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밀모
굉팔은 간사한 늙은 너구리처럼 음흉하게 사람 잡는데는 이골이 텄다.
어느날, 광고회사 사무실에 두리모자를 쓴 공상국 일군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배가 항아리만큼한 간부가 승호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누가 성호요?”
성호는 잔등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접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말라꽹이가 성호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당신, 뭐요? 광고법 어기고 술광고를 하다니?”
뚱뚱보도 성호를 쏘아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단단히 벌금해야겠소? 당장 비법수입한 령수증을 내놓소!”
분명 술공장 금술광고를 했다고 찾아왔다.
굉팔은 경리실에서 건너와 빈정거렸다.
“꼴 보기 좋게 됐군. 불법술광고를 하다니, 흥! 이젠 진짜 우리 광고회사를 다 말아먹는 판이야. 흥!”
승호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이럴 때일수록 경리는 수하를 보호해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굉팔은 도리여 깨고소해 했다. 그는 성호를 꺼꾸러드리려고 암암리에 공상국에 고발했던 것이다.
한쪽에서 성호가 공상국에 불리워 다니면서 벌금당하는 것을 보고 굉팔은 철색 말상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잘코사니야! 암전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성호, 그 비참한 모습, 참 가관이야! 허허허.”
굉팔은 음험하고 간교했다. 그는 회사 회의에서 비판하고 공상국에 고발하는 비렬한 수를 다 써서 성호를 음해하고 회사에서 발을 붙일 곳이 없게 납작하게 만들었다.
굉팔은 또 상부 간부에게 아첨하는데는 능수였다. 웃사람의 비위를 슬슬 맞춰가면서 기여야 할 땐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 가달두새로 설설 기여 빠져나갔다.
그는 쥐새끼처럼 시내를 쏘다니면서 우멍눈으로 어데 소문난 유흥장소가 있는가 정찰해두었다간 오청룡를 모시고 가서 질탕하게 놀게 했다. 술자리에는 꼭꼭 이름난 모델들이거나 미스무용수들을 불러 배석해 주흥을 돋구게 하군 하였다. 또 일주일이 멀다하게 마사지업소에 모시고 가서 섹시한 아가씨들을 불러 사지가 시원하게 주물러주게 했다.
오청룡 국장은 굉팔을 총경리로 임명한 덕에 팔자를 고쳐 별의별 향락을 다 누렸다.
오래잖으면 설날이다.
굉팔은 재무과에 가서 해연을 보고 “사업경비로 쓸 일이 있소.” 하고 손을 내밀었다.
해연은 “얼마?” 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 5만원 가져오오.”
“예?”
해연은 눈이 휘둥그래 입을 함박만큼 딱 벌렸다.
평소에 굉팔이 돈을 쓰겠다면 두말없이 척척 내놓던 해연도 그 엄청 많은 천문수자에 놀랐다.
“전번 달에 2만원을 가져갔는데 또 이리 많이?”
7만원, 진짜 광고회사 총수입의 5분의 1이나 되는 돈이 아닌가!
“총경리 가져오라면 가져올게지. 무슨 잔소리요? 경리 할 일이 따로 있고 출납이 할 일이 따로 있소. 출납은 총경리 시키는대로 해야 하오.”
해연도 너무 지나친 것 같아 슬쩍 둘러댔다.
“예, 령수증에 무슨 항목으로 써넣어야겠는지 몰라 그래요.”
굉팔은 재무과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해연한테 가까이 다가와 나직이 쑤근거렸다.
“제만 알고 있소.”
해연은 무슨 심상찮은 일인가고 굉팔의 깡마른 철색낯을 쳐다보았다.
“사실 오국장께서 새 집을 사셨대. 장식하겠는데 어쩌겠시우?”
“예? 이래서 괜찮겠어요? 아무리 상부 간부라고 해도 그렇죠. 광고회사 돈을 주는 건 재무정책에 어긋나는데요.”
“아니, 모르는 소리. 이것도 사업경비지출이지. 농사를 지어도 화학비료 필요해. 택시업을 해도 차보험이 필요한디. 오씨한테 딱 들어붙어야 광고회사를 살리고 우리 호주머니에도 두툼하게 쑤셔넣을 수 있는기우. 지도일군을 모르곤 한발작도 나가기 힘들어. 딱 마치 농사에 쓰는 화학비료값이나 택시업에 지불하는 보험비라고 여기면 돼. 저도 전번에 오청룡 아니면 재무과에 남을 수 있었겠어? 잊지 말라니께.”
그제야 해연은 좀 깨달은 것 같았다.
(리경리는 사업경비라는 명목으로 오청룡한테 가옥장식비를 찔러주고서라도 총경리직을 지키려는구나. 총경리직만 지키면 권세도 돈도 다 있을 수 있으니까.)
해연은 자기 살을 저며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슨 수가 있겠는가?
할 수 없이 그녀는 저금소에 가서 만원 묶음 다섯개나 찾아내 굉팔한테 가방채로 건네주었다.
굉팔은 5만원에서 두 묶음은 스리슬쩍 챙겨 저금소에 가서 자기 저금통장에 저금해넣었다.
그는 저녁에 나머지 3만원이 든 돈가방을 달랑 들고 오청룡을 조용한 다방으로 불러냈다.
오청룡은 이젠 리굉팔이 부르기만 하면 꼭 무슨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직감했다. 한밤중에라도 굉팔이 부르기만 하면 헐레벌떡 쏜살같이 달려나오군 했다. 그러나 그 뒤끝에는 꼭 무슨 요구가 꼬리를 달고 디룽디룽 달려 나오군 하였다. 아무리 아첨에 눈이 어두운 굉팔이라도 그것만은 싫었다.
다방의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더러운 교역이 벌어졌다.
굉팔은 마주 앉기 바쁘게 두툼한 돈뭉치 네개나 든 돈가방을 차탁 아래로 쓱 밀어주었다.
“새 집에 들겠는데요. 장식에 쓰십시오.”
“아니, 이래서 되겠나?”
오청룡은 입이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 됐다.
그는 돈가방을 쓱 끌어다가 허벅다리 밑에 척 깔고 들어앉았다.
대신 굉팔이 요구하는 일은 백에 백을 다 대답했다.
“김범수를 쫓아내시우.”
“신문사에 쫓아보냈는데 또 어데로 쫓아보낼가?”
청룡은 음흉한 굉팔이 섬찍해 흘끔 곁눈질했다.
“토끼도 너무 쫓으면 뒤발로 수리개를 올리찬다고 하잖소? 범수는 이발 빠진 범이 돼버렸는데 아직도 위험한가?”
숱한 돈을 받고서도 오청룡이 뜻밖에도 망설일줄이야.
굉팔은 불쾌해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범수를 헐뜯었다.
“개자식, 아직도 성호랑 승호랑 규합해서 나를 왕따로 만들려고 꿍꿍이를 한다니께. 대갈통도 들지 못하게 납작하게 만들어주시우.”
“그래? 심각하구먼. 어떻게 하면 좋을가?”
검은 돈을 얻어먹은 오청룡은 어리석게도 지도일군의 체면도 다 잃고 인사문제를 수하와 물었다.
“방법은 많은데요. 신문사 광고 경리직을 철직하십시오. 그 놈한테 권력이 없으면 누가 따라다니우?”
누가 상전이고 누가 수하인지 분간하기 힘든 판. 허허. 국정롱단이 아닌가.
입이 물러진 저 부실한 오청룡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어허. 그거 묘수구만. 당장 그렇게 하지. 그런데 무슨 명목으로 또 신문사에서 몰아낸다?”
소 웃다가 꾸레미 터질 지경.
굉팔은 조개턱에 침을 튕기며 끊임없이 “지시”하였다.
“죄목은 만들기에 갑지요. 으흐흐.”
오청룡은 뜨물에 빠진 돼지 눈깔을 데굴데굴 굴렸다.
굉팔은 우멍눈에 간사하고 음험한 빛이 번뜩였다.
“성호도 쫓아냅시다.”
“왜?”
“전번에 내 죄상을 밝힐 증거를 수집하느라고 그러는지. 단위 서류궤에서 광고문을 도적질해갔단 말이유. 우리 둘이 해먹은 증거를 쥐면 어떻게 하겠슈?”
“쉿-”
오청룡은 식지를 입술에 가져다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굉팔은 계속 지껄였다.
“해연은 수준이 발바닥인데요. 전번에 백화상점광고를 번역한다는게 뭡니까? 한어로 ‘高士达’표 텔레비죤’을 글쎄 ‘고사달표 텔레비죤’이라고 번역해서 백화상점 안총경리한테 혼빵났습니다. ‘금성표 텔레비죤’을 영어명칭을 음차로 ‘고사달표 텔레비죤’이라고 직역하지 않았겠시우. 백화상점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금성표 텔레비죤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안경리 한바탕 야단쳤죠.”
오청룡은 기딱차서 “허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그는 굉팔이 자기 망신스런 일을 해연한테 들씌우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도 능청을 떨었다.
“그런 발바닥수준이면야 광고회사에서 진작 쫓아내야지. 허허허.”
오청룡은 우스개를 했지만 저으기 섬찍한 감을 느겼다.
(굉팔이 큰 권력이나 틀어잡으면 숱한 사람을 죽이겠구나. 실로 음흉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야. 으흠.)
굉팔의 예술적이고 간교한 수작은 계속 되였다.
