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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욕심 많은 잰내비왕 김장혁
2020년 03월 23일 12시 35분  조회:118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동화
              욕심 많은 잰내비왕
                                 김장혁

       안개인가 구름송이인가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를 파도치다가 사라지자 백길 절벽 우에서 하얀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듯이 쏟아져 내리는 백운폭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어요. 폭포수가 하얀 물발처럼 가리고 있어 먼 곳에서는 폭포 뒤에 숭숭 뚫린 수렴동의 원숭이 굴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허허, 이 심산에 이렇게 멋있는 잰내비왕국이 있지 않는가!
수렴동 웃쪽 절벽 우에는 숱한 원숭이들이 해볕쪼임을 하면서 뛰놀고 있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나무에 매달려 그네를 뛰면서 재롱을 피우고 있었어요. 독수리가 날아내리다가 굳어진 것 같은 기암괴석 아래 너럭바위에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틀스레 앉아 있었어요. 숱한 원숭이들이 그 원숭이에게 바나나와 복숭아를 뜯어다가 바쳤어요.
갑자기 그 원숭이가 살기 넘치는 갈색 우묵 눈을 부릅뜨더니 아가리를 짝 벌리며 고래고래 고함치었어요.
그러자 숱한 원숭이들은 짹짹 새된 소리를 지르며 바위돌 틈과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옹송그리고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 원숭이가 바로 수렴동의 “손욕”이라는 잰내비왕이 틀림없었지요. 째진 귀와 검정 코를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얼마나 치열한 결투를 벌이었는지 짐작이 갔어요.
원숭이왕은 혹달개라는 원숭이가 가져온 바나나가 썩었다고 대노해 용상이나 다름없는 너럭바위 우의 수박을 쥐어뿌리었어요. 수박이 혹달개의 머리에 맞아 박살나 절벽아래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요.
혹달개 머리에는 대뜸 오그래알만한 혹이 생겼어요.
매 발톱이란 원숭이가 나서서 말렸어요.
“대왕님, 왜 쩍 하면 우릴 때려요?”
“뭐, 어찌구 어째? 그래 너희들이 감히 내 왕권에 도전할 테냐?”
“아니, 건 무슨 소립니까?”
원숭이왕은 숱한 원숭이들이 자기를 쏘아보자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안하네. 금방 자네를 시험해 본 거야. 난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고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네.”
알고 보니 잰내비왕 손욕은 스스로 자기는 3천여 년 전 화과산 수렴동의 잰내비왕 손오공의 98대 후손이라고 자처했어요. 아하, 당나라 때 당승을 따라 저팔계와 사승과 함께 서경으로 불경을 얻으러 간 그 절세의 영웅 손오공을 말하는 거지요. 잰내비왕 손욕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지만요. 너무나도 욕심이 과해서 원숭이들은 뒤에서 “손요귀”라고 욕하고 있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손욕 잰내비왕은 오늘도 폭포수가 쏴-쏴- 쏟아지는 수렴동 그늘에서 늘어져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원숭이들에게 호령했어요.
“허허허,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백운봉 꼭대기에 올라가 놀자꾸나.”
그는 숱한 원숭이 아가씨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층암절벽을 톱아 올라 백운봉에서 제일 높은 자리 독수리 바위에 올라가 척 드러누웠어요.
하품을 짝짝 하던 손욕 원숭이왕은 “하- 낮잠을 잤더니 잔등이 근질거리는구나. 아가씨들아, 내 잔등을 긁고 이나 잡아라.” 하고 명령했어요.
누구의 명이라고 언감 어기겠어요.
원숭이 아가씨들은 독수리바위 앞의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잰내비왕을 둘러 앉아 손으로 잔등을 긁어준다, 어깨를 주물러준다 하며 옆구리며 엉덩이 털을 살살 번지면서 이를 잡았어요.
“어, 시원해라. 오늘 수렴동 백운봉의 경치가 참말 좋구나. 어서 춤을 춰라!”
