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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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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1)
2020년 06월 19일 18시 29분  조회:1263  추천:2  작성자: 김장혁







                          81. 하늘과 땅의 겨룸
      영옥은 만년에 아주 복을 받았다. 춘자를 비롯한 딸들은 모두 얼마만큼씩 부모의  생활비를 대면서 제마끔 효성을 다했다. 성숙은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으로 농촌에서 할 일 없어 노는 셋째언니 은숙을 어머니의 보모로 “고용”했다. 그때부터 은숙은 어머니 집에 와서 주숙하면서 옷도 씻고 밥도 지어드리며 보살피게 되였다.
은자는 어머니가 쓰라고 안마기, 휄체어, 전자레인찌에 의자식요강까지 한국 량질제품으로 사서 종종 보냈다.
90고개를 넘은 영옥은 막내아들과 셋째딸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하여 기분이 좋아 항상 얼굴의 주름살이 다 펴지게 함박꽃웃음을 짓군 하였다. 정희 말처럼 “자녀들의 효성에 받들려 퇴직간부 할머니들보다도 더 호강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밤중에 정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편안히 계시죠?”
“그래, 근심하지 마오. 지금 무슨 일을 하오?”
“웃지 마세요. 때밀이를 해요.”
“뭐? 정신 있소? 중학교 교원이 미국에 가서 때밀이를 한단 말이오?”
“별 수 없죠. 미국에서 일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어요. 제일 찾기 쉬운게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를 하는 건데요. 우리 고향의 유명한 개그맨들과 개그우먼들도 미국에 와서 저와 함께 때밀이를 하는데요. 좀 어지럽긴 하지만요. 딸라를 톡톡히  벌어요. 한달에 최저로 인민페로 2만원씩 벌어요. 팁까지 하면 3만원은 문제 없어요.”
“뭐? 팁?”
“때를 잘 밀어주면 팁을 주죠.”
“당신 혹시 이성 때밀이나 마사지 하지 않소?”
“아니. 여기 미국에선 손님들이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은 후에도 복무원한테 꼭꼭 팁 주고 가는데요.”
“그럼 때밀이를 할게 있소? 팁 받지 못하더라도 음식점에 가서 일하오.”
“음식점 일자리 찾기 쉽잖아요.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힘들더라도 빨리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고 파요.”
“몸 조심하면서 일하오. 한나는 잘 보내오?”
“예,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어요. 전화 바꿀게요.”
“아빠, 안녕? 저 근심 말아요.”
“응, 그래. 퍽 보고 싶구나.”
성호는 저도 몰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이제 대학 나오면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 잘 모실게요.”
“에이구, 요 귀여운 것아. 외국에서 친구도 잘 친하고 몸 조심해라. 너 혹시 남자친구 있니?”
“없어요. 호호호.”
“얘, 친구고 뭐고 공부나 잘해라.”
“엄마와 함께 있으니깐요. 근심하지 말아요. 빠이-빠이-”
“빠이, 빠이.”
전화를 놓고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며칠 후 밤중에 또 정희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여보, 큰 일 났어요.”
“무슨 일이요?”
“한나 글쎄 흑인 친하고 있어요.”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하필이면 왜 흑인이야? 한나 바꿔!”
“예, 한나예요. 아빠 흑인이라고 인종차별하지 말아요. 흑인 얼마나 좋다고 그래요? 마음씨 착하고 돈도 많고 고급아빠트에 고급자가용도 있어요. 절 얼마나 예뻐한다고?”
 “입 다물지 못해? 이전에 친하던 정훈은 어쩌고 흑인이야?”
“걔와 헤여질가 해요.”
“뭐라고? 좋은 조선족신랑감도 숱한데. 왜 하필 흑인이야? 당장 그만둬!”
“톰은 박산데요. 저의 지도교수예요. 정말 좋은…”
“개소릴 작작 쳐! 흑인놈한테 속지 말라. 이담 애를 낳아도 씨꺼먼 걸 낳으면 어쩌니? 생각만 해도 메스껍다! 당장 관계를 단절해라!”
 “아버진 독재자. 딸의 말 듣지도 않고.”
“닥쳐! 톰인지 톱인지 관계를 끊지 않아봐라! 부모와 딸 인연 끊을줄 알아라!”
“아버지!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성호는 듣기도 싫어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진짜 절망에 빠졌다. 금방 어머니 모시는 일이 풀릴가 하니 딸이 일을 치지 않는가.
무남독녀 외동딸을 쥐면 부서질가봐 근심하고 놓으면 날아날가봐 근심하면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웠는데, 그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망태기를 캐지 않는가.
(아, 진짜 종수 말처럼 가정이란 행복한 울타리면서도 옛날부터 황제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문제둥지야.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소문나게 잘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정서가 저락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희는 감옥에서 나오자 한나를 데리고 한국에 나갔다.
한나가 한국으로 날아건너 갈 때였다. 한나의 남자친구 정훈은 남방에 멀리 있어서 오지 못하고 대신 부모를 공항에까지 보내 바래게 했다.
좀 어색하긴 해도 고마웠다.
