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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1, 문학과지성사, 1978 전에 읽을 때는 구조가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근 15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탄탄한 게 아니라 딱딱하다. 이미지들이 의미의 고리에 단단히 묶여서 쥐죽은듯이 숨죽이고 있다. 이것은 시를 논리로 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자꾸 사건화 하려고 하고, 많은 이미지가 동원됐는데도 시를 읽고 나면 잔상이 의미에 집중된다. 이것은 시집의 앞부분으로 올수록 더하다. 그리고 이른 시기에 쓴 뒷부분은 당시의 시대상황이 연상되는 구절과 분위기 때문에 어떤 암시성과 상징성까지 울림을 갖는데, 앞부분으로 올수록 그런 울림의 진폭이 적어진다. 생각건대 이것은 시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무료한 일상에 대한 비판인지, 그 일상 속의 의미 찾기인지, 아니면 일상 건너편의 어떤 세계에 대한 동경인지 그것이 분명치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섞여있다.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태도가 시를 모호하게 만들고 탄력을 잃게 만든다. 집이 크면 살기는 편하지만 썰렁한 게 흠이다.★★☆☆☆[4336. 11. 27.]
212□투명한 속□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8, 문학과지성사, 1980 시각 설정의 통쾌한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을 확고하게 정한 뒤의 아름다운 질서가 시집 한 권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너무 확고하다. 첫 시집이 갖는 몽롱함이 없고 너무나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좋다. 광물질은 시의 소재로 꺼리는 것인데, 이러한 광물성을 가지고 문명의 중요한 측면을 끄집어내어 사람의 상상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힘이다. 그런데 소재를 몇 가지로 국한시키다 보니 답답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그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능력은 놀랍다.★★☆☆☆[4336. 11. 27.]
213□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문학과지성시인선 7, 문학과지성사, 1994 자연에 대한 관찰이 순수한 시각과 만나서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자연에 대한 묘사 자체로 끝나거나 관념의 이입으로 그치기 일쑤인데, 여기서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실어내고 있다. 묘한 재주이다. 결국은 관념을 이야기하게 마련이지만 그런데도 자연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자연을 생각이 아닌 몸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이고,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만나기 어려운 세계여서 더욱 돋보인다. 말들은 그 말들이 거느리는 배경이 있다. 낱말 하나를 선택하면 그 낱말이 거느리는 배경의 언어들이 동시에 떠올라야 한다. 이 질서를 파괴하면서 시를 쓰는 수법이 있고, 이 질서를 잘 살리면서 시를 쓰는 수법이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이다. 말 한 개가 숱한 배경의 언어를 끌어올리면서 독자를 자연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뒤로 가면서 관념이 강해져서 그런 분위기가 많이 깨졌지만,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관념이 강해지면 자연 경관이 훼손당한다. 관념이 강해진 것은 자신의 방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곁엣사람들이 동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줏대는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곁엣사람들은 함부로 입방아 찧을 일이 아니다. 한자는 청산해야 할 군더더기이다.★★★☆☆[4336. 11. 28.]
214□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친다□김형영, 문학과지성시인선 6, 문학과지성사, 1979 미늘이 시원치 않은지 애써 바늘을 문 고기가 수면 밖까지 끌려나왔다가 빠지고 빠지곤 한다. 이미지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한 단계만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찔러야 할 그곳까지 가지를 못하고 바깥에서 걸리고 만다. 이미지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의미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아니다.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의미가 사라지고,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이미지가 흐려진다. 시상을 어디에서 잡아서 어디로 끄집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자못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시가 나아갈 방향도 잡힌다. 한자 역시 부실한 미늘 노릇을 한다.★☆☆☆☆[4336. 11. 28.]
215□신들의 옷□안수환, 문학과지성시인선 23, 문학과지성사, 1982 이 시집에서 눈을 끄는 것은 사상이다. 형식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그나마 시가 되는 것은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이다. 그것이 인간 속에 내려온 신의 존재나 신이 방관하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과 연결되어 독자에게 반추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시의 형식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맥이 빠지게 한다. 이따금 저절로 생겨난 형식이 어떤 단계까지 올라선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많은 시들이 도달해야 할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한자는 그 무거운 발걸음을 더욱 죄고 있다.★☆☆☆☆[4336. 11. 28.]
