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와 무
김장혁
요즘 단위 편집사업만 해도 눈코뜰새 없이 채바퀴 돌듯이 뺑뺑 맴돌아칠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세방살이하는 청년이 세집의 하수도가 막혔다고 날마다 전화를 몇번씩이나 걸어왔다. 고까짓 돈 몇백원을 받고 세집을 내주었더니 얼마나 시끄럽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겠다.
“집주인입니까? 전등이 고장났습니다. 고쳐주십시오.”
“하수도가 막혔습니다. 뚫어주십시오.”
“화장실의 거울이 깨졌습니다. 새 거울을 달아주십시오.”
지어 이런것까지 요구하였다.
“주인님, 석현에 있는 할머니가 불시에 급병에 걸려 가보아야 하겠는데 먼저 돈을 선대해줄수 없습니까? 일주일후에 상해에 있는 어머니가 돈을 부쳐오면 물게요.”
(별, 세집주인 보고 마지막엔 별 요구를 다 제기한다. 아, 진짜 미치겠다.)
나는 너무 열통이 터져서 안해를 보고 당장 “저 집을 팔아버리고 홀가분하게 살자.”고 말하였다.
세집을 주고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하면 그외에도 택시를 경영할 때에도 별의별 스트레스를 다 받았다.
교통경찰대대 차량관리소와 교통운수관리소에 가서 계도검사, 년도검사를 맞아야 하였다. 그런데 한번에 통과될 때가 아주 적었다. 흔히 몇번 검사를 맞혀야 하였다. 게다가 택시는 고정된 장소에서 경영하는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이나 나이트클럽과는 달랐다. 쩍하면 차사고를 냈다. 그러면 네탈 내탈 하면서 교통경찰대대에 가서 시비를 한후 차수리비를 배상하고 자기 택시도 수리하여야 하였다. 어떤 때에는 차사고가 나서 개명치 못한 대상을 만나면 혼쭐났다. 유관 부문에 인맥이 있느라고 세워놓은 차에 부딛쳐 넘어간 애를, 아무 상처도 없는 애를 입원시켜놓고서 치료비를 내라고 생떼질을 쓰는 애비에미로, 분명 자기 차의 주요 책임인데도 모든 책임을 남에게 들씌우는 차임자로 별의별 작자들과 만나 옥신각신 다퉈야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게서 별의별 스트레스를 다 받아야 하였다. 그러다나니 어데 가 앉아있어도 항상 오늘 또 차사고나 나지 않았는가고 근심을 하다나니 마음이 편안할 새 없었다.
한번은 딴 마음을 먹은 운전수가 택시를 몰고 손님도 싣지 않고 돈화시를 벗어나 길림쪽으로 가는척하다가 길을 바꿔 흑룡강성쪽으로 도망쳤댔다. 다행히 내가 <<법률과 생활>>잡지 기자사업을 하면서 전주 각 현, 시 공안국 책임자들을 잘 알았기에 돈화 교통경찰대대 교도원에게 전화를 걸었기에 경찰들이 택시를 쫓아가 운전수를 붙잡아 택시를 연길에로 되돌려보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가옥소유증을 눌러두고 대부금을 맡아 산 9만원짜리 택시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정말 택시를 경영한 8년, 차가 있은 10년 사이에 나는 그 놈의 차로 하여 근심걱정에 싸여 살면서 그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자기 집에 택시가 있어 가시집에 가거나 고향에 갈 때 편리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택시가 있어 편리하고 즐거울 때보다도 택시로 하여 받은 스트레스와 차사고가 날가봐 근심걱정할 때가 몇십배나 더 많았다.
사람은 사노라면 없는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집이 없이 세집살이를 할 때에는 자그마한 집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차가 없을 때에는 남들이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것을 보면 부럽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있을 때에만이 없을 때의 “무(无)” 가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하고 좋았는가를 알수 있다. 나는 자가용을 다시 사지 않을 예산이다. 택시가 없어지자 온갖 스트레스에서 해탈되여 근심스러운 일이 없어 얼마나 홀가분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아무리 택시까지 있어도 택시가 없는 사람보다도 편안하지 못하고 별의별 당해보지 못한 고생을 다 해야 하지 않았던가! 세집살이를 하다가 40평방짜리 집이 있는것도 얼마나 만족해하면서 알콩달콩 깨알이 쏟아지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집이 있고 세집까지 주었지만 세집값의 노예가 되고 세방살이군들의 “종”으로 되여 하수도구멍을 뚫고 전등을 수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곤혹한가!
“유”와 “무”는 변증법적 대립물이자 통일물이다. “무”로부터 “유”에 이르자면 그만큼 속을 태우고 고생하여야 하고 근심걱정을 하여야 한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여도 있어서 즐겁기만 한것이 아니라 날마다 밤중까지 그만큼 고생과 근심걱정을 하여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없어서(“无” 여서) 고생을 조금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베풀줄 안다면 그만큼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근심없이 살수 있을것이 아닌가.
그래서 경이나 읽고 죽이나 마시는 중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다고 하는것일가? 반면에 권세욕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뭐나 다 가지려고 욕심을 차리면 남의 미움을 받을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항상 근심걱정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것이다. 세도를 부리면 그만큼 원쑤도 많아지고 지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도 있을 것이다.
주: 본 수필은 2011년 "연변문학"에 발표된 수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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