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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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 댓글:  조회:7964  추천:6  2012-05-21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주청룡   44.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였으면”하는 내용으로 말씀드립니다. 지금 도시화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아빠트거주문화가 형성되면서 그전의 이웃사이에 서로 만나면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고 서로 돕고 하면서 색다른 음식이 있어도 서로 들고 다니며 화애롭게 지내던 이웃정은 다 사라지고 지금의 이웃사이는 콩크리트벽으로 막힉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르고 지내며 서로 상관하지 않는 삭막한 사회로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삭막한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금 전국적으로 이웃절활동을 벌리는 도시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변에서도 오기활선생의 창의로 《지부생활》잡지에서 반년간의 지상토론을 벌려 2006년 4월 연길시 북산가두에서 첫 《이웃절》을 개최한 이래 각지에서 잇따라 이웃절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변의 정황을 보면 아직도 도시에서 이웃절활동이 활발이 전개되는것은 아닙니다. 한 아빠트에서 있은 이야기입니다. 이사짐 차가 와서 짐꾼들이 한 집의 가정기물들을 차에 싣고 있었습니다. 그 아빠트의 몇몇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그저 어느 집에서 이사를 가겠거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녁에 집주인이 집에 들어와 보니 집안이 수라장이고 갑진 물건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은 어떻게 열었는지는 모르나 어째든 도적이 들어와 한짓은 분명하였습니다. 하여 옆집과 물어보고 파출소에서 와 조사를 하고 하니 그 아빠트가 들끓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적놈들은 아빠트거주문화가 바로 이웃사이에도 서로 면목을 모르고 지낸다는 이 허점을 리용해 집주인 이사를 하는것처럼 대낮에 자동차로 빈집을 털어갔던것입니다. 만약 아빠트거주문화에 이런 허점이 없다면 도적놈들이 감이 이런 연극을 놀지 못하였을 것이고 도적놈들이 이런 극을 놀더라도 이웃에 의해 제지되였을 것입니다. 다른 한 아빠트에서 있은 일입니다. 하루는 3층에 사는 왕할머니 집 천정에서 비오듯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웃집에서 물이 흘러내린다고 생각하고 4층으로 달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지라 옆집과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사회구역과 110구조대에 알려 그들이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수도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던것입니다. 집주인이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이 정경을 보고 지난밤에 물이 오지 않으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것을 아침에 잊고 그대로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집주인의 사업터는 집에서 200메터 되나마나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만약 이웃집 사이에 서로 면목을 익히고 서로 어디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만약의 경우를 고려하여 서로 련락 전화번호라도 남겨두었다면 인차 주인과 련락이 되였으려만 한 아빠트에서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이라 사회구역과 110구조대에까지 구조를 요구하였던것입니다. 강로인은 퇴직한 후 아빠트단지 정원을 가꾸고 청소를 하는것을 무보수로 도맡아 합니다. 그는 또 손재간도 있어 어느 집에 전기나 상하수도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강아바이를 찾습니다. 그러다니 자연히 아빠트단지내의 주민들과 친근하여졌고 서로 믿게 되고 오가는 정도 두터워졌습니다. 이 아빠트단지 내에는 중풍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강로인은 늘 그 집에 가서 그 할아버지와 말동무도 하고 그의 시중도 들어주곤 합니다. 그러니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강로인을 믿고 자기네가 출근한 다음 자기의 아버지를 동무하여 달라고 집 열쇠까지 넘겨주었습니다. 강로인의 이 자원적인 봉사활동으로 이 단지내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련락전화번호를 적어드리고 어떤 주민들은 장시기 외출할 때에는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집 열쇠까지 맡긴답니다. 연길시 북산가두에서는 2006년부터 해마다 이웃절을 개최하여 운동회, 문예공연회, 야유회, 주방예술시합 등 다양한 활동을 벌리는것으로써 서로 면목을 익히고 우의를 돈독히 하고 정을 나누며 따라서 빈곤호 부축, 장애인 돕기, 독거로인 돕기, 결손자녀에 대한 사랑 등 활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 한 독거로인이 사망하였는데 어느때에 사망하였는지도 모르고 시체에서 악취를 풍길때에야 발견하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지금 자식들이 다 외지에서 사업하고 독거로인들이 많은 실정에서 이러한것들은 서로 담을 쌓고 있는 아빠트거주문화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할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만약 연길시 북산가두에서처럼 이웃절활동을 전개하여 서로 면목을 익히고 서로 살피고 한다면, 만약 아빠트단지내에 우에서 말한 강로인과 같은 분이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한 개 세포이고 이런 세포들이 모여 이웃이란 사회의 한 개 작은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어느 한 집에 급한 환자가 나거나 불의에 재난이 들이 닥쳤을 때 아무리 가까운 친척들이 있다해도 그들이 멀리 있으면 어쩔수 없지만 이웃관계를 잘 처리한다면 이웃은 인차 도와 나설수 있는것입니다. 하여 예로부터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로 이웃지간의 정을 말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서로 익숙히 하고 서로 정을 주고 서로 돕는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21일
122    현시대에 어떻게 5.4정신을 발양할것인가? 댓글:  조회:8020  추천:8  2012-05-14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43. 현시대에 어떻게 5.4정신을 발양할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오늘은’현시대에 어떻게 5.4정신을 발양할것인가?”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1919년5월4일 북경의 5000여명의 애국학생들이 천안문 앞에 모여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시위행진을 단행하였는데 6월3일 후에는 운동의 주력도 학생군중으로부터 로동계급으로 상해, 천진, 남경, 무한, 항주 등 전국의 많은 대도시들에로 파급되였습니다. 《5.4》운동의 력사적의의는 중국혁명사에서 구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신민주주의 혁명에로 들어가는 시대적 획분의 전환 점이고 모택동동지가 말씀한것처럼 그것이 신해혁명에서 볼수 없었던 자태로 나 선데 있습니다. 즉 철저히 비타협적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봉건주의를 반대한데 있습니다. 이로부터 중국에서 맑스주의가 널리 추진되였고 맑스주의와 중국 로동운동의 결합을 촉진하였으며 사상상, 간부상에서 중국공산당의 성립을 위해 준비 한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애국, 진보, 민주, 과학의 《5.4》정신을 계승하고 발양하여 이 정신이 한대 또 한대의 청년들을 분발시켜 나라를 부강시키고 중화의 진흥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게 어느때라고 《5.4》 정신을 말하고 있는가고 말하는데 《5.4운동》은 이미 90여 년이 지났지만 90여년 전의 《5.4》정신과 지금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에 말하는 《5.4》정신의 실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애국주의는 하나의 력사범주이며 사회발전의 부동한 단계, 부동한 시기에 따라 그 내용과 표현형식이 다를뿐입니다.   《5.4》운동시기 청년들의 애국정신은 주로 민족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피와 목숨으로 제국주의, 봉건주의와 싸우는 시위행진으로 표현되였지만 오늘날 말하는 《5.4》정신은 그런 시위행진 형식으로 애국열정을 표현하는것도 아니고 꼭 적들과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것도 아니며 새로운 력사조건하에서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을 잘 완성 하는것입니다.   현시대 청년들이《5.4》정신을 계승하고 발양하자면 등소평리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드팀없이 당의 기본로선을 견지하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실천에 적극 뛰여들어 전면적으로 초요사회를 건설 하여 인민이 공동부유 하고 중화를 진흥시키고 나라의 번영부강을 위해 분투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가 현시대 청년들에게 부여한 력사적 사명이며 현시대 청년운동의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일체는 조국의 안정통일을 수호하며 조국의 번영부강을 힘써 촉진하는것을 전제로 하여야 하고 그 열정이 응당 진취성으로 바뀌여 우리 나라가 세계 발달한 나라를 따라 잡기 위해 대책과 힘을 다 내는 구체 행동으로 되여야 한다고 봅니다.   현시대 청년들이《5.4》정신을 계승하고 발양하자면 개인의 리상과 추구를 전 민족의 공동한 리상과 한데 융합시켜야 하며 실제 행동으로 조국에 보답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해 11월 신주8호와 천궁1호 도킹에 성공한 과학연구일군들이거나 양리위를 비롯한 우주비행원들이 그 간고한 기술훈련도 이겨내고 마침내 태공에 오른것이 바로 현시대의 《5.4》정신이고 중국 녀자배구팀이거나 세계급 운동대회에서 조국의 영예를 위하여 금메달을 따낸 운동원들의 전력을 다하여 싸워온 정신이 바로 현시대의 《5.4》정신이라고 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것을 크게 말하면 당을 사랑하고 사회주의를 사랑하는것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집체를 사랑하고 일터를 사랑하고 본직사업을 사랑하고 인민군중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사업을 하여야만이《5.4》정신을 계승하고 발양하다는것이 아니며 매개 청년들이 평범한 일터에서 자기의 맡은바 사업을 착실하게 잘 하는것도《5.4》정신을 발양하는것이며 어느때 어디에서나 집체를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것도 역시《5.4》정신을 발양하는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발전중에 있고 종합국력도 세계의6,7위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제정세가 급격하고도 복잡하게 변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과 등소평리론을 지도로 《5.4》운동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계승하고 발양하여 적극적으로 개혁의 거세찬 물결속에 뛰여들어 력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를 완성하여 우리 나라를 번영부강한 사회주의 강국으로 건설하기 위 하여 분투합시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14일
121    5.1국제로동절과 전국로동모범들 댓글:  조회:8200  추천:2  2012-05-08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42. 5.1국제로동절과 전국로동모범들 청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5.1국제로동절과 전국로동모범들”이란 내용으로 말씁드리려 합니다. 메이데이(May Day)라 불리는 국제로동절의 유래를 보면 1886년 5월 1 일 미국 시카고의 20여만 로동자들이 8시간 로동제를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행진을 단행하였습니다. 로동자들은 반동당국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견지하여 8시간 로동제를 쟁취하였습니다. 1889년 7월에 빠리에서 열린 제2국제당 창립대회에서 5월1일을 로동계급의 국제적 명절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1949년 12월에 중앙인민정부 정무원에서는 5월1일을 로동절로 규정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5.1절을 계기로 전국로동모범 표창대회를 가집니다. 저는 금년 5.1절을 맞으며 조선족 전국로동모범들의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지난세기 50년대 연변의 전국 로동모범들의 사진에 가서 눈길이 머물면서 그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되였습니다. 전국농업로동모범이며 저명한 농민벼전문가 최죽송은 1948년부터 벼고산재배시험을 하여 1951년에 벼 무당 산량 700근을 돌파하여 그해 길림성 정부에서 특등로동모범칭호를 수여하였고 1957년에는 전국농업로동모범칭호를 수여 받았습니다. 후에 그는 계속해 벼 풍산기술을 연구하여 1955년에는 무당 산량 800근을 돌파하였으며 1966년에는 신풍대대의 벼 무당 산량이 1026근에 달하였으며 1962년에 주은래총리가 신풍대대를 시찰하실 때에 최죽송의 대면적 벼 풍산 경함을 칭찬하였으며 그의 벼 재배기술이 1964년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중대과학기술성과 2등상을 받았으며 선후로 네 차례나 국무원 풍산상을 탔습니다. 그는 《중국벼재배학》편집공작에도 참가하였으며 저서로는 《최죽송 벼풍산기술》입니다. 1964년 9월 전국농업회의에서는 국무원 부총리 담진림동지가 “남진(영강) 북최(죽송)”이라고 칭찬하면서 “북방농민벼전문가” 칭호를주었으며 길림성 농업과학원과 중국농업과학원에서 그를 특약연구원으로 초빙하였습니다. 1970년 후에는 주로 북방지구의 벼 저온랭해방지에 대한 연구를 연구를 하여 벼 온산고산기술을 보급하엿습니다. 1973년 소주에서 열린 전국 벼연구회의에서 “랭해전승”문제를 제기하여 높은 중시를 잃으켰으며 그의 벼 재배기술경험은 재빨리 북방13개성시에 보급되였으며 북방 벼 재배지구에서 벼 풍산을 거두는데 그나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는 선후로 농업사 주임, 대대 당지부서기, 장백인민공사 부사장 등 직무를 력임하였고 길림성 제3차 당대표대회 대표, 길림성 제1기, 제2기, 제3기 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되였습니다.    전국로동모범 김시룡은 1946년 연변에서 첫 호조조를 조직하였으며 1951년 3월에는 첫번째 초급사-농업생산합작사를 성립하고 1953년 3월에는 길림성의 첫번째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되는 《새벽집체농장》을 세웠으며 1958년 《전국문맹퇴치회의》에 참석하여 《농민은 문화를 수요하고 문화를 배울수 있다》란 제목으로 발언하여 진의 부총리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고향에 돌아가 농민과외학교를 꾸리라고 부탁하였다. 김시룡은 진의의 이 지시를 받들고 돌아와서 그해 5월 1일 전국에서 첫번째 반농반독의 《새벽농민대학》을 세웠습니다. 그는 1949년 길림성 특등로동모범, 1950년 전국로동모범 1957년 전국농업로동모범 등 칭호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후로 호조조 조장, 농업사 주임, 인민공사 사장, 새벽농민대학 명예교장 등 직무를 력임하였으며 제1기, 제2기, 제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제5기, 제6기 전국정형위원으로 당선되였으며 27차례나 모주석과 중앙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았습니다. 김시룡은 언제 어디서난 추호도 리기적이 아니고 오로지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간고분투, 대공무사하고 렴정봉결하고 공명정대한 사나이중의 사나이로서 높이 서서 멀리내다보면서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에서 코기러기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저는 5.1절을 맞으며 당년의 전국로동모범이며 영화《붉은 기러기》의 주인공의 원형인 리호천선생을 방문하였습니다. 