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쟈끄 데리다
마지막 인터뷰
이 특별호 SV는 2004년 10월 8일 74세의 나이로 죽은 프랑스 철학자 자끄 데리다에게 헌정된다. 이번 호는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르몽드지와 가진 데리다의 마지막 인터뷰를 번역한 것이다. (처음에 르몽드지 2004년 8월 19일에 나온 내용이다) 데리다의 삶을 듣고 데리다가 한 말들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그 철학자의 심미적, 문학적/시적, 그리고 수행적 자질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데리다는 칸트, 막스, 하이데거의 후계자인 만큼이나 프로이드, 발레리,라깡 그리고 기타 초현실주의자들의 지적 후계자였다. 그의 지적 그리고 언어적 유산 속의 이 시적-정신분석적-성적-무정부주의적 초현실주의자 혈통은 그의 유명한 개념 해체를 표방하는데 이는 내가 이해하기로 텍스트는 무의식적이며 그것은 근심, 신경증, 병리학, 부인, 환영(상)의 방식으로 그 자체로 드러난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충분히 주의 깊게 분석하고 읽어본다면 말이다.
데리다에게는 언어는 모든 방식의 억압된 것들의 흔적들이 방출될 수 있는 열린 영역일 수 있거나- 이어야 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적-초현실주의자의 자질들은 물론 데리다의 개념들과 글 스타일에 두드러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그가 말했을 때, 그가 말장난,각운맞추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기, 논제 벗어나기, 반복, 발음생략, 소거, 자유연상, 말로하는 속임수 그리고 공중제비넘기를 자유로이 구사할 때- 그가 농담조, 진부한 시적표현, 체제전복성, 자발성, 그리고 연극조의 자질들을 보였을 때 가장 생생하게 느껴졌으리라. (조프리 하트만은 해체를 “데리다다이즘”이라고 불렀다) 다음의 인터뷰는 이러한 측면들이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데리다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에 강력하게 연관되어있는 화자를 감지하게 된다.
데리다는 사람들이 언어와 의식을 지각하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시각예술에서부터 문학, 문학연구, 철학, 신학, 윤리학(정치적, 개인적, 세계적), 정치학, 그리고 정치이론, 저널리즘, 비평, 영화, TV, 건축, 디자인, 불가피하게는 대중문화, 그리고 관용구까지.데리다의 개념들은-지적인 적들 그리고 여러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적 분위기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뒤에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을 하게한다. 이것은 또한 어떻게 그 철학자가 가장 철학적인 문제, 죽음에 직면했는가를 궁금하게 만든다(그는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 그리고 궁극적인 “집행연기의 기간”이 “더 빨리 사그러지고” 있게 됨에 따라 그의 생각들이 어떠했을지를 궁금하게 한다.
우리는 데리다의 생각을 그가 르몽드 특파원 쟝 비른바움에게 죽기 두 달도 채 안 된 때에 한 인터뷰의 말미에가서 분명하게 알게된다. 이 광범위한 대화에서 데리다는 삶과 죽음의 문제, 미국의 지정학적 지배, 유럽의 정의와 역할, 지적인 엄격함과 정치적 저항, 세계화, 부당함, 결혼, 그리고 여남은 가지의 기타 미해결된 문제들에 몰입해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무엇보다 데리다는 육체적 생존과 유산의 의미에서 “생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이 번역은 (불어원본과 함께) 그를 추모하며 그리고 관심 있는 비불어 독자들에게 서비스로서 제공된다. 이것은 르몽드와의 동의하에 출판된다. Robert Knafo
쟈끄 데리다 : “나는 나 자신과 전쟁을 하고 있다.” 74세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쟈끄 데리다는 심각한 질병에 직면하면서 조차도 뛰어난 강렬함을 가지고 그의 지적인 여정을 추구한다. 파리 교외의 Ris-Orangis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는 르몽드와 그의 일, 그의 계획, 그리고 그의 유산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자: 2003년 여름이후로 지금까지 선생님은 곳곳에 누벼왔습니다. 선생님은 많은 새로운 책을 출간했을 뿐 아니라 선생님의 업적을 탐구하는데 전념을 하는 수많은 국제 학회에 참석하느라 런던에서 코임브라, 다시 파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리우드자네이로로 전 세계를 돌았습니다. 선생님은 두 개의 영화 가장 최근에는 데리다라는 Amy Kofman 과 Kirby Dick이 만든 영화에 그리고 Safaa Fathy의 매우 사랑스러운 D'ailleurs Derrida 2000년작에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많은 특별판의, 눈에띄게는 Magazine literraire에 그리고 review Europe에 특히 출간되지 않은 자료로 풍부한 그리고 올 가을에(2004) 나오게 될 예정인 Cahiers de l'Herne의 한 호에 초점이 되셨는데요, 한 해 동안 상당히 많은 양인데요 특히 선생님이 비밀로 하고 계시지 않으시기는 하지만..선생님이...
