〈좋다〉든가, 〈싫다〉든가 하는 심리상태와 가령 절묘한 자연의 경치를 대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일으키는 흥취나, 또는 연애를 할 때에 자기를 잊는 황홀감이나, 어떤 죽음을 마주했을 때 이는 까닭없는 슬픔 등 소위 시적(詩的)이라고 부르는 심리상태와 구별되는 것은 앞엣것, 즉 일상적인 생각이나 느낌은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의 이해(利害)에서 출발하고 또 그것의 충족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뒤엣것 즉 시적(詩的)인 생각이나 느낌이나 흥취는 이해를 떠난 맹목적인 것임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 감동상태는 대상과 하나가 되어 자기를 잊는 몰아적(沒我的)이고 무아적(無我的)인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물론 이렇듯 자신의 이해를 떠나 대상과 하나가 되는 감동상태는 반드시 오묘한 자연의 경관이나, 열애(熱愛)속에서나, 죽음을 접할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아무리 흔하고 사소하고 허접스러운 일이나 물건이나 사건 속에서도 우연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또 예민한 감성이나 깊은 통찰로 이를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자연이나 인간이나 세상살이의 그 생성과 소멸 속에서 신비한 본질이나 진·선·미의 모습을 발견한다는가, 이와는 반대로 아주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여겼던 사물 속에서 무상감(無常感)이나 연민(憐憫ㅡ가엾게 여기는생각이나 느낌)을 느꼈을 때 우리는 저러한 감동상태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인 폴 발레리(Paul Valery,1871∼1945)는 저러한 시를 불러일으키는 마음을 우주적 감각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거기에다 우주적 연민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러면 이제 실제로 저러한 우주적 감각이나 그 연민이 시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살펴보자. 공원 천 년 또 몇천 년이 걸릴지라도 네가 내게 입맞춤하고 내가 네게 입맞춤한 그 영원의 한순간을 말, 다할 수가 없으리. 겨울 햇볕이 쬐는 아침 〈몽수리〉공원에서의 일이었네. 〈몽수리〉공원은 파리의 안, 파리는 지구 위, 지구는 별의 하나, 위의 시는 제2차대전 후 프랑스의 가장 인기가 높았던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rt, 1900∼77)의 작품으로서 〈몽수리〉라는 한 공원에서 있었던 연인끼리의 입맞춤을 노래하고 있는데, 흔히 볼 수도 있고 또 체험할 수도 있는 이 사랑행위가 얼마나 감미롭고 소중하고 신비한 것인가를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다 확대해가며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 또하나의 시, 십자로에서 너는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이별은 하루일지, 하룻밤 동안일지 또는 영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우리의 길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벗의 마음에다 우리 모두의 앞길을 위하여 건배하자. 자! 행운을 빈다. 어디로 가는지조차도 모르지만. 도박 같은 인생이어니 우리는 이기거나 지거나 그것은 제 재주도 제 선택도 아니요, 그것은 나누어 받은 패 쪽에 달려 있다. 연애에도 운이 있고 싸움에도 운이 있고 그리고 우리 중의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마침내는 운명에 굴복하고야 마느니 ㅡ 또한 우리가 잘못했든가 잘했든가 때로는 놀랍게도 승리를 맛본다. 자! 행운을 빈다. 우리가 서로 아직은 끝장이 나지 않았으므로. 미국의 전세기말의 방랑시인이었던 리처드 호비(Richard Horey, 1864∼1900)의 작품으로서 아주 경쾌하게 씌어져 있지만 인간운명의 불가사의함과 그 허망이 노래되고 있다. 물론 이 시는 운명론이나 허무주의를 부정하고 배격하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겠지만, 그런 사람의 삶에도 자기의 의지나 노력만으론 도저히 어쩌지 못할 인간존재의 유한성에서 오는 불가사의와 허망감이 때마다 엄습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위의 두 시에서 보다시피 우리가 입맞춤처럼 아주 무심하고 심상하게 여기던 일상적 사건 속에서도 저러한 우주적 감각이 발동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목숨처럼 가장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도 그 덧없음이나 가엾음. 즉 우주적 연민을 느낄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저러한 우주적 감각이나 연민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또 어떻게 해서 일으킬 수가 있는가? 그것은 별것이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력적든 타력적이든 어떤 존재의 본질성에 대한 자기 나름의 발견과 놀람과 그 깨우침에서 온다고 하겠다. 그 본보기로 일본의 현존 중견시인인 요시노 히로시(吉野弘)의 시를 음미해보기로 하자. 생명은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버러지나 바람이 찾아와 암술이나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缺乏)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他者)에게서 채워 받는다. 세계는 아마도 타자와 총화(總和), 그러나 서로가 결핍을 채운다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산재(散在)해 있는 것들끼리가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때로는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도 허용되는 사이, 그렇듯 세계가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은 ?까? 꽃이 피어 있다. 바로 가까이까지 등에의 모습을 한 타자가 빛을 두르고 날아와 있다. 