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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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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2018년 12월 29일 10시 23분  조회:1491  추천:1  작성자: 김장혁




                                단편아동소설
                   많은 향화
                                      김장혁

       향화, 참말 이름처럼 어여쁜 애지요. 외씨같이 걀죽한 얼굴에 예지로 반짝이는 새별눈, 항상 응석을 부리는 작은 앵두입, 실로 비너스 버금으로 곱게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옥에 티라고나 할가요. 그 걀죽한 얼굴 왼쪽볼에는 좁쌀만한 기미가 괘씸하게 나 있었어요. 말도 말아요. 그 기미 때문에 우리 귀여운 향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요?
향화는 원래 계산문제풀이는 번개불이 번쩍나게 풀어 학급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히였고 “패뜩골”이란 별명까지 딱 들어붙었어요.
그런데 요즘 그는 영희랑  무용써클실에서 디스코와 발레무용을 배워 신나게 추는 것을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후부터 그는 어쩐지 응용문제풀이가 딱 싫어졌어요. 공부하기보다 춤추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생각됐던 것이지요.
어느날, 향화는 영희를 앞세우고 무용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저를 무용써클에 받아주겠어요?”
향화는 간절한 눈길로 무용선생님을 바라보며 애원했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얼굴로부터 발끝까지 참빗질했어요. 그런데 무용선생님의 눈길이 향화의 볼에 피뜩 멎더니 도리머리질했어요.
“돌아가 공부나 잘 하세요.”
“녜? 요 기미 때문인가요?”
향화의 손이 기미에 가 멎었어요.
“동문 무용하기엔 좀 그래요.”
향화는 무용교연실에서 나온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허나 패뜩골인 그의 머리에는 패뜩 한가지 꾀가 떠올랐어요. 그는 침대에서 바시시 일어나서 어머니 화장품통을 들춰 가지고 거울에 마주 섰어요. 뒤이어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던 눈언저리를 싹 닦고 그 얄미운 까만 기미에 새하얀 분을 발랐어요. 그러나 청어름에 서리 내린듯해 괘씸한 기미 형체를 감출 길 없었어요.
애탄 나머지 그는 아예 분세수를 하다싶이 했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니 실로 온 얼굴은 밀가루주머니에 빠졌다 나온 것 같지 않겠어요. 눈섭은 서리를 맞은 것 같았고 오똑한 코마루 량옆의 물기어린 깜장눈만 가려볼 수 있었어요.
순간 향화는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량볼 우로는 줄 끊어진 구술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이튿날 아침, 향화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을 훔치다가 걀죽한 얼굴에 웃움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어요. 어여쁘게 생긴 얼굴과 몸매를 보고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무대와 열대여섯메터 밖에 있는 관중들이 어찌 화장하고 뺑뺑 돌아치는 요 작은 기미를 보아낸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 주근깨 다닥다닥해도 열다섯메터 밖에서 보면 미인이여서 “열댓메터 밖 미인” 아닌가. 나도 이제, 호호호.)
그는  축 처졌던 어깨가 당금 으쓱해졌어요.
무용수로 될 꿈이 새록새록 다시 싹 텄어요. 하여 그는 새 희망을 품고 재차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울먹울먹해서 기미 있어도 괜찮다고 실토정하면서 애원했어요.   
그러나 무용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어요.
“향화, 꿈은 좋은데요. 누구나 춤추고 싶으면 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딱 기미 때문만이 아닌데요. 향화는 예쁘긴 한데요. 키가 좀 작아서 무용하기는 좀 그래요.”
원래 무용선생님은 처음에는 향화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아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그러나 한 학생의 전도와 관계되기에 이 자리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향화는 어깨가 맥없이 축 늘어졌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기보다 한뼘씩이나 더 큰 무용써클 애들이 춤을 추며 골리는듯한 눈길로 힐끔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향화는 그만 위축감이 들어 엉엉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는 책상다리라도 발 밑에 이어놓고 싶은 애절한 심정이였어요.
“울지 마세요. 정 무용을 배우고 싶다면 오후부터 배우세요.”
“예? 정말입니까? 야, 좋아라!”