데리다: 계속 말해보게, 아주 심각하게 병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이지. 그건 사실이네. 그 자체로 아주 어려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그러나 자네가 괜찮다면 그 문제는 제쳐두지, 우리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건강문제를 다루기 위해 여기 있는 건 아니니.
기자: 좋습니다. 그러면 대신에 “막스의 망령들 (Galilée, 1993)로 돌아가겠습니다. 주요작품이자 주목할 만한 작품이며, 전적으로 다가올 정의에 바쳐졌으며 그리고 이 신비로운 고언 ”누군가, 당신 혹은 내가 앞으로 나서서 말한다: ‘나는 마침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 싶다고’“라는 말로 서두를 여는 그것 말이지요. 그로부터 십년도 더 지난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자하는 선생님의 소망과 함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데리다: 그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인터네셔널歌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그 책의 부제이며 주제이다. ”세계주의“를 넘어, 새로운 세계국가로서 ”세계 시민“을 넘어. 이 책은 모든 내가 믿는 그리고 지금 더욱 분명하게 시각화 되고 있는 모든 반세계화 의식들을 예상한다. 내가 1993년도에 말하고 다녔던 그 당시 ”새로운 인터네셔널歌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 우리에게 인권분야에 그리고 이 세상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조직들(IMF, WTO, G8, 등 그리고 특히 UN,-거기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권한,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위치-가능한한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데로)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주어왔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마침내 아는 것이라는 문구로 돌아가자면, 일단 그 책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나에게 왔네. 먼저, 그것은 비록 진지하기는 하지만 그 문구의 흔한 의미와 함께인데;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또한 교육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드리죠”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위협의 저의로 - “내가 당신을 제대로 만들어드리죠, 내가 당신을 똑바로 만들어 주겠어” 라고 의미한다. 또한 이 행위의 얼버무리기는 나에게 훨씬 더 한 것을 의미한다; 이 탄식은 또한 질의의 또 다른 맥락으로의 개방이다; 사는 것: 그것이 학습이 되는가? 가르쳐지는가? 우리가 배울 수 있는가, 방법이나 훈련으로, 경험이나 실험으로, 삶을 받아들이고-더 낫게는 단언하는 것을? 유산과 죽음에 대한 이 걱정은 책 전체에 걸쳐 공명된다. 이것은 또한 부모들과 그들의 자식들의 고뇌거리이다: 너는 언제 책임을 지게 되겠니? 너는 언제 너 자신의 삶과 이름에 책임을 지겠니?
