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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절필할줄도 알아야...
2016년 12월 03일 17시 01분  조회:5572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2월 02일 08시 58분 ]

 

 

중국 신강(新疆) 거라준초원 겨울ㅡㅡㅡ



 

이성복 (李晟馥) [1952~]

詩는 '머리의 언어' 전복시키는 '몸의 언어' 

“여배우의 모습 밑에서 수녀를 사랑하다니!…” 

19세기 프랑스 작가 네르발의 ‘실비’라는 소설의 이 한 구절은 30년의 내 문학적 삶의 도정을 드러내는 적절한 비유로 쓰여질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금까지 내가 문학을 애지중지해 왔던 것은 구두 밑창을 파고든 압정처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신경증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끌어와 말하자면, 지난 세월 내 혼곤한 문학적 삶은 ‘야심’이라는 의지와 ‘문학’이라는 표상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대체 난공불락의 그 신경증적 야심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까닭으로 하필 문학이라는 탄두를 가지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물론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로 조립된 것이겠지만, 어린 시절 내 최초의 기억은 시골 마을에서 이사를 가는데 두어 살 된 아이가 한사코 떼를 써서 소를 몰고 가는 장면이다. 

이를테면 그 최초의 나이테 위에 오랜 세월 내 삶은 닮은꼴을 이루며 덧붙여졌고, 출세지상주의적인 한 소년이 열혈 문학청년으로 바뀌었다 해서 그 나이테의 모습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 출세 지상주의 소년의 변신 

처음 문학에 맛들이기 시작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별나게 문학이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도 문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문학에 대한 나의 신경증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문학 때문에 행복했고 문학 때문에 좌절했다. 마치 심한 몸살을 앓을 때 몸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분간할 수 없듯이, 지금 나는 대체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지 증오하는지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놈의 문학 때문에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다. 문학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니다, 내가 문학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한참 문학에 미쳤던 보다 젊은 시절, 나는 대체 사람이 ‘어떻게 시 없이 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나 다방에서나 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었고, 그리하여 친구들은 하나 둘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 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디에선가 썼던 비유이지만, 지금 나에게 문학은 내 아이를 배고 있으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랑하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그런 여자와 같다. 

문학과의 신접살림은 첫 시집을 내기까지 3년쯤이나 계속되었을까, 그 이후로는 불화와 별거의 연속이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까닭이 없지만, 지금에 와서 짐작되는 바로는 언제 어디서나 고개를 들이미는 신경증적인 야심이 애꿎은 문학을 볼모로 하여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내장을 보호하는 갈비뼈가 부러지게 되면 날카로운 뼈끝으로 내장을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문학을 신주단지로 모시던 야심이 제 허영을 채우지 못하자 문학을 애물단지로 구박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완벽한 글쓰기’ 운운하며 글쓰기를 미루어 왔던 것도 무시당한 야심의 자기 합리화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자아 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 쪽의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나의 행태가 신경증의 한 양상으로 분류되고 있고, ‘완벽주의’나 ‘미루기’라는 병명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문학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보다 정확히 말해 내 야심이 일으킨 것이고, 지난 세월 나는 내 살을 파먹으면서 이른바 ‘문학신경증’을 앓아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문제의 근원이 드러난 이상, 병과의 싸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아무래도 이 싸움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 詩는 행복·좌절 동시에 안겨

그렇다면 일단 신경증적 야심을 괄호로 묶고 나서,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동어반복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문학이 없었다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 다시 말해 문학은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현미경으로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육안으로 안 잡히는 갖가지 미생물들을 발견하게 되듯이, 문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베일에 가리어진 삶의 본모습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흙 속에 묻혀 있는 글자를 읽어내는 어린시절의 놀이와 다른 것이 아니다. 

문학의 본질이 들여다보는 것, 읽어내는 것, 발견하는 것이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있느냐는 물음이 따를 것이다. 

