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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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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4)
2020년 08월 06일 06시 58분  조회:1126  추천:1  작성자: 김장혁
          84. 효성의 빈 구석
       밤중에 성호가 금방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소리가 급촉하게 울리며 고즈넉하던 집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전화를 들자 다섯째누나 은자가 욕하는 소리가 고막이 아프게 들렸다.
       “야, 이 도리깨아들아, 내 엄마를 살려내라.”
       “무슨 소리요?”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순간, 목이 꺽 막혀 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펀펀하던 엄마가 어떻게 불시에 세상뜰 수 있느냐? 다 네가 엄마한테 등한한 탓이야!”
        은자의 목소리는 저으기 격앙됐다.
       성호도 너무나도 억울해 언성을 높였다.
       “야-, 누나, 정말 억울하오. 며칠 전에 엄마를 업고 달아다니면서 병원에 가서 전면검사를 했소. 대뇌 CT까지 촬영해 봐도 아무런 병도 없었소. 대뇌도 위축되지 않았소. 오장륙부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소. 그런데 불시에 사망했는데 어찌 내 탓이라고 그러오?”
은자는 곧이듣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
“얼마나 잘 돌봤으면 불시에 사망했겠니? 다 네 탓이야. 아들이 드세면 며느리 꼼짝이나 하겠느냐? 90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그게 뭐냐? 홀로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달아나다니? 엉? 전세계에 그런 쥐며느리 어디 있느냐?”
성호는 정희의 불효가 아니꼬왔지만 누나들 앞에서 허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소리요? 그래도 정희하구 내20여년 동안이나 부모를 모셨고 림종까지 돌보지 않았소? 누나는 일년이라도 돌봤소? 누난 돈에 눈이 어두워 엄마 생전에 몇번 찾아와 보기나 했소? 한국에 간지 10년만에 딱 한번 찾아보구 무슨 할 말이 있소? 엄마 사망해도 장례식에도 오지 않고 그게 뭐요? 누나야 말로 불효자식이요. 그 주제에 누굴 억울하게 욕하오?”
전화기에서 분명 은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성호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엄마는 림종 전까지도 누나들이 보고 싶어 어쨌는지 아오? 거의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야, 은자는 한국에서 오지 않는다니?’ 하고 외우군 했소. 그러나 누나는 10여년 동안에 거의 해마다 상해에 있는 제 아들집에는 한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면서도 엄마한텐 딱 한번 밖에 오지 않았단 말이요.”
은자는 흑흑 흐느껴 울면서 자책감을 느꼈다.
“일이 바빠서 돌아오다나니 그랬다. 정말 불효를 저질렀구나. 엄마 림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아이구, 무슨 멋에 사는지 나도 모르겠다. 흐흐흑, 흑흑흑.”
성호는 열이 후끈 올라 참고 참았던 울분을 왈칵 쏟아 퍼부었다.
“누난 병원에 가서 간병하면서 돈 버는 짭짤한 맛에 엄마 보러도 오지 않고 뭐요?  여기 있을 땐 엄마 생일에 몇번 왔소? 그래도 곁에서 내가 엄마한테 밥을 지어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다드렸지. 누난 내만큼이나 하고 지금 나를 욕하오?”
갑자기 은자도 격한 목소리로 반격했다.
“내 돈을 벌어 엄마한테 적게 보냈니? 엄마 숱한 옷에 전자레인지, 안마기, 지어 요강까지 보내지 않았니?”
성호는 무례한 것 같아 언성을 좀 낮췄다.
“감사하오만. 부모는 년세가 들수록 돈보다도 자식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고 뭐요? 엄마 항상 어쨌는지 아오? ‘은자랑 성숙이랑 안 온다니? 춘자는 멀어서 못 온다더냐? 그 애들은 전화로 잔소리만 하는 딸들이야. 전화 속의 딸이지 어디 제 구실을 하니? 내 얼마나 보고 싶어 해도 어디 오기나 오니? 쩍하면 전화를 해서 양로원에 가라고  한다.  이젠 걔들 전화 듣기도 싫어 받지도 않는다.’”
성호는 좀 더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엄마는 93세에 돌아갔으면 명이 다해서 사망하셨다고 보오. 절대 무슨 병에 걸려 돌아간 건 아니요. 그런데 지금 와서 네 탈, 내 탈 해서 무슨 쓸데 있소?”
부산에서 철수가 옆에 앉아 듣다 못해 어머니 손에서 전화를 와락 빼앗으며  말렸다.
“엄마, 그만 하십시오. 외삼촌이 마지막까지 외할머니한테 얼마나 효성을 잘했다고  이럽니까.”
은자는 철수 손에서 전화를 와락 되빼앗아갔다.