“오청룡, 아니, 오국장님, 퍽 피곤하겠는데요. 어디 조용한데 가서 질탕하게 놀지오?”
오청룡은 돈뭉치가 든 묵직한 가방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어쩌고?”
굉팔은 우멍눈을 띠룩 굴리더니 “집에 가져다 두고 오시면 되죠.” 하고 구슬렸다.
오청룡은 희죽이 웃으며 하회를 기다렸다.
“먼저 맥주나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가고 3차로 양고기뀀을 먹고 4차로 안마회소나 가서 푹 쉬고 5차로 또…”
굉팔의 말에 오청룡은 이상하게 아래배로부터 가슴까지 찡해났다.
“됐네, 됐어. 돈 너무 팔잖아?”
그는 기뻐 웃음주머니 흔들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했다.
그 속내를 빤히 꿰뚫어보면서도 굉팔은 손사래쳤다.
“벌써 닭곰집에서 예쁜 아가씨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기다리는뎁쇼.”
순간, 술에 곤기가 가득하던 오청룡의 쌍까풀눈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누군가? 전번 그 아가씬가?”
굉팔은 그 효과를 기다렸다.
“야따, 급하기도. 오청룡,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시우.”
그는 일부러 오청룡를 애태웠다.
“자, 어서 가방이나 집에 두고 달빛닭곰집으로 오세요. 택시비는 내가 대줄테니까. 택시 타고 빨리 갔다 오세유.”
“그래, 별찌처럼 날아갈게.”
오청룡은 아가씨 말만 들으면 오금을 쓰지 못했다. 번마다 만사를 다 제쳐놓고 무조건 달려왔다.
오늘도 아가씨 말이 나오자마자 네모번듯한 낯짝에 대뜸 활기가 넘치고 웃음꽃이 꽃물결쳤다.
오청룡은 코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면서 다방에서 일어섰다.
그는 집에 가서 안해 몰래 궤짝에 묵직한 돈이 든 가방을 숨겨놓고 택시를 타고 연화닭곰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노크도 하지 않고 지정된 장소 문을 뚝 떼고 들어갔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이 황해 어떤 아가씨 왔는가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와- 귀맛 돋구는 목소리, 아가씨 부드러운 목소리, 진짜 사람 죽인다, 죽여.)
예쁜 아가씨 두 손 맞잡고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어데서 좀 본 거 같애”.
그녀의 가느다랗고 매끌매끌한 손을 꽉 잡았다.
굉팔이 히죽거리면서 인사시켰다.
“이 아가씨는 선희라고 불러요. 우리 시내 명모델이죠.”
오청룡은 육감이 나게 풍만한 선희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탐나게 쏘아보았다.
“아, 텔레비죤에랑 자주 나오던 유명한 미녀모델이구만. 리경리네 광고회사에도 있지 않았소? 세상 미녀지. 흐흐흐.”
선희가 애교 넘치게 인사를 받아챘다.
“네, 이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잘 부탁드려요.”
인사수작을 마치자 셋이 자리에 앉았다. 그때 문이 배시시 열리더니 아가씨 둘이나 더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존귀한 손님을 처음 뵙게 돼 영광입니다.”
“어허허, 어서 올라와. 어서.”
굉팔은 아가씨 하나를 오청룡 옆에 더 붙여주었다. 진짜 꽃밭 속에 들어앉은 셈.
술이 서너순배 돌아가자 선희는 오청룡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교태를 살살 부렸다.
오청룡은 술에 마음이 없고 아가씨들 풍만한 젖가슴부터 탐났다. 눈치챈 굉팔은 선희를 남겨놓고 아가씨들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방이 조용해지자 오청룡은 구렁이처럼 량팔로 선희를 칭칭 감아안고 앉아 희희닥거렸다.
선희가 소주를 부어 올렸다.
오청룡도 선희한테 한잔 부어주며 수작을 붙였다.
“자, 우리 만남을 위해 한잔 들기오.”
“예, 오늘 즐겁게 놀자요.”
년놈은 수작을 부리며 “위하여!” 소리와 함께 한잔을 꼴딱 마셔버렸다.
“캬- 술맛 참 좋다!”
“그래요? 한잔 더 마실래요?”
“천천히, 천천히.”
“그럼 아-”
선희는 기름이 번지르르한 돼지고기점을 저가락으로 집어들었다.
“논다, 놀아!”
오청룡은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려댔다. 선희는 캐드득거리면서 돼지고기점을 입에 쑥 밀어넣어주었다.
우물우물 돼지고기점을 씹던 오청룡은
“기실 내 고기를 넣어줘야 하는데. 자! 아-” 하고 돼지고기점을 집어 선희 입에 가져갔다.
선희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째? 내 고기 맛이 없어?”
“아니, 진짜 오국장 고기야 맛이 없을리 있겠어요?”
“허허허. 그래?”
오청룡은 불시에 선희를 와락 끌어안고 키스벼락을 뻑뻑 안겼다.
“에라, 모르겠다.”
오청룡은 참지 못하고 선희를 허망 깔고 넘어갔다. 선희는 밑에서 아양을 떨면서 갈보년의 수작을 다 부렸다…
곁방에서 미리 장치해놓은 비디오촬영기로 촬영하던 굉팔은 낚시에 걸린 오청룡을 보고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오청룡, 잘한다, 잘해. 이제부터 언감 내 말을 거역하겠어?”
굉팔의 함정에 빠진줄도 모르고 오청룡은 한참이나 지랄발광하다가 거친 한숨을 후- 몰아내쉬였다.
뒤이어 아주 능청스런 소리를 쳐댔다.
“리경리, 아가씨와 마시니까. 술맛이 참 좋군 그래. 허허허.”
“그래요? 그럼 폭 마시세요.”
“아니, 이젠 모두들 들어와 함께 술을 마십세.”
“건너가지요.”
굉팔도 능청스레 비디오촬영기를 번개같이 가방에 걷어넣고 건너갔다.
“아니, 아까 그 아가씨들은 어데 갔어?”
“좀 있으면 들어올 거요.”
굉팔이 여겨보니 오청룡이나 선희나 모두 낯이 쥐마당이 돼버렸다. 오청룡 낯에는 빨간 입술도장이 다닥다닥 찍혔고 선희의 하얗고 가는 목에는 돼지기름이 번지르르하게 묻어 있지 않겠는가.
아마 오청룡이 돼지고기점을 받아 먹던 입으로 마구 핥아놓은 자린 것 같았다.
오청룡과 선희는 굉팔의 말상에 비웃음이 세차게 파도치는 것을 눈치챘다. 그제야 서로 장마당이 된 낯빤대기를 마주 쳐다보고 깔깔깔, 키득키득. 수건과 종이로 닦아대느라고 분주했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굉팔은 오청룡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오간부, 오늘 즐겁게 놀았는가요?”
“아, 그래, 명모델아가씨와 술을 마시니 별맛이네. 허허허.”
오청룡은 아직도 열이 식지 않아 선희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굉팔은 선희를 보고 “오늘 수고했소. 이 후에도 종종 오간부를 잘 모시오.”라고 하고나서 오청룡에게 철색낯을 돌렸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선희를 우리 광고회사에 재차 입사시켜 주십시오.”
오청룡은 팔로 선희를 휘감아 안으면서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당장 광고회사에 출근하도록 하오. 리경리, 선희를 귀공주처럼 모시게나.”
“두 말 있겠시우?”
선희는 오청룡의 품 속에 어린애처럼 얼굴을 파묻으면서 칭얼댔다.
“고마워요. 오간부, 아버지처럼 효성을 다해 잘 모실게요.”
그런데 오청룡은 꽉 끌어안았던 선희를 훌 놓았다.
“아니, 아니야.”
“왜?”
선희가 걀죽한 얼굴을 들어 오청룡을 쳐다보면서 입이 뾰로통해했다.
오청룡은 손으로 선희의 얼굴을 살짝 꼬집어 놓았다.
“시체를 따라야지.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아버지가 어떻게 딸을 데리고 놀아?”
“예~ 그런 걸 난 또…”
선희는 새침해졌던 얼굴에 홍조를 띠우면서 해시시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
“하루 부부도 백일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구 말구.”
“제 부탁 하나 들어줄래요?”
“오, 그래. 백개라도 들어주마.”
“절 광고회사 부경리를 시키면 안돼요?”
“아니, 건 좀…”
오청룡은 리굉팔의 눈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금방 내 부탁 백개라도 들어주겠다더니 처음부터 수를 날릴 건가요? 알았어요. 간부들도 우뢰만 울고 비는 내리지 않을 때 있네요.”
선희는 몸을 배배 탈며 입귀까지 씰룩거렸다.
굉팔이 나서서 난처한 국면을 풀어주려고 했다.
”출납원을 하면 어떻소?”
“경리는 왜 못해요?”
선희의 당돌한 물음에 오청룡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요것아, 경리부턴 남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야. 민의측검해야 하고 상부의 비준이 있어야 돼. 선희는 광고회사에서 실적을 쌓은게 없고 소문도 잘못 났어. 민의측검부터 힘들 거야. 괜히 욕심을 부리지 마. 리경리를 잘 협조해 출납이나 하면서 돈이나 많이 챙기는게 제일이지.”
“허수아비 해서 뭘 해? 실리를 따지란 말이야.”
“당신들 매일 술이나 처마시고 아가씨 데리고 놀아도 상부의 고위간부도 되고 경리도 되는데요. 난 왜 못돼요? 세상에 그런 짝 시비도 다 있는가요?”