문학신경증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문학을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에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원의적(原義的) 의미에서의 ‘콤플렉스’, 즉 표층/심층, 거짓/진실, 추함/고움의 대립구조로 나타날 것이다. 

문학을 통해 발견하는 심층, 진실, 고움은 캄캄한 지하실에서 켜 댄 한 개피 성냥불처럼 덧없고 무력하다. 그 불꽃은 우리를 위로해 주거나 해방시켜 주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불꽃이 사라져도 ‘우리가 보았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문제는 문학이라는 불꽃,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시라는 불꽃이 피어나는 곳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는 것이다. 흔히 테니스 선수는 팔로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허리로 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팔로 공을 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의식할 때만 몸 전체가 돌면서 나오는 힘이 공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또한 피아노를 칠 때 손목에 힘을 주면 어깨로부터 내려오는 힘이 손목에서 딱 끊어지고 손목 힘만으로 치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머리는 제가 아는 것밖에 모른다. 머리는 상식과 체면의 자리이고 신경증의 자리이다. 

그런 점에서 공이나 피아노를 칠 때 라켓 헤드와 손가락을 의식하라거나, 돌을 실에 묶어 돌리거나 장도리로 못을 박을 때 돌과 쇠뭉치에 의식이 모인다는 이야기는 문학하는 사람에게도 의미 깊게 들린다. 

헤드와 손가락, 돌과 쇠뭉치는 문학에서 바로 언어에 해당한다. 문학은 언어에 기대고, 기댈 뿐만 아니라 투신함으로써 머리의 개입을 막고 몸의 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캄캄한 밤 배 위에서 쓰레기를 버리려다 쓰레기통과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는 해군수병의 이야기와도 같다. 

몸의 언어 혹은 언어의 몸은 엄청난 돌파력으로 머리의 언어가 구축한 삶의 가건물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가령 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을 무릎에 안은 성모 마리아는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을 떠올리게 하며, 마야라는 이름은 환(幻)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야(maya)와 다른 것이 아니며, 다시 마야라는 말은 피 흐르는 심장을 주먹으로 움켜쥔 마야 문명의 한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마리아/마야라는 이름을 통해 피가 피를 부르는 것이다. 이는 미술에서의 스크래치라는 기법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 해달 생태서 작가운명 발견 

며칠 전 나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에서 바다에 사는 해달의 행태를 보면서, 몸의 언어로써의 글쓰기에 대한 그럴 듯한 은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에 사백 회 가량이나 물질을 하는 어미 해달은, 잠수할 줄 모르는 아기 해달을 물위에 발랑 뒤집어 눕혀 놓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사 분이라 한다. 

글쓰는 사람에게 어미 해달과 아기 해달은 한 몸이다. 그는 겉똑똑이 머리를 잠재워 두고 몸 속 깊은 곳을 들락거리며 쉬임없이 연상의 물질을 해대는 것이다. 

해달이 먹이로 좋아하는 것은 조개류이다. 해달은 해변에서 주워온 돌을 배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다 조개를 내리쳐 살을 꺼내 먹는데, 해달의 등뼈와 갈비뼈는 그 충격을 견뎌낼 만큼 견고하다. 재미있는 것은 해달이 조개의 빈 껍질을 배 위에 놓고 접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조개 껍질은 언어가 아닐까. 

언어는 글쓰는 사람 자신의 몸 위에서 갈라지고 부서지며, 딱딱한 일상의 외피를 벗고 나서야 비로소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속살을 걷어낸 한 언어의 껍질은 다른 언어의 속살을 담는 받침이 되는 것이다. 

해달은 바다 밑에 뿌리를 두고 수십 미터 웃자란 해초 다발에 몸을 감고 잔다. 그것은 밤새 높은 파도에 떠밀려 가거나 해변이나 바위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몸의 언어로 글쓰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 글쓰기가 욕조를 타고 대서양 건너는 일과 같다고 했지만, 언어라는 연약한 물풀에 몸을 감고 밤새 뒤척이며 날 밝기를 기다리는 것. 