리호천선생님은 81세의 고령에도 아주 명석한 의식으로 매일 텔레비, 라지오, 신문, 잡지를 다 보면서 정치와 시사학습에 게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리호천선생님을 모델로 한 영화 《붉은 기러기》를 DVD로 보면서 그가 30여년동안 우편배달사업을 한 지나간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리호천은 우전배달사업에 참가하여 매일 8,90근 되는 우편물을 지고 네개의 령, 11갈래의 하천을 넘나들고 근 100리 길을 걸으면서 당의 간행물과 기타 우편물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10년, 20년, 지어는 36년간이나 갈라져 있던 육친들의 편지도 전달하여 주고 그들의 상봉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편지들은 어떤것은 주소가 잘못 적히고 어떤것은 수신인이 여러곳을 이사하였기에 수신인으를 찾는것이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편지들을 하나도 돌려보낸적이 없이 어떻게 하나 이곳 저곳 수소문하여 모두 찾아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소가 불명확한 우편물들을 찾아 준 것이 2800여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의 우편배달로정은 96만리, 지구둘레길이의 12배에 해당됩니다. 그는 “나의 일체는 당과 인민을 위하여”란 오직 이 하나의 신념으로 30여년간 중국우정사업에 몸바쳐 왔습니다. 하여 1956년에 전국 우전계통 선진생산자, 1958년에 제2차 전국청년사회주의건설자 적극분자, 1959년에는 전국로동모범으로 당선 되였으며 선후로 7차례나 모주석과 당중앙 령도동지들의 접견을 받았으며 길림성 제3기, 4기, 5기 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되였습니다.. 그는 퇴직후에도10여년간 농촌의 의무배달원으로 나서서 신문잡지를 주문하여 보도록 선전공작을 하였으며 주소가 불명확한 편지를 전달하여 준것만 하여도 400여건이나 됩니다. 저는 이러한 전국로동모범들의 사적을 되새겨보고 리호천 선생님을 직접 방문하면서 이러한 로동모범들은 우리 나라의 번영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들은 연변의 자랑이고 우리 조선족의 자랑이며 우리들이 영원히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라고 생각 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중국의 조선족이다. 나의 고향은 연변이다. 그럼 나는 우리 중국의 조선족을 위하여, 나의 고향 연변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겠는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5월 7일
120    우리말을 바로 사용합시다 댓글:  조회:9267  추천:10  2012-05-01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41. 우리말을 바로 사용합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말을 바로 사용합시다”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우리말의 표준어도 아니고 방언도 아닌 우리말에 없거나 격에 맞지 않는 말들을 사용하여 말을 배우는 어린이들에게는 혼란스러움을 가져오고 그대로 따라배우면서 그릇된 가르침을 받고있습니다 례를 들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밥을 먹었습니까?”라는 표현으로 물어보아야 할것을 “밥을 먹었슴다?”라는 표현으로 물어보고 있는데 여기에서 ‘-슴다’는 ‘-습니다’의 연변방언이라고 할수 있으며 “-습니다”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례의관계를 표현하면서 상대방에게 알림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입니다. “-습니까”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례의관계를 표현하면서 상대방에게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입니다. 쉽게 말한면 “-습니까”와 “-습니다” 는 물음과 알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의 례에서 “밥을 먹었슴다?”는 어린이에게 밥을 먹었는가를 물어보는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이미 먹었다는 것을 어린이에게 알리는 표현으로 된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에서 물어보는 사람이 장음성조표현으로 물어본다는 뜻은 나타내였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틀린 표현이라고 보며 문자표기로 하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제가 알기에는 지난세기 80년대부터 이런 바르지 못한 표현들이 나왔다고 보아지는데 어른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애들이나 금방 말을 배운 애들과 말할 때 무엇을 물어보면서 어린이에게 친절감을 주려는 심리에서 “-슴다”란 표현을 섰다고 보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을 그릇되게 가르쳐준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10대, 20대의 청소년들이 지금도 습관적으로 그런 틀린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적지않은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하여 달라는 수고를 부탁드리면서 “그럼 수고를 하십시오.” 혹은 “수고를 하시오”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수고를 하십시오’또는 “수고를 하시오”는 ‘하게체’로 쓰이는 말로서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간청하면서 ‘하게체’ 로 하면 례절에 맞지 않거니와 격식에 맞지 않는 말로 되므로 이때에는 “수고를 하여 주십시오.” “그럼 수고를 하시겠습니다.” 혹은 “수고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간청하는 태도로 말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연변에서 일부 청소년들이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 “겠구나”를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완료되었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례를 들어 “내가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 가보니 영철이가 벌써 도서관에 가 앉아 있었다”는 뜻으로 제1인칭이 제2인칭에게 말할 때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 가보니 영철이가 벌써 도서관에 가 앉아 있겠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있겠구나’는 제 3자인 영철이가 도서관에 가 앉아 있을것이라는 추측으로 표현되지 영철이가 이미 도서관에 가 앉아 있었다는 영철의 행동이 완료되였다는 뜻으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본래 우리말에서 대소변을 보게끔 만들어 놓은 곳을 변소라고 합니다. 후에 건축시설이 발전하면서 집안에다 대소변을 보게끔 따로 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수세식변기, 거울과 세수를 할수 있는 위생시설을 가추어 놓아 용변 후 손도 씻고 머리단장, 옷단장을 볼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변소를 위생시설이 없는 간이변소에 상대하여 화장실이라고 부르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은 간이변소와 화장실을 구별없이 모두 화장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어에서는 위생시설을 갖춘 변소를 卫生间이라고 하므로 우리말로는 위생실이라면 됩니다. 얼마전 어느 텔레비죤에서 한 풍경구의 위생환경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였는데 그 곳의 칸막이도 없는 변소를 촬영하여 방영하면서 이 풍경구의 화장실 위생이 말이 아니라고 보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격에 맞지 않은 말이였습니다. 어찌 칸막이도 없는 변소를 화장실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일상 생활가운데서도 아무런 위생시설도 없는 공중변소를 화장실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변소나 화장을 말할 때 그 시설정도에 따라 격에 맞게 말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우리말에 없는 말이거나 격에 맞지 않는 말들이 우리의 일상 생활가운데서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그릇된 말들이 류행으로 되면서 우리말의 순결도를 낮출뿐만 아니라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에게 그릇된 가르침으로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상시에도 격에 맞는 규범화된 말을 하는것을 습관화 하여 표현력이 강한 우리말의 순결도를 확보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4월 30 일
119    직업도덕을 잘 준수하였으면 댓글:  조회:8576  추천:16  2012-04-24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40. 직업도덕을 잘 준수하였으면 김정섭 주청룡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룡정중학교 김정섭선생님과 함께 쓴 글“직업도덕을 잘 준수하였으면”하는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어떠한 직종에서 일하든지 모두 그 일터에서 지켜야 할 직업도덕이 있습니다. 직업도덕이란 어느 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사업가운데서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도덕준칙을 말합니다. 직업도덕은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며 직업도덕을 잘 준수하는가 못 하는가하는 것은 그 사회의 정신문명정도의 표시로도 되고있습니다. 어느 한 정무대청에서 목격한 일입니다. 70대의 허리 꼬부린 한 할머니가 창구에 매달리다싶이 하면서 창구안에 앉아 있는 녀 공무원과 조선말로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는데 그 공무원은 한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할머니는 그 녀 공무원이 한족인줄로 알고 되지 않은 한어로 꺽꺽거리며 말씀하시였습니다. 뒤에 서 있던 제가 창구에 붙어 있는 그 공무원의 명찰을 보니 조선족 같아서 “동무 조선족이 아니오? 이 할머니가 되지 않은 한어를 하느라 얼마나 힘드오. 동무도 이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지 않소? 그리고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이 가득한데 이렇게 시간을 랑비하면 사업효률을 높일수 있소?” 라고 하니 얼굴이 시뻘개 나면서 조선말로 말하는것이였습니다. 공무원으로서 한조 두가지 언어를 구사한다는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찾아 온 대상에 따라 언어를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족이 오면 한어로 대화를 하고 조선족이 오면 조선족어로 대화를 나누는것이 조선족 자치주에서의 공무원의 직업도덕이라고 봅니다. 특히 조선족 공무원으로서 한어가 순통치 못한 조선족 로인들과 대화를 할 때에는 반드시 조선어로 대화를 하는것이 직업도덕을 준수하는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조선어를 모르는것처럼 한어로 말하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본인은 그것을 자랑으로 느끼겠지만 객관에서 우리 조선족들이 보기에는 인간수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것입니다. 한번은 친척이 새집에 이사를 하였다고 하여 새집 보러 가는데 지점을 몰라 어떻게 가면 되는가고 물었더니 택시를 타고 신풍3대 뻐스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 넷은 택시를 불러 얼마인가고 물었더니 12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5원이면 갈수 있다고 하던데 12원이라고 하는가고 운전기사에게 묻자 그러면 료금미터기대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하며 택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택시료금은 5원을 넘어 서는데 택시는 계속 달리고 료금은 계속 올라가더니 12원으로 올랐을 때에 이곳이 신풍3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필경 이자가 우리를 속이는것이라고 생각되여 제보전화를 하려고 전화번호를 누르니 그 기사는 그제야 겁을 먹고 당황하여 여기가 다 신풍3대 구역인데 정확한 지점이 어딘가고 묻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분명히 신풍3대 뻐스정류소라고 하지않았는가고 말하니 다시 택시를 돌려 오던길로 되돌아 신풍3대 뻐스정류소에 가서 택시를 세우면서 5원을 내라고 하는것이였습니다. 이외에도 일부 문명하지 못한 택시기사들은 승객이 정확한 지점을 모를는 약점을 리용하여 특히는 외국손님에게서 2,30원이면 갈수있는 거리도 외돌아 가면서 바가지료금을 들씌워 100원씩 받아내는 사례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택시기사라면 응당 승객을 안전하게 정확한 목적지에 운송하고 료금미터기에 나온 료금대로 받는 것이 직업도덕이라고 봅니다. 외지손님이나 외국손님을 놓고 말하면 연변사람들의 문명정도를 제일 먼저 가늠할수 있는 것이 택시기사들의 언행이라고 볼수 있는데 이러한 문명하지 못한 택시기사들의 행위로 하여 연변의 정신문명에 엄중히 손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번은 연길에서 도문으로 가는 뻐스에서 목격한 일입니다. 한 지체장애자가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뻐스타려 오는것을 본 승무원은 인차 차에서 내려 그 승객의 짐부터 받아 차에 올려 놓고 그를 부추켜 차에 올려 자리에 앉히는것이였습니다. 도문에 도착하여서도 승무원은 그 장애인의 짐을 자기가 메고 그를 부추켜 새내 공공뻐스를 태워 보내는것이였습니다. 그 장애인은 승무원의 소행에 감사하다고 연신 손을 저어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승무원의 행위는 우에서 말한 택시기사위 행위와 비기면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까? 이 승무원의 의무는 승객을 안전하게 도문까지 운송하면 끝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는 장애자의 짐을 들고 공공뻐스 정류소까지 가서 그를 부축하여 차에 올리 태웠다는것은 그의 의무와 직업도덕을 다 준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뢰봉정신까지 발양하였다고 봅니다. 각종 업종마다 그 직업도덕은 다 다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일터를 사랑하고 모든 것이 다 인민대중을 위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따르는 사업태도가 나 올것이며 인민대중은 그의 사업에 대하여 만족을 느낄것이며 함께 하는 이 사회적 공간에서 서로 돕고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진정 조화로운 사회로 구축될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4. 23
