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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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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4)
2019년 12월 21일 19시 55분  조회:136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4. 피어린 달밤
       희읍스럼한 달빛이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창문을 쓸쓸히 핥고 있었다.
       승호와 영희가 텔레비죤을 보다가 금방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똑똑똑, 똑똑똑.
       누군가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누구요?”
       “옆집입니다.”
옆집 한족이웃의 목소리 같았다.
“좀 기다리게.”
승호는 바지도 꿰입지 못한 채 문가의 전등을 켜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요?”
뜻밖에도 억대우 같은 복면강도 셋이 비수를 뽑아들고 뛰여들었다.
“강ㅡ도ㅡ야ㅡ!”
승호가 소리치자 한 놈이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꼼짝 말엇!”
다른 놈이 문을 닫고 안으로 잠가버렸다.
“까딱하면 죽인다, 죽여!”
승호는 입을 틀어쥔 강도의 손을 꽉 깨물며 주먹으로 사타구니를 올리쳤다.
“아이구!”
한 놈이 꺼꾸러졌다.
다른 놈이 비수를 휘둘러 승호를 찔렀다. 승호는 옆으로 피하면서 발길을 날렸다. 그러나 쓰러진 자가 승호의 두 종아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결국 승호는  강도들에게 두 팔을 비틀려 꼼짝달싹 못하고 구들바닥에 처박혔다.
“헤이, 언감 어디다 대고 주먹질인가?!”
한 강도는 발길로 승호 턱을 걷어찼다.
승호는 단통 낯이 쥐마당이 돼버렸다.
영희는 침대에서 이불을 훌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었다.
다른 방에서 공부하던 복화가 놀라 얼굴이 새까맣게 질렸다. 광훈은 다행히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복면강도들은 비수를 들고 침대에 다가와 영희를 위협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너네 딸이 무사할 거 같애?”
복화를 해칠가봐 영희는 이불을 훌 걷어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세집살이를 하는 집에 무슨 돈이 있다고 이래요?”
한 놈이 비수를 들고 거들먹거리며 나지막하나 위엄있게 지껄여댔다.
“소문을 들으니 돈이 많다더군. 당장 내놓지 못할가?!”
승호는 그래도 침착하게 한마디 했다.
“직업도 다 떼웠는테 무슨 돈이 있겠소?”
“닥쳣!”
강도놈이 비수자루로 승호의 정수리를 탁 쳤다.
“악!”
순간 승호의 정수리에서 뻘건 선지피가 주르르 흘렀다.
“앗!”
영희는 비명을 지르더니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주먹깨나 휘두른다던 승호가 저렇게 무골충일줄은 몰랐다.
“거짓말 할텐가? 돈이 없으면 날마다 흥청망청 술을 퍼마시고 아가씨들 앞에서 돈자랑 하며 다녀?”
다른 놈도 을러멨다.
“당장 내놧!”
“돈을 내놓지 않으면 목을 베가겠어!”
“딸년을 륜간하겠어!”
그 놈은 승호의 목에 비수를 바투 들이댔다.
“제발 처자를 살려주오.”
승호는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에이구, 어떤 땐 주먹자랑을 하다가 무릎을 꿀어?)
영희는 부랴부랴 옷궤에 치워두었던 돈 3600원을 몽땅 꺼내놓았다.
강도는 두툼한 돈뭉치를 쥐여 흔들어보였다.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당장 15만원을 내놔!”
 “15만원이 없는 걸 밤중에 어떻게 내놓소?”
다른 놈은 비수로 영희의 가슴을 찌를 상하면서 호통쳤다.
“그럼 좋아. 일주일 사이에 15만원을 갖춰라. 다시 찾아올 때 돈을 내놓지 않으면 먼저 네년놈들 대가리를 가져갈줄 알아.”
다른 놈이 겁을 주려고 비수로 승호의 목을 쓱 오려놓으면서 을러멨다.
“만약 잔꾀를 부려 공안국에 신고하는 날엔 너네 일가를 몽땅 죽여버릴테야. 만약  우리 잡히는 날엔 다른 형제들이 꼭 복수할 거야. 알았어?!”
승호는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오. 우리 꼭 일주일 안에 돈을 갖춰놓을게.”
“헛소릴 쳤다간 죽인다!”
한 강도는 품 속에서 시퍼런 비수를 꺼내 홱 뿌렸다. 문선에 비수가 꼽혀 부르릉 떨었다.
