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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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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6) 김장혁
2022년 03월 26일 10시 36분  조회:140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13.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진 희극

    비행장 국내도착 출구로 선글라스를 낀 훤칠한 녀성이 긴 외투자락을 날리며 모델처럼 걸어나왔다. 대뜸 숱한 사람들의 눈길이 그녀한테 쏠렸다.
     “영희!”
     웬 번대머리가 몇카락 안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나가면서 마중했다.
      “아저씨.”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조개턱을 쳐들고 반겼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정호는 영희 들가방을 받아 들며 중얼거렸다.
“네 앓는다니 퍽 근심했다. 어데 아프다던가?”
“가슴이 자꾸 침침해나구 소화 잘 되지 않습니다. 손주들 셋이나 키우느라구 몸이 망가질대로 다 망가졌어요. 이젠 진짜 쪼글쪼글한  할머니 됐어요.”
“아니야, 너 비행장에 나타나니 선녀가 비행장에 내린 것 같더라.”
“픽! 이젠 다 파 먹은 김치독인데요. 다 늙어빠졌어요. 멀리서 보면 몰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인데요. 머리도 희고. 몸도 아프지 않은데 없어요. 허리하고 무릎도 아파 애들을 업고 일어나지도 못해요. 상해는 습기차 그런지 아프지 않은 관절이 없어요.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어요.”
“이젠 나이들고 아플 때 돼 그렇겠지. 아프지 말아야겠는데.”
“애들도 고향에 돌아가 쉬면서 치료하라고 해 이렇게 훌 떠나왔죠.”
“잘 됐다. 애들을 보다가 네가 먼저 죽겠다. 네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순정이 애를 못 낳는 것도 분복인 거 같아.”
영희는 정호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언닌? 언니를 보낼게지. 아저씨 나왔는가요.”
정호는 보마표찌프에 짐을 실으면서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순정인 자원봉사자로 돼 가도에 나갔다. 요즘 우리 여긴 비상에 걸렸다.”
영희가 뒤좌석에 앉자고 하자 문걸이 말렸다.
“앞에 앉아라. 찌프차엔 앞좌석이 안전하다.”
“픽, 내 무슨 아저씨 련인인가요? 또 여기저기 만지면 어쩔라구? 제 좋은 궁리 작작하구. 차나 집중해 모세요.”
“원래 우리 련인이 아니였댔니? 흥!”
“말도 말아요. 자꾸 이러면 택시 타고 갈래요.”
영희는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차문을 열었다.
“알았다. 알아. 어서 앉아라.”
영희는 마지못해 눌러앉았다.
보마찌프는 그들을 싣고 비행장 광장을 떠나 시내로 나는듯이 달렸다.
정호는 반사거울로 영희를 흘끔 들여다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파란 바탕에 까지색 무늬가 간 수건을 목에 두른 길죽한 얼굴, 차창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마저 예술적미가 다분했다. 더구나 풍만한 가슴, 섹시한 그 모습 매력적이였다.
(언제 봐도 예뻐.)
정호는 영희 같은 미녀를 싣고 천리고 만리고 달려도 곤할 것 같지 않았다.
“너네 보고 리혼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어이 리혼했구나.”
영희 조개턱이 버릇처럼 건뜻 쳐들리더니 한쪽으로 탈렸다.
“픽, 그 나그네 말을 하지도 마세요.”
정호는 영희를 힐끔 뒤돌아보았다.
“문걸인 배 부른 흥정한다. 이렇게 예쁜 색시를 어떻게 내놓니?”
“말 말라는데. 어우, 진짜 짜증난다.”
“내 눈이 멀었지. 어쩜 널 두고 순정하구 살았니? 네하구 살았으면 나두 아들딸 줄줄 낳고 손자, 손녀 한 아름 안고 놀겠는데.”
“또, 또, 또. 언니 알면 경치자구 자꾸 그래요?"
"한뉘 순정하구 살면서 아마 한 동이는 부어넣었을게야. 그런데 어디 애 생기기나 하니?"
"그만해요. 처제하구 뭔가요?"
"처제? 흐흐.흐. 그래 처제야 처제지. 애들은 잘 있니?"
"애들 관심가지지 말래도. 이젠 다시 옛날 말 꺼내봐요. 가만놔두는가? 모든 걸 무덤까지 가지고 갈 궁리는 안하고. 쳇, 자꾸 왜 과거를 꺼내는가요?”
정호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그저 그렇단 말이다. 그래두 우리 스승과 제자로 지내던 청춘시절이 젤 좋았지.”
“그만하라니까. 스증과 제자 얘기도 하지 말아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난 선생님이란 짐승을 죽여버리고 싶어요.”
“알았다. 알아. 네 아저씨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를 다쳐놓구서두 렴치 있습니까? 색마 같은게.”
순정과 영희가 초중을 다닐 때 정호는 무용학생을 신입생을 모집하러 나왔었다. 정호는 업간체조시간에 줄을 쭉쭉 선 녀학생들 속에서 첫눈에 훤칠하고 이쁘게 생긴 순정과 영희가 눈에 들어 무용학생으로 뽑았던 것이다.
보마찌프는 어느 결에 정호네 아빠트단지 지하주차장 입구로 스르르 들어갔다. 보마차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축구장처럼 넓은 지하주차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을 누비면서 정호네 집 차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영희가 소리쳤다.
“차 돌리세요!”
“왜?”
“집에 실어다주세요.”
“오랜만에 우리 집에 가자.”
“아니, 제 집이 제일이지.”
“그럼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
“아니, 난 지금 가야겠어요.”
“비워둔지 오랜 집이 스산해 어떻게 홀로 가 있겠니?”
“그래도 제 집에 가는게 좋아요.”
건데 정호가 아무리 발동을 걸려고 해도 걸리지 않았다.
정호가 두리번거리다가 아우성쳤다.
“아이구, 봐라. 휘발유 다 떨어졌구나. 급히 나가다나니 주유한다던게 그만 다 잊어먹었구나.”
모든 건 정호가 면밀하게 꾸민 계획대로 척척 돼갔다.
“저녁에 언니 오겠지?”