118    자각적으로 공중도덕을 지킵시다. 댓글:  조회:8422  추천:12  2012-04-0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9. 자각적으로 공중도덕을 지킵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자각적으로 공중도덕을 지키자”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공중도덕의식도 많이 제고되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부 사람들을 보면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의식으로 공중도덕을 준수하지 않아 전신문명 건설에서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있습니다. 공중도덕이란 사회공동생활 가운데서 사람들이 자각적으로 지켜야 할 행위규범이라고 봅니다. 함께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각적으로 공중도덕을 준수하여 우리의 사회를 아름답고 문명한 사회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아래에 몇 가지 공중장소에서 지켜야 할 도덕에 대하여 말하여 봅시다. 첫째, 공공뻐스에서 지켜야 할 도덕 공공뻐스에서 임신부, 어린이, 로인, 장애인, 환자들이 올랐을 때 앉을 자리가 없으면 주동적으로 자리를 양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양보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감사하다는 사의를 표시하여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직접 목격한 일인데 공공뻐스에 한 젊은 녀인이 올랐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배가 만삭인것을 보아 임신부 같아서 자리에 앉아던 50대의 한 남성이 자리를 내여 앉으라고 하니 그 녀인은 아무말도 없이 앉았습니다. 목적 지에 도착하자 그 녀인은 내리면서 그 남성에게 다시 앉으시라든가,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 없이 내리였습니다. 하여 뻐스에 앉은 많은 승객들이 그 녀인을 흘겨 보게 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남성의 행실은 아주 문명스러운 행실인데 이때 그 녀인은 최저한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말은 있야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차가 굽이돌이를 돌거나 급작스레 설때에 관성에 의해 몸이 쏠리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거나 밀칠 때가 있는데 이때에는 반드시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상대방에게 량해를 구하여야 합니다. 두번째로 극장이난 영화관에서 지켜야 할 도덕 1. 연극이나 영화구경을 들어 갈 때에는 반드시 시작하기 몇분전에 들어가야 하며 다른 사람의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허리를 굽히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타인의 관람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2. 군음식을 먹지 말며 휴지를 버리지 말아야 하며 여러가지 위생에 주의 하여야 합니다. 3. 섰다 앉았다 하거나 좌우로 몸을 움직이지 말고 앉은 자세는 온정해야 합니다. 4. 떠들썩하게 웃거나 말하지 말고 동석자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타인에게 영향이 없도록 낮은 소리로 말하여야 합니다. 5. 공연을 관람할때에 정채(精彩)로운 장면이 나 오면 박수를 치는것으로써 배우들의 연기에 대하여 절찬을 보내야 합니다. 6. 혹시 배우가 실수를 하였을 때에 리해를 하고 동정하여야 하지 떠들거나 인격모욕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7. 영화 혹은 공연도중에 퇴장하지 말아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 퇴장할 때에는 몸 자세를 낮추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것으로서 관중들의 관람과 정서에 영향을 주지 않고 관중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여야 합니다. 셋째, 경기장에서 지켜야 할 도덕 1. 경기시작 몇분전에 입장하여야 하며 다른 사람의 앞을 지날 때에는 자세를 낮추고 가볍게 걸으며 타인이 관람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2. 선수들이 입장할 때에는 쌍방선수들에게 모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3. 쌍방선수 특히는 국제적 경기에서 상대편 선수의 정채(精彩)로운 표현에 대하여서도 박수를 치는것으로써 국제적 우의를 증진하여야 합니다. 4. 혹시 선수들의 실수가 있어도 욕하거나 야유하지 말고 선수들의 자존심이거나 자신심에 영향이 있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5. 심판원의 사업을 존중하고 심판에 방해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축구경기를 보면 심판원이 실수하여 오판을 하였을 때에 장내가 떠들썩하게 소리를 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거나 광천수병을 뿌리거나 장내에 마구 뛰여 드는 현상들을 볼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 문명하지 못한 행위이므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용히 앉아서 구경하면서 경기장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6. 경기장의 공중위생을 잘 지키며 아무 곳에나 침을 뱉지 말고 과일껍질이나 음식포장물 같은것은 비닐주머니에 넣었다가 경기가 끝난 다음 쓰레기 통에 넣어야 하고 퇴장은 질서 있게 하여야 합니다. 넷째,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지켜야 할 도덕 1.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유람을 할때에 공공시설 특히는 문물이나 고적을 함부로 다치지 말고 일초일목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어떤 유람객들은 잔디밭이나 나무 사이를 가로 찌르고 있는데 유람할 때에는 지정된 코스를 따라 걸어야 합니다. 2. 환경위생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 곳에나 침을 뱉지 말고 담배꽁초나 과일껍질, 휴지 같은 것을 마구 버리지 말고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며 야외식사시에는 식사후 음식찌꺼기나 빈 음료병, 음식포장지는 반드시 모아서 쓰레기 분류 수거함에 넣어야 합니다. 만약 내 하나쯤이야 하며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마구 버렸다면 내가 다시 그곳을 지날때에는 자기가 버린 것이 눈에 거슬려 보이고 악취가 풍겨올것입니다. 3. 고적이나 자연경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는 자리다툼을 하지 말고 서로 양보를 하거나 선후순서에 따라 찍어야 하고 촬영을 금지하는 곳에서는 절대로 촬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관광안내원이 해설을 할때에는 사담을 금지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들어야 하며 밀고 닥치거나 높은 소리로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5. 안전에 주의 하여야 합니다. 험하고 좁은 길을 걸을 때에는 서로 양보를 하는 자태로 나서고 놀이기구를 탈 때에는 현지 관리원의 지도에 따라 작동하거나 행동을 하여 이외의 사고를 방지하여야 합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삼복철에 로점상(露店商)들이 웃옷을 벗고 사구려를 외친다든가 로천음식점에서 웃옷을 훌떡 벗고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들을 보게 되는데 옷차림은 그 사람의 품위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공중장소에서 웃옷을 훌떡 벗고 있다는것은 첫째는 자기의 존재가치와 품위를 너무 낮추는것이고 둘째는 상대방 혹은 공중들에 대한 무시이고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문명치 못한 행실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인원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행위를 자제한다면 문명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할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4월 9일
117    미신사상으로 전통풍속을 대하지 말자 댓글:  조회:9379  추천:32  2012-04-03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7. 미신사상으로 전통풍속을 대하지 말자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미신사상으로 전통풍속을 대하지 말자”란 내용으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나서 자라고 종당에는 저 세상으로 가는것은 인간의 생존법칙이며 우주만물의 산생, 발전, 멸망의 철학법칙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길을 가는 고인을 추모하는것은 인간의 륜리도덕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민간에서는 《새집에 드오, 결혼이요, 임신이요.》 하면서 장례는 물론 청명과 추석에 조상의 산소에 가는것도 꺼려하고 지어 친부모가 세상을 떴는데도 장례에 참가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해 제가 동사자의 모친이 돌아가 그 장례에 참석하게 되였는데 고인의 령전에 제사를 지낼 때 고인의 맏아들부부가 응당 맨 먼저 술을 붓고 절을 올려야 할 사람이 나서지 않고 맨 뒤쪽으로 들어 서는것이였습니다. 하여 동사자들이 왜 이러는가고 했더니 자기네가 금년에 새집에 이사했는데 장례에 절을 하면 후일이 좋지 않다고 하여 절을 안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해에 새집에 든 그의 동사자도 있었는데 모두들 그 동사자를 가리키며 “저 박선생도 금년에 새집에 들었지만 당신 모친의 장례에 참석하였는데 친아들, 며느리인 당신네가 절을 하지 않으면 어디 될말인가?” 하며 그들의 등을 밀어 내 보내여 절을 하게 하였던것입니다. 한심한 일이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 사람들을 나쁘다기보다 그런 미신사상을 갖고 있다는것을 질책하여야 할것이며 그런 미신사상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할것입니다. 저는 이 방면의 조선족풍속을 알아 보려고 며칠 전 연변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에서 력사연구실 주임, 대리소장직을 맡으셨고 30여 년간 중국 조선족력사와 풍속을 연구하여 오신 천수산 선생님을 찾아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의론하여 보았는데 천선생님은 조선족의 풍속에 대하여 이야 기를 하시면서 옛날 조선왕조시기에 효(孝)를 중시하였기에 조정에서 령을 내려 조상이 사망하면 그 후손들이 3년내에 결혼을 못하고 근친이 사망하면 1년내에 결 혼을 못한다고 하였으며 또 우리 풍속에는 결혼당사자가 동네집 장례거나 방계존속의 장례에 참석하는것을 꺼려 하였지만 직계존속의 장례에는 결혼여부를 불문하고 참석하며 결혼당사자의 부모들은 어떠한 장례에도 다 참석할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결혼당사자들이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례배를 올리고 결혼식을 치렀지만 지금은 사당이 없기에 한국에서는 결혼을 앞두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한 다음에 결혼식을 치른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한국에 다녀 왔고 한국 TV련속극을 보아도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우리 조선족풍속이라도 지방마다 좀씩 다를수 있고 집집마다 좀씩 다를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이거나 다른 민족의 풍속에도 없고 그 어떤 력사기재에도 없는《새집에 드오, 자식이 결혼해서, 며느리 혹은 안해가 임신해서.》란 리유로 응당 참석하여야 할 장례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공중들의 질책을 받게 됩니다. 산소를 가거나 장례에 참석하는것은 어디까지나 그 본인의 자유이고 시대가 달라졌는데 꼭 옛날 풍속에 따라 해야 한다는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미신적 사상으로써 이런저런 구실을 대지 말자는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해에는《금년 청명에는 어찌어찌하여 산소에 가지 않는다.》, 《금년은〈과부해〉이기에 결혼하면 과부가 된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천선생님도 그 어떤 풍속에서도 그 어떤 력사기재에서도 이런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입니다. 정확한 통계수자는 없지만《과부해》에 결혼하였기에 과부가 되였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해에 결혼한 사람들이 깨알 쏟아지듯 금슬좋게 잘 사는 부부들을 수두룩히 보았습니다. 저의 한 친구는 자기가 새집에 이사하였건말건 자기집에 결혼식이 있건말건 가리지 않고 친척, 친우, 동네집 장례에 다 참석하고 심지어 렴습(殓袭이란 죽은 사 람의 몸을 씻은뒤에 렴포로 묶는일)을 하고 명정(铭旌이란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品阶, 관직, 성씨를 기록한 기)까지 써주고 있습니다. 《새집에 드오, 자식이 결혼해서, 며느리 혹은 안해가 임신해서.》라는 리유로 산소를 못 간다든가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데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견해는 이런 리유가 어느때 어디에서부터 나왔다는것은 딱히 모르나 산소가기 싫거나 장례에 참석하기 싫은 사람들이 일부러 구실을 만든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할수 있는 근거라면 옛날부터 그 어떤 민족의 풍속이거나 그 어떤 종교리론에도, 무당들도 이런 리론을 내놓은것이 지금까지 알려진것이 없다는것입다. 그런데 지금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진짜로 믿고 있는데 참으로 가소롭게 생각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반드시 유신론을 타파하고 유물론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야 할것이며 그릇된것은 반드시 시정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젊은이들과 이후의 세대들에서 이런것을 우리의 전통풍속으로 잘못 리해할수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의 후대들에게 옳바른 전통을 이어가도록 정확하게 인도하는것이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4월 2일
116    집과 자가용을 사주는것도 부모들의 의무로 되여야하는가? 댓글:  조회:11830  추천:40  2012-03-2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주청룡   37. 집과 자가용을 사주는것도 부모들의 의무로 되여야하는가?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집과 자가용을 사주는것도 부보들의 의무로 되여야 하는가?”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자식들이 결혼한다면 부모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이 사회를 보면 자식들의 결혼에 대하여 기쁨보다 근심이 앞서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아들을 가진 저소득층의 부모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지난세기 8,90년대까지는 부모들이 색텔레비. 록음기, 세탁기 등을 갖추어 주면 결혼 당사자들은 만족이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생활수준이 제고되면서 지금의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전의 그 물질적 요구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모 녀성은 부부간이 다 집체 기업단위에서 일하다가 둘 다 정리실업당하고 로무시장에 나가서 일당으로 일하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여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들을 공부를 시키기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하여 2000년도 여러 곳에서 7만원의 돈을 꾸어가지고 브로커를 통하여 한국 로무길에 올랐습니다. 한국에 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돈을 벌어 빚도 물고 아들의 공부 뒤바라지도 다 하였습니다. 브로커를 통하여 가다니 불법체류여서 아들이 대학에 간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아들 보러 오지 못하고 굽석굽석 일만 하였습니다. 십년 넘어 벌었으니 아들을 대학공부를 시키고도 손에 쥔 돈이 적지 않았습니다. 불법체류라 숨어다니면서 일하다니 서울구경도 바로 못하고 금년에 아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니 고달팠던 10년 한국생활을 접고 귀국하였습니다. 이 돈이면 집도 사고 아들을 장가도 보내고 아들집도 살수 있겠다고 흐뭇한 생각을 굴리면서 귀국하였습니다.   귀국하여 우선 아들의 집부터 사고 장식하여 아들의 결혼 준비를 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집은 아들의 결혼식을 치르고 천천히 사려 하였던것입니다. 그런데 며느리 될 사람이 시어머니에게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자가용차를 사줄것을 요구할줄이야. 너무나도 어이없었습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가도 30분도 걸리지 않을 자그마한 도회지에서 출근길도 10분이면 족할터인데 무슨 자가용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허영심에서였습니다. 박모 녀성은 지금 자가용을 사 줘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들의 집을 사야 하는가 고민중에 있다고 합니다. 