성호는 한나를 보고 정훈의 부모와 함께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으라고 했다. 한나는 주춤주춤 하다가 아버지 말대로 사진 한장 찍었다.
(허, 그쪽 부모가 공항까지 나와 바래면서까지 성의를 보내는데 무슨 궁리해?)
온밤을 패면서 고민하던 성호는 한나가 학교로 갔을 때쯤 해서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 당신 왜 딸을 잘 관리하지 못했소? 그게 뭐요? 흑인과 친하게 하다니?”
“길게 말할 새 없는데요. 지금 한나는 그저 지도교사라고 호감이 있어 묻어다니는 정도지 죽자살자고 경계선을 넘은 건 아니예요. 말로는 아빠 어찌는가 떠보느라고 그랬다고 해요. 어쨌든 짐승 같은 깜둥이한테서 뜯어놓겠어요. 명문대만 졸업하면 중국에 보내든지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성호가 뭐라고 욕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뚝 끊켰다.
그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에이, 한나를 당장 돌아오라고 해야지. 미국에서 애를 베리겠다.”
그때 웃방에 있던 어머니와 은숙이 내려와 초조한 기색으로 성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성호는 현관에 나가 신을 꿰자 바깥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요즘 신문사에 중대한 인사변동이 생겼다.
김범수 과장이 신문사 광고를 주관하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아래 부서의 인사변동은 밤을 자고나면 생길 수도 있었다.
성호는 신문사에서 자기를 또 장기쪽처럼 어디로 보낼가봐 궁금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성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부사장 김범수였다.
“사무실에 올라오오.”
“예.”
성호는 전화기를 놓으면서 불안해났다.
그가 사장실에 들어서자 김범수 부사장은 자리를 권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신문사는 작은 신문사이기에 광고수입을 보태야 운영할 수 있소. 때문에 광고사업은 우리 신문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오. 성호, 광고과 과장을 맡겠소?”
“예? 믿어줘서 감사합니다.”
김범수 부사장은 차물을 권하면서 솔직히 말했다.
“승호가 젤 먼저 어떨가 해서 찾아왔더군.”
성호는 대뜸 뜻밖의 말을 했다.
“승호를 시키십시오. 승호는 정치도 잘해 사람을 잘 다스리는데다 광고도 잘합니다. 내보다 몇배 낫습니다.”
“성호, 좀 책임지는 말을 하오.”
김범수 부사장은 아주 엄숙하게 성호를 바라보았다.
“승호는 물론 능력이 있소. 그러나 허위적이고 탐욕스럽고 야심이 있소.”
김범수는 금방 승호가 성호를 헐뜯던 말을 할가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성호는 마음씨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오. 하나면 하나. 거짓을 피울 사람이 아니지. 난 그걸 본게요. 광고사업은 경제사업이지만 믿음과 진실이 제일 중요하오. 다른 말을 하지 말고 광고과장을 맡소.”
성호가 또 입을 열려고 하자 김범수 부사장은 우쭐 일어나더니 성호의 손을 꽉 잡았다.
“성호를 믿소. 광고사업을 협조해주오.”
성호는 사장실에서 나와 광고과로 들어가려다가 주춤 멈춰섰다.
그는 현관에서 서성거리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는 택시를 불러타고 곧추 승호를 찾아 달려갔다.
(자식, 마흔고개를 넘었는데도 온전한 직업도 없이 살아?)
그는 너무나도 허탈감에 빠졌다.
사실 성호는 전번에 순희네 안마원에서 아가씨를 시켜 뽑은 성호의 머리카락과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 가지고 의과대학에 찾아가서 DNA검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비록 은영륜간사건을 수사할 때 채취한 승호의 DNA 서류는 공안국에 있었지만  공안국에 DNA 검사를마저 의뢰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DNA가 상당한 비률로 일치하지 않겠는가.
성호는 자기 눈을 믿기 어려워 검사결과서를 보고 또 보았다.
(자식, 진짜 친조카란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성호는 원래 남의 발등을 밟고 사리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신문사에 광고과장자리가 나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호 직업을 해결해주려고 마음먹었다.
성호가 낮다란 단층세집에 찾아갔을 때 승호는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승호는 흘끔 쳐다보더니 우쭐 일어났다.
“어떻게 돼 이렇게 루추한 집에 다 찾아왔냐?”
(신문사에 찾아갔다고 온 걸가?)
가난한 집에서는 손님이 싫다고 영희는 쌀독을 바가지로 빡빡 긁어댔다.
“이런 세집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군요.”
성호는 호주머니에서 200원을 꺼내 영희한테 주었다.
“어쩌다 왔는데 빈 손으로 왔소.”
그제야 영희는 너무 한것 같아 혀를 홀랑 내밀었다.
“나와 승호는 대학교 때부터 젤 친한 친구요.”
성호는 구들에 올라가 승호의 아들 광훈을 보고 “얘, 정말 멋지게 생겼구나.” 하고 볼을 매만지더니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두장을 꺼내 광훈한테 주었다.
초중생인 광훈은 머리를 숙이며 받지 않았다.
