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백산호텔연회청에서 여느 생일보다도 굉장히 쇠였다. 다른 해 생일에는 국외에 나간 형제들을 빼고나면 극상해야 형제자매와 조카들, 친구들까지 합해서 고작 세상이면 다였다. 그러나 이번 생일에는 손님이 전례없이 여섯상이나 되였다.
그럼 형제자매와 조카들을 빼고 나머지 숱한 손님들이 몽땅 내 친구란 말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속에는 사회관계로 찾아온 손님이 대부분이고 중소학교와 대학교 동창생들도 있었다. 생일 손님은 많아졌지만 친구가 많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 진정한 친구는 몇몇 밖에 없었다.
그럼 왜 생일상은 많아졌지만 징정한 친구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진정한 친구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시련을 겪고 시간과 공간, 리해득실, 의리의 고험을 거친 그런 진정한 친구는 드물다.
20몇년 전 일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평소에 내가 형님으로 높이 모시고 따르던 형님은 “착오”를 지고 학교에 남아 아래학급생들과 함께 숙사에 들어 있어야 했다. 나는 정신상, 경제상 어려운 처지에 처한 형님이 어찌나 불쌍하였던지 자주 찾아가 술대접을 하면서 독한 술로 마음속의 고통을 위안해주었고 달마다 로임 45원을 타면 반을 나눠 그 형님에게 주군 하였다. 그런데 형님은 몇십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두고 동창생들을 만나기만 하면 외우군 하였다. 그러나 나는 형님이 나를 도와준 은덕에 비하면 형님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고 본다. 형님은 여섯살이나 지하인 철부지 나에게 삶의 도리와 의리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고 내가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항상 친형님처럼 처처에서 나를 도와주군 하였다. 스물다섯 돼도 약혼 하나 못한 것을 보고 숱한 녀대생들을 소개해주었고 졸업배치 때에도 발벗고 나서서 밤중까지 달아다녔었지. 형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내가 어찌 형님의 은정을 잊겠는가.
하기에 사업관계로 천리 떨어져있을 때에도 형님과 나는 늘 지척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생일상에는 서로 다니지 못하였지만 한해에 한두번, 아니 몇해에 한두번 만나도 우리는 그렇게 기쁘고 마음이 통하였다. 나는 형님을 알면서부터 남자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였고 형님을 알면서부터 형제의 정과 친구의 의리를 알게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간도 다 빼줄 상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딱 연극배우 같다. 그러나 일단 강을 건느면 다리를 뜯어버린다. 강을 건늘 때 다리의 은정을 다 잊어버린다. 한 고중동창생은 과수원을 다루는데 돈이 딸려 뀌워달라고 비난사정을 다하였다. 나도 새 집을 샀기에 장식을 해야겠기에 돈이 딸렸다. 그러나 그 친구의 과수농사를 망칠가봐 심사숙고 끝에 10여년 전 돈으로 만원을 뀌워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한테서도 만원씩 꾸어 차를 사서 타고 돌아다니였다. 그 친구는 돈을 꿔서 차를 산 신세에 동창생들을 만나면 어깨 으쓱해 한해에 과수수입이 15만원씩이나 된다고 한바탕 불어댔다. 그러나 10여년이 되도록 친구들에게서 꾼 돈을 갚지도 않았다. 흥청망청 유흥놀이에 돈을 마구 쓰다나니 나중에 과수원마저 다 말아먹고 한국으로 훌 달아나버렸다. 10여년이 되여서도 친구들의 돈을 돌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쪽에서 “친구라는게 무정하게 빚재촉을 한다”면서 친구관계를 끊겠다고 횡설수설하였다. 이렇게 실용을 앞세우고 리해득실만 따져가면서 허위적으로 친하는 그런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친구간에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말라. 돈거래하면 언젠가는 친구가 벌어진다”고 하시였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는 제일 가까운 친구인것처럼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는 나는 몰라라 하고 발뺌을 한다. 한번은 장기를 놀다가 말썽이 생겼다. 청년애들은 장기에 지고나서 승풀이를 하려고 핸드폰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그러자 평소에는 친구라고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면서 맥주나 얻어먹던자가 그 자리에서 바람결처럼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한단위의 동료가 파출소에 전화를 쳐서야 처참한 물매질이 끝났다. 그후부터 나는 그자를 친구로도 상종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는 “친구”, “형님” 하지만 일단 자기가 나가는 앞길에 걸림돌이 되기만 하면 가차없이 잘라버리거나 팔아먹는다. 그런자들은 자기에게 리득이 될만하다고 생각하면 친구라고 찾아다니지만 기회만 있으면 형제도 팔아먹고 민족도 팔아먹고 나라도 팔아먹을수 있는자들이다.
평소에 먹어라, 써라 하는 “친구”는 술친구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코를 맞대고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면서 술이나 먹고 노래방이나 다니고 안마나 받고 해서 딱친구인것이 아니다. 평소에 아주 친한것처럼 생일에나 다니고 술친구를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 어려운 시각에 나는 몰라라 하고 발뺌을 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리해득실을 따져가면서 실용적으로 친하고 불리할 때는 친구를 팔아먹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역적”이고 간신배이다.
부은 살은 자기 살이 아니다. 리해득실을 토대로 하여 맺어진 “친구”는 리해득실에 의해 갈라지고만다. 물렁물렁한 논두렁에 아무리 흙을 퍼올려도 사람이 밟으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만다. 세상에 정말 자기 마음에 드는 진짜 믿을만한 친구는 몇이 없다. 세상만물이 모두 상대적인것만큼 절대적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절대적인 친구를 추구하면 자기와 똑같이 생기고 성질도 같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친구—자기 그림자밖에 없게 되고만다. 그렇게 되면 점점 친구는 줄어들고 고독해지고 우울해지게 된다.
하기에 상대적으로 마음에 드는 친구, 이러저러한 여러 류형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것이다. 장기친구, 트럼프친구, 술친구, 문학친구,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비밀이 없을 정도로 가장 절친한 죽마고우, 숙명처럼 물과 고기의 삶을 한 수어지교(水漁之交)의 친구, 무쇠와 돌처럼 견고한 철석지교(铁石之交)의 친구, 서로 의기가 모여 편안한 막역지교(莫逆之交)의 친구, 허물이 없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친구, 목숨 내걸고 맺은 신의(信義)의 친구, 문경지우(刎頸之友)… 어떠한 친구라도 한명쯤 곁에 두고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수 있다. 진실한 감정과 의리에 토대하여 정을 쌓아가고 곡절과 시련을 겪어야만 진정한 친구로 될수 있으리라.
환히 드러난 지상에서 잎사귀만 맞대고 사귈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뿌리와 뿌리가 잇닿고 사귄것처럼 사귄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이다. 관건적인 시각에, 어려운 시각에 걱정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서 도와나서는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지척에 있는것처럼 느껴지며 아무리 한해에 한두번 만나도 마음속에 와닿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아무런 대가도 조건부도 필요없는 친구,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이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그 어떤 시련과 곡절을 겪더라도 끄떡하지 않고 변함이 없는 친구, 인간적이고 량심적인 친구, 아무런 리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의리심이 강한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겠는가!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