더 지체없이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아니, 나는 사는 것을 배운적이 없어. 절대로 없지! 사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긍정적인 결과 혹은 부활, 혹은 구원없이 죽는 것-필연적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것은 플라톤이후 오래된 철학적 경고이어왔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죽는법을 배우는 것이지. 나는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이 진실을 믿는다. 사실 점점 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형 집행에 대한 생존자이다(그리고 형집행에 관해서는, 막스의 망령에서 지정학적 견해로부터, 그 강조는 특히 –지금까지 보던 것보다 더 불평등한 세상에서- 수십억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인간과 그 밖의 것들- 기본적인 인권이 거부될 뿐아니라(이것은 2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고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인데) 정상적인 삶을 살 권리조차 거부되는 존재들에 대해 가해지는 불평등한 세상에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위 죽는 법을 아는 것을 배우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아직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집행유예기간은 더 빨리 사그러지고 있다. 더욱이 내가 연을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 생존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것들의 계승자이므로: 한 세대의 마지막 대표자, 한마디로 60년대 세대 말이죠.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이것에 대해 엄격하고자 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오히려 반항에 대한 어떤 멜랑콜리한 노스탈쟈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압박을 가해오자, 생존 혹은 집행유예의 문제는- 이것은 항상 나를 괴롭혀왔는데, 문자그대로, 내 인생의 매 순간 명백히, 가차없이 또 다른 색깔을 띤다. 나는 항상 생존의 주제, 즉 삶이나 죽음에 보충적인 것이 아닌 의미로서의 이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근원적이다: 삶은 생존이다. 그 용어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존은 계속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한 죽음 후에도 산다는 것이다. 번역으로 말하자면, 월터 벤자민은 한편으로는 마치 책은 저자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것처럼, 혹은 아이는 부모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것처럼, 살아남는 것(überleben), 죽음 후에도 사는 것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잔존하는 것(fortleben), 계속 사는 것 사이에서 구별하느라 애먹었다. 나의 작업에서 나를 도왔던 모든 개념들은, 특히 흔적이나 망령과 관련한 그러한 것들은 기본적인 차원으로서 “생존(survival)”의 개념과 관련있었다. 이것은 사는 것 혹은 죽는것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내가 “근원적 애도(originary mourning)라고 부르는 것 이상은 아니다. 그것은 소위 ”실제적“죽음을 기다리지 않는 어떤 것이다.
기자: 선생님은 “세대”라는 용어를 썼는데요. 자주 선생님의 글에 나오는 문제적 개념이잖아요. 선생님의 이름으로 어떤 세대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나는 이 단어를 약간 느슨하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과거 세대의 혹은 다가올 세대의 “시대착오적” 동시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세대라고 간주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충실한 것, 다양하지만 공동의 유산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에 직면하여 어떤 공유된 원칙을 고수하는 것, 라깡에서 알튀세르, 그리고 레비나스, 포코, 바르트, 들뢰즈, 블랑쇼, 리오타르, 사라 코프만, 등을 포함하여까지; 그리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있는 그리고 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많은 사상가들, 시인들, 철학자들, 혹은 정신분석학자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거리는 멀어도 심정적으로는 더 가까이 느끼는 훨씬 더 많은 해외의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나는 환유로 고집스러운 글쓰기와 사고의 윤리학을 지정하고, 나는 심지어 변질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할 테고(엘렌 식수스가 우리를 “변질될 수 없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철학에 관하여 조차 타협하지 않는다라는 건데, 이는 대중여론, 매체, 혹은 겁을 주는 독자들의 환상들이 우리가 단순화하고 뒤로 물러서기를 효과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묘함, 파라독스, 아포리아에 대한 소박한 기호. 이 예측은 또한 근본적이다. 그것은 내가 환기시킨 - 약간 독단적으로 그래서 불공평하게-그러한 사람들 뿐 아니라 그들을 지탱하게 한 더 큰 환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지나간 시대와 (적어도 그 순간동안은)관계가 있었고 단순히 이 사람 저 사람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되거나 재탄생되어야 한다.그리고 오늘날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억견(doxa)에 대한, 그리고 여기서부터 “매체 지식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그리고 스스로 정치 경제학적 로비, 그리고 또한 종종 사설과 학술의 로비들의 통제하에 있는 매체들에 의해 미리 포맷된 일반적인 담론에 대해 엄격한 전쟁을 요청한다. 물론 덜 유럽적이고 세계적이지 않으면서. 저항은 당신이 매체를 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당신은 그들이 발전하고 다양화하도록 도울, 그들을 바로 그 똑같은 책임으로 다시 불러오는 책임이 있다.