오청룡과 리굉팔은 모두 입에 빗장을 질렀다.
그때 선희가 어마어마한 최후일격을 가했다.
“내 입이 터지기만 해보지. 저네 간부고 경리고 개낫자루라도 하는가 봐라.”
그 으름장에 오청룡나 리경리나 잔등에 싸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온몸에 소름이 끼쳐 멍하니 선희를 쏘아보았다.
오청룡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래도 굉팔이 머리 뱅글뱅글 빨리도 돌았다.
“자, 따져보오. 그까짓 부경리를 해보았자 허수아비고 실리는 없소. 지금 승호를 보오. 무슨 권리 있소? 아예 출납을 하면서 우리 둘이 광고회사 돈을 쥐락펴락 하면 낫지 않겠소?”
그 말에 선희는 귀가 솔깃해졌다.
“얼리는 건 아니죠?”
“얼리다니? 해연한테 출납을 시켰더니 사업경비도 쓰는 게 눈치 보이지. 잘 됐소. 이제부터 우리 둘이 짜고들어 마음대로 해먹읍세. 좀 좋아?”
“실언하지 마세요. 래일부터 광고회사 출근하는 거죠?”
굉팔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그럼. 두 말 하면 잔소리지. 우리 광고회사 출납원동무. 하하하.”
그는 눈치도 빨랐다. 그때까지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있는 오청룡을 보고 공 들인 탑이 무너질가봐 겁났다.
(괜히 선희 나설 건 뭐야?)
굉팔은 오국장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 이젠 술도 됐으니까. 노래방에 가지요.”
오청룡은 기분이 잡쳐 손사래쳤다.
“됐네, 됐어. 밤도 깊고 피곤한데 집으로 돌아가겠네.”
“그래요?”
굉팔은 오국장이 뜻밖이라는 표정이였다.
그는 선희한테 나무라는 눈길을 보내더니 술상에서 일어나더니 아가씨들과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자리를 떴다.
굉팔은 먼저 선희를 집에 보냈다.
선희는 택시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오청룡 앞에서 가물에 실돌피 같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굉팔을 째려보면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맨물의 거시처럼 굽신거리긴? 네까짓 것들 고와서 웃음 팔고 몸까지 바치는가 해?”
그녀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못된 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기실 그녀는 로씨야에 가서 한국 옷공장 한사장한테 풍덩 빠져 돈은 꽤나 얼려냈다. 한사장은 녀색에 빠져 로씨야 옷공장을 잘 관리하지 못해 수입을 올리지 못한 죄과로 한국 본 회사 회장한테 소환돼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선희를 데리고 가겠다던 한사장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간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더러운 놈, 그저 알몸 빼먹고 꼬리를 빼? 량심없는 색마령감!”
옷공장 사장이 바뀌자 숱한 중국 조선족녀성들의 눈총을 받기 힘들어 선희는 결국 온다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귀국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국내에 돌아와서 또 푸대접을 받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역회사 경리는 그녀가 로씨야옷공장에 가서 일은 며칠 하지 않고 숱한 남성들과 바람을 피웠다는 리유로 로임이 한푼도 없다고 딱 잡아떼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원에 소송해보려고 해도 자기 한 짓이 창피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 이웃도 보기 창피해 원래 살던 집도 팔아버리고 울며 겨자먹기로 근사한 세집을 맡아가지고 홀로 살았다.
우울증에 위병까지 걸린 그는 송준 의사가 위병을 잘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병치료를 다녔다.
송준의 기공안마가 얼마나 온 몸이 시원한지 몰랐다. 더구나 그 가려운데를 슬슬 만져주는 송준의 손놀림이 이상야릇하게 찡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날마다 싶이 송준한테 몸을 내대고 마사지를 받았다.
어느 하루 송준이 한창 배를 만질 때 선희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손을 잡아 자기 하신에 쑥 밀어넣었다. 뒤이어 벌어진 일은 누가 먼저고 후인지 가릴새없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후 그들은 병원이 조용하면 그 짓을 벌렸고 나중에 선희네 집에 가서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일을 벌렸다.
선희는 침구와 기공안마 기술이 높은 송준을 지팽이로 짚고 재차 일어서려고 했다. 그녀는 송준과 위장결혼을 해 한국에 데리고 가서 돈을 벌자고 얼려냈다. 때마침 송준의 본댁이 가스중독에 걸리자 날마다 가만히 언제 죽는가 병원에 가서 령탐했다. 드디여 봉금이 죽자 선희는 로골적으로 위장결론해서 한국에 가 잘 살자고 송준을 들볶아댔다. 그러나 송준은 처가집 눈이 두려워 당장 따라가지 못하고 잠시 애들이 있는 북경으로 피해가서 병을 보기로 했다.
선희는 굉팔을 찾아갔다. 그녀는 굉팔을 주색으로 꾀려고 들었다. 굉팔은 그녀를 실컷 데리고 놀다가 싫증이 나자 오청룡한테 붙여주고 상전의 환심을 사려고 들었다.
선희는 딴 속궁리도 있었다. 그녀는 굉팔의 상전과 색으로 금전 교역을 벌리면서 광고회사의 돈을 마대들이로 집에 메갈 궁리를 했다.
(개 같은 색마들아, 두고 봐라. 네놈들이 날 언제까지 릉욕하고 리용하고 짓밟고 놀아대는가, 내 네놈들을 리용해 얼마나 돈벌이를 하는가 봐라!)
선희가 그런 야심을 품은줄도 모르고 너무나도 소총명한 굉팔은 원 계획대로 밀고나갔다. 2차로 노래방으로 갈 차례다. 이제 3차로 양고기뀀, 4차로 안마방, 5차로 다방 놀음이 줄을 쭉 써서 기다렸다.
아가씨들을 끼고 택시를 잡아타고 노래방으로 달려갈 때다.
오청룡은 굉팔의 귀에 대고 쑤근거렸다.
“이후엔 선희를 데리고 오지 말게나. 그년은 좀 위험해.”
“저도 진짜 가시 돋힌 빨간 장미꽃인줄 몰랐시우.”
굉팔은 아주 쥐도 새고 모르게 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에 사달이 생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해연은 내내 오청룡한테 건너간 돈이 아까워 속을 끙끙 앓았다.
(네놈이 뭐 잘나서 7만원이나 가져가? 광고 하나 물어오지 않고서도 한해에 단통 7만원이나 가져가? 리경리도 너무해. 그 돈을 직원들한테 나눠줬으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어느날 해연은 재무과로 광고비를 바치러 온 성호를 보고 굉팔이 돈 7만원이나 오청룡한테 가져간 일을 슬쩍 내비쳤다.
생각 밖에도 꼬챙이에 꿰들고 벌떡 일어나려니 한 성호가 랭담할줄이야.
성호도 한번 당했기에 다신 해연한테 속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괜히 소용돌이에 잘못 휘감겨들어 곤경을 치를 필요가 있겠는가.
며칠 후 끝내 암암리에 쥐새끼처럼 활동하던 음침한 곳에서 화산이 꽝 폭발하고야 말았다.
광고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반탐오회뢰국에서는 3명으로 구성된 련합조사조를 광고회사에 파견했다.
녀성조사일군은 경리실에 들어서자마자 굉팔과 쌀쌀하게 물었다.
“혹시 총경리 리굉팔 맞지요?”
“예.”
얼굴이 걀죽한 녀성조사일군이 두리모자 채양 밑으로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았다.
굉팔은 속이 뜨끔해나하면서도 태연자약한 척했다.
“출납원 해연 동무를 부르세요. 경제장부와 령수증을 몽땅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굉팔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윽고 해연이 장부와 령수증묶음을 가지고 들어섰다.
그 녀성조사일군은 남성조사일군들과 눈길을 마주쳤다.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으로 도합 7만원이나 준 사실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리굉팔과 출납원은 사살대로 이실직고하오. 만약 허위진술을 하면 법률적책임을 지게 되오.”
굉팔은 청바위처럼 굳어진 표정으로 녀성조사일군을 흘끔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남성조사일군은 옆에서 핸드컴퓨터로 기록하고 미형록음기로 록음하기 시작했다.
“해연 동무는 장부와 령수증을 여기 가져다놓으시오.”
해연은 장부와 령수증을 녀성조사일군 앞에 공손히 가져다놓았다.
“리굉팔, 단마디로 대답하시오. 이 광고회사에서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 7만원을 준 일이 있습니까?”
굉팔은 녀성조사일군을 보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네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 7만원을 준 일이 있습니까?”
“정말 없습니다. 건 사악한 무함입네다.”
굉팔은 딱 잡아뗐다.
“좋습니다. 자기 한 말을 법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예. 책임지겠시우.”
굉팔은 당황해 해연을 슬쩍 눈짓해보았다.
“우린 이 광고회사에서 오청룡한테 7만원을 줬다는 사실을 장악하고 왔습니다.”
녀성조사일군은 리굉팔 앞에 빨간 도장집을 내밀었다.
“여기 지장을 찍고 싸인하십시오.”
굉팔은 뭔가고 들여다보고나서 싸인과 지장을 마치고 파지에 손가락에 묻은 뻘건 도장집을 쓱쓱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떤 놈이 우릴 물어먹었단 말입니까? 억울합니다.”
그는 고의로 “우리”에 어조를 강하게 높이면서 해연을 건너다보았다.