“사흘 후에 올테야! 가자!”
강도들은 기세등등해 문을 박차고 가버렸다.
영희는 승호 목의 피를 닦아주고나서 헝겊을 감아주었다.
그녀는 구들바닥에 물앉아 문선에 박아놓은 시퍼런 비수를 쳐다보면서 와들와들 떨었다.
승호는 그제야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 문선에 박힌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으르렁거렸다.
“개자식들, 이제 다시 오기만 해라. 비수로 심장을 팍 찍어 바람구멍 뚫어줄 테야.”
승호의 말에 영희는 출입문 쪽을 바라보면서 귀속말을 했다.
“에이구,정작 강도를 만났을 땐 꼼짝 못하다가도 뒤에서 우쭐렁거리긴? 그 놈들이 들으면 어쩌오?”
승호는 간신히 일어나 문께로 다가가서 피어린 달빛이 깔린 바깥을 내다보고나서 출입문 걸개를 꽉 닫아걸었다.
“공안국에 알릴가?”
승호는 전화기 옆에 다가갔다.
“그러지 마십시오. 혹시 강도들이 바깥에서 도청이나 하면 어쩌오?”
영희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승호는 “목숨이 경각에 다달았는데? 돈은 또 어디서 가져오오?” 하고 기어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큰 일 났습니다. 예, 강도 셋이 뛰여들어 일주일 내에 15만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우리 일가를 몽땅 죽이겠다고 합니다. 비수로 목까지 베면서 위협하고 갔습니다.”
“에이유, 죽어도 우리 죽으면 됐지. 시아버지까지 죽게 만들자고 이러세오?”
영희는 전화를 마구 빼앗자고 했다. 그러나 승호는 영희를 밀쳐버리고 계속 전화에 대고 말했다.
“아버지, 공안국에 신고하지 말고 그저 15만원 주고 맙시다. 예, 예. 우리 집에 한 3만원 저금해둔 게 있습니다. 아버지네 한 12만원 먼저 줄 수 없습니까? 예, 후에 꼭 갚아주겠습니다. 예? 면목 모를 한족강도들입니다. 예, 절대 공안국에 신고하지 마십시요.”
따르릉 따르릉.
승호가 전화를 놓기 바쁘게 전화벨이 급촉하게 울렸다.
승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자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죽고파?! 엉?! 어디다 전화해? 공안국에 신고하는 날엔 목을 칠줄 알아! 애비 형사과장이면 다냐? 네 애빈 이때까지 우릴 잡지 못했어. 다른 수작을 하면 네 애비도 죽여버리겠어. 사흘 후에 가지러 가겠으니 15만원을 준비해놔!”
“아직 돈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먼저 5만원 내놔!”
덜컥!
전화가 끊겼다.
강도들이 진작 도청하고 있었다.
승호와 영희는 섬찍한 나머지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그들은 전등불까지 꺼버리고 구들바닥에 맥없이 물앉았다.
피어린 달빛이 창 밖으로부터 집안까지 쓸쓸히 비추며 공포를 꽉 몰아왔다.
이윽고 승호는 일어나 창문에 카텐까지 쳐놓았다.
“여보, 성호한테 알릴가?”
영희가 초풍에 기절할 상했다.
“정신 나갔소? 시아버지도 어쩌지 못하는데 성호인들 어쩌겠어요? 원, 참. 이젠 바보로 됐구만.”
승호는 어둠 속에 벌떡 일어나면서 고집했다.
“성호 혼자라도 저런 강도 서넛은 처치할 수 있을 거요.”
“당신은 항상 성호를 아무 걸로도 여기지 않더니? 무슨 수로 알립니까? 저 놈들이 전화를 다 도청하는데.”
“우리 알리지 않아도 아버지가 공안국과 성호한테 알릴 가능성이 있소.”
“괜히 애들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죠.”
“픽!”
“그래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소? 저 놈들은 돈을 다 가져간 후에도 단서를 잘라버리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거요.”
“그럼 어떻게 해요?”
영희도 벌떡 일어났다.
“요즘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기요. 우린 먼저 5만원을 주고 돈을 마련한다면서 시간을 질질 끌잔 말이요. 그러면 아버지와 성호가 우릴 구할 게요.”
영희는 어둠 속에서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 이젠 술을 마시고 작작 돈자랑 하세요. 당장 세집 돈도 낼게 없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아가씨들 앞에서 허풍을 치고 돌아다녀요?”