자가용을 사주면 자기네는 한평생 부엌에 불을 짚이는 온돌집에서 살아야 하고 안 사주면 앞으로 고부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박모 녀성이 사랑하는 가정을 떠나 10년 타향살이를 그것도 불법체류라 숨어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겠는가하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의 남편도 안해를 외국에 보내고 가정살림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것입니다. 10년 이런 고생을 하였으면 인젠 그들이 60이 넘은 나이라 아들을 장가보내고 행복한 로후를 맞아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며느리 될 사람은 자기들은 현시대 사람들이므로 현시대에 맞게 생활하여야 하지만 시부모들은 늙은이기에 온돌집에서 살아도 된다는 식이였고 아들은 부모들이 자기를 기르고 대학공부까지 시키면서 이렇게 고생을 하였으므로 인제는 행복한 로후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좀만 가지였다면 자기 미혼부의 그런 요구를 단연히 거절하였을것입니다.   다음 한가지 사례를 보면 김모 남자애와 리모 녀자애는 초중이나 겨우 졸업하고 5,6년간 아무런 일도 하지않고 부모의 등에 얹혀사는 캉가루족으로서 PC방에서 만난 친구사입니다. 김모는 녀자친구의 환심을 사려고 어머니가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자기의 집까지 마련하였다고 리모를 구슬렸습니다. 녀자친구가 그말에 솔깃해 하는 것을 눈치챈 그는 부모들에게 자기가 한 녀자애를 친구로 사귀였는데 그 애가 집이 있으면 혼인을 동의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모들은 네가 집이 없는것을 어떻게 하는가고 말하자 그 애는 자기가 미리 짜 놓은 계획을 부모들에게 털어 놓았다. 즉 먼저 세집을 맡아놓고 집이 있다고 하고 결혼한 다음 다시 보자고 하였습니다. 부모들 역시 그러한 생각이였습니다. 지금 남자들이 장가들기 힘든 세월에 자기 자식이 제구실도 못하는지라 아들의 혼인이 근심되여 먼저 그렇게 하고 보자는 생각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 뒤일을 수습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금방 장식하여 놓은 새집을 세 맞고 가면극을 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가면극을 논다지만 그 탈이 벗겨지는 날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 그 애 아버지는 고령동포비자로 한국에 나가서 건설현장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달 후 사고로 더는 일할수 없게 되여 귀국하였습니다. 귀국하게 되니 더는 가면극을 놀수 없게 되였습니다. 감정기초로 이루어진 혼인이 아니라 집을 내걸고 맺은 혼인이 그 가면극의 탈이 벗겨지자 결과가 어떠하리라는것은 말하지 안아도 뻔한 일이였습니다.   혼인이란 이성지간에 튼튼한 감정기초로 이루어야 하지 물질기초로 이루어 지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튼튼한 감정기초로 이루어진 혼인은 생활이 그 어떤 역경에 처해서도 서로 사랑하고 리해를 하면서 부부관계를 원만히 유지해나가고 온전한 가정구조를 이루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기초로 이루어진 혼인은 조금이라도 서로의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그 혼인이 파탄되고 맙니다.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18세 후부터는 모든 것을 자립하게 한다고 합니다. 얼마전 한국인 기업가 박명서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는 천만 자산을 갖고 있지만 아들에게 “나는 너에게 대학공부까지 뒤바라지를 하고 그다음부터는 결혼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자립하여야 한다. 나의 이 자산은 우리의 로후생활과 자선사업에 쓰는것이다. 이것을 바라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아들도 “예, 저도 부모님의 신세에 대학을 졸업하였으니 인제부터는 모든 것을 자립하며 앞으로 아버지보다 더 큰 사업을 벌리려 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자식들의 생활에 대하여 부모들이 어디까지 대여 주는가 하는 것은 집집마다 다 다를수 있고 부모들의 자원적인 행위이고 자식들에게 자산을 물려주는것은 정상적이라 하겠지만 자식들의 집을 사준다든가 자가용을 사준다든가 하는것을 부모의 의무로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식들도 자기들은 현시대 사람들이므로 현시대에 맞는 생활을 하여야 하지만 부모들은 늙었기에 옛날 방식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여생이 많지않은 부모들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생활하겠는가를 생각하여야 하지 절대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부모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결혼한 다음에는 집 같은 것은 집담보대출(按揭)의 방식으로 사고 자가용이 필요된다면 역시담보대출의 방식으로 사고 정기적인 환불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젊은 사람들이 어미가 말라죽을 때까지 어미의 즙을 빨아먹는 거미가 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3월 26일
115    체면소비를 삼가하였으면 댓글:  조회:8492  추천:36  2012-03-1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6. 체면소비를 삼가하였으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체면소비’를 삼가하였으면”하는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사회의 물질생활의 제고로 하여 향수를 추구하고 사치를 추구하며 더 높은 물질적 소비를 하게 됩니다. 물질생활의 제고에 따라 단위의 실정에 맞게, 지도자의 신분에 맞게, 한 가정의 경제 형편에 맞게 소비를 하는 것은 모두 정상적인 소비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상에는 ‘체면소비’가 한낱 바람으로 불고 있습니다.   지금 사회상에서 말하는 ‘체면소비’란 주로 부정적 의미에서 자기의 신분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하는 소비를 말합니다.   아래에 몇가지 사례를 들어 봅시다. 몇 년전, 모 단위에 원래의 지도자가 제 2선에 물러나고 새로 젊은 지도자가 부임되여 왔습니다. 전임지도자는 년세가 많으신 분으로서 아주 소박하게 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업열정과 효률은 젊은이들에 비하여 났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새로 부임되여 온 지도자는 오자마자 우선 자기의 사무실부터 대 개조를 하였습니다. 즉 사무실을 뜨르르하게 장식하고 컴퓨터로부터 시작하여 책장, 사무상, 소파에 이르기까지 전부 새것으로 갖추어 놓았습니다. 직원들은 그럴만은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젊은 간부이니 자기의 신분에 맞게 사무실도 장식하여야 지도자의 체면이 선다는것이겠지 하는 생각이였습니다. 하지만 돈은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은 뜨르르하게 장식하였지만 사업효률은 그닥잖았습니다. 3년 후 또 지도자가 바뀌였는데 그 지도자 역식 그러하였습니다. 사무실을 다시 새롭게 장식하고 책장도 더 큰 것을 갖추어 놓고 도서실의 책들을 가져다 가득 채워 넣고 학문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였습니다 아마 사람에 따라 장식에 대한 미적 감상도 다르겠지만 장식에 대한 미적 감상이 다르다 하여 사업에 영향을 주는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다른 한 단위에서는 새로 온 지도자가 전임 지도자가 쓰던 승용차르 팔아버리고 새로 고급 승용차를 샀다고 합니다. 승용차를 고급으로 바꾸어야만이 그 지도자의 체면이 서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단위의 사례들을 보면 사무실이든 승용차든 모두 고급으로 하여야 신분에 맞게 자기의 체면이 선다는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공산당 당원지도간부의 청렴하게 사업할데 관한 약간의 준칙》제 6조에는 “겉치레를 하기 좋아하고 호화스럽고 공금을 물쓰듯하고 떠벌려 랑비하는것을 금지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표준을 초과하여 사무실과 사무용품을 배비(配备)하지 못한다”, “규정을 위반하고 승용차를 사거나 바꾸지 못한다.”란 조목도 있습니다. 이런 규정에 비하여 보면 이 두 단위의 지도자들의 행위는 모두 당의 규률보다 자기의 체면을 앞세우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으로 됩니다.   자식들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른다든가 생일을 굉장히 치른다든가 하는 것은 기관의 지도간부거나 큰 기업가들로부터 불어 내려온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기타 연회를 간소하게 치르면 자신의 신분과 체면에 맞지 않는것으로 여기며 잔치에 하객이 많은가 적은가를 자기의 신분과 체면을 비기는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객이 많으면 지위가 높고 체면에 맞는것이고 하객이 적으면 자기의 신분과 체면에 맞지 않는것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과소비와 체면소비 바람으로 하여 곤혹을 겪는 것은 저소득층의 사람들입니다. 저의 한 이웃은 삼륜차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입니다. 얼마 전에 아들의 결혼자치를 치르게 되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남들보다 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남들만치는 치러 주려고 친척, 친구들에게서 돈을 꾸어 아들의 잔치를 치러 주었는데 하객들의 보기에도 체면이 깎이게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체면 뒤에 오는 경제적 부담은 더구나 컸습니다. 비록 체면은 깎이지 않았다지만 그 많은 빚은 언제 갚을수 겠게는가 하는 것은 그 자신도 알수 없습니다. 만약 체면소비라는 것이 없이 자기집의 형편에 맞게 간소하게 결혼식을 치렀다면 그렇게 큰 빚더미에 눌리우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저는 한국에 가서 몇번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였는데 한국의 례식장의 식당을 보면 뷔페식이였습니다. 하객들은 모두 자기절로 먹고싶은것을 골라 먹을만치 담아가지고 오니 마지막에 채가 남아 쓰레기로 처리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여 누구 하나 주인측이 손님접대가 그닥잖다고 나무람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규례로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이런 소비를 따라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의 체면을 내세우기 위하여 공금을 탕진하면서 사무실을 호화롭게 장식한다든가 고급승용차를 산다든가 하는 것은 우선 당의 규률에 어긋나고 군중들의 불만을 자아내게 됩니다. 일반 승용차를 타고 다니거나 사무실을 현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깨끗하게 꾸리여 놓고 열심히 사업하고 사업효률을 높인다면 오히려 군중들의 눈에는 더욱 돋보일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3월 19일
114    국민직접선거만이 민주주의인가? 댓글:  조회:14157  추천:70  2012-03-13
지금 중국을 적대시 하는 서방 나라에서는 중국의 정치를 일당독재요, 인권이 없는 나라요 하면서 중국을 공격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보면 어떤 네티즌들 가운데서도 모모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일당독재라는 글이 떠 오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부 사람가운데서도 이와 같이 인식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인식하는 리유라면 자본주의 국가는 대통령도 국민이 직적 선거를 하는데 중국은 국민이 그런 선거권이 없다는것이다. 필자는 오늘 이에 대하여 약간한 견해를 말하려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면 우선 무엇이 민주인가부터 말해야겠다. 민주란 인민이 정치생활과 국가사무에 참여하고 자기의 의견을 말할수 있는 권리를 향수할는 것을 말한다. 외국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도 역시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말하므로 우리나라의 민주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을 토대로한 인민민주독재(专政)의 사회주의 국가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인민민주독재란 인민내부에 대하여서는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반동파에 대하여서는 독재를 실시하는것을 서로 결합한것으로서 로동계급(공산당을 통하여)이 령도하고 로농동맹을 토대로 한 인민민주정권을 말한다. 헌법 제2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한다. 인민이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각급인민대표 대회이다.”라고 하였다 전국인민대표대회란 우리나라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서 광범위한 대표성을 띠고 있는바 각 성, 자치구, 직할시인민대표대회, 특별행정구와 인민해방군에서 선출한 대표로 구성며 각 소수민족은 모두 반드시 적당한 인원수의 대표가 있다. 때문에 우리 조선족들도 적당한 인원수의 대표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하여 우리 조선족을 대표하여 회의에서 의견과 건의를 제기하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한명의 대표가 매기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헌법 제3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기관은 민주 집중제 원칙을 실행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각급인민대표대회는 모두 민주선거를 통해 산생되며 인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인민의 감독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민주집중제란 민주기초상에서의 집중과 집중지도하에서의 민주를 서로 결합한 제도이며 우리나라 당정기관과 인민단체의 조직원칙이다. 민주를 발양하는데는 여러가지 형식이 있다고 본다. 선거권이 있는 공민이 직접 투표를 하는것도 민주이고 대표를 선거하여 그 대표가 투표를 하는것도 역시 민주라고 본다. 이 두가지 형식의 민주도 서로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고 본다. 선거권이 있는 공민의 직접 투표는 공민 본인이 직접 투표를 하기에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발휘 할 수는 있는 우점은 있지만 결점이라면 일반 평민들이 나라 고위급의 피 선거인에 대하여 완전한 정황료해가 없는 기초에서의 투표로 된다. 중국은 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 제도이다. 기층조직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대표대회기간에 충분한 토론과 온양을 거친 다음 대표들이 투표를 한다. 대표대회 제도의 우점은 대표들이 제출한 의견과 건의들이 대회주석단에 집중되고 다시 그것이 여러 대표들에게 내려가 충분한 온양을 거처 다시 집중된다. 이렇게 반복적인 토론과 온양을 거친다음 마지막으로 대표들이 투표를 하게 된다. 결점이라면 선거권을 가진 공민이 직접선거를 하지 못하는것이다. 중국의 실정에서는 대표대회제도가 직접투표보나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기간에 정협위원들이 나라의 대사이 대하여 충분히 자기의 의견과 건의를 제기하여 인민대표대회에 교부 된다.   그리고 어떤 외국사람들과 우리의 일부 사람들 가운데서도 늘 중국을 일당독재라고 하는데 중국공산당 당장에는 “인민대표대회제도,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 민족구역자치제도 및 기층군중자치제도를 견지하고 완벽히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현시대의 정치제도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의 의미를 정확이 리해를 하지 못하고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일당독재로 리해를 하고 있데 우리 나라는 당장에 똑똑히 지적하다시피 “중국공산당의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이지 ‘일당독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하고싶다.