“응, 아마 이때면 집에 있을 거야. 애들이 모두 잘 있지? 네 오면 손자들은 누가 보니?”
"보모비 주고 왔어요. 상해 보모비 엄청 비싸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영희는 차에서 내려 가방을 들고 차고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때 정호는 영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마나! 왜 이래요?”
“오랜만이야.”
“이러지 마세요. 이럼 소리치겠어요.”
“쉿- 좀 참아라.”
“이제 순정이 오디차를 몰고 들이닥칠 거야. 어쩌자고 이래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때 때마침 오디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헤드라이트가 대낮처럼 비추며 다가왔다. 
“봐라. 순정이 차 몰고 온다는데도. 이걸 놔!  망신당하자고 이래?”
"다른 집 차야. 떠들지 말라."
     순정은 이상하게 자기 집 차고 문이 열린 걸 보고 차를 조용히 멈춰세우고 가만히 차고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차고 안에서 자기 눈과 귀를 의심할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 다물어.”
“언니, 알면 다 죽을줄 아세요. 아저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저씨 처제  말고 스승과 제자 때로 돌아가자. 그때 추억 얼마나 아름답니? 그때  짜릿했던 그 자극 잊혀지지 않지? 요 가슴과 머리, 뼈에 스며 있지? 흐흐흐.”
“아, 아니, 이러지 말래도. 언니한테 다 말해버릴 거야. 다 죽을줄 알아! 아, 아, 이 놈 색마, 아이구, 차라리 날, 날 죽여라! 너도 아저씨냐? 죽을 병 걸린 사람을 이게 뭔가요?”
“무슨 놈의 병이야, 다 애만 보면서 음양조화 잘 안돼 걸린 병이야. 이 스승 널 치료해주마. 허허허.”
“에이즈에 걸렸어요.”
“뭐라구? 손주들 보느라고 몸 뺄 새도 없었겠는데 웬 에이즈? 누굴 속이려구? ”
“자궁암에 걸렸어요. 그러잖으면 손주들 안 보고 집에 돌아왔겠어요?”
“자궁암도 음양조화 잘 되면 낫는다. 으흐흐.”
“짐승 같은 놈, 놔라!”
차고 안이 거무칙칙해 차 안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호와 영희 목소리만은 분명하게 들렸다.
“아니, 영희를? 저놈새끼, 저게!”
순정은 생각 같아선 망치로 대갈통을 까고 싶었다. 순정은 자기 오디차 도구상자에서 스빠나를 꺼내들고 보마차에 살금살금 다가갔다. 보마차가 비명을 지르면서 사정없이 요동쳤다. 차 안에서 영희의 비명소리와 반항소리 요란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암에 걸린 처제를 이래? 너도 사람이냐?!”
순정은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스빠나를 쳐들었다가 무슨 생각이 피뜩 들어 천천히 내리었다. 드디여 순정은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스빠나를 쥔 채 도적고양이처럼 발끝걸음으로 살금살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오디차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조용히 지하주차장을 떠나갔다…
 
            14. 몸부림치는 망아산 로맨스
  
      문걸은 춘희한테 코 떼인 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화실 안에는 속이 탄 연기가 새뽀얗다. 만금은 재떨이 재를 털어낸 후 차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때 미녀로봇이 사뿐사뿐 쏘파에 다가와 문걸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무슨 속탄 일이라도 있는가요?”
“아니야.”
“밤이 깊었는데요. 어서 자지요.”
“텔레비죤 좀 보구.”
미녀로봇은 문걸의 다리를 살살 주물러주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미녀로봇은 고독한 문걸의 그림자 같은 친구였고 지기였고 위안이였다. 만금은 문걸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네킹 같은 비닐미녀 저렇게 좋을 수야. ㅎㅎ.)
미녀로봇은 문걸이 잘 예산이 없자 혼자 침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집 안이 조용해지자 문걸은 또다시 고요와 고독의 지옥에 갇혔다.
(춘희가 그렇게 복잡한 녀자인줄 몰랐어. 눈구덩이에서 그렇게 열렬히 사랑맹세 해놓고 어쩜 해뜩 번져 눕는단 말인가? 딸애 이름을 보면 일본 성이지. 그럼 춘희가 남편 박씨와 갈라진 후 일본에 류학가서 야마구찌 가족한테 재가했단 말인가?)
문걸은 당장 자기 품에 안기리라 여긴 춘희를 따내기 이렇게까지 힘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자 반감도 생겼다. 흠집도 떠올렸다.
“춘희는 가슴이 비행장처럼 빤빤해. 영희 가슴처럼 풍만하지 않아. 흥, 육체미는 영희보다 너무 못해.”
문걸은 저도 몰래 춘희를 영희와 자꾸 대조해보게 되면서 추억의 돛배에 몸을 싣고 영희와의 황홀한 옛날로 되돌아갔다…
만물이 춘흥에 못이겨 취해버리는 봄이였다. 문걸은 친구 영호, 성호와 함께 망아산으로 들놀이를 갔다. 그런데 정호는 자리에 없었다. 웬 일인지 핸드폰도 꺼져 있어 문걸은 더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닥불에 부글부글 끓는 소천어장국 남비에 둘러 앉아 술을 마셨다.
“사람 살려요!”
이때 갑자기 수림 속에서 녀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문걸이랑 술을 마시다 말고 비명소리 나는 나무숲 속을 살폈다.
“아니, 저게 뭐야?”
웬 처녀가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에 두 망나니에게 쫓기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놈새끼들아!”
물걸이네는 망나니들을 삼각으로 덮쳐나갔다. 처녀는 뛰여와 문걸의 뒤에 붙어서서 바들바들 떨었다.
파마머리를 한 사자머리가 고함부터 질렀다.
“자식들, 죽잖겠으면 싱겁게 끼어들지 말어!”
사자머리도 기신기신 기어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꺼지지 못해?! 엉?!”
“개자식들!”
싸울줄 모르는 문걸은 황급히 펄펄 끓는 생선국남비를 그 놈의 대가리에 쥐어뿌렸다.
“아이쿠!”
