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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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至福의 독서편력
2012년 11월 02일 15시 42분  조회:4501  추천:16  작성자: 김문학

김문학《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1-5. 至福의 독서편력

 

책에 대해서 만 큼은 할 말이 얼마든지 많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活字中毒者 아동이었다. 내가 기억 하는 한 8살 때부터 인가 하도 글을 좋아해서 땅바닥에 있는 신문지나 종이조각에 박힌 활자라면 다 주워 읽는 버릇이 있었다. 시골서 자랄 때다. 재래식 측간(화장실)에서 지금 같은 고급스러운 화장지가 아니라 신문지로 화장지를 대신해서 썼다.

그 똥 묻은 신문지에 찍힌 글을 읽다가 마저 읽으려고 그것을 집안으로 들고 와서는 수돗물에 씻어서 읽곤 했다. 그러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어이없는 놈이라고 웃고 계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책이 너무 좋아서 아직 글을 모르는 유아시기에도 책을 쥐고 읽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아마 내게 있어서 책보다 더 좋은 완구는 없었을 것이다. 소학교에 입학 전부터 나는 어머님이 시내 나갔다 오시면 장난감이나 맛있는 과자 따위보다도 그림책(만화)을 사 달라고 졸랐다.

이 버릇을 잘 알고 계신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숙부는 서점에 들러서 그림책을 사다 주곤 했다. 원체 병약한 나는 병으로 자주 앓아서 집에서 쉬는 일이 많았는데, 나는 누워서 언제나 책을 읽었다.

겨울이면 밖에 나가셨다 돌아오시는 어머님을 기다렸다. 시내에 가신 어머님이 꼭 책을 사오시기 때문이었다. 앓아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없는 나는 어머님이 들어오실 때의 그 신선한 찬 공기가 좋았다. 그리고 의례히 그림책에서 나는 인쇄잉크의 향기가 너무 좋아서 코끝에 갖다 대고 몇 번이고 잉크의 향을 맡고 나서야 책장을 넘겼다.

빈한한 농가인 우린 집에서 사실 책이 몇 권 없었다. 그 나마 10년 위인 숙부가 학생이어서 교과서와 그가 읽던 책 수십 권이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즐겨 보았다. 한자를 모르면 도감이나 그림이라도 보는 것이 나는 즐거웠다.

소학교 때 도 나는 책이 좋아서 늘 책하고 벗했다. 실제로 친구와 어울려서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선수로 훈련을 하는 것 외에는 나는 늘 홀로 책 읽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지금도 나는 낙(樂)이라 하면 독서보다도 즐거운 낙을 느끼지 못한다. 읽고 쓰는 것이 나 생애의 전부 인 것 같다.

소학교 3학년 땐가 나는 <<수호전>>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숙부의 책장 속에서 몰래 들추어내서 읽었다. 그때 읽었던 줄거리를 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3국연의》는 뒤 부분이 많이 페이지가 떨어졌는데 나는 친구 누나에게서 빌려서 결락된 수백페이지분량을 전부 만년필로 베껴냈다.

친구 누나가 놀라서 혀를 두르며 “너 커서 유명한 작가가 되겠구나” 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나는 책 읽는 것이 즐거웠고, 책 읽는 것만이 가장 고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역시 인생의 至福은 “매일 책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4학년 때 숙부의 장서에 있던 시 누렇게 퇴색한 <<김소월시선>>을 찾아서 읽은 기억은 오늘도 선명히 남아있다. <먼 후일><접동새> 그리고 <진달래>를 읽으면서 우리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감탄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들을 줄줄 외우기도 했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글귀가 너무 좋고 낭송하기에도 너무 음률이 좋아서 김소월을 너무도 좋아했다. 그 뒤 모방해서 쓴 시 몇 수를 국어선생님께 보였더니 너무 멋있다고 어디서 베낀 것이 아닌가 하고 혀를 찼다.

모르는 미지의 세계, 하나의 수수께끼의 답을 알게 되는 것은 축복이다. 쉐익스피어의 명언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충실 하라” 라는 말이 있다. 자기 양심에 부끄럼 없이 처신하라는 뜻이 되겠다. 진부해보이지만 이런 진리적 교훈은 영구히 값진 말이다.