성호가 재삼 “얘, 받아라. 학교에서 배고플 때 맛있는 걸 사먹어라.”라고 하며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승호는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왔을가?)
성호는 승호 부처간을 둘러보면서 “딸애 이름은 뭐라던가?” 하고 물었다.
“복화예요.”
영희가 나직이 대답했다.
“오, 복화. 지금 어데 갔소?”
“일본 고베대학에 갔어요.”
성호는 구들에 올라오는 승호를 건너다보면서 진심에찬 말을 했다.
“내 너무 등한했구나. 복화가 일본에 건너간 것도 모르고. 후에 보자. 복화가 우리 한나와 나이 비슷하겠구나.”
“우리 복화가 한 반년 지하인 거 같애.”
승호는 성호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리 나오는 것을 눈치챘다.
이윽고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승호를 돌아보았다.
“우리 잠간 나가 말할가?”
“그러자.”
그들은 문 밖에 나서자 눈보라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벗어나갔다.
모래알 같은 눈보라가 어찌나 휘몰아치는지 하늘과 땅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자식, 과장자리 때문에 결투라도 벌이자는 건가? 삼촌이라 해도 라이벌은 라이벌이야. 권력과 금전 앞에선 양보 없어. 꼭  널 재끼고 말 거야. )
승호는 허리를 굽히고 신끈부터 꽁꽁 동여맸다.
도적놈이 발등이 저리다고 순간 눈보라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학교 뒤 소나무숲 속에서 결투하던 일이 번개처럼 번쩍 떠올랐다.
뜻밖에 성호는 그를 데리고 큰길 옆에 있는 한 다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승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조용한 다방에서 차 한잔씩 달랑 놓고 마주 앉은 그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둘다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성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승호야, 너도 알잖니. 우리 신문사 광고과 과장자리가 비였어. 이 좋은 기회에 네가 광고과장이 돼야지. 김범수 부사장한테 금방 널 추천했어. 너도 계속 뛰여다니면서 공작해라.”
승호는 성호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네나 할 거지.”
“금방 김사장도 날 하라고 말하더구나. 난 네가 적합하다고 했어.”
승호는 버럭 화를 냈다.
“야, 그만둬라! 세살짜리 앤가 하니? 네가 진짜 나한테 과장자리를 양보해?!”
“그래, 난 진심으로 양보하겠다.”
“쳇, 해가 서산에서 뜨잖겠니?”
성호가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여서 승호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넌 내 밑에서 일할만 하니? 내 싫어서 항상 슬슬 피하더니.”
“그래, 네 령도를 받을게. 이젠 널 싫어할 리유가 없어. 다 내 불찰이야. 네가 마흔고개를 넘도록 낮다란 세집에서 사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해.”
“지금 동정하니? 불쌍하지?”
“그래. 진정으로 돕고 싶구나.”
“호의는 받겠다. 그러나 자존심 꺾기우는 것이 싫구나. 동정과 양보를 받아서 과장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련하냐?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야, 이 자식아, 지금 자존심을 세울 때냐?”
성호는 승호의 두 손을 잡고 진심을 터놓았다.
“얘, 여직껏 너한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구나. 절대 네가 과장으로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어. 광고회사에서 사직하고 나가겠어.”
“승호야, 넌 내 조카야.”
성호는 몇백번이나 승호를 붙안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승호한테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또 억지로 승호에게서 “삼촌”이란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용케도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꿀꺽 삼키군 했다.
승호도 저으기 감격해마지 않았다.
“얘, 그게 무슨 말이냐? 정희와 한나가 미국에서 피나는 돈을 벌고 있는데.  직업을 버리고 어쩔 셈이냐? 고까짓 택시 두대를 가지고 어떻게 로모를 모시고 살려고 그래? 너도 온전한 집도 없잖니?”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좀 힘들 수 있겠지. 난 오래 전부터 홀로 사영광고회사를 차릴 예산이였어. 지금 개혁개방세월이 얼마나 좋니? 우린 마음껏 아이디어와 능력을 펼 수 있잖고 뭐냐?  이번 기회에 과장자리나 차지해라.”
그제야 승호는 성호의 진심을 믿게 되였다.
성호는 자리를 뜨면서 한가지 귀띔했다.
" 해연을 너무 믿지 말라. 가정이 깨진 건 불쌍하지만 남을 잘 리용해먹고 물어먹는 녀자야.”
승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성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기실 승호도 안수련 총경리와 어머니 말을 듣고 진작 성호가 배다른 친삼촌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오늘도 성호의 언행에서 친혈육의 정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울고불고 야단쳤다.
“도대체 아버진 누굽니까? 성호 큰형님입니까? 아닙니까?”
“얘,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 네 아버진 공안국에 있잖니?”
승호는 어머니 두 손을 붙잡고 똑바로 마주보았다.
“엄마, 이젠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친아버진 어데 있습니까?”
벽화는 더는 속일 수 없어 사실대로 쭉 말해주었다.
“어머니, 날 데리고 성호 아버지 병문안을 두번이나 갈 때부터 이상한 눈치를 챘습니다. 아버지 어데 있습니까. 오늘 가봅시다.”
