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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악장이라는 장르에 속한 문학 작품입니다. 악장이란 궁궐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식과 행사에 사용된 노래로 대개 송축(頌祝)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사를 치를 때에 제창하는 <애국가>와 같은 것이었지요.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의 내용은 어떻죠? 우리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고 있지요. 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장은 조선 왕조의 무궁한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거나 왕조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악장의 작자들은 대개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유학자들이었습니다. 이성계를 도와 나라의 기초를 다진 정도전은 「정동방곡」과 「신도가」를 지어서 태조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을 찬양했으며,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은 「용비어천가」를 지어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세종은 친히 「봉황음」을 지어서 조선의 문물을 노래했고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석가모니를 찬양하기도 했지요.
조선 초기에 활발하게 창작되었던 악장은 주로 궁궐 안에서만 향유되었던 탓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성종 때에 이르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보다시피 악장의 내용적 특성은 왕조의 신성성, 즉 기성 권력의 정당성을 소리 높여 노래한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용비어천가를 부른다’는 말은 오늘날 권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비꼴 때 자주 사용됩니다.
악장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용비어천가」입니다. 일단 이 작품은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1443년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난 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훈민정음으로 글을 짓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용비어천가」였습니다. 그래서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의 한글을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전체가 125장으로 되어 있는 서사시로서 조선을 건국한 6대조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6대조는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입니다. 「용비어천가」는 크게 서사—본사—결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사는 조선 왕조의 정당성과 조선의 무궁한 발전을 송축하는 내용이며 본사는 6대조의 업적, 결사는 후대 임금들에게 전하는 경계가 그 주요 내용입니다. 「용비어천가」 중에서 우리말을 가장 잘 살려 표현한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는 내용이지요. 아마 TV드라마로 제작된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네요.
「용비어천가」 속에 등장하는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기초가 튼튼하고 역사가 깊은 나라를 의미할 것입니다. 바람과 가뭄은 전쟁이라든가 내란과 같은 내우외환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화자는 기초가 튼튼한 나라는 내우외환에도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번성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히며 조선이 그러한 나라가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한자어를 한 구절도 쓰지 않고, 순우리말만으로 고도의 상징성을 담아낸 뛰어난 작품입니다.
「용비어천가」의 본사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포함한 6대조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6대조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어서 「용비어천가」를 영웅서사시로 보기도 하지요.
「용비어천가」의 결사 부분은 후대 임금에게 정치를 잘하기 위해 근면히 노력하길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중국 하나라 때의 고사가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낙수에 사냥을 가서 할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라의 태강왕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라 태강왕은 할아버지 우왕의 덕만 믿고 정치는 소홀히 한 채 늘 사냥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번은 낙수라는 곳에 사냥을 가서 백 일이 넘도록 궁궐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를 참지 못한 제후들이 태강왕을 폐위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정치를 잘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 임금이지요.
이와 같은 고사를 작품 속에 언급했던 까닭은 조선의 후대 왕들이 중국 하나라의 태강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부지런히 하늘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려야 함을 깨우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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