사자머리는 낯을 싸쥐고 풀썩 믈읹아 때꿀때굴 구을며 죽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구레나룻은 이를 악물고 문걸한테 달려들어 비수로 마구 찔렀다. 문걸은 황급히 남비를 들어 날아드는 비수를 막았다.
퍽!
남비가 비수에 찔러 구멍이 펑, 펑 뚫렸다.
“앗!”
문걸은 팔이 찔렸다.
구레나룻이 재차 비수를 허공에 쳐들었다가 내리찍는 순간, 성호가 씽 날아나가며 원앙다리를 날래게 날렸다. 비수가 저만치 날아가 떨어졌다. 문걸과 성호는 맥주병을 들고 그 놈들과 단말마적으로 싸웠다.
그런데 영호는 비겁하게 슬슬 수림으로 도망쳤다.
사자머리와 구레나룻은 목숨을 걸고 단말마적으로 덮쳐드는 문걸과 성호를 보고 질겁했다. 그 놈들은 처녀를 놔주고 수림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그제야 처녀는 부끄러움을 타면서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면서 수림으로 되돌아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었다. 이상하게 옷이 널려 있는 땅바닥에 비닐박막이 펴져 있었고 파란 넥타이가 널려 있었다.
문걸은 화가여서 숱한 미녀모델을 보았지만 영희처럼 육체미가 있는 처녀를 처음 보았다. 빨간 적삼과 까만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에 흙진주처럼 반짝이는 쌍까풀눈, 탄력있고 미끈한 몸매를 가진 참말 선녀처럼 아름다운 처녀였다.
“저 때문에 화 당했군요.”
처녀는 손수건으로 문걸의 손과 팔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마냥 주르르 흘러내렸다.
“괜찮소. 어째 혼자 이 수림 속에 왔댔소?”
문걸이 이상해하자 처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였다.
강도들이 먼 곳에 가고 없엇다. 그제야 영호는 아름다운 처녀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야, 정말 이쁘구나.)
영호는 실눈을 해가지고 처녀의 아래 위를 참빗질하면서 마른 침까지 꼴깍 삼켰다.
(그런데 조개턱만은 옥에 티라고나 할가.)
성호는 원래 색마미술가 영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문걸이 자기 동창이라고 데려올 줄은 모그로 이 장소에 왔던 것이다. 요즘 성호는 문걸과 광고설계 때문에 만나군 했다.
영호는 미녀를 보자 생각는 척하며 계집애처럼 수다를 떨었다.
“이후엔 이런 수림에 오지 마오. 자기 처녀마저 보호하지도 못하는 사람과는 절대 이런 델 오지 마오.”
성호는 픽 코웃음쳤다.
(겁쟁이 같은 놈! 금방 누가 비수를 휘두르는 강도들을 보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 처녀 앞에서 우쭐거리긴?! 흥!)
문걸은 어데선가 처녀를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안개 속의 미녀처럼 알릴락 말락하게 아리숭하였다.
“옳소. 녀자들은 자기를 보호할줄 알아야지.”
처녀는 부끄러워 귀 밑까지 빨갛게 붉히면서 복하게 생긴 이마, 보슴털이 보송보송 난 이마를 곱게 숙였다.
미술가인 영호나 문걸이나 모두 그 처녀의 황홀한 육체미에 정신을 놓고 멍허니 바라보았다. 렴치를 잃고 바라보는 그 세쌍의 따가운 눈길에 처녀는 머리를 숙이고 더 스피드를 내 치마를 주어 입었던 것이다.
문걸이네는 망나니들이 자기 무리를 더 데리고 덮쳐올가 봐 처녀를 데리고 고속도로에까지 내려왔다.
그때 때마침 빈 택시가 달려왔다.
갈라질 때 처녀는 또다시 복스런 이마를 숙이며 인사했다.
“구명은정 고마워요. 그대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끝장날 번했어요.”
그때의 그 처녀가 후에 정호가 문걸에게 중매를 서서 소개해준 미녀무용수  영희일줄이야.
후에 일어난 수많은 일은 이제 뒤에 하나하나 밝히기로 하자.
 그때 망아산 기슭 고속도로에서 영희가 택시에 앉아 떠나간 후 택시 한대가 고속도로로 달려와 그들의 옆에서 멈춰섰다.
택시에서 번대머리 정호가 내렸다.
“정호야, 어데 갔다가 이제야 오니?”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을 손등으로 뚝뚝뚝 찍으면서 되물었다.
“너넨 여기서 뭘하니?”
문걸은 금방 있은 아짜아짜한 일을 쭉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호는 속이 섬찍했다.
“개새끼들, 시퍼런 대낮에 처녀를 해치려고 사람을 칼로 찔러?!’
뒤이어 정호는 불쑥 물었다.
“그래, 영희는 어떻게 됐니?”
“그 처녀 영희라구?”
문걸은 성호랑 둘러보더니 정호한테 눈길을 돌렸다.
“아, 아니, 그 처녀 어떻게 됐니? 다친덴 없니?”
“무사히 보냈다. 너 아는 처녀냐?”
정호는 황급히 얼버무려댔다.
“어, 아, 내 어떻게 그 처녀 알겠느냐? 내 학생 영희두 오늘 친구들이랑 들놀이를 온다고 해서 그래.”
성호는 대뜸 경각성을 높여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아직도 나머지 처녀들이 수림에 남아 있잖을가? 위험해. 우리 가보자.”
그러자 정호가 횡설수설했다.
“이젠 다 도망갔겠지.”

(그날 만난 처녀가 영희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정호는 며칠 후에 영희를 나한테 소개해주었지. 그것도 영희가 무대에서 춤 추는 걸 구경시키고 무대 뒤에 가서 무대에서 독무를 추고 갓 내린 영희를 만나게 했지.)
이날 따라 문걸은 영희를 떠올리게 됐다. 춘희와의 열련이 좌절된데다가 영희가 자궁암에 걸렸다고 하니 착잡하게 됐다. 머리가 온통 춘희와 영희로 삼검불처럼 뒤엉켜 버렸다.