벽화는 할 수 없이 승호와 함께 택시를 타고 태평거촌 서쪽에 있는 천지꽃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산중턱에는 눈덮인 낮다란 산소 몇개가 누워 있고 산소 주위에는 눈보라 속에 앙상한 진달래나무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모진 추위에도, 눈풍설에도 진달래는 눈무덤을 찌르고 몸부림치면서 꼿꼿이 서 있었다.
벽화는 눈보라에 뒤덮인 산소를 가리켰다.
“아래쪽 산소가 네 아버지 산소야.”
이전에 성호한테 놀라왔다가 마구 밟고 올라섰던 그 산소가 아닌가!
“아, 아버지!”
승호는 미친듯이 고함치면서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눈에 마구 넘어지며 아버지 산소로 달려갔다.
그는 눈덮인 산소를 마구 끌어안고 엎드려 대성통곡쳤다.
“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쩜 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도 총망히 세상을 떠났습니까? 아버지, 흐흐흑, 흑흑, 이 불효자식을 죽여주옵소. 쉰고개를 넘어서야 이제야 아버지 산소를 찾아왔습니다. 그간 얼마나 외롭게 누워 있었습니까? 흑흑흑, 아버지!”
벽화와 승호는 눈풍설이 이는 산소에 제물을 차려놓고 큰절을 아홉번 올렸다.
벽화는 산소를 끌어안고 우는 승호의 잔등을 다독였다.
“얘야, 웃쪽 산소는 친할아버지 산소야.”
승호는 천천히 일어나 흐느끼면서 할아버지 산소에 제물을 차리고 큰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할아버지, 이제야 인사를 드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어쩜 그렇게 무정합니까? 생전에 큰손자를 알아봤으면 ‘손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성호가 친삼촌인지도 모르고 이제까지 질투하고 싸웠습니다. 절 용서하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겠습니다. 시름 푹 놓고 우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승호는 추위도 잊고 싸리나무가지를 꺾어들고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 산소의 눈을 싹 쓸어냈다. 그는 삭정이를 주어다가 해가 져가는 산소 옆에 우등불까지 피워놓고 오래도록 지켰다…
이튿날 승호는 성호와 함께 다방에서 취토록 술을 마시고 헤여졌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성호한테 죄송한 감이 들어 머리를 숙였다.
그는 광고과장을 하려고 며칠 전에 김범수 부사장을 찾아가 성호를 형편없이 헐뜯었던 것이다.
“성호는 능력이 없고 자사자리한 리기주의자입니다. 집단주의 정신이 없습니다. 제 집 택시를 경영하면서 단위 광고수입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무법천지입니다. 국가 광고법을 어기고 술광고를 했습니다 …”
그는 며칠 전에 하늘과 땅의 겨룸이나 하려고 성호가 집으로 찾아왔는가 했다. 그런데 성호는 과장자리를 양보하고 파도가 세찬 시장경제의 바다에 뛰여들려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친조카라는 걸 눈치챘구나. 이번에도 내가 졌어. 성호는 차원이 달라. 진짜 친삼촌다웠어. 옛말이 틀리잖아. 피는 물보다 짙은 법이지.)
승호는 주먹으로 가슴을 꽝꽝 쳤다.
(이때까지 친삼촌한테 무슨 짓을 했어? 나도 사람이냐? 아, 이 죽일 놈!)
그는 량심의 가책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승호는 극도로 모순된 심리상태에 빠졌다. 친삼촌을 상대로 권력과 금전싸움을 하기는 그런데 권력과 금전을 가질 기회는 그리 많지 않잖은가. 바라오를  챤스를 놓치면 또 언제 그런 챤스 올지 모를 판이였다. 그러나 삼촌은 삼촌이 아닌가.
그는 나직이 불러보았다.
“성호, 삼촌!”
그는 주먹으로 큰 길 옆의 가로수를 꽝꽝 쳤다.
눈가루가 우스스 쏟아져 승호를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며칠 후 성호는 진짜 신문사에 사직서를 냈다.
김범수 부사장은 실망해 성호를 불러놓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어쩜 그렇게 낮은 돌을 밟소? 과외로 택시나 하면 됐지. 왜 파도 사나운 바다에 뛰여들려 하오? 시장경제의 망망한 바다는 후회의 눈물을 보살피지 않소. 다시 잘 고려해보오.”
그러나 성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반복적으로 고민해보았습니다. 그간 김사장의 지도와 관심 감사합니다. 승호를 잘 도와주십시오.”
김범수 부사장은 몇번이고 성호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전번에 날 찾아와 저를 뭐라고 헐뜯었는지 아오? 인정을 버린 승호를 생각해 뭘 하오? 재삼 충고하오. 승호한테 양보하지 마오.”
그러나 동창간에 리간을 놀아 싸움이라도 시킬가봐 그만두었다.
“성호,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피보다 진한 건 인정이란 걸 아오? 재삼 충고하오. 기회를 놓치지 마오.”
그러나 성호의 마음은 이미 철석처럼 굳어져 용빼는 수가 없었다.
