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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 시인 시세계를 알아보다...
2016년 11월 30일 23시 42분  조회:5499  추천:0  작성자: 죽림
좌절한 스페인 양심’, 요절한 천재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로르카의 삶

 

로르카는 1898년 6월 6일, 그라나다 근처 소도시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지주인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자연과 그 신비함은 어린 로르카에게는 지속적인 매혹이었으며,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의 다양함과 신기함을 관찰하곤 하였다. 그는 후에 그의 위트와 음악적 능력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그의 첫 피아노 교사가 되었을 정도로 자상하고 재능 있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녀로 있었던 돌로레스에게서 농부와 집시의 민요 및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스페인 로망스를 듣고 자랐으며, 그녀와 함께 나무와 합판으로 된 인형을 가지고 어린이들과 하녀로 구성된 관객을 매혹시키는 방법을 습득하며 연극적 재능을 익혀 나갔다.

 

1909년 그의 가족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표적 도시인 그라나다로 이사를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국립음악학교에서 스승 돈 안또니오 세구라의 지도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그리고 스페인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그라나다 대학에 진학하여 원하지 않았던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곧 문학과 음악과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서 법 공부를 제쳐두고 그 시대의 지성들과 만남을 가지게 된다. '작은 구석'의 뜻을 가진 '엘 린꼰시요'라는 이 그룹에서 그는 문인으로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배경 삼아 1918년, 자신의 스페인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첫 시집 『인상과 풍경 Impresiones y paisajes』을 발간한다. 비록 이 작품의 작품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의 작품 세계에 앞으로 면면히 흐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1918년 그는 그라나다를 떠났고, 1919년에는 마드리드 대학의 학생 기숙사에 머물게 된다. 이곳은 프랑스의 작가 로저 마르틴 드가가 "스페인 인문주의의 보고"라고 부를 정도로 스페인 지성의 요람인 곳이었다. 그는 이 곳에서 같은 나이 또래의 많은 미술가와 작가들을 만나는데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시인 라파엘 알베르띠 Rafael Alberti, 영화가 루이스 부뉴엘 Luis Bunuel 같은 나이 또래의 많은 미술가와 작가들로부터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 Juan Ramon Jimenez같은 한 세대 위의 유명한 예술가들도 만나게 된다. 그는 그의 기숙사 생활 첫 2년 동안 자신의 시를 낭송 등의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알려 출간 전에 이미 그의 시들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그리고 1921년, 주로 히메네스와 마차도 Antonio Machado y Ruiz의 영향을 받아 그의 첫 시집인 『시서 Libro de poemas』가 발간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1922년 마누엘 데 파야 Manuel de Falla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그라나다에서 깐떼 혼도 축제 Fiesta de Cante Jondo를 그와 함께 주최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로르카는 자신의 고뇌의 해법을 스페인 전통 예술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 이러한 관념들이 그의 작품으로 녹아 들어 갔고 곧바로 『깐떼 혼도의 시 Poema del Cante Jondo』(1922년 완성, 1931년 출간)의 집필에 들어간다. 『노래집 Canciones』(1927), 『첫번째 집시 가곡집 Primer romancero gitano』(1924-27년 집필, 1928년 출간)등이 이어진다. 