향화는 언제 울었는가 싶게 눈물을 싹싹 닦고 무용선생님의 손을 잡고 퐁퐁 뛰다가 와락 안겼어요.
오후부터 향화는 영희네와 함께 아름답고 경쾌한 선률에 맞춰 무용을 배웠어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랐어요.
요즘 그는 벌써 명무용수로 돼 오색찬연한 무대에 올라 선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놀리면서 장고를 둥기당당 치며 장고춤을 추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무용배우기도 향화의 생각처럼 순풍에 돛을 단 격이 아니였어요. 아니,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어요.
날마다 무용선생님의 장고를 치는 박자에 맞춰 반시간씩 련속 팔다리를 놀리면서 기본동작을 익히느라면 온몸이 해나른해졌어요.
좀 고달프긴 했지만요. 향화는 한학기 배운 후 어지간한 춤은 출 수 있어 고달픔을 어지간히 참아낼 수 있었어요. 한창 자랄 나이여서 그런지 그새 문턱에 올라 키를 재여보니 둬센치메터는 더 자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럼 그렇지. 이제 반년 지나 솜옷을 입을 땐 더 크겠지. 등산복도 언니 것만큼 큰 걸로 사야지.)
그런데 뜻밖의 시련을 겪게 됐어요.
무용선생님은 발레무용 기본동작을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발끝으로 서기를 배울 때 실로 참기 어려운 아픔을 참아내야 했어요.
향화는 열개를 셀 때까지도 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고 말았어요. 향화는 발가락이 바늘로 쑤시는듯이 아파 널장판에 물앉아 두 손으로 발가락을 붙잡고 만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울긴? 어서 서요. 이번엔 열다섯개 셀 때까지 서야 돼요.”
“선생님, 발가락이 아파서 못 서겠어요.”
향화는 집에서 부모한테 응석을 부리듯이 어깨마저 흔들며 칭얼거렸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발을 매만지면서 차근차근 일깨워줬어요.
“향화, 무용써클에 올 때 그 강렬하던 욕망은 어데 갔어요? 왜 요만한 아픔도 참지 못하고 물앉아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몇분씩 서야 하는데요. 몇초 밖에 서지 못하고서야 어찌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자, 강자가 돼야죠. 견지하면 아픔이란 놈도 달아나요.”
향화는 마지 못해 일어나서 또 련습했어요. 그러나 나흘도 못돼 발가락이 부어오르더니 이젠 발목까지 팅팅 부어올랐어요. 발가락 뼈가 땅바닥에 닿기만 하면 뼈 속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 눈물을 찔끔찔끔 짰어요. 게다가 발가락 끝은 이젠 걷기만 해도 아파났어요.
고통에 모대기는 향화의 내심을 꿰뚤어본듯이 무용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고했어요.
“꼭 견지해야 해요. 이 고비만 넘기면 썩살이 생겨 괜찮아요.”
(흥! 남은 아파서 이가 다 쫓기는데. 춤? 무슨 놈의 뚱딴지 같은 바레무용이야!)
향화는 무용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념도 하지 않았어요.
게사니무리 속의 병아리처럼 키 큰 영희랑 애들 속에서 춤을 출라니 얼마나 위축감이 들었는지 몰라요. 향화는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분이 콱 치밀었어요.
그후 영희가 와서 무용실로 가자고 잡아끌었어요. 그러나 향화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다시는 무용실로 가지 않았어요.
한편 무용실에 발길을 끊으니 진절머리나게 매서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을 받지 않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어느 날, 청신한 아침 공기에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려고 향화는 운동장에 나갔어요.
자오록한 안개 속에서 어디에선가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 은은한 선률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향화를 확 잡아 끌었어요.
천천히 다가가 보니 안개 속에 명암이 분명하게 실실이 내리드리운 수양버들가지 아래에서 이웃집 은희가 쪽걸상에 앉아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지 않겠어요.
(호- 저렇게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을 타니 얼마나 편안해. 뼈마디 아프게 발레무용을 출게 뭐야?)
향화는 또 패뜩골이 패뜩, 꿈도 패뜩 바뀌였어요.