범수는 과장후보가 없어 며칠이고 고민하다가 신문사 사회부 주임으로 일하는 종수를 떠올렸다.
그런데 종수는 광고과 과장을 하면 어떤가는 김범수 부사장의 말을 듣고 단마디로 거절했다.
“저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글을 쓰겠습니다. 돈을 버는 일엔 흥취없습니다.”
“시장경제시대에 광고사업은 우리 신문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업이오. 남들은 하지 못해 달아다니는데 왜 이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오? 우리 신문사에서 광고부 중임을 맡을 인선은 제 밖에 없소.”
“왜 성호를 시키지 않습니까?”
“신문사에서 나가겠다오.”
종수는 깜짝 놀랐다.
“예? 무슨 헛된 궁릴!”
김범수 부사장은 끈질기게 권고했다.
“과외로 신문기사를 쓰면 안되오? 신문사 광고사업의 수요에 복종하오.”
종수는 도리머리를 홰해 저었다.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는 광고과 과장으로 종수를 임명하고 부과장에 승호를 임명했다.
해연은 승호 밑에서 일하기 싫어 자리를 뜨려고 방황했다.
승호도 해연을 싫어했다. 굉팔을 수사할 때 해연은 성호를 물어먹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번 배신한 해연은 열번도 배신할 것이라고 여겼다.
해연은 승호를 찾아와 아양을 떨었다.
“아이유, 리과장, 과장으로 승진한 걸 축하해요. 우린 필경 오래동안 한 단위에서 일한 전우가 아니고 뭔가요? 제가 출납을 하면 손이 척척 맞을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
그러나 승호는 쓴 외 보듯 했다.
해연은 자기 무안에 빠져 머리를 숙이고 나가버렸다.
승호는 매부 범송을 데려다 부과장으로 추천하고 감옥에서 나온 후 바깥에서 마구 딩굴던 춘란을 출납으로 추천했다. 그외에 설계실에 색마 영호까지 추천했다.
(영호는 인물화를 그리는 척하면서 연화를 처참히 짓밟기까지 한 색마가 아닌가.)
그러나 승호는 생활문제는 외면한 채 실무수준에만 눈길을 돌렸다.
김범수 부사장은 어리무던한 분이여서 승호가 추천한 인사사항을 일일이 지도부에 제기해 통과시켰다.
광고과에 승호의 사람들로 꽉 찼기에 종수는 기실 허수아비로 되였고 승호가 실세로 돼버렸다.
종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광고업무는 승호한테 맡기고 시간을 짜내 조선족영웅들을 취재하러 돌아다녔다.
성호는 신문사 광고과 과장 사무실에 가서 승호를 조용히 만났다.
“영호는 숱한 처녀들의 정조를 짓밟은 전과가 있어. 영호만은 초빙하지 말라.”
그러나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얘, 지금 무슨 땐데 아직도 정조, 정조야? 이젠 그만 말해라. 귀에 못이 박히겠다.”
성호는 진심으로 충고했다.
“처녀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정조를 마구 짓밟은 량심 없는 자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니? 재간만 보지 말고 사람의 속도 잘 보고 초빙해라.”
승호는 자기도 찔리는데 있어 화를 벌컥 냈다.
“됐다, 됐어. 내 일에 작작 참견하고 네 광고회사나 잘 차려라.”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성호를 보고 승호는 삼촌한테 너무한 것 같아 어조를 부드럽게 고쳤다.
“광고회사 잘 되고 있니?”
성호는 더 말했자 잔소리 같아 자리를 뜨고 말았다.
며칠 후 백화상점 동쪽 큰 길 옆에 “백두산인터넷광고회사”라는 간판이 척 내걸렸다.
광고회사 경리는 성호였다. 사영광고회사였지만 부동산중개까지 겸해하다나니 경영규모가 꽤나 커졌다. 연화를 비롯한 끌끌한 청년직원 10여명이 들어왔다.
며칠 후 범송의 소개로 예화도 모델로 들어오려고 찾아왔다.
“리경리, 최범송선생이 보내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화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히며 곱도록 인사했다.
기실 경영규모도 그리 크지 않기에 예화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별로 범송이 상업간첩이라도 보내지 않았는가해서 주저됐다.
“어째 범송이네 국영광고회사에 가서 일하지 못하오? 저네 선생도 있고 얼마나 좋소?”
“대학문도 나오지 못한 제가 어찌 국영회사에 들어가겠어요?”
성호 얼굴이 대뜸 어두워졌다.
그제야 실수한 것을 눈치챈 예화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최선생님과 리과장은 리경리네 광고회사에서 배울게 많다더군요. 여기서 리경리님을 모시고 열심히 배우고 싶어요.”
“좋소. 우리 손잡고 잘해보기오.”
성호는 동창생 범송의 낯을 봐서 일단 받아주었다. 후에 보니 예화는 아침 일찍이 출근해서 팔을 걷고 땀을 뚝뚝 떨구면서 사무실 청소부터 척 해놓고서는 컴퓨터에 마주 앉아 아주 부지런히 일했다. 시내 아빠트구역을 참빗질하면서 팔집딱지를 붙인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부동산매매광고계약을 맺었다.