“엄마 사망하니 속이 비길데 없다. 우린 모두 엄마한테 불효를 저질렀어. 다 잘한 것처럼 떠들지 말고 모두 반성해야 돼. 정희가 어쨌는지 아니? 네가 출근한 다음에는 엄마를 보고 별 거정을 다했어.”
“뭐라오? 건 금시초문인데.”
“이제까지 누나들은 네가 혹시 정희하구 밸을 쓰면 엄마한테 욕이 돌아갈가봐 말하지 않았다.”
“그래 정희 뭐라 했다오?”
“결혼 삼일에 갈 때 엄마가 본가집 엄마한테 젖값을 더 보내자는 걸 주지 않았다고 야단치더란다. 뭐, 숱한 형님, 누나 두고 늘그막에 막내아들 집에 얹혀 사는가는지? 맨 발로 복도에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발을 싹싹 씻으라는지 별 소릴 다 하더란다. 냄새 난다는지 별 소릴 다했단다. 넌 여직껏 몰랐지? 아이구, 우리 엄마 쥐며느리를 만나 얼마나 마음고생 했느냐?”
은자는 대성통곡치더니 전화를 덜컥 놓았다.
성호는 마음이 아파 쓸쓸한 달빛이 깔린 객실에서 서성거렸다.
누나의 심정은 리해됐다. 글쎄 펀펀하던 어머니가 뜻밖에 세상을 떴기에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누나는 너무 비통해 리지를 잃은 거 같아. 정희가 정말 그런 허물질을 했을가?)
어머니는 확실히 농촌에 있을 때에도 다 튼 맨발로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 튼 발자욱이 고향의 어느 산과 들 밭고랑에 찍히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한뉘 신짝도 온전히 사 신지 못한 엄마를 욕보이다니? 항상 엄마한테서 냄새 난다고 징징거리긴 했지. 정말 미쳤어.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성호는 너무 안타까워 가슴을 마구 쥐여 두드렸다.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뜬 일이 지금도 이상했다.
년초에 춘자와 은자한테서 진작 이상한 편지를 받았었다.
“얘, 토정비결을 보니 어머니가 올해 4월 초에 세상뜬다고 나왔더라. 어머니를 각별히 잘 모셔라.”
성호는 원래 미신을 믿지 않는 터라 누나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엄마 지금 펀펀한데 불시에 세상뜬다는 말을 하지도 마오. 병원에 가서 검사해도 아무런 문제 없습데. 세상뜨다니? 믿기도 싫소. 엄마는 지금 자체로 밥을 지어 잡숫소. 근심하지 마오.”
그러나 성호는 혹시나 해서 어머니께 효성을 다했다. 밥맛이 없어하면 음식점에 가서 부추채랑 물고기채랑 해서 날라다 대접하였고 바나나랑 사과랑 때때로 사왔다.  심지어 은숙을 집에 두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단위에 나갔다가도 쉼이면 집에 때때로 돌아와 어머니께 무슨 일이 없는가 살폈다. 성호는 후회나지 않게 효도를 하려고 서투른 솜씨로 손수 부추채와 닭알볶음이랑 볶아서 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춘자와 홍수는 어머니가 근심돼 머나먼 JH시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와 어머니 곁에서 쉬면서 살뜰히 보살폈다.
그녀는 집에서 손수 볶은 소고기볶음채랑 붕어지짐이랑 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그리고 집 안을 돌아가면서 말끔히 청소해주고 어머니 옷을 몽땅 빨아드리고 어머니 상시옷마저 지어놓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머니 몰래 한없이 통곡쳤다.
세상뜨기 며칠 전만 해도 성호의 어머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빠트구역에 있는 상점에 가서 사과랑 바나나랑 사다가 잡수었다. 한낮이면 방석을 들고 내려가 아빠트구역의 로친들과 한담하면서 해볕쪼임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세상뜰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 뜨는 날 새벽 5시 반 쯤에 성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른 때 같으면 어머니는 진작 일어나 아들 방으로 들어와 섬섬거리면서 먼저 말씀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 일인지 아무런 자취도 없었다.
성호는 황급히 어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이불을 덥고 반듯이 누워 쉬고 있었다.
“어머니, 어째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만 높았다.
“어머니, 깨납소.”
그래도 깨나지 못했다.
성호는 어머니를 조용히 흔들면서 불러보았다.
“어머니, 어데 불편합니까?”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더는 아들의 말소리 한마디도 듣지 못하였다.
“아이고, 어머니, 일어납소.”
은숙도 옆에서 어머니를 흔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가 높아만 갔다.
“엄마를 병원에 모셔가야지.”
성호의 말에 은숙이 말렸다.