216□작은 마을에서□최하림, 문학과지성시인선 22, 문학과지성사, 1982 무엇이 시를 쓰게 하는지 그것이 분명치 않다. 시 전편이 시를 써야 한다는 어떤 절박한 동기가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쓰게 된 것들이다. 그러니 긴장이고 이미지고 거론할 것도 없다. 거의 넋두리에 가깝다. 언어가 사물을 어떻게 촉발시켜야 그것이 읽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지 아니면 이야기라도 있으면 그것을 어디서 풀어가야 하는지 하는 시의 그런 동기에 대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다. 있다면 시간뿐인데, 그 시간마저 자신 속에 갇혀있다. 이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덜 한 데서 오는 현상이다. 시가 무엇을 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시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에 겨울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데, 이 겨울이 시집을 위해 어떤 기능을 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냉랭한 겨울을 인생의 후반부 어디쯤일 꺼라고 막연히 설정하는 것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일이다. 풍경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시킬 때에도 선택의 감각과 절제가 필요한 일이고, 그건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시의 기본을 생각할 때다. 정말 버려야 할 것은 한자이다.★☆☆☆☆[4336. 11. 28.]
217□안개와 불□하재봉, 민음의 시 20, 민음사, 1988 세계 없이 이미지만 가지고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차라리 앞 부분의 세 편, 그러니까 어린 시절을 되살려놓은 시들은 아기자기 하고 고만고만한 이미지들이 모여서 정말 아름다운 신화를 되살려놓을 뻔했다. 그것은 시인이 살아온 그것의 실감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 펼쳐진 세계는, 이미지와 구조는 서구신화의 그것인데, 내용은 서구 신화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전통의 어떤 기슭에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복원할 신화세계도, 본 적이 있는 신화세계도, 가야 할 신화세계도 아닌, 이미지로만 치장된 신화 비슷한 세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글을 다루고 짜임새를 만들어가는 저력은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능력보다 현실의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 하는 지극히 간단한 사실에 진지할 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전혀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는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길어지는 것이다. 세계를 못 갖춘 말들은 거품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며, 세계를 갖추지 못한 시인은 자신의 현실 속에 뿌리내릴 때까지 시를 쓰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몽환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현실로 돌아올 때 부딪힌 세계가 바로 문명이라고 하는 껍데기였으니, 껍데기를 진실로 알고 밀어붙이면 나중에는 아예 시가 아닌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시인이 시를 버리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길이었다.★☆☆☆☆[4336. 11. 28.]
218□대설주의보□최승호, 오늘의 시인총서 22, 민음사, 1983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이 사물에 접촉할 때 어떤 기적을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물의 질서를 일부러 일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관찰이 가져온 인식의 변화와 그 변화 속의 의식이 저절로 드러내는 인간 보편의 감성까지도 보여준다. 시인이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 이렇게도 영롱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이런 세계는 이미 시인학교의 기본 과정이 되었지만, 이 시집이 발간되던 즈음의 상황에서는 한 놀라움이었다. 20년이 다 된 지금에 보아도 그 인식의 팽팽한 힘과 그 확산력은 아직도 싱싱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초점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서 주제가 좀 산만해졌다는 점이다. 한 곳에 집중하는 힘만 갖추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주제나 관점이 한 곳으로 집중될 경우 필경 인식의 긴장이 허물어지는 것은 인간이 지닌 불가피한 내력이다. 어느 곳으로든 이 긴장이 따라만 간다면 그야말로 위대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장애 중의 하나가 한자이다.★★★☆☆[4336. 11. 28.]
219□농무□신경림, 창비시선 1, 창작과비평사, 1975 시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자신의 가슴속에 할 말이 가득해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독자가 그것을 눈치채게 하는 방법을 이 시인은 알고 있다. 그것은 시각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처럼 묘사해주는 것,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전해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그러면서도 카메라에 포착하는 그 대상들을 통해서 가슴속의 울분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 그것이 이 시를 성공하게 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이 처해있는 곳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그곳은 시인의 삶을 쓸쓸하게 만드는 그 어떤 손길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곳을 지배하면서 불행하게 만드는 그 어떤 손을 독자는 저절로 감지하게 되며 그 존재에 대한 분노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눈에 비치는 광경을 가볍고 선명하게 요약하여 포착하는 것이 이 시인의 능력이다. 풍경 묘사라고 해서 함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시들은 보여준다. 몇 군데 남은 한자는 끝내 옥의 티다.★★★★☆[4336. 11. 28.]
220□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실천문학의 시집 50, 실천문학사, 1988 시골에 머물러 있던 “농무”의 시각이 그대로 도시로 옮아왔다. 변두리에 머물러서 농무의 주인공들이 서울로 올라온 삶과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방법도 시각도 20년 전 그대로다. 그러나 약간 달라진 것이 감지된다. 보여주는 수법은 똑같지만 그 속에서 하는 말의 농도가 같지 않다. 하고자 하는 말이 앞으로 많이 나섰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이 시의 겉으로 많이 드러났다. 시인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니, 아마도 도시 생활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제는 이 방법 가지고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야 하겠는데, 그 변화의 조짐은 드러나지 않는다. 옷은 아직 옛날 옷이다. 한자가 청산된 것이 반갑다.★★★☆☆[4336. 11.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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