그는 은희와 지청구를 들이대 그날 오전에 가야금선생님을 만나보게 됐어요.
“오- 아주 곱게 생겼구만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량손을 쥐여 손가락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말했어요.
“손가락도 길죽하니 실로 가야금타기에는 훌륭한 싹인 것 같아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를 끌어당겨 맞은켠에 앉히면서 당부했어요.
“가야금타기도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발레무용공부처럼 중도랑패하게 되오. 견지할만 하오?”
“예! 어떤 곤난이 있어도 꼭 견지하겠어요.”
한참만에야 향화는 해말쑥한 얼굴을 귀 밑까지 붉히면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어요.
(무용선생님이 벌써 뭐라고 쑥덕거렸는가?)
가야금선생님의 짙은 눈섭 아래 맑은 눈은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과는 달리 상냥해 보였어요. 향화는 머리를 푹 떨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생각할수록 별로 무용선생님이 자기를 무용써클에 받기 싫어서 마지 못해 받고서는 고의적으로 발이 아프게 굴어 저절로 물앉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됐어요.
사실 무용선생님은 향화를 잘 배워주라고 가야금선생한테 주탁했는데도 말이예요.
향화가 뾰로통해 침대에 걸터 앉아 있을 때였어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가방에 뭘 들고 들어왔어요.
“향화, 월병!”
“야, 내 좋아하는 월병!”
향화는 어느결에 들가방을 채다가 월병을 량손에 쥐고 게걸스레 먹어댔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사줘요? 예?”
“얘, 얹히겠다. 천천히 먹어라.”
향화는 월병을 량볼이 볼록하게 넣고 오물거리다 콜록콜록 기침을 깇었어요. 그는 어머니 품에 안겨 칭얼거렸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예?”
어머니는 향화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춤을 추는데 가야금을 해선 뭘 하느냐?”
향화는 입이 뾰로통해졌어요.
“어머니, 발가락이 아파 발레무용을 추지 않겠어요. 이젠 가야금써클에 갈래요.”
“그래?”
어머니는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얘야, 한창 꿈이 많을 때지만 자꾸 꿈을 바꿔서 되겠니? 뭐 하나 한가지를 꾸준히 해야지. 우물을 파도 한 곳을 파라고 하잖았니?”
향화는 발을 들어 속살까지 파난 발가락을 보이면서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보세요. 발가락이 끊어질 지경인데요. 그래도 계속 발레무용을 춰야 하는가요?”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어요.
“아이구, 이게 웬 일이냐? 아프겠구나.”
어머니는 입으로 호호 발가락을 불어주면서 중얼거렸어요.
“아프면 가지 말아야지. 괜히 발가락을 다 잃어먹겠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지는 것 같아. 가야금을 사줄게. 가야금타기는 앉아서 하는 거니깐. 아프잖겠지.”
“가야금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우리 요 무남독녀를 사주고 말고.”
“야- 좋아라.”
향화는 기뻐 퐁퐁 뛰였어요.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사연을 안 아버지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밤 향화는 꿈을 꾸었어요.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새하얀 백두폭포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천길만길 하늘가에서 쏟아져내리고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무대배경 앞에서 향화가 걸상에 편안히 앉아 칠색단색동저고리 옷고름을 날리면서 송학이 나래치듯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데요. 박수갈채가 장내가 떠다갈듯했어요.
“아갸갸!”
비명소리와 함께 향화는 발딱 뛰쳐 일어났어요. 꿈이였어요.
무용선생님이 억지로 무대에 끌어내가는 바람에 향화는 발레무용을 추게 됐어요. 그런데 얼마 추지 못하고 무대에서 뾰족한 못을 꽉 밟고 말았어요.
실로 진저리나는 춤이 그의 황홀한 미몽을 깨뜨렸어요.
그후 향화는 가야금선생님의 상냥한 눈길을 받으면서 쪽걸상에 편안히 앉아 어머니가 사준 새 가야금을 재미나게 튕겼어요.