내가 본 프로에서 어미 해달은 폭풍이 몰아치던 밤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물질도 할 줄 모르는 아기 해달만 남아 떨고 있었다. 글쓰는 사람이여, 당신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는가. 

한국일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시인 이성복


1952년 경북 상주읍 오대리에서 아버지 이한구(李漢求)와 어머니 송정남(宋丁男)의 오남매 중 네째로 태어난다. 위로 누나 둘과 형,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1959년 상주 남부국민학교에 입학, 그후 서울과 지방의 여러 백일장에 참가하며 잠재되어있던 글쓰기 욕망을 밖으로 끄집어 낸다.

1963년 5학년 2학기에 서울 효창국민학교로 전학, 고모댁에서 기거

1965년 서울 중학교에 입학, 곧 형과 작은 누나가 올라와서 서대문구 천연동에 방을 얻어 비로소 안정된 생활. 이어 모든 식구가  서울로 솔거를 하여  이성복 일가는  서울생활을 시작

1968년 경기고등학교 입학. 교내 웅변반과 홍사단에 가입. 웅변반에서 나중에 국회의원이되는 유인태를 선배로 만난다. 고 2 때 교내 백일장 입선. 평론가 진형준과는 고교동창. 그때  이미 문학의  세례를 받고 있던 미래의 소설가  이인성을 한 해 후배로 만난다. 시인인 김원호  선생의 국어  시간을 통해서  끊어진 글쓰기를 다시 시작. 여러 장르의 글이 실린 등사판 [사조]를 묶는다. 고 2 때 [ 창작과비평 ]에서 김수영 추모 특집을 읽음

1971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학과 입학,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부임한 김현 선생을 처음 만난다. 교양과정부 문학상에 시 [知, 不知]등을 투고하나 낙선.

1972년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형성]에 편집기자로 들어간다. 김열규 선생으로부터 딜런 토머스와 원형비평을 배운다. 토니오 크뢰거. 크눌프 등 독문학을 열심히 읽는다.

1973년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전홍표, 진형준과 교우. 4월에 해군 입대. 12주 훈련 끝에 해군 구축함 및 해군작전본부 근무. 카롯사, 릴케, 도스토예프스키, 니이체를 독서카드를 만들어  체크하면서  읽는다.  군복무중에 신문문예 투고도 할만큼 간간이 습작시를 만지나 다시 낙선

1976년 제대 후 복학.  불어에 대한 애정으로 열심히 공부.  황지우와 함께 교내 시화전을 하거나 정과리, 이인성,  진형준,  권오룡 등과 만난다.  산문집 [ 꽃피는나무들의 괴로움]에 실린 소설 [천씨행장]이 완성되고 [서시]가 씌어진다.  문리대 문학회 시화전이 열리고 황동규 시인을 처음 찾아가 인사한다.

1977년(25세) 김현 선생에게 노트 한 권 분량의 시를 보인다. 1977년 [ 문학과 지성 ] 겨울호에 [정든 유곽에서]와 [1959년] 두 편으로 등단.  졸업논문인 [폴 발레리 방법서설]
로 김봉구 선생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한다

1978년 대학신문사 전임기자로 들어간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많은 시들이 이 시기에 씌어진다. 이성복이 '내 삶의 제1황금기'라고 말하는 시절. 김현 선생의 주선으로 [그날]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거나 대학원 준비를 한다.

1979년 대학원에 진학. 대학원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유평근 교수를 만나게 된다. 소설가 김원일 씨가 상무로 있는 [국민서관]에서 아동문학서적의 교정 일로 8개월 가까이 근무한다.

