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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조화 속에서□구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7, 미래사, 1991 관념이 너무 앞서서 언어들이 제 자리에서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언어의 정확한 쓰임과 그것이 서로 만나서 만드는 긴장, 그리고 그 긴장 위에서 벌어지는 의미의 삼투 작용인데,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너무 강렬하다보니 그 말들이 거기에 걸맞은 이미지들을 만나기 전에 시의 전체 흐름을 좌우하고 만다. 이런 경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이다. 그러니 중간에 몇 편 그럴 듯한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들조차도 그 탁류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대체로 깨달음은 아무리 깊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토해놓으면 철학이다. 그 철학에 살을 입히고 시의 형상을 갖추도록 하여 독자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면 깨달음의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임무를 소홀히 한 경우라 하겠다.★☆☆☆☆[4336. 12. 13.]
332□숨어서 우는 노래□조병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6, 미래사, 1991 시에서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은 현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정신이 현상 너머의 근본에 대한 의문과 회의까지 가 닿지 못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인은 현상을 노래하지 현상의 원인에 대한 사색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시는 현상만을 노래해도 되는 그런 갈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에 대한 갈망이나 궁금증은 시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의 태도가 그런 방향으로 정해졌으면 근원에 대한 착실한 천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말면 그것은 대개 말장난에 머물거나 깊이를 갖지 못한 넋두리로 전락하기 쉽다. 바로 이런 위험에 이 시집은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거의가 인생이라는 의미 그 중에서도 이 세계가 시간 위에서 어떤 법칙과 연계를 가지며 인간이 그 위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나 인간의 근원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내게 다가오는 시간의 겉모습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수박 겉 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때로 ‘의자’ 같은, 뜻밖의 작품이 없지 않지만, 그런 작품으로 만족하고 말기에는 이 시인이 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인간의 본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다. 거기서 겉만 핥아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이 세월과 삶에는 너무 많다. 좀 더 심각해야 할 일이다.★★☆☆☆[4336. 12. 14.]
333□오장환 전집 1 시□최두석 편, 창작과비평사, 1989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시에 작용하는 심리는 양심이다. 지켜야 할 어떤 선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것이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낳고, 그것이 세상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알며 자신이 나가야 할 길도 안다. 해방 전의 시들은 대개 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은 많이 물러나 있는데, 그런 까닭에 대신에 감상에 가까운 감정들이 시의 전면으로 나섰다. 그런데도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묘사할 줄 아는 이지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태도는 해방 후의 격렬한 감정을 노래할 때도 냉정을 잃지 않고 이미지에 매달리는 노력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그와 같은 길을 간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시가 차분한 편에 속한다. 양심과 냉정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군더더기가 많고, 그런 까닭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시들이 많다.★★☆☆☆[4336. 12. 14.]
334□불놀이□주요한,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 미래사, 1991 시가 노래해야 할 것과 시가 될 것을 아는 사람이 쓴 시다. 언어가 감정을 실어낼 줄도 알고, 무엇보다도 시가 감정을 노래하는 갈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 감정이 앞서고 있어서 시가 들떠있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시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직된 정서가 가득 찼다. 이것이 해방 전, 우리나라 현대시의 첫 새벽에 작품들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앞부분의 몇몇 작품을 빼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특히 시조는 오히려 거꾸로 간 느낌이 있다. 이병기가 이룬 성취와 비교하면 옛날 조선시대의 수준으로 퇴보한 느낌이다.★★☆☆☆[4336. 12. 15.]
335□방목시대□홍윤숙,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0, 미래사, 1991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서 정신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 적당한 표현과 적당한 주제, 적당한 깨달음과 적당한 호흡,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만큼 시를 만들어내는 방법과 리듬과 절제력까지도 고루 갖추었다. 특히 ‘약력’과 ‘망향사’ 연작은 빼어난 작품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의 가슴속에 남은 상처이자 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여자의 섬세한 관찰력과 감수성으로 시의 동산을 가꾸었다. 그러나 시는 기교만 가지고 안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세상을 과거만으로 볼 수 없거니와 과거로부터 벗어나면 이제는 현실을 보는 것은 역사와 세계관의 문제이다. 분단의 아픔으로 형성된 과거의 빛나는 체험이 현재의 아픔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탄식으로 그치고 만다. 감상주의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이 시의 주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는 누구나 아름답게 시로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일정한 시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에 반하는 것이든 보탬이 되는 것이든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에서도 그런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시에 생기가 돌고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선택하지 않은 가치로 인해 시들이 많은 빛을 잃고 있다.★★☆☆☆[4336. 12. 15.]
336□국경의 밤□김동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7, 미래사, 1991 무엇보다도 묘사력이 뛰어나다. 이미지를 사용하여 뜻을 전하는 수법은 옛 한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지만, 옛 한시의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법으로 소화해서 표현할 줄 안다. 잘 알려진 ‘산너머 남촌에는’이나 ‘북청 물장수’ 같은 것이 그런 묘사로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을 자유자재로 실어 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서사시 “국경의 밤”은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서사 구조가 튼튼하다. 마치 소설의 구조와도 같이 과거로 거슬러갔다가 극한 상황이 연출되는 현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수법이 전체의 구조를 역동성 있게 만들었다. 국경을 넘어간 여인의 심리를 길게 묘사하여 궁금증을 더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읽는 사람의 심리와 등장인물의 심리를 잘 이용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런 긴장과 살붙임이 소설과 시의 다른 점인데, 이런 것이 서사시의 생명을 살린 셈이다. 이야기만 제시된 것이 아니라 시가 갖추어야 하는 요소를 갖추었기에 서사시라고 해도 될 그런 시이다. 중간중간에 대사가 너무 딱딱하게 진행되어서 아쉽다. 너무 이야기 전개에만 집중하다 보면 부분에서 취해야 할 표현이 죽기 마련이다. 그런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준다.★★★☆☆[4336. 12. 16.]
