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어디선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와 눈을 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새벽 3시. 그 요란한 소리는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잠에서 깨어나도 의식은 선명하지 않다. 두꺼운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열어보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로는 주황색 나트륨등에 반사돼 번쩍거린다. 비에 젖은 가로 위로 섬광이 스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사실 천둥소리에 고마워해야 했다. 악몽을 꾼 것이다.
꿈속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하도 기가 막혀 꿈속에서도 이건 꿈이려니 생각하고 두눈을 질끈 감은 채 도리질을 쳤더니 굉음 속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멀고 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는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이 또한 꿈이 아닐까. 다시 두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을 치면 서울의 안방이 나오지 않을까. 눈 한번 꼭 감고 숨을 참으면 이승에서의 기나긴 삶조차 꿈이 되지 않을까.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을 붙들고 20세기 세계문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보르헤스의 혼이 덧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이고 보면, 그의 영혼은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 이 어두운 새벽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 어느덧 내 영혼의 중심으로 들어왔다네/ 분주함과 황망함에 넌덜머리나는/ 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아라발의 감미로운 거리,/ (……)/ 이런 모든 거리들은 영혼을 탐하는 이들에겐/ 행복의 약속이라네./ (…)/ 깃발처럼 거리가/ 사방으로 펼쳐지네/ 우뚝 솟은 내 시에서/ 그 깃발이 하늘을 펄럭이기를."('거리'에서)
보르헤스의 첫 시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는 그가 날마다 몇시간씩 산책을 했던 도시를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시편들이 수록돼 있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가 라플라타강 유역에 건설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역사와 현주소를 나름의 애정을 곡진하게 담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일천한 역사의 이 도시에 영웅적인 신화의 빛깔을 덧칠하고 싶어했다. 그가 수많은 시집들을 펴냈지만 정작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시보다는 소설로, 그의 문학이론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픽션들'과 '알렙'은 그를 세계적인 문호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짧은 단편 '알렙'의 서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콘스티투시온 광장(제헌광장) 철탑광고판 이야기로 시작된다. 애인이 죽고 난 뒤 제헌광장 철탑광고판에 걸려 있던 블론드 담배필터의 광고가 어딘지 모르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은 '끊임없고 광활한 우주'가 이미 그녀에게서 떠났으며, 세상은 그녀가 없어도 무한히 변화할 것임을 서글프게 깨닫는다.
악몽의 기억에서 헤어나 대낮인데도 여전히 어두운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당도한 제헌광장의 철탑광고판은 안드레아니(ANDREANI) 우편회사 광고로 바뀌어 있었다. 현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부정형의 그 무엇인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2∼3㎝의 작은 구멍 '알렙'을 설정해 그 구멍을 통해서 모든 우주의 공간이 전혀 축소되지 않은, 무한한 사물을 동시에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환상을 제공한다.
이처럼 동시에 모든 것이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하게 한 점에 존재하는 환상은 마르케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의 위대한 작품 '백년 동안의 고독' 마지막 설정에 힌트를 주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에서 대통령궁까지 이어진 Ƌ월 대로'를 걷는다. 이 대로는 항의집회 때의 단골 거리이기도 하고,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차량을 통제하고 기념식을 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컬럼버스데이를 맞아 대로 위에는 남미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여기저기 노점상들과 구경나온 시민들로 가득하다.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이들이 자신들의 민속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대로는 군사정권 시절에 어디론가 끌려가 실종된 수만명의 행방불명자 유가족들이 단골 집회장소로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르헤스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였고, 페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이유로 도서관장 직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보르헤스가 근무했던 시립도서관으로 간다. 시립도서관은 이미 이전됐고 그 자리에는 한때 보르헤스가 수장으로 있었던 아르헨티나작가협회가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만난 작가협회 도서관장 알베르토 킨타나(40)씨는 정작 보르헤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인 경향의 작품들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요즘 크게 두드러지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의 아픔을 묘사하는 작품들이라는 얘기다. 실제인물을 소재로 소설보다 더 실감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들도 인기가 높다고 전한다.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보르헤스를 평가하는 일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보르헤스는 "우리는 광적인 민족주의자, 광적인 반유대주의자, 광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는 있지만 광적인 보수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며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인내와 체념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묘한 논리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되 그는 이웃 국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주는 상을 덥석 받아 야유를 받기도 했다.
시내 중심가의 보르헤스 생가 자리에는 25년간 보르헤스를 연구해 온 사업가 알렉산드로 바카로(48)씨가 지난해 보르헤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사재를 털어 마련한 박물관이 있다. 보르헤스 증조부에 관한 자료에서부터 편지 책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으로 보르헤스의 체취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되자마자 보르헤스는 애석하게도 눈이 멀어버렸다.
깨알같은 보르헤스의 글씨들을 보면 그가 애초부터 시력이 약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는 거대한 장서더미 속에서 맹인으로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며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을 찬양하며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고 노래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는 5월 대로변의 카페 토로토니. 다시 밤이 되자 오래된 카페의 작은 무대는 탱고를 추는 남녀들로 열기가 뜨겁다. 관능적이고 격렬한 춤에 맞추어 반도네온의 애조띤 음색의 연주가 분위기를 돋운다. 이 도시 못지 않게 탱고를 사랑했던 보르헤스는 탱고의 가사를 직접 짓기도 했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오묘한 실체를 찾아 '맹목'(盲目)의 허공을 부유하다 간 보르헤스. 그의 영혼도 이제는 그 모호한 실타래를 풀어헤치고 무대 위의 고혹적인 여자와 함께 안식을 얻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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