독서에서 말하면 영어의 세계에는 “지적정직(知的正直=인테럴츄얼. 오네스티)”이란 단어가 있다. 알면 알고, 모르면 아는 척하지 않는 정직함을 이르는 말이다.

모르는 미지, 또는 알고 있었으나 틀린 지식, 착각들, 이런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충만 된 나는 알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감동되거나 재미난 책은 읽고 읽고 또 읽기도 했다. 소학교 때 주위로 부터나 반급의 급우로부터 “신동” 또는 小老師(꼬마선생)“ 으로 불린 나는 급우들이 늘상 질문하는 문제를 답하기 위해서도 하여간 많은 책을 가장 많이 빌린 학생도 나라고 도서실 관리자인 인자하고 예쁘게 생긴 여선생은 나를 귀여워 해주셨다. 방학후면 귀가해서도 생산대(마을) 집회소에 있는 신문, 잡지를 보러가곤 했다. 그리고 급우들에게 말하여 각기 제집에 있는 책을 한권씩 갖고 오라고 한 아이디어도 나 스스로 고안하기도 했다. 반 급장이었던 ”권리“와 ”명성“을 나는 활용했던 것이다.

그때 만난 것이 “노신”이었다. 노신의 소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이었다. 조선어판 이었는데 판본은 북한의 책이라 기억된다. 미치광이, 사람 잡아먹는다, 아이들을 구하라, 등등 난잡하고 괴상한 말들로 점철된 노신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어려운 책도 있었구나 하면서 그것을 읽어내려 갔으나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노신 소설에 관해 질문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은 “야, 네가 벌써 노신을 읽느냐” 고 하시면서 매우 경이 로와 하신다.

그 뒤 노신을 조금 이해하게 된 때는 중학을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교과서에 노신작품을 배우면서 부터였다.

소학, 중학 시기는 난독(亂讀)시기였다. 무어나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나는 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계열의 책도 좋아했다. 그때 상해인민출판사에서 나오던 아동자연과학시리즈 “10만 가지는 무엇 때문에?” 를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미니 전동모터를 구입해서 나무판자로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는 실험도 해보고 개구리를 잡아다 생체해부도 해 보았다. 육상 단거리용 스파이크가 없어서 비닐 신바닥에 못을 박아서 실험해보기도 했는데 어른들은 어이없는 놈이라고 웃었다.

문화대혁명이 한참이던 1970년대 소학교를 다닌 나는 세계 명작은 거의 접촉하지 못했다. 그때 노신 외에 모든 중국작가나 세계작가는 금지 된 시기였기에 명작은 다 “분서갱유” 의식으로 불살라버리고 형적을 감추었다.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의 개국(開國)책을 실시한 것은 1978년 이후 등소평의 노선이 탄생된 후 부터였다. 그때 중학3학년인 나는 고문 텍스트로 유명한 <<古文觀之>>(고문관지)를 사려고 시내 신화서점에 가서 아침부터 줄을 서서 5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한권 샀다.

처음 세계 문학명작을 접하게 된 것도 80년대 이후부터였다. 거의 중국어판으로 읽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코난도일 전집>><<로빈슨 크루소>>등을 읽은 것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학수험준비로 여념 없는 때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많은 책을 탐독하면서 오히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수험공부보다 월등히 즐거웠다. 담임선생님께서 “지금 어느 때인데 이런 책을 읽느냐? 시험공부에나 열심히 해?” 하고 몇 번이나 불러내어 귀띔해 주실 정도였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일은 더 하는 성미인 나인지라, 나는 아랑곳 않고 낮에는 수험공부, 밤에는 명작탐독을 병행시켰다.

그 무렵 나는 장차 문학가가 되느냐 화가가 되느냐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책이 좋아서 책을 쓰는 글쓰기의 학문세계, 또는 문학세계로 용왕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이름이 문학인만큼 어떤 숙명적인 인연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문학이란 이름은 그대로 읽으면 문학이요, 거꾸로 읽으면 학문이 되니, 나는 장래 이양자의 경계를 오가는 지식인이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13살에 개인 작품집을 간행한 나는 문학 소년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지원서를 쓸 때도 중국문학부냐 조선 문학부냐, 아미면 일본문학부냐는 삼자택일을 두고 고민 했다.