113    뢰봉정신은 영원히 빛날것이다 댓글:  조회:11872  추천:32  2012-03-07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5. 뢰봉정신은 영원히 빛날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뢰봉정신은 영원히 빛날것이다.”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금년은 뢰봉동지가 희생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3월 5일 모택동동지께서 “뢰봉동지를 따라배우자”란 제사를 쓴 때로부터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서 뢰봉을 따라배우는 활동이 발랄히 전개되였으며 뢰봉정신도 전국 각지에서 피여났습니다. 뢰봉정신의 실질과 핵심은 간고분투하고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며 사심없이 헌신하는것입니다. 뢰봉정신은 이미 우리 이 시대의 정신문명의 대명사로 되였으며 선진문화의 표징으로 되였습니다. 주은래총리께서는 뢰봉정신을 전면적이고 투철하게 “애증이 분명한 계급립장, 언행이 일치한 혁명정신, 집단의 리익을 위하여 개인의 리익을 희생하는 공산주의 풍격, 헌신적으로 분투하는 무산계급투지.”라고 괘괄하였습니다. 모택동동지가 뢰봉을 따라배우자라고 호소한 이듬해부터 초원의 소년영웅 룡매와 옥영자매, 구양해, 왕걸, 초유록, 공번삼 등 영웅들이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용솟음 쳐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난세기 8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처음으로 겪어보는 시장경제에 들어서면서 뢰봉정신에 대하여 한때 모호한 인식을 갖게되여 뢰봉을 따라배우는 열조도 식어갔으면 어떤 사람들은 이게 어느때라고 지금도 뢰봉정신을 말하는가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여 한때 “뢰봉이 외국으로 갔다.” “뢰봉이 3월에 왔다가 4월에 돌아간다”는 유감스러운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말들은 확실히 한때 중국에서 뢰봉정신이 희박하여 졌으며 모주석의 뢰봉을 따라배우자는 제사를 기념하여 형식적으로 3월을 뢰봉을 따라배우는 달로 하였다는것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개혁개방이 더욱 심화되고 시장경제가 더욱 활발히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함에 따라 계획경제시대나 시장경제시대나 할것없이 뢰봉정신은 영원히 빛을 뿌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였습니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실례로는 《2010년 중국10대 감동인물》중의 한 사람인 안산 광업공사의 곽명의입니다. 그는 매일 2시간 이상식 일찍 출근하여 15년의 루계로 하면 15000여시간이 되는데 5년의 공작량을 더 한셈이 됩니다. 그는 20년을 무상헌혈을 하였는데 루계로 6만미리리터로서 자기 총혈액량의 10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는 아직도 식구 셋이 거의 30여년 전에 지은 40평방메터도 안되는 단칸집에서 살면서 씻은듯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16년 동안 희망공정과 재해지구에 10여만원을 헌납하였으며 선후로 180여명의 빈곤학생을 도와 나섰습니다. 그는 이렇게 당대의 뢰봉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뢰봉따라배우기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것을 볼수 있는데 연길시 북산가두의 뢰봉반들을 례로 들수 있습니다. 2007년 첫 ‘뢰봉반’이 건립되여 지금은 59개의 뢰봉반이 형성되였으며 성원은 만여명으로 발전되여 빈곤가정과 장애인을 돕고 고아원, 양로원, 독거로인들을 찾아가서 사랑의 손길을 돌리고 있으며 의료구제, 법률원조, 평민봉사 등 지원자 활동을 적극 벌리고 성금을 모아 재해구에 보내기도 합니다. 하여 이 가두는 전국 우수지원자봉사대상의 영예도 안아왔습니다. 원 연변주 당위 당사연구실에서 사업하셨고 이 가두의 첫 ‘뢰봉반’의 창시자이자 현재 고문인 80세의 한무길 로인은 의지가지 없는 독거로인에게 5만 5천원을 내여 35평방메터되는 온돌난방 아빠트를 사 주었으며 그 외에도 불우한 이웃과 학생들을 돕는데 든 돈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북산가두 로인대학 부교장 겸 강사직무를 담임하면서 학교, 지역사회, 병원, 교도소 등 곳에 가서 의무강의를 했는데 2002년부터 시작해 약 300여차의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 가두의 단산사회구역 ‘로인뢰봉반’ 반장인 맹인 김봉숙할머니도 이반의 성원들을 이끌고 뢰봉따라배우기 활동을 적극 전개할뿐만 아니라 본인은 결혼반지를 팔아 문천지진구조에 기부해 전국을 감동시킨 일이며, 불우한 학생들을 도와 대학꿈을 이루게끔 사랑을 베푼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최근에 중공중앙 판공청에서 《깊이 있게 뢰봉을 따라배우는 활동을 전개할데 대한 의견》을 발부하였고 교육부의 통일적인 배치에 따라 전국적인 중소학교 뢰봉따라배우기 ‘6가지 활동”이 5일에 전면 가동되였습니다. 뢰봉은 짧은 일생이였지만 그의 실제적 행동으로 참된 인간의 사상도덕을 보여주었고 평범한 일터에서 장려한 인생의 시편을 엮었으며 사람들이 경모하는 ‘뢰봉정신’이란 금자탑을 싸았습니다. 뢰봉정신은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의 체현이고 사회진보의 시대적 조류이며 우리당의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근본 취지의 체현으로서 영원히 퇴색하지 않고 빛뿌릴 기발로 될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3월 12일  
112    3.8절이 의의있는 경축활동으로 되였으면 댓글:  조회:9885  추천:21  2012-02-29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33) 청해    3.8절이 의의있는 경축활동으로 되였으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3.8절이 의의있는 경축활동으로 되였으면”하는 내용으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이제 며칠 지나면 3.8국제로동부녀절이 다가옵니다. 3.8국제로동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의 유래를 보면1909년 3월 8일 미국의 섬유 녀성로동자 15,000여명이 시카코에서 근무 시간 단축, 임금향상, 투표권, 아동공사용 금지 등을 요구 하는 시위를 단행하였으며 이것이 미국과 세계 각국 녀성들의 옹호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해인1910년 8월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국제사회주의녀성회의”에서 독일의 로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의 제의 하에 미국의 녀성로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3월 8일을 국제로동부녀절로 정하였고 중국에서는1949년12월,중앙인민 정부 정무원에서 매년 3월 8일을 부녀절로 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유엔에서는1975년에 매년 3월 8일을 국제부녀절로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3.8절의 유래를 보면 녀성해방운동으로부터 기원된것입다. 우리 나라에서는 새중국이 창건된 후 부녀들이 많은 해방을 가져 와 남녀평등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져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녀들의 자녀생육과 번중(繁重)한 가무로동에서 해탈되지 못하고 또 생리상에서 남자들과의 체질차이로 하여 너무 힘겹게 일하는것을 고려하여 나라에서는 부녀들이 남자들보다 일찍 퇴직하는것으로 부녀들의 정신상, 육체상의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계획생육으로 하여 아이를 하나씩 낳아 기르고 있으며 현대화한 가정기물이 구비되였고 생활수준의 제고로 하여 부녀들이 번중한 가무로동에서 철저히 해방되였습니다. 하여 인제는 부녀들의 남녀평등과 사업의 욕구로 하여 퇴직년령을 남성들과 같이 하자는 주장이 많이 나와 이 방면의 사업에서 탄성퇴직제도에 대하여 론증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난 세기 70년대 말까지 3.8절이 나라의 법적인 명절로 되여 있었지만 기층에서의 집단적인 경축행사는 극히 드물었었는데 80년대에 들어서면서 3.8절 경축활동이 열기를 띠게 시작하여 지금은 단위마다 집단적인 경축행사로 되는것이 규례로 되고 있는데 이것은 녀성을 존중하고 녀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 한낮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경축행사도 형식적으로 되지 말고 실질적이고도 의의있는 행사로 되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적지 않은 단위의 3.8절 경축행사를 보면 실질적인 내용이 없이 그저 먹고 마시는데 끝이는데 극 소수의 사람들은 3월 7일에는 3.8절 영접일라며 먹고 마시고 3월8일에는 3.8절을 경축한다고 먹고 마시고 3월  9일에는 3.8절을 보낸다고 먹고 마시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3.8절을 경축하느라고 먹고 마시고 노래방을 드나들면서도 3.8절의 유래도 모르고 그 경축의의도 모르고 그저 3월8일이 부녀절이라는 정도 밖에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작고한 연변연극단의 리영근 선생님이 출연한 일인극《보고전의 보고》도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마구 먹고 마시는 기풍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극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3.8절을 실질적으로 의의 있게 경축하려면 우선 3.8절의 유래와 경축의의에 대하여 독똑한 인식을 가지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자면 매개 단위마다 매년 3.8절 경축활동을 할 때에 령도에서는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경축활동에서 3.8국제로동부녀절의 유래를 똑똑히 해석하고 경축의의에 대하여 설명하며 한해 혹은 몇 년간의 녀성사업을 총화하고 녀성들이 사업에서 거둔 성과들을 충분히 긍정하고 앞으로 녀성사업과 기타사업에서 해야할 일들을 제시하며 가정살림에서거나 사업에서 성적이 돌출한 녀성을  표창, 장려하는것으로써 그들을 고무격려 하여야 하며 모든 녀성들이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신심과 용기를 갖고 사업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물질생활수준이 많이 제고 된 현실에서 경축활동에서 회식이 동반되는것을 그릇된 작풍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 의미도 없이 련 며칠 먹고 마시며 떠벌려 랑비하는 기풍은 금지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2월27일 
111    해외로무와 자식교육의 페단 댓글:  조회:9631  추천:30  2012-02-20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32. 해외로무와 자식교육의 페단  리룡국 주청룡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길림성 룡정중학교 교육과학연구처 주임 리룡국선생님과 같이 쓴 “해외로무와 자식교육의 페단”이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개혁개방 이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외로무를 나가게 되였으며 해외로무는 짧은 시간내에 많은 돈을 버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특히 한국정부의 방문취업제 문이 열리여 많은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서 외화를 벌어들여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생활도 많이 펴이였습니다. 연변의 정황을 보면 11차5개년 계획기간에 조선족들이 해외로무에서 외화를 벌어들인것이 41.3억 딸라로서 주 재정수입의 총액과 비슷하며 외화수입이 가장 많을 때인 2006년도에는10억6천만 딸라로서 그 해 주재정수입의 2배를 초과 하였으며 국민생산총액(GNP)은 전성에서 첫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하여 농민들도 도시에다 아빠트에 고급 가정기물들을 사놓고 현대화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로무로 하여 생활은 많이 펴이였습니다 하지만 자식교양에서는 엄중한 위기에 처해있다는것은 간과 할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하여 “외국에 가서 돈은 벌어왔지만 자식농사는 흉년이다”란 말까지 나옵니다. 최근 연변조선족자주 교육국의 통계에 의하면 결손가정학생수는 5만 여 명으로 전체 학생수의 30%를 넘어섰으며 그 중 조선족 결손가정학생이 3만 여 명으로서 61.3%를 차지하였습니다. 조선족학생 중 결손가정학생은 50%를 웃돌고 어떤 학교는 70, 80% 이상이며 지어 어떤 학급은 90% 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결손가정 정황을 보면 그 원인이 부모의 사망, 리혼, 혹은 가출도 있었지만 주로는 해외로무로 인한 결손가정이였습니다. 결손가정 학생들을 보면 량부모가 다 있는 학생들에 비하여 많은 취약점을 보이고 있는데 그 주요한 표현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유가 분산되여 있습니다. 결손가정 학생들은 불온전한 가정구조로 하여 늘 머리가 복잡하고 사유가 분산되여 정신상에서 초점을 잃고 선생님의 강의에 집중 못하며 결국에는 학습성적이 뚜렷이 내려 갑니다. 이리하여 학습에는 흥취를 잃고 늘 PC방을 다니거나 사회상의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며칠씩 밖에서 보낼 때가 있습니다. 할머니와 같이 있는 한 남학생은 부모들이 해외로무를 나간 다음 머리가 복잡하여 지면서 과당집중이 되지 않고 학습에 흥취를 잃고PC방으로 드나들던 것이 나중에는 사회상의 어중이 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범죄행위를 저질러 파출소에 몇번씩 갔다 오군 합니다. 2 무작정한 행위가 나옵니다. 소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부모들이 모두 한국에 돈벌러 나가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였습니다. 하루아침 이 애가 학교로 떠날 때 할머니와 돈30원을 달라고 하자 할머니는 애가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고 주지않자 창문에 뛰여 오르면서 할머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층집에서 뛰여 내리겠다고 하면서 할머니를 공포에 떨게 하는것으로써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습니다. 하여 할머니는 어찌할 수 없이 아이에게 빌면서 30원을 주어 학교에 보내였다고 합니다. 3.  심리상태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부모와 같이 있는 학생들은 생활에서 부모의 사랑으로 심리상에서 만족감을 느끼지만 결손가정 학생들을 보면 부모사랑의 결핍으로 하여 심리상태가 늘 불안전하고 위축정서를 보이며 어떤 학생들은 우울증까지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해외로무를 가고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던 한 녀학생은 어머니의 사랑이 매우 그리웠습니다. 몇 년후 어머니가 돌아오자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살뜰히 대할 대신 떠돌이 나그네 대하듯 하더니 한달도 되지 않아 아버지와 리혼하고 다른 남편을 하여 먼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인젠 어머니의 사랑에 안겨 응석을 부리며 행복한 살림을 하려 하였는데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그애는 심리상의 타격으로 하여 학습성적이 급 하강하고 동학들과 접촉하기 실어하는 등 우울증세를 보이던것이 나중에는 삶의 희망을 잃고 층집에서 뛰여내려 자결까지 하였던것입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바라는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동한 념원입니다. 외지에 나간 부모들은 아이들을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다른 가정에 위탁하여 공부를 시키면서 “네가 공부만 잘 하여라 돈은 얼마든지 있다.”식으로 교육을 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금전만능의 역반응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해외로무에서 이상과 같이 경제적 수입과 자식교양에서 모순되는 점들은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골치거리로 되고 있습니다. 룡정중학교에서 다년간 결손가정 학생들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체험한데 의하면 가정에서의 자식교육은 온전한 가정구조를 가진 환경에서 부모의 직접적인 사랑과 교육이 가장 좋습니다. 가정형편이 꼭 해외로무를 나갈 정황이라면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하여 부부가 동시에 나가지 말고 한 사람은 남아서 아이와 같이 생활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량 부모가 다 외출할 경우에는 아이들에 대한 모성애 방면으로 보면 이모나 고모에게 위탁하여 공부를 시키는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방면으로 보면 학교선생님들이나 교육부문에서 꾸리는 사랑의 집에 위탁하여 공부를 시키는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을 어디에 위탁하든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좋기는 일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전화거나 인터넷 화상채팅을 하는것으로써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주는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심령에 나에게는 부모가 있다. 오늘저녁은 부모에게서 전화오는 날이다. 나는 부모의 사랑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심리적 안정을 느끼도록 하여야 합니다. 수탁인은 단임교원 혹은 심리전문가들을 찾아 아이에 대한 심리자문을 하여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여 그에 따른 교육조치를 대하는것이 좋습니다. 결손자녀교육에 대하여 응당 학부모들이 잘 파악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지만 이상 룡정중학교의 결손가정 학생들에 대한 몇가지 교육체험을 참고로 보다 좋은 방법을 취하여 해외로무와 자식들의 교육관계를 잘 처리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2월20일 