(춘희는 확실히 괴짜야. 관계가 복잡한 녀자야. 그저 순수한 의사, 박사로만 볼 녀자가 아니야. 술주정배 박선생과 리혼하구 일본에 류학가서 야마구찌 가족의 한 남자와 살아서 딸까지 봤다는게 아닐까. 야마구찌 가족은 일본에서도 력사적으로 한다하는 가족(씨족)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일본에서 세도를 부리는 부자집에서 살지 않고 여기 산골에 와서 의사를 할까?)
문걸은 점점 자오록한 안개 속에 휘감겨들고 말았다.
이윽고 그는 영희를 떠올렸다. 조강지처여서 그럴가. 처음 살을 섞은 녀자여서 그럴가. 아니면 미운 정, 고운 정 30여년을 산 정 때문일가. 문걸은 영희가 불쌍해났다.
 
        문걸은 미술실력은 괜찮았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그는 시내에 남기 어려웠다. 그때 한 예술학원에서 면목익힌 친구 정호가 팔소매를 걷고 나섰다. 시내에서 자란데다가 무용교원인 정호는 미녀들도 아는게 많았다. 그는 문걸을 보고 먼저 시내 처녀와 약혼하고 그 처녀의 치마자락을 물고 늘어지면 시내에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난 처녀가 바로 가무단의 무용수 영희였다. 영희는 문걸의 가슴츠레한 외까풀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간에서 정호가 어찌나 문걸을 춰올리면서 붙여놓은지 차츰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전번에 뜻밖에 망아산에서 문걸이네가 그녀를 구해준 은정에 대한 보답만이 아니였다. 문걸은 확실히 그림을 잘 그렸다. 특별히 인체화를 어찌나 잘 그리는지 미술실력이 뛰여나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영희는 문걸의 재간을 사랑하게 됐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삶의 희망이 싹트고 걀죽한 얼굴에 졌던 엷은 그늘이 말끔히 가시여지기 시작했다. 아니, 차츰 행복감이 점점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걸은 영희와 함께 망아산 그 어데라 없이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순정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석양으로 발가우리 물든 망아산의 소나무숲 속에서 영희는 해 넘어가는 것도 잊고 문걸의 팔을 정답게 끼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무꼬챙이로 땅을 긁다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침묵을 깨뜨렸다.
“리동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예술인들을 정파답지 않다고 꺼리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원래 언변이 없는 문걸도 영희와 마주 앉으면 이상할 정도로 만도 술술 잘갔다.
“건 틀리오. 에술인들이라고 다 정파답지 않겠소? 사람에 달렸지. 서로 리해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오.”
“리동무는 개방적인 성격이군요. 졸업하면 어디에 배치받게 될 거 같은가요?”
“시내에 남았으면 좋겠는데 촌뜨기가 어쩌는 수 있소?”
“힘내세요. 우린 자기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시에 남아야 해요. 좋기는 미술학부 교원으로 남으면 좋겠는데요. 아니면 건축설계원 같은데나 광고공사 설계사로 돼도 좋겠는데요.”
문걸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광고공사에 가면 좋겠는데 될 거 같잖소.”
“왜서요?”
“우리 학급에 영호라는 동창생이 있는데 벌써 선손을 쳤소. 걔네 아버진 오청룡 국장이랑 잘 아는 모양입데.”
“그럼 건축설계원 설계사로 들어가면 어떤가요?”
“글쎄, 재간만 보면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지금 다 인맥을 통해 뒤문치기 하는 판에. 에잇, 참.”
“저의 큰아버지한테 부탁해보겠어요. 저의 큰아버진 시위 서기인데요.”
“오- 고맙소.”
문걸은 시내에 남을 일루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영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은희, 우리 시내에 남아 잘 살아보기오. 영희는 모델을 서고 내가 그림 그리면 숱한 돈을 벌 수 있을게오.”
“그래요.”
영희는 걀죽한 얼굴을 문걸의 거친 얼굴에 가져다 댔다. 은빛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찰랑거렸다. 그러나 문걸이 숨이 막히게 밀착해올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과 불안한 빛이 반죽돼 어렸다.
어느덧 동녘하늘에 쟁반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소나무가지에 걸렸다. 은빛달빛이 소나무숲에도 은싸락을 쏟아부었다.
피끓는 처녀총각은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희는 오른식지로 은하수를 가리키면서 은방울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저 은하수를 보세요. 사람들은 은하수를 어떻구 어떻구 찬미하지만요. 저는 증오해요.”
“왜?”
영희는 문걸의 품에서 얼굴을 떼며 종알거렸다.
“저 은하수는 해빛과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도 밤이면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와 은빛을 뿌려주는 척하죠. 그런데 기실 은하수는 견우, 직녀를 영영 갈라놓은 나쁜 놈이죠.”
“허허. 그래?”
문걸은 영희를 꽉 껴안으며 장담했다.
“영희,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은하수는 없을 거요. 내 은희를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할테니까.”
‘참 잊을 수 없는 밤이군요. 문걸씨, 사랑해요. 우리 사랑이 영원하도록 기도를 드리고 싶어요.”
문걸은 영희를 꼭 껴안고 키스벼락을 안겼다.
이윽고 문걸은 미술가의 독특한 이벤트를 제의했다.
“우리 소나무에 우리 영원한 사랑을 기도해 기념으로  ‘사랑’이란 두 글자를 새겨놓기오.”
처녀총각은 은빛달빛 아래에서 손칼로 푸르청청한 소나무에 “사랑”이란 두 글자를 또박또박 새겼다. 피끓는 청춘의 뜨거운 사랑이 푸른 소나무처럼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영원히 변함없으리라는 마음을 담아 한획, 한획 새겨놓았다.
뒤이어 처녀총각은 송진으로 붙여놓은듯이 뜨거운 두 몸을 하나로 융합시켰다.  문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홧홧 달아오른 입김을 뿜었다. 뜨거운 키스에 키스를 이어갔다. 문걸은 영희의 풍만한 젖가슴에 손을 넣어 오르내리며 처녀의 최후방선을 마구 허물려고 들었다.
순간 영희의 눈에는 문걸 얼굴 말고 징글서런 번대머리가 떠올랐다.