“아니, 어쨌다고? 자꾸 이래?”
승호는 영희와 복화   앞에서 창피해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머리까지 들써버렸다.
영희는 고양이처럼 발뼘발뼘 창문가에 다가가 카텐을 들고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를 강도들의 공포가 달빛을 타고 서리서리 피여올랐다.
그녀는 카텐을 잘 여며놓고 침대에 돌아와 이불을 들고 들어가 남편의 옆에 누웠다.
그들 부부는 생벼락을 맞은 지지리 길고도 긴 이 달밤이 싫었다. 어서 공포의 달밤이 흘러지나가고 해볕이 찬연한 평화의 새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리철갑 과장은 고민 끝에 안전을 고려해 먼저 공안국에 알리지 않고 밤중에 먼저 성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예, 무슨 소립니까? 단서라도 잡은 게 있습니까?”
“허송파네 깡패무리가 승호한테 보복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네.”
“허송호?”
“응. 그 놈 우리 시내 유명한 깡패야. 어디로 사라졌더니 또 뛰쳐나왔구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깡패무릴 또 만났구나.)
성호는 허송호 말이 나오자마자 이를 갈았다.
(개자식들, 이전엔 은영과 홍희 눈을 빼가겠다고 녀학생숙사에까지 쳐들어오지 않았는가. 승호의 그 걸 빼가겠다고 대학교 사무청사에까지 무리를 지어 쏘다니더니. 흥! 이번엔 화근을 뽑아버려야겠는데.)
성호는 전화로 리과장과 대책을 논의했다.
“공안국에 신고해 그 놈들이 승호네 집에 돈 가지러 나타났을 때 일망타진하면 어떻습니까?”
“글쎄, 그 놈들이 역지 못해 그물에 들어오겠소?”
“돈에 눈이 빨개 나타날 수도 있잖습니까.”
“글쎄.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오. 도청하면 어쩌오?”
리철갑 과장과 성호는 한참 대책을 세웠다.
성호는 먼저 가시아버지한테 도청기로 송파와 송호 형제의 전화를 감시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는 시퍼런 비수를 품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어디로 가요? 아버지까지 다치면 우린 어떻게 살아요?”
한나가 눈물이 글썽해 아빠의 팔을 붙잡았다.
“친구 강도를 만났는데 어쩌니? 경찰들과 함께 행동한다. 근심하지 말라.”
한나는 아버지를 놓아보내면서도 안전에 주의하라고 열당부를 했다.
성호는 한나를 안심시키려고 희죽이 웃어보이고나서 가슴을 쑥 내밀고 집을  나섰다.
그는 전번에 승호가 뒤통수를 친 일을 생각하면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명위험에 처한 승호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인생좌우명에 맞지 않았다.
그는 범송과 준식, 광인까지 불러 집의 택시를 불러 타고 곧추 승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승호네는 깡패들의 눈을 피해 시내 변두리 쪽으로 해 세집을 잡았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눈길이여서 준식은 택시를 천천히 몰았다.
광인은 매형을 보고 “장마당에 가서 도끼라도 사가지고 갈가?”라고 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장마당을 돌다가 오금상점에 들어가서 스파나와 네지마스를 사서 품에 넣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간 송파와 송호 형제가 엄삼기 교수의 감시망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 강도사건과 좁은 길에서 딱 마주칠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상해, 송호가 어떻게 돼 다시 손을 써?”
그는 피뜩 승호네 세집을 잡은 지역에 JH현에서 이사해온 경화네 남동생 송철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JH현에선 송철도 한다하는 깡패였지. 송철을 찾아가 방조를 구할가?)
성호는 준식을 보고 차머리를 돌려 교외에 자리잡은 송철이네 집쪽으로 몰라고 했다.
그는 식품가게에 들어가 사과와 술을 사들고 송철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차를 여기에 세워놓고 기다려라.”
성호는 택시를 송철의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골목에 세워놓고 기다리게 하고 혼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광인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주위를 살폈다.
성호가 송철이네 초가집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어떤 한족아낙네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고 내다보았다.
“송철이 있는가?”
“이사갔는데.”
“걔네 집이 어데 있소?”
“저 길 옆에”
성호는 아낙네가 가리키는대로 길 옆의 벽돌집으로 가다가 송철이네 옛날 초가집을 되돌아보았다.