“어머니는 명이 다해서 운명하고 계신다. 조용히 떠나가게 움직이지 말라. 93세까지 앉았으면 잘 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지.”
그러나 은숙이 극구 말렸다.
성호는 황급히 사처에 형님과 누나들한테 비보를 알렸다.
춘자가 제일 먼저 기차를 타고 달려와 대성통곡쳤다.
뒤이어 경만도 달려왔다. 그러나 한국에 간 춘애, 은자와 성숙은 미처 오지 못하고 대신 아들을 보냈다. 철수와 경남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군춘도 차를 몰고 달려왔다.
어머니는 자손들의 뜨거운 눈물바다 속에 잠겨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성호가 어머니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니 맥이 하나도 뛰지 않았다. 어머니의 93년이 뛰던 힘찬 심장도 맥없이 고동을 멈추었다.
영옥은 30여명 자손들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아쉬운 마음을 불태우면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다.
자손들은 모두 피눈물과 함께 상시옷을 입혔다. 경남과 철수는 외삼촌과 함께 자기를 이 세상에 손수 받아낸 외할머니를 담가에 들어 운구차에 모셔갔다…
남들은 90세 넘도록 어머니를 모셨으면 잘 모셨다고 했다. 하지만 성호는 지금도  어머니를 저세상에 갑자기 보낸 것이 얼마나 비통한지 몰랐다…
밤중에 또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성호는 은자가 그렇게 욕하는 것이 리해되지 않아 전화를 받을가 말가 하다가 마지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뜻밖에 큰누나 춘애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막내오라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오. 엄마 세상떠서 너무 비통해서 그러오. 은자 말을 너무 과격하게 했는데 널리 량해하오.”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큰누나 언제 다섯째누나네 집에 갔댔소?”
“며칠 전에 왔소.”
성호는 항상 큰누나와 둘째누나를 엄마같이 여기는 터여서 속시원히 털어놓았다.
“나도 효성하느라고 애를 썼는데 너무 억울해 화를 냈소. 다섯째누나 보고 량해하라고 전해주오.”
춘애는 성호를 차근차근 타일렀다.
“돌아간 어머니도 자식들이 싸우면 섧어할게요. 어머니는 돌아갔지만 우리 형제들간에 싸워서야 되오? 화목하게 살기요. 그게 부모한테 다하지 못한 효성을 하는게요. 이젠 우리 차례가 된 것 같소. 우리 어떻게 형제들과 자식들간에 화목하게 살겠는가하는게 문제요. 요즘 은자네 집에 있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소. 은자 말처럼 나와 은자가 한 집에서 살면 아무런 모순도 없을 것 같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건 남의 집 식구가 우리 부모형제와 자식간에 끼여든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며느리나 사위야 어디 자식이요?”
성호는 이젠 누나네 전화를 받기 두려웠다.
“아니, 사위는 반자식이라는데 무슨 말이오? 누난 사위 집에서 화목하게 보내지 않소? 어째 한국에 또 나갔소?”
큰누나의 말을 들어보니 답답하기만 했다.
“양, 이때까지 자식들이 팔리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소. 근춘이 본처와 리혼하고 중학교 때 동창생을 후처로 삼았잖고 뭐요? 후처는 이불공장도 꾸려서 부자지만 근춘이야 제 호주머니에 어디 돈이 있소? 게다가 이런 부담거리 엄마까지 달려서 허리를 펴고 사오? 후며느리는 원래 며느리보다 날 살뜰이 대해주었지. 그래도 난 후며느리 눈치 보기 싫고 아들을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소. 그래서 집을 따로 잡고 살지 않았고 뭐요? 그때 경미가 날 모셔가서 딸집에서 몇해 살았소. 그래서 근춘한테 아들며느리를 판다고 얼마나 말을 들었는지 아오? 그런데 경미가 한국에 나가고 사위 혼자 사는데 눌러 앉아 있는다는 것도 말이 아닙데. 내 외손녀하구 친손녀를 업어 키울 땐 괜찮았소. 그런데 이젠 손녀들도 다 컸으니깐 눈치 다릅데. 사위 뭐라는지 아오? ‘딸도 없는데 사위 집에서 어떻게 계속 삽둥?’, ‘남들은 딸이 시집갈 때 집이나 차를 사준다더구만. 가시엄마는 집을 사줬습둥? 차를 사줬습둥?’, ‘늘그막에 좋은 아들을 두고 사위 집에 자꾸 기여들면 어쩝둥?’, ‘출가집 외인이라고 딸과 사위 어떻게 가시엄마를 모십둥?’ 야, 이런 말 듣고 뼈마디까지 오싹오싹 해나서 하루라도 사위 집에서 더 살지 못하겠습데. 그래서 한국에 나왔소. 지금 102살짜리 할머니를 모시고 보모질을 하는데 한달에 180만원을 받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소. 아들과 딸을 나그네도 없이 홀로 아글타글 남새단이나 넘겨서 10전, 20전씩 벌어서 걔들을 사먹이면서 다 키워서 차례진게 뭐요? 아들딸을 다 시집장가 보내고 두 손녀를 업어서 키워주었건만 내게 돌아온 건 뭐요? 욕뿐이요. 욕! 사위와 며느리 불효 밖에 더 차례진게 있소? 은자는 내 불쌍해서 자기네 널직한 3층짜리 집에서 함께 살자오.”