337□이용악 시 전집□윤영천 편, 창작과비평사, 1988 시의 경제원리를 아는 시인이다. 시는 보고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것이, 어떤 사실과 감정을 전달하되 그 형식은 지극히 짧기 때문에 나름대로 다른 갈래와는 다른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다.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은 사물이나 상황의 일부를 어떻게 제시하면 독자가 그것을 이용하여 전체를 한꺼번에 알아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공룡 뼈의 일부분만을 드러내서 그 뒤에 서린 공룡 전체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 수법은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써 묘사하고서도 전체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하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이 점에서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특히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사회의 문제를 제시하는 데 이런 방법은 아주 훌륭한 방법이고, 당시의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은 이 시인의 도덕성이 그런 방법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게다가 상징화시키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어서 부분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 상징으로 승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현실 문제에 접근할 때 감정을 앞세워서 구호에 그치고 말았는데, 이 경우에는 돌려 말하는 수법을 찾았고, 그렇게 돌려 말한 것이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중층으로 덧씌워져 상징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해당화’ 같은 시에서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절묘한 인식까지도 드러나서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열리는 언어의 또 다른 면까지도 이해한 경우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당연히 농민과 노동자인데, 이 시집에는 그들의 정서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그 방향으로 굳어져있고, 그것은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로 이어진다. 우연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이 시인이 식민지 현실의 가장 중요한 핵심고리를 시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해방 전후에 낸 시집에 한자가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고 순수한 한글로만 쓰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한자 세대의 시인들이 한자를 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섞어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결코 범상한 일일 수 없다. 한자에 대한 사색을 깊이하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낡은 집”(1938)과 “오랑캐꽃”(1947)에서는 한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4336. 12. 16.]
338□바라춤□신석초,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5, 미래사, 1991 자리 바꾸기가 시작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즉 특정한 화자를 설정하여 그 화자의 시각으로 본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다. 특히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하여 서구 신화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서 노래하는 것이 많다. 자리를 바꾸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가 길어진다. 그래서 이런 시들은 예외 없이 길어졌다. 시의 주제가 관념 쪽으로 기울 경우에는 특히나 더 장광설로 변한다. 그리고 ‘바라춤’의 경우는 불교의 행사를 묘사하면서 인간의 고뇌를 다루고 있는데, 불교 용어나 철학 관련 용어가 직접 나타나고 고민의 내용도 형상화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뼈들이 마구 겉으로 드러나서 좀 흉하다. 장시를 썼다는 점에서는 그 지구력을 높이 살 일이나, 길게 쓴다고 해서 감동까지도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에서 쓰는 어투가 따로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술어의 처리가 독특하다. 이런 생각이 옛 풍물에 대한 묘사로 이어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이 설명투가 많고 주제가 선명하지 않은 시들도 많아서 시어가 제대로 살아있는 느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시들이 많다.★★☆☆☆[4336. 12. 16.]
339□가을의 기도□김현승,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7, 미래사, 1991 ‘고독’이나 ‘영혼’ 같은 말을 빼면 남을 것이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시에서 추구하는 세계가 관념으로 이루어졌고, 그 관념을 어떻게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시인의 작업이라는 뜻이다. 관념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리기는 쉽다. 그러나 쉬운 그 만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과, 아무리 잘 그려도 끝내 추상성을 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도 그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하다 보니 그것을 다른 것으로 환치하여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 모습을 뜻대로 그릴 수 없어 끝내 직접 말을 하고 마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가 성공하든 말든 그러한 영혼의 세계를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집요함과 그 순수한 마음은 정말 보석처럼 빛난다. 관념은 추상성을 면하기 어렵고 결국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다보면 그것을 잘 보여줄 좀 더 편한 어떤 방법과 세계관을 찾는데 기독교의 절대자를 염두에 두고 다가간 것 같다. 그런 후원자의 영향일까? 뒷부분에서 아침을 노래하는 긴 시들이 많이 나오는데, 고독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새벽과 아침을 찬양하는 것이기에 수다스럽게 느껴진다.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 상태의 찬양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내면의 관념을 시로 빚으려는 투철한 싸움이 시의 긴장을 이끌었고 일정한 선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그 세계를 적실하게 드러내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적당한 타협 끝에 대책 없는 찬양조로 맺음 한 것이 아쉽다. 잘 하면 형이상의 세계를 노래한 시를 만날 뻔했는데…….★★☆☆☆[4336. 12. 17.]
340□들창코에 꽃향기가□김광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4, 미래사, 1991 시선집이라서 그런지 좀 어수선하다. 시의 방법과 내용이 크게 양극으로 치닫는다. 진흙탕 같은 이승의 삶을 관조하면서 이 생을 넘어선 어떤 고결한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이미지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 시집의 특색인데,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것과 주제가 모호하다는 것은 서로 병립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지는 그것이 할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마는 방법이 아니라 할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절제하여 제시함으로써 직접 말할 때보다 더 큰 감동과 효과를 내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집의 이미지 시들은 문제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고 시들의 초점이 분산되었다. 게다가 많은 시들이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가도 끝내 이야기로 풀어버리는 경향도 있다. 아마도 시선집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뒤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서 일상의 자잘한 느낌을 이미지로 담아버리는 바람에 시가 건조해졌다. 넋두리는 이성의 통제보다는 그냥 저질러 버리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낸다. 구도의 자세를 보이는 시들에서는 이미지에 생기가 돌지만 그렇지 않고 일상의 아픔을 노래하는 곳에서는 딱딱하다.★★☆☆☆[4336.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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