동시에 이 “행복한‘ 지나간 시대동안 온전한 평화와 차분함만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와 불일치가 이 환경에서 맹위를 떨쳤는데, 이것은 결코 동질성이 없었다; 그리고 마치 당신이 예를 들어 그들을 언론과 학계에 일상이 되어왔던”Spirit of ’68’(68의 정신)“과 같은 궁색한 표현으로 가둘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슬로건으로 혹은 얕보는 용어로 삼아라. 그리고 비록 이 충실함이 때때로 아직도 불성실함과 다루기 힘듦의 형태를 띨지라도 우리는 차이에 충실해야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계속 대화한다-예를들어 부르디외, 라캉, 들뢰즈, 포코와 함께. 이들은 요즈음 매체가 초점을 맞추는 그러한 사람들 이상으로(물론 예외는 있다) 계속 나의 관심을 끈다. 나는 이 대화를 생생하게 유지한다 왜냐면 이것은 표면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명예훼손으로 비하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세대에 대해 말한 것은 또한 물론 과거에도 적용된다, 성경에서 플라톤, 칸트, 막스, 프로이드, 하이데거, 등까지. 나는 어떤 것과도 연을 끊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알다시피,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항상 자기도취적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 수 있을 만큼 오래 살고 싶어 하고 당신을 구원하고 보존하고 싶고 무한히 더 크고 당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의 일부인 이러한 것들, 이 나로부터 양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그러한 것들을 계발하고 싶어 한다. 나에게 나를 만들었던 것을, 내가 그렇게 많이 사랑했던 것을 선언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나에게 죽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성실함속에 일종의 자기보존에 대한 본능이 있다. 나에게는 어려운 공식화, 집단, 파라독스, 그러나 또 다른 반박(모순)을 거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외설일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책의 제목조차 얻을 수 없는 그리고 독자나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그리고 그러므로 경영진이 그것이나 그의 경력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저널리스트는 결과적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당신은 나에게 굽신 거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리석음으로 죽도록 요구하던지. (뭔 말인지!!!-번역자 유감)
기자: 선생님은 이 성실한 조급함을 따르는 하나의 양식, 생존의 글을 만드셨습니다. 승계 받은 약속, 보호받은 발자취, 맡겨진 책임의 글 말이죠.
내가 어떤 글을 발명했다면 그것은 끝없는 혁명으로서 였을겁니다. 각 상황은 적절한 해설방식의 창조, 단일 사건에 대한 법칙의 발명을 요구하고, 그 상상으로 만들어지거나 바라는 수령자를 고려한다; 동시에 그것은 이 글이 이 글을 읽기를(혹은 살기를) 배우게 될 독자를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요구하는데 그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찾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그가 개혁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결정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철학에 시의 이러한 접목(당혹감이 덜함 ), 혹은 어떤 방식의 동음이의어, 논증불능성, 언어 책략들의 사용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보게 되는 한편 그것에 대한 적절히 논리적인 필요를 무시한다.
각 책은 독자를 교육하기 위해 의도된 티칭 방법이다. 현재 뉴스 미디어와 출판에서 지배하는 그런 종류의 대중 글쓰기는 독자를 교육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허상적 방식으로 이미 프로그램된 독자를 가정한다, 그래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미리 가상적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수령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도록 한다. 그래서 성실함의 행위에 의해, 흔적을 남기는 순간에, 누구든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심지어 어느 한 사람에게 특이하게 그것을 제기할 수 없다. 매번,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실하게 우리는 우리가 제기하는 다른 사람의 특이성을 배반하고 있다. 좀 더 강력한 이유로, 우리가 매우 일반적인 책을 쓸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상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 말로든 글로든, 이 모든 제스츄어는 우리를 떠나고 그들은 우리와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기계처럼, 혹은 더 낫게는 꼭둑각시 인형처럼- 이것을 Paper Machine (Galilee, 2001)에서 더 잘 이해하도록 설명되어있다. “나의”책이 출판되는 순간에(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사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하는, 가르칠 수 없는 유령처럼 나타났다-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나에게 남겨지는 흔적은 즉시 오게 될 혹은 이미 온 나의 죽음을 그리고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희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불멸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이다. 나는 여기 약간의 종이를 남기고 나는 떠난다, 나는 죽는다; 이 구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글속에서 죽음을 살고 있다. 한 극단적인 과정; 우리가 뒤에 남기는 것이 정확하게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분투한다. 누가 물려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전에 보다 더 오늘날 으스대는 것이 문제다. 그것이 항상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기술-문화 시대는 이와 관련하여 깊이 바뀌어 왔다. 나의 “세대”의 사람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인 리듬에 익숙하여 왔다; 우리는 그런 그런 작품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퀄리티 때문에, 1, 2-혹은 플라톤의 경우에는 25세기동안은. 그러나 오늘날, 저장 양상의 가속화와 또한 마모, 닳음이 그 구조와 우리의 유산의 임시적 한도를 변화시킨다.특히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너무도 많은 무명인들에게 대상이 되어왔다.
