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作할 때 민족의 정서와 녹익은 가락을 집어 넣어라...
우리의 맛과 멋으로 둥그러진 민속수라상
-김영건시인의 미니시집 <구색 아리랑>을 들어보다
한영남
흔히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고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것은 분명 있다. 바로 우리만의 정서요 가락이 그중 하나이다.
며칠전 한국 KBS방송국 <가요무대> 제작진은 독일에 날아가 독일에서 살고있는 교포들과 <아리랑>으로 한마당이 되는 자리를 마련한적이 있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래서 2세 3세들은 우리말을 할줄도 들을줄도 몰랐다. 하지만 무대우에서 아리랑선률이 흐르자 그들은 너나없이 눈물을 머금고 손과 손을 잡고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을 함께 열창하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느낄수 있는 우리만의 정서요 가락이 아닐가 생각해보았었다.
한소절만 들어도 금세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리랑, 도라지, 노들강변…들은 우리 민족이라면 그가 설사 음식습관이 바뀌고 패션문화가 바뀌고 생활습관이 바뀌였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라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우리의 정서는 우리만이 느낄수 있는 피줄이요 골수속에 녹아있는 흐름이라 해야겠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펼쳐보게 되는 김영건시인의 미니시집 <구색 아리랑>은 순수 우리만의 고유한 맛과 멋으로 정성껏 차려낸 민속수라상이라 해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거기에서 막걸리향을 맡든 더덕구이냄새에 심취되든 그것은 전혀 독자들의 몫이 되겠다.
좋은 음식상을 마주하고 머뭇거린다는것은 음식에 대한 모독이 될것이다. 한가지씩 맛부터 보기로 하자.
우리에게 익숙한 맛 그 은은함에 젖어보다
깊은 수심 우물 박아 아리랑
대들보에 매달린 맛
황금 메주덩어리 줄레줄레
구성진 퉁소의 알알이
구멍마다 두만강 휘파람
-<백년부락>에서
백년된 팔간집을 스케치한 시이다. 천년을 떠올리게 하는 시이다. 우리 민족만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다. 서까래에 대들보에 메주덩어리들… 그속에 묻힌 의미는 우리 민족만이 알고있다. 하얀 창호지를 바른 우리의 회벽집을 떠올리면 금세라도 그 정주칸에서 흰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를듯 싶고 그런 김속에는 어김없이 송골송골 땀방울 맺힌 어머니의 모습도 어른거릴듯 싶다. 그리고 웃방에서는 올방자를 틀고앉은채 벌써 탁배기들에 얼큰해진 우리네 아버지들이 혹시 손때묻은 퉁소라도 구성지게 불어줄지 누가 알랴.
모든것이 초로 계산되는 디지털시대에 사정없이 내몰린 요즘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기표로 아슴한 추억을 불러주는 시라 해야겠다. 그러나 그 추억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한 민족이 걸어온 력사를 잔잔한 시정으로 반추해보이거니와 엇모리나 휘모리와 같이 무척 아름다운 점과 선과 면이라는 립체적인 이미지로 한마당 민속잔치를 펼쳐보이고있다는데서 또한 이 시가 한결 돋보이고있다.
삭이고 익힌
다져넣은 겨레의 맛
바람과 어울려
발효된 력사
해살로 익은 장독대
-<장독대> 일부
고루 잘 섞여서 화선지에 흠씬 스며드는 푸른 먹빛이 떠올려지지 않는가. 그리고 늠실늠실 피여오르는 묵향이 코끝을 간질이지 않는가. 요컨대 <장독대>에서는 우리 민족이라면 느낄수 있는 이미지들을 각각의 원소들로 그 의미를 더해주면서 독자들을 신비로운 미적 본성에로 인도해주고있는 셈이다. 이러한 메타포들은 결국 시인의 시적세계 내지 사상의 경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서 린색하지 않을뿐더러 너흘너흘 우리 가락과 우리 몸짓을 동원하면서 영원한 우리의 아리랑을 연주하고있는것이다.
그리고 김시인의 시들에서 독자들은 자못 신선한 미의 축제분위기를 느낄수 있을것이며 그속에서 따스한 위로와 다독거림을 획득할수도 있을것이다. 시인은 시 <석마돌과 초가집>에서는 우리 민족의 력사를 떠올리고, <돌방아풍경>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푸른 숨결을 느끼게 해주며, <농가풍경>과 <가난한 행복>, <흑백가족사진>에서는 흘러간 세월의 무늬를 어루만질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를 잠시 밀어내고 오로지 시의 표정에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종 부드러운 낱말들을 알심들여 선택하고 그것을 다시 시어로 승화시키면서 시의 의미를 부각시킨 시들에서 물리적인 힘을 이기는 이 단단한 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일곱수의 시가 전부 비슷한 가락이여서 은은함 일색인듯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표정은 오히려 서리발친다고 해야 할것이다. 외유내강의 조선족녀성상에 다름아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시인의 시적사유폭이 그만큼 거창하고 높이 서서 커다란 사상의 덩어리를 흔들면서 작시한 까닭이리라.