이러한 작품 각각에서 그는 스페인 시에서 어느 샌가 사라져 버렸던 음악성(혹은 리듬감), 독특한 메타포(혹자는 공고라 Gongora의 영향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신비적 감각 등을 표현해 내면서 그의 천재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냈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활동하였다. 『나비의 저주』(1920), 『돈 끄리스또발의 재단 병풍』(1923)의 극작에 이어 1927년에는 자신이 1925년에 지은 로맨틱한 시극 『마리아나 삐에다 Mariana Pineda』를 달리의 배경 그림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공연,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바르셀로나에서 로르카의 그림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 활동으로, 특히 『첫번째 집시 가곡집』의 대성공으로 그는 스페인에서 지식인층에서뿐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가 로르카에게 행운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집시 시인"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비록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지라도, 완전히 그러한 것으로만 자신이 정의되는 것은 실수라고 여겼다. 몇몇의 전기 작가들은 이것이 그에게서 "집시의 시"와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뉴욕으로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1929년부터 1930년까지 거주하였지만 생의 극적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이때의 그의 생각은 그가 뉴욕에 체류하면서 쓴 그의 작품 『뉴욕에서의 시인 Poeta en Nueva York』(1940)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 비교할 때 매우 초현실적이며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그는 방랑을 정리하고 스페인 극의 개혁을 꿈꾸면서 쿠바를 잠시 거쳐 귀국한다. 그는 일반 연기자들과 단기적으로 극을 공연하는 레퍼터리 극단에서 새로운 배우를 조련하고 관객을 불러모으도록 촉진하고, 고전을 살리고 그의 극에 활용하며, 극장에서는 극에서의 시의 필요성과 그 시의 그리스고전, 꼬메디야 델라르떼 commedia dell'Arte, 낭만주의, 그리고 스페인 전통시에서의 기원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움집 La Barraca'이라는 순회공연 극단을 창단하였다. 이 극단은 스페인 공화국의 탄생으로 그 활동이 강화되면서 19세기에 유행했던 사실주의 극으로 만연된 무대를 배척하면서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 그리고는 스페인의 전통적 문화의 정수가 가득 담긴 로뻬 데 베가 Lope de Vega나 미겔 데 세르반떼스 Miguel de Cervantes등의 극을 상연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과는 그의 비극 3부작 중 첫 번째인 『피의 혼례 Bodas de sangre』(1933)의 대성공으로 나타난다. 극의 주제는 로르카가 어떤 신부가 그녀의 결혼식 날 비밀리에 사랑하던 사람과 도주를 했다가 신랑과 그 남자가 서로를 죽였다는 실제 뉴스를 들은 후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착상되었다. 그들은 이 극에서 죽음으로 마무리 된 사회의 양보될 수 없는 명예와 원초적 본능간의 운명적 비극의 희생자로 승화되었고, 이 극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서 그는 1933-34년에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도 방문한다. 그리고 1934년에 『예르마 Yerma』를 발표, 20세기 시극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인기를 끈다. 그리고는 1936년 6월, 비극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La casa de Bernarda Alba』을 완성한다. 그 외에도 시집으로 『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야스의 죽음을 통곡하며』(1934), 『따마릿 시집』(1936), 『어두운 사랑의 소네트』(1936)등이 있으며 극으로는 『경이로운 여구두 수선공』(1930), 『돈 끄리스또발과 로시따 처녀의 희비극』(1931), 『관중』(1930), 『돈 뻬르림플린과 벨리사와의 정원에서의 사랑』(1931), 『이렇게 5년은 흘러가려는가』(1931), 『독신녀 도냐 로시따 또는 꽃들의 언어』(1935) 등이 있다.

