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 지고 못살아.” 이것은 나의 아버님 인생좌우명으로서 아주 철리가 있는 말씀이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모나게 말씀하셨고 또 한평생 사사건건 시비에서 이기면서 모나게 사셨다. 일제의 철발굽 밑에서도 아버지께서는 송사를 걸어 이겨 할아버지 옆구리를 괭이로 찍어 륵대를 세대나 분질러 놓은 지학사란 악패지주놈에게서 치료비로 30원을 받아내시고야 말았다. 그 때 돈 20원이면 소 한마리를 샀다고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한평생 시비에 질 노릇을 하지 않으셨고 시비를 이기면서 모나게 사셨던것이다.
아버님께는 명언 몇마디가 있으셨다.
원칙도 없고 자기 주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것을 보면 “소불알처럼 이 다리 쳤다 저 다리 쳤다 한다.”고 유모아적으로 비난하였다.
또 실속없이 큰 소리만 치는 것을 보면 “빈 양철통이 소리만 높다.”고 비웃군 하셨다.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청년시절까지 나는 자존심도 강하였고 성질도 면도칼날 같이 날카로왔고 시비에 밝게 살려고 애썼다.
나는 청년 때는 몸도 날래여 고도도 한메터 반 쯤은 개구리가 물에 뛰여드는 동작으로 날아넘었고 말도 아주 빠르고 강하고 모나고 날이 서게 하였다. 아마 부모와 고모들이 어려서부터 나에게 항상 네귀퉁이의 두부모만 먹이면서 “쟤는 장차 모나게 공부를 잘하고 모나게 살아야 해.” 하고 타이른 영향 때문도 있는 것 같다. 청년때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나쁜짓을 하고 배겨냈겠는가? 학교의 나무를 꺾는 건달무리를 교정에서 쫓아냈다가 칼에 옆구리를 찔려 생명위협도 받았지만 나는 청년교원으로서 정의를 위해 싸운 것으로 하여 떳떳하였다. 학교와 교육국에서는 정의를 위해 용감히 싸웠다고 교원인 나를 표창하였고 공안국에 사건보고를 하여 깡패무리를 나포하여 법에 의해 처벌하였다.
자존심이 면도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나는 비리를 보고 용서하지 않았다. 독신교원들을 업신여겨 눈알을 부라리면서 비 내리는 날에 독신교원들의 이불짐마저 운동장에 내던지던 학교 책임자와도 맞서 시비를 하지 않았던가? 누나가 억울함을 당하자 법원에 소송해 끝내 재산을 찾아주지 않았던가! 나는 정의의 기치를 들고 바른 총질도 잘하였다.
그래서 한 친구는 나를 보고 “ 사람은 빈 정의만 가지고서는 이 세상에서 살기 어렵다. 그저 눈에 거슬리는 걸 보는 척 마는 척 하며 참고 살아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시비를 걸고 끝장보고야 말군 하였다. 모난 돌에는 항상 정이 오기 마련이였다. 원칙과 정의를 지키면서 모를 세우면 세울수록 시기와 질투, 시샘, 지어 음해, 무함까지 당해 한발자국도 나가기 힘들었다.
그래 정말 편안하게 살려면 정의고 시비고 뭣이고 다 버리고 어떤 때에는 비리를 보고서도 못 본 척 하고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만약 정의를 위해 사람답고 모나게 살려면 항상 칼도마에 오를 각오가 돼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피곤하였다. 모난 돌에 정이 간다고 정의를 위해 시비를 걸어도 오히려 나를 고발쟁이요 뭐요 하고 떠들어대서 나만 인심을 잃었다. 그것이 싫었고 힘들고 피곤하였다. 사사건건 면도칼날 같이 날카로운 자존심을 세워보고 모나게 놀아보았자 시퍼런 면도칼날도 돌멩이와 쇠붙이에 부딪쳐 날이 더덕더덕 떨어지고 선뜩선뜩하던 칼날도 세월의 숫돌에 갈아져 도끼등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세파에 부대끼여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네모반듯한 인격의 열혈청년으로부터 둥글둥글한 조약돌 같은 늙은이로 돼버렸다.