110    다단계판매함정에 빠져들지 맙시다 댓글:  조회:9867  추천:12  2012-02-13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1. 다단계판매함정에 빠져들어가지 맙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다단계판매함정에 빠져들어 가지맙시다”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우리 조선족사회에서 보면 외국에 가서 뼈빠지게 일하여 벌어 온 돈을 자기의 능력에 맞게 새로운 창업에 쓰는것이 아니라 비법적인 집금에 처 넣고 본전도 찾지못하고 빈 털털이로 나앉은 사람들을 적지않게 볼수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들이 이런 집금사건에 말려 든 일이 지금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몇번 있었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연변에는 한옥희의 비법 《우전집금》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에서 피해인은 2만3천여명, 불법집금 금액은 3억 6천만원에 달했습니다. 그 번 사건으로 하여 수많은 가정에 불안을 가져왔으며 부부간에 리혼하고 친척이나 가까웠던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게 된 일들이 수다하였습니다. 그리고 43명이 집을 잃고 100명이 빈곤호로 전락하였으며 2명은 그 빚에 눌리워 일어못나고 자결까지 하였습니다. 그 뒤10년을 사이두고 또 2002년12월부터 2006년 말까지 비법적인 길림《해천집금》사건이 있었습니다.  연변 주공안국 《해천》비법집금전문수사조에서 증실한데 따르면 이 사건에 말려든 연변의 피해자들은 2000명이 넘으며 피해금액만 해도 2억100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전집금》은 월 리식3%로 유혹하였고 《해천비법집금》은 반년 리식 15%, 년 리식 30%, 3년리식 35%로 사람을 유혹하였습니다. 기실 조금만 리지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기업을 운영하든지 얼마의 리윤을 내면 이렇게 높은 리식을 돌려 줄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얼마든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사건 조작자들의 감언리설에 유혹되여 그자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가고 맙니다.   연변의 한 녀성은 해천유한회사에 67만원이나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끌려든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몇 년씩 외국에 로무를 나가 뼈빠지게 돈을 벌어온 사람들이였습니다.   이 두 비법 집금사건이 정부에 의해 취체된 후 우리 조선족들은 또 비법적인 《다단계판매》 에 말려 들고 있습니다. 국무원에서 다단계판매에 대한 금지령을 내린지도10년이 많이 넘었는데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 다단계판매가 성행하고 있으며 우리 조선족들이 거기에 말려들어 몇만원, 몇십만원씩 처넣고 빈 털털이로 나앉았거나 지금도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다단계판매란 한 판매원이 다른 사람을 가입시키고 새로 가입한 사람이 다시 다른 판매원을 구하는 것과 같이 금자탑식으로 판매집단을 확대하여 물건을 파는 특수한 방식을 말하는데 조직자 혹은 경영자는 이런 가운데서 비법리득을 얻습니다. 이런 판매형식은 나라의 경제질서를 엄중히 어지럽히고 사회의 안정적인 경영판매방식에 영향을 주기에 국무원에서는 다단계판매에 대하여1998년4월에 이미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3년전에 한국에서 불법다단계업체인 장한평의“(주) 나눔의 사람들”에 재한 중국조선족들이 말려 든 것이 5천 여명이 거의 되고 그 피해금액은 한화로 500억원에 웃돈다고 하며 흑룡강의 60대 부부는 한국서1년 동안 모은 2400만원 밀어 넣고연길시의 전모는오빠, 올케언니, 사촌언니, 친구, 등을 동참시켜 무려5천만원을 처넣었으며 이런 일로 하여 심장병, 고혈압 환자들이 모진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거둔 사례도 있습니다 지금 광서쫭족자치구 남녕시에서 또 “순 자본운영”이라는 다단계판매 형식으로 비법집금을 하고 있는 불법집단이 성행하고 있는데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의 보도에 의하면 광서 전역에 우리 조선족들이 거기에 말려 든것이 수만명에 달하고 다른 신문들의 보도에 의하면 남녕에만 수천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며칠 전 어느 한 모임에서 남녕에 같다 왔다는 사람의 말을 빈다면 “심수는 신 중국의 제2대 지도자가 경제특구로 건설하였고 상해에는 제3대 지도자가 포동신구(浦东新区)를 건설하였고 지금은 나라에서 ‘서부대개발’ ‘부부만개발건설’을 하는데 남녕은 당중앙의 모모 지도자가 경제특구로 건설하는데 발전성이 아주 크므로 지금 투자를 하면 앉은자리에서 대 부자가 되고 빨리 하면 빨리 할수록 그 리득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5만원을 투자해 '주주'가 된 후 매일 친구들을 만나 차나 마시며 한담이나 하고, 이름다운 풍경구 유람을 다녀오면 된다. 이렇게 2년간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고 나면 그대는 이미 780만, 심지어 1000만원을 소유한 부자가 될것이다.”라는 감언리설로 많은 군중을 유혹시킵니다. 삼촌의 이러한 감언리설에 유혹되여 온 흑룡강의 김모는 아버지를 졸려 땅을 판 돈에다 여기저기에서 꿔서 모은 돈16만원을 투자하여 그 집단에 가입하고 남녕에 머문지 5개월째 신 회원을 끌어 들이지 못해 돈 한푼도 벌지 못하고 16만원 외에도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비행기표갑만 하여도 수만원 날린셈이라고 합니다. 하여 그는 지금 퇴출하려 합니다.   그의 삼촌 역시 한가지입니다. 그도 하위 판매원을 자기 조카 한 사람밖에 발전시키지 못한데다가 조카마저 퇴출하겠다니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을 끌어 들이기 위해 한국에서 일하는 친인척을 설득해 끌어 들이려고 한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오지 않아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세집살이에 담배연기 속에서 속이 타 재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끌려들면 다른 사람을 끌어오도록 강요를 받는다고 합니다.즉3명의 하위 판매원(下线)을 유치하는 일입니다. 이 3명 역시 이 집단에 가입한 후 마찬가지로 각각 3명씩 하위 판매원을 유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3명을, 3명이 9명을, 9명이  27명을, 27명이 81명을 이렇게 기하급수로 발전시키는것입니다.사람을 끌어들여 조직에 가입시키면 급을 추고 한달이 지나도록 한명도 끌어들이지 못하면 무능력자로 취급하고 풀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넣은 돈운 그저 떼우고 맙니다. 다단계집단에 가입한 조선족들은 강요에 의해 전국 각지에 있는 친구, 친척들을 불러들이는가 하면 지어 한국에 가 일하는 친구, 친척들도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먼저 잡힌 양진새가 새잡이 조롱속에서 숫한 양진새를 불러들이는 격으로 같은 조선족끼리 다단계소굴로 끌어 들입니다. 이렇게 끌리워 온 조선족이 남녕에만 몇천명이 된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이 “순자본운영”에 들어간 자금은 대부분이 출국로무일군들이 뼈빠지게 벌어서 아파트를 사려고 저금하였던 돈, 자녀를 공부시키려고 모아 두었던 돈, 로후생활보장으로 마련한 돈들입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이때까지 다단계판매집단에 가담해 부자가 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투자한 돈은 모두 그 집단의 조직자나 경영자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여도 가입한 사람이 모두 벼락부자가 된다면 그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이렇게 나라의 경제질서를 엄중히 어지럽히고 시장질서를 혼란시키는 다단계판매는 자신을 해치고 가족, 친척, 친우를 해치고 들어가면 빠져나올수 없는 함정이라는것을 깨닫고 허황한 《금전몽》으로 하여 절대로 다단계판함정에 빠져들어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2월13일 
109    사랑 댓글:  조회:13592  추천:50  2012-02-07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청해 30.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합시다.”란 내용으로 말씁드리려 합니다.   지금 우리의 언론매체거나 민간에서 가끔 우리말에 외국어나 외래어를 섞어 쓰는것을 볼수 있는데 우리말에 없는 단어들은 외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점차적으로 우리말로 된다면 의사표달을 더욱 정확히 할수 있고 봅니다. 례하면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바쁜 “몸에 적응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자극이 가하여 졌을 때에 생체가 나타내는 반응” ‘스트레스’라하고 “여가 시간. 또는 그 시간을 리용하여 스스로 즐거움을 얻기 위한 놀이나 활동”을 레저라고 하는 등 입니다 .이렇게 우리말에 없는 단어들을 외래어로 더 정확히 표현하는것은 좋은 일이고 경우에 따라 외래어를 섞어 쓸수는 있겠지만 순수한 우리말을 버리고 외국어 또는 외래어를 쓰는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 ‘띠’를 ‘벨트[belt]’, ‘검은색’을 ‘블랙[black]’, ‘머리모양’을 ‘헤어스타일 [hairstyle]’, 입장권, 승차권, 구매권 등을 말하는 표를 ‘티켓[ticket]으로 말하고 쓰고 있는데 이러한 우리말이 있는 단어들을 하필이면 우리말, 우리글의 순결도를 낮추면서 발음하기도 불편하고 정확히 표기도 할수 없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연변의 한 독자는 조선문으로 된 신문 잡지를 내리 읽다가 가끔 알아보지도 못할 외래어가 나오면 밥을 먹다가 돌을 씹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40가지 자모로 이루어진(한국에서는 합성자모를 정식자모로 인정하지 않기에26가지 자모라고 합니다.)우리글이 그 표기가 제한되여 외국어나 외래어를 원음대로 표기 할수 없습니다. 례하면 우리말에 ‘f’의 발음이 없기 때문에 영어의 ‘fighting’을 어떤 사람들은 ‘파이팅’, 어떤 사람들은 ‘화이팅’으로 발음하고 표기합니다. 이렇게 하면 영어의 원음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니 됩니다. 우리말에 외래어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론리는 국제화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한것이라고 하는데 국제화시대에 발을 맞춘다는것은 세계통용어를 체계적으로 장악하고 수요에 따라 몇개 나라의 언어를 더 장악하는 것이지 몇개의 외국어 단어를 장악하여 가지고 국제화시대에 발을 맞춘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은 말이라고 봅니다. 우리말이 없는것은 외국어거나 외래어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면 우리말이 있는것이면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말의 사용인구는7,739만 명으로서 세계 언어 중 13위에 이르고 우리 문자는 세계 다른 나라의 문자보다 가장 과학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며 몇 년 전에 열린 프랑스언어학자회의에서 한글을 국제음성기호로 대체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는 우리 문자의 과학성과 합당성, 독창성을 고려해 세계문자의 1위로 내놓았습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조선(한국)어를 9번째 국제 공개어로 채택하였고 1997년10월1일에 우리 문자를 기록유산으로 제정하였으며 세계언어학에 대해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상을 준다고 합니다. 2009년도 인도네시아부톤섬 찌아찌아족이 우리의 문자를 자기 말을 적는 공식 문자로 채택하고 소학교에서 한글교과서로 찌아찌아어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2010년8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찌아찌아족이 찌아찌아어를 표기하는데 한글을 도입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합니다. 지금 세계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세계통용 문자로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한글은 배우기 쉽다는 것입니다. 40가지 자모로 우리말의 모든 문자를 다 조합할 수 있고 가, 나, 다, 아, 야, 어 등 기본음에 몇가지 받침을 넣으면 그 계렬의 음을 다 문자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리유는 컴퓨터 문자입력에서 육필의 필순에 따라 건반을 치면 모든 글자들을 순조롭게 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사용에서 그 어떤 다른 글보다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 세종대왕이 600년 뒤에 올 디지털시대를 예견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말 우리 글이 세인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뛰어난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의 글을 도외시 하고 우리글로 정확히 표기할 수도 없는 외국어에 집착하고 있는지? 우리의 고유어를 포기하고 외국어나 외래어를 우리말에 많이 섞어 쓴다면 우리말의 순결도를 점차적으로 낮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몇세대 내려간다면 우리의 고유어가 사라지고 우리말은 잡탕으로 되게 될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도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간다고 할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민족의 우월한 문화를 보존하고 자랑하며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나가야지 이런 우월한 문화를 도외시 하면서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나간다는것은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2월6일 