 

그러나 로르카는 운명의 장난으로 1936년 8월 어느 날 새벽, 그라나다에서 스페인 내전의 시작과 함께 국가주의자들에게 총살당하고 만다. 그가 왜 사형당해야만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다. 그의 동성연애가 그의 죽음의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그리고 그의 극중에서 그것이 동성애의 형태이건 이성애의 형태이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신의 그런 면에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그는 스페인 사회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성격에 많은 고통을 받았고 그 해방구로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정신을 잇는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의 사후 1년, 『독신녀 도냐 로시따 또는 꽃들의 언어』를 무대에 올린 후 해체되었던 극단 '움집'은 그의 조수 모데스또 이게라로 이어져 전쟁 후 독립적인 『스페인대학극단 TEU』로 발전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것이 검열을 거쳐야 하는 시기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새로운 젊은 극작가들을 양산해냈다. 이러한 흐름이 50년대 60년대를 거쳐 유럽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극과 반정부 문인이었던 우나무노와 무정부주의자 바예 잉끌란 및 라우라 올모, 알폰소 사스뜨레,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들을 상연하였다. 그리고 40년간의 독재체제가 끝난 후 『스페인국립극단』이 되어 로르카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로르카를 이해하기 위하여 ― 그의 죽음과 사상

 

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스페인의 환경과 파시즘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당시의 스페인은 19세기 중순부터 시작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어서 20세기 초에는 기득세력인 사회주의 노선의 공화당파와 파시즘의 프랑코파가 맞붙게 된다. 결국은 프랑코가 자신의 군대를 모로코로부터 이끌고 본국에 들어옴으로써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시작된다. 그가 이 내전의 와중에서 파시스트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에 의한 보수혁명의 성격을 띄는 데, 이 혁명에서는 '지성'이나 '이성'을 가진 자는 제거되어야만 한다. 파시스트는 반이성주의자들이며, 그들은 실존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이성 대신에 '힘과 용기'로 대변되는 '의지'가 가치판단을 대신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생각하는 사람은 의지에서 비롯되는 확신이 없고, 결국 행동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지'는 사람들을 한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데, 그러한 의지를 사람들에게 가지게 하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예지'의 능력으로 파악하는 것은 선택 받은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는 귀족주의적 인식론으로 귀착된다.

 

그들에게 로르카라는 스페인을 깨우려는 지식인의 존재는 눈엣가시라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귀족주의적 인식론을 가진 파시스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가 나고 자란 안달루시아의 민중 정서가 뼈 속 깊이 박힌 사람이었다. 또한 그가 비록 어떤 정치적 모임에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과 작품 전면에는 그가 자유를 사랑하는 지식인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와 누이 꼰차와의 대화에서도 그는 "난 가난한 사람들 편일 뿐이야."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도 본능의 자유를 갈망하는 『베르나르다 알마의 집』의 아델라나, 개인의 자유의지를 찾아 헤매던 『예르마』의 예르마와 같은 인물에서 그의 그런 사상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지식인들은 이러한 천박한 정치의 논리에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로르카가 그것을 의식했건 하지 않았건, 그만큼 그가 스페인 국민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의 막대한 영향력은 그의 사후 18년 동안 프랑코 정권이 그에 관한 논의를 완벽하게 금지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강제의 탄압으로도 로르카의 빛나는 업적과 뜻을 가리지는 못했다. 꼭 스페인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의 사상의 전 인류적 보편성은 그의 탄생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곁에 이렇게 숨쉬고 있다. 그의 극에서 아직도 그가 인간에게 자신의 본성을 숨긴 가식의 가면을 벗으라고 외치는 듯 하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아직 맛볼 수 없었던 진실된 비극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로르카의 시

 

<바람난 유부녀>

 

난 그녀를 강가로 데려갔지

그녀가 아가씨라고만 믿었었지

하지만 남편이 있었지 뭔가.

때는 바야흐로

산티아고 축제의 밤.

등불들은 꺼지고

귀뚜라미들이 불을 밝혔다네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서

잠들어 있던 그녀의 가슴을 건드리자

하이신스 가지처럼

화들짝 내게 열었다네.

풀 먹인 속치마

소리가 내 귀에

열 개의 칼에 찢긴

비단 조각같이 사각거렸지.

숲 속에 은빛도 비추지 않아도

나무들은 자라났고

개들은 강 멀리

수평선에서 짖고 있었지.

 

가시나무 숲을 지나서

골풀과 단상사나무를 지나서

여린 풀섶 아래

오목한 곳에 자리를 만들었지.

내가 넥타이를 풀자

그녀는 옷을 벗었지.

내가 권총 달린 허리띠를.

그녀가 네 개의 속옷을.

수선꽃도 소라고동도

그토록 고운 살결을 지니지 못하고

달빛 어린 수정도

그처럼 빛나지는 못하리라.

그녀의 몸은

반쯤은 타오르고

반쯤은 파르르 떨면서

놀란 물고기마냥 미끄러졌지.