나의 나이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모순적인 개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장담하건데,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리고 나는 이것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그리고 좀 뻔뻔하게는 우리는 아직 나를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많은 훌륭한 독자들이 있다 해도(이 세상에 수십명, 아마도) 실지로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단지 나중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죽은 지 보름 후에 아무것도 안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상상한다. 법적인 의무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장담한다. 나는 이러한 두 가지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자: 이러한 희망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어가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 선생님이 그 언어에 대해 가지는 깊은 열정을 느낍니다. [Monolinguism of the Other 타자의 단일언어사용 [Le Monolinguisme de l'autre] (Galilée, 1996)에서 선생님은 불어의 마지막 수호자이자 삽화자로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신을 바치기 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사용해야하는 유일한 것이기는 하지만(그것을 잘 쓰는 한에서는) 언어의 경험은 물론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유한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새로운 것은 없다. 여러 상황들이 내가 독립전쟁 전에 태어난 알제리계의 유대인이도록 했고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는 많은 뚜렷한 특성이 있는데 심지어는 알제리계 유대인들 사이에도 말이다. 나는 알제리계 유대인들의 비범한 변신에 참여했다; 나의 증조부모들은 언어, 관습 등으로 여전히 아랍문화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말의 법령(Cremieux Decree 1870) 이후에 그 다음 세대는 부르조아가 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드레퓌스 사건의 시기였는데) 알제리 시 청사 뒷마당에서 거의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의 딸들을 훌륭한 중산층 파리지앵들처럼 키우고 있었다.(훌륭한 16세기 도시의 예의범절, 피아노 레슨등으로)
그런 다음 우리 부모의 세대였는데; 지식인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상인들, 검소한 정도였는데 그중 일부는 이미 어떤 세계적 브랜드의 독점적 대표자가 되는데 있어 식민적 상황을 활용하고 있었다. 10 평방미터 사무실에서 “마르세유 비누”에 대한 모든 북아프리카의 판매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상황들을 약간 단순화 하고 있는데....
그 다음이 나의 세대였다(그들 대다수는 지식인; 자영업, 교직, 의료, 법, 등). 그리고 1962년 쯤에는 프랑스의 이러한 사람들 거의 모두였다. 나로 말하자면, 더 빨랐다(1949). 사실- 나는 단지 약간 과장하는데- 다른 인종간 결혼이 표면상 비극적이며 혁신적이며 드물고 위험한 방식으로 시작한 것은 나와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거니와, 나를 만든 것은 사랑이고 그것의 구성요소는 언어이다. 나를 계발하도록 배운 유일한 언어인 이 불어는 내 스스로 다소 책임을 져야한다고 여기는 유일한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글에는 - 나는 삐딱하게 말하지 않겠지만 그 언어로 다소 폭력적인 방식의 작업이 있다. 사랑이 없지. 일반적인 사랑은 언어의 사랑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것은 민족주의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지만 증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노동을. 당신은 언어로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전에 있었으며 우리가 가고난 후에도 여기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주의 깊게 이루어져야 하며 심지어 무례함 가운데서 그 비밀의 법들을 존중하여야 한다. 이것은 불성실한 성실성이다: 내가 불어의 폭력성을 일으킬 때 내가 그 언어의 생명, 그것의 진화로의 가처분 명령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주의 깊은 존중을 가지고 그 일을 한다. 나는 미소없이, 때로는 경멸로, 사랑없이 블어의 고전적인 철자법이나 문법을 마치 조숙하게 사정하는 처녀처럼 위반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없다, 위대한 불어가 지금껏 휘둘리지 않고 그들이 자기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그 다음의 일을 기다리는 동안 말이다.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나리오를 The Postcard [La Carte postale] (Flammarion, 1980)에서 좀 잔인하게 묘사한다.