원숭이 아가씨들은 잰내비왕 앞에서 찍찍거리며 엉덩이춤을 추었어요.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을시고!”
손욕 잰내비왕은 흥이나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춤판에 끼어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어요.
그러다 산 아래에서 숱한 원숭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복숭아를 뜯는 혹달개에게 눈길이 멎었어요.
(이 수렴동에서 내 왕위를 도전할 놈은 저 혹달개 뿐이야.)
그는 저쪽에서 망을 보며 수렴동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백산을 보고 손짓했어요.
손욕은 잰내비왕 품위도 없이 혹달개를 헐뜯기 시작했어요. 그는 복숭아를 광주리에 담아 메고 절벽으로 올라오는 혹달개를 손가락질하며 빈정거렸어요.
“아가씨들, 저 혹달개를 봐. 어쩌면 저렇게 못 났어. 털을 봐. 불에 태워 죽일 놈이 돼 그런지 불같이 새빨갛지. 이마빼긴지 숫구멍엔 혹이 들어박혔지. 송곳이를 봐. 멧돼지 송곳이처럼 뾰족한 게. 저 혹달개는 자기 이를 잡아 씹어 먹는 멍청이야. 돼지만도 못해.”
“호호호”
원숭이아가씨들이 웃어대자 손욕은 흥이 점점 도도해졌어요.
“오랑캐 종자 같은 게, 저 엉덩이를 보오. 빨갛다 못해 홍무우 같다니까. 저 놈 때문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를 애들이 뭐라는지 알아? ‘젠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하지 않아?”
원숭이아가씨들은 코를 싸쥐고 요절할듯이 깔깔깔 웃으며 지껄여댔어요.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호호호”
손욕은 계속 지껄이었어요.
“맞아, 아가씨들의 말이 맞아. 빨간 사과면 먹기나 좋지? 저 혹달개 놈 땜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가 다 팔린단 말이야.”
이때 불여우처럼 생긴 불여우원숭이아가씨가 실버들허리를 배배 꼬면서 응석을 부렸어요.
“오늘 기분도 좋은데요. 우리도 화과산 기슭에 사는 마을 사람들처럼 돼지고기 안주에 모태주를 마실까요?”
“오ㅡ 그래.”
잰내비왕 손욕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불여우의 잔등을 다독이어 주더니 백산원숭이에게 손짓했어요.
“어이, 백산 원숭이! 옳아. 이젠 자넬 백산이라고 부르겠네.”
손욕은 잰내비왕의 틀을 차리면서 분부했어요.
“백산, 자넨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지 않았는가? 얼른 저 아래 산기슭 마을에 가서 모태 주와 푹 삶은 돼지고기를 가져오게나.”
갓 온 백산을 고험하려는 것이었어요.
“예, 알았습니다.”
드디어  백산은 산기슭으로 내려가 모태 주 몇 병과 과일, 푹 삶은 멧돼지고기를 얻어왔어요.
그러자 잰내비왕 손욕은 입귀가 귀밑에까지 째질 지경이었어요.
“확실히 백산은 희한한 놈이야, 어쩜 머나먼 북녘에서 왔건만 뭘 잘 얻어오는 재간이 있단 말이야! 허허허!”
아가씨들도 백산을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손욕은 양팔에 원숭이 아가씨들을 하나씩 껴안더니 지분거렸어요.
“오늘 실컷 먹고 질탕하게 놀아보자!”
속욕과 원숭이 아가씨들은 푹 삶은 돼지다리를 한 짝씩 쥐고 곤드레만드레 취토록 모태주를 마셨어요. 다른 원숭이들은 먹고 싶어 바위틈에서 이쪽을 훔쳐보면서도 군침만 질질 흘릴뿐이였어요. 허나 욕심 많은 잰내비왕은 근본 줄 염도 없었어요.
이때 백산은 원숭이 몰래 가만히 과일과 돼지고기를 뭇 원숭이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백산! 네 이놈! 내 돼지고기를 가지고 인심을 내?!”