성호는 들을수록 늘그막에 로임도 양로비도 없는 큰누나가 불쌍했다.
(누나네 말대로 부모자식간보다 친형제가 더 가까운가? 형제간에 허물없이 보낼 수 있을가?)
춘애는 또 생각지도 않은 은자의 답답한 처지도 말했다.
“은자도 한족며느리 미워서 이젠 보러 가지도 않겠다오. 전번에 은자가 한짐 이고 지고 아들집에 갔다가 섭섭했는 모양이오. 아들며느리는 잔소리를 너무 한다고 야단치더라오. 아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너무 뚱뚱해서 기름진 걸 작작 먹이라고 했는 모양이오. 은자는 부엌을 차지한 후 팔소매를 불씬 거두고 손수 기름도 넣지 않고 슴슴하게 조선족음식을 해 먹였다오. 상해 한족며느리하구 사돈령감로친까지 그런 음식을 먹고 하루도 못살겠다고 떠들더라오. 심지어 그렇게 귀해하는 손자까지 자기 엄마가 울면서 노발대발하자 엄마 역성을 들어 할미한테 손가락질하면서  한족말로 ‘가라!’고 꽥꽥 고함치더라오. 그래서 이젠 자식들과 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오. 나보고 자매간에 한 집에서 살면 세상 편안할 것 같다오.”
“아무튼 누나네 모두 몸조심하면서 편안히 살기를 바라오.”
성호는 전화기를 살며시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자식들한테 소외된 외로운 누나들의 만년이 서글프고 가긍해 저도 몰래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밤이 깊어가는데 성호는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누나들한테 불효를 저지르는 조카며느리들과 조카사위들을 욕하다가 저도 몰래 자기도 부모에게 불효를 저지른 구석이 없는가 돌이켜보았다. 후회되는 일이 끝없이 떠올라 서재에 들어가서 필을 들어 써내려갔다…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고기비늘구름이 빨갛게 타오르다가 나중에 은빛으로 물들었다. 동산에 커다란 은쟁반이 두둥실 걸리더니 은빛해살을 온 누리에 비추었다. 뭇산들은 그 은쟁반을 빼앗기라도 할듯이 두 손을 쳐들고 쫓아갔다.
성호는 자기 생일날에 준식을 불러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 천지꽃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그는 산기슭에 외롭게 쓸쓸히 누워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이르자 산소를 붙안고 섧게 대성통곡쳤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죽여주옵소서- 엉엉,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어머니 배아프게 나를 낳은 날입니다.”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산소에 큰절을 아홉번씩 올렸다. 옆에 서 있던 준식도 사돈할머니한테 절을 올렸다.
산소 주위에는 쓸쓸하고 울먹거리는 성호의 마음을 달래려는듯이 대자연이 함박꽃과  할미꽃을 활짝 꽃피워 놓지 않았겠는가.
천사와도 같은 선량한 부모를 그리는 효자를 대신해 하늘이 꽃을 선사했으리라.
성호는 부모의 산소 앞에 두 손을 맞잡고 눈을 딱 감고 부모에 대한 끝없는 묵념에 잠겼다.
반세기 전의 오늘, 어머님께서는 집에 먹을 쌀이 없어 나를 품 속에 넣은 채 천수해 시장에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겹게 걸어가셨다. 어머님께서는 옥수수쌀을 한주머니 사 이고 만삭이 된 배를 붙안고 띠끔띠끔 아파나는 배를 억누르면서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옮겨 딛이며 집에 돌아오셨다. 어머님께서는 전등불도 없는 어둠침침한 고방에서 혼자 아픈 배를 붙안고 나를 낳으셨다.
“아, 어머님ㅡ, 아버님, 효성을 다하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습니까. 이 아들은 목 메여 웁니다.”
성호는 땅을 치면서 산골짜기 쩌렁쩌렁 울리게 울었다.
