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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471□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해인, 분도출판사, 1992 순수 서정시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순수하고 맑은 정신이 사물에 접촉하여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맑은 영혼이 사물에 접할 때에는 땡그랑 하는 소리가 난다. 바로 그런 소리가 사물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정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어서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담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울림을 갖고 있다. 한자야말로 떼어야 할 혹이다.★★☆☆☆[4337. 2. 17.]
472□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민음의 시 45, 민음사, 1992 대체로 주제에 비해서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것은 주제를 정확하게 정하지 못한 상태로 시를 썼기 때문이고, 주제를 먼저 정한 다음에 쓴 것이 아니라 시를 써나가면서 주제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길어지고 비슷한 이미지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인 시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나타난 이미지가 뒤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먼저 주제를 정한 다음에 거기에 맞는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될수록 많이 잘라내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일 것이다. 이미지에 끌려 다니다가는 할 말도 못하고 시를 마감하게 된다. 한자는 불필요한 이미지이다.★☆☆☆☆[4337. 2. 17.]
473□상처가 나를 살린다□이대흠, 현대문학북스의 시 2, 현대문학북스, 2001 이미지들이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뻗어나간다. 막힘이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이미지들이 떠올라, 시를 쓰는 재주만큼은 절정에 올라있음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문제는 방향이다. 몽롱하고 알 수 없는 방향은 결국 자신의 얘기인데, 그것을 어느 방향에서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라면 방향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때론 무모한 작업에 머물고 말 수 있다. 그런 우려는 특히 짧은 시들이 보이는 단정한 맛과 긴 시들이 갖는 장황스러움을 어떻게 일치시켜야 하는가 하는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더하다. 나를 상대로 한 실험이 성공하려면 그것이 단순히 내 상상의 유희에 그치지 않고 그 실험이 시대의 한 끝을 물고늘어지는 절실함에 닿아있어야 한다. 사상을 갖지 않은 자가 판단력만으로 사상 가진 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대부분 그때의 판단은 독단이기 때문이다. 그 독단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으로만 끝나도 다행인 경우가 많다. 한자는 필요할 것 같지 않다.★★☆☆☆[4337. 2. 17.]
474□이형기 시 99선□이형기, 오늘의 시인총서, 도서출판 선, 2003 어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으면서도 사물과 존재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의미들을 아주 잘 불러내었다. 그것은 오랜 관찰로 숙련된 시각이 아니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렵고 기발하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기교의 기교가 진짜 부리기 힘든 기교인 것이다. 어눌한 듯하면서도 침착하게 할 말을 다 하는 여백의 미학 같은 맛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한자를 쓴 것은 그렇다 쳐도 오자가 너무 많다. 시인이 병중이라니, 이것은 출판사의 무성의겠지만, 그런 태도는 시인에게도 누가 된다. 어쩔 것인가?★★★☆☆[4337. 2. 17.]
475□참 오래 쓴 가위□이희중, 문학동네 시집 61, 문학동네, 2002 둔탁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반짝임이 없다고 해야 할까? 시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있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발상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데 읽기가 아주 거북하고 어렵고 속도가 늦다. 바로 이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발상의 둔중함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많은 시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내용이 되어있는데, 그것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둔중한 것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벼운 제시만으로도 과거는 묘한 울림을 갖고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몇 편에서는 둔중한 내용으로 되어있어서 어울릴 듯하지만 많은 시들이 가벼운 건드림만으로도 될 내용들이다. 이것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 발상과 그것을 시로 다듬는 작업을 덜 했거나 미숙하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좀 더 구체화한 뒤에 시를 써야만 시가 가벼우면서도 쉽게 주제를 전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게 된다. 몇 자 되지 않는 한자는 그러잖아도 무거운 시를 더욱 무겁게 한다.★☆☆☆☆[4337. 2. 17.]
476□민들레의 영토□이해인, 가톨릭출판사, 2001 영혼이 참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은 영혼이 고여서 넘쳐 나온 시들이다. 그러니 시 쓰는 방법이 간절한 염원을 담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의 수법들이 예측을 불허하는 곳에서 나타나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선한 맛이 들게 한다. 시를 쓰는 것은 기법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간절한 기대를 만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의 기법은 그런 상태의 보조수단이다.★★☆☆☆[4337. 2. 18.]
477□기차는 달린다□이동순, 만인시선 3, 만인사, 2001 시는 자신의 내면을 다른 이미지에 빗대어서 밖으로 드러내는 양식이다. 그러나 여행이란 바깥의 풍물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과 시는 완전히 상반된 체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시에서 여행을 다루면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그것이 내면에 미친 영향을 드러내게 된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대상을 노래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행시는 의미가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이야기가 빠지고 그곳의 풍물과 역사를 담는 것으로 일관되는데 그렇게 되면 시의 감칠맛 나는 효과가 반감된다. 바로 이 불균형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기행시의 운명이다. 이 시집 역시 이러한 문제점에 빠져있다.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그곳의 풍물과 감상을 적는 일로 일관하고 있다. 보고서는 될지언정 시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 기행시의 속성이다. 일관된 이미지로 대상을 잘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이다.★★☆☆☆[4337. 2. 18.]
478□내 마음의 풍란□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35, 문학과지성사, 1999 내 마음속의 어떤 대상을 설정해놓고 모든 이미지들을 그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시에서 일관된 주제가 드러나도록 미리 한 세계를 설정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본 세계가 진리의 그것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하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은 그런 몇 가지 갈래가 있다. 시도 그런 갈래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런 갈래의 특징을 잘 따르는 것 역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한 방법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래의 특징이 크게 문제가 아니라면 그 갈래의 특징을 따라주는 것 역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시인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구축한 세계가 진리에 가깝다고 해서 그것을 전하는데 설명투가 되는 것까지 용인하면 그것은 자만이거나 게으름이다. 둘 다 시에서는 치명상에 가깝다.★★☆☆☆[4337. 2. 18.]
479□건봉사 가는 길□임정숙, 문학아카데미시선 146, 문학아카데미, 2001 시집 한 권을 건봉사와 관련된 이미지로 엮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특정 이미지에 집착할 때 생기는 문제는 그 이미지에 갇혀서 상상력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개는 예찬 일색으로 흐르거나 그에 대한 설명으로 흐르고 만다. 이런 점에서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시를 쓸 때는 될수록 자유롭게 원래의 소재로부터 벗어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것이 잘 조절되지 않아서 시가 보고서로 전락하고 말았다.★☆☆☆☆[4337. 2. 18.]
480□내 애인은 왼손잡이□임동확, 포에마쥬 2, 봄출판사, 2003 회한과 절망, 격정 같은 감정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마음속에서 들끓다가 솟아올라온 글들이다. 겉 표정은 아주 냉정하게 정리된 듯하지만 사실은 그런 격렬한 감정들이 마그마처럼 마음 밑장에 들끓고 있어서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치솟아 오를 기세이다. 시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절제해야 하는 것이 시라는 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제되지 않는 감정들은 시라는 양식이 주는 아름다운 자태를 갖추지 못하고 성급하게 나온다. 제대로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은 아무리 젊더라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그럴 듯한 시의 옷을 더 걸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시집이다.★☆☆☆☆[4337.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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