1980년(28세) 서슬퍼런 5월에 같은 대학원 동기이던 김혜란과 결혼. 7월, 신군부 권력에 의해 [문학과 지성]이 폐간. 10월에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 지성사) 상재. 시인 박남철과 만나며, 오규원 선생의 주선으로 김혜순, 최승자 등과 도 알게 된다. 그리고 [문예중앙]에서 김광규, 윤재걸과 더불어 대담.

1981년 부인이 먼저 대구에서 직장을 잡는다. [보들레르에서의 현실과 신비]라는 석사 학위 논문 완성

1982년 대구 계명대학에 강의 조교로 부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그해 겨울에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대구에서 이성복은 이태수, 서종택, 이하석, 강현국, 이기철, 구석본, 최석하, 이문열 등과 만나 뒤에 남을 삽화를 만들어간다. 그가 편집 동인으로 참가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을 창간. 3월에 첫 아이 효원(曉遠) 출생

1984년 프랑스의 엑스-앙-프로방스에 부인과 함께 유학하면서, 처음으로 이국생활에서의 쓸쓸함과 환멸을 맛본다.

1985년 귀국.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 세째 아이 수유(茱萸)가 태어난다. 5월에 남해 금산 여행.

1986년 제2시집 [남해 금산](문학과 지성사) 출간

1987년 계명대 정문앞 대명한의원의 서찬호 선생으로부터 대학, 중용, 주역 등을 일 년 육개월 가까이 배운다.

1988년 계명대 중문과 교수들의 논어 윤독회에 참여, [문예중앙] 가을호에 [연애시와 삶의 비밀]을 창작 일기 형식으로 발표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란 박사학위 논문 완성. 제4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0년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먼 길]과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이 살림에서 출간됨.

1991년 연암재단의 교수 해외파견 기금으로 파리의 Eoole pratigue des hautes etudes에 간다. 이성복의 기숙사방은 매주 토요일날 개방되어 여러 전공의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학문을 교환. 이성복 삶의 '제2 황금기'. 이시기에 불교와 원불교 경전 등을 읽게 된다.불어로 쓴 논문 [역경으로 본 보들레르의 시적 여정]은 나중에 프랑스문학 연구지에 발표된다.

1992년 귀국. 계명대 미대 출신의 화가 이병헌과 교류.이병헌의 누드를 소재로 [소묘]
가 씌어진다.

1993년 제4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 지성사) 출간. [네르발 시 연구-역학적 해석의 한 시도](문학과 지성사) 간행.

1994년 (42세)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 불문과 부교수로 재직.




내려가는 삶의 바닥과 미궁


                     -사십대의 퇴폐가 빚는 시의 지평       신범순(문학평론가)

7~80년대의 우리 역사가 새롭게 꿈틀거리도록 했던 시기에 자신의 인생중에서 가장 피끓는 세월,가장 창조적이고 야망에 가득 찬 젊음의 계절을 보낼 수 있었던 시인들의 사십대가 거기서 어떻게 비치는지  바라보기로 하자.

그들은 과연 자신의 젊은 계절 뒤에 찾아온 가을에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과연 새롭게 시작할 무엇이 찾아오지는 않는 것일까?

이성복의 요즈음 시들은 <그날이 그날 같은 통속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그러한 삶은 최승자가 말했듯이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 위에 펼쳐져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성복은 그속에서 신비스러운 <천 개의 눈>을 뜨고자 한다.


        너의 살 속엔 천 개의 눈이 있다
        심장의 파닥거림도 창자의 꿈틀거림도
        다 가린 한 장의 이불 같은 살,
        심장의 파닥거림과 창자의 꿈틀거림이
        일으키는 천 개의 눈망울.
                                                       - 「소묘」중에서