그날 밤 나는

고삐도 안장도 없이

진주로 벼룬 준마를 타고

다시 없는 길 중의 길을 달렸지.

그녀가 내게 고백한 사연을

사내대장부로서 말하고 싶지 않네.

이해의 빛이

나를 무척 신중하게 만드는 걸세.

입맞춤과 모래로 더러워진

그녀를 강에서 데려왔지.

바람이 불어

창포 잎이 흔들렸지.

 

나는 나답게 행동했지.

당당한 집사로서 말일세.

그녀는 밀짚빛깔 융단으로

내가 그녀를 강가로 데려올 때

남편이 있었으면서도

아가씨라고 말했기에

그녀를 나 사랑하고 싶지 않았네.

 

<나의 손이 꽃잎을 떨어낼 수 있다면>

 

1919년 11월 10일 그라나다

 

어두운 밤이면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별들이 달에게로

물 마시러 올 때

숨은 나무 이파리들의

잎 가지가 잠들 때

그때 나는 사랑도 음악도

없는 텅 빈 나를 느낀다

죽은 옛 시간을 헤아리며

노래하는 미친 시계

 

오늘 이 어두운 밤에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자 지금은 너의 이름이

어느 때보다 더욱 멀리 들린다

모든 별들보다 더욱 멀리

서서히 내리는 빗소리보다 더욱 아프게

 

그때처럼 언제 한번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무슨 죄가 있는가

이 안개가 걷히면

어떤 다른 사랑이 나를 기다릴까

그 사랑은 순수하고 조용할까

아, 나의 이 손가락들이 달의

꽃잎을 떨어낼 수 있다면

 

<안타까운 사랑>

 

네가 오지 못하게

내가 갈 수 없도록

밤은 올 생각을 안 하고

 

하지만 내가 가야지,

아무리 전갈의 해가 내 관자놀이를 먹어도

 

하지만 네가 오겠지,

비처럼 쏟아지는 소금이 너의 혀를 태워도

 

네가 오지 못하게

내가 갈 수 없도록

낮은 올 생각을 안 하고

 

하지만 내가 가야지

물어뜯긴 내 카네이션은 두꺼비들에게 주고

 

하지만 네가 오겠지

어둠의 구정물 하수구를 통해서라도

 

너 때문에 나 죽으라고

나 때문에 너 죽으라고

낮도 밤도 올 생각을 안 하고

 

<보여 주지 않는 사랑>

 

오직 벨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너에게 마편초 왕관을 씌웠지.

 

"그라나다는 하나의 달

담쟁이덩굴 사이로 빠져 죽은."

 

오직 벨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카르타헤나의 내 정원을 다 까부쉈지.

 

"그라나다는 한 마리 암노루

풍향계 언저리 장미."

 

오직 벨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너의 몸 속에서 나를 불태웠지

누구 몸인지도 모르고.

 

<즉흥적인 사랑의 노래>

 

아무도 너의 뱃속에서 나오는

불길한 목련의 향기를 알지 못했다.

아무도 네가 달콤한 말로써

사랑의 작은 새를 괴롭혔는지 알지 못했다.

 

하얀 눈도 부러워할 너의 허리를 껴안고

내가 나흘 동안 밤을 지새는 동안

수많은 페르시아 말들이 너의 얼굴을 비추는 달빛을 받으며

광장에서 잠들곤 했다.

 

석고와 자스민 사이에서 너의 시선은

창백한 씨앗을 담고 있었다.

나를 찾았다 너에게 주기 위해

내 마음 속으로부터 <영원히>라고 새겨진 상아빛 글씨를.

 

영원한, 영원한 내 고뇌의 정원이여

영원히 붙잡기 어려운 너의 육체여

너의 혈관의 피가 내 입에 스며들고

나의 죽음 앞에 너의 입은 이미 빛을 잃었네.
[출처] 스페인 시 여행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작성자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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