나도 어느 때 누구를 위해서 등에였겠지 당신도 어느 때 나를 위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작자가 어떤 꽃에 등에가 화분을 나르는 것을 보고 인간끼리의 나와 남의 관계도 저처럼 협동 속에서 살아간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 그것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고, 이와 반대로 인간끼리의 삶을 살펴보다가 그 생각이 벌이나 나비나 등에나 바람이 화분을 날라서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는 사실을 떠올겼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하간 작자는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르고 제각기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의 목숨이나 그 삶에 무관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가 의식도 하지 않으 채 서로의 성장이나 성취, 또 행·불행에 직접 관계를 가지고 있고 작용도 하고 있다는 사실, 즉 사물의 본질인 우주만물의 신비한 협동에 눈뜸으로써 놀라고 깨우침에 나아간 그 〈감동〉과 〈감흥〉을 저렇게 한 편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감동〉과〈감흥〉이란 말에 특히 주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어떤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체험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아서, 가령 위의 시에서 어떤 꽃에 대한 충매(蟲媒)행위를 알기로 말하면 꿀벌 치는 이들이 더 장할 것이고 또 인간의 상부상조 같은 것은 실제 조직이나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 실상을 더 잘 체험하겠지만, 그러한 전문적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이 곧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우주적 혐동을 스스로 알아내고 깨우친 그 감동이나 감흥, 즉 나대로 말하면 우주적 감각이나 연민이 시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다시 제기되는 것은 그러한 시적 감동이나 감흥이라는 것은 어떤 성질의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가령 우리가 〈무엇이 갖고 싶다〉든가 〈무엇이 보기 싫다〉든가 또는〈무엇이 즐겁다〉든가〈무엇에 화가 난다〉든가 하는 일상적인 욕구나 충동과 같은 일상생활의 심리상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이 충족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끝나고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지만,  가령 어떤 매혹적인 경치나 낭만적인 행위나 무상감 같은 체험을 했을 때 그 감동이나 감흥은 그 자체가 이를 지속시키고 전달하려는 욕구를 수반한다. 이것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가령 어떤 가정주부가 설악산엘 처음 가서 그 경치에 압도당하고 도취되고 매료되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서투르게나마 가족들에게 자기의 설악산에서 받은 감동이나 감흥들 되살려 전하면서 〈내가 시를 쓸 줄 알았다면 그것을 써서 남길 터인데……〉하고 아쉬어한다. 저러한 시적 감동과 감흥의 〈지속〉과〈전달〉의 속성을 폴 발레리는 〈시의 내용이 되는 미적(美的)감동은 다른 감동이 오직 흥분으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가 여러 가지 모습과 질서를 스스로 지으려드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이에 덧붙여서〈이러한 시적 감흥이라 하여도 그대로 놓아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구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순간, 또 그 신묘한 지각(知覺)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끄집어내어 항구적으로 보존하려는 것이 바로 시를 쓰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러한 시심을 시인은 말로써 표현하게 되고, 음악가는 소리로 써 나타내고, 화가는 선이나 색채로, 조각가는 흙이나 돌·나무·무쇠같은 물질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조형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시심은 모든 예술을 불러일으키는 모태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아름답고 훌륭한 예술을 보면 시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요, 이와 반대로 시가 없거나 시 심이 빈곤한 예술은 신통치 않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러한 시의 발생 원인인 시심이라는 것도 오직 수동적 상태만으로 보면 본래가 지극히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것으로서 오직 그것만으로는 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기에다 능동적이고 지적인 활동이 따라야 비로소 표현의 세계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앞에서 말했듯 시를 불러일으키는 마음이란 스스로가 질서를 지어서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독특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발동시켜 그 자연발생적 감동과 감흥을 어떻게 표현하여 정착시키느냐 하는 방법과 기술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시의 어러운 작업적 측면으로서, 여기서 다시 폴 발레리의 말을 빌면 〈훌륭한 시란 뼈를 저미는 고통이 작업에서 빚어지고, 예지(叡知ㅡ여기서는 작가의 자질의 뛰어남을 가리킴)와 끊임없는 노력의 기념비요, 의지와 분석의 소산〉인 것이다. ================================================================================     잠이 든다 생각해 봐, 마음을 아주 편하게, 눈도 귀도 모두 닫고, 그렇지 숨도 고르게, - 전생은 무슨 새였다지? 부리 끝이 바알간.... 어느 아득한 봄날 나는 키 큰 나무였다네 비듣는 저물녘을 너 지쳐 날아가다 그 나무 둥지 속에서 비를 긋고 갔었는지?                         이승은 (1958 - )「최면」전문 잠이 든다 생각해보시라.  그리고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더듬어보면, 우리 오래 전에 한번쯤 새와 나무로 잠시 만났던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 비오는 저물녘 그 스산한 추위와 비바람을 가려주던 나무, 지친 날개를 쉬면서 먼 나라의 얘기를 들려주던 철새로 다시 한번 만나는 경험을 가져보시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약도 없이 훨훨 날아가버리기 전에.... 이승은 시인은 비교적 젊은 편이지만 이미 1979년에 문공부주최 전국민족시 백일장에 장원으로 등단해서 약 25년 동안 시조를 써온 작가이다. 짧은 시에 이만한 세월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연륜의 결실일 것이다.   