그 <천 개의 눈>은 머리 속의 관념과 책 속의 관념들을 잊어버린 <살>속 에서 눈을 뜬다. 그 <눈들>은 더욱 많이 보고, 더욱 세밀히 보며, 서로 다르게 보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이러한 욕망은 이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 다시금 세부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의미들을 쥐어짜 내어야 할 때, 더럽혀지고 부패해진,낡은 권력들의 냄새를 피울 뿐인 기존의 관념들, 지식들의 빛이 우리를 거치적거리게 하는 때,이러한 새로운 시선에서 욕망이란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성복의 그 <눈>은 일상의 넓은 표면을 민감한 촉수로 더듬는다.그것은 우리들의 정치적인 관심사나 형이상학적인 주제들 밖으로 빠져 나가 있는,지금까지 문학적 영역에서 별로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을 확대하고, 그 의미를 증폭시킨다. 그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의미들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그의 시 도처에서 나타난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1」에서 언제나 똑같이 걸어가야 하는 길인 식당으로 가는 길을 <처음인 듯 이렇게  걸어보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길은 자신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한 측면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것은  삶의 극적인 순간들도 죽음에의 압박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러한 사소한 순간들, 그 무덤덤한 순간들 속에서 진한 욕망과 슬픔의 진액을 짜낸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미세한 시선은 「파리」 같은 시에서 놀라움의 발견으로 그 가치를 높인다.초가을 한낮에 소파에서 벌어지는 파리 두마리의 <대낮 情事>에서 이 시는 <그 작은 뿌리에서 좁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긴 생명의 운하>를 발견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이성복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가리키는 것인지, 또는 그러한 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나름의 노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3」에서 그것을 반인간중심주의적인 삶의 방식으로 소묘하는 듯하다.

  
        아침부터 전해오는 새깃보다 가벼운 이 떨림, 나는 목구멍 눈구멍 다
        열어놓고 떨림이 가시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기쁨의  시작인가, 불안인가
        내 안에 들어와 나를 한 마리 수줍은 짐승으로 만드는 떨림,이윽고 나는
        내 옆에서 숨죽이고 있는 짐승들을 다만 내 눈시울로 떨게 한다  멀구나
        멀어, 이 떨림이 멎는 곳은 어디인가
                              -「높은 나무 흰 꽃은 燈을 세우고 3」 전문 

지금까지 구축되어온 인간의 어떠한 지식이나 의미로도  붙잡아낼 수 없는 육체의 미묘한 감수성을 여기서 <떨림>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자신의 육체가 인간주의적인 윤곽을 깨뜨리면서 세계에 대면하고 있는  순간을 이 <떨림>이 포착한다. 이성복은 사십줄에 들어서서 비로소 이 육체의 떨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받아들이고, 몰두하며,고뇌했던 거창한 개념들과 가치들,의미들의 신성함에 대해 냉정하게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이제 인간들의 거대한 집단이 만들어낸 사회정치적 드라마들 밖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대신에 자신의 매우  사소한 개인적인 시선들 속에서 스스로를 구축해 나가고, 자신을 둘러싼 사물이나 가족들로만 그 작은 개인을 감싼다.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긴장된 떨림 속에서  새롭게 포착된  개인은  황지우의 느슨한 개인과 대립되는 것이면서,이 퇴폐의 시기에 마련되는 긍정적인 지평의 싹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개인을 인간들의 보다 넓은 관계의 망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뜨렸다. 그리하여 한 인간이 들이켜야 할 보다 커다란 숨결인 타인들의 웅성거리는 삶이 그 <작은 개인>속으로 스며들지 않게 되었다. 이성복의 시들은 사십대의 냉정한 어른을 갖게 되었지만, 외로움 또한 수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 속에 있는 <천 개의 눈>이라는 시학에 대한 신념도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만큼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천국의 입구」나「천사의 눈」을 보면 그 시학이 붕괴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때 그는 벌집같이 많은 눈을 가졌네 이제 씨가 빠진 해바라기 꽃대
        궁처럼 그의 눈은 텅텅 비었네 그의 고통은 말라 버렸네 겨울에 그의 꽃
        대궁이 꺾여 눈발에 묻힐 때 그의 생애는 완성되네 그가 본 것은 환상이
        었네.
                                                 - 「천사의 눈」 중에서 