어느 결에 눈치 챈 손욕은 백산을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는 것이었어요.
“아니, 내가 가져온 건데요. 어찌 대왕님 혼자 거라고 그래요?”
“뭐, 뭐?! 이놈이 언감 나한테 도전해?!”
손욕은 성이 나 펄펄 뛰더니 원숭이 아가씨들을 활 놔버리고 씽- 백산에게 덮쳐들었어요.
    백산은 반항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허망 숫구멍을 물리었어요. 혹달개랑 매발톱이랑 숱한 원숭이들이 찍찍 비명을 지르면서 돌 틈과 나무 뒤에 숨어     백산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어요.
“아가!”
그런데 이변이 생겼어요.
글쎄 잰내비왕이 입을 싸쥐고 굴렀어요.
웬 일일까요?
원래 백산의 숫구멍은 쇠로 만든 것이죠. 잰내비왕은 쇠숫구멍을 딱 깨물었다가 송곳이가 부러졌던 것이죠.
“허허허. 아무 거나 물어 되나?”
    백산은  너털웃음까지 웃었어요.
뭇 원숭이들은 의아해 잰내비왕과 백산을 번갈아 보았어요.
잰내비왕은 피가 줄줄 흐르는 입을 싸쥐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백산을 쏘아 보았어요. 그렇게 그저 쉽게 지고 말 잰내비왕이 아니였죠.
그는 독수리바위 밑으로 씽 뛰어가더니 두 길이나 되는 쇠몽둥이를 빼들고 휘두르며 덮쳐 왔어요.
“그만 싸우십시오!”
혹달개가 나서서 말리었어요.
“백산은 우리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돼지고기를 가져 왔습니다. 때리지 마십시오.”
“잰내비왕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금고봉으로 단매에 쳐 죽일 테야!”
손욕이 금고봉으로 백산의 머리를 땅 내리쳤어요. 허나 백산은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하지도 않았어요.
쟁강!
쇠와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튕겼어요. 허나 백산의 머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잰내비왕 손욕은 너무 이상해 재차 금고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련이어 내리쳤어요.
땅! 쟁강! 땅! 쟁강!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날뿐이였어요.     
백산은 몸을 좀 휘청할 뿐 태산처럼 끄떡하지도 않았어요.
잰내비왕은 더럭 겁이 났어요.
(이놈, 무슨 놈이야?)
“따웅~”
이때 때마침 얼룩호랑이 한 마리가 절벽 위에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격노해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네 놈들이 감히 내 부모의 가죽을 벗겨 룡상에 펴놓고 앉아 있어! 오늘 부모 원쑤 갚으러 왔다. 잰내비왕 놈아, 명년 오늘은 네 제사 날이다!”
원숭이들은 겁이 나 칡넝쿨을 잡고 굴러 폭포 뒤의 수렴동 안으로 들어가 피신했어요.
“후에 보자!”
손욕은 백산을 놓아주더니 금고봉을 거두고 칡넝쿨을 잡고 수렴동 안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했어요.
따웅~
호랑이가 덮쳐들어 칡넝쿨을 물어뜯었어요. 잰내비왕은 그만 폭포아래 못에 풍덩 떨어져 허연 물 바래를 일구었어요.
호랑이는 놓칠세라 절벽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기여내려갔어요.
“날 살려달라!”
잰내비왕 손욕은 금고봉을 쥐고 뭍에 기어올라 뭇 원숭이들에게 소리쳤어요.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달개와 매발톱이 뛰여내려가 자기들의 왕에게 덮쳐드는 얼룩호랑이의 앞을 막아 나섰어요.
“이 놈, 우리 왕을 놔둬라!”
그들은 호랑이를 슬슬 유인해 절벽위로 올라갔어요. 그 틈을 타서 잰내비왕 손욕은 나무위로 바라 올라가 몸을 피했어요.