옛날 그가 대학교를 다닐 때 춘자네는 송철이네 아래집에서 살았다. 지금도 그는  은빛달빛이 깔린 개울가 빨래터에서 모기에게 종아리를 물리우면서도 경화를 동무해 빨래를 하던 달밤,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그 달밤이 떠올랐다. 또 송철을 벽돌공장 건조실에 데리고 가서 권투를 배워주던 일도 떠올랐다. 그런데 송철은 공부는 하지 않고 나중에 JH현에서 한다하는 주먹패거리 두목으로 됐다.
경화는 대학생 성호는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한족한테 시집가버렸다.
경화를 마지막으로 본 날에도 역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성호는 과자봉지나  사들고 경화를 찾아갔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경화만 쳐다보았다.
경화는 송철이 나간 틈을 타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울먹거렸다.
“오빠, 이젠 찾아오지 말아요. 전 한족한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성호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쳐댔다.
“누나한테서 들었어. 왜 하필이면 한족한테 시집가?”
경화는 팔로 눈을 가리며 정지로 나갔다.
“이젠 말도 말아요. 오빠도 절 책임지지 못하잖아요? 내가 한족한테 가든말든 웬 상관인가베.”
성호는 한족구들에 벌렁 드러누워 주먹으로 구들을 쾅쾅 두드렸다.
정지에서 경화가 밥을 지어먹이려고 풍무를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정지로 나갔다.
부엌에서 내굴이 꾸역꾸역 솟아나 꺼먼 종이천정을 찔렀다.
“그만둬, 난 갈란다.”
“아니, 점심을 들고 가시라요.”
“밥맛이 없어.”
성호는 신을 꿰면서 진심으로 말했다.
“한족한테라도 시집가서 잘 살아.”
그는 호주머니에서 5원짜리 지페를 한장 꺼내 경화의 손에 쥐워주고 몸을 돌렸다.
“결혼 부존가요? 오빤 소비잔데 왜 이래?”
자오록한 연기 속에서 경화가 지페를 성호의 손에 되쥐어주려고 했다.
성호는 되밀어주었다.
“오빠가 주는 걸 받아.”
“오빠~”
경화는 더는 참지 못하고 통곡치며 와락 성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성호는 경화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온몸이 흐느낌 속에서 전률하고 있었다.
성호는 시큼해나는 코마루를 주먹으로 닦으면서 연기가 꼴똑 찬 그 집 안에 경화를 남겨두고 나와버렸다. 집 안에서는 경화의 통곡소리가 가슴아프게 울렸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성호는 송철네 초가집을 또다시 돌아보았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경화는 보이지 않았다.
“없습데?”
준식이 물었다.
“이사했어.”
성호는 길옆의 벽돌집을 가리키더니 “여기서 기다려라.” 하고 당부했다.
성호가 둘러보니 이 마을은 20년이 지났건만 의연히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유독 길옆의 송철이네만은 벽돌집을 쓰고 살고 있었다. 그 벽돌집 벽에 하얀 타일을 붙이고 지붕에는 재빛기와를 얹어서 꽤나 으리으리해보였다.
성호는 높다란 층계를 밟고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집 안에서 웬 녀인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경화인가?)
성호는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집 안에는 웬 실팍한 녀인과 열댓살되는 남자애가 구들에 앉아 있었다.
“누굴 찾아요?”
“이게 송철이네 집이요?”
“예. 누구세요?”
“송철의 사돈이요. 송철이 어데 갔소?”
“석탄 실으러 갔는데요.”
성호는 그 말에 사과배꾸럭을 내려놓다가 손에서 퉁 떨어뜨렸다.
“아이구, 무슨 배까지 들고 왔어요?”
송철의 처는 배를 받아놓았다.
“누굴 믿고 여기 이사와서 살게 됐소?”
“사촌시형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사촌시형 이름이 뭐요?’
“허송호, 허송파죠. 어째 우리 시형들 몰라요? 이 시내에서 이름이 뜨르르한 량반들인데요.”
성호는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시형이랑 여기 자주 놀러 오오?”
“아니. 며칠 전에 전화 왔을뿐인데요.”
“음- 알았소.”
성호는 내심으로 더욱 놀라지 않았다. 송호와 송파 깡패무리가 송철의 사촌형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우연하게 범의 굴로 들어선 셈이였다.