삶의 절개지로부터 능선에 이르는 여정


                                                               이 경호(문학 평론가>

이 성복의 시는 삶의 절개지로부터 능선에 이르는 여정이란 구도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한낮이면 붉은 빛으로 선명하던 주작산 기슭의 절개지와 제 1 시집을,그리고 중턱에 자리잡은 그 바위들과 그의 제 2 시집을 그리고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던 시간에 섬세한 형상을 빚어 내던 주작산의 능선과 그의 세 번째,네 번째 시집을 겹쳐 놓을 수 있다.

절개지의 흔적,[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산의 절개지는 산의 존재 질서를 거스르고 훼손하는 인위적인 질서가 보여줄 수 있는  횡포의 최대치이다. 그 절개지로 인해 산에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차단되어 있듯이,절개지가 상징하는 유년,혹은 젊은 시절의 상처로 인하여  삶으로 원만하게 나아갈 수 있는 모든 통로 또한 가로막혀 버린다.

이성복의  제 1시집에 그려져있는 삶의 풍경과 언어의 풍경 또한 훼손되어 있다.
시인은 훼손된 삶의 풍경을 감추거나 익숙하게 만드는 낯익은 현실의 제도와 언어의 사용법 자체를 들추어내는 삶의 시선과 언어의 사용법을 선택한다.

그러한 삶의 시선을 담은 시적 상상력과 언어의 사용법으로 인하여 그의 시세계는 지나칠 정도로 과대포장되거나 수상한 혐의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기도 하였다.

제 1 시집에서 이성복은 유년시절의 가족사를 회상하면서유년시절의 훼손된 삶의 공간이나 아버지의 상처입은 모습을 통해 시인 자신의 훼손된 현실적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1959년]이란 시에서

    "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었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로 서술되는 봄이란
     인생의 따뜻한 시간대인 유년시절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
     혹은 상처입은 존재의 모습을 환기시켜준다.


    집에 적이 들어올 것 같았다
    (집은 지하실,집은 개구멍)
                         ----[금촌 가는 길] 부분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기 며칠 전부터 벌레가 나왕 책장을 갉아 먹고
    있었다 처음엔 두 군데,다음엔 다섯 군데 쬐그만 홈을 파고(중략)
    어머니가 말했다 창틀에 문턱에 식탁에까지 구멍이......약이 없다는
    데
                          ----[꽃피는 아버지] 부분


    여자들이 내 집에 들어와 지붕을 뚫고
    담 넘어 간다 손이 없어 나는 붙잡지 못한다
    벽마다 여자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연애에 대하여]


작품에서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집의 공간이나 상처입어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훼손된 절개지의 상태와 다를 바 없다.이러한 삶의 고통스러운 절개지 속에서 시인이 모색할 수 있는 전략이란 절개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 존재의 방향이 아니라 뿌리를 잘라 버리고 그 절개지에서 마구 뒹구는 존재의 방향을 찾는 것이다 그 방향은 나무에서 돌멩이로,식물성에서 광물성으로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체위를 바꾸고 싶어"( [口話])라고 고백하는 것이나 제 1 시집 속에 '그날' '그해 여름' '그해 가을' 그날 아침'과 같은 불특정한 시간들이 작품 제목으로 자주 선택되는 것은 필연성이 없이 파편적으로  뒹구는 돌멩이에 무심하게 부딪치며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대상들에 대한 시인의 반응이다.

돌멩이의 시선은 "당대의 廢品들을 열거하기 위하여?/나날의 횡설수설을 기록하기 위하여'([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동원되는 것만은 아니다.
돌멩이의 시선은 훼손된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마비된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돌멩이의 정처없는 모양,흔들리는 모양처럼 상상력을 풀어낼 수 있는 언어의 사용법 속에서 이미지와 이미지의 어울림,이미지와 이미지를 서술하는 낱말들의 어울림은 기존의 일반적 묘사구도를 배반하며 파격적으로 성립된다.