무용써클에 가서 은희랑 함께 달타령 곡조에 맞춰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타기를 배우는 것이 발레무용배우기보다 식은 죽 먹기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오선보 우에 다닥다닥 들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는 실로 머리가 아픈 일이였어요. 성급한 향화는 그 놈의 콩나물대가리를 쟁개비에 기름을 달이다가 볶아 먹으면 머리에 곡조가 막 떠올랐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럼 얼마나 쉽고도 신나게 가야금을 타겠어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곁에 다가와서 차근차근 타일렀어요.
“향화, 어찌 단숨에 배를 불리겠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야지.”
뒤이어 식보지식을 개별보도까지 해주었어요.
향화는 울며 겨자먹기로 도레미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 시작했어요.
오선보 악보에 따라 가야금을 타자고 하니 이번엔 두 손이 착착 배합되지 않았어요. 은희랑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둥기당당 신나게 탔어요.
그런데 향화가 타는 소리는 애처로운 외마디 비명소리에 달가닥거리며 가야금줄을 받쳐든 나무쪼각이 공명밑판을 두드려 듣기도 역정났어요.
애탄 향화는 가야금줄을 마구 쥐여뜯다가 꽝 밀어버렸어요. 심지어 어떤 때에는 신경질적으로 가야금을 마구 발로 차버렸어요.
그때 가야금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춤배우기처럼 중간랑패를 하게 되오.”
향화는 눈물을 훔치고 마지못해 다시 가야금을 탔어요.
련며칠 가야금을 탔기에 오른손 식지와 중지 끝에는 콩알만한 물집이 생겼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면 손가락으로부터 팔을 타고 심장마저 바늘로 찌르는듯 찡찡 아파났어요.
“선생님, 이걸 보세요.”
“오-”
선생님은 다가와 향화의 손가락을 쥐고 여겨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성냥곽을 들고 왔어요.
“터치기오.”
“어마나, 아프지 않습니까?”
향화는 새별눈에 겁기를 꽉 싣더니 손을 뒤로 움츠려뜨렸어요.
“겁쟁이야, 우리도 몇번씩 터치우고 이젠 아프잖아.”
“호호호!”
은희랑 코까지 싸쥐고 웃었어요.
선생님은 억지로 향화의 손을 쥐여다가 식지 물집 우에 성냥가치 꼬투리를 대고 화약껍데기를 쪽 문질러 딱총을 놓았어요.
피씩-
“아이구머니! 선생님, 살랑살랑!”
향화가 엄살을 부리는 사이에 피씩- 소리와 함께 딱총을 맞은 물집이 데여 터지면서 진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엄살쟁이야, 이제도 두개 더 터치워야 해.”
은희랑 떠들었어요.
피씩- 피씩-
향화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손가락으로부터 가슴까지 찡찡 아려났어요.
“아이유, 아파라. 아이고-”
“뭐? 어째?”
향화가 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싸맨 손을 쥐고 죽는 상을 했어요.
어머니는 물기어린 눈으로 향화의 싸맨 손을 보더니 호호 불어줬어요.
뒤이어 어머니는 향화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 밥상을 마주 앉혔어요. 손수 어린애처럼 밥과 국을 입에 한술한술 떠넣어주기까지 했어요.
말수 적은 아버지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더니 건가래를 뗐어요.
“그렇게 어린애처럼 키우니깐. 의력이 없지.”
향화는 아버지가 얄미워 새별눈을 곱게 흘겼어요.
이튿날 향화는 손가락을 싸맨채 가야금써클실에 갔어요.
“싸맨 걸 풀고 가야금을 타오.”
“예?”
순간 향화는 새별눈이 화등잔처럼 휘둥그래졌어요. 상냥해보이던 가야금선생님의 눈길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로 변해 겹쳐보였어요.
그는 흐릿한 눈길로 가야금줄을 내려다보다가 곡조고 뭐고 마구 쥐여뜯었어요. 물집이 터진 손가락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려 가야금줄을 타고 눈물이 흥건한 향화의 얼굴에 마구 튕겼어요. 손가락, 팔, 가슴, 머리에까지 줄이 뻗치며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은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어요.
향화는 가야금을 활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쿵 쓰러졌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섧게 엉엉 울었어요.