       “호- “
       (녀자들 운명이란 왜 이럴가?)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처녀총각의 리지의 최후 비밀경계선은 화산폭발 같은 감정의 폭탄에 맞아 산산히 부서졌다.

문걸은 추억의 돛배를 타고 망아산 열련의 로맨스에까지 이르자 저도 몰래 몸서리쳤다.
(청춘시절에 그렇게 열련하던 영희, 조강지처 영희가 날 버리고 떠나가지 않았던가.)
 그때 지혜한테서 핸드폰이 걸려왔다.
“아버지, 그새 몸 건강한가요? 어머니 자궁암에 걸려 고향에 돌아갔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암에 걸리다니? 무슨 암이라니?”
“페암이래요.’
“아니, 그럼 의료수준이 높은 상해에서 치료하지 않고 이런 골안에 돌아왔다니?”
“말려도 안들어요. 암 말기래요.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서… 흐흐흑, 흑흑.”
“오- 안됐구나.”
“아버지, 병문안하러 가세요. 저도 인차 어머니 보러 ”
“지금 어디에 있니?”
“아마 집에 갔겠지요. 가만. 좀 기다리세요. 제가 확인하고 전화할게요.”
한참 후 기별이 왔다.
“아빠, 집에 있는 모양이네요.”
“응. 알았다. 내 문안할게.”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리혼했지만  조강지처 아닌가. 아들딸의 어머니, 손주들의 할머닌데 병문안이라도 가야지.)
그때 미녀로봇이 사뿐사뿐 다가와 손을 문걸의 어깨에 얹으면서 물었다.
“조강지처 왔는 모양인데요. 절 버리는 건 아니죠?”
“오- 그래. 병문안을 갈 뿐이야.”
미녀로봇은 문걸의 팔을 끼고 침실로 들어갔다. 만금은 저쪽에서 비웃음이 실린 눈길로 눈총질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뒤이어 침실에서 미녀로봇의 아양떠는 소리가 들리었다.
“기분 나쁠 땐 절 가지면 딱이죠. 모든 스트레스 말끔히 날아날 거예요.”
“아니, 오늘 그런 기분 아니야.”
“왜 이래요? 한번 실험해보세요. 기분 전환되는가요.”
“아,아니, 아파.”
미녀로봇이 한국말로 하는 문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일방적인 행위를 마구 했는 모양이었다. 강압적으로 그럴 때가 많았다. 문걸의 말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할 때면 미녀로봇이 제 좋은 동작을 마구 해대군 했다. 그런데 미녀로봇은 말그대로 로봇이기에 기계적인 힘이 아주 셌다. 문걸의 힘으로는 미녀로봇의 기계적인 행동을 제지시키기 힘들 때가 많았다. 문걸이 아무리 밑에서 버둥거리며 짓누르는 미녀로봇을 떠멀이버리려고 해도 어림도 없었다. 미녀로봇은 문걸의 두 팔을 내리누르고 잠옷을 벗기었다. 문걸의 힘으로는 짓누루는 미녀로봇의 손을 치워버릴 힘이 모자랐다.
“그만, 그만, 오늘 기분없어.”
“좀 좋아 이래? 즐기라고. ㅎㅎㅎ.”
문걸은 오늘 밤에도 미녀로봇에게 당해야만 했다…

                15. 위선자

      한편 순정은 오디차를 몰고 부랴부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어디라없이 120킬로메터 스피드로 달렸다. 달리고 달려 어느덧 망아산 수림 속으로 달렸다. 산기슭 주차장에 이르러 차머리를 돌려 또 시내로 정신없이 내리달렸다.
“정호, 개놈새끼, 어쩜 영희하구 지랄해? 아무리 녀자 없어도 처제마저 놓치지 않어?!”
순정은 이를 옥물었다. 분통이 터졌다. 스빠나로 대갈통을 까놓고 싶었다. 그녀는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온몸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길 없었다.
“저런 걸 남편이라고 데리고 살아?”
당장 리혼하고 싶었다. 그러나 순정의 눈에는 이제껏 정호는 정파다운 남편이자 스승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자기와 련애할 때는 좀 과격하게 놀았지만.
(이제껏 바람 피운적 없는데 한번 그랬다고 리혼해? 리혼하면 영희 좋은 노릇을 하지 않을가?)
영희를 떠올리자 악이 났다.
“암에 걸려 죽게 돼가지고서도 내 발등을 밟아? 아직도 마음이 죽지 않어? 아빠한테 말해 문걸을 설계원에 넣어주기까지 했건만. 어쩜 그렇게 배은망덕해? 암캐 꼬리치지 않으면 수캐 매달릴 수 있어?”
순간, 순정은 이전에 정호를 두고 영희와 라이벌이 돼 티격태격하던 일을 떠올렸다.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입학하자 정호는 순정과 영희의 무용교원이자 담임교원이었다. 정호는 항상 엄격하게 그들에게 무용을 가르쳤지만 생활상에서는 살뜰히 관심해주었다. 그는 때때로 순정과 영희를 근사한 음식점에 청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음악주점에 데리고 가서 시원한 맥주도 마시였다. 술상에는 항상 순정이 좋아하는 오징어, 소라 등 맛있는 해물을 올렸고 영희가 좋아하는 명태볶음은 빠질 때 없이 올랐다.
순정은 미안한 마음부터 앞섰다.
“최선생님, 선생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돈 푼푼히 줬는데요. 이젠 제가 한턱 내지요.”
“아니야, 너희들은 소비자 아니냐? 난 너희들과 마주 앉으면 기분 좋아."
그는 량손에 순정과 영희 손을 덥썩 잡았다. 가늘고 긴 하얀 손가락을 하나 하나 매만지면서 열변을 토했다.
"너희들 위해서라면 아낄 거 없어.”
영희도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렇죠. 오고 가는 정이라고 제자들도 한턱 내야죠. 다음번엔 제가 한턱 내죠.”
순정은 아니꼬운 눈길로 영희를 치켜보았다.
“언니 말하는데 나설 건 뭐야? 무직업쟁이인 너네 부모 어데서 돈 나온다고 그래?”