불어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 이것이 나에게 관심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해도 불어가 수세기동안 구현해온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열정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언어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프랑스 혈통의 그렇고 그런 프랑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진 한 이방인처럼 그리고 그에게 유일한 한 가지 가능한 것으로서 이 언어를 전용했던 이방인처럼 그 언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열정과 과잉
알제리아에 있는 모든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나와함께 공유한다. 그들이 유대인이든 아니든. 도시 중심부로부터 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다: 억압자들, 규칙입안자들, 표준화하는 자들, 도학자들. 이것은 당신이 따라야 했던 모델, 규범, 습성이었다. 어떤 교수가 그의 불어 억양을 가지고 도시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그 과잉은 이것에서부터 나온다: 나는 단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언어는 나의 것이 아니다. 단일의 악화된 역사, 이 보편적 법칙; 한 언어는 이제 소유된다. 어떠한 본질에 의해 자연스럽지 않게. 이것은 재산의, 식민주의자의 전용 및 시행의 환상의 원천이다.
기자: 선생님은 “우리”라고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으시는데 -보통은, 예를 들어, 우리 철학자들, 혹은 우리 유대인들이라고 하시는데요. 그러나 새로운 그리고 커져가는 세계의 혼란의 관점에서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하는데 덜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첫 번째 걸프전의 시기에 쓰여졌던 책인 The Other Cape [L'Autre Cap] (Galilée, 1991)에서 선생님은 자신을 일종의 “유럽의 잡종개”로서 “늙은 유럽인”으로서 자신을 출현해 보였습니다.
두 가지인데: 나는 정말로 “우리”라고 말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재앙적인 그리고 심지어는 자멸적 정책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시오니즘을 가지고 시작하는 일은 - 왜냐면 나에게는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 이상의 유대교를 대표하지도 않을뿐더러 세계적 근원적 시오니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오니즘은 다양하였으며 종종 그 자체로 갈등 속에 있었다: 또한 미국에는 사실 스스로를 시오니스트라고 부르는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이 있다,그들 로비의 힘- 그리고 사우디의 영향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은 미국-이스라엘 정치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있어 미국 유대인 공동체 이상을 차지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의 유대인임과 함께 가지는 많은 다른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그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유대인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우리”는 나를 괴롭히는 것, 희미한 미소로“유대인의 최후”라고 불렀던 것의 개념의 중심에 놓여있다. 이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오하게 기도에 대해 말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기도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므로, 나는 “우리 유대인들” 혹은 “우리 프랑스인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그리고 이것이 해체 그자체일 것이고 나는 예를 들어. 발레리, 후설, 하이데거의 작업에서 유럽중심주의와 관련하여 현대주의자 형태로 공식화와 관련하여 매우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왔다. 일반적인 해체는 모든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의 행위로서 많은 이가 취해왔던 프로젝트이다. 내가 요즘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접속어법이며 매우 다르다. 해체될 수 있는 유럽 전통에 관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것 때문에 -계몽주의 때문에, 이 작은 대륙의 축소 때문에, 그것이 가지는 책임의 막대한 유산 때문에(전체주의, 나찌즘, 종족학살, 홀로코스트, 식민지화, 탈 식민지화, 등),오늘날 우리 스스로 이해하는 현재의 지정학적 조건에서 유럽은 전적으로 다른 유럽이지만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의 세계지배 정치에 대항하여 한데 뭉치기를 바라며 동시에 또한 계몽되지 않고 정치적 미래도 없는 아랍-무슬림 신정주의에 대항하여 뭉치기를 희망한다.(그러나 또한 이러한 두 블록에서 조차 다양성을 주목하고 그들 안의 반대세력과 동맹을 하자)
유럽은 스스로가 새로운 책임을 수행할 의무 하에 있다. 나는 현재 존재하거나 현재 신자유주의적 다수가 상상하는 것처럼의, 그리고 문자 그대로 많은 내부적 갈등으로 위협을 받는 유럽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가올 유럽에 대해서 여전히 스스로를 찾는 과정에 있는 유럽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대수적으로 유럽이라 불리는 것은 인류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국제법이라는 이름으로-이것은 나의 신념이고 나의 종교이다-어떤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우리 유럽인들”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시장을 보호하고 다른 지정학적인 블록에 대해 무게중심으로 활동하는 군사강국으로서 유럽의 창조를 희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후기 세계화 정치의 씨앗을 뿌리는 유럽으로서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이슈이다.