                  앵도를 먹고 무서운 애를 낳았으면 좋겠어
                  걸어가는 詩가 되었으면 물구나무 서는
                  오리가 되었으면 嘔吐하는 발가락이 되었으면
                  발톱있는 감자가 되었으면 상냥한 工場이
                  되었으면 날아가는 맷돌이 되었으면 좋겠어

                                                -[口話] 부분

이 작품에서처럼 시어들은 폭력적으로 결합되어 상황의 전복이란 의미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것들은 예쁜 모양을 무서운 모양으로,쓰러진 모양을 걸어가는 모양으로,안정된 모양을 불안한 모양으로 바꾸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암시한다.

주작산과 남해 금산 바위들의 흔적,[남해 금산]


주작산의 중턱에서 정상 쪽을 향해 자리잡은 바위들의 모양은 주작산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다.바위들이 버티고 있는 형상은 절개지의 노출을 무력하게 만든다.절개지는 상처를 온통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하지만 바위들은 드러냄보다 견딤의 자태로 완강한 형상을 이루어낸다.

시인은 그런 바위들의 모습에 어머니란 이름을 붙여준다.어머니의  이름은 뿌리뽑힌 존재가 아니라 뿌리박힌 존재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남해금산])라는 시행으로 노래하듯이 사랑으로 삶을 견뎌낸다.

제 2 시집에서 이성복의 상처는 확대되기보다 심화된다.가족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 속에서 그의 훼손된 현실에 대한 상처 의식은 좁혀지는 대신 치욕으로 깊어지고 자연의 공간 속에서 그는 치욕을 위로받고 싶어한다.    [자고나면 龜甲같은 치욕이] 참조

가족의 현실은 사회현실의 축도로,시인의 자아가 투사된 현실로 파악된다. 80년대의 치욕적인 현실을 가족의 현실이란 상징체계로 읽어낼 수도 있으리라.이 상황에서 시인은 어머니의 존재와 자연을 끌어들임으로  치욕스러움과 죽음에 이르는 절망을 견디어 내려는 삶의 자세를 예비하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너의 어미를 만나라
              어미가 누워있다 오래 전부터 앓아왔다
              무슨 병인가 묻지 말고 어미의 뜨거운 이마를 짚어라
              어미의 열이 너의 이마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라,뜨거운 어미의 열이 너의 가슴을 태울 때까지

                               [문을 열고 들어가] 전체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강] 부분

인용한 두 작품에는 시인이 모색하는 새로운 삶의 자세를 구성하는 세가지 중요한 요소가 드러나 있다.절망을 견디는 법을 어머니를 통해 배우며 자연을 통해 사랑을 충전받고 강물과 같은 액성 이미지등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교감시키는 것이다.

  주작산의 검은 몸체와 능선, 높은 나무의 검은 몸체와
             흰 꽃의 흔적, [그 여름의 끝]과 [호랑가시 나무의 기억]


제 4시집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을 세우고]연작시에 나타나는 흰 꽃과 검은 나무 둥치는 절망과 고통을 이겨낸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1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상황을 광물성으로 파악하였다. 삶을 이루는 사건이나 사물들은 분리되고 흩어져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집에서는 식물성에 대한 그리움이 유기적 상상력 속에 표현되어 있다. 식물성의 속성은  단지 견딤의 자세가 아니라 극복의 자세이다. 그 식물성에  그대 또는 당신, 어머니란 이름이 붙여진다. 작품 [산길]과 [숨길 수 없는 노래 1,2,3] [눈물]등을 참조.