결국 나는 “하나의 외국어를 아는 것은 하나의 이질 된 문화를 아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일본 언어문학과를 지원하여 일본어교육레벨이 전국 일류인 동북사대에 입학했다. 물론 그때 총점수로 북경의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점수였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나의 독서생활이 수준이나 질적 의 의미에서 지대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 동북사대 일어일문과 입학 후 부터였다. 왜냐면 이 일본어라는 문화무기가 나에게 방대한 지적(知的) 생활, 생산의 수단이었고 또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법으로서의 일본어”를 활용해갔다. 대학4년을 나는 교실 -도서관- 교실 3각형의 순환을 이루며 심한갈증을 해소하는 사람 물마시듯 독서를 했다.

학부 도서실에는 일본 직수입의 일본어 도서들이 풍부히 장서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일본의 여러 명 펜팔을 통해 우송 되 오는 일본어 서적을 탐독했다.

그 시기 중국에서 미처 번역 출간하지 못한 서양의 명작, 사상, 철학서를 일본 서를 통해 나는 지독하게 많이 읽었다. 니체, 미셀푸코, EㆍHㆍ카, 스펜서, 그리고 포크나 로렌스, 가르시아 마르케스, 릴켈.... 일본의 나츠메소세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후쿠자와 유치키, 무라카미 하루키...등등 이러한 서적은 마치 내 빈 정신적 공간에 영양가 풍부한 식량같이 많은 것을 채워주었다.

대학 4년을 독서 4년의 자신에 충실한 시간이었다. 2학년 학기부터 고향의 1년 후배인 여학생과 연애를 하면서도 나는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때 또 읽은 책에는 일본의 펜팔이 보내준 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라 한국어로 된 에세이 <<흙속에 저 바람에>>등 여러 권과 이문열, 김소운 등의 작품이 있었다. 이상의 <<오감도>>같은 시와 <날개>같은 소설도 접하면서 나는 이어령과 이상의 팬이 되기도 했다. 고백하면 나는 이어령 선생님께 이미 그때 사숙(私淑) 한 것이었다.

작가, 글쓰기와 연구자로 되는 꿈을 키우면서 나는 왠지 특히 모터니즘 계열의 작품들에 매료되었다. TㆍSㆍ 엘리엇, WㆍB예이츠의 시와 함께 김소월의 시를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카프카, 토머스만, 카뮈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책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헤세 등 서양 작가와 지식인의 책들은 나의 넋을 진감하는 문화파워가 되어 폭발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중국문학부의 선배가 “대학4년에는 조급하게 글을 써서 발표 하는게 급히 하기 보다는 부지런히 읽고 축적을 해야 한다”고 한 말에 나는 동감했다. 물론 나는 4년 동안 글쓰기를 많이 했으나, 책 400권을 목표로 (그것도 중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서양의 작품, 사상서와 일본인 작가, 지식인의 서적들) 많이 읽었다.

중문학부와 외국어학부에 급급히 시나 소설을 쓰던 많은 친구들은 결국 졸업 후 한 둘씩 도중하차해 버리고 몇 명 남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던 친구들은 역시 학자나 작가로 오늘까지 명성을 날리고 있다.

내가 중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일본 유학을 택한 것은 대학시절 일본의 책을 통해 일본 같은 자유의 학문의 나라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싶은 것이 큰 이유의 하나이다.

말 그대로 일본 유학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독서와 글쓰기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적, 지적 창조의 일에 종사하는 지식인, 작가는 책읽기가 정신적 식량이며, 지적 자극과 충전을 하는 유일무이의 방법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독서立人” 이란 숙어를 고안했다. 책이 인간을 육성한다는 논리이다. 독서는 늘 홀로서기 (獨立)의 사고력을 육성하는 기반이 된다. 정신 적 자극, 긴장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의 진폭을 넓혀준다.