나는 점차 모난 돌로부터 둥글둥글한 조약돌 같은 인생행로를 걸어왔다. 면도칼날 같이 날카롭던 자존심도 도끼등처럼 무뎌졌고 날래던 몸도 뚱기적거리는 데다가 말마저 두루뭉실하고 느릿느릿하게 하였고 자기 앞의 말도 방정히 하지 않고 가려서 하였다. 이길 시비도 지고 억울한 말을 들으면서도 자그마한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둥근 조약돌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스스로 속으로는 어떤 때에는 둥근 조약돌처럼 둥글둥글하게 사는 것이 모난 돌처럼 모나게 살기보다 더 모나게 살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안하기도 하였다. 조약돌인생은 둥근 세상에서 원칙도 없이 명철보신하면서 둥글둥글 잘 구을어갈 수 있다.
그러나 모난 돌처럼 이 세상에서 원칙을 세우면서 모난 돌 인생을 살아나가자면 아주 힘들고 고독하고 외롭다.
세상리치를 따져보면 모난 속에 둥근 것이 있고 둥근 속에 모가 있다. 둥근 조약돌 속에 모를 감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철학적 의미지가 깊은 기동령활한 처세철학인가? 그래 나는 끝내 양광목을 쓰고 더러운 세속에 푹 잠겨들고 말았다. 잠시 남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남들 앞에서 더 오래동안 허리를 꿋꿋하게 펴고 살기 위함이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젠 어찌나 남에게 모도 없고 날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시비도 하기 싫어하는 둥글둥글한 조약돌 같은 사람처럼 보였던지 쓸데 없는 억울한 말을 자주 듣군 하였다. 지어 억울하게 무함까지 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래서 산동성 연태에 갔을 때 봉화대 옆에 있는 관운장사당에 가서 필리핀에서 왔다는 스님에게 관상을 보였다. 그러자 그 스님은 내 납작코를 보고 남에게 당할 팔자라고 하면서 내 주위에는 항상 소인배들이 많아서 억울한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미용원에 가서 그 놈의 납작코를 모나고 날이 서게 성형수술을 하면 안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납작코는 아무리 수술해 지울 수 있지만 타고난 팔자와 운명은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였다. 듣고보니 아마 운명의 조화라고나 할가. 나는 남에게서 없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젖은 옷을 입지 않았고 말을 들을 일을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쓸데없는 말은 끊칠 새 없었다.
그럼 타고난 팔자는 고칠 수 없는 숙명인가? 아니다. 타고난 팔자도 노력으로 고칠 수 있다.
납작코를 수술하기보다 날도 모도 없이 시비도 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살려는 인생철학부터 수술해야 한다. 원칙도 없고 모도 없는 조약돌인생을 살 바에야 죽어버리는 것이 좋으리라. 천하의 근심을 다 끌어안고 세상의 시비를 다 하면서 그렇게 모만 세우면서 산다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만 정직하면 쓸데없는 말을 하겠으면 하라지.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려보내면 다 아닌가? 속담에 참을 “인” 자 세번 외우면 살인도 피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낮은 문턱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낮은 문선에 머리가 터지지 않는 법이다.
세상의 리치에 맞게 둥근 조약돌 속에 모난 것을 감추고 모난 돌에 둥근것을 숨기며 무르면서도 강하여 휘여들지언정 끊어지지 말고 굳고 끈질기게 살아야 하지. 어떤 때에는 휘여지는 버드나무 속에 참대의 강직성을 감췄다가도 보여주어야 하지. 어떤 때에는 너그럽고 남을 용서할 줄도 알고 베풀기도 하고 양보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속담에 한발자국 물러서면 세상이 바다와 같이 넓고 하늘 같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어떤 때에는 남에게 양보하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때에는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오히려 쳐든 머리보다 더 돋보일 수도 있다. 어떤 때에는 어진 것이 독한 것보다 남을 전승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때에는 둔한 것이 너무 역은 것보다 낫을 수도 있다. 그래서 둔한 것이 다행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 아버지처럼 강하게 나올 때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강하게 나오고 시비를 걸고 날이 서고 모나게 살고 싶다. 속시원하게 바른 말도 꽝꽝 하면서 통쾌하게 살고 싶다. 정말 사람이 짧게 살더라도 강하고 굵게 살고 시비에 이기면서 정정당당하고 날이 서고 모나게 사는 것만큼 가치있는 삶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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