“굉팔 경리는 나가서 잘 생각해보십시오. 나중에 다시 찾겠습니다.”
굉팔이 두덜거리며 나가자 이번에는 남성조사일군이 입을 열었다.
“해연이, 이제 장부를 뒤져보면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오.”
뜻밖에 해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더 물을 필요없습니다. 확실히 리경리가 오청룡 국장한테 새 집을 샀다고 광고회사의 돈2만원을 내갔습니다. 일주일 전에도 장식비로 주겠다고 5만원을 더 내갔습니다. 장부에 기록이 다 있습니다.”
“좋소.”
남녀 조사일군은 장부를 들춰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령수증에는 리굉팔 경리의 싸인도 있습니다.”
조사일군들이 령수증을 들춰보니 확실히 마구 갈겨쓴 리굉팔의 싸인이 있었다. 제보신의 내용은 몽땅 사실이였다. 더구나 손님접대비용이 엄청 많이 들어간 것에 놀랐다. 년간광고총수입이 35만원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광고회사에서 각종 손님접대비용이 무려 5만원에 사업경비 7만원이나 되였다. 모든 건 빤했다. 리굉팔은 상부 간부인 오청룡에게 돈을 주고 경리직을 산 후 광고수입을 속여 바치고 탐오했다.
남성조사일군은 억이 막혔다.
“물증, 인증이 다 있는데도 탄백하지 않는단 말이오. 리경리는 진짜 철면피한 작자로군. 흥! ”
“딱 잡아떼는 걸 보오? 얼마나 신통한가?”
녀성조사일군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여기 리승호 부총경리와 성호선생이 있지요?”
“녜.”
해연은 놀랐다.
여기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는가.
“먼저 승호 부총경리를 부르랍니까?”
“아니, 필요없습니다.”
조사일군들은 리굉팔을 재차 불러 한바탕 족따지더니 장부와 령수증을 가지고 돌아갔다.
승호와 성호는 열어놓은 사무실문 앞을 지나가는 남녀 조사일군을 내다보다가 자기 눈을 믿지 못했다. 뒤따라나가 복도를 내다보았다. 별로 눈에 익었다.
승호와 성호는 깜짝 놀라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을 번했다.
“은영이!”
그날 승호와 성호는 온종일 사무실에서 까딱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사태의 발전을 주시했다.
굉팔과 오청룡은 불도가니우서 바글거리는 개미들처럼 안전부절하지 못했다.
처음 굉팔한테서 전화를 받은 오청룡은 깜짝 놀라 식은 땀을 쫙 흘렸다. 그러나 그는 인차 침착성과 랭정을 회복했고 이윽고 굉팔한테 묘수를 알려주었다.
“굉팔이, 근심하지 말게. 이제 금방 장식하다나니 광고회사에서 꾼 돈 말이요. 만원도 쓰지도 못했네. 되가져다 바치면 다요.”
“예? 광고회사에서 꿨다고요?”
“그래, 바보라고야. 집을 금방 사고 장식할 돈이 없어서 꿔 쓴게 무슨 죄란 말이요? 인차 갚으면 다지. 허허허. 안 그래?”
굉팔은 오청룡의 로련함에 감탄했다. 진짜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예- 알았습니다. 간이 다 떨어질 번했지. 하하하.”
굉팔은 시름을 활 놓으면서 핸드폰을 꺼버렸다.
갑자기 그는 핸드폰을 또 쳤다.
“여보십시오. 지도자, 집을 살 때 돈 2만원은 어떻게 합니까?”
“이제 내 돈이 있을 때 갚을게. 먼저 리경리 대게나. 강산이 살아있는 한 땔나무를 걱정할게 있는가?”
“예? 오. 그래. 그렇죠. 강산이 살아있는 한 내가 왜 땔나무걱정을 하겠습니까? 이 후에도 많이 보살펴주십시오.”
“그럼, 더 여부가 있나? 사람이, 융통성이 업게 놀지 말라구.”
굉팔은 오청룡한테 장식비로 가져간 돈 4만원을 달라고 하자다가 마음이 아픈대로 그만두었다.
“개놈 새끼, 남은 똥줄이 나가는 판에 4만원을 꿀꺽 삼키고 수염을 쓱 씃으려고? 흥! 진짜 엉큼한 독종이구나. 여태껏 아주 로련하게 한바탕 해먹고 그물에서 스리슬쩍 빠져나간 뱀이로구나.”
그는 오청룡를 한바탕 욕하다가 달리 생각해보았다.
(어떤 독종인가? 그 놈한테서 4만원 떼운 셈치고 경리직만 지키면 돼. 그때면 4만원이겠나? 40만, 아니야. 400만, 4000만도 해먹을 수 있지.”
“개자식, 무슨 아까운 내 돈으로 네 놈 밑구멍을 씃어?”
그는 한참이나 우멍눈을 떼굴떼굴 굴리더니 “으흐흐흐.” 하고 음흉한 표정으로 징글스레 웃었다.
굉팔은 마음이 아픈대로 자기 염채기에 걷어넣었던 두 묶음에 6만원이나 여기저기 달아다니면서 얻어다 보태 7만원을 만들었다.
그는 돈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 재무과의 해연한테 찾아갔다.
해연은 굉팔이 척 내놓는 돈묶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뭔가요?”
굉팔은 간교하게 웃었다.
“해연이, 오청룡이 꿔간 돈을 몽땅 갚았소. 꿔 간게 무슨 죈가?”
해연은 어리둥절했다.
“꿔갔다고? 언제 꿔간다고 했는가요? 장식에 쓰라고 주지 않았는가요?”
굉팔은 이발로 입술을 사려물고 무섭게 쏘아보았다.
“해연이, 남의 엉덩이를 너무 들추면 개똥 밖에 차려질게 없다는 걸 기억해두라구.”
“무슨 말인가요?”
“자기 해놓은 짓 자기 더 잘 알잖아?”
굉팔과 오청룡의 로련한 수작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길을 남기려고 해연도 껍데기를 벗어놓고 몸을 살짝 빼야 했다.
해연은 머리를 숙였다 천천히 들었다.
“누가 제보했다던가요?”
굉팔은 건방지게 해연의 사무상에 덜러덩 올라앉아 지껄였다.
“능청을 떨지 마시라요. 오청룡한테 돈을 준 사실을 나와 제 내놓고 누가 알어? 아직도 가랑잎을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 할 작정인가?!”
굉팔은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쳤다. 그 바람에 사무상 유리마저 박산났다. 굉팔의 주먹에서 뻘 건 피가 주르르 흘렀다.
“광고회사에 남아있을줄 알어?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래?”
“아, 다 제 잘못인데요.”
해연은 해시시 웃어보이면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또 남을 물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오청룡한테 돈을 너무 많이 쓰는게 아까왔던 거죠. 그게면 우리 직원들이 몇만원씩 나눠 먹겠는데 말이죠. 그래 성호와 승호한테 그만 말했던 거죠. 혹시 걔들이 고발한 건 아닐가요?”
“엉?”
굉팔의 우멍한 눈확에서 허연 눈자위가 떼루룩떼루룩 굴렀다.
“이번에도 그 개새끼들이란 말인가?”
“아니예요.”
“아니라고? 흥!”
굉팔은 우멍눈으로 해연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해연이, 거짓말 하지 마라우. 전번에도 가정분란이 생겼을 때 오청룡과 말해서 보호했던 거야. 믿고 출납원도 시켰고. 넌 지금 내 엉뎅이 밑에 500와트 전등불을 켜놓았지 뭐야. 전번에 민의측검 때도 네가 성호랑 부추겨서 날 물어뜯은 걸 다 알고 있어.”
“생사람을 잡지 마세요.”
해연은 돈뭉치를 가방에 넣어 메고 나가려고 했다.
“잠간! 여기 돈 받았다는 싸인이나 해놓고 가라!”
해연이 령수증에 싸인하고 나가려는데 굉팔이 팔을 뻗쳐 막았다.
“왜 이래요? 홀로 사는 아녀자라고 업신여기지 말아요? 생사람을 잡아도 한심하구만요.”
굉팔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생사람을 잡아? 그럼 언제 록음해놓은 걸 감상해볼가? 난 항상 미형도청기를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버릇이 있어. 알겠나? 이 바보들아.”
순간 이발을 사려물며 쏘아보는 굉팔이 괴물로, 악마로 둔갑한 것 같았다.
“진짜 특무정치군요.”
(악마 같은 놈, 이번에 법망에서 빠져나갈지 몰라도 언젠가는 잘 되는가 봐라.)
해연은 쌍까풀눈이 실눈으로 돼 흘겨보면서 나가려고 했다.
굉팔의 줄욕이 흘러나왔다.
“그래, 난 특무, 넌 배신자야. 세상물정도 모르는 바보!”
“그래요. 난 바보죠. 선희랑 끌어들여 출납원을 시키고 콱 해먹으세요. 흥!”
해연은 돈가방을 들고 문을 쾅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굉팔은 한숨을 길게 몰아내쉬였다.
한차례 폭풍우, 아니, 태풍은 잠잠해졌다.
상부에서는 오청룡은 확실히 광고회사 돈을 꿔갔다고 결론지었다. 오청룡과 리굉팔은 집체의 돈을 람용한 문제로 엄중경고처분을 받았다.
굉팔은 져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누가 물었을가고 복수의 이발을 쁙쁙 갈았다.
61.고민
가을의 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았건만 성호의 마음은 무겁고 갑갑하기만 했다.