한낮이면 삶의 절망적인 상처를 온통 붉은 색으로 과시하던 절개지와 그 절망의 상처를 견디어 내던 바위들을 품고 삶의 소망과 사랑의 기운이 은은하게 서려있는 식물성의 푸른 숲까지 품으면서도 그것들의 자취를 지워버린 주작산, 그러면서 몸체의 끝으로부터 섬세한 능선의 형상을 빚어내던 주작산의 검은 색상이야말로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마음의 변화를 끌어 안으면서도 온전한 삶을 이루어 낼 수 없는 존재의 유한함을 깊은 슬픔의 자취로 아로새겨 놓은 것이 아닐까,

이 구도 속에서 이성복 시의 여정을 가늠해본다.그 슬픔의 자취로 세상의 가장 '더러운 진창'에 대한 절망과 세상의 가장 '정결한 나무'에 대한 그리움 사이에 놓여있는 막막한 공간, 그 속에 그의 여정이 마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의 손이 닿
       지 않는 가장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
       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
       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산] 부분


『 한 회원이 선생님은 글쓰시다가 글이 안될 때 어떻게 풀어가느냐고 묻자 그는 요즘도 글을 쓰다가 글이 안 되면 죽고 싶을 때가 많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이 대답에 충격 받았다. 이미 일가를 이룬 시인이 뭐 그까짓 시가 좀 안 써진다고 죽고 싶기까지 할까? 하는 것이 안일한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문학에 대해 적어도 이 정도와 같은 초심자의 열의나 경건성이 있기에 우리에게 좋은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새삼 많은 것을 느꼈다. 이래저래 그는 나에게 평생교육의 장이다. 그 곁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무한한 행운으로 여긴다.
몇 년간 절필했던 그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다시 그의 작품을 따라 읽는 재미로 세상살이의 무료함이나 답답함이 좀 줄어들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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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귀의 노래―유치환(1908∼1967)

내 오늘 병든 짐승처럼
치운 십이월의 벌판으로 호을로 나온 뜻은
스스로 비노(悲怒)하여 갈 곳 없고
나의 심사를 뉘게도 말하지 않으려 함이로다

삭풍(朔風)에 늠렬(凜烈)한 하늘 아래
가마귀떼 날아 앉은 벌은 내버린 나누어
대지는 얼고
초목은 죽고
온갖은 한번 가고 다시 돌아올 법도 않도다

그들은 모두 뚜쟁이처럼 진실을 사랑하지 않고
내 또한 그 거리에 살아
오욕을 팔아 인색의 돈을 버리려 하거늘
아아 내 어디메 이 비루한 인생을 육시(戮屍)하료

 

 이런 시를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지 의문이다. 유치환의 시는 다정다감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도다’, ‘…노라’로 끝나는 말투는 마치 회초리를 든 훈장님 같아서 도통 정이 가지 않는다. 쓰는 단어들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 시에서도 ‘늠렬(凜烈)’이라는 한자가 참 어렵다. 이 말은 ‘추위가 살을 엘 정도로 매섭다’는 뜻인데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없다. 또 ‘육시’라는 단어는 무섭고 처절한 복수의 형벌을 의미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시인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고집이 센 시이지만 작품에 담긴 시정을 알게 된다면 분명 우두커니 멈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시에서 ‘가마귀’는 시인 자신을 뜻한다. 그는 자신을 잘난 것 없고 무뚝뚝한 가마귀에 비유하곤 했다. 가마귀는 홀로 추운 곳에서 고난을 자처하고 있다. 벌판으로 나와 굳이 삭풍을 맞는 이유는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서이다. 
 

 

 대체 그는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일까. 가마귀가 살던 시대에는 “모두 뚜쟁이처럼 진실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과 영혼을 팔아 돈을 얻었나 보다. 그리고 가마귀 역시 그런 시류에 잠시 눈이 흐려질 뻔하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증오하고 벌하면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람은 굶어 죽을지라도 영혼과 마음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증오와 정결을 아는 가마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삭풍이 뺨을 스칠 때면 그 가마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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