이젠 당장 초중입학시험을 쳐야 하는데요. 향화는 응용문제풀기는 싫고 발레무용 꿈도 가야금 꿈도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느날 저녁, 향화는 텔레비죤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그물 우로 쉭- 솟으면서 강타를 안기는 랑평, 지도원으로 된 랑평,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수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받는 중국녀자배구팀 녀자선수들.
웬 일일가요?
향화의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게 뭐예요? 향화는 수상대 선수들 속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했어요. 관중석에서 부러운 눈길로 하염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영희, 은희. 숱한 동창생들의 눈길이 따가웠어요.
향화는 가슴이 부풀어올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운동장으로 나왔어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넘실넘실 춤추는 사이로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은빛이 부서졌어요. 그 선경 같은 경치 아래에서 노랑저고리에 연분홍치마를 입은 은희가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었어요. 그 선률에 맞춰 칠색단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영희가 선녀처럼 장고춤을 나풀나풀 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용선생님과 가야금선생님이 웃음을 지으며 팔을 홱 휘둘렀어요.
저건 웬 일인가요?
은희와 영희는 가야금을 타고 춤을 추면서 오선보 같은 오색령롱한 칠색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고향의 산마루를 훨훨 날아넘더니 예술학원으로 날아가지 않겠어요.
학교 녀자축구팀 말괄량이 경자 등 녀학생선수들은 축구공을 탕! 차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축구공에 매달려 날아올라 체육학원으로 날아갔어요.
숱한 동창생들은 제마끔 입학시험지를 두 손에 들고 하늘로 쌩쌩 날아오르더니 자기 꿈대로 학교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함께 가자! 영희야, 은희야-”
향화는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목놓아 소리쳤어요.
이때 쏴-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덮쳐왔어요.
선생님들이 주는 가야금과 장고를 급급히 받아쥐고 타기도 하고 두드려도 보았어요. 하지만 가야금타기와 장고춤 실력이 차해 한키쯤 몸이 솟다가 되떨어져 내려오군 했어요.
“향화, 뽈을 받소!”
졸지에 체육선생님이 툭 친 배구공이 씽- 날아왔어요.
(옳지. 배구명장으로 돼 내 꿈을 실현해야지.)
향화는 황급히 받아치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배구공이 소녀의 가슴에 쨩 맞았어요. 숨이 컥 막히게 찡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 생긴 물집보다 더 아파났어요.
“에잇, 배구도 못할 노릇이구나.”
이때 쓰나미가 당장 학교 담장을 박차고 들이닥칠 판이였어요.
향화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엉엉 울었어요.
저게 뭐예요?
갑자기 사나운 파도 속에서 고무풍선 세개나 불쑥 솟아올랐어요. 고무풍선 세개에는 각각 가야금, 장고, 배구공이 새겨져 있지 않겠어요.
향화는 머리 우에 둥둥 뜬 그 고무풍선 끈을 황급히 붙잡고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어요. 이젠 고향의 산도 저 먼발치의 모래무지처럼 아득히 내려다보였어요.
그런데 고무풍선은 영희와 은희가 간 예술학원이거나 경자가 간 체육학원 쪽으로도 날아가지 않았어요. 고무풍선은 아득히 높고 푸른 하늘 우의 먹장구름 속으로 날아들어갔어요. 그 먹장구름 속에 글쎄 올림픽 배구장이 있지 않겠어요.  
향화가 구름과 고무풍선을 타고 바야흐로 배구장에 내리려는 순간이였어요.
펑! 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무풍선이 몽땅 터졌어요.
“앗!”
향화는 비명소리와 함께 끊어진 풍선 끈을 잡은채 두 다리를 바둥거리면서 떨어졌어요.
귀뿌리에서 윙윙- 소리났어요.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려갔어요.
“어머니!”
향화는 두 손에 식은 땀을 쥐고 고함쳤어요. 그는 몸부림치다가 그만 침대에서 방바닥에 뚝 떨어졌어요.
그제야 향화는 자기가 이제껏 황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꿈, 고무풍선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오- 꿈많은 향화가 이제 또 무슨 꿈을 꾸겠는지요?
아무리 패뜩골이라고 해도 자꾸 패뜩패뜩 꿈을 바꿔서야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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