택시업을 한지도 어언간 1년이 거의 돼갔다. 그간 속인들 얼마나 태웠던가.
택시를 사느라고 맡은 대부금은 10달만에 본전에 리자까지4만 5천원을 다 갚았다. 그런데 매형의 출국수속비 때문에 불시에 둘러맞춘 봉금이네 돈 1만 6천원을 채 갚지 못했다.
금방 넷째누나를 잃어 마음이 아픈데 송준이 어찌나 빚재촉이 성화 같은지 마음이 상했다. 이젠 조카까지 내세워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뚝 떼고 들어와 빚재촉을 하게 했다.
(개자식, 누나 장례날엔 대가리도 내밀지 않더니 빛재촉은 성화같네. 송준은 진짜 빚까지 받아가지고 갈보년을 끼고 한국으로 뺑소니칠 작정인가?)
성호는 시끄러워서 송준의 조카를 보고 말했다.
“얘, 빚을 꼭 갚을테니 근심하지 말라고 전해라.”
조카가 한심하게 물었다.
“택시업을 해서 달마다 숱한 돈을 벌면서 왜 빚부터 갚지 않아요?”
성호는 너무 한심해 도리머리를 홰홰 돌리기까지 했다.
“얘, 어째 누나가 사망하니 외삼촌을 믿지 못하니? 이제껏 고리대와 대부금을 무느라고 너네 돈을 갚지 못한 거야.”
“그럼 달마다 얼마씩 갚을 수 있어요?”
“사고만 나지 않으면 한달에 5천원씩 갚을 수 있을 거야.”
그제야 조카는 해시시 웃었다.
“신용을 지켜요. 그 돈으로 근봉이 대학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 난 남의 빚을 지고선 바늘방석에 앉은 거 같아 못 살아. 어째 누나가 사망하니 너네마저 이래? 날 믿지 못해? 참말 섭섭하구나.”
영희도 지나친 감이 들었는 모양.
“미안해요. 외삼촌, 아버지가 저희들이 공부하는 북경으로 갈 예산인가 봐요. 언제 돈 받으러 여기까지 또 오겠어요?”
성호도 떠나가는 조카들한테 돈 한푼 줘 보내지 못해 죽을 죄나 진 것처럼 미안했다.
“그래? 어째 그 갈보년을 끼고 한국에 가지 않는다니?”
성호가 정색하자 송준의 조카가 옆에서 떠들어댔다.
“우리 삼촌 모욕하지 마세요.”
성호는 송준의 조카 거친 말에 기분이 상했다.
“야, 숙모 세상떠도 장례식에도 대갈통 하나 내밀지 않더니 빚재촉엔 급선봉이구나.”
그는 툭 쏴주려다가 참고 그만두었다.
정희는 영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기 민망했다.
그때 때마침 준식이 그날 밤에 택시를 몰아 번 돈 200원을 바치려고 들어왔다.
성호는 그 돈을 영희 손에 쥐워줘 보냈다.
식전부터 빚재촉을 받은 성호는 스트레스를 받아 한참 침대 우에 훌렁 드러누워 있었다.
설상가상 단위에 나가서도 굉팔의 혹독한 질책을 받을줄은 몰랐다.
굉팔은 전번 사건을 두고 성호를 의심했다.
굉팔은 온 낯의 철색근육을 청어름덩이처럼 떵떵 굳힌 채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일장 훈계를 시작했다.
“요즘 택시업을 해 엄청 번다면서?”
“?”
“왜 대답 안해?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성호는 그저 덤덤히 앉아 듣기만 했다.
“뭐야? 왜 택시를 영업해 숱한 돈 벌면서 단위 광고는 제대로 안해? 전번에 사무실에서 광고문묶음이 잃어졌어. 네 훔쳐갔지?”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과외시간에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지난해 제가 혼자 15만원을 올렸으면 안됩니까? 생사람을 작작 잡소. 또 광고문묶음을 가져다 새 광고문을 작성하는데 참고했는데 어찌 훔쳤다고 할 수 있습니까?”
“뭐라고? 왜 나한테 말하지도 않고 가져갔어? 도적질 아니고 뭔가?”
“광고문을 훔쳐 뭘 하겠습니까? 그게 돈입니까? 사람을 억울하게 굴지 마십시오.”
“허허허. 돈이든 뭐든 단위 지도자의 허락도 없이 가져간 건 절도행위야!”
성호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진짜 남을 무함해도 한두가지 아니구만! 흥!”
그가 입을 닫자 굉팔은 별 지껄이를 다 했다.
“널 생각해 술공장광고랑 맡겼지.”
(쳇, 고양이 쥐 생각을 했어?)
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리경리, 기실 리경리는 지금 광고 가운데서 노란자위를 다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의료광고는 상대적으로 많고 얻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업광고는 어렵습니다. 광고 내자는 공장이 어디 몇개 있습니까? 세살짜리 앤가 하지 마오.”
굉팔은 사팔뜨기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성호를 쏘아보다가 “허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자식, 아직 세상 몰라도 한창 모르는군. 사람이란 누구나 다다소소 흑심이 있어. 사심과 흑심이 반죽돼 만든 게 사람이야.”
(그래. 탐욕으로 빚어 만든 놈.)
“사심은 무한한 야망을 낳고 야망은 또 권세욕을 낳는 거야. 그 야망을 채우기 위해 권세욕이 생겨. 권리는 또 야망을 채워주는 거야.”
성호는 굉팔을 그저 무식하지만 가수로만 본 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리경리,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왕청 같은 걸 트집잡지 마십시오.”
굉팔은 사무상을 꽝 내리쳤다.
“야, 이 새끼야, 내 앞에서 작작 요사하게 놀아!”
“누가 아쨌단 말인가?!”
성호도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굉팔은 힘으로야 성호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지못해 헤벌쭉 웃으며 앉으라고 손시늉했다.
“조용히 말하자.”
성호도 너무한 것 같아 도로 자리에 앉았다.
“한가지 물어보자.”
성호는 눈을 똑바로 뜨고 굉팔의 나풀거리는 얇은 입술을 쏘아보았다.
“전번에 누가 고발했어?”
“뭘 말입니까?”
“오청룡한테 장식비로 4만원을 뀌워준 일 말이야.”
“예? 4만원이나?!”
성호는 놀란 체했다.
“시치미를 따지 말고 말해 봐. 누가 고발했어? 네 한 거 맞지?”
성호는 바로앉으면서 억울해했다.
“좀 이러지 마십시오. 금시초문입니다.”
그는 이쯤 대답하고 말려다가 또 입을 열었다.
“리경리, 누가 고발했는가를 조사하기보다 자기 처사부터 옳은가 살펴보십시오. 광고회사 책임자라고 집체 돈을 마구 뀌워주는 건 틀렸습니다.”
굉팔의 우멍눈에서 이상한 빛이 서리발쳤다.
“틀림없구나. 네놈이지?”
성호도 언성을 높였다.
“시비는 분명해야 합니다. 집체 돈을 준 건 잘못입니다. 잘했으면 전번에 상부의 엄중경고처분을 받았겠습니까?!”
“알았다. 알았어. 네 놈 잘되는가 어디 두고 보자!”
성호는 랭소하면서 자리를 뜨며 한마디 했다.
“경리느라고 너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욕심을 너무 부리면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게 될 겁니다. 언제 덫에 치울줄도 모릅니다. 명심하십시오.”
꽝!
굉팔이 유리재떨이를 땅바닥에 메쳤다.
“개새끼!”
굉팔은 큰소리는 쳤지만 속은 꽁꽁 얼었다.
(승호는 내 자리를 노리고 성호는 우둔한 소새끼처럼 뜨지. 해연은 꼬물거리면서 딱딱 마주서지. 어떻게 하지?)
그는 한시 급히 선희를 데려다 앉혀야 했다.
한편 승호는 성호를 찾아가 답답한 술이라도 마시려고 했다.
성호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저녁에 공원 부근에 있는 선녀음식점으로 갔다.
“어마나,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요?”
선화가 함박꽃웃음을 꽃피으며 아양을 떨었다.
성호는 선화의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건넸다.
“영업이 잘 되오?”
선화는 승호한테도 손을 맡기면서 부산을 피웠다.
“아이유, 두 분 다 멋져. 어쩜 진짜 쌍둥이 같네요.”
그녀는 아가씨들을 돌아보며 목청을 돋우었다.
“얘들아, 귀빈들을 안방으로 모셔라.”
아가씨들이 고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달려와서 성호와 승회를 조용한 안방으로 모셔갔다.
그들 둘은 개고기 둬 접시를 마주해 앉아 묵묵히 애꿎은 소주만 한잔, 두잔 축냈다.
술이 서너순배 돌자 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누구 때문에 터진 거 같니?”
“몰라.”
“진짜?”
“응.”
승호는 성호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소주잔을 내밀었다.
“우리 좀 진지하게 말해보자. 이대로 가만 있다간 굉팔한테 다 쫓겨나겠어.”
성호는 입에 빗장을 지른채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오후에 굉팔이 찾더구나. 내 고발했는가 캐묻더라.”
“제보편지를 썼니?”
성호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럴 땔수록 침착하고 랭정해야 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지금 굉팔은 오청룡한테 딱 들어붙어 권력을 람용하고 있단 말이야. 해연한테서 다 들었어. 제보해 봤자 증거도 없이 이길 수 있니? 괜히 무함했다고 똥바가지나 들썼지?”