108    웨이드식 한글표기의 페단 댓글:  조회:16490  추천:53  2012-01-30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육성방송  주청룡 29. 웨이드식 한글표기의 페단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웨이드식 한글표기의 페단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우리의 일부 언론 매체거나 인터넷에서 중국의 인명, 지명을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한것을 보게되는데 많은 독자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웨이드식란 중국어의 로마자 표기방식을 말하는데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중국어 표기는 웨이드식[Wade式]을 한글로 표기하고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력사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것은 우리의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의 지명과 동일한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서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 (례하면 上海를상하이 혹은 상해, 黃河를황허 혹은 황하)”고 하였습니다.   우리말에서 한자어는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들여오면서 무려 2천년 동안 갈고 다듬어 완전히 우리말로 만든 아주 세련된 말입니다. 이런 세련된 말은 우리 민족은 듣기도 쉽고 발음 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중국어의 원음과도 같지않고 우리말의 한자어와도 같지않은 중국어도 아니고 조선어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국의 인명, 지명을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모택동[毛澤東]’을 'ma o ze dong'화 하여 ‘마오쩌둥’, ‘등소평[鄧小平]’을 'deng xia o ping' 화 하여 ‘덩 샤오핑’, ‘호금도[胡錦濤]’를 'hu jin ta o'화 하여 ‘후진타오’로, ‘료녕성[遼寧省]’을 'lia o ning sheng'화 하여 ‘랴오닝성’, ‘청도[靑島]’를 'qing da o'화 하여 ‘칭다오’로 표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모[毛]’는 ‘마오’로, ‘소[小]’는 ‘샤오’로, ‘도[濤]’는 ‘타오’로, ‘료[遼]’는 ‘랴오’로, ‘도[島]’는 ‘다오’로 표기하는데 이것들은 한자와 우리글 한자어로는 모두 한 음절이지만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두 음절이 되므로 중국어의 원음도 아니고 우리의 한자어도 아닌 말로 됩니다. ‘강택민[江澤民]’에서의 ‘江[강]’, ‘신강[新疆]’에서의 ‘疆[강]’ 은 한어 원음대로 하면 ‘쟝’으로 표기 되여야 하고 ‘온가보[温家宝]’에서 ‘家[가]’는 원음대로 하면 ‘쟈’로 표기되여야 하는데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의 ‘ㅈ, ㅉ, ㅊ’자음 뒤의 ‘ㅑ, ㅖ, ㅛ, ㅠ’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는 원칙에 의하여 ‘쟝’을 ‘장’으로 ‘쟈’를 ‘자’로 표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강택민’을 ‘장쩌민’으로 ‘온가보’를 ‘원자바오’로 발음 하고 표기하니 중국어의 원음도 아니고 우리의 한자어도 아닌 외곡된 말로 됩니다.   그리고 또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의 “성조(聲調)는 구별하여 적지 않는다.”는 원칙과 웨이드식 한글표기는 어떻게 하든지 중국어의 원음대로 표기 할수 없는 외곡된 말로 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경올림픽 운동때 스던 ‘국가체육장’ ‘새둥지’를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궈자티위창’,  ‘냐오차오’라고 말하거나 쓰게 되면 누가 이 생소한 단어를 알아 듣거나 알아 볼수 있겠습니까? 우리말 그대로 ‘국가체육장’ ‘새둥지’라고 하면 우리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 명칭의 뜻을 리해 하겠는데 이렇게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가져다 줍니까? 그리고 중국의 인명을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여 성명권을 침해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례하면 중국의 조선족인 강원도(姜元濤)의 려권과 외국인 등록증에 이름이 병음으로 JIANG YUAN TAO로 표기되여 있는데 이 사람의 서류를 작성할 때에는 웨이드식 한글표기로 하면‘장위안타오’라고 한글로 표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이 사람의 조선어로 된 이름도 아니고 중국어로 된 이름도 아닌 한 사람의 이름을 마구 뜯어 고친 성명권 침해로 된다고 봅니다. 하여 중국의 조선족들은 “어떻게 하면 ‘강원도’가 ‘장위안타오’로 되는가?” 우리 이름을 되돌려 달라고 함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웨이드식은 한자음이 없이 로마자를 사용하는 영어권에서는 중국어의 음역(音譯)사용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말, 우리글은 한자문화권내에 속하기 때문에 웨이드식 한글표기는 정확하지 못하며 우리의 한자어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기방법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저는 중국 인명, 지명에 대해서는 우리의 한자어로 부르거나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서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1월30일      동북아신문 2010년 6월 11일, 동북아신문 2011년 2월 25일, 한민족신문 2011년 3월 28일
107    문명하게 폭죽을 터뜨립시다 댓글:  조회:9462  추천:16  2012-01-23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28. 문명하게 폭죽을 터뜨립시다   청해   청취자 여러분 새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임진년 룡해의 설날 전체 청취자들에게 명절의 인사를 올립니다. 우리 나라에는 설을 쇠거나 경축활동을 할때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습관이 있는데 폭죽은 2000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깊은 바다물속에  《년(年)》이라고 부르는 흉악한 괴물이 있었는데 해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물에서 나와 마을을 덮쳐 사람과 가축을 해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저녁에 마을의 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추워서 대나무를 태우면서 놀았는데 대나무속의 공기가 열을 받아 팽창하여 땅 땅 소리를 내면서 터지니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떠들석 하였습니다. 이때 마침 그《년》이라는 괴물이 마을로 왔다가 이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바람에 그날 밤부터 1년간 무사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은 대나무를 태워 터뜨리여 소리를 내는것을 귀신을 쫓고 화를 막는것으로 여기여 매년 섣달 그믐날은 물론 경사스러운 일에 모두 대나무를 불태워 터뜨리였으며 폭죽이라는 말 뜻은 여기로부터 기원되였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터질爆, 대竹 즉 대나무를 터뜨린린다는 뜻인것 입니다. 후에 화약이 발명되면서 대나무에 화약을 넣어서 터뜨리다가 북송 때에 와서 민간에서 화약을 종이에 말아서 폭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폭죽을 터뜨리는것은 선진적문화라고는 할수 없지만 중화민족의 2000여년 내려 온 전통풍속으로서 지금은 귀신을 쫓는다기보다 경사를 축하하고 명절분위기를 돋구며 관상의 목적으로 폭죽을 터뜨린다거나 꽃불놀이로 하기에 금지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폭죽으로 인한소음, 화재, 환경오염, 경제적 랑비 등 원인으로하여 북경시에서1993년10월에《폭죽을 터뜨리는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세워 10여년간 폭죽을 터뜨리는것을 금지하였다가 백성들의《명절분위기가 없다 명절멋이 너무 없다》는 등 의견과 폭죽을 터뜨릴것을 요구한데 근거해 2005년12월에 다시 《폭죽안전관리규정》을 세워 금지한다던것을 제한한다고고친것입니다. 폭죽을 터뜨리면 확실히 화재가 발생한다든가 어린이들이 손을 상하거나 눈이 실명하는 등 사고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데 공안부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설기간에 전국적으로 1만1천8백여 차례의 화재가 발생하여 40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상하였는데 대다수 화재사고는 폭죽과 꽃불을 터뜨린데서 일어난것이라고 하며 그 가운데서 심양 황조만흠빌딩의 화재가 전형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북경시의 규정을 보면 문물보호단위, 기차역, 비행장과 같은 교통중심, 기름, 가스 등 쉽게 불이 붙고 폭발할수있는 위험품이 저장된곳과 기타 소방단위, 전기 수송설비, 의료기구, 유치원, 경로원 삼림, 묘포장과 같은 중점 방화구, 중요한 군사시설 등 금지구역을 정하였으며 제한된 지점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시간은 섣달 그믐날, 정월 초하루, 초이틀, 대보름으로서 매일 아침7시부터 저녁12시까지 사이이며 기타 시간에는 터뜨리지 못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   폭죽을 터뜨릴때에도사람, 차량, 건축물에 뿌리지못하며 건축물내, 지붕, 베란다에서터뜨리거나 밖에 뿌리지못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행인과 차량의 안전통행을 방애하여서는 안되며 14살이하의 미성년은 후견인 혹은 기타성인의 감시하에서 터뜨린다고 하였으며 경축활동이거나 기타 명절에 폭죽을 터뜨릴 경우에는 정부에서 결정하고 공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지방을 보면 결혼식이나 상가들이 개업식에 폭죽을 터뜨리는것이 규범화 되지 못하여 문명하지 못하게 아무때, 아무곳에서나 터뜨리고 행인이 있던 없던 관계하지 않는데 어느 개인의 희사에 주민들이거나 행인들이 소음이나 환경오염의 곤혹을 겪을 리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세상에서 타인과 도시 환경오염을 고려하여 결혼식, 상가들의 개업식에는 폭죽을 터뜨릴 때에는 이러한 점들을 많이 고려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설, 보름기간에 일부 집들에서는 남들이 다 잠든 0시후에도 터뜨리는데 북경시의 규정과 같이 설, 보름기간에도 0시부터 7 시 사이에는 터뜨리는것을 금지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 어떤 집들에서는 층집에서 밖에 내다 뿌리면서 터뜨리는데 이는 행인들에게 매우 큰 위험으로 될수 있는것입니다. 때문에 북경에서는 집안에서 밖에 내다 뿌리지 못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터뜨릴 때에는 북경시에서 결정한것처럼 꼭 어른들이 감시하여 의외의 사고를 미연이 방지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폭죽을 터뜨리는것을 너무 막을바가 못되는 이상 터뜨리데 소방안전과 환경위생, 그리고 타인에게 영향이 없도록 문명하게 터뜨리며 폭죽을 사되 상징적으로 얼마간씩 사고 서로 경쟁적으로 한아름씩 사는 과소비를 반대하였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새해 몸건강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1월23일            
106    우리 민족의 전통풍속을 살리며 음력설을 쇱시다. 댓글:  조회:8637  추천:20  2012-01-20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27. 우리민족의전통풍속을살리며음력설을쇱시다   청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민족의 전통풍속을 살리면서 음력설을 쇱시다”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신묘년 토끼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임진년 룡해가 다가옵니다. 음력설은 중국에서는 춘절이라하며 최대의 전통명절로 하고 춘절이면 중화민족은 예로부터 가족, 친척들끼리 단란하게 모여서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면서 즐겁게 보내는 풍속이 있으며 지금 나라에서도 법적으로7일 련휴일하고 있습니다. 음력설을 어떻게 의의있고 즐겁게 쇠겠는가 하는것은 매 가정마다 정황에 따라 다를수 있고 음력설 련휴일을 리용하여 가정유람을 조직할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자식들이 모두 부모를 떠나 외지에 나가 사업하다 보면 한집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을 기회가 매우 적습니다. 사람은 늙을수록 친인을 더 그린다고 특히 부모, 조부모되는 분들은 자기의 자손들을 몹씨 그리워하고 있는데 우리의 전통명절 음력설 련휴일 기간에는 한집 식구 혹은 친척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앉아 그리운 정을 나누면서 즐겁게 설을 쇠는 것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로부터 설날아침이면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형식으로 절을 올리면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잘 하여 꼭 대학에 가야한다." "공부를 잘하여 나라의 인재가 되여야 한다."는 식의  약간의 덕담을 하시면서 간단한 생활소비, 혹은 학업에 유리한것들을 사라고 약간의 세배돈을 주는것으로써 어른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풍속이 내려왔는데 지금도 많은 집들에서는 이 풍속을 지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집들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세배돈을 주는것이 몇백원, 몇천원 지어는 그 이상으로 되고 있는데 어린이들은 또 설이 지나면 학교에 나가서 “나는 이번 설에 세배돈을 얼마 받았다. 너는 얼마를 받았니?” 하며 서로 비기고 있는데 이러한것들은 우리의 전통 풍속과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세배돈은 그 아이의 지배능력만큼 주는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기실 어린아이들이 몇백원, 지어는 몇천원이상의 돈을 지배할 능력이 없는데 그 많은 돈을 준다면 전통풍속 의미를 떠날 뿐만 아니라 세배를 하여 많은 돈을 가지려는 사상을 키워 주게 되며 어떤 아이들을 그 돈으로 음식점, 전자유희청 등 곳을 다니면서 마구 써 버리는 기형적 소비를 하는 버릇을 키우게 된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학습에 유리 한 그 어떤 도구를 사라고 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세배돈이라는 명목으로 주지 말고 직접 학업에 유리한 도구를 사주면서 학습을 잘 하라고 한다면 그 아이에게는 더 큰 고무가 될수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방학기간의 활동으로 그믐날이면 동네 학생들이 모여서 렬군속, 오보호가족을 방문하고 렬군속영광패에 꽃을 달아주고 집뜨락을 청소하고 땔나무를 패 준다든가하는 유익한 일들을 하고 설날아침이면 동네 년세가 많은 로인들을 방문하고 세배를 올리는 활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환경이 많이 바뀌여졌기에 그 전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장애인 가정, 늙은 량주 혹은 독거로인들이 있는데 이러한 집들을 방문하고 학생들이 도와 줄수 있는 일을 한다든가 세배를 올린다든가 하는 활동을 하는것으로서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미량풍속을 살릴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끔 이런것들을 듣거나 보게 되는데 “야—설이 돌아 오는데 상급 령도에 어떻게 인사를 하겠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인사는 례절적인 인사인 것이 아니라 현금이나 기타 물질적 회뢰를 말합니다. 그것도 몇백원을 놓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몇천원, 몇만원 지어는 그 이상을 말하는것이며 일부 부패한 령도간부들은 이런 인사를 받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중공중앙판공청, 국무원판공청의2012년 원단, 춘절기간 공작을 잘 할데 대한 통지에는 “각급 령도간부는 중앙의 렴결자률에 관한 규정을 엄격히 집행하여 규률을 위반하고 사례금, 유가증권을 받거나 지출 증명서와 상업선불카드를 받는것을 엄금하며 도박활동에 참여하는것을 엄금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규률검사위원회와 감찰국에서도 련합으로 각급 지도간부들에게 상응한 통지를 발부하엿습니다. 때문에 현금이나 기타 물질적 회뢰를 하는것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행위는 다 범죄행위이므로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와는10만8천리 떨어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여야 합니다.   옛날 설이면 집단적으로 윳놀이, 상모춤, 널뛰기, 썰매타기 등 민속놀이와 오락성적인 체육활동을 많이 벌리였는데 지금은 이런것들이 전부 살아지고 친척끼리 모여 앉아 트럼프치기나 마작판을 벌리고 있는데 그것도 돈이 엄청나게 나들어 설 뒤끝에 출근하면 나는 이번 설에 몇백원 땄다는둥, 나는 이번설에 몇백원 잃었다는둥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데 이런 도박성적인 눌음은 금지하고 집단적인 민속놀이는 하지 못하더라도 집안끼리 앉아서 노래와 춤, 윳놀이 등 활동을 벌 린다듣가 스케트장, 스키장 등 곳에 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가족사진 같은것을 찍어 영원한 기념으로 남면 좋지 않는가 하는 소견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1월16일 