사실 경화와 송철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리하여 송호와 송파 그리고 경옥이네는 업신여겨 사촌동생취급을 하지 않았고 거래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는 송철 처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화제를 돌렸다.
“경화는 잘 보내오?”
“경화도 알아요?”
“그렇소. 이전에 대학을 다닐 때부터 알았지.”
“예~ 그렇군요. 에이유, 시누이 말도 말아요. 한족한테 시집가 고생살이 말이 아닌데요. 나그네가 석탄굴에 들어가 석탄을 져날라 애 둘을 데리고 사는게 고생이 막심해요.”
“아들이요? 딸이요?”
“둘 다 아들애죠. 장차 아들 둘이나 어떻게 장가보내고 집을 다 사주겠어요?”
성호는 머리를 끄떡였다.
(사람의 팔자는 정해진 건가? 어려서 부모 잃고 남동생 데리고 외롭게 살던 경화가 한족한테 시집가더니 개고생이구나.)
성호는 벽에 걸린 시퍼런 도끼와 뻘건 술을 단 비수를  둘러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며 물었다.
“송철은 언제 돌아오오?”
“어제 갔으니깐요. 눈이 내려서 래일 쯤에나 들어서겠죠.”
성호는 일어나 벽에 걸린 비수를 살펴보았다. 뻘건 술을 단 비수였다.
“참 좋은 비수구만. 길림에 가는 길에 들렀소. 갈 길이 바빠서 가야겠소.”
“아니, 점심도 잡숫지 않고 가요?”
“송철과 경화 전화번호 적어주겠소?”
“예. 그래요.”
송철의 처는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경화와 송철이 보고 문안을 전해주오.”
“예. 사과배를 가져와서 잘 먹겠어요.”
성호는 송철이네 집에서 나오자 택시에 앉아 마을을 떠났다.
그는 마을을 벗어나자 핸드폰을 꺼내 가시아버지한테 전화를 쳐서 금방 송철의 처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됐소. 내 말하기 전엔 절대 서뿔리 건드리지 마오.”
“알았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걸어 이모부한테 사건경과와 혐의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성호는 택시를 몰고 승호네 집 부근에 가서 살폈다.
때마침 승호네 집 앞에 려관이 있어 들어갔다.
그는 그 려관에 투숙하여 승호네 아빠트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였다.
강도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성호는 해지기를 기다려 쪽지를 써서 준식을 시켜 승호네 집 문틈으로 걷어넣게 했다.
준식은 쪽지를 가지고 식품상점에 가서 과자랑 사들고 승호네 3층집으로 다가갔다. 그는 층계로 승호네 웃집으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주위에 인기척이 없자 문틈 사이로 쪽지를 슬쩍 걷어넣었다.
한편 문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승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스적스적 다가가보았다. 분명 제비꼬리를 한 쪽지였다.
승호는 떨리는 손으로 주어 위생실에 들어가서 펼쳐보았다.
 
승호, 얼마나 놀랐니?
내 너네 집 앞 려관에 와 있으니깐. 겁내지 말라. 강도들이 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고 돈만 창문으로 뿌려줘라. 가능하게 이번 강도사건은 송철과 련관이 있는 거 같애. 승호, 이미 공안국에도 말해놓았으니까. 강도들 얼씬하기만 하면 일망타진할 수 있어.
성호로부터
 
승호는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 변기에 처넣고 침대에 돌아왔다.
“뭔가요?”
승호는 영희한테 귀속말로 쪽지내용을 대충 알려주었다.
승호네 집은 어지간한 강도는 창문을 까부시고 마구 뛰여들기는 힘들었다. 만약 창문을 깨고 들어온다고 해도 주위에 삼엄한 포위망을 늘이기 시작하는 경찰들과 성호네한테 당하기는 십상이다.
그들 부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강도들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편, 성호와 범송 등은 려관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승호네 집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가시아버지한테서 온 전화였다.
“성호, 송파네 깡패무리와 사촌동생 송철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어. 그자들이 지금 돈을 가지러 승호네 집으로 가자고 전화를 주고받았어.”
“예? 송철이 처는 훈춘으로 석탄을 실으러 갔다고 하던데요.”
“믿지 마오. 속임수요. 송철은 시내에 있을  수 있소.”
“예. 알았습니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쩜 송철은 송파 사촌동생이야.)