며칠 지나서 해연까지도 이 광고회사에 들어오려고 찾아왔다.
“리경리, 제가 출납원을 하면 안되겠어요?”
성호는 퉁명스레 “우리 사영기업에 어찌 국영기업 직원을 다 쓰겠소? 황차 저는 리승호 과장네 직원이 아니고 뭐요?”라고 했다.
그녀는 김범수와 승호를 헐뜯으면 받아주겠는가 했던 모양이였다.
“승호 과장 말은 하지도 마오. 어디 그 량심없는 놈 밑에서 벌벌 기겠소? 어쩜 신문사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세상에 둘도 없는 량심없고 허위적인 색마를 다 과장을 다 시킨다오? 구을러온 돌이 배긴 돌을 뺀다더니 부과장을 하자마자 김범수라는 나그네와 쑥덕거려 내 출납원자리를 빼앗아내지 않겠소…”
성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하오.”
뒤이어 사무상의 서류를 훌훌 거뒀다. 무언의 축객령이다.
해연은 성호의 랭랭한 태도에 무안해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녀는 허경옥 총경리의 간판광고회사에 갈가고도 궁리하다가 그만두었다.
승호와 성호 그리고 허경옥의 광고회사가 이제부터 곧 하늘과 땅의 겨룸을 하게 됐다.
성호는 선의적인 경쟁을 벌리면서도 종수와 승호가 광고과를 이끌어 뛰여난 성과를 거둘 것을 바랐다.
그는 승호를 선녀음식점에 청했다.
“혹시 몰카로 우릴 찍지 않을가?”
승호는 다른 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성호는 기어이 선녀음식점으로 끌고 들어갔다.
“자식, 무슨 죄나 졌니?”
승호는 별 수 없이 끌려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참 오래간만에 왔구만요.”
성호는 반갑게 맞는 선화한테 인사했다.
“전번에 굉팔의 일 고맙소.”
선화는 힐끔 승호를 째려보더니 성호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다신 그 일을 외우지 마오. 손님들이 알면 여길 오겠소?”
“알았소. 쟤는 괜찮소.”
“그래도 그렇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승호를 데리고 제일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또 과장이느라고 다른 처녀들을 해쳐봐라. 용서하지 않을테야.”
성호가 조용한 자리에 앉자마자 엄포부터 놓았다.
승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쳇,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고 해라. 넌 한번도 련애를 하지 않았느냐?)
이전 같았으면 승호는 이러루하게 반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동갑삼촌은 련애를 해도 결혼을 념두에 두고 손 한번 쥐여보지 못한 “멍청이”라는 것을 아는 터라 그만두었다.
성호는 승호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다.”
“뭔데?”
“네 그걸 누가 잘라버렸어?”
승호는 창피해 시끄러워했다.
“전번에 송파네 깡패무리를 심문해도 걔들은 죽어도 자기네 한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
승호는 그 일을 돌이키기도 싫었다. 그러나 친삼촌 앞인지라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너만 알고 있어라. 은영이 한 짓이야.”
“엉?!”
성호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는 허리를 쭉 펴고 승호를 똑바로 쏘아보다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은영이 널 죽자 살자 사랑했는데 그럴 수 있냐?”
승호는 머리를 숙이면서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했다.
“깡패들한테 당하는 날 밤이였지..."

      그날 밤에 승호는 금방 홍희도 자기 때문에 자살했지 두루 해 은영과 성생활을 할 기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밤엔 은영이 주동적으로 그를 불러 대학교 뒤산 소나무 숲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윽고 그들은 항상 은밀히 청춘의 육체를 불태우던 소나무 숲 속의 웅덩이 앞에 이르렀다. 어둠 속에선 공포의 눈길이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착잡한 가운데 저도 몰래 둘다 웅덩이에 예전처럼 기계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승호는 은영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뭘 해? 제꺽 일을 끝내고 가자."
  은영은 이전과는 달리 자기 손으로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까지 쭉 벗어내쳤다.
"오늘 왜 이래? 우두커니 앉아 꾸물거리긴? 어서."
은영은 승호 입에 키스를 안기더니 손을 쥐여 자기 가슴에 가져갔다.
그제야 승호는 본능적으로 성욕이 부글부글 괴여올라 은영의 몸을 와락 덮쳤다. 은영은 이를 옥물고 눈을 딱 감고 자기 가슴 우로 구렝이처럼 기여다니며 오르내리는 승호의 손을 참아냈다. 그녀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신음소리를 토해내며옹송그렸다. 승호는 그녀의 신음소리가 명령이기라도 한듯이 갈범처럼 으르렁거리며 열김을 토해냈다....
     한참 후 승호는 신음소리를 내며 은영의 몸 위에서 맥없이 굴러내려 너부러지더니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내 닦아줄게."
"응, 고마워."
승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향수에 푹 젖어 있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위생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앗!"
승호는 아츠러운 비명소리를 냈다. 그것이 때끔 아파나 참을 수 없었다.
"네 무슨 짓을 했니? 아갸- 아갸!"
어둠 속에서 은영이 부르짖었다.