그는 산소에 달려올 때 어머니가 옥수수쌀을 이고 간 그 천수해 시장으로부터 고향으로 가는 길을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간혹 택시에서 내려 산골로 뻗은 길바닥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천수해에서 태평촌으로 올라가는 시골길의 일초일목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해동 굽인돌이를 돌 때 길가의 허리 굽은 비술나무가 눈에 띄였다. 딱 마치 만삭이 된 어머니가 기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는 택시에서 내려 비술나무에 다가가 두 손으로 매만졌다.  허리 굽은 비술나무 옆 밭에서 이삭을 한두개씩 업은 옥수수도 마치 애기를 업은 어머니로 보이지 않겠는가.
(혹시 어머니가 옥수쌀주머니를 이고 가다가 이 허리 굽은 비술나무에 기대서서 아픈 배를 매만지지 않았을가?)
성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은 준식은 매형이 제정신 같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성호는 점점 이상하게 서둘렀다.
계수동 산골짜기에서 벽계수가 조잘조잘 흘러나와 길바닥을 부비며 흘러지나가고 있었다.
성호는 벽계수를 보자 또 차에서 내려 유심히 살펴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삭이 된 어머니가 옥수수쌀을 이고 어떻게 이 개울물을 건넜을가? 배 띠끔띠끔 아파날 때 어머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자고 발버둥질치는 철없는 나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을 거야.)
별의별 아픈 련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뇌리를 습격해왔다.
“아, 어머님, 아버님, 효성을 다 하지 못한 이 도리깨아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님ㅡ 아들이 왔습니다. 이젠 깨여나 이 아들을 안아주십시오.”
그러나 쓸쓸한 무덤에 영영 누우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성호는 속이 터지는 것 같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쳤다.
엉엉ㅡ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아들며느리, 손자, 손비, 증손들, 증손녀들 잘 사는 걸 보고 기뻐하고 보우해주시리라.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41명 자손들이 잘 사는 걸 보고 구천에서도 웃음 지으실 거야.)
성호의 부모님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부러울 것 없는 분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늘쌍 “내가 아들한테 대문 밖에 쫓겨나도 딸들은 아들과 못 비긴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사준 시내에서 제일 높은 층집에서 고향 산천까지 한눈에 바라보면서 산다고 항상 딸들한테 자랑하셨다.
얼마나 못난 아들인데. 그다지도 어머님께서는 아들의 짧은 바지를 항상 춰주시지 않았던가.
성호는 오늘 부모의 산소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생일을 쇠였다. 그는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엄마 아빠 기뻐 웃고 계신다.)
이때 하늘에서 번개와 우박이 내리치고 소나기가 쓸쓸한 눈물처럼 왈칵 쏟아져 내렸다.
(무슨 대수냐?)
성호는 준식과 함께 택시 안에 숨었다.
한참 후 하늘이 언제 흐렸나 싶게 개였다.
순간 성호는 부모 모시고 살던 옛추억의 파도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성호는 한참 어깨를 들먹이다가 묵념에서 깨여난 후 호주머니에서 원고지 몇장을 꺼내들고 침통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어제 밤을 패면서 쓴 참회의 글이였다.
 
며칠 전에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님께서 뜻밖에도 우리 41명 자손들을 남겨두고 홀로 세상을 총망히 떠나가셨습니다. 이젠 이 불효자식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부모님께서 한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불효자식은 오늘도 생전에 부모님께 효성을 다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홀로 외롭게 울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항상 저를 보고 너네 아버진 벌벌 기는 너를 보고 “어이구, 저게 언제 커서 신세를 보겠소?” 하셨다죠? 나중에 아버지와 형제들은 항상 저를 “효자”라고 외우군 하셨다죠? 그런데 저는 부모님들께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해 항상 죄송하기만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 한달 전만 하여도 어머님께서는 10층 엘레베트아빠트에서 몸소 내려가 슈퍼마켓에 가서 과일이며 가지며 사들고 올라오시지 않았습니까?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아빠트 동쪽 양지바른 층계에 내려가 앉아 한담하던 어머님께서 갑자기 이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돌아가시다니요? 백세 넘어 효성을 하려고 마음먹었댔는데 어쩌면 이 불효자식을 보고 대소변도 한번 받아내게 하시지 않고 돌아가셨습니까? 이게 웬 일이십니까? 어머님을 모시고 생일을 쇠겠다고 한 이 도리깨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그렇게 총망히 떠나가셨습니까?