그때 강운룡 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안국 7과에서 전화 왔다. 송파네 깡패무리들이 당지 한족깡패들을 시켜 한 짓이야. 너네 타고 간 택시를 멀리 치워라. 혹시 강도들이 영업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 택시를 경계할 수도 있어.”
성호는 인차 준식을 시켜 택시를 다른데 몰고 가서 기다리게 했다.
한편 승호네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승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잡아 들었다.
“어째 죽고 싶어? 왜 공안국에 신고했어?”
승호는 강도들이 허튼소리를 치는 걸 알아챘다.
“신고한 적이 없는데. 언제 돈 가지러 오겠소?”
“공안국에 신고했기에 오늘 말고 래일 가겠어. 돈은 마련했는가?”
“5만원 있소. 빨리 가져가오. 이제 나머지 돈은 아버지 가져오면 줄게.”
“알았어. 허튼 짓 하지 말라구. 죽지 못해서. 에헴.”
시간은 재깍재깍 1초, 1초 흘러갔다. 또 1분, 1분 흘러지나갔다.
반시간 후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까 너네 집에 왔다간 사람 누구냐?”
“아니, 왔다간 사람 없는데.”
“문 열엇!”
“왔소?”
“응, 문을 열어.”
“좀 기다리오.”
승호는 후둘후둘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떨고 문께로 다가갔다.
“아니, 문을 열지 마세요!”
영희가 황급히 소리쳤다.
승호는 문께로 다가가 감시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현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 열겠소. 바깥에 누가 있소?”
현관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으로 조용했다.
이윽고 복면한 자가 나타났다.
“문 열어!”
“돈을 창문으로 내던질게. 가지고 가오.”
“열지 못해?”
이번엔 조선말로 지껄였다. 옆집에서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짓인 것 같았다.
“창문으로 던질게.”
“어째 죽고 싶어?!”
그 자는 문을 꽝꽝꽝 두드렸다.
문이 열리긴 만무했다.
“그럼 바깥으로 뿌려!”
뒤이어 층계를 뛰여내려가는 소리가 텅텅텅 들렸다.
승호는 창문카텐을 살며시 열고 바깥동정을 살폈다. 울 안에 복면한 자가 나타나 달빛 깔린 사위를 둘러보더니 창문을 향해 손삿대질했다.
승호는 창문 되창을 열고 5만원을 넣은 비닐봉지를 훌 내리던졌다. 그 자가 비닐봉지를 주어들고 내뛰려 했다.
“서랏!”
여기저기서 몇 사람이 뛰쳐나왔다.
“사람 살려요!”
복면강도는 고함치며 담장을 넘어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쳣?!”
경찰과 성호가 담장을 훌쩍 날아넘어가 추격했다.
담장 밖에서 몇몇 검은 그림자가 욱 모여들었다. 한 놈이 도끼를 성호한테 날렸다. 성호는 허리를 굽혀 날아오는 도끼를 피했다.
또 비수가 날아왔다.
성호가 옆으로 몸을 홱 틀어 피했다.
“피햇!”
“앗!”
비수는 성호 옆구리를 스치며 날아가 미처 피하지 못한 범송의 팔에 박혔다. 범송이 비수를 뽑으면서 볼라니 빨간 술이 달려 있었다. 성호는 그 비수 날린 자가  누구라는 것을 짐작했다.
승호도 뛰쳐나가려다가 강도들이 집 안에 뛰여들어 처자들을 다칠가봐 그만두었다.
강도들은 복면강도를 보호하면서 작은 골목을 굽어들었다.
준식은 택시를 몰고 헤드라이트로 강도들을 비추며 추격했다.
“꼼짝 말엇!”
경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권총을 겨눴다.
“흩어졋!”
복면강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도망쳤다.
땅! 땅! 땅!
총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깨웠다.
강도 두 놈이 종아리를 붙안고 푹푹 꼬꾸라졌다.
성호가 나머지 강도 둘을 쫓다가 고함쳤다.
“송철아!”
“잉?”
비수를 날린 자가 주춤 멈춰서다가 더욱 미친듯이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쳐?”
복면강도는 토성을 훌쩍 뛰여넘어 도망쳤다. 그러나 성난 사자 같은 성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성호는 토성을 훌쩍 뛰여넘어 계속 추격했다.
“누구냐?!”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강도는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을 홱 돌리며 발길을 날렸다.
“주먹 받아라!”
성호는 날아드는 발을 슬쩍 피하면서 아래배에 한매 안겼다.