“글쎄 시당위 서기 큰아비와 비기진 못해두 한국에 가서 일하잖아? 선생님을 청할 돈만큼은 있다.”
“너네 자매간이냐?”
“네- 사촌자매간인데요.”
정호는 놀랍다는듯 우먹한 외까풀눈으로 순정과 영희를 번갈아보았다. 여느 때 무용을 가르칠 때 우멍눈에서 뿜기던 엄격한 눈빛은 사라지고 이상한 눈빛이 번뜩였다.
“오- 그래? 그러기에 둘 다 이쁘지.”
정호는 순정과 영희한테서 눈길을 떼면서 간장이 묻은 입술을 혀로 감빨았다.
“사촌자매라는데 생김새 조금 달라.”
“어떻게요?”
순정과 영희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생글방글 웃는 눈길로 젤 따르는 스승을 쳐다보았다.
정호는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순정은 보름달 같이 예쁘고 영희는 참외씨처럼 걀죽해 이쁘다.”
영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순정 언니 더 이쁘겠죠. 보름달처럼. 참외씨 무슨 그렇게 곱겠습니까? 언니네 아빠는 시당위 서기인데요. 저 로동자가문의 딸이야 무슨 배경이 있는가? 뭘 볼게 있습니까?”
     정호는 눈이 데꾼해져 순정을 건너다 보았다.
“순정아, 너네 아빠 시당위 서기냐?”
“예. 무슨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하고 말하세요. 아빠하구 말하면 술술 풀릴 거예요.”
“그래?”
순간 정호는 순정의 치마자락을 잡고 가시아버지 덕에 출세해보려고 들었다. 후에 정호는 야망을 끝내 실현하고야 말았다. 그는 가시아버지 덕에 무용교원으로 부터 문화국 인사과장으로, 나중에 문화국 국장으로까지 제발되였던 것이다.
(배은망덕한 개놈자식!)
순정은 배신자 정호를 생각만 해도 치떨렸다.
순정은 정호 선생님은 마음이나 인품이나 다 좋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번대머리와 거슴츠레한 우먹눈이 눈에 거슬렸다. 영희나 그를 볼 때 그 우먹눈은 이상한 눈빛을 발산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영희에 대한 질투심은 순정으로 하여금 가정배경을 리용해 정호선생님의 총애를 독차지하려고 애쓰게 만들었다.
그런데 뭐야? 언제부터인가. 정호는 순정 몰래 영희만 데리고 백화상점에 가서 파란 원피스를 사 입혔다.
순정은 새 원피스 입고 으시대는 영희가 슬그머니 눈에 거슬렸다. 한편 영희를 편애하는 정호선생이 미워났다.
웬 일일가? 순정은 영희한테서 정호선생님을 떼내고 싶었고 선생님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졸업을 앞두고 영희는 졸업배치를 근심해 자꾸 정호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순정은 아버지를 믿고 가무단에 갈 근심은 하지 않고 무용실에서 밤늦게까지 무용련습을 했다.
어느날 밤에 순정이 무용실에서 무용련습을 할 때였다. 정호가 불쑥 무용실에 나타났다.
그는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눈길로 순정의 몸을 아래위 훑었다. 이전에 자주 보아오던 눈빛이 오늘 밤에 유난히 더 번개치듯 번쩍이었다.
정호는 달걀침을 꼴깍 넘겼다.
탄탄하고 야들야들한 우유빛허벅다리, 깊이 파인 무용복 밑에 드러난 백지장 같은 살결…
"그 동작은 이렇게 해야 해."
정호는 순정한테 다가와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한 우유빛허벅다리를 매만지며 들었다 놨다 하며 저도 몰래 장탄식했다.
“너 몸매 정말 예뻐.”
“어머, 선생님, 영희 더 이쁘잖아요?”
“아니야. 난 기실 순정을 더 예뻐해.”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네가 더 예뻐. 허허허.”
순정은 쌍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건데 왜 영희한테만 수입제명품 치마와 저고리 사 줬습니까?”
“영희는 너보다 생활이 가난하지 않고 뭐야?”
“오- 그야 그렇지만 나한테 옷 하나도 안 사주고. 말로만 영희보다 더 이쁘다고 해요?.”
"영희에 대한 건 동정에 불과해.  다음달 로임 나오면 멋진 원피스 사줄게."
"정말? 그래 영희한테 하나 사주면 이후에 한평생 백개, 아니, 천개 만개 사줄게."
정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순정이 아버지가 시당위 서기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순정한테 자주 옷도 사주고 반지도 사주고 지어 금팔찌까지 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18세 밖에 안된 순정은 사랑이 뭔지 몰랐다. 정호선생님에 대한 감정은 일종 라이벌 영희에 대한 질투, 그리고 스승에 대한 존경뿐이 반죽된 응어리였을 것이다.
     정호는 담임교원이기에 전 학급의 녀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진짜 꽃밭에 들어앉아 꽃들의 존경에 받들려 황제처럼 향수하면서 즐겼다.
그는 순정에 대한 사랑보다 점유욕이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그는 순정의 허리자세랑 바로 잡아주는 척 하면서 허리랑 어깨랑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가무단에 가서 전국에 이름난 인기 1급무용수로 되자면 물론 무용실력을 갖춰야지. 허나 그것만으론 퍽 모자라. 예술인은 전도를 개척하려면 무용예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줄도 알아야 해.”
순정은 정호선생님의 말이라면 다 따랐다.
“어떻게 희생해요? 돈이랑 가져다 주고 코밑치성이랑 잘하면 안돼요?”
정호는 천진한 순정에게 렴치잃고 진속을 드러냈다.
“스승이나 윗사람에게 몸이랑 바쳐야 전도를 개척할 수 있어. 내 중학교 때 선생님도 예술학원 스승한테 술 몇병 가져다 주었더라면 중학교 무용교원이겠니? 무용실력을 보면 시가무단에 들어가 춤 췄을 거야. 여자들은 전도를 개척하자면 자기 몸까지 희생할줄 알아야 해.”
더러운 인생철학이었다.
“어머!’