호랑이는 절벽 위에 따라 올라가 혹달개와 매발톱을 한입에 물려고 씽 덮쳐들었어요. 그때 백산이 씽 날아가더니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위험해! 어서 내려!”
허나 백산은 호주머니에서 레이저비수를 꺼내 호랑이 목에 휙 휘둘렀어요. 그러자 호랑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목이 썩 잘리어 나갔어요.
“와-!”
혹달개와 매발톱을 비롯한 원숭이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모든 것을 본 잰내비왕 손욕은 자기 목을 어루만지면서 백산과 더 싸울 용기마저 잃고 쳐들었던 꼬리를 내리웠어요.
“백산 왕! 백산 왕!”
허나 뭇 원숭이들이 백산을 둘러싸고 왕이라며 하늘땅이 진감할 듯이 만세를 부르자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는 불시에 금고봉을 쳐들고 씽 덮쳐 왔어요.
“네 놈들의 왕이 눈을 빤히 뜨고 살아 있는데 감히 백산을 왕으로 옹립할 작정인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나 할까요? 손욕은 백산과는 어쩌지 못하고 혹달개와 매발톱과 생사결단하고 화를 냈어요.
그는 진짜 손오공처럼 금고봉을 휘두르며 혹달개와 매발톱을 절벽으로부터 수렴동 안에까지 쫓아 들어갔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이 살짝살짝 피할 때마다 빗맞은 금고봉이 들쑥날쑥한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튕겼어요.
혹달개는 머리에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해 두 바위날 사이에 몸을 숨겼어요. 손욕이 금고봉이 바위에 맞아 쟁그랑 불꽃을 튕길 때었어요. 혹달개는 두 손으로 금고봉을 꽉 틀어쥐고 몸을 솟구쳐 뒤발로 손욕의 두 눈통을 콱 찔렀어요.
“아이쿠!”
손욕은 금고봉을 떨어뜨리고 눈 통을 싸쥔 채 도망쳤어요.
“죽여라!”
“손요귀를 죽여라!”
숱한 원숭이들이 돌멩이를 뿌렸어요.
이때 매발톱이 씽 덮쳐나가 손욕의 목을 꽉 깨물어 폭포 아래로 내리떨어뜨렸어요.
풍덩!
한동안 손오공의 98대 후손 원숭이대왕이노라고 우쭐거리면서 갖은 행패를 다 부리던 손욕은 처참히 폭포수에 빠져 들어갔어요. 순간 탐욕으로 물든 더러운 뻘건 피가 폭포수 위로 피어올랐어요.
한참 후 손욕은 뭍에 기어 올라왔지만 결국 원숭이들의 돌총질에 맞아죽고 말았어요. 허나 어느 원숭이도 전날 잰내비왕 손욕의 죽음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뻐서 모두들 백산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콧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당실당실 추었어요.
다만 그제 날 손욕 잰내비왕을 따라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리던 애첩 불여우 원숭이아가씨가 폭포아래에 내려가 손욕을 내려다보며 가냘프게 흐느낄 뿐이었어요.
그 처참한 정경을 컴퓨터 형광판에서 들여다보고 조왕돌은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은 절벽 위에 거연히 서 있는 백산한테 다가오더니 량손을 쥐여 높이 쳐들었어요.
“이제부터 백산을 우리 화과산 잰내비왕국의 새 잰내비왕으로 높이 모신다!”
원숭이들은 수렴동과 화과산이 떠나갈 듯 고함쳤어요.
“백산 왕!”
“백산 왕!”
허나  백산은 겸손하게 왕위를 사양하고나서 혹달개와 매발톱의 손을 쥐고 높이 외쳤어요.
“원숭이 대왕으로 혹달개를 모시고 매발톱을 총리로 모시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혹달개와 매발톱은 기어이 백산을 잰내비왕으로 모시자고 고집했어요. 그리하여 지혜롭고 용맹한 백산원숭이는 욕심 많은 손욕을 물리치고 잰내비왕으로 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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