승호의 로련함에 성호는 놀랐다.
(정치후각이 예민한 자식.)
“또 굉팔한테 덤벼들어 승산이 있니?”
성호는 피씩 코웃음쳤다.
승호는 자신만만했다.
“승산이 있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성호는 반신반의했다.
“어떻게?”
승호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그물에서 빠져나간 굉팔은 꼭 더 크게 해먹으려고 할 거야. 굉팔이 선희를 출납원으로 들여온다더라. 굉팔은 선희하구 짜고들어 한바탕 해먹으려는 속셈이 아니고 뭐냐? 명확한 증거를 잡기만 하면 굉팔은 감옥에 가야 해.”
성호는 손사래를 쳤다.
“진짜 고향에서 소궁둥이를 치면 쳤지. 시내에 들어와 살기 싫다. 서로 물고 뜯고 뒤통수를 치고. 딱 질색이야, 질색. 제 앞에 차례진 광고나 할 게지. 굉팔과 싸워 뭘 하니? 네랑 굉팔이랑 똑같이 눈꼴 사납다. 왜 광고는 하지 않고 사람잡이를 해?”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낸들 정치를 하고 싶어 해? 생존하려면 눈 앞의 정치야 해야잖겠니?”
그는 성호 코 앞에 대고 저가락으로 삿대질하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웠다.
“봐라. 굉팔이 지금 무슨 궁리하는지 아니? 우릴 다 쫓아내고 대신 림시공을 끌어들일 예산이야. 림시공들은 그저 주는 밥이나 먹고 우리처럼 눈을 밝히지 않을게 아니고 뭐냐? 굉팔은 오청룡을 등에 업고 선희와 짜고들어 집체 돈을 뜯어내 부화타락한 향수를 할 거야. 그래, 우리 대학졸업생들이 그까짓 나부랭이한테 당하고 말겠어?”
“똥이 더러워 피하지 무서워 피해?”
승호는 생긴 것과는 달리 나약한 성호가 리해되지 않았다.
“건 현실도피주의 졸장부 론리야. 피할 땐 피해야지만 싸워야 할 땐 싸워야 해.”
성호는 한참 궁리하다가 술잔을 내밀었다.
“자, 밤도 깊었으니 이 잔이나 마시고 일어서자.”
그들은 답답한 술 한병 굽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단합해서 부패분자 굉팔과 해보자. 네가 은영을 동원해보렴.”
성호는 마지못해 승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성호는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여보, 요즘 무슨 일이 있는가요?”
정희가 모로 돌아눕더니 성호 허리를 꼭 끌어안고 품 속에 머리를 파묻으면서 물었다.
“아니, 일은 무슨 일?”
성호는 정희의 얼굴을 슬쩍 밀어내며 돌아누웠다.
정희는 성호를 돌려눕혀놓고 어글어글한 외까풀눈으로 빤히 들여다보았다.
“또 연화가 무슨 일이 있어요? 이젠 사처에 정을 줄줄 흘리면서 살지 말아요. 당신은 그저 나만 보고 살아야 해요.”
성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씨무룩이 웃었다.
“그래, 그러지. 그러나 실련의 고통 속에서 당장 자살할 거 같은 학생을 내버려둘 순 없잖소?”
“너무 지나치면 안되죠.”
“그래, 연화 대상을 물색해놓았소?”
“맞갖은 대상이 없어요. 무슨 일이 그리 답답해요?”
성호는 정희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광고도 잘 되잖지. 택시업도 여름이 되니 잘 되잖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내에서 살기 힘들어 고향 마을에 자꾸 돌아가겠다지? 이러구서야 어떻게 부모를 잘 모시겠소? 언제 돈을 모아 넓은 아빠트를 사구 아들 보겠소?”
정희는 성호의 얼굴을 살살 매만지면서 종알거렸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 뭘 해요? 딸이 있으면 됐지.”
성호는 화나서 정희를 활 밀어놓았다.
“우리 집 안에 당장 대 끊어지게 됐소. 큰형님네 아들들을 보오. 다 딸을 낳지 않았소? 둘째는 농학원 녀대생한테 실련당해 다신 장가를 가지 않겠다오. 민정국 회계마저 팽개치고 고향에 돌아왔지. 셌재는 딸을 둘이나 줄줄 낳지 않았소? 이젠 대를 이을 집은 우리 밖에 없단 말이요.”
“우리 뭐 대나 잇는 기계인가요? 딸 하나 키워도 남부럽잖게 먹이고 입히면 되지.”
“자식들도 형제가 있으면 좋지.”
정희는 일어나 앉아 성도 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형제 있으면 어떻고 대를 이으면 어떻습니까? 보세요. 동무네 형제가 아무리 많아도 부모가 앓아도 누가 나서는가요? 돈을 한번 가져다주면 끝이잖아요? 그런 형제는 열이 아니라 백이라도 쓸데 없어요. 딸 하나라도 효성을 가르쳐 효녀로 키우면 도리깨아들보다 나아요.”
성호는 정희 말을 들을 수록 신경질이 났다.
“자사자리한 소릴 작작 하오. 바로 그런 속셈으로 숱한 구실을 댔소? ‘아빠트도 큰 거 사내라’, ‘10만원 저금 있어야 된다’. 이것저것 조건부를 내걸면서 애를 낳지 않는게지.”
“그래요. 아빠트 없어도 애를 낳을 수야 있지요. 고생시킬 거면 낳아서 뭘 해요?”
성호는 성이 났다. 하지만 건너방에서 마른 기침을 깇는 아버지가 어려워 그만두고 그저 랭가슴을 앓았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다가 침대에 훌 들어누웠다.
며칠 후 더 골치아픈 일이 벌어졌다.
준식은 10킬로메터나 떨어진 교외에서 왕복통근하면서 밤에 택시를 몰았다. 비록 대학의 통근차를 타기에 교통비는 많이 들지 않았지만 날마다 밤에 택시를 몰고 곤한데다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처이모가 아들이 아까와 어찌나 고충을 들이대는지 골치거리였다.
성호는 궁리하다 못해 정희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여보, 준식을 우리 집에 데려오면 어떻소?”
정희는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맙습니다. 뒤방에는 부모가 계시지 이 비좁은 방에 보초군을 두고 불편해서 살 만합니까? ”
성호는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불편한대로 어쩌겠소? 택시업을 하자면 고만한 불편이야 견뎌야지.”
정희는 성호의 코를 살짝 꼬집어놓았다.
“말이 쉽지 한달이나 견디겠어요? 호호호. 동문 하루에 세번씩이나 장마당을 벌리잖아요. 하루를 건너도 못견디면서?”
“택시업을 하자면 그런 것쯤이야 꾹 참아야지. 어쩌오?”
“정 그러면 준식을 데려오세요. 걔야 편리하지.”
이튿날로 성호는 준식을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준식이 밤에 택시 몰러 나갈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승복이 밤에 몰겠다고 하는 바람에 부득불 준식이 낮에 몰게 되였다.
그후부터 성호와 정희는 세상 고해를 겪어야 했다.
삽십대 후반인 성호는 9평방메터도 되나마나한 방에서 침대 우의 준식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숨을 딱 죽이고 살아야 했다.
성호가 이불 밑에서 달려들기만 하면 정희는 뒤발로 마구 차버렸다.
그녀는 이불을 들쓰고 숨을 딱 죽인채 입을 성호의 귀에 대고 모기 우는 소리만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주책 있어요. 다 큰 애를 한 구들에 두고 뭔가요?”
성호도 이불 밑에서 나직이 쑤근거렸다.
“까딱 소리를 내지 말고 가만 있소. 순식간에 해결할게.”
“그만두세요. 래일 점심에 집이 빈 다음 올게. 꾹 참으세요.”
“야, 못 참겠는 거 어쩌오?”
정희는 성호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아들을 보려면 요만한 거 참아야죠.”
“야, 이게 어디 살겠소?”
그때 코를 골던 준식이 뚝 멈췄다. 깨난 것 같았다.
정희는 성호를 훌 밀어놓았다.
그제야 성호는 후- 한숨을 길게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이윽하여 그는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집의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성호는 저녁에 집의 택시 운전수들인 처남 준식이나 매형 승복한테서 전화가 오는 것이 제일 싫었다.
벌떡 일어난 성호는 황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야, 또 무슨 일이 생겼니? 응? 아이구, 그걸 어쩌니? 차를 좀 조심해 몰아야지. 그게 뭐냐?”
성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게 어디메냐? 뭐? 철남이라구? 철남 어디메냐? 주유소부근이라구? 응, 인차 갈게.”
성호는 전등불을 찰칵 켜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정희도 당황해 벌떡 일어났다.
“큰 사고를 쳤답니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답니까?”
“양, 주정뱅이운전수한테 치웠다는구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요.”
그제야 정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성호는 바깥에 나가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철남 주유소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사고 현지에 가보니 웬 청년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준식에게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호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주정뱅이를 말리고나서 교통경찰대대에 신고했다.
허연 라다표택시에 꼬리를 치운 빨간 택시를 들여다보던 성호는 그만 풀썩 물앉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치웠는지 택시 꼬리가 뭉청 우그러들어 볼품 없이 되지 않았겠는가.
어진 준식은 매형한테 미안해 머리를 숙였다.
주정뱅이운전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적반하장격으로 또 준식의 멱살을 틀어쥐고 행패를 부렸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앞에서 피했더라면 우리 차 마사 안졌지.”