남들은 아버지를 77세까지, 어머님을 93세까지 모셨으면 효성을 다하였다고 위안했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일만큼 안타깝고 슬픈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어쩌면 아버님께 그렇다할만한 관에도 모시지 못하고 산소에 모셨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을 모셨던 고향의 그 헌 집을 지나가면서 볼 때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마을에 파는 집이 없으면 웃마을에라도 가서 알아보고 큰 집을 사서 부모님을 모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안해는 아버님을 좋은 집에서 모시지 못한 대신 어머님을 시내에서도 제일 좋은 26층짜리 엘레베트고급아빠트에 모시고 퇴직휴양간부들보다도 더 고급생활을 시켰으면 효성을 다했다면서 너무 안타까와하지 말라고 위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구석구석 효성을 다하지 못한 후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 백세는 넘어 사시리라고 오해하고 이 불효자식은 아직도 기회가 많으리라고 여겼댔습니다. 어쩌면 네살 때 어머님을 여의시고 눈치밥을 자시면서 자라시고 시집와서 자식 아홉이나 낳아 기르시면서 아글타글 살아오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일흔이 되도록 농사를 짓고 소사양을 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불효자식은 아직도 부모들이 남새를 심던 밭과 소사양장을 지날 때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시내에 계시면 사망한 후 화장한다면서 우리를 떠나 고향으로 떠나가시는 부모를 말리지 못한 도리깨아들을 용서하옵소서. 부모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남들처럼 집 한칸도 없이 물독이 떵떵 어는 남의 석탄창고자리 세집에서 산다고 마음 아파 우리를 떠나가신줄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만 부모님들께서 아들며느리와 토론도 없이 셋째딸과 사위를 믿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신 일이 섭섭했습니다. 사위가 모는 소수레에 가마를 빼 싣고 앉아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백발의 부모님들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고 우리 불효가 마음에 걸리였을뿐입니다.
부모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며느리가 귀여운 손녀를 데리고 세집에서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한다고 고향에서 담배를 팔고 돼지를 길러 팔아 돈을 주면 넙적넙적 받아 챙겨넣기만 했습니다. 그때 어째 그렇게 철부지 도리깨아들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부모님께서는 이 아들며느리에게 주신 사랑이 너무나도 많지만 효성은 제대로 받지 못하셨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열번 생각하실 때 자식들이 부모님을 한번이라도 생각하였겠습니까? 일이 바쁘다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옵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간혹 부모님을 찾아가면 반가와 하시던 부모님과 어째 이것 저것 묻기도 하고 소곤소곤 여쭙기도 하고 살아온 얘기도 많이 들어주지 못하였을가요? 낮잠을 푸푸 자면서 뭔가 아들과 말하고 싶고 묻기 싶어하시는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효성을 다하지 못하였을가요? 어쩌면 부모님 생전에 그렇게 그리는 고향의 명산 천지꽃산으로 자주 모시고 가보지 못하였을가요? 어쩌면 눈앞에 있는 장백산에도 한번 모시고 구경시키지 못하였을가요? 효성의 빈 구석을 돌이켜보노라면  후회되는 일도 많고 많습니다.
90이 넘으신 어머님께서 돈이 아까와 자기 딸마저 가정보모로 쓰지 못하게 하고 손수 밥을 지어 잡수실 때 어째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선의적인 거짓말을 하고 가정보모를 붙들어두지 않았을가요? 지금도 가슴을 치면서  후회합니다. 어머님께서 가정보모가 하루 세끼 한근 반 밥과 장국에 채 둬가지를 하면서 하는 일 없이 한달에 2500원씩이나 가져간다고 가라고 쫓으실 때 내가 왜 말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의학서적을 보고 로인들이 자체로 뭐나 손을 많이 놀리고 머리를 많이 쓰면 치매에 걸리지 않아 좋다고 아마츄어아들은 믿었을뿐입니다.
어쩌면 어머님 생전에 저의 생일상에 높이 모시지 못했을가요? 나에게 생명을 준 어머님을 저의 생일상에 모시지 못한 불효가 후회막급입니다. 제 잘난 것처럼 생일에 여섯상이나 버젓이 차려놓고 숱한 친구들과 친척들을 청해 대접하면서도 자기를 배 아프게 낳아주신 존경하는 어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님, 정말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왜 이 불효자식을 욕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귀이라도 한대 때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어쩜 어머님께 맛있는 음식을 따로 사다가 가져다 드리고 인사말을 드리는 것으로 내 생일 인사를 끝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제정신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어두운 집에 고독하게 홀로 계셨건만 이 도리깨아들은 수십명이나 되는 생일손님들을 대접하느라고 밤중까지 술을 퍼마시고 3차, 4차 하고도 모자라 7차까지 하고 이튿날 새벽 3시에야 집에 들어서서 왝왝 열물과 피까지 토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아무런 원망 한마디 하시지 않고 그저 신체를 돌봐 술을 적당히 마시라면서 혀를 끌끌 차기만 하셨습니다. 아,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술을 좀 적게 마시라고 타이르실뿐이였습니다. 불효를 저지른 이 도리깨아들은 딱 어머님만 모시고 생일을 쇠자던 낙언을 실현하지 못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젠 다시는 친구들을 청해다 생일을 버젓이 쇠지 않겠습니다. 생일상을 보면 어머님 생각이 나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몇천원 먹여 한메터 반도 넘는 룡과 봉황 쌍기둥을 세운 육중한 기념비를 합장한 부모님의 산소에 세워드리면서 부모님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의 빈 구석을 채워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이제 불효자식이 부모님 계신 구천에 가게 되면 다시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고 영원히 부모님을 지키면서 조석으로 효성을 다해드리렵니다.