"네놈한테 정조를 잃은 홍희와 경옥을 대신해 복수했다! 네놈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 해!"
승호는 아파 은영을 어쩌지도 못하고 그걸 붙안고 웅덩이에서 맴돌아쳤다.
   "년놈들 잘 놀아대는구나!"
   그때 어둠 속에서 강도들이 우르르 야수처럼 덥쳐들었다. 코수염쟁이가 웅덩이에서 뛰쳐나온 승호를 차넘겼다. 승호는 발길로 코수염쟁이를 차넘기며 벌떡 일어섰다. 승호는 맨주먹으로 강도들과 싸우며 은영한테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달아나라!"
은영은 웅덩이에서 기여나와 날래게 소나무 숲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하이칼라한테 걷어채워 넘어갔다. 하이칼라는 은영의 머리를 주먹으로 떡메질하듯 떵떵 팼다. 은영은 정신잃고 푹 꼬꾸라졌다. 강도는 은영을  줄줄 끌고 와 웅덩이에 처넣었다. 그때 승호는 코수염쟁이와 다른 강도놈한테 제압돼 소나무에  결박돼 있었다. 강도 놈들은 웅덩이에 뛰여들어 결박된 승호 코앞에서 정신잃은 은영을 짐승처럼 륜간하기 시작하였다...


"은영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해. 헤이, 은영이 닦아주겠다고 해놓고 면도칼날로 그걸 잘라버릴줄을 누가 알았겠니? 무덤까지 가지고 갈 일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걔는 나한테 복수했어. 홍희가 자살하고 자기까지 배신당한 걸 복수한 거야.”
“어째 공안국에 신고하지 않았어? 그땐 네 아버지가 수사과 과장인데.”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은영을 어떻게 고발하니? 걔는 법적으로 처분받게 되고 나도 병신이 됐다고 소문이 자자하겠는데. 그럼 내나 은영이나 어떻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사니?”
그는 침울한 기색으로 뒤말을 이었다.
“나도 은영과 경옥이 로처녀로 늙는 걸 보면 죄책감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후부터 난 진짜 영희 내놓고 다른 녀자를 좋아한 적이 없다. 옛날 백화상점 구입과 과장 할 때야. 한번은 조과장을 따라 술 마시러 갔다가 선희가 내 무릎에 올라앉지 않겠니? 그래도 난 선희를 다치지 않았어. 나도 인간이야. 칠정륙욕이 있다. 입 안에 들어온 야들야들한 비게덩이를 먹지 않는다는게 쉬운 일이냐? 난 사람이 되려고 20여년 동안 아득바득 애써왔다. 제발 이젠 옛날 승호로 보지 말아달라. 나도 새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인간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승호는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진정을 토로했다.
성호는 승호를 꽉 껴안더니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승호야, 고맙다. 이제야 사람이 돼가는구나.”
그들은 오래도록 서로 꽉 포옹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어느 일요일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리경리, 안녕하세요?”
“아니, 귀에 익은 목소린데. 연화요?”
“연화? 호호호. 맞춰봐요. 누군가?”
“아니, 은영이, 최혜영 과장 아니오?”
성호는 섬찍해났다. 승호의 그것마저 베버린 악착스런 미녀사 아닌가.
“예- 시간 좀 낼 수 있어요?”
성호는 심드렁해졌다.
“되오. 무슨 일이 있소?”
“만나 얘기하지요.”
성호는 거절할 수 없어 어쩌는가 보자고 막무가내로 대답했다.
“최과장이 부르면야 가야지.”
이윽고 성호는 모교 대문 어귀에서 은영을 만났다.
은영은 제복 바람이 아니라 시체녀성동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스케트 두개  들고 있었다.
(아니, 저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은영이란 말인가?)
성호는 자기 눈을 믿기 어려웠다. 은영은 학창시절과는 달리 수척하고 눈귀에 주름살이 가기  시작하였고 눈에는 수심의 어두운 그림자가 얼른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은영이 먼저 가냘프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정희 언니랑 미국에 갔다더니 잘 보내세요?”
“잘 보내오. 돈 버느라고 좀 고생하는 모양입데.”
성호는 은영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스케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니, 이건 어째 가지고 왔소?”
“20여년만에 리선생과 스케트를 타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발에 맞겠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신나게 타보기요.”
성호는 스케트를 받아들고 대학교 빙장으로 올라갔다.
매화꽃이 핀 소나무들이 빙 둘러선 빙장에서는 대학생들이 날듯이 활개치면서 스케트를 타며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이 빙장은 무심하게 스쳐지나갈 빙장이 아니였다. 이 빙장에서 성호는 우연히 은영을 만나 짝사랑을 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 빙장은 얼마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빙장인가. 그 얼마나 성호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던 빙장인가.  
이 빙장은 그 얼마나 성호와 은영의 대학시절을 황홀하게 장식했던 활무대였던가.
성호는 옛날의 추억에 푹 잠기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울렁이는 가슴을 가까스로 지지누르며 은영을 따라 스케트를 신었다. 놀랍게도 발에 딱 맞았다.
(어쩜 딱 맞을 스케트를 사왔을가?)