이 운동은 다가오고 있다. 비록 그 아우트라인이 여전히 형성중이지만 나는 어떤 것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럽을 말할 때, 이것은 바로 포스트 글로벌라이제이션 유럽이다, 자주권과 국제법의 개념과 관습을 형성하는. 진정한 군사력을 이용한, 나토나 UN에서 독립된 군사력, 공격적도 방어적도 아닌 이것은 확고하게 재편성된 UN의 결의안들을 집행할 것이다.(예를 들어, 그리고 극도의 긴박함으로 이스라엘에서 또한 다른데서) 그것은 또한 세속의 측면 혹은 사회적 정의의 측면에서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지역이다.
나는 “세속성”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여담으로 흘러가서 미안하지만, 학교에서 베일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베일과 관계가 있다. 나는 노엘 마메르의 용감함과 그의 추진력을 환영하는 지지 서명을 했다, 비록 동성애자 결혼이 미국인들이 말하는 “ 시민불복종”, 즉 법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더 나은 법을 찬성하여 입법적인 입장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이전 세기에서 시작된 고귀한 전통의 한 사례로 표방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현재의 입법적 맥락에 서명을 했는데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자 권리를 존중하여 말하건데 헌법의 정신과 조문 둘 다의 측면에서 부당한 위선과 모호함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입법자라면 나는 단지 시민과 세속의 규정에서 “결혼”이라는 단어와 개념 둘 다를 폐지할 것을 제안하겠다. “결혼”을 종교적이며, 신성하며 이성애적 가치를 가지고 출산의 의도를 가지며 영원한 수절을 위한 것, 운운 하는 것은 미국이 기독교 교회에 수그리고 들어가는 건데, 특히 유대교(이것은 지난 세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것인데 북아프리카 유대인들 사이에는 몇 세대 전만해도 의무가 없었다)도 무슬림도 아닌 일부일처제 차원에서 그러하다. “결혼”이라는 개념과 단어를 폐지하는데 있어 세속적 헌법에는 자리가 없는 이 종교적 모호함과 위선이 계약상의 “합법적 동성결혼”, 즉 성이나 수에 제한 없이 파트너들 간의 일종의 일반화되고 개선된 유연한 조약으로 대체될 것이다. 전통적 의미로 결혼으로 결합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선택하는 종교적 권위 앞에서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을 축성하는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들 중 하나로, 일부는 양쪽의 방식으로 관계를 시작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시민법이나 종교적 전통에 관계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사족이 길었네요.
내가 “해체”라고 부르는 것은 유럽적인 어떤 것에 위배될 때조차 유럽적이고 유럽의 산물이며, 급진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그 자체에 대한 유럽의 반추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유럽은 영구적 상태의 자기비판 속에 있어왔고 이러한 완전함의 전통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마치 범죄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처럼 유럽을 완전히 비난하는 말 앞에 나는 매우 분개하게 된다.