순정은 깜짝 놀랐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난 전도를 개척하지 못해도 그런 짓 못하겠어요. 정 안되면 아빠한테 말하더라도 그런 못난 짓은 못해요.”
그러나 정호는 순정한테 바싹 다가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난 영희보다 널 더 사랑해. 우리 함께 전도를 개척하면서 살자.”
순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절 사랑한다고 했어요? 영희 말고 날 사랑해요?”
“그래.”
“영희 나보다 더 이쁜데.”
“아니야, 그 조개턱 딱 질색이야.”
“내가 어디 이쁘다고 이래요? 영희 이쁘기에 원피스랑 사줬지. 흥!”
정호는 순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우먹한 외까풀눈으로, 불찌 탁탁 튀는 눈길로 마주 보았다.
“보름달 같은 네 얼굴 조개턱보다 더 사랑스럽다. 순정아, 난 널 진정 사랑한다. 목숨까지 다 바쳐사라도.”
“최선생님.”
순정은 감동을 입어 온몸을 옹송그리며 전률했다.
정호는 순정을 놓고 문께에 가서 절컥 문을 잠갔다. 그리고 전기마저 꺼버렸다.
“선생님, 불 켜요”
“쉿- ”
“이러지 마세요. 선생님, 이게 뭡니까? 전 학생인데요.”
“학생이면 뭐래?”
"전 아직 미성년인데요."
순정은 정호를 밀어내며 애원했다.
“최선생님은 학생 때 련애하면 퇴학준다고 하잖았어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다 개소리라 해라. 우리 스승과 제가간에 서로 사랑하는데 뭐라니?”
“내 전도를 책임지죠?’
“그래. 근심말라. 네 평생을 내가 책임질게. 널 영원히 사랑하면서 가정 이뤄 살련다. ”
"다신 영희를 좋아하지 않죠?"
'그래. 처제를 내 친구한테 수개해줗게."
"이젠 영희 말고 나만 사랑하죠?"
"그래. 순정만 사랑할게."
"약속 지키죠?"
"그래. 약속하마."

무용실 강당에서 정호가 한창 순정의 숫처녀 모든 것을 짓밟을 때였다. 

"꼼짝 말엇!"
갑자기 어둠 속에서 고함소리 울렸다. 두리모자 둘이 뛰여들었다.
무용실 강당의 불이 잘칵 켜졌다. 
정호와 순정은 황급히 옷을 주어입었다. 두리모자들을 힐끔 핼끔 곁눈질해보니 경찰들이었다.
"제길할, 재수없이. 경찰이 어떻게 알고 왔어?"
누군가 그들의 희극 노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파출소에 끌려갔다.
경찰들은 심문을 거쳐 그들이 사생지간이란 걸 알고 아연실색했다.
"아니, 선생님이란 자가 어찌 학생을 강간해?"
정호는 순정과는 련인관계기에 강간하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다.
경찰은 순정한테 눈길을 돌렸다.
"맞아요.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이제 제가 졸업하면 당장 결혼할 겁니다."
그러자 경찰들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위법은 아니고 학교 도덕과 기률을 지키지 않았을뿐이었다.
"아무리 련인사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영향이 나쁘게 학교 무용실에서 그따위 짓을 합니까? 숱한 사생들이 보고 신고했단 말입니다. "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호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반성했다.
경철은 머리를 폭 숙인 순정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한마디 쏘았다.
"학생이란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에이, 참. 썩 나가오."
      순정은 그날 밤 2층 무용실에서 정호한테 당했을뿐만 아니라 파출소에 잡혀가 창피까지 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는 진짜 약속대로 순정과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아쉬운대로 영희마저 문걸한테 소개해 약혼시켰다.
(오늘 밤에 영희와  또 그러다니?)
여기까지 생각하자 순정은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한평생 영희 말고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러나 순정은 정호의 속심을 모르는 일면도 있었다. 정호는 처음 무용실 강당에서 순정을 어두운 밤에 묻어버리고나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가슴이 빤빤한 비행장 활주로 같지 않겠는가. 진짜 녀자의 치명적인 흠집에 실망했다. 그러나 정호는 전도를 위해 순정의 활주로가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 정호는 모진 결심을 했다.
(전도를 위해선 요까짓게 다 뭐냐?  이제 과장, 국장, 문화귀족으로 되면 어데 가서 풍만한 처녀 하나 점유 못하겠는가?)
      순간 정호는 영희 풍만한 젖가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후 정호는 순정을 점유하고서도 영희의 풍만한 젖가슴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순정에게서 잃은 것을 숱한 처녀들에게서 보충하려고  들었다.
       순정은 이 시각까지도 정호를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방에 앉아 밤이 깊도록 제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약속대로 나와 가정을 이루고 내가 애를 못 낳아도 지금까지 살긴 살았다. 건데 지금 와서 날 배신하구 영희하구? 내 애를 낳지 못한다고 그래? 업신여겨도 정도 있지. 내 입이 터지면 넌 머리 들고 살겠구나. 나쁜 놈.)
그러나 영희와 정호의 일을 세상에 홀딱 까밝혀놓으면 자기도 끼어 팔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리하여 순정은 차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을 끙끙 앓게 됐다.
순정은 밤중이 돼서야 간신히 다방에서 나왔다.
커피점 녀보스가 깎듯이 인사했다.
“감사해요. 또 오세요.”
순정은 녀보스의 간드러진 한국 말투에 느끼해 피끗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소문난 인기모델 정희가 아니겠는가.
     정희는 문걸이 데리고 다니면서 라체화를 그렸다는  그 녀모델이였다. 정희는 성호네 광고회사 모델을 하다가 부총경리에 재무과장까지 됐는데 광고공사 돈을 가지고 한국에 도망쳤다고 했다.
(온 시내에 소문이 자자한 갈보 아닌가.)
순정은 도리머리를 잘래잘래 저으며 오디차에 올라 발동을 걸었다.
근사한 려관에 자리잡을가고 려관으로 향해 달리다가 급정거했다.
(아니야, 그 개 같은 놈새끼, 또 어떻게 연극 노는가 보자.)