“어이쿠!”
그 놈은 아래배를 붙안고 땅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을면서 애걸복걸했다.
“히야(형), 살려줘!”
성호는 성난 사자처럼 발길로 그 자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너도 사람이냐?”
성호는 연신 대가리에 발길을 날리며 대성질호했다.
“왜 강도질해?”
송철도 맞받아 욕설을 퍼부었다.
“너거도(너도) 사람이가(사람인가)? 날 잡아바치면 상금 두툼히 타겠구만.”
성호는 송철의 대가리를 밟고 팔을 뒤로 비틀었다.
송철은 두손을 싹싹 비볐다.
“경화누나 봐서 놔줘! 난 알아, 히얀(형은) 우리 오누이 불쌍해한다는 거. 내 죽으면 경화누나 불쌍하지 않아? 놔줘!’
“개소릴 작작 쳐. 걸엇!”
성호는 계속 지껄이는 억대우 같은 송철을 끌고 큰 길 쪽으로 나왔다. 그때 경찰들도 총탄에 종아리를 맞은 두 놈을 잡아 끌고 경찰차에 압송해갔다.
경찰차에서 심문해보니 이번 사건의 주모자는 허송철과 허송호였다.
“도망친 놈은 송파지?”
“아니요. 큰형 삐치지 않았어.”
“네놈들 전화 다 록음해두었어. 들어봐야 탄백하겠는가?”
송호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강운룡 부국장은 위엄있게 호통쳤다.
“네놈들이 아무리 교활한 수단으로 강도질해도 인민법률의 천라지망을 벗어나지 못해!”
며칠 후 그날 저녁에 도망친 허송파와 당지 한족깡패도 YJ시내 PC방에서 체포되였다.
공안국에서는 성호의 사건제보를 받은 후 즉시 김창남 대대장을 조장으로 한 12명 나포소조를 구성해 JH시에 쏜살같이 달려왔었다. 강운룡 부국장은 제7처와  엄삼기교수가 제공한 범죄자들의 통화내용과 거처를 수시로 김창남 대대장한테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제때에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했다.
그들은 달밤을 빌어 범죄자들을 밤도와 심문해 범죄자들의 죄행을 낱낱이 밝혀냈다.
원래 허송호는 승호한테 보복하려고 외지에서 온 허송철과 위청룡, 경화의 남편 로천궁을 승호네 집에 보내 돈 15만원을 내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심문을 거쳐 허송파 깡패일당의 죄행이 낱낱이 드러났다. YJ시에 숨었던 구레나룻과 하이칼라 등 10여명 깡패들이 줄줄이 나포됐다.
사건해명에는 엄삼기교수의 공훈이 컸다. 그는 최첨단도청기로 허송파 깡패일당의 일거일동을 다 도청해 공안기관에 제공했다. 또 성호의 제의대로 자기가 발명한 최첨단도청기를 공안국 7처에 넘겨주어 수시로 허송파와 허송호 형제 깡패무리를 감시하게 하였다.
심문과정에 허송파와 허송호 깡패무리의 대화록음마저 틀어놓았다. 깡패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송파와 허송호 깡패무리는 YJ시를 거점으로 나이트클럽과 노래방, 안마원 등 업소에서 강탈행위 27건을 저질렀는데 총강탈금액은 무려76만원이나 되였다. 무리싸움과 보복상해 등 사건 67건에 상해치사 3명, 피해자 70여명이나 되였다.
허송파와 허송호, 허송철 형제는 사촌녀동생 허경옥한테서 피해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앙심을 먹고 깡패들을 시켜 보복하게 하였던 것이다.
어느 하루 깡패 셋은 대학교 뒤산 소나무숲에서 승호와 은영을 미행해 승호를 소나무에 묶어놓은 후 야수들처럼 륜간했다. 그러나 1차 심문에서 깡패 셋의 배후인 허송파와 허송호가 증거부족으로 법망에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구레나룻과 하이칼라의 적발로 모든 죄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허송파와 허송호는 승호의 양물을 자르라고 깡패들을 시킨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럼 누가 한 짓이란 말인가?
        은영은 당시 강패들한테 륜간당하다보니 정신을 잃어 모른다고 치자. 피해자인 승호만은 알 것이 아닌가?
그러나 승호는 계속 모르쇠를 댔다. 하여 그 사건해명은 의연히 진전도 없이 또다시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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