아, 정말로 불효를 저지른 빈 구석이 너무나도 많아 그 효성의 빈 구석을 다 채울 기회도 이젠 없습니다. 정말 후회됩니다, 부모님 생전에 부모님께서 불편해하실줄 진작 알았더라면 안해와 잠시 갈라 살더라도 부모님들의 전통관념대로 내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효성을 다해드렸겠는 것을. 안해는 다시 찾으면 되겠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니 이젠 더는 효성할 길이 없게 되였습니다. 이 불효자식은 그저 효성을 다하지 못한 빈 구석을 돌아보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면서 안타깝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세상에 후회약이라도 있다면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으련만.
 
성호는 깨알 같은 글이 꽉 박힌 편지 몇장을 두 손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에 올렸다.
“매형, 이젠 내려가기요. 숱한 손님들이 음식점에서 매형을 기다리오.”
“오늘 부모와 함께 생일을 쇨테야.”
준식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성호는 파란 잔디 뒤덮인 부모님의 산소에 두팔을 벌리고 엎드려 서럽게 엉엉 울었다.
외로운 산새 한마리가 성호의 슬픈 마음 동정하는듯이 천지꽃산 상공에서 쓸쓸히 지저귀며 산소 쪽으로 포로롱포로롱 날아와 맴돌았다.
이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슬프게 울던 성호를 깨웠다.
“여보세요. 생일날에 웬 산소에 갔어요?”
정희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들려왔다.
성호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타산을 고백했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모님들께 효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게 한이요. 그래서 명년 청명엔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워드려야겠소.”
“당신, 미쳤소? 우리 죽어도 화장해서 훌 날려보낼텐데. 누가 그 산소로 간다고 아까운 돈을 팔아 비석까지 세운다고 그래요? 그 돈으로 고기와 남새를 사다가 자기 건강이나 챙기세요. 진짜, 아직도 죽은 귀신까지 애를 먹인다니까.”
성호는 정희가 이때만큼 미울 때가 없었다.
이전에 집을 살 때 얼마나 어물넙적하게 말했던가.
“부모를 모시게 침실 3개 달린 집 삽시다.”
그 말에 얼리워 원래 살던 작은 집마저 팔지 않았던가. 그런데 부모를 모시고 반년도 살지 못하고 모시지 못하겠다고 나눕지 않았는가. 당초에 한 집에 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하겠으면 제대로 말이나 할게지. 그랬으면 작은 집을 팔지 않고 부모를 따로 모시지나 않았겠는가.
어머니가 며느리를 돕느라고 설거지를 해도 음식그릇을 다친다고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쓰레기를 내가면서 풀어서 일일이 뒤져보았다고 “뭘 치워두고 먹는가 일일이 들춰보는가?”고 야단치지 않았던가. 하수도 구멍에서 풍기는 냄새도 어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 함께 못 살겠다고 나눕지 않았던가. 내가 부모와 갈라서 못 살겠다고  하자 혁띠로 나를 치면서 리혼하자고 야단치지 않았던가.
(정말 고약한 아낙네야.)
성호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툭 쏘아주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비석이라도 세워서 부모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을 반성하려고 하오. 그래야 마음에 내려갈 거 갔소.”
“아니, 비석을 세운지 몇해라고 또 세워요? 죽은 부모 때문에 쓸데 없는 돈을  팔지 말고 가시부모 생전에 효성이나 잘 하세요.”
성호는 자못 정색해 말했다.
“알았소. 조상들 산소를 잘 모셔야 한나한테도 좋은 법이오. 자손들한테 뭘  물려주겠소? 효성을 물려줘야지.”
성호는 정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도 않고 뒤말을 이었다.
“머나먼 미국에 그만 있고  집에 돌아오오. 돈이 중하오? 목숨이 중하지.”
“생일을 축하해요! 미국에 오면서 22만원이나 빚을 졌어요. 빚을 다 갚기 전엔 못 돌아가요.”