그들은 말없이 묵묵히 스케트를 타고 빙장에 스적스적 들어섰다. 20여년이 지나 쉰고개를 당장 오르게 됐지만 그들은 옛날 학창시절처럼 쌍쌍이 은제비마냥 빙장을 나래쳤다.
은영은 옛날처럼 빨간 스케트복을 입지 않고 어두운 까지색스케트복을 입었다. 하지만 진짜 20여년 전 때보다 못잖게 독수리처럼 훨훨 나래쳤다. 아직도 당년의 청춘시절처럼 탄력있는 몸매가 생기발랄하고 날렵했다.
성호는 은영을 따라 쌍쌍이 빙장을 나래치면서 옛날 이 빙장에서 처음 그녀를 만나 스케트를 타던 옛추억에 빠졌다. 또 자연히 그녀를 짝사랑하던 순간, 순간을 떠올리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얼마나 예뻤던 녀자인가.)
한참 후 은영은 성호 앞에 날아와 멈춰섰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할딱거리면서 “그만 타지요.” 하고 스케트를 벗으러 스적스적 테 밖으로 미끌어져갔다.
“점심을 사줄게.”
성호의 말에 은영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요. 오늘 스케트를 타고나니 기분 좋아요. 옛날 스케트 타던 일도 떠올라 즐거웠어요. 원래 오빠 보고 밥 사달라고 할 생각이였는데요…”
(오빠?)
성호가 놀랍고도 기뻐서 싱글벙글했다.
은영은 스케트를 벗어 둘러메고 생글방글 웃어보였다.
“리경리를 계속 오빠라고 불러도 될가요?”
성호는 마음이 아팠다.
(오빠 한마디로 내가 그렇게 열령히 짝사랑한 것에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림도 없어.)
“되구말구. 나도 최과장을 은영이라고 불러도 되오?”
은영은 대뜸 낯색이 변했다.
“안돼요. 옛날 은영은 이미 죽은지 오래요. 그저 혜영이라고 불러요.”
은영은 애써 최과장으로 되려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성호는 진정을 내비쳤다.
“어쩐지 은영이라고 부르면 더 허물이 없고 친절할 것 같소.”
은영은 눈이 하얗게 덮인 먼 동산을 배경으로 성호를 쳐다보면서 정색하였다.
“옛날 은영은 참된 사랑인지 허위적인 릉욕인지 분간하지도 못하고 헤덤볐죠.   그런 철부지 은영이 지금 혜영보다 나은가요?”
그녀는 성호한테 손을 내밀었다.
“세월이 흘러가도 오빤 좋은 사람이예요. 우리 오누이로 지내면 안되겠어요?”
성호는 감전이나 한듯이 깜짝 놀랐다.
“남녀간에는 사랑을 내놓고 순수한 오누이 우정은 없는가요?”
성호는 어정쩡해 있다가 그제야 혜영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래, 있구 말구. 우린 영원한 오누이요, 친구이지. 허허허.”
“오빠, 우리 모교에 다시 오지 말자요. 다음엔 오빠네 고향 천지꽃산에 가서 스키 타면 어때요?”
성호는 은영의 놀라운 제안에 눈마저 치켜떴다.
“거긴 스키장도 없는데.”
은영은 개의치 않는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어데나 스키장이 원래부터 있었는가요? 스키를 타러 다니노라면 새 스키장이 만들어질 거 아닌가요?”
그 의미심장한 말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은영과 갈라진 후 성호는 눈 덮인 학교 뒤산의 소나무숲을 쳐다보았다.
아마 은영은 모교에 와 스케트를 타다가 소나무밭에서 있은 비극을 떠올리게 돼 불쾌해진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부랴부랴 스케트를 벗어 메고 가버릴 수 있겠는가.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은영은 청춘시절 오매에도 그리던 련인이 아니였던가.
비록 가슴 아픈 추억 속의 짝사랑이였지만 그 옛날 실련의 상처는 성호의 마음을 아프게 긁고 있었다.
성호는 저도 몰래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정희 아니고 은영이였다면 우리 엄마 잘 모시고 살 수 있었을가? 아니야, 농민의 아들과 시장네 규수, 아, 얼마나 문벌의 차이 큰가? 짝이 너무 기울어. 누가 농촌 시부모를 모시면서 개고생하자고 하겠는가.)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희를 보라. 약혼할 때는 시부모를 잘 모시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시부모를 모신지 반년도 못돼 나눕지 않았는가. 정희는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머리를 들고 살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실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미국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고 뭔가? 시장네 귀공주가 어찌 정희보다 낫겠는가. 이 세상에 시부모를 좋아할 녀인이 구경 몇이나 되겠는가?)
그는 그녀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에이, 무슨 렴치없는 생각을 해? 이래서 사랑은 음험한 욕심쟁이, 교활하고 간사한 요술쟁이라고 하는가?”
순간 그는 순희, 은영, 정희, 연화를 한데 떠올리며 하늘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남녀간에 참된 우정이 있을 수도 있지. 다만 남녀간의 우정은 애정으로 번지지 말아야 색바래지지 않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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