105    생일을 간소하게 치렀으면 댓글:  조회:9590  추천:44  2012-01-13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26. 생일을 간소하게 치렀으면 청해 [서울=동북아신문]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생일을 어떻게 쇨것인가? 하는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생활이 향상되면서 결혼잔치요, 환갑잔치요, 생일잔치요, 새집들이요 하며 아무튼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손님을 청하는 일이 많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풍이 사회상에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떤것들은 사회에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결혼잔치, 환갑잔치 같은것은 일생에 한번씩 있는 대사인것만큼 친척, 친우 등 손님을 청하여 흥성하게 식을 올리는것은 무방하겠지만 생일은 해마다 있는 일이므로 가족 혹은 친척들끼리 모여 앉아 기념하면서 쇠는것이 좋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결혼축하, 생일축하를 갈 때에는 생화나 축하편액, 혹은 정교한 기념품을 들고 가서 상징적으로 축하의 뜻을 표하지만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이런 기념품보다 경제적 가치를 많이 추구하기에 우리 지방에서는 하객으로서는 축의금을 갖고 가는것이 관례로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조도 한두번이면 몰라도 한달에 7,8번 지어 10번 넘을 때도 많은데 한번에 100원씩(지금은 100원도 적다고 2,3백원) 해도 10번이면 1000원, 로임의 대부분이 부조금으로 나가게 되여 부부지간에 다툴 때도 있게 됩니다. 몇 년전에 외지에서 연변에 와서 사업을 하다가 다시 본고장으로 돌아가 연변인민들에게 보낸 한 교원의 편지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여 말씁드리면 《저는 원래 이곳에서 교원사업을 하다가 연변이 로임이 높다는 말을 듣고 연변에 가서 교육사업을 하였는데 가보니 확실히 이곳보다 로임이 높아습니다. 그런데 높은 로임이라지만 대부분 부조돈으로 나가다니 생활하기 곤난하여 다시 본고장으로 돌아 왔습니다. 본고장에 돌아오니 로임은 비록 연변에 있을 때보다 적지만 부조금이 기본상 없이 그 로임이 전부 생활에 쓰이니 연변에서의 높은 로임을 받기보다 훨씬 낫습니다.》라고 하면서 연변 인민들에게 기형적인소비를 하지말것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여 왔던것입니다. 이 편지는 우리들에게 사색의 여운을 남기게 되는것입니다. 우리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어른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례절바른 미량풍속을 갖고 있는 민족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 와서 우리 연변의 조선족들이 기형적인 소비를, 특히는 각종 부조금을 주고 받는것으로 하여 기타 민족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변에서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들은 생일을 친족들이나 모여서 쇠지 손님을 청하여 흥성하게 쇠지 않는데 조선족들이 생일잔치를 치르면서 청하니 내키지 않는 마음이지만 부조금을 들고 가서 참석하는것입니다. 그리고 단위에서도 령도들이 생일에 청하면 일반직원들은 역시 내키지 않는 마음이지만 할수없이 참석하는것입니다. 특히 사업에 금방 참가한 젊은이들은 로임이 높지 못한데 생일, 결혼, 장례에 모두 참가하다니 생활에 곤난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조바람은 우리 조선민족의 미량풍속에 먹칠을 하는것이 아닌가고 생각 됩니다. 연변소품에 《부조바람》도 연변의 이런 실정에 비추어 아주 해학적으로 엮은 소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령도로부터, 나로부터 솔선적으로 우리 조선족의 례절바른 미량풍속을 지켜가며 아름다운 문화를 가꾸어 갔으면 하는생각입니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년 1월9일
104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이란 위치를 지키며 삽시다 댓글:  조회:18940  추천:72  2011-12-26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오늘의 화제》 시리즈 록음방송  24.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이란 위치를 지키며 삽시다 청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새로운 한해를 맞으면서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이란 위치를 지키며 살자”란 내용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2011년도 인젠 끝자락에 이르고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는 새로운 한해가 다가옵니다. 이 시각 우리는 지나 온 일년을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으며 어떻게 새로운 출발을 할것인가에 대하여 심사숙고 할 때라고 봅니다. 중국조선족은 자랑찬 력사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광복전까지 우리의 조상들은 조선반도로부터 만주땅에 건너와 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고 만주의 벼농사는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시작되였으며 그 기술은 전 만주에 보급되였습니다. 그리고 항일전쟁, 해방전쟁에서 우리 조선족은 공산당을 따라 참군, 참전하여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고 국민당 반동정권을 뒤엎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는데 크나큰 기여를 한 자랑찬 력사를 갖고 있습니다.       2.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입니다. 우리 조선족은 예로부터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인즉 소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면서라도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켜 출세시킨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후대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한 꿈이였으며 우리들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이렇게 하였기에 우리 조선족들은 괭이 메고 두망강, 압록강을 건너와 땅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닦았고 오늘은 그 후대들이 국가 공무원이나 문화, 교육, 과학, 위생 등 지식분야에서 크나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15세 이상의 인구문맹률을 볼 때 전국 평균수준은 22.21%인데 조선족은 7%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자료에 의하면 대학수준 소유자가 전국 평균수준은 매 만명당 122명인데 조선족은 381명에 달하고 석사, 박사는 전국 평균수준이 매 만명당 8명인데 조선족은 17명입니다. 교육에서 이렇게 전국의 평균수준을 훨씬 초월할뿐만 아니라 방송, 출판, 문예, 체육 등 방면에서도 전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여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뉴스(1993년 10월 20일 아침)에서도 조선족은 우생우육(优生优育)에서 돌출한 성과를 취득하였으며 문화교육이 세계선진수준에 접근하였다고 방송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족들은 소농경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북경, 상해, 청도 등 대도시, 연해도시에로 진출하거나 한국, 일본,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하여 세상과 접촉하고 시야를 넓혀 앞선 의식, 빠른 실천으로 사회발전의 앞줄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해외에 진출하여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들여 자지방의 경제발전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연변의 정황을 보면 11차5개년 계획기간에 조선족들이 외화를 벌어들인것이 41.3억 딸라로서 주 재정수입의 총액과 비슷하며 외화수입이 가장 많을 때인 2006년도에는 10.6억 딸라로서 그 해 주재정수입의 2배를 초과 하였으며 국민생산총액(GNP)은 전성에서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은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잘하는 이중 언어우세와 중화민족이면서도 한국인과 같은 겨레라는 어느쪽에서도 떨어지거나 멀리할수 없는 민족적 감정으로 하여 중국과 한국간의 각종 교류에서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은 또 로인을 잘 모시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례절바르고 깨끗하며 문명스러운 민족이며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민족으로 전국에 널리 자랑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자랑스러운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위치에서 살고 있습니다.         3. 목전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 해외로무는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버는 아주 좋은 기회였고 자지방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기여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외로무와 대도시, 연해도시에로의 진출로 하여 그전의 아담한 조선족 마을들이 인구 대이동으로 하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조선족공동체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 농민들은 당금 외국으로 나갈것처럼, 또는 외국에 갔다가 돌아와서 농사를 짓지 않을것처럼 받을 외지사람들에게 20년 지어 30년 임대 혹은 양도를 주었는데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시내에서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신세로 지내거나 외국에 갔다 와서도 받을 장기간 임대를 주었기에 안식처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로무로 하여 생활은 많이 피였다 하지만 자식교양에서는 엄중한 위기에 처해있다는것은 간과 할수 없다고 봅니다. 통계에 의하면 2008년 룡정시의 결손가정 학생수는 만여명으로서 전 시 학생총수의43%를 점하였는데 모 조선족 학교의 정황을 보면 결손가정자녀수가 80%나 되였습니다. 연변의 다른 조선족 학교들도 보면 이와 비슷한 정황입니다. 부모와 같이 있는 학생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늘 웃음꽃을 피우며 생활에서 만족감을 느끼지만 결손가정학생들을 보면 부모사랑의 결핍으로 하여 심리상태가 늘 불안전하고 위축정서를 보이며 학습에는 흥취를 잃고 사회상의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범죄행위를 저질러 파출소에 불리워 다니는 일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부모사랑의 결핍으로 하여 우울증증세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4.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의 위치를 지키며 삽시다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의 위치를 지키려면 우선 조선족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농촌을 보면 전업합작사 혹은 전문농장들이 많이 일떠서고 있는데 해외로무를 나가는 농민들은 토지를 외지의 사람들에게 양도 혹은 임대를 주지 말고 촌민위원회 혹은 전업합자사에 들여 놓아 촌에서 통일관리를 하여 해외에 갔다가 아무때든 돌아와서 농사를 짓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금 해외로무로 갔다 온 적지 않은 농민들은 도시에 들어와서 아무런 창업도 하지 않고 해외에서 힘들게 벌어 온 돈을 물쓰듯 써버리고 또 빈털터리 신세로 되여 또 다시 해외로무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평생 해외로 돌아다니며 외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기시를 받으면서 고된 일을 하며 살려 하지 말고 해외에서 로무를 하는 과정에서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배워가지고 고향에 돌아와서 그 기술, 그 돈으로 머리르 쓰면서 새로운 창업을 하여 고향을 아름답게 건설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이렇게 하여 고향건설에 크나큰 기여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해외로무만이 치부의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농촌은 땅이 넓고 할일이 많습니다. 자신이 머리만 쓰면 얼마든지 치부의 항목을 찾을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자지방에 남아서 외지에 간 사람들의 밭을 전부 임대맡아 현대화한 영농기술로 기계화, 규모화 농업을 하거나 여러가지 치부의 항목을 찾아 신근하게 일하면서 해외에 나간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면서 조상들이 개척한 삶의 터전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외로무의 경제적 수입과 자식교양 이 량자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 우리의 후대들이 문화, 교육방면에서 계속 전국의 앞자리를 지게끔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해외에 나가 일하는 어떤 사람들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중국조선족의 형상(이미지)에 엄중히 손상을 주고 있는데 반드시 그 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여 아름다운 중국조선족의 이미지를 가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조선족은 중국의56개 민족가운데서도 가장 선진적인 민족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우리는 앞으로 계속하여 이 자랑스러운 중국조선족이란 이 위치를 지키며 삽시다. 오늘은 이만 끝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1년12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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