성호는 간염에 걸린 정희가 무척 근심되여 도리머리를 흔들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성호는 그날 진짜 부모님 산소에서 가지고 온 제물로 준식과 함께 생일을 쇴다. 한나와 정훈의 축하전화에 안주해 제주를 붓고 추모의 술도 마셨다. 술을 마시다가도 산소에 절을 하고 절을 하고는 또 마시다나니 폭 취했다.
생일날 밤에 성호는 괴상한 꿈을 꾸었다.
그가 고향마을에 다시 갔을 때였다. 옛날 살던 고향 집에서 어머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황급히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머님께서 자지색 하얀 머리수건을 치고 게내복에 꽃이 박힌 몸베를 입고  춘애의 부축을 받으며 서 계시지 않겠는가. 어머님의 형상은 생전 자애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님, 어떻게 돼 여기 와 계십니까?”
성호는 환성을 지르면서 어머님한테로 달려갔다.
어머님께서는 원래 몸집이 실팍하고 탄탄한 축이였는데 빼빼 여윈 앙상한 모습이였다.
성호는 춘애의 부축을 받으며 맨발로 절뚝거리면서 간신히 걷는 어머님을 보자 애절하게 통탄했다.
“어머님, 어째 신도 신지 않고 왔습니까?”
성호가 어머님를 안고 우는데 어머님께서는 “빨리 너네 집으로 가서 살자.” 라고 하셨다.
“어머님, 업고 가깁소. 어떻게 걷겠습니까?”
어머님께서는 “걸을수 있다. 걱정말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절뚝거리면서도 기어이 걸어 가겠다고 하셨다.
한참 후 성호네 집이라고 도착하였다. 그 옛날 집에는 막내누나 성숙과 이미 죽은지 몇해되는 넷째누나 봉금도 와 있었다.
구들복판에는 이상하게 시뻘건 관짝이 놓여 있지 않겠는가.
어머님께서는 그게 아버지 관이라고 하면서 도끼로 마구 팍팍 찍더니 관 안에 들어가시였다.
“어머님, 어째 아버님의 관을 도끼로 찍으셨습니까?”
“여기에 뭘 두고 나왔다.”
관을 들여다보니 아버님의 유골은 계시지 않고 헌 옷가지들과 얼럭덜럭한 기름종이 몇장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관 안에서 기름종이 몇장을 주어 성호와 춘애한테 나눠주셨다.
“이걸 해 어데 쓰겠습니까?”
성호는 황급히 기름종이를 던져버렸다.
그는 춘애와 성호를 보고 “누나들도 던지오.”라고 하면서 빨리 이 곳을 떠나자고 했다.
춘애는 성호가 과단성이 있다면서 집에서 급급히 달아나왔다. 성숙도 부랴부랴 빠져나왔다.
“얘, 너네 다 달아나면 난 누굴 믿고 살아? 추워 죽겠는데.”
어머님의 말에 봉금이 달랬다.
“엄마, 땔나무 해올테니 근심하지 맙소. 나도 원래 살던 집에서 추워서 못살겠습구마. 근봉이 날 데려간다고 했소만, 내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습구마.”
“오- 그래, 그럼 우리 둘이 여기서 함께 살자.”
깨고 보니 괴상한 꿈이 아니겠는가.
성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겨울이 다가오게 되니 아버님 산소를 짜개고 모신 어머님께서 추워서 아버님 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서두신 것 같았다. 어머님을 아버지 산소를 얕게 파고  춥게 모신 것이 슬그머니 걱정됐고 죄송스러웠다.
(새 해에는 어머님과 아버님 산소에 기념비도 세우고 가토를 많이 해야지.)
이듬해 청명에 성호는 화강암비석을 트럭에 싣고 천지꽃산으로 떠났다. 그런데 화강암비석이 어찌나 큰지 트럭도 끌기 힘들어 부릉부릉 소리만 지를뿐 산중턱에 있는 산소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백호가 보다못해 산아래 고향 마을에 가서 황소 수레를 몰고 왔다. 경만이랑 정국이랑 형제와 조카들은 트럭의 벽돌을 부리워 수레에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트럭은 산 중턱에 있는 산소까지 겨우 올라갔다.
성호와 백호 등 자녀들은 부모의 산소에 키 넘는 화강암비석을 새로 세워놓았다.
고향에 남아 있는 일가 자손 20여명은 백호의 주례하에 산소에 제주를 부어올리고 큰절을 아홉번씩 올렸다.
성호는 정성을 다해 비석을 세워놓고서도 무릎을 꿇고 조상들께 효성을 다하지 못한 불효를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제일 큰조카 승호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마음이 비길데 없이 비통했다.
성호는 조상들의 산소에 와락 안겨 서럽게 엉엉 대성통곡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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