순정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탈아 집으로 달려갔다. 십자길에서 빨간 신호등인줄도 모르고 마구 가로질러 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온 시내가 봉쇄돼 다행이 방역차 외 달리는 차가 없었다. 사고 나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교통경찰이 앞을 막아 세웠다.
짜증나게 경찰한테 교통처분을 받고 집으로 들어섰다.
“어쩨 이렇게 늦었소?”
집에 들어서자 번대머리가 벌떡 일어나 마중나와 와락 끌어안으려고 했다.
(메스꺼운 자식, 작작 연극 놀아.)
순정은 생각 같아서는 귀쌈을 짝 갈겨놓고 싶었다. 허나 억지로 참으며 그저 손으로 밀어버렸다.
“부인, 아니, 우리 황후, 왜 이렇게 늦었소?’
정호는 순정의 손가방을 받아든다, 훌훌 벗는 옷까지 받아 옷궤 안에 가져다 걸어놓는다 하면서 전에 없이 수다를 떨었다.
“배고프지 않소?”
정호는 앞치마까지 두르면서 저녁상을 챙기려고 주방에 들어갔다.
“그만 두오. 영희는 마중해왔습니까?”
“어, 엉? 그래.”
정호는 꺽꺽거렸다.
“그래, 암에 걸렸다더니 어떻습디까?”
“언제 말할 새 있소? 그저 집에 데려다 주다나니.”
정호는 주방으로 슬슬 피해가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 황후님, 아, 온 하루 종일 코로나예방전선에 나가 자원봉사를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겠소. 난 부인이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오. 제 좋아하는 왕새우와 소라를 푹 삶아놓았소. 먹고 자오.”
“정말 모범난편이구만. 왕새우는 뒀다가 영희를 데려다 함께 먹지요. 영희는 왕새우라면 쌩- 하잖아요? 걔 좋아하는 명태볶음도 해놓으세요.”
“영희는 영희구. 그래도 난 마음 속에 여보 당신, 우리 황후 밖에 없소. 순정이란 이름만 보오. 부인님은 얼마나 순정을 내게 몰부었소. 늘그막에야 안해를 믿고 살아야지.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된다 하지 않소? 부부 간에 화목해야 장수한다오. 우리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백년이고 만년이고 살기오.”
(위선자!)
순정은 하마터면 고함칠번했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침대에 쓰러졌다.
그러자 번대머리가 침대머리에 다가오더니 와락 달려들었다.
“가라, 가! 일하고 곤해. 흥!”
“왜 이래?”
정호는 번대머리처럼 뻔뻔하기로 한심했다.
“음양조화가 잘 돼야 무병장수한다오. 엔돌핀도 생기고.”
“작작 지껄여!”
“뭐라고?”
“남의 기분은 모르고. 흐흐흑, 흑흑.”
순정은 속을 칼로 저며내는듯이 아파났다.
“왜 이래?”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면서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혹시 들켰나?)
그러나 인차 대머리를 가로저었다.
정호는 바깥에서 바람을 피우면 집에 들어가 모범남편 탈을 쓰고 연극을 잘 놀군 하였다. 
“오늘 어느 코로나환자 괴롭힙데?”
순정은 대꾸도 하지 않고 세면실에 가서 세척체로 손을 씻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도 훌훌 휑구고 헝클엉진 머리카락을 빗으며 거울을 쳐다보았다. 자기 억울한 모습 더없이 불쌍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정호가 글쎄 앞치마까지 두르고 아침밥까지 짓느라고 덜거덕거렸다. 정호는 남비에 기름 부어넣고 닭알을 깨넣고 지지고 볶았다.  순정이 잘 먹는 명태국까지 부글부글 끓였다. 한참 씩씩거리더니 산해진미로  아침상까지 차려놓고 순정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여보, 우리 집 황후, 황후님께서 좋아하는 산해진미로  조선 왕궁 수라상 차려놨습네다. 어서 일어나 잡수십시오."
"픽, 더럽다."
순정은 이불을 푹 쓰고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 해 서산에서 뜰 지경이었다.
(국장이느라고 항상 틀을 차리면서 떽떽거렸잖은가. 누구 덕에 국장자리에 올라갔니? 아버지 아니면 네깐 놈이 국장은커녕 , 흥! 젊었을 땐 애를 못낳는다고 항상 날 '어애'라고 욕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젠 마른 방아를 찧지 못하겠다면서 몇번이고 리혼까지 하려고 했지. 그런데  저놈새끼 바깥에 나가 바람 피우고는 저렇게 표현이 좋았댔구나. 개 같은 놈, 위선자, 저놈새끼, 이때까지 한달에 서너번씩이나 바람 피웠단 말인가?)
      몇번이나 정호가 바깥에서 성병을 묻혀들여 그녀는 창피하게 성병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됐다. 정호는 바깥에 나가 바람 피우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자기를 위장하기 위해 모범남편 탈을 쓰고 연극을 노는 한편 침대에서도 그럴듯하게  연극을 놀았다. 그는 전에 없이 수다를 떨면서 애정공세를 들이댔다. 그러나 별로 애무도 하지 않고 항상 대충 입내를 내군 했다.  진짜 그럴듯하게 연기하는 위선자였다. 그러나 순정은  이날 이때까지 애를 낳지 못한 "죄'로 해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살아왔다. 
순정은 이제껏 위선자한테 속아 놀아난 것이 원통했다. 더구나 짐승처럼 처제 영희마저 놔두지 않자 더욱 분통이 터졌다. 악이 딱딱 났다.
      그러나 정호는 순정의  심정은 하나도 모르고 이튿날 아침이면 더욱 수다를 떨어댔다.
       "우리 황후 자원봉사를 하느라고 퍽 곤한 모양이구나."
       그는 순정이 침실에서  나오지 않자 이번엔 흡진기로 집 안 청소를 하느라고 뚱뚱한 배를 뚱기적거리면서 씩씩거렸다.  그럴수록 순정의 반감과 격분은 반비례해 고조에 치달아올라갔다.
       순정은 대머리를 도끼로 팍 찍어놓고 싶었다.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위선자 같은 놈, 어디 두고 보자. 날 배신하고 어디 좋은 끝장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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