셀티에ㆍ가 바록이 쓴 “독서의 역사”에 따르면 일본은 에도시대, 명치시대를 걸쳐 세계일류의 독서대국이 되었으며 식자 율이 세계최고에 독서량도 질도 일류에 달했다.

지금도 일본의 연간 4만 종류에 달하는 15억 책 서적이 도도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고도로 세련되고 정비된 출판사만 해도 무려 5000여사나 된다. 그리고 독서판매에도 적합한 1억 3천만의 인구, 독서 인구는 중국보다 많으며 신문판매량도 요미우리신문 같은 경우 무려 천만부이상의 세계 최대 신문이 있다.

일본의 근대, 포스트 근대의 문화역을 지탱한 곳은 이 엄청난 국민의 독서력이다.

이런 독서왕국, 출판대국에는 찾으려고만 하면 다 찾을 수 있는 서적, 정보 학문적 자료문헌이 정비되어 있다.

나는 마치 만경창파를 질주하는 고래마냥 서책의 해양에서 많은 서책을 탐독하면서 지식인에 필요한, 또는 나 자신에 필요한 지적 영양을 섭취했다.

독서의 여러 종류 영양가는 독서의 폭을 넓히고 여러 장르, 영역을 섭렵하는 것에서 온다.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하나의 지식에 절대시 하는 치명적 함정을 파게 된다. 하나의 기성지식을 절대시하는 것은 결국 사고정지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마치 하나의 종교에 빠져 절대시 하면 다른 종교와 신앙을 무시하고 타자를 부정하는 사고정지, 절대가치관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조선족의 지식인 중에 그런 패턴의 사람이 흔히 있는바, 어느 하나의 가치관을 절대시 해 버린 나머지 사고정지에 빠져 타자를 무조건 부정, 반대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가 그런 지식을 상대하지 않는 이유는 지식의 폭이나 사고 면에서 정면대결의 가치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 외에도 특히 사상, 역사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다.

일본의 나이토고난(內藤湖南)의 중국사연구와, 마루야마 마시오(九山 男) 의 <<일본의 사상>> 의 문명론적인 일본인에 대한 고찰, 인류학자 梅棹忠夫(우메사와 타다오) 의 <<문명의 생태사관>> 등 일본인이 제기한 “세계사 모델”의 시야에 대해 큰 공감을 느꼈다 .에서 개발을 얻은 나는 최근 <<문명의 삼림사관>> 이란 일본어 저작을 집필했다.

그리고 사상영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리오타르의 <<포스트 모던의 조건>> 하버마스의 <<케뮤니케이션적 행위논리>> 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일본어명 <<감옥의 탄생>> 을 위시로 한 일련의 대작들, 그리고 신자유주의 하이예크 등 근 20년래의 사상서에서 많은 자기 형성의 정신식량을 획득했다.

식민지주의 영역에서는 에드워드ㆍ사이드의 명작<<오리엔탈탈리즘>>등 저작을 탐독하면서 제3자로서 타자와 자신의 경계를 살아가는 월경의 지식인의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근 10여년동안 역사, 특히 한중일 근대사 사료, 문헌을 읽고, 발굴, 수집하면서 근대사의 “왜곡”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왜곡”에 대한 비판, 성찰작업이 나의 글쓰기와 연구의 굵은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왜냐면 역사는 문명사로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놓은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대사를 알고 진실을 밝히는 성찰작업은 타자인식과 함께 중요한 자기 인식의 불가결의 작업이다.

책은 자기인간형성의 정신적 에너지이다. 독서를 배제한 정신적 에너지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순수한 농도 100%의 “독서인” 이다. 그리고 나는 간단없이 변하는 자신을 꿈꾼다.

독서야말로 내 자신이 인간형성이 완성되는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요즘은 컴퓨터시대, 휴대폰시대로 일컬어진다. 인간은 이미 컴퓨터와 휴대폰의 노예로 디지털의 지배하에 떨어져 있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책의 시대의 독서인이다. 책의 노예가 되고 싶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사네” 하고 읊은 시인과 같이, “나는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를 읊는다.

책을 대체 할 수 있는 至福의 희열을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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