지조와 절개를 위해 은장도를 소지하고 다녔던 서슬이 새파란 조선녀성을 떠올리거나 그 도포자락에는 손도 베인다고 했던 오골의 소유자인 선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리해가 쉽게 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시인이 독자들에게 주고저 하는 메시지에 다름아닐것이다.
요컨대 김시인은 <구색 아리랑>으로 우리 민족상을 그려보이면서 오늘날 날로 색바래지는 우리 민족의 모습들을 안타까워하고 그것을 전승하고 발전시켜가야 한다고 호소하고있는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멋 그 의미에 심취하다
상기 <구색 아리랑>이라는 표제의 미니시집에 수록된 일곱수의 시들은 자칫 피상적으로 드러난 낱말들에 의해 아날로그적인 생각을 잠간 가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시의 깊은 뜻을 아직 모르거나 외면했을 경우 내리게 되는 섣부른 판단이 될것이다.
일곱수의 시들은 일곱알의 옥구슬처럼 순수하면서도 맑은 소리를 내고있다. 시인의 정신세계의 깊이가 헤아려지는 순수함이요 맑음이다. 순결하다못해 파릿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시적 정신세계는 분명 어지럽고 혼탁한 현실세계와는 차원이 다른것이며 그런 와중에도 그는 이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알뜰하게 민속수라상을 마련한것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자아팽창으로 팽만한 현대인들에게 사뭇 아름다운 이미지로 결고운 아리랑 무늬를 펼쳐보이면서 그 정서를 걸러주기 위해 노력하는 시인의 깊은 마음이 헤아려지게 만드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봉선화 하얀 순정 피워낸 세월
색동저고리 외태머리 삼베옷
자주고름 흰 코신 하얀 버선발
-<흑백가족사진>에서
우리의 흑백가족사진은 분명 이러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요즘은 어른 아이 할것없이 이런 표정은 촌스럽다고 구닥다리라고 코를 싸쥘지도 모른다. 바로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가락이 희미해지는 리유이기도 하다. 그것을 시인은 가슴아파하는것이다.
피나무함지 노란 저고리 흰머리수건 하얀 버선
베옷에 검정치마 분홍저고리에 청색치마
붉은 댕기 외태머리 꽁꽁 동이고
귀밑머리 하얀 어머니와
-<가난한 행복> 일부
피나무골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지냈던 전설을 떠올리고있다. 거기에는 가난했지만 차분히 쌓여지는 작은 사랑이 있었고 까만 옛말이 송알송알 맺혀있었으며 노랗게 쌓이는 행복의 소리가 또르르 또르르 깊어가는 가을밤하늘에 울려퍼지고있었다.
행복은 크고 거창하고 금빛 번쩍이는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고 조금은 가난한데서 더욱 진하게 느껴질수 있다는것을 요즘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있다.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와 색갈로 수묵화를 그리듯 그려보이고있다. 시인의 설명은 일체 려과시킨채로.
그래서 독자들은 시를 보면서 굳이 시인의 해석이 없지만 시인이 바라던대로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만의 색갈과 정서와 가락이기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칫 현실생활에서 잊혀져가는 우리만의 정서와 멋을 다시한번 시로 정리해보이면서 이것을 지키고 전승하는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임을 호소하고있다. 그리고 상기의 일곱수의 시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어린시절 내지 조상들의 모습까지를 떠올리게 되는것은 시인이 상기의 시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저 했던 메시지에 다름아닐것이다.
오늘 우리는 김영건시인이 그만의 음색으로 열창한 <구색 아리랑>을 들으며 민속잔치상을 마주하고 우리 민족의 향과 맛과 멋에 젖어보았다. 여기서 타이틀인 구색 아리랑을 한번 짚고넘어가야겠다.
구색은 아홉가지 색을 가리키기도 하고 여러가지 물건이나 요소들이 서로 어울리게 고루 갖추어진것을 이르기도 하는 말이다. 아홉 구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수의 의미에서 보면 가장 큰 수를 이르는 말이요 많고 풍요로운 의미로도 통한다. 또 구색을 갖추다에서처럼 여러가지를 두루 갖추고있음을 지칭하기도 한다. 구색 아리랑이라면 어떤 의미일가. 그것은 우리 민족의 대표곡으로 일컬어지는 아리랑을 두루 아우른다는 의미일것이고 아리랑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속의 많은 부분들 역시 두루 아우른다는 의미가 될것이며 보다 많은 시인과 독자들이 이 마당에 함께 동참하여 우리 민족의 사라져가는 아쉬운것들을 같이 지키고 전승해가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는것이다. 어쩌면 요즘따라 인공적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민속촌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순수 우리만의 정서와 맛과 멋은 오히려 사라지고있는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질 즈음 다행히 이런 시들에서 시인들의 각성한 모습을 볼수 있어서 고무적이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성들이 전부 사라진건 아니라는데서 안도하게도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시인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것을 다 같이 새겨볼 법이다.
멋진 시를 보여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4년 <연변문학>1기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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