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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2016년 10월 25일 22시 05분  조회:4131  추천:0  작성자: 죽림

[문정영]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는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 많은 삶의 편린(대상)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대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前理解을 갖기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 ,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대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인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가지고 있는 전이해(상식)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설령 시인에겐 아무리 절실한 체험일지라도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체험과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험은 진실한 체험이 될 수 없다 시인의 체험은 늘 독자의 기대보다 조금은 앞서서 독자의 전이해에 변화를 줌과 동시에 독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여야 한다 이상 고재종선생님의 강의록을 요략해 본다
오늘 아침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매일보는 문구이며 평범하여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데, 발견이라는 시적상상력을 발휘해 본 결과,

문구

'비상시에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의자아래 핸들을 돌리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무원은 늘 부재중입니다
전철 승무원은 앞만 보고 갑니다

저의 간단한 상상력입니다
늘 승무원의 지시를 받으라하지만
막상 급할 때 승무원(선도자, 윗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달려가기만 할 뿐이다

즉 발견은 우리의 일상에서 알고있지만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하여 시에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발견의 눈을 갖기위해서는 늘 시인의 눈을 갖어야합니다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인용하는 힘을 키울줄 알아야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또한 관찰의 힘입니다


2.

떨어지는 병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램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램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만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방법 1의 발견이나 관찰은 묘사에 의해 주로 표현된다 묘사란 객관화된 표현 방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주관적 토로인 진술보다는 묘사를 많이 사용하여야만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관찰이란 발견보다는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즉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함께 시를 쓰던 문우가 개에 대해 시를 쓰려고, 황소만한 개의 뒤를 하루종일 쫓아다녔다고 한다 개의 습관, 생리 등 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은 개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어떤 소재를 통하여 시를 쓰려할 때,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에 시를 쓰면 훨씬 깊이가 묻어나오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졌던 관심 만큼 우리는 시의 소재를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할 것이다


나비 (오규원)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는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아마 시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비를 오래 관찰하였을 것이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시이다


3. 연상, 사랑에 관한 단상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다투어 마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몰아,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점이다 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내부로 끓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연상기법을 사랑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어떤 것에 자꾸 연상하여 생각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성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라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감성이 풍요로워지면서 시인은 연상의 반복을 하게끔 되고 그것은 시상을 연결하게 해 주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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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구룡사시편 ―오세영(1942∼ )


한 철을 치악에서 보냈더니라.
눈 덮인 멧부리를 치어다보며
그리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빈 가지에 홀로 앉아
하늘 문 엿보는 산 까치같이,

한 철을 구룡에서 보냈더니라.
대웅전 추녀 끝을 치어다보며
미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흰 구름 서 너 짐 머리에 이고
바람 길 엿보는 풍경같이,

그렇게 한 철을 보냈더니라.
이마에 찬 산 그늘 품고,
가슴에 찬 산 자락 품고
산 두릅 속눈 트는 겨울 한 철을
깨어진 기와처럼 살았더니라. 



‘술과 마약 등을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독의 정의이다. 그러나 술과 마약 말고도 우리가 중독돼 있는 것은 매우, 의외로 많다.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고, 인터넷에 중독돼 있고, 게임에 중독돼 있고, 일에 중독돼 있다. 중독된 나머지 충혈된 눈과 과열된 뇌를 발견하면 더럭 겁이 난다. 그럴 때 읽는 시가 있다. 오세영의 ‘속구룡사시편’. 이 작품은 맑고 차가워서 뜨거운 눈과 뇌를 식혀 준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자발적이며 타율적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시인은 겨울 내내 구룡사에 머물렀다. 눈 덮인 산사에서 시인은 마음의 질긴 생각들을 하나씩 끊어내는, 마음 비우기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연습하고, 다음에는 미운 이를 미워하지 않기를 연습했다. 마치 자신이 까치가 된 듯했다는 1연과 풍경이 된 듯했다는 2연은 절묘한 반복과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독자들은 읽을 때의 리듬감까지 얻게 된다. 1연과 2연이 겨우내 시인이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면, 3연은 그 결과물에 집중하고 있다. 이마에는 그리운 이 대신, 가슴에는 미운 이 대신 차가운 산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구룡사에 들어갈 때의 시인과 나올 때의 시인은 분명 같고도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저렇게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비워내기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시에 의하면 추운 겨울의 산사는 그에 가장 적당한 때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산사에 갈 수 없지만 추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연습의 시도는 해볼 일이다. 겨울이 지나면 과열된 이마를 식혀 주던 찬바람이 아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겨울의 끝에 가장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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