폴 엘뤼아르, 김지하, 김남주                                ㅡ: 위대한 반동들                                                                                                                                                       박 남 철                                  "폴 엘뤼아르, 김지하, 김남주: 위대한 반동들"  박남철 2007-03-08 18:23:49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폴 엘뤼아르Paul Eluard, 「자유LIBERTE      (원제: 단 하나의 생각)」[오생근 옮김] 전문.     폴 엘뤼아르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1895년 12월 14일 ~ 1952년 11월 18일) 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Eugene Emile Paul Grindel)이다.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생각했다. ' 자유'라는 시로 유명한 시집 《시와 진실》, 《독일군의 주둔지에서》 등은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파리 북쪽 생드니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스위스 다보스에서 요양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911년 ~ 1913년 요양소에 있을 때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 시인들과  휘트먼 등 미국 시인들에 자극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가 독가스로 폐를 다쳐 평생의 고질(痼疾)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인 안내 갈라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사랑하게 돼 1924년에 그를 떠났다.  1934년 마리아 벤즈와 결혼했지만, 그녀 역시 파블로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다. 전후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등과 쉬르레알리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스페인 내전 때 인민 전선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로서 활약하였다.  1952년 11월 18일 과로와 협심증으로 숨을 거뒀고,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됐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 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전문.                 《덧글들》    박남철 (2007-03-08 23:15:10)     내가 남주 형을 처음으로 본 것은 남주 형이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작가회의'의 무슨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인가였다. 더 정확하게 얘기해보자면, 인사동 '학고재화랑' 위쪽의 어느 호프집에선가였을 거다.       더욱 정확하게 얘기해보자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진을 치고 있는---나는 어느 선배에게든, 후배에게든, 처음 보는 선후배들에게는 일부러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하지 않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시건방진 처사였다고 아니 반성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남주 형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화장실에 먼저 와서 소변을 보고 있던 남주 형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남주 형의 왼편의 소변대로 다가가서 내 힘없이 질질질 흘러내리는 소변을 잠시 보다가, 문득, 내 오른편 소변대에서 세찬 오줌발 소리로 소변을 보고 있던---저 오줌발 소리가 캄캄 감옥에서 10년씩이나 썩은 사람의 오줌발 소리일 것이란 말인가!---남주 형 쪽으로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한마디 던져보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남주 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고개만 바로 들어 나를 바라보며, 소년처럼 수줍게 웃기만 하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보는 듯한, 그 거만하지 않던 눈길! 남주 형의 눈길은 이미 나를 잘 인지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눈길이셨던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0:26:23)     위 본문에다 인용해본, 세계적인 세 시인들의 대표시들 중에서, 지하 선생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창조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변용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할 것이다.       'FREEDOM'도 아닐, 'LIBERTY'로서의 '자유', 프랑스 적인, '불란서 영화 같은', "불란서 흰빵 같은 자유"를, 바로 저 우리의 6, 70년대의 처절한 현실이었던 "타는 목마름의 민주주의의 자유"로 변용시켜놓은 경우(?)일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4:03:47)     그리하여, 지하 선생의 바로 저러한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되었기에, 남주 형의 저 타는 듯한 아지프로로써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통일 시의 데마고기도 성립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주 형도 명백히 그 자신의 시의 서두에서부터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라고, 바로 '공산당선언'적인 어투로, 지하 선생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면서도, 수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주 형도 이미 이러한 사실들을 잘 의식하면서, 미친 듯이, 작품을 써내려갔을 것이지만, 만약 지하 선생의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하지 않았다면, 남주 형 역시 「조국은 하나다」를 쓰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하 선생의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하지 않았다면, 남주 형의 저 "위대한 반동적 통일 시" 「조국은 하나다」는 한낱, 불란서어의 콧소리 가득 섞인, '슬로건' 아닌, 음색들을 너무나도 불란서적으로 잘 표현해놓고 있을, 폴 엘뤼아르의 세계적인 대표작 「자유」에 대한, 지루하고도 지루한, 열거법과 반복법만이 뒤섞인, 한낱 표절작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4:29:17)     그리하여, 이제와, 우리의 문학 작품, 특히 시문학 작품에 있어서의 "그 창조적 변용", 또는 "그 창조적 비판 및 그 변용의 확산" 및 "'포절'이냐, 표절이냐" 하는 문제들은 언제나 그 문학사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매우 중차대한 문제들이 되어주고 있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 "폴 엘뤼아르, 김지하, 김남주: 위대한 반동들"|작성자 hamir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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