“뒤에서 치고서도 무슨 소리요?”
이때 교통경찰이 달려왔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치다니?”
“뭐라고?”
술에 취한 주정뱅이운전수는 비틀거리면서 교통경찰한테도 주먹을 쳐들었다.
성이 꼭뒤까지 치민 교통경찰은 단통 무쇠주먹으로 반격했다. 그 자는 허망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호는 엉망진창이 된 택시를 보고 무릎을 풀썩 꿇고 물앉았다. 정신마저 흐리멍텅해졌다.
“뭘 하오? 주정뱅이 행패를 부리는데 그저 구경만 하다니? 정의감이 있소? 없소?”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성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술에 취한 운전수를 활 밀쳐놓았다.
“야, 네가 처놓고서도 큰소리야?!”
성호가 사납게 나오자 주정뱅이운전수도 정신을 좀 차렸는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뒤걸음질쳤다.
“래일 술 깬 다음 보자.”
성호가 으르렁거리자 그쪽 주인이 운전수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교통경찰은 몽땅 뒤차 운전수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쌍방 운전수는 래일 교통경찰대대에 오라고 했다.
성호는 택시업을 하면서 별의별 사고를 다 당해보았다.
한번은 외사촌매부 승복이 택시를 몰고 어떤 마을로 갔다가 건달들한테 당했다.
마을의 건달들이 몽둥이와 식칼을 휘두르면서 길목을 막고 택시문을 걷어차 마사놓았다. 승복은 택시를 몰고 꿰뚫고 나가다가 혹시 택시 유리라도 마사질가 봐 온 오후 마을 뒤산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다.
열통이 번져진 성호는 승복과 준식을 데리고 택시를 몰고 그 마을로 달려갔다.
성호는 마을을 서캐 훑듯 훑었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마을 십자길목에서 건달들과 딱 마주쳤다.
“저 새기들이요.”
성호는 택시에서 내려 스적스적 다가갔다.
“이게 어제 왔던 택시 아니야.”
“맞아, 돈을 뺏자!”
건달들은 성호를 손님인가 오해하고 몽둥이를 들고 승복한테로 덮쳐갔다.
그때다. 성호가 발끝으로 부랑배 다리를 걸어 쓰러뜨렸다.
“썩어지지 못해?!”
건달들이 우르르 성호한테 덮쳐들어 몽둥이를 휘둘렀다.
저걸 보라.
성호가 허망 자세를 낮추면서 비자루로 땅바닥을 쓸듯 발발닥을 땅바닥에 대고 다리를 한고패 씽- 돌렸다. 땅바닥에서 먼지가 새뽀얗게 일더니 세 건달은 제 힘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놈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성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뜀각질하면서 대가리를 걷어찼다. 건달들은 손쓸 새도 없이 면상이 쥐마당이 돼 땅바닥에서 뗄뗄 구을었다.
“당장 배상하지 못해?!”
성호가 호랑이처럼 호통쳤다.
건달들은 몽둥이를 버리고 벌벌 기여일어나더니 “와-야-” 하고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서라!”
성호가 몸을 날려 그 놈들 앞에 날아내리면서 뒤발로 면상을 차넘겼다.
“아이쿠!”
“사람 살리오!”
그 놈들은 성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언감 내 택시를 건드려?!”
“다신 안 그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때 저쪽까지 도망쳤던 나머지 건달이 울바자 뒤에 숨어 이쪽을 흘끔거렸다.
성호는 발로 쓰러진 놈의 잔등을 밟고 서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저 새끼들 보고 돈을 가져오라고 해라!”
“예, 예, 예.”
그 자는 성호의 발 밑에서 간신히 대가리를 쳐들고 죽는 상하며 소리쳤다.
“얘들아, 돈을 가져오라!”
저 쪽의 건달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기다려도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성호와 준식은 건달의 팔을 뒤로 비틀어쥐고 그 자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때 문이 벌칵 열렸다.
한 사내가 시퍼런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
“놓지 못해?!”
성호는 건달을 사내한테 쾅 밀어놓았다. 그는 씽 달려나가더니 뒤쫓아오는 사내 머리 우로 씽 날아넘어가면서 뒤발로 뒤골을 걷어찼다. 사내는 칼을 잡은 채 동생과 함께 땅바닥에 코방아를 찧었다.
성호는 바람벽으로 탕탕탕 평지처럼 달려올라갔다. 뒤이어 초가집 추녀를 뒤발로 걷어차며 쓰러진 건달 형제 우에 공중잡이로 날아내렸다. 무릎으로 아래배를 꽝 짓쫗았다.
“아이쿠!”
하나는 아래배를, 하나는 옆구리를 붙안고 땅바닥에서 댈댈 굴렀다.
“배상하지 않고 견딜 같애?”
마을의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며 혀를 끌끌 찼다. 준식과 승복도 성호가 그렇게 날랜 걸 처음 보는지라 눈까지 치떴다.
그때 집 안에서 어미 돼보이는 녀인이 손에 50원짜리 지페 다섯장을 쥐고 나와 비난사정했다.
“안됐습구마. 택시를 마스다니? 이걸 가지고 용서해줍소.”
성호는 돈을 받아쥐고 호통쳤다.
“다시 우리 집 운전수를 위협해 봐라. 용서하지 않을 테야!”
성호는 주먹으로 바람벽을 꽝 쳤다. 바람벽에 구멍이 풀렁 뚫리면서 먼지가 우스스 흩날렸다.
모두들 경악했다. 성호는 주먹을 구멍에서 빼 툭툭 터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날 승복이 차를 몰고 송하로 갔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족처녀애가 택시 문고리에 핸들이 걸리는 바람에 허망 넘어져 무릎을 벗겼다.
그 한족처녀애는 사고처리를 담당한 교통경찰의 중학교 때 담임교원의 딸이였다. 은사의 딸이 무릎을 벗긴 것을 보고 교통경찰은 교통법규와는 달리 사고책임을 몽땅 승복한테 들씌웠다. 원래 주요 책임은 승복한테 있었지만 차요책임은 그 한족처녀한테도 있었다. 한족처녀는 굽인돌이에서 속도를 제때에 죽이지 못해 기동차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성호는 외지에 와서 시비를 따지다나면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것 같지 못해 그만두었다. 대신 보험회사에서 제대로 배상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승복은 택시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성호가 시비를 하지 않았기에 한족처녀의 신랑감한테 귀썀을 맞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후 며칠 되도록 택시를 몰러 오지도 않았다.
성호가 집에 찾아가자 승복은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귀쌈을 맞은게 귀 아파 택시를 몰지 못하겠소.”
성호는 참다못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좋소. 몰지 마오. 매부 몰지 않으면 몰 사람이 없을 거 같소? 키를 내놓소.”
외사촌녀동생 송숙이 애원했다.
“오빠, 저 나그네를 계속 몰게 하오. 저 나그네 차를 몰지 않으면 우리 다섯식구는 뭘 먹고 살라오?”
송숙은 성호보다 한살 어렸는데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다나니 정이 폭 든 녀동생이였다.
성호는 꼭뒤까지 치미는 성을 가라앉히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승복이 키를 활 내팽개치면서 두덜거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콱 가져가오. 처남네 차를 몰지 않으면 몰 택시 없을 거 같소?”
자존심이 면도칼날 같은 성호는 뒤통수에 된방매를 맞은 것 같았다.
송숙은 성호의 팔에 매달리면서 비난사정했다.
“저 나그네 한족간나새끼한테 귀쌈을 맞은 게 분해 그러오. 오빠, 한번만 참소.”
“그래, 형제간에 고만한 거야 리해 못하겠니?”
“당장 가오! 형제 의리도 없는게. 매부 자존심이 꺾이게 얻어맞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다니? 그 드센 무쇠주먹을 뒀다가 뭘 하오?”
성호는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해석했다.
“매부, 교통대대에 가서 주먹을 휘두를 일이 아니잖소? 내라고 자존심이 없어 그랬겠소? 주요 책임이 우리한테 있다고 판결을 내린 이상 뒤집기 힘든 판에 어쩌겠소?”
“당신 같은 보스를 믿고 누가 택시를 몰겠소?”
성호는 승복을 위로하려고 “매부, 우리 가서 술이나 한잔 마실가?” 하고 잡아 끌며 일어났다.
승복은 손을 홱 뿌리쳤다.
“됐소, 돼. 굶어죽어도 처남네 차를 몰지 않겠소.”
“이 나그네, 왜 이래? 그 한족간나새끼와 해내지 못하고 오빠와 왜 이러오? 진짜 시어머니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오.”
“뭐라고?”
찰싹!
승복은 송숙의 뺨을 한대 갈겼다.
성호는 50원짜리 지페 여섯장이나 꺼내 손바닥에 쥐여주면서 승복을 구슬리려고 들었다.
“매부, 내 잘못했소. 이걸로 술이나 사 마시고 다시 잘 생각해보오."
성호는 가정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 미안해 집으로 돌아왔다.
승복은 그 일이 속으로 내내 좋지 않아 비좁은 속에 앙금이 들어찬 것 같았다.
성호는 승복이 며칠 후에 택시를 몰겠다고 찾아오자 기꺼이 키를 내주었다.
승복은 그날 택시를 몰고 나간 후 해 넘어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속이 탄 나머지 성호가 여러번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았다.
“강도라도 만나지 않았을가?”
정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근심했다.
“재수 없이 녀편네들이 불길한 말 하지 마오.”