기자: 유럽에 관해서는 자신과 전쟁을 벌이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선생님은 9/11사건이 당신이 올바른 유럽인으로서 정의하는 어떤 정치적 개념의 위기상태를 나타내며 통치 권력에 대한 오래된 지정학적 단어를 없앴다고 지적하셨는데요. 다른 한편 선생님은 이 유럽의 정신에,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법의 “세계정책적” 이상에 애착을 가지시는데 사실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계셨던 내용의 조락이잖아요. 아니면 그것의 생존~
우리는 세계정책적인 것을 “부상”(지양)시켜야 한다 (Cosmopolitans from all countries, yet another task! -Galilee, 1997 참고).우리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는데, 국가를 전제로 해 왔는 유럽적 개념이고 폴리스의 개념은 국가의 영토와 토착성의 개념과 연결되어있다.
역사의 흐름에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힘이 그것을 몰아내길 시도했을 때조차 이것은 정치의 지배적 개념으로 남아있다: 국가주권의 개념은 더 이상 땅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통신기술도 군사적 독트린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이 탈 지역성은 정치에 대한 오래된 유럽적 개념을 위기에 빠뜨린다. 전쟁의 개념, 민간과 군 사이의 구별, 국가 및 국제 영토뿐 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의 개념에 반대 입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주권의 개념을 위한 것인데, 이는 어떤 상황에서 타당성을 유지하는데, 예를 들어, 세계시장의 어떤 힘을 막는 일에서 그러하다. 여기 다시 그것은 보호되고 개혁되고 있는 유럽의 유산의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Hooligans [Voyous] (Galilee, 2003)에서 유럽적 개념으로서 민주주의에 관해서 –이것은 사실 한 번도 완벽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고 아직 오지 않았다-내가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당신은 내가 항상 그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그것이 나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궁극적 타당성이 없다. 그것이 현재 내가 있는 곳이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나 자신과 전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를 것이다 당신이 추측하는 이상이다. 나는 서로 모순되는 것, 서로 진정한 긴장상태에 있는 것, 나를 구성하는 것, 나를 살게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죽게 만들 것들을 말한다. 이 전쟁은, 나는 때때로 그것을 무섭고 고통스러운 전쟁으로 보지만 동시에 그것이 삶이란 걸 안다. 영원한 휴식 안에서를 제외하고는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모순을 맡는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또한 그것이 나를 살도록 허락하는, 그리고 당신이 제기했던 “사는 법을 어떻게 배웁니까?”라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기자: 두 권의 최근 책 [The End of the World, Always Unique, and Rams [Chaque fois unique, la fin du monde et Béliers] (Galilee, 2003)에서 선생님은 이 구원이라는, 불가능한 애도, 사실상 생존이라는 주요한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철학이 “죽음에 대한 근심스러운 예상”으로서 정의 될 수 있다면(Giving Death, Galilee, 1999참조) 우리는 “해체”를 끝없이 계속되는 생존의 정신으로서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내가 이미 말했듯이, 처음부터 그리고 사실 나 자신의 생존의 경험이 있기 오래전부터, 생존은 원초적 개념이라는 것을 주목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소위 존재, Da-sein(현존재)라는 것의 구조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말해서 생존자들이며, 흔적의, 증거의 이 구조로 표시된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어떤 생존이 삶과 미래에 의해서 보다 죽음과 과거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가에 따른 견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해체는 항상 긍정적, 삶의 긍정성의 측면에 있다.
적어도 (Steps (in Vicinities) [Parages], Galilee, 1986)이후 반대인 삶-죽음의 복잡한 문제로서 생존에 관해 내가 한 모든 말은 삶의 무조건적인 긍정성으로부터 나와함께 진행된다. 생존은 삶 너머 삶, 삶 이상의 삶이며 내가 취하는 담론은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 반대이며, 그것은 죽음보다 사는 것 그러므로 생존을 더 선호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긍정성이다; 생존은 단순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능한 가장 강렬한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과 즐거움의 순간에서 보다 죽음의 필요성에 의해 더 골몰해본적은 없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죽음의 망령을 슬퍼하는 것은 나에게는 같은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나는 내 인생의 불행한 순간들조차 사랑하고 또 그들을 소중히 할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모두, 거의 예외 없이. 내가 행복한 순간을 생각 할 때 나는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 물론 그 순간들이 나를 죽음의 생각들 쪽으로, 죽음으로 안내를 하는 그때에도, 끝이 났기 때문에.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