벽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는데도 택시고 사람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성호는 부득불 여러 시, 현 교통경찰대대에 신고했다.
한참 후 송하 교통대대 왕교도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교통관리소 통과차량기록을 들춰보니 오늘 오후 6시쯤에 확실히 그 택시가 우리 시내를 벗어나려고 왔댔습니다. 당시 교통경찰은 해가 졌는데 손님도 싣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것이 이상해 운전수와 어디로 가는가고 물은 적이 있답니다. 운전수는 당황해하면서 차머리를 돌려 되돌아가더랍니다. 교통경찰은 너무 수상해 오토바이를 타고 그 택시를 쫓아가보았는데 흑룡강성쪽으로 달려가더랍니다. 혹시 운전수가 택시를 흑룡강성에 몰고 가서 팔자고 그러진 않았는지?”
성호는 전화를 쥔 채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라도 그 택시를 쫓아가 우리 집으로 보낼 수 없습니까?”
“알았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수고하겠습니다.”
성호는 전화를 끊자 집 안에서 주먹을 쥐고 왔다갔다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매부라고 택시를 맡겼더니. 엉큼한 놈, 돌아오기만 해봐라.”
정희도 혀를 끌끌 찼다.
“진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쯧쯧쯧, 어쩜 우리 택시를 탐낸단 말인가요?”
준식도 이상한 점을 말했다.
“아침에 택시를 교대해준 후 좀 이상합데. 택시 뒤바곤에서 받치개를 몽땅 꺼내 털어내고 다시 펴지 않겠소? 이때까지 그런 적이 없었소.”
“먼 길을 가겠는데 차부터 정리해야지. 흥!”
성호는 침대에 훌렁 들어누워 벽시계를 쳐다보며 속을 바질바질 태우면서 택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송숙이 들어왔다.
“오빠, 어째 우리 나그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성호는 정희와 눈길을 마주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글쎄. 우리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숙은 성호의 손까지 잡고 울며 말했다.
“우리는 사람을 내놓고 오빠네는 차를 내놓지 않았고 뭐요? 그래도 사람을 내놓은 쪽이 더 속이 타겠지. 안 그렇소?”
“그러나 저러나 이건 알아야 해. 차는 말하지 못하는 기계여서 사람이 모는대로 가지.”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고 송숙은 남의 10만원짜리 차는 둘째이고 남편근심이 태산 같았다.
“거야 그렇지. 혹시 강도라도 만났는지 어떻게 아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정만 쳐다보았다. 그는 괜히 택시 때문에 대대로 가깝게 보내던 친척관계를 벌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희가 얼굴이 새파래나며 뭐라고 말할가하자 성호가 앞질러 말했다.
“다 무사하면 얼마나 좋겠니?”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송숙은 성호의 말에 동을 달았다.
“그러잖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 속에 초조하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 한시간, 한시간 흘렀다.
벽시계가 이젠 밤 9시 반을 가리켰다.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성호는 황급히 전화를 들었다.
“예, 왕교도원? 예? 택시를 찾았다구요? 예, 감사합니다.”
성호는 벌떡 일어서면서 정희와 준식을 둘러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택시를 이쪽으로 압송했다구요? 예, 예, 알았습니다. 왕교도원, 수고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놓자 성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여 휘둘렀다.
“됐소. 택시를 찾았소.”
정희는 침대에 쓰러지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간이 다 떨어지겠다. 사촌매부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고 택시업을 한대요?”
준식은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성호는 주먹으로 벽을 꽝 치며 말했다.
“사람에 달렸지. 엉큼한 사람이야 아무리 잘 대해줘도 량심을 흑룡강성에 실어다 팔아먹으려고 하지.”
송숙은 계면쩍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나그네새끼, 어쩜 흑룡강성까지 가? 뭘 하려고 저랬어? 좌우간 다 무사하다니 됐소. 이제 돌아오면 단단히 따져보겠소? 무슨 놈의 지랄이 나서 그 한끝까지 가서 숱한 사람을 속을 태우게 했는가? 썩어질 나그네새끼. 쯧쯧쯧.”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일어났다.
“저렇게 주인 말도 잘 듣지 않고 택시를 몰고 아무데나 달아다니고서야 어떻게 해요? 어디로 가면 간다는 말이라도 해야죠.”
송숙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형님, 이 집에 운전수 없을 땐 사정, 사정 해서 몰잖았소? 어쩌다가 외지로 차를 몰고 갔는데 연유도 묻지 않고 이렇게 말썽이 많소? 우리 나그네 진짜 이 집 택시를 몰지 않으면 몰 게 없어 그러는줄 아오? 이젠 몰아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어도 몰지 않을 게요.”
정희가 와닥닥 일어나면서 뭐라고 쏴붙이려고 했다.
순간 성호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됐소, 됐어. 괜히 그 잘난 택시 때문에 친척관계가 벌어지겠소.”
그제야 정희는 입을 다물고 도리머리를 홰홰 가로 저었다.
송숙은 성호와 정희를 번갈아보면서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건너방에 들어가 고모를 붙안고 울고 불고하다가 집으로 쥉쥉 가버렸다.
영옥은 건너방에 와서 성호를 불러갔다.
“얘야, 송숙이 나그네 어쨌다고 그러니?”
성호는 승복이 저지른 일을 자초지종 쭉 얘기했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돌아왔으면 욕하지 말라. 언제나 내 좀 미찐다하면 된다. 송숙이 아버진 내 년년생 되는 친오빠야. 우리 오누인 고향에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함께 자랐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우리 오누이 자손들이 이가 벌어지는 거 볼 수 없다.”
“엄마, 알았소. 송숙도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정이 푹 든 녀동생이오. 그러나 매부는 속이 좀 다르오. 돈에 눈이 어둡단 말이오.”
상진도 간신히 일어나 벽에 기대 앉으면서 한마디 했다.
“옛날부터 장사는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고 했느니라. 옛날 내 장사할 때 9촌숙이 내 돈을 다 떼먹고 수엽을 씃은 일이 있다.”
영옥은 령감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만둡소. 9촌숙과 외사촌녀동생이 어찌 같소?”
상진은 영옥을 흘겨보면서 쏘아붙였다.
“가까우나 머나 장사는 매 한가지야. 인심이란 난측이느니라.”
그는 성호를 돌아보면서 타일렀다.
“친척들을 택시를 몰게 하면 관리하기 힘들게야. 옛날부터 쓸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라고 했네라. 들어보니 그쯤 하면 승복을 보고 택시를 몰지 말게 하는게 옳아. 이번엔 교통경찰들이 수고해서 붙잡아오다 싶이 했지만 이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니?”
영옥은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끝내 조카사위를 내칠 작정이구나. 승복이 차를 몰지 않으면 애들 셋이나 키우는 송숙이네 뭘 먹고 산다니?”
상진은 영옥을 꾸지람했다.
“당신 작작 삐치오. 성호, 썩은 살은 사정없이 베버려야 해.”
“알았습구마.”
성호는 바깥에 나가 가로등불빛을 빌어 저 쪽에서 언제 빨간 택시가 나타나겠는가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마가을의 밤바람은 꽤나 싸늘하게 불어쳤다.
성호가 한참 바깥에서 서성거릴 때 저쪽에서 경찰용오토바이 한대가 빨간 택시를 앞세우고 돌아왔다.
성호네 3층집 앞에서 택시가 멈춰서고 경찰도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승복은 계면쩍은지 아니면 량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택시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핸들을 붙잡고 머리를 숙이고 뭔가 찾는 상을 했다.
성호는 경찰한테 다가와 손을 굳게 잡았다.
“밤중까지 수고했습니다. 택시를 찾아주어서 감사합니다.”
성호는 경찰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송하까진 백킬로메터도 넘는데요. 진지 들고 가십시오.”
“송하에서 먹었습니다. 저런 운전수는 절대 쓰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안녕히!”
“예, 편안히 가십시오!”
경찰을 보내고 그때까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승복을 돌아보는 성호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그는 용케도 분을 삭이고 운전석에 다가가 차문을 열어제꼈다.
“아니, 어째 이렇게 늦었소? 전화도 하지 않고?”
승복은 능청스레 대답했다.
“송하에 가는 손님을 싣고 가다나니…”
그는 택시에서 내리더니 키와 돈 50원짜리를 몇장 성호한테 건네주었다.
성호는 받아들고 돈을 세여보니 360원이나 됐다.
“어째 이렇게 많소?”
승복은 “그렇게 됐소. 그 손님이 처음에는 송하까지 가겠다고 했는데 송화까지 가자고 해서 늦었소.” 하고 중얼거리면서 발은 벌써 저쪽으로 슬금슬금 옮겨놓고 있었다.
성호는 더 붙잡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능청스러운 승복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승복이, 이걸 가지고 가서 저녁이나 사 먹소.”
승복은 체면에 돈을 받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가버렸다.
성호는 가로등불 밑에서 멀어져가는 승복의 비틀거리는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세상 인심은 난측이야. 승복은 택시를 흑룡강성에 가서 팔아버리려고 한 게 아닐가? 만약 팔기라도 했더라면 도중에 강도를 만나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 의심스러운 놈은 쓰지 말아야지. 아무리 생활고에 허덕여도 처남 택시를 팔아먹으려고 들가?)
성호는 밤중에야 집에 돌아온 택시를 어루만지고 닦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하루를 삼추 맞잡이로 속을 태워 성호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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